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이 겨울을 나는 법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랜 시간 자영업을 해봤던지라 요즘 이들의 어려움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약속을 잡기가 상대에게서도 눈치가 보여서다.어쩔 수 없는 집콕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라디오로 음악방송을 듣는 게 최고다. 대부분 가볍게 듣고 넘기지만 며칠 전 방송 진행자에게서 들은 한마디가 귀에 박혔다.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 관한 이야기였다.정민(한양대 고전문학) 교수는 ‘정민의 세설신어’에서 구구소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짓날에 매화 한 가지에 흰 꽃송이 81개를 그려두고, 날마다 한 송이씩 색칠한다. 색칠이 끝나 81송이가 피어나면 봄이 이미 깊었다. 이것을 구구소한도라고 한다.’ 가장 추운 동짓날부터 81일간을 구구(9×9)라 하고 색칠하지 않은 매화 81송이 그림을 그려둔 후 하루 한 개씩 채색해나간다. 마침내 그림 속 모든 매화가 붉은 색으로 피어나면 추위는 물러나고 뜰 앞의 매화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그림을 그려나가며 추위를 견디다 보면 드디어 봄이 온 것이다.구구소한도는 매화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선조들은 문자로도 구구소한도를 그렸다. 정전수류진중대춘풍(庭前垂柳珍重待春風). ‘뜰 앞에 드리워진 수양버들이 봄바람 불어오기를 진중하게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글은 한꺼번에 쓰지 않고 동짓날부터 하루 한 획씩 써내려간다. 정(庭)이 열 획, 수(垂)가 여덟 획이지만 나머지 글자는 모두 아홉 획이다. 매일 한 획씩 써내려가다 보면 이 역시 81일이 걸리게 된다.동지로부터 81일째 되는 날은 경칩과 춘분 사이로 올해는 3월 12일이다. 추위를 삭인다는 뜻의 소한(消寒)이란 말처럼 81일간의 추위를 삭인 이날이 되면 버들에 물이 오르고 싹이 트는 봄소식도 따라온다.올해는 특히나 매서운 한파도 겪었다. 혹독한 추위에도 견딜 수 있었던 건 구구소한도처럼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다. 매일 하나씩 매화에 색을 칠하며, 매일 한 획 한 획 글자를 써내려가는 여유와 느긋함이 있어서다. 만일 동짓날부터 구구소한도를 그려왔다면 오늘, 서른일곱 송이의 홍매가 피어났을 테다. 이제 앞으로 윤곽선만 있는 마흔네 송이 매화가 붉게 색칠해지면 드디어 봄이 온 것일 게다.다만 코로나19로 꽁꽁 얼어붙었던 작년 봄처럼 될까 걱정이다. 지난 1년간은 신규 확진자 증감에 따라 일상생활에도 큰 변화가 따랐지 않았던가. 올해는 구구소한도를 완성하고 나면 과연 일상이 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따뜻한 봄바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지속될까. 더욱 가슴 졸일 수밖에 없는 건 부자들의 겨울은 즐겁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은 혹독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코로나19의 고통까지 고스란히 받고 있으니 이번 겨울은 이래저래 더 가혹할 수밖에 없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치마저 한겨울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보자. 지금은 한가하게 매화그림에 색칠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붓을 들고 ‘정치소한도’를 그릴 때다. 얼어붙은 정치의 한겨울을 삭일 때다. 이때까지 어디 추위를 녹일 만한 하루라도 있었던가. 코로나19로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도 정치권은 변함없이, 끊임없이 제 살길만 찾고 있었다.계절의 봄은 제시간에, 어김없이 온다. 하지만 정치의 봄은 만들지 않고는 결코 오지 않는다. 대신 정치의 봄은 잘 만들기만 하면 언제든, 일년내내 찾아 올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치소한도에 하루하루 화합의 색을 칠하고, 대화의 색을 칠하고, 용서의 색을 칠하고, 칭찬의 색을 칠하고, 존중의 색을 칠해나가면 어떨까. 정민 교수는 구구소한도를 두고 ‘봄을 맞는 데는 매일 한 송이씩 81일간 채색하는 정성이 든다. 여든한 번의 추위를 건너야 진짜 봄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정치소한도도 마찬가지다. ‘정전수류진중대춘풍’이란 글자를 두고 하루 한 획씩 채워나가듯 정성을 들인다면 정치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때가 돼야 비로소 봄이 왔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비대면 문화 속 오디오북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오디오북(audio book)이 관심을 끌고 있다. 오디오북은 성우나 저자가 녹음 작업을 거쳐 음성으로 담은 내용을 ‘귀로 듣는 책’이다. 책을 눈으로 읽는 대신, 귀로 들을 수 있게 제작한 디지털 콘텐츠를 말한다. 오디오북은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다. 활자로 된 책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으며, 휴대가 간편하기 때문이다.이전에도 테이프나 콤팩트디스크(CD)를 통해 유명한 성우의 음성으로 시(詩)를 녹음해 듣는 경우는 있었으나, 대중적인 기반은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이 오디오북 성장의 계기가 됐다.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된 것도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관련업계에서 오디오북의 활용도를 분석해보니 운전할 때, 집안일 할 때, 운동할 때 순으로 나타났다. 책을 읽기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지 않고도 출퇴근을 하거나, 설거지나 청소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면서 책을 듣는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할 만하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와 ‘코라나 레드’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피로감을 느끼는 요즘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심리·명상’이라고 한다. 용학도서관이 최근 실시한 소셜 빅데이터 분석 결과와도 주제가 일치한다.오디오북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1995년 설립된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이다. 아마존닷컴은 2000년 전자책(e-book) 시장에 진출한데 이어, 2008년 오디오북 파일을 제공하는 웹사이트인 ‘오디블(Audible)’을 인수한 뒤 오디오북 시장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오디오북이 전체 출판물 시장의 10%를 차지하면서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오디오북 사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윌라’, ‘밀리의 서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스토리텔’ 등이 그것이다. 월 9천900원의 구독료를 지불하고 모든 콘텐츠를 이용하거나, 오디오북을 낱권으로 사거나 빌릴 수 있다. 무료 콘텐츠도 있다.오디오북을 이용하는 연령대는 다양한 것으로 분석됐다. 대중화 초창기에는 기존에 책 소비가 많은 연령대인 30대와 40대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20대의 참여도 늘고 있다. 귀에 이어폰만 꽂으면 두 손이 해방돼 멀티테스킹이 가능해지는 장점 때문이라고 한다. 오디오북이 그동안 책을 멀리하던 20대에게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오디오북은 젊은 층뿐만 아니라, 시력이 약해진 노년층에서도 선호도가 높다. 특히 책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인에게 오디오북은 유용한 콘텐츠다. 