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대구 FC, 숨은 조력자 ‘엔젤클럽’

지난해 11월28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천사데이’ 행사. 천사데이는 대구FC의 클래식 잔류를 기념하고 1천4번째 회원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호경 엔젤클럽 회장이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다. 현대판 국채보상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국채를 국민의 모금으로 갚기 위해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으로 1907년 2월 대구에서 발단이 됐다. 이 정신을 이어받아 몸소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 구단 대구FC의 든든한 후원자인 대구FC ‘엔젤클럽’이다. 엔젤클럽은 재정적으로 어려운 대구FC를 후원하고자 2016년 탄생,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면서 2018 KEB 하나은행 FA컵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는 데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츠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자발적인 ‘후원 릴레이문화’를 엔젤클럽이 선도하고 있다. ◆엔젤클럽의 탄생 대구FC 경기가 끝난 후 기념촬영을 하는 엔젤클럽 회원. 시민 프로축구 구단의 공통점은 재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2003년 창단한 대구FC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대구는 뛰어난 안목으로 좋은 선수를 발굴했지만 치솟는 선수의 몸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셀링클럽’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층이 얇아진 대구는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고 K리그 승강제가 도입된 2013시즌 강원FC에 밀려 2부 리그(K리그 챌린지)로 떨어졌다. 이후 2014~2015시즌 2부 리그에 머무르며 대구FC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에 2013년 이호경 대영에코건설 대표이사, 강병규 전 대구시 감사관 등이 대구FC의 재정 조달 방안에 대해 대화하던 중 ‘릴레이 후원사업’을 추진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처음 나왔다. 이후 2015년 2월 배장수 진명전력 대표이사를 1호 회원으로 영입, 릴레이 후원사업에 참여하는 회원을 ‘엔젤’이라고 통칭했다. 대구가 1부 리그 승격을 향해 도약하는 2016시즌. 시민 구단의 든든한 후원자, 버팀목을 자처하며 ‘엔젤클럽’이 탄생했다. 엔젤클럽은 대구시민의 힘으로 제대로 된 시민구단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2016년 7월25일 창립 발대식을 열고 활동에 들어갔다. 엔젤클럽은 회원 1인당 연간 100만 원씩 후원하는 ‘엔젤’, 연간 1천만 원 이상 후원하는 ‘다이아몬드 엔젤’, 월 1만 원 후원하는 엔시오(엔젤+소시오의 합성어)로 구분된다. 현재 엔젤클럽 회원은 모두 1천800여 명에 달한다. ◆엔젤클럽, 못 말리는 사랑 이호경 대구FC 엔젤클럽 회장이 엔젤클럽에 기증한 업무용 차량. 대구FC를 향한 엔젤클럽의 사랑은 무한함을 넘어 못 말리는(?) 정도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때는 지난해 9월24일 전북현대와의 경기. 이 경기에서 대구가 VAR 판정으로 두 골이나 취소당하는 바람에 승리를 놓쳤다. 대구는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항의하는 뜻의 걸개를 내걸었고 프로축구연맹은 대구 구단에 1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에 엔젤클럽은 곧바로 모금 운동에 들어갔고 열흘 만에 약 3천만 원이 모였다. 1인 10만 원 한도 규정을 정했음에도 저금통을 털어서 모금에 동참하는 학생도 나왔다. 하지만 구단 측에서 팬들이 모은 돈을 벌금으로 쓸 수 없다며 직접 부담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이호경 엔젤클럽 회장은 자비를 털어 업무용 차량 한 대를 엔젤클럽에 기증했다. 차량 랩핑은 지역 차량 랩핑 업체인 윤경일 글로벌에스피 대표가 무료로 했다. 공진당 100개를 내놓는 회원, 국산 콩으로 생산한 된장 세트를 전달하는 회원 등 대구FC 바라기 엔젤클럽 회원의 사랑은 끝이 없다. 이 같은 사랑은 타 구단이 대구FC를 부러워하는 이유다. 단적인 예로 대구는 2018년 동계 전지훈련을 중국 쿤밍 현지에서 실시했다. 이때 엔젤클럽은 대구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전지훈련장을 찾았다. 이호경 엔젤클럽 회장과 방문단은 자체적으로 금일봉(500만 원 상당)을 마련해 선수단에 전달했고 선수단 회식까지 책임졌다. 이 같은 소식은 부산 아이파크와 중국 프로팀에게 입소문으로 전해졌고 단숨에 부러움이 대상이 됐다. 엔젤클럽의 활동으로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타 구단은 늘고 있다. ◆만원의 만원(滿員) 캠페인 엔젤클럽은 대구FC의 새로운 축구전용구장을 가득 메우기 위한 대구 축구붐 조성에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탄생한 것이 ‘시민엔젤’ 엔시오. 엔젤과 소시오(FC바르셀로나의 팬 클럽)를 합성한 단어로 엔젤의 후원릴레이 정신을 가진 후원자를 뜻한다. 월 1만 원(1년 이상) 구단 계좌에 자동이체하면 가입할 수 있다. 가입 시 K리그 1년 입장권과 사인볼, 엔젤 배지 등을 받을 수 있으며 엔젤클럽과 함께 할 수 있다. 엔시오 릴레이를 진행하는 김완준 엔젤클럽 엔시오 본부장은 “향후 엔시오 10만 명을 달성하는 것이 1차 목표”라며 “이후 20만 명 등 보다 많은 대구시민이 엔시오로 가입해 대구가 축구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다양한 활동의 연속 엔젤클럽은 지역 축구 스킨십 확대를 위해 올해부터 대구FC엔젤클럽 회장배초청축구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월드컵 휴식기인 지난 6월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대회에 참가한 단체 모습. 엔젤클럽은 대구를 축구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7월에 열린 ‘제1회 대구FC엔젤클럽회장배 초청축구 대회’다. 2017년 대구경북의사축구단의 엔젤클럽 단체가입 기념으로 친선경기를 가졌다. 하지만 지역 각 전문가 단체와 축구 스킨십을 확대하기 위해 대구FC엔젤클럽회장배 초청축구 대회를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키로 했다. 특히 축구 경기가 없는 비시즌인 겨울에는 회원 간 친목을 다지고자 ‘대구FC엔젤클럽 수요만남의 날’을 열고 있다. 수요 만남의 날은 엔젤 회원이 1천 명을 넘어서면서 사무국에 업무 부하가 걸려 일일이 새롭게 가입한 엔젤을 못 찾아다니게 되면서 쌓인 일부 엔젤의 불만 해소를 위해 마련됐다. 매주 수요일 오전 만촌동 호텔 인터불고에서는 만남의 날 행사가 열린다. 친목 이외에도 대구ㆍ경북지역의 대학,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으며 영역을 확대하는 중이다. 지난달 8일 대구와 울산 현대의 FA컵 결승 2차전에 엔젤 회원과 엔젤클럽과의 협약기관의 2천500여 명이 대구스타디움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엄태건 엔젤클럽 본부장은 “엔젤이 더 많이 모일수록 대구FC 선수들에게 더 큰 힘을 불어 넣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축구전용구장에 엔젤이 가득 차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시민구단 대구FC명문자립구단으로 조성엔젤클럽의 최종 목표”이호경 엔젤클럽 회장 “대구FC가 명문시민자립구단으로 거듭나는 것이 엔젤클럽의 최종 목표입니다.”2016년 공식 출범한 대구FC 엔젤클럽의 이호경 회장이 지난 3년을 돌이켜 보면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2010년대 초 대구는 축구의 불모지였다. 시민구단임에도 정작 시민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호경 회장과 강병규 전 대구시 감사관 등이 힘을 모아 엔젤클럽을 만들었고 이제는 대구FC의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했다.이 회장은 “엔젤클럽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대구의 정신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라며 “지역사회에서도 점차 엔젤클럽의 존재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대구FC 선수단의 사기진작,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대구FC는 2016년 시즌 K리그1 승격을 이뤄냈고 2017년 시즌, 많은 전문가들이 강등 1순위로 꼽았지만 당당히 잔류했다. 또 이번 시즌에는 잔류뿐만 아니라 창단 첫 우승(FA컵)이라는 쾌거를 이뤘다.대구FC가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면에는 엔젤클럽이 존재했다.이호경 회장은 “대구 선수들은 엔젤클럽을 ‘든든한 언덕,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평가한다”며 “어려운 환경을 변화시킨 엔젤 회원들, 성과로 보답한 선수들에게 고마울 뿐”이라고 답했다.이호경 회장의 꿈이자 1천800여 명에 달하는 엔젤클럽 회원의 꿈은 대구FC가 스페인의 명문 구단 FC바르셀로나처럼 명문시민자립구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축구가 열리는 날은 축제가 되고 축구를 통해 대구가 경제적, 의식적으로 성장해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로의 재탄생이다.그는 “내년 멋진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이사하는 만큼 엔젤클럽 활동 폭을 더욱 넓혀나갈 것”이라며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축구 부흥을 일으킬 계획”이라고 강조했다.끝으로 내년 시즌 대구FC 성적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이호경 대구FC 엔젤클럽 회장은 “포레스트 아레나가 가득 차는 동시에 팬들의 힘을 받아 대구FC가 K리그 상위 스플릿A에 진출하는 것”이라며 “처음으로 출전하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도 예선에 통과해 시민구단의 위상을 드높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뿌리 깊은 유교마을에 뿌리 내린 기독교 정신

