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꾼’이 만들어 내는 세상이 그립다

김시욱에녹 원장출근을 앞두고 면도를 하다보면 상처 입기가 일쑤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이번엔 좀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조심해 보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다. 면도기를 여러 차례 바꿔 보지만 그것마저도 마땅한 대안은 아닌 듯하다. 핏빛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 내다 보면 이유모를 짜증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사라져 가는 이발소 주인의 면도 솜씨가 그립다. 날 선 폭 넓은 면도칼로 단번에 해결하는 깔끔한 솜씨는 전문가만이 누리는 여유다. 손님의 불안감을 단번에 신뢰와 편안함으로 바꿔버리는 솜씨는 ‘꾼’임을 증명했다.코로나19 여파로 불안이 끊이지 않은 일상이다.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의 통계치를 확인하는 일이 습관이 되다보니 초중고 전 학년이 등교하는 요즘은 확진자 제로라는 보도가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한편에선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비리 의혹이 언론과 SNS를 가득 채우고 있다. 진실게임이 어느새 진보와 보수, 그리고 반일과 친일 프레임으로 넘어가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각 진영의 아전인수식 확증편향은 사생결단으로 치닫는 듯하다.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원구성 협상을 앞둔 여의도의 모습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상임위원장 18석을 배분하는 문제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설전은 룰이 무너진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절대 과반을 만들어 준 국민의 명령이며 국정주도권을 위임한 것이라며 상임위 18석 전부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래통합당은 의석수에 비례한 11:7의 배분이 국회 원구성의 관행이며 여당이 무조건적인 행정부의 도우미로 나서는 것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반박하고 있다. 룰이 무너진 말싸움은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 기마전을 연상케 한다. 기수의 모자만 벗겨도 이기는 게임임에도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만 하는 유치한 승부욕이 떠오른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초등학교 운동회 연설인 ‘인생은 항상 겨루지만’이 더 소중해 보이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이기고 지는데 집착하지 말고 규칙을 지켜서 열심히 겨루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한번 겨루기해서 진 사람이 다음 겨루기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란 말은 깊은 울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치 ‘꾼’들이 그리운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 싶다. 흔히 ‘꾼’의 사전적 의미를 찾자면 직업적인 일이나 전문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그러한 일이나 행위를 전문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나타낸다고 한다. 물론 한때는 부정적 의미에 더하여 비난받는 사람들에게 많이 쓰이곤 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 그 언어적 의미는 전문가를 지칭하는 말로 변해 오면서 프로페셔널과 다름이 아니다. 엄연히 직업란에 정치인이라고 쓰는 현실에서 정치 ‘꾼’이 더없이 정겹게 들려야 하는 이유이며 지향해야 할 방향인지도 모른다. 시류에 영합하며 진영 논리를 부추기는 삼류 정치인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치의 본성을 이해하며 협치를 이끌어 가는 정치 ‘꾼’이 필요한 것이다.최근 낙선한 모 국회의원을 자타공인 정치 9단으로 부르는 모양새다. 임기가 만료되지 않은 시점임에도 여타 많은 방송사에서 정치 평론가로 초청경쟁에 들어갔다는 말이 들린다. 한국 정치사에 정치 9단으로 불린 인물은 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그리고 김종필 국무총리를 손꼽을 수 있다. 공과를 구분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정치가 가지는 본질을 외면하지 않고 때로는 온몸으로 저항하면서도 국익과 국민을 우선시하며 협치를 이끌어 낸 분들임은 분명하다. ‘꾼’의 면모를 갖춘 정치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최근 정치권과 우리 일상에서 ‘정의를 내세운 곳에는 정의가 없고 민주를 내세운 곳에는 민주가 없다’는 말이 희화화 되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 가치인 정의와 진리 그리고 민주주의의 목표인 민주가 상실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에 빗댄 말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정치권의 책임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원칙에서 벗어나 진보와 보수라는 단일 프레임으로 정당정치의 폐단을 답습해 온 탓임이 분명하다. 검증되지 않은 지역 및 비례후보를 영입하고 비리와 도덕성이 노출되었음에도 안고 가는 몽니와 아집은 부끄럽고 유치할 뿐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의도 정치는 언제 올 지 궁금하다.

인간에 대한 예의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월요일(5월 25일) 2차 기자회견 중에 “배고프다고 밥을 사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라고 한 말을 두고, 최민희 전 국회의원은 “시민단체는 모금한 돈으로 개인이 밥을 먹자 하면 지출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공금을 개인 쌈짓돈처럼 써서는 안 된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뒷맛이 씁쓸한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나 글에서 전후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면 많은 문제들을 보다 쉽게, 잘, 때론 아름답게 해결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어떤 문제와 마주할 때 다음 3가지 질문을 하며 가치 판단을 했다고 한다. 첫째,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라는 실용적, 경제적 판단. 둘째, ‘옳은가, 그른가?’라는 윤리적, 도덕적 판단. 셋째, ‘아름다운가, 추한가?’라는 미학적 판단. 이 세 가지는 단순하지만 참으로 놀라운 질문이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의 저서 ‘천년의 수업’에 나오는 내용이다. 개인이 한평생 살면서 부딪히는 거의 모든 일에는 일차적으로 실용적, 윤리적 판단이 개입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누가 업무를 지시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일이 내게 이익이 되는가와 옳은가?’를 묻고 판단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이나 직장, 가족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옳지 않은 일을 한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이익을 주지만 옳지 않기 때문에 단호하게 거절한다. 개발독재 고도성장기에는 수많은 기업과 개인이 옳지는 않아도 조직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크게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았다. 조직을 위해 한 몸 바치는 것을 고귀한 희생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기업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나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목표 달성과 대의를 위해 개인은 희생되어도 괜찮고, 크고 작은 불법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옳지 않은 일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세계의 모습은 홀로그램이다. 모든 분야에서 부분은 더욱더 전체의 움직임에 의존하게 되고, 전체 역시 부분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홀로그램의 점 하나하나가 그것이 일부를 이루는 전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개체 하나하나에 전체의 정보가 녹아들어 오는 시대다. 권위적인 시대의 의사소통은 수평적이라기보다는 수직적이었다. 이제 지배적 의사소통 형식은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오늘의 세계는 개인의 가치와 자아실현을 중심에 두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시대다. 어떤 사회적 단위나 시스템도 자기실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개인의 지적 잠재력과 협력을 활용하지 못하면 효율이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사회운동에서도 집단 정체성만 강조하며 입 닫고 조직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라고 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사회운동 참여과정이 개인적 정체성에 부합하고 자아실현을 도울 때만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그 운동에 참여한다. 개인 중심의 규범은 부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맞물려 있다. 과거에는 부분은 전체의 기능적 부속품으로 간주되었지만, 이제는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 전체가 부분 속에서 실현되는 시대다. 윤미향 사태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없는 오만과 독선, 독단과 위선이 낳은 결과다. 정대협 같은 시민단체는 이익이라는 경제적, 실리적 관점보다는 도덕적, 윤리적 판단과 가치를 더 중시해야 한다. 오욕과 굴욕의 역사, 그 희생자들에 대한 배려가 그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 ‘배고프니 밥 사달라는 말’에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말로 반격하는 것은 비겁하다.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할머니가 한 말은 ‘모금한 돈을 할머니들을 위해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먼저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다. 