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거짓말, 헛말

막말, 거짓말, 헛말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한 때는 ‘생각과 말’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실은 한때가 아니라 인류 역사 대부분이 그랬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죄목은 청년들의 영혼을 타락시켰다는 것이었다. 2천 400년쯤 전의 일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800년쯤 지나 415년의 일이었다.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뛰어난 수학자가 있었다. 철학자기도 했던 그녀의 이름은 히파티아였다. 강의하러 가는 길에 갑자기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사상의 자유를 주장했다는 이유였다.다시 1천100년쯤 지나서였다. 1534년, 헨리 8세 때의 영국이었다. ‘유토피아’를 쓴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참수형에 처해졌다. 대법관이라는 최고위직까지 올랐던 귀족이었다. 왕의 이혼을 반대해서였다.근대사회를 연 위대한 사상가들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였다. 마키아벨리, 장 자크 루소, 볼테르도 책이 불태워지거나 국외로 망명해야 했다. 생각과 글이 불온하다는 이유였다.20세기 들어와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끔찍한 학살과 공포가 세상을 휩쓸었다. 스탈린과 마오쩌뚱과 크메르 루즈 등에 의한 대학살과 대숙청은 20세기를 야만의 시대로 규정짓게 만든 대표적인 비극이었다. 선진국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미국의 매카시즘과 베트남 침공, 프랑스의 알제리인 학살 등도 부끄러운 야만이었다.우리나라도 그랬다. 70여년 전만 해도 사상이 다르다고 죽고 죽이는 일이 일상이었다. 독재권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거나 갇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죽임을 당하는 일도 흔했다.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도 납치되어 살해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났을 정도였다. 사실을 보도했다는 이유, 언론 자유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거나 투옥되거나 해직된 언론인도 부지기수였다.불과 수년 전, 지난 정권 때의 일이었다.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문화예술인들이 불이익을 받았다. 소위 블랙리스트 사건이었다.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최근까지도 사치였던 것이다.미국 헌법을 기초했고 3대 대통령을 역임한 토머스 제퍼슨의 말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우리가 지금 생각이나 말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거나 감옥에 갇히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살게 된 것도 전적으로 국내외의 선배 세대가 흘린 피와 노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피로 키운 그 고귀한 민주주의’가 만신창이가 되는 상황을 하루도 빠짐없이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발전시킬 방안에 대한 이성적 토론이 자리해야 할 ‘생각과 말의 자유 공간’을 온갖 막말과 거짓말과 헛말들이 휘젓고 있기 때문이다.먼저 ‘흉측한 막말’이다. ‘다이너마이트 청와대 폭파’ 발언은 듣는 귀를 의심하게 했다. 서초동 촛불집회를 가리켜 ‘조폭들의 모임’이라고 한 것도 그랬다. 너무 많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대부분이 유력 정치인의 말들이다. 국회 회의장에서까지 막말을 넘어 욕지거리와 삿대질이 일상이 되었다.‘뻔한 거짓말’도 심각하다. 거짓말 잘하는 것이 마치 정치인의 자질인 것처럼 생각될 정도다. 최근에는 유명대학의 교수들까지 가세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가리켜 ‘매춘부’라고 했다. ‘학문의 자유’ 뒤에 숨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일부 유튜브들은 물론 유력 신문과 방송들까지 교묘한 거짓말과 가짜뉴스들을 만들거나 퍼나르고 있다.또 있다. ‘황당한 헛말’이다. 이익이 된다 싶으면 논리나 근거도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주사파가 장악한 청와대’, ‘사회주의 정권’, ‘빨갱이’ 같은 흑색선전과 선동이 대표적이다. 전광훈 목사의 주장 하나도 듣기 거북한 헛 말이었다. ‘나는 본회퍼를 따른다.’ 본회퍼가 누구인가? 히틀러 암살모의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사형당한 목사가 아닌가? 전형적인 혹세무민 헛 말이다. 당혹스럽고 참담하다.유명 무명의 선각자들이 그 모진 고문과 투옥까지 감당하면서 피땀 흘려온 역사가 저런 막말, 거짓말, 헛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탐욕의 정치인과 무책임한 언론인, 혹세무민하는 종교인과 지식인들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도록 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도 아니다.‘생각과 말의 자유 공간’을 깨끗하게 하고 민주주의의 품격을 지켜내는 것이 시대의 과제가 되었다. 결국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아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행복한 밥상

행복한 밥상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가을 햇살이 탐스럽게 빛난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단풍의 색깔처럼 고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시골집 마당에 가득 피어난 꽃처럼 공원을 수놓으며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 앞에 앉을 차례를 기다린다. 토요일을 맞아 두류공원에서 ‘대구광역시의사회와 적십자가 함께 하는 건강 상담 및 행복한 밥상‘이라는 현수막 아래 나눔 행사가 열렸다.우리나라만큼 아픈 이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기 쉬운 나라가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사각지대에서 혜택을 못 받는 이들을 위해 매년 함께 하는 나눔 의료봉사행사이다. 무더운 여름도 지나 서늘해진 가을이 다가오자 환절기 건강을 염려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나 보다. 줄지어 선 이들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외과계와 내과계로 나누어 열심히 진료해도 줄은 좀체 끝나지 않는다. 게다가 초음파 검사까지 무료로 할 수 있다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뵈니 붉게 물들어가는 잎사귀도 한결 기운이 나는 듯 살랑댄다.보다 많은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따뜻한 의료와 건강 상담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한 분 한 분 그분들의 얼굴에 웃음 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오후였다. 의사회에서 마음을 담아 마련한 후원금을 전달하며 이제는 밥상을 차리는 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땀 흘리며 그분들께 밥상을 차려드리는 차례다. 의사 봉사단 조끼 위에 머리 수건과 장갑을 끼고 줄지어 늘어서서 한 가지씩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로 했다. 행복한 밥상. 식판을 들어드리고 군대에서 쓰는 숟가락에 포크가 하나로 된 수저를 드시게 하여 반찬을 하나씩 담아드린다. 힘센 남자선생님은 밥을 푸고 국을 뜨고 그중에 덜 힘들 것 같은 반찬 나누는 대열에 서있던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무료급식행렬에 비지땀을 흘려대었다. 아마도 천 명은 족히 될 듯한 그분들의 반찬을 담아드리며 소리 내어 때로는 속으로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를 외쳐대었다.드디어 줄이 끝 나갈 무렵 청포묵은 바닥이 보이고 맛있게 보이던 김치도 이젠 조금만 남았다. 게다가 불티나게 인기 있던 가느다란 파와 김을 무친 것은 쳐다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갈 정도로 배가 고파왔다. 드디어 배식하던 봉사자들의 식사, 시장이 반찬인지 남이 해놓은 밥이라 그런지 정말이지 세상에~! 밥이 아니라 꿀이었다. 시장기가 어느 정도 가시자 입을 모은다. 오늘 흘린 땀방울이 행복이라는 작은 씨앗에 물을 주는 것 같아 기쁘다고, 앞으로도 시간을 내서 이런 봉사를 자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야말로 나누면 더 행복해 질 수 있고 함께하여 더 의미 있는 의료봉사와 사랑의 급식이 아니겠는가. 이런 봉사활동은 참여하는 이들의 감성지수를 많이 높여줄 것도 같다. 아무리 춥고 배고픈 현실이라도 행복한 밥상 앞에서는 체온이 1도 정도는 높아질 것 같아 마음이 따스해오지 않으랴 싶다. 누구든 혼자서 식사하기 좋은 사람이 있겠는가. 더구나 독거 어르신은 식사 재료 준비와 배식, 설거지 등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런 분들을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이런 무료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는 적십자사는 정말 존경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봉사 팀에 합류한 한 학생은 얼굴에 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한다. “평소엔 어머니가 차려준 식사를 하다가 스스로 참여하여 준비한 식사를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 같다.”라고. 그러면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상이 여기에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학생의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온도가 1℃ 정도는 올라간 것 같다.오래 전 방송에서 ‘행복한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매주 한가지의 먹거리를 선정하여 ‘a부터 z까지’의 모든 정보를 재미있게, 실증적으로, 경쾌하게 점검하는 프로그램이라 참으로 유익한 방송이라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때 얻어 들었던 지식으로 우리집 식탁을 차릴 때도 가장 행복한 밥상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곤 하였다. 신혼시절 남편에게 물었다. 가장 행복한 밥상은 뭘까? 그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이라고 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행복한 밥상은 정말이지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이가 정성껏 마련하여 차려주는 것 아니겠는가.김수환 추기경은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나누며 살다가자/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려니’라고 하셨다. 추기경님의 미소와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이들이 많아져서 곳곳에서 나눔을 실천하며 행복한 밥상을 차리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학교 밖 청소년 대책 시급하다

