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발맞춰 지방 한계 극복”…4차 산업 이끌 선봉장들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빠르게 전개되면서 기존 산업의 형태도 이에 발맞춰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이 산업별로 어떻게 융복합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4차 산업혁명, 대구ㆍ경북의 미래를 만나다’를 주제로 ‘2018 대구ㆍ경북 그랜드포럼’을 개최하면서 지역 내 4차 산업 선도기업을 선정, 시상한다. 시상식은 12일 오후 안동의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열린다. 선정된 기업들은 매출, 고용, 투자 등 기준들을 종합해 왕성한 활동과 성과를 거두고 있는 업체들이다. 지역 4차 산업의 동력이 될 선도기업상 수상 업체들을 소개한다. ◆대진기술정보 “최근 증가하고 지진, 싱크홀 등으로 인해 다양한 지하매설물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안전사고 방지에 더욱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나아가 세계 시장으로 진출함으로써 국가 경쟁력 강화와 수출로 인한 외화 획득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진기술정보는 1992년 2월 설립된 지리정보시스템(GIS) 구축 전문회사다. 대구와 경북, 경남 등 14개 지자체에 상ㆍ하수도시설물 관리 및 통합관리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또 도시가스 데이터베이스화,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사업, 119긴급구조시스템 구축, 112사건지리정보시스템, 수치지도제작, 공간정보 통합시스템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권재국 대진기술정보 대표는 “예전에는 관공서에서 상수도를 설치하면 도면과 대장 등을 아날로그식으로 관리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화해 관리한다. 정보를 더욱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대진기술정보는 지난해 지능형매설관로인식표지(SPI)를 개발해 상용화했다. SPI는 세계 최초로 기존 사용 중인 매설관로표지기에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모바일 기술을 융합해 지하에 매설된 관로들에 대한 정보를 지면 굴착 없이 지상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입력하거나 파악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SPI는 수성의료지구에 적용시켰고 관련 시스템을 패키지화해 해외시장 진출도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민간 회사들을 대상으로 SPI를 적극 홍보하고 제품을 활성화시켜 시민들이 지하매설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지에너텍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와 관련된 상을 받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품에 4차 산업 관련 기술을 더 많이 적용해 기술력으로 선도하고 지역의 고용창출과 경제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지에너텍은 2007년 5월 설립됐다. 대구 프리-스타기업으로 전국 태양광가로등 분야에서는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2009년 태양광가로등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충전 컨트롤러를 개발했고 2011년 태양광가로등을 조달청의 우수제품으로 지정됐다. 기술 관련 특허도 10여 개에 달한다. 2014년 태양광가로등은 조달청 납품실적 1위를 달성했고 업계 최초로 신기술 인증(NET)과 신제품 인증(NEP)을 획득했다. 미지에너텍의 주력 제품은 태양광가로등을 비롯해 태양광-풍력 하이브리드가로등, 충전컨트롤러, 발광다이오드(LED) 등기구, 공기정화형 흡연부스 등이다. 김범수 미지에너텍 대표는 “모든 제품에는 미지에너텍이 자체 개발하고 생산한 충전 컨트롤러가 적용돼 있다”며 “핵심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충전 컨트롤러는 자동복원, 타이머 등 기능들이 추가돼 있다”고 전했다. 미지에너텍은 태양광 모듈 및 LED램프, 리튬이온-배터리, 충전 컨트롤러 외 기타 부품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 설치가 간편한 ‘모듈일체형 태양광가로등’ 제품과 이와 연동해 태양광가로등의 상태확인과 제어를 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을 개발 완료하고 곧 국내와 해외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확보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타사 제품과 차별화될 수 있도록 디자인에도 집중할 계획”이라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미지에너텍의 제품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씨앤에스 “블록체인 기술의 사회적 효용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과의 융복합과 서비스를 해온 블록체인씨앤에스의 노력을 인정받게 돼 영광스럽습니다.” 블록체인씨앤에스는 대구 블록체인 전문 스타트업(초기창업기업)으로 블록체인(Blockchain)과 컨버전스(Convergenceㆍ융합, 복합), 서비스(Service)를 합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올해 창업한 이 기업은 블록체인 기반의 헬스케어와 핀테크 기술을 융ㆍ복합해 사회적 효용 가치를 공유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블록체인씨앤에스의 주요 분야는 블록체인, 스마트 바이오헬스, 핀테크 플랫폼이다. 윤명철 블록체인씨앤에스 대표는 “자체 개발한 블록체인 ‘누릉지 체인링크’로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참여자들(개인/전문가, 기업/단체, 지방정부)에게 성과보상 체계를 구축하고, 공익 기여를 경제적 가치로 실현하기 위한 사회문제 해결형 서비스의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기술에는 △누릉지 체인링크를 통한 바이오헬스와 핀테크 융복합 기술 중심의 수요-공급 연계 개방형 사업화 지원 플랫폼 기반의 온라인 연계 오프라인(O2O) 서비스 제공사업유전정보 파생서비스 △뇌ㆍ맥파 분석을 통한 정신건강 조기 발견 및 사전 예방서비스 △대구지역 화폐(D-Coin) 기능 확장을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 기반 의료문화관광 서비스 등이 있다. 윤 대표는 “내년 상반기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 기반 누릉지 플랫폼 완성과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형 서비스 상용화를 추진해 글로벌 기술격차 해소와 블록체인이란 신산업을 주도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가온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가온 기업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설정하고 부단히 노력한 칭찬의 의미로 상을 주신 것 같습니다. 게임 시장 분석과 기술 강화를 통해 세계 게임 시장에서 경북의 심장 소리를 울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온은 2016년 8월 설립된 게임 콘텐츠 솔루션 개발 기업이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을 기반으로 교육목적을 가진 게임 콘텐츠의 기획부터 기술개발, 운영까지 하고 있다. 가온의 콘텐츠는 신체 활동 기반의 아날로그적 요소(던지기, 뛰기 등)를 디지털 기술의 적용해 증강현실 게임으로 구현한다. 김인철 대표는 “단순하게 즐기는 게임 콘텐츠가 아닌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을 접목했다. 과학적, 정서적 공감과 상상력, 표현력, 관찰력 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놀이+교육) 요소를 첨가해 게임으로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가온이 개발한 VR/AR 인터랙티브(쌍방향) 게임 콘텐츠는 ‘아이아이플레이’다. 아이아이플레이는 아이들의 역동적인 놀이를 표현하기 위한 가온의 자체 게임 브랜드다. 컬러링, 슈팅, 미러, 벽, 미끄럼틀, 바닥, 테이블, 샌드박스 등 모두 8가지로 구성돼 있으며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교육용 게임 콘텐츠다. 김 대표는 “가온의 기업 가치는 소비자가 흘린 땀에 있다. 앉아서 즐기는 게임이 아닌 신체를 움직이고 화면에 제시된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흘린 땀들이 쌓여 가온의 게임이 발전하고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익센트릭게임그루 “지방기업으로써 한계를 극복하라는 의미로 상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경북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견인하는데 자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익센트릭게임그루는 모바일 게임개발 전문회사로 2016년 4월 설립됐다. 지난해부터 최신 트렌드에 맞는 VR산업을 공략하고 있다. 개발한 제품에는 캐주얼, 스포츠 장르 등 3종의 모바일 게임과 공포 장르 관련 VR 콘텐츠가 5종으로 모두 8가지가 있다. 그중 일부 제품은 국내 최대 개발사인 스마일게이트와 콘텐츠 수급계약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공포라는 장르는 몰입감과 사실감이 특징인 VR에 가장 적합하고 잘 표현될 수 있다는 게 박형준 익센트릭게임그루 대표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공포라는 소재로 콘텐츠를 제작해 대구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동성로의 테스트베드(실험공간)에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며 “다양한 연령층과 국적을 가진 고객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시장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현재 센서 업체와 함께 VR을 기반으로 한 낚시 콘텐츠(피싱 스타 사가)를 개발 중이며 어트랙션(모션체어) 업체와 방탈출 콘텐츠, 실사 공포영화의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익센트릭게임그루는 앞으로도 동종이나 이종 업계와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기술을 융합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박 대표는 “지방 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해피스케치 “해피스케치의 기술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뜻깊은 상을 받게 돼 큰 영광입니다. 향후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많은 사람에게 4차 산업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피스케치는 2015년 2월 설립된 디지털 콘텐츠 개발 기업이다. PC/모바일/VR/AR/MR(복합현실) 개발 기술과 제작된 콘텐츠를 활용한 VR/AR 테마파크 운영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해피스케치의 콘텐츠는 상호작용을 통해 다수 사용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연령층이 즐기면서 배우는 에듀테인먼트 성격을 가지고 있어 테마파크와 체험시설에 적합하다. 권오득 대표는 “다수의 방문객이 동시에 접속해 협동이나 경쟁으로 게임을 풀어나가고 놀면서 배우는 에듀테인먼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 지식재산권(IPㆍ뿌까, 캐니멀 등)을 활용해 고객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해피스케치의 제품으로는 ‘히스토리 타임슬립 in 안동’과 ‘스토리 박스’가 있다. 히스토리 타임슬립 in 안동은 교육 체험시설로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 임청각을 스토리텔링했다. 모바일 앱인 스토리 박스는 육면체의 박스를 스마트폰이 인식해 다양한 정보를 재미있게 제공한다. 권 대표는 “해피스케치가 만드는 콘텐츠의 뿌리는 4차 산업혁명에 있다”며 “아직 4차 산업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중요함을 알리고 얼마나 큰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는지 알리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수험생 건강관리] 수면시간 유지·과식은 금물… 수능 당일 ‘아침식사’는 필수