안동은 경북 북부의 관문으로 내륙으로 들어서는 사방의 길이 다 열려있다. 20세기 초엽까지는 더욱 그랬다. 동쪽의 울진, 영덕에서 국토 안으로 깊숙하게 접어들려면 안동을 거쳐야 한다. 북쪽에서 남하하는 나그네들은 통상 두 가지 길을 선택하는데 영남좌로인 죽령을 넘어 영주-안동으로 들어서기도 하고 중로인 새재-예천을 거쳐 안동으로 접어들기도 한다. 안동의 북쪽과 서쪽 길이 모두 열려있다는 것이다. 그런 안동을 조망해 보면 지역 구성이 자못 흥미롭다. 시 외곽에는 400~500년 족히 넘은 고택들이 즐비하다. 도산서원과 퇴계종택, 내앞마을, 하회와 소산마을 그리고 봉정암과 학봉종택 등이 안동 외곽의 울타리를 두르고 있다. 그들 고택군을 지나 한걸음 안동시내 중심으로 들어서면 다른 지역의 도심과 마찬가지로 높고 낮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 속에 유독 두 개의 건물은 고건축물이어서 눈길을 끈다. 그 중 하나는 목조 건물인 태사묘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풍의 석조 건물인 안동교회다. 태사묘가 고려 건국 공신 세 분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라면 110여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안동교회(안동시 화성동, 등록문화재 654호)는 기독교 예배당이다. 결국 안동지역은 동심원 속의 바깥원은 전통의 고택마을, 중간원은 현대식 생활 건물군 그리고 중심원은 사원 건물로 배치된 듯하다. 안동의 여러 고건축물들은 하나 같이 제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지켜온 시간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 유학의 본산인 안동에 세워진 안동교회의 내력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기독의 길을 연 김병우 김병우는 안동의 서쪽 풍천 어담골의 한미한 안동 김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년기부터 밭을 갈고 논을 메면서 평범한 촌부로 성장했으나 짬짬이 가학으로 사장의 글귀만은 놓치지 않았다. 청년기에 이르도록 김병우의 생활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집 밖의 세상사는 물살같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일본 경찰들이 들어와 상투머리를 짤막하게 깎으라고 윽박지르는가 하면 조선이 곧 일본의 속국이 되고 말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또한 서당이 없어지고 새로운 학문을 가르치는 글방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의성과 일직 그리고 풍산 지역에도 서양 사람들이 만든 야소교를 믿는 장소가 생긴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병우는 문득 문득 마당 밖 넓은 곳으로 뛰쳐나가 달라져 가는 세상사를 보고 싶었다. 그냥 묵묵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맨몸으로 변화의 물결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닮은 채로 꽁꽁 묶고 있는, 고루하고 낡은 것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늦봄, 하얀 솜가락 같던 싸리꽃이 지고 산도화가 화사하게 피어나던 날 청년 병우는 풍산 장터에 나갔다.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우연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대장간 앞에서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사람을 보았다. 키가 크고 콧날이 오뚝할 뿐 아니라 머릿결이 노랗고 눈빛이 파란 게 아주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그를 둘러싼 장터의 여러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이 어찌 저리도 하얄까. 참 별 사람이 다 있네. 어디서 온 사람일꼬.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인가 보네’, ‘아니야 구라파 사람이지’라며 한 마디씩 수군거렸다. 그러나 병우는 그 서양사람의 얼굴에서 형용할 수 없는 눈부신 빛이 어리고 있음을 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지만 결국 한 마디의 말도 섞지 못하고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만 혼을 빼앗긴 바라보았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는 1893년 4월, 부산에 입향해 한 달 동안 경북 북부지방까지 기독교의 미답지역을 여행하고 돌아간 영남의 최초 선교사 배위량(W.M.Baird)이었다. 그 후 김병우는 처음 만났던 그 이국 사람의 얼굴이 문득문득 빛으로 떠오르곤 하였다. 그런 사람들이 야소교인가 하고 상상해 보면서 은연중 자신을 채찍질하며 독백하는 버릇이 생겼다. -두려워 말고 이곳을 떠나리라. 나의 집안과 나의 방 그리고 나의 관습과 과거로부터 벗어나 맨몸으로 떠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1903년, 김병우는 대구선교부 경북북부 지역 책임자인 방위렴(W.M.Barrett)을 만나 신세계나 다름 없는 예수의 복음을 영접하게 된다. 풍산교회에서 처음 예수를 만난 병우는 복음을 맞이한 댓가를 톡톡하게 치러야 했다. 대문간에 십자가를 내 걸고 찬송가를 부르던 병우를 마을 사람들은 숫제 역귀로 몰아세웠다. 가까운 친인척까지 합세하여 그를 공격하였다. “우리 마을이 역귀에 들었습니다. 야소교도의 집을 불태워 버립시다.” “병우를 잡아 마을에서 내쫓아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드디어 십자가를 붙인 병우의 초가집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병우는 더 이상 마을에 머물 곳도 머물러야 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 마을사람들의 등살에 밀려난 김병우는 풍천과 인접한 소산 마을로 들어갔다. 일가들이 사는 곳이었지만 그곳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외롭고 추웠지만 하나님이 자신과 동행한다는 믿음으로 가는 길을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 더 넓은 마을로 나가자.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안동 읍내로 나가 오직 예수님과 함께 살리라….’ 믿음을 향한 김병우의 신념은 더 굳건해져 나갔다. ◆안동교회의 첫 예배 교회중심에 있는 유적지 안내도. 땅거미가 풀리기 시작하는 새벽, 그래도 골목길에는 어둠이 사라지지 않았다. 말끔하게 세수를 한 김병우는 참빗으로 머리를 다듬고 틀어 올렸다. 그리고 지난 날 방위렴에게 얻은 청나라 판 성경책을 펼쳤다. 문풍지를 타고 들어오는 바람결에 등잔불이 일렁거렸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의 한 구절을 읽고 묵상하던 병우는 그날따라 지난 날, 예수를 좇다 갖은 수모를 이겨 내고 안동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자신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가슴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묵상을 멈추고 난 병우는 성경을 덮고 머리맡에 둔 둥그란 소가죽 북을 꺼내 둥둥 울렸다. 그리고 말끔한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옆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금새 찾아든 7명의 교도들을 정중하게 맞이한다. 자신을 포함해 남자 넷, 여자 넷이다. 그들은 하나 같이 환하고 기쁨에 찬 얼굴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주기도문을 봉송하였다. 1909년 8월, 안동 서문 밖 기독서원 다섯 칸짜리 방에서 김병우를 비롯한 8명이 처음 하나님을 경배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안동교회는 김병우를 필두로 안동지역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는 본산이 된 것이다. 한해 두 해 세월이 지나갈수록 성도의 수가 75명, 200명, 400여 명에 이르도록 급증해 나갔다. 그 다수가 안동의 양반 자제들이고 조선시대 관리의 후손들이다. 예배의 자리가 비좁기만 하였다. 1937년 이른 봄, 안동읍내의 꽤나 번잡한 거리인 화성동에 화강암 석조 2층 건물이 서서히 지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높이 쌓아져 가는 큰 집의 외벽을 구경하느라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곤 한다. 한참 쳐다보던 어떤 이는 ‘무슨 집이 돌집이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저렇게 높은 집인데 대문은 측면에 있나 보네’ 하면서 자신들이 처음 마주하는 익숙지 않은 느낌을 숨기지 않고 내뱉곤 한다. 안동교회로 사용될 이 건축물은 주변의 다른 것들 속에서 단순히 외형뿐만 아니라 높이와 지붕 모양 그리고 부재로 쓴 석물까지 단연 눈에 확 띈다. 우리네의 전통 집 형태와 전혀 다른 대문 등은 모두 보는 이들을 낯설게 한다. 성도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예배처소를 넓혀 나가기를 여러 차례 거듭하다가 그 여섯 번째로 지어진 것이 곧 현재 모습의 2층 돌집 예배당인 안동교회이다. 서울 태생으로 안동에서 15년째 담임목사로 있는 김승학 목사는 교인들이 순후하고 신실하다고 말한다. 그와 장시간 교회의 내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전통의 추로지향(鄒魯之鄕)에 기독교가 그렇게 일찍 접목될 수 있었던 연유가 이해되면서 의구심이 풀렸다. 오랜 세월 동안 유학적 선비문화가 깊이 밴 안동 지역사회는 기독교를 배타적인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미지의 새로운 신학문 세계로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학습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식을 잘 습득하는 훈련된 그들의 삶의 방식이 오히려 더 쉽게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김정식 대마문화콘텐츠연구소장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주민자치회

대구시 수성구 고산2동 주민들이 주민자치회를 결성해 주변지역 정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지역민 A씨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인 주민자치에 대해 평소 궁금해 했다.주민자치는 1991년 지방의회 구성, 1995년 자치단체장 선출 등 지방자치제 부활에 따른 결과로 지방자치의 밑바탕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다.A씨는 자치회가 활성화되고 있는 대구·경북 주민자치회를 찾았다.이 가운데 대구 수성구 고산2동 주민자치회는 지역 마을회와 새마을부녀회, 지역 라이온스 등과 연계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김장나누기, 무료급식‧교복구입비 지원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지역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주민간 소통과 화합의 장을 펼치고 있다.경북 안동시 강남동 주민자치회는 ‘원이엄마 테마공원’ 위탁 관리를 통해 공원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로부터 호응를 얻고 있다.주민자치위원들이 관광해설사로 나서 단체 관광객이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테마공원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기 때문이다.또 새롭게 시작하는 ‘꽃가람 공원 파종‧관리 사업’을 통해 지역 자원을 관광콘텐츠로 발굴해 주민자치의 모델로 성장하고 있다.앞으로 주민들이 중심이 돼 마을의 다양한 문제를 직접 발굴·논의하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주민자치회는 더욱 확산될 예정이다.주민 스스로 자치회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계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참여의 결과이다.특별법은 주민의 복리증진과 지역공동체 형성, 주민참여의 보장 및 자치활동의 진흥 등을 담고 있다.주민자치회에 참여한 지역민들은 “주민자치회를 통해 지역의 소통과 화합을 이룰 수 있다”며 “지역의 항구적인 번영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의 역할이 중요하며 행정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현재 95개 읍면동에서 구성‧운영 중인 주민자치회는 2013년 38개 읍면동의 시범실시로 출발했다.대구를 포함한 영남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주민자치회 운영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영남지역은 현재 95개 주민자치회 중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9개 자치회만이 설치돼 있다.경북은 전체 332개 읍면동 중 주민자치센터가 설치된 곳은 79개(23.8%)로 1/4에도 미치지 못한다.자연부락을 중심으로 한 마을회, 새마을회, 지역방범대 등 주민 자율적 조직은 이미 각 읍면동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행정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주민자치회는 일선 행정기관으로부터 행정사무를 위탁받아 수행할 수 있다.또 읍면동 행정에 대한 협의 기능을 통해 실질적인 역할과 기능을 부여받고 있다. 지자체 사무 일부가 넘어가는 형태다.정부 관계자는 “지방자치법 개정은 주민자치회 활성화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주민자치의 중요성에 대한 주민 공감대 형성, 일선 공무원의 적극적인 인식 개선, 안정적 재원확보를 위한 노력에 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지역 주민자치회 활성화에 하나의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며 “주민들이 행정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갖고 직접 지역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문재인 정부도 ‘주민자치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지난 10월 발표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한 마디로 ‘주민 중심’이다.현재 입법예고 중인 개정안은 주민조례발안제 도입, 주민소송‧소환 등 참여제도 요건 완화와 함께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과 행‧재정적 지원을 위한 근거를 신설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또 자율적인 규약으로 읍면동별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된 주민자치회를 조직‧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조직된 주민자치회는 지역 주민 대표성을 반영하며 주민자치위원은 명예직이다.아울러 주민자치회는 읍면동 행정기능 중 주민생활과 밀접한 사무의 협의에 관한 사항, 지역발전과 주민의 복리 증진에 관한 사항 등의 사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사무 수행을 위한 계획 수립시 지역 주민의 의견을 거쳐야 한다.김현기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과 행‧재정적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동시에 관계 부처와 협력해 주민주도의 도시재생, 보건‧복지 등 공공서비스 제공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교육·정치·언론 다방면 명성…나라 곳곳에 발전 토대 쌓아

