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멋진 여행을

햇살이 탐스럽게 빛난다. 시골집 마당에 가득 피어 여름을 즐겁게 해주었던 수국의 잎사귀가 울긋불긋 물들었다. 호박은 어느새 옆집 담을 넘어 감나무까지 뻗어 올라가 누런 호박덩이를 덩그러니 공중에 매달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가을의 풍경에 걸맞게 모진 비바람에도 제소임을 다했다며 한껏 자랑하는 듯하다. 오랜만에 야외테이블을 꺼내놓자 지인이 찾아왔다. 얼른 차 한잔하자며 자리를 권하였다. 모두가 바쁘게 생활하다가 쉬는 날 짬짬이 들러 잠시 머무르는 주말 집이기에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목소리만 들려와도 참으로 반가운 그였다. 주말에 찾아와 잡초를 뽑거나 밭의 채소를 만지다가 어두워지면 내려가곤 하지만, 그래도 그 몇 시간이 얼마나 마음에 위안을 주던가. 그것을 알기에 이곳을 드나드는 분들은 입주해 살지 않더라도 각자에게는 정말 힐링의 공간인 셈이리라. 나의 지인은 찻잔을 들고 빙글빙글 돌리더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며 이야기 한 자락을 꺼낸다. 잊지 못할 선생님께서 연휴 기간에 타계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우리 마을을 누구보다 사랑하여 부지런히 걸어다니셨고 또 마을 축제 때만 하여도 건강한 모습으로 활짝 웃으시며 무대에도 올라가시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며 한 말씀 하셨다던 그 선생님, 여학교 때 만났던 나의 담임 선생님을 연상시키던 모습이라 더 기억에 남는 분이었다. 한창 활동하실 연세에 갑작스럽게 큰 병을 얻었다고 한다. 치료를 시작하였지만 더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갔다. 그러자 담담하게 생을 정리하고 계신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먼 곳으로 떠날 줄을 몰랐는데 갑작스럽게 떠나버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나도 가슴이 먹먹해 왔다. “비가 오면 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고 서둘러야 해!” 나의 은사님은 비 오는 날만 되면 지각하는 제자들을 모아놓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훈계하곤 하셨다. 학교 다닐 때는 담임 선생님의 그 말씀이 그냥 잔소리로만 들렸는데 살아갈수록 정말이지 비 오는 날만 되면 그 음성이 귓전에 쟁쟁 들려온다. 음성지원이라도 하시는 듯 학교 때 은사님의 음성이 자꾸만 들려온다. 그 시절 쉬지 않고 하시던 그 말씀이 그냥 ‘잔소리’가 아니라 ‘잔잔한 사랑의 소리’였던 것일까. 비가 잦고 바람이 많이 부는 요즈음 같은 때면 유난히 선생님 생각이 자주 나곤 한다. 나의 은사님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셨다. 검정고시로 교육계에 들어와 피나는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공부에는 때가 있고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도 조언이 꼭 필요하다고 하시며 늘 내게 선생님의 뒤를 잇기를 원하셨다. 고3 시험이 끝나자 선생님은 봉급을 털어 입시학원에 등록까지 해두셨다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사범대학에 들어가서 정말 한없이 공부 한번 해보라고 내게 권하셨다. 의사는 늘 아픈 이들을 돌보아야 해서 심신이 매우 고달플 것이라면서 마음 아파하셨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야 나라의 기둥인 제자를 크게 가르칠 수 있다며 강조하셨다. 선생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옆길을 걸어가 말 안 듣는 제자로 남았지만, 선생님은 그 이후에도 끝없이 나의 뒤를 살펴봐 주시곤 하셨다. 결혼할 때에도,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도, 친부모처럼 기뻐해 주시고 챙겨주시더니 어느 날 주무시는 잠에 하늘로 가셨단다. 해가 바뀌고 소식이 뜸하기에 안부가 궁금하여 전화를 넣었다가 그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뒤늦게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무심함에 가슴을 쳐야만 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선한 웃음을 머금으시며 비 오는 날이면 또 음성지원을 하시리라. “얼른 서둘러라. 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야 지각하지 않는다. 쉼 없이 나아가거라. 오르막도 있을 것이고 내리막도 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라고 하실 것이다. 문득 영화 ‘어바웃 타임’이 떠오른다. 인생은 두 번 되풀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남자는 마음만 먹으면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의 반복으로 완벽한 순간까지 선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있다 하여도 생과 사를 번복할 수는 없다. 생은 단 한 번의 순간으로 결정되지 않던가. 아무리 간절히 바라더라도 죽음은 이어진다. 아무리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 한들 인생은 한 번뿐이지 않은가. 오늘 하루.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완전 즐겁게, 진짜 기쁘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리라. 우리는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시간 여행하는 것일 터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지 않겠는가.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이 아름다운 시월에

추석 지나자 하늘이 더욱 높고 파랗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구절초, 쑥부쟁이, 코스모스 같은 가을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북으로부터 단풍 소식이 밀려들고 팔공산 순환도로변 단풍나무 잎들에도 붉은 색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만간 벚꽃 만발한 봄 못지않게 온 산하가 빨갛고 노랗게 물들 것이다.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꽃이 좋아/산에서/사노라네//산에는 꽃 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지네” 소월의 ‘산유화’ 전문이다. 갈 봄 여름 없이 피는 꽃들은 각자 왕성한 생명활동을 유지하며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다. ‘저만치 혼자’라는 그 간격이 모든 것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나무와 초목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편안하고 아름답다. 가까이 다가가 모든 것을 헤집고 뒤집어 본다고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극에 사는 호저라는 동물은 뻣뻣한 가시털이 온몸을 덮고 있다. 추우면 두 마리가 서로 몸을 가까이 밀착하여 추위를 이기려고 한다. 문제는 너무 가까이하면 가시 털이 서로를 찌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상대의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서도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다. 이처럼 너무 가까이해서도 안 되고, 멀리 해서도 안 되는 관계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호저 딜레마(porcupine dilemma)’라고 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와 올케 사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것을 빤히 알면서도 애써 한계점을 넘어 가까이 다가오라고 하고는 결국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다. 겉으로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피를 흘리며 괴로워한다. 부부, 부모와 자녀, 친척, 친구, 연인 등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적절한 간격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 않고 상대를 더욱 애틋하게 생각하며,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게 된다. 통계청은 ‘통계플러스’ 가을호에서 “우리 국민은 높은 경제 수준에 비해 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유엔의 2018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분석하여 내린 결론이다. ‘세계행복보고서’는 행복에 미치는 요인으로 1인당 GDP(실질구매력 기준) 사회적 관계(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유무), 출생 시 건강기대수명, 자율성(삶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의 자유에 대한 만족 여부), 기부, 부패인식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 행복지수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GDP는 28위로 상위권이고, 신체건강과 경제적 측면에서도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삶에 대한 만족도는 비교 대상 156개 중에서 57위로 2012년 43위보다 더 떨어졌다. 사회적 관계는 95위, 자율성은 139위, 부패인식은 126위로 나타났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경제 수준이 낮거나 건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회통합이 약하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투명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의 결론”이라고 통계청은 밝혔다. 정부, 기업은 지속적으로 부패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개인은 지나친 경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남을 의식하게 되면 삶이 피곤하고 즐겁지 않다. 갈 봄 여름 없이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나 북극의 호저처럼 가까운 사람들과도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좋은 책을 한두 권 읽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친교를 나누고 즐기면서 애써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제2의 봄이다’라고 한 알베르 카뮈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조락의 가을에 좀 더 성숙해지고 깊어지면서 삶이 즐겁고 행복하면 좋겠다. 이 아름다운 시월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추석 명절을 쇠고

