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애가/ 엄원태 이 저녁엔 노을 핏빛을 빌려 첼로의 저음 현이 되겠다/ 결국 혼자 우는 것일 테지만 거기 멀리 있는 너도/ 오래전부터 울고 있다는 걸 안다/ 네가 날카로운 선율로 가슴 찢어발기듯 흐느끼는 동안 나는/ 통주저음으로 네 슬픔 떠받쳐주리라/ 우리는 외따로 떨어졌지만 함께 울고 있는 거다/ 오래 말하지 못한 입, 잡지 못한 가는 손가락,/ 안아보지 못한 어깨, 오래 입맞추지 못한 마른 입술로 ...... - 시집 『물방울 무덤』(창비,2007).......................................................... 오래 전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가서 얼마 되지 않았는데 12월이었다. 대구에서는 이례적으로 14층 발코니 창밖에 함박눈이 흩날렸고 불현듯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헨델의 라르고인지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윽한 첼로 선율이 깔린 클래식CD를 밀어 넣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눈 오는 날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도 와인과 벽난로는 없더라도 몸이 푹 파묻히는 소파가 있어야 하고 거실도 좀 넓어야겠다는.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이사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첫 사랑의 마른 입술을 힘겹게 추억하며 힘껏 들었어야 할 음악이 있다. 그럼에도 내 불운과 불찰과 무지가 겹쳐 그러지 못했다. 속으로 소리를 조이고 삼키면서 우는 바흐의 ‘샤콘느’를 알지 못했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애잔하지만 그저 평범한 바이올린 곡으로 알았다. 오래전부터 울고 있었던 날카로운 선율이 가슴 찢어발기는 흐느낌인줄 몰랐던 거다. 바흐의 중후한 울음은 확실히 남성적이었다. 첼로의 낮은 음이 통주저음으로 비탈리의 슬픔을 떠받쳐주었다. 따로 울지만 ‘함께 울고 있는’ 거였다. 한없이 내려와 가랑이 사이에서 내리긋는 보잉은 모든 내장기관과 피부의 솜틀까지 전율케 한다. 이성복 시인은 음악이란 시에서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보면 음악을 몰랐던 것이다. 음악을 듣긴 들어도 진짜로 음악에 빠져본 경험이 내겐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 ‘나는 가수다’라는 텔레비전 프로에서 가수가 노래하는 동안 눈물을 주룩주룩 흘려대는 관객을 보면서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몰입해서 들으면 정말로 저렇게 심금을 울리기도 하는가보다 이해했었지만 나는 한 번도 클래식이건 대중가요건 음악을 들으면서 울어본 기억은 없다. 오래전 평양공연을 다녀온 조용필이 자기 노래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을 했다.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노래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기에, 마음이 통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악을 통해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눈물 흘리는데 옆의 눈치 보겠나.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었던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혼자 울지만 유행가건 클래식이건 음악에 빠져들 땐 그것이 다 내 이야기고, 내 슬픔과 감정에 이바지한 선율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들 ‘외따로 떨어졌지만 함께 울고’있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오래 말하지 못한 입, 잡지 못한 가는 손가락, 안아보지 못한 어깨, 오래 입 맞추지 못한 마른 입술’ 그 사이로 복제되지 않은 사랑은 끝없는 비상을 한다. 현의 슬픔이 가랑이보다 더 깊은 골짜기로 이끈다.

튤립에 물어보라

튤립에 물어보라/ 송재학지금도 모차르트 때문에/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 튤립, 어린 날 미술 시간에 처음 알았던 꽃/ 두근거림 대신 피어나던 꽃/ 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 리아스식 해안 같은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 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 사춘기는 그 외래종의 모가지를 꺾기도 했지만/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튤립에 물어 보라.- 시집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민음사, 1997).......................................................튤립은 마치 서양 꽃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쉔부른 궁전에서나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거울의 방’에서 어린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마리 앙투아네트의 손에 들려있을 법한 불꽃송이 왕관 같은 꽃이다. 붉은 튤립의 꽃말은 명성, 매혹, 사랑의 고백이다. 하지만 노란 튤립은 헛된 사랑이란 꽃말을 지녔다. 튤립이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이긴 하지만 원산지는 터키이다. 꽃모양이 회교도들의 머리에 두르는 터번(튤리반드라고 불림)과 비슷하다 해서 갖게 된 이름이다. 1630년 터키에서 건너온 튤립은 네덜란드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17세기는 네덜란드가 세계의 바다를 제패하고 무역으로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던 시대다. 암스테르담은 예술과 사랑, 야망과 욕망으로 뒤얽힌 도시였다. 이 때 투기의 대상으로 튤립의 광풍이 불었다. 터키로부터 튤립이 왕창왕창 수입되었다. 튤립의 소유는 곧 부와 교양의 상징이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광기와 어리석음은 파국을 맞기까지 거의 30년간 지속되었다. 튤립 하나만 잘 키우면 대박이 터지고 인생 역전이 실현되는 ‘폰지게임’의 광풍에 뛰어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던 비슷한 대형 음모는 그 후 영국에도 덮쳤다. ‘튤립광풍’이란 말은 경제학에서 하나의 은유처럼 받아들여져 한국의 아파트 열기와 비트코인을 말할 때도 언급되었다. 이런 광풍이 휩쓸고 간 유럽에서 모차르트가 태어났다. 세살 때 화음을 감지하고 다섯 살 때 작곡을 시작하였으며, 일곱 살에 교향곡을 작곡하고 열한 살 때 오페라를 작곡한 천재 음악가는 서른다섯인 1791년 1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튤립만큼이나 난해하고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시신도 없이 비엔나 스테판 성당의 첨탑에 걸린 태양 속으로 빨려들었다.정신과 의사는 끔찍한 충격을 평범한 경험으로 되돌려 놓으려 하지만 시인은 평범한 경험을 짜릿한 충격으로 바꿔놓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치과의사인 송재학 시인에게 튤립은 어떤 의미고 모차르트는 누구일까. ‘리아스식 해안 같은’ 생각 많았던 사춘기에 그 꽃을 처음 받았고, 시인이 ‘걷던 휘어진 길’에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을 가진 걸 보면 꽤나 ‘짜릿’했던 추억 같다. 그러나 튤립에게 물어보기 전에 튤립광풍 당시 바이러스에 감염된 희귀 구근의 값이 훨씬 비쌌다는 사실과 ‘사랑의 고백’에서 ‘헛된 사랑’으로 이어지는 원색적인 꽃말이 내내 걸린다.

