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 속 주인 구하다 죽은 개 이야기…사람들 감동해 ‘구분방’ 이름 붙였다네

바람이 불었다. 떨어진 나뭇잎이 고분군을 덮고 있었다.고분군 사이 길에 쌓인 떡갈나무 낙엽을 밟는 발걸음이 포근했다. 낙엽은 나뭇잎의 주검이다.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들이 떨어진 낙엽을 보고 있었다. 봄이 오면 다시 푸른 잎 돋아나 녹음의 한때를 출렁일 것이다. ‘순환’이란 말이 떠올랐다.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 삶을 위한 죽음은 장엄하고, 죽음을 위한 삶은 처연하다. 자연사든 인간사든 무릇 생명가진 것들의 가치 있는 운신(運身)은 장엄하고 처연하다. 역사 속에 누워 있는 고분군이, 고분군을 뒤덮은 나뭇잎의 주검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살피게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죽음은 삶을 되 비추는 거울임이 분명하다. 의구총을 찾는 길에 고분군에 들렀다. 사적 제336호로 지정된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고분군은 의구총과 지척에 있었다. 3세기에서 7세기 중반기의 가야와 신라의 무덤들이라고 한다. 크고 작은 무덤들이 낙동강 동편 해발 700m의 구릉지대에 1번에서 205번까지 이름 대신 번호표를 달고 누워 있었다. 원래 낙산 일대는 가야시대와 신라 진흥왕 때 일선주(一善州)의 소재지로서 대규모의 가야, 신라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곳, 금동제 귀고리와 가야시대 등잔, 토기 등의 부장품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낙산리 고분군은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토착 지배세력의 집단 묘지로 추정된다. 그 이유야 무엇이었든지 불문하고 그 흔한 비석과 비문, 근사한 문체로 새긴 이름 석자가 없는 무명씨(無名氏)들의 무덤이어서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덤의 주인들인 토착지배 세력들 간의 크기를 가늠할 길 없으므로 죽음은 참 공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년 세월을 거슬러 우리 곁을 찾아온 선사시대 정경처럼 고분군이 주는 조용하고 포근한 느낌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주인을 구하고 죽은 의로운 개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148번지 국도변에 자리 잡고 있는 개의 무덤이다. 개 무덤 뒤에 있는 의구도 네 폭은 주인을 구하려고 목숨을 바친 개의 충직함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떨어진 나뭇잎은 새봄을 약속하고 이름 없는 고분군은 삶과 죽음의 공평함을 일깨운다. 의구총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1994년 9월29일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된 의구총은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148번지 25번 국도변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든 ‘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주인을 구하고 죽은 의로운 개의 무덤, 의구총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연향(延香, 지금의 해평 산양)에 사는 우리(郵吏) 노성원(盧聲遠)은 영리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노성원이 술에 취해 돌아오다가 말에서 떨어져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때 들불이 나서 주인이 타죽을 위험에 처하자 개가 꼬리에 물을 적셔와 불을 꺼 주인을 살리고는 기진하여 죽었다. 깨어난 노성원이 감동하여 장사를 지내주었다. 후세 사람들이 개의 의로움을 칭송하여 그곳을 구분방(狗墳坊)이라고 불렀다. 원래 있던 의구총 자리는 1952년 도로에 편입되어 공사 중 비(碑)의 일부가 파손된 것을 봉분과 아울러 수습하여 일선리(一善里) 마을 뒷산으로 옮겼다. 그러다 또다시 일선리 마을이 조성되자 1993년 원래의 위치에 가까운 현 위치로 옮겼다. 현 위치로 이장하면서 ‘의열도’에 있는 ‘의구도’ 4폭을 화강암에 확대, 조각하여 봉분 뒤에 세우는 등 일대를 정비하여 의구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봉분은 직경 2m, 높이 1.1m이고, 화강암으로 된 ‘의구도’의 크기는 가로 6.4m, 세로 0.6m, 너비 0.24m이다. 의구 설화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구미의 의구 설화는 불을 꺼서 주인을 구한 유형, 즉 진화구주형(鎭火救主型)에 속한다. 이러한 전설은 여러 지방에 전하고 있지만 봉분이 남아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1994년 선산군에서 향토문화재 보전과 국민의 사회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깨끗하게 정비하였다. 의구의 이야기는 사람 사는 세상에 크게 귀감이 되는 것이어서 1665년(현종 6) 선산부사 안응창이 고을 노인에게 의구 이야기를 듣고 ‘의구전(義狗傳)’을 지었고, 1745년 박익령이 화공에게 약가(藥哥)의 정열(貞烈)을 그린 ‘의열도(義烈圖)’ 4폭과 함께 ‘의구도(義狗圖)’ 4폭을 그리게 하여 ‘의열도’에 첨부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낙산리 의구총에 관한 이야기는 ‘일선지’, ‘선산부읍지’, ‘선산읍지’, ‘청구야담’, ‘파수록’, ‘한거잡록’, 심상직의 ‘죽서유고’ 등에 기록, 전승되고 있다. 주인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한 의구설화의 유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분포 지역 또한 광범위하다. 의구설화의 소중함을 보존, 전승하려는 노력과 필요성이 오랫동안 널리 있어왔다는 사실은 어느 시대, 어느 곳 없이 개만큼도 못한 인간사의 행태가 그만큼 누적되어 왔다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하겠다. 고려시대 최자가 그 노래의 창작 동기를 ‘보한집’에 기록한 바, 무덤을 만들어 죽은 개를 장사 지내고 김개인은 아래와 같은 ‘견분곡(犬墳曲)’ 이를 뒷받침한다. 사람은 짐승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人恥時爲畜)/ 공공연히 큰 은혜를 저버린다네(公然負大恩)/ 주인이 위태로울 때 주인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면(主危身不死)/ 어찌 족히 개와 한 가지로 논할 수 있겠는가(安足犬同論)//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의구설화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것처럼 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또한 오래인 것은 아이러니하다. 대표적 욕설인 개**에서부터, 제 버릇 개 못 준다,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 개도 밥 먹을 땐 안 건드린다, 개밥에 도토리, 개 팔자가 상팔자, 개가 똥을 마다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죽 쒀서 개 준다, 개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등의 속담을 지나, 무질서와 중구난방과 오합지졸을 지칭하는 개판, 여의도 정치를 두고 흔히 사용하는 야합이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양상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고 무수하다. 개가 폄하의 대명사가 된 것은 웬일일까. 개의 생태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편견으로 말미암은 것일까. 개의 잘못일까, 사람의 잘못일까. 그 원인과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낙산리 의구총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이 야속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야속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아도 좋겠다. 보신탕집 옛 자리에 동물병원이 들어서고, 애완견은 이제 한 가족, 한 식구가 되어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며 살아가는 반려동물의 대명사가 되어있지 않은가. 개만도 못하다는 말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애완견에게 항렬자를 따서 이름을 지어주고, 그가 죽으면 조상들을 모신 선산에 묻겠다는 이웃도 한둘이 아니다. 이와 같은 개의 지위향상(?)이 의구총 주인의 살신성인 공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지나친 비약일까. 되풀이 하거니와,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 고분군의 낙엽과 의구총의 전설이 내게 물었다. 저밖에 모르는 야박한 인심, 궁핍한 세태를 행해 컹, 컹, 컹, 꾸짖듯 물었다. 강현국시인•사단법인 녹색문화컨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한국전쟁 중 입북해 ‘종전’ 촉구…일평생 “통일이 진정한 광복” 신념지켜