학교 밖 청소년 대책 시급하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1970~90년대 대구 YMCA와 YWCA에는 대구시내 인문계, 실업계 남녀 고교생들을 위한 학교별 또는 몇 학교가 같이하는 연합 서클이 많이 있었다. 이들 고교생 서클을 ‘하이와이(HI-Y)’ 또는 ‘고교 Y’, ‘소녀 Y’라고 불렀다. 그 당시 청소년들에게는 주말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가 별로 없었다. YMCA와 YWCA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에 가서 초청 인사의 강연을 듣거나 합동 토론 등으로 인문적 교양을 쌓고, 다 함께 노래 부르기와 레크리에이션 등으로 학업에 지친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했다. 합동 발표회, 체육대회, 단막극 경연대회 등을 통해 다른 학교 학생들과 교류하며 우정을 쌓았다. 이런 서클들은 90년대까지는 활발하게 그 명맥이 유지되었지만 2010년을 넘어서면서 거의 사라졌다.고교생 동아리가 사라진 이유는 다양하다. 지금은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수단과 장소가 많다. 휴대전화기 하나만 있어도 얼마든지 혼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자신을 여러 사람에게 힘들게 맞추기보다는 혼자 또는 소수의 친한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교육제도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 본고사와 학력고사, 수능 도입 초기만 해도 시험만 잘 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고1, 2학년 때 기초만 잘 닦아두면 고3 때 열심히 공부해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내신 성적 비중이 커지면서 학생들의 학교 밖 활동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1학년 첫 시험부터 한 번이라도 망치면 수시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가기가 어려운 현실 앞에서 학생들의 대외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지난주 토요일(10월12일) 대구 YMCA에서는 고교시절 이곳에서 서클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홈커밍데이 행사가 있었다. 주로 40~60대 사람들이 참석했다. 출신 고교는 달랐지만 모두가 반갑게 옛날을 회상하며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도와준 YMCA에 감사했다. 행사 참가자들은 약전골목에 있는 교남 YMCA 건물을 둘러보았다. 3·1 운동과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YMCA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공부하며 가슴 뿌듯한 감동을 느꼈다. 약전골목과 종로를 지나 금호호텔 옆에 있는 YMCA 청소년회관에도 갔다. 김영민 사무총장의 안내로 그곳을 둘러보며 참가자 대부분은 크게 놀랐다. 이 회관이 주로 ‘학교 밖 청소년’과 ‘다문화 가정 청소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했거나 다양한 이유로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이 여기에 와서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상담도 받고 검정고시 준비도 한다고 했다. 과거 HI-Y 활동을 한 학생들 대부분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도 모범생들이었다. 세월이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참석자들은 YMCA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쉼터를 제공해주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기독교 정신의 구현임에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반 고교생들이 거의 사라진 현실 앞에서 참석자들의 마음은 착잡했다. 당면한 과제와 목전의 이익을 위한 활동만 중시하고, 서로 어울려 소통하며 공존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활동은 날이 갈수록 위축되는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난해 우울증 문제로 진료를 받은 청소년이 4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위기청소년을 지원하는 위(Wee) 클래스 설치율은 60%에 불과해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학업을 중단한 학생이 3만3237명에 달했다는 보도와 함께 검정고시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학업 스트레스와 진로 고민, 가정불화, 사회 부적응 등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과 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기존 봉사 단체에게는 대폭적인 인적, 재정적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냉정한 상황 인식과 그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열어야 비로소 채워진다

열어야 비로소 채워진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개방적 자세로 만사를 수용하는 국가는 부강하고, 편협한 종족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국가는 쇠퇴한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에선 정반대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기심이란 인간 본능에 가려서 객관적 인과관계를 외면하는 감이 있다.지방자치 실시 이후 지역이기주의가 창궐하고 있다. 역외 자본의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산업용 부지를 무상 내지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도 하고 각종 지원금을 주기도 한다. 토종기업으로부터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경쟁이 역내기업으로 제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역내기업과 컨소시엄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이러하니 해당지역에 별도 법인을 만들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역외 기업에 영업제한을 두기도 하고, 자금의 역외유출을 차단하기위해 조건부 허가를 교묘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직선제가 초래한 폐쇄성이다. 전체와 부분의 역설을 보려하지 않고 애써 부분을 전체로 인식한다. 사람도 지역 우선이다. 역외 인재를 고용하면 인구가 느는 점은 안중에 없다. 다른 지역도 똑같이 따라하면 피장파장이다. 장기적으로 멀리 보려고 하지 않는다. 유권자가 복잡한 계산이나 우회적 현상을 싫어하고 단순 명쾌한 일차함수나 직접적 조치에 주목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역지사지해보면 코미디다. 역내 기업이 역외에 투자하면 우대받고, 역외에서 수주를 하고자 하면 도리어 제약을 받는다. 영업제한, 자금이동, 지역민 고용 등의 경우도 부메랑이다. 시야를 넓혀 멀리 보면 서로가 상대방에게 차꼬를 채우고 있다. 누워서 침 뱉는 꼴이고 자승자박이다. 국가 간에는 상호주의라는 관점에서 이기주의라는 철조망을 걷어내기도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간엔 상호교감마저 없다. 지방정부의 조례가 자유시장경제라는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셈이다. 소모적인 경쟁을 적극 중재하는 일이 시급하다. 개방하는 길이 생문이다. 역설적으로 개방이 전체 파이를 키우고 종국적으로 이기심을 충족해 준다.정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방적인 자세로 포용해야 정치가 제대로 기능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 현실은 아예 마음을 닫고 있다. 이런저런 연고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선거법상 제한이 없다 하더라도 그 지역에 연고가 없는 경우 당선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출마가 제한된다. 법 규정 이전에 당선가능성이란 잣대가 추상적 매개변수로 작용하여 무분별한 출마를 자동 제어한다. 법이나 강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한다. 법은 최소한의 제한만 규정할 뿐이나 연고라는 폐쇄성이 장벽을 친다.선출직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은 전국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제일 큰 지역구를 선택한다. 그 의사결정 속에는 그 지역 여론 즉 유권자의 표심이 당연히 들어있다. 그 지역의 여론을 감안하지 않았거나 잘못 판단한 책임은 본인이 진다. 따라서 각종 선거의 지역구 선택은 언론이나 특정인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표심을 감안하여 스스로 결정한다. 외부의 부당한 진입장벽은 민심을 왜곡한다. 연고라는 장벽도 언젠간 깨뜨려야할 과제다. 외부 인재를 유치하려는 개방성이 필요하다. 정당이 다양한 가치분석을 통해 최대다수가 당선될 수 있도록 조직적 개입을 하는 경우도 개방성을 전제로 해야 국가적으로 효율적이다.큰 꿈을 향한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누구든지 꿈을 꿀 자유를 가진다. 권력의지를 비난할 필요도 없다. 권력을 정치의 도구개념으로 본다면 정치인이라면 권력의지가 없는 사람은 없다. 봉사경력이 선출직의 출마요건인 것도 아니고 봉사정신만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공복으로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배타성을 버리고 마음을 열어야 정치가 선진화된다. ‘누구는 안 된다’는 주장은 선거법 상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다. 상식적으로 봐도 터무니없다. 마음을 열고 연고를 따지지 말아야 큰 정치가가 나온다. 출마여부와 지역선택은 자율의지에 맡겨야 한다. 낙하산 타령은 편협함과 이기심의 발로다. 개방이 참 정치를 키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예능과 스포츠가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다. 예능과 스포츠가 경쟁력을 갖고 명성을 떨치는 이유다. BTS가 세계를 누빈다. 미국의 LPGA와 유럽의 프로축구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정치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문을 닫아걸고 도토리 키 재기를 해서는 정치가 제대로 설 수 없다. 정치권에서 불어온 혼란이 극심하다. 유능한 정치인을 수입하고 싶은 부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열어야 비로소 채워진다.

