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을/ 장식환

석류알 틈서리로/ 주홍빛 배어들어// 차라리 푸른 자락/ 외로 앉은 가을 하늘// 기러기/ 울음소리도/ 된서리에 떨어진다// 굽으로 돌아가는/ 이어지는 강물 소리// 하얀 뿌리 내리다가/ 꽃대공만 섰는 노래// 들창문/ 고운 살결에/ 빛이 되어 반짝인다// 아직도 두고 보면/ 고향산 먼 나루터// 노 저을 외진 길이/ 가슴에 와 놓이는데// 속새풀/ 바람에 날려/ 늦가을을 흩는다「대구시조 23호」(2019, 그루)장식환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7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연등 들고 서는 바다」 「그리움의 역설」 등을 펴냈다.가을도 초입을 지난 지 오래고 눈앞이 곧 추석이다. 매미울음은 벌써 그쳤고 산과 들의 빛깔도 완연히 달라졌다. 황금들판을 바라보면서 풍요로움을 느낀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문득 마음이 서늘해지면서 먼 옛날의 고향집이 생각난다. 아, 또 다시 가을이구나, 가을이 깊어가고 있구나, 라면서 얼마간 쓸쓸함을 느낀다.여기 가을을 맞은 이의 마음을 다독여줄 시가 있다. ‘고향 가을’이다. 마흔 해 전에 지면을 통해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석류알 틈서리로 주홍빛 배어들어 차라리 푸른 자락 외로 앉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데 기러기 울음소리도 된서리에 떨어진다. 고향 가을의 정취를 정감 있게 그리고 있다. 관찰에서 비롯된 섬세한 감각과 밀도 높은 서정성이 돋보인다. 이어서 화자는 굽으로 돌아가는 이어지는 강물 소리를 귀담아 듣는다. 또한 하얀 뿌리 내리다가 꽃대공만 섰는 노래가 들창문 고운 살결에 빛이 되어 반짝이는 것을 본다. 지극히 평화롭고 아늑한 정경이다. 향수에 깊이 젖어들게 한다.고향산 먼 나루터에 이르면 노 저을 외진 길이 가슴에 와 놓이는 것을 느낀다. 아직은 갈 길이 멀고 아득하다. 그 외진 길이 눈앞에 있는데, 이따금 고향 마을이 떠올라 마음 속 깊이 쟁여둔 그리움을 자아올린다. 몸에서 떠날 수 없는, 영원히 몸과 함께 할 고향이기에 속새풀 바람에 날려 늦가을을 흩는 그 어느 가을날 고향 강둑을 찾았을 법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남은 길에 대한 벅찬 예감과 기대로 옷자락을 한없이 흩날렸을 것만 같다.끝부분에 나오는 속새풀은 ‘고향 가을’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어로서 묘한 울림을 준다. 속새는 식물체 모양이 말 꼬리를 닮았고, 조상으로 치면 양치식물들처럼 족보가 아주 빠른 선조들 식물에 속한다고 한다. 어둠침침한 숲속의 습지가 고향인 늘 푸른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 풀이 결구에 놓임으로써 이 시편에 의미와 맛을 더하고 있다. 속새풀, 속새풀이라고 부르노라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깊어진다. 그것은 석류알, 주홍빛, 푸른 자락, 가을 하늘, 기러기 울음소리, 된서리, 강물 소리, 하얀 뿌리, 꽃대공, 들창문 고운 살결, 고향산 먼 나루터, 노 저을 외진 길이라는 애틋한 이미지들의 연첩으로 노스탤지어를 무한정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해마다 맞는 가을이지만 이번 가을은 더욱 다른 느낌이다. 전무후무한 난제가 쉬이 잦아들지 않고 있어서 그러하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속에 잠들어 있는 시심을 깨워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 길은 곧 시와 함께 하는 삶이다. 오래 전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 이가 있다. 「녹색평론」주간 평론가 김종철이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향한 열망을 품고 노력을 기울일 때다.그러기 위해서는 ‘고향 가을’과 같은 시편을 더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가시연꽃/ 박옥순

~고통 속에 핀 사랑~…남친과 사랑을 나누고 있던 차에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비꼬는 듯한 감이 든다. 무심한 듯 보여 전화했단다. 항상 말을 기분 나쁘게 한다. 전생에 원수였던가. 집으로 오라고 했다. 찜찜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다. 남친이 태워주겠단다. 너무 깊이 사귄 것 같다. 나는 그를 섹스파트너 이상으로 생각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선언하고 사귄 터다. 여러 남자가 거쳐 갔다. 남자를 농락하게 된 건 언니 탓이다. 언니는 세 번씩이나 버림받고 쫓겨났다. 그러면서 대거리조차 제대로 못했다. 그런 언니를 지켜보면서 복수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남친이 태워주겠다고 우겼다. 결국 남친의 차에 탔다. 피로가 몰려와 차안에서 잠이 들었다. 언니가 불타는 가시연꽃에 휩싸여 있었다. 남친이 몸을 흔들었다. 철든 이후 언니 꿈을 꾸지 않았지만 어릴 땐 밤마다 언니 꿈을 꾸었다. 매 맞는 꿈이었고 그럴 때마다 오줌을 쌌다. 오줌 쌌다고 또 벌을 받았다. 언니가 나를 적대시한 것은 두 번째 이혼을 당하고부터다. 쫓겨 온 언니는 다른 사람 같았다. 마주친 눈빛에 적의가 묻어났다. 어느 여름날 모기장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바람에 밤새도록 모기에 뜯기기도 했다. 예닐곱 살 무렵 작은 행복을 준 추억도 있지만 언니는 오랫동안 깊은 상처를 주었다. 남친은 읍내에 남았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누렁이가 맞아주었다. 췌장암 4기인 언니가 황토 방에 있었다. 언니를 휠체어에 태워 가시연꽃이 핀 연못으로 갔다. 언니가 연못을 보며 친구 얘기를 했다. ‘여자는 남자와 뽕나무밭에서 데이트를 했다. 남자가 입영통지를 받은 날, 두 사람은 한 몸이 되었다. 여자는 남자의 아기를 품었다. 한편, 남자는 월남전에 파병되어 그만 전사하고 만다. 여자는 몇 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고 그녀의 늙은 어머니는 늦둥이 딸을 낳았다. 그 후 여자는 자신을 학대하며 살았다.’ 대충 그런 얘기였다. 근데 언니가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몰랐다. 결혼을 하지 마라는 말 같았다. 언니는 자기가 죽거든 연못에 뿌려달라고 당부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퉁을 주었다. 하지만 가시연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진흙 속에 잠기는 것도 괜찮을 법했다. 언니 얘기를 곱씹으니 야릇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날 밤, 개 짖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래채에 불이 났다. 언니가 불길 속에 있었다. 어머니는 “네 엄마가 불길 속에 갇혔다.”며 쏜살같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와 언니, 아니 두 어머니가 불속에서 산화하였다. 두 어머니를 연못이 보이는 곳에 모셨다. 남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연못을 바라본다.…주인공은 코앞에 있는 어머니를 알지 못하고 살아온 둔감한 사람이다. 슬픈 사랑을 삭이지 못해 투정부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의 뻗나간 인생이 안타깝게 펼쳐진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사랑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사랑에 목마른 두 모녀가 고루한 제도와 융통성 없는 관습이라는 허울에 얽매여, 엇갈리고 아파하는 모습에서 참사랑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행복이나 불행은 밖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자라난다. 그러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평범한 이치를 깨닫기는커녕 눈앞의 사랑마저 알아보지 못한 장님이었으니 더 이상 말하여 무엇 하리. 천추의 한으로 남아 바위 같은 응어리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할 삶이 고단하다. 다만 방황하는 딸을 남친과 맺어주고 떠나간 두 어머니의 속 깊은 사랑이 뭉근하게 울린다. 오철환 (문인)

