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캔 의족/정지윤

시리아 난민캠프, 8살 소녀 메르히는/참치캔 의족을 달고 해변을 걷는다//날이 선 지느러미를 단/파도들이 몰려온다//가만히 멈춰 선 채 섬이 된 소녀는/몰려다니는 물고기의 행로를 되새긴다//해체된 참치캔들이/떠다니는 바닷가//의족이 걸어가는 발자국 쓰라리다/파도에 다리들이 휩쓸려오는 난민캠프//멈춰 선 소녀는 끝내/웃지도 울지도 않는다시조집 「참치캔 의족」 (책만드는집, 2020) 정지윤 시인은 경기 용인 출생으로 2014년 창비어린이 신인상 동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동시집 ‘어쩌면 정말 새일지도 몰라요’와 시조집 ‘참치캔 의족’ 이 있다.‘참치캔 의족’은 참으로 아픈 시편이다. 시리아 난민캠프의 8살 소녀 메르히는 참치캔 의족을 달고 해변을 걷고 있다. 날이 선 지느러미를 단 파도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날이 선 지느러미를 단 파도, 라는 구절에서 시인의 시적 기량을 읽는다. 아픔에서 배어나온 개성적인 이미지 구현이 돋보인다. 이러한 미적 자질로 직조된 구절은 시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다음으로 가만히 멈춰 선 채 섬이 된 소녀는 몰려다니는 물고기의 행로를 되새기고 있다. 소녀는 일순간 섬이 됐고, 물고기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바다 곳곳을 마음껏 헤엄쳐 다닌다. 그곳은 해체된 참치캔들이 떠다니는 바닷가다. 화자가 봤을 때 의족이 걸어가는 발자국은 쓰라린데 파도에 다리들이 휩쓸려오는 난민캠프에 멈춰 선 소녀는 끝내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이 소녀를 몹시 힘들게 한다.시리아 내전은 시리아에서 2011년 4월부터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를 축출하려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이다. 중동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 연장선상의 일환이다. 특히 시리아는 내전으로 인해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가는 난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요르단으로 피난을 간 시리아 난민 중 딸을 가진 부모들은 전쟁 중 딸이 폭력에 노출될 위험을 막기 위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결혼을 시킨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불행을 낳고 있다. AP통신과 인터뷰를 한 16세의 시리아 난민 소녀는 부모의 권유로 조혼을 했으나,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했음을 밝혔다. 10대에 결혼한 시리아 소녀들은 이와 같은 일들을 빈번하게 겪고 있다.‘참치캔 의족’은 국제적인 시각으로 지구촌의 비극을 노래하고 있다. 시에서 드러나는 정황보다 더 극심한 일들이 시리아 곳곳에서 연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국제기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그는 단시조 ‘봄의 문’을 통해 봄이 오는 길이 험난함을 일깨우고 있다. 느리게 날아오는 나비들이 낮아지는 것을 주시하면서 날개가 밟고 가는 허공의 길을 바라본다. 날개가 밟고 가는 허공의 길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양 어깨에 달린 날개가 허공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결구인 종장에서 화자는 혼자 중얼거리듯 얼마나 견고한 자물쇠에 잠겼었는지 알게 된다, 라고 진술한다. 겨울이라는 견고한 자물쇠에 단단히 잠겨 있던 것을 푸는 일이, 풀리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이러한 종장을 통해 명징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봄의 문’은 예사로운 작품이 아니다. 새로운 발화다. 개성적인 의미 부여다.우리 모두 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새날을 맞을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잊혀진 훈장/ 송귀익

~아버지는 곧 나의 정체성~… 나는 철부지였던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누나와 함께 할머니 손을 잡고 고향을 떠나왔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동무들의 배웅을 받으며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입성했다. 서울은 적응하기 만만찮은 낯선 땅이었다. 고립무원의 서울에서 바닥 생활을 하면서 가난을 물려주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머니는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다. 고난과 시련이 닥칠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깊어갔다.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세상물정을 서서히 알아갔다. 그 즈음 아폴리네르의 시를 접하였고 아버지에 대한 모진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유언에 따라 고향 선영에 모셨다. 할머니 장례를 통해 장손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고향에서 연락이 왔다. 종중산으로 고속도로가 나기 때문에 아버지 산소를 이장해야 한단다. 결산작업으로 바빴지만 부장에게 허락을 받아 고향에 내려갔다. 평소 고향에 무심했던 탓인지 집안 어른들의 태도가 냉랭했다. 아버지 생전에 친구처럼 지낸 친척 할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제대했다고 한다. 수훈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방부의 수훈자 명부를 열람하고 거기에서 아버지 이름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화랑무공훈장 수훈자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국립현충원에 들어갈 자격이 있어서 바로 안장신청을 하고 그 사실을 급히 고향에 알렸다. 아버지 산소를 빼 가는 걸로 보고 장손 노릇을 하지 않고 고향을 떠나는 시도로 오해를 하였다. 아무나 국립현충원에 갈 수 없고 거기 안장되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설득했다. 어렵사리 집안의 협조를 끌어냈다./ 이장 차 고향으로 가는 길에 만감이 교차했다. 할머니 산소에 들러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찾아뵙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 가출은 아버지 탓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아버지와 두 자식을 버리고 도주했다고 한다. 집안사람들의 도움으로 이장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유해를 수습해 화장을 했다. 아버지의 혼은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집으로 모셔왔다. 스페인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누나가 무사히 이장했는지 물어왔다. 나는 밤새 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오해한데 대해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했다. 그 다음날 아버지 유골을 국립현충원 충혼당에 안치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응어리가 봄눈 녹듯 스러졌다. 마음이 개운하고 몸이 가벼웠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밀린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다.…나는 결손가정 출신이다. 내가 겪고 있는 가난과 고생이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증오했다. 나의 정체성은 설 자리가 없다. 철이 들어 사고의 폭이 깊어지면서 증오심이 옅어지긴 했다. 아버지가 화랑무공훈장 수훈자인 걸 알고부터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아버지에게 죄가 있다면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불구가 됐다는 것이다. 뿌리 깊은 오해가 풀린다. 진실을 바로 알고 아버지와 화해한다.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자존감이 서고 기백이 치솟는다. 만사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용솟음친다. 나의 몸은 아버지로부터 유래한다. 고로, 나의 존재는 아버지를 받아들이는데서 시작한다. 오철환(문인)

