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변주하다

뜨거운 열기만 가득하던 여름이 저물고 가을볕이 완연하다. 곧 수굿해지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견디기 어려웠던 두께의 여름 땡볕도 어느새 순편한 눈빛이 되었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에 두드러기가 날 즈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광고의 카피가 떠올라 머릿속에 불을 반짝 켠다. 그래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라는 것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허해진 심신을 보양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마음먹고 둘러보니 가을맞이 행사가 지천이다.가장 만만하지만, 또한 알찬 곳이 박물관이다. 대구박물관의 상시전시관을 둘러 특별전까지 샅샅이 훑는다. 해설사의 재치 있는 입담에 시간이 바삐 간다. 특별전시관에서는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구석기와 선사시대를 넘어 프랑스의 역사까지 하루에 넘나드는 멋진 시간여행이다. 어쩌면 축제도 이렇게 다양하게 많을 수 있을까. 별의별 이름이 붙은 축제가 시 단위, 군 단위, 마을 단위로 펼쳐지고 있다. 바람에 펄럭이며 유혹하는 현수막들 때문에 어지러울 지경이다.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 행사도 많지만, 개중에는 아주 멋진 축제도 있다. 행사가 많다고 투덜대긴 했지만, 고를 수 있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재즈도 초가을 밤을 감미롭게 한다. 흐느끼듯 늘어지는 소리에 매료되어 재즈를 좋아하게 되었다. 젊은 가수들이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지. 호수의 물결 따라 흐르는 음의 선율은 가슴을 저리게 한다. 춥지도 않은데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맥주 한 캔이 잘 어울리는 수성못의 감미로운 밤이다. 다음으로 마음이 간 곳이 무형문화재 분들의 공연이다. 승전무, 대금산조, 한량무, 입춤 등으로 이어지는 공연은 관중을 압도한다. 고요한 듯 힘 있는 춤사위에 연방 박수가 터진다. 대금운율에 아릿해진 감성을 춤으로 잔잔히 다독이더니 힘찬 북소리가 심장을 마구 두드린다. 우리의 악기들이 내는 화음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여러 개의 대북이 내는 울림과 모듬북의 경쾌함, 태평소의 선율은 상상 그 이상이다. 신들린 북소리에 혼이 반쯤 나가 있을 때, 긴 줄을 단 상모꾼이 시선을 모은다. 아슬아슬한 내 마음과는 달리 한 번의 엉킴도 없이 열두 발 줄은 잘도 돌아간다. 언제부턴가 교향악에 친숙해져 우리 음악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공연을 보는 내내 흥이 나고 눈이 촉촉 젖는 것을 보면 내 감성은 우리 것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이화무용단의 신명나는 춤 공연을 마지막으로 무대를 마무른다. 한 무대에 선 춤꾼들의 아름다운 한복 색상과 재치 있는 무대 인사로 관객은 하나가 되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손바닥이 아리도록.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어느새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지루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마음을 당기는 곳들이 많다. 숱한 공연 중 고르고 골라 스케줄노트에 꼼꼼히 기록한다. 친구들과 함께 즐기기, 고요히 혼자 다녀오기 등 공연마다 꼬리표도 달아둔다. 영화와 연극과 음악이 가을을 풍성하게 만든다. 입에 붙이고 살던 바쁘다는 말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면 좋을 시기다. 너무 큰 변화는 변주라 할 수 없지 않을까. 한 걸음 만큼의 변화로 생활을 변주한다면 일에 치여 우울해지는 것쯤 너끈히 막아낼 수 있으리라. 어느새 노트가 빽빽하다. 이쯤 되면 일상을 변주하는 건지, 일상이 변주인지 모를 아름다운 가을이다. 박경혜 수필가

발효와 부패

효모나 세균 등의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시켜 좋게 변하는 것을 발효라 하고, 불완전 분해를 해서 악취가 나고 유독성 물질이 생기는 현상을 부패라 한다. 이것은 사전적 정의다. 두 가지 모두 미생물이라는 매개가 관계하지만 결과는 천지차이다. 어쩌면 이로움과 해로움이라는 단어로 단정 지어도 과하지는 않으리라. 발효식품이 부쩍 인기를 끌고 있다. 상하지 않게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건강에도 이롭다는 평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발효가 잘 되려면 알맞은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 적당한 공기, 기온, 수분, 그리고 시간 등등.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오래되었다고 다 좋은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맞춤한 매개가 있어야 감정이 잘 발효될 것이고, 서로 간에 믿음과 신뢰가 생기게 되는 것이리라. 가장 중요한 미생물은 개개인의 진실한 마음이 아닐까. 나는 때때로 성숙하지 못한 감정으로 관계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상대의 진심을 왜곡하기도 하고, 설익은 감정으로 관계를 악화시킨 적도 더러 있다. 어리석게도 천천히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성급하게 헤집어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기도 하는 탓이다. 섣부르고 이기적인 판단이 감정을 부패시키고야 마는 것이다.다시 팔월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늘 아픔과 기쁨이 함께하는 달이기도 하다. 나라를 되찾은 때라 기쁘고, 용서할 수 없어 심하게 아프다. 해방을 맞은 지 칠십 년도 지났다. 그 긴 세월동안 가해국인 이웃나라와 우리나라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두 의견이 팽팽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다.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할수록 진실은 어느 한구석에서 슬금슬금 옷자락을 드러내곤 하는 법이다. 역사적 기록이 속속 드러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 증인 또한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가해는 없었다고 큰소리를 친다. 우리가 힘이 약해 당하는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찮고 억울한 일이 너무 많다.제국주의 시대에 약소국이 강대국에 고통을 당한 경우가 비단 우리나라뿐이랴. 헌데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부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유 없이 무참히 학살되고 박해당한 유대인들도 가해국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았다. 가해국은 선조들이 저지른 악행을 잊지 않고자 피해자 추모공원을 만들고 가해의 현장을 후세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참 부럽고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일이다. 서로 간에 얼마나 큰 신뢰가 형성되었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이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감정을 잘 발효시켰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야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잘못도 스스로 인정을 한 후,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보면 어느 정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도 약간의 희망은 있다. 그나마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왜곡된 일들을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이다. 그들은 대체로 힘없는 학자이거나 일반인이어서 정치적 역량이 없으니 국가 간 이견 조율에 큰 힘이 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 작은 노력들이 우리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상처를 치유할 힘을 길러 주리라 믿는다.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생물이 음식을 발효시키는 법이다. 제각각의 양념들을 조화롭게 섞어 영양가를 높이고 더 나은 맛을 만든다. 양심선언을 하는 이웃나라 사람들의 소리를 작다고 무시하지 않아야 하리라. 그들의 작은 힘이 언젠가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큰 보탬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피해자라고 엄살 부리며 신음만 하고 있어서는 상처가 아물지 못한다. 그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덧나지 않게 처치를 해 주어야 상흔도 크게 남지 않을 터이다. 그것은 국가의 몫이 아닐까. 이제라도 가해국과 잘 협의해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아픔을 진실한 마음으로 들여다 보아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일제강점기에 피해를 본 분들이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분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역사가 영원히 묻힐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래서 왜곡된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몇 번의 팔월이 더 지나야 두 나라 간의 관계가 발효를 하게 될까. 한쪽만 손을 내밀어서는 화해가 되지 못할 터이다. 부패한 시간들을 과감히 도려내고 발효를 위한 알맞은 환경을 만들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서로 간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도산 선생은 잘못을 저지른 자보다 관용하는 자의 죄가 더 크다는 말을 남기셨다. 우리의 숙제가 크고 무겁다.박경혜수필가

