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좀 덜하면서 살고 싶다

누군가 ‘은퇴는 귀족이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영국의 귀족처럼 생업을 위해 일하지 않으니 한가로움과 안락함 속에서 인격을 도야하고 안목을 높이는 데 정진하라는 빗댄 말 같다. 퇴임을 하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 달이 흘렀다. 아침에 일어나도 일정이 없는 게 전과 다르다. 이럴 줄 알고 먼저 명퇴한 지인들로부터 가끔 조언을 받았고 그중에서 “잔소리 적게 하고 둥글둥글 살라”는 말이 많았다. 잘난 체하지 말라는 말로 들렸고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간 잔소리를 꽤 하면서 살았다. ‘교육과 관심’이란 핑계로 합리화하면서 특히 주말에만 보는 가족들에게 좀 심하게 한 것 같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버드대도 서울대도 아니지만 기본만은 지켜야 한다며 닦달을 했으니 말이다. 수업시간에 가리지 않고 하품 한 번 한 것이 뭐 대수라고 호되게 꾸중하였고, 지각도 엄하게 다스렸다. 그러나 후회는 않는다.지난달 퇴임연회에서 학생대표의 고별사에서 “교수님의 학점은 다정한 F 폭격기였으나 학점 이의신청이 한 건도 없을 만큼 공정했다”며 한껏 추켜세웠다. “세계적인 양궁 선수와 감독도, 지방의회 의장과 시청 국장도 예외가 없었다고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좀 창피했다. 당연한 일이라곤 하나 노교수가 좀 더 유연하지 못했음이 아쉽다. 사실 젊은 선생들은 다소 엄격하고, 나이 든 선생은 좀 관대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정반대였기에 그렇다. 요즘 지방대학은 어렵다. 국공립대학은 조금 나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점은 ‘교수의 고유한 재량권’ 운운하며 법규도 학칙도 저버린 ‘바겐세일’은 일종의 횡포고 태만이며, 죄악이고 공멸의 길이다. 다시 일상이다. 요즘은 시간이 많은데도 부탁받은 원고는 꼭 마감시간에 쫓겨서 쓴다. 고질적 버릇이다. 그리고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배추밭에 벌레 잡는 일 정도가 일과다. 원고는 홀로 쓰니 잔소리할 상대가 없으나 헬스장에선 회원들에게 자주 잔소리를 하고 열도 받고 화도 낸다. 이게 보기 싫어 집사람은 내가 안 갈 때 간다. 헬스장엔 4개의 매트가 있다. ‘신을 벗고 사용하라’는 빨간 경고문이 붙어 있는데도 젊은 회원이 버젓이 신을 신고 올라간다. 벌써 몇 번째다. 왠지 열이 오른다. 짜증 섞인 소리로 잔소리를 했다. 남들은 보고도 그러니 하는데 나만 그런다. 다혈질 때문인가 직업 탓인가?예순이라는 산부인과 여의사는 개인레슨을 받으면서 야릇한 신음을 크게 그것도 계속 낸다. 모두가 쳐다보면서 찡그린다. 벌써 6개월째다. 그래도 이건 약과다. 아침에 보는 한 남자는 진짜 꼴불견이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겼다. 그런데 하는 짓은 개판이다. 남성탈의실엔 선풍기가 하나다. 출근시간인데도 이 인간이 독점한다. 때 수건도 말린다. 화장대에 버젓이 발을 올려 헤어드라이기로 발가락 사이와 ‘그 부분’까지 말리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덩치가 있어 덤벼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힐끔 보고는 나가버렸다. 시간을 바꿨는지 한동안 안 보이다가 얼마 전 마주쳤는데 외면해버린다. 무치함에 화가 난다.잔소리도 짜증과 화가 수반되어 몸의 온도가 확 올라간다. 흔히들 열 받는다 혈압 오른다고 한다. 영어론 ‘show temper’고, 직역하면 ‘온도를 보여 준다’인데 ‘내가 열 받는 걸 보여 준다’는 뜻이다. 먼저 열 받으면 무조건 백전백패고 건강에 치명적인데도 어리석은 일만 골라서 한다. 친구들은 사회정의에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지만 왠지 비웃는 것만 같다.그래서 그저께 추석엔 잔소리를 참고 덜했다. 서른이 넘은 미혼 딸과 조카에게도 좋은 말만 했다. 드라이기로 ‘애먼 곳’을 말리던 그 사람도 빨리 만나 “그건 아니다”며 풀고 싶다. 화와 열은 잔소리가 근원이며 독이 된다. 인간관계를 힘들게 하고 인생의 모든 문을 닫게 한다. 이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도 잔소리 좀 덜하면서 살고 싶다. 꼭 해야 할 땐 웃으면서 지혜롭게 하련다. 이제야 깨닫는다. 이상섭 전 경북도립대교수 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

성선설과 성악설 그리고 펄벅 이야기

해마다 신학기 새내기들의 행정학 개론 강의는 ‘정부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와 정부와 시장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이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례가 성선설과 성악설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선하게 태어날까? 아니면 악하게 때어날까? 전자라면 세상살이는 도덕과 상식이 충만한 질서정연한 천국이고, 후자라면 혼돈과 무질서가 판치는 지옥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착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보다는 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맹자도 인간은 본래 착하기 때문에 예절만 지키면 사회질서가 유지된다고 주장한다. 측은지심은 인(仁), 수오지심은 의(義), 사양지심은 예(禮), 시비지심은 지(智)의 뿌리로서 ‘4단’을 성선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다. 시장이 성공한 무정부론의 기본원리다. 반면에 영국의 철학자 홉스는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사악하여 혼돈 상태를 지향하며 모든 인간은 상호 간에 투쟁한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들에겐 초인간적 괴물인 리바이어던(Leviathan)이 나와야 사악한 무리를 단숨에 정리하고 질서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순자의 결국엔 법률만이 사악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주장의 논거며, 시장에 뛰어드는 정부의 존재원리다. 물론 시장이 혼탁하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가능한 시장 흐름에 맡기고 정부는 선도와 지원이 원칙이어야 한다. 이게 시장경제 원리다. 물론 기업도 잘 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부가 ‘콩 놓아라 팥 놓아라’ 하거나 마치 칼을 휘두른 것 같은 자세는 금물이다. 그래서 국가주의라고 비판한다. 시장은 예민하여 처음엔 움츠리나, 바로 역습이 일어나 소비와 고용은 위축되고 국민경제가 어려워짐은 지나온 관례였다. 정부와 시장은 ‘신뢰와 동기부여’가 먼저다. 개혁도 좋으나 시장은 결코 적이 아니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동기만 부여되면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반드시 하고야 마는 근성’을 갖고 있다. IMF 금모으기와 88올림픽 땐 세계가 감탄한 일등 국민이었다. 본래 콩 한쪽도 나누고 상부상조하던 착한 국민이었다. 먹고살기가 나아지면서 ‘지나친 경쟁과 끝없는 소유욕’이 넘쳤을망정 악보단 분명 선이 많았기에 우린 성선설에 가깝고, 그 예다. 장편소설 ‘대지(大地)’로 노벨문학상(1938년)을 수상한 펄벅(1892∼1973)의 이야기다. 1960년 경주의 어느 해질 무렵, 지게에 볏단을 진 채 볏단을 싣고 가던 농부를 만났다. 펄벅은 서양의 농부처럼 지게 짐을 소달구지에 실어 버리면 힘들지 않고, 소달구지에 타고 가면 더욱 편할 것이란 생각에 농부에게 물었다. “왜 소달구지에 타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농부가 답했다. “에이! 어떻고 타고 갑니까. 저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일했는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훗날 펄벅은 한국 농부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늦가을 감이 달려 있는 감나무를 보고는 “따기 힘들어 그냥 남긴 건가요?”라고 물으니 “아니요,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 둔 까치밥입니다”는 설명엔 짜릿한 전율마저 느꼈다고 기록했다. 그랬다. 이게 성선설의 증거고, 동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옛 고향 모습이었다. 새벽이면 늘 소죽부터 끓이시던 아버지 모습이 아련히 밀려온다. 소에 얽힌 아픈 사연은 부지기수나 지면상 차치하자. 애덤 스미스는 “과거가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왠지 그립고 사무칠 때가 많다. 돌아보니 지나온 발자국마다 기쁨보단 아픔이 더 서려 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더한 것 같다. 요즘 경기불황에 먹고살기가 어렵다고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식당업이나 소상공인과 청년들이 더하다. 정부는 착한 국민을 그만 울리길 바랄 뿐이다. 기르는 소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감이나 대추를 따면서도 ‘까치밥’은 남겨두는 마음, ‘작은 배려를 몸으로 실천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생각하면서 지금의 난관을 선(善)하게 이겨내자. 그리고 즐거운 추석을 다 함께 맞이하자.이상섭전 경북도립대교수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지방 살아야 수도권 아파트값 잡힌다