그래 바로 너였어/김계정

행여 빼앗길까 봐 간절함이 모은 정성/꺼지는 불씨 향해 입김 불어 살린 숨결/시작은 너, 대구였어 눈물겹던 그 시절도//환한 세상 보려고 태양 쪽으로 돌린 고개/운명의 움이 트던 날 빛의 나라 빚어내던 날/문 열어 불러낸 손길 그때도 너, 대구였어//바람을 품은 향기 천리까지 날아가/역사가 된 오천 년 도도하게 흐른 세월/함께 갈 길 위에서 만난, 그래 바로 너였어대구테마시조집 「대구와 자고 싶다」(대구문인협회, 2020)김계정 시인은 서울에서 출생해 2006년 백수백일장 장원, 나래시조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눈물’, 현대시조100인선 ‘한번 더 스쳐갔다’ 가 있다.‘그래 바로 너였어’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1907년 국채보상운동, 1960년 4·19혁명 때 저력을 보여준 대구를 뜻한다. 지난해 전국의 시조시인들에게 청탁해 대구에 관한 시조를 모아 대구테마시조집을 발간했을 때 수록된 작품이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도 대구는 또 한 번 저력을 보인 바 있다. 그러므로 대구는 어떤 면에서 앞서가는 도시다. 우리나라를 견인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곳이다. ‘그래 바로 너였어’는 대구 사랑과 대구에 대한 친밀감을 드러내고자 너라고 부르고 있다. 행여 빼앗길까 봐 간절함이 모은 정성으로 꺼지는 불씨 향해 입김 불어 살린 숨결의 근원지다. 그 시작이 대구였던 것이다. 참으로 눈물겹던 시절이었다. 또한 환한 세상 보려고 태양 쪽으로 돌린 고개로 운명의 움이 트던 날, 빛의 나라 빚어내던 날에도 문 열어 불러낸 손길 그때도 역시 대구였던 것이다. 바람을 품은 향기 천리까지 날아가 역사가 된 오천 년이 도도하게 흐른 세월 동안 함께 갈 길 위에서 만난 도시가 대구였기에 외지인들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정성을 쏟아 대구찬가를 부르고 있다. 실로 대구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넓게 살필 때 대구·경북은 시조문학의 근원지다. 뛰어난 시인들이 활약해온 명작의 산실이다. 지금 후진들이 열정적으로 창작을 하고 있어 시조문학을 융성케 하는데 이바지 중이다.그는 또 ‘빛날 거야’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시린 기억 지우며 온기를 찾아낸 바람이 찬란한 적 없어도 떠나며 남기는 말이 수직의 태양 빛 속에 봄이 숨어 있다는 전언이다. 봄은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찾아들어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추위는 물러가고 만화방창한 새 봄은 와서 다시금 설레고 들뜨게 하는 때다. 그래서 짧아도 영원할 순간 만발할 빛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시기다. 빛은 화합과 상생이라는 공존의 길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역주행하지 않고 순리를 좇는다면 분명히 새로운 봄은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터다. 안과 밖 햇살로 덮여 눈이 부신 봄날에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다. 서툴게 피는 꽃처럼 말이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들이 날아든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꽃향기가 온천지를 덮는 날 모든 사람들은 집을 나와 들판과 산으로 나들이를 떠날 것이다. 대구는 가볼만한 곳이 많은 곳으로 도심지와 교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문화도시다. 봄이 와서 생기발랄한 젊은이들이 또 한 번 ‘빛날 거야’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삶에 새 희망을 불어넣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이번 봄은 춘래불사춘이 돼서는 아니 될 터다. 지구촌 곳곳에서 만물이 소생하는 때에 역사의 수레바퀴는 새롭게 돌아야 한다. 더 이상 팬데믹에 갇혀서 일상이 파괴돼서는 아닐 될 일이다. 김계정 시인의 ‘그래 바로 너였어’를 읽으며 그 점을 절감하는 아침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푸른 다리 아래서/ 정숙

먼 먼 칠석날 눈물 머금고 흘러온 미리내 줄기, 흐르다가 애달븐 연인들의 가슴 소용돌이 풀지 못해 시내 웅덩이에서 맴만 돌고 있다네 땡그랑, 댕그랑, 물결 속 열사흘 달빛기둥 위 작은 은종을 간절하게 치며 기도하면서// 그 종소리 듣고 자란 피라미들 뒤엉킨 은하수 전설을 풀어 무지갯빛 천을 짜고, 그 그리움을 내 청춘의 검고 긴 머릿결에 둘러주던 눈 시리도록 아린 그림자! 너는 뭇 세월 견디느라 날금해진 신천 푸른 다리 아래서 누굴 기다리는가// 그 여름날 천둥 비바람 가려주던 우리들의 청춘, 그 우산은 멀리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없는데「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칠월칠석엔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떠오른다. 널리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다시 정리해본다. 하늘나라에서 소 치던 견우와 베 짜던 직녀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 일을 게을리 하고 놀기만 했다. 이를 지켜보던 옥황상제가 분노해서 둘을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놨다. 다만, 매년 칠석날 하루만 만날 수 있게 해줬다, 둘은 은하수에 다리가 없어 서로 바라보고 안타까워했다. 둘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보니 지상에 홍수가 날 지경이었다. 이런 사정을 보다 못한 까치와 까마귀가 모두 하늘나라로 올라가 은하수에 다리를 놔주었다. 그 다리가 오작교다.시인은 오작교를 떠올리면서 까치의 보은설화를 연상한다. 선비가 산길을 가다가 뱀에게 잡혀 먹힐 처지에 놓인 까치를 구해준다. 그 후 그 일로 인해 선비가 뱀에게 보복을 당할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때 은혜를 입은 까치가 몸을 던져 종을 울리고 자신은 머리가 터져 죽는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뱀은 용이 돼 승천하고 선비는 위기에서 벗어난다. 까치가 선비의 은혜를 갚기 위해 종에 머리를 박고 떨어져 죽은 이야기, 까치의 보은설화다.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흘린 눈물이 은하수 줄기에 실려 떠내려 온다. 그날 저녁에 내리는 비는 재회로 인한 기쁨의 눈물이고 그 다음날 새벽에 내리는 비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슬픔의 눈물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마음을 아는 듯 그 눈물을 보듬은 은하수가 웅덩이에 소용돌이치며 함께 애달파하고 있다. 기쁨의 눈물은 사랑의 묘약이 될 수 있고 가슴을 찢는 비탄의 눈물은 동병상련의 위로가 될 수 있다. 견우와 직녀의 눈물은 사랑의 표상이자 성물로 작용하는 셈이다.사랑에 빠진 연인은 오작교를 절절히 소망한다. 까치가 은혜를 갚기 위해 종에 머리를 부딪치며 달려드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달빛아래 은은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진한 울림으로 가슴속에 생생히 전해온다. 까치와 까마귀가 오작교를 놔주면 얼마나 눈물겨울까, 까치가 은종을 울려서 사랑을 맺어준다면 또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오작교를 놔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은종을 울려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을 씨줄로 하고 까치의 의로운 마음을 날줄로 엮어서 무지갯빛 천을 짠다. 청춘의 추억 속에 그리움을 심어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아련히 다가온다. 오랜 세월 그리움에 야윈 그대는 푸른 다리 아래에서 그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그 여름날 천둥 비바람 가려주던 우리들의 청춘, 그 우산은 멀리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없는데’ 그 누구를 그렇게 그리워하는가. 오철환(문인)