추석이 지나갔다. 매년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가 있다.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이다. 나는 남자들이 명절 준비를 여성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한다. 올해 추석을 맞아 언론에 재미있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추석 전날 TV를 보았다. 토론 주제가 ‘추석 명절에 여행을 가느냐, 안 가느냐’다. 토론 과정에 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조상 귀신이 자손들이 해외에 가면 찾아올 수 있느니 없느니, 차례를 지내는 것이 옳으니 안 옳으니…. 조상이 듣는다면 성질이 나서도 차례 상에 오시지 않을 일이다. 결과는 ‘여행을 가자는 의견과 차례가 우선’이라는 의견이 반반이다. 놀라운 것은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삼십 대도 아니고 육칠십 대란 것이다. 추석 연휴 첫날 퇴계 가문의 17대 종손이 서울의 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우리 집은 추석 차례를 안 지낸다. 평소 기제사는 간소하게 지낸다. 차례는 음력 10월 성묘 때 지낸다.’ 종손의 개인 의견인지 아니면 가문에서 검증받은 의견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사적으로 알아보니 퇴계 가문 전체의 의견이 아니고 종손 개인의 의견인 것 같다. 다른 차례 관련 보도도 있었다. ‘본래 유교에서는 기제사만 지내지 명절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차례 문화는 명절날 자손들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죄송해서 조상께 음식을 올리면서 생겼다. 차례상은 홍동백서니 좌포우혜니 정형화된 것이 없다. 차례를 지낼 때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정성껏 간소하게 지내라.’ 검증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다. 또 이런 내용도 있었다. ‘집안 전통상 차례 지내기가 관례라면, 제수는 과일과 송편으로 충분하다.’ 차례 지내기가 집안 관례가 아니라면 차례는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할 사안이다. 추석은 중추절ㆍ한가위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 때부터 추석 명절을 쇠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서 조상 산소를 돌보고 벌초를 했다. 차례상에 올리는 제물은 햇곡으로 준비했다. 햅쌀로 밥을 짓고, 햅쌀로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였다. 곡식이 잘 여물게 해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해에 나온 햇곡식을 조상님에게 대접한 것이다. 추석은 조상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중국과 일본에도 있다. 추석 명절에 차례와 성묘를 안 하는 것을 자손 된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이렇게 역사와 전통을 가진 추석 명절이, 해외여행을 하는 날로 치부되니 가슴이 멍하다. 차례를 지냄으로 몇 가지 문제점은 있다. 우선 주부들의 육체적 부담 문제이다. 떡을 만들고, 전을 부치고, 어물을 다듬자니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쑤신다. 제수도 그렇다. 주부들이 온종일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음식이 냉장고에 가득하게 남는다. 예전처럼 이웃에 음복하려 해도 반기지 않는다. 자식들이 가고 난 뒤, 늙은 부모들이 소비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결국은 며칠 후 슬며시 음식 쓰레기가 되고 만다. 제수 진열하는 방법도 까다롭고, 또 경제적으로도 제법 지출이 된다. 그러나 추석 명절은 몇 천 년의 가난과 빈곤 속에서도 유지 발전시켜왔다. 이제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강한 시점에서 심신이 고달프다는 이유로 미풍을 소멸시킨다는 것은 조상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큰 죄를 짓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우리 추석과 비슷한 추수감사절을 성대하게 기념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까닭이 없다. 또 현대는 핵가족으로 친척 간에 소통할 기회가 없다. 추석명절 날 같은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한데 모여 할아버지를 회고하고 친척 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1인 가구가 늘어나 ‘혼족’들이 증가하는 작금에, 친척간 소통의 기회를 가져, 가족 제도와 혈연, 그리고 함께 살아감에 대한 당위성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쩌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명절의 차례 지내기와 평소 기제사 모시기가 힘들다면 개선 보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에 대해 유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제사를 모실 때, 전은 유교에서 나온 음식이 아니다. 그러니 없애도 된다. 퇴계 선생은 음식 종류와 양의 간소화를 강조하셨다. 제사를 모시는 방법도 정형화된 것이 없다. 실제로 유교 명문가에서는 전을 올리지 않고, 음식을 간소화하고. 제사 모시는 방법을 가가 예문으로 행하고 있다. 제수도 남녀가 함께 준비하고 있다.신동환객원논설위원전 경산교육장

행복은

밖을 나서니 쌀쌀한 기운이 전해진다. 하늘은 연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다. 문득 그리움이 밀려든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둥그렇게 떠올랐다 사라진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과 은은한 달빛이 그리움을 더한다. 생의 한 부분을 빛나게 해주었던 이들의 사랑이 느껴진다. 일이 있어 비행기를 타고 지구의 반을 돌아야 했다. 경유 시간이 길어 거의 하루가 걸려 새벽에서야 호텔에 도착하였다. 잠시 나갔다가 오려고 방문을 닫는 순간, 아뿔싸! 열쇠를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이 머리를 스쳤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기나 하겠어? 하는 생각으로 일을 마치고 올라가니 조용하다. 아무리 호텔 방문을 두드려도 감감무소식이다. 조심스레 노크를 계속해보아도 답이 없다. 옆방의 문이 열린다. 나는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니 덩치 큰 남자가 눈을 찡긋하며 엄지를 척 올린다. 그러더니 손을 뺨에 대면서 아마도 자는 모양인 것 같다는 시늉을 해대며 “계속 더 크게 노크를 하는 것이 베스트!”라며 귀띔해주는 것이 아닌가. 휴대폰도 들고 오지 않았으니 전화할 수도 없다.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이번엔 마스터키를 요청해보아야 할 것 같다며 자기도 같이 가주겠단다. 깊은 밤에 선뜻 동행해주는 그에게서 두려움보다는 배려심이 느껴진다. 만능열쇠로 열고 들어가니 물소리가 요란하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라 샤워라도 하면 개운할까 싶어서 욕실로 들어간 모양이다. 그의 잘못이 아닌데도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룸메이트의 모습에서도 배려가 잔뜩 묻어 있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 배려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화내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를 편하게 해주려던 이웃과 방 친구처럼. 배려하는 마음이 곧 나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배려는 당장 실천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힘들지도 모르겠다. 잠시 흐렸던 날씨가 다시 좋아지고 있다. 파란 하늘은 맑고 써늘한 산들바람이 분다. 마치 어린 시절 소풍 갔던 날처럼 쾌청하다. 여행을 갈 때면 늘 가방 안에 넣어서 다니는 빛바랜 책의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 장인은 20세의 나이에 극도로 악화한 고혈압 때문에 앞으로 몇 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운이 좋았다. 그 후 해를 거듭함에 따라 고혈압을 위한 신약들이 개발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70이 넘은 고령인데도 그분은 아직도 살아계실 뿐 아니라 아주 정정하시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결혼을 해 자식들을 낳았으며, 열성적인 직장생활을 했다. 그리고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 장인께서는 캠핑용 자동차로 유럽 전역을 여행하기도 했으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여러 가지 운동을 즐기셨다. 또 친척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전 세계에 있는 친구들과도 가까운 유대관계를 유지했다. 그럼으로써 우리 장인은 동년배 사람들보다 한결 더 보람찬 삶을 즐기셨다.”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슬픔이나 분노 따위의 갖가지 감정을 거의 매일같이 겪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과 우리의 타고난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삶을 즐기고 대부분 시간을 행복하게 느낄 줄 아는 자세를 목표 삼아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대부분의 시간이라 한 것은 누구도 삶의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삶이다. 행복은 그것을 목표 삼아 노력해야 한다. 또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씨가 필요한 것이다. 진정 불행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는 사람들, 일상생활에 기본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는 걸 깨우치게 도울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해가며 살아야 한다. 글쓴이는 인생이 행복해지는 25가지 방법을 가르쳐준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보라. 기차가 떠나버렸을 때, 차를 끼워주지 않을 때 무시해버려라. 꼭 해야만 하는 불쾌한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거든 애써 하도록 하라. 사랑하는 배우자나 가족 또는 친구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 얼굴에 늘 미소를 지어라. 무엇이든 앞날이 기다려지는 일을 하라. 다른 사람의 하루를 즐겁게 만들라.’ 행복은 어쩌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벌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깊어간다. 맑고 푸른 햇볕 아래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행복을 마음껏 벌어보자.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대구의 꿈과 약속에 대한 제언

