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에는 하드외교가 중요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앞세운 하드외교는 언제나 성공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드시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미국 매파인 네오콘의 이라크정책이 그러했다. 여기서 나온 반성이 오바마 대통령의 소위 스마트외교라는 것이다. 하드외교에다 문화나 가치 등을 중시하는 소프트외교를 엮은 것을 스마트파워외교로 이름 지었다. 스마트파워위원회라는 초당적 기구도 있다. 그러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스마트파워가 무엇인지 여전히 실체를 알 수 없다”고 비판했고,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부장관은 “군사력의 뒷받침 없는 외교는 허망하다”고 실제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현실론을 부각시켰다.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을 보자. 그는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군비 축소를 위한 정상회담을 열었다. 여기서 그는 고르비가 “미국이 SDI 개발 계획을 실험실에서만 추진한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SDI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소련의 약점을 확인했다. 소련이 미국에서 추진 중인 소위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SDI로 인해 여기에 대응하느라 경제적으로 무척 고전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레이건은 평화의 파괴자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군축을 거부한다. 그리고 SDI를 계속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소련경제는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물론 여기에는 소련의 주력 수출품인 유가의 하락이라는 악재도 겹치고. 이렇게 하드파워로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린 것이다. 2013년 4월에 있었던 개성공단 철수사건을 해결한 것도 소프트가 아닌 하드외교였다.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핑계로 북한 측 근로자를 철수시켰다. 박근혜 대통령도 우리 측 근로자의 보호를 내세워 철수를 명령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야당과 여론주도층이라는 지식인들의 상당수는 북쪽도 잘못했지만 남쪽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을 들이미는가 하면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일촉즉발의 위기’로 규정하고 “북대화에 즉각 나서기를 당부한다”고 하며 대북특사 파견을 거듭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북한지향형인 일부 여론을 무시하고 ‘뿌린 자가 거둬라’는 원칙을 지키자 돈이 궁해진 북한은 참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대화를 제의했다. 그 결과 5개월 만에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경제력이 약한 쪽이 끝내 참지 못할 것이라는 정확한 예측을 한 것이다. 결국 경제력이라는 하드파워가 작용한 것이다. 만약 강한 쪽이 양보하는 것이 맞다는 주정주의(主情主義)에 따라 선의(善意)를 베풀었다면 이러한 올바른 타결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세계의 노력에서 중재자로 자처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종전선언을 하면 비핵화는 촉진된다’는 식의 제안을 했다. 미국은 비핵화 후 종전선언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도. 그 결과 블룸버그통신으로부터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뿐 아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미국 WP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핵 신고와 검증요구는 뒤로 미루자”고 했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핵리스트 검증을 두고 결론 없는 논쟁이 많이 벌어졌고, 또 깨지기도 했다”며 “다른 접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미 대북전문가들로부터 북한 주장과 똑같다는 맹비판을 받았다. 정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므로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는 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 모두가 “우리가 잘하면 그들도 우리에게 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하면 핵도 포기하고”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류의 선의의 외교 중 하나이다. 선의의 외교가 얻은 게 무엇인가? 평화무드 외 비핵화 분야서 진전이 거의 없는 도로아미타불이 아닌가. 남북 군사합의로 우리 안보는 눈(정찰) 가리고 손(방어전력) 묶었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다. 문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힘을 통한 평화는 군의 사명이며 평화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강한 군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창군 70주년 기념식을 야간에 하는 등 군은 여전히 찬밥신세다. 왜일까. 서상호 주필

서서히 북한의 마각이 드러나는 것일까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월 평양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북한 외무성은 다짜고짜로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들고 나왔다”고 욕설 같은 비난을 퍼부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은 그 이후 슬그머니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핵폐기)로 대체했다. CVID가 어떤 것인가. 2002년 부시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북한에 대한 비핵화 개념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6자회담 회원국 중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공식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런 목표를 북한의 욕지거리 한마디로 대국인 미국이 체면도 없이 슬그머니 내려버리다니…. 중간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북한 핵문제 해결 실패라는 딱지를 뒤집어쓸까 봐 겁나는 모양이다. 비슷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당연하고도 적절한 말을 했다. 그런데 이를 받아 북한 노동신문은 ‘쓸데없는 훈시질’이라고 비난했다. 이 말을 의식해서일까. 아니면 ‘남북관계가 틀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 때문일까? 어떻든 이후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쪽으로 기운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예의 하나가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이나 유엔총회 연설 등 미국에서의 활동을 종합평가하면서 낸 블룸버그통신의 결론이다. 즉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서 김정은 수석대변인이 됐다’는 혹평의 기사가 그것이다. 이는 미국 보수정치계의 반응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문 대통령은 미국서 ‘북한의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줬으니 이제는 국제사회가 화답할 차례’라는 UN 연설도 했고, ‘종전선언은 미국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느니 ‘정치적 선언이므로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라는 폭스뉴스 인터뷰나 미국외교협회에서의 연설도 있었다. 이외도 ‘김정은은 경제발전을 위해선 얼마든지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진정성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든지 ‘동창리 미사일발사장 폐기는 북한이 다시는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라는 발언도 보수권의 여론을 건드린 듯하다. 왜냐하면 동창리 미사일발사대를 없애도 이동식발사대로 얼마든지 실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교문제에 ‘김정은의 진정성’이라는 말 한마디로 담보하니 그런 것 같다. 어떻든 갑자기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해 세졌다. 그 예의 하나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유엔 일반토의 연설과 태형철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겸 고등교육상의 평화포럼 기조연설(참사관이 대독)서 나온 내용이다. 한마디로 ‘종선선언과 평화협정이 한반도 비핵화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먼저 비핵화를 위한 비단길을 깔아 놓으면 가겠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1월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가 극심할 때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를 제의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당시는 우리가 갑이고 북이 을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는 우리와 미국의 여론은 일괄타결에 의견일치를 봤었다. 단계적, 동시적 해결은 8번이나 속아온 방식이어서 안 된다는 약간은 배짱을 부린다고도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갑자기 바뀌어 버린 것이다. 분명 남북정상회담이나 미북정상회담이 잘한 회담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와 미국은 정치상황상 실패를 너무 두려워한 탓이다. 이를 북한이 읽고 이용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녀간 후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그 내용이 ‘남조선 정상이 오고 가니까, 정치적 각성이 무뎌지고 긴장이 해이 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백번 웃으며 악수하다가도 언젠가 한번은 뒷덜미를 물어뜯어서라도 통일의 위업을 수행해야 한다. 총대에 의해서만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김정은 특별지시가 내려졌다는 기사가 나왔다. ‘김정은 다르다’느니 ‘김정은은 변했다’느니 하는 한마디로 해명될 문제가 아니다.서상호주필

“아무도 노래 부를 기분이 아니다”

