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평광동…늘 푸른 환경 곳곳에 문화유산

대구 동구 도평동에는 천연기념물 1호인 ‘도동 측백나무 숲’이 있다. 이곳에는 높이 57m의 측백나무 1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대구 동구 도평동은 도동(道洞)과 평광동(坪廣洞)이 통합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분동(分洞)이 되어 있던 도동과 평광동은 1981년 대구시에 편입, 1998년 하나의 동으로 통합됐다.도평동은 전체면적의 90%가 임야와 농지로 구성된 도ㆍ농 복합지역이다. 인구는 4천566명으로 이 중 50대 이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 대부분은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이곳은 경부선과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가 통과하며 팔공산 IC가 소재한 교통요지이기도 하다.또 천연기념물 제1호인 도동 측백나무 숲, 대구 유일의 사과 집단재배단지, 전국 제품의 60%를 차지하는 대구 목공예 집산지 등이 자리 잡고 있다.도평동 최대 자랑거리는 천연기념물 1호인 ‘도동 측백나무 숲’이다.대구에서 유일하게 국가지정문화재 가운데 ‘제1호’ 타이틀을 걸고 있다. 측백은 서쪽으로 기운 나무라는 뜻이다.도동 측백나무 숲 내 측백나무는 상록침엽수 교목이다. 사계절 푸르고 작은 가지에 치밀하게 붙은 잎이 특징이다. 잎과 열매는 한약재로도 사용한다. 현재 3만5천603㎡에 높이 57m의 1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대구시 기념물 제5호인 용암산성(龍岩山城)과 옥샘(玉泉)도 자리 잡고 있다.용암산성은 대구∼하양∼영천으로 통하는 옛 길목으로 해발 378m의 용암산에 있다. 축성 형태는 산 정상 8부 능선에 머리띠를 두른 모습의 테뫼식 산성으로 재료는 토석혼축성이다. 둘레는 약 1.3㎞, 높이는 10m가량 된다.삼국시대에 축성돼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된 곳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당시 대구지역 의병과 왜군의 공방전이 벌어졌던 현장으로도 전해온다.용암산성 내에는 옥천(玉泉)이란 우물이 있다. 현재 1.3m 정도의 깊이로 사계절 일정량의 수량을 유지하고 있다.매년 이곳에는 용암산성 옥샘문화제가 열린다. 외적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고 어려움을 이겨낸 옥샘정신을 기리고 지역 자긍심과 공동체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도평동 일대는 대구 사과 재배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이 일대는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이 사계절 흐르며 특히 밤낮의 일교차가 높아 사과 재배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평광사과는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해 달고 시원하다는 평이다. 평광동의 사과 재배 농가는 120호(재배면적 118㏊)로 연간 2천360t의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매년 이곳에서는 대구시 주관으로 ‘도농상생 농업체험투어’ 행사도 열리고 있다.동구청은 이들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우선 측백나무 숲 인근을 관광자원화하는 ‘천연기념물 원(ONE) 도동문화마을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불로천 일대 마을을 도동측백나무숲, 용암산성, 향산마을 등과 연계해 침체된 지역 경관을 밝게 개선해 활성화시키는 사업이다. 도동 문화마을이 조성되며 천연기념물 센터가 건립된다. 지난 12월에 착공했으며 내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용암산성 인근에는 오토캠핑장이 문을 연다. 지난해 12월 착공했으며 다음달 공사를 마무리한 후 시범운영과 보완 및 운영조례ㆍ규칙제정 등을 거쳐 5월께 개장할 예정이다. 오토캠핑장은 카라반(캠핑카) 3동과 캠핑 사이트 17면 등 총 20면 규모로 선보인다.홍진윤 도평동장은 “도평동은 곳곳에 문화유산이 많이 있는데다 자연환경도 잘 보존돼 있다”며 “2012년에는 연면적 999㎡ 지상 3층 규모로 행정복지센터도 새로 건립해 주민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끼 넘치는 예술인·아낙네 웃음소리 모여 활기 가득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앞산 빨래터 공원에서 ‘앞산 빨래터’ 축제가 열린다. 사진은 지난해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빨래터 풍경을 재연하고 있는 모습. 대구 남구 대명동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따라 조선에 파견된 두사충이 정유재란 후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살면서 고국을 생각해 지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대명동의 면적은 10.1㎢. 다른 동에 비해 넓은 만큼 다양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역사가 깃든 곳대명동에는 역사가 깃든 곳이 있다. 앞산에 있는 왕굴, 은적사가 그곳이다.왕굴은 고려 태조 왕건이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의 견훤에 대패해 사흘 동안 피신해 있다가 쉬어 간 곳이다. 재밌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견훤의 군대가 왕굴 가까이서 왕건을 찾으려고 하자 갑자기 왕거미 줄이 쳐져서 피신했는지 안 했는지 흔적조차 알 수 없었단다. 때문에 무사히 견훤의 군대를 피해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은적사는 당시 왕굴 근처에 있는 절로 왕건이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이 숨어 3일간 보낸 굴이 있는 곳에다 고승 영도대사에 명해 은적사라는 절을 짓게 됐다.◆공연과 음악이 있는 곳대명동은 공연과 음악에 관심 있는 청소년 및 예술가들이 꿈을 키우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대구음악창작소와 대구공연예술센터가 있기 때문.먼저 대명공연문화거리에 있는 대구공연예술센터는 계명네거리(대명동) 일대를 공연문화 특화거리로 조성하고자 건립됐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된 센터는 공연정보관, 연극전시체험관, IT 공연체험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특히 지하 1층 아카데미 홀에서는 지역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대명공연예술센터 이용 가능한 시간은 매주 화∼토요일까지 오후 2시부터 오후 9시30분이다.앞으로 대명공연문화거리는 대명문화마을 조성 사업을 통해 2020년까지 △아카이브 대명(공연ㆍ전시정보) △대명문화기지국(SNS 통한 문화콘텐츠 홍보) △대명아트위크(체험) 등으로 발전된다.음악창작소에서는 청소년들이 끼를 발산하고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곳에는 공연연습장 및 전시실, 창작실이 있어 창작 등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이 찾고 있다.◆대표 축제, 앞산 빨래터 축제대명동의 대표 축제에는 ‘앞산 빨래터’축제가 있다. 축제 장소인 앞산 빨래터는 앞산 자락에 남아있는 유일한 빨래터다. 앞산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물로 오랜 옛날부터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하면서 정담을 나누었던 곳으로 전해진다.남구문화행사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앞산 빨래터 축제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축제 중 하나인 대덕제의 규모를 한층 확대ㆍ발전시킨 것으로 2015년 명칭이 바뀌었다.‘빨래’라는 주제로 퍼포먼스, 춤, 노래 등과 중ㆍ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할 콘텐츠(추억의 테마거리 체험 등)도 있어 다양한 연령대가 참가한다.올해는 다음달 28∼29일 열릴 예정이다.임병헌 남구청장은 “올해로 4년째를 맞는 앞산 빨래터 축제는 그간 성과를 이어받고 불편한 점을 보완해 더욱 알찬 프로그램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과거 빨래터가 빨래만이 아닌 사랑방 역할도 했다. 이번 축제를 통해 대구시민들도 마음의 때를 씻고 새로운 희망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신라 화랑 머물던 곳…‘원하는 대로’ 만들어 재도약 목표

