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을 걷어내도 나는 거미였다/ 김정희

~피는 물보다 진한가?~… 남편이 잠적했다. 사채업자들이 행패를 부렸다. 남편 행방을 대라며 소리쳤다. 살림살이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세 살배기 딸이 울음을 터트렸다. 딸을 옆방으로 피신시켜놓고 대차게 대들었다. 접시를 힘껏 내던졌다. 접시 하나를 더 날렸다. 숨쉬기도 버거웠지만 싸움닭처럼 머리털을 세웠다. 그런 다음 물러간 걸 보면 세게 나간 게 먹혀든 셈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피붙이가 더 나쁘다. 작은형은 빚더미 사업장을 권리금까지 얹어 남편에게 떠넘겼다. 남편은 적자 사업장을 빚내서 인수했다. 사업장은 엉망진창이었다. 사채를 쓰고 큰형 돈까지 빌려 썼다. 그 와중에 큰형은 원금보다 이자를 더 많이 챙겨갔다. 결국 남편은 부도를 내고 숨었다.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나도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아는 언니가 사는 광주로 갔다. 보증금은 방이 나가면 보내달라고 주인 언니에게 부탁해두었다. 광주에 도착하자 아는 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는 내가 간호사로 있을 때 사고무친 중증 우울증 환자였다. 농약을 먹고 입원한 그녀를 가족처럼 돌봐준 인연으로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언니가 되었다. 우리 모녀가 머물만한 사글세 집을 구했다. 언니는 필요한 물건들을 꼼꼼히 챙겨주었다. 보증금까지 대주었다. 가족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을 느꼈다. 분식집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딸을 맡겨둘 어린이집도 찾았다. 딱한 사정을 알고서 딸을 무료로 맡아주겠단다. 돈만 밝히는 가족보다 남들이 나았다. 인천의 집주인한테 전화가 왔다. 남편 큰형이 빌려준 돈을 보증금으로 해결해야한다고 가져가겠단다. 다급한 김에 남편 절친에게 전화를 했다. 나와 살면 일도 안 풀리고 명도 짧아진다는 남편 말을 전했다. 어이가 없었다. 큰형한테 전화를 걸어 보증금을 가져와야 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사정했지만 턱도 없었다. 보증금으로 원금을 정리하기로 남편과 합의했단다. 부부관계를 정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으로 올라가서 합의이혼을 하고 내려왔다. 신문을 돌리다가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갔다.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언니를 만났다. 언니가 췌장암 말기라 불과 몇 달밖에 못산단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슬픔과 실의에 빠진 나를 오히려 위로해주었다. 언니는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나에게 주었다. 혈연보다 더 소중했던 언니였지만 끝내 떠나갔다. 딸이 외로움을 타는지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의 이기심이 딸을 외롭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랑받고 싶어 했던 지난날이 스쳐간다.…피가 물보다 진한 건지 의문이다. 혈연끼리 다투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자존심이나 제사 아니면 재산 때문에 싸운다. 오죽하면 형제자매는 전생에 원수였다는 말이 나올까. 내 것 네 것 없이 부대끼며 함께 살다가 독립하게 되면서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현상일 수 있다.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가 부딪히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원인일 수 있다. 종족보존이 본능이라면 혈연의 정 또한 외면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가족 간이라 하더라도 넘지 말아야할 선은 지켜야 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쌍욕을 한다든가, 근거 없는 말로 부부관계를 깨는 일은 금기다. 가까울수록 더 어렵다. 서로 배려하고 예의를 갖춰야 혈연의 정을 느끼는 법이다. 오철환(문인)

배롱나무/ 정진희

여자의 깊은 한은 무명색이 아니랍니다//제 살 속 저미고 뼈마디 다 드러내어//하늘에 쏟은 핏덩이 붉디붉은 꽃이랍니다//시앗 해순이로 말을 잃은 울 어머니//터진 속살 벗기며 어응어응 울었습니다//어젯밤 바장이던 그 나무 시앗 봤나 봅니다//붉던 그 꽃 어머니와 무덤으로 갔습니다//골짜기에 다 맺힌 한을 꽃으로 풀어놓고//몸뚱이 피를 모두 뿜습니다//후드득 꽃 집니다「왕궁리에서 쓰는 편지」 (고요아침, 2020)정진희 시인은 전북 익산 출생으로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왕궁리에서 쓰는 편지’가 있다. 흔히 시인에게 에스프리라는 잣대를 들이댈 때가 있는데 정진희 시인은 실로 에스프리가 빛난다. 어떤 작품을 읽어도 그만의 에스프리가 반짝거리는 것을 산견할 수 있다. 에스프리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자유분방한 정신작용을 뜻하는데 다른 말로 기지다. 시정신이라는 말로 규정할 수도 있겠다.지금 창밖에 배롱나무가 세 그루 보인다. 여름 한철 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3층 서재에서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붉은 기운이 가득히 몰려오는 느낌을 주곤 했다. 그러한 기분은 늘 마음을 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11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어서 꽃은 온데간데없고 빈 가지만 허허롭다. 다시 동면의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배롱나무’에서 화자는 여자의 깊은 한은 무명색이 아니라고 외친다. 배롱나무처럼 제 살 속 저미고 뼈마디 다 드러내어 하늘에 쏟은 핏덩이 붉디붉은 꽃이라는 것이다. 시앗 해순이로 말을 잃은 울 어머니 때문이다. 터진 속살 벗기며 어응어응 울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젯밤 바장이던 그 나무도 시앗 봤나 보다, 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붉던 그 꽃은 어머니와 함께 무덤으로 옮겨갔다. 마침내 골짜기에 다 맺힌 한을 꽃으로 풀어놓고서 몸뚱이 피를 모두 뿜는다. 그때 후드득 하면서 꽃이 하염없이 지고 있다.어머니는 그렇듯 한 맺힌 삶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고, 해마다 여름이면 피는 배롱나무 꽃을 바라보는 화자는 혼자 어머니를 기리며, 말 못할 그리움으로 아픔을 달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몇 편의 작품에서 더 드러난다. 먼저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오래된 익숙함도 허락 없이 넘어버린 담벼락 사이에서 그림자 어찌할 수 없어 내리꽂은 은장도, 라고 노래하면서 뒤란에 삭은 가슴 널어두신 어머니를 그린다. 상처 많은 여자로 가시 끝에 매어두고 그래도 꽃이고 싶어 끌어안은 달의 몸짓을 보였던 분이다. 혓바늘 돌기 선 기다림의 한편에서 뒷문 열고 기억을 닦아내는 천상 여자였던 어머니는 울안에 가득한 하늘 소리 없이 떠나던 봄만 남겨두고 가셨다. ‘노랑돌쩌귀’에서도 쉰 나이에 몸 가진 어머니가 그 밤에 고아 먹고 죽자 하던 돌쩌귀 한 사발 오지게 깨어버리고 칠삭둥이 딸을 봤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참으로 한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면서 나 없었음 울 엄마 어떻게 살았을까, 라고 생각하며 애잔한 마음으로 정화수에 치성 올리고 미주알 다 빠지도록 따비밭을 헤매셨던 일을 떠올린다. 끝수에서 화자의 어머니는 노랑 돌 씨앗 하나 화분에 심어두고 막내딸만 알아보는 아흔 기억 열어두고 있어서 그 말간 웃음에 그만 쉰의 눈빛은 흔들리고만 있다. 간절한 눈빛과 더불어 마음이 얼마나 애잔했으랴.가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속으로 어머니를 나직이 불러보곤 한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을 또렷이 기억하면서 그 뜻을 좇아 살려고 힘쓴다. 정진희 시인의 사모곡은 더없이 애절하여 심금을 울린다. 참, 눈물겹다. 이정환(시조 시인)

