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실패와 정치성공의 문재인 정권

며칠 전 한 세미나에서 ‘기업의 기를 살려 달라’는 소리가 나오자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개탄스럽다’고 비난했다 한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의외이다. 그러나 좌파적 시각에서 보면 그렇지도 않다.옛날 춘추전국시대 나라의 반을 잃고 분개해 있는 양나라 혜왕이 부국강병책을 묻자 맹자의 답이 이랬다. “하필이면 실리입니까(何必曰利)”였다. “나라에 의(義)만 살려 놓으면 다 해결되는 데 뭣 하러 부국강병이냐”는 것이다. 현 정권이 사회정의를 경제보다 우선에 두는 것을 보면 맹자류가 아닌가 여겨진다.김 비서관이 지난해 말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1%나 되는데 무슨 위기냐”는 것이나 “위기론을 앞세워 개혁을 피해가려는 수작이 아니냐”는 것이며, 일종의 맹자류이다.김광두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사회적 가치를 경제 가치에 앞세우다 보니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도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이들은 실제로도 그랬다. 이제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앞선 산업은 반도체산업뿐이다. 조선 자동차 등은 이미 오래전에 뒤처져 버렸다. 그런데 이 정권은 사회정의 실현이 우선이었다. 검찰에서부터 국세청에 이르기까지 삼성그룹은 10건의 수사와 조사를 받아야 했다.소득주도 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주 52시간 근무제 등도 그렇다. 이론상으로는 좋은 일자리도 만들고 그 결과로 양극화도 해소되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는 ‘경제 상황은 국가비상사태’라고 하는 등 대다수 학자가 나쁜 평가를 했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학자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최근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부정해 오던 문재인 대통령이 적어도 고용 실패만은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고용노동부를 찾아가 “고용 문제에 있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엄중한 평가라고 생각한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지표로도 작년에 비해 올해는 일자리 숫자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는 증거까지 제시했다.긴 설명도 필요 없다. 현재 실업자 숫자가 90만 명으로 19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취직을 포기한 구직 단념자도 53만 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탈원전 정책은 지금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전력을 수입하겠다는 구상까지 나가고 있다. 에너지 자립 국가가 수입국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신세가 됐다. 물론 여기에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기는 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언급한 “전력 협력을 통해 동북아의 경제 번영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소위 ‘동북아 슈퍼 그리드론’이 그것이다.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서해로 하면 되지만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은 북한을 경유해야 한다. 송전망 운영권 확보가 가능할까. 그래서 반대론자들은 에너지 속국이 될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한다. 정치적으로나 외교상으로도 리스크가 너무 크다. 지나친 이상론이다.북한의 비핵화도 쓸모없는 미사일이나 핵 실험장 몇 개 폐기 이후는 거의 진전이 없다. 며칠 전 미국 하원은 미국 정부가 대북 제재를 풀 때는 반드시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의무화법을 통과시켰다. 협상 장기화에 대비하는 것 같다. 우리의 대북 협상의 폭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정치 측면서는 쇼통 민주주의나 알맹이 없는 평화지만 어쨌든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이라면 성공이다. 한마디로 이 정부는 정책 실패, 정치 성공의 정권인 셈이다. 훗날 역사가 엄밀히 평가하겠지만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의 공과는 과연 당연한 선택의 결과인가? 잘못된 선택의 결과인가? 잘못이라면 국민의 책임인가? 민주주의 제도의 모순인가?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과제인 것 같다. 서상호 주필

‘미스터리’ 정권

나라에 미스터리가 너무 많다. 쌀값 미스터리만 해도 그렇다. 북한에 쌀을 퍼주었기 때문에 쌀값이 올랐단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정부 들어 무려 60% 이상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도시영세민이 고통받고 있는데 왜 정부는 보고만 있느냐는 항변이다. 항상 남아돌던 우리의 쌀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지난해부터 북한산 석탄을 밀수입한 배가 우리나라에 드나들었다. 이 소식이 미국의 방송(VOA)에 의해 전해졌다. 당연히 석탄을 싣고 온 그 배로 우리 쌀을 실어 보냈다는 소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미스터리가 된 것은 당국의 해명 때문이었다. ‘싹쓸이 수매로 농민보유분이 작아서 그렇다’는 등 부실한 편이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적정재고량은 70~80만 t이고 비축량은 6월 말 현재 188만 t으로 평년보다 많다고 확실하게 못 박아 의문의 여지를 없앴다. 그러나 대한곡물협회의 해명은 달랐다. 민간미곡처리상 중심으로 보면 유통물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며 2년 전까지 남아돌던 쌀이 바닥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두 주장이 나오면서 국민은 헷갈렸고 결국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미스터리는 지난번 민중총궐기대회서 농민단체들이 ‘쌀값을 더 올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해결됐다. 왜냐하면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쌀값을 2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후 사정을 맞춰 보면 문 정부는 농민과 약속을 지키느라 쌀을 확 풀지 않았고 또 도시영세민의 반발이 두려워 보유 쌀을 풀었다고 솔직한 해명을 하지 못했던 것이 된다. 미스터리가 풀린 셈이다. 그러나 이외도 체코 방문, 사라진 비핵화, 낮은 단계 연방제, 잦은 사고, J노믹스의 추진 배경, 사회주의적 정책,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 등 현 정부가 속시원 하게 밝히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은 문제는 너무 많다. 우선 체코 방문 미스터리를 보자. 청와대의 해명이 만든 미스터리다. 처음엔 원전수주 지원이라 했다, 중간급유 차원이라 했다가 관광용이라 했다. 나라 이름도 체코슬로바키아로 했다가 급히 수정하기도 했고 회담이라 했다가 다시 면담으로 고치기도 하고 프라하성 방문이 대통령 초청이라 했으나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 중이어서 설명이 안 된다. 외교 참사를 자청하다니 흔히들 말하는 풋내기 정권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래서 미스터리인 것이다. 그다음은 ‘비핵화는 어디 갔는지’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이다. 그동안 비핵화를 위해 정상회담을 갖는 등 온갖 외교적 노력을 했는데 그 결과는 ‘비핵화는 사라지고 평화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CNN은 북한과의 외교적 대화론 핵과 미사일을 막지 못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핵 있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므로. 그런데 문 대통령은 유럽순방 길에서 “유엔제재 완화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북한 비핵화 조치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는 판단이 서면’이라는 전제를 깔기는 했어도 다분히 비핵화보다는 제재 완화에 비중을 두고 있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돌이킬 수 없는 정도면 더 이상 비핵화를 촉진할 필요가 거의 없는 단계가 아닌가. 문정인 외교특보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가 비핵화를 이끄는 유인책이 돼야 한다”고 했다. ‘선(先) 제재완화, 후(後) 비핵화’인 셈이다. 현 정부의 북한이 비핵화할 것이라는 예측 근거는 문 대통령의 관상이 주요 핵인 것 같다. 그가 본 김정은은 솔직담백하고 또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북한의 비핵화를 말하지 않았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를 말했을 뿐이다. 이는 오히려 미국의 핵우산 등 남한의 비핵화가 더 무게의 중심이 있는 느낌이다.(송일혁 북한군축평화연구소 부소장) 지도자의 확신을 믿고 따르라고 하는데, 국민은 이를 미스터리로 보는 것이다. 며칠 전 땅속에서 뜨거운 물이 치솟아 올랐다. 1명이 사망했다. 꼭 변괴처럼 느껴진다. 하늘이 노했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땅이 노했다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말이다.서상호주필

