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무덤(言塚)과 말에 얽힌 이야기

경북 예천의 한대마을 어귀에는 고분 형태의 대형무덤이 하나 있다. 말(馬)이 아닌 말(言)을 묻은 무덤 즉, 언총(言塚)이고 유래는 오래됐다. 4~5백년 전 이 마을에는 성씨가 다른 여러 문중이 모여 살았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문중 간의 싸움이 바람 잘 날 없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마을 어른들이 그 원인과 처방책을 찾던 중, 지나가던 과객이 일러 준 대로 말싸움의 발단이 되는 온갖 말들을 사발에 담아 무덤을 만든 후에야 마을이 평온해졌다는 이야기이다. 무덤 주변엔 ‘말은 적을수록 좋다. 말이 말을 만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과 관련된 격언들이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그간 말을 참 많이 하면서 살았다. ‘S’전자와 공기업, 국회와 대학에 있을 때도 맡은바 업무 특성상 말을 많이 해야만 했다. 이 가운데 6년간 지구당위원장을 맡았을 때가 피크였다. 눈만 뜨면 사람을 만나 밤늦도록 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할 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정치는 허업인데도 죽기 살기로 올인 했으니 참 어리석었다. 그러나 명분은 옳았기에 아프지만 후회는 없다. 학교로 되돌아와서도 그랬다. 강의는 그 흔한 PPT 한번 사용하지 않고 칠판에 제목만 적어 놓고 강의를 했다. 이해를 도우려고 오대양 육대주를 한 학기에 몇 번씩 오고 가면서 쉽게 설명한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쉬지 않고 100여 분씩 했으니 말이다. 옛말에 말 잘하면 변호사고, 말 많으면 약장수라고 했다. 말은 못 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분명 낫다. 그러나 말을 너무 잘하고 많이 하다 보면 왠지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 말로서 말을 합리화시키려고 기교를 부리며 우기는 말장난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 바꾸기나 ‘내로남불’도, 김태우와 신재민을 향해 여과 없이 쏟아내는 청와대와 여당의 인격 살인적인 언행도 그렇게 보인다. 요상한 게 말이다. 말은 처음에는 그냥 말이었다. 그러나 입에서 나와 상대방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큰일을 낸다. 말 한마디가 닫힌 남의 마음을 열게도, 기쁘게도 슬프게도, 사랑하게도 미워하게도 한다. 법정에 불려나온 용의자가 억울한 혐의를 벗는가 하면, 죄가 드러나 심판을 받기도 하고, 사기꾼의 말에 속아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 말에서 기인한다. 말이 갖는 위력은 내 운명의 결정권을 송두리째 맡기는 ‘선거’라는 행위에서 극에 달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말을 마구 쏟아낸다. 그 말에 속아 권력을 위임했더니 정책이란 미명하에 세금을 멋대로 쓰면서, 턱도 없는 자들을 엄청난 자리에 앉히니 정책은 실패하고, 혈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니 세금폭탄이 뒤따른다. 말로는 국민이 먼저라면서 하는 짓은 정반대다. 무능한 권력은 오만까지 더해져 모든 걸 거덜 내곤 추락해 소멸한다. 혹세무민에 역천자망이란 말이 있다.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믿은 것은 그의 말뿐이었기에 자승자박인 셈이다. 말은 사람에게 물과 공기와 같다. 어떤 사람을 평가하고 관계 지속 여부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성공과 실패도 그렇다. 혹자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백 마디보다 상대방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말 한마디를 남기며 살라”고 한다. 이처럼 말은 개인과 가정은 물론이고 국가의 흥망도 결정짓는 마력을 지녔기에 냉철히 잘 듣고 결정하고 책임도 져야 한다. 특히 ‘공짜공약’이다. 무심코 뱉어놓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이 없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거나 천 냥을 벌지는 못해도 천 냥을 빚지는 막말은 삼가야겠다. 이제 와 이 나이에 깨닫는다. 이상섭 객원 논설위원 전 경북도립대교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국민의 주권 행사는 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선거는 직접, 비밀, 보통, 평등 등 선거의 4대 원칙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 원칙에 충실한 것만으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그 외에도 적합한 선거제도의 채택과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국민의 수준, 인구의 규모, 국토의 크기, 권력구조나 상ㆍ하원제와 같은 정치 환경 등이 어떠냐에 따라 몸에 맞는 옷이 달라진다. 최근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벤치마킹하자는 시도인 듯하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조금 난해 하지만 합리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전체 의석수를 정당별 득표수 비례로 각 정당에 배정한 다음, 각 정당에 배정된 의석수에서 정당별 지역구 당선자수를 뺀 나머지를 그 정당의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어떤 지역구에 배정된 의석수보다 지역구 당선자수가 더 많이 나와 초과의석이 발생할 경우, 의석을 보정하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매력 포인트다. 독일식 선거제도의 최대 장점은 보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당별 득표수 비례로 각 정당에 의석을 배분할 수 있어 민의를 충실히 반영한다는 점이다. 둘째 사표가 방지된다는 점이다. 소수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기 용이한 까닭에 다당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선거제도는 일종의 혼합형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는 득표수 비례로 정당별로 배분된다.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다. 비례대표수가 적어 정당득표수와 실제의석수의 불비례성이 크다. 독일 제도의 벤치마킹이 논의되는 이유다. 독일은 의원내각제 연방국가로 정치 환경, 국민 의식, 역사적 배경 등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대통령제하에서 선진국 문턱에 웅크리고 있는, 불같은 우리나라와 오래된 선진국으로 뼛속까지 합리적인 국민성을 가진 내각제 국가인, 느긋한 독일은 정치적 환경이 많이 다르다. 양원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대통령제와 어울리는 양당제를 유도하는 선거제도가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느리게 갈 시기인지도 선택해야 할 문제다. 대표를 선출하는 문제와 정당을 선택하는 문제를 별개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인물 중심으로 대표를 뽑아 포괄적 위임을 한다면 의석을 꼭 정당별 득표수 비례성에 맞춰야 하는지 의문이다. 의석수가 왜 정당별 득표수에 비례성을 가져야 하는가? 소수표도 대표 선출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소수표를 사표로 인식하는 시각도 한번 따져 볼 일이다. 소수표를 존중한다면 석패율제가 오히려 나을 수 있다. 모든 의정활동이 정당 강령이나 당론에 따라 심의하고 의결하는 것은 아니다. 당론에 따라 하는 의정활동과 개인 소신에 맡겨지는 의정활동을 나누어 보고, 그 비율에 맞추어 비례대표 의석과 지역구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만하다. 지방의원의 경우 정당의 당론과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비례대표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지방의원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비례대표 후보자 선정이 합리적이지 못하면 비례대표제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비례대표를 없애자는 소수의견도 들린다. 합리적 운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는 ‘개 발의 편자’다. 선거제도 개혁은 디테일로 들어가면 더욱 복잡하다.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정당들의 타협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해결하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관련 분야 학자들과 실무자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개혁 시안을 마련한 다음, 그 시안의 수용여부를 정치적 타협에 의하여 결정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의석수를 늘리는 데 대한 국민의 반발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극히 예민한 사안을 정치권에서 당사자들끼리 미주알고주알 논의하는 방법은 매우 소모적이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예민한 사안에 대해 정치적 개입을 우회하는 것도 고도의 정치다.