궁색한 변명과 패거리의 손익을 우선시하는 몰염치한 진영 싸움이 정말 한심하고 추하다. 이제 시민단체들은 옳은 것을 넘어,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 ‘아름답지는 못해도, 최소한 추한 모습은 보이지 말라.’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이젠 얼치기를 걸러낼 때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고려인삼 중에 ‘얼치기’라는 삼이 있다. 전통 심마니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는 말이다. 임금에게 진상한 산삼 중에 약이 되는 삼은 진으로 불렀고 아무리 오래된 삼이라도 약이 되지 못하는 삼은 얼치기라 했다.이처럼 얼치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기 혹은 탐탁치 않은 사람을 말한다. 어느 한 방면에서 기술이 부족하거나 서투른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때론 풋내기, 반풍수라는 말과도 비슷하다. 반풍수는 얼치기 풍수라는 뜻이다. 됨됨이가 똑똑하지 못하고 모자라는 ‘얼간이’, 겨울에 논밭을 대충 갈아엎어서 심는 푸성귀인 ‘얼갈이’도 비슷한 말이다.전통 심마니들은 얼치기를 ‘잡마니’라고 하기도 한다. 요즘 얼치기와 잡마니가 판을 치고 있다.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친다고 했다. 모두 일을 그르치는 얼치기, 잡마니를 말한다.이런 반풍수와 선무당, 얼치기, 잡마니를 걸러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는 K-방역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은 얼치기가 아닌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된 가장 큰 요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권력의 간섭을 원천 차단한 게 코로나19 방역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낯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은 결국 얼치기 정치권력이 아닌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이때까지는 어땠나. 전문성은 둘째였다. 비전문가들이 나서서 반풍수 역할을 해왔다. 긴급재난지원금 효과로 소비심리가 4개월 만에 개선되었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총선 직전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안을 두고 경제부처 관료들이 왜 여권의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조금 나아지고 있는 소비심리 만으로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성공이라고 자평하기엔 이르다. 앞으로 돈을 쏟아부어야 할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쓸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게 뻔한 데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은 줄어든다는 점이다.그런데도 ‘곳간에 쌓아두면 썩어버리기 마련’이라는 국가재정에 관한 인식을 가진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결국 곳간을 채우는 것도 세금이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할 돈 아닌가.코로나19 사태와 총선이 이어지면서 쑥 들어가 버린 소득주도성장만 해도 그렇다. 거쳐 갔거나 재임 중인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수석에 의해 나라 경제가 좌우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이들의 힘은 막강하다. 이들이 지속해온 정책인 소득주도성장도 결국은 돈을 뿌리는 경제정책이다. 하지만 청년취업, 노인 일자리 등 그렇게 많은 돈을 뿌리고도 제대로 작동된 게 어딨나. 코로나19로 묻혔지만 경제는 파탄 직전 아니었던가.그래서 코로나19 대처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 정치권력이라는 외부의 입김보다 전문가 중심으로 진단을 하고 대책을 세우고 해결책을 실행한 결과가 방역 성공으로 나타났다. 이때까지와 달리 기본을 챙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이번 코로나19 방역에도 얼치기가 나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선무당, 반풍수들이 아닌 방역전문가들이 제자리를 찾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은 밀려나고 비전문가들, 특히 얼치기 정치권력이 나서 그르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산발적으로 지역감염이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19가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이제부터일 것이다. 이전부터 보여 온 불경기에다 코로나19 불황이 또 얼마나 오래 갈지 안갯속이기 때문이다.해답은 전문가들 손에 달려있다. 그래서 K-방역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 대처는 전문가들이 나서야 한다. 정치권력의 필요에 따라 대책이 수립되고 여기에 휘둘리게 된다면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사회적 거리두기와 오랫동안 이어진 경제활동 중단으로 경제 뿐 아니라 사회전반이 허약해진 상태다. 이제 정확한 진단과 처방, 수술은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 반풍수와 선무당, 얼치기, 잡마니를 걸러낼 때다.

코로나19 대구의 기록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에서 ‘영남권 기록문화의 본산(本山)’으로서의 기능이 자연스레 수행되고 있다. 대구는 지난 2월18일부터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를 발생시킨 불명예를 안게 됐다. 25일 0시 현재 대구의 누적 확진자는 6천874명으로, 전국 1만1천206명의 61.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 출판사와 언론사, 각종 기관 및 단체가 앞 다퉈 대구의 코로나19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기록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말이 있다. 기록문화의 가치를 나타낸 표현이다. 유네스코가 지난 1995년 세계기록유산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사업은 세계의 기록유산이 인류 모두의 소유물이므로,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이를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록유산은 기록을 담고 있는 정보, 또는 그 기록을 전하는 매개물을 포괄한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물은 모두 16건이다. 이는 국가 단위로 아시아 1위, 세계 4위다. 그 가운데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도 2017년 포함됐다.이 밖에도 대구가 기록문화의 중심지였던 근거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1601년부터 대구에 자리를 잡은 경상감영에서 ‘영영장판(嶺營藏板)’을 중심으로 ‘영영본(嶺營本)’이 간행되면서 서울과 전주를 포함한 전국 3대 출판거점의 역할이 수행됐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매개물은 책판(冊版)이 유일했던 점을 감안하면 대구가 영남권 전역에 지식과 정보를 전파한 기록문화의 본산이었던 것이다. 당시 경상감영의 관할지역을 현행 행정구역으로 살펴보면 대구·경북지역은 물론, 부산·울산·경남지역이 모두 포함된다.대구지역 출판사인 학이사는 지난 4월 코로나19 대구시민의 기록인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에 이어, 5월 들어 대구 의료진의 기록인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를 잇따라 발간했다. 일반시민 51명과 의료진 35명이 각각 필진으로 참여한 이들 기록물은 원고료 없는 재능기부로 제작됐다. 판매 수익금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위한 기금으로 기탁될 예정이다. 시민들과 의료진이 대구지역 코로나19의 상황을 생생한 역사를 남기는 기록자로 기꺼이 나선 데다, 어려운 이웃을 도움으로써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는 자발적인 행동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이들 기록물은 출간된지 각각 며칠 지나지 않아 1천부씩 찍은 1쇄(刷)가 매진돼 2쇄를 간행한데 이어, 코로나19의 충격파가 우리나라만큼이나 큰 일본에 소개되고 있다. 대구시민의 기록은 벌써 일본어판(版) 전자책(e-book)으로 제작돼 일본 독자들의 손에 들어갔으며, 대구 의료진의 기록도 곧 일본어 번역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어판 제작은 일본 도쿄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쿠온출판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와 관련, 코로나19 대구 기록 시리즈를 기획한 학이사 신중현 대표는 최근 아사히신문 및 NHK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일본 언론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신 대표는 시리즈 3탄으로 대구 언론인들의 기록도 준비 중이다.대구지역 문화단체와 문화기관에서도 코로나19 기록화 대열에 나섰다. 대구시인협회는 지난 3월 인터넷 카페에 ‘코로나19 대구경북’이란 코너를 만들어 지역 시인들의 시와 칼럼 등을 모으고 있다. 현재 작품 100여편이 실렸으며, 코로나19가 진정될 무렵에 책으로 출간된다. 대구문화재단은 지난 15일까지 대구시민을 대상으로 ‘2020 대구: 봄’이란 주제 아래 그림, 수필, 영상, 사진 등을 공모했다. 공모전에는 모두 500여건이 접수됐으며, 6월 중에 수상작품이 발표된 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전시회 등을 통해 전국에 공유될 예정이다.대구시의사회는 코로나19 사태를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백서(白書)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백서출간위원회를 구성한 대구시의사회는 회원을 대상으로 백서에 담을 동영상과 사진, 수필 등을 공모하고 있다. 백서는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시점에 발간될 예정이다. 대구시의사회는 또 회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논문 40편을 엄선한 뒤 2021년 학술지 등재를 목표로 지원금도 후원한다. 신문사와 방송국을 비롯한 지역 언론사가 대구에서 진행된 코로나19 사태의 매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땀 흘린 노고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역할이기에 본 칼럼에서는 생략한다.

