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물 한 바가지

김영옥 수필가유난히 고요한 한낮이면 반짝 은빛으로 빛나던 우물 속 깊이 떨어져 있던 숟가락 하나, 그것은 은수저였을까. 커다란 살구나무에서 연분홍꽃잎들이 살풋 떨어져 내려 앉아 있던 우물에는 아직도 작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을까? 올망졸망 여섯 남매의 생계를 책임 진 힘겨웠을 아버지의 등에 어머니가 부어주셨던 시원한 등목 물 한 바가지. 여름철이면 큰 함지에 수박이며, 참외며 붉은 자두가 맑은 물속에 잠겨 있던 우물은 내 기억의 보물 창고이다. 여름엔 시원하고 달았으며 겨울엔 아마도 따뜻하지 않았을까, 맑은 물 한 바가지를 퍼 올리며 나는 그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우물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다. 동네 하나밖에 없는 우물가는 여인네들이 못다한 말들을 풀어내는 수다의 장소였고, 볼 붉은 처녀들에게는 동네 총각들과 살짝 눈 맞출 수 있는 달큼한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곳은 어우렁더우렁 더불어 살아가는 소통의 터, 열린 광장이었다. 그 우물가 곁에는 늙은 앵두나무 한 그루가 그들의 이야기를 슬며시 엿듣고 서 있다. 그러다 집집마다 우물을 팔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집마다 샘을 팠지만 사람의 마음이 다 다르듯 물맛도 다 달랐다. 그래서 이 집 저 집 열려진 대문으로 좋은 물맛을 찾아 물 주전자를 들고 다녔다. 우리 집 작은오빠도 옆집으로 한 주전자 물을 기르러 갔다가 우물높이가 낮은 그 집 우물에 들어와 있는 낮달을 보고 신기해서 그것을 잡으려고 두 손을 뻗치다가 우물 속에 거꾸로 처박혔다. 낮달은 사라지고 우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오빠. 마침 그 집 툇마루 끝에 앉아 있던 고등학생이 예닐곱 살쯤 된 우리 오빠를 황급히 건져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오빠는 옷을 적시고 저지레를 했다고 엄마에게 혼날까봐 물에 쫄딱 젖은 채 동네 호두나무 집 골목으로 줄행랑을 쳤다. 우물 속 전설의 그 이야기를 친정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즐겁게 되풀이하며 지엄하고도 인자로웠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두레박의 우물이 조금 더 쉽게 물을 받을 수 있는 펌프로 바뀌던 날, 한 바가지 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면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가 마냥 신기했다. 애써 두레질을 하지 않아도 몇 번의 펌프질로 금방 한 양동이의 물을 받곤 했으니까. 동네 사람 모두 모여 함께 하는 우물이 아니었어도, 맑은 하늘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깊은 우물이 아니었어도, 펌프는 나름 사랑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샘이었다. 펌프의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마중, 그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고등학교, 대학을 모두 타지에서 보낸 나는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에서 방학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마중 나왔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마중 나가는 일은 사랑을 알게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의 애씀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샐비어 꽃 예쁘게 피어 있던 기차역이거나,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북적이는 버스 터미널에서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마중하는 일, 그것은 사랑의 마음, 펌프의 마중물 마음이다. 이제는 따뜻한 실내 공간 속으로 들어가 앉은 수도꼭지를 보며 생각해 본다. 사라진 우물, 닫혀진 마음, 과연 문명은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맑은 날이면 아련히 빛나던 은수저와 살빛 투명했던 물고기의 신비가 함께 했던 두레우물, 당신의 노고를 알아주었던 마중물로 퍼 올린 한 바가지의 물을 마셔볼 수 있다면! 거기에 동네 사람들의 재미나고 따뜻한 소문까지 곁들인 시원한 물 한 바가지.

사람, 빛을 회복하다

장영주화가·국학원 상임고문국경일인 8·15 광복절이 곧 다가온다. 인도와 콩고는 우리와 같은 8월15일이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투르크매니스탄 등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의 독립기념일이 있다. 1776년 7월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며, 중국은 독립기념일이 따로 없지만 중국인민 공화국선포일로 삼고 있고 싱가포르는 ‘국가의 날’로 기념한다. 멀리는 1291년의 스위스의 독립을 위시해 각국의 독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만큼 절실하고 위중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많은 나라 중에서도 독립기념일을 '빛을 회복한 광복절'이라고 명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광복이라니? 빛을 회복 하다니? 그 빛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이 빛은 밝고 어두운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인간, 즉 천지인이 하나가 될 때 존재로부터 뿜어 나오는 생명의 빛이다. 생명을 천지로부터 분리하고 사람이 사람을 능멸하고 해칠 때 누구나 기운은 졸아들고 어두워진다. 최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공산당의 군부가 배양했다는 관련 중국과학자들의 양심고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사실로 밝혀지면 중국의 집권층인 중국공산당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짓’을 자행한 것이다. 쉴 틈 없이 지속 되고 있는 중국 땅의 천재지변은 ‘스스로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하려는가’라는 ‘천멸중공’(天滅中共)이라는 말로 회자되고 있다. 더욱 중공에 의한 오만한 국제적 음모가 다양하고도 오랫동안 자행된 결과 현재 미국은 물론 16개국 이상의 나라와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편드는 나라가 하나도 없다는 자탄이 내부로부터 나오니 중공은 하늘, 땅, 사람들에게서 배척당하고 있는 셈이다.동양, 특히 우리의 한민족에게는 하늘을 인격화 하여 부르던 문화와 철학이 정립돼 있다. ‘하늘이 보고 있다’ ‘하늘 무서운 줄 알아라’ ‘하늘이여 굽어 살피소서’라는 말들은 우리의 일상어이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거룩한 선언이다.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수승한 진리체계인 천부경(天符經)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은 아예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고 가르친다. 당연히 애국가에도 하늘의 인칭대명사인 ‘하느님’이 등장한다.대한민국의 태극기 역시 천지인의 합일을 상징하고 있다. 중앙의 태극문양은 하늘의 태양 에너지와 땅의 물 에너지가 맛 물려 영원히 순환하는 모습이다. 태극을 순수한 우리말로는 ‘엇’이라고 한다. 같은듯하면서도 다른 것을 ‘엇비슷하다’고 하며 비슷하나 다르게 간 것을 ‘엇나갔다’고도 한다. 네 귀퉁이의 건곤감리는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해 우주적인 통찰력으로 밝히고 있다.지금의 세계인들은 왜 대한민국에 열광하고 있을까?K드라마, K팝, K스포츠, K후드 K뷰티, K의료, 이제는 코로나 판데믹 사태를 맞아 K방역까지 존경하며, 사랑하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히 우리의 천손문화가 스며있다. 하늘을 생명의 씨를 뿌리는 영원한 존재로 땅은 그 생명을 키우고 거두는 존재로, 사람은 생명을 이어오는 존재로 본다. 이처럼 천지인을 근원의 하나로 보는 철학과 역사, 문화가 DNA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늘, 땅, 사람이라는 세 근원이 하나로 녹아 생명 빛이 절로 찬연히 빛나기 때문이다.이처럼 빛을 회복한 인간은 당연히 자신과 주변을 비출 수 있다. 그렇게 빛이 돼 일어선 사람을 바로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대한민국 교육법에 명시돼 있듯 우리네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홍익인간의 양성’에 있다. 그런 홍익인간이 넘치는 세상은 어두울 수 없는 '광명천지'이며 그 주인공들을 의식이 크고 밝은 ‘대인간’이다.인류의 존망이 걸린 실로 위중한 때이다. 이제야 말로 우리 내부의 음습하고 어두운 모습을 물리쳐야 한다. 모두가 갈구하는 인성의 밝은 빛을 대한민국의 K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세계는 확신하고 있다. 이제는 국경을 넘어 홍익인간의 뜻을 아는 모든 인류들이 생명 본래의 밝음을 향한 실천에 더욱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 약속하고 실천할 때 인간은 지손족(地孫族)에서 천손족(天孫族)으로 진화 할 것이다.이것이 캄캄한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지켜낸 웅녀 할머니의 약속이며 단군할아버지 탄생의 숨은 뜻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하늘로 부터 받은 사명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증유의 역사적 대혼란을 야기한 코로나 판데믹이 오히려 인류의 광복절을 이루는 첩경이 되길 기대한다. ‘광명천지 대인간(光明天地 大人間)