나비키스

나비키스 / 장옥관물이 빚어낸 꽃이 나비라면/ 저 입술, 날개 달고 얼굴에서 날아오른다/ 눈꺼풀이 닫히고 열리듯/ 네게로 건너가는 이 미묘한 떨림을/ 너는 아느냐/ 접혔다 펼쳤다 낮밤이 피고 지는데/ 두 장의 꽃잎/ 잠시 머물렀다 떨어지는 찰라/ 아, 어, 오, 우 둥글게 빚는 공기의 파동/ 한 우주가 열리고 닫히는 그 순간/ 배추흰나비 粉가루 같은/ 네 입김은 어디에 머물렀던가?- 시집『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 요즘 젊은 남녀는 만난 지 평균 일주일이면 키스를 감행한다고 한다. 첫 키스까지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을 넘는 경우는 드물고 그럴 땐 오히려 주위의 조롱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푸른 시절 모든 사랑의 단계들이 신비롭고 조심스럽기만 해서 손 한번 잡는데도 몇 달이 걸리곤 했던 신선한 두근거림은 이제 오간데 없다.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진도를 차곡차곡 충실히 밟았을 땐 친구들이 “어디까지 나갔어?”라며 초롱초롱한 호기심으로 물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잤냐?” 라는 간략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 경험들 하셨겠지만 한번 나간 진도는 후진하지 않는다. 어제는 진한 ‘프렌치키스’를 했는데, 오늘은 가벼운 ‘나비키스’만으로 어제와 같은 떨림을 느낄 리 만무다. 사랑의 선행조건단계나 도약단계를 건너뛰고 뜨겁게 성숙단계에 진입했다면 탐색의 과정에서 얻게 되는 수많은 설렘과 고양된 느낌, 사랑의 화학작용과 발효된 교감은 찾아올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런 세상에서 첫 키스의 미세한 떨림, ‘아, 어, 오, 우’ 지상의 모음을 죄다 끌어 모아 빚어내는 한 호흡의 입맞춤을 어디 풍문으로나 들을 수 있겠는지. 영혼의 호흡이 가능하겠는지. ‘두 장의 꽃잎 잠시 머물렀다 떨어지는 찰라’가 ‘한 우주가 열리고 닫히는 그 순간’이 되어 토네이도로 변하기도 하는 ‘나비키스’를 이런 시나 읽으며 지그시 눈감고 그려내지 않으면 어디에서 건질 수 있으랴. 나비키스는 속눈썹을 상대의 뺨에 대고 깜빡이며 간질이는 키스를 말한다. 나비처럼 가벼운 키스이긴 하지만 미세한 속눈썹의 떨림과 뇌의 파동, 그리고 심장의 박동이 일치하는 경험을 갖게 된다. 인간의 가장 큰 성기가 ‘뇌’라는 말이 있듯이 나비키스만으로 충분히 뇌가 발기될 수 있어야 양질의 사랑이 구가되리라. 키스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분위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이 최대한 실린 분위기 있는 키스를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5년은 더 장수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사랑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키스는 소량의 모르핀 주사만큼이나 강력한 엔도르핀을 생성하며, 감정이 듬뿍 담긴 키스는 몸속에서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호르몬의 생성을 억제해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며, 자주 키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박테리아에 대항하는 면역물질을 만들어내는 등 키스와 건강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은 이미 통설이 되었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이혼자나 사별자보다 평균수명이 긴 것도,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수명이 짧은 것도 어쩌면 키스와 무관치 않을지도 모른다. 나이 들수록 배우자가 곁에 있는 것이 건강과 장수에 큰 도움이 된다는 가설은 확실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홀아비나 과부도 아니고 멀쩡한 배우자가 곁에 있다면 자신과 배우자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산삼보다 좋다는 이 키스를 잘 ‘활용’들 하시라. ‘네게로 건너가는 이 미묘한 떨림을 너는 아느냐’ 그렇다면 양질의 장수물질인 ‘배추흰나비 粉가루 같은 네 입김은 어디에 머물렀던가?’

큰 그릇-바다11

큰 그릇-바다11 / 최동룡자정(自淨)의/ 이마를/ 바윗돌에 간다// 흰 피를 다스려/ 맑아지는/ 물그릇을 본다// 철썩!/ 따귀를 맞는다/ 내가 시퍼렇게 정신이 든다- 시집『울릉도로 갈까나』(문학세계사, 2000) ................................................... 시인의 ‘울릉도로 갈까나’는 오래 전 울릉에서 교편생활 할 때 쓴 시들을 묶은 시집이다. 울릉군 소재 유일한 고등학교로 부임해 들어가 가슴을 열고 그곳의 바람과 파도와 짠 물기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며 교감한 결과물이다. ‘큰 그릇’은 바닷가 갯바위에서 ‘철썩!’ ‘철썩!’ 연신 거칠게 내려치는 파도를 통해 머릿속 군더더기 다 비워내고 정수리로부터 시퍼런 정신으로 꽉 채워지는 정화의 경험을 노래하였다. 같은 파도일지라도 해안선에 서서 내 쪽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는 감상과 바다 한가운데 갯바위에 서서 때리고 맞는 파도를 대할 때의 느낌은 다르다. 그것도 바위 가장자리에서 파도의 물보라가 사정없이 뺨을 후려치는데, 덩어리째 산소를 들이킬 때의 호흡은 보통의 들숨날숨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오히려 ‘맑아진다’라거나 ‘정신이 든다’란 시어가 자칫 상투적인 느낌이 들만큼 시퍼런 각성이 깊고 엄정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공명한다. ‘큰 그릇’의 상대어는 작은 그릇이겠으나 그야말로 ‘찻잔 속의 파도’와는 대비되는 개념의 크고 묵직한 날것의 격랑인 것이다. 그럴 때 스스로 이마를 바윗돌에 부딪치며, 철철 넘치는 흰 피 다스려 스스로를 정화한다. 이를테면 기장미역의 맛이 좋은 건 그 지역의 물살 때문이다. 강한 계절풍의 영향으로 조류의 상하유동이 좋아 질이 좋고 병충해의 피해도 적다. 쫄깃한 맛도 요동치는 그 물살 때문이다. 생선도 마찬가지며 대부분의 해산물이 그렇다. 그런 물살과 파도를 견디지 않는 바다는 건강하지도 맑지도 않다. 그 속에서 온건하게 자란 해산물은 우리 입맛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자연산을 고집하고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자연 상태 그대로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적절한 원시성은 유지되어야 하고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한 정당의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특히 개혁진보를 표방했을 경우 대화와 타협도 해야 하고 확장성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본래의 명징한 원칙과 소신을 퇴색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선명성과 야성이 탈색된 어정쩡한 상태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며 무엇도 얻지 못한다. 정당이 그 정체성을 잃으면 그 존재의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구성원 각자의 치열함과 역동성의 부족이 원인으로 봐지는 최근의 이런저런 잡음들이 걱정스럽다. ‘철썩!’ 따귀를 맞고 시퍼렇게 정신이 좀 들었으면 좋겠다. ‘큰 그릇’이 가르치는 대로 자정의 이마를 바윗돌에 열심히 갈면서, 필요하다면 스스로 몸을 비틀어 물살도 만들어야할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역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민정수석의 역할이 꼭 겉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감이 없어도 너무 없다. 처음엔 몰랐는데 청와대의 입도 좀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와중에서 검찰개혁이 시대의 요구임을 잘 알고 있는 추미애 법무장관 지명을 환영한다. 특유의 깡다구와 결기로 개혁을 잘 이끌어주길 기대한다. 아무쪼록 개혁의 로드맵이 후퇴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꽁치와 시

