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인 염증 질환…초기 외용증만으로도 효과 기대

여드름은 모공 입구를 막는 면포에서부터 붉은 뾰루지 형태의 구진, 노란 농이 들어찬 농포, 농포가 피부 아래에서 터져버린 결절과 장기간 지속된 염증으로 인한 반흔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만성적인 염증 질환이다.특히 면포는 여드름의 주 병변인데 외부로 노출돼 까맣게 착색된 면포인 블랙헤드(개방 면포), 내부에 있어 노랗거나 희게 보이는 화이트 헤드(폐쇄 면포)로 구분한다.여드름은 사춘기 호르몬 변화에 첫 신호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0대 청소년의 85%가 여드름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일반적으로 25세 이전에 사그라들지만 여성의 12% 정도에서는 44세까지 지속된다는 보고도 있다.태어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신생아에서 생기는 신생아 여드름도 있으며 남자아이에게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며칠 또는 몇 주 후에 저절로 없어진다.여드름은 특징적인 모낭성 병변이다. 여러 이유로 모공 입구를 틀어막는 각질 덩어리인 면포가 발생해 피지 배출을 막고 ‘프로피오니박테리움 아크네’와 같은 여드름 원인균과 각질, 피지 등이 염증성 물질을 중개해서 여러 염증세포가 모낭 주위로 모여들도록 해 여드름을 만들어 낸다.여드름의 발생 연령은 대다수가 12~25세이지만 30~40대에서도 제법 나타난다.노출부 위인 안면에 주로 발생해 환자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초래한다.여드름의 임상 증상, 환자의 삶의 질 향상, 치료 비용 등을 많은 점을 고려해 여드름 치료방법을 선택하면 된다.초기 경증의 경우 외용제만으로도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면포 용해제나 항생제를 주로 사용한다.중등도 이상의 여드름이라면 압출 등의 외과적 요법과 경구 투약을 같이하는 것이 좋다. 약으로는 항생제와 비타민A 전구물질인 이소트레티노인을 사용한다.항생제는 ‘미노씬’ 혹은 ‘독시싸이클린’을 식사 중간에 복용해 여드름의 염증을 줄여줄 수 있다.경구 이소트레티노인은 ‘로아큐탄’이라는 상품명으로 30년 가까이 사용되고 있고 현재에도 항생제와 더불어 가장 흔히 사용되는 여드름 치료제 중 하나이다.이 약제는 여드름의 4가지 주된 병인인 피지분비, 모공 각화로 인한 면포 형성, 여드름 세균의 증식, 염증반응에 모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약제이면서 장기간의 여드름 소실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여드름 치료에서 가장 혁신적이라고 평가될 만큼 유용한 치료제다.하지만 피부 건조, 간 기능 장애 등을 보일 수 있어 성장기 청소년들은 성장판이 일찍 닫히는 부작용에 주의해야 한다.외과적인 치료는 여드름의 원인인 면포를 제거하고 농포와 낭종의 배액으로 빠른 치료를 유도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경우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PDT같은 광화학요법이나 고주파 전기침으로도 피지선을 파괴할 수 있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선택한다.일단 여드름이 조절되면 여드름 자국이나 흉터 치료를 위해 여러 가지 레이저를 이용한다. 혈관 레이저나 IPL을 이용해 붉은 자국을 옅게 만들고 물리적인 혹은 화학적인 박피술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움푹 패인 흉터는 박피 레이저와 화학 박피술을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간혹 턱을 중심으로 튀어나온 흉터가 발생하는데 부신피질홀몬 병변 내 주사로 치료할 수 있다.여드름을 초기에 치료하지 못하면 ‘응괴성 여드름’ 등의 중증 여드름이나 돌출된 흉터 모양 여드름인 ‘켈로이드성 여드름’으로 심해질 수 있어서 반드시 피부과 전문의와 상의해 치료하는 것을 권한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 김천시(상)

경상도와 충청·전라도가 맞닿은 영남의 제일관문도시인 김천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유산과 예술적 성향이 강한 도시로 성장 발전해 왔다. 삼산이수(三山二水, 三山: 금오산·황악산·대덕산, 二水: 직지천·감천)의 고장으로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온다 하여 황악산이 유명하고, 일명 불령산이라고도 불리는 수도산과 경북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금오산 등이 수려한 산수를 자랑한다. 김천은 무엇보다도 포도와 자두의 고장이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추풍령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탁 트인 벌판은 모두 포도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도는 전국생산량의 15%를 차지하고, 최근 신품종 샤인머스켓은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어 수출 효자종목이 되고 있다. 그리고 김천 자두는 22%, 김천 호두는 29.3%의 전국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김천은 포도·자두·호두의 전국 최대 생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 농촌지역 1.이화만리(농소면)백두대산 줄기에 위치한 고장으로 산천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한국농어촌공사가 추천한 4월 꽃과 함께 농촌체험을 해볼 만한 곳 10선에 선정된 곳이다. 매년 4월이면 온 마을을 뒤덮는 자두꽃이 과히 백설의 장관을 이룬다. 이 시기를 맞춰 ‘김천 자두꽃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2. 오봉저수지(남면)최대 담수량 400만t, 최대수심 20m, 둘레 4㎞의 규모로 구미·김천·대구로의 접근이 용이하며, 수상스키, 웨이크보드, 땅콩 보트, 바나나보트 등 수상 레포츠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주변에 생태습지와 수변공원, 수변 생태학습 체험장, 다목적 문화광장 등을 갖추고 있다. 3.금릉빗내농악(개령면)김천시 개령면 광천2리(빗내마을)에 전승되는 농악이다. 1984년 12월29일 경북도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다. 앞쪽으로 넓은 개령들이 있고 뒤쪽에는 감문산성의 성터와 군사를 동원할 때 올라가 나팔을 불었다는 취적봉(吹笛峰이) 있다. 삼한시대 때 나랏제사와 풍년을 비는 별신제(別神祭)를 지냈는데, 이것이 점차 혼합되어 동제(洞祭)형태로 전승됐다. 4.감문국 금효왕릉(감문면)감문국 왕릉으로 전해지는 금효왕릉은 궁궐지로부터 감문산을 넘어 북쪽으로 8km 떨어진 현재의 감문면 삼성리(오성마을) 밭 가운데에 봉분 높이 6m, 지름 15m 크기로 김천지방에 남아있는 최대의 고분이다. 오랜 세월 경작지로 잠식이 되어 전체적인 규모가 축소됐다. 5.김천포도(봉산면)김천 포도는 전국 포도 생산량의 15%로 전국 최대 생산량을 차지하고 있다. 봉산면이 주산지로, 새콤달콤한 맛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김천 포도는 게르마늄 함량이 높은 토양과 일교차가 큰 재배여건으로 포도의 색깔이 좋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6.직지사(대항면)신라 눌지왕 2년(418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로, 조선2대 정종대왕의 어태가 안치되어 있고, 임진왜란 때 국운을 되살린 사명대사가 출가한 사찰로 유명하다. 보물로 지정된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을 비롯해 사명각, 천불전 등이 경내에 있다. 7.감천참외(감천면)참외는 수분이 많아 이뇨작용이 뛰어나며 당분이 많아 피로회복에 효과적이다. 감천 참외는 양질의 토질에 친환경농법을 사용하여 깔끔한 외형과 단단한 과육으로 저장성이 좋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당도가 높고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8. 장바우감자(조마면)색깔이 희고 비옥한 사질양토에서 생산돼 맛이 좋다. 조마면 장암리·강곡리·신안리 일대에 감자재배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현재 170여 농가가 50ha를 재배하여 조기 출하해 농가소득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알이 굵고 맛이 좋아 소비자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 오면 왕 감자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9. 방초정(구성면)이정복이 1625년에 처음 세웠으며, 1689년에 훼손된 것을 송제 이해가 중건해 주언 기문을 지어 남겼다. 방초정에는 당대의 유명한 문장가와 묵객들이 다녀갔고 그들의 시와 글이 많이 남아 있다. 현판 글씨는 김대만의 작품이다.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붉게 물든 연못의 백일홍은 방초정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 10.흑돼지(지례면)1990년대 초반부터 지레 흑돼지의 혈통 보전과 개량 보급에 힘써왔다. 특히 1993년부터 사라져 가는 지례 흑돼지의 특성을 되살리려는 노력에 힘입어 지레 흑돼지가 복원됐다.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 특징으로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와 원산지에서 맛보는 원조의 풍미를 즐긴다. 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왕위세습 특별 케이스·최초 섭정·최대 영토…신라시대 ‘타이틀 컬렉터’

