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달 7일부터 시작한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26일 끝났다. 문재인 정권 중간평가라는 의미는 결국, 역시나 여야의 정쟁의 장으로 번지면서 빛이 바랬다. 국감 기간 동안 정책 대안 마련은커녕 호통과 막말로 정치 공방만 벌였다. 그 공방 속에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민감한 사안은 묻혀버렸다.이번 국감으로 문뜩 떠오른 한자어가 있다. 견강부회(牽强附會)와 후안무치(厚顔無恥)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비유하는 한자어가 견강부회이다. 후안무치는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뻔뻔스러워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은 말한다.똑같은 이슈를 두고, 똑같은 국감증인의 말을 두고 여야가 자기들 입장에 맞게 견강부회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부끄러움 없이 뻔뻔하다보니 갈수록 얼굴은 두꺼워지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이 감사 도중에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고성에 삿대질은 물론이고 의사봉까지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도 서로 사과하기는커녕 유감표명도 없었다. 낯 두꺼운 일은 그들이 했는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네가지 마음씨로 설명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이 중 수오지심은 자신이 착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고 남이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사실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점 중 하나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은 사람만이 가진 감정이다. 남우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걸 국회가 나서서 보여줘서 안타까울 뿐이다. 욕설에 막말에 후안무치한건 그들인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나.얼마 전에 나온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이주연 저)라는 책에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회와 공동체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지켜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회를 지탱해온 염치마저 없어진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갈수록 살만한 세상이 돼가고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서일 게다.‘염치 불구하고’라고 흔히 쓰는 말은 ‘염치 불고(不顧)하고’의 잘못된 표현이다. 불고(不顧)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이다. 돌아보면 염치 불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이젠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공식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염치 불고하고 하는 말이다. 먼저 어떤 의혹이 제기되면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다. 의혹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면 “재판에서 밝히겠다”고 하고, 법원 판결이 난 후에는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한다. 대법원의 판단 후에도 할 말은 있다.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한다.하긴 염치없는 정도를 넘어 후안무치한 이들에게 맹자의 수오지심을 이야기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고 빈대도 콧등이 있고 미꾸라지도 백통이 있다고 했다. 아주 작은 벼룩에게도 양심은 있다는데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부분 지도층 인사들이다. 이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게 염치고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후안무치한 이들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건 오히려 일반 국민들이다. 이젠 국민들도 부끄러움에 대해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수오지심은 붙들고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일수록 부끄러움을 모른다. 권력, 재물, 명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수오지심은 없어진다. 이들에게 맹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 자신의 착하지 않고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갈수록 낯짝 두꺼워지고 있는, 지도층이라고 폼 잡는 그들에게 물어본다. 너는 사람인가. 그러면서 돌아본다. 나는 어떤가.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코로나 일상’ 속의 독서문화운동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코로나 이후는 없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시대를 준비하라.’카이스트 미래전략연구센터가 최근 발간한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1’을 홍보하는 문구다. 다르게 표현하면 ‘포스트(post) 코로나는 없다. 위드(with)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라’다. 다음해의 경영전략을 소개하는 이 책은 매년 시리즈로 간행되고 있다. 올해는 ‘위드 코로나 : 달라진 세상, 새로운 기회’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지난해 발간된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의 부제는 ‘기술과 인간의 만남’이었다. 부제만 살펴봐도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꾼 것을 알 수 있다.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벌써 11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위드 코로나 시대’란 말은 일상화됐다. 이 말은 코로나19를 예방하면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시기를 뜻한다. 국립국어원은 이를 대체할 우리말로 ‘코로나 일상’을 선정하기도 했다. 코로나 일상에서는 감염병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비대면 상황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인류는 이때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지식정보를 제공하는 공공도서관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인근 지역에서 발생하면 문을 닫았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문을 열기를 반복했다. 문을 열 때는 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해야 했다. 문을 닫은 채 비대면 상황을 유지해야 할 때도 시민들의 일상을 위해 온라인 소통에 집중했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강연은 영상 콘텐츠로 제작돼 유튜브와 밴드 등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시민들에게 제공됐다. 강연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줌(zoom) 등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화상회의 시스템도 활용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변화가 수개월 만에 일어났다.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의 공식일정을 마친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도 마찬가지다. 당초에는 지난 5월 수성못 상화동산에서 열리는 대면 전시회로 기획됐으나,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행사 일정이 10월로 연기됐다. 그 뒤 상황이 호전되면서 대면 및 비대면 행사를 병행하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으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재확산되는 바람에 비대면 행사로 궤도가 전면 수정됐다. 모든 프로그램은 영상 콘텐츠로 제작돼 온라인 플랫폼과 유튜브에 탑재됐다. 개막행사와 지역출판 심포지엄, 도서관을 찾은 지역 저자 등은 유튜브 라이브로 실시간 생중계됐다.코로나 일상 속의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위드 코로나 시대, 책축제 및 독서문화축제의 뉴노멀을 제시하기로 한 것이다. 사흘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내년도 한국지역도서전까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강원도 춘천에서 열릴 2021 한국지역도서전까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1년간 지역도서전을 유지한다. 공식일정 이외에 기념도서와 자료집은 물론, 백서까지 온라인 플랫폼에 탑재한다. 메인 화면도 일부 바뀐다. 앞으로는 지속 가능한 독서문화운동을 위한 플랫폼으로 개편될 예정이다.이는 단순히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지역도서전을 온라인에 옮겨둔 정도가 아니었다.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됐을 경우 사흘간의 전시와 체험 등으로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은 막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을 구성함으로써 각종 프로그램은 영상 콘텐츠로 영원히 기록되게 됐다. 특히 대구의 문화 정체성을 밝힌 ‘대구, 출판문화의 거점’이란 제목의 수성특별전I과 함께, 활 든 선비로 콘셉트를 잡은 계동 전경창 선생의 선비정신을 다룬 수성특별전II ‘수성, 대구 유학의 뿌리’는 불의에 저항하는 대구정신을 조명하는 영상 콘텐츠로 활용도를 높이게 됐다.비대면 접속의 활성화로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은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함으로써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혁신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플랫폼으로 구축해 전통적인 운영방식과 서비스 등을 혁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디지털 대전환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이 실현된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인류가 느끼는 변화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이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코로나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기존 생각의 틀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변화된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 대전환을 단순히 도구의 변환으로만 생각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다.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시대의 광대놀음, 누구를 위한 가면인가?

