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곳곳 깃든 선조들의 자취… 과거에서 미래의 지혜 배웠다

경주 신라 천년의 왕궁터 월성 발굴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경주는 도시 전체가 공원이다. 역사문화 가득한 힐링하기 좋은 휴식처다. 오래전부터 수학여행, 신혼여행의 대명사로 손꼽혀 온 도시다. 우리나라 최대의 세계적인 역사문화 도시다. 그러나 경주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경주에 가면 뭘 보지? 어디를 소개할까? 재미있는 체험거리는 없을까? 가장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맛집은 어디인가? 등의 질문에 대해 한마디로 “바로 이것!” 이라고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시작한 것이 ‘경주 힐링로드’ 다. 꼬박 2년에 걸쳐 매주 1회씩 ‘경주의 볼거리’, ‘먹을 거리’, ‘즐길거리’를 찾아간 현장의 발걸음을 연재했다. 이번 88회차로 ‘경주 힐링로드’ 기행을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 연재했던 경주의 힐링로드를 더듬어 본다. ◆경주국립공원 경주 서악리 고분군에 신라문화원이 조성한 구절초. 경주를 대표하는 힐링자원은 아무래도 국립공원이다. 경주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적형으로 지정됐다. 국립공원은 과거 월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으로 구분된다. 남쪽의 남산, 동쪽의 무장산과 토함산, 서쪽의 선도산과 단석산, 북쪽으로 소금강산이 우선 손꼽힌다. 서북쪽의 용담정 구미산과 동쪽 문무왕릉 일대의 대본지구까지 모두 8개 지구다. 무장산부터 시작해 소금강산, 용담정, 화랑지구로 이름 지어진 김유신 장군묘와 옥녀봉, 선도산 서악지구, 단석산지구를 차례로 소개했다. 이어 토함산지구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잇는 토함산 줄기와 기림사로 이어지는 왕의 길을 나누어 소개하고, 남산지구는 탐방로를 위주로 문화재를 소개하면서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경주국립공원은 사적형 공원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재들이 역사의 증인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 자연스럽게 과거로의 여행, 역사기행길로 접어들게 한다. 국립공원 무장산은 가을이 제격이다. 목장길을 따라 초원으로 활용되었던 드넓은 산지가 억새밭으로 변해 바람에 일렁이는 회색 파도는 저절로 감탄사를 불러일으킨다. 첫걸음부터 전설을 가진 사면불이 땅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굴불사의 석불,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져 자추사, 백률사가 있었다는 낮지만, 전망이 좋은 원조 금강산인 소금강산.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 운동, 근대사에 획을 그은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선생의 탄생지와 도를 터득한 용담정, 다시 흙으로 묻힌 묘터 구미산은 잊어서는 안 될 경주의 국립공원이다. 경주 서악서원에서 체험프로그램으로 화랑의 무도체험. 삼국통일의 3대 주역으로 손꼽히는 김유신 장군묘와 화랑들의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린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화랑지구, 지금은 화랑마을이 들어서 온갖 체험행사와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무열왕릉과 서악동 삼층석탑, 진흥왕릉, 문성왕릉, 진지왕릉, 헌안왕릉, 성모설화와 마애여래삼존입상이 산처럼 절벽에 기대어 우뚝 서 있는 선도산. 경주에서 가장 높은 해발 827m를 자랑하는 단석산에 오르면, 경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하게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파른 길을 올라오며 흘린 땀을 순식간에 씻어준다. 김유신 장군이 단칼에 베었다는 단석, 신선사 마애불상군이 옷자락을 여미게 한다. 토함산과 남산은 따로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의 문화적인 가치가 높은 공원지역으로 백번 이상 반복해 오르면서 즐기는 마니아 탐방객들도 많다. 22회에 걸쳐 소개한 경주국립공원지역은 우리나라 최고의 힐링로드로 손색이 없다. ◆자전거 투어 양남면 하서리 자전거길. 경주의 힐링로드는 대부분 경주시가지에서 멀지 않다. 가까운 거리에 거의가 평지길이어서 자전거로 돌아보기에 딱 좋다. 특히 시원한 바닷길과 함께 자전거로 돌아보기 쉬운 하이킹 코스를 6회에 걸쳐 연재했다. 먼저 울산 경계지역에서 포항 경계지점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경주의 해변길을 달려보는 것은 최고의 힐링이 된다. 물길따라 전설따라 페달을 밟는 길은 땀이 날 겨를도 없이 해풍이 마음마저 맑게 씻어준다. 수렴항 군함도의 절경, 천연기념물 주상절리, 원자력발전소의 위용을 보며 달리는 길, 벽화거리, 석탈해 유적지와 문무대왕 해중릉의 운치도 기가 막힌다. 이견대를 지나 송림, 해국길과 용굴, 어촌체험장, 송대말 등대에 이르면 시원한 바다가 주는 매력에 세상 시름을 다 잊게 된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형산강변으로 턱 내려서면,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형산강과 북천이 만나는 지점, 무녀도의 배경이 되었던 금장대의 금장낙안과 원성왕이 왕위에 오르게 했던 알천의 범람 전설적인 이야기도 흥밋거리가 된다. 다시 분황사에서 황룡사지로 이어지는 투어 길. 진흥 왕대에서부터 진지왕, 진평왕, 선덕여왕까지 이어지는 역사스토리는 해설사의 입을 통해 들어야 제맛이 난다. 왕궁을 지으려다 황룡사로 바꾸면서 지금 기술로도 흉내 내기 어려운 황룡사 9층 목탑을 쌓아 올리고, 1238년 몽고 침략으로 소실된 이야기는 자전거 페달을 밟는 다리에 맥이 풀리게도 한다. 동궁과 월지를 지나 첨성대, 내물왕릉과 교촌마을, 월정교를 지나 천관사지, 김유신 장군의 생가터, 오릉을 지나 야외로 시원하게 벗어나는 길도 있다. 야외로 벗어나 채 10분도 달리지 않아 낭산에 이른다. 낭산에는 선덕여왕릉을 비롯해 신라의 중흥을 꾀했던 많은 사적이 있다. 망덕사지와 사천왕사지, 숭복사지 그리고 최치원의 공부방, 백결선생의 방아타령, 월명사의 피리소리까지 전설이 줄을 잇는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 산림연구원이 나온다. 산림연구원은 단순한 연구기관을 떠나 메타쉐콰이어 숲길과 늪지 등 다양한 초목들이 있어 생태체험학습장이자 산책로로 최고 인기코스가 된다. 청소년들이 호연지기를 연마하는 화랑의 집과 삼국통일을 기념해 세운 통일전도 다양한 볼거리와 역사문화를 느낄 수 있는 힐링 최적지 중의 한 곳으로 손꼽힌다. 다시 돌아가면 정강왕릉과 헌강왕릉, 옥룡암의 탑곡마애불상군, 보리사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불곡마애여래좌상 등의 보물군을 감상할 수 있다. ◆체험마을 경주에서는 역사문화를 몸으로 익히고,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많다. 경주시가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살려 탐방객들이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조성한 체험마을 7개소를 취재했다. 화랑마을과 교촌마을, 두대마을, 다봉마을, 옥산세심마을, 하범곡마을, 두산 명주마을 등이다. 화랑마을은 석장동에 청소년을 위한 종합시설로 건설했지만, 펜션형 숙박시설과 캠핑장 등을 일반에도 공개하면서 경주의 새로운 문화관광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가까운 곳에 문화유적이 많아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이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주 힐링로드 여름철 프로그램으로 천년야행이 진행되는 교촌마을. 교촌마을은 신라시대 국학의 터, 요석궁 등의 설화를 가진 곳이다. 경주향교, 최부자아카데미, 교동법주 등의 시설에 천연염색과 누비, 다도예절, 유리공방, 동경이체험, 전통혼례 등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마을이다. 경주 계림 앞으로 이어진 동부사적지 탐방로. 동부사적지와 연접해 역사문화체험관광 1번지로 등극할 채비를 하고 있다. 카페 사바하 등의 현대적 감각을 가진 시설들이 들어서고, 골목마다 전통과 퓨전음식들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진을 치고 있어 새로운 풍물거리로 변신하고 있다. 두대마을은 벽화와 마애삼존입상 등으로 알려져 있고, 다봉마을은 매년 전시되는 야생화마을로 찾는 발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옥산세심마을과 하범곡마을, 두산 명주마을은 모두 지역적인 특성을 살려 한복입기, 활쏘기체험, 천연염색, 산딸기체험, 고추장 만들기, 장아찌 담그기, 비단짜기 등의 체험으로 고정고객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물론 옥산서원과 독락당, 토함산 석굴암 등의 인근지역의 문화재 산책과 신화와 전설이 있는 현장을 답사하는 역사문화를 공부하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체험마을은 학생들이 단체로 참여하거나 가족단위 체험행사로 진행해 가족단위 힐링공간으로 꾸준히 문의하는 전화가 이어진다. ◆핫플레이스 경주지역에도 새롭게 떠오르는 핫플레이스가 있다. 계절별로 방문객들이 급증하는 핫플레이스와 함께 연중 탐방객들이 주욱 이어지는 곳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경주에는 여름철에 ‘천년야행’, ‘추억의 수학여행’,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야간투어를 통한 새로운 힐링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첨성대에 야간 조명을 입히고, 대릉원 돌담길에는 청사초롱을 내건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이미 전국에 소문이 파다하다. 봄철에도 경주시는 보문과 김유신장군로, 대릉원돌담길 등의 벚꽃길과 주요 사적지에 조명을 밝혀 야간투어객들을 유혹한다. 대릉원 돌담길과 황리단길은 최근 급부상한 핫플레이스다. 문화유적보존지구로 개발이 제한되고 있는 지역이지만, 오래된 1층 건물들이 신세대들의 입맛에 맞춰 전혀 예상 밖의 인테리어로 리모델링하면서 젊은층이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불야성을 이룬다. 황리단길과 이어진 봉황대 뮤직스퀘어와 프리마켓, 신개념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혼자수미술관, 불국사 유스호스텔에서 탈피해 새로운 체험마을로 변신하고 있는 불리단길에도 힐링을 갈구하는 발길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경주 산내면 꿈우라마을에 어린이들이 다양한 체험학습에 참여한다. 젊은이들이 학교용지를 임대해 체험마을로 운영하는 꿈우라마을, 박용 화백과 예술인들이 새로운 예술촌으로 건설하고 있는 왕신문화예술촌, 화산 불고기 단지 등도 방문객들이 꾸준히 찾는 곳으로 소개된다. 보문의 남촌마을, 새로 단장한 경주읍성 일대, 황성공원, 천군동 웰빙타운, 한국대중음악박물관,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경주힐링테마파크, 황룡사역사문화관, 콜로세움 키덜트박물관 등에도 방문객들이 꾸준히 몰려든다. 경주역과 불국사역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신경주역과 함께 새로운 문화 힐링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고, 운곡서원, 옥산서원은 가을철과 여름철에,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은 사계절 꾸준히 찾는 발길이 이어지는 힐링의 명소다. ◆연재를 마치면서 경주는 지역 대부분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하다. 거기에 경주만의 독특한 문화관광자원이 더해져서 힐링의 시너지가 발생한다. 선조들의 기침 소리 묻어나는 왕릉, 석탑, 돌부처, 절터에서 켜켜이 퇴적된 시간을 들여다보는 경주 여행은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선연하게 드러나 특별한 느낌을 준다. 과거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를 얻을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역사문화를 중심으로 경주를 읽어갔다.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면서 힐링해 건강한 나라의 기반이 다져지길 기원한다. 아울러 매회 충고와 함께 새로운 힐링로드를 추천해주신 독자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면서 경주시와 관계 기관에서 업무에 참고하는 자료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길 희망한다. 경주를 찾는 이들에게 작은 길라잡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함께 내려둔다. 동절기 공부를 통해 2019년 3월부터 ‘삼국유사 기행’으로 동호인들과 함께 걸으며 연재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다시 한번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따스한 차 한 잔의 여유…황남빵 곁들이면 웬만한 브런치 안 부러워

