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보궐선거, 패자들의 치졸한 자기 최면

김시욱에녹 원장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 뻗는다는 말이 있다. 결과에 대한 예측과 그 가능성을 미리 살피고 일을 처리하란 말이다. 사람사이의 일에서 이 말은 더없이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전제될 때 내 행위의 부당성마저도 용납되리라 기대하기에 그러하다. 내 편에서 이해하고 지지할 사람이기에 작은 허물로 감싸 주리란 기대는 더 큰 허황된 결과마저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팔베개 해주며 연신 토닥거려 주겠거니 하는 위로일지도 모른다.4·7보궐선거가 끝이 났다. 국민의힘의 압승이었다. 서울과 부산시장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선거에서도 국민의 힘이 낸 후보자들이 당선됐다. 절대 지지기반인 ‘대깨문’을 비롯해 친여 성향의 국민들의 결집이 전세를 역전시킬 것이라던 여권 지도부의 판단은 오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시작된 보궐 선거임에도 여권이 믿었던 것은 ‘누울 자리’가 있으리란 기대였다. 강성 지지의 ‘문빠’를 자처하는 ‘대깨문’과 친여 성향 언론인들의 지원 방송은 그들의 ‘막연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여론 발표 금지기간 동안, 한 자릿수 격차니 역전이니 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자체분석 발표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준 민심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과 자신들의 행위를 단순한 작은 허물로만 인식했음이 분명하다. 성추행 문제만이 아니라 수많은 허물들과 부당함, 불공정이 드러났음에도 국민은 내 편이라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위로의 대상이라 믿은 문제 인식의 오류는 ‘거짓말’이라는 프레임 속에 스스로 갇히는 오만함이 됐다. LH사태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와 박탈감이 팽배함에도 상대 후보를 ‘거짓말’ 프레임으로 덮으려던 안간힘은 차라리 안타까움이었다. ‘촛불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 달라’던 여권 후보의 호소는 스스로 대다수 국민을 부정한 친문 프레임에 갇힌 꼴이었다.시작부터가 잘못된 판단이었다. 누울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다리를 내어 달라는 형식이었다. 시장자리를 수개월 공석으로 만든 원죄의 여당이 후안무치의 행보를 보인 이번 보궐선거는 차기 집권마저 보장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거기간 내내 야당인 국민의힘의 태생적 근원을 공격하며 자신들의 정직함과 공정을 우월함의 무기로 삼았던 민주당의 허세는 과연 무엇인가. 조국 전 장관의 가족 문제를 기점으로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문제,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의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가족 문제까지 수없이 많은 불공정과 특혜 의혹이 불거져 나왔음에도 자신들은 ‘선’이고 국민의힘은 ‘악’의 축으로 규정한 근거는 무엇일까.‘촛불혁명’으로 세워진 정권이라는 자위적 정당성이 이들에게 오만함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선거 패배 후 위에서 나열한 사람들이 SNS를 통해 공통적으로 내비치는 속마음을 보노라면 그것은 더욱 확실해 보인다. 자신들의 잘못된 정책과 불공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자신보다 못한 국민의 힘에 패배한 것이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이 전부인 것 같다. 이러한 모습 또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최근 친여 성향 사이트 댓글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강성 지지 세력인 ‘문빠’들의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이 참으로 이채롭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줬음에도 검찰개혁, 언론개혁을 이루지 못한 민주당에 대한 분노가 투표 포기와 야권으로 전환됐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야권 지지 언론과 유튜버들의 여론 조작으로 선거가 왜곡됐으며 무능한 국민들이 그들에게 현혹됐다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은 친여 방송 매체에서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최근 여권의 김해영 전 의원은 ‘조국, 추미애, 부동산, LH사태’가 선거 패배의 원인이라고 소신 발언했다가 TBS 뉴스공장 김어준의 인신 공격성 저격을 받았다. 또한 2030세대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조국 사태와 윤석열, 추미애 갈등, 성추행에 따른 보궐 선거와 당헌을 고치고 후보자를 낸 것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자마자 강성 지지자들의 메일 폭탄과 SNS를 통한 공격은 그칠 줄 몰랐다. 선거 결과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분석 그리고 반성은 이미 그들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절대선이라는 자기 최면’은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뿐 자기 부정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지난 12일 발표된 재야인사들의 민주당 및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인적 쇄신 요구는 여권과 그 강성 지지 세력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국정 농단 사태 당시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종교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촛불혁명’의 열매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민주당과 그 지지 세력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변화하려면 두 배 더 빨리 뛰어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땅 속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겪고 원래 세계로 돌아온 일곱 살 소녀 엘리스는 6개월 후 다시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거대한 체스판의 세계인 거울 나라에서 칸과 칸 사이를 누비던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손에 이끌려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붉은 여왕의 “빨리, 더 빨리”라는 재촉에 숨이 막힐 정도로 달렸지만 이상하게도 앨리스는 출발 장소인 나무 아래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 사물이 움직이면 다른 사물도 그 만큼의 속도로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여기선 죽어라고 뛰어야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어. 만약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 이상 빨리 뛰어야 해.”영국의 작가인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후속작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이다.붉은 여왕이 주는 이 교훈은 미국의 진화학자인 베일른이 생태계의 평형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경쟁 상대에 맞서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은 도태되고 마는 현상을 설명할 때 동원되는 이야기다. 경영학에선 주로 적자생존 경쟁론을 설명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경쟁이 시장의 모든 기업을 강하게 만든다는 이론이다.변화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결국 도태된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 이론을 증명해준다. 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워크맨’을 히트시켰던 소니, 세계 필름시장을 주도하면서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던 코닥, 세계 최초로 노트북PC를 상품화한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D램을 최초로 개발한 인텔이 그랬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세계 최고라 하더라도 경쟁 기업에 뒤처져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다.하지만 붉은 여왕이 주는 교훈은 ‘이상한 거울 나라’나 생물학의 적자생존이나 경영학의 기업 경영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동화 속 붉은 여왕의 경고는 종종 현실이 돼 우리들 앞에 나타날 때가 많다. 지난해부터 폭등한 부동산 시장이 그렇다. 집 한 채를 장만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젊었을 때부터 열심히 달려왔는데 집값은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다. 심기일전, 다시 뛰어보지만 집값은 더 멀리 달아나 버렸다. 달려도 달려도 잡히지 않는다.어차피 끊임없이 변하는 게 세상 이치다. 나 역시 숨이 턱 막힐 만큼 쉬지 않고 달리지만 겨우 출발과 같은 지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내가 아무리 달려도 앞서가지 못한다는 데서 좌절감을 느낀다.범위를 조금 넓히면 대한민국의 현실을 살아나가는 청년들이 이상한 거울 나라 속 앨리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죽자 사자 뛰는데도 취업은 물론 결혼도, 내 집 마련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만 있다. 게다가 기회는 평등한 게 아니라 박탈당했고, 과정은 공정한 게 아니라 졸속이었으며, 결과마저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낀 이들의 불만이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로 표출됐다.현실이 이런데도 여야정치권은 아직 두 배 더 빨리 달려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정신 차린 여당은 뒤늦게 초심으로 돌아가 반성하고 성찰하겠다고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야당은 합당을 두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양상이다.‘제3의 물결’, ‘권력 이동’ 등 저서를 남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라는 책에서 집단별로 변화의 속도를 비교했다. 기업의 변화속도가 시속 100마일이라면 비정부조직인 NGO는 90마일, 가족은 60마일, 노동조합은 30마일, 정부는 25마일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학교가 10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이었고 법 조직의 변화속도는 고작 1마일이었다.정치조직에 변화와 혁신을 맡겨뒀다간 대한민국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붉은 여왕의 경고를 되새긴다면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하는데 정치권은 과연 그럴 준비가 돼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동화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사회의 전 조직이 지금이라도 당장 변화의 가속페달을 밟을 때다. 앨빈 토플러에게 묻는다면 분명 정치조직부터라고 할 것이다.