로프공의 비 오는 날/ 안윤하

한 남자가 비를 맞고 서 있다/ 두 손으로 우산을 들고 서 있다// 높은 임금의 유혹이/ 기다란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비바람에 젖으며 흔들리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덥석 잡은 로프를 몸에 비끌어 매고/ 동료와 함께/ 허공으로 뛰어내리던 순간/ 아찔하게 미끄러지더니/ 끊어진 끈…/ 툭 떨어져/ 하얗게 식어가는 그의 얼굴에/ 우산을 받쳐주고 서 있다// 젖는 줄도 모르고/ 흐르는 줄도 모르고/ 퉁퉁 붓는 줄도 모르고/ 넋 놓고 서 있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 (대구문인협회, 2013)로프를 타고 일하는 사람을 흔히 로프공이라고 부른다. 주로 고층건물의 외벽 청소나 균열보수작업, 도색 작업 등을 한다. 선거철엔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다는 일도 로프공의 손을 빌린다. 얼른 봐도 일이 위험해 보이고, 위험수당을 감안하면 일당이 높을 것 같다. 하지만 중간관리업체, 인력파견업체 등이 건물주와의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에 정작 로프공의 일당은 생각만큼 높지 않다. 일을 따내기 위해선 견적가격을 낮춰야 하고 중간관리업체가 거기서 커미션을 먹고 인력파견업체에 일을 넘겨준다. 다시 그것을 업자와 로프공이 나눠먹어야 하니 일당이 높을 수 없는 구조다. 로프공의 위험프리미엄은 일감 확보를 위한 경쟁과정에서 먼지처럼 사라지고 마는 셈이다.대부분 빠듯한 금액으로 로프작업을 강행해야 일감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그런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살아남는 손쉬운 방법은 안전장치를 건너뛰고 작업일정을 빡빡하게 짜는 것이다. 로프공은 위험한 걸 뻔히 알면서 제대로 된 보안장비도 없이 줄을 타고 강요된 일정에 따라 계속 무리를 한다. 홀로 위험을 떠안은 채 줄을 잡아야 한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은 위험해서 줄을 탈 수 없다. 현실은 엄혹하다. 일정을 준수하거나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작업을 강행하는 상황에 맞닥뜨려진다. 열악한 일기에도 조심해서 작업하는 관계로 무사히 작업을 마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사고는 그런 안일함이나 설마라는 허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법이다.비바람 치던 어느 날, 로프를 타고 작업하던 로프공이 추락했다. 돈을 더 벌어 처자식과 맛난 고기를 구워먹으려는 어린 마음에 위험을 감수하고 줄을 탔다가 그만 변을 당했다. 유혹만이 줄에 매달려 흔들리고 높은 임금은 끊어진 줄을 따라 떨어졌다. 위험프리미엄은 줄 끝에 매달려 높은 허공에서 마음 없이 바람에 대롱대롱 흔들린다. 높은 위험성은 현실이 됐지만 그 보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로프에 매달려 애쓰다가 중력을 타고 추락하던 그의 마지막 얼굴이 가슴을 후벼 판다. 작은 희망은 절단된 줄처럼 툭 끊어졌다. 이제 와서 끊어진 줄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한 남자가 비를 맞고 처연하게 서 있다. 두 손에 우산을 들고 비를 맞는다. 하얗게 식어가는 얼굴이 비에 맞을 새라 우산을 받쳐주지만 핏기 없는 얼굴이 더욱 더 창백해지는 걸 막기엔 역부족이다. 자신의 몸이 비에 흠뻑 젖는 것도 모르고 비바람을 맞고 마냥 서 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빗물로 씻어내려는 듯 비를 맞고 하염없이 서 있다. 퉁퉁 부어오른 눈 두렁을 빗물에 내맡긴 채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다. 이승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 로프를 탔을망정 다음 세상에 가서 줄을 타거들랑 꽃 그네만 타길 기원하리니. 오철환(문인)

풀잎 연가/ 김경호

Ⅰ.// 군데군데 떨어져 피어나/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다져 먹고/ 어지러운 하늘 속/ 가라앉지 못하는 먼지바람 하나도/ 버리지 마/ 밀리고 흩어진 벌판 위에/ 잠들지 않고 내리면서/ 굽은 등 펴고 눕게 하는 비/ 비 맞아도 젖지는 마/ 굽히고 잠들게 하는 어둠도/ 그리운 그대 이름도/ 이젠 따뜻한 아픔인 것을/ 군데군데 떨어져 피어나/ 떨어져 있어도 결코 쓸쓸하게/ 지워지지 마/ Ⅱ./ 잠든 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비를 맞는다/ 마른 가슴을 내리고/ 잠 깨지 못하고 서 있는 나무들/ 그 억센 뿌리를 키운 벌판을 향해/ 비는 내리고/ 풀잎들이 거친 바람에 쓸리고 있다/ 흔들리면서 그러나 모여 서서 꿈꾸던 하루/ 풀잎은 자라고/ 내 방에 흩어 진 머리카락 같은 풀잎,/ 허름하게 피어나 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질긴 풀잎이여/ 보아라 흔들려서 모든 것 눈 뜨고/ 소리치고 달려가게 하는 아침/ 버려진 돌멩이와 젖은 모래알에서 깨어나/ 마르지 않는 아픔을 키우며/ 언 손 부비며 다시 피어날/ 새봄의 풀잎이여/ 잠든 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다만/ 다 뜨겁고 무성한 꿈을 위해/ 비 맞고 있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Ⅰ」 (대구문인협회, 2013)풀잎이 벌판에 드문드문 피어난다. 비록 외롭게 혼자 피어있어도, 세상이 어지러워도, 마음을 독하게 다잡아먹고 정신 바짝 차린 채 서 있다. 떠다니는 먼지바람 하나도 허투로 흘릴 수 없다. 너른 벌판 위에 비바람 불면 그냥 드러누워 등을 쭉쭉 편다. 그렇다고 비바람에 마냥 굴복하지 않는다. 어두운 밤이 찾아와 몸을 눕히고 잠들어도 정신을 놓는 일은 없다. 서로 헤어져 있어도 그리움은 따스하게 영글고, 외롭게 홀로 있어도 존재감은 뿌듯하게 차오른다.비가 내리면 죽은 듯 마냥 비를 맞는다. 빗물은 마른 가슴을 적셔준다. 잠든 듯 벌판에 고요히 서 있는 나무들은 억센 뿌리를 땅속 깊이 뻗치고, 풀잎은 세찬 바람에 눕는다. 거친 바람에 흔들리지만 함께 모여 서서 알찬 꿈을 지켜낸다. 풀잎이 바람에 머리털처럼 흩날려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비록 볼품없이 피어난 풀잎이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사랑을 품는다. 해가 뜨고 아침이 찾아오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풀잎은 소리를 지르면서 꿈을 향해 달음박질친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련을 극복하고 비에 젖은 돌멩이와 모래 속에서 깨어나 풀잎은 꽃을 피운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새봄이 돌아오면 겨우내 얼었던 손을 부비며 풀잎은 다시 피어난다. 나무와 풀잎은 잠든 것 같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무성한 꿈을 꽃피운다. 지금도 풀잎은 비를 맞고 서 있지만.인간은 생각하는 풀잎이다. 거친 바람이 불어오면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때론 누워버리기도 하지만 굴복하는 일은 없다. 바람이 가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뚝이처럼 다시 벌떡 일어선다. 잠든 것처럼 꼼짝 않고 비를 흠뻑 맞지만 결코 빗물에 녹지도 않고 떠내려가지도 않는다. 땅속으로 힘차게 뿌리를 뻗고 하늘을 향해 발 돋음을 한다.홀로 떨어져 있어도 고독해하지도 않고 근본을 잊지도 않는다. 풀잎은 햇빛 하나 바람줄기 하나 놓치지 않고 꼭 보듬어 꿈을 가꿔간다. 함께 그리워하고 사랑을 품는다. 풀잎은 선 자리에서 생긴 그대로 살아간다. 선 자리를 탓하지도 않고 부탁도 없이 옮겨가려고도 않는다. 스스로의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갈 따름이다. 오철환(문인)