이 때문에 도서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시각장애인에게 책을 녹음해 들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오디오북으로 지식격차를 해소하고, 평생학습의 기회를 확대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공공도서관에서도 오디오북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용학도서관은 국비 공모사업으로 지난해 11월 말 1층 로비에 오디오북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이용자는 키오스크에서 본인이 원하는 오디오북 목록을 확인한 뒤 QR코드로 내려 받아 종수의 제한 없이 15일간 대출할 수 있다. 15일이 지나면 저절로 반납된다. 제공되는 오디오북은 현재 268종이며, 매년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이용실적을 살펴보면 지난해 12월 한 달간 370종이, 올해 들어서는 보름 동안 215종이 다운로드됐다. 한 주에 100종 안팎이다. 대구전자도서관은 현재 ‘오디오락(樂)’을 통해 오디오북 1천924종을 제공하고 있다.물론, 모두가 오디오북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오디오북이 종이책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보이는 이도 적지 않다. 손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읽는 것과 음악처럼 흘려듣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낭독자의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거나, 오디오북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는 등 부정적인 견해도 존재한다.비대면 문화를 비롯한 생활환경의 변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오디오북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활자와 종이로 된 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오디오북이 생소한 것도 사실이지만, 책을 ‘눈으로 읽어야 한다’는 속성에서 벗어나 ‘귀로 들을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은 많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최근에는 독자 참여형 콘텐츠를 도입하는 사례도 있어 직접 제작한 나만의 오디오북으로 다채로운 독서활동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여우들이 꿈꾸는 세상

김시욱에녹 원장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우는 꾀가 많고 영악한 동물로 그려지는 것이 다반사다. 이솝우화 ‘까마귀와 여우’는 여우의 특성을 잘 그려내고 있다. 먹음직한 먹이를 입에 문 까마귀를 본 여우는 숱한 감언이설로 먹이를 차지하고자 시도한다. 어떤 새에게서도 볼 수없는 몸매와 위엄을 갖췄다며 칭찬하며 제대로 된 목소리만 있다면 진정한 ‘새들의 왕’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까마귀를 추켜세운다. 이 말을 들은 까마귀는 자신의 목소리에 이상이 없음을 과시하고자 우렁찬 목소리로 울음소리를 낸다. 먹이는 나무 아래로 떨어지고 잽싸게 먹이를 가로 챈 여우는 ‘아아, 까마귀야! 만일 거기에 판단력만 갖췄다면 너는 새들의 왕으로서 부족함이 없을 텐데’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우의 재치와 술수가 두드러지는 이야기다. 더불어 목적을 이루고서도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짚어주고 떠나는 여우의 비정함도 드러난다.중국 ‘전국책’과 ‘초책’에서 유래하는 ‘호가호위’란 말이 있다. 초나라 선왕시절, 재상 초해율은 북방의 모든 나라가 두려워하는 대상이었다. 이에 선왕이 연유를 묻자 누구 하나 제대로 대답을 못 하고 있는 가운데 강일이라는 신하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호랑이가 모든 짐승들을 잡아 먹이로 하다가 하루는 여우를 잡았다. 여우가 죽지 않으려고 말하길 ‘그대는 감히 나를 먹지 못할 것이다. 천제께서 나를 온갖 짐승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지금 나를 먹으면 천제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내 뒤를 따라와 봐라.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 짐승이 있는가 보아라.’ 호랑이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여우와 함께 갔다. 이를 본 짐승들은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고 호랑이는 모든 짐승들이 자신이 아닌 여우를 두려워한다고 여겼다.신하 강일은 여우의 우화를 통해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듯 재상 소해율이 왕의 권력을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빗대고자 한 것이다.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1여 년 후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정치인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현직 장관을 비롯해 전직 총리 그리고 정당대표로 지낸 인물들로 화려한 경력과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필연적으로 따르는 ‘친문과 반문 그리고 친박과 비박’이냐는 계파 정치의 논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힘 있는 자의 ‘뒷배’가 있어야만 출마와 더불어 당락을 예측할 수 있는 구조이기에 우리나라 정치 현실은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역학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무소속이 되는 순간 계파에 따른 공격이 진행되기에 소속 정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은 당연한 일이다. 신진 정치인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정당 정치를 표방한 역기능적 계파 정치는 새로운 인물 모색에 너무나 인색할 수밖에 없다.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대선출마 가상 여론조사의 결과가 참으로 이채롭다. 현직 공직자로서 본인 스스로 출마에 대한 어떤 의지도 밝힌 바 없지만 여권 선두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더불어 민주당 대표를 크게 앞서고 있다. 윤 총장의 차기 대선출마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45.9%로 ‘출마할 것’이라는 응답인 33.9%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더불어 민주당 지지층에서 불출마라고 응답한 비율이 57.3%, 출마할 것이라고 응답한 국민의 힘 지지층이 52.3%라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국정농단 사건과 전직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핵심적 인물들 중 한사람이기에 그러하다. 촛불집회와 국정농단에 대한 법집행은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과 더불어민주당의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 획득의 주춧돌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없다. 그러함에도 윤 총장에 대한 찬반의 결과가 반대적 결과로 나타난 것은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야권 후보로서 윤 총장이 여론조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한국 정치에 깊이 뿌리내린 ‘계파 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 편이 아니면 언제든 내칠 수 있다’라는 전략 전술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원하는 먹이를 위해 감언이설과 모략을 숨기지 않은 ‘여우들의 세상’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권력에 빌붙지 않는 ‘권력자에 대한 심판자’로서의 모습에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부르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란 동요 속 ‘잠잔다’라는 거짓말에 속지 않고 다가올 여우들의 위협을 국민들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일부 지지층과 일개인의 권력자에 아부하는 여우들이 안타깝다.