황남빵의 원조를 주장하는 창시자의 맏이집에서 운영하는 ‘최영화빵’. 힐링이라면 차를 마시면서 조용하게 편안하게 아늑하게 명상하는 시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쉼의 시간’을 머리에 둘 수도 있다. 차를 마시는 일은 정신을 수양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할 정도로 과거에는 차 문화가 엄숙했던 것 같다. 다도라는 이름을 붙여 예법을 따로 공부해야 제대로 차를 마신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니 차 문화에 대한 공부도 간단치 않을 듯하다.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역사가 깊다. 산업화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맥이 끊어졌다가 고전을 찾듯 다시 부활하는 조짐이다. 경주지역에서도 차 문화의 맥을 이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차 문화는 최근 커피, 카페문화로 대중화, 변질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정신수양과 예법을 중시하는 차 문화는 한 편으로 밀려나 있다. 커피와 함께 대중적으로 파고든 카페문화는 빵과 브런치를 대동하고 나타나 확산되고 있다. 경주에는 고유의 브랜드를 자랑하는 빵들이 많다. 일제강점기부터 맥을 이어오면서 경주 고유브랜드로 자리잡은 황남빵을 비롯해 원조를 고집하는 최영화빵도 경주시민들에게는 황남빵 못지않게 인지도가 높다. 황남빵과 유사한 모양과 맛을 자랑하는 경주빵, 찰보리빵, 주령구빵, 주상절리빵 등 이름도 경주를 상징하고 있다. 하여튼 경주는 역사문화사적을 감상하면서 빵과 차, 커피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힐링도시임에 틀림없다. ◆경주 차의 역사 “멀리 고향을 떠나 쓸쓸한 마음이여/ 옛 부처와 산꽃들로 적적함을 달래노라/ 철 다관에 차를 달여 손님에게 대접하고/ 질화로에 불을 지펴 향을 사른다/ 늦은 봄 바다에서 떠오른 달 사립문에 들어오고 비 그친 산속에는 사슴들이 뛰놀겠지/ 길을 찾는 나그네 마음 서로 아담하니 밤 새워 맑은 이야기 나누어도 좋으리라” 매월당 김시습이 쓴 것으로 보이는 ‘일동승 준장로와 이야기하며’ 한시를 이달희 시인이 풀이한 시다. 우리나라 차의 문화는 흔히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는 기록들이 여기 저기 문헌에서 밝혀지고 있다. 신라시대 흥덕왕, 경덕왕 시기에 차에 대한 기록들이 있어 일찍이 우리나라에 차 문화가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김교각 지장보살은 신라에서 차씨를 가지고 중국으로 들어가 금지차를 퍼뜨려 신라 차 문화의 발달을 알게 했다. 단석산 마애불상군과 함께 조각된 헌다하는 사람의 모습, 기림사의 헌다화 등은 우리나라 차 문화의 오랜 역사를 설명하는 현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차 문화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차성으로 ‘초의 선사’를 꼽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 선차의 맥을 잇고, 초암차로 발전시켜 일본에서 그 정신을 잇게 한 매월당 김시습이 차에 정통하였으며 진정한 차성이라 주장한다. 매월당은 초의보다 350여년 앞선 인물로 차의 정신과 법제, 사상을 종합적으로 구비한 인물이라는 평이다. 차인 이달희 시인은 “초의보다 다산, 다산보다는 매월당이 다성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고 말했다. 경주에서 차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차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동호회를 통해 즐기면서, 각종 행사장에서 시연하는 등으로 차 문화를 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차 문화를 즐기거나 사찰에서 차 문화는 드물게 이어지고 있는 정도다. 경주 기림사에서는 김교각, 김시습 등의 차 문화를 이어받아 차나무를 직접 재배하고, 차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유통시스템까지 접목해 차의 문화를 대중화하고 있다. 또 산업화의 길을 걸으며 신라 차의 문화성지 복원을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기림사의 ‘기다림’은 직접 제조한 차를 판매하고 맛보게 하는 다실이다. 매년 신라문화원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충담재도 신라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차 문화를 계승하는 행사다. 신라문화원이 서악서원에서 선비체험 등의 행사를 기획 운영하면서 다도체험을 진행하는 것도 차 문화를 잇는 노력으로 눈길을 끈다. 경주 보문의 아사가 차관은 우리나라 차 문화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고, 차에 대한 정신과 예법을 익히고, 즐길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사가 차관의 김이정(56) 관장은 “차 문화를 통해 인성이 개발되고, 국민적 정서를 지키는 근간이 되기도 했다”면서 “일본과 중국에 차 문화를 보급한 역사를 되돌려 차 문화 보급을 위한 노력들이 절실한 시기”라고 말했다. ◆오늘 경주의 찻집, 카페 전통찻집의 모습으로 아름답고 조화로운 정원 분위기로 이름난 백년찻집 대문. 경주에 찻집이라고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아사가 차관이 겨우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전통차를 제조하는 곳은 산내면 감산다향이 유일하다 할 정도다. 아사가 차관에서는 녹차, 황차, 말차, 오룡차, 보이차 등의 깊이 우러난 차맛을 음미할 수 있다. 이어 대추, 생강, 모과, 오미자, 매실, 유자, 율무 등의 대용차와 국화, 홍화, 허브 등의 화차도 맛볼 수 있다. 경주지역에서 차 문화는 대부분 커피를 중심으로 하는 카페문화로 변화돼 발전하고 있다. 전통찻집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전통차를 구경하기는 힘들게 됐다. 백년찻집과 같은 한방차류를 취급하는 곳이 더러 있고, 대부분 커피를 중심으로 카페문화로 변화됐다. 추령재 분수령에 옛날식 향수를 자극하는 분위기의 전통찻집 ‘백년찻집’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경주시가지에서 백년찻집으로 가는 길이 덕동댐을 지나 구불구불 돌아가는 산길로 절경이다. 백년찻집은 전통찻집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다양한 재료로 자체 제조한 백년차를 비롯해 대추차, 유자차 등의 전통차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주변 분위기를 중국 왕실의 정원처럼 다양하게 테마별로 특별한 조경과 야생화 등으로 조성하고 있어 포토존이 된다. 현대적 감각으로 변화된 카페는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경주시가지에는 한집 건너 한집 정도로 카페가 문을 열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카페로는 교촌마을에 내부에 갤러리를 겸하고 있는 ‘카페사바하’,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창작공간과 아카데미, 갤러리를 함께 운영하는 현곡의 ‘jj카페’ 등이다. 현곡 한적한 곳에 대규모 부지에 공원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쉼터기능을 강조한 ‘명가’, 보문호수의 절경을 배경으로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에 설치한 카페, 경주엑스포의 경주타워 전망대에 설치한 ‘구름 위에 카페’ 등도 이색적이다. 경주시가지에서 옛날식 다방으로 8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청기와다방’은 봉황대거리에 명물로 남아 있다. 안강과 감포 등의 농촌과 어촌지역에는 농민들과 마도로스가 즐겨찾던 옛날식 다방, 만남의 장소로 기능하는 한편 커피를 배달하는 출장식 다방의 형태로 남아 있다. ◆경주의 빵집 경주지역 특산물로 전국에 알려져 있는 경주빵의 대표적인 브랜드 ‘황남빵’ 전경. 경주는 빵집이 유별나게 많다. 경주의 관문인 경주역과 신경주역에 들어서면 황남빵과 경주빵 등의 빵집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빵집 열전은 역사문화사적지로 이어지면서 더욱 많아진다. 경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빵은 ‘황남빵’이다. 일제강점기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의 맛이 3대째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황남빵과 같은 맥을 잇고 있는 ‘최영화빵’은 경주시민들에게는 오히려 더 인기를 끌기도 한다. 황남빵과 비슷한 모양에 비슷한 맛을 가진 경주빵도 경주를 대표하는 빵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경주빵과 대부분 점포를 같이 열고 있는 ‘찰보리빵’은 보리를 주 재료로 만들어지는 건강식이다. 경주의 특별한 문화재 주령구 이름을 따 주령구를 닮은 ‘주령구빵’, 완두콩으로 속을 채운 ‘곤달비빵’도 경주 빵의 대표브랜드를 넘보고 있다. 치즈로 만든 빵과 오후 늦은 시간이면 절판돼 살 수도 없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경주역 가는 길 옆의 ‘부산찐빵’도 경주의 빵으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차의 주제는 화합이 되어야”소통의 장 통해 차 보급 집중아사가 차문화원 김이정 관장 김이정 관장 아사가차문화원 김이정(56) 관장은 우리나라 차 문화의 전통예법과 제조법 등에 대한 전수와 다양한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몇 안 되는 우리나라 차의 지킴이다.차 문화는 차를 마시기 위해 필수적으로 쓰이는 다기의 발전을 대동하게 된다. 우리나라 다완 제조법은 임진왜란을 즈음해 도공들이 대거 일본으로 끌려가다시피 해서 일본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지금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일본이 한국인이 제작한 기자이에몽다완(이도다완), 정호다완이라고도 부르는 다완 20여점을 국보로 지정하고 있다.한국의 전통다완은 정호다완으로 시골의 섬머슴 같은 소박한 그릇이다. 다완을 따라 차 문화, 예법도 화려함에서 벗어나 소박하게 변화했다.김이정 관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 먹는 사발도 토기로 만들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순박한 고향의 맛이 느껴지는 자연스런 다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라며 “이제는 일본이 우리나라 다완보다 훨씬 아름다운 다완을 구워내고 있다”고 말했다.김 관장의 ‘아사가’는 신라시대 차 문화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원효대사와 함께 수련했던 여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란다. 아사가차관의 ‘아사가다완’은 특별 주문해 제작한 특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김 관장은 “기림사에서 20대에 마셔본 차 맛에 반해 차에 대한 공부에 빠져들어 지금껏 30년이 훌쩍 넘도록 차 문화 공부와 보급에 매달리고 있다”며 “아사가에서 13년째 매월 2회씩 차회를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김 관장은 차 문화의 확산을 위해 아사가차관을 열어 매월 정기적인 차회를 진행하고 있다. 또 수강생들을 모집해 다도, 중국차 중급반과 고급반, 향도 등의 강좌를 개설 운영한다.김 관장의 차 문화 보급을 위한 열정은 국제적이다. 사비를 들여 매년 세계차문화축제를 열어 우리나라 차의 국제화에 앞장서고 있다.그는 “세계차문화축제를 통해 차 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교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중국, 스리랑카, 대만까지 5개국 차 문화 종사자들이 참여해 90여개 부스에서 차 문화보급과 교류를 위한 다양한 행사를 벌였다”고 설명했다.이어 “차문화축제는 앞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젊은이들은 세대차이로 인내가 부족하고 배려할 줄 모르는 등으로 정신문화가 차이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길 소망하며 차 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김 관장은 또 “차의 주제는 화합이 되어야 한다. 차의 정신인 중정(中正)에도 화합이 포함되어 있다”며 “화합의 장을 만들고, 소통하는 교류의 장이 되고, 인성 개발 가교역할을 하는 차 문화 보급을 위한 일에 집중할 것”이라며 차 문화 저변확대를 위한 의지를 밝혔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긴 잠에서 깨어난 신라 왕궁의 흔적…천년의 숨결 오롯이

월성 남쪽 남천과 연접한 산책로. 고목들이 남천과 어우러져 절경을 선물한다. 경주 월성은 신라시대 왕이 거주하던 궁성이다. 101년부터 935년 신라가 패망할 때까지 1천 년에 가까운 세월 왕이 거주하면서 집무를 보았던 터라 신라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국민들이 신성시하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아 폐허가 되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말기에 접어들면서 왕궁터 일부를 백성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종 때에 숭신전을 짓고, 일반 백성들이 불을 놓아 농사를 지어 개인들이 가져갔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이천 년의 세월이 지난 이제서야 신라왕궁터의 베일을 벗기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경주시는 신라 왕경 복원사업을 황룡사, 월정교, 동궁과 월지, 월성 등 8개 단위사업으로 나누어 추진하면서 월성 복원을 위한 발굴사업을 2014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월성을 둘러보는 일은 신비로운 세계, 미지의 세계, 역사 속의 세계를 더듬어보는 가슴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월성 둘레길을 걸어보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이 된다. ◆천년의 노래 월성 월성은 첨성대, 계림, 신라 국학의 터 교촌마을, 월정교, 동궁과 월지 등의 신라 천년 사적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에 그리 높지 않은 성이다. 월성에는 신라 천 년의 노래가 묻혀있다. 신라 천년 궁터에 다시 천 년의 시간이 덧입혀져 두텁게 비밀 아닌 비밀을 포장하고 있다. 성터 전체가 반달처럼 생겨 반월성 또는 월성으로 부른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는 신라 파사왕 22년(101년)에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 또는 재성이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935년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에 바치기까지 왕들의 주된 생활공간이었다. 월성에는 동서남북 사방에 여러 개의 문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우물터가 지금도 남아있고, 연못도 있었다. 만파식적과 같은 보물을 보관했던 천존고를 비롯한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 성안에서는 동물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새가 둥지를 틀고, 개가 여우를 물어 죽였다는 기록이 있어 숲이 울창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그러한 모습들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석빙고와 숲, 산책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월성에는 몰락한 신라 천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월성은 신라 천년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 또 새로운 천 년의 시간이 덧입혀져 있지만, 크게 훼손되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돼온 편이다. 물론 건축물들은 모두 소실되고 없지만, 땅속에 묻힌 흔적은 대부분 퇴적돼 남아있다. 월성을 통해 신라인들의 삶과 역사를 밝히는 일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월성 둘레길 월성 입구에 신라 천년의 역사를 영상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신라왕궁영상관. 월성 둘레길은 내부둘레길과 외부둘레길로 구분해 걸어보는 것도, 시간이 주는 마술 같은 오묘한 맛을 즐감할 수 있는 힐링거리가 된다. 월성 내부둘레길은 첨성대에서 남쪽으로 연결된 계림로를 통해 진입하는 길과 동쪽 동궁과 월지 방향에서 진입하는 두 갈래가 있다. 동쪽 월지에서 진입하는 길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월성으로 들기 전 ‘신라왕궁영상관’을 방문해 13분에 걸쳐 소개되는 월성에 대한 영상물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신라왕궁의 건설에 대한 설화, 선덕여왕의 지혜, 황룡사의 건설과 붕괴, 화랑들의 수련, 삼국통일의 약사, 불교의 진흥, 계획도시로의 화려한 발전 상황들이 소개된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한 편의 영화처럼 후딱 스쳐 지나간다. 선조들의 화려한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볼 수 있어 의미가 깊은 콘텐츠다. 월성에 드는 길은 살짝 오르막이다. 월성이 분지로 이루어져 천연적인 성과 같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최초 발굴 당시 문지가 발견된 곳으로 입구 양쪽으로 고목들이 서서 오래된 역사의 터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또 선덕여왕 촬영지라는 간판이 월성의 역사현장임을 설명한다. 월성에 첫발을 딛고서면, 넓은 부지에 푸른 비닐이 포장된 것을 볼 수 있다.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경주문화재연구소가 월성 발굴작업을 추진하면서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입구에 월성을 설명하는 글을 재미있게 만화로 그려두었다. 발굴작업 광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단을 설치하고, 단 위에 월성 역사와 발굴작업 구역을 나누어 개괄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내부에 ‘월성이랑’ 사무실을 설치하고, 방문객들에게 발굴 과정에 대해 전문 학예사가 안내하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대별로 안내하고 있다. 전화(010-3226-6390) 예약을 해두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단 바로 뒤, 월성의 북문지로도 짐작되는 곳에 조선시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얼음보관창고 석빙고가 있다. 석빙고의 서쪽 100m 지점에는 가끔 문헌에 등장하는 나무로 만든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 초빙지가 있었던 터로 짐작되는 흔적도 보인다. 석빙고 옆에는 조선시대에 얼음창고를 지었다는 내용을 기록한 석빙고 설립기념비가 서 있다. 월성 성벽을 구성하는 언덕과 경계면에는 벚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봄이면 한꺼번에 화르르 피어나 화사한 꽃 대궐을 이룬다. 첨성대 쪽에서 원경으로 촬영한 사진은 작품이 된다. 월성 내부둘레길은 마당을 걷는 평평한 길이다. 흙길이어서 폭신한 느낌이 좋다. 또 나무들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산책길이 가장자리로 조성돼 있어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다. 월성 남쪽의 산책길은 아침이나 비 갠 이후 시간에는 남천에서 올라오는 물안개를 감상하면서 걷거나, 서쪽으로 몰락하는 태양의 그림자를 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야간에는 월정교에서 반사되는 푸른 불빛이 물에 투영되면서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절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남쪽 둘레길 곳곳에는 벤치가 있다. 따뜻한 햇볕을 즐기며 남천을 건너 인왕사지, 천관사지, 월정교, 상서장, 국립경주박물관, 남산 등의 풍경을 감상하며 도시락을 먹는 일도 큰 즐거움이다. 월성 내부를 둘러보는 둘레길은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월성 외곽을 둘러보는 둘레길은 신라 천년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동궁과 월지, 첨성대, 계림, 경주향교, 월정교, 국립경주박물관, 내물왕릉과 고분 등의 역사 문화사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둘레길은 또 코스모스, 연꽃, 벚꽃, 유채 등의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만발해 사계절 꽃길이 되고, 꽃 터널 등의 편의시설들이 포토존으로 기능해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경주 관광 1번지로 부상하고 있다. 월성과 주변 사적지를 둘러보게 하는 비단벌레 전동차. 동쪽 영상관에서 첨성대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비단벌레 전동차를 타볼 수 있다. 월성을 둘러싼 해자를 감상하는 여유를 가져도 좋다. 월성의 해자는 남쪽의 남천을 제외하고 동, 서, 북쪽은 인위적으로 대규모 못을 조성해 해자를 만들었다. 경주시는 해자의 흔적을 발굴해 2019년이면 복원된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첨성대 광장을 지나 계림의 우거진 고목 숲길, 해자 발굴 광경, 월정교의 우람하면서 정교한 예술적 솜씨를 보는 둘레길은 가장 아름다운 산책길로 손꼽힌다. 이어 신라 국학의 터에 자리한 경주향교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남은 요석궁, 최 부자의 전설적인 기부문화를 교육하는 아카데미와 최부자 고택,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빚어내는 교동법주,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골목길이 월성 외부둘레 길에서 발길을 유혹한다. 김유신과 천관의 사랑이 만든 천관 사지와 당나라에서 귀국길에 사망한 김인문을 추도하기 위해 건축되었다는 인왕사지도 둘레길에 연접해 있다. 둘레길에 맞물린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하루해가 짧은 산책이 된다. 다시 3만3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월지관’이라는 독립된 전시관을 짓게 한 동궁과 월지를 돌아 나오면, 외부둘레길 순회는 끝이 난다. 운동하듯 빠른 걸음으로 후딱 지나쳐도 2시간은 소요될 거리다. 작심하고 가장 빠른 코스를 택해 걸어도 1시간에 돌아보기는 빠듯한 산책길이다. ◆월성에서 놀기 경주 월성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경주문화재단연구소는 매년 월성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공모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사진 전문작가들이 아닌 관광객 누구나 참가하기 좋게 디지털사진전으로 작품을 신청받아 월성의 다양한 모습을 재발견하게 한다. 연구소는 또 1년에 4차례에 걸쳐 대담 신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신라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정하고 신라 역사에 정통한 학예사와 연구원들이 발표자로 나서 먼저 발표하고, 대화하면서 신라 역사를 풀어나가는 시스템이다. 대담은 여름철에는 월성에서 불을 밝혀두고 시원하게 야외미팅으로 진행하거나, 월성과 가까운 찻집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한다. 또 야간 나들이가 편한 여름과 가을 달밤을 이용해 ‘빛의 궁궐’을 감상할 수 있게 야간에 월성을 개방하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월성 곳곳에 조명을 설치하고 달밤의 운치를 더하는 등 ‘신라의 달밤’으로 초대한다. 월성은 방송사에서 방영해 많은 시청률을 자랑했던 ‘선덕여왕’ 메인 촬영지로도 잘 알려졌다. 우아하게 왕관을 쓴 선덕여왕의 출연, 김유신 장군과 병사들이 말을 달리는 장면들을 연출하며 현실감 있게 신라를 표현했던 현장이다. 이러한 역사현장을 보기 위한 발걸음도 한때는 분주하게 이어졌다. 신라 천년에 이어, 고려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천 년이 덧입혀진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의 보고 월성에서 다양한 역사문화유적의 신비를 감상하는 일은 행복을 담보하고도 남는다. ◆월성 발굴 복원사업 월성 남쪽에 조선 말기에 건립되었다가 석탈해왕릉 옆으로 옮겨 세워 간 숭신전이 있었던 흔적. 월성은 왕궁이라는 신성한 곳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궁성의 빈터로 역사를 담은 채 대부분 고스란히 보존해 왔다. 조선시대 말기에 탈해왕 제전으로 숭신전이 건립되었는데, 1980년 월성 안의 민가 철거령으로 석탈해왕릉 옆으로 이건했다. 지금도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서쪽 일부 성벽을 훼손해 발굴했다. 6ㆍ25전쟁 당시, 미군들이 병참기지로 월성의 일부를 활용해 다소 훼손된 곳도 있다. 1963년 사적지로 지정해 관리해오다 1979년 동쪽의 문지와 담장을 발굴했다. 이때 해자를 처음 발견했다. 본격적인 월성의 발굴은 2014년 12월부터다. 신라 왕경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월성이 본격적인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신라왕경 복원사업은 2025년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월성 서문지에서 제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뼈 2구가 출토됐다. 성벽이나 제방에서 사람의 뼈가 나온 것은 국내에서 최초 사례다. 월성과 해자에서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사람 뼈와 흙으로 만든 인형 토우, 곰의 뼈를 비롯한 동물 유체, 가시연꽃의 씨앗과 식물 열매, 이두가 기록된 목간, 생활용 목기 등이 발굴됐다. 손칼과 작은 톱 등으로 정교하게 만든 나무로 만든 얼레빗도 발견됐다. 월성 동쪽에서 북, 서쪽까지 대규모 인공 해자로 6개의 못으로 파고 수로로 연결했다. 해자는 삼국통일 이후 본래의 기능이 불필요하게 되면서 꽃과 나무를 심어 조경한 흔적이 드러났다. 해자에서 출토된 목간에는 월성의 역사적 가치를 입증하는 글들이 적혀있다. 월성에서 출토된 토우는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 토우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페르시아풍의 긴 옷을 입고 있으며 터번을 쓴 토우, 기마 인물 토우 등이다. 월성을 발굴하는 호미질에서 묵은 세월의 흔적을 발견한다. 선조들의 화려했던 날들을 재조명해 새로운 천년을 기획하는 디딤돌로 삼아 아름다운 날들을 설계하길 기대하면서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 길은 참다운 힐링이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의 과거·현재·미래 어우러진 곳…시간여행 떠나볼까