집단사고가 문제해결의 적이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1961년 4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에서 망명한 1,400여 명을 훈련시켜 쿠바에 침투시켰다.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서였다. ‘피그스 만 침공 작전’이다. 미국 정부는 1960년부터 이 침공을 계획하고 자금을 제공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소련의 훈련을 받고 무장한 쿠바군에게 격퇴됐다. 불과 사흘 만에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1,100여 명이 생포됐다. 카스트로 정부는 1961년 12월 몸값으로 5,300만 달러를 받은 뒤에야 당시 사로잡은 1,100여 명을 풀어줬다. 케네디는 미군이나 그 밖의 직접적인 개입을 부정했지만 이 사건으로 미국은 쿠바에서의 주권침해행위에 대한 비판을 받게 되었고, 쿠바와 미국 간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이 사건은 결국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왜 이런 무모한 작전이 진행되었을까. 더군다나 케네디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내려진 정부의 의사결정 아닌가.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집단사고’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버드대 출신 미국 최고의 엘리트가 모인 회의에서 내려진 결론이었다. 도저히 반대의견이 제시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그는 강력한 리더가 주도하는 집단이나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는 오히려 잘못된 결론을 내릴 확률이 크다고 주장했다. 1986년 발생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도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당시 협력업체 기술자는 부품의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세계최고의 인재들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전문가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 “소수의 의견일 뿐”이라며 무시해버렸다. 조직문화의 폐쇄성, 내부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가 사고를 유발한 것이다.어빙 재니스는 위의 두 사례처럼 의견 일치를 유도하는 경향이 지나쳐 비판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집단사고라고 정의했다.일단 집단사고가 형성되고 나면 비윤리적인 결정도 이 집단 내에서는 정당화된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을 감싸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날마다 쏟아지는 의혹에도 불구하면서다. 이미 집단사고가 형성되어 있는 듯 하다. 의혹이 크든 작든, 일어날 수 있는 일부 부작용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집단의 목표나 결과를 양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기부금 사용처 논란이 작은 일인가? 회계처리 부실은 또 어떤가? 비싸게 사서 싸게 매각한 쉼터 문제 역시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사안마다 말을 바꾸고 있다. 어느 단체보다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게 시민단체이다. 몰랐다고 해서 넘어가거나 단순한 운영상의 미숙함으로 보기에는 너무 고의성이 의심되는 일들이다.사실 집단사고는 그 집단 구성원 다수 혹은 리더의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내부적으로 얽힌 관계 혹은 그 동안 함께 해온 의리로 굳게 다져져 조직 밖의 사람들을 배척하게 된다. 어빙 재니스는 그가 펴낸 ‘집단사고의 희생자들’에서 집단의 강한 응집력과 강력한 지도자가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딱 맞는 말이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한 사람에 의존해온 시민단체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폐쇄적인 이런 조직 내에서는 개인으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할 행위들조차 죄책감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문제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집단사고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윤 당선인이나 더불어민주당은 이점을 간과하고 있어 안타깝다. 민주당은 의혹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윤 당선자를 옹호하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오히려 진상규명을 앞장서서 촉구하고 나서야 할 일이다. 자칫하면 정의기억연대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애써 온 30년 활동마저 위기에 처할 수 있어서다. 기부금 운용에 대한 문제 제기를 친일프레임에 가둘 수는 없다. 불투명한 회계는 잘잘못을 따져 바로잡으면 된다. 인권운동에 앞장서온 수십년 간의 이 단체 활동성과는 지켜내야 하지 않은가. 그 지름길은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국민이 와야 외국인도 오지

오용수대구관광뷰로 대표이사코로나19가 생활의 패턴을 바꾸고 있다. 생각이나 소비패턴이 변하면서 앞으로 음식업과 관광업은 온라인, 개별·소형화와 안전, 쾌적이 중시될 것으로 보인다. 음식도 식당에 와서 먹기보다 온라인 주문으로 배달이 늘어나고, 관광도 여행사를 찾기보다 온라인 예약이 많아지고 있다. 개별화는 점점 가속화되어 혼자서 식사하는 혼밥, 혼자 하는 여행 혼여가 늘어나고, 단체여행보다 개별여행이 대세가 되었다. 또 대형 식당이나 점보 비행기보다는 적당한 규모를 좋아하고,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 대형 버스보다는 소형 밴 이용이 늘어나고 있다. 안전과 쾌적도 중요한 선택 요인이 되는데, 식당도 맛과 함께 청결, 위생 상태에 따라 평판이 달라지고, 여행도 혼잡한 곳을 피해 쾌적한 곳에서 힐링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식당과 관광시설은 혼잡도, 대기시간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관광업, 음식업은 무척 어렵다. 다행히 정부나 지자체가 특별고용지원 업종, 소상공인 특별자금 지원 대상으로 지정하고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업계 스스로도 드라이빙 스루 도시락 판매, 선 구매 할인 등 노력을 하고 있다. 수요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연명을 위한 지원금이 단비처럼 고맙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업 정상화를 도와줄 포스트 코로나 대책이 더 필요하다.특히 대구의 관광업계는 연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행사는 3월 매출이 전년 대비 94%나 감소해 거의 휴업 중이고, 숙박업도 69% 줄어 주요 호텔들도 여전히 문을 닫고 있다. 음식점도 반 토막이 났다. 그렇더라도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곧 생활방역으로 바뀌고 고객도 점차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구는 싱가포르처럼 조기 완화로 인한 재 확산을 피하기 위해 시민참여형 생활방역 체제로 가닥을 잡았다. 확진자의 63%, 최근 감염경로 미확인자 8명 중 4명이 대구에서 발생하였음을 고려하면 다소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도 부득이하다고 본다. 대구형 7대 생활수칙은 중앙재난본부의 5대 수칙에다 집회, 모임, 회식 자제하기와 마스크 착용 생활화를 추가했는데, 지난 13일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그간 대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기피 심리로 대구를 들린 후에 자가 격리를 해왔는데, 이태원 클럽이 새로운 온상으로 등장하여 겨우 기지개를 펴려던 대구 방문이 다시 움츠리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이런 와중에 어차피 지금은 대구로 안 올 테니, 추후 해외에서 대구를 찾기 시작하면 국내에서도 대구를 찾게 될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한편 제주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연장했다.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 연휴 기간에 이미 제주에는 약 20만 명이 다녀갔는데, 혹시라도 이들 중 무증상 감염자가 있을지 몰라 2주간 지켜보자는 것이다. 제주는 연휴 전부터 방문자들에게 방역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제주 관광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도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지로 인정받기 때문에 국내관광객이 몰려오고 있어 외국인의 공백을 메꿔주며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정부, 지자체, 관광전문가들이 해외는 항공노선도 중단되었고, 출입국 절차협상에도 시간이 걸리므로 당분간 국내관광에 주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관광으로 관광업계가 기운을 차리게 될 무렵이면 해외에서도 관광객이 올 수 있다. 외국인도 자기 국민들이 찾지 않는 곳을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대구는 시민들이 한마음이 되어 위기를 넘겼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 극복의 모범사례로 꼽혀, 각국의 저명 언론들이 한 수 배우려고 줄을 서고 있다. 이런 기회를 바탕으로 대구시민들이 방역 수칙을 각별히 준수하며 관광시설에도 가고, 식당도 들리는 모습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자. 그리고 대구시민의 형제자매, 연고자부터 대구로 오라고 호소하자. 그간에는 오려고 해도 말렸지만, 이제는 당당히 와달라고 부탁하자. 그들이 다녀온 뒤 주위 사람에게 알리고, 홍보도 병행하면 전국적으로 대구 살리기가 불꽃처럼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모습이 해외에도 알려지면 외국에서도 대구를 찾게 될 것이다. 지금은 철저한 생활방역과 함께 국내관광에 주력할 때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정신 필요한 때