법치주의냐 눈치주의냐

김명수 대법원장은 내무부장관과 경찰청장의 화염병투척사건에 대한 사과방문을 받고는 “이것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중대한 일”이라고 했다. 백번 옳은 말씀이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다. 이미 ‘근간이 흔들려 있는 법치주의’에 대한 자기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보통 사건인가. 사법부 사상 70년에 처음으로 달걀 정도가 아닌 화염병을 사법부 수장에 던진 충격적 사건이다. 법치주의 그만 하라는 모욕이기도 하다.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적어도 사법부 우리는 잘못한 게 없는가에 대한 반성문이 나와야 된다. 왜냐하면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70대 농민이 아무리 화가 났다 해도 가령 대법원장이 대쪽 같던 지조로 전 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자유당 시절의 김병로 대법원장이었다 해도 과연 화염병을 던졌을까? 사법부의 권위가 말이 아니기 때문 아니겠는가. 어느 경찰관이 자신들의 인터넷 카페에다 올린 “사법부 신뢰가 실추된 게 경찰이 사과해야 할 일이냐” 하는 글도 그 증거의 하나이고, 당시 언론보도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전제하에 ‘사법부 전체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 주류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과거부터 깊었으므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유행어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은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와 친노동적, 친좌파적 판결의 노골화부터가 아닌가 한다. 지금 대법원은 헌법에 보장된 ‘양심 실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당한다며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논리가 이렇게 보면 당연히 ‘누구는 양심이 없어 군대 갔나’하는 분노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굿판이랄까. 중요한 것은 국민 대다수(70% 전후)의 견해가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법이 상식을 벗어나면 정당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범한 상식에 기초한 반발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양심의 자유 같은 가치만 내세우면 사법정의는 실현되는 것인가. 얼마 전 자동차부품회사인 유성기업이라는 데서 노조에 의한 폭력사건이 벌어졌다. 회사 측의 구조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노조가 막아 들어갈 수 없다며 40분간 기다렸다. 결국 민노총 조합원에 의해 이 회사 상무는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문제는 현장에 나온 경찰관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위대에 부상자라도 나오면 소송당할 게 뻔한 데 차라리 무능한 경찰로 욕먹는 게 낫다’고 생각한단다. 이를 의식하듯 김부겸 행안부장관은 묘한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마치 누구에게 빚져서 단호히 못 한다는 지적이 있다면 저희가 분명 책임지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래도 경찰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정권과 민노총이 한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란다. 눈치 없이 진짜로 제압하려다간 경찰만 다치기 때문이다. 소송당하면 “총리나 장관이 책임져 주느냐”고 따지며 여전히 소극적이다. 민변 변호사가 경찰 호송차를 가로막고 체포된 노조원의 접견을 요청했다. 들어주지 않은 경찰 중대장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 옷을 벗었다. 불법집회였던 민중총궐기대회 때 살수요원은 유죄 외 따로 유족에 6천만 원을 배상해야 했다. 계속되는 일련의 친노동적 친좌파적 판결로 보고 경찰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국민이 사법부를 바로 보지 않는 이유다. 유전무죄와 무전유죄가 요즘은 ‘좌파는 무죄(有左無罪), 우파는 유죄(有右有罪)’로 바뀌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두칭송위원회가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라며 대낮에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 네거리서 외쳐도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냐, 보안법 등 현행법 위반이냐를 놓고 검토 중인 모양이다. 망명해온 태영호 전 북한주영공사에 대해 백두수호대 등이 “더 이상 강의나 방송에 출연하지 마라”는 등의 협박을 하고 있다. ‘태영호 겁에 질리게 만들기’라는 단체도 있는 모양이다. 협박죄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인 모양이다. ‘경찰은 뭐하느냐’하는 소리가 메아리쳐도 검토 중이다. ‘무능한 경찰로 욕 먹는 게 낫다’는 교훈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서상호주필

다른 세상이라더니 노조공화국이었나

프랑스의 석학으로 알려진 기 소르망은 몇 년 전 우리나라를 방문해서는 우리나라 노조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많은 외국기업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는 것은 임금이 높아서가 아니라 노동시장이 복잡하고 노사협상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일자리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며칠 전에는 임종석 청와대비서실장이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고 했고, 조국 청와대민정수석은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변만의 정부가 아니다”며 민주노총과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제는 국가사회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들어 이렇게 노조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에도 민노총에 대한 혐오는 극에 달해 있다. 그들의 오만 때문이다. 그 한 예가 국민 총파업을 하면서 선언한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말이다. 정말 안하무인이다. 개가 누구일까? 좌파계 인사들의 주장은 정부여당, 보수야당, 그리고 보수언론, 재벌들이 개라고 했다. 결국 자기들 외는 모두 개라는 것이다. 독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두 번째는 법치주의 파괴와 배타성이다. 이들이 얼마 전 아파트공사현장에서 “한국노총 조합원 내보내고 민주노총 조합원을 쓰라”며 생떼를 부리는 바람에 17일간 공사를 중단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러한 일들은 전국 대부분의 공사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결국 민노총이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더욱 황당한 것은 놀랍게도 해당 기업들은 이들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민노총 조합원만 쓰겠다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법도 없고 나라도 없는 것 아닌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법사실을 알고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내렸는데도 민노총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법치주의도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하더니 이런 다른 세상이었나. 장관급인 경사노위원장은 “민노총 총파업 잘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그 위세를 알만 하다. 모두 민노총 편이다. 그래서일까? 국정을 책임진 여권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노조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겠단다. 정말 그렇다. 탄력근로제에 대한 대처 하나만 봐도 그렇다. 위기상황인 현 경제현실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그래서 국회마저 여야 합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를 지켜보자는 말 한마디에 적어도 이번 국회 통과는 물 건너간 것 같다. 그러면 당장 내년부터 기업은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김성태 한국당원내대표 말마따나 “대통령은 민주노총에 어떤 빚을 졌기에 이러나” 싶다. 대부분의 국민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너무도 친노동적이다. 그리고 국제노동기구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도 그렇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들이지만 세계에서 노동개혁 없이 경제위기를 탈출한 나라는 없다. 영국병의 치료도 대처 총리가 광산노조와 싸워 이긴 결과이고, 독일병은 하르츠법의 결과이며, ‘하얀 깜둥이’라는 비아냥을 받던 아일랜드의 경제위기 탈출은 사회연대대협약의 효과이고 네덜란드의 경제성장은 바세나르협약의 효과이다. 어정쩡한 노동개혁으로 경기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프랑스는 젊은 개혁의 기수 마크롱 대통령을 맞아 확실한 개혁에 착수했다. 물론 노동개혁이다. 친시장적인 개혁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80년간 어느 대통령도 손도 못 대던 철도노조에 대한 개혁의 칼이다. 프랑스철도공사는 매년 신규 적자가 4조 원 정도 발생한다. 그런데 노조원들은 다른 직장보다 5년 먼저 퇴직하고 10% 더 많은 연금을 받는다. 겨우 이룬 철도개혁의 성공으로 노동개혁은 성공적이라는 평을 듣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그의 지지율은 애초 60%대에서 20%대까지 떨어졌다. 개혁가 마크롱답게 그는 자신의 인기보다는 조국을 선택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심을 그대로 수용만 하고 추종만 하는 것이 대통령 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집권보다도 나라가 먼저인 것이다.서상호주필