신경주역사 내에 경부고속철도를 개설하면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역사문화재 전시관. 경주는 역사가 살아 꿈틀대는 정원이다. 거대한 공원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여행을 즐기면서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또한 경주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다. 시간을 이동하게 하는 공간, 어떤 시점이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시간 역이다. 신경주역은 KTX 역사로 부산역과 동대구역 중간쯤인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에 있다. 신경주역에서 부산역과 동대구역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서울까지도 2시간10분 정도면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는 거리로 좁혀졌다. 신경주역은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는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대도시 서울, 부산, 대구와의 접근성을 높여 경제발전과 국민들의 생활 편익에 크게 일조하면서 산업발전을 견인하는 인프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2020년이면 울산에서 포항으로 이어지는 동해남부선, 영천에서 울산으로 통하는 중앙선, 동대구에서 울산으로 연결되는 경부고속철도 등의 환승역으로 기능이 늘어나면서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신경주역은 교통편의 제공 본래의 목적과 함께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의 이미지를 살려 맞이방에도 유물전시관과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마련하고 있다. 신경주역의 ‘셔블랑 놀자’ 프로모션은 경주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인기 상품으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역 광장에도 역사문화 유적을 재현하고, 조각 작품 설치, 특이한 조경, 야외공연장 등을 운영하면서 공원으로 꾸며, 시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이자 힐링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사문화관광 도시형 맞이방 신경주역 대합실에 들어서면, 전체 공간이 시원하게 트여 한눈에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맞이방 곳곳에 세워진 기둥에는 소, 호랑이, 용, 토끼 등의 12지신상들이 무신 상 조각 작품으로 설치돼 역사 도시를 상징하며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신경주역 맞이방 한가운데 설치된 포토존. 경주를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합실 가운데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인형들이 ‘웰컴 경주’라는 표어와 함께 포토존을 마련하고 있다. 방문객들도 여행 가방을 내려놓고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신경주역 맞이방 중앙에 사계절 전시회가 진행되면서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있다. 포토존 뒤로는 경주지역 예술인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문화공간으로 방문객들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지금은 서라벌 사진동우회원들의 ‘빛을 담다’라는 주제로 사진작가들의 카메라에 채집된 세상의 풍경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되고 있다. 수채화, 서양화, 도자기 등의 예술품들이 다양하게 모양을 내면서 대합실을 사계절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한다. 신경주역 맞이방 남쪽 입구에 있는 경주관광안내소. 남쪽 창가에는 경주의 문화관광자원을 소개하는 경주 관광안내소가 자리하고 있다. 경주 관광 안내지도와 볼만한 곳을 소개하는 포스터와 기념품들이 선보인다. 또 경주의 관광을 안내하는 영상물이 지속적으로 상영되고 있어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이들의 관광가이드가 된다. 둘러보면 또 가장 크게 눈을 자극하는 것이 기념품점과 먹거리를 소개하는 간판이다. 경주시가 개발한 브랜드 음식점 별채반이 맞이방 서편에서 반짝거린다. 별채반은 경주지역에서 생산되는 곤달비, 전복, 천년한우 등의 신선한 재료로 육개장과 비빔밥 메뉴로 개발돼 제공된다. 별채반은 1인 상으로 나무를 소재로 한 밥상과 유기 식기를 사용한 위생적 식탁으로 마련돼 산뜻한 기분이 들게 한다. 식당은 또 순두부찌개와 된장찌개를 비롯해 돈가스, 비프까스는 물론 다양한 퓨전 음식을 마련한 기소야, 롯데리아 등의 먹거리와 카페드롭탑이 입점해 만남의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신경주역 서편에 자리한 특산물 판매점. 구룡포 과메기 판매점이 2월말까지 운영된다. 경주특산품 코너로 황남빵과 경주빵이 각각의 부스로 설치돼 판매되고 있다. 이들은 배고픔을 달래주기도 하지만, 기념품으로 날개를 달고 팔려나간다. 12월부터 2월 말까지는 포항 구룡포 과메기가 특산품 코너를 차지하고 여행객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역사 정원과 유물전시관 신경주역 맞이방 서편에는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하면서 발굴된 역사문화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 ‘신경주역 문화재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에는 청동기시대로부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장신구와 토기, 왕관 등의 유물 복제품 158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통일신라 천년 왕조 유종의 미, 천년의 숨결, 신라 역사, 신라 서라벌에 나라를 세우고 왕권을 키우다 등의 제목으로 시조 박혁거세~22대 지증왕, 23대 법흥왕~28대 진덕여왕, 29대 무열왕~36대 효공왕, 37대 선덕왕~56대 경순왕 등으로 나누어 역사문화를 소개한다. 신라시대 서역문물의 전래과정, 왕관과 황룡사의 역사, 진흥왕과 선덕여왕, 태종무열왕의 화려한 정치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또 경주 내남면 덕천리의 철기, 덕천리의 청동기, 덕천리의 옥 장신구, 방내리의 기와, 송선리의 석기 등을 소개하고, 당시 시대적 상황들을 예술품으로 재현한 코너도 마련하고 있다. 광장에는 방내리 고분군 1호 돌방무덤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 재현하고 있다. 방내리 돌방무덤은 단석산 동쪽 끝자락 구릉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분 유적이다. 발굴에서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34기와 돌방무덤 23기,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1기 등이 확인됐다. 돌방무덤은 널이 안치된 방, 널길, 호석, 봉토를 갖춘 굴식 돌방무덤이다. 널방은 남북방향으로 긴 네모골이다. 판돌과 깬돌을 이용해 쌓아 올리고, 입구에 막음돌을 두고, 바닥에는 배수로까지 설치했다. 봉토는 둥글게 조성하고 호석을 설치했다. 굽다리단지와 토제가락바퀴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경주지역 삼국시대 무덤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광장의 방내리 고분군 동쪽에 덕천리 유적도 복원 전시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하기 위한 덕천리 구간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청동기시대 집터와 도량모양 유구, 삼국에서 통일신라시대 지상식 건물지, 석축수로, 돌방무덤, 숯가마, 삼가마, 기왓가마, 움무덤, 독무덤 등 113기의 유구와 476점의 유물이 조사됐다. 이곳에 이전 복원된 무덤은 앞 트기식 돌방무덤으로 땅을 약간 파고 조성한 반지상식 구조다. 벽석과 안치석 사이에 뚜껑굽다리접시, 뚜껑굽접시, 병 등의 토기 9점과 작은 손칼, 용도를 모르는 철기, 제사토기 등이 출토됐다. 발굴 당시 모습으로 복원해 유리관으로 살펴볼 수 있다. ◆셔블랑 놀자 신경주역은 경주관광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특별한 시스템을 운영한다. ‘셔블랑 놀자’ 프로그램이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셔블’이라 부른 것에 착안해 경주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현재의 경주와 과거의 경주를 즐겁게 둘러볼 수 있게 한다는 목적으로 운영한다. 경주 도착 KTX 승차권을 제시하면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업체, 식당, 공연, 렌터카, 제과점 등 100여 가맹점을 10~5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경주의 브랜드공연 플라잉과 렌터카는 50% 할인된 가격을 적용받는다. 경주예술의전당 공연은 20% 할인, 부산찐빵과 교촌가람 인절미, 경주교동된장, 가야 가자미회도 할인된 가격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경주보문관광단지에 할인업체들이 집중해 있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유수정쌈밥, 정동극장, 주렁주렁, 추억의 달동네, 키덜트뮤지엄, 경주힐링테마파크 등이다. 어차피 경주에서 즐기려면, 할인된 가격으로 더욱 즐겁게 즐길 일이다. 신경주역 ‘셔블랑 놀자’ 프로모션은 054-613-8005번으로 문의하면 상세하게 안내받을 수 있다. ◆주변 역사문화공간 신경주역에서 경주지역의 문화관광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서 20분 정도 승용차로 움직여야 된다. 그러나 5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도 문화특별시 경주의 이름에 걸맞는 역사문화자원이 충분하게 널려 있다. 신경주역에서 10분 거리인 모량리에 박목월 생가가 조성되어 있다. 입구에 박목월 시비와 동상이 있다. 건천읍 모량리에는 우리나라 문학의 대가 박목월 생가가 복원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목월 동상과 시비, 보리밭, 박넝쿨이 올라있는 초가삼간, 나팔꽃 달리는 돌담, 옹기종기 돌된장독, 디딜방앗간 등의 생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지척에는 신라 박혁거세가 당나라에 보물 금척을 빼앗기지 않으려 숨기기 위해 조성한 60여기의 고분군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30여기의 고분만 집단을 이루고 있다. 여름철에는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또하나의 눈요기거리가 되고 있다. 동남쪽으로 내려오면, 두대마을 마애삼존불을 감상할 수 있다. 마애삼존불 건너편에는 법흥왕릉과 효현리 삼층석탑을 걸어서 둘러볼 수도 있다. 법흥왕릉으로 가는 길은 봄이 제격이다. 모내기철이라면 주변에서 울어대는 개구리소리와 솔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새소리가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한다. 법흥왕릉 지척에 위치한 김인문의 묘 옆에 있는 거북이 형상의 귀부. 법흥왕릉에서 동쪽으로 편안한 길을 따라 걸으면, 무열왕릉과 김양과 김인문의 묘가 큰 길 옆에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김인문의 묘 옆에는 비석을 올려두었던 귀부가 화강암으로 섬세한 솜씨로 용 거북을 새기고 있다. 무열왕릉 뒤편으로는 서악서원과 서악동삼층석탑에 이어 선도산 마애삼존불, 성모설화, 서악동 주상절리가 볼만하다. 다양한 경주의 역사문화유적들이 띠를 잇는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누구나 경주를 즐길 수 있도록직간접적 역할 맡아 노력할 것”신경주역 박정희 역장 신경주역 박정희 역장신경주역 박정희(51) 역장은 기획통이다. 코레일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경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는 경주사랑이 남다르다. "경주는 일하고 싶은 욕심이 저절로 생기게 하는 도시"라며 "많은 관광객을 경주로 찾아오게 하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싶다"고 말한다.박 역장은 우선 경주시민들과 가까운 이웃이 되기 위해 경주시장, 국회의원, 우체국장 등의 기관단체장들을 일일명예역장으로 초대해 체험행사를 진행하면서 업무의 교류와 협력방안을 마련한다.이어 학교와도 업무협력을 통해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진행하면서 신경주역을 비롯한 철도 역사를 이해하게 하고, 경주의 정체성을 스스로 알아가도록 한다.특히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한다. '신마패'에 이어 진화된 '셔블랑 놀자' 프로그램은 지역의 업체들과 관광객들을 연결하는 매체기능을 통해 경주관광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특히 경주 하이코와 업무협약을 맺고, 교통편의 제공 등의 협력관계를 통해 경주방문객 유치에 공동 노력한다.박 역장은 "누구나 경주를 좀 더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즐기며, 우리 역사를 체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주역이 직간접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노력을 할 것"이라며 밝은 웃음을 보인다.신경주역은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를 상징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설치하고 운영하는 힐링공간, 역사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그때 그 시절 모습 그대로 간직…경주관광의 전초기지 100년

“불국사역은 국민들의 애환이 서린 역사적인 기념물로 반드시 존치돼야 하는 곳입니다.”불국사역 홍만기 역장은 2020년 폐기될 예정인 철도청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울산과 부산, 대구와 포항 등으로 향하는 경주시민과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불국사역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것이 홍 역장의 주장이다.또한, 경주 관광의 전초기지이자 불국사역 주변 시민들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수단이요, 삶의 터전이라고 설명한다.홍 역장은 “불국사역에서 불국사, 경주보문단지로 이어지는 모노레일을 설치해 경주를 찾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불국사역은 꼭 필요한 곳”이라며 “경제적, 문화적인 이유와 함께 국민들의 정서적인 고향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그는 불국사역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역사 주변에 화단을 조성하고, 메타쉐콰이아 거리, 관광안내판 설치 등의 일거리를 찾아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특히 주변 주민들을 포함 불국사역에 대해 애정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모아 ‘불사조밴드’를 만들어 불국사역을 지키기 위한 여론 조성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불사조는 불국사역을 사랑하는 조직위원회 약칭이다. 그는 수시로 회원 확보에 나선다. 역 주변의 주민들은 대부분 회원으로 가입한다. 돼지국밥집 주인, 버스승강장 앞의 25시 편의점은 물론 농협과 면사무소 직원들까지 그의 등쌀에 모두 회원이 됐다.불국사역 주변 주민들은 그의 투혼이 불국사역을 사수하고, 국민들의 추억의 곳간을 풍성하게 하면서 경주 역사문화를 빛나게 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불국사역은 철도청의 계획처럼 폐쇄의 길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주낙영 경주시장도 “불국사역은 문화적,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꼭 살려야 할 콘텐츠”라며 존치를 위한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국민 추억의 고향 불국사역은 역사문화 힐링의 쉼터로 오래 달려갈 것 같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100년의 흔적 담은 만남과 이별의 공간 도착하니 설렘 가득 떠나기 전 추억 저장

대합실에서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곳에 설치된 포토존. 기차역으로 가는 사람들의 이유는 두 가지다. 떠나기 위한, 다시 돌아오기 위함이다. 만남 또는 이별을 준비하는 발걸음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경주역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역사다. 그만큼 많은 이별과 만남이 이루어진 역사 현장이다. 경주역은 이제 이별과 만남의 장소로만 국한되기에는 너무 많은 콘텐츠를 품고 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가 이루어지던 흔적, 그보다 훨씬 오래전 신라시대 석탑도 시간의 그림자를 조각하고 있다. 최근 철길에 달라붙은 장애인을 구조하려다 유명을 달리하게 된 경찰관의 흉상, 누구나 문화공연과 행사를 할 수 있는 무대와 광장, 황남빵과 카페 등이 오늘도 만남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사랑의 열쇠고리 걸기, 곰돌이 기념촬영 체험 등의 이벤트와 역사문화 답사의 장으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기도 하다. 경주역 주변에는 또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무궁무진 널려 있다. 없는 것이 없는 경주전통시장의 대명사 웃시장, 형산강으로 이어지는 뻥 뚫린 중앙로를 따라 형성된 종합상가, 만파식적보존회, 최근 복원된 경주읍성과 문화원 등이 경주역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힐링의 무한한 자산이다. ◆100년의 역사 경주역은 일제강점기 1918년 11월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해 2018년 11월 꼭 100년을 넘긴 유서깊은 역사다. 처음 경주역사는 현재 서라벌문화회관이 있는 곳에 세워졌다. 현재 경주역사는 역시 일제강점기인 1936년 12월 선로 개량과 함께 신축역사로 준공됐다. 경주역은 청량리까지 이어지는 중앙선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또 포항에서 부산진역으로 이어지는 동해남부선의 중간역이기도 하다. 중앙선 청량리에서 383㎞, 동해남부선 부산진역 기점 112㎞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중요한 역이다. 경주역은 평일 하루 2천500여 명, 주말에는 5천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의 관문으로 기능하고 있다. 경주역사는 들어서면 나지막하게 만만하면서 편안한 기분이 드는 1층 단층 건물이다. 주차장은 옆과 뒤쪽에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고, 정면은 넓은 광장이 평소에는 텅텅 비어 있다. 역 광장은 정치문화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벌어지는 시민들의 공간이다. 계절별로 크리스마스트리, 석탄일 종탑, 이웃돕기성금을 홍보하는 사랑의 온도탑 등이 광장의 입구에 등대처럼 세워진다. 경주역 광장에서 서편의 형산강까지 약 2㎞의 중앙로가 4차선으로 뻥 뚫려 있고, 양편에 상가가 조성돼 있다. 특히 아랫시장과 웃시장으로 불리는 중앙시장과 성동시장이 경주전통재래시장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남 대표적인 전통시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경주역을 나서면 경주읍성, 대릉원, 첨성대, 월성, 계림, 황룡사와 분황사 등의 역사문화유적이 바로 코앞이다. 걸어서도, 자전거를 빌려타고 편안하게 역사도시를 둘러보는 출발점이 된다. 경주역은 경주의 가장 핵심적인 도심에 앉아 있다. 때문에 경주역은 기차를 이용하려는 승객뿐 아니라, 시민들의 만남의 장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내부에 카페가 있고, 황남빵과 경주빵을 판매하는 점포가 입점해 있다. 경주의 명물을 소개하는 안내간판도 눈길을 끈다. 경주의 3기8괴를 설명하는 입간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역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사진으로 시선을 끌고 있다. 경주역이 유치원과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까지 체험교육의 장으로도 훌륭하게 평가되는 점이다.◆문화관광자원으로 경주의 명물경주역은 경주를 대표하는 하나의 명물이다. 신라시대 삼층석탑과 최근 세워진 이기태 경감의 흉상, 100년을 자랑하는 역사 등이 문화재적인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광장: 경주역 광장은 넓기도 하지만 비좁기도 하다. 3.1만세 기념행사, 정치유세 1번지, 천안함 폭격 사진전과 기념행사, 촛불집회, 월드컵 거리응원, 노동자들의 집회 등등 행사란 행사는 모두 경주역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듯하다. 경주역 서편에 최근 복원된 경주읍성과 동문. 태양을 향해 열린 문 위로 한옥전각이 높고, 남북으로 길게 돌벽돌로 성을 쌓았다. 조선시대는 경주역이 경주읍성 동문과 연접해 가장 붐비는 장소의 하나였다. 2018년 10월에 경주읍성의 동쪽 성벽과 동문 향일문 복원 준공식이 있었다. 태양을 향해 열린 문 위로 한옥 전각이 높고, 남북으로 길게 돌벽돌로 성을 쌓았다.경주읍성 성벽 주변에 산책로와 공원이 조성되고, 소공연장이 들어서면 버스킹공연을 비롯 상설공연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경주역 주변에 다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상가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벌써 성 안팎으로 다양한 상가들이 새롭게 단장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경주역은 그 기능을 잃고 사라지지만 100년의 역사를 지닌 경주역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 지역 경제를 일으키는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떠나고 돌아오는 인연의 고리 역할과 힐링하는 쉼터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경주역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분주하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신라의 심장에 우뚝 세워진 콜로세움…고대 로마에 온 듯 탄성 자아내

