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인도 간 국경 난투극의 교훈

최근 인도 카슈미르 라다크 지역에서 중국군과 인도군의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중국, 부탄, 인도 세 나라 국경이 맞닿은 시킴 지역에서도 몽둥이까지 동원한 패싸움이 발생했다. 인도 북동부 국경지대인 아루나찰프라데시의 대치상황도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장장 약 3천500㎞에 달하는 국경을 서로 맞대면서 곳곳에서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이번 충돌은 1962년 중·인 국경전쟁 이래 처음으로 사상자를 낸 분쟁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은 양국이 분쟁을 진정시키길 원한다면서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평화적 해법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지만, 중국견제라는 절체절명의 현안을 감안한다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이 있다. 코로나 방역 실패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고자 양국이 상호 교감한 기획일 수 있다. 국민적 관심을 영토분쟁으로 돌려 민족주의를 자극함으로써 집권세력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꼼수는 늘 봐온 데자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인 국경분쟁에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대국 간 충돌이 조악하고 유치하다는 점이다. 수십 명의 사망자가 생긴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조폭의 관할다툼을 연상하는 주먹다짐 수준의 웃고픈 해프닝으로 비친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명하다. 두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발적 분쟁이 행여나 핵무기를 가진 두 나라 간 전면전으로 확대될까봐 쌍방이 조심하고 자제한 결과이다. 국경에서 상호 군사력 시위만 할 뿐 총마저 휴대하지 않는 사연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주먹다짐이나 돌팔매질을 하다가 기껏해야 방망이나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코미디 같은 군사충돌은 핵무기로 인한 공포에서 기인한다.핵전쟁이 두려워 전쟁을 하지 못하는 현상을 공포의 균형이라 한다. 쿠바의 미사일 위기가 전쟁으로 발전되지 않은 것과 중국과 인도의 국경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전되지 않은 것 등은 모두 공포의 균형 덕분이다. 핵무기가 지구를 멸망시킬 정도의 가공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역설적으로 지구의 평화가 유지되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 대체적으로 약 75년 간 평화를 구가하는 것도 아이러니 하게도 핵에 의한 전쟁억지력에서 유래한다. 평화는 냉전체제 하에서 양대 진영의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과 소련이 엄청난 수의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자기 진영 국가를 지켜준 공동방위 전략이 낳은 결실이다. 재래식 전쟁이 지엽적으로 간간이 발발했지만 나름대로 전쟁의 명분이 상대진영에 받아들여진 까닭에 세계대전으로 가지 않았다.이제 공포의 균형이 북한 핵 개발로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을 갖게 된 북한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달리 해석해야 한다. 휴전상태일 뿐 아직 내전 중이란 특수한 조건과 통일의 필요불가결성이란 뚜렷한 명분을 내세워 내전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환경 하에 놓여있는 현실이 폭발력 있는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한반도에 유엔사의 일원인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지만 종전이 선언되고 미군이 철수한다면 바로 내전이 재연될 여건이 조성된다. 내전은 다른 나라가 대놓고 참전할 명분이 없다. 내전이 발발한다하더라도 재래식 전쟁이 되겠지만 북한군은 미·중이 상호 견제하는 틈을 타서 단숨에 적화시켜버릴 개연성이 크다. 핵을 당장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쓸 수 있다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가질 것이다. 이로 인해 북한군이 사기충천하고 용기백배하여 싸우는 상황이 매우 위협적일 수 있다.이런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북한 핵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폐기시켜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와 미군주둔도 북한의 침략 야욕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방패막이다. 북한의 핵 보유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비빌 언덕은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 전략의 일환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한민국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상황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영원한 우방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장기 전략으로 독자적인 핵 개발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미국을 설득하는 한편 일본과도 상호 협조하는 윈윈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성공한 핵 개발이다. 시도해 보지도 않고 불가능하다고 꼬리를 내릴 이유는 없다. 한두 국가가 가진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이 추가로 더 가진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 군사력이 국가의 기본이고 강한 군사력만이 평화를 지켜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과 인도의 허접한 싸움에서 핵은 전쟁을 막는 강력한 수단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코로나 건망증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7월이 환하게 열렸다. 아직도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일상이다. 벌써 반년째다. 코로나19, 올해 봄 대구에서 있었던 폭발적인 발생은 아니지만, 산발적인 집단 감염이 이어져 언제 다시 폭증할지 몰라 불안한 심정이다. 수도권의 발생 소식에도 광주 전남의 소식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확진자가 된 학생들의 모습이 참 애처롭다. 아파도 내색조차 잘하지 못하고 온통 난리가 난 학교와 지역사회의 이목에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는가. 밥도 먹지 않고 너무 우울해 있는 환자에게는 코로나19에 걸린 것이 꼭 개인의 부주의만으로 생기는 것은 아닐 터이니 너무 죄책감 느끼지 말고 열심히 치료해보자고 다독인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모르는 순간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감염이 어디서부터 시작돼 누구에게로 옮겨 갔는지 그 역학의 고리를 밝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요즘 같은 깜깜이 환자들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행여나 코가 막히고 평소에 비염이 있던 환자이더라도 갑자기 냄새를 못 맡게 되고 입맛을 못 느끼면 코로나19 감염이 아닌가? 의심하고 꼭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젊고 건강한 이들 중에서 병력을 자세히 물어보면 어느 순간에 미각 상실이나 후각 상실이 동반됐다던 환자들이 꽤 많았으니까 그것도 자신이 먼저 의심해 볼 수 있는 증상일 듯 싶다.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도 무슨 맛인지 못 느끼고 평소에 잘 느끼던 냄새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이상한 기분이 먼저 들지 않겠는가. 그럴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길이고 또 내 이웃을 지키는 행동일 터이니.지독한 소독 냄새에도 전혀 끄떡없이 있던 한 사람, 쾌활해 보이던 한 환자가 묻는다. 냄새를 못 느끼고 맛을 못 느끼면 뇌세포가 사라져서 기억마저 없어지고 그러면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요? 코로나19로 회복만 되면 맛과 냄새는 대부분 돌아오고 치매는 다른 기전으로 생기니 미리 걱정하지 말자며 위로한다.환자의 느닷없는 질문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몇 달 사이, 코로나19에 묻혀 살다 보니 정말 건망증이 심하다. 코로나 건망증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질긴 적군과 싸우느라 방어력이 다 떨어졌을까. 쳇바퀴 도는 듯한 단순한 동선으로 집과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니 기억이 가물거린다. 깜빡이는 네온처럼 잠시만 다른 일을 생각하다 보면 그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 것만 같아 걱정이다.7월1일은 의료원 개원 106주년이었다. 1914년 대구 부립 전염병 관리 병사로 시작한 의료원이 100년이 지나자 본래의 업무로 복귀한 느낌이다. 대구지역 코로나 환자가 처음 발생하고부터는 전체 병상을 비워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역할을 하느라 다른 부대 사업이나 업무는 일단 다 미뤄 두게 됐다. 일반 환자들은 간간이 오기는 하지만 일반 병실은 코로나 전담으로 돼 격리 상태로 됐으니 입원할 병실도 없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직원들에게 맛있는 차를 만들어주며 그날그날 이야기를 잘도 전하던 커피숍 주인도 몇 달을 쉬게 되었다. 지난달 중순, 조금 안정이 돼 일반 환자들도 입원하고 외래도 다시 열어 진료를 시작했다. 기다림 끝에 그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병원 로비는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환자들과 직원들도 차 주문하면서 인사를 나눈다. 그는 커피를 내리고 난 찌꺼기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가 직원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시골에 텃밭이 있는 사정을 아는 그가 개원 기념일에 기념식을 대신 직원에게 커피 한잔과 케이크를 나누는 행사를 했기에 커피 찌꺼기가 갑자기 많이 있다면서 싣고 가라는 것이 아닌가.차를 몰아 병원으로 갔다. 회진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해 무거운 커피 찌꺼기를 그 차에 옮겼다. 볼일을 마치고 시골로 가서 텃밭에 손질하고 주변에 찌꺼기를 뿌렸다. 부엽토 속에서 숙성되기를 기다리며 나머지 볼일도 마쳤다. 텃밭의 토마토와 감자가 유난히 잘 돼 찌꺼기의 힘을 믿으며 흐뭇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해서 물건을 넣으려 내 차를 찾으니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내 차 어디 있는지요?” 남편이 이마를 ‘탁’ 친다. 건망증! 병원 주차장에 세워두고는 그냥 남편 차로 오고 만 것이다. 코로나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가. 마스크를 두고 내려 다시 돌아가고 유리창을 열어 두어 비에 흠뻑 젖고, 차를 어디 둔 지도 잊어버리고.청포도가 익어가는 칠월이다. 아무쪼록 정신 줄을 꼭 잡고서 건망증 없이 건강하게 여름을 잘 날 수 있기를.