[{IMG01}] 신라 24대 진흥왕은 어려서 즉위해 태후가 10여 년을 섭정했다. 진흥왕은 삼국유사에는 15세, 삼국사기는 7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흥왕의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이고, 아버지는 법흥왕의 동생이다. 법흥왕이 아들 없이 죽자, 왕의 조카이자 외손자가 왕위를 이은 이색적인 케이스다. 신라 초기에서 중기까지는 왕위세습을 자녀 또는 형제에게로 이으면서 여자에게도 세습권을 인정했다. 진흥왕은 신라 건국 이래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왕이다. 불교 이념을 근간으로 화랑도를 창설해 나라의 동량을 키우는 한편, 정신적 통일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왕권을 크게 강화했다. 황룡사를 짓고, 최대불상 장육존상을 세운 진흥왕은 아들의 죽음으로 더욱 불교적으로 심취하기도 했다. 진흥왕이 말년에 국사를 편찬하고 병권을 거머쥔 실세 거칠부와 갈등을 빚었다. 43살의 젊은 나이에 죽은 진흥왕의 사인을 두고, 거칠부와의 갈등에 의심을 두는 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번 호에서는 진흥왕의 즉위와 친정, 업적에 대해 지금까지 남은 흔적을 더듬어보면서 개괄적으로 알아본다. 다음 호에서 진흥왕의 전쟁과 거칠부와의 갈등을 살펴보면서 진지왕의 즉위 과정도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로 한다. ◆삼국유사: 진흥왕제24대 진흥왕은 왕위에 오를 때 불과 15세였으므로 태후가 섭정을 했다. 태후는 법흥왕의 딸이며 입종갈문왕의 왕비였다. 태후는 임종할 때, 머리를 깎은 뒤 승려 옷을 입고 세상을 떠났다. 승성 3년(554) 9월에 백제의 군사가 진성에 침략해 와서 남녀 3만9천 명과 말 8천 필을 빼앗아갔다. 이에 앞서 백제는 신라와 군사를 합하여 고구려를 치려고 했으나, 진흥왕이 말하기를 “나라의 흥망은 하늘에 달렸는데 만약에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감히 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라 했다. 바로 이 말이 고구려로 전달되니 고구려가 그 말에 감동하여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었다. 이에 백제가 신라를 원망하여 이렇게 침범한 것이다. ◆흔적△진흥왕 순수비: 진흥왕은 18세가 되면서 섭정에서 친정체제로 전환하고, 연호를 바꾸어 정복 전쟁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전쟁으로 빼앗은 지역에 차례로 기념비를 세웠는데 이를 순수비로 부른다.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남한강 상류를 차지한 것이 그의 영토 확장을 향한 첫발이었다. 특히나 동맹국의 임금이었던 성왕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게 한 것은 백제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계기가 되었다. 진흥왕은 단양에 단양 적성비를 세웠다. 당시 남한강 유역은 고구려 땅이었고, 중원 고구려비가 근처에 있었다. 진흥왕이 영토를 넓히고 국경지역을 돌아보면서 순수비를 세웠던 것은 1천500년 전이다. 순수비는 비교적 글자들이 깨끗하게 보존된 역사의 기록으로 과거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낙동강 유역에는 창녕비(561)를 세우고, 북쪽으로 올라가 한강 하류에는 북한산비(555)를, 함경도 지역에는 황초령비(568)와 마운령비(568)를 세웠다. 모두 정복 사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IMG07}] 신라가 한강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은 단양 적성비와 북한산비다. 단양 적성비는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서 단국대학교박물관 조사단에 발견돼 1979년 국보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93cm, 윗너비 107cm, 아랫너비 53cm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물갈이한 뒤, 그 위에 직경 2cm 내외의 글자를 음각하였다. 윗부분은 파손되었으나 좌우 양 측면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비문은 전체 22행에 각 행당 20자씩 새겨져 현재 남아 있는 글자 수는 비면의 288자와 주변의 발굴을 통해 수습된 21자를 합쳐 309자이다. 적성비는 이사부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출정하여, 고구려 지역이었던 적성을 공략하고, 그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와 가족 등 주변 인물을 포상하고, 적성지역의 백성들을 위로할 목적에서 세웠다. 이 비에는 기존의 문헌 자료에 보이지 않는 지방통치조직과 율령, 조세제도 등의 내용이 기록돼 신라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황룡사 터: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나 절로 고쳐 지었다. 17년 만에 완성한 역사다. 이어 진흥왕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의 땅에 닿아 진흥왕이 이것을 재료로 삼존불상을 만들었다. 나중에 선덕여왕이 황룡사 금당 남쪽에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다.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했는데, 백제의 아비지가 645년에 완공했다. 진흥왕부터 4명의 왕이 94년에 걸쳐 황룡사 가람을 완공했다. 그러나 몽골족의 침입으로 1238년 모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금당터 초석과 불상의 기단만 덩그렇게 남아있다. 1976년부터 시작된 황룡사지 발굴에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이 큰 치미, 금제합, 명문판, 염주, 청동반함, 안합, 금동불 입상, 금동보살 불두 등의 유물 4만여점이 나왔다.경주시는 황룡사터 서쪽에 황룡사역사문화관을 건설해 황룡사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찬란한 신라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사교육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방문객들의 마음을 모아 황룡사 복원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임신서기석: 진흥왕은 화랑제도를 도입해 청년들을 나라의 기둥으로 길렀다. 임신서기석은 신라시대 화랑도 2명이 나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을 새긴 작은 돌비석이다. 1934년 경주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지 부근에서 발견되어 보물 제1411호로 지정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임신년’이라는 시기를 비롯해 74자가 새겨져 있다. 당시 청소년들의 강한 유교 도덕 실천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진흥왕릉: 경주시 서악동 삼층석탑 서북 방향의 사적 제177호로 지정된 고분은 진흥왕의 업적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진다. 고분의 높이는 5.8m 정도로 낮고, 지름도 20여m 규모로 정면 외에 삼면이 키 낮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으로 고분의 아랫부분에는 자연석들이 몇 개 드러나고 있어 보호석렬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무열왕릉 북쪽으로 4기의 높은 고분이 있는데 그 중 위에서 두 번째를 진흥왕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뒤편의 고분을 법흥왕릉으로 보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에서 기록하고 있는 ‘애공사 북쪽’ 등의 내용을 참고한 주장으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진흥왕신라 제24대 진흥왕은 일곱 살에 왕위를 이어받았다. 540년에 즉위한 진흥왕을 대신해 어머니 왕태후의 섭정이 10여년 이어지는 동안 왕업에 대한 공부를 살뜰히 했다. 신라시대 최초의 섭정이다. 진흥왕의 이름은 삼맥종, 또는 심맥부라고도 불렀다. 법흥왕의 동생 입종 갈문왕의 아들로 534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인 지소부인이다. 갈문왕이 자신의 조카딸과 결혼했다. 같은 신분끼리 결혼해야 후손이 그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당시에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540년 법흥왕이 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한 채 죽자, 일곱 살의 삼맥종이 왕위에 올랐다. 당시 아버지인 갈문왕도 이미 사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섭정은 지소부인 태후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인 정치를 보필한 신하는 이사부와 거칠부였다. 어린 진흥왕을 왕좌에 오르게 하는데도 이사부와 거칠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사부와 거칠부 모두 법흥왕 대에서 진흥왕 때까지 정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사부는 지증왕 대부터 정계에 진출해 한 세대 앞섰다. 진흥왕은 18세가 되면서 기개가 넘치는 청년으로 성장해 친정을 시작하면서 연호도 법흥왕 때부터 쓰던 건원에서 개국으로 고쳐 사용했다.진흥왕은 친정을 시작하면서 영토 확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관산성 전투로 한반도의 중부를 차지하며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기 시작했다. 왕태후는 진흥왕 즉위 첫해 죄수들을 사면하고 관리들의 벼슬을 한 등급씩 올려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사부를 병부령, 지금의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국가의 모든 군사적인 일을 맡겼다. 귀족들의 협의체인 화백제도를 통해 정책을 결정해왔던 신라에서 병권을 전담하는 벼슬이 생기고, 왕이 벼슬을 임명할 정도로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사부는 지증왕 대에 우산국을 점령한 바 있는 장군으로 어린 왕과 군사적 식견이 부족한 왕태후를 도와 진흥왕 초기 군사와 정치를 이끌었다. 신라 최고의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자고 건의한 사람도 이사부이다. 왕태후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했다.왕태후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은 최초의 절 흥륜사를 완성하고, 일반 백성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 등 불교를 장려했다.진흥왕은 영토확장에 나서면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는 화랑제도를 만들어 청소년들을 나라의 동량으로 육성했다. 영토는 진흥왕 최대의 관심사였다. 젊고 패기만만한 진흥왕은 신라가 더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정을 시작하면서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의 변경을 침략해 지금의 충주와 단양 등 남한강 변에 있는 10개 군을 차지했다. 그리고 3년 뒤 관산성 전투를 통해 한반도 중부를 점령 삼국의 패자적 위치에 올랐다. 젊은 왕의 걸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555년에는 가야연맹에 속해 있던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에 하주를 설치했고, 이듬해에는 함경남도까지 영역을 넓혀 안변에 비열홀주를 설치했다. 그리고 6년 뒤에는 고령의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가야의 영토를 완전히 신라에 편입시켰다. 신라의 영토가 한반도 땅의 절반 이상을 장악해 신라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보했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삼국통일의 물적, 인적 토대가 되었다. 진흥왕은 연호를 ‘크게 번창하다’는 의미인 ‘태창’으로 다시 바꾸어 영토 확장과 신라의 번영을 자축했다. 이어 진흥왕은 서울을 거쳐 함경남도 함흥의 황초령, 이원군에까지 자신이 개척한 영토를 직접 돌아보면서 백성을 위로하고 포상했다. 또 이를 기념하고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북한산 순수비, 황초령 순수비, 마운령 순수비 등을 세웠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IT, 기술이 아닌 ‘아픈 지구’ 위한 치료약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공익광고의 한 구절이다. 너무 들어 고유화된 문구, ‘푸른 강산’이라 함은 어느새 선택이 아닌 필수 사안으로 자리 잡았다. 환경에 관한 중요성은 특정 어젠더가 아닌 신변잡기를 품은 채 생활 곳곳으로 적용되고 있다.그도 그럴 것이 인간 역시도 생태계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은 특정대상이 아닌 그저 더 많은 종의 동·식물과 공존하는 존재다. ‘상생’과 ‘조화’가 뒷받침돼야 함이 마땅하다는 방증이다.히포크라테스는 자연이 아니면 몸 안의 질병을 결코 이겨낼 수 없음을 피력했다. 대구의 ‘나무 아버지’로 회자되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재임 기간(7년) 중 약 6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 결과 ‘전국 최서 지역’이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초연결’ 시대의 도래, 이는 ‘연결되는(Connective)’는 사회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된 계기다. 이는 곧 환경보호의 명분을 오롯이 담아낸 ‘친환경적 정보기술(IT) 기술’을 낳은 셈. 재활용의 아이덴티티를 품은 IT 기술력을 넘어 전 방위적 차원으로 환경오염을 미연에 방지하는 IT 기술이 ‘신성장’의 가능성을 표출하고 있다.여기에는 환경과 IT의 접목을 두고 과거와 현재의 존립 명분을 개별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과거의 IT가 인간 편의, 경제재건, 부가가치 창출 등의 수익구조를 주축으로 했다면, 진정한 의미의 환경 IT의 융합이라 함은 사람과 그 사람들이 부대껴 살아가는 지구 전반으로 그 방점을 찍는다. ‘그린 IT’의 이름으로 말이다.실제 미국 내 유수의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IT 전략 기술 중 하나로 그린 IT를 적시한 바 있다.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서 IT 기술을 적용, 이윤 추구를 넘어 환경 보존의 시너지를 거두고자 하는 그린 IT의 기조를 업계 전반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증명이다.인공지능(AI)는 이제 ‘집단지성’ 발현을 위한 든든한 배경이다.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 더 나은 아이디어를 도출해가는 과정에서 AI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지대할 것임이 분명하다. 타인과의 협업,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환경 보존과 능력의 수요 제고를 영위해 가야 함이 마땅하다. 선배들이 일궈 놓은 환경 보존의 씨앗을 AI로 하여금 싹을 돋게 하는 일련의 작업, 이제는 우리의 몫이다.상황에 부합하고자 하는 AI와의 맞물림, 이것은 욕구 충족을 위한 주요 제반사안 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인공지능으로 점철된 최신의 아파트라 할지라도, 바람이 지나갈 자리는 피해서 건설하겠다는 건축주의 신념, 그리고 원칙, 이러한 마음이 결집될수록 환경과 IT의 상생은 더욱 큰 명분과 실리적 결실을 생성해냄을 믿어본다.물아일체의 평화. 그냥 얻어지는 산물은 결코 아니다. ◆미세먼지 측정부터 예방·관리까지‘건설에 IT를 입힌다’는 문구란 더이상 이질적이지 않다. 초고도화된 AI 기술 구축을 위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오늘이자, 기대해 마지않는 내일이다.이제는 건축물뿐 아니라, 건축물 생성을 위한 현장 관리에도 AI 기술은 명문화됐다. 국내 유수의 건설사는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현장관리시스템을 도입, 고도화된 연계 시스템을 통한 현장 내 발생되는 소음, 비산먼지 등의 유해환경을 상시 모니터링한다. 여기에는 딥러닝 데이터 시스템을 적용, 분석된 유해물질을 예방·절감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미세먼지 관련은 앞서 연재서도 다룬 바 있다. 최근 뉴스의 도입은 “미세먼지가 짙게 낄 것으로 전망”으로 점철되는 실정. 지구 온난화와 더불어 미세먼지의 유해성이 뜨거운 감자로 대두된 상황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세먼지 방지를 위한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등의 품목은 가파른 소비 상승을 보였다. 이 같은 관심 제고는 곧 미세먼지와 AI 기술의 접목을 공고히 했고 이를 통한 해갈방안 모색에 혈안이 된 다수의 기업을 낳았다.이 중 미세먼지 예방 및 대처를 위한 국내 유수 통신사들의 발걸음이 고무적이다.미세먼지 지도 앱을 통해 한국환경공단의 데이터와 통신사에서 설치한 측정기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활용, 공식화된 미세먼지 측정치를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범주는 시·군은 물론 읍·면·동 단위에까지 이른다.공기 질 수준을 실시간 제공하는 시스템도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IoT를 활용, 집 내부 곳곳의 공기 질 상태를 측정 후 스마트폰을 통해 미세먼지, 온도 등의 컨디션을 단계별로 제공한다.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미세먼지 앱’도 상용화를 위한 마지막 담금질에 매진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현 위치를 넘어 각 지역별 미세먼지 수치를 제공, 비교할 수 있다. 6개 광역시 1천500개에 이르는 ‘공기질 관측망’의 구축이 이를 가능케 한다.이 밖에도 스마트폰을 이용한 ‘미세먼지 청정 보행로’ 안내 서비스와 실내공기, 날씨 예보까지 제공하는 IoT 창호손잡이, ‘미세먼지 대응형’을 캐치 프레이즈화한 ‘스마트웨어’, 아파트 내부 각 지정된 장소에 장착된 측정센서를 통해 내·외부 공기 질 수준을 감지, 데이터화한 뒤 세대별 환기 시스템과의 연동을 통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고취시키는 ‘그린 아파트’도 대중의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왔다. ◆IT로 수자원을 관리하다물은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중 98%가 음용이 불가한 ‘바닷물’이다. 국제 연합 환경 계획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극심한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다. 이와 더불어 향후 5년 전후로는 3분의 2에 가까운 국가가 물 부족의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기도 했다.대한민국도 물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천200㎜로, 세계 평균을 웃돌고 있다. 하지만 땅 면적 대비 인구 분포가 촘촘한 터라 개인당 연 강수량을 수치화하면 10% 초반 선에 그치는 실정. 이마저도 장마기간에 집중돼 있어 그 심각성은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물 쓰듯 한다’는 관용어가 이래저래 겸연쩍어진 셈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물 관리와 AI의 접목을 위한 시도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의 생산과 소비 패턴을 상시로 체크·분석함으로써 상수도와 수자원의 합리적 관리를 취하겠다는 복안이 바로 그것.분석된 궤적을 빅데이터화한 후 기존 수자원 관리의 임계점을 타파, 지역 간 수자원 편차를 좁히고 물 복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전 지구촌 물산업의 급변에 능동적 대처를 영위함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융합이 아닐까. ◆국가별 환경IT 어디까지 왔나이처럼 환경보전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 추세로 발돋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인, 환경보호와 AI의 융합은 철저히 고찰되고 아울러 동반 성장시켜야 할 당위성이 농후해졌다.실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툴을 활용, 건축 자재 제조과정서 파생되는 탄소 배출량을 측정 후, 배출량 30% 절감을 목표로 한 시스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중국 유수의 인터넷 기업은 사옥 전반으로 초고도화된 IT를 접목했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에너지 소비 절감 차원에서다. 화장실 온수는 사옥 내 서버 컴퓨터서 발생하는 열로 데운다.이와 더불어 각 사무실에 배치된 AI 시스템이 직원들의 에너지 이용 패턴을 분석, 데이터화 한 후 냉·난방 강도와 조명 세기 등을 컨트롤한다. 이를 통해 여타 비슷한 수준의 사옥 대비, 일일 탄소 배출량을 40% 정도의 수준으로 다운시켰다.직접적 환경관리 뿐 아니라, 원활한 관리 도모를 위한 ‘환경 행정’에도 AI 시스템이 십분 활용되고 있다. 최근 국내 모 지자체 소속 환경 연구소의 경우, 조직체계의 융합을 시발점으로, 환경보건 분야 간 개별의 배경을 취합, 이를 토대로 한 건강 관련 정보를 아우르는 빅데이터 구축에 나섰다.여기에는 ‘실용성’이 수반된다. 체계적이며 전 방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AI 기술을 혁신의 발판으로 삼아, 스마트의 이름을 딴 환경관리를 시행, 이를 통해 쾌적한 환경과 건강한 삶 구현에 발 벗고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자연과 어우러진 환경에서 하루 중 단 5분만이라도 걷는다면 사람의 인지 능력이 좋아진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업무환경을 자랑하는 ‘구글’의 기업 이념 중 하나다.인공지능의 청사진이 자칫 자연환경의 훼손으로 역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하지만 적절한 접목과 융합의 모토가 발현될 수 있다면 거스를 수 없는 시류인 4차 산업과 환경의 시너지는 응당 공고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아무리 자연을 불러 봐도, 자연은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초고도화된 AI 기술일지 언정 예상치 못한 오류는 분명 발견될 터, 다만 자연의 섭리에는 오류도, 실수도, 일말의 빈틈조차도 없음을 잊지 말자.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절경, 자연이 화공되어 그린 한 폭의 ‘진경산수화’일까