전체 취업자에 대한 비중이 무려 21.3%나 되는 자영업자들. 그들의 숫자는 자그마치 560만 명이나 된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그것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권이라고 자부하는 정부에 의해 당한 고통이다. 이를 증명하는 증거는 많다. 우선 지난해 음식, 숙박 등 4대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88.1%나 된다는 사실이 그 중 하나다. 가게 10곳이 문 열면 다른 9곳이 문 닫는다는 이야기다. 또 금융기관으로부터 돈 빌리기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도 그렇다. 2013년 15개 은행이 마련해 놓은 ‘개인사업자 대출 119’를 보면, 작년 동기 대비 이용 건수로는 40%, 금액으로는 44%나 늘었다. 대부분 적자 운영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빈말이 아니라는 증거다. 어느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노래방 주인의 한마디가 이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아무도 노래 부를 기분이 아니다”는 그 말이다. 그래서 노래방에도 손님이 없다는 주장이다.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보다 부를 기분이 안 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인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대통령지지율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자영업자가 59%로 가장 높고 그다음이 무직과 은퇴자였다. 동시에 지지율이 가장 낮은 소득계층도 최하층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사회적 약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경제는 묘하다. 왜냐하면 역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진보나 좌파 정권은 모두 고용보호 정책을 취한다. 그러나 이 정부하에서는 대체로 실업률이 높다. 반대로 보수나 우파 정권에서는 고용창조 정책을 취한다. 말이 ‘창조’이지 구조조정이 자유롭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정부하에서는 실업률이 낮다. (미셸 알베르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또 같은 최저임금제를 시행해도 독일이나 일본 등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럴까? 너무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다. ‘2년 동안 30%’라는 것은 자영업자들의 주장대로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정착에 성공한 나라에서는 모두 시기별, 업종별, 지역별 고려도 하고 또 탄력근로제 등을 실시하여 완충작용도 두고 있다. 경제이론상 생산성은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해 봐야 경제가 나아지지 않는다. 영세 자영업자만 죽게 되고 결과적으로 고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최저임금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우기는 것은 뜻만 좋으면 결과는 나빠도 된다는 독선적 생각의 반증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며칠 전 8월 중 취업자 증가 3천명뿐이라는 고용 참사를 경험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를 계기로 지금 우리가, 까닥 잘못하면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하는 우려가 전문가 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수출전선에서 반도체 외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것이 현실이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소득주도성장이니 공정경제니 하는 경제정의에 매달려 있어야 하나 하는 반성의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새로운 세상 즉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중이 아닌가. 미래에 대한 설계는 물론 토론도 없다. 이렇게 희망을 만들지 않는 이 정권의 태업에 어느 친여 학자는 대통령의 하야까지 주장하며 분노를 표시했다. 한국경제는 지금 고령화나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환경 등 여러 여건상 “지금 한국의 경제생태계는 ‘잃어버린 20년’ 초기인 1990년대 일본과 닮았다”고 진단하는 국내외 학자들이 꽤 있다. 이에 대한 정권의 처방도 닮았다는 주장이다. 즉 일본은 레이거노믹스를 흉내 낸다며 SOC(사회간접자본)에 막대한 돈을 퍼부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국은 복지에 엄청난 투입을 하고 있다. 그러나 2년 동안 54조 원을 쓴 고용정책에서 보듯 그 효과는 별로다. 정말 국민이 모두 노래 부르고 싶을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서상호주필

‘북한의 선의’에 매달린 꼴인 비핵화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를 하겠다’고 말했다며 희색이 만면하다. 우리 청와대도 ‘임기 내 비핵화’를 강조했다. 하긴 우리 정부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선언이 나오기 전부터 그랬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특사였던 정의용 안보실장은 지난 3월 김 위원장을 만난 뒤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그의 선한 의지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정상회담 이전부터 북핵전문가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선 한층 더 굳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4개월 동안 전혀 진전이 없다. 핵과 미사일개발이 완료되어 필요 없게 된 관련 실험장만 폐기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지금도 계속 핵폭탄을 만들고 있다’는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의 증언이 있었던 일 외에 얼마 전에는 북한 외교부가 미국 보고는 ‘강도 같은 요구’라거나 우리 대통령 보고는 ‘쓸데없는 훈시질’이라는 막말을 쏟아 붓고 있다. 이렇게 북한의 입장이 고자세로 바뀔 수 있었던 배경은 뭐니 뭐니 해도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이다. 한미 양국의 조급증이 불러온 급조된 정상회담의 영향으로 불완전 평화는 왔으나 이를 틈타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규제의 강도를 늦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한다. 한숨 돌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국제 분위기가 바뀌자 이상하게도 이슈 자체도 바뀌고 있다. 국민적 염원이었던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 비핵화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서 어느새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로, 일괄타결은 어느새 단계적 해결로 바뀌었고, ‘핵 없는 평화’는 ‘핵 있는 평화’로 바뀌었다. 이제는 ‘핵 있는 평화’가 대세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이를 상징하는 말이 문정인 대통령특보의 ‘북한을 악마화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이다. 지난 30년간 8번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 북한에 무엇을 보고 악마화 말라는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여당의 북핵전문가이자 북핵문제로 북한과 여러 차례 접촉을 가졌던 이수혁 의원마저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고 예측하고 있다. 올 초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사실상의 남북대화를 제의했다. 그때 북한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강한 규제를 받아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다. 북핵 대화에서 처음으로 우리와 미국이 갑의 위치에 있을 때였다. 우리와 미국이 모두 너무 서두르다 북한에 당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우리와 미국 측이 어디까지 물러섰나 하면 문정인 대통령특사가 ‘북핵에 모든 걸 걸면 남북관계가 잘 안 되고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거나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가 비핵화를 이끄는 유인책이 돼야 한다’고 할 정도로 후퇴돼 있다. 비핵화 대신 평화를 얻지 않았나 하지만 앞서 지적처럼 ‘핵 있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는 것이 현실이고, 북한도 지난해를 기점으로 핵과 미사일을 완성한 만큼 더 이상 실험을 통한 도발은 없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미국의 북폭 가능성도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었던 사안이었던 것이다. 조급증을 보이지 않아도 올 수 있는 평화였던 것이다. 이러한 비관론 우위의 국제적 분위기를 아는지 김정은은 이번 9ㆍ9절 행사에 북한은 미사일을 시위하지 않고 연설도 하지 않는 등 평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기는 하다. 어쩌면 이번 평양정상회담서나 UN총회 때는 리비아식 핵탄두를 미국에 보내는 쇼를 할지도 모른다. 핵탄두 전부가 아닌 일부가 무슨 의의가 있는가. 지금까지 핵실험까지 한 나라가 비핵화를 한 나라는 없다. 국제정치에서 선의는 언제나 비극의 씨앗이다. 한 예로 공산주의자로 몰리기까지 했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왜 공산주의자가 나쁘냐’하며 스탈린을 옹호하며 선의를 보였다. 얄타협정 등 모든 대소 접촉에서 양보해 줬다. 그래서 2차대전 후 세계가 겪은 냉전은 소련을 부흥시켜준 루스벨트에 있다는 비난도 받는다. 그래 놓고는 죽기 한 달 전 측근에 ‘내가 선의로 대해주면 선의로 받아줄 줄 알았다’며 후회를 했다고 한다.서상호주필