지난 2월 열린 김성곤 선생 43주기 추도식 모습. 그의 정치 인생과 함께 따라다니는 구설은 남로당과 관련한 ‘신분세탁’과 관련된 문제다. 그러나 그의 이력에는 1950년 6ㆍ25 당시 금성방직 사옥에서 인민군에 납치됐다가 탈출했고, 1951년에는 UN 종군기자 자격을 취득했으며 1958년에는 자유당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으로 기재돼 있다.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고 승부수를 던질 배짱이 있었다는 것이다. ‘통 큰 정치인’, ‘협상의 명수’로도 알려져 있었다.그는 슬하에 3남3녀를 두었고 그의 유해는 두 차례의 이장 후 달성군 구지면에 안장됐다. 홍종흠 본사 객원편집위원

긴 잠에서 깨어난 신라 왕궁의 흔적…천년의 숨결 오롯이

월성 남쪽 남천과 연접한 산책로. 고목들이 남천과 어우러져 절경을 선물한다. 경주 월성은 신라시대 왕이 거주하던 궁성이다. 101년부터 935년 신라가 패망할 때까지 1천 년에 가까운 세월 왕이 거주하면서 집무를 보았던 터라 신라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국민들이 신성시하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아 폐허가 되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말기에 접어들면서 왕궁터 일부를 백성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종 때에 숭신전을 짓고, 일반 백성들이 불을 놓아 농사를 지어 개인들이 가져갔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이천 년의 세월이 지난 이제서야 신라왕궁터의 베일을 벗기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경주시는 신라 왕경 복원사업을 황룡사, 월정교, 동궁과 월지, 월성 등 8개 단위사업으로 나누어 추진하면서 월성 복원을 위한 발굴사업을 2014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월성을 둘러보는 일은 신비로운 세계, 미지의 세계, 역사 속의 세계를 더듬어보는 가슴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월성 둘레길을 걸어보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이 된다. ◆천년의 노래 월성 월성은 첨성대, 계림, 신라 국학의 터 교촌마을, 월정교, 동궁과 월지 등의 신라 천년 사적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에 그리 높지 않은 성이다. 월성에는 신라 천 년의 노래가 묻혀있다. 신라 천년 궁터에 다시 천 년의 시간이 덧입혀져 두텁게 비밀 아닌 비밀을 포장하고 있다. 성터 전체가 반달처럼 생겨 반월성 또는 월성으로 부른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는 신라 파사왕 22년(101년)에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 또는 재성이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935년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에 바치기까지 왕들의 주된 생활공간이었다. 월성에는 동서남북 사방에 여러 개의 문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우물터가 지금도 남아있고, 연못도 있었다. 만파식적과 같은 보물을 보관했던 천존고를 비롯한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 성안에서는 동물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새가 둥지를 틀고, 개가 여우를 물어 죽였다는 기록이 있어 숲이 울창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그러한 모습들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석빙고와 숲, 산책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월성에는 몰락한 신라 천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월성은 신라 천년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 또 새로운 천 년의 시간이 덧입혀져 있지만, 크게 훼손되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돼온 편이다. 물론 건축물들은 모두 소실되고 없지만, 땅속에 묻힌 흔적은 대부분 퇴적돼 남아있다. 월성을 통해 신라인들의 삶과 역사를 밝히는 일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월성 둘레길 월성 입구에 신라 천년의 역사를 영상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신라왕궁영상관. 월성 둘레길은 내부둘레길과 외부둘레길로 구분해 걸어보는 것도, 시간이 주는 마술 같은 오묘한 맛을 즐감할 수 있는 힐링거리가 된다. 월성 내부둘레길은 첨성대에서 남쪽으로 연결된 계림로를 통해 진입하는 길과 동쪽 동궁과 월지 방향에서 진입하는 두 갈래가 있다. 동쪽 월지에서 진입하는 길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월성으로 들기 전 ‘신라왕궁영상관’을 방문해 13분에 걸쳐 소개되는 월성에 대한 영상물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신라왕궁의 건설에 대한 설화, 선덕여왕의 지혜, 황룡사의 건설과 붕괴, 화랑들의 수련, 삼국통일의 약사, 불교의 진흥, 계획도시로의 화려한 발전 상황들이 소개된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한 편의 영화처럼 후딱 스쳐 지나간다. 선조들의 화려한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볼 수 있어 의미가 깊은 콘텐츠다. 월성에 드는 길은 살짝 오르막이다. 월성이 분지로 이루어져 천연적인 성과 같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최초 발굴 당시 문지가 발견된 곳으로 입구 양쪽으로 고목들이 서서 오래된 역사의 터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또 선덕여왕 촬영지라는 간판이 월성의 역사현장임을 설명한다. 월성에 첫발을 딛고서면, 넓은 부지에 푸른 비닐이 포장된 것을 볼 수 있다.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경주문화재연구소가 월성 발굴작업을 추진하면서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입구에 월성을 설명하는 글을 재미있게 만화로 그려두었다. 발굴작업 광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단을 설치하고, 단 위에 월성 역사와 발굴작업 구역을 나누어 개괄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내부에 ‘월성이랑’ 사무실을 설치하고, 방문객들에게 발굴 과정에 대해 전문 학예사가 안내하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대별로 안내하고 있다. 전화(010-3226-6390) 예약을 해두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단 바로 뒤, 월성의 북문지로도 짐작되는 곳에 조선시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얼음보관창고 석빙고가 있다. 석빙고의 서쪽 100m 지점에는 가끔 문헌에 등장하는 나무로 만든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 초빙지가 있었던 터로 짐작되는 흔적도 보인다. 석빙고 옆에는 조선시대에 얼음창고를 지었다는 내용을 기록한 석빙고 설립기념비가 서 있다. 월성 성벽을 구성하는 언덕과 경계면에는 벚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봄이면 한꺼번에 화르르 피어나 화사한 꽃 대궐을 이룬다. 첨성대 쪽에서 원경으로 촬영한 사진은 작품이 된다. 월성 내부둘레길은 마당을 걷는 평평한 길이다. 흙길이어서 폭신한 느낌이 좋다. 또 나무들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산책길이 가장자리로 조성돼 있어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다. 월성 남쪽의 산책길은 아침이나 비 갠 이후 시간에는 남천에서 올라오는 물안개를 감상하면서 걷거나, 서쪽으로 몰락하는 태양의 그림자를 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야간에는 월정교에서 반사되는 푸른 불빛이 물에 투영되면서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절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남쪽 둘레길 곳곳에는 벤치가 있다. 따뜻한 햇볕을 즐기며 남천을 건너 인왕사지, 천관사지, 월정교, 상서장, 국립경주박물관, 남산 등의 풍경을 감상하며 도시락을 먹는 일도 큰 즐거움이다. 월성 내부를 둘러보는 둘레길은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월성 외곽을 둘러보는 둘레길은 신라 천년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동궁과 월지, 첨성대, 계림, 경주향교, 월정교, 국립경주박물관, 내물왕릉과 고분 등의 역사 문화사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둘레길은 또 코스모스, 연꽃, 벚꽃, 유채 등의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만발해 사계절 꽃길이 되고, 꽃 터널 등의 편의시설들이 포토존으로 기능해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경주 관광 1번지로 부상하고 있다. 월성과 주변 사적지를 둘러보게 하는 비단벌레 전동차. 동쪽 영상관에서 첨성대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비단벌레 전동차를 타볼 수 있다. 월성을 둘러싼 해자를 감상하는 여유를 가져도 좋다. 월성의 해자는 남쪽의 남천을 제외하고 동, 서, 북쪽은 인위적으로 대규모 못을 조성해 해자를 만들었다. 경주시는 해자의 흔적을 발굴해 2019년이면 복원된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첨성대 광장을 지나 계림의 우거진 고목 숲길, 해자 발굴 광경, 월정교의 우람하면서 정교한 예술적 솜씨를 보는 둘레길은 가장 아름다운 산책길로 손꼽힌다. 이어 신라 국학의 터에 자리한 경주향교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남은 요석궁, 최 부자의 전설적인 기부문화를 교육하는 아카데미와 최부자 고택,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빚어내는 교동법주,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골목길이 월성 외부둘레 길에서 발길을 유혹한다. 김유신과 천관의 사랑이 만든 천관 사지와 당나라에서 귀국길에 사망한 김인문을 추도하기 위해 건축되었다는 인왕사지도 둘레길에 연접해 있다. 둘레길에 맞물린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하루해가 짧은 산책이 된다. 다시 3만3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월지관’이라는 독립된 전시관을 짓게 한 동궁과 월지를 돌아 나오면, 외부둘레길 순회는 끝이 난다. 운동하듯 빠른 걸음으로 후딱 지나쳐도 2시간은 소요될 거리다. 작심하고 가장 빠른 코스를 택해 걸어도 1시간에 돌아보기는 빠듯한 산책길이다. ◆월성에서 놀기 경주 월성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경주문화재단연구소는 매년 월성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공모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사진 전문작가들이 아닌 관광객 누구나 참가하기 좋게 디지털사진전으로 작품을 신청받아 월성의 다양한 모습을 재발견하게 한다. 연구소는 또 1년에 4차례에 걸쳐 대담 신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신라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정하고 신라 역사에 정통한 학예사와 연구원들이 발표자로 나서 먼저 발표하고, 대화하면서 신라 역사를 풀어나가는 시스템이다. 대담은 여름철에는 월성에서 불을 밝혀두고 시원하게 야외미팅으로 진행하거나, 월성과 가까운 찻집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한다. 또 야간 나들이가 편한 여름과 가을 달밤을 이용해 ‘빛의 궁궐’을 감상할 수 있게 야간에 월성을 개방하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월성 곳곳에 조명을 설치하고 달밤의 운치를 더하는 등 ‘신라의 달밤’으로 초대한다. 월성은 방송사에서 방영해 많은 시청률을 자랑했던 ‘선덕여왕’ 메인 촬영지로도 잘 알려졌다. 우아하게 왕관을 쓴 선덕여왕의 출연, 김유신 장군과 병사들이 말을 달리는 장면들을 연출하며 현실감 있게 신라를 표현했던 현장이다. 이러한 역사현장을 보기 위한 발걸음도 한때는 분주하게 이어졌다. 신라 천년에 이어, 고려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천 년이 덧입혀진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의 보고 월성에서 다양한 역사문화유적의 신비를 감상하는 일은 행복을 담보하고도 남는다. ◆월성 발굴 복원사업 월성 남쪽에 조선 말기에 건립되었다가 석탈해왕릉 옆으로 옮겨 세워 간 숭신전이 있었던 흔적. 월성은 왕궁이라는 신성한 곳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궁성의 빈터로 역사를 담은 채 대부분 고스란히 보존해 왔다. 조선시대 말기에 탈해왕 제전으로 숭신전이 건립되었는데, 1980년 월성 안의 민가 철거령으로 석탈해왕릉 옆으로 이건했다. 지금도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서쪽 일부 성벽을 훼손해 발굴했다. 6ㆍ25전쟁 당시, 미군들이 병참기지로 월성의 일부를 활용해 다소 훼손된 곳도 있다. 1963년 사적지로 지정해 관리해오다 1979년 동쪽의 문지와 담장을 발굴했다. 이때 해자를 처음 발견했다. 본격적인 월성의 발굴은 2014년 12월부터다. 신라 왕경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월성이 본격적인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신라왕경 복원사업은 2025년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월성 서문지에서 제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뼈 2구가 출토됐다. 성벽이나 제방에서 사람의 뼈가 나온 것은 국내에서 최초 사례다. 월성과 해자에서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사람 뼈와 흙으로 만든 인형 토우, 곰의 뼈를 비롯한 동물 유체, 가시연꽃의 씨앗과 식물 열매, 이두가 기록된 목간, 생활용 목기 등이 발굴됐다. 손칼과 작은 톱 등으로 정교하게 만든 나무로 만든 얼레빗도 발견됐다. 월성 동쪽에서 북, 서쪽까지 대규모 인공 해자로 6개의 못으로 파고 수로로 연결했다. 해자는 삼국통일 이후 본래의 기능이 불필요하게 되면서 꽃과 나무를 심어 조경한 흔적이 드러났다. 해자에서 출토된 목간에는 월성의 역사적 가치를 입증하는 글들이 적혀있다. 월성에서 출토된 토우는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 토우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페르시아풍의 긴 옷을 입고 있으며 터번을 쓴 토우, 기마 인물 토우 등이다. 월성을 발굴하는 호미질에서 묵은 세월의 흔적을 발견한다. 선조들의 화려했던 날들을 재조명해 새로운 천년을 기획하는 디딤돌로 삼아 아름다운 날들을 설계하길 기대하면서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 길은 참다운 힐링이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소아의 ‘서혜부 탈장’] 울다가 웃다가 잘 놀았는데 우연히 발견한 덩어리, 탈장?