지난주 권영진 시장은 미래 12년을 내다보는 대구의 꿈 ‘대구비전 2030’과 민선 7기 4년 임기 동안 추진할 ‘시민과의 약속’을 발표하였다. 최근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여전히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고, 대구의 발전지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또한 대구는 집권 여당도시에서 야당도시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권 시장이 발표한 대구비전 2030과 민선 7기 시민과의 약속은 의미가 크다 하겠다. 여기서는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제언해 보고자 한다. 먼저 민선 7기의 비전은 ‘행복한 시민과 자랑스러운 대구’이다. 민선 6기의 비전은 ‘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경제’였다. 시민행복을 최우선으로, 지속적으로 시정을 펴겠다는 방향성과 의지는 바람직하다. 다만 지난 정부가 국민행복을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정책설계가 미흡했듯이 대구도 그러하였다. 바라건대 민선 7기에서는 현재 대구시민의 분야별 행복수준을 측정하고 시민행복 이행 3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 바란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지방정부별로 주민이 참여하는 지방거버넌스 형태로 주민행복이행 3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한 후 평가ㆍ환류와 함께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구도 시ㆍ구ㆍ군별로 주민행복이행 3개년계획을 수립하면 더욱 좋다. 구ㆍ군별 주민행복 수준과 행복수요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번 2030과 민선 7기 약속에서는 수많은 전략과제와 세부실천과제를 담고 있다. 특히 민선 7기 시민과의 약속에서는 5대 기본목표인 기회의 도시, 따뜻한 도시, 쾌적한 도시, 즐거운 도시, 참여의 도시와 22대 전략과제와 136개 세부실천과제가 있다. 계획은 행동 이전의 지적 작업이고 이를 집행해서 당초에 의도한 결과를 얻고자 기대한다. 이런 점에서 계획은 원형이고 결과는 현상이며 발전적 가설이라 불린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계획의 실행이다. 이번 계획작업은 123명의 전문가와 해당 부서의 공무원 그리고 시민참여로 성안되었다. 이번 계획의 성공 여부는 권 시장의 실천의지, 공무원의 역량, 시민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전문가의 지속적 자문이 함께해야 성공 가능하다. 이제는 공무원 주도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분야별 3-4개년 액션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세부과제별 로드맵과 연차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기 바란다. 한편 대구비전 2030은 월드 스마트 리더 대구를 지향하고 있다. 미래형 자동차, 물산업, 에너지, 로봇, 의료산업을 주력 산업분야로 선정하였다. 또한 5+α 신산업 선도형 융복합 인재 양성을 전략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는 시ㆍ도별로 전략산업, 이명박 정부에서는 광역경제권별로 선도산업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를 내걸고 이에 부합하는 인재양성사업을 추진하였다. 결과는 정부임기와 함께 대부분 수명을 함께 하였다. 이번에 권 시장도 5대 산업을 지원하는 혁신인재양성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창의적이고 혁신적 인재양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인재양성은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의 대구 밀라노프로젝트는 패션디자인분야 인재가 뒷받침되지 못해 성과가 미흡하였다. 이번의 지역혁신 인재양성사업은 합리적 계획과 그간의 사업실적과 추진역량에 기반한 기관선정, 그리고 3ㆍ3ㆍ3(12개년)시스템의 지속적 추진을 바란다. 정책과 사업의 성공은 디테일한 사전설계와 추진역량과 인내심으로 가능하다. 많은 성공신화를 이룩한 실리콘밸리의 격언은 ‘뿌리고 기도하라’다. 다른 한편 권 시장은 대구비전 2030과 민선 7기 시민과의 약속이행을 위한 시정의 핵심키워드로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대구ㆍ경북의 상생협력, 월드클래스 대도시권의 중심, 시민참여의 도시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대구의 3대 현안 과제인 취수장 이전, 신공항 건설, 신청사건립도 소통과 협업을 통해 가능하다. 중앙과 지방, 지방자치단체 간, 시민과 정부 간의 협업적 거버넌스 구축은 월드 스마트 리더 대구와 행복한 시민, 자랑스러운 대구 만들기에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구ㆍ경북의 상생협력과 대구 취수장 이전은 대구ㆍ경북을 일체로 하는 계획통합이 실효성 있는 대안이다. 이제 대구는 접근방법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정치적 접근에서 정책적 접근, 행정구역적 접근에서 광역적 접근, 행정중심적 접근에서 시민참여적 접근, 중앙정부지향적 접근에서 중앙ㆍ지방 간 협업적 거버넌스적 접근이다. 우리 대구시민은 이번 계획을 계기로 대구가 다시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이성근영남대 명예교수(사)한국지역균형연구원원장

천천히 서둘러라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최고 번성기를 연 황제다. 그는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황제가 되었고, 사망할 때까지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그는 글로벌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에 걸맞은 지배 구조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구상을 착실하게 구현하여 200여 년에 걸친 번영기, 즉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를 열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내가 본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후계 구도는 예수에서 베드로, 카이사르에서 아우구스투스로 간 것이다. 역사에서는 성격상 상반되는 인물이 전임자의 혁명을 완수한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 사후의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자신의 통치 이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의 좌우명 ‘페스티나 렌테’는 수많은 후세대 정치인과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로마제국 아홉 번째 황제인 페스파시아누스는 권력의 최상부에 오르기 어려운 세리 집안 출신이지만 특유의 치밀함과 부지런함으로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초상이 그려진 동전 뒤쪽에는 ‘닻과 돌고래’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을 로고로 새긴 것이다. 무거운 ‘닻’은 배의 ‘안전’을 의미하고 ‘돌고래’는 파도를 헤치고 빠르게 나아가는 ‘속도’를 상징한다.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들도 ‘닻과 돌고래’ 아이콘을 애호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출판업자 알도 미누치오도 ‘페스티나 렌테’를 즐겨 사용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포함하여 수많은 고전 텍스트를 출판하면서 인문 정신의 고양과 인문학 부흥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가 만든 알도 출판사의 표장은 돌고래가 닻을 휘감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닻과 돌고래는 안정되게 일정 속도를 유지하며 기회를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돌고래처럼 민첩하게 행동하라는 것을 상징한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꽃이 아닌 그가 출판한 책들이 그의 유해 주변을 장식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 들떠 있고, 모든 일에서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고 성과를 얻고 싶어 한다. 언론과 지식인들은 안정과 속도 어느 한 쪽이 비정상적으로 지나치게 강조되는 측면을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곳곳에서 막상 속도가 필요한 곳에서는 속도가 없고, 안정과 무게가 요구되는 곳에는 또 지나치게 빨리 결론을 내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경제 발전과 혁신을 위해 시급하게 필요한 구시대적인 악습과 규제는 속도감 있게 철폐되지 않고 있다. 반면에 부동산 문제 등은 너무 성급하고 방향성이 없다. 그냥 불쑥 대책이라고 발표해놓고 그 다음 날 일부 내용을 수정한다. 지금 부동산 정책은 일관된 방향 없이 여론의 향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새다.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2022 대입 개편안’도 졸속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개편이 아니라 개악을 해 놓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최고의 제도를 만들기 위해 토론과 논쟁의 단계에서는 급진적인 방법까지 다 나와야 한다. 그러나 최종 단계에서는 수험생과 학부모, 국가의 장래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론을 내려야 했다. 교육 당국은 닻도 돛대도 없는 배를 이끌고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최악의 난파 상태를 맞은 것이다. 지금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도 남북한과 미국 등 이해 당사국 사이에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럴수록 다른 한편에서는 아우구스투스나 알도 미누치오가 좌우명으로 삼았던 ‘페스티나 렌테’의 지혜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닻과 돌고래’, 다시 말해 ‘무게가 느껴지는 안정감과 신속한 속도감’의 상호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안정감을 주는 닻의 중요성을 망각하지 않으면서도 바람과 물의 흐름, 예측할 수 없는 돌발 변수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대응책 마련을 위해 우리 모두가 차분하게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용기