무게중심에서 한 발짝만 비켜서면

고등학생 몇 명과 담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장래희망이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하루하루 해야 할 학업의 양도 따라가지 못해 힘겨운데 꿈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재미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목표가 있어야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덜 힘들 거라는 조언을 늘어놓는다. 아무도 동의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선생님은 학창시절에 꿈이 있었느냐. 그 꿈이 이루어졌느냐고 반문한다. 뜨끔했지만 내 기억장치에는 학창시절이 그런대로 재미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확신을 주지는 못하고 자리를 파했다.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너무나 밝은 목소리다. “친구야, 나 드로잉 시작했어. 오늘 첫 수업을 하고 왔는데 내 손이 어떻게나 잘하던지. 가슴이 뛰는 걸 주체할 수가 없네. 너무너무 좋아.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 그녀의 목소리는 지구 밖으로 통통 튀어오를 기세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는 이십 대부터 그림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직장과 결혼, 육아와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에 밀리고 밀려 그녀 속 어딘가에 침잠하고 말았던 소망이었다. 시간에 쫓기거나 일에 치여 삶에 멀미가 날 때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요량으로 내게 말하곤 했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아이들이나 시댁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면 꼭 그림을 하고 싶다고.그런 열병 같던 열망이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좋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 일보다 더 기쁜 것은 그녀의 부지런하고 책임감 넘치는 삶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이다.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환한 미소가 보인다. 덩달아 기뻐지는 내 진심이 전해졌나 보다. “이제 시작이니 언제까지 선을 그리는데 묶여 있을지 모르지만, 첫 번째 그림으로 너를 그려줄게. 내가 젤 해주고 싶은 선물이야.” 행복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하더니 맞는 모양이다. 나도 덩달아 종일 기분이 들뜬 날이었다. ‘존경받는 일,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살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이것이 평소 내 지론이다. 그래서 두 아들을 키우며 성적에 별로 연연한 적은 없다. 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때때로 성공한 자녀를 자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성공 뒤에는 그만한 자기희생이 있었을 것이고, 그 결과는 달콤한 열매일 터이다. 나는 진심을 담아 기뻐해 주고 기꺼이 손뼉을 쳐준다. 결과물을 위해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일이라면 귀천이 있을 수 없기에 그 결실의 크고 작음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으리라. 늘 하고 싶은 일 쪽으로 발길을 두며 살아온 편이다. 내 시간적 자유로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지인들이 있다. 나는 정당하게 얻은 자유에 대해 언제나 당당 하려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라 주장한다. 물론 어느 정도 미안한 마음이 깔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 전직은 논술교사다. 요일마다 수업시간이 다르니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때로는 밤 10시가 넘어 귀가하는 날도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를 기다리며 굶을 게 뻔했다. 궁여지책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양념으로 곁들이며 밥하는 법을 가르치게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전기밥솥에 밥하는 법을 가르쳤다. 3학년 때는 라면 끓이는 방법을, 4학년이 되었을 땐 김치볶음밥 만들기를 차례로 가르쳤다. 가혹한 엄마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자유로운 내 시간의 발단이며 원천이다. 세계행복지수 순위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는 중하위권으로 특히 청소년 행복지수가 낮다는 결과를 보면 가슴에 찬바람이 인다. 유럽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덕이라는 통계도 있다. 해야 할 일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고통은 이만저만 아닐 터이다.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보면 그때 꼭 하지 않았어도 아무 문제없을 일이 더 많다. 때때로는 왜 그리도 안달복달했던가 싶어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학업의 무게에 짓눌린 학생들의 표정이 마음에 맺힌다. 그들의 무게중심을 약간만 옮겨주고 싶다. 해야 할 일에 좋아하는 일을 살짝 덧입히면 더 많은 가능성이 그들 앞에 열리지 않을까. 악기나 그림이나 춤 등 그 무엇이라도. 진심으로 그들의 어두운 시간에 작은 빛을 불어넣어 주는 어른이고 싶은 날이다.

56통의 편지

유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보훈이라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본의 아니게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게 되지만, 호국에 대한 의지는 과연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가져본다. 영령들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각종 행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기념인지 정체 모를 행사가 다반사이다.어느 현충원에서 문자가 날아들었다. ‘현충일에 교통 혼잡이 예상되니 현충원 출입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날도 아니고, 다른 장소도 아닌 현충일에 현충원 출입을 하지 말라니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곳에 가족을 둔 사람들이 교통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참배하지 못한다면 정치인들의 보여주기 식 행사는 혼잡한 상황을 만들어도 괜찮다는 말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현충일에 태극기를 단 집이 거의 없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달랑 한 가구만 태극기를 달아놓은 사진이 실려 있어 더 실감이 났다. 태극기 사랑이 애국인 시대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국기의 위상이 이렇게나 무의미해졌나 싶어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현충일의 의미와 우리의 의무는 기념식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인지.독도문제는 호국의 달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하지만 힘이 약한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의 행태에 분노만 할 뿐 이렇다 할 대응은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든 중학생들이 있다. 역사 동아리를 하면서 독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아이들은 시마네현 56개의 중학교에 편지를 보냈다. 독도가 왜 대한민국 영토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담아 한국어와 영어로 작성했다고 한다. 남의 것을 탐내다가 아이들의 일침에 뜨끔해졌음인가. 시마네현은 관련 부처에 즉각 보고를 했고, 아사히신문은 편지의 내용과 상황을 보도했다. 실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가 못한 일을 지방의 어린 중학생들이 했으니 당차고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다.어쩌면 이것은 작은 나비의 날갯짓 정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거듭 되다 보면 그것이 쌓여 새로운 역사적 기록이 되지 않겠는가. 후일을 바라보고 공교육에서조차 역사왜곡을 하는 일본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모깃소리만큼 미약할지 모르지만, 목소리를 냈다는 것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손톱 밑에 든 작은 가시는 뽑지 않으면 두고두고 거슬리며 아픈 법이기에 어떤 반응이 나올지 은근히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비단 독도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올바로 알리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분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번 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개개인의 노력을 하나로 뭉쳐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은 심정이다. 작은 관심들이 하나로 뭉치면 큰 힘이 되어 아무리 큰 정치적 강압이 있더라도 버텨낼 수 있으리라. 어두운 공간을 뚫고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을 보는 기분이 이러할까. 뜨거운 것이 가슴을 밀고 올라오는 듯하다.잘되면 내 덕이고 잘못되면 나라 탓을 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정치인들의 무능 때문에 살기 어려워졌다는 원망의 목소리는 높다. 농사가 잘못되어도, 부도가 나도, 직장을 잃어도 모두 나라 탓을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나라에 보탬이 되게 제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정책이 나오면 원성부터 높이고 보는 것이 현실이다.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위태로운 나라를 지킨 힘은 국민에게서 나왔다.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도 의병이 큰 힘이 되었고, 수탈당한 문화유산을 되찾은 것도 개인인 경우가 많다. 작은 단체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애국은 교과서로만 강요할 일이 아니다. 어른들이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깊이 가지고 있어야만 자연스럽게 교육이 될 것이다. 어린 청소년들이 보낸 56통의 편지가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모두가 관심을 갖고 의무적으로 한 줌 힘을 보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고민은 셀프로 하자

