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행 (65) 신라 불교의 공인

새로운 문화나 문물을 수용할 때는 어떠한 계기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신라의 큰 발전을 가져온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도 그러한 절차가 있었다. 이차돈이 목숨을 바쳐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면서 널리 백성들의 마음에도 평화를 가져오는 길을 열었다.삼국유사는 법흥왕을 원종, 이차돈을 염촉으로 기록하고 있다. 법흥왕이 불법(佛法)의 참됨을 이해하고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지만 토착신앙에 뿌리가 깊은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왕의 마음을 헤아린 하급관리 이차돈이 불법의 전파를 위한 길을 제시했다. 목숨을 바친 이적으로 귀족들도 감복해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법흥왕의 불교 공인에 이어 신라에는 빠르게 불법이 확산하였다.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늦게 받아들였지만 국가적인 경영이념으로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퍼뜨려 결국 삼국통일을 이루는 상당한 힘이 됐다.이차돈의 희생은 나라를 크게 일으키고, 백성들의 마음에도 평화를 가져오는 큰 사랑의 불씨가 되었다.◆삼국유사: 원종은 불교를 일으키고 염촉은 몸을 바치다원화 연간(806~820)에 남간사의 승려 일념이 편찬한 ‘촉향분예불결사문’에 신라 불교 공인 과정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신라 법흥대왕 때이다. 궁궐 안을 잘 다스리며 해 뜨는 나라의 곳곳을 굽어 살피다가 옛날 한나라의 명제가 꿈을 꾸고 불교가 동쪽을 흘러들어온 일을 생각하고 “과인이 왕위에 오른 다음 백성들이 복을 닦고 죄를 없앨 곳을 만들고자 하였노라”고 말했다.그러나 신하들은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다만 나라를 다스리는 큰 뜻만을 지키고자 하고, 절을 짓겠다는 신령스런 대책에는 따르지 않았다.대왕이 탄식하며 “과인이 부덕하여 대업을 받들지 못하는구나. 위로 음양의 조화가 모자라고 아래로 뭇 백성들의 기쁨을 주지 못하네, 나라를 다스리는 바쁜 중에도 마음을 불교에 두었더니 누가 이 일을 도와주리오”라며 개탄했다.그때 남몰래 불도를 닦던 사람으로 성이 박이며 이름을 염촉이라 하는 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잘 모르겠으나 할아버지 아진 종은 곧 습보갈문왕의 아들이다. 대나무나 잣나무처럼 빼어난 바탕에다 맑은 거울 같은 뜻을 품었다.22세의 염촉이 왕의 얼굴을 우러러보며 “신이 듣기로는 옛 사람들은 나무꾼에게도 대책을 물었다 합니다. 외람되지만 죄를 무릅쓰고라도 말씀을 올릴까 합니다”며 뜻을 아뢰었다.“사인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고 왕이 말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몸을 버림이 큰 절개요. 임금을 위해 목숨을 다함이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 그릇되게 말씀을 전했다 하여 신에게 목을 베는 형벌을 주시면 온 백성이 모두 복종하고 감히 명령을 어기지 못할 것”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왕은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라도 새 한 마리를 살릴 것이요, 피를 뿌려 목숨을 재촉할지라도 일곱 마리 짐승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내 뜻이 남을 이롭게 하는데 있는 데 어찌 죄 없는 이를 죽이리요. 네가 비록 공덕을 쌓고자 하나 내가 죄를 피하는 게 낫다”고 듣지 않았다.“뭐라고 해도 제 목숨만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저녁에 죽어 커다란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지면 부처님의 날이 다시 설 것이요, 임금께서 길이 평안하실 것입니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왕은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을 솟구칠 마음을 가지고, 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나면서도 파도를 헤쳐나갈 기세를 품는다 했지. 네가 이와 같구나. 큰선비의 행실이라 할 만하다”라 칭찬하며 감복했다.이에 왕은 짐짓 위의를 갖추고 동서로는 풍도를, 남북으로는 상장을 벌려놓고, 여러 신하를 불러들여 “그대들은 내가 절을 지으려 하는데 일부러 늦추려 하는가”라며 물었다.이에 여러 신하는 전전긍긍하며 수선스레 맹서하고 여기저기 손가락질만 하는 것이었다. 왕은 사인을 불러 나무랐다. 사인은 얼굴빛을 잃고 어떤 말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왕이 크게 화를 내며 목을 베라 명령을 하니, 형리가 묶어 관아 밖으로 나갔다. 사인이 맹서를 바치자 옥리가 목을 베는데, 흰 젖이 솟아나 한 길이나 되었다.하늘은 사방이 캄캄하게 빛을 잃어 어둡고 땅은 육방이 진동하며, 비처럼 내리는 꽃이 표표히 떨어졌다.왕은 슬픔에 겨워 비통한 눈물을 옷에 적시고, 대신들은 근심스러워 식은땀을 관복에 흘렸다. 달디 단 샘물이 홀연히 솟아나고, 물고기와 자라는 다투어 튀어 오르며, 곧은 나무는 먼저 꺾이고, 원숭이는 떼 지어 울었다.춘궁에서 일하던 동료는 피눈물을 흘리며 쳐다보기만 하고, 월정에서 같이 뛰놀던 친구들은 애끓듯 서러운 이별을 했다.관을 쳐다보며 우는소리가 마치 제 부모를 잃은 듯했다. 그러면서 모두들, 개자추가 허벅지 살을 베었다 한들 이 엄청난 절개에는 비하지 못할 것이요, 홍연이 배를 갈랐다 한들 이 장렬함과는 견주지 못할 것이다. 이가 곧 임금의 믿음에 의지해 힘써 아도의 본 마음을 이룬 성자라고 했다.이어 북산의 서쪽 마루에 장사지냈다. 나인이 슬퍼하며 좋은 땅을 골라 절을 짓고 자추사라 했다. 이에 집집마다 예를 갖추어 대대로 영화를 지키고, 사람마다 도를 행해 불법의 이로움을 깨달았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이차돈의 결심이차돈은 원래 진골 출신의 왕족이다. 아버지가 궁궐에 일하였으나 청렴해 살림살이는 풍족하지 않았다. 차돈은 어려서부터 어질고 착해 부모님의 말씀을 거스르지 않고 글 읽기를 좋아해 일찍이 관복을 입었다.차돈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꿈에 하얀 백조가 집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툇마루에 걸터앉아 마을 쪽을 향해 크게 날갯짓을 하는 태몽을 꾸었다. 그래서 큰 사람이 될 것으로 믿고 아무에게도 태몽을 이야기하지 않았다.한번은 이차돈이 서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데 온 몸이 멍들고, 옷은 먼지를 덮어써 거지꼴이었다. 못된 왈패들이 서당의 친구를 괴롭히는 현장을 보고, 책을 던져놓고 친구를 끌어안고 뭇매를 맞았다.이렇듯 차돈은 심성이 착하고 의리가 좋아 친구들이 늘 옆에 붙어다녔다. 그러나 차돈은 공부하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에는 별 취미가 없었다.차돈은 글 읽기는 물론 무술 수업에도 착실하고 지혜로웠으며, 체격이 관운장을 닮은 장군 틀이었다.이차돈이 차분하게 글 읽기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불법의 영향이 크다. 인도에서 당나라와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들어온 유학승과의 우연한 만남에서부터 사상적으로 불교에 깊게 몰두했다.차돈이 벼슬에 나아가 공무를 보면서도 불교 서적을 읽는데 열중해 그는 이미 신라가 불교와 깊은 인연을 가진 땅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그가 스무 살 생일을 맞는 날 저녁, 집에서 성인식을 겸해 관부로 나아간 일을 기념하는 축하연이 무르익어갈 때 말쑥하게 차려입은 도인이 찾아왔다. 저녁상을 받은 도인이 차돈에게 부처가 그려진 비단 폭과 경전을 전해주며 불법에 대한 공부에 전념할 것을 주문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그날부터 차돈은 부처님이 그려진 비단을 사당에 걸어두고 매일 경전을 읽으며 불도를 닦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면서 차돈은 부처님이 나타나 빙그레 웃으며 손짓하며 부르는 꿈을 여러 차례 꾸었다.왕이 불교를 널리 알리고 싶어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불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자신이 희생할 터이니 여러 신하가 보는 앞에서 본보기를 보이라고 수차례 설득했다. 차돈의 확고한 신념에 법흥왕도 진리를 실천하는 길이라 여기고 그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아끼는 신하 차돈의 목을 베자 우유 같은 피가 솟구치고, 천지가 진동하며 향기나는 꽃 비가 내렸다. 만 백성이 어버이가 돌아가신 듯 슬퍼하며, 한편으로 기뻐하며 찬양하고 불법을 믿기 시작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1) 효성여자고등학교