세금이란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반대급부 없이 강제적으로 걷는 돈’이다. 부담금처럼 세금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도 있다. 부가가치세나 담뱃세처럼 세금을 낸다는 의식을 하지 않으나 실질적 측면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세금도 많다.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거두어 가는 돈이라고 하지만 무엇인가 세금을 정당화할만한 사정이 있어야만 한다. 그 주요 사정으로 우선 담세력과 ‘국민의 동의’를 들 수 있다. 담세력의 척도는 소득과 자산이다. 소득은 세금을 부담할 능력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증표다. 소득세나 법인세 등이 대표적이고, 가장 정당화될 수 있는 조세다. 자산세 계통 세율보다 소득세 계통 세율이 더 높은 이유다. 명분이 뚜렷하기 때문에 조세 저항도 무마하기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 자산은 담세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과세에 적합한 증표인지 의문이다. 소득이 쌓여 자산이 된다고 보면 자산에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비난을 사기 쉽다. 재산세 등 자산세 계통에 세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은 낮은 정당성 못지않게 중립성도 해치기 때문일 것이다. 자산세는 소득배분의 기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담세력이 있다고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금을 강제로 거두어 가려면 ‘국민의 동의’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직접 국민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면 간접적으로 국민의 대표를 통한 동의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한 동의는 법률의 형식으로 존재하여야 한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슬로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부동산가격이 폭등하면 으레 토지공개념이란 말이 나온다. 토지는 비록 사적 재화라 하더라도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아울러 가지는 재화다. 토지공개념은 공익과 사익과의 조화를 꾀하고 공공복리를 우선시킴으로써 국토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적 개념이다. 토지공개념에는 토지거래가 적정가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한다. 토지공개념을 아파트와 같은 주택에도 적용할 수 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가격이 급등하자 세금이란 무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준비하는 것 같다. 정부로선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그럼에도 항상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세금은 세금으로서의 기본을 갖추어야 정당화될 수 있다. 가격조정이라는 시장개입 목적은 부수적이어야 한다. 그 본질적 한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공급물량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종합부동산세 등 자산세를 강화하는 정책이 거론된다. 미실현이득에 중과세하는 것은, 비록 선의라 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소득이 없는 자산에 세금을 중과하면 조세의 중립성을 해친다. 은퇴자들의 경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소득이 없기 때문에 자산에 대한 보유세를 강화하면 세금을 내기 위해 매년 자산을 처분해야 한다. 집 한 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지금 재산세만 해도 벅찬데 보유세 중과는 목 조르기다. 보태줘도 시원찮을 판에 자산을 뜯어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양도소득세 강화는 계속 보유하게끔 하는 역기능이 있긴 하나 소득이 발생했을 때 부과된다는 측면에서 조금 낫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시장실패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최소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폭등을 막기 위해 세금을 동원하는 것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그 원인을 찾아 발본색원하는 방법이 정석이다. 이념이나 정치를 떠나 경제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가격문제는 수요와 공급을 통한 처방이 정공법이다. 부동산은 다른 재화와는 다른 지리적 위치의 고정성이란 고유의 특성이 있다. 지리적으로 특정 지역에 인구가 몰리면 그 지역의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인구집중을 막는 정책과 지방을 살리는 정책, 주택 물량 공급 등 근본적 처방이 뒷받침되지 않은 한, 수도권 아파트 가격 급등을 보유세 중과 등 응급조치를 통해 잡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렵다. 지엽적인 방법으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방이 살아야 수도권 인구가 분산되고, 수도권 인구가 분산되어야 고질적인 수도권의 문제도 풀린다.오철환칼럼니스트

연평해전과 마린온 추락이 남긴 교훈

연평해전은 북한군이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대한민국 영해를 침범한 해상전투다. 1999년 6월15일 1차 해전에서는 북한 함정 10척을 우리 해군이 14분 만에 격퇴했다. 그러나 2002년 6월29일 2차 해전에서는 북한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참수리 357호정이 침몰했으며, 우리 해군 병사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국민은 놀랐고 충격에 빠졌다. 2차 해전 다음날인 6월30일 오후, 군 통수권자인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한일월드컵 결승전을 참관하기 위해 서울공항(성남)을 통해 특별기편으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용사 6명이 안치돼 있던 국군수도병원은 서울공항과는 불과 4.5km로 헬기로는 2분도 채 안 걸리는 지척인데도 들르지 않고 지나갔다. 도발 직후 북의 ‘우발적 사고’라는 통지문을 우리 군의 ‘계획적 도발’이란 정보보다 더 신뢰한 결과다. 다음날, 요코하마경기장에서 아키히토 일왕과 함께 축구를 관람하는 대통령 내외의 모습에서, 또 다음날인 7월1일, 3일장으로 치러진 순국장병의 합동장례식에는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국방장관도 정부관리 그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건 분명 아니었다. 월드컵, 좋다. 그러나 햇볕정책이든 북한 눈치를 보든 간에 순국영령과 유족을 ‘패싱’해선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2017년 7월17일 포항, 해병대 작전헬기(마린온)가 추락해 해병 장병 5명이 순직하고 2명이 부상했다. 군의 공식브리핑, 문재인 대통령의 애도 메시지는 사흘째야 나왔다. 유족들은 “명백한 기체결함인데 청와대는 ‘수리온 성능은 세계최고라는 말만 했다’”며 장병 목숨보다 수출이 더 중하고, 세월호와는 너무도 다른 정부 태도에 울분을 토했다. 조문 온 청와대 국방비서관은 식장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미국은 이랬다. 2009년 10월29일 미국 델라웨이 도버 공군기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둠이 깔린 새벽인데도 아프간에서 희생된 미군 장병의 유해를 맞으려고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드디어 수송기가 도착하고 유해(18구)가 담긴 관의 운구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서서 거수경례를 했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숨진 영웅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미국 대통령의 결연한 모습이었다. 2018년 8월1일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 이른 시간인데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55구를 직접 맞이했다. 국가원수급 봉안식에서 관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최고로 예우하였으며, 유가족들도 부통령 전용기로 데려왔다. 그리고 이들을 ‘잊혀진 영웅’으로 칭했다. 부럽다. 우리는 없나? 우리도 감동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2012년 5월25일 서울공항, 미군이 발굴한 ‘북한지역 국군전사자 유해(12구) 봉환식’이다. 62년 만에 하와이공군기지를 거쳐 귀국하는 6ㆍ25 참전용사의 유해를 차렷 자세로 기다리는 이명박 대통령, 김관진 국방장관의 굳은 표정과 거수경례에 가슴이 뭉클했다. 21발의 조포와 최고의 예우가 이어졌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했다. MB 정부의 공과(功過) 중 공이다. 연평해전, 어느덧 16년이 흘렀다. 고(故) 한상국 상사의 부인은 정부의 태도에 분노해 이민을 떠났다. 다시 돌아와 추모로고를 만들어 ‘REMEMBER 357’ 캠페인에 열심이고, 마린온 추락사고로 순직한 장병 5명의 유족은 정부의 ‘무심한 대우’에도 시민조의금 5천만 원 전액을 해병대에 기부했다. “나라에 대한 원망은 있어도, 장례를 치렀는데 뭘 더 말하겠나”는 유족의 말이 세월호와는 딴판이다. “우리는 대통령이 버린 군인의 부모였다”(희생 장병의 어머니)는 통한이 이젠 끝이길 바란다. “국가가 국민에게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려면 국가도 국가답게 국민을 위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희생자들의 소리 없는 절규가 가슴을 때린다. 남북대치 상태다. 평화도 중요하지만 비핵화와 안보가 먼저다. ‘정권이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안보가치가 달라지면 분명 사달이 난다’는 사실이 두 사건이 준 소중한 교훈이다.이상섭경북도립대교수 행정학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대구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