2021년 도서관주간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4월12일(월)부터 18일(일)까지 1주일간은 ‘도서관주간’이다. 올해로 57회를 맞았다. 한국도서관협회는 도서관의 가치와 필요성을 적극 홍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이 도서관을 왕성하게 이용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1964년 도서관주간을 정하고, 매년 같은 기간에 전국의 각종 도서관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동안 도서관주간은 1967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때문에 운영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도서관주간은 명실공히 도서관과 이용자의 축제기간이다. 이 때문에 설립 주체에 따라 국·공립·사립도서관으로, 설립 목적에 따라 공공·대학·학교·전문·특수도서관으로 구분되는 전국의 각종 도서관들은 매년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해 도서관주간을 축하하고 있다. 올해도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한 채 도서관주간 행사를 통해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지치고 힘든 국민을 위로하고 있다.제57회 도서관주간을 앞두고 공모한 공식주제와 공식표어에도 코로나 사태의 영향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공식주제는 ‘당신을 위로하는 작은 쉼표 하나, 도서관’(인천광역시 수봉도서관)이 선정됐다. 또 공식표어로는 ‘도서관, 책을 다독! 내 삶을 다독다독!’(수성구립 용학도서관)과 ‘집콕 중인 당신, 도서관이 희망이 되어 드릴게요’(박현희)가 선정됐다. 용학도서관이 제안한 표어는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어(多讀)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내 삶을 다독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다른 해의 표어와는 다른 느낌이다. 지난해 공식주제로 선정된 ‘도서관 책 한 권, 세상을 테이크아웃하다’(북구구수산도서관)는 대구가 코로나 사태의 확산지가 된 상황에서 도서관의 문을 닫고 폐가제 대출방식인 ‘북 워크 스루’를 운영하던 모습을 담아냈다. 또 2019년 선정된 ‘도서관, 어제를 담고 오늘을 보고 내일을 짓다’(달성군립도서관)에서는 평상시의 도서관 모습이 평화롭게 그려진다. 3년째 공식주제와 공식표어 선정기관으로 대구지역 구립 또는 군립도서관이 이어지는 점은 우리 지역 도서관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해석된다.전국적으로도 올해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까지 민간단체인 한국도서관협회 주도로 도서관주간이 운영됐지만, 올해부터는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국립중앙도서관이 동참해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제57회 도서관주간 기념행사를 추진하면서 대국민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입법 움직임도 긍정적이다. 도서관주간 첫날인 4월12일을 국가기념일인 ‘도서관의 날’로 정하고, 도서관주간을 정부가 운영하는 내용을 담은 도서관법 전부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됐다. 도서관주간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이다.이밖에도 도서관법 전부개정안에는 도서관의 구분을 체계화하고, 공공도서관 설립을 위한 사전절차를 도입하고, 국립 및 공립 공공도서관은 사서 및 자료 기준에 맞춰 등록할 것을 의무화하고, 공립 공공도서관에 한해 관장을 사서직으로 임명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한편 도서관주간의 유래를 살펴보면 미국의 도서관운동에서 자극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도서관협회가 1964년 발표한 도서관주간 취지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며 미국에서는 금년도 행사를 합해 7회째’라면서 ‘미국에서는 독서의 상징을 열쇠(Reading is the Key)로 표시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첫째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열쇠이며, 둘째는 보다 나은 세계로 향하는 열쇠이며, 셋째는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정한 판단을 내리게 돕는 열쇠라는 설명이다.이와 함께 취지문은 지금 적용해도 손색이 없는 도서관의 가치를 적었다. ‘도서관주간은 책과 도서관의 봉사가 개인의 일상생활에 끼치는 중요한 영향력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도서관이 그 국가의 문화와 교육발전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널리 인식시키고, 국민의 독서를 도와주는 커다란 행사’라면서 ‘국민의 생활에 있어서 도서관이란 무엇인가를 일반시민에게 이해를 촉진시키는 사회적인 운동이다’라고 강조했다.올해 도서관주간을 맞아 다짐하는 한편, 소망하는 것이 있다. 코로나19의 4차 확산이 우려되는 시점에 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개인방역을 비롯해 도서관 소독과 환기 등 방역수칙을 더욱 철저하게 지킬 것을 다짐한다. 또한 ‘도서관의 날’이 하루빨리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으로써 도서관이 시민역량 강화에 기여하는 한편, 시민 모두가 지적 자유를 향유하도록 지원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치킨게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승자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195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그리피스 천문대 인근의 절벽 위. 출발 신호와 함께 두 대의 자동차가 절벽을 향해 급출발을 한다. 차에서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이 지는 ‘치킨 런’ 게임이다. 주인공은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지만 상대는 손잡이에 옷이 걸리는 바람에 차와 함께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제임스 딘(James Dean) 주연의 1955년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한 장면이다.비슷한 내용의 게임이지만 종종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장면이 있다. 두 대의 자동차가 신호와 함께 서로를 향해 질주를 한다. 핸들을 꺾지 않아 충돌하면 둘 다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핸들을 꺾어 충돌을 피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으나 겁쟁이를 뜻하는 치킨(chicken)으로 놀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먼저 피하는 쪽이 패하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원래 치킨게임은 20세기 후반 미국과 소련의 극단적인 군비경쟁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양쪽 모두 파국에 치달을 수 있는 극단적인 경쟁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어제로 마감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유세전이 흡사 치킨게임을 보는 듯했다. 선거 때만 되면 그렇듯 이번 선거도 정책은 온데간데 없고 상대를 향한 막말과 비난만 난무했다. 마주 보며 돌진하는 양상 때문에 이번 선거 역시 어느 쪽이 이기든 후유증은 오래갈 듯하다. 서로 정당한 파트너로 상대를 보는 게 아니라 깔아뭉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사실 그동안 수많은 치킨게임을 지켜봐왔다. 극적인 효과는 연출했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오세훈-안철수 후보의 정치인생을 건 양보없는 대결도 치킨게임으로 묘사됐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이었다. 지난해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등의 의료정책을 두고는 정부와 전공의 양자가 강대강 대치로 치킨게임을 벌이기도 했다.치킨게임은 국가 간에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무역과 통상, 기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대표적이다.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전 세계 경기 침체와 관련되는 치킨게임이다.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 역시 마주 보고 돌진하는 자동차처럼 양보 없는 치킨게임 양상이다. 이 갈등이 오래 갈수록 한국은 물론 일본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발씩 양보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치킨게임이라면 진보와 보수의 극한 대립이라는 형태로 지겹도록 봐오던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보듯 마주보고 질주하는데도 양쪽 모두 핸들을 꺾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핸들을 고정해두었으니 네가 알아서 피하라는 투다. 때로는 핸들을 뽑아 던져버리는 무모한 방법을 쓰며 네가 피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모 아니면 도’를 외치며 기어이 100%의 승리만을 꿈꾼다. 이러면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된다.공멸을 피하기 위해선 정면충돌 이전에 치킨게임을 끝내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어떻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양쪽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은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다. 나는 피할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으니 상대에게 네가 핸들을 꺾고 네가 겁쟁이로 놀림을 받으라고 강요해선 안전하게 게임을 끝낼 수 없다.양쪽 모두에게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양보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신호와 함께 둘 다 동시에 핸들을 꺾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출발 전에 이미 핸들을 쇠사슬로 단단히 고정시켜 이 방법마저 쓸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충돌하더라도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차라리 심각한 부상을 입더라도 맞부딪치고 말겠다는 뜻이다. 중간에 완충지대를 만들려 애쓰는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하면서다. 애먼 국민들만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걸 왜 모르는지. 공멸의 길로 질주하는 치킨게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승자라는 사실을 왜 잊어버리고 있는지.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보면서 괜히 한숨만 늘어간다.

