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58) 칠곡 해라농장

‘첫 번째, 1호, 1세대’의 연관어는 무엇일까. ‘도전’일 것이다.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들어갈 때는 누구나 주저한다. 두려움도 느낀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를 동물의 세계에서는 ‘첫 번째 펭귄’이라고 한다. 펭귄이 먹이 활동을 하기 위해 천적인 바다표범이 있는 바다로 뛰어들기 전에 무리 전체가 머뭇거린다. 용기 있는 펭귄이 먼저 뛰어들면서 전체 무리를 이끄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새로운 도전에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70∼80년대 ‘이농행렬’이 도시로 이어질 때 반대로 농촌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귀농행렬이 늘어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광경이었다.도전정신과 용기를 가지고 역발상으로 귀농을 감행한 주인공은 칠곡군에서 ‘해라농장’을 운영하는 안병문(62)·문정내(62) 공동대표다. 참외와 포도를 각각 1만 2천㎡, 벼 4만㎡를 재배해 연간 2억 원의 소득을 올리는 강소농이다. ‘해라농장’은 귀농하면서 함께 고생한 큰딸의 이름에서 따왔다.◆ 귀농 1세대의 안착“좋게 말해서 귀농이지, 실상은 억지 귀농이었습니다.”성공한 귀농인이라는 주변의 칭찬에 대한 안 대표의 답이다. 안 대표는 서울에서 가방 판매업을 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알짜배기 사업장이었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신학기엔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때 당시 교실은 콩나물시루 같았다. 그것도 모자라 2부제 수업도 진행했다. 그러니 학생용 가방의 수요는 넘쳐났다.730만여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를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온다. 계속될 것 같던 호황은 소리 없이 떠나갔다. 1983년 교복자율화가 시행되면서 학생들은 학생용 가방 대신 배낭을 메고, 경제성장으로 고급 메이커 제품을 찾았다. 많은 판매업자가 도산했다. 그 행렬에 안 대표도 서 있었다. 덩달아 건강도 나빠졌다.1985년에 빚 2천만 원을 안고 농촌으로 들어왔다. 방 하나에 다섯 식구가 살았다. 방이 좁아 등을 구부리고 새우잠을 잤다. 밤에 잠을 자는 것이 두려웠다.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편했다.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틈이 나면 품을 팔았다. 트랙터와 콤바인을 할부로 구입해 밤낮없이 일했다. 가을철에는 강원도 철원까지 가서 일했다. 봄에는 모내기, 가을에는 벼 베기, 겨울에는 논갈이를 했다. 주변에서 트랙터가 불쌍하다고 할 정도였다.몸을 아끼지 않고 일한 덕분에 자리를 잡아 나갔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귀농이었지만 이제는 농사의 고수로 통한다. 소득도 만만찮다. “이 정도로 자리 잡은 것도 불평 한 마디 없이 힘든 일을 함께해 준 아내 덕분이다”면서 아내의 헌신을 앞세웠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7년 ‘새농민상 본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시상금 200만 원은 ‘호이장학금’으로 기탁했다.◆부부가 함께 짜는 영농계획안 대표의 농사짓는 방식을 보면 남들과 작은 차이점이 하나 있다. 영농계획을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세운다. 통상적으로 남편이 계획을 세우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매년 1월이 되면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한 해 계획을 수립한다. 사소한 농작업도 서로 의논해서 진행한다. 특히 품종을 선택할 때는 더욱더 그렇다. 농촌에서 여성의 역할은 훨씬 크다. 꼼꼼한 눈썰미와 섬세한 손길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특히 농촌에서는 부부가 하루 종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소통이 필수 요소다. 사소한 의견 차이가 큰 충돌로 발전할 수도 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영농교육도 함께 받고, 병충해 방제 등 농사 전반에 대한 토론도 벌인다. 때로는 논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서로 존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주변의 부러움에 안 대표는 “어렵던 시절 헌신해 준 아내에 대한 보답이다”면서 “농장의 진짜 주인은 아내다”고 강조했다.◆무인판매장 운영“농장 앞 도로변에 무인 판매대를 만들어서 포도와 참외를 팔아 봅시다.”무인판매장을 운영해 보자는 아내 문 대표의 제안에 따라 2008년부터 농장 앞에 무인판매장를 설치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색다른 시도였다.주변에서는 도난을 걱정했지만 문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농장 인근에 있는 2개의 골프장에 하루 3~400명 이상이 드나든다. 큰 구매력을 가진 A급 고객이다. 이런 사람들은 농민이 내놓은 농산물을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무인판매장을 운영하면 고품질의 신선한 농산물을 인건비 부담없이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고객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더 편하다고 한다. 걱정했던 도난사고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이를 두고 부부는 신뢰사회의 승리라고 말한다. 농장에서 생산되는 포도의 80%를 무인판매장에서 판매한다. 거봉 등 5개 품종의 포도를 다양한 규격으로 포장해 소비자가 선택하기 좋게 구성했다.◆농업의 포트폴리오“칠곡은 참외 주산지이고 소득도 상당하지만 참외 떨어지면 돈도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면서 연중 소득이 발생하는 농업 구조가 필요하다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맞는 말이다. 많은 농가가 봄부터 비료와 농약 등 농자재를 외상으로 구입하고 수확 철에 갚는다.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일이다.안 대표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농업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참외와 포도, 벼를 주작목으로 재배한다. 봄에는 참외, 여름에는 포도, 가을에는 쌀로 소득이 발생한다. 농작업도 마찬가지로 봄부터 가을까지 골고루 나누어진다. 소득과 노동력이 집중되지 않아 안정적인 농장 운영이 가능하다.최근 소비 트랜드에 맞춰 혈관에 좋다는 캔탈로프 멜론을 재배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7월이 넘어서면 가격이 하락하는 참외 대신 다른 소득원을 개발한 것이다. 참외를 조기 폐기하고 멜론을 재배해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다.◆농사 고수의 비결은 흙과 관찰 그리고 품질안 대표는 농사를 잘 짓는 기본은 ‘땅과 관찰’이고 그 결과는 품질이라고 강조한다. 토양은 모든 작물의 생명의 근원이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땅이 좋지 않으면 품질 좋은 농산물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안 대표가 벼농사를 짓는 이유도 이것과 이어져 있다. 볏짚을 이용한 좋은 퇴비생산 목적이 크다. 가을에 볏짚 베일을 만들고 1년 동안 발효를 시켜 황토와 우분을 혼합해 뿌린다. 땅심을 살리는 것이다.세심한 관찰도 중요한 과제다. 온화한 성격의 부부지만 농장에 들어서면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시설하우스의 온·습도는 물론 작물의 생육 상황과 병충해, 토양 상태 등 모든 것을 세세하게 살핀다. 마치 손자 돌보듯 한다.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장·단기 대응방안을 세우고 농업전문기관의 도움도 받는다.관찰은 곧 작물과의 소통이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이 특별해 보였다. 고품질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한다. 스마트 팜 시설을 도입해 노동력을 절감하고 그 여력을 농작물 관리에 투자한다. 품질 향상을 위해 친환경적인 자재를 활용한 영양제나 액비를 만들어 사용한다. 참외 대목으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신토좌’ 대신에 ‘단호박’을 사용하는 것도 특별한 방법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참외 당도가 16~17브릭스 정도로 높고 식감이 좋아 인기가 높다.◆농민이 운영하는 농산물 직판장 운영이 꿈안 대표는 요즘 큰 그림을 그린다. 농민이 운영하는 ‘농산물 직판장’이다. 일종의 로컬푸드매장이다. 이것 역시 완전하지는 않지만 인력을 최소화한 무인판매방식을 계획하고 있다.단순한 농산물 판매에서 벗어나 카페와 갤러리 기능을 합친다는 복안이다. 농민은 농산물을 판매하고, 소비자는 신선한 농산물 쇼핑을 하면서 휴식도 할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판매와 힐링을 겸하는 윈윈매장이다.미술을 전공한 둘째 딸이 관심을 가지고 준비를 위해 바리스타 교육과 요리교육을 받고 있다. 이미 농장 옆에 작은 부지도 마련했다. 농장 인근 골프장 이용객들이 구매력을 갖춘 소비층이기에 직판장의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농장명: 해라농장▲농장주: 안병문·문정내▲구입문의: 010-3502-9043, 010-3811-8245▲블로그: https://blog.naver.com/mjnft▲소재지: 칠곡군 왜관읍 삼청리13▲팩스: 054-971 -6858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7) 김천 빈스팜연근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귀양살이할 때 열다섯의 어린 제자 ‘황상’을 만났다. 아전의 아들이었던 제자에게 3근계(三勤戒)를 가르쳤다. ‘근면, 근면 또 근면’. 부지런히 일하라는 가르침이었다.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 다산은 제자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적은 ‘증언첩’을 내렸다. 실천해야 할 열한 가지의 가르침 중에는 ‘용지허실(用之虛實)’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쓸모없는 것의 쓸모’이다. ‘논을 넓혀 연(蓮)을 심는 못으로 만드는 사람은 번창하고, 연 심은 못을 메워 논으로 만드는 사람은 쇠미(衰微)해 진다’고 했다.언뜻 보면 두 번의 가르침은 서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학파의 실사구시(實事求是)와도 달라 보인다. 벼는 먹거리인 실용이고, 연은 볼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벼를 심어 얻는 이득 못지않게 연꽃을 감상하면서 얻는 정신적 여유가 더 중요하다는 큰 뜻이었다. 너무 실리만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이 황폐해 질 수 있으니 이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이었다.이런 가르침을 오늘의 농업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연을 재배해 연근으로 실익을 얻고, 연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환경보전까지 겸하는 일석삼조의 농사를 짓는 청년강소농이 있다. 김천시 감천 변에 뿌리를 내린 귀농 6년차 ‘빈스팜연근’의 김미애(40)·박정호(41) 공동대표의 농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2만㎡의 연농장을 운영해 연간 6천만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 ‘빈스팜’은 3남매의 이름에 들어가는 ‘빈’을 복수로 표현한 것이다.◆쉬운 줄만 알고 덤벼든 연근농사‘연근은 심어만 놓으면 저절로 자란다’면서 연근농사를 지으러 귀농을 하는 직장 동료의 말에 혹해 귀농을 단행했다. 박 대표는 선박용 내연기관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잦은 야근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수입이 줄어들더라도 단란한 가정생활을 꿈꿨다. “연근농사가 쉽고 돈이 된다”면서 박 대표가 귀농하겠다고 나서자 김 대표는 반대했다. 중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던 김 대표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박 대표는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한 동료의 연근농장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쉬운 줄 알았던 연근농사는 중노동이었다. 진흙땅에서 캐는 연근은 고통의 결정체처럼 보였다. 며칠 만에 손목이 퉁퉁 붙고 전신이 쑤셨다. 한 달 만에 체중이 10㎏이나 빠졌다. 강제 다이어트였다. 중간에 멈추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버텼다.이런 과정을 거쳐 2015년에 본격적으로 연근농사에 뛰어들었다. 2천㎡로 시작해 2만㎡로 늘어났다. 소득도 안정단계로 접어들었다. 부부에게 귀농 6년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좋은 선택이었다고 한다. 편한 도시생활보다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농촌생활이 훨씬 더 밝다고 한다.◆연은 친환경농업연근 재배는 대표적인 친환경적 농업이다. 봄에 종근을 심고 가을에 수확할 때까지 스스로 자란다. 물관리만 한다. 연근농장은 연중 자연생태계가 살아 있다. 소금쟁이, 장구애비, 물방개 등 온갖 수서곤충의 놀이터다.농약도 살포하지 않는다. 건강한 토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농산물우수관리(GAP)인증을 받았고, 친환경농산물인증을 준비 중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형마트와 로컬푸드 매장에서 인기가 높다.품질이 좋은 연근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재구매가 이어진다. 블로그를 통해 재배 전 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신뢰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가장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10월부터 매일 판매할 양만 수확한다. 살아있는 땅속에 살아있는 연근을 보관하는 방식이라 창고가 없다. 가장 신선한 보관법이다. 매일 수확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신선한 연근을 위해서는 수고로움을 감수한다.◆다둥이 엄마의 열정대부분 농민들은 농사전문가이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판매는 취약하다. 특히 농사경력이 짧은 귀농인이나 청년 농부들은 더욱 그렇다. 자신만의 유통망이 없기 때문이다.도매시장에 출하하거나 포전매매를 한다. 자식 같은 농산물이 헐값에 팔려나갈 때는 자괴감도 느낀다. 빈스팜연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배 3년차에 유통망 다변화에 다둥이(3남매) 엄마인 김 대표가 팔을 걷고 나섰다.밤을 새우면서 프레젠테이션(PT) 자료를 만들었다. 농장현황과 재배과정, 품질, 출하현황, 농장 비전 등 모든 것을 담았다. 청년 농부의 꿈도 담았다. PT 자료를 들고 김천농협 하나로 마트를 찾아갔다. PT 자료를 설명하고 입점을 요청했다. 농협 측에서는 “1998년 개점 이후 농민이 PT 자료를 들고 마케팅 활동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면서 “김 대표의 열정에 놀랐다”고 했다.다음날 농장을 둘러보고 입점을 결정했다. 품질이 인정되고 소비자의 반응이 좋아지자 인근 농협마트에 입점을 주선해 김천은 물론 칠곡지역까지 공급지역도 넓혔다.◆최고의 무기는 품질농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수많은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기 때문에 품질 관리에 특히 정성을 기울인다”고 부부는 입을 모은다.토양관리를 위해 농약을 배제한 자연주의 농법을 추구한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확과정에도 공을 들인다. 땅속에서 자라는 연근은 수확이 어렵다. 굴착기로 흙을 걷어내고 삼발 쇠스랑으로 캔다.굴착기 삽날이 깊으면 연근이 파손되고 얕으면 수확이 힘 들다. 적당하게 흙을 걷어 내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쇠스랑으로 캐는 것도 마찬가지다. 드러난 연근 촉을 보고 방향을 파악해 상처 없이 캐야 한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불량품이 된다. 심마니가 산삼을 캐듯이 한다.연근은 속에 구멍이 있어 마디 사이의 중간을 정확히 잘라야 한다. 구멍이 뚫리면 불량품이 된다.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절단작업은 김 대표가 맡고, 힘든 수확작업은 박 대표가 한다.수확한 연근은 고품질인 1, 2, 3번 마디만 판매하고 나머지는 폐기한다. 5월까지 수확할 수 있지만 3월에 마치는 것도 고품질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귀농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도 이런 원칙을 지킨 결과로 보인다.◆경영비 절감은 소득과 직결비용절감은 바로 소득증가다. 비용절감을 위해 경영기록장을 분석하고 절감할 부분을 찾아 다음해 농사에 반영한다.임차 농지를 활용함으로써 농지구입에 따른 자본투자를 줄였다. 농지은행을 활용함으로 임차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2천㎡의 농지 임차료는 통상 90만 원 정도다. 농지은행을 이용하면 30만 원으로 낮아진다. 1년 후 실경작이 확인되면 80%를 감면받아 6만 원으로 낮아진다. 통상 임차료의 6% 수준이다.농지은행을 이용해 연간 840만 원을 절감했다. 대형마트에 납품계약으로 박스 인쇄비까지 절감한다. 줄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줄여나가는 것이 경영원칙이다.◆ 가공과 체험을 6차 산업화지금까지는 1차 농산물인 연근 판매에 주력했다. 앞으로는 가공과 체험을 통한 6차 산업화를 추진해 소득을 높인다는 계획이다.체험용 연밭을 만들고 체험공간으로 활용할 비닐하우스를 건립해 연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준비 중이다. 연근 즙과 연근가루, 말린 연근 등으로 시작한 가공품도 종류를 다양화하기 위한 신제품도 개발하고 있다.가공과 함께 체험활동을 하는 것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연의 이치를 알려주고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다. 연근을 이용해 쿠키를 만들고 비누와 연등을 만들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이다.연꽃과 연잎을 그리면서 연근 캐는 체험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부의 환한 미소가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처럼 보였다.▲농장명: 빈스팜연근▲농장주: 김미애·박정호(2019 강소농)▲구입문의: 010-5714-7647, 010-5718-7647▲블로그: https://blog.naver.com/miae0916▲소재지: 김천시 모암사랑2길 41▲이메일: miae0916@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6) 예천 회룡포장수진품