경주보문관광단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성된 종합관광단지다. 먹고 자는 것, 즐기며 노는 것, 최고 품질의 힐링을 할 수 있다. 경북관광공사가 이를 보증이라도 하듯 분야별 시설물들을 관리하고 안내하고 조율하고 있다. 그 가운데 보문관광단지 입구 1급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구성된 동궁원 바로 위에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과 콜로세움이 특이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선을 끌고 있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은 이름처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유명 자동차들이 다 있다. 뷰 좋기로 소문난 카페와 퓨전음식점, 어린이놀이체험장 등이 새로운 콘텐츠로 운영되고 있다. 콜로세움은 외형에서부터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다. 키덜트뮤지엄, 카페베네, 이태리공방, 수입 보세 소품이야기, 팝스 멀티플렉스 상영관 등이 입점해 있다. 주변 전체가 핑크뮬리와 산책로 등으로 꾸며진 사랑공원, 카페와 대규모 식당,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아찔한 재미를 선물하는 플라잉경주, 경주동궁원 등의 다양한 콘텐츠들이 마음껏 낭만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콜로세움 콜로세움 트랜드 마크로 유명한 키덜트 뮤지엄 입구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기념 촬영 장소로 인기다. 경주에서도 로마 원형경기장을 볼 수 있다. 경주보문단지 입구 동궁원에서 일방통행로로 개설된 길을 따라 언덕길에 올라서면 시야가 확 트인다. 첫눈에 세계자동차박물관이 들어오고, 이어 콜로세움이 이색적인 풍경으로 등장해 감탄사를 터뜨리게 한다. 넓은 주차장에 주차요금 걱정 없이 아무 곳에나 주차하고 내리면 바로 포토존이다. 투구를 쓴 그리스 로마 기사들이 창과 방패를 들고 건물 위에 선 모습은 로마에 온 기분이 들게 한다. 콜로세움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이 일어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젊은 연인들이 카메라를 고정해두고 촬영 삼매경에 빠진 모습들이 종종 눈에 띈다. 전국에서도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콜로세움이 있어 주변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문학비가 세워지고, 매년 여름철에는 가면음악회가 열린다. 출연자는 물론 사회자와 관객들에게도 가면이 지급된다. 익명성이 보장된 가면으로 체면을 가리고 하나가 돼 흥겨운 여름밤의 정취에 빠져드는 시간을 즐기게 한다. 콜로세움은 건전한 문화콘텐츠로 운영된다. 어른과 어린이들이 하나가 되어 소통하게 하는 키덜트뮤지엄, 정밀하고 세밀한 공예 솜씨로 보석을 빚어내는 이태리공방, 가방과 의류 등의 다양한 수입품을 취급하는 소품이야기, 커피명가 카페베네 등 카피들이 전망 좋은 곳에서 관광객들에게 손짓한다. 콜로세움을 건축한 허숙자 대표는 “역사문화 향기 가득한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역사 도시의 이미지에 걸맞은 일을 고민하다가 콜로세움을 기획하게 됐다”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건강한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싶다”고 말한다. ◆경주키덜트뮤지엄 키덜트 뮤지엄은 1층과 3층으로 나누어 5개의 전시관으로 운영된다. 1층 에디슨 발명품 전시관. 키덜트는 어린이(kids)와 어른(adult)의 합성어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어른이 어린이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콘텐츠로 꾸몄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키덜트뮤지엄 김동일 관장은 “현대 성인들의 각박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감성적이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심리상태를 기반으로 하여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사회현상을 제공하고자 기획했다”고 설명한다. 키덜트 뮤지엄은 클래식한 물품부터 트렌디 한 아트 토이까지 다양한 콘텐츠 5만여 점이 전시되어있는 문화체험공간으로 운영된다. 체험공간은 5개 전시관으로 구분 전개된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촛불영사기다. 200년 전의 전기가 없던 시절 유럽에서 사용되었던 최초의 영사기다. 이어서 슬라이드 방식, 촛불 방식 등 쉽게 볼 수 없는 오래된 영사기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시선을 끈다. 최근 고인이 된 신성일 배우가 출연한 영화 포스터와 함께 많은 영화 필름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다음 전시관이 캐릭터 라디오다. 1960년대에서 80년대 라디오 전성기에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제작된 다양한 캐릭터의 라디오가 수백점 전시돼 있다. 콜라병, 햄버거, 자판기, 세탁기 등의 모양을 한 라디오들이다. 라디오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디오라마 전시관은 오래된 TV와 철가방을 재활용하여 멋진 디오라마를 연출한 업사이클링 아트 공간으로 꾸며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TV 프레임 속에 만화, 캐릭터, 패러디작품(컬링경기장 등), 크리스마스, 세계의 유명 등대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주제별로 연출되어 있다. 또 고전피규어 전시관에는 어린 시절 한번쯤은 가지고 싶었고, 가지고 놀았던 추억의 장난감이 다양한 모습으로 전시돼 있다. 고전적 인형과 현재의 피규어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어른과 아이들의 소통 장이 된다. 은하철도999의 주인공, 아톰, 스타워즈, 마블시리즈 등의 피규어와 레고들, 건담 등의 다양한 인형들이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악수를 건네 온다. 키덜트는 또 키뮤 찾기 미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키덜트 뮤지엄의 캐릭터를 전시관마다 곳곳에 숨은 그림으로 배치해 두고, 이를 찾아 인증샷을 찍어오면 기념품을 선물해주는 소소한 행복을 주는 이벤트다. 이벤트 때문에 참가자들은 전시장마다 한 곳도 소홀하지 않고 촘촘하게 집중해 살피면서 흥밋거리를 더하게 된다. 키덜트는 의외로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즐거워하며 재방문율이 높다. 특히 키덜트는 3회 이상의 재방문객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무료입장객들은 친구들의 손을 잡고 올 것이라는 키덜트만의 마케팅적 생각이 녹아있는 전략이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자동차박물관 2층은 자동차 세계 유명한 차들이 전시돼 있다. 1965년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 많았던 쉐보레 임팔라.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이 보문관광단지 호반에 자리를 잡으면서 관광단지의 메뉴가 한층 풍성해지는 느낌을 주고 있다. 자동차박물관이 대한민국의 차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들을 전시해 글로벌 문화관광 단지로 격상시키고 있다는 평가도 따라붙었다. 자동차박물관은 1층부터 3층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 운영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층은 이색적인 자동차 전시는 물론 가상체험 현실 공간과 미니어처 자동차와 소품, 핫도그 만들기와 미니카 운전하기 체험프로그램 등으로 운영된다.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빈티지 카, 클래식 카, 캠핑카 등을 전시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운행되던 초록색의 영업용택시, 이효리 차로 불리는 미니카 등이 설명서 없어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한 자동차들이 추억을 재생시킨다. 2층은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전문 자동차박물관의 면모를 보여준다. 백투더퓨쳐2 등의 영화에 등장했던 특수한 자동차, 명품 스포츠카, 박정희 대통령이 탔던 의전용 차 등 응답하라 추억의 자동차들이 눈을 호강하게 한다. 이탈리아 철도기사 니콜라로메오가 1915년 자신의 성을 붙여 만든 자동차 스파이더는 정열적인 붉은 색 고성능 승용차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탈리아 명차로 영화에 등장한 기억 속의 차이기도 하다. 2층 창가 한가운데 자리한 길고 날렵하게 생긴 미녀 같은 자동차로 눈길이 오래 머문다. 쉐보레가 1959년에 제작한 임팔라는 문을 여는 손잡이가 없다. 백밀러도 없다. 특수하게 주문 제작된 차량이다. 8기통으로 배기량이 4천640cc여서 185마력의 힘으로 달려 비행기 속도를 따라잡는 차다. 1960년대 쉐보레에서 가장 비싼 승용차로 1965년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007 영화에 등장했던 자동차, 마이클잭슨이 타던 자동차 등등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차량들이 즐비하다. 시승식도 가능할 뿐 아니라, 곳곳이 포토존으로 관객들의 발길을 묶어둔다. 자동차 마니아들은 그룹으로 정기적인 방문을 약속하고 있다. 전시하고 있는 차량들이 모두 시동이 걸리는 운행 가능한 자동차여서 더욱 경이롭다. 3층은 어린이와 가족, 연인들의 미팅룸이다. 보문호반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뷰 좋기로 소문난 카페 아우토, 무료 키즈카페, 영화 속의 클래식카를 전시해 커피를 마시면서 스토리를 읽어보는 행복한 시간을 공급한다. 1층과 함께 신세대 입맛을 자극하는 퓨전 음식도 주문만 하면 바로 탁자 위로 날아든다. 행복 창조 공간이다. 기상천외한 자동차들을 보면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꿈의 박물관으로 저절로 힐링이 되는 공간이다. 자동차박물관은 콜로세움과 함께 경주에서 가보고 싶은 500여 곳 중에서 늘 상위에 링크되고 있다. ◆사랑공원 핑크뮬리는 경주 첨성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원에 조성된 핑크뮬리 덕분에 보문호의 물너울과 함께 사방이 핑크빛으로 반짝이는 공간이다. 동부사적지의 밀리는 차량 홍수를 피해 보문호반으로 달려오는 데이트족들이 늘어나고 있는 사랑 공원이다. 세계자동차박물관과 콜로세움을 지나 호반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10분만 걸으면 벤치, 하트 조형물, 야생화, 조경수들이 호수에 반사되는 공원에 이르게 된다. 보문호반 어딜 가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당, 체험 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지만, 사랑 공원과 콜로세움 사이에도 많은 콘텐츠가 널려 있다. 시비가 세워진 공원을 지나 스타벅스 등 유명브랜드의 커피숍과 경주 천년 한우를 맛볼 수 있는 운수대통 등의 식당을 지나면, 하늘로 공중부양하게 하는 플라잉경주에 다다른다. 열기구를 타고 구름 속에서 내려다보는 역사도시 경주의 풍경을 짜릿하게 감상하는 곳이다. 플라잉경주에서는 또 바이킹과 다양한 놀이기구를 체험할 수 있다. 사랑공원 주변은 이른 봄에는 벚꽃이 어우러져 하얗게 세상을 밝히고, 여름에는 우거진 수풀의 그늘, 야간조명은 밤새워 즐거운 시간을 만들게 한다. 가을 풍경은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꽃과 단풍들이 호수와 어우러져 누구나 시인이 되게 하는 낭만을 선물한다. 경주보문관광단지의 입구에서 힐링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콘텐츠들이 역사문화관광 도시 경주의 매력을 물씬 풍겨낸다. 가장 살고 싶은 도시 첫손가락에 경주를 꼽는 하나의 설명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운곡서원 7박자 잘 버무려지니…어느새 나도 신선이 되었네