최근 ‘달성토성ㆍ경상감영ㆍ대구읍성 유네스코등재추진위원회’가 사단법인으로 출발하기 위해 모금행사를 준비 중인 것 같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이왕 늦은 것, 급히 서둘 일이 아니라 급할수록 돌아간다는 자세로 복원부터 먼저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복원도 제대로 되지 않은 걸 유네스코에 등재한다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꼴이다. 글로벌 시대에 대구가 세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그 정체성 확립이다. 대구의 정체성은 그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달성은 기원전 1세기께 삼한시대부터 이 지역 중심세력의 생활근거지였다. 삼국시대 말기인 3세기께 자연적 지형을 살려 토성을 축성하였다. 성문이 난 동쪽으로 달서천이 휘돌아 흘러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달성토성은 ‘달성 서씨’의 세거지였으나 조선 세종 때 구계공 서침이 이 지역 백성의 환곡 이자 면제를 조건으로 국가에 무상 헌납하였다. 세종은 그 뜻을 높이 사 한 섬 이자 한 말 닷 되를 한 말로 다섯 되 깎아주었다. 임진왜란 중이던 선조 29년(1596년)에 석축으로 성을 정비하고 잠시 경상감영을 두기도 했다. 청일전쟁 때, 달성에 일본군이 주둔한 까닭에 달성은 승리를 안겨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일제는 1905년 달성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달성에서 발원되는 민족정기와 대구의 얼이 일제에 의해 유린당한 것이다. 달성은 대구의 원형질이다. 경상감영은 경상도를 관할하던 관청이다. 원래 상주 등지로 떠돌던 것이 선조 34년(1601년)에 대구에 정착했다. 경상감영은 경상도의 중심, 영남의 심장이었다. 영남의 구심점이자 대구의 자존심이었던 경상감영을 얼렁뚱땅 대충 땜질하여 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운 모습이다. 경상감영의 공해도(公圖)가 존재하기 때문에 경상감영 복원은 충분히 가능하다. 없는 유적도 만드는 세상에, 있는 것마저 이런 식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중심은 영남이고, 영남의 중심은 대구다. 대구읍성은 선조 23년(1590년) 토성으로 축성되었고, 임진왜란 때 파손되어 영조 12년(1736년) 석성으로 다시 축조되었다. 광무 10년(1906년) 당시 대구 군수 박정양에 의해 고종황제의 허가도 없이 불법적으로 철거되었다. 대구읍성의 복원은 예산이 많이 들고 장시간을 요하는 방대한 사업이기 때문에 우선 가능한 구간만이라도 복원을 서둘러야 한다. 위 세 가지는 비록 돈이 많이 들더라도 꼭 해야만 하는 숙원사업이다. 반듯하게 복원해놓는다면, 반대급부로 이들은 대구를 자자손손 지켜줄 것이고, 우리 후손들에게 강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 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훌륭한 자원이 되어 이 지역의 마르지 않는 소득원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대구골목투어의 부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욕심을 내어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大邱(대구)’의 명칭을 ‘大丘(대구)’로 환원하는 것이다. ‘달구벌’로 하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과욕이고 大丘(대구)로만 해도 좋겠다. 大丘(대구)라는 명칭이 처음 역사에 나타나기는 신라 경덕왕 16年(757년) 때다. 조선 영조 26년(1750년)에 이르러 한자 표기가 현재의 대구(大邱)로 바뀌었다. 당시 이양채(李亮采)라는 대구의 유생이 대구(大丘)의 구(丘)가 공자의 이름과 같다고 이를 바꾸자고 상소하였다. 당시 영조로부터 윤허를 받지 못하였지만, 정조 이후 대구(大邱)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대구의 한자명을 원래의 글자로 환원해야 하는 이유로 네 가지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첫째, 바꾼 사유가 불합리하다는 점, 둘째, 邱(구)자는 용례가 드문 어려운 글자라서 한자문화권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 셋째, 바꾼다 하더라도 한글로는 변화가 없어 바꾸기 쉽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있던 것은 그대로 두되 앞으로만 바꿔 쓰면 된다. ‘달성토성ㆍ경상감영ㆍ대구읍성 유네스코등재추진위원회’가 의도한 대로 잘 론칭 되어 대구 정체성을 성공적으로 되찾아 주길 기대한다.