우리 조상은 장(醬)을 중하게 여겼다. 된장과 간장은 음식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조선 최고의 미식가였던 ‘허균’이 지은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 그 사례가 실려 있다.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몽진이 또다시 거론된다. 평안도 영변이 거론되자 ‘남이공(이조판서 역임)’이란 신하가 ‘그곳은 장맛이 시원찮으니 합장사(合醬使, 임금이 몽진을 하면 미리 가서 장을 담그는 책임자)를 미리 보내야 한다’면서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신잡(임진왜란 2등 공신)을 추천했다.다른 신하들이 성이 신씨(申氏)이라 장 담기를 피하는 날인 신일(辛日)과 음이 같아 신불합장(辛不合醬, 신일에 장 담그기를 피하는 일)이라 좋지 않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장 담그는 일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다. 장은 십이간지 중에서 일곱 번째인 오(午)일에 담근다. 즉 말 날(馬)에 담근다. 말의 강한 기운을 담고자 한 것이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할 정도로 장을 담그는 일에 신경을 썼다.장은 음식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미료다.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칠 때는 물론 생선을 조릴 때도 들어간다. 예천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던 장류사업을 이어받아 전통식품을 만드는 청년 강소농이 있다. 된장과 간장 선식을 만들고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서 연간 2억 원의 소득을 올린다. ‘회룡포 장수진품’의 고재훈(38)·박명희(38)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회룡포장수진품은 육지 속 섬마을 회룡포 옆에서 진짜배기 된장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은 농장이름이다.◆ 농산물 가공 가치를 알아본 청년부부의 귀농32살의 동갑내기 부부가 어느 날 된장을 만들겠다고 농촌에 들어왔다. 주위에서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왜?’ 하는 표정으로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부모님은 미소를 지었다. 농산물 가공의 부가가치를 일찌감치 알고 2005년부터 된장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힘들게 콩 농사를 지어서 헐값에 상인들에게 넘기는 것이 안타까워했었다. 그때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촌여성일감찾기사업으로 된장을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아 시작했다. 된장을 만드는 데는 자신이 있었으나 판매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아들 부부가 합류하자 반겼다.고 대표는 양잠협동조합에서 누에를 활용한 건강식품을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농산물 가공이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박 대표는 유치원 교사로 된장을 만드는 일은 생소했지만 부모님과 남편을 믿고 흔쾌히 동참했다. 귀농 8년차에 접어들면서 고 대표는 제조에 집중하고 박 대표는 판매를 전담한다. 덕분에 소득도 안정적 단계에 접어들었다.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을 하던 주변의 반응은 이제 ‘대단하다’로 바뀌었다. 걱정이 응원으로 바뀌었다.◆ 부모님은 영원한 선생님부부는 부모님께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된장에서부터 삶의 방식까지 배운다. 귀농 1년 동안 아버지는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스스로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준비과정을 거치게 한 것이다. 그리고는 된장에 대한 모든 일을 넘겼다. 아들 내외가 독립하도록 뒤에서 지원만 했다.대신에 3년 동안 일정한 대가(代價)를 지급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것은 일을 거들어 주는 인건비와 메주를 만드는 황토방, 된장제조시설에 대한 이익배당인 셈이다.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물론 된장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면서도 간섭은 없었다. 철저하게 자녀의 독립성을 인정한 것이다.부모님이 생산한 콩이나 참깨는 반드시 적정 가격을 주고 구입한다. 가족 간이지만 경영을 완전히 분리한 것은 ‘모든 갈등의 원인은 돈에 출발한다’는 아버지의 철학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어머니의 열성도 만만찮다. 발아콩 특허를 받았다. 표고버섯과 오가피 우린 물로 콩을 불리고 싹을 틔워 발아 콩을 만드는 것이다. 발아 콩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등 생리활성화 성분과 항산화 성분도 증가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예천발아 청국장’이 세상에 나왔다. 이후 참기름과 선식 등으로 확장하면서 ‘회룡포장수진품’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저온 압착식으로 착유한 참기름에 도전블루오션으로 여겨지던 된장이 어느 순간에 레드오션으로 변했다.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된장 농가가 늘어나고 경쟁도 치열해졌다.예천의 특산물인 참기름을 특화상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뛰어들었다. 아파트를 팔아서 참기름 착유시설에 투자했다. 참기름을 생산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지역농산물을 사용한다. 부모님이 생산한 참깨를 사용하고, 부족하면 이웃에서 구입한다.이런 원칙 때문에 ‘예천참깨’로 짠 진짜 ‘예천참기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원칙은 저온압착 착유와 주문식 소량 생산이다. 140℃의 저온에서 볶아서 기름을 짜는 방식이다. 저온이라 원재료의 영양소가 그대로 유지된다.한 번에 소량 기름을 짜는 것도 장기 보관에 따른 산패를 줄이고 고품질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일주일에 12㎏ 정도의 참깨로 35병 내외로 생산해 바로 판매한다. 착유 즉시 병에 넣고 밀봉해 공기 접촉을 차단해 산패를 방지한다. 갈색 병을 사용하는 것도 산패 방지가 목적이다.◆아기를 업고도 교육을 받는 열정 농부유치원교사에서 스스로 된장녀로 변신했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열정적이다. 특히 교육에서는 그렇다. ‘유치원 교사라 된장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니 남들보다 2배는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남편과 함께 장류사업을 승계하면서 가장 취약한 분야였던 마케팅교육에 집중했다. 농업기술센터를 제집 드나들 듯이 했다. 농산물 판매와 마케팅 분야의 교육을 시작으로 블로그, 전자상거래 등 수많은 교육을 받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아기를 업고도 교육을 받는 열정을 보였다.정보화농업인회에 가입하고 교육을 받으면서는 된장과 간장을 인터넷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동료 회원들의 농산물을 함께 홍보하고 판매하는 품앗이 활동에도 앞장섰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5년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농산물마케팅 활성화 사례 우수상을 받았다. 소비자의 구매 후기는 반드시 읽어보고 생산과 관리에 반영한다.◆역할 분담으로 합리적인 농장운영농장 운영방식은 역할분담이 이루어져 있다. 부모님은 생산 원료인 콩과 참깨, 들깨를 재배를 맡았다. 콩과 참깨 들깨를 각각 6천600㎡씩 재배하고 생산물은 아들 부부에게 판매한다. 가족 간이지만 경영을 분리했다.참기름과 들기름을 짜고 선식을 만드는 일은 고 대표의 몫이다. 귀농 전 양잠조합에서 식품가공을 했던 기술과 경력을 활용했다. 박 대표는 마케팅과 판매, 홍보활동, 소비자 관리를 맡았다. 주문과 발송을 하면서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소비자의 의견을 제품생산에 반영한다. 물론 노동력이 많이 드는 메주를 만들고 된장을 담그는 일은 공동작업으로 진행한다. 이 같은 역할 분담은 가족 간, 세대 간 갈등을 없애는 데에도 효과적이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바른 먹거리를 만드는 전통식품 명인이 꿈이들 부부는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바른 먹거리를 만드는 원칙을 세우고 싶다”면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정직한 농산물로 정직하게 된장을 만들고 참기름을 짜겠다”고 입을 모은다.부모님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가공의 전 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의 한 부분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부모님의 전통기술을 전수해 전통식품 명인에 도전할 계획을 조심스럽게 내보이기도 했다. 체험농장을 운영해 학생들에게 전통음식의 중요성을 알리고 전통식품의 맥을 이어가는 백 년 가업의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가겠다는 그림도 그리고 있었다.▲농장명: 회룡포장수진품▲농장주: 박명희·고재훈 (2016 강소농)▲구입문의: 010-8711-4025, 054-652-4025▲블로그: https://blog.naver.com/heehun777▲소재지: 예천군 개포면 우감2길 47▲이메일: heehun777@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5) 칠곡 보람농장

“나는 언제쯤 억대 연봉을 받을까.”억대 연봉은 셀러리맨의 로망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억대 연봉자는 2017년 기준 72만 명이다. 셀러리맨들은 봉급명세서에 찍히는 9자리 숫자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농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기준 억대 농민은 3만6천여 명이다. 전체 농민의 3.6%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농가소득 목표가 5천만 원이다. 올해 추정 농가소득이 4천335만 원인 점과 비교하면 꿈의 소득이다.꿈의 소득인 억대 농민의 자리에 이미 30년 전에 올라앉은 강소농이 있다. 칠곡군에서 오이를 재배하는 보람농장 윤주섭(65)대표와 부인 배옥련(61)씨가 주인공이다. 윤 대표는 3천㎡의 연동하우스에서 오이를 재배해 연간 1억3천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크지 않은 면적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재배기술과 경영비 절감”이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농업을 천직으로 삼은 오이 농사 달인윤 대표는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때 농기계 수리점을 운영했고, 소 중개인으로도 활동했었다. 1986년부터는 오이 농사에 전념했다. 농사 이력이 30년을 훌쩍 넘겼다.지금 윤 대표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 농사의 달인, 농사의 신, 억대농부, 맥가이버 등 수없이 많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 얻는 농사 기술과 맞춤형 농기구 제작으로 노동력을 줄이고 농사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간 결과다. 그 덕분에 30년 전인 1990년에 모든 농민의 로망인 억대농민의 꿈을 이루었다.이후 한 번도 억대 밑으로 소득이 내려간 적이 없다. 농사 경력 10년 만에 농협중앙회에서 주는 ‘새농민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억대농민의 조기 등극과 오이작목반 자재 공동구매와 출하, 집하장 설치 등의 공로를 인정받았다.이보다도 농사의 달인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오이에 대한 일편단심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오이만을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집중한다.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오이를 기른다고 할 정도였다.◆나만의 기술력으로 승부보람농장이 있는 칠곡 낙동강변은 오이 재배의 최적지다. 비옥한 사양토를 기반으로 풍부한 일조량과 지하수, 겨울철 따뜻한 기온 등 오이재배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윤 대표가 오이재배 달인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좋은 자연환경과 특별한 재배기술이 보태진 결과다. 오늘날 전국에서 알아주는 ‘금남 오이’의 명성을 굳힌 것도 이런 좋은 환경과 윤 대표를 비롯한 작목반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하우스 내 오이 이랑에는 진한 녹색의 오이 줄기가 길게 늘어져 있다. 내림 재배라는 특별한 재배방식 때문이다. 넝쿨식물인 오이의 특성을 이용한 방식이다. 오이가 자라는 과정에 밑에서부터 오이를 수확하고 잎을 제거하면서 남은 줄기를 아래쪽으로 내리면서 옆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이때 위쪽의 줄기는 계속 자라지만 유인 끈과 집게를 이용해 끝 부분의 높이를 맞춘다. 일반적인 상부적심방식(순지르기)과는 다르다.내림 재배를 하면 수확기간이 4∼5개월 정도로 일반 재배방식보다 두 배 이상 길다. 수확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수확량이 늘어나고 소득도 높아진다. 보온을 위해 천장에도 이중 수평 커튼을 설치해 온도조절을 쉽게 했다. 환기창도 상·하에 각각 설치해 환기과정에 온도변화에 따른 작물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병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이 밖에도 꽃 따기 재배를 통해 곰팡이 발생을 줄이고, 과육을 단단하게 해 상품성을 높이는 등 자신만의 기술력으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맞춤형 농기구 제작으로 편한 농사윤 대표는 맥가이버다. 그의 손을 거치면 모든 것이 재탄생한다. 수많은 농기구를 직접 만든다. 농장 일손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일손이 줄어드는 만큼 경영비도 준다.전동 드릴을 이용한 식혈기((植穴機), 무인분무기 호스 도르래, 예취기 고정 고리, 운반기, 외발 관리기 롤러 등 수없이 많다. 정작 자신도 얼마나 많은 농기구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모두가 각종 농기구의 기능을 보강하거나 재활용 자재를 이용한 맞춤형 농기구다.어느 농가에나 있는 전동 드릴을 활용해 만든 식혈기는 나무나 모종을 심을 때 구덩이를 뚫는 농기구다. 이걸 이용하면 하루에 7천 개를 뚫을 수 있다. 5~6명이 해야 할 작업량을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다.예취기 고정 고리는 등받이와 작업 봉을 연결한 것이다. 하루 종일 풀베기 작업을 해도 피로함을 모를 정도로 작업이 편하다. 부부는 3천㎡의 하우스에서 2기작으로 오이를 재배하면서도 외부 인력을 전혀 쓰지 않는다. 이것은 맞춤형 농기구를 이용해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인 결과다.이뿐만 아니다. 무슨 기계든지 윤 대표의 손에 들어오면 20년 이상 사용한다. 30년이 된 관리기와 온풍기는 아직도 힘차게 돌아간다. 언제나 점검과 정비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다.오이 재배 소득률이 80%에 이를 정도로 높다. 2017년 기준 오이촉성재배 평균 소득률이 46.8%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경영비를 절감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국내 굴지의 농기계회사 직원들도 수시로 농장을 방문해 아이디어를 구할 정도다.