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의 또 다른 얼굴 ‘기립 못견딤증’

10명 중 4명이 일생에 한번 정도 어지럼을 경험한다고 한다.특히 그 빈도는 나이가 많을수록 증가해 노인의 10%가 어지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어지럼이 발생했을 때 환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점은 뇌경색이나 뇌출혈로 인한 어지럼이다.하지만 실제로 이보다 흔하고 잘 알려진 어지럼의 원인은 흔히 이석증이라 불리는 ‘양성돌발체위현훈어지럼’이다.통상 ‘이석증은 달팽이관에 이상이 있어 생긴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사실은 이석증은 달팽이관이 아니라 반고리관으로 이석기관에서 떨어져 나온 이석이 들어가서 발생하는 어지럼이다.어지럼양성돌발체위현훈은 어지럼의 원인 중 아주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보다 더 흔한 어지럼의 원인이 바로 ‘기립 못견딤증’이다.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기립 못견딤증기립 못견딤증의 원인은 기립저혈압과 기립빈맥이 대표적이다.기립 못견딤증이 있을 때 자세에 따른 어지럼만 느낀다면 진단이 비교적 쉽지만 기립 증상들은 어지럼 외에도 다양하다.환자들은 ‘앉아 있다가 서거나, 서서 다닐 때 머리가 띵하다’, ‘피곤하다, 졸린다, 생각이 잘 안 된다, 눈이 흐려진다, 기운이 빠진다’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또 이러한 증상들이 기립 시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환자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으므로 증상이 자세에 따라 변화하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노인에 특히 위험한 기립 저혈압기립 저혈압은 기립 시에 수축기 혈압이 20㎜Hg 이상 떨어지는 것이다.누워있을 때에 비해 앉거나 일어서면 혈압이 떨어지고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면서 어지럼을 느끼게 된다.기립 저혈압은 노인에게서 특히 잘 발생하는데 이는 노화에 따른 혈압의 자율신경계 조절 이상 때문이다.우리 몸은 기립상태에 따라 혈압을 조절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심혈관계의 자율신경에 변화를 가져와 자세에 변화에 대한 혈관의 반응이 느려지게 된다.따라서 탈수나 혈압약이나 전립선약 같은 약물복용, 급격한 체중감소 등이 있을 때 기립 저혈압이 쉽게 발생하는 것이다.또 나이가 들면서 척수 손상, 뇌경색, 뇌출혈, 약물복용, 파킨슨병이나 다발계 위축증 같은 퇴행성 질환이나 당뇨병의 발생이 증가해 자율신경 이상이 더욱 자주 발생한다.흔히 앉아서 측정한 혈압이 높아서 고혈압 약을 처방하는데 앉거나 누워있을 때는 혈압이 높다가 일어서면 급격하게 혈압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따라서 노인에서는 아침에 서있는 상태에서 혈압을 측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기립 저혈압이 있는 노인은 어지럼으로 잘 넘어지며, 심한 경우 의식을 잃고 실신하면서 골절을 입는 수도 있어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식후 저혈압과 기립 빈맥노인에서는 혈압의 자율신경계 조절이상으로 기립 저혈압 뿐 아니라 식후 저혈압이 발생 할 수 있다.식후 1시간 내에 실신이나 어지럼, 졸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식후 저혈압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카페인 섭취는 그 기전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내장혈관 확장을 막아서 식후 저혈압을 막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며 식후의 걷는 운동 역시 저혈압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 반면 젊은 층에서는 기립 빈맥이 자주 나타난다.이때는 기립 맥박이 분당 30회 이상 증가하거나 분당 120회 이상이 되면서 다양한 기립 증상들을 보일 수 있다.이러한 증상들은 갑작스런 자세변화나 기립뿐 아니라 운동, 열, 음식, 일과 중의 시간, 약물 복용에 의해 심해질 수 있다. 어지럼의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기립 빈맥이나 기립 저혈압을 의심해야 한다.기립 저혈압을 보이는 환자의 경우 약물복용이나 당뇨 등의 원인이 없다면 자율신경 이상을 일으킬만한 다른 원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심한 자율신경이상을 동반한 기립 저혈압은 치료가 쉽지 않지만 약물복용이나 다른 일시적인 상황에 의한 기립 저혈압은 치료효과가 좋다.기립 빈맥 또한 90% 이상에서 증상 호전을 보이므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기립 못견딤증의 진단과 치료기립 못견딤증의 진단에서 병력청취와 자율신경기능검사가 중요하다.자율신경검사에는 기립경사검사, 발살바검사, 심호흡 시 심박동검사, 정량적축삭반응발한검사가 있다 .기립경사검사를 시행해 기립빈맥이나 기립저혈압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그 외에 검사를 통해 기립빈맥이나 기립저혈압이 자율신경이상으로 발생했는지, 아니면 탈수나 약물 등 다른 원인에서 생겼는지 알 수 있다.그 외에도 저나트륨혈증이나 빈혈 등 기립 못견딤증의 증상을 나타낼 수 있는 원인을 감별하기 위해 혈액검사 등을 하기도 한다.자율신경이상이 확인된 경우에는 자율신경이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자율신경이상이 있는 경우 당뇨나 갑상선 질환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당뇨나 갑상선 질환이 있는지를 조사한다.치매나 파킨슨 등의 퇴행성 질환이 원인인 경우 치매검사나 파킨슨 증상이 있는지 확인한다. ◆치료와 생활습관 교정 병행기립 못견딤증의 원인 중에는 약물이나 혈액검사의 이상 등 교정이 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원인만 찾아낸다면 치료할 수 있다.하지만 자율신경이상이 기립 못견딤증의 원인이라면 자율신경이상 자체를 교정할 수는 없다.이때는 혈압이나 맥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약물 등을 사용해 환자의 증상을 완화시키고 낙상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균형장애나 변비, 빈뇨, 수면 장애, 기억력저하 등 동반된 증상을 함께 교정해 환자의 삶을 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생활습관 교정이 매우 중요하다.기립 시에 증상이 주로 나타나므로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만약 서 있다가 어지럼이 발생한다면 앉거나 다리를 꼬는 등 혈압을 올려 줄 수 있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 좋다.평소에 물을 자주 마시고 고혈압이 있는 환자가 아니라면 소금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카페인은 탈수는 일으킬 수 있으므로 오후에는 마시지 않도록 하고 사우나나 목욕탕 등 너무 더운 환경은 피해야한다.운동은 처음에는 앉거나 누워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이나 근력운동 혹은 수영이나 실내자전거 등으로 시작해 점차 걷는 운동 등 일어서서 하는 운동으로 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신경과 김현아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45) 효공왕

신라 제52대 효공왕은 49대 헌강왕의 아들로 전해진다. 헌강왕이 사냥터에서 만난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나 왕궁 밖에서 자랐다. 진성여왕이 이를 전해 듣고 궁으로 불러들여 태자로 명하고 왕위를 물려주었다. 효공왕은 12세에 왕위에 올라 27세까지 15년간 재위하는 동안 군주로서 제대로 기능을 펼쳐보지 못했다. 귀족들의 세력 다툼에 휘말리고, 후반기에는 여자에 빠져 나라일을 돌보지 않아 신하가 왕의 애첩을 죽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자연스럽게 신라의 조정은 어지러워지고 국력이 약해졌다. 견훤과 궁예가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일으키고, 침략해와 신라의 영토는 크게 위축되었다. 효공왕이 아들 없이 죽자 박혁거세의 후손인 박경휘가 제53대 신덕왕으로 즉위했다. 신덕왕은 박씨였지만 헌강왕의 딸과 결혼해, 경덕왕가의 사위라는 신분에 힘입어 국인들의 추대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 신덕왕대에 이르러 많은 자연재해가 발생한 기록이 전한다. 5년간 왕위에 있는 동안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침략을 받기도 했지만 승영과 위응을 낳아 54대와 55대 경명, 경애왕으로 오르게 함으로써 신라하대의 박씨왕가 세습을 재현했다. ◆삼국유사: 효공왕제52대 효공왕 때인 광화 15년은 임신년(912)인데 봉성사 바깥문의 동서쪽 21칸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또 신덕왕이 즉위한 지 4년 된 을해년(915)에 영묘사 안쪽 행랑에는 까치집이 34개요 까마귀 집이 40개였다. 또 3월에 서리가 다시 내리는가 하면 6월에는 참포의 물과 바닷물이 사흘간이나 서로 싸웠다. ◆효공왕과 신덕왕-효공왕은 895년 진성여왕 9년에 태자로 책봉되어 897년 진성여왕 11년에 신라 제52대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당시 12세 정도의 어린 나이였다. 경문왕 이후부터 왕권을 둘러싸고 두텁게 포진하고 있던 화랑세력들에 맞선 예겸 등의 세력들이 추대하는 형식이었다. 이찬 예겸은 자신의 딸을 왕비로 들여 더욱 세력을 굳혔다. 왕실을 둘러싼 세력 다툼이 알게 모르게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어린 효공왕은 실권을 휘두르지 못했다. 당시 견훤은 완산주에 터전을 잡고 후백제를 세우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신라 땅을 꾸준히 침략해 영토를 확보했다. 궁예도 이 시기에 송악을 도읍으로 정하고 후고구려라 나라이름을 짓고 스스로 왕좌에 앉았다. 궁예 또한 남하해 한강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신라의 입지는 전반적으로 크게 위축되고 있었다. 차제에 효공왕은 애첩에게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신하들이 궐기해 왕의 애첩을 죽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나라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신라 53대 신덕왕은 8대 아달라왕 후손으로 박씨에 이름은 경휘다. 912년 효공왕에 이어 즉위해 917년까지 5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아들들이 경명왕, 경애왕으로 대를 잇게 해 신라말기 박씨 왕가를 이루었다. 신덕왕은 엄연히 박씨 성을 타고 태어났지만 예겸의 눈에 들어 예겸이 의자(義子)로 삼아 사위 효공왕에 이어 왕위를 잇도록 후견인의 역할을 했다. 신덕왕은 헌강왕의 둘째 사위로 맏사위이자 화랑이었던 효종에 비해 왕위를 차지하기에는 입지가 한참 밀렸다. 그러나 의부였던 예겸의 힘을 빌어 왕좌를 차지하는 덕을 누렸다. 신덕왕 때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지진과 때아닌 서리, 해일 등의 자연재난이 다양하게 많이 발생하고,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침략도 잦아 나라 살림이 크게 흔들렸다. ◆영묘사영묘사는 신라 칠처가람의 하나로 경주시 성건동 남천의 끝부분에 있었던 절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아도화상이 과거칠불 중의 제5 구나함불이 머물렀던 곳이라 지명했던 곳이다. 선덕여왕 때에 두두리 라는 도깨비 무리가 하루 만에 연못을 메우고 절을 창건한 곳으로 전한다. 영묘사는 사천왕사를 지었던 양지의 작품이 가장 많이 남아있던 사찰로도 유명하다. 금당의 장육존상을 비롯해 천왕상과 목탑, 기와, 편액의 글씨도 양지의 솜씨였다. 영묘사 장육삼존불은 경덕왕이 개금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봉덕사에 있던 성덕대왕신종을 이 절로 옮겨 안치했다는 기록도 전한다.지금 흥륜사터로 알려지며 사적 15호로 지정된 경주시 사정동 일대에서 두 개의 건물터가 확인되고,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최근 영묘사(靈妙寺) 또는 영묘사(靈廟寺)라고 찍힌 기와가 발견되어 이곳이 영묘사가 있던 곳으로 밝혀졌다. 신덕왕 때에 영묘사 행랑에는 까치집이 34개요 까마귀 집이 40개 있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소개되고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후삼국시대의 도래천년의 사직을 이어오던 통일신라가 본격적인 멸망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효공왕과 신덕왕 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효공왕과 신덕왕은 모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제대로 왕노릇 한번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효공왕이 12세에 왕위에 오르도록 지원하고, 그에게 딸을 시집보내 왕비로 간택하게 하며 실질적인 왕실의 실세로 떠올랐던 사람은 김예겸이다. 김예겸은 인물이 훤칠하게 잘생겼고, 키도 6장의 장신이었다. 자연스럽게 따르는 사람이 많아 지도자로 군림했다. 예겸은 진성여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으며 화랑들의 품에 안겨 실정을 쏟아내자 귀족들과 세력을 모아 몰아내기 위한 전략을 세워 추진했다. 예겸은 헌강왕이 사냥에서 만난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데려와 진성여왕에게 천거했다. 결국 진성여왕은 효공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예겸은 재빠르게 자신의 딸을 효공왕에게 추천해 왕비로 간택하게 했다. 이어 왕실에 자신의 세력을 깊숙하게 심어 화랑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산하고 있는 효종 등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기회를 노렸다. 900년을 전후해 견훤과 궁예가 서쪽과 북쪽에서 나라를 세워 후백제, 후고구려라 칭하며 스스로 왕이 되어 신라를 압박하는 후삼국시대가 열렸다. 효공왕이 왕권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자 지방세력들은 하나 둘 후백제와 후고구려로 투항하며 살길을 찾아 떠났다.이때 차기 왕으로 등극할 후보는 효종과 경휘가 유력했다. 효종은 화랑 출신으로 덕망이 높고, 무예 또한 뛰어났다. 거기에다 헌강왕의 맏사위로 경문왕가의 튼튼한 줄을 잡고 있었다. 경휘는 헌강왕의 둘째 사위로 아달라왕의 후손이었다. 역시 왕가의 후손이었지만 효종보다 명분으로 한겹 접어야 했다. 그러나 예겸은 경휘를 자신의 의자(義子)로 삼아 기회를 만들었다. 예겸은 전쟁이 산발적으로 신라 곳곳에서 일어나자 효종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나라를 구할 사람은 화랑도뿐이다”며 효종을 부추겨 전쟁의 선봉에 나서게 했다. 결국 효종은 대야성 전투에서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효공왕의 뒤를 이어 신라 53대 왕은 김예겸의 의자인 박경휘가 물려받았다. 후삼국시대에 멸망의 길을 걷는 기울어가는 신라의 왕실은 효공왕에 이어 신덕왕까지 예겸의 입김으로 움직였다. 효공왕은 예겸의 사위이고, 신덕왕은 예겸의 아들이었다. 불행하게도 예겸의 세상은 기울어가는 신라였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 대구상원고

