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격과 품위

1825년 12월, 러시아에서 니콜라이 1세의 즉위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자들은 농노제 폐지와 입헌정치의 실현을 요구했다. 지도자인 콘드라티 릴레예프는 모반죄와 황제시해 미수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이 집행되었다. 형장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발밑 바닥 문이 꺼져 몸이 아래로 떨어졌지만 그의 목을 매단 밧줄이 끊어진 것이다. 시인인 릴레예프는 사형집행을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러시아는 불행한 나라다. 교수형에 처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엉터리 나라다”라고 외쳤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대개의 경우 신의 섭리라 생각하여 사면해 주었다. 니콜라이 1세가 사면장에 서명하며 물었다. “밧줄이 끊어지는 기적이 일어난 뒤 릴레예프가 뭐라고 하던가?” 신하가 릴레예프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 황제는 서명하려던 펜을 던지며 “그렇다면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지!”라고 말했다. 릴레예프는 다음 날 교수대에 다시 섰다. 이번에는 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바이런의 시집을 들고 죽었다. 릴레예프는 밧줄에 목이 매여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말에 목이 졸려 죽었다. 이윤재, 이승준의 ‘말 콘서트’에 나오는 이야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지나치게 말이 많으면 반드시 설화를 입게 된다. “다언삭궁 불여수중(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을 많이 하면 자주 궁지에 몰릴 수 있어,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노자 도덕경 제5장에 나오는 말이다. 다언수궁(多言數窮)이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수(數)는 바둑이나 장기의 수, 즉 책략, 수단, 방법 등을 의미하니, 말을 많이 하면 수가 막히거나 행동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탈무드에 랍비가 제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을 찾아 상자에 넣어오라고 하니 두 상자에 모두 혀를 담아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쁘게 쓰면 혀보다 나쁜 것이 없고, 좋게 쓰면 혀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한 치 안 되는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도 있다. 말보다 더 날카로운 칼은 없고, 말이 주는 상처보다 더 오래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다언(多言)은 소통을 가로막거나 방해하고, 결국은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관련 뉴스가 전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부동산 관련 문제보다는 손 의원이 보여주는 오만방자한 몸짓과 태도, 말하는 방식에서 더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손 의원은 과거에도 안하무인 격의 가시 돋친 막말로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거나 상대를 설득하려고 할 때 말로 자신의 견해를 먼저 표명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정말 중요한 것은 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론 말보다 무언의 침묵이 더 큰 울림을 준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전제되어 있으면 눈빛이나 표정, 사소한 몸동작만으로도 믿음과 감동을 줄 수 있다. 정치는 ‘언어의 예술’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구사하는 말에는 예술적 향기가 없다. 상대를 불쾌하게 하면서 원한과 투쟁심만 부추기고 악취만 풍기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정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이란 호칭 대신 ‘~님’ ‘~쌤’ 같은 호칭을 쓰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반발을 샀다. 신임 교사가 교장 선생님에게 ‘박쌤’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뜻이다. 언어가 천박해지면 예의와 염치가 사라지고 교육에서 꼭 필요한 교권은 무너지게 된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도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라. 말은 당신의 입안에 들어 있는 한 당신의 노예지만 입 밖에 나오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 당신의 말은 당신이 건너가는 다리라고 생각하라. 단단한 다리가 아니면 건너지 않을 테니까.” 정치인이나 교육자, 아니 우리 모두가 이 유대인 속담을 되씹고 곱씹어봐야 한다. “입을 열면 침묵보다 뛰어난 것을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는 말도 우리 모두 가슴에 새겨두면 좋겠다.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변화하는 중국

중국을 갈 때마다 중국의 많은 변화를 체감한다. 하이난 싼야시에 있는 로맨틱 파크에 갔다. 거대한 아치형 입구를 들어섰다. 사람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거리 공연장마다 공연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공연장 별로 색다른 볼거리들에 넋을 놓아 발걸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중국 3대 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송성가무 쇼도 역시 볼만하였다. 객석이 움직이고, 객석 천장에서 비가 폭포처럼 떨어졌다. 배우들이 객석 옆에서 튀어나오고, 양탄자가 공중을 날기도 하였다. 무대는 자동으로 여러 형태로 변환되었다. 완전 4D 공연장이었다. 송성가무 쇼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연과 놀이시설이 무료이거나 저렴하였다. 그러나 무료라고 해서 거리공연 내용이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었다. 공연하는 기예의 수준이 보통 이상이었다. 내용도 중국 소수민족의 춤과 노래도 있었고, 서커스와 마술도 있었다. 송성가무 쇼를 하는 배우들이 반라로 거리공연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시민들과 게임을 하기도 하였다. 먹자골목, 동물원, 워터파크, 모두 볼만 하였다. 파크 안은 중국의 보통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소수민속촌으로 갔다. 하이난 토착 민족인 이족의 전통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서부터 중국의 방대한 스케일을 마주했다. 건물이 웅장했다. 넓이도 넓어 소수 민족의 삶을 자세히 보려면 온종일 걸린단다. 이곳은 관광의 목적도 있지만 실제로 소수민족이 생활하는 곳이다. 이족 가옥으로 갔다. 주민들은 흙과 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나무 평상이나 의자에 앉아서 작업하고 있었다. 그들은 온몸에 문신했다. 목과 다리의 문신이 옷 사이로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문신을 하지 않아 지금 할머니들이 문신하는 마지막 세대란다. 민속 공연하는 곳으로 갔다. 공연의 소도구로, 곡식을 추수할 때 쓰이는 키, 도리깨, 절구 등이 보였다. 내 어릴 적 우리 동네에서 보던 것들과 비슷했다. 이곳에도 관중이 많았다. 주로 가족 단위였다. 내 앞자리에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온 부부가 있었다. 아들과 부부는 주먹밥을 먹었다. 비닐봉지에 싸 온 주먹밥이다. 주먹밥은 고추장 비슷한 것으로 버무린 것이다. 생활 형편이 크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관중들을 훑어보았다. 얼굴빛, 옷차림, 신발 역시 그저 그렇다. 삶을 열심히 산 서민들이 모여 여가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가족 중심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그중 노부모를 모시고 관광을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원숭이 마을에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데, 60대 아들이 90이 훨씬 넘게 보이는 아버지를 모시고 느린 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그 부자가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정체시켰지만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중국에는 ‘가화만사흥’ 이라는 글귀가 시내 어디를 가도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그와 비슷한 글귀가 시골집 대문에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 힘들다. 중국 사람들은 강이나 공원에도 많이 모였다. 이곳에는 일단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인구가 많아서 그렇다지만 그것만이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나와 맨손체조, 광장무, 태극권, 남녀 쌍쌍 춤, 탁구, 농구 등을 삼삼오오 모여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겨울에 강에서 수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구청 직원 비슷한 사람들이 그들이 즐길 수 있도록 준비도 해주고, 음악도 틀어주고, 안전도 보살피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가 정치의 도리를 묻자 정치의 정(政)은 곧 바를 정(正)자니, 위정자가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면, 백성은 위정자를 따라오고, 나라는 바르게 된다고 하였다. 백성을 바르게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닐 때 다른 추방자들과 난민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다윗은 그들을 조직하여 우두머리가 되었다. 다윗은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훌륭한 왕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그는 하나님에게 물었다. 하느님은 다윗이 백성을 위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다윗은 결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다. 바른 정치의 첫 번째 덕목은 백성을 위하는 정치임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은 어디를 가도 많은 서민이 여가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정부에서 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 무료 또는 저렴하게 장소를 제공하고 있었고, 공무원은 그들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유교 이념의 영향인지 중국은 효를 맥락으로 하는 가족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국은 변하고 있었다. 중국몽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기적 같은 당신의 사랑을