◆토양관리는 농부의 절대 과제하우스 오이는 1년에 두 번 재배하는 2기작이다. 봄 재배는 1월에 모종을 심어 2월 말부터 6~7월까지 수확한다. 가을 재배는 9월에 심어 10월 말에서 다음해 1월 말까지 수확한다. 그렇다 보니 7~8월 2개월 동안은 쉬는 기간이다. 땅의 입장에서 보면 쉬는 기간이면서 땅심(지력)을 보충할 수 있는 기간이다. 땅이 건강하고 힘이 있어야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표의 생각이다.그래서일까 유독 토양관리에 신경을 쓴다. 휴식기인 7~8월에는 땅을 깊이 갈고 물을 가둬 그동안 땅에 쌓인 염류 성분을 제거한다. 쌓인 염류를 제거해 건강한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노지재배를 하면 빗물 등에 의해 염류성분이 씻겨나가지만 하우스 재배에서는 그대로 쌓이기 때문에 연작장애를 많이 일으킨다. 그래서 인위적인 관수 작업으로 염류를 제거하는 것이다.땅심을 돋우는 작업도 특별하다. 오이 수확이 끝나면 싹을 틔운 볍씨를 뿌려서 벼를 키운다. 키운 벼는 가을 재배 직전인 9월께 예취기를 활용해 3단으로 절단한 후 다시 갈아엎는다. 물을 가둔 상태에서 벼를 재배함으로써 토양에 쌓인 염류도 제거하고 퇴비로 활용해 땅심도 높이는 것이다.봄 재배가 일찍 마치면 쌀을 수확할 정도로 자라지만 과감하게 포기하고 퇴비로 사용한다. 땅에서 나온 것을 땅으로 돌려준다는 생각에서다. 오이를 심은 후에는 고랑에 볏짚을 깔아 잡초발생을 막으면서 습도조절이 되도록 한다. 물론 썩으면 퇴비가 되기때문에 3중의 효과를 거둔다.◆즐기면서 농사짓는 욜로족‘농사꾼이라고 해서 일만 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 윤 대표의 주장이다. 일할 때 열심히 하고, 쉴 때는 여유롭게 쉰다. 계절적으로 노동력이 집중되는 농촌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을 실천한다.규모를 확대해 소득을 높이라는 주변 권유도 사양하고 현재의 규모에 만족한다. 1t 트럭에 탑재하는 캠핑카를 제작해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떠난다. 1천300㏄ 대형 바이크를 구입해 부인과 함께 거리를 질주하고, 한적한 시골길에서 드라이브도 즐긴다.집 앞에는 소나무를 심고 잔디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간혹 주변에서 농사지을 땅에 정원을 만든다고 질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농민도 즐길 권리가 있다. 30년 전에 이미 억대 농민의 반열에 오른 농사의 고수이자 달인이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현재의 생활을 즐기는 욜로족(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이라고 할 수 있다.▲농장명: 보람농장▲농장주: 윤주섭·배옥련 (2012 강소농)▲농장 견학문의: 017-505-3359▲소재지: 칠곡군 왜관읍 금남1길68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4) 울진 매매떡

떡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쌀가루를 찐 것은 증병(蒸餠)이라 하고, 곡물을 찐 다음에 절구나 안반에서 떡메로 친 것은 도병(搗餠)이라고 한다. 기름에 지지는 떡은 유전병(油煎餠), 삶은 떡은 경단(瓊團)이다. 이 밖에도 이름들이 수두룩하다. 만드는 방법과 재료에 따라 다르다. 만드는 방법이 많고,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도 길다는 의미일 것이다.최근 경산지역에서 투각인면문옹형토기(사람 얼굴모양 토기)라는 특이한 토기가 발굴돼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계에서는 1천600년 만의 외출이라고 하면서 들떠 있다. 이때 바닥을 일부러 떼어낸 소뿔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시루도 함께 출토됐다.삼한시대에도 떡이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당시에는 쌀보다 보리나 수수 등 거친 잡곡을 많이 먹던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거친 알곡을 잘게 부수어 찌거나, 지져서 먹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것이 떡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후 쌀에 견과류와 과일 등의 재료를 혼합하면서 맛과 영양이 풍부한 별식으로 자리 잡았다.어떤 의미에서나 떡은 우리와 가장 친근한 식품이었다. 생활 속에서 떡은 귀한 먹거리였고, 횡재였다. ‘자다가 떡 생겼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와 같은 수많은 속담이 그걸 의미한다.울진에는 제대로 된 떡을 만들어 새로운 아침식사의 시대를 열어 가겠다는 야심 찬 꿈을 꾸는 강소농이 있다. ‘매매떡’이란 브랜드로 떡을 만드는 최태숙(62)·장영철(68)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부부는 떡으로 연간 6천만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 ‘매매’는 ‘단단히’의 경상도 방언이다. 매매떡이라는 이름처럼 떡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온갖 정성을 쏟는 강소농이다.◆ 떡과의 운명적 만남, 떡은 나의 인생최 대표에게 떡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떡을 즐겨 먹지도 않았고 만들어 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고향인 울진에서 10년 동안 지업사를 운영하다가 의류점으로 전환했었다. 사업은 순조로웠으나 IMF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의류회사마저 문을 닫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자녀의 교육과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했다. 서울생활이라고 해서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장 대표는 낯선 서울 땅에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최 대표는 떡 전문점에서 일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유명 백화점 떡 전문점에서 다과전문가인 윤연자 선생을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행운이었다.처음에는 이바지 음식을 배우려고 했으나 떡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손끝에서 느껴지는 하얀 쌀가루에 반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황홀한 촉감이었다”고 최 대표는 말한다. 3년 동안 떡을 만드는 교육을 받았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다. 2010년 부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조그마한 떡집을 열었다. 전문가에게 배운 솜씨와 제대로 된 떡을 만들어 보겠다는 최 대표의 열정이 합쳐지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본격적으로 만들어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 2017년 매매떡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떡 전문점으로 태어났다. 지금은 쑥 찰떡과 콩 가래떡, 영양찰떡을 비롯해 자색 고구마와 단호박 등 천연재료로 색을 내는 단호박 설기와 자색 고구마 설기 등 다양한 종류의 떡을 만든다. 부부는 언제나 제대로 된 재료를 사용해 제대로 된 떡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떡을 대한다. 최 대표는 떡을 만들면 언제나 행복감을 느끼는 만큼 떡과는 천생연분이라는 말한다.◆ 특허기술로 만든 굳지 않는 떡굳지 않는 떡이 있을까? 수많은 떡이 굳지 않는 떡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다.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굳는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유화제’다. 유화제를 쓰지 않으면 하루 이틀 만에 굳는다. 떡은 당일 생산·배송·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빨리 굳는 특성 때문이다.그런데 최 대표가 만드는 매매떡은 유화제 없이도 굳지 않는다. 비결은 특허기술에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해 특허를 받은 제조기술을 이전받았다. 떡메로 치는 과정인 ‘펀칭기법’과 ‘보습성 유지 기법’이 비밀병기다. 여기에 시간과 강도, 섞어주는 각도, 온도 등 네 가지 요소가 더해진다. 제대로 된 떡을 만들겠다는 최 대표의 열정은 대단하다. 만드는 과정에 하나의 공정을 더 거친다. 분쇄한 쌀가루는 물 반죽을 하고 이것을 냉동실에서 하루 동안 숙성을 시킨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쌀가루를 부드럽게 하려는 것이다.모든 떡은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해 주문식으로 생산한다. 소비자들이 직접 쌀을 가지고 와서 주문하는 공임떡(삯만 받고 만드는 떡)은 만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쌀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묵은 쌀로 만들 경우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매매떡의 품질 관리방식이다. 좋은 재료로 자신만의 떡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또 다른 이유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달에 서울의 상생상회에 입점했고, 지난 13일부터 24일까지 대백프라자에서 열린 경북 우수농산물가공품 판매행사에도 참석했다.◆ 지역 주민과 윈윈하는 떡집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만드는 떡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떡을 만들 때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인구 2천 명의 시골 면에 이미 두 개의 떡집이 있어 승산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남들은 레드오션이라고 했지만 최 대표는 블루오션으로 바꿀 자신이 있었다.비결은 품질이었다. 현재 가장 많이 판매되는 쑥 찰떡과 쑥 찹쌀떡은 차별화되어 있다. 지역의 우수 농산물만을 사용할 뿐만이 아니라 쑥의 함량이 월등히 높다. 쑥 함량이 무려 30%나 된다. 쑥의 함량이 높으니 향이 진하고 쑥의 질감이 살아 있다. 쑥의 함량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쑥을 재배하고 채취하는 방식이 특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쑥은 남편인 장 대표가 2천600여 ㎡의 밭에서 직접 재배한다. 봄에 완숙된 퇴비를 뿌리고 풀을 뽑아 가면서 재배한다. 채취는 마을 할머니들이 한다. 자신의 땅에서 자신이 재배한 쑥을 자신이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채취하는 방식이다. 마을 할머니들이 채취해오면 이걸 주인인 최 대표가 구입한다. 결국 자기 쑥을 자기가 구입한다. 어쩌면 바보스러운 방식처럼 보이지만 서로 윈윈하는 경영방식이다.주인은 채취에 따른 인건비를 절약하고 할머니들은 소일거리도 되고 용돈도 생긴다. 할머니들은 깨끗이 다듬어서 가져오기 때문에 다시 다듬을 일이 없어서 좋다. 이런 방식으로 1년에 3~5회 채취한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쑥의 함량을 30%까지 높일 수 있고, 향과 질감이 살아 있는 떡을 만들 수 있다.◆ 제대로 된 떡으로 소비자 입맛 되돌리고 싶어“전국에 떡집은 1만8천 곳, 빵집은 1만1천 곳 정도다. 떡집이 훨씬 많지만 판매금액은 빵이 3배나 많다. 떡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떡의 위상을 되찾고 싶다”고 최 대표는 말한다.그러기 위해 소비자의 입맛을 다시 돌릴 수 있는 제대로 된 떡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한다. 지역의 우수 농산물만으로 떡을 만드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실제로 떡을 만들면서 재료상에서 구입하는 재료는 하나도 없다. 쌀에서부터 쑥, 콩, 견과류, 단호박 등 모든 재료를 지역에서 구입하기 때문이다.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침식사로 먹는 빵과 시리얼이 떡으로 바뀔 때까지 앞만 보고 천천히 나갈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굳지 않는 떡’의 특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을 들여 최고보다는 제대로 된 떡을 만들겠다는 것이 최 대표의 각오다. 우리 농업이 6차 산업으로 나가고 있지만 제대로 된 떡만을 만들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직할 정도로 떡만 보고 달려가는 부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농장명: 매매떡▲농장주: 최태숙·장영철 (2015 강소농)▲구입문의: 010-9517-7125, 054-783-8182▲블로그: https://kytts.blog.me/▲소재지: 울진군 매화면 매화매실길 261▲이메일: kytts0904@hanmail.net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3) 성주 수미담

역사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 보이지만 크고 거창한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알듯 모를 듯 우리 곁을 스쳐간 작은 것들도 층층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먹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밀가루나 쌀가루에 설탕과 우유 등을 섞어 굽거나 튀긴 과자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출출하거나 심심할 때 주로 먹던 과자는 언제부터 먹었을까?4천여 년 전에 빵이 등장한 때와 같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서 과자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 김유신 전’에 처음으로 나온다. 고구려 첩자 ‘백석’의 꾐에 빠져 납치될 위기에 빠진 김유신을 ‘내림’과 ‘혈례’, ‘골화’를 지키던 호국신들이 여인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과자를 주면서 밖으로 불러 내 백석의 정체를 알려주어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내용이다.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과자다. 밀의 재배가 적었던 우리나라에서는 과자보다는 쌀로 만든 떡이 발전했지만 오래전부터 과자도 있었다. 성주에서 우리의 전통과자인 한과(유과)로 부농을 꿈꾸는 강소농이 있다. 수미담(手味啖)의 도용구(63) 대표와 남편인 배복환(68)씨가 주인공이다. 도 대표는 참외 조청을 활용한 한과를 만들어 연간 4억5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교육 마니아 농산물 가공에 도전도 대표는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평범한 농부였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사슴을 사육했다. 지금도 사슴 5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농산물 가공에 발을 들인 것은 교육에 대한 열정의 결과다. 농사일로 바빴지만 교육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었다. 농업기술센터 문턱이 닳을 정도로 드나들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작목도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 우리음식연구회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떡과 한과류와 같은 향토요리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다. 참외요리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열정과 솜씨를 눈여겨본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산물 가공품 생산을 권했다.처음에는 참외 조청에 도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성주의 특산물인 참외를 활용한다는 생각은 좋았으나 다른 조청과의 차별화가 어려웠다. 다시 한과에 도전했다. 유과와 정과, 강정, 다식 등 많은 한과 중에서도 유과에 집중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전통기법과 농업기술센터에서 배운 향토요리 교육, 자신만의 손맛을 보탰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설날과 추석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시작했으나 한번 맛을 본 소비자들의 재구매가 이어지고 소문이 나자 점차 생산량을 늘려나갔다.2012년 농촌여성창업자금을 지원받아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는 아들 부부도 합류해 연중 생산체계를 갖추었다.◆ 손맛을 먹는다는 수미담 유과농장이름이 독특하다. 한자어로 手(손 수) 味(맛 미) 啖(먹을 담)을 조합해 만들었다. 손맛을 먹는다는 의미다. 손맛을 강조하는 것은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았고, 중요한 공정은 수제 공정을 고집하기 때문이다.한과 제조공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까다롭다. 먼저 깨끗이 씻은 찹쌀을 20일 정도 물에 담근 상태에서 발효과정을 거친다. 한과(유과)의 기본이 되는 떡(바탕)을 만들고 건조해 기름에 튀기고 조청을 발라서 튀밥가루를 묻히면 완성된다. 이때 떡을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할머니들이 칼국수 반죽을 밀듯이 안반(반죽을 하거나 떡을 칠 때에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에서 일일이 손으로 밀어서 만든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께다. 