어려울 땐 백지장도 맞들어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본의 아니게 시간이 남아돌고 있다. 비자발적 실업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어서다. 당초엔 1개월 정도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준비부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남는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비자발적 실업자의 일상 중에서 게을러지지 않는 방법 중의 하나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그전에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을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서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평소엔 쉽지 않았던 점찍어둔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다.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찾다가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의 여운이 깊었다.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라는 커피에 관한 다큐영화였다. 매일매일 새로운 커피를 마시며 조금씩 커피 맛을 알아가는 중이어서 ‘모두를 위한 커피’라는 부제에도 강하게 이끌렸다.스토리는 단순했지만 영화에 담겨진 뜻은 남달랐다. 무대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카페 ‘감브리누스’. 이곳에선 이탈리아어로 ‘미루어진 커피’라는 뜻의 카페 소스페소라는 독특한 방식의 커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커피를 마신 사람이 한 잔 값을 더 내고 영수증을 통에 넣고 가면 돈이 없는 누군가가 그 영수증을 카운터에 제출하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맡겨둔 커피’가 더 어울리겠다.이탈리아인들에게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조건일 정도로 필수다. “한 잔 하실래요?” 한국에선 당연히 술을 이야기하는 이 한마디가 이탈리아에선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커피를 나누자는 의미다. 이탈리아에서 커피 기부운동이 생겨난 이유이다. 영화에서 카페 소스페소는 ‘잔에 담긴 포옹’이라고 표현한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따뜻함을 전해주는 마법이다. 그래서인지 커피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회적 연대라고도 하지 않던가.영화 ‘카페 소스페소’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커피를 내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해진 주인공이 없이 커피로 얽힌 이들 각자의 삶을 비춰준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도 있다. 출소를 앞둔 수감자나 길거리의 문제아들의 일자리 교육을 돕는 ‘스쿠니치협회’에서 하는 교육을 받고 얻은 일자리이다. 이 협회는 카페 소스페소 외에도 ‘피자가 주는 희망’과 같은 사업들을 하며 문제아들의 사회적응을 돕는다.나폴리에서 시작한 카페 소스페소의 따뜻함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미국 뉴욕 등으로 번져나갔다. 한국에서도 ‘미리내 카페’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형태의 카페가 있었다. ‘미리 낸다’는 뜻으로 커피 혹은 음료를 마시고 다음에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값을 미리 지불하는 곳이었다. 2013년 ‘미리내 가게’를 시작한 전북 군산의 ‘착한동네 카페’에선 아직까지 이런 연대가 이어져오고 있다. 착한동네 카페는 커피 외에도 미장원, 세탁소, 공예 외에도 인문학 강좌 등을 재능기부로 엮은 ‘미리내 네트워크’를 만들어 생활기부를 진행하고 있다.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최근의 ‘착한 선결제’ 캠페인도 이와 비슷한 사회적 연대일 것이다. 방법은 평소 이용해오던 음식점이나 카페에 들러 먼저 일정금액을 결제해두고 꾸준히 재방문을 하는 식이다. 금액이 크든 적든 선결제는 더 이상 돈 나올 곳이 없는 소상공인들로서는 위기 속에서 만나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다. 각 시도 관공서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SNS에서도 선결제 영수증 인증과 관련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그렇지 않아도 대구경북 지역 소상공인들은 이제 견뎌내는 힘조차 버거울 정도다. 와중에 대구시가 식당, 카페 등의 영업시간을 오후 11시까지로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형평성 경고를 받고 하루만에 오후 9시로 변경함으로써 이들은 더 힘들어졌다. 백지장도 맞든다는 심정으로 카페 소스페소이든 미리내이든 착한 선결제든 자영업자들을 도우는 따뜻함이 필요할 때다. 관공서나 공공기관 뿐 아니라 사회 곳곳으로 이같은 나눔이 커피 향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도서관에 걸려오는 문의전화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코로나19 사태가 지난해부터 2년째 지속되는 가운데, 새해 들어 두 주가 지난 시점에 공공도서관인 용학도서관과 분관인 파동도서관 및 무학숲도서관에 걸려온 문의전화를 분석해 봤다. 이용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매일 10여 건에서 40여 건까지 걸려온 문의전화의 주된 내용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도서관 서비스가 어느 정도 가능한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은 ‘도서관이 문을 열었는지’, ‘도서 대출이 가능한지’, ‘독서문화프로그램이 진행되는지’, ‘일반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 등이었다.문의전화는 지난 주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가 18일부터 31일까지 2주간 연장된다는 정부 및 대구시의 발표 이후에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발표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해 12월24일부터 올해 1월3일까지 진행됐던 연말연시 특별방역대책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1월17일까지 2주 연장된 데 이어, 한 차례 더 연장된 것이다. 게다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2월1일부터 설 연휴가 끝나는 2월14일까지를 설 특별방역기간으로 설정한 상황이어서 시민들의 궁금증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시민들의 궁금증부터 해소하자면 ‘도서관은 문을 열고 있다’, ‘도서 대출이 가능하다’, ‘온라인 진행이 가능한 독서문화프로그램은 이번 주 개강된다’, ‘일반열람실과 자료실 열람석은 아직 이용할 수 없다’ 등이 해답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자료실에서의 도서 대출과 반납, 무인반납, 대구시내 도서관 간의 타관반납, 수성구립도서관 간의 상호대차는 가능하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 있는 강좌는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19일부터 운영된다. 하지만 도서관 일반열람실과 자료실 열람석에 앉아서 오랜 시간 동안 머물 수는 없다.현재 대구지역 공공도서관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지침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시민들에게 자료 대출 및 반납을 위한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대면 서비스인 자료실 이용은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30% 이내에서만 30분 정도 허용된다. 이를 위해 공공도서관에서는 체온 및 QR코드 점검에 이어, 번호표 또는 스티커를 배부하는 방식으로 허용된 이용자수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용자가 많은 토요일에는 미리 온 시민이 자료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가끔 발생한다.문제는 평생교육 차원에서 공공도서관이 제공하는 독서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되길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 대책이 완화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공공도서관의 입장이다. 2020년에 이어, 올해 들어 벌써 보름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피로감이 누적된 시민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야 하는 도서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용학도서관의 경우, 본관과 분관에서 연초 개강을 목표로 모두 30여 개 강좌에 참여할 시민들한테 수강신청을 받아둔 상태다.이에 따라 용학도서관은 강사와 수강생들이 온라인에서 소통할 수 있는 강좌에 한해 이번 주부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줌(zoom) 또는 밴드(Band) 등 온라인 플랫폼은 강좌의 특성에 따라 선택됐다. 매년 겨울방학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겨울독서교실의 경우,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을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당초에는 소수의 초등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도서관별로 운영될 계획이었으나,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면서 겨울독서교실 참가자들을 학년별로 나눠 일괄적으로 진행하게 됐다.유튜브(YouTube)를 통해 비대면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콘텐츠 제공에도 주력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유튜브 용학도서관 채널에 업로드되는 ‘시인산책’은 대구지역 시인이 자신의 대표작을 해설하고, 직접 낭송하는 6분 분량의 영상 콘텐츠다. 현재 19편이 유튜브에 탑재돼 있다. 또한 지난해 생태 및 환경분야 특화도서관으로 선정된 무학숲도서관이 곤충사육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제작한 영상도 유튜브에 소개되고 있다. 이 콘텐츠는 줄흰나비, 호랑나비, 암끝검은표범나비가 알에서 부화해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올해 1년 과정으로 매주 한 차례 업로드될 ‘명지쌤의 생활 명리학’의 첫 회 촬영을 마치고, 편집 중이다.