꽁치와 시/ 박기섭 포장집 낡은 석쇠를 발갛게 달구어 놓고/ 마른 비린내 속에 앙상히 발기는 잔뼈/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낱낱이 발기는 잔뼈// 가령 꽃이 피기 전 짧은 한때의 침묵을/ 혹은 외롭고 춥고 고요한 불의 극점을/ 무수한 압정에 박혀 출렁거리는 비애를// 갓 딴 소주병을 정수리에 들이부어도/ 미망의 유리잔 속에 말갛게 고이는 주정(酒精)/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쓸쓸히 고이는 주정(酒精) - 시조집『비단 헝겊』(태학사, 2001)........................................................밥상에 놓인 잘 구워진 꽁치는 그저 밥의 찬이나 술의 안주일 따름이다. 그러니 다른 생각을 개입할 필요 없이 젓가락으로 후벼 살을 발려 먹기만 하면 된다. ‘포장집 낡은 석쇠’위의 꽁치라고 다를 건 없다. 정서의 반란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꽁치의 살아생전 저 태평양 푸른 바다 깊은 곳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돌아다니던 기억을 애써 발라낸다. ‘낱낱이 발기는 잔뼈’에서 고생대의 적막을 들쑤시기도 하고, 꽁치의 운명을 떠올렸다가 비릿한 비애를 건져내기도 하는 것이다.시는 그런 것이고 시인은 대저 그런 인간들이다. 시인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면 삼라만상 그 모든 것에 촉수를 들이대는 탐구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잔뼈 갈라내듯 단지 시 한 편 건지려고 잔머리 굴리는 사람은 아니다. 매사에 그런 식이면 다른 멀쩡한 사람 눈에는 필경 밥맛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한 편의 시에는 고스란히 시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가 조용히 담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없는 기교로만 조합된 시인의 시를 읽을 때는 잔뜩 조미료를 들어부은 것 마냥 밍밍하고 찝찝하다.금세기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일반인의 글쓰기에서도 그리 주문하는데 시인은 더 말해 무엇 하랴. 진지한 열정, 몸을 내던지는 연소는 시인에게 필요불가결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시인은 때로 시대의 산소량을 재는 계기이며, 밤에도 깨어있는 정신의 불침번이다. 보통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산소의 총량을 시인은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유난히 시인들이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서정시건 서사시이건, 시의 제재가 자연이든 우주이든 그 침묵과 고독과 비애는 결국 인간 문제에 귀결되어 존재의 근원인 삶을 탐색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 과정에서 때로 반성적 사색의 시상을 전개할 때 ‘갓 딴 소주병을 정수리에 들이’붓기도 하는 것이다. 알코르가 아니면 냉수라도 상관없다. 시는 정신의 배설물이면서 동시에 정신을 정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꽉 막혀 변비가 심해질 땐 도리 없이 스스로 흠뻑 적셔보는 것이다.그때 말갛고 쓸쓸히 고이는 주정(酒精)이 비록 지독한 비린내뿐일지언정, 그래도 시인은 끊임없이 회의하며 번민하고 애달아하는 몹쓸 화학자여야 한다. 자신의 시에 대한 치열한 회의를 품지 않는 시인은 그래서 미덥지 않다. 그 회의와 번민과 긴 방랑과 고통 가운데서 자기 세계를, 자기가 속한 세상을, 세계 속의 자신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도정인 것이다. 그리고 ‘미망의 유리잔 속에 말갛게 고이는 주정’ 한 방울을 얻기 위해 시를 쓴다. 뒤집어 말하면 나는 그러지 못해 시를 쓰진 못하고 감상을 빙자하여 남의 시에 사족이나 다는 것이다.