기해년 새해에 바란다

희망찬 기해(己亥) 아침이 밝았다. 기해년은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헤아리면 36번째고, ‘기’는 오행에서 ‘황’으로 ‘노란 돼지띠의 해’며 60년 만이다. 역술인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서 비교적 안정적 재물이 들어온다’며 재물 운세를 점친다.새해 정국 기상도는 그리 밝지 않다는 예보고 보면 격동의 한 해가 될 것 같다. 한반도 평화 이슈와 민생·경제 현안, 총선 준비와 선거구제 문제, 정계 개편 가능성까지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를 뒤흔들 매개 변수가 즐비해서다.교수신문은 지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을 꼽았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며 필자도 즐겨 쓰는 말이다. 논어 제8편 태백(泰佰)에 나오는 고사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가 말한 “선비는 마음가짐이 넓고 너그러워야 하며 의지가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선비의 소임과 의무에서 유래되었다.설문에 참여한 교수들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개혁 과제를 중단 없이 마무리해 달라는 당부와 구태의연한 행태를 답습하는 여당과 정부 관료들의 무능과 안일한 행태에 대한 지적을 함께 포함한 듯 보인다.어느덧 문재인 정부도 3년 차로 접어들었다. 신년 국정 기조의 키워드는 ‘체감과 성과’ 두 가지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과연 될까 하는 미심쩍은 분위기다. 지난해 설익은 선심성 정책의 남발로 꽤 혼란스러웠고, 먹고 살기가 매우 힘들었다는 이유에서다. 일국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정책’이 좌우한다.그중에서도 ‘안보와 분배’가 핵심이다. 안보는 죽느냐 사느냐의 핵이며, 평화는 중하고 갈망해도 튼튼한 안보위에서만 가능하다. 평양을 향해 신호등도 무시한 채 너무 과속으로 달려가는 것 같다. 아무리 급해도 동맹국들과 긴밀한 협조 속에서 차분한 접근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혹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우(愚)나 범하지나 않을까 걱정해서다.분배는 경제다. 경제가 파탄의 늪에 빠진다면 이는 무용지물이다. 경제는 말만 하면 나오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다. 파이 키울 생각보단 나누기에만 급급해한다는 지적들이다. 막 쓰고 퍼주다 보면 곡간의 양식은 금방 동이 난다. 잘살던 남미국가가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가 몰락, 국민들 신음이 왠지 가깝게 들린다. 공짜를 좋아하면 결국은 이 꼴이 되기 때문이다.제반 여건도 녹록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의 기반인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은 역대 최저치로 낮아지고 있어 문 대통령께서도 구랍 10일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 중반을 기록할 거라는 한국은행의 전망이고, 고용률 회복도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속수무책 간다니 공멸할까 우려된다.최저임금도 그렇다. 올해부터는 시급 8천350원으로 10.9%의 상승에다 ‘주휴수당’까지 겹쳐 소상공인들은 아우성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고용수요 하락을 부르는 첫 요인이다. 빈부 격차를 줄이려고 최저임금을 올렸더니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 가난한 사람만 더 가난해졌고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일자리가 분배다. 고용도 양극화 수준도 11년 만에 최악이란 수치는 통계청이 발표한 처참한 성적표다. 이쯤 되면 정책 실패다.우리의 미래를 가장 어둡게 하는 ‘저출산 문제’가 올해에도 온 국민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이에 대한 심각성을 필자가 본지(지난해 8월 16일 자)를 통해 지적한 바 있고, 나름의 대책을 피력하였기에 지면상 부연치 않겠다. 최우선 정책과제다.경제정책이 ‘이념에서 효율’로 먼저 바뀌어야 한다. 적폐 청산도 재벌개혁도 좋으나 ‘정확한 기준과 범위’로 기업 분위기가 더 이상 위축되지 않아야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 세금 폭탄도 무섭고 질린다. 다 정책 탓이다. 적재적소의 탕평인사, 정부를 포획한 듯 설치는 불법 노조 행위의 근절 등도 새해 소망이다. 그래야 국운이 번성한다.부디 국민 전체가 하나 되어 안락정토(安樂淨土-마음이 편안하고, 즐겁고, 청정한 세상)를 구현해 내는 원년이 되길 기원해 본다. 상념(想念)에 잠기는 정초다.

지부상소의 심정으로 감히 묻는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국가 권력을 소유함과 동시에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함을 의미한다. 민주는 국민주권, 주권재민이다. ‘민주(民主)’를 ‘국民이 나라의 主인’이라는 세속적인 말로 풀어볼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은 단순하나 현실 정치에서 이를 제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주권자가 한사람인 경우는 비교적 간단하다. 주권자 혼자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주권자가 다수로 되면 민주주의 실현은 만만찮다. 주권자들의 의견이 같지 않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그다지 많지 않다면 광장에 모여 토론하고 의논하여 합의를 도출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국가처럼 인구가 수천만에서 수십억에 이르면 민주주의 실현은 매우 어렵다. 국민이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도 없을뿐더러 국민이 각각 자기 의견을 표현하기조차 기술적으로 힘들다. 5천만 명이 각각 1분씩 의견을 말하면 청취하는 데만 약 95년이 걸린다. 인터넷으로 동시 청취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파악하고 정리하여 ‘합리적 선택’을 이끌어낸다는 일은 쉽지 않다. AI의 발달로 장래 가능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의사결정을 그렇게 처리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절차적 정당성도 따져볼 문제다. 직접민주주의의 난점을 해결하고자 대안으로 채택된 것이 간접민주주의, 즉 대의민주주의다. 통치자나 대표자를 선출하여 그에게 일정한 권리를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이다. 물론 주권자로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까지 위임하는 것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차선책은 되는 셈이다. 대의민주주의가 만사형통은 아니다. 통치자나 대표자를 선출하거나 대표자들이 모여 의견을 취합할 경우, 모두 합의로 처리할 수는 없다. 토론하고 설득하더라도 끝까지 대립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그럴 경우 대의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한다.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안된 방법이 다수결원리다. 다수결은 완벽하진 않지만 최후의 보루 정도는 된다. 흔히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전가의 보도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다수결은 궁여지책이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여야 한다. 토론과 설득을 통해서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정수다. 다수결은 원칙적 방법으로 결론이 도출되지 않을 경우에 차선책으로 채택되는 것이다. 토론이나 의논도 없이 바로 표결에 부치는 방법은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실현 도구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토론과 합의라는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후조건도 수용되어져야 한다. 소수자의 존중이 그것이다. 합의가 되지 않아 비록 표결에 의하여 다수결로 처리되었다 하더라도, 소수자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지 않아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소수자도 엄연한 주권자인 사실을 다수자는 항상 유념해야 한다. 다른 사안에서 다수자가 언제든지 소수자로 그 처지가 뒤바뀔 수 있다. 다수자가 소수자를 존중해주는 정신이 살아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였다고 국가가 승리자들만의 전리품인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선택이 채택되지 않은 국민도 주인으로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는 것이다. 선출된 통치자나 대표자는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의 위임도 동시에 받은 것이다. 그 누구를 찍었든지, 그 어떤 의견을 표했든지,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국가는 직접, 비밀, 평등, 보통선거를 철저히 보장한다. 투표결과로 인해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신념을 담보해줌으로써 주권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4대 선거원칙이 형식적으로 지켜진다고 민주주의가 잘 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 실질적인 정신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지역별 개표상황에 따라 그 지역에 사는 국민을 차별하는 행태는 비밀선거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는 민주주의 이념을 유린하는 폭거다. 특정 지역 출향 인사까지 뭉뚱그려 한통속으로 차별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민주주의에 대한 패악질이다. 지지율이 저조한 지역을 통째로 차별하는 상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각 개인의 투표 내용도 모르면서 어떻게 개별적 차별이 가능한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끝까지 미련을 버릴 수 없는 주인의 입장에서 벼랑 끝에 선 절박한 심정으로 그 불가사의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감히 묻는다. 이제 또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부상소(持斧上疏)를 하는 비장한 각오로 그 그릇됨을 감히 책한다.오철환칼럼니스트