김시욱에녹 원장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늘 정상인이라는 자의식 속에서 세상을 보려한다. 그 세상은 늘 온전한 듯 보이지만 비리와 권모술수 그리고 권력의 역겨움으로 가득 차있다. 정돈된 정장차림으로 정의와 국민을 앞세우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아귀’와 다름없다. 국민의 혈세가 자신의 것인 양 탐욕으로 가득한 그들은 앞 다퉈 자신의 입지와 영달을 꿈꾸며 가지려 한다. ‘테스형’을 목놓아 불렀던 어느 예인의 말처럼, 국민을 위한 진정한 권력자는 이 땅에 없었는지 모른다.이런 답답함 속에서 하회탈춤의 이매(바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비정상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오히려 더 솔직한 현실이 되는 까닭에 서민을 위한 광대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권력과 금전의 상층부에서 부녀를 희롱하는 중과 선비와 양반을 풍자하며 서민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올 그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이 시대를 내려온 광대놀음의 뜻이었고 서민의 풍요와 안위를 걱정한 각 지역의 민속놀음이었다. ‘테스형’으로 대변되는 예인의 노랫말과 일성이 대다수 국민의 카다르시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진영논리에 매몰돼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그들은 누구였던가. 현실감각이 떨어진 체 권위와 ‘보여주기’에 익숙한 바보 아닌 바보들이 위정자가 아니었던가.현직 법무부 장관인 추미애씨가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정계와 재계의 광풍으로 번질 라임 옵티머스 사태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그 명분이다. 단초가 된 것이 일반적으로 첩보 수준인 스모킹 건이 아니라 라임 전 회장 김봉현의 옥중서신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금품수수 의혹으로 시작된 라임사건이 이제 여야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진실은 분명코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겠지만 구속된 피고인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대한민국 법치의 현실이 안타깝다.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정의 구현이라는 크나큰 명분을 앞세운 ‘내 편 살고 네 편은 죽어야 한다.’는 진영논리가 될까 두렵다.언론보도에 따르면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 및 감독권을 박탈한 사건은 총 5가지다. 라임 관련 1건, 윤 총장 가족 관련 3건, 윤 총장 측근으로 꼽혔던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의 친형 관련 1건이 그것이다. 추 장관은 검찰 출신 변호사가 구속 피고인에게 ‘윤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청와대 행정관으로는 부족하고 수석 정도는 잡아야 한다. 총장에게 보고해 보석으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며 회유·협박했다는 의혹, 검찰총장이 수사팀 검사 선정에 직접 관여하고 검사장 출신 유력 야권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비위 사실을 직접 보고받고도 여권 인사와는 달리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보고가 누락되는 등 사건을 제대로 지휘하지 않았다는 의혹’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 현직 검사들의 향응 접대 및 금품 로비 의혹도 구체적 제보를 받고도 관련 보고나 수사가 일절 누락됐다고 주장했다.보도된 내용대로 행간을 읽어 보면 참으로 재미난 사실을 알 수 있다. 라임 옵티머스 전 회장 김봉현은 초기 법정 진술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증언했다. 그것이 도화선이 돼 여권 실세와 청와대로 불똥이 튀려하자 김봉현의 ‘옥중서신’이 등장한다. 그 내용은 검사의 회유와 유흥접대, 그리고 검찰총장이 배경으로 있는 시나리오가 중심이었다. 옥중서신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흐름이다. 이후, 야권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여권은 역공을 시작한다.이젠 정치권 전체의 블랙홀이 되면서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와 동시에 추 장관은 수사 지휘서를 통해 마치 수사결과를 발표하듯 사실관계를 기정사실화하고 김봉현 전 회장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인용했다. 수사과정에 있는 범죄사실을 구체적이고 피의사실을 확정하듯 쓰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전직 판사 출신인 추미애 장관이 모르지 않을 것임에도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고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라임 사태를 조사해 오던 검사와 조사관 모두가 일순간에 교체됐다.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라는 큰 틀에서 만들어지는 춤사위라면 순수한 의도로 볼 수 없다. 개혁은 정의와 공정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하며, 정의와 공정은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 돼야 하기에 그러하다.이미 광대놀음은 시작됐다. 한바탕 웃음으로 어우러지는 춤사위이길 간절히 소망하며 아집과 편견 속에 만들어지는 가면 속 놀음은 결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이름값의 무게를 짊어져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는 로봇으로 변신하는 많은 자동차가 등장한다. 대부분 유명 자동차회사의 실제 차량을 모델로 했다. 쉐보레 카마로로 변신하는 ‘범블비’, F-22로 등장하는 ‘스타스크림’, 쉐보레 ‘스파크’로 등장하는 스키즈 등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옵티머스 프라임(Optimus Prime)은 오토봇의 총 사령관이자 리더이다. 시리즈에 따라 몇 번 교체되기는 했지만 변함없는 것은 강한 이미지를 주는 트럭으로 변신한다는 점이다.옵티머스 프라임으로 변신하는 트럭의 실제 가격도 범블비로 변신하는 쉐보레 카마로의 4대 분량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차량 가격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맡아 이름값을 한다. 그 이름값은 희생정신이 강한 영웅이다.옵티머스(optimus)는 ‘가장 좋은’, ‘최고의’, ‘최선의’, ‘최적의’라는 뜻이다. 이처럼 좋은 단어가 요즘 수난을 겪으며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기사건 때문이다.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말은 일찍이 공자도 강조했다. 논어 자로(子路)편 3장에서다. 공자는 “왕께서 스승께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하시겠느냐”는 제자 자로의 물음에 “정명(正名)”이라고 답했다. 필야정명(必也正名).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스승의 대답에 시큰둥한 표정의 자로가 “왜 하필 이름입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에 순서가 없고, 말에 순서가 없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백성들의 몸 둘 곳이 없어지게 된다”고 자로를 꾸짖었다.공자의 정명(正名)은 실제에 맞게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제각각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가 맡은 직책에 맞게, 이름이 나면 이름에 맞게 그 역할을 해내야 된다는 말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엔 백성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며 정명을 강조한 것이다.지난해 한때 ‘닉값’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는 ‘닉네임(Nickname)’값의 줄임말로 온라인 상에서 사용하는 자신의 닉네임에 걸맞은 말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 등이 닉네임에 어울리면 ‘닉값을 한다’고 표현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닉값을 제대로 못한다’는 등으로 사용한다.닉값을 한다(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에 품위를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제대로 닉값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다지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끊이지 않고 나오는 정치인들의 비위와 연예인들의 반사회적인 일탈, 일부 공무원들과 기업인들의 부정행위가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이들에게 닉값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 ‘밥값’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만한 값어치를 하라는 말이다.다시 공자로 돌아가 보자. 공자는 제나라 경공의 이상적인 정치에 대한 물음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답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곱씹어보면 무서운 말이다.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신하가 아니라는 말이다. 보필을 하되 바른말을 해야 할 때는 직언을 서슴지 않아야 신하답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임금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직책에도 이름이 있다. 직에 어울리는 이름값을 하라는 말이다.공자의 ‘정명’이든, 요즘의 ‘닉값’이든 이름에 걸맞은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이름이나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오고 있다. 자리마다 있는 이름이지만 거기에 맞게 이름값을 하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엔 ‘민주’, 국민의힘당엔 ‘국민’이 없다는 말은 차라리 양반이다. 분명 누가 봐도 불의인데 억지논리를 끌어 붙여 정의로 포장하고 있다. 자리와 이름을 팔아 자기 욕심을 챙기려는 사람들도 많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도 결국 이름을 팔아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들 모두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그래도 꿈은 버리지 말자