치명적 자만에 빠진 정부는 자성해야

오철환객원논설위원최근 핀셋규제의 풍선효과에 힘입어 집값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또 독기 어린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내놓은 것 같다. 투기세력에 대한 증오가 배어있는 서슬 퍼런 대책이다. 엉뚱한 사람이 무단히 중독될 지경이다. 국민을 적으로 두고 절대 지지 않겠다며 독을 뿜는 정부가 표독스럽다 못해 광기마저 엿보인다. 무슨 콤플렉스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지만 지기 싫어하는 근성이 상하 불문 끈질기고 유별나다. 부동산대책은 보통 세 가지다. 첫째는 부동산거래제한이다.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제 등이 그것이다. 부동산거래를 통제함으로써 가격상승을 막아보려는 의도다. 이는 합헌성 여부마저 다투어질 정도로 위헌적 소지가 다분하다. 헌법 23조에서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보장하고 있는 점에 미루어 공공 목적으로 부득이 침해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아울러 헌법 119조에 규정된 바와 같이 자유와 창의에 터 잡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체제하에서 공익적 필요에서 예외적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권의 침해를 정당화할 만한 근거가 명확하여야 한다. 부동산거래제한이 최소 침해가 되도록 그 제한의 정도가 약하고 임시적이어야 한다. 둘째는 제1금융권의 부동산담보대출 제한 등 금융제재다. 보통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이 이루어진다. 신용대출도 가능하지만 제한적이다. 신용대출은 소액으로 제한될뿐더러 담보대출에 비해 이자가 턱없이 높다. 양성화된 사채업자가 대종인 제2금융권의 신용대출은 법정 최고이자율 수준이다. 담보대출 제한은 서민을 사채시장으로 내모는 꼴이다. 제1금융권 대출을 제한한다고 해서 돈이 필요한 상황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보대출이 부동산투기자금으로 전용된다는 가정은 터무니없다. 많은 서민들이 사업자금이나 생계자금을 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산층의 재산목록 1호는 기껏 집 한 채다. 자녀결혼이나 개인사업 등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걸핏하면 집 잡히고 빚내는 게 서민들의 일상이다. 정부가 이런 일상적 서민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서민이 사채를 쓰든 말든, 부동산만 잡으면 이긴다는 외눈박이 사고다. 즉시 금융제재를 풀고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셋째는 세금부과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대복지국가에서 세금을 정책도구로 활용하는 일이 다반사지만 항상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납세자의 담세능력과 인내 가능한 한도를 감안하여야 조세저항을 피할 수 있고 적정과세를 지속시킬 수 있다. 세금이 유용한 정책도구라 하더라도 이중과세나 불공정한 역진세가 되어선 곤란하고, 창의적 생산의욕을 꺾는 방식으로 운용되어서도 안 된다. 부동산가격안정보다 공평과세가 더 소중한 가치일 수도 있다. 가렴주구가 호환보다 더 무섭다는 옛말이 과장이 아니다. 세금을 남용하다간 큰 코 다친다. 부동산은 시간과 장소를 양축으로 다양한 요인에 의해 수요공급이 변화하여 독자적인 개별가격이 형성된다. 부동성, 부증성, 고정성 등 다른 재화와 다른 고유의 특성을 갖는 까닭에 가격변동요인을 인위적으로 조종하기 힘들다. 개별부동산의 가격형성도 난해한데 광범한 지역의 부동산가격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과욕이다. 현대와 같이 복잡다기한 사회에서 변동요인을 모조리 파악하여 의도하는 대로 가격을 조정하고자 하는 것은 실로 지난한 과제다. 때론 원인이 되고 때론 결과가 되어 다양한 요인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데다 개개인의 미묘한 심리까지 작용하고 보면 부동산가격 변동의 인과관계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물경제를 코너에 몰아넣어 투자처가 없는 상태에서 수십조의 돈을 풀어 놓으면 부동산가격이 급등하고 증권시장이 금융장세로 달아오르기 마련이다. 부동산문제는 인과응보다. 정부는 치명적 자만을 자성하고 바른 길로 돌아와야 한다. 더 이상 상식 밖의 일들을 겪고 싶지 않다. 이상향을 설계하고 그곳에 가고자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시행착오의 대가가 너무 크다. 이상향을 설계할 능력이 있고 그 이상향에 도달하는 길을 완벽히 알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모두가 풍요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정부가 모든 부문을 계획·조종하려는 모양이다. 사회주의 이념이다. 사회주의는 신과 같은 완전한 지적 능력을 갖춰야 유효하다. 그런 비현실적 가설은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이다. 지금은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그날은 언제일까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산삼이 돋아났다. 마른 솔 잎 사이를 뚫고 올라온 연초록 잎이 참 신기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 명씩 발생하던 때, 소나무가 우거진 앞마당을 묵혀두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지인이 어디서 산삼 씨를 구해 듬뿍 묻어두고 간 모양이다. 언젠가는 돋아날 것이라며 잔뜩 희망을 주더니 정말 기적이 자라기 시작이다. 날이 가고 해가 지나면 그것도 잘 자라서 언젠가는 5엽을 자랑하는 성숙한 산삼으로 당당히 커갈 것 같아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역에서는 일단 진정세로 들어선 모양새지만 수도권의 하루 확진자 숫자가 날마다 등락을 반복한다.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자가 격리 수칙을 준수하고 생활형 거리 두기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일상의 작은 접촉마저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기에 언제 어디서 다시 바이러스가 활동을 재개할지 모르니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아무리 위기에 닥치더라도 언제까지나 거기에 함몰돼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5월 들어서부터 청첩장이 간간이 오기 시작이더니 6월이 되자 그간 미뤄둔 결혼식이 정말 봇물이 터지는 것 같다. 주말이 되자 이곳저곳 가지 않으면 안 될 자리가 많아진다. 더러는 양해를 구하고 축의금만 보내지만, 우리 아이의 결혼식을 찾아와 축하해주었던 이의 혼사에는 찾아가 보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잠시라도 얼굴을 내밀기로 했다.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로서는 결혼식이라면 대개 일생에 한 번 있는 일일 것이기에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지 않겠는가. 모처럼 붓 펜으로 정성 들여 쓴 축의금 봉투를 들고 결혼식장을 찾았다. 코로나19로 결혼식장은 여느 때 보다 절차가 하나 더 생겼다. 비접촉 체온 측정 후 방명록을 작성하고 손 소독을 하고 들어간다. 식장으로 들어서니 그동안 만남이 없었던 오래된 옛 동료들도 간간이 눈에 뜨인다. 반가워서 얼싸안다가도 ‘거리 두기’를 외치며 화들짝 놀라 멀찍이 떨어진다. 코로나 걱정으로 한산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참석 인원에 의외라는 기분이었다. 참석자들은 마스크를 쓰고서 가능한 대화를 줄이고 테이블에 조용히 그러면서 될 수 있는 한 멀찍이 앉아서 결혼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추세에 따라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이다. 신랑 아버지가 단상에 올랐다.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은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평생 고락을 함께 하는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신랑의 아버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성혼 선언문 낭독이었다.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신랑 아버지가 머뭇대며 이야기를 잇는다. 자식 결혼식을 처음 하다 보니 혼인 서약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받지 않고 성혼 선언문을 먼저 낭독했다는 것이 아닌가. 웃음이 터져 나오며 박수가 이어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신랑과 신부에게 혼인 서약에 대한 맹세를 듣고서 재차 성혼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결혼식에서 작은 실수가 어쩌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남아 그 결혼식을 더 기억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웃음이 난다. 며칠 전 책에서 본 한평생 시계만을 만들어 온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어느 시계공 아버지가 자신의 일생에 마지막 작업으로 온 정성을 기울여 시계 하나를 만들었다. 완성된 시계를 아들에게 주었다. 초침은 금으로, 분침은 은으로, 시침은 구리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 초침보다 시침이 금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대답했다. “초침이 없는 시간이 어디에 있겠느냐? 작은 것이 바로 되어 있어야 큰 것이 바로 가지 않겠느냐? 초침의 길이야말로 황금의 길이란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손목에 시계를 걸어주면서 말했다. “1초 1초를 아껴 살아야 1초가 세상을 변화시킨단다.” 언젠가는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다시 찾은 일상은 코로나 이전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하는 습관도 들여야 할 것 같다. 작은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큰길로 가는 길을 놓치고 말 수도 있을 터이다. 단 1초의 순간, 그 선택이 어쩌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상임위원장 독식을 보는 소회

