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서구·달서구 인접해 도심으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 톡톡

<22> 중구 대신동



대구 중구 대신동은 대구부 서상면에서 ‘신정’이라 불리다 1946년 ‘대신동’이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 1949년 대구시에 편입, 1963년 종로ㆍ중부출장소가 중구로 승격되면서 대구시 중구로 편입됐다. 이후 구간 경계를 일부 조정하면서 대신1동과 대신2동을 나눴으나 1998년 통합해 하나의 ‘대신동’이 됐다.

대신동의 면적은 0.52㎢로 중구 면적의 약 8%를 차지한다.

달구벌대로와 도시철도 2호선 신남역, 3호선 서문시장역이 지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서구, 달서구와 인접해 도심으로 들어오는 중구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인구수는 올 10월 말 기준 7천454명이다.

대신동에는 영남 제일의 상권집약지이자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지역 대표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위치하고 있다.

대구읍성의 서문 밖 약 300m 지점에서 지금의 달서천 주변 하천부지에 자연스럽게 장이 형성됐는데 서문시장의 발단이다. 수 백년 동안 ‘장’으로 이어오다가 1920년 근처에 있던 천황당 못을 메우면서 ‘큰 장’이 만들어졌다.

서문시장은 1960년대 불이 나 목조건물이 사라지고 1970년대 새로 개장했다. 현재는 지난해 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4지구를 제외하고 총 7개 지구로 구성돼 있다. 4천600개의 점포가 성업 중이다.

특히 지난해 6월 야시장이 개장하면서 서문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오후 7시부터 11시30분까지 열리는 서문시장 야시장은 총거리 350m에 80개 매대가 운영 중으로 전국 최대 규모다.

대신동에는 유명한 명물골목도 많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대 침장(침구류 및 실내장식)산업의 1번지인 ‘침장거리’가 있다. 1995년 형성된 이 거리는 현재 전국 침장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최대의 침장 생산과 유통이 이뤄지고 있다.

1970년대 형성돼 현재 40여 업소가 재봉틀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미싱골목’, 1980년대에 최초로 양말소매상이 들어선 이후 다양한 양말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양말골목’ 등도 있다.

문화유산도 빼놓을 수 없다. 대구 최초의 선교사인 아담스가 직접 설계해 1908년에 건축한 서양식 교사 ‘계성학교 아담스관(유형문화재 제45호)’, 계성학교 2대 교장이었던 라이너 선교사가 아담스의 부친인 맥퍼슨에게 지원금을 받아 1913년 9월에 지은 계성학교 맥퍼슨관(유형문화재 제46호), 계성학교 4대 교장인 핸더슨이 블레어 선교사가 미국에서 모금한 자금으로 1931년에 2층으로 건립한 계성학교 핸더슨관(유형문화재 제47호) 등이 자리해 있다.

최근에는 대신동 주민들의 소통과 나눔의 공간인 ‘달성토성 커뮤니티센터’도 생겨났다.

지난 1일 개관한 이곳은 주민들 스스로 마을의 문제를 고민하고 소통하는 마을공동체 공간이다. 마을카페, 마을커뮤니티실, 마을공동작업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오는 17일에는 중구에서는 처음으로 대신동에서 마을축제인 ‘2017 대신동 한마음 축제’가 열린다. 주민들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해 열리는 이날 축제에서는 아나바다와 먹거리 장터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이동인 대신동장은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축제를 기획해 개최할 정도로 주민화합이 잘 된다”며 “특히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구성해 마을의 자원을 가꾸고 더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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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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