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의 피아노 선율에 맞춰마음을 한데 모으고 합창사문진의 밤은 뜨거웠다”


사문진 나루터에 100대의 피아노가 놓였다. 대구에 처음으로 피아노가 들어 온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5년째 여는 특별한 연주회다. 출연자들의 면면 또한 만만찮다. 관중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100대의 피아노가 낼 웅장한 음률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낮부터 열기가 뜨겁다.

어스름이 내리자 연주회가 시작된다. 백 명의 피아노 연주자들이 첫 음을 내는 순간 혹시라도 실수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조바심이 든다. 첫해에는 다소 불안한 음들이 마음을 졸이게 했다는 평을 들은 터이다. 괜한 기우였나 보다. 눈을 감자 음표들이 가지런한 매무새로 가슴에 스며든다.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한 몸인 듯 매끄럽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멜로디가 넓은 야외 공연장에 퍼져나간다. 순간 소란스럽던 관중석의 소음이 잦아든다. 조용한 감상과 우레 같은 박수, 이 또한 관객과 연주자의 아름다운 소통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불협화음이 심하다. 작게는 가족 간, 친구 간에서부터 크게는 노사 간과 정치인들까지.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리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기에만 열을 내고 듣는 데는 소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불통은 배려 부족현상이다. 저 100명의 연주자 중 한 사람이라도 혼자 튀고 싶어 한다면 분명 거슬리는 음들이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카페에 서너 명의 젊은이가 둘러앉아 있었다. 한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머지는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한참을 앉아서 지켜보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맞추고 귀를 세워 들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답은 건성이고 눈과 손가락은 휴대전화 자판위에서 분주하다. 자주 대하는 풍경이라 이제는 생경스럽지도 않다. 그래도 한 번씩 양념삼아 대거리도 하고, 함께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그것이 젊은이들의 소통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식당에서 일이다. 옆 테이블에 네 명의 중년 남성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잔이 몇 번 부딪히고 혈색이 좋아지자 목소리가 높아진다. 듣지 않으려 해도 자연히 고막을 파고드는 소리를 막을 재간이 없다. 식사를 하던 나와 일행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음을 삼킨다. 어느 순간부터 네 명이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두 사람씩 마주보며 진지한 대화를 하듯 자기의 말만 하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불협화음이다. 그럼에도 대화는 끊이지 않고 술자리가 이어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요양원마당 나무의자에 두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계신다. 도란도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시나 했더니 갑자기 언성이 높아진다. 무슨 일인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바투 앉는다. 내가 다가가 앉은 것도 의식하지 못하시는지 알은체도 하지 않는다. 잠깐 듣고 있던 나는 피식 웃음을 토하고 만다. 싸움이 될 일도, 소통을 해야 할 일도 아니다. 서로 영판 다른 자기 이야기만 서로 늘어놓고 계셨던 것이다.
낯익은 사회복지사가 늘 있는 일이라고 귀띔해준다. 잃어버린 기억이 더 많지만 하실 말씀들은 많다고. 저 두 분은 외로움 때문인지 혼잣말도 꼭 함께 앉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간에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방통행 식일지라도 두 분의 소통일지라도 오래 지속되었으면 싶다.
어느새 출연진들의 순서가 끝나고 무대는 오늘의 콘서트를 마무른다. 지휘자의 돋보이는 기지는 잠시 후 드러났다. ‘흥해라 밴드’라 소개받은 젊은이들이 무대 위로 우르르 몰려나온다. 신나는 우리가락에 맞추어 거침없는 막춤으로 몸을 흔들어댄다. 신명이 절로난다.
“함께 노래하세요. 100명의 피아니스트가 생음악으로 연주해주는 노래방을 또 언제 경험해보겠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관객석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유독 음치인 나도 분위기에 끌려 따라 부른다. 다른 사람들의 음과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소리가 심하다. 하지만 어떠랴. 모두가 함께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을. 내 목소리는 어느새 합창 속에 묻힌다. 마음을 한데 모으고 정성으로 함께 한다면 불협화음일지라도 아름다운 화음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모두 무대 앞으로 나와서 함께 즐기라는 멘트가 나온다. 낮부터 몇 시간씩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었던 관객을 위한 배려다. 어깨를 들썩이며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 의자에 앉아 손바닥이 아리도록 박수를 치는 사람들로 사문진의 밤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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