만개/ 김일연

네 눈길이 닿으면 소스라치는 허공//그때에 못했던 말 지금도 말할 수 없어//참았던 울음보 터져/쏟아내는/꽃송이들「깨끗한 절정」 (2020, 서정시학)김일연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1980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빈들의 집’, ‘서역 가는 길’, ‘달집태우기’, ‘명창’, ‘엎드려 별을 보다’, ‘너와 보낸 봄날’, ‘깨끗한 절정’과 시선집 ‘저 혼자 꽃필 때에’, ‘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 단시조집 ‘꽃벼랑’과 일역시조집 ‘꽃벼랑’등이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시조의 틀을 옹색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틀 안에서 김일연 시인은 무한창공을 열어젖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 윤효는 방만한 언어 운용으로 독자를 잃어버린 요즘 시인들에게 등단 40주년에 새로이 펴낸 신작 시조집 ‘깨끗한 절정’의 일독을 권하고 있고, 문학평론가 권성훈은 고도의 언어, 고원의 차원에서 그의 시조를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김일연 시인의 시업에 대한 정당한 가치 부여라고 생각한다.만개는 꽃이 활짝 피었다는 뜻이다. ‘만개’는 단시조로서 더 보탤 것도 덜 것도 없는 소우주다. 시조가 가 닿을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초장과 중장, 종장 할 것 없이 완벽한 조형미를 이룬다. 이 혼돈의 시대에 왜 시조인가, 하는 점을 극명하게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 이래서 시조가 아름다운 것이다. 좋은 것이다. 길이 사랑하며 함께할 장르인 것이다.‘만개’는 그런 점을 잘 증명해 보이고 있다. 네 눈길이 닿으면 허공이 소스라친다고 한다. 두려움이나 놀라움 따위로 몸을 떠는 듯이 움직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네 눈길 때문에 허공마저도 소스라칠 정도이니 네 눈길은 종국에 우주를 전율케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화자가 하는 말은 초장의 정황 설정과 긴밀히 맞물리고 있다. 그때에 못했던 말 지금도 말할 수 없어, 라는 대목이 너무나 절절해서 그때에 했던 말 지금도 말할 수 있어, 로 한번 고쳐 읽어 보았다. 없고 있고의 경계를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다. 그만큼 중장은 이 시조에서 미학적 의미 형성의 등뼈 구실을 하면서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그때에 못했던 말 지금쯤이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참았던 울음보가 끝내 터져서 무수한 꽃송이들을 쏟아낸 것이다. 어떤 노래, 어떤 시가 이보다 더 간절할 수가 있을까?그는 또 다른 단시조 ‘나무 사람’에서 생태적 인간에 대한 궁구를 보인다.숲을 거닐다보면 어깨에 잎이 돋고//시원한 골바람에 가지 휘늘어지고//머리에 곤줄박이들 포르르 날아 앉는다단순한 서경이 아니다. 시의 화자는 숲을 거닐다보면 어깨에 잎이 돋는다고 조금 능청스럽게 말한다. 물론 나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무가 사람인지 사람이 나무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숲과 사람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어서다. 정말 어깨에 잎이 돋아날 것만 같은 느낌이 절로 든다. 시원한 골바람에 가지가 휘늘어지면서 머리에 곤줄박이들이 포르르 날아와서 앉게 된다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 정경은 그대로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진다. 곤줄박이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림에 흔하게 번식하는 텃새로서 친밀감이 있는 새다. ‘나무 사람’은 시적 인간과 생태적인 인간이 하나인 것을 보여주는 귀한 시편이다.현대인의 복잡 미묘한 생각이나 생활상을 그려내기에는 시조 형식이 너무 비좁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면 단시조 ‘만개’와 ‘나무 사람’이 수록된 김일연 시인의 근작 시조집 ‘깨끗한 절정’의 일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이정환(시조 시인)

어떤 소리/ 고경숙

~사랑하기에 보내야 하는~…아버지는 현관문 비번도 못 외웠다. 숫자감각이 빠른 분인데 뭔가 이상하고 불안하다.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빠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만사 귀찮아하고 짜증을 냈다. 산이 있는 곳에 살면 나아질 것 같아서 우리 집으로 왔다. 잘 적응한다고 했는데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아버지는 꽃다지를 꺾어와 병에 꽂았다. 볼품없는 야생화일 뿐인데 어머니가 좋아했단다. 어머니는 이른 봄 꽃다지가 필 때 산에 가곤 했다. 전 남편 제를 지내러간다고. 결혼 전 양해한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평상심을 잃고 허둥댔다. 산을 올라가는 아버지를 베란다에서 지켜봤다. 양손을 벌려 숨쉬기운동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다시 산을 올라갔다. 불안한 마음에 급히 아버지를 뒤쫓아 산으로 갔다. 산속에서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꿈에서 어머니를 만난 듯 잠꼬대를 했다. 방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나왔다. 아버지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다가 소파에 쓰러져 잤다. 깨어난 뒤엔 지난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위암 4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정성을 다해 병수발을 들었다. 그 보람도 없이 어머니는 운명했다. 평생 가슴 한 구석에 첫 남자를 품고 살았던 어머니도 대단했지만 그런 사정을 알면서 일편단심 사랑했던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날이 새자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버지가 말했다. 네 엄마도 이렇게 숨이 찼을 거야.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어머니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이 전해졌다. 어머니가 산에서 맨손체조를 했다며 아버지도 그대로 따라 했다. 병원에 상담해본 결과 아버지는 몽유병이라고 했다. 그 원인은 어머니였다. 이제 그만 어머니를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허사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고향마을로 보내달라고 했다. 도시엔 어머니 자취가 없다고. 보내주지 않으면 혼자라도 가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마침내 아버지는 고향집으로 갔다. 한동네에 사는 고모가 며칠 아버지와 있기로 했다. 아버지는 시골에 빨리 적응했다. 몽유병 발작도 차츰 없어졌다. 함께 산을 오르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용서를 구할 일이라며 뜸을 들였다. 말까지 더듬거렸다. 어머니 산소 호흡기를 아버지가 떼 냈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어머니를 보내주기로 했다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인생이 과연 존엄성을 지키는 것인가. 뇌사상태에서 식물인간으로 사는 삶이 가치 있는 것인가. 안락사를 긍정하는 의문이다. 누가 감히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설사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그 권리를 주고 어떤 조건에서 실행할 것인가. 안락사를 악용해 합법적 살인을 자행하는 경우에 어떻게 그 살인을 증명하고 억울한 죽음에 대해선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또 그 윤리적 정당성을 어떻게 이론구성 할 것인가. 안락사에 대한 부정적인 질문이다. 안락사는 정답이 없다.고통 속에서 침대에 의지하는 비자생적 삶은 무의미하다. 편하게 놓아주는 사랑의 선택이 필요하다. 죽음에 이르게 한 작위로 인한 죄의식, 양심의 가책과 정신적 고통 등이 해결해야할 과제로 떠오른다. 안락사 논란이 무겁게 다가온다. 오철환(문인)