계림국악예술원이 매년 가을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에 이를 때 음악회를 개최한다. 마지막 순서에는 관광객과 하나가 되는 강강술래로 마무리한다. 경주여행의 가장 큰 콘텐츠는 아무래도 역사문화유적이다. 여기에 경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시너지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경주 여행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는 풍경 중에는 ‘꽃’을 단연 첫손가락으로 꼽는다. 경주의 꽃은 사계절 이어진다. 벚꽃과 개나리부터 시작해 연꽃과 황화 코스모스, 접시꽃 등의 꽃들이 역사문화유적과 어우러져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경주의 가을꽃은 단풍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아름다움으로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은행이다. 경주의 은행은 지역별로 절정에 이르는 시기가 다르다. 가장 먼저 남산의 통일전 은행나무, 이어서 보문단지, 서면 도리 은행나무 등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절정의 시기도 조금씩 늦어진다. 7번 국도 동천동 지역과 용담정 진입로의 은행나무 단풍도 관광객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다. 경주문화원의 600년 된 은행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면서 단풍이 절정에 이를 즈음 매년 음악회를 열어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운곡서원 은행나무 앞에서도 매년 색다른 음악회가 열린다. 천북면과 경계를 이루는 강동면 운곡서원의 은행나무는 가장 늦은 시기에 화려하게 노란 단풍꽃을 피운다. 천북면 남쪽 경계 손곡동에 귀산서사가 있고, 거기에 종오정 정자가 있다. 정자 앞 연못에는 여름철에 연꽃이 가득 들어찬다. 칠팔월엔 백일홍, 가을에는 구절초가 종오정 일대를 환하게 밝힌다. 종오정과 운곡서원은 천북면의 남쪽과 북쪽 끝에서 945번 지방도로 연결되는 꼭짓점 같은 위치에 있다. 묘하게 역사적 시간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계절을 달리해 이곳을 찾는다. 여름에는 종오정, 가을에는 운곡서원에 방문객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힐링하는 방법과 장소도 계절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 경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운곡서원과 종오정, 그리고 두 문화역사자원을 잇는 도로를 따라 형성된 힐링 자원이 넉넉하게 조성되고 있다. ◆운곡서원 칠박자 운곡서원을 돌아보고 내려오면 언덕에 나무로 지은 먹거리 원두막이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 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운곡서원에는 꼭 한 번 가볼 일이다. 수령 360년의 거목으로 솟아난 은행나무에서 노랗게 물든 낙엽이 비처럼 눈처럼 휘날리는 장면을 본다면 밀리는 차량정체의 불편쯤은 기쁜 투자가 된다. 금수강산인 우리나라에서 가을이면 어딜 가든 단풍을 보는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운곡서원에서의 칠 박자가 버무려진 만족보다 큰 기쁨을 얻기란 쉽지 않다. △1박자: 주차를 하고 내리면서 조선시대 선비가 글 읽는 소리처럼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나무를 깎아 세운 서원 안내 간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파르지 않게 돌로 다듬어 만든 계단을 오르면, 묘하게 서정적으로 흐르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2박자: 50여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대추나무가 내려다보는 마당을 둘러 오밀조밀하게 한옥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선비들의 공부방과 기개 넘치는 장군을 추모하는 향사를 올리는 건물들이 단출하게 짜여있다. 나무로 깎아 세운 대문을 밀고 들어가 보고 싶게 하지만 대문은 닫혀 있다.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고 있지만, 기품이 넘쳐나는 운곡서원이다. 경주 강동면 왕신리 운곡서원의 은행나무는 수령 360년을 넘긴 보호수다. 가을이면 단풍이 특별히 아름다워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줄을 이어 찾는다. △3박자: 운곡서원에서도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은행나무다. 경주시가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한 수령 360년을 넘긴 고목이다. 우람한 자태에서 단풍을 만들어 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온다. △4박자: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때를 기다려 밀양백중놀이(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의 춤꾼과 목에 피를 토하는 힘으로 밀어 올리는 노래를 선물하는 은행나무 음악제가 널리 알려져 한 박자를 거든다. 화랑문화원 이종태 원장이 학춤을 추는 음악회의 주인공이다. 단풍과 역사를 버무려 문화의 향기를 물씬 풍겨낸다. 은행나무 앞의 전통찻집에서 대추차와 오미자차 등의 전통차를 음미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5박자: 은행나무 바로 앞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오래된 문화재 같은 돌들로 정원을 꾸민 한옥이 있다. 전통찻집 운곡산방이다. 여기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것은 촌스럽다. 대추차·오미자차 등 전통차를 음미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6박자: 고풍스런 서원과 산천에 둘러싸인 가을 풍경을 보고 나면 왠지 허기가 진다. 처음 올랐던 계단을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다시 계단이 있고, 허공에 2층 누각인양 나무를 솜씨 있게 엮어 만든 원두막이 있다. 이곳에서 파전이든 백숙이든 들깨 칼국수든 식성대로 시킬 수 있다. 마음도 몸도 넉넉하게 살찌우게 하는 운곡서원 6박자다. △7박자: 마지막 7박자는 방문객이 요리하기에 달린 문제다. 서원의 고가와 고목, 비석이 전하는 오래 된 시간의 느낌과 은행낙엽비, 학춤, 원두막의 서정을 적당하게 버무려 아름다운 화음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신선이 되어보는 시간, 아름다운 인연 운곡서원이 선물하는 칠박자다. ◆운곡서원 운곡서원은 1784년 경주 강동면 왕신리에 추원사라는 이름으로 건립됐다. 안동 권씨의 시조 권행, 죽림 권산해, 귀봉 권덕린을 향사한다. 경내에는 묘우 경덕사, 강당 정의당과 돈교재, 잠심재가 있다. 또 유연정이 있고, 외삼문 견심문이 조선시대 서원의 형식대로 입구를 지키고 서 있다. 1868년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붕괴됐지만, 1903년 다시 지었다. 1976년 중건되어 운곡서원으로 바꾸어 부른다. 권행은 본래 신라의 김씨 성을 가진 선비였다. 고창을 지키고 있던 김행은 929년 견훤이 공격해오자 왕건에 귀의해 견훤을 격파하면서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웠다. 왕건은 신라의 신하로 고려왕을 도와 나라의 원수를 갚은 것은 권도라며 태사 벼슬과 함께 권씨 성을 내렸다. 김행은 권행이 되어 안동 권씨 시조가 되었다. 죽림 권산해는 권행의 후손으로 권진에게 수학했다. 단종애사 이후 관직에서 물러났다. 세조가 세 번이나 불렀지만,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운동을 펼치다 국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 다락 위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정조 13년 관직이 복원되고, 이듬해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귀봉 권덕린은 권행의 후손으로 경주 안강읍에서 태어났다. 회재 이언적에게 수학해 스물다섯에 문과에 급제했다. 성균관 전적과 예조정랑 등을 역임했다. 회덕, 하동, 영천, 합천 등의 수령을 지냈다. 합천군에 그의 유애비가 있다. 운곡서원은 100년 이상 된 건축물로 서원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해 조선시대 문화와 건축양식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비지정 문화재로 남아 있다. 빨리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운곡서원은 서원의 문화재적인 가치와 함께 수려한 자연경관, 전통찻집, 원두막 등의 쉼터가 조성돼 포항, 대구, 울산 등의 원근 도시에서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종오정과 귀산서사 문화재로 지정된 종오정. 남향이어서 대청에 앉으면 한겨울에도 따사로운 햇볕을 즐길 수 있다. 종오정은 경주 보문단지 동편 손곡동 마을 안에 있다. 1992년 11월26일 경북도기념물 제85호로 지정됐다. 오죽과 연꽃 가득한 연못, 구절초, 둘레의 적송이 고가와 어울려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공원 같은 곳이다.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와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종오정 대청마루에 앉으면 한겨울이어도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집중적으로 볕이 몰려드는 따뜻한 기운이 넘치는 집이다. 이 마루에 앉으면 누구나 금방 편안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종오정과 귀산서사는 조선 영조 때 학자인 문효공 최치덕의 유적지이다. 최치덕이 1745년(영조 21)에 돌아가신 부모를 모시려고 일성재를 짓고 기거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학문을 배우려고 따라온 제자들이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귀산서사와 함께 건립한 것이다. 글을 읽고 익히는 종오정 일대 부지는 3천858㎡로 아주 넓은 편은 아니지만, 아늑한 분위기에 비교적 고풍스런 건물들의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공자 희옹선생 유적보존회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건물들을 위에서 보면, 지붕 평면이 공자(工字)가 되게 한 특이한 모습이다. 건물 앞에 조성된 연당에는 앞면 좌우에 향나무와 배롱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가 심겨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유적이다. 최치덕의 자는 희옹으로 평생을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여 70여 명의 제자를 길러 냈다. 학문 연구에도 몰두하여 ‘역대시도통인’, ‘심경집’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사후에 그의 업적이 조정에 알려져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운곡서원에서 종오정까지 운곡서원은 강동면사무소에서 형산강을 횡단하는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난 945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왕신저수지 중간쯤에서 동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 금방이다. 종오정은 경주 보문단지 뒤편 손곡동 마을 안쪽 따뜻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종오정에서 운곡서원까지는 승용차로 천천히 운전해도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조선시대의 기운이 우러나와 넉넉한 마음이 되게 하는 두 곳을 잇는 길에 많은 볼거리, 체험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있다. 종오정에서 운곡서원 방향으로 나오면 바로 경주생활체육공원이 넓은 부지에 자리하고 있다. 전국중학생야구대회가 매년 열리는 경주베이스볼파크 간판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이어 경주승마장이 있다. 말 등에 올라 화랑의 기개를 체험하게 하는 곳이다. 새로운 건물의 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는 펜션들이 세련된 이름으로 간판을 달고 있다. 경치가 좋은 지역이라는 해석을 하게 한다. 소리지와 이름 모를 저수지들이 길옆에 듬성듬성 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은 호수를 끌어안고 뒤태를 보여준다. 더 심심한 사람들은 길옆에 주차하고 그들의 성과물을 구경하기도 한다. 호수 건너편 카페와 담을 사이에 두고 십이지신상과 첨성대, 근엄한 불상을 깎아 세운 석물공장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파3 골프장이 두 곳 있고, 신개념의 골프장도 한창 조성 중이다. 주변 식당가에서는 벌써 골퍼들을 유혹하기 위한 메뉴 개발에 고심하고 있다. 지방도를 따라 길게 화산 숯불단지가 조성돼 있다. 차창을 열어두고는 쉽게 지나칠 수 없게 한우 고기 익는 냄새가 유혹한다. 왕신예술촌, 왕신저수지의 수상스케이트장, 곳뫼갤러리, 목공예체험장, 허브농장 등 길 따라 힐링 자원이 넘쳐나고 있다. 최고의 힐링로드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신라의 우수한 토목공법 ‘판축’…늪지에 조성된 황룡사 육중한 건물 지탱

역사문화관 2층에 황룡사와 9층목탑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역사실.역사문화관 1층에 마련된 카페테리아 쉼터. 직원들이 주문도 받고, 역사관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시간은 멈추지 아니하고 흘러 역사를 꾸민다. 역사는 또 시간의 흐름으로 잊혀지기도 하지만 흔적을 남긴다. 시간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끝없이 창출되는 역사는 오늘에 이어져 생멸하며 발전하기도 하고 도태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사를 돌아보면서 지혜를 얻고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박물관을 짓고, 기념관을 설립하는 것도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의 하나일 것이다. ‘온고이지신’이라는 고사성어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학생들의 늘어나는 발걸음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라 천 년의 화려한 역사를 대표하는 것들 중에 황룡사는 늘 앞자리를 차지한다. 진흥왕을 비롯해 4왕의 손을 거치면서 완성되고, 700년의 긴 세월동안 백성들의 평화를 지켜왔던 터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황룡사는 불국토 신라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삼국유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황룡사를 가장 많은 분량으로 설명하고 있다. 1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황량한 벌판으로 남은 땅을 파면서, 그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보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무엇이 있음이 분명하다. 황룡사가 건축된 배경과 소실되기까지의 과정, 황룡사 9층목탑의 건설과 소실 등을 담은 영상물과 기념물, 복제 유물 등으로 꾸며진 황룡사역사문화관은 새로운 경주의 체험학습장이 되고 있다. 카페테리아 쉼터와 기념품점 등도 개설해 종합휴게실 개념으로 운영되면서 이제 새로운 힐링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황룡사 700년 황룡사는 신라시대 통치철학을 비롯해 당시의 주변 정세까지 짐작하게 하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약체 신라가 삼국 중에서도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하는 시대에 건축되었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진흥왕이 7세에 즉위해 어머니 지소태후의 섭정에서 벗어나 직접 왕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통치이념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건축해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진흥왕은 스스로 전륜성왕임을 자처하면서 백제를 공격해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하고, 고구려도 압박해 북으로도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왕권강화에 나서 553년 왕궁을 지으려다 사찰로 변경, 황룡사를 건축했다. 황룡사는 가로, 세로 각각 약 300m에 이르는 넓은 부지에 조성돼 신라시대 최대 규모의 사찰로 확인되고 있다. 황룡사의 위치는 당시 신라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황제의 거처를 나라 중심에 두고자 하는 의미로 읽힌다. 법흥왕에 이어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으려는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거칠부와 고구려에서 망명해 온 승려 혜량의 영향도 크게 미쳤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황룡사는 남쪽에서부터 남문,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의 순으로 건물을 세웠다. 건물의 크기를 남문 3칸, 중문 5칸, 목탑 7칸, 금당 9칸, 강당 11칸, 내부로 들어오면서 점점 규모가 확산되는 형식으로 지어 부처의 편안한 세계로 들어서는 분위기로 꾸몄다. 금당에 세웠던 장육존상 삼존불의 높이가 5m 이상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건물의 웅장한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황룡사터에서 출토된 용마루로 사용되었던 치미는 높이 182㎝, 최대 폭 105㎝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동양 최대 크기의 치미다. 황룡사 건물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진지왕을 지나 진평왕대에도 상당한 보수 확장공사를 했다. 선덕여왕이 즉위해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목탑을 세웠다. 1층부터 9층까지 일본을 비롯, 9개 주변국가를 아우르는 의미도 담고 있어 황룡사는 호국사찰의 본산으로 해석된다. 왕권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건축으로도 이해된다. 목탑은 선덕여왕의 여동생 남편인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의 지휘로 백제의 장인 아비지가 건축했다. 높이 82m로 요즘 27층 높이의 건물이다. 순수 목조건축물로 요즘 기술로도 흉내내기 어려운 뛰어난 건축기술이다. 황룡사 9층목탑 심초석에서 발견된 백자 항아리는 당나라에서 제조한 것으로 확인돼 당시 중국과의 문물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황룡사는 진흥왕으로부터 시작해 선덕여왕까지 4명의 왕이 94년에 걸쳐 완성됐다. 553년 짓기 시작해 1238년 몽고에 의해 소실되기까지 약 700년간 황룡사는 신라, 고려까지 호국사찰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황룡사 9층목탑실 황룡사 역사문화관 1층에 황룡사 9층목탑 10분의 1 축소모형이 세워져 있다. 당시 웅장했던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 황룡사역사문화관은 외부에서는 다소 규모가 큰 한옥으로 보인다. 1층 문을 밀고 들어서면 커피 향이 따뜻하게 반긴다. 경주시가 직영하는 ‘카페테리아’ 전시형 카페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주문도 받고, 역사관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왼쪽으로 가면 안내실이 마주한다. 경주시민들은 무료이지만, 관광객들은 3천 원의 입장료가 있다. 단체는 2천 원이다. 남서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한 눈에 황룡사 9층목탑이 들어온다. 황룡사를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해 건축한 모형탑이다. 목재로 정교하게 다듬어 세워 당시 건축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주변에는 다양한 전시를 열어 방문객들의 눈을 호사하게 한다. 모형목탑은 10분의 1로 축소한 크기지만 8m가 넘는 높이로 2층 베란다 위로 솟아 당시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북쪽에 입체 영상관을 설치해 황룡사 건축설화와 9층목탑의 건축, 소실 장면을 생생하게 입체 화면으로 보여준다. 10여 분 짧은 시간에 많은 공부를 하게 하는 콘텐츠로 학생들의 체험학습 필수코스다. ◆역사속의 장육존상 역사문화관 2층은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9층목탑 찰주본기, 치미 등의 복제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 9층목탑의 건축구조와 토목공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고건축실을 설치해 신라시대 뛰어난 건축공법을 공부하게 한다. 황룡사의 창건설화와 700년의 역사기록, 중문 복원영상, 9층목탑 복원계획안, 발굴역사스페셜 등 고증연구와 향후 복원계획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실도 있다. 9층목탑의 일부를 실물크기로 복원한 부분과 포토체험존, 황룡사지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고, 간이휴게실이 벤치와 함께 준비돼 있다. 전시실 가운데 장육존상의 실물 크기를 상상할 수 있게 머리 부분을 복원 전시하고 있다. 발굴에서 출토된 불상의 머리카락에서 유추해 복원한 것이 눈길을 끈다. 황룡사 장육존상은 황룡사 9층목탑, 진평왕의 천사옥대와 함께 신라 삼보 중의 하나다. 장육존상은 높이가 1장6척으로 5m 이상의 신라 최대 금동불상이다. 무게는 3만5천7근으로 황금 1만198푼, 두 보살상은 구리 1만2천근과 황금 1만136푼이 들었다고 한다. 장육존상의 제작시기, 조각사, 불상의 명칭 등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동경잡기’에 의하면 황룡사의 건물은 없어졌지만, 장육존상은 조선시대까지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최고의 토목공법 판축= 늪지에 조성된 황룡사의 육중한 건축물들이 버틸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신라인들의 특별한 우수한 토목공법 ‘판축’ 기술이 비법이다. 판축기법은 모래나 자갈 또는 흙을 일정한 간격의 널판 사이 공간에 차례대로 깔고 다짐도구로 다져 쌓아 올리는 고대 토목공법이다. △목탑의 복원= 황룡사 9층목탑 남서쪽 모서리 칸 일부는 1238년 몽고란으로 소실된 이후 800여 년 만인 2016년에 당시 규모로 재현했다. 목탑의 9층 난간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면 월지, 월성의 당시 신라왕궁과 월정교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경주 남산자락이 보이는 신라왕경 최고의 전망대였을 것으로 보인다. 복원한 목탑에서 당시 왕경의 모습을 파노라마로 둘러볼 수 있게 영상물도 제작해 두고 있다. △황룡사를 중심으로 본 신라왕경= 신라의 천 년 수도 경주의 신라왕경은 정확한 비율의 네모난 방이 1천여 개가 모인 바둑판 형태로 계획된 고대도시였다. 지금까지 밝혀진 범위는 서쪽으로는 서천, 북쪽으로는 북천, 동쪽으로는 명활산과 낭산 사이, 남쪽으로는 포석정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북천의 북편에 인접한 지역인 동천동 일대는 물론 경주외곽의 건천 모량리까지 주거지역이 확대되어 방리제에 의한 도시계획이 이루어진 것으로 최근 발굴조사에서 밝혀졌다. 황룡사가 위치한 지역은 신라왕경 방리구획의 핵심지구다. 황룡사지의 발굴조사 결과, 황룡사의 외곽 담장은 네모반듯한 모양이고, 동서 길이는 288m, 남북 길이는 281m임이 밝혀졌다. 기존 방리구획으로 짐작되는 격자형의 도로망 구획 내에 황룡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로 판명됐다. 이어 황룡사의 위치와 규모는 당시 도시계획과 직결됐고, 황룡사는 신라왕경 방리구획 연구에 중심이 되고 있다. ◆역사관 주변의 흔적 황룡사지 빈 터에는 계절별로 다양한 꽃밭이 조성돼 역사문화관 방문객들을 반긴다. 황룡사역사문화관 남쪽으로 넓은 주차장이 조성됐다. 대형 관광버스까지 편안하게 주차하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발굴 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호미로 역사를 들추어내고 있는 장면은 이삭을 줍는 것처럼 보인다. 주차장에서 역사관으로 진입하는 도로변에는 신라시대 황룡사를 구성했던 기왓장과 석재들이 전시되고 있다. 진입로 서쪽 공터에는 당간지주 1기와 석탑의 옥개석, 사면에 팔부신중이 부조로 새겨진 탑신이 남아있다. 분명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하지만, 어떤 절이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미탄사지 3층석탑이 최근 복원돼 황량한 벌판을 지키고 서있다. 삼국유사가 당시 서라벌을 ‘사사성장 탑탑안행’이라 설명하고 있는 뜻을 저절로 수긍하게 한다. 분황사와 황룡사가 지척에 있고, 그 큰 사찰 주변에 미탄사를 비롯해 구황동 폐사지, 이름 모를 절터가 몇 걸음 옮기지 않아도 바로 닿을 곳에서 비포장도로의 돌부리처럼 눈에 밟히고 있다. 경주는 노천 박물관이라는 말을 황룡사 역사문화관으로 들어서면서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1월1일, 설, 추석 등 3일을 제외하고 연중 문을 열어 방문객을 반긴다. 여행객이 늘어나는 가을철 주말에는 하루에 500여 명이 방문하기도 한다. 문화체험콘텐츠이자 명실상부한 경주 최고 힐링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오르간 계단 오르며 흥얼흥얼…한국음악 100년 기억 오롯이

유충희(59) 관장은 건축전기설비기술사, 전기철도기술사, 국제기술사, 공학박사로 공학도이자 사업가다. 그는 이미 동탑산업훈장,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등의 표창을 받은 성공한 공학도이자 사업가이지만 음악에 푹 빠진 음악애호가이기도 하다.유충희 관장은 “한국대중음악의 뿌리는 트로트”라며 “일제강점기와 보릿고개를 견디며 민주화 등의 사회 변화와 고비마다 대중음악이 국민들과 함께 있었다”며 클래식보다 대중음악을 즐기는 이유를 말했다. 이어 “대중음악은 클래식 못지않게 명곡이 많다”면서 “대중음악의 중요성과 우수성을 깨달아야 된다”고 강조했다.유 관장은 “음악은 제 삶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라며 “음악이 좋아 하나씩 모았던 자료들이 7만점에 이르러 이를 공유하고 싶어 박물관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공간이 부족해 아직 공개하지 못한 자료들이 많다.그는 “4층을 증축해 전시실을 늘리고, 대학가요제를 부활해 대중음악의 신드롬을 재현하고 싶다”는 욕심을 소개했다. 이어 “한국대중음악 발전을 위해 대중음악사를 공부하는 6개월 과정의 대중음악아카데미, 성인가요제 등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또 “선진 20개 나라 중에 자국의 대중음악박물관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면서 스스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을 건립한 이유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세계음악박물관, 종합뮤직센터 등도 설립된다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경주시를 비롯한 행정기관에서도 음악박물관을 적극 활용해서 체험프로그램과 전시, 공연 등의 이벤트를 운영한다면 상생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공학도이자 사업가가 설립한 개인 음악박물관이 체험장소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힐링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역사문화도시 경주의 문화쉼터로 발전하고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가볍게 산책 후 즐기는 불가마…쌓였던 피로 싹 달아나네