‘세계 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세계 빈곤퇴치의 날’을 맞아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10월17일은 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1992년부터 매년 세계가 함께 기념해 왔다. 지구촌의 절대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전 세계가 힘을 합치자는 취지다.1987년 10월17일의 의미있는 행사가 계기가 됐다.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인권과 자유 광장’에서였다. 세계 빈곤퇴치 운동가 조셉 레신스키 신부가 ‘절대빈곤 퇴치운동 기념비’ 개막 행사를 열었다. 빈곤, 기아, 폭력으로 희생된 10만여 명이 함께 했다. 기념비에는 ‘가난이 있는 곳에 인권침해가 있다’고 적었다. 트로카데로 인권과 자유 광장은 1948년에 UN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된 역사적 명소이기도 했다.빈곤은 인류의 가장 큰 숙제였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을 약탈해 왔고 이웃 나라와 싸움을 벌여왔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인류는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적지 않은 지구촌 형제들이 절대빈곤과 기아의 늪에서 신음하고 있다. 불편한 정도의 가난이 아니라 생명을 위태롭게 할 만큼의 극한 빈곤이다.UN 지속가능개발위원회는 지구촌의 절대빈곤 인구를 2017년 말 현재 7억8천300만 명으로 추산했다. 지구촌 전체 인구의 10%를 넘는 규모다. 절대빈곤 기준선은 ‘하루 생계비 1.9달러 미만’으로 정했다. UN에서 활동한 기아문제 전문가 장 지글러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20억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데, 10세 미만 아이들이 5초에 한명씩 굶주려 죽고 있다.2015년, UN 회원국들은 지구촌이 2030년에 도달할 목표를 설정했다. ‘지속가능개발 목표(SDGs)’가 그것이다. 17개 과제에 합의했는데, 그중 첫째와 둘째 과제는 빈곤퇴치와 기아종식이었다. 모든 국가의 모든 형태의 빈곤을 종식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때 감소 추세였던 세계 빈곤 인구는 3년 전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가난은 ‘절대빈곤 퇴치운동 기념비’에도 새겼듯이 인권침해의 가장 큰 요인이다. 일부 극빈국에서는 아이를 돈받고 파는 일, 어린 아이를 노동에 내모는 일이 여전하다. 가난은 건강을 위협하는 수많은 요인 중 첫째이기도 하다. 특히 빈곤 아동이 처한 상황은 끔찍하다. 영양실조와 발육부진, 감염병으로 시달리다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전쟁과 내전, 기후재앙으로 인한 식량위기도 큰 문제지만, 부패한 정치와 탐욕스런 다국적 곡물기업, 약육강식의 불의한 국제질서가 정작 중요한 원인인 경우도 많다.절대빈곤을 극복한 모범국이라고 개발도상국들이 부러워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빈곤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문제다. 장기간 실업자와 빚을 안고 대학문을 나서는 청년의 고통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쪽방이나 반지하 등에서 한여름과 한겨울을 나야 하는 독거노인과, 함께 생명을 끊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뉴스도 심심찮게 본다. 열심히 일은 하지만 늘 가난한 비정규직, 높은 집값과 임대료에 짓눌려 허덕이는 무주택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문제도 심각하다.극심한 양극화로 인한 박탈감에 괴로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상대적 빈곤이다. 가난을 물려받은 청소년들은 뒤쳐진 출발선에 서서 힘겨워 한다. 적지 않은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다며 원망과 분노를 품고 희망없이 산다. ‘계급의 세습 도구’로 전락한 ‘만신창이 교육’과 ‘가난의 대물림’이 사회적 비극인 이유다.‘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다. 국가는 국민이 굶주리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제대로 서면 굶주림과 가난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가난은 개인의 팔자고 운명이다’는 말도 익숙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불의한 기성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든 허위의식일 뿐이다. ‘가난은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력 때문이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땀흘려 일하면서도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절대적 빈곤이든 상대적 빈곤이든, 실업빈곤이든 노동빈곤이든 주거빈곤이든, 불의한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과학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다양하고 복잡해진 빈곤의 원인과 실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빈곤 유형별로 세심한 정책을 마련해 대처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금주, 아니 ‘세계 빈곤의 날’에만이라도 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 ‘산상수훈’과 깨달음