가을날 문경 가서는/ 백이운

우리 생에 가을 단풍 몇 번이나 보겠다고//장작불 타던 날처럼 아등바등할 것인가//가을날 문경聞慶 가서는 단풍 들지 말 일이다//듣고 묻지 않아도 경사스런 그 무슨 일//젊은 도공과 도공 부인 가마에 정화 올려//받아든 찻그릇들로 소꿉놀이 하는 날들//도심산중 첩첩 숨어 철모르고 철을 보낸//귀먹은 팽객에게 노차 한 잔 권했거니//가을날 문경 가서는 문향聞香이나 할 일이다「꽃들은 하고 있네」 (2006, 동방기획)백이운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1977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달에도 시인이 살겠지’, ‘슬픔의 한복판’, ‘왕십리’, ‘그리운 히말라야’, ‘꽃들은 하고 있네’ 등이 있다.가을이 저문다. 나뭇잎들이 무수히 지고 있다. 가로수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들이 노란 잎을 떨어뜨려 길을 온통 노랗게 뒤덮어버려서 발걸음을 떼기가 조금 조심스럽다. 그들도 한 해 동안 나뭇가지에 달려서 바람과 햇볕 속에서 생명의 찬가를 부르던 신성한 잎들이 아닌가. 은행잎들은 떨어져서도 선명한 노란색이다. 그 아름다움은 설경 못지않다. 어떤 점에서 꽃이 지천인 봄날보다 가을날이 더 화려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리 묻은 가랑잎 봄꽃보다 더 붉네, 라는 한시가 그저 읊조려진 것이 아닐 터다. 가을은 실로 단풍 든 온갖 나뭇잎들의 향연으로 말미암아 봄의 아름다움과는 확연히 다른 정취를 안겨준다. 소슬바람이 불어올 때면 쓸쓸해지기 쉽지만 곱게 단풍든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그런 마음을 잠시라도 떨쳐버릴 수 있기에 좋다.‘가을날 문경 가서는’은 지명의 이채로움에서 비롯된 세 수 한 편의 시조가 훈향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우리 생에 가을 단풍 몇 번이나 보겠다고, 라는 첫 수 초장이 명치끝을 치며 시종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진정 그렇지 않은가? 장작불 타던 날처럼 아등바등 사는 일이 부질없다. 유한의 목숨, 제한된 시공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자의 애환은 이리 깊고도 넓다. 그렇기에 가을날 문경 가서는 단풍 들지 말 일이라고 시의 화자는 외친다. 탐방 장소가 문경이기 때문이다. 젊은 도공과 도공 부인 가마에 정화 올려 받아든 찻그릇들로 소꿉놀이 하는 날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산중 첩첩 숨어 철모르고 철을 보낸 귀먹은 팽객에게 노차 한 잔 권했기 때문에 가을날 문경 가서는 문향(聞香)이나 할 일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즉 차 향기를 귀담아 듣고 오겠노라는 뜻이다. ‘가을날 문경 가서는’은 실로 문경의 시, 문향의 시로서 인생의 깊이를 잘 녹였기에 그 훈향이 천리를 가고도 남을 듯하다.그는 단시조 ‘가을에’에서도 새로운 서정 세계를 직조하고 있다. 자작자작 소리 낮춰 쌀밥이 뜸들어가듯/아픈 것도 그렇게 고단히 앓고 난 뒤/ 쳐다본 하늘만큼만 푸르러라, 이 가을 초장에서 직유법으로 자작자작과 쌀밥과 뜸 이야기를 하면서 아픈 것도 그렇게 고단히 앓고 난 뒤에 쳐다본 하늘만큼만 푸르른 가을에 감탄하고 있다. 가을을 밀도 높게 노래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단시조로서 완벽한 조형미를 보인다. 적절한 비유와 섬세한 감성의 언어가 서로 잘 어우러졌기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곧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것이다. 겨울은 가을이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울 수가 있다. ‘가을날 문경 가서는’을 나직이 읊조리며 이번 가을과 따뜻한 작별 인사를 나누었으면 한다. 이정환(시조 시인)

