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사돈 / 김형수

눈 펑펑 오는 날/ 겨울눈 많이 오면 여름 가뭄 든다고/ 동네 주막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늙은이들 간에 쌈질이 났습니다/ 작년 홍수 때 방천 막다 다툰/ 아랫말 나주양반하고 윗말 광주양반하고/ 둘이 술 먹고 술상 엎어가며/ 애들처럼 새삼 웃통 벗고 싸우는데/ 고샅 앞길에서 온 동네 보란 듯이/ 나주양반네 수캐 거멍이하고/ 광주양반네 암캐 누렁이하고/ 그 통에 그만 홀레를 붙고 말았습니다/ 막걸리 잔 세 개에 도가지까지 깨뜨려/ 뒤꼭지 내물이에 성질 채운 주모 왈/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 시집『애국의 계절』(녹두, 1989) ..............................................................................................................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보리 풍년 든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여름 가뭄 든다는 얘기는 처음이다. 이곳 대구야 그렇다 치고 올해는 중부지방에도 1월 말까지 눈 보기가 힘들고 건조한 대기 상태가 지속할 전망이란다. 눈도 비도 오지 않아 미세먼지 대책으로 서해에서 인공강우 실험을 할 계획이란 소식도 있다. 이 시에서만큼은 눈 오는 날의 정경이 고스란한데, 남도의 겨울 농한기 주막에서 내년 농사 염려하며 말을 섞다가 쌈질이 난 모양이다. 노인네들끼리 지난 구원을 들춘 게 화근이 되어 주기가 올라오면서 울컥 분기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눈 펑펑 내리는 날 웃통까지 벗고 싸우는 모습은 둘레의 구경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가관이다. 그런 싸움이야 애당초 아주 험한 꼴로 번질 가능성은 희박하고 종래는 지리멸렬해져서 제풀에 흐지부지 수습되는 양상으로 전개되어야 정상이다. 재미나는 것은 그 틈을 타 양쪽 노인네의 암캐와 수캐가 동네 고샅에서 홀레를 붙고 말았다. 상황이 이쯤 되면 서로 멱살잡이하다가도 힐끔힐끔 곁눈질해가며 자연히 주먹의 힘도 슬그머니 풀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쪽 콧구멍을 막고 코 한번 팽 푼 다음 소매를 툭툭 털며 서로 화해의 잔이 오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노인네들 소싯적 길바닥에 침깨나 찍찍 내뱉고 다녔는지 성질들이 고약하다. 아니면 혼자 사는 주모에게 낯짝 세우기가 필요했던 은근한 연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쌈질은 그칠 줄 모르고 막걸릿잔과 술독까지 깨부숴가며 한판 오지게 붙었다. 바깥의 개들은 사랑놀이로 질펀하게 붙어먹었는데, 사람 꼬락서니가 되어가지고 허접한 시비에 닭싸움이 목불인견이다. 두 양반 모두 찌질이가 되어가는 찰나. 보자보자 하니 도분이 나서 더는 못 봐주겠다며 주모가 나섰다.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 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졸지에 누렁이와 거멍이 덕에 사돈 관계가 된 두 노인네의 쌈질은 보나 마나 그것으로 땡땡 종을 쳤을 터. 지난 한 주 내내 남도 목포가 이 땅에서 가장 핫한 무대로 부상했다. 여기서 벌어진 난타전이 멈출 줄도 식을 줄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누구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저수지 물을 흐린다”고 했지만 그 덕에 모처럼 일대가 활기를 띠며 호황이다. 이 싸움은 투자냐 투기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냐 돈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수상한 건물과 음모의 문제가 아니라, 목포가 항구냐 호구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국민을 잘 속여서 제 욕망을 채우느냐의 문제. 우르르 몰려가 ‘도둑들’이나 ‘범죄와의 전쟁’처럼 떼거리로 골목길을 걷는 멋진 샷으로 흥행을 몰아보겠다는. 싸가지가 좀 없어 보이는 한 여인을 상대로 쌈질하기에 딱 좋은, ‘오사럴’ 염병할 것들. 우리가 안 보는 데서는 개사돈들끼리.

시를 읽는다/박완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 산문집『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2010) .............................................................................................................. 신문에 연재될 당시 아침에 그것을 받아 읽을 때의 행복감이 생각나서 얼른 샀다는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애송시 100편(정끝별, 문태준 해설)’을 두고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 두 권의 책은 살 때도 행복했지만, 다시 읽어도, 아무 데나 읽어도 내 정신은 조금은 깊고 높아지는 것 같은 기쁨을 맛본다” “멋모르고 그냥 느낌으로 좋아하던 난해한 시에 뛰어난 시인들의 웅숭깊고 친절한 해설이 붙은 것도 금상첨화였다”면서 책상 가까이 눈에 잘 띄고 손만 뻗으면 수시로 뽑아볼 수 있는 자리는 시집들 차지라고 하셨다. 박완서 선생의 시사랑은 문학소녀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암송할 수 있는 시만도 100편 가까울 정도로 선생의 시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이런 담백한 진술이 담긴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등단 40년을 맞아 작고하기 1년 전에 펴낸 선생의 마지막 저서였다. 표제 산문의 마지막 문장은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선생의 말씀처럼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한 여유로 가시는 길 아늑하고 편안한 자연과의 교감이었으리라. 하지만 2011년 1월 22일 선생의 갑작스런 부음은 안타깝고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한국문학의 지분이 크게 줄고 한 축이 스르르 헐려나간 느낌이었다. 현기영 작가는 ‘오래된 농담’을 읽고 “연로함이 이토록 총명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고갈되기는커녕 더 충만해진 영혼의 샘물이라니 참으로 놀랍다”고 했다. 신경숙은 “정곡을 찌르며 생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들춰내 보일 때면 글귀신을 본 듯하여 몸과 마음이 소름 돋는다”며 독자들이 막연히 가졌던 생각을 고스란히 대변하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는 이야기도 선생의 수중에 들어가면 ‘쫀득하기 이를 데 없는 진경’을 이룬다. 선생께서 가신 지 8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박완서는 뜨거운 진행형 작가다. 소설은 물론 이렇듯 시를 사랑하는 향훈이며 맑은 웃음, 특유의 따스하고 진솔한 산문까지 공감과 감동을 얻고 있다. 올해는 생전의 유일한 콩트 소설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재간행 판이 나왔고, 8주기를 기념하여 후배 작가 29인의 오마주 콩트 모음집 ‘멜랑콜리 해피엔딩’도 출간되었다. 헌사에서 윤이형 작가는 “여성에게 삶의 매 순간이 투쟁임을, 문학이 순응이나 타협이 아니라 격렬한 싸움임을, 평생 온몸으로 체현하며 살았던 사람”이라며 선생을 기렸다.

