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격차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선생님, 우리 아이는 지난해까지는 성적이 선두권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개학이 계속 연기되고 학교에 안 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아이 아빠는 아이가 중1 때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는 알아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교 선생님께서도 우리 아이가 수업 태도도 좋고, 매사에 적극적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선생님, 잘하던 아이가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온라인 수업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적이 비슷한 친구들은 학원에 나가거나 개인 지도를 통해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데 자신은 그럴 형편이 안 되니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점점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했습니다. 결국 공부를 포기했다며 집에 오면 게임만 합니다. 제가 설득할 능력도 없고 아침이면 또 일하러 나가야 합니다. 아이 마음을 돌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고2 어머니가 보낸 편지다.비대면 수업은 학습격차를 크게 벌려 놓았다.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차이, 학부모의 학습 보조 여부, 학생-교사 간 소통의 한계, 학생의 사교육 수강 여부, 학습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의 차이” 등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학습격차의 주된 요인이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은 “문제는 이들 5가지의 원인 중 3가지가 소득 수준에 따라 좌우되는 요인이고, 공교육 시스템을 통한 대면 수업이 사라지면서 소득 수준에 따른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학습격차의 요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이 옆에 누가 있는가’이다.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가’가 이 격차에 관여한다. 학생들에게 등교 수업이 없는 날 어디에서 낮 시간을 보내는지를 물었을 때, 계층에 상관없이 85% 이상의 학생이 ‘집’이라고 답했다. 다 같이 집에 있지만, 차이는 그 시간 ‘함께 있는 사람’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지적을 교육 당국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코로나19는 학습, 수면과 식사, 사회관계, 정서적 측면 등 모든 면에서 계층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국회 교육위원회 2020년 국감에서는 소득수준에 따른 ‘학벌 대물림 심화’가 다루어졌다. 정찬민 의원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신입생의 55%가 고소득층이었다. 서울대 신입생의 63%가 소득 9·10구간으로 분류됐다. 소득 9·10구간의 월 소득액은 평범한 사람들의 입이 벌어지게 한다. 올해 기준 9구간의 월 소득 인정액은 월 949만8천348원 이상, 10구간은 월 1천424만7천522원 이상이다. SKY 대학 의대 신입생 중 74%가 고소득층이고, 서울대 의대는 부유층 비중이 최근 3년간 46%에서 84.5%로 폭증했다고 밝혔다. “부모의 소득에 따른 교육 지출 능력 차이가 자녀의 학력 격차로 이어져, 부가 학력으로 대물림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군비 경쟁 수준의 사교육비 지출’이란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회 국정 감사에서 수능 위주 전형 40% 확대 계획을 재확인하며, 이를 대입공정성 강화 방안이라고 했다. 이 역시 교육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근본 대책은 되지 못한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가진 자가 유리하다는 것은 여러 조사 결과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어머니의 편지와 몇몇 자료를 훑어보면 중하위 계층 가정이 겪는 자녀교육의 고통과 좌절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다. 학습 도우미 파견의 확대, 한부모 가정을 위한 실질적인 학습지원 프로그램 제공 등은 당장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은 한 정권이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당과 정파, 진보와 보수를 초월한 범국민적인 기구를 만들어 단기적 교육 격차 해소 방안과 함께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균등한 기회의 보장, 아직도 위력이 여전한 명문대 중심의 일자리 경쟁, 직군 간의 지나친 임금 불균형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계층이동 사다리의 복원과 불평등 해소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더욱 벌어지고 있는 교육 격차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삼성의 창업과 그 수성

오철환객원논설위원 삼성 이병철 창업자는 1938년 3월1일 대구 인교동에서 삼성상회를 열었다. 마산에서 곡물상을 하다가 실패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인재를 가장 중시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애초 쓰지 않았고 일단 믿고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않고 과감하게 맡겼다. 와세다대학 시절 사귄 친구 이순근을 삼성상회 지배인으로 발탁해 경영 일체를 일임한 일화는 그 실천이었다. 이순근 지배인은 삼성상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음으로서 그 신뢰에 보답했다. 이러한 인재중심경영은 시종일관 지켜졌다.삼성상회가 순풍에 돛단 듯 번창하자 이병철 회장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양조업에 진출해 대박을 치면서 손꼽히는 부자가 된 것이다. 해방이 되자 사업보국이란 측면에서 새로운 사업을 모색했다. 1954년 대구에서 삼성의 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돈병철로 불리며 거부의 대명사가 됐으나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해 전자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금성사가 선도기업으로 국내 가전시장을 장악한 상태라 삼성의 뒤늦은 전자산업 진출은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병철 회장의 성공은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입증해준 셈이다.이건희 회장은 창업자의 3남이지만 1987년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등극했다. 장남과 차남의 하극상에 힘입어 어부지리로 후계자가 된 점도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사에서 ‘초일류기업’이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삼성의 목표와 진로를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밝혔다. 이는 회장으로서의 자격과 실력을 맛보기로 살짝 보여준 터였다. 아울러 삼성창업자의 인재를 보는 안목에 기대를 갖게끔 하는 단서로 작용했다.‘자신부터 바꾸라.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집약된 혁신경영은 1993년의 신경영대장정으로 나타났다. ‘초일류기업’이란 비전을 달성하기위해 뼈를 깎는 혁신을 시작한 것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초일류는커녕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근 두 달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수십 차례에 걸쳐 강연을 진행했다. 경쟁기업의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그를 통해 청출어람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반도체, 휴대폰, TV는 세계 일등으로 올라섰다. 위기를 먼저 절감하고 대응한 덕분에 기회를 잡은 것이다.‘양보다 질’이라는 품질경영은 혁신의 또 다른 콘텐츠다. 1995년 구미사업장의 ‘애니콜 화형식’에서 휴대폰, 팩시밀리 등 불량품 15만여 개를 부수고 불태웠다. 500억 원 상당 제품들이 연기로 사라졌다. 이 놀라운 퍼포먼스는 삼성브랜드를 최고 품질을 가진 일등제품으로 끌어올린 상징적 이벤트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휴대폰의 국내시장점유율이 올라가고 세계시장 공략에 성공한 밑바닥에 이건희표 품질경영이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삼성전자는 1988년에야 휴대폰 사업에 진출했다. 이 회장은 “한 사람이 휴대폰 1대를 보유하는 시대가 온다”며 무선단말기를 삼성전자의 미래사업으로 선정했다. 그의 예측대로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생활하는 세상이 됐고 스마트폰은 삼성의 주력상품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이러한 성과는 그의 뛰어난 통찰력과 남다른 예지력이 낳은 결실이다.이 회장은 인문학과 디자인의 중요성도 일찌감치 간파했다. 인문적 소양을 가진 인재와 뛰어난 디자이너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의 스마트폰과 컬러텔레비전이 항상 한발 앞서가는 디자인과 콘텐츠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도 세련된 디자인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그 속에 스며있는 인간존중의 정신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사회엔 문화가 경쟁력이라는 그의 예언도 현실이 됐다. 방탄소년단의 경이로운 활약상을 보며 미래를 읽는 그의 눈에 그저 신통방통해 할 뿐이다.삼성임직원은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 회장의 리더십이 50여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간접적인 전후방연관효과까지 감안하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렸다. 한 명의 천재가 전 인류를 먹여 살리는 시대를 예고하는 전주곡이다. 이병철 회장이 창업에 성공한 기업가라면 이건희 회장은 수성에 성공한 기업가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고 한다. 이 회장은 수성을 넘어서서 세계 초일류기업이란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올린 걸출한 위인이다. 그도 인간인 이상 그 허물이 없을 수 없다. 그 공에 비하면 그 허물은 깃털처럼 가볍다. 가벼운 허물을 두고 3류 행정과 4류 정치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 회장은 비록 떠났지만 제 갈 길을 잘 가도록 삼성을 힘껏 응원한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정명희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화살나무 이파리가 빨갛게 물들었다. 