오용수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 올해 추석은 코로나19로 인해 예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차례도 간소해 지고 오지 못한 가족들은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영상을 보며 멀리서 절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생각조차 못한 일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로 온라인 회의나 모임이 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세계적으로 코로나 감염자가 3천300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1만 명 이상이다. 생명과 일상을 중단시키고 관광 등 산업을 붕괴 위기로 몰아갔다. 문화예술계도 코로나 초기에는 문을 닫았다. 2~3개월이 지나며 관중 없는 공연을 시작했다. 유튜브, 개인TV 등으로 발전하더니 드디어 이제껏 보지 못한 무대 장치와 구성도 나타나고 있다.가을하늘은 맑고 높다. 몇 년 전부터 파란 하늘 보기가 어렵더니 올해는 봄부터 맘껏 즐기고 있다. 손 씻기, 마스크 생활화로 감기도 크게 줄었다. 음식도 숟가락을 같이 담그지 않고 덜어먹기가 보편화됐다. 학교 수업도 처음에는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모두 당황했지만 점차 집에서 방송을 보며 공부하는 게 익숙해졌다. 대학과 사회교육도 좋은 콘텐츠를 갖춘 방송강의에 수강생이 몰린다. 온라인강의가 확대되면 학교의 빅뱅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항공사도 지난 7월 성수기에 국제선 탑승률이 97% 감소하는 상태에서 여객기를 임시로 의자를 들어내고 화물기로 활용하고 인천공항을 떠나 강원, 경상, 제주, 전라, 충청을 거쳐 돌아오는 여행프로그램이 나오자 단숨에 매진됐다. 전시회나 박람회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축제도 랜선으로 중계돼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있다.한편 자택근무를 하다 보니 미국과 거래를 하는 이들은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들은 조용한 시간에 몰두하고 있는지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집이 유난히 많다. 밤잠을 설치는 이들이 늘었고 생활리듬을 잃어버린 이도 적지 않다.또 코로나에 걸렸다 완치가 됐지만 주변에서 피하거나 꺼리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TV토론에서 마스크 착용을 비웃던 트럼프 대통령이 감염돼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이런 코로나 블루(우울증) 치유책이 음악이나 여행이다. 어려움을 겪던 음악계는 BTS, 나훈아 공연으로 길을 찾았다. 그러나 여행사는 영업실적이 성수기였던 7~9월에 전년보다 98.4%나 감소되는 등 거의 빈사상태에 처해 있다. 원래 여행은 안전이 위협을 받을 때는 즉각 중단된다. 그리고 잠잠해지면 서서히 회복된다. 그것도 안심할 수 있는 가까운 곳부터 되살아난다. 추석 연휴에 경주를 찾은 관광객이 10만 명을 넘는 등 그나마 국내여행은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해외여행은 아직 꼼짝 못하고 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자. 거의 때가 된 것 같다. 꽁꽁 얼어붙었던 한일 간에도 기업인은 2주 격리없이 오갈 수 있게 됐다. 또 여행을 자제해달라던 외교통상부 장관의 남편마저 해외여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페스트가 유럽 인구를 절반으로 만들자, 봉건제도가 붕괴되고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콜레라도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식수(食水)의 중요성을 깨우쳐 상하수도의 변혁을 가져왔다. 코로나가 세상을 힘들게 하지만 온라인화 등 부산물도 생겨났다.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약도 만들고, 제도와 관습도 바르게 고치자. 그리고 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자. 이제 포스트 코로나에 힘을 모을 때다.

어른이 필요한 때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어른이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다. 이는 뒤집어보면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단순히 나이만 들었다고 어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란 뭔가. 국어사전에선 ‘1)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결혼을 한 사람’으로 정의해두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른이라고 이야기할 경우엔 단순하게 성인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나이, 지위, 신분이 높다고 해서 어른이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른은 자기가 한 말, 자기가 하는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어른이라면 적어도 인생 선배로서 다음 세대들을 보다듬고 품어주고 때론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야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을 수 있을 터다. 어른의 정의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의 교육학자이자 사상가인 우치다 타츠루가 이야기하는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명확한 방법이다. 그가 쓴 책 ‘어른 없는 사회’(김경옥 옮김, 민들레)에선 다음과 같이 ‘어른’과 ‘아이’를 나눈다. “길에 떨어져 있는 빈 깡통을 줍는 일은 누구의 의무도 아닙니다. 자기가 버린 게 아니니까요. 버린 녀석이 주워야지 지나가는 사람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 일은 모두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이’입니다. 어른은 다릅니다. ‘어른’이란 그럴 때 선뜻 깡통을 주워서는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자기 집으로 가져가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품 수거일에 내다 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른입니다. 아이는 시스템 보전이 모두의 일이므로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시스템 보전은 모두의 일이므로 곧 자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엔 어른이 없다”고 한다. 그는 모두가 어른일 필요는 없지만 다섯 명 중에 한 명 정도만 그런 어른이면 사회제도는 어떻게든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지금 일본은 그 ‘아이’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사회라는 것이다. 어른 비율은 5%에 불과해서 일본사회의 시스템이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한국사회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국사회를 잠시 돌아보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경제 선진국이라는 위상은 하강 국면의 벼랑 끝에 서있다. 거기에다 장기화 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실물경제마저 직격탄을 맞고 있지 않은가. 정치판에서는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투쟁만 보인다. 보수와 진보 극단의 양 진영으로 갈라서서 이념논쟁만 벌이고 있다. 자기들이 누리는 것이 원칙을 저버린 특혜인지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특권의식에 젖어있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을 과연 어른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갈수록 커지는 불평등과 격차, 늘어나는 자살률, 줄어드는 출산율 등에 큰 그림을 그리는 어른이 없다. 삶에 찌들고 좌절감에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줄 어른이 없다. 물론 말 한마디 했다간 상대 진영으로부터 여론몰이에 뭇매를 당할 수도 있는 터라 몸을 사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지만 침묵으로 뒷짐만 지고 모른 체 한다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100세 시대가 눈앞이다. 은퇴 후 어른으로 살아가야할 날들이 확 늘어났다. 자칫 권위적이거나 나의 생각 또는 나의 사고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만 한다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꼰대가 아닌 어른 소리를 들으려면 해야 할 말은 목소리 높여 할 줄 알아야 한다. 꼰대가 아닌 어른이라면 ‘인플루언서’가 되어 이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영광만 되뇌고 있으면 어른이 되지 못하고 꼰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두 분의 어른이신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그리운 것이다. 사회가 어렵고 갈등이 심해질수록 세대 간의 공감이 중요해진다. 그 역할은 어른이 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어른이 필요하다. 할 말을 제대로 하는 묵직한 어른 말이다.