송년서정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황금 개띠로 상징되던 무술년 새해를 맞은 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덧없는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지는 연말이다. 이처럼 세월은 소리 없이 흘러가건만 정작 우리는 지나간 날에 대한 무슨 애환이 그렇게도 많은지 아쉬움에 들뜬 분위기다. 한 해가 저물 때마다 늘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수식어를 즐겨 쓴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른 것 같다. 설 전후부터 국내외를 달군 김여정과 현송월의 방남과 여자컬링 “영미∼”로 더 많이 기억되는 평창 동계올림픽, 해빙무드, 남북·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방선거, 소득주도성장과 빈부격차의 심화,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악화, 김정은의 답방 여부가 망년까지 뜨거웠던 걸 보면 다정다난(多政多難)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정치의 한해였던 것 같다. 어쨌든 세월은 쏜살같다.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첫 시간 새내기들에게 “세월은 유수 같고, 대학 시절은 총알처럼 스쳐 가니 후회 없는 학창시절이 되어야 한다”고 매번 강조하였다. 정녕 본인은 그렇게 살지 못해놓고 말이다.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회갑을 지나 정년까지 맞았다. 그 후부터는 세월에 가속이 붙었는지 세월은 들러야 할 곳을 들르지도 않고 그냥 못 본 채 지나감을 느끼는 송년이다. 이제 와 요즘에 생각하니 늘 해온 그 말의 참뜻이 더욱 진하게 밀려온다. 그래서 더 황량하다. 좀 이른 고교동기 송년 모임에 갔다. 매번 집 근처에서 하기에 편하다. 두 달마다 만나는데 많을 때는 한 20명 정도인데 15명이 나왔다. 언제부턴가 나오는 숫자도 분위기도 예년과 달라져 간다. 술은 취하도록 마시고 2차는 기본이었는데 요즘은 소주 3병도 남긴다. 소위 술꾼들도 서로 눈치만 본다. 말수도 전과 다르다. 늦게 출가한 딸이 마흔에 기다리던 첫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 경제가 어려워서 힘들다는 푸념, 세상 돌아가는 얘기와 걱정, 간혹 던지는 ‘아재 개그’ 정도다. 그래도 만나는 식당은 차츰 고급화되어가고 시간도 잘 지키며, 앞으로는 점심에 만나자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쉬는 친구가 많아진다는 증거다. 참 부담 없는 친구들이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한 친구가 보여준 통계 수치의 설명이다. 지금 나이가 67세라면 7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54%며, 80세까지는 30%, 85세는 15%, 90세는 5%라는데 놀랐다. 모두 100세 시대라는데 친구 10명 중에서 3명만 80살까지 산다고 생각하니 왠지 뭉클해진다. 이제 10년 남짓 남은 셈이다. 노래방도 생략하고 내년에 보자며 일찍 파했다. 집으로 가는데 기분이 좀 그렇다. 별로 이룬 것도 없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는 허전함이다. 그러려니 하자. 아쉬움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자. ‘살아 있음을 매사에 감사하라’는 말의 의미가 떠오른다. 올해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내년을 맞이할 수 있음에도 감사하자. 새해엔 또 다른 희망이 있기에 감사하자. 설령 그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해본다.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시각이지만 혹 감사해야 할 사람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연말이기를 바란다. 필자가 주관한 성주중·고동문회 송년회의 초대장도 ‘희망을 나누는 송년회’로 명하여 청했고 어제 성황리에 마쳤다. 회장 인사도 후회나 걱정보다는 새해를 맞는 기쁨과 희망을 다 함께 노래하자고 했다. 환골탈태하는 기해년을 염원해서다. 양재천 칼바람이 매우 차다. 올해는 이십여 년간 몸담았던 대학에서 정년 퇴임도 하고 첫 손자 재범이도 태어났다. 이만하면 축복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올 송년에 그려지는 감정인 송년 서정은 ‘희망’으로 대미를 마무리하련다. 정초 3일 자 본보 아침논단에 ‘무술년에는 충신이 그립다’를 필두로 졸필을 쭉 게재하였다. 독자 여러분께 올해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지난 한 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성탄의 축복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이상섭객원 논설위원전 경북도립대교수

나는 공산주의가 싫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본원적이고 총체적이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가설은 증명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가 없는 명제다. 결코 미덕이라고 할 수 없는 이기심이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온 본질이라는 점은 역설적이고 아이러니컬하다. 이기심에 터 잡은 경쟁과 투쟁 그리고 적자생존은 인간을 가장 경쟁력 있는 존재로 올려놓았다. 이기심이 인도하는 경로는 가장 효율적인 길이다. 현대 학문의 총아인 경제학도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가정 위에서 탄생했다. 경제학의 성과가 실재한다면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가정은 거짓이 아니다. 경제학이 존재하기 이전에도 경제적 사고나 행동이 있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인류의 경제 발전은 그 만큼 우회했다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이 경제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과학적으로 연구ㆍ발전시킴에 따라 세계경제는 전례 없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경제학이 이끈 화려한 성과는 경제학의 전제조건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귀납적으로 증명한다. 이기적인 인간에게 이상향은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노 플레이스(No Place)’다. 무릉도원이든 샹그릴라든, 이상향은 현실 속에선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존재해봐야 이상향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 똑같이 잘 사는 그런 세상에 잘 맞지 않는 존재다. 남이 절대적으로 못 살길 원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남이 자기보다 잘 살길 원하진 않는다. 비록 모두 똑같이 잘사는 세상이 있다하더라도 거기 사는 인간이 모두 행복해할 것 같진 않다. 극락이나 천당은 착한 영혼들이 사는 곳일망정,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을 감안해본다면, 인간이 살기에 좋은 곳만은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는 모두 다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념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모든 재산을 공유하고, 내 것 네 것 없이 같이 나눠 쓰자는 말이다. 이는 이기심보다 이타심을 전제로 하는 이념이기 때문에 인간 본성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공산사회는 발전적 진화를 이끌어낼 유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지만 발전과 친하지 않는 사회다. 아직은 좀 더 발전해야 할 때다. 차별성과 비교우위를 지향하며 성취감과 행복을 즐기는 이기적 존재에겐 공산사회는 너무 따분하고 무료하다. 능력 있는 사람과 무능한 사람이 똑같은 성과를 나누는 사회는 어쩌면 불평등하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냉전시대를 마감하면서 벌써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동경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피로가 누적된 까닭일 것이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오히려 부러워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경쟁을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일 것이다. 법치주의가 흔들리고, 반칙이 횡행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모두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한다. 혁신적 포용사회, 말만 조금 바꾸었을 뿐 속내는 이상향을 만들자는 뜻인 것 같다. 비인간적인 갑질과 불공정한 게임에 질린 사람들을 쉽게 유혹할 수 있는 잠재력은 있다. 치열한 무한경쟁에 찌들어 피곤해하는 사람들에게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주기도 한다. 경쟁에 밀린 사람들과 각종 부조리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솔깃해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충분히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그렇다고 갈 수 없는 이상향을 제시하면서 그곳으로 가자고 인도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선진사회가 수백 년 동안 검증해온 결과를 무시하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한 반동이자 배신이다. 현재의 문제는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론이 잘못된 데서 유래한다. 고질적인 폐단을 혁신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안전판을 꼼꼼히 챙기는 처방이 현실적인 체제 내에서 나와야 한다. 해법은 디테일에 있다. 법치를 바로 세우고 반칙을 응징해야 한다.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나는 돈 버는 일엔 비교적 젬병이다. 자본주의의 낙오자로서 사회안전망 밖에서 구조신호를 보내야 할 사람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부를 똑같이 나눈다면 아마 이득이 될 확률이 더 클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공산주의가 싫다. 이기심 많은 인간이 선택해야할 체제는 공산주의 계획경제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라고 믿기 때문이다.오철환칼럼니스트