흔들가/ 김병락

저 물결 흔들흔들/ 흔들의자 흔들흔들// 차도 흔들 집도 흔들/ 마음도 흔들흔들// 이 땅에/ 살아남자면/ 죽자 사자 흔들흔들「분이네 살구나무」 (2019, 목언예원)김병락 시인은 경북 구미 출생으로 2010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매호동 연가」가 있다. 존재의 근원을 향한 모색과 내밀한 성찰을 통해 올곧은 삶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탐색하고 궁구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조 세계는 눈길을 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개인의 삶과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면서 자존을 지키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자아정체성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우왕좌왕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비롯된 시편이 ‘흔들가’다. 단시조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저 물결이 흔들흔들할 때 화자가 앉은 흔들의자도 흔들흔들하는 것을 느낀다. 그 순간 차도 흔들리고 집도 흔들리면서 마음까지도 흔들흔들한다. 왜 모든 것이 흔들리는 것일까? 이 땅에 살아남자면 죽자 사자 흔들흔들하지 않으면 아니 되기 때문이다. ‘흔들가’에는 줄곧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그 이면에 함유된 흥겨운 단 시조다. 무려 제목까지 포함해서 흔들, 이라는 시어가 열두 번이나 쓰였다. 그만큼 흔들리기 쉬운 삶이라는 뜻도 담겼고, 자연스럽게 흔들리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그러나 시류에 편승하라는 뜻은 아니다. 도리어 인생을 더욱 긍정적인 자세로 열정을 다해 살아가야 하겠다는 의지를 다잡는 노래다. 흔들흔들, 이라는 말이 저절로 어깨춤을 추게 만들면서 삶의 의욕을 북돋운다. 시는 되풀이라는 점을 ‘흔들가’는 여실히 보여준다. 몇 번 소리 내어 읽다가 보면 저절로 암송하게 된다. 송시열은 일찍이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라는 시조를 남겼는데 절로, 를 아홉 번이나 반복했다. 순응의 삶을 희구한 모습을 후대의 시인이 ‘흔들가’를 통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두 편 다 시에서 음악성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그는 또 다른 작품 ‘리셋’에서 참신한 발상을 보인다. 리셋은 컴퓨터 따위의 전체나 일부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 시에서는 달리 표현되고 있다. 거죽에 둘러쳐진 위선과 거짓부렁을 버튼 한 방으로 허공에 날려버리고 더듬어 초기상태로 되돌려 놓겠다는 발언을 한다. 결국 위선과 거짓부렁 때문이다. 그리고 슬픔에서 고독까지 질투에서 증오까지 그리 아픈 것을 잊을 수만 있다면 깡그리 뭉개버린 뒤 다시 출발하겠다고 다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폐기하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제대로 관철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로 일상이 무너진 지 오래다. 흔들흔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드센 바람에 쉬이 휩쓸리지도 않고 험난한 세파를 잘 헤쳐 나가야 하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에서 시인 폴 발레리는 노래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오늘 아침 창문을 여니 멀리 잿빛의 도시 위로 하나 가득 몰려든 비바람에 문을 닫고 돌아와 따뜻한 난로 옆에 앉는다. 아, 나의 앞에는 얼마나 거친 시간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말했듯이 바람이 분다.‘흔들가’를 부르면서 우리 앞에 닥친 거친 시간들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내가 사는 세상/ 홍승우

내가 사는 세상/ 그 곳에/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내가 없어도/ 미루나무는 흔들리고/ 버짐은 핀다.// 내가 사는 세상/ 그 곳에/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내가 없어도/ 길 위에 길이 있고/ 타는 하늘 돌아누워도/ 돌아가는 세상「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 (나남, 2007)천구좌표계는 천문학에서 위성, 행성, 항성, 은하 등 천체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좌표계다. 천구좌표계는 천구에서 천체의 방향을 가리키는 방식을 사용하는 구면좌표계의 일종이다. 천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하늘을 둘러싼 가상의 구다. 관측자를 중심으로 거대한 반지름을 갖는 구를 설정하고 모든 천체가 구의 표면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지평좌표계는 천구좌표계의 일종으로 천문학 입문 시간에 교육용으로 흔히 사용된다. 편리할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도 쉽다. 이해하기 쉬운 이유는 지평좌표계의 중심이 관측자이기 때문이다. 이 때 유명한 명언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다. 우주의 중심은 나다’라는 명제다. 이 말은 한창 감성이 예민한 자아확립기의 학생들에게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지평좌표계에서 우주의 중심이 관측자라는 명제는 단숨에 철학적 명제로 둔갑하고 만다. 모든 일을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입장에서 보고 듣고 판단하는 이기적인 인간에게 각자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말처럼 자긍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없다. 한술 더 떠서 우주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한다. 우주가 사라지면 나도 없어지고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 안 그래도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 지평좌표계는 자기중심주의를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천하의 미색과 산해진미인들 자기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름다운 풍광과 부귀영화가 있다 해도 자기가 없으면 아무짝에 소용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가다 보면 불꽃처럼 깨우침이 오는 순간이 온다. 세상은 나를 눈여겨보지도 않고 남보다 더 배려해주지도 않는다. 운명의 여신은 불편부당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다고 공정한 것도 아니다. 어느 누구를 더 예뻐하지도, 더 봐주지도 않는다. 무심하고 무감각하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건 명확하다. 나는 우주의 변두리도 못된다. 각자가 우주의 중심이란 말은 그냥 희망사항일 따름이다. 젊은 학생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한 공치사다. 기껏해야 착한 거짓말이다.우주는 광활 무극하고 지구는 하나의 점도 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허공을 날아가는 티끌 위에 잠시 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허약한 생명체이다. 호모 사피엔스, 지구의 주인공처럼 보여도 지구의 주인공도 아니고 영원히 번창할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어리석은 존재일 지도 모른다. 그 중에 속해 있는 나 자신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 삶은 한 조각의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음은 한 조각의 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가족이 잘못될 것 같고, 내 회사도 곧 넘어질 것 같다. 심지어 세상마저 잘 돌아갈 것 같지 않다. 그건 희망사항이거나 착각이다. 내가 없어도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세월은 무심하게 그냥 흘러간다. 내가 없어도 필 건 피고 갈 건 간다. 허무한 세상을 너무 버둥거리며 살 필요가 없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 웃으면서 즐겁게 살 일이다. 오철환(문인)