빈집/ 김욱진

내게는 집이 여러 채 있다/ 그중에 으뜸은/ 우주 한 모퉁이 분양받은 몸집// 제일 꼭대기 층엔 골방 둘/ 그 아래층은/ 초능력 통신망 닥지닥지 붙은 방 다섯/ 거기서 숨 한번 길게 들이 쉬고 내려서면/ 마주 보고 마음 나누는 방이 둘/ 그 아래 밥집 한 채 또 그 아래 똥집/ 맨 아래층엔 몸종 거처하는 행랑채 둘// 휘, 돌아보니/ 여태 내가 줄곧 거처한 곳은/ 오감 가득 채워진 빈방// 그 사이/ 아랫목 구둘 꽉 막혔다// 설마, 장작불 활활 지펴대면/ 막힌 굴뚝 펑 뚫리겠지, 싶어/ 행랑채 뒤로 돌아들어가/ 굴뚝 쿡쿡 들쑤시며/ 간신히 고개 밀어 넣고/ 슥, 올려다보니/ 방마다 주인 노릇하던 놈들/ 뿔뿔이 다 도망치고,/ 없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Ⅱ」 (대구문인협회, 2013)모든 집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집은 부모님에게 받은 몸집이다. 몸집은 비록 광활한 우주 중에서 지구라는 티끌 위에 존재하는 미미한 점 하나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집이다. 어쩌면 몸집은 내 집이지만 내 집이 아닌 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은혜로 생겨나 사랑으로 키운 집이기에 마음대로 상하게 하거나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신체와 머리카락과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몸집의 구조를 살펴보면 너무나 절묘해 신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꼭대기 층엔 큰골, 작은골 등 골방 둘, 그 아래층엔 두 눈, 두 귀, 코 등 소통을 담당하는 방 다섯, 목 아래쪽엔 심방 둘, 그 아래로 위장과 막장, 맨 아래층엔 종처럼 매달려 흔들리는 부랄 두 쪽, 기타 등등. 어느 곳이든지 저마다 제자리를 지키며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초능력 통신망을 통해 감지한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해 꼭대기 층에서 적정한 판단을 내리면 손과 발을 위시한 각 기관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어느 날 내가 기거하는 곳이 텅 비어 있음을 깨닫는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오감을 통해 빛, 소리, 냄새, 맛, 느낌 등 오경에 집착했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 등 오욕에 탐닉한 세월이 공허할 뿐이다. 실체도 없는 것들을 쫓아다니며 게걸스럽게 채워 넣은 삶이 무상하다. 본 데 없는 것을, 그게 전부인양 탐한 어리석음이 회한으로 남는다.허상에 사로잡혀 뛰어다니는 사이 몸속 각 기관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굴뚝이 막힌 탓인지 영양분 공급이 더디고 피가 원활히 돌지 않는다. 신진대사가 다시 활발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불을 지피고 굴뚝을 뚫듯이 장 청소도 하고 핏줄도 뚫어본다. 구석구석 살펴보고 돌아보니 제 자리에서 성실히 일하던 놈들이, 기력이 다했든지 아니면 지쳤든지, 정신 줄을 놓고 있다.세월이 흐르면 각 기관의 기능이 떨어지고 때론 고장이 난다. 종국엔 그곳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모를까마는 코앞에 닥치고 눈으로 봐야 비로소 깨친다. 몸이 마음 같지 않아 말을 듣지 않게 된 다음에야 그 허상이 보인다. 죽기 살기로 모은 것들은 공허하고, 마음의 방은 텅 비어 있다. 집은 우주의 모퉁이에 미미하지만 마음은 우주를 가득 채울 수 있다. 마음을 채운 사람이 진정한 부자다. 오철환(문인)

묵밥/조경선

먹을 때라도 시원하게 더위 식혀 먹자던//묵밥집 간판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묵묵히 한 그릇 말아 모여든 밥그릇들//때를 놓친 사람들 한여름을 깁고 있을 때//청문회 화면 속에 잘 알려진 밥그릇 뜬다//누릴 것 다 누리고 산 이름 위에 밥 한 그릇//후루룩 챙긴 묵밥 돌아서면 꺼지는데//뒤집힌 짧은 희망이 내뿜는 글자처럼//묵자가 놈으로 읽혀 우리 앞에 서 있다「정형시학」 (2020, 봄호)조경선 시인은 경기도 고양 출생으로 2016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목력’이 있다.‘묵밥’은 재미난 시다. 먹을 때라도 시원하게 더위 식혀 먹자던 묵밥집 간판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본다. 그 식당 상에는 묵묵히 한 그릇 말아 모여든 밥그릇들이 있다. 때를 놓친 사람들이 한여름을 깁고 있을 때 청문회 화면 속에 잘 알려진 밥그릇이 뜨고 있는 것을 직시한다. 누릴 것 다 누리고 산 이름 위에 밥 한 그릇이다. 그리고 후루룩 챙긴 묵밥은 돌아서면 꺼지는데 뒤집힌 짧은 희망이 내뿜는 글자처럼 묵자가 놈으로 읽혀 우리 앞에 서 있다, 라는 셋째 수 종장은 함의하는 뜻이 깊다. 놈으로 읽히는 이들은 그야말로 누릴 것 다 누린 이들이 아닌가. 이처럼 묵밥집 간판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에 착안해 세태를 풍자한다. 목소리의 톤은 높지 않지만 공감을 획득하고 있다. 금방 배가 꺼지는 묵밥 한 그릇에 만족하며 사는 서민이 있는가 하면 권력과 부귀를 다 누리고 있는 이들의 못마땅한 작태도 있다. 뒤집힌 짧은 희망과는 너무나 비견된다.그는 ‘흙, 흑흑’이라는 시조에서 흙을 통해 흑흑, 이라는 울음을 읽어낸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너에게 향해 있다, 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흙을 짓다 흙에 묻히는 묘비명의 고백처럼 끝없이 올라가 봐도 너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거듭 떠올리게 한다. 실로 그렇다. 모든 이들은 끝내 너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가진 것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미련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뒤돌아볼 틈도 없다. 그 무슨 비수와 같은 단죄의 길이나 다름없다. 흙은 또한 차가웠다 뜨거웠다 식었다 데워지는 어두운 바닥까지 다 받아내는 안식처다. 의미부여의 깊이가 예사롭지가 않다. 그러면서 화자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모든 이의 의식주, 라고 다시금 상기시킨다. 너를 넘어서려고 한복판에 대못을 박고 꽃 필 때나 새가 울 때도 슬퍼하지 않았다, 라고 진술한다. 그 누구든지 넘어서려고 하지만 종내 넘어서지 못한다. 유한의 목숨이어서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남은 날들을 자꾸만 파헤치고 있다. 어쩌면 끊임없이 파헤치는 일이 인생이라는 듯이, 일생이라는 듯이.제목이 왜 ‘흙, 흑흑’일까? 오래 전 팔순이 넘은 큰누님을 만났을 때 두 손을 자세히 살핀 적이 있었다. 누님의 손은 흡사 갈고리 같았다. 손마디가 매우 굵고 휘어져 있었다. 경북 군위군 고로면 낙전리 싸리밭골이라는 곳에 열일곱에 시집가서 한평생 밭을 일구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담배농사까지 지었으니 고초가 적지 않았다. 흙을 밟으며 흙과 더불어 흙구덩이를 파헤치며 사는 동안 흑흑 혼자 속울음 울곤 하던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그래서 그때 두꺼비 같은 두 손이 무슨 보물인 듯 귀해 보였다.시인 조경선은 날마다 흙과 더불어 산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흙의 생리를 잘 안다. 때로 묵밥을 먹으며 때로 흙의 울음을 들으며,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그런 사유와 탐색 중에 시와 맞닥뜨린다. 그런 까닭에 그의 시에는 생기가 넘친다. 이정환(시조 시인)