‘책의 날’과 독서 및 지역출판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일요일인 10월11일은 ‘책의 날’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년 4월23일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은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정된 ‘책의 날’은 모르고 있다. 34회째인 올해 책의 날 기념식은 13일 열린다. 이날 기념식의 주요 행사는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들에게 훈장과 대통령 표창 등을 시상하는 것이다. 책의 날이 출판계의 기념일로만 치러지면서 시민들에게 외면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책의 날은 사단법인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의해 1987년 제정됐다. 책의 소중함과 책 읽는 즐거움을 널리 일깨우기 위해 기념일을 정하자는 제안에 따라 출판학계, 서지학계, 도서관계, 출판계, 언론계를 대표한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책의 날 제정을 추진했다. 위원회는 팔만대장경 완성일인 10월11일과 고려 국자감 서적포 설치일인 4월11일 중에서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안을 두고 각계각층에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팔만대장경 완성일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10월11일을 책의 날로 정한 이유는 당시 책의 날 선언문으로 채택된 ‘책의 날을 받드는 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책은 마음의 밭을 갈아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슬기의 높이를 돋군다’로 시작된 선언문은 ‘이에 우리는 책의 가없는 뜻을 알리고, 크나 큰 고마움을 기리도록 우리의 자랑인 팔만대장경이 나온 시월 열 하룻날을 책의 날로 받든다’로 마무리된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이 우리나라의 출판문화를 대표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현재 남아있는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 경판은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 소장돼 있는 재조(再造) 대장경 경판이다. 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돼 있던 초조(初造)대장경 경판이 불타버리자 1237년 불력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자 대장경 경판을 다시 판각하는 대역사를 시작한지 16년 만인 1251년 9월25일(양력 10월11일)에 완성됐다.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세 번씩 절을 했다고 할 정도로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들어졌다. 8만1천258매의 경판에 8만4천개의 법문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린다. 팔만대장경 경판이 보존돼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반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은 우리나라 ‘책의 날’보다 8년 늦은 199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됐다. 유네스코는 이를 계기로 독서 및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적소유권을 보호하는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날짜가 4월23일로 결정된 것은 책을 사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의 축제일인 ‘성(聖) 조지의 날(St. George's Day)’과 1616년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이 이 날인데서 유래됐다. 현재 스페인을 비롯해 80여개 국에서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책과 장미의 축제가 동시에 펼쳐지고 영국에서는 이 날을 전후해 한 달간 부모들이 잠자리에서 자녀들에게 20분씩 책을 읽어주는 독서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2년 ‘독서의 해’를 맞아 책을 선물하는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의 공모를 통해 이 날의 애칭을 ‘책 드림 날’로 정했다. ‘책 드림’은 ‘책을 드린다’란 뜻과 함께, 영어 ‘Dream’으로 ‘책에서 꿈과 소망, 희망을 찾는다’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문제는 ‘책의 날’이든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든 독서문화를 진흥하고자 제정됐지만, 하향곡선을 그리는 우리나라의 독서통계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독서인구 비중은 50.6%로 2013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또한 독서인구 1인당 평균 독서권수는 14.4권으로 최근 10년 이래로 가장 낮았다. 게다가 출판시장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지난 5월 발표한 ‘2019 출판시장통계’에 따르면 주요 출판사는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거뒀고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도 괜찮은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지역출판사를 포함한 소규모 출판사와 오프라인 기반의 중소형 지역서점은 역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쪼록 오는 16일 개막되는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을 통해 지역출판의 가치가 시민들에게 인식돼 우수한 지역의 기록이 생산되고, 독서문화가 확산되길 소망한다.

코로나와 염치없는 사람들

김시욱에녹 원장21세기의 유래 없는 세계적 역병인 코로나19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전 팬데믹 사례로 꼽히는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한 세계적 사망자 수가 수십만 명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그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아직도 백신 개발에 대한 희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 볼 때 장기간 계속 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중국의 인위적인 바이러스 유출을 의심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후 이러한 위기는 상시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의 전염병 최고 경보단계인 ‘팬데믹(Pandemic)’을 애써 우리말로 표현하면 ‘대창궐’을 의미한다. 단순히 한 지역 한 나라만을 봉쇄해서 해결되지 않는 국제적 붕괴를 불러 올 대재앙인 것이다.한때 국가수반인 대통령을 비롯해 행정부와 집권 여당은 이른 시기에 코로나를 극복할 것이라고 장밋빛 낙관을 내놓았다. 코로나로 인한 첫 사망자가 나온 날에도 ‘짜파구리’로 오찬을 즐기며 목젖이 보일 정도로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K-방역이라고 자화자찬하며 긍정적 평가의 몇몇 외국 언론기사를 연일 정권 홍보용으로 사용했다. 국내 경기 회복과 내수 진작이라는 명분하에 임시공휴일을 지정하고 소비를 위해 가족단위 외식을 장려하기도 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빠른 검사와 검사 인원수라고 공개 발표하기도 했다. 의료진을 뒤로하고 현 정부의 발 빠른 대처와 위기대응 능력이라고 추켜세웠다.하지만 위대한 K-방역에 대한 하늘의 시샘과 분노였던 것일까. 코로나19라는 역병은 ‘신천지 코로나’와 ‘대구 코로나’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클럽 코로나’와 ‘방문판매 코로나’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광화문 코로나’는 결국 적지 않은 수의 시위 주동자를 구속하는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예방책은 어느 새 숫자가 붙기 시작하더니 2.5단계니 3단계니 하는 애매한 기준의 블랙홀로 빠져 들고 있다. 하물며 국가적 명절인 추석마저 귀성을 자제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더욱 웃픈 사실은 개천절에 진행된 반정부 ‘드라이브 스루’ 시위에 대한 원천 봉쇄와 교통방해를 근거로 면허취소와 실정법 위반으로 구속하겠다는 발상은 엄포를 넘어 협박처럼 들렸다. 정지된 집회의 형태가 아니라 이동하는 차량을 이용한 반정부 표명이 과연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등극할지가 무척 흥미롭다. 코로나19에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정부와 집권 여당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다. 오직 역병의 ‘이름 붙이기 놀이’에 치중하는 듯 보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흔히 사전적 의미로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염치라 부른다.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자세는 우리네 선조들의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다. 선비가 자신의 영달과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이러한 생각이 사회 저변에 확산하여 일반 백성도 ‘염치없는 놈’이란 말을 최악의 욕으로 여겼다.시대가 바뀌었음인가! 코로나 시대에는 염치없는 인간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비말로 전염되는 코로나인 탓으로 공중장소에서 마스크를 내린 사람이 그러하다. 아예 마스크를 끼지 않은 인간 군상들은 염치가 뭔지도 아예 모른다. 하긴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또한 눈과 귀가 없으니 염치를 알리는 만무하고, 먹고 살기 바쁜 일반 국민들이 더운 환경 속에 ‘턱스크’ 한다고 염치를 들먹이기엔 과도한 표현이라 생각하고 접어둔다.최근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부 판결문이 기사화된 적 있다.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에 대한 양형이유를 설명하며 담당판사는 ‘전태일이 죽어가면서 그토록 준수하라고 외쳤던 법과 제도를 파괴하는 것은 정작 피고인’이라고 소리 높였다. 인용한 판결문에 따르면 민노총 노조간부는 ‘민주노총 노조원 고용’을 요구하며 주민복지센터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확성기 시위를 벌여왔다. 시위 소음은 주택가 소음 기준치를 훨씬 초과했으며 설치된 확성기를 떼려 하자 욕설을 하며 경찰관을 승합차 지붕에서 밀어 떨어뜨렸다. 다른 경찰관이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하자 1㎏가량의 철제 공구함으로 그의 머리를 찍기도 했다. 당시 최후 변론에서 민노총 간부는 자신은 전태일처럼 준법을 촉구한 행위였다라고 항변했다.염치는 이미 상실된 지 오래다. 현실은 오직 ‘내로남불’과 ‘편가르기’만이 남아 있다. 80년대 교문을 부수고 도로를 점령하던 학생 운동권의 ‘독재타도’라는 명분이 늘 실정법 위에 군림했듯이 내 편에 불리한 판결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끝없는 코로나19의 위협만큼이나 염치없는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두렵다. 법의 공정성이 우리들 삶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이유다.