길손에게는 가을이 깊어가니 순간을 잊지 말고 잘 살아가라고 알리는 것 같다. 내려가는 기온에 빨리 가을 색으로 물들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꽃과 나무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지났으니 이제 늦가을로 접어든다. 울긋불긋 물들어 흩날리는 단풍잎을 따라 마음에도 살랑살랑 바람이 이는 날, 맑게 갠 하늘에 따스한 햇볕을 등에 받으며 출근하다가 잠시 순간의 평온을 느껴본다.세상이 아무리 야단법석을 해대어도, 코로나가 제아무리 끈질기게 이어져도, 자연의 시계는 늘 흔들림 없이 째깍째깍 가고 있지 않던가. 봄이 온 줄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꽃도 활짝 피어났고 뜨거운 햇살로 여름을 느끼게 했고 이젠 꽃집마다 탐스러운 국화 화분이 줄지어 서 있는 가을이 찾아와 우리에게 이 한때 잠시 숨돌려보라고 재촉한다. 국화가 만발한 들판에서 마음껏 들숨 날숨 해가며 가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모두 굴뚝같지 않으랴.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즐기던 이도 어느새 따뜻한 커피를 선호한다. 커피 잔을 통해 전해오는 따스함을 느껴가며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는 평화로운 가을을 맞을 수 있다면, 놀랍고 걱정스러운 것 없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겠는가.한 시대를 풍미하던 삼성가의 이건희 회장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친인 이병철 회장 타계 후 13일 만에 회장에 취임했다는 이건희 회장, 오랜 숙고 끝에 내놓은 것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이었다고 하지 않은가.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심정을 토로했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 한두 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얼마나 답답한 심정이었을까. “마누라·자식 빼곤 다 바꿔라” 외치던 그의 결단으로 지금의 삼성을 만들지 않았던가.세상 참 덧없다고 허전해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건장하게 생활하던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심폐소생술과 온갖 최신의 의료기술로 소생은 했지만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수년 병원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저세상으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백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에 팔순도 못 넘기고 떠난 그의 일생, 아쉬움도 많았을 것 같아 생각이 자꾸만 맴돈다.일전에는 호세 무히카(85)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서민적인 대통령이었던 그를 우루과이 국민들은 “페페”라 불렀다. 그는 특히 대통령답지 않은 청빈한 생활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대통령궁을 노숙자에게 내주고 본인은 원래 살던 농가에서 출퇴근했고,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도 화초 키우는 일을 계속했다.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자동차를 직접 몰고 다녔고 대통령 월급의 90%를 기부했다. 그가 많은 말을 하지만 결코 국민을 속이지 않는 대통령,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지만 ‘철학자’로 불리는 대통령이라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그는 명연설가로 기억되기도 한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합니다. 돈 나갈 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할부금을 다 갚을 때쯤이면, 인생이 이미 끝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앉아서 일하고 알약으로 불면증을 해소하고 전자기기로 외로움을 견디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화를 막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생각이 지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무히카는 좌익 게릴라로 무장 투쟁에 나섰고 군사 독재 시절에는 총 15년간 감옥살이까지 했다고 한다. 그의 고별사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 85세에 정계를 떠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증오는 불길입니다. 불타는 사랑은 뭔가를 창조하지만, 증오는 우리를 파괴합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내 정원에 증오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미워하면 어리석음에 이르고 객관성을 잃는다는 게 내 삶에서 힘들게 얻은 교훈이기 때문입니다.”증오가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이때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닌 상대편에 대해서는 쉽게 분노를 표출한다. 정치무대에서 퇴장하는 무히카 전 대통령에게 국민은 “고마워요, 페페”라며 환호했다. 수십 년 동안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던 지구 반대편 노정객의 고별사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던가. 이를 되새기면서 오늘 우리 마음의 정원엔 무엇을 심어볼까.

일본유학은 죄가 아니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 일본유학을 갔다 온 사람은 친일파, 민족반역자이고 이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유학을 갔다 온 사람은 친일파이고 친일파는 민족반역자이며 민족반역자는 단죄해야 한다는 논리다. 논리학에서 어떤 명제가 참이라면 그 대우도 참이다. 일본유학을 다녀온 자는 반역죄인이라는 논리가 참이라면 그 대우도 참이다. 처벌받지 않으려면 민족반역자가 되지 말아야 하고 민족반역자가 되지 않으려면 일본유학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참이란 의미다. 그런데 처벌받지 않으려면 일본유학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참일 수 없다. 원명제의 대우가 거짓이라는 의미다. 대우가 거짓이라면 대우의 대우는 당연히 거짓이다. 대우의 대우는 원명제다. 즉 대우가 거짓이면 원명제도 거짓이다. 복잡한 논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일본유학을 갔다 온 사람을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라도 발전한 것은 뒤늦게나마 외국의 학문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받아들인 성과다. 유럽의 중세가 가톨릭에 갇혀 살았던 암흑기였다면 중국만을 선진국으로 섬기고 성리학을 절대적 진리체계로 신봉하던 조선시대는 우리 역사의 암흑기였다. 두꺼운 벽을 허물고 빛을 비추어 미몽에서 깨어나게 한 사람은 새로운 학문에 눈 뜬 선각자였다. 최초의 유학생인 유길준과 같은 해외유학파와 선진문물을 전해준 선교사들이 개화의 횃불을 들었다. 외세를 업고 추태를 보였던 친일파, 친미파, 친러파 등도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고 국제정세를 오판한 잘못은 인정되지만 기본적인 애국심은 가지고 있은 듯하다. 그 누가 자기 가족, 자기 민족,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19세기 구한말의 지배계층이 좀 더 빨리,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의 선진학문과 문물을 배우고 수용했다면 그렇게 무기력하게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진 않았을 터다. 해외유학은 단죄해야 할 죄악이 아니라 포상해야할 미덕이다. 유학 대상국은 제한이 없다. 꼭 선진국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과거의 원수라고 하여 안 될 이유도 없다. 보잘 것 없는 소국이라도 타산지석이 될 만한 유익한 문화는 존재하고, 나라를 가릴 것 없이 그 나라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필요하다. 개인은 선악의 개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가는 그 선악을 특정할 수 없고 감정이 없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불변적 성향의 개별성은 없다. 나쁜 나라는 나쁘고 좋은 나라는 좋다는 식의 가치판단이 국가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는다. 일본도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일본이라고 특별하진 않다. 현해탄을 끼고 이웃하는 일본은 고대부터 우리나라와 교류해오던 사이다.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수틀리면 주먹다짐도 마다않았다. 수시로 노략질을 일삼으며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이웃나라와의 이러한 갈등관계는 영국과 프랑스, 덴마크와 스웨덴, 터키와 그리스 등 다른 나라에서도 어렵잖게 발견된다. 먼 나라는 접촉할 일이 드물고 영토분쟁이 거의 없으나 가까운 이웃나라는 늘 붙어있는 관계로 싸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터다. 이웃나라는 이해가 엇갈려 싸워야 할 운명을 타고나지만 상호 내왕하면서 협력해야 할 숙명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같은 공간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면 형제간이라도 얼굴 붉힐 일이 남보다 많은 법이다.강제 병합해 고통을 준 일제의 만행은 잊혀 질 수도 없고 잊혀 져서도 안 된다. 이제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75년이 지났다. 아직도 일본과 불행한 과거사에 발목 잡혀 수시로 충돌하고 한다. 이웃나라와의 위상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제 새 역사를 써야할 때다. 미래에도 일본과 이웃하고 살아야 한다면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본과 친하다고 반역자라 해선 답이 없다. 국가 간 감정은 허상이다. 일본도 이젠 우방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영원한 적으로 고정된 나라는 없다. 서로 이해가 갈려 돌아설 땐 돌아서더라도 그렇지 않을 땐 친구다. 더구나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지금과 달라질 개연성이 크다. 지금까진 개인이 수동적으로 국가의 일원이 되었지만 글로벌시대엔 민족이란 관념적 허구는 사라지고 국가는 대체재로 전락할 수 있다. 마음에 맞는 국가를 각자가 선택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말이다. 국가의 경계가 옅어지는 현상을 목도하노라면 그런 세상이 벌써 코앞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는 시대에 친일파 프레임을 씌워 국민을 갈라 치는 일은 시대착오다. 시대가 변해도 유학이 죄가 될 것 같진 않다. 일본유학은 죄가 아니다.