탈원전 국가의 ‘원전 세일즈’를 보면서

탈 원전을 선언한 국가의 대통령이 펼친 원전 세일즈에 대해 방문목적도 평가도 크게 엇갈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설명하면서 “한국은 현재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에 있으며, 지난 40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며 특히 “UAE 바라키 원전의 경우 사막인 악조건 속에서도 추가비용 없이 공기(工期)를 완벽하게 맞췄다”며 ‘기술성과 경제성’도 강조하였다. 이에 바비시 총리는 “UAE 바라키 원전사업의 성공사례와 한국원전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잘 알고 있다”며 “양 정상은 체코의 원전사업과 긴밀히 협의해나가기로 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외에 원전을 판매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비윤리적 외교”며 “동네에서 냉면 한 그릇을 팔아도 지켜야 할 상도의가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한 보수언론은 “자기 자식에겐 불량품이니 먹지 말라고 하면서 다른 집 아이에게는 그걸 파는 악덕업자를 연상케 한다”고 비난했고, 탈원전 논란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청와대에선 ‘에너지 전환정책과 탈원전’은 별개라고 하였고, 외교부에선 대통령의 ‘에너지 세일즈 외교’는 성과가 있었다지만 왠지 설득력이 약해 보이고 어리둥절하다. 대통령의 외교활동을 놓고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원전을 줄이면서도 수출은 할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의 거듭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의원시절인 2014년 7월 고리원자력에서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하였고, 취임 한 달 후인 작년 6월에는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탈핵 시대로 가겠다”며 신규원전 건설 백지화, 기존 원전수명 연장포기, 연장 가동 중인 월성1호기 폐쇄를 선언하였다. 탈원전 발표였다. 그래놓고 다른 나라에 가서는 우리 원전이 안전하고 가격도 싸니 사달라는 식이다. 외교적 수사라 치더라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체코 국명의 표기실수도 상대국 대통령의 부재중 방문도 외교적 결례며, 외교부의 민낯으로 비친다. 더 이상 대통령의 의중만 살피는 졸속정책은 금물이다. 신고리 5, 6호기의 공사중단으로 인한 엄청난 갈등과 손실이 그 교훈이다. 세계적인 흐름은 친원전 회귀다.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의존도를 낮추었던 일본을 비롯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 국가가 속속 복귀하였고, 자원부국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도 원전건설에 열심이다. 현재 탈원전 선언국은 우리와 독일·스위스·벨기에·대만 정도다. 대만은 지난달 실시한 국민투표로 2025년까지 가동을 중단시킨 탈원전 정책을 폐기시켰다. 이제 순수한 탈원전 국가는 독일뿐이다. 벨기에는 원자력비중(49.9%)이 세계 2위며 스위스는 4위(33.4%)로 매우 높다.(세계원자력협회, 2017) 독일의 결정은 20년 넘게 국론을 모았고, 스위스도 33년 동안 국민투표를 무려 5차례나 실시하였다. 그게 맞다. 정부발표대로 2029년까지 10기를 폐쇄하고, 2023년까지 신고리 6호기를 끝으로 더 이상 짓지 않는다면 60년간 쌓아온 원전 인프라는 물거품이 되고, 무분별한 태양광과 풍력발전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 될 거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들린다. 탈원전에 탈민심이다. 원자력에 의한 전기공급에 찬성(71.6%)하는 사람이 반대(26%)보다 약 3배나 많다. (한국리서치)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공론화 후 국민투표가 대세고, 정의당마저도 지난 대선공약이었다. 그동안 환경단체의 위세에 눌러 숨죽이던 전공교수(57개교 210명)와 원자력학회는 물론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도 같은 목소리다. 급기야 야당에선 에너지 정책전환 때는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민투표 실시를 내용으로 한 ‘에너지법 개정 법률안’까지 발의하였다. 정부가 답할 차례다. 이대로 가면 2030년까지 전력비용이 146조가 더 든다니 전력 대란이 올까 심히 걱정된다. 탈원전 논란, 아무래도 국민투표가 길인 것 같다.이상섭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전 경북도립대교수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은 없다. 태생적 위험부담이다. 이러한 운명적 상황에 대비하는 이성적인 헤징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보험이 바로 그것이다. 보험은 예상치 못한 죽음을 어느 정도 부보한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소득 없는 노후를 위하여 보험은 연금이란 새로운 영역으로 진화했다. 보험은 사적 영역에서 번성해 왔으나, 연금은 복지국가 등장과 함께 공적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가족과 효사상이 예로부터 연금제도를 대신해 왔다. 그러나 서구화에 따른 핵가족과 개인주의는 전통적인 노후생활을 위협하였다. 국가가 연금제도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배경이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은 국민연금을 복지의 핵심으로 올려놓았다. 국민연금이 비록 공적 제도라 하더라도 원초적으로 사적보험과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총체적으로, 유출 현금흐름의 현재가치 총화와 유입 현금흐름의 현재가치 총화가 일치하게끔 설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이 버틸 수 없다. 평균수명, 인구추이, 할인율, 연금지급액 등이 외생적 독립변수로 투입되면, 그에 따라 국민에게 부과될 금액이 종속적으로 확정된다. 기금운용수익은 플러스알파다. 이러한 연금 설계가 믿을 만하다면 국민연금은 독립적으로 지속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속변수는 정치권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객관적인 영역이다. 소득대체율(연금지급액), 최저지급액과 최고지급액, 연금개시연령 등 국민연금의 목표치는 여론을 수렴하여 정치권이 결정할 사항이다. 국민연금 시스템의 기타 일반적 변수는 통계학, 경제학, 수학 등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예측ㆍ추정ㆍ산출된다. 개개인의 납부금액과 연금지급액은 최종적으로 소득과 연금납부 기간 등에 따라 공정하게 정해진다. 이 절차는 실무적인 성격을 띤다. 물론 연금납부액이 국민들에게 만만찮은 부담이 될 것은 명확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받는 만큼 내야 한다. 소득이 있을 때 노후를 대비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국가는 국민의 노후를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 국민은 현재의 부담을 당연히 싫어한다. 그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감정적인 반응이다. 그렇지만 국가는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때 신뢰관계가 전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연금 개편이란 말만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입을 내미는 이유는 신뢰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연금을 보전하는 사태가 오고, 자식세대가 결국 바가지를 쓰게 된다는 불평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돈을 버는 곳이 아니고, 재물이 끝없이 나오는 화수분도 아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강제로 돈을 거둬서 필요한 곳에 쓰는 공권력이다. 거두지 않으면 쓸 돈이 없다.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 이것은 간단한 산수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받는 만큼, 정직하게, 그 부담을 지워야 한다. 지금 할 일을 미루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둑이 터지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친 정책은 허구다. 국민연금의 문제점을 안다면 지금 바로 고쳐야 한다. 국민연금 변수는 시기에 관계없이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정기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의 합의로 목표치를 변경할 수 있다. 연금수령액을 상향조정하거나 인구추이, 평균수명 등이 불리하게 변하면 부과금액을 올려야 한다. 부과금액이 적으면 차후에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태를 막아야 한다. 정치권은 목표치나 골격에 해당하는 부분만 정하고, 각종 변수는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 정치권은 표에 민감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의 유혹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뻔히 알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 국민에게 부담을 주어 표를 잃고 싶은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할 건 꼭 해야 한다. 정치권은 얼마를 받아야 노후에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면 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얼마만큼 부담시켜야하는지는 가치중립적인 시스템이 공정하게 수행한다. 누구도 욕먹을 이유가 없다. 각자의 범주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거버넌스가 모두에게 이로운 최선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지금 국민연금을 믿고 늙어가기엔 받을 돈이 너무 적다. 더 받아야 한다.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 부담되더라도 소득이 있을 때 강제로라도 더 받아두는 것이 공권력이 할 일이다. 국민연금을 뜨거운 감자라 한다. 뜨겁다고 버릴 순 없다.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다.오철환칼럼니스트