언더독의 반란을 기대하며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스포츠 경기에서 특별하게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없으면 대게 약한 팀이나 선수를 응원하게 된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시나리오는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이라는 뒷이야기까지 있어 큰 감동마저 주기 마련이다. 누가 봐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사람들은 환호한다. ‘언더독(under dog) 효과’다. 스포츠나 영화 등에서 우승하거나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적은 팀이나 선수를 ‘언더독’이라고 한다. 반면 이길 것으로 예상되는 강자는 ‘탑독(top dog)’이다. ‘언더독 효과’는 원래 개싸움에서 아래에 깔린 개(언더독)를 응원한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약자를 더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현상을 뜻하는 용어다. ‘언더독 효과’는 예상을 벗어날수록 더 극적이다. 선거에서 약세인 후보가 유권자들의 동정으로 많은 표를 얻는 경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1948년 미국 대선 때 해리 트루먼이 토머스 두이를 제치고 당선되면서 처음 쓰였다. 당시 해리 트루먼 후보는 사전 여론조사에서 계속 상대 후보에 뒤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언더독’이었던 트루먼이 ‘탑독’인 상대 후보를 4.4%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부동층 유권자들이 해리 트루먼에게 동정표를 던져 판세가 뒤집혔던 것이다. 언더독 효과는 선거판에만 있는 현상도 아니다. 기업에서도 언더독은 중요한 소재이다. 최근 라면시장 점유율에서 진라면이 부동의 1위였던 신라면을 따라잡았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물론 “우리는 1위가 아니다”라면서도 “언젠가는 1위도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맛있는데”라는 차승원이 찍은 진라면의 광고도 한몫했다. 약점을 공개하는 언더독 광고로 친근하게 다가서면서 고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인 게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애플의 광고는 언제나 언더독들이 주인공이다. 전형적인 ‘탑독’인 세계적인 기업이 왜 언더독에 매달리는 걸까. 애플은 언더독으로 시작했기에 뿌리 자체가 언더독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1980년대 탑독은 IBM이었다. 애플은 도전자 입장에서 IBM에 대항하는 반항아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미지를 형성해왔다. 언더독은 스토리텔링을 하기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애플 제품의 타깃을 모든 사람들로 확장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만약 능력 있고 잘생긴 사람들만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광고를 내보낸다면 분명 언더독들에겐 이질감을 느끼게 할 뿐일 것이다.스포츠에선 ‘칼레의 기적’이 언더독의 반란을 대표한다. 칼레는 인구 8만명의 프랑스 북부 항만도시이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한 4부 리그 추구팀 라싱 위니옹 FC 칼레는 2000년 5월 기적을 일궈냈다. 슈퍼마켓 주인과 정원사, 항만 노동자가 주축인 순수 아마추어팀인 FC 칼레는 프랑스 FA컵 대회에서 유명한 프로 팀들을 연파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언더독의 반란’을 이야기할 때마다 ‘칼레’가 빠지지 않는 이유다.영화에서도 언더독은 주요 소재이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선 호빗 프로도, 록키(Rocky)에서는 록키 발보아가 언더독들이다. 스토리야 뻔하고 결말도 정해져있지만 관객들이 감동하는 건 이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승리하는 모습 때문이다. 이는 영화에서 언더독 캐릭터가 상업성을 담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영화이건, 비즈니스이건, 스포츠이건 언더독의 반란은 감동이다. 그렇지만 요즘 대다수가 언더독일 수밖에 없는 개개인들을 보면 조금은 착잡해진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이 10억 원을 돌파했고, 서울에 살면서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가족 모두가 월급 한 푼 쓰지 않고 11.4년을 모아야 한다는 통계까지 나온 마당이다. 대다수 언더독들에겐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우리가 ‘언더독의 반란’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 당장 원룸에서 월세로 근근히 이어오거나 반지하 또는 고시원에서 쪽잠을 자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내일은 ‘탑독’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스포츠나 영화 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수많은 언더독들의 반란 스토리로 감동이 이어졌으면 한다.

내 고향 왜관읍

박헌경변호사고향은 언제나 엄마의 품같이 그리운 곳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입니다. 왜관이라고 하면 낙동강전투, 끊어진 낙동강 다리로 대표되는 한국전쟁이 떠오릅니다. 왜관은 낙동강 방위선의 최대 격전지였기 때문에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지요. 그래서 1950~1960년대에는 터지지 않은 불발탄으로 인해 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미군부대 캠프 캐럴이 왜관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왜관(倭館)이라는 지명은 일본인의 거류지를 의미합니다. 일본인 거류지의 대표적인 곳이 동래에 있는 동래왜관이었습니다. 일본인 거류지인 왜관은 주로 일본에 가까운 우리나라 남동쪽 해안에 설치돼 있었지요. 그런데 내륙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칠곡군에 왜 왜관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왜관은 낙동강변에 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장사꾼 일본배가 칠곡군 왜관이 있는 곳까지 들어왔고 칠곡군 낙동강변 선창가에 일본인 거류지인 왜관이 형성됐습니다. 그런데 원래 왜관은 현 왜관읍의 낙동강 맞은 편인 약목면 관호리에 있었습니다. 1905년 경부선 철도의 왜관역이 현 왜관읍 지역에 설치되면서 이 지역의 행정구역명이 왜관면이 됐다고 합니다.왜관면이 점점 커지면서 왜관면이 왜관읍으로 승격됐고 칠곡군에는 읍이 두 개가 생기게 됐습니다. 본래 있었던 칠곡군 칠곡읍과 새로 승격된 왜관읍입니다. 그런데 왜관읍이 더 커지게 되면서 칠곡군 군청소재지는 칠곡읍에서 왜관읍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칠곡읍은 나중에 대구시가 광역시가 되면서 대구시로 편입돼 현재의 칠곡지구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칠곡군은 인구 약 12만 명으로 경북도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군입니다.왜관읍은 카톨릭과 인연이 많습니다. 일제 시대의 탄압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베네딕도 수도원 수사들이 왜관에 모여들어 세운 것이 지금 순심고등학교 옆 동산 위에 세워진 베네딕도 수도원입니다. 저는 어릴 때 저 멀리 동산 위에 높이 자리잡고 서 있는 서구식 건물의 베네딕도 수도원이 피안의 세계처럼 보였습니다. 가을이면 수도원을 둘러싼 노란 단풍잎이 너무 경이로웠습니다.구상 시인은 왜관에서 살았는데 친형이 카톨릭 신부일 정도로 카톨릭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 입구에 그 당시 구상 시인의 사모님이 순심병원을 열었습니다. 병원건물이 현대식 건물이 아니라 기와집으로 된 한옥식 건물이었습니다. 저의 동네는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들판에 당시로는 현대식인 주택 50채로 된 마을이었습니다. 주로 미군부대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동아일보 지국장을 하신 아버지 슬하에 60년대에 주택에 살았으니 저의 유년시절은 과수원과 함께 하는 그리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구상 시인은 낙동강변에 살면서 아름다운 시를 많이 지으셨는데 구상 시인이 사셨던 낙동강변에는 지금 구상문학관이 세워져 있습니다.왜관에는 베네딕도 수도원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왜관읍 낙산리에 있는 백년된 가실성당입니다. 가실(佳室)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으로 가실성당은 정말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멀리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동산에 자리잡은 가실성당을 찾아가면 그 고고하고 퇴색한 성당의 원초적 성스러움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목가적인 풍경 속에 동정녀 마리아의 동굴이 있고 묵상에 잠든 사목관이 있습니다. 가실성당은 한적한 시골에 자리잡고 있어 신자들은 별로 없겠으나 지금은 카톨릭 신자들이 베네딕도 수도원에 피정을 오면 들러서 참배하고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실성당은 팔공산 한티성지까지 이어지는 카톨릭 순례자의 길 시발점이기도 합니다.그런데 왜관이라는 지명은 그 이름 때문에 현재 시련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칠곡군 주민 일부가 ‘일제강점기에 굳어진 왜관읍이라는 지명을 사용하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관읍은 칠곡읍, 왜관역은 칠곡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왜관이라는 지명은 그동안 왜관이라는 지명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사람들의 역사도 같이 숨쉬고 있기 때문에 반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휴일에 가족과 함께 베네딕도수도원, 가실성당, 호국의 다리, 매원마을이 있는 왜관읍으로 나들이를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은 관광일 것 같습니다.