변화, 적응만이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이다

이성범수필가아무것도 아닌 그 하찮은 것에 의해 흔들리는 인류, 그리고 무너지는 사회, 코로나19라 불리는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뒤집고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으며, 일은 더 이상 삶에서 우선이 아니고, 여행, 여가도 성공한 삶의 척도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곧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약함과 연대상(連帶像) 이란 단어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챠드’의 아름다운 문인 ‘무스타파 달렙’이 쓴 글을 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코로나 19가 우리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현실감있게 서술해 가슴에 와 닿는다.무릇 21세기를 살아가는 현 지구촌 사람들은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황당함, 상실감, 자괴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코로나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자기 고찰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교육분야에도 예외없이 코로나19로 인해 학교현장의 모습은 완전히 그 모습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에는 면대면(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학습) 학습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면대면 학습과 아울러 비면대면 온라인 학습이 이루어지고 그 중요성이 크게 대두하게 되었다.이런 변화속에서 선생님들은 학교마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고민하고 한명이라도 더 강의에 참여시키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원격수업을 두려워하던 선생님들도 점점 과감해져 이제는 PPT녹화수업, 오캠을 이용한 수업, 밴드 라이브와 줌을 이용한 쌍방향 수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을 전개하고 계신다.코로나19로 인해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도 교육패러다임도 변화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온라인 수업의 장점은 수업진도가 빠르고 정확하며 빠지는 내용없이 순서대로 진행이 됨은 물론 재수강을 들을 수 있으며 현 세대에 특성에 맞는 기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반면 단점은 쌍방향수업이 어려워 아이들과의 감정교감, 래포형성, 상호작용이 어렵고 학생 한명 한명 주목하는 수업과 모둠 협력학습이 어렵다는 것이다. 나아가 실기 실습수업을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수업현장을 어떠한 방법으로 교육현장에서 조화를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 모두 함께 연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환경을 위한 교육과정의 편성, 수시로 변하는 등교 개학을 위해 그에 맞는 교육과정을 또 변경해야 함은 물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상 원격수업을 위해 준비하는 그 과정이 모두 당황스럽고 힘들다. 거기에 늦게까지 이어지는 영상수업과 학부모들의 전화 응대에 힘이 부치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교육패러다임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공론화됨은 어쩌면 의도하지 못한 큰 성과일지도 모른다. 교육패러다임의 변화는 시대적인 요청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 모두가 처음으로 겪는 일이고 혼란스러움이 다소 있겠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야만,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21세기를 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온라인 세상이 가속화 되고 비대면 삶의 방식이 전보다는 불편하고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다.그러나 ‘언컨텍트(uncontact)는 단순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발전 시켜온 욕망의 산물이자, 새로운 시대를 읽는 중요한 진화코드’라는 어느 저자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이제 우리 모두 다가올 코로나 이후 세상을 미리 이해하면서 적응을 통해 또 다른 단계로의 도약을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공동칼럼…코로나 사태로 전세계가 한국을 주시하는 이면에는

이명훈소설가세계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요즘 의료체계가 공적으로 비교적 잘 되어 있고 국민들이 질서를 제법 잘 지키는 것 뿐인데 전세계의 느닷없는 주목이 의아하기도 하다. 세계가 이렇게 나약했던가. 가벼운 조소마저 인다.팬데믹이 지속될 경우 혹 사재기 같은 행위로 질서가 무너지면 어렵게 일궈진 이 위상이 실추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질서가 무질서보다 개인적으로도 유리하다는 집단적인 합의가 생겨나는 듯하다. 말을 바꾸면 공공선이 이기심에도 유리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세계가 한국을 주시하는 데는 깊은 것이 숨어 있어 보인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개인이 이기적으로 살면 전체는 효율적으로 잘 돌아간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아담 스미스는 윤리 역시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에 바탕을 둔 고전주의 경제학은 보이지 않는 손을 중시하며 은근히 절대화시킨다. 그렇게 패여진 수로에 세계가 익숙한 나머지 그게 당연하다는 집단 체면에 빠져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그런 방식이 이번 사태를 더 키운 면도 있다. 익숙한 방식이라 제어도 잘 안되는 듯 하다. 그런 세계가 한국을 새롭게 보는 것이다. 한국을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상 아래의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그 파악까지 내려서는 게 중요하다. 공공선, 윤리, 그 가치들과 어우러지는 정서 등이 아닐까?그동안 익숙한 이기심의 논리 궤도에서 이탈해 새로운 방식으로 한 사회가 돌아갈 때 사회의 회복이 효과적이란 사실. 그에 대한 깨달음이 소중하다. 그런 깨달음이 집단지성의 수레를 타고 돌면서 이기심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의 위험과 폐단에 대한 비판, 반성이 수반되면서 공공선이 새롭게 부각되고 그에 입각한 세계 질서가 이룩되는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의 지금 질서와 정서가 그 모티프가 된다면.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해 통제가 더욱 강해져 빅 브라더 사회가 될 가능성, 자율적 시민 역량이 더욱 증대하는 사회가 될 가능, 그 양극 사이 선택의 기로에 인류가 있다고 말한다.자본주의 3.0이라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뿌리부터 뒤흔들려 자본주의 4.0 체제로 이행하리라는 또다른 논객의 글도 있다. 그 외에도 무수한 견해들이 팬데믹이 강해지는 요즈음 전세계에서 쏟아질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해석에 성찰의 눈을 돌리는 것도 사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될 것 같다. 이기심을 과대 평가한 것이 자본주의라면 이기심을 과소 평가한 것이 사회주의이다.냉전까지 세계는 그 두 이념 및 제도 간에 극렬한 파워 게임을 벌였다. 구소련 해체 이후 자본주의의 승리, 그 뒤를 이은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잡아 오늘까지 이른다. 소수의 인간을 위해 지구의 모든 것들을 수단화한 것이 그 흐름의 핵심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로 인해 지구엔 엄청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것들의 연쇄 속에서 코로나 19가 터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국제간 벽을 넘어 개인 개인에게 치명적인 공포로 와닿는 코로나 정국. 그속에서 세계 시민들은 왜 한국을 주시하는 걸까? 이기심이 당연하다는 세계관으로 인해 추방되다시피한 공공선에 대한 갈망과 요청. 그것이 세계 시민들의 제도화되고 길들여진 마음의 심층을 흔든 것은 아닐까? 지주로 삼은 것들이 뒤흔들림과 동시에 마음 속에 생겨난 공허와 결여, 결코 제도화될 수 없는 무의식적 욕망이 자극된 것은 아닐까?그 말이 맞다면 둔탁한 껍질에 금이 가기 시작한 마음의 길에 걸맞는 훌륭한 옷을 입히는 것이 바람직한 길일 것이다. 그 방향의 모색 및 성취가 코로나19가 주는 세계사적, 문명사적 교훈의 하나로 보인다.

