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유독 아름다운 경주에지진이 남기고 간 불안·두려움 열정적으로 살 용기로 바꾸자 ”



세계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일본이 아니라 이란이라고 한다. 축구공처럼 생긴 지구의 판 중에서 이란판과 아랍판이 만나는 곳에 있는 그 나라는 거의 매일 지진이 일어나는 정도라고 하니 그곳 사람들에게 지진은 아마도 일상이 아닐까 싶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 소식이 들려와도 우리는 예외인 줄 알았다. 조상님들께서 터를 잘 잡은 덕분에 지진 같은 재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경주에 진원을 둔 몇 차례의 지진과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작은 여진들에 남쪽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이 커졌다. 남쪽뿐만이 아니다. 워낙 국토가 좁다보니 이번 지진은 거의 전국에서 감지가 되었고 더 큰 지진이 올 경우 그 영향은 어디까지일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원전이 밀집해 있는 동해안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지진이니만큼 원전에 대한 불안은 사람들을 더욱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이곳 대구에서도 비교적 크게 느껴졌던 그 흔들림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공포를 알게 해 주었다. 5.8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던 그 밤, 거실 바닥 밑으로 파도가 지나가는 듯한 울렁거림과 창문의 흔들림과 화장대 위의 화장품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도 두려움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았다.
여진인지 또 다른 지진의 전조인지 알 수 없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크고 작은 흔들림에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간다. 주부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로 보내고 난 뒤 인터넷 카페에 모여 지진에 대한 불안과 대비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중에서도 어린 아이를 둔 젊은 엄마들은 유독 걱정이 많다. 아예 집에 피난 보따리를 싸두고 언제든 지진이 나면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었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준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이란의 코케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들은 영화배우가 아니라 실제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영화라기보다는 그냥 그 마을의 일상의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굳어져 있던 고정관념을 확 바꾸어 준 영화였고 나 역시 처음 보았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찍은 후 얼마 뒤 코케마을과 그 부근을 대지진이 할퀴고 간다. 그 소식을 듣고 감독은 영화에 출연했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코케마을로 향한다. 코케 마을을 찾아가는 감독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에서부터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는 시작된다.
코케마을로 가는 길은 모두 막혀 있다. 이리저리 돌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포스터를 보여주며 아이들의 생사를 물어도 아는 사람들이 없다. 감독은 코케 마을로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 속으로 카메라를 비춘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일시적인 동정심이나 천박한 호기심이 아닌 그들의 시간과 삶 속으로 감독은 함께 걸어들어가며 과장없이 있는 그대로 카메라를 비춘다.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코케마을로 가는 길은 조금씩 희망을 보이고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을 담담하게 살아간다. 불행이 찾아왔지만 그 속에서 살고 죽는 것은 신의 뜻이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주어진 시간을 다시 살아가야 한다고. 결혼식을 올리고 축구 경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일상을 찾아간다.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고 인간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초반의 풍경에서 그 어떤 절망과 고통의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의 뜻이라는 것을 보여 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번 지진의 진원지인 경주는 나의 고향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의 고향인 크레타섬을 두고 말한 ‘한 번 부르면 가슴이 뛰고 두 번 부르면 코끝이 아파오는 이름’. 내겐 경주가 그런 곳이다.
이런저런 피해의 소식에 가슴 깊은 곳이 아파온다. 이맘때 쯤 경주의 코스모스는 유독 아름답다. 오래 된 능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천년의 비밀을 속삭이고 작은 돌 하나도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 우상처럼 마음 깊은 곳에 늘 세워 둔 오래된 석탑은 난간이 떨어지고 보기만 해도 정겨운 첨성대는 옆으로 기울기를 더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싶다.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났을 것을 생각하니 애가 탄다.
겨우 5.8의 지진과 몇 번의 여진을 겪고 우리가 떠는 호들갑이 과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동안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아닌 것이 아니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보니 불안이 커져 두려움이 된다.
겉은 무뚝뚝하여도 따뜻하고 속 깊은 내 고향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이 불안과 두려움을 더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로 바꾸자고.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므로.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