2005년 서울시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가진 미수(88세) 축하 모임(앞줄 중앙 백발머리를 한 이가 박진목). 2010년 박진목은 경기도 하남시에서 92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부인 이영숙씨와의 사이에 3남5녀를 두었다. 그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유택(幽宅) 아래 남한산성 민족정기탑 앞에 묻혔다.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 yeeho1219@naver.com연보1918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출생연도미상-의성에서 보통학교 졸업 뒤 대구로 나감1938년 대구 달성군 구지면 오설리에서 양조장 경영, 현풍 곽씨와 결혼1942년 형 박시목을 따라 독립운동 투신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연행, 구속1945년 대구 달성군 건국준비위원회 활동1946년 남로당 달성군 조직책, 경북도당 간부1951년 서울서 북 이승엽과 회합(1월), 평양서 이승엽과 2차 회합(8월)1952년 평양 방문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1953년 만기 출소1954년 독립운동가 모임 원호회 이사, 야권통합운동1961년 5·16 군사혁명 감찰부 조사(무혐의 석방)1967년 영남일보 상임이사1970년 민족정기회 이사1972년 통일촉진회 참여2010년 7월13일 별세

경주의 과거·현재·미래 어우러진 곳…시간여행 떠나볼까

신경주역사 내에 경부고속철도를 개설하면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역사문화재 전시관. 경주는 역사가 살아 꿈틀대는 정원이다. 거대한 공원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여행을 즐기면서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또한 경주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다. 시간을 이동하게 하는 공간, 어떤 시점이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시간 역이다. 신경주역은 KTX 역사로 부산역과 동대구역 중간쯤인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에 있다. 신경주역에서 부산역과 동대구역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서울까지도 2시간10분 정도면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는 거리로 좁혀졌다. 신경주역은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는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대도시 서울, 부산, 대구와의 접근성을 높여 경제발전과 국민들의 생활 편익에 크게 일조하면서 산업발전을 견인하는 인프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2020년이면 울산에서 포항으로 이어지는 동해남부선, 영천에서 울산으로 통하는 중앙선, 동대구에서 울산으로 연결되는 경부고속철도 등의 환승역으로 기능이 늘어나면서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신경주역은 교통편의 제공 본래의 목적과 함께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의 이미지를 살려 맞이방에도 유물전시관과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마련하고 있다. 신경주역의 ‘셔블랑 놀자’ 프로모션은 경주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인기 상품으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역 광장에도 역사문화 유적을 재현하고, 조각 작품 설치, 특이한 조경, 야외공연장 등을 운영하면서 공원으로 꾸며, 시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이자 힐링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사문화관광 도시형 맞이방 신경주역 대합실에 들어서면, 전체 공간이 시원하게 트여 한눈에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맞이방 곳곳에 세워진 기둥에는 소, 호랑이, 용, 토끼 등의 12지신상들이 무신 상 조각 작품으로 설치돼 역사 도시를 상징하며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신경주역 맞이방 한가운데 설치된 포토존. 경주를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합실 가운데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인형들이 ‘웰컴 경주’라는 표어와 함께 포토존을 마련하고 있다. 방문객들도 여행 가방을 내려놓고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신경주역 맞이방 중앙에 사계절 전시회가 진행되면서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있다. 포토존 뒤로는 경주지역 예술인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문화공간으로 방문객들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지금은 서라벌 사진동우회원들의 ‘빛을 담다’라는 주제로 사진작가들의 카메라에 채집된 세상의 풍경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되고 있다. 수채화, 서양화, 도자기 등의 예술품들이 다양하게 모양을 내면서 대합실을 사계절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한다. 신경주역 맞이방 남쪽 입구에 있는 경주관광안내소. 남쪽 창가에는 경주의 문화관광자원을 소개하는 경주 관광안내소가 자리하고 있다. 경주 관광 안내지도와 볼만한 곳을 소개하는 포스터와 기념품들이 선보인다. 또 경주의 관광을 안내하는 영상물이 지속적으로 상영되고 있어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이들의 관광가이드가 된다. 둘러보면 또 가장 크게 눈을 자극하는 것이 기념품점과 먹거리를 소개하는 간판이다. 경주시가 개발한 브랜드 음식점 별채반이 맞이방 서편에서 반짝거린다. 별채반은 경주지역에서 생산되는 곤달비, 전복, 천년한우 등의 신선한 재료로 육개장과 비빔밥 메뉴로 개발돼 제공된다. 별채반은 1인 상으로 나무를 소재로 한 밥상과 유기 식기를 사용한 위생적 식탁으로 마련돼 산뜻한 기분이 들게 한다. 식당은 또 순두부찌개와 된장찌개를 비롯해 돈가스, 비프까스는 물론 다양한 퓨전 음식을 마련한 기소야, 롯데리아 등의 먹거리와 카페드롭탑이 입점해 만남의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신경주역 서편에 자리한 특산물 판매점. 구룡포 과메기 판매점이 2월말까지 운영된다. 경주특산품 코너로 황남빵과 경주빵이 각각의 부스로 설치돼 판매되고 있다. 이들은 배고픔을 달래주기도 하지만, 기념품으로 날개를 달고 팔려나간다. 12월부터 2월 말까지는 포항 구룡포 과메기가 특산품 코너를 차지하고 여행객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역사 정원과 유물전시관 신경주역 맞이방 서편에는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하면서 발굴된 역사문화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 ‘신경주역 문화재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에는 청동기시대로부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장신구와 토기, 왕관 등의 유물 복제품 158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통일신라 천년 왕조 유종의 미, 천년의 숨결, 신라 역사, 신라 서라벌에 나라를 세우고 왕권을 키우다 등의 제목으로 시조 박혁거세~22대 지증왕, 23대 법흥왕~28대 진덕여왕, 29대 무열왕~36대 효공왕, 37대 선덕왕~56대 경순왕 등으로 나누어 역사문화를 소개한다. 신라시대 서역문물의 전래과정, 왕관과 황룡사의 역사, 진흥왕과 선덕여왕, 태종무열왕의 화려한 정치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또 경주 내남면 덕천리의 철기, 덕천리의 청동기, 덕천리의 옥 장신구, 방내리의 기와, 송선리의 석기 등을 소개하고, 당시 시대적 상황들을 예술품으로 재현한 코너도 마련하고 있다. 광장에는 방내리 고분군 1호 돌방무덤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 재현하고 있다. 방내리 돌방무덤은 단석산 동쪽 끝자락 구릉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분 유적이다. 발굴에서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34기와 돌방무덤 23기,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1기 등이 확인됐다. 돌방무덤은 널이 안치된 방, 널길, 호석, 봉토를 갖춘 굴식 돌방무덤이다. 널방은 남북방향으로 긴 네모골이다. 판돌과 깬돌을 이용해 쌓아 올리고, 입구에 막음돌을 두고, 바닥에는 배수로까지 설치했다. 봉토는 둥글게 조성하고 호석을 설치했다. 굽다리단지와 토제가락바퀴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경주지역 삼국시대 무덤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광장의 방내리 고분군 동쪽에 덕천리 유적도 복원 전시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하기 위한 덕천리 구간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청동기시대 집터와 도량모양 유구, 삼국에서 통일신라시대 지상식 건물지, 석축수로, 돌방무덤, 숯가마, 삼가마, 기왓가마, 움무덤, 독무덤 등 113기의 유구와 476점의 유물이 조사됐다. 이곳에 이전 복원된 무덤은 앞 트기식 돌방무덤으로 땅을 약간 파고 조성한 반지상식 구조다. 벽석과 안치석 사이에 뚜껑굽다리접시, 뚜껑굽접시, 병 등의 토기 9점과 작은 손칼, 용도를 모르는 철기, 제사토기 등이 출토됐다. 발굴 당시 모습으로 복원해 유리관으로 살펴볼 수 있다. ◆셔블랑 놀자 신경주역은 경주관광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특별한 시스템을 운영한다. ‘셔블랑 놀자’ 프로그램이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셔블’이라 부른 것에 착안해 경주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현재의 경주와 과거의 경주를 즐겁게 둘러볼 수 있게 한다는 목적으로 운영한다. 경주 도착 KTX 승차권을 제시하면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업체, 식당, 공연, 렌터카, 제과점 등 100여 가맹점을 10~5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경주의 브랜드공연 플라잉과 렌터카는 50% 할인된 가격을 적용받는다. 경주예술의전당 공연은 20% 할인, 부산찐빵과 교촌가람 인절미, 경주교동된장, 가야 가자미회도 할인된 가격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경주보문관광단지에 할인업체들이 집중해 있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유수정쌈밥, 정동극장, 주렁주렁, 추억의 달동네, 키덜트뮤지엄, 경주힐링테마파크 등이다. 어차피 경주에서 즐기려면, 할인된 가격으로 더욱 즐겁게 즐길 일이다. 신경주역 ‘셔블랑 놀자’ 프로모션은 054-613-8005번으로 문의하면 상세하게 안내받을 수 있다. ◆주변 역사문화공간 신경주역에서 경주지역의 문화관광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서 20분 정도 승용차로 움직여야 된다. 그러나 5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도 문화특별시 경주의 이름에 걸맞는 역사문화자원이 충분하게 널려 있다. 신경주역에서 10분 거리인 모량리에 박목월 생가가 조성되어 있다. 입구에 박목월 시비와 동상이 있다. 건천읍 모량리에는 우리나라 문학의 대가 박목월 생가가 복원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목월 동상과 시비, 보리밭, 박넝쿨이 올라있는 초가삼간, 나팔꽃 달리는 돌담, 옹기종기 돌된장독, 디딜방앗간 등의 생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지척에는 신라 박혁거세가 당나라에 보물 금척을 빼앗기지 않으려 숨기기 위해 조성한 60여기의 고분군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30여기의 고분만 집단을 이루고 있다. 여름철에는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또하나의 눈요기거리가 되고 있다. 동남쪽으로 내려오면, 두대마을 마애삼존불을 감상할 수 있다. 마애삼존불 건너편에는 법흥왕릉과 효현리 삼층석탑을 걸어서 둘러볼 수도 있다. 법흥왕릉으로 가는 길은 봄이 제격이다. 모내기철이라면 주변에서 울어대는 개구리소리와 솔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새소리가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한다. 법흥왕릉 지척에 위치한 김인문의 묘 옆에 있는 거북이 형상의 귀부. 법흥왕릉에서 동쪽으로 편안한 길을 따라 걸으면, 무열왕릉과 김양과 김인문의 묘가 큰 길 옆에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김인문의 묘 옆에는 비석을 올려두었던 귀부가 화강암으로 섬세한 솜씨로 용 거북을 새기고 있다. 무열왕릉 뒤편으로는 서악서원과 서악동삼층석탑에 이어 선도산 마애삼존불, 성모설화, 서악동 주상절리가 볼만하다. 다양한 경주의 역사문화유적들이 띠를 잇는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누구나 경주를 즐길 수 있도록직간접적 역할 맡아 노력할 것”신경주역 박정희 역장 신경주역 박정희 역장신경주역 박정희(51) 역장은 기획통이다. 코레일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경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는 경주사랑이 남다르다. "경주는 일하고 싶은 욕심이 저절로 생기게 하는 도시"라며 "많은 관광객을 경주로 찾아오게 하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싶다"고 말한다.박 역장은 우선 경주시민들과 가까운 이웃이 되기 위해 경주시장, 국회의원, 우체국장 등의 기관단체장들을 일일명예역장으로 초대해 체험행사를 진행하면서 업무의 교류와 협력방안을 마련한다.이어 학교와도 업무협력을 통해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진행하면서 신경주역을 비롯한 철도 역사를 이해하게 하고, 경주의 정체성을 스스로 알아가도록 한다.특히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한다. '신마패'에 이어 진화된 '셔블랑 놀자' 프로그램은 지역의 업체들과 관광객들을 연결하는 매체기능을 통해 경주관광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특히 경주 하이코와 업무협약을 맺고, 교통편의 제공 등의 협력관계를 통해 경주방문객 유치에 공동 노력한다.박 역장은 "누구나 경주를 좀 더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즐기며, 우리 역사를 체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주역이 직간접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노력을 할 것"이라며 밝은 웃음을 보인다.신경주역은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를 상징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설치하고 운영하는 힐링공간, 역사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눈에 온 중풍 ‘망막혈관폐쇄’] 통증 없이 갑작스런 시력 저하…골든타임 놓치면 회복 어려워