4·7 보선과 정치문화

이상섭경북도립대 명예교수곧잘 만났던 외국의 학자들은 “당신네 나라는 아직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역경 속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고, 선거도 제 날짜에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국민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 꽤 발전된 것처럼 보이고, 선진국인양 행동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네들은 제대로 오래된 정당 하나 없다. 또 정당의 잘못된 ‘정치행태’ 때문에 진영논리에 매몰된 유권자들의 정치문화가 문제”라고 한다. 그들은 정당과 정치발전이 곧 민주주의 발전으로 정착된 나라들이다.4·7보선의 본질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부산 두 시장이 저지른 성추행으로 태어났다. 당헌 제96조 2항의 공천금지 약속을 희한한 핑계로 바꾸고, 후보를 공천한 나쁜 정치행태를 보니 그 말에 실감이 간다. 이는 국민무시이며 한마디로 후안무치다.더욱이 혁신한다며 그 당헌을 만든 문재인 대통령마저도 “당의 선택을 존중한다”니 놀라울 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약속도 안 지키는 집권당이 국민의 삶을 지키겠다니 어불성설로 비쳐서다. “원칙 없는 승리보다 원칙 있는 패배가 더 낫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이 다시 회자됨도 같은 이유다.혹자는 이번 보선 구도를 ‘여·야 대결이 아닌 민주당 대 국민’의 한 판이며, 전대미문의 ‘성희롱 이벤트’라고 한다. 오거돈, 박원순 전 시장에 이어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도 이 대열에 합류해 어렵게 보였던 양당 간 (사실상의) 후보 단일화가 성사된 셈이다. 이를 역사적인 ‘성추행 단일화’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국제적 망신이다.선출되는 시장의 임기는 1년 남짓인데, 나랏돈 수십조 원이 들어갈 가덕도신공항과 재난지원금도 LH 사태와 민도 탓인지 약효가 별로여서 안달하는 것이 여당의 모습이다. 이번엔 부디 공약 남발보다 성추행 근절을 위한 ‘심판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통렬한 반성, 진정어린 사과와 책임자 단죄가 선결돼야 함은 상식이다. 피해 여성과 그 어머니의 한 맺힌 통곡을 외면하면 안된다.그간 민주당이 보여준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이 달린다. 이해찬의 XX자식 발언, 피해 호소인 지칭, 임종석의 ‘박원순 예찬론’, 친여 검사의 ‘꽃뱀’ 망언 침묵 등이 증거다.선관위도 그렇다. 시민단체에서 내건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캠페인 문구를 불허한 걸 보니, 인사청문회서 논란이 컸던 조해주 국민대 겸임교수를 굳이 상임위원에 임명한 저의가 바로 읽힌다.국민 알 권리의 상징인 촛불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그렇게 겁이 나면 차라리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지적이 답으로 들린다.선거 경비도 무섭다. 서울 487억 원, 부산 219억 원은 다 시민 혈세다. 국고에서 주는 선거비 보전금 130억 원도 국민들 돈이다. 여당의 성희롱으로 국민에게 세금폭탄을 안기는 결과다. 작년에 민주당이 받은 보조금 327억 원의 일부라도 반납하는 것이 염치고, 도리다. 원인 제공당의 뻔뻔함에 할 말이 없다.필자는 귀책 정당의 공천 금지, 정당과 개인의 선거비용 부담, 구상권 청구, 정당보조금 삭감을 주장해왔다. 차제에 이를 당헌 아닌 ‘입법화’로 책임을 확실히 물어야 유사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된다. 그러나 기득권 고수로 추진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이쯤 되면 방법은 단 하나 선거혁명(election revolution)뿐이다. 선진국들은 다 그랬다. 보선을 왜 하는지, 성추행 사건은 어떻게 됐는지, 후세가 짊어질 빚은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따져보고, 투표에 임해야 한다. 선거결과는 민도를 반영한다. 오로지 유권자의 몫이다.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 안타까워라

김시욱에녹 원장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반대시위가 연일 국제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미얀마 민주 수호세력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외침은 4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국가고문 아웅산 수치와 미얀마의 대통령 윈 민 및 여당 지도자들이 축출된 뒤 가택 연금됐으며 체포된 사람들만 약 2천여 명이다. 미얀마 시위대들은 각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UN에 평화유지군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강대국들의 쿠데타 규탄과 여러 국가들의 우려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언한 미얀마군은 수도 양곤과 여러 도시에서 무력 진압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 소집, 미얀마군의 행동을 규탄하고 억류된 사람들을 석방하며 민주주의를 복구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의 초안이 나왔지만, 최종적 의견 결정에 이르지 못했다. 본국에 성명 초안을 보내 검토해야 한다는 중국과 러시아 대표의 주장으로 15개국 회원국 모두의 지지라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까닭이다. 국제법과 그 실제적 효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백악관의 쿠데타 세력에 대한 경제 제재 선언이 오히려 실효성을 담보하는 수단으로 보인다. 국내 문제로 내정간섭을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라 더욱 그러하다.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지난 날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시작된 군사 정권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과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집권으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한 반대 진영과 민주 운동세력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다. 1980년 5월,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광주에서는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의 주도로 시국성토대회가 연일 개최됐다. 학생들은 광주 도심으로 진출했고, 시민들과 연합해 대규모 가두 정치집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시위가 확산되자 신군부는 공수부대 투입과 전국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전국에서 대학생들과 재야인사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피로 얼룩진 광주 금남로’로 표현되는 광주민주화 운동의 모습이었다.1985년 2·12 총선은 야당의 승리였다. 야당은 지역별 개헌추진본부 결성식을 통해 군사 독재의 퇴진과 민주헌법을 쟁취하기 위한 범국민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정국을 직선제 개헌 국면으로 몰고 갔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 당사와 연수원이 점거되고 학생들의 분신, 투신자살이 이어졌다. 1987년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과 연세대생 이한열의 최루탄 사망사건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넥타이 부대’라고 불린 직장인들과 중산층 시민들이 직접 시위 대열에 참여했으며 일부 시위대는 삭발과 혈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1987년 6월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갖고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였다. 피로 얼룩진 군사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결실이었다. 이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5·16 쿠데타 이후 32년간 지속된 군사 정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서울과 부산에서 시행되는 시장 보궐선거의 후보자와 여야 진영 모두는 그 시대의 ‘살아있는’ 증인들이다. 그 누군가는 죽어간 친구를 가슴에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행방불명자’로 등록된 누군가의 가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선택적 정의’만 살아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지만 정작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선거에서의 득표를 위한 국민이 필요할 뿐 목숨을 내 걸고 민주를 갈망하던 국민을 염두에 둔 정치인은 없어 보이는 것 지나침일까. 민주세력이라던 그들이 정치인이 되는 순간 이미 기득권층이 되고 지지기반을 위해 ‘편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다. 더더구나 현 집권여당과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다. 소통 부재의 독단과 국정 농단의 비선 실세를 끌어내리고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나가겠다는 정부가 아니었던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의 거부와 수많은 정책의 실패에도 ‘내 편’을 끝까지 안고 간 현 정부의 독선과 아집은 전 정권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주일 뒤에 치러지는 선거는 민주당 당적을 가졌던 시장들의 성추행으로 발생한 보궐선거다.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는 정당의 당헌마저 바꾸고 후보자를 내고 있는 집권당이기에 오만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과 정당 지지도가 30%이하로 떨어지고 나서야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그들에게 우리는 안타까움을 넘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선거결과를 낙관하는 집권당의 현실인식 앞에 차라리 절망감이 앞선다.