김시욱에녹 원장코로나19는 건강에 대한 불안과 생계의 막막함을 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고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되었다. 필자 역시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작은 필기구부터 책걸상까지 소독약으로 닦다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스스로 만든 퇴근 시간에 맞춰 가족들에게 외식을 제안한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잊지 않을 정도로 해 온 가족시간이기에 이번 약속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가족들의 환호와 들뜬 소리를 들으며 먹자골목을 향하는 발길은 괜스레 가벼워진다. 오랜만에 광장을 채운 사람들의 생기와 활력 넘치는 모습은 ‘생활 속 거리두기’의 결과물로 비춰진다.하지만 이런 감정은 한순간 낭패와 절망으로 바뀌고 만다. 아들, 딸이 선호하는 식당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큰소리와 몸짓으로 들떠있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코로나19의 종식으로 승전가를 부르는 병사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마스크를 낀 우리 가족이 오히려 낯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결국, 오랜만의 기대에 찬 외식은 마트에서의 장보기로 끝나고 말았다.연일 언론은 이태원클럽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확진자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 이태원과 강남 그리고 바다 건너 제주까지 전파되는 속도와 감염 강도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전보다 빠르다. 젊은이들이 가진 육체적 장점이 오히려 경증 혹은 무증상자로 나타나는 ‘조용한 전파자’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인 및 기저질환자의 감염이 우려된다고 보건당국은 발표하고 있다. 클럽 방문자 기록의 허위와 성소수자들의 신분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겹치면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찬사를 받던 ‘투명성’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성소수자들이 두려워하는 자의가 아닌 강제적 아웃팅은 자진신고 기피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제2의 신천지 현상으로 번질까 두렵다.‘생활 속 거리두기’의 시작과 더불어 정부의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던 소상공인들의 간절한 소망은 일시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고3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우선 개학을 준비하던 교육부의 계획도 20일로 연기된 상황이다. 걱정이 앞선 학부모와 학생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택하고 있는 ‘9월 학기제’를 언급하고 있다. 우리와 동일하게 봄에 학기를 시작하는 일본의 9월 학기제 전환 찬성 여론이 56%란 점을 비춰볼 때,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이태원클럽에서 시작된 ‘젊음의 향연’은 국가 정책들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코로나라는 거대한 불길을 다잡아놓고 마지막 불씨로 인해 다시금 위급상황을 맞이하는 형국이다.지난 9일 서울시의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시작으로 경기도, 부산시, 대구시 등 각 지자체마다 긴급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유흥업소 및 다중 이용시설에 대한 운영과 방역 상황을 체크해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예측이 불가능한 부분은 젊은이들이 갖는 위기의식의 부족과 자신들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는 증상에 대한 위험성이다. 최근 2차 감염으로 부모가 확진자가 된 경우에서 이러한 부분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세대 간 갈등구조 속에서 젊은 세대에 대한 비난의 입장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법적 제재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분명 젊음은 특권이며 뜨거움과 역동성이 특징이다. 코로나19라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한 짧지 않은 기간의 인내와 고통을 잘 알기에 젊은 세대의 분출되는 해방감을 이해한다.하지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신속한 검사체계와 의료진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확진자 제로라는 결과가 단 며칠 만에 무너진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도 ‘방종에 가까운 해방감’에 의해 생활 속 거리두기의 시작점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상실감마저 불러일으킨다.개인의 권리와 사회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공익적 의무의 충돌 속에 우리의 방향성은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 서구 선진국들마저 무너지는 상황에서 우리를 지탱해 온 것은 ‘나’라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정신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사회적 요구에 총으로 대응하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내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염려하는 배려의 희생정신이었다. 전시상황과 다름없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싸워 이기려는 인내’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표현능력이 경쟁력인 시대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코로나19 용인 66번 환자의 이태원 클럽 순회 방문 이후 계속 확진자가 나오면서 온 나라가 긴장 속에서 시끄럽다. 일부 언론들은 그 확진자가 다닌 곳이 성소수자들이 즐겨 찾는 장소라고 보도했다. 그 뉴스 끝에는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댓글이 넘쳐흘렀다. 그 결과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닌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감추려고 하여 방역 당국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태원과 관련된 사람들은 신천지 신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 신도는 명단을 확보할 수 있어 모두 검사를 받게 할 수가 있었지만 유흥시설에 입장한 사람들은 개인 정보를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으면 다 찾아내기가 어렵다. 문제의 심각성이 지적되자 언론들은 성소수자 관련 내용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성소수자에 대한 견해는 개인에 따라 다르고,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 대한 편견이나 비난은 감염을 막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쟁점들이 의견 수렴과 토론의 과정에서 논점을 벗어나 옆길로 빠진다. 지난 총선 때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관련 발언은 왜 문제가 되었는가. 세월호 관련 집회 텐트에서 있었다고 주장하는 일은 선거운동에서 전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문제의 핵심은 불행한 참사로 무고한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 가족들은 아직도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총선에 나선 사람이라면 먼저 어린 영혼들의 명복을 빌면서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필요하다면 유족이 만족할 때까지 여야가 힘을 합쳐 진상 규명을 하겠다는 약속도 해야 했다. 여당 후보가 노란 리본을 하나 달면 야당은 두 개를 달고 다니며,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는 여야가 없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는 본질을 벗어난 자극적인 가십성 이야기로 낙선했을 뿐만 아니라 소속 정당의 패배에도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런 막말의 파괴적 영향을 가볍게 여긴 집단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작은 도시국가였던 고대 아테네에서는 정책의 입안과 결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했다. 그들은 의견 제시와 토론, 결론 도출 등 전 과정에 직접 관여하여 직접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이런 환경에서는 어떤 주제를 두고 청중에게 호소하며 지지를 구하는 연설이나 웅변은 중요하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 고려 없이 진실보다는 실용적 지식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소피스트들의 수사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소피스트들이 사실적 증명이 아닌 청중의 감정을 자극하여 동조하게 하는 속임수를 쓴다고 비판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그로 하여금 ‘수사학’을 쓰게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연설가는 자신의 논제와 관련된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연설가들이 자기가 하는 이야기의 사실 여부와 핵심 쟁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람끼리 모여 토론이나 논쟁을 하면 논지를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 결국은 배가 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는 다양한 문체와 화술, 은유와 같은 핵심 표현법을 이해한 후 자신의 생각과 사상, 논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고 적용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적인 중대사뿐만 아니라 개인 상호 간의 문제를 논의할 때도 핵심 논점과는 관계가 없는 부차적인 사안을 본질적인 문제처럼 다루는 우를 자주 범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말하고 글 쓰는 방식과 습관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며 논점을 벗어나는 경우는 없는가. 상대방이 잘 모르는 점을 악용하지 않는지. 자신의 지위, 지식, 세속적 평판 등을 이용해 상대에게 공포감이나 수치심, 무력감을 느끼게 하여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하지는 않는지 등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차근차근 남을 설득하는 대화의 기술과 글쓰기 능력 배양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현대는 표현의 시대다. 우리는 지금 표현 능력이 생존 수단이자 경쟁력인 시대를 살고 있다.

