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꺼내 밑줄 긋는 수고는 이제 안녕 터치 하나로 모든 교육이 시작된다

선생님과의 1대1 채팅과 화상대화를 하거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유튜브 등 콘텐츠 수업도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태블릿 PC의 활용도가 높아짐에 따라 ‘자기 주도 학습’의 극대화를 꾀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앞 다퉈 출시되고 있다.세계 유수의 IT 기업들은 AI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머닝 러신’을 활용한 교육 콘텐츠 제공으로 개발자 5만 명 양성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국내 IT관련 업체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팜’ 참가자를 모집한다. 이 프로그램은 융합의 모토로 식물과 ‘아두이노(Arduino)’를 연결하는 것이다.교육 관련 기업들은 4차 산업 혁명과의 궤를 함께하고자 인공지능 기반의 다양한 교육 커리큘럼을 쏟아내고 있다.알파고의 인공 신경망은 10만 개에 그치지만, 인간은 대뇌피질에만 약 1천억 개의 뉴런을 가지고 있다. 흔히들 교육을 일컬어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학생들은 ‘미래사회의 보배’라는 구절, 원론적 의미를 넘어 하나의 고유문구로 증명되는 사실이다.지금은 상쇄됐다고 하지만 과도한 교육열은 ‘치맛바람’, ‘돈 봉투’ 등의 부정적 해시 태그를 낳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과거의 이 같은 치부들조차 교육에 관한 열망을 방증한다는 사실, 쉽게 부정할 수 없는 대목이다.4차 산업 혁명의 도래는 교육계에도 완벽한 변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세계 최대 규모의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인 ‘스타벅스’. 스타벅스에는 IT 관련 전문가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하지만 그 기술력은 수면 위로 내놓지 않는다. IT 기술력을 하나의 ‘기초’로 인식하기 때문으로.교육의 총체적 목적은 ‘어떻게 잘 살아가는가’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과거 주입식, 천편일률적 경로가 아닌, 범 학문적 융합이 수반돼야 할 터. 교육과 IT의 만남은 이질적 관계가 아닌, 미래 교육의 또 다른 범주에 속한다.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의 발발로 ‘일자리 대 혁명’이 도래할 것을 전망하고 나섰다. 다만 선한 의미의 터닝포인트인가, 잉여 인간 양산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가의 차이일 뿐이다.교육과 IT 의 접목은 AI로 인한 변화를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주도적 적응력’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AI의 물결이 자칫 양질의 일자리 감소, 고용의 세대 간 갈등 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부정적 영향은 경계하되, 인공지능의 시대는 괴리의 대상이 아닌, 함께 고찰하며 능동적 수용을 영위해 가는 ‘집단 지성’으로의 아이덴티티를 교육을 통해 드높인다는 것이다.2016년 우리는 인간계 최고의 바둑기사가 빅 데이터의 결정판으로 일컬어지는 ‘알파고’에 패배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하지만 창의적 사고와 개념 정립의 능력은 인간이 우위에 있다.실제 알파고의 인공 신경망은 10만 개에 그치지만, 인간은 대뇌피질에만 약 1천억 개의 뉴런을 가지고 있다. 이를 비춰볼 때도 AI를 이용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임을 교육을 통해 주지시킬 필요성이 있다.세상은 바뀐다. 교육이란 응당 바뀐 세상의 ‘적응력 제고’를 위함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부정할 수 없는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창의적 인재는 동일한 사안을 다채로운 소양을 통해 다각도의 결과를 도출해 가는 사람이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혁명의 흐름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교육계 전반을 인공지능의 포커스로 맞출 당위성이 요구된다. ◆교육과 IT의 만남대한민국 유수의 IT 관련 업체에서 특정도 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팜’ 교육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프로그램은 융합의 모토로 식물과 ‘아두이노’를 연결하는 것인데, IT 기술로 식물 재배를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을 제작, 학생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고 재배해가는 이른바 ‘코딩교육’의 일환이다.이처럼 일선 학교와 교육 관련 기업들은 4차 산업 혁명과의 궤를 함께하고자 인공지능 관련 다양한 교육 커리큘럼을 쏟아내고 있다. IT와 결합된 교육 콘텐츠와 접근성 제고를 위한 다채로운 플랫폼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형국.스마트 학습 서비스, 디바이스, 방문 관리 등이 하나로 결합된 ‘디지털학습 콘텐츠’를 제시하는 가하면, 인공지능 학습 관리, 지도, 취약점 보완 등에 포커스를 맞춘 상품도 속속 등장하기에 이르렀다.인공지능 분석 솔루션을 탑재한 교육프로그램은 학생의 공부습관, 학습코스 등을 데이터화한 후, 차후 올바른 학습 태도 발현을 위한 ‘교정’의 기능까지 갖췄다.‘태블릿 PC’의 활용이란 이제 더이상 이질적이지 않다. 학생들의 문항 체크를 실시간 영위하고, 학습시간의 체계적 관리를 통한 집중력 제고, 선생님과의 1대1 채팅 및 화상대화를 통해 ‘자기 주도 학습’의 극대화를 꾀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접근성 제고를 위해 ‘유튜브’ 등을 활용한 콘텐츠 수업도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문제는 인공지능에 관한 메리트는 십분 공감되는 반면 국가 차원의 4차 산업교육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각 산업군은 각기의 방식으로 변혁의 시점을 맞았음에도 그에 수반된 교육 커리큘럼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이다.정부는 최근 이 같은 지적에 대해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제반 사항과 인식 부족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나섰다. 그 타개책으로 각종 AI 관련 교육 및 강연을 시행함으로써 4차 산업에 관한 홍보와 인식 제고를 꾀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인재풀(Pool) 부족에 관해선 ICT 전 분야에 걸친 양성계획을 펼침으로써, 이를 통해 발굴된 인재 10여만 명 양성계획을 아울러 밝혔다.세계 유수의 IT 기업들은 ‘인터넷 강국’으로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이른바 ‘블루 오션’으로 규정, AI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클라우드 관련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펼치는가 하면, ‘머닝러신’을 활용한 교육 콘텐츠 제공으로 내국인 개발자 5만 명 양성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교육기관과의 MOU를 통해 학교 설립을 꾀하는 경우도 있다. 5년제 공교육과정을 표방하는 이 학교는 기술, 공학, 수학, 과학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뉴 칼라’ 직업군 창출에 주력한다는 복안. 클래스는 AI, 클라우드 컴퓨팅, 사이버 보안, 블록체인, SW 프로그램,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으로 구성돼 있다.현재의 산업군은 ‘메뉴 얼 화’로 점철돼 있다. 수직적 상·하 관계에서 시쳇말로 ‘시키는 일’을 철저히 해내는 인력이야말로 ‘인재’라는 수식어를 얻는다. 여기서 4차 산업혁명 간 신교육의 중요성을 재차 역설하게 된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기존 정형화된 툴(Tool)이 자동화 물결에 자연스레 잠식 돼 버린다는 사실 때문으로.‘적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다. 1차 산업혁명으로부터 지금의 4차 인공지능의 세상으로 거듭난 순간까지 불과 2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시간의 틈이 촘촘해 왔던 것. 그런 만큼 변혁의 시류에 순응하고 더 나아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위에서 언급한 ‘집단 지성’의 캐치프레이즈를 십분 되살려 협력하고, 더불어 공감할 수 있는 ‘인성교육’ 또한 중요하다. 