우연히 신드롬은 변명일 뿐이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우연히’ 봄이 왔다. SNS에서 온통 벚꽃 사진들로 도배된 이후에야 ‘우연히’ 봄이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봄은 우연히 온 게 아니었다. 계절의 변화에 둔감하다는 구차한 변명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최근 뉴스에서 ‘우연히’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들어오던 참이어서 봄도 뜻하지 않게 저절로 온 것으로 느꼈으리라.‘우연히 신드롬’의 시작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의 광명·시흥 3기 신도시 토지 투기 의혹에 대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놓은 발언이었다. 변 장관은 “(LH 직원들이) 정황상 개발정보를 알고 토지를 미리 구입했다기보다는 신도시 개발이 안될 걸로 알고 취득했는데, 갑자기 지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LH 직원들이 ‘우연히, 그것도 개발 될 줄도 모르고’ 땅을 샀을 뿐이라고 두둔하고 나선 것이었다.이후 우연히 신드롬은 ‘땅 샀더니 신도시 됐다’라거나 ‘LH도 신내림 직원 있었구나’ 등의 다양한 형태의 패러디를 불러왔다. 지난 5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심을 살피기 위해 강원도 춘천 중앙시장을 찾았다가 시민이 던진 달걀을 맞았다. 그러자 “달걀을 무심코 던졌는데 우연히 이낙연 대표가 맞은 것이다” 등의 패러디가 쏟아졌다.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변명하는 것은 여권의 단골 해명이기도 했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져 나온 2019년 하반기 때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김기현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울산시장 후보에 대한 울산지방경찰청(당시 청장 황운하) 비리 수사가 ‘청와대 하명’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 관계자와 제보자가 짜고 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청와대는 “(제보를 받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과 제보자는 캠핑장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사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그렇지만 우연히 만났다는 제보자가 당시 선거에서 당선된 송철호 현 시장의 핵심 측근인 송병기 현 울산 경제부시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의 본격 수사를 불러왔다.‘검언유착 의혹’ 수사 도중 한동훈 검사장을 독직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도 우연을 강조했다. 그는 “우연히 제가 한 검사장의 몸 위에 밀착된 것은 맞지만, 이는 휴대전화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은 것일 뿐 폭행이 아니다”고 말했다.야당이라고 해서 ‘우연히 신드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 나서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의 엘시티 분양권 매매 과정을 놓고 벌인 여야간 공방에서도 ‘우연히’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박 후보 측과 부동산 중개인이 우연히 만나 분양권 전매계약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것이었다.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특혜 의혹에 우연이라는 변명을 했다가 화를 키웠다. 2016년 ‘비선실세’ 최서원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의혹이 일던 당시였다. 이화여대 현장조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정씨의 입학연도인 2015학년도에 때마침 승마가 체육 특기 종목에 포함된 이유를 묻자 이화여대 측은 “우연의 일치”라고 받아쳤다. 그러나 이 말 때문에 이대생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검찰의 대대적 수사로 이어졌다.문제는 고위층의 잇따른 ‘우연히 신드롬’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빌라 아래층에 사는 여성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잡힌 남성이 “우연히 누른 도어락 비밀번호가 일치했다”고 변명한다. 해외 원정도박으로 입건된 아이돌 그룹 멤버는 “필리핀에 갔다가 우연히 도박을 하게 됐다”고 둘러친다. 가격표 바꿔치기로 고가의 와인을 상습적으로 훔친 남성은 “우연히 싼 가격표를 붙여보니 되더라”고 한다. 심지어 미성년자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하는 ‘박사방’ 이용자들마저 “우연히 보게 됐다”며 면책을 요구하고 있는 정도다.더 이상 우연을 가장한 변명이 통하는 사회가 돼서는 곤란하다. 궁색한 변명이야말로 오만이며, 구차한 변명이야말로 쓰레기임을 왜 모르는가. 더 이상 ‘우연히’라는 단어가 바이러스가 돼 코로나19처럼 이 사회를 마비시키는 걸 두고 볼 수 없지 않은가.그래서 우연히 봄이 온 줄 알았다는 변명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사람도서관’으로 지역공동체 강화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용학이네 사람책방에 사람책을 모십니다.’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에 자리한 용학도서관 주변에 내걸린 현수막의 내용이다. ‘용학이네 사람책방’은 용학도서관에서 운영되는 ‘사람도서관’의 이름이다. 사람도서관은 ‘사람책’으로 구성된 도서관이다. 사람이 책과 마찬가지로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신개념 도서관이다. 사람책은 종이책이나 전자책과 마찬가지다. 도서관 안에서 읽을 수도 있고, 도서관 밖으로 빌려가서 읽을 수도 있다는 개념이다.사람도서관의 기원을 찾아보면 2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의 사회운동가인 로니 에버겔(Ronni Abergel)이 2000년 덴마크에서 열린 한 뮤직페스티벌에서 이벤트로 시도한 것이 시초다. 이용자가 원하는 사람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인 ‘Living Library(살아있는 도서관)’가 그것이다. 당시 덴마크의 청소년폭력방지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던 그는 사람책을 통해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사람들 사이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물기 위해 사람도서관을 시도했다고 한다.에버겔은 2014년 국회도서관과 희망제작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면 그는 친구 네 명과 함께 사람도서관을 고안했다. 목적은 일상적이지 않은 종교, 성적 취향, 인종, 직업 등을 가진 사람책을 통해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람도서관은 동성애자, 무슬림, 이민자 집단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 지역사회 시민들 사이의 벽을 무너뜨림으로써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갈등을 해소해 사회통합에도 기여한다”고 설명했다.그는 199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파티에 가던 자신의 친구가 칼에 찔려 숨진 뒤 ‘스톱 더 바이올런스’란 비폭력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사소한 싸움에 휘말린 친구가 왜 그렇게 무참히 죽어야 했는지, 극단적인 범죄를 막으려면 사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 해결책으로 고안한 것이 바로, 사람도서관이다. 갈수록 다원화되는 사회가 안고 있는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와해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시민운동으로 시도한 것이다.용학이네 사람책방은 에버겔의 의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람책이 거대 담론을 거론하기보다, 내 이웃과 소통하고 경험이나 삶의 지혜를 나누도록 유도함으로써 지역공동체를 강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나누고 싶은 지혜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별, 나이, 직업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람책으로 등록할 수 있으며, 한 달 단위로 사전에 안내되는 사람책을 만나고 싶은 주민은 누구라도 매주 금요일 오후 4시30분 용학도서관을 찾으면 된다. 사람책을 직접 만나지 못한 이들은 유튜브 용학도서관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콘텐츠를 통해 사람책을 만날 수 있다. 사람책 영상은 2019년부터 제공되고 있다.유명인도 아닌 보통사람의 이야기를 누가 듣겠느냐는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대면 모임이 불가능한 때를 제외하고는 2018년 6월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매주 진행되고 있다. 이때까지 평범한 이웃 100여 명이 재능나눔 시민운동 차원에서 사람책으로 등장해 지역주민들과 소통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20~40명씩,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가 유지되는 요즘은 15명 안팎의 주민들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사례는 감사장과 자그마한 기념품뿐이지만, 대부분 사람책은 이웃과 소통하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용학이네 사람책방에 앞서, 용학도서관에서는 ‘청출어람 청어람’이란 사람도서관이 운영됐다. 2016년 3월부터 다섯 학기 동안 진행된 청출어람 청어람은 매주 한 차례 인근 중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로 및 직업 정보를 제공하는 재능나눔 사람도서관이었다. 당시 자신의 직업을 안내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자, 100여 명이 선뜻 동참했다. 매 학기 초 사람책과 직업, 일정을 인근 학교에 안내하면 학급이나 동아리 단위로 참여하기도 하고, 해당 직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도서관을 찾았다. 가끔 사람책을 지역 학교에 대출하기도 했다.사람도서관이 수년째 지속되는 힘의 근원은 대화다. 사람책이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평범하지만 가치 있는 삶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지역주민이 청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책으로 등장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웃에게 풀어내는 사람도서관을 통해 지역공동체가 강화되길 소망한다.