책 정리를 하다가 / 윤일현

누렇게 뜬 시집에서 나온/ 빛바랜 흑백 명함판 사진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어지러워 서가에 몸을 기댄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좌충우돌하며 돌아다녔건만./ 세월은 모든 것을 탈색하여 내 젊은 날들 결국은/ 5x7cm의 작은 평면 속/ 흑과 백, 명과 암으로 정리되는구나.// 세상의 모든 색채 흑백 속에 가둘 수 있지만/ 그 색채들 또한 흑백에서 갈라져 나옴을./ 밝음 끝에는 어둠이 찾아오고/ 어둠 다하면 새 빛이 돋아남을,/ 명과 백, 암과 흑만으로는/ 혁명도 사랑도 형상을 가질 수 없고/ 흑과 백, 명과 암은 서로 기대고 있음을,/ 그때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중략)/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 여전히 그대로 부여잡고 있는/ 앙상한 내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새벽별 하나 가슴에 안겨주고/ 가장 따뜻한 시로 나를 덮어준 후/ 그 시집 다시 서가에 고이 꽂아주며/ 불쑥 찾아온 현기증을 다스린다. - 계간 시와반시 2015년 겨울 .............................................................................................................. 윤일현 시인은 대구 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알려진 교육컨설턴트이다. 대구시인협회장을 맡고 있지만 시인으로서 보다는 입시 전문가로 더욱 유명한 인사다. 요즘 막바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SKY 캐슬’의 김주영에 비견될 수 있겠으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여러 신문에 교육문화 칼럼을 연재하고, 쇄도하는 강연 요청에 일일이 응하면서도 그는 늘 인성과 품성에 바탕을 둔 학력 신장 방법을 제시해 왔다. 그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구슬을 취득하고, 그 구슬로 잘 꿰어야 보배가 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평범한 믿음이 사람들에게는 독특한 교육방법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 설파가 학부모들로부터 설득력을 얻게 된 믿음에는 경북대 교수로 있는 부인과의 사이 두 자녀가 서울대 의대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에는 수천 권의 책으로 빼곡하고 바쁜 와중에서 적어도 하루 두 시간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삶에서 스스로 세운 원칙이며 아마 자녀들도 그 분위기를 이어받았으리라. 그가 펴낸 교육지침서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를 일반적인 용도와는 무관하게 읽은 적이 있다. 지역 신문에 연재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칼럼을 묶은 이 책은 출간 이래 스테디셀러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중국 출판사와도 계약을 맺고 출판된 바 있다. 기존의 자녀 교육서와는 판이한 미래지향적인 자녀교육법이라 할 수 있다. 자녀 교육이 삶의 고통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꿰는 기술’만 가르치려 들지만 그는 구슬이 없는데 뭘 꿴다는 말이냐고 반문한다. “우선 구슬부터 모아라. 모으고 또 모아서 방에 구슬이 차고 넘쳐서 어지러우면 자연스럽게 정돈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유별난 방법, 돈 쏟아붓는 방식, 아이를 몰아붙이는 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즐겁게 아이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아마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윤일현 선생만큼 한심해하고 비웃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부모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리고 그는 ‘가장 영향력 있고 열정적인 공교육의 옹호자’이다. ‘흑과 백, 명과 암’에 관한 사유도 깊은 성찰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사랑 / 고영민