개그맨 이용식이 올해 초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눈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이른바 눈 중풍인 망막혈관폐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최근 종합편성채널에서 이용식은 현재 한쪽 눈의 시력이 없다고 고백했다.“어느 날 한쪽 눈이 까맣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며 “몇 달이 지나고서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망막이 손상돼 골든 타임을 놓친 후였다”고 말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망막혈관폐쇄 입원 외래별 환자 수는 2013년 4만8천953명에서 2017년 6만440명으로 최근 4년간 35%가량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고 주로 50대 이상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준으로 60대 1만8천811명(약 31%), 70대 1만8천125명(약 29%), 50대 1만2천622명(약 20%), 80대 6천905명(약 11%) 등 50대 이상이 93%로 대부분을 차지했다.망막혈관폐쇄는 망막에 있는 혈관이 막혀 시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주로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는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망막혈관폐쇄는 혈관이 막힌 부위에 따라 망막 동맥 폐쇄와 망막 정맥 폐쇄로 구분된다. 이중 망막 동맥 폐쇄는 응급 안과 질환으로 동맥 혈관이 막히면서 발생하며 별다른 통증 없이 갑자기 시력저하가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망막 중심 동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자칫 실명에 이를 수 있어 24시간 이내에 응급조치를 받아야 한다. 골든 타임을 놓치면 치료를 받더라도 시력을 회복하기 어렵다.비교적 흔한 망막 정맥 폐쇄는 보통 한쪽 눈에서만 발생하므로 다른 쪽 눈에는 이상이 없고 잘 보여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정맥이 막혀 피가 빠져나오지 못하면 유리체에 출혈이 생기고 망막의 중심인 황반에 부종이 발생해 시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 또 합병증으로 신생혈관 녹내장이 발병할 수 있어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망막혈관폐쇄는 혈관이 막힌 위치와 정도, 시력 저하의 양상에 따라 그에 따른 치료법이 달라진다.망막동맥폐쇄 치료는 시간과 싸움이 관건으로 시력저하 등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보통 안압을 낮추고 내과 전문의의 진료를 통해 혈관이 폐쇄된 원인을 찾아내며 혈류를 회복시키는 조치가 이뤄진다.통상 2시간 이내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시력 회복이 가능하다.망막정맥폐쇄는 망막 내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레이저치료와 항체 주사치료, 또는 안내 스테로이드 주입술을 시행한다. 그리고 신생혈관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범안저 광응고술이 사용된다.망막혈관폐쇄는 한번 발병되면 회복이 어려운 만큼 미리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문다루치 원장은 “망막혈관폐쇄는 통증을 포함한 초기증상이 없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알기 어렵고 육안으로만 봐서 망막혈관폐쇄 발병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40대 이상부터는 1년에 1~2회 정도 정기적인 안저검사를 통해 눈 속 망막과 망막의 혈관, 시신경 유두 등에 이상이 없는지 정밀 검진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또 “평소 고혈압과 당뇨병 등을 앓는 환자는 정기적인 안과 검진은 물론 혈관 및 혈당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눈의 혈관도 막힐 위험이 높기 때문에 망막혈관폐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혈관 건강을 방해하는 음주나 흡연을 자제하고,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등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도움말:대구 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문다루치 원장이동률 기자 leedh@idaegu.com