언택트 추석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불효자는 ‘옵’니다.”올해 추석 풍경을 한마디로 표현한 강력한 현수막 문구가 온라인을 휩쓸고 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로 시작하는 가수 진방남이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1940)에서 ‘웁’을 ‘옵’으로 바꾼 기발한 문구다.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하는 대신 고향에 내려오면 불효자라고 내세웠으니 이보다 더 강력한 카피가 있을까.지난해까지는 추석 전이면 동네마다 귀성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올해 그 자리는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가 추석 풍속도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즐겁고 풍성해야 할 추석이 코로나19로 인해 고향에 가지 않는 것이 효도라는 기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나서서 추석연휴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연일 호소하고 있다. 오죽하면 정세균 국무총리마저 나서서 “나를 팔아라”라고 까지 할까.이런 영향인지 실제로 코로나19는 민족 대이동이라는 한가위 귀향 풍속까지 바꿔놓고 있다. 최근 한국교통연구원의 ‘추석 연휴 통행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은 고속도로 일평균 이동량이 지난해에 비해 28.5%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우려’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일 년에 큰 명절 두 번, 설날과 추석을 기다리던 부모님의 상실감도 클 듯하다. 그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을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터라 고향에 오지말라는 말을 하면서도 가슴을 타들어갈 것이다. 자식들 입장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방역을 위한 마땅한 조치라고 이해하면서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입장이 죄송한 뿐이다. 가려니 불안하고 가지 않으려니 왠지 죄스러운 마음뿐이다.어찌됐든 이번 추석은 집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집콕족’들이 많아질 듯하다. 어르신들이 겪는 LID 증후군(Loss 상실, Isolation 고독, Depression 우울)도 늘어날 것이다. LID 증후군이란 핵가족화에 따른 노인들의 고독병으로 자녀가 분가해 떠나고 주위에 의지할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손실에 따른 고독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지는 증상이다.이런 와중에 제주도와 강원도 등 유명 관광지는 추석 연휴를 맞아 빈방이 없을 정도로 예약이 꽉 찼다는 소식이다. 귀성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여행은 대폭 늘어났다. 연휴 기간 제주도 방문 예정자는 3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을 정도다.아이러니다. 고향 부모님을 찾아뵙는 사람들은 불효자이고 추석 연휴를 즐기러 관광지로 몰려가는 사람들은 효자인가. 물론 정부나 지자체에서 나서서 홍보하는 귀성자제는 코로나방역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5일간의 추석연휴를 이용해 국내 여행을 떠나는 ‘추캉스족’(추석+바캉스족)이다. 관광지가 감염 확산의 진원지가 될 확률이 더 커졌다. 귀성도 포기하고 여행도 하지않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외식이나 여가활동은 당연히 늘어날 것이다. 5일 연휴를 집에만 들어 앉아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귀성자제만을 권고할 게 아니란 말이다. 고향을 찾되 철저한 생활방역 준수, 사회적 거리두기 유지를 홍보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필자도 서울에 있는 아이들의 귀성을 만류했다. 추석 당일 사촌들까지 모여서 이집저집 다니며 함께 지내는 차례도 올해는 그만 두기로 했다. 대신 가족끼리 조용하게 따로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바이러스가 추석명절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꿔놓았다. 가족친지들의 만남을 코로나19가 빼앗아가는 느낌이다.비대면 추석, 우울한 명절이다. 고향 방문은 고사하고 추모공원이나 봉안시설까지 폐쇄되거나 제한 운영된다. 더 큰 걱정은 추석명절 풍속도가 이젠 많이 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코로나가 종식된다 해도 내년 추석부터는 많이 변할 것이다. 그렇다고 추석의 본래 의미마저 잊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세상은 각박하지만 추석 때 만이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만 같은 넉넉함을 나눴으면 한다. 아울러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고향방문 자제라는 2020년의 추석 신풍속도도 올해 한 번으로 끝나길 기대한다.

대구와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문화 정체성(文化 正體性)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이다. 이는 같은 문화에 소속돼 있는 구성원을 통해 공유되고, 그 집단의 동질성을 확보함으로써 구성원 전체의 화합과 통합을 이뤄내고, 자긍심을 갖도록 한다. 대구와 수성구는 문화사적으로 존재 의미가 우뚝한 도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챙겨야 마땅한 문화사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 때문에 다른 도시나 외국에서 어렵사리 대구와 수성구를 찾은 방문객에게 자랑할 만한 소재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대구와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가 오는 10월16~18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진행될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에서 펼쳐진다. ‘수성특별전I’과 ‘수성특별전II’이란 이름으로 두 가지 내용의 영상 콘텐츠가 소개된다. 대구가 출판문화의 거점이며, 수성구는 출판의 기록성 덕분에 대구 정신이 태동된 곳이란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출판은 문화산업의 뿌리다.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뉴미디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출판은 정보와 지식을 소통하고 공유하는 유력한 미디어였다. 영상이 주력 매체로 부각된 오늘날에도 출판시장은 위축됐지만 출판의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대구는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출판문화의 거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거란족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기 위해 제작된 초조대장경 경판이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됐으며 당시 인쇄도 이뤄졌다. 지난 2011년 초조대장경 판각 1천년을 맞아 동화사를 중심으로 복원사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대구에 경상감영이 상시 설치되면서 영영장판(嶺營藏板)을 제작해 영남권 전역을 대상으로 영영본(嶺營本)을 펴냈다. 영조 때는 왕명에 의해 경상감영이 금서에서 해제된 ‘반계수록’을 출판해 전국에 배포했다. 그 당시 흔적이 동구 옻골마을 백불암 고택에 ‘반계수록 최초 교정 장소’란 안내문과 함께 남아 있다. 이와 함께 문중과 사찰 등에서도 문집과 족보, 불경 등을 출판했다.대구의 출판문화는 감영이 출판을 주도하다가 맥이 끊긴 다른 지역과 달리, 조선시대 이후에도 계속됐다. 관영 출판이 왕성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늦었지만, 1900년대 초반부터 재선당서포와 광문사 등 상업출판사들이 방각본(坊刻本)을 펴내면서 민영 출판을 이어갔다. 또 현대에 들어와서도 북성로와 침산동 등지에서 기계산업이 왕성했던 대구는 인쇄기계 제작의 메카로 부각됐다. 기계식 인쇄기를 수집하고, 그 인쇄기로 책과 명함 등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전북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책공방에는 대구산(産)임을 증명하는 철제 라벨이 붙은 인쇄기가 상당수 소장돼 있다. 지금도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과 성서공단 출판산업단지가 가동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유일한 지역 단위 출판지원기관인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도 존재한다.아날로그 출판문화의 결과물인 문집을 통해 확인된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은 조선 중기 문인인 계동 전경창 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동에서 나고 자란 계동 선생은 도산서원을 찾아 퇴계 이황의 가르침을 받은 뒤 자신의 집에 마련한 계동정사에서 대구 유림에 퇴계 성리학을 처음 전파하고,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을 건립한 뒤 후학을 양성해 대구를 인재의 도시로 만든 인물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문집인 ‘계동집’에 수록된 가헌(家憲)을 통해 ‘내 방에는 문구, 거문고, 활만 두라’고 할 정도로 문무를 모두 중시한 선비였다. 