대구 서구 원대동 달성초교 네거리와 원대네거리 사이 원대가구 명물거리에는 가구점 수십 곳이 밀집해 있다. 삼국시대 신라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기 위해 화랑도들이 심신을 단련 할 수 있도록 전국 명소를 두루 다니면서 수련하도록 했다. 이들이 숙식소로 만든 곳을 원 또는 노원이라고 불렸다. 서구 원대동은 역사 속에서 대노원이 있었던 터라 해서 원대라고 불렸고 이것이 오늘날의 동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원대동은 개발되지 않아 서구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으로 꼽힌다. 하지만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됨으로써 2020년까지 개발될 예정이다. ◆‘노령지비’ 이야기 원대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노령지비’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 죽어가는 자식을 먹여 살리고자 도둑질을 한 불쌍한 죄수들을 어느 늙은 노령장(관아에서 죄수를 지키는 사령)이 모두 풀어준 사건이 있었단다. 이 일로 노령장은 곧 잡혀서 목숨을 잃게 됐다. 훗날 죄수들은 노령장의 고마운 뜻을 기리기 위해 원대동에 비석을 세웠다. 이 비석이 바로 ‘노령지비’라 불리는 노령장비다. 노령장비는 비원지구대 앞에 있다. ◆서구의 유명거리, ‘원대가구 명물거리’ 원대가구 명물거리는 달성초 네거리와 원대네거리 사이에 가구점 수십 곳이 밀집해있다. 명물거리는 경제 개발이 한창 진행된 1970년대 중반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에 50여 개 점포가 들어섰다. 명물거리의 가장 큰 장점은 가구점이 많아 직접 눈으로 가구의 상태를 보고 가격도 비교해가면서 구입할 수 있다는 것. 가구점마다 제품의 디자인 등도 달라 쇼핑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득템(?)도 할 수 있다. 품질도 뛰어나 단골이 많이 찾는다. 서구청은 2008년 이곳을 명물거리로 지정해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2014년에는 제7호 ‘대구의 착한 골목’으로도 선정되기도 했다. ◆원대동 재탄생 예고 낙후된 원대동이 도시재생 뉴딜시범사업으로 2020년까지 재탄생한다. 이 사업에 10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서구청은 ‘원하는 대로 동네 만들기’라는 명칭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뉴딜시범사업 세부내용을 보면 ‘신나게 만들기’, ‘스스로 만들기’, ‘통하게 만들기’ 등의 주제가 핵심이다. 특히 원대가구 명물거리와 연계해 DIY 주민공방, 커뮤니티센터가 조성된다. DIY 주민공방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원목을 가지고 스스로 가구를 만드는 등 원대 가구 골목 상인회와의 연계로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이 열린다. 또 화랑이 머물렀던 역사를 잘살려 화랑역사 체험을 할 수 있는 한옥스테이도 마련된다. 류한국 서구청장은 “원대동은 도시재생 뉴딜시범사업으로 활력을 되찾고 지역 경쟁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화려한 산수 품어…예로부터 ‘살기 좋은 곳’ 소문 자자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 통해 ‘일파이무(一巴二無)’로 불렸던 수성구 파동. 사진은 하늘에서 본 파동 전경. 파동은 대구부 상수서면의 지역으로 파잠ㆍ파잠리라고 했는데 1914년 파남동과 파북동을 병합해 파잠동이라고 했다. 높고 낮은 산이 많다는 의미에서 ‘파잠(巴岑)’, ‘파집’으로 불리기도. 수성못 부근에서 달성군 가창면 초입까지 신천을 따라 길이 곧게 이어진다고 해서 ‘니리미’라고 했다. 달성군 가창면으로 편입된 후 1957년 대구시에 편입됐다. 1980년 수성구가 신설되면서 수성구의 행정구역이 됐다. 수성구의 남동단에 위치하고 동쪽으로 법이산과 서당골이 있고, 서쪽으로 장암산과 용두골이 있으며 그 가운데를 신천이 관통해 흐른다.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 통해 ‘일파이무(一巴二無)’로 불렸는데 첫째로 살기 좋은 곳은 파동이고, 둘째가 무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 수려한 산수를 가진 마을로 중화 양씨와 김해 허씨가 개척했다고 전해진다.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이곳에는 서당골과 용두골이 있는데 조선시대 서원이 많았다고 해서 서당골이라고 했다. 현재는 중화 양씨의 재실과 2개의 서원이 남아 있다. 앞산에서 동쪽의 파동쪽으로 내려오는 골의 형상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용두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744년 조선 성종 때 대사헌을 지낸 대봉(大峰) 양희지(陽熙止)를 추모하고자 세운 오천서원(梧川書院)은 서당골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서원 앞은 암반이 하상을 이룬 계곡이 흐르고 100년을 훌쩍 넘은 수령인 듯한 둘레가 2m가 넘는 고목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서원 뒤 산기슭은 대나무밭으로 둘러 있다. 또 오천서원 초입에는 대구 유학의 큰 맥을 이룬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 선생의 공을 기리는 무동재(武洞齋)가 세워져 있다. 산성산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린 지맥의 말단부이자 신천이 만나는 파동 산 112번지에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입지한 바위그늘(岩陰) 유적이 2000년 국립대구박물관에 의거 발굴 조사됐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는 위쪽이 아래보다 200㎝ 정도 돌출됐는데 전체 4개 층으로 이뤄졌다. 일부 층에서는 민무니토기편을 비롯해 갈돌과 갈판, 홈자귀편, 긁개 등이 출토돼 신천을 따라 형성된 주변의 고인돌, 집터 등과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대도시 속의 골짜기 마을 앞산과 법이산이 양쪽에 자리 잡은 골짜기 마을인 파동의 기후는 사뭇 다른 지역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파동오거리에서 가창방면으로 진입하면 이전 지역과는 다른 기온을 느낄 수 있다. 여름철과 겨울철 온도가 수성못 오거리 이전보다는 항상 2∼3℃ 정도가 낮다. 산속 골짜기에 들어온 것과 같이 기온의 변화가 다른 지역보다 크다. 현재 앞산 터널이 지나가는 파동 고가도로 아래는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겨울철 자연 얼음썰매장으로 지역에서 유일한 곳. 수백 명의 어린이와 부모가 얼음을 제치며 추억을 만들었던 장소이다. 파동의 끝자락 가창교 아래는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아직까지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개발의 바람이 적은 파동은 대도시 속의 시골과 같은 동네이지만 마을 구성원이 함께하는 공동체 사업은 타지역보다 앞서 시행할 수 있었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다양한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쭉 뻗은 신천을 따라 산책할 수 있으며 흥이 넘치는 파동에서 힐링하는 기회를 가져보자”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대표 도농복합지역’ 인구 꾸준히 늘어 6만여 명 보금자리

