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 어우러짐은 신의 창조 목적이지 않을까

벽이란 나를 중심으로 해서 그 어떤 관계나 일에 대해서 단절을 말해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해와 용서를 저버린 차가운 낱말처럼 들린다. 그 높이 쌓여진 담벼락에 창 하나 낼 수 있다면 막힌 숨이 탁 트일 듯싶다. 바로 그 창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기도 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 또는 타 종교에서의 나눔일 것이다. 종교라는 이름을 들고 말하자면 끝이 없을 얘기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종교나 인종에 대한 차별은 있을 수 없으며 종교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특정한 종교로 말미암아 다른 종교인에 대한 비방이나 차별은 더욱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종교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관계가 가족이라 할지라도 종교의 선택은 자유여야 한다. 부모의 종교에 따라 자식의 종교는 자연스럽게 결정지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자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마저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신앙 안에서 곧은 마음과 긍휼의 마음이 자신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타인에게까지 행동으로 몸소 실천할 수 있다면 저절로 자신의 신앙은 상대방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 어떤 종교인들의 모습일지라도 ‘끼리끼리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특정한 자신의 종교를 중심으로 해서 그 종교를 갖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만다. ‘신은 어디에….’ 50년 동안 고뇌한 ‘빈자의 성녀’ 테레사 수녀도 내면세계에서는 ‘신의 부재’로 갈등을 겪었던 것을 보여주는 편지가 공개됐었다. 마더 테레사의 솔직한 고백이 더욱 가슴 깊이 다가온다. 9월이면 더욱 마더 테레사의 철저한 헌신의 삶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때이기도 하다. 마더 테레사에게 그리스도인이란 다름 아닌 ‘자신을 기쁘게 내어 주는 사람’이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그녀는 평생에 자주 인용했다. 내 것이 무조건 옳다고만 한다면 내 것 밖의 또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단정해버리는 버릇이 있다. 우리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의 구분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민족과 인종이 살고 있다. 나와 다른 것들은 수없이 많다. 이렇듯 나와 다른 모든 것을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아름다운 삶이면 좋겠다. 너무도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가끔 이처럼 아이의 마음으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좋겠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로 마주한다면 얼마나 지루한 하루를 보낼까 하고 말이다. 인류의 다양함 속에서의 어우러짐은 신의 창조 목적이었고 보기에 참 좋았더라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나 자신만을 위한 안전한 공간의 벽을 높이 쌓는다면 아마도 그 벽에 덮여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이 응달에서 병들지 않을까 싶다. 높이 쌓은 벽을 허물 자신이 없다면 그 벽에 창 하나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곳과 저곳의 단절을 뚫고 그 창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모두가 다른 색깔의 피부를 갖고 생김새가 다른 얼굴과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내 것만 옳은 것이 아니고 네 것도 있음을 인정해줄 수 있는 여유와 네가 있어 내가 있음을 고백하는 우리의 나눔이면 좋겠다. 맑고 고운 햇살이 그 창을 통해 생명을 키우고 호흡할 수 있도록 말이다. 창은 바로 닫히고 쌓이고 막힌 것을 뚫어주는 통로인 ‘소통’인 것이다. 누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 맞이하는 날이면 좋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당당하면 굳이 다른 이의 것을 트집 잡아 마음 상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 어떤 종교를 떠나서 삶을 나눌 수 있고 그 삶의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음이 참 행복은 아닐까 싶다. “기독교인이 절에 들러 스님과 인사를 나누며 합장을 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기독교인이 절에 들어갔다고 해서 밖에 나올 때 승복이라도 입고 나오는가 말이다. 사람의 맡은 역할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종교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사명’이나 ‘소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어떤 특정한 나의 종교를 강조한 나머지 다른 종교인들에게 생각 없이 던지는 날카로운 상처의 말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너와 내가 다른 것을 서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나눔이길 소망한다. 인류의 다양함 속에서의 어우러짐은 신의 창조 목적이지 않을까.

[미주통신] 바꿀 수 없는 것을 위한 변명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한다. 시기적으로 정월은 운명의 질서를 가늠하는 때인가 싶다. 사람들은 토정비결로 한 해 운세를 점쳐 보고, 다가올 운명을 예측하고 싶어 한다.한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했었다. 남자뿐이 아니다. 운명도 제 하기 나름이다.한국에 토정비결이 있다면 서양에는 점성술이 있다. 별자리로 운세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보라, 천체는 한순간도 정지되어 있지 않다.토정비결 역시 해와 달이 차고 기우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 일정한 변화로 인하여 운명 역시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는지 모른다.그러나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천체는 해와 달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우주라는 드넓은 공간에는 수없이 많은 별이 있고 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며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만들어낸다.우리가 인생이라는 한 주기를 살아내는 동안에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과 만난다. 행운이 계속된다 해도 영원하지 않고 불행이 찾아왔다 해도 해갈의 시간이 도래하는 연유다.스스로 운명이라는 굴레를 쓰고 자책하며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으로 이 변수들에 대항할 것인지가 숙제일 따름이다.출생과 함께 작동하는 삶의 원리가 운명이다. 그러나 운 좋게 좋은 운명을 거머쥔 사람은 평생 복을 누리며 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락을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면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잔인한가.우리에게 생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잘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고 좋은 운명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무참하게 주저앉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운명은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뜻이다.다이아몬드와 흑연은 둘 다 탄소 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그러나 배열이나 결합질서에 따라 어느 쪽은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로 어느 쪽은 시커먼 흑연으로 태어난다. 같은 질료를 가졌으나 배열과 배합의 차이로 이 둘은 각자 다른 이름으로 출생한다.다이아몬드가 눈부심 속에 출생하는 동안 흑연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헛간에서 검고 칙칙한 물질로 태어난다. 그러나 흑연은 자신의 운명을 탓하면서 시커멓게 늙어가지 않는다.외로운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몸을 태우고 점토와 만나 연필심이 되며 많은 화학 공정에 빼놓을 수 없는 광물질이 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제는 아무도 흑연의 쓰임을 폄훼할 수 없다. 운명적으로 반짝이지 못했던 흑연은 자신의 길을 새롭게 개척해 간 것이다. 세상은 흑연을 다이아몬드가 되지 못한 자라거나 실패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보지 않는다.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빛날 수 있다. 우리 몸은 어느 것이나 같은 질료로 구성되어 있다. 물과 뼈와 살이라는 유기물과 화합 사랑 인내 용서 용기 도전 분노 원한 계략 암투 경쟁 같은 무기 물질이 그것들이다.운명은 이들 무기물의 결합과 배합으로 결정된다. 이들의 특징은 어느 것과도 서로 화학적 결합을 이룰 수 있다는 데 있다. 이것들을 어떤 비율로 배합하고 정돈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조산아로 태어나 시각장애를 딛고 수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 스티비 원더를 우리는 안다.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는 ‘나의 두 눈엔 희망만 보였다’고 생전에 말했고, 팔다리 없이 태어난 닉 부이치치는 평화를 위한 강연자가 되었으며, 청력 상실로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을 수 없었던 비운의 천재 음악가 베토벤을 우리는 악성이라 부른다. 이들에게도 실패 좌절 분노는 있었다. 그러나 사랑 용기 인내 용서 도전 같은 긍정의 질료를 더 많이 사용하며 비운의 시간을 넘어간 것이다.많은 여인의 사랑을 받던 한 남성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질료 중에 원한 분노 복수 원망 같은 것들만 꺼내 사용하며 살다가 젊은 나이에 연쇄살인범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자신이 처한 불운의 시기를 조금 더 인내하며 참아냈더라면 그토록 불행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가 자신의 질료 중에 사랑 평화 우정 화해 근면 성실 같은 질료를 사용했더라면 그의 생은 180도 다른 곳에 이르렀을 것임이 분명하다.혹시 지금, 불행한 운명에 침잠하고 있다면 내면의 질료를 다시 정돈해 보기로 하자.우리는 누구나 같은 질료를 가졌다. 잘 선택하여 사용한다면, 진실이 대접받지 못했거나 기회를 적시에 알아보지 못해 놓쳐버린 순간이 쌓여 있다 해도 언젠가는 보석처럼 찬연한 별똥별 하나 삶의 궤적 위에 돋아날 것이다. 통증이 반복된 살점 위에도 새살이 돋듯이.이성숙재미수필가