산상수훈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잎사귀가 곱게 물들어 가는 가을이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가우라 꽃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발걸음 가볍게 걸어도 좋을 날들이지만, 주말마다 광장에는 목청껏 소리 높이는 인파로 가득한 요즈음이다. 태풍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우라 꽃도 속으로 외쳐대는 것 같다. “나도 여기 있다고요.” 언제 바람이 잦아들어 평화가 찾아오려나. 어서 빨리 진실이 밝혀지고 안정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모임에서 비구니 스님이 만든 영화가 화제로 올랐다. 한국의 비구니 스님이 만든 산상수훈이란 영화가 세계 4대 영화제 중 하나인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일을 냈다고 한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다룬 영화로 상을 탔다며 미국 LA에 사는 숙모님이 소식을 전하셨다. 영화를 만든 이는 경북 경산의 국제선원장 대해 비구니 스님이다. 그의 첫 장편 영화인 산상수훈은 8명의 신학대학원생들이 성경 구절을 소재로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믿음의 실체인 ‘진실’에 접근하고 종교의 본질은 하나라는 사실을 전하는 작품이다.‘산상수훈’은 8명의 신학대학원들의 문답으로 이뤄졌다. 공간도 오직 동굴 한 곳으로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들이 던지는 질문들이 단순하지 않다. 질문은 ‘정녕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최고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면 빨리 얼른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은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하느님은 인간이 따 먹을 줄 알면서 왜 선악과를 만들었는가.’,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내가 죄가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어떻게 해서 내 죄가 사해지는가.’ 등이다. 하나같이 기독교에서 금기시하거나, 궁금해도 물을 수조차 없던 것들이었다. 동굴 속에서 신학생들의 토론을 통해 산상수훈의 참뜻인 인간의 본질을 다룬 영화로써 종교간 화합과 평화에 기여하여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베오그라드 국제영화제 등 해외영화제에서 수많은 영화상을 수상했다. 러시아정교회와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들도 보고 “놀라운 영화”라며 경탄했다.26살에 대구 동화사 양진암으로 출가해 평범한 승려의 길을 걷던 그는 10년 전 돌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중국 선양에서 4년간 포교하기도 했던 그는 어떻게 진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가장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신학도 철학도 따로 공부한 적이 없는 그가 이런 시나리오를 써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니,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다.그는 출가 뒤 보통의 스님들처럼 화두를 들지도 않았다. 그는 대신 불경을 보고 자신만의 수행법을 실행했다. “나를 버리는 수행을 했다. 좋은 것도 놓고, 싫은 것도 놨다. 선악을 모두 놨다. 뒤돌아봐서도, 목적을 둬서도 안 된다니 그저 놨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일체가 둘이 아닌 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선도 악도, 부처도 중생도, 하느님과 피조물도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적 질문도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분한 상태에서는 의문에 의문을 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영화 ‘산상수훈’, 믿음의 실체인 ‘진실’에 접근하고 종교의 본질은 하나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가. 종교 화합과 세계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영화를 본 이들이 꼽는 가장 매료되었던 부분은 현상과 본질을 금 컵으로 비유해서 본질인 금과 현상인 컵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고 말한다. 금으로 만든 금 컵, 즉 금과 컵이 금 컵으로 하나라는 것, 여태까지 종교가 모두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대해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또 영화를 통해 모든 종교가 다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영화가 끝났을 때는 정말 한 쪽과 그 반대쪽의 논쟁이 아니라 더 나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끈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불교와 기독교 사상의 바다를 보는 것 같았고 각각 다른 종교들이지만 ‘우리는 더 깊은 뭔가를 가지고 있는 하나다.’는 것과 같은 근원적인 메시지를 갖고 있다.보이지 않는 인간의 본질을 알아야만, 비로소 그 능력으로 힘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본질과 현상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려야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스님도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랴.스님의 영화가 종교화합과 세계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했듯이 우리 세상에도 문득 산상수훈 깨달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마음을 여는 것이 사는 길이다

마음을 여는 것이 사는 길이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국가번영의 요체는 무엇일까? 논자에 따라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군사력’이라는 자도 있을 것이고, ‘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며, ‘리더십’이라는 말하는 이도 있을 법하다. 어느 주장이든 일리가 있어 어느 하나를 딱 잘라 틀린 답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역사를 통해 귀납적으로 추론해보면 개방성이란 공통분모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마케도니아는 그리스에서 이집트, 인더스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영웅적 리더십이 돋보이는 걸 부인할 수 없지만 정복지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했던 만인동포주의 내지 세계주의라는 개방성을 간과할 순 없다.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었다. 로마는 조그만 산골짜기 마을에서 발흥하였으나 대제국을 이루어 천 년을 번성했다. 지배과정은 막강한 군사력과 출중한 동맹전략에 힘입은 결과이기도 했지만 ‘팍스 로마나’를 누렸던 근원은 뛰어난 통찰력과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패자들까지도 포용한 개방성에서 찾아야 한다.몽골은 몽골고원에 살던 유목민이 건설한 역사상 가장 큰 대제국이었다. 칭기즈칸은 저항하는 도시의 주민을 학살하기도 했지만 피정복민이라 하더라도 유능한 인재를 수하에 두었고, 그들로부터 얻은 기술, 문화, 학문 등을 국가통치에 활용하였다. 다양한 종교를 용인하고 타민족과의 혼인을 장려하는 등 개방성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몽골민족의 수적 열세와 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하였다.에스파냐의 경우, 무슬림과 유대교를 포용하는 개방성을 유지한 시대는 세계패권국의 번영을 누렸으나 레콩키스타의 완료 이후 무어인과 유대인을 배척하는 폐쇄성으로 인해 그 바턴을 네덜란드, 대영제국으로 넘겨주었다. 네덜란드는 비록 작은 나라이긴 했지만 에스파냐에서 쫓겨 온 유대인을 적극 받아들이는 개방정책을 적극 펼침으로써 잠시나마 세계패권국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대영제국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열린 자세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구축하였다. ‘팍스 브리타니아’는 그 개방성의 결실이었다. 날이 갈수록 사치와 낭비가 만연하고 본국의 부족한 물자와 세금을 식민지에서 무리하게 조달·부과하게 됨에 따라 포용과 관용이란 개방성이 점차 훼손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식민지들이 잇따라 독립하게 되고 세계패권은 신대륙으로 건너갔다.미국은 기회의 땅으로 소문나 있던 터라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다양한 인종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마침내 미국은 이른바 인종의 용광로가 되었다. 미국의 개방성은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란 태생적 필연성에서 기인한다. 원초적 개방성은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누리는 토양이자 뿌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지금까지 독보적으로 세계패권을 유지하는 까닭은 개방성의 원동력이 내재적 구성요건에서 유래하기 때문일 것이다.대한민국은 오천년 역사를 통해서 한 번도 패권국으로 행세한 적이 없다. 좁은 국토, 지정학적 위치 등 주어진 환경 탓일 수도 있고, 적은 인구, 영웅적 리더십의 부재, 국론분열 등 사람 탓일 수도 있다. 우리보다 더 좁은 국토와 더 적은 인구를 가졌던 네덜란드, 한반도와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졌던 로마, 한민족보다 더 적은 인구를 가졌던 몽골 등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여러 나라의 사례들을 뻔히 보고도 앞뒤가 맞지 않는 그런 구차한 이유를 댈 수는 없다. 로마와 몽골이 초창기부터 국론통일이 항상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우리 역사에 영웅이 없었다고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역사에서 세계패권국의 공통분모로 추출해본 개방성은 일관성 있는 기준으로 여전히 유용하다. 우리가 자랑하는 단일민족국가라는 특성이 오히려 개방성을 가로막은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병자호란의 삼전도 굴욕과 구한말의 한일합병은 폐쇄성의 종결자다. 개방성이 국가 번영의 요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최근 나라가 극히 어지럽다. 동맹국인 미국과도 서먹서먹하고, 이웃인 중국, 일본과도 틀어졌다. 폐쇄적인 민족주의로 자폐증을 앓고 있는 꼴이다. 국민들이 양쪽으로 갈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극한상황까지 왔다. 거의 내란수준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폐쇄성이 국정기조로 부상함에 따라 남쪽끼리도 마음을 열지 못한 까닭이다. 폐쇄성을 접고 포용과 관용이라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때다. 서로 마음을 여는 것이 사는 길이다.