리영희

리영희 / 고은70년대 대학생에게는/ 리영희가 아버지였다/ 그래서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그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썼다// 결코 원만하지 않았다/ 원만하지 않으므로 그 결핍이 아름다웠다/ 모진 세월이 아니었다면/ 그 저문 골짜기 찾아들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맹세하건대/ 다만 진실에서 시작하여/ 진실에서 끝나는 일이었다// 그의 역정은/ 냉전시대의 우상을 거부하는 동안/ 그는 감방 이불에다/ 어머니의 빈소를 마련하고/ 구매품 사과와 건빵 차려놓고/ 관식 받아 차려놓고/ 불효자는 웁니다/ 이렇게 세상 떠난 어머니 시신도 만져보지 못한 채/ 감방에서 울었다 소리죽여- 시집『만인보』(창작과비평사, 1986) .............................................. 12월5일은 넬슨 만델라의 6주기이자 현대사의 증인이라 할 리영희 선생이 타계한 지 9년째 되는 날이다. 통일과 민주주의, 인권을 주장하면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시절에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글로써 진실과 정의를 알리려했던 선생이었다. 작가 이병주는 러시아 사상가 베르자예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상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영향 아래 인생을 사는 사람과 그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듯 세상은 리영희에 빚진 사람과 그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로 구분될 수 있다. 나도 ‘사상의 아버지’란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으나 한때 ‘사상의 은사’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양심이 있고 양식을 가진 모든 젊은이들에게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귀감이었다. 좌절과 고난으로 점철된 1970년대, 냉전의 우상을 타파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지성인으로서 리영희 선생은 당시 실의에 빠진 청년학생들에게 영롱한 진주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사상적 은혜를 베풀고 떠난 선생의 글을 책으로 처음 접한 건 ‘전환시대의 논리’지만, 그보다 ‘偶像과 理性’이 더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도전에는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라고 설파한 첫머리는 영원히 간직해야할 말씀으로 몇 번씩 꼭꼭 접어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주머니 밑창이 타개지고 말씀들은 야금야금 새나갔다. 선생께서도 훗날 책의 개정판을 내면서 “우리사회에서 하루속히, 읽힐 필요가 없는 ‘구문’이거나 ‘넋두리’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생의 바람과 내 망각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망각의 소이인 일상의 고단함에 굴복한 무뎌진 감각 탓도 있겠고 우리들 자신의 정신적인 나태도 원인이 되었으리라. 수많은 항쟁과 민주적 혁명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선생의 가르침대로 양심을 가동했건만, 이성은 단단하지 않았고 논증은 철저하지 못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용기마저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진실로 선생이 바라는 대로 ‘우상’이 판치지 못하는 세상을 소망하건만,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낯 두꺼운 권력의 유령들에 의해 국정이 망가져가는 어이없는 세상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정의와 진리가 보편타당해진 세상에서 선생의 저서들이 극복되는 날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첫눈

첫눈/ 이진엽문득 깨어나 창문을 열어보니새벽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수만 장의 흰 전단을 뿌리며온 세상으로 번져 가는 조용한 외침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좌파도 우파도 아닌어둠도 밤의 아들도 아닌오직 피가 맑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일으킨새벽이 하얀 반란//나는 마음속으로 손뼉을 짝짝 쳤다- 시집『겨울 카프카』(시학, 2013) ........................................................................ 강원과 남쪽지역을 제외한 중부지방에 모처럼 첫눈다운 눈이 내렸다. 충분한 감성이 장전될 만큼의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애매모호하지 않았고 흩날리는 눈의 풍경도 좋았다. 12월 들자 머뭇거리지 않고 마침맞게 왔다. 약간 과장하자면 나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아직도 이런 고전적인 낭만이 물씬 풍기는 약속을 실제로 가동하는 이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사귀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와 이 소식을 공유하느라 바빴으리라. 그만큼 아직은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순수와 동심이 살아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첫눈은 연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린 시절 눈은 순결과 신비, 설렘과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도시생활의 이기와 약삭빠름에 젖다보면 감흥은 차츰 떨어지고 때로 눈은 내 교통을 방해하는 성가신 강하물에 불과했다. 나이 먹는다고 서정의 노쇠화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첫눈조차 무덤덤해진다면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사실과 첫눈 오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마음속으로 손뼉을 짝짝 쳤다’함은 여전히 세상엔 목마르게 그리워할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첫눈 오면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의 마음은 붐비고 눈송이처럼 불어난다. 사랑을 알고 평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혁명 같은 그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첫눈은 가장 때 묻지 않은 곳부터 ‘조용한 외침’으로 내린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어둠도 밤의 아들도 아닌’ ‘오직 피가 맑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일으킨’ ‘하얀 반란’이다. 작은아이 세살 무렵, 사물을 감식하는 눈이 막 뜨일 때 밤새 첫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도포된 풍경을 보고선 “아빠, 외계인이 왔나봐!” 생애 처음으로 눈의 ‘하얀 반란’을 목격한 아이의 눈엔 달라진 세상이 외계인의 침공으로 보였던 것이다. 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잠시 세상을 달리 보이게 끔 한다. 어린 시절 장독대 위에 함지박 만하게 내려앉은 눈이며, 팔작지붕 기와 위에 우아한 곡선을 또렷이 드러내는 설경의 아름다움은 요즘 보기 힘들어졌지만 눈으로 채색된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검은 눈만 내리지 않는다면 정말 세상이 확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첫눈은 무언가 판을 갈아엎고 싶은 마음 위에도 내린다. 좌든 우든 국민들에게 도움 안 되는 쭉정이는 채에 걸러 싹 날려 보내고 정치도 좀 산뜻해졌으면 좋겠다. 세상을 갱신하고 조율하기 위한 시그널로서의 첫눈이라면 손바닥이 시뻘게지도록 ‘손뼉을 짝짝’ 치겠다.