대구 동구 11개 법정동 가운데 대표적인 도농복합지역인 안심3ㆍ4동에는 안심창조밸리가 자리잡고 있다. 안심창조밸리는 안심연근재배단지 일대를 친환경 생태문화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대구 동구 안심동은 후백제 당시 견훤 군사에 쫓겨 도주하던 왕건이 간신히 안전지대로 벗어나 안심(安心)했다는 데서 지명을 따왔다.1981년 대구시에 편입됐으며 이후 안심1, 2, 3동으로 분동(分洞)됐다. 1983년 안심4동이 신설됐으나 안심3동 인구가 적어 1998년 통합해 안심3ㆍ4동이 됐다. 안심3ㆍ4동은 동구 11개 법정동 가운데 대표적인 도농복합지역이다.2006년 동호지구 개발 등으로 꾸준히 인구가 늘었고 2010년대 들어 대구혁신도시ㆍ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으로 아파트 단지 등이 대거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 기준 안심3ㆍ4동 인구는 모두 6만4천426명으로, 달서구 진천동(6만8천207명)에 이어 동 단위로는 대구에서 두 번째로 많다. 이곳에는 안심창조밸리가 자리하고 있다. 안심창조밸리는 동구의 간판 도시재생사업이다. 2013년 정부 도시활력증진개발지역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됐으며 올해 사업이 완료될 예정이다. 이 사업은 안심연근재배단지 일대를 친환경 생태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다.사업은 완료 전이지만 성과는 나타나고 있다. 승객이 급감해 결국 폐쇄됐던 금강역은 주말이면 방문객 1천여 명이 찾는 레일카페를 중심으로 ‘핫 플레이스’가 됐다. 금강역 레일까페는 2008년 1월 포항행 통근열차가 없어지면서 여객 취급이 중지된 역 광장에 폐열차 2량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전국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안심연근재배단지는 연을 테마로 한 전국 최대의 테마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꽃이 개화해 장관을 이룬 지난해 7월에는 ‘제1회 안심창조밸리 연꽃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특히 이 축제는 동구청, 동구도시재생지원센터와 함께 주민들로 구성된 안심창조밸리 주민협의체가 실무를 맡아 개최해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혁신도시 내 신서중앙공원에는 혁신도시 조성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을 위한 고향관이 위치해 있다. 지난해 9월 개관한 고향관은 275㎡ 규모로 실향민들이 고향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한국가스공사 등 공공기관이 이전하고 혁신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신서동, 사복동, 동내동 등 동구 9개 자연부락이 사라졌다. 이에 9개 자연 부락민 삶의 양식과 자연부락이 있을 당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고향관에 영상존, 가상현실(VR) 코너, 마을모형 등을 설치하고 실향민을 위한 만남의 공간을 조성한 것이다. 고향관에서는 자연부락 존재 당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생활용품, 사진, 농기구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정운태 안심3ㆍ4동장은 “2013년 9월 인구 5만 명을 넘어선 이래 약 3년1개월 만에 6만 명을 돌파하며 동구 인구의 1/6이 거주하는 거대 동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2020년 안심연료단지 일대에 들어서는 안심뉴타운(인구 7천 명) 주거단지가 대부분 안심3ㆍ4동에 속해 있어 인구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성당못보다 큰 못 있던 자리…도시개발 통해 주택지로 변신

죽전네거리는 지하철 2호선 죽전역이 위치해 있고 달구벌대로와 신천대로, 남대구 IC, 성서 IC 등과도 바로 연결되는 교통 요지다. 대구 달서구 감삼동은 1970년에서 1980년대까지 도시개발에 따라 농경지에서 주택지로 바뀌어 단독주택과 아파트 등이 빽빽이 들어서게 됐다.감삼동의 행정구역은 달구벌대로인 용산네거리~죽전네거리~감삼네거리를 경계로 당산로, 장기로를 걸쳐 감삼우방드림시티와 대구가톨릭대학교평생교육원을 경계로 하는 약 1.18㎢의 면적이다.현재 1만1천여 가구, 2만8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감삼동의 유래경상도읍지에는 ‘감삼못’이 달서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성당못보다도 규모가 더 큰 못이었던 감삼못은 감삼동의 지명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민들에게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못으로 전해진다. ‘우물제’라고도 불렸던 감삼못은 현 달성고등학교 일대에 있었으나 1970년대 중반 개발로 인해 없어졌다.감삼동의 지형을 보면 풍수지리적으로 세 장군이 태어날 형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이 널리 퍼지게 되면 도리어 마을 사람들이 해를 입기 쉽다 해 이 얘기를 숨기고자 그 부근에 샘이 세 곳에서 솟아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얼마 후 이 마을에는 정말 세 곳에 샘이 생겨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그 샘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해 ‘감새미(감삼동)’이라 불려졌다. 샘이 있었던 세 곳의 위치는 현재의 감삼동 148-6, 190-2, 284-3번지다.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원님이 감삼동을 지나다 마을 대표에게 감을 대접받았는데 감이 매우 달고 맛이 있어 세개나 먹었다며 ‘감삼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감삼동의 볼거리와 즐길거리감삼동에는 ‘성서 조약국’으로 대구ㆍ경북 지역민에게 널리 알려진 흥생한의원이 있다. 흥생한의원은 현 감삼동행정복지센터 옆 건물(감삼북길 113)에 있다.흥생한의원 설립자인 혜산 조경제 선생은 1922년 감삼동 출생으로 1954년 한의원을 개원했다. 1967년 호롱불로 살던 주민들을 위해 설치비를 부담해 감삼동에 전깃불을 밝히기도 했다고 전해진다.현재도 한의원에는 근현대 역사기록물들이 많이 비치돼 있어 소중한 문화자료로 활용 중이다.또 감삼동은 달구벌대로를 중심으로 알리앙스예식장, 유니클로, LG베스트더샵 등 대형건물이 다수 입점해있다.특히 알리앙스예식장과 구병원사이는 ‘감새미 먹거리촌’ 이 형성돼 있어 산아나고 곰장어, 석쇠불고기 등 저렴하고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30여 개의 음식점이 운영 중이다.감삼동에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대동제가 열린다.감삼향우회가 대동제를 주관하며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의식을 통해 우리 민족 고유의 세시풍속을 재연하고 있다. 윷놀이 등 민속문화놀이를 통해 주민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화합과 발전을 도모한다.정온주 감삼동장은 “감삼동은 대구의 주로인 달구벌대로와 접하고 있고 대구지하철 감삼역과 죽전역을 끼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지역으로 대형 의료ㆍ판매시설이 밀접해 있는 등 대구 부도심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관내 면적의 86.5%가 일반주택으로 아직도 감삼동 토박이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끈끈한 정이 넘치고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등 누구나 살고 싶은 고향 같은 동네”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배나무 많아 물맛 달던 마을…벽화거리 등 볼거리 품어

