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원의 망발을 지켜보면서

오철환객원논설위원지난 해 10월, 대선에 출마하려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한 의원이 총선에서 자기한테 진 주제에 환상 속에 살고 있다고 빈정거렸다. 그러한 내용의 신문기사를 보고 참 철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몇 달이 지난 시점에 다시 유사한 기사가 떴다. 오 전 시장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총선에서 자기가 떨어트린 사실을 들먹이며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글을 SNS를 통해 내놨다. 남의 가슴에 두 번씩이나 비수를 꽂는 막말을 접하면서 참 독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정치적 계산으로 ‘조건부 정치’를 한다며 오 전 시장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그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무상급식을 두고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대립하고 있던 상황에서 직접투표를 통해 서울시민의 의견을 물어보고 자신의 주장이 과반에 미치지 못하면 서울시장을 사퇴하겠다는 것,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 힘’에 입당 안하면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는 것,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차기 대선을 포기하겠다는 것 등을 적시하며 힐난했다.그런 것들이 ‘조건부 정치’인지 모르겠지만 조건부라서 나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 임기 중 무책임하게 중도 사퇴함으로써 보궐선거를 통해 유권자를 성가시게 하고 예산을 낭비하게 한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조건부로 사퇴했다는 사실에 대한 비난은 생뚱맞다. 무슨 일이든 인과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원인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선택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극히 일상적이다. 안 대표의 입당을 촉구하는 함의와 서울시장을 대선의 징검다리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진의를 정작 몰랐던 건지, 모른 척했던 건지 불가사의다.선거의 패배는 병가지상사이고 그 승패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진 않는다. 민심은 수시로 변하고 다수결이 정의나 진리를 판별해주진 않는다. 선거는 단지 민주주의의 유력한 도구로 가치를 가질 따름이고 절차적 정당성으로 실체적 정의를 대신할 뿐이다. 한 차례 당선됐다고 너무 자신만만하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고 한 번 낙선했다고 지나치게 낙담할 필요도 없다. 이겼다고 고개를 쳐드는 순간 목이 날아가는 곳이 선거판이다. 겸손과 수분이 승자의 덕목이라면 희망과 용기는 살아남기 위한 패자의 요건이다.선거에 패한 사람은 낙담한 나머지 실의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시달린다. 주변 사람들이 괜히 원망스럽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마냥 한심하기도 하다. 만사가 귀찮고 하고자하는 의욕마저 사라진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심지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삶이 비참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한다. 승자가 패자를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일은 그러한 경험과 학습으로 형성된 배려다. 넘어진 자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는 일은 미래의 자신에 대한 연민이자 보험이다.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들의 전례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쓰라린 패배를 경험했지만 그 역경을 극복함으로써 큰 뜻을 이뤘다. 한번 패배했다고 환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패자부활을 부정하는 잘못된 태도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독하는 망언이다. 작은 도전의 실패를 이유로 큰 도전을 조롱하는 말은 인간의 도전정신을 폄훼하는 것이다.승리에 취해 상대방을 안하무인 짓밟는 일은 하수의 하수다. 옹졸함이나 잔인함의 표출은 표를 까먹는 첩경이란 사실을 누구나 본능적으로 깨친다. 속마음은 어떠할지 알 수 없지만 적나라한 적의를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된다는 건 굳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안다. 상대를 비방하는 밑바탕에 건방과 오만이 도사리고 있고, 잘난 척 하는 언행은 인간의 시기심과 질투심을 자극하는 법이다. 자기가 넘어트린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일은 거부반응을 유발하는 부메랑이다.왜 얼마나 쓰러졌는지 비난할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칭찬할 일이다. 청와대 후광에 힘입어 여당의 텃밭에서 공천을 받고 원내대표의 메가톤 급 지원사격으로 당선된 사람이 염하다 떨군 사람 모양 쓰러진 사람을 밟아 뭉개는 상식이하의 발언을 이어가는 상황을 참고 있자니 머리가 뜨끈뜨끈하다. 재난지원금을 받아 쓴 일이 새삼 부끄럽다.

