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와 스토리텔링 능력

지도자와 스토리텔링 능력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노력한 만큼 거기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보람이 있다고 생각할 때 힘겨운 노동이나 수고가 사람을 쓰러지게 할 만큼 지치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풍성한 수확을 생각하며 낮 동안 최선을 다한 농부에겐 저녁 시간이 달콤하고 어둠조차 축복이 된다. 오늘의 삶이 충만하고 꿈이 있는 사람은 내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새날은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한 해가 저물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왜 자꾸 던지고 싶은 것일까. 마음이 답답할 때 우리는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고, 내 속마음을 털어내 놓고 싶다. 우리가 밤낮으로 접하는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악에 바친 고함소리이거나 그 어떤 생산적인 담론도 가로막는 냉소와 저주의 말들이다. 국민은 지금이 다소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로부터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우리 모두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 진부한 말 대신 참신하고 새로우면서 지혜로운 말을 해주는 사람을 고대하고 있다.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처럼 기존의 지배적인 이야기에 대항하여 새로운 관점을 내놓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고 했다. 미드는 당시까지의 통념을 무너뜨리고 ‘미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리더는 ‘새로운 이야기’로 사람들의 가치관 변화를 유도해 내야 한다. 가드너는 리더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란 점을 강조한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 관점을 바꾸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전문 지식에 식견과 지혜를 더 보태 사람들이 감동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각색해 낼 수 있는 사람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위대한 정치가는 위기 국면에서 국민을 움직이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가드너는 국민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킨 인물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을 꼽았다. 하원의원이었던 그녀는 1979년 ‘영국은 길을 잃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보수당 당수가 되었다. 그녀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했고, 언행이 일치하는 행동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그녀는 선배 수상 채덤 백작이 했던 “나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나 외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같은 확신에 찬 말, “노동은 고장 중” 등과 같이 단순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거릿 대처는 쟁점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한쪽 방향으로 논쟁이 집중되도록 지도력을 발휘했다. 대처는 실업률과 노동쟁의, 인플레이션 등의 수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논쟁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녀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실행하기 위해 설득 가능한 대상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동조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쉽고 호소력 있는 이야기, 무엇보다도 진심과 진실성이 느껴지는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원칙이 정해지면 자신의 이야기에 동조하면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당근을 주었고, 반기를 드는 사람에게는 채찍으로 다가갔다. 이런 단호함이 먹혀들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무한 신뢰를 얻어야 한다.그녀는 포클랜드 전쟁 때도 신중론을 물리치고 단호하게 대처해서 승리했다. 전사자 250명의 유족에게는 여름휴가도 반납한 채 직접 진심 어린 감사의 편지를 섰다. 단호함의 이면에 있는 따뜻한 모성애가 빛났다. 그러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처는 영국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강력하고 거대한 노동조합과 싸워야 했지만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이야기로 가슴속의 거센 저항도 녹여냈다. 우리는 변명하거나 강변하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의 자초지종과 전후 과정, 결과, 문제점 등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 국가든 개인이든 대화가 단절되면 온갖 억측과 가짜 뉴스가 활개를 치고, 양식 있는 국민은 정치에 등을 돌리게 된다. 가슴속 깊이 스며들어 긴 여운을 남겨주는 밝고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운 기해년 마지막 달이다.

먼저 맞는 것이 상책이다

먼저 맞는 것이 상책이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된 지 삼십여 년이 넘어서고 베이비붐세대의 노령연금 수급이 개시되었다. 베이비붐세대는 전후 어려운 시절에 성장한 까닭에 먹고살기 바빠 별다른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다. 대가족 농경사회에선 자식이 곧 노후대책이었다.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 보험이었다. 소를 팔고 논밭을 팔아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그렇게 키운 인재가 고속성장의 자양분으로 작용하였다. 그 덕에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잘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전통적 가치관은 붕괴되었다.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바뀌었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문화는 불편한 관습으로 폐기되었다. 베이비붐세대는 낀 세대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버림받은 첫 세대다. 부모의 노후보험 역할을 떠맡았지만 자식에게 든 보험은 깨져버린 꼴이다. 노후준비는 강제로 가입된 국민연금이 거의 유일하다. 입을 잔뜩 내밀었던 것이 지금에 와선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수령액이 적은 것이 흠이긴 하다. 개선할 여지가 있다. 국민연금은 노후를 지켜줄 든든한 수호천사다. 은퇴자에겐 복지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금의 중요성에 비춰 그 설계와 운용을 완벽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세월이 흘러 여건이 변화할 경우에도 그에 맞춰 디테일을 신속히 조정해야 한다. 저출산과 노령화로 인한 제도의 문제점과 개편 필요성은 벌써 예견된 일이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마냥 눈치만 보고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국민의 노후가 걸린 중차대한 사안을 표만 의식하여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것이다. 2054년경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심각한 저출산과 급격한 노령화 때문이다. 기금 고갈을 막으려면 하루빨리 보험요율을 올려야 한다. 표를 깨먹는다고 하여 번연히 다가올 위험을 모른 척 해선 안 된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 비록 인기가 없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폭탄 돌리기를 하는 모양새다. 단일안을 제출해도 신속히 처리하기 힘들텐데 정부는 무려 다섯 가지 방안을 던져놓고 있다. 제도개편을 미룰수록 보험료 일시 인상의 충격은 그만큼 더 커진다. 당장 2088년까지 기금을 유지하려면 내년에 보험료율을 16.02%까지 올려야 한다. 이대로 갔다간 2030년이 되면 17.95%, 2040년이 되면 20.93%를 한 번에 올려야 한다. 기금이 고갈되면 매년 걷은 보험료로 연금을 지급해야 할 판이다. 보험료를 빨리 올리지 않으면 종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는다. 미룰수록 매를 번다. 이왕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편이 좋다. 국민연금 제도개편이 화급한 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엉뚱한 일에 한눈을 팔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한 기업 길들이기에 정신이 없다. 수익을 올릴 방안을 연구해도 모자랄 판에 기업경영에 개입하거나 지배구조에 간여하려고 한다. ‘염불보다 잿밥’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기금 투자는 수익성과 안전성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기업을 지배하거나 경영에 개입하기엔 전문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의 성격과도 맞지 않다. 스튜어드십코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연금사회주의로 갈 위험성이 크다. 우리 헌법정신에 비추어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책임투자도 연구과제다. 책임투자란 투자를 결정할 때 환경문제, 사회성, 지배구조 등을 고려하여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이고 투명한 기업, 환경 친화적인 기업에 투자하고 비도덕적이고 환경 파괴를 일삼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기업의 변화와 책임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기금투자로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까지 한 번에 달성하겠다는 의도는 과욕이다. 투자는 수익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수익성 투자에 지나친 가치판단은 금기다. 기금투자에 느슨한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둘 수 있겠지만 기업에 대한 규제와 응징은 다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정석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오로지 국민의 돈이다. 따라서 그 기금은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국민을 위해서만 관리되어야 한다. 이념적인 목적이나 정치적인 의도로 이용되어선 안 된다. 이사장을 위시한 직원의 인사도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 국민연금 조직이 선거의 논공행상이나 정치인의 스펙을 쌓는 자리가 되어선 곤란하다. 세대 간 부담 전가가 일어나지 않도록 적시에 보험요율을 조정하는 일이 급선무다. 연금에 목메고 있는 은퇴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은퇴자의 유일한 기댈 언덕이다.

