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회관 수업 즐겨…할머니 3인방 서예문인화 초대작가 입문

봉화의 80대 할머니 3인방이 서예문인화 초대작가에 올라 화제다. 왼쪽부터 이원난(80), 송옥란(86), (한 사람 건너) 박추희(83) 할머니. 대한민국 오지로 손꼽히는 경북 봉화에서 80대 할머니 세 분이 서예문인화 초대작가에 등재돼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봉화군 소천면의 송옥란(86)ㆍ박추희(83) 할머니와 봉화읍의 이원난(80) 할머니 등 세 명이다. 이들 할머니들은 지난 9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20회 대한민국 영남미술대전 시상식에서 서예문인화 초대작가로 데뷔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혼돈의 시대를 몸소 겪으며 생존을 위해 살아야만 했던 할머니들은 학교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자식을 모두 출가시키고 칠십이 돼서야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할 방법을 찾았고 붓을 잡았다. 소천면에 사는 송옥란, 박추희 할머니는 봉화읍으로 나오려면 소천면사무소에서 운영하는 공용버스를 타고 소천면 소재지로 이동,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 남짓 걸리는 봉화읍까지의 길을 가야 했다. 송 할머니 등은 먼 길을 서너 시간씩 오가면서도 배움의 고픔을 즐거움으로 채웠다. 세 할머니는 지난 10여 년 동안 봉화문화원과 여성문화회관, 노인복지관 등에서 운영하는 한문교실과 서예, 문인화 교실 등을 찾아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배우고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첫 구절처럼 마냥 즐거웠다는 할머니들의 열정과 노력은 영남미술대전, 김생서예문인화대전, 경북서예문인화대전 등에서 특선과 입선 등 많은 수상으로 결실을 거뒀고 마침내 초대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특히, 류머티스 관절염과 다리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송옥란 할머니는 “몸이 힘들고 아파도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게 참으로 즐거웠다. 누구든 배움에 게으르지 않다면 할 수 있다”며 “공부하는 젊은이들도 열심히만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추희 할머니는 “무엇이든 배운다는 건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같이 배우는 사람이 있어서 외롭지 않고 더욱 좋았다. 자식들도 열심히 응원해줬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원란 할머니는 “평생에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뤄서 매우 기쁘다. 기회가 없어서 배울 수도 이룰 수도 없었던 것을 이뤄서 더 바랄 게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완훈 기자 pwh0413@idaegu.com

“막내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6년째 교통안전 봉사 도맡아”

“우리 어른들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나 둘 하게 되면 좀 더 안전한 동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그런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우리 사회 전체가 살기 좋아지지 않겠습니까.”등교시간인 지난 1일 오전 8시20분께 대구 수성구 만촌동 대구 중앙초등학교 앞.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중앙에 형광색 녹색어머니회 유니폼을 입은 한 남자가 지나가던 차량을 능숙하게 막아섰다. 곧이어 흰색 장갑을 낀 채 현란한 손짓으로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게 도와줬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은 아저씨가 반가운지 연신 “교통아저씨 안녕하세요”, “아저씨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네자 “날이 추워지니 따듯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며 아이들을 챙겼다.아이들이 모두 지나가자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가벼운 목례로 정차한 차량에 인사하고 차량을 통과시켜주는 모습은 전문가의 면모를 물씬 풍겼다.이 교통아저씨는 김희섭(58)대구 수성구 구의원이다. 김 의원은 아이들의 안전한 등굣길을 만들고자 2011년부터 6년간 교통안전 지킴이 봉사를 하고 있다. 그가 처음 교통안전 지킴이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늦둥이 막내 때문이다.막내가 중앙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스승의 날 선생님께 드릴 뜻깊은 선물을 고민하다 좋은 학교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 6년째 이어오고 있다고.막내는 중학교 3학년이 됐지만 김 의원은 여전히 오전 8시가 되면 중앙초등학교 앞으로 나간다.“처음엔 단순히 우리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는 내 동네 우리 지역의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커져 매일 아침 나오고 있어요”아이들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통해서일까 2014년 김 의원이 수성구 구의원에 당선되는 데 가장 큰 조력자는 선거권이 없는 어린이였다.선거 날 아이들이 집집마다 부모님을 데리고 “선거하러 가야 된다”며 투표장을 찾은 것. 일부 어린이들은 선거 날 “우리 동네 교통아저씨 김희섭”을 외치며 유세하기도 했다고.그는 다산 정약용선생의 ‘견여가’라는 시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자신의 교통봉사활동의 의미를 일깨웠다.“‘사람들이 가마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메는 사람들의 괴로움은 모르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산 선생의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그 정신으로 구정 활동에 임하겠습니다”고 다짐했다.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행복 바이러스 전파하러 ‘북구 4번’은 오늘도 달립니다