우뚝 솟은 ‘범종루’ 절의 위용·규모 자랑 정체 모를 보물 품어 호기심 자아낸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된 대곡사 범종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 양식으로 팔작지붕 중층 누각이다. 종루에 있었던 종은 예천 용연사에 가 있다고 한다. 지금의 종은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목우 운판 법고 등과 함께 2009년 새로 건립한 범종각에 있다.워낙 규모가 커서 절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전위누각이다.2층 누각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으로 다포계 양식의 팔작 지붕이다. 특히 2층 처마 밑에는 지붕을 받치는 다포 양식에 연꽃을 조각했는데 등목 주지스님은 범종루에 새겨진 연화대야말로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한다.건축가들은 이 범종루가 대웅전과 같은 건축 양식이어서 대웅전 조각 수법을 모방해 건립된 것으로 본다. 범종루와 마주 보고 서 있는 대웅전은 오래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단청을 했던 기억조차 없어 보였다.대웅전과 범종루는 각각 경북도 유형문화재 160, 161호였으나 대웅전만 2014년 보물 1831호로 승격됐다.건물은 자연석을 허튼 쌓기로 해서 높은 기단 위에 동향으로 들어서 있다. 대웅전 안 천장과 벽의 단청들도 낡아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대곡사에서 펴낸 사찰지 대곡사에는 대웅전 지붕 암막새에 조선 선조 37년(1604년)을 나타내는 명문이 적혀 있어 중창시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설명한다.대웅전 벽에는 대곡사가 자랑하는 보물이라 할 53불을 그리고 이름들을 써 놓았는데 오래 돼 읽을 수가 없었다.앞문은 모두 창호지를 발라 겨울을 대비했으나 출입문이 있는 옆 벽은 기둥과 벽체 사이의 벌어진 틈새로 겨울이면 황소바람이 들어올 것 같다. 마루바닥은 조심해서 걸어도 삐걱 소리를 내면서 그 연륜을 자랑하고 있다.대웅전 앞마당에는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13층 청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화강암으로 된 기단부와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연화대좌, 높이 108cm의 탑신부만 남아있다. 작은 탑이지만 전국에 12개 밖에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경북도 문화재자료 405호)으로 범종각과 함께 보물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화강암 기단부를 시멘트로 수리하면서 아쉽게도 원형이 훼손됐다. 일부 문헌에 탑신부가 원래 13층이었으나 현재는 12층이라 했는데 아무리 세어보아도 13층이다. 전문가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 같다.범종각에서 대웅전으로 향하면 오른쪽에 명부전이 왼쪽에 요사채가 자리잡고 있다.경북도 지방문화재 439호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시왕과 사자, 판관, 왕방울눈의 금강역사상이 봉안되어 있다.그러나 이들 불상과 조각상들의 조성 연대가 불확실하고 자리조차 연구되지 않아 앞으로 대곡사의 숙제 중 하나라고 등목 스님은 말한다.◆유일하게 남은 암자 적조암대곡사에는 한때 9개의 암자가 있었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절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대곡사 위 1km쯤 거리의 비봉산 중턱에 있는 적조암만 남아 있다. 적조암 구포루(경북도 문화재자료 626호)는 한 모퉁이가 잘려 나갔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움은 남아 비봉산의 최대 절경을 바라고 있다.자연 그대로의 원목을 사용한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누각 형태의 구포루는 지금의 극락전이 건립되기 전까지 불상을 모신 법당의 역할을 했다. 대곡사의 9개 암자는 염불암 적멸암 원적암 보덕암 양진암 봉서암 구암 회동암 그리고 적조암이었다.햇볕 잘 드는 양지에 편편하게 자리잡은 적조암은 봄이면 꽃동산이 된다고 적조암 주지 홍법 스님은 말한다. 적조암에서 맞는 아침 풍경이 정말 좋다고 한다.비봉산이 명당이라면 그중에서도 명당이 바로 적조암이라고 다인면 출향인 김부일씨는 주장한다.특히 적조암에서 아침 안개가 올라오는 맞은편 산을 보면 임산부가 막 아기를 낳는 것 같고 그 임산부의 머리에 문필봉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명당터라는 것이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대곡사를 찾아 명문 시구들을 남겼는데 그 지리나 위치로 보아 대곡사는 적조암 터에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그래서인지 의성 다인에서 수많은 문인 급제자가 근세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출신 인사들을 살펴보니 검찰총장, 대법관에서부터 장관 박사 등 수없이 많다. 김부일씨도 “이곳 출신은 모두 대곡사와 인연을 맺었다”고 단언한다.비봉산이 명당이었던 것은 비봉산에서 수많은 기우제가 올려졌던 데서도 알 수 있다. 경상도 관찰사 명곡 최석정이나 대동운부군옥을 남긴 문신 초간 권정해, 낙파 김용한 등의 비봉산 기우제문이 기록으로 남아있다.◆대곡사는 대국사였다대곡사는 처음엔 대국사였다. 많은 기록들은 태행산 대국사 등으로 기록했다.지공선사와 나옹화상이 왕명으로 사찰을 건립했고 공민왕이 대국사란 이름을 내려 보냈다는 거다. 이 후 임란으로 불탄 뒤 조선 숙종조에 태전선사가 중창하고 대곡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김부일씨는 고려시태 국사인 나옹선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초제사찰이었고 그 이름이 대국사였으나 후에 대곡사로 바꿨다고 주장한다.그런가 하면 마을에서는 암행어사가 “대국인 중국을 두고 절 이름을 대국사로 해서는 안 된다”는 꾸중에 대곡사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대국사라고 표시한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대곡사를 방문하고 쓴 이규보의 시가 동국이상국집에는 대곡사이지만 범종루 현판에는 대국사로 써서 걸려있다는 것이다.이규보는 낙동강을 따라 선산에 왔다가 대곡사에서 하루 머물며 ‘17일 대곡사에 들어가다’라는 시를 동국이상국집에 남겼다.후대 사람들은 이 시가 명종 26년(1196년) 29살의 이규보가 낙동강을 따라 선산에 왔다가 8월 17일 대곡사에서 하루 묵고는 예천 용궁과 풍양을 거쳐 간 것으로 밝혀냈다. 이로써 대곡사가 공양왕 이전에 건립된 것은 확실해졌다.대곡사를 소재로 시를 남긴 사람들은 대곡사가 낙동강과 비봉산을 안고 있는 명찰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과 우복 정경세를 비롯한 당대 명문대가들이 모두 대곡사 관련 글을 남겼다. 그러나 어떤 연유로 대곡사를 찾았고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하나씩 고증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고 주지 등목스님은 말한다.◆배불숭유정책의 현장이었던 대곡사대곡사는 배불숭유정책의 조선시대 유림으로부터 많은 수난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시절이 그러했고 대곡사가 위치한 낙동강변 비봉산도 유림들의 세력 한복판이었고 보면 많은 문인들이 공부 보다는 풍류삼아 대곡사를 찾은 것으로 유추할 뿐이다.우리나라 산중 사찰이 대개 절 입구에서부터 절 뒤 산까지 넓은 토지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곡사는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규모에 비해 절터가 아주 좁은 편이다.또 대곡사 대웅전 기둥에 지금까지 새겨진 이름 낙서들도 그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하회마을 화경당에서 보관하고 있는 문서에 ‘대국사는 지공선사의 도량이므로 출입을 금한다’는 문서는 양반 선비들의 출입금지 경고장 같다.양반들이 절에 와서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출입을 금해달라는 문서일 것이다.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절에서는 이와 비슷한 명문조각도 발견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공선사에서 나옹선사와 무학대사에 이르는 삼화상의 영정이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영정과 함께 대곡사 적조암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수많은 고승들의 뚜렷한 법계가 대곡사에서 이어지고 있었음은 대곡사를 지켜온 선사들의 불심과 대곡사의 사세가 이루어 낸 성과라고 짐작한다.삼화상을 한 폭에 담은 영정은 유례가 없는 데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대 영정 중 가장 오래되고 보관 상태도 좋아 현재 보물로 승격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수많은 보물이 보관돼 있고 알려진 것보다 연구하고 밝혀야 할 것들이 더 많은 미지의 사찰 대곡사다.등목 스님은 “절의 중요한 시기인 근세 200~300년 역사가 실종된 사찰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스님은 최근 대곡사 관련 사적과 시문 등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 ‘대곡사’로 발간하고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경우 언론인