[미주통신] 잠자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내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PBS라는 교육 방송국에서 매주 금요일에 방송되는 앤틱 로드쇼(Antiques Road Show)다. 한국의 ‘진품 명품 쇼’와 같은 맥락이다. 도시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가지고 나온 옛날 물건들을 전문가들이 감정해서 진품인지를 가리고, 예측되는 가격을 알려 주는 프로그램이다.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다. 자신의 물건은 아니라도 전문가들의 입을 주목하며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듣는다. 감탄사가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의 탄식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긴장감에 저절로 동참하게 된다. 특별히 기억나는 물건이 있다. 백인 여성이 5살 정도 아이의 키만큼 높은 반원형의 탁자를 들고 나왔다. 지나가던 길에 어느 집 앞에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야드 세일을 구경했단다. 좀 투박해 보이는 모습이 왠지 정이 가는 탁자여서 야드 세일치고는 좀 비싼 가격인 25달러에 사 왔다. 현관 옆에 두고 가방이나 열쇠를 두기에 편했지만, 모양이 세련되지 못해 남편과 딸아이에게 군소리를 들었다. 어느 날 서랍에 무언가가 걸렸는지 열 수가 없었다. 작은 틈으로 손을 넣고 뒤적이는데, 손끝에 무언가가 만져지기에 탁자를 뒤집어 놓고 보니 서랍 안쪽에 누렇게 변한 종이가 붙어 있고, 인두로 지진 것 같은 도장이 찍혀 있더란다. 뉴욕의 고가구 전문 감정가로 유명한 쌍둥이 중 하나인 캐노는 그 여인에게 악수를 청하며 명품을 보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 탁자는 1800년대 영국에서 만들어진 수제품으로 쇠못을 쓰지 않고 정교하게 나무만으로 연결한 것이다. 안타깝게 다리에 새겨진 조개껍데기 모양의 조각이 손상되어 감정가격이 8천 달러이지만, 만 달러는 넘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여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남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미안해할 것이라며 그동안 받은 구박을 한 눈 찡긋하는 것으로 갚아 주었다. 1910년도에 만들어진 카티에르 담배케이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30년 전, 작은 마을에서 식당을 하는 여인에게 어떤 남루한 손님이 돈이 없다며 내민 물건이다. 불쌍해 보여 세 번의 저녁 식사를 주었는데, 현 시세로 7천500~1만5천 달러의 값어치가 나간다고 했다. 그 남자는 아주 비싼 식사를 한 셈이다. 프로그램을 마치기 전 몇 분 동안 나오는 짤막한 뒷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좋은 물건인 줄 알고 간직하고 있었는데 기대치 이하로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 나온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 베이브 루스의 사인이 담긴 공을 집안의 가보로 남기려 했는데 가짜로 판명받았다. 오래된 일본 도자기인 줄 알고 유리 상자에 넣어 곱게 보관했는데 흔한 화병이다. 실망했지만 유명 프로그램에 나온 것만도 좋은 추억이라며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미국인은 허접한 물건들 속에서 생각지도 않은 보물을 찾아냈을 때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고 부른다. 우리 집 차고에는 오래되어 색이 누렇게 변한 상자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시삼촌, 그리고 타 주에 사는 시누이의 물건이다. 지저분해 정리하겠다니 남편이 그 안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들이 있기에 당신 혼자서는 안 된다며 못하게 말린다. 가족들의 숨결이 담긴 물건들이니 하나씩 열며 과거로 돌아가 추억을 즐기자고 했다. 덜렁대는 나에게 맡겨놓으면 대충 버릴 것을 알고 멋지게 포장해서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 타인에게는 일전의 가치도 없지만, 본인에게는 영원히 간직하고픈 진품이고 명품일 수 있지 않을까. 오래된 물건 안에는 태어난 시대의 역사와 흐름을 담고 있다. 세월이 스치고 지나가며 남긴 흔적들이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그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손때 묻은 물건엔 정도 담긴다. 물건뿐 아니다. 의식 속에 얼마나 많은 쓸모없는 생각들이 섞여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있을까. 가치 없는 일과 생각에 얽매어 소중한 것을 놓쳐 버리고 후회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분별의 눈이 부족해 좋은 인연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 후 문득문득 그리워하기도 한다. 주위를 돌아보자. 어쩌면 가까운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을 가려내는 판단력을 키운다면 삶을 의미 있고 풍성하게 할 텐데 쉽지 않다. 우리 집 차고에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들이 상자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풀풀 먼지를 털며 남편과 함께 추억의 창고로 들어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그들을 깨울 날이 기다려진다. 혹시 숨죽이고 있을 진짜 돈이 되는 물건을 기대하며, 오늘도 진품 명품 쇼를 통해 분별하는 눈을 키운다. 누가 알랴. 나도 그 프로그램에 나가 무언가를 안고 줄을 서서 전문가의 감정을 기다리고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이현숙재미수필가

[미주통신] 내 마음의 ‘쿠션’

한 해를 보내며 ‘미주 중앙일보’에서 원고 청탁을 해왔다. 연말 선물로 독자들의 삶에 도움을 줄 만한 서적을 소개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나를 만든 한 권의 책’이란 명제로 감명 깊게 읽은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고 한다. 청탁을 받자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어 책장 구석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책을 끄집어내었다. 몇 년 전 권사 임직 때에 선물로 받은 많은 서적 중에서 그림이 눈에 뜨이는 표지가 있었다. 하얀 양장본의 27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겉장에는 바람에 넥타이를 휘날리는 샐러리맨이 서 있다. 그의 가슴은 출렁이는 파도 위에 돛단배가 위태롭게 흔들리는데, 허리와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바다는 깊어지고 짙은 초록의 심해에는 해초가 잔잔하게 흔들리는 평화다. 마음의 쿠션을 키우면 자유로워진다는 책 ‘쿠션’이다. 깊은 신앙심은 물론 살림도 예쁘게 꾸리는 분의 선물이라 인테리어에 관한 서적인가 했는데 저자가 자기계발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 조신영 씨였다. ‘물질적인 쿠션이 우리 육체를 딱딱함으로부터 해방시켜 안락한 느낌을 전달하듯, 영혼의 쿠션 역시 모든 불안정한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평안함으로 감싸 안아주는 힘을 갖습니다. 삶의 중심에 쿠션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은 불쾌한 상황이든, 두려운 상황이든, 형통한 상황이든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이나 사고를 즉흥적으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유로움이란 무엇일까요? 누구의 간섭과 통제도 받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선택하는 권리일 것입니다.’ 저자의 말을 읽는 순간 마음을 씻어주는 신선함이 있었다. 인간에게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완충작용을 하는 ‘쿠션’이 있다는 발상이 얼마나 큰 공감을 일으켰는지 2008년 비전리더쉽 출판사에서 초판 인쇄를 한 것이 2011년에는 35쇄까지 했다. 우리가 눈, 코, 혀, 귀, 피부 등의 감각기관으로 받는 자극은 운동기관을 통해 반사적 반응을 하지만 마음에 오는 자극에는 잠시 생각 후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짧은 순간에 하는 결정은 마음의 쿠션 두께에 따라 달라진다. 쿠션이 두꺼울수록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반응이 진중한 반면 그 공간이 얇은 사람은 자극의 충격에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여러 에피소드를 쉽고 간결한 문체로 엮어, 단숨에 읽어 내린 이 책의 메시지는 언제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를 깨운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내 마음을 휘저을 때는 소파 위에서 뒹구는 쿠션을 가슴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상상을 하며 혼자 웃는다. 사람이나 사건이 주는 충격에 대한 마음의 쿠션을 두껍게 키우는 일은 내가 살아가며 집중해야 할 과제다. 그래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보다 슬기롭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늘 마지막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벽에 걸면서 생각한다. 내 앞에 디밀어진 새해에는 또 어떤 발자국을 찍을까. 나의 반응과 선택에 의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스, 페르시아, 이집트 등 많은 땅을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세 가지 유언을 남겼다. 첫째, 나의 관은 저명한 의사들이 들고 가다오. 둘째, 내가 가는 길에 나의 재산을 모두 뿌려다오. 셋째, 나의 손을 관 밖으로 내어다오. 그는 아무리 유명한 의사도 죽음 앞에서는 어떤 힘도 없다는 걸, 세상에서 얻은 재물은 세상에만 머물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빈손으로 왔듯이 빈손으로 간다는 교훈을 남기고 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진정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명이 다하는 그즈음에 깨닫는 어리석음이 어찌 알렉산더 대왕에게만 있었으랴.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산다. 높은 포부를 가지고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도,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다는 열등의식으로 사는 사람도 살아가는 방법과 생각은 다르지만 죽음에 이르면 똑같은 후회를 한다. 학창 시절, 운동장에 서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줄 세우며 ‘기준’을 외친다. 기준으로 지명받은 아이가 손을 번쩍 들면 주위의 아이들은 모두 그 옆으로 모여들며 열(列)과 오(伍)를 만든다. 그것처럼 정신없이 엉키며 돌아가는 내 삶에도 ‘기준’이라는 것이 세워져 있으면 얼마나 선택이 쉬울까. 저자는 마음의 쿠션을 키우는 방법을 제시했다. 고결함에 이르는 의식을 계발하라. 풍부한 독서와 묵상으로 영혼을 살찌우라. 날마다 겸손의 우물을 깊게 파라. 호흡을 느낄 때마다 마음 쿠션을 생각하라. 부정적인 말은 입 밖에 내지 않기로 결심하라. 새해에는 이 다섯 가지가 기준으로 세워진, 더욱 푹신한 영혼의 쿠션으로 돼지처럼 태평한 2019년을 살리라 희망해 본다.성민희재미수필가

