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자랑 -청도군

경북의 최남단에 위치한 분지형의 청도군은 대구시를 비롯한 7개 시군을 접하고 있다. 행정구역도 2개읍(청도·화양읍) 7개면(각북·풍각·각남·이서·매전·금천·운문)으로 693.83㎦ 면적에 인구 4만5천여 명이 살고 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깨끗한 환경이 보존돼 대구 인근 최적의 전원주택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씨 없는 청도 반시와 청도 복숭아, 한재 미나리 등 전국 최상품 농산품을 배출해 높은 농가 소득을 자랑한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잘살기 운동의 효시인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신도마을’과 600년 역사를 간직한 운문사, 신라 화랑도의 계율 세속오계를 내려준 운문면 신원리는 화랑정신의 발원지로 알려지고 있다. 운문사(운문면) 1. 운문사(운문면)신라 진흥왕 18년(557년)에 창건돼 고려 초(937년) 태조 왕건이 운문선사로 사액을 내린 이후 운문사로 불린다.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으로 시작된 운문승가대학은 국내 승가대학 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처진 소나무 외 30여 동의 건물과 9점의 보물, 11명의 고승대덕의 영정 및 많은 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신화랑 풍류마을(운문면) 2. 신화랑풍류마을(운문면)화랑의 세속오계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새로운 천 년을 이끌어갈 시대정신을 보급·확산시키면서 세계 속의 신화랑 정신 산교육장으로 운영하고자 조성됐다. 화랑의 정체성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과 280여 명이 숙박할 수 있는 화랑촌, 오토캠핑장 등 다양한 체험과 힐링을 할 수 있다. 청도박물관(이서면) 3. 청도박물관(이서면)‘과거를 담아 미래를 연다’란 주제로 폐교된 이서면 칠곡초등학교(구청도)를 단장해 청도 최초의 종합박물관으로 개관됐다. 놀이와 학습이 함께 하는 체험학습을 통해 청도의 역사와 문화를 익힐 수 있는 곳이다. 한국코미디타운(이서면) 4. 한국코미디타운(이서면)한국코미디 역사를 시대별에 따라 5개의 공간으로 구성해 오감으로 체험하는 코미디 체험 전시장과 카페테리아와 코믹조형물 등이 방문객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한다. 주말마다 마음껏 웃고 즐기는 공연이 코미디공연장에서 펼쳐진다. 청도 읍성(화양읍) 5. 청도 읍성(화양읍) 경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둘레는 1천880m이다. 조선 시대 한양에서 동래까지 가면서 만나던 8개의 읍성 중 남아있는 것은 수원성과 청도 읍성 뿐이다. 성곽 기저 부분이 잘 남아 있어 지방관아 및 읍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소싸움테마파크(화양읍) 6. 청도 소싸움테마파크(화양읍) 전국 유일의 소 박물관으로 불리며 2012년 개관했다. 소와 소싸움의 유래에서부터 전해져온 전승과 역사를 다양한 그래픽패널과 모형으로 소싸움에 대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시관, 기획전시실 등 다양한 체험시설이 조성돼 있다. 소싸움경기장(화양읍) 7. 청도 소싸움경기장(화양읍)전통민속문화인 청도소싸움을 문화관광상품으로 개발해 세계 최초 돔 경기장에서 매주 토, 일요일 1일 12경기 소싸움의 한판 대결을 즐길 수 있다. 청도 소싸움은 전문 훈련사에 의해 프로선수처럼 싸움기술을 익힌 싸움소 150여 마리가 서로 기량을 뽐내며 빅매치를 치루고 있다. 와인 터널 8. 와인 터널1898년에 완공돼 1937년 남성현터널로 개통됐으나 방치된 것을 붉은 벽돌로 천정을 쌓고, 자연석으로 벽면을 정비해 국내 터널 중 가장 아름다운 터널로 탈바꿈했다. 2006년부터 숙성저장고와 와인카페로 사용돼 가족, 연인들이 와인 맛을 느끼며 추억과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터널 내부 온도는 13도~15도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에는 피서용, 겨울에는 피한용으로 제격이다. 청도천변 레일바이크 9. 레일바이크아름다운 청도천변을 따라 폐선된 철길을 테마로 왕복 5㎞의 레일바이크, 아치형 보도교인 은하수 다리, 테마 산책로 및 시조 공원 등으로 조성돼 있다. 인근에 조성된 자전거 공원과 캠핑장이 함께 어우러져 자연 생태공원과 레저산업이 결합한 체험형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공원 10.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과 새마을운동 역사의 기록물을 전시·보전하고 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서는 새마을운동 관련 다양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으며 새마을 교육 체험 학습장, 새마을구판장, 새마을 개천, 공동빨래터 등의 테마체험시설과 숙박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남산계곡 운문댐 하류보 김산희 기자 sanhee@idaegu.com

경북, 청년이 온다<3>- 영천 청년농부 박덕수

‘영천 청년농부청년농부 박덕수(38) ‘과일판다’ 대표가 ‘키 큰 방추형 수형’ 사과농장을 관리하는 모습.올해 첫 수확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 영천시 고경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청년 농부 박덕수(38)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금융회사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활동한 회사원 이었다. 하지만 박 씨는 5년 만에 회사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을 살려 온·오프라인 쇼핑몰 ‘과일판다’ 의 대표다. 그는 올해 유난히 극심한 무더위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첫 수확을 앞두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청년농부의 꿈은 무엇일까? 청년농부 박덕수 대표가 한국농수산대학 과수학과에서 연구한 키 큰 방추형 수형으로 재배하는 사과농장 전경.◆귀농하기까지의 고심박 대표의 고향은 영천시 화산면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업, 5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2017년부터 고향으로 돌아와 고경면에서 사과 농장을 한다. 청년 귀농이다. 9월쯤 첫 수확의 기쁨을 누릴 것으로 기대돼 요즘 꿈에 부풀어 있다. 사과농장 규모는 약 1.5ha이지만, 재배면적은 약 1ha(1만㎡)이며, 후지(부사), 홍로(추석 사과), 시나노골드(황금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박 대표는 “부모님이 고향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셨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새벽에 들판에 나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논밭일을 돕는 등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됐다. 그때 느낀 것은 ‘농사는 크게 돈벌이가 되지 않는 그냥 힘든 일’ 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농사일은 절대로 하지않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박 대표는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도시에서 안정된 삶을 추구하고자 직장인이 됐다. 대구 굴지의 금융회사에 취업해 금융과 마케팅관련 부서에서 수년간 사회 경력을 쌓으면서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봉급생활자의 애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박 대표는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종종 내가 가진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열심히 한 만큼 평가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졌다”며 “ 어릴 적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농민의 아들로서 부모님을 따라다닌 들판의 경험(?)이 있어 열심히 성실히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농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농업에 대학을 다니며 쌓은 여러 가지 자질에다 회사원으로서의 사무적인 역량, 디자인적인 감각, 경영과 마케팅과 관련된 지식을 농업에 융합한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농사도 하나의 경영체라는 생각으로 내가 경영주로서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하고, 그 결과를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다면 농사도 괜찮은 직업이라 생각해 창·농을 결심했습니다.” 청년농부 박덕수 ‘과일판다’ 대표가 온라인 주문을 받고 포장한 상품을 옮기고 있는 모습. ◆창·농 위해 직장생활 접고 농대에 입학박 대표는 2008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졸업 후 5년여 직장생활을 하다가 창·농을 결심하고 2014년에 또다시 한국농수산대학 과수학과에 입학해 사과를 주 작목으로 삼고 창·농의 꿈을 키웠다. 한국농수산대학 생활 중 1년 동안 사과 마이스터의 현장에서 실습과 실제 영농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박덕수(오른쪽 두번째) 과일판다 대표가 2017년 청년 정책제안 공모대회에서 대상인 국회의장상을 받았다. 특히 농대에 재학 중 현장 실습으로 경험을 쌓으면서 학과친구들과 함께 농산물을 판매하는 쇼핑몰 사업인 ‘과일판다’라는 브랜드로 창업, 여러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국회의장상,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원예학회장 표창 등 10회 이상 수상해 창·농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이와 더불어 박 대표는 농대 졸업 후 1차 생산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창·농과 특히 농산물 유통에 관심을 두고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런 경험들이 좋은 기회로 작용해 현재는 창·농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과 경북지역 청년창업농을 대상으로 마케팅과 관련한 강의도 하고 있다. 배움은 끝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박 대표는 또 부농의 꿈을 실현하고자 현재 마이스터대학 ‘사과’ 과정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처럼 박 대표의 ‘성공 농사’에 대한 꿈을 위해 끝없이 공부하는 노력파다. 과일판다 박덕수 대표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 받은 사과를 준비하는 모습.. ◆농사도 계속 공부하고 변화해야…유통 관심 필요박 대표는 한농대 시절 지도교수의 자문을 얻어 시험 포장을 만들고 과수농사에 대해 국외의 다양한 선진 수형을 시험재배하고 있다. 보통 사과재배에는 나무의 모양을 말하는 ‘수형’을 중요시하는데, 박 대표는 ‘키 큰 방추형 수형’으로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요즘 사과농가에서 유행하는 ‘키작은 사과나무’ 재배방법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박 대표는 “키 큰 방추형 수형 사과 재배는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아는 사과나무 모양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며 “이 재배 방법은 왜화도가 높은 묘목을 좁게 심어서 나무에 햇빛이 잘 들고 착과 면적이 넓어 사과의 품질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재배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또 그는 “더 안전하고 좋은 농산물을 더 많이 생산하려면 농부들도 계속 공부하고 변화해야 한다”며 “앞으로 농부로서의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기술을 도입하는데 앞장서서 주변의 젊은 농부들과 좋은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위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과일판다’ 박덕수 대표가 2015년 한국농수산대학 재학 중 학과친구들과 쇼핑몰 운영에 대한 회의를 하는 모습. 특히 박 대표는 지역에서 젊은 농부들과 함께 농산물을 공동 브랜드화 해 판매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에는 네이버에서 우수 쇼핑몰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영천시에서 젊은 농부들과 함께 농산물 유통과 관련한 사업으로 공모전에 출전해 ‘농정원장 상’을 받기도 했다. 사업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앞으로 법인을 만들어 수출도 할 수 있는 큰 꿈을 갖고 무역 영어와 농산물 유통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주경야독’ 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박 대표는 “앞으로 사과농장과 유통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지역의 좋은 농산물을 수집 판매하는 역할을 온 정성을 쏟아 지역 농가소득 증대와 ‘농부가 농부를 잘살게 하는 상생의 농촌, 잘 사는 농촌’을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그는 “앞으로 청년농업인들을 더 안정적으로 농촌으로 불러 들이려면 정책을 실행하는 기관에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체계적이고 현실지향적인 정책구성과 실행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청년농부 박덕수 과일대표가 운영중인 네이버 쇼핑몰 블로그.박웅호 기자 park8779@idaegu.com