대구상원고는 1923년 ‘대구공립상업학교’로 개교한 이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 산업화 시대 등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 고등학교로 자리 잡았다. 대구상원고 총동창회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9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7년 제1회 동창회 총회가 열려 동창회 규약을 제정하며 대구상원고 총동창회의 출발을 알렸다. 1947년에는 정명 동문(1회)을 초대 회장으로 선임하고, 동창회 회칙과 임원을 선출하며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1949년에는 제1차 동창회원명부도 발간됐으며, 당시 회원은 약 1천200여 명 이었다고 한다. 2018년 4월26일, 대구 수성구 라온제나 호텔에서 열린 정기 총회에서 대보세라믹스 박현식 회장(41회)이 만장일치로 19대 총동창회장에 취임했다. 19대 총동창회는 2023년 대구상원고 100주년을 맞아 역사와 전통에 걸맞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많은 자랑스러운 ‘대상인’ 배출 100년에 가까운 역사 동안 대구상원고를 졸업한 동문은 5만여 명에 달하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대구상원고의 존재와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상원고총동창회는 1999년부터 ‘자랑스러운 대상인상’을 제정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대구상원고를 빛낸 동문을 지정해 시상하고 있다. (故)김수근 대성그룹 회장(7회)이 첫 번째 자랑스러운 대상인상을 수상했으며, (故)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15회), (故)김명윤 전 국회의원(15회)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에는 박대병 기보스틸 회장(42회)과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44회)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023년 100주년 맞아 다양한 행사 준비 대구상원고총동창회는 2023년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100주년 역사관 준공과 더불어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 중이다. 가장 먼저 100주년 기념 조형물과 기념공원을 조성한다. 100주년 기념탑이 설치되며 위치 설정 및 조형물 종류는 검토 중이다. 100주년 역사관도 조성한다. 지난해 10월 학교 내에 첫 삽을 뜬 역사관 조성 사업은 2023년 2월 완공할 예정이다. 대구상원고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록할 ‘상원 100년사’ 편찬도 준비 중이며, 옛 대봉동 교사에 유허비 설치와 태극단 학생 독립 운동 기념 공원도 재구성한다. 학계·정계·재계·스포츠계 등에서 학교를 빛낸 인물도 선정한다. 이와 함께 다양한 기념행사도 준비 중이다. 100주년 기념식과 더불어 음악회, 사진 전시회, 산행대회, 야구 대회 등 동문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동창회 대구상원고총동창회는 9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거치며 지금의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게 됐다. 총동창회장을 중심으로 15개 지역에 동창회 지부가 있으며, 27명의 부회장단과 기수 별 회장 및 총무들이 임명돼 각각 기수 별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10월 셋째주 ‘대상의 날’ 전동문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다. 총동창회기 테니스대회, 바둑대회, 산행대회, 골프대회도 매년 연례행사로 진행된다. 각 기수별 동기회는 지역별 소모임 중심으로 활성화돼 있으며, 취미별 모임으로 매월 산행대회, 골프대회가 진행돼 동기별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또 2005년 재단법인 대상동창장학회를 설립해 매년 우수한 학생을 선정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대구상원고의 자랑 야구부 1928년 3월 대구상업학교 시절 창단된 야구부는 90여 년의 역사에 빛나는 대구상원고의 자랑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고교야구팀들과 당당히 자웅을 겨뤘던 대구상원고 야구부는 해방 이후 1950년 청룡기 야구에서 예상을 뒤엎고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대구상원고 야구부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꽃 피웠다. 1962년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신호탄으로 1968년과 1969년 다시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0년에는 드디어 청룡기를 우승하며 20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1970년대 초 지역 라이벌 경북고와 양강 체제를 이룬 대구상원고는 스타플레이어 장효조를 필두로 한 막강한 전력을 바탕으로 1973년 고교야구 3관왕을 달성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 최강의 고교야구팀으로 군림했다. 장효조, 김시진, 이만수, 양준혁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탄생시킨 산실로 여전히 고교야구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대구상원고 야구부는 전국대회 12차례 우승(청룡기 6회, 대통령배 2회, 황금사자기 2회, 봉황대기 2회)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뽐내며 대구상원고 동문들의 자랑거리다. ◆자랑스러운 동문 역사 발굴 ‘태극단’ 대구상원고총동창회는 2003년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공원을 개장하고 기념탑 제막식을 가졌다. 태극단 학생독립 운동은 1942년 일제강점기 말기 불과 17,18세의 어린 나이였던 대구상업학교(현 대구상원고) 학생들에 의해 일어난 항일 독립운동이다. 일제의 악랄함이 극에 달했던 암흑의 시대 이상호 동문을 비롯한 26명의 학생들은 태극단이란 단명을 짓고 항일 독립 운동을 도모했다. 1943년 거사 일을 하루 앞두고 밀고로 단원 전원이 체포돼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총동창회는 역사 속에 뭍혀 있던 이들의 활동을 재조명하고, 범국가적 차원에서 숭모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2000년 태극단학생독립운동 기념사업을 발원했다. 총동창회는 2001년 태극단학생독립운동 사료집을 발간했고, 태극단 기념탑을 대구상원고 교정에 설치해 이들을 기리는 기념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28 학생의거 기념탑과 6·25학도의용군 호국영웅 명비까지 대구상원고 교정에 마련돼 학생들의 독립·호국·민주운동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박현식 총동창회장 인터뷰-총동창회의 역사에 대해△대상총동창회는 1927년 동창회 규약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1947년 4월에 총회를 개최해 회칙을 제정하고, 정명(1회) 초대 회장으로부터 현재 19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70년대에 회보 발간 사업과 50년사 발간, 대상의 날 지정 등이 이어졌고, 최근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추념식, 자랑스러운 대상인 선정 등 총 90여 년의 총동창회 활동은 5만 동문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다.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특히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은 △1923년 개교해 2023년 4월16일이 개교 100주년이다. 기념사업으로 역사관 건립과 100년사 발간, 기념 조형물 설치 및 기념공원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상업교육의 역사와 동문들의 전통이 담길 역사관 건립을 중점적으로 진행 중이다. -자랑하고 싶은 동문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 태극단 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인 이상호, 김상길, 서상교, 김정진 등 많은 애국지사 동문들과 중국, 미얀마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앞장 섰던 한지성 장군(4회)의 호국정신을 강조하고 싶다. 또 대성 그룹의 창립자였던 김수근 회장(7회),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15회), 이종주 전 대구시장(28회), 이창희 전 부산은행장(27회), 장철훈 전 조흥은행장(29회) 등 금융계에 자랑스러운 동문들이 많다. 이밖에도 정치, 교육, 문화, 군인, 산업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야구부와 럭비부, 테니스부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장효조(47회), 이만수(50회), 양준혁(60회)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대상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동창회 운영의 비결이 있다면 △90여 년의 역사 동안 총동창회는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체계적인 모습을 갖췄다. 특별한 비결보다는 동문 모두가 모교와 동창회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보내주고 있으며, 함께 참여하고 화합하는 분위기다. 총동창회는 동문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 -19대 총동창회를 이끌며 느낀 점이 있다면 △먼저 총동창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 동문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동문들의 많은 사랑과 관심이 있어 총동창회를 수월히 이끌 수 있었다.역사적인 개교 100주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5만 동문의 따뜻한 동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사회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총동창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3) 마리아나·사이판①

