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김창호 합동서점 사장



“책은 내게 있어 인생 그 자체입니다.”
가난했던 시절. 없는 살림에도 한 두 푼씩 용돈을 모아 책을 사는 게 큰 기쁨이었다는 김창호(64)사장은 경북대학교 서문 인근에서 36년 넘게 헌책방을 운영 중이다.
한 때 금융권 입사 시험을 준비했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됐던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건 손바닥만한 책 한 권을 사면서였다.
그의 첫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 처음 책장을 넘겼을 땐 외국 등장인물의 이름이 너무 길어 재미는커녕 내용 이해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하루에 20장씩 2개월에 걸쳐 겨우 완독했을 정도였단다.
이후 독서에 흥미를 잃어버린 그는 책을 방치해놓은 채 까맣게 잊고 지냈지만, 시간이 흐르고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곤 호기심에 다시 책을 펼쳤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엔 내용이 모두 이해되기 시작했단다. 세번 째 책을 정독한 뒤 책장을 덮는 그의 눈에는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눈물이 가득했다.
이처럼 책 한 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된 김 사장은 틈날 때마다 책을 사모으게 됐다. 나중에는 책을 베고 자야 할 정도로 방과 집에 책이 쌓여 헌책방처럼 변했다.
결국 그는 취업을 포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면서 1980년 대구시청 헌책방 거리에서 ‘자유서점’을 연다. 서점은 4년 뒤 현재 자리로 옮겨졌고 ‘합동서점’으로 이름이 바귀었다.
현재 합동서점이 보유한 서적은 60여만 권에 달한다. 역사, 종교, 예술 등 다양한 주제와 종교서적, 만화, 참고서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중 그가 애지중지하는 고서는 7천여 권 정도다.
1937년 국내 한 레코더사에서 발간한 유명 가수의 만담과 가요 목록책, 1906년에 발간돼 100년도 더 넘은 고서적인 ‘동물학’. 1929년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일순의 행적 등을 정리해 편찬한 대순전경 초판까지 있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듯했다.
그는 문학의 본질을 담은 책들이 사라지고 가벼운 내용의 책들을 읽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크게 아쉬워했다.
김 사장은 “책을 읽으면서 고뇌하고 깊이 생각하던 시절이 지났다”며 “시간 보내기를 위한 흥미 위주의 도서가 늘면서 문학 또한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창 서점이 잘됐을 때는 하루 100여 명의 대학생이 서점을 찾아 양팔에 30~50권씩 책 꾸러미를 들고 책방을 나서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과거에는 책이 지식이자 능력의 척도였기 때문에 책방에 틀어박혀 학문을 갈구하는 대학생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는 것.
그러나 인터넷 등의 발달로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독서인구도 줄고 시중에 많던 서점도 거의 사라지고 정작 역사의 발자취를 담은 고서적 등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조금이라도 지식을 채우고자 책방 앞을 기웃거리던 젊은이들의 수가 예전 같지 않다. 그들에게 값싼 가격으로 서적을 제공하려고 만든 서점이 지금은 텅텅 비었다”며 “책은 우리나라의 문화이자 역사다. 역사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한다면 국가의 발전은 더뎌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아람 기자 aram@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