동지가 지나고 나니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 것 같다. 홍역 유행 소식 때문인지 병원 방문객이 줄었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진료를 마치고 동료와 함께 식사하러 갔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적십자 혈액원에서 혈액을 구하러 출장차가 대기하고 있으니 가능한 직원은 헌혈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피(혈액)가 없습니다. 모든 혈액의 수급이 힘들고 특히 O형은 대구혈액원 보유량도 거의 없어서 받아 올 수 없어서 답답한 사정을 알립니다”는 알림도 받았다. 아무리 급해 피를 구해도 혈액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 무거웠었다. 이 기회에 헌혈해야 하지 않으랴. 수저를 놓고 바로 헌혈 차를 향해 달려갔다. 전자 문진을 하고 혈압을 재고 난 다음 혈액 검사를 하였다. 사전 검사를 하던 직원은 뽑은 혈액의 색깔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어지럽지 않으세요?” “아니요! 아주 건강한 걸요.” 내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그녀는 나의 혈색소 수치가 낮아 수혈 불가라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그럴 리가 없어요. 알코올이 마르고 난 다음 다시 채혈해서 검사해봐 주세요”라고 우기자 그녀가 다시 채혈했지만, 결과는 빈혈이었다. 혈색소가 12.5는 되어야 가능한데 그보다 한참이나 아래였으니…. 건강을 과신한 탓이었을까. 지난 몇 달 끼니도 거르고 바쁘게 다닌 후유증이었을까. ‘빈혈’이라는 이야기에 눈앞이 노래지는 것 같다. 어쩌랴. 잘 챙겨 먹고 빈혈에서 벗어난 다음에 헌혈할 수밖에. 나이 어린 한 직원은 몇 년 전부터 열심히 헌혈한 공로로 금장을 받았다. 그 이후 지속적인 헌혈로 명예의 전당에까지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가. 그의 건강관리 비결을 물어보고 싶어진다. 얼마나 잘 관리하였기에 그리도 자주 헌혈할 수 있었던가. 그의 노력과 열정이 오늘 따라 무척이나 부럽다. 막내 애도 헌혈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 헌혈차가 왔기에 달려갔더니 만 16세 생일이 되지 않아서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였다. 나이가 되면 헌혈부터 하고 싶다던 아이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피를 나누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일이기에 그보다 더 고귀한 사랑의 나눔은 없을 것 같다던 녀석의 말, 헌혈 기념품을 받는 대신 그것마저 기부하겠다는 녀석이 참 대견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아무리 고귀한 사랑이라도 아무나 헌혈할 수는 없다. 헌혈이 가능한 나이는 만 16세부터 69세까지다. 헌혈은 실명제이기에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등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발행한 신분증도 있어야 한다. 신분증을 확인함으로써 헌혈자가 헌혈기록과 검사 결과를 정확히 관리할 수 있다. 헌혈하기 전에 상담과 함께 간단한 신체검사. 혈압과 맥박, 체온 측정과 혈소판 수 측정, 혈액형 검사, 혈액비중 검사도 한다. 혈압도 수축기 혈압 90mmHg 미만 또는 180mmHg 이상, 이완기 혈압 100mmHg 이상 맥박은 1분간 50회 미만이나 100회 초과, 체온 37.5도 초과 시에는 채혈하지 않도록 혈액관리법상 제한을 두고 있다. 체중 제한도 있다. 남자는 50kg, 여자는 45kg 이상이어야 수혈 가능하다. 과거에 피를 헌혈한 적이 있다면, 몸속 혈액이 재생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바로 헌혈하기 어렵다. 피를 그대로 뽑아내는 전혈 헌혈의 경우는 2개월에 1회씩 가능하고, 혈액 중 일정 성분만 분리하는 성분 헌혈은 만들어지는 시간이 짧기에 2주 후에 한 번씩 가능하다. 질병이 있거나 특정한 약을 복용한 사람이 수혈한 피는 바이러스나 약물 성분이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제한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인플루엔자, A형 간염 등 예방접종의 경우는 24시간, B형 간염 예방접종은 2주가 지나야 가능하다. 누구든지 전혈 헌혈은 1년에 최대 5회만 가능하다. 나라에 상관없이 해외여행을 했다면 귀국한 지 1개월이 지나야 헌혈할 수 있다. 특히 말라리아 등의 질병의 위험이 높은 지역을 다녀왔으면, 그 여행 기간이 단 하루였다고 하더라도 1년 동안에는 채혈기를 이용하여 혈장만을 채혈하고,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되돌려 주는 헌혈인 혈장 성분헌혈만 가능하다. 헌혈하게 되면 우리의 몸은 내부, 외부의 신체 변화에 대해 뛰어난 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어 헌혈 후 1~2일 정도만 지나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혈관 내외의 혈액 순환이 회복된다. 자가진단을 통해 가까운 헌혈의 집을 방문하여서 한 생명을 살리는 헌혈을, 기적 같은 해가 되도록 기해년에는 당신의 사랑으로 생명을 살릴 기회, 헌혈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국리민복의 국정을 바란다

올해는 여느 해와 다르게 의미가 크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3년 차로 국정의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여론에 민감한 한 해를 보내야 한다. 무엇보다 올해는 21세기 초반 20년을 마무리하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컸었다. 개인의 삶에 대한 꿈은 물론이고, 정부는 장밋빛 청사진을 많이 내놓았었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지표들을 보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 중요한 지표는 개선보다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21세기 중반의 이삼십년을 바라보는 국가비전과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부 정책은 중요하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하에서 정권교체는 있으나 국가와 국민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반세기 이삼십년을 내다보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제언해 보기로 한다. 정부 정책은 정확한 문제인식과 명확한 목적의식, 그리고 확고한 책임의식이 중요하다. 먼저 정부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정확한 문제인식을 하기 바란다. 필자는 우리의 미래가 지속성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저출산은 심각하고 인구감소와 학생 절벽으로 사회유지와 교육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저성장 경제기조와 노사갈등, AI 시대의 도래와 글로벌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은 기업의 경쟁력과 일자리와 민생경제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농촌지역의 과소화는 지역소멸로 나타나고 지역사회 해체로 이어진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위협한다. 특히 물 부족과 자연재해와 에너지 수급의 위기이다. 국가안보는 남북과 주변국 간 이해관계로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고 있다. 또 정부는 정책의 합목적성을 명확히 하기 바란다. 합목적성은 올바른 가치지향의 방향성이다. 정책의 방향성은 표퓰리즘이 아닌 국리민복이 되어야 한다. 이는 현재와 장래에 국가와 국민에게 부담이 아닌 지속성과 균형성 그리고 혁신성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첫째로 지속가능한 정책이 요구된다. 이는 정확한 문제인식이 전제된다. 문제는 목표달성의 장애요인이다. 지속성의 장애요인을 규명하고 이를 제거하면 목표달성과 함께 문제는 해결된다. 문제와 정책수단 간에는 인과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치가 정책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정책형성에 일정의 정치영역은 필요하나 지나치면 정책실패로 결과한다. 둘째로 균형정책이 요구된다. 이는 경제와 사회와 환경과 공간의 균형이다. 경제적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근로자,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상생이다. 사회적으로는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기회균등과 배려, 세대 간 조화와 형평이다. 환경적으로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이다. 공간적으로는 생활인프라와 문화와 정보 등 지역간 격차해소를 통한 삶의 질의 균형이다. 이와 같은 균형정책의 해답은 협업적 거버넌스 시스템의 구축이다. 경제주체간 상생적 거버넌스, 세대간ㆍ계층간 사회적 거버넌스, 자연과 인간의 공생적 환경 거버넌스, 지방정부간 연합적 거버넌스 구축이다. 세 번째로 혁신정책이 요구된다. 이는 기업주도 혁신성장의 경제혁신, 정부 책임 공교육 중심의 교육혁신, 지방분권 확대로 광역과 풀뿌리 주민자치의 지방혁신, 권력구조와 공공서비스 전달의 정치ㆍ행정혁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들 혁신을 시대정신에 맞게 제도화하는 개헌과 법률정비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정책의 확고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정책의 추진 의지이고 신념체계이며 실현하고자 하는 담대한 마음가짐이다. 정부의 정책은 개인과 가계와 기업을 포함하는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정책은 사회적 편익과 비용이 발생한다. 이익을 얻는 집단과 손해를 입는 집단이 생긴다. 이 경우 사회적 비용은 최소화하고 사회적 편익은 최대화한다. 개인의 불로소득은 징수하고 손실은 정당하게 보상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형평성을 도모한다. 또한 정부는 정책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의도하지 않은 정책 결과에 대해서는 피드백을 통해 신속하게 수정ㆍ보완하는 유연적 정책관리가 필수적이다. 우리 국민의 지적 수준은 우수하다.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의 역량도 뛰어나다. 그러나 5년 단임제의 단절적 정치권력 구조가 문제이다. 또한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치권의 정쟁으로 편향된 문제인식과 합목적성의 정책형성과 소통과 공감 그리고 책임성 있는 정책추진 의지가 미흡하다. 밝은 미래를 위해 진정성과 열린 생산적 마음으로 현명한 국민을 위해 수준높은 정책형성과 신념에 찬 정책추진과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성과를 기대한다.이성근영남대 명예교수한국지역균형연구원장