휴양의 천국이라 불리는 마리아나 제도는 태평양 북서부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섬으로 전체 면적은 1천7㎢다.마리아나는 약 15개의 화산섬으로 이뤄진 열도다.이 중 사이판, 티니안, 로타 등의 섬이 주요 휴양지로 꼽힌다.마리아나는 가족 여행객, 모험 및 스포츠를 즐기는 여행객뿐만 아니라 열대 기후의 안식처를 찾는 비즈니스 차 방문한 여행객에게도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하는 목적지로 인기 여행 장소다.일본에서 3시간, 아시아 및 호주 지역에서는 약 4~5시간의 비행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한 마리아나 제도는 모험을 꿈꾸는 여행자들에게 매 순간 놀라움을 선사한다.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섬, 사이판 사이판 섬은 마리아나의 15개의 섬 중 가장 남쪽에 있다.면적이 가장 넓고 인구가 가장 많다.사이판은 좁고 긴 모양의 섬을 북쪽에서 남쪽까지 가로지르는 섬이다.한 바퀴 도는 데 불과 20~30분이 걸리는 작은 섬이지만 즐거움이 커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사이판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서 하얀 모래사장과 청록색 석호, 산호초가 이어진다.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바다부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고요한 바다 등 다양한 바다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또 곳곳에 포토 존으로 유명한 곳까지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사이판에는 세계적인 리조트 호텔, 5성급 카지노, 뛰어난 레스토랑, 고급 상점 등의 수많은 즐길 거리와 다양한 숙박 시설이 마련돼 있어 원하는 여행 스타일에 따른 선택의 폭이 넓다.모험적인 여행자라면 열대 지역인 사이판 속에서 스카이다이빙, 트레킹, 제트스키, 패러세일링, 여러 문화 활동 등을 연중 내내 즐길 수 있다.◆사이판의 진주, 마나가하 섬 마나가하(Managaha) 섬은 무인도다. 사이판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르는 사이판 최고의 관광지다.바다 곁에서의 휴식을 원한다면 사이판에서 보트로 5분 거리인 마나가하를 추천한다.마나가하 섬은 부드러운 백사장과 바닥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새파란 하늘의 3박자를 모두 갖춘 사이판 최고의 명소로 통한다.그림 같은 풍경과 함께 스노클링, 체험 다이빙, 패러세일링, 바나나 보트, 비치발리볼 등 온갖 해변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또 파라솔과 선 베드 등을 대여할 수 있으며, 간단한 식사와 바비큐 뷔페 등도 이용 가능하다.무인도 섬에서 즐기는 레저, 액티비티와 스파, 식사 등은 마나가하 섬을 장기 임대해 관리하고 있는 일본 여행사 타시 투어(Tasi Tour)가 제공하고 있다.섬은 섬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입장할 수 있다.섬 방문객에게는 환경세 5달러를 부과하고 있다. 타시투어에서 운영하는 노란색 페리, 스피드 보트를 이용해서 사이판 섬에서 마나가하 섬으로 이동할 수 있다.페리에 탑승하면 스노클링과 알록달록한 바다 속 풍경을 감상하는 등 수많은 해양 레저 기회가 기다린다.이 페리는 사이판의 산호들이 사는 작은 섬들을 지나쳐 운항한다. 아름다운 풍경만으로 어워즈에서 상을 수상한 해변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시간도 따로 제공된다.태양과 바다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이와 같은 모험으로 하루를 꽉 채운 후 상쾌한 바다 공기로 인해 스트레스는 날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수중 동굴 다이빙 장소, 최고로 꼽히는 사이판 ‘그로토’ 그로토는 사이판 최고의 동굴 다이빙 장소다.사이판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로 전 세계의 다이버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경사가 심하고 미끄러지기 쉬운 117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작은 동굴이 나온다.동굴 사이로 엿보이는 푸른 물빛만 보아도 왜 이곳이 그렇게 사랑 받는지 알 만하다.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운 물빛이 동굴 안을 신비롭게 채우고 있다.물속으로 들어가면 세 개의 터널이 있다.그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물빛을 볼 수 있다. 스노클링도 가능하다.그로토 속의 거대한 석회암 구멍을 따라 잠수하다 보면 어느새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중 동굴 속에 입장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그로토의 동굴 속에는 바다로 나가는 출구 여럿이 존재한다.출구를 통해 탁 트인 바다로 헤엄쳐 나온 후에도 아름다운 석회암 벽과 동굴을 감상할 수 있는, 마리아나의 다이빙을 상징하는 최고의 다이빙 명소다. 사이판의 황홀한 공중 절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가장 가까운 패러세일링 장소를 찾으면 된다.보트와 연결된 채로, 30m 상공에서 바람을 가르며 새처럼 떠 있는 패러세일링 도중에는 사이판 산호초와 섬 해안선이 그리는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면세의 기회와 다양한 쇼핑의 천국 마리아나 제도는 면세 지역이라는 장점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쇼핑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제도 내에서 가장 발달된 섬인 사이판은 가장 방대한 쇼핑 기회를 제공한다.사이판의 시내인 가라판 지역의 관광 중심지에서는 현지 수공예품 상점들부터 고급 부티크샵까지 모든 종류의 쇼핑 장소를 찾을 수 있다.DFS T-갤러리아 사이판(DFS T-Galleria Saipan)은 사이판 섬의 최대 면세점이다.가라판 비치로드 중심에 있다.규모는 작지만 개성 있는 옷이 가득한 부티크 갤러리, 패션월드, 뷰티월드, 선물 매장 등이 종류별로 구분돼 있다.매장 안에는 보석, 화장품, 향수, 의류 및 액세서리, 가죽 제품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매년 많이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다양한 제품을 구매한다. 특히 헤르메스, 샤넬, 프라다, 구찌, 페라가모, 디올 등의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명품 브랜드도 한 자리에 모여 있어 쇼핑하기에 편리하다.화장품 부분에는 클라란스, 디올, 랑콤, 안나수이, 에스티 로더 등 20여 개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불가리, 까르띠에와 같은 주얼리 브랜드, 태그 호이어, 오메가 등의 시계 브랜드도 있다.뷰티·패션 외에도 주류와 초콜릿, 현지 기념품 관련 매장도 함께 자리한다.매장 안에 환전소 같은 편의시설이 있고 유모차 대여 서비스도 제공한다.Arc 쇼핑단지(Arc shopping complex) 역시 이와 비슷한 쇼핑 환경을 갖췄다.마리아나 기념품 쇼핑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에게는 ABC 스토어(ABC Stores), 조엔 하파 아다이 쇼핑센터(Joeten Hafa Adai Shopping Center), 아이 러브 사이판(I Love Saipan)과 같은 쇼핑 장소를 추천한다.아이 러브 사이판(I Love Saipan)은 사이판 최대 규모의 기념품 몰이다.‘아이 러브 사이판’ 로고가 박힌 컵, 인형, 키홀더, 아일랜드 프린트 티셔츠, 태닝용품, 초콜릿, 주스 등 휴양지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이 있다.이와 함께 여행 중에 필요한 각종 생필품과 수영복, 의류까지 갖추고 있어 마트 대신 이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다.구입한 제품을 호텔까지 배달하는 국제 배송 서비스도 제공하다.메이드 인 사이판(Made in Saipan)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이판에서 제작·생산한 기념품만 판매하는 곳이다. 매장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합리적인 가격대에 특색 있는 사이판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유기농 제품으로 유명한 브랜드 킹피셔스 노니(Kingfisher’s Noni)의 제품과 액세서리, 장식 소품을 비롯해 다양한 수공예품도 판매한다. 마리아나에서 재배한 커피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자료 제공: 마리아나 관광청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44) 진성여왕과 거타지

신라 51대 진성여왕은 경문왕의 딸이자 헌강왕과 정강왕의 여동생이다. 진성여왕은 즉위 11년에 오빠 헌강왕의 아들로 추정되는 효공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 6개월 만에 죽었다.진성여왕은 경문왕의 동생, 숙부인 위홍과 부부관계를 맺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부적절한 관계였으리라는 설도 있다. 위홍이 죽은 이후 진성여왕은 젊은이 2~3명을 궁 안으로 불러들여 음란하게 놀아나면서 그들에게 국정을 맡겨 정치가 혼탁해지고,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으로 나라가 기울기 시작했다.경문왕으로부터 50년간 박씨 왕가가 다시 시작된 53대 신덕왕 이전 효공왕까지 경문왕가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경문왕이 화랑과 불교 등으로 나라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고, 헌강왕대에 잠시 번영을 이루었으나 결국 분열과 반란으로 나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 버렸다.신라 천 년 사직을 기울게 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 진성여왕. 삼국유사가 왕거인과 거타지 두 설화를 기록하고 있는 진성여왕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진성여왕과 거타지-왕거인: 제51대 진성여왕이 조정에 나간 지 몇 년 되었을 때였다. 유모 부호부인과 그 남편 위홍 잡간 등 서너 사람이 신하로서 총애를 받고 권세를 마구 휘둘러 정치가 어지러워졌다. 도적까지 들끓자 백성들이 이를 걱정하여 다라니로 은밀한 문장을 지어 길거리에 내붙였다. 왕과 못된 신하들이 이를 보고는 “왕거인이 아니면 누가 이런 문장을 지었겠느냐”고 의심했다. 그리고 왕거인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가 시를 지어 하늘에 호소하였더니 하늘이 감옥을 뒤흔들었다. 이 때문에 그를 풀어주었다.왕거인의 시는 “연나라 단이 피 흘려 우니 무지개가 해를 뚫었고/ 추연이 슬픔을 머금으니 여름에도 서리가 내렸네/ 이제 내가 길을 잃음이 예와 같으나/ 하늘은 어쩐 일로 좋은 소식 주지 않는가”라고 해석된다.다라니는 “남무망국 찰니나제 판니판니소판니 우우삼아간 부이사바가”로 찰니나제는 여왕을 말하고, 판니판니소판니는 두 사람의 소판을 말하는데 소판은 벼슬 이름이다. 우우삼아간은 서너 명의 총애받는 신하를 말하고, 부이는 부호부인을 말한다.-거타지: 진성여왕 때 아찬 양원은 왕의 막내아들이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는데 백제의 해적이 뱃길을 막고 있다고 들었다. 활 쏘는 병사 50만을 뽑아 따르게 하였는데 배가 곡도에 이르자 바람과 파도가 크게 일었다. 열흘 가까이 머무르게 되자 공이 근심스러워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했더니 “섬 안에 신의 연못이 있습니다. 거기에 제사를 지내면 된다고 합니다”고 했다.연못 위에 제수를 갖추었더니 연못의 물이 한길 높이나 치솟아 올랐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공에게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 안에 남겨두시오. 순풍을 만나 가실겁니다”고 했다.공이 군사 가운데 거타지라는 신하를 남겨두고 떠났다. 순풍이 홀연히 일어나니 배가 나가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거타지는 홀로 섬에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노인이 연못에서 솟아 나왔다. “나는 서해의 신이오. 매일 사미승 하나가 해 뜨는 시각에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를 암송하며 이 연못을 세 바퀴 도는데,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이오. 그러면 사미승이 우리 자손을 잡아 간장까지 모조리 먹어치웠다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부부와 딸 하나뿐이오. 내일 아침 반드시 또 올 터이니 그대가 쏴 주시기 바라오.”거타지는 숨어 엎드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해가 떠오르자 사미승이 과연 오는데 이전처럼 주문을 외우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려고 하였다. 그때 거타지가 정확히 활을 쏘자 사미승은 곧 늙은 여우로 변해 땅에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노인이 나와 감사하며 “그대의 은혜를 받아 내가 목숨을 부지하였으니 내 딸로 아내를 삼기 바라오”라고 했다.노인은 자기 딸을 꽃가지 하나로 변하게 만들어 품속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두 마리 용에게 거타지를 모시고 사신들이 탄 배까지 가도록 하였다. 게다가 그 배를 호위하며 당나라 국경에 이르자 당나라 사람들이 신라 배가 두 마리 용의 지킴을 받으며 오는 것을 보았다.보고받은 당나라 황제가 “신라의 사신들은 반드시 비상한 사람들일 것이야”하고 여러 신하의 윗자리에 앉혀 잔치를 베풀어주고 금과 비단으로 후하게 상을 주어 보냈다. 귀국한 다음 거타지는 꽃나무를 꺼내 여자로 변하게 하고 함께 살았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진성여왕의 사랑진성여왕은 오빠인 정강왕의 유언으로 신라 세 번째 여왕에 즉위했다. 22세가 되던 해였다. 여왕은 숙부이자 남편인 위홍의 도움으로 무사히 왕권을 이양받았다. 아버지 경문왕이 주력세력으로 육성했던 화랑 조직도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위홍은 경문왕의 동생으로 경문왕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정권의 전반에 걸쳐 실질적인 권력자로 모든 나라의 살림살이에 깊숙이 관여했다. 헌강왕이 즉위하면서부터는 상대등의 지위로 모든 국정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왕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아내가 있었지만 조카였던 진성여왕과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진성여왕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위홍의 아내, 숙모가 직접 키웠다. 워낙 가까이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여서 위홍이 이성적으로 조카를 만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고도 한참 후에야 알아차린 위홍의 아내는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같은 부인으로 지냈다.진성여왕과 위홍은 30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다. 진성여왕 3년에 위홍이 죽자 나라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왕은 직접 나라를 운영해보지 않았다. 위홍의 빈자리에 화랑 홍기와 영조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이들에게 나라의 일을 맡겼다.홍기와 영조는 젊은데다 직접적인 국정 운영 경험이 없어 인사는 물론 군사, 재정 등 모든 분야에 개인적인 연고와 정실 위주로 처리했다. 진성여왕이 직접 나라를 경영해 본 경험이 없었고, 주변의 젊은 층들로 구성된 대신들조차 경험이 일천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실정이 이어지면서 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위홍의 반대세력이었던 예겸은 아들 경휘를 앞세워 내정 깊숙이 관여하면서 여왕의 퇴진을 추진했다. 예겸은 6두품 중심의 귀족들과 연대해 신라말 정치구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당나라에서 돌아온 최치원은 국정운영을 위한 지침서 ‘시무 10여조’를 지어 바치기도 하면서 중심세력의 관심을 끌었다.진성여왕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오빠 헌강왕의 아들 ‘요’ 에게 왕위를 인계해주고, 신라 천년 왕조 최초로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는 기록을 남겼다. 여왕은 김요의 척추 두 마디가 돌출된 특이한 경문왕가의 신체적 특징을 확인하고 태자로 삼았다가 그를 왕위에 올렸다.진성여왕 때에도 당나라와는 활발하게 교역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백제와 고려가 국가적인 형태를 갖추고 견제하는 바람에 신라는 영토적으로도 위축된 상황이었다. 뱃길도 완도 등의 가까운 길은 백제에 막혀 백령도를 이용했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돌아와 신라 사신으로 당나라를 부지런히 오가며 나라를 위한 일에 공헌했다.진성여왕은 직접 국정에 깊숙이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황룡사에서의 법회 등을 통해 나라의 안녕을 위한 일을 도모했다. 또 효녀 지은이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곡식을 하사하는 등으로 백성을 돌보는 선정을 베푼다는 여론 형성을 위한 정치를 하기도 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1) 대건중고