과거 한국전쟁 때 피난민촌으로 형성된 대구 남구 이천동은 봉덕동과 대명동에 비하면 작은 규모의 동네다.하지만 최근에는 도시재생사업 및 아파트단지가 생겨나면서 남구지역의 신 주거단지로 떠오르는 곳이다.이천동 가까이 신천둔치가 있어 산책하기 좋고 중구 대봉동에 있는 봉리단길, 신천대로와 가깝다는 지리적 장점이 있다.◆이천동의 유래대구 남구 이천동의 이(梨)는 배나무를 뜻하고 천(泉)은 샘을 뜻하는데 배나무 밭에 있는 샘이라는 뜻이다.주위에 배나무가 많고 물맛이 배처럼 달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배나무샘이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됐다.실제로 이천동에는 작은 산인 수도산(대구상수도사업본부 일대)이 있다. 이곳에 배수지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배수지에서 물이 많이 솟았다고도 전해진다.또 다른 이야기로는 옛날 강물이 흘러가던 이곳에 배를 묶어 두는 나루터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특히 조선 초기 한문학을 집대성한 사가 서거정 선생이 대구십경을 노래했을 때 ‘삿갓바위에서 고기 낚기’란 제목으로 시를 읊었다고도 한다.한편 이천동은 1980년 대봉동 일부로 이천동이 신설됐다. 대봉3동 일부가 이천1동으로, 대봉2동이 이천2동으로 개칭됐다가 1998년 이천1동과 이천2동이 통합돼 오늘의 이천동으로 개칭됐다.◆이천동 숨은 볼거리대구 남구 이천동 곳곳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볼거리가 있다.먼저 서울 인사동과 같은 곳이 이천동에 있는데 ‘이천동 고미술거리’다. 고미술거리는 2009년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문화 명소로 만들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성됐다. 2010년 고미술거리조성 1주년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해마다 고미술거리 난장이 열린다. 도자기와 토기 등 고미술품을 전시ㆍ판매하는 것은 물론 고미술품 무료 감정과 현장경매를 통해 거리를 찾는 시민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미술거리 일대 수도산에 있는 99계단 벽화마을도 가볼만 하다. 수도산자락의 황량한 계단과 골목이 주민자치사업으로 벽화거리로 변신했기 때문. 이천동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재능기부자원봉사로 99계단을 비롯해 어둡고 칙칙한 시멘트 담장을 밝고 아름다운 벽화 골목으로 조성했다.또 99계단 벽화마을 일대에는 ‘서봉사’라는 사찰이 있다. 1920년 창건한 서봉사는 조계종 사찰로 옛 이름은 건봉사다. 사찰은 수도산자락에 위치해 도심 속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다.특이한 문화공간도 있다. 바로 한옥 속에 품은 배나무샘골문화하우스(남구 명덕로 54길)다. 지역의 유래를 따서 이름이 붙여졌으며 버려진 한옥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주민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한옥의 특성을 살려 평일에는 각종 공연 및 만남의 장소로, 주말에는 게스트하우스 및 전통찻집으로 활용되고 있다.수천여 점의 민속공예품을 전시해 놓은 개인주택(남구 이천로 28길)도 구경할 수 있다. 민속공예품 소장가가 작품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도록 정리해놓았다. 이곳에서 선조들의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주민 손으로 일군 편백나무 둘레길 남녀노소 쉬었다 가요”