대구 북구 4번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서억진(50ㆍ북구 관음동) 씨. 타는 승객마다 인사건네고 사탕과 떡을 나눠주며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행복버스 운전기사다. 조영선 기자 zeroline@idaegu.com 대구 시내버스에 행복바이러스를 가득 담은 버스가 운행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주인공은 북구 4번을 운행하는 서억진(50ㆍ북구 관음동) 버스기사.지난 15일 오후 3시 북구청 앞에 정차한 북구 4번 버스에는 여느 버스와 다른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오늘은 뭐 할라고 탓는교”, “할매 오늘 장보고 가는갑지예”, “천천히 타이소 그라다 다칩니데이”탑승하는 승객들과 나누는 대화는 마치 가까운 이웃사촌처럼 정겨웠다.곧이어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타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운전석 옆 바구니에 있던 사탕을 건네주며 “인사 잘해서 아저씨가 주는 선물”이라며 웃어 보였다.이날 북구 4번 버스를 처음 탄 김하민(26ㆍ여ㆍ북구 칠성동)씨는 “버스에 오를 때 휴대폰을 보면서 올랐는데 기사님이 사이렌을 울리셨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이제 이 버스에 적응됐다”며 버스 승객과 담소를 나누는 서씨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팔달역에 이르자 반가운 손님이 버스에 탑승했다. 3년 전 서 기사가 726번을 운행할 때 자주 타던 손님인 이주형(22ㆍ남구 대명2동)씨다.이씨는 “고3 때 늘 타던 726번 버스 운전기사셨는데 북구 4번으로 바뀌셨다”며 “우울한 날 아저씨의 긍정적인 기운을 받으려고 환승까지 하며 버스를 탄다”고 말했다.버스가 팔달역 정류장에 가까워지자 시내버스에서 듣기 어려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오늘도 북구 4번을 찾아주신 승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팔달역 맞은편 정류장으로 가실 때 무단횡단하지 마시고 바로 아래 횡단보도를 이용해주세요. 횡단보도 이용 시 1분30초가 더 걸립니다. 운동하신다고 생각하시고 건강과 안전을 위해 꼭 부탁합니다”팔달역 정류장은 무단횡단을 많이 하는 지역이다. 바로 밑에 횡단보도가 있지만 도로 폭이 좁아 대부분 승객이 무단횡단 한다는 것.서억진 기사는 “한달 전 버스를 운행하다 교통사고가 날뻔한 승객을 봤다. 그날부터 내 버스를 탄 고객의 안전을 위해 방송했다. 이제 무단횡단하는 승객이 거의 없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항상 승객에게 마음을 얻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마음을 먼저 열고 다가가자. 사탕 하나 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주고 인사를 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하자. 그랬더니 승객들도 다가오고 이제는 버스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친구를 보러 가듯 설렙니다”오늘도 북구 4번은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며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나만 아는 기호로 손수 빠르게 받아적는 글…매력 있죠”

지난 16일 오후 대구 달서구 의회에서 수필로 속기하는 속기사 심은주(51ㆍ여)씨의 모습. 언뜻 보면 낙서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회의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장점 아닐까요?”대구 달서구의회에서 20년 넘게 근무 중인 수필속기사 심은주(51ㆍ여)씨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매력을 한마디로 말했다. 심씨는 손수 기호를 번역하는 수필속기사다. 기계의 비중이 늘면서 점차 컴퓨터속기사가 대중화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30년 전 그는 직업관이 뚜렷하고 주체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오직 속기사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3년간 한우물만 팠단다. 그는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의 소개로 속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며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그는 하루 14시간씩 꼬박 3년을 공부했고 26세 봄, 드디어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속기사가 된 후에도 노력은 계속됐다. 남들보다 더 빨리 쓰고 해석하고자 스스로의 문구도 창조했단다. 이에 지금은 컴퓨터 속기에 버금갈 정도로 손이 빠르다.또 속기를 하면서 내용의 흐름을 동시에 파악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그는 “속기 기호는 글자가 아니어서 오역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예전에는 들리는 대로 바로 적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내용을 이해하면서 오류를 최소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그가 작성한 문서를 언뜻 보면 낙서를 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일직선과 기호가 어우러진 문서는 한참을 들여다봐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해석이 어렵다.이렇게 사용되는 속기 기호는 300개나 된다. 글자에 따라 기호가 모두 달라지는 탓에 엄청난 집중력도 요구된다.이처럼 오직 속기 기호는 ‘심씨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문구’라는 점이 그에게는 이미 삶 일부처럼 여겨진다고. 심씨는 속기사를 하며 ‘회의록이 나왔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고 했다. 심씨의 기호가 문서화 될 때면 언제나 희열을 느끼게 된단다.그는 속기 고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비록 속기사의 취업문은 좁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만한 직업 중 하나라고 전했다.심씨는 “속기의 매력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 세대를 끝으로 수필속기사는 사라지겠지만 희소가치가 있는 직업인 것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이아람 기자 aram@idaegu.com

정손진 한울안경 대표…“대구 향토가요 알리는 게 제 기쁨이에요”

“대구를 주제로 한 음악이 흐르는 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향토가요 홍보를 위해 유세차량을 방불케 하는 차량이 365일 대구지역을 돌아다닌다.이 차량에는 오는 9일 열리는 제6회 향토가요제 대구시편 홍보현수막이 뒤덮혀 있다. 또 스피커에서는 대구를 주제로 한 향토가요가 흘러나온다.이 차량은 바로 정손진(60) 한울안경 대표의 화물트럭이다.석가탄신일이었던 지난달 3일에도 정 대표는 대구 곳곳을 누비며 향토가요 홍보에 열을 올렸다. 정 대표는 “대구향토가요를 접하고부터 인생이 더 즐거워졌다. 모임에 나가보니까 취지가 남달랐다. 누구나 음악을 좋아하는 시민이라면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대구노래를 만들고 보급하고 알리고자 안경가게 홍보용으로 산 트럭을 2016년부터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그는 현재 각종 행사에서 ‘한울안경 대구 사나이’로 활동하는 대구향토가요 가수이자 홍보대사다. 이와 더불어 사비를 털어 이번 대구향토 가요대행진 3집 CD 1만 장을 지원하는 등의 든든한 후원자다.특히 지난해부터 향토가요제 대구시편과 함께 한울안경페스티벌을 개최해오고 있다.한울안경페스티벌은 대구향토가수들이 설 무대가 많지 않은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 정 대표가 직접 기획한 것.정 대표는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대구에는 무대가 많이 없다”며 “한울안경페스티벌로 대구 시민들에게 대구향토가수들이 실력을 뽐낼 기회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내사랑 대구 여행’이라는 새로운 노래를 준비했고 다양한 향토가수들이 대구를 주제로 한 노래로 대구시민을 만날 계획”이라고 말했다.정 대표의 대구향토가요 홍보 열정이 통해서일까. 지난해 6월 두류공원 코오롱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향토가요제 대구시편과 한울안경페스티벌에 2만여 명의 시민이 찾았다.그는 향토가요 홍보 이외에도 까치봉사단 등 각종 봉사단체에 참여해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정손진 한울안경 대표는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노래를 잘 못한다. 그래도 향토가요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1등”이라며 “앞으로도 대구만의 노래를 보급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한편 오는 9일 두류공원 코오롱 야외음악당에서 제6회 향토가요제 대구시편이 개최되고 10일에는 한울안경페스티벌이 열린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어려움·난관 극복하고 골인할 때 성취감…말로 못해요”