우리 동네 자랑 - 봉화군

봉화군 행정지도 봉화군은 산세가 수려하고 선비의 정신이 깃든 예절의 고장이다. 인구 3만 3천여 명의 1읍 9개 면으로 전체 면적의 83%가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경관이 매우 빼어나고 특산물이 많다. 특히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청량산을 위시한 명산과 국보 및 보물들이 산재해 있다. 경북의 최북단에 있고 동쪽으로는 울진, 영양군과 남쪽으로는 안동시, 서쪽으로는 영주시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강원도의 영월군, 태백시와 경계한다. 봉화군의 면적은 1천201㎢로 서울시 면적의 2배이며, 산이 많아 평지가 적고 황지에서 매토천이 발원해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1.청암정충재 권벌이 세운 청암정 청암정은 봉화군 봉화읍 유곡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충재 권벌이 세운 정자이다.유곡마을은 1380년 충재(沖齋) 권벌의 선조가 처음 정착한 곳이다. 유곡마을 앞에는 서쪽으로 흐르는 석천계곡이 있고 그 계곡에 석천정(石泉亭)이라는 정자가 있다.또 너럭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은 신탄 상류 약 500m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올려 연못을 파놓은 데다 거북 모양의 바위와 조촐한 돌다리가 놓여 있어 옛 풍취를 한층 느끼게 한다.청암정은 1526년 봄 권벌이 지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작은 3칸 건물이 충재의 서재이고 이곳에서 공부하다가 바람을 쐬일 양으로 지은 휴식공간으로 커다랗고 넓적한 거북바위 위에 올려지었다.건물을 빙 둘러서 연못이 있고 돌다리를 건너야 정자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운치가 있다.주위에는 향나무와 느티나무, 단풍, 철쭉, 개나리꽃 등이 어우러져 자연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2. 오전약수 관광지물야 오전 약수터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 소재한 오전 약수터는 혀끝을 쏘는 듯한 청량감이 있는 탄산수로 조선 성종 때 어떤 보부상이 발견했다.이 약수는 혀끝을 쏘는 듯한 청량감이 있는 탄산수이다. 전국 약수대회인 초정대회(椒井大會)에서 전국 최고의 약수로 판정받은 바 있으며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진다.조선 중종 때에는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이 약수를 마시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라고 칭송했다는 기록이 있다.연중 3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약수로 꼬아 만든 닭백숙을 즐기고 있다. 1985년 관광지로 지정됐다. 3. 봉성돼지숯불구이전통 봉성돼지숯불구이 봉화군 봉성면에 들어서면 구수한 고기 굽는 냄새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봉성면에 소재한 돼지숯불구이 전문 식당들은 봉화군 토속음식단지로 지정돼 있다.봉성에도 고려 현종 때부터 들어선 유서 깊은 봉성장이 있었다. 특히 우시장이 컸다.봉성돼지숯불구이의 역사는 바로 봉성장에서 시작된다. 봉성장터를 드나드는 각지의 사람들에게 한 끼 식사로 혹은 술안주로 내던 것이 바로 돼지숯불구이다.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봉성돼지숯불구이는 양념과 생고기가 있으며 주인이 소나무 숯에 직접 구워서 손님상에 내는 것이 특징이다.다른 지역과 달리 고기 굽는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며 돼지고기는 기름이 빠져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4. 찰토마토법전 찰토마토법전 찰토마토는 5월에 정식해 9월까지 수확하는 이 지역 대표 농·특산물이다.법전 찰토마토를 생산하는 농가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점질토에서 완숙 토마토인 토태랑를 단일 품목으로 선정해 품질 향상 및 균일화를 실현해 왔다.따라서 법전 찰토마토는 친환경재배 및 고품질 출하로 10억 정도 농가수익을 창출하는 효자품목으로 자리 잡았다.특히 생산자는 정밀 토양 시비처방으로 기능성 녹비작물을 활용한 토양 관리, 당도 향상을 위한 건조 농법, 액비처리, 미생물 등을 다양하게 투입해 양질의 토마토를 생산한다. 5.국립백두대간수목원국립백두대간 수목원 ‘호랑이 숲’에서 노니는 백두산 호랑이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일대에 조성된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은 기후변화 대응, 백두대간 산림생태계의 현지외보전, 연구와 휴양 관광 산업 등을 연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목원이다.총 관리면적 5천179ha로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생태탐방지구(4천973ha)와 중점조성지구(206ha)로 조성된 대규모 자연친화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이렇게 조성된 30개의 다양한 전시원을 통해 2천764종의 식물을 볼 수 있다.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백두대간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자생식물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원과 더불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대표하는 두 가지 시설이 있다. 바로 ‘호랑이 숲’과 ‘시드볼트’이다.‘호랑이 숲’에는 현재 5마리의 백두산 호랑이가 ‘호랑이 숲’을 지키고 있으며 앞으로 호랑이를 추가로 도입해 백두산 호랑이의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두 번째 시설인 시드볼트(Seed Vault)는 세계 최초의 야생식물 종자 영구 보존시설이다.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야생식물 종자를 확보하고 보존하고자 건설된 특별한 시설로써 지하 46m, 길이 130m의 지하터널에 설치된 종자저장 시설은 영하 20도에서 최대 200만 점까지 저장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6. 산타마을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된 분천 산타마을봉화군 소천면의 분천 산타마을은 지난 2014년 12월 20일 개장했다.이 산타마을은 2016년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한국관광공사)된데 이어 2015년~2016년 겨울여행지 선호도 조사 2위(한국지역진흥재단),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지 선정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산타마을 개장 전에는 하루 10여 명도 찾지 않던 이 마을에 일 평균 1천여 명 현재까지 약 64만 명이 방문하는 봉화군의 대표 관광명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7. 백천계곡열목어 서식지인 석포 백천계곡봉화군 석포면 대현리에 있는 백천계곡은 세계적인 희귀어인 천연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된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다.태백산에서 발원한 옥계수가 해발 650m 이상의 높은 고원을 16km에 걸쳐 흐르면서 만들어 낸 계곡이다.또한 발원 태백산을 비롯해 현화봉(1천52m), 청옥산(1천276m), 조록바위봉(1천87m) 등의 높은 산에 감싸져 있어 계곡의 물이 맑고 수온이 낮다. 계곡 주변의 산들과 기암괴석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빚어낸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8.재산수박저장성과 당도가 뛰어난 재산수박봉화 재산수박은 해발 400㎡ 안팎의 준고랭지에서 재배하며 일교차가 큰 기후 덕분에 과육이 단단할 뿐 아니라 저장성이 뛰어나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2018년 기준 봉화 수박의 전체 재배 면적은 437ha, 재산수박은 278ha로 전체 면적의 약 60%에 해당하는 면적이며 약 1만t을 생산해 97억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9. 청량산도립공원과 하늘다리 청량산 운해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걸쳐 있는 청량산은 예로부터 ‘소금강’ 이라 불리며 수많은 사람의 발길을 재촉케 했다.청량산은 해발 870m에 달하지만 둘레는 100여 리에 불과하다. 겉으로 보기에 청량산은 작고 아담한 산에 가깝다.그러나 직접 산에 올라 보면 겉보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외적 규모보다 험준한 골짜기가 즐비한 청량산은 등산하기에 녹녹치 않은 산이다.주변의 낙동강과 산 곳곳에 산재한 기암괴석, 열두 봉우리가 장관을 연출하는 청량산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청량산의 열두 봉우리 중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청량산 하늘다리는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청량산 하늘다리10.야옹정상운면 야옹정. 현판은 퇴계이황의 친필이다.상운면 야옹정은 야옹 전응방(1491∼1554)이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세운 정자로 도덕과 학문을 강의하고 토론하던 곳이다.전응방은 중종 때 진사에 급제했으나 단종 때 왕위찬탈의 추함을 몸소 겪은 할아버지 후계 전희철의 유언을 받들어 관직에 뜻을 버리고 산수 좋은 이곳에 야옹정을 세워 도덕과 학문을 수련했다.퇴계 이황과 자주 만나 도학을 강론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현판은 퇴계 이황이 직접 쓴 것이다. 지난 2013년 4월8일 시도민속문화재 제180호로 지정됐다. 퇴계 이황이 쓴 친필박완훈 기자 pwh0413@idaegu.com

대구 통합신공항 이전은 최적지 군위 우보로 선정돼야 한다.

김영만 군위군수가 통합대구공항 이전의 필요성과 대상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구 통합신공항 이전 최적지는 군위군 우보지역 입니다.” 지난 2월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초청 오찬 간담회장에서 김영만 군위군수가 대통령께 건의한 말이다. 김영만 군수는 “군위군은 언제 소멸될 지 모르는 아주 취약한 농촌지역”이라며 지방소멸위험을 강조하고,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에 대응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은 대구공항 이전 뿐”이라며 문재인 대통령께 정부차원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건의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 3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지역 경제인들과 가진 오찬자리에서 통합신공항 이전사업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사업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살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행정안전부에서 대구통합공항 이전 건의를 수용한다는 국방부의 검토사항이 담긴 공식 문서를 보내왔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사업은 지난해 3월 국방부가 이전 후보지 2곳을 선정한 이후 국방부와 대구시가 이전 사업비 산정 문제 등의 견해차로 1년 간 교착 상태를 면치 못해왔다. 하지만, 지난 4월2일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대구공항 통합이전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면서 대구공항 이전 최종부지를 연내 결정할 것을 약속하고, 군 공항 이전 부지가 최종 선정되면 민간공항 이전사업도 본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서주석 국방부차관 일행이 군위군을 방문, 군위 공항이전 대상지역을 둘러보고 정부입장을 전달했다. ◆최종 이전 지 군위군이 결정현재 대구공항 통합이전은 이전주변지역 지원계획수립 단계에서 와 있다. 2017년 12월에 있었던 선정위원회에서 이해 당사자인 경북도, 대구시, 군위군, 의성군이 후보지를 한 곳으로 정해오면 선정위원회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이 채택됐다. 이에 4개 지자체장을 비롯한 실무진들이 여러 차례 회동을 가졌으나, 각 지자체의 엇갈린 입장으로 결국은 후보지를 한 곳으로 압축하지 못했다. 우여곡절끝에 4개 지자체장들은 합의문 형식을 통해 2개의 예비이전후보지(단독후보지 군위군 우보, 공동후보지 군위 소보-의성 비안) 모두를 후보지로 지정해 줄 것과 2018년 10월 말까지는 최종이전 지를 결정해 줄 것을 국방부에 건의했다. 이러한 합의를 전제로 2018년 3월 이전후보지로 2곳 모두가 선정됐다. 군위군의 입장으로 볼 때, 후보지를 한 곳으로 압축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군 공항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최종이전지 선정에서 공동후보지의 경우 군위, 의성 모두 유치신청을 해야만 이전 지 선정심사에 포함될 수 있어 사실상 공항 이전 지를 군위군의 선택에 따라 결정하는 실리를 챙겼다. 군위군청사에 통합신공항의 군위군 이전을 염원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전지 지원사업계획 가속화지난 5월30일 국방부와 대구시가 밝힌 종전 부지 가치는 대구시가 산출해 국방부 협의 과정을 거친 이후, 대구시와 국방부가 공동으로 선정한 감정평가사 등 전문위원의 자문을 받아 최종 확정했다. 국방부와 대구시에 따르면, 최종 종전부지 가치는 9조2천700억 원으로 군위 우보(9조1천400억 원), 군위소보-의성비안(8조8천800억 원) 등 통합신공항 후보지 이전사업비를 모두 충당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사업비가 산정되면 다음 단계는 이전지 지원 사업에 관한 절차다. 이전사업비가 정확히 산출돼야 이전지 주변지역 지원계획 수립 절차를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만 군수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통합신공항 군위유치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와 대구시는 이전후보지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 공청회 등을 개최해 이전주변지역 지원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이미 대구시가 어떠한 경우에도 3천억 이상의 지원 사업비를 약속했고, 향후 설계를 통해 사업비가 가시화 될 때 추가 금액을 정한다는 전제로 군위군이 동의했으므로 이 부분은 속도 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수립한 지원계획은 군공항 이전사업 지원위원회에서 논의하게 되며, 지원위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위원장으로 각 부처 차관, 이전지 지자체장, 민간위원 등으로 구성 된다. 지원사업이 결정되면 선정위원회에서 지원사업 계획, 부지선정을 위한 기준 등을 공고하게 되고 주민투표에 들어가게 된다. 군위군은 최종부지 선정에 앞서 지원계획수립 시, 군위군 실정이 반영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원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위원장으로 하고 각 부처차관, 이전 지 지자체장, 민간위원 등으로 구성된다. 이미 구성에 대한 실무검토는 끝나고, 조만간 위원회가 개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위원회에서는 지원과 관련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논의하고, 대구시와 국방부가 수립하는 지원계획을 최종심의하게 된다. 이렇게 수립된 지원계획을 공고하고 주민투표를 거쳐 유치신청을 하고 선정위원회에서 이전지를 최종결정하게 된다. 군위군 효령면민들이 통합신공항 군위군 이전을 희망하는 군민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통합신공항 왜 군위 우보인가?통합신공항 이전후보지로 군위우보단독 후보지와 군위 소보 - 의성 비안 공동후보지가 있다. 어느 곳이든 군위군이지만, 군위군은 처음부터 군위우보 단독후보지를 유치표명하고 유치활동을 하고 있다. 군위군은 왜 단독후보지 우보를 희망하는 것일까? 군위군은 대구와의 접근성을 이유로 대구공항은 반드시 우보지역으로 와야 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 현재 대구공항에서 우보 지역과 대구공항에서 군위소보-의성비안지역까지의 거리는 약 2배정도 차이가 난다. 대구공항의 현재 이용객이 80% 이상이 대구 시민임을 감안할 때, 대구시에서 공항까지의 거리가 향후 민항의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점에서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접근성이 불리해 공항이 활성화되지 못한 사례를 가까운 예천공항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예천공항은 민항이 취항됐으나 이용객이 없어 2004년 민항이 폐쇄됐고, 현재 군공항만 남아있다. 이러한 산증거가 대구공항과 예천공항 중간지점에 있는 군위 소보-의성 비안 공동후보지 보다는 군위우보 후보지가 대구공항 통합이전을 통해 대구·경북의 상생을 도모하자는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특히 김해공항이 확장되고 각종 인프라 구축을 통해 대구․경북의 이용객을 흡수하려는 지금, 접근성을 이유로 우보지역으로 이전해야한다는 군위군의 입장은 충분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대구공항 통합이전 주민협의회 간담회에서 김영만 군위군수가 군위군 유치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구서 30분 내 접근성 갖춘 우보 민항성공의 열쇠대구시청에서 직선거리로 우보 단독후보지는 30㎞, 소보/비안 공동후보지는 48㎞이며, 우보후보지를 중심으로 반경 50㎞ 이내에 분포된 인구는 353만 명이고, 소보/비안 공동후보지는 169만 명으로 우보단독 후보지의 절반 수준이다. 통합신공항 군위군 우보후보지는 지난해 개통된 팔공산 터널을 통과하면 대구시청에서 30분 내 도착 가능해 대구에서의 접근성이 현저히 향상됐다. 또한 2020년 대구4차선 순환도로가 개통되면 대구 수성구에서도 30분이면 접근할 수 있는 위치다.이와 함께 칠곡 동명~대구 북구 조야동을 연결하는 도로가 조만간 개설되면 경산, 영천, 칠곡, 청도와 함께 군위가 대구권으로 진입한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중앙선복선전철도 접근성 향상에 한 몫을 한다. 사업이 완료되면 서울 청량리역에서 2시간여 만에 군위역에 도착하게 되고, 의흥면 연계리에 건설되는 군위역과 우보까지는 차량으로 5분여 거리다. 민항 주요 수요지인 대구, 안동, 구미, 경주, 포항 등 경북내 주요도시에서 1시간 이내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되면서 안정적인 항공수요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뛰어난 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군위우보 단독후보지를 두고 군위군이 타 지자체와 함께해야 하고 공항의 성패를 좌우하는 민항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현재 대구공항과 거리가 더 먼 공동후보지를 배제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통합신공항의 유치는 우리 군이 지방소멸의 위기를 벗어나 국제적인 공항도시로 변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방부, 경북도, 대구시와 긴밀히 협력하여 금년 내 이전부지 확정이라는 목표가 차질 없이 진행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공항유치 신청은 주민투표를 통한 군민들의 결정과 선택에 따를 것”이라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현명한 선택을 당부했다. 배철한 기자 baech@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22>- 태종 춘추공(중)