명품직원 만들기

명품직원 만들기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부서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에 커다랗게 그려진 동그라미 아래에 적힌 글자는 ‘전 직원 브레인스토밍’이었다. 연말이 되어 여기저기 송년 모임으로 들뜨기 쉬운 날들이지만, 올 한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열리는 행사다.반공일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엔 공휴일로 쉬는 일요일보다도 더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는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출근할 때부터 마음이 부풀어 있곤 하였다. 지금은 토요일 진료 대신 응급실과 병실, 당직자만 나와서 근무하고 각자 입원 환자를 회진하는 체계로 바뀌어서 외래 진료는 하지 않아 자유로울 터이지만, 모처럼의 휴일에 병원에서 브레인스토밍하러 출근하는 직원 중에는 이마에 내 천(川)자도 더러 보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잘 되는 방향으로 나가 보자고 하는데 달리 방도가 있으랴.큰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아침을 더욱 더 춥게 느끼게 한다. 손을 불어가면서 하나둘씩 강당으로 모여든다. 한 사람 한 사람 자리에 앉아서 조별로 나뉘어 있는 안내 용지를 받아들고 서 조원들의 얼굴을 살핀다. 칠백여 명의 직원이 여러 부서에 나뉘어 근무하다 보니 그동안 잘 만나지 못하던 이들과 악수를 하며 우의를 다진다.조별로 나누어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주제에 대한 결론을 얻은 직원들, 파워포인트에 각 조의 의견을 종합하여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짧은 동안 얼마나 열띤 토론을 하였을까. 생각지도 못한 말로 발표를 마무리하는 직원들이 대단해 보인다. 한 해 동안 다른 직원보다 30분 일찍 출근하여 먼저 진료 준비를 한번 해보기로 하였다는 직원, 그동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는 신입 직원의 이야기가 가슴 찡하게 들린다. 작은 일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한 가지라도 성공하게 되면 그 성공 경험이 쌓여서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언제나 간호사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일일이 챙기던 팀장은 ‘명품 가방과 짝퉁 가방의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발표를 마무리한다. 비가 오면 명품가방이라면 비에 젖을까 봐서 품에 끌어안지만, 짝퉁이라면 그다지 아깝지 않을 것이니 내 머리가 비에 젖을까 봐서 머리 위에 올려 비라도 피하게 하지 않던가. 그의 결론은 아무리 진료 환경이 어려워도 소중한 명품을 대하듯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을 명품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가슴에 품고 끌어안고 나가리라는 다짐이리라.크레스피 효과가 떠오른다. 공부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는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원의 수행능력을 높이기 위해 총수는 직원의 월급을 어느 정도 올려주기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적이나 일의 성과에 따라서 보상이나 처벌을 한다고 할 때 그것이 효과를 내려면 점점 더 강도가 세져야 한다고 주장한 이가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 ‘레오 크레스피’ 교수다.크레스피 교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하였다. 그는 쥐가 미로 찾기에 성공할 때마다 A 집단의 쥐에게는 먹이 1개씩을, B 집단에게는 먹이 5개씩을 보상으로 주었다. 그 결과 먹이 5개를 받은 B 집단의 쥐들이 더 빨리 미로에서 탈출하였다. 이후 크레스피 교수는 A 집단 쥐들의 보상을 5개로 늘리고, B 집단 쥐들의 보상은 1개로 줄였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보상을 늘린 A 집단의 쥐들이 B 집단의 쥐들보다 훨씬 더 빨리 미로를 탈출하였고, 보상을 줄인 B 집단의 쥐들은 A 집단의 초기 성적보다 훨씬 낮은 수행능력을 보였다.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얼마의 보상을 받느냐가 일의 능률 향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실험이었다. 당근 전략 또한 긍정적 수행능력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적절히 사용할 경우 시행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도출한다. 경제적, 물질적 보상이 당연시되면 계속해서 ‘전보다 더, 전보다 더’를 원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칭찬이 계속되면 그것이 당연해지다 점점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질책이 계속되면 점점 비난, 폭언 등으로 나아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동료 직원의 능력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크레스피 효과를 기억해 두면 좋지 않으랴. 적절한 당근과 채찍으로 모든 직원이 명품이 되어 날마다 즐겁고 신나는 직장의 하루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과욕은 파국을 부른다

과욕은 파국을 부른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미·북 정상회담 일정을 내년 총선일 직전으로 잡지 말 것을 미국 측에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북 회담 자제 요청의 적절성이 근본적으로 의문이라는 완곡한 비판이 자유한국당내에서 나왔다. 여당의 거센 반격과 여론의 역풍을 우려한 방어막으로 읽힌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허나 그렇게 점잖게 넘어갈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 취지는 명백하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을 반대하지도 않고 또 반대할 수도 없지만 남의 나라 중대 선거를 왜곡시키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뜻이라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2018년 싱가포르 회담 전에 요청했어야 했다.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사적인 미·북 회담을 선거일 바로 전날 갖는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선택이다. 전국동시지방선거의 날짜나 그 중요성을 몰랐을 것이라고 변명한다면 미국의 정보력과 역량을 무시하는 처사다. 회담 날짜를 선거일 이후로 조금 미룬다고 달라질 일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선거일 전일을 회담일로 미리 못 박은 이유는 회담을 선거에 활용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누구의 의도였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가장 이득을 많이 보는 측의 전략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정이다. 자국의 선거에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매국적인 외세의존에 다름 아니다. 차후에 터무니없는 청구서가 날아든다는 점에서 더욱 금기다. 공짜 점심은 없다. 주한미군 분담금 논란도 그 연장선이다. 한번 약점을 잡으면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장사치의 본능이다. 다른 나라의 선거에 개입하는 일은 불법이고 심각한 내정간섭이다. 그 선거가 어떤 종류의 선거이든 가리지 않는다. 미국도 이런 유형의 스캔들로 시끄럽다. 러시아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특검이 실시되었고 차기 대통령 경쟁자를 흠집 내고자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인 스캔들로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다. 입증만 된다면 하야나 탄핵도 가능한 위중한 사안이다. 선거에 개입하는 나라가 초강대국이거나 위험한 이웃나라일수록 문제는 더 심각하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지는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 지난 6·13 지방선거는 자유한국당의 참패였다. 탄핵의 후유증이 한 요인이었겠지만 그 전날 열린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결정적이었다. 휴전 후 최초로 만난 전쟁당사자의 역사적 이벤트에 세계가 열광했다. 회담 다음날인 선거일엔 신문마다 대문짝만 한 사진과 함께 회담 내용이 대서특필되었고 온 종일 관련 뉴스가 미주알 고주알 계속 보도되었다. 선거 이슈를 평화로 매몰시킨 공작은 기대 이상 주효했다. 싱가포르 발 핵 폭풍으로 야당 선거판은 초토화되었다. 여당은 선거사상 유례없는 압승을 거두었다. 지방선거의 성격과 전혀 관련 없는 이벤트로 여론을 유린한 결과다. 선거에서 구도와 바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야당은 사전에 그 결과를 예측하고 결사적으로 막았어야 했다. 이 기막힌 이벤트를 두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불가사의다. 그 무능과 부작위에 대한 대가를 야당은 톡톡히 치르고 있다. 미·북 회담 일정을 내년 총선 직전으로 잡지 말아달라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요청은 학습효과에 의한 당연한 귀결이다. 회담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 선거에 편파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는 당당한 요청이다. 이에 청와대 대변인은 “오로지 선거만 있고 국민과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했고, 여당 대변인은 “당리당략이 한반도 평화보다 우선할 수 있느냐”고 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 진의가 보인다. 요청받은 미국 측은 상황을 수긍하는 분위기 같은데 청와대와 여당이 필요이상 발끈해서 과잉 반응하는 모양새는 반칙을 쓰려다가 발각된 부정선수 같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번 재미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꼬리가 길면 덜미가 잡힌다. 총선이 코앞이다.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을 무리하게 바꾸려는 독선은 비정상이다. 스물여덟 석 정도를 비례로 돌리고 정당득표율에 의석을 연동시키는 룰은 민생사안도 아니고 사생결단할 일도 아니다. 기존대로 한다고 해서 결딴날 이유는 없다. 연동형비례제를 고집하는 통에 나라가 결딴나는 건 왜 모르는가. 선거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과욕은 파국을 부를 뿐이다.