일본작가 기시미 이치로 가 쓴 ‘미움 받을 용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살아간다. 변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가지고 있다. 이대로의 나로 살아간다면 눈앞에 닥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그리고 그 결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경험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반면 변화는 많은 위험이 따르기에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비교적 안전한 현재를 파괴하지 않는다. 지병인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지하철을 타려고 공원을 지나갔다. 공원은 지하철로 가는 빠른 길이다. 공원은 사람은 드물게 보이지만 나무와 숲이 울창하였다. 푸른 대구를 자랑하는 역을 톡톡히 하는 곳이다. 공원에는 노인 몇몇이 긴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무 그늘에서는 청소년 둘이서 서성이고 있었다. 멀리서는 여성 미화원이 잔디밭을 매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 한낮의 공원은 매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고요가 더욱 축적되고 있었다. 나에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인 둘이 오고 있었다. 둘이는 덥지도 않은지 걸음을 똑바로 걷지 못할 정도로 붙어 있었다. ‘참 좋구나, 젊음은 더위도 이기는구나, 나의 청춘도 그랬던가?’ 지금 저들처럼 뜨거운 시간을 가지지 못함에 대한 후회가 그들을 계속 응시하게 하였다. 그런데 가까이 오는 그들의 모습에 이상한 점이 보였다. 멀리서는 몰랐으나 그들의 데이트는 비정상적이었다. 여성은 남자가 이끄는 대로 가지 않고 걸음을 버티려 하고 있었고, 남자는 억지로 여성을 끌고 가고 있었다. 남자의 한쪽 팔이 여성의 허리를 감고, 나머지 팔로 여성을 꼼짝 못하게 부둥켜안고 있었다. 여성은 키가 큰 미인으로, 늘씬하고 매력적이었으며, 남자는 검은 피부의 얼굴에 근육질이었다. 여성은 나를 보자 내가 들으라는 듯 “아아 -악”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당황한 남자가 잠시 경계를 늦추는 사이 여성은 남자의 품에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것은 뻔한 결과였다. 몇 발 못 가서 남자에게 잡혔다. 붙잡힌 여성은 또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와 냅다 달리고, 남자는 뛰어가 붙잡고, 그러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여성은 남자에 게 붙들릴 때마다 “아아 -악”하고 고함을 쳤다. 그 고함은 나를 향한 구원의 소리였다. ‘나를 좀 구해 주세요. 못 본 척하지 말고 제발 도와주세요.’ 여성의 애원은 공원의 고요를 깨뜨리고 나뭇가지를 지나 나의 고막을 때렸지만 나는 어떻게 하지 못하였다. 아무 관계 없는 남의 사생활에 끼어들었다가 봉변을 당하는 일을 수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힘차게 걸음을 재촉하였다. 몇 걸음 못 가서 여성의 외마디 소리는 나를 붙잡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보았다. 여성은 남자에게 끌려가면서 고개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공원의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노인들이나 청소년이나 미화원 모두 자기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무심한 사람들 여자가 끌려가는데….’ 욕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욕은 내가 나에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 남자를 호통을 치려 하였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자의 검은 얼굴과 근육질의 몸매가 가로막았다. 체격도 왜소하고, 힘도 없고, 무술 실력도 없는, 이도 저도 아닌 내가 “이봐 젊은이 여자가 싫어하잖아 붙잡은 손 좀 놓지?”하고 소리친들, “야, 이놈아 강제로 연약한 여자에게 무슨 짓이냐!” 고함을 지른들, 부질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공연히 참견해봤자 “꼰대, 노망” “영감탱이, 네 나이 네가 먹었지 웬 참견이야, 맛 좀 바야 알겠나.” 남자의 성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냥 모른 체하는 것이 정답인 듯했다. 당당하지 못하지만 별수 없는 일이었다. 또다시 걸음을 재촉하였다. 도로에 거의 다 와서 뒤돌아보니 아직도 여성은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남자는 놓지 않으려 했다. 내가 돌아보니 여성은 “아아 -악”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얼른 도로로 나와 네거리에 오니 경찰 순찰차가 있었다. 경찰에게 공원 쪽으로 빨리 가보라고 하였다. 경찰이 달려갔다. 나는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비겁자들은 ‘현 사회는, 용기는 불안을 가져올 수 있게 한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대로 사는 것이 한층 더 편안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신의 몸은 편안함을 따라가고자 한다. 그러나 사회는 용기를 필요로 하고 있고, 개인은 자신과의 다툼에서 용기를 가져오는 노력이 필요하다.신동환객원논설위원전 경산교육장

저장하고 싶은 순간들

산딸나무 이파리가 붉은빛을 더한다. 하늘 향해 곧게 뻗은 산딸기처럼 동그란 열매가 빨갛게 익어간다. 나보란 듯이 우뚝 솟은 산딸나무의 자태가 사뭇 고고해 보인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투명한 가을 하늘에 흰 구름 몇 점만이 소리 없이 두둥실 떠서 마음껏 가을을 즐겨보라고 이른다. 가을이 잔뜩 익어간다. 의학도들의 수필 공모전 시상식이 있어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길가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들이 풍년을 기원하는 것 같다. 말갛게 내리는 햇살에 알곡 익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오후 코끝으로 가을 향기를 흠씬 들이키며 문학의 숲길로 향한다. 얼마나 바쁘고 힘든 의학도의 생활인가. 그 바쁜 틈에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지우고 또 쓰기를 반복하여 드디어 응모하였을 어린 학생들, 가까이에는 지역의 의대생부터 멀리 제주도에서까지 골고루 응모한 수십 편의 응모작을 심사위원들이 정성껏 심사하였다. 한 편당 평균 4명씩 돌려가면서 예심을 거친 후에 본선 작을 뽑았다. 본선에 오른 작품들을 놓고는 최종심사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서 등위를 매겨 수상작을 결정하였다. 각자 글에 대해 점수의 차이는 조금씩 날 수 있을 터인데도 탁월한 수작으로 뽑힌 한 학생의 글이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학생의 작품이라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훌륭한 글이라 정말 놀랍다며 찬사를 보냈다. 시상식과 심포지엄을 위해 수필계와 의료계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시 의사회관에 모인 수상자들과 가족들은 모두 상기된 얼굴이다. 얼마나 기쁘겠는가. 바쁘면서도 틈틈이 쓴 글이 선에 들었으니 말이다. 한 학생의 가족은 유학 중이었다. 만약 큰 상을 받게 된다면 귀국하여 시상식에 참석할 것이라 약속했단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짝이 바로 아주 큰 상, 대상의 영예를 안게 되어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한다. 무대에서 소감을 발표하는 건실한 그 청년의 표정이 참으로 인상 깊다. 시상식이 끝나고 다시 유학길에 올라야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기쁜 일에 함께해 주었기에 그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겠는가.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환하게 미소 짓는 수상자들과 마음껏 축하해주는 선배들의 얼굴이 한가위 보름달처럼 환하다. 어렵고 힘든 과정에서도 묵묵히 진행되는 행사이지만 앞으로 꾸준히 이어진다면 참으로 의미 있는 행사가 되리라 생각되어 먼 거리에서 오르내리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우리 지역 후배들도 많이 응모하여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며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가슴에 담으며 다시 기차에 오른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동대구역에 내리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역 광장에는 불이 훤히 켜져 있고 낮에는 플랫폼으로 곧장 달려 내려가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멋진 정원이 떡 하니 들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궁금증이 일어 다가가 보니 지킴이 한 분이 앉아계신다. 주름진 얼굴에 우산도 쓰지 않아 더욱 연로해 보여 조심스레 여쭈어보았다. “여기 계속 계시나요?” 그분은 빙그레 웃으시며 “아~밤새 있어야지. 혹시 정원 나무에 달린 과실이 떨어지든가 사람들이 만지거나 하면 안 되니까~”라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여럿이다. 그 옆으로는 탐스럽게 달린 배도 있고 꽃 사과, 수박, 꽃 호박, 멜론 등의 과일이 달린 나무들이 울타리 모양으로 둘러쳐 있었다. 한쪽 옆으로는 무엇일까 평소에 궁금했던 꽃들에 이름표까지 달아 아름답게 조명까지 비춰둔 것이 아닌가. 소리 없는 비까지 내리니 빗줄기가 빛줄기에 비쳐 환상의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말이지 간직하고 싶은 가슴 떨리는 순간이다. 아래에는 허브향이 비에 젖어 향기를 더하고 옆에는 밤새 묵묵히 정원을 지치며 소임을 다하시는 인생 선배의 향내를 맡을 수 있고 가슴에는 의학도 후배의 글에서 느낀 여운이 남아 참 아름다운 밤이라는 느낌이 들어 한참을 서 있었다. ‘가우라’라고 불리는 바늘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빗줄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빛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노랗게 피어난 메리골드의 모습을 드러낸다. 페퍼민트와 애플민트도 나 좀 봐 달라고 향내를 품어댄다. 바질은 나도 여기 있어요~, 하고 외친다. 넓적한 잎새의 인물 좋게 생긴 크로톤은 하얀 눈꽃 송이 같은 백묘국 옆에서 웃고 있다. 밤새 앉아서 정원을 지키겠다는 지킴이 할아버지 곁에는 화사한 얼굴의 족두리 꽃 풍접초가 약속이나 한 듯 환하게 웃으며 손짓한다. 정원을 보면 그 집의 정원사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올가을에는 저장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기를 기대한다.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바른 글 바른 말