통일전 흥무문 앞에 서면 동쪽으로 통일대로가 시원스럽게 뻗어 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전국에서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신라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일등공신 중의 일인이라는 데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신라 삼국통일의 방법 등을 두고 무열왕의 평가는 두 가지로 엇갈리기도 한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학자들은 외세의 힘을 빌려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치른 것과 두만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넘겨준다는 밀약은 박수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당나라의 힘을 빌려 전쟁으로 삼국을 통일했지만 외세를 몰아내고 한민족의 뿌리를 하나로 결집시켜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 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있다. 또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거대한 힘의 중국에 잡아먹혀 오늘날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라며 다행스럽다는 해석도 있다. 이번 호에서는 왕위에 오른 김춘추가 백제의 내환을 기회 삼아 당의 힘을 이용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딸과 사위의 원수를 갚음과 동시에 고구려 정벌과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전쟁에 직접 나선 이야기를 풀어본다. 경주 남산 동쪽자락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신라의 삼국통일을 기념하고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전을 건립했다. 통일전에는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인 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사적비와 삼국통일기념비, 순국무명용사비 등을 세웠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2)현경 4년 기미(659)에 백제의 오희사에 있는 크고 붉은 말이 밤낮으로 6시간 동안 절을 도는 공덕을 닦았다. 2월에는 여러 마리의 여우들이 의자왕의 궁중에 들어왔는데 한 마리의 흰 여우가 좌평의 책상 위에 올라앉았다. 4월에는 태자궁의 암탉과 작은 참새가 교미하였고, 5월에는 사비수 물가에 길이가 세 길이나 되는 물고기가 나와서 죽었는데 그 고기를 먹은 사람은 모두 죽었다. 9월에는 궁중에 있는 느티나무가 사람이 우는 것처럼 울었다. 밤에는 대궐 남쪽 길 위에서 귀신이 울었다. 신라 태종이 백제의 나라 안에 괴변이 많다는 것을 듣고 현경 6년 경신(660)에 인문을 당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군사를 청하였다. 당의 고종은 좌무위 대장군 소정방을 신구도행군총관으로 삼고 군사 13만을 이끌고 가서 치게 했다. 신라왕 김춘추는 김유신 장군과 전쟁에 직접 나서 정예병사 5만을 거느리고 덕물도 쪽으로 진군했다. 의자왕이 이를 듣고 여러 신하들을 모아 싸워서 막아낼 계책을 물었다. 좌평 의직과 달솔 상영, 흥수와 성충 등의 신하들이 서로 비방하며 대책을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다. 의자왕은 결국 성충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간신배의 말에 따라 전략을 세워 전쟁에 패했다. 흥국문과 서원문 사이 광장의 북쪽에 건립된 삼국통일순국무명용사비.당나라 소정방은 강 왼편 기슭으로 나와 산 밑에 진을 치고 싸우니 백제군이 크게 패했다. 당나라 군사들이 밀물을 타고 병선들이 꼬리를 물면서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쳐들어갔다. 소정방이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곧바로 도성으로 쳐들어가 성 30리 밖까지 와서 머물렀다. 성안의 백제 군사들이 대항했으나 패하여 죽은 자가 1만여 명이나 되었다. 의자왕이 함락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탄식하며 “성충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음을 후회하노라!” 하고는 태자 융과 함께 북쪽 변방으로 달아났지만 포로가 되었다. 소정방이 포로들을 데리고 황제를 뵈니 황제가 포로들을 책망만 하고는 용서해 주었다. 왕이 병들어 죽으니 금자광록대부 위위경 벼슬을 추증하고 옛 신하들에게 장사에 오는 것을 허락했다. 소정방과 신라군은 고구려 군사를 격파하고 마읍산을 빼앗아 군영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평양성을 포위하였으나 그만 큰 눈이 내려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통일전에 모신 태종 무열왕의 영정. ◆새로 쓰는 삼국유사: 김춘추의 복수김춘추가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선덕여왕 11년(642년) 김춘추의 나이 서른아홉이 되던 해에 사위와 딸인 대야성의 도독 김품석과 그의 아내가 백제군에 죽임을 당했다. 백제 의자왕이 집권 초기 내부의 권력 기반을 다지고, 외부적으로 신라를 침략해 연이은 승전고를 울리며 자신의 역량을 과시했다. 그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해 미후성 등 40여 성을 함락시켰다. 이어 윤충을 보내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인 대야성을 공격해 성을 함락시키는 등 신라를 큰 곤경에 빠뜨렸던 것이다. 흥국문과 서원문 사이 광장 남쪽에 건립된 삼국통일기념비.딸의 사망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기둥에 기대서서 삼일간이나 눈도 깜빡이지 않고 슬퍼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슬프다. 대장부가 되어 어찌 백제를 멸하지 못하리오”라고 울부짖으며 백제를 멸망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김춘추의 비운은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아픔과 고통이 춘추로 하여금 자신의 앞길에 대해 보다 깊은 성찰을 하게 했다. 특히 춘추는 성골이 아닌 진골로서 힘을 받기 위해서 제3의 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전략을 선택해야 했다. 결국 김유신의 가야세력과 연합도 정략적인 결혼 등으로 두텁게 이루어졌다. 춘추는 선덕왕 16년(647년)에 일어난 상대등 비담의 반란을 김유신과 협력해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춘추로서는 매우 뜻깊은 승리였다. [{IMG06}] 반란의 와중에 선덕여왕이 죽었다.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김춘추와 김유신으로서는 차제에 왕위까지 노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덕여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더욱 시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든든한 배경을 마련한 김춘추는 고구려, 왜, 그리고 당나라를 직접 방문하며 목숨을 건 외교전을 벌인 끝에 결국 당나라와 군사연합을 맺는 데 성공했다. 춘추는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등에 업고, 당나라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진덕여왕 2년(648년)에 직접 그곳을 찾아 친당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때 당 태종으로부터 백제 공격을 위한 군사지원을 약속받았다. 탄력을 받은 춘추는 귀국 후에 왕권강화를 위한 일련의 내정개혁을 주도했다. 당나라의 예복을 입는 중조의관제의 채택(649년), 왕에 대한 정조하례제의 실시(651년), 집사부 개편 등이 그것이다. 다분히 중국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신라로서는 후진적인 정치문화를 극복하고자 한 노력으로 보아주어야겠다. 자신의 왕정시대를 대비한 것이었다는 추측이다. 통일전 광장에 세워진 태종 무열왕 사적비.김춘추는 654년 51세가 되는 해에 김유신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올랐다. 춘추로서는 서둘러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왕위계승의 합법성이나 정당성의 확보, 율령정치 강화 등의 제도적 정비를 서두르면서 즉위한 다음 해 바로 아들 법민을 태자에 책봉했다. 무열왕 춘추는 660년 일등공신 김유신을 최고의 관직인 상대등으로 임명했다. 이어 백제에 대한 복수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 태종 때 다짐받았던 군사지원 약속을 고종 즉위에 따라 무열왕은 아들 인문을 보내 다시 촉구했다. 김인문은 아버지 무열왕의 계략을 받아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태종의 후궁이었던 측천무후가 고종의 황비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틈을 노려 군사지원 약속을 얻어냈다. 무열왕 남천정 출전도. 660년 6월18일 무열왕이 김유신을 비롯한 진주, 천존 장군들의 장병을 거느리고 지금의 이천인 남천정에 이르러 백제 공격을 직접 지휘했다. 지도자와 용장, 양졸이 한 몸 한 뜻이 되어 통일의 전역에 임한 모습이다. 통일전 회랑에 전시되어 있다. 신라는 당나라의 소정방이 김인문을 앞장군으로 삼아 13만 명의 대군으로 백제를 공격하자, 무열왕은 복수의 칼을 들고 직접 김유신 장군과 태자 법민 등 장군들을 대동해 5만 명을 이끌고 백제를 압박했다. 7월에는 김유신이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이끄는 5천 명의 백제군을 격파하고 당군과 연합해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함락시켰다. 이어서 웅진성으로 피난했던 의자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마침내 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춘추의 비원이 18년만에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통일전 정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높게 바라보이는 계단과 흥국문.무열왕 김춘추는 꿇어앉은 백제의 의자왕과 딸을 베었던 윤충을 죽일 듯 쏘아보면서 가슴 속 깊이 응어리졌던 피를 토해내듯 울부짖었다. “네놈들이 우리 신라의 충신들을 무참히 짓밟고 그들의 피를 함부로 땅바닥에 뿌렸겠다.” 의자왕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지만, 윤충은 빳빳이 목을 쳐들고는 크게 웃어대며 응수했다. “그래 네놈의 여식과 사위의 목은 내가 아주 단칼에 베었다. 집단보다 가볍게 베어지는 칼맛이 아주 괜찮더구만. 음하하하….” [{IMG06}] 무열왕은 소정방이 있는 곳이라 의자왕은 함부로 어쩌지 못하고, 큰 칼을 휘둘러 윤충의 머리를 단칼에 베었다. 그러고는 “이제 우리 신라는 충신들의 피를 대신해 선조들이 확보했던 고구려의 땅까지 회복해 삼국을 통일하고 원혼들을 위로하겠다”며 하늘 높이 팔을 흔들었다. 통일전 회랑에 50여 작품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 김유신 장군 출전도. 포로가 된 의자왕은 당의 소정방과 신라 무열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이어 의자왕은 태자와 왕자, 대신과 장병, 백성 1만2천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되었다. 의자왕은 당나라에서 죽음을 맞으며 망국의 주범이 되었고, 700년 역사의 백제는 무너졌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29>4차 산업혁명의 총아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는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크게 프로그램 구동을 위한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이용자 개별로의 니즈에 따른 응용프로그램으로 나뉜다.국내 기업들은 오픈소스의 경제적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IoT 사업 간 오픈소스의 활용에 고무적 행보를 보인다.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구입 시 무료로 제공하는 ‘덤’이었다. 이후 사회 전반에서 솔루션 역할로 혁혁한 가치를 뽐내고 있다.세계 정보통신 업체에서 근무 중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15만 달러로 한화 가치는 약 1억8천만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3D프린팅, 5G, 블록체인,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지능형 로봇, 스마트시티, 핀테크,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복합현실(MR), 신재생 에너지, 드론.열거된 산업군은 분명 개별로의 줄기를 두고 있다. 하지만 뿌리는 하나다. 4차 산업의 총아라 불리는 ‘소프트웨어(SW)’가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소프트웨어를 차지하고 4차 산업을 혁명이라 일컫는 데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의 발전이야말로 4차 산업의 성패를 취할 결정적 가늠자인 셈이다.소프트웨어가 4차 산업의 이른바 ‘빅 대디’로 통칭됨에 따라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처우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실제 세계 유수의 정보통신 업체서 근무 중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15만 달러, 한화가치로 약 1억8천만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W는 무엇인가소프트웨어(SW)는 곧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총체적 의미일 뿐, 더 정확히 말하면 프로그램 구동 간 프로세스와 색인, 각종 규정 등의 총망라야말로 소프트웨어라 칭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소프트웨어는 크게 프로그램 구동을 위한 시스템과 이용자 개별로의 니즈에 따른 응용프로그램으로 나뉜다.4차 산업의 주체로 일컬어지는 AI가 산업군 전반에 스며듦에 따라, 유수의 관련 전문가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동시다발적 커리큘럼(교육과정)이 선행돼야 함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과거 스마트폰이 시발로 대두되던 시점을 회상해 보자.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가 양대 산맥으로 급부상했음과 대동소이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는 곧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이라 함은 불가피한 어울림이라는 방증이다.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접목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자율주행차’다. 자율주행의 선행 기술력이라 함은 ‘지구위치측정체계(GPS) 위성’이다. GPS를 통해 자동차의 위치, 그에 따른 지형 등을 인지하게 된다.이후 GPS가 자율주행차의 궤적을 인식, 레이저 스캐너가 거리조절과 장애물 등의 각종 돌발요소를 파악해 안전운행을 도모한다. 여기에 하나 더, 사각지대 절감을 위해 레이저 스캐너를 활용, 사방에서 비춰오는 빛을 이용한 라이다가 다시 한번 체크함에 따라 안전성 제고의 극대화를 꾀한다.4차 산업의 범람을 두고 파생된 극심한 이항대립. 이에 대한 고찰은 결코 개인의 몫이 아니다. 응당 지성인으로서 거쳐야 할 집단적 성격의 어젠더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AI 분야에서 개별로의 산업군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때다. 이제는 소프트웨어이자 그에 수반된 하드웨어다. 마치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말이다. ◆솔루션 역할에 혁혁한 가치 뽐내오픈소스(OSS). 오픈소스는 소프트웨어의 CAD와 일맥상통하는 소스코드를 각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유, 명칭 그대로 불특정 다수 누구나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 및 재배치가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의미한다.소프트웨어의 설계자 역할을 하는 오픈소스의 특성에 걸맞게, 대한민국 유수의 기업들은 오픈소스의 경제적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IoT 사업 간 오픈소스의 활용도가 고무적 행보를 보인다.이는 여타 AI 관련 산업군 가운데,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 연계 프로세스가 4차 산업의 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심리의 발로쯤이 아닐까. 다시 말해 소비자들은 업체 개별로의 상품뿐 아니라, 이와 연장선상의 여타 통신기기와의 동시 활용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이를 비춰볼 때 기업 생태계의 불가피한 변혁이라 함은 필수 불가결한 상황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불과 10년 전만하더라도 연계점에 있는 통신기술에 국한, 그들만의 MOU에만 매진해 오던 것이 당시 업계의 정설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자신들만의 리그에 피로감을 느낀 기업들이 자사의 기술력을 품은 오픈소스를 개발, 가일 층 박차를 기함으로써 불필요한 인력 낭비와 시간 소요, 중간유통 과정을 생략한다는 의지로 해석된다.딥러닝의 재발견이 가열찬 성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 세계적 카메라 관련 기업서 출시한 딥러닝 촬영기기는 최고 수준의 CT 기술이 투영, 이를 통해 딥러닝이 접목된 초고해상도의 화질을 구현해낸다.상업용 촬영기기를 넘어 AI가 융합된 ‘의료 소프트웨어’가 아울러 각광 받고 있다. 이는 기존 환자의 의료영상 촬영 후 분석, 이를 통해 질병 유·무와 성질, 종류를 감지해 내던 CT 소프트웨어 방식에 딥러닝을 적용함에 따라 한층 더 세련된 고화질의 의료 CT 재현이 가능해졌다.이같이 높은 수준의 해상도 구축을 가능케 한 것은 딥러닝의 기술력 중 하나인 ‘심층신경망’ 이다. 수치상으로 볼 때 기존 CT 해상도 대비, 속도는 4배 이상 빨라지고, 선량은 20% 가까이 낮아진 셈이다.IBM의 왓슨을 오마주한 이른바 ‘한국형 왓슨’이 닻을 올렸다. 왓슨은 인간 개별의 언어를 프로그램 자체로 분석, 이를 파악 후 프로세스에 맞는 결과도출이 가능한 슈퍼컴퓨터를 의미한다. 정부 차원으로 한 대학병원과 스타트업(초기창업기업)의 기치를 부각한 이 프로그램의 기반 역시 AI 시스템, 그 위에 있는 소프트웨어의 기술력이다.이 같은 불세출의 AI 프로그램이야 말로 각종 의료영상과 진단 시 개인정보, 환자 개별의 유전 정보 취합을 통한 환자로 하여금 양질의 생활패턴을 제공, 다채로운 정보와 후 사례를 축적해 빅데이터화 한 후 종국에는 환자 특성에 맞는 예측, 진단, 치료, 지원에 이르는 AI 기반 ‘원 패스 의료 프로세스’를 목표로 둔다.현재 국내 30여 곳의 병원과 25곳에 이르는 관련 기업들이 각기의 사안으로 협약 체결에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향후 일반 질병을 넘어 소아 희귀유전병 등의 난치병 진단과 예방을 영위할 의료 소프트웨어 상용화를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구입 시 무료로 제공하는 시쳇말로 ‘덤’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전과 프로그램 고도화 과정을 거치며, 소프트웨어는 업무 자동화와 단순 연산 기능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의 솔루션 역할에 혁혁한 가치를 뽐내고 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에 이르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는 더욱 명확해졌다. 금액 산정에 있어 하드웨어의 가치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시스템 교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생산성과 후 보수 등의 과정이 컴퓨터 결정 간 주요 사양으로 자리 잡았다. ◆AI에는 SW가 필요하다학창시절 발목을 잡아왔던 수학과 과학 등 주요 섹션들이 사실상 신변잡기적 일상에서 만큼은 그다지 유용해 보이진 않았다. 평생을 지내오며 미분이나 역학 에너지 등의 학문을 두고 생활인으로의 활용 가치에 의구심을 품는다면 ‘뫼비우스의 띠’인 것 마냥 접점을 찾기 어려울 듯 했다.하지만 이 같은 학문적 가치는 실생활 저변으로 응당 스며들어 있다. 바로 ‘논리’의 차원에서다. 곡선상 점 주위를 확대, 또 다른 차원을 접하는 미분의 정체성이라 함은 더욱 심도 깊은 사회적 솔루션을 목표로 둔 ‘논리를 찾아가는 여정’, 다시 말해 ‘노력’인 셈이다.소프트웨어 역시 일맥상통한 궤적을 띄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어젠더 아래, AI 시대의 능동적 이해와 자연스러운 수용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바로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여기에서 가장 주효한 기술력이 바로 ‘코딩’이다. 샘플 코드가 무한대로 제공되는 시대임에 주안점을 둘 필요성이 있다. 원활한 코딩 능력 하나로 정보통신 산업 간, 일정 부분에 이르는 해결책 제시가 가능해진 것으로 해석된다.과거 공룡 기업들의 독식, 또는 그들만의 RND 구축은 시나브로 뒤안길에 접어드는 추세다. 대신 역량 있는 스타트업으로 하여금 적극 투자를 권장, 이를 통해 개별로의 가치 제고에 나서고 있음이 이 같은 시류를 대변한다.코딩은 더 이상 내세울 만한 장점이 아니다. 최소한 미래 산업의 시류에서 만큼은 베이스일 뿐이다. 이제는 총체적으로 바라봐야 할 당위가 있다. 프로그램 언어 습득을 넘어 개별의 언어를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유연하되 촘촘한 사고’가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글·사진 군월드 IT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혁신을 향한 도전, 경북의 메가프로젝트 <하>-미래경북메가프로젝트 추진 어디까지 왔나