늦은 저녁, 텅 빈 학교운동장에 나가/ 철봉에 매달려본다/ 너는 너를/ 있는 힘껏 당겨본 적이 있는가/ 끌려오지 않는 너를 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끌려가본 적이 있는가/ 당기면 당길수록 너는 가만히 있고/ 오늘도 힘이 부쳐/ 내가 너에게/ 부들부들 떨면서 가는 길/ 허공 중 디딜 계단도 없이/ 너에게 매달려 목을 걸고/ 핏발 선 너의 너머 힘들게 한번/ 넘겨다본 적이 있는가 - 시집『구구』 (문학동네, 2015) .............................................................................................................. 참으로 오랜만에 다른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동네 놀이터 철봉에 매달려 보았다. 철봉도 내 몸도 꿈쩍하지 않았다. 한번 당겨볼 마음이야 왜 먹지 않았을까만 요지부동 매달려 있기조차 힘이 들어 그만 내려오고 말았다. 내 턱걸이 실력은 중학교 입시 체력장 때 기록한 9개가 최대치였다. 이후 중학생 시절 유도를 할 때에도 군에서도 기록을 갈아치우기는커녕 나날이 형편이 줄어들었다. 철봉 턱걸이 운동은 팔 힘뿐만 아니라 끌어당길 때 등힘이 함께 작용하고, 자신의 체중을 들어올려야 하므로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몸무게를 모두 끌어올려야 턱걸이 한 개를 간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중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상체를 단련하지 않으면 한 번 하기도 버거운 철봉 턱걸이다. 철봉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주 철봉에 매달리며 철봉과 친숙해져야 함은 물론이다. 어쩌다 철봉에 손바닥을 말아 쥐고서 내 몸이 딸려 올라가 주기를 바란다면 언감생심 그런 망발이 없다. 엎드려 팔굽혀펴기는 집에서 몇십 개씩 하고 있지만 한심한 내 몸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에다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 한 번 하는 것을 소원이라 적는다 해도 못 해낼 것만 같았다. 이런 턱걸이를 사랑의 운동법칙에다 비유하다니 나는 일찌감치 텄다. ‘너는 너를 있는 힘껏 당겨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그렇다고 내 생애에 사지 힘껏 내 몸을 부추기는 용기를 한번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참으로 좋아했고 그리워하며 매달렸던 사랑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적 취향을 존중했으며 귀엽고 지적인 모습에 반했다. 수학 선생이면서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고, 방학 때면 혼자 해외로 즐겨 여행을 떠나곤 했다. 집에는 성모상이 있었고 술을 즐겼으나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혼자 사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술을 마시다가 느닷없이 10분간 영어로 대화를 하자는 참으로 생뚱맞고 기분 나쁜 깜짝 제의에 최선을 다해 응한 일도 있었다. 그녀로서는 필요했을 자질 테스트였으리라. 아마 나는 그 부문에서 상당한 점수를 잃었으리라. 그녀의 집에서 밤을 지새울 때도 십자가 아래서 ‘못된 짓’을 원치 않았던 그녀의 뜻을 고스란히 지켜주었다. 처음 성당에 가서 눈을 감아본 것도 그녀와 함께였다. 미래를 같이 이야기했으며 ‘당기면 당길수록’ 철봉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조금씩 딸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사랑은 실패했다. 자초지종의 사연 가운데는 내 방종이 있었고, 그녀 하나만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던 내 미숙 탓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온 힘을 다해 화살을 쏘더라도 과녁이 잘못되면 허탕이지만, 꿈과 목표가 분명하면 숨이 멎을 만치 부들부들 떨면서 가는 길이라야 했다. 그게 어디 사랑뿐이랴.

반성 704 /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 시집 『반성』(민음사, 2007개정판) .............................................................................................................. 차가 개를 치고 그냥 달아났다 해서 뺑소니로 취급받지는 않는다. 그 개가 현장에서 즉사해도 교통사고라 하지도 않으며,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당사자인 개들의 편에서 생각해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설령 무단횡단이라는 피해자 측 과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은데 개는 개일 뿐이라는 논리 앞에선 대책이 없다. 이미 애견 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난 상황이고 개에 대한 인식도 소유의 개념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되어 ‘애완’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 부른지 오래다. 개의 주인, 아니 개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처지에서는 이런 ‘개죽음’ 앞에서 그냥 태연할 수 없을 것이다. 반려견 등을 염두에 두고 제정된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을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불필요하거나 피할 수 있는 신체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 및 굶주림, 질병 등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게을리하거나 방치하는 행위’를 ‘동물 학대’라고 규정했다. 그 구체적 금지 행위에는 공개된 장소이거나 같은 개들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것을 포함한다. 안락사에 대한 규정도 명시되어 있으며, 그밖에 학대행위 금지 조항도 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동물 실험에 대한 법률’도 마련되어 있다. 불필요한 동물 실험을 줄이고, 지나친 고통을 유발하는 실험을 금지하자는 법안이다. 노벨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한 인간이 개와 우정을 맺는다는 것은 그 개를 잘 돌본다는 도덕적 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했다. 고의든 과실이든 개와의 우정을 배신하고 내버려 지는 개들이 늘고 있다. 오래전 유기견보호소에서 봉사를 했던 한 여학생이 체험 봉사 사례 공모전에 응모했던 글이 생각난다. 키우던 애완견을 버리는 이유에는 대략 몇 가지가 있다. 갑작스레 병이 생겨 목돈이 들어가는 등의 유지비 부담, 개털이 천식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알레르기에 대한 우려, 이사를 하며 달라진 환경에서의 사육 부담, 처음엔 귀엽기만 하던 것이 커가면서 꼬락서니가 미워졌다는 이유, 수컷의 딸아이 발목을 붙들고 시도 없이 해대는 요상한 허그 행위 따위가 그것이다. 최근엔 경제적 부담으로 내다 버린 개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정부가 반려동물 유기를 막기 위해 반려견 등록을 의무화한 지 5년이 넘었지만 등록 건수는 절반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토리를 입양한 것 또한 유기견 문제의 심각성 때문이다. 최근 동물보호단체의 유기견 안락사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이 시가 다시 생각났다. 빗나간 사랑으로 버림받은 유기견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한 인간의 내세가 밝을 리 없다. 시에서 ‘밍키’도 그저 측은지심 정도로 머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시인의 ‘남편 같다’는 말이 아무런 저항 없이 들린다.