도서관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콘텐츠로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해 젊은 사서들과 기간제 근로자로 함께한 청년들이 지난 2019년부터 3년째 꾸준하게 제작하는 영상 콘텐츠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로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화이트 스완’만이라도 대비해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고니라고도 하는 백조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겨울 철새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희귀종이기도 하다.사람들은 백조는 당연히 흰색이라고 생각한다. 검은 백조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그랬다. 하지만 이같은 인식은 17세기 말 서양인들이 호주 대륙에 발을 디디며 실제로 검은 백조를 발견함으로써 바뀌게 됐다.요즘은 블랙 스완 외에도 갖가지 백조가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불확실성 시대 속에서 경제현상이나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시사용어들 속에서다. 백신이 개발되고 세계적으로 접종이 시작됐지만 코로나19의 위기는 여전하다. 두려움을 느끼는 건 위험이 지속되면서 내재된 불확실성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한 두려움은 검은 코뿔소라든지, 하얀 코끼리처럼 종종 동물들의 특성에 빗댄 용어를 탄생시킨다. 그 중에서도 유독 색색의 백조와 관련된 용어들이 많은 것도 한 특징이다.대표적인 것이 앞서 말한 ‘블랙 스완(Black Swan)’이다. 원래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실제 검은 백조가 발견되면서 의미가 바뀌었다. 관찰과 경험에 의존한 예측을 벗어나 예기치 못한 극단적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를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블랙 스완은 발생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이며 한번 발생하면 큰 충격이 가해진다.반면 상식적으로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위험상황은 ‘네온 스완(Neon swan)’이라고 한다. 스스로 빛은 내는 백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어날 것이라는 예견도 어렵지만 발생하면 사실상 대응도 어렵다. 상상 이상의 위협이나 리스크가 될 수 있어 블랙 스완보다 충격이 훨씬 더 크다. 요즘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전세계적인 위기가 네온 스완이다. 충격도, 리스크도 크기 때문이다.녹색 백조인 그린 스완(Green Swan)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를 말한다. 급격하게 변하는 자연재해로 농산물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홍수나 폭염, 혹한으로 노동생산성이 급락하는 등의 충격을 지칭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이 2020년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보고서는 세계적인 대유행을 일으킨 코로나19가 바로 그린 스완이라고 지목했다. 바이러스 감염은 생태계변화와 관련이 있으며 사람의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대규모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화이트 스완(White swan)은 과거 경험에 비춰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제때에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생기는 위기상황을 말한다. 블랙 스완이 예상하지 못하는 위기상황이라면 화이트 스완은 반복되는 위기라서 예방할 수 있는데도 게을러서 위기를 맞는 상황이라는 점이 다르다.그레이 스완(Grey swan)도 있다. 어느 정도 알려진 악재이지만 해결책이 없거나 대처방안이 모호해서 위험요인이 계속 존재하는 상태이다. 미국의 한 경제전문지는 국제 유가의 급등 가능성, 세계적인 바이러스 확산, 테러 공포 등을 2015년도의 그레이 스완으로 지목했다.이들 색색의 백조는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다 같이 현재 우리나라 하늘을 덮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상식적으로 거의 일어나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때론 예측이 가능하고 더군다나 이미 나와 있는 리스크 모델로 관리가 가능함에도 대책마련에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볼 때다.현재는 전세계적으로 블랙 스완 상태이며, 네온 스완을 넘어 그린 스완 상태이기도 하다. 우아한 겉모습의 백조와는 달리 이들 색색의 백조는 극심한 충격과 파급효과를 불러오고 있다.금융위원장과 기획재정부 차관도 지난해에 이미 우리나라의 위기 상황에 대해 블랙 스완을 넘어선 네온 스완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문제는 화이트 스완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위기인 블랙 스완과는 달리 화이트 스완은 반복되는 위기이기에 예상할 수 있는 위기이다. 그럼에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않아 맞게 되는 위기상황은 직무유기이다. 저 멀리서 날갯짓을 하고 있는 화이트 스완에 대해서 만이라도 제대로 대책을 세울 일이다.

일상 복귀와 선도국이 되려면

오용수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 새해 해돋이를 보러 멀리 못가고 가까운 개울가에서 소망을 빌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일상, 경제, 상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 출산, 기후 변화가 덜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눈앞의 생활과 지친 마음 달래기가 더 다급하다. 대통령도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가고, 선도국가로 도약하자고 했다. 소망을 하나씩 톺아보자.첫째 일상으로 돌아가 편히 살고 싶다. 코로나19로 생겨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만나기가 어려워졌다. 대신 비대면 온라인이 크게 발전해 보지 않고도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래도 마주보고 얘기하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여행도 해야 살맛이 난다. 그런데 아무리 거리두기를 잘 해도 백신과 치료제가 있어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제라도 전문가들의 말을 존중해야 한다. 또 시키는 대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이비들은 물리치자. 돌이켜보면 초기부터 TV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책을 말했지만, 백신 얘기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정부의 TF팀에 백신을 한 분야로 정하고 조기 도입 보고까지 했는데 묵살당해 버렸다. 늦었지만 백신이 오면 바로 접종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자. 그리고 각자 주의를 기울이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자. 그래야 진정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둘째 먹고 살기가 편해졌으면 좋겠다. 급여생활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가 힘들다. 집합금지·영업제한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버팀목지원금이 11일부터 지급된다. 또 여당 일부에서 전 국민에게도 2차 재난지원금을 나눠주자고 한다. 그런데 지난 12월 하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차 재난 지원금의 소비증진효과가 약 30%에 불과했고, 지원이 꼭 필요한 대면서비스, 음식점에 효과가 미미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는 큰 타격을 입은 업종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용안정지원금도 업종 특성에 맞게 관리하자. 종업원들이 일터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또 일시적 지원금보다 사업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기업하는 사람들을 옭아매는 법과 규제는 서둘 필요가 없다. 사업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들어줘라. 그들은 잘 알고 절박하다. 그럼 일자리도 생기고, 먹고 살 수 있다.셋째 억지는 사라지고 상식이 통하면 좋겠다. 자영업자들이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과 형평성도 없이 희생만 강요한다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카페 업주들은 방역에 최대한 협조 할테니 밤 9시까지 실내 영업이 가능한 식당과 같이 해달라고 애원했다. 체육관 주인들은 실내 체육시설만 엄격한 잣대 적용을 없애달라고 거리로 나섰다. 또 노래방 업주들은 5월부터 영업을 못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곧 영업을 하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미 예견된 일이다. 식당은 영업이 가능하고 카페는 안 되는 과학적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했어야 한다. 억지로 밀어부쳤지만 못 견디겠다고 반발한 것이다. 그나마 현장의 소리를 들어 기준을 재조정하겠다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납득할만한 사유와 대비할 시간을 줘야한다. 그래야 다른 업종의 집단행동이 생겨나지 않는다. 상식이 통해야 선도국이 된다.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와 먹고 살만해야 여행을 떠난다. 올해도 가까운 국내, 안전과 휴식, 개인여행이 대세가 될 듯하다. 그러나 사스, 메르스 이후의 빠른 회복과는 달리 이번에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항공업도 빨라야 2022년 4월, 늦으면 2023년 6월로 보고 있다. 관광업은 조금 빠르겠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항공과 관광은 고객이 많이 겹친다. 양대 항공사가 합하듯 두 업종도 같이 살 길을 찾아보자. 정부도 함께 대책을 마련하면 회복도 빨라진다.한편 새해 대구·경북에 희소식이 있다. 서울과 안동 사이에 고속철도가 개통돼 2시간이면 오갈 수 있다. 이어 경주까지 연장되면 경북관광은 큰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또 대구는 메리어트호텔이 개관했고, 관광재단도 설립돼 관광 중흥의 기반이 마련됐다. 나아가 관광이 대구·경북 통합의 주춧돌이 되고 대한민국 관광의 선도지역이 되길 기대한다.

소통부재의 시대, 누가 중심이어야 하는가?