전북과 공동 추진으로 지난달 예타 통과를 따낸 홀로그램 기술개발사업 개념도. 핵심원천기술개발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내년부터 매년 5대 핵심기술분야별로 전국 공모를 하는데 경북도는 예타를 추진해 공모 신청때 유리한 입장에 있다. 경북도 제공 ‘미래경북 메가프로젝트’는 인구 감소, 지역 일자리 및 생활 인프라 부족, 주력 산업 침체라는 어려운 여건에서 중·대형 국비 사업 등 미래 먹거리마저 감소되는 현실을 적극 타개하려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이를 위한 추진단(메가프로젝트 T/F)은 민선 7기 출범 두 달만에 출범했다. 수 차례 반별회의와 윤종진 행정부지사가 주재하는 전체회의 다섯 차례, 이철우 도지사가 주재하는 두 차례 간부회의, 시·군-전문가 합동회의를 거치면서 앞으로 경북도와 23개 시군이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핵심과제 61개를 발굴했다. 미래경북 메가프로젝트 발굴 과제 61개 중 중점과제 26개 목록. 경북도 제공 이 중 신규사업 9개가 발굴됐고 16개는 용역완료, 12개는 용역 진행, 33개는 용역·공모가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포항·구미·경산 등을 중심으로 제조업과 연구인력 기반이 건재하고 세계 유일의 3대 가속기 집적지(3·4세대 방사광가속기, 양성자 가속기 보유)라는 점 등에 비춰 4차 산업혁명의 선도산업을 육성할 충분한 혁신역량을 가진 점에 주목했다. 또 국내 최대 원전 집적지(전국 24기 중 12기 운영, 발전설비량 약 45% 차지), 신라·유교·가야 등 풍부한 역사문화자원과 동해안, 백두대간을 포함한 천혜의 자연생태 자원을 보유한 점, 탄탄한 농업기반(농업인구 1위, 경지면적 2위) 보유 등도 주목했다. 그 결과 신 산업반 등 핵심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이뤄지는 고무적인 일도 나타났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달 김석기·김정재 국회의원과 함께 국회 김재원 예결특위 위원장을 방문, 지역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추경 및 내년 국비 확보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미래 신산업을 계속해서 구상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도는 도태되고 말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어려운 도민을 생각해서 계속해서 머리를 짜내고 중앙부터 문턱이 닳도록 뛰어 다니자”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신산업반…핵심분야 국비 확보 성과 가시화발굴된 특화사업은 20여 개다. 이는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준비를 위해 육성중인 4대 플랫폼(데이터, 인공지능, 수소, 5G)과 8대 선도사업(스마트공장, 드론, 미래자동차 등)에 맞춘 것이다. 포항에는 가속기 기반을 활용한 차세대 배터리파크, 신약개발사업, 인공지능 관련 인프라 구축 등을 추진한다. 구미에는 전자산업을 활용하는 5세대 이동통신(5G) 관련 기반을 구하는 사업과 전자산업 혁신 클러스터, 스마트산업단지 선도프로젝트 사업 등을 추진한다. 전북과의 공동 추진으로 예타 통과를 따낸 홀로그램 기술 사업화 실증부문 개념도. 경북은 홀로그램 헤리티지(문화재 복원), 홀로그램 팩토리(불량검사 등), 전북은 가상박물관, 상용차(차량 HUD)를 진행한다. 경북도 제공 경산에는 최근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로 주목받는 전기차, 드론 등 사물무선충전 산업 특화 클러스터 조성사업 등을 발굴했다. 이외에도 시설원예용 AI로봇 개발, 홈 가전 로봇 육성, 로봇 직업혁신센터 건립, 드론산업 혁신거점 조성 등도 추진한다. 김성학 경북도 미래전략기획단장은 “신산업 부문은 사업비 규모가 크고 향후 관련 시장·산업의 성장가능성이 높아 지역 일자리 및 경제 파급효과가 큰 사업들이 많은 분야다. 이에 가장 중점 분야로 집중 발굴,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에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활용해 신약개발에 필요한 물질을 개발하는 세포막단백질 연구소 건립 사업이 국비 229억 원을 확보했다. 또 지난 6월에는 지역의 축적된 전자산업 인프라를 활용해 4차 산업혁명의 선도기술인 홀로그램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이 전북과 공동으로 국비 1천313억 원을 확보하는 등 과학·기술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신약개발에 필요한 물질을 개발하는 세포막단백질 연구소 건립의 기반이 된 포항 4세대 방사광 가속기. 경북은 올 상반기에 이 연구소 건립 사업비 229억 원을 국비로 확보했다. 경북도 제공. 이외에 하반기에도 기존 산업단지를 혁신하는 스마트산업단지 선도프로젝트, 천연물을 활용하는 플라스틱 대체소재를 개발하는 친환경 프리미엄 셀룰로오스 기술개발 사업 등 굴직한 발굴사업들이 예타조사 및 공모 선정에 가까이 가고 있다. ◆환동해·환경산림반…특화사업 발굴, 국비확보 정조준환동해산업반은 원자력 방재타운, 방사성폐기물 정밀분석 연구소, 원자력안전연구센터, 방사선융합기술원 등 특화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는 탈원전 등의 정책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경북도가 여전히 전국 최대 원전산업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동해안의 광활한 해수자원을 활용한 광역 해양관측연구망과 수산식품 수출 거점단지 조성도 계획 중이며 서해와 남해 중복, 유사사업 여부를 해결하기 위한 차별화된 대응 논리도 꼼꼼히 개발 중이다. 포항 영일만항. 환경산림반은 선진국형 산림휴양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자 산림레포츠진흥센터(문경), 산림사관학교(청송) 등 신규사업을 발굴, 추진 중이며 울릉도·독도와 백두대간을 활용한 자생식물원과 생태자원 은행 건립 등도 준비 중이다. 특히 총 사업규모가 2천억 원에 이르는 산림레포츠진흥센터는 올해 부처 예산안에 관련 예산이 반영돼 내년부터 국비 확보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문화관광·SOC반…대형사업 많아, 국가계획 반영 노력대규모 교통·관광 인프라 조성이 필요한 큰 사업이 눈에 띈다. 문화관광반은 환동해 신북방관광벨트 조성사업과 낙동강 복합문화권 개발사업을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발굴했다.이는 동해안과 낙동강의 공간적 특성을 살려 초광역개발사업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SOC반은 숙원 사업인 △동해안 고속도로(포항~삼척) △동해선 철도 복선전철화(포항~동해) △중부권 동서 횡단 철도(서산~울진) △중부선 철도(문경~김천) △달빛내륙철도(광주~대구) 건설 사업 등을 위해 지역 정치권과 협조, 힘을 쏟을 방침이다. 김성학 미래전략기획단장은 “발굴한 과제들 중 여러 과제들이 용역을 통해 구체화 단계이거나 예비타당성 조사 및 부처 공모 신청 등을 준비 중에 있어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른 면이 있다”며 “메가 프로젝트가 경북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43)칠곡 석전상온전통주가