한때 걱정인형이 온 나라를 누비고 다녔다. 앙증맞은 인형들이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웃음을 나누어주는 광고도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났다. 그래서 걱정인형이라 이름 붙였을 거란 생각이 든 것을 보면 이름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걱정인형은 본래 과테말라 고원지대 인디언들이 만들어 전해내려 오는 민속인형이다. 걱정이 많은 사람이 조그만 인형에게 걱정을 말한 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자는 동안 그 인형이 걱정을 멀리 내다버린다. 그러면 걱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잠시나마 깊은 잠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아이들의 치료용 인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니 일종의 주술인형 같은 것이겠지만, 지혜가 담겨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않은가.친구 중에 걱정이 유난히 많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주 두통을 앓곤 한다. 들어보면 대체로는 별일이 아닌 것 같은데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곤 하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다소 느긋하고 긍정적인 성격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부르는 법이다. 나의 평소 지론은 ‘걱정해서 해결될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해결이 될 것이고, 해결이 안 될 일은 아무리 걱정을 해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친구는 이런 나를 보면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곤 한다. 어쩌면 서로 극과 극의 성격을 가졌기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아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말이다. 주위에 사람은 많지만 막상 나쁜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아파하며 위로해주고, 좋은 일에 진정으로 더불어 기뻐해 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시대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걱정인형을 하나씩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무나 귀여운 인형, 혹은 애완동물이라도 괜찮겠다. 걱정을 잠시 맡겨두더라도 안심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책임을 전가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사랑으로 돌보되 가끔 도움을 청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맡겨둔다면 밖으로 새어나가 난처해질 염려도 없을 터이다.한 가장이 있었다. 그는 집은 항상 화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퇴근을 해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늘 마당에 있는 나무를 먼저 찾는다. 나무에게 그날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 미안하지만 내일 아침까지만 맡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가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집을 나서며 어김없이 나무에게 맡겨두었던 걱정을 찾아간다는 것이다.언젠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그 방법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즈음부터 내게도 걱정나무가 생겼다. 너무 자주 맡기면 미안하겠기에 한 달에 한두 번쯤 신세를 지곤 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언젠가부터 익숙해졌다. 나무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마음이 분주한 오월이다. 가정의 달이며 사랑의 말이 넘치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외로운 사람이 더 많아지기도 하는 법이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모든 사람이 걱정나무 한 그루를 마음에 심어두면 좋겠다. 힘들거나 외롭거나 속이 상할 때 언제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반려가 된다면 대부분의 고민은 셀프로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박경혜수필가

봄이 오는 길목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바람이 상쾌하다. 찬 기운이 가신 건 아니지만, 얼굴에 닿는 느낌이 겨울처럼 무겁지 않다. 그늘진 곳은 여전히 얼음이 두꺼운데도 찰찰찰 흐르는 물소리가 활기차다. 덕분에 오랜만의 산행인데도 발걸음이 가볍다.겨우내 앙상하게 메말라 있던 가지에도 생명의 기운이 감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산수유나무에는 때 이르게 앙증맞은 꽃망울이 맺혔다. 눈 닿는 것마다 겨우내 웅크렸던 가슴이 뻐근하도록 지개를 켜며 봄맞이로 분주하다.얼어붙은 땅속에서도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들은 살아남았다. 제 살붙이들을 떼어내고 몸피를 줄여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되찾은 생명이다. 땅김이 오르자 비로소 들숨을 쉬기 시작한 뿌리들은 헐거워졌던 물관이 팽팽해지도록 수혈 중이다. 곧 연둣빛 새살이 돋아나리라. 봄은 모르는 사이 그렇게 다가와 있다. 아직은 겨울이야 아직은, 하는 순간에도 좁은 보폭으로 한 걸음씩 내디딘 결과일 터이다.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죽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맨몸으로 찬바람을 막아내며 견디어온 시간이 주는 선물 같은 것일 거다.십여 년 전쯤 인연을 맺은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할 때, 또 힘들거나 자랑할 거리가 생길 때면 간혹 연락을 해오던 아이다. 졸업을 일 년 남겨두고 있으니 겁이 난다고 한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갑자기 막막해진다고 말끝을 흐린다. 급히 약속을 잡는다.활짝 피어 있어야 할 아이의 얼굴이 어둡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가 아닌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고민이 깊다. 사학년을 앞두고 있으니 취업도 걱정이고 인제 와서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도 의문이 든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문득, 커피숍 안의 공기가 탁하게 느껴진다. 반쯤 식은 커피를 들고 근처 공원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슬그머니 손을 잡는다. 나와 손잡고 걷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아이다. 잠시 움찔하는 듯하더니 고맙게도 마주 보며 웃어준다. 예전의 밝고 경쾌하던 웃음소리가 떠오르는 맑은 미소다. 잠시 후 손을 놓으려 하자 오히려 아이가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우리는 사춘기 소녀들처럼 웃음소리를 날리며 공원을 걷는다.“어머, 곧 잎이 나겠다. 여전히 겨울인줄 알았더니 어느새 나무에 눈이 생겨있네.”괜히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다가 내 목소리에 찔끔한다. 너무 티 나게 과했나 싶은 마음이 질책하듯 입을 막는다.“그러게요. 겨울 내내 봄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한숨과 함께 다시 어두워지는 얼굴이 안쓰럽다. 물이 올라 생기가 도는 나무들 사이에서 우리는 식은 커피만 홀짝거린다.유난히 밝고 장난기 많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봄을 누가 빼앗아버렸을까. 마음이 시리다. 내가 어떻게 해 줄 도리가 없어 보이는 고민들이 쏟아진다. 답은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아이도 알고 있다. 나의 이십대가 호출되고, 깊었던 고민의 상흔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삼십년 전의 이십대와 현재의 이십대가 충돌하고 화해하며 의기투합한다.아직은 겨울이 끝난 게 아니다. 다소 두꺼운 옷을 입었지만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시리다. 오소소 떠는 시늉을 하며 마주보고 웃다가 우리는 일어선다.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며 또 연락드리겠다는 인사를 뒤로하고 아이는 총총 사라진다. 진심인지 인사치레인지 모를 일이지만,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던 폭풍이 조금 잠잠해졌기를 바라는 것은 간절한 내 마음이다. 어둡던 아이의 얼굴이 가슴을 조인다. 조금 더 도움 될 말은 없었을까. 내 아둔함이 부끄럽다. 겨울을 뚫고 새순이 돋아나듯 아이의 봄도 그렇게 왔으면 좋겠다. 굳세게 인내하고 폭풍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내년 봄이 되기도 전에 활짝 핀 얼굴로 기쁜 소식을 전해올지도 모를 일이다.볕이 따사로운 날이다. 벌써 양산을 펼쳐든 여인이 눈에 띈다. 이 좋은 볕을 왜 저리도 강한 몸짓으로 거부를 하는 것인지 참 모를 일이다. 봄기운이 옅은 산에서 나는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서 봄을 들이킨다. 물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한껏 깊게, 기리고 오래. 그러고 있으니 엉뚱하게도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 곧 피식 쓴웃음이 난다. 겨울동안 그들이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견디어 왔는지도 모르면서. 그들의 사정도 모르면서 말이다.박경혜수필가