김시욱에녹 원장아재 개그 중에 영어로 ‘물은 셀프’고 ‘군만두는 서비스’란 말이 있다. 웃자고 만든 말이겠지만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겐 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란 점에서 확신이 없는 경우, 흔히 지식층이나 유명 연예인의 말들이 사실인 것처럼 자리하기도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영어의 쓰임이 갈수록 많아지다 보니 한국식 영어가 원어민 영어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자리매김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식 영어(Korean English)’로 고착화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을 ‘농민 반란군(insurgent fighters)’로 번역한 영어식 표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근 ‘역사저널 그날’이란 프로그램의 전문가 패널들은 이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해석을 주장한다. 특히 심리학자 김태훈 교수는 ‘일본의 집단주의’와 달리 ‘우리’라는 ‘관계주의 문화’인 한국인만의 특수한 문화를 잘못 이해한 것에서 오는 오역이라고 지적하고 있다.하물며 같은 한국말임에도 그 의미마저 생소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것은 지역적 문화와 특수성에 기인한 방언(사투리)이다. 사전적 의미로 방언은 ‘지역이나 사회적 계층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한 언어의 분화체’라고 정의되고 있다. 재미난 실례로 충청도 방언 중 ‘알았슈/그류’와 경상도 방언 ‘언지요/어데요’를 들 수 있겠다. 약속을 정하는 경우, 예로든 두 지방의 방언은 소통부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충청도의 ‘알았슈’는 단지 알고 있다는 의미일 뿐 약속에 나타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드시 ‘그류’라고 해야만 약속에 응한 것이다. 후자인 경상도 방언은 억양에 따라 약간의 의미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제안이나 약속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기다리는 어리석음은 과연 누구 탓이어야 하는지 의문스럽기조차 하다.언어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표준어도 하나의 방언’이라고 한다. 단지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나 사회 중추세력들 또는 단순히 대다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기에 다른 방언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최근 ‘소통부재의 시대’란 말이 흔하게 쓰이고 있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세대간 소통부재’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진영간 소통부재’의 견고한 틀은 각자의 의미 속에서 대화를 이끌어 간다. 아집과 독선에 가까운 자기중심적 사고는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선악의 이분법적 논리 속에서 죽기 살기의 상대방 비방과 공격만이 난무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바벨탑 사건처럼 사회 전반이 혼란의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범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토부 장관으로 임명된 변창흠 후보로 인해 ‘야당 패싱 장관’이란 신조어마저 생겼다. 이번 정부 들어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되는 26번째 장관급 인사라는 점은 ‘소통부재의 행정’임을 방증하고 있다. 잘못된 검증과 정부 부처 사이의 소통부재에서 오는 행정 업무의 미숙은 임명 후에도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3차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 역시 예외는 아니다. 특수고용직 재난지원금 지급이후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선별지급과 전 국민 지급이라는 상반된 주장은 정치적 논리 속에서 세대와 진영 모두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국민의 힘 유승민 국회의원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은 국민의 세금으로 매표행위를 하는 악성 포퓰리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모든 국민에 대한 보편지급을 통해 경제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확장재정정책을 이어가야’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더더욱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견 양측의 주장 모두 이해와 설득력을 갖고 있다. 국가 재정과 국민을 위한 각 진영의 고민도 충분히 읽혀진다. 하지만, 3차 지급에 대한 논란이 이처럼 분분한 시기임에도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4차 재난 지원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시기상조이자 ‘배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을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똑같은 말을 해도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것은 소통의 수단인 언어가 갖는 본질적 한계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간의 의미적 가치가 다를 때 ‘소통부재’는 당연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숨겨둔 의도 속에서 내뱉는 말과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 진정한 의사소통일 수는 없다. ‘소통부재의 시대’에 ‘우리’라는 관계개념이 더없이 유의미하고 중요한 이유이다. 모든 국가 정책과 정치의 중심에 ‘내 편’이 아닌 진정한 국민들이 있을 때 소통의 시대가 올 것이라 믿는다.

소의 해, 소에게서 배운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어김없이 새해가 시작됐다. 지독하게도 우울했고 때론 지독하게도 분노하게 만들었던 2020년이 슬그머니 지났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새해다.무엇보다 2020년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우울한 한 해였다. 코로나19로 시작부터 끝까지 우울한 1년을 보냈다. 지난 연말 각 언론사들의 2020년 국내외 10대 뉴스도 모두 코로나19가 첫 번째를 차지했다. 그 여파로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사회 각 분야에서도 악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타협 없이 나만, 내 편만, 우리 진영만 옳다고 한 정치는 국민들에게 가장 큰 실망을 안겨다 줬다.출발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된 4·15 총선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163석과 함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17석을 합해 총 180석을 확보했다.제1야당인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은 비례정당을 합쳐 103석이었다. 절대적인 주도권을 쥐게 된 민주당은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독식을 시작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이라는 합법적 방법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 강제 중단, 공수처장 후보 추천 등 입법독주를 해왔다. 거대 여당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그 과정에서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잘못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극심했다. 이는 여야 구분없이 지지층들과만 소통하는 문제를 낳았다. 대화 자체가 안되다보니 ‘정치는 포용과 타협’이라는 원칙마저 무시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한 해였다.한국사회를 잠시 돌아보자. 1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실물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지 않은가. 자영업자들은 죽어나가고 있는 판에 정치판에서는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투쟁만 보인다. 보수와 진보 극단의 양 진영으로 갈라서서 이념논쟁만 벌이고 있다. 자기들이 누리는 것이 원칙을 저버린 특혜인지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특권의식에 젖어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잘못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대화는 없어진 지 오래다. 내편네편을 갈라 힘으로만 해결하려 든다. 지난해에 순리대로 해결된 현안이 어디 있던가.상식이 통하려면 대화가 돼야 한다. 정치의 역할도 대립, 대결의 국면을 소통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과정 아닌가. 그런데도 막말을 통해 서로 갈등만 조성하고 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지난해는 대화가 실종됐고 당연히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여당의 독주와 야당의 무기력함으로 기억될 한 해였을 뿐이다. 새해가 됐다고 해서 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갈등과 분열이 더 심해질 가능성마저 있다.그래도 어쨌든 2021년 ‘소의 해’는 떠올랐다. 새 해가 되면 으레 그렇듯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지독하게도 우울했고 실망하게 만들었던 지난해였기에 더욱 그렇다. 올해는 상식이 통하는 한 해가 될 거란 기대가 있어서 더욱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희망의 시작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쇠귀에 경 읽기란 뜻의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되어서는 서로 대립과 갈등을 키울 뿐이다. 우리 진영은 무조건 선(善)이고 상대 진영은 무조건 악(惡)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니 서로를 향해 우둔하다며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줘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한탄만 해서야 되겠는가.평안북도 벽동과 창성 지방에서 나는 소를 벽창우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 나는 소는 크고 억세어 고집 센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서로를 향해 벽창우라고 몰아붙이기만 해서는 올해 역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게 지나치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소의 뿔 모양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첫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통해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고 했다. 올해는 여당과 야당이 힘을 합치는 황소걸음을, 그래서 내편네편이 없는 국민들이 코로나19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황소걸음을 함께 걸어가길 기대한다. 모두가 우직한 소처럼 천천히 걸어서 만리를 간다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철학을 배웠으면 한다.