수성구 범어2동에는 도심 속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철새 서식지가 있다. 이곳에는 매년 2천 마리의 백로와 철새가 찾는다. 대구부 수북면의 지역으로 조선시대 범어역(泛魚驛)이 있었다. 그래서 범어2동을 범어 또는 역촌(驛村)이라고도 했고 1914년 달성군 수성면에 편입됐다가 1938년 10월1일 대구구역이 확정됨에 따라 대구부에 편입됐다.1500년 초 철원부사를 지낸 구수종이 정착하면서 일군 마을이라고 한다. 현재 범어천주교회가 있는 산이 붕어가 입을 벌리는 모양이었단다.그 아래 냇물이 흘러 마치 고기가 떠 있는 모양 같아 마을이름을 뜰 ‘범(泛)’, 고기 ‘어(魚)’로 불렀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1949년 대구시로 명칭이 변경됐고 1963년 동부출장소가 동구로 승격 대구시 동구로, 1975년에 범어동을 범어1ㆍ2동으로 분동하고 1979년에 범어2동이 범어2ㆍ3동으로 나눠졌다. 1982년 범어1동에서 범어4동으로 분동돼 현재의 행정구역이 됐다.◆도심 속 쉼터, 범어 시민근린공원대구지방법원 동쪽의 야트막한 산은 현재 시민근린공원으로 지정됐으나 공원 지정 전 동편은 공동묘지로 6ㆍ25 이전 인가가 거의 없었으며 남쪽 골짜기에는 야시(여우)가 많이 나타난다고 해 야시골로 불렀다. 6ㆍ25 이후 피난민들의 판자집이 들어서면서도 계속 야시골로 불리다가 현재 시민근린공원의 일부로 공동묘지가 옮겨지고 신흥주택지역으로 타지역민의 이주로 야시골의 명칭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졌다. 이후 이 야트막한 산의 이름은 ‘시민근린공원’으로 바꿨다.현재 시민근린공원이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범어네거리의 고층 빌딩과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인접한 힐링 명소가 되기 전까지 주민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근린공원은 명칭변경 전에는 여러 체육시설이 있었고 등산로도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나있고 나무도 많지 않았다.주민들은 공원에 자발적으로 편백나무를 기증하고 구청의 도움으로 100그루를 시작으로 해마다 1천 그루 넘게 편백나무를 심어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편백나무 둘레길은 동네주민은 물론 인근 직장인의 휴식공간으로 각광 받고 있다. 편백나무는 천연 향균물질인 피톤치드가 소나무보다 4배 이상 천식 유발균에 대한 항균효과가 있는 사비넨 성분이 소나무보다 35배 이상 많이 발산돼 도심 속에서도 편안히 삼림욕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도심 한가운데 철새 도래지시민근린공원 옆 범어배수지 소나무 숲으로 시원스레 날갯짓을 하는 백로들을 볼 수가 있다. 소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고운 자태를 뽐내는 백로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소나무에 하얀 열매가 맺혀 있는 듯하다.범어배수지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심어져 있고 2㎞가량 떨어진 신천에서 먹이 활동을 할 수 있어 철새들의 서식지로는 안성맞춤이다. 새 둥지만 400여 개이며 날아드는 철새는 2천 마리 정도이다.◆우리동네 ‘야시골 협동조합’아파트 중심의 개발정책에서 벗어나 저층 단독주택지의 생활환경 개선으로 도시 부흥의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고자 수성구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그 일환인 수성 명품주택단지 조성사업으로 범어2동의 주택단지는 도시가스 보급, LED 보안등, 생활안전용 CCTV 등을 설치해 더욱 안전한 마을환경으로 태어났다. 또 밋밋했던 골목길에도 벽화디자인 조성사업을 추진해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 밖에도 담장 허물기 사업, 공원 정비 등 다양한 환경개선을 통해 단독주택지도 최고급 아파트단지 못지않은 행복한 주거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수성구 도시재생사업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마을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특히 범어2동은 자발적으로 야시골협동조합을 설립해 마을 공동체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야시골협동조합은 ‘로컬푸드 직거래 사업’으로 주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마을기업으로 선정돼 마을공구 도서관과 수리센터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또 야시골 마을축제 숲속 음악회를 2015년부터 해마다 개최하면서 주민공동체를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마을대학, 마을축제, 사회적경제 주민워크숍을 열었고 마을숲 해설사를 양성해 시민근린공원의 편백나무숲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서구·달서구 인접해 도심으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 톡톡

대구 중구 대신동은 대구부 서상면에서 ‘신정’이라 불리다 1946년 ‘대신동’이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 1949년 대구시에 편입, 1963년 종로ㆍ중부출장소가 중구로 승격되면서 대구시 중구로 편입됐다. 이후 구간 경계를 일부 조정하면서 대신1동과 대신2동을 나눴으나 1998년 통합해 하나의 ‘대신동’이 됐다.대신동의 면적은 0.52㎢로 중구 면적의 약 8%를 차지한다.달구벌대로와 도시철도 2호선 신남역, 3호선 서문시장역이 지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서구, 달서구와 인접해 도심으로 들어오는 중구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인구수는 올 10월 말 기준 7천454명이다. 대신동에는 영남 제일의 상권집약지이자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지역 대표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위치하고 있다.대구읍성의 서문 밖 약 300m 지점에서 지금의 달서천 주변 하천부지에 자연스럽게 장이 형성됐는데 서문시장의 발단이다. 수 백년 동안 ‘장’으로 이어오다가 1920년 근처에 있던 천황당 못을 메우면서 ‘큰 장’이 만들어졌다. 서문시장은 1960년대 불이 나 목조건물이 사라지고 1970년대 새로 개장했다. 현재는 지난해 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4지구를 제외하고 총 7개 지구로 구성돼 있다. 4천600개의 점포가 성업 중이다. 특히 지난해 6월 야시장이 개장하면서 서문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오후 7시부터 11시30분까지 열리는 서문시장 야시장은 총거리 350m에 80개 매대가 운영 중으로 전국 최대 규모다. 대신동에는 유명한 명물골목도 많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대 침장(침구류 및 실내장식)산업의 1번지인 ‘침장거리’가 있다. 1995년 형성된 이 거리는 현재 전국 침장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최대의 침장 생산과 유통이 이뤄지고 있다. 1970년대 형성돼 현재 40여 업소가 재봉틀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미싱골목’, 1980년대에 최초로 양말소매상이 들어선 이후 다양한 양말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양말골목’ 등도 있다. 문화유산도 빼놓을 수 없다. 대구 최초의 선교사인 아담스가 직접 설계해 1908년에 건축한 서양식 교사 ‘계성학교 아담스관(유형문화재 제45호)’, 계성학교 2대 교장이었던 라이너 선교사가 아담스의 부친인 맥퍼슨에게 지원금을 받아 1913년 9월에 지은 계성학교 맥퍼슨관(유형문화재 제46호), 계성학교 4대 교장인 핸더슨이 블레어 선교사가 미국에서 모금한 자금으로 1931년에 2층으로 건립한 계성학교 핸더슨관(유형문화재 제47호) 등이 자리해 있다. 최근에는 대신동 주민들의 소통과 나눔의 공간인 ‘달성토성 커뮤니티센터’도 생겨났다.지난 1일 개관한 이곳은 주민들 스스로 마을의 문제를 고민하고 소통하는 마을공동체 공간이다. 마을카페, 마을커뮤니티실, 마을공동작업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오는 17일에는 중구에서는 처음으로 대신동에서 마을축제인 ‘2017 대신동 한마음 축제’가 열린다. 주민들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해 열리는 이날 축제에서는 아나바다와 먹거리 장터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이동인 대신동장은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축제를 기획해 개최할 정도로 주민화합이 잘 된다”며 “특히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구성해 마을의 자원을 가꾸고 더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3만5천 명 살고 산업·교육·상업 공존하는 서부관문지역