파란색 교복과 자주빛 가방, 까만 단화에 똑 단발을 하고 싱그런 웃음을 짓는 효성여자고등학교 여학생들의 모습은 예전에는 대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로 꼽혔다.올해로 개교 69주년을 맞는 효성여고는 6·25 전쟁의 폐허 속에 ‘나라가 부흥하려면 여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선각자들에 의해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졌다.올해 2월 기준 3만235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효성여고는 명실공히 대구의 명문 여고이다.효성여고 총동창회는 모교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며 후배들을 향한 내리사랑을 이어오고 있다.◆다양한 활동으로 모교 사랑 펼쳐1960년에 결성된 효성여고 총동창회는 7회 졸업생이자 역대 총동창회장을 역임한 우청자, 장정자, 정경자 동문 그리고 곽광자 동문이 주축이 돼 활성화되기 시작했다.50여 년을 이어온 총동창회의 초대 회장은 전정옥(2회) 총동창회장이며, 현재 제18대까지 이어져 비컨영어마을 원장인 곽인희(21회) 총동창회장이 맡고 있다.총동창회는 6회부터 47회까지 기수별 동기회로 세분화돼 운영되고 있으며 기수별 동기회는 매달 정기모임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있다.이사회는 역대 회장님들인 고문들과 각 기수 회장단으로 구성되며, 이사 70여 명이 홀수 달 둘째 주 화요일 정기모임을 통해 총동창회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교와 동창회의 발전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면서 동창회의 주요 안건을 의결하는 동시에 동문 경조사를 알리는 창구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이밖에도 매년 개교기념일인 10월7일을 전후로 200여 명이 참석하는 총동창회 총회가 열리고 있으며 총회 때마다 회보 발간 및 다양한 모교 사랑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또 매년 입학식과 개교기념일, 졸업식 참석은 물론 매년 2월 동문 10명이 모교를 방문해 진로·직업탐색 비전스쿨 특강과 5월 스승의 날 카네이션 달기 행사, 수능격려 미사 등에 참여하고 있다.총동창회 장학회에서는 학업우수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할 뿐 아니라 꾸준히 노력해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들을 선정해 학업에 대한 동기 부여 및 도전 정신을 함양해 나가도록 학생 10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장학회는 1982년 3월 창단한 샛별 장학회부터 시작된다. 성옥련(2회) 동문을 초대 회장으로 2대 장정자(7회), 3대 허명자(16회) 회장으로 이어오다가 2011년 15대 이순금(12회) 총동창회 회장이 동창회와 장학회를 합쳐 총동창회장이 장학회장을 겸임하기 시작했다.총동창회는 올해 초 지역 내 코로나19 확산 당시 대구가톨릭 병원에 코로나 기금(1천만 원)을 내놓는가 하면, 곽인희 총동창회장이 마스크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밖에 2016년 통일나눔기금(200만 원) 기부, 모교 옛터 표지석과 성모마리아상 건립, 기숙사 건립기금 2억 원 전달, 교내 쉼터인 아고라 마련, 농구부 후원, 기수별 졸업 후 30년 되는 해 실시하는 홈커밍 데이 및 사은의 밤 개최, 조손·모녀 동문 초청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총동창회는 소프라노 이기봉(20회) 동문의 지휘 아래 곽인희 회장을 단장으로 한, 40여 명으로 구성된 ‘라움 합창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매주 1회 연습을 하며 한 마음 한 뜻으로 합창 연습에 매진하면서 동문간 우애를 다져나가고 있다. 그 결과 창단 해인 지난해 수성하모니 합창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총동창회는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2011년 320여 쪽의 ‘효성 60년’이라는 화보집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는 효성 70년, 효성 100년을 준비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로 꼽히고 있다. 현재는 내년 70주년을 맞아 회보준비위원회가 구성돼 김은숙(23회), 김용조(29회), 임순주(32회) 동문이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자랑스런 동문들학교를 빛낸 자랑스런 동문들도 아주 많다.먼저 여성경제인으로 재미사업가 김백형(15회) 동문은 모교 강당 냉난방시설 설치 및 방송시설 리모델링 사업을 지원했다. 또 제14대 총동창회장이었던 변태희(16회, 류천화섬주식회사 대표이사) 동문과 CREATIVE DIRECTOR인 이경재(20회) 동문, BnC라이프 대표이사인 권영숙(21회) 동문, 차순자(22회, 보광직물 대표) 동문이 있다.교육계에서의 활약도 대단하다. 강은희(31회) 대구시교육감과 제15대 동창회장을 지낸 이순금(12회) 달성교육재단 이사장이 있다.곽광자(7회) 전 효성여대 불문과 교수, 권복순(15회) 전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과 교수, 신종원(16회) 범어도서관 전 관장, 김선희(16회) 전 경운대 도서관장, 김순자(18회) 전 경북대 전자공학과 교수, 제17대 총동창회장을 지낸 박정자(20회) 대구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명예교수, 이춘옥(20회) 경북과학대학 유아교육학과 교수, 정현숙(20회) 전 계명문화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백현순(25회) 한국체육대학 교수, 김은희(33회) 수성대 간호학과 교수, 경운대학교 간호대학학과장인 권말숙(34회) 교수 등이다.또 다수의 초·중등학교 교장선생님도 있는데, 오미순(18회), 김미자(21회), 임순남(21회), 유양희(21회), 조성희(21회), 조희자(21회), 박을규(22회), 조영미(22회), 김옥순(23회), 안중렬(23회), 조상완(23회), 예정숙(25회), 박다예(27회), 김희은(28회), 이윤옥(28회), 박은행(30회), 배은희(30회) 동문과 모교의 선생님이 된 동문들까지 훌륭한 인재를 배출해 냈다.뿐만 아니라 가톨릭 학교에서 여고시절을 보내며 키운 아름다운 씨앗이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텃밭이 됐다. 1회 졸업생인 양병춘 벨라뎃다 수녀님을 시작으로 모교 교사였다가 대가대 성악과 교수를 역임한 홍인식(14회) 도미나 수녀님, 25년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의료봉사를 하신 조정화(21회) 율리에따 수녀님을 비롯한 100여 명의 수도자를 배출했다.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동문도 많다. 최태화(14회) 재불 조각가, 이여옥(16회) 서양화가, 최수련(16회) 천연염색공예가, 남홍 이옥주(23회) 재불 화가, 강석순(24회) 도예가, 김혜경(24회) 전 서울문화예술회관연합회 회장, 그리고 워런버핏의 한복을 디자인한 한복연구가 백길령(24회) 동문, 갤러리를 운영하는 윤영숙(25회) 동문 등이다.또 보누스아트컴퍼니 대표이자 대경대학교 케이 뮤지컬학과 교수인 이보나(42회) 동문과 성악가인 김전미(47회) 동문은 음악계에서 열정적으로 활동 중이다.문인계에는 대구문협 사무국장을 지낸 안순자(21회) 동문과 김용조(29회) 동문 등이 있다.체육계에는 경북대 체육무용과 교수를 지낸 김정자(12회) 동문과 대구시 생활체조연합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김정연(24회) 동문도 있다. 김숙희(28회) 동문은 경북도지사배 골프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모교의 명예를 드높였다.정치계 인물로는 배지숙(34회, 대구시의회 의장) 동문과 홍복순(23회, 군위군의회 부의장) 동문이 있다.남편이 사회에서 큰 일을 하도록 살뜰히 보필한 내조의 여왕도 있다. 박인순(18회, 부군 김영만 군위군 군수), 김재덕(22회, 부군 이철우 경북도지사), 정활선(25회, 부군 류규하 중구청장), 구경희(26회, 부군 이태훈 달서구청장), 장정임(27회, 부군 경북도 전우헌 경제부지사), 김소옥(23회, 부군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 이은숙(23회, 부군 우동기 전 대구시 교육감) 동문 등이다.의료계에서 활약하는 동문도 많다. 송미옥(21회) 동산의료원 전국 호스피스 회장, 류분선(24회) 효성병원 간호이사, 대구의료원 근무 중인 이정화(25회) 동문, 경산보건소장이자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안경숙(27회), 소아과 의사 김정옥(28회), 치과의사인 김경애(29회), 김현주(29회), 이희숙(32회), 차현정(43회) 동문과 약사인 김분조(20회, 금강약국), 조외선(25회, 신평화약국) 동문도 있다.법조계에는 여성 최초 김천지원 지원장을 지냈으며 현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인 서경희(29회) 동문과 서수연(43회) 변호사, 구미경찰서 청문감사관인 이달향(47회) 경정, 김미조(48회) 변호사, 안나현(52회) 변호사, 서지현(54회) 변호사, 행정고시합격 후 여성가족부에 근무한 김시윤(56회) 동문을 비롯한 다수의 법조계 인사도 있다.이밖에도 제3대 장학회 회장인 허명자 고문, 16대 총동창회장이었던 성상환 고문, 현 18대 수석부회장인 김인희(21회) 동문 등은 내조와 함께 종교단체 안에서 중요 직책을 맡아 교회, 동창회, 가정에서 열정을 쏟는 삶의 자세를 보여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귀감이 되고 있다.〈곽인희 제18대 총동창회장 인터뷰〉곽인희 효성여고 총동창회장은 지난 10여 년간 동창회 임원으로의 활동을 거쳐 지난해 10월 총회에서 선출돼 제18대 총동창회장으로 취임했다.그는 “선배들이 모교와 동창회 발전을 위해 쏟으신 열정과 헌신적인 봉사를 보고 배웠기에 이제 실천에 옮기고자 한다. 그동안 각 가정과 사회에서, 효성여고 동문들이 열심히 살아왔기에 여고 동창회를 통해 그 시절 느꼈던 순수한 행복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곽 회장은 임기 중 가장 중점을 둘 역점 사업으로 내년 개교 70주년 기념행사 준비를 꼽았다.그는 “행사를 위해 많은 동문이 참석할 수 있도록 재경동문과 타 지역에서 생활하는 동문 찾기 운동을 펼치겠다”며 “은퇴한 은사님과 모교출신 수녀님들을 함께 모셔 제자 양성을 위해 애쓰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고 전했다.이밖에도 동문단합을 위한 야유회 및 가을 소풍을 계획 중이며 동창회 활성화를 위해 골프와 파크골프, 요가와 실용댄스, 등산과 자전거, 회화 동호회 등 소그룹 동호회 활동을 진행하고자 한다.그는 총동창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후배 영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곽 회장은 “현재 동창회에는 6회부터 34회까지 동문들이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동창회의 앞날을 위해, 젊은 후배들이 함께 해 폭 넓은 선후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후배 영입을 많이 독려하겠다”고 했다.마지막으로는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가르쳐주시며 제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으시는 은사님들을 향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곽 회장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제자들과 소통하며 사랑을 실천하시는 제8대 교감을 지낸 노대수 은사님과 같은 은사님들이 계시기에 오늘날 동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는 것”이라며 “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열심히 지도해 주시는 은사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12) 괌 ②

괌은 한국에서 4시간이면 도착한다.짧은 비행시간은 물론 다양한 항공편과 연평균 26.5도의 온화한 날씨를 보유하고 있다.또 청정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연령대의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여행지다.특히 스포츠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괌은 해양 스포츠와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려는 여행객들로 붐빈다.올 여름휴가때 괌으로 떠날 계획인 여행객들을 위해 괌 액티비티를 소개한다. ◆신비한 자연 체험 가득한 ‘괌 액티비티’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자들은 괌의 푸른 바다를 향해 스노클링을 즐겨볼 것을 추천한다. 특히 괌의 5대 해양 보호 구역 중 하나인 투몬 비치는 얕은 수심과 상대적으로 약한 물살 덕분에 온 가족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로 사랑받고 있다.만약 좀 더 익스트림한 괌의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싶다면 스쿠버다이빙을 추천한다. 괌은 누구나 쉽게 다이빙을 배울 수 있는 여행지로 초보자부터 숙련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다이빙 스팟으로 여행자를 매료시킨다. 체험 다이빙의 경우에는 수영을 못하고 잠수 경험이 없어도 전문 강사의 간단한 지도를 받아 안전하게 체험이 가능하다.만약 어드밴스드 자격증 이상을 소지한 실력자라면 블루 홀을 추천한다. 특히 오로트 반도 너머에 위치한 블루 홀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전 세계 다이버들에게 꼭 체험해야 할 다이빙 명소로 유명하다. 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오프로드 ATV 정글 투어도 있다.바다와 강, 산 등 자연을 오롯이 즐기고 싶은 여행자라면 버기카를 타고 괌 정글을 탐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전문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ATV 차량을 타고 오프로드를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은 괌에서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보고 싶다면 스카이다이빙이 정답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스릴감과 최고의 추억을 선사하는 스카이다이빙은 괌의 육해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짜릿한 체험을 할 수 있다.4천100m 상공에서 괌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또 돌핀 투어, 패러 세일링, 카약, 트레킹과 같은 다양한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다. ◆청정지역 괌의 드라이브 코스와 해변 맑고 깨끗한 청정지역 괌에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와 해변이 있다. 우선 세티 베이 전망대(Cetti Bay Overlook)는 괌 남부 투어의 대표 명소다. 시원하게 탁 트인 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괌 남부의 수많은 전망대 중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도로 주변에 늘 차가 주차돼 있어 쉽게 눈에 띤다. 전망대 입구에 차를 세운 뒤 가파른 계단을 몇 개 올라 5분 정도만 걸으면 눈앞에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봉긋하게 솟은 산맥들 뒤로 펼쳐지는 필리핀해의 풍경을 가장 멋지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라티디안 비치(Ratidian Beqach)는 괌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깨끗하고 투명한 깊은 바다를 만날 수 있다.그림같이 푸른 바다와 새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져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라티디안 비치는 모래가 별 모양으로, 스타샌드 비치라고도 불린다. 라티디안 비치에 방문한다면 모래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재미다.이곳은 날씨 상황에 따라 개장하지 않을 수도 있어 방문 전 전화로 꼭 확인하길 바란다. 탕기슨 비치(Tanguisson Beach)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버섯 모양의 바위가 어우러진 곳이다. 라티디안 비치와 함께 북부 대표 관광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바닷물의 간조와 만조의 영향으로 시간에 따라 다른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어 유명하다. 버섯바위와 함께 인생샷을 간직하고 싶다면 발이 다치지 않도록 아쿠아 슈즈를 착용해야겠다. 괌 북부의 청정 지역을 봤다면 중부로 이동해보자. 비현실적인 바다색을 가진 에메랄드 밸리(Emerald Valley)가 있다. 이름처럼 반짝반짝한 영롱한 느낌의 바다를 만나볼 수 있다.맑다 못해 투명한 바다와 동화 속 풍경 같은 곳에서 인증 샷은 담아가길 바란다. ◆독특한 분위기의 레스토랑, 카페 괌에는 독특한 분위기의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괌 유일 오션 뷰 바비큐 디너쇼 타오타오타씨(Tao Tao Tasi)는 남녀노소 모든 연령대에게 안성맞춤이다. 타오타오타씨는 괌의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인 건비치에 위치하고 있다.이곳은 30명이 넘는 배우들이 출연해 아름다운 폴리네시안 춤, 멋진 사모안 댄스, 엄청난 스케일의 파이어 댄스까지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최고의 문화 공연을 선보이기로 유명하다. 공연은 눈부신 괌 바다와 황홀한 노을을 바라보며 신선한 샐러드, 해산물과 원주민 요리, 현장에서 갓 구운 바비큐와 달콤한 디저트를 모두 즐길 수 있는 괌 인기 원주민 디너쇼이다.주소는 Gun beach, Tumon, 96913 괌이다. 픽업과 드롭 서비스도 제공한다. 건비치에 위치한 더 비치 바&그릴(The Beach Bar&Grill)은 노을, 바다, 디너, 칵테일 등으로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레스토랑 겸 펍이다. 투몬 베이의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즐기는 휴식, 해변 앞 바로 앞에서 맛보는 맛있는 티니안 햄버거, 갓 구운 바비큐 등 다양한 차모로 요리를 즐길 수 있다.오후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또 따뜻한 햇살아래 부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즐길 수 있는 시원한 음료와 점심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일몰 시간은 가장 바쁜 시간으로 괌에서 낭만적인 선셋을 바라보기 아주 좋다.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에게도 가장 인기가 많은 선셋 뷰 장소로 괌에서 손꼽히는 레스토랑 겸 관광지다.주소는 96913, Gun Beach Road, Tamuning, 괌이며, 매일 오전 11시부터 0시까지 운영한다. 제프 파이러츠 코브(Jeff’s Pirates Cove)는 해적을 테마로 잡은 독특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다. 남부여행 중 마지막 코스에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이 남부여행 시에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1979년 주인장 지미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오랜 단골이자 친구인 제프가 이곳을 인수했다.이름도 ‘파이러츠 코브’에서 지금의 상호인 ‘제프 파이러츠 코브’로 변경됐다. 애피타이저로 바삭바삭한 오징어 튀김과 새우튀김, 홈메이드 치즈버거가 제프 파이러츠 코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무엇보다도 이판 비치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인 레스토랑이다.주소는 Guam, USA, #111 Route 4 Ipan Talofofo, Talofofo, 96915 괌이다. 영업시간은 매주 목~일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월~수요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자료 제공: 괌 정부 관광청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어깨 통증의 원인…회전근개 파열

어깨는 몸통과 팔을 잇는 연결기관으로 운동부위가 가장 넓은 관절에 속한다.어깨 관절은 거의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는 만큼 불안정하지만, 주위 인대와 근육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이런 어깨 관절은 나이가 들어 퇴화가 진행될수록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아진다.그 중 이 회전근개 파열은 견관절 동통과 운동 제한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이다.회전근개란 어깨를 감싸고 있는 4개의 근육과 힘줄을 말한다.몸통 쪽에서 어깨를 잡아당겨 어깨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고 어깨 관절의 안정성 유지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이다.이러한 어깨를 움직여주는 힘줄이 찢어지거나 마모되는 것을 회전근개 파열이라고 하며 4개의 회전근개 중 가장 상부에 위치한 극상건이 주로 파열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회전근개 파열로 내원해 치료를 받은 환자의 수는 2010년 34만2천478명에서 2019년 82만5천83명으로 10년 사이 140%증가했다.이는 최근 고령화 및 스포츠 활동의 증가로 인해 회전근개 파열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자기 공명 영상 및 관절경 등의 검사 및 수술 기기의 발달로 그 진단 및 치료가 용이하게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회전근개 파열은 노화로 인한 퇴행성 변화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며, 젊은 나이에도 어깨 움직임이 많은 과격한 운동을 즐기는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다.또 어깨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주부나 직장인들에게도 발생해 이제 남녀노소 누구나 발생할 수 있는 질환으로 자리 잡았다.회전근개 파열이 일어나면 당장 팔을 못 들고 움직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지만, 초기에는 어깨를 움직일 때만 미미한 통증이 나타나다가 점점 악화되게 된다.야간 통증으로 인한 수면 장애가 발생하게 되고 목 주변과 상완부에도 통증을 호소하고 드물게는 저린 느낌이 들 수도 있다.근력이 약해지면서 특정 동작에서 물건을 놓치거나 떨어뜨리기도 하고, 통증을 느끼는 부위로 돌아누워 잠을 자기도 어렵다.이러한 어깨 회전근개 파열은 처음에 단순 어깨 근육통으로 여기고 방치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힘줄이 짧아지고 봉합이 어려운 경우에 이르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회전근개 파열의 치료는 환자의 나이와 직업, 파열의 크기와 정도 등 개개인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치료를 결정한다.크게 비수술적 치료와 수술적 치료로 나눌 수 있다.비수술적 치료는 힘줄이 부분적으로 파열되거나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을 경우에 우선적으로 시행할 수 있으며 약물치료, 주사치료, 물리치료 등을 시행해 통증과 염증을 감소시킨다.비수술적 치료에도 통증이 지속되거나 힘줄 전체가 파열 되었을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를 시행한다.회전근개 봉합술을 시행하며 파열된 힘줄을 봉합하고 통증의 원인이 되는 점액낭 염, 활액낭 염들을 제거하고 힘줄과 충돌이 일어나는 골극을 제거한다.수술은 관절내시경을 이용해 비교적 간단하게 시행하며, 피부 절개 범위가 크지 않아 주변 조직 손상이나 흉터가 크지 않고 성공률이 높은 수술 방법으로 회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회전근개 파열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며 끊어진 힘줄이 짧아지고 지방변성이 일어나 결국에는 어깨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 운동장애를 일으킨다.그러므로 회전근개 파열도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조기 진단이 중요하므로 증상이 수개월 동안 지속 될 경우 정확한 진단 및 처방이 필요하다.도움말=열린큰병원 정형외과 김형주 과장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영천 백흥암(7)