두께가 균일해야 튀겼을 때 똑같은 모양의 유과가 나온다. 기계로 만들면 쉽지만 손으로 직접 만들 때의 그 맛을 내기 어렵다.◆ 가족 간의 역할 분담유과 제조에는 전 가족이 참여한다. 각자의 역할도 구분되어 있다. 떡을 만들고 튀기는 제조과정은 도 대표와 남편의 몫이다. 건조한 떡의 수분 함량과 기름의 온도, 튀기는 시간은 오랜 경험과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손으로 만드는 떡의 두께는 고도의 감각이 필요해 초보자는 만들기 어렵다.2014년 합류한 아들(배기철·38)은 주로 판매에 주력하면서 제조과정에도 참여한다. 2018년 미국 LA와 필리핀의 식품박람회에 참여해 직판행사를 열고 소량이지만 캐나다에 수출의 길을 연 것도 아들의 젊은 마인드와 노력 덕분이다.며느리는 축제장이나 식품박람회, 프리마켓 등에 참가해 시식행사를 통한 홍보와 직판을 담당한다. 포장작업은 인근 아주머니들의 손길을 빌린다. 도 대표의 손을 보면 검지의 첫째 마디가 볼록하게 솟아있고 안쪽으로 살짝 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유과를 만들면서 생긴 노동의 결과인 동시에 영광의 상처다.◆ 한과로 신지식농업인에 등극도 대표는 2018년 식품가공분야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됐다. 농식품부에서 선정하는 신지식농업인은 농업·농촌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창의성, 실천성, 가치 창출성, 자질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454명의 신지식농업인을 선발했다. 2018년에는 66명의 후보자가 치열한 경쟁을 거쳐 16명이 최종 선발됐다.식품가공 공장을 설립하고, 지역 농산물인 쌀과 참외를 활용해 전통식품인 한과를 생산, 판매해 전통의 맥을 잇고, 지역농산물 판매에도 기여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2015년에는 6차 산업 인증업체로 선정되면서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에도 입점했다. 햇섶(HACCP)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식품산업의 위생관리 국제표준화 규격인 ISO 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도 받았다.◆ 손주에게 먹이는 마음으로 만드는 한과도 대표가 추구하는 경영원칙은 하나다. 손주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한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좋은 재료에서 좋은 먹거리가 나온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한과의 원료가 되는 쌀과 조청을 만드는 참외도 지역에서 생산된 것만을 사용한다. 청결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이런 노력 덕분에 재구매 고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떤 고객은 신혼 초에 시댁에 수미담 한과를 들고 갔다가 시아버지로부터 ‘이런 한과는 처음 본다’는 칭찬을 듣고는 매번 한과를 사들고 간다고 한다. 2018년 LA식품 박람회에서 한과를 구입한 고객이 국제전화로 주문했으나 택배요금이 너무 많아 보내지 못했다. 그 고객은 얼마 뒤 한국 방문기회가 생기자 성주까지 직접 찾아와서 한과를 구입해 가기도 했다.그러나 그동안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가정용으로 소비하는 소량 생산과 대량 생산해 상품화하는 과정은 많이 달랐다. 대량생산을 하면서도 전통의 손맛을 살리는 제품을 만들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버린 찹쌀만 해도 4~50여 가마에 이른다. 덕분에 농장에 있던 사슴들이 호강했다면서 부부는 웃는다.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은 수많은 밤을 새우면서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사슴과 연계한 한과 체험농장수미담 식구들의 꿈은 한결같다. 전통식품인 한과를 널리 보급해 그 우수성을 알림으로써 한과시장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과를 주제로 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교육농장을 만들려고 한다.또 자신의 한과 제조기술을 주변 농가에도 공개해 참여 농가들과 함께 가고 싶어 한다. 농장에서 사육 중인 사슴과 한과를 연계시키는 특별한 체험농장의 그림도 그린다. 성주의 특산물인 참외를 이용한 참외식혜를 만드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전통식품인 식혜에 달콤한 참외를 가미시킴으로써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손에 커피 대신 참외식혜가 들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농장명: 수미담▲농장주: 도용구·배복환 (2012 강소농)▲구입문의: 054-931-6464, 010-2808-6464▲블로그: https://ehdydrn2000.blog.me/▲소재지: 성주군 성주읍 성산2길 95-33▲이메일: sumidam@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2) 문경 산모롱이

“신선은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까? 구름을 타고 산 위를 나르고 물가를 거닐며 솔잎을 먹고살까?”라는 물음에 “신선이 따로 있나요?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면 바로 신선이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문경의 황장산(해발 1,078m)과 대미산(해발 1,115m) 사이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강소농 부부는 소박하고 해맑은 모습이었다. 신선은 아니지만 신선이 된 기분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언제나 ‘그대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고객을 맞는다.부부는 문경에서도 가장 깊은 산골이라는 동로면에서 발효 곶감을 만들고 황토 팬션을 운영한다. 산모롱이의 이창순(64) 대표와 남편 이경구(66)씨가 주인공이다. 발효 곶감과 황토 팬션, 자연밥상을 차려 내면서 연간 8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농장이름인 산모롱이는 산모퉁이의 휘어 들어간 곳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담아지었다.◆ 부부의 역할을 바꾸고 싶어이 대표의 직업은 전업 주부였다. 결혼 이후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만 하며 살았다. 남편은 토목업에 종사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북도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일했던 상주에 정착하려고 준비했으나 지인의 소개로 문경 황장산 자락으로 옮겼다.이 대표가 서로 나중에 혼자 될 때와 노후를 위해 역할을 바꾸어보자고 제안했다. 경제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남편도 가정살림을 맡아서 해보겠다고 동의했다. 노후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일거리를 찾았다. 딱히 떠오르는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상주에 있을 때 이웃의 곶감 만드는 것을 도와준 것이 떠올랐다.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곶감에 도전했다. 첫해에 4만 개를 만들었다.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올 리가 없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경제활동의 첫 발걸음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토목기술을 응용해 황토집도 증축했다. 이제는 10년 숙성된 특별한 발효 곶감과 진정한 휴식이 있는 황토 팬션으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소로 변모시켰다.◆ 10년 숙성된 발효 곶감은 어떤 맛일까발효 곶감의 탄생은 우연이었다. 2008년에 시작한 곶감은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축적되면서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러나 판매가 문제였다. 냉동창고에는 쌓이는 재고만큼 걱정도 쌓여갔다.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곶감은 애물단지였다. 어느 날 유명 농산물 쇼핑몰 대표와의 만남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요즘도 이런 무유황 곶감을 만드는 농가가 있나요. 하얀 가루는 ‘만니트’라고 하는 것으로 당분 결정체로 천식 등 성인병에 효과가 있습니다”라면서 상품을 세상에 내어 놓자고 했다.곶감은 본래 발효 식품인데 많은 사람이 단순히 감을 건조한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서 아주 귀한 것을 만났다고 했다. 이런 인연으로 재고로 남아 있던 곶감은 발효 곶감 ‘대화’라는 브랜드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는 곶감의 진수(眞髓)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날개를 달았다. 발효 곶감은 제조과정에 유황훈증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살균을 위해 야생오미자 청과 감식초를 바르고 장기간 냉동고에서 발효(숙성)과정을 거친다. 현재까지는 10년간 발효(숙성)시킨 것이 가장 긴 기간이다.발효(숙성)기간이 길수록 색깔이 검어지고 굳어지지만 입안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는다. 처음 출발은 우연이었으나 지금은 한 해에 5만 개를 만들어 3만 개를 햇곶감으로 판매하고 2만 개는 발효(숙성) 곶감으로 만든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고객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10년 숙성된 발효 곶감은 1상자(24개)에 25만 원으로 부가가치도 높다.◆ 숨 쉬는 황토방의 휴식황토로 지은 팬션은 참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도시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백두대간 종주 등산객들이 가장 머물고 싶은 곳으로 추천하는 곳이다. 황토 팬션은 애초에 구입한 황토집에 토목기술자인 남편이 1년간에 걸쳐 증축했다. 황토와 나무만을 사용했다. 벽체는 귀틀집과 목천목 공법으로 쌓고 지붕은 통나무를 반쪽으로 켠 나무 너와를 사용했다. 벽체는 두께가 50㎝나 되어 보온효과가 크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자연형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통기성이 좋아 숨 쉬는 집이라고 부른다. 습도가 높으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어 항상 쾌적한 상태가 유지된다.순수한 황토는 사용하면 강도는 높으나 건조과정에 균열이 발생하고 마사토가 혼합된 황토는 통기성은 좋으나 점도가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사토가 섞인 황토를 사용하면서도 볏짚을 썰어 넣지 않고 황토를 숙성시키는 공법을 사용했다. 황토를 물로 반죽하고 비닐로 완전히 밀봉해 15일 이상 숙성을 시켜서 사용했다. 숙성된 황토는 점도가 2배로 높아진다. 숙성을 통해 마사토가 섞인 황토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집을 지으면서도 이런 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황토방은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 아토피가 심한 자녀와 함께 하룻밤을 묵었던 어느 고객은 아이가 긁지 않고 밤에 잠을 잤다면서 일정을 바꾸고 일주일간 머물렀다. 황토 팬션을 이용한 대부분 고객의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면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이용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약이 되는 자연 밥상숙박객들이 주문하면 자연밥상을 차려 준다. 산나물 위주로 차려주는 약밥상이다. 고기나 생선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월악산국립공원인 대미산과 황장산 일대에서 채취한 산나물이 주재료다. 곰취를 비롯해 오가피, 머위, 다래순, 당귀, 왕고들빼기, 차조기, 참나물, 엄나무순, 우산나물 등 없는 나물이 없다. 이런 야생 산나물로 산나물밥과 산채정식, 산채 쌈밥을 만든다.자연밥상의 특징은 묵 나물(삶아서 말린 나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산나물이라도 삶아서 말리면 색깔이 검어지고 고유의 향이 줄어든다. 그래서 산에서 채취한 나물을 바로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에 급속냉동시킨다. 사용할 때 필요한 만큼 꺼내어 해동을 시키면 방금 산에서 채취한 것처럼 파란색과 향이 살아있다. 물론 산나물의 특성에 따라 묵 나물로 만드는 것도 있다.조리과정에도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산나물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웰빙 산채식이다. 이런 자연 밥상을 차리기 위해 부부는 봄철이 되면 매일같이 배낭을 메고 해발 1천m가 넘는 산을 오르내린다. 이 자연밥상은 산나물의 진한 향에 몸이 정화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용자들의 평이다.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어 숙박객들이 직접 밥을 지어서 먹을 수도 있다.◆ 거꾸로 가는 체험장을 만들고 싶어이 대표가 던지는 화두는 한결같다. ‘그대 제대로 쉬어 본적이 있는가’ 스스로 ‘휴드림 연구가’를 자처한다. 인공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를 보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 한다. 그 고민의 결과물로 세상을 거꾸로 느껴보는 야생체험을 계획하고 있다.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원시적인 삶을 잠시라도 느껴보게 하는 것이다. 일회용품과 비누도 없는 체험장, TV와 에어컨, 전자레인지와 같은 전자제품 없이 지내는 체험이다. 휴대전화와 게임, 책과 잠시 이별을 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도시문물과의 교류를 잠시 멈추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31년 만에 개방하는 황장산의 원시림을 걷고, 대미산 약수계곡에서 물놀이도 즐긴다. 해발 1천m가 넘는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로 웰빙 산채식과 무유황 발효 곶감을 맛보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 된다. 물론 없는 것이 더 많은 체험이라 힘은 들겠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원시와 야생으로 돌아가는 거꾸로 가는 체험이 기대된다.▲농장명: 산모롱이▲농장주: 이창순·이경구 (2012 강소농)▲구입문의: 054-553-9267, 010-3533-9268▲홈페이지: https://www.leechangsoon.kr/▲소재지: 문경시 동로면 안생달길 153-26▲이메일: sanmorongi@gmail.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봉화 에버로즈…“시들지 않는 ‘프리저브드’…꽃의 아름다움 오랜 시간 만끽하세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다.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드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그런데 시들지 않는 꽃이 있다. 궁중채화와 ‘프리저브드 플라워(이하 프리저브드)’다. 조선 왕실에서 장식용으로 사용하던 궁중채화는 비단이나 모시를 자르고 묶고 홍두깨로 두드려서 만들었다.보존화로 부르는 프리저브드는 생화에 특수용액을 주입해 원하는 색깔을 내고 건조시켜 만든다. 이들 두 꽃의 공통점은 시들지 않는다고 할 만큼 보존기간이 길다. 생화만큼 화려하고 아름답다.봉화에서 꽃을 재배하면서 프리즈브드를 만드는 강소농을 만났다. ‘봉화 에버로즈 영농조합법인’의 박지훈(48) 대표와 부인 신동숙(45)씨가 주인공이다. 박 대표는 2천300㎡의 비닐하우스에서 거베라를 재배하면서 프리저브드를 만들어 2억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영원한 토박이 농사꾼박 대표는 토박이 농사꾼이다. 봉화에서 나고 자랐다. 한 번도 봉화를 떠나지 않았다. 오로지 농사라는 한길만 걸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시작한 일은 양계였다. 다른 농사보다 소득은 높았으나 시설이 열악하고 악취가 심해 10년 만에 접고 복합 영농으로 전환했다.벼농사와 수박, 콩, 고추 같은 여러 가지 작목을 재배했다. 일은 많았지만 소득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특히 가격 변동이 심해 농장운영이 어려울 때가 잦았다. 풍년이 들면 가격이 폭락하고, 가격이 오를 때는 병충해나 재해로 수확량이 적었다. 풍년이나 흉년이나 쪼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을철에 농산물을 수확해도 농자재 외상값을 갚고 나면 빈손이 되었다. 봄이면 또다시 빛을 내어 농사를 짓는 악순환을 거듭했다.좀 더 안정적인 농사를 짓고 싶어 2007년부터 꽃 농사를 시작했다. 봉화지역은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일교차가 커 ‘거베라’ 재배의 적지다. 2009년부터는 프리저브드를 만들어 꽃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현재 거베라 재배는 대를 이어 농사에 뛰어든 아들(박현민·23)이 주도하고, 박 대표는 프리저브드에 전념하고 있다.