원론적이긴 하나 가장 근간이 되는 개성과 창의성 발현을 서포트 하는 것, 바로 ‘교육의 힘’이다. ◆소프트웨어 교육의 필요성인공지능의 교육은 단순 스마트기기의 활용 여부에 그쳐서는 안 된다. ‘C언어’를 적용, 각 사물 간 현상을 알고리즘을 통해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실제 빌 게이츠를 비롯한 거대 IT 기업의 창업주들은 한목소리로 ‘소프트웨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소프트웨어 교육의 교과서로 알려진 영국의 예를 들어보자.영국은 2013년부터 국가차원으로 학생들의 ‘컴퓨터 교육 가이드’를 설정, 미취학 시기부터 약 300여 시간 동안 소프트웨어 관련 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한다. 이렇게 수학해 온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면 자신만의 고유한 앱을 생성 후 상품화 과정에까지 이른다.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점. 단순 소프트웨어 생성에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소프트웨어를 왜 만들어내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어떤 부분에 어떠한 방식으로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인성 및 심리교육을 병행한다는 대목이다.우리나라는 2016년 정부차원으로 전국 대부분의 초·중등학교에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했다. 초등학교의 경우 20여 시간, 중학교 과정에서는 약 35시간에 걸친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한다는 것이다.세부사항으로 문제해결과정과 알고리즘, 프로그램 체험과 더불어 정보의 올바른 취사선택을 영위하기 위한 ‘정보 윤리의식 함양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 있다. 이를 두고 4차 산업혁명의 변혁에 발맞춰 소프트웨어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한 고무적 대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이처럼 학교는 인재양성이란 총체적 숲을 바탕으로 양질의 나무심기에 여념이 없어야 한다. 단기적 정책이 아닌 지속적인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는 과거 정형화된 학습프레임에서 하루빨리 탈피함으로써, 앞서 언급했듯 창의성과 감성, 사회적 협력을 강조하는 커리큘럼으로 교육프로그램의 터닝포인트를 실현시켜야 한다.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인공지능과의 융합을 통한 다채로운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적용,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범국가적 교육 전략이 절실히 요구된다. 머지않은 미래를 보라. 인공지능이 미처 캐치하지 못한 블루오션, 인간만의 측은지심과 창의적 사고를 요하는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한다는 당위다.그러기 위해선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인한 일자리 위협 요소를 전 방위적으로 분석, 해당 분야 종사자의 직업능력을 초고도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AI 관련 직종으로의 전직이 용이할 수 있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 구축에도 성심을 다해야 할 때다. 글·사진 군월드 IT사업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좋은 지방 섭취로 콜레스테롤 수치 유지해요

콜레스테롤은 이상지질혈증, 동맥경화 등 성인병의 원인 중 하나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하지만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이기도 하다. 꾸준한 운동과 체중 조절, 건강한 식단 등으로 적정한 콜레스테롤 수치를 유지해보자.Q:콜레스테롤이란 뭔가요?A: ‘지질’에 해당하는 영어가 ‘콜레스테롤’입니다. 우리 몸은 여러 영양소로 구성돼 있습니다.그중 가장 중요한 3대 영양소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입니다. 콜레스테롤이 바로 지방에 해당하며 인체의 구성과 유지를 위해 필요한 영양소 중의 하나이므로 음식물을 통해서 섭취해야 합니다.콜레스테롤은 세포와 세포막을 구성하는 성분,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재료, 담즙의 원료가 되므로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영양소입니다. 콜레스테롤은 몸속에서 호르몬 합성에 쓰이거나 뇌 발달 및 유지 등 여러 과정에 사용됩니다.Q: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은 어떻게 진단하나요?A:혈액 속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을 벗어난 상태를 이상지질혈증이라고 하며 채혈 검사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혈액의 지질 검사(총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고밀도 콜레스테롤, 저밀도 콜레스테롤)를 시행해 고지혈증을 진단합니다.검사 항목 중에서 중성지방 수치와 계산해 얻은 저밀도 콜레스테롤 수치는 혈액 채취 전 최소 9시간에서 12시간의 공복이 필요하며 정맥 채혈 전 과도한 움직임으로 인한 혈액 농축을 피하기 위해 최소 5분 이상 앉아 있어야 합니다.이상지질혈증의 치료 방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시점에 최소 2회 이상의 혈액검사(지질검사)가 필요하며 만약 두 번째 지질 검사 결과와 첫 번째 검사 결과 간 현저한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추가로 한 번 더 검사해 최종 확인한 지질 검사 결과 값에 따라 치료 방침을 정해야 합니다. Q:이상지질혈증의 예방에 도움이 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A:전통적으로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기 위해서 지방의 섭취를 제한하는 것을 권해 왔습니다.하지만 지방 섭취를 제한한다고 해서 콜레스테롤 농도가 감소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방 섭취를 제한하면 오히려 탄수화물 섭취가 증가하는 경우가 많아서 결과적으로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높아지기도 해 좋은 지방을 적당한 수준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탄수화물의 과다섭취, 특히 단순 당의 과다섭취는 혈중 중성지방 농도를 높입니다.수용성 식이섬유는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농도를 낮추는 데 효과적입니다. 또 과도한 알코올 섭취는(10~30g/일 이상) 혈중 중성지방 농도를 높입니다. 술의 종류와 관계없이 해당하는 술을 제공하는 잔을 기준으로 1~2잔 정도 이내로 음주량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잡곡이나 현미, 통밀 등의 통곡 식품의 섭취 비중을 높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 외에도 채소, 콩류, 생선류, 과일류, 유제품 등의 식품이 포함된 식사가 도움이 됩니다.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통상 과일을 식사 대용으로 먹기보다는 후식, 간식 등으로 추가해서 먹습니다. 따라서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라고 강조할 경우 과일 속의 단순 당 섭취가 늘어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도움말=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대구 누네안과, 대구·경북 최초 녹내장 젠(EXN) 수술 도입