다산시대와 인구재앙

5ㆍ16 후인 1961년 가을께,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 육군소장의 아내 육영수 여사가 모 여성잡지에 인터뷰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족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3남2녀의 자녀를 갖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가정이다”고 한 기사를 한참 후인 고등학교 때 우연히 읽은 일이 있다. 그때는 그랬다. 1960년 출산율이 6.3명이었으며, 대개가 5형제 이상 심지어는 10형제 이상을 둔 가정도 더러 있었다.20여 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목욕탕집 남자들’이란 TV드라마도 대중목욕탕을 운영하는 대가족의 일상을 다루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보기 드문 가정의 모습이었기에 신기하면서도 옛날 생각이 아련히 떠올랐다. 가족사진도 그랬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집집이 회갑이나 잔칫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중심으로 수십 명의 아들, 딸, 손주가 병풍처럼 몇 겹으로 둘러섰다. 마치 세력과 명예와 화합의 상징처럼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즘 유치원이나 학교 입학식 때 가족사진은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4명이 손주 한 명만 중간에 놓고 찍는 경우를 자주 본다. 중국의 도시학교 풍경도 이렇다. 바야흐로 이모도 고모도 형제도 삼촌도 없는 ‘나 홀로 신세’가 되었다. 다산시대(多産時代),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그때 1961년엔 1인당 국민소득 89달러로 세계 125개국 가운데 101번째로 가난했다. 초근목피에 보릿고개였다. 농촌엔 부잣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정이 식량난에 허덕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던 배고픔 그 자체였다. 입하나 덜기 위해 자식들은 고향과 서럽게 이별하며 도회지로 몰렸고, 급기야 정부에선 가족계획이 단행되었다.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역전이나 광장에선 인구탑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포스터에서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거쳐 아예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란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이 나왔다. 어찌 보면 이는 오늘날 저출산의 근원이 된 셈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 우(愚)였다. 이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출산율 0명대의 유일한 국가’가 된다니 심각한 문제다. 지난달 초 올해 합계출산율이 1명에도 못 미칠 거라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저출산ㆍ고령화위원회는 올해 출생아가 약 32만 명을 기록해 출산율 1.0명 아래로 떨어질 거라고 한다. 이는 작년에 36만 명에 1.05%보다 낮은 수치며, 더욱이 몇 년 내에 20만 명대에 진입할 거라고 내다봤다.2002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물거품이 된 셈이다. 가임(15∼49세)여성 한 명이 낳을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이 2명일 때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똑같이 유지되는데, 1.17명에서 15년간 등락을 반복하다 다시 1명 밑으로 추락했으며, 특히 젊은 인구가 가장 많이 사는 서울이 전국평균 아래인 0.8명이라는데 더 문제가 있다.2006년부터 범정부 차원에서 무려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퍼부었는데도 전혀 ‘약효’가 없다. 인구현상에 대한 정부의 무지와 무관심, 정책이 보육 및 양육 시설 투자에만 집중한 점, ‘아기를 낳으면 손해’라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 등이 원인이었다. 저출산! 정녕 극복할 대책은 없는가? 먼저 ‘출산=행복’이란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위한 교육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세상에서 아기가 주는 기쁨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감성적인 접근과 사회적인 의식 홍보도 중하다. 찔끔찔끔 해주던 경제 지원에서 피부에 와 닿는 출산 단기부양책, 대학입시제도 개선, 신흥희망타운의 월 소득상환액(맞벌이 634만 원)과 순자산 상한가(2억5천60만 원)의 대폭 확대, 비혼(非婚)출산도 동일한 지원, 여전히 2명대를 유지하는 프랑스정책도 참고할 만하다. 인구재앙이다. 더 큰 걱정은 “가까운 미래에 출산율이 상승하기 어렵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는 분석이다. 저출산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인구에 달렸다. 국정의 최우선과제를 저출산 극복에 두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임하길 바란다.이상섭경북도립대교수 행정학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국민연금은 복지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국민연금이 뜨거운 감자가 된 지 오래다. 저출산으로 연금을 부담할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연금수령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설상가상 최근 국민연금기금 투자수익률이 큰 폭으로 떨어져 기금고갈 시기가 3년 앞당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대체율의 인하, 보험료율의 인상, 연금수급 개시 연령 상향 조정(65세에서 68세) 등을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말 어이가 없다.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다. 여건이 변화하면 제도 개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피상적이고 안이한 처방은 곤란하다. 그것은 개혁이 아니고 미봉책이다. 미봉책은 일시적인 처방이고 조만간 또 바꿔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치유가능한 문제점을 발본색원하고 제도를 수호할 노력이 선행적으로 이루어진 연후에 비로소 제도 개혁이 논의되는 게 순리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국민연금 위기의 근본 원인이고 그들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면, 선행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른 처방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상호 연계된 문제로 저출산 문제를 풀면 고령화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저출산을 그냥 내버려둘 작정이 아니라면 저출산 문제 해결부터 우선 진력해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장기적인 과제라면 국민연금기금 투자수익률 하락은 비교적 풀기 수월한 단기적 문제일 수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 부진은 기금운용본부 운용자의 능력과 관련 있다. 기금 운용을 총지휘하는 기금운용본부장의 장기 공백 사태와 국민연금 수익률 급락은 우연이 아니다. 그 수뇌부 못지않게 실무진의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투자의 성패는 유능한 인재에 달려있다. 투자가 정치에 휘둘려선 결코 적정수익률을 올릴 수 없다. 이념과 정치로 투자수익률을 떨어뜨리고 그 손실을 애꿎은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시도는 정상이 아니다. 심각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기금운용본부의 정상화가 투자수익률 제고의 첫 걸음이다. 투자수익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면 기금고갈시기가 밀릴뿐더러 국민연금기금이 튼실해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스튜어드 십 코드’가 문제가 아니라 효율적 기금 운용이 더 화급하다. 안정적인 투자수익률을 확보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투자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문제는 기본과 본질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저조한 투자수익률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한다면 국민연금 개혁은 한결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국민에게 애꿎은 부담을 지워선 안 된다. 국민연금은 민간보험이 아니라 국가 근간을 이루는 복지제도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다른 제도와 밀접한 보완관계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분배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소득대체율은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를 감안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교사나 군인을 포함한 공무원보다 퇴직연령이 대체로 낮은 점을 고려하지 않고 공무원 퇴직연령인 60세를 보험료 종료시점으로 한다면 그에 맞추어 국민연금 최초 수급 시점도 60세로 맞추어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보다 일찍 퇴직하여 소득이 끊어진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연금 지급은 고사하고 보험료를 계속 부과하는 것은 복지라고 할 수 없다. 최소한 보험료만이라도 퇴직 후 소득이 없을 때는 받지 말아야 한다. 보험료와 연금 수급 시기를 본인의 의사와 소득 현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의 조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연금 수령 시기를 65세에서 68세로 올리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일자리 제공과 퇴직 연령 연장 연후에 고려하는 것이 순리다. 국민연금은 현대국가의 기본적 복지제도다. 국민연금 대상자들은 사회적 약자로 국가 보호가 절실하다. 국민연금 대상자들의 애로사항과 문제점을 듣는 소통 절차가 국민연금 개혁에 전제되어야 한다. 국민연금과 관계없는, 노후 걱정 없는 사람들이 국민연금 개선책을 논의하는 것은 탁상공론에 다름 아니다. 지금 일반국민은 불안해하고 있다. 국민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해야 공무원연금 등과 형평성이 맞다. 국민연금을 국가가 보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고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다.오철환칼럼니스트