마라톤 마니아인 박복환(59) 동장은 “완주 후 느끼는 기쁨과 목표달성의 뿌듯함 때문에 18년 간 꾸준히 마라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은 터질듯이 뛰며 땀은 비 오듯 쏟아집니다. 그래도 달리는 이유요? 완주 후 느끼는 기쁨과 목표달성의 뿌듯함 때문이죠”박복환(59) 대구 중구 동인동주민센터 동장은 마라톤 마니아다. 단순 취미생활이라고 하기에는 다양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99년 마라톤을 시작한 이래 풀코스(42.195km)만 121회를 뛰었다. 하프코스(21.0975㎞) 등을 합치면 250여회의 마라톤에 출전했다. 동호인들이 꿈으로 여기는 ‘서브쓰리’(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뛰는 것)도 달성했다.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계기는 다이어트였다. 1980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불어나기 시작한 체중을 감량하기로 마음먹은 것.그러던 중 우연히 TV를 통해 마라톤대회 중계를 봤다. 그는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이들의 모습이 자유로워 보여 좋았다”며 “무작정 끈기있게 한번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박 동장은 ‘대구마라톤클럽’ 동호회에 가입을 했다. 혼자서는 꾸준히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 그때부터 체력을 키우며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시작했고 ‘마라톤 온라인’ 등을 통해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그는 “한창 마라톤에 미쳐(?)있을 때는 1년에 풀코스만 33회 뛰었다”며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연속 출전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서브쓰리 달성은 2008년 참가한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였다.박 동장은 “마라톤에 출전해 달리기를 하는 일반인들의 최종 목표는 서브 쓰리다. 쉽게 3시간 벽을 넘는 사람들도 있지만 끝까지 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당시 2시간58분51초로 서브쓰리를 달성했는데 완주 후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들 정도로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그렇다면 마라톤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마라톤은 땀을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오는 운동이다. 온갖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고 골인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성취감과 자신감을 갖게 해 준다”며 “그 느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그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고 함께 뛰며 사람들과의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점과 잔병치레가 없어지는 등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점이 마라톤의 매력이라고 했다. 업무의 효율성도 꼽았다. 그는 “달리다 보면 복잡한 마음도 사라져 업무를 보는데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며 “주말 및 평일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달리다 보면 분위기 전환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마라톤을 시작한 계기인 ‘다이어트’의 효과도 봤다. 당시 80㎏에서 현재 10㎏ 이상 감량한 상태다. 현재는 자신이 2002년 주도적으로 창단한 대구중구청마라톤클럽을 통해 회원들과 꾸준히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신천둔지와 두류공원에서 10~20㎞씩 뛰고 있다. 서브쓰리 달성 후 또 다른 목표가 있을까. 박 동장은 “이제 나이도 있으니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마라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며 행복을 느끼자는 마음가짐으로 뛰고 있다”며 “단 80세까지 뛰고 싶다는 목표는 있다”고 웃어보였다. “지친 일상 속에 삶의 활력소가 되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저에게는 마라톤이 그렇습니다. 모든 직장인들이 자신만의 취미를 가져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자유분방 ‘대구촌놈’ 경험쌓아 고향발전 ‘올인’

지난 16일 오전 대구 북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이헌태 북구의원. 이 의원은 대기업 사원부터 현 구의원까지 4차례나 직업을 바꿨다. “모두 행복한 세상을 위해 저의 작은 힘을 보태는 것이 제가 가야 할 길이고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한번 취업하기도 어려운 이때 무려 4 차례에 걸쳐 직업을 바꾼 사람이 있다. 바로 이헌태(55) 대구 북구의원이다.이 의원은 대기업을 시작으로 언론사, 정부기관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나서 현재 구의원으로 활동 중이다.이처럼 그가 끊임없이 직업을 바꾼데는 자유분방하고 주체적인 성격의 영향이 가장 컸다.대구 출신인 그는 성광고(대구 북구)를 졸업한 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로 갓 상경해 ‘대구 촌놈’ 소리를 달고 다니던 그에게 1980년대 대학 풍경은 별천지였다.당시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 물결에 따라 경찰과 대치해 시위를 벌이고 밧줄을 타고 건물에서 내려오는 모습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던 것.이에 영향을 받은 이 의원은 ‘평화문제연구회’라는 학내 동아리 가입을 계기로 각종 시위에 동참하게 된다.그는 “당시 집과 연락이 잘 안 되자 나의 신변을 걱정한 어머니가 친구들을 통해 수소문하거나 신문사를 통해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이 의원은 청년 시절 구로공단에 위장취업을 해 노동 운동을 할 기회를 엿보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 등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사회로 나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대기업 럭키금성(현 LG전자)에 입사했던 그는 수동적이고 단순한 업무에 금세 싫증내고 만다. 이에 언론고시를 준비, 고향인 대구의 한 신문사에 입사하게 된다.그는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국회와 국무 총리실 등 정치의 최일선을 누볐다. 청와대 취재기자를 맡기도 했다.그러나 IMF 직후 그는 13년간 몸담았던 신문사를 떠나게 된다.이 의원의 실직생활은 길지 않았다. 평소 그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던 지인의 추천으로 곧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 들어가게 된 것.이 의원은 재단 사업본부장과 우즈베키스탄 아리랑요양원 초대 원장직을 맡아 역량을 발휘했다. 특히 아리랑 요양원은 우즈베키스탄에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을 위해 설립한 최초의 양로원으로 그가 자랑하는 업적 중 하나다.그는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이 많다. 이에 국가가 나서서 가장 좋은 시설을 지음으로써 아직 그분들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이 외에도 이 의원은 북한과 빈곤국 등을 상대로 보건의료지원을 활성화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나 공공기관 안에서 여러 사업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이를 실천하고자 그는 안정적인 공공기관 생활을 뒤로한 채 2012년 정계에 출사표를 던졌다.그는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고자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했다. 지역의 두터운 여당 벽을 뚫고 2014년 지방선거 때 대구 북구에서 구의원으로 출마, 당선됐다. 현재 구의원이 된지 얼마되지 않은 기간인데도 불구, 발로 현장을 누비는 그의 부지런함이 빛을 발하고 있다. 채 3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누구보다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다.최근 지역 마지막 생태하천인 동화천 사업 추진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항일 애국지사 지오 이경희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며 추모사업에 앞장서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지역민에게 꼭 필요한 인물로 각인시키고 있다.이 의원은 “직업을 워낙 자주 바꾸다 보니 가진 것은 별로 없다”며 “하지만 팔공산과 금호강 등 고향 곳곳을 누빌때면 모든 것이 나에게 주어진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언제나 풍요롭다”고 미소 지었다.이아람 기자 aram@idaegu.com