대구 누네안과병원이 대구·경북지역 최초로 녹내장 젠(XEN) ‘마이크로 스텐트 삽입술’을 도입했다.지난달 25일 대구 누네안과병원 녹내장센터 이종욱 안과 전문의가 약물 및 레이저 치료만으로 효과를 보기 어려운 녹내장 환자 2명을 대상으로 미세 침습 녹내장 수술인 젠(XEN) 수술을 시행해 안정적인 안압을 얻는 데 성공한 것.기존 녹내장 수술인 섬유주 절제술은 눈 주위 결막에 물주머니를 만들어서 안압을 조절하는 수술법으로 안압을 효과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절개 범위가 넓고, 수술 후 관리가 까다로우며 회복 기간이 다소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그러나 이번에 도입된 젠 (XEN) 수술은 섬유주 절제술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1.8㎜ 미세절개창을 활용해 회복 기간이 빠른 것이 특징이다.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받아 최근 국내를 비롯해 미국과 싱가포르, EU 등 의료 선진국을 중심으로 사용이 급증하는 추세다.젠 (XEN) 스텐트 삽입술은 마이크로 스텐트 삽입 수술로 6㎜ 정도의 작은 튜브를 안구 내 삽입해 방수가 결막 아래 공간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안압을 하강시키는 원리로 시행된다.수술시간은 10~15분 정도 소요되며 봉합도 필요하지 않아 실밥 제거 없이 수술 후 빠른 일상생활 복귀가 가능한 점도 큰 장점이다.절개 범위를 최소화해 미세한 크기의 스텐트를 삽입하는 수술이므로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따라서 녹내장 수술에 대한 전문성과 임상경력이 풍부한 숙련된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아야 안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대구 누네안과병원 녹내장센터 이종욱 안과 전문의는 “그동안 녹내장 치료 기술이 진화되고 종류도 다양해졌지만 한계가 있었는데 젠 (XEN) 스텐트 삽입술이 도치료만으로다 안전하고 정밀도 높은 수술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또 “기존의 약물치료 혹은 레이저 치료 만으로 안압이 조절되지 않아 녹내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와 수술 후 일생 생활로의 빠른 복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한편 대구 누네안과병원은 추후 녹내장 수술용 레이저 장비인 마이크로펄스 모양체광응고레이저(micropulse CPC레이저)을 도입해 최첨단 녹내장 수술도 선보일 예정이다.대구·경북 최초로 녹내장 젠(XEN) ‘마이크로 스텐트 삽입술’을 시행한 대구 누네안과병원 녹내장센터 이종욱 안과 전문의가 녹내장 환자를 검사하는 모습.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거리-문경시(하)

문경은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고갯길인 ‘하늘재’(명승 제49호)와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소통로로서 조선 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는 문경새재 등 옛길의 정체성이 그대로 보존돼있는 보물 같은 고장이다. 특히 1년에 단 하루 산문을 여는 조계종 특별수련원인 봉암사와 대승사·김룡사 등 천년고찰과 함께 선유구곡, 석문구곡, 쌍용구곡, 화지구곡 등 7개의 구곡(九曲) 문화가 남아있는 고장으로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관광자원이 즐비하다. 문경시의 지정문화재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국가지정문화재 27점과 도지정문화재 58점 등 모두 88점에 이를 정도로 문경에는 자랑거리가 많다. 대승사1. 대승사 • 윤필암산북면 공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라 진평왕 9년에 망명 비구에 의해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고승들을 배출해낸 명망 높은 사찰이며, 보물 제575호 목각아마타여래설법상이 관계 문서 네 점과 함께 보전되어 있다. 부속 암자인 윤필암은 대승사에서 1km 떨어져 있으며, 이름은 원효와 의상이 사불산에서 수행할 때 의상의 이복동생인 윤필이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현재는 비구니들이 거처하고 있다. 주암정 2. 근암서원과 주암정근암서원은 산북면 서중리에 있으며, 서원 앞으로 59호선 국도가 지나간다. 최초 창건은 상주목사 신잠에 의해 1544년(중종 39) 근암서당으로 창건됐으며, 1669년(현종 10)에 근암서원으로 승격됐다. 산북면 서중리 웅창마을에 위치한 주암정은 ‘배 모양의 바위 위에 세워졌다’고 하여 주암정이라 한다. 이 정자는 ’석문구곡‘의 제2경으로 조선시대 유학자 주암 채익하(1633-1676)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1942년 건립됐다. 호산춘3. 호산춘호산춘은 조선 초기 장수 황씨 방촌, 황희의 증손인 황정이 산북 대하에 낙남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살면서부터 집안에 전승돼 오고 있는 가양주(家釀酒)다. 황씨들은 비교적 가세가 넉넉하여 호산춘을 빚어서 제주 용으로 혹은 접빈객용으로 사용해 왔으며, 대대로 종부에 의해 전승됐다. 이름이 ‘춘’자가 들어가는 술은 오랜 발효 과정을 거친 명주라 하며, 황희 정승이 마시던 술이라 하여 더욱 유명하다. 돌리네습지 4. 돌리네 습지국내 23번째 내륙 습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문경 돌리네 습지는 산북면 굴봉산 정상부 해발 270~290m에 위치한 산지형 습지다. 돌리네(doline) 지형은 석회암지대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빗물이나 지하수 등에 용해되어 형성된 접시 모양의 웅덩이로, 문경 돌리네 습지는 물이 고이기 힘든 돌리네 지대에 습지가 형성된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곳이다. 이곳에는 수달과 담비, 삵 등 멸종위기종 6종을 비롯해 731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금융사택 5. 구 문경금융조합 사택산양면사무소(산양면 불암리 61) 뒤편에 위치하며, 1945년 금융조합 사택으로 건축된 규모가 비교적 작은 우진각지붕의 일식(和風) 주택이다. 2006년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일본식(和式) 주택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분적인 개・보수로 일부 변형되어 있으나, 내・외부가 잘 보존돼 있어 일제강점기 후반 사택 연구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화수헌 6. 산양 화수헌 화수헌이라는 명칭은 꽃과 나무가 많은 집이라는 뜻으로 문경시 산양면에 위치한 한옥 게스트하우스다. 고택 2채를 리모델링해 한 채는 게스트하우스, 한 채는 카페로 5명의 청년이 운영하고 있다. 도시지역 청년을 경북에 정착시켜 일자리를 만들고, 활력을 잃어가는 시골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경북도의 청년유입 정책인 도시 청년 시골파견제사업 공식 1호점이다. 국제클래이밍센터 7. 문경국제클레이밍센터흥덕동에 있는 문경국제클라이밍센터는 국제규격의 클라이밍 시설이다. 지상 6층, 건축면적 438㎡ 규모로 실외 국제규격 스포츠클라이밍 경기장(폭 30m, 높이 17m)이다. 1층 교육장, 2층 실내 리드웰 연습장, 3층 볼드링 연습장, 5층 휴게공간, 6층 전망대 등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스포츠를 통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고 아름다운 영강과 점촌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를 갖춰 최근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이 찾고 있다. 오미자축제 8. 오미자축제전국 오미자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문경 오미자는 백두대간 자락에서 자생하는 토종자원인 오미자를 옮겨와 해발 300m 이상의 청정 환경에서 생산된다. 일교차가 큰 산간지에서 친환경 재배기술로 생산함으로써 맛과 향기 그리고 품질과 성분 등에서 단연 전국 최고의 명품 오미자로 각광 받고 있다. 매년 가을(9월경) 오미자 수확 시기에 개최되는 오미자 축제는 다양한 체험 행사와 함께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까브 9. 문경 동로 동굴카페 ‘까브’동로면에 있는 오미자 와인 동굴카페다. 보석광산을 동굴카페로 바꾸고 폐광산 공간을 그대로 활용하여 와인 동굴로 꾸몄다. 동굴 양옆으로 테이블이 있고 바닥에는 투명 유리가 있어 동굴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무대가 있어서 공연도 하고, 연인들의 이벤트도 할 수 있는 특색 있는 공간이다. 김룡사 10. 김룡사산북면 김용리 운달산 기슭에 위치한 김룡사(588년 창건)는 대승사(587년 창건)와 함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명찰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 31 본사의 하나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현재는 교통의 불편으로 직지사의 말사가 되었다. 대웅전, 극락전, 응진전, 금륜전, 명부전 등이 남아있으며, 한국 전통건축의 조형적인 특성을 두루 갖춘 다포계 건물인 대웅전이 유명하다. 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

한 점 부끄러움도 생기지 않았던 집…엄격한 몸가짐으로 ‘인격 완성’ 경지 이르러