영·정조의 탕평이 그립다

조선 최고의 군주를 꼽는다면 세종을 제외하고는 영조와 정조가 아닐까 한다. 이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조선 후기의 황금기였다. 그 원동력은 인사의 형평성, 즉 탕평에서 출발한다. 탕평(蕩平), 기본적 의미는 싸움이나 시비, 논쟁 따위에서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나, 역사적 의미는 다소 다르다. 탕탕평평, 즉 씻고 또 씻어 절대로 차별하지 않음을 강조한 상서(尙書)의 홍범구주(洪範九疇)에서 유래했다. 군주의 정치행위가 쏠리지 않고 지극히 공정하고 정당함을 의미한다. 숙종(1674∼1720) 때 처음 제기되었으나 제대로 시도되지 못하다가 영ㆍ정조에 이르러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영조(1724∼1776)가 즉위할 무렵 조선의 정치판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이미 당파 간 철천지원수가 되어 붕당정치의 해결 없이는 몰락하고 만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민생은 팽개치고 정쟁뿐인 우리 정치판 같았다. 영조는 일평생 치세를, 정쟁에만 눈이 멀어 민생을 외면한 붕당정치 타파에 두었고, ‘임금이 탕평의 모자를 쓰고, 탕평의 부채를 들고, 탕평채를 먹는다’는 말이 생겨날 만큼 탕평책을 중시했다. 영조의 탕평 교서다. “붕당의 폐단이 요즈음보다 심한 적이 없었다. (중략)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인재 임용이 당 사람만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중략) 선악을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노론 측 인사를 한 사람 등용하면 상대 자리엔 소론 측 인사를 등용하는 쌍거호대(雙擧互對) 인사정책이었다. 드디어 국론이 모이자 민생안정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이게 ‘인사가 만사’란 증거고 통치자의 올바른 리더십이다. 그래서 대왕의 호칭을 붙인다. 정조(1776∼1800)가 즉위한 때도 반대파로 득실거렸고 신변은 늘 불안했다. 장용영(친위부대), 초계문신(규장각 인재양성), 화성건설로 왕권을 회복하고 난장판이 된 정치를 복원시켰다. 그 힘도 인재 발굴과 탕평이었다. 정조의 탕평책은 영조보다 훨씬 견고하고 훌륭했다. 영조가 무당파적 ‘완론탕평’이라면, 정조는 옳고 그름을 가려 쓰는 ‘준론탕평’이었다. 인재 등용에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몬 노론도 등용했다. 남인인 채제공을 영의정에 파격적으로 임명한 것은 실사구시 파인 정약용, 홍대용, 박지원 같은 조선 최고의 학자와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같은 신진학자들의 포진이 바탕이었다. 정조의 탕평 교서다. “탕평은 의리에, 의리는 탕평에 방해롭지 않아야 바야흐로 탕탕평평의 의리라고 할 수 있다.” 만고의 진리다. 이념 성향과 지역의 편중 없이 우수한 인재를 골고루 뽑아서 적재적소에 배치함이 바로 정조 탕평이고, 뿌리는 소통이었다. 노론벽파의 거두인 심환지(1730∼1802)와 4년간 무려 297통의 어찰(임금의 비밀편지)를 주고받았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대립만 반복하는 ‘불통의 시대’다. 정조의 비밀서찰은 국정의 동반자로서 포용하고, 소통해 가는 탁월한 정치력 그 자체요, 정치 9단의 면모다. ‘하늘의 달은 하나이지만 물에 비친 그림자는 여러 것이기 마련’이라며 신하들의 각기 다른 성향과 행동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임금의 체면도 자존심도 버리고 부지런히 편지를 쓰면서 소통과 조정을 이루려고 했다. 이게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정치다. 지금 우리는? 그립다. 한없이 그립다. 문재인 정부도 어느새 2년째다. 지지율은 높으나 경제성적은 매우 나쁘다. 소득주도성장과 일자리정책도 실패한 것 같은데 계속 고집하니 경제가 걱정이다. 취임사의 키워드도 탕평인사와 대야(對野)소통으로 ‘협치시대’를 기필코 열겠다고 했다. 지켰는가? 글쎄다. 이유는? 끼리끼리 했고 말뿐이었기 때문이다. 남북문제도 그렇다. 대화도 중하나 안보가 먼전데 반대로 보인다. 참 안타깝다. 노무현 정부보다도 ‘이념의 탕평’이 후퇴했다는 지적이고, 소통도 부재다. 답은? 진정한 탕평뿐이다. 탕평 없인 성공한 정부 없고, 아집은 공멸이다. ‘국가 흥망에는 필부도 유책’이란 김구 선생의 충고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래서 더 걱정된다.이상섭경북도립대교수 행정학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자살은 생명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죽음은 물리적으로 숨을 거두고 심장이 멎는 것이다. 죽으면 인식도 종료된다. 죽음은 종교와 철학의 피할 수 없는 화두이긴 하나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두려움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인생 역정의 심판에 대한 불안감일 수 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원한 이별이 두려울 수 있다.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승의 행적을 심판하여 저승의 등급을 결정한다는 종교적인 가설이 일반적으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죽음은 타락하지 않고 선하게 살도록 경계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그런 면에서 죽음은 극단적인 타락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자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이다. 죽음은 인간의 일거수일투족과 표현하지 않은 사고까지 꿰뚫고 지켜보는 감시자이며 종교의 성립과 그 불멸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색은 결론이 없다. 죽음의 본질을 몇 줄의 글로써 결론짓고자 하는 시도는 무리다. 죽음은 인간의 영원한 화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살인은 다른 사람을 죽음의 세계로 밀어 넣는 것이다. 죽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나중에 선택하는 대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의지에 반하여 살인을 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살인은 가장 강력한 응징 대상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모세의 십계’와 고조선의 ‘8조 법금’에도 살인에 관한 조항이 들어 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살인을 죄악시하고 있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살인을 중벌로 다스리고 있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시공을 초월하여 상호 고립되어 있는 사회에서도 살인을 최악의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원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은 예외적인 현상이다. 두려운 미지의 세계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인식을 깨는 것이다. 자살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구체적 개별적으로 자살의 원인을 파고들면 그 사연이 차고 넘치겠지만 대충 뭉뚱그려보면 생활고, 병고, 실연, 절망, 명예 또는 수오지심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고뇌나 번뇌 정도가 되지 않을까. 고뇌의 강도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강도를 넘어서는 경우,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현명하다. 고뇌와 죽음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인 신념과 의지가 지극히 상대적이고, 또 그에 대한 모범적인 가치체계가 존재할 수 없는 난점이 있기 때문에 자살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죽음으로 가는 길은 있지만 돌아오는 길이 없다는 점이 자생적 방어막이 되긴 한다. 종교는 죽음이라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현상을 매개로 미지의 사후세계를 설계하고 이를 주요 유인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자살을 죄악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부정이다. 인생이 고해와 같고 삶은 ‘스트레스 덩어리’라 규정하면서 사후세계를 미화한다면 죽음을 선택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후세계는 인간세상의 법규범이나 율법이 전혀 통하지 않을뿐더러 교감이나 소통도 전혀 되지 않고, 그 존재조차 명확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사후세계에 간 사자는 전혀 통제가 되지 않고 상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사후세계는 인간세계의 시스템을 완전히 벗어나 있고, 사자는 완전 통제 불능이다. 사자를 심판한다든가 응징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자살은 인간세계를 탈출하는 수단이다. 삶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손쉬운 방법일 수 있다. 인생이 허무하거나 무상하다면 삶을 끝내는 방법이 자연스런 귀결일 수 있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현자는 없다. 인간이 원죄를 졌다면 굳이 꼭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지만, 과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죽음으로써 속죄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자살은 비단 종교뿐만 아니라 인간세상의 근본을 무너뜨린다. 인간세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자살은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성질이 아니다. 사후세계로 가는 길은 일방통행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가는 길은 자유지만 돌아올 길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극단적인 생각을 접는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인간의 선택지는 오직 극복하는 것이다. 자살은 생명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살아야 한다.오철환칼럼니스트