수능시험 일정이 다가올수록 영어단어 하나를 외우는 것보다 건강을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모의고사 성적을 올려놓았다 해도 막상 시험 당일에 몸이 아파서 실력발휘를 하지 못하면 헛수고로 돌아가기 때문이다.◆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수능 전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무리하게 뒤처진 과목을 공부하겠다고 나서면 줄어든 수면 시간만큼 피로가 누적될 수 있다. 갑자기 수면 시간을 줄이면 신체 리듬이 깨져서 학습능률이 저하된다.평소에 늦게까지 공부하는 습관이 있더라도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수능 시험이 오전부터 진행되므로 늦게 자는 습관에 익숙해지면 자칫 시험 당일에는 내내 멍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피해야 할 음식수험생에게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스턴트식품을 섭취하면 이러한 영양소가 부족해져 감기에 걸리기 쉽고 스트레스에도 약해진다. 저녁 공부를 하기 전에는 과식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과식하면 소화하는데 많은 혈액이 사용되기 때문에 두뇌 기능이 떨어지고 졸음을 유발할 수 있다.◆환절기 건강수능시험이 치러지는 11월은 환절기이기 때문에 면역력 저하가 생길 수 있다. 또 큰 일교차와 싸늘해진 날씨로 감기에 잘 걸린다. 평소 가볍고 얇은 옷을 여러 겹 입어 보온에 유의하고 체온 조절에 신경 써야 한다. 따뜻한 차를 수시로 마시면 기관지를 보호하고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시험 전날시험 전날에는 숙면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고 야식을 피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죽이나 선식 등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수험생들은 기본적으로 긴장 상태이기 때문에 세 끼 식사도 소화 흡수가 쉬운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가급적 위나 장에 자극을 주지 않는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좋으며 소화가 잘 되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음식들로 식사를 해야 한다.◆시험 당일시험 당일에는 시험 시작 전 2시간 이상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 뇌가 잠에서 깨어나 왕성한 활동을 하기까지 2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반드시 해서 두뇌 활동에 필요한 포도당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평소에 즐겨 먹었고 소화흡수가 원활한 음식으로 식사를 해야 혹시 모를 위장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 또 신경안정제(항불안제)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시험 이전에 복용해보고 졸음 등의 부작용을 확인해야 한다.시험 당일에는 당분이 많이 함유된 식품을 적절하게 섭취하는 게 좋다. 꿀물을 챙겨가서 쉬는 시간에 섭취하는 방법도 권할만하다. 꿀물 등이 공급하는 포도당이 혈관으로 급속히 흡수돼 단시간에 두뇌 회전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커피와 같은 카페인 음료는 방광을 자극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도움말: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건강검진센터이동률 기자 leedh@idaegu.com

[겨울철 불청객 ‘감기와 독감’] ‘감기’는 위생관리가 답…‘독감’은 백신접종으로 예방 가능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3월 미국 캔사스주의 한 군부대에 독감이 유행해 병사 48명이 사망했다.이 독감은 인근 군부대와 도시 지역으로 급속히 퍼졌으며 감염된 병사를 통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퍼져나갔다. 프랑스에서는 2만2천여 명이, 아프리카 프리타운 지역에서는 인구의 3%가 독감으로 희생됐다.이 독감은 전체적으로 2천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고 중세유럽의 흑사병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질환으로 기록된다.세계적인 독감의 유행은 1957년(아시아 독감)과 1968년(홍콩 독감), 1977년(러시아 독감)에도 발생해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감기와 독감, 손과 코를 통해 전염일반인의 눈에 물론 감기와 독감은 매우 유사하다. 바이러스성 질환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무엇보다 증상이 비슷하다.감기와 독감은 모두 기침이나 콧물이 나오고 피로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전염경로도 큰 차이가 없다. 감기는 대부분 손과 코(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 또 놀이방이나 교실 등 밀집된 공간에선 호흡기를 통해 공기 중의 바이러스가 침투하며 말할 때 침이 튀겨 전염되는 경우도 많다.따라서 놀이방, 유치원 등의 밀집도가 높은 곳일수록 감기에 걸릴 가능성도 커진다. 독감 바이러스 역시 환자가 하는 기침이나 말할 때 나오는 조그만 입자에 포함돼 전염된다. 잠복기는 18~72시간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매우 빠르게 전파되며 처음엔 아동에게 그 후엔 성인에게 전파되는 게 보통이다.◆죽음까지 부르는 독감첫째 감기와 독감은 증상이 다소 차이가 있다. 감기는 콧물, 재채기, 기침, 인후통, 가래 등 주로 호흡기계 증상을 일으키며 보통은 7~10일 사이에 사라진다. 독감은 38℃ 이상의 고열과 갑작스러운 오한, 심한 근육통, 피로감, 설사 등 전신 증상을 일으키며 심하면 3주 이상 지속된다. 그러나 요즘은 감기 중에도 전신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둘째 감기는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만 해도 통상 좋아지지만 독감은 심하면 죽음까지 부르는 치명적 질환이다. 감기도 증상이 심해 당장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는 대증치료를 하지만 합병증을 일으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반면 독감은 폐렴, 중이염, 뇌염, 이하선염, 심근염 등의 합병증을 일으키고 영유아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 노인이나 당뇨병 환자, 심장질환자 등은 독감으로 인한 합병증 때문에 사망하는 일이 비교적 흔하다.기존에 천식이나 폐질환, 심부전 등을 앓고 있다면 그 질환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면역력이 약한 소아, 노약자 만성질환자는 타미플루 같은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해야 한다.셋째 원인 바이러스가 다르다. 감기는 리노바이러스와 코로나바이러스 등 200여 종의 감기 바이러스 가운데 하나에 감염돼 걸리고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급성 발열성 질환이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인체 내에서 복제를 거듭하면서 세포를 파괴하며 손상된 세포는 2차적으로 세균에 감염되기 쉽다.넷째 감기는 사계절 걸리지만 인플루엔자라 불리는 유행성 독감은 특정한 유행시기가 따로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주로 10월부터 이듬해 4월 사이에 유행하며 가을에서 겨울,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많다.다섯째 감기는 개인위생 관리 외에 특별한 예방법이 없지만 독감은 백신 접종을 통해 예방이 가능하다. 독감백신은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기 전에 미리 접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감염내과 류성열 교수이동률 기자 leedh@idaegu.com

비봉산 널따란 품에 안겨 우뚝 솟은 죽장사 오층석탑…자애로운 큰스님 같구나

죽장사 경내에 있는 선산죽장동 오층석탑. 국보 제130호다. 높이가 10여m나 되며 현존하는 오층석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개나 되는 돌이 쌓여 만들어진 이 탑에는 서로 먼저 탑을 쌓겠다며 내기를 한 남매의 전설이 서려있다. 죽장사에는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제130호 오층석탑이 있다.이 석탑이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탑의 높이가 10여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탑이기 때문이다.현존하는 오층석탑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그래서 사다리 없이는 정상부까지 올라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대석부터 정상부인 노반까지 수백 개의 석재가 쓰였을 것으로 추산된다.규모를 고려하면 한 개인이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사회적 배경과 국력, 불교의 위치 등을 고려하면 불교미술계의 최초 정점인 통일신라시대 건립됐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이 탑에는 두 남매의 전설이 전한다.통일신라시대 두 남매가 서로 재주를 자랑하다가 오빠는 다른 곳에서, 누이동생은 죽장사에서 석탑을 먼저 세우는 내기를 했는데, 누이동생이 먼저 이 오층석탑을 쌓았다고 전한다.오층석탑은 안정적이면서도 장엄하지만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마치 자애로운 큰 스님의 모습이랄까.어떤 이는 이 석탑을 보고 “부드러운 힘이 충만해 온종일 바라보아도 지루하지 않다”고 표현한다.신라불교가 처음 전해진 구미(일선, 선산)의 불교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주변 관광지죽장사는 현재 구미시 선산출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인근에 선산 재래시장이 있다. 2일과 7일에 전통시장이 선다. 경북 도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축에 속하는 오일장이다.선산 재래시장에서 조금 더 가면, 조선 시대 관아였던 선사 객사(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21호) 와 선산 향교가 있다.또 조선전기 문신으로 사육신의 한 사람인 단계 하위지 선생 유허비(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36호)와 묘가 죽장사 부근에 있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자문=권삼문 전 구미시청 학예사사진=한태덕 전문 사진작가[01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광은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죽장사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비봉산 품에 앉은 죽장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조선 중종 25년인 1539년까지 존속한 후 폐허가 됐다가, 1954년 암자가 들어서고 명효스님이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중창했다. 오층석탑 뒤로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이며 ,왼쪽은 종무소 역할을 하는 원각당이다.[02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화는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죽장사오층석탑을 배경으로 멀리 금오산과 작은 봉오리들이 보인다. 죽장사는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만큼 탁 트인 전망을 선물한다. 멀리 감천을 따라 펼쳐진 선산들도 눈에 들어온다.[03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화는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죽장사죽장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대신 사찰 입구를 표시하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불화가 그려진 깃발을 걸어 두는 기둥으로 선사시대의 솟대나 일본 신사의 도리와도 성격이 유사하다. 죽장사의 당간지주는 경내에서 600여m 떨어진 대나무밭에 외롭게 서 있다.[04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화는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죽장사죽장사 경내에 있는 선산죽장동 오층석탑. 국보 제130호다. 높이가 10여m나 되며 현존하는 오층석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개나 되는 돌이 쌓여 만들어진 이 탑에는 서로 먼저 탑을 쌓겠다며 내기를 한 남매의 전설이 있다.[05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화는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죽장사 오층석탑 오른편에 있는 주춧돌. 최근 절을 중창하는 과정에서 나온 주춧돌을 모아 둔 것이라고 한다. 주춧돌의 크기가 보통 사찰 주춧돌의 2배에 이르는 것도 있어 당시 죽장사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갈색 적삼 걸친 목조각장 자신과 닮은 불상 어루만지며 “세월 가는대로 흐르듯 왔지요”