애어가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봄날처럼 기온이 풀렸다. 움트는 나뭇가지에서 까치들이 노래한다. 멋진 인생이라고.문을 여니 자그마한 어항, 백열등 불빛 아래 형광 줄무늬 물고기 네온 테트라가 떼 지어 몰려다닌다. 술을 사랑하는 이는 애주가, 담배는 애연가, 관상어를 사랑하는 이는 애어가라고 부른다고 하던가. 네온 테트라는 정말 군무의 대가다. 수백 마리가 먹이를 조금 주기만 해도 즉시 대열을 맞춰 다니며 먹는 광경, 그야말로 예술이다.부슬부슬 비 내리는 날, 사춘기 증상을 보이는 아이와 자주 다투던 가족이 성조숙증 검사를 위해 방문했다. 아이는 잔뜩 짜증 난 얼굴, 부모는 화를 억지로 누르는 표정이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당황해 아이가 혹시 물고기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싶어 진료실 안 어항을 가리켰다. 그것을 발견한 아이는 활짝 핀 얼굴로 그곳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구피다 구피” 라고 하더니 “이 수초, 살아있는 거예요”, “고기밥은 얼마나 주나요?” 갑자기 터진 아이의 질문 세례에 그의 부모는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다. 집에선 두문불출, 묻는 말엔 대답도 하지 않으며 매사 무관심이던 아이가 저렇게 스스로 질문해대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진찰이나 검사는 차치하고라도 아들이 저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한다는 것이 아닌가.언젠가 어린아이가 젊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을 찾은 적이 있다. 아이가 물었다. “아빠 이게 뭐야?”그러자 아빠가 확실한 어조로 대답한다. “생선이야” 그러자 아이는 “아빠, 그럼 여기서 낚시하면 되겠네? 아침마다 생선 잡으러 나가지 말고?” 아이의 날카로운 공격에 아빠는 옆에 서 있던 엄마의 눈치를 이리저리 보면서 “으 으 응, 그래도 되겠~네~”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정말 ‘애어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집안에는 늘 커다란 어항이 거실에 자리를 차지했다. 그 모습이 익숙하다 보니 병원 진료실에도 늘 작은 물고기 어항을 두고 아이들을 진찰했다. 그들에게 살아있는 생물체를 보면서 병원에서 느끼는 마음의 불안이나 걱정을 조금 덜어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들은 대개 물고기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수초를 만지고 물이 움직이는 원리가 무엇인지 묻기도 하면서 신기해했다. 집에 어항 갖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고개를 흔드는 부모가 많았다. 그것은 어쩌면 선택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아이에게 물고기를 길러보면서 그 뒤처리를 하는 과정을 즐겁게 동참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귀찮은 것은 아예 하지 않고 감상하려면 수족관이나 대형 마트에 전시된 어항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사소한 것도 선택의 문제일 터이다.요즈음 들어 변화가 많다. 점심시간 함께 하던 동료가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아픈가 싶어서 소식을 물어보니 ‘은 따’, ‘스 따’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따돌림, 은근한 따돌림을 즐긴다는 이야기, 올해의 트렌드라고 하는 조모(JOMO: Joy of missing out)를 하고 있다니. 스스로 은둔해 자기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있었다. SNS가 활발한 시대에 두려운 것이 바로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이라고 하지 않던가. 잊히는 것이 두려워 남의 소식을 궁금해하고 자주 다른 이들의 블로그에 접속해 댓글을 적으며 살고 있다는 이들이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해 서로 간에 거리 두기 한 지도 벌써 해가 넘어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에도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가 보다.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결정적인 순간은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도 있을 터이니.거리 두기 하면서 지내는 이런 시기에 관상어 애호가, ‘애(愛)어(魚)가(家)’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애어가는 공용어나 표준말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관상어 애호가들이 자신을 부르는 친근한 말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애어가라면 어항의 물도 수돗물로 그냥 갈아주는 것이 아니라 받아서 수 시간에서 며칠간 놔뒀다가 묵은 물로 만들어서 사용한다. 수돗물로 바로 물갈이하게 되면 수돗물 속에 있는 염소 성분에 의해 물고기가 쇼크를 받을 수 있어서다. 이 쇼크가 누적되는 것으로 알려져 이를 막기 위해 물을 받아두고 염소를 증발시킨 물인 묵은 물로 갈아줘야 한다. 무엇을 사랑하고 안하고는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일단 선택하게 되면 그를 위해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여서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으랴. 인생은 우연이 감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황홀한 색조로 잔뜩 뽐내며 흥겹게 몰려다니는 네온 테트라를 보며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수험생 감소와 지역 대학의 생존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2021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마감(1월11일)된 후, 지역 대학들은 예견된 일이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정시모집에서 수험생은 가, 나, 다 군별로 한 번씩 총 3회 지원할 수 있다. 대학 입장에서 보면 경쟁률이 3대 1이 넘어야 실질 경쟁률이 1대 1이 된다는 말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부분 대학의 경쟁률이 낮아졌다. 문제는 3대 1이 안 된다는 학교 8할 정도가 영호남에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북도 11개 대학이 3대 1에 못 미쳤다. 이번 월요일(18일)에 정시 원서접수를 마감한 지역 전문대도 모집정원의 절반을 채우기도 힘들 정도로 경쟁률이 떨어졌다.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지방 대학들은 교육 당국이 나서라고 주장한다. 수도권 정원을 합리적인 선으로 줄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대학은 모집인원을 줄이는 대신 등록금 인상을 허용해주는 등의 혜택을 주자고 말한다. 지역 대학이 붕괴하면 지역 경제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지역 대학도 교육 당국만 쳐다보지 말고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대학이 지속적인 수험생 감소를 알면서도 그동안 치열하게 고민하며 능동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듣기 거북하겠지만 지역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가 주된 원인이니 아무리 용써도 소용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져, ‘설마’ 대학이 망하겠느냐는 다소 안일한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며, 망하면 나만 망하나 모두가 ‘한 구덩이’에 빠질 건데”라는 생각으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았는지를 깊이 성찰해 봐야 한다. 대구·경북에서 수능시험을 친 모든 학생이 타지역에 가지 않고 몽땅 지역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에 진학한다 해도 올해는 2만 명 이상의 학생이 모자란다. 정원을 줄이지 않으면 앞으로 매년 이와 같은 현상은 되풀이될 것이다. 지역 대학들은 더 심각한 파국에 이르기 전에 강도 높은 구조 조정으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인문계 학과 대부분은 사정이 어렵지만, 수도권 상위권 대학을 보며 활로를 찾아야 한다. 입시기관의 배치표를 보면 수도권 최상위 대학의 경영, 경제학과나 같은 대학의 최하위 학과는 합격점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느 학과에 입학해도 복수전공과 부전공으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 사회대 학생 중 자신이 선택한 학과를 정말 좋아하는 소수는 제대로 공부해 해당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학생은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복수전공 할 수 있게 해 준다. 학과 이기주의를 버리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 상생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자연계 학과들은 더 적극적으로 지역 중소 업체들과 산학 협력 관계를 맺고 졸업생이 전공을 살려 취직할 수 있게 지역 밀착 맞춤식 교육 등을 통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입시철이 다가와야 많은 대학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신입생 유치 활동을 한다. 이는 정말 비생산적이다. 최고의 홍보 수단은 ‘현재 자기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재학 중인 학생이 자기 학교와 학과에 만족하면 그 학과에는 다음 해에도 학생이 모이게 된다. 입학 당시 일회적으로 장학금을 주고 고급 휴대전화를 주는 등의 사탕발림 유인책은 별로 효과가 없다. 대학 당국은 입학한 학생을 좀 더 정성껏 관리해야 한다.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 상당수가 “학교나 학과에 비전도 없고, 교수님도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 말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이미 늦었지만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지역대학들은 무력감과 패배감에서 벗어나 위기 타개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제 대학은 지역 사회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어려움을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학과 지역민이 상호 신뢰감을 형성하게 되면 생각지도 못한 묘책이 많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은 지역의 소비와 생산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방 자치단체, 산업체, 언론 등의 기관과 지역민 모두가 지역 대학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이익공유제는 빛 좋은 개살구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민주당은 코로나로 인한 양극화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왔다. 성과가 좋은 기업들의 이익 일부를 갹출해 어려운 기업들에게 나눠주자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코로나로 인해 득을 본 기업이 해를 입은 기업에게 적정부분을 나눠주자는 이야기다. 뜻하지 않은 재난에 기해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는 충분히 보기 좋다.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합리적이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익공유제는 보기는 좋아도 맛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다.한때 경제학자 출신 총리가 동반성장의 한 방법으로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한 적이 있다. 초과이익은 정상이익을 초과하는 이익이고 자본사용대가인 기대이익을 초과하는 순이익이다. 초과이익은 혁신과 위험부담, 공격적인 투자의 결과로 발생한다. 허나 초과이익은 지속적으로 유지·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 경쟁에 의해 소멸된다. 기업혁신의 한시적 보상이자 과실인 초과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는 이윤동기를 무력화시킬 따름이다.굳이 초과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면 초과이익을 계산해낸 후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규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초과이익은 학문적 개념이어서 실무적으로 정확한 금액을 산출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 발생원인을 정확히 따져서 그 기여자에게 적절히 배분하는 일도 어렵다. 초과이익공유는 경제학의 기본가정 중의 하나인 이기심을 가볍게 보는 한계도 걸림돌이다. 게다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이제 초과이익공유제는 코로나 이익공유제라는 변종으로 다시 부활했다. 코로나 이익공유제도 초과이익공유제의 함정을 벗어나기 힘들다. 정책은 선의와 도덕성만으론 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한 이해득실을 분리·추출해내고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래예측과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의 이익을 코로나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단정해 도덕적 책무를 부담시키는 일은 경제행위가 아니다. 현재 성공적인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낸다는 보장도 없다. 이익이 날 때 연구개발하고 재투자해야 살아남는다. 일시적으로 큰 이익이 났다고 나누라는 말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지 말고 함께 망하자는 것이다.코로나로 인한 피해에 대해선 국가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런 일을 하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소득에 비례해 세금을 낸다. 코로나로 인한 이득은 증세를 통해 정상적으로 국고로 환수된다. 그 돈으로 어려운 기업 구제하면 된다. 코로나 피해 기업은 세금을 덜 내기도 하겠지만 국가의 지원을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이익을 많이 낸 기업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반대급부는 덜 받는 구조다. 그러한 시스템이 양극화를 완화하는 자동조절장치로 기능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 이익을 나누라고 압박한다면 중첩적으로 불평등한 부담을 과하는 것이다. 자신이 낸 세금이 자신을 위해 쓰이지 않는 것을 감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권력이 기업에게 이익을 나누라고 눈치를 준다면 기업가정신을 훼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손실이 생길 경우 보태주는 것도 아닌데 이익이 많다고 나눠야 한다면 도둑이나 강도와 다를 바 없다. 이익이 생기면 나누고 손해가 생기면 그만인 상황에서 누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혁신하고 투자하려 할 것인가.사회주의 소련이 리베르만 이윤도입방식을 받아들인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지금 정도로 굴기한 것도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이익사유화를 인정한 덕분이다. 사회주의국가들이 실패를 인정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는 판국에 이익공유제라는 사회주의방식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시도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동이다.기존 시스템으로 역부족인 상황이라면 자율적인 기부를 활성화하는 방법이 맞는다. 기부금에 대한 세금감면은 그 인센티브다. 세상은 혼자 살수 없다. 그냥 놔둬도 이기적 동기에서 협력업체나 소비자를 돕는 법이다. 좋은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가 존재해야 좋은 제품을 만들고, 구매력이 풍부한 소비자가 존재해야 많이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다. 팔을 비틀어 나눔을 강제할 필요가 없다. 큰 선거를 앞두고 있다. 소수 대기업의 이득을 다수 중소기업에게 나눠주는 이익공유제는 표퓰리즘 의혹만 살 뿐이다.