삶이란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천연색으로 가을이 깊어간다. 누렇게 익어가는 알곡 가득한 들판과 그 언저리에서 수문장처럼 흔들리는 하얀 억새꽃이 마음을 풍요하게 한다. 단풍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울긋불긋 물들이고 늘 즐거운 날이 되기를 응원하는 것 같다.제법 쌀쌀해진 아침 공기지만 창을 열어 깊은숨을 들이켜 가을의 향내를 맡는다. 이제 코로나 발생 건수도 지역에서는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자 하나둘 모임을 시작한다는 연락이 온다. 출판기념식 행사를 회장댁에서 열기로 했다는 문학동아리 소식이 왔다. 회장님은 집을 내시고, 참석자를 위해 운전사를 자처하는 분도 있고, 일찍 만나 팔공산 순환도로 단풍을 먼저 구경하고 저녁에 기념식에 참석하자는 제안도 있어 마음이 들뜬다. 총무 고생한다며 인도 카레 음식점에서 미리 점심 대접을 하고 싶다던 친구는 선뜻 답을 하지 않자 ‘필참’이라는 별 문자를 보낸다. 가을은 소소하게 또 한껏 풍성하게 사람의 마음을 많이도 들뜨게 하나 보다.입원한 코로나 환자를 생각하다 보면 아직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에 늘 가득하다.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열이 있거나 호흡기 감염 증세가 있으면 부쩍 긴장하게 되니 말이다. 의심되면 빨리 취합 검사하고 또 입원해서 그 결과를 알아본 후에 일반 병실로 옮겨 치료하면 되는 체계가 마련돼 있으니 그나마 안심은 되는 상황이다.창틀에 있던 시클라멘이 빨갛게 꽃을 피웠다. 코로나가 한창 지역을 휩쓸고 있던 봄에 입원해 거의 한 달 병실 생활을 했던 이가 지나는 길에 들렀다면서 주고 갔던 화분이다. 언제 꽃이 피어나기는 할 것인가? 반신반의하면서 창가에 두고 조금씩 물만 주었었다. 그 꽃이 보란 듯이 질긴 생명력을 이어 살아나 가을이 되자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시클라멘의 꽃말은 수줍은 사랑이라던가. 내성적 사랑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꽃, 시클라멘이 오늘은 새삼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수줍은 듯 고개를 살짝 수그리고 꽃잎을 오므리고 있는 모습이 병실에서 오래 조용하게 인내하며 치료받던 그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진다. 그 환자가 좋아한다던 꽃, 꽃봉오리가 피기 시작해서 꽃이 활짝 피더라도 꽃잎이 아래로 향해서 피어 있어 좋다고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가 좋아하는 이유는 잎에도 대리석 무늬와 같은 아름다운 문양이 들어 있어서 더 든든해 보여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다.시클라멘 꽃을 보니 언젠가 들었던 전설이 떠오른다. 수도에만 전념하며 수녀님이 되고자 했던 이가 오랫동안 함께 있던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됐다. 사랑을 알게 되자 종교에 귀의하고자 행하는 수도 생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종교를 뿌리치고 결국은 그 남자와 살기로 하고 도피를 했다. 사랑은 잘 이뤄지지 않았고 심적인 갈등만 겪다가 결국 세상을 하직하기로 했다. 그때 피를 흘린 수도녀의 넋이 시클라멘이 됐다는 이야기. 꽃이 빨간 것은 슬픔이 칼처럼 꽃의 심장을 찔렀기 때문이라는 말이 아프게 느껴졌었다. 화려하고 예쁜 색상으로 눈에 확 들어오는 시클라멘 꽃, 꽃말과 전설이 코로나를 힘들게 이기고 오늘도 소문 없는 생활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다던 그 환자와 겹쳐 더욱 나의 눈길을 끈다. 꽃 선물할 때면 이제부터는 시클라멘이 제격일 것 같다. 코로나의 거리 두기가 조금은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조심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줍은 사랑을 지켜야 하기에. 겨울철에도 활짝 피어있는 꽃이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연말이면 서로 생각하는 이에게 시클라멘 꽃을 선물하면 올해는 더욱더 좋지 않을까 싶다.해마다 이맘때면 창으로 비켜 드는 햇살로 벽에 무지개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파서 병원에 온 아이들은 그 무지개를 보면 발로 밟아보기도 하고 손으로 움켜잡아 보기도 한다. 그렇게 몰입해 무지개를 다루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행복과 불행은 당사자의 선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을 선택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문득 김수환 추기경님 말씀이 떠오른다.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나누며 살다 가자.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리니 나누며 살다 가자. 누구를 미워도, 누구를 원망도 하지 말자. //…중략…//재물 부자이면 걱정이 한 짐이요. 마음 부자이면 행복이 한 짐인 것을~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마음 닦는 것과 복 지은 것뿐이라오.’삶이란 어쩌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아니겠는가. 순간순간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리며 하루를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으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잡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깊어가는 이 가을에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인생은 무언가, 또는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엮어지는 드라마를 닮았다. 그때 그 사람을 또는 그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되어 있을 까닭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와 같은 만남을 그저 운명이라고만 치부해 버리고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병주의 ‘허망과 진실’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1979년 가을 나는 병상에서 상, 하 두 권을 단숨에 독파했고, 이후 몇 차례 반복해서 읽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책을 꺼내 밑줄 친 부분들을 다시 읽어 본다. “허망 그 자체가 진실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허망의 프리즘을 통하지 않곤 어떤 진실도 붙잡을 수가 없다. 허망하기에 진실이 아름답다는 것은 결코 역설이 아니다. 허망을 배운 사람은 이미 지옥을 보아버린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 허망을 뚫고 찾아낸 진실만이 지옥을 견디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란 인식이 굳어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이런 구절을 보면 호흡이 빨라지고 알 수 없는 힘이 꿈틀거린다.니체 편에 줄 친 부분도 다시 읽어본다. “사람은 탁한 강물이다. 이 탁한 강물은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받아들이려면 바다가 되어야 한다.” 이병주가 뽑아낸 차라투스트라의 이 말을 몇 날 며칠 되씹고 곱씹기도 했다. “바다가 된 사람이면 초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너무 좋아 홀로 감포 앞바다를 찾아갔던 일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는 평생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어떤 사람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고동락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어떤 사람은 잠시 만나 공원의 벤치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나눈 사이밖에 안 되지만 생각할수록 가슴 저리고 간절히 보고 싶다. 위대한 열정, 위대한 정신의 만남은 인류사와 문화예술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독일 헌법의 도시 바이마르에는 위대한 예술가의 우정도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프리드리히 실러는 1788년 어느 부인의 집에서 처음 대화를 나눴다. 이 만남을 통해 괴테는 궁핍한 생활을 하던 실러에게 예나 대학 역사학 교수 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그후 어느 학술대회에서 만나 우연히 함께 길을 걸으며 장시간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의 학문적 공통점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자연과학의 세분된 연구 방법에 반대하고 통합적인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자연을 어떻게 재현할지에 관한 방법론은 서로 달랐다. 괴테는 현실적인 체험에 근거해 자연을 재현할 수 있다고 봤다. 실러는 이념에 근거해 자연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두 사람은 서신과 방문 대화를 통해 서로 격려하며 문학적 공동작업을 진행했다. 두 사람의 만남 이후 독일 고전주의는 무르익게 된다. 1799년 실러는 예나를 떠나 괴테가 있는 바이마르로 옮겼고, 이때부터 찬란한 ‘바이마르 황금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두 사람은 독일예술의 중심인 바이마르 극장을 공동 운영하면서 작품 선정과 각색 논의 등을 같이 진행했다. ‘빌헬름 텔’은 폭정에 저항한 스위스의 독립운동 이야기인데 괴테의 권유로 실러가 썼다. “진정으로 강한 자는 혼자일 때 가장 강합니다.” 이 구절은 아직도 내 머리와 가슴에 온전히 남아 삶의 고비마다 내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매게 한다. 1805년 실러가 45세로 세상을 뜨자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과 생산적인 협력은 끝나고 독일 고전주의도 종언을 고하게 된다. 현재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는 괴테와 실러가 마주 손을 잡고 있는 동상이 있다. 어떤 사람이 괴테에게 "당신과 실러 중에 누가 더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더 위대한 어느 한 사람보다는 누가 더 위대한지 모르는 두 사람이 있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괴테가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인생은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엮어지는 드라마’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 단테와 베아트리체 같은 운명적인 만남은 어렵다. 그러나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면서도 사람보다 더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음 먹고 손을 뻗기만 하면 도처에 좋은 책이 있다. 책은 행복감을 높여주고 술과 담배를 줄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책을 잡자. 좋은 책은 이 풍진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삶의 등대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긁어 부스럼’이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종전은 전쟁이 실질적으로 끝난 상태를 말한다. 6·25 정전협정 이후 67년쯤 평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전쟁당사자 간의 종전협정이 없었으므로 현학적으로 따지자면 아직까지 전쟁 중이고 휴전상태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하고 전쟁을 끝내자는 주장이 나온다. 