오철환객원논설위원법사위를 비롯한 노른자위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일방적으로 가져갔다. 제1야당은 거세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명하고 등원을 거부하고 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의장 독단으로 상임위원을 배정한 일은 전대미문으로 의정의 새 역사를 쓴 셈이다. 내친 김에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 제1야당은 상임위원장 거부라는 자해적 초강수로 배수진을 쳤다. 이에 덧붙여 앞으론 남 탓일랑 하지 말고 국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야당은 오직 국민만 보고 정책개발과 정권견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국회 개원 때마다 국민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상임위원장 쟁탈전을 벌이느라 원 구성 법정시한을 넘기기 일쑤다. 국회 원 구성안이 힘겹게 타결된 이후에는 각 당에서 배정받은 자당 몫 상임위원장을 두고 같은 당 동료 의원들 간 제2라운드 상임위원장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만큼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상임위원장이 어떤 권한과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여야 따질 것 없이 서로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는 걸까.우리 국회는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모든 법안은 해당 상임위에서 실질적으로 협의·토론되고 조정·타협되어 가결되거나 부결된다. 해당 상임위를 통과한 여러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만 보통 해당 상임위의 심의를 존중하여 형식적 절차를 거쳐 통과된다. 그런 까닭에 우리 국회에선 상임위원장을 ‘국회의원의 꽃’이라 부른다. 그 중 법사위는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로 가는 길목이다. 그런 까닭에 법사위를 상원이라 부르며 여야가 서로 차지하려고 눈독을 들인다. 하지만 상원이 없는 상황을 감안하여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도록 법사위 위원장을 제1야당 몫으로 주는 것이 관례다. 이번에 이 관례마저 허무하게 깨졌다.상임위원장은 회의를 진행하고 여러 위원들의 의견을 조율한다. 회의를 소집하거나 폐회하는 권한을 갖는다. 회의진행 전반에서 재량권이 주어지고 가부동수일 경우 캐스팅보트를 갖는다. 통상적인 각종 회의체의 의장이 갖는 회의진행 권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국회 상임위원장의 권한은 원활한 회의진행과 관련한 일상적 것일 뿐이다. 따라서 정상적 상황에서 회의가 진행된다면 위원장을 어느 당의 어떤 의원이 맡든 그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법안상정을 독단적으로 하고 회의진행도 편파적으로 할 작정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상적 상황에선 위원장은 단지 진행자일 뿐이지만 회의가 파행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면 위원장이 고유한 회의진행 권한을 악용할 여지가 다분하다. 결국 정치가 후진적일수록 위원장의 부정적 역할이 커지고 선진적일수록 위원장의 권한은 상식적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여당의 상임위원장 싹쓸이 욕심은 야당을 패싱하고 국회를 독선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저의로 읽힌다.상임위원장은 의원회관 사무실과 별도로 넓은 상임위원장실이 주어지고 매달 쏠쏠한 특별활동비가 지급된다. 그 밖에 여러 가지 부수적인 특혜가 주어진다. 상임위원장의 명예가 지역구 유권자에게 어필될 뿐 아니라 예산배정에 예우를 받게 되는 것도 ‘프린지 베네핏’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수적인 특전은 잿밥일 뿐이다. 염불보다 잿밥이 현실이긴 하다. 잿밥은 상임위원장 쟁탈전을 더욱 치열하게 하는 불쏘시게다.여당은 전체 의석의 5분의 3을 확보한 상태다. 정상적으로 원 구성하고 상임위를 가동해도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다. 발의된 법안을 상임위에서 실질적으로 심의하지만 사실 개의하기 전에 뒷방에서 협의·조율하여 사전에 결론을 낸다. 공식 회의는 법적인 요건 충족을 위한 절차적 요식행위일 뿐이다. 행여나 여야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라도 여당이 5분의 3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패스트트랙에 실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원하는 법안통과가 목적이라면 상임위원장을 독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독식하겠다는 뜻은 국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독선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속내를 은연중에 드러낸 신호다. 모든 완장을 독차지함으로써 야당을 물 먹이고 잿밥도 깡그리 챙기겠다는 의미다. 다수의 힘만 믿고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거대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은 그야말로 등롱망촉이다. 여당에게 몰표를 준 국민의 뜻은 여당이 갑질하고 잿밥을 모조리 다 챙기라는 말이 아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수틀리면 전복시킬 수도 있다.

삶이 행복해 질려면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잠깐 내린 비가 세상의 먼지를 다 씻어간 듯 산뜻한 하늘이다. 선별진료소 당직을 서다 보니 여러 가지로 가슴이 아릿하고 먹먹하였다. 결혼식을 앞두고 자꾸 열이 오르내리는 듯하여 걱정만 해대다가 검사라도 받고서 음성임을 확인하고 꼭 참석하고 싶어서 왔다는 초로의 신사, 이제껏 일하다가 잠시 쉬고 난 다음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니 코로나 검사 결과를 요구하여서 할 수 없이 검사하러 오게 되었다는 할머니, 소방관 시험을 보려고 마음 단단히 먹고 자가격리에 준하는 생활을 하다가 시험 당일 일찍 출발하여 시험장에 들어가 있다가 잠시 밖에 나와 친구에게 전화 후 들어가려고 다시 잰 체온에서 높게 나와서 바로 119를 타고 들어온 젊은이의 사정이 참으로 딱하게만 느껴진다.평소 같으면 하지 않아도 될 검사에 불필요한 걱정이지만, 코로나19의 현재 같은 전국적인 발생의 위험 상황에서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시험을 준비하다가 잠시 오른 체온으로 선별 진료를 받게 된 젊은이는 아무리 설명하여도 검사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면서 접수부터 문진 수납 검사에 이르기까지 의료진의 진을 빼게 했다.선별진료소를 가봐야 한다고 했지 검사해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냐며 끝까지 우기는 통에 더운 여름날에 상대하는 이들의 체온이 더 확 오르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직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만 내 신용카드를 내주었다. 이것으로 계산하고 검사하고 가도록 하라고 일렀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고맙다든가 미안하다든가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검사를 마치고 지루하게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를 타고 돌아갔다.직원들이 속이 상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이리 어루만지고 저리 달래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많고 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잊어버리자면서 마음을 달래주었다.나날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숲들은 뜨거운 태양을 고스란히 이고서 성하의 계절임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려주려 애쓴다. 녹음이 짙은 정원의 나무들에 눈을 돌리며 마음을 달래보려고 계족산 등산을 다녀온 지인이 두고 간 책 하나를 펼쳐 들었다. 마음 명상록이었다.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인각사를 다녀왔던 터라 깨끗해진 마음으로 단숨에 읽었다. ‘구나· 겠지 ·감사’가 마지막에 남았다.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3단계 비법이 지금 같은 코로나 19로 우울감이 드리운 시대엔 특효약이 될지도 모르겠다.1단계는 마음을 상하는 일을 당했을 때 ‘그가 내게 이러는구나’ 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대개는 쉽지 않을 터이다. ‘아니 감히 내게?’ 하며 속이 상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반응 아니겠는가. 그러나 마음을 1초만 가라앉히고, ‘그가 내게 이러는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 된다.2단계는 ‘이유가 있겠지’ 라며 양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어떤 행동이나 말에는 이유가 다 있다. 단지 내가 그 이유를 모를 뿐이다. 어쩌면 상대에게는 이미 충분한 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 꾹 참아왔던 것이 여러 번의 자극으로 폭발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 어쨌든 상대가 그러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3단계는 ‘~하지 않는 게 감사하지’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은 늘 있을 수 있다. 얼마든지 더 나쁜 상황이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좀 다행스럽지 않겠는가.마음이 거의 모든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할 때 자기 자신에게 신경 쓴다. 남이 하는 이야기도 본인에게 비추어 생각하곤 한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나에 관해 화살표를 향하지 말고 상대방이 무슨 생각과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하면 크게 배려도 할 수 있고 더 넓은 세상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선한 자는 타인을 돕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고 악한 자는 어리석게도 자신의 이윤만 챙기는 것이 행복인 줄 알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만 잘 다스리면 우리의 삶이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목걸이라도 목에 걸 때 의미가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오솔길이더라도 즐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구나·~겠지·~감사’. 성자들의 가르침 중에서 지금 우리가 행하면 정말 좋은 약이 된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불편한 상황, 불쾌한 마음이 드는 경우에 기계적으로가 아니고 명상적으로 ‘~구나’ ‘~겠지’ ‘~감사’를 실천해 가며 즐겁게 잘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마음만 잘 다잡고 있으면 이런 힘든 날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

이름뿐인 더불어민주당