노세노세 젊어 놀아

“그 때 니 아부지하고 밤에 몰래 나가, 친구들이랑 밤새도록 놀다가, 새벽에 가만히 들어와서는, 할매 아침상 봐 드리고 하민서도, 그땐 피곤한 줄도 몰랐는데… 허허. 너으도 지금 놀 수 있을 때 재미있게 지내라.” 간밤에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온 아내가 웃음을 머금으며 한 말이다. 어머님이 그러시더라고. 시술을 하루 앞두고 뭔가 불안해서였는지, 지나온 당신의 삶이 짤방 동영상처럼 스쳐지나갔는지, 어머니는 며느리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불안을 달랬나 보다. 아내도 그 짧은 시간에 시어머니와 참으로 오랜만에 많은 교감이 있었나 보다. ‘노세노세 젊어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1954, 김영일 작사, 황정자 노래)의 노랫말은 삶에 쫓겨 앞만 보고 살아온 인간의 탄식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젊은 날 부지런히 일해야 늘그막에 행복한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노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특히 이 노래가 유행하던 당시는 전후의 폐허 속에서 망연자실하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로 보면 건설의 노래 등 소위 말하는 건전가요가 맞을 듯도 하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놀고 싶어도 놀 수 없던 그 시절의 애환이 읽힌다. 개인의 삶은 없고 모든 것이 집단과 재건으로 치닫는 시대상황에서 놀이는 사치였다. 따지고 보면 놀이 또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욕망이다. 더 늙기 전에 꽃구경 가는 정도의 행복은 또 다른 에너지임에 틀림없다. 끊임없는 일 욕망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 욕망과 놀이욕망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삶이 풍성해 진다. 이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일상은 숨 가쁘기만 하다. 그런데 놀이욕망을 절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참고 참았던 욕망은 터지기 마련인데, 그때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건강한 방법으로 놀이욕망을 분출할 때 인간다움은 이루어진다. 전후 폐허에서 ‘노세노세’가 흘러나온 것은 재건의 고통을 이기는 놀이욕망의 관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놀이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와 시대적 상황은 그것을 분출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비난이 타자에 대한 분노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는 박정희정권 때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무렵에는 ‘가세가세 일터로 가세 새마을에 앞장서가세’라고 개사되어 불려 졌고, 이후 80년 신군부시절에는 아예 금지곡이 되어 버렸다. 사회악을 일소하겠다며 삼청교육대를 만든 그들 입장에서 놀이는 아마도 ‘탱자탱자 놀고먹는’ 타락으로 이해되었나 보다. 화란춘성 만화방창(花蘭春盛 萬化方暢) 좋은 시절에 적절한 삶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가사와 일에 내몰린 어머니는 몸이 아프고 나니 친구들과 어울렸던 그 짧은 일탈도 행복의 순간으로 기억되었나 보다. 언제부턴가 자꾸 머리가 아파서 MRI 검사를 했는데, 뇌혈관에 작은 혹이 보였다. 급하게 여기저기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뇌동맥류 시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했다. 담당의사는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뇌혈관에 손을 대야 하는 상황이고 보니 환자도, 가족도 모두 긴장한 상태였다. 시술을 앞둔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마음 상태가 불안하고 복잡했을 것이다. 도회지에 살았더라면 교사의 아내였던 어머니는 그럭저럭 간단한 살림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골 농가에서 시부모님 모시고 4남매를 키우는 종부로 큰살림을 사신 어머니는 마음 놓고 여행길을 나서지도 못했다. 잠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부부동반 계모임이었는데, 조석으로 시어른 끼니를 챙겨야 하는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마저도 사치였을 것이다. 산업화가 가속되던 그 시절 모든 어머니들의 삶이 다 비슷했겠지만, 병실 침상에 누운 어머니는 지난 삶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나보다. 외며느리로 집안 농사꾼 새참까지 챙기면서 내조와 육아를 감당해온 어머니는 당신의 이야기 도중에 손에 쥔 염주를 쉬지 않고 한 알 한 알 굴리셨단다. 앞만 보고 달려 온 세월과 시술을 앞둔 불안을 염주알로 어루만지셨나 보다. ‘한 밤중 시어머니의 일탈 사건’을 웃음으로 전하던 아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정신없이 삼남매를 키우고 막내까지 대학에 보내고 난 중년여성의 허전함이었을까,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까. 설 아래 언제 날을 잡아 아내와 함께 어디 가까운 데라도 다녀와야겠다.김종헌아동문학가