생일 선물에 생일 카드까지 준비했다. 늘 그랬듯이 정성스레 카드를 쓴다. 아, 이 낱말의 맞춤법이 이게 맞던가? 그러나 며칠 전 보았던 소설책의 기억이 또렷하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더 눈여겨보았다. 이름난 소설가의 소설에 나온 맞춤법이니 틀림없겠지. 큰 망설임 없이 책에서 본 그대로 적는다. 그리고 다음 날,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카드를 펴 보며 가장 먼저 한 말은 “맞춤법이 틀렸네”였다. 그날 밤 바로 국어대사전을 펼쳐 들었다. 소설책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필자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꼼꼼히 챙기게 된 계기 중의 하나다. 특히 책이나 신문 등 인쇄물에 나온 것이라고 해서 절대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심어 준 사건이다. 그 후로는 방송 자막이나 인쇄물에서의 틀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더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러나 가끔, 아니 비교적 자주, 늘 바른 국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필자를 당황스럽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단락 나누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마무리한 원고를 누군가가 망쳐 놓는 것이다. 몇 권의 책을 내는 과정에서도 필자가 거듭 확인하고 쓴 맞춤법들이 교정자라는 직업을 가진 전문가들에 의해 틀린 맞춤법으로 변모해 있는 경험을 했다. 저자가 실수한 부분이나 오타를 고쳐주면 정말 좋을 텐데, 꼭 필요한 교정을 해 주는 대신 맞는 것을 틀리게 고쳐 놓곤 한다. 남의 글을 고치고 다듬는 일을 하는 분들은 틀린 것만, 정말 틀렸는지 확인을 하면서 고칠 줄 아는 예의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가 타인의 글을 교정볼 때 원칙으로 삼는 바이기도 하다. 필자는 학창시절 국어 과목을 가장 좋아했다. 수학이나 물리가 집중과 몰입을 통한 문제 해결에서 쾌감을 얻는 과목이라면 국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창 너머를 바라보는 여유가 허락되는 과목이다. 이처럼 국어를 대단히 사랑하고, 원리를 깨우치기 쉬운 한글을 만들어 주신 세종대왕께 매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필자도, 한국어는 정확하게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띄어쓰기의 규정도, 발음도 까다롭다. 영어 철자에는 민감한 고학력자들도 한글 맞춤법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교에서는 6월을 ‘유월’로, 10월을 ‘시월’로 읽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필자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유궐(육월)’과 ‘시붤(십월)’로 읽는다. 한번은 화장실에서의 흡연을 경고하는 스티커에 ‘경범죄 처벌법에의거 처벌 받을수 있음’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화들짝하며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읽을 때는 정말이지 스티커에 적힌 대로 읽게 되는 까닭이다. 잘못된 띄어쓰기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놀라운 경험이었다. ‘현관열쇠와카드를 습득하신분은 연락바랍니다.’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은 협조문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때로는 이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면서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도 고쳐주고, 심사를 맡은 논문의 원고를 고쳐주기도 하며, 업무상 검토하는 서류의 오류를 바로잡기도 한다. 직접 글을 쓸 때도 많은 시간을 바른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할애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방심하는 순간이 오고 그래서 틀릴 때가 있기도 하다. 한국어는 완벽하게 쓰기가 참 어렵다. 말을 할 때는 구어체도 있고 사투리도 있고 해서 오류가 허용되는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연음은 되도록 지켜지는 것이 아름다운 우리말로 들린다. 예를 들어 ‘빗이’건 ‘빚이’건 ‘빛이’건 모두 ‘비시’로 발음하는 대신 ‘빚이’는 ‘비지’로 ‘빛이’는 ‘비치’로 말하는 것이 더 많이 들리면 좋겠다. 또 한 가지, 가르치는 일을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불편한 것이 있다. 바로 ‘가르치다’를 ‘가르치다’로 말하지 않고 ‘가르키다’ 혹은 ‘가리키다’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르치다’라는 표현은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육자들이 하는 경우가 많고, 경험칙으로 대학교수 3/4 이상은 ‘가르치다’를 ‘가르키다’나 ‘가리키다’로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가르치다’를 ‘가르치다’라고 제대로 말하는 교육자를 보면 기쁨이 앞서고 절로 신뢰감이 생긴다. 한글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가 더 바른 글 바른 말을 쓰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더불어 대화가 즐겁고 신뢰가 샘솟는 동료 교육자들을 보다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정인희금오공과대학교기획협력처장