얼른 생각하면 그럴듯하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간단하게 볼 사안은 아니다.지금 상황이 절차적으로 휴전 중이라 하나 현실적으로 전쟁은 끝난 상태다. 지금 다시 남북 간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것은 종전선언을 하지 않아서라기 보단 새로운 현재적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종전 여부와 관계없이 항상 발발할 개연성이 있다. 지금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도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한반도에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종전선언이 아니라 힘의 균형을 무너트리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정신적으로 결벽증이 있어 종전선언이란 형식적 절차에 집착한다하더라도 먼저 헌법부터 개정하는 게 바른 순서다. 헌법 제3조에 규정된 국토의 범위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서 ‘현재의 통치권이 미치는 점유부분’으로 조정해야 한다. 아울러 동 제4조에 규정된 통일 국시도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종전선언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선언하는 국제적 약속이다. 허나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조약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에 우선할 순 없다. 종전선언에 앞서 헌법 개정 작업이 선행해야 하는 소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전선언이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켜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면서 굳이 어지러운 시기에 갈등과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추진하는 진짜 속셈이 뭔지 궁금하다.종전선언을 하려면 전쟁당사자 간 종전협정을 먼저 해야 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참전해 엄청난 전사자를 낸 대한민국과 중국이 그 출발선을 가로막고 있다. 양국이 정전협정의 서명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종전협상을 막아서는 장애물이다. 전쟁책임과 배상문제, 국경분쟁 등도 언제 돌출될지 모르는 숨은 암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휴전이후 오랜 세월이 경과한데다 초강대국이 복잡하게 얽혀 전쟁의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힘의 균형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종전선언은 현 균형상태를 깨트릴 소지가 다분하다. 유엔사와 미군의 존재는 누가 뭐래도 강력한 전쟁억지력을 갖는다. 유엔사가 이름뿐인 상태이긴 하지만 아직 전쟁당사자 지위를 벗어난 건 아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도 전쟁당사자 자격으로 계속 주둔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할 땐 유엔군과 미군은 특별한 절차 없이 자동 참전이다. 이러한 사실이 힘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초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에 처한 한반도는 민감한 곳이다. 작은 변화가 힘의 균형을 깨트리는 트리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예민한 상태에서 종전선언과 같은 불확실한 모험을 걸 필요가 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균형상태에서 변화는 일단 위험하다.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 반드시 평화가 오는 건 아니다. 평화협정이나 불가침협정을 맺고 아무 거리낌 없이 전쟁을 벌인 일이 비일비재하다. 체임벌린 수상의 예에서 봤듯이 전쟁 앞에 협정서는 한낱 휴지조각일 뿐이다. 전쟁은 승리하는 나라가 모든 걸 갖는 제로섬게임이다. 전쟁에서 패한 나라는 사라지고 승리한 국가만 살아남는다. 승리한 국가가 역사를 이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명분 없는 부당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이기는 것이 정의다.전쟁은 왜 근절되지 않을까. 부담이 크긴 하지만 그 위험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승전국은 땅은 물론 패전국을 송두리 채 빼앗아간다. 설사 땅을 돌려준다 해도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리고 불평등협약을 강요한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해야하고 비난과 견제를 받지만 이를 감수하고 다른 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유는 전쟁의 높은 가성비에 끌리기 때문이다. 북한이 허리띠 졸라매면서 무리하게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는 골목에서 막대기 들고 칼싸움하는 애들도 잘 안다. 국가가 부단히 군비경쟁에 매진하는 것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평화가 좋다며 무장해제를 한다 해도 봐줄 나라는 아무도 없다. 종전선언은 ‘긁어 부스럼’이다. 정신 줄을 놓아선 안 될 때다.

두 번은 없다/정명희

가을이 깊어간다. 하늘은 높고 단풍은 날로 붉어진다. 자욱한 안개에 밝게 비치는 햇살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마스크를 쓰고 세 계절을 지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필수품 1호가 돼 함께 하고 있다니. 언제쯤 이 녀석을 던져 버리고 홀가분하게 살 수 있으려나.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낼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정말이지 집이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얄팍한 한 장의 마스크가 우리의 삶을 이다지도 크게 지배할 줄이야. 급히 나서다가 그 필수품을 챙기지 않아서 다시 돌아간 적도 많다 보니 이젠 여기저기, 구석구석에 마스크를 몇 장씩 비치해두고 언제 어디서든 꺼내서 쓸 수 있게 했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을 지경이 됐으니 그동안 코로나가 지배한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가. 잠시 밖에 나설 때도 휴대폰보다 먼저 챙기는 것이 마스크가 됐다니 그것 한 장이 주는 심적인 위안이 대단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까운 지인과의 피치 못할 식사 모임에도 밥을 먹는 잠시의 시간 이외에는 모두 마스크를 한 채로 대화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생활 방역이라는 단어에 단단히 습관이 들고 그것으로 중무장 돼있는 우리들의 일상이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진다. 나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 봐 할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우리의 도리이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이젠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도 많이 줄어들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지는지 결혼식이 가을이 되자 봇물이 터지고 있다. 주말이면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시간 간격도 없이 이어진다. 아직은 마스크를 쓴 하객들, 제한된 인원만 참석하게 돼 그나마 거리 두기를 하는 결혼식이라 마음껏 참석은 못하지만 그래도 식을 올릴 수 있는 신랑·신부에게 마음으로 정성 들여 축하라도 해야지 하면서 성의를 보내곤 한다. 코로나 시대에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을 날을 정해놓고 얼마나 노심초사했겠는가. 한 친척의 혼례식 소식은 봄에 받았던 결혼식 청첩장 일정이 바뀌어 다시 인쇄되어 가을날에 도달했다. 그러다 보니 연거푸 시간 간격을 잘 짜서 참석하여야 해서 주말이면 정신없이 바쁘다. 어려운 시기에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선 이들에게 진심 어린 축복을 보내며 몇 곱절 어려움을 이기고 결혼식을 하는 만큼 더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빌어본다.아무도 없을 때 행복하다던 사람도 며칠 전에 식을 올렸다. 결혼식장에서 그의 입은 함박꽃처럼 됐다. 코로나 시대에 환자들을 보면서 인생을 통달하였던가. 둘이 함께 서로 논의하고 도와가며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며 더없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것 같은 신랑·신부가 되기를 참석한 모든 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다.바람도 계절도 꽃도 산도 하루하루 달라져 간다. 인간도 정물이 아닌 동물이지 않던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면서 처음부터 뜻이 잘 맞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티격태격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둘이 함께여서 더 든든하고 또 성장하지 않겠는가. 자식들이 장성하다 보니 선남선녀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 부모님은 그래도 일찍 인생의 숙제를 마칠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훌쩍 덜 수 있었겠다 싶어서 참 부럽다.창가에 햇살이 살랑거리는 오후, 커튼에 어른대는 나무의 그림자가 참으로 행복하게 느껴지는 가을이다.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가 세상을 경험하면서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활력을 얻지 않겠는가. 내가 아는 사람은 늘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행복은 집에서 삽니다. 익숙한 안온함, 변함없는 편안함은 집에 있어요. 집은 언제나 정다운 얼굴로 우리를 안아줍니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세상은 늘 문밖에 있지 않던가.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 새로움을 발견하고 발전의 가능성을 찾아서 나아가야 발전하지 않겠는가. 있는지도 몰랐던 세상은 우리의 편안한 집이 아닌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집을 나서야만 볼 수 있는 세상일 것 같다. 눈부시게 빛나는 바깥을 지금 찾아 나서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기에.시인도 노래하지 않은가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 겨울에도 낙제는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중략…// 그러므로 아름답다.’오늘을 꿋꿋하게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껏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높은 하늘과 더 푸른 공기, 더 반가운 얼굴들을.