[미주통신] 소탐대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의 사자성어를 찾다 보니 소탐대실(小貪大失)을 만났다. 우리가 이미 많이 듣고 알고 있는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의 사자성어인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뜻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참 많은 것들과 마주하게 되고 경험하면서 서로 맞닥뜨리고 부딪치면서 상처도 주고받으며 세상을 아니, 사람을 더욱 알게 되고 관계의 폭과 깊이를 재어보며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보편화된 세상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것이 때로는 사람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제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내게 잘해주면 제일 좋은 사람이 아니던가. 11월 한 달을 고스란히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바로 욕심이 과해 화를 부른 격이 되고 말았다. 스토우 에이커스 컨트리 클럽(stow acres Country Club)은 우리 집에서 45분을 운전하고 가야 만나는 곳에 있다. 막내 녀석을 대학 기숙사에 내려놓고 와 시작한 것이 골프였다. 막내 녀석 하이스쿨 때 몇 번 필드에 나가보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그 자리에서 접고 말았다. 그리고 막내 녀석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골프를 시작하니 내 마음도 편했을뿐더러 남편의 후원도 넉넉해서 좋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10년이 다 되었다. 말이 10년이지 제대로 골프를 시작한 것은 3여 년 전 스토우 에이커스 클럽에 멤버십을 들고서 시간을 내었던 것이다. 그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남편과 남편 친구들과의 그룹에 여자 썸 하나 정도 잡히면 함께 가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했던 것이니 골프를 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찌 됐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옛이야기가 있듯이 2015년도에는 평생에 한 번 하기 힘들다는 ‘홀인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과 2017년 멤버십을 들어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가 2018년 올해는 한국과 더불어 여행 일정이 여럿 잡혀 있어 멤버십을 들지 않았었다. 그렇게 올봄에 한국을 다녀오고 스토우 에이커스 골프클럽에 골프를 하러 갈 때마다 따로 페이를 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뉴잉글랜드 지역에 단풍이 하나둘 들쯤에 더욱 골프가 재미가 있어졌다. 내 경우는 글을 쓰고 사진을 하니 행사에 맞춰 움직이는 일정이 많은 편이기에 이유 아닌 이유로 골프에 올인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니 골프 실력은 늘 꼴찌에 머물렀다. 그냥 재밌어서 따라다니는 식의 골프는 골프 예절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팀의 일원이 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 이곳 스토우 에이커 골프클럽 한인 여성 멤버들의 매력인지도 모를 일이다. 스토우 에이커스 컨트리 클럽에 모인 한인 여성 골퍼들은 약 25여 명 정도가 된다. 자녀들을 다 키워놓고 비즈니스도 돕고 이른 아침 자연과 마주하며 건강도 챙기고 취미도 되고 서로 간의 소통과 함께 삶의 지혜와 생활의 아이디어도 나누는 유익한 모임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토너먼트’와 ‘친선게임’을 통해 서로의 실력도 체크하고 다져보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아마추어 골프’의 모임인 것이다. 나는 2015년부터 함께 참여했으니 벌써 햇수로 4년 차가 되었다. 첫 모임을 시작한 지 6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골프가 이제는 서로에게 정이 쌓여가는 것이다.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경조사에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끈끈한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월 1일부터 2019년 멤버십이 시작되어 추운 날 이른 아침부터 무리한 탓일까, 한 달째 오른쪽 다리에 무리가 와 테라피를 받고 있다. 이제 많이 나아가고 있는데 욕심은 쉬이 버려지지 않으니 어쩔꼬! 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

[미주통신] 카페 지베르니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 내 좀 한적한 곳에 카페 지베르니가 있다. 도시의 분주함을 뒤로 한 프랑스 파리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 꽃이 가득한 모네의 정원이 있는 마을 지베르니. 그 소박함을 옮겨 놓은 곳이 카페 지베르니다. 지베르니는 카페라기보다 이웃집 거실 같은 공간이다. 눈에 띄는 빈 의자에 손가방을 툭 던져 놓는 것으로 영역을 표시한 나는 그곳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난다. 한인타운에서 일을 자주 봐야 하는 나는 지베르니를 곧잘 사무실처럼 이용한다. 차 한 잔을 주문하고 무한히 앉아 있어도 좋다. 주인장은 아마도 내가 자주 만나는 손님을 꿰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사적인 호기심을 가져 주지 않으니 그의 인물됨을 알만하다. 오랜만에 찾아가면 주인장은 그동안 잘 지냈는지 가벼운 안부를 물어준다. 사람을 아는 체하여 주면서도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으니 그 마음 씀의 경계가 고맙다. 그는 돈키호테의 로시난테처럼 충직해 보이고 사대부가의 장자처럼 신중해 보인다. 그는 내 찻잔이 언제쯤 비어버릴지 염려하며 물병을 들고 집사처럼 간헐적으로 다녀가기도 한다. 계산대 뒤로 나 있는 주방에서 손님이 주문한 샌드위치를 만들 때 그는 소녀를 등에 업은 소년처럼 발랄해지기도 한다. 크지 않은 카페 지베르니 안에서 그는 숙련된 연기자같이 장소에 따라 알맞게 감응한다. 지베르니에는 그 흔한 음악도 없고 탁자와 의자는 크기도 모양도 통일감 없이 제 좋은 곳에 놓여 있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나는 언제나 입구에서 먼 구석,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는 작은 테이블을 차지한다. 그 자리는 등 뒤쪽으로 다니는 사람이 없고 테이블 옆에 키 큰 스탠드등이 놓여 있어 책 읽기에 좋고 분위기도 그만이다. 내가 앉은 자리를 구석이 되게 해 준 벽 건너편에는 의자 네 개가 놓인 아늑한 공간이 또 있다. 나는 늘 그 자리가 궁금했다. 오늘은 망설이다 비어 있는 그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주인인 그가 메뉴판을 들고 오기에 넓은 자리를 혼자 차지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주인장은 뭐가 문제냐며 나의 지배권을 인정해 주었다. 과거에는 꽤 넓은 거실이었던 듯한 홀에는 야트막한 가구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다. 이 가구들이 벽 구실을 하면서 따사로운 공간을 연출한다. 지베르니는 언제 찾아와도 어제 같은 익숙함이 있는 곳이다. 테이블은 귀퉁이가 닳았고 벽은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풍의 풍경화로 채워져 있는데 햇살이 잘 드는 유독 환한 흰 벽에는 정물화를 걸어두었다. 가구 옆에는 가구와 어울리는 그림이 벽을 장식했다. 보라색 꽃이 화면을 가득 채운 유화는 내 이름은 중요치 않다는 듯 작가 사인도 없이 걸려 있다. 그 옆으로는 녹색이 뒤덮은 연못 그림이다. 깊고 짙은 녹색이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 ‘모네의 정원’인듯한데 모작인지 역시 작가 서명 없이 날짜만 쓰여 있다. 액자는 통일감이 없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아마도 다른 날 다른 곳으로부터 왔다는 뜻이리라. 나는 이 무규칙한 정돈이 좋다. 무규칙은 사람을 틀에 가두지 않는다. 그러나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혼돈과는 구별된다. 낡았지만 병들지 않은 소품이 익숙함을 만들고 익숙함이 홀 이미지를 만든다. 손님 중에는 젊은 얼굴이 많지 않다. 이민 1세대들이 나이를 잊고 멋을 부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2인용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여자는 챙이 좀 넓은 모자까지 쓰고 맞은 편 남자와 얘기 중이다. 모자 밑 그녀 얼굴엔 굵은 주름이 앉았는데 그녀의 손짓과 몸짓은 열다섯 소녀처럼 화사하다. 이미지의 엇갈림이 묘하게도 수굿하게 얽혀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지베르니 분위기다. 또 다른 넓은 탁자에서는 네댓 사람이 둘러앉아 무슨 회의를 하는지 신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한반도 문제를 놓고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는 모양이다. 나라 걱정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염려스러운 이들이다. 지베르니에는 시인, 화가, 나라를 걱정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드나든다. 그들이 지베르니 문화를 만들어간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베로나에 있는 줄리엣 생가에 들렀었다. 그곳에서는 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사연을 적어 줄리엣에게 보낸다. 자원봉사를 자처한 줄리엣들이 그 많은 메모에 일일이 답장을 해 준다고 했다. 상술로 보면 상술이지만 줄리엣에게 답장을 받다니 얼마나 로맨틱한 일인가. 지베르니 입구에는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나무 빛이 바랜 피아노가 놓여 있다. 피아노 위로는 철사로 조악하게 만든 메모함을 걸어두었다. 지베르니에 메모를 남겨 두고 떠나면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만 같다. 필연적 우연으로 귀한 인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뚜껑을 열어 건반의 울림을 듣고 싶어진다. 피아노는 깊은 울림으로 지베르니의 시간을 노래하리라.이성숙재미수필가