오철환객원논설위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단독으로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고 15일 다시 단독으로 법사위 등 6개 상임위 위원장을 선출했다. 18개 상임위를 단계적으로 독식하려는 살라미전술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의사결정방법이 표결이고 표결은 통상 다수결원칙을 적용한다. 국민이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준 탓이니 여당을 원망하지 말라면 야당은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만다. 허나 곰곰이 따져보면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국회의원 과반이 찬성한다고 해서 국민행복의 극대화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양적 다수가 질적인 우위까지 담보해주지 못할뿐더러 선출된 대표가 신뢰할 만큼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진 민주국가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소수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그 타협점을 찾아 합의를 도출하는 이유다. 마지막 한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주는 모습에서 소수는 비로소 승복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다수결에 의한 표결은 최후의 수단일 따름이다.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면 외눈박이로 세상을 보게 되어 균형감각을 잃고 편견에 사로잡혀 결국 분열과 갈등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 다수의 전횡은 자만과 오만을 초래함으로써 오판과 실패의 길로 이어진다. 어느 누구도 항상 옳은 사고나 판단을 할 수 없다.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라고 반드시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가 잘 보여준다. 따라서 다수의 힘에 의존하여 소수를 핍박한다면 더 이상 사회발전을 이끌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진보정당이 한때 다수당이 되었다고 하여 영원히 다수당으로 남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감히 소수를 배제하거나 탄압하지 못한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보다 수적으로 많다. 만약 진보정당이 소수당을 따돌리고 독단적으로 전횡한다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의사결정에 임하여 다수결원리에만 의존하다보면 이성적 판단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소수자의 소중한 지혜를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극소수의 지혜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꾼 사례가 드물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나 미래에도 변함없을 것이다. 범상하지 않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성소수자와 같이 간과하기 쉬운 사람 중에 괄목할만한 천재가 출현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전혀 무관해보이진 않는다. 이쯤 되면 소수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일은 손해만 보는 배려가 아니라 길게 보아 남는 장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이 소수자를 배려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아도 소수를 묵살하는 다수는 옳지 않다. 실체적 정의 못지않게 절차적 정의 또한 실현되어야 참다운 정의가 구현된다. 실체적 정의가 콘텐츠의 옳고 그름을 말한다면 절차적 정의는 과정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뜻한다. 절차적으로 소수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다수결은 실체적 정의도 만족시킬 수 없을뿐더러 온전한 정의는 없다. 편의와 결과만 좇는 정치는 민주주의를 할 자격도 없다. 현 여당의 명칭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야당과 더불어, 반대하는 국민까지 더불어 함께함으로써 모든 국민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꽃피우자는 의미로 읽힌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핀다는 교과서적인 지식 정도는 기본이다. 그렇다면 야당을 포함한 모든 국민과 더불어 국정을 운영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당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진짜 문제는 잘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몰라서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 알면서 시도조차 않는 것이 더 나쁘다. 야당과 협치를 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것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잘 보고 있다가 선거 때 엄중하게 심판하는 유권자의 속성을 여당은 잘 곱씹어봐야 한다. 과반의석의 힘만 믿고 오직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이 합당하다면 국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순간 국회의 문을 닫고 모든 결정을 다수당 마음대로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타협할 필요도 없다. 표결의 결과가 뻔한 상황에서 예산을 써가며 굳이 회의를 할 필요가 있는가. 소수당 국회의원에게도 다양한 의견을 내고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국정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갈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국회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함께 논해야 그게 정상이다. 여당이 진정 롱런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야당을 국정동반자로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고 함께 국정을 끌고 가야 한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나홀로독재당을 하자는 건가.

더불어 살아가야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어렵게 개학을 한 고3인 아이가 중간고사 시험을 쳤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선다. 챙겨주지 못해 고깃집에 들러 쇠고기 한 근을 받았다. 느닷없이 주인이 “이제 재난지원금은 모두 다 써 버렸나 봐요. 손님이 이젠 통 오지 않아요.”라며 말을 건넨다. 재난지원금으로 그동안 고깃집이 성황을 이루었던가. “요즘은 시장보다는 성형외과가 한창 성황이라던데….맞아요?“ 금시 초문이라고 답하니 그가 믿거나 말거나 하는 표정이다. 코로나로 인해 늘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하니 얼굴에 손을 대는 성형외과가 때아닌 호황이라는 것, 재난지원금으로도 성형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들었다는 것,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의 딸도 반색해대며 호기심을 나타내더라고 했다. 그가 살짝 전한다. “딸내미가 제 얼굴이 바로 재난(?)이라서 재난 지원금으로 처리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 끝에 답을 하더라는 것이 아닌가. 재난 지원금의 참뜻은 그것이 아닐 터인데 하면서 웃고 말았지만, 재난을 당한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돕겠다는 지원금일진대, 평소에 얼굴이 못마땅해 재난처럼 생각했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어쩌면 삶의 활력이 되지 않으랴 싶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쓸 수야 있겠지만, 세상에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긴급한 필요에 요긴하게 쓰라고 준 돈이 그렇게도 풀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해외에서 입국하여 지루한 자가 격리 생활을 하던 아이는 재난 지원금 대상이 아니라고 나와서 못 받으니 오히려 그것의 쓸모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였다. 자신이 쓰지 않고 기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니, 주면 주는 대로 못 받으면 못 받은 대로 이 재난을 슬기롭게 잘 이겨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코로나-19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수도권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n’차 감염으로 방역에 비상이다. 9월까지 짜인 선별진료소 당직 표를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날마다 11시와 2시에는 중앙방역대책 본부와 질병관리 본부의 브리핑에 온통 신경이 다 가 있다. 처음 코로나 환자가 입원하여 며칠이 지나자, 물품과 일손이 부족해 간호사들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수학적 모델에 의하면 4월 말이면 수그러들 양상이고 늦어도 5월에는 끝이 날 듯하다고. 가능성을 전해 주었다. 그러자 반색하며 생기가 돌았던 그 얼굴들은 이젠 우울함으로 찌들어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도 벌써 4달이 지나가니 코로나로 우울함에 시달리는 코로나 블루 환자들이 늘어간다. 사람과 왕래도 없이 가만히 은둔에 가까운 생활이 여러 달이다 보니 자연히 우울감이 찾아 들지 않으랴.과거엔 별로 심각하지 않았던 감염병으로도 목숨을 잃곤 하였다. 급성 감염병은 치료제를 발견하고 백신을 주사하여 치료하는 개념이 도입되었다면 현재는 만성형 질환이 많아졌다. 급성 감염성 질환은 완치의 개념이 있지만, 만성형 질환은 완치보다는 관리 개념이다. 급성 감염병이 치료되면 완치이니 그 상황이 종료된다. 그러나 만성형 질환은 완치가 어려워 계속해서 꾸준히 관리로 상태를 유지하는 수밖에는 없다. 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증상이 심해지고 잘하면 증상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질병과 삶이 평생 함께하는 동반자처럼 더불어서 살아가야 한다. 관리는 365일 24시간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 옆에서 24시간 365일 관리를 해 줄 수 없기에 치료의 주체는 의료 전문가에서 환자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환자 중심 의료이다. 현재 코로나19가 이어지고 특별한 치료 약이나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코로나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러니 BC(Before Corona)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완치보다는 만성형 질병의 관리 AC( After Corona) 개념을 도입해서 코로나와 환자가 동반자 WC( With Corona)나 가족처럼 함께 살아갈 마음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몇 달 전 영국에서 공부하다 귀국한 지인의 아이가 전해준 이튼 칼리지의 교훈이 문득 떠오른다.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마라, 약자를 깔보지 마라,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잘난 체하지 마라, 공적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80여 일 가까운 격리 생활을 마치고 나오며 그가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는 세 마디가 있었다. 바로 ‘약자를 위해’, ‘시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였다. 지루한 생활에도 마음을 다잡고 끝까지 이겨낸 그에게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코로나19와 싸우더라도 지치지 말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불어 살아가기를 그리하여 쾌적한 여름을 잘 나기를.