통계조작은 민주주의 위기

진보정권인 참여정부 초기 여권 인사들은 솔직한 면이 있었다. 세미나 후 비공식모임 등에서 ‘정치는 언론이 잘한다고 하면 잘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를 펼치면서 은근히 협조를 요구하곤 했다. 그러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인으로서는 듣기가 거북했었다. 하긴 선전선동에 유능한 진보정권은 처음부터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언론을 통한 국민에 대한 설득 과정’이라고 솔직한 고백을 했다. 그 외도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치인이 잘못해도 언론이 짜고 잘했다고 하면 잘한 것이 된다’고 했다. 물론 발언 배경은 김대중과는 거꾸로다. 당시 언론들이 자기를 때리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를 가정해 보면 당선 후 진보정치인들이 고백했듯이 조작보도에 대한 유혹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저항의 모습이 엉뚱하게도 운동권 출신 통계청장의 교체에서 나타났다. 현 정권에 불리한 가계소득동향조사 결과 발표 때문에 바뀌었다는 중론이다. 바뀐 황수경 전 청장은 이임사를 읽는 내내 울면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안 되게 심혈을 기울였다”는 그의 말이 국민의 뇌리에 신선하게 박혔다. 진정한 운동권다운 순수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정치 선진국인 미국정치서도 통계는 왈가왈부의 대상인 모양이다. 몇 년 전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의장이 미국민주주의 초기에 있었던 두 여성을 극찬했다. 한 사람은 통계청장이었고, 또 한 사람은 노동위원회위원장이었다. 통계청장은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았고, 노동위원장은 이 통계를 굳게 믿고 이를 실천한 것이 공이라는 것이다. 옐런은 이를 통해 ‘정부통계는 정확해야 하며, 정치적 영향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보았고 또 ‘믿을 수 있는 정부통계는 민주주의의 보호벽’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어디나 통계의 조작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모양이다. 통계는 이현령비현령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대법학과 교수로 진보집권 플랜의 저자였던 조국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진보의 집권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여기저기로 강연을 많이 다녔다. 그의 강연 중 통계의 오류가 드러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펜엔마이크의 보도도 그 중 하나다. 당시 유행했던 이슈가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사회’였었다. 이에 꼭 맞는 자료가 국세청으로부터 나왔다. 즉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상위 20%의 소득은 55%나 늘어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35%나 줄었다는 것.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발표 원고에는 ‘하위 20%’를 ‘하위 80%’라고 표현함으로써 마치 국민의 80%가 소득이 준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하위 20%라고 해도 해석을 액면대로 단순하게 하면 안 된다는 국세청의 해명자료도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하위 20%의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전후 카드 사용이 급격히 늘면서 소득원이 노출되어 종전까지 세금을 내지 않았던 사람들도 대거 세금을 내게 되었다. 따라서 1999년도 하위 20%에 속했던 사람들은 바로 위의 등급인 2분위 등으로 올라갔고,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이 올라왔으니 당연히 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 하나 여론조사 통계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율도 그렇다. 한국갤럽은 지난 7월부터 11%라고 하고 있고 리얼미터는 20%라고 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나타난 국민의 선택은 자유한국당이 27.8%이고 정의당은 9%였었다. 7월은 한 달 이상의 시간격차로 인해 인심이 바뀔 수도 있고 안 바뀌었다 할 수도 있다. 조사기관의 해명대로 여론조사 기법에 따른 오차인가? 아니면 인위적 조작인가? 아니면 여론조사 통계의 한계인가? 민주주의는 국민의 심판을 받는 제도이다. 그런 민주주의에서 통계가 틀린다는 것은 바로 국민의 선택을 혼란시키는 일이다.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서상호주필

소득주도성장론 힘 얻을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더민주당전당대회에서 영상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기조로 가고 있다”고 선언했다. 말 많은 소득주도성장정책도 올바른 정책이라는 것이다. 경제학계에선 비주류에다 소수의견 취급을 받던 소득주도성장론이긴 하나 대통령의 한마디로 다시 힘을 얻어 격상될 가능성이 커진 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소득주도성장론이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자본주의가 병들어 비실거리고 있는데 그 주요 원인이 양극화에 있다는 데 모두 동의하고 있고, 소득주도성장론은 양극화의 해소책의 하나로 나온 이론이기 때문이다. 찬성론자들은 주장한다. “지금 우리 경제의 성장모델이 한계에 부딪혀 있으므로 그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 이유로 몇 가지를 제기한다. 그 하나가 ‘임금주도 체제론’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소득이 높아지면 총수요가 확대되는 구조라는 주장이다. 임금효과가 크다는 것. 실제로 1997년 IMF위기(외환위기) 이후 실질임금이 1%P 오르니 경제성장은 0.68~1.09%P 올랐고, 노동생산성도 0.45~0.50%P 올랐다는 추산이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도 한 몫 거든다. 1980~2012년까지 159개국의 소득과 경제성장 관계를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20%의 소득비중이 늘어봐야 경제성장은 5년간 오히려 0.08% 낮아지지만 소득 하위 20%의 소득비중이 늘어나면 5년간 0.38%의 성장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집계됐다는 것. 한마디로 상위 소득층은 소득이 늘어봤자 낙수효과를 낳지 못하니 하위 소득자를 우대하여 분수효과를 보자는 주장이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딱 맞는 이론이다. 그런데 왜 세계적 주목은 받지 못하는 걸까? 국제노동기구(ILO)가 2012년 세계경제의 저성장원인을 임금격차에서 찾는 보고서를 내놓은 데다 2015년 토마 피케티의 ‘민주주의가 왜 불평등해소에 실패하였는가’라는 화두를 던진 ‘21세기 자본’이 나오면서 경제의 양극화는 더욱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시점임에도 말이다. 우선 원론부터 따져보자. ‘성장의 결과가 소득인데, 소득을 높여서 성장하자’는 뒤틀린 논리가 주류경제학계를 이해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IMF위기 이후 임금이 오르니 경제도 성장하더라는 논리는 지극히 아전인수격이다. 당시 우리나라 수출업계는 환율이 2배 이상 올라 반값만 받아도 이익이 나는 단군 이래 최대의 수출호황기였다. 따라서 수출업계가 스스로 근로자 이동을 막으려 임금을 올렸다. 그야말로 성장의 결과였다. 아무나 찡그린다고 아름다워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비판에는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후보 공약에 관여했던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의 지적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그것은 소득주도성장론이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점이다. 누가 주장한 건지, 예상효과 분석도 모호하다는 것. 노조의 선무당 같은 소리를 당론이라고 덥석 받은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마중물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퍼 올릴 지하수는 어디서 나오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또 우리의 최저임금은 국제적 기준으로 그렇게 낮지 않다는 것. ‘1만 원이면 중위소득 50%를 훨씬 넘어버린다’고 지적했다. 현실에 맞나 하는 의문을 낳는다. 그리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한국 등 아시아 외환위기를 2년 전에 예고해서 명성을 떨친 폴 크루그먼 교수의 지적도 예리하다. “개도국이 성공적으로 발전하다가 선진국이 되기 전에 멈춰서는 중진국 함정의 신호들이 세계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항상 좋은 게 아니라 적정수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일침을 놨다. 친문 교수로 알려진 이경전 교수의 ‘정책 불복종운동을 하자’는 주장도 J노믹스에 대한 강한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현실과 너무 다른 주장을 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이 그렇다. 수출이 잘 되고 있다지만 반도체를 빼고 나면 그렇지 않다. 그리고 현 정부의 모토인 ‘더불어 사는 경제’에서 ‘우리도 국민이다’고 외치는 ‘소상공인은 누구냐’하는 의문이 남아 있는 한 힘을 얻기 어려울 것 같다.서상호주필