차라리 침묵을 지켜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5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 후 청와대에서 언론사 정치부장단 초청 만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나눈 가벼운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함께 백악관 내 로즈가든을 산책하던 박 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연설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 않느냐”며 “내일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하는데 팁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Be natural(자연스럽게 하라)”이라고 말했다며 소개했다.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견줄 만한 연설의 달인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열변을 토해내며 청중들의 피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해 지지를 끌어내는 쪽이다. 오바마의 연설은 정반대이다. 일상적인 언어를 힘들이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해나간다. 그래서인지 오바마의 연설은 영어 교재로도 인기가 높다.오바마의 연설이 특별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꼽는다. 게네랄파우제는 합주곡이나 합창곡에서 모든 악기가 일제히 쉬면서 악곡의 흐름을 갑자기 정지시키는 기법이다. 연설에 이 개념을 대입시키면 침묵에 해당한다. 침묵이 말보다 더 강력한 소통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오바마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대표적인 예가 2011년 1월12일 열렸던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 한 오바마의 연설이다. 이 사건으로 숨진 여덟 살 소녀를 언급하던 그는 연설 도중 갑자기 침묵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잠깐 동안 놀란 청중들은 곧 그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 책임감 등을 느끼기 시작했다. 침묵의 연설은 51초간 이어졌다. 어떠한 말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51초간의 침묵은 뉴욕타임스가 “2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며 찬사를 쏟아낼 정도였다.이탈리아 아동교육자이자 몬테소리 교육의 창시자인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 활동은 침묵이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을 둥글게 앉힌 후 30초, 혹은 3분 등 일정시간 침묵하게 한다. 단순히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침묵하는 동안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는 활동이다. 그런 다음 침묵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발표를 하게 한다. “침묵은 집중력을 높여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며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준다.” 마리아 몬테소리의 말이다.18세기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은 침묵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격언이다. 때에 따라선 침묵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테오프라스토스도 침묵을 옹호했다. “바보는 말을 할 줄 몰라 침묵하지만, 강자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침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사회에선 강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쏟아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과격한 말로 자기 편 끌어들이기에만 혈안일 뿐이다.그렇다고 무작정 침묵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침묵이라는 무기’를 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코르넬리아 토프는 오히려 말의 양을 조절해 침묵을 효과적인 설득의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툭툭 내뱉기만 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해야 할 말인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 잠시라도 고민해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불편해 하는데도 열혈 지지층만을 바라보고 하는 말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말이다. 나아가 침묵의 기술을 연마하라는 다그침이다.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가 코앞이다. 선거라는 게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막말 한마디에 따라 당락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당락은 침묵의 기술을 누가 더 잘 구사하느냐에 달렸다고도 볼 수 있다. ‘침묵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는 침묵해야 할 때는 단호하게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곧 자기 혀를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다음은 선거에서 당락을 가를 수도 있을 만한 탈무드의 가르침이다.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라.

큐레이션의 확장, ‘도서관 밖 도서관’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점심 메뉴까지도 큐레이팅하는 세상이 됐다고 한다. 원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쓰이던 큐레이팅(curating)이란 용어의 쓰임새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것이다. 바야흐로 ‘큐레이션(curation)의 시대’가 됐다. 몇 해 전에는 ‘선택은 어떻게 세상의 가치를 창조하게 되었는가’란 부제를 단 ‘큐레이셔니즘’이란 책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큐레이션은 창조의 영역인 저작물의 원형을 훼손시키지 않은 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제2의 창조’로 평가받고 있다.큐레이션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전시기획자를 의미하는 큐레이터(curator)에서 파생된 용어다.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큐레이션은 ‘정보나 콘텐츠를 선택적으로 골라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제공하는 행위’를 포괄하는 단어로 두루 사용된다. 그리고 큐레이터는 ‘보살피다’, ‘관리하다’는 뜻의 라틴어 ‘쿠라(cur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자료를 수집, 보존, 관리, 전시, 조사 및 이와 관련되는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지칭했다. 또한 큐레이팅은 큐레이션에다 큐레이터의 활동까지 포함하는 의미다.특히 지식정보사회를 지나 지능정보사회를 맞으면서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생산되는 오늘날 큐레이션의 영역과 기능은 확대되고 있다. 확대 재생산이 용이한 디지털 방식으로 가공된 정보를 수집 및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선별된 양질의 정보에 대한 수요가 커진다. 큐레이션은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큐레이터의 역량에 따라 지식정보의 부가가치는 무궁무진하게 확대될 수 있다. 다양한 자료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조합해내는 파워블로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거대한 집단지성을 형성한 위키피디아, 스마트폰에서 유용한 정보를 모아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등이 큐레이션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직접 취재해 제작하지 않더라도 뉴스를 다양한 형태로 재가공해서 보여주는 ‘뉴스 큐레이팅’, 뮤직 페스티벌에서 음악을 고르는 것을 ‘뮤직 큐레이팅’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급 수제 치즈나 전채요리를 고르는 사람을 큐레이터라고 하기도 한다.지식정보를 바탕으로 탄생된 콘텐츠로 큐레이션의 대상을 삼아보면 가치는 더욱 커진다. 정보의 디지털화로 불거진 정보 과잉 상황을 전제로 삼는 ‘콘텐츠 큐레이션’은 이용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정보의 노출량을 늘리고, 선택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정보의 생산과 전달, 공유 등을 목적으로 하는 영역에서는 활용 범위가 넓다. 그 기반에는 빅데이터 분석이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콘텐츠 큐레이션의 활용 범주를 소셜 미디어, 뉴스 제공 서비스, 전자상거래 분야로 크게 나누기도 한다.인류가 생산한 지식정보의 보고인 도서관에서도 요즘 큐레이션이란 용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책을 대상으로 삼는 ‘북 큐레이션’이 대표적이다. 책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을 위해 사서가 주제를 선정해 독자와 책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다. 