◆ ‘프리저브드’란프리저브드는 생화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조화(造花)의 보존력을 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신개념의 꽃이다. 보존화로 불린다. 생화에 특수용액을 주입시켜 원하는 색을 만들고 꽃잎과 줄기의 원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건조해도 부서지지 않는다. 단순히 꽃을 건조한 ‘드라이플라워’와는 완전히 다르다.프리저브드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안개꽃이나 야생화에 사용하는 물올림방식과 장미꽃에 사용하는 침전방식이다. 물올림방식은 식물성의 특수용액을 사흘 동안 꽃에 흡수시켜 착색과 보존, 건조과정을 거친다. 침전방식은 알콜 계열의 용액에 넣어 탈수와 탈색과정을 거치고 다시 원하는 색깔로 착색을 시킨 후 보존과 건조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50일 정도가 소요된다. 이렇게 만든 장미꽃 한 송이 가격은 5천 원 정도다. 생화보다는 부가가치가 크게 올라간다.처음에는 장미를 활용해 프리저브드를 만들다가 안개꽃으로 발전시켰다. 현재는 보리와 수수 같은 곡식과 강아지풀, 냉이 등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특수용액은 박 대표가 직접 개발해 특허를 받은 제품이다.◆ 좋은 원료로 만드는 최상품의 프리저브드박 대표가 추구하는 목표는 최상의 프리저브드를 만드는 것이다. 색상이 선명하고 보존기간이 길면서도 부서지지 않는 제품이다. 좋은 원료에서 좋은 상품을 나온다는 것이 박 대표의 신념이다. 따라서 제조공정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것이 원료의 선택이다.처음에는 양재동 꽃시장에서 구입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고 가공과정에 손실률이 높아 포기하고 인근 농가에서 재배한 꽃을 구입한다. 이때도 사전에 충분한 시험과정을 거친 후에 사용한다. 같은 농장에서 생산된 꽃이라도 계절과 재배상황에 따라 품질이 다르기 때문이다.봄에 구입한 꽃은 착색이 잘 됐으나 가을에 산 원료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번 시험과정을 거친 농장의 꽃만을 사용한다. 이때는 꽃의 크기와 개화 정도, 줄기의 상태까지 꼼꼼한 살피는 선별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때는 자체 농장에서 원료를 생산하기도 했으나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 포기했다. 이웃 농가의 꽃을 구입함으로써 농가와의 상생협력관계도 형성되는 이중의 효과도 얻는다.◆단순 가공을 넘어 예술품으로 승화프리저브드 경력이 10년을 넘으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단순한 1차 가공품 생산에서 벗어나 부가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프리저브드를 활용해 장식품을 만들고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꽃 쟁반을 만들고 꽃시계도 만든다. 꽃잎을 이용하면 인물화도 되고 생일케이크도 된다. 이런 작업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 아내 신동숙씨의 몫이다. ‘이은희 보존화명인’으로부터 특별교육도 받았고 체험강사 자격도 땄다. 이제는 프리저브드의 보급을 위해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어린이와 주부가 주된 체험객이다. 앞으로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농장에는 200㎡의 전시관을 갖추고 있다. 전국에서 프리저브드 전시관을 갖춘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전시관에는 스승인 이은희 명인이 만든 화병과 찻상, 요술램프, 여인상 등 3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물론 신씨가 만든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역시 프리저브드의 확대 보급을 위한 것이다.◆망친 수박농사 덕분에 진로변경지금은 꽃으로 성공한 농사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처음 양계에서 복합 영농으로 전환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도 겪었다. 다시 꽃 재배로 전환한 계기가 된 것은 수박이었다.봉화지역은 수박 특산지라 면적도 컸고 소득도 높았다. 2005년에 6천600여㎡의 밭에 수박을 심었으나 여름철 잦은 강우로 한해 농사를 망쳤다. 날씨 탓에 병충해가 많이 발생해 제대로 된 수박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나중에는 잎은 물론 줄기까지 짓무르고 녹아버렸다. 통상 이 정도 면적이면 2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렸으나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후유증은 길었다. 완전히 회복하는 데 3년이 걸렸다. 보다 안정적이고 연중 고른 소득이 발생하는 작목을 찾다가 꽃 재배로 전환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거베라는 한 번 심으면 5년간 계절에 상관없이 수확할 수 있다. 프리저브드 역시 계절에 상관없이 생산해 팔 수 있는 고부가가치 상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열정과 자신만의 노하우로 농사에 전념한 것도 성공 요인 중의 하나였다.◆프리저브드 메카 육성과 해외진출부부는 꿈이 크다. 봉화를 거베라 특화단지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36농가에서 재배되는 10ha의 거베라 면적을 계속 확대하고 재배기술을 고도화하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생화 생산에서부터 가공까지 아우르는 대량생산 기지화로 농가 소득을 향상시킨다는 계획이다. 특히 자신이 보유한 프리저브드에 대한 기술과 용액 제조기술을 지역 농민들에게 보급함으로써 프리저브드의 메카를 만드는 것이다.이것은 고령화에 따른 은퇴농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소득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프리저브드를 활용한 예술품과 실내 장식품을 만들어 해외로 진출하는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 프리저브드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솜씨가 합쳐지면 꽃을 활용한 새로운 한류문화로 각광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장명: 에버로즈▲농장주: 박지훈·신동숙 (2015 강소농)▲구입문의: 054-673-7715, 010-4015-1188▲홈페이지 : www.everose.kr▲소재지: 봉화군 봉화읍 화천로 255▲이메일: jihun1972@hanmail.net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포니힐링농원…어린이 승마체험의 ‘선두주자’…새로운 경험 가득 ‘24시간이 모자라!’

소비패턴은 계속 진화한다. 필요한 상품만을 구매하던 방식에서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고 경험함으로써 그 가치를 얻으려고 한다. 또 그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것을 체험경제라고 한다.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을 넘어 체험 자체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1998년 출판한 ‘체험경제’라는 책에서 ‘B.조지프 파인 주니어’와 ‘제임스 H. 길모어’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처음에는 경제학 분야에서 사용됐으나 최근에는 관광, 건축, 농업 등 모든 분야에서 사용된다. 특히 농촌에서 6차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농산물 수확체험에서 공예품, 요리 등 다양한 체험들로 확산되고 있다.승마체험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강소농이 있다. 경산시 와촌면에서 ‘포니힐링농원’을 운영하는 박형근(46)·김복란(42) 공동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부부는 5필의 말과 5천㎡의 체험농장, 카페, 팬션을 운영해 연간 8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농촌에서 ‘체험경제’를 직접 실천하는 것이다.◆누구나 즐기고 쉴 수 있는 편안한 농장부부는 귀농 6년차의 초보농부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부지런한 농부다. 그 부지런함 덕분에 이제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귀농 전에는 대구에서 10년간 식당을 운영했고, ‘해수유통업’으로 전환해 7년간 바닷물을 팔았다.횟집 수족관에 바닷물을 공급하는 일이다. 스스로 ‘북청물장수’라고 한다. 해수유통은 힘든 일이다. 25t 탱크로리 차량에 바닷물을 가득 채우고 도로를 누비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른다. 보통 하루에 2회를 운행하지만 부부는 교대로 운전하면서 4회를 강행했다.수입을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몸부림이었다. 수입이 느는 만큼 피곤도 늘고 스트레스도 쌓였다. 이러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해수유통을 접고 2014년 귀농을 감행했다. 아버지의 농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 앞에 있는 저수지와 연결해 누구나 재미있게 놀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농장이름에 ‘힐링’을 넣은 것도 팍팍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쉴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다.실제로 농장은 승마체험을 비롯한 각종 체험을 하고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힐링을 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자녀들이 안전교관의 지도를 받으면서 체험하는 동안 부모들은 호숫가 벤치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편안하고 안전한 체험장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가족단위 체험객이 느는 추세다..◆틈새시장으로 개척한 어린이 승마체험박 대표가 승마체험을 선택한 것은 인근 영천지역에 경마공원이 조성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경마공원이 조성되면 주변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승마체험으로 마음을 굳히고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대구 인근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승마장은 주말에 어른들이 승마를 즐기는 성인용이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승마는 없었다. 어린이 승마체험은 일종의 틈새시장이었다. 어린이들의 체형에 맞추기 위해 조랑말을 선택했다. 선택은 적중했다. 승마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체험객이 줄을 이었다. 주중에는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체험하고, 주말에는 가족단위 체험객이 대부분이다.어린이들이 체험하는 동안 부모들은 농장 앞에 있는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아내인 김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쉬기도 한다. 부모들이 편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체험이 안전전문교관의 지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안전을 가장 우선하는 체험농장체험은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오락적 요소와 교육적 요소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빠져서도 안 된다. 이와 함께 안전도 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박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안전이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그렇기 때문에 모든 체험과정에서 안전을 유난스러울 정도로 강조한다. 체험을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안전교육을 실시한다. 안전사고의 유형과 발생 시 대처요령까지 꼼꼼하게 교육한다. 특히 승마체험에서는 더 강조한다. 안전모와 안전 조끼는 필수장비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모든 체험에는 안전전문교관이 참여해 안전관리를 한다. 말에 타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규정에 따르도록 한다. 말의 주행 속도도 항상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보험에도 가입한다.체험 중에 말이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체험객이 두려움을 느끼면 즉시 중단한다. 위험요소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판단돼야 다시 시작한다. 체험객의 안전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농산물 수확체험이나 공예품 만들기 체험도 마찬가지다.◆다시 하고 싶은 재미있는 체험오락성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무엇이든지 재미가 없으면 오랫동안 하지 못한다. 다시 하는 것은 더 어렵다. 특히 어린이들은 쉽게 싫증을 느낀다. 체험은 모든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 쉽게 싫증을 느끼는 어린이들의 특성에 맞춘 것이다.승마체험을 마치면 농산물 수확체험으로 연결되고, 다시 천연비누 만들기와 같은 공예품 체험으로 연결된다. 어떤 때에는 요리체험으로 이어진다. 잔디밭에서 비눗방울을 만들면서 뛰어놀기도 한다.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이런 연속형 프로그램의 구성은 ‘고객이 체험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박 대표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농장운영을 부부가 분담해서 하는 것도 체험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식이다. 박 대표는 승마체험과 농작물 수확체험을 담당하고 아내인 김 대표는 요리와 공예품 체험, 팬션과 카페운영을 담당한다. 손발이 척척 맞다. 많은 체험객이 다시 한 번 더 오고 싶다고 하는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재방문 고객의 비율은 70%로 상당히 높다.◆승마는 사람과 말이 교감하는 동물매개치료“낮에 승마체험을 했다는 어린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 있었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많이 들뜬 상태였다. 아이가 자기 전에 베개를 끌어안고 말을 타는 흉내를 내면서 ‘으랴’하는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언어장애가 있어 말을 하지 못했는데 승마체험을 하고 나서 작고 또렷하지는 않지만 ‘으랴’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감격스럽다는 것이었다.승마체험을 보낼 때 만해도 많이 망설였는데 체험 후의 행동을 보고는 고마운 마음에 전화한 것이다. 누구나 동물과 교감하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아이를 계속 체험을 시킬 것이니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 어린이는 현재 단골 승마체험고객이 됐다.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고 소통하는 ‘동물매개치료’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사례다. 우리가 반려동물과 교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체험마을 구축박 대표가 추구하는 미래의 꿈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체험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자신의 농장만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범위를 확대해 마을단위 체험사업을 하고 싶어 한다.농장이 있는 소월리 전체를 체험마을로 만들어 도시민들에게는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주민들은 농가소득을 올리도록 하는 것이다. 대구와 인접해 체험마을로 꾸미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농가마다 재배하는 작목이 다르고 환경도 다른 것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농가별로 중복되지 않게 체험 종목을 정하고 시기별로 배분해 연중 농촌체험이 이루어지는 체험마을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체험마을을 바탕으로 농촌 민박과 농산물 판매를 병행함으로써 농가소득을 올리고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마을을 구축한다. 특히 서로 협업을 하면 고령의 은퇴농가에서도 일정 소득이 유지될 수 있어 삶의 활력소 역할도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농장명: 포니힐링농원▲농장주: 박형근·김복란 (2017 강소농)▲구입문의: 010-3313-2734▲블로그: https://blog.naver.com/guswn0450▲소재지: 경산시 와촌면 갈밭길 102▲이메일: park42672734@gmail.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경북애 그린키농원…여기가 바로 호박체험 맛집 호박, 어디까지 즐겨봤니?