“대구사랑 노래 ‘향토가요 전도사’ 될래요”

박금지(59ㆍ여) 한국향토음악인협회 대구시지부장은 대한민국 향토가요제(대구시편)를 개최하는 등 대구 향토가요를 알리고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로지 대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구향토가요를 만들고 알리고자 아파트도 팔았죠.”대구지역에서 누구보다 대구향토가요를 사랑하고 홍보하는 인물이 있다.그는 바로 2집 앨범까지 낸 가수이자 한국향토음악인협회 대구시지부장을 맡고 있는 박금지(59ㆍ여) 씨.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출신은 아니지만 대구에 정착한지 40년이 된 그는 대구토박이나 다름없다.‘대구만의 가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하나로 향토 노래를 시작한 박 지부장의 대구 사랑은 남다르다.팔공산 갓바위, 우리사랑 대구, 대구 아리랑, 추억의 수성못, 비슬산 향기, 내사랑 팔공산 등 그가 쓴 가사는 모두 대구와 관련됐다.이처럼 대구사랑을 담은 가사를 쓰고자 현대시선에 등단하는 등 자신의 노래를 포함해 32곡이나 작사해 음반을 냈다.박 지부장은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대구 노래를 알리고자하는 마음 하나로 영남대 경영자과정을 밟았을 정도.특히 대한민국 향토가요제 대구시편 행사를 열기 위해 8천만 원 상당의 아파트까지 팔았다. 가수로서는 치명적 병력인 심폐기능 이상과 이명조차 향토가수를 향한 그의 꿈을 가로막지 못했다.그가 사비까지 털면서까지 대구 관련 음반, 다양한 행사 등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대구 사랑을 아는 정손진 한울 안경 대표 등의 도움 덕분이다.가수 활동을 하면서 받은 사랑은 장수사진 무료촬영, 대구지역 요양원 정기공연 등 각종 봉사로 나누었다.이와 함께 박 지부장은 MC로서 끼와 재능을 뽐내고 있다. 박 지부장은 “대구시민이 많이 사랑해준 덕분에 크고 작은 행사를 직접 맡고 있다”며 “금호강 달집태우기, 북구의 밤, 칠성시장 대축제 등 팬들과 호흡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이런 그의 노력으로 2015년부터 대구시에서 대한민국 향토가요제 대구시편 행사 예산지원을 받았고 다양한 향토 가수를 배출해내는 등의 성과를 이뤘다.대구향토가요대행진 3집(금호강 북구40리 등) 앨범과 제6회 대한민국 향토가요제(대구시편)를 앞둔 박 지부장의 목표는 하나다. 제대로 향토가요를 알리는 ‘향토가요 전도사’가 되는 것.박금지 지부장은 “교수나 강사가 돼서 시민 및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향토가요에 대한 강의를 하고 싶다”며 “전도사가 돼 대구를 노래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이어 “오는 6월엔 두류공원에서 대구 음악 축제가 열리는 데 많은 시민들이 방문해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행사 소개도 잊지 않는다.한편 제6회 대한민국 향토가요제(대구시편)은 오는 6월9일 두류공원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 개최된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전국 명산 넘어 해외로…자전거 세계일주 ‘쌩쌩’

평소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져사는 임동빈(58) 팀장. 대학생과 청소년들의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빠지지 않는 해외여행. 그것도 배낭하나 둘러메고 자전거를 타고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며 떠나는 해외여행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다만 시간적으로나 개인적 사정으로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꿈을 현실로 만들고 지금도 취미로 즐기며 생활하는 인생이 있다. 임동빈(58) 대구 달서구청 징수과 체납처분팀장이 그 주인공이다.임 팀장의 자전거 사랑은 남 다르다. 10년 전부터 차로는 갈 수 없는 길까지 자전거로는 거뜬히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 그의 자전거 역시 매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캐나다 로키마운틴사의 산악용 자전거로 1천만 원을 호가한다.평소 산을 좋아하고 여행다니길 좋아해 이 자전거로 대구 팔공산, 비슬산을 비롯해 전국 명산과 해안도로는 모두 다녔을 정도다. 국내의 경치 좋고 자전거타기 좋다는 곳은 모두 다녀본 임 팀장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먼저 일본 후쿠오카의 아소산, 구마모토, 벳부까지 일주일 동안 자전거 일주를 했다. 다음 목적지는 대만. 12일간 대만 전국을 자전거로 일주했다. 해발 3천200m가 넘는 허환산도 자전거를 타고 올랐다.그는 “봄, 가을이면 주말마다 전국의 명산을 다니며 자전거를 탔다. 차로는 갈 수 없는 길까지 갈 수 있다는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며 “국내 유명 장소들을 다니다 보니 해외로도 눈을 돌렸고 직접 가보게 됐다”고 말했다.그는 일본과 대만 다음으로 뉴질랜드를 택했다. 깨끗한 자연환경에 넓은 들판, 산악지역까지 있었기 때문. 뉴질랜드에서 34일간 자전거 일주를 하며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뉴질랜드의 질서의식이었단다.그는 “뉴질랜드의 한 작은마을에서 인근 편의점을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며 잠깐이란 생각에 헬맷을 안썼더니 이를 본 한 시민이 차를 멈추고 헬맷을 써야한다고 지적했다”며 “잠깐이란 생각에 괜찮다고 생각했었지만 질서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자전거를 타면서 질서를 철저하다 싶을 정도로 지킬 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면서 자동차 경적 소리 한 번 못들었을 정도로 양보의식도 강했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도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임 팀장의 다음 목표는 중국 일주다. 이를 위해 최근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임 팀장은 “자전거로 산을 오를 땐 엄청 힘들다가도 내리막길에서는 보상을 받는다. 이런 저런 매력들이 많아 자전거타기를 멈출 수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국내외 가리지않고 가볼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김우정 기자 kwj@idaegu.com

