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맡길 수 있는 ‘걱정나무’각자 마음에 한 그루씩 심어서언제든 고민을 털어놓을수 있



한때 걱정인형이 온 나라를 누비고 다녔다. 앙증맞은 인형들이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웃음을 나누어주는 광고도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났다. 그래서 걱정인형이라 이름 붙였을 거란 생각이 든 것을 보면 이름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걱정인형은 본래 과테말라 고원지대 인디언들이 만들어 전해내려 오는 민속인형이다. 걱정이 많은 사람이 조그만 인형에게 걱정을 말한 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자는 동안 그 인형이 걱정을 멀리 내다버린다. 그러면 걱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잠시나마 깊은 잠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아이들의 치료용 인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니 일종의 주술인형 같은 것이겠지만, 지혜가 담겨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않은가.
친구 중에 걱정이 유난히 많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주 두통을 앓곤 한다. 들어보면 대체로는 별일이 아닌 것 같은데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곤 하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다소 느긋하고 긍정적인 성격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부르는 법이다. 나의 평소 지론은 ‘걱정해서 해결될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해결이 될 것이고, 해결이 안 될 일은 아무리 걱정을 해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친구는 이런 나를 보면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곤 한다. 어쩌면 서로 극과 극의 성격을 가졌기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아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말이다. 주위에 사람은 많지만 막상 나쁜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아파하며 위로해주고, 좋은 일에 진정으로 더불어 기뻐해 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시대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걱정인형을 하나씩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무나 귀여운 인형, 혹은 애완동물이라도 괜찮겠다. 걱정을 잠시 맡겨두더라도 안심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책임을 전가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사랑으로 돌보되 가끔 도움을 청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맡겨둔다면 밖으로 새어나가 난처해질 염려도 없을 터이다.
한 가장이 있었다. 그는 집은 항상 화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퇴근을 해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늘 마당에 있는 나무를 먼저 찾는다. 나무에게 그날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 미안하지만 내일 아침까지만 맡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가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집을 나서며 어김없이 나무에게 맡겨두었던 걱정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그 방법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즈음부터 내게도 걱정나무가 생겼다. 너무 자주 맡기면 미안하겠기에 한 달에 한두 번쯤 신세를 지곤 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언젠가부터 익숙해졌다. 나무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분주한 오월이다. 가정의 달이며 사랑의 말이 넘치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외로운 사람이 더 많아지기도 하는 법이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모든 사람이 걱정나무 한 그루를 마음에 심어두면 좋겠다. 힘들거나 외롭거나 속이 상할 때 언제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반려가 된다면 대부분의 고민은 셀프로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박경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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