빨래터

어머니는 빨랫감을 가득 담은 큰 대야를 이고서 뒷골 도랑으로 가시곤 하였다. 도랑가에 있는 빨래터에는 큼직한 돌덩어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져 있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어머니는 빨랫방망이로 두들겨가며 빨래를 하셨다. 볕이 좋은 날은 먼저 한 빨래를 너럭바위에 널어 말리기도 하였다. 빨래터에 앉아 있는 이런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줄어들기 시작한 빨래터 나들이는 세탁기의 보급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가전제품의 보급이 가사노동을 줄였지만, 그로 인해 이웃과 이야기하는 담소의 공간도 사라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빨랫방망이를 두들기며 듬성듬성 정담을 나누는 장면은 이제 옛 풍속화가 되어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나는 아내를 따라 ‘빨래터’에 갔다. 이불 보따리와 한 바구니의 빨랫감을 들고서. 그 옛날 어머니를 따라나서던 그때의 도랑가 빨래터가 아닌 동네 상가 한복판에 있는 빨래방이었다. 가게 안에는 여러 대의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놓여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또 다른 벽에는 자동세제판매기와 동전교환기가 나란히 붙어 있다. 맞은편 벽에는 큰 텔레비전이 걸려 있다. 무인가게로 운영되는 만큼 여기저기에는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운동화 세탁기의 작동 요령을 적어 둔 배너가 서 있다. 에어컨도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30분간 작동되도록 세팅되어 있다. 가운데는 큰 테이블과 의자가 여럿 놓여 있다. 말린 빨래를 개거나 정리하기 편하도록 말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서 공간 활용방법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가정마다 세탁기가 있지만 이불 등 대형 빨랫감은 집에 있는 소형 기계로 하기에는 버겁다. 더구나 직접 볕을 쬘 수 없는 아파트에서는 빨래 말리기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매번 세탁소에 맡길 수도 없다. 이런 틈새를 노린 것이 무인 빨래터인데, 그 옛날 많은 빨래를 집에서 하기 힘들어 도랑가 빨래터를 찾는 것과 흡사하다. 빨래터에 주인이 보이지 않는 것도 얼핏 닮았다. 무인 빨래터의 세탁기와 건조기는 도랑가에 있던 빨랫돌이나 너럭바위를 대신한다. 눈에 비치는 풍경은 옛날 도랑가 빨래터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사람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차이였다. 세탁기와 건조기 돌아가는 기계 소리만 요란할 뿐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서로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 빨래터라는 공간이 주는 외형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달랐다. 하나같이 말린 북어 입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 너무 조용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던 책이라도 하나 들고 나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밥 족과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는 대학생들에 이어 이제 빨래방 아줌마들까지 나홀로 족이 되었다. 필요 없이 다른 사람과 말을 섞지 않는 것,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풍경이다. 좋게 바라보면, 이것은 디지털 시대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인정이 메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정을 따질 겨를도 없도록 바쁘게 돌아가는 디지털문명에 스스로 제동을 걸어볼 필요가 있다. 옆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한 개인의 인간성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모여 사는 인간으로서 재미가 덜한 것은 분명하다. 약 1시간 정도 지나자 빨래를 끝낸 기계가 삑삑 소리를 낸다. 세탁에서 건조까지 마친 빨래가 뽀송뽀송하다. 아직 건조기의 열기가 남아 있어서 따뜻하다. 지저분한 빨랫감이 통 속을 몇 바퀴 돌아 나오면서 깨끗하고 따뜻해졌다. 다만 그것이 인간의 온기가 아니라 기계의 온기라는 것이 씁쓸하다. 도랑가 빨래터의 주인인 자연은 인간에게 공간을 빌려주고 정을 낳았다. 그런데 무인 빨래터의 보이지 않는 주인인 사업가는 자본에게 공간을 빌려 주고 이익만 창출했다. 정보와 자본으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기계를 설치한 사업주나 빨랫감을 들고 오는 소비자나 모두 효율적이다. 문제는 없다. 그러나 기계에 빼앗긴 자연을 되찾아야 인간의 온기도 따뜻하게 퍼질 것이다. 볕이 아무리 좋아도 빨래 한 장 널어 말릴 수 없어서 건조기를 들여놓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우리는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기계를 없앨 수도 없다. 그럴수록 우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에게 자기 속내를 먼저 열어 보여야 한다. 웅웅웅 돌아가는 세탁기와 건조기 소리가 요란한 빨래방을 나오면서 촬촬촬 도랑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김종헌아동문학가

모든 것은 나로부터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다. 하늘은 깊이를 알 수 없게 높고 푸르고 구름은 정처 없이 흘러간다. 가만히 앉아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느껴보고 싶은 날, 바람은 기분 좋게 살랑댄다. 붉게 핀 칸나 꽃들이 줄지어 늘어선 길을 달려 고개를 넘어서자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 알이 탐스러운 경기장 길이다. 잎사귀보다 열매가 먼저 가을을 닮아가는 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운동화 끈을 맨다. 올해로 18년째를 맞이한 ‘핑크 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유방 건강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유방암 조기 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행사. 2001년 시작되어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전국 다섯 개 대도시에서 개최되는 달리기 축제이다. 첫해부터 오늘 대회까지 전체 참가자 수 37만621명, 누적 기부금액 40억1천784만9천545원이 넘어간다고 한다. 기부금은 모두 한국유방건강재단에 전달되어 유방암 환자의 수술 치료비 지원 사업 및 유방암 예방 검진 사업에 사용되기에 취지도 좋고 건강한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들도 즐겨 참석하는 이 대회는 참가비보다 행사의 만족도가 아주 높은 대회로 알려져 있다. 건강한 사람들뿐 아니라 유방암을 이겨낸 이들, 그의 가족들도 동참하는 대회라 열리고 나면 얼마 되지 않아 마감되는 수가 있기에 서둘러야 하는 대회다. 여성의 아름답고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이런 핑크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달렸던 행사, 핑크 런에 동참하다 보면 아픈 이들도 병을 이겨내는 데 힘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대구 대회도 참가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3천 명 선착순 마감이 일찌감치 마무리되었다. 마감 이후 추가 접수에 관한 문의 전화가 많았지만, 행사 진행상 추가 접수가 더 이상 없어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구 월드컵경기장, 푸른 하늘 아래 온통 핑크빛 물결이다. 무대와 천막 모두 분홍빛이다. 그 속에서 각자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이들. 우리가 맡은 여의사회 부스에서는 의과대학 학생까지 대대적으로 동참하여 ‘핑크 런’ 행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눔을 실천하였다. 성폭력, 가정폭력을 전담하는 해바라기 센터에서도 동참하였다. 여성 경찰관과 상담 요원이 참가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매년 참석하다가 작년엔 만삭이라 참석하지 못했다는 한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데리고 나왔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는 이제 105일로 접어드는 아들을 기부자로 등록하였다. 최연소 핑크 런 참가자로 무대에 불려 올라갔다. 아이가 자랐을 때 그 사진을 보면 얼마나 큰 감동이랴.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서 기부를 실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목청 좋고 인물 시원한 아나운서의 사회로 대회가 시작되었다. 햇볕은 따가워도 그늘에만 들어서면 시원하다. 따스함과 써늘함을 번갈아 즐기며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겨본다. 마음은 10km이지만, 체력을 생각하여 3km로 만족하리라. 그저 기분 전환도 되고 도전하는 것도 좋고 인형 같은 연예인을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라 여기면서.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회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자그만 아이들이 해마다 티셔츠 사이즈를 달리하며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유방암 환자들에게는 가족의 힘이 무엇보다 소중하리라. ‘유방암 투병일기’를 읽을 때 “나 정기검진 통과 했어요”라는 글을 볼 때면 늘 가슴이 먹먹해 오곤 하지 않던가. 유방암 환자들이 유방암을 잘 이겨내고 음식도 잘 먹고 건강하게 당당하게 잘 살아가기를 기원하며 두 팔을 힘차게 흔든다. 조금 힘들더라고 무엇이든 나누다 보면 아픔도 덜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조금씩 숨이 차기 시작한다. 친구가 보낸 글로 위안 삼아야겠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는데, 늙고 나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중략)//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미워하면 됩니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사랑하면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됩니다.//(중략)//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 세상은 행복합니다.” 하얀 이슬이 내린다는 절기도 지났다. 가을이 점차 깊어간다. 우리의 인생길, ‘핑크 런’에 참가하듯 모두 힘껏 달려 보자.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할 터이니까.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학부모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극소수 도시국가를 빼면 우리나라가 출산율이 가장 낮다. 올해로 출산율이 1.0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은 집단자살(collective suicide) 사회’라고 말했다. 저출산은 외환위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심각한 재앙이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갈수록 점점 더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결혼을 주저하게 하고, 저출산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비슷한 진단을 하고 있다. 학자들은 교육ㆍ고용ㆍ복지ㆍ주택ㆍ정치ㆍ조세ㆍ젠더ㆍ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출산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야 아이를 낳는다고 말한다. 나는 지난 8월 한 달 동안 대입 수시 상담을 하면서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두고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본다. 이런 상황이 지속한다면 누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겠는가. “선생님, 딸아이가 쓴 자기소개서를 들고 첨삭 컨설팅을 잘해준다고 소문난 입시컨설턴트에게 갔습니다. 전문가라는 분이 한 번 죽 읽어보더니, ‘돼도 안 했네요. 이대로는 제출하기 어렵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소개서를 던지듯이 저에게 돌려줬습니다. 너무 황당하여 사무실을 나오려 하자, ‘생각해 보시고 도움이 필요하시면 다시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녁에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에게 전문가라는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딸아이는 불같이 화를 내며 ‘엄마 나는 돼도 안 한 그 자소서 쓴다고 여름 다 보냈어. 내 능력의 한계니 수시 포기할래.’ 방에 들어가며 다시는 자소서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었습니다. 선생님, 정말 아이가 쓴 자소서가 그렇게 형편없는지 한 번 읽어봐 주십시오. 직장 생활한다고 아이에게 신경 못 쓴 제 잘못이 큽니다. 지금까지 버틴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그냥 죄인의 심정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엄마가 내민 자기소개서를 읽어보았다. 문장이 다소 투박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적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어머니, 이 글 고치지 말고 그대로 제출하십시오. 자기소개서는 남이 손댈수록 나빠질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말했다. 이 학생은 수시에 최초 합격했다. 입시컨설팅을 하는 사람 중 일부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일단 부정적인 말로 기를 죽이고 시작한다. 그래야 더욱 매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있었던 실제 이야기다. 이런 고통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면 누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겠는가. “선생님, 저는 중학교 교사인데 대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이가 내신이 썩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나쁘지도 않아 학생부 종합전형에 지원하려고 합니다. 입시업체에 돈을 내고 찾게 된 지원 가능 대학을 가지고 학교에 갔더니 담임 선생님께서 학생부 교과와 비교과 모두를 고려할 때 입시업체에서 뽑아준 곳이 하나도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떤지 좀 봐 주십시오.” 나는 “학생부 종합전형은 반드시 학교 담임 선생님이나 진학 담당 선생님과 상담해야 합니다. 대학들은 각 고교에 대해 나름의 누적된 자료를 가지고 고교마다 다소 다른 점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학생과 비슷한 성적의 선배가 지난해 그 학교에 합격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컨설팅 업체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 엄마는 “아니, 그럼 고교 등급제를 적용한단 말입니까, 대학에 전화해 보면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합니다. 학교 차별을 하면 한다고 분명히 말해주고, 안 되는 줄 뻔히 알고 지원하는 일은 없도록 막아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사고나 특목고, 좋은 학군에 못 보낸 게 정말 후회됩니다. 우리는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춰야 합니까?” 대학입시가 예측 가능하지 않으면 온갖 억측이 난무한다. 불확실성은 요령과 편법, 탈법과 불법을 조장하게 된다. 교육 당국은 학부모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행복하지 않고 항상 불안하다면 누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겠는가?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라돈침대