수많은 시행착오 후 ‘국내 유일’ 되다

국내 유일의 모형 기차 판매원인 송한성(43)씨. 송씨가 판매하는 기차는 한 칸에 130만~30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급 장난감 중의 하나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즉흥적인 삶을 살진 못하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는 성격입니다.”젊은 시절 마음 가는 대로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송한성(43)씨를 만나봤다.대구 토박이인 그는 어릴 적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고 한다. 일단 자동차 장난감을 쥐어주면 바로 분해하는 게 일상이었을 정도.이에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자동차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 평소 자동차 경주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국내 자동차 경주 시장에 실망해 호주로 건너갔다. 우리나라와 달리 매주 경기가 열리는 호주에서는 그의 꿈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본 것.그러나 경주용 차 값은 외국이라고 해서 싸지 않았다. 결국 그는 6개월 남짓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만 하다 왔단다. 대신 자동차 경주 구경은 실컷 했다고.귀국한 송씨는 이번엔 호주유학(?)의 경력을 살려 외국인 모델 매니저 생활에 도전했다. 모델들을 홈쇼핑 방송시간대에 맞춰 데려다 주는 일상이 슬슬 지겨워질 때쯤 그는 잠시 여유가 날 때면 방송국 이곳저곳 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이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개그 프로그램이 다시금 그의 눌러놨던 열정을 불태웠다. 더이상 매니저로서 가려져 있기보다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던 것.마침 개그맨 전유성씨가 당시로는 파격적 조건인 ‘무료’로 연습생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송씨는 무턱대고 서울로 상경했다.이 시절 그와 함께 수업을 들었던 식구로는 개그맨 신봉선, 황현희, 박휘순, 김민경 등이 있다. 송씨와 함께 했던 개그맨들은 지금 유명 연예인이 됐다.송씨는 “당시 80명 정도 모집해 끝까지 남은 연습생은 22명이었다.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도 하차했지만 나와 함께 했던 개그맨들은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져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특히 전유성씨는 송씨와 이때 맺은 인연으로 자신의 결혼식 주례를 서주기도 했단다.장남인데다 그동안 이일 저일 옮겨다니느라 모은 돈이 없었던 송씨는 이번엔 일본의 한 자동차 경주팀 정비로 취직했다. 이제 정말 주어진 삶에 순응하려고 했던 그에게 이번에는 팀이 해체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렸다. 업체 대표의 탈세로 회사가 망했다는 것.그는 곧 개인사업을 벌인다. 현재 국내 유일한 기차모형 판매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가 파는 기차들은 손바닥만 할 정도로 작지만 한 칸에 130만~30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급 장난감 중의 하나다.국내 유일하다 보니 드라마 등에서도 그의 기차를 볼 수 있다. 드라마 ‘판타스틱’에서 남자주인공의 거실에 놓인 장난감이 송씨가 설치한 기차다.국내에서는 치과의사, 한의사 등과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40~50대가 많이 산다고 한다.대구 수성구에 있는 텀트리 카페에도 그의 기차가 돌아다닌다.그는 “고령화 시대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는 사실 몇 개 없다”며 “언젠가 내가 가진 기차들을 모아 전시관을 꾸미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이어 “외국에는 고급 기차모형을 가지고 경주하는 곳도 잘 갖춰져 있다. 전시관을 꾸미게 된다면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곳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송씨의 아들은 대구지역 출신 국내 최연소 카트 선수로 알려진 송하림(8ㆍ들안길초 2학년)군이다.송씨는 “무슨 일이든 오래 버티면 빛을 본다. 그러나 주변환경이 도와줘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이르렀지만 결국 내 취미에 맞는 직업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이아람 기자 aram@idaegu.com

“서각 전시부터 음반 발표·마술까지…즐거운 세상 만들고파”