무덤에서도 한다던 홍역

매섭던 추위가 봄날처럼 포근하게 누그러졌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싶은 날이 이어지더니 갑작스레 대구가 홍역을 앓고 있다. 독감 유행의 연말을 보내고 신년을 맞아 모처럼 찻잔의 온기를 느끼던 날, 느닷없는 전화가 왔다. 홍역 대책 회의 소식이었다. 단체의 대표인 동료가 그 자리에 배석해야 한다며 자료를 좀 정리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그가 수련 받던 시절만 해도 병동뿐 아니라 외래진료실에서는 홍역을 수도 없이 많이 진료했었던 세대였기에 그때의 의사들은 홍역은 ‘척 보면 탁 알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병이었다. 심지어는 어릴 적에 앓고 지나가면 수월할 것인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할까 봐 걱정하는 할머니들도 계셨다. 평생 한 번은 홍역을 앓아야 하는 질병으로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흔하게 보는 질병이라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얼른 열이 떨어지고 꽃이 곱게 지기만을 기다리곤 하였다. 지난해 말, 지역의 한 병원에 입원한 아이가 홍역으로 판명 난 이후 대구가 홍역 유행지역으로 변해 아주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안부 전화가 걸려오더니 대책 회의와 방송 보도가 이어진다.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은 동대구역을 거쳐 지나가야 하는데 홍역 접종을 해야 하느냐는 문의까지 한다. 그뿐 아니라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는 한 친구는 자식 같은 그 어린 강아지에게도 홍역이 올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외출을 하지 못한다고 울상이다. 지금 SNS에는 ‘대구’를 치면 ‘홍역’이 뜰 정도이니 정말이지 홍역을 단단히 앓고 있는 셈이지 않은가. 홍역을 제대로 알고 올바르게 대처를 잘하기만 한다면 어쩌면 이번 일이 우리 몸의 저항력을 길러 줄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으랴. 홍역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급성 발진성 바이러스 질환으로 전염성이 매우 높은 감염병이다. 이전에는 소아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주요 질병이었지만, 백신 개발 이후 그 발생이 현저히 감소하였으나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직도 흔히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0~2001년 홍역 대유행 이후로 홍역 환자 발생이 급격하게 감소하였고 우리나라는 36개월 이상 토착형 홍역바이러스에 의한 환자 발생이 없고, 높은 홍역 예방 접종률과 적절한 감시체계 유지, 유전자형 분석 결과 등이 세계보건기구의 홍역 퇴치 인증기준을 달성하여 2014년 홍역 퇴치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는 아직 홍역이 발생하고 있어서 빈번한 해외여행으로 인한 국내 유입이 지속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보고되는 환자들은 대부분 국외에서 감염된 사례로 확인되고 있다. 홍역에 걸리면 초기에 감기처럼 기침, 콧물, 결막염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고열과 함께 얼굴에서 시작해서 몸통으로 퍼지는 발진이 특징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 홍역은 기침 또는 재채기를 통해 공기로 전파되며, 홍역에 대한 면역이 불충분한 사람이 홍역 환자와 접촉하게 되면 90% 이상 홍역에 걸릴 수 있다. 대개는 안정을 취하고 수분 및 영양 공급만으로도 호전 경과를 밟지만, 어린아이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홍역으로 인한 합병증이 올 수도 있다. 중이염, 폐렴, 설사·구토로 인한 탈수 등이 있는 경우엔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홍역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예방접종을 2회 모두 완료하였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홍역 면역의 증거는 MMR(홍역ㆍ유행성이하선염ㆍ풍진) 백신 2회 접종력이 있는 경우, 과거에 홍역 앓았다고 진단받은 경우, 홍역에 대한 항체가 있는 경우, 1967년 이전에 출생한 성인 등이다. 홍역 볼거리 풍진 접종인 MMR은 만 12세 이하 어린이는 국가 예방접종 지원 사업을 통해 전국의 지정 의료기관과 보건소에서 무료 예방접종이 가능하다. 만약 홍역 환자와 접촉한 경우에는 보건소나 질병관리본부(1339)로 연락하면 자세히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조금 있으면 설이 다가온다. 긴 명절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준비한다면 먼저 예방접종 여부부터 챙기는 것이 좋다. 그 지역에 유행하는 질병에 대해 예방하지 않고 갔다가 낭패당하지 않도록 질병에 대한 정보를 챙겨 미리미리 예방하자. 집 안팎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꼭 손 씻기를 철저히 하고 양치질 등 개인위생을 잘 지키며 특히 발열 및 발진 환자와의 접촉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귀국 후에라도 발열이나 발진이 발생할 경우에는 지체하지 말고 보건소나 병원에 연락하여 의사의 진료를 받도록 하자. 자기의 몸을 보호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건강을 지켜서 무덤에서도 한다던 홍역에 걸리지 않고 피해서 잘 살아가 보자.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품위와 품격이 유지되는 한 해

연초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신년 모임에서 한 여당 국회의원은 “국회에 의원회관을 지은 이래 대회의실에 가장 많은 분이 오셨다”라고 흥분했다. 이게 과연 흥분할 일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을 향한 이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이날 행사에서 그들은 “문대통령을 지킬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지옥 같은 10년을 참아냈다. 우리는 조연, 대통령님을 주연으로 만들자”라고 외치며 전 정권들을 지옥으로 표현했다. 이날 행사에서 한 팟 캐스터 진행자는 “성남의 조폭을 파고 있다. 이재명을 잡기 위해서라면 쫄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같은 당 소속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죽여야 하는 적군 취급을 했다. 상식과 정도를 벗어난 광적인 지지는 오히려 그들이 지키고 후원하고자 하는 주군을 곤경에 빠트릴 수 있고 반대 세력들의 결집을 자극한다. 이들의 과격한 언행과 이들에게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의 발언이 과연 대통령과 당에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신년 모임 이틀 뒤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연희동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광주지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법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강제구인하러 온다면 우리를 밟고 가라. 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북으로 날아가는 것을 막은 구국의 영웅”이라고 외치며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었다. 미국이 우리의 동맹, 혈맹 국가이지만 보수단체들의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를 흔드는 것은 어색하다. ‘우리를 밟고 가라’는 말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전, 현직 대통령 지지모임이 벌이는 과격한 언행 자체를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지지하는 사람을 정말 도와주고 싶다면 상대를 자극하지 말고 표시 안 나게 행동해야 한다. 과격한 시위나 공허한 구호는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기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주장한다. 상대의 말은 아예 들을 생각조차 안 한다. 그러다 보니 적폐 청산을 외치는 쪽이 또 다른 적폐가 되고, 정의를 외치는 쪽이 도로 그 심판대 위에 서야 하는 경우가 되풀이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을 때, 갈등과 증오는 확대 재생산 된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 정도 확립된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품위와 기품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은 선거 없이 실질적으로 세 번이나 대통령에 추대된 인물이다. 그는 10대 나이에 이미 정신적 귀족이 되기 위한 수칙을 정했다. ‘교양과 고결한 품행을 지키는 110가지 수칙’은 제수이트 교단의 수칙에서 따온 것이다. 아직도 미국에서 출판되고 있는 그 수칙에는 “비록 적이라도 남의 불행에 기뻐하지 마라. 아랫사람이 와서 말할 때도 일어나라. 저주와 모욕의 언사는 쓰지 마라. 남의 흉터를 빤히 보거나 그게 왜 생겼는지 묻지 말라” 등의 수칙이 있다. 품위와 품격이 있어야 존경을 받을 수 있고 권위가 생겨난다. 정치가 난장판이고 천박하니 나머지 모든 부분이 덩달아 막장으로 치닫는다. 미꾸라지, 망둥이, 양아치, 나쁜 머리, 양두구육, 내로남불 같은 말들이 국민들을 얼마나 화나게 하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세대와 세대, 계층과 계층, 이념과 이념이 첨예하게 맞서는 대립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서적, 심리적으로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말을 구사한다. 듣는 사람이 일시적인 쾌감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냉소와 독설, 조롱과 비꼬기, 약점 물고 늘어지기, 아픈 곳 찌르기 등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천박하고 비열한 언행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풍토 속에서는 생산적인 대화나 상생을 위한 양보와 대타협은 있을 수가 없다. 기해년 새해 벽두 모든 분야에서 품격과 품위가 되살아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품격과 품위는 일차적으로 말에서 나온다. ‘이청득심(以聽得心), 귀를 기울이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과 ‘사람의 향기와 품격은 말에서 나온다’는 경구를 늘 염두에 두고 생활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소중한 친구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 그는 학문에 대한 소양이 넓고, 토론도 조리 있게 잘하는 친구다. 공부도 많이 해서 서울의 사립 명문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교원이 갖추어야 할 현장 연구 실력도 탁월하다. 천학비재인 내가 그를 연모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는 교육학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도 대단하다. 철학, 역사, 기초과학과 고전에 이르기까지 만물박사다. 나는 그를 신판 양주동 선생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그는 학생 가르치기를 소홀하지 않았다. 각종 학력고사나 경진 대회에서 그가 가르친 아이들이 최상급의 성적을 내어 학부모가 담임으로 모시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결점이 있었다. 그는 똑똑한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소신파이다. 본인이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굽히지 않는다. 연수회나 사석에서 그와 반대 의견이 나올 때 그의 불같은 성격이 나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선시대 임금 앞에 목숨을 걸고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는 선비들을 상상하게 된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의견 대립이 많을 텐데 스트레스는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 그런 그가 안타까웠다. 그의 또 하나의 단점은 생각이 많고 소심하다는 것이다. 의사 결정을 한 번에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자니 본인도 피곤하고 다른 사람도 피곤하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탈이다. 따라서 일의 추진 속도도 느렸다. 소심하면 몸에 안 좋은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이 알고 똑똑하던 그도 병마에는 별수 없었다. 공직에서 퇴직 후, 몸 쓸 병마가 그를 덮쳤다. 나는 그가 공직에서 너무 과로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모든 일에 소심하게 일하다 퇴직으로 긴장의 끈이 놓인 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모임이 있어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만나고 보니 걱정하던 것보다는 몸이 좋아 보였다. 반가 왔다. 모임이 끝나고 둘은 조용한 찻집에 갔다. 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의 넋두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막상 몸에 병이 드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약봉지를 앞에 두고 울기도 하고, 한숨도 많이 쉬었다. 억지로 운동을 하지만 벤치에 앉아 씩씩하게 달리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니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었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나도 아프다. 내가 늘 복용하는 약이 네 봉지이다. 거기다 감기라도 걸리면 약은 한 움큼 더 보태진다. 약봉지가 탁자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찼다. 무슨 약이 그리 많던지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렇게 약을 많이도 먹어야 하나, 먹지 않으면 안 되는가’ 자학할 때도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병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다. 자신의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도 역시 자신이다. 의사는 그냥 멘토일 뿐이다.” 그러다 신세 한탄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술 한 잔 없이 긴 시간을 보내다니 참 우습지, 몇 년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몸이 아프니까 할 수 없네.” 둘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우리는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스트레스받고, 일에 집착하고, 술을 많이 마시고, 그래서 몸을 갈래갈래 찢어놓고, 이제 와서 세월을 탓했다. 일본에서 고령자가 어떻게 늙어 가는지를 추적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의 10%는, 90세가 넘어도 정정하다. 20%는, 60대 중반부터 쇠약해져 70대 중반이면 조기 사망하거나 요양병원행이다. 약골에 만성 질환이 많고 골골한 노인 타입이다. 나머지 70%는, 74세까지는 노인 일자리를 전전하다 75세부터는 병원에 자주 드나들다 요양원으로 간다. 나는 어느 부류인가. 어차피 인생이 바람이라면 그 바람 따뜻한 봄바람이면 싶다. 건강한 늙은이고 싶다. 아프다는 것은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힘든 시간 속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해본다. 어떤 이는 인간을 소우주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몸은 수많은 원자로 되어 있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수소, 탄소, 산소 등 원자는 밤하늘의 별에서 날아온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던 원자들은 다시 우주로 날아간다. 날아간 원자는 꽃이 될 수도 있고, 이슬방울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일지도 모른다. 원자들은 영원히 존재한다. 인간도 영원히 존재한다. 나는 아름다운 우주 속의 아름다운 원자이고 싶다.신동환객원논설위원전 경산교육장