이같은 사실은 계동집은 물론, 낙재 서사원과 모당 손처눌 등 제자들의 문집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계동 선생의 가르침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대구를 침범하자 낙재와 모당 등 제자들이 모두 의병장으로 활약하면서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게 만들었다. 이 정신은 항일 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 초반 대한광복회과 의열단의 무장독립운동, 1940년대 반딧불 사건과 태극단 사건 등 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승한 대구 정신의 정점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효시인 2·28민주운동이다. 불의에 저항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대구 정신의 뿌리를 계동 선생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세계적 유행(Pandemic)으로 선포된 코로나19 방역조치 때문에 세계화 현상이 주춤하면서 국제교역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추세를 뜻하는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오프라인에서는 국내시장을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됐고, 온라인에서는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지역성 또는 로컬리티(Locality) 개발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 됐다. 지역성은 문화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대구와 수성구는 지금이라도 문화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란 구호와 함께,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인 ‘글로컬’이란 용어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사과할 줄 알아야 진정한 리더다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사과(잘못에 대해 용서를 빈다는 뜻)의 홍수 시대다. 뉴스에서 정치인, 기업가, 연예인들의 사과를 접하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될 정도다. 이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사과를 하는 이유가 대부분 막말을 했거나 말실수, 또는 의도적인 말실수 때문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정회 도중에 “죄 없는 사람 여럿 잡을 것 같다”며 야당의원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했다. “소설 쓰시네”에 이어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고 한 실언으로 또 논란이 된 셈이다. 추 장관은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 정회 직후 서욱 국방부 장관의 “많이 불편하시죠?”라는 말에 “어이가 없다. 저 사람(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검사 안 하고 국회의원 하기를 참 잘했다”고 말했다. 속개된 회의에서 야당의원들의 이어지는 항의에 추 장관은 “유감스럽다.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사과하면서도 “원만한 회의의 진행을 위해”라는 전제를 달았다. 늘 뉴스에서 봐오던 풍경이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사과를 하는데 있어서도 기술이 있고 방법이 있다. 여론을 돌이키려고 한 사과가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사례들을 숱하게 봐오지 않았던가. 지난 4월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수사 중인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과회견이 그랬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가 피해자의 반발을 샀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도 코로나19 확산 책임과 관련한 사과회견에서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고 말해 국민들의 화를 키웠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한다”거나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이 있다면 사과드린다”는 말은 이제 유행어가 됐음직하다.모두 잘못된 사과의 유형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아론 라자르는 그의 책 ‘사과에 대하여’에서 사과의 기본은 깨끗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게 없는 사과는 시작부터 잘못된 사과라고 강조했다. 더 구체적인 사과의 방법으로는 ‘쿨하게 사과하라(김호/정재승)’는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①변명은 붙이지 않는다 ②‘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③자신의 실수를 명확하게 인정한다 ④개선의 의지나 보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⑤재발 방지를 약속해야한다 ⑥상대방에게 용서를 청해야 한다는 여섯 가지 사과의 방법이다. 사과가 뭔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이다. 변명 아닌 잘못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재발방지 약속, 용서를 비는 표현이 담겨야 진정성이 있는 사과인 것이다. 책임 회피성 변명으로 일관한 사과로 여론이 악화된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태였다. 대한항공의 첫 사과문은 '잘못은 사무장이 한 것이며,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은 당연한 지적을 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비난의 역풍을 맞았다. 특히 진정성 있는 사과에 인색한 건 정치인들이다. 아마 사과 이후에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해낼 용기조차도 없는 듯하다. 물론 사과하기 이전에 원인이 되는 막말부터 하지 않는 게 상책이긴 하지만 기대하기는 요원한 듯하다. 막말 소동을 겪은 후 이어지는 유감표명을 보면서 변명하기에만 급급한 내용이라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다.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 했던가. 공자도 논어에서 듣기 좋은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현혹시키고 속이는 것을 경계했다. 지금 교언으로 위장한 막말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사과는 보기 어렵다. 사과를 하더라도 단서가 붙은 조건부 사과이다. 이런 사과는 오히려 오만하다. 나는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여론이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주겠다는 인식이 깔려있어서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이제는 품격 있는 사과를 보고 싶다. 사과의 기술과 방법도 제시했고 잘못 발표한 사과의 사례도 찾아봤다. 이젠 진정한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는 일만 남았다. 꼭 누구를 겨냥하고 한 말은 아니다. 다만, 사과인듯 하면서도 변명인듯한 표현으로 어물쩍 넘기려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사과는 자기합리화가 아니다. 진솔함과 겸손함, 두가지를 갖춘 사과에는 국민들도 마음을 연다.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리더다.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 카운트 다운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지친 국민을 다독이다’ 지난 16일 D-30일을 맞아 공개되면서 눈길을 끈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 티저(teaser) 동영상의 첫 카피(광고 문안)다. 티저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내용 일부만 공개하는 맛보기를 뜻한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피로도가 한층 높아진 국민을 위로하는 이 카피는 전국을 대상으로 공개모집한 공식 슬로건 ‘지역을 다독이다. 책을 다독(多讀)하다’에서 나왔다.티저 동영상 공개를 시작으로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지난 5월에서 10월16~18일로 연기되면서 운영방식도 비대면으로 완전히 바뀐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이 카운트 다운에 돌입했다. 티저 동영상에서는 운영방식이 ‘언택트(비대면)를 넘어 온택트(영상대면)’로 바뀐다는 내용이 소개된다. 이어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서 읽는 시민들의 모습이 펼쳐진 뒤 범어도서관, 용학도서관, 고산도서관, 무학숲도서관 등 수성구립도서관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국지역도서전의 연혁이 등장한다. 2017년 제주시, 2018년 수원시, 2019년 고창군, 2020년 수성구 순이다. 그리고 ‘지역출판물과 독서운동을 공유하고 소통한다’는 행사 목적도 드러난다.PC용과 모바일용으로 각각 제작된 티저 홈페이지도 D-30일에 함께 공개됐다. 홈페이지는 한국지역도서전의 개요와 연혁 등을 안내하는 ‘도서전 안내’, 공지사항과 보도자료 등을 담는 ‘알림마당’, ‘이벤트’로 간단하게 구성됐다. 말 그대로 맛보기 수준이다. 행사명이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2020 온라인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으로 수정됐으며, ‘D-25’ 등으로 D-데이를 앞둔 날짜를 카운트 다운하고 있다. 