퇴계 이황은 안동의 정신적 종주다. 안동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칭하는데 그 자존심의 근거가 퇴계 이황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학문을 통한 인격 도야를 인간의 완성으로 치부하던 조선은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그 이론적 배경인 성리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가 퇴계 이황이었기 때문이다. 동방의 주자로 추앙받는 퇴계, 존경받는 한국인으로 몇 명을 꼽아도 빠지지 않는 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성인이기도 한 퇴계 이황이 태어난 곳이 안동 퇴계 태실이다. ◆도산면 일대는 퇴계 정신의 중심 안동 시내에서 북쪽으로 국도 35호선을 따라 봉화 청량산을 향해 20분쯤 내달리면, 오른쪽에 도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서원을 들르지 않고 곧바로 내달려 언덕을 넘으면 도산면이다. 왼쪽으로 온혜리 한국 성리학의 태두 퇴계 이황이 태어난 태실과 노송정을 만난다. 국도에서 태실 입구와는 반대편 안동댐 상류 쪽으로는 퇴계 종택과 퇴계 묘소, 이육사 문학관이 있다. 태실로 오는 길 도산서원 입구에서 도산면에 이르는 길 왼쪽으로 국학진흥원을 지난다. 맞은편으로 거대한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과 한국문화테마파크 조성사업이 내년 말 준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다. 일대가 생전 퇴계 선생이 사색하던 예던 길도 조성됐다. 안동시 도산면 일대는 퇴계의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고 그 중심이 퇴계 태실이다.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퇴계 태실이 있는 안채와 노송정(老松亭)은 퇴계의 할아버지 노송정 이계양이 1454년 지었다. 별채 노송정에 걸려 있는 한석봉의 글씨 노송정은 이계양의 호의기도 하다. 이곳에 이계양이 집을 짓게 된 것을 그의 18대손인 이창건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봉화 훈도로 부임하는 이계양이 마을 앞 신라현을 넘어가다가 길에 기진해 쓰러져 있던 승려를 만나 도와준다. 그때 승려가 이계양의 인물 됨됨이를 보고는 “저곳에 집을 지으면 당대에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다”고 터를 잡아 주었다. 인근에 살던 이계양이 온혜리로 옮겨 터를 잡은 계기였다는 것이다. ◆유래와 정신 경북도 지방문화재 60호로 지정됐던 태실과 노송정은 지난해 국가지정 민속문화재 295호로 승격됐다. 문지방이 없는 솟을대문 성림문(聖臨門)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건너 똑바로 보이는 건물이 별채 노송정이다. 노송정 뒤쪽으로 사당이 있고 왼쪽에 태실이 있는 본채가 앉아 있다. 퇴계는 위로 여섯 분의 형님과 한 분의 누님을 뒀다. 7남 1녀의 막내였던 퇴계가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의고 서른둘에 과부가 된 어머니 춘천 박 씨의 “아버지가 안 계시니 너희들은 행동에 더욱 조신해야 한다”는 엄한 훈도 아래서 자랐다. 어머니는 퇴계를 잉태했을 때 꿈에 공자님을 뵈었다. 공자님이 제자들과 함께 집안으로 성큼 들어오시는 것이다. 태실의 입구가 성림문인 이유다. 퇴계의 제자 학봉 김성일이 지었다고 한다. 성균관 진사로 있던 노송정 이계양은 당시 조정의 혼탁함에 몸서리를 치고 낙향한 터였다. 세조가 조카 단종을 폐위시킨 계유정난으로 세조의 왕위찬탈에 항거한 선비들은 목숨을 버리거나, 살아서도 벼슬을 버리고 산간벽지로 들던 때였다. 이곳에 터를 잡은 노송정은 자손 교육과 바른 행실을 평생의 가업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가훈으로 남겼다. 퇴계가 태어난 온혜 종택의 퇴계 태실은 지금은 집안 구조로 보아 이상하게 돌출된 형태이다. 이에 대해 종손 이창건 씨는 옛날 태실은 그대로 두고 건축 초기에는 없던 부엌채를 개조하면서 새로 지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침 입구 온천정사란 편액이 걸린 곳이 사랑채이고 맞은 편에 퇴계가 성장하면서 공부하던 방이 있다. 그 안쪽으로 태실이 돌출되어 있고 뒤쪽으로 안방과 부엌이 있는 입구(口)자 형태의 정침이다. 다른 곳은 여러 차례 증수하면서 태실은 그 형태를 살려 모양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별채인 노송정 대청의 동쪽 현판의 해동추노(海東鄒魯)는 공자와 맹자가 태어났던 나라를 말하는 것이고, 서쪽 현판 산남낙민(山南洛閩)은 영남지방의 정호 정이 형제의 고향 낙양과 주자의 고향 민땅이라는 의미이니 전체가 바로 동방의 유학 거두라는 자부심을 내건 것이다. 글자는 낙관이 없어 누구 솜씨인지 전해지지 않았다. 건축 당시 별채 노송정은 지금처럼 웅장하지 않은 그냥 작은 정자였을 것이고, 후대에 다시 증수하면서 지금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노송정의 종손 이창건 씨는 설명해준다. 노송정 현판 뒤의 옥루무괴(屋漏無愧)는 ‘혼자 있어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는 시경의 구절이면서 노송정의 정신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종손 이 씨는 “이 집안에서 한 점 부끄러운 일도 새 나갈 것이 없다”는 말로 풀이하면서 노송정가의 대를 이은 가훈이라고 말에 힘을 준다. 노송정은 후손들의 자기 수양과 면학에 중점을 두었으니 노송정 기둥에 걸린 7언율시 시판이 증명한다. 이 씨는 직접 한 자 한 귀 읽고 해석하면서, 노송정가의 엄격하고 방정한 학문과 처신이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음을 설명한다. 노송정이 후학을 위해 지었다는 권학시에는 ‘일일연거망입양’이란 구절이 나온다. “내가 오로지 바라는 바는 너희들의 입신과 양명이다”라는 뜻이니 면학과 수양에 흐트러짐 없이 단련하라는 것이다. 이 집에서 태어난 퇴계가 ‘사무사’ ‘무불경’ ‘신기독’과 ‘무자기’를 좌우명으로 삼은 것도, 공자의 가르침을 넘어 성리학을 완성하고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했던 것도 모두 선조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한다. ◆퇴계는 진성이씨의 7대손 안동이 유학의 본고장이자 온혜에 퇴계의 생가가 있고 또 종가가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진성이씨는 모두 퇴계의 후손으로 아는가 하면, 또 퇴계의 종가와 생가, 온혜 종가와 온계 종가 등을 헷갈려한다. 퇴계는 진성이씨 이석의 7대손이다. 할아버지 노송정 이계양의 3대손인 셈이고 노송정파는 진성이씨의 반 이상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니 진성이씨는 대종손이 있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다시 분파가 생겨나 지금은 줄잡아 크고 작은 100여개 파가 될 것이라고 한다. 퇴계는 진성이씨의 7대손이고 노송정의 3대손이다. 노송정은 퇴계의 조부이고 퇴계도 7형제이니 온혜리의 퇴계 태실은 퇴계의 조부 노송정의 후손인 온혜파 종택이고, 온계종택은 퇴계의 다섯째 형 온계 이해의 후손이다. 또 길 건너 토계리의 퇴계종택은 퇴계의 직계 후손이 된다. 노송정의 현재 주인 이창건 씨는 퇴계의 조부 이계양의 18대 종손이며 퇴계는 노송정의 손자 중 한 명이었다. 퇴계는 온혜리 종택 태실에서 태어났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21살에 장가를 들었고, 스물셋에 첫아들 준을 얻었으며 그해 상경해 성균관에 들어갔다. 스물 즈음에 분가했을 것이고, 그 전까지 태어난 이계양가에서 자랐을 것이다. 상경하기 전까지 실질적인 스승이었던 숙부 송재 이우와 형 온계 이해 등과 함께 인근 청량산으로 가서 공부했다고 전한다. 노송정 이계양이 지었던 종택 정침에서 퇴계의 아버지 이식과 삼촌 송재 이우가 태어났고 퇴계가 막내이니 형과 누나들이 모두 온혜 종택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퇴계가 워낙 큰 인물이어서 퇴계 태실이 되었다. 노송정가의 수많은 인재가 이곳 태실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이에 대해 종손 이창건 씨는 “퇴계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태어난 기록이 있지만, 나머지 어른들은 기록이 없다. 안방에서 태어났는지 상방에서 태어났는지 무어라고 확인할 수 없다”고 퇴계 태실의 무게를 말해준다. ◆퇴계 정신의 전승과 현대화 퇴계 태실은 퇴계의 사상적 중추가 됐던 곳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조부 이계양의 가학 이념 아래 숙부인 참판 송재 이우와 형 충청관찰사 온계 이해의 가르침 속에 학문을 닦고 도덕적 수양을 했다. 사화로 사림이 피로 물든 당시 벼슬살이에서 몇 차례나 스스로 물러나 몸을 간수했고 후진 양성으로 성리학의 연구에 몰두했으니 그 학문적 성취는 멀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이름을 드날렸다. 노송정의 가학 이념은 후대에까지 이어져 지금도 후손들은 그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리고 있다고 종손 이창건 씨는 설명한다. 노송정의 불천위 제사도 부부 합사를 하고 있으니, 9월에 지내던 정경부인 영양 김 씨의 제사는 5월 노송정 제삿날 함께 모시고 자정에 지내던 제사 시간을 초저녁으로 당겨 모시고 있다. 100명에 이르던 제관도 시절에 따라 3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진성이씨 가문에서는 퇴계의 불천위 제사도 내년부터는 합사하기로 결정했다며 시절에 따라 예절을 숭상하는 것이 선현의 가르침이라고 해석한다. 노송정이 500여년 지내오면서 수많은 곡절이 있었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송정을 지켜내는 것이 오늘날 종손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들이 노송정에서 보관 중이던 서책과 고문서들을 꺼내놓고 불을 질렀는데 이창건 씨의 조부 이범교 옹이 지켜냈다고 한다. 이 옹은 가족들 모두 피난 보내고 혼자 집을 지켜내다 빨치산을 맞았는데 총을 들이대는 위협 속에서 화상을 입어가며 문화재를 지켜냈던 일화를 이 씨는 회상하는 것조차 몸서리친다. 그렇게 지켜낸 서책과 고문서 병풍 등 문화재 2천여 점은 지금 국학진흥원에서 모두 보관하고 있다. 노송정의 18대손인 이 씨는 서울의 아들이 한 달에 한 번은 꼭 손자를 데리고 종가를 찾는다며 자랑한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 손자가 한 가문의 종손인 것을 너무 자랑스러워한다며 문화재를 지키는 것만큼 조상의 정신을 지켜내는 것이 종손의 의무라고 한다. 이경우 전 언론인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절대권력 양보하고 62세에 왕위 올라 토함산 ‘동악대신’ 되어 죽어서도 신라 보살피다