고해산방기(苦海山房記)/ 문형렬

~ 험한 세상의 세 얼간이 ~… 직행버스 정류장에 내려 두 시간을 걸어가야 박호네 집이다. 완행버스를 타고가면 20분 거리인데 박호는 맹추위에 굳이 걸어가자고 고집이다. 종석과 달문은 엄동설한에 도저히 못 걸어간다고 버텼지만 박호는 어림도 없다. 박호는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지는 바람에 ‘파박선생’이란 별명을 얻었다. ‘깨진 박’이란 뜻이다. 결국 세 사람은 시골길을 걸어갔다. 삭풍이 살을 에는 듯 불었고 눈보라가 얼굴을 때렸다. 씨암탉 고아놨다는 말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두워 진 후에야 마을에 도착했다. 두 친구는 박호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박호는 대학합격통지서와 등록금고지서를 아버지에게 주면서 두 친구를 함께 합격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석과 달문은 앞으로도 함께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둥 각본대로 맞장구를 쳤다. 아버지는 누런 돈 봉투를 아들 박호에게 건넸다. 어머니가 닭백숙을 들고 들어왔다. 박호는 입맛이 없는지 닭다리 하나만 뜯었지만 두 친구는 배 터지도록 포식했다./ 박호와 종석, 달문은 재수 끝에 대학입시에 또 낙방했다. 종석과 달문 두 사람은 박호의 자취방에 얹혀살았는데 영장까지 나온 상태다. 그즈음 대학에 합격한 친구가 놀러와 합격통지서를 보여주면서 으스대었다. 그걸 본 박호는 맹랑한 아이디어를 냈다. 종석과 달문은 조연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박호는 시골집에 장거리전화를 걸어 후보 1번으로 걸렸는데 한명이 등록을 하지 않아 합격하였다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종석이 합격통지서와 등록금고지서를 위조했다. 두 친구는 박호의 합격을 증명하기위해 시골집에 동행하였다. 계획은 성사되었다. 그 후, 그 소문을 들은 친구가 찾아와 그 일을 벤치마킹했다. 그 친구는 시집 출간으로 돈을 탕진하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박호는 등록금으로 산동네에 달세 방을 얻어 ‘고해산방’이란 이름을 붙이고 두 친구와 함께 기거했다. 박호가 밥을 하면 두 친구는 인근 밭에서 반찬을 채집해왔다. 비포장 길가에 ‘고해산방’이란 헌책방도 차리고 세 사람의 헌책을 진열했다. 박호는 주인집 부부의 부부싸움을 중재하여 떡고물을 얻어먹었고 종석은 능청스런 말솜씨로 외상술을 마셨다. 달문은 빈들거리며 빈대처럼 붙어살았다. 양식이 떨어지자 주인집 부엌에서 음식을 훔쳐와 배를 채우기도 했다. 그해 늦가을 두 친구는 군에 입대했고, 박호는 자동차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세월이 흘러 박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오랜만에 세 사람이 상가에서 만났다. 영정을 올려다보며 종석이 말했다. 대학도 못 가고 문서를 위조하긴 했지만 아버지 말씀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있는 거 맞제? 그 후, 박호는 그의 별명, 파박처럼 파도가 보이는 부산에 가서 살았다.…우리 사회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학벌이 중요한 스펙이다. 전답과 소를 팔아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했다. 그 덕분에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가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학벌주의와 사농공상에 치여 자신의 적성을 살리지 못하고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다. 장기를 발휘했으면 대성했을 사람들이 대학 문을 두드리다가 좌절한 채 소중한 인생을 허송한 경우다. 세 사람은 불합리한 세상을 맘껏 조롱한다. 그들의 반항과 대듦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지만 그 무기력함이 오히려 가슴을 저민다. 오철환(문인)