대구 달서구 신당동은 정자나무인 회나무 5그루가 있어 본래 오정동으로 불렸다. 1910년께부터 당산제를 올린 이후 신당동으로 바꿔 불리게 됐다.마을의 형태와 관련된 지명유래도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큰 비가 올 때면 홍수가 나서 농토가 황폐해지고 한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1760년 가선대부 김악소가 보리 3석, 벼 3석, 목화 25근을 내놓은 것을 기금으로 삼아 마을 앞에 ‘섬둑’이란 보를 쌓았다.이때 마을에서 앞을 보면 보에 가득한 물이 마치 못을 막은 형상과 같아 보여 마을 이름을 신당으로 불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이후 1988년 대구직할시 서구 일부와 남구 일부가 달서구로 신설되면서 파호동ㆍ파산동ㆍ호림동ㆍ신당동이 달서구에 편입됐고 1995년 대구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행정동인 신당동이 됐다.신당동은 성서지역을 대표하는 면적 9.33㎢에 달하는 대규모 행정동이다. 인구 3만5천여 명의 주민이 모여 1만6천여 가구를 이루고 있으며 그중 9천여 가구가 7개의 대단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성서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계명대, 계명문화대, 방송통신대학 등 교육시설과 성서아울렛 등 산업ㆍ교육ㆍ상업이 공존하고 있는 달서구를 대표하는 서부 관문지역이다.신당동은 1990년대 대규모 성서택지 조성 후 30여 년이 흘러 성서산업단지를 포함 산업, 주거, 도로 등 도심 기반시설이 노후화되고 있다. 이에 도시재생관련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현재 계명대학교 동문 및 맞은편 원룸촌 일대 23만㎡ 지역은 ‘레드블록! 젊음과 다문화를 담은 원룸촌 재창조사업’을 통해 2018년까지 완충녹지 및 보도를 활용한 문화가로공원을 조성하고 원룸촌 일대 간판 및 거리경관을 개선할 예정이다.또 버스킹 장소를 제공하고 주민참여 프로그램사업이 개발ㆍ지원돼 젊음과 다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할 전망이다.성서아울렛타운 상점가는 127개의 크고 작은 의류, 스포츠 아울렛 매장과 126개의 일반음식점들이 입점해 있다. 2013년 5월23일 정식 상점가 등록 후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90억 원을 들여 시설현대화사업, 아울렛타운 활력증진사업, 보행환경개선사업 등으로 쇼핑 기반환경을 구축했다.와룡시장은 아케이드 등 시설현대화 사업을 거쳐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국비 7억2천만 원을 들여 2018년 7월까지 고객지원센터를 조성할 예정이다.대구도시철도 2호선 계명대역과 성서산업단지역 1.5㎞ 완충녹지 공간은 주민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녹색생활공간으로 새롭게 발굴ㆍ조성해 도시 생태기능을 회복, 주민의 생태적 욕구를 충족했다.특히 지난 8월 문을 연 강창공원 물놀이장은 시원하고 청량감 있는 휴식공간을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김헌동 신당동장은 “신당동은 대구지역 경제의 허파인 첨단산업중심의 성서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는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서부 관문지역의 중심으로 새롭게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주민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고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문화유산 위에 체육·휴식공간 품은 삶의 터

대구 남구 봉덕동은 1914년 행정구역 통ㆍ폐합에 따라 봉산동과 덕산동을 병합하면서 봉덕동이라 하고 달성군 수성면에 편입됐다가 1918년 지방행정구역 변경으로 대구부로 편입됐다.앞산공원과 신천이 가까운 봉덕동은 과거 시장과 학교 등 교통이 편리해 1970년대 주거밀집지역으로 개발됐다. 현재 봉덕동은 1, 2, 3동이 있다. 인구 3만8천여 명이 살고 있으며 남구 면적의 35.9%를 차지한다.문화유산과 풍부한 체육시설ㆍ휴식공간을 품고 있는 이곳은 현재까지도 거주지로서의 역할이 크다. 봉덕동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는 법장사 3층 석탑과 용두토성이 있다.법장사 3층 석탑은 원래 이곳에 있던 사찰 고산사의 부속 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석탑으로 추정된다.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사찰은 모두 불 타고 탑만이 무너진 채 방치되다가 1962년 대구지역 불교신자들이 무너진 석탑을 재건하고 법당을 건립해 법장사로 개칭했다.용두토성은 신천을 따라 시가지 쪽으로 튀어나온 대덕산기슭에 쌓은 토성으로 지형이 용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용두토성이라 부른다. 봉덕동에 있어 봉덕토성이라고도 불린다. 성벽은 완만한 산기슭의 능선 둘레를 따라 머리띠를 돌리듯 타원형의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봉덕동의 주민편의시설로는 고산골 공룡공원, 어린이 체험학습장, 메타세쿼이아숲길 등이 인기가 높다.특히 고산골 공룡공원은 사실적인 공룡모형과 포토존으로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방문객들의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산골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 화석을 토대로 제작된 공룡모형(티라노, 스피노, 스테고, 브라키오사우루스)과 화석 발굴 체험장이 있다.지난 5월 개장한 어린이생태체험장에는 어린이명상장, 농장체험장, 원두막 등이 있어 고산골 안에서 여러 가지 생태체험과 학습 놀이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메타세쿼이아숲길은 2010년 앞산공원 고산골 입구에 개장한 도로 폭 12m, 길이 700m 규모로 대구에서 최초로 메타세쿼이아가 가로수로 조성된 길이다.맨발산책로는 미리내 아파트 건너편 고산골 진입 1㎞ 산책로로 2009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자연친화적으로 조성됐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마사토를 깔고 지압보도와 세족 시설, 흙 털이, 음향시설을 설치해 이용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현재 봉덕동은 지역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국민체육센터가 오는 11월 준공을 목표로 건립 중이다. 또 최근 분양경기 호조로 주택ㆍ아파트 재개발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살기 좋은 정주지역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다질 것으로 전망된다.김영식 봉덕2동장은 “공룡공원 조성으로 많은 시민이 고산골을 방문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주위환경 정비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주형 기자 coolee@idaegu.com

제3공단 형성·안경산업 특구 지정 등 산업 활성화 ‘활짝’