맑은 물에 의해 생겨난 긴 모래톱이 수려한 풍경과 함께 이어진다. 내성천은 소백산맥의 남쪽 기슭 봉화군에서 발원해 예천분지를 거쳐 낙동강 상류로 흘러든다. 예천의 내성천변에는 뛰어난 경관 덕에 유서 깊은 문화유적도 많다. ‘예천 선몽대 일원’은 2006년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 제19호로 지정됐다. 선몽대는 우암산 능선이 내성천으로 내려앉는 벼랑 끝에 자리한다. 앞으로는 내성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진경산수화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주변에는 우거진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굵은 노송의 줄기와 거북 등 같은 껍질들이 이곳에서 살아온 나무들의 시간을 가늠케 한다. 솔숲과 내성천의 흐름과 백사장, 그리고 단애 위에 서 있는 옛 건물이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한데 묶어 ‘예천 선몽대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명승에 지정된 것이다. 문화유적과 더불어 주위 환경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칭하는 국가지정 문화재이다. 명승은 국보, 보물, 사적 등과 같이 문화재보호법을 근거로 문화재청이 지정하여 발표한다. 지친 현대인들을 위해 향유할 수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 휴식과 위안의 장소를 제공한다. 그 안에 있는 나무와 풀 한 포기, 작은 바위 하나에도 우리의 역사가 곳곳에 서려 있다. ◆소나무 숲백송리 마을 옆으로 이어진 시원한 가로수 터널을 지나면, 문이 활짝 열리듯 내성천 물길과 십 리에 이른다는 백사장과 빼어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송림 사이에는 커다란 돌비석 두 개가 세워져 있다. 하나는 ‘선대동천(仙臺洞天)’이라 새겨진 비다. ‘선몽대가 산천에 둘러싸여 훌륭한 경치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다. 그곳에서부터 신선의 땅이 시작된다는 설명으로 느껴진다. 또 하나는 ‘산하호대(山河好大)’로 ‘산이 좋고 하천은 크고 길다’라는 의미다. 용이 승천하듯 힘 있는 몸짓으로 비틀어 오르는 거목소나무 숲은 신선이 내려와 놀았음직한 풍경이다. 송림이 끝날 무렵 우암의 기념비도 보인다. 선몽대 숲은 백송리 마을에서 내성천으로 연결되는 수구를 막아 수해를 방지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차단함으로써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을 보호림 또는 풍수상 비보림(裨補林)으로 보인다. 소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눕는다면, 신선이 꿈속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사각사각 밟히는 모래 소리가 기분을 좋게 한다. 숲을 지나 모래밭이 거의 끝나는 곳에 선몽대가 위치한다. 자연 암반을 있는 그대로 쪼아 만든 돌계단이 선몽대 입구에 있다. 신선만이 딛고 오를 수 있는 계단이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선몽대는 1563년(명종18)에 우암(遇岩) 이열도(李閱道)가 창건했으며, 그는 퇴계 이황의 종손(從孫)이며, 문하생이기도 하다. 선몽대는 우암이 그 자리에서 신선이 노니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그는 선조 9년 별시에 문과 급제해 승문원정자,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경산현감 등을 지냈다. 관리로서 청렴 강직했던 그는, 당시 관찰사의 그릇된 처사를 대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고향인 호명면 백송리로 돌아와 선몽대를 지었다. 우암산 북서쪽 벼랑 위에 내성천을 바라보며 정면3칸, 측면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세워진 정자다. 기단을 축조하지 않고 천연의 암반을 이용해 필요한 곳에만 초석을 놓았다. 1623년에 큰비로 무너져 1671년에 중건하는 등 이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저명인사들의 친필 시그곳에는 당시의 저명인사가 많이 모여 시를 지어 읊으며 선몽대의 창건을 축하했다고 한다. 이황은 선몽대(仙夢臺)라는 현판 글씨 석 자를 친필로 써 주었다. 현재 퇴계선생의 현판은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전시실에 소장돼 있다. 전시 설명문에는 ‘글씨에도 선계에 노니는 듯한 초탈적 감성이 미묘하게 묻어난다. 송설체의 유려한 필법 위에 왕희지의 굳세고 단정한 이른바 ‘퇴필’의 전형적인 서풍’이라고 적혀 있다. 퇴계는 ‘선몽대에 지어 보냄(寄題仙夢臺)’ 이라며 친필로 시도 써주었다. 노송 속 높은 누대 푸른 하늘에 꽂혀있고(松老高臺揷翠虛)/ 강변의 흰 모래 푸른 절벽 그려내기 어렵노라(白沙靑壁畵難如)/ 내 지금 밤마다 선몽에 의지해 구경하니(吾今夜夜憑仙夢)/ 예전에 기리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지 않노라(莫恨前時趁賞疎). 그 후 많은 선비,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내성천을 굽어보며 시를 읊었다. 이열도는 퇴계 문하에서 당대의 석학들과 수학했다. 조정에 진출해 벼슬살이했던 인물이기에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 당대 유학자들이 친필시를 남겼는데,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현재 걸려있는 편액들은 모두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는 원본의 복제본이라고 한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강화를 반대한 척화파의 거두 청음 김상헌도 훗날 선몽대에 올라 시를 남겼다. 모래는 깨끗하고 냇물 맑아서 텅 빈 것 같으니 / 옥산 옥구슬 가득한 정원에 비교함이 어떠할까…. (중략) 1599년 가을에 참봉 조여익이 향시에 합격한 뒤 약포 정탁을 찾아왔다. 조여익은 이열도의 사위다. 그는 선몽대를 이야기하며 이황이 지은 칠언절구를 보여준다. 약포는 옷깃을 여미고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읽으면서 경탄하고 느낀 바가 있어 절구를 차운해 시를 지었다. 그중 몇 구절을 보면,남긴 시를 되새겨 외우니 배알하는 듯하네/ 꿈을 깬 후 몇 번이나 선몽대 위에 누워보니/ 바위 가의 높은 대가 온 허공을 끌어당기고/ 적송은 구불구불 늙은 교룡 같구나/ 백 년의 세월이 눈길 돌리듯 짧은데/ 늘그막에야 속세의 꿈이 헛됨을 깨달았으니/ 선몽대의 한바탕 꿈 어떠한지 묻노라. (중략) 다산 정약용도 어릴 적에 당시 예천군수였던 부친 정재원을 따라 왔다가 ‘선몽대기’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버지를 따라 선몽대에 올랐다. 벽 위에 여러 시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중의 하나는 관찰사를 지내신 나의 선대 할아버지께서 일찍이 지으신 것이었다.아버지께서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나에게 읽으라 하고서 말씀하시기를, ‘일찍이 영남에 관찰사로 왔을 때 이 누대에 오르신 것이다.공이 지금부터 2백여 년 전에 사셨던 분인데, 나와 네가 또 이곳에 올라서 즐기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느냐’며 기(記)를 쓰라고 하셨다”. 다산의 3대가 시간은 달리했으나, 같은 공간에서 시를 지어 남겼다. 당시 인근 지역의 선비나 관리들은 자주 선몽대에 올라 시회를 열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교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타 지역의 고급 손님들을 초대해 먼 곳의 정보를 듣는다. 통신 미디어가 발전되지 않았던 그 옛날 이곳에서 사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했을 것이다. 좋은 경치를 보면서 정신을 맑게 하고 세심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지방 관리들에게는 선정을 베풀기 위해 꼭 필요한 장소였다. 선비들은 그런 곳에 별채를 짓고 그곳을 오가며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위한 수양에 노력했을 것이다. ◆내성천내성천은 선몽대 일원을 아름다운 비경으로 만든 첫 번째 요소이다. 내성천의 푸른 물은 상류에서 구불구불 감돌아 흘러온 후 선몽대 앞에서 물길을 따라 비단결처럼 여울져 내려간다. 한때는 천변의 백사장이 반짝거린다고 백금리(白金里)라고도 했다. 일부 환경전문가 중에서는 내성천이 육지화 되고 있는 영향으로 백사장에 나타나는 풀밭이 우려된다는 소리도 나온다. 숲의 전체 모습을 촬영하려면 강 건너편에서 보는 게 제격이란 생각에 신발 벗고 바지를 걷은 채 얕은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5월이긴 하나 아직은 서늘한 강물의 기운이 종아리를 감돌며 스친다. 고개 들어 바라보니 펼쳐진 소나무 숲도 내성천 물에 비친 우암산 선몽대의 반영도 둥실 뜬 흰 구름도 모두가 아름다운 정경이다. 손을 담가 만지는 물은 흘러가는 마지막 물이자 다가오는 첫 물이다. 지금 이 시각이 바로 그렇다.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담배 피우는 양만 줄여도 도움…연기 깊게 들이마시면 더 나빠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17년 사망한 국내 인구는 7만8천863명이며 그중 27.6%가 암으로 사망해 한국인 사망원인 1위는 암이었다. 암 중에서도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은 폐암(전체 암 사망자의 22.8%인 1만7천969명)이다.간암(13.6%), 대장암(11.1%), 위암(10.2%), 췌장암(7.3%)보다 사망률이 훨씬 높았다. ◆남성 폐암 발생원인 85%가 흡연특히 남성의 폐암 사망률은 훨씬 높았고 10만 명당 사망자 51.9명으로 간암(31.2명), 위암(20.2명), 대장암(19.6명)과 비교하면 단연 많았다.폐암의 원인으로 남성의 경우 흡연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각종 보고에 따라 다르지만 남성 폐암 발생 원인의 85%가 흡연으로 알려졌다.흡연하면 비흡연자에 비해 폐암에 걸릴 위험이 15~80배 증가하며 담배를 피우는 양이 많을수록, 일찍 흡연을 시작할수록, 흡연기간이 길수록 폐암이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또 피우는 형태와도 관련이 있어서 담배연기를 들이마시는 깊이에 따라 위험도가 커진다.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활용한 우리나라 연구결과에서 하루 평균 10~19개비 피우던 흡연자가 10개비 미만으로 줄였을 때 계속해서 한 갑(20개비) 이상 흡연을 유지하는 흡연자에 비해 폐암에 걸릴 위험이 45% 감소했다.이는 금연뿐만 아니라 담배 피우는 양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폐암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결과이다.◆신경조직이 없는 폐, 조기발견 어려워폐암 사망률이 높은 또 다른 이유로는 폐는 신경조직이 없어서 폐암 초기에는 전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점이다.국가암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2011~2015년 폐암의 요약 병기별 5년 생존율에서 폐암의 경우 거의 반수(44.3%)가 원격전이가 된 말기단계에서 진단받았다.조기에 진단된 폐암환자의 5년 생존율이 64.0%인 반면에 말기의 경우는 100명 중 단 6명(6.1%)만 살아있을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았다.폐암을 의심해볼 수 있는 주요 증상으로는 뚜렷한 원인 없이 지속되는 3주 이상의 만성기침(폐암환자의 75%에서 발생), 가래에 피가 섞여나오는 혈담, 호전되지 않는 원인불명의 흉통(폐암환자의 1/3에서 발생)이나 쉰 목소리(폐암 침범에 의한 성대마비로 인한) 등이 있다.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체중이 줄거나 입맛이 감소하고 전신 쇠약감이 발생하기도 한다.하지만 이러한 증상들은 대개 폐암 초기에 발생하지 않으며 거의 진행된 단계에서 나타나므로 폐암의 경우 증상이 나타난 시점엔 이미 초기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그러므로 현재 흡연자라면 특히 남성이라면 가장 먼저 담배를 끊어야겠다.◆폐암검진으로 조기발견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는 폐암 검진을 받는 것이다. 현재 흡연자이든 금연을 한 사람이든 흡연 경력이 있다면(특히 30년 이상 흡연한 55~74세 고위험 흡연자의 경우) 저선량 흉부 CT로 폐암 검진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저선량 흉부 CT는 원형의 기계에 들어가서 흉부를 촬영해 폐 안의 구조를 확인하는 검사로 일반 흉부 CT에 비해 피폭되는 방사선량을 10분의 1 정도로 줄여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암 발생위험을 많이 감소시킨 검사법이다.최근 미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흡연자의 경우 저선량 흉부 CT를 통해 폐암 검진을 받으면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20% 감소시킬 수 있고 10.6년의 수명 연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암의 5년 생존율은 2001~2005년 16.5%에서 최근 2011~2015년 26.7%로 상당한 치료적 성과를 이뤘다.과거에 비해 뚜렷하게 향상된 수술치료와 부작용 감소를 통해 효용성이 높아진 방사선치료의 발전으로 폐암의 치료 성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게다가 최근 유전자돌연변이에 작용하는 2세대 표적치료제(경구항암제)의 효과에 더불어 3세대 항암제라 일컫는 면역치료의 괄목할만한 치료성과가 더해져서 진행단계의 폐암 환자에서도 조기 환자와 견줄만한 높은 생존율의 향상이 기대된다.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호흡기 내과 박순효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복부•허벅지 사이 혹처럼 볼록…탈장된 장 다시 넣어야