그 겨울/ 정훈

유난히 추웠다. 극장 앞 좁은 길은 미끄럽게 얼어붙고 염색한 군용 파카 위로 흩날리던 눈발 눈발들, 우리는 정류장 옆 찻집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서, 신사처럼 꼬고 앉아서, 손가락 사이에 낀 어색한 청자담배, 쓰디쓴 블랙커피를 멋처럼 주문했다. 하숙 든 음악선생에게 시집간 정순이, 여고생인 그녀를 애틋하게 씹으며, 자원입대하여 월남 간 춘발이의 무용담에 거품을 물고 헤진 책갈피에 젖어드는 우수, 벌겋게 달아오른 조개탄 불빛에 그을린 시화 몇 점, 읍내 찻집에서 또 그렇게 보낸 겨울.// 그땐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뼛속 깊이 하얗게 스미고 있었다. 그 겨울에는.「수성문학」 (수성문인협회, 2020)하얗게 눈이 내린다. 그 겨울의 아련한 추억이 살아난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도 많았다. 옷이 허술한데다 배가 고파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군용 물품이 시중에 흘러나와 결핍의 공백을 일부분 메웠다. 염색한 군복을 입고 폼을 잡았고 군화를 브랜드 구두인양 신고 다니며 끄덕거렸다. 군용 물품은 원조 받은 미제인지라 품질 좋고 튼실했다. 군용 파카는 요즘으로 치면 ‘캐나다구스’ 정도로 귀한 존재였다. 비록 ‘눈 감고 아웅’이었지만 기본적인 예의로 염색은 했다.읍이라 할지라도 중심가엔 으레 극장이 있었고 무슨 까닭인지 군경에겐 할인혜택이 주어졌다. 다방은 극장 주변이나 정류장 인근의 필수공간이었다. 다방에 죽치고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커피를 마시는 어설픈 모던 보이가 꽤 많았다. 담배는 브랜드에 따라 유행한 시대가 다르다. 청자는 70년대를 풍미했던 최초의 고급담배였다. 블랙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커피 맛을 아는 신사로 여겨져 블랙커피를 억지로 마시면서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다방은 다양한 만남의 공간이었다. 성능 좋은 전축이 귀하던 시대엔 다방은 음악을 듣는 음악 감상실 기능도 했다. 듣고 싶은 노래를 디제이에게 신청해놓고 틀어주기를 기다렸다. 신청곡이 넘쳐났으므로 임의적으로 선별해서 들려주었다. 꼭 틀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애절한 사연이나 감상적인 편지를 써넣는 아부도 했다. 신청하고 듣는 일을 되풀이하다가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기 일쑤다.보통 한창 연애할 청춘기에 군에 입대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개인마다 그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실연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입대하기도 하지만 군 입대로 인해 별리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헤어지는 방편으로 입대하는 우유부단한 사람도 있다. 마음에 품던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모습을 보고 자원입대하는 경우엔 다소 자학적이 된다. 강도 높은 훈련이 마음의 상처를 잊게 해주리라 생각해서다. 월남전 참전도 60년대의 한 선택지였다.월남전의 무용담을 듣다가 보면 월남으로 가지 못한 걸 무척 억울해 한다. 아오자이를 입은 쭉 빠진 이국 아가씨와의 연담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이르면 도라지 위스키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래게 된다. 젓가락을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한바탕 회포를 풀지만 전쟁의 와중에 잊어버렸다고 생각됐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시집 가버린 그녀에 대한 미련이 가슴 깊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아직도 세월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달아오른 조개탄 불빛에 비친 시화가 그리운 마음을 녹여주던 그해 겨울처럼, 눈이 내려와 뼛속 깊이 스민다. 오철환(문인)

낡은 테이프/ 정숙

1// 옷장 서랍을 정리했다. 낡은 카세트테이프 속에서 하얀 면사포를 쓴 나를 만났다. 호수에 던진 돌 파문 지는 새 이십년이 미끄러져 흘렀다. 까마득한 기억 속 결혼행진곡. 묵은 세월이 삐거덕거렸다. 비바람에 무뎌진 가슴살이지만 아직도 봄바람 저만치서 떨고 있는 여린 자신을 꿈꾼다. 주례사는 끊기고, 테이프는 멈추고, 생각에 잠겨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박제된 생활에 끼어든 먼지들, 가슴 속 불씨가 꺼져가는 것 같아 남은 재 다독거린다. 실꾸리에 감긴 실 끝이 닳고 닳아서 실낱같은 인연이 끊어질까봐 오마 조마. 내일은 고장 난 테이프를 되살려야지.//2// 빛바랜 흑백 결혼사진을 벽에 걸었다. 거미줄에 묶인 나비처럼 두 사람, 파르르 떨며 얽혀있었다. 파도와 바위 되어 으르고 달래던 세월 속, 거센 폭풍 몰아치면 서로 부수고 할퀴었다. 가슴 밑바닥엔 모래알들이 세월만큼 쌓인 무게, 끝내 지탱하지 못해 사진틀이 떨어져 깨져버렸다. 두 사람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번쩍 든 정신으로, 눈빛으로 깨진 유리조각들을 모아 정성스레 짝 맞추기다.「수성문학」 (수성문인협회, 2020)사진첩을 뒤적이다보면 세월 속에 묻힌 추억을 발견한다. 아날로그 세대는 사진첩에서 추억을 찾아내고 디지털 세대는 동영상으로 추억을 재생해낸다. 동영상이라고 다 같지 않고 테이프, CD, USB로 진화해왔다. 옷장에 잠들어있던 결혼식 테이프가 눈에 띈다. 자식들 키운다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결혼식 동영상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식들 다 키우고 적적한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마음이 동한다.‘낡은 테이프’가 90년대 초 작품임을 감안하고 봐야 그 맥락이 자연스럽다. 테이프를 재생시킬 VTR은 오래 전에 사라져서 지금은 그 재생에 애로사항이 많다. VTR은 폐기물로 전락돼 쓰레기더미 속으로 버려졌다. 혹시 남아있다면 기능을 의심할 정도로 먼지가 덮인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을 터다. 테이프를 걸 때만 해도 그 재생은 호기심과 함께 부지런함이 갖춰져야 가능했을 것이지만.신랑과 신부가 마치 타인처럼 느껴진다.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찬 신부의 말간 얼굴이 서투른 카메라 샷과 테이프의 열화로 인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버짐처럼 버석거린다. 풋풋한, 덜 여문 신랑은 낯선 분위기에 주눅 든 탓인지 눈길이 어설프고 이따금 알 수 없는 거품과 허세마저 엿보인다. 미래의 눈으로 보는 등장인물들은 새로운 선입견으로 과거와 달리 안 보이던 부분이 새롭게 눈에 띄기도 한다. 혼주 석에 앉아있는 두 분의 눈빛이 무얼 의미하는지 지금에야 비로소 가슴으로 다가온다. ‘호수의 파문이 지는 새 20년이 흘렀다.’봄바람만 불어와도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지만 찌든 생활 속에서 신혼의 부푼 꿈은 만만찮은 현실이 되고 실낱같은 인연마저 끊어질 지경이다. 흑백 결혼사진은 벌써 빛이 바랬다. 초심의 열정이 식어버리고 무심한 냉기만 썰렁하다. 미운 정마저 다 든 지금에 와서 그 불씨마저 꺼버리는 것도 성가신 걱정거리다. 결혼식 동영상은 두 사람의 초심을 돌아보고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는 불쏘시개다. 묶이고 얽힌 거미줄을 걷어내고 멍들고 할퀸 상처를 어루만지며 세월의 더께로 눌어붙은 응어리를 말끔히 털어버릴 터다. ‘깨진 유리조각들을 모아 정성스레 짝 맞추기다.’ 모자라면 어떻고 못나면 또 어떤가, 그냥 생긴 대로 보고 있는 대로 받아들일 따름이다. 오철환(문인)