검찰이 더 문제다

검찰이 더 문제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두달쯤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늘 있는 여야간 정쟁쯤으로 생각했다. 장관 후보들의 흔한 결함들, 그리고 야당의 도넘은 시비들 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국후보가 장관직에 취임하든 중도에 낙마하든 큰 관심도 없었다.그런데 언제부턴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조국후보의 온갖 의혹을 다룬 언론 보도가 엄청난 분량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면서다. 후보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딸과 아들 심지어 동생과 그의 이혼한 전처까지, 온 가족의 삶이 부정되고 매도되는 것을 보면서다.‘이건 과하다’는 생각을 갖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특수부 검사 대거 투입, 70군데 압수수색, 당사자 조사는 생략된 채 늦은 밤 진행된 정경심교수 기소, 11시간 자택 압수수색 등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수사해야 할 의혹들이 여럿 있다고 해도 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무소불위’ 권력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왜 이런 거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윤석열총장이 처음부터 조국장관의 임명을 반대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대통령에게도 그 뜻을 전했다고 한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장관임명권을 무력화하는 수준까지 나아간 것이라면 문제다. 대통령이 조국교수를 장관후보로 지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대통령이 그를 후보로 지명하고 난 뒤에는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시키기 위해, 청문회까지 마친 뒤에는 대통령이 임명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다음의 질문이 연이어 꼬리를 문다. ‘윤석열총장이 저렇게까지 조국장관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국장관과 그 가족의 흠결과 비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그런 것이라면 검찰의 수사는 정의구현을 위한 것으로 박수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조국장관이 강력한 검찰개혁을 주장해 온 인사였다는 사실이다. ‘혹시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검찰조직의 저항은 아닐까?’ 충분히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맥락과 상황이었다.혹여 그런 것이라면 그동안의 검찰 행동은 지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국민의 이익이 아닌 검찰조직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권력의 가장 나쁜 자세기도 하다.검찰의 권력 행사가 설령 과했다 하더라도, 검찰조직의 기득권이 아닌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것이었기를 지금도 바란다. 하지만 의문 하나는 여전히 남는다. 수사과정의 일탈이다. 검찰은 몇몇 언론에게 수사중 기밀사항들을 흘려 왔다. 확인없이 받아쓰기만 하는 언론들도 문제지만, 검찰은 그런 무책임한 언론들을 적극 활용했다. 낙인효과를 기대하며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수사기밀은 야당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늘 정부에 적대해 온 야당과도 공조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그렇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조국장관을 낙마시키려 한 검찰의 의도까지 의심받게 된 것이다. 과묵하게 수사에만 집중했다면 그런 오해까지는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사회정의가 아닌 검찰조직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과잉수사로 오해받기에 충분한 정황인 것이다.조국장관과 그 가족들에게 흠결이 있고 그들로 인해 공정사회를 바라 온 청년세대의 실망이 컸다 하더라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고, 야당과 언론까지 활용하면서 사실상 정치행위를 해온 것이라면, 그런 검찰이야말로 정의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더 큰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문득 노무현대통령의 평검사와의 대화 장면이 생각난다.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노무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논두렁시계 사건’도 떠오른다. 망신주기의 전형이었다. 우병우와 김학의도 스쳐 지나간다. 도넘은 제식구 감싸기였다.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문제는 촛불정부가 탄생한 뒤에도 여전하다는 사실이다.검찰개혁에 대한 국민 여망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중요한 국가 과제로 부상했다. 검찰개혁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절제와 공정이다. 검찰제도 개혁의 중요한 원칙은 견제와 균형이다.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은, 정부 수립 후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극명하게 확인되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의롭고 겸손한 검찰로 거듭나는 계기이기를 기대해 본다.

아이젠하워 법칙

아이젠하워 법칙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태풍이 지나간 들녘에는 어느새 평화로운 풍경이 돌아왔다. 여기저기 알곡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락 열매들을 보니 저것을 어찌하면 좋으랴 싶다.가을이 되자 문화행사가 풍성하다. 8월에 시작한 대구 오페라 축제가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이 있을 때, 가끔 의료지원을 나가게 되어 빼곡한 일정에서도 모처럼의 여유를 부리며 부담 없이 아름다운 공연과 고운 선율의 음악을 접하게 되어 더 의미 있는 가을이 된 것 같아 흐뭇하다.사노라면 누군들 바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가정에 있는 이는 가정을 지키느라 늘 시간과 싸움이고 밀려드는 업무와의 씨름이지 않던가. 가을이 되어 써늘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대는 요즈음 같은 날이면, 뭔가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 마음으로 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인다.오랜만에 대청소를 계획했다. 하나하나 끄집어내다가 금세 지치는 나에게 남편은 동영상 하나를 꼭 보고 다시 시작하자고 하였다. 아이젠하워 법칙이라는 영상이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재임 시절 사용했던 방법으로 무작정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먼저 네 가지로 분류한 다음에 처리했다. 그의 분류는 A. 긴급하면서도 중요한 일, B. 중요하지만 긴급하지는 않은 일, C. 긴급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일, D.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일 4개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제일 먼저 ‘긴급하면서도 중요한’ A를 처리했다. 긴급하긴 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C의 경우 ‘직접 처리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위임했다.’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일 D는 처리하지 않고 버렸다. 그는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인 B에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이 일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긴급한 일(A)이 되고 말기에 아이젠하워는 B를 처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B는 지금은 긴급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롭게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쳐 허둥대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한 방법대로 일을 처리하면서 그는 많은 일을 하면서도 늘 마음의 여유를 찾아 즐겁게 일하였다고 한다.이 원칙이란 정말 어지럽고 복잡한 상태를 간단하게 정돈해 주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그의 책상 옆에는 4개의 서랍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서류를 4가지 형태로 분류했다. 어떤 일을 할 때 ‘우선순위’를 정하여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니.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화면의 남자는 일본의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말을 인용했다. 소노 아야코는 “세상일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어서 한 가지라도 이뤄지면 좋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때를 위해 희망의 순서를 매겨둬야 한다.”는 구절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허둥지둥 일하느라 헉헉대던 주인공 남자도 “꼭 해야 하는 것, 시간이 급한 것부터 먼저 하고 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텐데.”라고 한다.꿈과 희망도 일단 순서를 정해 놓으면 좋지 않겠는가. 일이든 생각이든 한꺼번에 쏟아지면 병목처럼 꽉 막히는 현상이 생겨 통로가 막혀버리는 일도 있지 않은가. 일의 순서, 생각의 순서, 희망의 순서가 그래서 필요할 것 같다. 개인의 삶도 때로 병목현상이 생기는 일이 허다한데. 큰일을 도모하는 지도자들은 무슨 수로 하루하루 버텨낼까 싶다. 한꺼번에 이일 저일, 오만가지 다 챙기려다 보면 며칠을 버틸 수 있으랴 싶다.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도 예외 없이 이런 고민을 접했던 것일까. 그는 일하기 전 명상을 하고. 하루를 마칠 때 명상을 하며 하루를 돌아보았다고 하니 말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네 개의 서랍을 꼭 기억하고 일하면 좋으리라. 급하고 중요한 것, 중요하나 긴급하지는 않은 것, 긴급하나 중요하지는 않은 것,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것 네 가지로 나누어 서랍에 분류해두고 직접 할 것과 위임할 것을 나눠 일을 처리했다고 하지 않은가. 그가 많은 일을 하면서도 여유 있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아이젠하워의 법칙’ 덕분은 아닐까.아이젠하워 법칙에 의하면 일을 정리 정돈할 때는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처리하려는 마음이나 습관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분담하고 함께 일한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조언 같다. 그의 법칙은 한마디로 무턱대고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요령 있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요청해 가면서 함께 하라는 의미이지 않겠는가.오늘 주변을 정리 정돈해가면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이 생겨나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에게도 아이젠하워 법칙의 긍정적인 효과가 이 가을에 불쑥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야구보다 못한 한국 정치