[미주통신] 그 아이는 지금

스치고 지난 인연인데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마약에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어디서 무엇을 할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니, 걱정된다. 그날, 그는 마치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마약단속반의 작전에 함께 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경찰서 바로 맞은편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많은 경찰과 수사관이 드나들었다. 마약단속반 중에 성격이 털털한 존에게 ‘청소년과 마약’에 대한 자문을 얻어, 한인 학부모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의 글을 쓴 것이 신문에 실렸다. 미국인은 작가를 우대하기에 가게주인에서 신분 상승(?)이 되며 친해졌다. 작전 나갈 때 데리고 가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어느 날 이번 작전은 간단하니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불상사나 사고가 발생했을 시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지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약속 시각, 경찰서 안에 있는 그들의 사무실로 갔다. 전투복 차림에 안전 조끼까지 차려입은 존과 팀원을 대하는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가 실감 났다. 발길을 돌리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나를 제외하고 한 묶음의 서류를 모두에게 돌리며 브리핑했다. 6개월 동안 관찰한 경과와 오늘 체포할 마약 판매상의 신상에 대한 자료다. 존이 여자경관에게 빌려온 안전 조끼와 헬멧을 나에게 입혀 주었다. 어찌나 어설픈지 조금 전의 긴장감은 간데없이 나를 빙빙 돌려세우며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평범한 푸른색의 밴은 안을 개조해 사람이 앉을 수 있게 ㄷ자 모양의 의자와 무전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여덟 명이 앉으니 꽉 찼다. 오늘의 작전을 주도한 웨인은 왼쪽 다리를 가늘게 탁탁 털었다. 평소 느긋한 존도 꽉 쥔 장총을 쉴 새 없이 손가락으로 토닥토닥 두드렸다. 고르지 못한 숨소리가 바닥에 깔린 카펫 위로 내려앉고, 지지직대는 무전기의 단발 음만이 혼자 떠들고 있다. 내가 침을 삼키면 그 소리에 고요가 깨질까 봐 입안에 가득 머금었다.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매번 작전 나갈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들의 무거운 숨이 천장에 얼룩으로 남아 있다. 차가 멈추었다. 눈에 익은 골목 같은데 어딘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존이 잠시 기다리라고, 있으면 곧 데리러 온다고 했다. ‘자, 하나, 둘, 셋’ 신호와 함께 문을 여니 모두 신속한 동작으로 뛰어내렸다. 차 안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넓어진 공간이 낯설고 두려웠다. 시곗바늘은 10분쯤 지났다고 보여 주는데 마음으로는 10년이 흐른 것 같다. 존이 차 문을 열었다. 그는 비디오카메라를 챙겼다. 존을 따라 어느 집 안으로 들어섰다. 벌써 마약 탐지견과 단속반이 구석구석 뒤져 엉망이라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지 망설여졌다. 거실에는 일가족처럼 보이는 다섯 명이 소파에 앉아 있다. 존은 그들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중에 15살 정도의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기다리는 작은 아들과 비슷한 나이다. 움찔한 나와는 달리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의 눈은 텅 빈 듯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는데, 너무나 생소해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잠시 잊게 했다. 무엇이 저 아이를 저토록 무심하게 만들었을까. 원망이나 두려움도 없는, 아니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반항이나 호기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생활비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겠지. 마약 탐지견이 요란스럽게 짖는 소리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부엌의 캐비닛 안쪽에서 비닐로 돌돌 말린 벽돌 크기의 뭉텅이 두 개를 찾아냈다. 압축된 마리화나다. 시리얼 상자 안에서 여러 개의 작은 봉투에 나누어 담긴 가루로 된 마약이 들어있다. 마약은 빠지긴 쉬워도 빠져나오기는 힘든데, 이 집의 가장은 길잡이 노릇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그 늪으로 잡아끌었을까. 그들이 잡고자 했던 용의자는 집에 없었고, 만삭인 부인만 참고인 자격으로 데려간다며 경찰차에 태웠다. 작전은 끝났다. 증거물을 압수하고 돌아서는데 그 아이의 서글프도록 무심한 눈동자가 자꾸 떠올랐다. 어떤 삶을 담고 자랐으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오늘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삭힐까. 한창 꿈에 부풀어 있을 나이에 삶을 달관한 듯, 무관심한 아이의 태도는 앞으로 그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뒤집히고 헤집어진 그 집안의 옷장과 서랍만큼이나 한 가정을 헝클어트린 마약의 손길이 섬뜩했다. 다친 사람 없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마약단속반 팀은 사무실로 가는 길에 나를 가게에 내려 주었다. 걱정하며 기다린 두 아들이 반겨주었다. 작은아들이 어느새 서른 살이다. 텅 빈 눈의 그 아이도 비슷한 나이였는데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그 고통스러운 날에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동양 여인을 기억이나 할까.이현숙재미수필가

[미주통신] 산불이 남긴 사람 사는 이야기

캘리포니아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한바탕 치르는 홍역이 있다. 오랜 가뭄으로 인한 고온 건조한 날씨가 만드는 산불이다. 우거진 고사목을 태우는 불에 산타아나 바람까지 가세하면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산불로 이어진다. 올해도 역시 캘리포니아 곳곳에서 열 건 이상의 화재가 일어나 수천 에이크가 전소된 것은 물론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주요재난지역 선언 요청을 승인하고 피난민 원조를 위한 연방 자금 지원을 하기로 했다. 몇 달에 걸쳐 신문의 1면은 강풍. 산불 등의 단어가 커다랗게 지면을 채우고 TV는 지붕 위로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꽃과 공중에서 물을 뿌려대는 헬리콥터, 차 위에 짐을 묶어 얹고 피난민 행렬처럼 동네를 떠나가는 주민을 비춰준다. 비록 내가 겪는 일은 아니지만 연일 눈과 귀를 사로잡는 뉴스에 마음이 몹시 심란한데. 진흙에서도 말갛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그 북새통 속에서도 가끔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미담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올해 9월, 유타주의 우드랜드 힐스 지역에도 산불이 났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한 커플이 결혼식장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자신의 집을 버리고 탈출을 해야 했다. 웨딩에 필요한 모든 물품은 물론 장소까지 잃은 그들의 사연이 이웃으로 퍼지고 페이스북과 트윗에 오르자 500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들을 돕겠다고 나섰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그 커플의 결혼을 위하여 자원 봉사자들은 장소를 제공하고 새벽부터 데코레이션을 하고 케이크를 구웠다. 기억에 남을 환희의 날을 만들어주겠다는 낯선 사람의 온정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큰 선물을 암담한 신혼부부에게 준 것이다. 더욱 따뜻한 이야기도 있다. 산불 진화를 위해 일하던 소방관이 아직 불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주인이 미리 피신한 빈집을 둘러보러 들어갔다. 그는 거기에서 작은 쪽지를 발견했다. ‘우리는 잘 피신했어요. 소방관 아저씨, 혹시 필요하시면 잡수세요. 음료수와 음식이 맞은편 현관 냉장고 속에 있답니다. 건투를 빕니다.’ 주인은 귀중품을 챙겨서 나가기에도 급박한 시간에 누군가를 위해 쪽지를 남겼다.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소방관은 깨알 같은 글씨로 땡큐 노트를 쓰고 그 쪽지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훈훈한 이야기 두 마당이다. 작년 12월, 캘리포니아의 벤추라 카운티에 갑작스러운 강풍을 동반한 산불이 났다. 주민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화마 속에 갇히기도 하고, 또 어떤 가족은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한 채 집을 탈출해야 했다. 마이어스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후 돌아온 집터에는 타다 남은 벽돌뿐 아무 것도 없었다. 결혼반지조차 건지지 못한 아내의 슬픔은 대단했다. 남편은 잿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그는 기어이 시커멓게 그을린 반지를 찾아내었다. 환하게 밝아진 아내 앞에 무릎을 꿇은 남편은 젊은 시절 추억 속의 프러포즈를 다시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이 SNS에 오르자 많은 사람이 열광했다. 비록 산불로 인하여 모든 것은 잃었지만 부부간의 사랑은 더 깊어졌다는 이야기다.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 같은 한국 사람 이야기도 있다. 작년 9월, 내가 사는 오렌지카운티에도 산불이 났다. 불이 난 애나하임 힐스 동네 가까운 곳에 기러기 부부로 살던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사업 때문에 한국에서 노모와 함께 살면서 아내와 자녀를 만나러 자주 들어왔다. 어느 날 저녁상을 물리고 뉴스를 보던 노모가 깜짝 놀라며 아들을 불렀다. “저기가 너희 동네 아니니? 내가 미국 갔을 때 많이 보던 곳 같은데?” TV 화면에 비친 주택가가 자기 동네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단다. 평화로운 정원을 끼고 있는 집 뒤의 산이 불에 활활 타고 있는 모습이라니. 정신이 번쩍 들어 미국의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응, 아직은 괜찮은데 혹시 바람이 이쪽으로 불면 우리 동네도 무사하진 못할 거래. 경찰이 와서 그러는데 귀중품만 일단 챙겨 두라네. 여차하면 그것만 들고 나가야 해.” 으악, 순간 숨겨둔 비자금 생각이 났다. 곧이어 아내의 말, “혹시 당신 거 뭐 챙겨둘 만한 거 있음 말해.” 그는 고백을 안 할 수가 없었다. “ 응, 그… 내 책장 끝에 꽂힌 ‘100살까지 사는 법’ 이란 책 있지? 그 책만 좀 챙겨줘.” 한 달 후, 출장을 겸하여 미국에 돌아온 남자는 너무나 무사한 집에 들어와서 비자금이 빠져나가 아무 소용이 없어진 ‘100살까지 사는 법’을 열심히 열심히 뒤적거렸다고 했다.성민희재미수필가