코로나 일상 속의 도서관과 빅데이터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코로나19 사태가 새해에도 계속되면서 연초부터 공공도서관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제한되고 있다. 신규 확진자가 매일 1천명을 넘나드는 바람에 연말연시를 맞아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한 특별방역대책이 새해 업무를 시작하는 4일부터 17일까지 2주간 연장됐다. 이 때문에 지역주민들에게 제공되는 공공도서관의 서비스도 불가피하게 제한되게 됐다. 도서관을 찾아 책을 대출하는 서비스는 가능하지만, 지역주민들의 인문역량 강화를 위해 운영되는 비대면 독서문화프로그램의 개강이 2주간 연기된 것이다.코로나19 사태가 쉽사리 종식되지 않으면서 코로나19가 국민의 일상생활과 독서활동, 지식정보 이용행태 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한 결과가 공공도서관 영역에서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분석방법은 빅데이터 분석이다. 빅데이터 분석은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원인을 진단할 뿐만 아니라, 대처방안을 제시하고 미래 예측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국립중앙도서관이 2020년 한 해 동안 전국 1천180개 공공도서관의 데이터를 수집한 ‘도서관 정보나루’의 대출데이터 5천823만8천593건을 분석한 결과, 도서 대출량은 2019년에 비해 45.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량이 가장 크게 줄어든 시기는 3월(89.0%)이었다. 이는 2월18일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면서 대구를 비롯해 전국의 상당수 공공도서관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이후 대구에서 착안된 코로나19 검사방식인 ‘드라이브 스루’를 벤치마킹한 비대면 대출방식이 공공도서관에 확산되면서 도서 대출량이 다소 회복됐다. 그러나 5월 초 서울 이태원발(發) 감염 확산에 이어, 8월 중순 수도권을 중심으로 감염이 재확산되면서 대출량이 다시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공공도서관의 도서 대출량은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비교적 회복 탄력성은 높은 것으로 해석됐다.코로나19 사태가 공공도서관계에서 휴관 및 서비스 제한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분석됐다. 한 주일 동안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 증가할 때 공공도서관의 도서 대출량이 223.7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 주일 동안 신규 확진자가 100명 늘어나면 공공도서관 14.9곳이 휴관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은 도서관 정보나루는 국립중앙도서관이 운영하는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이다. 분석 대상은 전국 공공도서관에서 발생되는 이용자 데이터, 장서 데이터, 대출 데이터를 포함한 도서관 내부 데이터다. 이 데이터는 지역사회 주민들을 서비스 대상으로 삼는 공공도서관 특성상 해당 지역에서 해당 시대를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삶을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용학도서관은 도서관 내부 데이터를 활용할 뿐만 아니라, 외부 데이터로 시야를 넓힘으로써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이 주최한 도서관 빅데이터 우수 활용사례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국민 대다수가 활용하는 인터넷 포털 또는 SNS에 게시된 소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함으로써 현재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잠재적 이용자를 포함한 시민들의 관심사와 요구사항을 파악해 선제적으로 업무에 반영하는 빅데이터 활용 사례를 응모한 것이다.구체적으로는 대구에 본사를 둔 기업이 개발한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텍스톰(TEXTOM)’을 활용해 도서관 외부 데이터인 소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시각화했다. 이 결과를 도서관 내부 데이터와 함께 도서관 운영 전반에 반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3년 전부터 빅데이터에 대해 공부했으며, 코로나19 사태로 도서관이 문을 닫았을 때 구성원 모두를 세 팀으로 나눠 빅데이터 워크숍을 진행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의사소통 방식이 비대면과 온라인으로 급격히 바뀌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에 앞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서도 공공도서관 운영에 참고할 만한 시사점이 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지난해 1월을 전후해 1년간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SNS 게시물 1천400만건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사태로 국민의 일상은 ‘집’을 중심으로 큰 변화가 나타났다. 집 밖으로의 야외활동은 집 근처로 위축된 반면, 집 안에서의 문화생활은 비대면 서비스와 함께 확대됐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생활 중 독서와 관련해서는 ‘아이’, ‘엄마’, ‘독서모임’, ‘책스타그램’, ‘전자책’, ‘소리책(오디오북)’ 등이 핵심 연관어였다.

‘승자의 저주’를 경계할 때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 지역에 있던 작은 나라인 에피루스의 왕 피루스는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으로 원정을 떠나 로마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병력의 3분의1 이상을 잃을 만큼 피해도 컸다. 피루스가 “이런 승리를 또 한 번 거뒀다간 우리가 망할 것이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처럼 패배나 다름없을 정도로 희생을 치른 승리, 이득이 없는 승리를 ‘피루스의 승리’라고 한다.피루스의 승리를 경제학에선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한다. 승자가 저주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승자가 저주를 당한다는 뜻으로 ‘승자의 재앙’이라고도 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이를 위해 너무 과도한 비용을 치르는 바람에 오히려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승자에게 반드시 축복만 따르는 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승자의 저주는 경제학의 오래된 패러독스(역설)이다. 기업인수합병(M&A)이나 법원 경매 등의 공개입찰 때 주로 볼 수 있다. 너무 높은 낙찰가를 쓰는 바람에 이후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상황이다.미국의 종합석유회사에 근무하던 세 명의 엔지니어가 1950년대 미국 석유기업들의 멕시코만 석유시추권 공개입찰 과정을 연구했다. 석유 매장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한 시기였다. 입찰자가 몰리며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지만 기업들은 석유 매장량을 추정해 입찰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2천만 달러에 시추권은 낙찰됐고 몇 년 후 측량한 결과 석유 매장량은 1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세 명의 엔지니어는 197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같이 입찰에서는 이겼지만 손해를 보는 상황을 ‘승자의 저주’라고 이름 붙였다.기업의 인수합병에서도 승자의 저주는 종종 나타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에 대우건설, 2008년에 대한통운을 인수합병하며 단숨에 재계 7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2008년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와 함께 재무구조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룹전체가 휘청거리자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비싼 값에 인수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헐값에 내놔야했고 금호렌터카, 금호고속 등 다른 계열사까지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교육·식품·생활가전 부문에서 급성장한 웅진그룹은 2007년 극동건설을 인수하며 건설과 태양광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웅진 역시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난을 겪자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그룹의 핵심인 웅진코웨이마저 내놨다.승자의 저주라는 개념은 현재 한국의 정치권에도 대입시켜 볼 수 있다. 민주당과 더불어 현 정권이 위기다. 60%가 넘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또 다시 기록했고 정당 지지율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오차범위 밖 격차를 기록하며 국민의힘에게 1위를 내줬다. 부동산 문제에다 백신 늑장 대응 논란, 이용구 법무차관 폭행 사건 전력,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 자격 논란, 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 예술 지원금 논란, 정경심 동양대 교수 1심 판결 등 최근의 정치이슈를 보면 이보다 심각할 수 있겠나 싶을 정도다.이런 원인들도 결국은 4·15 총선 압승이 가져온 승자의 저주이다. 거대여당의 오만과 거칠 것 없는 독주가 불러온 필연이다. 겸손은 잃어버린 지 오래고 이 정권이 강조해온 공정마저도 훼손되면서 비롯된 결과다. 승자의 기분에 너무 들뜬 나머지 국민들의 삶을 돌아보지 못한 댓가다.진작에 승자의 저주를 경계했어야 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버핏의 조언을 참고할 만하다. 그는 기업인수합병에서 승자의 저주를 피하려면 입찰에서 최고평가액 기준 20%를 낮춰 써내고 단 1센트도 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80석의 여당과 정권이 진작에 20%만 더 겸손했더라면 승자의 저주가 권력의 저주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의 승리에 도취돼 견제받기를 꺼리는 권력은 독재다. 독재는 필연적으로 위기를 불러온다. 총선에서의 압승이 승자의 저주로 작용해 현재 위기의 출발점이 되고 말았다.전투에서 이겼다며 기고만장하다간 결국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음을 왜 모르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겸손의 정치를, 공존의 정치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천영애시인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들어오면서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가 보다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신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인간, 그것도 자유를 가진 인간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을까? 