새해엔 오통을

깔깔한 새 달력을 정성 들여 들여다본다. 붉은 돼지해가 밝은지 한 주가 흘렀다. 하루하루 소중하고 내 생애를 온전히 밝혀줄 날이지만, 마음먹은 일들에 대해 작심삼일을 되새겨야 할 때인 것 같다. 날마다 정성을 다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이루어 내는 한 해를 기대해도 좋지 않으랴. 원하는 대로 다 되는 새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채 시인의 시를 펼친다. ‘날마다 찾아가는 아침이라도 밤마다 이슬 같은 꿈을 꾸며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도록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하소서. 어떤 일이든지 결과보다 과정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여 설령 노력이 대가가 없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꿋꿋함으로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도록 하소서. 겸손과 친절로써 마음의 꽃잎이 부드럽고 생각의 향기가 아름다워 누구나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벗이 슬플 때 함께 슬퍼할 줄 알고 이웃이 아플 때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사람 그들과 늘 변함없는 우정으로 살게 하소서. 도움을 줄 땐 말없이 도움을 받았을 땐 그 감사함을 잊지 않게 하시어 나도 누구를 도울 수 있는 햇살같이 따뜻한 가슴을 지니게 하소서. 보석 같은 시간을 한순간이라도 헛되게 보내지 말고 오늘 뿌린 씨앗이 내일의 숲에 나무가 되고 잎이 되어 한 해의 삶이 기쁨의 열매로 가득하게 하소서.’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간다. 남은 사람마저도 만남이 뜸해져 외로울 때가 있다. 송년회에서 만났던 노교수님은 추풍낙엽이라는 말의 뜻을 절감한다고 하신다. 졸업동기생이 한해 수십 명씩 유명을 달리한다는 소식에 문상가기가 꺼려진다고 하셨다. 이별이 점점 많아져 가는 고적한 인생길에 서로서로 안부라도 전하며 마음 함께 하는 동행자로 쓸쓸하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지기를 고대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데 활력을 주는 것이 친구와의 동행만 한 것이 어디 있을까. 더불어 운동하고 맛있는 음식 함께 먹으며 추억을 서로 공유하다보면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지 않으랴. 세월 앞에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지 않은가. 하루하루를 즐겁고 보람 있게 지내며 내 생애를 온전히 밝혀줄 친구와 더불어 활짝 웃어야 하지 않겠는가. 친구의 영어 단어 프렌드(Fㆍrㆍiㆍeㆍnㆍd)를 풀어쓰면 ‘Free- 자유로울 수 있고/ Remember- 언제나 기억에 남으며/ Idea- 항상 생각할 수 있고/Enjoy- 같이 있으면 즐거우며/ Need-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고 /Depend- 힘들 땐 의지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친구와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하루하루 내가 가진 온 힘을 쏟으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을 분별하여 무리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 생은 단순하고도 평화로운 삶이 되지 않으랴.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따스한 눈빛과 긍정적인 말과 바르고 적극적인 자세로 주변 사람들에게 늘 정성을 다하며 확신에 차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100세 시대다. 건강을 지탱하려면 첫 조건은 바로 근육이다. 근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인슐린 저항성이 낮아져 당뇨 발병률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 감소증 예방을 위해서는 적절한 영양 공급과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며 운동을 한다. 바로 코그니사이즈(Cognicise) 운동법이다. 코그니사이즈는 인식 기능(Cognition)과 운동(exercise)을 합친 용어다. 근육도 단련하고 치매도 막자는 일석이조 운동법이라고 한다. 새해에 친구와 더불어 코그니사이즈 운동하면서 근육을 길러 즐겁게 살려는 결심을 해보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리라. 다시 작심하며 소원을 빌어보자. 새해엔 ‘오통(五通)’하게 하소서. 건강과 행운이 넘치도록 운수대통을, 하는 일마다 막히는 일없이 만사형통을, 닫힌 마음이 문을 열고 배려하는 의사소통을, 긍정적으로 웃으며 살자는 요절복통을, 자주 인사하고 먼저 안부전화 한 통을 하면서 살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리하여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어떤 파워를 가질 것인가