■대구경북 고교 총동창회(편집자주)사회에 첫 진출하면 가장 힘이 되는 이가 바로 고등학교 동문이다. 대구경북은 유난히 고교동문을 챙기는 끈끈힌 정이 강하다. 조직 내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교선배이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곧바로 말을 놓는 등 허물없이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대구·경북은 고교 동창회가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특히 선거철이 되면 동창회 사무실은 출마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대구·경북지역 고교 동문회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이들이 지역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찾아가본다. 1. 대건중고 대건총동창회는 1952년 제1차 총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1회 동창회장은 1회 졸업생인 채윤기 회장이 맡았다. 이후 22명의 동문이 동창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6월 67차 총회가 열렸으며, 정현태 경일대 총장(19회)이 제49대 총동창회장 재임에 성공했다. 이날 총회에는 대건 중고교 동문 회원 200여 명이 참석했다. 정현태 회장은 참석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재추대 돼 앞으로 2년간 임기를 맡게 됐다. 대건의 역사는 1946년에 시작됐다. 대건초급중학교로 시작해 1949년 대건중과 효성여자중학교로 분리됐다. 전쟁 중인 1951년 대건고로 분리됐으며, 현재까지 6만여 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제49대 대건총동창회는 정현태 회장을 필두로 이덕규(대구신용보증재단 감사·22회) 수석부회장, 허규옥 골프위원장(경일대 야구감독·25회), 이춘우 사무처장(삼두 대표·32회), 천덕우 사무차장(아이시스 대표·34회), 전병석 재무부장(대구은행 죽전PB센터장·36회), 이령 체육부장(기아자동차 SCM·40회), 이재주 사업부장(명성종합주류 부사장·42회), 이정섭 홍보부장(건축사무소 리안 대표·43회) 등 사무처를 구성했다. ◆20대 총선 국회의원 3명 배출대건총동창회는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3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지역 정가에서 주목받는 학교로 부상했다. 대건고 사상 최다 국회의원 배출이다. 재선에 성공한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31회), 대구 중남구 지역구에서 당선된 같은당 곽상도 의원(27회),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강효상 의원(28회)이 국회에 입성했다. 김상훈 동문은 영남대와 오리건대 행정학 석사를 거쳐 대구시청 경제통상국장을 지냈다. 곽상도 의원은 대구서부지청장을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법조인이다. 강효상 동문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편집국장, 미래전략실장, 논설위원을 거친 정통 언론인이다. 이들은 여의도에서 활약을 하며, 내년 21대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학회의 남다른 활동대건 총동창회 장학회는 2013년 창립했다.해마다 대건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특히 2018년 4월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기초 소양인 코딩교육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모교에 컴퓨터실을 리모델링했다. 2014년부터 해마다 아진산업 서중호 대표(27회) 동문의 후원으로 재학생에게 미국 문화 연수를 제공하고 있다. ◆기수·동호회별 다양한 활동대건 총동창회는 기수별 동기회가 결성돼 운영 중이다.등산, 골프 등 동호회별 모임도 활성화 돼 있으며, 전국 15개 지역동창회도 결성돼 운영 중이다. 대건가족체육대회는 1972년 처음 시작됐으며, 지난해 10월13일 41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54개 기수 1천여 명이 참석했다. 가족체육대회에서는 모교와 동창회 발전을 위한 장학금과 발전기금 기탁이 이어졌다. 대건가족골프대회는 매년 봄 또는 가을에 열리고 있으며, 동문과 가족 150여 명이 참여한다. 산악회 또한 봄이나 가을에 진행되며 120여 명이 참석한다. 동창회보는 1991년 창간호가 발간됐으며, 작년까지 44회가 발간됐다. 졸업은 25주년이 되면, 홈커밍데이 및 사은의 밤 행사가 열린다. ◆영화로 만들어진 대건 산악부 대건산악부는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산악부로 활동한 고 백준호 동문(35회)는 산악 첫 의사자로 선정됐다. 2004년 정상 70여m를 앞두고 어려움에 처한 박무택, 장민 대원을 구하기 위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구조하려다 영원히 산사람이 됐다. 영화 히말라야에서 재조명됐다. 그의 후배 이봉열(36회), 최진철(41회) 동문이 백준호 동문의 뒤를 이어 맹활약 중이다. 2018년 5월 대건OB산악회 소속 최진철 동문이 선후배들의 응원 속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다.◆정현태 총동창회장 인터뷰 -대건 총동창회의 역사에 대해▲1952년 제1차 총회를 개최해 1회 졸업생 채윤기 회장이 취임했다. 그간 스물두 분의 회장을 배출했으며, 올해 제67차 총회에 이르기까지 총동창회를 잘 이끌어왔다.2020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6만 동문이 배출돼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양심‧정의‧사랑 의 교훈 정신을 되새기며 선배들이 역경을 이겨 내고 지금까지 지켜준 동창회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을 해 후배들에게 잘 계승되어지기를 바란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대건고 동문 3명의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비결이 있는지▲대구지역에서 대건 동문3명이 나란히 제20대 국회에 입성했다. 평소 본인들이 지역사회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또한 대건동문들의 뜨거운 응원과 격려, 단합과 끈끈한 동문애의 결속력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동문들에게는 대건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본다. -자랑스러운 동문들은.▲국회의원 3명 이외에 2018년 6·13 전국 동시지방 선거에 당선된 정계 선출직 동문 7명이 당선됐다. 한국 가요계의 거장이며 트로트계의 대부 남일해(본명 정태호·7회), 제38대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한 김정행(10회), 제37대 법무연수원 원장을 지낸 노환균(24회) 동문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의사배출 최다 기수도 있다. 29회와 31회의 의사 배출은 타 기수에 비해 월등하다. 각각 40여 명의 의사(한의사. 치과의사 포함)가 현직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다. 대건에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랑스러운 대건인상을 시상하고 있다. -기수별 특별활동(골프, 등산)이 많다던데.▲각 기수별로 활동하는 크고 작은 모임들이 많이 있지만, 주로 골프와 등산이 많다. 가장 모임이 잘 유지되고 있는 28회와 29회가 있다. 대건 28회 골프회는 회원수 50명으로 월 정기모임을 갖고 년 1회의 대회 개최하고 있다. 28산악회는 참여인원 30여 명으로 매월 1회의 정기 모임과 행사 개최한다. 29회 골프 모임(이구회)은 회원수 40명, 매월 1회 정기모임. 매월 넷째주 목요일 대구CC개최한다. -그동안 대건고 동창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셨고 앞으로 포부는.▲지난 2년 동안 총동창회를 항상 열려있고 소통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동문들에게 ‘사랑방’ 같은 총동창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유소작위’ 라는 말이 있다. 변화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뤄낸다는 의미다. 기존의 동창회 회칙과 조직을 시대 변화에 맞게 개편해 대건이라면 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어울리는 총동창회를 만들려고 애썼다.누구나 어울리는 동창회, 단합된 마음으로 학교 발전 이루고자 했다.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은 동창회 운영을 더 내실화하고 장학회 기금을 확충하는 등 6만 동문의 단합과 단결을 위해 역량을 집결해 나가겠다. 대구의 최고의 명문고로 위상을 확고히 다져 나가고 있는 모교와 후배들을 위해 총동창회 차원에서 더 많은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긴밀한 협조와 지원을 하겠다. 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43) 처용랑과 망해사

헌강왕은 신라 하대 나라의 기운이 기울어 가던 시기에 왕위에 올랐지만 해마다 풍년이 들고, 거리에는 노랫소리 그치지 않고 평화로운 시대를 보냈다.이는 헌강왕의 아버지 경문왕이 화랑세력과 고승들을 동원해 중앙집권제를 강화하면서 백성의 안녕과 나라의 평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결실이 나타났던 덕이라는 평이다.헌강왕 당시에는 많은 신이 현신했던 것으로 역사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도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용왕을 만난 것과 남산 포석정에서 남산신을 따라 춤춘 일, 금강령에서 북악의 산신과 지신이 나타나 춤을 추며 경계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국운이 다함을 신들이 나타나 경고를 했으나 사람들은 이를 상서로운 일로 잘못 해석하고 더욱 나태해 결국 나라가 망했다. 신들의 춤을 따라 추었던 헌강왕 시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삼국유사: 처용랑과 망해사제49대 헌강왕 때였다. 서울부터 전국에 이르기까지 지붕과 담이 즐비하게 이어지고, 초가집이란 한 채도 없었다. 거리에는 연주와 노랫소리 끊이지 않고, 사시사철 맑은 바람이 불고, 비는 적당히 내려주었다.이때 대왕이 개운포로 놀이를 나갔다. 왕이 가마를 돌려 돌아오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들려는 참이었다. 홀연히 운무가 가득하여 길을 잃었다. 괴이하게 여겨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이 “이는 동해 용이 조화를 부린 것입니다. 좋은 일을 행해야만 풀리겠습니다”고 했다.이에 신하에게 명령해 용을 위해 가까운 곳에 절을 짓도록 하였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 운무가 걷히며 흩어졌다. 그래서 개운포라 불린다. 동해 용은 기뻐하며 일곱 아들을 데리고 왕의 가마 앞에 나타나 덕을 칭송하면서 춤추고 곡을 연주했다.그 아들 하나는 왕을 따라 서울로 들어가 왕정을 보좌했는데, 처용이라 불렀다. 왕은 급간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여 그의 마음을 붙잡아두고자 했다. 그의 아내는 매우 아름다웠다. 역신이 이 여자에게 푹 빠져 사람으로 변장하고 밤에 그 집에 들어와 남몰래 함께 자게 되었다. 처용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이르러 침상에서 두 사람이 자는 것을 보고는 노래 부르고 춤추며 물러났다.“서울의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인가/ 본대 내 것이었던 것을/ 빼앗아 감을 어찌하리.”이때 역신이 모습을 드러내 앞에 나와 무릎 꿇고 “내가 그대의 처를 탐내서 지금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그대가 화를 내지 않으시니, 감복하고 탄복할 일입니다. 맹세컨대 지금부터 이후로는 그대의 얼굴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고 말했다.이 때문에 나라 안의 사람들이 문에 처용의 형상을 붙여 사악한 것을 몰아내고 좋은 일을 맞아들이려 했다.왕은 돌아온 다음, 영축산의 동쪽 기슭이 좋다 하여 절을 짓고 망해사라 불렀다. 신방사라고도 하는데 이는 용을 위해 지은 것이다.또 왕이 포석정에 갔을 때이다. 남산의 신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는데 곁의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오직 왕만이 보았다. 어떤 사람이 앞에 나서서 춤추니, 왕이 손수 따라 춤을 추며 형상으로 보여주었다.신의 이름을 상심이라고도 하므로 지금 나라 사람들이 이 춤을 전하면서 임금이 춘 상심 또는 임금이 춘 산신이라 한다. 신이 나타나 춤을 출 때 그 모습을 자세히 본 따 기술자를 시켜 조각하게 하여 후대에 보여주었으므로 상심이라고도 하였다. 또는 상염무라 하는데 이는 곧 그 모양을 보고 지은 것이다.또 왕이 금강령에 갔을 때 북악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는데 옥도검이라 불렀다. 또 동례전에서 연회를 할 때에는 지신이 나와 춤을 추었는데, 지백급간이라 불렀다.어법집에 “그때 산신이 춤을 추면서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 노래한 것은 나라 안에 지혜롭게 다스리는 자들이 미리 알고 도망을 가 도읍이 무너질 것’을 이르는 바였다”고 한다.지신과 산신은 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춤을 추어 이를 경고했던 것이다. 나라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났다’고 말하면서 탐락에 극심하게 빠져 나라가 끝내 망하고 말았다.◆다시 쓰는 삼국유사: 헌강왕의 정치헌강왕은 15세에 즉위해 철이 없었다. 단지 성격이 호쾌하고 활달해 화랑들과 무예를 즐기며 사냥과 놀기에 빠져 정사를 돌보는데 게을리했다.황성숲에서 사냥을 즐겼다. 사냥터에서 만난 여인의 미모에 빠져 그곳에 쉼터를 마련하고, 여인이 그곳에 기거하게 했다. 이 여인이 남매를 낳았다. 아들은 나중에 52대 효공왕이 되었고, 딸은 53대 신덕왕의 왕비가 되어 54대 경명왕과 55대 경애왕을 낳았다. 신덕왕이 박씨 성을 가졌으나 김씨 왕가의 사위로, 결국 김씨 왕의 세습이 이어진 셈이다.또 헌강왕이 배를 타고 개운포로 나들이를 갔다가 해적의 난을 만났다. 위기에 처했을 때 인도 상인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헌강왕은 인도 상인들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이어 개운포에 인도 상인들을 위한 전용 상가를 개설하게 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무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헌강왕은 또 틈만 나면 연회를 열어 신하들과 함께 즐기기를 좋아했다. 왕궁과 가까운 남산으로 나들이도 잦았다. 남산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어 용포가 젖도록 술을 마시고,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취하곤 했다.헌강왕이 20세를 맞아 생일잔치를 베풀었다. 술기운이 오르고 흥이 지나치자 남산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이때 일길찬 신홍이 반란을 일으켰다. 다행히 반란은 헌강왕을 숨어서 따르던 화랑들의 힘에 제압됐다.헌강왕은 유흥에 빠져 있었지만 주변에 실력이 뛰어난 화랑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아버지 경문왕의 뜻에 따라 그들을 중용해 신임을 두텁게 얻고 있었다. 이어 경문왕 때부터 장려해왔던 국학을 발전시켜 6두품 세력들을 중앙 정계에 진출하도록 해 신흥세력의 지지 또한 두텁게 받아 강한 국운을 이어갈 수 있었다.아버지 경문왕이 불교를 장려하며 고승들을 각 고을로 배치해 백성을 두루 교화하며 나라에 충성하는 기풍을 조성하고, 화랑과 6두품 신흥세력들을 고루 등용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중앙집권제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헌강왕은 아버지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태평성대한 시대를 열어가게 되는 복된 군주의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10여 년에 이르는 문란한 정치로 훌륭한 기반도 급격하게 기울어 나라의 패망을 막을 수 없었다.나약했던 동생이 50대 정강왕으로 왕위를 이었지만 2년 만에 죽었다. 여동생 김만이 51대 진성여왕으로 등극해 상대등이었던 삼촌 위홍과 결혼했다. 위홍이 죽자 진성여왕은 화랑 두 명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문란한 생활을 이어가다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왕위에서 쫓겨나듯 스스로 물러났다. 이러한 신라의 왕권이 실추되는 시기를 틈타 후백제와 고려가 세력을 키웠다. 신라는 스스로 패망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AI와 함께하는 세상 (50·끝) AI로 지켜본 4차 산업혁명