일자리 정부의 ‘고용쇼크’

한국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2015년 1월 여론조사에서 성장 우선(58%)이 복지 우선(36%)보다 많았다는 것. 이 수치는 2년 전 2013년 1월의 조사에는 복지 우선(62%)이 성장 우선(31%)보다 두 배나 많았었다. 한마디로 최고의 복지는 바로 일자리를 갖는 것이라는 결론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복지선진국인 영국에서마저 일하는 복지(welfare to work)를 강조해야 할 만큼 서구사회는 복지병을 앓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 국민은 스스로 일해서 벌겠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국민인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점에 대해 모두 인정하고 있다. 여론에 민감한 문재인 정부는 숫제 ‘일자리 정부’임을 공식 천명하고 청와대집무실에는 대형 일자리 상황판을 내걸어 놓고 있다. 국민의 기대도 컸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일자리 브리핑 차트가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한 그날 이후엔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의 지적처럼 상황판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특별위원회가 1년이 넘어도 두 번밖에 회의를 하지 않았다니 더욱 그러하다. 왜 그랬을까? 일자리 상황이 쇼크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하니 그랬던 것 같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작년 대비 취업자 증가 수가 30만 명이던 것이 2월 들어 갑자기 10만 명 선으로 떨어지더니 7월 들어서는 5천 명으로까지 떨어졌다. 실업률도 오르고, 그에 따라 실업자 수도 7개월 연속 100만 명 선에 머물고 있다. 그야말로 쇼크다. 일자리를 위해 33조 원이나 갖다 부었는데도 왜 일자리 파국을 맞은 것인가? 그리고 그동안 줄어왔던 농림어업 분야의 취업자는 이 정권 들어서는 왜 갑자기 6만 명 선으로 불어났는지도 궁금하다. 그러고도 5천 명으로 떨어졌는가? 이에 대해 이론적 책임자인 장하성 청와대정책실장은 “곧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날 것이니 정부를 믿고 기다려 달라”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득주도성장은 현재로서는 효과를 보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전망에 있다. 그것은 올 2분기 국내총생산이 0.7% 증가에 그치고 있나 하면 내일의 경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설비투자는 오히려 마이너스 6.6%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비투자가 줄었다는 것은 ‘다음은 불경기’라는 증좌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또 장 실장은 조선업 등 산업구조조정이 정리되고 자영업자 지원대책과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즉 임대료나 세금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말이다. 세금은 몰라도 임대료를 줄여주겠다니 무슨 수를 쓰는지 궁금해진다. 자칫 국가주의나 반헌법적이라는 논쟁이 나올 수도 있다. 결국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낳을 가능성이 있기에 효과가 걱정이다. 동시에 장 실장은 “정부는 경제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하고, 이목희 일자리부위원장은 “기업들이 일자리를 잘 만들기 위한 각종 인프라 구축과 지원이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누가 들어도 이 말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팔 비틀기로 들린다. 그것이 청와대가 스스로 하지 말라고 했던 ‘투자 구걸’이든 정책적 유도이든 어떻든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의 자유의사에 반(反)하는 반헌법적 발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정부가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기업을 대해도 약자인 기업 측은 압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느 경제정책이든 대체로 그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10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이에크류의 신자유주의 실험이 그랬고 케인즈류의 수정자본주의가 그랬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론의 경우는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성장론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임금의 결정은 생산성증가율 범위 내에서 결정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 결정이다. 다시 말해 돈을 번 범위 내에서 돈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주는 돈이 번 돈보다도 더 많더라도 나라가 정한 만큼은 주어야 한다는 것이 소위 최저임금제 아닌가. 따라서 일본처럼 업종이나 지역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이 무리가 없는 실효적인 처방이 아닐까?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원칙이 중요한가. 아니면 원칙을 조금 훼손하더라도 일자리를 더 만드는 것이 중요한가. 좌파 이념에 너무 빠진 결과가 바로 고용쇼크가 아닐까.서상호주필

‘알아서 기기’ 행정과 북한석탄 위장수입

우리나라에서 왕따 당하기 딱 좋은 사람은 ‘물빛을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분위기를 보고 혹자들은 ‘알아서 기기’가 우리가 세계최고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미국의 역사학자 티모시 슈나이더의 저서 폭정(暴政)을 보면 ‘알아서 기기’(Anticipatory Obedience)는 전 세계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시즘이나 나치즘 그리고 스탈린의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두 국민의 ‘알아서 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 특히 인류 가운데 가장 이성적이라는 독일인마저도 히틀러의 공갈에 너무 쉽게 넘어가 알아서 기기를 했다니. 공직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 예로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나치친위대는 지도부의 명령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솔선하여 대량학살 방법을 고안해 낸 점을 들고 있다. 이들은 지도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미루어 짐작하고, 시연해 보였다는 것. 그것은 히틀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평가됐다. 요즘 북한산 석탄의 위장수입 사건을 놓고 여야 간 설전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조사를 맡은 관세청의 태도를 보면 ‘알아서 기기’의 흔적이 도처에서 보인다. 북한산 석탄이냐 아니냐를 조사하는 과정인데도 수입경로나 배의 항로 등은 조사하면서도 ‘북한’이란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사대상이었던 남동발전은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해운업체인 P사가 러시아 홈스크항의 전용부두 임차계약서에는 ‘북한산 석탄’ ‘북한선박ㆍ선원’이란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몰랐다니 윗사람의 의도를 알고 알아서 긴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부실 조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미국이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한 지 10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결과를 내놓는 늑장조사는 누가 뭐래도 알아서 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다. 언론보도와 국익론도 문제가 있다. 즉 홍영표 여당 원내대표는 “한미양국이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는 정치공세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미국이 한국정부를 신뢰하는 데 언론이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고 있다. 모두 국익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다. 이 위장수입사건을 우리가 알고 조사한 것이라면 일단 덮으면 될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우리에게 통고한 곳이 바로 주한미국대사관이다. 게다가 굳이 한마디 덧붙여서 “한국정보기관은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한국정보기관의 ‘알아서 기기’까지 꼬집는 암시가 아니겠는가. 슈나이더 주장처럼 알아서 기기는 이렇게 민주주의를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덮으면 덮을수록 미국의 불신만 높아질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조야에서는 미군철수론까지 나올 정도로 한국을 불신하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리고 우리 외교부에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는 힘을 잃고 대북협력을 중시하는 자주파가 등극하는 것도 미국은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숨겨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차라리 북핵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 정부가 내린 5ㆍ24조치는 물론 유엔안보리 결의를 잘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야당의 공세가 거세다. 자유한국당의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국가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도 될 곳에는 완장을 차고 있다”며 “잘못되면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즉 미국하원 외교위원회 테러리즘ㆍ비확산ㆍ무역소위원장인 테드 포 의원은 “연루된 한국기업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부과해야 한다. 예외인 나라는 없다”고 한 말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닌가 한다.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경제적 불이익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서상호주필