대학 교육이 왜 필요한가? 가끔씩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과 이 어려운 철학적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지금이라도 바로 취업해서 일할 수 있는데 굳이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취업만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대학 생활을 통해 얻는 경험은 그 어떤 다른 곳에서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네 삶에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세상 어디에 그토록 탁 트인 넓은 공간에서 갖가지 사상과 지식과 문화와 자유를 손쉽게 접하고 누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대학 생활을 즐기는 방법은 개인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대학 생활의 핵심이 수업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은 그때부터 학생이 아니고 수업을 하는 데 애정이 없는 교수는 진정한 교수가 아니다. 수업은 지식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인생을 가르치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필자가 수업 시간에 다루는 주제 중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유통 경로의 구성원 사이에 작용하는 ‘파워’의 종류다. 파워는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상대를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로 모든 사회적 관계에 적용될 수 있으며 그 종류에는 강압적 파워, 보상적 파워, 합법적 파워, 전문적 파워, 준거적 파워가 있다. 강압적 파워는 상대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행사할 수 있는 파워이고 보상적 파워는 상대가 갖고 싶은 것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지배할 수 있는 파워다. 임금을 삭감할 수 있다든지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자리로 보낼 수 있다든지 하는 것이 강압적 파워에 해당할 것이고, 반대로 임금을 올려줄 수 있다거나 편하고 좋은 자리로 보내 줄 수 있다면 보상적 파워가 작동할 것이다. 강압적 파워와 보상적 파워는 동시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으며 각종 부정이나 비리와 관련될 가능성 또한 높다. 합법적 파워는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지위로부터 생기는 파워, 혹은 어떤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계약의 효력에 의해 발생하는 파워다. 사장님이 고용한 직원들이 사장님 말씀을 따르는 이치이고, 국회의원이 정부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각종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많은 경우 합법적 파워에는 강압적 파워와 보상적 파워도 저절로 따라온다. 한편 합법적 지위가 부가적으로 가져다주는 파워가 있는데, 바로 파워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맺을 수 있는 관계다. 한번씩 ‘별다른 파워도 없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저렇게 집착할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자리를 이용해 각종 행사에 참가하고 유력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누구누구와 아는 사이예요”라고 자랑하면서 자신 또한 파워가 있는 것처럼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전문적 파워는 어떤 분야에 대한 식견과 전문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파워다. 대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며, 대학을 다니면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기도 하다. 준거적 파워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한 매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파워다. 생각이나 태도, 행동이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을 우러나게 하는 경우로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 개인을 희생하고 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 등 사회의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이 갖는 말과 행동의 힘이다. 합법적 파워는 지위를 잃으면 금방 잃게 되는 파워이지만, 전문적 파워와 준거적 파워는 외부 요인에 의해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 ‘파워 블로거’가 되는 것처럼 개인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지속된다. 그래서 합법적 파워만을 탐하는 사람들보다는 전문적 파워나 준거적 파워를 가진 사람들에게 합법적 파워를 부여하는 사회가 이상적이고 그러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다행스럽게도 ‘어떤 파워를 가지고 싶은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문적 파워와 준거적 파워를 답한다. 가끔은 강압적 파워와 보상적 파워를 원한다는 대답도 있다. 합법적 파워를 답하는 학생들은 그보다 조금 더 많다. 파워는 어쨌거나 공인된 힘이므로 나쁜 파워란 없다. 나쁘게 행사하는 파워가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문성과 인성을 함양하는 대학 교육을 통해 지향해야 할 것은 적어도 전문적 파워와 준거적 파워일 것이다.정인희금오공과대학교기획협력처장

낯익은 풍경 속 차가운 새날 아침

새해를 맞이하는 풍경이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겉도는 문자와 함께 트위터ㆍ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립서비스가 난무하고, 감각적이고 유희적인 인사말이 스마트폰 문자 창으로 흘러들었다. 새해가 돼지해라는 점에 착안하여 ‘곳간 채워도, 정 나눠도, 글 써도 뭐든 돼지!’ 이런 식이다. 오직 언어유희와 감각적인 재미로 한 해를 보내고 맞는다.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낸 것에 대한 감사,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함,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 등을 돌아보는 진지함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이렇게 겉도는 말 속에 우리들 삶도 헛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짜와 가짜가 뒤엉킨 채,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타자화시키는 가운데 묵은해는 넘어갔다. 누리사업 비리가 드러난 유치원은 적반하장으로 폐업을 선언하며 학부형을 괴롭혔다. 여성 인권을 찾겠다는 미투 운동마저 본질을 희석시키는 거짓 미투가 속출했다. 강사법 시행으로 대학에서는 시간강사가 대량 해고의 위기에 놓이고, 최저임금제 도입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알바생을 불안에 떨게 한다. 디지털 시대의 가벼움은 그 어느 때보다 감각에 치우쳐 재미만을 좇고, 본질과 비본질 그리고 진짜와 가짜는 뫼비우스 띠처럼 엉켜 돌면서 혼동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며칠 전 시 한 편이 인터넷을 달구었다.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 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 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 흘리다가/ 눈 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대통령의 성탄 메시지 속에 인용된 박노해의 ‘그 겨울의 시’란 작품이다. 날씨가 추워지자 장터 거지와 문둥이를 걱정하는 할머니, 그 할머니의 중얼거림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라 생각하는 어린 화자는 따뜻한 인간미가 넘친다. 그런데 시를 읽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성탄절과 세밑, 그리고 집권 3년 차로 접어드는 정치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시는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성탄 메시지로 읽으면 ‘애틋한 할머니의 마음이 곧 예수님의 마음’이다.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을 일깨워 준다. 세밑 풍경으로 읽으면 추운 겨울에 이웃을 돌아보는 훈훈한 정서가 생각난다. 문제는 집권 3년 차의 입장이다. 촛불 정국으로 국정 농단을 탄핵한 정부에 거는 기대로 읽으면 좀 씁쓸하다. 올해부터 최저임금이 시간당 8천350원으로 오른다. 또 시간강사법이 적용되어 강사의 신분이 바뀐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갑’(재계와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제에 반발을 했고, 대학은 예산 운운하며 강사의 대량 해고를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을’(비정규직 노동자)은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떨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정부도 그들이 야심 차게 시작한 소득주도정책의 근간이 흔들릴까 걱정일 것이다. 시 속에서 장터 거지나 소금창고 옆 문둥이를 걱정하는 사람은 ‘갑’이 아니다. 물론 거지나 문둥이에 비하면 할머니는 상대적으로 ‘갑’이다. 하지만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얼고, ‘한 겨울 얇은 이불’을 덮어야 하는 시적 상황을 보면 할머니 또한 ‘을’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들의 잠자리가 ‘괜찮을랑가’ 걱정이 늘어진다. ‘을’이 ‘을’을 걱정한다. 그래서 별다른 대책이 없다. 찬바람이 잦아들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최저임금에 불만이 많았던 재계와 소상공인들이나 강사법을 호도하는 대학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들 법안이 마련된 이후 현실은 시적 상황과 달리 ‘을’이면서 ‘을’이 아닌 ‘을’(시 속의 할머니 같은 위치)과 ‘을’(시 속의 거지나 문둥이) 사이의 갈등만 부추기는 듯하다. 눈초리만 치켜세우다가 주저앉는 ‘을’에게 새날 아침은 여전히 문풍지 시린 겨울밤이다. 시적 화자가 들었다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새겨 보는 새날 아침이면 좋겠다.김종헌아동문학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태양이 떠올라 온 세상을 밝게 비추다 지고 나면 세상은 붉은 돼지해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한 해 동안 계획한 일 중에서 이룬 것도 많았을 터이지만, 아직 매듭짓지 못해 아쉬움도 남을 것이다. 못다 이룬 일들일랑 잠시 접어두고 그동안 이룬 것들을 헤아려보면서 그래도 행복한 한 해였다고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으면 좋으리라. 옷깃이 여며지는 만큼 경제도 어렵지만 가슴만은 따뜻함을 잃지 않는 마음 부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행복은 그 사람이 마음먹은 만큼 온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힘든 일이 있더라도 용기 잃지 말고 웃음은 더더욱 잃지 말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찾아오지 않으랴. 주변에 마음 넉넉하고 착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지 않은가. 내년이 붉은 돼지해라고 한다. 지인이 보내준 연하장에도 붉은 돼지가 그려져 있다. 그러고 보니 헝가리여행에서 들어본 만갈리차 (mangalitsa)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양의 탈을 쓴 것처럼 복슬복슬 털을 뒤집어쓴 돼지, 얼핏 보면 살찐 양 같지만 사실은 돼지라고 한다. 어느 외신에서도 양털처럼 곱슬곱슬한 털을 가진 돼지 ‘만갈리차’에 대해 실은 기사를 읽었다. 스코틀랜드에서 돼지를 기르고 있는 한 사나이는 “만갈리차는 멀리서 보면 양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영락없는 돼지”라고 하였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동물인 ‘만갈리차’는 금색 또는 검은색의 곱슬곱슬한 털로 뒤덮여 있다. 양의 털과 비슷해 종종 양과 돼지의 교배종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멧돼짓과의 포유류이며 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그저 ‘털 달린 돼지’일 뿐이다. 만갈리차는 목초지 풀이나 감자, 호박 등을 주식으로 한다. 지방이 많고 살코기가 적어 현대에 들어 대체품종에 밀려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헝가리 농민 단체의 노력으로 헝가리 전통음식 만갈리차가 많이 알려져 있다. 바로 만갈리차 헝가리안 소시지다. 헝가리에서 특별한 돼지고기 만갈리차 요리는 아침 식사와 브런치로도 즐기는 메뉴이다. 헝가리 전통음식 만갈리차처럼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친구 가족과 함께 먹으며 늘 행복한 담소를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년 붉은 돼지해에는 언제 어디서나 헝가리에서 만갈리차를 맛보듯이 늘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나이 들어 건강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모두의 소망이리라. 노쇠란 의도하지 않은 체중감소, 피로, 신체 활동 저하, 악력 저하, 느린 보행속도의 5가지 항목 가운데 3가지 이상 해당하는 경우다. 증상이 1∼2개만 있다면 ‘노쇠 전 단계’. 이런 노쇠 예방의 열쇠가 친구에게 달려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나이 들어 친구를 자주 만나면 만날수록 노쇠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아주대의료원 노인 보건 연구센터 공동연구팀은 2016년도 ‘한국 노인 노쇠 코호트 연구’에 참여한 70세 이상 1천200명을 대상으로 노년기 친구, 가족, 이웃과의 접촉 빈도가 노쇠에 미치는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조사 대상 노인 중 노쇠는 9%, 노쇠 전 단계는 48.7%로 각각 나타났다. 노쇠나 노쇠 전 단계 모두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비중이 높았다. 사회적 접촉 빈도와 노쇠의 연관성은 친구와의 만남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가장 뚜렷했다. 평소 친구를 매일 또는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노인 중 노쇠 비율은 친구들과 월 1회 정도 또는 그 미만으로 만나는 노인의 노쇠 위험에 비해 3∼5배가량 낮은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조건에서 노쇠 전 단계 위험도 최대 1.27배까지 낮아졌다. 가족을 자주 만나는 것도 노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매일 또는 1주일에 한 번씩 가족을 만나는 노인의 노쇠 비율은 각각 9.9%, 7.6%로 가족과 만남이 거의 없는 노인의 10.6%보다 낮았다. 노쇠를 예방해주는 효과는 가족 간 만남보다 친구와의 만남이 더 컸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노년기 주변인과의 소통이 긴밀할수록 노쇠 예방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편으로는 친구를 만나는 등의 사회활동이 자연스럽게 노년기 운동 효과를 증진함으로써 노쇠를 억제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으로 올해 마지막 날을 기념해보리라.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잠들면 다음 날 깨어날 수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나는 행복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집니다.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아듀, 갈등과 분열의 무술년