호박은 변신의 귀재다. 우는 신데렐라를 위해서는 황금 마차가 되고 핼러윈 데이에는 ‘잭 오 랜턴’이 되어 떠도는 영혼들을 안내한다. 어떤 때는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복덩이가 된다. 간혹 못생겼다고 타박을 받기도 하지만 모양이나 영양학적 측면에서 어느 과일이나 채소보다 뒤지지 않는다.잘 익은 호박을 집안에 들여 놓으면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아마도 호박이 주는 푸근함 때문일 것이다. 황금빛 호박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돈을 모으는 강소농이 있다. 경산에서 ‘경북애 그린키농원’을 운영하는 백형길(43)·김미영(40)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부부는 2만㎡를 직접 재배하고 6만6천㎡를 계약 재배하는 호박 전업농이다. 지난해에는 호박으로 3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전문직 직장인의 귀농부부는 농업과는 인연이 없었다. 서울에서 전문직에 종사했었다. 박 대표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디자인하는 웹디자이너였고, 김 대표는 홈패션 강사였다. 10년간 전문직에 종사하던 부부는 어느 날 농촌으로 들어왔다.처음 귀농을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는 ‘왜 멀쩡한 직장을 버리고 시골로 가느냐’면서 말렸다. 직장생활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일의 특성상 밤샘작업은 예사였다. 출근은 있어도 퇴근은 없는 일이었다. 웹디자인이나 홈패션 모두 공급과잉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삶이 망가지겠다는 생각에 부부는 귀농을 단행해 호박을 재배한다.귀농 5년차에 접어들면서 지금은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안정된 소득과 자유로운 시간이 그 원인일 것이다. 예전 동료는 수시로 귀농에 대해 묻는다. 부부가 호박을 선택한 것은 재배가 쉽다는 한 가지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 요인은 재배가 쉬운 호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아이디어 발굴에 있었다.◆늙은 호박은 블루오션처음 호박을 재배할 때 주변으로부터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매우 흔한 호박으로 돈을 벌겠다고 나서는 젊은 부부를 안타까워도 했다. 예상대로 호박 재배는 쉬웠다. 퇴비를 주고 심어만 놓으면 잘 자랐다. 폭우와 태풍에도 끄떡없었다. 문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맞대고 돈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가공과 체험으로 눈을 돌렸다. 호박즙을 가공해 산후조리원과 성형외과 문도 두드렸다. 탐스러운 호박은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체험거리가 되었다. 호박을 가득 쌓아 놓는 것도 좋은 볼거리였다. 체험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만져보고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둥근 호박을 여럿이 힘을 모아 굴릴 때는 함성이 터졌다. 가득 쌓인 호박 더미 앞에서 인증 샷을 찍는 것도 인기를 끌었다.물론 모든 것을 호박 자체에만 의존하지는 않았다. 귀농 전에 일했던 웹디자인과 홈패션 기술을 농장에 대입시켰다. 백 대표는 축제를 기획하고 캐릭터를 만들었다. 김 대표는 디자인하고 허수아비와 같은 소품을 만들어 농장 안팎을 꾸몄다. 농장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오싹한 핼러윈 축제장처럼 변했다. 농장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가 되어갔다. 하찮게 보였던 호박은 블루오션이었다.◆동심을 자극하는 핼러윈 축제핼러윈 축제 만큼 동심을 사로잡는 축제는 드물다. 도시의 유치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장소와 소재 때문이다. 핼러윈 축제를 할 수 있는 농장으로 소문이 나면서 유치원에서 체험 문의가 쏟아졌다.이달 들어서만 40곳의 유치원이 다녀갔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 때문에 모두 수용하지 못했다. 주말에는 가족단위 체험객이 찾아온다. 1년에 대략 1천여 가족이 찾는다. 만족도도 높다. 호박을 처음 만져보는 어린이가 대부분이다. 만져보고, 산더미처럼 쌓인 호박 더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함박웃음을 짓는다.가족이 함께 호박 속을 파내면서 ‘잭 오 랜턴’을 만들 때는 신비의 세계로 빠져든다. 큼직한 호박을 들어 올릴 때는 누구나 천하장사가 된다. 달콤한 맛의 호박죽은 단번에 어린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호박죽이 어른들만 좋아한다는 편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야간개장을 하면 더 환상적이고 신비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순수한 호박즙으로 성형외과 접수호박은 산모들의 부기(浮氣)를 빼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호박의 영어표기인 ‘펌킨(pumpkin)’도 해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호박의 효능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다.처음 만든 가공품은 호박즙이다. 40℃에서 저온착즙방식으로 만들어 즙이 맑고 영양과 향이 살아 있다. 무색소, 무보존료, 무향료의 3무를 고집하기 때문에 보존기간이 짧은 단점도 있다. 고온중탕방식으로 만드는 호박즙과는 차이가 있다. 아직 자체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 위해요소 중점관리우수식품((HACCP) 인증을 받은 전문업체에 위탁 생산한다. 식품의 안전성과 품질의 균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현재 판매 중인 호박즙을 생산하기까지는 18번의 테스트 과정을 거쳤다. 호박즙을 가지고 처음 찾은 곳은 산후조리원과 성형외과였다. 호박이 부기를 빼고 해독작용을 한다는 것에 착안한 영업활동이었다. 결과는 50%의 성공이었다. 외부식품 반입을 금지하는 산후조리원에는 실패했지만 부산지역의 성형외과 20여 곳에 납품하는 성과를 올렸다. 조만간 수도권 진출을 계획 중이다.◆버릴 것 없는 호박농장 소득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호박 원물이다. 개별 소비자에게 판매도 하지만 대부분 식품회사에 납품한다. 연간 200t 정도의 물량이다. 조건이 까다로운 대형 식품회사에 연중 공급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씻은 호박을 작은 조각으로 잘라서 씨앗을 제거한 다음 냉동해서 납품한다. 식품회사에서는 바로 생산 공정에 투입할 수 있다. 세척과 절단, 씨앗제거 공정을 줄일 수 있고, 가공과정에 발생하는 15% 정도의 손실률도 없어져 반긴다. 안정된 대량 납품처를 확보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이다.호박은 잎부터 씨앗까지 모두 유용하게 쓰인다. 가공과 체험과정에 나오는 씨앗은 식용으로 판매한다. 영양가가 높고 고소해 어르신들이 주 고객이다. 지난날의 추억도 느낀다. 호박 잎도 채취해 판매한다. 호박 잎은 대형식당에서 많이 구입해 간다.가공용으로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2~3㎏의 작은 호박은 핼러윈 축제용으로 판매한다. 어린이들이 ‘잭 오 랜턴’을 만드는 데 적당한 크기이기 때문이다. 매년 10월이 되면 많은 유치원에서 이 작은 호박을 구하기 위해 한바탕 난리를 친다. 이제는 작은 호박의 씨를 채취해 핼러윈 전용 호박을 생산한다.◆호박 서리로 위기를 극복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 시행착오도 겪었다. 소득은 없고 통장 잔고만 줄어들 때는 포기도 하고 싶었다. 4년 전 여름철에 호박 400㎏을 구해 달라는 급한 주문을 받았다. 선금까지 받았으나 호박이 익지 않았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속이 탔다. 납품을 못하면 신뢰도가 떨어진다. 온통 호박 생각뿐이었다.하천 둑을 걷던 중에 누렇게 익은 호박이 눈에 들어왔다. 고민 끝에 호박 서리를 감행했다.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급하게 사용할 일이 있어서 허락 없이 호박을 빌려갑니다. 우리 호박이 익으면 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적은 메모지를 남겨놓고 용서를 구했다. 며칠 후 익은 호박을 그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때 호박을 제시간에 납품한 것이 인연이 돼 계속 거래를 하고 있다. 호박 서리로 약속은 지켰지만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호박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3대가 어울리는 가족친화 체험장 조성부부는 가족단위 핼러윈 체험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래서일까. 규모의 확대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가족친화형 체험장을 만들고 싶어 한다.특히 3대가 호박으로 등불을 만들고,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서 함께 어울리는 체험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체험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다.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서바이벌 물총놀이 같은 공간을 만들고, 할아버지·할머니는 예전의 추억을 되살리는 공간을 만들어 3대가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체험장을 만들 계획이다. 고객과 주인이 함께 즐기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농장명: 경북애 그린키농원▲농장주: 백형길·김미영 (2018 강소농)▲구입문의: 053-852-4834, 010-6229-4834▲블로그: https://blog.naver.com/webkey456▲소재지: 경산시 하양읍 대조리 289▲이메일: webkey456@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청송사과 은자농원…‘즐거운 마음’ 먹고 자란 나무…아이 뺨같이 탐스러운 사과 키워내죠

우리와 가장 익숙한 과일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사과를 택할 것이다. 사과는 언제부터 우리와 가까워졌을까. 1884년께 선교사가 들여와 관상수로 심은 것이 최초로 알려졌다.대구 청라언덕에는 그 사과나무의 3세 목이 자라고 있다. 대구시 보호수 1호였던 2세 목이 2018년 고사함에 따라 육성 중이던 3세 목을 옮겨 심은 것이다. 그럼 이전에는 없었을까? ‘능금’이 있었다. 고려 의종 때 쓰인 ‘계림유사’에는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나중에 ‘능금’으로 바뀌었다.개화기에 들어온 서양사과는 첫 재배지인 대구를 중심으로 낙동강과 금호강변에 많이 심어졌다. 사과(沙果)는 모래땅에서 잘 자라는 과일이라고 해서 ‘모래 사(沙)’를 쓴다. 대구가 사과 집산지였으나 지구 온난화로 점차 북상해 청송과 영주 등 경북 북부지방이 주산지로 변했다.청송 주왕산 아래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강소농을 만났다. 8년 전 귀농해 1만8천㎡의 과수원을 운영하는 ‘청송사과 은자농원’의 박찬목(47)·김경희(57) 공동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7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2억 원의 소득을 목표로 매일 과수원으로 출근한다. ‘청송사과 은자농원’은 평생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키워온 어머니(74·조은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지은 농장이름이다.◆ 고민 끝에 선택한 귀농박 대표는 청송이 고향이지만 대구에서 유통업에 종사했다. 회사에서 능력도 인정받았으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직장생활의 정년, 나이 40이 되었을 때 위치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고향이 떠올랐고, 귀농을 결심하고 계획을 세웠다.대구 인근의 농업기관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사전교육을 받았다. 주로 고추 등 특용작물 교육을 받았다. 자신감이 생기자 서른아홉에 귀농을 단행했다. 많은 직장동료가 왜 좋은 직장을 팽개치고 귀농을 하느냐고 걱정을 했다. 회사에서도 계속 근무를 요청했지만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첫해에 고추 6만6천㎡를, 이듬해에는 담배 9만9천㎡를 재배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론으로 배운 농사지식과 현실은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결국 어머니가 40년간 재배해온 사과농사로 전환했다. 그동안 수종을 갱신하고 토양을 가꾸면서 사과재배에 전념해 이제는 주변에서 인정받는 사과농사꾼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귀농 8년차를 맞은 농부는 “몸은 힘들지만 시간이 자유롭고, 스스로 자기 스케줄을 정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면서 “피곤할 때 사과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낮잠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해 힐링이 저절로 된다”고 한다.◆ 나무를 먼저 생각하는 농사꾼‘과수원의 주인은 땅과 나무다’라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농부는 이들을 보살피는 관리자일 뿐이고, 그 대가로 과일을 얻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 관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귀농 초기 전정요령을 몰라 고생을 많이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매년 한두 차례 국내에 들어와 전정기술을 강의하는 외국 전문가 강의가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단기 수확보다 나무를 먼저 키우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장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나무의 특성에 맞춘 재배를 한다.상당수 농가에서 나무를 심고 이듬해부터 과일을 생산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많지는 않지만 소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나무에 초점을 맞춘다. 식재 1년차에는 나무 원줄기를 키우고, 2년차에는 가지를 키운다. 3년차에 들어서면 수형을 만든다. 햇볕 투과율이 좋고 착색이 잘되는 장점이 있다고 하는 세형방추형으로 키운다. 일명 ‘나리따식’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나무를 키우는 것을 우선하기에 수확은 늦어지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장점이 더 많다. 토양개량을 위해 초기에는 낙엽으로 퇴비를 만들어 사용했다. 효과는 높았으나 시간과 노동력이 너무 많이 들어 포기하고 일반 유기질 퇴비를 사용한다. 대신에 초생재배로 전환했다. 덕분에 해마다 5~6회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우수농산물(GAP) 인증과 저탄소 인증을 받았다.◆ 부부의 특기를 살린 농장운영부부는 각자의 특기를 가지고 있다. 박 대표는 귀농 전 유통업에 종사한 만큼 마케팅에는 귀재다. 부인인 김 대표는 전자상거래에 탁월하다. 결혼 전에 행정안전부에서 선정한 정보화 마을 전문 강사로 활동했다. 박 대표가 선택한 마케팅기법은 250명의 법칙을 활용한 입소문 방식이다. 단골들이 전파하는 입소문이 100% 직거래의 기적을 만든 기본이 되었다.그 방식이 특별하다. 첫 사과를 수확하면 본격적인 판매에 앞서 적극적인 성향의 고객 10여 명에게 한 사람당 10상자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주변과 나눠 먹으며 홍보를 부탁한다. 고객을 홍보대사로 활용하는 것이다. 일반 농가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마케팅 방식이지만 투자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선별도 박 대표의 몫이다. 좁쌀만 한 흠집과 병반이 있어도 족집게처럼 골라낸다. 소비자들이 발견하기 어려운 작은 흠이지만 가정에서 장시간 보관하다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철저한 선별을 한다.김 대표의 전산능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스토어팜 등 인터넷을 통한 판매에서 빛을 낸다. 농장의 특성을 살린 블로그 관리도 김 대표 몫이다.◆ 경영컨설팅과 실천노트로 경영개선농장을 운영하면서 주기적으로 전문 컨설팅을 받는다. 주로 경영과 가공분야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개선방안을 찾는다. 컨설팅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처음에는 분석을 해보니 적자였다. 한때 이런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그러나 결과는 좋았다. 꾸준한 컨설팅은 영농일지를 작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머리로 생각만 하던 것을 기록함으로써 개선방안이 구체화되고 실천하게 된 것이다. 문제점은 최단시간 안에 개선하는 것이 좋다는 마인드 변화도 생겼다. 제초제를 살포하지 않고 초생재배로 전환한 것과 농약을 줄이는 방식으로 저탄소인증을 받은 것도 경영컨설팅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농작업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써 다음해 농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경영비 20% 절감 성과도 거뒀다.◆ 잘못 선택한 묘목으로 4년 허송세월귀농 8년 동안 순탄한 길만을 걸은 것은 아니다. 외국에서 들여온 우량 품종의 묘목이 있다는 말에 1만㎡에 900주를 심었다가 4년을 허비하는 낭패를 겪었다. 2013년 ‘미얀마’ 품종을 신청했으나 전혀 다른 품종을 공급받고도 알지 못했다. 1년 만에 50%가 죽어 버렸다. 새로 심었으나 다음해 또다시 50%가 다시 죽었다. 결국 모두 뽑아내고 다시 심었다.전문기관에서도 원인을 알지 못했다. 오랜 조사 끝에 접목에 사용된 대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4년 허송세월이 흘러 버렸다. 결과적으로 수확도 4년이나 미루어지는 참담한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4년이란 소중한 시간이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결국 법적분쟁 끝에 재식재를 해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허비한 4년은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았다. 결코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손실이었고 순간의 실수가 부른 참극이었다.◆ 가공과 체험, 아름다운 농장으로 6차 산업화부부가 함께 그리는 그림은 아름다운 농장을 만들어 공원처럼 꾸미는 것이다. 공원 같은 과수원에서 소비자들이 쉬고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조금은 먼 미래의 꿈이지만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올해 부부는 나란히 농촌체험지도자 자격을 취득했다. 체험농장 운영을 위한 첫걸음이다. 과수원과 주변에 꽃과 조경수를 심어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10개의 포토존을 만들어 관광자원화할 계획이다. 농작물 수확과 같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소꿉놀이와 모래집 짓기 등 전통놀이를 경험하는 체험공간을 마련해 어른들의 향수와 어린이들의 동심을 자극한다는 생각이다. 개발을 완료한 ‘사과 물회 육수’를 활용해 식생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꿈도 그린다. 이러한 계획들이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사과 소비촉진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 부부의 생각이다.▲농장명: 청송사과 은자농원▲농장주: 박찬목. 김경희 (2015 강소농)▲구입문의: 010-2800-8230▲블로그: https://blog.naver.com/wjaahkim/▲소재지: 청송군 부남면 덕곡길 20▲이메일: mok8225@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영주 송현농장 ‘우렁각시’…“홍삼 먹은 튼튼한 왕우렁이로 우리 밥상 건강하게 만들어요”