양수겸장 식 동시선거는 좋지 않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 대선과 지방선거가 2022년에 치뤄진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대선일은 그 임기만료일전 7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이다. 현 대통령의 임기만료일은 2022년 5월9일이고 그 임기만료일전 70일은 민법 기간계산방법을 적용하여 역산하면 마지막 날이 만료되는 시점인 2월28일 자정이다. 그 이후 돌아오는 첫 번째 수요일은 ‘주간 수 계산 표준’에 의하여 2022년 3월 2일(수)이나 그 전일이 삼일절로 국경일이어서 공직선거법 예외규정에 의하여 그 다음 주 수요일인 3월 9일이다. 제8회 지방선거일은 그 임기만료일전 3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이다. 그 임기만료일은 2022년 6월30일이고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하면 지방선거일은 2022년 6월1일이다. 결론적으로 다음 대선일은 2022년 3월9일이고 다음 지방선거일은 동년 6월1일이다. 대선을 치르고 세 달 만에 또 지방선거를 치러야 할 처지다. 이런 사정 때문에 동시선거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근거는 대략 세 가지다. 첫 번째가 선거예산 절감이다. 대충 봐도 양대 선거를 병합하면 선거비용이 줄 것 같다. 숟가락만 하나 더 얹어놓으면 되는 상황이 상상된다. 실제 약 1천500억 정도 절감된다고 한다. 양대 선거의 총 비용 약 1조4천160억의 10% 정도다. 1천500억도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생각만큼 절감되지 않아 보인다. 지방선거기간 14일이 대선기간에 맞춰 23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선거를 동시에 실시할 경우 선거기간은 긴 쪽에 맞춰 조정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 규정이 아니더라도 동시선거에서 각각 다른 선거기간을 적용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두 번째는 국력낭비 방지 차원이다. 양대 선거 모두 전국적 선거이기 때문에 국론이 극심하게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선거를 세달 사이에 연달아 두 번 실시한다면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에 한번으로 통합·실시하는 편이 국력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세 번째는 국민편의 증진 차원이다. 연달아 두 번씩이나 선거를 치르는 일은 국민을 성가시게 하고, 안 그래도 투표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투표율을 더 떨어트린다는 주장이다. 동시선거를 주장하는 3가지 근거가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양대 선거를 동시에 해야 할 만큼 설득력 있어 뵈진 않는다.첫째 예산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주권자의 중대한 주권행사에 대해 비용의 다과를 시시콜콜 따진다면 민주주의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였다고 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고 소모적이기도 하며 비경제적인 개념이다. 비용절감에 높은 우선순위를 둔다면 공정한 시험을 통해 대표를 임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둘째 국력낭비 방지는 과장된 핑계다. 주권자의 대표를 뽑는 과정을 국력낭비라 보는 자체가 부적절하다. 두 번 선거하면 국력낭비고 한번 선거하면 국력낭비가 아니라는 말도 억지논리다. 두 차례의 작은 태풍이 한 차례의 큰 태풍보다 피해가 더 크다고 우기는 것과 진 배 없다. 국력낭비라는 그 이면에 간교한 계략이 숨겨져 있다는 의혹을 갖게 한다.셋째 국민편의 증진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주장은 하지 않은 만 못하다. 국민이 불편하다고 국가대사를 몰아서 합치자는 말은 선거를 성가신 일로 치부하거나 선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사안의 경중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동시선거는 그 근거가 약하다.대선과 지방선거는 국가중대사이기도 하지만 서로 독립적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적이지 않다. 따라서 어떤 선거가 다른 선거에 흡수되어 묻어가는 식이 되어선 곤란하다. 둘을 동시에 하면 대선이 지방선거를 잡아먹을 가능성이 높다. 대선의 이슈와 바람에 묻혀 지방선거가 실종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방선거가 무의미하게 되는 셈이다. 거의 1조 원대의 예산이 드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유명무실해진다. 대선과 국회의원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를 각각 분리하여 실시하는 것은 그 이유가 있다. 세 종류의 선거가 독립적으로 판단되어 주권자의 바른 선택을 이끌어내도록 고안된 결실이다. 선거일을 법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각각의 선거를 통해 견제와 균형이 보완되도록 주권자에게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는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간격이 여유롭지 않긴 하지만 양대 선거를 합쳐야 할 명분은 뚜렷하지 않다.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 점도 넘기 힘든 장애물이다. 현행법대로 각각 따로 실시하는 것이 순리다. 양수겸장 식 동시선거는 좋지 않다.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새빨간 꽃이 텃밭 귀퉁이를 화사하게 밝힌다. 다가가 보니 양귀비꽃이다. 여러 번 씨를 뿌려두어도 싹트지 않던 꽃이 이제 드디어 때가 되었던가. 이웃에서 한 포기 묻어주었을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생각지도 않던 의외의 꽃이 피어나 하루의 행복을 더해준다.꺼질 듯 꺼지지 않고 자꾸만 되살아나는 코로나 불씨가 걱정되어 뉴스에 눈을 주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시상식 가시죠?” 시집 한 권을 내밀며 입사 동기 팀장이 인사를 건넨다. 핸드폰 글쓰기 모임에 시인인 가족이 멤버로 참가하였다는 것이 아닌가. 특별상 수상자 이력을 보니 누이가 근무하는 병원이라 반가워 알은체를 한 모양이다. 일전에 그 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지인 추천으로 원고를 부탁받고서 얼른 써서 핸드폰으로 보냈었다. 출판기념회에서 두 명의 특별상을 시상하는 데 그중 한 명에 선정되었다면서 시상식에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코로나19가 아직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먼 거리를 이동하기에 망설여져서 불참을 통고하였다. 팀장이 다녀가고 난 다음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일었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그 모임에 너무나도 잘 알고 지내는 동료의 가족이 있을 줄이야. 정말이지 세상에 비밀이 없다더니, 보이지 않는 수많은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허리를 똑바로 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하였더라면 어쩔 뻔했겠는가. 정말이지 인생은 어느 순간에라도 최선을 다해 조심조심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는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서는 코로나19 감염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꺼질 듯하면서도 꺼지지 않고 자꾸만 여기저기서 생겨난다. 한쪽을 집중하여 처리하다 보면 또 엉뚱한 곳에서 생기곤 한다. 모두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개인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하지만 사람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는가. 탁구장에서 마스크를 하고 운동을 하면 숨이 찰 터이니 벗어 던져버렸을 터이고, 건강과 면역이 중요하다고 하니 또 건강식품 방문 판매 업체에 연로하신 분들이 모여들지 않았으랴. 폭발적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하였던 대구에서는 이젠 학원 강사 전수조사에서 한 명 발생할 정도로 어느 정도 통제권에 들어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던가. 숫자 0이 아닌 1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온몸이 긴장된다. 혹시라도 또 폭발적으로 일어날까 봐서다.의외의 뉴스가 이목을 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자가 격리 조치를 위반한 40대 남성이 체포당했다는 소식이다. 해외에서 입국해 2주간 자가 격리 통보를 받고 주거지에서 격리 생활을 하던 중 격리 장소를 무단으로 이탈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보건소가 경찰에 신고하였고 온갖 장비를 동원해 거의 2일 동안 탐색 끝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붙잡혔다고 한다. 경찰은 “앞으로도 보건당국과 협조해 자가 격리 위반자에 대해 신속하게 검거해 엄정하게 사법처리 하겠다”고 한다. 지루한 자가 격리 생활이 끝나고 나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찰의 수사일 터이다. 자가 격리, 말로는 쉬울지 모른다. 2월 중순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검사를 하여 자가 격리를 시작하였던 한 가장은 자가 격리 생활 90일째라면서 우울하다고 하였다. 밖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가족들이 모두 음성이 나오고 다시 2주를 자가 격리하다 보니 사람이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라면서. 자가 격리 생활을 시작하였던 큰아이도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고 토로한다. 귀국하자마자 검사를 하고 자가 격리 생활을 하면서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시기에 정해진 시간에 문진표를 보내고 담당 공무원의 전화를 받는 것이 고역이었다고 한다. 일일이 챙겨주어서 고맙기 그지없는 배려이지만, 피곤함에 지쳐있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연락과 방문이 어쩌면 서로에게 수고로움이 아닐까 싶었다. 법을 어기는 줄도 모르고 답답한 마음에 전국을 떠돌았던 것은 아닐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일탈의 유혹에 넘어갔을까. 밖을 나서면 수많은 제3의 눈이 지켜보고 있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은 하루 평균 80회가 넘게 CCTV에 찍힌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시작해 지하주차장, 출근길 교통기록 카메라, 버스 내부, 골목길 방범 카메라에 이어 차량의 블랙박스까지. 보통 이동할 때 수도권에선 거의 9초에 한 번꼴로 찍힌다고 하니 우리의 일상은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제3의 눈으로 둘러싸여 있떤 셈이다. CCTV는 범죄 해결이나 예방에 도움을 주어서 이런 자가 격리 위반자도 쉽게 찾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싱그러운 여름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소식 들으며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그날까지 모두 조심조심 살아가기를.