봄날의 장터

한 꺼풀 한 꺼풀 겨울을 벗기며 봄은 그렇게 다가오는가 보다. 머지않아 목련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개나리의 노란 웃음도 자지러지게 들릴 터이지. 손바닥에 들어온 이른 봄바람이 마음을 간질이고 저만치 달아난다. 길을 나선다. 발길이 닿은 곳은 시골 장터, 들떴던 음력설 기분도 가시고 조용하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왁자하다. 주위를 살핀다. 바람에 날리는 햇살 속에서 봄을 파는 주인공, 나물을 매만지는 할머니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양지바른 노지에서 캤을 봄동,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이것을 참기름과 깨를 넣어 겉절이로 만들면 식욕을 돋울 것이고, 쌈을 싸서 크게 한입 먹으면 금방이라도 입속에서 봄이 툭툭 터질 것 같다. 입맛을 다시며 걸음을 잇는다. 난전에 비닐을 깔고 약초를 다듬는 노파 앞에서 멈춰 선다. 이것은 감기에 좋고 저것은 관절에 특효이며 못생겨도 저쪽 끄트머리에 있는 것은 항암효과가 있다며 나를 쳐다본다. 목을 길게 빼고 표정을 연신 살핀다. 나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양쪽에서 아이의 손을 잡은 다문화 가정의 부부 모습이 보이고 젊은 외국인은 서툰 우리말로 생선값을 깎아 달라고 조른다. 어물전 주인은 떼쓰는 이방인이 귀여운지 덤으로 작은 생선까지 끼워준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굿바이”를 외치며 또 오라고 손을 흔든다. 그 한마디가 싱싱한 물고기처럼 퍼드덕거린다. 이젠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기만 하다.벌써 끼니때가 되었을까. 할머니 여럿이 둘러앉아 비빔밥을 먹고 있다. 김이 나는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이 차가운 속을 데워 준다. 거울 같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식기 전에 얼른 먹으라고 챙겨주는 살가운 행동들이 봄바람처럼 포근하다. 어쩌면 이들이 서로의 삶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시장기가 느껴져 국숫집에 들어갔다. 찬물에서 갓 나온 밀국수에 침이 고인다. 쫄깃하게 잘 익은 면발, 국물을 들이켜니 그 옛날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지금이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쌀이 귀하고 모든 게 넉넉지 못했던 시절엔 국수마저도 모자라 국물로 배고픔을 달래었다. 그래도 꿀맛이었다. 자고로 음식은 맛보다 기억으로 먹을 때 더 강렬한 맛을 내는 것 같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던 그때가 새삼 그리워진다.두 어르신이 국밥을 사이에 두고 지난날을 이야기 중이다. 차가운 막걸리 한 잔을 주인장에게 따라 주며 질박한 사투리로 안부도 묻는다. 귀동냥한다. 가난했던 시절, 국그릇 속에 몇 개 떠오른 옹골찬 밥알처럼 살았던 청년들이 어느새 백발이 되어 술잔을 기울인다. 그때는 막걸리 한 사발에 소금으로 입가심했지. 소금만 한 안주도 없었어. 다부진 체격의 어른이 당시를 회상하자 세상살이가 나아지면서 그나마 장날엔 국밥으로 속을 두둑이 채웠지. 하시며 마른 체구의 어른이 맞장구를 놓는다. 듣고 보니 국밥과 막걸리는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며 가난을 끌어안은 음식이었다. 주인 부부의 인상도 푸근하다. 지금까지 함께 했을 천사 같은 아내와 머슴 같은 남편의 골 깊은 주름이 그저 생겨났을까. “몸은 고단해도 보람은 있었지. 커가는 자식들을 보면 힘들었던 기억은 금세 사라졌거든.” 라고 말하는 아내는 흰머리가 수북한데도 상냥하기가 봄바람 같다. 어른들의 대화는 그 시절이 좋았던 게 아니라 그 시절의 삶을 하나하나 잘 살아나온 게 고마운 듯 보였다. 욕심내지 않고 하루해가 주는 만큼만 걷는다면 앞으로 이어갈 인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오일장은 덤이 있어 좋고 소탈한 사람 냄새가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경사길이 끝났나 싶을 때 또다시 비탈길이 나오는 게 우리네 인생, 아찔한 구름다리에 선 기분이 매사 인생사 아니던가. 겨울이 녹아 봄이 오듯, 오로지 맨몸 하나가 삶의 도구였을 순박한 사람들에게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도 흘렀다. 시끌벅적하던 장터가 어느새 파장 분위기다. 손수레 위에 놓인 먹음직스런 군음식이 떨이로 팔리고, 보따리장수도 난데장꾼도 짐을 싸기에 바쁘다. 고소한 풀빵 냄새가 여운을 남기는 닷새마다 열리는 현풍장, 그 특별한 하루가 저물어 간다.김미향수필가

겨울편지

기억하시는지요? 이맘때쯤이면 기나긴 겨울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한 번씩 몸살을 앓는 것을. 그래서 나선 길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서도 시골길을 한참 더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 양쪽 길옆으로 지금은 쉬고 있는 텅 빈 논과 밭들이, 그 뒤로 산들이,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겨울을 나는 중입니다. 사시사철 같은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나무와 산과 들판의 모습은 그림 속 배경처럼 든든합니다. 가감 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겨울 들판을 볼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 나무들처럼 정직하게 살아야지 다짐합니다. 시골장터에서 친구와 만났습니다. 우리는 장터를 한 바퀴 돕니다. 시끌벅적한 시골장터의 활기와 사람살이의 훈기가 이곳에는 있습니다. 박상 튀기는 아저씨의 ‘뻥이요’하는 소리와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불콰해진 얼굴로 한잔하신 어른들도 눈에 뜨입니다.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어릴 적 동무인지도 모릅니다. 장날 국밥집에 마주앉아 막걸리 잔을 나누면 삶의 고단함도 시름도 잠시 잊어버리게 하는, 살짝 오른 취기로 소박한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탈바가지 같은 표정들에서 지나온 시간들이 느껴집니다.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의 어머니는 벌써부터 분주하셨습니다. 뒷마당으로 가서 말려 두었던 시래기를 꺼내 오시고 물을 주어 기른 콩나물도 한 줌 뽑으시고 감주도 한 병 따로 담아 두셨습니다. 콩이야 깨야 고춧가루들도 봉지봉지 싸 놓으셨습니다. 함께 농사짓는 며느리가 보면 속상해할까 봐 며느리 몰래 슬쩍 내어 놓으십니다. 놀라는 제 입을 가리시며 손짓을 하십니다. 별것 아니니 암말 말고 가져가라고. 눈물겹게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렇게 챙기시고도 머를 좀 더 주꼬? 하실 때는 친정엄마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뒤뜰에 나가니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으로 숨을 쉬는 저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듯합니다. 무수히 많은 대화를 몸으로 나누며 오랜 시간을 함께 견디는 저들, 그 속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고 익어갑니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그런 것이겠지요? 함께 살아낸 시간이 지날수록 어우러져 깊어지는.고욤나무를 아세요? 작고 앙증맞은 감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감나무 사촌쯤 되는 그 나무 말입니다. 겨울인데도 고욤이 조롱조롱 달려 있더군요. 참새들이 몰려가 고욤을 맛나게 먹고 있었습니다.해마다 고욤을 따서 와인을 담그던 친구는 올해 그 일을 포기하고 참새들에게 나무를 통째로 내어 주었습니다. 한겨울에도 먹을 것을 남겨둔 새들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친구의 마음이 새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채워 주듯이 삶이 삭막하지 않은 것은 누군가가 내어주는 작은 마음 한 켠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무작정 그 마음이 그리워 떠나온 길이었습니다. 이유없이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아무에게나 바랄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요.참 이상도 하지요? 꽉 차 있던 가을의 들판보다 텅 빈 지금의 들판이 왜 더 넉넉해 보일까요? 모두 내어주고 빈 가슴만 남은 어머니처럼, 비어 있기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논둑길을 살살 걸어보았습니다. 바사싹 바사싹 마른 땅을 밟는 소리가 따라옵니다. 흙길을 걷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땅을 밟는 이 울림이 땅속 어딘가에 전해지고 그 울림으로 무언가와 교감하고 있는 듯, 혼자 걸어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이 느낌을 말입니다. 지금쯤 땅속에서는 봄을 준비하느라 분주할까요?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어느 부지런한 농부가 벌써 땅을 갈아두었습니다. 한 번 갈아엎어진 흙은 속에 있던 고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놀란흙입니다. 언제든 무엇이든 심기만 하면 싹을 틔울 수 있게, 가슴을 열고 품어줄 씨앗을 기다리는 그 흙을 보며 바짝 마르게 굳어 있었던 저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갈아봅니다. 굳어 있는 땅에는 아무것도 심을 수가 없으니까요. 어떤 씨앗이든 싹을 틔울 수 있게. 곡식은 곡식으로,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피워낼 수 있게.산자락으로부터 어두움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한다지요? 불안감을 표현한 말이지만 저는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안온하고 평화롭습니다. 어둠 속에서 등불이 켜지듯 각자의 길로 흩어졌던 식구들이 하나둘씩 돌아와 따뜻하게 서로를 채워주는 시간이니까요. 밤이 지나가는 동안에 분주했던 하루일과도 복잡했던 마음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요. 돌아오는 길, 잠시 차를 세우고 들판을 바라봅니다. 머지않아 이곳 작은 마을에도 봄이 오겠지요? 잠시 내려 두었던 일상 속으로 돌아갑니다. 씨앗을 기다리는 놀란흙처럼 굳은 가슴을 열고 소중한 일상과 인연을 품겠습니다. 싹이 트고 열매가 익어갈 수 있도록.이명희수필가