1969년 영국와인주류연합회와 호텔레스토랑연합회가 와인전문가 양성을 위해서 MS(마스터 소믈리에)제도를 도입했다. 매년 시험을 통하여 선발한다. 지난 50년 동안 257명만이 MS의 배지를 달았을 뿐이다. 한국인으로는 2016년에 뉴욕의 미쉐린2스타 레스토랑인 ‘더모던’의 소믈리에 김경문씨가 선정된 것이 유일하다. 한국인 최초의 MS인 김씨가 최근 한국의 전통주을 찾아 귀국했다. “한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 술은 무엇이냐?”는 고객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전통주을 찾아내고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통주란 그 땅에서 자란 곡물과 누룩, 물만을 이용해 만드는 술이다. 가문과 지역마다 특유의 맛과 향을 가진 다양한 전통주가 있었다. 근래에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소주나 맥주 등에 밀려나 일반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견디고 9대에 걸쳐 300년 간 가문의 전통비법을 지키면서 전통주를 만드는 강소농이 있다. 칠곡군 왜관읍에서 찹쌀과 멥쌀, 우리밀로 만든 누룩과 백련꽃을 이용해 전통주를 만드는 ‘석전상온전통주가’의 곽우선(72·전통식품명인) 대표와 남편 이기진(76)씨가 그 주인공이다. 상호인 석전상온전통주가(石田尙醞傳統酒家)의 석전(石田)은 마을 이름이다. 상온(尙醞)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술과 간장 등을 제조하던 기관의 이름이다. 최고의 술을 만들고 전통을 이어간다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이다. ◆9대를 이어 온 300년 전통의 가양주석전상온전통주가에서 만드는 ‘설련’과 ‘홍로’는 9대에 걸쳐 300년 간 전통을 이어온 전통주다. 칠곡의 명문가인 광주이씨 문중에서 접빈(손님을 접대함)과 제사를 모시기 위해 만들고 있는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이다. 청와대와 여수세계박람회 만찬주로도 선정되었다. 곽우선 명인이 술을 처음 빚은 사연은 남다르다. 이조판서를 지낸 ‘문익공 이원정’대감이 숙종 5년(1680년) 당파싸움으로 혼탁해진 나라를 보고 자손들에게 ‘백련처럼 진흙에서 나고 자라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게 세상을 살아라’고 하는 ‘애련설’을 전파하고 마음에 새길 것을 당부했다. 그 후 문익공의 뜻을 기려 문중에서 연못의 백련꽃 으로 전통가양주를 만들어 접빈과 제사, 혼사에 사용했다. ‘설련’은 문익공의 손부인 ‘풍양 조씨’ 때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가정에서 술 제조를 금지하자, 집 뒤편 대나무 숲에 술독을 묻어놓고 숨어서 술을 빚었다. 가문의 전통주 제조비법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지금은 9대째로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된 곽우선 대표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 곽 명인은 1970년 광주이씨 문중으로 시집을 온 후, 시어머니로부터 설련의 제조비법을 전수 받았다. 결혼 전에는 친정인 현풍에서 친정어머니가 현풍곽씨 문중의 가양주를 만드는 것을 어릴 때부터 보고 거들면서 자랐기 때문에 가정에서 술 만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당연한 일로 알고 만들었다. 지금은 곽 명인의 장녀가 전통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통식품 명인곽명인은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 74호로 지정됐다. 문중의 가양주인 설련주의 제조기술과 전승계보, 현재의 활동상황 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전통식품명인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전통식품의 계승·발전과 가공기능인의 명예를 위해 지정하여 보호·육성하는 제도로 2018년 현재 전국에 80명이 지정되어 있다. 대구.경북지역에는 안동소주의 박재서 명인(5호)을 시작으로 8명이 있다. 설련주의 9대 전승자인 곽명인은 일 년에 단 두 번만 수작업으로 전통주를 만든다. 대량생산보다는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하는 소량생산이다. 수작업을 고집하는 것은 손맛이 배어 있는 명주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일 년에 두 번만 술을 담그는 것은 제조공정이 길어 더 많이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번 만드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100일이나 걸려 여러 번 만들 수도 없다. 다른 술과 차이점은 삼양주(三釀酒, 3차 담금에 의한 곡주의 제조방법)라는 것이다. 처음 만드는 밑술은 고두밥이 아니라 쌀가루를 끓는 물로 반죽을 해 범벅을 만들고 여기에 누룩을 섞어 3일간 독에서 누룩균을 배양한다. 그 다음에는 누룩균을 배양한 밑술에 진(무른)고두밥을 섞고 다시 3일간 숙성을 시킨다. 여기에 다시 고슬고슬한 고두밥을 섞어서 100일간 저온 숙성을 시킨다. 이과정이 2차 덧술이다. 이때 연꽃과 연자육, 연근을 넣어 연향이 배이도록 한다. 70일 정도 숙성시키면 맑은 술이 위에 고인다. 이것을 100일까지 저온에서 분히 숙성시키면 백련의 은은한 향이 배어 있는 설련주가 완성된다. 이 설련주를 소주고리에 넣고 증류를 시킨 술이 알콜함량 45%의 홍련주다. 증류과정에 한약재인 지치(자초)를 통과시키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진도지역의 전통주인 ‘홍주’를 만드는 방법이 같다. 제조공정이 복잡하고 기간이 길기 때문에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이 없이는 만들기 어렵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14년 경북도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주·청주 부문 명주로 선정됐다. ◆전통의 맥을 잇는다.현재 설련주를 만드는 곽우선 명인은 9대 전수자다. 9대조 할머니인 풍양조씨로부터 며느리에서 그 며느리로 300년 동안 제조비법이 전해져 내려왔다. 10대를 이어갈 전수자는 며느리가 아닌 장녀인 이선규씨다. 이씨는 경북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다시 대구대학교에서 재활과학을 공부한 재원으로 전통식품명인 전수자 교육을 받고 있다. 전통식품명인 전수자는 식생활의 서구화와 명인의 고령화 등으로 전승 단절 우려가 커지고 있어 우수한 전통식품의 명맥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전수자를 지명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시책이다. ◆전통주 비법 전수곽 명인의 꿈은 두 가지다. 가문에서 300년 동안 이어져 오는 설련주의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첫 번째 꿈이다. 300년을 넘어 천 년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제 그 꿈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녀 셋 중에서 장녀가 전통식품명인 전수자 교육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꿈은 전통주의 대중화다. 이를 위해 제조비법을 공개하고 농업계학교 학생들에게 전통주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와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측과 일주일 과정의 전통주제조과정 강좌를 개설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각종 축제장을 비롯한 행사장에서 무료시음행사를 하고, 전통주 제조 교육을 하는 것 역시 전통주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면 선조들의 삶의 애환과 풍류가 배어 있는 우리의 전통주가 MS들이 인정하는 세계 속의 명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농장명: 석전상온전통주가▲농장주: 곽우선·이기진 (2014 강소농)▲구입문의: 010-2807-7997, 054-976-3552▲블로그: http://aeryeonjae.com/▲소재지: 칠곡군 왜관읍 동산2길 19▲이메일: sjsangon@naver.com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당뇨병 환자의 여름휴가 준비