공동칼럼…위험사회의 새로운 희망, 공동체의 힘

한병선교육평론가·문학박사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도 대유행을 의미하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인적 교류, 물적 교류는 물론 국가 내 이동금지로 모든 세계가 갇힌 상태다. 감염 전파력이 너무 빨라 과거 신종플루나 메르스 사태와는 완전히 다르다. 치료제나 예방백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만큼 전 세계적으로 두렵고 공포가 크다.인간의 역사는 위험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의 위험은 주로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자연재해와 전쟁은 예측이 가능해졌고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문제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성이 큰 예측불가의 전염병이다. 전염병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지구촌으로 순식간에 확산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 데이터베이스와 인구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인간은 위험을 두려워하는 존재다. 위험은 자기 스스로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비롯되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위험은 특정 집단이나 특정 국가, 지역에 국한 되는 것만은 아니다. 초국가적이며 계급을 초월한다. 위험성이 커지는 만큼 그 위험에 대처하는 일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위험사회에서 개인의 힘만으로 이에 대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개인이 원전 폭발의 재앙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겠는가. 누가 현재와 같은 전염병의 공포로부터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겠는가.그럼에도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동체 의식의 공유다.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위험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백신 역할을 한다. 대구와 경북지역에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 사회가 보여준 공동체 의식은 대표적인 사례다.하루에도 감염 확진환자가 수 백 명씩 발생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발휘했다. 일부는 정부 보조를 받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위험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성금을 보냈다. 초등학교 학생은 저금통을 털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마스크를 살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탰다. 의료봉사를 위해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의료인들이 몰려들었다. 신혼의 간호사도 있었다. 일부 단체에서는 불철주야 만든 마스크를 보냈다.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익숙한 고통이라고 해도 덜 아픈 것은 아니다. 지금의 위기가 그냥 위기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의 기존질서와 생활 모습을 상당부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사람들 간의 비대면 접촉이나 재택근무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결합된 다양한 형태의 소비활동도 나타날 것이다. 이런 모든 변화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의 자산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 공동체 의식을 더욱 공고히 하는 일이다. 지금의 경우에서 보듯, 우리는 높은 국민의식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위기를 통해 우리는 '공동체 의식'이라는 새로운 발명품을 다시 찾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한 국가의 역량은 단순히 국토면적, 자원의 보유량에 국한 되지 않는다.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동체 의식이다. 공동체 의식의 강약에 따라 한 국가의 잠재적 역량은 달라진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가 공동체 의식을 새로운 발명품으로 인식한다면 어떨까. 누가 뭐래도 위험사회 속에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손경찬 공동칼럼…선현의 올곧은 가르침

손경찬대구예총 정책기획단장·시인새해 들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올해는 정초부터 고향 발걸음이 바쁘다. 태국에서 사업하는 지인이 동해안의 미항(美港)인 축산항 바다가 훤히 보이는 좋은 터에 별장을 짓겠다고 하여 그 진척을 확인하기 위해 고향에 자주 내려갔다. 지난주에도 고향에서 일을 마친 뒤에 이왕 온 터라 어릴 때 살던 영덕 병곡 백석리와 그 앞에서 펼쳐진 명사 이십리 고래불 해변을 걸었다. 겨울 고래불은 한산하지만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옛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그 사이 강산이 다섯 번 바뀔 정도의 오랜 세월은 지났지만 내 마음에 비쳐나는 고래불 풍경은 예전 그대로이다. 가까이 보이는 바다풍경이나 저 멀리보이는 산세는 그때와 비교해도 변함이 없다. 울음 우는 갈매기 소리나 파도가 밀려와서는 흰 포말을 가르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지겹지 않다. 고래불 해변은 내 젊은 한때 고생하던 시절이 낭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또 이곳이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 선생의 자취가 묻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젊은 시절 필자는 고래불 해변에서, 지금은 자수성가해 훌륭한 기업인이 된 친구와 함께 여름한철 장사를 하면서 고생했던 추억이 새롭다. 그때는 회를 팔고 파라솔을 빌려주며 또 해수욕객들의 인명을 구하는 등 청춘을 바쳐 일했지만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이 장사를 그만하고 장래를 위해서는 고래불을 떠나야지 생각이 많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리움 속을 쫓는다.‘고래불’은 고려삼은(三隱)의 한 분이신 목은 이색 선생의 말에서 연유됐다고 한다. 영해 괴시리가 외가인 이색 선생은 괴시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유년 시절 고래불 맞은편 산으로 올라가서 동해바다를 볼 때에 고래 떼를 보고, 또 고래가 물을 뿜는 모습을 보고서는 ‘고래뿔’이라고 해서 이곳 지명이 고래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동해 영덕 앞바다에서 밍크 고래 무리들이 출현한다고 하는데, 예전에도 영해 앞바다, 이곳에서 고래가 많이 서식하고 유영했음을 알 수 있고 이색 선생은 ‘관어대부’를 노래했다.‘목은시고’ 권1에 실려 있는 관어대부 서(序)에는 ‘관어대는 영해부(寧海府)에 있는데, 동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어 바위절벽 밑에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셀 수 있어 관어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영해부는 나의 외가가 있는 곳인데, 중원(中原)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부를 짓는다’ 고 밝혔다.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영해의 동쪽 언덕, 일본의 서쪽 물가에는 큰 파도만 아득하고 그 나머지는 알 수가 없구나. 물결이 움직이면 산이 무너지는 듯하고, 물결이 잠잠하면 닦아 놓은 거울 같도다. 바람 귀신이 풀무로 삼는 곳이요, 바다 귀신이 집으로 삼은 곳이라. 고래들이 떼 지어 놀면 기세가 창공을 뒤흔들고 사나운 새 외로이 날면 그림자 저녁놀에 잇닿네. 관어대가 굽어보고 있으니 눈에는 땅이 보이지 않는구나…(이하 생략)’관어대소부에서 이색 선생은 고래의 유영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이치를 떠올려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는 격물치지를 역설했던 것이다.이색 선생은 ‘관어대소부’에서 주 문왕의 시 ‘어인’에 숨겨진 중용의 큰 뜻을 말하고 있다. 자신이 관어대에서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인’을 상기했고, 빠른 물고기든 느린 물고기든 다 하늘의 이치에 따라 나름의 세상살이를 하고 있음을 보았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자연의 이치에 모든 답이 들어있다는 게 목은 이색 선생의 가르침이다.우리사회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정도(正道)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해 국민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현실이다. 요즘처럼 세상일이 답답하고 어지러울 때 고래불을 찾아와 고생하던 때를 떠올리고 또 고향의 대표적인 옛 선현의 올곧은 가르침을 곱씹어 본다.