“가치란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바람직한 것, 또는 인간의 지적ㆍ감정적ㆍ의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나 그 대상의 성질을 의미한다. 가치라는 것이 경험할 수 있는 사물로부터 유래된 것인가, 혹은 개인의 감정이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객관적 가치인가 주관적 가치인가를 논하는 가치론의 중요한 쟁점이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나오는 설명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가치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판단해야 한다. 또한 그것 때문에 평생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 살아야 한다. ‘충과 효’ ‘조국의 해방과 자유’ ‘반독재 민주화’ ‘절차적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소득주도성장과 시장경제’등 시대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대립하며 우선시하는 가치는 달랐다. 과거에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절대 가치’가 있어 개인은 그 가치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다. 봉건사회에서 ‘충과 효’는 절대가치였고, 싫든 좋든 그것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다양한 갈등과 분열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인류는 일방적인 ‘절대적 가치’의 강요로부터 ‘가치 상대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제 어떤 집단에서도 ‘가치 서열’을 정해 강요할 수가 없다. 개인은 사회나 국가, 특정 정당이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강령과 가치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우선 가치를 두고 벌인 갈등과 분열로 수많은 파국을 초래했다. 이런 불행한 상황의 반복 속에서 갈등 조정능력은 지도자의 주요 자질로 간주되었다. 인간 사회는 갈등의 해소 과정을 통해 성숙한다는 것도 일리 있는 말이다. 투쟁의 일반 이론을 구축한 랄프 다렌도르프를 비롯한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집단 간의 갈등을 역사 발전의 동력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끼리 집단을 형성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그들끼리 집단을 형성하여 갈등을 일으키는데, 사회는 그 갈등을 통해 내재해 있는 모순을 극복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극단적 갈등과 투쟁이란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생산적인 타협과 조정은 드물다. 시간이 흐를수록 적폐 청산을 주도하는 측 내부에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이라 주장하는 쪽에서도 여전히 맑은 공기와 맑은 물, 신선한 피의 공급은 없다. 고여서 썩은 물의 지독한 악취만 풍긴다. 그러다 보니 진보와 보수, 좌와 우, 모든 집단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국민은 극도로 피곤하고 고통스럽다. 국가백년대계인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만큼 점수에 의한 줄 세우기를 절대적 우선가치로 신봉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량평가 되는 수능점수와 교과 등급은 봉건 사회의 ‘충과 효’보다 더한 절대적 가치로 신봉된다. 수능 문제와 난이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점수 우선주의 가치관을 직시해야 한다. 프랑스와 독일,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공부 잘 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을 구별하여 ‘차별’하지 않는다. 공부가 적성에 맞는 학생과 그렇지 않는 학생으로 나누어 그것을 ‘차이’로 인식한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학생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으니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면 학부모는 교사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 권고를 따른다. 아이가 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시개편안과 수능 난이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사회와 개인 속에 내재해 있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먼저 응시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수학 잘 하는 학생은 우수한 학생으로 간주하고 드럼 잘 치는 학생은 노는 것을 좋아하는 불량기가 있는 학생으로 간주한다. 서로 다른 적성과 재능을 ‘차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존중해 주지 않는다면 그 모든 해결책은 백년하청이 될 수밖에 없다. 다사다난했던 무술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서로 대립하며 극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 ‘차별’하지 말고 다양한 가치관의 ‘차이’를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소망해 본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운명의 신