섭씨 30℃ 이상을 오르내리는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병원을 방문하는 당뇨병 환자마다 하소연을 한다.‘더운 날씨에 지쳐 식사를 잘 못하고 과일만 먹어서 혈당이 많이 올랐다’, ‘운동을 못해서 당이 많이 올랐다’ 등이다.반대로 ‘더위에 지쳐 식사도 잘 못하고 새벽에 식은땀을 흘리며 저혈당을 경험했다’ 등 당뇨병 환자에게 더운 날씨는 또 하나의 장애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여름휴가로 떠나는 여행에서 당뇨환자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여행 가는 본인이나 가족 중에 당뇨인이 있다면 미리 사전계획을 세우기를 적극 권한다. 여행 중에도 식사조절, 운동, 발관리, 자가혈당 측정, 저혈당 관리 등에 대해 지속적 혹은 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는 준비물에 대한 점검이 필수다. 외국을 여행할 경우 그 지역 풍토병에 대한 예방주사나 약을 복용하고, 인슐린을 사용하는 당뇨인이 시차가 큰 곳으로 여행할 경우에는 미리 인슐린 용량에 대해 상담받는 것이 좋다. 비행기로 여행할 때는 출발 전에 기내 당뇨식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또 복용 중인 약물, 인슐린, 자가혈당측정기, 당뇨병 인식표와 진찰기록, 당뇨관리 수첩, 응급약품, 저혈당에 대비한 간식, 편한 신발, 면이나 모직으로 된 양말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발관리를 위한 로션과 상처에 대비한 1회용 밴드 등도 미리 준비하자.여행 중 설사에 주의해야 할 음식으로는 생고기, 생선회, 우유, 치즈, 아이스크림, 냉수, 얼음,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과일 등이 있다.장시간 운전하거나 버스를 타고 여행할 때는 휴게소에 설 때마다 스트레칭과 다리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특히 운전하기 전 혈당을 측정해 80㎎/㎗ 미만이면 출발하기 전에 15g 정도의 당질을 섭취하고 15분 후 다시 혈당을 확인한다.만일 운전 중 경미한 저혈당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15g 정도의 당질을 섭취해야 한다. 항상 차에는 주스, 크래커, 사탕과 같은 당질식품을 갖고 다니며 술은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행 중에도 발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해변에서 뜨거운 모래 위를 맨발로 걷지 말고 반드시 슬리퍼를 신어서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한다. 인슐린을 투여하는 경우 시차가 5시간 이상 되는 지역을 여행할 때는 인슐린 용량 조절에 대해 적어도 2주 전에 당뇨병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 하루 1회 주사하는 경우 아침 주사 후 18시간 뒤에 혈당을 측정해 혈당이 240㎎ 이상으로 높으면 하루 주사량의 1/3을 주사하고 간식이나 식사를 보충한다.다음날부터는 현지 시간에 맞춰 주사하는 것이 편리하다. 하루 2회 주사하는 경우도 이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조호찬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수족구병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손과 발, 입안에 수포성 발진이 생기는 수족구병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질병관리본부의 ‘표본감시 주간소식지'에 따르면 외래 환자 1천 명당 수족구병 환자는 2019년 19주(5월1~7일) 7.7명에서 21주(5월15~21일) 13.4명으로 74% 급증했다. 특히 같은 기간 0~6세 환자는 1천 명당 9.2명에서 15.6명으로 증가했다.수족구병을 일으키는 장바이러스는 기온이 오르는 초여름부터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 주로 5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흔하게 나타난다. 대부분 심각한 합병증 없이 1주일 정도 지나면 낫지만 뇌수막염이나 뇌염 등 중증 신경계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대부분 일주일 전후 회복수족구병은 4~6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친 뒤 증상이 나타난다.초기에는 미열과 식욕부진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입안에 발진이 생기면서 침을 삼킬 때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감염이 진행되면서 입 주변과 손, 발에 특징적인 발진과 물집이 생긴다. 심한 경우 다리나 엉덩이, 몸통에도 발진이 일어난다.입안의 물집은 주로 볼 쪽의 점막이나 입술에 생기고 이후에 궤양을 형성하며 통증을 일으킨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통증으로 인해 잘 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심하면 탈수 증상을 보인다.피부 발진은 3~5㎜ 크기로 붉은색을 띤다.주로 손등이나 발등에 잘 생기지만 손바닥과 발바닥에 생기는 경우도 있다. 증상은 대부분 1주일 이내에 가라앉지만 드물게는 심한 두통과 구토, 목 경직 등 뇌수막염 증상을 보이거나 뇌염, 길랭바레증후군 등 신경계 합병증을 동반하기도 한다.수족구병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증상만으로도 진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 항체검사나 바이러스 검출, 유전자를 증폭해 바이러스를 확인하는 중합효소 연쇄반응법 등을 통해 진단한다. 뇌수막염이나 뇌염 증상을 보이면 뇌척수액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적절한 수분 공급·개인위생 중요수족구병을 일으키는 장 바이러스를 막는 치료제나 백신은 아직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단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 감염되기 쉽기 때문에 손 씻기 등 개인위생 관리와 격리가 반드시 필요하다.치료에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 요법이 사용된다.열이 난다면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아주거나 해열제를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입안에 생긴 물집과 궤양으로 통증을 느끼고, 잘 먹지 못해서 탈수 증상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수분 공급이 중요하다. 탈수가 심한 경우에는 병원에서 수액 공급을 받아야 한다. 통증이 심하면 차가운 물이나 음료수가 더 효과적이고, 먹는 진통제나 스프레이도 도움이 된다.대부분 1주일 정도 지나면 특별한 문제없이 자연히 회복되지만 합병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입안의 궤양이 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구내염을 일으키거나 장 바이러스 71형에 의한 뇌수막염이나 뇌염 등이 생길 수 있다.뇌척수염, 급성 소뇌 실조, 급성 횡단 척수염, 길랭바레증후군 등 신경계 합병증이나 심근염, 폐렴, 폐부종 등과 같은 심폐기관의 합병증도 드물게 나타난다.김세윤 영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수족구병의 경우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의심되는 환자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격리하는 것으로 전염을 줄일 수 있다”며 “조기에 정확하게 진단하고 탈수나 합병증에 적절하게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도움말=영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세윤 교수 수족구병을 일으키는 장바이러스가 기온이 오르면 유행하는 경향이 있어 여름철마다 수족구병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수족구병으로 발진이 생긴 모습.수족구병을 일으키는 장바이러스가 기온이 오르면 유행하는 경향이 있어 여름철마다 수족구병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수족구병으로 발진이 생긴 모습.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건강인-국민건강보험 Q&A

Q=건강보험증 발급 방식이 바뀌나요? A=기존에는 가입자가 입사하거나 퇴사해 자격이 변동될 때마다 본인이 신청하지 않아도 획일적으로 건강보험증을 발급했으나 7월12일부터는 국민건강보험법 제12조(건강보험증) 개정으로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가 신청했을 때만 건강보험증이 발급됩니다. 신분증명서(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도 건강보험증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Q=장기요양인정 결과 1등급인데 왜 요양병원에서 급여를 받을 수 없나요? A=노인장기요양보험은 병원에서 진료시 발생하는 치료비나 약값, 입원비에 대해서 보험혜택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퇴원 후 집에서 요양서비스를 받거나 요양시설에 입소하실 때 그 비용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양병원에 있는 대상자가 장기요양시설을 이용하거나 재가서비스를 받고자 할 경우에는 치료종료 후 등급에 따른 장기요양서비스를 신청하여 이용하면 됩니다.Q=치석제거(스케일링)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됐나요?A=국민건강보험공단은 후속조치 없이 치석 제거만으로 치료를 끝냈을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 부담을 낮춰줍니다.만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연1회 건강보험이 적용돼 1만5천 원만 내고 치석 제거를 받을 수 있습니다.자료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지역본부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대구·경북피부과 의사회가 들려주는 피부 백과<7>일상에서 만나는 접촉피부염

-고운미피부과 조재위 원장 최근에 염색약으로 인한 얼굴의 색소침착과,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슬리밍이라는 액체괴물이 손에 진물과 홍반을 일으켜 사회적 문제가 된 적 있었다.이처럼 우리 피부에 어떤 외부 물질이 접촉해 발생하는 피부염을 총칭해서 접촉 피부염이라고 한다.접촉피부염은 원인물질과 반응 패턴에 따라서 △자극 접촉피부염과 △알레르기 접촉피부염으로 나눈다.빈도는 자극 접촉 피부염이 훨씬 더 높다. 자극 접촉피부염은 일정한 농도 이상의 자극에서 거의 모든 사람에게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는 피부염이다.알레르기 접촉피부염은 접촉된 사람에게 모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에 민감화된 사람에게만 생기는 피부염을 말한다.자극 접촉피부염은 원인 물질 종류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며 환자의 각질층상태, 피부부위, 나이, 습도가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주로 모낭을 통해 피부에 직접 침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알레르기 접촉피부염은 항원이라고 불리는 특정 물질이 수지상세포에 의해 항원처리 과정을 거친 후 T 세포에 항원을 전달하면서부터 일련의 면역반응 과정을 거친다.동일 항원의 반복적 자극이 결국 질병을 발생시킨다는 것이 발생기전의 핵심이다.원인 물질과 증상도 두 가지 질환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자극 접촉피부염은 강산, 강알카리, 세제, 기저귀피부염, 절삭유, 유리섬유 등이 흔한 원인이다.자극 강도가 강할 때는 화상의 형태나 급성 홍반, 따가움이 주로 생기며 만성 자극으로 지속 될 때는 각질층의 비후가 동반된다.알레르기 접촉피부염의 원인 물질은 니켈, 크롬, 코발트와 같은 단순 금속 화학물질부터, 옻, 은행나무, 고무(라텍스), 머리 염색약과 같은 방부제 성분, 화장품 등이다.접촉면에 의해 경계가 명확한 홍반이 발생하고 심하면 삼출이 동반된다.특히 화장품과 연관된 접촉피부염의 경우 의심이 되는 원인 성분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검증과정에 어려움이 많아 실제 발생 빈도에 비해 밝혀진 것은 매우 적은 실정이다.치료원칙은 피부과 전문병원을 방문해 홍반과 삼출에 대한 적절한 냉습포를 하고 가능하다면 첩포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원인 물질을 확인해 재노출을 막는 것이 질병이 만성화되는 것을 차단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판단된다.치료 과정에서는 원인 물질과 교차반응을 일으키는 유사물질까지 함께 피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접촉피부염의 원인이 생활 주변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 보지 못한 가려운 피부 증상과 대체로 경계가 명확한 홍반 등이 관찰되면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고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재위 원장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포항시<하>-북구