서고 걷고 달리기를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새해, 세 번의 주말이 지났다. 대지가 온통 얼어붙었다가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자, 강변 수양버들 가지에 녹색이 어른대는 것 같다. 새해, 새로운 계획으로 저마다 가슴 부풀어 도전했으리라. 어느새 작심삼일이 돼 버린 것도 있을 터이지만, 건강한 몸을 위해 기울여야 하는 노력만은 양보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이들이 많다.새해 인사말 중에 “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고 더욱 건강하세요”라는 것이 제일 마음에 들어 저장해 뒀다. 맛난 것 챙겨서 먹고 나면 한때는 즐겁지만, 마음껏 야외활동을 할 수 없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불어나는 것은 필요 없는 살이다. 코로나 확진자도 두렵지만, 살이 확찐 자도 건강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깊어지는 요즈음이다.매일 산에 오르고 걷기를 즐기던 지인은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앉아 있기보다는 누워서 TV 시청하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 결과 체중이 뻥튀기 기계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불어났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1년 사이 거의 10kg이나 불었다니. 영화관에 들어서서 좌석을 찾을 때였다. 앞쪽에서부터 찾기 시작해 맨 뒷자리 좌석을 향해 올라가는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작은 실내 공간에 숨이 가빠지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라는 것이 아닌가. 알프스 트래킹을 두 번이나 다녀왔을 정도로 걷기도 운동에도 자신감이 있던 그였기에 순간 두려움이 일어나더라고 전한다. 혹시 “심장병? 몹쓸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하는. 그길로 병원을 찾아 종합검진을 받았다. 결론은 갑자기 불어난 체중에 운동 부족으로 인한 합병증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라지 않은가.새해가 되면 첫 며칠은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금연이 가장 많이 세우는 계획이지만,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도중에 하차하는 이들도 많다. 술을 끊어버리겠다는 이들, 다이어트 시작하겠다는 분, 운동 열심히 해 날씬해지겠다는 이들도 많다. 그중에서도 꼭 빼서는 안 되는 것이 건강을 위한 좋은 생활 습관 기르기가 아니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매진한다면 누구나 겁을 내는 만성질환을 예방할 수 있지 않으랴.2020년 말, 우울한 기사들 속에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바로 세 모녀의 머슬 퀸 도전기였다. 근육을 길러 뽐내는 대회에서 세 모녀가 상을 받았다. 비키니 차림의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예쁜 얼굴의 두 딸과 오십 대 중반 미모의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며 내용을 기억할 정도로 기사를 정독했다.2남2녀를 낳았던 평범한 주부, 마흔에 막둥이를 낳고 세 아이를 뒷바라지하느라 몸이 허약해졌다. 이석증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해 운동을 시작한 엄마였다. 그녀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60세가 되면 머슬마니아 대회에 출전하는 거였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60대 머슬퀸 선수를 알게 됐고, “운동은 더 늦기 전에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조언에 대회를 3개월 앞둔 시점 출전을 결심했단다. 엄마의 대회 출전 계획을 들은 두 딸은 엄마에게 힘이 돼주고 추억도 쌓을 겸 동참했다. 낮에는 본업에, 저녁에는 운동에 몰두하며 고된 시간을 버텨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서 “공부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첫째 딸은 안 해본 운동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다양한 운동을 섭렵했고 공부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명문대를 조기 졸업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알파 걸. 둘째 딸 역시 공부와 운동에 만능이었다. 발레와 재즈댄스를 오래 배워 콩쿠르에 나가 상을 탔고, 중학교 때는 지역 대표 피구 선수, 고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 농구 선수로 활약했다고 한다. 두 번이나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고등학교를 1년 휴학하는 고비도 있었지만, 이 역시 운동으로 재활을 해 극복했다니. 공부도 잘했던 둘째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를 졸업했고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공부도 운동도 미모도 모두 뛰어난 이들 세 모녀의 도전기가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은 바로 결과가 놀라웠기 때문이지 않으랴. 엄마뿐 아니라 언니 동생 모두 입상 게다가 그랑프리까지 거머쥔 딸도 있었으니. 운동과 식이 조절하느라고 지옥 훈련처럼 힘들었을 그들이지만, 석 달의 노력과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으리라.부러운 마음으로 올해 무엇에 도전해 볼까. 무슨 운동을 시작해볼까. 고민하며 나서는데 ‘서·거·달 운동’이라는 팻말 든 이가 눈에 띈다. 서고 걷고 달리자는 의미란다. 누워 있는 것보다는 앉아 있는 게 낫고, 앉아 있기보다는 서 있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 설 수 있다면 걷도록 하고 걷는 중간 달리도록 하자는, 좋은 건강 습관이 되지 않겠는가. 몸을 움직이고 서고 걷고 달리기를 꾸준히 해 소띠 해엔 더욱 건강해질 수 있기를.

신축년에 다들 행복하소(牛)