독서 / 박재열

오늘 읽는 책 위로 얇은 유리 층 하나 파르르 떨리네/ 이걸 지층이라 부를까, 지진이라 부를까/ 아무리 지진에 자물통 채우고 책상 다리 찔러 침잠하려 해도/ 몸의 내밀한 소린 터파기처럼 유리 층을 부수네/ 책 속의 작은 꽃가마, 울컥울컥 행간을 헤치고 올라오네/ 우린 못 보아도, 댐이 무너지고, 몸 안의 들녘이란 들녘이 다 범람하는데/ 꼭 같은 페이지, 꼭 같은 모서리, 예사로운 앉음새,/ (중략)/ 통꽃무리들이 소나기처럼 우두둑, 유리 현관문을 두들겨/ 그래도 그냥 보통명사의 항의라고 속단하고/ 여느 때처럼 2쪽 다 읽고 3쪽 넘기며/ 그저 그런 거라고 귀 접어 둘, 정말 그저 그런 일일까 - 계간 《시와 창작》 2008년 봄호 .............................................................................................................. 학창시절 새 학년에 올라 가정환경조사서를 쓸 때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기재할 때 취미를 묻는 질문 앞에 누구나 잠시 주저했던 기억이 있으리라. 취미란 우선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지속성 있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런 취미를 위해 보내는 시간을 여가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드물게는 취미가 직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취미가 돈벌이가 되고 직업이 취미라면 얼마나 좋을까. 낚시가 취미인 연예인 조사들이 요즘 꿩도 먹고 알도 먹는 모습에서는 시기심까지 생겨날 지경이다. 이 시대에는 경제여건의 개선과 다양해진 레저영역으로 취미도 많이 다채로워졌으나 30~40년 전에는 취미생활을 위한 운신의 폭이 그다지 넓진 않았다. 기껏해야 운동 아니면 음악 감상이고 사진촬영과 우표수집 등은 고급의 취미에 속했다. 여학생인 경우엔 더러 수예나 뜨개질 등을 취미로 적기도 했다. 하지만 이도저도 마땅치 않은 경우엔 대부분 독서라고 얼버무렸다. 이는 짐짓 교양인임을 암시하는 듯 싶지만 실은 무취미의 다름 아니다. 독서는 매일 먹는 밥처럼 삶의 중요한 일부이고 생활이 되어야 마땅하다. 독서를 취미라 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독서하는 습관을 갖고, 좋은 책을 골라 읽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잔잔하지만 전진하고 보이지 않지만 진보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진 않겠으나 실제로 성공한 사람 대다수의 공통점이 아침 일찍 일어나고 책을 읽는다는 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책은 마구잡이로 아무 책이나 읽는다고 해서 독서는 아닐 것이다. 교과서와 참고서 읽기를 독서라 하진 않는다. 신문을 읽는 정도로 독서라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가슴 속 전율을 한번이라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이 시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가슴에 이는 진동이 지진으로, 파열음의 깨달음이 지층을 쌓아가며 눈앞에 신화가 펼쳐지기도 한다. 책 속의 수많은 외침들이 일순 얇은 유리 층을 부수고 나온다. 누군가, ‘작은 꽃가마’ 타고 ‘울컥울컥 행간을 헤치고 올라’오는 이. 이럴 때 ‘댐이 무너지고, 몸 안의 들녘이란 들녘이 다 범람하는데’ 애써 미혹이라 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냥 보통명사의 항의라고 속단’하지도 않겠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20~30대는 독서다운 독서가 거의 불가능한 환경에서 자라온 세대들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쉽게 끓어오르고 휩쓸리는 정서는 독서의 유익에서 파생된 정서와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행복해진다는 것 / 헤르만 헤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 헤르만 헤세의 행복론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는 나의 친구이다. 착하게 살면서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행복은 보장되어 있다. 행복은 스스로 충만감을 느끼고 동시에 자존감이 생길 때 생성된다. 욕망의 팽창은 결코 조화로운 삶을 이끌지 못할 것이다. 풍선은 불어야 커지지만 멈출 때를 알아야 한다. 옆 사람보다 조금 더 키우려고 자꾸만 입김을 불어넣다보면 결국 빵 터져서 모든 게 무산되고 만다. 바로 지금 여기 내 마음의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 달라이 라마 역시 “인생의 목적이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깊은 곳의 영혼’ ‘사랑하는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 나이 들어 육체가 쇠퇴할수록 웅크리고 있는 사랑의 감성을 깨워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세상을 긍정하고 싶다.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고 믿고 싶다.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온전히 내 것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수중에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다. 이 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을 위해 소박하게나마 무언가를 실천할 것인가, 누구처럼 공연히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답시고 나서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총체적 난국이라느니 아무 말 잔치로 태연하게 행복전도사를 자처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최대 의무도 당연히 최대한 행복해지는 것이다. 참된 행복은 하느님의 영광이 우리 속에 머물러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행복은 편안함과 즐거움이고, 함께 하는 나눔이고, 사랑을 갖는 기쁨이다. 사람의 욕구는 어느 단계를 달성하게 되면 계속하여 더 높은 단계를 지향하는데 머슬로우는 그래서 ‘절대적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아실현’을 욕구의 최대치라고 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아쉽냐고 물으니 대부분은 더 감사하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랑을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전한다. 행복한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양보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사랑의 능력이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해야하고 행복할 것이다.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른다.’ “행복은 선한 인간이 된 상태”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의 나를 가다듬기 위한 격려사이기도 하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중략)/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무렵 해금된 시인 백석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는 가히 최상급이다. ‘가장 한국적인 시’(유종호) ‘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김현) 등의 평가가 어색하지 않다. 또한 백석의 첫 시집을 한국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집으로 간주한다. 문학에 신드롬 현상을 일으킨 사례도 극히 이례적인데, 그것도 독자가 아닌 문인과 평론가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니 백석이라는 존재가 낯설었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시는 얼른 들으면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고 가만 입으로 되뇌어보면 그 자체의 언어적 질감으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원래 이 시에는 제목이 없고 이 시를 발표할 때 편지 겉봉에 있는 주소를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남신의주’와 ‘유동’은 각각 지명일 뿐이고 ‘박시봉’은 사람 이름, ‘방’은 편지 쓸 때 흔히 붙이는 명사에 불과하다. 우리들 소싯적에도 아무개집에 세 들어 살면 주인 아무개 ‘방’이라고 흔히 쓰곤 했다. 다시 말하면 “남신의주 유동에 사는 박시봉 씨네 집”이란 뜻의 주소다. 그리고 이 시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8년에 발표된 해방공간에서의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시의 내용을 봐서 박시봉이라는 사람은 목수인 듯하며, 시적 화자(백석)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객지에 나와 박시봉이란 목수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반추하며 자신의 근황과 심정을 마치 편지 쓰듯 적어내려 가고 있다. 그렇다면 제법 술술 읽혀져야 하는데 읽기가 그리 녹녹치 않다.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은 관서지방 방언 탓이다. 일부러 맞춤법을 어긴 듯한 표현과 생경한 조어도 보인다. 일제 강점기 아름다운 평안도 방언을 제대로 지켜냈다는 칭송에도 불구하고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 혹은 토속 시어의 마력에 무작정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백석이 사용한 방언들은 그 의미를 떠나 정겨움으로 들리는 까닭은 왜일까. 백석의 시가 오랜 단절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것은 이처럼 풍부한 우리 방언을 시어로 적절히 승화시켜 언어의 정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백석 시의 토속어와 방언들을 복원하는 것이야 말로 남북의 언어분단을 극복하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얼마 전 염무웅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의 강연에서도 남북한의 두음법칙이 서로 다르고 우리의 지나치게 엄격한 뛰어 쓰기에 비해 북에서는 웬만하면 붙여 쓴다고 그 차이를 말씀하셨다. 아무쪼록 올해는 지난 김정은 위원장의 ‘냉면’ 발언처럼 정겨운 북한 언어를 좀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백석의 시가 술술 읽히기를 소망한다.