하얀 천으로 몸을 감싼채 연꽃을 쥐고 있는 관세음보살상. 영천시 청통면 새학길 62. 지난 10월18일 경북무형문화재 제405호로 지정 받은 목조각장 조병현의 집이다. 문패는 물론 공방을 알리는 현판이나 길을 안내하는 입간판마저 따로 없다. 마을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 찾아간 그 집 앞에 이르자 순간 발걸음이 머뭇거려진다. 불그레하게 물든 담쟁이덩굴과 활짝 피어난 보랏빛 나팔꽃 줄기로 뒤덮인 지붕과 벽이 동굴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마을 동쪽 끝자락에 선 이 동굴 같은 50평짜리 한 칸이 목조각장 조병현의 공방이자 살림집이다. ◆나무토막의 변신, 그 재미를 좇아 50년 공방 한쪽 끝에 28번째 보리달마(달마대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공방이 어지럽다. 크고 작은 나무토막과 전기톱을 비롯한 다양한 공구들 그리고 겨울 화로와 깎아내린 나무의 속살들. 나무에서 풍겨나는 목향이 방안의 너즈레함을 덮어준다. 완성된 두어 개의 목조각 불상이 눈에 띈다. 짙은 갈색 적삼을 걸치고 평상에 선 달마대사의 길게 늘어뜨린 법의에 옷주름이 선명하다. 그리고 채색되지 않은 나한불 목각 하나가 그 옆에서 새로 조각하고 있는 조병현의 손놀림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목조각장 조병현은 파내던 칼질을 멈추고 찾아든 방문객에게 둥글게 자른 통나무 둥치를 내밀면서 앉으라 권한다. “지금 조각하고 있는 것도 불상입니까?” “네, 그렇고 말고요. 나는 불상 이외에 다른 조각은 할 줄 모릅니다.” 명장은 어슴프레 윤곽이 드러난 불상의 머리 부분을 쓰다듬어면서 단호하게 말한다. 구렛나루로 얼굴을 온통 뒤덮은 초로의 조 명장, 그는 자신을 닮은 듯한 얼굴선의 불상을 놀이감처럼 만지고 깎으며 마음에 담은 형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미소가 닮았어요. 조 명장님의 분신인 듯도 하고….” “글쎄요. 나는 오로지 조선 후기 불상 조각 양식을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고유한 예술 의지를 키워나가는데 만족합니다.” 조 명장은 말을 아끼 듯 아니면 방문자의 말문을 막으려는 듯 한 마디 덧붙인다. “별 이유는 없지만 그저 인연따라 긴 세월 그렇게 살아온 것이지요.” 소년 병현은 맏형이 너무나 부러웠다. 경기도 양평,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별다른 놀이감이 없었다. 그래서 헛간채 밖에 땔감으로 널부러진 장작개비를 채곡채곡 쌓았다 허물었다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 톱으로 썰어보기도 하고 자귀로 나무 속을 홈처럼 파 보기도 하였다. 가지런하게 포개어 올린 장작더미는 마치 흙담을 쌓은 둣 매끈하였고, 톱으로 켠 나무 토막은 일정하게 잘라 놓은 절편 같았다. 형은 톱과 끌 등 몇 개의 연장으로 무엇이든 잘도 만들어냈다. 지게며 함지며…. 형이 만든 것들은 모두 농가에서 편리하게 사용되는 물건이 되었다. 한번은 적절하게 마른 소나무를 잘라 속을 파내고 다듬어 마치 큰 박을 갈라놓은 듯이 알곡을 담을 수 있는 매끈한 나무 바가지를 뚝딱 만들어냈다. 아궁이에서 재가 되고 말 어줍잖은 나무 토막들이지만 형의 손을 거치면서 변신한 그 모습들이 어린 병현의 마음을 현묘하게 끌어 당겼기에 병현도 눈만 뜨면 나무토막을 만지고 놀았다. “얘들아, 너희는 타고 난 손재주가 있나보다.” “어머니, 병현이는 어리지만 저보다 더 잘 합니다.” “그래, 둘다 솜씨가 좋구나!!” 병현의 형은 다만 겸양과 칭찬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무토막에 대패질과 끌질을 하는 자신을 어깨너머로 보고 익힌 병현이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터이다. 나무를 켜고 쪼개고, 깎고 결을 파내는 일에 몰두하던 형을 따라 병현은 자신도 모르게 마치 화가의 모사 단계처럼 그렇게 초보 과정을 밟게 된 것이다. “비릿하면서 향긋한 내음과 따뜻하고 촉촉한 질감을 주는 나무 위에 내 손길이 모아지면 순간 하나의 쓰임새 있는 물건으로 바뀝니다. 나는 그 변신이 끌어당기는 호기심에서 도망쳐 나오지를 못했지요. 나무를 만지는 일은 어린 내가 폭 빠질 만큼 재미가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가야할 나이가 되었지만 공부는 뒷전으로 멀리 밀쳐버리고 말았지요.” 그러다 열다섯 살이 된 병현에게 아주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다. 서울에서 이름 난 목공장인 김성수 선생(타계·노년까지 목조각 교육에 헌신)이 양평으로 내려와 목공 학원을 낸 것이다. 병현은 중학교 진학 대신 그 목공학원을 찾아 목조각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목불상의 태줄받이, 명장의 손목 나팔꽃 줄기로 뒤덮인 지붕과 벽이 동굴을 연상케 하는 조병현 목불명장의 공방. 작업실 입구에는 문패는 물론 공방을 알리는 현판이나 입간판 하나 없다. 조각은 오로지 손으로 한다. 명장은 손을 혹사(?)시킨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그의 손은 목불상을 받아내는 태받이 손이기에 신비롭고도 숭고하다. 불상을 탄생시키는 생명의 손이라 할 만하다. 조병현 명장의 손바닥엔 차돌처럼 단단한 굳은살이 깊게 배어있다. 50여 년 동안 끌과 조각칼을 잡은 아름다운 흔적이요 훈장이리라. 명장의 손놀림은 쉼이 없다. 원목은 큰 톱으로 켠다. 그후 잘라 낸 나무토막의 쓰임새를 재단하고는 다시 작은 톱으로 켠다. 그리고 여러 가지 모양의 끌과 조각칼로 나무결을 밀고 당겨서 각(角)을 없앤다. 그것이 조각의 시작이요 끝이기도 하다. 사포질을 하듯이 칼로써 불상의 몸매를 매끈하고 부드럽게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조병현 명장은 늘 현재의 순간이 곧 시작이라 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이제부터 나만의 세계를 더 천착해 나가야지요.” “명장이 추구하는 ‘나만의 세계’를 한번 엿들어 봐도 될까요?” “사실 초심자일 때는 하나의 목불상에 온갖 것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불상이 걸친 옷의 주름과 매듭의 정교함은 물론이고 다양한 수인(手印:불상의 손의 모양)을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기교를 부렸지요. 한 각 한 각을 뜨내는 데 숨가쁘게 매달렸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훨씬 단순해졌습니다. 선이 굵어졌다 할까요, 각의 숨을 느리게한다 할까요. 나의 귀착점은 곧 조선불을 조각하는 것입니다. 조선불상은 장식이 화려하지 않고 표정도 그리 환하지 않지만 그 수수함과 소박함에서 오히려 친근함을 느끼게 합니다. 예컨대, 법의의 주름 넓이라든가 채색의 단조로움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고 현세를 극복해 나가는 단순하고도 강인한 겉모습이 그러합니다. 기교가 없는 것이 매력이지요. 나는 끊임없이 그런 불상을 내 조각칼로 다듬어 내고 싶습니다.” 조각칼을 잡을 때마다 조명장은 붓다의 거룩한 얼굴을 시대상황에 맞게 재현해보리라 다짐한다. 둥글고 밋밋하지만 턱과 빰에 약간 살이 오른 얼굴 형상에 눈은 반쯤 떠서 코끝을 보는 상태로 하고 눈꼬리가 길게 치켜 올라가게 조형한다. 입은 콧망울보다 조금 넓게 표현하면서 꼭 다문 모습으로 그리고 양쪽 입술은 살짝 올려 미소가 있는 듯 없는 듯한 표정을 만들어 낸다. 그는 밑그림이 없는 목조각을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밀고 당기는 칼질을 멈추지 않는다. 불상에는 시대정신과 부처님을 향한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이 투영되기에 더욱 정성을 들인다. 이렇게 불상을 고집하는 조 명장의 조각 세계이지만 한 곳에 머물러 있다거나 자기만족으로 정체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맥주캔 같은 향긋한 나무 조각통 한 개를 집어 들어 보이며 “감실불(龕室佛)입니다”하고 내민다. 20㎝ 높이에 지름이 70㎝ 정도의 원형의 전단나무 통을 열자 고유한 나무향이 풍겨났다. 촘촘하게 목불이 새겨진 세폭병풍 양식이다. 가운데 약사여래불을 비롯하여 좌우에 10대 제자불과 12위의 신장불을 새기고 법당 내의 풍경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여래불과 보살 그리고 나한들의 표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장신구이다. 감실불은 그 섬세한 조각미가 으뜸이지만 실용성도 빠지지 않는다. 바랑이나 핸드백에 넣어 휴대하기에 알맞은 크기의 감실불은 산승이나 재가 불자들이 여행할 때 사용하는 휴대불이기도 하다. 조각의 이력이 깊어갈수록 단순미를 좇는다고 하던 조 명장의 작품세계와 전혀 다른 양식을 만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정체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명장의 면면을 볼수 있었다. 다듬다 만 불상 앞에 다시 앉은 조 명장은, 영조시대 도화서의 화원이자 스님이던 의겸에서 비롯된 조선불화의 맥을 김일섭과 임석정 스님이 이어갔고 그리고 자신이 사숙한 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송헌 전기만이 그 뒤를 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송헌의 수제자이자 현재 전수조교로 있는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후계자를 기르고 싶다던 그에게 곧 인연이 닿는 젊은이가 찾아 들 것이라 기원해 주며 하직인사를 나누었다. 공방문을 나서는 방문자의 등 뒤로 유정 조병현 명장의 초승달 같이 굽은 조각칼 미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건조된 나무살을 깎아내는 소리가 마치 단감을 깎는 소리인냥 정겹기 그지 없다. 김정식대마문화콘텐츠연구소장■ 이 기사는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사방 100리 최부자 땅 광복·교육에 모두 바쳐… 경주 300년 만석꾼 ‘육훈’에 깃든 자취만