아버지의 토정비결

촛불로 타오르던 민심이 명절 연휴로 인해 잠시 주춤해졌다. 어수선한 마음들은 잠시 접어두고 새해에는 모두가 품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보기도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덕담에도 정이 듬뿍 깃들어 있다. 이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비하는 일도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봄 직하다.설 연휴에 친정가족이 모두 모였다. 세배가 끝나자 아버지는 모두 거실에 불러 앉히고 어김없이 토정비결 책을 꺼내셨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첫째네 가족부터 막내네 가족까지 차례차례 출석을 불러가며 보아주시는 것이다. “이것만 보면 따로 신수 같은 거 안 봐도 된다.”어느 해인가. 처음 토정비결 책을 꺼내놓으며 당신은 자식들이 한 해 운수를 보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대지나 않을까 염려하셨던지 그렇게 말씀하셨다.올해도 어김없이 대부분 좋은 일이 많다는 전망을 내놓으셨다. 사위들의 사업이 여전히 탄탄하거나 더 나을 거라는 말씀에 아이들에 대한 덕담이 이어졌다. 나쁜 일이 일어날 조짐은 별로 없다. 누구와 누구는 올해 특별히 물 조심을 하라거나 운전 조심, 혹은 교통사고에 유의하라는 정도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들뿐이다. 자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잔소리 같지 않게 위험에 대한 대비를 잘하라는 말씀을 내놓으신 것일 터이다.“올해도 다들 나쁘지 않구나. 특별한 일은 어느 집도 없다. 그저 작년처럼 그렇게 의좋게 열심히 살면 만사가 다 무난하니 다행이다.”그렇게 올해도 우리 형제들은 덕담을 세뱃값으로 듬뿍 받았다. 덕분에 모두가 흡족한 한 해를 미리 선물 받은 기분으로 새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신의 점괘는 특히 아이들에게 잘 먹혔다. 각각의 아이에게 맞춤하여 일어날 법한 일을 예견하시니 제 속을 들여다보며 하는 말씀 같았으리라. 뜨끔해진 아이는 스스로 조심하려 애쓰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더불어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도 더해지니 일석이조의 교육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당신의 점괘에는 당연히 비밀이 있었다. 우리 형제가 늘 아이의 문제점이나 바라는 점을 당신께 미리 귀띔해두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토정비결을 더 신봉하는 일이 생겼다.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였다. 큰 키로 늘 덤벙대다가 다치기 일쑤인 아이였다. 큰 덩치 때문에 혹시라도 철없이 패거리 짓는 싸움에 휘말리지나 않을까 염려하신 아버지께서 특별한 당부를 하셨다.“올해는 진학도 하니 친구 사귀는 것을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점괘가 나오는구나. 다툼에 휘말리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라는구나.” 모난 데 없이 둥근 성격을 가진 아이는 걱정 내려놓으시라고 호기롭게 대답을 했다.입학을 하고 두어 달이 지났을 때 일이 터졌다. 큰 키 때문에 일명 일진이라 불리는 선배들의 눈에 든 것이다. 아이를 자신들의 패거리에 끌어들이기 위해 밤낮으로 전화를 걸고, 하굣길에는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이가 내색하지 않아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알고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매일 하교 시 교문에서 기다리고, 부모의 손이 미치지 않는 교내에서는 학생주임 선생님께 특별히 도움을 청했다. 밀착관리 덕인지 다행히도 몇 개월이 지나자 선배들은 아이에게 시들해졌다. 아마도 자신들의 생각보다 다부지지 못한 성격도 톡톡히 한몫을 했으리라.그 일로 아이는 할아버지께 경외감을 가진 듯하였다.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예견하셨으니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께서 신통력을 가진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 사촌들 중 맏이인 아이의 일을 전해들은 동생들도 할아버지의 점괘를 더 신뢰하게 되었다. 고민이 생기면 할아버지께 상의하기도 했으니 아픈 경험으로 큰 것을 얻은 해였다.토정비결은 토정 이지함 선생이 남긴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사서 어느 곳에도 책에 대한 언급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1899년 황성신문 논설에서 처음으로 정감록과 관련하여 언급했다는 기록만 전해진다. 그것도 개인의 신수를 풀어보는 점술 책이 아니라 정감록처럼 국가 존망과 풍수도참에 관한 내용을 싣고 있는 비결서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터이다. 그러니 토정비결이 언제 누구에 의해 개인의 운수를 점치는 책으로 변한 것인지 모를 일이기에 그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다. 하지만 자식들의 평안을 바라시는 아버지의 의중은 헤아리고도 남는 일이기에 해마다 좋은 기분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것이다. 어수선하고 아픔이 많았던 지난 해였다. 상처 입은 사람도 상처 준 사람도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맞이한 새해다. 인정하고 양보하여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새해는 욕심에서 한 걸음씩 물러서는 해가 되기를,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토정비결의 덕담이 쏟아지기를 기원해본다.박경혜수필가

넷째 왕을 기다리며

크리스마스를 앞둔 교회는 분주하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교회마다 춤과 노래, 연극 등으로 작은 축제를 준비한다. 연극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베들레헴 작은 마을을 찾아가는 세 동박 박사의 이야기이다. 에자르드 샤퍼의 ‘네째 왕의 전설’이라는 책에는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박박사 세사람 말고 아기예수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 또 한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러시아 땅, 작은 나라의 왕인 그는 하늘의 별을 보고 오래전부터 전설로 전해오던 인류 전체를 구원할 위대한 왕이 태어났음을 알고 보물들을 챙겨 길을 떠난다. 궁궐에서 나와 계속 길을 가던 그는 자기 나라를 넘어서 낯선 나라를 여행하게 되고, 그동안 알지도 듣지도 못했던 일을 많이 보게 된다. 좋은 일들은 잘 기억해 두었다가 자기 백성들에게도 같은 일을 시킬 작정이었다. 하지만 나쁜 일들을 보았을 때는 상심했다. 의로운 사람들이 괴로워하거나 착한 사람들이 비참한 처지에 있어도 자신의 나라와 백성이 아니었기에 그에게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었다. 장차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을 다스리게 될 위대한 왕, 그 분의 백성들이 보살핌이 아닌 채찍으로 통치를 당하고 상품이나 다름없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며 그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위대한 새 임금이 그 숱한 일들을 바로잡기를 간절히 원했다. 위대한 왕에게 바치려고 가지고 온 보물들은 다쳐서 누워있는 어린 아이를 위해, 농장에서 쇠몽둥이로 맞아 빈사상태에 빠져있는 농노들을 해방시켜주기 위해, 나환자의 상처를 감아주고 감옥에 갇히거나 곤궁에 처한 자들을 위해 차례차례 쓰였다. 보물이 점점 사라졌지만 어차피 그 분의 백성들인데 그들이 알맞은 때에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이 당하는 부당함과 고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마침내 보물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그는 어느 항구에 닿아 있었다. 어떤 악독한 선주가 빚을 갚기 위해 노 젓는 일을 하다가 죽어버린 사람의 아들을 아버지 대신 배에 태워 사슬로 묶으려는 것을 목격하고 그 어린 아이를 대신해서 자신이 배를 탄다. 악독한 선주의 계산법은 제 멋대로여서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늙고 병들어 더 이상 노를 저을 수 없을 때 그가 배를 탔던 선창에 버려지기까지는 삼십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평생을 길 위에서 보내고 난 후 겨우 자유를 찾은 그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어느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그곳은 바로 예수가 못 박히는 자리였다. 긴 세월이 걸려서 비로소 위대한 왕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외친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께 드리려고 했던 것들을 죄다 없앴습니다. … 저의 마음을 받아 주시겠습니까?’예수께서 진정 바라는 보물은 무엇일까? 황금과 유향과 몰약, 이러한 보물의 물질적 가치보다 귀한 보물들이 꼭 필요한 곳에서 쓰여지는 그 선함과 베풂, 그로 인해 생겨난 감사와 사랑 그리고 용서, 그것을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기시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기 예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실망과 분노, 두려움도 반성도 없는 교만과 뻔뻔함,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 청년들의 절망이 가득한 이 땅에 네 번째 왕이 온다면 보물들은 어디에 쓰여질까? 절망의 끝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세 모녀를 살리고, 학대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맨발로 도망쳐 나왔던 소녀에게 그의 자루에서 나온 좋은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고 배불리 먹일 것이다. 손을 흔들며 수학여행을 떠난 아들과 딸들이 탄 배가 가라앉은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는 부모들은 어떻게 위로해 줄까. 절망에 빠져있는 청춘들에게 어떤 희망을 심어줄까. 촛불을 들고 나라의 평안과 안정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나라의 왕인 그는 이방의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까. 지금 우리에게는 권한이 없다하여도 모른 체 지나치지 않고 함께 아파하고 부당함에는 함께 맞서고 억울함은 풀어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넷째 왕이 우리나라에 당도하기를 바란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위로와 사랑을 받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따뜻해진 그 마음을 다시 주님께 드릴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이명희수필가