야구보다 못한 한국 정치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벤치 클리어링(Bench-Clearing Brawl)에 대해 스포츠 용어 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수끼리 싸움이 붙었을 때 양 팀 선수 모두가 나가 함께 싸우거나 싸움을 말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벤치나 더그아웃, 불펜에 있는 모든 선수가 나가서 벤치가 깨끗하게 비어지는(Bench-Clearing)데서 유래된 말이다. 상대와 싸우기 위해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싸움을 말리기 위해 나간다. 야구, 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같은 종목에서 자주 일어난다. 단체 종목이다 보니 팀 전체의 단합과 조직력, 소속감 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야구에서는 빈볼 시비로 벤치 클리어링이 자주 발생한다. 벤치 클리어링 상황이 발생하면 소속 선수 전원이 나가는 것이 관례다. 몸싸움이 일어난 동료의 부상을 막고 자기 팀 선수에 대한 지지와 단합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을 때 나가지 않는 선수가 있으면 구단 차원에서 벌금 등의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벤치 클리어링은 실제 집단 싸움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도구를 잡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금지한다. 양 팀 선수들이 가벼운 몸싸움과 말싸움만 하고 그친 경우에는 게임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조국 법무장관 사태를 두고 정치권은 사생결단의 벤치 클리어링을 벌이고 있다. 선수들만 나와 다투는 것이 아니라, 감독과 코치, 심지어 평소 야구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프런트 관계자들과 구단주까지 나와 싸움에 가담하고 있는 형국이다. 벤치 클리어링도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에 관중들에게 경기를 보는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각 팀 선수들이 서로 아끼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가 응원하는 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벼운 충돌과 말싸움에 그쳐야 할 다툼이 유혈이 낭자한 혈투로 발전할 때 관중들은 게임 자체에 흥미를 잃고 선수들의 인격과 역량을 의심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관중들까지 그라운드로 내려와 저속한 싸움질에 가담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도 모자라 집에서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관중들까지 나오라고 한다. 심지어 청와대와 대통령까지 벤치 클리어링에 가담하여 싸움판을 키우고 있다. 양식 있는 국민들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게 나라냐’라고 한탄하며 앞날을 걱정한다. 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32)는 한국시간으로 9월30일에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5회 말 구원 등판하여 투 아웃 후에 갑자기 포수 윌 스미스를 마운드로 불렀다. 타석에 대타로 들어선 선수는 샌프란시스코의 에이스 투수인 매디슨 범가너였다. 올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게 되어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커쇼가 마운드에서 스미스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범가너는 샌프란시스코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유격수 코리 시거까지 마운드로 와서 대화가 길어졌다. 그 사이에 범가너는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을 바라봤다. 경기가 끝난 후 스미스는 “범가너가 기립박수 받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커쇼가 나를 불렀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그 일원이 될 수 있어 멋졌다”며 “커쇼와 범가너 사이에는 많은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전통의 라이벌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좌완 에이스로 10년 넘게 맞서 싸워온 두 선수가 라이벌에 대해 서로를 예우한 것이다. 커쇼는 “범가너가 팬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구단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그를 기념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커쇼는 이닝을 마친 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브루스 보치 샌프란시스코 감독에게도 모자를 벗어 인사를 했다.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광경인가. 국민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예우하는 품위, 반대 세력까지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포용력, 법과 원칙 안에서의 개혁을 갈망한다. 국민은 지금 정치라는 게임에 염증을 느껴 이 종목 자체를 없애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엄중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 이런 난장판을 벌이면서 어떻게 안팎의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냥 놔두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그냥 놔두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한동안 국내유통산업을 석권했던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인방이 올해 2분기에 나란히 적자를 냈다. 온라인쇼핑몰의 등장으로 인하여 오프라인 시장이 쪼그라든 까닭이다. 대형마트 전성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이젠 대형마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현실은 아직도 대형마트를 규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하고,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할 수 없다. 약자를 보호하고 불공정을 개선하려는 의도다.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대형마트를 규제함으로써 전통시장이 활성화된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당초 의도한 선의가 실현되었는지는 부정적이다. 대형마트의 매출은 의도한 대로 줄어들었으나 그만큼 전통시장이 활성화 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형마트가 휴업한다고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은 없고 소비자만 불편할 뿐이다. 영업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이고 자유시장경제원리에도 어긋난다. 사업의 흥망성쇠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과 소비자가 판정한다. 전통시장은 과보호로 자생력을 잃었고 대형마트는 과잉규제로 비틀거리고 있다. 그냥 놔둬도 온라인으로 넘어갈 걸 괜히 오두방정을 떤 꼴이다. 정말 세금이 아까운 한심한 행정이다. 대형마트 규제는 기본 발상부터 잘못되었다. 기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잘되는 대형마트를 규제할 것이 아니라 침체된 전통시장을 손보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세상이 바뀌고 소비행태가 변하면 유통형태도 그에 맞춰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좌판이나 노점 중심의 전근대적인 유통형태가 전통이라는 생각도 시대착오적 편견이고, 낙후된 시장을 전통이라며 보존해야 한다는 사고도 감상적 오류다. 전통시장이 낭만적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관광객들에게 인간적인 색다른 추억을 제공해 줄 수는 있다. 그런 이유로 낙후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엔 전통시장 종사자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기존 전통시장 정책은 지난 세월에 대한 향수를 시장에 잘못 접목한 측면이 있다. 전통시장이 유통 환경 변화에 순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정책이 유용하다. 잘 대응하고 있는 자를 잡는다고 뒤처진 자에게 그 반대급부가 돌아가진 않는다. 뛰는 자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아니라 뒤처진 자의 실력을 배양해주는 전향적인 자세로 정책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수준에 상응하는 하드웨어적인 요소뿐 아니라 최신 경영기법과 글로벌 동향 같은 소프트웨어적 노하우를 병행·지원해야 효과적이다. 새로운 정보화 추세에 맞춰 현대적으로 변신하도록 전통시장을 지원하는 방법이 상생하는 길이다. 최근, 의무휴업 등 대형마트 규제를 복합쇼핑몰로 확대하려는 반동적인 법이 여당의 발의로 국회에 계류 중이라 한다. 무단히 대형마트 발목을 잡은 것도 모자라 복합쇼핑몰까지 물고 늘어지려는 모양이다.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자는 의도라면 이 또한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정책이다. 정책실패가 뻔히 보인다. 온라인쇼핑몰이 급격히 뜨고 있다고 이를 규제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 앞서 나가는 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은 변화를 거부하고 함께 주저앉자는 말과 진배없다. 불합리한 규제와 관련하여 흔히 ‘붉은깃발법’과 ‘모자법’이 인구에 회자된다. ‘붉은깃발법’은 마차업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도심에서 시속 3km로 제한하고, 마차가 붉은 깃발을 꽂고 달리면 자동차는 그 뒤를 따라가도록 했던 19세기 영국의 법이었다. ‘모자법’은 영국 모자 제조업자들과 경쟁관계에 있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모자 제조를 금지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다. 모자를 쓰던 영국 신사들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 모자를 쓰지 않자 자전거를 사는 사람들에게 모자를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정말 코미디다.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에서 유래한 황당한 법들이라는 점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조항도 한 통속이다. 시대착오적 사례로 교과서에 실리기 전에 대형마트 규제를 철폐하고 유통산업이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방책을 찾아야 한다. 묘책이 없으면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 공정한 룰만 정해두고 나머진 개인의 자유로운 창의에 맡겨두면 된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된 것은 초창기에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말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정치가 표의 사이렌에서 벗어나야 하듯이 행정은 규제의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때론 그냥 놔두는 것이 상책이다.