지난 1년을 독자와 더불어 숨 쉬고 공감하느라 비록 조급했으나, 조급해하지 않으려 얼마나 많은 양의 숨을 몰아쉬었을지 모른다.세기말 어느 유명 개그맨의 책 ‘컴퓨터 며칠만 하면 누구만큼은 한다’를 모티브 삼아 4차 사업혁명의 시류에 쉬 어울리지 못하는 우리와 그들이 한데 모여 활발해 마지않는 소통의 장을 열어보고자 연재를 시작했다.다양한 4차 산업과 거기에 파생된 개별의 네트워크를 소개하고자 갖은 열을 올렸건만, 연재가 진행될수록 2%를 놓쳤다는 자책과 아쉬움에 무던히도 성찰의 연속이었다.‘다음은 더 잘해야지’라는 알량한 다짐도 그다음, 또 그다음 연재에서 하릴없이 무너지곤 했다.하지만 이 와중에 송구스런 자찬을 하자면 4차 산업과 인공지능(AI)에 관한 최소한의 개념 정립은 일정 부분 거뒀을 것이라고 본다.내가 아는 정도를 나에게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 공유하고 인지해가며 최소한의 대비와 미래 청사진을 더불어 그려보자는 나름의 다짐이 어느 정도는 통했으리라 믿어본다.4차 산업혁명의 대두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는 이항 대립 정도로 치부치 않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우매함을 타파해보고자 노력해왔다.‘인간노동의 자동화’를 단순 ‘잉여 인간’ 양산으로 절망하지 않고, 또 다른 일자리 창출의 희망으로 거듭나보고자 여기까지 온 셈이다.4차 산업의 모멘텀을 상기해본다. 4차 산업의 근간과 거기에 파생된 개별의 네트워크 시스템 가운데 몇 가지 사례를 되짚으며 ‘어쩌면 마지막일 것 같지 않을 마지막’을 맞이해보려 한다. ◆태양에 관한 고찰너무 가까이 있어 마치 없는 듯하다. 인간 생존의 너무나 기본적 요소이기에 이렇게라도 되짚지 않으면 그저 그런 자연적 현상, 혹은 우주 저편에 떠있는 천체 정도로 여길 터다.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태양’은 콤팩트하되 임팩트한 존재임이 분명하다.태양은 곧 ‘전체’다. 수성을 비롯한 태양계 모든 행성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태양이다.모든 천체는 개별의 특성과 나름의 아이덴티티를 뽐낸다지만, 종국엔 태양의 영향력 하에서 이뤄지는 일련의 섭리일 뿐.태양은 태양 자체로 태양이다. 무슨 말인가 하니 우주에 속한 천체 가운데 그 어떠한 외부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스스로 빛을 발산해내는 유일의 천체다. ‘Sun is God’, 이 문장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될 듯하다.우리가 밟고 있는 지구에서의 태양 역시도 ‘만물 소생의 근원’이다. 태양으로 인해 숨을 쉬고 광합성을 하며 생존에 가능한 온도를 유지해준다. 이와 더불어 비를 뿌리고 우리로 하여금 눈을 맞이하게도 해준다.태양이 소멸될 때를 한번 상상해볼까. 생존의 문제는 말할 나위 없을 터고, 더 큰 문제는 태양이 그간 지구를 잡아왔던 힘, 다시 말해 중력이 일거에 소멸됨에 따라 지구는 검은 우주 속으로 하릴없는 유영을 벌여야 할 처지에 직면한다.유영만 하면 다행이다. 의도치 않은 우주여행 중 맞닥뜨릴 소행성과의 충돌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 사고일 게다. ◆4차 산업의 소프트웨어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는데 ‘소프트웨어’의 개념 정립이라 함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우리가 되짚어온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 4차 산업의 파생 요소들이 소프트웨어라는 근간에 의해 발현된다는 사실, 놓쳐선 안 될 팩트다.4차 산업의 정체성으로 자존감을 뽐낼 소프트웨어는 쉽게 설명해 ‘프로그램’으로 통칭된다. 이는 프로그램 구동 과정을 우선 살펴봐야 하는데, 프로그램 가동의 프로세스와 각종 색인, 규정 등의 총 집합체가 바로 소프트웨어다.소프트웨어는 다른 의미로 인공지능의 ‘논리적 측면’을 대변한다. 인공지능, 이는 곧 AI 이해의 선결 조건이 바로 소프트웨어의 속성이라는 것인데, AI의 자양분이 소프트웨어인 것으로 비춰볼 때 4차 산업의 청사진에 소프트웨어는 알찬 밀알이 된다는 주장, 결코 과하지 않다.여기서 잠깐, 소프트웨어의 모멘텀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선 AI와 사물인터넷의 올바른 정립이 전제돼 있어야 마땅한데 흔히들 ‘파괴적 기술’로 명시될 법한 AI는 초고도화된 문제해결 능력을 보유한 인공의 지능을 의미한다.사물인터넷의 총체는 ‘연계성’이다. 명칭 그대로 사물과 인터넷을 연결한다는 의미로 풀이되는데, 이는 일방향이 아닌 전 방위를 아우른다. 이 같은 AI와 사물인터넷의 접점에 소프트웨어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도 똑똑해야 할 때사람 개별로 흐르는 기운이 있다. 그 기운을 ‘아우라’라고 하는데, 통상 아우라가 있다, 없다는 것은 단순 선입견과 특수한 어느 시점의 차이일 뿐, 아우라는 누구에게나 있다.만약 사람에게 기운이 없다면 더이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자체가 무의미해질 듯.이처럼 에너지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모여 부대끼며 살아 숨 쉬는 이 땅위 마치 공기처럼 흐르는 주요 자원이다. 이 같은 에너지도 4차 산업의 시류엔 스마트의 이름을 배제하긴 어려웠나 보다.‘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고전의 구호가 ‘그린’이라는 이미지와 중첩돼 ‘그린에너지’로의 변혁을 시도해가고 있다.정책적으로 ‘녹색 성장’과 그 궤를 함께한다. 스마트 에너지의 발발은 만물의 근원인 태양과 맞물려 ‘태양광 사업’으로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해간다.이를 통해 환경보호의 차원과 아울러 기존 대비 약 70%에 이르는 에너지 변환의 효율성 제고를 기대해봄직하다.이 밖에도 전기 소요가 많은 다중이용시설 등을 상대로 스마트 에너지의 상용화가 본격화될 시점에 도래한다면, 경제성 제고 면에서도 탁월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간 손이 없는 ‘스마트 노동’ 시대‘공장의 기계화’는 산업혁명의 심벌이었다. 각 공정 간 인력과 기계의 적절한 콜라보를 꾀하면서, 조금 더 안전하게, 조금 더 빠르게, 이를 한데 모은 조금 더 효율적인 공장의 프로세스를 그간 발 빠르게 구축해 왔다.하지만 지금까지의 기계화는 어찌됐건 인간의 통제 하에서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될 조금 더 편한 노동력의 제고 수준이었다. 이제는 인간의 손을 놓고, 한발 더 나아가 기계 스스로 컨트롤 해가는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팩토리’가 군웅할거 하고 있다.현재 스마트팩토리의 자동화 과정은 전체 5단계 중 3단계 정도에 이른다.3단계는 자동화의 손이 미처 범접하지 못할 최소한의 공정만을 인간이 처리해내는 수준이다.아직까진 주로 ‘제조업’으로 범주가 국한돼 있는데 스마트팩토리의 정점은 안전의 모토를 제반에 두되, 인건비와 생산성 제고 등의 경제적 산출 효과에 있다.적은 인력으로 많은 공정을 해소해간다는 스마트팩토리의 기조는 불량품을 줄여 재고 상품을 미연에 방지하고 도입 이전 대비 약 20% 이상의 수출액을 달성하는 등의 경제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직까진 ‘선택 사양’에 그치지만, 향후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사양’으로 거듭남은 쉬 예상될 법한 미래다. ◆인문학이 더해진다면지난 1년 동안 작은 지식으로 방대한 4차 산업의 개념을 소개하느라 놓쳐버린 부분이 있다.바로 ‘인문학’에 관한 소양이다. 가열 찬 발전과 이를 위해 가일 층 박차를 가해가고 있는 AI의 극점엔 결국 ‘나’, ‘우리’, 그리고 ‘인간’이 상존한다. 결국엔 AI의 진일보한 기술력은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함으로 귀결된다는 의미다.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프로세스를 공유해야 하는 근원적 동기부터 살펴야 한다.이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찰의 과정에서부터 비롯된다. 사실 잘 살아야 한다는 당위만 있을 뿐, 그에 따른 해법이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모호한 문제다.다만 4차 산업과 인문학의 연계점을 더욱 공고히 해보자는 것이다. ‘청출어람’이라 함은 반드시 이뤄야 할 실리적 요소로 응당 남겨두되, ‘온고지신’의 지혜를 결단코 품어야 할 명분으로 아로새겨보자.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위해선 인문학의 탐독이 절실히 요구된다.AI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이끌어주는 선한 의미의 제반 사양임을 짐작으로 그치지 않고 오롯이 수용해보자. 글·사진 군월드 IT사업팀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2) 싱가포르·센토사 섬