대구 북구 노원동은 조선초기에 교통기관인 역원 중 대노원이 있었던 자리라서 ‘원대동’으로 불렸다. 이후 1975년 서구 원대2가동 일부가 북구에 편입되면서 북구 노곡동과 서구 원대동의 첫 자를 따서 ‘노원’으로 동명이 정해졌다.인구 1만2천여 명이 살고 있으며 면적은 3.09㎢에 달한다. 금호강에 인접하고 제3공단을 형성하고 있는 공업지역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다.팔달신시장, 서대구고속버스 터미널 등도 위치해있다.또 노년층 인구가 많은 편이지만 최근 노원1지구 주거환경개선에 따른 대규모 아파트 건립으로 젊은층의 인규유입도 기대되는 상황이다.노원동 및 침산동 일부는 안경산업특구로 지정됐고 대구안경산업지원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2014년 하반기 개통된 도시철도 3호선과 더불어 대구의 경제중심지역으로 발돋움할 전망이다.팔달신시장은 대구의 관문인 팔달교와 인접해 있다. 공업, 주거, 상업지역이 혼재한 지역에 위치해있으며 특히 경북 북부권에서 생산된 상품의 유통과 고객의 이용이 용이하다.상인의 70%가 채소, 30%가 기타 농수산물을 취급하고 있고 대구시내 중소매업자와 경북 일원의 중소도시의 재래시장과 매장이 주 고객이다.지난 30여 년을 대구의 아침을 여는 특색 있는 재래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제3공단은 1960년대 중반부터 제직기계, 공작, 금형 등 소규모 가내공업 등 소기업이 현재의 노원동 일대 일반공업지역에 자연발생적으로 모여들어 형성됐다.전통제조업 중심의 도금, 금형 및 표면처리, 안경 디자인 및 제조, 기계금속, 자동차 부품 등 뿌리산업을 근간으로 지역 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그러나 개발 계획된 산업단지가 아니다 보니 체계적인 관리가 되지 않았고 높은 지가로 인한 무분별한 필지분할 등 난개발이 이뤄져 2009년 국가시범사업에 선정, 2021년까지 내부도로 신설ㆍ확장, 녹지 및 주차장 조성 등 공공인프라가 구축될 예정이다.또 기계금속 등 뿌리산업, 안경 및 로봇산업, 아파트형공장 등 지원기능이 강화된 도시형 산업단지로 탈바꿈될 전망이다.또 노원동은 2006년 대구안경산업 특구로 지정된 후 2010년 안경거리가 조성됐다. 노원동과 침산동 일원 1.1㎢ 구간에 안경모형을 형상화한 가로등과 조형물이 있고 안경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도 있다.특히 최근 안경산업토탈비즈니스센터(아이빌)가 건립돼 지역 중소기업의 집적화로 안경산업 경쟁력이 향상되고 영세업체의 안정적인 조업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최근 노원1지구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완료됐다. 이에 다음달에는 LH노원천년나무 12개 동, 1천580세대가 입주할 예정이다. 노원2동 또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최무환 노원동장은 “주민센터 및 각 자생단체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노력해 3공단 재생사업, 주거환경개선사업, 팔달신시장 현대화 사업 등이 완료되면 대구에서 가장 경제가 발전된 중심동으로 거듭날 전망”이라고 기대했다. 이아람 기자 aram@idaegu.com

백성 사랑한 마을판관 있던 곳…지금도 살기 좋은 동네

수성구 들안길먹거리타운의 조형물 모습. 2013년 주민안전을 위해 상징조형물을 새단장했다. 수성구 상동에 있는 이공제비. 이서 선생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다. 수성못 서편 제방 인접한 곳에 있는 4기의 상동 지석묘. 대구에서 처음으로 신석기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신천을 사이에 두고 남구와 경계를 이루는 대구 수성구 상동. 예전에는 이 일대를 수성들로 불렀다. 물이 좋고 땅이 기름져 사람이 살기 좋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500여년 전 진씨와 손씨가 정착해 농막촌을 이뤘다고 한다. 현재 지역이 수성들의 위쪽에 있다고 해 ‘웃골’, ‘위동’으로 불리다가 지금의 상동으로 됐다. 상동은 신라시대 위화군 지역으로 조선시대(1394년) 수성현에 속했는데 이후 대구현에 포함됐다가 1963년 대구시 동구 상동으로 명칭을 얻었으며 1980년 수성구가 신설되면서 수성구에 편입됐다. ◆선사시대 흔적따라 상동지석묘대구의 남쪽 경계인 팔조령에서 발원하는 신천(新川). 신천 주변에는 다양한 문화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현재 상동의 수성못 서편 제방(堤防)에 위치한 4기의 상동지석묘이다. 근대화와 도시개발, 시민들의 인식부족으로 대부분의 지석묘가 사라졌지만 상동지석묘는 국립 대구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해 41기의 유구, 마제석검 2점 등 다수 유물이 출토됐다. 대구지역에서 처음으로 신석기 문화의 존재를 알 수 있는 빗살무늬토기 파편도 발견되기도. 또 구(舊) 정화여고에서 발굴된 다수의 지석묘, 석관묘 등은 현재의 정화우방팔레스 서편에 소공원을 조성해 복원ㆍ전시되고 있다. 당시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부터 정주가 이루어진 하천변의 취락 유적으로 밝혀졌다.◆백성을 생각했던 인물·유산 숨 쉬는 곳이서 선생의 치적을 기리고자 주민이 세운 송덕비인 이공제비. 홍수 때만 되면 신천이 범람해 피해가 극심했던 시기 대구 판관으로 부임한 이서는 사재를 털어 제방을 축조했고 주민들은 이공제(李公堤)라 칭했다. 이후 이서 선생의 업적을 영구히 기리고자 세운 송덕비가 이공제비이다. 이공제비와 나란히 서 있는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는 이공제(李公堤) 축조 후 시간이 흘러 큰 홍수로 인해 이공제 하류 부분이 훼손돼 당시 군수 이범선이 주민 부담없이 단시일에 공사를 완공하자 주민이 함께 비석을 세운 것이다.또 조선시대 시문집 문탄집의 저자이자 정묘호란의 의병장이었던 손린선생을 기리는 봉산서원과 1900년대 한일 절충식 건축물로 당시 새로운 경향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야수정도 놓치지 말아야 할 유산이다.백성의 칭송을 받았던 인물과 시대의 유산을 통해 역사의 한 꼭지를 들여다보며 현재의 시대를 켜켜이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볼 것을 추천한다.◆역사를 벗 삼아, 새롭게 태어나는 마을산업화 시절을 거쳐 지역의 부촌으로 각광받던 상동. 들안길 먹거리 타운과 함께 대구지역 최고의 도심 속 유원지인 수성못을 끼고 상동은 이제 가족, 연인, 지인 등의 만남의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주민들은 자발적인 역할을 통해 변화의 시대 속에서 마을을 변화시켜 가고 있다. 상동 해피타운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주택을 선호하는 요즘 시대에 새로운 발상으로 주택밀집지역을 주차공간, 방범시설, 소공원, 벽화, 도시가스 설치 등의 민ㆍ관이 함께하는 도심 재생 사업으로 살기 좋은 동네로 변화시켰다.마을에 가득한 문화유산을 주민이 직접 풀어가고 여행자와 여행지의 주민들이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동 마을공정여행가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을 찾는 관광객에게 마을 홍보와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상동지석묘로 시작된 선사시대, 이공제비, 야수정으로 이어지는 역사시대를 거쳐 이제는 들안길먹거리타운과 수성유원지 등 새롭게 미래를 만들어가는 곳이 상동이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사진1-수성구 상동에 있는 이공제비. 이서 선생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다.사진2-수성구 들안길먹거리타운의 조형물 모습. 2013년 주민안전을 위해 상징조형물을 새단장했다.사진3-수성못 서편 제방 인접한 곳에 있는 4기의 상동 지석묘. 대구에서 처음으로 신석기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비둘기 떼가 주변 바위 하얗게 덮은 곳…이제는 힐링 명소”