손동섭농협손해보험 경북지역총국장흰 소는 여유와 평온을 상징한다고 하니 금년 한해는 코로나가 종식돼 여유와 평온이 함께하는 해가 되길 바래본다. 그런데 그 흰 소가 세월의 뭇매를 버티면서 회갑을 맞는다.새해 연휴에 시집간 큰딸이 환갑잔치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오길래 요즘 환갑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어딘가 못내 아쉬움이 든다. 그렇다고 티를 내기도 쑥스럽다.환갑잔치, 칠순잔치보다 더 성대한 집안 잔치는 손주들 돌잔치가 차지한지 이미 오래. 코로나사태가 오기 전 주말 뷔폐식당들은 온통 아이들 돌잔치 행사로 시끌벅적했음을 기억한다.베이비붐세대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신축년 소띠들은 어느 해보다도 올해가 가장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회갑이라는 나이 듦에 쑥스러워 할 것이고 고령화시대에 초로(初老)의 첫 디딤에 쑥스럽겠다.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인지 동창생들 중에 유독 공무원, 교사가 많았던 시절. 그 시절 어른들은 자식들이 사범대에 들어가길 많이 원했다.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함이었겠고 무엇보다 안정된 직장이라 생각해서일 게다.그렇게 일명 정부미(?)라 일컬어지는 공직자 동창생 녀석들도 이젠 신축년 마지막 봉급쟁이가 돼 연금 받을 타령들이다. 일반미(?)들은 벌써 퇴직했건만!출산 붐을 타고 태어나서 경제성장 붐, 사교육 붐 등을 겪은 베이비붐 세대는 늘 우리나라 경제 및 사회현상의 중심에 섰다. 부모를 봉양하면서 자녀교육과 혼사를 도맡아하는 샌드위치 세대로서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은퇴 무렵 남겨진 거라고는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그들을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라 일컫는다. 그들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을 온몸으로 겪은 역사의 증인들이다.이제 그들은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해야할 때다. 은퇴 이후의 삶을 흔히 제2의 인생, 인생 2막이라고 한다. 이제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이라는 의미다. 앞만 보고 내달리며 경쟁하기 보다는 천천히 주변을 살펴가며 상생하는 삶, 자기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또 무엇을 나누며 살아갈지 고민하는 삶이 필요하다.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생명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기대수명이 OECD회원국 가운데 5번째로 높은 83.3세로 장수국가에 속한다. 그러나 건강수명은 평균65세로 남녀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65세가 넘으면 한두 가지 질병을 겪으며 점차 약에 의존하게 되고, 활동반경도 줄어들다 죽기 전 10년 정도는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 그렇게 평균 20년은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 게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120세 수명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존스홉킵스의대 토마스하팅 교수는 지난 150년 동안 인간수명이 매년 한 달씩 증가 했으며, 노화전문연구소 등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짧게는 15년, 길게는 80년 사이에 120세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빅데이타와 인공지능 기술이 수많은 돌연변이 암세포를 표적치료제로 매칭해 개인 맞춤형 암치료가 가능해짐에 따라 암 환자의 완치율 또한 증가해 현재 열 명 중 일곱 명의 환자가 5년 넘게 생존하며, 10년 이내 치매예방주사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이러한 장수시대가 과연 축복이기만 할까? 당장 은퇴 후 60년이나 남은 긴 기간을 대체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의식주를 유지할 재산은 있나, 아프면 누가 나를 부양해줄까 등 걱정부터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축복이어야 할 120세 시대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장수혁명시대가 이제 현실로 곧 다가오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인 빈곤율이 OECD 바닥권인 현실에서 개인별로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암담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젠 현실로 다가온 노령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전화기 충전은 잘하면서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네.’ 트롯신동 정동원의 여백 노래가사를 음미하며, 새해에는 모두가 흰 소의 기운을 듬뿍 받는 한해가 되기를!

중대재해법은 지나치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국회가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을 통과시켰다. 사람이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자 등 그 책임자(이하 사업주)에게 형사상 책임을 지우는 법이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막자는데 반대할 명분은 세상에 없다. 자기 사업장이나 협력업체에서 산재가 발생하기를 바라는 사업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업주의 도덕성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재해 발생이 영리추구라는 기업경영의 목적달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업현장을 방치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이 영리추구 과정에서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대재해법도 그런 취지다.산재 발생을 시장에 맡겨둘 경우, 재해를 무릅쓰고 열악한 환경에서 근로자를 혹사해서 얻는 이익증분이 재해 발생의 증가로 인한 손실증분과 일치하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균형을 이룰 것이다. 현실적으로 산재 감소로 인한 이득이 산업안전에 쓰는 비용보다 큰 범위에서 유인이 발생한다. 산재의 비효용을 증가시켜주면 그 방지를 위한 지출을 늘리게 된다는 결론이다. 산재 발생 시 사업주에게도 페널티를 주는 중대재해법은 산재의 비효용을 높이는 입법적 시도다.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확실히 산재가 줄 수 있다. 산재의 비효용이 엄청나게 커짐에 따라 그 예방을 위한 비용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용엔 근로시간 감소나 노동 강도 약화로 인한 생산력 감축과 기계화나 자동화를 통한 생력화 투자의 기회비용도 포함된다. 생산력 감축을 견뎌내지 못하거나 생력화 투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은 퇴출될 것이다. 기업이 문을 닫고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는다. 실업이 증가하고 세금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산업재해가 없어지긴 할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지만.문제를 해결하는 현명한 방법은 사업주와 근로자가 윈·윈 하는 접점을 찾는 것이다. 상대방이 있는 문제의 경우,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해보고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기본이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시스템에서 어느 한쪽의 입장만 고려해 법을 제정하고 정책을 입안한다면 그것은 외눈박이 해결책이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의 입장만 반영한 절름발이 법이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합의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분배할 파이를 키우면서 상생하는 방법이다.중대재해법은 무과실에 대해 처벌하는 것으로 법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 민법은 ‘과실 책임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고의가 있거나 객관적 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한해 그 책임을 묻는다. 세상이 복잡다기해지면서 일상 속에 위험이 상존함에 따라 가해자의 과실여부를 묻지 않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무과실책임주의가 각종 특별법에 의해 예외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무과실책임주의는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그 책임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을 제어하고 편안한 사회생활을 방해한다. 따라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무과실책임을 인정함으로써 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산업재해 분야에 무과실책임을 도입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렇지만 산재보험을 활용하는 등 현 산재법 체계 내에서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거나 법인격을 가진 기업이 일정부분 책임을 부담하는 정도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무과실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에게 형사상 처벌까지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다.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자는 선의가 아무리 가치 있다고 하더라도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고 있는 무과실의 사업주에게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입법은 불합리하고 가혹하다.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사람이 죽거나 다쳤다고 과실이 없는 선량한 사업주를 처벌해야 정의롭고 공정하다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중대재해법이 정당하다면 대형사고가 나서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책임져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를 국가가 보상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에게 그 형사책임까지 물어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하는 건 지나친 억지논리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산재를 당해 인명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사업주를 처벌하는 입법은 성급하고 감정적이다. 선거를 앞두고 표 계산을 한 입법이라면 최악의 포퓰리즘이다.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바닷물도 얼어붙었다. 소띠 해, 순하게 생긴 그의 코에도 얼음덩이가 달릴 만큼 엄청난 추위가 이어진다. 이른 아침, 따스하고 향긋한 커피가 생각났다. 드라이브스루로 커피 한 잔을 받았다. 뜨거운 음료를 한 모금씩 마셔가며 출근했다. 일과를 마치고 컵홀더에 꽂힌 커피가 눈에 들어와 목을 축이려 입에 댔다. 묵직한 것이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은데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 거품까지 그대로 꽝꽝 얼어있는 것이 아닌가. 건물 바깥도 아니고 사람이 연방 드나드는 지하주차장, 그곳까지 냉동고 한파가 찾아든 모양이다. 이런 강추위를 뚫고서 아픈 몸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이들, 그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무덤덤하게 대한 그들에게 새삼 미안해진다.평소 말없이 진료 마치면 눈인사만 하고 나가곤 하던 환자 보호자가 오랜만에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요즘, 월요일이 기다려져요”라고.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게 돼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의 글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지면을 펼치며 그 면이 나와서 칼럼이 나오는 요일도 알아차렸다며 새로운 발견인양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며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몇 년 전 제목이 눈에 들어 살까 말까 고민하던 바로 그 책,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였다. 그녀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집에만 머물며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얼마나 힘에 부쳤겠는가. 그러다 보니 그 책이 눈에 확 들어왔을 것 같다.누군들 고민하고 살고 싶겠는가.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언젠가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손에 쥔 모든 것을 놓고 훌훌 떠나게 되지 않은가. 그러나 그때를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이니 누구든지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고 전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주인공들을 힘들게 한 것은 사랑이었고,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죽을 날을 위해 고민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은 지금 ‘내가 아닌 나’로 살게 되면 고민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살기 위해 분노한다. ‘나인 나’로 살 때가 가장 즐겁다. 그러기 위해 고민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또 당당하게 마주한다.고민 없이 즐겁게 사는 방법, ‘나’를 인정하고 ‘나’로써 사는 것이라는 그녀들에게 한 수 배워본다. 고민이랑 훌훌 날려버리고 인생은 그냥, 즐겁게 사는 거야.새해 벽두 해외 뉴스를 장식한 것은 즐겁게 살아온 세계 최고령자의 이야기, 일본인 다나카 할머니가 118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뉴스였다. 후쿠오카시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그 할머니는 1903년에 태어났고 재작년 3월에 116세 66일의 나이로 영국 기네스월드레코드 측으로부터 남녀 통틀어 생존한 세계 최고령자로 공인받았다. 일본 왕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인 연호로 따지면 메이지(明治)부터 현재의 레이와(令和·나루히토 일왕의 연호)까지 5개 시대에 걸쳐 살고 있다. 장수비결을 묻는 말에 “맛있는 것을 먹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목표 수명은 120세라며 앞으로 최소한 2년은 더 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평소 체조로 몸을 움직이거나 두 사람이 하는 게임 등으로 소일하는 할머니는 식욕도 왕성해 좋아하는 초콜릿과 콜라를 즐긴다. 손자인 다나카 에이지(61)씨는 교도통신에 “코로나19 때문에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할머니께선 건강하시다. 매일 즐겁게 지내고 계셔 기쁘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의 농가에서 9명의 형제 중 7번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19세 때에 결혼해 장남을 낳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남편과 장남이 징집된 후로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억척스럽게 살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남자 몸은 아니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몸도 마음도 남자처럼 돼 방아를 찧고 떡메질을 하는 등 뭐든지 할 수 있게 됐다”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1993년 90세가 된 남편과 사별 후 백내장(90세), 대장암(103세) 수술을 받았지만, 현재 지병은 없다고 한다. 올 5월로 예정된 후쿠오카 지역 성화 봉송 때 휠체어 타고 성화 봉송 주자로 할머니가 나설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태어난 해인 1903년은 제1회 근대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1896년 불과 7년 뒤였고 도쿄에서 처음 올림픽이 개최된 1964년엔 그의 나이 61세였다. 장수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세계인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다나카 할머니의 성화 봉송을 추진하려는 눈치다. 할머니의 희망 여명이 성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어떤 강추위가 몰아쳐도 저 멀리서 봄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동지 지나면 하늘의 봄이 시작된다지 않은가. 그러니 하루하루 즐겁게 살자,