경주시 교동 최부잣집의 사랑채. 최창호 이사의 안내로 경주시 교동 최부잣집에 들렀다. 공식 명칭은 ‘독립유공자 최준 선생 생가’(국가민속문화재 27호)다. 휴일을 맞아 관광객이 끊이지 않았다. 1970년대 불이 난 사랑채 ‘용암고택’은 최근 복원됐다. “의친왕(義親王)이 여기서 머문 적이 있어요. 문파란 호를 지었습니다. 신라(문천)의 언덕이란 뜻이지요.”사랑채를 지나 안채로 들어갔다. 중간에 이 집에 내려오는 육훈(六訓)이 적혀 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경주 최부잣집에 내려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의무)의 여섯 가지 행동지침이다.“안채엔 살림이 있고, 여름에는 주손이 내려와 한 번씩 주무십니다.” 처음엔 그 말뜻을 몰랐다. 문파 생가 최부잣집 역시 지금은 영남학원 소유가 됐다. 후손은 생가의 지상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문파 최준은 300년간 이어진 이른바 9대 진사 10대 만석의 마지막 부자로 1884년 경주 교촌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경서와 사기 등을 읽고 서예를 익혔다. 아버지 최현식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1910년 이후 가사 일체를 문파에게 맡긴다. 그는 24세에 묘비에 새겨진 장릉참봉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한 채 제사를 받들고 과객에 숙식을 제공하는 등 벼슬보다 사람의 도리를 중시했다.◆백산상회 설립, 독립운동 자금 조달문파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민족 계몽이 시급하다며 간이학교를 설립해 무료로 배우게 했다. 또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소식을 듣고 1914년 친구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산 안희제와 함께 부산에 무역회사 백산상회를 설립해 사장을 맡는다.백산상회는 겉으로는 무역회사지만 국내외 독립운동가의 연락소였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 백산상회는 1919년 자본금 100만 원을 증자해 주식회사로 개편한다. 문파는 경주 집을 담보로 35만 원을 넣었다.이후 무역을 구실로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 100여만 원을 보낸다. 백산무역은 이후 부도가 난다. 문파는 전 재산이 차압될 위기에 몰렸다. 또 비밀이 탄로나 그는 공주헌병대에서 옥살이를 한다.그 무렵 일제는 유화적인 문화통치로 전환한다. 3·1만세운동 이후다. 총독부는 인심을 얻고 있는 최부잣집을 파산시켰다간 어떤 저항에 봉착할지 모른다는 판단을 한다.마침내 문파의 채무 상환을 10년간 유예하는 조치가 내려진다. 최 옹은 “경주 최부잣집에 머무른 의친왕이 일본 식산(殖産)은행장에게 상환 연기를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설에 가깝다”고 덧붙였다.덕분에 최부자의 전 재산 9천 석은 1935년 조선신탁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상환 기일이 돌아오기 전 용케 광복을 맞이했다. 최부자의 재산은 최종 3천 석이 남아 있었다. 문파는 그걸 교육사업으로 모두 돌린다. 왜 그 길을 택했을까.최 옹의 증언. “할아버지가 한번은 저에게 의견을 물어요. 최부자 재산이 영원히 내려갈 수는 없다. 그 자취를 교육사업에 영원히 남기고 싶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손자는 “할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답했다. 그래서 남은 재산은 모두 교육사업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나는 집 한 채 상속 받은 게 없어요.”◆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문파는 1915년 대구에서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하는 일에 앞장선다. 광복 뒤 1946년 2월에는 경교장을 찾아 존경하던 백범 김구를 만난다. 백범이 칭찬한다.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 준 최 선생의 공로야말로 3천 만 동포가 우러러볼 것입니다.” 문파는 그때서야 자신이 송금한 자금이 안희제를 통해 어김없이 임시정부에 들어간 걸 백범의 서류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최준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여기서 불편한 이야기 하나. 의혹이 제기된 내용이다. 대한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박상진 의사의 재산과 관련해서다. 문파는 박 의사의 사촌 처남이다. 가까운 관계여서 박 의사는 문파에게 재산 관리를 맡겼다. 박 의사가 순국한 뒤 유족은 그가 미쓰이물산에 저당한 토지를 문파가 매수한데 대해 불복 신청을 한다. 문파가 박 의사 집안을 몰락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최창호 이사는 “오해”라고 덧붙인다.◆문화에 대한 탁월한 식견, 기업인으로서도 맹활약문파는 문화에도 식견이 있었다. 1920년 경주박물관 전신인 경주고적보존회를 설립하고 회장을 맡아 문화재 지키기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33년에는 여러 문중과 손잡고 풍속·습관·토산 등 경주지역 현황을 밝힌 ‘동경통지(東京通誌)’ 14권을 발간한다.또 1920년 그는 동아일보의 창간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중앙학원재단 이사로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도서관 설립기금을 다액 기부하기도 한다.기업가로도 활동한다. 문파는 1919년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경성방직주식회사의 주주 겸 창립위원을 지낸다. 1920년대엔 고려요업주식회사와 대동무역회사를 창립하고 한성은행과 경남은행 주주로 참여하기도 했다.그 무렵 조선 총독은 3·1운동 이후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문파를 중추원 참의와 문교부장을 맡도록 회유했으나 그는 “우매한 촌로일 뿐”이라며 끝내 거절한다.경주 최부잣집 앞에는 ‘경주 최부자 아카데미’ 건물이 있다. 최부자의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경주시가 땅을 매입해 지었다. 사방 100리 최부자 땅은 광복과 지역 인재 양성에 모두 쓰이고 이제 육훈을 전할 공간만 남은 것이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 yeeho1219@naver.com연보1884년 경주시 교동에서 경주 최씨 최현식과 풍산 류씨의 맏아들로 출생1898년 안동의 풍산 김씨 김석윤과 결혼 1904년 아버지로부터 가사(家事)를 물려받음1908년 장릉(단종의 능) 참봉1912년 경남은행 발기인, 이사 선임1915년 조선국권회복단 단원, 광복회 재무부장 1919년 백산무역주식회사 취체역 사장, 광복회사건으로 체포돼 재판1920년 동아일보 창립 발기인, 경상북도 평의원, 경주고적보존회 이사장1922년 중앙학교 보성학교 재단이사 1933년 ‘동경통지’ 편찬 주관1945년 경북종합대학 기성회 회장 1947년 대구대학 설립 1955년 문파교육재단·계림학숙 설립1957년 대구대학·계림학숙 합병1970년 타계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2018 그랜드포럼 세션2스마트시티 구축,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창의적 도전문화 중요…대구형 스마트시티 ‘시민체감’ 우선돼야”

‘2018 대구·경북 그랜드포럼’ 세션 2에서 김현덕 경북대 첨단정보통신융합산업기술원장의 ‘스마트 시티 구축,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발표가 끝난 뒤 토론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 원장, 권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전채남 더 아이엠씨 대표, 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 도시혁신기획실장, 이종수 산업경제발전연구원 본부장, 조영태 한국토지주택공사 스마트도시연구센터장.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4차 산업과 스마트시티 구축, 산업성장과 시민행복이 함께하는 글로벌 선도 도시로 대구가 앞장서나갈 전망입니다.” 지난 2일 영남대 천마아트센터에서 개최된 ‘2018 대구ㆍ경북 그랜드포럼’ 세션2는 ‘스마트시티 구축,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를 주제로 다양한 스마트시티 구축 방안 및 향후 대구가 선도도시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 설정 등의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김현덕 경북대 첨단정보통신융합산업기술원장은 대구의 스마트시티 전략과 현황을 비롯해 국가전략 프로젝트, 수성알파시티 조성 사례와 앞으로의 계획을 중심으로 스마트시티 방안과 기대효과 등을 설명했다. 김 원장은 “스마트시티 선도도시로 대구는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비전을 설정해 지자체 차원에서 추진한 것이 큰 성과로 이어져 왔다. 산업성장과 시민행복이 함께하는 글로벌 선도 도시 비전 설정을 통해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 창업 등 공유 경제 전면화, 시민들도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이면서 소비자가 되는 경제활동의 패러다임을 바꿔보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스마트시티가 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문화에 있다. 창의적인 도전, 연결의 문화를 통해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통신기술과 IT기술에 대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성장과 혁신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미래성장산업 성장의 육성까지로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구 스마트시티 전략을 설명한 김 원장은 대구 스마트시티 현황, 국가전략프로젝트, 수성알파시티 선도모델 소개, 앞으로의 계획 등 파트로 나눠 대구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김 원장은 “대구가 제일 처음 주목한 스마트시티로서의 첫발은 시민 생활 환경분야에서 뗐다. 특히 상수도 원격검침으로 달성군 가창면 전역 3천600여 가구를 설정해 시범적으로 진행해왔으며 데이터 수준 98% 수준으로 사실상 완벽히 이뤄지고 있다”며 “또 여러가지 에너지 소비에 관한 스마트한 대응을 위해 대구시가 통합관제센터를 구축하고 국가산단 블록형 마이크로그리드 구축사업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미래자동차 교통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여러가지 산업 육성 시험 인증 인프라 구축과 공영주차장 스마트파킹 서비스 구축, 교통체계 지능형 교통 시스템 등을 대구가 다른 지역보다도 빨리 적용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스마트시티로서 대구의 모범사례로 ‘뚜봇’(스마트폰과 PC로 여권, 차량 축제, 일반행정에 대한 민원을 학습된 정보를 바탕으로 1초 이내 답변을 제공하는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 사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또 국가전략프로젝트로 대구는 교통ㆍ안전ㆍ도시행정분야의 서비스를 실증하는 도시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해당 분야에서 버스와 공항, 철도, 지하철 3호선 모노레일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효율적 연동, 교통 분담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 수재해 예방 서비스 등을 제공해 쾌적한 시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선도 모델로 김 원장은 수성알파시티를 소개했다. 그는 “수성알파시티는 테스트베드를 통한 스마트서비스 검증을 거치고 현재 거의 구축이 끝나서 검수를 진행 중이다”며 “대구시는 수성알파시티의 기반을 테스트베드로 이용해 성과를 모아서 자율주행차, 드론을 이용한 시설물 관리 서비스 등을 시험해보고 만들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다양한 교통수단들을 테스트할 예정이다. 통합관제 플랫폼 증강현실과 자율주행 서비스 확대해나가고 스마트시티와 스마트홈의 연계해 개방적 데이터 허브 연동 등을 목표로 해나가고 있다”고 말하며 주제발표를 마쳤다. 김 원장의 주제발표 후 권업 대구테크노파크(TP) 원장(좌장)과 조영태 스마트도시연구센터장, 이종수 산업경제발전연구원 본부장, 김희대 대구TP 정책기획단 도시혁신기획실장, 전채남 더 아이엠씨 대표가 토론자로 나서 대구ㆍ경북의 4차 산업과 스마트시티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권업 TP 원장은 “대구가 국토교통부의 지난 7월 스마트시티 실증도시 국가전략도시로 시작됐다. 대구가 전 세계 선도하는 스마트시티 합류하게 되는 사건이다”며 “실증도시라는 말처럼 축적된 빅데이터를 갖고 타 도시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들을 개발하는 중대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영태 스마트도시연구센터장은 “스마트시티가 추구하는 것 중에 하나가 기존의 자원을 잘 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인적자원들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보의 취약한 집단은 최첨단의 기술들이 자기와 상관이 없고 배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데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 개발기술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종수 산업경제발전연구원 본부장은 “스마트시티가 발전하려면 시민 체감이 우선돼야 한다. 위에서 지시한 대로만 하는 탑다운 개발방식이 아닌 시민 모두가 나서서 스마트 시티 구축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또 인구의 감소문제 등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마련 방향으로 스마트시티 구축 방향 설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마트사업 구체화에 대한 지적도 제시됐다. 김희대 대구TP 정책기획단 도시혁신기획실장은 “현재 대구의 스마트시티 구축에는 인프라에 대한 집중도가 여전히 높다. 이대로는 우리가 공공연하게 실패했다고 이야기하는 유비쿼터스 시티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며 “또 대구도 사업 계획을 구체화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헬싱키의 사례를 보면 시민에게 1시간 더 돌려주기 위한 스마트시티라는 구체적 목표가 있다.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채남 더 아이엠씨 대표는 지역 기업인으로서 스마트시티를 논했다. 전 대표는 “대구형의 스마트시티를 위한 지혜를 모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가 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스마트 시티를 수주하다 보니 지역 기업의 참여 비율이 높지 않다. 지역에 있는 기업을 모아서는 과제 따내기가 어렵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패널 질의응답 토론 시간에는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특히 스마트시티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순기능도 있지만 반면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으며 보안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또 시민체감을 높이고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교육기관 연계, 도시통합운영센터 운영 필요 등 의견이 다채롭게 제시됐다. 김현덕 기술원장은 “스마트시티 구축과정에서 대구가 빨리 관련 산업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시대를 거스를 순 없는 만큼 한발 더 나아간 발전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며 “정보격차에 대해서도 스마트시티지원센터를 운영해 1천 명정도 시민 평가단을 구성, 시민에게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보 교육을 하고 있다. 오히려 스마트시티가 완벽히 구성되면 정보가 좀 더 공유가 많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구도 통합그림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를 하고 있다. 이에 5년 단위 스마트도시 종합계획 수립할 계획이다”며 “보안 역시 시민적 합의가 필요해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고 답변했다. 김우정 기자 kwj@idaegu.com