사서가 제공하는 추천도서와 유사하지만, 이용자들이 손쉽게 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기법을 활용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북 큐레이션을 담당하는 사서의 역량에 따라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책, DVD, 뉴스기사, 학술논문 등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북 큐레이션은 단순히 자료실에서 진행되는 추천도서 전시에 그치지 않는다. 도서관이 책을 수집하는 과정에서부터 큐레이션이 이뤄지고 있다. 전자출판의 등장으로 책을 출간하는 일이 이전보다 쉬워지면서 책의 생산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났기 때문에 선택의 과정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책이 귀한 시절에도 사서들은 양서(良書)만을 큐레이션했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책 등은 절대 도서관에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큐레이션이란 용어가 생겨나기 전부터 도서관에서는 큐레이팅이 이뤄졌으며, 사서는 지식정보 큐레이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셈이다.지식과 정보를 담는 매체가 책을 뛰어넘으면서 도서관이 큐레이팅해야 할 대상은 한층 많아졌다. 도서관에서 보유한 콘텐츠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콘텐츠도 사서가 큐레이팅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또한 사서들은 지식정보 큐레이팅을 통해 박물관, 미술관, 야영장, 공원, 학교, 자원재활용센터 등 다른 오프라인 공간에 존재하는 콘텐츠도 이용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를 두고 수성구립도서관에서는 도서관이 제공하는 지식정보의 범위를 확장한다는 의미로 ‘도서관 밖 도서관’이란 개념을 설정,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도서관 밖 도서관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도서관 운영의 확장성을 구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도서관이란 제한된 공간, 제한된 예산, 제한된 인력의 한계를 극복해 이용자에게 필요한 지식정보와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한 방책인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이 지식정보 소비자에서 지식정보 생산자로 역할을 확대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도서관 안팎에서 수집된 다양한 지식정보의 개방과 공유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용자에게 제공할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아이디어를 자신의 힘으로 직접 구현하는 창조활동을 의미하는 메이커 운동 차원에서도 지식정보 큐레이션 또는 콘텐츠 큐레이션이 도서관에 제격이다. 그 결과가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시 또는 수필 쓰기 등 글쓰기로, 디지털 방식으로는 요즘 대세인 1인 미디어 시대에 걸맞게 영상 만들기가 된다. 도서관이 지식정보 및 콘텐츠를 창조하는 메이커 스페이스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은 온전히 도서관 이용자인 시민에게,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도록 설계돼야 한다. 도서관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민역량 강화이기 때문이다.

마적(馬賊)같은 그들,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김시욱에녹 원장지천으로 꽃이 피는 계절이다.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이 지난한 겨울을 잊게 한다. 계절이 갖는 특성이듯 하루가 다르게 날씨 변덕이 따르지만 그래도 꽃들은 어김없이 핀다. 예년의 기억이라면 새로움과 희망을 나누었을 시기임에 분명하다.하지만 이 봄은 마음에 들어올 따스함이 더디기만 하다. 코로나19 백신접종이 시작됐지만 아직도 확진자 숫자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2여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19 사태로 소상공인의 삶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된 LH신도시 투기는 국민들의 피폐해진 마음에 더 큰 절망감으로 다가온다. 내부 자료를 이용한 LH직원 및 사회지도층과 권력층이 개입된 투기란 점에서 일반 국민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다. ‘촛불혁명’을 통해 전직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을 교도소로 보내고 출범한 현 정권에서 생긴 일이라 더더욱 그 상실감은 크다 하겠다.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대통령의 말은 희화화된 지 오래다. 임기 내내 적폐청산에 치중해 왔건만 새로운 적폐세력이 그 자리를 채우는 듯해 보인다. 누구를 위한 공정이었으며 누구를 위한 정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지지 세력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선택적’ 공정과 정의는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흔히 우리는 마적(馬賊)이라고 하면 촌락을 습격하고 약탈행위를 자행하는 도적떼로 오해한다. 청나라 말기부터 시작된 마적은 보갑제도 등 중국 촌락공동체의 민중자위조직에 근간을 둔 무장집단이다. 각 집단은 적게는 7인을 단위로, 많게는 수백 명이 넘는 조직원으로 구성돼 있었다. 지방의 탐관오리와 지방군벌 등의 착취와 약탈행위로부터 지역 주민을 지키기 위한 취지로 결성된 조직이었다. 심지어 부패한 정부를 대신해 외적에 저항해 싸웠으며 영웅적이고 의협적인 행동으로 지역민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마적의 내부규율은 매우 엄격했으며 자기들의 향리 및 세력범위 안에서는 주민에게 조금도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취지는 퇴색돼 ‘장쩌린’과 같은 부패한 군벌세력으로 성장한 조직도 나왔다. 더불어 지역적 자위조직이라는 한계적 상황은 다른 지역을 침입할 경우, 여느 도적떼와 다름없는 약탈과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만주사변을 겪으면서 마적과 도적떼는 구별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고 일본에 의해 토벌됐다. 평상시 상업에 종사하며 단순히 자신들의 근거지와 지역 주민을 지킨다는 명분 자체가 어쩌면 ‘선택적’ 정의였는지 모른다. 태생적 한계로 인해 전국적 규모로 발전하지 못하고 외적에 의해 토벌된 점은 자못 안타깝다.서울과 부산시장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 터진 LH투기 사건으로 정치권은 연일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LH 전·현직 직원과 친인척 그리고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전수조사, 특검, 국정조사권에 이르기까지 여야의 치열한 대치는 보궐선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심지어 후보자의 친인척과 현직 국회의원의 비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채우고 당사자는 정치적 음해라며 부인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선거를 앞 둔 마타도어(흑색선전)는 ‘아니면 말고’식의 우리 정치의 저급한 모습이었기에 어느 것이 진실인지 국민들은 혼란에 빠지고 있다. 단순히 자신의 지역과 주거지를 위해 영웅이 되고자 한 마적들의 모습처럼 득표 전략을 염두에 둔 진영논리는 국민 전체를 위한 대의를 잊은 지 오래인 것 같다. 고질적인 부동산 투기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는 뒤로하고 오직 ‘네 탓’으로 떠넘기기 바쁜 모습이 아닐 수 없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를 통해 “부동산 적폐를 청산한다면, 우리나라가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정부는 “부정부패와 불공정을 혁파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으며 권력 적폐 청산을 시작으로 갑질 근절과 채용 비리 등 생활 적폐를 일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적폐’와 ‘공정’이 현 정권의 그림 속 ‘상징화’된 단어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최선이란 단어가 낯설기만 한 것은 또 다른 원인자를 찾고자 하는 ‘내로남불’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미국마저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아니던가. 지나간 적폐를 도려내기 위해선 칼을 쥔 자들의 가슴과 양심이 깨끗하고 뜨거워야 함은 자명하다. 과감히 썩어가는 자신의 양심을 도려내고 대의를 바라볼 때 시장선거나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것이다.역사는 늘 미래를 보여준다. 자신과 지역적 소영웅주의에 물든 마적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정치에서 나타날까 두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구 수제맥주의 방향은 스토리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는? 현실적으로는 남이 사주는 맥주가 가장 맛있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죄수들이 감옥에서 마시는 맥주가 아닐까 싶다.영화 주인공인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슨)은 누명을 쓰고 쇼생크 주립 교도소에 갇힌다. 은행원이었던 앤디는 악질 간수의 상속 관련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 대가로 맥주를 받아낸다. 수감자들은 건물 옥상에 앉아 즐겁게 맥주를 마신다. 동료 수감자들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앤디는 알 듯 모를 듯 얼굴 가득 묘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에서 관찰자로 나오는 동료 수감자인 레드(모건 프리먼)는 이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치 우리는 자유인처럼 햇빛을 받으며 맥주를 마셨다.”