12월

12월 / 황지우12월의 저녁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 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 품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시집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 (미래사, 1991) ................................................ 일상에서의 우리들 생각은 사는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에 대한 감상, 12월을 맞는 느낌도 살림의 형편에 따라 제각각이다. 훈훈하고 포시라운 곳에서 할랑하게 일하며 두둑한 연봉을 받는 사람과 난방도 시원찮은 곳에서 빡세게 몸을 움직여야만 겨우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12월은 다르다. 겨울에 노가 나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과 길거리 행상을 하며 곱은 손으로 구겨진 천 원짜리 지전을 꺼내 펴서 몇 번이고 세고 또 세는 사람의 정서는 분명 다르다. 자본주의는 내내 이런 다름을 방관하고 부추겼다. 가슴 미어지는 죽음들,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정치권 뉴스들로 넘치는 이 나라의 12월, 마냥 행복에 겨울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이럴 때 자칫 도가 넘는 럭셔리풍의 겨울 찬가가 다른 등 굽은 이에게는 ‘악마의 트릴’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보너스를 안주머니에 챙겨 넣고서 장작불이 타는 별장으로 스키장으로 바다 건너로 내빼는 이가 있는가 하면, 12월에 상실감으로 번뇌가 더욱 깊어진 사람도 있다. 순수한 겨울 낭만을 즐기는 거야 누가 뭐랄 까만 신경질 나게 타인의 쓰라린 가슴에 소금을 뿌려대며 방방 나대는 일만은 없으면 좋겠다. 가지고 배웠고 누리는 자는 좀 더 겸손해야하고, 가난하고 덜 배우고 못난 자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 나라의 정신토양이 건강해지는 법이거늘, 언제나 문제는 그 부조화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올해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세상의 속도에 휩쓸려 늘 조바심으로 마음만 붐비며 동당거렸다. 문득 허무가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이렇게 살아 존재한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절대강자’라며 이외수는 과장된 ‘말장난’으로 우리를 위로했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삶에 마음이 무겁다.‘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나라 안의 정국은 수상하고 신산하기 짝이 없어 추위는 더 진하게 감각된다. 하지만 대저 삶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고 내 둘레의 생도 그럴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이라면서 ‘가난은 다만 불편할 뿐이고 사랑은 또 은유처럼 오거나 가는 것’이라 했던 김경주의 시가 가슴에 스친다. 12월의 저녁거리를 걸으며 몇 남지 않은 가족에게 미안하고 부채감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그래도 백화점 앞 12월의 나무에는 희망인지 현혹인지 모를 꼬마전구의 무리가 쉼 없이 반짝인다. 탁상달력 다닥다닥 메모된 12월의 틈바구니에서 누군가는 잠을 설치고, 누구는 술에 취해 거리를 비틀거릴 것이며, 또 누군가는 기도로 밤을 지새울 것이다. 이러할 때 누구는 술 마시고 노래하는 분답한 송년모임을 단 한 건도 갖지 않겠노라고 선언했지만 그조차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소시민의 삶이다. 나는 무엇을 할까? 해답은 없고 질문은 생경하기만 하다.

우리 시대의 역설

우리 시대의 역설/ 제프 딕슨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작아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지혜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고 너무 지쳐서 깨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하략)........................................................ 199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의 작은 도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히틀러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따돌리고 놀림을 받곤 했던 두 학생이 자신들을 무시한 급우들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수백발의 총알이 난사되면서 13명의 무고한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갔고 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끔찍한 이 사건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 뉴스를 접한 호주 콴타스 항공의 최고 경영자 제프 딕슨은 글 하나를 인터넷에 올렸다. ‘우리시대의 역설’이었다.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했던 이 글은 삽시간에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한 줄씩 덧보태어져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의 반향이 컸던 것은 세계인들이 그만큼 폭넓게 공감했다는 뜻이다. 당시 21세기 진입을 코앞에 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듯했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삶은 헛헛해져만 갔다. 좌표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양면적 자화상을 이 시는 아프게 꼬집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행복해져야 마땅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 어찌된 까닭일까. 물질의 풍요는 행복과 비례하지 않고 돈이 행복을 결정할 수는 없다. 물질적인 기반은 행복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질적 만족 없이 행복이 담보되기는 어렵다. 수년 전 부탄 총리가 유엔총회에서 국민총생산지표를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물량적 부의 추구로 인해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고 있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GNH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동쪽에 있는 인구 70만 명의 작은 산악 국가로, 국민소득은 2천 달러도 안 되지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나라다. 부탄은 1972년 이후 GNH를 국정의 기본철학으로 삼고 있어, 부탄 국민의 97%는 현재 행복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도 “경제성장(GNP)과 행복수준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GNP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롱경제학이지만 거시경제를 짧게 공부한 내 소견으로도 공감이 가는 제안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성장의 과실이 고소득층에게 편중되는 양극화가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졌고 2008년 이후에 가속화되었다. 양극화 현상을 방치하면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게 뻔하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좀 더 너그러워지고 겸손해져야 양극의 격차는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나 홀로 잘 사는 시대는 끝났다.

사석(捨石)

사석(捨石)/ 박무웅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바둑을 배웠다/ 바둑은 두 집을 지어야 산다고 하셨다/ 이리저리 고단한 대마를 끌고 다녀도/ 한 집 밖에 남지 않으면 끝이라 하셨다// 대마불사에 목을 걸고/ 집과 집, 길과 길을 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오궁도화가 만발하여 보기 좋아도/ 한순간 낙화하면 끝이라 하셨다// 세상에는 버릴 게 없다는 할아버지 말씀대로/ 사석을 모아들이며/ 한 집 한 집 키워 나갔다/ 길과 길을 만들어 삶을 이어 나갔다// 판이 끝날 때마다 모아들이는 사석이/ 바로 나만의 묘수였다- 국민일보 ‘아침의 시’(2008년7월15일)........................................................ 바둑에서 의도적으로 버리는 돌을 ‘사석’이라고 한다. 효용가치가 떨어진 돌을 버리면서 새로운 세력을 구축하거나 다른 실리를 챙기는 ‘사석전략’이란 게 있다. 바둑의 고수들은 어떤 돌이 앞으로 더 큰 가치가 있고 가치가 덜 한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상대적으로 가치가 적은 돌은 과감히 버림으로써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얻는다. 그러나 하수들은 버릴 돌과 살려할 돌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버리는 게 아까워 모두 살리려 하지만 결국에는 대마를 죽이고 판을 넘겨주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들의 한계이다. 그래서 나온 바둑교훈이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의 ‘사소취대(捨小就大)’이다. 바둑에는 그 말고도 숱한 격언과 교훈이 있다. 그 가르침들은 바둑판에만 국한하지 않고 곧잘 삶의 지혜로 응용된다. 인생을 비롯해 정치나 경영에 두루 써먹어도 들어맞는 까닭은 바둑이 세상의 축소판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상에서의 경륜과 체득에 바탕을 두어야지 책을 통한 공부만으로 실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힘들다. 과거 안철수씨가 좋은 머리로 혼자 공부해 1급 수준의 바둑이라지만 그런 바둑에서 정치원리를 구하려 했으니 실패할 밖에. 정치는 경영과는 또 다른 복잡한 변수가 작동한다는 사실도 그는 간과했다. 전체 국면을 보는 눈이나 상대의 급소를 내가 먼저 선점해야 편해진다는 지혜도 바둑에서 가르친다. 바둑의 1교훈인 ‘너무 승부에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그르친다.’는 ‘부득탐승(不得貪勝)’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바둑격언에 앞서 상대가 있고 장벽이 있는 상황에서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게 세상사고 정치이며 게임이 아닌가. 한때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화제였다. 바둑에서 ‘미생’은 아직 온전히 살지 못하고 생사가 불투명한 돌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이리저리 고단한 대마를 끌고 다녀도’ ‘두 집을 짓지’ 않으면 살아있는 돌이라 할 수 없다. 정치판에서도 명심할 일이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이세돌이 토종 인공지능 ‘한돌’과 다음 달 은퇴대국을 갖는다고 한다. ‘한돌’은 앞서 국내 정상급 바둑 기사 5명과의 대국에서 모두 승리했다. 올해 세계 AI 바둑대회에서 3위에 오를 정도의 실력이다. 모두 3차례의 대국으로 처음엔 이세돌이 두 점을 깔고 두는 접바둑이란다. 1920년대 숙조부가 ‘국수’ 칭호를 들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바둑을 좀 두셨다고 하나, 난 늘지 않은 5급 실력에 그칠 만큼 그다지 소질이 없다. 돌을 안 잡아 본지도 10년이 넘었다. AI의 미래보다는 인간의 미래를 더 믿고 싶다. AI가 활개치는 세상에서 ‘길과 길을 만들어 삶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세돌 자신의 명예와 인류의 자존심을 지켜주길 바라며 이세돌의 ‘묘수’를 기대한다.