기후위기, 청소년에 답이 있다

기후위기, 청소년에 답이 있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어요.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 우리는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의 신화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9월23일, 뉴욕 유엔본부의 한 회의실이었다. 주인공은 스웨덴에서 온 16세 여학생, 그레타 툰베리였다. 그가 말한 ‘여러분’은 ‘기후변화 정상회의’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가리킨다. 연설 중에 분노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컥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이렇게 이어갔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과학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계속 외면해 왔어요. 지금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있는 거라면 여러분은 악마나 다름없습니다.”그는 작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 등교를 거부하고 1인시위에 나섰다. 스웨덴 의회 앞에서였다. 손에는 ‘기후를 위한 학교 거부’라고 직접 쓴 피켓 하나를 들었다. 기후위기에 무책임한 정치인들을 성토하기 위해서였다. 함께 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후를 위한 교사 거부’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그레타의 옆자리에 앉은 교사도 있었다. 특히 청소년들의 호응이 컸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등교거부 시위에 참가한 학생이 140만 명에 달했다. 지난달 23일에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겨냥해서도 세계 각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있었다. ‘글로벌 기후 파업’이었다. 9월20일에서 27일까지 전세계 139개국에서 4천638건의 집회가 열렸다. 20일에 열린 1차 집회에는 130여개국에서 400만 명이 참가했다.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및 유엔 기후주간의 마지막 날이었던 27일에도 전 세계가 들썩였다. 캐나다의 몬트리오올에서만 50만 명의 시위대가 가두행진을 벌였고 이탈리아에서는 160개 마을과 도시에서 모두 100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독일의 시위대에서는 ‘기후가 아닌 시스템을 바꿔라’는 손팻말이 눈에 띄었다. 한국의 시민들도 함께 했다.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직전인 9월21일 토요일이었다. 부산, 순천, 대구, 서울 등 전국 10개 도시에서 집회가 열렸다. 각계의 330개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준비했다. 서울 대학로에만 5천여 명이 모였다. 미온적인 정부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이 도마에 올랐다. ‘온실가스 이제 그만’, ‘화력발전 이제 그만’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비상상황을 선포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NO EARTH, NO LIFE! 지구가 없으면 생명도 없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직접 만들어 참석한 여학생도 있었다. 대구 시민들도 힘을 보탰다. 참가자들이 거리에 죽은 듯이 눕는 ‘다이 인(die-in)’ 퍼포먼스가 열렸다. 동성로, 태풍 ‘타파’가 뿌리는 비를 맞으면서였다. 청소년들은 별도의 집회를 조직했다. 3월15일과 5월24일에도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5월 시위 때는 서울교육청으로 달려가 환경교육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된 청소년 시위에 한국의 청소년들이 적극 결합해 온 것이다. 9월27일에도 500여 명의 청소년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서울 광화문에 모였다. 한 학생은 ‘대학 갈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툰베리의 유엔 연설로 눈을 돌려본다. “여러분들이 배출해 놓은 수천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임무를 우리 세대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술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기후위기의 위험한 결과를 감수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듣는 내내 전율이 일었다. 우리나라는 탄소배출과 관련해 매우 위험한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예컨대 탄소배출 증가율이 OECD 국가중 1위이다. 우리의 생활방식대로 전세계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지구가 3.5개가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든 정치권이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9월23일,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기후위기 연설에 대해서도 반응은 싸늘했다. 반환경 성장 이데올로기와 지금까지의 에너지 과소비 생활방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들의 엄중한 책망과 요구에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관한 한 답은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에게 있다.

더불어 흥겨운 축제

더불어 흥겨운 축제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가을이 되니 여기저기 축제가 한창이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도 마시마을 축제를 열기로 되어 있다. 아침까지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더니 말모이를 주던 마을, 마시리 축제라고 하늘도 날씨로 부조하기로 한 것일까. 어젯밤 주말 주택이 있는 군위 마시 전원마을의 촌장 댁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는 마음이 복잡했다. 태풍도 밀려온다고 하고 서울에서 마무리해야 할 일도 있어 하루 일정이 너무 빠듯하여 참석을 망설였다. 하지만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 대답에 실망의 빛이 역력하던 수화기 너머의 여운이 가슴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서둘러 일정을 마무리하고 잠시 얼굴이라도 내밀어야 함께 거주하는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이지 않을까 싶어 늦은 시간 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차를 몰았다. 군위 5일 장날을 맞추어 읍사무소에 넓은 자리를 마련하여 전원 마을 의료진들이 의료 봉사로 아픈 이들을 진료하며 상담하고 함께 이웃으로 살아가며 정을 나누는 행사를 열기로 하였다. 지난봄부터 시작하여 봄, 가을로 주민들과 전원마을 입주자 간의 교류를 통하여 사이좋은 이웃사촌이 되어 서로 도우며 의지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취지에서였다. 몸이 아프면 우리가 돕고 농산물은 그곳 주민들의 것을 적극적으로 소비해준다면 도농 간에 서로 상생하는 관계가 되지 않겠는가.주말이었지만 기관장께서도 참석하여 격려도 열심히 하시고 봉사하는 의료진들을 일일이 챙겨주셨다. 그러한 장면을 보는 군민들은 기관장이나 정부에 대해 더 좋은 인상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햇볕에 그을려 검붉게 된 얼굴에도 늘 웃음을 띠고 계신 새마을부녀회장은 단호박 식혜를 담근 병을 여러 개 들고 오셔서 마을 잔치에서 일일이 잔을 돌리며 우리 마을에 함께 살아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일 년에 한 두 번씩이라도 만나서 식혜 한잔이라도 함께 하면서 정을 나눈다면 그보다 더 인정스러운 것이 어디 있으랴. 서로 어깨를 감싸 안으며 “언니~!동생~!“하면서 웃는 이도 있다.전원마을 촌장 댁에서는 몇 날 며칠 계획을 세우시느라 날마다 밴드에 알림이 울려대었다. 한 번씩 들어가서 읽어 보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시는지, 그냥 가만히 있다가는 왕따라도 당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 마을에서 올라오신 어르신들은 차려진 음식을 보시더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신다. 솜씨가 어쩌면 이렇게 좋으냐고. 그대로 다 새겨들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의 마음이 흡족한 것 같아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싶어 음식을 나르며 시중을 드는 나의 옷자락도 신이 나서 더욱 펄럭이는 듯하였다.한 대학 교직원들의 보금자리가 십 수 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그 마을에 드디어 들어섰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타지에 사는 도시인들이 차로 들락거리게 되니 자칫 배척당한다면 외톨이로 남아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촌장을 맡으신 분의 현명한 제안으로 마을 주민과 함께 하는 의료봉사와 마을주민 초대 잔치가 해마다 더욱 풍성하게 벌어지고 있다. 도시와 농촌, 남과 여, 노와 소, 진보와 보수, 모든 계층 간의 관계가 자주 만나고 서로 대화하고 또 어울리다 보면 더 나아지고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면 너무 큰 것일까. 우리가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슬픔이나 분노 등의 갖가지 감정을 거의 매일같이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진 것과 타고난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주어진 삶을 최대한 즐겨 가며 잠시라도 행복하게 느낄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누구도 삶의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럴 수 없는 것이 삶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행복은 그것을 목표로 삼아 노력하며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특히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지 않으랴. 행복은 어쩌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벌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간다면 정말 재미만 있겠는가. 더러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미래에 되고 싶은 나. 소망을 이룬 나를 상상하며 오늘 하루, 이웃과 더불어 감사함으로 균형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리라. 10월이다.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드높고 푸른 하늘 아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서 행복한 축제를 즐겨보자.