오만과 맹사성의 일화

요즘 들어 부쩍 지나간 날에 대해 상념에 잠기곤 한다. 그것도 매우 깊고 잦으며 어떨 땐 인기척도 못 느낀다. 아마도 코앞으로 다가온 정년에 대한 감회와 앞으로 어디서 무얼 하면서 어떻게 살까, 처음 해볼 소위 백수(白手)에 대한 낯섦, 다시는 못 올 가버린 날들에 대한 아쉬움, 사무치는 회한 같은 게 이유인 듯 보인다. 퇴임 소감을 묻는 지인에겐 아닌 척 해보지만 솔직히 기분이 좀 그렇다. 좋았고 잘한 일보단 어리석었고 부끄러운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한 마디로 인생을 너무 어렵게 살아온 것 같다. 물론 어두웠던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냈었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해 보지만 그래도 좀 더 여유를 갖지 못한 후회스러움이 먼저다. 가졌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았을 텐데 하면서 이제 와 깨닫는다. 걸어왔던 길을 한 번만 뒤돌아봤어도 충분히 가능했기에 더하다. 남을 너무 의식하면서 산 것 같다. 남들은 나에게 별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만 호들갑을 떤 것 같다. 나를 향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을 적당히 무시하고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렸어야 했다. 그런데 일일이 대응하고 마음을 쓰면서 살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을 걸 하나라도 더하면서 알차게 살 걸 이제 와 깨닫는다.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이 더 중하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어놓고는 말이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산 것 같다. 식탐도 술탐도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옛날에 가난하여 못 먹었다며 둘러 되지만 다 비겁한 변명이다. 말로는 버려야 새로움이 보이고 멈추어야 비로소 평화가 보인다고도 했다. 정말 그렇다.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는 것도 이제 와 깨닫는다. 너무 잘난 체하면서 오만하지는 않았는지 염려된다. 알량한 지식 몇 개와 남보다 좀 더 해본 경험을 갖고, 업신여김과 교만함의 여부다. 고의성은 없어도 일부에겐 그렇게 비쳤을 것이라 이제 와 깨닫는다. 오만(傲慢)은 ‘태도가 건방지고 행동이 거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기다’는 참 나쁜 말이다. ‘인생은 오만한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오만할수록 결국 끊어지고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원불교 법어에도 나온다. 오만하면 떠오르는 맹사성(1360∼1438)의 일화다. 열아홉에 장원급제하여 스무 살에 파주 군수에 오른 그는 뛰어난 학식과 젊은 나이에 높은 벼슬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맹사성은 그 고을에서 유명하다는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 생각하오?” 그러자 스님이 대답하기를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고 하자, 맹사성은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스님은 녹차나 한잔하고 가시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맹사성의 찻잔에 찻물이 넘치는데도 계속 차를 따르자,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자 스님은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부끄러웠던 맹사성은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문지방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물끄러미 웃으면서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맹사성은 이를 교훈으로 삼아 훗날 조선의 청백리요 두 번째 명재상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오만이 넘치면 반드시 독선하고 망함을 잠시 잊은듯하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이제 정말 베풀며 살자. 남에게 피해가 안 가는 범위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경험해보고 싶은 것, 그동안 체면 때문에 못 만났고 못해 본 일까지도 만나고 하면서 살고 싶다. 다른 사람의 눈치도 덜 보고 고민도 덜하면서 말이다. 바보처럼 이제서야 보이기에 깨닫는다. 다가올 후반기 인생은 나를 최대한 대접하면서 아름답게 살련다. 이상섭경북도립대교수 행정학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저출산, 본능파괴의 대가인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계획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던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생생하다. 산술적 계산 공식을 흑판에 써놓고 ‘1인당 국민소득’을 올리려면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애국심이 절절했다. 누구도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따위의 가족계획 표어를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었다. 피임과 정관수술을 적극 권장했다. 예비군훈련 때, 정관수술을 시술하면 훈련면제에 빵까지 주었다. 두 자녀 이상 갖는 것은 미개인이었다. 출산율은 곤두박질쳤다. 이제 1명이 깨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상황이 역전됐다. 이젠 출산율 제고가 절박하다. 녹색혁명이 낳은 시대적 변화에 스텝이 한참 꼬인 측면이 확실히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가족계획은 정당하고 합리적이었다. 환경이 급변했을 따름이다. 다만, 가족계획이 저출산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실책이었다. 저출산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으로 나타난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이다. 그 원인으로 여성 취업 증가, 보육 및 교육의 어려움, 개인주의 확산, 청년취업난 등을 꼽을 수 있다. IMF사태로 인한 경쟁 격화와 글로벌화도 한 원인이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원인을 거론할 수 있다. 이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문재인 정부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늦은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을 기대했지만 기존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것 같지 않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즉 ‘일과 생활의 균형’이란 다소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 새롭긴 하지만 성과달성을 위한 목표수단 체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목표관리가 가능한 명확한 지표 제시가 필요하다. 감성적 캐치프레이즈로 명확한 목표를 대신할 순 없다. 책임 회피 의도라고 의심할 소지도 없지 않다.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이 절실하다. 인간도 종족보존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이란 선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온다. 본능을 거스르는 현 상황을 일단 생존 위협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일까? 일자리가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미래를 어둡게 하는 뇌관이다. 부모에게 더부살이하는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기대 난망이다. 먹고살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일 할 직장이 있어야 미래가 있고, 미래가 있어야 비로소 결혼과 출산이 선택된다. 일 할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급감할 글로벌 미래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현재와 같은 낮은 출산율도 감당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주지 못하는 정부가 젊은이들에게 출산을 권장하는 것은 허구다. 출산을 기피하는 행위가 오히려 이성적이다. 지금 상황은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건 누가 봐도 같다. 세월이 바뀌면 우리 젊은이들의 판단이 현명한 것으로 드러날지도 모를 일이다. 저출산 대책은 인간이 평온하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비록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느껴져야 한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불안한 미래만이 기다리는 현실에서 2세를 생각할 바보는 드물다. 가치관 재정립과 경제 성장이 절박한 이유다. 저출산은 우리 인간이 자초한 화인지도 모른다. 조물주는 종족보존의 본능을 주었으나 인간은 그것을 인센티브와 부담으로 분리시켰다. 피임이나 낙태라는 방법으로 무거운 짐을 벗었다. 어떤 동물도 해내지 못한 획기적인 일이다. 인센티브인 쾌락만 취하고 성과물인 출산과 양육을 회피함으로써 조물주의 원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피임과 낙태를 금하고 성행위엔 반드시 자녀생산이 수반되어야 한다면 인구 문제는 조물주의 뜻대로 균형을 유지할 것이다. 자연은 오직 적응하는 자만 선택한다. 어쨌든 우리는 본능파괴라는 도전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운명에 있다.오철환칼럼니스트