“우리도 웃고 싶습니다”

며칠 전 SNS 상에 한 통의 편지가 올라왔다. ‘우리도 웃고 싶습니다’로 시작하는 그 편지의 내용에는 한이 맺혀 있었다. 과격한 내용도 담고 있었다. “…이젠 꼭 필요한 것도 거의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우리 국민은 웃음과 자부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꿈을 꾸며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미래를 잃어버렸습니다. …현실이 힘들어도 땀과 노력의 대가로 구워낸 큰 피자를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기대를 잃어버렸습니다.…공무원을 늘리면 그만큼 세금이 늘어나지만, 기업이 창업되고 잘 경영되면 나라도 잘되고 국민 세금도 줄어드는 것을 모르세요? …국민은 암울한데 대통령님은 지하철 안에서도 혼자 웃고 있데요? 뭐가 그리 좋아 입을 크게 벌리고 파안대소하시는지요?” 이 글을 쓴 사람은 아마도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불만이 많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이 아닐까? ‘최저임금 고시는 우리에겐 사형선고’라고 외치고는 오는 29일 거리투쟁에 나서기로 했을 정도다. ‘소상공인도 국민이다’는 말에는 상당한 호소력도 있다. 자영업자에 가장 큰 불만은 최저임금 인상의 폭과 속도가 가파르고 과속이라는 점이다. 작년에 올해 분 최저임금을 16.4%를 올린 데 이어 올해 또 내년 분을 10.9%를 올리기로 했으니 말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지난 2월에 이미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경제협력기구(OECD)의 평균수준으로 높아졌다’며 추가인상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당시 IMF는 1970년대에 있었던 프랑스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소득불평등은 크게 완화됐지만 그 대신 실업은 증가했단다. 우리나라는 웬 일인지 소득불평등 완화라는 희소식은 없고 실업자부터 늘어났다는 나쁜 소식만 있다. 우선 청년실업률은 10.5%로 통계를 작성한 2000년 이후 가장 높다. 고용동향은 월 30만 명이 정상인데 지난 5월은 겨우 7만2천 명에 그쳤다. 서울대 김대일 교수가 분석한 1990년대 이후 선진 15개국의 ‘최저임금 인상과 경제효과’와도 같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자영업자의 수가 전체 취업자 2천656만 명 중 25%인 675만 명이나 될 정도로 많다. 선진국의 두 배 수준이다. 평균생존 기간은 겨우 2년 반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까지 겹쳐 문 닫는 소상공인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는 서울의 건물임대료가 요지의 경우 2년 전보다 반값으로 떨어졌다는 보도가 증명한다. 한마디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수난의 시대다. 그런데 정부는 소상공인들의 업종별 차등화나 근로시간의 탄력적 운용만이라도 허용해 달라는 소청마저 강경하게 외면하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 심의ㆍ의결 과정상 절차상 하자가 없고, 최저임금위원회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견지하면서 결정했다”는 고용부장관의 말이 그렇다. 따지자면 하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본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시장원리를 외면한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절차상의 문제다. 그것은 고용부의 내년도 최저임금 고시는 중위임금 대비 68.2%(경총 추산)로 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노사간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했다. 모두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빚어낸 일들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한마디가 법으로 해석되는 한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효과가 90%’라고 대통령이 언급한 이상 타협이나 개선은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안은 일본의 경험이다. 같은 근로시간 단축법을 시행했음에도 일본은 기업 숨통을 터주었고 우리는 숨통을 막은 결과를 낳았다. 해결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우리는 획일적 근로시간 규제를 했다면 일본은 업종이나 지역에 따라 융통성을 부여한 점 때문이다. 한마디로 넓은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소통을 앞세우던 정부가 왜 막혔는지 모르겠다. 지난 5월 J노믹스 시행 1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R&R 조사)에서 ‘살림이 나빠졌다’가 49%로, ‘좋아졌다’의 12%보다 월등 많았다. 정의가 경제를 지배하면 자칫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상황이다.서상호주필

보수 살길 ‘가치논쟁과 정책경쟁’에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 일성이 “미래를 위한 가치논쟁과 정책논쟁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도록 하는 꿈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의 꿈대로 될지 아닐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일단 방향은 잘 잡은 것 같다. 흔히들 보수는 ‘죽어야 다시 산다’느니 ‘자유한국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당이 나와야 한다’느니 하는 감정적 결단을 내세우는 데 반해 김 위원장은 일단 명분론보다는 실천적 방안을 제시했고 그 방향도 옳기 때문이다. 또 최근 발표된 조선닷컴의 여론조사결과와도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여론조사 결과는 이렇다. ‘보수가 살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문재인 정권과 강하게 싸우라’는 것이 1번이었다(63%). 그동안 논객들의 글은 대체로 ‘인적청산을 하고 과거와 단절하라’는 것이 주류였다. 그런데 이 조항은 지지율 면에서 1번의 절반인 32%에 그쳤다. 이것은 인적청산이라는 결과는 항상 선명성 경쟁을 낳고 이는 결국 계파 간 갈등만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았다. 역사에서도 원리주의는 언제나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느닷없이 며칠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은 외교ㆍ안보 이슈로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정부의 성패는 경제 문제, 국민이 먹고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지금 너무 초조합니다”라고 토로했다. 시중에서 번지고 있는 경제실패론에 대한 반응이다. 이어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까지 펴오던 ‘경기회복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신을 버렸다. 그리고 현 여권은 경제위기와 실패의 책임을 ‘전 정권의 탓’으로 돌렸다. 과연 그럴까. 어느 국가든 경제위기의 처방은 노동개혁에서부터 출발한다. 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도 성과연봉제 등 얼마간의 노동개혁은 이뤄놓았다. 그런 것을 현 정부가 폐기시켜버리지 않았던가. 또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중소기업 1천994곳이 해외로 나갔다. 최저임금제 시행 등 경제환경을 나쁘게 하지 않았는데 나갔을까. 그것도 5년 전보다 무려 700여 곳이 늘어난 숫자로 말이다. 이것도 전 정권의 책임인가?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이 있다. 노동보호가 너무 잘 돼 있어 곧잘 나라가 휘청거리는 프랑스에서는 젊은 개혁대통령 마크롱이 “게으름뱅이, 냉소주의자, 극단주의자에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며 칼을 빼들었다. 지지율이 반 토막 났어도 밀어붙이고 있다. 1980년대 대처 영국총리가 영국병을 고친 것도 합의정치가 아니라 신념의 정치였다. 하긴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도 “민심을 그대로 수용하고 추종만 하는 것이 대통령의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뭐든지 촛불의 명령이라는 등의 이유로 대중의 취향만 따르는 현 노동정책이 옳은 것일까. 현 여권에서는 우리나라가 망한다면 전쟁 아니면 원전사고라고 말한다. 현 정권의 탈 원전 정책의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의 마크롱도 극단주의를 왜 싫어하는지 알 것 같다. 결과적으로 세계 최고의 원전기술력을 갖춘 대한민국은 600조 원의 세계시장을 보고만 있어야 할 신세가 됐다. 잘못된 정책이 빚은 결과다. 평화 무드를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현 정부는 북한이 핵 폐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전방에서 짓고 있는 방어진지 공사마저 중단시키고 있다고 한다. 지난 27일 정전일에는 병력 12만 명을 줄이는 ‘국방개혁 2.0’이 알려졌다. 그리고 평화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핵 있는 평화’로 전락한 느낌이다. 핵 폐기라는 이슈가 핵 동결로 슬그머니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핵을 폐기하지 않는다는 핵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된다면 큰일이다. 안보야말로 여론에 따르면 안 되는 영역이다. 모두가 보수ㆍ우파 시절에는 없었던 일들이다. 따라서 정책에서는 분명 우파가 우위에 있었음을 현실이 증거해 주고 있다. 기 소르망의 좋은 경제정책과 나쁜 경제정책의 결과가 그렇다. 남과 북은 같은 조건에서 출발했으나 좋은 경제정책 선택으로 남은 북보다 GDP(국내총생산)가 50배나 많다. 보수의 살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가 나가야 할 길이 정책경쟁, 정책정치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여기서 보여주고 있다.서상호주필