께냐/용창선

한 사람을 잊는 데에 한 평생이 걸렸다/뜨거웠던 몸과 다리 싸늘히 식고나면/연인의 정강이뼈로 만들어서 부는 피리//그대가 오신다는 바람결에 꽃은 핀다/외롭게 걸어왔던 이번 생의 부은 발등/그리운 이름 부르며 무릎 꿇고 앉은 밤//온 생을 기다려온 다리뼈에 구멍 내어/절뚝이며 걷듯이 외로움을 채우면/쓸쓸한 입술 속에서 다시 피는 당신 이름「오늘의 시조」 (2020, 제14호)용창선 시인은 전남 완도 출생으로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세한도를 읽다’와 연구서로 ‘윤선도의 한시 연구’ 등이 있다.께냐는 안데스 인디언들의 피리로 죽은 연인의 정강이뼈로 만들었다고 한다. 곡진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연이다. 한 사람을 잊는 데에 한 평생이 걸렸다, 라고 첫줄에서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만큼 잊는다는 일은 지난한 것이다. 뜨거웠던 몸과 다리가 싸늘히 식고나면 연인의 정강이뼈로 만들어서 부는 피리인 께냐는 그런 까닭에 그 소리가 몹시도 애절하다. 하늘도 울린다. 그대가 오신다는 바람결에 꽃은 피고 외롭게 걸어왔던 이번 생의 부은 발등으로 그리운 이름을 부르며 무릎 꿇고 앉은 밤은 남은 이의 몫이다. 그런 밤에 화자는 께냐를 불 것이다. 그 절절한 소리를 듣고 떠난 그가 불현듯 나타날지도 모른다. 감은 눈언저리로 다가온 사랑하는 이가 눈물 머금고 섰을지도 모른다. 진실로 부르는 소리가 하도나 애절해서 죽은 이도 다시 살아 돌아올 만하다. 그래서 온 생을 기다려온 다리뼈에 구멍 내어 절뚝이며 걷듯이 외로움을 채우면 쓸쓸한 입술 속에서 다시 피는 당신 이름은 영원해 사랑의 역사는 길이 이 땅에 남아서 온 천지를 바람처럼 떠돌 것이다. 이처럼 그지없이 아픈 사랑의 노래가 ‘께냐’다. 사연 자체로만도 울림을 주는데 미학적 직조로 말미암아 그 울림은 더욱 심화됐다.그는 ‘9회 말 투아웃 2사 만루’라는 시조에서 다른 각도로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 직구로만 승부하던 눈빛은 무뎌졌고 방어율이 낮았던 청춘도 시들었다, 라면서 가슴의 흉터 같은 실밥을 꽉 쥐고 서 있는 한 투수의 모습을 그린다. 이어서 커브처럼 휘어지는 골목길의 불안과 포크볼로 떨어지는 목덜미의 빗방울이 외로움 쌓인 세상에 내던져져 있었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골목길의 불안을 커브처럼 휘어지는, 이라는 수식을 통해 삶의 문제를 표면화하고, 목덜미의 빗방울을 포크볼로 떨어지는, 이라는 구절이 꾸며줌으로써 의미를 심화시키고 있는 대목을 특히 눈여겨볼 점이다. 더불어 이 일들이 고독한 세상에 내던져져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값진 것이다. 이제 내 손을 떠난 공이 타석으로 날아가고 있다. 화살을 떠나보낸 활시위가 떠는 순간이다. 그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가고 경기는 역전승으로 종료된다. 시의 화자인 투수는 패배한다. 인생은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야구계에 널리 퍼져있는 것은 이따금 그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역전이 현실화되는 경우를 보게 되기 때문일 터다.그는 또 단시조 ‘월명리’에서 눈물어린 서정의 세계를 보인다. 닳아진 그대 뼈와 내 울음이 닮았다, 라면서 외로운 영혼에만 들어와 울린다는 월명사 피리소리에 수선화가 피는 밤을 노래하고 있다. ‘께냐’와 더불어 심금을 울린다. 완도에서 태어난 시인 용창선은 이렇듯 정도리 바닷가 몽돌 같은 시심으로 시조밭을 땀 흘려 일구고 있어 든든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무엇이 성공인가/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아이들의 애정을 얻는 것/ 정직한 비평가에게 찬사를 듣고 잘못된 친구의 배신을 인내하는 것/ 아름다운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남에게서 가장 좋은 장점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지/ 한 뼘의 정원을 가꾸든지/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떠나는 것/ 한때 이 땅에 살았다는 것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살기 수월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진정 성공이다‘What is Success?’/ Ralph Waldo EmersonTo laugh often and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ople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eciation of honest critic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인생을 살면서 자주 웃고 그리고 많이 웃어야 한다. 웃음을 아낀다고 웃음이 쌓이거나 이자가 붙어 더 커지진 않는다. 그때그때 수시로 웃고 참지 말고 실컷 웃어야 한다. 일소일소(一笑一少)라 한다. 웃으면 젊어진다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웃을 일이 없으면 일부러라도 만들어 웃을 일이다. 행복해서 웃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웃어서 행복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웃음은 꽃길로 인도한다.사람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진정 좋아하고 받드는 일은 가치판단에 속한다. 현자만이 사람의 가치판단을 제대로 행한다. 아이들은 맑고 순수하다, 아이들의 애정을 얻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다. 현자에게서 바람직한 가치를 부여받고 아이들의 사랑을 이끌어내는 것은 진정성의 결과다. 진실한 사람만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다.비평이 비평다운 비평으로 기능하려면 정직해야 한다. 정직한 비평가의 좋은 평가를 얻는 사람은 인생을 잘산 사람이다. 좋은 친구의 이유 있는 배신일지라도 마음으로 삭이기 어렵다. 나쁜 친구의 얄팍한 배신을 참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참다가 도저히 참지 못할 지경에서 참는 것이 진짜 인내다. 비난받아도 마땅한 잘못된 친구의 배신행위에도 인내해야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은 선한 인간본성의 발로이다. 인간본성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 세 명이 모이면 반드시 그 중에 스승이 있다. 남에게서 그의 장점을 찾아내고 자신의 배움으로 삼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기 마련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줄 알고 남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내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만이 성숙의 길로 간다.건강한 아이를 낳아 미래세대를 길러내든지, 작은 정원을 가꿔 아름다움을 선사하든지, 살아가는 환경을 개선하든지, 그 무엇이든지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이 요체다. 이 땅에 살다갔다는 사실로 인해 단 한사람이라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파레토 개선을 추구하는 삶과 비견된다. 물아일체나 초월주의라는 사상과 조우한다.오철환(문인)

설날 아침에/ 서지월

얼음 꽁꽁 언/ 시냇가 논둑에서 연 날리던 시절/ 가고 없어도/ 세배 하러 새벽부터 일어나/ 아버지 어머니께 절 올리던/ 대청마루바닥/ 얼음장같이 발 시리긴 해도/ 그때 그날들이 그리운 것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 알겠네// 장롱에서 몇 번씩이나 꺼내 입어보던/ 때때옷과/ 설 전날 밤 자면/ 눈썹이 흰 눈 내린 먼 산처럼 허옇게 센다는/ 어른들의 말씀 감쪽같이 속았어도/ 신기하기만 하던 그때 그 시절,/ 되돌릴 순 없어도/ 생각하면 명경처럼 늘 맑고 환하게/ 비쳐오는 어린 날의 아버지 어머니/ 잊을 수가 없네// 지금은 먼 산자락/ 차거운 흙속에 계시고/ 아이들이 줄줄이 아빠 엄마 하며 따라도/ 다가오는 세상은 더욱 삭막하기만 하고/ 매냥 눈 내리는 설날이 와도/ 자식보다 이승 뜨신 부모님 생각에 더욱/ 눈시울이 뜨거워 옴을 나는 알겠네「강물과 빨랫줄」 (문학사상사, 1989)설날 전후 탁 트인 들판이나 강가에서 연을 날렸다. 입을 것도 변변치 못해 벌벌 떨면서도 굳이 찬바람을 맞으며 연을 날렸다. 왜 하필 살을 에는 삭풍에 연을 날렸는지 궁금하다. 춥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찬바람에 맞서서 이겨내라는 뜻일까. 높은 하늘가에 춤추는 연과 밀고 당기는 맛에 빠져 추위를 잊어버렸고 떨어지는 연을 살리려고 얼레를 들고 뛰어다니면서 추위를 이겨냈다. 하지만 설날에 연 날리는 일은 이젠 아련한 추억일 뿐이다.세배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굉장했다. 설날 당일은 가족에게 세배하고 그 다음날부턴 동네 어르신을 찾아 세배를 했다. 집집마다 출타를 자제하고 세배꾼을 기다렸다. 세배를 하고나면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내놨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배가 터질듯하고 주머니 마다 과자로 가득 채워졌다. 세배가 있어 설날이 행복했다. 작금의 세배는 돈을 주고받는 형식일 따름이다.설 전날 밤 자면 눈썹이 센다고 자지 않으려 애를 썼다. 결국 잠이 들고 말았지만. 또 귀신이 찾아와 신발을 훔쳐간다는 속설이 있어 신발을 감춘다고 법석을 떨었다. 눈이 촘촘한 체를 벽에 걸어두면 귀신이 체 구멍을 센다고 정신이 빠져 신을 못 훔쳐간다고 했다. 구멍을 세다가 중간에 헷갈려서 처음부터 다시 세는 일을 되풀이하다가 날이 밝으면 혼비백산 도망간다는 우스운 이야기다.설날엔 설빔으로 새 옷을 마련해서 입었다. 새 옷을 살 여유가 없었던 시절 설빔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기쁨이었다. 산타의 선물보다 더 가슴 설레는 것이었다. 설빔은 보통 설날부터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세장을 차려입고 눈 오는 날 개처럼 마당으로 나가 껑충껑충 뛰곤 했다. 일단 입으면 벗기 싫어서 잘 때도 입고자다가 어머니 손을 빌려 벗는 일이 많았다. 때때옷처럼 색깔이 화려한 옷을 선호했고 대체적으로 보름날까지 입었다.설날은 이제 명목만 남았다. 차례마저 성가신 일이 됐다. 제꾼과 제수가 부담이고 가사노동은 뜨거운 감자다. 세배는 자식들에게 절 받고 세뱃돈 주는 행사로 전락했다.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 세시풍속은 이벤트가 됐고, 복조리를 돌려서 학비를 마련하던 일은 흔적도 없다. 올핸 코로나로 인한 규제로 가족상봉마저 깨졌다. 조상을 생각하고 가족 간 유대를 다지던 설날의 미풍은 희미해지고 연휴의 의미만 남았다. 설날에 부모님 생각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시인이 반갑고 정겹다.오철환(문인)