진짜 약한 고리는 어디인가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쟁의 가장 위대한 그리스 영웅이다. 불사신처럼 활약하던 그는 이 전쟁에서 자신의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게 된다.아킬레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스틱스 강물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발뒤꿈치를 잡고 있다 보니 이 부분만 강물에 적실 수 없었다. 완벽할 수 있었던 아킬레스에게 발뒤꿈치는 딱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것이다.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약점을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이라고 부르는 이유다.특수합금으로 만들어 튼튼한 사슬도 이를 연결하는 고리 하나가 약한 주석으로 되어있다면 이 사슬의 전체 강도는 주석의 강도와 같다. ‘가장 취약한 고리’ 하나가 전체 사슬의 강도를 결정한다.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말한 소위 ‘미니멈의 법칙(law of minimum)’이다.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되더라도 결국에는 가장 부족한 조건 하나에 맞춰 능력이 결정된다는 뜻이다.그는 농작물의 수확량에 미치는 조건도 미니멈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농작물이 잘 자라기 위해 필수적인 영양소가 골고루 잘 갖춰져도 어느 하나의 영양소가 적정수준에 모자라면 이것에 의해 농작물의 수확이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부족한 딱 하나의 원인이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그의 이론은 ‘리비히의 물통’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여러 개의 나무판을 이어 둥글게 만든 물통을 보자. 높은 나무판을 이어 나가다가 딱 하나의 나무판이 모자라는 바람에 높이가 낮은 나무판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 다른 나무판의 높이가 아무리 높아도 낮은 단 하나의 나무판자에 의해 담는 물의 양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가장 부족한 조건에 맞추어 힘이 결정된다는 의미이다.이런 ‘약한 고리’는 종종 인생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성과책임자로 임명했던 ‘낸시 킬리퍼’가 그렇다. 그는 가정부와 관련된 세금 단돈 198달러를 내지 않아 결국 낙마했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사소한 약점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고위직 인사청문회 때마다 드러나는 청렴성 때문에 주저앉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전문성이 뛰어나고 그 분야에 밝더라도 청렴성이 떨어지면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서기 어렵다.개인의 ‘약한 고리’는 곧 조직의 약한 고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탁월한 공격력으로 월드컵 결승까지 올랐어도 수비수 한 명이 약하면 우승하기는 어렵다. 스피드스케이팅의 팀 추월은 각 팀에서 가장 늦게 들어온 선수의 기록을 측정한다. 국회에 아무리 우수한 인재들이 많아도 한 두 명의 수준 미달 국회의원 때문에 전체 정치판의 수준이 낮아진다.현재 우리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도 마찬가지다. 온 국민들이 오랜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오면서 고통을 감내하며 겨우 생활 속 거리두기(생활방역)로 전환한 상태 아닌가. 이제 곧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희망을 키우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모든 국민들이 생활방역을 실천하더라도 몇 명의 ‘나 하나쯤이야’ 하는 방심이 약한 고리로 작용하고 말았다.결국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고교 3학년의 등교 일정이 20일로 연기되었다. 유치원생과 초중등생 및 고교 1, 2학년의 등교 일정 역시 순차적으로 일주일씩 미뤄지게 됐다. 아무리 의료기술과 시스템이 강점이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다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이런 약한 고리를 노린 코로나19의 공격에 가정과 사회는 속수무책으로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참에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이태원클럽과 같은 또 다른 약한 고리는 없는가. 자칫 나 하나쯤이야 라는 ‘가장 낮은 판자’ 때문에 코로나19 완전 종식이라는 물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은 아닌가.나부터 지켜내야 하는 ‘나무물통의 법칙’을 되새기고 마음을 다잡을 때다. 내가 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할 일이다.