낙법/ 권순진

유도에서 맨 먼저 익혀야할 게 넘어지는 기술이다/ 자빠지되 물론 상하지 말아야 한다/ 메칠 생각에 앞서 패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훈련/ 거듭해서 내동댕이쳐지다 보면 바닥과의 화친이 이루어진다/ 몸의 접점이 많을수록 몸은 안전해지고/ 나아가 기분 더럽지 않고 안락하기까지 하다/ 탁탁 손바닥으로 큰소리 장단 맞춰 바닥에 드러눕는 것이/ 더러는 보는 이에게도 참 흐뭇하다/ 머리를 우선 낮추고 몸을 둥글게 말아 구르니/ 넘어진들 몸과 마음이 상할 리 없다/ 어깨에 얹힌 힘을, 발목에 달린 힘을, 모가지에 붙은 힘을/ 죄다 빼고 헐거워져서야 마음도 둥글어진다/ 그때서야 엉덩살은 왜 그리 두껍게 붙어있는지/ 넘어지고서도 다시 일어서야할 생각은 왜 솟아나는지/ 누운 자세에서 깨달으며 무릎 세운다「낙법」 (문학공원, 2011) 낙법은 한마디로 다치지 않고 넘어지는 법이다. 발을 헛디뎌 땅바닥에 넘어지거나 격투를 하다가 밀려서 뒹굴게 될 경우, 그 충격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상대의 공격을 받거나 스스로 넘어질 때 충격을 줄이는 유도기술로 알려져 있다. 허나 어떤 운동을 하든지 안전을 위하여 반드시 사전에 익혀 두어야 할 기술이다. 유도를 배울 때 가장 먼저 가르쳐주는 게 바로 낙법이다. 넘어지더라도 다치지 않아야 몸이 상하지 않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메치는 공격에 앞서서 넘어질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이다. 유비무환의 교훈을 응용한 셈이다. 넘어지는 연습을 거듭하게 되면 넘어지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패배와 친해지는 교육인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지는 일이 병과지상사이 듯 경기에서 지는 것도 일상적인 것이다. 많이 져봐야 마지막에 이길 수 있다. 여러 번 넘어지다 보면 바닥과 친해지는 법이다. 넘어지는 훈련과 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낙법이 제대로 되어야 마음 놓고 공격을 구사할 여유를 갖는다. 넘어져도 기분 나쁘지 않아야 다시 벌떡 일어선다.넘어지든지, 자빠지든지, 바닥과 몸의 접점이 많고 맞닿는 면적이 넓으면 충격이 분산됨으로써 아프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는다. 아프지 않아야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고, 두려움이 없어야 용감하게 싸워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바닥을 치는 소리가 크고 경쾌해야 바닥과 잘 소통한다. 소리울림이 공허해야 충격을 비게 한다. 엄살처럼 보이지만 경쾌한 마음가짐이 정석이다.머리를 낮추는 모습이 겸손한 태도다. 아울러 몸을 둥글게 말아야 마찰이 적고 부딪힐 가능성도 낮아진다. 등판을 둥글둥글하게 말아서 굴러주면 바닥도 조용히 받쳐준다. 구르는 몸에는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 머리를 감추고 몸을 말아 구르는 판에서 몸이 상할 까닭이 없다. 마음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패배와 친해질 수 있다. 몸에서 힘을 빼야 마음도 비게 된다. 팔, 어깨, 발목 모가지, 엉덩이 할 것 없이 모두 다 힘을 빼야 몸이 부드러워지고 마음도 나긋나긋하게 된다. 그래야 마음이 멍들지 않는다.낙법을 알 만할 즈음, 비로소 몸의 조화로움이 깨어난다. 늘어진 근육 살이 졸깃졸깃해지고 두툼한 엉덩이 살이 탱글탱글하게 살아난다. 넘어져도 몸이 개운하고 마음은 경쾌하다. 넘어지는 게 별 거 아니다. 넘어지더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다. 넘어지고 자빠지더라도 일어나 무릎을 세우는 것은 누워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넘어지고 자빠지기 여사다. 넘어지더라도 일어날 수 있도록 낙법 원리를 배우는 일이 필요하다. 오철환(문인)

어머니 설법/ 하순희

내 몸에 상처진 것들 뜨락에 꽃으로 핀다/ 발목 걸고 넘어지던 무수한 일들도/ 생명을 실어 나르는 나뭇가지 물관이 되어// “한 세상 살다 보믄 상처도 꽃인 기라/ 이 앙다물고 견뎌내몬 다 지나가는 기라/ 세상일 어려븐 것이 니 꽃피게 하는 기라// 그라모 니도 므르게 다아 나사서/ 더 께져 아물어진 헌디가 보일기다/ 마당가 매화꽃처럼 웃을 날이 있을 기다”「종가의 불빛」(2019, 고요아침)하순희 시인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1989년 ‘시조문학’지에 추천완료, 199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별 하나를 기다리며」 「종가의 불빛」 동시조집 「잘한다잘한다 정말」과 시조선집 「적멸을 꿈꾸며」(현대시조 100인선 90번, 태학사, 2004) 등이 있다.‘어머니 설법’에서 애틋하고 애절한 어머니의 사랑을 읽는다. 내 몸에 상처진 것들이 뜨락에 꽃으로 피는 것을 보면서 발목 걸어 넘어지던 무수한 일들도 생명을 실어 나르는 나뭇가지의 물관이 되는 것을 느꺼워한다. 이어서 어머니의 말씀이 한 세상 살다 보믄 상처도 꽃이며, 이 앙다물고 견뎌내몬 다 지나가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또한 세상일 어려븐 것조차도 니 꽃피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이른다. 그라모 니도 모르게 다아 나아서 더 께져 아물어진 헌디가 보일 것이라면서 마당가 매화꽃처럼 웃을 날이 다가오리라고 조언한다. 어머니의 육성을 들려주듯 구어체로 생생하게 진술함으로써 정감을 더할 뿐만 아니라 적잖은 위로와 힘이 되고 있다.그의 다른 작품 ‘어머니의 유산’ 역시 어머니를 그리고 있다. 아흔 셋 길 떠나신 초계 정씨 내 어머니는 자 하나 가위 하나 버선 한 켤레로 남으셨지만, 그 가르침 즉 바르게 선하게 살아라 그른 길은 자르거라, 라는 말에서 보듯 단정하면서 단호하신 데가 있는 분이었다. 자나 가위가 그냥 남겨진 것이 아님을 엿본다. 그리고 차운 발을 데우는 버선처럼 살거라, 라는 말씀이 떠올라 꽃다지 피는 봄날 여린 쑥을 캐면서 바람결에 날아서 오는 환청 같은 그리움에 젖어들기도 한다. 하여 떨어지는 꽃그늘로 더디 오는 후회 앞에 나뭇가지 적시며 빗줄기에 스미는 청매화 향기로라도 가닿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긴 여운을 안긴다.또 한 편 어머니에 관한 글 ‘조장’은 더욱 간절하다. 마음 쓸쓸히 헐벗은 날 그 목소리 들린다면서 잘 있제 잘 하제, 라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그래서 푸른 울타리로 살거라, 라는 말씀이 큰 울림을 준다. 내 죽으믄 무덤 만들지 말고 말짱 태워서 곱게 가루 내어 찹쌀밥 고루 버무려 새한테 주거라, 라는 마지막 부탁은 실로 애절하다. 말짱 태우는 일은 자식으로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하고자 한다. 참으로 숭고하다. 이렇듯 숙연한 날 때 없이 헛헛해 오는 저린 손을 비비면 바람소리 물소리 선연한 풍경소리 가운데 깊은 뜻 새소리로 남아 젖은 길을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신석기시대, 북방계 민족이 사용하던 토기로 그릇 표면에 빗살과 같은 무늬를 새겨 넣었고 밑바닥은 대개 둥글거나 뾰족하게 만든 토기를 보며 상상력을 작동한 ‘즐문토기’에서 그 당시 도공이 마디마디 각인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새로이 잎을 내는 맥문동 여린 꽃대에 내리며 녹아버리는 흰 눈발에서 시의 화자는 영혼을 흔드는 무늬를 본다.우리는 하루하루 살면서 여러 문양을 아로새겨간다. 어떤 무늬가 우리 속에 수놓이고 있는지는 모를 테지만, 언제 불러도 늘 부르고 싶은 어머니를 한 번씩 마음 속 깊이 울먹울먹 부르면서…. 이정환(시조 시인)