5세 남아를 목욕시키는 어머니는 우연히 우측 서혜부(사타구니)에 조그맣게 볼록 튀어나온 덩어리를 발견했다. 병원에 가보니 서혜부 탈장이라는 진단을 받았다.소아 탈장은 대부분 선천성이며 태생 3개월에 복막의 일부가 서혜부로 돌출돼 있다가 고환이 음낭 내로 하강하는 태생 7개월경 이후에 정상적으로 막혀야 하는데 막히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를 말한다.반면 성인의 탈장은 배를 둘러싸는 근육의 약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소아 탈장의 증상대부분 증상이 없이 울거나 뛰어놀고 난 뒤 등의 복압이 증가해서 튀어나온 덩어리를 발견해서 우연히 발견된다.증상이 있는 경우는 탈장 부위의 통증, 복통, 탈장 부위의 융기, 심하면 감돈(복강 내 장기가 탈장 구멍에 나와서 낀 상태)이나 괴사(이렇게 끼어있는 상태로 혈류가 차단돼 장기가 썩는 상태)의 경우는 심한 통증, 복통, 복부 팽만, 구토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진단은 복강 내로 환원되는 서혜부 종창(부어 오른 덩어리)을 발견하거나 초음파 검사,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 등으로 가능하다.감별 진단해야 하는 질환은 음낭수종, 고환 염전(고환의 비틀림), 서혜부 림프절염 등이 있다.치료는 응급 수술은 아니지만 가능한 서둘러 수술하는 것이 좋다.성인과는 달리 근육의 문제가 아니므로 탈장낭만 제거하고 입구를 막으면 된다.피부 절개 부위는 하복부의 가장 깊은 피부 주름선을 따라서 1㎝가량 시행하고 수술 후 피부봉합은 피부 아래로 시행해서 상처가 거의 남지 않게 한다.퇴원은 상태에 따라서 수술한 당일이나 하루가 지나면 가능하다.퇴원 후에는 수술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다. 퇴원 후 활동 제한이나 음식의 제한은 없다.◆소아 탈장의 예방법소아 탈장은 선천적이므로 발견되면 수술적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서혜부 탈장은 비교적 간단히 진단 및 치료가 가능하지만 드물게는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서 생명이 위험한 경우도 있으므로 가볍게 여기지 말고 의심이 되면 가급적 속히 전문의의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소아 탈장에 대한 오해와 진실1. 아이가 어린 데 좀 더 기다렸다가 수술하면 안 되나요?-과거에는 아기가 너무 어린 경우에는 만 1세까지 기다렸다가 수술하도록 한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탈장이 심해져서 통증이 증가하거나 복강 내 장기의 감돈 및 괴사와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고려해 가급적 신속히 수술하는 것을 권장합니다.2. 서혜부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덩어리가 있다가 없어졌고 초음파 검사에서도 발견이 안 되면 수술하지 않아도 되나요?-서혜부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덩어리를 분명히 확인했다면 초음파 검사와 상관없이 수술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탈장의 크기가 작고 초음파 검사 시에 속으로 쏙 들어가 있으면 검사에 안 나올 수도 있으므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3. 서혜부 탈장과 가장 감별 진단해야 할 질환인 음낭 수종은 바로 수술해야 하나요 ?-음낭 수종은 탈장과 달리 탈장낭의 일부분이 막혀서 속에 물이 들어 있는 물주머니입니다.생후 만 1세까지 경과 관찰하면 약 70% 정도에서 주머니 속의 물이 주위로 흡수되고 수술하지 않고도 자연 치유 가능합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크게 남아 있으면 고환으로 가는 혈류를 방해해 고환의 성장에 문제 될 수 있으므로 수술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4. 소아 탈장이 선천성이면 왜 태어난 직후에 발견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서 보이는 경우가 있나요?-소아 탈장이 있어도 크기가 작은 경우에는 외부에서 봐도 잘 파악할 수 없지만 작게 발견 안될 정도로 있다가 크기가 증가하면 발견이 되기 때문입니다.도움말: 대구가톨릭대병원 외과 주대현 교수이동률 기자 leedh@idaegu.com

초전지 기념관 3만 명 다녀가…발우공양·민속놀이 남녀노소의 ‘쉼터’

신라불교 초전지는 2017년 10월13일 경북도 3대 문화권 전략 조성사업에 선정돼 국도비와 시비 등 400억 원을 들여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일원에 조성됐다. 신라와 통일신라, 천 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 특히 한 나라의 국교가 천 년 가까이 지속된 나라도 흔치 않다. 불국토(佛國土). 현대인들은 신라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의 신라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곳은 어디일까? 구미시 도개면 도개2리 모례마을 신라불교 초전지. 초전지라는 말은 ‘처음으로 전해진 땅’ 이란 뜻이다. 이곳이 바로 ‘신라불교초전지’이다. ◆신라불교 초전지 신라불교 초전지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가옥체험관에서 진행하는 한옥문화예술공연 모습. 신라불교 초전지는 경북도 3대 문화권(유교ㆍ신라ㆍ불교권) 조성 전략 사업에 선정돼 국ㆍ도비와 시비 등 400억 원을 들여 2017년 10월13일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일원에 개관했다. 3만6천여㎡(1만1천 평)의 부지에 초전기념관, 전통한옥체험관, 대강당, 불교음식체험관, 단체생활관과 전시가옥 등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 있다. 특히 초전지 기념관은 올해만 약 3만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기념관은 총 3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관은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2관은 성국공주의 병을 향으로 치료한 아도화상의 행적을 보여주면서 도리사 창건에 대한 과정을 소개하고, 아도화상의 입적지를 재현했다. 3관은 신라불교가 국교로 승인된 과정과 구미(선산)지역의 불교문화 유산을 상세히 설명했다. 특히 탁본과 염주 만들기를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체험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미디어실은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명상을 할 수 있는 5분짜리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 휴식과 힐링의 공간 신라불교 초전지가 진행하는 ‘초전지 데이, 초전지에서 놀자’ 프로그램은 가족 단위의 체험객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신라불교초전지는 개관과 동시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개관 일 년 만에 3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불교 성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시민의 ‘휴식과 힐링’을 책임질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다. 신라불교 초전지를 관리하는 구미시설공단은 이런 호응에 힘입어 각종 체험 행사와 숙박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초전지 데이(day), 초전지에서 놀자!’ 프로그램은 가족단위 체험객이 주를 이룬다. 신라불교 초전지를 찾은 아이들이 전통 놀이를 즐기고 있다. 설날을 전후한 떡국 만들기 체험은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또 전통방식의 떡메치기를 통한 인절미 만들기, 진달래 피는 3월의 화전놀이 등은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그 외에도 전통 먹거리 체험과 대보름 다리밟기, 천연염색, 부채만들기 등 민속체험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모례마을 초전지정보화마을과 연계한 옥수수따기 체험, 메뚜기잡기 체험 등 농촌체험활동도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미션! 초전지의 비밀을 찾아라’ 는 초전지를 방문한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저마다 미션지를 들고 초전지에 숨은 아홉 가지의 비밀을 찾으러 떠나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공부와 휴대폰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산교육이 되고 있다. 미션을 완료하면 선물도 증정한다. 특히, ‘일상에서 쉼표 하나’ 프로그램은 기존 사찰 템플스테이와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이다. 불교체험 프로그램인 예불, 108배 등은 기본이고, 최근 사찰에서도 진행하지 않는 발우공양체험을 제공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사찰식 템플스테이와는 다르게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명상’ 등 특별한 템플라이프 형태로 진행되는 ‘일상에서 쉼표 하나’ 프로그램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힐링시키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점심이면, 점심 공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초전지 전역에 울린다. 신라불교 초전지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전통사찰식 발우공양 체험을 진행해 인기를 끌고 있다. 전통 사찰식 ‘발우공양’ 체험이다. 지난 9월부터 시작한 ‘발우공양’ 체험은 초전지 프로그램 중 손꼽을 만큼 인기가 좋다. 어른 7천 원, 초등이상 4천 원의 저렴한 체험비로 전통사찰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는 한 끼 식사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도 자리하고 있다. 매달 발우공양 레시피가 공개되고, 체험객은 취향에 맞는 날짜를 골라 신청하면 된다. 초전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이 가능하며 현장 신청도 가능하다. 단 프로그램 운영의 특성상 20명 선착순으로 운영한다. ◆전통가옥에서 하룻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전통가옥체험’ 이다. 고풍스러운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다. 성불, 자비, 오도, 대각, 득도관 등 고품격 전통 한옥으로 건축된 멋들어진 한옥에서 가족과의 1박 2일을 보낼 수 있다. 부모님을 모시고 멀리 서울 인근에서도 체험관을 찾고 있다. 멀리 도리사의 태조산 정상이 바라다보이는 고즈넉한 청화산 아래 초전지 전통가옥체험관의 하루는 도심에서 찌들은 일상을 털고 휴식과 힐링을 찾아가기에 딱 알맞다. 아이들은 넓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옥자놀이, 투호, 제기차기, 팽이치기, 굴렁쇠 돌리기 등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다. 왕 윷놀이는 어른들을 동심의 세계로 초대한다. 또한 각 동마다 울력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텃밭 데크가 조성돼 숙박객 스스로 농사를 짓고 수확할 수 있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구미시설공단(이사장 권순서)이 운영하는 신라불교초전지는 도개정보화마을과 업무협약을 맺고 딸기따기 체험, 옥수수따기, 곶감만들기 등 농촌체험활동도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도개리 등 농촌 지역사회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초전지발전협의체를 발족시켜 보다 전문적이고 특색 있는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참여 회원단체는 아도모례원, 도개 문수사, 아도문화진흥원, 경북과학대학 겨레문화사업단, 초전지정보화마을 등 5개 단체이다. 초전지발전협의체는 2019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5월 한 달간 ‘초전지 나들이 행사’를 보다 확대해 주최하고, 시민 명상프로그램 운영 등 초전지만의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한 달 동안의 나들이 행사 기간에는 연등축제, 야간 연등 산책로 조성, 한옥문화예술공연 등이 이어진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곳에 자리 잡은 신라불교 초전지는 불교성지로서 구미문화의 우수성을 지켜가며 시민문화교육센터의 역할은 물론,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동시에 제공하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프로그램 문의는 구미시설공단 문화레저운영팀(054-480-2140), 프로그램 신청은 홈페이지(http://www.ginco.or.kr/silla/)로 하면 된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들불 속 주인 구하다 죽은 개 이야기…사람들 감동해 ‘구분방’ 이름 붙였다네