정년퇴임 고별강의

지난달 중순에 정년퇴임을 두 달 남짓 남기고 고별강의를 하였다.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지난해 종강 후에 이별연습을 진하게 하였기에 이번에는 말없이 조용히 떠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인들의 청을 핑계 삼아 학교 정문에 고별강의를 알리는 현수막도 걸었고, 마지막 강의라서 그런지 재학생 외 일부 졸업생과 출입기자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헤어짐을 고(告)하였고, 꽃다발도 받고, 케이크도 자르고, 노래선물도 받았다. 참석자들에게 “헤어짐이 아쉽다”는 말보단 “정년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이 월등히 많은 걸 보고는 왠지 모르게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무상함이 문뜩 떠올랐다. 그래, 때가 되어 떠남은 당연한 이치인데 뭘 그토록 미련을 떨었는지 이제 와 생각해보니 겸연쩍기까지 하다.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도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떠나는 아쉬움에 꽤 많은 말을 했다. 먼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회고와 과제’에선 어느덧 지방의회 부활 27년, 민선 자치 23년이 흘렀음을 지적하고, 정권 연장의 도구란 슬픈 운명 속에서, 그것도 6ㆍ25 와중인 1952년에 태어나 9년간 시행하고 30년간 중단되었다가 또다시 여ㆍ야간 ‘정치적 흥정’으로 부활한 역사임을 되새겼다. 척박한 자치토양 위에서 온갖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주민들 ‘삶의 변화’와 주민의 지위가 ‘통치의 객체에서 주체’로 바뀐 점과 지방권력의 기회균등을 통한 ‘신분의 격상’(6ㆍ13지방선거 전체 당선자 수 4천16명) 등이 관치행정과 큰 차이였다고 회고하였다. 지방자치 정착의 선결과제로는 주민의 참여와 통제 속에 ‘참여민주주의의 완성’과 ‘지방의회의 혁신’을 통해 지방정부의 큰 난제인 부정과 비리의 근절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론 행정안전부를 ‘지원부서’로 전환, 지방세목 신설 등 ‘지방재정 조정제도’의 강화, ‘파산(예비) 선고제 도입’으로 예산낭비 방지, 지방의원의 분발 등을 제시하였다. 학교 발전을 위한 고언(苦言)도 덧붙였다. 개교 1기 교수로서 학교가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남이 못내 아쉽다.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통감한다. 혹자는 ‘학령인구 감소’보다는 내부 문제, 특히 개교 후 계속 되어온 ‘낙하산 인사’를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대학에 문외한인 퇴직 공무원들의 안식처로 전락하였고, ‘종신 보직’과 구성원 간 편가르기도 일조하였다고 한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진정한 소통을 통한 인사 탕평’만이 답이라고 고언 했다. 탕평 없는 발전은 공염불이고 죽은 조직이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다. 관용(寬容)이 넘치면 독이 된다는 경고를 간과함도 한 이유로 들었다. 퇴임 소회와 학생들에게 당부도 전했다. 지나간 22년의 세월, 인생에 가장 황금기란 ‘중년(中年)’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소중했던 나의 중년 시절은 실패하였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선택과 집중’의 실수가 먼저다. 지나치게 ‘소신과 명분’에만 치중한 나머지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어리석음이었다. 모든 것이 ‘∼관계’에서 시작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떠난다. 성공한 관계의 마음가짐은 만나는 사람마다 마치 ‘난로’ 대하듯 해야 한다. 즉 ‘화이불류’(和而不流-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의 자세다. 우리의 삶은 ‘주고받음’의 연속이다. 좋은 관계는 ‘도움’에 대한 감사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고, 많이 주고 많이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오만(傲慢)함도 경계해야 한다는, 맹사성의 일화에 나오는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는 교훈도 절대 잊지 말기를 당부했다. 먼 훗날 다시 만날 때는 지금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더 좋은 곳에서 만나자. 앞날에 행운과 건투를 기원하면서 이제 여러분과 이별을 고한다.이상섭경북도립대교수 행정학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이타성과 우리의 선거

6ㆍ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은 예견된 것이었다. 북핵문제에서 평화적 해결의 단초를 놓은 정부, 여당을 향한 국민의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스스로를 초심의 자리까지 내려놓지 못한 자유한국당과 보수의 모습들이 그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선거결과 전국이 더불어민주당의 파란 물결로 뒤덮였지만, 유일하게 대구ㆍ경북만이 자유한국당의 붉은색을 고수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경상도와 전라도는 분명한 정치적 편향성을 보였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건 간에 집단적 선택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발전한 자본주의 체제인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합리적이지만 이기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면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려고 한다. 사실 국민의 입장에서 정권을 가진 여당의 반대편에 선다는 것은, 예산이나 혹은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는 데 있어서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의미하기에,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잘못된 선택에 가깝다. 그래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민의 눈높이와는 동떨어진 선택을 하는 다른 유인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개인적 대응보다는 적절하게 유지된 크기의 집단적 대응이 전략적으로 월등하게 유리하다. 그 집단이 특정 고교나 대학, 특정 종교 등으로 외부인의 유입을 막는 장치를 갖게 되면, 높은 성과를 낳을 소지가 크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기준에 의해서라도 일단 한 집단에 속하게 되면,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내부인과 외부인을 차별적으로 대응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발표한 사회심리학자 타즈펠(Tajfel)의 연구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가까운 이러한 집단적 대응의 외연을 확장시켜 보면, 선거라는 게임에 있어서 선택이라는 투표권을 가진 행위 주체의 집단적 선택, 전라도나 경상도의 지역적 편향을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할 수도 있다. 지역편향은 지역적인 국지화의 카테고리 속에서 유유상종의 효과를 발휘하게 되고, 자신을 향한 지역 내부의 구성원에 대한 평판과 이에 따른 전략적 이득 때문에라도 무의식중에 굳어질 수밖에 없다. 즉 정당 전략의 과학적인 분석이나 해당 후보자의 공약에 대한 신뢰의 여부보다는 지역이 가진 규범, 관습이 구성원들의 행위를 강제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이나 전체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하든 관계없이, 특정 정당이 내게 항상 유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우월전략에 의해 형성된 지역의 집단선택은 안정화의 모델을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균형을 이룬 안정화를 이탈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적인 지역색을 띠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이런 지역적 편차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발전한 정치라고 평가받는 미국이나 유럽에도 나타나며, 어느 지역은 어느 당의 우세로 점쳐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방점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는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는 곳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호성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사회는 바로 붕괴할 수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선택은 바로 조건부 협조(conditional cooperation)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의 희생 시 나도 희생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기적인 선택과 이타적 선택인 조건부 협조는 거의 50대50으로 사회생활에서 발현한다고 한다. 대구는 지역이기주의로 비칠 만큼 일방적인 정치적 선택을 해왔지만,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행보로 인해 실망하게 되었고, 도덕성마저 훼손된 결과물이 특정 정당에 이타성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던 유권자들의 인식 변화를 낳게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민주당의 약진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지역주의의 편향성이라는 것은 지역이기주의와 그 맥락이 닿아있으며, 지금까지 외부에는 배타적 성향을 나타내고 내부로 향한 이타성만 발현되어온 것이 우리의 민낯이다. 사람들의 이타성은 절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주의를 버리고 국가 전체를 위한 선택을 하도록 그 범위를 넓히려면, 끊임없이 국민을 대상으로 공감 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과 행동이 필요하다. 정치적 보복과 음모가 사라지고, 실패한 정책에 대한 사죄와 철저한 분석, 미래를 향한 균형 잡힌 희망의 행보가 국민의 이타성을 내부가 아닌 열린 외부로 향하도록 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정 바라는 정치의 모습이다.손창용부강외과 원장