“모든 게 흥한 큰 가람(百興大蘭若)”. 조계종 10교구 본사인 영천 은해사의 산내 암자 백흥암의 출입 건물인 보화루에 걸려있는 편액 글씨이다. 난야(蘭若)는 아난야(阿蘭若)를 줄인말로 스님이 사는 곳이니 바로 가람을 의미한다. 백흥은 언뜻보면 세속적 소원을 담은듯하나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비워내고 깨끗하며 고요하게 열락의 세계를 지향하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청정한 선원에도 어울리는 말이다.팔공산 동쪽 자락에 자리잡은 백흥암에 들어서면 오백년 전 고쳐 지은 극락전과 조선시대 목조불단의 백미로 손꼽히는 수미단 등 두 점의 보물이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건물마다 볼만한 글씨가 편액이나 주련으로 걸려있어 문화재의 보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절집이다.은해사에서 계곡을 끼고 900m 가량 올라가면 신일지(新日池)라는 저수지가 나오고 여기에 세 갈래 길이 나타난다. 산길로 가면 태실봉·인종대왕태실, 신일지를 끼고 오른쪽 택골로 가면 운부암, 왼쪽 절골로는 백흥암·중암암으로 갈 수 있다. 백흥암은 신일지의 왼쪽 길인 태실봉 남쪽 절골로 1.5㎞ 지점 경사진 곳에 있다.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1년(861)에 혜철국사(785~861)가 착공하여 그가 입적한 뒤 873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보화루중건기에는 “이 암자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옛기록에 의하면 본래 주변에 잣나무가 많아 창건 당시에는 백지(栢旨)의 거찰이었는데 중간에 암자로 고쳤다. 백지는 신라 때의 사찰이니 창건연대가 유구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후 조선 전기까지 백흥암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조선 중기 1546년(명종1) 천교대사가 중창하면서 백지사에서 백흥암으로 절 이름을 바꾸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굳어졌다. 1520년(중종15) 사찰 뒤 팔공산 동쪽 자락인 태봉에 훗날 인종대왕에 오른 태자의 태실(胎室)이 조성되면서 왕실의 보호를 받는 태실수호사찰로서 위상이 높아진다.태실수호사찰로서 보호를 받은 증거는 ‘순영제음(巡營題音)’과 ‘완문(完文)’이란 편액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순영제음은 감영에 백성들이 민원을 올리면 이에 대해 감영에서 처분한 내용을 말하고, 완문은 조선 왕실에서 향교·서원·결사·개인 등에게 어떤 권리나 특권을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서이다. 태실을 지키는 암자이니 승역을 함부로 침탈하지 말라는 왕의 어압(御押,싸인)까지 새겨넣은 편액 완문이 설치된 1798년 이후로 왕실의 인정과 보호를 받으면서 중흥의 기반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임진왜란으로 전각과 불화 및 불상 등 가람이 소실되어 중건불사가 이어졌다. 1985년 극락전을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643년(인조21)에 극락전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0여 년 뒤 1685년(숙종11) 극락전이 중건됐고, 1730년(영조6) 보화루를 고쳐 지었다. 1858년(철종9) 청봉(靑峰)이 영산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백흥암이 융성할때는 수백 명이 기거하면서 수도하던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현재 사세가 축소되었지만 암자로는 큰 규모이고 사방이 솔숲으로 둘러쌓인 한적한 비구니의 수도 도량이다. 고즈넉한 이 절의 중심 전각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보화루 등 세월의 흔적이 배어있는 건물들을 돌아보며 예스러운 천년고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다포계 팔작지붕에 상서로운 동물도상을 품은 극락전백흥암의 주 불전인 극락전(極樂殿)은 1546년(명종 1년)에 건립되고 1643년(인조 21년)에 중수하였으며, 1685년(숙종 1년)에 중건한 앞면 3칸, 옆면 3칸의 조선 시대 건축양식을 대표할만한 우아한 단층건물이고 지붕은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이 전각은 1984년 보물 제790호로 지정되었고 서방 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불전이다. 불상 배치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 관음보살과 오른쪽 대세지보살이 보좌하는 삼존형식이다.건물은 자연석 주춧돌 위에 올렸다. 그랭이질한 주춧돌 위에 둥근 두리 기둥을 세웠는데 안쏠림을 준 귀퉁이의 귀기둥은 가운데 기둥보다 조금 높게 꾸민 귀솟음을 둔 것이 특이하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올린 다포계 양식이고, 천장은 층단을 나누어서 가는 테두리를 둘러서 꾸며놓아 조선 시대 건축의 멋을 보여준다.무엇보다 극락전 내부는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극락세계가 화려하고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삼존불 뒷배경은 아미타존도를 중심으로 위에는 천개(天蓋), 아래에는 수미단이 놓여있다. 천장에는 꽃무늬와 단청으로 꾸며져 있고, 벽에도 단청과 벽화로 장식되어 있어 시선을 옮길 수 없다. 천개는 하늘의 세계로 용이 조각돼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부처님의 권위를 상징하고, 수미단은 땅의 세계로 길상의 동물과 식물들이 위를 향해 솟구치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듯하다.◆조선 목조각의 백미 수미단극락전의 수미단(須彌壇)은 1968년 보물 제486호로 지정됐는데 조선 시대 수미단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조각과 다양한 도상으로 장식되어 있어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수미단은 사찰의 불전 안에 불상을 모시는 단으로 불단(佛壇)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을 수미산(須彌山)이라고 한다. 즉 수미단은 하늘과 땅을 잇는 수미산을 형상화 한 것으로 부처나 보살이 상주하는 신성한 장소를 의미한다.수미단은 높이 134㎝, 너비 413㎝(정면)로 상‧중‧하대의 삼단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었다. 상대는 가리개형의 보탁을 별설하였고 중대는 3단이며, 하대는 족대(足臺)형이다. 조각은 중대에 집중되어 있고 하대에는 안상 내에 용과 귀면을 투각기법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였다.정면에서 중대를 바라보면, 윗부분 1단은 하늘(天)을 상징하는 천상세계로 가로로 다섯 칸을 같은 간격으로 나눈 뒤 좌에서 우로 하늘에 날아다니는 공작, 봉황, 운학, 봉황, 꿩 등을 조각했다. 가운데 2단은 바다(水)를 나타내는 수중세계로 가운데가 넓고 가장자리가 좁은 다섯 칸에 수중에 사는 마갈어(龍魚), 황룡, 황룡, 황룡, 잉어 등을, 아랫부분 3단은 땅(地)을 의미하는 지상세계로 가운데가 넓고 가장자리가 좁은 다섯 칸에 땅에 있는 육지동물인 코끼리, 천마, 사자, 기린, 해태 등을 표현하고 있다. 중대에는 육‧해‧공의 우주가 담겨있고, 천상, 수중, 지상의 새와 물고기와 동물 주변에는 국화, 연꽃, 모란, 동백 등 수많은 꽃과 동자, 개구리, 물총새 등을 아로새겨 놓았다.이렇게 화려하고 다양한 문양들이 조각된 것은 16세기 임진왜란 이후 수많은 사찰들이 중수되면서 불단의 장식이 화려해지는 시대적인 영향으로 이 곳 수미단의 도상들도 다양하게 장식된 것으로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문양은 서수(瑞獸), 동물, 꽃, 구름무늬 등 30여 종이나 된다. 유‧불‧도교의 종교적 상징성을 가진 것도 있지만 당시 기복문화의 한 면을 볼 수 있는 길상적 상징성을 가진 것도 많이 보인다. 이는 불교문화가 전통문화와 섞여 문화융합을 이룸으로 인해 봉황, 기린, 천마, 해태 등 길상적인 것 까지 망라된 것으로 살펴진다.특히 수미단의 목조각은 사실적 표현으로 완성도가 높아 조선 목조각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날개의 선, 꽃모양 등 굴곡을 살려서 입체적이고 정밀하게 새겨져 있다. 가로로 넓은 공간에 동물들이 걷거나 뛰고 새가 날기도 하는 다양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했고, 용이 날아 오르는 형상에 꽃이나 식물까지 적절하게 어울어져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조선의 어떤 수미단보다 섬세하고 완성도가 높은 것은 왕실의 후원을 받아 최고 수준의 조각승이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보화루의 추사 글씨백흥암에는 산해숭심(山海崇深), 시홀방장(十笏方丈), 극락전(極樂殿), 보화루(寶華樓), 화엄실(華嚴室), 백흥대란야(百興大蘭若), 심검당(尋劒堂) 등 다수의 편액과 주련이 걸려있다. 사찰에는 그 건물을 상징하는 편액이 걸리기 마련이고, 명가의 글씨를 걸어두는 것이 상례이다.시선을 주목하게 하는 편액은 추사가 쓴 것으로 알려진 ‘산해숭심’이다. 가로 235cm, 세로 56cm 크기에 3개의 목판을 가로와 세로를 연결한 뒤 양각으로 새겼다. 원본은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현재 보화루에 걸린 것은 모각본이다.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는 의미로 예서바탕에 해,행서의 분위기를 가미한 활기찬 운필과 조형성이 돋보인다.스승인 담계 옹방강이 추사를 격려하며 보낸 “옛 것을 고찰해 오늘을 증명하니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攷古證今 山海崇深)”란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에 나온다.호암미술관에 소장된 추사의 ‘산숭해심(山崇海深)’과 백흥암의 ‘산해숭심’은 글자의 순서와 위치가 다르다. 산(山)자는 글자가 뒤집어져 있다. 그 까닭은 서각을 할 때 원본 위에 화선지를 대고 본을 떠서 새 편액에 붙이는 과정에서 앞뒷면을 뒤집어서 붙인듯하다. 또한 해(海)자도 호암미술관 소장본은 오른쪽 방의 매(每)가 수평에 가까운데 백흥암 모각본은 매(每)가 오른쪽 아래로 기울어져 있다. 아마 본뜬 화선지를 삐뚤게 붙인듯하나 편액 전체를 보면 볼수록 여운이 남는다. 신록의 계절에 천년의 역사향기가 서린 백흥암을 찾아서 극락전과 수미단 그리고 건물마다 달린 편액글씨의 운치까지 음미하면 좋을듯하다. 아울러 문화재의 보고인 청정도량에서 심신을 이완시키면서 안복도 누리는 힐링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정태수대구경북서예가협회 이사장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64) 칠처가람 (5·끝) 영묘사

