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악순환이 ‘사회적 유전’폭력 해결 위한 다각적 노력 필요



폭력의 DNA는 대물림된다. 필자는 과거 여러 칼럼을 통해 이를 ‘사회적 유전’으로 칭했다.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결과 내린 경험적 결론이다.
그런데 이런 결론이 다시 한 번 확인 되었다.
한 매체의 심층보도에 의하면 폭력은 그대로 대물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의 피해자들이 겪는 장단기 후유증들이 거의 그대로 대물림된다는 것이었다.
길마틴(Gilmartin, B.)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에서도 폭행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의 배경에는 예외 없이 과거 부모나 교사 등 다른 보호자들에 의해 폭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특징을 보면, 피해 아이들은 대부분 도벽, 상습적인 거짓말,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
도벽은 생존본능의 일환으로 최대한 챙겨놓고 보자는 심리의 발로다. 거짓말은 솔직하면 손해라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격적인 행동 역시 피해의식에서 나온다. 더 이상은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자극에도 필요 이상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이런 결과가 다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필자가 1년 동안 상담하며 관찰한 사례도 그렇다. 사례 학생은 늘 크고 작은 폭력을 행사했다. 등하교 길은 물론 집에서도 폭력을 휘둘렀다.
자신의 기분을 거스르거나 ‘빵 셔틀’을 거부하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을 화장실로 불러 뺨을 때렸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발길질을 하는 것은 예사였다.
상담 결과 사례 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사례 학생에게 풀었다. 어머니 역시 알코올 중독으로 아이를 방관했다.
이 가정을 사례 관리하던 사회복지사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사례 아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을 그대로 어머니에게까지 전가시킨 것이다.
정부에서 생활비로 지급하는 복지보조금은 유흥비로 써버리기 일쑤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학대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졌고 그것은 다시 학교폭력과 어머니에 대한 폭행으로 이어진 사례다.
유년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던 피해자들은 폭력에서 벗어난 지 짧게는 1년, 길게는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대에서 탈출한 아이들도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어렵다. 이들은 물건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려는 증상을 보인다.
앞서 지적했듯이, 장기간 심리적, 물질적 결핍상태에 있다가 쉼터 등 안정적인 환경에 놓이자 “이럴 때 최대한 챙겨 놓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바로 도벽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거짓말 역시 생존본능으로 설명한다. 보통 학대부모들은 폭력의 원인을 아동들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학대받는 아이들은 구타를 당했던 경험들로 상대가 원하는 대로 사실을 가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다시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된다. 학교폭력을 단순히 독립된 한 가지 형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방증이다.
요약하면, 가정 내에서 폭력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이 사회적 대물림을 통해 폭력의 주체로 재등장하게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셈이다.
이는 학교폭력의 예방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관련 영향 요인들을 살펴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어떻게든 학교폭력은 막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학창시절의 학교폭력은 훗날 사회전반의 폭력으로 이어진다. 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단순한 구호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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