바람이 불었다. 떨어진 나뭇잎이 고분군을 덮고 있었다.고분군 사이 길에 쌓인 떡갈나무 낙엽을 밟는 발걸음이 포근했다. 낙엽은 나뭇잎의 주검이다.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들이 떨어진 낙엽을 보고 있었다. 봄이 오면 다시 푸른 잎 돋아나 녹음의 한때를 출렁일 것이다. ‘순환’이란 말이 떠올랐다.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 삶을 위한 죽음은 장엄하고, 죽음을 위한 삶은 처연하다. 자연사든 인간사든 무릇 생명가진 것들의 가치 있는 운신(運身)은 장엄하고 처연하다. 역사 속에 누워 있는 고분군이, 고분군을 뒤덮은 나뭇잎의 주검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살피게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죽음은 삶을 되 비추는 거울임이 분명하다. 의구총을 찾는 길에 고분군에 들렀다. 사적 제336호로 지정된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고분군은 의구총과 지척에 있었다. 3세기에서 7세기 중반기의 가야와 신라의 무덤들이라고 한다. 크고 작은 무덤들이 낙동강 동편 해발 700m의 구릉지대에 1번에서 205번까지 이름 대신 번호표를 달고 누워 있었다. 원래 낙산 일대는 가야시대와 신라 진흥왕 때 일선주(一善州)의 소재지로서 대규모의 가야, 신라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곳, 금동제 귀고리와 가야시대 등잔, 토기 등의 부장품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낙산리 고분군은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토착 지배세력의 집단 묘지로 추정된다. 그 이유야 무엇이었든지 불문하고 그 흔한 비석과 비문, 근사한 문체로 새긴 이름 석자가 없는 무명씨(無名氏)들의 무덤이어서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덤의 주인들인 토착지배 세력들 간의 크기를 가늠할 길 없으므로 죽음은 참 공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년 세월을 거슬러 우리 곁을 찾아온 선사시대 정경처럼 고분군이 주는 조용하고 포근한 느낌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주인을 구하고 죽은 의로운 개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148번지 국도변에 자리 잡고 있는 개의 무덤이다. 개 무덤 뒤에 있는 의구도 네 폭은 주인을 구하려고 목숨을 바친 개의 충직함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떨어진 나뭇잎은 새봄을 약속하고 이름 없는 고분군은 삶과 죽음의 공평함을 일깨운다. 의구총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1994년 9월29일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된 의구총은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148번지 25번 국도변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든 ‘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주인을 구하고 죽은 의로운 개의 무덤, 의구총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연향(延香, 지금의 해평 산양)에 사는 우리(郵吏) 노성원(盧聲遠)은 영리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노성원이 술에 취해 돌아오다가 말에서 떨어져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때 들불이 나서 주인이 타죽을 위험에 처하자 개가 꼬리에 물을 적셔와 불을 꺼 주인을 살리고는 기진하여 죽었다. 깨어난 노성원이 감동하여 장사를 지내주었다. 후세 사람들이 개의 의로움을 칭송하여 그곳을 구분방(狗墳坊)이라고 불렀다. 원래 있던 의구총 자리는 1952년 도로에 편입되어 공사 중 비(碑)의 일부가 파손된 것을 봉분과 아울러 수습하여 일선리(一善里) 마을 뒷산으로 옮겼다. 그러다 또다시 일선리 마을이 조성되자 1993년 원래의 위치에 가까운 현 위치로 옮겼다. 현 위치로 이장하면서 ‘의열도’에 있는 ‘의구도’ 4폭을 화강암에 확대, 조각하여 봉분 뒤에 세우는 등 일대를 정비하여 의구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봉분은 직경 2m, 높이 1.1m이고, 화강암으로 된 ‘의구도’의 크기는 가로 6.4m, 세로 0.6m, 너비 0.24m이다. 의구 설화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구미의 의구 설화는 불을 꺼서 주인을 구한 유형, 즉 진화구주형(鎭火救主型)에 속한다. 이러한 전설은 여러 지방에 전하고 있지만 봉분이 남아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1994년 선산군에서 향토문화재 보전과 국민의 사회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깨끗하게 정비하였다. 의구의 이야기는 사람 사는 세상에 크게 귀감이 되는 것이어서 1665년(현종 6) 선산부사 안응창이 고을 노인에게 의구 이야기를 듣고 ‘의구전(義狗傳)’을 지었고, 1745년 박익령이 화공에게 약가(藥哥)의 정열(貞烈)을 그린 ‘의열도(義烈圖)’ 4폭과 함께 ‘의구도(義狗圖)’ 4폭을 그리게 하여 ‘의열도’에 첨부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낙산리 의구총에 관한 이야기는 ‘일선지’, ‘선산부읍지’, ‘선산읍지’, ‘청구야담’, ‘파수록’, ‘한거잡록’, 심상직의 ‘죽서유고’ 등에 기록, 전승되고 있다. 주인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한 의구설화의 유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분포 지역 또한 광범위하다. 의구설화의 소중함을 보존, 전승하려는 노력과 필요성이 오랫동안 널리 있어왔다는 사실은 어느 시대, 어느 곳 없이 개만큼도 못한 인간사의 행태가 그만큼 누적되어 왔다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하겠다. 고려시대 최자가 그 노래의 창작 동기를 ‘보한집’에 기록한 바, 무덤을 만들어 죽은 개를 장사 지내고 김개인은 아래와 같은 ‘견분곡(犬墳曲)’ 이를 뒷받침한다. 사람은 짐승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人恥時爲畜)/ 공공연히 큰 은혜를 저버린다네(公然負大恩)/ 주인이 위태로울 때 주인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면(主危身不死)/ 어찌 족히 개와 한 가지로 논할 수 있겠는가(安足犬同論)//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의구설화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것처럼 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또한 오래인 것은 아이러니하다. 대표적 욕설인 개**에서부터, 제 버릇 개 못 준다,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 개도 밥 먹을 땐 안 건드린다, 개밥에 도토리, 개 팔자가 상팔자, 개가 똥을 마다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죽 쒀서 개 준다, 개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등의 속담을 지나, 무질서와 중구난방과 오합지졸을 지칭하는 개판, 여의도 정치를 두고 흔히 사용하는 야합이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양상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고 무수하다. 개가 폄하의 대명사가 된 것은 웬일일까. 개의 생태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편견으로 말미암은 것일까. 개의 잘못일까, 사람의 잘못일까. 그 원인과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낙산리 의구총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이 야속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야속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아도 좋겠다. 보신탕집 옛 자리에 동물병원이 들어서고, 애완견은 이제 한 가족, 한 식구가 되어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며 살아가는 반려동물의 대명사가 되어있지 않은가. 개만도 못하다는 말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애완견에게 항렬자를 따서 이름을 지어주고, 그가 죽으면 조상들을 모신 선산에 묻겠다는 이웃도 한둘이 아니다. 이와 같은 개의 지위향상(?)이 의구총 주인의 살신성인 공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지나친 비약일까. 되풀이 하거니와,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 고분군의 낙엽과 의구총의 전설이 내게 물었다. 저밖에 모르는 야박한 인심, 궁핍한 세태를 행해 컹, 컹, 컹, 꾸짖듯 물었다. 강현국시인•사단법인 녹색문화컨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한국전쟁 중 입북해 ‘종전’ 촉구…일평생 “통일이 진정한 광복” 신념지켜

2005년 서울시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가진 미수(88세) 축하 모임(앞줄 중앙 백발머리를 한 이가 박진목). 2010년 박진목은 경기도 하남시에서 92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부인 이영숙씨와의 사이에 3남5녀를 두었다. 그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유택(幽宅) 아래 남한산성 민족정기탑 앞에 묻혔다.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 yeeho1219@naver.com연보1918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출생연도미상-의성에서 보통학교 졸업 뒤 대구로 나감1938년 대구 달성군 구지면 오설리에서 양조장 경영, 현풍 곽씨와 결혼1942년 형 박시목을 따라 독립운동 투신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연행, 구속1945년 대구 달성군 건국준비위원회 활동1946년 남로당 달성군 조직책, 경북도당 간부1951년 서울서 북 이승엽과 회합(1월), 평양서 이승엽과 2차 회합(8월)1952년 평양 방문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1953년 만기 출소1954년 독립운동가 모임 원호회 이사, 야권통합운동1961년 5·16 군사혁명 감찰부 조사(무혐의 석방)1967년 영남일보 상임이사1970년 민족정기회 이사1972년 통일촉진회 참여2010년 7월13일 별세