신뢰를 잃으면 정치는 없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 총선이 끝난 지 달포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있는 듯하다. 지역구 공천에 대한 시시비비도 끊이지 않지만 날로 증폭되고 있는 비례대표 공천 잡음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설상가상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 비상한 해명이 요청된다. 부정선거 의혹은 SNS를 뜨겁게 달구다가 이젠 유력 언론마저 관심을 보이는 형국이다. 선거부정 의혹은 주로 대선과 관련하여 패한 쪽에서 뜬금없이 들쑤신 적은 있었지만 총선에서 시스템과 관련된 조직적 개표조작을 주장한 일은 전례가 없다. 불신 풍조가 팽배하고 선관위의 공신력마저 땅에 떨어졌다. 신권 다발처럼 빳빳한 사전 투표지, 전자개표기가 표를 잘못 인식하는 장면, 연속용지처럼 붙은 사전 투표지, 빵 상자에 담긴 투표지 등의 자료들이 인터넷으로 공유되었다. 사전 관외 투표지가 개방된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감시원도 없이 우편으로 허술하게 이동되는 장면이 시민단체에 의해 유튜브로 방송되어 충격을 주었다. 중앙선관위는 투·개표 과정을 공개 시연했지만 정작 의혹을 제기해온 전문가들의 현장 입장을 막았다. 의혹 해소 차원에서 시연한 것이라면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참여시켜야 될 텐데 관련전문가를 배제한 조치는 이해하기 힘들다. 공개 시연은 왜 했는가. 프로그램 조작 여부에 대해 확인 불가한 전자개표가 절차적 정당성을 갖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선거관리를 공명정대하게 했다 하더라도 의혹을 갖거나 불복하는 사람은 요건을 갖추어 선관위나 법원에 해명이나 법적 판단을 물을 수 있다. 낙선자가 개표조작을 의심하여 진상을 밝혀달라고 선관위나 법원에 요구하는 건 정당한 권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표조작은 터무니없다며 불쾌해하고 자료공개마저 거부하는 태도는 공복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낙선자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기는커녕 불복하는 사람을 귀찮아하고 시원한 해명을 거부하며 전문가의 조사를 배제하는 행위는 공정관리를 스스로 저버리는 어리석음이다. 전자개표를 이해할 만한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입회하에 공개 시연하고 시스템을 잘 설명함으로써 철저히 검증받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낙선자의 충격을 치유하기위하여 심리치료나 정신과치료를 주선해주진 못할망정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을 해선 안 된다. 낙선자들은 주권자이자 국가가 보호해줘야 할 약자다. 공명정대해야 할 선거행정을 국민이 불신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는 부정선거의 사실여부완 별개의 문제다.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임을 깨달아야 한다.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무슨 일을 해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부정선거 논란이 신뢰 문제로 전환되는 셈이다. 공자는 정치란 군사, 경제 그리고 신뢰라고 했다. 이 셋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군사를 버리라고 했고, 나머지 둘 중에서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경제를 버리라고 했다.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정치가 작동될 수 없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경제와 군사도 결국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온다. 상앙의 이목지신(移木之信) 고사도 공자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현대국가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와 리더십의 출발점은 신뢰다. 신뢰를 얻으려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법적 안정성도 국민의 신뢰를 지켜준다. 법적 안정성은 공적인 결정을 뒤집지 않는 것이다. 행정행위에 공정력과 존속력을 주고 판결에 확정력을 인정하는 이유도 법적 안정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는 장치다. 일사부재리나 일사부재의도 마찬가지다. 공적인 결정이나 판단을 손바닥 뒤집듯 하면 누가 정부를 믿겠는가.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꼴이다. 물론 구체적 타당성도 중요하다. 사안의 정확한 판단도 중요하지만 안정성도 그에 못지않은 소중한 가치다. 법원의 판결을 재심하고 정부 결정을 재조사하려는 잦은 시도는 국민의 신뢰를 깨는 자해다. 한사람을 구하려다가 전부를 잃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선거부정 논란도 불신에서 싹텄다. 항간에 불신풍조가 만연한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판단기준으로 내로남불이 적용되고 거짓말이 어느덧 일상적인 일인 양 되었다. 뻑 하면 재조사고, 걸핏하면 재심청구다. 과거를 마구 뒤엎다 보면 제 발밑까지 꺼지는 법이다. 이런 정부를 누가 신뢰하고 따를 것인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 나라의 기강은 신뢰의 단단한 기반 위에서 제대로 선다.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을 이끌어내려면 그 실마리를 신뢰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코로나가 우리 삶을 정말 바꾸었나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정말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한다. 혼자서 실실 웃음을 날릴 정도로 흥겨운 마음으로 발걸음 가벼이 시골로 향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서니 길가에는 코스모스를 닮은 노란 꽃들이 줄지어 피어나 불어대는 바람에 흔들거린다. 아카시아 향긋한 향내를 등에 업고 어서 오라고 반갑게 손 흔들어 환영해대는 것 같다.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른 하늘과 길가의 노란 꽃들, 코끝에 스며드는 향내가 행복한 기운을 마구 솟구치게 한다. 누구라도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고 싶어진다.3월 말로 임기가 끝난 지회장의 자리를 코로나 사태로 넘겨주지 못하고 있으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임원들과 의논하면 그때마다 의견이 분분하여 결론을 못 내었다. 할 수 없이 익명으로 개최에 대한 찬반투표를 하였다. 결과는 10중 8이 방역 수칙을 지켜 간략하게 식을 치루고 넘겨버리자는 의견이었다. 일단 결정하자 일사천리로 총회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의사들이니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모범을 보이는 차원에서라도 생활 속 거리두기를 하면서 모임을 성공적으로 잘 진행해 보자며 결의를 다졌다. 여느 총회 같으면 초대해야 할 손님도 많았겠지만, 대부분 생략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겠다는 분들이 많았다. 서울 이태원 발 코로나 확진자가 자꾸 발생하는 상황이라 혹시라도 감염이 생기면 그 감당을 어찌할까 걱정 많이 되어서 인원을 최소로 제한하였다. 새로 바뀐 중앙의 집행부에서도 참석한다고 연락이 왔다. 마음은 고맙기 그지없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걱정이 이만저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행여 오고 가는 먼 길에 일이라도 발생하면 어쩌나 싶어 몇 차례나 걱정스럽다는 뜻을 전했지만 대구·경북 회원을 격려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무 탈 없이 행사를 치를 수 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맡은 임무를 할 때는 몰랐었는데 임기가 끝나고도 옷을 벗지 못하고 있으려니 빌려 입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정말 불편하였다. 두 달이나 늦게나마 번갯불에 콩 구워먹 듯 어깨를 누르고 있던 짐을 벗어 버리고 나니 정말 날아갈 듯 홀가분하였다. 임원들도 같은 기분인지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저녁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손님들이 다 떠난 강당 앞에서 그간의 고생담을 이야기하면서 얼른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회포 풀 날을 잡아보자고 한다.