신라는 전불시대에 이미 일곱 곳에 절이 있었다. 불국토로 발전할 인연이 있는 땅이었던 것이다. 불교와의 인연을 설명하는 칠처가람설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기록되어 전해진다.칠처가람은 황룡사, 분황사와 같이 지금도 크게 울림을 주는 신라시대 대표적인 사찰들이다. 사천왕사는 천왕사로 기록되어 있다.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호국사찰로 유명하다. 영묘사는 선덕여왕과 지귀의 설화 등 이야기가 얽힌 사찰이다. 흥륜사는 신라 최초의 국립사찰로 이름이 전해져 유명하다.반면 영흥사와 담암사는 기록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많지 않다. 담암사는 오릉의 남쪽이라는 기록과 당간지주와 삼층석탑 등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영흥사는 절터조차 분명하지 않다.◆영묘사영묘사는 신라 칠처가람 중 하나다.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阿道)가 과거칠불 중 구나함불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했다.현재 흥륜사가 있는 곳이다. 이 절터에서 금당터를 비롯 금당 앞에 동서 대칭으로 있었던 두 개의 건물터가 확인됐다. 영묘사(靈妙寺 또는 靈廟寺)라고 찍힌 기와가 출토되면서 지금의 흥륜사가 있는 곳이 영묘사 터로 밝혀졌다.영묘사의 터는 원래 큰 연못이었는데 선덕여왕 때 두두리라는 귀신의 무리가 하룻밤 사이에 못을 메우고 절을 창건했다는 전설이 있다.영묘사에는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한다.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이 이 절에서 개구리가 3, 4일 동안 계속해서 운다는 소리를 듣고 백제의 복병이 여근곡에 숨어들었음을 알아채고 병사를 보내 소탕했다는 기록이 있다.영묘사 장육삼존불을 만들 때는 신라 사람들이 다투어 불상을 만들 진흙을 운반하면서 풍요라는 향가를 지어 불렀다고 전한다. 이것이 일할 때 일꾼들이 노래를 부르며 작업능률을 올리는 노동요의 시초였다고 한다.경덕왕 23년 764년에 영묘사의 장륙삼존불을 개금했다는 기록과 조선시대 세조 6년 1460년에 봉덕사의 신종을 이 절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영묘사는 조선 초기까지 법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담암사담암사는 담엄사(曇嚴寺)라고도 한다. 신라시대 전불 칠처가람 가운데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서청전(壻請田)에 있었던 사찰로 전해진다. 절은 신문왕 때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청전은 사위를 맞아들인 밭이라는 뜻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의하면 경주 오릉 남쪽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창건된 이후 고려 중기까지 7대 사찰의 하나로 중시되어 오다가 차차 퇴락해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담엄사지에는 삼층석탑 1기와 당간지주, 초석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담엄사지 중앙을 관통하는 길을 내면서 절터는 거의 파괴되고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다.당간지주와 초석 등의 남은 석재들은 박혁거세의 제전인 숭덕전을 건립하면서 홍살문과 기초 석 등으로 사용했다. 파손된 탑의 팔부신중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당간지주 1기는 오릉 내부의 숲에 방치되어 있다.현재 절터 주변은 모두 농경지와 오릉 주차장 부지로 변했으나 신라시대 육부촌 시절에는 이곳에 알영양산촌이 있었다고 전한다.◆영흥사영흥사는 신라시대 칠처가람 중의 하나로 경주시 황남동에 있었던 절이라 전한다. 흥륜사와 같은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라시대 최초의 비구니 사찰이다.기록으로는 세 하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사학자들은 지금의 서천변 야구장 일대를 영흥사지로 본다.신라 법흥왕 22년 535년 법흥왕의 비 파도부인이 영흥사를 창건했다. 2년 뒤 법흥왕이 왕위를 물리고 출가하자 파도부인도 법명을 묘법이라 하고 이 절에 출가해 머물렀다.진흥왕 33년 572년 진흥왕의 왕비인 사도부인도 법명을 묘주라 하고는 역시 영흥사에 출가했다.신문왕 4년 684년에 이 절을 관리하는 성전을 설치했다. 경덕왕 18년 759년에 감영흥사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지귀의 사랑진평왕 말기에 서라벌 장터에 노리개를 팔아 노모를 봉양하는 훤칠하게 잘 생긴 청년이 살았다.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리느라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오로지 집과 일터를 오가며 땅만 살피는 사람이라 하여 지귀라는 별명이 붙었다.봄비가 안개처럼 내리는 날 오후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는데 지귀의 점포에 곱게 단장한 아가씨 둘이 나비처럼 날아들었다. 봄처녀들은 솜사탕을 손에 들고 제비처럼 조잘되며 지귀 점포의 노리개를 요리조리 살폈다.지귀는 손님들의 시중을 곧잘 들며 비위를 잘 맞춰 웬만한 손님은 모두 뭐라도 하나쯤 사들고 가도록 하는 장사의 신이다. 그런 지귀의 상술은 장터에 이미 쫙 알려진 비밀 아닌 비밀로 그의 입은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손님이 들면 손님의 비위를 맞추거나 날씨 타령, 허접한 이웃 부부의 싸움 이야기라도 늘어놓는다. 손님이 없을 때는 노래로 흥을 돋우며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기도 한다.그런데 봄비 내리는 그날 운명처럼 찾아온 두 여인의 모습에 지귀는 그만 넋을 놓아버렸다. 말 한마디 못하고 아가씨들이 노리개를 들고 재잘대는 모습을 바라보느라 가격을 묻는 손님의 말도 듣지 못했다.“이거 얼마예요” 방울 노리개와 토끼모양 머리핀을 하나씩 들고 지귀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쫑알거리는 두 아가씨의 추궁에 퍼뜩 정신을 차린 지귀가 더듬더듬 횡설수설했다.묘령의 두 여인은 궁궐을 벗어나 백성들의 삶 속으로 여행을 즐기는 진평왕의 공주 선덕과 시녀 만주였다. 지귀의 모습에 재미를 느낀 시녀 만주가 넌지시 장난을 걸었다. “우리 아씨 예쁘지요”라며 눈을 찡긋하자 홍당무가 된 지귀가 더욱 안절부절못하며 노리개를 포장하는 손을 심하게 떨었다.지귀는 선덕의 모습이 아른거려 밤잠도 설쳤다. 이튿날부터 장터에 나온 지귀는 혹여 그 처녀들이 나타날까 두리번거리느라 말을 잊었다. 그로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선덕과 만주는 지귀의 노리개를 사가는 단골이 되었다. 지귀는 어느새 마음속 깊이 선덕을 앉히고 매번 그가 만든 노리개를 선물로 준비해 건네곤 했다. 손재주가 뛰어난 지귀는 그만의 체취가 묻어나는 독특한 인형들을 만들었다. 지귀가 나무를 깎아 만든 동물인형들은 익살스럽기도 하고 앙증맞은 표정으로 살아있는 것 같아 선덕도 매우 좋아했다.선덕이 자신이 만든 인형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지귀는 행복에 겨워 밤을 낮 삼아 인형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귀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진평왕의 죽음으로 맏딸이었던 선덕여왕은 왕위를 이어받아 장례와 국정을 살피는 바쁜 일정 때문에 저잣거리로 나갈 수가 없었다.선덕여왕이 즉위 1년을 맞아 진평왕릉으로 인사차 하는 나들이 행렬을 바라보다 지귀는 까무러치게 놀라버렸다. 자신이 밤낮으로 잊지 못하며 그리워하던 여인이 왕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시녀 만주도 번쩍이는 비단옷을 입고 여왕의 곁에서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선덕여왕은 즉위 3주년을 맞아 영묘사로 제를 올리러 가면서 만주를 통해 지귀에게 아버지를 닮은 실물크기의 인형을 주문했다. 그 이후 지귀가 깎은 나무인형들은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은 채 영묘사 법당에 하나씩 쌓여갔다. 마침내 지귀는 법당을 가득 채운 인형을 끌어안고 행복한 꿈을 꾸다 심화가 일으킨 화재로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0) 상주공고

개교 50주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상주공업고등학교는 1만6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경북 사학의 거목이다.상주공고는 1970년 3월 상주시 낙양동 388번지에 첫발을 뗐다. 토목과와 상업과로 시작했지만 1972년 전기과, 보통과를 추가해 상주종합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1977년에는 모든 학과에서 공업계열의 학과를 운영하며 상주공고로 거듭났다.상주공고는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배움이 시기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상주공고는 2017년부터 학과 재구조화 사업을 통해 또 한 번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동문회 결성부터 외연 확장까지학교의 역사만큼 총동창회의 역사도 깊다.1973년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1회 동기회가 결성됐다. 초대회장은 1회 졸업생인 안영호 동문이 맡았다. 이후 같은 1회 졸업생인 김남현·조동희·김인식·문재원 동문이 총동창회의 기틀을 다졌다. 3회 김중희·임성근, 4회 정희수, 5회 조국연 동문에 이르러서는 외연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 현재 회장직은 7회 졸업생인 김준봉 동문이 맡고 있다.상주공고 총동창회의 가장 큰 변화는 2001년 시작됐다. 총동창회 활성화 중장기 계획에 따라 재경, 구미, 울산, 부산, 대구, 상주 등 6개 동창회가 조직·운영됐다. 동문들의 상호교류를 위해 총동창회 임원 워크숍도 마련됐다. 또 총동창회 홈페이지(nakyang.org)를 개설하고 소식지 ‘낙양’을 만들어 회원들의 활동을 알렸다.총동창회는 회장을 비롯해 사무국, 재무국, 관리국 등으로 구성된다. 각 부서는 확실한 역할 분담을 통해 고유 기능을 유지하도록 했다. 또 전직 회장단으로 이뤄진 고문단에 운영에 대한 자문을 맡겨 공정성을 높였다. 총동창회는 동문회 관리비와 동문 장학금의 회계를 분리했다. 기부한 동문의 취지를 존중하기 위해서다.◆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동문학교를 졸업한 많은 동문이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했다. 공업계열 특성상 많은 동문이 자리를 잡은 건 토목, 전기, 건축, 자동차 등의 분야다. 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문도 많다. 전문건설인협회 회장을 지낸 3회 졸업생 김중희 동문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가 경영하는 강릉건설은 2015년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공직 진출도 활발하다. 상주공고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전국에서 최다 공무원 합격생을 배출했다. 상주시청에 자리 잡은 동문만 50여 명. 이들은 ‘청솔회’라는 동문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최근에는 정계에서도 이름을 알리는 동문이 부쩍 늘었다. 1회 박준호, 6회 김진욱, 7회 김홍구 동문이 상주시의회에 입성했다. 1회 조동희, 4회 강신봉 동문은 서울·경기지역에서 시의원 배지를 달았다. 또 6회 김진욱, 7회 이운식 동문은 경북도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학계와 스포츠계에 진출한 동문도 있다. 2회 졸업생인 이중희 동문은 계명대학교 교학부총장을 지냈다. 13회 임용재 동문은 41대와 63대 백두장사, 25대 천하장사에 등극했다.총동창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동문을 발굴, 격려하기 위해 ‘자랑스런 동문상’을 만들기로 했다. 국가직에서는 4급 이상, 학계에서는 박사 학위 이상, 기술직은 기술사, 정계에서는 시의원 이상, 산업계에서는 산업훈장 이상의 기준을 정해 선발한다.◆결속력 다지는 다양한 동창회 행사매년 4월 둘째 주 일요일이면 상주공고는 전국에서 모이는 동문들로 북적인다. 동문들은 이날 열리는 ‘동문 한마당 큰 잔치’에서 지역별, 기수별로 팀을 구성한 뒤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한다. 다양한 종목의 운동경기가 진행되지만 승부에 연연하진 않는다.매년 2월과 9월에는 전국 임원들이 함께하는 워크숍이 열린다. 총동창회 임원과 지역·기수별 동문회 임원들에게 행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다.지역별로도 다양한 동문 화합의 장이 마련된다. 서울, 대구, 부산, 구미, 울산, 상주지역 동문회에서는 지역회장 주관으로 매년 등반대회, 단합대회, 야유회, 골프대회 등을 열고 있다.연초에는 신년교례회, 연말에는 ‘공고인의 밤’이라는 송년행사가 총동창회 주관으로 열린다. 총동창회는 신년교례회에서 ‘올해의 계획’을 발표하고 미리 주문한 대형 떡시루를 나눠 먹는다. 지역별 신년 행사를 안내하고 방문 계획과 일정에 대해 협의하는 일도 이날 진행된다.최근에는 음악이나 등산 등 같은 취미를 가진 동문들의 소모임도 활성화되는 분위기다.◆동문에게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하다총동창회는 개교 50년 기념 동문회 명부를 발간해 1만6천여 동문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했다. 명부는 기수·직업·직종별로 구분해 동문의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편집했다. 졸업생의 직업군에서는 토목, 전기, 건축, 자동차계열의 직업군에 종사하는 동문들이 가장 많이 적혀 있다. 총동창회는 또 동문 간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5천여 동문의 실주소가 적힌 주소록도 발간했다.총동창회는 한마음 체육대회, 신년교례회, 지역별 행사, 장학금 기탁내역, 행사 결산, 모교 소식, 동문회 활동과 회원 동정 등도 동문회 명부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명부는 동문 가정에 전달돼 알림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2002년에는 상주공고 총동창회의 독립된 홈페이지(nakyang,org)도 개설했다. 홈페이지는 사무국에서 직접 관리한다. 홈페이지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배너 광고를 통한 수입금으로 자체 조달하고 있다.◆총동창회 장학회 운영총동창회는 장학회를 통해 동문들에게 기탁받은 장학금을 모교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4명의 동문이 600만 원을 장학회에 기탁했다. 2020년 장학금은 ‘개교 50주년’을 맞아 25일 전달한다. 코로나19 관계로 공식적인 행사는 열지않는다.총동창회 장학회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건 수입의 일부를 꾸준히 장학금으로 내놓는 동문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18회 김영대 동문은 매달 자동이체로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또 21회 박명진 동문은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매년 100만 원을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총동창회는 2018년 동문장학회의 회칙과 회계를 새로 정했다. 바뀐 동문장학회 회칙에 따라 장학회 간사가 장학 대상자를 추천받아 심의한 뒤 회장단 의결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재정 독립의 원칙에 따라 장학금은 장학금으로만 지급되고 그 외의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김준봉 상주공고 총동창회장 인터뷰“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상주공고 김준봉 총동창회장이 늘 강조하는 말이다.김 회장은 2017년 4월 16대 회장에 취임하고 나서 침체한 총동창회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신년교례회, 임원진 워크숍, 총동창회 체육대회, 송년의 밤 등의 정기행사를 꾸준히 마련했다. 특히 지역동문회 발전에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그는 “지역동문회 활성화가 곧 총동창회 활성화로 이어진다”며 서울, 대구, 구미, 부산, 상주 등 지역별로 열리는 체육대회와 송년회 행사를 일일이 참석했다.성과는 곧 나타났다. 침체해 있던 부산, 대구, 구미, 상주의 동문회가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김 회장은 등산회, 골프회 등 같은 취미를 가진 동문들의 소모임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동문의 결속과 협력을 다져 나가고 있다.김 회장은 상주공고 7회 졸업생이다. 2011~2014년 한국농업경영인중앙회 15~16대 회장을 지냈다.총동창회장에 취임한 뒤 그는 상주공고 개교 50주년을 준비해 왔다. 그가 개교 50주년 행사에 집중하는 건 이 행사가 1만6천여 동문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김 회장은 “체육대회와 함께 50주년 행사를 크게 열려고 준비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취소하게 됐다”면서도 “코로나19가 진정되면 가을 또는 연말에라도 50주년 행사를 열 계획이다”고 말했다.그는 2018년 총동창회 명부 발간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명부 발간을 통해 총동창회는 2천만 원 상당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진짜 성과는 서로의 소식을 궁금해했던 동기, 선배, 후배들이 연락하고 안부를 주고받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또 동문 간 소통을 위해 총동창회 관련 소식을 전달하는 소식지도 매년 3회 발간했다.김 회장은 개교부터 현재까지 모교의 50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화보 발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연말 출판기념회가 열린다.그가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건 장학회 사업이다.김 회장은 “명문고는 선배들보다 더 나은 후배들이 만들어 준다”며 “동문들에게 기탁받은 장학금을 모교 후배들을 위해 사용하고 수혜자들이 다시 장학금을 기탁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그는 “총동창회를 중심으로 선후배가 화합·소통해 개인과 지역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63) 칠처가람 (4) 사천왕사