하루하루가 행운이기를

하루하루가 행운이기를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대관령에 하얗게 눈이 내려 순백으로 만들어 놓은 풍경 사진을 본다. 앉아서도 저만치 달려가는 마음을 겨우 붙든다. 아무리 바쁜 세상일지라도 순백의 설경 앞에서는 잠시 정갈한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창을 열어보니 무언가 내릴 듯 하늘이 잔뜩 내려앉아 있다. 차가운 날씨라 차를 예열하여 천천히 출근길에 오른다. 길가에 늘어선 남천은 선명한 붉은 빛을 발하며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멋지게 익어간다. 달랑 한 장으로 남은 올해 남은 날을 헤아려가며 못다 이룬 일들을 머릿속으로 꼽아본다. 700여 시간 남은 기간,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할까.크리스마스 캐럴이라도 들려 올 것만 같은 거리를 지나며 카 오디오를 켰다. 청취자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양, 아침 방송 진행자는 “눈이 내리네~”를 틀어준다.‘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 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내 마음/꿈에 그리던 따뜻한 미소가 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네 /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중략…//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차창을 내리고 밖을 보니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이 횡단보도에 서있다. 그들도 모두 “눈이 내리네~라 라 라라라~라 라 라라라~”하면서 속으로 따라 부르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내 마음대로 세상이 그리 보이는 것이지만, 오늘 따라 왠지 저들의 기억 속에도 첫눈 내리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그리운 이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함께 어울리는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유상종,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친한 친구와의 사이에는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1프로의 차이가 있다는 보고도 있을 정도이니 그들 사이의 교감의 정도가 얼마나 강력하고 끈끈하랴.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누구와 어울리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자주 만나는 이들 사이에는 감정도 잘 전염이 된다고 한다. 긍정적인 사람과 자주 교류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삶도 밝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반대로 부정적인 사람과 만나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정도 행동도 삶도 어느새 부정을 부른다. 전염력이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행복 바이러스라고 하지 않은가. 행복한 사람과 만나면 내가 행복하고 또 나를 만나는 나의 친구가 행복하고 또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게 된다. 그러니 행복한 한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열 명, 아니 백 명, 수천 명의 행복한 사람을 만들게 되는 셈이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무엇이라도 내릴 듯한 날이라도 흥얼흥얼 콧노래 불러가며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아야 하리라. 그래야 행복한 미래가 찾아올 것이니.창가에 서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환자 명단을 들여다보다가 뒷목에 닿는 느낌이 생소하여 올려다보니 행운목이다. 그곳에서 일렁인 지가 수년, 그냥 그대로 정물로 서 있는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내음까지 풍긴다. 살펴보니 옥수수 잎 닮은 무성한 행운목에 전에 볼 수 없던 넝쿨이 늘어져 있다. 넝쿨을 따라 꽃 뭉치가 주렁주렁 달렸다. 행운목에 꽃이 피어난 것이 아닌가. 꽃송이 아래에는 눈물방울까지 맺혀있다. 와아∼!행운목이 꽃을 피우다니~! 행운목 꽃의 꽃말은 행운, 행복, lucky, happiness다. 행운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좋지 않은가. 행운목 꽃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꽃이라더니 난생 처음 본 꽃이 정말로 수수하기까지 하게 느껴진다. 행운은 어쩌면 쟁취하는 것일까. 행운목은 얼마나 정성을 들여 기르느냐에 따라 꽃이 피는 것일까. 아니면 극도의 어려운 환경에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꽃 피우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꽃이 필 상황이이라서 꽃이 피어나지 않았으랴. 행운목의 영명은 Lucky Tree라고 한다. 자주 또는 아주 드물게 필 수 있지만, 아예 꽃이 피지 않을 수도 있다지 않은가. 어쩌면 사람의 행운도 이와 같지 않을까. 행운을 맞을 상황을 항상 준비하는 사람, 행운이 찾아와도 모르고 그냥 흘려버리는 사람, 아예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 등, 우리에게 찾아오는 행운,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지는 않을까 싶다.오랜만에 피어난 행운목 꽃을 보니 생명을 가진 모든 이에게 오늘이 바로 행운이 아니랴 싶다. 살아있는 오늘을 축복으로 여기고 만족한다면 하루하루가 행운이지 않겠는가. 날마다 행운을 발견할 수 있기를.

계층이동과 교육

계층이동과 교육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우리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식 세대가 계층을 상승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 결과가 나왔다. 아무리 노력하고 용 써도 계층 이동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활력이 떨어지고 젊은이들은 무력감에 빠진다. 우리 젊은이들이 정규직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들은 결혼할 때 양가 부모로부터 전셋집 정도를 지원받을 수 없다면 죽을 때까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채 ‘헬조선’을 외치며 절망한다. 계층 이동의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던 교육마저도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니 중하위 계층의 좌절감과 박탈감은 매우 심각하다. 계층이동 통로와 사다리에 언제부터 문제가 생겼는가.구한말 상류층은 항일이나 반일로 완전히 몰락하거나, 경제력과 친일로 자녀에게 신식 교육을 시켜 부와 권력을 더욱 확고하게 세습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의 자녀는 동경이나 미국 등에 유학하고 나서 해방 전후 우리 사회의 엘리트층을 형성했다. 서얼, 중인의 자녀, 향리, 변방 지대 사람들 중 일부는 식민지 교육을 받았고, 그들 상당수는 하층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항일 전선에 몸을 던졌지만, 상당수는 식민지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동족을 괴롭히는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다. 양반이라는 권력이 누리는 특권과 횡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조국의 해방보다는 목전의 이익, 일신의 안일과 영달을 위해 일제에 협조하는 경우가 많았다.6·25로 인한 완전한 폐허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각개 약진의 기회를 제공했다. 동란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사회 경제적 지위를 바꿀 수 있었다. 근면 성실하고 두뇌가 탁월한 사람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자신의 계층을 끌어올 릴 수 있었다. 전후의 혼란과 5·16 쿠데타에 이어 압축적인 고도성장 과정에서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보다 손쉽게 계층을 이동할 수 있었다. 가장 공정하면서도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계층이동 수단은 교육이었다. 전후 베이비 붐 세대들은 수도권 명문대와 지방 거점 국립대, 심지어 지방 사립대를 졸업해도 어렵지 않게 관료나 대기업 정규직원이 될 수 있었다. 서울대와 소수의 명문대학은 출세와 계층이동의 상징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다이내믹한 활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요인은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었다.1997년 IMF 구제금융과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계층이동의 통로와 사다리는 종전과 같이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부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부에 의해 출발선이 달라졌다.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다수의 젊은이들에겐 파트타임의 ‘알바 인생’이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던 2010년을 전후해서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전형은 계층이동 통로나 사다리를 전과 같이 작동하지 않게 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과고, 외고, 전국 규모의 자사고 출신 학생에게는 특혜에 가까운 어드벤티지를 주었다. 정치인, 언론인, 교수, 법조인, 의사, 재력가 등 부와 지식, 권력의 최상위권에 위치한 사람들은 기득권을 활용하여 품앗이 인턴, 논문에 이름 얹기, 귀족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흙수저가 넘볼 수 없는 스펙으로 자녀를 최고 명문대나 의치대 등에 보다 수월하게 진학시킬 수 있었다. 이때부터 흙수저는 계층 이동을 위해 답답하고 좁은 긴 통로를 통과해야 했고. 보다 길고 높고 부실한 사다리를 타고 위험하고 불확실한 곡예를 해야 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4차산업혁명 시대에 객관식 문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중산층은 특권과 반칙보다는 투명성과 신뢰성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수능에 의한 정시모집을 선호한다. 곧 발표될 대입제도 개편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를 당국은 알아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과 좁아진 계층이동의 통로를 넓히고 부러진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는 대입제도 개편안이 나와야 한다. 절대다수의 국민에게는 아직도 교육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한미방위비협상에 대한 단상