티저 동영상도 홈페이지 첫 화면에 적지 않게 배치돼 방문자들에게 쉽게 한국지역도서전을 이해하게 한다.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한 이벤트도 진행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모바일 상품권을 제공하는 ‘책놀이 한 컷!’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독서를 비롯해 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담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한편, 한국지역도서전과 관련된 지정문구에 해시태그를 달면 된다. 지정문구는 ‘#2020대구수성한국지역도서전’ ‘#한국지역도서전’ ‘#책놀이한컷!’ ‘#수성구립도서관’ ‘#한국지역출판연대’이다. 그러면 선착순 500명에게 스타벅스의 큰 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교환할 수 있는 기프티콘이 제공된다. 선택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한국지역도서전에 활용된다.‘북 커버 챌린지(Book Cover Challenge)’는 전국의 한국지역도서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페이스북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챌린지는 참여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독후감이나 서평 등 일체의 설명 없이 책 표지 사진만 한 주일간 소개하면서 다른 페이스북 친구 한 명에게만 릴레이 동참을 권유하는 방식이다. 목적은 물론 독서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데 있다. 한국지역도서전을 알리는 데도 활용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D-데이 앞둔 카운트 다운을 나타내고 있다.1천 명의 독자가 시상한다는 뜻이 담긴 ‘천인독자상’ 홍보도 계속되고 있다. 천인독자상은 한국지역도서전 개막일인 10월16일 시상할 ‘한국지역도서대상’의 다른 명칭이다. 전국에서 책과 독서를 애정하는 누구든지 1천 명이 1만 원씩 모아 한 해 동안 지역출판과 독서 진흥운동에 기여한 저자와 지역출판사를 시상하는 이벤트다. 행사가 끝나는 10월18일까지 모금은 계속된다. 이 때문에 지역을 기록하는 지역출판과 문화운동의 뿌리인 독서운동을 확산하자는 뜻깊은 동참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운영방식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경되면서 메시지 전달의 핵심으로 부각된 영상 콘텐츠와 온라인 플랫폼 제작 등에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게 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증액은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에서 관련 단체들이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기꺼이 잡아줬다.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대구경북광고산업협회, 이벤트협회가 그 주인공이다. 이로써 올해 한국지역도서전은 우리 지역의 관련단체까지 동참해 시민문화운동 차원에서 진행하게 됐다.아무튼 코로나19 사태란 복병으로 인해 올해 한국지역도서전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적지 않은 오프라인 행사가 여전히 아쉽지만, 온라인 지역책축제 및 독서문화축제의 뉴모럴을 제시하려고 애쓰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때문에 생긴 ‘코로나 우울증’ 또는 ‘코로나 블루’를 예방하고 극복하는데 독서가 가장 효과적이란 점도 부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일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소설, 허구와 진실의 교차점

김시욱에녹 원장소설이나 영화를 허구의 세계라 일컫는다. 다른 말로 픽션이라는 영어로 표현하기도 하다. 이에 반하는 의미로 논-픽션은 ‘실재’ 혹은 진실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엄밀히 접근하면 소설이 곧 허구(fiction)라는 등식은 지나친 비약으로 볼 수 있다. 픽션은 소설의 서사, 곧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기법의 문제이다. 시대적 배경과 장소적 배경 등 사실에 기반을 둔 소설들이 적지 않은 점을 볼 때, 소설을 단순히 허구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스토리 전개를 구성하는 서사의 많은 부분이 사실과 허구의 미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 그 구분은 더더욱 어려워진다.최근 현직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아들의 과거 군복무 관련 의혹을 제기한 야당의원에게 ‘소설쓰시네’라고 말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하물며 소설가협회가 추미애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웃픈(?) 현실이 일어났다. 더 재미난 사실은 ‘거짓말’과 ‘허구’의 개념을 정리해 학술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소설가협회에 대한 사과 여부는 알지 못하지만 지난 14일 추미애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식 사과를 했다. 사과의 말 중 일부를 옮기면 ‘독백이었는데 스피커가 켜져 있다 보니 그렇게 나가버렸다. 그런 말씀 드리게 돼 상당히 죄송하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독백과 방백이라는 드라마적 용어는 엄격히 구분되는 입장이다 보니 추미애 장관의 말은 드라마 협회서 다시금 학술적으로 정리해 주리라 믿는다. 정신분석학자 지젝의 비틀어서 보기(looking awry)라는 단어를 차용해 보면 아마도 인문학 관련 협회 전체에서 추천 도서와 영화를 권하지 않을까 하는 다소 ‘희화화’된 염려와 걱정이 일어난다.추미애 장관 옹호자들 입장에서 말하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라는 말처럼 본인이 항변하고자 한 진의는 짐작된다. 야당 의원이 제기하는 자신의 아들의 군복무 문제가 ‘거짓말’ 혹은 ‘지어낸 것’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소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이 분명한 듯하다. 참으로 재미난 사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소설’이라던 내용들이 진실로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청탁이었냐 아니냐의 문제는 차후 논할 문제라 하더라도 보좌관과 추미애 장관 부부 중 한명이 국방부에 전화했다는 사실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휴가연장이 정당한 국방부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느냐는 부분은 더없이 예민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장관 측은 위법한 부분은 없고 충분한 이해와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범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빠’라고 불리는 극성 지지층은 잘못된 과정이나 불법적 부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을 막으려는 야당과 검찰측 시나리오로 몰아가고 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황희 국회의원은 추미애 장관의 아들 서씨의 군복무 특혜의혹을 제기한 당직사병의 실명과 사진을 SNS에 올리고 ‘산에서 놀던 철부지의 불장난’ 그리고 배후세력을 등에 업은 ‘국정농단’이라는 막말을 내뱉고 있다. 국방부의 입장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국방부의 설명을 요약하면 ‘현역병 등의 건강보험 요양에 관한 훈령’을 토대로 ‘민간 병원에서 입원이 아닌 치료를 받은 서씨는 군 병원 요양심의를 거치지 않고 청원휴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지휘관의 전화로도 휴가 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또다시 ’편 가르기‘의 문제가 된 예민한 현직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일임에도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정말 한편의 소설이 2020년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음이다. 눈과 귀가 열려 있는 국민들을 앞에 두고 소설가 협회마저 비난해 온 ‘소설 쓰기’가 전개되고 있다.흔히 ‘확증편향’을 가진 자들은 자기가 가진 신념과 가치관에 부합된 정보와 사실만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조직된 행태로 표출될 때 ‘빠’라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자신들이 아닌 타인에 대한 공격적 성향을 띄게 된다. 전직 대통령을 옹호하던 ‘노빠’ ‘박빠’ 그리고 ‘문빠’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이들은 확증편향에 빠져 있는 듯하다. 현 정부의 절대 옹호세력인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은 단어에서 보듯 스스로 그러한 성향을 인정하고 있다. ‘내가 조국이다’ ‘내가 추미애다’라는 캠페인 또한 이와 유사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소설을 구성해 가는 허구라는 장치는 이미 사실이 아닌 것을 독자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2020년 대한민국의 ‘소설쓰기’에 ‘빠’가 아닌 진정한 대다수 국민이 ‘이게 나라냐’ ‘나라가 니꺼냐’며 거리로 나설까 두렵다. 코로나 정국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슬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