슬픔에 대하여

슬픔에 대하여 / 복효근해가 산에서 마악 솟을 무렵/ 구름 한 자락 살짝 가리는 것 보았니?/ 깜깜한 방에 갑자기 불을 켤 때/ 엄마가 잠시 아이의 눈을 가렸다가 천천히 떼어주듯/ 잠에서 덜 깬 것들, 눈이 여린 것들/ 눈이 상할까봐/ 조금씩 조금씩 눈을 열어주는 구름 어머니의 따뜻한 손/ 그렇게는 또/ 내 눈을 살짝 가리는 구름처럼/ 이 슬픔은/ 어느 따스운 어머니의 손인가- 시집『마늘촛불』(애지,2009)......................................... 야간운전을 할 때 마주 오는 차의 전조등 불빛이 직접 눈에 닿으면 눈부심 때문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는 경우가 있다. 가로등이 없는 지방 도로에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요즘은 터널에 불을 환하게 밝혀 그런 일이 적지만 주간에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설 때도 현혹현상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극장 같은 캄캄한 곳에 갑자기 들어서면 처음엔 주변이 하나도 뵈지 않는다. 한발 앞으로 떼기도 멈칫거려진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차차 주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해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어두운 곳에 오래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에도 눈부심을 느끼는데 시간이 지나야 눈은 정상기능으로 복귀한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외부의 자극에 감각이 익숙해지는 순응이다. 일시적으로 현혹된 눈이 원래대로 회복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순응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을 때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의 차이가 크다. 전자의 ‘암순응’이 완료되기까지는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비해, 후자의 ‘명순응’ 즉 눈부심이 사라지기까지는 1~2분이면 족하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가끔 영화관을 찾았다. 임권택 감독의 첫 작품인 ‘두만강아 잘 있거라’의 몇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 깜깜한 극장에서 잠시 내 눈을 가렸다가 천천히 떼어주던 엄마의 다정한 손과 함께. 극장 밖을 나올 때도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내 눈을 잠깐 가렸었는데, 순간 엄마라는 완벽한 우산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안도했다. 시인이 ‘해가 산에서 마악 솟을 무렵’ ‘구름 한 자락 살짝 가리는 것’을 보고선 어머니의 그 따뜻한 손을 환기해낸 것은 엄청난 시적 서정의 발견이다. 이미 그러한 동작은 폐기되었거나 후미진 추억의 곳간 속에나 처박혀있는 것이어서 좀처럼 인출되기 어려운 품목이기 때문이다. 순응이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순순히 잘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적 건강하셨던, 혹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어머니였는데 4년 전 갑자기 쓰러지시고 100일간 병원에 누워계시다가 저 암묵 속으로 들어가셨다. 그 백일간의 암흑천지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이런 비유는 가당찮지만 암순응에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밥을 처먹고 똥을 싸고 이빨을 닦았다. 하지만 거울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면서 수염 깎는 일만은 차마 할 수 없어 100일 동안 수염은 그대로 방치했다. 내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어머니 가시고 명순응에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은 훨씬 더뎠다. 아니 지금도 완전히 적응했다고 할 수는 없다. ‘내 눈을 살짝 가리는 구름처럼’ 여전히 어머니의 손길이 그립다. 어쩌면 ‘눈이 상할까봐’ 더 큰 슬픔을 가리는 ‘어느 따스운 어머니의 손’이 작동중인지도 모르겠다. 슬픔은 또 다른 슬픔으로 덮는가. 세상의 모든 슬픔 앞에 어머니의 손이 있다.