문/ 이화정

~어둠 속에서도 사랑은 싹튼다~…은영은 어머니 기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 일로 은영을 줄곧 미워했다. 멘스를 시작하고 성적 정체성이 나타남에 따라 선영의 모습은 어머니를 닮아갔다. 어느 여름밤, 아버지는 은영을 침대로 데려가 몹쓸 짓을 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습관적으로 성폭행을 계속했다. 성폭력위기센터에 전화상담을 해봤다. 감방에 보낸다고 하더라도 보호자라는 지위 때문에 다시 복귀한다는 말했다. 견디는 수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취직해서 기숙사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악몽 같은 생활에서 벗어났다고 좋아했지만 아버지가 숙소로 찾아와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생일이 돌아오면 은영은 매년 피어싱을 하나씩 하곤 했다.그러던 어느 생일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은영을 겁탈하려던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벽에 머리가 부딪혀 벌거벗은 몸으로 죽었다. 은영은 배낭과 흰 약이 든 은색 함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간병인을 구하는 정보지 광고를 보고 그 집을 찾아갔다. 목 위만 살아있는 젊은 남자, 문을 만났다. 문을 간병하게 되었다. 문은 우울증이 심한 여자와 결혼했으나 곧 사별했다. 여자는 그의 눈앞에서 물에 뛰어들었다. 구해줄 수 있었지만 여자의 원을 들어주었다. 그날 이후 문은 전신이 점차 마비되고 목 위로만 살아있는 처지가 되었다. 문과 은영, 두 사람만 한집에서 생활했다. 말도 많이 섞지 않고 최소한의 접촉만 하는 관계였지만 둘은 마음으로 교감했다. 갈수록 신뢰가 쌓여갔다. 바깥나들이도 나갔다. 여행 간 숙소에서 뜨거운 물에 문을 담가둔 사고가 있었다. 전신에 물집이 생겼지만 문은 감각이 없어 괜찮다며 무덤덤하게 웃어넘겼다.은영은 간병에 열중하다가 문의 침대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그의 손이 이마 위에 얹혀있었다. 난생처음 편안함을 느꼈다. 그날 이후 은영은 문의 침대에서 잤다. 병원에 약을 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은영은 경찰의 검문에 직면했다. 아버지 사건일 터였다. 검문을 피해 도망쳤다. PC방과 찜질방으로 전전했다. 며칠 후, 작별 인사차 문의 집으로 찾아갔다. 가족들이 난리를 쳤지만 문은 은영을 받아들였다. 은영은 은색 함을 챙겨서 떠나려 했다. 문도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산길을 따라 산정호수까지 올라갔다. 문의 아내가 뛰어들었던 호수다. 비가 내리고 칠흑 같은 어둠이 몰려왔다. 산을 내려가지 못하고 차안에서 자야만 했다. 그 길로 문은 영영 깨어나지 않았다. 문의 가족은 은영을 책망하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은영은 은색 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은영은 피어싱을 하지 않고 이마에 손 모양의 타투를 했다. 그 손은 불행으로부터 은영을 지켜줄 것 같았다.…출산 중에 어머니가 죽고 은영이 태어났다. 태생부터 미운오리새끼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음습한 그늘에 버려진 꼴이다. 사랑은 싹조차 없다. 아무도 구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력구제는 불가피하다. 마침내 탈출을 감행한다. 흰 약이 복선이다. 은영은 새로운 운명에 직면한다. 문을 만난다. 문은 사지는 마비되었지만 그 영혼은 정상인보다 더 맑다. 둘은 정신적 교감을 통해 영적으로 사랑을 느낀다. 사랑에 목말라 있던 은영에겐 단비와 같다. 문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떠나야 함을 안다. 아내가 떠나야 했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문이 아내를 보냈듯이 은영은 문을 보낸다. 아버지와 같은 해결방식이지만 그 콘텐츠는 판이하다. 문의 몸은 비록 떠났지만 그 마음은 결코 떠나지 않았다. 오철환(문인)

11월/ 염창권

그림자를 앞세우는 날들이 잦아졌다//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는 가랑잎들// 골목엔 눈자위 검은 등불 하나 켜진다// 잎 다 지운 느티나무 그 밑둥에 기대면// 쓸쓸히 저물어간 이번 생의 전언이듯// 어둔 밤 몸 뒤척이는 강물소리 들린다// 몸 아픈 것들이 짚더미에 불 지피며// 뚜렷이 드러난 제 갈비뼈 만져볼 때// 맨발로 걷는 하늘엔 그믐달이 돋는다//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은//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날 데려갈 그것은// 아마도, 오기로 하면 이맘쯤일 것이다「중앙일보」(2015. 12. 14)염창권 시인은 전남 보성 출생으로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햇살의 길」 「숨」 「호두껍질 속의 별」 「마음의 음력」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존재의 기척」이 있다.11월의 정서는 화가에게는 그림을, 음악가에게는 새로운 곡을, 시인에게는 갖가지 느낌을 안겨주어 시를 쓰게 한다. ‘11월’은 시종일관 같은 톤을 유지한다. 화자가 조곤조곤 귓속말을 들려주는 대로 따라가면서 분위기를 깨뜨리지만 않으면 되겠다. 그림자를 앞세우는 날들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가랑잎들은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고, 골목엔 눈자위 검은 등불 하나가 켜진다. 화자는 우리로 하여금 잎 다 지운 느티나무 그 밑둥에 기대게 한다. 그때 쓸쓸히 저물어간 이번 생의 전언이듯이 어둔 밤 몸 뒤척이는 강물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몸 아픈 것들이 짚더미에 불을 지피며 뚜렷이 드러난 제 갈비뼈를 만져보는 때에 맨발로 걷는 하늘엔 그믐달이 돋는다. 젖의 등장으로 근원적인 모성애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 시작되는 끝수는 퍽이나 신비스럽다.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은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날 데려갈 그것이라고 말하면서 온다면 아마도 오기로 한다면 이맘쯤일 것이라고 나직이 읊조린다.그는 또 ‘호두껍질 속의 별’에서 특이한 매력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첫 수에서 호두껍질 속에서 별빛 이미지를 도출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껍질 속은 굴곡이 많은 별빛으로 채워졌다, 라는 대목은 상상력의 발현이다. 그리고 호두 속은 정말 뇌수 모양 그대로이기에 빡빡한 뇌수처럼 생은 좀체 휴식이 없다는 사실에 적극 동의하게 된다. 부유하는 먼지 같은 별빛을 헤아려 보는 장면에서도 우리의 눈길은 오래 머문다. 둘째 수에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미 첫수에서 호두껍질을 우주로 보았으므로 첫 수에서 딱딱한 두개골처럼 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어서 반짝이는 머리통 속 질량은 충분하다, 라는 진술에서 밀도 높은 생의 비의를 감지하게 된다. 그것이 은밀한 느낌과도 같은 욕정과 연계되면서 다시금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셋째 수는 그 의미하는 바가 금기의 강이 가로막고 있어 불가해한 측면을 보인다. 다만 별들의 사랑을 앞의 욕정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수가 관건이다. 시의 화자가 우주 즉 호두껍질을 두드려서 잠든 별을 깨운다. 사랑을 나눈 별이 혼곤한 잠에 빠져 있다가 정수리를 치는 강한 울림에 곧장 깨어났을 것이다. 여기서 종장은 강렬한 인상을 화인 찍듯 독자의 뇌리에 각인시킨다. ‘호두껍질 속의 별’에서 시의 화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결국 추억의 힘이다. 추억의 힘’이 파동 치며 긁히는 어둠을 헤치고, 우리의 삶을 미래로 이끈다. 끝까지 견지하고자 하는 꿋꿋한 생의 의지와 열망은 추억의 힘이 추동하는 길과 시간에 대한 부단한 궁구이기도 하다.‘11월’과 더불어 이 궁구가 앞으로 더 많은 길을 통해서 깊어지고 넓혀져서 우리 앞에 또 다른 가슴 벅찬 비전과 의미를 안겨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정환(시조 시인)