싱가포르는 가족, 연인, 신혼부부 등 누구와 함께해도 좋은 관광지다.63개의 섬으로 이뤄진 도시 국가다.이 중 가장 큰 섬인 센토사 섬은 가족과 방문하기 좋은 최고의 휴양지로 꼽힌다.또 연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대의 휴양시설인 리조트 월드 센토사, 대 관람차, 유니버셜 스튜디오, 크루즈 여행 등 낭만적인 야경을 비롯해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싱가포르를 방문한다면 꼭 먹어보고 가봐야할 음식과 맛집, 명소가 있다.이색적인 여행의 시간을 가지고,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겨보자. ◆최고의 가족 휴양지…센토사 섬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함을 뜻하는 센토사 섬은 최고의 가족 휴양지다.센토사 섬은 다양한 레저 활동과 아름다운 해변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싱가포르, 마린 라이프 파크 등 다양한 명소가 있다.유니버설 스튜디오 싱가포르는 센토사 섬 내의 테마파크다. 할리우드 영화와 인기 애니메이션을 테마로 꾸며놓은 어트랙션으로 즐길 수 있다.특히 유니버설 스튜디오 싱가포르에 설치된 24개의 놀이 시설 중 18개는 싱가포르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최근에는 닌텐도의 마스코트인 슈퍼마리오를 주제로 새롭게 테마 공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리조트 월드 센토사는 센토사 섬에 위치한 최대의 휴양 시설이다.아이들이 즐겁게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명소들이 있다.특히 도시 생활에만 익숙한 아이들이라면 리조트 월드 센토사의 핵심 명소 중 하나인 ‘마린 라이프 파크’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이곳에는 세계 최대의 아쿠아리움으로 해양체험박물관, 아쿠아리움, 워터파크가 있다.10만 마리 이상의 해양 생물이 살고 있는 ‘시 아쿠아리움(S.E.A. Aquarium)’부터 싱가포르 최대의 워터파크인 ‘어드벤처 코브 워터파크(Adventure Cove Waterpark)’까지 다양한 어트랙션이 자리 잡고 있어 아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더욱이 바다보다 안전한 장소에서 스노쿨링을 하며 2만여 마리의 열대어를 가까이에서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레인보우 리프(Rainbow Reef)’가 가장 큰 묘미로 손꼽힌다.또 시 아쿠아리움에는 아시아 최초이자 유일한 대형 아쿠아리움을 침실에서 창으로 볼 수 있는 고급호텔이 있다.고급호텔인 에쿠아리우스 호텔의 오션 스위트 침실은 70여 종의 5만여 마리의 해양 생물을 감상하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단 11개 객실만 있는 오션 스위트는 복층으로 구성돼 객실 1층에 들어서면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아크릴 패널에 시선을 빼앗긴다.침대 정면으로 설치된 아크릴 패널을 통해 5만여 마리의 해양 생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패널 바로 아래 설치된 욕조에서 환상적인 바다 속 모습을 보며 로맨틱한 목욕이나 족욕을 즐길 수 있다.센토사 섬에는 팔라완비치, 탄종비치, 실로소비치의 3대 해변이 있다.그 중 편의시설과 놀 거리가 몰려 있는 실로소 비치의 인기가 가장 높다.실로소 비치에서 싱가포르 현지인들은 수영보다 모래밭에서 하는 배구인 비치발리볼, 카약, 서핑 등의 수상 스포츠와 액티비티를 주로 즐기다 가는 휴식터로 자리하고 있다.세계 최초의 실내 스카이다이빙 ‘아이플라이(I-FLY)’, 인공서핑 ‘웨이브 하우스(Wavehouse)’ 등이 실로소 주변에 위치해 있다. ◆42층 건물 옥상 높이의 싱가포르 플라이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야경을 좀 더 로맨틱하게 즐기려면 싱가포르 플라이어를 방문하는 게 좋다.싱가포르 플라이어에 올라 연인과 함께 둘 만의 저녁을 보낸다면 평생 잊지 못 할 추억이 될 것이다.세계 최대 규모의 회전 관람차인 싱가포르 플라이어는 지름이 150m에 달하고 꼭대기에 이르면 42층 건물 옥상(높이 165m)에 오른 셈이 된다.여기서 시야로 조망되는 거리는 42㎞.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섬까지 보인다.싱가포르 플라이어가 더욱 로맨틱한 이유는 캡슐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벤트 덕분이다.특히 캡슐에서 식사를 즐기며 야경 감상을 할 수 있는 스카이 다이닝을 주목해 보자.친절한 종업원의 안내로 펼쳐지는 1시간가량의 저녁 식사는 4개의 코스 메뉴로 구성돼 있으며, 싱가포르 플라이어 주변에 위치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덕분에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야경과 건축물이 함께 하는 잊지 못할 저녁을 경험할 수 있다.싱가포르 리버크루즈는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스탬퍼드 래플스 경이 싱가포르에 첫발을 내딛은 래플스의 상륙지에서 시작해 싱가포르 강의 강변을 따라 항해한다.보트키, 클락키, 로버트슨키 등 싱가포르의 여러 부두를 따라 늘어선 옛 상점과 현대 고층 건물이 어우러져 싱가포르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또 배는 19세기 싱가포르에 정박했던 행상 보트를 재현해 더욱 운치를 더한다. 석양이 질 무렵 탑승해 야경을 즐길 것을 추천한다. ◆싱가포르 대표 음식과 맛 집싱가포르에 방문한다면 꼭 맛보면 좋을 대표 음식과 맛 집이 있다.바쿠테는 돼지고기 갈비탕이다.과거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저렴한 돼지고기를 이용해 만든 보양식으로 싱가포르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문자 그대로 갈비탕과 차를 의미한다. 돼지갈비, 한약재, 마늘, 후추 등을 넣고 끓여 요리한 후 돼지 갈비탕을 먹은 후에는 차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한다.한국의 갈비탕과 비슷한 맛을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싱가포르 본토에서 바쿠테를 즐기고 싶다면 2018 미슐랭 빕 그루망 리스트에 오른 ‘송 파 바쿠테’에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이 곳의 바쿠테는 국물을 낼 때 마늘, 팔각, 회향 씨, 정향 등 각종 허브와 양념을 넣고 푹 끓여 담백하면서도 진한 맛을 낸다.송 파 바쿠테(Song Fa Bak Kut Teh)의 주소는 11 New Bridge Road #01-01, 싱가포르 059383이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15분까지 문을 연다.락사는 매콤한 코코넛 국물에 국수, 어육 완자, 새우, 꼬막, 숙주나물을 넣어 먹는 중국과 말레이의 혼합 문화 및 인종인 페라나칸 요리다.싱가포르 전역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이 뷔페식으로 준비돼 있는 호커센터(Hawker Center)에서 락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하지만 전통적으로 페라나칸 문화가 자라난 카통 지역이 특히 유명하다. 카통 락사는 젓가락을 쓰지 않고 수프용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도록 국수를 잘라놓은 것이 특징이다.싱가포르 남동쪽 해변 지역인 이스트 코스트 로드를 따라 늘어선 락사 전문점들이 서로 원조를 다투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328 카통 락사’가 유명하다.328 카통 락사(328 Katong Laksa)의 주소는 51/53 E Coast Rd, 싱가포르 428770이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하이난식 치킨라이스는 부드러운 닭고기와 향긋한 쌀, 매콤한 칠리와 생강 페이스트를 곁들여 먹는 싱가포르 국민 요리다.차이나타운 중심부에 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푸드 센터인 맥스웰 푸드 센터푸드 센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싱가포르에서 먹어야 할 음식 10’ 리스트를 소개하고 있다.맥스웰 푸드 센터의 명물은 ‘티안 티안 치킨 라이스’로, 싱가포르인 사이에서 최고의 메뉴로 손꼽히는 곳이다.맥스웰 푸드 센터(Maxwell Food Centre)의 주소는 1 Kadayanallur St, 싱가포르 069184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전 2시까지 운영한다.-자료 제공: 싱가포르 관광청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구내염 바로 알기

구내염은 입안에 생기는 궤양, 혓바늘 등의 불편한 증상이다.얼핏 보면 모양이 다 비슷해 보이지만 구내염의 종류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지므로 정확한 진단이 가장 중요하다. ◆아프타성 구내염구강에서 가장 빈번한 궤양성 질환으로 입술과 볼, 혀 등의 점막에 하나 혹은 수 개의 작은 궤양으로 나타난다.면역질환으로 유전적 특징이 있으며 외상과 피로,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는다.특별한 치료 없이도 2~3 주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되지만 재발이 잦고 통증이 심해 생활에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빈혈 혹은 비타민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구강내과의사와 상의해 스테로이드 용액, 국소마취제, 구강항균용액, 구강연고 등으로 치료해야 한다, ◆캔디다성 구내염곰팡이균에 의한 기회감염으로 발생하는 구내염으로 혀와 볼 점막에 잘 나타난다.흰색막을 형성하기도 하며 점막이 위축 혹은 증식을 보이기도.주로 구강위생이나 틀니의 관리가 불량한 경우에 발생하며 타액 분비가 감소했을 때 발생한다.빈혈, 당뇨, 비타민 B12 부족 시, 전신 질환과 투약에 의한 전신 면역 저하와 광범위 항생제의 장기 투여에 의한 구강 내 세균의 불균형에 의해서도 생긴다.치료법은 항진균제를 성분으로 하는 구강세정제의 사용하거나 항진균제를 복용하는 것이다.약물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절제하기도 한다. ◆구강내 편평태선자극성 있는 음식(특히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쓰린 통증이 나타나는 증상이 있는 질환으로 면역반응의 결과로 발생한다.전체 인구의 1% 내외에서 나타난다고 보고된다.40대 이상에서 빈번히 생기고 여성에서 더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피부의 편평태선와 비슷하며 구강 내에서 볼과 전정부, 혀, 치은 등에서 잘 생긴다.하얀 선이 그물처럼 얽힌 형태로 나타나거나 점막이 붉고 매끈하게 위축되거나 점막이 헐기도 한다.스테로이드의 국소 적용 혹은 복용, 항세균 양치용액, 구강 연고 등으로 치료한다.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면 구강암과의 감별을 위한 조직검사가 필요하다. ◆단순포진성 구내염단순포진 바이러스의 구강 감염은 일차성과 이차성으로 나눌 수 있다.일차성 감염 환자는 대부분 어린이이다.대개 증상을 보이지 않지만 발열 등 감기와 같은 증상과 함께 입 안 곳곳에 비교적 심한 수포를 형성하고 수포가 터지면서 출혈 및 궤양을 보이기도 한다.이차성 감염은 첫 번째 감염의 치유 후 바이러스가 감염 부위와 관련된 신경 안에 잠복한 것을 말한다.면역기능 저하, 스트레스 등에 의해 주로 입술 주위에 물집이 생기는 형태를 보인다.단순포진 바이러스 감염은 2주일 정도 경과하면 대부분 자연 치유되며 통증 조절을 위한 국소마취제, 진통제 및 항바이러스제 복용 및 연고를 사용하기도 한다. ◆구내염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구내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입 안의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혀를 깨물거나 볼펜을 무는 습관 등의 기계적인 자극은 물론 담배와 술 등의 화학적 자극도 해당한다.그리고 충분한 수분 섭취를 통해 구강 내 점막이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구내염에 대한 오해와 진실시중에 판매하는 연고는 잘 사용하면 문제가 없지만 정확한 용도와 사용법을 모른 채 무작정 사용할 경우 증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특히 일부 연고는 조직을 인위적으로 괴사시켜 통증을 줄이는 기전이 있으므로 특히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또 구내염이 낫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다른 전신 질환과의 연관성도 고려해야 하므로 반드시 구강내과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도움말=대구가톨릭대병원 치과 김지락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만성 통증을 일으키는 삼차신경통

삼차신경통은 삼차신경에 발생하는 병변으로 인해 만성적인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을 말한다.삼차신경은 뇌와 연결되는 12개의 뇌신경 중 5번째 신경으로 얼굴 양쪽으로 각각 1개씩, 이마와 뺨 및 턱의 3곳으로 갈라져 있다.이 신경은 얼굴부위의 감각과 음 식물 씹기 등에 관여한다. ◆얼굴 삼차신경에 만성통증 유발삼차신경통의 통증은 순간적으로 매우 격렬하므로 환자들은 보통 ‘번개가 치는 듯하다’며 고통을 호소한다.이러한 통증 탓에 음식을 입에 넣고 씹거나 대화하기, 양치나 면도 등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다만 통증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 있고 통증이 전혀 없는 무통기가 동반되는 것이 특징이다.삼차신경통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좀 더 흔하게 발생하고 50대 이상의 연령에서 많이 생긴다.인구 10만 명당 5명 정도의 낮은 발생률을 보이지만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성 통증질환으로 통한다.만일 통증의 양상이 묵직하면서 지속적인 통증이면 다른 질환을 의심하는 것이 좋다.삼차신경통의 발병원인은 혈관압박 등 다양하다.삼차신경에 대한 혈관압박은 삼차신경 주위를 지나가는 정맥 혹은 동맥의 눌림에 의해 발생한다.하지만 이러한 혈관 눌림이 있어도 어떤 환자들은 통증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뇌종양에 의해 삼차신경이 눌리면 유사한 통증이 생길 수 있다.따라서 반드시 MRI 사진 촬영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이뿐만 아니라 삼차신경통 환자의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신경 주위의 혈관 눌림도 MRI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 검사한 적이 없다면 꼭 시행하는 것이 좋다. ◆약물로 치료, 당일 수술도 가능삼차신경통을 위한 치료에는 △유발인자 회피 △약물 복용 △수술 △삼차신경분지의 고주파 열응고술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다행히 삼차신경통 환자 중 상당수가 약물복용에 효과를 보이고 그중에서도 카바마제핀이라는 항경련제의 복용이 가장 중요하며 또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카바마제핀을 신경통 초기에 복용하면 효과가 매우 좋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줄어들고 부작용도 생길 수 있어 장기복용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대표적인 부작용은 졸음, 어지러움, 복시, 백혈구의 감소 등이다.약물치료로 효과가 없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수술로는 삼차신경 주위의 미세혈관 감압술, 감마 나이프 등이 있다.단점은 치료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는 것이다.삼차신경분지의 고주파 열응고술은 삼차신경통으로 확진된 환자들 중 약물 복용을 해도 별 효과가 없거나 약물에 의한 부작용으로 더 이상 약물을 복용하기 힘든 환자에게 좋은 치료법이다.이 방법은 전신 마취나 입원이 필요 없는 일종의 주사치료라고 볼 수 있다.두개강 내에 위치한 삼차신경절의 위치를 방사선 장치를 이용해 찾아낸 뒤 수술용 바늘을 신경절까지 거치한 다음 고주파 열응고기를 통해 신경절을 파괴시키는 방법이다.특히 이 시술은 노인이나 전신마취가 매우 어려운 환자에 게 적합하며 치료가 매우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단 시술 후 통증이 있었던 얼굴 부위의 무감각이 가끔 동반할 수 있다. 치료 성공률은 95% 이상으로 보고된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42) 경문왕