석탈해는 62세의 늦은 나이로 신라의 4대 임금으로 등극해 23년간 통치했다. 지혜가 뛰어난 것이 남해왕의 눈에 들어 공주를 아내로 얻고, 결국 왕위에까지 오르면서 석씨 집안을 왕손으로 잇게 했다. 신라 4대 석탈해왕은 용성국에서 아진포 해안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석탈해가 상륙한 지점으로 전해지는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본부 앞에 석탈해탄강기념비와 비각이 있고,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역사에 왕들이 백성들을 위해 진정으로 걱정한 내용이 더러 드러난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까지 백성들을 위한 노력을 이해하게 하는 대목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드물다. 문무왕이 죽어 용이 되어 백성과 나라를 위해 동해를 지키겠다고 전한 기록이 있고, 김유신 장군과 미추왕 또한 죽어서 나라를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석탈해왕은 죽어 동악의 신이 되어 나라를 보살폈다는 기록이 있어, 현대 정치사에도 교훈이 된다. 탄강비 일대에 월성원자력본부가 공원을 조성하고 조형물을 설치해두고 있다. 삼국유사를 통해 석탈해와 김알지의 지혜로움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현명하고, 시대의 흐름에 순응해 절대적인 권력도 양보하고 배려하는 진정한 용기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석탈해는 유언으로 얻은 왕권을 처남에게 양보했다가 늦게 왕위에 올랐다. 김알지는 석탈해왕으로부터 태자에 책봉되었지만, 결국 왕위를 사양했다. 여기에서 탈해왕의 지혜와 용기를 삼국유사를 통해 들여다본다. ◆제4대 탈해왕탈해 이사금이다. 남해왕 때였다. 가락국의 바다 가운데 어떤 배가 떠와서 정박하려 했다. 그 나라의 수로왕과 신하들이 북을 두드리며 맞이하고 머물게 하고자 하는데, 배는 도리어 달아나버렸다. 석탈해가 접안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진포 해변은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설립되어 있고, 낚시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계림의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에 이르렀다. 마침 포구에 ‘아진의선’이라는 노파가 살았는데 혁거세왕의 고기잡이 할멈이었다. 노파는 배를 바라보면서 “이 바다에 바위가 없었거늘 웬 까닭으로 까치가 모여 우는가”라며 날랜 배를 보내 살펴보게 했다. 까치는 한 배 위에 모여 있었다. 배 안에 궤짝 하나가 실렸는데 길이가 20자요 너비가 13자였다. 그 배를 끌어다 수풀 한 귀퉁이에 두었지만, 그것이 좋은 징조인지 아닌지를 몰랐다. 하늘을 향해 맹세를 하자 곧 열렸다. 그 안에 단정하게 생긴 사내아이와 일곱가지 보물, 그리고 노비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삼국유사 기행단이 석탈해탄강비를 탐방하며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7일 동안 보살펴주었더니 “우리는 본디 용성국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찍이 28용이 사람으로 태어나 5~6세부터 왕위에 이어 올라, 만백성들이 성명을 바르게 닦도록 하였습니다. 여덟 단계의 성골이 있었는데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 왕위에 오를 수 있었지요. 마침 우리 아버지 임금 함달바가 적녀국 왕의 딸에게 장가들어 왕비로 삼았으나, 자리를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자식을 얻고자 기도드리기 7년 뒤 큰 알 하나를 낳았지요. 이에 왕께서 여러 신하를 모아 의논한 결과, 사람이면서 알을 낳는 것은 예전에 없던 일이라 상서롭지 못하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궤짝을 만들어 나를 비롯한 일곱가지 보물, 그리고 노비들을 넣고 배에 실어 바다로 띄우면서 ‘인연이 닿는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집안을 일으켜라’고 빌었습니다. 문득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지켜주어 이곳에 이르렀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말을 마치자 그 아이는 지팡이를 잡고 노비 둘을 이끌고 토함산 위로 올라가 돌무덤을 쌓고 7일 동안 머물렀다. 성 안에서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한 봉우리를 보니 마치 초승달과 같아 오래 머물만한 형세였는데 내려가 살펴보니 호공의 집이었다. 간사스럽지만 꾀를 내기로 하였다. 집 곁에다 숫돌과 숯을 몰래 묻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집에 가 짐짓 꾸짖는 투로 말했다. “이곳은 우리 선조 때 집이오.” 호공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말다툼이 일었으나 해결을 보지 못하자 관아에 아뢰었다. 관리가 물었다. “무엇으로 네 집임을 증명하겠느냐?” “우리 집이 본디 대장간을 했는데 잠시 다른 지방에 가 있는 사이 남이 들어와 산 것입니다. 땅을 파서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따라 해보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다. 탈해는 이 집을 차지해 살게 되었다. 그때 남해왕은 탈해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큰 공주를 아내로 삼게 했는데 이 사람이 ‘아니부인’이다. 신라 천 년 궁성 터 월성에는 석탈해 왕을 추도하는 숭신전이 있었다. 지금은 동천동으로 옮겨 세우고, 팔각기둥이 남아 있다. 탈해가 동악에 올라 돌아볼 때였다. 하인에게 마실 물을 찾아보게 했다. 하인은 물을 길어오던 길에 먼저 입맛을 보고 바치려 하자, 그 물 잔이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를 보고 꾸짖자 하인은 “이제부터는 멀건 가깝건 감히 먼저 입맛을 보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 그러자 입이 떨어졌다. 이때부터 하인은 완연히 복종하고 감히 속이려 하지 않았다. 지금 동악에 우물 하나가 있어, 흔히 ‘요내정’이라 부르는데 바로 그곳이다. 노례왕이 죽은 광무제 중원 6년 정사년(67) 6월에 왕위에 올랐다. 석(昔), 곧 옛날 이곳이 내 집이라 하여 남의 집을 제 것으로 만들었기에 성을 석 씨로 했다. 어떤 이는 이렇게도 말한다. “작(鵲), 곧 까치가 울어 궤짝을 열었으므로 조(鳥)자를 떼어내고 성을 석 씨로 하고, 궤짝을 해(解) 곧 열어, 알을 탈(脫) 곧 꺼내어 태어났으므로 이름을 ‘탈해’라 했다.” 23년간 왕위에 있다가 건초 4년 기묘년(79)에 죽어 소천의 언덕바지에 장사지냈다. 뒤에 신령으로 나타나 “내 뼈를 매장하지 말라”고 하므로 열어보았더니, 해골의 둘레가 석 자 두 치요, 신장이 아홉자 일곱치였으며, 이가 엉겨 하나인 것처럼 가지런하였다. 석탈해왕 사후에 그의 시신을 동악에 묻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악은 토함산으로 삼국유사 기행단이 토함산에서 흔적을 찾고 있다. 뼈 마디마디가 이어져 있었으니 천하무적의 힘센 장사의 뼈라 할 만했다. 부수어 소상을 만들고 대궐 안에 봉안했다. 신령이 다시 나타나 “내 뼈를 동악에 안치하라”고 하여 그곳에 모셨다. ◆흔적: 탈해왕릉, 숭신전, 탄강비석탈해왕의 흔적은 그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것들만 전한다. ‘동악’이라 부르는 토함산에 있었다던 우물과 장사지낸 흔적은 없다. 그가 처음 탄강한 아진포 인근, 지금 양남면 나아리 해변의 탄강비, 죽음 이후에 조성된 왕릉, 그를 추모하는 사당 숭신전 등이 있다. 석탈해 탄강 내역을 소개한 글이 기록된 석탈해탄강비. ◆탄강비: 석탈해왕탄강비는 경주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옆에 있다. 주변은 월성원전이 넓게 공원으로 조성했다. 탄강유허는 경북도 기념물 제79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곳을 삼국사기는 ‘진한 아진포구’라 하고, 삼국유사는 ‘계림동하서지촌 아진포’라 기록하고 있다. 