-경대연합외과 이상호 원장 상당수가 탈장을 그 명칭처럼 장이 배 바깥쪽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복강 안의 내부 장기는 복벽과 복막에 둘러싸여 있는 데 탈장은 복벽에 생긴 틈으로 복강안의 장기(주로 대망이나 소장일부)가 탈장낭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말한다.복부 어느 부위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주로 서혜부에 발생한다.서혜부 탈장은 탈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복부와 허벅지가 만나는 부위보다 약간 위쪽 부위에 혹처럼 나타난다. 주로 서 있거나 복압이 증가했을 때 혹처럼 만져지다가 눕거나 복압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드물게는 빠져나온 장이 꽉 끼여 허혈성 손상을 입게 되면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므로 탈장된 부위의 통증이 동반되면 가능한 신속히 진료를 받고 탈장된 장을 복강 내로 다시 넣어야 한다.서혜부 탈장의 원인은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이 있다.소아에게 생기는 탈장은 거의 선천적으로 생기며 서혜부 탈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간접 서혜부 탈장은 복벽에 틈이 생겨서라기보다는 태아기에 형성된 복막 주머니가 막히지 않고 열려 있었거나 약하게 막혔다가 다시 벌어져서 이곳을 통해 장이 밀려 나온다.이 복막 주머니는 원래 태아의 뱃속에서 만들어진 고환이 임신 8개월경에 서혜부를 통해서 음낭으로 내려오면서 동시에 막을 끌고 내려와 만들어진 것으로 성장을 하면 막히게 된다. 하지만 이 부위가 막히지 않으면 탈장의 원인이 된다.장은 내려오지 않았지만 이곳에 물이 고여 물주머니가 생기는 것을 음낭수종이라고 하는데 음낭수종과 탈장은 발생기전이 비슷해 서로 사촌 간이라 할 수 있다.후천적 요인으로는 복압이 너무 올라 갈 수 있는 심한 운동, 변비, 임신, 복수, 만성기침 등이 있다.또 복벽이 너무 약해지는 고령, 당뇨, 심장병 등도 후천적 요인이 될 수 있다.서혜부 탈장의 경우 자연적으로 없어지지 않으며 반드시 수술적 교정이 필요하다. 소아나 성인 모두에서 감돈 탈장의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단 후에는 수술 날짜를 잡는 것이 좋다.특히 소아에서는 감돈 탈장이 한번 발생한 경우는 재차 발생할 가능성이 크므로 빨리 수술해야 한다. 소아의 경우는 탈장낭만 묶어 주면 되고 성인의 경우는 복벽을 보강해 주어야 한다.과거 피부를 절개해 수술을 하다 보니 근육의 박리를 많이 해야 했고 다시 그 근육과 근막을 봉합해야 해서 수술 후 통증이 오래 지속되고 복압을 높이는 일을 상당기간 조심해야 했다.반면 복강경 탈장 수술은 탈장의 외측 즉 근막과 근육의 박리 없이 복강 안에서 탈장낭 만을 박리해 수술하므로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통증이 적은 장점이 있다.서혜부에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계란 크기의 혹이 만져진다면 가능한 빨리 외과 전문의의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울릉군 <3>북면

[{IMG01}] 울릉도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섬이다. 일주도로를 따라가다가 아무 곳에서나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봐도 그림 같은 곳이다. 최근 개통한 일주도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북면 지역이다. 그동안 북면 사람들은 도로가 없어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시간가량 돌아서 가야 하는 등 불편할 삶을 살아서 했다. 다행한 것은 거리가 먼 탓에 자연환경도 사람의 손을 덜 탔다는 점이다. 북면은 울릉도에서 물빛이 가장 곱고, 섬과 바위가 빚어내는 절경이 펼쳐지는 곳이다.코끼리 바위나 딴바위, 선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삼선암, 관음도 등 볼만한 부속 도서들은 한결같이 북면에 있다. 울릉군 전체인구 1만34명(2018년 7월 기준) 중 북면 인구는 1천529명으로 울릉도 인구의 약 15%에 해당한다. 면적도 전체면적 72.87㎦ 중 24.28㎦ 정도로 33%를 차지하고 있다. 북면 지역의 행정구역은 천부 1~4리, 현포 1~2리, 추산리, 나리 등이다. 북면에는 천연기념물인 성인봉 원시림과 울릉국화 섬백리향 군락지가 유명하다. ----------------------------------------------------------------------------------------1. 천부 일몰전망대 천부 일몰전망대 입구는 북면 보건지소와 북면 파출소 맞은편에 있다. 데크 계단과 흙길로 이루어진 작은 길을 따라 전망대까지 500m 거리를 10분 정도 올라가면,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작은 자연 미항을 조망할 수 있다. 송곳봉과 공암, 천부항 그리고 죽암마을 앞에 있는 죽암딴바위, 석포전망대, 작은 홍문동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2. 천부 해중전망대천부항에서 섬목방향으로 약 100m 지점에 설치된 해중전망대는 수족관처럼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수심 6m에서 수중창을 통해 울릉도 청정해역과 신비로운 수중 생태계를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전망대다. 3. 예림원현포리에 있는 예림원은 가장 울릉도다운 식물공원이다. 울릉도 수목과 특산식물이 더 넓은 바다와 한 곳에 어우러져 여행자들이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숲속에 문자를 나무에 새기고 다듬어 조형미와 생명력을 표현한 문자 조각공원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4. 섬목 관음도 보행 연도교 총사업비 90여억 원을 들여 2012년 5월 준공한 보행 연도교는 울릉도에서 100여m 떨어진 무인도인 관음도를 연결하는 다리다. 길이 140m, 높이 37m, 폭 3m 규모의 보행전용 다리다. 관음도는 면적이 7만1천388㎡로 울릉도에 부속도서 중 죽도 독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5. 현포항‘동쪽 촛대 암의 그림자가 바다에 검게 어린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우산국의 주요 활동지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이전 역사를 지닌 유물과 유적이 발굴됐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현포에 혼락기지와 석물, 석탑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18세기 해동지도에도 석장과 탑이 있는 사찰터가 기록되어 있으며, 우산국만의 독특한 방식의 수많은 고분군이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측하게 한다. 6. 알봉울릉도의 주봉을 이루는 성인봉 북쪽에 이루어진 칼데라화구 내에 새로 분출돼 형성된 작은 화산이다. 알봉은 이중식 화산의 중앙화구구로 동서 양쪽에 2개의 화구를 가지고 있으며, 성인봉의 능선을 따라 미륵산·송곳산·형제봉 등이 솟아 있다. 이곳을 개척하여 많은 사람이 살았는데 큰 알봉, 작은 알봉이 있다. 7. 송곳봉 성인봉의 한줄기 산봉우리로 그 모양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여 송곳봉이다. 높이 430m인 이 봉우리가 불과 100m 이내의 짧은 거리로 바다와 접해 있어, 해상이나 육상에서 볼 때 더 높고 웅장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8. 삼선암 천부리 앞바다에 우뚝 서 있는 세개의 기암이다. 기암절벽과 산봉우리가 멋진 울릉도에서 삼선암은 울릉 3대 비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멀리서는 2개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3개로 되어 있어 더 경이롭다. 삼선암에는 지상으로 놀러 온 세 선녀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9. 공암(코끼리 바위)바위 모양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코끼리 바위라고도 하고, 소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10m의 구멍이 뚫린 바위라는 의미에서 ‘공암’이라고도 한다. 바위 표면은 주상절리 현상에 의해 장작을 패어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모습을 보인다. 10. 나리분지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 화구가 함몰해 형성된 화구원으로 울릉도 유일한 평지다. 동서 약 1.5㎞, 남북 약 2㎞, 면적 1.5~2.0㎢ 규모의 나리분지는 화구원 안에 있던 알봉(해발 538m)의 분출로 두 개의 화구원으로 분리됐다. 북동쪽에는 나리 마을, 남서쪽에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알봉 마을이 있다. 11. 너와집이 집은 울릉도 개척 당시(1882)에 있던 울릉도 재래의 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너와집으로서 1940년대에 건축한 것이다. 경북도지정 민속자료 제55호 울릉 나리 너와집은 2007년 12월31일 자로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6호 울릉 나리동 너와집 및 투막집으로 지정됐다. 12. 투막집울릉 나리 투막집은 1940년에 세워진 것이지만, 울릉도 개척 당시(1882)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1986년 12월 11일 경북도 지정 문화재가 된 나리 투막집은 울릉도의 귀중한 문화재 자료로 제182호는 북면 나리 117-4번지, 제183호는 북면 나리 307번지 외 두 필지가 있다. 1987년 울릉군에서 토지와 가옥을 매입해 보수·관리하고 있다. 이재훈 기자 ljh@idaegu.com