배우 정욱과 서 교수의 양심

배우 정욱과 서 교수의 양심류시호시인·수필가최근 서울 혜화동 아름다운 극장에서 김영무작, 송훈상 연출로 정욱 주연의 ‘서 교수의 양심’ 연극을 관람했다. 정욱 탤런트는 필자가 문화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지인으로 존경하는 예술인이다. 연극은 연기 인생 60주년, 올해 82세인 배우 정욱을 위해 한인수, 현석, 김호영 배우가 우정 출연한 아름다운 무대였다.연극은 신문 기자인 박인식이 대학 은사이자 유명 소설가인 서동호 교수가 최근 저지른 엄청난 비리를 알게 된 것으로 시작된다. 서 교수 명의로 출간된 베스트 셀러 ‘저 산 너머 저 산’의 소설 원작이 박 기자의 대학 동창이었던 강진욱의 옛날 원고였다. 원고는 부인 구 여사가 원고 독촉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기가 딱해서, 먼지 속에 있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강진욱은 대학생 시절 서 교수 댁을 드나들면서 사모님인 구 여사와 정을 통했다는 비밀을 고백했다.그러다가 서 교수와 구 여사 사이의 딸 서주미의 생부가 강진욱으로 밝혀진다. 강진욱은 기자인 박인식에게 원고 절취 사건의 기사는 서동호 교수를 생매장하는 일이 되니, 절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은사의 마음을 편히 해주려고 죽음을 가장하기도 한다.그러나 강진욱의 그러한 행동은 역효과로 나타나 서 교수는 진실을 고백하고자 한다. 서동호 교수는 파멸을 각오하고 기자 회견을 하며 양심선언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서 교수를 모시고 있던 문단 후배 민 국장과 구 여사는 서동호 교수의 양심선언을 치매 증세에서 비롯된 횡설수설로 각색, 그를 정신 병원으로 데려갔다. 사태가 진정되고 서 교수가 귀가했을 때 부인 구 여사와 모녀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바램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서동호 교수는 이미 실성한 사람으로 변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몇 년 전 정욱 배우를 대학로 아트홀 마라카극장에서도 만났는데, 연극 ‘엘렉트라 인 서울’에서 무법 스님으로 출연하여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동안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에서 첫 주역을 맡았고,‘학마을 사람들’에 출연했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의 작품에서 주역을 해냈다. TV 드라마에서는 중후한 지식인, 온화한 아버지 역할 등을 해왔다. 그림이나 음악, 연극, 문학 등 예술을 가까이하면 감성을 움직이게 해주고 척박한 인생에 활력을 주는 샘물이 된다는데, 연극이 가장 이해하기 쉽고 우리의 삶과 밀접한 예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필자가 대표로 있는 한국문학예술인협회는 아동문학의 태두 김종상 원로시인, 지방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정성수 작가, 비구상 서양화의 거목 권의철 화가, 대중가요 작곡자 송영수 회장, 이재신 성악가, 한국의사시인협회 고문 김세영 시인, 30년 경력 국어논술스피치학원 유미애 원장, 드라이 플라워 공예가 윤은진, 김종분 시낭송 전문가 등과 문학과 예술가들 행사를 함께 하고 있다. 문학, 시낭송, 연극, 그림, 영화, 음악, 악기연주 등 예술을 가까이하면 감성을 움직이게 해주고 인생에 활력을 준다.미국의 정신의학자 마크 아그로닌은 ‘시니어들이 잘 활동하는 이유가 지혜와 회복 탄력성, 창의성 덕목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말해 인간의 뇌는 경험과 경륜이 쌓일수록 스스로 변화, 지혜의 폭을 넓혀주고, 감정 조절, 창의성까지 향상해 준다고 한다.장수시대 정욱 배우처럼 ‘인생의 큰일은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사려 깊은 지혜임을 잊지 말자.’ 라는 말을 제안한다.또 시니어들이 문학, 그림, 음악, 무용, 연극 등 예술을 가까이할 때, 힘보다 사려 깊은 지혜,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즐거운 마음이 필요하다고 권유한다.우리 모두 연극, 문학회, 음악회, 미술관, 박물관이나 문화전시회에 자주 들려서 자신의 감성도 살리고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 국민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행복한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는