이제는 국민의 물음에 답해야 할 때다

북한이 최소한 미공개 미사일기지 13곳을 운용하고 있다는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를 인용한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는 우리 국민에 의외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 뒤 NYT의 사설 ‘북한이 핵 사기극(shell game)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도 영향이 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러한 보도에 대한 김의겸 청와대대변인의 해명이 더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김 대변인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ㆍ미 정보 당국이 군사위성을 이용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알고 있는 내용이면 우리를 향한 미사일인데도 위협이 안 되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남북대화가 깨질세라 조심 또 조심하는 정권이라 해도 국민을 생각하면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또 김 대변인은 NYT 보도에서 북한이 ‘기만을 했다’거나 ‘미신고’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가 적절하지 못하다면서 해명을 했다. 즉 ‘기만’이란 단어는 “북한이 미사일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또 폐기를 의무조항으로 하는 어떤 협정과 협상도 맺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기만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미신고’라는 말 역시 어떤 협약이나 협정을 맺은 일이 없으니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양심이 중요하지 단어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한가. 지금 벌이고 있는 비핵화란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 물질들을 전부 없애는 것”이라고 밝혔었다. 따라서 당연히 협정이나 협상이 없었다 해도 핵과 미사일은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양식의 문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다음의 설명이다. 국민이 두려움까지 느끼는 대목이다. 대변인은 삭간몰에 있는 미사일은 ‘단거리용이며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중거리탄도미사일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야당의 비판처럼 남한 국민은 위험에 빠져도 좋다는 얘기냐는 비난과 동시에 누구의 대변인이냐 하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여기서 국민이 궁금증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는 대목은 바로 청와대뿐만 아니라 현 여권은 모두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단거리용’은 괜찮다는 식의 설명이 이를 증명하는 것 아닌가. 국민의 안전을 생각지 않는 정권은 없다. 따라서 한명숙 전 총리가 말한 “재래식 무기는 우리를 겨냥한 것이지만 핵무기는 우리를 겨냥한 것 아니다”는 식의 굳은 믿음이 있는 것 같다. 피를 나눈 형제 간에도, 피를 섞은 의형제 간에도 있기가 어려운 믿음이다. 한마디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라는 말 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국민의 걱정은 큰 것이다. 또 김 대변인의 말은 현 정부는 ‘핵 있는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의구심을 합리적 의심으로 커지게 한다. 삭간몰 미사일을 알고 있었다면 이 문제도 다음 회담 땐 의제로 올리겠다는 약속을 했어야 국민에 믿음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똑같은 논리로 아직 심증만 있고 결정적 증거는 없는 지하 핵생산시설 역시 그냥 적당히 넘길 것 아닌가. 미국서만 다음 의제로 올려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서는 민주당이 하원서 다수당이 되자 바로 ‘트럼프는 김정은에 속고 있다’고 했다. 미국 언론은 ‘북한의 핵개발은 사실상 아무것도 달라진 것도 변한 것도 없다’고 했다. 실패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속고 있는가? 아닌가?’ 국민은 궁금하다. 우리 정부가 세계 유수언론으로부터 한국은 북한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북한제재 완화를 외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과연 북한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핵 있는 평화’를 추구하고 있는가? 왜 진보ㆍ좌파 정권은 한결같이 북한편을 드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이제는 국민도 알아야 할 때인 것 같다.서상호주필

진보든 보수든 ‘이게 나라냐’하는 나라

진보ㆍ좌파도 ‘이게 나라냐’하고 보수ㆍ우파도 ‘이게 나라냐’하고 있다. 졸지에 멀쩡하던 대한민국이 나라가 아닌 나라로 돼 버렸다. 왜냐하면 중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작고, 보혁(保革)세력이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나라를 부정했으니 나라답지 않은 나라가 돼 버린 것 아닌가. ‘이게 나라냐’의 시작은 2016년 후반기 진보ㆍ좌파에서 국정농단 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며 보수ㆍ우파정권인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면서 시작됐다. 그때 나온 하야가(下野歌)의 노래 제목이 ‘이게 나라냐 ㅅㅂ’이다. 물론 국정농단의 죄목 중에는 억울한 것도 많다. 요즘 말로 치면 페이크(fakeㆍ가짜)뉴스 횡행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무당의 힘을 빌려 신정(神政)정치나 무당정치를 했다거나 청와대서 굿판을 벌였다는 등등이 그렇다. 어떻든 역사가 돼 버렸다. 그런데 진보ㆍ좌파가 ‘정권’을 잡은 지 2년도 되지 않아 벌써 보수ㆍ우파진영에서는 ‘이게 나라냐’는 고함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하야’라는 소리도 나오고 어찌 된 셈인지 여권 편에 섰던 사람들 입에서마저 이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현재의 진보ㆍ좌파들이 급진적인데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지금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만 해도 그렇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월급을 주는데 거꾸로 월급을 더 올려주면 기업이 돈을 더 번다는 식 아닌가. 게다가 견제를 맡은 야당세력도 너무 약하다. 북한핵의 처리 문제도 그렇다. 북한의 비핵화와 제재해제가 국제사회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북한측 입장과 비슷하다. 그러니 보수ㆍ우파의 눈에는, 특히 전문가들 눈에는 ‘이게 나라냐’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수ㆍ우파에 속하는 일반국민 눈에 진짜 ‘이게 나라냐’로 널리 비친 것은 그렇게 논리적인 사안들이 아니다. 북한의 리선권 조평통위원장의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발언과 같은 일상적 사건들이다. 발언 하나만 볼 때는 북측이 사과한다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를 두둔하는 여권의 발언들은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문화 차이’라든가 ‘농담’이었다든가 하는 소리도, 턱도 없는 변명들도 그렇다. 국민을 속이려 드는 듯한 땜질식이기 때문이다. 우선 분위기가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 조명래 통일부장관도 국회서 공개적으로 “북측으로는 남북관계에 속도를 냈으면 하는 게 있다”고 그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하지 않았던가. 문화의 차이도 그렇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쪽이 우리보다 훨씬 더 유교적이라고 한다. 그 정도면 북한서는 주먹이 날아간다고까지 했다. 더욱더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은 냉면 발언을 나쁘게 해석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외면하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라는 여당 최고위원의 말이다. 양심 없는 사람만 군에 가는 것으로 오해할만한 판결을 한 대법원의 논리와 비슷하다. 평화프로세스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다른 방법은 깔아뭉개겠다는 심보 아닌가. 무조건 평화를 위해서는 모든 굴욕을 참으라는 소리와 무엇이 다른지 이해가 안 간다.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고 하면 항복만이 있을 뿐이 아닌가. 이제 여권은 남북관계에서 실패공포증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인 것 같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학자들한테마저 한국은 너무 서둔다는 지적을 받았을까.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다. 더욱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백두칭송위원회의 등장이다. 백주 대낮에 서울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에서 ‘김정은 만세’를 외친 것도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한 것은 ‘분단 적폐세력이 감히 준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그들의 선언문이다. 이들은 진짜로 전 주영북한공사 태영호를 체포하겠다며 공갈을 쳐서 강연을 못하게 만들었다. 표현의 자유를 막아,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이다. 그래도 당국은 아무런 조치가 없다. ‘이게 나라냐’ 소리 더 듣기 전에 나라답게 일을 하는 것이 여권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좋다.서상호주필