함흥 형무소/최현배

반룡산 좋다 하여 유산차로 예왔는냐?/성천강 맑다 하여 뱃놀이로 예 왔는냐?/아니라, 광풍이 하 세니, 지향 없이 왔노라//벽돌담에 둘러서, 열 길이나 높아 있고,/겹겹이 닫힌 문에, 낮밤으로 지켜 있다/지상이 척척 곧 천리라 저승인가 하노라「함흥 형무소」(시조정신 7호, 2020)외솔 최현배 선생은 1894년 울산 출생으로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고향의 일신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고 1910년 상경해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15년 졸업했다. 그 해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문과에 입학해 1919년 졸업하고, 1922년 4월에 일본 경도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국어학자, 국어 운동가였다. 다수의 시조 작품을 남겼다. 저서로 ‘우리말본’, ‘한글갈’, ‘조선민족 갱생의 도’, ‘나라 사랑의 길’ 등이 있다. 그의 학문과 유지는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학자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으며, 그의 사상을 기리는 모임인 외솔회가 1970년에 창립돼 기관지 ‘나라사랑’을 발간하며, 해마다 국학연구와 국어운동에 뛰어난 사람에게 외솔상을 시상함으로써 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몇 해 전 외솔시조문학선양회에서 외솔시조문학상을 제정해 외솔시조 선양 사업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다. 이 일은 시조문학의 저변 확대와 질적 향상, 외솔정신의 위의를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외솔 선생은 민족의식의 형상적 반영으로서 시조를 창작했다. 이 점을 두고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민족과 한글과 시조의 트라이앵글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적절한 해석이다. 외솔 선생의 시조는 실로 엄혹한 역사와 그 궤를 함께했다. ‘함흥 형무소’를 보라. 선생의 절조가 오롯이 드러나 있지 않은가? 반룡산 좋다 하여 유산차로 예왔는냐?, 라고 묻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장강 성천강이 맑다 해 뱃놀이로 온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대의 광풍이 너무나도 드세어서 그 어떤 지향도 없이 끌려온 것일 뿐이다. 그렇게 외솔 선생은 시대의 죄수가 돼 열 길이나 높은 벽돌담에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겹겹이 닫힌 문을 향해 지상이 척척인데 천리처럼 느껴져 저승 같기만 하다고 읊조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선생은 민족운동의 결과로 빚어진 투옥 과정과 그에 따르는 고통은 역설적으로 그의 옥중시조를 가능케 해준 원질이었다고 본 유성호의 시각은 주목할 만하다.또 한 편의 옥중시조를 보자. ‘나날의 살이’다. 아랫목은 식당 되고, 윗목은 뒷간이라 물통을 책상으로 삼고 책으로 벗 삼으니 봄바람 가을비 소리 창밖으로 지나다, 라고 노래하고 있다. 봄바람 가을비 소리가 창밖으로 지나는 것을 들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을까. 그 심경이 충분히 헤아려진다. 앉으니 해가 지고 누우니 밤이 새고 있고, 보느니 옛글이요 듣느니 기적이라면서 궁금타 세계사 빛이 어디로 드는지 생각한다. 영어의 몸이면서도 세계사의 빛을 떠올리고 있는 점이 놀랍다. 선생의 기개와 스케일을 엿본다. 이어서 벽력같은 기상 호령에 놀라서 일어나니 네 벽만 들러 있고 말동무 하나 없어서 외로운 독방 고생이 새벽마다 새로운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리고 쓸쓸한 감방 속에 홀로 앉았으니 창밖에 까치 소리 아침볕에 분명해서 오늘이 며칠인가 하면서 혹여 기쁜 소식이 오지 않을까 못내 고대한다. 수인이면서도 꿋꿋이 자존을 지키며, 나라 걱정과 세계사의 흐름을 예의주시 중이다. 대인의 풍모다.옥중시조가 창작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외솔 선생의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서 지금도 여전히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외솔시조를 거울삼아 정신의 위의를 시조로 세우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다.이정환(시조 시인)