[미주통신] 합리적인 부모부양 5계명

미국에서의 부모부양이란 한국과는 조금 다른 양상의 모습이 현실이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오십 중반에 있는 한국인의 정서는 여전히 부모부양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더욱이 요즘 현대사회는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베이비부머 시대의 오십 줄에 든 중년 주부들이 모이면 손자 손녀 얘기와 더불어 시부모님의 부양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 역시도 나이 들었을 때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또한, 부양 문제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계획하고 결정할 것인가. 이렇게 삶의 현실을 놓고 마주하며 나누는 얘기는 참으로 실감 나는 얘기들이다. 오늘 낮에는 한 모임의 점심 약속이 있어 다녀왔다. 모인 분들 중에는 연배가 나보다는 더 있으신 분들이 계시고 또래가 몇 있었으니 주고받는 얘기의 주제는 비슷비슷했다. 서로에게 공통분모의 주제가 성립되니 현실적인 얘기이지만, 딱딱하지 않아 좋고 서로에게 삶의 에너지를 실어주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주 상쾌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우연하게도 한국방송 아침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우연이었지만 우연이 아니듯 낮에 모임에서 나눈 얘기와 맥락이 비슷한 주제의 ‘연로하신 부모님 누가 모셔야 할까?’란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합리적인 부모부양 5계명이란 답을 제시해주며 말이다. 요즘처럼 바쁘게 사는 현대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보자면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일조차도 버거운 일이 아니던가.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인가 바라고 키운 것은 아니지만, 뭔지 모를 서운함이 쌓이고 자식은 자식 대로 하고 싶은 마음보다 경제적인 현실에 쫓기며 사는 자신의 처지가 때로는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나마 고부간의 관계가 유연하면 좋으련만 그것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있는 아들과 남편으로 사는 입장은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서로의 사정을 아는 입장에서 누구의 편을 들 수도 없는 노릇 아니던가. 나 역시도 결혼 후 시댁에서 2년 6개월을 함께 살아봐서 너무도 잘 아는 얘기다. 아침 프로그램의 토크쇼에 나온 이들의 대화 속에서 서로의 처한 입장과 그에 따른 전문가들의 나누는 얘기들은 내 마음과 가슴에 쏙쏙 들어왔다. 그것은 한 가정의 며느리자식으로서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와 아이들의 엄마로서 앞으로 더 나아가 아들과 며느리의 시어머니로서의 입장이 되어 더욱 가슴에 파고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그뿐일까. 삶의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살고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오십 줄에 올라 중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쯤이면 허리도 펴고 싶어지고 쉼을 가져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여행 계획도 슬슬 세워보기도 하고 어디로 갈까 싶어 여기저기 휴양지의 카탈로그도 끄적거려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삶이란 그렇게 여유로운 선물이 미리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쯤 연로하신 부모님의 모습이 스쳐 지나는 것이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내 코가 석자라는 이유를 대며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살던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이 미국에 계신 경우는 다르지만, 한국에 부모님이 계신 분들은 가끔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부모님도 제대로 찾아뵙지 못하니 늘 송구스럽고 곁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형제들에게 고마움에 앞서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이다. 부모님은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시지만, 그에 따른 형제들이야 어찌 한 자식일까 말이다. 부모님을 모시는 일 앞에서는 서로 뒷걸음질치지만, 부모님의 재산 앞에서는 서로 앞다퉈 달려들지 않던가. 그것이 누구이든 간에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을 어찌 쉬 다스릴까 말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은 ‘부모의 부양’이라는 말이 내 지금의 입장만이 아닌 내 앞으로의 처지에 대해 묵인할 수 없는 현실인 까닭이다. 오늘 낮에 한 모임에서 여럿이 나눈 삶의 얘기와 한국 프로그램 토크쇼에서 나눈 ‘연로하신 부모님 누가 모셔야 할까?’란 주제의 얘기는 우리 모두의 현실인 것이다. 여기서 전문가는 ‘합리적인 부모부양 5계명’이라는 답을 제시해준다. 첫째 100세 인생 부양계획 세우기, 둘째 주위의 시선보다 내 상황 살피기, 셋째 부부간 부모부양 사전 의견 수렴, 넷째 형제간 부모부양 사전 역할 분담, 다섯째 유료 요양 및 간병시설 정보수집이라고 말이다.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