다른 세상은 가능할까

며칠 전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운동권들이 흔히 말하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신념을 실천하는 내용이었다. 보수ㆍ우파인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나 경제성장 대통령 박정희와는 분명 다른 세상이었다. ‘박정희 죽이기’도 여기서 출발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의 저자는 제이슨 델 간디오다. 그는 다른 세상을 위해 수사학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대로 다른 세상을 추구했던 소위 진보ㆍ좌파 대통령의 수사학을 보면 그들이 꿈꾼 다른 세상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나온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 같이 떠오르는 나라’가 꿈이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내고,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반드시 청산돼야 하며,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들어서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는 나라’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문 대통령의 연설은 이 원칙이 충실히 지켜진 것 같다.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는 평등의 가치를 가장 우선시하는 좌파의 이념을 잘 지킨 것이며,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며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추진하기로 선언한 것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진보ㆍ좌파의 신념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소득주도성장이 여론조사상으로는 지지를 받고 있다. 50%대 후반의 지지를. 그러나 전문가나 여론주도층의 지지는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나 하면 친문파로 알려진 경희대 이경전 교수마저 최저임금인상 등 문재인경제정책(J노믹스)을 보고 실망했다며 ‘하야’와 ‘불복종운동’을 운운할 만큼 반대의사를 표했으며 현 정부의 국민경제자문회의 김광두 부의장은 ‘소득주도성장은 글로벌 경쟁에서는 독약이다’는 극언을 하고 있을 정도다.또 김 부위원장은 “기업이 병들어 있는데 건강하다고 가정하고 정책을 펴면 기업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성장률도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하거나 앞선 나라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가장 높은 편이다. 세계가 우리 경제성장에 찬탄을 보낸다”고 했다.지난 9월 중 우리 경제는 생산은 19개월 만에 가장 크게 하락했고 투자는 3개월 연속으로 뒷걸음질하고, 고용률은 위험선인 60%에 접근해 있다. 물론 소비도 감소했고, 증권시장은 세계주요국 증시에서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하여 조짐이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증시가 되고 있다.물론 대통령은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하기는 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회의는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 등에 매달리며 화급한 성장정책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이 위기의 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모양이거나 ‘세계가 우리에게 찬탄을 보낸다’며 만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기업이 병들었는데 건강하다고 가정하고 정책을 …’ 하던 김 부위원장의 지적대로인지 모르겠다.우리 경제 위기론에 대해 가장 심한 예측을 하는 경우는 숙명여대 신세돈 교수의 퍼펙트 스톰론이다. 김광두 부위원장도 신 교수의 주장을 인용할 만큼 그의 논리는 인상적이다. 수출과 경상수지 그리고 국제금리와 국제자본시장의 동요 등 3가지 요인을 들고 있다. 가장 완벽한 경제위기라는 뜻이다. 아직 오지는 않았으나 올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의 논리다.경질설이 나도는 장하성 정책실장은 “경제를 소위 시장에만 맡기라는 일부의 주장은 한국경제를 더욱 큰 모순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시장에만 맡기라 한 경제학자는 없다. 한마디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이렇게 덮어씌우는 자세는 바른 것은 아니다.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멀쩡한 경제를 망가뜨리는 정책실험’이라는 황교안 전 총리의 지적이 맞는지 ‘다른 세상’을 위한 것인지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장 실장은 연말 아니면 내년 중 소득주도성장의 결과가 나타난다고 했다.서상호주필