예순 살 즈음에/ 김수복

나도 나하고 약속이 있었지 되뇌며/ 모두들 떠나고 빈 잔만 남은 자리를 떠나/ 창가로 자리를 옮겨 나와 마주앉았다/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나와 마주앉아/ 의자를 당겨 봄비와 대화를 나누었다/ 창밖 길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이여,/ 너희 둥근 얼굴이며/ 주룩주룩 동무되어 내려앉는 너희 몸동작이며/ 가장자리로 튀어 오르는 너희 눈웃음이며/ 모두가 아주 오래된 가슴속의 연인들처럼/ 어깨를 기대며 내리는 창밖에 서서/ 나를 오래 참고 기다려 주는 너희들/ 아주 고맙다/ 어느새 봄날 비 내리는 오후 저녁이 되었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내리던 빗방울 낯설어도/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지며 비는 계속 내렸다「하늘 우체국」 (서정시학, 2015)예순 살은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논어에선 귀가 순해진다고 해 이순(耳順)이라 표현한다.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리와 판단이 성숙해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나이라는 의미다. 또 예순 살은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고 다시 시작하는 나이다. 환갑, 인간의 수명이 육십 년이라는 함의인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만 퇴직 연령도 예순 살이다. 실제로 예순 살이 되면 인생에 대한 소회가 남다르다. 시 ‘예순 살 즈음에’도 그런 차원이다.어느 봄날 오후에 묵은 친구들과 만났다. 예전에 비해 먹고 마시는 양과 시간이 많이 줄었다.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젊을 땐 2차, 3차로 이어졌지만 이젠 앞장서서 깃대 잡는 사람이 없다. 떠들썩한 친구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식탁 위엔 어느덧 빈 잔만 남았다. 창밖엔 봄비가 내렸다. 창가로 가서 봄비를 보며 문득 깊은 감상에 젖는다. 바쁘게 살아온 날들을 회상한다. 봄비를 보며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봄비가 또 다른 나로 현신해 맞장구를 쳐준다.봄비가 가슴 속에 묻어둔 옛 연인을 불러온다. 봄비 오는 날이면 좁은 우산 속에서 어깨를 감싸고 서로의 체온을 주고받으면서 골목길을 걸었다. 창밖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가슴 속에 남아있는 옛 연인으로 변신한다. 봄비를 머금은 그녀 얼굴은 물 오른 수양버들처럼 싱그러웠다. 달덩이 같은 그녀 얼굴이 그립다. 봄비 내려앉는 품새가 부드럽다. 그녀의 그윽한 몸동작을 보는 듯하다. 가장자리로 튀어 오르는 빗물이 그녀의 눈웃음으로 번지고 상쾌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아름다운 옛 추억이 봄비 속에서 살아나온다. 연모하는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봄비는 창밖에 기대서서 지난날들을 찬찬히 보여준다. 어설픈 나를 참고 기다려 주는 봄비가 마냥 고맙다. 나 하나, 너 하나, 토닥토닥 추억을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저녁이 됐다.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젠 헤어질 시간이다. 헤어지고 나면 낯설지만 옛 연인과의 추억을 풀어준 봄비가 정겹다.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졌지만 비는 계속 내렸다. 봄비의 심정도 시인의 마음과 같은 듯하다. 애써 남겨놓은 사연은 잊혀 질까봐 두려운 마음이리라.봄비를 시적인 대상으로 끌어들여 인생에 대한 잠재적 회한을 시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봄비에 녹아있는 시적 상상력이 상큼하고 맑다. 삶에 대한 상흔을 치유하고 지난날의 회한을 씻어주는 기운이 전해온다. 의인화와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과의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어내고 가슴 속 깊이 침윤해있던 감정을 자연스레 형상화시킨 서정시다.오철환(문인)

백송(白松)을 바라보며/ 정호승

모든 기다림은 사라졌다/ 더 이상 기다림에 길들여질 필요는 없다/ 잠 못 이루는 밤도 사라져야 한다/ 그 어딘가에 순결한 기다림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 모든 희망은 사라졌다/ 더 이상 희망에 길들여질 필요는 없다/ 절망 따위는 더더구나 필요 없다/ 그 어딘가에 성실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 이제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봄은 언제나 기다리지 않을 때 왔다/ 겨울은 봄을 준비하기 위하여 있는 게 아니라/ 겨울을 살기 위하여 있다// 지금이라도 절벽 위에 희디흰 뿌리를 내려라/ 무심히 흰 눈송이가 솔가지 끝에 켜켜이 쌓여도 좋다/ 허옇게 속살까지 드러난 분노의 상처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다「당신을 찾아서」 (창비, 2020)백송은 중국 베이징 인근지역이 원산지다.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을 드나들면서 가져온 씨를 심어 키운 것이 우리나라 백송의 기원이다. 나무껍질이 희뿌연 희귀한 소나무이고 생물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그 줄기와 가지가 일반적인 소나무와 확연히 구별된다. 이파리를 보기 전까진 소나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고고한 모습이 군계일학마냥 두드러지고 조금 신령스럽기조차 하다. 그 앞에 서서 괜스레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고친다.스스로에게 확고한 자신감이 없을 때 기다림을 찾아 의지한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정답을 찾지 못할 때 기다림을 불러낸다. 마음이 약해지고 힘이 빠지면 요행을 기대하고 행운을 기다린다. 기다린다고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버릇처럼 행운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기다림은 나쁘게 보면 자기변명이거나 자기기만이기도 하지만 좋게 해석하면 살기위한 몸부림이거나 긍정의 아이콘이다. 신성한 백송을 보면서 기다림을 모두 벗어던진다. 백송의 생명력이 기다림을 지운다.희망은 다가올 미래에 바라던 결과나 성과가 얻어질 것이라는 기대나 예측을 뜻한다. 희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인생이지만 열심히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험한 삶을 인내한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희망에 길들여져 있는 셈이다. 백송을 바라보는 동안 희망과 절망은 모두 다 사라진다. 시인은 희망을 거절한다. 과거의 고난을 현재에 품고 미래로 미루던 성과마저 현재로 소환한다. 희망은 현재의 성실한 삶으로 대체된다.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다. 겨울은 춥고 길지만 세월이 흐르면 따스한 봄날이 찾아온다. 그래서 봄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을 견뎌낸다. 겨울은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인고의 계절이다. 봄은 항상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 왔다. 백송을 보노라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잊는다. 그렇다. 겨울은 봄을 기다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겨울을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고 겨울을 제대로 살고 또 즐겨야 한다.절벽 위에 선 백송을 본다. 추운 겨울이라도 내일을 기약하지 않고 뿌리를 내린다. 북풍이 불면 몸을 움츠리고 눈이 내리면 눈송이를 받는다. 뼈와 살이 허옇게 드러나도록 시련을 겪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백송은 고난과 시련의 상흔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고고한 기품과 경건한 자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한 내공에서 우러난다.오철환(문인)

