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공짜 점심의 역습

“무슨 제도든 납입금액에 비해지급금액이 높지 않아야 하고혜택 기대하면 부담도 각오해야”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a free lunch in economy)’. 이 말은 경제학자들이 기회비용의 원리를 강조하면서 자주 인용해 속담처럼 회자하는 말이다. 공짜 점심(free lunch)이라는 말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 술집에서 일정량 이상 술을 마신 단골에게 공짜로 점심을 주던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공짜로 먹은 점심값까지 술값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먹은 공짜 점심은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공짜 점심은 밥 먹는데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경제행위에 공짜 점심의 이론이 적용된다. 요즘 많은 사람이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정부에서 어떻게 해주겠지’ ‘무상복지로 국가부채가 증가하더라도 나중에 무슨 수가 있겠지’ 라고 너무나 막연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따라서 정말 무슨 수가 있는지 공짜 점심을 경제학적으로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최근 이루어진 설문조사에 의하면 부모에 대한 봉양의무가 사회 또는 국가에 있다고 응답한 국민이 과반을 넘었다고 한다. 사회 또는 국가가 부모의 봉양을 책임지려면 예산이 필요하고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납입금보다 많은 금액을 받게 되어 있는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4대 연금을 운용하는 데도 모두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럼 이제 각종 연금이 고갈될 때 어떤 방법이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연금이 고갈되면 연금지급을 중단할 수 있겠지만 연금지급 중단이 미칠 파장으로 인해 처음부터 선택할 방법은 아니다. 이보다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중앙은행(한국은행)이 화폐를 발행해서 연금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부가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해 국민에게 연금을 주는 방법이다. 각각의 경우 경제적으로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한국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방법은 화폐발행량만큼 물가가 상승한다. 물가가 상승한다는 것은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화폐는 인체의 혈액과 같아서 화폐의 양이 많아지면 인플레이션이, 화폐의 양이 적으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당사자는 연금 파산으로 한 푼도 못 받는 것보다는 물가가 상승하더라도 화폐발행으로 연금을 받는 것이 유리하겠지만 연금과 관계없는 일반 국민은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돈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물가가 상승하면 금융자산 소유자에서 실물자산 소유자로 부(富)가 이전되고 채권자보다 채무자가 유리하게 된다.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상승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굳어지고 국민경제가 주름지게 된다.

그다음으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더 거둬 연금을 지급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정부가 세금을 더 걷는 데는 조세저항이 따르기 마련이고 채권을 발행하게 되면 채권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주머니가 가벼워져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가 불황에 접어들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정된 통화량이 민간에서 국가로 흘러들어 가게 되면 민간에서는 자본이 부족해져 이자율이 오르게 된다.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해 재정지출을 하게 되면 민간의 자본이 부족하게 되어 이자율이 오르고 이에 따라 민간의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는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발생하는 것과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연금이 고갈되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희망적인 결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제도이든 재원이 고갈될 정도로 납입금액에 비해 지급금액이 높지 않아야 하고 혜택을 기대한다면 부담도 각오해야 한다. 부모 봉양 책임이 사회나 국가에 있다든가 인간의 최저 생활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부담을 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경기불황 등 공짜 점심의 역습을 받게 된다. 공짜 점심의 대가는 혹독하다. 20세기 초 미국도 부러워했던 아르헨티나의 추락을 보면 공짜 점심의 역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할 수 있다. 생산을 저해하는 분배도 문제지만 생산이 없으면 분배도 없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조태진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기획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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