BTS에게 듣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

BTS에게 듣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한류의 상승세가 눈부시다. 드라마는 이미 대세가 되었다. 넉달 전에는 ‘기생충’이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K-POP은 그 이상이다. 특히 요즘 세계를 휩쓸고 있는 BTS, 방탄소년단의 기록 행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필자는 K-POP의 아이돌 스타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방탄소년단에 대해서도 그랬다. 세계 진출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정도였다. 필자가 방탄소년단의 팬이 된 것은 노래나 춤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뜻밖에도 연설이 계기가 됐다.2018년 9월24일이었으니까 꼭 1년 전이었다. 유니세프 행사가 열리던 UN본부 회의장이었다. 6명의 방탄소년들이 연단의 뒷줄에, RM 김남준이 마이크 앞에 섰다. 6분30초 가량의 짧은 영어 연설이었다.주제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였다. 김남준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음악을 시작한 이후에 겪었던 방황과 좌절 이야기로 시작했다. “서울 근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9~10세 무렵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집어넣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잃게 됐습니다.” 그의 진솔한 얘기는 계속됐다.“저는 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췄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저조차도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제 심장은 멈췄고 제 눈은 감겼습니다.” 슬픈 회고담이었다. 한국에서 자라는 청소년,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얘기였다. 개성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서 공부와 성적만 요구하는 획일적인 교육시스템의 문제와 위험을 이렇게 간명하게 짚어낸 말이나 글을 이전에 보지 못했다.그의 다음 말을 들어보자. “실천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내 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음악이라는 도피처가 있었습니다. 그 작은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BTS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넘어서고야 만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그의 결론은 이랬다.“여러분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피부색은 무엇인지, 성 정체성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말하세요.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면서 여러분의 이름을 찾고, 여러분의 목소리를 찾으세요.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스스로에게 이야기 하세요.”한마디로 기성의 틀과 고정관념과 억압에 무릎 꿇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자기 자신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누구의 삶도 아닌 자신의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렇다. 100% 공감한다. 그들의 그런 자세가 많은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했고 지금의 성숙과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믿는다. 세계의 청(소)년들이 BTS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열광하는 것도, 획일화된 억압구조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BTS의 도전과 자신을 사랑하자는 호소에 공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연설에 담긴 김남준의 메시지가 좋아서 찾아 듣게 된 BTS의 음악도 역시 좋았다. 억압과 편견과 부조리로 가득한 사회에 대한 강렬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미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게 되었다. 음악과 춤의 창작 방식뿐만이 아니었다. ‘아미’라는 팬덤의 헌신적인 활동은 상상을 초월한다. 팬들과 방탄소년들과의 수평적이고 열린 소통 역시 참신하고 창의적이다. 그것은 국경과 피부색과 언어를 뛰어넘어 지구적 연대를 만들어 냈다. 어디에 살든, 청(소)년들이 답답해하는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기성 질서를 함께 허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예술실험이요 ‘방탄현상’이라 봄직한 이유다.그 모든 성취는 물론 BTS 소년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영혼을 깨우는 예술도, 사회를 바꿔내는 정치도, 소박하지만 가치있는 삶도 결국은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1년 전 오늘, 김남준이 세계를 향해 던진 화두를 빌려와 이 땅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고 싶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Love yourself.)

지금 그 느낌이 답일 터이니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아침에 나서니 목이 따끔거린다. 인사하는 이에게 답하려는데 목소리가 잠겨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콧물도 흐르고 머리도 아파져 온다. 얼른 약이라도 챙겨 먹어야지 이러다가 덜컥 드러눕게 될까 걱정스럽다.기온 차에 예민한 이들은 벌써 열이 오르고 기침 콧물에 설사까지 해댄다며 축 늘어져 외래를 찾는다. 해수욕을 다녀왔다며 콧잔등까지 다 벗겨져서 건강한 모습이던 아이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제발 나 좀 살려 주세요.”한다. 아침저녁 쌀쌀한 기온에 일교차가 커지면서 저항력 약한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하루 일교차가 10도 이상 크게 나는 지금 같은 환절기에는 호흡기 질환이 잘 발생한다. 그러니 실내 습도를 적절히 유지하고 무리한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면역력을 높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몸이 외부 온도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자율신경계 시스템에 균형이 깨져 체온조절이 잘되지 않아 방어력이 저하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가을이 되면 날씨가 건조해지고 기온이 내려가 추워지면 바이러스가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니 만병의 근원이라는 감기부터 조심해야 한다. 감기 안 걸리는 특별한 비법은 없지만, 그래도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급격한 온도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외출 시에는 얇은 옷을 겹쳐 입어서 온도 변화에 절절하게 대응하여 자율신경계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하면 도움이 된다. 적정한 습도 유지도 필요하다. 코점막은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유해균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주지만, 코안이 건조해지면 섬모운동이 둔해져 균에 대한 방어력이 떨어진다. 실내 습도는 40~60%로 유지하고 충분히 물을 마셔야 점막이 건조하지 않게 된다. 하루 1.5~2ℓ 정도의 수분을 섭취하면 점막의 방어력을 유지하는 데 좋다. 몸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운동이 꼭 필요하다. 하루에 30분씩 적어도 일주일에 3번 상 몸에 땀이 날 정도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서 적절한 영양 공급, 운동, 그리고 잠을 충분히 자는 것도 중요하다. 또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격월로 하는 단체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준비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SNS에 각 임원이 챙겨야 할 사항을 새벽같이 올려두었다. 보통 때 같으면 누구보다 먼저 답을 보내오던 이가 하루가 다 저물도록 반응이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인사를 보냈다. “잘살고 있지요?”한참 지나 그가 답을 보냈다. “괜찮아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라는 것이 아닌가.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전화기를 들었다. 전날 저녁 통화에서도 별일 없었는데, 밤사이에 그의 배우자가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다고 한다. 어쩌면 좋으랴. 새벽 늦게 수술이 끝나 지금은 면회도 되지 않는 상태라고 하니 달려가 볼 수도 없고. 얼마나 마음 졸였겠는가. 그래도 평정심을 찾아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차분히 전한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스포츠센터에서 실내 운동을 하던 중 갑자기 어지러워 의식을 잠시 잃었단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그도 얼마 전 똑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가니 몸의 균형과 청각에 이상이 생겨 어지럽고 구토 두통이 생기는 메니에르병이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먹는 약을 꺼내 쓰러졌다가 의식이 돌아온 친구에게 건넸다. 약 복용 후에 몇 시간이 지나도 머리가 무겁고 기분이 개운하지 않아 그가 병원을 찾아 정밀 촬영을 원하였다. 결과는, 세상에! 엄청난 혈액이 뇌 속에 가득한 것을. 뇌혈관이 터진 뇌출혈, 지주막하출혈이었다고 한다. 응급실로 달려가 혈관 조영술을 시행하여 그곳으로 코일을 집어넣어 혈관의 터진 부위를 막았다니 정말 천운이지 않은가. 어찌 그런 일이 있을까. 사람마다 병에 대한 증상과 통증의 정도가 다르게 오기는 하지만, 정말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그였기에 큰 병이 닥쳐도 그래도 그나마 다행스럽게 지나가는 것은 아니랴 싶다.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 어찌하겠는가. 이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 깨달음인 것 같다.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진다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바로 그 느낌이 답이지 않으랴. 진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어떤 고난 앞에도 굴복하지 않는 것 아닐까. 아마 그도 굳은 신념으로 병을 거뜬히 이겨내고 털고 완전히 회복되어 벌떡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수천 번의 생을 반복하여 산다고 해도 우리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곁에 있는 사람을 항상 사랑하며 후회 없이 살아가자. 지금 그 느낌이 답일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