남달랐던 마립간 배필 찾기 삼만리…천생연분 그의 인연 ‘황후의 조건’은?

삼국유사의 지철로왕은 지증왕이다. 지증왕 이후부터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신라왕릉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신라 역대왕의 능묘 소재지나 장례지에 대해서 지증왕까지는 오릉, 미추왕릉, 내물왕릉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지증왕의 무덤은 사실상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지증왕의 아들 법흥왕부터는 차례로 그 왕릉의 소재지나 장례지가 주변에 있던 사찰을 중심으로 방위, 산 이름, 지역명 등으로 나타내고 있다. 지증왕과 법흥왕을 경계로 왕릉의 입지조건이 달라졌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법흥왕릉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신라왕릉의 소재지에 대한 기록은 바로 신라 고분의 변천 과정을 문헌으로 뒷받침한다. 최초의 석실을 묘제로 채택한 왕릉은 법흥왕릉이다. 이를 기점으로 석실분은 확산되어 갔다. 신라 고분은 6세기 초까지는 평지에 돌무지덧널무덤이 축조되었으나 6세기 중엽부터는 입지조건도 구릉지대로 옮겨가고 내부구조도 굴식돌방무덤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천마총이 지증왕릉으로 추정된다는 학자들의 의견이 그럴듯하여 지증왕의 잘 알려지지 않은 왕위 계승과 천마총의 비밀을 풀어본다. ◆삼국유사: 지철로왕제22대 지철로왕의 성은 김씨고 이름은 지대로 또는 지도로이다. 시호는 지증이니 시호가 이것이 처음이었다. 또 우리말로 왕을 마립간으로 한 것도 이 왕 때부터 시작됐다. 왕은 영원 2년 경진(500)에 왕위에 올랐다. (혹은 신사년 501년이라고 하나 그렇게 되면 영원 3년이다.) 왕은 음경의 길이가 1자 5치나 되어 배필을 구하기가 어려워 사람들을 세 방면으로 보내어 배필을 구했다. 배필을 구하는 사람이 모량부의 동노수라는 나무 밑에 왔을 때, 개 두 마리가 북 만 한 큰 똥 덩어리 한 개의 양 끝을 서로 다투어 가면서 깨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한 소녀가 말하기를 “이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 여기에서 빨래하다가 숲속에 숨어서 눈 것입니다”라 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알아보니 키가 7자 5치였다. [{IMG03}] 이 사실을 자세히 왕에게 말씀드렸더니, 왕이 수레를 보내어 궁중으로 맞아들여 황후로 책봉하자 여러 신하들이 모두 예를 갖추어 축하했다. [{IMG04}] 또 아슬라주(지금의 명주) 동쪽 바다 가운데에 바람만 잘 불면 이틀 뱃길 거리에 우릉도(지금은 于陵을 羽陵으로 쓴다)가 있다. 주위 둘레가 2만6730보이다. 섬 오랑캐들이 물이 깊은 것을 믿고 교만하고 거만하여 신하 노릇을 하지 않았다. 왕이 이찬 박이종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토벌하도록 명령했다. 박이종이 나무로 된 사자 모양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큰 배 위에 싣고 위협해서 말하기를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풀어놓겠다”라 하자 섬 오랑캐가 두려워서 항복했다. 이종을 포상하여 고을의 장으로 삼았다. ◆흔적△천마총 : 천마총은 경주시 황남동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지구에 있는 신라시대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이다. 이칭 별칭 황남동 제155호분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해 인접 지역 고분군 통합 2000년 12월 사적 제512호로 재지정 됐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정부의 경주종합개발계획에 의거 황남동 제98호 고분의 내부를 공개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수립해 발굴작업이 시작됐다. 제98호분은 한국 최대형 고분이므로 이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소형의 고분을 발굴하여 경험과 정보를 얻어 발굴한다는 방침을 세워 제155호분을 먼저 발굴하게 되었다. 1973년 본격 발굴이 시작된 제155호분 천마총도 대형에 속하는 고분이다. 당시까지 발굴 조사된 고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거의 완형에 가까운 고분이어서 신라의 왕릉급 대형고분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제공했다. 고분의 형식은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으로 분류된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 금제 관모, 금제과대가 각기 국보 제188호, 제189호, 제190호로 지정돼 있다. [{IMG06}] 껴묻거리 유물은 장신구류 8천766개, 무기류 1천234개, 마구류 504개, 용기류 226개, 기타 796개로 모두 1만1천526개가 출토됐다. 발굴된 금관은 의식용이라 할 수 있고, 금모는 실용관이라 할 수 있다. 천마도장니의 천마는 비상하는 모습으로 고구려벽화의 무용총 수렵도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고분벽화가 별로 없는 신라의 회화자료로서 천마총의 천마도는 매우 귀중한 대접을 받고 있다. [{IMG04}] 천마총 고분의 축조 연대를 추정하기 위해 목관조각의 방사성탄소측정(원자력연구소 검사) 결과, 서기 340년 전후 70년이므로 축조 연대는 서기 270년∼410년 사이에 들어간다. 이 연대는 목관재료 자체의 연대로 추정하면, 실제 고분 조성 시기는 서기 500년 전후가 될 것이라 본다. 발굴보고서는 소지왕과 지증왕을 이 고분의 피장자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분지에서의 돌무지덧널무덤이 지증왕 대까지 축조되고, 법흥왕 대부터는 서악동 무열왕릉의 후방 왕릉군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황남동에서의 돌무지덧널무덤의 연대는 6세기에 끝났다고 학자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다. 또 천마총의 묘단, 목곽부, 적석부, 분구 등 구성요소의 규모가 합리적 비례를 취하고 있고, 목곽, 수장궤 및 천마도, 금관이식 등은 다른 무덤에서 볼 수 없는 발달된 양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황남동에서는 최후 단계인 6세기 초의 무덤으로 추정한다.따라서 잠정적으로 지증왕의 왕릉으로 추정하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지증왕은 지대로, 지도로, 지철로왕으로도 불렀다. 신라의 왕호를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을 거쳐 처음 왕으로 부르게 했다. 국호를 ‘덕업일신 망라사방’에서 글자를 취해 ‘신라’로 지었다. 지증왕은 순장을 금지하게 하고, 소를 이용한 농사법을 장려했다. 재위 6년인 505년 처음으로 얼음을 저장하는 석빙고를 만들고 배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했다. 서울 동쪽에도 시장을 설치하고, 나라 안에 주와 군, 현을 정비해 군주를 파견해 다스리게 하고, 이사부를 통해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정벌했다. △법흥왕릉: 법흥왕릉은 경주시 충효동 서악이라 불리는 선도산의 서쪽 기슭 낮은 구릉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제23대 법흥왕의 능이라 전해지는 고분이다. 사적 제1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부구조는 알 수 없고, 외형상으로는 원형 토분으로 되어 있다. 신라왕릉으로는 비교적 작은 편이다. 호젓한 산속에 위치해 새소리, 개구리울음이 들려 산책하기에는 좋은 코스이지만, 법흥왕 이름이 주는 무게에 비해 너무 왜소하여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법흥왕릉은 수많은 대소고분이 밀집된 경주 시내의 고분군을 벗어나 교외의 야산 구릉 지대에 축조돼 여러 가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봉분의 표면이나 주위에는 아무 장식물이 없다. 봉분 아래에 호석을 받쳤던 자연석의 일부가 드물게 드러나 있다. 비슷한 유형으로 선도산 동쪽 기슭의 무열왕릉이 있다. 이러한 호석 구조는 경주 시내에서 냇돌만 쌓은 평지 돌무지덧널무덤의 호석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삼국사기’는 법흥왕은 재위 27년에 애공사 북쪽에 장사지냈다, ‘삼국유사’는 애공사 북쪽에 있다고 기록했다. 고분의 남쪽에는 신라 하대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있는데 ‘애공사지탑’이라 부르고 있다 법흥왕은 지증왕의 아들이다. 27년간 왕좌에 있으면서 신라역사에 획을 긋는 많을 업적을 남겼다. 국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병부를 설치하고 상대등을 설치하며, 율령을 반포한 데 이어 불교를 공인했다. 금관가야를 정복해 영토를 넓히고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소지왕과 지증왕의 대결지증왕은 내물왕의 증손자이고, 어머니는 눌지왕의 딸이다. 김씨 왕위 세습체계를 이룬 내물왕의 직계 왕손인 셈이다. 그러나 내물왕의 같은 증손자이지만 눌지왕, 자비왕으로 이어지는 맏아들의 소지왕에게 왕위가 이어지면서 지증왕은 사실상 왕좌에 앉기 어려운 처지였다. 지증왕은 외할아버지 눌지왕의 근엄한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 이후 왕좌에 대한 꿈에 사로잡혔다. 이를 눈치챈 지증의 어머니는 왕권을 둘러싼 싸움에서 벗어나도록 눌지왕에게 부탁하여 일찌감치 주거지를 왕경에서 멀리 떨어진 흥해로 옮겨버렸다. 그러나 지증의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용포를 두른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날이 갈수록 선명하게 새겨졌다. 자신이 왕이 되어 위풍당당하게 국정을 펼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나날을 보냈다. 흥해는 넓은 들에 곡식이 넘실거려 풍요로웠고, 바다와 연접해 청년들이 호연지기를 키우기에 적합한 분위기였다. 여기에서 지증은 평생의 친구 이사부를 만났다. 이사부는 학식이 깊고 무술적 재질도 특출하게 뛰어났다. 지증은 흥해 넓은 들과 산, 바다에서 이사부와 함께 학문을 탐구하는 한편, 말을 달리면서 무술을 연마해 문무를 겸비한 동량으로 성장했다. 지증은 키가 8척에 이르며 단단한 근육질로 뭉친 범 같은 장군상이었다. 지증은 마흔이 지나면서 2살 위인 외사촌 소지왕을 가끔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소지왕이 월성의 보수공사 때문에 명활성에서 집무를 보고 있을 무렵, 지증은 공사에 직접 참여해 월성의 내부는 물론 외부 구조까지 샅샅이 익히게 되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소지왕이 월성으로 입성할 때를 노려 반란이 일어났다. 왕가에 먼저 입성해 불교를 설파하는 승려와 후궁으로 들어왔던 선혜부인이 눈이 맞았다. 이들은 소지왕이 미색이 뛰어난 벽화를 들여와 아들을 낳자 왕을 제거하기로 하고 거사를 일으켰다. 선혜부인팀과 벽화팀이 충돌하면서 소지왕이 궁지에 몰렸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들은 지증이 이사부와 날랜 무사들을 이끌고 사방에서 월성으로 잠입했다. 지증과 이사부 팀은 지친 두 무리를 소리소문없이 잠재웠다. 소지왕은 이미 거의 죽음에 이르러 있었다. 난을 평정한 지증은 소지왕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면서 갈문왕으로 내정을 운영했다. 이사부를 병권과 내정을 함께 다스릴 수 있는 대신으로 발탁해 조정을 손아귀에 넣었다. 조정을 완전히 장악한 지증왕은 500년 드디어 왕좌에 올라 꿈을 이루었다. 그가 64세가 되던 해이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너 어떤 패션 좋아하니? 나는 ‘똑똑한 스타일’ 입는데