하서리 마을은 탄강비 남쪽에 있다. 조선 헌종 때 석탈해탄강비를 설립하고 하마비를 세웠다. 유허비는 용머리의 좌대나 이수는 없지만, 조선 헌종 11년 1845년에 비석과 비각을 세워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자락 남쪽에 송림이 조성되어 있고, 석탈해왕릉으로 전하는 고분이 있다. ◆탈해왕릉: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남쪽 자락 송림에 높이 4.5m, 넓이 15.5m 규모의 탈해왕릉으로 전하는 능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성북의 양정 언덕에 장사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삼국유사에는 수장했다가 소상을 만들어 동악에 모셔 ‘동악대신’이라 전한다. 왕릉 앞에는 탈해왕이 탄생한 경위와 62세에 왕위에 올라 23년간 제위에 있었다는 것, 동악신이 된 내용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숭신전: 신라 4대왕 석탈해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표암 남쪽에 사당을 지었다. 이 사당은 1898년 권상문 군수의 제안으로 후손 석필복이 월성 안에 지었다. 1906년에 ‘숭신전’이라는 편액을 받았다. 월성 안에 있던 사당을 198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지금도 처음 숭신전이 있었던 월성에는 돌로 만든 팔각형 기둥 두 개가 남아 있다. 숭신전 남쪽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영녕문과 경엄문을 지나면 3칸 맞배집으로 건축된 숭신전이 나온다. 영녕문을 열고 들어서면 상의재와 상인재가 전통한옥의 형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숭신전의 홍살문과 영녕문 사이에 건립된 석탈해왕비명 비각. 홍살문과 영녕문 사이에 1921년에 세운 ‘신라석탈해왕비명’ 비와 비각이 단아하게 세워져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탈해왕의 지혜탈해는 신라와는 뱃길로 수천 리나 떨어진 용성국의 사람이다. 그는 용성국의 여덟 번째 왕자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신체가 특별하게 발달했다. 특히 배움이 빠르고 무술습득 또한 뛰어났다. 결국 위협을 느낀 형들의 모함으로 축출되었다. 다행히 그를 아끼던 대신들이 무기와 식량, 보배들을 큰 배에 가득 실어 호위 병사들과 함께 보냈다. 탈해는 오랜 세월 항해로 지쳤다. 처음 반도에 이른 곳이 가락국이다. 화살과 화공을 피해 신라 아진포로 접안하는데 겨우 성공했지만, 모두 탈진해 실신한 상태였다. 마침 혁거세의 주치의를 담당했던 아진의선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탈해의 신체와 병사들이 가진 세련되게 다듬어진 무기들을 보고는 이들을 호위 병사로 양성하겠다는 욕심으로 치료했다. 아진의선의 탁월한 치료에 의해 탈해는 7일 만에 깨어났다. 원래 잔꾀가 많은 탈해는 깨어나면서 아진의선의 눈에 들기 위해 발톱을 감추고 순한 양처럼 행동해 결국 해안방위를 책임지는 장군으로 임명받게 됐다. 탈해는 세력을 키우면서 해안보다 비옥한 토지가 있는 서라벌로의 진출을 호시탐탐 노렸다. 토함산에 올라 자신의 세력을 넓혀나갈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지세를 부지런히 살폈다. 그러다 수비와 공격에 유리한, 호공의 땅이었던 월성을 잔꾀로 빼앗았다. 당시 신라 2대 남해왕은 탈해의 지혜와 무력, 지도력 등에 반하여 사위로 삼고, 왕위를 이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탈해는 그때까지 자신의 세력이 미약해 정권을 안정적으로 펼쳐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간파하고, 남해왕의 아들이자 처남인 노례왕이 왕권을 잇도록 양보하고 고위직을 택했다. 남해왕 때부터 탈해는 주요 관직에 있으면서 국정을 보살피는 한편, 부지런히 세를 불렸다. 남해왕의 아들 노례왕이 34년간의 재위 기간을 마치고 탈해는 62세에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석탈해 왕릉 남쪽에 숭신전이 있다. 홍살문, 영녕문, 경엄문을 지나야 숭신전이 나온다. 그러나 그때까지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는데 부족함을 느끼고 탈해는 지략과 무술에 뛰어난 김알지를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포섭해 태자로 책봉했다. 그렇지만 김알지 또한 정세에 밝아 덥석 왕위에 오르지 않고, 노례왕의 아들이 왕위를 잇게 하고는,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데 내실을 다졌다. 동악산신이 되었다는 석탈해의 흔적을 찾는 삼국유사 기행단의 토함산 산행. 석탈해와 김알지의 지혜로운 배려와 감각적이고 세심한 주의가 신라를 박, 석, 김의 시대로 이어가는 기틀을 마련하는 초석이 되었다. 현시대 정치인들이 표상으로 삼을 만하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한민국 삼켜버린 미세먼지 IT기술로 푸른하늘 되찾을까

‘무풍’을 모티브로 한 공기청정기와 직수형 정수기 , 마스크 등 미세먼지 공포로 소비자들에게 ‘안위’를 표방한 제품군이 기하급수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대구 동구청은 지난 2월25일 KT와 협약해 생활체감형 미세먼지 측정 및 알림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실시간 미세먼지 상태를 측정하는 미세먼지 신호등과 ‘미세먼지 발생 시 행동수칙 안내판’을 설치해 누구나 쉽게 확인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정부는 최근 미세먼지의 농도가 극심할 경우 국가 또는 공공기관 내 발주 공사를 일시 중단한다는 강경책을 제시하고 나섰다.미세먼지가 비가시적이다 보니 공기 중 떠다니는 입자를 인식할 수 없다. 사람의 호흡기관 곳곳을 침투, 혈관을 통해 체내 이곳저곳에 쌓이게 된다.‘무풍’을 모티브로 한 공기청정기와 직수형 정수기 , 마스크 등 미세먼지 공포로 소비자들에게 ‘안위’를 표방한 제품군이 기하급수적으로 등장하고 있다.국내 통신사들은 전국 각지에 분포된 공기 질 측정 결과를 빅데이터화한 후 미세먼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플랫폼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한사미’라는 신조어가 시중에 나돌고 있다. 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로 뒤덮었다는 웃지 못할 촌극.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춘이 그저 달갑지만은 않다. 입춘대길이란 성어가 그저 무색할 지경이다.‘봄의 재난’으로 점철되는 미세먼지. 특히 3·4월은 중국 북동지역으로부터 발발한 황사 유입이 가장 빈번한 시기다. 황사뿐 만이 아니다. 봄바람을 타고 날아든 각종 먼지와 꽃가루 등으로 인해 미세먼지의 농도는 켜켜이 쌓여간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세먼지의 농도를 체크하는 일은 신변잡기적 일상이 된지 오래다. 미세먼지 저감 대책이란 범 국가차원의 어젠더로 설정되기에 이르렀다.미세먼지 유입은 유통시장의 의도치 않은 변혁을 가져다 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유통업계 차원으로의 수목 가꾸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세먼지 절감이라는 캐치 프레이즈와 ‘그린기업’이라는 이미지 제고에 나선 형국이다.범국가적 차원의 미세먼지 대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정부는 최근 심각 수준의 미세먼지 발현을 두고, 미세먼지의 농도가 극심할 경우 국가 또는 공공기관 내 발주 공사를 일시 중단한다는 강경책을 제시하고 나섰다. 공사 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 비용 부담은 미세먼지를 자연재해로 규정, 부과하지 않겠다는 복안이다.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는 미세먼지와도 그 궤를 함께한다. 소비자의 니즈가 옮겨간 만큼 이에 따른 IT산업도 한껏 미세먼지와 오버랩된 모양새다. 각 통신사는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통해 미세먼지를 예보하는 솔루션 경쟁에 열을 올리고, 대형 가전업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미세먼지 저감의 핵심이라고 일컬어지는 ‘필터’기술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고 나섰다.한 가지 다행스런 사실은 미세먼지는 여타 자연재해와 달리 확실한 저감 방안이 있다. 아울러 대비 가능한 대책 마련도 지진, 해일 등의 거스를 수 없는 자연 폐해보다 더욱 명확하며 더불어 가시적이다. 여기에 IT의 조력을 받는 것, 바로 이번 연재의 방점이다. ◆폐 질환에 독, ‘미세먼지’‘지피지기’면 승리한다고 했다. 미세먼지의 각종 대책 이전으로 미세먼지의 명확한 정의와 그 원인부터 되짚어 볼 필요성이 있다.미세먼지의 가이드라인은 1987년을 기준으로 한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는 미세먼지의 가이드라인을 PM2.5로 잡았다. 