경주의 과거·현재·미래 어우러진 곳…시간여행 떠나볼까

신경주역사 내에 경부고속철도를 개설하면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역사문화재 전시관. 경주는 역사가 살아 꿈틀대는 정원이다. 거대한 공원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여행을 즐기면서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또한 경주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다. 시간을 이동하게 하는 공간, 어떤 시점이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시간 역이다. 신경주역은 KTX 역사로 부산역과 동대구역 중간쯤인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에 있다. 신경주역에서 부산역과 동대구역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서울까지도 2시간10분 정도면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는 거리로 좁혀졌다. 신경주역은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는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대도시 서울, 부산, 대구와의 접근성을 높여 경제발전과 국민들의 생활 편익에 크게 일조하면서 산업발전을 견인하는 인프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2020년이면 울산에서 포항으로 이어지는 동해남부선, 영천에서 울산으로 통하는 중앙선, 동대구에서 울산으로 연결되는 경부고속철도 등의 환승역으로 기능이 늘어나면서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신경주역은 교통편의 제공 본래의 목적과 함께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의 이미지를 살려 맞이방에도 유물전시관과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마련하고 있다. 신경주역의 ‘셔블랑 놀자’ 프로모션은 경주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인기 상품으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역 광장에도 역사문화 유적을 재현하고, 조각 작품 설치, 특이한 조경, 야외공연장 등을 운영하면서 공원으로 꾸며, 시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이자 힐링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사문화관광 도시형 맞이방 신경주역 대합실에 들어서면, 전체 공간이 시원하게 트여 한눈에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맞이방 곳곳에 세워진 기둥에는 소, 호랑이, 용, 토끼 등의 12지신상들이 무신 상 조각 작품으로 설치돼 역사 도시를 상징하며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신경주역 맞이방 한가운데 설치된 포토존. 경주를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합실 가운데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인형들이 ‘웰컴 경주’라는 표어와 함께 포토존을 마련하고 있다. 방문객들도 여행 가방을 내려놓고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신경주역 맞이방 중앙에 사계절 전시회가 진행되면서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있다. 포토존 뒤로는 경주지역 예술인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문화공간으로 방문객들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지금은 서라벌 사진동우회원들의 ‘빛을 담다’라는 주제로 사진작가들의 카메라에 채집된 세상의 풍경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되고 있다. 수채화, 서양화, 도자기 등의 예술품들이 다양하게 모양을 내면서 대합실을 사계절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한다. 신경주역 맞이방 남쪽 입구에 있는 경주관광안내소. 남쪽 창가에는 경주의 문화관광자원을 소개하는 경주 관광안내소가 자리하고 있다. 경주 관광 안내지도와 볼만한 곳을 소개하는 포스터와 기념품들이 선보인다. 또 경주의 관광을 안내하는 영상물이 지속적으로 상영되고 있어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이들의 관광가이드가 된다. 둘러보면 또 가장 크게 눈을 자극하는 것이 기념품점과 먹거리를 소개하는 간판이다. 경주시가 개발한 브랜드 음식점 별채반이 맞이방 서편에서 반짝거린다. 별채반은 경주지역에서 생산되는 곤달비, 전복, 천년한우 등의 신선한 재료로 육개장과 비빔밥 메뉴로 개발돼 제공된다. 별채반은 1인 상으로 나무를 소재로 한 밥상과 유기 식기를 사용한 위생적 식탁으로 마련돼 산뜻한 기분이 들게 한다. 식당은 또 순두부찌개와 된장찌개를 비롯해 돈가스, 비프까스는 물론 다양한 퓨전 음식을 마련한 기소야, 롯데리아 등의 먹거리와 카페드롭탑이 입점해 만남의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신경주역 서편에 자리한 특산물 판매점. 구룡포 과메기 판매점이 2월말까지 운영된다. 경주특산품 코너로 황남빵과 경주빵이 각각의 부스로 설치돼 판매되고 있다. 이들은 배고픔을 달래주기도 하지만, 기념품으로 날개를 달고 팔려나간다. 12월부터 2월 말까지는 포항 구룡포 과메기가 특산품 코너를 차지하고 여행객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역사 정원과 유물전시관 신경주역 맞이방 서편에는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하면서 발굴된 역사문화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 ‘신경주역 문화재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에는 청동기시대로부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장신구와 토기, 왕관 등의 유물 복제품 158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통일신라 천년 왕조 유종의 미, 천년의 숨결, 신라 역사, 신라 서라벌에 나라를 세우고 왕권을 키우다 등의 제목으로 시조 박혁거세~22대 지증왕, 23대 법흥왕~28대 진덕여왕, 29대 무열왕~36대 효공왕, 37대 선덕왕~56대 경순왕 등으로 나누어 역사문화를 소개한다. 신라시대 서역문물의 전래과정, 왕관과 황룡사의 역사, 진흥왕과 선덕여왕, 태종무열왕의 화려한 정치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또 경주 내남면 덕천리의 철기, 덕천리의 청동기, 덕천리의 옥 장신구, 방내리의 기와, 송선리의 석기 등을 소개하고, 당시 시대적 상황들을 예술품으로 재현한 코너도 마련하고 있다. 광장에는 방내리 고분군 1호 돌방무덤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 재현하고 있다. 방내리 돌방무덤은 단석산 동쪽 끝자락 구릉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분 유적이다. 발굴에서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34기와 돌방무덤 23기,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1기 등이 확인됐다. 돌방무덤은 널이 안치된 방, 널길, 호석, 봉토를 갖춘 굴식 돌방무덤이다. 널방은 남북방향으로 긴 네모골이다. 판돌과 깬돌을 이용해 쌓아 올리고, 입구에 막음돌을 두고, 바닥에는 배수로까지 설치했다. 봉토는 둥글게 조성하고 호석을 설치했다. 굽다리단지와 토제가락바퀴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경주지역 삼국시대 무덤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광장의 방내리 고분군 동쪽에 덕천리 유적도 복원 전시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하기 위한 덕천리 구간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청동기시대 집터와 도량모양 유구, 삼국에서 통일신라시대 지상식 건물지, 석축수로, 돌방무덤, 숯가마, 삼가마, 기왓가마, 움무덤, 독무덤 등 113기의 유구와 476점의 유물이 조사됐다. 이곳에 이전 복원된 무덤은 앞 트기식 돌방무덤으로 땅을 약간 파고 조성한 반지상식 구조다. 벽석과 안치석 사이에 뚜껑굽다리접시, 뚜껑굽접시, 병 등의 토기 9점과 작은 손칼, 용도를 모르는 철기, 제사토기 등이 출토됐다. 발굴 당시 모습으로 복원해 유리관으로 살펴볼 수 있다. ◆셔블랑 놀자 신경주역은 경주관광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특별한 시스템을 운영한다. ‘셔블랑 놀자’ 프로그램이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셔블’이라 부른 것에 착안해 경주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현재의 경주와 과거의 경주를 즐겁게 둘러볼 수 있게 한다는 목적으로 운영한다. 경주 도착 KTX 승차권을 제시하면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업체, 식당, 공연, 렌터카, 제과점 등 100여 가맹점을 10~5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경주의 브랜드공연 플라잉과 렌터카는 50% 할인된 가격을 적용받는다. 경주예술의전당 공연은 20% 할인, 부산찐빵과 교촌가람 인절미, 경주교동된장, 가야 가자미회도 할인된 가격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경주보문관광단지에 할인업체들이 집중해 있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유수정쌈밥, 정동극장, 주렁주렁, 추억의 달동네, 키덜트뮤지엄, 경주힐링테마파크 등이다. 어차피 경주에서 즐기려면, 할인된 가격으로 더욱 즐겁게 즐길 일이다. 신경주역 ‘셔블랑 놀자’ 프로모션은 054-613-8005번으로 문의하면 상세하게 안내받을 수 있다. ◆주변 역사문화공간 신경주역에서 경주지역의 문화관광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서 20분 정도 승용차로 움직여야 된다. 그러나 5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도 문화특별시 경주의 이름에 걸맞는 역사문화자원이 충분하게 널려 있다. 신경주역에서 10분 거리인 모량리에 박목월 생가가 조성되어 있다. 입구에 박목월 시비와 동상이 있다. 건천읍 모량리에는 우리나라 문학의 대가 박목월 생가가 복원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목월 동상과 시비, 보리밭, 박넝쿨이 올라있는 초가삼간, 나팔꽃 달리는 돌담, 옹기종기 돌된장독, 디딜방앗간 등의 생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지척에는 신라 박혁거세가 당나라에 보물 금척을 빼앗기지 않으려 숨기기 위해 조성한 60여기의 고분군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30여기의 고분만 집단을 이루고 있다. 여름철에는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또하나의 눈요기거리가 되고 있다. 동남쪽으로 내려오면, 두대마을 마애삼존불을 감상할 수 있다. 마애삼존불 건너편에는 법흥왕릉과 효현리 삼층석탑을 걸어서 둘러볼 수도 있다. 법흥왕릉으로 가는 길은 봄이 제격이다. 모내기철이라면 주변에서 울어대는 개구리소리와 솔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새소리가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한다. 법흥왕릉 지척에 위치한 김인문의 묘 옆에 있는 거북이 형상의 귀부. 법흥왕릉에서 동쪽으로 편안한 길을 따라 걸으면, 무열왕릉과 김양과 김인문의 묘가 큰 길 옆에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김인문의 묘 옆에는 비석을 올려두었던 귀부가 화강암으로 섬세한 솜씨로 용 거북을 새기고 있다. 무열왕릉 뒤편으로는 서악서원과 서악동삼층석탑에 이어 선도산 마애삼존불, 성모설화, 서악동 주상절리가 볼만하다. 다양한 경주의 역사문화유적들이 띠를 잇는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누구나 경주를 즐길 수 있도록직간접적 역할 맡아 노력할 것”신경주역 박정희 역장 신경주역 박정희 역장신경주역 박정희(51) 역장은 기획통이다. 코레일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경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는 경주사랑이 남다르다. "경주는 일하고 싶은 욕심이 저절로 생기게 하는 도시"라며 "많은 관광객을 경주로 찾아오게 하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싶다"고 말한다.박 역장은 우선 경주시민들과 가까운 이웃이 되기 위해 경주시장, 국회의원, 우체국장 등의 기관단체장들을 일일명예역장으로 초대해 체험행사를 진행하면서 업무의 교류와 협력방안을 마련한다.이어 학교와도 업무협력을 통해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진행하면서 신경주역을 비롯한 철도 역사를 이해하게 하고, 경주의 정체성을 스스로 알아가도록 한다.특히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한다. '신마패'에 이어 진화된 '셔블랑 놀자' 프로그램은 지역의 업체들과 관광객들을 연결하는 매체기능을 통해 경주관광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특히 경주 하이코와 업무협약을 맺고, 교통편의 제공 등의 협력관계를 통해 경주방문객 유치에 공동 노력한다.박 역장은 "누구나 경주를 좀 더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즐기며, 우리 역사를 체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주역이 직간접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노력을 할 것"이라며 밝은 웃음을 보인다.신경주역은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를 상징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설치하고 운영하는 힐링공간, 역사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눈에 온 중풍 ‘망막혈관폐쇄’] 통증 없이 갑작스런 시력 저하…골든타임 놓치면 회복 어려워