내 몸에 풀이/ 김수환

콘크리트 축대에 떨어진 풀씨 하나/바늘 같은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힘겹게 끌어당겨서 키를 재고 또 잰다//빗물이 벽을 타며 쓸어 놓은 흙먼지/시린 발목까지 채 덮지도 못하고/간신히 끌어안고 선 저 집요한 벼랑//구멍이 숭숭 뚫린 성긴 그물 같은/내 생애 어느 때, 그 절벽 어디쯤에/무성한 풀무더미 하나 시퍼렇게 솟고 있다「문학청춘」(2018, 겨울호)김수환 시인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2018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깊이 있는 내면 성찰과 관조로 인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내 몸에 풀이’의 시각은 새롭다. 콘크리트 축대에 떨어진 풀씨 하나를 살피면서 바늘 같은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힘겹게 끌어당겨서 키를 재고 또 재는 것을 본다. 또한 빗물이 벽을 타며 쓸어 놓은 흙먼지, 시린 발목까지 채 덮지도 못하고 간신히 끌어안고 선 집요한 벼랑까지 주시한다. 두 수까지는 그렇게 콘크리트 축대에 떨어진 풀씨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기에 ‘내 몸에 풀이’는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 화자는 자신을 돌아본다. 구멍이 숭숭 뚫린 성긴 그물 같은 내 생애 어느 때 그 절벽 어디쯤에 무성한 풀무더미 하나 시퍼렇게 솟고 있는 것을 상기한다. 시퍼렇게 치솟고 있는 풀무더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퍼렇게도 아니고 시퍼렇게, 라고 한 것은 생명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나타낸 것이라고 봐도 좋겠다. 때로 내 몸에 어떤 풀이 숨겨져 있는지 한번 유심히 살펴보는 일도 의미 있을 법하다.그는 ‘서부탕’이라는 작품에서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문을 밀면 온몸으로 쏟아지는 눈빛들을 보는데 그들은 아랫배에 힘을 주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데 불룩한 둘레만큼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 라고 생각하는 점이 이채롭다. 너무 멀리 온 것을 두고 불룩한 둘레만큼, 이라고 비유하고 있는 점이 가슴을 허하게 한다. 화자는 무수한 습관성으로 반성은 언제나 무효할 뿐이고 흐린 저 전등처럼 식어갈 온수처럼 열탕에 반쯤 잠기고 남은 생은 쓸쓸하리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맞은편 반신욕 노인의 처진 성기를 본다. 그동안 감당해야 했던 저 본능의 무게가 이제는 편안해졌는지 참방참방 물시소를 타는 것을 엿보면서 화자는 먼 훗날 자신의 초상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또 다른 작품 ‘자작구비 돌아서’도 재미있게 읽힌다. 자작자작 자박자박 자작구비 돌아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원대리 산마루 자작 숲을 찾아가는 길이다. 잔걸음으로 가다가 돌아보고 가다간 무너지며 밤하늘 뭇별들이 자작자작 끓으면 못 다한 그때 그 말들 흰 뼈로 고쳐 서기도 한다. 어제 같은, 그제 같은, 페르시아 옛 영화 같은 젖었다가 마르는 사이 표백된 말들이 하얗게 책장 넘기며 자박자박 가는 길이다. 이 작품 끝수에서 페르시아 옛 영화 같은, 이라는 구절은 이 시를 살리는 양념이다. 의미 확장과 심화에도 이바지하고 상상의 재미도 더하기 때문이다. 자작자작 자박자박 자작구비, 라는 말들의 약동감 있는 율동으로 말미암아 시 읽는 재미를 더하면서 화자가 가는 그 길을 좇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외진 방에 좌정해 사색에 깊이 잠기는 일도 필요하지만 발품을 파는 일도 중요하다. 정적인 시간인 관조와 더불어 이색적인 여정을 통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담쟁이/ 이룸

~아들이 된 동생~…남편을 소개받고 그 첫인상에 끌렸다. 헤어짐과 재회를 오가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백 일만에 몸을 섞고 말았다. 하룻밤에 만리장성 쌓는다고 그날 이후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힌 탓인지 웬만한 장애는 뛰어넘었다. 그 틈을 노리고 그는 숨겨온 가족사를 고백했다. 시아버지가 요양원으로 들어갔다는 사실, 시어머니는 무당을 따라다니는 선무당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결혼은 당사자가 중요하다며 그의 머리통을 살짝 쥐어박곤 그냥 넘어갔다. 그 다음부턴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여자는 못이기는 척 따라가 결혼에 골인했다. 시어머니는 선무당의 선입견과 달리 극히 평범했다. 돈을 듬뿍 안겨준 까닭에 모든 허물이 다 덮였다. 다만, 손자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시아버지가 위독하게 되자 시어머니의 손자 독촉은 극에 달했다. 결혼 후 몇 달이 지나도 태기가 없었다. 시어머니가 정화수를 떠놓고 열심히 기도하고 남편도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전혀 효험이 없었다. 문제는 남편한테 있었다. 눈치를 먹었는지 남편은 지름신이 내린 양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질러댔다. 늘 술이었고 우울해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시어머니는 여자에게 최후의 선택을 압박했다. 시험관아기였다. 시어머니의 삼촌뻘인 산부인과 의사에게 시술을 맡기면 출생의 비밀이 영원히 지켜질 거라고 말했다. 위독한 시아버지가 독촉요인으로 동원되었다. 부득이한 상황에 내몰리자 여자도 결국 시험관아기 시술에 동의하였다. 보약과 영양제를 복용하여 몸을 불리고 따뜻하게 한 후 그 시술을 받았다. 몇 달 후 여자의 몸에 태기가 나타났다. 시아버지는 손자를 못 보고 세상을 떴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정자가 여자의 자궁에 자리를 잡았다. 태아는 무럭무럭 자라 무사히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아들은 자랄수록 남편을 빼닮아갔다. 남편은 자기를 닮은 아들을 보고 좋아했다. 문득 아들의 생부가 궁금해졌다. 아들이 남편을 빼닮아갈수록 생부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져갔다. 여자는 마침내 유전자검사를 해보기를 결심했다. 병원을 가던 여자는 백화점에 들렀다. 한 치수 작은 비싼 신발을 샀다. 발가락을 움직일수록 더 아팠지만 참았다. 절뚝거리며 병원으로 들어갔다. 아들의 유전자검사를 신청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들의 유전자배열이 남편 가족과 일치했다. 대뜸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 경과를 따져 물었다. 시어머니는 울부짖더니 전화를 끊었다. 시어머니가 자살을 기도하여 구급차에 실려 갔다. 일이 꼬이자 다급해진 남편이 죄를 이실직고했다. 시험관아기를 제안한 건 자신이었다고. 하지만 착상된 정자의 주인이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었지만 남편은 출발하지 않았다.…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종족보존의 본능이기도 하지만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이다. 하지만 아들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냥 사회시스템에서 유래한 관습일 뿐이다. 유교의 조상숭배와 남자 성을 취하는 전통이 어우러진 편견일 수 있다. 전통과 고정관념에 터 잡은 신념은 무섭도록 집요하다. 때로는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맹목적이 되기도 한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전통에 대한 집착은 도덕적 금기마저 범하고 만다. 이젠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반드시 아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족을 신은 씨받이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오철환(문인)