회원들과 헤어져 차를 천천히 몰아 집에 도착하니 미국에 사는 아이가 카톡을 여러 개 보내 놓았다. “시원섭섭하시죠? “, ”이젠 아빠한테 공사다망(공과 사가 다 망한다) 한다는 이야기는 안 듣겠네요.“ ”엄마만의 시간을 느긋이 즐겨보세요.” 창의력 퀴즈도 풀어보세요. ‘창의성 퀴즈’에 들어갈 숫자는 무엇일까요? 〈18=6 23=11 10=10 13=?〉문제를 풀어보면서 잠시나마 허전해질 엄마의 마음을 달래보라고 하는 아이의 배려인 모양이다. 입고 있던 겨울 외투를 벗은 듯 홀가분하기만 한데, 자꾸만 “시원섭섭하지?”라고 묻는 이들이 있어서 언젠가 정말 그런 기분이 들까? 싶은 생각도 든다.코로나19가 심각하게 밀려왔던 대구·경북은 큰 전쟁을 치르고 났으니 어지간한 환자 발생에는 대결 능력이 생긴 것처럼 여겨진다. 그동안 심하게 두들겨 맞았기에 어느 새 맷집이 생긴 것이다. 서울발 코로나가 지역사회로 스며들어 산발적으로 대구에도 발생하고 있다. 고등학생 개학으로 발생한 코로나 무증상 환자도 입원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입원 환자수는 많이 줄었다. 코로나 전담 병원이다 보니 아직 일반 입원환자는 받을 수 없고 외래 진료만 열어서 환자를 진료해야 하니 병원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스텝 회의를 하는 중간에 무거운 침묵과 한숨이 오간다. 코로나가 끝나야 일반 환자가 마음대로 오갈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코로나가 우리 삶을 정말 많이 바꾸어간다. BC(Before corona 코로나 발생 전),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고 한다. 어쩌면 코로나는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우리 인간의 삶과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때때로 나타났다가 조금 더 신경 써서 처리하고 관리하고 모두 마음 쓰면 사라지는 척하다가 또 나타났다가 하면서 자꾸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런 의미로 본다면 AC가 아니라 어쩌면 WC(with corona)의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랴 싶다. WC는 (water closet) 화장실을 뜻하지 않은가. 코로나는 치료약이나 백신이 없기 때문에, 치료제가 있고 백신이 있는 감염병을 치료하는 완치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매일 매일 화장실을 드나들면서 우리의 건강을 살피고 관리하듯이 끝까지 자기 스스로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신경써야하는 것, 바로 관리의 개념을 도입해야 하는 난제일 듯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시간이 없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 일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정의연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정의연의 비리는 천인공노할 일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팔아 영달을 추구했다면 그분들을 두 번 팔아먹은 행위다. 전모를 명백히 밝히고 죄 값을 치러야 한다. 위안부 피해회복의 정의와 정의연의 비리는 별개라는 시각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다. 성역이라는 방어막을 걷어야 할 때다. 최근까지 불거진 의혹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모두 정의연과 리더 개인의 비리에 집중되어 있다. 정의연은 피해회복의 정의와 그 필연성을 방패삼아 버티려 한다. 의혹 해소는 커녕 이상한 언행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 그것도 남의 다리를 긁는다. 기가 찬다. 갈등의 배후에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이 있다는 전혀 엉뚱한 음모론을 내놓았다. 문제의 초점을 흐리고 의혹을 뭉개려는 의도다. 정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친일 세력이 자신들을 공격한다는 말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정의연이 그렇게 주장하는 입장을 이해할 순 있다. 그렇더라도 잘못된 조직 운영과 각종 비리를 덮고 그냥 갈 수 있다는 인식은 오산이다. 적법한 절차와 과정이 정의로운 결과를 담보한다. 백보를 양보하여 정의연에 대한 비리 폭로가 친일파의 공격이라는 점을 수용한다고 해도 달라질 일은 없다.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이 친일파든 친미파든 비리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일본을 좋아하든, 미국을 좋아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 의지다. 일본과 일본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일제나 식민 지배를 찬양한다는 뜻은 아니다. 흘러간 역사를 두고 미래에 태어난 사람이 역사적 사실에 매여 연연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역사로 미래를 포박할 수는 없다. 이제 친일 프레임은 역사 속의 유물로 묻어둬야 할 때다. 이사가 불가능하다면, 일본이든 중국이든,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서로 좋다. 감정이 남아있어도 큰 틀에서 전향적인 자세로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정략적 목적으로 정치권이 앞장서서 이웃나라와 불화를 조장하는 일은 한심한 자해 행위다. 자국제일주의란 발톱은 숨겨둬야 제 맛이다. 자국중심주의는 힘의 우위가 그 전제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이웃나라와 당당하게 서고 자국민의 생명과 이익을 지킬 수 있다. 부국강병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위안부 피해자 피해회복은 화급하다. 피해회복은 일본의 사죄와 금전적 배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피해회복을 한꺼번에 해결하면 최선이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단계적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들이 90대 고령이기 때문이다. 남은 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금전적 보상이 급선무다. 원인제공자 일본에서 돈을 충분히 받아내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시간이 걸린다면 국가가 선 보상을 해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국가가 힘이 없어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한 책임이 크다. 국가가 힘이 없고 가난하면 여자와 애들이 개고생 하는 점은 만고의 진리다. 사적인 일로 침몰한 세월호 사건에 비하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책임은 보다 명확하다. 세월호 유족에게 보상한 금액의 반에 반만 해줘도 지금 위안부 피해자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는 시간을 두고 끈기 있게 해결해나가야 할 장기과제다. 피해자에게 보상을 미리 대신 했다면 구상권이 발생함은 물론이다. 국가 차원에서 구상권 행사를 강력히 추진하기 곤란할 땐 시민단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정의의 깃발아래 뭉친 자발적 모임이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의 보상 여부나 생존 여부와 관계없이 눈치 보지 않고 위안부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 위안부 합의로 받은 10억 엔을 모두 피해자에게 신속히 나눠주는 한편, 민간에선 반대운동을 강력히 전개하는 등 민관 양동작전도 유용한 선택지로 남아있다. 지금도 늦지 않다. 실리적 대응이 아쉽다. 시민단체라 하더라도 투명한 회계처리와 적법한 운영은 도덕적 규범을 넘어 법적인 의무다. 항상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타인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눈은 소금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탈선할 개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시·감독이 필요하다. 법과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목적이 정의롭다고 법을 무시하라는 법은 없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시간이 없다. 피해자들의 옹색함과 불편함을 외면하는 것은 정의를 떠나 죄악이다. 돈부터 먼저 줘야 한다. 어떻게 처리하든지 그 뒤처리는 국가 책임이다.