개그맨 이용식이 올해 초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눈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이른바 눈 중풍인 망막혈관폐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최근 종합편성채널에서 이용식은 현재 한쪽 눈의 시력이 없다고 고백했다.“어느 날 한쪽 눈이 까맣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며 “몇 달이 지나고서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망막이 손상돼 골든 타임을 놓친 후였다”고 말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망막혈관폐쇄 입원 외래별 환자 수는 2013년 4만8천953명에서 2017년 6만440명으로 최근 4년간 35%가량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고 주로 50대 이상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준으로 60대 1만8천811명(약 31%), 70대 1만8천125명(약 29%), 50대 1만2천622명(약 20%), 80대 6천905명(약 11%) 등 50대 이상이 93%로 대부분을 차지했다.망막혈관폐쇄는 망막에 있는 혈관이 막혀 시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주로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는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망막혈관폐쇄는 혈관이 막힌 부위에 따라 망막 동맥 폐쇄와 망막 정맥 폐쇄로 구분된다. 이중 망막 동맥 폐쇄는 응급 안과 질환으로 동맥 혈관이 막히면서 발생하며 별다른 통증 없이 갑자기 시력저하가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망막 중심 동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자칫 실명에 이를 수 있어 24시간 이내에 응급조치를 받아야 한다. 골든 타임을 놓치면 치료를 받더라도 시력을 회복하기 어렵다.비교적 흔한 망막 정맥 폐쇄는 보통 한쪽 눈에서만 발생하므로 다른 쪽 눈에는 이상이 없고 잘 보여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정맥이 막혀 피가 빠져나오지 못하면 유리체에 출혈이 생기고 망막의 중심인 황반에 부종이 발생해 시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 또 합병증으로 신생혈관 녹내장이 발병할 수 있어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망막혈관폐쇄는 혈관이 막힌 위치와 정도, 시력 저하의 양상에 따라 그에 따른 치료법이 달라진다.망막동맥폐쇄 치료는 시간과 싸움이 관건으로 시력저하 등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보통 안압을 낮추고 내과 전문의의 진료를 통해 혈관이 폐쇄된 원인을 찾아내며 혈류를 회복시키는 조치가 이뤄진다.통상 2시간 이내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시력 회복이 가능하다.망막정맥폐쇄는 망막 내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레이저치료와 항체 주사치료, 또는 안내 스테로이드 주입술을 시행한다. 그리고 신생혈관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범안저 광응고술이 사용된다.망막혈관폐쇄는 한번 발병되면 회복이 어려운 만큼 미리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문다루치 원장은 “망막혈관폐쇄는 통증을 포함한 초기증상이 없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알기 어렵고 육안으로만 봐서 망막혈관폐쇄 발병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40대 이상부터는 1년에 1~2회 정도 정기적인 안저검사를 통해 눈 속 망막과 망막의 혈관, 시신경 유두 등에 이상이 없는지 정밀 검진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또 “평소 고혈압과 당뇨병 등을 앓는 환자는 정기적인 안과 검진은 물론 혈관 및 혈당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눈의 혈관도 막힐 위험이 높기 때문에 망막혈관폐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혈관 건강을 방해하는 음주나 흡연을 자제하고,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등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도움말:대구 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문다루치 원장이동률 기자 leedh@idaegu.com

우뚝 솟은 ‘범종루’ 절의 위용·규모 자랑 정체 모를 보물 품어 호기심 자아낸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된 대곡사 범종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 양식으로 팔작지붕 중층 누각이다. 종루에 있었던 종은 예천 용연사에 가 있다고 한다. 지금의 종은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목우 운판 법고 등과 함께 2009년 새로 건립한 범종각에 있다.워낙 규모가 커서 절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전위누각이다.2층 누각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으로 다포계 양식의 팔작 지붕이다. 특히 2층 처마 밑에는 지붕을 받치는 다포 양식에 연꽃을 조각했는데 등목 주지스님은 범종루에 새겨진 연화대야말로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한다.건축가들은 이 범종루가 대웅전과 같은 건축 양식이어서 대웅전 조각 수법을 모방해 건립된 것으로 본다. 범종루와 마주 보고 서 있는 대웅전은 오래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단청을 했던 기억조차 없어 보였다.대웅전과 범종루는 각각 경북도 유형문화재 160, 161호였으나 대웅전만 2014년 보물 1831호로 승격됐다.건물은 자연석을 허튼 쌓기로 해서 높은 기단 위에 동향으로 들어서 있다. 대웅전 안 천장과 벽의 단청들도 낡아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대곡사에서 펴낸 사찰지 대곡사에는 대웅전 지붕 암막새에 조선 선조 37년(1604년)을 나타내는 명문이 적혀 있어 중창시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설명한다.대웅전 벽에는 대곡사가 자랑하는 보물이라 할 53불을 그리고 이름들을 써 놓았는데 오래 돼 읽을 수가 없었다.앞문은 모두 창호지를 발라 겨울을 대비했으나 출입문이 있는 옆 벽은 기둥과 벽체 사이의 벌어진 틈새로 겨울이면 황소바람이 들어올 것 같다. 마루바닥은 조심해서 걸어도 삐걱 소리를 내면서 그 연륜을 자랑하고 있다.대웅전 앞마당에는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13층 청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화강암으로 된 기단부와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연화대좌, 높이 108cm의 탑신부만 남아있다. 작은 탑이지만 전국에 12개 밖에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경북도 문화재자료 405호)으로 범종각과 함께 보물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화강암 기단부를 시멘트로 수리하면서 아쉽게도 원형이 훼손됐다. 일부 문헌에 탑신부가 원래 13층이었으나 현재는 12층이라 했는데 아무리 세어보아도 13층이다. 전문가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 같다.범종각에서 대웅전으로 향하면 오른쪽에 명부전이 왼쪽에 요사채가 자리잡고 있다.경북도 지방문화재 439호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시왕과 사자, 판관, 왕방울눈의 금강역사상이 봉안되어 있다.그러나 이들 불상과 조각상들의 조성 연대가 불확실하고 자리조차 연구되지 않아 앞으로 대곡사의 숙제 중 하나라고 등목 스님은 말한다.◆유일하게 남은 암자 적조암대곡사에는 한때 9개의 암자가 있었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절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대곡사 위 1km쯤 거리의 비봉산 중턱에 있는 적조암만 남아 있다. 적조암 구포루(경북도 문화재자료 626호)는 한 모퉁이가 잘려 나갔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움은 남아 비봉산의 최대 절경을 바라고 있다.자연 그대로의 원목을 사용한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누각 형태의 구포루는 지금의 극락전이 건립되기 전까지 불상을 모신 법당의 역할을 했다. 대곡사의 9개 암자는 염불암 적멸암 원적암 보덕암 양진암 봉서암 구암 회동암 그리고 적조암이었다.햇볕 잘 드는 양지에 편편하게 자리잡은 적조암은 봄이면 꽃동산이 된다고 적조암 주지 홍법 스님은 말한다. 적조암에서 맞는 아침 풍경이 정말 좋다고 한다.비봉산이 명당이라면 그중에서도 명당이 바로 적조암이라고 다인면 출향인 김부일씨는 주장한다.특히 적조암에서 아침 안개가 올라오는 맞은편 산을 보면 임산부가 막 아기를 낳는 것 같고 그 임산부의 머리에 문필봉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명당터라는 것이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대곡사를 찾아 명문 시구들을 남겼는데 그 지리나 위치로 보아 대곡사는 적조암 터에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그래서인지 의성 다인에서 수많은 문인 급제자가 근세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출신 인사들을 살펴보니 검찰총장, 대법관에서부터 장관 박사 등 수없이 많다. 김부일씨도 “이곳 출신은 모두 대곡사와 인연을 맺었다”고 단언한다.비봉산이 명당이었던 것은 비봉산에서 수많은 기우제가 올려졌던 데서도 알 수 있다. 경상도 관찰사 명곡 최석정이나 대동운부군옥을 남긴 문신 초간 권정해, 낙파 김용한 등의 비봉산 기우제문이 기록으로 남아있다.◆대곡사는 대국사였다대곡사는 처음엔 대국사였다. 많은 기록들은 태행산 대국사 등으로 기록했다.지공선사와 나옹화상이 왕명으로 사찰을 건립했고 공민왕이 대국사란 이름을 내려 보냈다는 거다. 이 후 임란으로 불탄 뒤 조선 숙종조에 태전선사가 중창하고 대곡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김부일씨는 고려시태 국사인 나옹선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초제사찰이었고 그 이름이 대국사였으나 후에 대곡사로 바꿨다고 주장한다.그런가 하면 마을에서는 암행어사가 “대국인 중국을 두고 절 이름을 대국사로 해서는 안 된다”는 꾸중에 대곡사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대국사라고 표시한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대곡사를 방문하고 쓴 이규보의 시가 동국이상국집에는 대곡사이지만 범종루 현판에는 대국사로 써서 걸려있다는 것이다.이규보는 낙동강을 따라 선산에 왔다가 대곡사에서 하루 머물며 ‘17일 대곡사에 들어가다’라는 시를 동국이상국집에 남겼다.후대 사람들은 이 시가 명종 26년(1196년) 29살의 이규보가 낙동강을 따라 선산에 왔다가 8월 17일 대곡사에서 하루 묵고는 예천 용궁과 풍양을 거쳐 간 것으로 밝혀냈다. 이로써 대곡사가 공양왕 이전에 건립된 것은 확실해졌다.대곡사를 소재로 시를 남긴 사람들은 대곡사가 낙동강과 비봉산을 안고 있는 명찰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과 우복 정경세를 비롯한 당대 명문대가들이 모두 대곡사 관련 글을 남겼다. 그러나 어떤 연유로 대곡사를 찾았고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하나씩 고증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고 주지 등목스님은 말한다.◆배불숭유정책의 현장이었던 대곡사대곡사는 배불숭유정책의 조선시대 유림으로부터 많은 수난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시절이 그러했고 대곡사가 위치한 낙동강변 비봉산도 유림들의 세력 한복판이었고 보면 많은 문인들이 공부 보다는 풍류삼아 대곡사를 찾은 것으로 유추할 뿐이다.우리나라 산중 사찰이 대개 절 입구에서부터 절 뒤 산까지 넓은 토지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곡사는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규모에 비해 절터가 아주 좁은 편이다.또 대곡사 대웅전 기둥에 지금까지 새겨진 이름 낙서들도 그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하회마을 화경당에서 보관하고 있는 문서에 ‘대국사는 지공선사의 도량이므로 출입을 금한다’는 문서는 양반 선비들의 출입금지 경고장 같다.양반들이 절에 와서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출입을 금해달라는 문서일 것이다.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절에서는 이와 비슷한 명문조각도 발견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공선사에서 나옹선사와 무학대사에 이르는 삼화상의 영정이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영정과 함께 대곡사 적조암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수많은 고승들의 뚜렷한 법계가 대곡사에서 이어지고 있었음은 대곡사를 지켜온 선사들의 불심과 대곡사의 사세가 이루어 낸 성과라고 짐작한다.삼화상을 한 폭에 담은 영정은 유례가 없는 데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대 영정 중 가장 오래되고 보관 상태도 좋아 현재 보물로 승격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수많은 보물이 보관돼 있고 알려진 것보다 연구하고 밝혀야 할 것들이 더 많은 미지의 사찰 대곡사다.등목 스님은 “절의 중요한 시기인 근세 200~300년 역사가 실종된 사찰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스님은 최근 대곡사 관련 사적과 시문 등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 ‘대곡사’로 발간하고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경우 언론인