류시호시인·수필가 최근 한 혁신교육 추진단체에서 주최한 ‘존경받는 부모! 행복한 자녀!’ 만들기 아카데미 강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날 강사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키고 있는 교장 선생님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 등이 참석했다.참석자들은 누구나 없이 내 아이들이 반듯하게 사회에 나가 성공을 바란다는 마음을 기원하는 눈치였다.하지만 이날 아카데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녀들의 성공과 성장과정을 강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됐다.강사는 부모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대개의 부모는 아이를 키울 때 성적이 우수하고, 남보다 상을 많이 받고, 반이나 전교에서 임원이 되도록 독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아이들은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려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정도까지 종종걸음을 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포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자녀들은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은 뒷전이고 부모가 기대한 기대치의 삶을 살다 어느시점에 포기하게 된다는 말에서다.평소 부모들은 양육방법으로 ‘얼른, 빨리, 바빠’라는 용어를 되새기며 아이들을 재촉한다.강사의 경우 공부 잘 하던 아들이 고3이 되어 “대학을 꼭 가야만 하냐?”라고 하며 학교에 가지 않고 방황을 하다가 자퇴를 했다고 한다.그리고 딸도 자퇴하여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다. 강사는 ‘내가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지도하는 현직교사인데 내 자식들이 자퇴해서,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길을 뒤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했다.그녀는 그동안 자식에게 진심으로 칭찬한 적 없고, 공감하며 맞장구쳐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나 자식들과 30분 이상 대화한 적이 없고, 공감하고 눈 맞추어 본 일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너무 힘들어 자살을 생각하다가 워싱턴 주립대학 심리학 존가트맨 교수를 대학원에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존가트맨 교수는 50여 년 동안 부부 3천 쌍 이상을 연구했고, 감정코칭을 체계화·과학화하고, 감정 코치형 이론을 정립하여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일반적으로 부모들은 방임형, 축소 전환형, 억압형, 그리고 코치형(감정 코치형) 4가지로 자식들을 관리한다. 이럴 때 우리 부모들은 자식을 도와주는 감정 코치형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자녀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해서, 스스로 실천하는 능력을 가지도록 지원해야한다. 엄마가 주도 한 학습은 한계가 있으며 부모에게 자랑거리를 위해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감시하고 확인만 하려고 하면 아이들은 다른 길로 이탈을 한다. 그런데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면, 코치형 부모가 되어서 인정하고, 칭찬하고, 존중하고, 지지하며, 격려가 필요하다.방탄소년단(BTS) 아이돌을 키운 방시혁군은 할아버지가 법대를 가기를 종용했지만, 어머니가 아들 대신 할아버지를 설득하여 본인이 희망하는 철학과를 갔다. 인문학을 전공한 방시혁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세계적인 스타를 키워냈다.사춘기의 반란은 자신들의 힘이 조금 커진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시작한다. 이때부터 핸드폰만 만지고, 가출하고, 범죄자가 되고 엄마 아빠에게 그동안 억눌린 감정을 복수한다.부모가 자녀에게 유산을 많이 물려주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자녀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큰 교훈이 된다고 했다. 강사는 자신의 가정 사례를 이야기하며, 자식들에게 자존감 향상, 동기부여, 잠재능력을 키워주고, 행복한 리더가 되도록 코칭하고 밀어주자면서 마무리했다.이날 참석한 젊은 엄마들은 모두 공감을 하며 우리 모두 ‘행복한 자녀로’ 들자고 함께 기대했다.

스페인 화가 고야와 소설가 세르반테스

스페인 화가 고야와 소설가 세르반테스 류시호시인·수필가‘Hey! 너무 자랑스러워 하지마 / 그는 나 없이 살 수 없다고 말하면서/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 Hey! 네가 자랑하길 좋아(중략) 이제 난 네 옆에 없는데/ 그들에게 나에 대해 뭐라고 할거니’ 스페인 라틴 스타일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Hey’이다. 젊은 시절 전 세계 여성 팬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던 Hey와 Crazy라는 노래는 누구나 즐겨 따라 불렀다. 스페인을 여행하며 마드리드와 가까워오니 이글레시아스 노래가 생각났다.스페인을 여행 중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갔다. 유럽의 3대 미술관은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그리고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을 꼽는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엘그레코, 리베라, 무리요, 벨라스케스 등의 작품들이 있고, 그곳에서 스페인 대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를 만났다.고야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의 화가로 카를로스 4세의 수석 궁정화가였다. 그는 로코코 양식으로 귀족층의 화려한 초상화를 그렸고, 바로크 양식의 풍자적 에칭 판화집을 출판하였다. 그 후 난청과 국가의 정치상황에 대한 고통으로 말년에는 어두운 작품을 그렸다.고야는 초기 작품들은 말년에 나타나는 어두운 화풍과는 대조적으로 산뜻하고 밝은 느낌을 주었다. 초기 특징은 ‘성 이시드로의 목장’에 잘 나타 나 있다. 성 이시드로의 축일을 기념하며 여가를 즐기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은 그 시대의 희망을 반영하였다. 잠시 로마로 갔던 고야는 마드리드로 돌아와서 귀족들의 섬세하고 화려한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이어 ‘돈키호테’의 고장 콘수에그라에 갔다. 라만차 평원의 바람을 가르는 풍차를 보면, 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생각난다. 이 소설은 라만차마을의 한 신사가 기사 이야기를 탐독한 후 정신이상을 일으켜 스스로 돈키호테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 마을의 뚱보로 약간 둔한 편이지만 수지타산에 빠른 산초 판사를 데리고, 무사(武士)수업에 나가 모험을 겪는다. 그는 환상과 현실이 뒤죽박죽이 되어 기상천외한 사건을 일으킨다. 길을 가던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이라 생각하여, 산초가 말리는데도 듣지 않고 습격해 들어간다. 그 결과 말과 함께 풍차의 날개에 떠받쳐 멀리 날아가 떨어져 버린다.콘수에그라를 떠나면서 버스 차창으로 라만차 평원의 바람을 가르는 풍차를 바라보며 생각해보았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돈키호테가 400년이 흘렀지만, 우리도 가끔씩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고 인용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서양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세상에서 많이 읽힌 책으로 유명하다.프라도 미술관과 콘수에그라 풍차를 본 후 마드리드 시내로 왔다. 스페인의 유명한 가수 이글레시아스, 화가 고야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삶들을 보면 느끼는 점이 크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고 하는데, 인생길에서 짊어지고 가는 짐도 여행길처럼 자유롭고, 가뿐하고, 단출하게 꾸려야겠다. 여행은 나에게 정신을 젊어지게 하고, 사람을 겸허하게 한다.발달심리학자 대니얼 레빈슨은 ‘인생의 사계절’을 언급하면서 중년기를 가을에 비유하였다. 레빈슨은 아동과 청소년기는 봄, 성인기는 여름, 중년기는 가을, 그리고 노년기는 겨울을 나타낸다고 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환절기가 있듯이 인생에도 전환기가 있다. 인생을 여행과 비교한다면, 평생 짊어지고 가는 짐도 여행길의 짐과 마찬가지로 고단하고 힘겨울 것이다. 부피보다 큰 인생의 짐은 누구나 지고 가야 한다.여행을 통하여 또 다른 세상을 보았다. 우리 모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정의롭고, 용기 있게, 목표와 꿈을 위해, 열정을 가지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날씨가 매서운 계절이다. 눈이 오면 눈사람 만들기, 눈싸움, 눈썰매 등 가족들 대화의 창이 열린다. 눈 내리는 날의 고운 추억 생각하며, 가족 모두의 즐거운 삶을 위하여 노력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삿갓 축제와 오백나한(五百羅漢)전시회