신라의 우수한 토목공법 ‘판축’…늪지에 조성된 황룡사 육중한 건물 지탱

역사문화관 2층에 황룡사와 9층목탑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역사실.역사문화관 1층에 마련된 카페테리아 쉼터. 직원들이 주문도 받고, 역사관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시간은 멈추지 아니하고 흘러 역사를 꾸민다. 역사는 또 시간의 흐름으로 잊혀지기도 하지만 흔적을 남긴다. 시간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끝없이 창출되는 역사는 오늘에 이어져 생멸하며 발전하기도 하고 도태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사를 돌아보면서 지혜를 얻고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박물관을 짓고, 기념관을 설립하는 것도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의 하나일 것이다. ‘온고이지신’이라는 고사성어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학생들의 늘어나는 발걸음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라 천 년의 화려한 역사를 대표하는 것들 중에 황룡사는 늘 앞자리를 차지한다. 진흥왕을 비롯해 4왕의 손을 거치면서 완성되고, 700년의 긴 세월동안 백성들의 평화를 지켜왔던 터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황룡사는 불국토 신라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삼국유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황룡사를 가장 많은 분량으로 설명하고 있다. 1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황량한 벌판으로 남은 땅을 파면서, 그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보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무엇이 있음이 분명하다. 황룡사가 건축된 배경과 소실되기까지의 과정, 황룡사 9층목탑의 건설과 소실 등을 담은 영상물과 기념물, 복제 유물 등으로 꾸며진 황룡사역사문화관은 새로운 경주의 체험학습장이 되고 있다. 카페테리아 쉼터와 기념품점 등도 개설해 종합휴게실 개념으로 운영되면서 이제 새로운 힐링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황룡사 700년 황룡사는 신라시대 통치철학을 비롯해 당시의 주변 정세까지 짐작하게 하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약체 신라가 삼국 중에서도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하는 시대에 건축되었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진흥왕이 7세에 즉위해 어머니 지소태후의 섭정에서 벗어나 직접 왕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통치이념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건축해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진흥왕은 스스로 전륜성왕임을 자처하면서 백제를 공격해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하고, 고구려도 압박해 북으로도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왕권강화에 나서 553년 왕궁을 지으려다 사찰로 변경, 황룡사를 건축했다. 황룡사는 가로, 세로 각각 약 300m에 이르는 넓은 부지에 조성돼 신라시대 최대 규모의 사찰로 확인되고 있다. 황룡사의 위치는 당시 신라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황제의 거처를 나라 중심에 두고자 하는 의미로 읽힌다. 법흥왕에 이어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으려는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거칠부와 고구려에서 망명해 온 승려 혜량의 영향도 크게 미쳤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황룡사는 남쪽에서부터 남문,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의 순으로 건물을 세웠다. 건물의 크기를 남문 3칸, 중문 5칸, 목탑 7칸, 금당 9칸, 강당 11칸, 내부로 들어오면서 점점 규모가 확산되는 형식으로 지어 부처의 편안한 세계로 들어서는 분위기로 꾸몄다. 금당에 세웠던 장육존상 삼존불의 높이가 5m 이상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건물의 웅장한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황룡사터에서 출토된 용마루로 사용되었던 치미는 높이 182㎝, 최대 폭 105㎝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동양 최대 크기의 치미다. 황룡사 건물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진지왕을 지나 진평왕대에도 상당한 보수 확장공사를 했다. 선덕여왕이 즉위해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목탑을 세웠다. 1층부터 9층까지 일본을 비롯, 9개 주변국가를 아우르는 의미도 담고 있어 황룡사는 호국사찰의 본산으로 해석된다. 왕권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건축으로도 이해된다. 목탑은 선덕여왕의 여동생 남편인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의 지휘로 백제의 장인 아비지가 건축했다. 높이 82m로 요즘 27층 높이의 건물이다. 순수 목조건축물로 요즘 기술로도 흉내내기 어려운 뛰어난 건축기술이다. 황룡사 9층목탑 심초석에서 발견된 백자 항아리는 당나라에서 제조한 것으로 확인돼 당시 중국과의 문물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황룡사는 진흥왕으로부터 시작해 선덕여왕까지 4명의 왕이 94년에 걸쳐 완성됐다. 553년 짓기 시작해 1238년 몽고에 의해 소실되기까지 약 700년간 황룡사는 신라, 고려까지 호국사찰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황룡사 9층목탑실 황룡사 역사문화관 1층에 황룡사 9층목탑 10분의 1 축소모형이 세워져 있다. 당시 웅장했던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 황룡사역사문화관은 외부에서는 다소 규모가 큰 한옥으로 보인다. 1층 문을 밀고 들어서면 커피 향이 따뜻하게 반긴다. 경주시가 직영하는 ‘카페테리아’ 전시형 카페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주문도 받고, 역사관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왼쪽으로 가면 안내실이 마주한다. 경주시민들은 무료이지만, 관광객들은 3천 원의 입장료가 있다. 단체는 2천 원이다. 남서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한 눈에 황룡사 9층목탑이 들어온다. 황룡사를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해 건축한 모형탑이다. 목재로 정교하게 다듬어 세워 당시 건축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주변에는 다양한 전시를 열어 방문객들의 눈을 호사하게 한다. 모형목탑은 10분의 1로 축소한 크기지만 8m가 넘는 높이로 2층 베란다 위로 솟아 당시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북쪽에 입체 영상관을 설치해 황룡사 건축설화와 9층목탑의 건축, 소실 장면을 생생하게 입체 화면으로 보여준다. 10여 분 짧은 시간에 많은 공부를 하게 하는 콘텐츠로 학생들의 체험학습 필수코스다. ◆역사속의 장육존상 역사문화관 2층은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9층목탑 찰주본기, 치미 등의 복제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 9층목탑의 건축구조와 토목공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고건축실을 설치해 신라시대 뛰어난 건축공법을 공부하게 한다. 황룡사의 창건설화와 700년의 역사기록, 중문 복원영상, 9층목탑 복원계획안, 발굴역사스페셜 등 고증연구와 향후 복원계획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실도 있다. 9층목탑의 일부를 실물크기로 복원한 부분과 포토체험존, 황룡사지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고, 간이휴게실이 벤치와 함께 준비돼 있다. 전시실 가운데 장육존상의 실물 크기를 상상할 수 있게 머리 부분을 복원 전시하고 있다. 발굴에서 출토된 불상의 머리카락에서 유추해 복원한 것이 눈길을 끈다. 황룡사 장육존상은 황룡사 9층목탑, 진평왕의 천사옥대와 함께 신라 삼보 중의 하나다. 장육존상은 높이가 1장6척으로 5m 이상의 신라 최대 금동불상이다. 무게는 3만5천7근으로 황금 1만198푼, 두 보살상은 구리 1만2천근과 황금 1만136푼이 들었다고 한다. 장육존상의 제작시기, 조각사, 불상의 명칭 등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동경잡기’에 의하면 황룡사의 건물은 없어졌지만, 장육존상은 조선시대까지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최고의 토목공법 판축= 늪지에 조성된 황룡사의 육중한 건축물들이 버틸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신라인들의 특별한 우수한 토목공법 ‘판축’ 기술이 비법이다. 판축기법은 모래나 자갈 또는 흙을 일정한 간격의 널판 사이 공간에 차례대로 깔고 다짐도구로 다져 쌓아 올리는 고대 토목공법이다. △목탑의 복원= 황룡사 9층목탑 남서쪽 모서리 칸 일부는 1238년 몽고란으로 소실된 이후 800여 년 만인 2016년에 당시 규모로 재현했다. 목탑의 9층 난간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면 월지, 월성의 당시 신라왕궁과 월정교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경주 남산자락이 보이는 신라왕경 최고의 전망대였을 것으로 보인다. 복원한 목탑에서 당시 왕경의 모습을 파노라마로 둘러볼 수 있게 영상물도 제작해 두고 있다. △황룡사를 중심으로 본 신라왕경= 신라의 천 년 수도 경주의 신라왕경은 정확한 비율의 네모난 방이 1천여 개가 모인 바둑판 형태로 계획된 고대도시였다. 지금까지 밝혀진 범위는 서쪽으로는 서천, 북쪽으로는 북천, 동쪽으로는 명활산과 낭산 사이, 남쪽으로는 포석정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북천의 북편에 인접한 지역인 동천동 일대는 물론 경주외곽의 건천 모량리까지 주거지역이 확대되어 방리제에 의한 도시계획이 이루어진 것으로 최근 발굴조사에서 밝혀졌다. 황룡사가 위치한 지역은 신라왕경 방리구획의 핵심지구다. 황룡사지의 발굴조사 결과, 황룡사의 외곽 담장은 네모반듯한 모양이고, 동서 길이는 288m, 남북 길이는 281m임이 밝혀졌다. 기존 방리구획으로 짐작되는 격자형의 도로망 구획 내에 황룡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로 판명됐다. 이어 황룡사의 위치와 규모는 당시 도시계획과 직결됐고, 황룡사는 신라왕경 방리구획 연구에 중심이 되고 있다. ◆역사관 주변의 흔적 황룡사지 빈 터에는 계절별로 다양한 꽃밭이 조성돼 역사문화관 방문객들을 반긴다. 황룡사역사문화관 남쪽으로 넓은 주차장이 조성됐다. 대형 관광버스까지 편안하게 주차하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발굴 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호미로 역사를 들추어내고 있는 장면은 이삭을 줍는 것처럼 보인다. 주차장에서 역사관으로 진입하는 도로변에는 신라시대 황룡사를 구성했던 기왓장과 석재들이 전시되고 있다. 진입로 서쪽 공터에는 당간지주 1기와 석탑의 옥개석, 사면에 팔부신중이 부조로 새겨진 탑신이 남아있다. 분명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하지만, 어떤 절이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미탄사지 3층석탑이 최근 복원돼 황량한 벌판을 지키고 서있다. 삼국유사가 당시 서라벌을 ‘사사성장 탑탑안행’이라 설명하고 있는 뜻을 저절로 수긍하게 한다. 분황사와 황룡사가 지척에 있고, 그 큰 사찰 주변에 미탄사를 비롯해 구황동 폐사지, 이름 모를 절터가 몇 걸음 옮기지 않아도 바로 닿을 곳에서 비포장도로의 돌부리처럼 눈에 밟히고 있다. 경주는 노천 박물관이라는 말을 황룡사 역사문화관으로 들어서면서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1월1일, 설, 추석 등 3일을 제외하고 연중 문을 열어 방문객을 반긴다. 여행객이 늘어나는 가을철 주말에는 하루에 500여 명이 방문하기도 한다. 문화체험콘텐츠이자 명실상부한 경주 최고 힐링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학 10여 곳 모여 ‘협력 기업의 미래’ 토론