아침논단…공공도서관의 ‘생활 속 거리두기’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문을 닫은 지 80일을 갓 넘긴 대구지역 공공도서관마다 재개관 일정을 묻는 전화가 적지 않게 걸려온다고 한다. 특히 방역당국이 지난 6일 코로나19 대응수준을 ‘생활 속 거리두기’로 표현되는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한 뒤 언제 도서관 문을 여는지 더욱 궁금한 모양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국립세종도서관이 대출서비스로 제한해 문을 열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의 재개관 시점이 언제인지 궁금해할 법도 하다.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국립도서관이 위치한 서울 또는 세종과 대구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도서관 재개관 일정을 똑같이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대구는 지난 2월18일 신천지 교인인 31번 확진자가 슈퍼전파자 역할을 하는 바람에 긴급재난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10일 0시 현재 대구의 확진자 수는 6천861명으로 전국 확진자 1만874명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생활권이 중복되는 경북에서는 전국 확진자의 13%에 해당하는 1천36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런 실정이기에 불특정 다수가 즐겨 찾는 대구지역 공공도서관의 코로나19 대응전략은 폐쇄에 선제적, 개방에 보수적인 입장을 지켜야 한다.시민들의 문의전화를 통해 살펴본 공공도서관 재개관과 관련된 주요 궁금증은 ‘언제 재개관을 하느냐’ ‘지금 도서관을 운영하느냐’ ‘지금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냐’ 등이다. 용학도서관 입장에서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질문에는 ‘재개관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가 답변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추이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 전환 3일 만에 터진 서울 이태원 클럽발(發) 집단감염처럼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공공도서관 이용자는 생활 속 거리두기 방역수칙에서도 가급적 공공시설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은퇴세대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특히 오는 13일 고3부터 시작되는 초·중·고의 등교개학을 계기로 우려되는 무증상 확진자 중심의 ‘조용한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이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 은퇴세대를 보호하기 위해 공공도서관의 재개관 시점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등교개학 이후의 감염 확산 추이를 살펴보면서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사망자의 연령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10일 기준 국내 코로나19 사망자 256명의 86%는 65세 이상이다. 또한 치명률은 고령일수록 가파르게 상승한다. 80세 이상은 25%로 확진자 4명 중 1명꼴로 사망한다. 70대도 10.83%로 높은 편이며, 60대는 2.73%다.두 번째 질문의 답은 ‘도서관은 운영 중’이다. 단지 시민들이 도서관에 들어올 수 없을 뿐이다. 현재 운영 중인 서비스는 ‘북 워크 스루(Book Walk Thru)’로 불리는 비대면 대출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 방식을 도서관 용어로 표현하면 ‘폐가제(閉架制)’ 대출방식이다. 40대 이상이면 학창시절 대부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서관 목록함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은 뒤 대출신청서에 서명, 저자명, 청구기호 등을 적어 대출창구에 제출하고 기다렸다가 책을 빌리는 방식이다. 아날로그 방식이던 그때와 현재 대출방식이 다른 점은 도서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책을 검색한 뒤 신청하는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코로나19로 도서관 문을 닫기 전까지 시민들이 이용하던 대출방식은 폐가제의 반대인 ‘개가제(開架制)’다. 이용자 누구에게나 개방된 자료실의 서가에서 편리하게 책을 고를 수 있는 방식이기에 거의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채택하고 있다. 도서관 직원 입장에서도 현재 진행 중인 폐가제 방식이 훨씬 불편하다. 온라인으로 신청된 책이 제대로 표기됐는지, 대출되지 않았는지, 서가에 제대로 꽂혀 있는지 일일이 확인한 다음에 이용자들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대출날짜와 시간까지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신청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야 한다. 노동 강도로 따지자면 개가제보다 2~3배의 힘이 드는 셈이다.세 번째 질문에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온라인으로 운영한다’가 답변이다. 온라인을 뜻하는 신조어 ‘랜선’을 활용하자면 ‘랜선 강의’와 ‘랜선 전시’가 진행되는 것이다. 랜선 강의로는 이번 주부터 매주 목요일 양서 한 권씩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전진문 교수와 만나는 책세상’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 올려진다. 이를 위해 지난주에 영상 촬영과 편집과정을 거쳤다. 코로나19로 인한 임시휴관 이전까지 단 한 차례의 결강도 없이 매주 목요일 용학도서관에서 진행된 이 강의는 시작한 지 6년 6개월만인 지난해 9월26일 300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랜선 전시로는 ‘향토자료 온라인 사진전’ 등이 열리고 있다. 2018년부터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집한 수성못과 지산·범물지구의 옛 모습이 담긴 향토자료가 한 주에 두 차례씩 모두 10회 분량으로 SNS에 업로드 되고 있다.

능굴(能屈)과 능신(能伸)을 보여 달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고개를 숙여야 할 때와 적극 나서야 할 때를 능히 구분해 행동하는 전략을 능굴능신이라고 합니다. 유비는 이에 능했습니다. 유비처럼 자신을 굽혀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각한 좌절을 겪은 후 냉정을 유지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유비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타격을 받은 후 신속하게 태도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자오위핑 저, 위즈덤하우스 간)‘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언쟁을 하지 말라’는 옛 말이 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이 왜 나온 걸까. 삼국지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삼국지는 이런 인물상을 통해, 사건들을 통해 주는 의미있는 교훈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삼국지 속의 유비는 무른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전장에서의 지휘력 또한 평범하다고 오나라 육손은 유비를 평가할 정도였다. 제갈량처럼 지략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고, 조조처럼 천재로 평가받는 것도 아니었다. 이처럼 지략도, 용맹도 부족한 유비가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뭘까.‘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를 쓴 자오위핑은 삼국지 강의의 대가로 꼽힌다. 이 책도 중국의 국영방송 CCTV가 기획한 인기 인문학 프로그램 ‘백가강단’에서 강연한 ‘삼국지’ 인물 강의의 유비 편을 엮은 것이다. 자오위핑은 유비의 성공비결을 능굴능신(能屈能伸)의 능력이라고 본다. 능굴능신은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굽히고 펼 줄 아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수많은 패배에도 위기를 이겨낸 유비만의 처세술인 셈이다.유비가 가진 ‘능굴(能屈)’의 능력은 특별했다. 그는 조조에게 패한 여포와 연합을 맺어준다. 하지만 원술과 내통한 여포로 인해 유비는 결국 서주 땅을 잃게 된다. 어느 정도 회복한 유비는 자기를 배신한 여포에게 투항이나 다름없는 화친을 맺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므로 여포와 힘을 합쳐 원술을 이기자는 것이었다. 원술이 여포를 회유했듯이 유비도 여포를 매수한 후 원술을 공격해 결국 목적을 이뤄냈다.자신을 배신했던 사람에게 복수심을 내려놓고 항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비는 장래를 위해 잠시의 굴욕을 참았다. 능굴(能屈)을 실천한 것이다.능신(能伸) 또한 유비의 철학임을 보여주는 예도 있다. 유비의 도움으로 평안을 찾은 서주(徐州)의 주인 도겸이 유비에게 서주를 넘겨주자 다른 사람을 추천하며 사양했다. 그 후 동네 유지들이 힘을 모아 유비를 설득하자 그는 그제서야 수락했다. 유비는 자리를 준다고 덥석 받지 않았다. 그릇이 되지 않은 사람이 넘치는 자리에 앉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대신 큰사람이 되면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되는 법이다. 가진 게 없었던 유비는 명성과 지명도를 쌓을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있었다.능굴과 능신의 적절한 사용, 고개를 숙여야 할 때와 적극 나서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유비의 장점이었다.영웅은 위기에서 난다. 진정한 리더는 위기일 때 드러나는 법이다. 위기에서 빠져나오려면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유비처럼 냉정하게 생각하고 신속하게 태도를 바꿀 때다.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미래통합당은 상대인 여당을 안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들이 뭘 원하는지 잘 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기자신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다. 체면과 자존심으로 뭉쳐있음을 모른다. 지금은 이 둘을 모두 내려놓을 때인 줄도 모른다.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로부터 왜 외면받고 있는지를 알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국민들 앞에 철저하게 고개를 숙일 때다. 유비로부터 유연하게 굽히고 펼 줄 아는 능굴과 능신을 배웠으면 싶다.