[{IMG01}] 포항시 북구는 1개 읍, 6개 면, 8개 행정동으로 구성돼 있다. 1995년 1월 국회의원 선거구 포항시 북구에 해당하는 지역을 관할로 북구가 신설됐다. 북구는 포항의 중심상권과 영일만을 품고 있는 도농복합도시지역이다. KTX직결선 개통으로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바다를 만날 수 있다. 칠포, 월포, 화진해수욕장 등 수려한 해안과 천 년 고찰 보경사, 내연산을 통하여 동해안의 절경을 느낄 수 있다. 경북 최대 재래시장인 죽도시장과 젊음과 낭만의 영일대해수욕장 야경 및 테마거리를 통해 포항의 진정한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IMG02}] 1.경북도 수목원(죽장면)내연산 남쪽 산줄기 600m 고지에 조성된 경북도 수목원은 가족 나들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다.규모면에서 국내 최대를 자랑하는 수목원은 평균해발 630m로 고산 지대에 위치한 수목원답게 고산식물원이 꾸며져 있어 다른 수목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산식물 70여 종을 관찰할 수 있다. 내연산자락 고랭지채소밭을 시작으로 침엽수원, 활엽수원, 야생초원 등 총 22개의 전문수목원으로 나뉘어져 학술연구 및 관찰,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울릉도의 식생을 살펴볼 수 있는 울릉도식물원도 있어 잠시 울릉도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 준다. 높이 12m, 무게 20t에 달하는 거대한 장승이 인사하는 입구를 지나 연못 주변에서 생태 관찰을 포함한 피크닉을 즐겨도 괜찮다. 전시실에는 목재표본과 약용 식물, 야생동물 박재 등이 전시돼 있으며, 야외에는 아름다운 인공연못이 즐거움을 선사한다.학습 및 휴식공간 뿐 아니라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하옥계곡(죽장면)2.하옥계곡(죽장면) 아름드리 햇살과 바람, 맑고 차가운 물이 힐링을 선사하는 하옥계곡은 포항 최북단에 숨은 계곡으로 북으로 청송군 부동면과 영덕군 달산면, 동으로 영덕군 남정면, 남으로 포항시 송라면에 인접하고 있다. 계곡의 길이는 상옥리에서부터 치자면 영덕군과의 경계까지 12㎞를 넘는다. 동대산, 향로봉, 내연산 계곡이 합져진 영덕 오십천의 발원지이며,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고 풍광이 좋아 행락철을 전후해 산림욕을 즐기기에 좋다. 하옥계곡과 나란히 이어지는 69번 지방도는 상옥리 쪽의 3㎞쯤 말고는 모두 흙길이다. 따라서 하옥계곡은 물놀이와 오토캠핑을 하기에도 좋지만 오프로드 드라이브 코스로도 최적이다. 내연산 12폭포(송라면, 죽장면) 3.내연산 12폭포(송라면, 죽장면) 높이는 710m이다. 1983년 10월1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이 산의 남쪽 기슭에, 포항에서 북쪽으로 약 30㎞ 되는 곳에 고찰 보경사가 있다. 보경사 부근 일대는 경북 3경의 하나로 꼽히는 경승지를 이뤄 좋은 관광지가 되고 있는데, 그 주된 경관은 내연산 남록을 동해로 흐르는 갑천계곡에 집중돼 있다. 동양화 같은 산세를 자랑하는 내연산은 물이 맑고 골이 깊다. 특히 내연산이 품고 있는 깊고 그윽한 매력의 골짜기인 청하골에는 저마다 다른 매력을 자랑하는 12폭포를 만날 수 있다. 호사스럽지 않은 고즈넉함이 매력인 보경사를 지나 1.5㎞쯤 오르면 단아한 매력을 뽐내는 상생폭포(제1폭포)가 나온다. 이어지는 폭포들을 지나면 12폭포 가운데 가장 경관이 빼어난 관음폭포(제6폭포)와 연산폭포(제7폭포)를 마주할 수 있다. 보통 연산폭포에서 걸음을 멈추는데 보경사에서 연산폭포까지 다녀오는 데에는 대략 2시간(왕복 6㎞) 정도 소요된다. 등산로가 잘 닦여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영일대(두호동) 4.영일대(두호동) 해를 맞이한다는 뜻의 영일대는 전국 최초의 해상누각이다. 영일대와 백사장을 연결하는 길이 80m 인도교를 건너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2층 높이의 전통누각인 영일대에 오르면 영일만 일대와 포스코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은 ‘감동’ 그 자체다. 한 여름 밤의 낭만을 만끽하고 싶다면 포항이 제격이다. 어두운 밤바다가 하늘의 별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는 야경이 멋스러운 영일대해수욕장은 모래가 곱고, 주변에 횟집과 카페, 레스토랑이 많아 남녀노소 모두 좋아한다. 매년 포항국제불빛축제와 포항바다국제공연예술제를 개최하며, 이외 수많은 행사가 열려 여름 개장기간 중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포항운하(죽도동, 송도동)5.포항운하(죽도동, 송도동) 40여년 전만 해도 동빈내항의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형산강과 물길이 이어져 있었다. 이 물길은 물고기들이 노닐고 시민들이 멱까지 감던 곳이었다. 그러나 인근에 포항제철소가 들어서고 주변 도심이 개발되면서 1.3㎞ 길이의 형산강 지류 물길이 아예 막혀버렸다. 바닷물이 순환하지 못하고 갇혀 있는 바람에 악취가 온종일 진동하는 사실상 ‘죽은 바다’나 다름없었다. 이런 동빈내항의 무거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말끔히 걷어내고 여기로 형산강의 물줄기를 다시 연결한 게 바로 포항운하다. 총길이 1.3 ㎞로 운하 자체는 그리 길지 않지만 바닷길과 연결하면 8~10㎞의 물길여행이 가능하다. 포항크루즈는 포항운하를 오가는 관광 유람선이다. 지난달 22일 누적 탑승객 80만 명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주말에는 1천500명, 평일에는 1천명 이상이 찾는 포항의 대표적 관광 상품이다. 포항크루즈는 형산강과 내항은 물론 외항까지 잇는 광범위한 지역을 순환한다. 두 가지 코스가 있는데 하나는 송도해수욕장이 있는 포항 앞바다까지 크게 돌아 들어오는 A코스, 또 하나는 죽도시장을 거쳐 동빈내항을 중심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B코스다. 죽도시장(죽도동) 6.죽도시장(죽도동) 포항 죽도시장은 50년 전 갈대밭이 무성한 포항 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형성됐다. 1969년 10월 죽도시장 번영회가 정식 설립됐고, 현재 점포수가 1천200여 개에 달한다. 죽도시장이 크게 일어나게 된 계기는 1970년 포스코로 이름을 바꾼 포항종합제철의 등장이었다. 이후 포항의 경제는 형산강을 사이에 둔 죽도시장과 포스코를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죽도시장은 새벽 5시에 기지개를 펴고 문을 연다. 수산물과 건어물 전문 시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산물뿐 아니라 농산물과 식품, 청과, 방앗간과 떡집, 의류, 한복과 이불 등 혼수 용품까지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규모도 커서 동해안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죽도어시장은 대구를 비롯한 경북도의 각 시군으로 수산물을 공급하는 창구 역할을 맡고 있기에 규모가 방대하다. 죽도어시장은 포항 앞바다와 가까운 곳에 있고, 횟집만 2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매우 활성화돼 있다. 다른 곳에서 먹기 힘든 고래 고기나 물회 등을 먹을 수 있다.특히 겨울철에는 포항의 명물인 과메기를 먹을 수 있다. 환호공원(환호동) 7. 환호공원(환호동) 영일대해수욕장 맨 끝 해안마을인 설머리 그 뒷동산에는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인 지역 최초 최대규모 환호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머무르고 싶은 곳 짧은 여정 긴 추억과 낭만의 테마공원, 도심속의 레저공간, 바다로 탁트인 환호공원 전망대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해안선과 포스코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인다. 해안 절벽과 수목들이 현대적 미를 조화롭게 가미한 광활한 공간에는 포항시립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어 연중 품격높은 전시와 공원에서 개최되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로 볼거리와 즐길거리들이 즐비하다. 소나무숲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천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일품이다. 특히 해변공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포스코와 영일대해수욕장 야경은 가히 환상적이다.사시사철 시민과 관광객들을 불러들여 건강과 행복감을 충격시켜주는 최고의 명소라는 느낌을 받는다. 새벽 영일만에 스며드는 일출 조망지로 도심 속 최적격지다. 법광사(송라면) 8.법광사(송라면) 1952년 건립된 법광사 뒤편에 신라 진평왕 때 왕명으로 건립된 사찰인 법광사지(法光寺址)가 있으며, 현재 사적 제493호로 지정돼 있다. 법광사는 건물 규모가 525칸이나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현재 법광사지만이 남아 있다. 사지 내에는 석가불사리탑, 연화석불좌대, 쌍두귀부, 당간지주와 조선 영조시대에 세운 사리탑중수비가 남아 있어 법광사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삼층석탑에 봉안됐던 ‘법광사석탑기’에 의하면 법광사는 9세기 전반인 신라 제42대 흥덕왕 3년(828년) 김균정이 창건한 왕실사원으로 제46대 문성왕대에 번창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 등 조선시대 문헌에도 사찰의 이름과 위치 등이 정확히 기재돼 있다. 법광사 북쪽방향 150m 지점에는 신라 26대 진평왕의 위패를 모신 ‘숭안전’이 있다.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용흥동) 9.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용흥동) 6.25전쟁 당시 참전했다가 전사한 학도의용군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포항은 낙동강 최후 방어선으로 육군 제3사단 소속 학도의용군 71명이 단독으로 전투에 참전해 48명이 산화한 곳이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도의용군이 희생된 격전지이다.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뒤편 탑산에 위치한 이우근 학도병 편지비와 전몰학도 충혼탑도 필수코스다. 당시 격전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이우근 학도병 편지비에는 6.25전쟁 당시 포항여중 전투에 참전해 17살이란 꽃다운 나이에 전쟁이란 공포와 닥쳐올 죽음 앞에서 유일한 믿음인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지막 글이 담겨 있다. 전몰학도 충혼탑은 6.25전쟁 당시 펜 대신 총을 쥐고 교복을 입은 채 자진 입대 산화한 1천394명의 호국 영령들이 봉안돼 있다. 사방기념공원(흥해읍) 10.사방기념공원(흥해읍) 한국 사방 100주년을 기념해 2007년 문을 연 이 공원은 헐벗은 산등성이를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1975년부터 5년 간 연인원 360만 명이 투입돼 총면적 4천500ha를 단기간에 녹화한 전국 최대 규모의 사업 성공지다. 외부공원과 사방사업 기술변천과 각종 자료를 모아 전시한 실내전시실로 나눠져 동해안 천혜절경과 연계한 관광 및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방기념공원은 그 옛날 60~70년대 보릿고개 시절에 춘궁기를 넘기기 위해 사방사업에 종사하며 국토 녹화에 이바지한 사방기술인의 혼과 땀이 깃든 자료를 한곳에 모아 전시한 실내전시실과, 사방사업에 필요한 각종 사업종류를 기념관 뒤편 야산에 실제 시공을 하여 산림복구기술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실제 황폐지 복구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복구기술인의 형상을 본 떠 현지에 전시함으로써 마치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게 전시기법을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IMG01}]김웅희 기자 woong@idaegu.com

◆경북, 청년이 온다!(2)- 군위 스마트 팜 ‘성산농장’, 청년농부 박시홍

무럭무럭 자라나는 파프리카를 살펴보며 농장을 둘러보고 있는 청년 농부 박시홍 대표.무럭무럭 자라나는 파프리카를 살펴보며 농장을 둘러보고 있는 청년 농부 박시홍 대표. ◆스마트 팜, 원예생명 전공 청년농부의 작품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의 시설채소 특구에 자리잡은 ‘성산농장’. 유난히 우뚝 솟은 비닐온실이다. 겉보기에는 보통의 온실과 같아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첨단장비가 즐비하게 설치된 수경재배 시스템 시설이다. 이 스마트 팜 농장의 주인은 27세의 청년 농부 박시홍 대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대부분 도시로 향하지만, 그는 전남대학교 식물생명공학부 원예생명공학을 전공한 후 곧바로 농장으로 돌아왔다. 차세대 경북농업을 책임지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청년 농부의 길을 걷고 있다. 박 대표는 농업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다. 온실안의 환경을 스마트폰으로 원격 제어하는 완전 자동화 미래형 첨단농법으로 부농을 꿈꾸는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스마트폰 원격 제어장치를 점검하고 있는 박시홍 대표.◆대를 이어 부농을 꿈꾸는 젊은 농부군위군 군위읍 무성리 성산농장에는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녹색 등 색깔별로 효능이 탁월한 탐스러운 파프리카가 주렁주렁 달려 별천지를 연상케 한다. 파크리카는 골라먹는 재미도 있지만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좋아 신선채소로 인기가 높다. 이곳에서 명품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생산하는 주인공 박시홍 대표는 스마트농법은 물론 농약을 최소화하고자 천적을 이용한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생산하는 최첨단 농법으로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농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적부터 농사를 도와주며 농부의 꿈을 꾸며 자란 박 대표는 ‘농사만 지어도 부농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전남대학교 식물생명공학부 원예생명공학을 전공했다. 아버지가 닦아 놓은 반석위에 좀 더 발전되고 첨단화된 온실 환경 조성을 위해 스마트 농법을 도입하면서 농업인 후계자의 길에 들어섰다. 군위 스마트 팜 성산농장에서 생산한 노란색 파프리카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고소득 작목 파프리카 도입군위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가시 오이’의 본고장이다.하지만, 아무리 맛과 품질이 좋은 오이라고 하더라도 수확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오이 가격이 폭락하는 것은 농사의 취약점이다. 그런데도 농가에서는 오이 농사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군위지역의 경우 5월 이후 오이 물량이 넘쳐 가격이 폭락하면 농가 자체에서 생산된 오이를 폐기하는 사례도 많다. 매년 겪어야하는 ‘가격 폭락’을 대신할 다른 영농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박 대표의 아버지 박경만씨는 도시인들이 좋아하는 ‘파프리카’ 농사만이 고소득이라 확신했다. 군위 성산농장에서 생산한 붉은색 파프리카 군위에서 파프리카 최초 재배 선구자인 박 대표의 아버지 박경만씨의 탁월한 선택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군위지역에서 2009년부터 파프리카를 9천256㎡(2천800평) 규모로 처음 재배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도 대학을 졸업하고 2016년에 고향에 돌아와 본격적인 영농현장에 뛰어 들었다. 이와 함께 농업경영인으로 선정되면서 7천934㎡(2천400평) 규모의 파프리카 재배하우스를 새로 지었다. 박 대표는 청년농부답게 자신의 농장에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의 농법을 벗어나 세계적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프리바의 첨단 수경재배시설과 환경제어 시설(온도, 습도, 차광, 보온, 난방, 보온커텐 등)을 갖춘 ‘스마트팜 농법’을 도입했다. 그는 남보다 한발 앞선 미래지향적인 농업을 실현해 신선하고 친환경적인 농산물을 생산, 소비자 신뢰는 물론 생산성 및 품질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출길 막혀 판로 걱정.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포장해 둔 파프리카. 최근 일본 수출길이 막히면서 후작으로 대추 방울 토마토와 완숙 토마토 재배 등 새로운 대책에 나서고 있다.그러나 최근 파프리카가 수출길이 막히면서 내수로 물량이 쏟아져 파프리카 농가들이 판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 대표는 이를 해결하고자 전작으로 파프리카를 재배하고, 후작으로 소비자가 선호하는 완숙토마토와 대추 방울토마토 농사로 전환하는 등 영농작목의 다양화와 판로도 공판장 위주가 아닌 농부장터 등 로컬푸드 매장에 출하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의 스마트 농법으로 안전한 로컬푸드 생산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 판매소득을 올리는 한편, 생산된 농산물을 알리는 홍보효과도 얻을 수 있어 오히려 소득을 향상시키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 효과를 얻고있다. ◆스마트 농법의 비결박 대표의 ‘스마트 농법’의 성공 비결이 무엇일까? 우선 시험 재배 후 품종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농장에 맞는 품종을 선택해 소득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타 농가의 추천품종을 선택했다. 하지만 서서히 파프리카 재배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박 대표는 파프리카를 시험 재배 후, 다양한 품종을 선택하고 있다. 현재 농장에는 나가노(붉은색), 스벤(노랑색), 오렌지글로리(오렌지색) 등의 품종을 시험재배하고 있다. 박 대표는 “토마토는 TY레드250(저항성, 기호성, 저장성, 시장성)등을 고려해 재배하고 있다”며 “매년 품종을 교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농장에서 시험재배 후 수확량은 많고 상품성이 좋은 과형, 병해충에 강한 품종 위주로 선택하고 있다”고 비결을 밝힌다. 군위군농업기술센터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농업기술센터는 폐양액 검사, EC, pH 검사, 병해충 예찰, 병해충 대처 방법, 환경제어관리 등 다양한 기술을 전수해 주고 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병해충 정보도 알려주고, 농가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 기술지도 해 준 덕분에 박 대표의 파프리카 재배기술이 빨리 안정화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박 대표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다양한 기술지도는 물론, 농가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며,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고 대처해서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에 안심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고 밝힌다. ◆군위의 명품 파프리카박 대표는 “고품질의 파프리카, 토마토의 다수확을 하려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무엇보다 비배관리, 적과 등 환경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고 강조한다. 성산농장에서는 3.3㎡(1평)당 평균 65kg을 연중 생산한다. 그 비법은 한 달에 1회 폐양액을 분석해 배양액 조성표를 작성하며, 뿌리 상태는 1주에 2~3회 점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양액을 줬을 때 배액양을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고품질 다수확을 생산하는 비법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연간 토마토(완숙, 대추방울토마토) 3천600평에 상품과 90%이상인 200t을 생산해 조수익 3억5천여 만 원을 올리고, 파프리카 1천500평에서 85t 생산해 2억 여원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청년농부 박시홍 대표는 “아직은 영농 3년차에 불과해 아버지의 기술지도 등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 빠르게 정착해 가고 있다”며 “경영비 과다로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스마트한 강한 농사꾼으로 성장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인다.배철한 기자 baech@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21> 태종 춘추공(상)