대구 서구 비산6동에 거주하는 박용하(59)씨가 자신이 만든 서각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박씨는 비산6동 빈 공터를 자신의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탄생한 수백 점의 작품은 전시회나 골목을 꾸미는 데 사용된다. “박용하씨요? 비산6동의 자랑이자 재주꾼입니다.”운수업자이자 서각가, 가수에 마술사인 박용하(59)씨에 대한 이선기 대구 서구 비산6동장의 평가다.지난 4일 오후 비산6동 주민센터 일대에서 장승을 비롯해 야생화로 꾸며진 골목이 행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30여 종의 야생화로 꾸며진 화단은 달성토성마을의 골목정원과 유사했다.이곳을 꾸민 사람은 다름 아닌 동네주민 박용하씨.박씨가 직접 장승을 만들고, 버려진 빈 공터를 화단으로 꾸몄다.지난해 비산6동으로 이사 온 그는 어두침침한 골목을 개선시키고자 자발적으로 시작한 게 발단이다.하지만 처음에는 박씨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비산6동 주민의 반발이 만만찮았다.박씨는 “처음 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길가에다가 무엇을 가져다 놓고 하니까 동네주민에게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라며 “주민센터와 동네주민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동의를 구했다. 이후 공터에 화단을 만들어 거리가 깨끗해지고, 비행 청소년도 줄어들어 이제는 다들 좋아한다”고 웃었다.이어 “비산2ㆍ3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달성토성마을 골목정원을 조성하기 전 내가 만든 화단과 장승 등을 수차례 보러 오기도 했다. 현재는 비산2ㆍ3동 골목정원 자문위원”이라고 귀띔했다.특히 길거리를 장식해놓은 장승과 서각품은 박씨가 직접 만든 작품이다.그는 “나무 냄새에 취해 15년 전 목각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서각도 하게 됐고, 만든 작품을 지역민도 늘 볼 수 있도록 골목에도 전시해놓기 시작했다”며 “동네 주민도 이를 인정해줘 빈 공터를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이곳에서 박용하씨는 운수업에 종사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서각 실력을 갈고 닦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 각자대전, 대구미술협회 인문대전, 대한민국정수대전 등 각종 대회에 참가해 입선했으며 이제는 개인전시회도 열고 있다.박씨의 재능은 이뿐 아니다.1집 앨범을 낸 가수이기도 한 박용하씨는 2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1집 앨범에 있는 ‘지하철 2호선’은 직접 작사한 것. 이로 인해 대구도시철도공사로부터 2호선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현재 2집 앨범 대표곡은 ‘수리수리마수리’라는 곡으로 어지러운 세상이 마술처럼 잘 풀리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직접 작사했다.박씨는 “고교시절 밴드활동을 하면서 음악에 취미가 생겨 음반 한번 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며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잠시 꿈을 접어뒀다가 2013년 작곡가인 고교 후배의 도움으로 첫 음반을 냈다”고 말했다.그는 지역 노인을 위해 봉사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 마술사자격증까지 취득해 ‘노래하는 마술사’로 거듭나고 있다.박용하씨는 “나는 스스로를 만인을 즐겁게 하는 ‘광대’로 살고 싶다”며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민과 끊임없이 소통해 좀 더 밝고 즐거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인라인스케이트로 맺은 부부인연…아들도 선수로 활동해요”

20일 오후 만촌롤러스케이트장에서 한순익(사진 왼쪽 세번째)ㆍ송호성(오른쪽 세번째) 부부 인라인스케이트 강사가 학생들에게 스타트 방법을 연습시키고 있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지난 20일 저녁 8시께 대구시 수성구 만촌롤러스케이트장은 어둠이 짙게 깔려있지만 조명 아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초등학생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허리 낮추고 팔을 뻗어야지”학생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가르치는 한순익(42) 강사의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경기장 건너편 송호성(42) 강사는 제법 선수티가 나는 학생들에게 스타트 연습을 시킨다. “코너를 돌때 겁먹지 말고 치고나가봐”송 강사의 열정어린 주문에 아이들은 더욱 분발한다.매일 저녁 만촌롤러스케이트장에서 펼쳐지는 인라인스케이트 꿈나무들의 연습모습이다. 한 강사는 송 강사에게 ‘송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깍듯하게 대한다.사실 한 강사와 송 강사는 동갑내기 부부다. 둘다 인라인스케이트 선수 출신으로 한 강사는 국가대표까지 지낸 국내 정상급 선수였다. 송 강사는 대학 졸업 후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아내의 인라인 교실을 찾아 함께 아이들을 가르친다.둘의 만남은 고등학생 시절인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한 강사의 고향인 충청도 청주에서 열린 롤러스케이트 종별대회 때 대구에서 온 더벅머리 고교생 송 강사가 단발머리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다.“남편이 고교시절부터 절 좋아했습니다. 이후 대학을 가고 연애를 본격 시작했는데 제가 인천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남편은 대구에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한 강사는 20여 년전 남편과 연애시절을 떠올리며 웃음을 보였다.동갑내기 인라인스케이트 선수들은 스물다섯살이 되던 해 결혼을 했고 잠시 인라인을 떠나있었다.2003년께 국내에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일었고, 4살 난 아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처음 탔다. 선수출신의 부모 피가 어딜 가겠는가. 아들이 인라인스케이트라고는 처음 신어보는데 곧잘 타는 것이었다.평범한 주부로 지내던 한 강사의 가슴에 인라인스케이트의 본능이 들끓기 시작했다.둘은 다시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었다.한 강사는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강습을 시작했고 남편은 동호회나 클럽 단장을 맡으며 아내와 호흡을 맞췄다. 3년 전부터 남편은 낮에는 법무사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내를 도와주기 시작했다.아내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한순익 인라인교실도 만들었다.인라인 붐이 일고 사람이 모여들면서 지금은 함께 가르치는 강사만 10명이 넘는다. 초등학생과 성인 100여 명이 한순익 인라인교실 유니폼을 입고 만촌롤러스케이트장 트랙을 달린다.한 강사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면 우선 성장판이 자극돼 키가 크는데 도움이 되고 균형감각이 발달돼 운동능력을 발달시킨다”며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체력발달, 유연성강화, 심폐기능발달, 다리근력강화,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인라인스케이트 자랑을 늘어놓았다.요즘은 고교선수생활을 하는 아들 제언(18)군도 나와 아이들과 함께 트랙을 돌아준다.송 강사는 “스트레스 해소와 성취감 획득, 자신감 상승을 가져다 준다”며 “건강과 안전에 대한 생활습관을 길러주고 사회성을 키운다”고 덧붙였다.송 강사에게는 저녁에 함께 일하는게 어떠냐고 물으니 “혼자 힘들게 학생들을 가르치는게 늘 미안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니 만족한다”고 말했다.한 강사는 남편이 도와주는 것에 대해 “강사와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힘에 부쳤는데 남편이 트랙에 나와주니 너무 든든하다”고 웃었다.그녀는 “인라인스케이트는 유럽에서 시작됐지만 한국이 강국이다.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등 선수층도 두텁다. 아직 올림픽은 정식종목이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올림픽에 나갈 꿈나무들을 키우기 위해 남편과 열정을 쏟아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밤늦게 찾은 환자 위해 간호사 없이 진료 ‘대구의 슈바이처’