국회 인사청문회 무용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강력한 반대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였다. 여·야 원내대표가 청와대에 모여 대통령과 ‘소통과 협치’를 선언한 지 불과 4일 만이다. 이번에는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 지난번 유은혜 교육부 장관 임명 강행으로 인사청문회에 대한 무용론(無用論)과 청문회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이번이 문 대통령 취임 1년 6개월 만에 10번째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4년 6개월간 강행한 숫자와 맞먹는다.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급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이효성 방통위원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양승동 KBS 사장, 이석태ㆍ이은애 헌법재판관, 유은혜 교육부 장관에 이어 조명래 장관이다. 이쯤 되면 ‘국회패싱’, ‘무용지물’, ‘하나마나한’ 청문회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묻지마 임명을 계속할 바에야 무엇 때문에 청문회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이같이 회의론이 번진 건 “인사청문회에서 많이 시달린 사람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한 대통령의 발언 탓이다. 인사행정을 오랫동안 강의해 온 필자로선 임명권자의 인사관이 심히 우려된다. ‘내 사람을 내가 심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느냐’는 식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유은혜 장관의 청문회 과정을 한번 보자. 딸의 위장전입, 피감기관 건물입주, 후원자 지방의원 공천, 지방의원의 사무실 월세 대납, 남편재산 축소신고 등 각종 나쁜 의혹은 총 망라되었으며, 임명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7만 건을 넘었다. 이에 질세라 조명래 장관도 자녀 위장전입, 부동산 다운계약서, 증여세 탈루, 연구비 미신고, 4대강 사업에 대한 편향된 비판과 문 대통령 옹호 글, 두 살짜리 손자의 2천만 원가량 예ㆍ적금보유 등 마치 비리백화점 같다. 한술 더 떠 일국의 헌법을 다루는 재판관에 임명한 이은애 후보자는 8차례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헌재의 권위도 무시한 채 임명해 버렸다. 그간 청와대에서 성범죄와 음주운전을 추가한 7대 비리와 12개 항목의 인사검증 기준에 위배 안 되는 인물을 발굴하겠다고 한 약속은 헛구호였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법에는 문제가 없다. 국회청문 대상인 고위공직 63개 자리 가운데 국회동의는 23개며, 나머지 국무위원을 비롯한 고위직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는 국회에선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하고, 정부에서는 인사권 행사를 신중하게 함을 목적으로 2000년 6월23일, 인사청문회법이 제정, 도입됐다. 18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 모양이다. 미국은 우리와는 180도 다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6천 명의 관리 중 상원인준을 받아야 하는 공직이 무려 1천200명이나 된다. 인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받는 정치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가혹하고도 철저히 검증한다. 물론 지명 전에 행정부에서 먼저 탈탈 털어 문제가 될 만한 후보는 아예 걸러내 버린다. 그다음에 백악관 인사국,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에서 하는 200여 개가 넘는 문항과 무려 2∼3개월에 걸쳐 총 5단계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처럼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탈세, 불법정치자금을 무슨 훈장인양 달고 다니는 후보들은 꿈도 못 꾼다. 이는 도덕성의 문제가 아닌 법적 문제며 범법 행위다. 청문회에서 ‘모른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은 ‘의회모독죄’로 사법처리도 가능한 게 미국이다. 참 부럽다. 인사청문회가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적임자를 탕평인사 하려는 임명권자의 의지와 실천이 먼저다. 미국처럼 전 국무위원을 의회동의를 받게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부총리 2명이라도 청문회와 국회인준을 받도록 법 개정을 서두를 때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학수고대해 본다.이상섭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전 경북도립대교수

정치권은 지역 간 갈등에 신중해야

대구는 취수원 이전과 통합신공항 건립 그리고 대구시 신청사 건설 등의 난제를 현안으로 가지고 있다. 이 문제들을 원만하게 풀려면 지역 간 갈등 조정이 필요하나 정치권이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는 일은 삼가야 한다. 정치적 접근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정치인은 현실적으로 보통 두 가지 가치판단 기준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거시적 차원의 국익 기준이다. 두 번째는 미시적 차원의 지역구 이익 기준이다. 이 두 기준이 일치할 경우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두 기준이 불일치하더라도 다른 지역과 상치되는 이해관계로 갈등이 없는 경우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어떤 의원이 자기 지역의 이익만 고려한 편견을 주장하더라도 다른 지역 의원들이 대국적 차원에서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미시적으로 관련 지역의 입장을 충실히 들었을 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 객관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유지된다. 그러나 지역 간 이해관계가 상치되는 경우, 그 양상은 전혀 다르다. 그 지역 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이 전면에 나서 지역이기주의를 주장할 경우, 설사 그것이 합리적 주장이라 하더라도 상대 지역에선 그 선의와 공정성을 의심할 것이다. 상대 지역 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은 또 다른 지역이기주의 논리로 대응할 밖에 없다. 그 결과 양 지역 간 갈등은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고, 순조로운 합의는 물 건너가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문가 집단이나 실무진의 물밑조정과 공식적 절차에 따른 신속한 결정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정치권은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냉정히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원활한 해결을 돕는 길이다. 지역 언론도 선정적 보도나 촉 빠른 개입을 자제하고 진행 상황을 엄중히 감시하는 이성적 자세가 요망된다. 알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갈등 유발성 보도를 자제하고, 상황이 엉키지 않도록 중립적 견지에서 보도하는 언론의 역할이 바람직하다.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자 소금이다. 사회가 발전적인 합의를 도출하도록 유도하는 일도 언론의 책무다. 지역 갈등 사안에 대하여 언론은 정치권이 편향된 주장을 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객관적 결론을 도출하도록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언론이 정치권의 침묵을 비난하고 나섬으로써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 경우, 정치인은 자기 지역의 여론을 편들 수밖에 없다. 소지역주의가 대국적으로 옳지 않음을 모를 리 없지만 정치인에게 지역 편들기는 태생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함정이다. 그 결과 중차대한 현안을 교착상태에 빠트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대구의 화급한 현안들도 교착상태에 빠진 감이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엉거주춤하게 지켜보던 정치권을 언론이 먼저 비난하고 나섰고, 이에 해당 지역 정치인들이 언론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하나 둘 개입하게 된 것이 현안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그 결과 님비나 핌비 현상이 현안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역 간 갈등의 정치공론화는 현명한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어쩌면 지역감정만 부추길 소지가 크다. 전문가 집단과 실무진을 중심으로 공식적 절차를 밟아 최적안을 찾는 것이 정석이다. 최적안 또는 현실적 차선책을 찾았다면 그에 대한 충분한 검토과정을 거쳐 추진력 있게 집행하는 뚝심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시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사심이 없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세월이 흐르면 현명한 선택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현재 조금 욕을 먹더라도 언젠가 칭찬받을 일이라면 지금 시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현재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면 언론, 정치권 등의 통찰력과 자제력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고는 현안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하지만 언론은 경쟁이 심하고 신속한 보도가 속성이기 때문에 무작정 자발적인 통제력 발휘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정치권은 현안에 선뜻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자제하고, 그에 대한 비난이 있다 하더라도 인내를 갖고 언론, 주민 등을 언저리 물밑에서 설득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정보를 완벽히 통제하지 못한다면 이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끊임없이 시도할 필요가 있다. 냉정하고 신속하게 그 최적안을 찾아 합법적인 방법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방대한 자료와 정보를 신속히 처리하는 프로그램과 시뮬레이션 등은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원군이다. 주도면밀한 계획, 전광석화 같은 신속함, 철통 같은 보안 그리고 뚝심 있는 추진력이 절실한 시점이다.오철환칼럼니스트