힘은 쓸 때 써야 힘이 된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내용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므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 제2조2항에 재외국민까지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국민을 보호할 의무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생명권은 생존의 기초가 되는 천부의 권리이고 재산권은 자유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로서 존립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최근 국가공무원이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고 불태워졌다. 정부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적극적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손 놓고 방관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러한 의심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국가의 의무를 유기했거나 포기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국회 차원에서 특감을 실시하는 등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조사해 그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그 결과 국가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이 드러난다면 통치권자가 그 책임을 져야 할 위중한 사안이다.월북 여부가 논란이다. 망명자를 사살한 것이라 하더라도 불씨는 여전히 남는다. 허나 월북 여부는 핵심이 아니다. 여야가 이 사건을 정쟁의 볼모로 잡아선 미궁 속으로 빠질 뿐이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당하고 불태워지는 동안 국군통수권자와 군대가 무엇을 했는지가 관건이다. 현행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다. 이에 의하면 북한은 국가가 아니고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북한은 국토를 불법으로 점유한 무장집단이거나 국가전복세력이다. 북한은 한시바삐 척결해야할 내부 반란세력이다. 반란군이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그 시신을 불 태웠다면 그 즉시 응징해야 맞는다.허나 현실적으로 북한은 대한민국의 통치권과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실질적인 국가다. 우리와 전면전까지 벌이고 지금은 휴전상태인 엄연한 국가다. 현행헌법 규정은 선언적일뿐이다. 북한을 국가가 아니라 불법무장세력 내지 반란군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유엔 회원국이기도 하다. 외교부장관이 북한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 북한이 국가라면 북한이 한 행위는 인권유린이자 국제법 위반이다. 이웃나라가 무단히 자국의 국가공무원을 사살하려한다면 그 즉시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국민의 생명을 구할 의무가 발동된다. 이미 국민이 피살되고 그 시신을 불태웠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적을 응징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를 완수하는 길이다. 비록 전쟁이 발발할 개연성이 크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포기해선 안 된다.전쟁을 두려워해선 국민과 국가를 지켜낼 수 없다. 모든 국가가 전쟁을 두려워하긴 매일반이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의 침범을 묵과한다면 먼저 침범하는 나라를 제재할 방도가 없을뿐더러 나라다운 나라로 바로 설 수 없다. 작은 도발에 상응하는 보복행위는 정당방위로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낮다. 상대가 핵을 가졌더라도 핵까지 사용해 항전할 확률은 거의 없다.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다. 맞고도 가만히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싸워야 할 때 싸울 각오가 된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미국은 ‘9·11 테러’를 당하자 즉시 세계를 향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엄포에 그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으로 진군해 그 보복을 감행했다. 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나 범죄는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교훈을 세계인에게 각인시켜줬다. 러시아인이 탄 선박이 아덴만에서 해적의 습격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러시아는 대대적 군사작전을 펼쳐 해당 해적을 깡그리 전멸시켰다. 러시아의 보복은 무관용적이고 지나치다 할 정도로 강경했다. 잔인한 면이 있긴 했지만 예외 없는 단호한 응징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자국민을 확실히 보호한다는 메시지를 만방에 전했다. 해적은 러시아 깃발만 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됐다.단 한 사람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자세로 국민을 지켜주는 나라가 진정한 나라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써가며 평화 시에도 군대를 유지하고, 국민개병제도로 젊은 장정의 황금 같은 시간을 빼앗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민을 지켜낼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힘이 있어도 꼭 써야할 때 쓰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플라비우스의 명언이 문득 떠오른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특별한 것을 만드는 비결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연휴가 끝났다.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다시 힘차게 움직인다. 민족 대이동이 있던 여느 때와는 달리 이번엔 민족 대 멈춤 운동이 벌어졌다. 팸플릿에 찍혀 입구마다 걸려있는 문구는 나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힘겨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추석엔 ‘안 와도 된 데이(Day)’라는 글귀 너머 연로하신 고향의 어르신들 모습이 짠하게 어른거린다. 일찍 조상님께 차례를 모신 덕분에 여유 있게 나들이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도로는 정말 한산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음식을 내부에서 먹을 수 없고 테이크아웃만 된다고 하니 서 있는 차들조차 몇 대 없다. 정말 사람이 이렇게도 나다니지 않는 것인가? 멈추라고 하는 지시에 모두 집안에 머무르며 코로나19가 또 더 많이 생겨날까 봐 지켜보며 걱정하는 것일까? 일이 있어 몇 차례 시골집을 오가게 됐다. 그때 지나면서 바라본 시골의 집과 도로는 정말 적막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국민들이 또 있을까. 이렇게 한마음 한뜻이 돼 정부 시책에 협조하는 백성들, 모두에게 축복이 눈발처럼 내려오지 않으랴. 이번 추석은 나훈아를 시청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남녀노소 전 세대가 온통 나훈아로 들썩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화제다. 지난달 말,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 실황이 KBS2를 통해 방송됐다. 다시 보기가 없는 한 번뿐인 공연영상이라 아주 뜨거워져 전국 시청률 29%를 기록했다고 한다. 부산, 대구, 서울은 30%를 넘었다고 하니 과연 ‘나훈아’이지 않은가. 3일에는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 이 방영됐다. 실황 방송 뒷이야기와 공연 영상 하이라이트를 함께 엮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스페셜 방송도 시청률 18.7%를 기록했다고 한다. 평소 TV를 시청하지 않는 우리 집에서도 긴 시간 텔레비전을 마주하고 빠져들었을 정도였으니. 중·노년층뿐 아니라 젊은 층의 관심까지 전 세대가 ‘나훈아’로 들썩인 연휴였던 모양이다. 데뷔 54년 만에 생애 처음 도전했던 비대면 콘서트를 마치고 밝힌 가황의 소회가 가슴에 와 닿았다. “코로나19 때문에 내가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라며 그는 콘서트 개최를 결심했다고 한다. 