동방의 등불 / 타고르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 1929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 타고르는 신에게 바치는 송가인 ‘기탄잘리’ 등이 세계로 알려져 1913년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조국 인도와 비슷한 처지의 ‘코리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그 관심의 수준은 확인되지 않으며 다만 ‘동방의 등불’이란 시 하나로 모든 걸 유추할 뿐이다. ‘동방의 등불’은 그가 192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당시 동아일보 도쿄지국장이 한국에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대신 한국인에게 보낸 격려의 시로 알려져 있다. 그해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시를 받게 된 경위와 함께 주요한의 번역본이 실려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비록 일제강점으로 그 등불이 꺼져있어 동방의 한쪽이 어둡지만 언젠가는 등불이 다시 밝혀질 날이 오리라는 확신을 주며 용기를 북돋우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당시 노벨상 수상시인이라는 명망에 편승해 인사치레로 받은 글을 지나치게 부풀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시가 너무 짧아 아쉽게 생각해서인지 주요한은 번역본에서 이 뒤에 ‘기탄자리’의 35번째 시를 덧붙여 유통시켰다. 그 시는 타고르가 영국에 항거하는 인도인을 위해 쓴 것으로 우리의 처지도 그와 비슷하여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것 같다. 하지만 전해지고 있는 긴 시는 분명히 짜깁기한 것이며, 특히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라’고 한 마지막 구절의 ‘코리아’는 원전에도 없는 창작이며 각색이었다. 솔직히 위 번역된 시의 내용도 원문이라고 알려진 영문과 비교하면 다소 왜곡되고 임의 해석되어진 부분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타고르의 등불은 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등불로 본 것인데, 번역에선 그 등불을 조선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당시 서구와 일본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만큼 잘 나가는 타고르의 한 마디는 우리에게 매우 큰 의미였을 것이며, 그런 그에게 기대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리라. 따라서 시대적 필요에 의한 절실함으로 다소 과장되게 의역된 부분도 분명 있으리라. 어쨌거나 인류의 스승이라 불리는 타고르는 이 짧은 시로 인해 우리에겐 친숙하다. 이 시의 예언적 내용인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을 오랫동안 설렘으로 기다려왔다. 나는 그 첫 번째 등불을 2016년 위대한 국민에 의해 민주주의의 승리를 이끌어낸 그 겨울의 촛불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그 쟁취가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리라는 믿음을 의심하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탄핵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확연히 달라져야한다는 당위로 받아들였다. 그 힘으로 세운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등 국정목표는 대체로 반듯했지만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다. 실수도 있고 저항도 만만찮다. 포용성장만 해도 기득권층의 이해와 양보가 필수인데, 부정적 여론이 꽤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럼에도 ‘등불’은 꼭 살려서 올 한해를 건너야겠다.