김삿갓 축제와 오백나한(五百羅漢)전시회류시호시인 수필가 여러해 전, 삿갓을 쓴다고 김립이라 부르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 선생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혼을 추모하는 강원도 ‘영월 김삿갓 문화제’에 초대받아 간적이 있다.김삿갓 문학관에서 김삿갓 생가터까지 걸으면서, 난고 시인의 풍자와 해학을 생각했다. 그래서 시향(詩香)이 어우러진 산길 숲속에서 시심(詩心)을 살려 시 한편을 쓴 적이 있다.그런데 생가터 가는 길목에 전국의 시인들이 쓴 감성의 시들을 전시하여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이 시들은 김삿갓 시인이 살던 계곡 이름을 붙여 ‘노루목에 부는 바람’이라는 문집을 만들었는데, 필자도 김삿갓 문화제에 어울리는 시 한편을 제출하여 축제의 일원이 되었다.이곳에는 김삿갓 묘와 생가를 비롯해 시비와 문학관이 있고, 문학관 내에는 김삿갓의 친필과 장원급제 시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돼 해학과 풍류를 엿볼 수 있다. 김립시집을 편찬한 이응수씨는 미국의 시인 휘트먼과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와 함께 19세기 ‘세계시단의 3대 혁명가’로 높이 평가 했다. 그래서 문학의 지식인들은 난고 시인을 ‘한국의 셰익스피어’라고 존경한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羅漢)’ 전시를 보았는데, 18년 전 강원도 영월군 야산에서 발굴된 나한상 317점 중 일부였다. 그동안 영월은 김삿갓 문화재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만 생각하다가 오백나한을 알게 되었다.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불·보살에 버금가는 신성함을 지닌 존재라고 한다. 나한상은 대부분 석가모니의 제자들로 성자의 모습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간적인 면도 표현된다. 특히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에는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이 나한상들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며, 따뜻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순박한 표정과 투박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나한, 내면을 일깨우는 명상의 나한, 산과 바위, 동굴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수행하는 나한 등 구도자의 모습으로 구현하였다. 곁에 있던 학예사는 “나한은 수행으로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킨 사람이다.” 라고 하는데, 영월의 나한들은 돌에 새겨진 얼굴들이 하나같이 고요하고 평안했다. 이 나한상은 6백여 년 전의 조각품으로 석공이 정성스럽게 정으로 쪼고 끌로 깎아 표정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오백나한은 석가모니 생존 시 500명의 제자나 석가의 열반 후 결집한 500명의 나한 등을 칭하는데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중국 푸젠성의 서풍암에는 오백나한원(五百羅漢院)이 있고, 저장성 서암사에는 철조(鐵造)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일본 도쿄의 라칸사(羅漢寺)와 교토의 다이도쿠사(大德寺) 및 도호쿠사(東福寺) 등지에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영천 은해사 거조암에 석조(石造) 오백나한을 모신 법당이 있다.필자는 김삿갓 문학축제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그리고 영월의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시회를 통하여 또 다른 역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지성적 인간으로 가장 좋은 사상과 감정, 가치 있는 삶의 기록을 독자들에게 남겨야 한다. 한국의 셰익스피어 난고 시인의 행적과 오백나한들의 얼굴을 보면서 앞으로 문학인으로서 고민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오백나한들의 표정과 김립 시인의 활동을 보면, 문학적인 삶과 나한들의 얼굴에서 잡념과 번뇌가 씻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강원도 영월은 감자, 옥수수, 송어 등과 맑고 푸른 동강의 아름다움이 있다. 가끔씩 역사여행을 통하여 생활의 변화를 주면 새로운 것도 발견하고 자신의 발전에도 좋다. 가슴이 답답할 때 훌훌 털고 강원도 영월에 가서, 역사의 현장과 문화 활동을 통하여 인문학의 즐거움을 느껴보자.

욕망의 질주와 인성교육

욕망의 질주와 인성교육한병선교육평론가·문학박사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했다. 이 같은 단순성은 생활의 단순성으로 이어졌다. 오직 필요만이 생산을 이끌어내는 주요 동인이 되었다.하지만 사회는 산업화와 함께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뀌었다. 곳곳의 공장들은 무서운 속도로 상품들을 쏟아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들은 그럴듯한 포장을 거쳐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대량소비의 시대가 된 것이다.이런 환경변화는 단순히 우리 삶의 외형만을 바꾼 것은 아니다. 가치관은 물론 사물을 보는 눈까지 변화시켰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면의 정신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었다.자본주의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된다. 이런 특성 상, 욕망하는 대상은 곧바로 소비로 연결되는 특징을 갖는다. 소비력에 따라 철저히 사람들의 위계까지 결정되기도 한다.페미니스트 리타 펠스키에 의하면, 오늘날 소비주의 문화는 도덕적, 종교적 권위를 무시한 채 소비자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도록 조장한다. 남녀 간의 내밀한 관계, 혹은 가정 내의 가부장적 가족구조까지도 파괴시킨다고 말한다. 사실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교육에서 교육은 소비재가 된지 이미 오래다.교육소비, 수요자 교육, 교육소비자. 교육소비 비율, 교육소비 욕구 등의 용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를 용어를 키워드로 하는 논문들도 나온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교육과 소비의 문제는 교육내용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혹은 수단적인 교육에 무게를 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런 경향성이 현실적으로 교육의 본질과 완전히 유리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여가생활도 소비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흔히 '3S산업'으로 일컫는 관광산업은 대표적인 경우다. '태양(sun)', '바다(sea)'와 함께 '성(sex)'까지도 상품으로 소비한다. 성을 매개로 인간의 몸조차도 화폐경제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육의 상품화, 몸의 상품화, 전통과 역사의 상품화 등 수없이 많다. 이런 변화는 일상의 삶에서 물질의 풍요로움을 삶의 풍요로움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풍요로운 사회(abundant society)'에서 인간관계는 과거와 달리 타자와의 관계가 아닌, 사물과의 관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은 더 새로운 상품에 의해 자극을 받으며 유행으로 번져간다. 사람들은 다시 유행을 따라 더욱 사물 의존적인 존재가 된다. 이는 상품의 유용성이 아닌, 유행 혹은 이미지에 의해 구매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는 현상이다.오늘날의 소비 형태는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소비는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유도된 소비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 수단적, 소비적인 교육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소비지향적인 방향으로 갈수록, 비인간적, 비인성적으로 갈수록 인성교육은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는 의미다.이런 점에서 갈수록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성보다는 수단적 요소들을 강조함에 따라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다. 꽃의 향기가 백리를 간다면 사람의 향기는 천리를 가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인성교육의 당위성이 아닌 교육목표와 방향성이다. 현재 이루어지는 인성교육의 내용이 사회 전반의 변화와는 유리된 과거 회귀의 모습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여기서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나 삼강오륜식의 질서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장단(長短)인가, 동조(同調)인가