비핵화 협상 뭔가 이상하다

“우리가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어느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은 충격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면서 강조한 ‘대북제재 완화’의 문제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우리 정부가 대신 해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북제재완화 주장은 중국이나 러시아 정도가 해온 것이지 미국의 야당마저도 비핵화 때까지는 제재유지가 대세이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공동성명에서도 제재유지였다. 오히려 인권에다 생화학무기까지 더 곁들여 제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 상황에서 왜 미국정부가 대북제재 완화를 은근히 바라는 것일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정부는 출범할 당시는 ‘북한의 비핵화’였다. 국가안보전략지침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작성한 국정운영 5개년계획이 그렇다. 국민 여론도 대체로 ‘북한 비핵화’였다. 그러다가 판문점선언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로 수정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주장과 같은 것이다. 북한은 핵이 없던 김일성시대부터 전략이 한반도 비핵화였었다. 문재인 정부가 현실론을 택한 것이지만 적어도 국민에게는 왜 변경했는지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물론 한반도 비핵화가 바로 대북제재완화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재는 아무래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반도 비핵화에는 남한의 미국 핵우산문제에서부터 합동훈련 시의 핵자산에 이르기까지 종합 검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군축평화연구소 부소장의 주장도 이와 같다. 또 주한미군철수 문제도 그렇다. 평양을 다녀온 우리 대북특사의 말은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약화와는 상관이 없다”고 김정은이 주장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북한의 속셈이 유엔총회 제6(법률)위원회 13차 회의에서 드러나고 말았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북한외교관은 “유엔사 지휘체계를 고려해 보면 사실상 유엔과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유엔사 지휘권이 미국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 또 과거 공산권국가들의 주도로 1975년 30차 유엔총회서 채택된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유엔사의 해체와 모든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한 결의안을 들먹이며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은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지나지 않으므로 문제가 생기면 취소하면 그만이라고 했으나 주한미군 철수 외 연계된 문제로 드러난 만큼 이제는 평화무드에만 들떠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안보문제인 것이다. 더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뉴욕 유엔대표부 국감서 “대북제재 목적은 핵과 미사일의 도발을 방지하자는 것이지 일반백성을 굶겨 죽이자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북한은 이미 비핵화를 선언했고 추가적인 핵실험도 안 하는데 제재완화도 안 해주고 인도적 지원도 안 하면서 어떻게 북한에 비핵화를 하라고 설득할 수 있나”고 했다. 워싱턴 국감서는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으로 한미연합군에 맞설 수 없으니 비대칭전력(핵)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두둔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된 것처럼 말했으나 유럽연합(EU)은 북한이 행한 그동안의 핵실험시설 파기 등은 별것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너무 북측에 편향된 시각인 것 같다. 이러한 편향된 시각은 남북고위급 회담 때 우리의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2~3분 늦게 나타나자 북측의 리선권 조평통위원장이 “단장부터 앞장서야지 말이야…”라고 시작한 호통에서도 드러났다. 외교관례에 너무도 어긋난 이 사태에 대해 우리의 조 장관이 “제 시계가 잘못됐다”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왜 이리 저자세인가.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본을 보지 않았던가. 그동안 북한은 우리를 우습게 보고 우리보다 한 단계 낮은 계급을 상대로 등장시키곤 했었다. 이를 회담이 깨질 우려까지 감수하고 버티면서 이를 바로 잡은 일이 있다. 남북 간 비핵화 회담을 보면서 느낀 소감이다.서상호주필

고용세습은 반민주적 적폐다

조선조 ‘조광조’ 하면 개혁정치가 떠오른다. 그 개혁정치 중 하나가 과거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현량과의 실시다. 조정이 추천하면 임금이 직접 면접하여 뽑는 제도이다. 이 혁신정책에도 흠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청렴하고 공정하다는 평을 듣던 안당은 훈구파이면서도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적극 협력한다. 그런데 그러한 그의 세 아들이 현량과에 합격한다. 세 아들 동시합격은 조선조 통틀어 이것이 유일하다. 당연히 사림파의 보답이 아니었겠느냐 하는 의구심을 낳았다. 아니면 ‘아들 이기는 장사 없다’는 네포티즘(nepotism·연고주의)일지도 모르겠다. 설사 아들들의 학문이 뛰어났다고 해도 지금은 물론 당시도 좋게 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신사무옥 때 이 사건도 하나의 죄목으로 뒤집어쓰게 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말 인재 등용에는 왕도가 없는 모양이다. 혁신책의 하나로 실시한 현량과에도 흠이 생기는데 하물며 대통령이 1년5개월 전에 선언한 ‘비정규직 제로’의 하나로 실시하고 있는 정규직화인 만큼 잡음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성검사에서 떨어진 민노총 전 간부의 아내는 채용방식을 바꿔 합격시키나 하면, 서울교통공사는 직원 1만7천84명 중 1천912명(11.2%)이 친인척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친인척 1천912명 중 108명은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한 뒤 올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갖가지 채용비리 관련 루머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지시대로 채용비리를 전수조사하면 나오겠지만 만약 사실로 밝혀진다면 시중에 떠도는 ‘노조에 의한’ ‘노조를 위한’‘노조의 나라’가 허언이 아닌 것이 된다. 노사협약에서 고용세습을 명문화한 기업도 많다. 2015년 고용노동부가 전수조사를 한 결과 694곳에서 세습조항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도 절반 정도는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채용비리 중 특히 고용세습이 안 되는 것은 헌법상의 평등권 침해는 물론 고용정책기본법과 직업안정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는 2013년에 있었던 울산지법의 판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조합원 사망 시 유족을 고용하도록 한 현대차 단협조항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배치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느 취업준비생의 절규는 더욱 처절하다. “사회적 평등을 주장하는 노조가 정작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용세습을 서슴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전제한 뒤 “공정하게 경쟁해서 취직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저들이야말로 진짜 금수저란 생각에 좌절감마저 든다”고 했다. 민주주의 정신에 대한 근본적인 훼손을 지적한 것이다. 또 문제는 지금까지 선진국들이 경제위기를 해결한 정도는 모두 하나같이 노동문제 해결에서 그 길을 찾았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대처리즘, 독일의 하르츠개혁,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 아일랜드의 사회연대협약 등이 그렇다. 모두 정책적 성공이나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노동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는 성과급 연봉제 철폐 등 거꾸로 가고 있다. 노동개혁의 실패로 비실대고 있는 프랑스 경제를 살리려 애쓰는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개혁을 눈여겨봐야 한다. 80년간 난공불락이던 철도공사 노조를 누르고 종신고용제 폐지를 관철했다. 공무원 감축도 과감히 실행하고 있다. 2020년엔 중앙정부에서만 무려 1만 명을 줄인다는 것. 그 대신 그의 지지율은 당초 64%에서 지금은 31%로 떨어져 반토막이 됐다. 실업률을 10.1%에서 9.4%로 내렸음에도 그렇다. 아마 그는 집권 대신 그의 조국을 택한 슈뢰더 독일총리를 벤치마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권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오늘보다는 내일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역사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고용세습은 반민주적이고, 반이성적이며, 적폐의 상징이다. 국가 발전의 장애 요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노조공화국’이라 해도 그렇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고용세습인가.