가을풍경

1. 바닷가 카페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다. 큰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뜨락까지 파도가 밀려올 것 같은, 크지도 작지도 누추하지도 화려하지도 오래되지도 새것이지도 않은 바닷가 카페 ‘꽃밭에서’.그 곳에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살고 있다. 담벼락에는 꽃이 그려져 있고 소박한 마당 작은 꽃밭에 있는 듯 없는 듯 몇 송이의 들국화가 피고 지는 곳. 사람도 꽃도 아닌 파도가 주인인 마당. 같은 장면을 되풀이해 돌리는 비디오처럼 같은 동작으로 모래사장을 들락거리는 파도와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잠깐씩 모습을 바꾸는 구름 말고는 새로울 것도 다를 것도 없는 풍경. 그들은 얼마나 함께 살았을까?아내가 먼저 마이크를 든다. 카페를 반쯤 채우고 앉은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노래를 시작한다.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웃으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던 노래에 눈물이 난다. 젊었을 적의 그녀는 누구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불렀을까? 노래 한 곡에 그녀의 인생이 보인다. 나도 그녀도 서로의 사연과 속내를 모르지만 노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함께 흐른다. 말로 해야만,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아야만 누군가를 아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를 향해, 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남편이 마이크를 건네받는다. 속속 손님들이 도착하는 주차장과 작은 공연을 하기위한 기계 설치, 카페의 자잘한 모든 일들을 컨트롤하느라 그는 분주하고 피곤해 보였다. 작업복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아내가 드레스 차림으로 완벽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나왔다면 그는 일상의 모습 그대로였고 그의 차림새와 표정에 우리는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한 두곡 부르고 내려갈 것이라 생각했다. 반주가 흐르고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누가 음악을 예술이라 했던가, 그것은 마술이었다. 신데렐라의 누더기 옷이 드레스로 바뀌고 호박이 마차로 바뀌는 것처럼 그의 노래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그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충분했고 넘쳤다.바닷가 카페, 조용한 그 마을에서 가수 정훈희, 김태화 부부는 그렇게 인생의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2. 익어가는 사람들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이전부터 살았던 토박이들이다. 장날이 되면 같은 장터에서 산 신발과 양말을 신고 명절이면 비슷비슷한 옷들을 사 입고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봄 소풍과 가을운동회와 학예회를 함께 치렀다. 버스를 타고 시내의 학교로 통학을 하던 사춘기 시절에는 알아도 모른 체 보아도 못본 체 하며 지나쳤던 우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삶을 살던 어느 날, 마흔을 기점으로 만났다. 남들이 보면 그저 초라한 중년의 일남일녀로 보일 얼굴이지만 우리에게는 어릴 적 장난스러움과 촌스러움과 한없이 순박하고 착한 표정이 보여 억지를 부리거나 얄밉게 보일 때도 미워할 수가 없다. 어릴 적 그 아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친구의 얼굴을 볼 때마다 점점 깊어지는 연민의 정체는 무엇일까. 늘씬하고 키도 커서 여자들 중 제일 멋쟁이였던 K는 살이 쪄서 고무줄 바지를 입고 왔고 제일 많은 일을 치러내야 하는 직책을 갖고 제일 바쁘면서도 제일 멀리 사는 J와 M은 늘 그랬듯이 불평 한마디 없이 달려와 든든하게 존재감을 채워 주었다. 가끔 지나치게 알뜰하고 못 하나도 계산 없이 박지 않을 것 같던 O는 갓 출고한 수입차를 타고 왔다. 아무도 어디서 돈이 생겼느냐고 묻지 않았다. 하필 모임 때마다 일정이 겹치는 H는 어김없이 이번에도 문자만 날아왔고 옛날 같으면 한번쯤 빈정거렸을 친구들도 이제는 그 친구를 옆자리에 놓아둔 짐보따리처럼 내려놓을 줄 안다. 몇 잔의 술에 과하게 오버액션하며 좌중을 흥겹게 만들어주는 Y는 오늘도 자진해서 망가지며 분위기를 띄워주었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G의 마음속에는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숨어있다는 것을. 평소의 우울해 보이는 표정과 어울리지 않게 과도하게 발랄한 오버액션의 주인인 S는 늦게 합류한 이 모임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불안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이제 우리는 안다. 설명도 필요 없다. 그저 만날 때 환하게 웃어주고 헤어질 때 조금만 더 힘을 주어서 손을 잡아주면 된다. 서로의 어려움과 아픔과 기쁨의 그 속내를 안다. 비슷한 길을 지나왔고 비슷한 지점에 서 있으니까. 그 친구들과 가을 여행을 떠났다. 가수 부부가 작은 음악회를 여는 바닷가마을 카페, 파도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가을 바닷가로.가을이 깊어간다. 나의 벗들도 각각의 빛과 색으로 깊이 익어가고 있다.