장단(長短)인가, 동조(同調)인가한병선교육평론가·문학박사의견에 ‘장단(長短)’을 맞춘다는 의미와 ‘동조(同調)’한다는 뜻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종종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도 많다.현실 속에서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정치판이다. 특정한 정치적 사안에서 상대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사이비 보수니, 사이비 진보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장단을 맞출 것인지, 동조할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다.춘추시대 제나라의 안영은 왕에게 간언하는 재상이었다. 한 신하를 본 왕이 안영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 같은가?” 안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사람은 전하의 의견에 장단을 맞추지 않고 단순히 동조할 뿐입니다.”왕이 궁금해서 재차 물었다. “장단을 맞추는 것과 동조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안영이 다시 대답했다. “장단을 맞추는 것은 조화를 뜻하는 것으로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맛 좋은 음식의 국물과 같은 것이지요. 다양한 여러 재료들을 넣어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는 맛을 내는 것입니다.”왕이 왜 그런지를 다시 물었다. 안영은 이어 답했다. “사람들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하가 긍정하는 것 속에 부정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가려 전하의 긍정을 완전한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반대로 전하가 부정하는 것 속에 긍정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가려내서 전하를 구하는 것이 바로 조화, 즉 장단입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전하가 긍정하는 것을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을 부정하니, 동조하는 것이지 조화는 아닙니다.”장단은 자신의 생각을 기반으로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인 반면, 동조는 생각 없이 상대에게 무조건 찬성하는 것을 말한다. 장단을 잘 맞춘다고 해서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포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장단을 잘 맞춘다는 것은 긍정적, 발전적 조화를 도모한다는 의미다.장단과 동조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정치판이다. 정치판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동조하는 사람만을 선호한다. 자신의 생각에 무조건 찬성하는, 자신의 행동을 무조건 칭찬하는 사람만을 곁에 두려고 한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고인 강물이 썩는 것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할 뿐이다. “군자(君子)는 조화롭게 어울리지만 반드시 갈기를 요구하지 않고, 소인(小人)은 반드시 갈기를 요구하지만 조화롭게 어울리지는 못한다”는 공자의 비판도 이런 이유다.장단과 동조가 만들어내는 결과의 차이도 크다. 현실에서 장단이 조화(harmony)라고 한다면, 동조는 보통 야합(politicking)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여야의 장단이 잘 맞으면 민생을 위한 좋은 법이 만들어지지만, 동조하면 민생이 아닌 자신들만을 위한 법이 되고 만다. 하루만 국회의원을 지내도 평생 연금을 받는 법안, 매년 여야가 동조해서 올리는 세비인상안, 국회의원의 특권을 폐지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동조해서 상정하지 않은 사례들은 대표적인 야합의 경우다.한 마디만 더 거들어보자. 총선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이 줄줄이 나서고 있다. 각자 저마다 지금까지의 정치적 행보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활동을 보면 진정 장단을 맞추어 왔는지, 동조를 위한 동조만을 거듭해왔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소인인지, 군자인지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는 것. 동조는 부화뇌동에 가깝다.부화뇌동이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할 정도가 되면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장단인지 동조인지는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아는 것이 없는 침묵인지, 알면서도 조화를 위한 절제된 침묵인지를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의 현실이 될 일본 노후자금 3억 파문