알에 관한 명상/ 박윤배

암탉인 아내가 자릴 비워서 막둥이 녀석 허기는/ 내 몫이다. 냉장고 문을 열고 꺼내 든 달걀/ 이게 유정? 아님 무정란일까?/ 아삼삼하다. 오래전 불임수술한 후론 관심 없어진 탓!// 프라이팬 열기 위에 얹을까/ 아니면 노른자 흰자 희석해서 쪄낼까/ 고민 중, 만난 것은 안과 밖을 껍질이 감싸고 있다는 것// 둥근 알을 만들기까지 방아공이 아래 넣은 구름의 몸/ 아비는 오랜 동안 어미를 밟아 내렸을 터/ 껍질을 뚫고 몸을 꺼내기까지는/ 내부의 천둥 같은 부리가 스스로 할 일이다// 체온을 건네준다는 것은 아름다운 희생이긴 하지만/ 허기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아들 녀석도 알에서 나온 것// 전설 속 알에서 나와서 시조가 되었다는 사내들/ 그거 억지로 지어낸 말은 아닌 듯/ 아들을 위해 알을 깨는 순간/ 따로 놀던 몸속 두 개의 알이 갑자기/ 지릿하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대구문협, 2013)부모는 어쩌면 자식이 세상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맡아 키우는 수탁자일 뿐이다. 미션을 다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숨을 탄 혜택을 입은 셈이다. 자식을 생산하기 전은 양육되는 기간이고 자식을 낳은 이후는 양육하는 기간이다. 양 기간과 생식 가능한 기간을 합산한 기간이 조물주에게 부여받은 기본수명인 지도 모른다. 그건 비단 인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터다. 대부분의 동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번식에 대한 기여가 사라지는 순간 숨을 다하는 것이 숨을 받은 자의 운명이다. 번식기와 양육기가 긴 인간은 수명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므로 축복받은 셈이다. 아내가 자릴 비우는 경우 당연히 남편이 자식을 챙겨 먹여야 한다. 아내의 엄명이기도 하지만 천부의 미션이므로 자동적으로 자세가 나온다. 왠지 즐겁기도 하고 힘이 난다. 냉장고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달걀이 눈에 들어온다. 달걀이 대표적인 단백질 공급원으로 완전식품에 가깝다는 말을 귀 동냥한 것도 그렇지만 달걀 한 알이 닭 한 마리와 진 배 없다는 선입견이 작용한 착각이기도 하다. 유정란이든 무정란이든 상관없지만 유정란이 귀하고 비싼 건 안다. 가족계획에 동참하고자 예비군 훈련 때 정관수술을 한 기억이 새롭다. 아들에겐 왠지 유정란을 먹여야 할 것만 같다. 팬에 프라이를 할까, 주발에 찜을 할까, 아니면 냄비에 통째로 삶아버릴까. 계란말이는 아무래도 아직 조금 무리일 거 같다. 알을 들고 망설이다 보니 암탉과 수탉이 알을 낳기 위해 애쓰는 숭한 동작이 떠오른다. 짝짓기를 한 수고와 알을 낳는 산통이 전해온다. 알을 깨고 나오자면 안팎으로 줄탁동시의 호응이 있을 터이다. 체온을 건네는 태생이 정겹긴 하지만 난생도 만만찮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신라의 박혁거세와 석탈해, 가야의 김수로왕 등이 난생신화의 주인공들이다. 상스러운 빛이 비치고 알이 하늘에서 내려온 일은 태양의 자손임을 각인시킴으로써 하늘이 낙점한 지배자란 이야기일 것이다. 억지로 지어낸 이야기라기 보단 고도로 계산된 통치술이다.시인도 박 씨이고 보면 시인과 아들도 알에서 나왔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감히 알을 깨기가 송구스럽다. 생명에 대한 외경이 눈에 밟히고 조상에 대한 숭모가 손을 부여잡는다. 배고픈 막둥이를 위해 팬 모서리에 달걀을 깬다. 팬 위에 놀란 눈동자가 쏟아진다. 노란 눈동자가 하얗게 눈물을 흘렸다. 무심히 매달려 있던 불알 두 쪽이 동병상련으로 감응한 듯 찌릿찌릿하다. 오철환(문인)