‘페이크 정치’를 하려는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 truth)을 선정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7년에는 영국사전출판사인 콜린스가 올해의 단어로 가짜뉴스(fake news)를 선정했다. 그만큼 세계는 대중화시대를 맞아 ‘페이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가 그렇다. 국민이 올바른 선택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이크뉴스를 이용한 정치를 페이크정치라고도 한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난 3월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고 난 뒤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 뒤 남북정상 간의 판문점공동선언과 미북정상 간의 싱가포르선언이 있은 뒤에도 비핵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외교부의 ‘강도 같은 요구’에서부터 우리 대통령을 향한 ‘쓸데없는 훈시질’이란 막말은 물론이고 가장 최근에는 “지금도 계속 핵폭탄을 만들고 있다”고 발표한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의 증언에 이르기까지, 그럴 가능성을 높이는 증거는 많다. 이렇게 된다면 언론식으로 말해 정 실장 발언은 본의와는 상관없이 페이크뉴스가 돼 버린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북한이 진실로 ‘협상과정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전략’으로만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리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최종적으로 핵을 폐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 실장의 ‘페이크뉴스’는 ‘진실보도’로 바뀔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작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옳은 핵 전문가라면 모두 ‘북한은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다’고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당의 북핵전문가인 이수혁 의원마저 개인 소식을 전제로 ‘북한은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그리고 북핵문제의 핵심이 어느새 핵 폐기에서 ‘핵 있는 평화’로 넘어가고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물론 정 실장의 발언은 언론기관이라면 법적으로 명예훼손에서는 무죄다. 악의를 가지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기사화를 ‘했느냐’ ‘아니냐’ 하는 소위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 이론 덕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다르다.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존립이 달린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알고 했든 아니든 간에 비핵화에 실패한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유죄다. 이낙연 총리의 김정은은 ‘백성의 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마침내 출현했다’는 말도 애매하다. 앞으로 북한이 중국모델로 나가지 않는다면 그의 말은 페이크뉴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핵폭탄과 장거리미사일을 다 만들었고, 그 실험 때문에 취해진 국제제재로 비롯된 위기에서 벗어나려 하는 수 없이 국제무대에 나선 것을 두고 ‘민생 우선 지도자’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누가 봐도 북한은 김정은체제가 우선이 아닌가. 사실보도는 아닌 것 같다.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의 발언도 그렇다. ‘재벌 2ㆍ3세 중에서 김정은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권력을 다르게 쓰려고 하는데 그것이 혁신이다’는 논리다. 삼성 현대 LG 등 각 분야에서 세계 1등으로 올라선 것은 2세~3세 때의 일이다. 홍영표 민주당원내대표는 “삼성이 글로벌 1위가 된 것은 협력업체를 쥐어짠 결과”라고 폭탄발언을 했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노동운동가 출신답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용어들이다. 삼성의 성공은 연구개발과 경쟁에서 이긴 결과다. 홍 원내대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뜻으로 해석할 여지도 없다. 왜냐면 ‘지금의 경제위기는 전정권 탓’이라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산업 전반의 구조개선을 소홀히 하고 수출과 대기업 위주 정책에 치중한 결과로 고용위기가 왔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의 평균영업이익률은 8.5%로 국내제조업의 평균인 5%보다 훨씬 높다. 왜 국내협력업체들이 서로 삼성협력업체가 되려고 하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삼성의 총매출 중 국내비중은 13%에 불과하다. 모두 수출로 외국에서 번 돈이다. 그런데 삼성이 내는 세금의 81%는 우리나라에 낸다. 어느 네티즌의 글이 떠오른다. 여야 모두 ‘삼성 현대 LG만은 건드리지 말자’고 하는 말이.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면 그 경제는 곧 망하기 때문이다.서상호주필