한미방위비협상에 대한 단상오철환객원논설위원한미방위비분담금협상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한미군이 감축돼도 미국의 대폭 인상 요구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68.8%, ‘주한미군이 감축될 수 있으므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22.3%였다. 20~30% 퍼센트 정도 인상하고 마무리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일시에 여섯 배 인상해달라는 요구는 터무니없다. 한미동맹을 돈벌이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천박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과 집착이 요지부동이라 치밀한 대응이 절실하다. 총선을 앞 둔 상황이라 여론 동향을 무시하기는 곤란하겠지만 국가 중요정책을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는 없다. 국가 간 협상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병법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상대방인 미국의 본심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을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가난한 나라라면 그래도 참을 만하다.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는 부자나라다. 미국은 더 이상 봉이 아니다. 더 이상의 공짜 안보는 없다. 주한미군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본심에 대한 첫 번째 가설이다. 대한민국은 미국만큼 부자도 아니고 강대국도 아니다. 미국은 세계 패권국이긴 하지만 봉이었던 적은 없다.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에 대해 정당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정당한 비용이 주안점이다. 미국은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해서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을 견제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 최전선에 있고 주한미군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원칙적으로 미국 부담이다. 대한민국도 북한을 비롯한 이웃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를 보유한다. 양국의 잠재적 적이 일치하는 점이 한미동맹의 바탕이다. 협상 목적은 정당한 비용배분일 뿐이고 미군 철수는 의제가 아니다. 비용배분은 그 수혜 정도에 비례한다. 대한민국이 필요한 군사력 총량에서 한국군의 전력을 뺀 나머지를 주한미군이 감당한다. 그 부분을 환산한 금액이 대한민국 부담분이다. 한국영토 내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는 특권과 그 주둔지에 대한 토지임차료는 상호 정산해야 할 부분이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를 방어할 수 있는 군사력 총량에서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뺀 나머지가 한국군의 기여분이다. 시너지도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주한미군은 윈윈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미국의 본심이 방위비 협상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철수가 히든카드일 수 있다. 무리한 인상을 강력히 요구하는 저의가 미군 철수에 있다는 가설이다. 주한미군 3만 2천 명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해 준다. 일본, 필리핀, 대만, 베트남, 인도를 태평양·인도 전략의 방어선으로 설정한다면 주한미군은 철수대상이다. 비용편익분석으로 그런 결론이 날 수도 있다. 북·중·러 라인에서 북한을 떼어내어 북방동맹을 약화시키고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과 일본까지 견제하는 전략을 황당하다고 배제하긴 어렵다. 공산독재국가 북한을 미국의 동맹국으로 만들긴 어렵겠지만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우호국 수준으로 끌고 갈 순 있다. 김정은에게서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는 트럼프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 일본, 대만과 협조하여 핵을 함께 보유하는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당겨와 미국을 견제하는 ‘벼랑 끝 전술’도 선택지다. 최근 한국, 중국 간 해군·공군 직통전화 논의 등을 압박 카드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협상 카드를 넘어 ‘한중 밀착’으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유용한 제스처일 수 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힘을 기르는 방법이 최선이겠지만 지정학적 위치와 영토 그리고 인구라는 주어진 제약으로 인해 그 한계가 있다. 독재자 김정은을 다정한 친구라면서 혈맹을 태연히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가 막힌다. 전통적 동맹을 지원하는 것을 ‘나쁜 거래’라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에서 한미 불화가 비롯됐다는 지적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접고 살아남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분수에 맞는 처신으로 정체성을 지키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약소국들의 운명을 생각하며 지금의 굴욕을 극복해야 한다.

‘위기의 보수’, 무엇이 문제인가

‘위기의 보수’, 무엇이 문제인가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지역의 한 방송사가 최근, 보수 일색의 대구를 집중 조명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보수의 섬’, 2부작이었다. 진보의 도시였던 대구가 보수화된 과정과 그것이 지금 대구에 미치는 영향을 반성적으로 고찰한 기획물이었다. 반응이 뜨거웠다. 며칠 사이 유튜브 조회 수가 12만을 넘었고, 응원 댓글도 쏟아졌다.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실은 ‘대구의 보수’ 이전에 ‘한국의 보수’가 심각한 위기다. 수년째 지리멸렬인데다 아직도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합리적 보수 성향의 시민들까지 등을 돌리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첫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진영의 책임있는 그 누구도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국정을 농단한 몇몇 권력자만 법의 심판을 받았을 뿐이다. 보수진영 차원의 성찰과 혁신도 없었다. 각자가 혹은 분파별로 살아남기 위해 뛰었을 뿐이다. 보수정당의 이념과 정치문화는 대통령 탄핵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둘째, 대표적인 것이 종북몰이와 좌파타도 구호다. 많은 국민이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고 있는데 보수정당들은 여전히 냉전적 사고와 대결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지금도 상대를 빨갱이, 주사파, 친북좌파로 낙인찍어 상황을 반전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전같지 않다. 오히려 자신을 역사의 미아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셋째, 한국 현대사에 대한 편향된 인식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제 식민사관, 친미반공 세계관, 재벌중심 경제관, 기득권 중심의 권위주의적 질서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격화한다. 삼청교육대를 미화하고 위안부를 매춘부였다고 모욕하기까지 한다. 한·일 경제전쟁 국면에서도 줄곧 일본을 편들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보수는 ‘애국’이라는 자산마저 잃게 되었다. 보수가 아니라 극우, 매국일 뿐이라는 비판을 자초한 이유기도 했다. 넷째,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들도 버려졌다. ‘자유와 인권’이 대표적인 예다.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리고 지도자가 솔선하는 것이 보수진영의 미덕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과거의 보수정권들은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했으며, 최근의 보수정권 하에서는 어렵게 쟁취한 자유와 인권이 다시 곤두박질쳤다.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희생은 진보진영의 몫으로 넘어갔고 자유와 인권은 진보진영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다섯째, ‘안정감’도 원래 보수주의의 강점이다. 그것은 법과 규범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주의 세계관에서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준법과 질서로부터도 너무 멀어져 있다. 한때는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경유착과 부패 범죄로 심하게 비판받았지만, 최근의 패스트트랙 충돌을 거치면서 폭력 이미지까지 떠안았다. ‘법치’와 ‘안정감’도 한국 보수에게는 더 이상 강점도 자랑도 아니게 된 것이다. 여섯째, 보수진영의 또다른 미덕은 ‘품격’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진영 지도자들과 강성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너무 거칠다. 품격이 아니라 증오와 저질 폭언이 한국 보수의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졌다. 막말정당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시대와 조응하는 역사인식도 부재하고, ‘애국’ 이미지도 잃었으며, 자유와 인권이라는 핵심가치마저 진보진영에게 빼앗겼고, 법치와 품격과 안정감마저 자랑할 수 없게 되었으니, 무엇으로 국민의 지지를 구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유일하게 기댈 것은 상대가 실패하는 것이다. 상대진영에 대한 무조건 반대와 정국 파행이야말로 고유의 가치와 매력을 잃어버린 보수, 성찰과 혁신을 포기한 보수진영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된 것이다. 물론 보수진영 안에서 자성과 혁신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늘 변방으로 밀려났다. ‘배신’ 혹은 ‘내부총질’이라고 매도될 뿐이었다. ‘대구 보수’가 주목받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한국 보수’의 혁신을 가로막는 중심에 ‘대구 보수’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수의 세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지향하는 세계관과 문화가 구시대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보수를 살리는 심장’이 아닌, ‘퇴행보수의 진지’로 역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방송에서 던진 묵직한 질문이 주목받는 이유다. ‘대구 보수’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보수’의 혁신, 그를 위한 ‘보수의 섬, 대구’의 성찰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고통을 이겨낸 상처