2일 영남대 천마아트센터에서 열린 ‘2018 대구ㆍ경북 그랜드포럼’ 세션1에서 김우승 한양대 에리카 부총장이 ‘초연결시대 대학과 산업현장의 연계전략’이라는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올해 10회째를 맞은 2018년 대구ㆍ경북 그랜드 포럼의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응하기 위한 관련 세션이 지난 2일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저명 인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 학생과 내빈 등 참가자들이 문이 열리기도 전에 행사장 일대에 도착해 세션장인 천마아트센터 사파이어홀을 찾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오전 10시부터 ‘대학과 기업의 협력 기업의 미래를 말하다’는 주제로 진행된 세션1은 산학협력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대구가톨릭대, 금오공대, 김천대, 경일대, 대구한의대, 안동대, 구미대, 위덕대, 한동대, 대구대, 영남대 등 10여 개의 대학이 세션에 참여했다. 한양대 ERICA를 발전시킨 주역인 김우승 한양대 ERICA 부총장의 주제 발표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양대 ERICA는 1979년 반월캠퍼스 개교 당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분교로 출발했지만 현재 산학협력으로 맞춤인력을 양성하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 부총장의 주제 발표가 진행되자 산학협력 관계자들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쥔 펜을 1시간20분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특히 주제 발표 및 토론이 끝난 후 타 대학 산학협력 관계자들의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지자 사회자가 양해를 구하면서 세션을 끝냈다. 또 ‘스마트 시티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세션2에서도 열띤 토론과 질의 탓에 종료 시각을 훌쩍 넘겼다. 한 대학 산학협력 관계자는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문을 닫게 되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포럼 세션의 주제는 정말 유익하다”며 “세션을 통해 얻은 정보와 지식을 참고해 우리 대학 경쟁력 강화에 접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송경창 경북도 일자리경제산업실장 “지자체 최초로 4차 산업혁명 전략위 출”범

송경창 일자리경제산업실장이 경북도 4차 산업혁명의 현주소와 정책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경창(51) 경북도 일자리경제산업실장은 4차 산업혁명 전략수립과 미래 먹거리 발굴을 진두지휘하며 경북의 산업지도를 새롭게 그려나가고 있다. 특히 연구소와 앵커 기업들을 돌며 구상한 현장 중심의 정책을 통해 지역경제의 체질을 강화할 일자리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선 7기를 맞아 4차 산업혁명 위원회와 블록체인 특별위원회 출범을 준비 중인 송 실장으로부터 경북 4차 산업혁명의 현주소와 방향, 정책을 들었다. -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지자체 최초로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스마트제조, 스마트시티 등 신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물론 鐵(철강)·電(전자)·車(자동차)의 지역 주력산업에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입혀 스마트 제조, 미래형 산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Key는? △사람과 기술, 기업의 연결이다.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 지능화 혁명이다.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같은 기반 기술이 연구소에서 나와 기업과 연결되고 산업현장의 스마트화를 통해 경쟁력이 높아지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2020년까지 스마트팩토리 1천개 보급을 추진한다고 들었다. △제조업은 우리 지역 총생산액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산업의 중추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설비, 공정, 검사, 자재물류 분야에 인공지능을 접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735개를 보급했다. 2020년까지 1천 개를 보급하고 10개사를 고도화해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로 연결할 계획이다. 기존에 노후한 공장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익힌 혁신인재를 현장에 보내 접목시켜 나가는 것이다. - 스마트시티를 위해 특별히 구상하고 있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내년부터 ‘경북도 스마트시티 거점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스마트팩토리로 축적된 소중한 경험과 자산을 스마트시티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스마트시티 기획부터 연구개발, 실증까지 총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것이며, 지역별 특색을 살린 스마트시티를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들 것이다. 거점센터를 통해 도시의 미래에 대해 스스로 예측하고 계획하는 것이다. -요즘 블록체인이 핫이슈다. △11월에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경북 블록체인 특별위원회’가 출범한다. 제2의 인터넷인 블록체인을 경북이 선도적으로 앞서 준비해나간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물이 쌓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신뢰 네트워크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이 분야에 대한 특별한 주문으로 시작했다.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 조성과 전문인력 양성, 공동 협력사업 추진을 위해 블록체인 엑셀러레이터 전문기업인 스위스 햄머팀과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블록체인과 화장품ㆍ게임ㆍ농축산 유통 등 타 산업 분야와의 연계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과의 연계가 중요할 것 같은데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창출되고 일자리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중요하다. 중소기업 성장을 위한 아이템 발굴 컨설팅을 추진하는 한편 유망 중소벤처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기 위해 세계적 벤처캐피탈 회사인 요즈마그룹과 연계해 요즈마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의 중소기업에는 우수한 기업들이 많이 있다. 글로벌 시각에서 발견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 경북도의 4차 산업혁명 추진 방향은 △인공지능, 블록체인, 빅데이터와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지역산업의 체질을 강화할 것이다. 아울러 권역별 혁신기관과 중소기업이 연계한 산ㆍ학ㆍ연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인재와 기업이 경북으로 오도록 만들겠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기존의 기술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현장에 접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2018 그랜드포럼 세션] “현장실습, 기업보다 학생 중심으로…문제해결 학습방법 중요”

세션1 참석자들이 김우승 한양대 ERICA 부총장의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김진홍 기자 지난 2일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에서 개최된 ‘2018 그랜드포럼’ 세션1에서는 김우승 한양대 에리카(ERICA) 부총장이 초연결시대 대학과 산업현장의 연계전략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김우승 부총장은 이날 우리 대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개교 당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분교로서 출발했다”며 “‘학생들이 대접받는 그 날까지’라는 구호 아래 지금까지 달려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양대 ERICA는 반월캠퍼스(1979)를 시작으로 안산캠퍼스(1987), ERICA캠퍼스(2009)로 진화해왔다. ERICA는 Education(교육), Research(연구), Industry(산업체), Cluster at(클러스터), Ansan(안산)를 의미한다. 김 부총장은 “2003년 한국판 실리콘 밸리를 꿈꾼다고 했을 때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며 “지금은 학연산 클러스터 캠퍼스의 중심에 한양대 ERICA가 있다”고 했다. 각종 지표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ERICA 캠퍼스는 대학평가에서 분교임에도 10위권 안에 꾸준히 들고 있다. 산학협력을 가장 잘하는 대학에는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대학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데모크라이시스(인구변명+위기)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저출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자녀 교육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기 때문이다”며 “기업이 있으려면 인력이 있어야 한다. 학생이 없어서 대학 스스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이제는 대학도 노력해야 한다. 재정만 지원해주는 건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 ERICA에서는 어떤 교육을 시키고 있을까? 핵심은 4C(Critical Thinking·비판적사고, Creativity·창의성, Collaboration·협업, Communication·의사소통)능력을 함양한 인재 육성이다. 그는 “교육은 효과성이 있는 방향으로 방점을 찍고 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게 ERICA의 교육혁신 전략이다.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IC-PBL(문제해결학습방법)이다. 김 부총장은 “현장실습도 기업중심이 아닌 학생중심이 돼야 한다. 현장실습은 교육과 근로의 중간단계”라고 소개했다. 실무에 강한 인재 육성을 위해 ERIAC는 지난해부터 전체 학과의 계열별, 전공별, 교과별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IC-PBL 교육 모델을 브랜드화했다. 지난해 신입생부터 IC-PBL 졸업 인증제를 도입해 총 4개 이상의 교과목 이수 의무화를 했다. 김 부총장은 “39개 기업을 섭외해 시작했다. 지금은 300개 기업을 관리한다. 이 수업을 위해 4명의 직원이 50개 대학을 벤치마킹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분교였기 때문에 기업에서 우리 학교에는 오지 않았다. 본교로만 갔다. 교수님들의 손과 발이 가지 않은 기업이 없다. 시작할 때 그랬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과정 산업연계(IC-PBL)는 이렇게 이뤄진다. 먼저 시나리오 개발이다. 수업 내용에 맞는 현장 산업체를 탐색하고 실제 과업 주제를 산업체로부터 받아 PBL 수업 시나리오로 개발한다. 그리고 문제해결과정이다. 해당 문제와 관련된 산업체의 자료를 학습자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보고자료를 산업체 담당자가 검토한다. 평가는 학습자 최종 보고에 대한 피드백 및 평가를 기업체 현장실무자가 직접 해주는 식이다. 김 부총장은 “예를 들어 교내 학교도서관에서 누군가 노트북에 커피를 쏟고 도망갔다. 범인을 잡기 위해 CCTV를 보니 2명이 나가는 데 한 명은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한 명은 이디아 커피를 들고 나갔다. 분석을 통해 범인을 잡아라 이런식”이라고 소개했다. 김 부총장은 “PBL 강의를 하기 싫어하는 교수는 있지만 한 번 하는 교수는 없다”고 자신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좋아하고 교수도 강의가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산학협력이 활성화되려면 산학지원형태에서 벗어나 산학협력을 위한 진정성(Sincerity)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문화가 조성돼야 성공(Success)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자세한 내용은 IC-PBL센터 홈페이지 (icpbl.hanyang.ac.kr)에 모든 자료가 공개되어 있다”고 했다. 김 부총장의 발표 후 이재훈 경북테크노파크(TP) 원장의 진행으로 참석 패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정우창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산학협력의 중심에 교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씨유 인더스트리 콜라보레이션’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교수가 기업에 가서 협업할 때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다”며 “기업과 학교를 잇고 기업과 학생을 잇는데 교수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역사회 전문가들도 이날 포럼에서 4차 산업시대에 산학협력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문영백 경북TP 실장은 “결국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중심으로 산학협력의 맥이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경험과 녹아서 맥이 안 끊기고 왔다”며 “앞으로 학교가 기업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찾도록 역발상을 해보자”고 의견을 냈다. 김용현 대구경북연구원 박사는 “대구경북의 대학을 구조조정을 해서 각 지역마다 특화된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며 “예를 들면 동해안 신소재대학, 서부권은 스마트융복합대학, 대구를 중심으로 지식산업대학 등을 해서 구조전환 해야 한다. 그 모범 사례가 한양대 ERICA 캠퍼스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학과 지역발전과의 연계발전 체계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고 교육을 혁신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서상호 대구일보 주필은 “사회적 분위기가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은 기업가 정신, 산업 즉 자본주의와 동떨어져 형성됐다”며 “국가경쟁력은 교육에 있다. 유교 자본주의를 본받아 미국의 MIT공대와 같은 학교를 많이 배우고 지식과 산업이 동떨어지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김혜성·장은희 기자 hyesung@idaegu.com