경주보문단지 서쪽 순환도로 가운데에서 천군동 피막골의 웰빙타운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안내간판과 함께 바람개비와 솟대가 서 있다. 오늘날 서울을 두고 ‘상전벽해’라 한다. 뽕밭이 빌딩숲으로 변화해 사람들이 붐빈다. 경주에도 상전벽해라 할 웰빙타운이 조성되고 있다. 산속에 생활폐기물매립시설과 소각장, 음식물자원시설, 재활용선별시설이 들어서면서, 주민복지시설이 함께 조성돼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 주민복지시설은 웰빙센터, 찜질방과 목욕탕, 헬스장 등으로 구성되고, 축구장과 족구장, 풋살구장 등의 스포츠시설도 조성됐다. 또한 자연생태학습지와 산책로가 길게 이어지는 생태공원 환경드림파크가 자리잡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내년 상반기에 카라반과 오토캠핑장, 사랑방 등을 갖춘 친환경에너지타운이 완공된다. 에너지타운은 온수를 활용한 실외 목욕탕 자쿠지, 비어가든, 서바이벌게임 모험체험시설 등으로 꾸며진다. 또한 인근에 글램핑, 골프연습장, 미니수영장 등의 다양한 레저시설들이 하나 둘 들어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시설들이 완공되면, 혐오시설이 힐링공간으로 대변신을 하면서 주민편익 복지지원시설로 크게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웰빙타운’은 경주보문관광단지에서 5분 거리다. 명활산성에서 경주엑스포 방향의 중간쯤에 서쪽 숲 속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요술램프처럼 하나, 둘 시설들이 드러난다. 웰빙타운이 조성된 지역 인근에는 복원되지 않은 석탑 부재들이 흩어져 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여서 탐방객들의 발길은 뜸하지만,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웰빙타운은 경주보문단지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웰빙센터와 문화자원이 풍부한데다 다양한 레저시설들이 늘어나면서 힐링명소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경주 웰빙센터 웰빙센터 옥상에 마련된 옥상 휴게실. 경주 천군동 산 270-1번지 일대에 생활폐기물매립시설과 소각장, 음식물자원화시설, 재활용선별시설 등의 종합자원회수센터가 형성되면서 웰빙센터와 복지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웰빙타운이 형성되고 있는 천군동지역은 임진왜란 당시 안동권씨들이 움막을 짓고 피란살이를 하면서 피막골, 필막골 등으로 불리고 있다. 피막골에 웰빙센터가 설립되면서 쓰레기처리장이 복지시설로 변신하고 있다. 찜질방과 헬스장, 축구장, 족구장 등의 스포츠시설까지 다양하게 들어서면서 웰빙타운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웰빙센터에는 사우나와 목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찜질방이 있다. 찜질방은 황토불가마, 게르마늄방, 참숯방, 개인토굴방, 수면실, 휴게실과 식당까지 갖추고 있다. 옥상은 공원휴게실로 조성돼 있다.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망이 시원하게 트인 공간이다. 웰빙센터는 누구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쉼터로 인기다. 특히 가격이 착해 시민들이 많이 찾아온다. 목욕과 사우나는 물론 찜질을 하는데 6천 원이면 온종일 모임을 하거나 쉴 수 있다. 2㎞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3천 원에 이용할 수 있는 혜택까지 누린다. 헬스장과 실내골프연습장도 마련돼 하루 이용권이나 월 회원으로 등록해 웰빙시설을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웰빙센터 바로 옆에는 축구장과 전문족구장과 풋살장도 있어 경주지역 조기회원들이 많이 활용하는 등 인기다. 족구장은 다목적 구장으로 배구와 배드민턴도 즐길 수 있다. 웰빙센터는 보문단지에서도 승용차로 5분 거리여서 경주시민은 물론 관광객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하루 500여 명이 이용하고 있으나, 주말에는 1천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찾는다. 또 인근지역에 글램핑과 골프장 등을 갖춘 관광농원이 조성 중이다. 웰빙타운은 말 그대로 경주에서 잘나가는 힐링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환경드림파크 환경드림파크에 조성된 생태습지. 연못 가운데까지 나무데크가 설 치돼 포토존으로 이용 된다. 환경드림파크는 웰빙센터에서 남쪽으로 연결된 친환경 종합공원이다. 남북으로 왕복 2㎞ 남짓 짧은 거리지만, 산책로 주변에 자연생태학습단지와 장미원, 정자, 벤치 등의 다양한 편의시설과 쉼터가 생태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누구나 부담없이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거리다. 가볍게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왕복하게 되고, 야생화를 보면서 사색을 즐기는 낭만을 찾는다면 두어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드림파크에 들어서면 공기부터 달라진다. 해발 200여m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이 아늑한 기분을 들게 한다. 멀리 동북 방향으로 트인 전망은 층층이 펼쳐지는 절경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하늘을 향해 저절로 두 팔을 벌리게 한다. 공원 전체에는 야생화들이 가득하다. 가을에는 미국쑥부쟁이가 마른 체구에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하얗게 꽃을 피워 소금밭을 연상케 한다. 하얗게 깔린 보도블록을 따라 천천히 남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양파를 까듯 새로운 풍경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곳곳에 벤치가 있고, 정자도 군데군데 세워져 쉼터를 제공한다. 작은 연못 주변에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자라면서 야생화들과 조화를 이뤄 포토존이 된다. 나무로 만든 아치에는 넝쿨장미를 올릴 계획인지? 아직은 하늘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내년쯤이면 장미 다발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철을 잊은 듯 10월에 핀 붉은 장미 네댓 송이가 내년을 예고한다. 환경드림파크에 조성된 산책로. 아직은 키가 낮은 메타쉐콰이아들이 줄을 지어 울창한 밀림을 꿈꾸고 있다. 계곡을 따라 물 흐름은 없지만, 잔디와 돌담, 야생화들이 작은 나무다리와 이색적인 풍경으로 자연공원을 형성하고 있다. 친한 사람과의 동행이라면 팔짱이라도 끼고 걷고 싶어지는 정감이 넘치는 산책로다. ◆종합캠핑장 친환경에너지타운 경주시가 웰빙타운을 힐링명소로 조성하고자 웰빙센터에 이어, 종합캠핑장 친환경에너지타운을 건설하고 있다. 에너지타운은 웰빙센터 남쪽 인근 2만1천585m² 부지에 63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카라반 16대, 오토캠핑장 4면, 관리사무실 사랑방(400㎡) 규모로 조성된다. 카라반은 편리한 편익시설이 설치된 북유럽풍의 우수한 제품으로 갖춰 고객을 유치한다는 전략이다. 카라반이 들어서는 곳은 서남쪽 산비탈이어서 웰빙타운 전체와 멀리 명활산 입구까지 내려다보이는 조망권이 좋은 지역이다. 카라반은 환경드림파크 생태연못 바로 위에 설치돼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기에도 좋다. 카라반을 설치할 장소는 이미 준비가 대부분 완료됐다. 오토캠핑장도 카라반이 위치한 곳과 비슷한 지역으로 조망권이 시원하게 트인 곳이다. 공동샤워장과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전기시설도 연결해 편리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경주시종합자원화단지 도병우 이사장은 “에너지타운에는 시설의 열을 이용해 실외목욕탕 자쿠비를 설치하고, 서바이벌 같은 모험 체험시설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양한 레저시설들이 들어서면 겨울은 물론 4계절 손님이 몰려들 것으로 기대된다. 도 이사장은 “환경드림파크 일원에 조명시설을 완비하면, 산책로가 밤에도 환하게 밝아져 야간에도 멋진 포토존을 구성해 웰빙타운은 힐링명소로 거듭날 것”이라 설명한다. ◆문화재와 레저시설의 공존 웰빙타운 바로 맞은편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절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폐사지 석탑재 웰빙타운이 조성되고 있는 피막골에는 신라시대 사찰이 있었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경주가 노천박물관이라는 말을 여실히 증명한다. 웰빙센터 바로 맞은편 철제 보호 울타리 안에 폐 탑재와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 절터였음을 증명한다. 아쉽게도 사찰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물론 사찰의 이름조차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곳에는 석탑의 지붕돌과 몸돌, 기단 갑석과 면석, 지대석 3매 등 석탑재 8매가 남아있다. 석탑의 1층 몸돌로 보이는 탑신석 사면에 사천왕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원형의 사리공이 있다. 사천왕상은 4구 모두 머리에 투구와 갑옷을 착의한 무신상이다. 발아래 악귀 대신 구름을 딛고 서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왼손에 탑을 든 북방다문천왕상은 둥근 두광에 발아래에 구름까지 비교적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지만, 나머지 무신상은 훼손이 심해 원형을 알아보기 어렵다. 지대석은 4매의 판석으로 현재 일부만 남아있다. 기단 갑석도 일부만 남아있으며, 윗면에는 2단의 탑신 받침이 있다. 1층 지붕돌의 옥개받침은 5단이고, 윗면에는 1단의 탑신 받침이 보인다. 지붕돌의 전각에는 풍탁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탑재 주변에는 기와 조각, 토기 조각, 자기편 등이 드문드문 드러나 절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게 한다. 사학자들은 “무신상의 조각기법으로 미루어 9세기 석탑으로 추정하며, 한정적인 자료이기 때문에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고 말한다. 특히 유적이 도로 바로 옆에 있어 도난의 위험이 있고, 훼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발굴조사와 복원사업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또 마을 일대 묘소 3기에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이는 화강암으로 만든 배례석들이 쓰이고 있다. 어느 절터에서 가져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찰에서 완벽한 상태로 옮겨져 고분에 대한 연구와 함께 학계의 조사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화자원들이 마을에 있고, 웰빙센터와 환경드림파크에 이어 친환경에너지타운이 조성되는 등 다양한 레저시설들이 하나씩 들어서고 있어, 피막골은 경주를 대표하는 힐링명소로 자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고향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지네

마을 안길의 나무로 만든 담장에 단풍이 들어가는 담쟁이가 작품처럼 얹혀 있다. 경주 남촌마을은 왠지 양지마을 만큼이나 따뜻할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경주보문관광단지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남쪽으로 빠지는 좁은 길을 따라 2㎞ 정도만 가면, 명활산 낮은 산기슭에 남촌마을이 있다. 산자락에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햇볕을 받으며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다. 남촌마을에는 탐방객들의 발걸음이 잦다. 진평왕릉, 신라말 대학자 설총의 무덤, 부부총, 보문사지에 묻힌 보물들 등의 역사문화 흔적을 더듬는 사람들이 계절과 관계없이 꾸준히 찾아들기 때문이다. 진평왕릉 주변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넓게 펼쳐진 평야가 이루는 전망 좋은 경치와 낭만을 풍기는 고분의 정취를 즐기기 좋게 산책로가 있고 벤치가 있다. 가끔 웨딩촬영을 하는 젊은이들의 풋풋한 장면도 만나게 된다. 마을 입구에는 도자기와 공예, 빵 만들기, 텃밭 등의 다양한 체험행사를 할 수 있는 남촌관광농원이 자리하고 있다. 또 퓨전음식, 새로운 공간개념으로 무장해 낭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신개념의 카페와 펜션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남촌마을은 힐링타운으로 변신하고 있다. ◆남촌마을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남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콧노래로 흘러나오는 정겨운 노랫말이다. 남촌마을에 딱 맞는 노래다. 남촌마을은 경주시가지에서 보문관광단지로 올라가다가 명활산성 입구 500m 전방에서 남쪽으로 형성된 넓은 들을 앞에 둔 마을이다. 남촌이라 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고향을 떠올리며 아련한 그리움에 젖기 쉽다. 따뜻한 봄 소식이 먼저 도착하는 마을, 가슴속에 저마다 추억담 하나쯤 묻어두고 있을 듯한 고향 같은 포근한 마을이다. ‘보문’은 신라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 습비촌(習比村)이라 불렀다. 약 260년 전 영양 남씨와 여강이씨가 처음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으로 형성됐다. 보문사 절의 이름을 따서, ‘보문으로 부르면 마을에 큰 선비가 난다’고 하여 보문으로 바꾸어 불렀다. 남촌은 순천부사를 지낸 우암 남구명의 후손 성균관 진사 남룡만이 이곳에 와서 마을을 이루어 대대로 살고 있어 남촌이라 하고, 이촌은 정헌공 이종상의 증조부 성균관 생원 이돈항이 조선 경종 때 이곳으로 와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이씨촌이라 불렀다. 이씨촌과 남씨촌이 남촌마을로 불리고 있다. ◆남촌관광농원 마을 안쪽에 별장처럼 지어진 펜션. 남촌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사거리 전봇대에 매달린 작은 간판들이 요란하다. 은하수펜션, 남촌도예펜션, 펜션셔블 등의 펜션과 소풍, 덕용암, 벨뷰카페, 앤의 정원 등 40여 개의 펜션과 카페, 민박과 같은 업종의 간판이다. 마을 바로 첫걸음에 나타나는 카페가 남촌관광농원이다. 남촌관광농원은 들어서면 우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주차장 주변에는 잔디와 야생화들이 반기고, 공원처럼 꾸며진 정원에는 옛날식 우체통이 서 있다. 하트모양의 포토존 앞의 벤치는 연인과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위기를 풍긴다. 관광농원은 간단한 식사류와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음료를 준비하고 있다. 주문한 음식과 커피는 작은 연못을 보며 정원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서 풍경을 즐기며 먹을 수 있다. 데이트 코스, 바비큐까지 가능해 소규모 모임, 가족들의 사랑을 감싸 안게 하는 따뜻한 곳이다. 관광농원은 음식보다 체험형 장소로 더욱 인기다. 한복체험, 스쿠터와 자전거 대여, 민박체험도 가능하다. 특히 빵 만들기, 쿠키 만들기, 가죽과 펠트 및 비즈공예, 도자기 공예체험도 가능하다. 미니 동물농장도 볼 수 있고, 민속놀이가 가능한 농촌체험, 야생화 관람, 다육이 심기체험도 재미있다. 고구마 캐기, 토마토 따기, 메뚜기 등의 곤충채집, 물놀이와 물총놀이 등 계절 따라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남촌관광농원은 연인과 가족을 위한 휴식처이자 사계절 다양한 체험이 준비된 어린이 체험 쉼터로 문의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카페, 민박, 펜션의 천국 남촌마을은 이제 신라시대적 향수에 신개념 힐링을 더한 휴양마을로 발전하고 있다. 이씨촌과 남씨촌이었던 고풍스런 마을이 다양한 건축물들로 새롭게 단장하게 됐다. 초가집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기와를 얹은 순수 한옥도 다양한 별장형 건축물들로 탈바꿈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만 들어서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골목 입구에 빼곡하게 적힌 펜션, 민박, 카페 이름들은 집성촌이 가진 순수성을 압도한다. 마을 분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바뀌고 있다. 별장 같은 건물들이 기암괴석과 예술적 수형을 자랑하는 괴목 정원수, 계절별로 형형색색 단풍과 꽃으로 무장한 나무와 야생화로 동화속의 마을로 꾸미고 있다. 마을 앞으로 펼쳐진 넓은 들판은 눈을 시원하게 한다. 햇살이 겹겹이 쌓이는 양지마을이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진평왕릉과 같은 오래된 문화재에서 풍기는 푸근함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기 때문일 것도 같다. 봄 여름에는 푸르름이, 가을이면 바람에 일렁이는 벼들이 일제히 황색의 파도로 너울춤을 춘다. 들판을 지나 낮게 엎드린 낭산에는 사철 푸른 소나무들이 선덕여왕릉, 황복사지삼층석탑, 월명사, 최치원, 백결선생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서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임금이 천년을 살았던 월성이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그 너머 형성된 도시의 문양도 따뜻하게 이웃으로 울을 치고 있다. 골목길과 연결된 대문을 나서면 마을이 바로 들길로 이어져 메뚜기도 보이고, 코스모스, 억새의 군무가 어깨춤으로 반긴다. 펜션과 주변건물들도 한결같이 친환경적으로 꾸며져 있다. 담장은 낮은 나무나 목책으로 꾸며져 있고, 담쟁이나 넝쿨장미, 모과, 석류 등의 나무들로 조경해 따뜻한 풍경을 선물한다. 누구나 한 두어 달 쯤 머물고 싶은 충동을 생기게 한다. ◆진평왕릉과 설총묘 남촌마을 가운데 있는 설총묘. 남촌마을을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진평왕릉과 설총의 무덤, 보문사지 당간지주 등의 역사문화자원이 한 몫하는 듯하다. 남촌마을에는 국보 제90호 금귀걸이가 출토된 부부총과 사적지 진평왕릉과 보문사지, 보물 보문사지당간지주와 연화문당간지주, 석조, 경북도기념물 설총묘 등의 문화유적이 많다. 마을 바로 앞의 진평왕릉은 오래전부터 고목이 우거진 공원으로 마을주민들은 물론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왕릉 높은 봉분은 파르라니 깎은 스님의 머리처럼 잘 손질되어 있고, 주변은 계절별로 야생화, 들꽃들이 하얗게, 노랗게 또는 보라색으로 물들인다.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늘어진 버드나무, 소나무, 회화나무 등이 거목으로 자라 그늘을 드리우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벤치에 그림처럼 앉아 쉬는 이들의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가끔 풍경 좋다는 소문을 들은 사진작가들이 청춘남녀들을 동반해 웨딩 촬영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진평왕릉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은 넉넉하게 마련돼 있지만, 방문객들의 차량으로 가득 차는 날은 잘 없다. 대부분 한적하게 하나 둘, 가끔은 학술단체 등이 몇몇 다녀갈 뿐이어서 조용하게 힐링하려는 이들의 코스로 제격이다. 마을 한가운데 작은 고분으로 고풍스런 상석과 안내간판이 있는 설총묘도 역사적 문화향기를 그윽하게 풍긴다. ◆보문사지와 연화문당간지주 보문사지 서남쪽에 한쪽 기둥이 부러진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보물 제123호. 남촌마을과 낭산 사이에 넓은 들판이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북천의 제방이 허술해 여름에는 범람하는 일이 잦았다는 기록이 있다. 가을철 저녁노을이 질 무렵이면, 낭산과 멀리 선도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보문들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마치 평화스런 들녘으로 밀레의 만종과 같은 풍경을 보는 것 같은 장관이다. 보문들 곳곳에 보물들이 숨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보문사’라는 글이 적힌 기와가 발굴되면서 보문사라는 절터로 확인된 곳이 마을 바로 앞에 있다. 보문사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황룡사 찰주본기에 보문사 상좌승 은전이 도감전으로 871년 경문왕 때 대탑불사에 참석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신라시대 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당터에는 많은 기초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이하게 돌쩌귀가 음각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앞쪽에는 동서목탑터가 남아 있다. 또 보문사지 서남쪽 들판 가운데에 한쪽의 돌기둥이 부러진 당간지주 한 쌍이 우뚝 서 있다. 상중하 세 곳에 구멍을 뚫었는데, 한쪽에는 완전히 통과되게 구멍을 팠고, 한쪽 기둥에는 네모나게 막힌 구멍을 판 모습이 특이하다. 보물 제123호로 지정된 보문사지당간지주다. 보문사지 서북쪽 들판에는 또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은 소박하게 생긴 대형 석조가 있다. 보물 제64호로 지정된 보문사지 석조다. 석조에서 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낮은 키의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당간지주가 보인다. 가까이 가보면 당간지주 윗부분에 원형으로 연꽃무늬가 선명하게 양각되어 있다. 높이는 146㎝로 낮지만, 아랫부분이 상당히 묻힌 것으로 조사됐다. 당간지주에 연꽃무늬를 새긴 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당간지주로는 가장 특수한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보물 제910호로 등록된 연화문당간지주로 학자들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당간지주다. 남촌마을은 보물, 국보, 사적지, 기념물 등의 많은 역사문화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 뛰어난 자연풍경을 자랑하면서 현시대에 맞는 문화인프라들이 부쩍 늘어나 힐링의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역사 속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고려와 조선의 흔적 고스란히