고대 그리스인이나 16세기 종교개혁자 캘빈은, 인간은 운명을 주관하는 신들의 손안에 있기에 그것을 변경시킬 수도 또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고 하였다. 물론 고대 그리스인과 캘빈의 신은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구원과 멸망은 신에 의해 사전에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대와 중세의 인생관을 지배한 운명론이다 정녕 인간의 운명은 신에 의해 예정된 것인가? 얼마 전 시골 산골에서 칠십 대 후반의 노인이 일으킨 살인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귀농한 외지인 노인과 지역민 스님과의 불화가 도화선이 되었다. 노인이 작성했다는 장부 안에는 ‘죽여야 할 사람들’이 기재되어 있었고 ‘능력이 되는 한 많은 사람을 사살할 계획’이라는 다중 살인 문구까지 있었다. 결국 노인의 총기 난사로 2명이 죽고 1명이 크게 다쳤다. 이 노인은 사전에 살인 예고를 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웃도, 면사무소도, 경찰서도 그저 그 말을 흘려 버리기만 하였다. 그들에게 그는 객지에서 굴러온 늙은이일 뿐이었다. 노인은 예고 한 대로 살인 행각에 나섰다. 먼저 분쟁 당사자인 스님을 찾았다. 스님과는 상수도 문제로 몇 번 다투었다. 총을 쏘았다. 사람을 향해 총을 쏘아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스님이 쓰러졌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은 것 같다. 노인은 경황이 없어 시신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 후 스님은 병원에 실려 가서 목숨을 건졌다. 2차 목표로 향했다. 마을 이장이다.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마을에 없단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길이다. 할 말이 있으면 오후에 만나자”고 했다. 이날 이장은 읍내에 볼일도 있고, 병원에도 가고, 겸사겸사 나선 것이다. 결국 이장은 목숨을 건졌다. 사람들은 이장이 운이 좋았다고 했다. 노인은 다음 목적지 면사무소로 향했다. 면장실에 들어가니 면장이 없다. 면장 역시 어머니를 모시고 도시의 큰 병원에 갔단다. 면장은 어머니가 평소에 당뇨합병증을 앓고 있어, 조만간에 병원에 모시고 가려고 하였는데, 어젯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났다. “얘야 병원에 좀 데려가 다오.” 꼭 생시만 같은 어머니 말씀에,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연가를 내고 병원에 간 것이다. 사람들은 어머니가 아들을 살렸다고 했다. 노인은 살인 대상자가 자꾸 없자 불안해졌다. ‘오늘 일이 안 되는 날인가, 꼭 죽여야 하는데.’ 다시 부면장을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부면장은 담배를 피우려고 자리를 비운 것이다. 담배를 피울 때마다 흡연구역을 찾느라 “흡연자의 권리도 생각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불평을 하였는데, 오늘은 불편하던 흡연이 그를 살렸다. ‘모두가 피신한 것인가.’ 노인은 순간적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폭발하지 못한 응어리는 심장을 터지게 할 것 같았다. 민원실 창구에 공무원들이 있었다. 조준했다. 딱히 개인적으로는 그들에게 감정이 없었다. 노인에게는 그들은 단지 자신을 우습게 아는 불특정 다수일 뿐이었다. 젊은 공무원 두 사람이 쓰러졌다. 두 번째 살인이었다. 팔다리의 힘이 풀어졌다. 눈앞에 시커먼 먹구름이 내려왔다. 이때 면사무소에 들어오던 다른 민원인이 노인의 팔을 붙잡았다. 면사무소 직원들도 달려들었다. 노인은 그들에게 제압돼 경찰에 넘겨졌다. 총을 맞은 면사무소 공무원 두 사람은 가슴에 총상을 입어 정신을 잃은 상태로 헬기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건을 운명이라는 거울로 들여다보았다. 노인의 장부에 적힌 살인 대상자, 스님과 이장, 면장, 부면장이 살았다. 엉뚱한 젊은이 두 사람이 죽었다. 더구나 면장은 어머니가 간밤에 꿈에 나타나서 살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될 법한 일이다. 이장 역시 그날 따라 병원에 갔기 때문에 살았다. 일련의 사태를 두고 운명론자들이나,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말들을 많이 할 것이다. 우리의 운명이 예정되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운명이 정해진 삶을 살아야 한다면 우리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얼마 있으면 새해가 시작된다. 새해에도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일상이 어제와 같이 변함없이 반복될 것이다. 일상 속에서 정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일탈하여 운명을 개척할 것인가는 오직 당신에게 달려 있다.신동환객원논설위원전 경산교육장

아름다운 새해가 되기를

희망으로 시작했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며칠 지나면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 속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꼬리를 감추리라. 해마다 이맘때면 송년 모임으로 노곤해진 몸을 달래며 벌떡 일어나 마구 달려가야 하는 출근길이다. 환절기 감기와 유행성 독감이 한창인 요즘이라 마음을 다잡으며 짐짓 씩씩한 걸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선다. 오늘 하루도 제시간에 맡은 일 잘해 낼 수 있기를 고대하며. 가운을 걸치고 책상 앞으로 다가서자 컴퓨터 모니터에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붙어있다. 투명한 셀로판지로 두른 포장엔 작은 종이 카드도 있다. 자세히 보니 며칠 동안 몹시 아팠어도 엄마가 없어 입원을 못 한다며 할머니와 함께 다니던 어린아이의 이름이 적혀있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아플 때마다 엄마처럼 보살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제법 어른스러운 필체로 써 내려간 글이 내 가슴을 울컥하게 하였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병원에 오면 늘 아련한 눈빛으로 나의 얼굴을 쳐다보곤 하더니…. 엄마가 얼마나 그리울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그에게 어떤 이미지였을까. 엄마였을까. 아니면 학교 선생님 느낌이었을까. 다음에 만나면 품에 꼭 안아 주어야겠다 다짐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듭 달이 되자 송년이라는 단어가 날아다닌다. 한 해 동안 느꼈던 괴로운 일들은 송년(送年)회라는 구실로 그냥 툴툴 털어버리고, 밝아오는 새해엔 오로지 새 희망으로 맞고자 하는 치유의 행사가 아니겠는가. 해가 바뀔 때마다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각오를 다진다. 돌아보면 잠시도 쉬지 않고 몸과 마음 모두 바쁘게 움직인 것 같은데도 턱 하니 내놓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크게 마음먹고 시작했지만, 이런저런 일이 중간중간 끼어들다 보니 주변에 폐를 많이 끼친 것 같은 해다. 작심삼일의 기억도 많다. 하지만 어쩌랴, 그 모든 것이 나의 인연으로 맺어진 일들로 인한 것인 걸, 인연이란 하늘에서 좁쌀 한 개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다가 거꾸로 박힌 바늘에 탁 꽂히는 것만큼 소중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모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하리라. 한 해 동안 정말이지 많은 일이 있었다. 기쁜 혼사도 있었고 또 집안 어른이라고는 시어머니가 유일하였는데 그분까지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는 슬픈 일도 있었다. 예견하지 못했던 일들을 치르면서 주변의 도움을 참으로 많이 받은 해이기도 하다. 눈 덮인 언 땅을 비집고 올라와 샛노란 꽃을 피우던 복수 초를 만난 듯 정말 두고두고 잊지 못할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길목에서 마지막 달랑 남은 달력을 보며 한 해를 정리해보려고 그동안의 마음을 담아 연하장을 만들기로 하였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 자체 제작 연하장이 인기라고 한다. 가족사진을 넣기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글귀를 담아 나만의 개성으로 만들어 인쇄하여 보내기도 한다. 우체국에서는 성탄절까지 그런 연하장을 받아 새해 아침 1월 1일이 되면 집집이 정확하게 배달하여둔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인근 우체국으로 연하장을 사러 갔다. 요즘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연하장을 그다지 많이 만들지 않았다며 통틀어 100여 장 남짓 남아있었다.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써주면 속지를 따로 인쇄하여 주문제작 연하장을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귀띔한다. 얼른 인사말을 적고 주소까지 적어서 몽땅 주문하였다. 연하장을 쓰려고 주소록 앞에 앉으니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치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 빨리도 지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들은 더 빨리 간다고. //중략//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목숨까지 떨어지기 전 /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중략// 아름다운 삶을 /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 보면 / 첫 새벽의 기쁨이 / 새해에도 /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이해인 수녀님의 ‘송년의 시’처럼 하루를 지내고 나면 더 즐거운 하루가 오고 사람을 만나고 나면 더 따스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더 행복한 일을 만드는 아름다운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