신라 48대 경문왕은 화랑 출신으로 헌앙왕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되면서 왕위에 오르게 된 행운아라고도 할 수 있다. 경문왕대에 이르러 원성왕부터 피비린내를 풍겼던 왕권을 둘러싼 전쟁은 잦아들었다. 원성왕의 후손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왕좌는 경문왕부터 다시 50여 년간 그의 직계들이 차지했다. 물론 헌안왕과 경문왕도 원성왕의 직계 후손이다.경문왕은 861년부터 875년까지 14년간 왕좌에 있었지만 남아 있는 업적이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그의 왕릉조차 비정되지 않아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그러나 최근들어 경문왕은 왕권의 안정을 위해 불법을 확산하는 노력을 다양하게 전개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문왕은 왕실로부터 멀어지고 있던 황룡사의 구층목탑을 중수하고, 숭복사를 중창했다.경문왕은 또 동화사에 민애왕의 추숭 복업을 위한 석탑을 건립했다. 이를 통해 당시 동화사 주지 심지를 끌어들여 진표의 미륵신앙과는 또 다른 미륵신앙을 수용하려 했다. 왕은 동화사 심지대사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는 한편 지방의 선종과 선승들을 회유하기 위한 정책도 적극 펼쳤다. 왕은 선승 낭혜무염을 국사로 임명하고, 그를 상주로 내려 보내 불만세력들을 회유하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화랑이 왕이 되어 훌륭한 정치를 베풀기 위한 노력은 그가 화랑으로 천하를 주유하며 수련했던 심신의 단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신분제도 철폐를 비롯 화랑들의 중앙무대 진출, 불교정책을 통한 왕권강화와 안정을 도모했던 경문왕의 길을 돌아본다.◆삼국유사: 경문왕-화랑 응렴 왕이 되다: 왕의 이름은 응렴인데 열여덟 살에 국선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되자 헌안대왕이 불러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어주며 “낭이 국선이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며 어떤 재미있는 일을 보았느냐”고 물었다.응렴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고 했다.왕은 그 말을 듣고 그의 어진 성품을 알아보고 “내게 딸이 둘 있거니와 그들이 수발을 들도록 하겠노라”고 말했다.응렴은 자리를 벗어나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 나와 부모에게 아뢰었다. 부모는 놀라 기뻐하며, 자제들을 모아 놓고 의논했다. “큰 공주는 얼굴이 매우 못생겼고, 둘째 공주는 매우 아름다우니 그를 맞아들이면 좋겠다.”응렴의 무리 가운데 범교라는 스님이 “낭께서 동생을 맞으신다면 저는 반드시 낭의 앞에서 죽을 것이로되, 언니를 맞으신다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명심하세요”라고 주의를 주었다. 응렴은 범교 스님의 뜻에 따라 큰딸과 결혼했다.한 달 보름쯤 지난 다음 왕이 큰 병에 걸려 신하들을 모아 “짐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소. 장례를 치른 다음 마땅히 큰딸의 남편 응렴이 잇도록 하시오”라고 말했다. 다음날 왕이 돌아가시자 응렴은 왕의 뜻을 받들어 왕위에 올랐다.이때 범교가 왕에게 나아와 “제가 말씀드린 세 가지 좋은 일이 모두 나타났습니다. 큰딸을 맞아들였으므로 이제 왕위에 오른 것이 하나요, 미모에 끌렸던 동생을 이제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둘째요, 언니를 맞아들여 왕과 부인께서 기뻐하였음이 셋째입니다”고 말했다.왕은 그 말을 치하하여 대덕 벼슬을 주고 금 130냥을 내렸다. 왕이 돌아가시자 시호를 경문이라 하였다.-뱀의 왕: 왕의 침소에 저녁마다 뱀이 수없이 모여들었다. 궁인들이 놀랍고 두려워 쫓아내려 하자 왕이 말하였다. “내가 뱀이 없이는 편안히 잠을 잘 수 없구나. 막지 말아라.” 매번 침상에서 혀를 날름거리며 왕의 가슴 위를 가득 덮었다.-당나귀의 귀: 경문왕은 왕위에 올라선 다음 귀가 갑자기 커져 당나귀 귀 같았다. 왕후와 궁인들 아무도 몰랐으나 오직 두건 만드는 기술자 한 사람만이 알았다. 그러나 평생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죽을 무렵, 도림사의 대나무 숲 가운데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를 바라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네.”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네’라는 소리가 들리자, 왕이 이를 싫어하여 곧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바람이 불면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네’라고 들렸다.-화랑들의 노래: 국선 요원랑, 예흔랑, 계원숙종랑 등이 금란에 가서 놀다가 적이 군주를 위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는 뜻을 담아 노래 가사 세 편을 지었다. 심필 사지를 시켜, 가사가 적힌 원고를 대구화상이 있는 곳에 보내 세 노래를 짓도록 하였다.처음은 현금포곡, 둘째는 대도곡, 셋째는 문군곡이다. 왕에게 들어가 연주하니, 왕이 크게 기뻐하고 칭찬하였다. 노래는 자세하지 않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화랑의 맹세김응렴의 길은 낭염화상을 만나면서 크게 달라졌다. 응렴은 낭도들과 수련을 위해 아름다운 산천을 주유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라를 위한 일이든 자신을 위한 일이든 지혜를 바탕으로 한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자신의 지혜와 무예에 대한 실력은 만족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다.응렴은 이러한 정신적 부담 때문에 누구보다 많은 훈련과 진리탐구에 매달렸다. 눈을 뜨면서부터 책을 들고, 밥을 먹으면서도 주먹을 내지르는 훈련의 미치광이가 되었다. 그의 피나는 노력으로 실력과 지혜가 나날이 눈에 뜨일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정작 응렴 스스로는 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늘 답답해하며 훈련의 강도를 갈수록 높여 잠자는 시간은 하루에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낭염화상이 어느 날 천 길 낭떠러지로 황하처럼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폭포 아래로 응렴을 밀어 넣었다. 소용돌이가 심해 무술을 익힌 청년이라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곳이었다. 겨우 헤엄쳐 나오면 낭염화상은 사정없이 다시 물줄기가 떨어지는 가운데로 밀어 넣어 버렸다.완전히 지쳐버린 응렴이 물속으로 가라앉을 무렵 낭염은 그를 건졌다. 낭염화상은 이미 깊은 경지에 이른 도승이었지만 화랑도들의 틈에 끼어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자 길을 찾고 있었다.기운을 회복한 응렴은 낭염화상 앞에서 어떠한 경우에라도 세속오계를 실천할 것을 맹세하고, 그의 제자가 되어 정신적 훈련과 무예수업을 새로운 각도에서 속성으로 익혔다. 응렴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골격을 타고 태어났으며 지혜로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또 이미 닦아온 기초가 튼튼해 낭염의 지도는 줄탁동시가 되어 나날이 성장하는 속도가 빨랐다. 괄목할만한 응렴의 실력은 가르치는 낭염화상조차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낭염의 엄격하고 처절하리만큼 혹독한 가르침은 빼어난 응렴의 자질을 부추겨 어느덧 깨달음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목검을 잡고 상대를 노려볼 때는 짐승의 불빛 같은 안광을 쏘아냈으나 승복을 걸치면 그의 눈은 깊은 바다보다 고요하게 가라앉아 보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편안하게 했다.응렴은 헌안왕의 눈에 들어 48대 경문왕으로 즉위해 원성왕 이후 이어지던 왕권 다툼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어 화랑들의 교육을 정예화시키고, 인재를 키워 대거 등용했다. 이어 불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수련이 깊은 승려들을 중앙은 물론 지방에까지 파견해 민심을 안정시키고 평화스러운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경문왕의 노력은 결국 아들 헌강왕이 즉위했을 때 빛을 발해 전국에 풍년이 들고, 백성의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AI와 함께하는 세상 (49) 알고 쓰시나요 ‘한글의 과학’