환승

환승/ 전선용암울한 시간이 동굴처럼 막막해서/ 시계부속이 오류를 일으키며 째깍거립니다// 나는 가고 너는 오는 다리 위에서/ 고독이야말로 죽기 좋은 명분/ 가장 어둡고 밝은 교차로 0시/ 도시가 벚꽃처럼 집니다// 밝아올 아침은 흐드러진 꽃 따위와 상관없이/ 어제까지 막장 드라마를 보았고/ 클라이맥스가 뻔해서 슬프게 웃었습니다// 소주 둬 병을 들이켠 민낯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기척 없이 다가온 호명에 고개를 숙입니다/ 안온한 죽음을 부르는 꽃비가 계절을 덮을 때// 짐승이던 내가/ 비로소 사람 말을 합니다// 나는 이제,/ 순탄할 뿐입니다- 시집 『지금, 환승중입니다』 (도서출판 움, 2019).............................................. “이제야 사람 말을 한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그것들을 옮겨 적는다. 사람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사실과 또 사람만큼 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시집 맨 앞 ‘시인의 말’ 일부다. 이 진술만으로 ‘환승’의 의미를 희미하게 짐작한다. 환승은 갈아탄다는 뜻이다. 예전엔 일본어 ‘きりかえ’란 말을 곧잘 쓰곤 했다. 방향을 전환하거나 갱신할 때엔 반드시 어떤 동기나 계기가 있으리라. 지하철의 경우 환승역이겠는데, 인생으로 치자면 선택의 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처음 탄 열차에 그냥 앉아있으면 누군가 정해 놓은 종착지에 도달하겠으나 내가 원하는 곳은 아니다. 내가 바라고 목적하는 곳으로 가자면 가던 길을 바꾸어 갈아타야 한다. ‘환승’은 또 다른 선택지이자 가능성이다. ‘나는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시간은 가고 숱한 질문이 웅성거린다. 그러나 한 순간에 번민과 갈등을 덮어버리고 ‘그래, 지금이 내릴 때야’ ‘내려서 다른 열차를 기다려야해’라고 결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내린 곳이 바로 ‘환승역’이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사람과의 인연이 계기가 되거나 꿈과 현실이 동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인은 ‘짐승이던 내가 비로소 사람 말을 합니다’ 다르게 살아보고자 하는 각성이었는지, 문학적 환경 변화가 터닝 포인트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거나 심오한 이유일지도. ‘어제까지 막장 드라마를 보았고 클라이맥스가 뻔해서 슬프게 웃었’다고 한다. ‘고독이야말로 죽기 좋은 명분’이라고 한다. 삶이란 아득한 침몰을 향해 운행하는 열차 위의 생이란 걸 알아챈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거스르거나 목적지를 변경할 수 없다는 사실도 눈치 챘으리라. 죽음이란 숙명의 강물에 빠지지 않을 방법은 없다. 이것만 생각하면 삶이란 참으로 절망스럽다. 사람의 정신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지만 절망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키르케고르도 절대고독은 절망이고, 그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절대고독이 짙고도 깊어진 상황에 처했을 경우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한다. 그만큼 위험이 커졌을 때라야 절대고독에 빠져든다. 한 여성 연예인의 안타까운 죽음도 그러했으리라. 절망하는 자는 어떤 대상에 대해 절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인 것이며, 그래서 자신을 삭제해 버리려는 충동에 휩싸인다. 이것은 모든 절망의 공식이다. 죽음의 구원은 죽음을 번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기도 하다. 시인은 긴 방황 끝 ‘환승’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고 희망을 건져낸다. 그 변곡점에서 문학적 열망도 탑재된 듯하다.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최승호하늘에서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를/ 무슨 무슨 주의의 엿장수들이 가위질한 지도 오래 되었다/ 이제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엔/ 가지도 없고 잎도 없다/ 있는 것은 흠집투성이 몸통뿐// 허공은 나의 나라, 거기서는 더 해 입을 것도 의무도 없으니/ 죽었다 생각하고 사라진 신목(神木)의 향기 맡으며 밤을 보내고// 깨어나면 다시 국도변에 서 있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귀 있는 바람은 들었으리라/ 원치 않는 깃발과 플래카드들이/ 내 앙상한 몸통에 매달려 나부끼는 소리,/ 그 뒤에 내 영혼이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소리를// (중략)// 언젠가 나는 쓸 수도 있으리라 초록과 금빛의 향기를 뿌리는 시를// 하늘에서 새 한 마리 깃들어/ 지저귀지 않아도.-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지성사, 1985) ................................................................ ‘북가시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나무과의 상록교목이다. 줄기가 굵고 곧게 자라며 많은 가지와 무성한 잎이 있어 장대한 수형을 이룬다. 붉가시나무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목재의 색깔이 붉은 데서 비롯되었으며 목재가 무겁고 잘 쪼개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존성이 좋아 가구재와 산업재로 많이 이용된다. 하지만 시는 나무에 박힌 가시에 주목한다. 이 시는 비뚤어진 정치적 이념과 요설들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이를 꿋꿋하게 견뎌내어 순결한 영혼이 담긴 시를 쓰고자 하는 결의를 북가시나무에 비추어 드러낸 작품이다. 북가시나무로 비유되는 시적 화자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자유로운 이상을 갈구하지만 벌목꾼의 난립한 이념과 주의에 의해 영혼의 팔 다리가 다 잘려나가고 내면의 상처와 고통만 남는다. 상처투성이의 고독한 존재로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차량이 내뿜는 매연과 ‘원치 않는 깃발과 플래카드들’이 내 몸을 결박한다. 그 부정적 공간의 부대낌 가운데서도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지켜가고자 하는데, 만물이 소생하는 ‘봄기운에’ 새싹을 틔워보지만 서슬 푸른 대장간의 ‘낫’과 ‘톱니’들도 동시에 생기를 띠고 자신을 위협한다. 북가시나무 둘레를 맴도는 소란한 환경은 늘 존재해왔다. 어림 턱도 없는 낡은 이념도 문제거니와 특정 이념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이들에게서도 내면의 황폐함을 본다. 그들은 자기 생각에 맞추지 않으면 가차 없이 가위질을 해댔다. 이에 북가시나무는 알몸으로 항거한다. 초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방어기재로 가시만 남는다. 가시는 온갖 위협으로부터 순수를 지키려는 대결의지의 다름 아니다. 그러나 메마른 가시는 나무 곁으로 다가오는 뭇 생명들을 거부한다. 혼자 남겨진 영혼이 어찌 메마르지 않을 수 있으랴. 시인은 허공만이 ‘나의 나라’라고 말한다. 허공엔 이념이 들어설 틈이 없다. 이 허공에서야말로 비로소 ‘사라진 신목(神木)의 향기’를 맡는다. 신목은 영혼의 나무이다. 그 향기는 바로 ‘잎사귀 달린 시, 과일을 나눠 주는 시, 초록과 금빛의 향기를 뿌리는 시’로 환치된다. 풍요롭고 순수한 영혼의 결실로서의 시를 꽃피우고, 그 꽃으로 밝은 미래와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 하지만 밖으로 가시를 삐죽 내민 나무에는 어떤 새도 어른거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새 한 마리 깃들어 지저귀지 않아도’ 나 자신의 변모가 곧 세계의 변모를 가져오리라 굳게 믿는 것이다.