위엄과 기품, 고결한 정신을 갈망하며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신축년 첫날부터 사람들이 뜸한 산과 들, 강과 호수, 바다를 찾아다니며 매일 만 보 이상 걸었다. 철새의 자맥질, 고라니의 뜀박질, 홍시를 쪼아 먹는 동박새, 강변 왕버들, 절벽의 해송, 눈이 시리도록 파란 겨울 하늘과 조각구름 등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모습은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모처럼 마주하는 한겨울의 칼바람도 싫지 않았다.겨울 산을 오르거나 빈 들녘을 걸을 때 늘 암송하는 시가 있다. 조정권의 ‘산정묘지’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얼음처럼 빛나고,/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산정은/얼음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빛을 받들고 있다./만일 내 영혼이 천상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의 일각을 그리워하리./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산정묘지 1)” 조정권은 문예진흥원에서 오래 근무했다. 문학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투쟁 수단이던 7, 80년대를 살면서 그는 ‘참여와 순수’, ‘진보와 보수’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진저리나도록 봤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두 집단을 다 지원해야 하는 일을 해야 했다. 민중문학이 위세를 떨치던 시절에는 저항이란 대의만 앞세우면 미학적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어도 좋은 시로 인정받았다. 작품성과 미학적 성취가 돋보여도 현실 문제를 비켜 가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그는 두 집단의 대립과 갈등을 보며 이 둘의 단점을 극복하는 시를 쓰고 싶었다. “그는 순수와 민중시를 봉합하고, 그 둘을 합쳐서 승화시킨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결과를 도모하고자 했다. 그것이 ‘산정묘지’ 연작이었다”라는 조용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는 전통 서정시에 기반하면서도 고고한 정신성을 지향하는 1990년대의 정신주의 시를 이끌었다.새해 벽두 산정묘지의 빛나는 시구들을 음미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하며 어느 한쪽에 가담하라고 다그치는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찬 진보와 부패와 타락, 분열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보수, 두 집단 모두를 자극하여 새살이 돋아나게 해 줄 ‘산정묘지’ 같은 고결한 정신이 출현하게 해 주십시오. 유종호가 조정권의 시를 해설하며 언급한 ‘위엄과 기품’이 이 땅의 모든 분야에서 되살아나게 해 주소서.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삿대질하며 싸우지 말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며 내 것을 조금 양보하는 상호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주십시오. 젊은이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아무 대책 없이 일자리를 잃는 일이 없게 해 주시고, 젊은이들이 차선의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생명의 존엄성을 절실히 깨닫게 해 주셔서 다시는 정인이와 같은 불행한 아이가 생겨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모든 장애인이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람 사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외롭고 쓸쓸한 홀몸노인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닿게 해 주십시오. 쓰레기통을 뒤지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는 주지 않아도 가혹한 학대는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모든 언론 매체들이 정치적 이슈나 사건 사고만 머리기사로 다루지 말고,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사를 톱으로 올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꿈꾸는 것이 허황한 공상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사치라고 조롱당하지 않고, 그 꿈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 주십시오. 그 무엇보다도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다시 길을 걷는다. 맑은 정신으로 산정묘지를 계속 읊조리며 나태한 정신을 지팡이로 후려쳐 본다.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하나의 형상 역시/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나의 영혼이/이 침묵 속에서/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주리. (산정묘지 1)