‘옛말’이 품은 함의. 추억 속 아스라이 점철된 편린일 수도, 시쳇말로 인생사 왕년이라 거드름피울 수 있는 그 시절 클라이맥스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공통된 것은 그저 곱씹어야만 느낄 수 있는 빛바랜 영광이라는 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섬유’는 대구의 아이덴티티 였다. 일제강점기 섬유공장의 대대적 유입으로 대구의 섬유산업은 각광 받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5개년 계획’의 절정이었던 1970년대, 섬유산업은 지역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가일 층 박차를 가해온 섬유산업은 1990년 한 해에만 약 150억 달러 치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전체 한국 수출량(650억 달러) 대비 25%를 차지할 만큼의 놀라운 수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때까지였다.최근 섬유산업의 수출 성적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섬유산업 수출액은 140억 달러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결과지를 수용해야만 했다. 30년 전보다 되레 역행한 수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세계수준의 패션 부흥은 먼 나라 얘기로만 치부되기 일쑤.섬유산업의 쇠락 원인은 다각도로 제기되고 있다. 우선 급작스런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기업 환경의 하릴없는 퇴보가 선으로 꼽힌다.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최근 섬유산업 재건의 기치를 앞세운 대구의 가열찬 행보가 꽤나 가시적이다. ‘섬유도시’라는 옛 명성을 오늘날로 계승하기 위한 이른바 ‘밀라노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나선 것.세계 패션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노하우를 그간 쌓아올린 대구의 섬유기술에 접목, 1970~19080년대의 영광을 재현해내겠다는 포부다. 프로젝트에 관한 설왕설래를 거듭하고는 있긴 하나 한 줄 남은 끈마저 놓아버리기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 바로 시의의 문제다. 4차 산업혁명의 범람으로 산업과 IT의 초연결 산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점임을 놓쳐선 안 된다. 시의를 거스른 진부한 발전계획은 자칫 모색으로만 그칠 공산이 크다. 시발점이라 믿어보자. 예전의 영광은 기대하되, 그 옛날의 구태는 청산해야 함이 마땅하다.패션과 IT는 떼려야 뗄 수 없고, 아울러 분리해 놓고 봐서도 안 될 노릇이다. ‘IT 강국’의 캐치 프레이즈와 섬유산업의 메카로 명성을 쌓아올린 대구의 노하우는 응당 보기 좋은 궁합이다.단순 명맥 이어가기에 그쳐선 안 된다. 청년들의 열정, 그리고 발군의 실력과 경험을 지닌 지역 섬유업계와 인공지능의 만남을 이번 연재를 통해 주선해 볼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염색부터 유통까지 ‘원스톱서비스’명동과 더불어 대한민국 패션 일번지로 일컬어지는 동대문이 최근 ‘패션 클러스터’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국내 고도화된 IT 기술력을 패션과 융합한다는 것인데 일감을 공동수주하고 생산하는 원스톱 네트워크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원리는 이렇다. 개별 니즈에 따른 주문 완료 시 원단 수급서부터 디자인에 이르는 생산 전 과정을 하루 내 완성해 낸다는 이른바 ‘IT 패션 모멘텀’. 여기에는 염색, 원사, 유통까지 아우를 수 있는 국내 기술력이 십분 투영된다. 이 같은 환경이 자리 잡을 수 있다면 20%에 가까운 비용 절감 효과와 수출경쟁력 제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유수의 IT업체와 패션업계의 융합도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5G 패션 스마트팩토리’의 이름으로 기존 천편일률적 작업환경 타파를 통한 생산성 제고에 방점을 찍는다. 여기에는 AI와 빅데이터의 기반으로, 생산 시 효율성 극대화와 실시간 유행 예측을 영위, 소비자로 하여금 취사 선택간 혁신과 편의의 장을 제공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이를 위해선 5G 지능형 로봇 개발과 네트워크 환경 구축, IT 관련 인프라 구축 및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별로의 트렌드 분석, 스마트팩토리를 근간으로 한 패션업계 전반으로의 AI 기술 접목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꼽힌다.이 밖에도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을 기반으로 개별의 머리모양을 선 확인할 수 있는 헤어 스타일링 체험 서비스와 AR 기반의 주얼리 체험, 취향에 맞는 패션 선택을 용이케 하는 의류 디자인 프로그램 등이 상용화를 위한 마지막 담금질에 매진하고 있다.AI와 사람의 콜라보도 적지 않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국의 한 패션업체에서는 알고리즘과 패션 담당자와의 융합을 통해 소비자로 하여금 맞춤형 옷과 액세서리 등을 추천, 원스톱으로 배송하는 시스템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현재 300여만 명의 고객 유치에 성공한 이 업체는 지난해에만 1조5천억 원에 이르는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등 패션과 IT 연계산업의 성공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몸에 IT를 입어보자패션과 IT의 만남은 스마트의 이름을 딴 ‘스마트 웨어’로의 등장을 예고했다. 신변잡기와 환경에 따른 ‘적절한 패션 창출’,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 바로 그 것이다. 특히 미세먼지의 범람으로 외출에 소극적인 소비자들로 하여금 의류에 스마트 모듈을 장착, 장착된 모듈과 스마트폰의 연계를 통해 휴대폰 앱으로 현재의 미제먼지 농도와 그에 따른 갖가지 대처상식 등을 제공한다는 목표다.레저에 최적화된 의류도 IT의 시류를 피해갈 수 없다. 자동 발열 기능을 의류에 부착, 레저 환경에 따라 자유로이 온도를 제어할 수 있어 공간 제약을 최소화한다. 세탁도 기존 의류와 같은 물세탁 등이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진다.패션과 크라우드 펀딩의 만남도 꽤나 흥미롭다. 고객과 브랜드는 개별이 아닌 ‘상생’의 모토를 둔 이른바 ‘윈윈 전략’을 전면에 내세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펀딩의 성패에 의거, 수용예측이 가능해져 예기치 못한 재고 생성 등의 갖가지 리스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또 소비자는 브랜드 자체로의 이미 걸러진 양질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평가.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비자에게 브랜드 디자인을 미리 공개한 후 정해진 기간으로 목표 금액이 기간 내 채워질 시, 생산과 유통에 따른 유용 자금을 확보·제작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금액 충전은 오롯이 고객의 니즈에 의거해 이뤄진 만큼 그만큼의 실패확률은 낮아지는 셈이다.남성정장과 AI의 만남은 이질적이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정장에 삽입된 근거리 무선통신(NFC) 태그가 스마트폰과 연동, 정장에 스마트폰을 태그하기만 하면 각종 서비스를 영위할 수 있는 제품이 최근 등장했다.정장을 입은 회사원들은 더이상 명함을 찾아 안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질 필요가 사라진다.정장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태그하면 문자를 통해 원하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명함을 전송할 수 있는 기술,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이제는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런웨이 곳곳을 누비는 모델에게 눈길을 뺏기기 전,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모델의 의상이 디자이너의 손길로 탄생한 옷인지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의상인지 말이다.패션산업과 IT의 접목을 단순 열풍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시나브로 발전해 온 필수불가결한 상생의 요건이라는 것. 기본 아이템 개발을 넘어 생산, 유통, 홍보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IT의 접목이라 함은 시의를 내포한 주요 사업수단으로 대두되고 있는 오늘이자 내일이라는 것이다. ◆이제 섬유도 부가가치 상품사실 여타 분야에 비해 패션산업은 AI의 영향력이 협소하다. 그만큼 사람의 손을 타야 할 ‘노동집약적’ 산업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된 섬유산업에 AI를 접목해야 할 당위는 분명하다. 다름 아닌 ‘최선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함이다.오롯이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아야 할 제품생성 이면에 디자이너의 경험이 축적된 인고의 과정을 빅데이터를 통해 수집하는 과정, 번뜩이는 영감과 경험 등을 AI가 일정 부분 대체·수집함에 따라 효율성 제고에 나선다는 것이다.별 다른 이유가 아니다. 기능적 측면이나 실시간 이뤄져야 할 유행분석은 AI가 더욱 신속하고 섬세하다. 물론 인간 고유의 영역은 어찌할 수 없다 손 치더라도 인공지능과 패션은 충분히 ‘상호보완적’ 관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AI를 통해 ‘유통의 간소화’를 꾀해야 한다. 클러스터라는 전제로 양질의 인력이 분포돼 있는 지역 섬유업계의 성장 가능성을 이끌어내야 함이 마땅하다. 초연결, 초융합의 네트워크 구축이 가미된다면 부가가치 창출이란 동기는 빛을 발할 것이 자명하다.그 옛날, 우리가 배우고 접한 교과서 곳곳에 ‘대구는 섬유도시’로 명명했던 당시를 그리워만 해선 안 된다. 유행은 돌고 인생 역시도 돌고 돈다고 했던가. 대구의 섬유산업은 분명 찬란한 부흥을 맞이했었고 처절한 쇠퇴를 하릴없이 수용해야만 했다. 이제는 부흥의 시대로 돌아와야 할 때다. 물론 AI와 더불어 말이다. 글·사진 군월드 IT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여성메디파크 여준규 원장과 알아보는 난소종양