내가 만난 이중섭/ 황태면

가슴 밑바닥이 가려운/ 골목길 선술집/ 은박지에 매달린 쇠불알을 보았다. 아마/ 막걸리 두 되는 됨직한/ 쇠불알/ 십년은 더 묵은 중섭이/ 별 볼일 없이 그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 (대구문협, 2013)이 시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화가 이중섭에 대한 일별이 필요하다. 이중섭은 일제 시대였던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지주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비록 유복자였지만 외가의 재력으로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일본 도쿄에 유학해 현대미술을 익힐 수 있었다. 거기서 학원 미술부 후배인 일본여성을 만나 평생의 반려자로 삼았다. 6·25가 터지자 부산과 제주도로 전전했다. 그 이후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힘겹게 살았다. 극심한 가난을 해결할 길 없어서 아내와 아들을 일본 처가로 보냈다. 그것이 그들 가족이 헤어져 사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1956년 그는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 행려병자로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본격적으로 그림에 집중한 시기는 고작 6년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이중섭은 유화, 수채화, 연필화, 펜화, 크레파스화, 은지화 등 다양한 작품들을 제법 많이 남긴 편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떨어져 살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정과 절절한 그리움, 사랑하는 가족과의 재회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아낸 여인과 어린이, 상상의 낙원과 이상적인 삶을 염원하는 복숭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강력한 의지를 상징하는 소 등이 그것이다. 그의 불행한 삶은 전쟁의 참화와 처참한 사회상과 버무려져 불멸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됐다.‘은지화’는 은박지에 뾰족한 도구로 드로잉 한 이중섭의 독창적인 그림이다. 은박지에 송곳 따위로 긁으면 긁힌 부분은 미세한 음각이 된다. 거기에 물감을 칠하고 천 따위로 닦아내면 긁힌 부분이 물감으로 메워져 그 윤곽이 드러난다. 이중섭이 처음 은지화를 그린 것은 부산 피난시절로 알려져 있다. 뒷간에서 일을 보다가 녹슨 못으로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전쟁 중에 물자가 없어서였기도 했지만 그 상황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기법이라고 여겼을 법하다.마음이 허전하게 텅 비니 가슴 밑바닥마저 가렵다. 그런 땐 골목길로 들어가 선술집을 찾게 된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릴라치면 파전에 막걸리가 제격이다. 하늘엔 벌레 먹은 달이 내려다보고 별들은 기죽은 양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 선술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발길을 잡아끈다. 먼저 자리 잡은 술꾼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있다. 얼른 봐도 쇠불알이다. ‘쇠불알 떨어지면 구워먹는다’는 속담이 있고 보면 느낌상 쇠불알구이가 남자에게 특별한 보신이 될 것 같다. 비슷하게 생긴 것끼리 서로 보충한다고 하지 않는가. 쫄깃한 식감이 느껴진다. 은박지와 쇠불알을 보니 문득 이중섭의 소 은지화가 아삼삼하다. 커다란 쇠불알이 축 늘어진 튼실한 황소가 눈앞에 서있다. 거물이라 막걸리 두되 정도는 족히 될 듯하다. 쇠불알과 막걸리를 거부할 수 없다. 쇠불알이 은박지 위에서 지글지글 비명을 지른다. 이 광경을 이중섭이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모르긴 해도 아마 십년감수할 것이다. 쇠불알이 은박지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기어간다. 그 맛을 보면 이중섭인들 별 수 있으랴. 막걸리 한잔을 입에 탁 털어 넣는다. 가렵던 가슴이 밑바닥까지 탁 트인다. 노리끼리한 쇠불알을 한입 베어 물고 힘을 잔뜩 올려둔다. 쇠불알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중섭을 만나는 일은 시인의 특권이다. 오철환(문인)

첨부 서류/ 김삼환

중요한 말은 묶어 별지로 첨부하니/ 조용할 때 열어보고 답신을 보내줘요// 가을날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 모습으로// 가슴이 떨릴 때만 연락하라 하셨으니/ 어제 오늘 한꺼번에 여러 장을 썼어요/ 물들어 붉은 노을에 낙엽 몇 잎 떨구며// 때로는 의미 없이 주고받던 말을 모아/ 첨부한 옛날 얘긴 열지 말고 기다려요/ 환절기 옷을 꺼내듯 파일명을 바꿀 테니「시와 문화」 (2017, 겨울호)김삼환 시인은 전남 강진 출생으로 1992년 ‘한국시조’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왜가리 필법」과 현대시조 100인 선집 「묵언의 힘」 등이 있다.그는 내면을 성찰하는 작품을 주로 썼다. 그에게 시조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 안에 있던 결핍을 진단하고 극복하는 창구였다. 속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결핍의 덩어리를 찾고, 그걸 삭이고, 삭이고, 삭여서 밖으로 표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끊임없이 시조가 내게 왜 필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 묻고 답했다. 그 결과물이 그가 이뤄온 시조 세계다.‘첨부 서류’는 시종 담담한 어조다. 중요한 말은 묶어 별지로 첨부하니 조용할 때 열어보고 답신을 보내줘요, 라면서 가을날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는다. 가슴이 떨릴 때만 연락하라 하셨으니 어제 오늘 한꺼번에 여러 장을 쓰게 된 것은 그 떨림 정도가 넘쳤기 때문일 것이다. 물들어 붉은 노을에 낙엽 몇 잎 떨구기도 했던 때다. 때로는 의미 없이 주고받던 말을 모아 첨부한 옛날 얘기는 열지 말고 기다려달라는 부탁은 간곡하다. 환절기 옷을 꺼내듯 파일명을 바꿀 것이므로 그런 당부를 한 것이다. 못 다한 말들이 행간 곳곳에 아프게 깃들어 있는 첨부 서류를 우리는 전자메일로 이따금 보내거나 받는다. 때로 설레게 하고 때로는 가슴에 애잔한 아픔의 무늬를 새기는 사연들…….그는 또 ‘그리움의 동의어’에서 좋겠다, 를 반복하고 있다. 강렬한 열망을 드러내는 어법이다. 새벽 풍경 지켜보는 새, 내 몸 안에 흐르는 강물, 산책로 비탈에 놓인 빈 의자도 좋겠다, 라면서 아주 세밀한 감각의 촉수로 버리기 전 세간 위에 지문으로 새겨진 눈물 흔적을 비춰보는 달빛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날 밤 술잔 위에 뜬 별까지도 동원한다. 깨알같이 많은 어록을 남겨놓은 발자국에 비포장 길 얼룩 같은 달그림자 지는 시간에 빈 방을 돌고 나가는 바람이면 더 좋겠다, 라는 마지막 진술에서 애잔함이 묻어난다. 간절한 열망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심히 안타까울 뿐이다.또 다른 작품 ‘꿈의 해석’도 애절하다. 먼 여행 떠난 당신 뒷모습을 보내온 날 임랑 해변 걸어가며 입 밖으로 흩어지는 모래알 같은 날들을 파도에 씻어냈다, 는 진술은 가슴 깊이 저미어온다. 앞모습을 보지 못하고 아쉬운 대로 뒷모습을 보게 되지만 그 절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그가 베란다 창을 열고 기웃거렸기에 바람에 옷이 날려 얼굴 가린 그 순간을 염포산 홀로 넘으며 꿈이라 생각했을 법도 하다. 추억은 이어진다. 덕하역 옆 민박 창에 달빛으로 들어와서 명치께를 간지럽힌 그 손을 꼭 잡아봐도 이미 그것은 현실이 아니기에 삐비꽃 위에 맺히는 이슬처럼 지는 봄이라고 자탄한다. 삶은 때로 이토록 무겁고 아프고 뼈에 저린 것이다.또 다시 태풍 소식이 있는 가운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미동도 않는 뜰의 나무들 사이로 배롱나무 꽃이 우듬지에서 아직 붉지만 마침내 가을이다. 그리움을 다독일 철이 왔다. 이정환(시조 시인)