‘86 아시아경기·88 서울올림픽’ 한국 스포츠 감동의 기적 주역

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김집은 그해 12월 체육부 장관이 됐다. 김집 장관은 엘리트 체육의 체제는 잡았다고 보고 생활체육 발전에 집중했다.김 장관은 조기 축구, 배드민턴, 등산 등을 생활체육으로 장려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 체육 문제에 몰두했다. 김집은 서울올림픽에서 절감한 3천500억 원의 예산을 국민 체육에 쏟아부었다. 그동안 체육계는 돈이 없어 기업들에 구걸하기 일쑤였다.김집은 시도별로 국민 생활관을 짓고, 체육관ㆍ수영장을 넣도록 했다. 2년마다 교포 1천여 명을 초청, 한민족 체육대회를 개최했다.1990년 3월 체육부 장관을 물러난 김집은 한국 청소년연맹 총재가 됐다.그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에 주력했고, 특히 효 사상을 최고 이념으로 가르쳤다.재임을 통해 1998년까지 총재를 역임한 김집은 그 해 은퇴했다.은퇴 후 경기도 수원 실버타운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하던 그는 2012년 2월4일 86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서울대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송하 전 연합뉴스 기자연보1926년 2월18일 경북 상주군 함창면 출생1938년 상주 함창보통학교 졸업1944년 경기중학교(현 경기고) 졸업1948년 대구의과대(현 경북대 의대) 졸업1948년 대구동산병원 수련의1949년 11월30일 김인덕과 결혼1950년 자원입대, 군의관 종군1957년 6월 미국 에모리 대 소아과 유학1961년 미국 피츠버그 대 소아과 전문의 획득1961년 일본 요코하마 대학 의학박사 학위 취득1962년 귀국, 동산병원 복직1963~1980년 18년간 경북대 의과대 외래교수1970년 김집 소아과 의원 개원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전국구, 체육계 대표)1985년 제12대 국회의원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 선수단장1988년 서울 올림픽 선수단장1988년 12월 ~1990년 3월 체육부 장관1990~1998년 한국청소년연맹 총재2012년 2월4일 별세

그때 그 시절 모습 그대로 간직…경주관광의 전초기지 100년

“불국사역은 국민들의 애환이 서린 역사적인 기념물로 반드시 존치돼야 하는 곳입니다.”불국사역 홍만기 역장은 2020년 폐기될 예정인 철도청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울산과 부산, 대구와 포항 등으로 향하는 경주시민과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불국사역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것이 홍 역장의 주장이다.또한, 경주 관광의 전초기지이자 불국사역 주변 시민들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수단이요, 삶의 터전이라고 설명한다.홍 역장은 “불국사역에서 불국사, 경주보문단지로 이어지는 모노레일을 설치해 경주를 찾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불국사역은 꼭 필요한 곳”이라며 “경제적, 문화적인 이유와 함께 국민들의 정서적인 고향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그는 불국사역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역사 주변에 화단을 조성하고, 메타쉐콰이아 거리, 관광안내판 설치 등의 일거리를 찾아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특히 주변 주민들을 포함 불국사역에 대해 애정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모아 ‘불사조밴드’를 만들어 불국사역을 지키기 위한 여론 조성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불사조는 불국사역을 사랑하는 조직위원회 약칭이다. 그는 수시로 회원 확보에 나선다. 역 주변의 주민들은 대부분 회원으로 가입한다. 돼지국밥집 주인, 버스승강장 앞의 25시 편의점은 물론 농협과 면사무소 직원들까지 그의 등쌀에 모두 회원이 됐다.불국사역 주변 주민들은 그의 투혼이 불국사역을 사수하고, 국민들의 추억의 곳간을 풍성하게 하면서 경주 역사문화를 빛나게 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불국사역은 철도청의 계획처럼 폐쇄의 길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주낙영 경주시장도 “불국사역은 문화적,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꼭 살려야 할 콘텐츠”라며 존치를 위한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국민 추억의 고향 불국사역은 역사문화 힐링의 쉼터로 오래 달려갈 것 같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피부과의사회와 함께 하는 피부건강 이야기 (18·끝) 탈모

상당수가 탈모에 대한 정확한 정보보다는 속설에 의존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본인이 진료한 환자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정확하지 않은 민간요법 등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다.최근 한 매체가 20~50대 직장인 1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탈모 상식조사 결과 점수가 100점 만점에 평균 31.5점이라는 매우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잘못된 속설 의식 부문에서는 전체 85%가 ‘아기 때 삭발을 해주는 것이 성장 시 탈모 예방에 도움이 된다’ 고 응답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야한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가 79%로 뒤를 이었다.예방 생활 습관 의식부문에서는 ‘검은콩, 검은 깨 등의 블랙푸드는 탈모 치료에 효과가 있다’가 89%, ‘모자를 자주 쓰는 습관은 탈모를 유발한다’를 84%(129명) 순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대표적인 탈모 치료 약물인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에 대한 오해도 많다.모발이식 수술에 대해서도 ‘모발이식 수술은 탈모 환자라면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다’ 고 전체 80%가 응답할 만큼 탈모 관련 상식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최근 옥시사태로 벌어진 케미포비아에 이어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사건과 같이 약의 사용을 거부하고 자연치유를 주장하는 커뮤니티들이 확산되고 있다.어떤 질환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탈모의 경우 속설 등 그릇된 정보가 너무 많아 환자가 정보를 선별하기가 쉽지 않다.속설만 믿고 잘못된 선택을 하면 오히려 탈모 증상이 더 심각해 질 수 있기 때문에 검증된 탈모 치료를 통한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탈모에 관한 잘못된 상식을 알아보자◆대머리 남자는 정력이 세다?아니다. 대머리가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정력과는 무관하다.테스토스테론이 탈모를 주도하는 호르몬이라고 착각해 성욕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탈모는 테스토스테론보다는 5-alpha-reductase 효소에 의해 테스토스테론이 변화된 DHT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으므로 성욕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탈모는 단순히 남성호르몬 분비의 영향뿐 아니라 환경적 및 정서적 영향을 두루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해서 정력이 세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머리를 자주 감으면 더 빠진다?아니다. 두피를 청결히 하는 것이 탈모 예방에 도움이 된다. 머리를 감을 때 빠지는 머리카락은 이미 빠져나올 머리카락이며 건강한 머리가 뽑히는 것이 아니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도하면 머리카락이 굵게 많이 난다?아니다. 면도하고 머리가 다시 나기 시작하여 짧은 상태로 있을 때는 모발이 더 빳빳하게 느껴지는 것뿐이고 실제로 더 굵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탈모는 유전된다?그렇다. 남성형 탈모증의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유전이다. 하지만 부모가 탈모가 있다고 해서 자녀도 100% 탈모가 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탈모가 없다고 100% 탈모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유전자는 부모에게 반쪽씩 받아서 그 사람에게만 형성되는 것이다. 또 형성된 유전자들 가운데에서도 제대로 작용하는 부분과 작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탈모가 있는 환자들의 가족들을 살펴보면 50% 정도는 가족 중에 탈모 환자가 있다.◆머리카락 심으면 대머리가 되지 않는다.그렇다. 수술 후 2~3주 정도 지나면 심은 머리카락 자체 대부분 빠지지만 모낭은 그대로 남아 3개월이 지나면 새 머리카락을 만들어 낸다.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원하는 대로 머리 모양을 만들 정도로 머리카락이 자란다. 탈모가 더 진행되더라도 심은 머리카락은 잘 빠지지 않고 유지된다.◆심한 다이어트 탈모 유발?그렇다. 머리카락도 피부와 마찬가지다.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머리카락이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영양이 결핍되면 머리카락에도 힘이 없어지고 결국 빠르게 노화해 빠지게 되는 것이다.다이어트를 하는 중에는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하고 윤기가 없고 잘 끊어지는데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따라서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인체 흡수가 빠르고 부작용 없는, 아미노산이 함께 있는 미네랄 영양제를 챙기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육류나 가공식품인 햄, 소시지, 우유, 치즈, 버터 등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탈모가 심해지고 두피가 지성으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서구식 식습관도 탈모를 유발할 수 있다.◆탈모 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그렇다. 탈모 약은 복용하고 이틀이 지나면 성분의 90%가 몸에서 빠져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약의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먹어야 한다. 약에 의한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1주일만 지나면 대부분 회복된다.민복기대구·경북피부과의사회 회장올포스킨피부과의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