찜찜한 금융위기 10년 주기설

지난 1977년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1998년 아시아로 번지면서 한국경제는 극심한 곤욕을 치렀다. 10년 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금융위기는 세계를 금융불안에 떨게 했다. 다행히 우리는 큰 화를 면했다. 그러나 2011~2012년 남유럽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소위 자본주의 위기론이다. 그런데 최근 두 번이나 당한 우리로서는 상당히 찜찜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에서 일어난 증시쇼크이다. 지금 미국경제는 실업률이 3%대로 떨어졌을 정도의 호황이다. 실업률 5%를 완전고용으로 평가할 정도의 나라에서 3%대라니 얼마나 좋은 경기인가. 오죽했으면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미국경제는 약간의 골디락스경제”라고 자화자찬했을까.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가장 적절한 경제상태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했으니 세계가 놀랄 수밖에. 그것도 미국경제를 이끌던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이 추락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연이틀 떨어져 불안을 이어갔고, 아시아증시는 다음날 다시 반등했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그 원인에 대해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미쳤다”며 금리를 인상한 연준에 그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다, 터키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이어지고, 또 주도주 역할을 하던 미국의 기술주에 대한 불안이 커진 것이어서 글로벌 증시는 내림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국채 금리가 올라 3.5%에 접근한다면 미국증시의 돈은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 비관론의 등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의 금융 불안은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왜냐면 지난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때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미국은 너무도 많은 달러를 뿌렸다. 다행히 그 효과를 봐 경제는 회복됐으므로 이제는 부작용 완화를 위해서도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세계의 금융부채는 61조 달러인데 이를 글로벌GDP에 대비하면 318%나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리를 올려 뿌려진 달러를 거둬들이는 긴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다. 세계경제 환경이 이렇게 되자 일부 논객들이 글로벌금융위기 10년째인 2018년을 맞아 슬며시 ‘한국 금융위기 10년 주기설’을 내민 것이다. 물론 불리해진 경제환경 외 확증은 없다. 그러나 위기는 고양이처럼 몰래 오는 법이다. 또 조심해서 나쁠 것도 없다. 설사 위기가 온다 해도 정부 대응에 따라 얼마든지 방어할 수도 있다. 가령 1997년 IMF위기 때는 정부 대응이 무능해서 직격탄을 맞았지만,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때는 적절한 대응으로 직격탄은 피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제는 우리 경제의 현 상황이 극도로 나빠지고 있는 시점이라는 데 있다. 이는 한마디로 실질적 실업률(잠재적 구직자 등을 포함)이 11.4%라는 사실 하나로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11.4%는 이 조사가 시작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9월 현재의 취업자통계에서도 알 수 있다. 다행히 마이너스는 면하고 작년 동기 대비 4만5천 명이 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내용이 너무 나쁘다. ‘세금으로 간신히 피한 마이너스 고용’이라고 보도한 어느 신문은 복지사 등 공공부문서 16만 명이 늘어나서 면했다는 것이고, ‘추석 단기일자리 증가로 마이너스를 면했다’고 보도한 어느 신문은 산업 중추 역할을 해야 할 30~40대의 취업자는 1년 새 22만7천 명이 줄었다는 것. 이번 발표는 통계조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인지 통계주도성장인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경제의 건강 상태가 이처럼 좋지 않다면 설사 위기가 안 와도 경제계의 우려처럼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갈 수도 있고, 만약 위기가 온다면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좋은 말을 했다. “좋은 일자리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란 말이다. 당연히 정부는 이 말의 취지를 살려 규제개혁,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경제 살리기 같은 사회적 분위기 조성 등 후속 대책을 내놔야 위기가 와도 안심할 것 아닌가.

북한 비핵화에는 하드외교가 중요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앞세운 하드외교는 언제나 성공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드시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미국 매파인 네오콘의 이라크정책이 그러했다. 여기서 나온 반성이 오바마 대통령의 소위 스마트외교라는 것이다. 하드외교에다 문화나 가치 등을 중시하는 소프트외교를 엮은 것을 스마트파워외교로 이름 지었다. 스마트파워위원회라는 초당적 기구도 있다. 그러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스마트파워가 무엇인지 여전히 실체를 알 수 없다”고 비판했고,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부장관은 “군사력의 뒷받침 없는 외교는 허망하다”고 실제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현실론을 부각시켰다.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을 보자. 그는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군비 축소를 위한 정상회담을 열었다. 여기서 그는 고르비가 “미국이 SDI 개발 계획을 실험실에서만 추진한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SDI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소련의 약점을 확인했다. 소련이 미국에서 추진 중인 소위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SDI로 인해 여기에 대응하느라 경제적으로 무척 고전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레이건은 평화의 파괴자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군축을 거부한다. 그리고 SDI를 계속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소련경제는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물론 여기에는 소련의 주력 수출품인 유가의 하락이라는 악재도 겹치고. 이렇게 하드파워로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린 것이다. 2013년 4월에 있었던 개성공단 철수사건을 해결한 것도 소프트가 아닌 하드외교였다.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핑계로 북한 측 근로자를 철수시켰다. 박근혜 대통령도 우리 측 근로자의 보호를 내세워 철수를 명령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야당과 여론주도층이라는 지식인들의 상당수는 북쪽도 잘못했지만 남쪽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을 들이미는가 하면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일촉즉발의 위기’로 규정하고 “북대화에 즉각 나서기를 당부한다”고 하며 대북특사 파견을 거듭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북한지향형인 일부 여론을 무시하고 ‘뿌린 자가 거둬라’는 원칙을 지키자 돈이 궁해진 북한은 참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대화를 제의했다. 그 결과 5개월 만에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경제력이 약한 쪽이 끝내 참지 못할 것이라는 정확한 예측을 한 것이다. 결국 경제력이라는 하드파워가 작용한 것이다. 만약 강한 쪽이 양보하는 것이 맞다는 주정주의(主情主義)에 따라 선의(善意)를 베풀었다면 이러한 올바른 타결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세계의 노력에서 중재자로 자처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종전선언을 하면 비핵화는 촉진된다’는 식의 제안을 했다. 미국은 비핵화 후 종전선언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도. 그 결과 블룸버그통신으로부터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뿐 아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미국 WP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핵 신고와 검증요구는 뒤로 미루자”고 했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핵리스트 검증을 두고 결론 없는 논쟁이 많이 벌어졌고, 또 깨지기도 했다”며 “다른 접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미 대북전문가들로부터 북한 주장과 똑같다는 맹비판을 받았다. 정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므로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는 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 모두가 “우리가 잘하면 그들도 우리에게 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하면 핵도 포기하고”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류의 선의의 외교 중 하나이다. 선의의 외교가 얻은 게 무엇인가? 평화무드 외 비핵화 분야서 진전이 거의 없는 도로아미타불이 아닌가. 남북 군사합의로 우리 안보는 눈(정찰) 가리고 손(방어전력) 묶었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다. 문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힘을 통한 평화는 군의 사명이며 평화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강한 군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창군 70주년 기념식을 야간에 하는 등 군은 여전히 찬밥신세다. 왜일까.서상호주필