가을을 그리다

가을이 마음을 톡톡 두드린다. 살금살금 불어오는 낮은 바람을 따라 가만가만히 발을 내딛는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모금 마시며 걷는 걸음이 경쾌하다. 다소곳하면서도 당당하고 소박하면서도 세련돼 보이는 들꽃이 선들바람을 탄다. 자연의 풍경과 하나가 되고 싶은 계절, 대자연의 품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간다.맑게 갠 하늘빛은 더할 수 없이 청명하다. 길섶에 핀 보드라운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그 자태에 다가서니 가슴 속에 두었던 감성들이 살며시 일어난다. 꽃 빛을 닮아 마음이 발그레 물이 들고 제철 맞은 나비는 꽃을 옮겨 가며 호사를 누린다.한 됫박의 햇살이 여린 풀잎 위에서 보골 거린다. 머지않아 저 어린 풀도 제 키를 다 키울 것이다. 푸른 나뭇잎들은 가을을 향해 힘껏 발돋움 중이다. 구름마저 산기슭에서 쉬는 참 맑은 날, 창문을 열면 자연 그대로가 그림이 되니 이곳 사람들은 굳이 그림을 벽에 걸어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태양도 고운 빛깔을 뽑아 단풍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길가의 작은 채마밭에서 젊은 아낙이 가을을 캐고 있다. 지나가는 바람이 아낙의 등허리를 오르내리며 곰살갑게 군다. 살진 토양에서 갓 뽑아낸 싱싱한 저 무로 만든 생채에, 참기름 한 방울 톡 떨어뜨려 쓱쓱 비벼 한 입 먹으면 그만일 것 같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고 혀끝에 가을이 당도했다. 다시 길을 걷는다. 햇살이 키우고 바람이 보살핀 석류가 붉은 햇살을 머금은 채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민다. 그 길에서 만난 그림 같은 풍경, 사랑을 키워가는 젊은 연인들의 몸짓이 햇살보다 더 반짝이고 석류보다 더 새콤달콤하게 익어 간다. 호젓하게 혼자 걷는 것도 괜찮지만 둘이서 손잡고 걷는다면 더욱 좋겠다. 온몸을 햇볕에 드러내고 싶은 가을날, 결실로 향하는 그들의 미묘한 밀당은 그칠 줄 모른다. 나도 몰래 석류 속 같은 이새를 슬며시 드러낸다.들판에도 든든하게 벼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봄과 여름을 견디며 한 알 한 알 잘 여문 곡식들. 수확의 계절을 농부만큼 기다려온 이가 또 있을까. 머지않아 들녘에는 콤바인 소리가 울려 퍼질 터이다. 시끄러운 소리지만 농부에게는 흥겨운 노랫가락이나 다름없다. 정성을 다했으니 가을은 잊지 않고 풍요를 선물할 것이다. 결실의 기쁨에 젖은 농부의 풍년가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하다.저만큼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바라보는 노부부가 있다. 애써 키운 또 다른 자식을 들여다보는 눈빛이 푸근해 보인다. 논두렁에 앉은 아내가 늦은 점심을 펼쳐놓는다. 큰 그릇에다 밥과 나물과 알싸한 고추장을 넣어 비비더니 한 숟갈 크게 떠 입에 넣는다. 곁에서 막걸리 한 대접을 먼저 비운 남편이 아내에게도 권한다. 모자를 눌러쓴 아내는 고개를 회회 젓는다. 바라만 봐도 배부른 풍경, 이런 밥 한 끼라면 가을 보약이 따로 없어도 좋을 것 같다.함께 걸어온 길이 어디 꽃길만 있었을까. 어쩌면 저 비빔밥 속엔 옆집 이야기부터 가족 얘기까지 골고루 버무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가을볕이 그들을 더욱 감싸준다. 오래된 부부의 입에 들어가는 건 음식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따뜻한 배려이리라. 몇 발자국을 떼니 늙은 호박이 탱탱한 몸으로 앉아 있다. 그 옛날 어머니가 밀가루에 강낭콩을 넣고 되직하게 쑤어 준 호박범벅이 떠오른다. 저 길 끝에 어머니가 계시고 아버지가 계시며 우리를 품어주던 느티나무도 있을 것만 같다. 조그만 물웅덩이마저 하늘과 산 그림자를 끌어안고 서성거리는 오후, 누렇게 익은 들판과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대구 근교는 어디를 봐도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다.낙동강의 큰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흘러가는 저 물처럼 구름처럼, 사는 것도 저러하면 얼마나 좋을까. 머지않아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할 것이다. 서로서로 손 붙잡은 능선의 인연처럼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몸이 움츠러드는 이웃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사랑이 필요한 때가 지금이 아닐까 싶다.문득 신문 기사가 뇌리를 스친다. 알려지기 전까지 홀로 사는 노인에게 음식을 나눈 어느 가난한 여인의 훈훈한 이야기. 그 글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왜일까. 햇살이 사위어가는 오후, 오늘은 나를 가만히 내려놓는다.

불협화음도 때로는 아름다운 화음

사문진 나루터에 100대의 피아노가 놓였다. 대구에 처음으로 피아노가 들어 온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5년째 여는 특별한 연주회다. 출연자들의 면면 또한 만만찮다. 관중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100대의 피아노가 낼 웅장한 음률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낮부터 열기가 뜨겁다.어스름이 내리자 연주회가 시작된다. 백 명의 피아노 연주자들이 첫 음을 내는 순간 혹시라도 실수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조바심이 든다. 첫해에는 다소 불안한 음들이 마음을 졸이게 했다는 평을 들은 터이다. 괜한 기우였나 보다. 눈을 감자 음표들이 가지런한 매무새로 가슴에 스며든다.지휘자와 연주자들이 한 몸인 듯 매끄럽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멜로디가 넓은 야외 공연장에 퍼져나간다. 순간 소란스럽던 관중석의 소음이 잦아든다. 조용한 감상과 우레 같은 박수, 이 또한 관객과 연주자의 아름다운 소통이다.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불협화음이 심하다. 작게는 가족 간, 친구 간에서부터 크게는 노사 간과 정치인들까지.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리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기에만 열을 내고 듣는 데는 소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불통은 배려 부족현상이다. 저 100명의 연주자 중 한 사람이라도 혼자 튀고 싶어 한다면 분명 거슬리는 음들이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카페에 서너 명의 젊은이가 둘러앉아 있었다. 한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머지는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한참을 앉아서 지켜보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맞추고 귀를 세워 들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답은 건성이고 눈과 손가락은 휴대전화 자판위에서 분주하다. 자주 대하는 풍경이라 이제는 생경스럽지도 않다. 그래도 한 번씩 양념삼아 대거리도 하고, 함께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그것이 젊은이들의 소통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식당에서 일이다. 옆 테이블에 네 명의 중년 남성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잔이 몇 번 부딪히고 혈색이 좋아지자 목소리가 높아진다. 듣지 않으려 해도 자연히 고막을 파고드는 소리를 막을 재간이 없다. 식사를 하던 나와 일행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음을 삼킨다. 어느 순간부터 네 명이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두 사람씩 마주보며 진지한 대화를 하듯 자기의 말만 하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불협화음이다. 그럼에도 대화는 끊이지 않고 술자리가 이어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요양원마당 나무의자에 두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계신다. 도란도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시나 했더니 갑자기 언성이 높아진다. 무슨 일인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바투 앉는다. 내가 다가가 앉은 것도 의식하지 못하시는지 알은체도 하지 않는다. 잠깐 듣고 있던 나는 피식 웃음을 토하고 만다. 싸움이 될 일도, 소통을 해야 할 일도 아니다. 서로 영판 다른 자기 이야기만 서로 늘어놓고 계셨던 것이다.낯익은 사회복지사가 늘 있는 일이라고 귀띔해준다. 잃어버린 기억이 더 많지만 하실 말씀들은 많다고. 저 두 분은 외로움 때문인지 혼잣말도 꼭 함께 앉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간에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방통행 식일지라도 두 분의 소통일지라도 오래 지속되었으면 싶다.어느새 출연진들의 순서가 끝나고 무대는 오늘의 콘서트를 마무른다. 지휘자의 돋보이는 기지는 잠시 후 드러났다. ‘흥해라 밴드’라 소개받은 젊은이들이 무대 위로 우르르 몰려나온다. 신나는 우리가락에 맞추어 거침없는 막춤으로 몸을 흔들어댄다. 신명이 절로난다.“함께 노래하세요. 100명의 피아니스트가 생음악으로 연주해주는 노래방을 또 언제 경험해보겠어요?”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관객석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유독 음치인 나도 분위기에 끌려 따라 부른다. 다른 사람들의 음과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소리가 심하다. 하지만 어떠랴. 모두가 함께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을. 내 목소리는 어느새 합창 속에 묻힌다. 마음을 한데 모으고 정성으로 함께 한다면 불협화음일지라도 아름다운 화음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모두 무대 앞으로 나와서 함께 즐기라는 멘트가 나온다. 낮부터 몇 시간씩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었던 관객을 위한 배려다. 어깨를 들썩이며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 의자에 앉아 손바닥이 아리도록 박수를 치는 사람들로 사문진의 밤은 뜨겁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세계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일본이 아니라 이란이라고 한다. 축구공처럼 생긴 지구의 판 중에서 이란판과 아랍판이 만나는 곳에 있는 그 나라는 거의 매일 지진이 일어나는 정도라고 하니 그곳 사람들에게 지진은 아마도 일상이 아닐까 싶다.이웃나라 일본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 소식이 들려와도 우리는 예외인 줄 알았다. 조상님들께서 터를 잘 잡은 덕분에 지진 같은 재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경주에 진원을 둔 몇 차례의 지진과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작은 여진들에 남쪽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이 커졌다. 남쪽뿐만이 아니다. 워낙 국토가 좁다보니 이번 지진은 거의 전국에서 감지가 되었고 더 큰 지진이 올 경우 그 영향은 어디까지일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원전이 밀집해 있는 동해안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지진이니만큼 원전에 대한 불안은 사람들을 더욱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이곳 대구에서도 비교적 크게 느껴졌던 그 흔들림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공포를 알게 해 주었다. 5.8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던 그 밤, 거실 바닥 밑으로 파도가 지나가는 듯한 울렁거림과 창문의 흔들림과 화장대 위의 화장품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도 두려움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았다. 여진인지 또 다른 지진의 전조인지 알 수 없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크고 작은 흔들림에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간다. 주부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로 보내고 난 뒤 인터넷 카페에 모여 지진에 대한 불안과 대비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중에서도 어린 아이를 둔 젊은 엄마들은 유독 걱정이 많다. 아예 집에 피난 보따리를 싸두고 언제든 지진이 나면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었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준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이란의 코케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들은 영화배우가 아니라 실제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영화라기보다는 그냥 그 마을의 일상의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굳어져 있던 고정관념을 확 바꾸어 준 영화였고 나 역시 처음 보았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찍은 후 얼마 뒤 코케마을과 그 부근을 대지진이 할퀴고 간다. 그 소식을 듣고 감독은 영화에 출연했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코케마을로 향한다. 코케 마을을 찾아가는 감독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에서부터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는 시작된다. 코케마을로 가는 길은 모두 막혀 있다. 이리저리 돌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포스터를 보여주며 아이들의 생사를 물어도 아는 사람들이 없다. 감독은 코케 마을로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 속으로 카메라를 비춘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일시적인 동정심이나 천박한 호기심이 아닌 그들의 시간과 삶 속으로 감독은 함께 걸어들어가며 과장없이 있는 그대로 카메라를 비춘다.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코케마을로 가는 길은 조금씩 희망을 보이고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을 담담하게 살아간다. 불행이 찾아왔지만 그 속에서 살고 죽는 것은 신의 뜻이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주어진 시간을 다시 살아가야 한다고. 결혼식을 올리고 축구 경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일상을 찾아간다.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고 인간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초반의 풍경에서 그 어떤 절망과 고통의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의 뜻이라는 것을 보여 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번 지진의 진원지인 경주는 나의 고향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의 고향인 크레타섬을 두고 말한 ‘한 번 부르면 가슴이 뛰고 두 번 부르면 코끝이 아파오는 이름’. 내겐 경주가 그런 곳이다. 이런저런 피해의 소식에 가슴 깊은 곳이 아파온다. 이맘때 쯤 경주의 코스모스는 유독 아름답다. 오래 된 능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천년의 비밀을 속삭이고 작은 돌 하나도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 우상처럼 마음 깊은 곳에 늘 세워 둔 오래된 석탑은 난간이 떨어지고 보기만 해도 정겨운 첨성대는 옆으로 기울기를 더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싶다.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났을 것을 생각하니 애가 탄다. 겨우 5.8의 지진과 몇 번의 여진을 겪고 우리가 떠는 호들갑이 과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동안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아닌 것이 아니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보니 불안이 커져 두려움이 된다. 겉은 무뚝뚝하여도 따뜻하고 속 깊은 내 고향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이 불안과 두려움을 더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로 바꾸자고.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므로.