경주는 신라 천 년이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도시다. 그러나 신라 천 년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천 년이라는 시간도 덧입혀져 있다. 신라시대 시작 이후 2천 년의 시간이 경주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다. 신라의 흔적이 경주지역 전반에 걸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흔적은 경주읍성에 집중되어 있다. 읍성이 고려시대에 축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주 전지역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정자와 서당, 서원을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고려시대에 쌓은 경주읍성은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헐렸다. 읍성의 흔적은 북문으로 이어지는 돌담이 겨우 몇 발자국 남아 있을 정도다. 경주역 앞으로 거대한 개선문처럼 서있던 남문의 모습은 80~90년 전의 흑백사진에는 그대로 보이지만, 일제의 손에 허물어졌다. 우리의 문화는 그렇게 또 멸실의 길을 걸었다. 다행히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선조들의 흔적 역사문화가 곳곳에서 보존되고 있다. 경주문화원으로 이어지는 향토사료관, 집경전, 동경관 등의 건물은 일부 헐린 부분도 있지만, 조선시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경주문화원에서는 희망자들의 신청을 받아 월 1회 정도 경주읍성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재해설사들이 향토사료관에서 200분의 1로 축소된 모형도를 통해 경주읍성을 소개하고, 역사현장을 걸어서 탐방한다. ◆경주읍성 신라시대 경주 통치의 중심이 월성이었다면 고려와 조선시대 경주의 통치 중심은 경주읍성구역이다. 경주읍성은 지금도 경주의 중심지역에 위치해 도시의 심장부로 기능하기도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주요지역에 행정적, 군사적 목적으로 민가를 둘러싸는 모양의 읍성을 쌓았다. 경주읍성은 1010년 거란의 침략과 그 다음해 여진족의 공격을 받고, 1012년 신라의 왕궁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지역에 짓기 시작해 군사적 목적이 다분하다. 고려말 1378년에 개축한데 이어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때 불탄 뒤 1632년 수리하면서 동문과 서, 남, 북문을 다시 세웠다. 경주읍성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 남쪽에서 북쪽까지 각각의 변이 500여m에 이르는 장방형으로 둘레가 2천412m이고, 성벽의 높이는 5.6m까지 쌓아 올렸다. 동서남북 4방향에 모두 문을 두었고, 4대문을 연결하는 + 자형의 도로를 내부에 개설했다. 성 안에는 80개의 우물터가 발견되었고, 부윤이 업무를 주관했던 동헌과 여러 관청건물, 무관들의 집무실인 양무당,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공식숙소로 사용했던 객사도 있었다. 태조의 어진을 모신 집경전, 죄수들을 가두었던 감옥도 있었는데 지금도 그 터가 남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이 헐리고 동경관의 서쪽 일부건물이 서쪽으로 옮겨져 남아 있고, 박물관으로 쓰이던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존재하고 있다. 문루와 4대문을 포함해 성벽은 일제강점기에 모두 허물어지고 동쪽의 성벽 일부가 남아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읍성은 1963년 1월21일 사적 제96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월성이 신라 천 년을 상징하는 유적이라면 읍성은 신라이후 천 년을 상징하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읍성은 2030년까지 사업비 605억 원을 들여 4만5천496㎡ 부지를 사들이고, 동쪽과 북쪽 성벽 1천100m, 치성 12개소, 문루2개소(향일문, 공진문)를 복원할 계획이다. 10월에는 동문과 동쪽 성곽 324m를 준공해 야간 조명등을 밝혀 새로운 쉼터로 기능하게 된다. 성벽 경관조명과 함께 탐방로, 공연장 등을 설치하고 음악회와 각종 행사를 유치해 경주읍성 일대의 시장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부시민들은 벌써 상가를 정비하고, 퓨전음식과 다양한 차류를 판매하는 카페를 오픈하는 등 황리단길에 버금가는 새로운 문화의 거리가 조성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경주읍성 투어 경주읍성 투어는 경주문화원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문화원 사료관에 경주읍성 옛모습의 모형도가 있고, 고려와 조선시대 문화를 이해하기 좋은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고려와 조선시대 경주지역 행정을 담당한 관아가 있었던 경주문화원. 경주읍성을 둘러보려면 우선 경주문화원부터 들르는 것이 좋다. 경주문화원은 1926년부터 1975년까지 국립경주박물관이었던 곳으로 박물관이 신축되어 옮겨간 뒤 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경주지역의 주요행정을 담당했던 관청이 있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던 향토사료관 현판 ‘온고각’. 편액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1915년 경주를 방문해 쓴 글씨로 낙관이 뚜렷하다. 경주문화원에 들어서면 고풍스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100여m 길게 이어지는 길이 정원 가운데 나있고, 양쪽으로 오래된 석재와 나무 사이로 고색창연한 한옥들이 정면과 동, 서쪽에 있다. 정면에 보이는 남향 기와집은 향토사료관으로 조선시대 문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사료관은 신라시대 원형초석을 사용해 팔작지붕의 목조와가로 지었다.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의 전시관으로 온고각이라는 현판을 걸고 신라 이후의 유물을 전시했다. 사료관에는 ‘온고각’이라는 현판과 ‘경주군청’ 현판이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 당시 경주읍성 200분의 1 축소모형판이 있고, 100년 전의 경주시가지 모습 사진, 경주읍성 전투에 쓰였던 비격진천뢰 모형 등의 유물이 있다. 동편의 건물은 1922년 객관으로 쓰이다가 구한말 수비대본부 건물로 쓰였는데 지금은 도서실로 이용된다. 서쪽 건물은 특이하게 서쪽방향으로 ‘ㄷ’자 모양으로 지어졌다. 조선 숙종 때 1680년 경주시 서부동에 세워진 양무당의 부속건물로 무관들이 집무하던 곳인데 1915년 옮겨와 집고관이라는 이름으로 신라시대 석조물을 전시했다. 건축당시 양무당 상량문이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존되고 있고, 지금은 민속품 수장고로 이용된다. 입구에 성덕대왕신종 종각도 일제강점기 당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문화원에는 5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와 박목월·조지훈의 사연이 얽힌 300년 된 산수유나무가 있다. 구스타프 스웨덴 황태자가 1926년에 심은 전나무도 윗가지가 잘린 채 향토사료관 앞에 서있다. 문화원을 나서 동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KT&G 건물과 경주상공회의소가 나오는데 조선시대 동헌이 있었던 곳이다. 길을 건너면 삼락회 건물 뒤로 동경관이 있다. 경주객사로도 불렸던 조선시대 동경관 3동의 건물 중 대청과 동헌은 헐리고 서쪽으로 이건해 남은 서헌. 경주문화원이 전통문화교육장으로 쓰고 있다. △동경관: 경주객사로 불리기도 하는 동경관은 태조의 전패를 봉안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 부윤이 예를 올렸던 건물로 사신을 영접하고 유숙하던 공간이다. 처음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화재로 여러 번 중수되었다. 1786년 지은 건물 중에 1952년 대청과 동헌이 헐리고, 서헌만 서쪽으로 옮겨 현재까지 남아있다. 서쪽 지붕에는 화재로 그을린 모습이 보인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원이 전통문화교육장으로 쓰고 있다. △읍성 복원현장: 상공회의소에서 북쪽으로 잠시만 걸으면 읍성 복원현장이 나온다. 남은 읍성의 흔적이 보이는 곳. 아름드리 굵은 돌이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져 포개어 있다. 20여m 남은 성벽은 낮은 담장으로 흙이 쌓이고 담쟁이가 울을 치고 있다. 동쪽성벽으로 경주시가 340여m를 동문과 함께 한창 복원하고 있다. 내년부터 북문과 북쪽 성벽도 2030년 완공 계획으로 복원정비사업을 이어간다. 돌로 창고처럼 지어진 집경전 터. △집경전 구기와 하마비: 동문이 복원되는 곳에서 다시 성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경주여자중고등학교가 옮겨간 터가 나온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충효동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경주평생학습센터가 들어섰다. 학교부지 동쪽에는 ‘하마비’가 서있다. 태조 이성계 영정을 보관했던 ‘집경전’이 있는 곳의 앞이기 때문에 하마비를 세웠다. 집경전의 건물은 없어지고 벽돌모양으로 다듬은 큰 바윗돌을 쌓아 창고처럼 지어진 집경전의 흔적은 그대로 있다. 집경전 건물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됐다. 이후 경주사람들의 요청으로 정조 임금이 친필로 ‘집경전 구기(集慶殿舊基)’라는 글을 써 보내 집경전이 있었던 곳에 비석을 세워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감옥터: 읍성터를 돌아오면 경주에서 가장 화려하게 지어진 ‘명사마을’이 있다. 건설업체 우방이 대부분 60평대의 고급 아파트로 500여세대를 5층 건물로 지었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지어 지금도 단단하게 보인다. 명사마을은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거주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파트 입구에는 동산이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감옥이 있었던 곳이다. 이 감옥에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투옥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이곳은 천도교도들의 성지순례 장소로 손꼽히고 있다. △서경사: 동문 가까운 곳에 일본 불교의 사찰이었던 건물이 팔작지붕이지만 낯선 구조로 서있다. 지붕이 급한 경사를 이뤄 마당에서도 기와가 훤하게 보인다. 전통한옥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1932년 일본에서 목재를 운반해와 일본식으로 지었다.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농촌지도소, 사방관리소, 해병전우회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판소리 전수관으로 쓰이고 있다. ◆옛날 골목길 조선시대 골목길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정취를 풍기는 미로 같은 골목길. 흙담은 가장 오래된 담장으로 전해진다. 계림초등학교 앞으로 옛날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빼곡하게 들어선 단층 주택들이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아쉽게도 곳곳에 빈 집이 폐가로 변해 흉물스럽기도 하지만 굳게 닫힌 대문이 잡초 무성한 마당을 감추어준다. 경주 계림초등학교 앞에 남아 있는 문구점. 한 시대 전 당시 분위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영화 민아문구점 등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곳이다. △민아문구: 골목길로 접어들기 전 계림초등학교 앞에는 코흘리개들이 드나들기 좋게 문구점이 다양한 장난감을 전시해두고 있다. 한 시대 전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영화와 드라마가 가끔 촬영되기도 한다. △미로: 골목길은 혼자서 헤쳐 나오기 어렵게 꼬불꼬불하게 이어진다. 흙담장도 남아 있고, 대추나무, 무화과 등의 과실나무들이 담장을 넘어 골목길에 그늘을 만들기도 한다. 안내 없이 가다보면 어느 집 마당이 불쑥 나오기도 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기 일쑤다. △왕림탕: 미로 끝 부분에 이르면 한옥으로 지어진 대중목욕탕이 이색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1985년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대중목욕탕이다. 손님이 있을까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아직도 목욕비 4천 원의 착한가격에 단골손님이 몰리고 있다. ‘왕림탕’ 이라는 네온싸인이 박힌 굴뚝이 높게 걸려 있다. 사실 전기보일러를 가동하기 때문에 굴뚝은 모양만 남아있는 셈이다. 골목길은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으면 딱 맞을 넓이로 정겹다. 더러 호박넝쿨이 보이기도 하고 표구사, 가전제품 수리사, 옛날식 국수공장 등이 아직 남아 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21세기 냄새가 다시 풍긴다. 경주읍성이 정비되면서 산책로와 공원이 조성되고, 공연장과 다양한 문화휴식공간이 마련돼 제2황리단길로 붐빌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으로 최근 부동산경기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미 상가들은 반듯하게 정비를 하고 있다. 카페들도 줄을 이어 들어서고 있다. ‘커피소리 쿠키향기’, ‘빵굽는 로스팅카페’, ‘이재원과자점’ 등은 이미 손님들이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로 유명해 졌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힐링의 무대가 경주읍성 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발돋움하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400년 전 조선조 정무공 발자취…가슴 깊이 ‘충의정신’ 깃들었네