서서히 북한의 마각이 드러나는 것일까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월 평양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북한 외무성은 다짜고짜로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들고 나왔다”고 욕설 같은 비난을 퍼부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은 그 이후 슬그머니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핵폐기)로 대체했다. CVID가 어떤 것인가. 2002년 부시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북한에 대한 비핵화 개념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6자회담 회원국 중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공식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런 목표를 북한의 욕지거리 한마디로 대국인 미국이 체면도 없이 슬그머니 내려버리다니…. 중간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북한 핵문제 해결 실패라는 딱지를 뒤집어쓸까 봐 겁나는 모양이다. 비슷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당연하고도 적절한 말을 했다. 그런데 이를 받아 북한 노동신문은 ‘쓸데없는 훈시질’이라고 비난했다. 이 말을 의식해서일까. 아니면 ‘남북관계가 틀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 때문일까? 어떻든 이후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쪽으로 기운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예의 하나가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이나 유엔총회 연설 등 미국에서의 활동을 종합평가하면서 낸 블룸버그통신의 결론이다. 즉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서 김정은 수석대변인이 됐다’는 혹평의 기사가 그것이다. 이는 미국 보수정치계의 반응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문 대통령은 미국서 ‘북한의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줬으니 이제는 국제사회가 화답할 차례’라는 UN 연설도 했고, ‘종전선언은 미국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느니 ‘정치적 선언이므로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라는 폭스뉴스 인터뷰나 미국외교협회에서의 연설도 있었다. 이외도 ‘김정은은 경제발전을 위해선 얼마든지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진정성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든지 ‘동창리 미사일발사장 폐기는 북한이 다시는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라는 발언도 보수권의 여론을 건드린 듯하다. 왜냐하면 동창리 미사일발사대를 없애도 이동식발사대로 얼마든지 실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교문제에 ‘김정은의 진정성’이라는 말 한마디로 담보하니 그런 것 같다. 어떻든 갑자기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해 세졌다. 그 예의 하나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유엔 일반토의 연설과 태형철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겸 고등교육상의 평화포럼 기조연설(참사관이 대독)서 나온 내용이다. 한마디로 ‘종선선언과 평화협정이 한반도 비핵화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먼저 비핵화를 위한 비단길을 깔아 놓으면 가겠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1월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가 극심할 때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를 제의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당시는 우리가 갑이고 북이 을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는 우리와 미국의 여론은 일괄타결에 의견일치를 봤었다. 단계적, 동시적 해결은 8번이나 속아온 방식이어서 안 된다는 약간은 배짱을 부린다고도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갑자기 바뀌어 버린 것이다. 분명 남북정상회담이나 미북정상회담이 잘한 회담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와 미국은 정치상황상 실패를 너무 두려워한 탓이다. 이를 북한이 읽고 이용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녀간 후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그 내용이 ‘남조선 정상이 오고 가니까, 정치적 각성이 무뎌지고 긴장이 해이 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백번 웃으며 악수하다가도 언젠가 한번은 뒷덜미를 물어뜯어서라도 통일의 위업을 수행해야 한다. 총대에 의해서만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김정은 특별지시가 내려졌다는 기사가 나왔다. ‘김정은 다르다’느니 ‘김정은은 변했다’느니 하는 한마디로 해명될 문제가 아니다.서상호주필

“아무도 노래 부를 기분이 아니다”

전체 취업자에 대한 비중이 무려 21.3%나 되는 자영업자들. 그들의 숫자는 자그마치 560만 명이나 된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그것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권이라고 자부하는 정부에 의해 당한 고통이다. 이를 증명하는 증거는 많다. 우선 지난해 음식, 숙박 등 4대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88.1%나 된다는 사실이 그 중 하나다. 가게 10곳이 문 열면 다른 9곳이 문 닫는다는 이야기다. 또 금융기관으로부터 돈 빌리기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도 그렇다. 2013년 15개 은행이 마련해 놓은 ‘개인사업자 대출 119’를 보면, 작년 동기 대비 이용 건수로는 40%, 금액으로는 44%나 늘었다. 대부분 적자 운영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빈말이 아니라는 증거다. 어느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노래방 주인의 한마디가 이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아무도 노래 부를 기분이 아니다”는 그 말이다. 그래서 노래방에도 손님이 없다는 주장이다.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보다 부를 기분이 안 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인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대통령지지율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자영업자가 59%로 가장 높고 그다음이 무직과 은퇴자였다. 동시에 지지율이 가장 낮은 소득계층도 최하층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사회적 약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경제는 묘하다. 왜냐하면 역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진보나 좌파 정권은 모두 고용보호 정책을 취한다. 그러나 이 정부하에서는 대체로 실업률이 높다. 반대로 보수나 우파 정권에서는 고용창조 정책을 취한다. 말이 ‘창조’이지 구조조정이 자유롭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정부하에서는 실업률이 낮다. (미셸 알베르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또 같은 최저임금제를 시행해도 독일이나 일본 등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럴까? 너무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다. ‘2년 동안 30%’라는 것은 자영업자들의 주장대로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정착에 성공한 나라에서는 모두 시기별, 업종별, 지역별 고려도 하고 또 탄력근로제 등을 실시하여 완충작용도 두고 있다. 경제이론상 생산성은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해 봐야 경제가 나아지지 않는다. 영세 자영업자만 죽게 되고 결과적으로 고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최저임금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우기는 것은 뜻만 좋으면 결과는 나빠도 된다는 독선적 생각의 반증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며칠 전 8월 중 취업자 증가 3천명뿐이라는 고용 참사를 경험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를 계기로 지금 우리가, 까닥 잘못하면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하는 우려가 전문가 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수출전선에서 반도체 외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것이 현실이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소득주도성장이니 공정경제니 하는 경제정의에 매달려 있어야 하나 하는 반성의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새로운 세상 즉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중이 아닌가. 미래에 대한 설계는 물론 토론도 없다. 이렇게 희망을 만들지 않는 이 정권의 태업에 어느 친여 학자는 대통령의 하야까지 주장하며 분노를 표시했다. 한국경제는 지금 고령화나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환경 등 여러 여건상 “지금 한국의 경제생태계는 ‘잃어버린 20년’ 초기인 1990년대 일본과 닮았다”고 진단하는 국내외 학자들이 꽤 있다. 이에 대한 정권의 처방도 닮았다는 주장이다. 즉 일본은 레이거노믹스를 흉내 낸다며 SOC(사회간접자본)에 막대한 돈을 퍼부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국은 복지에 엄청난 투입을 하고 있다. 그러나 2년 동안 54조 원을 쓴 고용정책에서 보듯 그 효과는 별로다. 정말 국민이 모두 노래 부르고 싶을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서상호주필