욕망, 가지 않은 길

윤정대변호사밤에 동네 인근을 산책하던 중 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부산시장의 성추행에 따른 시장 사퇴 뉴스에 대해 아내가 물었다.“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나이가 적지도 않는 사람이 20대 여직원을 상대로 성추행을 하다니.”아내는 이런 종류의 뉴스를 접하면 남편이 남자의 대표라도 되는 듯이 다소 비난이 담긴 질문을 하곤 한다. 이런 때는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행위들에 대해 더 비난하고 나서야 한다.“글쎄 말이야. 나도 이해가 안 돼. 그 사람이 노망이 들었나? 더구나 시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무책임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되지.”아내가 재차 물었다.“나이가 들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거꾸로 욕구가 높아지는 것 아니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행동한 것 아니야?”아내의 말에 대답한다.“연세도 있는 분이 나이어린 여직원한테 흑심을 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 더구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면 잘못 생각한 거지.”아내와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당신도 젊은 여자를 보면 그런 욕구를 느끼는 것 아니야?”“욕망은 나이와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으면 그런 욕구도 생기지 않는 것 아닐까. 욕망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 문제되기보다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문제 아닐까?”“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욕망을 가지지 않는 것이 맞는 것 아니야?”“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있고 난 후에 누군가 단톡에 서머셋 모옴의 소설 ‘레인(Rain)’에 나오는 “Desire is sad.”라는 말을 올렸더라고. 그런데 이걸 보고 또 누군가 “No desire is sad.”라는 말을 붙였고. 욕망이 슬픈 것인지, 욕망이 없는 것이 슬픈 것인지 알 수 없지만.”“서머셋 모옴이 썼다는 ‘레인’은 어떤 이야기야?”“태평양 사모아 섬 일대에서 원주민들을 상대로 아내와 함께 맹렬하게 포교활동을 벌이던 미국 선교사 이야긴데, 선교사가 젊은 백인 매춘부를 죄악에서 구하겠다며 거의 강제로 매춘부와 함께 며칠간 기도로 밤을 지새우게 되지. 그런데 오히려 선교사가 자신의 억눌린 욕망에 눈을 뜨게 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줄거리야. 매춘부는 남자들은 모두 똑같다고 외치면서 원래대로 돌아가고.”“그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데?”“글쎄, 지나치게 욕망을 억압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억압된 욕망은 남들에게는 위선이 되고 본인에게도 해롭다는 것이지.”“그렇다고 모든 욕망이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잖아?”“당연하지. 그렇지만 욕망을 억압하는 것도 문제지만 욕망을 잘못 실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더 문제지. 어떤 욕망이라도 마음속에 간직한 상태로 있었다면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실현하려는 순간 악몽이 될 수 있으니까.”“잘못된 욕망을 실현하는 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잘못된 욕망을 가지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넷플릭스 미드 중에 ‘매드 맨(MAD MAN)’이라는 드라마가 있어, ‘매드 맨’은 1960년대 뉴욕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에 위치한 광고업계 사람들을 말하는데 그 드라마의 주인공 돈 드레이퍼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지.”“어떤 말인데?”“It’s like politics, religion, or sex. Why talk about it. 아무리 이야기 해봤자 풀 수 없는 주제라거나 바뀌지 않는 것이라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종교, 정치, 섹스와 같은 것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인간의 욕망도 그 가운데 있는지 모르겠지만.”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랐다. 시인은 노란 숲 속에 난 두 갈래 길을 다 갈 수 없을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남은 길은 훗날 기억으로만 떠올려야 하는 길임을 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름답게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어느 듯 봄날 밤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침논단…자기중심적인 배려, 때론 분노를 몰고 온다

김시욱에녹 원장육십이 넘은 어느 노부부가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혼한 그날, 담당 변호사와 마지막 식사를 하는데 주문한 음식이 통닭이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주문한 음식이 오자 통닭의 날개 부위를 찢어 아내인 할머니에게 주었다. 권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변호사는 노부부가 다시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할머니는 몹시 화를 내며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부위를 묻지도 권하지도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고 남편을 비난했다. 이에 할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를 항상 양보하고 권했다며 역정을 냈다. 결국 노부부는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도 성격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를 비난하며 헤어졌다.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지난날의 배려가 자신의 이기적 생각임을 깨닫고 전화를 걸어 보지만 화가 난 할머니는 받지 않았다. 다음날 할머니 역시 자신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하려 할아버지에게 전화하지만 남편의 목소리 대신 낯선 사람으로부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최근 SNS를 통해 읽게 된 노부부의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늘 상대방의 마음을 읽기 보단 자신의 생각을 중심에 두고 타인에게 베푼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 속 할아버지의 모습이 흔한 우리들의 사랑과 배려의 방법인 것이다. 내가 아끼고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을 줄 때 상대방은 기뻐할 것이며 고마워 할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말이다.어린 시절 읽었던 이솝우화의 ‘여우와 두루미’란 이야기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른 여우와 두루미는 친구가 되기로 약속하고 여우는 두루미를 초대한다. 자신이 아끼는 버섯스프를 끓여 넓적한 접시에 담아 두루미에게 담아내는 여우의 마음은 분명 선의의 행위임이 분명하다. 자신이 정성껏 끓인 음식임을 강조하며 많이 먹길 권하는 여우의 모습에서 노부부의 이야기 속 할아버지 얼굴과 오버랩된다. 부리가 뾰족한 두루미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접시만 찍다가 분노하며 돌아간다. 할머니의 분노가 두루미의 분노로 치환되는 시점이다. 여우의 선의가 두루미에게는 수치와 조롱의 악의적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두루미는 복수를 결심한다. 훗날 두루미는 여우를 초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우는 초대에 응한다. 즐거움을 안고 가는 여우를 볼 때 지난날 두루미에게 행한 자신의 행위가 배려임을 확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호리병 속 생선튀김을 마주한 여우는 결국 먹지 못해 냄새만 맡다가 돌아가고 둘은 친구가 아닌 생면부지의 관계가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위를 함께 살아온 세월동안 아내에게 먼저 내어준 할아버지와 아끼는 버섯스프를 친구에게 내어준 여우의 배려와 선의는 어쩌면 칭찬받아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 속 행위자에게 안타까움과 심지어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중심성’과 ’합리적 차등’으로 볼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생각하지 못한 이기적 배려는 결국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되고 서로간의 능력의 차이를 깨닫지 못한 선의는 분노를 몰고 온다.긴급재난지원금 대상에 대한 범위 선정은 총선 전부터 뜨거웠던 논쟁이었다. 소득 하위 70%로 결정한 정부와 총선과정을 통해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100% 지급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여당의 불협화음은 기재부 장관의 경질론으로까지 불거지는 듯 했다. 지원금 액수의 차이는 있었으나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하겠다 던 미래통합당의 총선 후 입장변화는 과연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추경을 통해 전체 국민을 그 대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2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가정과 중소기업 및 자영업의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긴급처리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합리적 차별과 재정 집행의 우선순위가 명확히 잡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 일회성 지급으로 경제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은 부인할 수 없다. 단순한 액수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로 하는 국민 개개인 그리고 직업군의 상황을 정확히 찾아내는 일이 시급하다. 