그것은 신으로부터의 자유,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 관습과 통념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 가치는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그런데 과연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성취했는가.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무엇보다도 종교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종교가 이토록이나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지 못했다. 범신론자인 나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으므로 굳이 특정한 신을 특정한 장소에서 경배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모여서 예배하는 종교의 방식이 코로나를 유행시킨다면서 정부에서는 한사코 말리는데 일부 종교 단체에서는 한사코 사원 안에서의 예배를 고집한다. 중세를 넘어 근대를 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가 이렇게 종교에 매여 있었던가. 그렇다면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던 근대인의 정신은 다시 중세로 회귀했단 말인가. 나는 특정 종교를 믿어 본 적이 없으므로 지금의 예배 방식이 과연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성취한 것인지, 아니면 신에게 인간이 종속된 것인지 묻고 싶다.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는 여러 가지 제도와 인식의 전환으로 수십 년 전 받았던 교육의 틀을 부정하면서 성취해 가고 있다고 본다. 물론 완전한 자유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현대인들은 국가 권력으로부터는 자유를 찾아가는 게 분명해 보인다. 국가와 개인은 분리 불가능한 관계라서 상호 이익을 위해 일부는 양보하고 일부는 권력의 통제를 받아들인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억압받지 않는다는 심리적 해방감은 여러 가지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얼마나 좋은가, 이런 자유로운 상상과 행동이.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스스로를 국가 권력에 종속시킨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는 인간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고 도구일 뿐 그것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내가 있으니 국가가 있는 것인데 일부의 사람들은 국가가 있어 내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은 국가 권력에 스스로 종속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인간 개인이 당연히 해야 할 태도라고 보고 타인의 자유마저 억압하려고 한다. 마치 특정 종교가 끊임없이 선교라는 이름으로 그 종교 안으로 사람을 끌어 들이듯이 이들도 끊임없이 국가 권력 아래 사람들을 모은다.그러나 종교로부터의 자유에 비해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는데 관습과 통념으로부터의 자유를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관습이나 통념이란 것이 나도 모르게 내 생활 습관에 스며 드는 것이라서 우리가 그 관습과 통념에 얽매여 있는지조차도 모를 때가 많다.요즘 유행하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바로 이 관습과 통념을 비트는 유쾌한 유행어인데, ‘라떼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말들을 보면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이미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하지 않고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는 것이 이런 관습과 통념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한다. ‘라떼’라는 커피가 등장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이 말이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볼 때 지금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관습과 통념은 비웃음거리만 될 뿐이다.이렇게 현대인들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관습과 통념으로부터의 자유는 어느 정도 이루어가고 있지만 종교로부터의 자유는 중세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 기술을 부정하고 오직 신만을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이다. 그들은 지금도 16세기에 막을 내린 중세의 암흑기를 사는 중이다.

코로나 정국, 꿈과 미래를 저당 잡힌 국민들

김시욱에녹 원장양말을 걸어두고 다음날 아침이면 소박하지만 간절한 선물을 기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으로 한 끼 식사마저도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연필 한 자루, 노트 한권을 소망하며 잠이 들던 연말의 기대감은 그래서 좋았다.인위적으로 만든 인물이든 아니든 다시 산타를 기다리던 계절이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넘쳐나고 더 낮은 이들을 위해 작은 마음을 전하던 온정과 기부의 연말이다. 화려한 종탑과 더 큰 십자가가 교회마다 매달려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간간이 셔터내린 상점들을 보노라면 임대료로 고심할 그들의 한숨이 들리는 듯하다.보도에 따르면, 12월 한 달 동안 모금된 구세군의 자선냄비 특별모금이 14일 기준 20%나 감소했다. 감염의 위험으로 자선냄비는 사라지고 비대면 온라인으로 대신한다는 발표마저 있다. 이 모든 현상들을 코로나19 탓으로만 돌리기엔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흔히 죽음을 마주하는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생존의 의미와 애착을 더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본능적 욕구임에 틀림없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 앞에서 분명 생존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감에 빠져있는 다수 국민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자신과 가족의 안위마저도 확신하지 못해 불안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과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코로나19로 시작된 2020년은 온통 불확실성의 시기였다. K-방역이라고 확신했고 대통령이 나서서 단시간에 잡겠다던 약속은 어느새 허언이 되고 말았다. 첫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을 때, 대통령은 국위를 선양했다며 ‘짜파구리’ 파티로 영화인들과 기뻐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적 결과로 국민들은 그것마저 용인했다. 초기 중국봉쇄에 대한 높은 요구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국가 경제적 측면이란 정부 입장에 국민들은 받아들였다. 당시 ‘코로나19 중국눈치보기’라는 내용으로 문재인 대통령 탄핵 청원에 38만 명이 동의했다는 점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이 76만 명을 넘었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바이러스 발병지인 중국 봉쇄 대신 ‘신천지 코로나’란 이름으로 대구 봉쇄를 청원한 이른바 ‘문빠’로 불리는 극성 지지자들과 진보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갈라치기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최근에는 K-방역 홍보비와 백신 계약 문제로 온통 나라가 시끄럽다. K-방역 홍보비로 1천200억 원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안철수, 주호영 등 야권 지도자들로부터 나오면서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방역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더 커지고 있다. 세계가 앞다퉈 확보한 코로나 백신물량 부분과 접종 시기에 대한 문제에 있어 우리 정부는 뒤늦은 감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진위 여부는 훗날 밝혀질 일이지만 의료 전문가들로부터 수개월 전에 경고됐던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K-방역은 실패와 다름없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문제는 결코 ‘몽니’ 부릴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수석 비서관, 보좌관 회의를 통한 정치 및 경제 전반에 대한 두리뭉실한 ‘퉁치기’식 방법이 아닌 솔직하고 직접적인 대국민 사과에 나서야 한다. ‘내 탓’이라는 자세로 나서야만 정권을 잡은 여권과 극성 지지자들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부동산 문제 역시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20여 차례의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한 것으로 부동산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나아가고 있다. 진단부터 잘못됐다는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들의 최근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으로 이뤄지는 시장가격의 원리는 부동산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다주택자 역시 주택 공급 역할을 하고 있으며, 거래를 통해 시장 자율 조정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전문연구원의 말은 이와 다르지 않다.정부 주도의 억제 정책은 일시적 효과일 뿐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국민 대다수가 좌파들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고 비난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개혁이라는 명제 앞에 수많은 불확실성만 키워 온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그 불확실성은 진영논리 속에서 더욱 견고해졌고 국민의 불안과 좌절감은 미래를 잃어버리게 만들어 왔다. 내일을 꿈꾸던 국민은 오늘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역의 주체는 정부가 돼야 함에도 국민 개개인에게 맡겨진 오늘의 현실 앞에 ‘우리는 무정부주의자가 돼야 하는가?’ 반문하고 싶다.