인사가 망사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흔히 인사가 만사라 한다. 인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구성원이 몇 명 되지 않을 땐 유능한 리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효율적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전체 과업을 합리적으로 분할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다. 이는 위양한 하위목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찾아내어 그에게 일정한 범위에서 리더의 권한을 함께 넘겨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업과 권한은 동전의 양면이다.조직은 권한위임 과정에서 형성되는 분임단위의 계층이다. 조직은 권한위임의 결과물이자 리더십의 도구인 셈이다.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조직이 잘 짜여있고 그에 맞는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 적재적소 배치는 인사의 종점이라 할 만하다. 인사가 만사라고 표현할 만큼 중요하다는 말은 적재적소 배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적재적소 배치는 성과와 능력 그리고 공정성에 의해 좌우된다. 성과는 경력으로 나타나고, 능력은 전문성으로 측정된다. 공정성은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불편부당한 리더십 하에서 바로 선다.인사에서 경력과 전문성이 무시되고 사적인 인연이나 호불호가 개입되면 적재적소 인사가 실현되기 어렵다. 인재가 조직의 적재적소에 배정되지 못하면 위임받은 조직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고, 그 목적 달성은 물 건너가고 만다. 인사를 잘 하면 만사가 문제없이 잘 돌아가지만 인사를 그르치면 만사가 망사가 된다. 각 조직에 속하는 직책의 직무를 분석해 그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고 필요로 하는 전문지식을 교육·훈련시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인사관리의 모든 것이다.국가조직의 인사라고 별다를 건 없다. 그 사람이 거쳐 온 경력과 전문성을 분석해 성과와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한 다음 최종적으로 인사권자의 사적인 관계를 걷어내고 공정하고 사심 없는 인사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직무가 요구하는 경력도 없고 전문지식도 증명할 수 없는 사람을, 단지 사적인 인연이 있거나 선거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개인적인 빚을 갚는다는 목적에서 인사를 감행하는 것은 공을 버리고 사를 취하는 어리석은 일이다.성인군자를 장관으로 발탁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완전무결한 사람을 국회의원 후보로 내보내라는 말이 아니다. 평균적인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래도 눈감아줄 수 있다. 사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경력이나 전문성을 문제 삼지 않을 터이다. 그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춘 인사라면 설사 인사권자의 선거캠프에 몸담았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시비를 걸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욕먹을 사람만 용케 골라내는 희한한 선구안에 혈압이 오를 뿐이다. 국민의 화를 돋우는 재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저 보통만 해도 감지덕지할 텐데.최근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 상황은, 비록 다른 이유가 차고 넘치겠지만, 인사 실패에 대한 국민의 질타이기도 하다. 소득주도성장이나 원전폐기 등 정책실패도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지 못한 탓이다. 검찰개혁은 검찰을 잘 아는 검사출신이 칼을 잡아도 될 동 말 동하다. 사법부 판사 출신에게 계속 그 임무를 맡기니 감정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잘 풀릴 리 만무하다. 외교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도 마찬가지다. 비전문가 문외한이 수장을 맡는 것이 어느덧 일상이 됐다. 그런 부서가 잘 돌아간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자잘한 외교적 실수와 외교정책의 표류, 아파트 가격 폭등과 전월세 대란, 역대 급 청년실업, 교육정책 불신, 코로나 방역 실패 등도 다 마찬가지다. 사계 전문가나 베테랑을 인정하지 않으니 아마추어 수준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실패는 예정된 결과일 뿐이다.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른 격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도 역시 마찬가지다. 최고의 수사기관장에 수사경험이 없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마치 섶을 지고 불길로 들어가는 꼴이다. 이 정도면 정말 인사가 망사다. 이런 어설픈 정부를 믿고 의지하기엔 세상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간다. 복 받을 생각만 하고 있기엔 나라사정이 너무 어지럽다. 각자도생이 유일한 살길이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마음을 다잡을 일이다.

2021, 다시 청년으로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2021해가 떠올랐다. 연속되는 시간이지만, 늘 새로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지혜로 적당하게 마디를 지어 또 다른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다시 새 마음으로.지난해 모두 힘들었지만, 버티어냈다, 그중에서도 무척이나 어려웠을 여행업계에서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한 여행객을 모집한 모양이다. 어둑새벽, 부푼 가슴으로 비행기 트랩에 올라 1월1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한 해맞이 행사를 하늘에서 했다니. 일출 보면서 새해 소원을 기원하고 상공을 맴돌며 각자 소망을 빌었으리라.올 한해 봄볕에 눈이 녹듯이 어려운 일들은 스르르 녹아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새순이 돋아나듯이 다시 희망이 쑥쑥 자라나 커나가기를.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아이는 새해 미성년에서 벗어난다고 좋아하며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다. 10-9-8-7-6-5-4-3-2-1 댕~~~! 제야의 종이 울리자 드디어 19세가 됐다며 주민등록증을 들고 뛰어나간다. 그것을 내보이며 그동안에 구매하지 못했던 금지 품목 구입이 가능한지 시험 삼아 해보겠다며 기대에 찬 얼굴로. 편의점에서 술의 향이 조금 나는 과일 주류를 구매하면서 신분증을 보자고 하면 자랑스레 보일 것이라면서 들고 나가더니, 보자는 이야기가 없다며 왠지 김이 빠지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어릴 때에는 하나씩 들어가는 나이는 무엇인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2021,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올해에는 스물 남짓 청년의 마음으로 다시 건강하고 힘차게 걸어 나가야 하리라.몇 해 전, 21세에 백만장자가 된 소년의 인생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13세 때 스마트폰 앱을 만들었고 페이스북은 17세 소년인 그에게 인턴십을 제안했고 결국 페이스북 정직원으로 입사했다.그는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보태기 위해 스마트폰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오히려 그를 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소년은 아직도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면서 인터뷰했다.그의 인생길은 남들처럼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특별한 커리어 덕분에 오히려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배울 수 있었고 인터넷이라는 기회를 이용해 스스로 성공했다기보다는 그 환경의 특별함 때문에 지금의 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일러준다.하지만 그는 스스로 시작한 것과 조금의 운이 더해져 현재의 자신이 될 수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그는 구글 영상을 보며 스스로 코딩하는 법을 배웠다. 이후 그를 이용해 자신의 앱을 만들기 시작했고 전략적으로 경제적 이익이 창출되도록 판매하기 시작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그에게 인턴십을 제안했을 당시 이미 마이클의 무료게임 어플은 애플 앱스토어 상위권에 랭크해 뒀다고 하지 않은가. 스타벅스나 핏빗 등의 어플보다도 더 높은 순위에 올려 뒀으니 얼마나 대단한가.그는 강조한다. “나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라고. 비록 그는 기술 산업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했다. “제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기대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이 얼마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든 ,나와 관계가 있든 없든 나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 청년은 “21세인 저는 아직도 어린 면이 있죠. 어쩔 땐 친구들이랑 나가 놀면서 거하게 술에 취하고 싶기도 해요. 한 번쯤 무책임한 일도 저질러 보고 싶기도 하구요.”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약속은 늘 지켜지리니. 21세 청년이든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든 모든 이에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지 않던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따스한 봄이 찾아오듯이. 신축년에는 소처럼 느릿느릿하지만 만 리를 가는 걸음으로 봄부터 겨울까지 하루하루 다 다른 날들은 느끼며 걸어가시길. 하루하루 바람이 다르고, 하루하루 잎과 가지가 다르며, 매 계절 피는 꽃들과 하늘의 청명함이, 강물 소리와 잎사귀가 부딪히는 소리가 다 다르니 생을 깊이 있게 느끼며 지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올 한 해에는 예전에 비슷하게 느꼈던 가을과 봄도 확연하게 차이를 실감하며 그 천양지차를 만끽하기를 소망한다.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느낌을 가득 간직하며 하루를 즐기며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하루를 온전히 느껴가며 끊임없이 배우고 앞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며 걸을 수 있기를, 우보만리(牛步萬里)