아울러 2013년에는 미세먼지를 1군 발암물질로 공시(국제암연구소 기준)하기에 이르렀다.미세먼지의 기준은 입자의 크기로 나뉜다. 일반적인 미세먼지의 크기는 PM2.5로 정의하는데 사람의 모발 기준으로 PM2.5는 30분의 1에 그칠 정도로 매우 작은 크기다.미세먼지의 리스크는 이처럼 작은 크기서 비롯된다. 비가시적이다 보니 공기 중 떠다니는 입자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호흡 간 미세먼지는 사람의 호흡기관 곳곳을 침투, 혈관을 통해 체내 이곳저곳에 쌓이게 마련이다. 폐 관련 질환이 대표적 폐해로 알려진다.그렇다면 미세먼지의 원인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환경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발생의 근원을 크게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 사항으로 구별한다. 자연적 사안은 우리가 흔히 접해 온 모래먼지와 꽃가루 등이다. 인위적인 것으로는 공장매연, 자동차 배기가스,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가루먼지 등이 속한다.미세먼지의 영향은 건설시장의 수요마저 바꿔놓았다.건설현장 간 미세먼지의 발발원인은 부지기수이지만 그중 시멘트 날림 정도에 따른 각종 오염물질이 미세먼지 발발의 한몫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현장 곳곳에서는 일반 시멘트가 아닌, 장기강도가 높고, 수화열이 낮으며 저항성·내해수성·방수성이 우수한 ‘슬래그시멘트’가 각광을 받고 있다.이 시멘트는 온실가스 배출계수가 기존 시멘트 대비 현격히 낮을 뿐 아니라, 과거 폐기물로 분류됐던 슬레그를 재활용한다는 차원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실제 수치상으로 슬래그 시멘트의 온실가스 배출계수는 0.208CO2·ton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일반 시멘트의 20% 수준이다.이 밖에도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또 다른 일환으로 인식되고 있는 ‘광 촉매제’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광 촉매제 관련 특허의 90% 정도는 일본이 보유하고 있다.광 촉매제는 질소산화물을 분해하는 원리로 이뤄진다. 건물 외벽에 분사, 코팅하는 방식을 적용, 분사된 광 촉매제가 빛을 만나 공기정화의 효과와 함께 항균, 탈취의 기능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우리나라에서도 광 촉매제를 활용한 도로 코팅 작업이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서 뿜어져 나오는 질소산화물, 이는 미세먼지 촉발의 대표적 유해 물질로 분류된다. 이를 타개하고자 각 지자체는 광 촉매제 도입을 위한 관련 기술을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있다. ◆IT를 활용한 대책 마련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란 극심한 이항대립 구조를 낳았다. 인간 편의를 위한 불가피한 수용과 잉여인간 양산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점철, 근래까지도 4차 산업에 관한 설왕설래는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하지만 인력으로는 미처 해결점이 잡히지 않을 미세먼지의 범람은 IT의 능동적 수용을 간절히 바라마지 않고 있다. 실제 황사의 근원지로 일컬어지는 중국은 정부차원의 태스크포스를 가동, 각종 AI 기술을 접목한 미세먼지 관련 대책 마련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대지로 심벌화된 중국의 토지를 약 500㎡ 단위로 분류, 분류된 토지상 미세먼지의 발원지를 추적 후 상쇄시킨다는 복안이 바로 그 것.2013년부터 이뤄진 이 대책은 3차원 입체영상을 통해 미세먼지의 농도를 측정하고, 각종 인포메이션을 발동, 이를 통해 모인 미세먼지 데이터를 ‘빅데이터화’시켜 약 일주일 후 미세먼지의 경로 및 농도까지 파악·대비책을 사전에 강구한다는 것이다.우리나라 역시도 미세먼지에 관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유수의 통신사들은 전국 각지에 분포된 공기 질 측정 결과를 빅데이터화 한 후, 미세먼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플랫폼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단순 메시지 전달을 넘어 방송매체를 활용한 영상 서비스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더 많이’, ‘더 신속히’의 아이덴티티를 내제한 5G 기술 역시 미세먼지 절감의 혁혁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G 기술의 범주가 넓어짐에 따라 스마트폰을 이용, 외출자에게 ‘미세먼지 청정 보행로’ 등을 안내함으로써 미세먼지로부터의 안전한 외출 길을 제공한다.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창호 손잡이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A사의 창호 손잡이는 IoT 기술을 접목, 손잡이에 내장된 디스플레이가 미세먼지뿐 아니라, 실내공기와 날씨 예보까지 제공한다. 특히 실외뿐 아니라 실내에서도 공기 질 하락으로 환기를 요할 시 공기청정기의 가동 요청까지 상세 표시, 거주자에게 경보한다.패션업계도 미세먼지 절감을 위한 IT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다. 단순 방진 의류 원단을 넘어 ‘미세먼지 대응형’을 캐치프레이즈화한 ‘스마트웨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의류 내 장착된 모듈이 미세먼지 상황을 알려주는가 하면 미세먼지에 관한 대처 가이드까지 연결된 스마트 기기를 통해 소비자에게 안내한다.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짐에 따라 아파트 시장에서도 ‘그린’의 이름을 딴 청정 아파트가 대세다. 여기에도 AI 기술은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아파트 내부 각 지정된 장소에 장착된 측정센서를 통해 내·외부 공기 질 수준을 감지, 데이터화한 후 세대별 환기 시스템과의 연동을 통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한다는 모토다.미세먼지가 맹위를 떨친 2019년 봄, 미세먼지 관련 정부 예산은 약 90억 원에 달한다. 정부의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민·관을 아울러야 할 때다. ◆미세먼지로 수명이 줄어든다미세먼지로 인해 평균수명이 약 2년 이상 줄어들었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발표됐다. 일각에서는 담배 이상으로 미세먼지의 유해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실제 WHO 추산, 미세먼지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2015년 기준 약 900만 명에 이른다. 연간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약 800만 명)보다 월등한 수치다.미세먼지로 인한 경제적 압박 역시 만만찮다. 대한민국 유수의 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미세먼지 발발 시 일일 손해비용은 약 1천6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한 날이 25일 이상이었음을 감안해 볼 때 그 경제적 손실은 약 4조500억 원에 육박하는 셈이다.미세먼지와 AI의 만남은 단순 편의나 일자리 창출 등의 영역이 아니다. 바로 ‘생존’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 미세먼지로 인한 불편사항을 넘어 경제생활의 심각한 제약, 더 나아가 건강상의 심각한 피해를 초래함은 자명한 이치다.저공해차 보급과 배기가스의 기준치 규제, 작지만 절대 작을 리 없는 대중교통 이용과 쓰레기 줄이기, 적정 온도 유지 등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발전설비 확충 등도 수반돼야 한다. 무엇보다 각 산업시설 간 업체차원으로의 자발적 배기가스 규제는 절실히 요구되는 주요 사항 중 하나다. 원론적이긴 하나 분명 기초가 되는 미세먼지 대응의 기본 매뉴얼이다.벚꽃의 낙화 시기가 다가왔다. 개화의 아름다움이 꺾이기 전 마음 편히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조성이 간절한 오늘, 그리고 내일이 됐으면 한다.글·사진 군월드 IT사업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우리동네 자랑거리-문경시(상)