배롱나무 -신숭겸 유적지에서/ 최재남

파군재 돌아가면 울컥 붉은 기억 산다//왕산에 별이 지고 나팔소리 잦아들 때//바람이 환복을 도와 나무가 된 장절공//천년이 지나도록 벗지 못한 홍포 위로// 신열이 도지는 여름, 터지는 피멍울들//저 살래 마른 물소리 담장 아래 절뚝인다「한국동서문학」(2019, 봄호)최재남 시인은 경북 안동 출생으로 2008년 ‘시조21’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바람의 근성’이 있다.부제에 나오는 신숭겸 유적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동구 지묘동 일대다. 이 곳은 고려 태조 때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927년에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려고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대구 공산에서 싸웠으나 후백제군에게 대패했다. 이 싸움에서 장군은 왕건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왕으로 변장해 김락 장군과 함께 싸우다 왕을 대신해서 전사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배롱나무’다.그래서 화자는 파군재 돌아가면 울컥 붉은 기억이 산다, 라고 첫 머리를 시작한다.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라지는 고개를 왕건의 정예군이 크게 패했던 고개라 하여 파군재라 부르고, 파군재 남쪽 산기슭의 봉무정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왕건이 탈출해 잠시 앉아 쉬었다고 해서 독좌암, 표충사의 뒷산은 왕산이다.이어서 왕산에 별이 지고 나팔소리 잦아들 때 바람이 환복을 도와 나무가 된 장절공, 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장절공은 태조 왕건이 신숭겸 장군의 죽음을 슬퍼해 내린 시호다. 화자는 신숭겸 장군이 옷을 갈아입을 때 바람이 도왔다고 말한다. 이 점이 이 작품에서 핵심이다. 바람은 곧 자연의 한 요소이기에 하늘이 도운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환복이라는 시어도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장절공은 종내 배롱나무가 되었기에 천년이 지나도록 벗지 못한 홍포 위로 해마다 여름이면 신열이 도진다. 하여 터지는 피멍울들을 세세연연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살래 마른 물소리는 오랜 세월 동안 담장 아래로 절뚝이며 흐른다. 장절공의 충절을 기리는 마음이 투영된 정황이다. 두 수의 시조로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면서 조명하고 있는 ‘배롱나무’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그는 또한 ‘소리 우물’에서 신재효를 불러내고 있다. 조선 후기 판소리는 광대들의 생동하는 목소리로 시장터에서 공연됐고, 양반가를 거쳐 구중궁궐까지 침투했던 매우 특별한 예능이었다. 신재효는 그런 판소리의 후원자이며 지도자요 창작자로서로서 수많은 단가와 잡가를 남긴 독보적인 인물이다. 전라북도 고창의 아전 출신이었던 그는 사재를 털어 소리꾼들을 후원하고 가르치면서 구전돼 오던 판소리 열두 마당 중에 여섯 마당의 체계를 잡아 작품화했으며, 광대가 갖추어야 할 법례를 마련함으로써 판소리를 광대들의 기예가 아닌 예술의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그 결과 신재효는 어전 광대가 되려면 신재효의 문하를 거쳐 와야 한다, 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수많은 명창들의 스승이 됐고, 그가 살았던 고창은 우리나라 판소리의 성지가 됐다.화자는 신재효 생가 즉 소리 집 그 뒤란에 우물 하나가 웅숭깊은 것을 살피면서 울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한숨에 날개를 달고 있는 정경을 상상하고 있다. 도리화가 지는 밤이었다. 도리화가는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 진채선에게 신재효가 지어 보낸 연가다. 특히 신재효는 남성들의 독무대였던 소리판에 진채선이라는 여성 명창을 등장시켰던 개혁가였다.역사적 인물의 남다른 행적을 육화해 재현한 두 편의 시조를 읽으면서 각자 개인사를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이정환(시조 시인)

화단 - 탑7/ 이해리

머나먼 스와니처럼 흘러간 어린 시절 마당이 한가득 꽃인 집에 살았다 해바라기 홍초 달리아 백일홍 분꽃 봉선화 채송화… 키 순서대로 자란 꽃들이 엷은 한지 창을 비추는 한옥이었다 어느 날 그 화단 사잇길로 얼굴빛이 흰 여승이 탁발을 왔다 여승은 색색의 꽃을 보고 탄복하였다 어머니는 왕오천축 석가라도 맞이하듯 여승을 대청마루에 모시고 이내 점심공양을 염려하였다 여승은 아무거나 괜찮다 하였으므로 뒤란 텃밭으로 간 어머니는 쪽파 한 움큼을 뽑아왔다 그러고는 금방 지은 밥에 쪽파 겉절이를 곁들여 상을 차렸다 여승은 다소곳이 서 있는 어머니에게 함께 들기를 권하여 두 분은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주 맛있게 들었다 그 매운 파를 맛있게 드는 두 분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나는 화단 귀퉁이로 가서 맨드라미처럼 붉은 혀를 빼물고 헉헉 뜨거운 흉내를 내보았다 정갈한 여승과 깔끔한 어머니와 그 풋여름의 환한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의 향내를 잊지 못한다 그때 어머니는 댓 살 밖에 안 된 나를 앞세우고 이 아이는 무엇이 되겠냐 물었다 여승은 화단을 이리 아름답게 가꾸는 분이 양육한 아이라면 더 볼 것도 없다며 합장하였다그 성장 설화를 시초로 막연하게나마 화단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의 자식은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을 살 거란 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후일에 알았지만 파는 절에서 금하는 채소였다 어머니는 수능엄경을 몰랐을 것이다 다만 시장할 스님을 위해 성심껏 올렸을 것이다 스님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면서도 어머니의 정성이 참되어 감사히 받았을 것이다 나는 부자가 되지도 못하고 명성을 얻어 출세하지도 못했지만 화단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순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소박해진다 꽃을 공들여 가꾸는 사람은 사람도 정성 들여 섬기는 심성이 있다는 걸 안다 누구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겐 꽃을 바치는 마음도 어렴풋이나마 안다 그것은 내가 배운 최고의 경전이다「수성못」 (학이사, 2020)시인은 다양한 꽃이 만발한 화단이 있는 한옥에서 살았다. 팽팽한 한지 창에 정성껏 가꿔놓은 화단이 비치는 깔끔한 집이었다. 어느 날, 탁발여승이 찾아왔다. 얼굴빛이 흰 여승과 화단을 품위 있게 가꾸는 어머니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슬프도록 순결한 여승과 순박하고 해맑은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잘 어울리는 것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상호 공경하고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도 마찬가지다.탁발여승의 고달픈 사정을 헤아려 밥을 짓는 푸근한 마음씨와 쪽파를 뽑아 겉절이 하는 소박한 정성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청초한 여승과 풋풋한 어머니의 끌림은 자연스럽다. 파가 오신채면 어떠랴. 오신채는 절에서 금하는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강한 다섯 가지 매운 나물이다. 날것으로 먹으면 화를 잘 내게 하고 익혀서 먹으면 음란한 마음을 일으킨다. 마음이 잔잔한 호수와 같은데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간들 어떠하리.꽃을 돌보는 마음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순하고 소박하다. 화단을 성실히 가꾸는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면 자식 양육은 더할 나위 없다. 시인은 어머니 공덕에 인간사 잘 풀려 가리라 기대했다. 부자도 못되고 출세도 못한 지금, 살짝 실망감이 비친다. 허나, 꽃을 가꾸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고 정성껏 섬기는 심성이며 천금을 주고도 못 사는 최고의 가치이다. 시인은 마음이 넉넉한 마음부자다.오철환(문인)