개소리꾼들의 개소리, 아직 솔깃한가요?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우연찮게 접한 책의 제목이 묘한 끌림으로 다가왔다. 강력한 끌림이었다. 개소리가 세상을 정복했다니…. 하지만 이때까지 얼마나 많은 개소리를 들으며 언짢아해왔던가를 돌이켜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뉴스조차도 개소리로 채워지지 않았던가.‘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이라는 부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지난달에 나온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제임스 볼 지음/김선영 번역/다산초당)라는 책이다.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 공감하게 만든 건 ‘개소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헛소리 혹은 허튼소리 정도로 번역해도 될 ‘Bullshit’이란 영어 단어를 ‘개소리’라는 말로 단칼에 정리해버리는 명쾌함도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이미 수많은 개소리에 지쳐있을 즈음이었을 수도 있었다. 자기 입맛에 딱 들어맞는 말을 골라 자기 마음대로 내뱉어대는, 더하거나 덜하지도 않은 말 그대로의 개소리 말이다.책은 개소리(bullshit)는 거짓말(lie)과도 다르다고 강조한다. 거짓말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꾸며낸 말이지만 개소리는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허구의 담론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더 큰 진실의 적이라 했다.그러고 보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 중 상당수가 개소리였음을 뒤늦게 확인하곤 한다. 특히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잇따라 하면서 세계적으로 개소리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유행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책에서는 영국의 사례도 알려준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 과정에서 치른 투표에서도 사실보다는 자극적인 개소리가 유권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이게 비단 미국이나 영국만의 문제일까.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을 때 SNS를 중심으로 가짜뉴스가 극에 달했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들어올 수 있다’거나 심지어 ‘난민들 때문에 성범죄가 급증할 수도 있다’는 등의 추측성 의견들이었다.개소리는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될수록 심해지기도 했다. 마스크 한 장을 사기 위해 수백미터의 줄을 서고 있을 당시 ‘정부가 북한 지원용 마스크를 비축하고 있다’는 글도 개소리로 밝혀졌다. 올해 가을엔 독감백신 접종 뒤 사망 사례를 예로 들며 공포를 더욱 확산시키기도 했지만 결국은 백신과 연관성이 있는 사망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각종 정보와 뉴스가 SNS와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다. 우리들이 보고 듣는 정보는 그 중에서 몇 개만 고르게 되고 때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정보, 때론 각종 매체에서 걸러서 보내주는 뉴스만 보고 그걸 또 공유한다. 가짜뉴스를 퍼나르게 될 정도에 이르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오직 하나의 개소리로만 존재할 뿐이다.개소리를 악용하는 집단들도 문제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심리를 파고든다. 더 큰 문제는 개소리에 흔들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다며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일 게다. 진실이 무너진 사회, 개소리가 범람하는 사회….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개소리는 계속 생산되고 퍼날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한숨짓게 만든다. 개소리가 표가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이를 생산해내고, 클릭 수에 목마른 미디어는 이를 유통시킨다. 또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는 사람들은 SNS로 퍼나르며 맞장구치는 것이다.내가 오늘 보고 들은 것은 진실일까 아니면 내가 믿고 싶어하는 신념일까. 혹시 나는 ‘개소리꾼들’의 ‘개소리’에 솔깃해하지 않은가? 한번쯤 자문해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책의 한 단락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개소리꾼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유리한 발언을 할 뿐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개의치 않는다.

공공도서관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전 국민 누구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휴대폰 사용방법부터 취업 연계교육까지 생활 속 디지털 교육을 무료로 받아보세요.’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2020년 9월부터 국민들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교육을 위해 설치한 ‘디지털 배움터’를 홍보하는 문구다. 리터러시는 당초 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해력을 뜻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나날이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 및 대처하는 능력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말로 정리된 용어는 없으나, 일부에서는 ‘역량’으로 쓰고 있다.디지털 배움터가 설치된 이유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가속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디지털 격차가 일상생활 속 불편을 감수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경제적 기회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이젠 더 나아가 개인의 디지털 역량이 생존의 조건이 되는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인류의 일상이 비대면 온라인 환경에서 이뤄지면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난 현상이다.디지털 배움터는 전국의 행정복지센터, 평생학습관, 도서관 등 생활SOC 1천여 곳에 설치돼 있다. 대구에는 20곳이 있다. 8개 구군별로 살펴보면 남구 1, 달서구 4, 달성군 3, 동구 2, 북구 2, 서구 2, 수성구 4, 중구 2곳이다. 이는 서울 224곳을 제외하더라도 6대 광역시 중에서는 가장 적은 수치다. 부산에는 대구의 10배가 넘는 241곳이나 설치됐다. 이어 인천 51, 대전 33, 광주 32, 대전 33, 울산 27, 대구 20 순이다.디지털 대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를 맞아 리터러시 교육이 절실한 또 다른 영역이 바로 미디어 영역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미디어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가운데, 이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는지 여부에 따라 정보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정보격차는 미디어 활용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또한 별다른 가치가 없어 보이는 미디어 정보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자본을 창출해내는 데이터가 되는 빅데이터 시대에는 무엇보다 이를 활용하는 사람의 역량이 부각된다.특히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역기능을 방지하는 대목이 중요하다.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미디어 등 뉴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뉴스를 비롯한 미디어 정보가 대량 생산되는 가운데 가짜뉴스, 광고성 뉴스, 낚시성 뉴스, 인플루언서의 가짜 후기, 악성댓글 등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취향저격형 알고리즘 작동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 심화되면서 시각의 양극화를 뜻하는 확증편향이 강화되는 현실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시급한 이유다.궁극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시민들을 위해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진행함으로써 가짜뉴스 등 역기능적인 미디어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비판적 사고능력을 배양한다. 또한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부상에 따라 요구되는 다양한 소통능력을 습득함으로써 창의적 미디어 활용능력 제고와 1인 미디어 생산자 육성에 일조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과 역할 증대에 이바지할 수 있다.다행스럽게도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8월 ‘디지털 미디어 소통역량 강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정부의 ‘코로나19 이후 시대 핵심과제’의 일환으로 관계부처와의 지속적인 논의와 협력을 통해 마련됐다. 관계부처 합동 보도자료에 따르면 범정부 민·관협의체인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협의체’ 구성 및 운영을 시작으로 중·장기 한국형 미디어교육 비전을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관광체육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은 소관 분야별로 다양한 미디어교육을 실시해 왔다. 이 때문에 관련 법안도 다양한 국회 상임위에서 산발적으로 등장해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현황을 살펴보면 초·중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해당 연령대에 맞는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으나, 은퇴세대를 포함한 성인을 위한 교육은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시청자미디어센터 등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어르신 세대를 포함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취약한 실정이다.대안으로 정보 리터러시(Information Literacy) 교육이 진행되는 공공도서관을 성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공공도서관은 시민역량 강화를 위해 전국적으로 1천100곳 이상 설치된 평생교육기관으로,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도서관을 계속 늘리는 추세이기 있기 때문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위해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는 수고로움과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 게다가 이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진행하는 공공도서관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