경제란 살아있는 유기체와 다르지 않기에 근본적으로 괴사되고 있는 부문을 우선적으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와 집권여당의 자기중심적 생각이 결코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배려가 될 수 없기에 범정당적 합의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긴급재난지원금이 국민을 위한 배려와 존중을 위한 정책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침논단…‘섬’에 관한 단상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바닷물이 스르르 흘러 들어와/ 나를 몇 개의 섬으로 만든다./ 가라앉혀라,/ 내게 와 죄짓지 않고 마을을 이룬 자들도/ 이유없이 뿔뿔이 떠나가거든/ 시커먼 삼각파도를 치고/ 수평선 하나 걸리지 않게 흘러가거라,/ 흘러가거라, 모든 섬에서/ 막배가 끊어진다.” 신대철 시인의 ‘무인도를 위하여’를 서가에서 찾아내 다시 읽었다. 문청 시절 이 시를 읽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시집 출간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이 시를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전혀 이해가 안 되고 느낌이 와 닿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시는 내가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매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의 심적 상태에 따라 생성, 고립, 단절, 자유, 방랑, 추방, 반자연, 자연과의 화해 등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읽을 때마다 항상 낯설면서도 친숙하다. 그러면서도 생명력이 느껴진다. 낯설기 때문에, 천의 얼굴로 다가오기 때문에 좋은 시다.21대 총선 이후 이 시를 다시 읽었다. ‘섬’ ‘가라앉혀라’ ‘뿔뿔이 떠나가거든’ ‘흘러가거라’ ‘막배가 끊어진다’ 이런 시어들이 불현듯 대구경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으며 이런 상황을 연상한다는 사실을 시인이 안 다면 몹시 당황하거나 불쾌할지 모르겠다. 어쩌겠나.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든 개입할 수가 없다.21대 총선을 두고 보면 대구경북은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고립된 섬이다. 악의적으로 이 지역을 비방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섬을 두고 온갖 험담과 악담을 퍼붓고 있다. 이 섬의 주민들 역시 황당하고 답답하다. 자신의 선택이 비난받게 되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존감의 손상과 낭패감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19와 총선을 거치면서 대구경북이라는 이 섬은 다른 지역보다 더욱 심각한 생존의 어려움까지 겪게 되었다.여러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대구경북 사람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대구 사람들은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타 지역에서 열리는 회의, 모임 등에는 자발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주최 측이 먼저 오지 말라고 연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역민들은 그런 말들을 문제 삼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심지어 가족 행사조차도 알아서 참석하지 않았다. 중소개인 사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수주한 공사를 하기 위에 타 지역에 간다고 하면 대구업체이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미안하지만 함께 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해고 통보를 받고 있다. 생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실업급여와 고용유지 지원금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 모두 거대한 자본주의라는 차가운 바다 위에 막막하게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이다. 중앙정부와 대구시는 명분싸움과 탁상공론으로 시간을 끌지 말고 이들의 긴급구조 신호에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21대 총선 이후 지역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다 심리적인 박탈감, 고립감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지역의 정재계, 학계, 언론계 등은 지역민의 심리 상태와 지역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며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과 기관이 앞장서서 “내가 찍고 싶은 사람과 정당을 찍고, 내 신념을 표현했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나, 그렇다면 대구경북보다 쏠림 현상이 더 심각한 타 지역은 왜 비난하지 않는가.”등의 말로 맞서려고 해서도 안 된다.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는 국가발전에 같은 비중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지역의 보수는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 타인의 지적과 말에 귀 기울이면서 자기 객관화 작업도 동시에 수행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고립될 것이다.섬은 건강한 생태를 유지하면서 산수와 풍광이 타 지역과는 구별되고 독특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가질 때 돋보이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게 된다. 섬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때로 섬 밖에서 섬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침논단…국회에 내는 과제, 사가독서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19세기 영국의 전성기를 이룬 빅토리아 여왕은 신하들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3년마다 1개월씩의 유급 독서 휴가였다. 이 휴가의 조건은 단순했다. 셰익스피어 작품 5편을 정독하고 독후감을 써내는 것뿐이었다. 일명 ‘셰익스피어 휴가’로 부르는 제도다.이보다 400여 년 앞선 조선시대에도 독서휴가가 있었다. 세종대왕은 신하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책을 읽을 것을 권했다. 하지만 조정의 업무 때문에 신하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세종이 고심 끝에 찾아낸 방법은 어명으로 내린 독서휴가인 사가독서(賜暇讀書)였다. 사가독서는 집현전 학자들이 조정의 업무 부담 없이 일정기간 동안 독서를 통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특별히 주는 휴가 제도이다. 이 기간 동안 경비는 나라에서 부담했다. “지금부터는 집현전에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오직 독서에 전념해 성과를 내서 내 뜻에 부응하라(세종실록 8년)” 1426년에 내린 이와 관련된 첫 어명이었다. 이후 사가독서는 영조 49년(1773년)까지 340여 년간 지속되면서 총 48차에 걸쳐서 320명이 선발되었다. 며칠 전 보았던 EBS ‘지식채널 e’ 프로그램 중 한 편의 내용이다. 밤늦은 시간에 방영하는 지식채널e는 단편적인 지식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시청자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프로그램이다. 한번씩 볼 때마다 생각에 잠기게 하는 내용이 많아 자주 찾아보게 되는 방송이다. 사가독서 어명을 받든 신하들은 조정 업무 대신 집에서 책을 읽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년이 되기도 했다. 세종 때 왕의 기대에 부응해 사가독서를 했던 인재들은 전 분야에 걸쳐 책을 편찬해냈다. 15세기 조선 시대의 문화 전성기를 꽃 피운 것이다. 넓게 보면 사가독서는 조선 시대 다양한 인재 탄생의 비결이기도 했다. 권채의 ‘향약집성방’, 남수문의 ‘고려사절요’가 이로써 태어났고 율곡 이이의 ‘동호문답’도 사가독서의 결과물이었다.세종 당시의 사가독서 제도를 현재 시대로 소환해보는 건 어떨까. 이제 막 선출된 300명의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돌아가며 이 제도를 시행해보는 거다. 어명이 아니라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명으로 말이다. 슬기로운 21대 국회생활을 독서로, 공부하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국회는 코로나19 방역 이후 경제방역의 성공을 위해 관련법을 정비하고 지원해야 할 급박한 때다. 시간이 없다.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다. 결과물을 제출하고 거기에 대한 평가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사가독서에 들어간 신하들도 책만 읽고 있지 않았다. 이들은 집에서, 때로는 산사를 오가며 자유롭게 책을 읽고 연구에 매달렸다. 그러나 읽은 책의 권수를 삼개월마다 보고서로 제출해야 했고 매달 세 차례 읽은 책과 관련된 연구물인 월과(月課)를 내야만 했다. 또 사가독서를 마칠 때는 독서의 결과물을 글로 지어 제출하도록 했다. 막대한 양의 성과물이 나왔던 것이다. 성종 때에 이르러서는 독서당(讀書堂)을 지어 이곳에서 마음껏 책을 읽도록 했다. 독서당은 한양에만 세 곳이 있었다. 동호당과 서호당, 남호당이 그곳이다. 율곡이이의 동호문답은 동호당에서 책을 읽으며 저술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국회에 이런 사가독서를 권하는 이유는 더 이상 막말국회, 동물국회, 싸우는 국회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젠 공부하는 국회, 그럼으로써 정책중심 국회, 일하는 국회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폼 잡는 자리가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꼬박꼬박 세비가 나오는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21대 국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공부하는 국회’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그나마 좋은 모습이긴 하지만 임기 초반의 반짝 공부모임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국회의원 독서휴가제’부터 입법하는 게 어떨까. 물론 조선시대 사가독서처럼 중간 중간 철저하게 과제를 제출하고 최종 성과물에 대해서는 평가도 받아야 할 것이다. 세종 때의 사가독서가 국회에서 현대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면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조금은 더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