박언휘 원장은 자원봉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지난달에는 시 전문잡지를 창간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나를 응원해주는 주변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목 기자 내과 의사 박언휘 원장이 봉사를 위해 동분서주 하는 것은 지역 의료계에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대구의 울지마 톤즈’, ‘대구 슈바이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10여년 전부터 자신이 필요하다면 지체없이 뛰어간다. 장애인, 노인, 불우이웃 등 자신이 힘이 된다 싶으면 몸을 사리지 않는다.이 때문에 ‘자원봉사’단어가 들어간 시민ㆍ사회단체의 감투가 열개도 넘는다.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것을 두고 정치하려고 그런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봉사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그녀가 정계에 입문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정치에 그다지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지난 7일에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울릉도 수해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성금 1천만 원을 내놨다.울릉도 출신인 그녀는 고향 주민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소식에 가만히 있지 못한 것이다.사람들은 ‘통큰 기부’라고 하지만 지난해에는 1억 원을 기부하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아너소사이어티 54번째 회원이 됐다.박 원장의 통큰 기부는 매년 노인들에게 독감백신을 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찬바람이 불면 박 원장은 어김없이 독감백신 1억 원 어치를 구입해 지역 노인복지 시설들에 보낸다. 10년 가까이 노인시설에 보낸 독감백신만 10억 원 어치가 넘는다.이 때문에 사람들은 돈 잘 버는 의사로 안다. 많이 버니까 그만큼 기부하지 않느냐는 논리다.그러나 박 원장은 혼자 내과 의원을 한다. 보조 의사도 없다.아침에 출근하면 환자 수십여 명이 대기하고 있다.한 달에 첫번째 일요일 하루만 쉰다. 월ㆍ수ㆍ금요일은 저녁 9시까지 진료한다.늦게 오는 환자를 돌려보낼 수 없어 간호사들이 퇴근해도 혼자 병원을 지키며 환자를 돌보는 일도 잦다. 퇴근시간이 가까워 지면 의사가 오히려 간호사 눈치를 보면서 진료한다.그녀는 “힘들어하는 환자들이 링거라도 한병 맞고 기운차려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때가 진짜 의사의 보람을 느낄때”라고 강조했다.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 삶은 계란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4~5명의 간호사들이 보조하는 일을 박 원장은 혼자 다 해낸다.환자들이 길게 밀려있지만 환자들의 증상을 꼼꼼히 들어보느라 진료시간이 다른 의사들보다 길다.환자들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병을 이겨보려는 집념도 강하다.환자들을 너무 적극적으로 진료하다가 과잉진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10여 년 돌봐준 환자가 진료차트를 잘못 기재했다고 십여차례에 걸쳐 경찰과 검찰에 고발해 현재 재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그러나 고맙다고 환자들이 가져온 음료수며 꽃다발, 편지 등이 진료실 한편에 가득 쌓여있다.박 원장은 늘 분홍색 수술복을 입고 다닌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바깥에 외출할때도 분홍색 수술복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만나는 이들을 당혹케한다.헤어스타일도 늘 긴 생머리다. 쉰을 훌쩍 넘은 나이에 무슨 소녀같은 생머리냐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미장원 갈 시간이 없어 집에서 직접 가위로 자신이 머리를 자르기 때문에 생머리가 편하다고 했다.이렇게 어렵게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아낌이 없다.남들은 1년에 1~2억 원 벌기도 힘드는데 박 원장은 1~2억 원을 기부하기 때문이다.그런 그가 지난 여름에는 시 전문 잡지를 발간했다.지난 8월 시 전문잡지인 ‘시인시대’를 창간해 주위를 또다시 놀라게 했다. 그는 2012년 한국문학신문 신춘문예 시와 수필부문에 당선된 이후 문인으로서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했다.시인시대는 시 전문 계간지로 시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지역에서 능력 있는 시인들을 발굴하는데 취지를 두고 있다. 박 원장은 “문예지 특성상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고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며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잡지가 되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의사, 자원봉사 중독자에다 이번에는 시인과 내친김에 시 전문잡지 발행인까지 박 원장의 직업 명단에 올렸다.이 많은 일을 어떻게 혼자 다 해내느냐고 물었다.박 원장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일이 너무 많아 실수할때도 있지만 나를 응원해주는 많은 주변인들이 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일을 일궈 나간다”며 “주변에서는 별난 인생을 산다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여러가지 진행하고 있는 평범한 인생”이라고 웃어넘겼다. 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책 베고 자던 문학소년 취업 대신 헌책방 열다

“책은 내게 있어 인생 그 자체입니다.”가난했던 시절. 없는 살림에도 한 두 푼씩 용돈을 모아 책을 사는 게 큰 기쁨이었다는 김창호(64)사장은 경북대학교 서문 인근에서 36년 넘게 헌책방을 운영 중이다.한 때 금융권 입사 시험을 준비했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됐던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건 손바닥만한 책 한 권을 사면서였다.그의 첫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 처음 책장을 넘겼을 땐 외국 등장인물의 이름이 너무 길어 재미는커녕 내용 이해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하루에 20장씩 2개월에 걸쳐 겨우 완독했을 정도였단다.이후 독서에 흥미를 잃어버린 그는 책을 방치해놓은 채 까맣게 잊고 지냈지만, 시간이 흐르고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곤 호기심에 다시 책을 펼쳤다고 한다.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엔 내용이 모두 이해되기 시작했단다. 세번 째 책을 정독한 뒤 책장을 덮는 그의 눈에는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눈물이 가득했다.이처럼 책 한 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된 김 사장은 틈날 때마다 책을 사모으게 됐다. 나중에는 책을 베고 자야 할 정도로 방과 집에 책이 쌓여 헌책방처럼 변했다.결국 그는 취업을 포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면서 1980년 대구시청 헌책방 거리에서 ‘자유서점’을 연다. 서점은 4년 뒤 현재 자리로 옮겨졌고 ‘합동서점’으로 이름이 바귀었다.현재 합동서점이 보유한 서적은 60여만 권에 달한다. 역사, 종교, 예술 등 다양한 주제와 종교서적, 만화, 참고서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중 그가 애지중지하는 고서는 7천여 권 정도다.1937년 국내 한 레코더사에서 발간한 유명 가수의 만담과 가요 목록책, 1906년에 발간돼 100년도 더 넘은 고서적인 ‘동물학’. 1929년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일순의 행적 등을 정리해 편찬한 대순전경 초판까지 있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듯했다.그는 문학의 본질을 담은 책들이 사라지고 가벼운 내용의 책들을 읽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크게 아쉬워했다.김 사장은 “책을 읽으면서 고뇌하고 깊이 생각하던 시절이 지났다”며 “시간 보내기를 위한 흥미 위주의 도서가 늘면서 문학 또한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한창 서점이 잘됐을 때는 하루 100여 명의 대학생이 서점을 찾아 양팔에 30~50권씩 책 꾸러미를 들고 책방을 나서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과거에는 책이 지식이자 능력의 척도였기 때문에 책방에 틀어박혀 학문을 갈구하는 대학생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는 것.그러나 인터넷 등의 발달로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독서인구도 줄고 시중에 많던 서점도 거의 사라지고 정작 역사의 발자취를 담은 고서적 등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김 사장은 “조금이라도 지식을 채우고자 책방 앞을 기웃거리던 젊은이들의 수가 예전 같지 않다. 그들에게 값싼 가격으로 서적을 제공하려고 만든 서점이 지금은 텅텅 비었다”며 “책은 우리나라의 문화이자 역사다. 역사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한다면 국가의 발전은 더뎌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이아람 기자 aram@idaegu.com