왜 현진건인가

오철환객원논설위원우리나라의 현대문학은 대체적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발아됐다고 볼 수 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부터 1919년 3·1운동까지가 그 태동기라면 3·1운동 이후는 현대문학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시기라 할 수 있다. ‘창조’(1919)에서 출발해 ‘개벽’(1920), ‘폐허’(1920), ‘백조’(1921)를 거쳐 ‘조선문단’(1924)에 이르는 종합문예지의 출현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일제 식민지라는 불행한 역사가 우리 현대문학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시기이기도 하다.그 당시 조선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문학계로 많이 들어왔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한 문존무비 풍조가 뿌리 깊은 데다 일제의 제도권으로 선뜻 들어가 그 뜻을 펼치기엔 대의명분이 부족했을 법하다. 한편으론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자존심이 작용했고, 다른 한편으론 나라 없는 백성이라는 한계를 문학으로 극복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존재했을 것이다. 빼어난 시인들과 시대를 앞서 간 소설가들이 쏟아져 나온 시대적 배경을 곱씹어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현대문학을 꽃 피운 뛰어난 문인들이 대부분 친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그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고 애석하다. 그 야욕이 대륙 침략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치닫자 일제는 영혼까지 끌어다 댔다. 내선일체라는 명분을 내걸고 조선에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했다. 문학계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감시와 검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했고, 존경받는 유명 문인을 겁박해 일제를 찬양하고 징병을 고무하는 글을 쓰도록 강제했다. 희망을 잃었거나 심지가 굳세지 못한 수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강압에 무릎을 꿇었다.그 일로 인해 문학사에서 빠질 수도 없고, 빠져서도 안 될 문인들과 그 작품들이 친일의 틀에 갇혀 빛을 보지 못 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들이 암울한 역사에 치여 신음하고 있다. 문학작품이 문학성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문학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묻혀버리는 것은 암울한 역사보다 더 참담한 비극이다. 불굴의 애국심과 투철한 민족정신 그리고 대쪽 같은 지조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제요건으로 본 모양이다. 심약한 천재나 성마른 현실주의자는 이름이 지워졌다. 영혼이 자유로운 문화예술인에게 고지식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와 다르지 않다.결국 앞서간 문인들을 현창하고 그 작품들을 조명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애국의 벽을 넘을 필요가 있다. 일제 때 백화제방 활동한 문인들이라면 친일 스크린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유명세를 탄 사람이 그 절망적 상황에서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버텨내기 힘들었을 법하다. 그러다 보니 반일성향이나 민족정신이 담긴 작품은 문학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필요 이상 과대평가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일제치하에서 두드러진 창작활동을 한 문인 중에 친일과 무관한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귀하다. 지난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기 전이란 제약 하에 있는 현 시점에서 현창할 만한 문인이 이설 없이 존재한다면 그 희소성만큼이나 희귀한 가치를 지니는 셈이다. 빙허 현진건은 친일에 자유로운 몇 안 되는 문인이다. 동아일보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에서 보듯 항일과 민족정신이 남다른 데다 역사성이나 작품성도 두루 갖추고 있는 점에서 현진건은 우선적으로 기억해야만 할 문인이다.현진건은 1900년 대구 계산동에서 출생하고 대구노동학교에서 수학했다. 1915년 고향 문우 이상화, 백기만, 이상백 등과 함께 대구에 기반을 둔 최초의 동인지 ‘거화’를 발행했다.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식민지의 참담한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현대소설을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고 리얼리즘 문학을 완성했다. 체험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곧 소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현진건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봉에 올랐다.빙허 현진건은 친일에서 자유롭고 문학성과 역사성도 함께 갖춘 데다 대구와의 친연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진건은 정부와 대구가 반드시 현창해야할 흔치 않은 위인이다. 현진건문학상의 확충, ‘현진건 거리’와 가칭 ‘운수 좋은 집’(현진건문학관) 조성 등과 같은 사업이 절실하다.

(송코영신)-송(送)코영(迎)신(新)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2020년의 해가 저물어간다. 유난히 힘든 해였기에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이지 기나긴 터널 속을 걷기만 한 것 같다. 어두운 기억 속에서도 일전에 받은 디지털 연하장이 웃음을 준다. 2020년 0의 자리엔 마스크를 길이로 걸어 둬 ‘2/마스크/2/마스크’의 2020년을, 새해 2021이라는 숫자에서는 2021의 1의 숫자 대신에 백신 주사기를 넣어 번뜩이는 희망을 심어두지 않았겠는가.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써서 보내는 손 편지만큼이나 의미 있는 연하장이라서 자꾸 열어보곤 한다.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마주하고 웃으며 손 맞잡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요즘엔 엽서나 연하장을 주고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새해만 다가오면 연하장을 준비해 어른들께 보내고 친구 지인들과 주고받았다. 한때는 미리 주문해 연하장을 돌리는 재미를 느끼며 한 해를 마무리하기도 했었다. 그런 연하장에 주로 등장하는 문구가 ‘근하신년’, ‘송구영신’이지 않던가. 한학을 오래 독학했던 지인은 송구영신이라는 글자가 나오면 유례를 읊곤 한다. 송구영신은 원래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풀이했다. ‘송고영신’은 구관을 보내고 신관을 맞이한다는 뜻이라면서 여기서 말하는 구관은 옛 관리를, 신관은 새 관리를 가리킨다고 덧붙였다. 옛 관리를 보내고 새 관리를 맞이한다는 말이 이후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새 달력을 받으면 그 앞 장에도 큼지막하게 근하신년이라고 적혀 있곤 했다. 떨리는 손으로 달력 첫 장을 넘기면서 한 해의 첫 달, 좋은 기운을 기대하며 새날을 맞이하기를 기원하기도 했다.올해에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은혜를 입은 분께 정성 들여 연하장을 써본다.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고.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새해를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은 새해 인사를 마음을 담아 손으로 꾹꾹 눌러 써서 차곡차곡 책상머리에 둔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업무가 안 되다 보니 택배니, 우편이니 등등의 배달로 과도한 업무로 허덕일 우편을 담당하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우체통에 넣기가 망설여져서. 아마도 올해엔 결국 넣지 못할 것만 같아 마음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코로나로 힘들었던 올 한 해를 보내면서는 제발 코로나를 저 멀리 보내고 싶은 마음에 송구영신(送舊迎新) 대신에 송(送)코영(迎)신(新)으로 바꿔 인사하고 싶다는 환자도 있었다. 어른 이 팔순을 맞이하게 돼서 그냥 지나가기가 섭섭했다고 한다. 잠깐 집에 모셔 식사만 했는데 그만 온 식구가 코로나19에 차례로 감염 돼 병실 신세를 져야만 했다. 저녁 식탁에 앉아있었던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됐다고 그새를 못 참고서 코로나란 그 사악한 녀석은 부모 자식의 정을 시샘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깨뜨려버리는가. 어른에 대한 도리를 잠시 다한다는 것이 그만 연로하신 부모님께 고통을 안겨드린 결과가 됐다며 눈물 짓는 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경자년(庚子年) 이었다. 지나간 시간은 아쉬움과 후회가 아니라 진정한 반성과 깨달음으로,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도 거리 두기 꼭 하면서도 고마운 사람에게 보내는 감사와 사랑으로 맞는 마무리가 되면 좋으리라.어찌하든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잘해 코로나19를 어서어서 쫓아 보내고 다가오는 신축년(辛丑年) 새해를 잘 맞이할 수 있기를, 그리해 건강한 모습으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모두 송구영신, 아니 송(送)코영(迎)신(新)하기를, 세상의 모든 신께 두 손 모아 기원한다.밝아오는 새해에는 무엇보다 우리 삶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웃음 지을 수 있고, 서로를 향한 온정으로 따스함을 나누는 것이 허락되고, 서로를 인정하는 배려의 마음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좀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꿋꿋이 참아내고 인내하면서, 나와 남 모두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또 언제나 희망을 품고서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기를, 그리해 한 해를 잘 살아내고서 다시 끝마무리할 시점이 다가왔을 때 또다시 희망찬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잊지 못할 해가 넘어간다. 우리의 한 해, 지난한 시간을 굳건히 견딘 우리, 서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한 해를 보내며, 또 새해를 맞으며 모두의 시간이 ‘행복’일 수 있기를. ​그대 걸어가는 길에 늘 희망과 보람이 가득하길.

