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첫 메달 안겨준 정보경 선수처럼 나랏일 맡아보는 높은 관리들도국민에게 희망 한판 보



노란 머리, 작지만 단단히 다져진 체구의 그녀가 상대를 매섭게 몰아붙인다. 위험한 순간순간마다 재빠른 동작과 암팡진 발길질로 위기에서 잘도 빠져나온다. 상대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하여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그녀는 여자 유도 48kg의 정보경 선수. 나는 화면 속의 그녀에게 푹 빠져 버렸다.
제31회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리우데자네이루. 먼 나라에서 땀을 흘리는 태극전사들 중에서 유독 이웃집 개구쟁이 같기도 하고 홍안의 미소년 같기도 한 그녀에게 눈길이 간다. 그녀는 세계랭킹 8위로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했다. 16강에서는 베트남 선수를 8강에서는 세계랭킹 1위인 몽골 선수를 4강에서는 쿠바 선수를 차례로 제압하면서 결승 진출권을 따냈다.
이제 결승까지 2분여 남았다. 꼭 쥔 손에 땀이 배고, 앉아 있는 다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매미도 이에 질세라 창밖에서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요란한 그 소리가 내 귀에는 마치 삼삼칠 박수 소리로 들린다.
햇볕까지 관중이 되어 내 옆에 앉는다.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열기를 더하고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 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먹을 움켜쥔 채 양팔을 앞으로 뻗어 내가 결승전을 치를 듯이 자세를 취한다. 전신에 긴장이 감돈다. 내 마음도 이런데 그녀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텔레비전 속의 상대선수를 나는 한참이나 노려본다.
그녀는 선수 중에서도 최단신이다. 날렵하게 파고들기 좋은 작은 덩치의 장점을 살려 연승 행진을 이어 가길 바랄 뿐이다. 상대에게 벌칙이나 반칙을 유도하고 자신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와 상대를 질리게 하였으면 하는 생각도 굴뚝같다. 결승이니만큼 온 힘을 다해 후회 없는 마지막 한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상대보다 한 수 빠르게 행동을 취했다. 자신의 힘을 빼지 않으면서 경쟁자의 힘을 빼는 기술로 상대방보다 반 박자 앞서 들어갔다. 그러나 생각만큼 경기는 풀리지 않았다. 좀 더 힘을 내어 업어치기 한판으로 쾌거를 이루었으면 싶었는데 결국 경기 시작 1분 57초 만에 아르헨티나의 파울라 파레토에게 절반을 내주고 말았다.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건 그녀는 만감이 교차하였으리라. 한국 유도의 자존심으로 영원히 남을 금자탑을 쌓은 그녀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강한 승부 근성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이십 대의 절반을 선수촌에서 보냈다. 우리나라에 첫 메달을 안겨준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나는 또다시 그녀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세계 랭킹 1위가 예선에서 탈락하고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는 이변이 많았던 리우올림픽. 그러고 보면 영원한 강자도 패자도 없는 것 같다. 메달의 획득이나 메달의 색깔과 관계없이 참가한 선수 모두가 챔피언인 것 같다. 한국 선수와 북한 선수가 나란히 찍은 사진도 큰 화제를 낳았다. 희망을 그려나가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분단의 아픔까지도 어루만져 주었다.
다음 개최지는 도쿄이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선택한 일본. 세계가 또 한 번 일본 국민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우리는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았다. 사드 배치 문제의 갈등이 그랬고 돈에 무너지는 법이 그랬으며 화합 대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당의 태도가 그러했다. 그나마 간간이 들려오는 선수들의 승전소식이 위로가 되어 주었다.
이제라도 다툼에서 벗어나 번민하고 노력하는, 귀한 손으로 삿대질이 아닌 따뜻한 악수를 건네는 이 나라의 진정한 일꾼이 되어주길 희망해본다.
올림픽은 끝이 났지만 선수 모두는 여전히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쉬움은 곧 희망이다. 다시 그날을 위해 희망 한판을 겨냥해 나갔으면 한다. 나랏일을 맡아보는 높은 관리들도 국민들에게 희망 한판을 보여주고 돌팔매의 세례보다는 박수 소리에 익숙해지기를 고대해본다.
자, 다시 시작이다. 오늘 밤 나도 금메달 같은 보름달을 방에 들여놓고 둥근 희망 하나 제대로 빚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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