한글은 ‘이중적 잣대’를 함의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쉬우면서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영어의 ‘Yellow’, ‘노랗다’라는 의미인데, 영문으로는 옐로우로 통칭되던 것이 한글로 넘어오는 순간 수가지 의미가 혼재된 개별의 느낌을 탑재한다.노랗다 에서부터 누렇다, 샛노랗다, 누리끼리하다, 누르스름하다, 황토빛이 난다 등 노란 건 분명 하나인데 어감은 모두 다르다. 심지어 노랗다의 의미를 사물 또는 생물과도 접목시킨다.금빛, 황소, 바나나색 등 여타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 못 될 신묘한 의미가 한글에서 만큼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존칭’도 존재한다. 물론 영어에서도 ‘어미’ 또는 ‘어구’ 변형에 따라 일정 부분 존대의 의미를 갖는다지만 그건 어법상 해석일 뿐, ‘존대의 말’ 자체가 독립 어구인 경우는 한글이 유일하다. 존칭에만 그치면 다행이다. ‘극존칭’ 이란 것도 아울러 존재한다.영어에서의 어법은 명료하다. 물론 한글도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법’이 분명 존재하지만 신기하게도 시에서만 적용되는 ‘오타’ 아닌 오타가 있다.바로 ‘시적 허용’이라는 암묵적 약속. ‘시 특유의 운율(리듬)에 반하지 말라’ 는 의미에서 문법 상 오류라도 눈감아 줄 여유(?)가 한글에는 있다. 대표적으로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타난 ‘나빌 레라’가 그것이다.여기까지만 보면 한글은 어렵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은 문맹률 1% 미만인 유일의 나라다. 당연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위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특유의 학구열이 한몫하겠지만, 그보다 어렵되 다채로운 표현기법을 지닌 한글의 과학성이 여실하다는 방증이다.한글은 앞선 연재에서 거의 단독수준으로 다룬바 있는 ‘태양’과도 가히 비견될 수준이다. 너무 가까이 있어 되레 소중함을 망각하는, 그렇기에 귀중해 마지않은 존재, 한글은 ‘과학’이자 ‘미학’이며, 표현은 깊고 심오하되 진입 문턱은 낮은 ‘대중성’을 지닌다.매년 돌아오는 10월9일이 공휴일로 재지정된 사실은 단순 휴식의 차원을 차치하고라도 ‘한글의 한글다운 고찰’을 1년 중 단 하루라도 영위할 수 있다는 데서 꽤나 고무적이다. 중간에 어쩔 수 없는 표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최소한 이번 연재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최대한 영문 표기를 배제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노력하고 아울러 공감해주길 바란다.여기서 하나 더, 한글날이 10월9일로 지정된 연유도 이 기회에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이는 1940년 여름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으로부터 기인하는데 이 책의 시작 부분에 표기된 집필날짜가 (음력)9월 상순으로 표시된 것으로 말미암아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10월9일이 오늘날의 한글날로 지정됐다. ◆한글 창제 과정한글의 바탕은 ‘애민’이다. 조선시대 문맹률은 약 90%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양반 계층을 제외하고,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서민 대부분은 글을 깨우치지 못한 셈이다. 한자로 표기된 공문서를 파악하지 못해 하릴없는 불의를 당해야만 했던 대중을 세종대왕은 연민했다.그렇다면 한글 창제에 관여한 기관, 혹은 더 깊이 들어가 개별의 참여 인재는 누가 있을까. 우선 전제돼야 할 사항,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집현전’과 한글 창제는 무관하다는 것이 과거 학설로부터 이어져 온 정설이다.한글 창제는 1443년 말경으로 알려진다.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집현전 학자 어느 누구할 것 없이 (한글 창제에 관한) 그 어떠한 신호도 감지 못했다는 것엔 일정 부분 논란이 있다. 하지만 한글 창제 후 집현전 학자 최만리가 올린 상소문으로 말미암아 집현전과 한글은 어느 정도의 괴리가 있었음이 드러난다.당시 상소문의 요지는 한글 반포에 관한 문무백관의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일종의 유예기간을 두자는 것이었다.이를 비춰볼 때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 누구와도 한글에 관한 공유를 시도해본 적 없으며 학자들 역시 한글에 관한 전방위적 우려를 표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세종실록’에 근거한다.그렇다면 세종대왕 단독으로 한글이라는 실로 엄청난 업적을 이끌어냈을까. 이는 한글 창제 당시 병약해 마지않았던 세종의 건강상태가 어느 정도 답을 내린다.실록에서의 세종은 소위 가질 수 있는 모든 병을 다 지니고 있었다. 만성의 당뇨병을 시작으로 등과 다리, 어깨 통증을 달고 살았음이 전해진다. 실제 세종은 문무 중 문에서 만큼은 탁월한 재능을 발현했던 반면 무의 범주는 도외시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특히 한글 창제를 위한 가열 찬 연구를 거듭 중이던 그 시기, 수불석권의 세종은 중풍과 이로 인한 합병증,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어장애라는 얄궂기만 한 풍파를 아울러 맞게 된다.여기서 비춰볼 때 한글 창제가 학자들과의 공조가 아닌, 그렇다고 세종 개인의 업적 또한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필시 드러나지 않은 조력자가 존재할 터.수양대군과 문종, 안평대군, 그리고 정의공주가 (한글 창제의) 숨은 공로자로 보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수양대군은 ‘직전법’을 공표한 조선의 제7대 왕 ‘세조’이며 문종은 세종의 장남이자 5대 왕, 그리고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아들로 둘째 형인 세조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물이다.특히 안평대군은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세 사람 모두 세종의 직계인 셈이다.마지막 남은 인물, 세종의 둘째 딸로 알려진 정의공주는 불교에 심취했으며 역산에 강했던 인물로 알려진다.여기서 말하는 역산이란 사전적 의미로 ‘역법에 의거한 계산법’으로 정의되는데 역법은 천체의 주기적 운동을 관찰, 이로 말미암아 예측해가는 법칙을 뜻한다.다시 말해 ‘별자리’를 통한 ‘천문학’에 능통했던 것으로 보인다.결론적으로 한글 창제는 세종과 그의 가족들이 흘린 피·땀·눈물의 결집체라고 봄이 올바른 해석이다.이를 통해 한글의 기본이 되는 닿소리 17자와 홀소리 11자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닿소리는 ‘자음’, 홀소리는 ‘모음’을 뜻한다.세종은 이렇게 창조한 한글을 ‘훈민정음’으로 공표한다. 훈민정음의 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옳은 소리’로, 훈민정음의 원리를 요약·설명한 책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을 만나본 적 있는가. 그곳 세종대왕이 들고 있는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한글에 담긴 과학적 원리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은 실로 과할 정도다. 오죽했음 ‘반포일’이 있는 유일의 언어일까. 한글의 과학적 근거를 모두 열거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정도니 가장 기본이 될 ‘자·모음의 신비한 속성’ 정도만 살짝 훑으며 파헤쳐보자.자음에도 기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의외로 많은 독자들이 쉬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ㄱ·ㄴ·ㅁ·ㅅ·ㅇ’이다.이 다섯 자음으로 말미암아 19개에 이르는 모든 자음이 완성된다. 예를 들어 ‘ㅇ’에서 두 획을 추가해 ‘ㅎ’이 되고 ‘ㅅ’을 하나 더 붙여 거센소리 ‘ㅆ’이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모든 자음의 동기가 사람이 소리를 내기 위해 사용하는 ‘음성기관’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자음의 정의부터가 ‘목 안이나 입안에서 영향을 받고 나오는 소리’이니 더 이상의 긴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입안 구석구석을 닿은 후’ 나오는 소리, ㄱ·ㄴ·ㅁ·ㅅ·ㅇ을 각자 소리 내 한번 읽어보자.모음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할 리 없다. 모음은 자음과 달리 어디에 닿지 않고 오롯이 진동의 영향으로 발현된다. 학창시절에 배운 ‘울림소리’가 바로 모음이다. 그런데 단모음 10개, 이중 모음 11개, 총 21개에 이르는 모음이 단 3개의 단순해마지 않은 기호로 완벽 정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오늘만은 놓치지 말자.반드시 잡아야 할 세 가지 기호, ‘·, ㅡ, ㅣ’ 만으로도 모음체계는 충분하다.하지만 이 간단해 보이는 기호가 단순 기호로의 역할에만 국한될까. 세종은 여기에도 의미를 부여했다.바로 ‘천·지·인’, ‘하늘’과 ‘땅’, 그리고 하늘을 우러르고 땅에 겸손한 ‘인간’을 품는다.국어학자인 주시경 선생은 한글을 일컬어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무지개”라고 극찬하며 “나라의 흥망성쇠는 한글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렸다”라고 설파했다. 이번 연재의 마지막은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간 모르고 흘려 보내왔던 ‘한글날 노래’ 구절로 갈음하고자 한다.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새 세상 밝혀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 넉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한겨레 한맘으로 한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 바른길 환한 길로 달려나가자,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글·사진 군월드 IT사업팀

오타모반…“얼굴 한 쪽에 생기는 색소질환, 나이 들수록 짙어져요”

-웰피부과의원 이지민 원장 오타모반은 주로 얼굴 한쪽에만 생기는 선천성 색소질환이다.피부의 진피층에 검은색 멜라닌을 생성하는 비정상적인 멜라닌 세포가 많이 생겨서 검어지는 증상이다.특히 이마와 눈 주위, 관자놀이, 광대뼈부위, 코에 많이 발생한다.서양인보다 동양인에게 더 많이 발견되며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이 관여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갈색, 청색, 회청색. 흑청색 등의 다양한 색소가 나타나는데 피부 외에도 입 안이나 코 안의 점막, 눈의 공막과 망막에도 색소 침착이 나타날 수 있다.보통 출생 때부터 생겨서 나이가 들수록 확산되고 점점 검어지는 경향이 있다. 후천성 오타모반의 경우 20대 이후 여성에서 흔히 나타나는 색소성 반점으로 이마와 관자놀이, 눈꺼풀, 코의 날개부위 양쪽으로 대칭적으로 나타난다.때문에 기미와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기미는 자외선 노출정도에 따라 색소 변화가 크지만, 후천성 오타모반의 경우 변화가 기미보다 경미하지만 뚜렷한 구분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또 후천성 오타 모반과 기미가 혼재된 경우도 많다.오타모반은 드물게 악성 흑색종(피부암)이 발생하며 녹내장과도 연관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때때로 오타모반 부위에 감각 이상이 동반된다. 오타모반은 선천성이든 후천성이든 깊숙한 진피층까지 색소가 펴진 증상이므로 미백 연고나 미백 관리로는 치료되지 않는다.예전에는 냉동요법 등으로 치료했지만 통증이 심하고 흉터가 생기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최근에는 색소전용의 레이저를 이용한 치료법이 주로 적용된다. 색소 깊이가 매우 깊어 여러 번의 치료가 필요하다.시술 후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상처부위를 깨끗이 관리하고 가급적 햇빛 노출을 피하고, 시술부위를 손으로 만지거나 피부 위에 생긴 딱지를 떼지 않아야 한다. 효과적인 색소치료를 위해서는 레이저치료뿐만 아니라 치료 후 정상적인 세포 재생을 돕는 재생관리와 자외선 차단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가을이나 겨울철에도 자외선 양은 적지 않기 때문에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해야 한다.부적절한 치료를 하면 오히려 색소가 진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반드시 피부과 전문의와 상의해 올바른 치료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추위에 약한 혈관… 눈 응급질환 망막혈관폐쇄증 주의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우리 몸이 찬 공기에 노출되면 혈관이 수축하고 혈압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 심혈관 질환이나 뇌출혈이 올 가능성이 크다.우리 눈의 중심 시력을 담당하는 망막도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혈관을 통해 영양과 산소를 공급받는다.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돼 출혈이 발생하고 원활한 혈액의 순환이 안 되면 망막이 손상되고 급격히 시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망막혈관폐쇄라고 한다.혈액 순환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뇌졸중(중풍)과 유사해 ‘눈 중풍’이라고도 한다. 망막혈관폐쇄는 주로 고혈압이나 동맥 경화, 당뇨병, 혈액질환 등 전신질환에 의해 혈관 내에 침착해 있던 찌꺼기가 떨어져 혈관을 막아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통증 없이 갑작스러운 시력 장애가 생기며 유리체 출혈이 동반돼 눈앞에 어른거리는 물체가 보이는 경우도 있다. 망막혈관폐쇄 환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망막혈관폐쇄 입원 외래 별 환자 수는 2014년 5만471명에서 2018년 6만3천920명으로 최근 4년간 약 27% 증가했다. 2018년 분기별 망막혈관폐쇄 환자는 4분기가 25.9%(4만9천236명)로 일교차가 커지며 날이 추워지는 10월부터 12월 사이에 환자가 가장 많았다.연령대로는 60대가 30%(1만9천563명)로 가장 많았고, 70대 29%(1만9천428명), 50대 20%(1만3천56명)순이었다. 주로 노화가 시작되거나 전신질환이 있는 50대 이상에서 망막혈관폐쇄가 발생 하지만 젊은 층도 안심할 수 없다.대한안과학회지의 ‘젊은 연령에서 발생한 중심망막정맥폐쇄의 임상양상’에서 중심망막정맥폐쇄로 진단받은 환자 393명 중 50세 이하 환자 27명(6.9%)의 과거력을 분석했다.그 결과 고혈압 8명 (29.6%), 심근경색 및 뇌졸중 4명 (14.8%), 당뇨3 명(11.1%)인 것으로 나타났다.또 전신질환이나 과거력이 없는 환자 17명 중 8명에서 고콜레스테롤혈증 및 다른 혈액학적 이상소견이 관찰됐다.이처럼 평소 고혈압과 당뇨 등 전신질환이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망막혈관폐쇄가 발생할 위험이 있으므로 정기적인 망막정밀검사를 통해 눈 건강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망막은 산소가 든 혈액을 망막에 전달하는 ‘망막중심동맥’과, 망막에서 사용된 혈액을 심장으로 되가져가는 ‘망막중심정맥’으로 구성됐다.그리고 두 혈관에서 나뭇가지처럼 갈라져 나간 혈관인 분지동맥과 분지정맥이 있다.이중 가장 시급한 치료가 필요한 응급질환은 망막의 중심 동맥이 막힌 ‘망막동맥폐쇄’이다. 망막동맥이 폐쇄돼 혈액 공급이 막히면 별다른 통증은 없이 시야에 먹구름이 낀 것 같은 급격한 시력 저하가 일어난다.바로 눈앞의 손가락을 구별하지 못하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눈앞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망막동맥폐쇄의 경우 24시간 내에 망막의 혈류를 복구하지 않으면 시력 회복이 힘들다.환자가 병원에 이송되면 우선 안압을 급격히 낮추고 혈관 폐쇄 원인을 찾아 혈류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망막 중심정맥이 막혀서 나타나는 ‘망막정맥폐쇄’는 보통 한 쪽 눈에서만 발생한다.망막정맥이 막히면 망막의 중심인 황반에 부종이 발생해 시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현재로서는 망막정맥폐쇄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다만 망막에 혈액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으면 신생혈관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레이저 범안저광응고술이 시행된다.망막혈관폐쇄는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등 대사성질환을 가진 사람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따라서 평소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해야 한다.눈에 좋은 루테인과 제아잔틴 성분이 들어 있는 시금치, 케일, 순무 등 짙은 녹색 채소와 함께 베타카로틴을 함유한 토마토, 당근, 쑥갓 등 녹황색 채소, 해조류를 많이 섭취하는 것도 좋다.스트레스나 음주, 흡연은 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므로 삼가야 한다. 누네안과병원 문다루치 원장은 “망막혈관폐쇄증은 발병 후 최대한 빨리 치료받아야 망막 손상이 적고, 치료 후 회복 속도도 빠르다. 조기발견이 향후 시력 회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고혈압, 당뇨 등 전신질환이 있다면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망막정밀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