운암지수변공원은 구암동 대표 명소로서 1만7천962㎡ 넓이의 저수지를 자연 그대로 보전한 친수공간으로 거듭났다. 대구시 북구 구암동. 비둘기처럼 생긴 산이 있는 동네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함지산 부근 숲 속에 열매가 풍부해 비둘기떼들이 모여들어 주변 바위를 하얗게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또 구암동 뒷산에 비둘기가 많이 와서 울었다고 구명이라 불렸는데 구명의 구자와 운암동의 암자를 따서 구암동이 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구암동은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현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경북 칠곡군 칠곡읍이 편입된 곳이다. 그해 7월 칠곡 1동으로 설치ㆍ운영되다 2003년 태전2동, 구암동으로 분동됐다.면적 4.4㎢에 4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중앙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아파트, 상업, 단독주택 등으로 형성된 칠곡택지 2ㆍ3지구의 중심상권 지역이다.이에 강북지역의 교통과 행정, 문화, 산업 및 10여개의 초ㆍ중ㆍ고교가 있는 교육의 중심지로 거듭났다.구암동에는 함지산, 구암동 고분군, 함지ㆍ구암공원, 운암지수변공원 등이 명소로 손꼽힌다.함지산은 높이 288m로 북동쪽은 팔공산과 연결되고 북서쪽으로는 동명천 유역의 넓은 평야에 접한다.남서쪽은 동명천을 따라 금호강까지 형성된 연봉으로 이어진다. 그 정상에서는 금호강의 상류와 하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구암동 고분군은 함지산 자락에 조성돼 있다. 현존하는 대구지역 최대규모의 고분군이다. 이에 북구청은 구암동 고분군과 지역 역사를 담은 팔거산성을 정비해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특히 함지공원과 구암공원 일대에서 고대 및 삼국시대 조성된 유적이 발굴되기도 하는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알려졌다.구암동의 대표 명소로서 함지산과 쌍벽을 이루는 ‘운암지수변공원’은 1만7천962㎡의 넓이의 저수지를 자연 그대로 보전하는 방식을 통해 친수공간으로 거듭났다.20여 종의 느티나무와 함께 휴게광장과 수변무대 및 정자 6개소와 분수ㆍ계류시설ㆍ체력단련시설이 조성돼 있다.이 밖에도 구암동은 운암지 생활공원 및 유아숲체험공원, 국우성당 뒤편 숲체험공원, 함지공원 물놀이장, 구암공원 바닥분수 등 자연친화적 공간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김재용 구암동장은 “현재 북구청에서 추진 중인 운암지 주변 주차장이 조성되면 앞으로 함지산과 운암지 수변공원을 찾는 이용객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며 “또 올해 구암배수지 내 테니스장이 신설되면 주민의 활발한 여가활동에도 기여해 구암동이 더욱 살기 좋은 쾌적한 힐링동네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아람 기자 aram@idaegu.com

중심상권 밀집…주말 평균 5천 명 찾는 대표 명소

대구 중구 대봉1동은 1918년 지방 행정구역 변경으로 달성군 수성면의 봉덕동과 대명동이 대구부에 편입되면서 대봉정으로 불려지다 1946년 정(町)을 동(洞)으로 수정해 대봉동이 됐다. 이후 1980년 4월 남구의 일부가 중구로 합쳐지면서 지금의 중구 대봉1동과 2동으로 나눠졌다. 대봉1동의 면적은 약 0.59㎢로 중구 면적의 약 8.3%를 차지한다.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신천과 동서로 달리는 국채보상로가 만나고 대구 도시철도 2호선과 3호선이 지나는 등 교통의 중심지다. 인구수는 올 3월 말 기준 8천337명이다.현재 대봉1동은 대구시가 아름다운 거리로 선정한 동덕로(삼덕네거리~동인네거리)와 백화점, 전통한복과 웨딩 밀집거리가 있는 중심상권지역이다.특히 2015년과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관광100선’에 선정된 방천시장&김광석 길이 위치해 있다. 방천시장&김광석 길은 주말 평균 5천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대구 명소다. 한때 점포 수가 1천 개가 넘는 대구의 대표 전통시장 중 하나였던 방천시장은 도심공동화와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 밀려 쇠락해 가던 중 2009년부터 실시된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 ‘문전성시프로젝트’ 등을 통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김광석 길은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하나로 중구청이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조성한 것이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1964~1996년)이 대구에서 출생하고 유년 시절 대봉동에서 자란 것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신천대로 옹벽을 따라 꾸몄으며 높이 3m의 옹벽은 김광석 노래를 테마로 한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 등으로 채워져 있다. 골목방송스튜디오, 야외공연장, 쌈지공원 등도 자리잡고 있다.다음달 15일에는 김광석의 유품을 전시하고 음악을 듣는 공간인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도 문을 연다. 2014년부터는 이곳에서 매년 대봉문화마을 축제 ‘방천아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주민과 상인, 예술가들이 직접 기획해 열리는 방천아트 페스티벌에서는 문화마을투어, 방천아트마켓, 아트 공방, 전시회, 보디페인팅, 포크콘서트, 버스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대봉문화마을협의회’(대표 전태규)의 주도 아래 예술가들의 공방 및 갤러리, 아기자기한 카페, 맛집들이 늘어나고 있는 김광석 길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협의회는 마을주민, 문화예술가, 상인들이 화합해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올해부터 3년간 대봉1동이 추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공간되도록 △커뮤니티센터 운영 △창작기념품 제작 △게릴라 환경디자인 등 다양한 사업을 할 예정이다.또 대봉1동에는 대구ㆍ경북 최초의 영어도서관인 ‘대구중구영어도서관’도 자리잡고 있다.대구중구영어도서관은 대봉1동 주민센터 2층에 2013년 문을 열었다. 전체 350여㎡ 규모에 둥근 모양의 서가 2개와 리스닝 존이 들어선 열람실, 스토리텔링 및 테마공간 등을 갖췄다. 문학ㆍ예술ㆍ역사 등 1만5천여 권의 장르별 영어도서가 구비돼 있으며 원어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김종옥 대봉1동장은 “대봉1동은 상인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구성해 마을의 자원을 가꾸고 더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