설강화/ 루이스 글릭

지난 날, 나의 생과 삶을 돌아보게나/ 그대여, 거기에 절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 속에서 겨울의 의미 또한 깨칠 수 있으리니// 나는 몰랐네, 흙덩이 내리누르는 곳에서 살아남아 / 다시 눈을 뜨게 될 줄을,/ 난 짐작도 하지 못했지, 축축하고 언 땅 속에서 몸이 소생하는 걸 느끼게 될 줄을,/ 난 정말 몰랐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추위 속에서 이른 봄볕을 받아/ 꽃 피우는 법을 기억해내게 될 줄을,// 그렇지, 나도 두려웠다네/ 그렇지만 그대 앞에 거듭 말하노니/ 모험은 기쁨을 불러 온다고!// 하여, 모진 풍파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쁨을 즐겨보게나「Snowdrops」 (Louise Gluck 2020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철환 역)‘루이스 글릭’(77)은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의 여류시인이다. 잠시 피는 꽃이지만 끈질기고 강인한 야생화를 노래한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 퓰리처상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상을 받았다. 그 이후 미국도서상, 미국비평가협회상 등 미국의 여러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개인적 비극을 승화한 명징한 목소리’를 시에 담아냄으로써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정은귀 교수는 “코로나19라는 대위기 속에 예측 불가능한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모두가 고립과 단절, 불안 속에 있는 상황에서 어린 시절부터 삶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를 통해 이를 넘어서는 복원력과 회복력을 자연과 일상 속에서 찾았다”고 평가했다.‘루이스 글릭’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Snowdrops’는 류시화 시인에 의해 ‘눈풀꽃’이란 제목으로 번역·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선 영어의 의미를 살리고자 ‘설강화’란 이름을 선택했다. 설강화는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알뿌리 초본식물이다. 눈 속에서 줄기가 나와 춘분 전 이른 봄에 꽃대 끝에 흰 꽃을 피운다. 설강화란 이름처럼 눈 밑 추위에서 살아남아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까닭에 시인의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돌덩이처럼 언 땅이 목을 조르는 극한의 겨울에도 죽지 않고 소생하게 될 줄 그 자신도 몰랐을 터이다. 눈에 덮인 채 봄볕을 받아 흰 꽃을 피우게 될 줄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터이다. 시인은 거식증과 정신질환을 겪으며 힘겹게 살아온 자신의 험난한 삶을 설강화의 거친 생명 순환 속에서 발견한다. 설강화의 숙명은 시인의 인생과 다를 바 없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비록 절망의 그림자로 뒤덮여있지만, 결국 겨울은 지나가고 봄이 온다는 사실을 설강화가 보여준다.매번 언 땅 속에서 추위를 견디는 일이 두렵다는 걸 잘 안다. 그렇지만 그런 고난 끝에 기쁨이 솟아난다는 교훈을 경험으로 또한 배운다. 이제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모진 풍파를 견디고 극복하면 신세계를 누리는 기쁨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삶의 고뇌와 고통 속에서 반드시 소생하겠다는 생명의 의지가 돋보인다.인생은 좀 더 복잡하다.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살아가는 설강화의 일생과 달리 봄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봄날에 나서 평생 봄날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겨울철에 나서 살아생전 봄날을 보지 못하고 얼어 죽는 사람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한겨울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비록 봄날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봄날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리니 이 또한 봄날이 아니겠는가.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문사/ 이서원

놓쳐버린 문장 하나 저만치 달아난 후//아무리 뜀박질해도 붙잡히지 않는다//온종일 뒤꿈치만 좇다 숨이 턱턱 막히고//이를까 손 뻗으면 다시 또 전력질주//끝끝내 차오른 뜻 품에 안지 못해도//멈추면 죽을 것 같아 이 악문 채 또 뛰는「시조미학」(2020, 여름호) 이서원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08년 ‘부산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달빛을 동이다’, ‘뙤창’, ‘해맑은 원근법’과 현대시조선집 ‘단풍왕조’가 있다. 그는 맑은 영혼의 시인이다. 순수 지향의 작법으로 시를 쓴다. 그는 왜 시조를 쓰는가 하고 누군가 물었을 때 “목메는 그리움이 있어서”라고 답했다. 표현할 수 없는 아련하고 애타는 심정,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이름, 자신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살구나무의 눈빛을 다 안을 수 없어서 시를 쓴다. 좁은 뒤뜰에서 시간이 만든 세상을 향해 죽을힘과 살 힘을 다해 나아가기 위해서 그는 오늘도 시 앞에 겸손히 좌정한다.그런 창작의 여정에서 ‘문사’를 썼을 것이다. 놓쳐버린 문장 하나 저만치 달아난 후 아무리 뜀박질해도 붙잡히지 않아서 온종일 뒤꿈치만 좇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노래하고 있다. 가슴을 졸이면서 이를까 손 뻗으면 다시 또 전력질주 해버리니 끝끝내 차오른 뜻 품에 안지 못하면서도 멈추면 죽을 것 같아 이 악문 채 또 뛰고 있다. 시의 화자가 얼마나 시와 쟁투를 벌이고 있는지 생생하게 드러난다.쓰지 않고는 못 배길 근원적인 창작에의 의지를 읽는다. 이것은 어쩌면 타고난 것일 수 있다. 숙명이다. 그래서 시인은 쓰는 자다. 무언가 포착하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끝내 한 편의 시를 축조해내는 장인이다. 자신만의 성을 쌓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 일만이 온전히 나의 사명인 것처럼 여기고 불철주야 시전을 일구는 일에 몰두한다.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한 일이다.이번에 새로 펴낸 ‘해맑은 원근법’에서 그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목이 ‘씨발시발’이다. 욕설이 있지만 해학이 섞여 있다. ‘내 친구 희야는 말마다 씨발이다’라면서 ‘씨발 친구야 니가 뭔데 시인이고’라고 따져 묻는다. 그러다가 또 욕지거리를 하면서 ‘씨발 놈 웃기고 있네 거랑에서 용났네’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이 빈정거림이 거북하지 않고 정겹기까지 하다. 친구를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비치기 때문이다. 거랑 즉 개천에서 용 났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저거 어무이 무당에 신내림을 받았는지 욕부터 내뱉고서야 뒷말이 따라오는 씨발이 입에 붙어서 서울말보다 찰진 점을 다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품이 참 넉넉하다. 그러면서 씨발이 시발(詩發)이면 좋겠다 싶은 밤에 새벽 두 시에 전화와도 밉지 않은 그런 친구를 생각하면서 내 시에 지 이름 넣었다고 또 씨발씨발 할 것 같아서 혼자 속으로 웃음 짓는다. ‘씨발시발’은 이렇듯 감칠맛 나는 시편이다. 얼마나 막역한 사이인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욕도 욕 나름이어서 상황에 따라 욕은 재치가 되고 해학이 돼서 우리네 삶에 흥청거림을 안겨줄 때가 있다. 웃음이 귀한 시절에 웃음 짓게 만든다면 욕지거리도 효용성이 있는 셈이다.‘문사’에서 보듯 그는 철저한 프로 정신을 바탕으로 시조를 쓴다. 씨발에서 시발을 간파하고 시의 발전소를 꾸려나가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다. 이서원 시인이 앞으로 펼칠 시의 길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진진할 것이다. 그의 시업에 부신 빛이 늘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이정환(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