북한 비핵화 이면합의설까지 난무

1944년 6월6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한 수순의 하나로 진행된 연합군의 노르망디상륙 작전일이다. 왜 연합군은 처칠의 주장대로 발칸반도에 상륙하지 않고 노르망디에 상륙했을까? 1943년 테헤란서 영국의 처칠 총리는 전후 유럽을 구상하면서 발칸반도 상륙을 강력히 주장했었다. 동구권 공산화를 노리고 있던 스탈린은 프랑스상륙 작전을 강력히 주장했다. 결론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스탈린 손을 들어줌으로써 프랑스상륙으로 결론이 났다. 2차대전 후 동구권(東歐圈)이 공산화된 것을 보면 처칠의 주장이 백번 옳았다. 당시 루스벨트는 왜 스탈린의 손을 들어줬을까. 첫째는 개인적으로 스탈린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평소 그는 “왜 공산주의자가 나쁘냐”고 화를 내기까지 했다. 둘째로는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소련과 친교를 맺음으로써 일본의 관동군을 만주에 붙잡아 둘 수도 있는 이점도 있다. 미국 국익을 위한 행동이었던 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루스벨트의 일련의 스탈린 지원의 결과로 소련은 힘을 키울 수 있었고 이 키워진 힘으로 인해 세계는 전후 50년이나 계속된 긴 냉전 속에서 고생해야 했다. 중국의 공산화, 베트남전쟁, 6ㆍ25전쟁 등이 그 피해사례 아닌가. 뒤늦은 소련의 참전은 미국에 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동북아에 말썽의 씨앗만 뿌려놓았을 뿐. 어떻든 그는 평시 측근들로부터 “공산주의 국가와의 협력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며 특히 스탈린은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곧 자유세계를 위협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 놓고는 하는 말이 “내가 스탈린에게 줄 것을 모두 주고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는 신분에 따르는 의무(noblesse oblige)가 있으니 평화의 세계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의(善意)의 정치가 현실정치에서도 통하지 않음이 이때 이미 증명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죽기 한 달 전 측근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우리는 스탈린하고 일할 수 없다. 그는 얄타에서 한 약속을 모두 깨뜨렸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거래의 달인이라고 스스로를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 비핵화조치)를 들고 싱가포르 회담에 나왔을 때 우리의 기대는 굉장했다. 그러나 합의문 결과는 황당했다. 그래놓고도 “내가 나서자 북한은 9개월 동안 핵실험도 미사일 실험도 없었다”고 기고만장이다. 3차 평양방문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하는 말이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였다. 미국이 바보가 아닌 이상 황당한 합의를 해 놓고도 황당한 만족에 겨워하는 꼴을 보며 세계인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언가 이면합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계속 헛폼을 잡을 수는 없다. 결국에는 ‘핵 있는 위장평화’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미국에는 좋은 결과가 될 수 있는 내용의 이면합의가 있다는 주장들이다. 그것이 바로 통미통중(通美通中)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 나온 통미봉남(미국과 통하고 남한과는 단절한다)정책의 변형이다. 미국에도 중국에도 통하는 국가정책을 채택하겠다는 선언이다. 최종 목표가 중국 견제인 미국으로서는 반가운 제안이기도 하다. 그 배경도 트럼프와 통하는 것으로 알려진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배넌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즉 “한반도 문제는 중국과의 패권경쟁의 일부이며 중국문제를 해결하면 북한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가능성은 작지만 소련 위성국의 하나였던 키르기스스탄은 2001년 미국에 자국영토 내 군용비행장을 빌려 준 전례가 있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북핵은 미국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핵 폐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는 것이다. 웬일인지 현재 북한 비핵화 문제에는 선의에 의존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힘겨루기 결과로 나온 결말이라 해도 지켜질까 말까 한 것이 핵 문제인데 너무 선의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 우리 국민은 너무 환상에 젖어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서상호주필

미·중 패권전쟁에도 준비없는 한국

현대의 세계는 누가 뭐래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ㆍ미국 주도 세계평화)시대다. 물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 기초를 닦은 것이 종전 직전인 1944년에 있었던 브레튼우즈협정이 아닌가 한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정함으로써 일단 경제는 미국 중심으로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미국경제는 세계총생산(GDP)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자본주의도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그 증거의 하나가 1960~70년대 일어난 달러화 위기, 금본위제의 붕괴 등이다. 쌍둥이 적자를 견디지 못한 미국은 결국 1985년 당시 잘 나가던 독일과 일본에 대해 그들의 화폐인 마르크와 엔화에 대해 평가절상을 요구했다. 그 결과 엔화는 달러당 200여 엔에서 2년 후엔 100여 엔으로 내렸다. 돈값이 배로 불어난 일본은 그 돈으로 미국의 건물을 사들이는 등 돈 쓰는 재미까지 봤다. 그러나 그 재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들면서 일본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불황을 겪었고, 독일은 세계경제의 모범생에서 ‘유럽의 환자’로 전락했다. 독일은 슈뢰더 총리의 개혁(어젠더 2010)으로, 일본은 아베 총리의 아베노믹스(환율절하 등)로 위기를 극복했다. 여기에는 패권경쟁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은 그 양상이 전혀 다르다. 무역전쟁이기도 하지만 패권경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가령 대외적으로는 지금까지 지켜온 도광양회(韜光養晦)니 화평굴기니 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갑자기 주동작위(主動作爲), 대륙굴기로 그 구호를 바꾼 느낌이다. 공식적으로 구호를 바꾼 것이 아닐 뿐이다. 이외도 미국식 경제를 강조하는 워싱턴컨센서스에 맞서 중국식 경제를 강조하는 베이징컨센서스를 강조한다든지 중국의 꿈(中國夢)을 자주 언급한다든지, 최근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미국식 민주주의에 맞서 중국식 민주주의에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환구시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식 민주주의 지지가 65%인데 비해 미국식 민주주의는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식 민주주의라는 낯선 용어를 중국인들은 자랑으로 여긴다고 한다. 모두가 경제 규모가 미국에 접근하자 나온 상황이다.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WTO(세계무역기구)가입 당시인 2001년은 미국의 13%에 그쳤으나 지난해(추정치)는 68%까지 접근했다고 한다. 닉슨의 후회처럼 소련보다 더 큰 괴물을 기른 것이다. 특히 미국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소프트웨어, 민간항공기, 특수반도체 등 소위 미국만이 가지는 지대에 대한 도전이다. 여기서 지대(地代)란 전통적으로 토지임대수익을 넘은 무역이론서 말하는 알짜권리를 말한다. 중국은 제조 2025라는 첨단사업 육성프로젝트로 도전한 것이다. 그 증거가 2013년 중국과학원이 국가건강보고에서 지적한 ‘미국은 전 세계 패권적 이익을 싹쓸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중국이다’는 주장이다. 그 피해액은 3조7천억 달러라고도 했다. 따라서 이 전쟁은 플라자합의처럼 합의로 끝날 가능성보다 어느 한 쪽이 사실상 항복을 하는 그야말로 초유의 무역전쟁으로 끝날 가능성이 더 크다. 옛날 같으면 도전에 응징으로 맞서는 전쟁, 즉 ‘투키디데스의 함정’ 일수도 있다. 결론은 무역의존도가 68%인 우리나라가 가장 피해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평화에만 매달리는 우리 정부의 태도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으로 본다. 세계경제의 34%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이다. 이들이 무역으로 싸운다면 세계경제는 1.4%가 증발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나쁜 선례는 반복되지 않겠지만 1930년대 대공황 때 진정 세계경제를 그르친 것은 주가 대폭락이 아니라 보호주의법인 스무트-홀리 관세법이었다. 보호주의가 얼마나 경제에 나쁜 조치인지 세계는 경험했고 또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대외무역 의존도가 제일 높으면서도 준비가 없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서상호주필