자유가 없는 곳에서 마시는 맥주, 그 한 모금의 해방감은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일 수밖에 없겠다. 영화 속에서 수감자들이 마신 맥주는 스트로흐 보헤미안(Stroh’s Bohemian)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생산되는 필스너 스타일의 맥주였다. 1984년 경영난으로 양조장이 문을 닫았다가 2016년부터 다시 생산을 시작한 맥주다.수제맥주를 마시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맥주마다 품고 있는 이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접할 때이다. 스토리는 브랜드일 수도 있고, 라벨 디자인일 수도, 재료일 수도, 양조과정일 수도 있다. 어쨌든 스토리는 맛있는 맥주를 더 특별나게 해주는 마법인 것만은 분명하다.최근에는 수입맥주 뿐 아니라 국산 수제맥주도 이런 다양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맛도 개성도 강하다. 최근에 흥미를 끄는 스토리 중 하나는 단연 ‘콜라보레이션(협업)’이다. 맥주에서 콜라보레이션은 각기 다른 양조장에 속한 양조사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요즘 국내 수제맥주업계에선 이업종간 콜라보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 한 편의점 업체가 밀가루 브랜드와 협업으로 ‘곰표 밀맥주’를 선보인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다시 구두약 회사 말표와 협업을 해서 ‘말표 흑맥주’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흑맥주는 출시 3일 만에 첫 생산물량인 캔 25만개가 완판될 정도였다.소비자들이 콜라보 맥주를 찾는 이유는 뭘까. 재미와 호기심이었다. 낯선 조합, 이색적인 만남에 신선함을 느낀 것이다. 물론 품질도 한 몫 했다. 한 때의 유행이겠지 생각하고 사마셨다가 괜찮은 맛에 “너 마셔봤니?”라며 주변에 권하게 된 것이다.지난해 11월 출시한 ‘유동골뱅이맥주’가 돌풍을 일으키자 또 다른 편의점 업체는 롯데제과의 껌 ‘쥬시후레쉬’와 협업으로 껌 원액을 그대로 담은 ‘쥬시후레쉬맥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협업은 다양한 형태를 보이며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때론 유명 연예인들과 콜라보하기도 하고, 유명카페의 커피를 넣은 맥주를 만들어내는 콜라보를 하기도 한다.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고속 성장 중이다. 매출규모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미 지난해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1천억 원을 돌파했다. 전체 맥주 시장에서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비중도 3%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수제맥주 제조 면허를 받은 업체도 지난해 154개로 늘었다. 그 중에선 충주에서 생산한 사과로 애플사이다를 만드는 ‘댄싱사이더’처럼 지역의 특색을 잘 녹아낸 양조장들도 많다.수제맥주산업 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 대구 역시 다양한 협업을 통한 스토리 개발을 참조할 만하다. 서문시장과 칠성시장 야시장도 대구수제맥주와 협업이 가능한 공간이다. 다양한 먹거리와 시장에서 자체 개발한 수제맥주까지 즐길 수 있는 경기도 오산의 오색시장 ‘야맥길장’처럼 말이다. 이미 지난해 수제맥주산업발전협의회에서 대구를 대표하는 수제맥주 3종을 개발해놓았으니 첫 단추는 꿴 셈이다.문제는 대구의 수제맥주양조장 숫자이다. 현재처럼 2개의 양조장으로는 양조장끼리의 협업도, 이업종간 협업도 쉽지 않다. 미국 수제맥주의 사례처럼 대구의 양조장과 대구출신 유명 야구선수의 콜라보로 탄생한 페일에일, 대구 양조장과 대구 커피업체의 콜라보로 만든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기대한다면 양조장 수부터 늘리는데 힘을 모을 일이다.

흥하는 곳과 망하는 곳

오용수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살다보면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자주 본다. 변혁기에는 특히 그렇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온라인 비즈니스가 흥하고, 기존의 대면 업체들이 뒤로 밀렸다. 카카오, 네이버가 소통, 검색 1위를 기반으로 유통, 금융에도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쿠팡은 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하는 로켓배송으로 단숨에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되는 쾌거를 거뒀다. 배달의 민족은 배달업체에서 소비자와 공급자를 이어주는 물류의 중심으로 발전했다.일본도 비슷하다. 아사히맥주가 슈퍼드라이 인기에만 도취돼 정체하는 사이, 집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음료로 반격한 기린에게 뒤쳐졌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온라인뱅킹 추세를 읽고 지점 축소에 나선 반면 미쓰비시UFO은행은 머뭇거리다가 선두가 뒤바꿔졌다.학교나 관광도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초·중·고·대학에서 줌(Zoom) 수업을 하고, 누구나 유튜브로 명 강의를 듣는다, 출생률 저하, 정원미달로 지방대학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학력파괴 온라인 학습법 보편화로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할 것 같다. 또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으로 각광받던 회의, 전시도 줌으로 어느 정도 대체하게 됐다. 코로나가 끝나도 미팅 등 가벼운 출장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여행총량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휴양, 취미, 식도락 여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도 2월 말부터 시작해 50만 명이 맞았다. 백신 접종자가 늘어나면 조만간 해외여행도 풀릴 것 같다. 다보스포럼은 전자 백신접종증명서나 백신여권 발급으로 국경통과가 쉬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베트남은 외국의 백신 접종자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고, 중국은 접종결과를 QR코드에 담은 국제여행 건강증명서를 발급한다고 했다. 우리도 디지털 접종증명서 발급을 검토 중이다. 최근 미국의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이 “이제 거의 다 끝났다”며 팬데믹 끝이 가까워지고, 머지않아 여행·외출이 더 자유롭게 될 것이라 밝혔다.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백신을 맞아 집단면역이 갖춰져야 여행도 본격화된다. 그런데 백신 접종 후 사망자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데 백신과의 인과성이 없다고만 한다. 아스트라제네카(AZ)를 주로 접종하는 우리나라 부작용 수치가 화이자 등을 맞은 외국보다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65세 이상 고령층에도 AZ 접종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들의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대통령, 지자체 단체장 등 지도층 인사들이 곧바로 접종을 하고 우려를 해소시켜주면 좋겠다.한편 사회적 거리두기가 총 3단계에서 5단계로 바뀌더니 다시 4단계가 됐다. 자주 바뀌다보니 제한·허용범위도 혼란스럽다. 그런데 단체여행은 이번에도 1단계부터 자제, 2단계에서 9인 이상금지다. 국제여행에서 단체여행은 15명 이상을 말하고, 패키지여행은 2명 이상부터 단체로 취급한다. 9명이란 기준도 모호할 뿐더러 단체여행이 반드시 개별여행보다 위험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여행사 직원들이 버스, 식당, 숙소를 점검하고 고객들에게 안전수칙을 수시로 알려주기 때문에 단체여행이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 여행을 보다 따뜻하게 보길 권한다.코로나를 겪으며 여행사들의 부침(浮沈)도 심하다. 온라인여행사(OTA), 국내여행 운영사, 전국 단위 여행사는 흥하고, 오프라인 여행사, 국제여행 취급사, 지역 여행사는 존폐기로에 서있다. 최근 국제 OTA 익스피디아는 올해도 짧고 자주하는 충동여행이 대세를 이루고, 맛난 음식이 여행목적 1위라고 밝혔다. 이런 흐름을 읽은 경북은 최근 야놀자, 여기어때 등 OTA와 스마트여행협회 회원사들과 함께 협약을 맺었다. 이들은 경북으로 관광객도 보내주고, 지역 주도형 관광 소재 개발에도 소비자 입장에서 자문을 하기로 했다. 한편 2년 전만 하더라도 탑승객 성장률이 전국 최고를 달리던 대구공항이 한산하다. 하루빨리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항공노선을 재개하고, 수용태세도 점검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또 국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대구가 자랑하는 명소에다 미나리, 치킨, 빵집 등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홍보에 온 힘을 기울이자.흥하고 망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지금 사자성어 놀음 할 때인가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네 글자는 힘이 있다. 사자성어(四字成語) 이야기다. 교훈을 줄 뿐 아니라 유래를 담고 있어 풍자와 비유도 풍부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자성어에 공감하는 것은 이들을 끌어들이는 함축된 깊은 뜻이 있어서다. 옛 이야기에서 나온 이런 종류의 사자성어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의 형태로 주로 중국 고전에서 나온 내용이 많다.촌철살인의 압축이 있어서일까. 정치인들이 특히 사자성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정치 환경은 수시로 변하기 마련. 여기에 자신이 처한 특별한 상황을 적절하게 녹여내어 설명하는 데에는 사자성어만한 게 없어서일 것이다.막말수준이거나 억지스러운 정치인들의 사자성어를 빼면 지난해 6월 21대 전반기 입법부 수장에 오른 박병석 신임 국회의장의 사자성어 인용을 눈여겨볼 만하다. 