히포가 말씀하시길/ 이근자

~의창에 비친 가족의 모습~…아버지는 점포 서른여섯 개에서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전형적인 한량이다. 히포는 그의 별명이고 하마 ‘히포포타무스’의 약칭이다. 하마는 온순한 듯 보이지만 변덕스럽고 공격적이다. 어머니 하 여사는 소비를 취미이자 업으로 살아가는 세 아이의 엄마다. 큰누나는 향락과 소비에 중독된 독신녀이고, 작은누나는 세달 전 평범한 샐러리맨과 결혼한 초보 주부다. 벌써 생활에 쫓기는지 하 여사에게 손을 벌리는 처지다. 나는 막내아들로 ‘무위’를 즐기는 대학생이다.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한 것이 인생목표다. 어느 날, 히포가 급성 신부전증으로 쓰러져 입원했다. 신장기능이 망가져 혈액의 노폐물을 소변으로 배출하지 못해 쇼크가 온 것이다. 혈액투석을 하고 있으나 신장이식이 화급하다. 제각기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던 가족들이 히포의 입원으로 인해 널찍한 병원 특실에 함께 모였다. 외부인인 자형으로 인해 다섯 식구가 제법 예를 갖추고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다섯 사람은 히포에게 간을 제공하기위해 정밀검사를 받기로 했다. 작은누나는 신혼으로 임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명단에서 뺐다. 검사과정에서 임신 중인 것으로 드러난 큰누나도 자동으로 제외되었다. 큰누나는 그런 명분을 지키고자 결혼을 서두르는 액션을 취했다. 그 남친이 느닷없이 병실에 나타나 예비 사위행세를 했다. 결국 하 여사, 자형 그리고 나까지 세 명만 남았다. 직계혈통인 내가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 그건 내 생활신조인 무위에 맞지 않다. 군대라도 가고 싶었다. 하 여사가 간이식 이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다른 선택지를 강구했다. 앞날이 창창한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히포를 설득했다. 히포는 내 신장을 원했다. 하 여사는 싱가포르에서 기증할 사람을 구해와 국내에서 시술하는 방법을 밀어붙였다. 하 여사만 믿을 뿐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친이 병실로 찾아와 살가운 정을 보여주었다.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어떤 여자가 병원 지하주차장의 아버지 차안에서 장시간에 걸쳐 열정적으로 울고 있었다. 병실 안에선 뜻밖에도 히포가 서럽게 울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내 신장 따윈 필요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 하 여사가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 뚱뚱하고 욕심 많은 데다 변덕스럽고 독단적인 아버지의 캐릭터가 히포라는 별명 속에 은근히 녹아있다. 부부관계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외도와 소비로 벌충하는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만은 살아있다. 첫째 딸은 어머니의 불행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독신으로 뻗대지만 결핍에 대한 공허함을 향락으로 달랜다. 둘째 딸은 정상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부족하다. 그래서 평범한 봉급쟁이와 살아가는 삶이 사상누각처럼 위태하다. 나는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무위’의 삶을 추구한다. 돈으로 연결된 취약성은 한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위기에 처하면 쉽게 부서진다.역경에 처한 뒤에라야 각자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신장이식이란 위기상황에 처하자 나머지 가족들의 의식은 느긋한 가운데 바쁘게 돌아간다. 돌발적인 비상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그에 따라 각자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 지가 관건이다. 엄청난 재산과 급성 신부전증이 다양한 미래변수로 작용하여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만들어낸다. 히포의 태도, 병의 경과, 신장이식의 성공여부와 히포의 생사 등이 예측하기 힘든 미래변수다. 가족과 그 주변인들 사이의 긴박한 숨결이 행간에서 흘러나온다. 날카로운 의식의 분주한 흐름이 숨 가쁘다. 오철환(문인)

훈맹정음(訓盲正音)/ 박옥위

거꾸로 찍어서야 바르게 읽어가는// 손끝엔 눈이 있다 어둠을 밝히는 눈// 아이는 여린 손끝에 눈물 같은 눈을 단다// 점자를 훑어가는 저 여린 손가락// 요철의 그리움이 문자가 되는 동안// 빛은 다 귀가 솔깃해 손끝에 닿는다// 마음에도 눈이 있다 느낌으로 닿아가는// 훈맹정음 1학년 낯이 선 점자책을// 손끝에 빛을 세우며 아이가 읽고 있다「소금시 눈」 (시와소금, 2018) 박옥위 시인은 부산에서 출생해 1983년 ‘현대시조’와 ‘시조문학’ 추천완료로 등단했다.시조집으로 「들꽃 그 하얀 뿌리」 「낙엽단상」 「석류」 「금강초롱을 만나」 「플룻을 듣다」 「숲의 침묵」 「겨울 풀」 「지상의 따스한 순간」 「그리운 우물」 등이 있다. 그는 이채로운 착상, 탁월한 언어 감각과 이미지 구사 능력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시조 세계를 축조하고 있는 시인이다. 특히 인생 후반기에 들어와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눈부신 적공을 보이고 있다. 문학의 길이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 아니 도리어 연륜이 주는 깊이와 무한한 상상력은 젊은이를 능가할 수 있다는 점을 작품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이것은 그 무슨 기적 같은 일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얼마나 절차탁마에 힘쓰며 얼마나 시간과 공력을 기울여 왔을까. 그런 열정 없이 어찌 ‘훈맹정음’과 같은 명편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얼마 전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회사의 대표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항상 인류애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말을 했다. 사업가가 부를 축적하는 일에 앞서 만국민의 삶을 유익케 하는 일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순간 홍익인간과 더불어 훈민정음 창제의 참뜻을 새겨보았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과 백성을 위해 만든 글을 생각하면서 곧 다가올 개천절과 한글날이 떠올랐다. 사실 시조는 훈민정음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주요한 시의 한 갈래다. 한글 창제로 시조문학은 부흥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훈맹정음’은 제목이 새롭다. 재치가 느껴진다. 거꾸로 찍어서야 바르게 읽어가는 손끝엔 눈이 있는 아이에게는 그것이 곧 어둠을 밝히는 눈이다. 아이는 여린 손끝에 눈물 같은 눈을 늘 달고 학업에 전념한다. 점자를 훑어가는 여린 손가락을 통해 요철의 그리움이 문자가 되는 동안 빛조차도 귀가 솔깃해 손끝에 닿고 있다. 이 대목은 예지의 산물로서 감동적이다. 화자가 얼마나 언어 조탁에 힘쓰고 있는지,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여실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마음에도 눈이 있어 느낌으로 늘 닿기에 훈맹정음 1학년 낯이 선 점자책을 손끝에 빛을 세워가며 아이는 읽고 또 읽는다. 학습의 어려움을 굳센 의지로 극복하는 모습이 숙연하기까지 하다.훈맹정음이 훈민정음으로 어기차게 나아가는 밝은 길을 바라보며 흐뭇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훈민정음에서 민을 맹으로 바꾼 일은 화자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읽어도 또 읽어도 다시 또 읽고 싶은 둘째 수, 점자를 훑어가는 저 여린 손가락 요철의 그리움이 문자가 되는 동안 빛은 다 귀가 솔깃해 손끝에 닿는다, 라는 3장은 진실로 압권이다. 요철의 그리움의 문자화라니. 또 그것을 빛은 다 솔깃해, 라는 구절이 기가 막히게 받쳐주고 있으니 시 읽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을까. 한 사람이 일평생을 바쳐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으랴. 박옥위 시인은 등단 이후 일편단심 시조 창작에 전심전력을 쏟아온 분이다. 연조가 깊어질수록 좋은 작품을 더 많이 세상에 내놓았다. 후진들이 큰 박수를 보낼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동굴 탐사/ 박언휘