[미주통신] 주차장 리모컨을 리셋하던 날

거의 한 달을 낡은 주차장 셔터 리모컨 바꾸는 일로 소진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주차장 셔터를 여닫는 리모컨이 작동하다 말다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건전지를 갈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보냈는데 결국 오늘 멈춰버린 것이다. 주변에서는 건전지를 잽싸게 바꾸지 않은 나의 게으름을 탓했지만 내게는 오직 자신만이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기계나 전자제품 만지는 일에 천성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어찌어찌 어르면 리모컨이 말을 듣기도 했으니 좀 더 버텨왔던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서 은근히 누가 대신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갑자기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자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외출할 때마다 매번 수동으로 주차장 문을 올리고 차를 빼낸 후 다시 종종걸음으로 뛰어가서 주차장벽에 붙어 있는 셔터 닫힘 스위치를 작동해야 했다. 그런 후 다시 힐을 신은 채 동동동 달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진을 빼고 운전대를 잡으면 피곤이 몰려왔다. 건전지 사러 어디로 가야 할까 여기에 맞는 건전지는 뭘까,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려니 에너지가 많이 든다. 남에게 쉬운 일이 내게 쉽지 않을 때 삶은 고단해진다. 나는 리모컨을 통째로 들고 자동차 부품을 전문으로 파는 오토존 매장부터 찾았다. 건전지를 갈아야 할까 리모컨을 교체해야 할까 물었다. 직원은 리모컨을 갈아야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혹시나 싶어 건전지를 사들고 나왔다. 집에 와서 주차장 앞에서 건전지를 교체한 리모컨을 눌러봤지만 셔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토존 직원의 말이 맞는가 보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든다. 건전지를 환불하러 가야 하는데 운전을 하고 다시 집을 나서자니 성가시다. 다시 또 며칠이 흘렀다. 미국 생활 오래 한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홈디포에 가보란다. 홈디포는 집수리에 필요한 각종 자재와 잡동사니를 모아 놓고 파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은 1950년대 초 형성된 마을이다. 거의 70년이 다 된 마을이고 내 집 역시 그때 지어졌다. 미국 사람들은 오래된 집이나 낡은 물건을 자주 버리거나 바꾸지 않는다. 그들은 고쳐 쓰고 닦아 쓰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새것을 좋아하는 한국이 30년만 되면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것과 대조된다. 문제는 그동안 주인이 바뀌면서 조금씩 수리된 집들이 있지만 내 집은 내가 사기 전 먼저 주인이 40년 넘게 살아온 집이라 내부 건 외부 건 외양은 깔끔하게 관리는 되어 있었지만 속사정은 곳곳이 수리를 요했다. 나는 이사를 오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했다. 내 집은 동네에서 가장 늦게 리모델링한 집이 되었다. 문제는 주차장 공사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돈도 아껴야 했고 보기에 말끔했기 때문이다. 실내가 아니라 그리 신경 쓰이는 공간이 아니기도 했다. 홈디포 직원은 내가 들고 간 리모컨을 보더니 난색이다. 이 모델은 90년대 초 단종되었다며 같은 회사 다른 제품을 가져가 보라며 건넨다. 안되면 다시 바꾸러 오라는 친절함과 함께. 깨알 같은 잔글씨 제품 설명서에는 1995년도 이후 주차장에 사용할 수 있다는 문구가 특별히 굵은 글씨로 적혀 있다. 나는 속으로 먼저 주인이 그동안 주차장 셔터를 한 번쯤 교체했기를 바라면서 그걸 사들고 왔다. 오자마자 포장을 뜯고 본래의 리모컨과 새 리모컨을 옆에 두고 코드를 조정했다. 원 리모컨과 같은 코드를 새 리모컨에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다리를 놓고 주차장 문 센서박스를 열었다. 40년 묵은 먼지가 낡은 이불솜처럼 눅진하게 쌓여 있다 덩어리로 떨어진다. 설명서대로라면 센서박스에는 재설정 버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집 주차장 센서박스에는 아무리 찾아도 재설정 버튼이 없다. 낭패다. 주차장 설비 전문가를 찾아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쩌면 주차장 도어 시스템을 몽땅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몰려왔다. 인건비가 비싼 나라다 보니 미국 사람들은 간단한 집수리는 본인들이 예사로 한다. 취미로 목공이나 집수리를 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러나 건축에 취미가 없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곤혹스런 일이다. 사람을 부르면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차치하고, 목공도 전기도 모르고 도대체 어디 가서 사람을 찾아야 할지조차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진땀을 뺀다. 결국 주차장 셔터는 당분간 더 열리지 않게 되었다. 쇠심줄 같은 며칠이 지났다.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자잘한 일상이 탈 없이 굴러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지, 감사를 잊고 살던 뇌세포가 자동 리셋 중이다. 수선 떨며 외출전쟁한 지 다시 사흘째, 주변 도움을 받아 주차장 설비하는 사람을 불렀다. 그는 간단히 인터넷으로 리모컨을 주문한 후 물건이 도착하면 구형 리모컨 코드를 똑같이 입력해보라고 했다. 그는 고맙게도 출장비도 안 받고 돌아갔다. 1주일을 기다려 리모컨이 도착했다. 거의 2주 만에 주차장 출입이 자유롭게 되었다. 리모컨 작동으로 주차장 문이 스르륵 올라가던 순간 나는 감격에 빠졌다. 삶을 살아내고 있구나 싶은 가슴 뜨거운 안도감이 몰려왔다. 위대한 예술작품 중에는 일상을 담아 낸 것이 많다. 가치 있는 창작은 리얼리즘적 본성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낡은 리모컨으로 일상이 기적임을 배웠다.이성숙재미수필가

[미주통신] 색 다른 가족

캐런의 가족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녀 남편은 맥도날드의 기술자로, 50대의 백인 부부다. 그들에게는 9살인 이앤, 4살인 개빈, 3살인 칼슨, 이렇게 아들이 셋이다. 갑자기 왁자지껄 집안이 떠들썩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집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가족은 색이 다르다. 펫과 캐런은 결혼 전에 아이를 낳지 말고 입양하자고 약속했다. 펫은 자신이 입양아로 행복하게 살았기에 돌봐준 양부모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는 생각이었고, 사회봉사센터에서 일하는 캐런도 입양아에 관심이 많았다. 결혼 후에 입양센터에 등록했다. 어느 날 텍사스의 입양센터에서 16살 미혼모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가서 만났다. 잘 키울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출산 예정일을 기다리며 아이 맞을 준비를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집으로 데려와 아들 키우는 재미에 쏙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아이의 두 살 생일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다. 소아과의사가 이건 저런 검사를 더 받으라고 하더니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내렸다. 주위에서는 평생의 짐으로 남겨질 아이를 왜 키우느냐, 왜 고생을 자처하느냐며 생모에게 보내라고 설득했다. 생모에게 보내지면 아이는 더 불행해질 것을 알기에 그들은 포기할 수가 없었단다.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다. 사회보장국에서 치료비뿐 아니라 많은 재활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캐런은 직장을 그만두고 이앤에게 매달렸다.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아들을 위해 자동차 내부와 집안의 구조를 바꿨다. 세상에는 가족이 필요한 아이가 아직 많다는 이유로 흑인인 개빈과 중국인 칼슨을 입양했다. 한동안 어린 두 아이는 형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손가락으로 찔러도 보고, 반응을 보기 위해 슬쩍 때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유치원에서 배운 춤과 노래도 보여 주며 기쁨조가 되어준다. 가끔 그 집에 가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이앤을 위한 병원용 침대와 산소통 이외에 의료 기구와 약품이 방안 가득하다. 거실에는 개빈과 칼슨의 장난감이 발에 걸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두 개구쟁이 때문에 소파에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 가운데서 캐런은 아이들 간식을 만들고, 시간 맞추어 이앤의 약을 챙긴다. 집으로 방문하는 간호사와 물리 치료사에게 이앤의 상태를 기록했다가 알려 주는 일도 벅찰 텐데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원더우먼이다. 가끔 그녀는 주위 사람의 편견에 마음이 상한다. 왜 자기한테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는지, 좋은 일을 한다고 칭찬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가족은 사랑으로 묶여 사는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함께 사랑을 나누고, 정을 쌓으며, 의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가정이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또 아이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면 화가 난다는 그녀의 항변에 뜨끔했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지. 내 자식 키우며 마음 상하고 속 터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남의 핏줄을 왜 키우나. 입양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는 또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백인 부모에 백인 흑인 동양인 형제끼리 겪는 문화적인 차이와 바라보는 주위의 눈에 잘 적응하려는지. 이런저런 걱정이 꼬리를 물고 생각나기 때문이다. 이앤은 휠체어에 앉아 동생들이 맛나게 먹는 것을 바라봤다. 그 아이는 미소 천사다. 작년에 그가 폐렴에 걸려 아동 응급 병동에 있을 때 병문안을 하러 갔었다. 심한 기침에 평소보다 가래가 심하게 끓고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우리를 보고 미소를 짓던 아이다. 그의 손을 꼬옥 잡으며 턱받이로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아줬다.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몸을 부르르 떨며 기쁨을 표현했다. 푸르고 맑은 그의 눈 안에 수많은 말이 담겨 있다. 수줍음이 많은 칼슨은 동양인이기에 마음이 먼저 간다. 다른 환경의 틈바구니에서 그 아이가 온전히 자리매김할지 걱정된다. 갈비와 잡채를 그의 접시에 올려줬다. 칼슨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든다. 수줍어하지 말고 당당해지렴. 개빈처럼 말썽을 부려도 씩씩하게 개구쟁이로 자라면 좋겠다. 세 아이가 도와주고 챙겨주는 온전한 가족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돌아가는 길도 복잡하다. 두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고 이앤의 휠체어를 밀어 차 안에 장착시키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차 안에는 백인 흑인 동양인. 피부색은 다르지만 진정한 가정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가족이 타고 있다. 사랑을 나누고, 정을 모으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칼슨이 나에게 천천히 말했다. “숙! 내 이름은 Calson이 아니고 C.a.r.s.o.n이야.” 내가 무심결에 동양인이 헷갈리기 쉬운 L과 R을 바꾸어 잘못 불렀나 보다. 저 아이가 잘 적응하고 있구나. 다행이다. 멀어지는 차를 보며 그들의 행복을 빈다. 색 다른 가족을 색다르게 보지 말아야겠다.이현숙재미수필가