‘오만과 맹사성의 일화’ Ⅱ

맹사성(1360∼1438)은 황희, 윤회와 함께 세종 대에 뛰어난 재상이고 청백리였다. 세종이 대왕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인재를 바로 쓸 줄 아는 지도자의 안목과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본다. 그만큼 ‘인사가 만사’임을 증명하는 본보기다.맹사성은 바깥출입을 할 때에는 늘 소를 타고 다녀 그가 재상인 줄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지혜로우면서도 청렴하고 결백한 맹사성의 성품은 요즘 시대에 귀감이 되고 있다. 이 또한 오만(傲慢)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와 관련된 맹사성의 일화다.어느 날 좌의정 맹사성이 고향인 온양에 어른들을 뵈러 간다는 소식이 안성과 진위의 현감 귀에 들어갔다. 온양을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거쳐야 하는데 현감들은 잘 보이려고 하인들을 시켜 길을 닦아 놓고 통행을 금지시켰는데, 해가 질 무렵 한 노인이 갈댓잎 도롱이를 입고 소를 타고 길을 지나자 하인들과 시비가 붙었다.하인들은 정승이 지나갈 길을 왜 가느냐고 하자, 노인은 만들어 놓은 길인데 왜 지나가지 못하느냐 대꾸하였다. 그러자 하인들이 노인을 소에서 끌어 내려 현감 앞에 내동댕이쳤고, 현감의 지시로 노인이 고개를 들자 현감은 기절초풍 도망을 쳤다. 그 노인이 고불 맹사성이었다.그러면 맹사성은 처음부터 겸손하고 청렴하게 살았을까? 아니다. 맹사성도 역시 사람인지라 어린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오만 그 자체였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는 깨달음을 준 무명 선사와 같은 사람들을 이곳저곳에서 만나고, 부딪치고 반성하면서 성숙해져 갔고 비로소 오만함을 고쳤다.개인의 오만함은 자기 인격만 손상되지만 국정을 다스리는 소위 실세관리들의 오만은 나라를 망가트림은 주지의 교훈이다. 오만 중에서도 정책의 오만이 가장 위험하다. 한 예가 ‘임금주도성장’에서 베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다. 그게 그거다. 이는 소득이 오르면 소비가 늘어 경제가 살아난다는 단순한 논리다.그러나 글로벌경제에선 턱도 없는 소리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더욱 그렇다. 임금이 올라 제품경쟁력이 떨어지면 그 자리엔 외국제품이 발 빠르게 차지하게 되고, 일자리는 줄고 소비는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오른 임금을 지불할 여력이 없어 절규하는 소상공인들, 일자리에 부은 54조 원과 최악의 고용지표, 국민 67.2%의 반대(쿠키뉴스) 등이 산 증거다.분배! 좋다. 그러나 성장과 고용 없는 ‘세금 퍼주기’ 분배정책은 반드시 공멸하는데도 연말에서 이젠 내년까지 기다리자고 한다. 얼마나 더 큰 재앙을 봐야 정신을 차릴지 곳곳에서 난리다.오죽했으면 현 정부의 ‘J 노믹스 설계자’로 불리는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마저 이 정책의 변화를 대통령께 직접 건의하였을까. 맥킨지글로벌연구소 웨츨 소장도 ‘한국정부가 생산성은 낮은데 소득을 높이려고 공공부문 일자리에만 마구 퍼붓다 보면 금방 재정이 고갈’되고, 한국경제는 여전히 ‘냄비 속 개구리’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였다.이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서 경제사령탑을 지낸 이헌재 경제부총리도 “문제가 있는 이 정책을 계속 고집하면, 국가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며, 이는 소신이 아니라 어리석음의 소치”라고 일갈했는데도 속수무책이다.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갈 모양이다. 국정폭주는 오만의 극치다.밀려오는 먹구름이 두렵다. 노조에 포획, 무리한 공무원증원, 과속복지, 통계조작, 포퓰리즘은 망한 국가의 5종 세트였다. 여기엔 반드시 자기 정책만 옳다고 고집하는 오만이 숨어 있고, 갈 데까지 가서 터진다. 그땐 이미 늦고 파멸 후다.‘새로운 성장모델’로 바꾸지 않으면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그리스처럼 된다는 충고를 끝내 외면하는 한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 풍랑예보와 암반에도 항로를 고집하면 남는 건 침몰뿐이며, 굳건한 안보와 탄탄한 경제기반 없는 평화와 통일도 마찬가지다. 오만한 권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 자식들의 내일이 심히 걱정된다.이상섭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전 경북도립대교수