태종 무열왕은 당나라의 힘을 빌어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치는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다. 무열왕릉은 삼국유사의 기록은 물론 그의 아들 김인문이 쓴 비석의 머릿돌에 남은 글씨가 남아있어 확실하다. 경주 서악동에 위치해 있다. 신라 천 년의 역사 가운데 획기적인 전환점이라면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신라 삼국통일의 기반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마련했다. 김유신 장군과 손잡고 전장을 누빈 것이 삼국통일을 달성한 기초가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짜는 데는 정보가 중요하다. 삼국통일을 위한 전쟁의 정보를 확보하는 데는 김춘추의 둘째 아들 김인문을 가장 앞자리에 둔다. 신라 삼국통일은 당나라의 힘을 빌어 이룩할 수 있었다. 당나라의 군사를 움직이는데 김춘추와 김인문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김춘추는 당 태종과 고종이 인재를 아끼며 중용하는 마음을 간파했다. 또한 태종의 후궁이자 고종의 왕후 자리를 꿰차고 정치에 직접 관여했던 측천무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당나라의 도움을 받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이용해 큰아들 법민은 신라에 남겨두고 지혜로운 인문을 당나라에 볼모로 맡겨두듯 하면서 정보를 얻어내고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무열왕릉은 귀부와 뒤편 산자락으로 나란히 배치된 4기의 고분, 울창한 소나무숲 등으로 공원을 조성해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탐방하는 코스다. 공원 정문 건무문이다. 삼국유사는 태종 김춘추조를 길게 늘여 썼다. 이 때문에 김춘추에 대한 이야기는 세 단락으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또 삼국유사의 내용은 간편하게 요약해 기록하기로 한다. 무열왕릉 공원에는 요즘 백일홍이 한창이다. ◆삼국유사: 김춘추〈1〉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의 이름은 춘추이다. 아버지는 진지왕의 아들 용수(용춘이라고도 한다)다.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이다. 왕비는 김유신의 막내 여동생 문명왕후 문희다. 무열왕릉 뒤에는 문희연못으로 불리는 작은 연못이 있다. 못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연꽃과 산책로 주변에 코스모스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전해지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문희의 언니인 보희가 꿈에 서악에 올라 오줌을 누었더니, 오줌이 서울에 가득찼다. 다음 날 아침 그 꿈을 동생이 비단치마를 주고 샀다. 열흘 뒤에 유신이 춘추공과 함께 유신의 집 앞에서 공을 찼다. 유신이 일부러 춘추의 옷을 밟아 옷고름을 떨어뜨리고는 “우리 집에 들어가 꿰맵시다”라 하니 춘추가 이에 따랐다. 유신의 동생 문희가 춘추의 옷고름을 꿰매어주면서 둘이 정을 통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춘추공이 문희와 혼례를 올려 문희는 후일 왕비가 되었다. 진덕왕이 세상을 떠나자 춘추공이 왕위에 올랐다. 나라를 다스린 지 8년 되는 용삭 원년 신유(661)에 세상을 떠나니 나이가 59세였다. 애공사 동쪽에 장사지냈는데 비석이 있다. 왕은 유신과 함께 신비스런 지략과 전력을 다해 삼한을 통일하여 나라에 큰 공로를 세워서 묘호를 태종이라 했다. 태자 법민과 각간 인문, 각간 문왕, 각간 노차, 각간 지경, 각간 개원 등은 모두 문희가 낳은 아들이다. 서자는 개지문 급간, 거득영공, 마득아간이라 했는데 딸까지 합하여 모두 다섯명이다. 무열왕릉 공원 입구에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의 꿈이야기와 김춘추의 활약을 만화로 그린 안내판이 서 있다. 춘추공이 군사를 요청하러 당나라에 들어가니 당나라 황제가 그의 풍채를 아름답게 여겨 신성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춘추공을 당에 머물게 하여 시위로 삼으려 했으나 간청하여 본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는 바로 무왕의 맏아들로 굳세고 용맹하며 담력이 있었다.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도 우애가 있었으므로 당시에 해동의 증자라고 불리었다. 그는 왕위에 즉위하자 술과 계집에 빠져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나라는 위태롭게 되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김춘추의 계략김춘추는 외모가 여성스럽게 넉넉하면서도 남성미가 넘쳤다. 부드럽게 생겼지만 무예가 출중하여 전쟁에서는 은연중 상대방 장수들이 그를 무시하다 낭패를 당했다. 특히 김춘추의 장점은 문장이 뛰어나고 언변이 훌륭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남다른 집념이 강해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이루어야 했다. 신라 56대 왕들의 무덤 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위치를 입증하는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거북의 형상과 몸돌은 없어졌지만, 용이 새겨진 이수가 신라시대 최초의 형식으로 세워졌다. 춘추공의 딸과 사위가 백제군에 죽임을 당했다. 춘추는 기둥을 잡고 사흘 밤낮을 피눈물을 흘리면서 백제에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이를 계기로 춘추공은 신라의 대신을 자처하여 고구려와 왜나라에까지 직접 백제를 공격할 군사를 얻으러 갔다. 그러나 오히려 책망만 듣고 실패하고 돌아왔다. 고구려에서는 그를 잡아 가두고 억류했다. 이때 김유신이 목숨을 걸고 달려가 그를 구해 내면서 둘의 관계는 한층 더 끈끈하게 발전했다. 춘추공의 집념은 그를 당나라로 향하게 했다. 당 태종 때였다. 태종이 고구려와의 안시성 전투에서 양만춘의 화살을 눈에 맞고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후궁 측천무후가 정치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었다. 당시 측천무후는 20대 초반이었지만, 정치적인 야욕으로 남성들을 요리조리 마음껏 휘둘렀다. 태종 무열왕릉 고분공원의 산책로.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김춘추는 당나라의 황실 내부 사정을 간파하고, 당에 머무는 짧은 시간에 태종에게 정치적인 계약을 하는 한편, 황금을 들고 측천무후를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측천무후는 신라의 훤칠한 아름다운 장수의 외모와 현란한 말솜씨에 한 눈에 반해버렸다. 그다음부터 춘추공의 협약은 순풍에 돛을 달았다. 망설이던 태종이 30만 대군의 병력지원을 약속하며 백제는 물론 고구려까지 물리치고 신라의 삼국통일을 함께 돕겠다고 언약했다. 그러나 세상사는 그렇게 순조롭게만 않았다. 당 태종이 병마에 시달리는 동안 그의 아홉 아들이 황제의 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였다. 태종 이세민의 큰아들 이승건이 태자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그가 먼저 죽고 넷째 이태가 왕위를 잇기로 했다. 태종의 후궁 측천무후가 아홉 번째 아들 이치에게 붙었다. 소극적인 이치에게 왕씨 부인이 있었지만, 태종의 병실을 드나드는 그를 측천무후가 침실로 불러들여 한통속이 되어버렸다. 결국 측천무후가 자신의 야욕을 위해 이치를 꼬드겼다. 소극적이던 이치가 측천무후의 지원을 받아 넷째 형을 누르고 황좌에 올랐다. 측천무후는 왕씨를 폐위토록 하고, 그의 측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측천무후의 세상이 도래했다. 중국 200여 명의 황제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 황제에 등극하는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혼란 틈에 신라의 전쟁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무열왕릉 남쪽 300여m 지점에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묘와 비석받침이 있다. 무열왕의 비석받침과 비슷한 형식으로 살아있는 듯한 조각으로 새겼지만 예술성은 다소 뒤떨어진다. 춘추공은 성년이 된 둘째 아들 김인문을 당나라 사신으로 파견했다. 인문은 춘추공과 문희의 장점을 그대로 빼닮아 훤칠한 외모에 무술 실력을 갖춘 뛰어난 지략가로 성장했다.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고 아버지 춘추공의 생각을 잘 알았다. 당 고종이 즉위하고 측천무후의 정치적 욕심을 간파하고 있던 춘추는 인문에게 측천무후를 공략할 방법을 미리 귀뜸해 보냈다. 춘추공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묘. 아버지 태종무열왕릉 남쪽에 큰 장식 없이 고분으로 남아있다. 춘추공을 빼다 박은 젊은 신라의 장수 김인문을 마주한 측천무후는 신라의 선물보다 인문의 외모에 더욱 빠져들었다. 인문의 외모가 측천무후의 눈에 들면서 인문은 당나라에서 뼈를 묻어야 할 운명으로 진작 낙점되었다. 측천무후의 꼭두각시가 된 당의 고종 이치는 김인문에게 태종 때처럼 30만 대군의 지원과 백제, 고구려 공격을 약속했다. 김인문이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는 당나라군사의 선봉장이 되었지만, 측천무후의 부름으로 전쟁 중에 당으로 되돌아 가야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하고, 신라 삼국통일을 이룩한 배경에는 김춘추의 정치적 계략과 김유신 장군 등의 뛰어난 전술전략 외에도 측천무후의 지원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무열왕릉 뒤편으로 높게 솟은 고분 4기가 능선을 따라 줄지어 있다. 산책로가 고분 주변으로 조성되어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다. 춘추공을 지원하는 세력은 다방면에 있었다. 그를 직접 왕좌에 앉게 한 김유신 장군은 가장 큰 언덕이었다. 또 그의 장성한 아들들도 그를 지원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 그와 결혼한 김유신의 동생 문희도 춘추의 전쟁과 정치적 행보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문희는 미색이 뛰어난 것은 물론 지혜로웠다. 하늘의 기운을 타고 태어난 유신과 함께 자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 세상 이치는 물론 전쟁의 전술에도 밝았다. 김춘추가 전쟁에 앞서 부인 문희와 상의하는 일이 잦았던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