[미주통신] 까르페디엠

딸네 가사도우미가 타주로 이사를 가버렸다. 할 수 없이 구인 광고를 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오늘도 여섯 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모두 어려운 살림을 하는지 버스를 타고 왔다고도 하고 걸어서 왔다고도 한다. 그들의 사연을 듣다가 주제넘은 말을 하고 말았다. 힘이 들더라도 현재를 사랑하며 즐기라고.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고 지금 이 환경은 자신의 운명에게 주어진 최선의 상황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도 한 살도 안 된 아기를 남에게 맡기고 직장을 다닐 때가 있었다.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눈물범벅이 되어 울던 딸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게 눈에 보인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귀퉁이에 겨우 뿌리를 내린 그때는 어느 날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질 거라는 꿈으로 살았다. 그랬기에 그 시간은 오직 미래를 위한 디딤돌일 뿐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 짧은 순간으로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부려놓고 살아갈 시공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여겼기에 충만하게 현실을 즐기지 못했다. 어느 날 김한길씨의 고백 글을 읽었다. 그는 소설가 이어령씨의 딸 이민아씨와 결혼을 하여 미국으로 왔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류한 채 오직 성공을 위해 매진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난 후 드디어 그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고 이민아씨는 변호사가 되었다. 단칸집을 떠나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대저택으로 이사를 했다. 드디어 두 사람은 행복을 위해 시간과 물질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소소한 기쁨과 작은 환희, 이해와 배려, 소통과 나눔이 없었던 가정생활은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주지 못했다. 성공을 위해 유보되었던 모든 것은 그들을 기다려준 것이 아니라 조금씩 소멸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한길씨는 말했다. “마침내 우리는 이혼에 성공했다.” 그들은 사회적인 성공과 더불어 이혼에도 성공했다는 슬픈 글이었다. 그 글은 내게 깊은 공감을 주었다. 올라갈 때도 꽃을 보며 즐길 줄 아는 여유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스페인의 속담에 ‘집에 불이 나거든 그 불로 몸을 녹여라’라는 말이 있다. 불이 나서 재산이 모두 재가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불로 몸을 녹이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뜻이다. 어떠한 불행의 순간이 오더라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현재를 잡으라(Seize the Day)라는 말은 현재의 삶에 온전히 젖어들어 흡족하게 누리라는 것이다. 이 현실은 바로 나의 운명이고 내가 걸치고 살아야 할 맞춤옷이다. 내가 딛고 가야 할 길이기에 혹여 돌부리가 있으면 비키거나 밟으며 지나가고 잡초가 우거져 있으면 헤집고 가야한다. 바람이 불면 옷을 여미고 비가 오면 큰 나무 밑에서 그치기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힘들다고 비켜갈 수도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는 나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주인공 에반은 자기의 유년시절 일기를 읽으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능력이 생긴다. 과거의 시간 속에 후회되는 시점으로 돌아가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여 다른 인생을 살게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친구와 장난으로 저질렀던 과거의 일을 그때와는 다른 상황으로 돌려놓는다. 그러나 모든 사건을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선택으로 바꾸었지만 결과는 또 다른 고통과 파장을 몰고 온다. 그것은 마치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 한번이 뉴욕의 태풍을 일으키는 것처럼. 내가 겪고 지나가야 할 현실을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며 바꾼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변화였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혼란과 충격적인 사건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비록 과거가 불만스럽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며 내 과거가 만들어 낸 현재를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였다. 과거의 어떤 일은 그때 그 시간에 그렇게 발생했어야 했고 그때에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이 바로 내 운명이었다는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그 어떤 것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처세인가. 과거가 만들어 낸 현재를 거부하지 말고 소중히 여기고 충족히 살아주는 것이야말로 내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다. 조엘 오스틴 목사는 ‘긍정의 힘’ 서문에서 ‘꿈을 이루고, 성공하고, 행복을 쟁취하는 비결은 오늘을 온전히 사는 것이다’ 라고 했다. 소설책 한 권처럼, 하루가 한 페이지처럼 넘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한번 넘기고 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오늘 하루는 단 한 자루뿐인 내 생명의 불꽃이 타내려가고 있는 순간이다. 까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을 철저히 사랑하고 누리고 아껴가며 살자.성민희재미수필가

[미주통신] 도범 스님의 책 출간을 축하드리며

아주 오랜만에 도범 스님을 뵈었다. 뵈어야지, 뵈어야지 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이 흘렀다. 오래전에는 교인이지만, 사월초파일이나 동짓날에 ‘문수사’ 절에 행사가 있으면 일 년에 한두 번 다녀오곤 했었다. 그렇게 참석하며 회주이신 도범 스님께 인사도 드리고 주지이신 혜각 스님도 뵙고 오곤 했었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 몇이 절에 다니는 분들이 있어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다녀왔었다. 또한, 나와 성향이 비슷한 같은 교회의 지인께서도 도범 스님과 잘 아는 분이니 그렇게 특별한 날에는 함께 절에서 만나 뵙곤 했었다. 올해 들어 3월이었을까. 교회에서 닥터 김(권사님)을 뵈며 우리 하루 날짜를 정해 문수사 도범 스님과 함께 점심을 하자고 얘기를 시작했는데, 서로 바쁘니 날짜 정하기가 어려웠다. 도범 스님을 뵌 지 꽤 오래되어서 어찌 지내시는지 안부도 여쭙고 싶었기에 더 늦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엊그제 교회에서 김 권사님을 뵙고 아예 스님께 여쭙지도 말고 날짜를 정하자고 의논을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스님께 안부를 여쭈며 약속 날짜와 장소를 말씀드리고 괜찮으신가 여쭈었다. 시간은 괜찮고 장소만 다른 곳이면 좋겠다고 답을 주셨다. 그렇게 시간에 맞춰 장소에 가서 두 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범 스님께서 곧 도착하셨다. 스님의 손에 두 권의 책이 들려져 있었다. 오랜만에 뵈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스님의 모습을 뵈니 편안해 보이셔서 보는 나도 참으로 마음이 좋았다. 그리고 이번에 책이 출간됐다며 전해주신다. 조계종출판사에서 출간된 ‘골프 공과 선사’라는 제목의 ‘불교의 공에 답하는 골프 이야기’의 책이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보스턴 문수사’에서 골프대회를 연다. 불교인뿐만이 아닌 누구나 참가해서 함께 나누고 누리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도범 스님은 대학시절 대학생불교연합회 발기인으로 불교에 입문하여 1967년 해인사에서 일타 스님을 은사로 하여 출가한 뒤 해인사 선원을 시작으로 통도사 극락암, 태백산 도솔암, 봉암사, 용문사 염불암, 심원사, 망월사, 은해사, 기기암 등에서 참선수행하였다. 해인사 율원 제1회 졸업생이다. 고우 스님에 이어 봉암사 주지를 역임하였고, 서암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결제는 물론 산철결제까지 외호하였다. 그때 수많은 관광객이 봉암사를 찾아 스님들의 참선수행에 방해가 되자 선원 스님들과 함께 일주문 산문을 막았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봉암사 산문철폐가 지속되고 있다. 10ㆍ27법난 당시에는 봉암사 산철결제 대중으로 계시던 탄성 스님을 비롯하여 여러 대덕 스님들을 모시고 총무원에 올라가 종단사태를 수습하는 데 그 역할을 다하였다. 1992년 세계적인 명문대학과 교육으로 유명한 도시 미국 보스턴에 문수사를, 2년 뒤에는 마이애미에 보현사를 창건하여 미국 포교에 힘쓰고 있다. ‘깨어 있는 마을’이란 뜻의 웨이크필드 호숫가에 자리 잡은 문수사는 하버드 대학, MIT와 가까운 곳에 있어 한국 불교를 알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많다. 미국동부승가회 초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문수사와 보현사 회주를 맡아 한국불교를 민족이 다른 사람들에게 포교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에서 전법을 하면서 낯선 풍토와 환경으로부터 건강도 지키고 마음수양도 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인 골프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발견하고 그 깨달음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불교의 공(空)과 골프는 어떻게 만나는가. “법구경(法句經)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기면 남에게 원한을 사고, 지면 스스로 비굴해지나니, 이기고 진다는 마음을 버려라. 다툼이 없으면 스스로 편안하리.” 사뭇 골프와 스님을 떠올리면 잘 어울리지 않을 듯싶은 그림일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너무도 잘 어울릴 모습이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깊이 명상하는 모습의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운 조화라는 생각을 해본다. 도범 스님의 ‘골프 공과 선사’ 출간을 축하드리며….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