경주 사천왕사는 낭산자락 선덕여왕릉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신라 호국불교의 의미를 가장 크게 충족시키는 대표적인 호국사찰로 설명된다.당나라가 50만 대군을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신라 문무왕이 명랑법사에게 대책을 주문했다. 명랑은 절을 지어 대응하려 했지만 시간이 급박하자 풀과 비단으로 절을 짓고, 12명의 유가명승과 함께 문두루비법을 시전해 바다에 풍랑을 일으켜 적군을 수장시켰다.사천왕사는 나라를 지킨 호국사찰로 이름을 내걸었고 양지, 월명 등의 유명스님들이 거쳐 간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다.사찰의 터에는 금당지와 동서 목탑지, 당간지주, 두 기의 귀부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목탑의 기단에 세웠던 것으로 보이는 녹유신장상이 발굴 100년 만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 전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양지 스님의 조각솜씨로 전해지는 녹유신장상은 북쪽의 다문천왕상이 없이 3기의 천왕을 면마다 6기씩 잇따라 배치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문무왕의 삼국통일, 호국의지와 맞물려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전해지는 사천왕사는 여전히 칠처가람의 하나로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호국사찰 사천왕사신라 호국사찰 사천왕사는 경주시 낭산자락에 문무왕 19년 679년에 창건되었다. 당나라가 50만 대군을 일으켜 674년 신라를 공격해 온다는 정보를 듣고 불교의 힘으로 막아내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낭산 꼭대기 선덕여왕릉과 남쪽 신문왕릉 사이에 위치해 금당과 목탑지 등의 건물터와 당간지주, 귀부 2기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사적 제8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신라 문무왕이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해 삼국통일을 이루고 당나라와 밀당을 펼치고 있을 무렵 674년 2월. 당나라에 인질로 있던 김인문으로부터 의상대사를 통해 신라조정에 급보가 날아들었다.백제와 고구려 자리에 도호부와 도독부를 설치해 야욕을 꿈꾸던 당나라가 그들의 도호부와 도독부를 공격한다는 빌미를 꼬투리 삼아 50만 대군을 앞세워 신라를 치기 위해 출병했다는 것이다.문무왕이 명랑법사에게 대책을 물었다. 명랑은 낭산 남쪽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도량을 열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군의 침략이 빠르게 진행되자 절을 지을 시간이 없었다. 이에 명랑은 풀과 비단으로 오방신상을 만들고, 12명의 유가명승과 더불어 밀교의 비법으로 전해지는 문두루비법을 시전했다.문두루비법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당나라 군사들이 신라의 땅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다에 풍랑이 크게 일어나 그들을 바다에 침몰시켰다.당의 고종은 다음해에 다시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보냈다. 그러나 명랑대사가 또 문두루비법을 시전해 신라 땅을 밟아보기도 전에 바다에서 몽땅 수장시켜 버렸다.문두루비법을 시전한 단석이 고려시대까지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삼국통일 이전 신라의 절은 금당 앞에 1기의 탑을 세우는 일탑일가람제로 운영되었다. 사천왕사는 신라 최초의 쌍탑가람으로 발전하는 형식을 보인다.사천왕사에는 명랑과 양지, 경덕왕 당시 피리를 잘 불어 달조차 멈추었다고 전해지는 월명 등의 고승들이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덕장 법민과 문두루비법신라 제30대 문무왕은 신라를 가장 신라답게 만든 왕으로 손꼽힌다. 문무왕의 이름은 법민이다. 법민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덕망과 지혜를 갖춘 장군으로 키워졌다. 아버지는 무열왕 김춘추이고, 어머니는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이다.법민은 아버지의 의도적인 교육법으로 외삼촌인 김유신 장군으로부터 무예수업을 전수받았다. 외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어머니와 박사들에게서 경전공부, 김유신으로부터는 무예수업을 착실하게 받았다. 김춘추의 영리함과 장군으로의 기질을 이어받은 법민은 덕을 갖춘 장수로 자랐다.아버지와 외삼촌을 따라 백제와의 전쟁터를 누비면서 법민은 논밭에 널브러진 백성들의 시신을 보면서 속으로 다짐을 했다. ‘나는 기필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을 하겠다.’문무왕은 그러한 다짐을 가슴 속 깊이 새기면서 전쟁터에서는 악착같이 군사들이 적게 다치면서 이기는 전략을 구사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무술을 연마할 때는 가르치는 김유신이 오히려 만류할 정도로 지독하게 매달렸다. “훈련할 때 흘리는 땀 한 방울은 전쟁터에서 아군의 피 한 말은 될 것입니다”라며 눈을 부릅뜨고 실전보다 더 맹렬하게 훈련했다.전쟁터에서 법민은 김유신 뒤에서 그를 보좌하는 한편 그의 전술과 전략을 몸으로 배우고 익혔다. 김유신의 도법과 창술 등의 무예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경지에 이르는 수준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 김유신의 무예를 고스란히 전수받은 법민의 무예 실력도 나중에는 김유신에 버금갈 만큼 뛰어나 적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법민은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되었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백제를 완전히 굴복시킨 데 이어 고구려 멸망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백제를 정벌하면서 입은 상처로 아버지 김춘추 무열왕이 661년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문무왕으로 즉위한 법민은 전장에 나가면서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갑옷 속에 상복을 입고 투구 안에 두건 쓰는 것을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만큼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있었던 문무왕이었기 때문이다.문무왕은 이기는 전쟁의 비법은 첫 번째가 적군에 대한 상세한 정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적의 정보를 먼저 분석하는 철칙을 지켰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는 물론 당나라에까지 신라의 충실한 인재들을 알게 모르게 대거 파견해 그들로부터 정보를 입수, 분석했다.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고구려를 쉽게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문무왕의 전략적 승리다. 적군 깊숙이 심어둔 첩자들이 연개소문의 아들들을 이간질하고, 전력을 약화시켜 결정적인 시기에 총공을 통해 승기를 잡았다.당나라와 손을 잡고 백제, 고구려를 물리친 문무왕은 당나라의 흑심을 알아채고,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전략을 짜 노골적으로 자극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문무왕은 당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동생 인문의 안부를 놓치지 않고 물으면서 당나라의 내정에 대한 정보를 얻어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의상대사를 비롯한 자질이 뛰어난 승려와 신하들을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당나라로 보내 정보를 깨알같이 챙겼다.문무왕은 당나라의 고종과 후궁에서 황비로 등극한 측천무후의 조정에 대한 장악력과 영향력까지 파악하고 그를 이용해 군사를 빌려 삼국통일의 염원을 이룩했다. 다시 그들을 축출해 독립적인 국가로 우뚝 서는 기틀을 완벽하게 마련했다.문무왕은 측천무후의 측량하기 어려운 심기와 그의 변화무쌍한 성격이 가져오는 신라에 대한 공격성을 두려워했다. 때문에 측천무후의 심기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김인문을 비롯한 당의 조정 깊숙이 첩자를 심어두었다.문무왕의 세심한 전략 덕분에 당나라 군사의 대규모 이동을 파악하고, 빠르게 대응해 그들이 신라 땅을 밟기 전에 모두 수장시켜 난을 피했다. 2년 연속으로 바다를 통해 쳐들어오는 당군을 완벽하게 물리쳤다. 잇따른 해전에서의 패배는 당 고종이 신라를 공격하고자 하는 생각을 완전히 지우게 했다.당군을 물리치기 위해 명랑법사의 문두루비법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문무왕은 절대적 무공을 익힌 비밀결사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통일신라의 평화를 위해 문무왕의 숨은 비책은 대를 이어 왕실에 숨은 전략으로 면면히 이어졌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19) 대구 덕원고

대구덕원고는 비록 역사는 짧지만, 대구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신흥 명문고다. 1978년 8월24일 덕원학원 설립 인가를 받고, 1980년 2월28일 대구 수성구 황금동 교정이 완공됐다.그리고 1980년 3월5일 첫 신입생을 받으며, 대구덕원고의 역사는 시작됐다. 2002년 황금동 교정에서 지금의 위치인 수성구 욱수동으로 이전했으며, 기존 남자학교에서 남녀공학이 됐다. 덕원고는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매년 봄이면 200만~300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이동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망월지와 덕원고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사계절 욱수골의 경치는 덕원고인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교정 내에는 곳곳에 연못과 정원이 아름답게 가꿔져 있어 학교를 찾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2004년 개장한 수영장과 인공암벽도 덕원고의 자랑거리다.이와 더불어 산악부, 미술부, 불교학생부, 축구부, 아드레날린, 사진부 등의 다양한 클럽활동반이 운영되고 있다. 덕원고의 교훈은 ‘큰 뜻을 품고 힘을 기르자’이다. 미래지향적인 인재양성을 교육 이념으로 한 덕원고는 대구지역 타 명문 고교에 비해서는 연륜도 동문 수도 많지 않다. 하지만 교훈이 시사한 것처럼 ‘지’와 ‘덕’을 으뜸으로 한 교풍의 영향 덕분에 짧은 연륜에도 덕원고 동문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고교학점제 시범학교로 선정돼 올해 대대적 내부 리모델링을 실시, 카페 같은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대구에서 급식이 가장 맛있는 학교로 소문이 자자하다. 38년의 역사동안 배출된 2만1천800여 명의 동문들은 지금도 치열한 사회 속에서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덕원고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짧지만 강한 존재감의 동창회 덕원고 총동창회는 1983년 1회 졸업생들이 대학 1학년일 때 구성됐다. 역사는 짧지만, 오히려 ‘젊음’을 강점으로 친숙하게 동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올해 출범한 13회 총동창회는 윤상철 총동창회장(4기)을 중심으로,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체계적인 구성을 갖췄다. 조원덕 사무총장(8기)이 동창회의 살림을 도맡고 있으며, 이밖에도 실무진, 이사회, 부회장단, 덕원후배사랑장학회 등의 조직들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다. 도정환 변호사(1기) 등 역대 총동창회장 출신 모임인 고문단은 든든하게 동창회의 뒤를 받치고 있다. 총원 100여 명으로 구성된 이사진은 남문교 의장(2기)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동창회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다. 또 기수별·지역별 회장단을 구성,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덕원고’라는 이름 아래 동문들이 똘똘 뭉치고 있다. 총동창회는 매년 1월 신년교례회를 시작으로 한 해 사업을 시작한다. 2월에는 집행위원 워크숍과 정기 이사회가 있으며, 5월에는 총동창회의 가장 큰 행사인 덕원후배사랑장학회 장학금 지급행사와 가족등반대회가 열린다. 이어 6월엔 덕원고 총동창회장배 골프대회, 10월에는 덕원가족체육대회, 11월엔 후기이사회, 12월은 정기총회 및 송년의 밤 행사로 한 해 사업을 마무리 짓는다. ◆후배들을 위한 마음, ‘덕원후배사랑장학회’ 덕원고 총동창회의 장학지원은 타 학교들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다. 소위 몇몇 재력 있는 동문들에게 장학금 지원을 의지하기보다, 전 동문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십시일반으로 장학금을 모으는 것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바로 '덕원후배사랑장학금’이다. 덕원고 선배들은 매달 1만 원 정도를 정기적으로 모아 1년에 한 번씩 모교에 기탁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연간 3천만 원 가량의 장학금은 해마다 재학생 50여 명에게 장학금 또는 등록금으로 전달한다.참여하는 동문이 많을수록 장학금도 따라 불어나는 체계다. 박준상 덕원후배장학사랑회장(3기)은 “비록 마음은 있지만 거액을 내기는 부담스러웠던 선배들이 마음 편히 후배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선·후배 사랑의 장을 주선했다”며 “좀 더 많은 후배들께 혜택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동문들이 좋은 뜻에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이 밖에 동문 한의사, 치과의사들이 조성한 한의사 장학금과 니사금 장학금, 익명의 독지 동문 등이 기탁한 장학금이 있으며, 사용 내역은 전적으로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덕원고의 자랑, 유도부와 수영부 덕원고 교기는 ‘유도’다. 유도는 상경하애(上敬下愛)정신을 바탕으로,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예의바른 덕원고 인의 정신을 드러낸다. 1985년 유도부가 창단된 이래, 열심히 갈고 닦아온 노력은 90년대 들어 빛을 발했다. 1996년 오주호 동문이 대구광역시 학도종합체육대회 준우승, 대구광역시장기 유도대회 고등부 우승을 휩쓸었다. 2000년대 들어 김우선 동문이 춘계 전국 남·여 중고연맹전에서 1위를 했고, 2년 뒤 윤재현 동문이 아시아 유도선수권대회 1위와 전국체육대회 은메달을 차지했다. 특히 2011년에는 전국체전 대구 선발전 7개 체급에서 우승을 싹쓸이하며 전국의 유도 명문고로 자리매김을 했다. 수영부도 반선재 동문이 2010년 전국체전 여자 자유형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 동·은메달을 획득했다. 총동창회는 이들 입상자에 대해 장학금과 대회경비를 지원하고 있다.◆학교를 빛내고 있는 현역 동문들 덕원고 동문들은 아직 대부분 사회에서 현역들이다.1기 졸업생이 아직 57세에 불과해 사회 일선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특히 신흥 명문고인 만큼 학계, 의료계, 법조계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학계에서는 먼저 나노 분야 기술개발로 노벨화학상 후보에 거론되는 서울대 화학과 현택환 석좌교수(1기)를 비롯, 한국학 중앙연구원 김일권 교수(1기), 구미대 이종환 부총장(3기), 성균관대 물리학과 정동근 교수(2기),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박영호 교수(1기) 등이 덕원고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의료계는 ‘시골의사’로 잘 알려진 경제전문가 박경철 원장(1기)이 동문이다. 또 세계인명사전에 등재된 계명대의대 이성룡 교수(1기), 경북대병원 김상걸 교수(3기), 경북대병원 김찬덕 교수(7기), 권순호 대구미르치과병원장(3기) 등도 활동 중이다. 법조계는 도정환(1기)·최광휴(1기) 변호사와 서울행정법원 반정우 부장판사(5기), 서울고등법원 권순형 판사(4기), 이정호(7회) 변호사 등이 있다. 최근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랩 본좌’로 불리는 래퍼 이센스(본명 강민호)씨도 덕원고 출신이다. -------------------------------------------------------------------------------------------------- ◆윤상철 총동창회장 인터뷰 “동창회는 동문들이 편하게 와서 쉬고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입니다. 젊은 후배들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 편히 와줬으면 합니다.” 올해 54세의 젊은 나이로 총동창회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은 윤상철 회장(4기)은 덕원의 동창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오래 가는 친구’, 윤 회장이 세운 13대 총동창회 슬로건이다. 그는 “아직 덕원고는 역사가 40년이 채 되지 않은 젊은 학교”라며 “하지만 젊은 만큼 더 활동적이고, 활력 넘치는 동문들이 덕원고를 빛내며 사회에서 함께 활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오랜 역사를 지닌 타 학교의 동문들이 서로 똘똘 뭉쳐 이끌어 주는 모습이 내심 부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받지 못하고 부러워했던 감정들을 후배들에게는 느끼지 않게 할 것”이라며 “한창 현역에서 뛰는 ‘필드플레이어’들이 많은 만큼, 사회로 진입하는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도움이 줄 수 있을까 항상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번 회기 동안 최대한 많은 동문들이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윤 회장은 올해 1월 총동창회장에 취임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돼 불가피하게 공식 동창회 활동도 잠시 중단했다. 그는 “동문들이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아무래도 먹고 사는 문제에 치중하면서 모임을 찾을 여유가 없을 것”이라면서 “동창회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윤상철 동창회장은 “총동창회의 역사가 짧아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시기지만 동문들이 잘 견뎌내고 몸 건강히 오래도록 만났으면 좋겠다. 이 기사를 보고 더 많은 덕원의 동문들이 동창회를 찾아주면 좋겠다”며 밝게 웃었다. 대구덕원고 동창회 연락처(053-761-1973), 덕원고졸업생 밴드 (Band.us/@dukwon)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11) 괌①