와인에 푹 빠져 요리까지 입시학원 이사장의 변신

“파티를 시작한 지 10여 년 동안 3천여 명의 사람에게 제 요리를 선보였습니다. 와인과 곁들일 수 있는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이 제 삶에 낙이 돼 버렸죠.”폭탄주 위주의 우리나라 음주 문화가 싫어 다른 것을 찾던 중 와인의 매력에 푹 빠진 트웰브키친 김상환(62) 대표가 이처럼 말했다.김상환 대표의 전 직업은 대구지역의 유명 입시학원인 ‘일신학원’의 재단 이사장.일신학원을 잘 운영하던 그가 음식 조리에 푹 빠진 것은 폭탄주 문화를 탐탁지 않아 했던 김 대표를 잘 알던 한 지인의 권유로 2000년부터 와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다.그는 “폭탄주 문화가 싫었다. 적당히 기분 좋게 마시고 그러면 좋은데 끝이 보일 때까지 마시니 몸도 상하는 것 같았다”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와인을 소개 받았는데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고 말했다.와인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에 걸맞은 음식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 음식인 것.하지만 2000년도 당시만 해도 대구에 제대로 된 양식집이 없었다.그는 수소문 끝에 대구시 수성구에서 조르지오 스코파(80)가 운영했던 나폴리 식당을 찾았다.김 대표는 스코파가 이탈리아 요리를 가르쳐준다고 해 무작정 찾아가서 배우기 시작했다.그렇게 1년 동안 서양 음식을 배웠다.그는 “나의 스승인 조르지오 스코파가 나보고 베스트 학생이라고 말했다”며 “보통 사람은 초급 코스까지 배우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중급, 고급까지 다 배워버렸다. 지금도 항상 음식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렇게 요리를 배운 김 대표는 파티를 열기 시작했다.김 대표는 “파티를 처음 했을 땐 4~5명씩 불렀다. 그러다가 점차 인원이 늘어나 한 번에 수십여 명이 함께 즐기기도 했다”며 “그렇게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김상환 이사장 집에 가서 밥 먹어보지 않았으면 대구에서 잘나간다고 하지마라’는 소문까지 나 있더라”고 말하며 웃었다.그렇게 입 소문이 나기 시작한 김 대표는 2011년 대형사고(?)를 쳤다.2011년 육상선수권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김 대표에게 세계육상연맹 집행위원 부인들만을 위한 파티를 열어 줄 것을 요청한 것.파티는 대회에 초청된 외국 VIP 여성들을 위한 ‘레이디스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마련됐다.그 당시 문동후 대회 조직위 부위원장, 김범일 전 대구시장 등이 김 대표의 손맛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김 대표는 고심 끝에 조직위원회의 요청을 수락, 1년 정도 VIP를 위한 파티를 준비했다.그는 “그 제안을 받고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 잘못하면 대구 망신을 시킬 수 있기 때문에 결정은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대구를 알리는데 보탬이 되고자 요청을 받아들였고 3번의 리허설을 거쳤다”고 그 때 상황을 설명했다.김 대표의 파티에 초대된 이들은 그 당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부회장인 세르게이 부브카(우크라이나)씨의 부인 밀리아 부브카 씨 등 16개국 30여 VIP의 부인들.김 대표가 정성을 쏟아 준비한 만큼 그들의 반응도 뜨거웠고 대구를 알리는 홍보도 성공적이었다.이후 그의 서양 음식 사랑은 2015년 일신학원 일을 정리하고 개인 식당을 차리면서 그 결실을 맺었다.일신학원 재단 이사장의 자리를 던져버리고 ‘트웰브키친’을 차린 것.식당까지 차려 운영하는 김 대표에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현재 살고 있는 곳을 하나의 문화마을로 만들고 ‘문화마을 족장’이 되는 것.그는 “지난해 10월 방천시장 일대로 이사 왔다. 이곳은 신천과 김광석 거리를 방문하는 젊은이 그리고 예술인들이 많아 그들과 소통하면서 어울릴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김 대표는 스스로 방천시장을 알리기 위해 방천시장 속 작은 미술관 등을 수시로 SNS를 통해 홍보하고 있다.또 문화마을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데 매진하고 있다.김상환 대표는 “미술은 눈으로 봐서 즐거워야 하고, 음악은 청각으로 즐거워야 하지만 요리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을 만족하게 해주기 때문에 요리라는 것은 하나의 종합예술이었다”며 “일신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내는 것도 보람 있었지만 이제는 요리라는 종합예술을 문화마을이라는 개념에 접목해 문화가 즐비한 이곳을 ‘문화마을’로 만드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말했다. 신헌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