고통을 이겨낸 상처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배추 묶음이 놓인 들을 지난다. 바람은 차가움을 더하지만, 그래도 햇볕은 따스한 기온을 머금은 채 겨울나기 준비를 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이제 집안을 정돈하고 본격적으로 월동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부쩍 추워지는 날씨에 올해엔 얼마나 또 찬 바람이 몰아칠까. 서리 내린 뒤 붉은 피마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익어서 벌어지기를 기다리던 목화송이마저 정지된 채 붙어있는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바스락거리는 국화꽃 잎의 마른 소리를 들으며 흙을 밟아본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 큰일만은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동안 잠깐 몰아닥친 추위에 모든 결실이 얼어붙었으면 어쩌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다가가 보니 속이 꽉 찬 배추가 “나, 여기 있소~!”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내며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막내 제부가 봄이 시작되었을 때 좋은 거름을 듬뿍 넣어서 모종해 주었던 덕분일까. 한여름의 땡볕에도 가을 찬바람에도 저렇게 꿋꿋하게 자라나고 속이 차서 겨울 식구들의 김장을 위해 손길을 기다리고 있나 보나.날씨 따뜻한 주말 어느 날, 식구들과 친척들 모여 하나씩 뽑고 씻고 절여서 갖은양념을 버무려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도록 김치를 담가 보리라. 나의 어머니와 동생들, 제부까지 다 모여 앉아서 시끌벅적하게 김장을 하던 때가 그립다. 어머니의 손맛은 아무리 닮으려 해도 흉내조차 낼 수 없으니, 그저 그때 그 맛, 그 분위기만을 떠올리며 마음으로 위안을 받을 수밖에 도리가 있겠는가. 김장을 마칠 즈음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서 양념 갓 섞은 김장김치를 쭉쭉 찢어서 서로의 입에 넣어주던 그때가 정말 그리워진다. 입은 그때의 맛을 기억하고 있었던 듯 벌써 침이 고여 온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지금에는 내가 그 자리에 대신 앉아서 그날의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지 않으랴. 김장할 날을 뽑아보려고 휴대폰 일정을 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울먹이는 여동생의 목소리다. 놀라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취미생활로 목공을 배우던 제부가 늦은 시간에 작품을 완성하려고 전기톱을 쓰는 순간, 칼날이 엄지손가락을 지나갔다는 것이 아닌가. 전화 목소리로도 상황이 심각함이 느껴져 얼른 병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신발도 끌다시피 하여 운전대에 앉아 응급실로 달려갔다. 몸무게가 100킬로가 넘는 거구에다 장신인 제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다. 무서웠던 그 찰나. 아픔에 못 이겨 어지럼증이 찾아와 한동안 바닥에 누워 있다가 차에 실려 왔다는 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아왔다.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이니 잘 치료되어 더는 후유증이 생기지 않도록 애쓰는 수밖에. 종합병원 응급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다 보니 갖가지 사고로 혼비백산 찾아오는 이들이 밤을 새워 몰려든다. 수술하고 나서 운동을 하는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문병객을 맞는다. 벌초하러 형제가 함께 산소에 갔다가 시끄러운 예초기 소리 탓에 옆에 서 있는 형을 못 보고 예초기 날을 휘둘러 그만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어 수술하였다는 분, 손목이 반쯤 깊이 밤새도록 연결 수술을 하고서 몇 달째 치료 중이라는 젊은이, 모두 피범벅이 되었던 이들이 이제는 옛날 추억을 되새기듯 담담한 어조로 그날의 사연을 지인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다친 제부도 얼른 수술이 잘되어 얼른 저렇게 지난 일을 웃음 띤 얼굴로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랄 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처지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응급 수술로 인해 밤엔 진통제로 버티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밤 동안 그야말로 뼛속까지 느껴질 그 고통을 어찌 감당할까. 영상 사진으로 본 엄지손가락 뼈는 세차게 돌아가는 전기 톱날에 깊이 파인 동굴처럼 되어 끝만 겨우 붙어 있고, 살은 휴지 조각처럼 찢어져 벌어져 있었으니 그 아픔이 어땠으랴. 혼절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정도의 상처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날이 밝아 수술하는 그를 수술실로 들여보내며 간절히 기도한다. 이 겨울을 무사히 잘 넘기게 해 달라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찬 기운에 얼지 않고 아픔으로 고통 받지 않고 상처도 말끔하게 잘 나아서 새살이 차올라 원래의 기능을 되찾게 해주기를. 이 한 소절의 글이 위로될까. “내가 한마음의 상처를 잊게 할 수 있다면//중략// 내가 한 생명의 고통을 덜게 하고 그 번뇌를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혹여 내가 죽어가는 한 마리의 물새를 다시 둥지로 돌아가 살 수 있게 한다면/ 내 삶은 실로 헛되지 않으리.” 에밀리 디킨슨처럼 만일 내가 한마음의 상처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성난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는 길