참가자 인터뷰

양질 일자리 제공 기업 중요 지방인재 유출 막아야 발전 ◆공우석 육군 3사관학교 생도 “제 고향인 대전도 대구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의 발전은 결국 기업에서 있다고 봅니다.” 공우석(23ㆍ대전 유성구) 육군 3사관학교 생도는 ‘기업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한 세션 1 토론회를 경청하고 나서 이같이 말했다. 지방이 발전하고 진정한 지방분권을 완성하려면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지방 인재들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것. 공 생도는 “고향 친구 중 60∼70%는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났다”며 “대부분의 지방이 추구하는 관광산업 등을 통한 경제력 창출도 좋은 방안이지만 궁극적으론 양질의 일자리, 즉 기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세션 1에서 발표한 한양대 ERICA 캠퍼스 사례와 같이 산학협력이 중요성에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시티 필요성 다시 확인 시민체감형 도시로 구축해야 신소재공학과 3학년 박성환 “대구·경북이 미래형 자동차 선진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선 기술개발의 필요성이 중요합니다.” 영남대 신소재공학과 3학년 박성환(26)씨는 2018 대구·경북 그랜드포럼 세션 2인 ‘스마트시티를 말하다’를 주제로 한 주제발표와 토론회를 경청한 후 미래형자동차 교통의 중요성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마트 교통시스템 구축을 위해 지능형 교통시스템 3차 구축과 버스운행관리시스템의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했다고 한다. 박씨는 “대구시가 추진하는 자율주행차 테스트베드와 공영주차장 스마트파킹서비스 등의 기술개발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며 “미래형 자동차 교통은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졸업 후 자동차 관련 업종에 취직해 지역의 교통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그는 시민이 일상생활에서 많이 이용하는 자동차 교통의 파급력에 대해 통감하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게 스마트시티로 가는 길이라는 내용에는 공감을 넘어 감명을 받았다는 것. 이에 미래형자동차 교통의 기반이 되는 시설 확충과 일자리 창출, 저비용·고효율의 산업성장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현대 대구시가 추진 중인 실증도로 및 통합관제 플랫폼 구축과 앱을 통한 주차공간 확인 및 주차요금 결제시스템 구축의 성공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대구 약령시, 연구논문 SCI급 국제학술지 등재] 아토피, 궁중비법 ‘자금정’으로 고친다

사복석 청신한약방 대표가 한약방에서 자금정을 내보이고 있다. 아토피 질환은 양약에서도 이렇다할 특효약이 없다. 각질발생을 줄이기 위해 보습을 도와주는 것이 치료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약이 아토피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발표돼 이목을 끌고 있다. 대구 악령시의 한방 고유처방 ‘자금정’이 아토피성 피부질환에 치료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내용의 논문은 세계적 저명 학술지에 게재되면서 한의약계가 주목하고 있다. 대구 약령시와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가 공동으로 시행한 자금정의 아토피성 피부질환 치료 가능성에 대한 연구논문이 SCI급 학회지인 ‘저널 오브 에드노파마콜로지(Journal of Ethnopharmacology)’ 7월호에 게재됐다. 저널 오브 에드노파마콜로지는 보완통합의학 분야에 상위 20% SCI급 저널이다. 저널평가지표 수록 사이트 JCR(학술지인용색인)차트 내 27개 중 4위다. 이번 연구에서 자금정을 피부각질세포에 투여한 결과 아토피 피부질환에서 발생하는 염증이 최고 50%까지 감소했음을 확인했다. 동물실험에서도 아토피를 유발한 실험쥐에 자금정을 투여한 결과 부종, 홍반, 각질 등의 피부병변이 유의미하게 줄었고 이상증식되는 표피도 회복되는 모습이 관찰됐다. 자금정을 투여한 실험쥐에서 어떠한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는 등 안정성도 확보됐다. ◆궁중비방 해독약이 아토피에 효능 자금정은 농약중독 효능연구 실험에서도 독성이 감소되는 양상이 확인돼 농약 급성 및 만성노출 시 해독제로도 활용가능성을 보여줬다. 자금정은 한약 가운데 해독약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 궁중비방의 전통 한의약이다. 문합, 산자고, 대극, 속수자, 사향 등 5가지 한약재로 제조됐다. 자금정은 고가 약재인 사향이 많이 들어가고 제조공정이 까다로우며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지 않아 그동안 대량 생산이 이뤄지지 못했다. 대구 약령시에 위치한 청신한약방 사복석 대표가 15년 전부터 제조했으며 아토피 치료와 해독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에 한국한의학연구원과 함께 효과 입증을 위한 연구에 들어간 것이다. 대구시는 현재 자금정과 같은 고유처방 한약들의 산업화를 위해 국비 연구개발자금을 확보했다. ◆동의보감 등 12개 고유처방에 기록 사복석 대표는 1970년에 한약방을 창업해 30년 동안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해독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확인했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2004년 자금정을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자금정 효험이 기재된 중요 한방 문헌을 살펴보면 시재백일선방, 동의보감, 방약합편 등 12개 중요 고유처방 해독문에 기록이 돼 있다. 궁중내의원에서 조제해 임금님께 올리면 임금님은 이 약을 신하들에게 나눠 주던 구급상비약으로 널리 사용됐다. 자금정은 잘못된 식생활 환경에서 발병하는 급ㆍ만성 원인 불명의 복합적인 만성질환을 비롯해 과음주로 인한 알콜중독, 간손상, 숙취해소, 심혈관 질환, 중풍 전조증, 뇌경색 등 급성기 질환에 특히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체 내부에 독소가 쌓여서 유발되는 만성 피부질환, 만성 두드러기, 아토피성 피부질환,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약물중독, 미세먼지로 인한 인후염, 성대결절, 쯔쯔가무시병, 독충에 물렸을 때, 의식불명 위급시에도 효능이 있다. 사복석 대표는 “해독약이 흔할 것 같지만 자금정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 해독약이 개발된 것이 없다”며 “대구한의과대학 방제과학 글로벌 연구센터장 김상찬 교수와 간 보호연구와 약물의존성 억제연구에 대해 공동연구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 대표는 또 “최근 중국과 일본의 전통한의약 산업은 수출 주도형 신흥 산업으로 성장하는 반면 우리나라 한약 산업화는 부진한 상황에서 한방시장은 점차 위축돼 가고 있다”며 “자금정이 산업화를 통해 개발이 된다면 한방 생약을 제대로 방제학을 과학화시키는 것이며 한약의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불신 해소 및 복용의 편의성 제고를 통한 한약 제재 활성화를 통해 국내외 새로운 시장 개척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대구·경북피부과 의사회와 함께 하는 피부건강 이야기 (16) 원형 탈모증

원형탈모증은 국민의 1.7%에서 발생하는 흔한 질환이다. 원형 탈모증은 남성형 탈모증과 여성형 탈모증 다음으로 많이 발생한다. 1.원인 유전적 소인과 환경인자가 관여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일환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즉 원형 탈모증의 임상형이 다양한 만큼 발생기전이나 특징도 차이가 있고 비슷한 임상 양상을 보이더라도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2.임상 양상 원형 탈모증은 비교적 흔한 질환으로 두피에 하나 혹은 여러 개의 탈모반으로 발생한다. 급성으로 발병하며 타원형 또는 원형의 경계가 분명한 탈모반의 형태로 탈모반 내에 매끄러운 표면을 갖는 것이 전형적이다. 임상에서 접하는 사례 중 90% 이상은 두피에서 관찰되지만 눈썹, 속눈썹, 턱수염, 팔다리 등 체모가 자라나는 신체 어느 부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원형 탈모증이 심해 두피 전체의 모발이 소실되는 경우를 온머리 탈모증이라 한다. 갑자기 발생하거나 부분 탈모에 이어 발생하며 다른 부위에도 부분탈모가 관찰될 수 있다. 전신의 체모가 모두 소실된 경우는 전신 탈모증이라고 하며 갑자기 발생하거나 오랜 기간 지속된 부분 탈모에 이어 발생할 수도 있다. 탈모반 내의 피부는 일반적으로 육안 소견상 정상이나 약간 분홍빛 또는 붉은빛을 띠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탈모반 내에서 자주 관찰되는 특징적인 소견은 감탄부호 모발로 모발의 근위부는 얇아졌고 원위부가 더 굵은 짧은 모발을 의미한다. 탈모반이 확장되는 활성기에 주변부에서 모발당김검사를 시행하면 양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소아환자에서 감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질환은 머리 백선증과 발모벽이다. 머리백선증은 염증의 동반이나 경미하게 존재하는 인설의 동반 여부로 감별될 수 있다. 발모벽은 불규칙적이거나 기이한 형태의 병변을 보인다. 또 다양한 길이를 가진 부러진 모발들이 존재하므로 원형탈모증의 매끄러운 표면과 달리 거친 촉감이 느껴지는 병변이다. 휴지기 탈모증과 미만성 원형탈모증을 감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병력 청취로 유발인자를 밝혀낼 수 있고 이것이 휴지기 탈모증 진단의 단서가 된다. 모발당김검사를 시행했을 때 휴지기 탈모증에서는 휴지기 모발만 보이는 반면 미만성 원형 탈모증에서는 영양실조상태의 성장기 모발을 볼 수 있다. 피부홍반성루푸스 및 이차 매독도 감별해야 한다. 3.치료 원형 탈모증의 치료에는 스테로이드의 도포 및 전신 투여, 병변 내 주사, 엑시머레이저, 접촉면역치료 등 다양한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치료에 대한 반응도 다양하다. 특히 탈모범위가 넓은 환자의 치료에는 면역치료가 효과적이며 가장 널리 사용되는 치료법이다. 최근에 최신 유전자 연구결과에 근거해 다른 면역질환의 치료에 사용이 허가된 기존의 표적치료제가 원형 탈모증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원형 탈모증환자에게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4.예후 및 임상경과 질환의 임상경과는 매우 다양하며 불규칙적으로 재발하는 임상경과가 특징적이다. 환자 중 25%에서는 한 번의 발병으로 끝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적으로 모발이 다시 자라 회복되는 경우가 흔하다. 환자의 60%에서 적어도 1년 내에 탈모반 부위 모발의 부분적인 재성장을 보인다. 첫 1년 내에 40%에서 재발하지만 5년 후에도 재발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원형 탈모증은 대부분 예후가 양호한 질환이므로 이 질환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일부 치료가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문제로 인해 많은 환자가 검증되지 못한 방법에 현혹돼 엄청난 경제적인 손실을 보는 것은 물론 역시 치료가 잘 안 된다는 심리적인 좌절감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심지어는 탈모의 기전이 전혀 다른데도 원형 탈모를 악화시키는 치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형 탈모증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 박재홍봄씨피부과원장