희망 한판

노란 머리, 작지만 단단히 다져진 체구의 그녀가 상대를 매섭게 몰아붙인다. 위험한 순간순간마다 재빠른 동작과 암팡진 발길질로 위기에서 잘도 빠져나온다. 상대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하여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그녀는 여자 유도 48kg의 정보경 선수. 나는 화면 속의 그녀에게 푹 빠져 버렸다.제31회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리우데자네이루. 먼 나라에서 땀을 흘리는 태극전사들 중에서 유독 이웃집 개구쟁이 같기도 하고 홍안의 미소년 같기도 한 그녀에게 눈길이 간다. 그녀는 세계랭킹 8위로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했다. 16강에서는 베트남 선수를 8강에서는 세계랭킹 1위인 몽골 선수를 4강에서는 쿠바 선수를 차례로 제압하면서 결승 진출권을 따냈다. 이제 결승까지 2분여 남았다. 꼭 쥔 손에 땀이 배고, 앉아 있는 다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매미도 이에 질세라 창밖에서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요란한 그 소리가 내 귀에는 마치 삼삼칠 박수 소리로 들린다. 햇볕까지 관중이 되어 내 옆에 앉는다.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열기를 더하고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 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먹을 움켜쥔 채 양팔을 앞으로 뻗어 내가 결승전을 치를 듯이 자세를 취한다. 전신에 긴장이 감돈다. 내 마음도 이런데 그녀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텔레비전 속의 상대선수를 나는 한참이나 노려본다. 그녀는 선수 중에서도 최단신이다. 날렵하게 파고들기 좋은 작은 덩치의 장점을 살려 연승 행진을 이어 가길 바랄 뿐이다. 상대에게 벌칙이나 반칙을 유도하고 자신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와 상대를 질리게 하였으면 하는 생각도 굴뚝같다. 결승이니만큼 온 힘을 다해 후회 없는 마지막 한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상대보다 한 수 빠르게 행동을 취했다. 자신의 힘을 빼지 않으면서 경쟁자의 힘을 빼는 기술로 상대방보다 반 박자 앞서 들어갔다. 그러나 생각만큼 경기는 풀리지 않았다. 좀 더 힘을 내어 업어치기 한판으로 쾌거를 이루었으면 싶었는데 결국 경기 시작 1분 57초 만에 아르헨티나의 파울라 파레토에게 절반을 내주고 말았다.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건 그녀는 만감이 교차하였으리라. 한국 유도의 자존심으로 영원히 남을 금자탑을 쌓은 그녀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강한 승부 근성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이십 대의 절반을 선수촌에서 보냈다. 우리나라에 첫 메달을 안겨준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나는 또다시 그녀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세계 랭킹 1위가 예선에서 탈락하고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는 이변이 많았던 리우올림픽. 그러고 보면 영원한 강자도 패자도 없는 것 같다. 메달의 획득이나 메달의 색깔과 관계없이 참가한 선수 모두가 챔피언인 것 같다. 한국 선수와 북한 선수가 나란히 찍은 사진도 큰 화제를 낳았다. 희망을 그려나가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분단의 아픔까지도 어루만져 주었다.다음 개최지는 도쿄이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선택한 일본. 세계가 또 한 번 일본 국민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우리는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았다. 사드 배치 문제의 갈등이 그랬고 돈에 무너지는 법이 그랬으며 화합 대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당의 태도가 그러했다. 그나마 간간이 들려오는 선수들의 승전소식이 위로가 되어 주었다. 이제라도 다툼에서 벗어나 번민하고 노력하는, 귀한 손으로 삿대질이 아닌 따뜻한 악수를 건네는 이 나라의 진정한 일꾼이 되어주길 희망해본다.올림픽은 끝이 났지만 선수 모두는 여전히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쉬움은 곧 희망이다. 다시 그날을 위해 희망 한판을 겨냥해 나갔으면 한다. 나랏일을 맡아보는 높은 관리들도 국민들에게 희망 한판을 보여주고 돌팔매의 세례보다는 박수 소리에 익숙해지기를 고대해본다.자, 다시 시작이다. 오늘 밤 나도 금메달 같은 보름달을 방에 들여놓고 둥근 희망 하나 제대로 빚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