[미주통신] 가슴 벅차게 부를 노래

평소에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라디오 방송 김숙영 아나운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곧 있을 남편 생일에 참석해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한다. 내겐 좀 황당한 부탁이다. 나는 가수가 아닐뿐더러 노래를 정말 못하는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노래방 갈 일이 있을 때도 6,70년대 노래로 분위기를 깨는 게 나다. 내 노래 실력을 모르지 않는 사람의 부탁이라 이유를 안 물을 수 없었다. 왜 그런 부탁을 나한테 하느냐고. 김 아나운서의 대답이 사람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많지. 그런데 정말 축하해 줄 사람의 노래를 듣고 싶은 거야. 동생 마음을 내가 아니까 거절하지 말고 한 곡 불러줘. 김 아나운서 남편은 맹인 목사다. 왕년에 가수활동을 한 전력도 있다. 김 아나운서는 성악가다. 틈틈이 노인 복지관을 찾아 장구춤도 보여주고 노래도 부른다. 목소리와 마음 씀이 정말 고운 사람이다. 김 아나운서는 재혼으로 김 목사를 만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김 아나운서가 가진 것 없는 맹인 목사 남편과 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녀는 남편을 의지하고 받들며, 주변에도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 오갈 데 없는 사람을 재워주고, 차비까지 들려 보낸다. 하룻밤 묵어가라고 불러들인 사람 중에는 그대로 주저앉아 사는 사람도 이미 여럿이다. 이들은 몇 년째 한솥밥을 먹으며 식구처럼 지내고 있다. 여섯 살 때 길에 버려진 아이를 만났다. 김 아나운서는 이 애를 애지중지 길렀다. 지금 그녀는 결혼하여 아이 엄마가 되었다. 둘은 서로를 엄마와 딸이라 부른다. 김 목사는 어릴 때 열병으로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통에 주저앉지 않고 점자 독서에 매달렸다. 그는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다룬다. 노래도 잘하고 유머도 수준급이다. 목회도 열심이다. 보통 맹인들의 생애가 장애 스트레스로 인해 길지 않다고 하는데 김 목사는 칠순을 병 하나 없이 맞았다. 있는 것 다 내어 주고 사는 삶이 평안하기만 할까 싶지만 그들은 참으로 평안히 산다. 김 목사가 칠순을 맞아 생일잔치 겸 콘서트를 마련한다고 한다. 그 자리에 축가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이런 걸 진퇴양난이라고 하나보다. 거절하자니 축하의 뜻이 희석되는 거 같고 받아들이자니 내 능력 밖이다. 나는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남의 잔치에 가서 재롱이나 부릴 나이는 아니지’ 하는 생각 뒤로, 칠순 잔치보다도 두 사람의 사랑이 귀하게 느껴져서 나는 사랑노래를 불러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일주일이 지났다. 무슨 노래를 할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 적당한 노래를 찾지 못했다. 바쁜 와중에 짬짬이 유튜브를 틀어놓고 그들의 사랑에 어울릴만한 노래를 고르는 중인데, 좋은 노래는 많지만 내 성량의 한계에 안 걸리는 노래가 없다. 게다가 나는 갑상선 수술로 성대를 무리하게 사용할 수가 없다. 목이 곧 아파오기 때문이다. 고음이 들어간 노래를 피해야 하고, 가사는 따듯하고 아름다워야 하고, 리듬은 조금 빨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노래를 고르지만 쉽지 않다. 또 너무 철 지난 노래는 아무래도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 있겠다 싶어 너무 오래되지 않은 익숙한 곡으로 좀 신나는 댄스곡을 찾으려고 고심한다. 내가 살면서 별로 해본 적 없는 고민이라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글을 쓰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노래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일주일 내내 나는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찾아 듣는 중이다. 장윤정의 신나는 트로트, 해바라기의 선율 고운 발라드, 조용필의 비장감 있는 노래, 노래방에 단골로 등장하는 국민가요들…. 특히 좋아하는 장르도 특별한 기호의 가수도 없는 나는 닥치는 대로 이 곡 저 곡 불러본다. 아직 노래는 선택하지 못했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내 마음이 왜 이리 좋은지 말이다. 나는 종일 이 노래 저 노래 불러보고, 운전하면서도 어린애 옹알이하듯 노래를 읊는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와 가까운 비치에 나가 바다를 향해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 사랑이 차오르는 것이다. 나는 요즘 까닭 없이 매사 즐겁다. 평소보다 수다가 늘었고 웃는 일이 많아졌다. 내 노래를 고르느라 애들도 덩달아 신났다. 나는 식구들 앞에서 예선전을 치른다. 내가 노래 한 곡을 불러 재낄 때마다 우리 집엔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즐거워진다고들 한다. 다른 사람을 축하하려고 노래 연습을 하다 보니 축복을 받는 쪽은 오히려 내가 되었다. 한 줌 사랑을 전하려다 한 드럼의 사랑을 내가 받는다. 노래 한 곡 골라서 적당히 들러리나 서주려던 마음이 적극성을 띠면서 변해간다. ‘아, 멋들어지게 불러줘야지.’이성숙재미수필가

[미주통신] 고개 숙인 운전자

현대는 자가운전 시대라 많은 시간을 차에서 보낸다. 운전하며 동승자와의 대화는 기본이고, 음악을 듣거나 음료수 마시는 행동도 자연스럽다. 화장하고 면도도 한다. 운전하는 시간이 이처럼 여유롭고 평화스러운 듯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평소 얌전하던 사람도 운전대를 잡으면 난폭운전이나 신호 위반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간혹 얌체처럼 끼어드는 운전자가 있으면 막말도 하게 된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기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고개 숙인 운전자와 보행자가 늘어 문제다. 남가주 자동차클럽(AAA)은 ‘술 취한 채(Intoxicated) 운전하지도 말고, 문자 보내면서(Intexticated) 운전하지도 말라’는 공익 광고를 내 보낸다. TV 화면에서 자동차가 삐뚤삐뚤 차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달린다. 중년의 남성이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운전하는 뒷좌석에는 아이들 세 명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순간 술병이 핸드폰으로 변한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미소 짓던 남성이 갑자기 고개를 들며 공포에 질린다. 신호등은 어느새 빨간불로 바뀌었고, 앞차에는 졸업 모자와 가운을 입은 젊은이 네 명이 타고 있다. 브레이크를 밟지만 이미 늦었다. 소름 끼치는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음, 차가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 그리고 비명. 해설이 나온다. 미국에서 핸드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인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로 하루에 9명이 죽고, 1천 명이 다친다고 한다. 핸드폰을 보며 운전하는 것은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막 졸업식을 마친 청소년들의 미래를 망친다는 메시지다. 짧지만 실감 나게 잘 만들었다. 자주 방영되면 좋겠다. 며칠 전에 십년감수를 했다. 한적한 골목길에서 우회전하려고 우선멈춤 앞에 서 있었다. 인도에서 한 청소년이 열심히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며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렸지만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아 차를 돌리는데 순간,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차가 흔들렸다. 남편이 급히 차를 세우고 내렸다. 그 청년이다. 그는 우리 차를 보지 못하고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서다가 부딪친 것이다. 다행히 멈추었다가 움직였기에 속도를 내지 않은 상태고, 그 청년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이라며 그냥 가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인의 어머니는 90세지만 건강하고 씩씩해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사셨다. 어느 날 그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운전하며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던 젊은이가 인도로 튀어 올라 그분을 쓰러트렸다는 것이다. 연세가 있어 금방 회복되지 않고 그 후로 건강이 나빠졌다는 말에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운전자를 원망했다. 가끔 애완견을 안고 운전하는 사람도 본다.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반려견이 자칫 에어백 대신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핸드폰의 단점은 알지만, 당장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문명의 이기라 내려놓을 수 없다. 우리 생활에 밀착되어 나이를 불문하고 잠시라도 손에서 떨어지면 불안할 정도다.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실시간으로 세계 각국의 뉴스와 날씨까지 알 수가 있어 손안에 온 우주를 담는 것이니 그 편리함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거북이 목이 된 운전자와 보행자들 때문에 교통사고 위험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운전 중 핸드폰을 사용하는 게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보다 덜 위험하다지만, 그것은 소주 1병 반을 마신 것과 같은, 면허취소인 혈중알코올농도 0.2%의 수치와 같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휴대전화를 걸거나 받기 위해 3초만 앞을 보지 않는 것은 순식간에 30m를 졸음운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고 한다. 운전자는 운전에만 집중해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위험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사고는 순간에 일어난다. 나는 운전을 자주 하지 않기에 운전대를 잡으면 긴장한다.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조카가 보고는 양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앞으로 바싹 당겨 앉은 모습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 같다며 놀렸다. 나처럼 긴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운전경력이 몇 년인데 하며 과신하고 방심하는 운전도 문제다. 방어 운전에 자신이 있어도 상대가 와서 들이받는다면 속수무책이다. 거기다 손에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면. 캘리포니아주는 운전 외에 하는 행동이 다른 운전자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최소 145달러에서 최대 1천 달러에 이르는 벌금을 낸다. 그래도 벌금이 무섭지 않은지 고개 숙인 운전자는 여기저기 많다. 새로 나온 핸드폰에는 차에 타면 운전 중이니 방해를 말라는 경고 메시지가 뜨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다. 술 취한 채 운전하지도 말고, 문자 보내면서 운전하지도 말아야 한다. 운전할 때나 보행 중에는 고개 숙이지 말고 앞을 보자. 나를 위해서.이현숙재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