예쁜 꽃/ 홍사성

예쁜 얼굴 자랑하려 피는 게 아니구나//남 보기 좋으라고 피는 게 아니구나//봄 와서 몸 더워지니 못 견뎌 피는구나//꽃이든 사람이든 바위든 그 무엇이든//진짜 예쁜 것들은 나대지 않는구나//조용히, 그저 조용히 웃기만 하는구나「터널을 지나며」(2020, 책만드는집) 홍사성 시인은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2007년 시와시학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년에 사는 법’, ‘고마운 아침’, ‘터널을 지나며’가 있다. 문학평론가 정효구는 이번 시집 ‘터널을 지나며’의 해설에서 본심에 공명하는 시간, 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시 세계를 본심을 보는 마음, 본심을 듣는 마음, 본심을 행하는 시간, 본심을 전하는 시간으로 대별해 살피고 있다. 적절한 의미 부여라는 생각이 든다.한 권의 시집을 완독하는 일은 어렵다. 그런데 ‘터널을 지나며’를 단숨에 읽었다. 진솔한 시 세계가 강한 자기장을 형성하면서 흥미진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군데군데 촌철살인과 같은 구절이 나타나서 오래 눈길을 사로잡기도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명구로 말미암아 시 읽는 재미를 더했다. 사람살이와 자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탐구가 도저한 깊이에 닿아 있어 이따금 깨달음을 얻게 했다. 이와 같은 친밀한 달관의 세계는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그리고 기교를 앞세우지 않으면서 기교를 보인다. 이른바 무기교의 기교인 셈이다.‘예쁜 꽃’은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조다. 꽃을 보면서 예쁜 얼굴 자랑하려 피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남 보기 좋으라고 피는 게 아니라는 것까지도. 첫째 수 종장은 창의적인 해석으로 봄 와서 몸 더워지니 못 견뎌 피는구나, 라는 대목은 깊은 성찰 없이 얻을 수 없는 구절이다. 특히 몸이 더워져서 못 견디어서 꽃을 피운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어서 꽃이든 사람이든 바위든 그 무엇이든 진짜 예쁜 것들은 나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조용히, 그저 조용히 웃기만 하는 꽃을 바라보면서 사람살이를 돌아보고 있다. 자연을 닮는 일, 자연친화적인 삶을 구현하는 일이 인간다운 길, 인간성 회복의 길임을 은연중 환기시킨다. 몸이 더워지면 몸속의 병도 달아난다고 한다. 몸이 더워져서 꽃이 피니 시인은 몸이 더워지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시를 쓰게 되겠다. 눈앞이 곧 봄이지 않는가?그는 산수유도 꽃망울 터지기 전에는 죽은 삭정이에 불과했고, 봄바람도 볕에 몸 녹이기 전에는 차가운 북풍일 뿐이었으며, 내 가슴도 네가 들어오기 전에는 가을걷이 끝난 벌판이었다, 라고 ‘따뜻함의 힘’에서 진술하다가 어느 날 천지가 이상해졌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따뜻한 눈길 느낀 그날부터였음을 진솔하게 토로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에 대해 언짢은 일이 있으면 눈총을 쏘아댄다.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그러한 모습을 보일 때 섬뜩해지고 그 자리가 불편해진다. 그런데 미소와 더불어 건네는 따뜻한 눈길은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기쁨을 안겨준다. 그것이 곧 따뜻함의 힘이다. 이러한 따뜻함은 팍팍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줄 것이다. 격려를 아끼지 않고 행복감을 안겨주는 고운 눈길로 삶을 가꾸어갈 일이다.시집 제목인 ‘터널을 지나며’에서 보듯 무수한 터널을 지나치며 우리 모두 살아가고 있다. 누가 터널 속에 오래 머물고 싶을까? 목적지를 위한 통행 수단일 뿐이기에 터널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속히 통과하는 곳이다. 그는 삶의 깊은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시적 정황을 놓치지 않고 작품으로 세밀히 형상화하는 일에 매진 중이다. 꽃 박수를 받고도 남을 일이다.이정환(시조 시인)

우리는 사람이다/ 박하식

~ 개도 사람이다? ~…나는 생후 3개월쯤에 어떤 노부부를 새 주인으로 두게 되었다. 거실에 라면박스로 집을 만들어 주었다. 엄마와 형제에게 데려다달라는 뜻으로 우유를 거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배가 고파 오래 견디지 못했다. 나는 순돌이로 불렸다. 눈이 예쁘다고 귀여움을 받았다. 뒷집에서 개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뒷집으로 가봤다. 암컷이 목줄을 한 채 줄에 매여 있었다. 사귀어보려고 했지만 주인에게 쫓겨났다. 인근 둑길에서 다른 개들과 뛰어놀았다. 오랜만에 자유를 누렸다. 주인 손녀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손녀와 함께 뒹굴며 놀았다. 점차 정이 들자 주인은 목욕을 시켜주었다. 샴푸를 칠할 땐 도망가기도 했다. 어느 봄날 주인은 느닷없이 목줄을 채웠다. 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동물병원에 가서 예방주사를 맞기도 했다. 태어난 지 1년 반이 지나자 사춘기가 온 것인지 몸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목줄을 끊고 둑길로 달려갔다. 발정 난 암캐를 찾아냈지만 집안에 갇혀있어 대문 밖에서 컹컹 대다가 발길을 돌렸다. 어디서 오징어 냄새가 났다. 술 마시던 두 사람이 오징어를 흔들며 유혹했다. 오징어를 무는 순간 그물이 날아왔다. 도망가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그들은 나를 개도살장으로 잡아갔다. 많은 개들이 철창에 갇혀 울부짖었다. 노린내가 진동했다. 곧 죽게 될 것 같다. 어떤 여인이 와서 나를 지목했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주인 얼굴이 떠올랐다./ 막내가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다. 아내와 나는 안 좋은 기억이 있어 개를 키우지 않았다. 아버지가 광견병으로 돌아가신 데다 키우던 개가 쥐약 먹은 쥐를 먹고 죽은 일을 겪었다. 아내는 정 들기 전에 돌려주자고 했다. 밤에 돌려줄 수 없으니 다음날 돌려주자면서 시간을 벌었다. 강아지는 유순했다. 쌍꺼풀눈이 예뻤다. 예쁘면 모든 게 OK다. 어영부영 세월이 갔다. 순한 수캐라는 의미로 순돌이라 불렀다. 맏손녀가 순돌이를 유독 좋아하는 바람에 귀염둥이로 등극했다. 목욕도 시키고 예방주사도 맞혔다. 생각해보니 젖은 낙엽 신세인 늙은이를 따르고 반겨주는 놈은 세상에 순돌이 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손돌이와 함께 하리라 마음먹었다. 어느 날 순돌이가 발정 난 듯 목줄을 끊고 집을 나갔다. 곧 돌아오려니 했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마 죽은 모양이다.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길 빌었다.…개가 첫째, 자식이 둘째, 배우자는 셋째, 부모는 넷째다. 개를 키워본 사람이면 그게 농담이 아니란 걸 안다. 개를 아들·딸이라 하고 자신을 아빠·엄마라 부른다. 어떤 일반 현상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개를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사람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들 중에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그 충직한 품성 때문이리라. 개는 주인을 절대 배신하지 않고 몸을 바쳐 섬긴다. 주는 만큼 확실히 돌려받는다. 못생기든, 가난하든, 무식하든, 성질이 더럽든, 개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밥 주고 재워주는 주인이면 일편단심으로 섬기고 따른다. 무시당하고 배신당해본 사람이나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은 특히나 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이 험한 세상에서 개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개를 시기·질투할 것이 아니라 보듬고 공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화급히 개발해야 할 터다. 개와 사람은 서로 의지하는 공동운명체다.오철환(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