한국의 현실이 될 일본 노후자금 3억 원 파문박상준언론인·유원대 새로운 시니어문화연구소장 늘 돈에는 초연한듯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40대 남자에게 누군가 훈수를 뒀다. “이젠 자네도 이제 돈 벌어서 노후대책을 해야 되지 않나”, “그래? 자네는 계속 돈을 벌며 노후를 대비하게. 나는 일을 하면서 노년을 맞을 테니. 내 노후 대책은 돈이 아니라 일이야.” 올 해 칠순을 맞은 개그맨 전유성이 마흔 살에 했던 스탠드업 코미디 ‘위기의 남자’ 한 장면이다.전유성처럼 돈은 크게 못 벌어도 재밌는 일에 파묻혀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가. 물론 노후에도 일하는 사람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가 2년전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30.9%가 일을 하고 있었다. 용돈(11.5%)을 벌거나 건강 유지(6%)를 위한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서(73%)였다. 우리사회도 노후빈곤의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노인인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일본에선 가난한 노인을 의미하는 하류 노인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일본은 65살 이상이 28%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다. 그런데 이런 일본에서 노후를 위해선 2억 원이 넘는 돈을 저축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부 보고서가 최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자민당 간사장 시절이던 지난 2004년 연금 제도를 개혁하면서 ‘100년 안심’을 구호로 내걸었다. 전 국민이 평생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연금 제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정부의 연금 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다.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는 인생후반이 더 중요하지만 안정된 삶을 기대하기엔 너무 많은 리스크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보다 오래 살고, 생각만큼 생활비는 줄지 않으며, 자녀문제라는 악재와 부동산에만 쏠린 자산 그리고 무서운 인플레이션이 노후생활을 옥죄고 있다.그래서 일본도 ‘노후자금’은 늘 관심사다. 국민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마이니치 신문 설문 조사에서 “공적 연금이 노후 생활에 의지가 되느냐”는 질문에 5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일본 금융청 보고서를 인용한 언론보도를 보면 ‘노후 준비에 충분한 자산’에 대한 질문에 50대는 3천424만 엔, 60대 이상은 3천553만 엔이라고 답했다. 일본 정부가 추산한 2억 원보다 1억 원 이상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실제 보유한 자산은 50대는 1천132만 엔, 60대이상은 1천830만 엔 뿐 이었다. 지금 추세로 보면 ‘단카이(團塊) 주니어 세대’(1971~1974년 출생)가 받을 연금은 현재 월 평균 19만 엔(205만원)보다 훨씬 적은 15만 엔(163만원)으로 줄어든다. 가진 돈과 필요한 돈의 괴리가 크지만 정부는 ‘100년 안심’을 선언한지 20년도 안 돼 국민스스로 노후자금을 마련하라고 하니 여론이 악화된 것이다.하지만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은 666조4천억 원(지난 2월 기준)에 달하지만 국민연금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정부는 이 돈이 오는 2057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불확실한 경제상황과 저출산·고령화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금 지급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올해 7개 주요 글로벌 연기금중 바닥권(5.51%)이었다. 수익률이 1%p 떨어지면 기금 고갈이 6년 정도 앞당겨진다. 문재인 정부에서 스튜어트십 코드 적용 등 국민연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 국민연금 조기고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자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국민연금’ 지급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고 밝혔다. 그 말을 믿기엔 국민연금의 미래는 너무나 불투명하다. 차라리 아베총리처럼 욕을 얻어 먹더라도 국민 각자가 노후자금을 비축하라고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 일듯 싶다.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 김혜란방송인·강사 때때로 노랫말이 삶을 다스리는 한 줄 법문이 된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요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중얼거리는 노랫말이다. 새 소재 노래를 많이 만든 이태원의 노래 ‘솔개’의 첫 부분이다. 공식적으로 말로 먹고사는 방송쟁이가 말 안 하고 살 수는 없는데 자꾸 그러고 싶어진다.날이면 날마다 쏟아지는 사회 뉴스들은 갈수록 충격적이다. 찌르고 다치고 피 흘리고 죽고. 하긴, 대한민국 국민은 이중삼중으로 전쟁터에 서 있다.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독하다 못해 아주 그냥 사악하다. 말을 무기 삼아 전쟁을 벌이니 전쟁터다. 총알 한 방 맞으면 돌려주는 건 두 방 세 방이고, 총알이 대포가 되고 미사일로 주고받는다.무슨 전쟁이, 쏘는 당사자들은 멀쩡한데, 착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국민들이 다치고 픽픽 쓰러진다. 보기만 해도 상처가 너무 크다. 혹시 이게 꿈인가 싶어 TV와 각종 미디어를 하루 이틀 끄고 덮었다가 다시 보기도 한다. 웬걸, 상황이 더 심해져 있다. 세간에 최고의 전쟁드라마라고 하는 ‘왕좌의 게임’이 이런 전쟁을 보여 줄까. 드라마인 ‘왕좌의 게임’은 잔인하지만 잠시 머리를 떨구고 성찰이라도 하게 한다. 지금 정치인들이 벌이는 말 전쟁은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것이 뻔하다.‘서당개 3년’이 아니라도 이 나라 정치판 몇 달만 지켜봐도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이 전쟁 중 한결같이 앞세우는 주어, ‘국민’들은 이제 정치인들의 말싸움을 강제로 끝내거나 아니면 그들을 사라지게 해줄 ‘어벤져스’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말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어들인 당사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진 것이 아니다. 너무도 심각한 현실, 당장 코앞에 국민의 생사가 걸린 일들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대한민국 국민에게 영화는 있어도 현실에서 싸워 줄 어벤져스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또 국민이 피 흘린 채로 답을 찾아야 한다.지난 초파일에 부처님 전에 촛불을 켜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정치인들을 묵언수행 시키자. 또 종교 타령 나오면 묵상이나 말없이 기도하기도 있다. 국민청원 넣고 안되면 촛불 들면 되지. 안될까. 될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건 없다고 했다. ‘삼육구’ 놀이만 안 하면 된다. 한국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한 스님의 길고 긴 묵언수행을 깬 것은 삼육구 놀이였으니까. ‘삼육구’ 이 말, 하지 말 걸 그랬나. 자꾸 생각날 것 같다. 살짝 정신줄이 놓인다. 정치인들의 말 전쟁이 국민 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증거다.우리 삶은 말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말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인 것은 맞다. 문제는 국민을 앞세워 자신들만을 위해 말로 전쟁을 벌이는 이익집단이 도를 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적당히 하고 그치면 될 것을 멈추지 못한다. 한쪽이 딱 한 번만 양보하면 될 것인데 그걸 못한다. 차라리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결핍 때문이라거나, 진리를 탐색하기 위해서라면 국민이 통 크게 안아줄 수도 있다. 답 없는 말만 골라서 쏘고 있으니 풀리지도 않고, 부상자만 속출하고 자칫 전사자도 나올 것 같다. 그걸 지켜보는 국민은 울고 싶고 아프다. 유탄에 맞아 피 흘리고 있다.때로 말을 멈추는 일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말을 멈출 수 있는 자, 그런 정치인을 다음 선거에서 뽑으면 된다. 아니, 뽑겠다고 선언하자. 국민들은 그들처럼 많이 말하지 말고 결정적인 한마디만 하자. 말은 많이 하면 할수록 실수가 잦다. 많이 할수록 쓸 말이 없다.다시 노랫말을 되뇌어 본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언제까지 이 노랫말을 진리로 들어가는 문, 법문 삼아 살아야 할까.

너무 평범해서 더 새로운

한병선 교육평론가“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끈기를 죽마고우로, 경험을 현명한 조언자로, 신중을 형님으로,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으라.” 이 말은 발명왕 에디슨이 한 말이다. 인생에서 성공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꿈이 있다. 하지만 꿈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거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인과응보의 법칙이다.에디슨의 경우를 보자. 그가 발명왕이 되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웃을 일이지만 그가 창고에서 알을 품고 있었던 모습을 상상해보라. 알을 품고 있으면 병아리가 부화할 것이란 사실보다 그것을 직접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호기심이 그가 발명왕이 된 원동력이었고 말하지만 적어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다. 에디슨이 스스로 말했듯이 끈기를 죽마고우로 삼으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경험을 현명한 조언자로 삼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은 시간을 통해 얻어지는 산지식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경험이 부족하다. 사회의 초년생들은 물론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경험이 적은 경우에는 간접경험이 중요하다.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는 미지의 세계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왜 나왔겠는가.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경험으로 얻을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공부의 중요성이다. 공부를 통해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것들에 대해 미리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직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모든 경험은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GPS를 활용한다. 인생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등대나 GPS와 같은 길잡이가 필요하다. 길잡이들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발행할 수밖에 없는 많은 시행착오를 줄여준다. 때론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다시 가야할 길로 안내하는 것은 경험이라는 이정표다.신중함을 형님으로,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으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견지하면서 신중하게 판단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엄숙주의나 규범주의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한 신중함이다. 나의 현재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신중함이다. 진로문제를 고민하는 것도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생각 없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은 분명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친구는 성공적인 길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길일 수도 있다.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으라고 했다. 요즈음 학생들에게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희망이 없다고 답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어느 곳에 있든 현실과 상황이 어떻든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비록 피로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희망은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과거 수없이 많은 위인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바로 희망의 끈이었다.잘 알 듯, 지하 600m 탄광에 69일 동안이나 매몰되어 있던 33명의 칠레 광부들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었던 것도 언젠가는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17일간이나 물에 잠긴 동굴 깊은 곳에 갇혀있던 태국 유소년 축구선수들의 사례는 어떤가. 이들의 생존을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웠지만 끝내 기적적으로 생환하지 않았던가. 발명왕 에디슨이 말하는 삶의 조건은 그리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끈기, 경험, 신중, 희망이라는 너무도 평범한 고전적인 덕목이다. 모든 가치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변화는 요즈음 세상, ‘희망부재’ 사회로 말할 수 있는 환경, 그래서 더욱 새겨볼 만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