‘86 아시아경기·88 서울올림픽’ 한국 스포츠 감동의 기적 주역

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김집은 그해 12월 체육부 장관이 됐다. 김집 장관은 엘리트 체육의 체제는 잡았다고 보고 생활체육 발전에 집중했다.김 장관은 조기 축구, 배드민턴, 등산 등을 생활체육으로 장려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 체육 문제에 몰두했다. 김집은 서울올림픽에서 절감한 3천500억 원의 예산을 국민 체육에 쏟아부었다. 그동안 체육계는 돈이 없어 기업들에 구걸하기 일쑤였다.김집은 시도별로 국민 생활관을 짓고, 체육관ㆍ수영장을 넣도록 했다. 2년마다 교포 1천여 명을 초청, 한민족 체육대회를 개최했다.1990년 3월 체육부 장관을 물러난 김집은 한국 청소년연맹 총재가 됐다.그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에 주력했고, 특히 효 사상을 최고 이념으로 가르쳤다.재임을 통해 1998년까지 총재를 역임한 김집은 그 해 은퇴했다.은퇴 후 경기도 수원 실버타운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하던 그는 2012년 2월4일 86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서울대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송하 전 연합뉴스 기자연보1926년 2월18일 경북 상주군 함창면 출생1938년 상주 함창보통학교 졸업1944년 경기중학교(현 경기고) 졸업1948년 대구의과대(현 경북대 의대) 졸업1948년 대구동산병원 수련의1949년 11월30일 김인덕과 결혼1950년 자원입대, 군의관 종군1957년 6월 미국 에모리 대 소아과 유학1961년 미국 피츠버그 대 소아과 전문의 획득1961년 일본 요코하마 대학 의학박사 학위 취득1962년 귀국, 동산병원 복직1963~1980년 18년간 경북대 의과대 외래교수1970년 김집 소아과 의원 개원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전국구, 체육계 대표)1985년 제12대 국회의원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 선수단장1988년 서울 올림픽 선수단장1988년 12월 ~1990년 3월 체육부 장관1990~1998년 한국청소년연맹 총재2012년 2월4일 별세

그때 그 시절 모습 그대로 간직…경주관광의 전초기지 100년

“불국사역은 국민들의 애환이 서린 역사적인 기념물로 반드시 존치돼야 하는 곳입니다.”불국사역 홍만기 역장은 2020년 폐기될 예정인 철도청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울산과 부산, 대구와 포항 등으로 향하는 경주시민과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불국사역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것이 홍 역장의 주장이다.또한, 경주 관광의 전초기지이자 불국사역 주변 시민들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수단이요, 삶의 터전이라고 설명한다.홍 역장은 “불국사역에서 불국사, 경주보문단지로 이어지는 모노레일을 설치해 경주를 찾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불국사역은 꼭 필요한 곳”이라며 “경제적, 문화적인 이유와 함께 국민들의 정서적인 고향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그는 불국사역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역사 주변에 화단을 조성하고, 메타쉐콰이아 거리, 관광안내판 설치 등의 일거리를 찾아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특히 주변 주민들을 포함 불국사역에 대해 애정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모아 ‘불사조밴드’를 만들어 불국사역을 지키기 위한 여론 조성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불사조는 불국사역을 사랑하는 조직위원회 약칭이다. 그는 수시로 회원 확보에 나선다. 역 주변의 주민들은 대부분 회원으로 가입한다. 돼지국밥집 주인, 버스승강장 앞의 25시 편의점은 물론 농협과 면사무소 직원들까지 그의 등쌀에 모두 회원이 됐다.불국사역 주변 주민들은 그의 투혼이 불국사역을 사수하고, 국민들의 추억의 곳간을 풍성하게 하면서 경주 역사문화를 빛나게 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불국사역은 철도청의 계획처럼 폐쇄의 길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주낙영 경주시장도 “불국사역은 문화적,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꼭 살려야 할 콘텐츠”라며 존치를 위한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국민 추억의 고향 불국사역은 역사문화 힐링의 쉼터로 오래 달려갈 것 같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피부과의사회와 함께 하는 피부건강 이야기 (18·끝) 탈모

상당수가 탈모에 대한 정확한 정보보다는 속설에 의존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본인이 진료한 환자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정확하지 않은 민간요법 등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다.최근 한 매체가 20~50대 직장인 1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탈모 상식조사 결과 점수가 100점 만점에 평균 31.5점이라는 매우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잘못된 속설 의식 부문에서는 전체 85%가 ‘아기 때 삭발을 해주는 것이 성장 시 탈모 예방에 도움이 된다’ 고 응답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야한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가 79%로 뒤를 이었다.예방 생활 습관 의식부문에서는 ‘검은콩, 검은 깨 등의 블랙푸드는 탈모 치료에 효과가 있다’가 89%, ‘모자를 자주 쓰는 습관은 탈모를 유발한다’를 84%(129명) 순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대표적인 탈모 치료 약물인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에 대한 오해도 많다.모발이식 수술에 대해서도 ‘모발이식 수술은 탈모 환자라면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다’ 고 전체 80%가 응답할 만큼 탈모 관련 상식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최근 옥시사태로 벌어진 케미포비아에 이어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사건과 같이 약의 사용을 거부하고 자연치유를 주장하는 커뮤니티들이 확산되고 있다.어떤 질환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탈모의 경우 속설 등 그릇된 정보가 너무 많아 환자가 정보를 선별하기가 쉽지 않다.속설만 믿고 잘못된 선택을 하면 오히려 탈모 증상이 더 심각해 질 수 있기 때문에 검증된 탈모 치료를 통한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탈모에 관한 잘못된 상식을 알아보자◆대머리 남자는 정력이 세다?아니다. 대머리가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정력과는 무관하다.테스토스테론이 탈모를 주도하는 호르몬이라고 착각해 성욕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탈모는 테스토스테론보다는 5-alpha-reductase 효소에 의해 테스토스테론이 변화된 DHT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으므로 성욕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탈모는 단순히 남성호르몬 분비의 영향뿐 아니라 환경적 및 정서적 영향을 두루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해서 정력이 세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머리를 자주 감으면 더 빠진다?아니다. 두피를 청결히 하는 것이 탈모 예방에 도움이 된다. 머리를 감을 때 빠지는 머리카락은 이미 빠져나올 머리카락이며 건강한 머리가 뽑히는 것이 아니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도하면 머리카락이 굵게 많이 난다?아니다. 면도하고 머리가 다시 나기 시작하여 짧은 상태로 있을 때는 모발이 더 빳빳하게 느껴지는 것뿐이고 실제로 더 굵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탈모는 유전된다?그렇다. 남성형 탈모증의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유전이다. 하지만 부모가 탈모가 있다고 해서 자녀도 100% 탈모가 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탈모가 없다고 100% 탈모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유전자는 부모에게 반쪽씩 받아서 그 사람에게만 형성되는 것이다. 또 형성된 유전자들 가운데에서도 제대로 작용하는 부분과 작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탈모가 있는 환자들의 가족들을 살펴보면 50% 정도는 가족 중에 탈모 환자가 있다.◆머리카락 심으면 대머리가 되지 않는다.그렇다. 수술 후 2~3주 정도 지나면 심은 머리카락 자체 대부분 빠지지만 모낭은 그대로 남아 3개월이 지나면 새 머리카락을 만들어 낸다.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원하는 대로 머리 모양을 만들 정도로 머리카락이 자란다. 탈모가 더 진행되더라도 심은 머리카락은 잘 빠지지 않고 유지된다.◆심한 다이어트 탈모 유발?그렇다. 머리카락도 피부와 마찬가지다.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머리카락이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영양이 결핍되면 머리카락에도 힘이 없어지고 결국 빠르게 노화해 빠지게 되는 것이다.다이어트를 하는 중에는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하고 윤기가 없고 잘 끊어지는데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따라서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인체 흡수가 빠르고 부작용 없는, 아미노산이 함께 있는 미네랄 영양제를 챙기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육류나 가공식품인 햄, 소시지, 우유, 치즈, 버터 등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탈모가 심해지고 두피가 지성으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서구식 식습관도 탈모를 유발할 수 있다.◆탈모 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그렇다. 탈모 약은 복용하고 이틀이 지나면 성분의 90%가 몸에서 빠져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약의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먹어야 한다. 약에 의한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1주일만 지나면 대부분 회복된다. 민복기 대구·경북피부과의사회 회장 올포스킨피부과의원 대표원장