공연을 위해 지난 6월부터 제작진과 첫 기획 회의를 시작하며 대형 야외공연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동안 빽빽하게 적어간 노트의 기획안과 줄을 긋고 다시 고치고 색칠까지 해가며 멋진 야외공연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려고 꿈꾸었지만, 8월 중순 코로나19가 재확산됐지 않은가. 당초 기획한 거대한 배를 띄우고 시작하는 야외 대형 공연 개최는 불가능해졌다. 결국 KBS홀에서 무관중으로 공연을 여는 것으로 변경되어 사상 최초로 관객 없는 무대를 꾸미게 된 나훈아, 하지만 그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언택트 공연에서 “오늘 같은 공연을 처음 해본다. 공연을 하면서 눈도 보고 손도 잡아보고 해야 하는데 눈빛도 잘 보이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은가. 가황 나훈아는 “예전에 군대 위문 공연을 하러 갔는데 비가 너무 와서 마이크도 안 됐고 비상등 하나 켰는데 사람은 다 찼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이크, 음악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며 “그런데 군인들이 더 재밌어 하더라, 그런 경험들이 있다 보니까 ‘코로나19, 이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것 때문에 절대 내가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 하나, 피아노 하나 있으면 어때, 해야지!” 라고 말하던 그가 정말 멋진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한 말 중에 잊지 못할 구절이 있다. “나는 지치지 않고 했다, 끝까지 지치지 않고” 정말이지 이 어둡고 쓸쓸한 코로나 시대의 추석 명절에 그로 인해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그처럼 멋진 가수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도 참 복이 많은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무작정 직장의 기관장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이번 공모에도 도전한 줄 알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지인들이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내부에서도 도전장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을 재차 상기하도록 해주는 것, 그것으로 나의 소임은 다했다고 생각하였다. 귀하게 여겨 추구하는 소중한 가치는 때때로 달라지지 않던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위해 사람은 때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받아들이고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지 않으랴. 54년째 가수로 살아오면서 연습만이 살길이고 연습만이 특별한 것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던 가수 나훈아의 이야기가 가슴을 파고든다.오늘도 소중히 여기는 일에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순간순간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대구경북행정통합에 대한 넋두리

오철환객원논설위원최근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대구경북통합의 첫 단추를 꿴 셈이다.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경북에서 분리된 이래 39년 만에 도로 합치자는 것이다. 경북에서 ‘직할시’로 분리됐을 당시 대구는 도시의 격이 높아진 양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정확히 잘 몰랐지만 직할시에 산다는 자부심만으로도 다들 신바람이 났다. 누군가 ‘대구시’라고 말하면 화까지 내며 즉시 ‘대구직할시’라고 정정해주곤 했다. 부산처럼 직할시가 됐으니 대구도 비약적으로 발전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던 차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대구광역시’로 개칭됐다. 그 후 대구의 시세는 쪼그라들어 인천에도 뒤지는 신세가 됐다. 이제 몸집을 불리는 길만이 살 길이라며 ‘같은 뿌리론’을 들고 나와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럴 것 같긴 하다. 분리될 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대도시 시민은 촌민과 갈라서고 싶어 했다. 낙후된 농촌이 도시의 발목을 잡는다고 여기고 뛰는 놈만이라도 앞서가야 한다고 믿었다. 도시사람의 이기심을 여론이고 대세라며 다독이고 따라갔다. 마치 선심 쓰듯이 대도시를 떼어내 독립 시켜줬다. 해당 시민은 무작정 좋아했다. 한치 앞도 못 보는 어리석음이었다.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다.대구와 경북이 분리되었지만 오랫동안 경북도청을 위시해 경북의 주요기관 청사가 대구에 그대로 존치됐다. 행정이야 독립됐다지만 청사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공무원도 큰 변동이 없었다. 대구와 경북의 분리를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4년 전에 경북도청이 현 위치로 옮겨갔다. 경북경찰청 등 경북의 주요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농협 등 공기업까지 연쇄적으로 줄줄이 이전해갔다.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은 비로소 대구와 경북이 딴 몸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가 둘로 쪼개져 남남이 되고 난 후 양쪽이 다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경북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도 고달파졌다. 출퇴근이 힘겹게 된 탓이다. 도청사가 북부에 치우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선지 ‘환동해지역본부’를 포항에 이전·설치했다. 이전성과가 신통찮다는 징후다. 경남 등 청사 이전에 실패한 지자체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구와 경북이 분리된 지 39년, 경북도청사가 이사 간 지 4년이다. 이제 다시 통합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을 보니 새삼 격세지감이 든다. 소위 지역의 대표적 리더라는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예지력과 비전에 대한 통찰력이 너무 한심하고 초라하다. 경북도청사라도 원래 자리에 있다면 대구시청 직원과 경북도청 직원만 통합하면 될 일이다. 당분간 중복적인 직책이 있겠지만 각자 기존에 하던 일을 하면 그만이다. 직무의 대상지역과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사직이 사라지겠지만 그 외 총원은 불변으로 추가적인 예산은 불필요하다.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베이비붐세대가 퇴직하면 자동적으로 다운사이징 될 가능성이 크다. 주민 간 갈등은 발생할 이유가 없다. 행정통합은 공무원의 문제일 뿐이다.지금 와서 다시 거꾸로 되돌리자니 대구시청사와 경북도청사의 통합이 큰 걸림돌이다. 시청소재지와 도청소재지 인근 주민들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다. 양 지역의 주민들 간 갈등을 해결하는 일은 어쩌면 현실적으로 답이 없을 지도 모른다. 편이 갈리고 판이 확대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경북도청사를 이전한 일이 가장 큰 실책으로 불거진다. 일을 저지르긴 쉽지만 원상복구는 어려운 법이다. 쪼개기는 수월하지만 다시 통합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쪼개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다시 통일하는 일은 오랜 세월이 걸리고 많은 희생이 따른다.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하는 일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리더가 포퓰리즘에 영합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 이유다.사람과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수도권으로부터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자체의 몸피를 키워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서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관련 지역에서 파생되는 현실적 문제를 풀 수 있는 묘책을 찾아야 한다. 양쪽 공무원들에게 불이익이 없다는 보장은 선결과제다. 이러한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처방이 강구되지 않고 무작정 찬반투표로 결정하려 든다면 예측하지 못한 불행한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양쪽의 지역발전과 땅값변동에 대한 중립적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통합을 성사시키는 핵심 키일 것이다. 갈 길이 험하다.