할머니에서 손주로 전해지던 민담(民譚) 중에 ‘우렁각시’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손주들은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외로운 총각이 논에서 일하다가 잡아온 우렁이를 물독 속에 넣었더니 다음날부터 우렁각시가 나와서 몰래 맛있는 하얀 쌀로 밥을 지은 밥상을 차려주고 다시 물독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다가 우렁각시를 잡아서 아내로 삼았다’는 이야기이다.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던 우렁각시처럼, 우렁이는 논의 잡초를 없애줘 더 좋은 쌀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로운 연체동물이었다. 우렁각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벼농사를 주로 짓던 우리의 농업과 우렁이는 친숙한 동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왕우렁이를 사육해 인생이모작을 새롭게 열어가는 강소농이 있다. 영주에서 송현농장을 운영하는 송판섭(58) 대표와 아내 차윤애(54)씨가 그 주인공이다. 송현농장은 자신의 성씨와 자녀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the 우렁각시’라는 브랜드를 사용한다. 8천900㎡의 우렁이 사육장에서 연간 9천여만 원의 매출을 올린다.◆증권맨에서 농부로 변신송 대표는 27년간 증권회사에 근무한 증권맨이다. 평생 증권 관련 일만 한 만큼 증권전문가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증권 이외는 아는 것이 없다는 말도 된다. 주식 시세에 따라 울고 웃었다. 주식시장이 널뛰기하면 마음도 따라서 요동을 쳤다.고객들에게 투자컨설팅을 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적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컸다. 특히 고객의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경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2014년 회사의 경영상태가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을 시작하자 미련없이 명예퇴직을 하고, 농촌으로 들어와 새로운 인생이모작을 시작했다.많은 사람이 농촌에 희망이 없다면서 떠날 때 들어온 것은 농촌에서 비전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역발상이다. 인생 후반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설렘도 있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일 때 동생이 손을 잡아주었다. 서울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던 동생이 우렁이 사육을 권했다. 생산만 하면 판매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날 이후 왕우렁이와 함께하는 인생이모작을 시작됐다.◆왕우렁이란남미의 아마존 강이 원산지인 왕우렁이는 1983년 식용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식용으로 수입되었지만 왕성한 식성을 이용해 친환경농법의 하나인 우렁이농법으로도 이용된다. 식용과 친환경용의 이중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유입된 기간이 30년을 넘으면서 국내산화했다. 환경에 적응했지만 자연상태에서는 월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왕우렁이는 단백질과 칼슘함량이 높고 지방함량이 낮은 저칼로리 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간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식용으로 이용되는 왕우렁이에 대한 소비는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수도권과 충청·호남권에서는 많이 소비되지만 영남지역에서는 소비가 적은 편이다.된장찌개와 우렁이강된장 등의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최근에 유행하는 쌈밥용으로도 많이 소비된다. 전국적으로는 200여 개의 우렁이 사육농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쉽고도 어려운 관리왕우렁이 사육은 쉽고도 어렵다. 부화된 왕우렁이 치패를 물속에 넣고 사료만 공급하면 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특성상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어려움도 있다.인공부화한 치패를 뿌리고 성장 속도에 따라 분류해 다른 사육조에 넣어서 키운다. 이때는 자체 제작한 갈퀴 모양의 수확기로 걸러서 작은 것은 남기고 큰 것만 골라낸다. 물관리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농장에는 7대의 모터 펌프가 24시간 가동된다. 계속해서 수조에 맑은 물이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사료도 매일 급여해야 한다.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외출도 삼간다. 6월부터 수확이 시작되면 바빠진다. 수확과 탈각, 세척작업에 따른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다. 탈각과 세척작업은 자동화가 됐지만 사람의 손길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다. 세척한 왕우렁이는 바로 급속 냉동보관 했다가 소비자들에게 공급된다.다만 11월 이후 왕우렁이들이 동면에 들어가면 농장도 휴식기에 들어간다. 왕우렁이들이 흙 속으로 파고들어가 동면을 시작하면 이듬해 3월까지 특별하게 관리할 일은 없다.◆ 홍삼 먹은 왕우렁이우렁이는 고인 물에서 물풀이나 작은 생물을 먹고 살아가는 초식성동물이다. 식욕도 왕성해 논의 청소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왕우렁이의 이런 특성을 활용해 우렁이농법에 이용한다. 벼농사에 잡초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제초제를 대신하는 것이다.인공사육을 할 때는 옥수수박과 대두박으로 만든 곡물성 사료를 사용한다. 송 대표는 우렁이 전용사료 외에 특별한 사료를 먹인다. 바로 홍삼분말이다. 영주는 전국 최대의 인삼 주산지이다. 많은 농가에서 인삼을 재배하고 홍삼을 만든다. 홍삼과 홍삼액기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산물이 발생한다. 인삼이나 홍삼의 효능에 대해서는 이미 입증된 것인 만큼 특산물인 인삼에 주목한 것이다. 홍삼 부산물은 분말로 만들어서 주 2회 급여한다.아직 학술적으로 완전한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본인의 사육경험을 미루어 볼 때 우렁이의 폐사율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면역력이 증가한 결과로 보고 있다. 면역력이 증가한 우렁이를 먹을 경우 사람에게도 분명히 좋을 것이라고 송 대표는 생각하고 있다.◆ 4년 시행착오, 이제는 극복‘우렁이도 담장을 넘는다’는 말처럼 모든 생물은 자신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특성을 알지 못하고 재배나 사육하다 보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송 대표도 왕우렁이 사육에 뛰어든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그 첫 사례가 수조의 높이였다. 30㎝ 정도의 높이면 왕우렁이가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서 일어났다. 왕우렁이들이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산란기가 되면서 산란공간이 부족해진 것이었다. 왕우렁이는 물 밖으로 나와서 벽이나 식물의 줄기에 산란하고 물속에서 성장하는 습성을 가진 것을 몰랐다.왕우렁이들이 산란을 시작하자 낮은 수조 벽은 순식간에 분홍빛으로 변했다. 공간이 부족해 늦게 나온 왕우렁이들은 산란할 공간이 없어지자 자리다툼이 벌어졌다. 인공부화를 위해 알을 채취하기도 어려웠다. 7∼8월 폭염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채취하는 작업은 고역이었다.수조 벽을 높이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여름철 수온이 38℃를 넘어서면 폐사를 하고, 밀식이 되어도 폐사율이 높아지고 성장이 늦어진다는 것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지금은 수온관리를 위해 지하수와 계곡물을 적절히 혼합하고 차광막을 설치해 수온을 관리하는 비법을 터득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왕우렁이의 특성을 완전히 알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인근에 왕우렁이를 사육하는 선도농가가 없어서 현장기술을 배우지 못한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농산물 유통으로 윈윈“제가 영주로 귀농 후에 느낀 점 중의 하나가 모든 농민들이 농사에는 베테랑이지만 판매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지은 농산물이 공판장으로 직행하고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송 대표는 최근에 ‘올곧은 팜’이란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했다.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과 인근 농민들의 농산물도 함께 판매한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결국은 농산물 장사꾼이 아니냐는 말을 한다.하지만 송 대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가교역할을 하는 정직한 장사꾼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유통 약자인 농민들이 판로 걱정 없이 농사에 전념하게 하고, 소비자에게는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윈윈하는 유통시스템을 정착시키겠다는 게 송 대표의 방침이다.또 6차 산업화 일환으로 체험농장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부석사와 소수서원 등 영주의 문화유산과 농장체험을 연계하는 ‘농촌체험형 수학여행’이라는 큰 그림도 그리고 있다.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농장명: 송현농장▲브랜드 : the 우렁각시▲농장주: 송판섭 (2017 강소농)▲구입문의: 010-9073-2233, 054-634-4469▲블로그: http://blog.naver.com/sps1962▲소재지: 영주시 안정면 신재로707번길 54▲이메일: sps1962@naver.com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영주 ‘한부각’…원재료의 맛 그대로 살린 바삭바삭 전통부각, 한국 넘어 세계인을 사로잡다

걸그룹 마마무의 ‘화사’가 한 예능방송에서 ‘김부각’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김부각 업체에 주문이 쏟아졌다. 2030세대들에게 부각의 참맛을 각인시켰다.우리가 전통식품인 ‘부각’을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삼국사기’를 보면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품목에 여러 가지 음식과 기름이 들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볼 때 부각과 같은 튀김음식은 신라시대부터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766년 유중림(柳重臨)이 엮은 ‘증보산림경제’에는 부각과 비슷한 ‘튀각’이 등장한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부각은 우리 식생활 가까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치유와 힐링의 명소로 각광받는 소백산 아래에서 추경희(48)와 정의도(49) 공동대표가 전통식품인 부각을 만들고 있다.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귀농한 부부는 고추와 호박 등 지역 농산물로 부각을 만들어 연간 2억여 원의 매출을 올린다. 농장이름도 소백산의 큰 그늘 아래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아 ‘소백산 아래’로 하고, 제품 브랜드로 ‘한 부각’을 쓴다.◆ 귀농은 부부의 로망부부는 영주가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추 대표는 유명 보험회사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했고, 정 대표는 오파상에서 영업과 무역업무에 종사했다.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영향으로 언제나 정 대표의 가슴 한 구석에 고향이 담겨 있었다.결혼을 하면 고향 영주로 내려가자고 약속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한 달에 한번은 영주를 찾았다. 죽령(689m)은 높았지만 언제나 웃으면서 넘었다. 약속대로 결혼 이후 부부는 영주로 돌아왔다.국제통화기금(IMF)으로 경제사정이 어렵던 시절이라 주변에서는 의아해 했다. ‘왜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영주에서는 피자식당을 열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추 대표 덕분인지, 마케팅 기술이 뛰어난 정 대표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호황을 누렸다. 너무 바빴다. 주말에도 쉬지 못했고, 가족 모임에도 참석하기 어려웠다. 가족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10년이 넘어서면서 피로감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가족과 주말의 여유가 있는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삶을 살고 싶었다. 그동안 수없이 꿈꿔오던 귀농을 결심했다. 마침 정 대표의 집안에서 고추부각을 만들고 있어 이를 이용해 부각사업에 자연스럽게 뛰어들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개발을 통해 2014년 현대식 식품가공공장을 짓고 2015년 완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출시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엄마의 손맛부각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추 대표는 손맛이 야무지다. 무슨 음식이라도 재료만 주어지면 척척 만들어 낸다. 이런 솜씨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친정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남달랐다. 한 가지 재료만 있어도 수많은 음식을 만들었다.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솜씨였다. 그 솜씨가 딸에게로 내림으로 이어졌다. 부각을 시작하면서 그 솜씨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부각을 지켜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어머니의 부각을 그대로 만들고 싶었다. 원재료의 맛과 풍미를 유지하면서 바삭한 맛을 내는 것이 부각의 생명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주변에서는 ‘모전여전’이라고 한다. 추 대표도 자신이 만든 부각을 ‘엄마의 부각’이라고 부른다.◆ 남편은 마케팅의 베테랑추 대표가 부각을 만들면 판매는 정 대표의 몫이다. 부부간이지만 업무영역은 분명하다. 정 대표는 마케팅의 베테랑이다. 오파상에서 해외무역과 국내영업을 하면서 익힌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부각 판매와 연계한 것이다. 소비자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판매로 연결하는 전략이 주효했다.해외 수출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 많은 사람이 해외시장 개척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수출시장 개척의 시작점은 식품박람회 등 각종 행사장이다. 시식행사를 하면서 식품 바이어를 집중 공략했다. 바이어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어느 박람회든 기회만 생기면 달려간다. 지난해에는 4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25%가 수출이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5년부터 미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에 수출을 시작해 지난해에는 네덜란드 시장을 개척했다.◆천의 얼굴을 가진 부각부각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 밥상에 오르면 반찬이 되고 찻상에 오르면 다식이 된다. 술상에 오르면 안주가 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가정에서 가장 손쉽게 만드는 고추에서부터 호박과 당근, 참죽 등 다양한 재료가 쓰인다. 재료도 많고 맛도 좋지만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원재료의 맛을 살리고 바삭한 맛이 나게 하는 것이 생명이다. 튀김옷이 얇으면 바삭하지만 튀길 때 쉽게 타고, 두껍으면 딱딱해져 식감이 떨어진다. 너무 묽어도 안 되고 물기가 적어도 안 된다. 튀김옷은 골고루 입혀 원재료의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추 대표는 이런 까다로운 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튀김옷을 반죽이 아닌 ‘파우더’ 방식을 사용한다. 물론 튀기는 과정이 훨씬 까다로워져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한부각’은 고추와 당근, 우엉, 호박, 감자, 김 등 6개의 제품으로 생산한다.◆좋은 재료와 숙성기술이 부각 맛 좌우무슨 음식이던지 원재료가 좋아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한부각’은 지역 농산물 사용을 원칙으로 한다. 인근의 농민들과 계약재배를 통해 원료를 공급 받는다. 처음에는 고추나 호박 등을 직접 재배해 사용했으나 일손 부족으로 가공에 집중하기 어려워 계약재배로 전환했다.부각은 원재료의 세척과 탈수, 절단과정을 거친 후에 튀김옷을 입히고 증기로 찐다. 이걸 건조시킨 것이 건조부각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부각이 같다. ‘한부각’에서는 건조부각을 오랜 시간 숙성시킨다. 숙성시간은 비공개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튀겨서 배송한다. 맛과 기능성을 높이기 위해 ‘함초소금’을 사용하고 설탕 대신에 원당을 쓴다. 보존료나 착색료와 같은 화학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한부각이 소비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시행착오로 버린 부각이 몇 트럭처음부터 맛있는 부각이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기술을 전수 받았으나 대량 생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자가 소비용과 판매용은 많이 달랐다. 처음 시작할 때 주변의 시선도 싸늘했다.‘그 흔한 부각을 누가 사먹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았다. 반제품인 건조부각까지는 쉬웠으나 완제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튀기는 과정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검게 타거나 돌처럼 딱딱해 판매할 수가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버린 부각이 한두 트럭이 아니다. 뒷마당에는 폐기된 부각이 수북했다. 모두 소각했다. 부각을 만드는 보편적인 기술은 있었으나 자신만의 특별한 기술을 쌓지 못한 결과였다. 이런 고난의 통과의례를 겪으면서 오늘의 ‘한부각’이 만들어졌다.◆전통식품 홍보관 건립이 꿈아직까지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 생산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에는 한계가 있다. 자동화를 통해 생산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생산량을 늘리는 규모의 경제화를 도모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다음 과제로는 전통식품 홍보관을 건립해 청소년들에게 전통식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페스트 푸드에 빼앗긴 입맛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많은 전통식품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부부의 생각이다. 추대표가 영주지역의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 전통식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강의를 나가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맛을 가지고 있는 전통 식품인 ‘부각’ 만들기에 주력하는 부부의 노력을 볼 때 그 꿈은 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농장명: 소백산 아래▲브랜드 : 한(韓)부각▲농장주: 추경희·정의도 (2017 강소농)▲구입문의: 010-3484-2484, 054-633-2488▲홈페이지: http://www.hanbugak.kr▲소재지: 영주시 단산면 동원로 402-23▲이메일: hanbugak@naver.com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자연이 싹 틔우는 산양산삼 잔뿌리 끝까지 옹골찬 푸른 숲 맑은 공기의 기운