지방의회 28년의 명암

‘평화’해빙무드에 덩달아 취하고, 월드컵 열광에 젖은 사이에 민선 자치 6기가 막을 내리고 내달부터는 민선 7기 출범이란 역사적인 장이 열린다. 먼저 이번에 취임하는 전국의 단체장과 교육감, 지방의원과 교육위원(제주특별자치도)께는 축하를,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모든 분께는 감사를 드린다. 지방의회 부활 28년, 민선 자치 24년으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어느덧 성년의 나이가 지났건만 왠지 미덥지 못하고 불안하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혹자는 아직도 ‘나잇값’을 못하고 오히려 퇴보했다는 따가운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참 안타깝다. 제일 큰 걱정은 고질화하여버린 지방부패와 도덕적 해이다. 전시행정과 헤픈 씀씀이로 가뜩이나 부족한 지방재정의 고갈, 세원과 사무의 중앙편중현상의 심화, 자치구조의 왜곡현상, 강시장약의회로 ‘견제와 균형 원리’의 실종, 토호세력의 만행 등이 주된 이유다. 그러나 척박한 자치토양과 태생적 한계 속에서 성과가 많았다는 평가도 동시에 존재한다. 먼저 주민 ‘삶의 변화’와 주민의 지위가 ‘통치의 객체에서 주체’로 바뀐 점이 가장 크다. 지방권력의 기회균등과 신분상승, 양질의 행정서비스,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주민복지 증진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공과(功過)가 상존하였기에 실로 만감이 교차한 전환기였다고 회고하면서 위안을 찾는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고 건너야 할 강은 깊다. 민선 7기가 구현해야 할 핵심 과제는 ‘참여민주주의의 완성과 지방의회의 혁신’이다. 이를 위한 첫 과제로는 부정과 비리의 근절이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우리나라 기초단체장 226명 중 민선 1기 23명, 2기 59명, 3기 78명, 4기는 무려 110명, 5기 55명, 6기 43명이나 뇌물수수, 횡령, 배임 등 온갖 몹쓸 비리로 법정에 섰다. 운 좋게 빠진 자도 많다고 한다. 이 정도면 가히 기네스북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비리백화점’ 급이다. 벌써 당선자의 선거공신 중에는 무슨 ‘완장’이라도 찬 듯 목하 설치기 시작했다니 4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들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선거 빚’ 때문에 불씨를 안고 간다면 반드시 공멸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명심하기 바란다.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다. 민선 5기까지 무려 1천35명이나 기소되었다. 전체 의원 중 80∼90%가 해당하는 자방의회도 여럿 있어 심각한 문제다. 본전 생각은 절대 금물이며 임기 내 어떤 이권에도 바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예산낭비다. 2017년 말 현재 지자체의 88.5%가 재정자립 50% 미만이고, 150여 개 단체는 자립도 10∼30%다. 더욱이 이중 반은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공무원 인건비충당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초호화판 신청사 건립 등 흥청망청 퍼주고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이다. 곳간에 양식이 없어도 파티는 하겠다는 가히 목불인견(目不忍見) 격이다. 혈세를 아끼면서 부족한 재원마련에 매진하기 바란다. 지방의원의 분발이다. 의원의 주된 책무는 조례의 재·개정, 행정사무감사, 예·결산심의가 먼저다. 민선 6기 첫해 1년간 대구광역시 기초의원 115명의 조례발의 건수가 1인당 0.4건이며, 구정 질의도 중구의회는 0,2차례로 1년에 한 번도 질의를 안 한 의원이 거의 다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래서 ‘기초의회 폐지론’이 힘을 받는 이유다. 경북도 오십보백보다. ‘직무태만’이니 ‘빈 깡통이 더 요란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하기 바란다. 소통과 화합이다.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후보자 간 앙금은 하루속히 풀어야 한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열 번이라도 찾아가서 설득하고 반드시 동참시키기 바란다. 반대한 주민도 포용해야 한다. 주민과 함께해야 비로소 ‘참여민주주의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의 양대 축은 자치단체와 의회다. 동반자적 관계가 필수다. 이젠 ‘대립과 갈등’에서 ‘협력과 경쟁’의 새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 한다. 화이불류(和而不流-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의 자세가 답이다. 이게 진정한 ‘지방의회의 혁신’이다. 부디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민선 7기의 순항을 기원하면서 건투를 빈다.이상섭경북도립대교수 행정학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비만의 역설

비만은 신체 내에 지방질이 정상보다 과다하게 축적되어 있는 상태, 지방의 총 무게가 남자는 자신의 체중에 25% 이상, 여자는 30% 이상일 경우를 말한다. 근육이나 골격이 많아서 과체중인 사람은 비만이라 부르지는 않고, 몸무게는 정상이지만 상대적으로 근육량이 적고 내장지방이 많아 마르고 배만 볼록하다면 비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지금도 비만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40년 전 비만 인구가 1억500만 명, 2016년도에는 6억4천100만 명으로 6배 증가한 수치이며, 이런 추세라면 2025년엔 5명 중 1명이 비만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인류에게 비만이 증가하게 된 것은 고열량 고지방의 음식이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최근의 일이고, 비만을 보는 시각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00년대 이전에는 지방을 질병에 걸렸을 때 유용하게 사용될 비축분이라 여겼으며 평균이상의 체중을 부의 상징으로 보았다. 1900년대 초부터 비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비만이 폭식과 자기 통제력의 상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 날씬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인간의 소화기관은 양이 많고 낮은 혈당, 즉 채소 같은 음식을 섭취하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에너지 밀도가 높고 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처리할 수 있는 생리적 유연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혈당 고지방의 음식들은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분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스템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선조들이 상당한 위험과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얻고 싶어 했던 이러한 유형의 귀한 음식들을 현대에 와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생물학적으로 내재한 방향성 즉 맛있다고 느끼는 감각을 순식간에 바꿀 수는 없어서 이에 대한 욕망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갈구하는 현상은 음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과거에 비해 절대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지방은 뇌의 성장과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영양소이며, 1kcal에 해당하는 지방의 무게는 0.11gm에 불과한 대단히 효율적인 에너지의 저장소이다. 또한 지방조직은 단순히 저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활발한 내분비 기능과 에너지와 식욕을 조절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며, 여성의 생리적합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른 상태로 태어나면 난소의 기능이상 가능성이 크고, 청소년기에 마르면 초경이 늦어지기도 하며, 성인 여성이 마르면 배란주기가 불규칙하거나 사라져 임신을 못할 수도 있다. 이를 본다면 요즘 여성들의 마른 체형 선호가 임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는 절대로 과한 것이 아니다. 최근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과체중일수록 결핵에 적게 걸리고, 마른 사람이 결핵에 잘 걸리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지방조직이 면역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고, 다이어트를 많이 하는 20대 여성들의 결핵 빈도가 높아지는 이유 중의 하나에 지방조직 저하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이다.인간의 에너지 균형조절 시스템은 에너지 균형을 중등도의 플러스 상태로 유지하면서 잉여 에너지를 체지방의 형태로 저장하는 쪽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약간은 살이 찐 듯 유지하는 것이 최적화된 인간의 형태이고, 평균 체중인 사람은 생명에 필요한 최소 에너지 요구량을 한 달 이상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지목한 것처럼 고도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뇌경색, 천식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요즘은 약간만 살이 쪄도 마치 고도비만에 걸린 듯 행동하며, 50대 주부, 10대 소녀, 심지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다이어트가 일상의 관심사가 되었고, 건강보다는 외모지상주의가 우리 사회에 비만에 대한 강박증을 만들어 버린 듯 보인다. 정상체중을 지닌 여학생의 41.2%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고, 여학생 10명 중 6명이 저체중을 이상적인 체형으로 생각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며, 10명 중 한 명꼴로 거식증을 앓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최근에는 비만이 상업적인 영역과 결합하면서 건강보다는 미적인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잘못된 상식과 인식이 만연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아름다움의 왜곡된 콤플렉스, 이를 통해 벌어지는 상업주의에 찌든 다이어트, 성형, 방송은 우리가 반드시 버려야 할 적폐임이 분명하다.손창용부강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