‘북한의 선의’에 매달린 꼴인 비핵화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를 하겠다’고 말했다며 희색이 만면하다. 우리 청와대도 ‘임기 내 비핵화’를 강조했다. 하긴 우리 정부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선언이 나오기 전부터 그랬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특사였던 정의용 안보실장은 지난 3월 김 위원장을 만난 뒤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그의 선한 의지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정상회담 이전부터 북핵전문가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선 한층 더 굳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4개월 동안 전혀 진전이 없다. 핵과 미사일개발이 완료되어 필요 없게 된 관련 실험장만 폐기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지금도 계속 핵폭탄을 만들고 있다’는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의 증언이 있었던 일 외에 얼마 전에는 북한 외교부가 미국 보고는 ‘강도 같은 요구’라거나 우리 대통령 보고는 ‘쓸데없는 훈시질’이라는 막말을 쏟아 붓고 있다. 이렇게 북한의 입장이 고자세로 바뀔 수 있었던 배경은 뭐니 뭐니 해도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이다. 한미 양국의 조급증이 불러온 급조된 정상회담의 영향으로 불완전 평화는 왔으나 이를 틈타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규제의 강도를 늦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한다. 한숨 돌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국제 분위기가 바뀌자 이상하게도 이슈 자체도 바뀌고 있다. 국민적 염원이었던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 비핵화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서 어느새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로, 일괄타결은 어느새 단계적 해결로 바뀌었고, ‘핵 없는 평화’는 ‘핵 있는 평화’로 바뀌었다. 이제는 ‘핵 있는 평화’가 대세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이를 상징하는 말이 문정인 대통령특보의 ‘북한을 악마화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이다. 지난 30년간 8번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 북한에 무엇을 보고 악마화 말라는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여당의 북핵전문가이자 북핵문제로 북한과 여러 차례 접촉을 가졌던 이수혁 의원마저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고 예측하고 있다. 올 초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사실상의 남북대화를 제의했다. 그때 북한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강한 규제를 받아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다. 북핵 대화에서 처음으로 우리와 미국이 갑의 위치에 있을 때였다. 우리와 미국이 모두 너무 서두르다 북한에 당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우리와 미국 측이 어디까지 물러섰나 하면 문정인 대통령특사가 ‘북핵에 모든 걸 걸면 남북관계가 잘 안 되고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거나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가 비핵화를 이끄는 유인책이 돼야 한다’고 할 정도로 후퇴돼 있다. 비핵화 대신 평화를 얻지 않았나 하지만 앞서 지적처럼 ‘핵 있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는 것이 현실이고, 북한도 지난해를 기점으로 핵과 미사일을 완성한 만큼 더 이상 실험을 통한 도발은 없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미국의 북폭 가능성도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었던 사안이었던 것이다. 조급증을 보이지 않아도 올 수 있는 평화였던 것이다. 이러한 비관론 우위의 국제적 분위기를 아는지 김정은은 이번 9ㆍ9절 행사에 북한은 미사일을 시위하지 않고 연설도 하지 않는 등 평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기는 하다. 어쩌면 이번 평양정상회담서나 UN총회 때는 리비아식 핵탄두를 미국에 보내는 쇼를 할지도 모른다. 핵탄두 전부가 아닌 일부가 무슨 의의가 있는가. 지금까지 핵실험까지 한 나라가 비핵화를 한 나라는 없다. 국제정치에서 선의는 언제나 비극의 씨앗이다. 한 예로 공산주의자로 몰리기까지 했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왜 공산주의자가 나쁘냐’하며 스탈린을 옹호하며 선의를 보였다. 얄타협정 등 모든 대소 접촉에서 양보해 줬다. 그래서 2차대전 후 세계가 겪은 냉전은 소련을 부흥시켜준 루스벨트에 있다는 비난도 받는다. 그래 놓고는 죽기 한 달 전 측근에 ‘내가 선의로 대해주면 선의로 받아줄 줄 알았다’며 후회를 했다고 한다.서상호주필

통계조작은 민주주의 위기

진보정권인 참여정부 초기 여권 인사들은 솔직한 면이 있었다. 세미나 후 비공식모임 등에서 ‘정치는 언론이 잘한다고 하면 잘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를 펼치면서 은근히 협조를 요구하곤 했다. 그러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인으로서는 듣기가 거북했었다. 하긴 선전선동에 유능한 진보정권은 처음부터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언론을 통한 국민에 대한 설득 과정’이라고 솔직한 고백을 했다. 그 외도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치인이 잘못해도 언론이 짜고 잘했다고 하면 잘한 것이 된다’고 했다. 물론 발언 배경은 김대중과는 거꾸로다. 당시 언론들이 자기를 때리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를 가정해 보면 당선 후 진보정치인들이 고백했듯이 조작보도에 대한 유혹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저항의 모습이 엉뚱하게도 운동권 출신 통계청장의 교체에서 나타났다. 현 정권에 불리한 가계소득동향조사 결과 발표 때문에 바뀌었다는 중론이다. 바뀐 황수경 전 청장은 이임사를 읽는 내내 울면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안 되게 심혈을 기울였다”는 그의 말이 국민의 뇌리에 신선하게 박혔다. 진정한 운동권다운 순수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정치 선진국인 미국정치서도 통계는 왈가왈부의 대상인 모양이다. 몇 년 전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의장이 미국민주주의 초기에 있었던 두 여성을 극찬했다. 한 사람은 통계청장이었고, 또 한 사람은 노동위원회위원장이었다. 통계청장은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았고, 노동위원장은 이 통계를 굳게 믿고 이를 실천한 것이 공이라는 것이다. 옐런은 이를 통해 ‘정부통계는 정확해야 하며, 정치적 영향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보았고 또 ‘믿을 수 있는 정부통계는 민주주의의 보호벽’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어디나 통계의 조작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모양이다. 통계는 이현령비현령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대법학과 교수로 진보집권 플랜의 저자였던 조국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진보의 집권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여기저기로 강연을 많이 다녔다. 그의 강연 중 통계의 오류가 드러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펜엔마이크의 보도도 그 중 하나다. 당시 유행했던 이슈가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사회’였었다. 이에 꼭 맞는 자료가 국세청으로부터 나왔다. 즉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상위 20%의 소득은 55%나 늘어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35%나 줄었다는 것.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발표 원고에는 ‘하위 20%’를 ‘하위 80%’라고 표현함으로써 마치 국민의 80%가 소득이 준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하위 20%라고 해도 해석을 액면대로 단순하게 하면 안 된다는 국세청의 해명자료도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하위 20%의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전후 카드 사용이 급격히 늘면서 소득원이 노출되어 종전까지 세금을 내지 않았던 사람들도 대거 세금을 내게 되었다. 따라서 1999년도 하위 20%에 속했던 사람들은 바로 위의 등급인 2분위 등으로 올라갔고,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이 올라왔으니 당연히 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 하나 여론조사 통계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율도 그렇다. 한국갤럽은 지난 7월부터 11%라고 하고 있고 리얼미터는 20%라고 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나타난 국민의 선택은 자유한국당이 27.8%이고 정의당은 9%였었다. 7월은 한 달 이상의 시간격차로 인해 인심이 바뀔 수도 있고 안 바뀌었다 할 수도 있다. 조사기관의 해명대로 여론조사 기법에 따른 오차인가? 아니면 인위적 조작인가? 아니면 여론조사 통계의 한계인가? 민주주의는 국민의 심판을 받는 제도이다. 그런 민주주의에서 통계가 틀린다는 것은 바로 국민의 선택을 혼란시키는 일이다.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서상호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