정미소처럼 늙어라

정미소처럼 늙어라/ 유강희나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 아직은 늙음을 사랑할 순 없지만 언젠가 사랑하게 되리/ 하루하루가 다소곳하게 조금은 수줍은 영혼으로 늙기를 바라네/ 어느 날 쭈글쭈글한 주름 찾아오면 높은 산에 올라 채취한 나물처럼/ 그 속에 한없는 겸손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하늘의 열매 같은 그런 따사로운 빛이 내 파리한/ 손바닥 한 귀퉁이에도 아주 조금은 남아 있길 바라네/ 언젠가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다 잠깐 들어가 본/ 오래된 정미소처럼 그렇게 늙어 가길 바라네/ 그 많은 곡식의 알갱이들 밥으로 고스란히 돌려주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식은 왕겨 몇 줌만으로 소리 없이 늙어 가는/ 그러고도 한 번도 진실로 후회해 본 적 없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도 반짝, 들려주는 녹슨 양철지붕을/ 먼 산봉우리인 양 머리에 인 채 늙어 가는 시골 정미소처럼/ 나 또한 그렇게 잊힌 듯 안 잊은 듯 조용히 늙어 가길 바라네- 웹진 《문장》 2008년 4월호..................................................늙어간다는 사실보다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을 더 누추하게 한다. 늙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력이 쇠하여져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거야 어쩌겠나. 물론 성취하고 소유하고 유지할 능력을 계속 요구하는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에 따른 서운함은 있다. 누구나 쭈글쭈글하지 않고 반질반질하길 바라겠지만 어림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늙어 보이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가질 이유는 없다. 어쩌면 나이 들어 더 이상 호르몬의 작용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명한 핑계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늙는다는 것은 우리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각성케 한다.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몸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다. 죽음을 피해갈 수 없듯이 누구나 언젠가는 늙을 수밖에 없다. 그때 ‘하루하루가 다소곳하게 조금은 수줍은 영혼으로 늙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은 얼마나 갸륵한 인간의 모습인가. ‘높은 산에 올라 채취한 나물처럼’ ‘그 속에 한없는 겸손’을 읽는 것이야말로 늙음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랴.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영혼을 더 늙게 하고, 그 두려움은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하여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리게 만든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한 지방신문에 실린 자신의 사진이 늙어 보이고 눈매가 사납다고 해서 캠프참모를 시켜 신문사에 앞으로 그 사진은 절대 쓰지 말라는 당부 전화를 해왔다. 아닌 게 아니라 같은 사람 같은 시간의 사진도 분위기와 느낌이 전혀 달리 보이는 경우는 예사로 있는 일이다. 사진의 이미지에 민감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디 사진뿐이랴. 얼마 전 최순실은 이름 갖고도 이미지 훼손이니 뭐니 그러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오래된 시골정미소처럼 그렇게 늙어라’고 하면 시적 이해는 고사하고 아마 기겁을 할 것이다. 사진을 보면 늙어가는 제 모습이 역력하여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고도 한다. ‘시골 정미소처럼’ ‘잊힌 듯 안 잊은 듯 조용히 늙어 가’는 것도 그리 녹녹치만은 않은 일 같다.

농업박물관 소식

농업박물관 소식-거리에 낙엽/ 이문재늦가을과 초겨울이 겹쳐지는 저녁입니다, 저녁이고 찬비 내립니다, 사람의 불빛들이 아스팔트 위로 번지르르하고, 나는 어둡고 추워서 알고 있던 이름들을 불러보는데, 그이들은 여기에 없습니다, 없고, 농업박물관 앞, 보도블록에 박혀 있던 가로수들이 낙엽을 떨어뜨립니다, 집광판이었던, 뿌리의 입이었던 활엽들이 젖어서 활강하는 걸 보고, 아 저것들이 방하착(防下着), 방하착하라, 하며 자진하는구나, 저것이 한 생애의 유언이구나, 라고 쓰려다가, 이내 치워버립니다 저 낙엽들은 뿌리로 내려가 만나지 못하고 매립지로 실려가겠지요, 그런데 어디 낙엽만 그런 것일까요, (중략) 농업박물관 앞, 깨진 보도블록 한 장을 들어내고 젖은 낙엽 한 장을 집어넣어 주었습니다, (하략)- 시집『마음의 오지』(문학동네, 1999)................................................... 서울 충정로에 있는 농업박물관은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농업의 중요성과 우리의 전통농경문화를 알리기 위해 농협중앙회가 세운 농업사전문박물관이다. 가로수들이 우수수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다. 나뭇잎은 뿌리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그 명을 다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서 제 뿌리가 얼지 않도록 덮어준 뒤 썩어 거름이 되어 땅을 기름지게 한다.그 땅은 뿌리를 튼튼하게 하여 이듬해 다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낙엽뿐 아니라 만물은 그 생명을 다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그러나 도심의 가로수 낙엽은 뿌리로 가지 못하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그냥 쓰레기매립지로 실려 간다는데 문제가 있다. 시인은 그 앞에서 ‘아 저것들이 방하착(防下着), 방하착하라, 하며 자진하는구나,’ ‘저것이 한 생애의 유언이구나,’라고 쓰려다가 이내 치워져버리는 것을 보고 멈칫한다. 좀 놔둬도 되겠건만 도심에서는 낙엽들이 쌓이고 뒹구는 꼴을 보지 못한다. ‘방하착’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하게 가진다는 의미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도 곁에 두지마라는 뜻이다.‘방하착’은 당나라의 선승 조수선사의 선문답에서 유래되었다. 내려놓으라는 말은 무엇인가에 아등바등 집착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로 흔히 쓰인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서 내려놓고 모든 것에서 내려와 참으로 홀가분해지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탐욕을 버림으로써 무소유를 통한 인간의 자기회복이란 의미를 지닌다. 본디 낙엽의 쓰임이 그렇듯이 버린다고 그냥 폐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어느 시점에서 모든 번뇌와 집착을 떨치고 한걸음 뒤로 빠질 수만 있다면 그게 곧 도인의 경지일는지 모른다.걱정과 번뇌를 내려놓고 집착과 편견, 자신의 관념이 옳다는 것마저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즉 원하는 바 없이 자신이 할 바를 하는. 말처럼 쉽지 않다. 불출마와 정치은퇴 바람이 불고는 있으나 얼마나 후폭풍을 만들어낼지 의문이고, 그들의 선언 자체가 ‘방하착’의 마음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작 정치에서 제 몸 하나씩 내려놓을 사람들은 따로 있고 넘치고 넘친다. 권력욕에 중독된 자들에겐 해독제가 없다는 것을 역사는 숱하게 증명해왔다. 여의도 앞, ‘깨진 보도블록 한 장을 들어내고 젖은 낙엽 한 장을 집어넣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