보수세력이 없으면 보수정당도 없다

흔히들 6ㆍ13지방선거의 결과에 대해 ‘보수정당이 죽은 것이지 보수가 죽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데 이 표현은 점잖다. 한 술 더 떠 ‘보수유권자는 승리했다’고 일갈하는 논객마저 있다. 그러나 여러 견해 중‘둘 다 망했다’는 말이 가장 맞는 표현이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선 박선영 동국대교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보수가 망한 이유로, 빈 사무실이 많은 현실에서도 임대계약을 하러 가면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는 취소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러나 이 대목은 민심의 움직임일 수도 있지만 가진 자의 권력에 대한 약삭빠른 처신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선거 4일 전까지는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호전되었을 때,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박선영을 찍었다”고 말한 뒤로 급격히 나빠졌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보수에 대한 국민의 나쁜감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명함을 잘 받던 시민들이 “너도 홍위병(홍준표패거리 의미)이었느냐”며 뿌리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땅바닥에 팽개치고 밟기까지도 했다고 한다. 지지표를 어느 정도 까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든 그는 36.2%를 얻어 46.6%를 얻은 조희연 후보에 졌다. 이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나라 민심의 현장이다. 이는 여론조사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 ‘여당이 잘해서’(24%)라기보다는 ‘야당이 잘못해서’(67%) 여당을 찍었다는 사람이 월등 많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진보층(66%)보다 보수층(74%)에서 더 많다는 사실이다. 보수를 지지하던 사람일수록 보수에 대한 실망이 더 커, 보수를 떠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케이스탯리서치 조사) 물론 ‘보수정당이 망했지 보수가 망한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도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정당별 득표율이 아직도 30%(27.8%) 정도는 된다는 사실이다. 보수에는 아직도 30%가 남아 있다는 것은 분명 희망이다. 그리고 보수논객 중에는 좌파정부는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2020년 총선 즈음에는 50대50의 균형을 이룰 것으로 예측하는 정치평론가도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는 구체성이 없다. 보수세력이 없어질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은 그저 모였다 하면 싸움이다. 우리 국민이 싸움을 싫어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이다. 왜냐하면 사색당쟁의 여파로 나라를 잃은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싸움 며칠 뒤 나온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다. 한국갤럽 조사로는 지난달 29일 현재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엄청 떨어져 10%로 정의당의 9%와 접전을 이루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의 싸움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즉 원내대표는 6ㆍ13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이 있는 주요 당직자이다. 따라서 당내 사정상 할 수 없이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았으면 관리 차원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그런데 중앙당 해체라든가 세대교체와 인적쇄신이란 너무 엄청난 목표를 내걸고 당 개혁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당장 국민 밉상으로 전락한 친박으로부터도 반발을 샀지만 그래도 양식 있는 보수라는 평가를 받는 비박의 심재철 의원으로부터도 “제대로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엉뚱한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친박은 역사의 죄인인 것은 맞다. 그러나 김 권한대행 또한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탄핵이 역사적 관점에서 정의로웠던 것인가? 아직은 결론이 없다. 그러나 한국당의 입장에서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여당 독식의 정치구도 또한 바람직한 민주주의 풍토는 아니다. 또 비상대책위원회준비위원장에 안상수 의원을 내정한 것도 패착이다. 안 의원은 당내조직인 자유한국당재건비상행동으로부터 인적청산 대상자 16인의 명단에 오른 사람이 아닌가. 그래 놓고서는 “친박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마치 친박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위장해서는 안 된다. 정치를 노동투쟁하듯이 해서도 안 된다. 집 나간 보수는 싸움을 그쳐야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서상호주필

보수정당 살길 제3의 길도 찾아봐야

우리나라에서 보수정당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없다’는 답이 더 많을 것 같다. 왜냐하면 6ㆍ13지방선거를 통해 ‘보수 참패’라는 판정을 내린 국민의 판단이 그렇기 때문이다. 정치 평론가들도 역대 어느 정권은 물론 어느 왕도 지금처럼 국가권력과 민간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정권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에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은 주장도 있기는 하다. 즉 ‘보수정당을 자칭하는 자유한국당의 참패이지 보수의 참패가 아니다’라는 다소 말장난 같은 해석이다. 그래도 멸절은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우리 민주주의가 절름발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한 정치인이 있다. 전 영국총리였던 캐머런이다. 그는 지난해 우리나라에 와서 남긴 한마디가 있다. 즉 “보수주의의 특징은 뭔가를 지키고자 하는 것인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보수ㆍ우파나 진보ㆍ좌파를 막론하고 어려울 때면 항상 튀어나오는 상투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캐머런의 충고는 다른 의미가 있다. 그의 성공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국병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해가 지는 나라’로 바꾼 괴질이었다. 이 병을 치유한 사람이 대처리즘으로 유명한 대처 총리이다. 이 개혁 덕분에 보수당은 18년을 집권했다. 이어서 1997년 노동당 정권이 보수당을 대신한다. 노동당의 블레어 총리 역시 개혁으로 성공한다. 당시 세계를 뒤덮은 거대 물결은 신자유주의였다. 시대를 거역하지 않고 따랐다. 즉 신자유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노동당의 규약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는 개혁을 한 것이다. 거대 기업의 국유화 폐지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인정 등이 그것이다. 소위 신노동당이다. 런던정치경제대학의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이론이다. 좌파의 장점에다 우파의 장점을 합친 것이다. 당연히 노동당 내에서는 배반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어떻든 그는 이 개혁으로 13년간 노동당의 시대를 열었다. 2010년 총선서는 다시 보수당이 집권한다. 이때 캐머런 총리 역시 개혁으로 노동당을 이겼다. 그는 노동당의 블레어처럼 모든 것을 바꾸자고 했다. 지금 보수당이 우측에 치우쳐 있다면 중도우파로 가야하고, 중도우파에 있다면 완전 중도까지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중산층 중심의 기존 틀을 벗어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젊은 보수 유권자와 소수민족 유권자까지 끌어들여 보수당이 새로 태어나다시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보수당 내에서는 좌파라든가 하는 비판이 일었다. 그래도 그는 지금의 보수당의 시대를 열어놓았다. 물론 영국의 사례와 우리의 정치환경은 다르다. 따라서 하나의 참고 사안일 뿐 모방할 정도는 아니다. 우선 남북 대치나 분단 상황이 아닌 점이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집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국가안보이다. 가령 지금의 시대 흐름은 평화다. 그러나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라이다. 평화를 지키려다 나라를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핵 있는 평화도 평화다’라는 논리도 있다. 평화무드에 휩싸이면 핵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평화가 유지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상대의 선의(善意)에 너무 기대는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핵 있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는 보수의 정치 신념까지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독일병의 치유를 위해 슈뢰더 총리가 인기 없는 어젠더2010을 택해 권력을 잃은 대신 독일을 구한 사례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얼마든지 제3의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세계화 시대에 맞는 남북관계 정립이나 통일 그리고 한미동맹 등이 그렇다. 한미상호동맹은 양보할 수 없는 과제이지만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나 사회 문제에서는, 양극화나 경제민주화 그리고 복지 등에서는 캐머런처럼 좌파 소리를 들을 만큼의 개혁이 필요하다. 우파가 아무리 좌파정책을 채택해도 좌파가 좌파정책을 쓰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보수의 가치는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보수의 변화이고 개혁이다.서상호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