모두가 바라는 간절한 소망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후두두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요란하여 밖에 나서 보니 노란색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있다. 쇠로 된 울타리 봉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배경으로 장미는 울타리를 신나게 타고 오른다. 봄이 찾아온 줄도 모르는 사이 5월은 끝자락으로 달리고 울타리를 장식하는 장미 송이를 보면서 어느 해 봄, 작은 포트에 담겨왔던 장미 모종을 떠올린다. 얼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느새 자라나서 저리도 탐스러운 꽃을 피우다니. 힘들다고 아우성을 해대는 인간에 비해 작고 여리기만 한 식물들은 얼마나 변함없이 또 알차게 고단한 시간을 엮어서 예쁜 꽃을 피우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신통하기만 하다.거리에 작게나마 활기가 돈다. 지난주 고3 개학으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손길이 분주하다. 학교에서는 열나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하루 세 번도 넘게 열을 체크하고 일회용 개인 식사를 나르느라 바쁘고 집에서는 마스크를 챙기고 손 소독제 주머니에 넣어 보내느라 바쁘다. 병원에서는 학교에서 의심 증상으로 보낸 아이들을 선별하고 입원할 아이를 받느라 분주하였다.이번 주엔 초등 1, 2학년과 유치원생이 드디어 학교에 간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걱정스럽지만, 입학통지서를 받고 아직 입학식도 못 한 어린 친구들은 학교를 무척이나 그리워한다. 학교 가면 얼마나 뛰어다닐 것인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면 반갑다고 얼싸안고 얼굴 맞대지는 않을지, 우르르 몰려다니지는 않을지, 답답하다며 마스크를 벗어 던져버리진 않을지 좀 걱정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은둔의 생활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학교에 가서는 꼭 마스크를 쓰고 있도록 가르치고 친구들 간에도 양팔 간격 이상을 꼭 유지하도록 누누이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린 학생들이 처음부터 잘 지킬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겠지만, 학교에서 처음부터 잘 가르쳐서 방역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하리라.날씨는 점차 더워지니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는 없고 마스크 끼고 공부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잘 참아낼까 우려는 된다. 오랜 시간 마스크를 쓰다 보면 호흡으로 인한 습기가 찬다. 그러면 바이러스 차단 효과도 떨어질 수 있으니 어릴수록 마스크는 더 자주 갈아주는 것이 좋다. 귀한 마스크를 자꾸 갈아줄 수 없다면 2~3개의 마스크를 말려가며 교대로 착용하는 방법도 권한다. 마스크를 꼭 쓰고 거리 유지를 하면서 구석구석 손을 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손 씻기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어린 학생들에 대한 상황도 고려하여 바른 대책을 세워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학교에서 손 씻기 한다고 모두 한꺼번에 수도꼭지 아래 모여드는 것도 문제일 것 같다. 양치질할 때는 더 조심해야 하리라. 마스크 벗고 물을 튀겨가며 칫솔질하다 보면 혹시 모를 감염에 노출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도 된다.아이들에게 가정에서 물 없이 발라 비벼 말리기만 하면 소독되는 손 소독제를 하나씩 챙겨 넣어서 조금이라도 자주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어떤 물체에 손이 닿았다면 바로 꺼내서 수시로 바르고 소독하도록 교육해야 하리라. 손을 씻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손 소독제는 완전히 마를 때까지 비벼주고 마스크는 자주 손으로 만지지 말고 얼굴에 손을 갖다 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손이 제일 더럽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눈, 코, 입이 가려워도 균이 있을 손을 대지 말고 그냥 꾹 참게 하거나 다른 천 같은 것으로 문지르는 것이 좋다 일러주어야 한다.어린 학생의 등교도 중요한 과제이겠지만, 입시를 앞에 둔 고3만이야 하겠는가. 저학년 학생들의 등교를 조금씩 유연하게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순차적인 개학이라고 하지만, 일단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 감염이 확산할 위험은 언제나 상존하니 말이다. 예전 과밀 학급이던 시절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2부제로 수업하던 때도 있지 않았는가. 현재도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또 경북의 한 지역에서도 감염 원인을 알 수 없는 확진자가 자꾸 발생하고 있다. 저학년 학생들의 등교 개학은 일단 시작은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우려되는 상황이 되면 바로 조처해서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플랜 B로 돌아가도록 해주면 어떨까 싶다.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올해 입학하는 아이, 그의 소원은 “지금 당장 학교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표정을 보면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모두 한 마디씩 우려를 표시하는 개학이다. 일단 시작해보고 조정하는 수밖엔 다른 방도가 없지 않으랴. 힘들게 코로나19를 이겨낸 아이의 소원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길.

고용보험과 여론조사

오철환객원논설위원“고용보험 적용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시행해 우리의 고용안전망 수준을 한 단계 높이겠다”며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부응한 듯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전 국민 고용보험’ 가입에 대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응답자의 70.4%가 ‘전 국민 고용보험’ 가입에 찬성했다고 보도했다.‘전 국민 고용보험’ 가입과 그 여론조사의 부당성에 대해 앞서 미처 지적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을 몇 가지만 간단히 짚어본다.모든 문장의 의미는 문리적 해석이 그 기본이 되고 다른 측면의 해석도 모두 거기서 출발한다. 그런 뜻에서 우선 문리적 측면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문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모든 취업자가 혜택을 받는 고용보험을 말하려면 ‘전 사업장 고용보험’이란 용어가 명확하다. 대학생, 미취업자. 실업자, 주부 그리고 은퇴자 등을 생각하면 비취업자 수는 취업자 수 못지않다. 그들을 유령 취급하여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지칭한 것은 터무니없다. 큰 틀을 보지 않고 용어나 단어 하나를 보고 꼬투리를 잡는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술자리 객담도 아니고 국가원수가 향후 국정 비전을 밝히는 특별연설에서 엉성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혹시라도 그런 착오가 있었다면 즉각 잘못을 시인하고 조속히 시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른 척 그냥 뭉개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전 국민’이라는 말에 정치적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의혹만 불러일으킨다. 정직이 최선이다.‘고용보험 전 사업장 확대’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할 목적이라면 조사당시 현재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취업자를 대상으로 설문해야 의미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기존 의무가입자에게 묻는 것은 설문 자체가 무의미하고 대답해도 건성으로 응답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생을 포함한 미취업자나 주부, 은퇴자의 경우도 고용보험을 모르거나 무관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모두 설문조사대상에서 빼는 것이 조사의 목적에 부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내용에 무관한 국민을 표본에 무차별하게 편입시킨 조사는 의미가 거의 없다. 결과를 보지 않아도 찬성률이 높게 나올 것은 정한 이치다. 이런 결과를 예측하고도 고의로 그렇게 했다면 국민을 기망하려는 미필적 고의로 볼 수밖에 없다.고용보험은 그 내용이 다소 난해하고, 당사자의 보험료 부담이라는 비수가 숨겨져 있다. 그런 까닭에 유의미한 표본에 설문을 하더라도 고용보험의 내용과 부담에 대한 설명이 선행된 이후라야 비로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산출물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다짜고짜로 ‘고용보험 전 사업장 확대’에 대한 찬반 여부만 묻는다면 굳이 돈 써서 여론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 좋은 것에 대한 긍정적 성향과 기존 수혜자의 자동 뻥이 작용하는 상황에선 찬성률이 부풀릴 건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예측가능하다.‘고용보험 전 사업장 확대’는 필요하다. 하지만 고용주와 취업자 양쪽이 보험료를 부담하는 보험이기 때문에 경제상태와 소득수준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확대해 가는 편이 맞는다. 고용보험 사각지대는 임시적으로 국가가 선별 지원하는 방법으로 보완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지금은 경제위기다. 당장 한 푼이라도 아쉬운 취업자와 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고용주에게 고용보험을 강제할 적기는 아니다. ‘고용보험 전 사업장 확대’는 속옷도 없는데 양복부터 사라는 것과 진 배 없다.언제부턴가 다양한 여론조사가 여러 회사에서 유행처럼 실시되고 그 결과가 시도 때도 없이 발표되고 있다. 맞으면 좋고 안 맞아도 그만이다. 사실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모른다. 좋게 보면 주권자들의 의견을 물어 국정에 반영하려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독선적인 정책에 동력을 실어보려는 꼼수이거나 포퓰리즘으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략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물들어 중립적 도구가 나쁘게 사용된 사례를 역사에서 쉽게 찾는다. 여론조사도 나쁜 이기심으로 윤색되어 존립 근거마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여론을 고의로 왜곡하는 일은 국민을 속이는 사기와 다르지 않다. 영리와 권세를 얻으려는 의도로 여론조사기관이 정치세력과 영합하여 국민을 호도하는 일에 앞장선다면 머지않아 그 설 땅마저 잃을 것이다.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멀리 봐야 생문이 열린다. 여론조사는 다른 생각을 버리고 조사에만 충실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