러브 어페어 / 진은영

그런 남자랑 사귀고 싶다/ 아메리카 국경을 넘다/ 사막에 쓰러진 흰 셔츠 멕시코 청년/ 너와 결혼하고 싶다/ 바그다드로 가서/ 푸른 장미/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폭탄처럼 크게 들리는 고요한 시간에/ 당신과 입맞춤하고 싶다/ 학살당한 손들이 치는/ 다정한 박수를 받으면서/ 크고 투명한 물방울 속에/ 우리는 함께 누워/ 물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은빛 물고기에게,/ 학살자의 나라에서도/ 시가 씌어지는 아름답고도 이상한 이유를. - 시집『우리는 매일매일』(문학과지성사, 2008) ............................................................................................................... ‘Love Affair’는 직역하면 ‘연애 사건’ 혹은 ‘사랑 놀음’쯤 되겠으나, 그보다는 한 영화의 제목으로 또렷이 기억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시는 영화 스토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우연에 기댄 운명적인 사랑과 함께 특정 시대의 아픔을 격정적으로 자조하며 어루만지고 있다. ‘학살자의 나라에서도 시가 씌어지는 아름답고도 이상한 이유’는 차차 고민해 보기로 하고, 다른 함의도 관두고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범한 일상에 일약 활기를 불어넣어줄 영화 같은 극적인 만남과 사랑을 꿈꾼다. 실제로 영화처럼 만나서 사랑하고 그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도 없진 않겠으나 대개는 환상이고 로망이다. 그런데 넓은 의미에서 소개팅이나 맞선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고, 세상의 모든 남녀의 만남은 그 인연과 운명의 얼개 속에 존재한다. 2010년 SBS 신년특집으로 첫 방영된 ‘짝 찾기’란 프로그램 역시 방송사의 작위적인 연출이 개입되었지만 짝을 고르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는 충분히 운명적인 ‘러브 어페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송을 보는 내내 불편하고 화가 났던 기억만 또렷하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것에서부터 닭잡기와 밤새 무릎 꿇기 등이 선택의 기준이라니 유치해서 못 봐줄 정도였다.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 발광으로 비쳐졌다. 허황된 눈속임이고 저급한 동물적 서바이벌게임의 다름 아니었다. 아니 ‘동물의 왕국 짝짓기’보다 못한 걸 보았다는 찝찝한 느낌이 시종 가시지 않았다. 자업자득이겠으나 일부 남성출연자는 ‘찌질하다’란 손가락질에 큰 상처를 입었고, 탈락한 한 여성출연자는 외모지상주의의 높은 벽만 실감한 듯했다. 더러 출연의도를 의심받기도 하고 연예계 진출을 위한 노림수란 의혹도 따랐다. 그렇게 시작된 ‘짝’이 4년씩이나 가나 싶더니만 결국 한 여성 출연자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종을 치고 말았다. 참 이상한 ‘러브 어페어’가 가도 너무 오래 갔다. 이후에도 아류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를 빠트리고 지켜볼 만큼 나의 연식이 그만한 인내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연애의 맛’이란 한 종편 프로에서 첫 만남부터 프러포즈까지 몰아서 방영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이필모라는 배우인데 연예인이 출연한 가상 연애 프로그램 사상 결혼에 성공한 최초의 커플이라고 한다. 모처럼 청춘의 ‘러브 어페어’를 곁눈질하면서 희한하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마치 내가 새로 연애를 시작하듯 설렘과 연애의 맛을 느꼈다. 여성출연자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었다. 가상 연애로나마 감정을 살려낼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마 로맨틱한 연애의 깊은 맛을 별로 경험하지 못한 불우한 내 연애사 탓이리라.

너무 아픈 사랑 / 류근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 다만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중략)/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시집『상처적 체질』(문학과지성사, 2010)..............................................................................................................23년 전 1996년 1월 6일, 가수 김광석이 자기 집 거실 난간에서 목을 매달기 불과 7시간 전, 한 케이블방송에서 공연을 하였고, 그때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의 분위기와 연결 지어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죽은 그날에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내와 다정히 맥주 4병을 나눠 마실 정도로 가정적인 문제는 별로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서야 그의 부인 서해순씨의 과장된 제스처 등으로 타살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현재로서는 조울증에 의한 충동적인 자살로 알려져 있다.그리고 싱어송라이터 김광석이 곡을 붙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자신이 쓴 가사가 아니라 당시 ‘류근’이란 덜 알려진 젊은 시인이 작시한 노랫말이었다. 노랫말에 배경이 있다면 그것은 김광석이 아니라 류근의 사연이었으리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부정하고 싶은 심정으로,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애절하게 절규한다.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사랑의 패자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는 노랫말이다. 류근은 군 복무 시절 사귀던 여자를 선배에게 빼앗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노래에는 당시 쓰라린 실패의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있고, ‘먼 전생에’ 그가 쓴 ‘유서’로 남았다.류근은 김광석보다 두 살 아래로 1966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다. 그는 시집의 날개 등에서 프로필을 꼭 그렇게 밝힌다. 문경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충주에서 모국어를 습득했다는 사실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이후 한 편의 작품도 발표하지 않다가 등단 18년 만인 지난 2010년에야 첫 시집을 냈다. 그의 특유한 종결어미가 화제가 되었고 SNS에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는 이제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을 알 정도로 걸쭉해졌다.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임을 터득할 만큼 노련해졌다.그의 인기와 명성이 가져다준 영역 확장으로 공영방송의 한 역사 프로그램에도 고정출연하고 있다. 그 인기의 바탕에는 김광석이 일정 부분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시보다 노래 한 곡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현실에서 그들은 한때 죽이 맞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운이 좋은 존재였다. 김광석의 노래가 지금껏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 노래에는 시적 서정이 짙게 드리워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에도 방천시장에는 그의 노래가 울렸다. 이 시점에서 그들의 공통점을 굳이 말하자면 뒤늦게까지 너무 짜릿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거다.