야트막한 매봉산에 ‘폭’ 안겨있는 보천사…해운사 절벽 위엔 도선이 득도한 ‘천연 동굴’

해운사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있는 높이 28m의 대혜폭포.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해 ‘명금폭포’라고도 불린다. 해운사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높이가 28m나 되는 대혜폭포가 있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해 ‘명금폭포’라고도 부른다.이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본인 도지사가 이곳에 들렸다가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하여 석수에게 시켜 암벽에 ‘명금폭(鳴金瀑)’이라고 새긴 것을 등산객들이 보고 붙인 이름이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자문=권삼문 전 구미시청 학예사사진=한태덕 전문 사진기자

파리 한복부티크·뉴욕 한복박물관…한복의 아름다움 세계에 알리다

한복 입은 마이클 잭슨의 모습. 이영희는 부시 전 대통령의 두루마기도 손수 만들었고, 힐러리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의 한복을 보고 감탄해 나중에 인디언 핑크로 따로 마련해 주기도 했다.연예인 중에는 하지원이 한복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다. 물론 외손자 며느리인 전지현의 한복 맵시도 아름답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전지현은 시할머니가 만들어준 한복을 외국 파티나 명절 때 꼭 입고 나타났다.특히 친척 결혼식에 한복을 아름답게 입고 나타나 시할머니의 마음을 흡족게 했다. 이영희는 전지현이 여러 색깔의 한복 중 오렌지색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다.예술인 중에는 가야금 연주자인 황병기와 바이올린 연주자 정경화 등이 그녀의 옷을 입었다. 정경화는 한복의 인연으로 이영희가 10대 때 배웠던 오래된 바이올린을 수리해주기도 했다.소프라노 황수미는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이영희의 한복을 입고 ‘올림픽 찬가’를 불러 선녀 같다는 찬사를 받았다.세계적인 인물들도 그녀의 한복을 좋아했다. 마이클 잭슨은 이영희 한복을 입은 채 찍은 사진을 그녀에게 직접 보내줄 정도였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르조 아르마니도 그녀의 한복을 입고 사람의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옷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김정일 한복도 만들었다. 2001년 평양에서 패션쇼를 할 때 체구가 비슷한 사람이 와서 치수를 대신 쟀는데 키가 아주 작았다고 기억했다. 김순재 언론인 sjkimforce@naver.com연보1936년 대구에서 출생1955년 경북여고 졸업1956년 결혼1976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이영희 한국 의상’을 열고 의상실 시작1981년 신라호텔서 첫 개인 한복패션쇼 개최1983년 백악관 초청으로 해외 첫 한복패션쇼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회 개·폐막 패션쇼 개최1993년 한국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회원으로 선정1994년 파리 중심가에 한복 부티크 ‘메종 드 이영희’ 오픈1996년 아시아 최고 디자이너로 선정2000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한복 패션쇼 ‘역사의 바람’개최2001년 평양서 이영희 민속의상전 개최2004년 뉴욕 ‘이영희 한국문화박물관’ 오픈2007년 이영희 한복 열두 벌이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특별소장품으로 선정.2008년 구글이 뽑은 ‘세계 60인 아티스트’에 선정2008년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2009년 옥관문화훈장 수상2010년 한복 최초로 프랑스 파리의 오트 쿠튀르에 참가 2011년 독도의 날에 독도에서 패션쇼 개최2018년 5월17일 별세2018년 10월 15일 금관문화훈장 추서

100년의 흔적 담은 만남과 이별의 공간 도착하니 설렘 가득 떠나기 전 추억 저장

대합실에서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곳에 설치된 포토존. 기차역으로 가는 사람들의 이유는 두 가지다. 떠나기 위한, 다시 돌아오기 위함이다. 만남 또는 이별을 준비하는 발걸음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경주역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역사다. 그만큼 많은 이별과 만남이 이루어진 역사 현장이다. 경주역은 이제 이별과 만남의 장소로만 국한되기에는 너무 많은 콘텐츠를 품고 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가 이루어지던 흔적, 그보다 훨씬 오래전 신라시대 석탑도 시간의 그림자를 조각하고 있다. 최근 철길에 달라붙은 장애인을 구조하려다 유명을 달리하게 된 경찰관의 흉상, 누구나 문화공연과 행사를 할 수 있는 무대와 광장, 황남빵과 카페 등이 오늘도 만남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사랑의 열쇠고리 걸기, 곰돌이 기념촬영 체험 등의 이벤트와 역사문화 답사의 장으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기도 하다. 경주역 주변에는 또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무궁무진 널려 있다. 없는 것이 없는 경주전통시장의 대명사 웃시장, 형산강으로 이어지는 뻥 뚫린 중앙로를 따라 형성된 종합상가, 만파식적보존회, 최근 복원된 경주읍성과 문화원 등이 경주역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힐링의 무한한 자산이다. ◆100년의 역사 경주역은 일제강점기 1918년 11월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해 2018년 11월 꼭 100년을 넘긴 유서깊은 역사다. 처음 경주역사는 현재 서라벌문화회관이 있는 곳에 세워졌다. 현재 경주역사는 역시 일제강점기인 1936년 12월 선로 개량과 함께 신축역사로 준공됐다. 경주역은 청량리까지 이어지는 중앙선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또 포항에서 부산진역으로 이어지는 동해남부선의 중간역이기도 하다. 중앙선 청량리에서 383㎞, 동해남부선 부산진역 기점 112㎞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중요한 역이다. 경주역은 평일 하루 2천500여 명, 주말에는 5천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의 관문으로 기능하고 있다. 경주역사는 들어서면 나지막하게 만만하면서 편안한 기분이 드는 1층 단층 건물이다. 주차장은 옆과 뒤쪽에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고, 정면은 넓은 광장이 평소에는 텅텅 비어 있다. 역 광장은 정치문화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벌어지는 시민들의 공간이다. 계절별로 크리스마스트리, 석탄일 종탑, 이웃돕기성금을 홍보하는 사랑의 온도탑 등이 광장의 입구에 등대처럼 세워진다. 경주역 광장에서 서편의 형산강까지 약 2㎞의 중앙로가 4차선으로 뻥 뚫려 있고, 양편에 상가가 조성돼 있다. 특히 아랫시장과 웃시장으로 불리는 중앙시장과 성동시장이 경주전통재래시장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남 대표적인 전통시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경주역을 나서면 경주읍성, 대릉원, 첨성대, 월성, 계림, 황룡사와 분황사 등의 역사문화유적이 바로 코앞이다. 걸어서도, 자전거를 빌려타고 편안하게 역사도시를 둘러보는 출발점이 된다. 경주역은 경주의 가장 핵심적인 도심에 앉아 있다. 때문에 경주역은 기차를 이용하려는 승객뿐 아니라, 시민들의 만남의 장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내부에 카페가 있고, 황남빵과 경주빵을 판매하는 점포가 입점해 있다. 경주의 명물을 소개하는 안내간판도 눈길을 끈다. 경주의 3기8괴를 설명하는 입간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역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사진으로 시선을 끌고 있다. 경주역이 유치원과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까지 체험교육의 장으로도 훌륭하게 평가되는 점이다.◆문화관광자원으로 경주의 명물경주역은 경주를 대표하는 하나의 명물이다. 신라시대 삼층석탑과 최근 세워진 이기태 경감의 흉상, 100년을 자랑하는 역사 등이 문화재적인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광장: 경주역 광장은 넓기도 하지만 비좁기도 하다. 3.1만세 기념행사, 정치유세 1번지, 천안함 폭격 사진전과 기념행사, 촛불집회, 월드컵 거리응원, 노동자들의 집회 등등 행사란 행사는 모두 경주역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듯하다. 경주역 서편에 최근 복원된 경주읍성과 동문. 태양을 향해 열린 문 위로 한옥전각이 높고, 남북으로 길게 돌벽돌로 성을 쌓았다. 조선시대는 경주역이 경주읍성 동문과 연접해 가장 붐비는 장소의 하나였다. 2018년 10월에 경주읍성의 동쪽 성벽과 동문 향일문 복원 준공식이 있었다. 태양을 향해 열린 문 위로 한옥 전각이 높고, 남북으로 길게 돌벽돌로 성을 쌓았다.경주읍성 성벽 주변에 산책로와 공원이 조성되고, 소공연장이 들어서면 버스킹공연을 비롯 상설공연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경주역 주변에 다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상가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벌써 성 안팎으로 다양한 상가들이 새롭게 단장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경주역은 그 기능을 잃고 사라지지만 100년의 역사를 지닌 경주역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 지역 경제를 일으키는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떠나고 돌아오는 인연의 고리 역할과 힐링하는 쉼터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경주역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분주하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겨울이면 심해지는 피부질환] 건조하면 더 거칠고 가려워 긁으면 ‘악순환’