괌은 가족, 커플 뿐 아니라 바쁜 도시로부터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여행지다. 특히 미국령인 괌은 다른 근거리 여행지보다 안전해 가족 여행지로는 최적지로 손꼽히고 있다. 짧은 비행시간으로 빠르고 편리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고, 산호색 해변과 푸른 하늘, 감탄사를 자아내는 일몰 등을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다. 괌에서는 산호 빛 바다와 눈부신 백사장 이외에도 인생 샷을 찍기 좋은 아름다운 장소가 많다. 또 액티비티 관광지로도 주목받아 여행객에들에게 색다른 테마 여행으로 안내한다. ◆괌 역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 Hagåtña)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괌의 역사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장소다. 광장은 1734년부터 1898년까지 총독 관저로 사용됐다. 스페인 양식의 건축물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응접실인 ‘초콜릿 하우스’다. 이곳은 총독 부인이 방문객에게 초콜릿 음료를 대접했다는 곳이다. 주변에는 하갓냐 대성당, 스키너 광장 등 볼거리가 모두 모여 있어 함께 둘러 볼 것을 추천한다. 또 괌 박물관(Guam Museum)은 4천 년의 역사를 가진 토속적인 차모로 문화와 괌 역사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현재 괌 박물관은 25만 점이 넘는 독특한 유물과 문서, 사진을 소장품으로 보유하고 있어 괌 역사의 풍부함과 차모로 문화와 전통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박물관 한쪽 편에 있는 상점에는 괌 최고의 토속 예술가가 제작한 다양한 전통 문화 상품이 준비돼 있어 괌 여행에 기억에 남을 만 한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다. 슬픈 사랑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사랑의 절벽’(Two Lover's Point)은 괌 여행의 필수 코스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아름다운 차모로 추장의 딸이 스페인 장교와 결혼을 강요당하자, 이를 피해 사랑하는 차모로 연인과 함께 도망칠 것을 결심하고, 스페인 군대의 추격을 피해 사랑의 절벽까지 오게 됐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한데 묶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슬픈 운명을 마감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망대 옆에 있는 ‘사랑의 종’은 이들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졌다.이곳을 찾는 연인들은 이 종을 치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기도 한다. 해가 질 무렵의 이곳의 경관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방문해보길 적극 추천한다. 사랑의 절벽은 다른 시간대에 방문해도 좋지만, 특히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어 더욱 인기가 높다. ◆‘인생 샷’ 건질 보석같은 괌 명소 ‘메리조 부두 공원’(Merizo Pier Park)은 코코스 섬으로 향하는 배들이 정착돼 있는 한적한 부둣가에 위치한 공원이다. 이곳은 현지인들의 피크닉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스냅 사진을 촬영하는 커플, 부부를 쉽게 볼 수 있다. 다녀간 방문객들이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뒷모습 샷으로 남긴 사진을 올리는 핫 플레이스이기도하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한껏 누리고, 현지인들의 삶을 느껴보고 싶다면 방문해볼 것을 추천한다.어두워지면 조용하고 한적해 위험하므로 오전과 낮 시간에 이용하길 당부한다. 또 ‘이나라한 자연풀장’(Inarajan Natural Pool)은 괌 남부 투어의 하이라이트다.자연이 만든 인피니티 수영장에서 괌을 즐겨 보길 추천한다. 인공 수영장이 아닌, 파도와 해수의 침식 작용으로 움푹 파인 곳에 물이 들어와 형성된 천연 자연풀이다.덕분에 사시사철 수심이 일정해 현지인들의 자연 수영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피크닉 장소이기도 하고, 현지인들끼리 다이빙대에서 다이빙 경기를 즐기기도 한다. SNS에 인생사진을 업데이트 하고 싶다면, 타무닝에 위치한 ‘지미디의 그네(Jimmy D’s Swing)’를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지미디의 그네는 그야말로 예쁜 사진을 남기기 좋다. 이곳은 둥카스 비치에 자리하고 있다. 나무 프레임의 그네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일몰이 바다와 장관을 이룬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아두길 바란다.관광객들에겐 덜 알려져 있어, 여유로운 괌을 즐기길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최적의 장소다. ‘이파우 비치’(Ypao Beach)는 투문만 남쪽에 펼쳐진 해변으로 새하얀 산호 백사장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이다.마라톤 대회 같은 괌의 대표적인 축제가 펼쳐지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특히 해변 옆, 남쪽 끝에 있는 이파우 비치 공원에는 바비큐 시설 및 편의시설이 잘 정비돼 있어,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이 이용한다. 이곳에 있는 ‘GUAM’ 철자로 만들어진 구조물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투몬 해변이 보이므로 구조물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어 보길 바란다. ◆색다른 액티비티 가득한 괌 여행지 대표적 가족 휴양지로 알려진 괌은 색다른 액티비티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익사이팅한 체험부터 숨은 벽화 찾기, 야시장 즐기기, 로컬상점 쇼핑 등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우선 괌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싶다면, 친구들과 함께 페인트 볼 게임이나 사격을 즐길 것을 추천한다. 호텔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떠나고 싶은 여행자라면, 버기카를 타고 괌 정글을 탐험해보는 것도 좋다.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 람람산(Mount Lam Lam)에 올라 숨 막히는 절경을 바라보며 남부의 경관을 즐길 수도 있다. 자연공원과 시구아 폭포, 타잔 풀장 등 인기 있는 하이킹 스팟도 괌 여행 시 꼭 들려 봐야할 명소다. 이와 함께 4천200m 상공에서 괌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스카이다이빙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해질녘에는 솔레다드 요새나 사랑의 절벽에서 끝없이 펼쳐진 환상적인 절경을 감상해 보길 바란다. 괌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현지인들처럼 야시장을 즐기는 일이다. 여행객들은 야시장과 축제를 통해 문화와 음식을 체험하면서 진짜 괌을 느껴볼 수 있다. 차모로 야시장은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며, 망길라오 야시장은 매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문을 연다. 괌에는 명품 상점과 쇼핑 아울렛 이외에도 현지 미술품, 공예품 및 쥬얼리를 판매하는 부티크 상점과 매장들이 많다. 괌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괌 전역 건물벽 곳곳에 숨겨져 있는 벽화를 찾아 사진을 찍는 것이다. 괌 차모로 문화를 상징하는 차모리타 여성을 표현한 벽화, 괌 상징인 카라바우와 밀짚모자를 쓴 농부를 그린 벽화, 코코새와 플루메리아 꽃을 그린 벽화 등 다양한 주제의 벽화를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도 괌의 아름다운 벽화를 볼 수 있도록 SNS에 벽화 사진을 포스팅하는 것도 잊지 말자. -자료제공: 괌정부관광청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대면 수업 시작 전, 성장기 어린이 근시 진행 확인했나요?

코로나19사태로 미뤄졌던 초·중·고교의 대면수업이 일주일(5월20일 예정) 앞으로 다가왔다.하지만 최근 성장기 어린이들의 장시간 컴퓨터 사용과 실내활동으로 인해 근시가 더 진행되지 않았는지 미리 체크 해볼 필요가 있다.일반적으로 근시는 5~15세에 진행되는데 컴퓨터 및 스마트폰 동영상 보기 등 가까운 곳만 주시하는 ‘근거리 작업’을 지속하다 보면 수정체 조절력이 약해져 근시 진행이 더 빨라지게 된다.또 부모가 근시라면 자녀에게 근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만큼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의 연령별 근시 환자 수에 따르면 2019년 전체 근시환자 119만8천16명중 10~19세가 36% (43만918명)로 가장 많았다.뒤이어 0~9세는 21%(24만8천99명)로 대부분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이었다.근시는 먼 곳을 쳐다볼 때 사물의 상이 망막 앞쪽에 맺히는 굴절 이상으로 가까운 곳은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만 멀리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근시를 방치할 경우 성인이 되면서 -6D(디옵터)이상의 고도근시로 발전할 확률이 높다.소아청소년 시기의 근시 진행 억제 방법으로는 조절마비점안제(아트로핀 안약) 사용과, 드림렌즈(각막굴절교정술렌즈) 착용이 알려져 있다. ◆드림렌즈 착용 후 근시 진행 43% 억제 효과 드림렌즈(각막굴절교정술 렌즈)는 잠자는 동안 하드렌즈 종류의 콘택트렌즈를 착용해 시력을 교정하는 방법이다.렌즈 착용에 필요한 평균 수면시간은 7~8시간이다.렌즈가 각막의 가운데를 눌러서 근시를 교정하는 것이며 각막을 편평하게 해 근시를 교정하고 장기적으로는 근시의 진행 속도를 억제한다.아침에 일어나서 렌즈를 빼고 활동하는 낮 동안에는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없이 교정된 시력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며, 각막의 탄력성이 좋은 어린이의 근시 진행을 막는데 효과적이다.드림렌즈는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높은 산소투과성 재질의 특수렌즈로 각막 중심부를 눌러서 각막의 형태를 변화시켜 근시와 난시 진행을 억제하거나 교정하는 렌즈로 안경으로 인한 얼굴변형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미국시과학연구회가 발표한 대규모 연구 논문에 따르면 만 6~10세의 근시 환아 102명을 대상으로 드림렌즈를 착용했을 때와 안경만을 착용한 경우를 2년간 비교 관찰한 결과, 안경만 착용한 소아에 비해 드림렌즈를 착용한 소아에서 근시 진행이 약 43% 억제됐다.이러한 근시 진행 억제 효과는 7~8세에 시작할수록 효과가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누네안과병원 드림센터 박지현 원장은 “드림렌즈는 시력교정 수술과 달리 각막에 손상을 주지 않고 시력을 교정할 수 있다. 따라서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며 “다만 렌즈를 착용하기에 적합한 도수인지 여부와 각막이나 결막의 염증 확인 등과 같은 정밀한 안과 검사를 통해 안과전문의와 상의 후 착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절마비점안제(아트로핀 안약) 근시 속도 50% 지연 효과 과거 미국안과학회(AAO) 119차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싱가포르 안과학연구소(Eye Research Institute)의 도널드 탄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약시 치료에 쓰이는 아트로핀(atropin) 점안액이 아이들의 근시 진행을 50%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6~12세의 근시 아이 400명을 대상으로 5년에 걸쳐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다.근시 아이들에게는 아트로핀 0.5%, 0.1%, 0.01% 점안액 중 하나가 매일 투여됐으며 이 중 가장 낮은 단위인 0.01% 점안액이 투여된 그룹에서도 아트로핀 치료를 받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근시의 진행이 50%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탄 박사는 밝혔다. 조절마비점안제(아트로핀 안약)는 눈동자(동공)의 크기를 크게 하는 아트로핀 성분의 산동제를 희석한 안약으로 수정체와 모양체 조절을 마비시켜 근시 진행 속도를 늦추는데 도움이 된다.대개 자기 전 1일 1회 점안하고 눈과 코 사이를 1분간 눌러주면 된다.조절마비점안제(아트로핀 안약)의 농도는 근시 진행 정도에 따라 다르므로 반드시 안과전문의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 소아청소년 -6D(디옵터) 고도 근시…녹내장 망막박리 위험 커 국내 2008~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내용을 토대로 2천344가정의 5~18세 소아청소년 3천862명(평균 11.1세)과 이들의 부모(평균 부 43세·모 40.2세) 시력을 비교 분석한 부모와 자녀의 근시 유전관계의 조사에 따르면 부모 중 1명 또는 모두가 근시이면 소아청소년 자녀의 고도근시 유병률이 최고 11.4배까지 높았다. 근시가 있는 부모의 자녀는 유전적 요소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크고 장시간의 스마트 폰 사용과 컴퓨터 게임 등 근시 발병·진행을 악화 시키는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 근시 진행 속도가 빨라 질 수밖에 없다.-6D(디옵터) 이상의 고도근시인 경우 안구가 커지고 앞뒤로 길어지는데 이때 안구 내면을 이루는 신경막 조직인 망막도 함께 얇아진다.따라서 소아청소년시기의 고도근시인 경우 성인이 되어 노인성 질환인 녹내장에 걸릴 위험도 커지고, 망막이 찢어지는 망막박리나 근시성 황반변성이 나타날 확률도 높아진다.6개월에서 1년에 한번 정기적인 시력검사 및 망막정밀검사를 통해 질병을 초기에 발견해 제때에 치료 받는 것이 중요하다. ◆장시간 스마트폰과 PC는 독, 햇빛은 약소아청소년 시기 생활습관을 통해 근시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독서나 스마트폰 등의 전자 기기는 35㎝이상의 먼 거리에서 사용하며 50분 사용 후 5분 이상 휴식을 취하는 것 이 좋다.또한 매일 3시간 정도 1만 럭스(lux) 이상의 햇볕을 쬐는 것이 도움이 된다.1만 럭스(lux) 이상의 햇빛은 화창한 날 선글라스 없이 야외활동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구누네안과병원 드림센터 박지현 원장은 “햇빛이 시신경을 통해 눈 속으로 들어가면 망막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데 도파민은 안구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며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도파민의 분비 리듬이 교란되면서 안구가 비정상적으로 자라 근시가 초래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규칙적인 야외활동을 통해 근시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 (6) 고령 관음사 신중도