침대에서 발암물질 라돈이 검출되었다고 매스컴에 보도되었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침대가 라돈이 검출된 D회사 제품이다. 아내는 걱정이 되어 집안을 ‘왔다 갔다’ 분주하다. 컴퓨터를 두어 시간쯤 붙잡고 있더니 우리 것은 안전한 제품인 것 같다고 했다. ‘휴!’ 안심이 되었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심보가 발동했다. 그리고 두 달 후 할머니 제사를 지내러 아들이 집에 왔다. 침대 제품 설명서와 컴퓨터 정보를 찬찬히 살폈다. 라돈 침대란다.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다. 아들은 컴퓨터에 한 시간여를 매달려 후속 조치를 취했다. 컴퓨터로 D회사에 신고를 하고, D회사의 라돈 관련 관계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메일을 보냈다. 아들은 내일 D회사의 근무시간이 되면 전화연락이 올 것이란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다. 전화기의 벨은 온종일 울리지 않았다. 우리가 역으로 D회사에 전화를 했다. 몇 번이나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다시 메일을 보냈다. 이틀 동안 전화나 메일은 깜깜무소식이다. 3일째가 되었다. 역시 상황은 변화가 없다. 컴퓨터로 D회사 대리점을 검색하였다. 몇 군데에 전화를 했다. 한 곳이 받았다. “본사에서 구체적인 수거 계획이 없는데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 기약 없는 약속 같았다. 한국소비자원의 문을 두드렸다. 어렵사리 상담원과 통화가 되었다. 상담원은 관련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다. 이미 우리가 전화를 시도한 D회사 번호이다. “그 번호는 전화해도 받지 않는 번호”라고 하니, 회사에서 소식이 없으면 자기들도 별다른 방법이 없단다. 이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찾았다. 그곳도 역시 별다른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침대를 보관할 물품을 보내 줄 터이니 우선 보관하고 있으란다. 일말의 기대를 걸었는데, 침대를 방에 오래 두기가 꺼림칙했다. 억지 힘을 써서 침대를 현관문 밖 복도에 내어놓았다. 며칠 후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보내 준다던 물건이 왔다. 포장용 비닐이다. 침대를 비닐로 싸서 보관하라는 뜻인 것 같다. 어처구니가 없다. 침대를 복도에 마냥 둘 수도 없어 리콜을 포기하고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버리기로 했다. 시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시청 민원실 직원은 자기 소관이 아니란다. 그러다 한 직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방사능 관계는 시청에서 취급하지 않으니 동사무소에 알아보세요.” 동사무소에 전화했다. “그 일이 우리 담당이라고 누가 그래요?” 동사무소 직원 역시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란다. 성질이 나지만 참고, 그간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제야 동사무소 직원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더니 다른 여직원을 바꾸어 주었다. 여직원에게 다시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였다. 레코드가 되었다. 여직원은 침대에 8천 원 짜리 딱지를 붙여서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내다 놓으란다. 아파트 경비원의 협조로 침대를 옮겼다. 지나가던 청소부 아주머니가 자기 일처럼 적극 도와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겨우 침대를 옮겨놓고 나니 동사무소 여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일 났어요. 폐기물 수거업자가 라돈 침대는 안 받는대요.” “이제 방금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힘들여 옮겨 놓았는데 어떻게 하지요?” 대답이 없다. 자기가 말한 책임이 있으니 그런 모양이다. 다시 침대를 현관문 밖 복도로 옮기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옮겨 놓아도 옆집이 좋아할 리 없다. 이제 어쩔 수 없다. 그대로 둘 수밖에, 동사무소 여직원에게 그대로 두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여직원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2박3일 서울에 다녀왔다. 그사이 침대가 없어졌다. 누가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사정을 물어보려고 하다 긁어 부스럼 날까 봐 모른척했다. 라돈 침대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다. 뒤 끝이 찜찜했다. 원래 라돈 침대 사건은 정부에서 품질검사를 하다가 라돈이 나온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우연히 알아낸 것이다. 한 가정주부가 보급형 라돈측정기 ‘라돈 아이’를 한 번 썼다가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 놀라서 신고한 것이다. 이 주부가 아니었으면 계속 발견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판매될 뻔했다. 처리 과정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해당 침대 회사에서, 제품을 수거 및 리콜 조치하겠다고 하였으나 신고를 받고도 연락 한 번 없었고, 전화도 불통이었다. 정부에서도 관련 제품을 수거 조치한다고 하였으나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보내온 내용은 침대를 포장할 비닐조각뿐이었다. 그리고 연락도 없었다. 일선 행정기관 역시 서로 소관 다툼만 하였다. 국민의 시민의식이 깨어 있는 한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지 모르는데. 책임지는 사람 한 사람 없고, 나처럼 헤매는 국민만 있을 것을 생각하니, 앞일도 찜찜했다.신동환객원논설위원전 경산교육장