최후의 해결사는 국민이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단군 이래 최대의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제일 야당인 한국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하락세다. 지지율 하락이 다시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 패스트트랙에 실린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한국당이 홀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설상가상 몸싸움으로 고발당한 육십여 명의 의원들은 검찰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그 와중에 총선불출마를 선언한 중진의원의 비판은 아프다. 수명이 다한 좀비정당을 즉각 해체하라는 극단적인 주장에 동조하긴 힘들지만 흘려들을 수 없는 부분은 분명 있다. 개혁적인 범보수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원론에 대놓고 반박하는 사람은 없으나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반면 여당은 표를 의식한 설익은 정책을 무차별적으로 내놓고 있다. 모병제와 청년신도시는 청년층을 겨냥한 노골적인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모병제는 시기상조고 청년신도시엔 철없는 치기마저 엿보인다. 그렇거나 말거나 청년들에 대한 관심표명은 확실히 한 셈이다. 인센티브가 다양한 여권은 총선불출마도 여유롭고 영입할 인재풀도 차고 넘친다. 인적쇄신이 활발하다. 칼자루를 쥔 쪽답다.야권은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사면초가의 항우 신세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극약처방도 한 방법이다. 극약을 복용하면 죽겠지만 극미량을 처방하면 중병도 치유된다. 지금은 호르메시스를 시도해볼 만한 상황이다. 국민은 자신들이 뽑은 의원에게서 신뢰를 거둔 지 오래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의원은 이미 대표가 아니다. 신뢰를 회복하려 몸부림을 치지만 백약이 무효다. 이쯤 되면 기존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주권자에게 재신임을 물어볼 필요가 있다. 후진을 위하여 다음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의원직을 사퇴하는 일이다. 비록 임기가 얼마 남지 않긴 하지만 의원직사퇴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사퇴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다.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무슨 짓을 해도 밉상이다. 지금 상황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다. 하는 짓들이 무조건 다 밉게 보이기 때문이다.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 성난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는 길은 화끈한 극단적 처방 이외에는 묘수가 거의 없다. 충격요법이다.약한 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자기 목숨이듯이 힘없는 소수야당의 최후 투쟁수단은 의원직 사퇴다. 정말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면 반대하는 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버리는 극약처방이 최후방책이 될 수 있다. 막다른 골목에선 쥐가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일백 명 이상이 일시에 총사퇴하면 국회의원 200명 이상이라는 헌법 규정을 지킬 수 없다. 국회를 해산하고 60일 이내에 재구성해야 한다. 국민의 신임을 받은 국회는 어떤 난관도 돌파할 힘이 생긴다. 국회해산 여부에 대해서 다툼이 있다하더라도 국회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독단적인 패스트트랙 처리를 막을 수 있다. 삼분의 일 이상의 구성원이 총사퇴한 상황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무리하게 처리한다면 정국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상황이 총선과 대선에서 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진 않을 것이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무리하게 제명시킨 사건이 당시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기폭제였다. 이 사건이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단초가 되었다. 의원직 총사퇴가 몰고 올 파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이 극약처방은 비단 보수정당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도 오십보백보다. 신뢰를 잃은 의원은 여든 야든 진정한 대표라 할 수 없다. 전 의원이 총사퇴하고 총선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래 국회해산은 내각책임제하에서 내각불신임에 대한 대응수단이지만 작금과 같은 혼란한 정국에선 이 제도의 숨은 뜻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신임을 물어 정쟁을 해결한다는 국회해산의 원래 취지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임기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의원은 언제든지 스스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재신임을 묻는 것이 떳떳하다. 내년 4월 15일을 기다려야 할 필연성은 없다. 전 의원이 총사퇴하고 60일 이내에 총선을 실시하면 사회적 갈등을 조기에 수습할 수 있다. 최후의 해결사는 국민이다. ‘사즉생’이라 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의원직을 버리면 다시 살 길이 열린다. 전태일은 엄혹한 여건에서 몸을 불살라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얻고자 한다면 책임을 통감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꽃 잔치 국수

꽃 잔치 국수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달이 기울어가니 더욱 쌀쌀하게 느껴진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로 병원에 들렀다. 반색하며 인사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퇴원 예정이었던 아이였다. “왜 아직 여기 있어?” 하고 물으니 꽃 잔치 국수 먹고 가려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주말 특식으로 나오는 잔치 국수가 녀석에게는 알록달록 고명이 얹혀 장식한 꽃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는 국수처럼 보였을까.‘꽃 잔치 국수‘ 그 이름이 그냥 ‘국수’보다 왠지 예쁘게 들려 더 맛이 있을 것만 같다. 녀석은 그것이 너무너무 맛있어서 꼭 한 번만 더 먹고 가려고 졸라대었다니. 아이들을 데리고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며 공부하고 일하느라 늘 바빠서 동동거리곤 하던 그의 엄마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호흡기가 약한 두 아이가 덜컥 병이 나서 모두 입원해있었으니 얼마나 더 심신이 지쳐서 그녀가 힘 들었을까. 얼른 퇴원하여 집에서 쉬고 싶을 터인데, 철없는 녀석은 해맑은 얼굴로 꽃 잔치 국수 노래를 불러댄다. 열에 들떠서 엉엉 울어대다가 이제는 몸이 회복되어 국수라도 먹으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어머니는 아이들이 면을 아주 좋아한다며 하염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좋은 시절이 오면 그리운 부모님께 기분 좋게 소식을 전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국 여인, 그녀는 오늘도 피곤할 터인데도 아이들의 청을 들어주느라 한 발짝 뒤에서 다소곳이 서 있다. 어쩌면 좋은 시절은 오늘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고 또 그 먹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시절이고 행복한 날이지 않겠는가.적게 가지고도 늘 밝은 얼굴로 아이들을 거두는 그녀를 보면서 참으로 소박하고 만족한 삶을 떠올린다. 문득 금강경의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일체의 모든 법은 마치 꿈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아침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은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만사는 잠시 머무르다 사라지는 것이다. 이 세상이 모든 것이 다 그러지 않던가. 그러니 사랑도 나누고 아픔도 서로 나누어 가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건 없이 생색 없이 베풀라는 것이 바로 경전의 가르침일 것이다.겨울로 접어드니 인생의 덧없음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는 이들을 더러 만난다. 덧없이 사라질 인생이니 더더욱 목숨이 붙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절박함이 찾아 들어 자꾸만 집착하게 된다고. 하지만 요즘엔 미니멀리즘이 대세인 것 같다. 무엇이든 단순하게, 가진 물건뿐만 아니라, 생각도 생활도 단순하게 정리하고 감정도 낭비하지 않고 절제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다.집안의 생활용품, 옷가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캠핑이나 여가활동에서 필요한 장비와 용품을 최소화하면서 적지만, 더 좋은 것을 추구한다. 독일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단순하게 사는 것이라는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다. 그는 미니멀리즘이란 무조건 줄이는 게 아니라 ‘나쁜 것’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한때는 물건을 정리해 수납을 잘하는 것이 살림을 잘하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필요한 것만 남기고 사용하고 ‘비움’, ‘덜어냄’이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정리의 기본은 ‘버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수납을 잘할수록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쌓아둔다고 풍요해지는 게 아닌데도 버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도 없다.일본 정리상담사 곤도 마리에는 그녀의 책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했다. 찬장 속에 수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쌓여있는 식기와 와인 잔들은 공간만 차지하는 짐에 불과하다. 언젠가는 쓸지도 모르고 누군가로부터 받은 의미 있는 선물이라며 버리지 못한다. 이미 오래전에 사뒀던 것들에 대한 애정은 쉽게 식지 않던가. 마음에 드는 옷을 사면 한 달이 즐겁고, 좋은 차는 6개월이 신나고, 좋은 집도 1년이 지나면 만족감이 줄어든다고 하지 않은가. 덜어내고 비우고, 꼭 쓸 것만 취하는 선택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지나가면 각자에게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것들은 자연스레 구별된다.아무리 단순하게 살아도 손에 익은 만년필, 잘 깎아 가지런히 놓아둔 연필, 쓰기 편한 일기장은 기쁨을 주는 것들이지 않겠는가. 아이가 ‘꽃 잔치 국수’를 기다리듯 우리가 모두 고대하는 그 무엇은 언제쯤 얻을 수 있을까.