괴질이 지구촌을 뒤덮어 기본적인 사회시스템 마저 흔들리고 있다. 인간은 병고로부터 속절없이 고통을 받게 되면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게 된다. 바로 지금이 종교에 관계없이 명상과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기독교의 성화나 사찰의 불화도 경배의 대상이 된다. 신중도(神衆圖)라는 불화의 형태가 있다. 예로부터 절 집 내부 벽면에 가장 많이 장엄되고 있다. 신중도는 말 그대로 여러 신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불교 발상지 인도에서는 이미 여러 종교가 있었는데 그들의 신은 불교와 다투는 대신 부처님을 지키는 호법신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가 유입되면서 원래 있던 토착 신앙을 흡수하게 되는데 산신과 용왕, 칠성이 불교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모든 제신들이 불화에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신중도는 불교가 다른 종교와 교류한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그림이다. 신중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구촌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교적 메시지나 지혜라도 찾아보려는 것이다.◆안정된 구성과 섬세한 기법의 고령 관음사 신중도지난해 3월25일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관음사 신중도’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3호로 지정됐다. 1908년 금어(金魚)인 원일(圓日)과 진규(眞珪)에 의해 제작된 화면 119.8×112.2㎝ 크기의 불화이다. 금어는 불모(佛母)라고도 불리며 불화 그리는 사람을 말한다. 이 불화는 하단의 붉은 색 화기(畵記)를 통해 제작 시기와 제작자, 봉안처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처음 조성 당시의 사연도 적혀 있다. 원래 해인사 백련암에 봉안하기 위하여 조성했었다. 함경남도에 사는 박씨라는 여 신도가 세상을 떠난 남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단독시주했다. 안정된 구성과 섬세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후기 불화의 정통성을 계승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문화재청은 기록하고 있다.고령 관음사에는 신중도 외에도 2점의 문화재가 더 소장되어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2호 ‘아미타여래도’와 2017년 5월2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684호로 지정된 관음사 칠성도이다. ‘아미타여래도’는 신중도와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고 동시에 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됐다. 이 불화는 관음사의 주불전인 관음전의 후불화로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불이 서방 정토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화면의 정중앙에 아미타여래가 연화대좌에 앉아 있으며 좌우 협시로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4위가 유희좌 형식의 자세로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유희좌는 한쪽 다리는 세우고 다른 한쪽은 대좌 아래로 내려뜨린 자세를 말한다. 그 뒤 편으로 가섭, 아난, 지장보살을 포함한 4위의 보살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아미타여래의 배경으로 법신에서 퍼져 나오는 오색파장의 광채가 화려하고 아름답다.칠성도에 대하여 문화재청은 화기를 통해 1892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 제작자, 시주자 등 제작체계와 후원자를 알 수 있어 이 시기 불화 연구에 있어 기준자료가 된다고 평가했다. 이 칠성도는 인물의 얼굴과 옷주름 등에 명암법을 도입하여 입체적인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고 했다. 병풍을 배경으로 마치 단체 사진 찍듯 존상들을 배치한 형식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기록했다.마스크를 단단하게 착용하고 길을 나섰다. 아름다운 색채의 연등들이 절 집 마당에 가득 걸려있는 고령 관음사를 찾았다. 현재 당우로는 정면의 관음전을 중심으로 칠성각과 산신각, 천불전, 범종각 그리고 요사채가 있다. 1911년 합천 해인사의 포교당으로 창건되었고 1956년에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관음사에서도 대한불교 조계종의 방침에 따라 ‘부처님오신날 봉축 및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정진’이 진행되고 있다. 한달 동안 전국 1만5000여 사찰에서 진행되는데 회향식은 5월30일(음력 윤달 4월8일) 열린다.인적 없는 관음전에 올라 삼배를 올리고 신중도 앞에 섰다. 불단 우측 벽면 유리 액자 속에 장엄되어 있다. 합장하고 고요히 바라보니 그 속의 신중들이 일제히 깨어나 웅~하는 소리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극적인 순간을 보는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1백 년 전, 한 화승의 지극 정성이 있었다. 작가들은 매일 목욕재계하고 항상 깨끗한 옷을 입으며 말도 하지 않는 등 철저한 계율을 지켰고 법식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수행의 연장으로 색채 작업을 했으며 이를 바라보는 신도들에게 환희심을 느낄 수 있는 불화로 완성시켰다. 경전에 나오는 여러 보살과 수호 신장들을 그린다고 해서 형상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까지 그려내야 한다.관음사 신중도에는 황금투구를 쓰고 금강저를 든 ‘위태천(韋太天)’이 화면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다. 뒤편으로는 역삼각형 구도로 좌측에 범천, 우측에 제석이 배치돼 있다. 주변으로 천녀와 천동, 일천·월천대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 하단에 무장한 천룡팔부 신중 4위가 일렬로 배치돼 있다. 그런데 이 신중도의 중심인물인 위태천은 질병 퇴치를 담당하기도 하는 신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다. 코로나가 불러온 거리두기에서 속히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리스 신화처럼 재미있는 스토리가 연결된다.◆하루빨리 괴절이 사라지길 기원하며위태천은 인도 서사시의 시기인 기원전 600년경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브라만 즉 바라문의 신이었다가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이 되었다. 열반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돌아가셨을 때 다비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마왕 첩질귀(捷疾鬼)가 갑자기 나타나 불사리를 빼앗아 달아났다. 이때 위태천은 즉각 뒤쫓아 수미산 정상까지 달려가 상대를 제압하고 무사히 찾아왔다고 한다, 높이 132만km로 알려진 눈 덮힌 수미산을 한순간에 뛰어올랐다는데 흔히 달리기를 잘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화엄경 약찬계에 나오는 첩질귀도 빛처럼 발이 빠르고, 순식간에 사리를 낚아챈 것으로 보면 날렵한 귀신으로 여겨진다. 원래는 괴질과 병을 옮기는 야차이며 사천왕의 부하였다. 중생에게 고통을 주는 코로나19는 현대판 서질귀라 할 수 있겠다. 위태천은 그를 누르고 이겼으니 신중도의 중앙에 그려 넣어질 자격이 있는 것 같다. ‘위장군’, ‘위태보살’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일본 프로야구계에서는 도루 잘하는 발빠른 야구선수를 ‘이다텐’이라 부르기도 한다. 위태천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이다. 지금은 스포츠의 신으로서, 또 아이들의 병을 재빠르게 제거하는 신으로서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존재가 되어 있다. 신중도의 위태천 앞에서 다리와 허리 건강을 빌고 도난 방지 대한 기원도 한다. 인도의 힌두 신화에서는 창이나 그 밖의 무기를 쥐고 공작새를 타고 다닌다. 위태천은 불탑의 도굴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형상은 금박 찬란한 새깃털장식이 있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으며, 합장한 팔 위에 칼 혹은 금강저를 가로질러 놓는 모습이다.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의 목판화인 ‘소자본묘법연화경’등에서 사경을 수호하는 호법선신으로 등장했다. 조선시대 신중탱화에서는 무장들을 이끄는 대장격으로 나타난다. 불경을 간행할 때 권두 또는 권말에 동진보살 즉 위태천을 판각해서 경전의 수호를 상징하는 경우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현재 관음사 신중도 하단의 무장한 호법 신중들은 위엄 있는 기세로 눈을 부라려 위협하거나 단호함을 드러낸 표정이다. 대조적으로 위태천의 얼굴은 둥글 넙적하며 단정한 이목구비에 무표정하게 묘사하였다. 그래서인지 중앙에 위치하며 정면을 직시하는 시선에서 더욱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신중들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험과 불가사의한 힘을 기대한다. 한 달 간 전국 사찰에서 펼쳐지는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정진’이 잘 회향되어 신중도 위태천의 위신력이 발휘되기를 기원해 본다. 글·사진=박순국 언론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62) 칠처가람(3) 분황사

경주 분황사는 황룡사와 이웃해 있으면서 신라시대 대표적인 사찰의 하나로 손꼽힌다. 분황사는 선덕여왕이 634년에 건립해 자장, 원효와 같은 고승들이 주석했던 유명 사찰이다.황룡사가 왕실 중심의 귀족불교였다면 분황사는 서민들을 위한 불법을 실천했던 대중불교의 산실이었다는 차이점을 들 수 있다.칠처가람 중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분황사에서도 불법(佛法)이 왕성하게 일어났다. 원효가 많은 저술활동을 펼쳤고, 약사여래입상, 모전석탑, 화쟁국사비편, 삼룡변어정 우물 등의 유적이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다.설총과 고개를 돌렸다는 원효의 소상 이야기, 원성왕이 당나라 사신들에게서 되찾아 온 분황사의 용에 대한 전설, 도천수대비가를 낳은 기적 같은 영험의 이야기도 분황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신라의 불교 칠처가람, 분황사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황룡사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 분황사가 건립됐다.자장이 당나라에서 대장경과 불전을 장식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오자 선덕여왕은 분황사에 주석하게 했다. 이어 원효가 분황사에 머물면서 화엄경소, 금광명경소 등의 1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썼다.경덕왕 당시에 조성해 봉양했던 30만6천700근에 이르는 약사여래입상,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벽화 등은 몽골의 침략과 임진왜란 등으로 유실됐다.분황사에는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이 남아 있다. 분황사 창건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에 파괴됐지만 조선시대에 수리하려다 오히려 더욱 파손되었는데 1915년에 다시 수리했다. 지금은 3층으로 남아 있지만 조성 당시에는 7층 또는 9층으로 추정된다.석탑의 기단에 배치된 수호상도 이색적이다. 내륙을 향한 곳에는 사자상, 동해 방향에는 물개를 힘이 넘치는 역동적인 조각상으로 세워두고 있다.석탑의 면마다 감실을 설치하고 금강역사 2구씩을 새겨 수호신으로 세웠다. 분황사 모전석탑은 국보 제3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분황사에는 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돌우물이 있다. 이 우물의 외형은 팔각형으로 다듬어져 있고, 내부는 원형으로 형성되어 있다. 불법에서의 팔정도를 상징하는 우물로 원불의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전설에 따르면 이 우물에 용이 살고 있었다. 원성왕 11년인 795년 당나라의 사신이 이 우물 속의 용을 물고기로 변하게 하여 병에 넣어 가져가는 것을 원성왕이 사람을 시켜 빼앗아왔다고 한다. 이후부터 분황사의 우물을 삼룡변어정이라 부른다.분황사 우물 동편에는 고려시대 조성한 원효의 화쟁국사비를 세웠던 화쟁국사비의 좌대가 남아 있다. 비석좌대에는 조선시대 김정희가 쓴 ‘차신라화쟁국사지비적(此新羅和諍國師之碑蹟)’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분황사와 원효원효의 아명은 서당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남다른 신체적 발달과 성숙한 지혜로 주변 어른들이 깜짝깜짝 놀랄 행동을 보였다. 활달한 성격으로 무예 연마하기를 좋아하는 한편 책 읽기를 좋아했다.일찍 화랑도가 되어 천하를 떠돌며 수련하면서 심신을 단련했다. 김유신의 귀신 같은 몸놀림과 칼의 춤을 본 이후로 무예수업에 심취하기도 했다.그러나 천하를 주유하면서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을 접하고, 불교에 천착하게 됐다. 불교에 귀의하면서 스스로 법명을 원효라 짓고 불교적 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서적을 섭렵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져 당의 앞선 지식을 배우며 불법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결국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요동에 이르렀을 때 고구려 군사에게 첩자로 오인 붙잡혀 신라로 돌아와야 했다.혜공 등의 선사들에게서 불법을 익히면서 또 한계를 느껴 의상과 다시 당나라로의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당항성에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불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라 깨닫고는 혼자 신라로 되돌아왔다.유학길에서 돌아온 원효는 마음이 급해졌다. 당시 귀족중심의 왕실불교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지만 원효는 온 백성들에게 불법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방법을 찾는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이때 진덕여왕 승만이 원효의 그릇이 한없이 크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황룡사에 주석하게 하고, 수시로 황룡사에서 원효의 강론에 참여했다.원효의 거침없는 달변과 그의 훤칠한 외모에 진덕여왕은 점점 인간적인 감정에 빠져들었다. 진덕여왕과 함께 강론을 듣던 요석 또한 원효의 깊은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어하면서도 때론 그것에 매달리곤 했다.진덕여왕은 원효의 강의와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져 황룡사 나들이를 자주하는 한편 수시로 원효를 궁으로 불러들여 국사에 대한 고견을 청취하기도 했다.진덕여왕이 말년에 이르러 원효에게 국사를 운영하는 어려움과 인간적인 고뇌를 털어놓으며 곁에 머물러 주기를 당부했다. “혼자 걷는 길은 너무나 멀고 힘들게 느껴지네요. 가까이에서 손잡고 이끌어 주시길 감히 청하옵니다”며 승만은 직접적인 고백을 털어놓았다.원효는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여왕을 응시하다가 “이 몸은 이미 불법에 귀의한 처지라 한 곳에 마음을 둘 수 없다 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특별한 하나의 존재에 미치기도 하지만 결국 만물에 머무는 근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라며 조용히 왕실을 벗어났다.원효는 궁에서 나와 주석하던 황룡사 금당에서 사흘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곡기를 끊은 채 오로지 염불만 외다 달이 이끄는 길을 따라 사라져버렸다.진덕여왕은 원효가 황룡사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백방으로 수소문해 그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여왕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끝내 원효를 다시 대면하지 못했다.깊은 산 속에서 도를 구하다, 나라의 곳곳을 다니며 걸식하며 불법을 전하기도 하고, 공부를 이어가던 원효는 진덕여왕의 승하 소식을 접하고는 다시 서라벌로 돌아왔다.김춘추가 무열왕으로 즉위하고, 요석궁에 과부가 된 공주가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원효는 불법을 온 백성들에게 전파할 방안을 모색했다.원효는 걸인의 행색으로 서라벌 거리를 떠돌며 무애춤을 추고 다녔다. 아이들과는 “누가 나에게 자루 없는 도끼를 준다면,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세울 텐데”라는 노래를 불러 궁궐에까지 들리게 했다.당시 무열왕은 백제를 정벌해 사위와 딸의 원수를 갚고, 고구려를 쳐 삼국통일을 이룩하려면 먼저 국민들의 여론을 하나로 묶고, 나라의 방향을 전달하는 이념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인재를 구하고 있었다. 이때 노래를 들은 왕은 원효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를 요석궁으로 불러들여 딸과 인연을 맺어 주었다.원효는 요석과의 해후를 통해 설총을 낳고, 궁궐의 든든한 후원에 힘입어 분황사에서 세상을 구할 이론을 하나로 엮어 책을 쓰는 일에 열중했다. “존재의 특별함은 있다. 또 없다. 마음의 근원을 따라가면 만물은 평등하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다. 차별 없이 자비의 마음을 가진다면 누구나 큰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해 백성들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원효대사가 분황사에서 대중불교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18) 문경 점촌고

