<42> 이하석 초대 대구문학관장

▲ 이하석 시인이 지난 15일 대구문학관 초대관장으로 위촉됐다. 이 시인은 “대구문학관은 특정 단체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 어떤 단체라든가 특정 장르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장르가 녹아들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이하석 시인이 지난 15일 대구문학관 초대관장으로 위촉됐다. 이 시인은 “대구문학관은 특정 단체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 어떤 단체라든가 특정 장르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장르가 녹아들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가지가 촘촘히 우거진 나무를 닮았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등단 후 50년가량 흐른 지금 그 가지와 잎은 우리나라 전역에 드리웠다.
거목이 된 이하석(69) 시인은 지역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나무가 제 속에 나이테를 그려넣듯 그는 ‘투명한 속’을 비롯해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 산문집을 품어냈다. 천연 항균물질인 피톤치드를 내뿜어 힐링을 돕고, 비가 오면 고유의 향내를 진하게 퍼뜨리는 나무처럼 시어를 흩뿌려 우리네 마음을 어루만지고 노래하고 있다.
◆글쓰기, 그의 삶이 되다
그의 글쓰기는 유소년기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이어졌고 대학시절 등단해 시인이 됐다.
이하석 시인의 삶은 글쓰기의 연속이었다.
생계를 위해 지역 언론사 기자를 본업으로 삼고 문학활동을 병행했다. 삶 속에 글쓰기가 있었고 글쓰기 속에 그의 삶이 있었다.
이 시인은 “문학만 하다가는 행여 가족들을 굶길 수 있겠다 싶어 직업을 갖게 됐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당시 지역 내 젊은 기자들이 대거 매일신문사로 옮겨야 했다. 매일신문사에서 8년을 근무하다가 이후 복간한 영남일보로 돌아와서 근무했다”며 파란만장했던 언론 생활을 떠올렸다.
그는 신문사 2사회부, 여성부 등을 두루 거쳤고, 주로 문화부에 근무하면서 지역 문인들의 소식통으로 지역 문단을 이끌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기에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신문사 입사 후 현실을 보는 시각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현실을 언어로 반영하는 것이다. 현실의 어떤 면에서는 회오리치는 태풍의 눈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 시각을 틔웠고, 글 쓰는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언론 생활은 1980년 그의 첫 시집 ‘투명한 속’ 발간으로 이어졌다.
입사 직후 미술담당 기자를 맡았던 당시 대구현대미술제 취재는 그가 팝아트, 하이퍼리얼리즘 등 새로운 미술사조에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됐고, ‘미술이 가지고 있는 현대성을 문학에 적용할 수 없을까’ 고심한 끝에 첫 시집 ‘투명한 속’을 펴내게 됐다.
반면 언론에 있었던 것은 글 쓰는데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한 면도 있었다.
“기사와 문학은 굉장히 달랐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환상적인 문체가 어떻게 나왔냐’는 물음에 ‘내가 기자를 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기사는 과장이 심하다. 리얼리티의 문제에서 기사는 맹점이 많다는 것을 기사를 쓰면서 느꼈다. 기사는 기사이고, 문학은 문학이기에 그 경계를 분명히 구별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는 최근들어 시를 더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퇴직 후 전보다 작업량이 늘었다. 작품활동은 계속 해오는 것이고, 문학은 여럿이 하는 게 아닌 개인적으로 이뤄진다. 글쓰기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대구문학관 초대 관장으로 취임
이하석 시인은 지난 15일 대구문학관 초대 관장으로 위촉됐다.
이 시인은 우선 대구문학관이 문화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할 복안이다.
“대구문학관을 중심으로 지역 문인들, 시민들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대구에는 문학관련 단체가 많다. 그 단체들과 연계해서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 시인은 대구문학관의 주요 역할로 작고 문인 현창 사업과 현재 문인 조명 두 가지를 꼽았다.
그는 “작고 문인들을 선별해서 수용하는 것은 물론 작고 문인들을 현창하고 대구문화재단의 아카이브 구축 사업을 활용한 기획전을 구상하고 있다. 또 대구에서는 아동문학, 시조, 시 등 장르 전반에 걸쳐 해마다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연간 기획전과 북토크 콘서트 등을 통해 현재의 문인들을 조명하고 다각도로 자료를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고 전했다.
지역 문단에서 거론되는 대구문학관 확대ㆍ이전에 대해서는 이견을 나타냈다.
“문학관 확대 및 이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크게 짓는다고 문학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대구문학관의 입지 조건은 매우 좋다. 이상화, 이장희, 현진건 등 개인 문학관이 생긴다면 대구문학관이 중심이 돼 소규모 문학관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시인은 대구시의 열악한 재정 지원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대구시의 문화 예산 책정이 아쉽다. 대구문학관에 책정되는 예산 대부분이 인건비 등 사업 외적인 쪽으로 쓰여 정작 문화사업에는 적게 사용되고 있다. 예산 지원이 이전보다 많아져 대구문학관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데 사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문학관 관장이 갖춰야 할 점으로는 ‘균형감각’을 강조했다.
“지역 작가들을 두루 포용하고 수용하는 등 균형감각을 유지하는게 굉장히 중요하다. 특정 단체나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단체라든가 특정 장르로 치우치지 않고 아동문학, 시조 등 모든 장르가 고루 녹아들 수 있도록 하겠다.”
이하석 시인 약력
1948년 경북 고령 출생
1971년 현대시학 등단
1978∼2006년 영남일보 기자,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실장
1980년 시집 ‘투명한 속’
1984년 시집 ‘김씨의 옆얼굴’
1987년 시선집 ‘유리 속의 폭풍’
1987∼1994년 대구경북민족문학회 공동대표
1989년 시집 ‘우리 낯선 사람들’
1990년 김수영문학상
1991년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비밀’
1991년 도천문학상
1992년 시집 ‘측백나무 울타리’
1993년 김달진문학상
1995년 산문집 ‘삼국유사의 현장’
1996년 시집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
1996∼2000년 대구민예총 회장
1997년 시선집 ‘고추잠자리’
1998년 대구문학상
1998년 어른들을 위한 동화 ‘꽃의 이름을 묻다’
2000년 시집 ‘녹’
2001∼2003년 대구작가회의지회장
2002년 대구시 문화상
2002년 시집 ‘고령을 그리다’
2002∼200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2004∼2007년 대구시인협회 회장
2005년 산문집 ‘늪을 헤매는 거대한 수레’
2006년 시집 ‘것들’
2007년 산문집 ‘우울과 광휘’
2011년 시집 ‘상응’
2012년 시선집 ‘환한 밤’
2015년 시집 ‘연애 간’
2016년 시집 ‘천둥의 뿌리’
2016년 김광협문학상
2012년 육필시집 ‘부서진 활주로’
2017년 이육사문학상
2018년 대구문화재단 대구문학관 초대 관장 취임
글ㆍ사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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