수능시험 치는 날 아침에

수능시험 치는 날 아침에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매년 치러지는 연례행사인데도 오늘 아침은 유난히 마음이 착잡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강타한 대입의 공정성과 투명성, 신뢰성을 두고 일어난 일련의 논란이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대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대입에 목숨을 걸고 수능시험 날은 출근 시간을 조정하고 항공기 이착륙까지 통제하는가? 자녀를 고사장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며 학부모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자신의 저서 ‘대학의 이념’에서 ‘대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는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연구자와 학생의 공동체다. 대학은 알고자 하는 근원적인 의지를 구현하며, 그 제일의 목적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 인식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숙달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비판적 자기 성찰과 철학적 통찰을 통해 국민의 의식 수준과 인식 수준을 향상하고, 이를 통하여 정치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대학의 이념이라고 보았다. 그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학문적, 민주적 지성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 대학의 목적이라고 역설했다.야스퍼스는 대학의 존립 조건으로 ‘대학 구성원의 가치관과 능력, 대학을 유지시키는 국가권력과 사회의 의지와 요구, 물질적 수단’ 세 가지를 들었다. 그는 대학의 생명은 ‘교수와 학생’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은 학생과 교수라는 그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지향하는 바에 따라 특성이 규정되기 때문에 인적 구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국가는 대학이 학문의 요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학을 지원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가의 지원과 감독이 강압적이고 위협적일 때 대학의 자율성은 침해된다. 대학은 학문 연구에 필요한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연구실험실, 도서관 등을 운영하고 유지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대학을 지원하는 국가 권력이나 후원 단체들이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의 권위를 실추시키거나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야스퍼스의 지적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우리 대학에 현실감 있게 와 닿는다.오늘 수험생을 고사장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대학의 존재 이유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대학은 좋은 일자리를 잡기 위한 수단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출신 대학과 학벌에 의한 밀어주기와 끌어주기, 배타적인 패거리 의식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이 땅의 모든 학부모들은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가 진정으로 구현되는 사회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대학이 가진 자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계층이동의 통로를 좁히거나 막아서는 안 된다.‘수능 대박’ 이란 현수막이 가득 걸린 고사장 입구와 거리를 바라본다. 이제 우리는 사행성 오락에서 사용하던 ‘대박’이란 말을 수능시험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뿌린 대로 거두고, 땀 흘린 만큼만 수확하겠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수험생들에게도 수능시험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고는 자신의 성적과 적성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고, 그 자리에서 꾸준하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수험생들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수능 날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지는 않을 것이다.오늘 아침 자녀를 고사장에 데려가면서 두 손 모아 간절하게 기도하는 학부모들을 보며 우리 사회는 그들을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예우를 해야 한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이 시대에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정말로 힘들고 고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수험생을 뒷바라지 한 그 정성에 우리는 감사한다. 오늘 하루 수험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마음의 평화가 함께 하길 빌며, 수험생들이 차분하게 자신의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하기를 기원한다.

자이가르닉 효과

자이가르닉 효과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입동이 지났다. 겨울 기운이 느껴지는 바람 속에서도 화살나무 잎새들은 빨갛게 볼을 물들이며 열매를 영글게 한다. 한기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있는 그들의 의연한 자태가 참으로 대견하다. 차에 올라 히터를 한껏 틀어 온도를 높여본다. 몸과 마음이 자꾸만 떨린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영면 소식을 듣고서 너무나 가슴 아팠다.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찾아볼 걸. 친구도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안타까워할까.성악하는 친구가 주택을 개조하여 예쁜 카페를 내었다. 여고 동기들이 모였다. 그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작년 겨울 이후 여러 차례 연락해도 받지 않던 친구가 올해 봄 담도암으로 눈을 감았다는 것이 아닌가. 평생 주말 부부로 살면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환자들과 부대끼며 조금의 여유를 갖지도 못하던 그녀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고 나서 이제 조금 시간이 난다면서 연락하더니. 소식이 궁금하여 봄부터 여러 차례 전화해도 받지 않기에 무슨 일이 있는가. 급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혹여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 부재중 통화에 답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을 하면서도 그저 그녀가 소식을 전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엔 영영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어 버리다니.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한기가 들기 시작하였다. 친구들과의 자리를 피해 도망치듯 일어섰다. 후회가 밀려와 가슴을 쥐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그녀와의 대화창엔 “조용할 때 우리 꼭 만나자.”였었는데.‘자이가르닉 효과’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다. 하고자 했던 그녀와의 만남이 약속만 하고 완결되지 않았으니 그 긴장이나 불편한 마음은 오래 지속되어 잔상이 되어 내내 오래오래 남아 있지 않겠는가. 1927년 오스트리아 빈의 한 카페. 어떤 여성이 요리를 나르는 웨이터를 지켜보고 있다. 이 웨이터, 종이에 적는 것도 아닌데 여러 손님의 주문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서빙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하나도 잊지 않는 웨이터를 신기하게 여긴 여성이 계산을 마친 뒤 그 웨이터에게 누가 어떤 음식을 주문했는지 다시 말해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웨이터는 크게 당황하며 계산이 끝난 마당에 그걸 왜 기억하냐고 되물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놀라운 상황을 목격한 여성이 바로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이었다. 자이가르닉은 이 경험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실험을 하나 고안했다. 그녀는 실험 참가자를 A와 B의 두 그룹으로 나누고 그들에게 각각 간단한 과제를 내주었다. 시 쓰기, 규칙에 따라 구슬 꿰기, 연산하기 등 15~22개의 과제로 이를 수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체로 비슷했다. 실험의 핵심은 A그룹이 과제를 수행할 때는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고, B그룹은 도중에 중단시키거나, 하던 일을 일단 놔두고 다른 과제로 넘어가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과제를 마친 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해야 했을 때 B그룹의 실험 참가자들이 A그룹보다 무려 두 배 정도 더 많이 기억을 해냈다. 반면, 그들이 기억해 낸 과제 중 68%는 중간에 그만둔 과제였고, 완수한 과제는 고작 32%밖에 기억해 내지 못했다. 마치 카페의 웨이터가 계산을 끝낸 더는 볼일 없는 손님의 주문은 더 이상 기억하지 못 했듯이 말이다.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목표를 이루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이 자이가르닉 효과가 아닐까 싶다. 자이가르닉은 이처럼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우리가 심리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줄곧 남아 있는 일에 미련을 두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뇌리에 남아서 기억하게 된다. 이런 심리 현상을 그녀의 이름을 따서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부른다. 하던 일을 다 완성하거나 목표를 달성하면 긴장은 풀리고, 기억에서는 쉽게 잊힌다. 하지만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 예를 들면 이루지 못한 첫사랑. 시험에서 못 푼 문제, 클라이맥스일 때 끝나 버린 드라마, 작심삼일이 되어 가고 있는 새해 새 아침에 세웠던 계획들, 이런 것들은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이런 아쉽고 찜찜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행동하도록 부추겨서 다시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작가 헤밍웨이도 바로 이 효과를 이용하여 글을 써서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고 하지 않던가. 일단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데서 오는 기쁨과 행복한 마음을 한번 맛본다면 다음번 목표는 이것의 도움 없이도 잘 끝낼 수 있을 것이다.아직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자이가르닉 효과로 내내 마음에 남을 것이니, 이 겨울엔 후회 남지 않도록 잘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