한겨울 복숭아꽃 핀 산 중턱에 지은 절 ‘도리사’…화재로 소실된 후 부속 암자로 옮겨

도리사 찾아가는 길에 만난 태풍 ‘콩레이’가 만든 폭포. 구미시 해평면의 ‘도리사’는 최초로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지은 사찰이다. 아쉽게도 현재의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그 도리사는 아니다. 17세기 중엽 원인을 알 수 없는 큰불로 도리사가 모두 불에 타면서 불상을 도리사 위쪽에 있던 금당암으로 옮겨 이름을 도리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리사는 냉산 중턱 아름드리 소나무가 둘러쳐진 양지바른 곳에 고즈넉이 앉아 있다. 일주문 현판에는 ‘태조산 도리사’라고 쓰여 있지만, 기록에는 ‘냉산 도리사’라고 전해진다. 도리사는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가 직접 구미시 해평면 냉산 아래 지은 사찰이다.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중국 양나라에서 전해져 온 ‘향’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향으로 성국공주의 병을 고친 이적을 기념하고자 매년 ‘향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도리사의 흥망성쇠 신증동국여지승람, 일선지 등의 기록에 따르면, 아도가 당시 신라의 수도인 계림을 다녀오던 중 한겨울에 산 중턱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자두꽃)이 핀 것을 보고, 이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불렀다고 한다. 이때가 눌지왕 2년(418)이다. 이후 신라불교 성지가 된 구미(당시 일선)에는 도리사를 중심으로 주륵사, 죽림사, 법륜사, 보천사 등 큰 사찰이 잇따라 세워졌다. 이와 더불어 죽장리 5층 석탑, 낙산리 3층 석탑, 도리사 화엄석탑, 원리 3층 석탑, 주륵사 석탑, 등 거대한 석탑들이 들어섰다. 아마도 신라불교 최초 전래자인 아도가 창건한 절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불교가 꽃을 피웠던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많은 신도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불교는 점차 쇠퇴하게 된다. 1천여 년 넘게 이어 온 도리사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도리사의 쇠퇴와 관련한 전설이 하나 있다. 도리사 절 옆에 샘이 하나 있었는데, 이 샘의 물을 마시면 힘이 장사가 된다는 것. 이 샘물을 마신 한 스님이 매번 마을에 내려와 행패를 부렸는데, 한 선비가 이를 보다 못해 스스로 머리를 깎고 도리사에 들어가 “앞산에 큰 돌산을 하나 만들면 절이 더욱 흥하리라”고 선동했다. 결국, 샘물을 마시고 힘이 남아돌던 스님들이 스스로 돌을 나르기 시작해 불과 일 년여 만에 몇 개의 돌산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돌산이 생겨난 후로 신도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화재까지 발생해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도리사는 배가 떠 있는 등선형인데, 돌산을 만들어 배가 침몰한 형국이 됐다는 것. 스님들이 만들었다는 이 돌산은 1958년 낙동강 호안공사를 하면서 모두 옮겨져 현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마지막 돌을 옮길 당시, 천둥과 폭풍우가 심했다고 한다. 돌산이 없어진 후인 1976년과 1977년 석승상과 세존사리가 발견돼 많은 불교인들에게 경사를 안겨줬다. 설화지만 어찌나 잘 맞아떨어지는지 신기할 정도다. 실제로 도리사는 숙종 3년(1677) 큰 불로 모든 건물이 재가 됐다. 물론, 도리사의 창건과 쇠퇴는 우리나라 불교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통치를 위한 목적으로 왕권에 의해 들어온 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고려후기 신진사대부들이 수입한 성리학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서서히 그 존재감을 잃어갔다. 세인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던 도리사는 현대에 들어서야 그 빛을 보게 됐다. 등선형의 도리사를 짓누르고 있던 돌산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금동 6각 사리함과 그 속에 세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보관돼 온 세존진신사리 1과가 발견되면서다. 도굴로 방치돼 절 밖에 있던 석종형 사리탑을 경내로 옮겨 와 복원공사를 하던 중, 1977년 4월18일 그 속에 금동사리함과 진신사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불교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이 사리함은 6각으로 표면에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음각 돼 있는데, 기존에 발견된 사리함이 사각형이거나 8각형인데 비해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조성연대는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아마도 아도가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올 때 가져온 진신사리로 추정된다. ◆도리사 가는 길 도리사의 시작은 일주문부터다. 도리사는 이 일주문에서 5㎞쯤 떨어져 있다. ‘신라최고가람 태조산도리사’라는 일주문 현판 아래를 지나면, 느티나무 가로수 길이 2㎞쯤 이어진다. 한국의 가로수길 62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가로수 길이다. 일주문이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는 시작점이라면, 전성기 때 도리사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2㎞에 걸쳐 길게 늘어선 이 느티나무 가로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터널을 이뤄 도리사를 찾는 방문객들을 온전히 도리사 한곳으로만 집중시킨다. 누가 있어 신라 최초 가람 도리사 방문을 이리 환영해 줄까? 이 길을 지나가려면 마치 속세를 떠나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설렘과 호기심, 그리움이 교차한다. 그래서 사찰의 일주문은 ‘속세와 내세를 가르는 경계’라고 하는가 보다. 느티나무 가로수 길이 끝나면 도리사까지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이다. 꽤 큰 주차장을 갖춘 이곳엔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전통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들어서더니, 최근엔 유행을 타고 현대적 감각을 갖춘 커피숍까지 생겨났다. 절 아래는 조용하더니 경내는 제법 사람들로 북적인다. 많은 절들이 점점 주는 신도들을 붙잡고 새로운 신도들을 모으고자 음악회나 법회, 축제 등을 여는 것이 요즘 추세다. 불교 용어로 ‘야단법석’을 여는 셈이다. 도리사 역시 가을로 접어들면서 많은 가을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유물과 유적 극락전 안에 있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문화재자료 제314호). 조선 숙종 때 도리사가 전소되자 새로 금칠을 한 후 산내 암자였던 금당암 본당(지금의 극락전)으로 옮겨졌다. 도리사 극락전 앞뜰에는 특이하게 생긴 석탑이 하나 있다. 최근 보수 작업을 마친 도리사 석탑이다. 화엄석탑이라고도 부른다. 보물 제470호로 신라시대 때 만들었다. 높이 4.5m, 기단 높이 1.3m, 기단너비 3m 규모로 화강암이 주 재료다. 쉽게 보기 어려운 독특한 모양이다. 마치 전탑처럼 흙벽돌을 구워서 쌓은 듯한 이 석탑은 기교는 없지만, 깊은 신앙으로 우직하게 만든 석공의 마음이 깃든 듯하다. 이 탑을 바라보고 앉은 전각이 극락전(문화재자료 제318호,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66호)이다. 당초 도리사의 부속암자인 금당암의 법당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이 극락전 안의 불상이 목조 아미타여래좌상(문화재자료 제314호)이다. 17세기경 나무로 조성한 것으로 여러 차례 개금 불사(금으로 새로 칠함)를 한 사실이 복장유물을 통해 밝혀졌다. 극락전과 화엄석탑 아래 작은 등산길을 따라가면 아도화상의 좌선대와 사적비가 있다. 아도화상이 앉아서 좌선했던 곳으로 너른 바위가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쇠잔해 가던 도리사가 최근 다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세존 사리탑의 발견 때문이다. 극락전 뒤편에 높이 1.3m 남짓의 크기로 세상을 놀라게 한 석종형 부도, 곧 세존사리탑이 있다. 도굴돼 방치됐던 이 탑을 다시 경내로 옮겨와 세우는 과정에서 독특한 모양의 금동 6각 사리함(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사리함, 국보 제208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과 진신사리 1과가 발견됐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발견됨에 따라 도리사에도 변화가 생겼다. 도리사의 원래 본당은 금당암의 본당인 극락전이었다. 하지만, 세존진신사리가 발견됨에 따라 본당이 적멸보궁으로 바뀐 것. 불교에 있어 존엄의 대상은 경전에서 불상, 진신사리 순으로 높아간다. 사찰 가장 뒤쪽에 자리한 도리사 적멸보궁에는 통상 본당에 있어야 할 불상이나 탱화가 없다. 대신 투명한 유리가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 유리 너머로 세존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자리하고 있다. 도리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적멸보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아득하다. 어느 곳 하나 손에 잡히질 않는다. 아마도 세상을 등지고 ‘나’를 찾고자 했던 고승들의 마음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적멸보궁에서 멀리 세상을 굽어본다. 첩첩 산들이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길게 이어진다. 어느 때는 바다처럼, 또 어느 때는 파도처럼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오랫동안 단청을 새로 하지 않아선지 낡아 보이는 전각이 초록빛 한결같은 소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적멸보궁 옆엔 마음을 내려놓고 불어 오는 선선한 바람에 육신의 때를 벗길 수 있는 소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백의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이라는 한시가 가슴에 와 닿는다.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의역하면 ‘그대에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물으니, 단지 웃을 뿐, 대답은 하지 않고 마음만 한가롭구나. 복사꽃을 띄운 물은 아득히 흘러가는데, 이곳이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구나!’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대가 있다. 서대는 산책하던 아도화상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절을 세우면 크게 일어날 것이라고 점지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가 가리킨 곳이 지금의 직지사다. 아마도 아도화상은 이미 세상 막히는 것이 없는 자유인이었던 모양이다. ◆인근 관광지 도리사 적멸보궁 옆 소나무 숲. 바쁜 일상에 지친 방문객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도리사를 찾는 이라면 일주문 안팎 식당에서 삼겹살과 진한 향의 미나리 맛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하수로 재배해 청정하고 쌉싸래한 향이 일품이다. 도리사 인근엔 즐길 거리도 많다. 산악자전거와 유유자적 걷기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임도가 있고, 암벽타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냉산 산악 레포츠 공원이 바로 인근에 있다. 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울창창한 냉산 산림욕장과 선사시대 유적인 낙산리 고분군, 주인을 위해 의롭게 죽은 개를 위로하기 위한 의구총, 임하댐 수몰로 고향을 떠난 전주 류씨 무실파가 고향에서 살던 집을 그대로 재현해 마을을 만든 해평면 일선리 문화재마을도 가까이 있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자문=권삼문 전 구미시 학예사 사진=한태덕 전문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