생리를 시작한 모든 여성은 신체적 변화와 정신적 변화 뿐만아니라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여성 질환이 발생한다.10대부터 50대까지 가장 흔한 난소종양. 흔히 암으로 통하는 악성종양은 제외하고 난소의 양성종양에 대해 알아보자.10대와 20대, 30대에서는 난소종양이 흔히 발생하며 종류도 매우 많다.10~20대에 가장 흔한 종양에는 단순 난소낭종, 기형종, 자궁내막종이 있다. 30~40대에는 고형종, 점액종, 장액종 등이 있으며 이 밖에는 수많은 양성종양이 있다.생리가 일정한 여성의 종양은 통상 1~2개월에 평균 1㎝ 정도 자란다.증상도 종양의 종류에 따라 워낙 다양하며 개인차도 커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흔히 ‘물혹’으로 말하는 단순낭종인 경우 증상이 없다면 크기가 6~8㎝ 이하일 때 자연적으로 소멸될 수도 있다.하지만 이 밖에 종양은 크기와 증상 여부와 관계없이 결국에는 수술적 치료를 해야 한다.그래서 조기진단과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종양을 성질을 파악하는 혈액검사를 필수적으로 하고 추적관찰을 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법이다.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복강경을 통해 개복과 난소 절제 없이 종양만 제거하고 난소를 성형 복원하는 것이다.난소 절제를 권하는 의사들도 있는데 고형종과 난소암이 의심되거나 확진된 경우를 제외하면 난소를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특히 10~50세 이전에는 난소 보존이 필수적이다.48세 이후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완전 제거를 고려할 수도 있다. 난소종양은 자궁종양과 달리 수술적 치료가 유일한 치료법이다.복강경 시술을 하면 1㎝ 이하의 수술 자국이 남아 얼마든지 비키니 수영복도 입을 수 있다.난소종양 크기 20~30㎝ 이상이더라도 개복하지 않고 난소 절제 없이 시술할 수 있다.담당 의사가 개복수술을 권하거나 난소 완전절제를 권한다면 해당 의사의 복강경 수술에 대한 실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복강경 수술의 장점은 빠른 회복이다. 수술 후 2주가 지나면 과격한 활동도 가능하다.여러 번 개복수술의 경험이 있는 환자는 장기유착증의 위험이 크지만 이 때문에 개복수술을 반드시 선택할 필요는 없다.의료진의 수술 능력에 따라 복강경으로 좋은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다만 장 유착 또는 방광 유착, 요관 유착이라면 수술을 위해 불가피하게 유착박리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때 역시 복강경이나 개복과는 상관없이 부작용과 합병증이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개복수술을 했을 때 부작용이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무좀 생기기 쉬운 여름…빙초산 바르는 민간요법 위험해요”

-오라클피부과 대구점 이성우 원장 봄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여유도 없이 습도와 기온이 높아지는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여름철은 곰팡이가 서식하기 좋은 고온·다습한 환경이므로 무좀도 더 빈번히 발생한다.또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 옷차림이 간편해지고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는 경우가 많아진다. 하지만 무좀으로 인해 발에 각질이 생기거나 발톱에 변성이 생기면 발을 드러내기가 민망해진다.손발톱 무좀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손발톱 무좀은 곰팡이에 의한 피부 감염증으로 전체 피부 곰팡이 감염의 4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손발톱 이상 질환의 15~40%나 될 만큼 가장 흔한 손발톱 질환이기도 하다.원인균으로는 Trichopyton rubrum이 가장 흔하다.손발톱의 △색깔 변화 △두꺼워짐 △쉽게 부스러짐 △손발톱 박리증 등을 동반한다. 때로는 통증, 보행장애, 이차 세균감염 등을 유발해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줄 수 있다.특히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당뇨 등의 만성질환 증가하고 면역 억제제의 사용으로 점차 환자 수는 증가하는 추세다.하지만 약물 침투가 어려운 손발톱의 해부학적 특성과 다양한 원인균, 환자 특성(고령 등), 장기간의 치료 기간, 전신 약물 치료 부작용, 약물 상호작용 및 약물투여 금기증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손발톱 무좀의 치료가 쉽지 않다.따라서 여러가지 특수성을 고려해 환자마다 맞춤치료가 중요하다.손발톱 무좀 치료는 크게 약물 치료와 비약물 치료로 구분한다.가장 기본적인 일차 치료법은 전신 항진균제 복용으로 터비나핀, 이트라코나졸, 플루코나졸 등의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는 방법이 있다.하지만 증상이 경미한 경우나 전신 약물 부작용이 우려되면 에피코나졸, 아모롤핀, 시클로피록스 등의 약을 발톱에 바르는 국소 항진균제를 사용하기도 한다.이외에도 보조 치료로 감염된 손발톱을 뽑는 손발톱 제거술을 선택하기도 한다.최근 경구 항진균제 복용이 불가능하거나 약물 치료를 선호하지 않은 환자에서 비교적 안전한 치료로 손발톱 무좀 레이저 치료를 시술하는 추세다.여러가지 요건을 고려해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선택해서 치료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민간요법으로 빙초산과 목초액 같은 화학약품을 사용해 자가 치료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부작용 위험이 높은 만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손발톱 무좀은 가족력과 당뇨 등의 동반 질환, 면역억제제의 사용, 손발 무좀 등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재발률이 20~50%에 달한다.재발방지를 위한 수칙을 지킨다면 예방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1. 손발을 항상 깨끗하고 건조하게 관리한다.2. 신발은 자주 갈아 신고 신발 안이 축축해지지 않도록 한다.3. 손톱깎이 등 손발톱 관리 도구를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4. 손발톱을 깎을 때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한다.5.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가급적 개인 신발과 양말을 신는다.6. 손발톱무좀에 걸렸다면 발수건과 슬리퍼, 욕실매트 등은 가족과 같이 쓰지 않는다.7. 손발톱 무좀 증상이 의심되면 즉시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 초기에 치료해야 한다.손발톱 무좀은 단기간에 치료되지 않아 치료를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손발톱 무좀은 완치 가능한 질환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피부과 전문의와 상담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손발톰 무좀 완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울릉군 <2>서면

울릉도의 서남쪽에 있는 서면은 산악 지형과 해변 평지의 특성이 조화롭게 형성된 지역이다. 울릉군 전체면적 72.87㎦ 중 서면의 면적은 27.19㎦이다. 밭이 3.33㎦, 논이 0.20㎦, 임야 21.96㎦ 등으로 이루어져 울릉 지역 읍·면 중 가장 넓다. 주요 행정구역으로는 남양 1리, 2리, 3리와 남서 1리, 2리 그리고 태하1, 2리가 있다. 인구는 서면 1천24명과 서면 태하출장소 506명을 합쳐 총 1천530명이다. 울릉군 전체인구의 15% 정도인 셈이다. 문화 유적은 남서동 고분군, 태하리 광서명 각석문, 성하신당, 솔송·섬잣·너도밤나무 군락지와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 등이 있다. 관광지는 거북바위, 사자바위, 남양몽돌해변, 남근바위, 대풍감, 만물상, 황토굴, 투구봉, 비파산 등이 있다. --------------------------------------------------------------------------------------------1. 울릉 수토역사전시관울릉 수토역사전시관은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온 조선의 기록과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조선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울릉도를 ‘수토’라는 특별한 제도를 통해 관리 해 왔다. 수토역사는 조선이 울릉도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였음을 알리는 증거다. 관람을 통해 역사속의 영토수호 과정을 알고 선조들의 의지와 노력을 느껴보자. 2. 태하향목 관광모노레일전국 최고의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한 태하향목의 관광명소를 편안하게 감상 할 수 있도록 관광모노레일 시설을 만들었다. 모노레일 재원은 총연장 304m의 레일에 20인승 2대가 동시 운행한다. 분당 50m의 속도로 산정까지 약 6분이 소요되고 최대 등판각도가 39도나 된다. 3. 대풍감서면 태하리 북서쪽 해변 바다 끝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꼽히는 명소다. 돛을 높이 달고 바위구멍에 닻줄을 매어 놓고 본토쪽으로 불어대는 세찬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서 기다릴 대(待)자를 써서 대풍감으로 명명했다. 1962년 12월3일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49호)로 지정됐다. 4. 학포마을 왼편에 바다로 침강하는 곳에 암벽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형상의 ‘만물상’이 있다. 이곳에 학이 앉아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학포’라고 한다. 학포는 태하보다 규모가 작고, 황토가 많아 ‘소 황토구미’라고 불린다. 가을이 되면 해질무렵 이곳에서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그 위엄한 큰 능선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울릉에서 최근거리는 울진군 죽변항으로 약 130km 정도다. 5. 남양마을비파산을 사이에 두고 양쪽 골짜기와 냇물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서쪽을 남서마을 동쪽을 남양마을 이라고 부른다. 다른 마을보다 골짜기와 시내가 많다고 하여 예전에는 ‘골계’라고 불렀다. 지금은 울릉도에서 가장 따뜻한 남쪽이란 뜻으로 ‘남양’이라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가장 빨리 녹는 지역이다. 6. 통구미 거북바위거북바위가 있는 곳은 지형이 양쪽으로 산이 높이 솟아 있고, 골짜기가 깊고 좁아 통처럼 생겼다하여 ‘통구미’(通桶尾)라 부르기도 하며, 거북모양의 바위가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통구미(通龜尾)라 부른다. 이 거북바위에는 바위 위로 올라가는 형상의 거북이와 내려가는 거북이가 보는 방향에 따라 6~9마리 정도 있다. 7. 태하등대모노레일카를 이용하거나 황토굴 위쪽의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부지런히 걸어 올라가면 , 울릉도항로표지관리소(태하등대)에 갈수 있다. 등대 가는 길에는 50년 이상되는 해송 나무 숲, 해국이 길가에 있다. 특히 해국이 필 때면, 그꽃에 매료되어 쉬어가지 않고는 등대에 오를 수가 없다. 8. 성하신당울릉도 사람들이 배를 새로 만들어 바다에 띄울 때 반드시 와서 빈다는 곳이다. 매년 음력 3월1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어, 풍년을 기원하고, 해상작업의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이곳은 조선 태종 때 안무사 김인우와 관련된 동남동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9. 태하 황토굴태하는 원래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해서 ‘황토구미’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됐다.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 영장을 울릉도에 순찰보냈는데,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 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10. 버섯바위바위의 모양이 꼭 버섯을 닮아 버섯바위라 불린다. 주로 사막에서 잘 관찰되는 암석의 형태로 미암괴 또는 받침돌이라고 한다. 바람을 맞은 모래와 먼지가 수천 년에 걸쳐 암석의 아랫부분을 더 깎고 마모시켜 윗부분보다 더 가늘게 만들어 버섯 같은 모양을 형성한다. 11. 사자바위신라왕은 우산국을 토벌하기 위해 강릉군주 이사부를 보냈다. 신라군은 군선의 뱃머리에 목(木)사자를 싣고 몰살시키겠다고 하자, 우산국의 우해왕은 투구를 벗고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했다. 우산국은 멸망했지만 전설은 남아 그때의 목사자가 사자바위로, 우해왕이 벗어 놓은 투구가 지금의 투구봉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12. 국민여가캠핑장울릉군 서면 울릉순환로 1580에 위치한 국민여가캠핑장은 생활관 1동, 방갈로 2동, 카라반 2대, 캠핑데크 7개로 이루어진 아담한 캠핑장이다. 울릉군에서 시설관리를 하는 지자체 캠핑장이다. 이용은 한달 전에 유선으로만 예약( 054-791-6781) 가능하다. 이재훈 기자 ljh@idaegu.com