겨울이 되면 공기가 건조해지면서 피부가 거칠어지고 각질이 일어나거나 가려움증이 발생한다.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있는 어린이나 건선이 있는 노령층은 이러한 증상이 심해져서 가려움증으로 고생한다.특히 혈관염의 일종인 자반증이 겨울철에 노년층에서 많이 생긴다.자반증은 혈소판 감소, 혈액응고인자의 이상, 혈관에 병변이 있을 때 발병한다. 혈관이 무력해져 생기는 자반은 비타민C의 결핍(괴혈병)이나 부신피질호르몬제를 과도하게 사용한 사람에게도 발생한다.혈액응고인자 이상으로 생기는 자반은 혈전을 막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헤파린, 항응고제 등을 너무 많이 사용했을 때 역시 생긴다.주로 허리 아랫부분에 발생하며 일반 알레르기 질환인 아토피 피부염, 천식, 두드러기, 알레르기 비염이나 결막염처럼 인체의 면역세포가 자신을 공격해 생기는 자가 면역성 질환으로 보기도 한다.주로 5~6세 어린이에게 많이 발병하지만 20~30대 혹은 40~50대에서도 나타난다.알레르기성 자반증은 면역계의 문제로 발병하는 대표적인 혈관염이다. 촉진성 피멍과 함께 복통, 관절통, 심지어 콩팥 침범을 동반하면 H-S자반증이라고도 한다.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은 바이러스성 발진이나 감기에서 회복된 후 갑자기 발생한다. 소아 면역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의 90%를 차지한다. 소아는 6개월 정도 관찰기간 동안 자연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성인에게는 만성적인 경과를 겪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노인성 자반증은 대략 60~70세 정도의 노령에서 관찰된다. 특히 남성의 발생 빈도가 높다. 노화가 진행되면 혈관이 취약해져서 쉽게 탄력을 잃게 되며 살짝 부딪히는 정도로도 혈관이 터져 멍이 나타난다.가벼운 자반증은 2주 정도 지나면 자연 치유되지만 재발 우려가 높고 전신증상과 함께 복통이나 관절통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환자의 5% 정도는 콩팥 이상으로 사구체신염과 같은 합병증을 일으킨다. 증상이 심하면 위장관 출혈이나 장천공을 일으켜 극심한 복통을 유발하는 등 응급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드물지만 면역세포가 폐와 뇌를 공격해 폐출혈과 뇌출혈을 초래한다.또 겨울철이면 피부건조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 피부건조증은 지방 분비 감소로 피부 표면 보호막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증상이다. 이로 인해 피부 표면에 각질이 생기고 가려움증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긁거나 자극을 주면 피부 손상이 더 심해진다.특히 피부 지방층이 얇아지는 50대 이상은 겨울철 피부질환이 더욱 심각해진다. 노인의 85% 이상이 겨울철 피부건조증으로 고통받는다는 연구자료에서도 잘 알 수 있다.건조증의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특히 목욕이나 샤워를 할 때 때수건 또는 샤워폼 클렌징을 매일 사용하면 피부 장벽인 각질층의 수분막과 유분막이 파괴돼 건조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뜨거운 비누 목욕을 자주 했을 때도 흔히 나타난다. 피부 각질층의 정상 수분 함량은 15~20%며 가을과 겨울철에는 수분 함량이 10% 이하로 내려가 피부가 하얗게 들뜨거나 거칠게 올라온다.겨울철 목욕습관과 피부 건조증은 연관성이 깊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피로를 풀기 위해 장시간 고온의 욕탕에 몸을 담그거나 높은 온도의 찜질방에서 지나치게 땀을 빼면 피부의 수분 손실이 커지면서 건조해진다. 결국 피부의 탈수 증상이 일어나 건조증이 악화되는 것이다.가려움증이 심해지면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가렵다고 반복해서 긁게 되면 피부가 두꺼워지는 태선화와 더불어 피부색도 변색되므로 건조함을 심하게 느낄 때는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도움말: 민복기 올포스킨피부과의원 대표원장대구·경북피부과의사회장이동률 기자 leedh@idaegu.com

[텔레마케터 감정조절법]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나요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텔레마케터 10명 중 2~3명꼴로 우울증 증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텔레마케터는 통화 중 불쾌한 경험을 한 후에도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하는 직무 스트레스, 고객이 화를 내더라도 감정을 억누른 채 매뉴얼대로 대응해야 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텔레마케터의 정신적 스트레스.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감정 표현 편안하게 일하면서 고객에게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감정은 무조건 참지 말고 편하게 표현하자. 또 고객이 드러내는 감정에도 편하게 대처하자. 고객 입장에서 화가 날 수도 있고 억울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상대의 감정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 고객의 감정이 ‘나’라는 개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나 회사, 그 외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상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긍정적 사고 우울증은 실제 내가 느끼는 감정과 조직에서 요구하는 감정의 부조화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조직에서 요구받은 감정을 실제 경험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노력도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 바로 풀기 스트레스는 평소에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받았다면 쌓아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수다나 깊은 심호흡, 스트레칭, 소리 지르기 등 일시적으로나마 감정을 풀 수 있는 나만의 해소법을 찾는 것이 좋다. 장기간 감정이 누적되면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조차 피곤하게 느껴질 만큼 예민해지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 이때는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고 푹 쉬는 것이 도움 된다. 우울증이나 화병 등 증상이 심해지면 대인기피증이나 공황장애로 발전할 수 있고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폭력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지속되면 전문가를 찾아가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도움말: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이동률 기자 leedh@idaegu.com