매력부자

가지마다 휘늘어진 사과가 붉은 기운을 더해간다.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곳곳에서 소식을 전한다. 높푸른 가을 하늘 아래, 우주를 닮은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하얀 나비가 앉은 듯 바늘꽃은 길가에서 바람에 살랑댄다. 달짝지근하게 익어가는 과일의 향내가 9월을 향기롭게 펼친다. 보랏빛 수국이 다소곳이 인사하는 아침, 우아한 자태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니 그 옆에는 아기 머리만 한 호박덩이들이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언제 생겨나 저리도 빨리 영글어 갔을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그곳, 커피 찌꺼기와 과일 껍질의 더미에서 저 호박들이 저렇게도 튼실하게 익어가고 있었다니. 누가 호박꽃도 꽃이라고 놀렸을까. 척박하기 짝이 없는 두엄더미 속에서도, 아무도 관심 기울이지 않을 그곳에서도, 깊이 뿌리박고 높다란 나뭇가지에 줄기를 뻗어 달을 친구삼아 자식을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이번 가을, 호박의 노력이 참으로 대견하게 여겨진다. 애기 호박에서 중년의 호박으로 자라났으니 커다란 누렁이가 될 때까지 익어가게 두어야겠다. 그리하여 완전히 익었을 때 수확하여 아이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핼러윈의 호박 장식을 해주어야겠다. 아이들의 텃밭에서 난 호박으로 장식하면 핼러윈 파티가 더 실감 나고 재미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10월 마지막 날, 서양의 축제이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요즈음엔 핼러윈 복장을 즐겨 하고 사탕을 얻으러 다니지 않던가. 누런 호박을 조각하여 불을 켜둔다면 옛날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아이들은 옛날의 그때 그 시절을 잘 기억하지 않겠는가. 행사의 사전 모임이 있어 동촌까지 가야 해서 서둘러 나왔다. 하지만, 길은 모두 주차장이 되어 있다. 교통방송을 켜보니 데모 중이란다. 어쩌면 좋은가. 시계에 눈을 꽂으며 마음을 졸이지만, 도리가 없다. 오도 가도 못 하고 서 있는 데 지인이 전화를 한다. 그렇게 차 안에 있지 말고 영화관으로 들어오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대구 메디컬 시네마 테라피’ 행사가 떠올랐다. 메디시티 대구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무료영화 감상 후 관련 전문의와 제작자 영화평론가들이 모여 그 작품에 관해 토론하는 행사.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열리는 행사, 깨끗이 포기할 수밖에. 차를 유료주차장에 밀어 넣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애정 가득한 엄마로 나오는 영화 ‘원더(wonder)’가 상영 중이다. 원더는 의심한다는 뜻이지 않던가. 의심이 기적으로 해석되는 영화. ‘넌 못생기지 않았어, 네게 관심 있는 사람은 알게 될 거야.’ ‘헬멧 속에 숨었던 아이, 세상 밖으로 나오다!’ 포스터가 이목을 끌었던 영화였다. 누구보다 위트 있고 호기심 많은 매력 부자인 남자 아이의 이름은 ‘어기’. 남들과 다른 외모로 태어난 그는 모두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대신 얼굴을 감출 수 있는 핼러윈을 더 좋아한다. 10살이 된 아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와 아빠는 아들을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고, 동생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왔지만 누구보다 그를 사랑하는 누나도 그의 첫걸음을 응원해준다. 그렇게 가족이 세상의 전부였던 어기는 처음으로 헬멧을 벗고 낯선 세상에 용감하게 첫발을 내딛지만, 첫날부터 ‘남다른 외모’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사람들의 시선과 놀림에 큰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어기는 27번의 성형수술을 견뎌낸 긍정적인 성격으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 둘 변하기 시작한다. 베스트셀러 ‘아름다운 아이’를 원작으로 탄생한 영화 원더. 헬멧을 쓴 아이가 서 있는 포스터 한 장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영화였다. 헬멧 속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아온 아이가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용기를 내고, 그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메시지를 담은 원더는 가슴에 오랫동안 남을 감동을 전해주었다. 편견과 차별이 가득 찬 세상에서 용기를 내어 진짜 자신을 마주하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면 조금씩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긍정과 희망을 담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 힘겨운 싸움을 하는 우리 모두의 일상 이야기다. 자신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는 자신의 모습과 세상, 자신의 선택으로 영웅이 될 수도 있고, 돋보일 수도, 그저 그런 자신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자식은 종교다’라고 하지 않던가. 자식들을, 우리 곁의 모든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모두 매력 부자로 생각한다면 더위 끝에 찾아온 이 가을이 더욱 풍요롭지 않겠는가.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현 정부에 거는 기대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 변화에 일반국민은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반신반의하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 보통사람들이 일상의 삶에서 문 정부에 거는 기대를 몇 가지로 나누어 논의해 보고자 한다. 먼저 정부의 책무와 우선순위에 대한 기대이다. 정부는 국민에게 장래비전을 확실하게 제시해야 한다. 정부의 중요한 책무는 외교안보와 국민경제 그리고 사회복지이다. 문 정부도 이에 대한 국가비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현재 일반국민에게는 온통 남북관계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읽힌다. 평화와 통일에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필자가 만나는 보통사람들은 남북문제에 우선하여 경제와 자신들의 삶에 더 관심이 많다. 아울러 우리의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일부 분야의 대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언제까지 지속할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혹여 일부 대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까 걱정하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는 포퓰리즘적 정책과 재정지출의 확대로 중장기적으로 국가재정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일반국민은 국가 3대 책무의 정책균형을 바란다. 우리 경제는 저성장기에 접어든지 오래다. 근대화 초기에는 정부주도의 계획경제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당시에는 기업도 없었고 경제규모도 보잘 것 없었다. 오로지 정부가 모든 것을 컨트롤 하는 국가자본주의 형태로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우리 국민의 삶은 좋아졌다. 반면에 소득불평등과 사회양극화도 가져온 게 사실이다. 이제는 시장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정부가 컨트롤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글로벌 경제환경도 크게 변화되었다. 이와 같은 경제환경에 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그리고 공정경제를 내걸었다. 소득주도성장은 개인과 가계를 중시하는 정책이다. 그간 문 정부는 혁신성장보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정책이 우선되고 기업주도 혁신성장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특히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의 시행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겐 큰 부담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일자리와 가계소득과 소득분배 등 관련지표도 악화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물론 이 같은 지표는 단기간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일반국민은 지금까지 일구어온 국가 경제가 지탱되기를 원한다. 혁신성장정책과 기업친화적 정책이 조화롭게 추진되기를 바란다. 최근 남북평화회담과 북미회담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반국민은 국가안보에 기대와 우려가 크다. 이는 오랜 냉전체제에서 형성된 유비무환의 국민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비핵화 이전에 남북경협이 앞서는 것에 대해서도 완전한 동의를 못하고 있다. 그간의 남북관계에서 보인 북한의 도발행태를 경험한 우리 국민은 남북평화진전을 바라면서도 북한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고 있다. 미국정부와 조화 속에 남북경협의 성공적 추진을 바란다. 한편 문 정부 들어 국가 현안 과제에 시민참여 공론화 과정을 통한 정책결정을 하고 있다. 탈원전정책과 대학입시개혁정책이 그렇다. 공공정책결정이 지나치게 엘리트 중심이거나 시민참여 중심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공론화 과정은 지나치게 시민참여 중심적이다. 현안 과제의 성격에 따라 정부가 책무성을 가지고 국민과 소통하면서 정책결정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문 정부 들어 정책주도가 계선조직인 정부부처보다 막료조직인 청와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일반국민의 눈에 비친다. 현대 정부는 분업과 협업이 중요하다. 최근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국무회의에 버금가는 대통령 주재 제2국무회의를 건의하였다. 중앙ㆍ지방간 정책소통과 정부 간 협업적 거버넌스 차원에서 도입이 필요한 제도라고 본다. 작금의 현안 과제인 근로자 최저임금 인상과 자영업자 문제, 청년ㆍ노인 일자리 문제,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미세먼지, 저출산ㆍ고령화 문제 등에서 상향적 협업적 접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문 정부는 촛불로 탄생한 정부이다. 정부 출범 초기와는 달리 지난 정부에 대한 지나친 부정과 적폐청산은 일반국민에게 피로감을 준다. 사회는 갈등과 통합과정을 통해 진화하고 발전한다. 이제 일반국민은 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공과에 더 관심이 많다. 일반국민은 현실적이다.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금 우리 국민의 지적 수준은 세계적이다. 정부정책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탁월하다. 문 정부는 국민 수준과 눈높이에 맞는 공감정책을 펴기를 기대한다. 이는 일반국민이 바라는 바이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길이기도 하다.이성근영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