설레는 마음으로/ 경이의 눈동자로// 처음 위내시경의 핸들을 잡던 날/ 창밖엔 첫눈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떨리던 두 손과 마음을 다잡으며/ “태고의 신비”를 찾아 동굴 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내시경 검사를 받던 그 환자의 위장은/ 단 한 번도 빛이 닿지 않은 공동이었습니다.// 내시경 검사, 요즈음 나에겐 일상이 된 동굴 탐사입니다./ 환자의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아는 순간/ 내 눈동자는 두 배로 키워지고, 마우스피스가 물린 입구를 지나/ 조심조심 암흑의 통로로 헤드램프를 비추며/ 미지의 동굴에 도착합니다.// 병소를 놓칠세라 순간순간 긴장하며/ 처녀성을 뒤지듯 샅샅이 환자의 속을 들여다봅니다./ 종유석이라 이름 지은 용종이 보입니다.// 벽면에는 곧 악마의 숨소리가 들릴 〈장상피화생〉이 보이기도 합니다./ 까칠해진 천정과 위축된 바닥, 물기 흐르는 통로,/ 동굴의 벽이 울리며 구역질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속을 훤히 다 보았지만, 아직 환자의 속마음만은 알 길이 없습니다.// 첫눈이 내린 이른 아침/ 병변을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그 할아버지가/ 천수를 다하시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달 표면에서 시료를 채취하던 〈닐 암스트롱〉이 되어/ 내시경 집게로 검사조직을 잘라 담으며,/ 어두운 거리에 촛불을 밝히는 마음으로/ 희망의 동굴에 조용히 사랑과 생명의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 (대구문인협회, 2013)평균수명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건 일상화된 건강검진 덕택이고, 일상화된 건강검진은 잘 정착된 의료보험 덕분이다. 건강검진에서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내시경이다. 내시경은 보통 위장과 대장을 대상으로 하지만 위내시경이 보편적이다. 위내시경을 하기 전에 피검자는 묘한 긴장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프로포폴이 몸에 해롭다고 수면내시경을 거부하고 일반내시경을 선택하는 사람은 예외적인 케이스다.대부분 환자의 입장에서 위내시경을 이야기하지만 ‘동굴 탐사’는 의사의 입장에서 그 경험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래서 참신하다. 처음은 무엇이든지 새롭고 가슴 설렌다. 처음 위내시경 시술을 하던 날이 생생하다. “태고의 신비”를 찾아 떠나는 동굴 탐사다. 직접 살아있는 사람의 내장을 눈으로 들어다본 일은 확실히 놀라운 이벤트다. 지금은 일반화된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지만 처음엔 호기심과 기대로 무척 긴장했을 터다.히포크라테스의 정신에 투철한 의사가 행여나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 살피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동굴의 종유석에 해당하는 용종, 위 점막이 장 점막처럼 바뀐 ‘장상피화생’ 등을 알뜰살뜰 찾아낸다. 사람의 속을 훤히 다 봤지만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도 안 되는 사람 마음 속은 모른다. 찍어보거나 갈라보면 몸의 구조와 성분을 알아내고 때론 병을 고칠 수도 있지만 마음은 찍을 수도 없고 해부할 수도 없어 그 실체를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눈으로 확인되는 몸의 상호작용에 터 잡아, 제어되지 않은 채 부단히 일어나는 오묘한 정신작용이 신비롭다.위중한 환자의 병변을 조기에 발견해 목숨을 구한 일은 성실한 마음가짐과 빈틈없는 관찰이 낳은 당연한 성과다. 인류의 새 역사를 창조한다는 사명을 안고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던 ‘닐 암스트롱’의 마음가짐으로 인술을 베푸는 의사 시인은 어두운 동굴에서 사랑의 횃불을 비추는 등불이다. 오철환(문인)

빗방울의 기억/ 성군경

비 오는 저녁, 멀리 희붐한 불빛들이 유리창을 뚫고 아른거린다. 홀로이거나 함께이거나 저 불빛 속에는 누군가의 숨들이 엉겨있다. 세월의 시름을 오롯이 품은 내 치매 엄니 불빛이 아련하다.// 물기 머금은 짐승의 눈처럼 우수 어린 창 너머엔/ 곡진했던 삶들의 이야기가 반추된다. 경계선이 없는 빗방울엔 누구에게도 꺼내 보일 수 없는 비밀 하나 쯤 품에 간직한 채로 자기 몫의 생을 살아 내고 있는 존재들의 실루엣이 얼비친다.// 습관처럼 깊은 데로 나아가 그물을 드리우기에 앞 서 민낯으로 진심의 순도를 스스로 헤아려 본다. 삶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그 존재만으로도 숭고했던 새끼를 위한 반복된 행위들이 미욱한 삶이라 해도 괜찮다.// 기억은 희미해져 가지만 추억은 더욱 각색된다. 지난한 엄니 삶의 인연들이 아무리 대단했어도 지금은 결국 큰 줄거리에 끼지 못하는 에피소드일 뿐 가끔 헝클어진 미움을 지새우는 멈춰진 시간으로 가서 그 기억 속에 함께 있고 싶다. 그 시간 속을 비워도 비워도 마음과 기억 속에 끝내 남아있어 다시금 다가선다.// 나를 삼촌이라 부르는 엄니 그대 그리운 날은 유리창 너머 내리는 빗방울의 삶이 화려하든 너절하든 먼 길 돌고 돌아 미지의 내일로 걸어가는 게 인생임을 자각한다. 밤하늘 수놓은 별들처럼 어름다웠던 그 숨결이 살며시 다시 피어나면 아직 우리 삶 빛바래지 않았다.- 자선시 -비 오는 날 저녁에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희뿌연 불빛이 마치 영혼처럼 다가온다. 불현 듯 치매를 앓던 어머니의 영혼이 비친다. 빗방울에 맺힌 사무친 사랑이 영롱하다. 자식을 보호하고자 한 일거수일투족을 되돌아본다. 지난날들이 애잔하고 또 후회스럽다. 비록 미욱한 삶이라 해도 그 존재만으로 어머니는 숭고하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또 말하곤 했건만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걸 깨닫는다. 이 절절한 감정이 이번엔 과연 진정성 있는 것인지, 기억을 건져 올리려 건성으로 투망하는 습관적인 것은 아닌지, 혹은 비 오는 날의 상투적인 값싼 감상은 아닌지. 늘 그렇듯, 어리석은 부끄러움만 남는다. 당장 미처 알지 못할 따름이다.빗물에 젖은 유리창이 눈물 어린 눈처럼 슬프다. 빗방울이 빗줄기로 이어져 내리듯 남모르게 간직한 자기 몫의 간곡했던 실루엣들이 파노라마처럼 연이어 어른어른 스쳐지나간다. 기억은 흐려지고 추억은 아름답게 채색된다. 작은 것일지라도 어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아들을 삼촌이라 불렀던 어머니가 그립다. 창밖의 빗방울을 바라본다. 화려하든 너절하든, 삶은 내일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숨결이 멈추지 않는 한, 삶 또한 빛바래지 않는다.어머니의 치매는 충격이다. 기억의 줄기와 이파리는 점차 사그라지고 그 뿌리마저 갈수록 엉성해진다. 가장 소중한 자식에 대한 기억도 거짓말처럼 어그러진다. 육체와 영혼의 불균형적 노화 사이 틈새를 파고든 불청객은 무분별한 인간의 엄혹한 성찰을 강요한다. 인생과 생명의 참뜻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끔 한다. 과욕에 대한 징벌일까, 게으른 영혼에 대한 경종일까. 인간의 자만을 제어할 브레이크로 숨겨둔 신의 비밀병기인지도 모른다. 어쨌든지 치매는 인간이 극복해야 할 도전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겸손한 자아를 지키는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머니를 추억하는 빗방울은 슬프고 아름다운 시적 은유다. 오철환(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