선택적 정의에 대한 넋두리

선택적 정의에 대한 넋두리오철환객원논설위원 정의란 ‘올바른 도리’ 정도의 사전적 풀이에서부터 심오한 철학적 화두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마이클 샌델’의 저술이 보여주듯 정의가 비록 만만찮은 주제이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친숙한 용어이기도 하다. 어벤저스의 ‘정의의 사자’, 정치권의 ‘정의사회’, 경제학의 ‘분배적 정의’, 법학의 ‘절차적 정의’와 ‘결과적 정의’ 등 정의의 용례는 광범위하다. 정의에 대해 선뜻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사람도 일상생활에선 망설임 없이 정의란 말을 적시에 바르게 사용한다.정의의 개념은 잘 몰라도 정의에 대한 판단은 비교적 쉽게 하는 편이다. 정의에 대한 판단이 가치판단인 까닭에 어떤 사안에 대한 정의 여부를 옳음과 그름으로 명확히 선을 긋기란 쉽지 않다. 정의에 대한 판단이 흔히 논쟁과 다툼으로 전개되는 소이다. 정의의 관점에 따라 편이 갈리기도 하고 편갈림에 따라 정의의 관점이 선택되기도 한다. 정치권의 진영논리도 그 파생적 산물이다. 보수나 진보라는 이념에 따라 편이 갈리고 편에 따라 특정사안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상대편의 주장은 선택적 정의라며 비판하고 자기편의 주장은 보편적 정의라 우긴다. 서로가 진영논리로 무장한 채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대화와 타협은 없고 갈등과 반목만 계속된다. 상대 진영을 선택적 정의로 매도하는 한, 통합과 화합은 물 건너간다. 각 진영은 견고한 성을 쌓는다. 갈등의 사회적 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포퓰리즘은 독버섯처럼 도처에 창궐한다. 포퓰리즘에 중독되면 금단현상으로 인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나라는 망조가 들고 민생은 도탄에 빠진다. 그리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이 그렇다. 칠레와 에콰도르도 진통을 겪고 있다.악질적 흠결을 망라한 강남좌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약간 소강상태다. 검찰수사를 선택적 수사, 국민적 지탄을 선택적 분노, 강남좌파의 위선을 비난하는 시각을 선택적 정의라는 적반하장식 논리로 현 상황을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준동하고 있다. 이는 궤변에 다름 아니다. 선택적 정의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더라도 이를 정의와 달리 취급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선택적 정의도 엄연한 정의이고 우선순위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선택적 정의든 보편적 정의든 달성해야 할 정의임에는 다름이 없다. 비록 선택적 정의를 훼손하는 원인이 있다하더라도 정의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다. 공정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를 말하려면 선택적 정의를 존중하는 자세가 우선이다. 비선택적 정의는 후순위 과제다.주차위반 딱지를 끊겼다고 ‘왜 나만 딱지를 끊느냐’고 그 정당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주차장 확보라는 보편적 정의를 주장하며 주차위반 딱지에 선택적 정의라는 현학적인 멍에를 씌우는 시도는 졸렬하다. 주차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불합리하긴 하지만 주차단속을 하는 일은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주차장 확보라는 원인처방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문제는 별개다. 그렇다고 선택적 정의를 ‘내로남불’로 악용하여서는 안 된다. 편견의 합리화와 편 가르기를 막고 내로남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택적 정의를 폄하하기 전에 비선택적 정의를 함께 안고 가는 노력이 진정한 진보다. 동일한 척도를 사용하는 것이 내로남불을 막고 포퓰리즘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출발점이다.우리는 지금까지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분열에 직면하고 있다. 사사건건 부딪히며 실력행사로 승부를 가리려 한다. 주말마다 광장에 모여 사생결단으로 세력 대결을 벌이고 있다. 광장에 동원된 사람들의 숫자와 여론조사 결과에 목을 맨다. 상대방의 목소리엔 귀 닫고 자기목청만 높인다. 상대편은 적폐에 기껏 선택적 정의고 자기편은 보편적 정의다. 나라와 국민은 아랑곳없고 오직 정권유지에만 몰두한다. 나라 곳간을 풀어 돈과 사탕을 뿌리고 있다. 공짜의 달콤함에 취해 레밍족이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포퓰리즘의 늪에 빠지기 전에 국민과 야당이 뭔가 특단의 자구책을 찾아야 할 때다.동일 진영 내의 선택적 정의도 문제다. 특정지역의 전략공천을 막아야 한다는 억지주장이 도를 넘고 있다. 전략인물의 콘텐츠가 빈약한 경우엔 전략공천을 막는 것이 정의로울 수 있다. 허나 자신의 당선이라는 이기적 욕망에서 전략공천을 막겠다는 의도는 결코 정의가 아니다. 인재영입이라는 또 다른 정의도 엄연히 존재한다. 전략공천은 우선순위의 문제이고 선택적 정의로 치환된다. 정의는 누구에게나 정의다.

‘종교개혁 기념일’과 한국 기독교

‘종교개혁 기념일’과 한국 기독교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502년 전, 1517년 10월31일이었다.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이 붙었다. 교황청의 부패와 교회의 일탈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유명한 ‘면죄부 판매’는 그 중의 하나였다. 주인공은 마틴 루터 사제였다. 1521년, 그는 사제직을 파문당했다. 그 일로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상징이 되었고, 10월31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이 되었다. 물론 마틴 루터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실은 훨씬 이전부터 종교개혁의 불씨가 자라기 시작했다. 마틴 루터로부터 102년 전인 1415년이었다. 체코의 얀 후스 사제가 화형에 처해졌다. 역시 교회의 부패와 교황청을 비판했다는 이유였다. 37세에 프라하 대학 총장에 취임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그였지만, 바른 신앙과 정의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후스보다 40년쯤 전에도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위클리프의 얘기다. 그는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궁정사제였다. 왕을 따라 로마를 방문하고 돌아온 1374년 이후부터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1381년, 봉건제 타파를 주장한 와트 타일러의 난이 터지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의 사상과 설교가 민중봉기를 부추겼다는 이유였다. 1415년, 교황청은 이미 31년 전에 사망한 그를 이단으로 단죄했고 묘를 파헤쳐 유해를 불태우라고 결정했다. 기독교는 그들의 순교와 열정으로 시작된 것이다. 근대사회의 토대가 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을 위해서도 많은 이들이 죽거나 고난을 감당해야 했다. 순교의 역사는 20세기 들어와서도 이어졌다. 1945년 4월9일, 독일 루터교회의 행동하는 신학자, 본회퍼가 수용소에서 사형당했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3주 전이었다.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 체포된 것이다. 그는 히틀러에 대해 분노하며 좌절했지만 당시 독일 교회들에 대해서도 절망했다.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기도 했다. 나치 하에서 독일의 대부분 교회들은 히틀러에 무릎을 꿇었다. 독일을 재건할 ‘하나님의 선물’이라며 히틀러를 떠받들었고 나치에 적극 협력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와 전쟁 헌금에 앞장섰던 조선 교회들과 흡사했다. 해방 후 무소불위의 세속권력을 위해 기도하며 찬양했던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도 빼닮았다. 물론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본회퍼처럼 십자가 지고 순교했던 신앙인들이 적지 않았다. 일제 때 수차례 투옥되었다가 1944년, 옥중 순교한 주기철 목사가 대표적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1910년 3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 안중근 의사도 있었다. 그는 천주교 신자였다.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 27세의 나이에 일본 감옥에서 옥사한 저항시인 윤동주도 크리스천이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6차례 투옥, 고문, 망명 등 고난의 삶을 살다 간 박형규 목사도 있었다. 그의 별명은 ‘한국의 본회퍼’였다. 종교개혁 기념일은 한국 교회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광화문과 청와대 앞의 대규모 집회와 기도회였다. 전광훈 목사가 주관한 집회들이었다. 듣기 거북할 정도의 막말 잔치였다. ‘대통령은 간첩 총지휘자다’, ‘대한민국을 김정은에게 바치려 한다’, ‘공수처법을 만들어 나라를 공산화하려 한다’, ‘공수처법이 만들어지면 5만명이 죽게 될 것이다.’ 참석자들은 아멘과 박수로 호응했다. 논리와 이성은 없고 가짜뉴스와 선동으로 가득했다. 사랑 대신 증오가 넘쳐났다. 기도회를 내건 사실상 정치집회였다. 또 있다. 자신은 본회퍼를 따른다고 했다. 대통령을 히틀러에, 현 정부를 나치에 비유한 것이다. 지나친 견강부회다. 극단의 지적 혼돈이고 가치 전도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우겠다’는 말도 했다. 구원받을 수 없게 하겠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자에게는 심한 저주다. 기독교 교리상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신에 대한 도발이기 때문이다. ‘방향잃은 신앙’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저급한 정치와 ‘생각없는 믿음’이 결합될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목회자와 신앙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신의 뜻을 참칭하진 말아야 한다. 혹세무민하며 예수와 기독교를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아 품어본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