좀 더 영악해질 필요가 있다

국가 간 관계도 본질적으로 개인 간 관계와 그 근간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인정사정이 없다는 점이다. 개인 간 관계는 의리나 측은지심 등 사감으로 인해 냉정함을 잃기 십상이다. 국가 간 관계는 인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서로 최선을 다하여 자국 이익을 주장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전략이 노출되면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전략 노출은 자기 패를 다 보여주고 포커를 치는 것과 같다. 역사에서 사술이나 협박을 서슴지 않은 경우마저 쉽게 찾을 수 있다. 뒤통수부터 치고 나서 협상하기도 한다. 수가 틀리면 주먹다짐으로 간다. 심지어 전쟁의 명분을 쌓고자 절차적으로 협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전쟁은 자국 제일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국가 간 협상의 결과물인 조약이나 협약은 관계 국가들의 교집합이 맥시멈이 되는 지점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먼저 그런 이상적인 답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한 협상을 진행하기란 매우 어렵다. 국제질서가 잘 정비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언제든지 무법자가 나타나 판을 깰 수 있다. 무법자를 강력히 응징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이 종국적으론 전쟁밖에 없고, 전쟁은 군사력이 우위에 있을 경우만 선택 가능하기 때문에 힘센 나라에겐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무법자가 핵무기 같은 치명적 무기를 보유한 경우에도 속수무책이다. 물론 국제연합과 같은 중재 기구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 통제력에 한계가 있고, 힘센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앞으로 그 한계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돌아봐도 자국제일주의는 전혀 새롭지 않다. 다른 나라를 생각해주는 나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도 없다. 다른 나라를 지켜주는 나라가 있다면 그게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맹관계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벗도 없다. 개인 간에 있을 수 있는 애정이나 연민 같은 가치는 국가 간에는 기대난망이다. 가족과 민족에 대한 공동체 의식도 국가라는 강력한 공동체 앞에선 무력하다. 국제관계는 비정하고 냉엄한 정글이다.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처음부터 옹골차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만국에 대한, 만국의 투쟁관계’, 그것이 국제관계의 본질이다. 자국제일주의는 그 나라의 여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여론의 바탕은 물론 인간의 본능적 이기심이다. 국민은 자기 나라에 100% 유리한 결과를 추구한다. 중용을 취한 협상이라도 비난받기 일쑤다. 양보한 부분만 보이기 때문이다. 이기심이 자국제일주의 포퓰리즘으로 바뀌면 더욱 견고하게 변신한다. 자국제일주의로 무장한 정부는 국익을 위하여 일반적 규범을 초월하는 전략을 짤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공개적 양해가 어렵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를 뭉개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기밀은 개인 비밀보다 훨씬 더 비도덕적일 수 있다. 때로는 비인간적이고 불법적이다. 그래서 더 은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가를 제약하는 법망은 촘촘하지도 견고하지도 않다. 첩보영화에서 늘 벌어지는 국익을 위한 불법과 탈법을 있을 법한, 부득이한 일이라고 쉽게 용납하며 즐긴다. 영화에서 이상할 정도로 잘 수용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선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성인군자인 양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불가사의한 것은 그러면서도 100% 자국제일주의의 실현을 원한다는 것이다.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가장 이득이 되는 결과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유토피아로 가야 한다. 얄타협정, 카쓰라태프트밀약, 러일협약, 조러비밀협약 등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침해한 비밀협약이다. 알려지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기가 막힌 협약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에 국권을 침해한 국가를 향해 목청을 높여 아무리 비난해 봐야 말짱 도루묵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사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당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국가 간 문제를 도덕적 감상적인 생각으로 접근했다간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국제관계에선 정직함보다는 영악함이 최선의 방책이다.오철환칼럼니스트

가을엔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자

해마다 가을이 오면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가 하나 있었다. 제목은 늘 ‘으악새 슬피 우니’였고, 인문학 도서 한 권을 읽고 자기감정과 접목시키라고 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에 최소한 책 한 권을 읽히고 싶었고, 글쓰기 실력을 조금이라도 높여볼까 해서였다.과제물은 질문과 가벼운 토론을 통해 진위를 가렸다. 엉터리가 몇 명 있었으나 대부분 충실했고, 참 잘한 일 같다. 새내기들 첫 대면에 일성이 “사회과학을 배우는 행정학도들은 쓸 줄도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신문사설을 정독 후 스크랩하고, 글쓰기를 할 때에는 기승전결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모든 시험문제도 ‘∼대하여 논하라’로 출제하였다. 말하기는 토론과 발표를 통해 조금 보탰다.글쓰기는 무엇보다 어렵고 꺼리는 일이다. 학생들 대부분이 인터넷의 편리함에 이미 빠져버려 편지도 일기도 아예 쓰기 자체를 기피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먼저 자기만의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으면 창의적 발상이 나올 수가 없고, 글을 읽고 쓰지 않고선 결코 양질의 삶을 누릴 수가 없으며, 글 향기가 꽃향기보다도 훨씬 진하다. 다소 힘들어도 글쓰기를 통해 ‘사고의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삶에 기쁨을 찾을 수가 있어서다.요즘은 매일 헬스장에 간다. 근육운동을 하고 자전거를 40분 탄다. 자전거엔 TV모니터가 없어 지루함을 유튜브의 노래를 들으면서 타다 보니 대중가요에 도사(道士)가 되어간다. 다 애절한 트로트다. 들을 때마다 노랫말의 기막힘에 놀란다.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저렇게도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참 대단한 기술이다. 누구나 노래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빠져든다. 마지막 편지(조영남). 자옥아(박상철), 미스고(이태호), 옛날 애인(전부성) 등등을 섭렵했다. 최근엔 어니언스의 ‘편지’를 자주 듣는다.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 하나가 자꾸만 떠올라서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이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 /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노래 보낸다“ 45년이 흐른 노래인데도 들을수록 짠하고 아름답다. 노래 속 화자(話者)는 ‘차가운 손’과 ‘눈물 젖은 편지’며, 서러움과 사랑이 듣는 이마다 다르게 잠긴다. 썸만 타다 끝난 사랑인지, 아픈 이별을 경험한 사랑인지, 짝사랑인지는 몰라도 이 세상 모든 이의 연정(戀情) 같다. 필자는 본보(지난해 10월11일)에 ‘가을엔 그리운 사람과 추억을 만나자’는 칼럼을 게재하였다. 지인들로부터 ‘감성교수’라는 별칭도 얻었다. 가을엔 그리운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지만 말고 찾아가서라도 만나라고 했다. 만나거든 부담도 떠난 이유도 묻지 말고 화해를 위한 좋은 말만 하고 기다리자. 세월이 흘러 이미 사랑이 식었거나 변했어도 아쉬워하지 말고 그러려니 해야 하며, 혹 돌아오는 길이 힘들고 아파도 미련에 떨지 말고 참아야 한다”고 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또 가을이 소리 없이 깊어만 간다.올해는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지도 배회하지도 기다리지도 말자. 차라리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편지를 쓰자. 종이편지가 가장 좋고 이메일은 그다음이고 문자나 카톡은 피하자. 연서(戀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글 솜씨가 서툴러도 두서가 없어도 좋다. 그냥 좋았던 시절을 그리며 솔직하면 되고, 풍문에 전해 들은 말이나 행복기원을 보태도 된다. 가급적 그리움이 밀려올 때 쓰고 꼭 점검해야 한다. 혹 취한 나머지 그냥 부쳐버리면 낭패다. 하늘나라에 띄우는 편지 말고는 가급적 붉은 우체통에 묻자. 추억과 그리움만 짙으면 이별과 잊음도 사랑이라 하지 않던가. 그래야 ‘내면의 성숙’으로 춥고 긴 겨울, 꽃피는 새봄, 또 내년 가을이 더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가을엔 설령 부치지 못할 편지일지라도 상상(想像)에 흠뻑 젖어보는 계절이었으면 한다. 가을이 가고 있네.이상섭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전 경북도립대교수