나으리 / 권순진

직원들 한 귀퉁이에 모여 무언가 숙의 중이었다 그날 오후 동료직원의 모친 회갑연 참석을 앞두고 부서 명의 축의 봉투를 쓰는데 ‘祝 壽宴’이라고 해야 할지 ‘祝 壽筵’으로 써야할지를 놓고 사무실 전 직원이 나서서 웅성웅성 설왕설래하는 모습이었다 잔치 ‘宴’이 맞는지 대자리 ‘筵’이 합당한지를 두꺼운 옥편까지 뒤져가며 벌이는 저 치밀하고도 치열한 장시간의 난상토론이라니 (중략) 문학행사 정산서류를 들고 시청을 방문했을 때다 증빙을 첨부한 금액에 ‘일금일천이백만원’이라 붙여 쓰지 않고 ‘일금 일천이백만원’ 금과 일 사이에 스페이스 바를 눌러 공백이 한 칸 생겼다고 다시 해오라며 서류를 휘릭 날리는 것이 아닌가 요즘엔 은행에서도 그러지 않는다며 비굴한 웃음으로 사정해도 금과 일 사이에 억이 들어갈 구멍이 뚫린 것도 아닌데 뭘 그러시냐고 따져도 소용없었다 나보다 여닐곱은 아래로 보이는 그 담당자가 붉은 사인펜으로 서류에다 가위표를 그려 넣을 때 난 21세기가 아닌 16세기나 17세기 어느 분위기 살벌한 감영 뜰 앞에서 핫바지 내리고 곤장을 맞는 기분이었다. - 시집 『낙타는 뛰지 않는다』 (학이사, 2018) .............................................................................................................. 같잖은 일로 근무시간에 그러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는 것은 ‘주인 있는’ 직장에서 빡세게 일하는 회사원의 입장에서는 열불 나는 노릇이었다. 이게 다 쓸데없이 숫자만 많은 공무원들의 남아도는 할랑한 시간과 무사안일 탓이려니 생각했다. 실은 첫 직장인 국책은행의 분위기도 민간기업에 비해선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이었으나, 바쁠 때는 엄청 바빴다. 10ㆍ26 이전까지 청와대에선 관계부처 공무원과 KDI, BOK 등 유관기관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매월 ‘월례 경제동향 보고회’가 열렸다. 우리는 그 행사를 줄여서 ‘월경’이라고 불렀다. 당시에도 경제기획원(EPB)과 재무부(MOF) 관료들의 프라이드와 위세는 대단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재무부 남대문출장소라는 조롱도 들을 때이지만 프라이드만큼은 그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당시 생산된 통계자료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재무부 한 사무관의 아집에 가까운 프라이드를 겪은 바 있다. 판단 착오와 오류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었음에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 신재민 사무관을 보면서도 그때 일이 떠올라 연민이 느껴졌다. 사실 그쪽 공무원들 가운데는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과거 김용환 재무부장관의 과장 시절 박통이 모르는 게 있으면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많은 공무원들의 습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공복도 있고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 멀었다. 직급과 무관하고 근무처가 어디인가도 개의치 않는다. 김태우 전 청와대 직원의 부적절한 처신이나 예천군의회 의원들의 해외 일탈 행위도 공직자의 못된 습성에서 기인한다. ‘일금 일천이백만원’으로 기재했다고 해서 서류를 날리는 오만방자함도 전형적인 공무원 갑질이다. 율곡과 다산이 그토록 몸가짐에 대해 당부했건만 부당한 업무 처리와 인격 모독 등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어디 공무원뿐일까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청산해야 할 고질적인 생활적폐이다.

대답하지 못한 질문 / 유시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은 없을 것 같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2002년 뜨거웠던 여름/ 마포경찰서 뒷골목/ 퇴락한 6층 건물 옥탑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노무현의 시대가 오기만 한다면야 거기 노무현이 없다한들 어떻겠습니까/ 솔직한 말이 아니었어/ 저렴한 훈계와 눈먼 오해를 견뎌야 했던/ 그 사람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 (중략)//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만 같소/ 정치의 목적이 뭐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주는 것 아니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 가족의 삶조차 지켜주지 못하니/ 도대체 정치를 위해서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이요/ (중략)// 그는 떠났고/ 사람 사는 세상은 멀고/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거기 있는데/ 마음의 거처를 빼앗긴 나는/ 새들마저 떠나버린 들녘에 앉아/ 저물어 가는 서산 너머/ 무겁게 드리운 먹구름을 본다/ 내일은 밝은 해가 뜨려나(후략) - 노무현 재단 홈페이지(2013) .............................................................................................................. 노무현 대통령은 유시민 전 장관을 볼 때마다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강의하고 책 쓰고 그러는 게 훨씬 낫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참모인 안희정에게는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농사나 짓게”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번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반면 비서실장인 문재인은 정치를 하기 싫다는 의사를 거듭 피력했음에도 “자네 같은 사람이 잘 적응만 하면 정치를 하는 것도 괜찮지”라면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당연히 이들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 바탕에 깔린 말들이다. 결국 유시민은 그의 조언대로 정치를 접고 작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안희정은 뒤늦게 농사나 짓고 사는 편이 차라리 나을 뻔했다며 후회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문재인은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되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특혜와 반칙이 없는’ 세상은 ‘시민 권력’에 의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그러나 계승되어야 할 노무현 정신만 살아온 것이지, 여전히 그러한 세상이 도래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성찰이 필요한 때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 후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작가로서의 자유로운 영혼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노무현 정신의 구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명감 사이에서 고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유 작가는 그 자신이 오래전 인용한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늘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자주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참아내지 못할 정도의 ‘노여움’은 아니라고 본다. 그 노여움의 수위에 이르게 하지 않기 위해 유튜브 방송도 하는 것이리라. 유시민의 세련된 논리를 좋아하지만, 유시민을 호출할 만큼 정치 시장이 빈약하지는 않으며 장차에도 그러리라 믿는다. 결코 유시민 작가가 등판해야 하는 환경은 없을 것이며 또 없기를 바란다. 그는 4년 후 ‘날씨만 좋으면’ 한 낚시터에 가 있으리라. 그가 ‘대답하지 못한 질문’은 없다.