정월보름 ‘까마귀의 제삿날’ 그 시작은 연못의 편지로부터

사금갑(射琴匣)은 ‘거문고집을 쏘라’고 풀이되는 서출지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삼국유사의 냄새가 가장 짙은 신화 같은 이야기다. 서출지는 경주 남산의 동쪽 가운데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지금도 사적지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경관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유적이다. ‘사금갑’은 쥐와 까치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돼지가 서로 싸우고, 연못에서 신선이 나오는 등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당시 시대 상황을 여러 각도로 추측하게 하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글이다. 학자들의 분석이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는 글이기도 하다. 서출지 남쪽에는 신라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아미타불을 염불하던 스님이 있었다는 염불사터에 동서 쌍탑으로 삼층석탑이 복원돼 있다. 임금을 구한 편지가 출토되었던 연못과 신비스런 스님이 있었다던 염불사지로 가본다. 그리고 소지왕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력을 추측해 새로 삼국유사를 써본다. ◆삼국유사 사금갑-거문고집을 쏘라-제21대 비처왕(소지왕이라고도 한다)이 즉위한 지 10년 되는 무진(488)에 천천정에 행차했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야기하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소서”라 했다.(혹은 말하기를 신덕왕이 흥륜사에 예불하러 가려는데 길에서 여러 마리의 쥐들이 꼬리를 서로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괴상히 여겨 돌아와 점을 쳐보니 ‘내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아보라’ 등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다.) 왕이 말을 탄 무사에게 명령하여 뒤따르게 했다. 남쪽으로 피촌(지금의 양피사촌으로 남산 동쪽 기슭에 있다.)에 도착했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주저주저하며 그것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가 간 곳을 놓쳐버리고 길가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이때 노인이 못에서 나와 편지를 주었다. 겉봉에 ‘떼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쓰여 있었다. 무사가 와서 그것을 바치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차라리 떼지 않고 단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겠다”라 했다. 일관(길일을 가리는 일을 맡아보는 벼슬아치)이 말씀드리기를 “두 사람이란 것은 일반 백성이요, 한 사람이란 것은 왕입니다”라 하자 왕도 그렇게 여겨 편지를 떼어 보았다. 그 편지 속에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집을 쏘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 거문고집을 보고 활을 쏘았다. 그 속에는 내전에서 분향 수도하는 중과 궁주(왕비)가 은밀하게 사귀면서 간통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을 처형했다. 이로부터 나라의 풍속에 매년 정월 첫 돼지 날과 첫 쥐 날과 첫 말의 날에는 모든 일에 조심하고 삼가서 함부로 움직이지 아니했다. 정월 보름을 ‘까마귀의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를 지냈으니,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세속의 말로 ‘달도’라고 하니, 슬퍼하고 근심하여 모든 일을 금하고 꺼린다는 뜻이다. 편지가 나온 못을 서출지로 이름을 붙였다. ◆흔적: 서출지△이요당: 이요당은 서출지 서편에 한쪽은 저수지 안쪽으로 쑥 들어와 있고, 한쪽은 저수지 둑과 연결된 도로에 접해 있는 조선시대 건축된 정자다. 동남향으로 ‘ㄱ’ 모양의 순수 한옥형 정자로 지어져 자못 풍류가 느껴진다.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과 함께 이요당은 지혜로움과 덕이 넘치는 인품을 두루 갖춘 선비의 풍모를 닮아 반은 물 위에 떠 있고, 반은 땅에 연접해 지어 선비들이 여름에도 시원하게 글을 읽었던 곳이다. 건물 이름 이요당도 요산요수에서 취했다. 조선시대 현종 5년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지었다. 처음에는 3칸 규모였으나, 다섯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은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고풍을 연출하고 있다. 임적은 가뭄이 심할 때는 물줄기를 찾아 이웃 마을까지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도왔고,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 덕망이 높았다. 남쪽 양피못 언덕에는 임적의 아우 임극이 지은 산수당이 있다. 한때 양피못을 진짜 서출지라고 주장하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현재 서출지가 진짜 서출지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서출지는 동남산 통일전 남쪽에 연접해 있는 부지면적 7천㎡ 규모의 아담한 연못이다. 신라시대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깃든 연못으로 지금도 이요당 정자와 함께 향나무와 소나무, 백일홍이 어우러지고, 못 가운데는 연꽃이 가득해 연인들의 산책코스로 인기다. 경주시는 서출지 제방 둘레에 조명등을 설치해 밤에 오히려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해 찾는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신라 소지왕 때에 연못에서 신선이 편지를 들고 나타나 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역사문화 탐방객들의 필수코스로 손꼽힌다. 또 서출지에서 비롯된 정월 대보름 제사와 찰밥 풍습은 지금까지도 민족 고유의 풍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출지는 국가에서 사적 138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서출지에서 약 1㎞ 거리에 염불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에 동서 쌍탑으로 복원돼 있다. 삼국유사에는 ‘피리사’라는 절에 신비스런 승려가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스님이 입적한 이후에 피리사를 ‘염불사’로 고쳐 부르고 있다.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03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하고, 2009년 1월 동서 쌍탑으로 삼층석탑을 복원했다. 이때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복원공사내역과 함께 매립했다. 염불사지에는 이거사 터에서 옮겨온 석탑 부재들이 쌓여 있다. ◆다시 쓰는 삼국유사: 소지왕의 위기소지왕은 479년에 아버지 자비왕의 뒤를 이어 신라 21대 왕위에 올랐다. 당시에는 17대 내물왕부터 실성왕, 눌지, 자비왕까지 김씨들이 왕위를 대물림하고 있었지만, 박씨와 석씨들의 권력을 향한 힘겨루기는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어 연대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박, 석, 김 3성의 왕권 차지를 위한 견제와 타협은 미묘한 권력 구도를 형성하면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첨예한 대립의 각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김씨 왕위세습체제는 완벽하게 갖추어지지 않은 불완전한 힘으로 박씨, 석씨 등의 세력과 연합하는 전략을 동원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와 함께 육부촌장들의 힘겨루기와 백제, 고구려의 침략은 정권을 유지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면서 소지왕의 의지를 지치게 했다. 소지왕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불교에 상당히 심취했다. 이름도 아버지는 자비왕, 자신은 스스로 부처를 뜻하는 ‘비처’라고 부르기도 했다. 신라의 불교는 왕실을 비롯해 귀족층에서부터 시작해 백성들에게로 전파되는 형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소지왕은 초창기에 백성들을 많이 사랑했던 왕으로 칭송을 들었다. 가뭄에 백성들을 위해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주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직접 보살피기도 했다. 사방에 우편 역을 설치하고, 도로를 고치고, 시장을 열어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려 했다. 계속되는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해 월성 주변에 해자를 설치하는 한편, 백제와 결혼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견제했다. 외세 침략에 대비하면서 소지왕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적들의 반란에 제대로 견제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소지왕은 고구려 등의 침략에 대비해 월성의 성벽을 튼튼하게 하고, 해자를 보강하는 공사를 단행했다.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공사 기간 동안 소지왕은 명활산성을 궁으로 사용했다. 다시 월성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정적들의 공격을 받았다. 왕권을 노리는 정적들의 공격을 여러 번 받으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번이 가장 강력했다. 이때가 왕위에 오른 지 10년 되었을 때다. 후궁으로 들어온 선혜부인이 신궁의 승려 묘심과 내통하고, 궁궐과 외부를 잇는 세력을 키워 소지왕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할 계획을 꾸몄다. 소지왕은 반란세력의 기미를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가까스로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반란세력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숨죽이며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소지왕은 내부적인 정적들의 도전에 직면해 김씨 일족과 박, 석씨 세력의 도움으로 겨우 왕권을 유지하면서 정치싸움에 환멸을 느껴 점점 환락에 빠져들었다. 소지왕은 집권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막연한 종교적인 힘에 의존하는 한편, 여성 편력으로 내부적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권해 죽임을 당했다. 소지왕의 여성 편력을 이용해 반란세력들은 미모가 뛰어난 벽화를 왕에게 소개했다. 처음에는 거부하며 정치에 몰입하려 애를 썼지만, 벽화의 조직적이고 개략적인 유혹에 소지왕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결국 소지왕은 반란세력의 힘에 밀려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고, 죽음으로 모든 권력을 놓아야 했다. 소지왕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신라 22대 왕좌에 오른 사람이 지증왕이다. 힘으로 왕좌를 빼앗은 지증왕은 3년여 동안 갈문왕으로 있으면서 왕위에 올라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하며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64세에 왕의 권좌에 오른 지증왕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책과 울릉도 영토회복 등의 활약을 하면서 15년 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신라’라는 국호도 지증왕이 처음 사용했다. 지증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계속 이어간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 해소로 양질의 응급의료

대구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늘 북새통이다.환자들이 조금만 아파도 대형병원을 찾는 데다 지역 특성상 경북과 경남의 환자도 대구의 대형병원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대형 응급실에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만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응급실을 찾은 대부분 환자는 의료진의 중증도 분류에 따르면 비응급에 해당한다.응급실을 찾은 비응급 환자로 응급실이 과포화 상태가 되고 그만큼 의료자원의 소모도 커진다.하지만 환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이 응급인지 아닌지 정확히 구분할 의료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점도 이유다.또 심각한 증상으로 판단했지만 실제로는 경증인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기 때문이다.◆전국 최초 지역 응급의료네트워크 구축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응급실에서 응급처치 후 상태가 비교적 안정되거나 꼭 대형병원에서 입원할 필요가 없는 준 응급 등의 환자라면 입원 가능한 병원으로 환자를 옮겨주는 것이다.실제로 대구지역 모든 병원의 응급실이나 입원실이 포화상태가 아니다. 대형병원이 아닌 2차 병원의 응급실에는 여전히 여유가 많다.이를 감안한 대구시는 지역 응급의료의 주요 현안 과제인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고 중앙정부 중심의 응급의료 정책에서 벗어나 대구시의 실정에 맞는 대응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전국 최초로 추진한 ‘지역 응급의료네트워크 구축 사업’이다.이 사업을 통해 대형병원이 응급환자의 중증도 판별 급성기 질환을 치료한 후 입원 관찰을 해야 하지만 입원실이 없어 장시간 응급실에 지내야 하는 경우 수준을 갖춘 병실과 의료진을 확보한 협력병원으로 입원하도록 해 치료의 지속성을 확보했다.즉 대형병원의 초기 응급환자 대응능력 수준은 유지하면서 많은 환자에게 시기적절한 치료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올해 5개 대형병원(경북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과 49개 협력병원이 이 사업에 참여해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해 협업하고 있다.5개 대형병원 응급실에는 환자 전원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 코디네이터가 배치돼 있다.◆2차 의료기관의 전문적인 역량 높여이 사업을 통해 질환별 전문화된 진료 역량을 갖춘 협력병원으로 전원이 이뤄지고 있다. 과밀화된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대기 중인 환자들이 자신에 맞는 지역 네트워크 병원으로 분산해 신속하고 지속적인 입원치료 서비스를 제공받게 됐다.또 환자 분산만이 아닌 전원된 환자의 안전성 및 치료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병원 간 진료 정보망(www.dgsafenet.co.kr)도 구축해 환자 선정부터 전원과 재전원, 치료 경과 보고체계 및 치료 종결까지의 추적조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대구시는 지역 응급의료네트워크 구축사업을 통해 2012년 23개소였던 협력병원을 올해 49개소로 확장하는 등 지역사회 응급의료 자원을 활용한 2차 의료기관의 전문화에 대한 지원 및 역량 강화의 계기도 마련했다.또 의료 보호 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해 민간이송업체와 연계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협력병원으로 후송되는 환자에 대한 이송료를 지원해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6년 새 5개 대형병원 전원 25배 증가이 같은 노력으로 5개 대형병원의 전원 의뢰 건수는 2012년 168건에서 지난해 4천233건으로 6년 만에 25배 급증했다.대형병원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했지만 병상 포화지수(PPB)는 사업 도입 전인 2011년 1.04에서 도입 후(2017년) 0.83으로 감소했다. 또 6시간 이상 응급실에 체류한 환자 비율도 2011년 65.5%에서 2017년 25.6%로 급감했다.PPB 수치가 1.0인 경우 1년 내내 응급실 1병상당 1명의 환자가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PPB 수치가 높으면 응급실이 과밀화된 것이다.이와 함께 지난해 대구시가 추진한 네트워크 사업을 이용한 전원환자 대상 만족도 조사 결과 76.3%가 이 사업이 과밀화 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74.8%는 대구시의 네트워크 사업을 다시 이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