사계절의 기후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모두 훌륭한 약초다. 이 중에서 으뜸은 무엇일까? 아마도 산삼일 것이다. 산삼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린 아들을 삶아 먹여야 한다”는 스님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아들 삶은 물을 드려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이야기.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대문으로 걸어들어 오는 아들을 보고 놀란 부부가 솥 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 커다란 산삼 한 뿌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효(孝)를 강조하던 시대상을 반영한 이야기다. 가까이는 1980년대에 강원도의 한 심마니가 돌아가신 할머니 꿈을 꾼 후, 650년 된 천종삼을 캐 모 재벌 회장에게 7천800만 원에 팔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당시 서울 은마아파트 34평형 분양가가 2천35만 원이었으니,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산삼이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귀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무분별한 산삼 채취로 진짜 산삼을 찾기가 어렵다. 근래에는 산삼을 산에서 재배한 ‘산양산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문경의 깊은 산속에서 산양산삼을 비롯해 황기와 감초, 더덕 등 약초를 재배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강소농이 있다. ‘자연에 맡기는 삶’ 농장 대표 이성호(66) 대표와 부인 이혜숙(63)씨다. 이 대표는 6만여 ㎡의 산속에서 산양산삼을 키우고, 1천300여 ㎡의 시설에서 황기와 감초·더덕 등 약용식물을 키워서 연간 4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자연이 있는 삶을 선택한 자연인이 대표는 직업 군인이었다. 40년 간 군에서 복무했다. 전역후 산에서 인생 2모작의 삶을 살고 있다. “군대에서 낙하훈련을 하다가 우연하게 편백나무 숲에 내렸어요. 그때 쭉쭉 뻗은 편백나무의 아름다움에 취했어요. 그후 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 대표는 15년 동안 귀농 준비를 했다. 제대 후 연금에 의지해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길을 찾고 평생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랜 준비과정에서 산나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산양산삼’이었다. 2007년 본격적인 귀농작업에 들어갔다. 일 년 동안 한약진흥재단에서 시행하는 한약관련 교육을 받는 등 착실한 귀농 준비를 했다. 그렇다고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귀농 초기 1kg에 15만 원 정도인 산양산삼 종자를 200만 원에 구입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산양산삼에 대한 환상에 빠져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초창기의 어려움은 극복했고, 매일 푸른 숲과 맑은 공기와 마주하면서 살아 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 귀농에 성공했다고 스스로 믿는 ‘자연인’이 됐다.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느릿느릿 살아가는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하는 중이다.‘자연에 맡기는 삶’이란 농장이름도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이 대표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쉽고도 어려운 산양산삼 재배산삼을 재배하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쉽게 생각하면 산에 씨앗을 뿌려두면 산이 싹을 틔우고 산이 키운다. 그러나 다른 작물보다 생육 조건이 훨씬 까다롭다. 무엇보다도 환경조건이 맞아야 한다. 토심이 깊고 적당한 경사로 물 빠짐이 좋아야 한다. 숲도 적당하게 우거져 그늘이 80%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반음지식물이라 능선보다는 북향의 골짜기가 좋고 통풍이 잘되는 곳이라야 한다. 산삼 씨앗을 파종하면서 이 대표는 꼭 지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씨앗은 반드시 3알씩 줄파를 하거나 점파를 한다. 한 알은 사람이 먹고, 다른 한 알은 산짐승이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나머지 한 알은 싹이 나지 않거나 자라다가 죽더라도 땅에 돌려준다는 의미다. ◆임업계의 아이디어뱅크산삼의 효능이 좋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누구나 산삼을 몇 뿌리 먹고 무병장수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진짜 산삼은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산양산삼’이다. 면역력을 높이고 혈액순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자연의 산물이라 쉽게 생산하기가 쉽지않다. 이성호 대표는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소비자들이 쉽게 산삼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바로 새싹 산양산삼이다. 산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산양산삼의 묘삼을 채취해 작은 화분이나 바구니, 스티로폼 상자 등에 심어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방식이다. 가정에서 50일 정도만 키우면 뿌리부터 잎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대표는 “임산물 중에서 부가가치가 높다고 하는 산양산삼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도시농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 아파트식 산약초 재배이 대표는 “국토의 64%인 산에는 무한한 경제적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잘만 이용하면 환경도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요즘 아파트형 산약초 재배에 도전하고 있다. 길이 60cm에 어른 팔뚝 굵기의 조립식 플라스틱 원통에 상토와 친환경 유기농 비료를 채워 넣고 재배한다.330㎡에 1만6천 개의 원통을 배치할 수 있다. 노지재배와 비교할 때 6천㎡와 맞먹는 면적이다. 토지면적을 노지재배의 5.5%수준으로 크게 줄인 집약형 재배다. 이것을 도시농업에 적용할 경우 건물 옥상에서 약초인 황기나 감초를 재배할 수 있다. 55㎡(16평) 정도의 옥상에 재배할 경우, 1천㎡(300평)의 밭에 황기를 재배하는 것과 같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무엇보다도 작은 면적에서 노동력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것 또한 도시농업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산채수 개발로 새로운 시장 개척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국물문화’다. 밥상에 된장국에서부터 쇠고기 국까지 국물이 빠지는 법이 없다. 그 국물의 기본은 육수(肉水)다. 쇠고기는 물론이고 멸치와 명태까지 넣어 다양한 육수를 우려낸다. 이 대표가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는 식물성 육수다. 산과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을 활용해 식물성 육수인 ‘산채수(山菜水)’를 만든다. 현재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과 함께 상품화를 준비하고 있다. ‘산채수’는 식물성이라 시원한 맛을 낸다. 산채수로 고기를 삶으면 비린내가 없어져 고기의 맛이 한층 더 좋아진다. 산채수를 활용한 미세먼지 드링크도 개발 중이다. ◆임업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꿈귀농 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겪었다. 사기꾼에게 속아 15만 원하는 산삼 씨앗을 200만 원에 구입하기도 했고, 수확을 앞두고 세 번이나 도난을 당했다. 도둑은 밤중에 산 뒤편으로 넘어와 오랫동안 공들여 키운 산삼을 훔쳐갔다. 가격으로 따지자면 8천만 원이 넘는다. 도둑맞은 것도 아깝지만, 애써 가꿔놓은 삼밭은 마구 짓밟아 놓아 어린 산삼들이 망가진 것이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 대표가 키운 산양산삼의 품질을 믿고 찾아주는 고객들을 보면서 헝클어진 마음을 다잡는다. 소문을 듣거나 블로그를 보고 찾아오는 고객들에게는 대부분 직거래로 판매한다. 단골 고객만 대략 25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산림조합으로부터 ‘임업인상’을 수상했다. 요즘 임업관련 강사로 활동하는 것도 청년들에게 임업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길이다. 임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젊은 청년들이 많이 들어오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성호 대표는 “산을 사랑하고 활용할 계획만 있다면, 그동안의 경험과 축적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겠다”고 밝힌다. 그는 임업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산양산삼과 더덕, 잔대 등 산약초를 활용한 체험장을 만들고 6차산업화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농장명: 자연에 맡기는 삶▲농장주: 이성호·이혜숙 (2016 강소농)▲구입문의: 010-3807-6113▲블로그: https://blog.naver.com/cg5227▲소재지: 문경시 산북면 가곡길 26▲이메일: cg5227@naver.com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친환경 유기농 농법의 전문가 부부 탄생, 알알이 꽉 찬 건강 만점 포도 키운다

60~70년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도시로 떠날 때, 정든 고향 땅을 떠나는 어른들의 무거운 마음과는 달리 아이들은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화려한 도시생활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지만, 바로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치열한 경쟁세대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경제 기틀을 세우는 주역이 됐다. 그들이 ‘베이비부머’ 세대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이젠 이들의 귀농행렬이 이어진다. 지난해 귀농인구가 50만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이 이젠 현직에서 물러 난 은퇴한 ‘베이비부머’, 역전의 용사들이다. 경산시에서 친환경 유기농으로 포도와 대추를 재배하는 지심농원의 김석광(63)·김재경(60) 공동대표도 이같은 유형의 귀농인이다. 부부는 올해 귀농 10년차를 맞으면서 3천㎡의 포도와 2천㎡의 대추를 재배해 연간 7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이들 부부의 농촌 정착기와 성공비결을 들어본다. ◆‘농맹 부부’의 귀농이야기부부는 대구에서 생활하며 농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김석광 대표는 오퍼상을 했었고, 아내인 김재경 대표는 전업주부였다. 김 대표가 평생 일해 온 오퍼상을 갑작스럽게 그만두게 되면서 귀농을 희망하는 남편과 반대하는 아내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부부가 의견을 좁히는 데 무려 3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편은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끝없이 아내를 설득했고, 마침내 아내가 동의했다. 참으로 힘들게 내린 ‘귀농 결정’ 이었다. 경산에 귀농하기로 결정하면서 농사짓는 친구가 “3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니 나중에 팔기 쉬운 땅이어야 한다”면서 마을 앞 포도밭을 소개했다. 부부는 그렇게 시작한 포도농사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3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던 친구의 예상은 빗나갔다. ‘가장 쉬운 농사’라는 말만 듣고 대추농사도 시작했다. 농업의 농(農)자도 모르던 부부는 그렇게 해서 농촌에 정착했고, 이제는 어엿한 ‘친환경 유기농 농법’ 전문가로 주변에서 알아주는 농부로 변신했다. ◆초보농부의 좌충우돌 정착기부부는 자신들을 ‘귀농’ 보다는 ‘입농’이라고 말한다. 농업을 전혀 모르고 농촌에 들어왔으니, 입농(入農)이라는 것이다. 첫 해는 호미로 풀만 뽑았다. 과수원에는 풀이 있으면 안 되는 것으로 알았다. 뽑은 풀을 처리하는 방법조차도, 제초매트 피복이란 것도 몰랐다. 경산농업기술센터의 귀농·귀촌인 교육에서 ‘초생재배’에 대해 배웠다. 포도나무와 풀을 함께 키우는 재배법이 신기했다. 농약을 치는 것 보다는 쉽겠다는 생각에 ‘초생재배’를 시작했으나, 여름철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풀을 보면 겁이 났다. 서투른 초보농부에게는 초생재배법이 고역이었다. 대추아카데미 교육에서 ‘녹비작물’을 권했다. 호밀과 헤어리베치를 심으면 5월말 쯤 풀을 한번 만 베면 된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베낸 풀이 썩으면 퇴비가 되니 별도로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돼 일거양득 이었다. 그렇게 초보농군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녹비작물을 심는 초생재배 농사를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무농약 재배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농약을 뿌린 날이면 현기증이 나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았다. 민감 체질의 피부가 말썽을 부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무농약 재배’로 전환했다.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생산하자’는 부부의 의견이 일치한 결과다. ◆2무(無)의 친환경 유기농재배‘지심농원’에는 화학비료와 농약이 없다. 나무의 생장에 반드시 필요한 질소질은 화학비료가 아니라, 자연에서 나오는 것을 쓴다. 호밀과 헤어리베치를 녹비작물로 재배해 질소질을 공급한다. 생선 부산물로 아미노산 액비를 만들어 토양에 공급한다. 아미노산 액비는 생선대가리와 내장, 뼈에 EM(유용미생물)을 넣어서 1년 이상 발효시키면 비린내가 없어지고 잘 숙성된 젓갈 맛이 난다. 아래쪽에 고인 맑은 액은 좋은 천연 비료가 된다. 병충해 방제는 제충국이나 부자(附子), 고삼(苦蔘) 등 ‘천연살충식물’을 사용한다. 돼지감자와 은행열매로 해충 기피제를 만든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고 모양도 떨어진다. 대신에 경도가 높아 과육이 단단하고 보존기간이 길다. 그 과일 특유의 맛과 향이 살아 있다. 어쩌면 단맛만을 좋아하는 요즘 입맛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로 소문이 나면서 단골이 계속 늘고 있다. 남들은 ‘친환경재배의 표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아직은 완전한 친환경 유기농재배에는 도달하지 못한 ‘유기농 전환기’ 라고 겸손해 한다. ◆농장이름 ‘지심농원’많은 사람들이 농장 이름 ‘지심’에 대해 궁금해 한다. 농장이름은 김재경 대표가 일주일간 고민한 끝에 지었다. 홍보를 위해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농장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심’은 김(논밭에 나는 잡풀)의 경상도 사투리다. 즉, 지심은 ‘잡초’를 의미한다. 포도와 풀이 함께 자라는 친환경 유기농 과수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름이면 포도과수원은 풀밭으로 변하고, 그곳에 개구리와 거미, 사마귀가 살고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감동 마케팅 전략주로 판매를 담당하는 김재경 대표를 주변에서는 ‘온라인 직거래의 베테랑’이라고 부른다. 2011년 블로그 교육을 받으면서 직거래를 시작했다. 인터넷 판매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포도를 올려서 팔았다. 2014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하면서 본격적인 인터넷 판매에 나섰다. 대추즙을 올린 것이 인기를 끌면서 포도즙과 건대추 판매로 이어졌다. 현재는 90%를 스마트 스토어와 블로그를 통해 판매하고, 나머지 10%를 지인들에게 직거래로 판매한다. 결과적으로 전량을 직거래로 판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성과 뒤에는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마케팅 기법이 있다. 포도나 대추를 판매하면서 그 속에 뻥튀기 한 콩이나 옥수수를 작은 사은품으로 살짝 넣어 선물한다. 딱 한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량을 지퍼백에 넣어서 보내는 것이다. 직접 만든 ‘무말랭이 차’를 넣기도 한다. ‘그냥 맛이나 보시라고 함께 보냅니다’ 라고 적은 메모도 함께 보낸다. 소비자들은 이런 작은 사은품에도 감동 받는다. 이런 정성이 재구매로 이어지고,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산물의 품질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라는 인식과 정성이 담긴 사은품이 합쳐질 때 큰 시너지효과를 낸다. 주변에 이런 기법을 알려 주지만, 실천하는 농가는 드물다. 생각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감동마케팅 전략’이다. ◆작지만 알찬 고품질로 승부‘지심농원’은 처음부터 어려움이 없이 친환경 유기농 재배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친환경재배를 위해 남의 농지를 빌려서 했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친환경에 적합한 땅을 만들어 놓으면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주인이 땅을 회수해 가는 바람에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일도 겪었다.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농지를 매입해 친환경 재배에 나섰다. 그러다보니 일시에 규모를 확대하기도 어렵고, 고품질을 위해서는 규모를 확대할 필요성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온전히 부부의 노동력만으로 하기 때문에 작지만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면서 살아있는 땅에서 고품질의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해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이들 부부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친환경유기농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녹색체험농장’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도 또 다른 꿈이다. ▲농장명: 지심농원▲농장주: 김석광·김재경 (2012 강소농)▲구입문의: 010-9382-2264▲블로그: https://blog.naver.com/kimex77▲소재지: 경산시 용성면 도덕2길 8▲이메일: kimex77@naver.com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