‘한 하늘이 열리는 찬란한 아침/ 희망의 슬기가 한 데 모여서/ 새 마음 높은 이상 큰 가슴 열고/ 배우고 가꾸어서 내일의 일꾼 되리/ 아 굳세고 아름답게 피어나거라/ 그 이름 영원하리 우리의 점고.’올해 개교 35주년을 맞는 자율형 공립고인 문경시 점촌고등학교.‘높은 이상, 알찬 노력’이라는 교훈 아래 온누리에 비춰나갈 등불이 되는 동량들이 문경시 매봉산 자락에서 청운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이다.윤진섭 작사, 정희치 작곡의 교가는 지난해 2월 졸업한 33회 졸업생까지 7천553명의 동문에게 아름답고 정감 어린 메아리로 번지고 있다.점촌고는 개교 이후 첫 졸업생을 배출하면서부터 탄탄한 교육과정으로 지역 교육을 선도하는 학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특히 2003년 문경시가 농어촌특별전형 대상지역에 포함된 이후 2006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를 비롯해 연세대, 고려대에만 17명이 진학하는 등 졸업생 197명 가운데 70%인 139명이 수도권 대학에 대거 합격했다.이뿐만이 아니다.점촌고는 2010년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전국 1천475개 학교 가운데 9개 학교만 받은 ‘보통수준 100%’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또 2013학년도 수능성적 분석에서 1~2등급 비율 32.6%로 전국 19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연속 경북도교육청 학력 우수학교 등에 선정됐다.점촌고는 2012년 자율형공립고 지정받은 이후 2017년 자율형공립고에 재지정 받았다. 학력향상프로젝트, 창의 인성교육, 진로교육활동 등 프로그램 운영으로 학생들의 학력증진을 꾀하고 있다.점촌고가 전국에서 주목받는 신흥명문 고교로 불리는 이유다.강두형 점촌고 총동창회 사무차장(문경시청)은 “점촌고는 역사는 짧지만 최고의 엘리트 산실”이라며 “뿌리깊은 나무가 바람에 강하듯이 점고로 이어진 ‘의리’의 정은 전체 동문을 이어주는 매개물”이라고 자랑했다.◆선·후배 간 사랑의 결속 다지는 동문들의 정, 인재배출의 요람점촌고 동문들은 수십 년이 넘은 세월동안 지역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저력과 단합된 힘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자부심도 대단하다.총동창회는 2004년 창립했다.초대회장인 하태진 동문(1회) 이후 김효태(〃), 이홍철(〃), 김우진(〃), 류치하(〃), 신영일(2회) 동문이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다.현재 오인택 동문(2회)이 동문회장직을 맡고 있다.부회장은 이기창(2회)·강성훈(〃)·이상주(〃)·최승호(〃)·이상희(〃)·김영아(〃)·권순미(3회)·고인철(〃)·최대수(4회)·이성훈(5회) 동문이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사무국장은 민병하(5회) 동문, 사무차장은 최정자(2회)·우재윤(6회)·강두형(8회)·임동혁(14회) 동문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동문들의 화합의 장을 마련해나가고 있다.총동창회는 기수·직능별 소모임도 구성돼있다.지역별로는 재경(회장 오인택(2회)·총무 고준석(6회)), 재대구(회장 신동칠(2회)·총무 강재민(7회)) 등이 분포돼 있다. 직능별로는 문경시청(회장 김유신(1회)·총무 임정철(8회)), 교사회(회장 장혜경(1회)·총무 김윤동(19회)), 경찰(정보원(1회)·총무 이국영(5회)) 등이 있다.점촌고는 인재배출의 요람이다. 짧은 역사이지만 공직자, 의료, IT분야, 건설업 등 각 방면으로 진출한 동문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드러지고 있다.지역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동문도 많다. 현직에서 활동 중인 경북도청을 비롯한 문경시 공무원만 150여 명에 이른다.◆우리는 점촌고 동문 아이가점촌고 총동창회는 매년 6월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린다. 이날은 전국에서 모여든 동문들이 자리를 함께하며 점고인의 기상을 드높인다.이를 위해 분기별 임원진 모임을 연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동창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다.모교 운동장에서 성대하게 열리는 동창회 행사는 기수별로 팀을 이뤄 운동, 레크레이션 등을 통해 진정한 ‘점고인’이 되는 날이다.각계에 종사하는 동문들이 협찬한 경품도 푸짐하게 마련돼 함께 온 가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총동창회는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 동문 산행대회와 2개월에 한 차례 골프대회도 개최하고 있다.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과 진로 선택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서도 헌신적 노력을 다하고 있다.점촌고 총동창회는 쾌적한 교육환경을 위한 조경사업은 물론 해마다 후배들의 학업성취 지원을 위해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또 다른 동문들과 차별화된 재학생의 꿈과 희망을 응원해 주기 위해 총동창회 날 ‘점고 12명의 선배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를 개최, 각계각층에서 경험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달해주며 멘토링 역할을 맡아 재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신영일 전 총동창회장은 “같은 문(門)을 드나들며 배우고, 같은 창(窓)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던 동문과 동창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역사회와 함께 소통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오인택 총동창회장 인터뷰오인택 점촌고 총동창회장(51·2회·KT IT부문 상무)은 “총동창회장의 중책을 맡아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며 “동문 간 소통을 강화하고, 점촌고가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집행부의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오 회장은 “모교가 발전하면 지역사회에 우수한 인재가 유입돼 결국은 지역사회도 동반성장하게 된다”며 “모교가 좀 더 우수한 교육기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총동창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오 회장은 모교가 지역사회 명문고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총동창회도 그에 걸맞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이를 위해서는 동문 간 교류가 특히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동문 간 소통이 활성화돼야만 모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 때문이다.이를 위해 “재학생들의 가장 관심이 주요 대학, 동문들의 직장 탐방 등인 만큼 멘토멘티를 연결한 재학생들의 진로에 대한 지원 사업과 문경시 발전을 위한 동문들의 자문역할의 장을 마련해 지역 상생 발전을 위한 계기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이를 토대로 동문들의 교류를 강화할 수 있는 소모임을 진행해 모교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모교 장학기금도 확충해 나간다는 전략이다.오 회장은 “자그마한 겨자씨가 뿌리를 내려, 줄기를 만들고 숲을 이루듯이 비록 36년밖에 되지 않은 작은 시골 고등학교 동문들이 지금은 대한민국 각계각층의 핵심위치에서 자리를 이끌고 있다”며 “자라나는 후배들에게도 꿈과 동기부여를 줘 앞으로도 점촌고가 전국 최고 명문고로 거듭나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

유방암, 자가검진과 조기검진이 중요

유방암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여성암으로 국내 여성에서는 갑상선암 다음으로 흔히 발생한다.연간 2만2천 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중앙암등록보고에 따르면 2016년 유방암은 전체 여성암의 19.9%를 차지한다.유방암의 발생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노출, 가족력, 비만, 음주, 기타 요인 등 다양한 인자가 관련돼 있다.◆유방암 20~30대도 안심 못 해국내 유방암환자의 발병을 연도별로 분석하면 2000년에 비해 2015년 (2만2천468명)에 집계된 유방암 환자가 3배 이상 증가했다.연령별로는 약 20세 이후부터 발생해 40~49세 연령군에서 가장 높은 발생률을 보였고, 최근에는 40세 미만의 젊은 여성의 유방암 빈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방암으로부터 20~30대 여성들도 이제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유방암 조기 진단을 위한 정기 검사와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연도별 유방암 병기분포는 적극적인 유방검진의 활성화로 인해 0기 또는 1기의 조기 유방암환자 비율이 2002년 38.1%에서 2016년은 59.6%까지 증가했다.또 조기 유방암에 해당하는 0~2기 유방암 환자 비율이 2016년에는 91%에 달하며 조기 유방암 환자 비율이 아주 높다.유방암의 재발 위험도는 병기가 증가할수록 증가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자가검진과 유방검진 및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방암의 진단은 유방에 단단한 혹이 촉지돼 병원 내원 후 진단되는 경우도 있지만, 증상이 없이 유방검진에 의한 이상소견이 발견되어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한국유방암학회 조기검진 권고안에 따르면 30세 이후여성은 매월 유방 자가검진을 권하며, 35세 이후 여성은 2년 간격으로 의사에 의한 임상검진, 40세 이후 여성은 1~2년 간격의 임상진찰과 유방 촬영을 권한다.유방 영상검사 상 이상소견이 발견되는 경우 일반적으로 바늘을 이용한 조직검사를 하게 되며, 대부분 유방암을 확진할 수 있고 일부에서는 수술적 생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유방안의 치료유방암의 치료는 수술과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항호르몬치료, 표적치료 등으로 나눈다.유방암 수술은 유방 전절제 수술과 유방보존수술로 구분한다.유방보존수술의 비율은 과거에 비해 꾸준히 증가해 현재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의 60%에서 유방보존수술을 시행하고 있다.유방전절제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유방재건술을 동시에 시행할 수 있어 유방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면서 유방암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다.최근에는 로봇을 이용한 유방수술 및 재건수술을 할 수 있게 되어 옆구리의 작은 절개를 이용해 정면에서 유방에 흉터를 남기지 않고 유방암 수술을 시행하는 방법도 개발됐다.방사선 치료는 고에너지의 방사선을 이용하여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수술 후에도 남아있는 암세포를 치료하기 위한 보조적 치료법이며, 유방보존수술 후 또는 유방전절제수술 후 종양의 크기가 크거나 림프절 전이가 많은 경우 시행한다. 유방암의 전신치료는 수술 후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미세한 암세포를 제거해 재발을 감소시키고자 시행하게 된다.항암화학요법은 보통 두세 가지 약제를 정맥주사 혹은 경구로 투여하며, 약제에 따라 1~3주 간격으로 4~8주기 정도 치료하는 데 대부분 4~6개월이 소요된다.또 진단 당시 유방암의 크기가 커서 수술로 완전 절제가 어렵거나, 유방보존수술을 원하는 경우 수술 절제 범위를 줄이기 위해 수술 전에 선행항암요법을 시행하기도 한다.유방암의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호르몬 수용체 양성인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항호르몬요법을 시행할 수 있으며, 특정분자표적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표적치료를 시행할 수도 있다.대표적인 치료제는 유방암 세포증식과 관련된 HER-2의 세포전달 경로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트라스트주맙이다.그 외에도 다양한 표적치료제가 개발되어 있어 유방암 환자의 치료성적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유방암 수술 후 5년 내 재발이 재발환자의 92%를 차지하며, 재발 방지 치료로 재발률을 50%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무엇보다 유방암 병기가 낮을수록 유방암의 치료성적이 좋아지기 때문에 적극적인 자가검진, 유방검진 및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방암의 자가검진 방법유방암의 자가검진은 매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시행하기를 권한다.생리가 있는 여성은 생리가 끝난 직 후 일주일 전후에 검사, 임신 혹은 폐경 등으로 생리가 없으면 매월 일정한 날짜를 정해 자가검진을 시행한다.우선 거울을 보면서 이상소견 유무를 육안으로 관찰한 후 편한 상태로 누워 검사하는 쪽 팔을 위쪽으로 올리고 반대편 손 2·3·4번째 손가락을 이용해 유방전체를 빠짐없이 검진한다.자가검진 중 이상소견이 발견되는 경우 유방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이무현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