충의공원 가운데 건립된 최진립 장군 동상. 동상 기단에는 충노 ‘기별’과 ‘옥동’의 활약상도 새겨져 있다. 나 혼자 살기도 힘겨운 세상이다. 충신, 효자, 열녀라는 말은 책 속의 이야기로만 들린다. 사회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갈수록 삭막하게 황폐화되는 느낌이다. 요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말은 그냥 이야기로만 전할 뿐이다. 스포츠를 통해 울컥 한 번씩 치솟는 감정 확인으로 나라와 민족에 대한 소속감을 확인하고 있다. 이래도 ‘애국심이 살아있다’고 정의해도 될까? 이러한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던 충신, 이웃을 위해 내 곳간의 문을 활짝 열었던 조선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시효를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경주 내남면 이조리 충의공원에 가면 이런 이야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충의공원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나라를 지키고자 의연히 일어나 칼을 들었던 최진립 의병장군을 기리는 동상이 있다. 동상을 중심으로 최진립 장군이 공부하며 자랐던 충의당, 박물관으로 조성된 기념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활인당 등이 있다. 주변에 정자를 짓고, 벤치를 설치하고, 조경수 조성 등으로 쉼터를 만들어 공원으로 조성했다. 충의공원 일대에는 충노각, 효자각, 용산서원, 경덕왕릉 등의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어 역사문화탐방 코스로도 훌륭하다. ◆충의공원 충의공원은 경주시 내남면 소재지 중심에 있다. 공원 인근에 내남면사무소, 내남농협, 삼성생활예술고등학교, 내남우체국 등의 기관단체들이 있다. 내남면사무소까지 찾아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말을 달리면서 활시위를 당기는 최진립 장군의 동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상 기단에는 장군의 활약상과 충노 ‘기별’과 ‘옥동’의 장엄한 기상을 새겨두고 있다. 동상 뒤편에는 400년 된 회나무가 큰 그늘을 만들고 있다. 최진립 장군이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며 직접 심은 나무로 전하고 있다. 공원 입구에는 최부자의 나눔과 상생정신을 전하는 ‘활인당’이 조형물로 조성돼 눈길을 끈다. 공원 서편에는 최진립 장군이 성장했던 터전 ‘충의당’이 있고, 사당, 기념관이 동서로 이어져 있다. 충의당 뒤편에는 충노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충신이 거처했던 충의당은 ‘최부자의 혼이 시작된 소박한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충과 의로 가득 찬 고택체험’을 할 수 있다. 전통한옥으로 꾸며진 2인실, 4인실 등의 방이다. 맏며느리가 방문객들에게 문화해설을 하며 친절하게 안내한다. 충의공원 주변에도 많은 역사문화사적이 산재해 있다. 공원에서 승용차로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경덕왕릉, 용산서원, 최진립 장군 신도비가 있다. 또 가까운 곳에 효자각, 정무공 정려각, 개무덤 등의 탐방하고 싶은 의욕을 자극하는 사적들이 가득하다. ◆충의당과 기념관 충의당 내부. 충의당은 정무공 최진립 장군이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생가인 현곡에서 이사와서 살며 공부하고 성장한 외가 터전이다. 충의당은 경북도지정 민속자료 99호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최진립 장군이 기거하던 종택으로 1760년 중건되면서 흠흠당 편액을 걸고 있었다. 편액은 이계 홍양호 선생이 쓴 글이라 전한다. 정무공 최진립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당. 충의당은 후손이 기거하고 있는 전통한옥 주택과 서책을 보관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곳 ‘경모당’, 경모당에서 보관하던 고문서 등을 옮겨와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 장군과 현재 기거하는 후손으로부터 4위를 모시는 사당, 서실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흠흠당과 우산초려 등의 이름을 붙인 고택체험방도 있다. 가문에서 사용하던 농기구 등을 전시하고 있는 민속자료실도 눈길을 끈다. 충의당에는 3천500여 권의 고서가 보관되고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순우, 안승준, 김학수 등의 교수와 연구원들이 조사해 ‘고문서집성’과 ‘용산서원’이라는 연구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정무공최진립선생기념관’은 본건물 바로 앞에 서 있는 ‘경모각’을 확장 개편한 것으로 다양한 문화자원들이 전시되고 있다. 최진립 장군의 호패와 갓끈, 가죽신 등의 생활용품과 교서, 교지 등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최진립 장군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쟁터에서 직접 쓰던 칼. 활과 화살은 재현품. △칼과 활, 화살: 최진립 장군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군사를 지휘할 때 사용하던 칼의 진품을 전하고 있다. 칼자루 15㎝를 포함 1m 크기다. 활과 화살은 장군이 사용했던 것을 그대로 재현했다. 최진립 장군이 병자호란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쓰던 각대와 흑혜(가죽신발) 등 유품. △호패와 각대, 흑혜: 조선시대 신분과 관직을 표시하여 공적인 활동을 증명하는 자료로 사용되었던 호패는 정무공의 출생연도(1568년)와 급제한 시기(갑오년 1594)가 표시된 상아 호패다. 각대는 정무공이 관직을 역임할 때 관복에 착용하던 것(길이 86㎝)으로, 1630년 이후 병자호란으로 1636년 세상을 뜰 때까지 착용하던 것이다. 흑혜는 맑은 날에 신었던 것으로 문무 관료들이 제복과 함께 착용했던 가죽신이다. △교지: 최진립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면서 받은 교지와 함께 임진왜란에 참가해 전공을 인정받아 공신 2등에 책봉된 선무원종공신녹권, 경원도호부사 겸 병마절제사로 지낼 때 자녀들에게 직접 상속한 내용을 기재한 분금문기, 서해안 군사적 요충지 경기수군절도사에 임명하는 국왕의 이름으로 내린 교지가 있다. 특히 효종이 정무공 시호를 내린 교지는 특별하다. 중국의 연호를 쓰지 않은 유일한 교지로 조선정부의 청나라에 대한 당시 의식을 대변한다. △서적: 용산서원에 관한 책들이 여러 권이다. 용산서원지, 용산서원 청액소, 용산서원 호적, 용산서원 심원록, 문루일기, 용산서원 사역을 담당하던 인원의 명단 소속안, 안계암 완문, 별치 추수기, 학생들의 성명과 주소가 기록된 유생안, 사림품목 등등 서원을 관리하던 내용들이 기록된 서적이 다수다. 용산서원 정문의 문루인 청풍루 현판. 후손들의 구전과 서풍으로 미루어 미수 허목의 글씨로 추정된다. △청풍루 현판: 용산서원 정문의 문루인 청풍루 현판이다. 정무공의 풍모와 절의를 사모한다는 뜻에서 누각의 이름을 ‘청풍루’라 했다. 조선 중기 전서의 대가인 미수 허목(1595~1682)의 글씨로 추정된다. 용산서원이 사액받기 전인 17세기 후반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정무공 최진립 장군 정무공 최진립 장군은 1568년 경주시 현곡면 구미동에서 문창후 최치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발생해 적도들이 부산진과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북상하여 경주성까지 무너뜨렸다. 당시 정무공은 부윤을 찾아가 경주성 수복을 위한 의거를 호소하고, 동생 계종과 집안 종들을 비롯해 마을 장정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켜 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어 김호, 손엽, 권사악, 이눌 등의 의사들과 합세해 계연에서 적을 무찌르고, 경주 길목 열박재에서 언양으로 침입하는 적을 격파했다. 정유재란 때에도 결사대 100명을 이끌고 서생포에서 야영하던 왜적을 공격해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선조 38년 선무원종공신2등에 녹훈 되었다. 1607년에 도총부도사, 다음해에 마량진첨사, 1614년 경원부사를 역임했다. 인조 원년인 1623년 경흥부사, 공조참판에 특진되고 이어 경기, 공청, 황해수군통어사에 제수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장군은 69세의 노령에도 군사를 이끌고 국왕이 포위된 남한산성으로 진격하다 용인에서 적을 맞아 분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조정은 정무공의 공적을 기려 병조판서에 추증하고, 효종이 1651년에 시호 정무공을 내리며 청백리로 녹선했다. 숙종 때 함경도 경원에 충렬사를 창건해 제향했다. 1711년 향리 용산에 숭렬사우의 사액을 내리고 ‘용산서원’으로 이름 지었다. 자손들은 전쟁에 함께 참전해 순절한 충직한 노비 기별과 옥동을 장군의 제를 지낼 때 함께 제향하고 있다. ◆활인당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충신 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손자 최국선은 문중과 협의해 마을 어귀에 초가집을 짓고 죽을 쑤어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했다. 자신의 곳간을 열어 조선시대 헐벗은 백성들의 주린 배를 달래주었던 것이다. 이조리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이든 마을사람이든 굶주린 사람 누구나 끼니를 때울 수 있도록 배려를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활인당’이라 불렀다. 충의공원 입구에 초가집을 짓고, 마당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죽을 나누어 주는 당시 상황들을 조형물로 만들어 재현하고 있다. 지금 보아도 믿기 어려운 상황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굶주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줄을 지어 찾았을까? 어떻게 나라살림도 아닌 개인이 그런 베풂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궁금함을 넘어 감동하게 한다. 활인당은 최부자의 ‘상생과 나눔정신’의 시발점이 되었다. 최부자집이 교촌마을로 이사한 후에도, 이런 나눔정신은 계속 이어졌다. 6ㆍ25전쟁 당시에도 최부자집은 집 앞의 공터에 솥을 걸고 죽을 쑤어 피난민들을 구호했다. 후손들이 선대의 상생정신을 누대로 이어 실천하면서, 최부자의 명성을 이어갔던 것이다. 교촌마을에는 최부자의 나눔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최부자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충노각 “주인이 충신으로 나라에 몸을 바치려는데, 어찌 충노가 되지 못하리오.” 가슴을 저미게 하는 말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최진립 장군이 69세의 노구로 병자호란 전쟁터로 뛰어나갈 때, 노비였던 ‘기별’과 ‘옥동’이 장군의 뒤를 따라 끝까지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 최진립 장군의 후손들은 지금도 매년 음력 12월27일 장군의 대제일에 충노 두 사람을 함께 제향한다. 후손들은 그것이 장군의 뜻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최진립 장군이 자랐던 충의당 뒤편에 충노 기별과 옥동의 의기를 비석에 새겨 세우고 비각을 건립해 그 뜻을 기리고 있다. 나라를 위한 일에 신분의 고하가 없다는 말을 몸으로 보여준 현장을 체감하게 한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긴다. 오래전 정무공 최진립 장군 가문의 이야기가 인심이 각박해진 오늘날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힐링의 자원이 되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문화예술 즐기며 생태습지 걸으니 피로가 달아나네

금장대 앞으로 흐르는 형산강을 가로질러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잠수교. 신라문화제 등의 행사 때 설치돼 운치를 더하고 있다. 경주 금장대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힐링하는 곳이다. 크고 작은 문화행사를 열어, 시민들과 관광객이 산책하거나 즐기고 휴식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금장대는 형산강 지류인 서천과 북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정자다. 푸른 물결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365일 깊은 전설을 간직한 청소(淸沼) 앞의 작은 산봉우리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글을 짓고 읊던 정자였으며, 지금은 국제펜클럽의 세계한글작가대회, 시낭송, 음악회 등 지역문인들이 크고 작은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등 경주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있다. 금장대는 뛰어난 주변 풍광 때문에 신라시대 3기8괴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특히 날아가는 기러기가 푸른 물과 깎아지른 절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금장대의 절경에 반해 반드시 앉았다 간다고 하여 ‘금장낙안(金丈落雁)’이라 불렀다. 풍경이 빼어나 옛 신라왕들도 이곳을 즐겨 찾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장대 아래 아찔한 낭떠러지 아래 형산강은 신라 제20대 자비왕 때 을화(乙花)라는 기생이 이곳에서 왕과 연희를 즐기는 도중 실수로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예기청소(藝妓淸沼)다. 경주 출신 소설가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 배경으로도 잘 알려지고 있다. 금장대에는 또 선사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석장동 암각화가 있어 문화유적지로도 지정되었다. 경주시는 금장대 정자를 복원하고, 주변에 생태습지 테마공원을 조성해 인기 있는 쉼터가 되고 있다. ◆금장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 경주예술의 전당과 금장대를 잇는 자전거와 사람만 건너다닐 수 있는 다리 공도교가 올해 10월 착공해 건설될 계획이다. 공도교 조감도. 금장대는 형산강이 흐르는 강변에 깎아지를 듯 솟은 절벽에 한옥형 정자로 지어졌으며,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정자로 알려지고 있다. 아름드리 28개의 배흘림식 기둥이 기와지붕을 떠받치고, 2층 누각에 마루가 깔려있다. 마루에 앉으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동서남북으로 전망이 훤하게 트여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금장대는 예나 지금이나 문화예술인들의 공간으로 힐링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금장대 정자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해 토요일과 주말 오후에는 시민들이 음악회와 시낭송 등의 행사를 주관할 수 있는 문화예술공간 역할을 한다. 금장대에서 열린 첫 공연은 성건동의 풍물놀이에 이어, 천년예술단(단장 김성애)의 대금 연주, 성악, 시 낭송, 하모니카 연주 등의 공연이 펼쳐졌다. 금장대 토요음악회는 10월까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시민과 함께 대금연주를 비롯한 다채로운 공연으로 전개된다. 경주시는 2016년 3월 관광명소인 금장대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월령보를 새로 고쳐 짓고, 보 유지관리용 다리인 공도교를 만들기로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합의했다. 월령보와 공도교 건설은 45억 원을 들여 10월께 공사에 들어가 내년 연말 끝낼 예정이다. 공도교는 길이 239m, 폭 5m로 차는 다닐 수 없고, 자전거나 사람만 다닐 수 있다.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에 그려진 금장대의 풍경이나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금장대 앞의 강물은 폭이 넓고 모래사장이 제법 풍성했다. 지금은 강폭은 제법 넓지만 모래사장은 거의 없어지고 경주시가 조성한 트레킹 로드와 축구장이 잔디로 덮여 있을 뿐이다. ◆금장낙안과 생태습지 산책로 금장대 생태습지 산책로에서 바라보이는 금장대와 경주예술의 전당. 신라시대때 경주에는 3가지의 신기한 것과 8가지 괴이한 것(3기8괴)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3기로는 금척, 옥적, 화주 또는 성덕대왕신종을 꼽는다. 금척은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의 천신에게서 받은 금으로 만들어진 자다. 금척으로 병든 사람을 재면 병이 낫고, 죽은 사람을 재면 살아나는 신비한 자였다. 옥적은 신문왕이 이견대에서 해룡이 나타나 흑옥대를 바친 것이다. 이 피리를 불면 가뭄이나 홍수, 적군들이 쳐들어오거나 병도 모두 해소되었다고 전한다. 화주는 선덕여왕이 가지고 있었던 구슬인데, 광선을 비추면 솜에 불이 붙었다고 전한다. 8괴는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남산부석,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문천도사, 움이 트면서 붉은색을 띄는 계림황엽, 금장대의 경치가 좋아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반드시 내려서 쉬고 가던 금장낙안, 백률사 소나무는 베어도 순이 돋는다는 백률송순, 안압지의 뿌리가 없는 풀이 자란다는 압지부평, 나원리 오층석탑은 천 년이 지나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한다는 나원백탑, 불국사 다보탑만 비치고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다는 연못 불국영지 등이다. 3기8괴의 전설 중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반드시 내려앉아 쉬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금장낙안이 있는 금장대 일원은 지금도 풍경이 좋다. 이러한 풍경을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게 생태습지 사이로 나무데크로 산책로를 조성했다. 또 강 건너 경주시가지 풍경과 하늘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감상하기 좋게 길을 내었다. 천 년 고목이 된 능수버들이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습지의 풍광은 저절로 시인묵객(詩人墨客)이 되게 한다. ◆금장대 암각화 석장동 암각화 앞에서 바라보는 경주예술의 전당과 형산강. 금장대가 자리한 절벽 중턱 바위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이 암각화는 1994년 동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해서 발견됐다. 이 암각화는 방패 모양이라고도 하는 검파형 외에 사람 얼굴, 돌칼, 돌 화살촉, 꽃무늬, 도토리, 사람발자국, 짐승, 배 등 30여 점의 매우 다양한 그림이 보인다. 그림은 작은 편에 속하고 쪼아파기, 쪼고 갈아파기 같은 제작기법이 주로 사용되었다. 방패형은 청동기시대 전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 갖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어린아이의 발자국, 수렵 나가기 전 동물이 잘 잡히기를 기원하면서 조각한 꽃 모양의 동물 발자국 등이 있다. 또 청동기시대의 조각기법대로 인물상 속에서 남성은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고, 여성은 생식기만 조각되어 있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암각화는 1994년 경북도기념물 제9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석조문화재다. 형산강변에 접한 금장대 수직절벽 윗부분에 있는데, 세로 9m, 가로 2m 되는 바위면에 추상적 도상(圖像)으로 음각되었다. 그림이 새겨진 바위면은 남쪽을 향하며 모두 6개면으로 꺾여 층단을 이루는데, 바위그림을 새기고자 수직면으로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풍화작용으로 희미하게 잘 드러나지 않아 암각화 앞에 설치된 그림판을 봐야 암각화의 그림형태를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금장대에 오르기 직전 벼랑에 새겨진 암각화 앞에 서면 동쪽으로는 경주예술의 전당과 시가지로 연결되는 북천, 남쪽으로는 형산강물이 굽이치고 강변도로와 동대교,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이어지는 도로 등의 풍경이 계절, 시간대별로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한다. ◆홍도야 울지마라 금장대 소공원에 건립된 조선시대 명기 홍도 추모비. 금장대에 오르기 전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작은 자갈돌이 깔린 주차장을 지나 개울을 넘어서면 아담한 공원이 보인다. 소공원 한편에 남쪽을 바라보며 ‘동도명기 홍도추모비’가 날렵한 바위에 서 있다. 경주예술총연합회를 비롯한 경주의 문화예술인들이 2016년에 조선시대 정조 임금으로부터 ‘홍도’라는 별호를 받은 기생 홍도 최계옥의 생애를 기록한 추모비를 세운 것이다. 동도명기 홍도 최계옥(1778∼1822년)은 음악과 시문 등에 뛰어난 천재예술인으로 후학 양성에도 전념한 인물이다. 최계옥은 죽은 뒤 경주시 도지동 산 18-7번지 일대에 안장됐다. 30년 후 철종 2년 경주의 풍류객과 교방의 악공, 기생들이 묘비를 건립해 묘지를 관리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경주지역 예술인들이 홍도의 묘를 관리했지만, 묘역 일대가 코아루아파트 부지에 편입되면서 묘비는 사라지고 분묘는 무연고분묘로 처리돼 2005년 납골당에 안치됐다. 홍도 추모비에는 ‘임은 한 송이 붉게 핀 복숭아꽃이었다. 어두운 곳에 두어도 스스로 발광하는 구슬처럼 온갖 꽃들의 시샘이 따사로웠다. 세상의 풍랑은 거칠고 사나웠으나, 임은 한 시대의 한을 온몸으로 감싸 안은 채 고결한 삶을 잃지 않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또 후진을 양성하고 마흔다섯 살에 모든 재산을 이웃과 친지에게 나누어 준 후, 죽어 야산에 묻혔다는 등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홍도는 가고 없다. 이 시간을 즐기고 풍미하려는 현시대의 사람들이 시나브로 드나들며 지나간 일들을 훑어볼 뿐이다. 그들의 발걸음은 또 어떠한 흔적으로 후세에 남을지 아무도 모른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