거리두기 시대의 추석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여명 속으로 차를 몰았다.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 연장을 챙겨 선산으로 향했다. 들판은 누르스름하게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단풍도 어느새 울긋불긋 물이 들었다. 바이러스와 정신없이 싸우는 동안에도 자연은 인간들이 착실하게 추석을 맞이하라고 준비를 다 해주고 있나 보다.몇 밤만 자고 나면 중추절이다. 떡방아 찧는 소리 속에 추석이 다가온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30여 년 전 내가 갓 결혼했을 때만 해도 집에서 송편을 빚었다. 그해 나온 햅쌀을 물에 불려 깨끗하게 씻어 건져 물기가 빠지면 떡 방앗간에 가지고 갔다. 그곳에서 하얀 쌀가루로 갈아 집으로 가져오면 숙모님들은 반죽해서 모두 둘러앉아 밤이 이슥할 때까지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저마다의 소원을 담아 예쁜 송편을 빚었었다. 햇과일과 햇곡식을 조상에게 바치며 정성껏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추석, 둥그런 보름달이 떠오르면 누구보다 먼저 그달을 보면서 가슴 속에 품었던 이루고 싶은 소원을 간절히 빌곤 했다. 어린 시절엔 무던히도 기다려지던 명절이었건만 세월이 무심하게 흐르면서 세태도 변해가고 또 그때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그에 대한 기대도 의미도 엷어져 간다.송편을 잘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고 정성을 다하던 이들도, 솔향기가 솔솔 떡에서 나도록 넣어보자며 솔잎을 따오던 분들도 이제는 모두 저세상으로 가셨다. 양가 부모님 모두 안 계시는 추석 명절이라서 이번부터는 간편하게 지내기로 했다.더구나 올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다 함께 모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정부 정책에 동참하는 의미에서라도 간략하게 보내면 어떨까 하는 안을 내게 됐다. 명절이 돼서야 서로 얼굴을 만나는 형제자매들이라 그래도 추석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벌초를 함께 하기로 했다. 조상님 산소를 살피고 단정하게 풀을 깎아 추석달이 떠오를 때 기분 좋게 지내시게 하면 후손들의 마음이 그래도 편하지 않겠는가. 벌초하는 날을 어렵사리 잡았다. 오고 가는 거리를 생각해 덜 밀릴 것으로 생각하는 날을 받아서 예초기 날을 갈고 낫을 찾고 갈퀴를 챙겨 산소로 향했다. 새벽의 도로는 어둑할 때부터 붐비기 시작이다. 너도나도 추석 전에 성묘하러 가는 모양이다. 길에서 둘러보니 도로 옆으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에도 갈색 빛이 내려오고 있다. 희뿌옇게 터오는 동녘 하늘에 새 떼들이 한가로이 무리 지어 날아가고 있다. 마치 조상의 흔적을 찾아 돌아보듯이.풀이 수북하게 솟아오른 산소를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탄가스를 넣어 사용하는 예초기에 4개째 가스를 교환할 때쯤 서울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한 동서와 조카가 도착했다. 시누이도 정성스레 대게를 삶아왔다. 각자 정성껏 챙겨온 음식을 펴놓고 향을 피워 조상께 차례 인사를 올린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덜 붐비는 시간에 벌초하는 시간에 벌초 겸 성묘 겸 모시게 됐다고 남편이 아뢰었다. 두 번 엎드려 절하고 술을 한 잔씩 모두 돌아가며 올린 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조상님들 편안히 지내시기를 기원했다.명절은 늘 바쁘게 동동거리면서도 문득 멈춰서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깜빡 잊고 있었던 이들을 떠올리게 되지 않던가. 서로 서로 얼굴 마주하고 그동안 못다 한 정을 듬뿍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느 고향 마을에 붙어 있다던 문구에도 있지 않던가.“불효자는 ‘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찾아 가 자칫 코로나라는 무서운 역병을 전해줄 수도 있으니 마음은 늘 가까이 있더라도 이번 추석만은 몸은 멀리해야 할 것 같다. 늘 자식들을 그리워할 부모님이지만, 어쩌겠는가. 멀리서 안부 전하며 그리움을 마음 밭에 묻어 둬야 하지 않겠는가.하산하는 길가에 어디서 날아와 뿌리 내려 피어났을까. 가우라가 활짝 피어 바람에 살랑댄다. 논두렁에는 노랗게 피어난 커다란 돼지감자꽃이 큰 몸짓으로 흔들거린다. “나도 여기 있어요. 여기 서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지키고 있었다고요”라고 외치는 것 같다. 노란 꽃을 본 조카가 아는 꽃이 나왔다며 환하게 웃는다.“제가 아는 유일한 꽃이에요. 저것은 바로바로 ‘코스모스’에요.”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살펴 가라고 손짓하는 듯한 묘소들을 뒤로하고 내려오며 거리두기 시대의 추석을 생각한다. 어쩌면 코로나 이후의 명절 풍경은 이렇게 변해갈지도 모르겠다고.명절이 다가온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리운 이들에게 따스한 안부를 전해보자. 얼굴 뵈러 가진 못하지만,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서 밀린 정 듬뿍 나눌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지역화폐 논란

오철환객원논설위원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하 조세연)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역화폐 발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단기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으나 장기적으론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사라지고 고용확대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산낭비 등 부작용을 지적했다.이에 대해 경기도지사는 조세연을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라고 몰아세우는 것도 모자라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막말을 토해냈다. 엄정히 조사해 문책해야 한다고 하니 앞으로 학문연구도 권력자 눈치를 봐야 할 판이다. 모골이 송연하다. 지역화폐가 역내 자금의 유출을 차단하는 효과는 확실히 존재한다. 지역 소비자가 역내의 지역 업체에서만 사용하는 옵션에 걸려 있기 때문에 누구도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부인할 수 없다. 대형유통업체나 전국적 체인점의 매출이 줄어들고 지역의 소매점이나 자영업자의 매출이 올라가는 효과는 불문가지다. 이 정도는 통계치가 없어도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허나 그것을 최종결론이라고 말하긴 단순하고 성급하다. 지역 내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경쟁력 있는 업체로 소비가 몰리기 때문에 당초의 약자 지원의도가 무색해진다. 설상가상 지역경제가 독립경제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원재료 비용으로 역외로 누출된다. 소규모 식당만 하더라도 상당부분 식자재를 대형 몰에서 구매하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자가 일종의 내부 재정거래를 통해 새로운 상황에 매우 현명하게 대처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십상이다. 모든 소득이 지역화폐로 구성되지 않는 한, 소비자가 소비처를 경제적으로 조정하게 된다. 지역화폐는 지역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 구입에 사용하고 다른 돈은 싸고 품질 좋은 대형유통기관에서 사용한다. 이렇게 소비가 조정되면 애초의 지역경제 활성화나 소득재분배는 제한적이 된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영세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거의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경쟁적으로 발행하고 있다. 지역화폐 발행이 유권자의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지역화폐의 존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오히려 지역경제가 상호 고립돼 경제 총량이 쪼그라들 수 있다. 지역화폐 확대 주장은 국가 간 수출입의 문을 닫고 내국인들끼리 살겠다는 것과 유사하다. 각 지역이 문을 닫고 독립적으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지역화폐는 뜻하지 않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그렇다고 지역화폐가 무용한 것만은 아니다. 잘 사용하면 어느 정도 정책의도를 살릴 수 있다. 일반적 상시적으로 지역화폐를 사용한다면 현명한 소비자가 소비구조를 최적화함으로써 정책목적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부정기적 변칙적인 방식으로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비상시 전 국민에게 일시적으로 발행한다든가, 특별한 경우 공직자 소득에 대해 일정 비율을 단발적으로 발행한다든가, 복지비를 지급하는 수단으로 가끔 발행한다든가. 지역경제 활성화의 불쏘시게 정도로 지역화폐를 보조적 임시적으로 활용할 순 있다.경제는 일차원적인 일방적 행위로 끝나진 않는다. 경제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일종의 게임 판이다. 그것도 다른 게임과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다자 게임이다. 게임 판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기 때문에 한 사람이 쉽게 게임 판을 조정하기 힘들다. 게임은 상호의존적인 의사결정에 의해 그 결과가 좌우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 참가자의 선택에 의해서도 그 결과가 결정되는 시스템에서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장은 개개인의 선호와 선택을 반영하고 개인은 시장의 신호를 보고 선호와 선택을 조정한다. 섣불리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생각은 자만이다. 사회과학에선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 지역화폐 연구도 마찬가지다. 어떤 연구든 전제조건이나 가정에 따라 그 이론 전개와 결론이 달라진다. 상황이론이 힘을 얻는 것도 이와 유사한 이유다. 그 전제조건이나 가정을 잘 이해해야 그 이론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지역화폐 연구도 그 전제조건이나 가정 안에서만 그 결론이 정당화된다. 결론만 보고 오해해선 안 된다. 설사 지역화폐 연구에 허점이 있다하더라도 그 연구자를 문책하겠다는 발상은 극히 위험하다. ‘얼빠진’, ‘적폐’란 극언은 학문의 자유를 부정하는 막말이다. 형수에게 한 욕설은 가족 간의 불화에 그치지만 학문의 자유를 부정한 막말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영웅시대(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남천 잎이 발그레 물들어 길을 장식한다. 노랗게 변해가는 은행나무 잎사귀 아래 빨갛게 피어나 융단처럼 깔린 꽃의 무리가 길손의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한다. 가을이 저만치서 평화로운 풍경으로 익어간다.