만일 / 루디야드 키플링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은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 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중략)/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중략)/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1998) .............................................................................................................. 한때 잠언시가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덕분에 류시화가 기획해 내놓은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선물치고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도 누군가로부터 받은 잠언시집이 두어 권 있다. 4할쯤이나 읽었을까, 가슴까지는 말할 나위 없고 머리에서 받아들이기에도 너무나 벅찬 내용들이었다. 내가 읽은 분량만 잘 소화하고 실천했더라도 아마 나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아니 군자의 반열에 올랐거나 현인을 코스프레해 가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숱한 잠언의 가르침대로 지혜롭게 살아가기란 얼마나 불가능한 노릇인가. 그럼에도 가끔 소화하기 버거운 잠언들을 펼쳐보고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지리멸렬 혼란한 내 정신에도 일시적 처방이 되어주길 기대하며 이 잠언시를 불러들인다.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길은 이토록 지난하며 어른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것들이 많다. ‘정글북’의 작가이며 시인인 키플링의 조곤조곤 친절하게 들려주는 지혜의 말씀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이 시는 재작년 도종환 문체부장관이 취임사에서 인용한 바 있다. 공직생활에 임하면서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만한 내용이다. 이 시가 다시 생각난 건 최근 두 전직 공무원의 내부고발 파장 때문이다. 한 사람은 동기에서부터 내용까지 누가 보더라도 공익성 제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다른 한 사람의 경우는 아리송한 구석이 너무 많다. 조직파괴자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지만 정말 국익과 나라의 미래를 위한 우국의 마음만으로 휘슬을 불었던 걸까. 내용의 부실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한 사람의 어른이’ 할 수 있는 용기였을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고 안타까운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일을 빌미 삼아 정쟁의 불쏘시개로 활용해 판을 뒤집어보겠다는 제1야당의 속셈이 쉽게 간파되는 것도, 이중 잣대로 대응하며 과한 방어기제를 가동하는 여당의 처사도 모두 서글픈 노릇이다. 우리는 싫든 좋든 매일매일 저급한 리얼리티 쇼를 보고 있다. 정치의 일상화를 촉진시키는 언론 또한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만일’ 그 젊은이가 매우 엄격한 도덕성으로 자기 스스로를 진정 ‘신뢰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를 충분히 보호하고 다독여주어야 마땅하리라.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단추, 첫연애 첫결혼 첫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 시집『오래된 골목』(창작과비평사,1998) .............................................................................................................. ‘잘못 채운 첫단추, 첫연애 첫결혼 첫실패’란 지점에서 시인의 쓰라린 개인사적 비밀이 읽힌다. 그러나 남녀 사이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실패는 한가지로 규정되고 일반화될 수 없는 개별적인 상황들이다. 부부관계란 모름지기 그들만이 아는 일. 아니 그들조차도 모를 수 있는 일. 시인은 어느 해 겨울, 외출하려고 옷을 입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을 뿐인데 옷 모양 전체가 망가져 버린 그 순간 마치 인생 전부가 흐트러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첫 단추의 실패가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단추의 난감함이 이 시를 쓰게 했다고 시작 배경을 말하고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또 잘못을 저지르기란 얼마나 쉬운가. 중요한 것은 잘 못 채워진 첫 단추에 갇혀 스스로 송두리째 생을 말아먹느냐, 세상과의 불화를 극복하고 빠져나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자신의 잘못된 삶을 돌아보며 관조하는 태도는 ‘잘못 채운 첫단추, 첫연애 첫결혼 첫실패’를 겪은 내게도 숙연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돌이켜보면 첫 단추로 인한 실의, 스스로 겪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오래도록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았다. 물론 살면서 잘못된 건 첫 단추만이 아닐 것이다.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를 끼울 구멍이 없어진다”고 했다. 아주 사소한 단추 구멍 끼우는 일에서 삶의 비의와 시작의 중요함을 일깨운다. 천 리 길도 한 발짝부터라지만 길을 잘못 들면 아무리 잘 뛰어도 소용없다. 나랏일도 마찬가지다. 과거 박근혜 정부를 되돌아보면 윤창중의 첫인사에서부터 잘 못 끼워진 첫 단추가 4년 동안 얼마나 빈번하게 국민의 자존심을 뭉개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참혹으로 이어졌는지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문재인 정부의 첫 단추는 인사에서 큰 흠결이 없었을 뿐 아니라 외교안보와 부조리 척결, 국민소통 등에서 두루 무난하게 잘 끼워졌다고 평가한다. 다만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며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공약은 취지는 좋으나 고개가 가로저어졌던 게 사실이었다. 청와대는 빠르면 설 명절 전에 비서진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마침 완만한 하강 곡선을 기록하던 국정 지지도가 새해를 맞아 국민의 기대감이 보태어져 다시 상승 국면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인사 개편을 계기로 심기일전하고 촛불 정신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는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가시적인 성과를 꼭 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뚫린 구멍은 없는지 살피고 차근차근 마지막 단추까지 실수 없이 채워주길 바란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단추는 결코 지퍼처럼 한 방에 채워지진 않는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늘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