일제강점기 모든 암자 해체되고 불상 옮겨가는 수난 속 꿋꿋이 기개 지켜온 호국사찰

대둔사는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신라 눌지왕 때인 446년에 창건했다. 이후 화재 등으로 불에 탄 것을 여러 차례 중건했다. 조선시대 들어 사명대사가 중건하고, 승병 10만 명을 주둔시켰다. 현재 사찰 터는 당초 대둔사 터가 아니라, 산내 암자였던 청련암이 있던 곳이다. 불교는 왕족들이 민심을 달래고 하나로 모으기 위한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였다.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온전히 이 땅에 뿌리내린 불교는, 그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하며 국교의 위치까지 오른다. 세상살이의 팍팍함을 달래주고 연회를 베풀어, 백성들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미래에 대한 기대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했다. 왕족과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성장한 불교는, 외세 침략기에는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에도 불구하고, 목탁과 염주 대신 칼과 창을 들고 외세와 맞서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켰다. 호국 불교의 역할을 든든히 한 셈이다. ◆호국 사찰 대둔사, 사명대사 10만 승군 주둔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복우산 기슭 평평한 곳에 앉은 대둔사는 호국 사찰이다. 사명대사 유정이 조선 선조 39년(1606) 중건한 후, 10만 명의 승군을 주둔시켰다고 한다. 구미시 무을면 수다사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둔사는 신라 눌지왕 때인 446년,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했다는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 이후 고려 고종 18년(1231) 몽골의 침략으로 불탄 것을 충렬왕 때 왕자 왕소군이 출가해 중창하고, 유불교체기 다시 폐허가 된 것을 임진왜란이 끝난 후 사명대사가 암자를 10개나 거느린 큰 규모의 사찰로 중건했다. 사명대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둔사의 시련은 계속됐다. 일본 강점기 때는 사찰의 모든 암자가 해체되고, 시왕전의 불상마저 진주의 어느 사찰로 옮겨 가는 수난을 겪었다. 최근 들어 신도들의 모금으로 여러차례 중수해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현재 전각이 놓인 위치는 당초 대둔사가 있던 자리가 아닌, 산내 암자였던 청련암이 있던 자리다. 대둔사 터는 여기서 서남쪽으로 300여 m 떨어진 곳에 있다. 현재 대웅전과 명부전, 응진전, 요사채, 삼성각 등의 전각이 남아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 말사다. ◆유물, 유적 대웅전에 봉안돼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33호)은 종이와 삼베를 몇 겹씩 발라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힌 불상이다. 대둔사에는 2점의 보물이 있다. 하나는 보물 제1633호인 대둔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난해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한 대웅전(제1945호)이다. 대웅전에 봉안돼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종이와 삼베를 몇 겹씩 발라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힌 건칠 불상이다. 고려시대 충렬왕 때 왕자 왕소군이 출가해 대둔사를 중창할 당시에 조성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불상의 형태로 보아 이보다 좀 더 늦게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양손만 나무로 제작하고 나머지는 모두 건칠로 제작됐다. 고려시대 건칠여래상은 나주의 심향사 건칠여래상 등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만 확인됐는데, 대둔사의 아미타여래좌상의 등장으로 경북도에서도 고려 후기 건칠여래상이 조성됐다는 것이 확인됐다. 특히 대둔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그 규모가 1m가 넘는 큰 규모로 관심을 끌고 있다. 대둔사 대웅전은 역사적, 건축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보물 제1945호로 지정됐다. 1987년 대웅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상량문에는 광해군 6년(1614년)에서 순조 4년(1804년)까지 모두 다섯 차례나 수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웅전은 지형이 낮은 앞쪽에 석축을 높이 쌓고 가운데에 계단을 두었다. 대둔사 대웅전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이다. 건립 당시의 단청과 문양이 남아 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하고, 자연석 초석 위에 원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이다. 내부는 우물천장을 하고 있고, 닫집의 조각이 섬세하다. 대웅전의 꽃살 여닫이문. 대둔사 대웅전은 2017년 11월 보물로 지정됐다. 대웅전 정면에 있는 꽃살 여닫이문과 뒷면 오른쪽의 영쌍창(창호 가운데 기둥이 있는 창)이 고전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 건립 당시의 단청문양이 잘 보존돼 있다. 건축 양식으로 보아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둔사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단층집이다. 명부전 내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상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바로 옆에는 명부전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단층이다. 명부전 내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상이 모셔져 있다. 명부전의 또 다른 이름은 지장전이다. 윤회 과정에서 지옥 중생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 구원해 내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전각이다. 명부전에는 망자를 심판하는 열 명의 심판관이 있어 시왕전(十王殿)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 대둔사 명부전에는 ‘유명도’ 1폭과 역대 제선사의 진영 5폭이 봉안돼 있다. 건물의 조성연대는 대웅전과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대둔사의 대웅전 북쪽 언덕에 응진전이 있다. 17세기 후반 조성된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단층집이다. 응진전 안에는 토제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돼 있으며, 중앙 본존을 비롯한 협시보살상은 모두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부전 옆에 있는 소형의 당간지주. 당간지주석의 북쪽 측면에 ‘강희5년병오(康熙五年丙午)’라는 글귀가 있어, 1666년(현종 7년)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짐작된다. 명부전 옆에는 당간지주가 있다. 소형인 대둔사 당간지주는 북쪽 측면에 ‘강희5년병오(현종 7년, 1666년)’ 라는 글귀가 있어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다. ◆대둔사 가는 길 대둔사는 선산에서 상주 낙동까지 선상서로를 따라가다, 옥성면 구봉리 못미처 왼쪽으로 난 산촌옥관로를 따라 3.5㎞를 더 가면 된다. 산촌옥관로를 따라가다 보면, 밭이었는지 논이었는지 알 수 없는 농지에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돌들을 쌓아 둔 곳이 있다. ‘돌무지’라고 표기한 큰 입석이 아니더라도, 그 수와 규모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이곳을 지나 좀 더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대둔사 700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작은 다리를 건너, 산을 오른다. 서늘한 늦가을 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훑고 지나간다. 대둔사는 복우산 중턱에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느라 턱까지 차오른 숨은 대둔사 마당에 서면 감탄사로 바뀐다. 탁 트인 전망에 멀리 보이는 첩첩의 산맥들과 골짜기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고찰 대둔사는 소나무가 빽빽하게 장막을 친 복우산 품에 안겨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대웅전 처마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고요한 산사를 깨운다. 원래 대둔사는 이보다 서남쪽 300여m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터는 산내 암자였던 청련암이 있던 곳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를 모신 전각이다. 석가모니부처는 모든 번뇌를 쓸어버리고 깨달음을 얻었기에 위대한 승리자요,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대웅)에서 석가모니부처를 모신 전각을 대웅전이라 불렀다. 석가모니 부처와 함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를 협시보살로 모신 경우를 높여서 ‘대웅보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둔사의 대웅전은 다포계, 겹처마 아래 독특한 문양과 조각을 갖추고 있다. 색 바랜 단청과 문양들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눈길을 끈다. 이 큰 나무와 부재들을 일일이 조각조각 깎아 서로 맞물리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했을까. 대웅전과 명부전을 돌아 절 앞마당에 섰다. 늦가을이라 나뭇잎이 떨어져 뒹굴 만도 한데, 깨끗하다. 이 사찰 주인의 깔끔한 성품이 너른 절 마당에 비쳐든 듯하다. 내 마음의 뜨락도 저절로 정갈해진다. 조용한 산사를 말없이 거닐다 보면, 어느새 들뜨고 복잡한 세상이 좀 더 단순해지는 것 같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복잡하기만 한 세상 때문에 우리의 몸은 온종일 세파에 시달리고 있다. 잠시라도 세상의 일은 잊어버리고, 의미 없는 온갖 화려한 시각적인 자극을 멀리한 채 이렇게 조용한 산사의 뜰을 뒷짐 지고 느릿느릿 걷노라면, 잠시동안 이나마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또 다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대둔사 마당 한쪽 화단에 제철을 잊은 채 피어난 불두화.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을 피운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사찰의 주인은 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마당 끝에 화단을 만들고, 메리골드라고 부르는 천수국과 맨드라미, 천일홍, 국화 등 여러 종류의 꽃을 심었다. 진한 자주색의 맨드라미보다, 잎을 모두 떨구고 제철을 잊은 채 두어 송이 하얀색 꽃을 피워 낸 불두화에 눈길이 간다.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을 피운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백당나무를 개량한 종인데, 백당나무 꽃에서 암술과 수술을 없애고 꽃잎만 겹겹이 자라게 한 원예품종이다. 이 때문에 꽃 속에 꿀샘이 없고, 번식할 필요가 없어 향기도 없다. 꿀샘이 없으니, 벌과 나비도 외면해 생명이 없는 조화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 꽃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꽃들은 피기 전이나 피어나면서 꽃잎을 활짝 열지만, 불두화는 꽃을 피운 상태에서 계속 꽃을 키우고, 연초록에서 흰색으로 색깔을 바꾼다. 철모르고 핀 대둔사 마당의 불두화를 보면서 모든 식물이 겨울잠을 재촉하는 이 시기에 왜? 꽃을 피웠는지 궁금해진다. ◆주변 관광지 구미 옥성면에 있는 대둔사는 상주시 낙동면의 경계지역에 있다. 근처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구미시 승마장이 있다. 인근 낙동면을 가면, 낙단보를 둘러보고 강변에 줄지어 들어선 한우 식당에서 저렴한 가격에 한우를 맛볼 수 있다. 또 대둔산에서 내려와 만나는 산촌옥관로는 선산까지 이어진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져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자문=권삼문 전 구미시청 학예사 사진=한태덕 전문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