‘가을은 멀쩡한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지는 낙엽이 그러하고 부는 바람이 그러하고 나이가 들수록 가을이 주는 상념은 더욱 그러하리라.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바라만 봐도 사색이 많아지는 계절’이라고 이채 시인은 읊지 않던가.가을에 피어난 꽃들을 보면서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으리라. 끝이 모르게 이어지는 거리 두기와 잘 알지 못하는 질병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사람들은 온라인 세상에서 위로를 얻는 것 같다. 대면하지 않아도 클릭만 하면 보이는 화면에서 보고 싶은 사람을 보고 듣고 싶은 목소리를 듣고 비슷한 취미의 사람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지인의 성화에 못 이겨 영웅시대 카페에 들어갔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을 너무나 좋아하는 그가 이해가 잘 안 됐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그의 노래를 듣게 하고 위로를 받게 하고 싶다는 그 사람의 선의를 받아들여 영웅의 노래를 들었다. 영상으로 만났더니 과연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말 혼이 담긴 노래였다. 온 힘을 다해 노래 부르는데도 아주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부르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전율이 일었다. 그의 노래 속엔 평안과 고요가 있었다. 그의 노래 속에는 어떤 욕심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욕심내지 않고 노래를 부르니, 듣는 이도 편해지는 것 같다. 자신은 더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과욕이 없다는 것은 정말 무아의 경지에서 노래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그의 노래는 우리의 외로움과 사회적 소외를 채워주고 위로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한없이 포근해지는 느낌이다. 정말이지 어머니가 아기를 보듬는 정감마저 느껴진다. 영웅이 탄생했다면서 환호성을 울려대어도 무덤덤했었는데 이제야 그의 진가를 알아봤다. 혼을 담아 부르는 그의 성실한 자세와 그가 어렵게 살아온 날들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고생담이 어우러져 바라보는 이의 가슴에 어둠 속의 등불처럼 감동이 일게 한다. 코로나로 지친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의 노래를 찾아서 들어보고 영웅에게서 잠시나마 기쁨을 얻었으면 좋으리라 싶다.세상을 살다 보면 분명 고통스럽고 불안한 날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삶 속에는 기쁘고 행복한 일, 가슴 벅찬 일들도 찾아보면 많지 않겠는가.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고 하지 않은가. 정말이지 살면서 고생도 해보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고통이 있어야 그것을 얻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고통 후에 이루게 된 결과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할 터이고. 사람들은 비교적 그런 고통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상대적으로 남이 잘되면 그들은 고통 없이 쉽게 된 것으로 보이고 자신의 고통은 더 커 보이는 경우조차도 많을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쉽게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어렵지 않던가. 때로는 운이 따라서 쉽게 성공을 하는 것 같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도 있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운도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미스터트로트의 최고, 영웅은 인생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정말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나이는 많이 먹지 않았지만, 정말 혼이 담긴 사랑의 노래로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의 노래는 분명 창조적 예술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 그의 무대가 순간순간 떠오른다. 노래가 끝났을 때, 그의 표정은 오히려 덤덤했다. 얼굴엔 평화가 느껴졌다. 마치 외롭고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경청해 준 것처럼, 그의 표정은 오히려 쑥스러워하면서도 평온해 보였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과 감동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 가나 보다. 온통 영웅시대 이야기가 회자한다. 임영웅은 우리들의 불안과 고통에 대한 맞춤형 위로 곡을 우리에게 선물한 것 같다. 참 오랜만에 우리는 노래를 부른 사람 영웅과 함께 하나가 돼 세상을 살아나갈 큰 용기를 얻을 것 같다. 그의 출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가수의 출현이라고 한다. 영웅이란 이름 표현이 아깝지 않은 그야말로 영웅이다.난세에 영웅은 불쑥 솟아나 늘 빛을 밝히지 않던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이 시기에 빛을 던지는 영웅들을 찾아 날마다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세태 단상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코로나19로 청승맞게 자주 과거를 떠올린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는 부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길에서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끼니때마다 인사가 달랐다. 아침에는 “아침 잡수셨습니까?”라고 인사했다. ‘조반석죽(아침에 밥 먹고 저녁에 죽)’이면 그런대로 괜찮게 사는 집이라고 했다. 모두가 서로의 형편을 잘 알다 보니 이웃 사람들은 굶는 집이 없는지를 눈여겨 살폈다. 저녁때인데도 옆집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면 이웃 아낙은 “철수야 왜 밥 안 하나 양식 떨어졌나?”라고 물으며 쌀 반 양푼을 담 너머로 넘겨주곤 했다. 동네 어른들은 남의 집 제삿날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제사를 지내는 집과 담을 같이 하고 있으면 자정이 넘어도 자지 않고 기다렸다. 밥과 나물, 생선, 떡 등의 음식이 넘어오기 때문이다. 파젯날 아침에는 동네 어른 모두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는 꼬마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꾼이 많았다. 연필과 지우개 같은 문구류, 멍게와 해삼, 스크루가 돌면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유해 색소가 든 오렌지 주스, 엿과 사탕 등 종류가 다양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세 녀석이 계란만 한 눈깔사탕을 한 개 샀다. 돌아가면서 입에 넣고 양볼 좌우로 열 번씩 왔다 갔다 하며 빨고는 사탕을 꺼내 다른 친구에게 넘겼다. 세 명이 돌아가며 그렇게 빨아먹었다. 어떤 녀석은 논두렁 옆 수로에 사탕을 헹구고 입에 넣기도 했다. 크기가 아주 작아졌을 때 어느 녀석이 남은 사탕을 씹어 먹어버리면 나머지 둘은 그 녀석의 등짝을 때리며 깨 먹은 것을 원망했다.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이해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 시절에는 ‘콩 하나도 열 조각으로 나눠 먹는’ 것이 미덕이었다. 대부분 사람은 그 말을 실천하며 살았다.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새벽에 일하러 나가시는 아버지는 보리쌀이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밥을 드시고, 자신은 죽을 먹고 학교에 온다고 했다. 아버지가 밥 드시는 모습을 이불속에서 눈을 반쯤 뜨고 바라보면 너무 부럽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에게 친구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다 좋은 일만은 아니다. 때론 똑같이 나누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여기에 두부 한 모가 있는데 친구 네 명이 4분의1 씩 나눠 먹는다고 가정해 봐라.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은 잠시 기분이 좋겠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배가 고플 것이다. 그러나 4명 가운데 가장 힘이 센 한 친구에게 한 모를 다 먹인 후, 지게를 지고 산으로 보낸다고 생각해 봐라. 그 친구가 갈비(떨어진 마른 솔잎)를 한 짐 해서 시장에 내다 팔면 두부 여덟 모는 사 올 수 있다. 한나절 배고픈 것 참고 저녁에 두 모씩 나눠 가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아버지가 밥을 먹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겠느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이들은 죽을 먹는데 자신은 밥을 먹으니 얼마나 괴롭겠느냐. 밥맛이 제대로 나겠느냐. 그 아비는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초등학생이었지만 아버지의 설명은 분명하게 이해가 됐다. 경제 이론에 문외한인 나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문제가 쟁점이 될 때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만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 원씩 지급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크다. 한 여론 조사 기관은 국민의 6할 정도가 이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 원내 대표는 “국가 채무가 한 해에만 106조 원 급등한 상황에서 4차 추경 7조8천억 원 중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통신비 2만 원 보조에 쓴다는 게, 제대로 된 생각을 갖고 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정의당 원내 대표조차도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통신비 2만 원 지급이야말로 별 효과도 없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지 않는가. 여야 정치권과 정부는 힘을 모아 정말 생계가 어려운 국민을 찾아내어 그들이 더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하라. 여야는 당리당략을 떠나 좀 멀리 바라보고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갈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 대책도 동시에 마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