신청사는 대구의 심장으로 거듭나야

미지의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최초의 도착지이자 출발지는 보통 중앙 광장이다. 중앙 광장과 중심 번화가는 보통 일치하거나 근접하게 위치한다. 세계적인 대도시나 번듯한 역사 유적이 많은 고도라 할지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널찍한 광장을 외롭지 않게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존경하는 위인의 동상을 세우게 된다. 그 위인이 어떤 인물인지에 따라 그 도시의 성향을 유추할 수 있다. 용감한 장군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을 수 있고, 위대한 예술가가 생각에 잠겨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넬슨이나 파카소와 교감하려면 ‘트라팔가 광장’이나 ‘메르세드 광장’으로 가야 한다. 그것만으로 여행자는 가끔 낯선 도시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여행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런 곳에서 폰을 들이댄다. 이 도시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는 그다음에 과제다. 중앙 광장을 둘러보면 보통 시청사가 눈에 띈다. 시청사를 보면 그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다. 유서 깊은 도시에는 고색창연한 청사 건물이 지난 세월을 모두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한껏 폼을 잡기 마련이다. 의회 건물이 더 위용을 보이면 민주주의 역사가 깊은 도시라는 뜻이다. 신흥도시라 할지라도 그 도시의 능력과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 흔적을 시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능력에 비해 무리하게 투자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정도가 지나쳐 백성의 고혈을 짠 경우라도 관광자원으로 둔갑하여 후손을 먹여 살리고 있는 현실은 정말이지 역사의 아이러니다. 알함브라 궁전, 베르사유 궁전, 자금성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우리나라는 왕이 백성을 많이 배려하고 사랑한 모양이다. 그 점에서 대구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경이다. 시청사의 상징성과 의미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현 대구시청사는 시민의 자존감마저 짓밟는 수준이다. 신청사 건립이 화급하다. 현 청사는 졸속으로 지은 것이라 직원들이 근무할 환경도 되지 않을뿐더러 외부 손님에 실례가 될 정도다. 신청사는 천 년을 내다봐야 한다. 중심지에 널찍하게 자리 잡아 명실상부한 대구의 심장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전 건립으로 공연히 시민 간 갈등을 유발할 필요는 없다. 신청사는 인근 역사유적과 연계시킴으로써 대구의 정체성을 살리고 시민이 쉽게 찾는 공공장소로 만들어가야 한다. 지리적 중심지에 위치해야 하는 이유다. 시청사는 공무원들의 근무공간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복합적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공간을 될 수 있는 대로 널찍하게 확보함으로써 시민들에게 힐링을 제공하여야 하는 이유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국가 예산을 끌고 올 방도를 찾아야 하며, 필요하다면 시민모금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 초고층으로 건립하여 전망대와 카페를 설치하는 방식도 적극적인 벤치마킹 대상이다. 장소 자체가 역사성을 갖는 점에서 청사 이전은 최후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 신청사는 대구의 위상을 드높이고 도시 발전을 선도할 수 있도록 비용과 시간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빈틈없이 잘 설계해야 한다. 시청사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면 시너지가 발생한다. 볼거리를 풍성하게 마련해두는 노력은 스스로를 남에게 정직하게 설명해주는 표현 방식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다. 도심에서 타인에게 보여줄 것이 시청사나 동상 정도밖에 없다면 이는 이방인에 대한 실례다. 허전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을 그 도시 홍보대사로 내보내는 것이나 진 배 없다. 물론 도시는 역사적 유기체이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더라도 연륜에 비례하여 볼거리를 많이 보담고 있긴 하다. 계획도시라 하더라도 그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든지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대구는 오래된 역사를 숨기고 있는 도시다.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도심에서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구석기시대부터 대구에서 사람들이 거주해 온 사실을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역사를 지울 수밖에 없었던 아픔과 실책을 질책하지 않더라도 그 아픔과 실책을 조속히 치유하고 제대로 만회할 필요는 있다. 달성, 경상감영 및 대구읍성 등의 복원과 함께 신청사 건립을 대구의 해결해야 할 현안, 그 앞 순위에 둬야 한다. 최근 ‘대구근대골목 투어’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타이밍이 좋고 희망적이기까지 하다. 그 정도의 관심과 열기도 쉽지 않은 성과다. 쇠뿔은 단김에 빼고, 뿌린 만큼 거둔다. 지금이 적기다. 반듯한 시청사 신축이 기죽은 대구시민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고, 대구혁신과 시민행복의 도화선이 되길 바란다.오철환칼럼니스트

‘50년 집권론’과 한국사 교재

더불어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2017년 4월30일)에 “보수세력을 궤멸시키고 박원순, 안희정, 이재명 같은 사람들이 쭉 장기 집권해야 한다”며 ‘20년 집권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지난 8월25일, 당 대표가 된 후 일성으로 “20년을 집권하는 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곧 장기집권 프로젝트도 가동할 거라고 한다. 평소 당내 기획통이고 면도칼로 불리며 허튼소리 하지 않던 이해찬이었기에 가볍게 들리지가 않는다. 결국은 20년 집권의 목표가 ‘보수궤멸’로 보인다. 20년으론 양(量)이 안 차는지 지난달 17일, 창당 기념식에선 한발 더 나아가 아예 ‘50년 집권론’을 꺼내 들었다. “민주당이 앞으로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며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유일한 기둥이 민주당”이라는 게 그 논거다. 이에 대해 야당은 ‘민생에나 치중하라’ ‘오만불손한 발언’이라 비판하였고, 그를 잘 아는 여당에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꽤 놀란 눈치다. 민주당이 신당 창당 때마다 내걸었던 ‘백년 정당’하곤 사뭇 느낌이 다르다. 민주당 당명 앞에 붙은 ‘더불어’처럼 지향적 함축(指向的 含蓄)이 있어 보인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에 추구할 핵심 강령이자 지상 목표를 이 대표가 대신 선언하는 듯 읽힌다. 아무리 정당이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집단이라지만 50년 장기집권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 같다.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만 믿고 너무 자만한 건 아닌지 의아해하는 반응들이다. “역시 이해찬이다” “국민을 개, 돼지로 안다”는 댓글도 있고, 과거 참여정부에서 한솥밥을 먹은 유인태 국회사무총장마저도 “그런 헛소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국민이 선택하는 거고, 쓸데없는 이야기”(월간조선)라고 지적하는 등 다양하다. 북한(70년), 쿠바(59년), 가봉(51년)처럼 장기 집권하는 독재국가가 아니고선 상상도 못할 난센스며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다. 참 이상한 일은, 얼마 전 중앙정치에 오래 몸담았던 지인을 만났는데 주석에서 그는 “현 정부는 적폐청산으로 보수의 씨를 말려 재집권하고, 역사교과서를 바꾸고 남북 정상 간 대화만 이어지면 롱런도 가능하다”며 향후 연령별 유권자 분석까지 덧붙인 평론을 했다. 설마했는데, 근래 좌편향 한국사 부교재 배포 논란이 불거지면서 아차 싶다. 장기집권 플랜과 좌편향 한국사. 오비이락(烏飛梨落)은 아닌 듯 보이고 치밀하게 기획된 이념화의 장기적 포석처럼 비친다. 친전교조 성향의 교육감들이 만들어 배포한 한국사 부교재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과 내용이 거의 같다. 여기엔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 외에도 대한민국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이나, 6ㆍ25전쟁에 미국 등 우방국의 희생, 천안함 폭침 등 북한의 군사도발과 인권문제는 빠졌다. 더욱이 중학교 교재엔 ‘남침’이란 표현도 빼버렸다. 그 대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상당한 분량에 부정적 내용만을 일방적으로 서술한 반면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촛불집회는 극찬 일색이다. 교재와 부교재가 180도나 달라 수험생들 혼란이 걱정이다. 정치선전물 같은 편향된 교재로 학생들이 공부해선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갖기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고 보면 분명 이건 아닌 듯싶다. 모름지기 교과서는 모든 교육의 중심이고 길잡이다. 이처럼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교재가 형평을 잃는다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다른 나라에 대해 말 한마디 할 수가 없게 된다. 교육의 다양성도 좋으나 정권의 입맛에 따라 기준과 팩트가 달라지고 교육감의 이념에 따라 춤을 춘다면 교육의 백년대계는 허울뿐이다. 아무리 평화무드에 취하고 눈치가 보여도 정치가 역사까지 지배해 버린다면 만고에 대죄가 된다. 이해찬은 평양에서도 집권 타령이다. 남북 교류가 이유란다. 정말 무치(無恥)하다. 장기집권 여부는 국민이 정한다. 어쨌든 아이들을 정치 세뇌시키는 역사교육만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존립 유무가 여기에 달렸다. 이는 지상과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이상섭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전 경북도립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