박 의장은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언급했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라는 말로 그는 “국민은 정치인이라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21대 국회는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국회가 국민 신뢰를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지난해 7월 대구시 경제부시장에 취임한 홍의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줄탁동시(啐啄同時)’를 강조했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함께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당 의원이었던 그가 야당 시장과 어떻게 호흡을 맞추며 협치를 해야 할 지를 고민한 흔적이었다.사자성어는 주로 연말연초에 쏟아져 나와 뉴스를 장식한다. 이때쯤이면 정치권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대기업에서도 통과의례처럼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그 중에서도 매년 연말 발표하는 교수신문 선정 사자성어는 권위가 있어 눈여겨 볼만하다. 교수신문은 ‘2020년 한국 사회를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꼽았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으로 사자성어 대부분이 중국 고전이나 고사에 기반을 둔 것인데 비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자로 옮긴 신조어다. 아시타비와 함께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의 ‘후안무치(厚颜無耻)’도 함께 언급됐다. 2020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두 사자성어는 서로 연관돼 있다. 곱씹어볼 만한 단어다.연말연초가 한참 지났는데 사자성어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 3일 사임을 앞두고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말 외에 ‘부패완판(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것)’이라는 사자성어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추진을 비난하는 작심발언을 했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투기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사자성어를 언급했다. 홍 부총리는 7일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의 마음가짐으로 부동산정책 3대 실천사항을 올곧게 이행해 나가겠다”고 했다. 백척간두는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함을 말한다.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나아간다는 말로 그만큼 노력하겠다는 말일 게다.홍 부총리는 연설문에도 사자성어를 많이 넣기로 유명하다. 지난 2월에는 여당이 제시한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쓴 ‘지지지지(知止止止)’란 사자성어가 화제가 됐다. ‘그침을 알아 그칠 곳에서 그친다’는 뜻으로 자신의 거취를 깊게 고민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어쨌든 아시타비, 검수완박처럼 사자성어에도 신조어가 등장하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사자성어의 뜻이 아닐 것이다. 백척간두에 서있는 게 부동산뿐이겠는가. 코로나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은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른지’에 신경 쓸 겨를마저도 없을 터. 그래도, 그들이 아무리 사자성어 놀음을 하며 너와 나를 편 가르는 부추김을 하더라도 거기에 부화뇌동 하는 것만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평생학습과 공공도서관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현대인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J. K. 갈브레이스가 저술한 ‘불확실성의 시대’란 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 속도가 빠른 지능정보사회를 사는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2년째 겪고 있는데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속화된 디지털 대전환 때문에 펼쳐질 미래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다.요즘처럼 경험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가 없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면서 삶을 영위했다. 경험은 이미 검증됐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책이었다. 특히 반복된 업무를 처리하는 영역에서는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젊은 세대 앞에서 과거의 사례를 내세우면 ‘라떼’란 비아냥을 들으면서 ‘꼰대’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이 때문에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보충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사 이래 고등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세대라는 우리나라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를 살펴보면 대학에서 공부한 밑천으로 은퇴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날로그 세대인 그들이 은퇴 이후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지 않으면 곤란한 처지가 됐다.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이 절실한 대목이다.서울대 교육학연구소에서 펴낸 교육학용어사전에 따르면 평생학습은 태어나서부터 생명을 마칠 때까지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과 활동을 뜻한다. 평생학습과 비슷한 용어로 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이 있다. 평생교육은 교육이 학교교육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학교교육이 교육의 핵심도 표준도 아니라는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데 학교 중심의 현대교육은 교육의 주체가 교사, 학교, 국가 또는 사회 등 교육자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학습자인 시민은 교육의 대상으로만 인식됐다.평생학습론은 교육자 본위의 기존 교육학을 비판하고, 학습자 본위의 새로운 교육학을 추구하는 대안적 이론이다. 개개인이 주체적 학습자로서 평생에 걸친 학습생활을 주체적으로 관리하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바람직한 교육제도라고 주장하는 관점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활동에 있어서 학습자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학습자의 입장에서 평생에 걸친 교육을 다루려는 시각이어서 시민주권시대에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평생학습에 대한 인식도 확장되고 있다. 대구의 경우 올 초 광역지방자치단체로는 마지막으로 독립법인 형태의 평생교육 전문기관이 출범하면서 ‘평생학습’이란 키워드를 채택했다. 2015년부터 대구경북연구원에 위탁해 운영하던 대구평생교육진흥원을 재단법인으로 새 출발하면서 ‘대구평생학습진흥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에 앞서 지역 구·군에서는 평생학습관을 개설했으며, 기존 문화센터의 이름을 평생학습센터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공도서관도 평생학습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소통되고 공유되는 공간인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지역주민은 어린이집에도 다니지 않는 어린이부터 90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다.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 청소년, 청년이 제외되는 것도 아니다. 명실공히 지역주민 모두가 자기 주도적으로 평생학습을 하는 공간이다. 특히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찾고 나누는 곳이다.이같은 역할에 부합하기 위해 공공도서관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시민들이 도서관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바꾸려고 애쓴다. 도서관에서는 언제나 정숙해야 한다는 무미건조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북카페를 마련하고, 잔잔한 음악을 틀고, 강의공간 또는 독서공간 등 공간의 특성에 맞게끔 적절한 소음도 허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잠재적 이용자를 포함한 지역주민을 위한 맞춤형 자료 구입과 평생학습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다. 특히 비대면 시대에 걸맞는 영상콘텐츠 제작 및 제공도 요즘의 공공도서관이 진행하는 일이다.‘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변해야 산다’는 구호가 절실하게 느끼지는 요즘이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요구하는 변화에 대한 태도다.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대비하는 사람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이끄는 선도자가 될 것이지만, 변화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면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