성탄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하려면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고향 마을에는 조그마한 교회가 있었다. 인근 네 개 동네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었다. 매일 새벽과 저녁에는 종탑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기독교 신자보다 불교 신자가 더 많았지만 아무도 교회 종소리를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마을 뒷산에는 절도 있었다. 사람들은 교회의 종소리와 절의 범종 소리를 같이 들으며 살았다. 교회의 종소리는 카랑카랑한 고음이어서 힘차게 새날을 여는 아침에 어울렸다. 저음의 범종 소리는 평안한 휴식과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해 주어 저녁 시간에 듣기 좋았다.마을 한 복판에 있는 교회는 문화 공간 역할도 했다. 여름 성경학교와 성탄절에는 동네 아이들 대부분이 교회에 갔다. 성경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문화 충격이었다. 불교 신자 집 아이들도 그 시기에는 교회에 갔다. 아이들은 맨 마지막에 주는 간식을 기다리며 청년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노래를 부르고 성경을 암송했다. 성탄절에는 어김없이 연극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아기 예수 역을 맡았다. 동년배의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작아 그 역을 주었을 것이다. 고교 1학년 누나가 성모 마리아 역을 했다. 연극 도중 누나가 나를 꼭 껴안았을 때의 그 달콤한 로션 향기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야릇한 느낌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조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여성의 품을 처음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장면은 생각나지 않는다.눈을 감으면 아련하게 떠 오른다. 성탄 전야 행사가 끝나면 청년들은 밤새 새벽송을 들었다. 신자들 집 앞에서 크리스마스 캐럴과 찬송가를 부르면 교인들은 정성껏 포장해 둔 과자와 다양한 선물을 주었다. 우리는 신이 나서 언 손은 입김으로 녹이고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돌아다녔다. 눈이 듬뿍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에는 들판과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눈싸움을 했다. 외딴곳에 홀로 사는 노인의 집 앞에서는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다른 집에서 받은 선물을 섬돌 위에 몰래 얹어 놓고 나왔다. 부자 장로님 댁에 이를 때면 모두 들뜨고 신이 났다. 장로님은 떡국을 끓여 우리를 배불리 먹였다. 새벽 6시쯤 새벽송이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 정오 무렵까지 자고 교회에 나와 과자를 나눠 먹으며 파티를 했다. 동네 악동들이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가서 스님이 주는 떡을 맛있게 먹곤 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훈훈한 인정이 넘치던 그 시절을 아직도 가슴 한쪽에 고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몇십 년 사이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사회 전 분야가 그렇듯이 교회도 빈부 격차가 극심하다. 대도시 일부 교회는 엄청난 부를 주체할 수 없어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작은 개척 교회나 시골 교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작은 교회를 거의 빈사 상태로 내몰고 있다. 여유 있는 대형 교회들이 어려운 교회를 좀 더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면 좋겠다.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에 재림한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본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을 먼저 위로하며 복을 줄 것이다.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간곡히 부탁할 것이다.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교회도 방역 당국의 지시를 철저하게 지키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격하게 실천하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사는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것이 곧 예수 당신을 접대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할 것이다.(마태복음 25장). 부처님도 자신에게 보시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 당신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방등경). 예수의 말씀이나 석가모니의 설법이 결국은 똑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기쁜 성탄이다. 산타의 썰매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한 길 위로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외딴 마을을 떠 올려 본다. 한없이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 속에 나지막하게 잠겨있는 시골 성당의 첨탑 위에는 아기별 하나가 사랑을 실천하러 온 예수님을 기다리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와 굵직한 사건들에 파묻혀 세상의 관심 밖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이 겨울을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쁨과 신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원해 본다.

집합제한은 국가가 책임져야

오철환객원논설위원“코로나 전쟁에 왜 자영업자만 일방적 총알받이가 돼야 하나, 대출원리금과 임대료가 같이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올라왔다. 이에 화답하듯 대통령이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영업이 제한 또는 금지되는 경우,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인지에 대한 물음이 매우 뼈아프게 들린다”고 언급했다.이를 국회에서 이동주 의원이 이른바 ‘임대차멈춤법’으로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임대차멈춤법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으로 상가에 집합금지가 있을 경우 건물주는 그 기간 동안 임대료를 받을 수 없고, 집합제한이 있을 경우 현 임대료의 절반까지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초기에 착한 임대인 운동이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수준이었고 임대인에 대한 세제혜택마저 실효성이 떨어져 시들해진 상태다.국민 청원과 대통령의 발언 그리고 임대료멈춤법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아마 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 해법에 대한 생각은 반드시 같지 않다. 임대료멈춤법은 임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임차인 편을 듦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다분하다. 임대인이 코로나 팬데믹의 원인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수익자도 아닌데 부담을 강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굳이 그 원인자를 찾는다면 중국정부이거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륙을 막지 못한 우리 정부일 것이고 억지춘향 격으로 그 수익자를 찾는다면 마스크업자이거나 배달업자일 것이다. 논란이 있겠지만 그 원인자에게 피해를 부담시키거나 그 수익자에게 상응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 임대료멈춤법보단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우리 헌법은 재산권을 두텁게 보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재산권을 제도로서 보장할 뿐만 아니라 자유권적 기본권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따라서 공공복리 차원에서 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고, 비록 공용침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당한 보상을 실시해야 한다. 이 부분에 주목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불똥도 공용침해와 손실보상의 법리로 풀어가는 것이 무난할 수 있다.작금의 팬데믹 상황에 대응해 국가가 공공복리 목적으로 집합금지나 집합제한을 했다면 공용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집합금지나 집합제한으로 인해 상가를 임차해 장사를 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입은 피해를 국가가 직접 보상하는 것이 맞는다. 손실보상의 법적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공공필요 목적으로 공권력에 의한 적법한 재산권 침해가 존재하며, 그러한 침해가 특별한 희생에 해당하고, 손실보상을 실행할 관련 법규가 잘 정비돼 있다는 것이 그 논거다.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을 차단하는 목적은 명확하게 공공필요에 해당하고, 집합금지와 집합제한은 행정명령이므로 공권력의 행사이다. 그로 인해 고객이 원천 차단돼 수익이 없어지거나 감소하는 것은 재산적 침해의 결과이다. 집합금지나 집합제한이란 행정명령은 실체적 절차적으로 적법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공용침해는 일상적인 침해강도를 넘는 수인할 수 없는 특별한 희생이다. 마지막으로 공용침해로 인한 손실보상에 관한 법규의 존재가 현실적 실행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구체적인 각론에 들어가서도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을 원용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 손실액의 평가는 영업 손실액을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감정평가사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비용을 절약하려 한다면 계산식을 활용한 모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집합금지로 인한 영업 손실 평가 모형과 집합제한으로 인한 영업 손실 평가 모형을 업종별로 각각 개발한다면 각 사례마다 침해기간과 같은 외생변수만 바꿔주는 것만으로 단기간에 효율적인 대량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정밀성과 개별성은 비록 떨어지겠지만 비전문가가 저비용으로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제도와 시스템을 준비해 뒀다가 문제가 불거지면 즉시 대응해야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사고나 재난이 발생하고 난 후,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표피적 증상만 보고서 감정 과잉 상태에서 선의만 앞세운 땜질 처방만 내놔서는 판판이 낭패를 본다. 값싼 감상에 휘둘리는 아마추어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지켜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