문경시 행정경계문경시는 문희경서(聞喜慶瑞)의 고장이다. 문희는 옛 지명이고, 경서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이다. 조선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선생이 1945년 8월14일, 해방 전날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기 위해 제자들과 문경을 찾았다는 일화가 있다. 문경시는 1995년, 문경군과 점촌시가 합쳐진 도농복합도시다. 문경시의 시내동 구역은 과거 점촌시의 행정구역이고, 점촌을 중심으로 도심을 형성한다.문경시의 행정 구역은 2읍, 7면, 5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탄 도시로 이름이 높았던 문경은 석탄산업 사양화로 발전에 다소 정체되었다. 하지만 과거 광부들이 탄을 캐던 탄광이 석탄박물관으로 변신했고, 본래의 기능을 잃은 철로도 철로 자전거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듯이 문경은 관광활성화 등으로 인해 화려하게 변신에 성공했다. 문경의 자랑거리가 가장 많은 고장이다. 그런 만큼 발길이 닿는 곳마다 눈길이 가는 곳마다 천혜 관광자원이 펼쳐져 있다.생태자원을 물론 국보 2점, 보물 5점, 지방유형문화재 4점, 사적 1점, 사찰 19개소 등 우수한 역사·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문경새재 1.문경새재조선시대에는 역사와 문화의 소통로(疏通路)였다. 제1관문인 주흘관에서 제3관문인 조령관까지 6.5㎞가 마사토 황톳길이다. 옛날 괴나리봇짐을 지고 새재를 넘던 선비의 심정으로 맨발로 흙길을 걸으면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덤이다.임진왜란 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은 3개의 관문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됐다. 옛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넘나들던 장원급제길, 책바위 등 선현들의 발자취도 뚜렷이 남아 있다. 문경도자기박물관∙홍보판매장 2. 문경도자기박물관∙홍보판매장조선 초 분청사기와 백자 도요지가 많이 분포된 문경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과 도예 부문 ‘명장’이 2명이나 있어 도자기의 역사성과 정통성이 숨 쉬고 있다. 아직 옛 도공의 혼이 남겨져 있으며, 문경새재 가는 길에 위치한 문경도자기박물관과 홍보판매장은 문경전통 도자기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전통 장작 가마만을 사용하여 생산한 다양한 도자기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문경찻사발축제 3. 문경찻사발축제‘2019 문경찻사발축제’는 이번 달 27일부터 5월5일까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쉬고, 담고, 거닐다’란 주제로 열린다. 올해 21년째 접어드는 문경찻사발축제는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대표축제로 지정받는 등 대한민국 전통을 대표하는 축제로 매김 했다. 전통방식의 도자기를 고수하는 사기장과 망댕이가마, 차와 찻사발을 테마로 한 다채로운 체험 행사로 매년 2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축제다. 고모산성토끼비리 4. 고모산성영남대로 옛길은 고모산성과 토끼비리(토끼벼루의 사투리)를 중심축으로 진남교반 위의 절벽을 넘어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의 소원과 집념이 느껴지는 관광지다. 고모산성은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에 있는 포곡식 산성으로, 본성(1천256m), 익성(390m)을 합해 총 1천646m에 달한다. 축조연대는 156년 이후, 2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박열기념관5. 박열의사기념관‘최악의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사람이라는 뜻)’ 으로 불리며 일본의 한국 강점에 항거한 박열(1902~1974) 의사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문경시와 박열의사기념사업회는 2012년 박열의사 생가터에 박열의사기념공원 및 기념관을 건립했다.기념관에는 박열 의사의 출생과 일대기, 유품과 사료를 전시해 평생의 동지이자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철로자전거 6. 철로자전거전국에서 철로자전가 가장 먼저 등장한 곳이 문경이다. 석탄 산업이 발전했던 1950년대, 매일 수백 t의 석탄을 실은 열차가 검은 탄가루를 날리며 오가던 가은선이 폐선된 후, 쓸쓸하게 남겨진 문경의 철로 위에 레일바이크가 오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철로자전거가 등장했다.경북 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강과 터널 구간은 철로자전거를 달리는 내내 자연과 함께 하는 문경을 만날 수 있다. 오미자터널 7. 문경 오미자 테마 터널진남교반과 고모산성 인근 석현 터널은 1954년 건설돼 산업화 초기에 점촌과 문경 사이 석탄을 실어 운행했던 문경선 내 터널이다. 장시간 방치된 이 터널을 리모델링하여 540m 최장 길이의 오미자 테마 터널로 재탄생시켰다.입구에 들어서면 오미자를 테마로 LED를 활용한 조명이 어둠 속에 반짝인다. 테마 터널에는 오미자 와인 바와 카페가 자리해 새콤달콤한 오미자를 맛볼 수 있다. 문경에코랄라 8. 문경에코랄라2018년 9월22일 개관한 에코랄라는 국내 최초 ‘문화생태영상테마파크’다. 주요 시설은 기존 석탄박물관에다 가은오픈세트장, 모노레일과 더불어 ‘에코타운’과 야외체험시설인 ‘자이언트 포레스트’가 있다. ‘에코타운’에는 백두대간의 생태와 영상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영상제작 체험을 할 수 있디다.‘에코스튜디오’에서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필요한 기획, 촬영, 편집 등의 모든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최종 영상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봉암사 9. 봉암사조계종 특별수도 선원인 문경의 희양산 봉암사는 아름다운 희양산을 배경으로 백운대계곡이 봉암사 주변에 있다.통일신라 말 불교 선종계를 대표하는 9개 종파인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 봉암사는 1947년 성철, 청담, 자운, 월산 스님 등을 중심으로 한 봉암결사가 진행된 곳으로 유명하다.경내에는 극락전(보물 1574호)과 일주문(경북문화재자료 591호), 지증대사탑비(국보 315호), 지증대사탑(보물 137호), 삼층석탑(보물 169호)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운강 10. 운강이강년기념관운강기념관은 대한제국시대 구국의 일념으로 의병을 일으켜 빛나는 승리를 거둔 도창의대장 운강 이강년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2년 4월에 개관했다.선생의 숭고한 위업을 재조명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애국애족의 국민정신을 고취하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물전시관에서는 선생의 의병활동 연보와 교지, 간찰, 만사 및 관련 유품이 전시돼 있으며, 사당에는 영정이 있다. 쌍용계곡12. 쌍용계곡문경시 도장산(828m) 자락을 흐르는 계곡으로 약 4㎞에 걸쳐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져 있다. 상주시 화북면을 연결하는 쌍용터널이 있어 바로 근처로 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나, 도장산의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인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옥계수는 심산유곡에 들어온 듯한 비경을 연출한다.청룡과 황룡이 살던 곳이라 하여 쌍룡계곡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문경시에서도 한참을 가 농암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그 어느 곳보다 문명에 오염이 되지 않아 맑고 깨끗함을 간직하고 있다.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으면 위험…임산부들 조심하세요

평소 가벼운 변비가 있던 50세 남성은 요즘 음주한 다음 날 선홍색 혈변을 자주 보게 됐다.그러던 중 변을 볼 때 항문에 덩어리가 만져지고 최근에는 항문 밖으로 빠진 덩어리가 잘 들어가지 않고 거의 배변 때마다 항문이 아프거나 출혈이 동반됐다. 대장항문외과의 검사 결과 치질이었다.◆치질이란 항문에 생기는 모든 질환을 의미하며 치핵, 치루, 치열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하지만 이중 발병 빈도가 가장 많은 치핵을 대변하는 말로 치질이 오래전부터 쓰이면서 일반적으로 치질이라 하면 곧 치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됐다.항문 안의 혈관조직을 포함하는 점막 및 점막 하 조직이 평소 배변 시 괄약근을 보호하는 쿠션 역할을 하게 되는데 딱딱한 변과 과도한 압력 등에 의해 이 혈관조직의 울혈이 생기고 크기가 커지며 주변 항문관과의 지지력이 약화해 덩어리를 형성하거나 항문 밖으로 밀려 내려오는 질환을 치핵이라고 한다. ◆원인치핵은 뱃속의 복압이 증가해 항문으로 내려간 혈류가 돌아오지 못하면서 혈관 내 피가 저류되거나, 배변 시 지나친 힘주기로 항문 점막의 하강을 유발하는 경우 발생한다.변비가 있어서 화장실에서 오랜 시간 무리하게 힘을 줘 배변하는 습관이 치질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변비와 과도한 힘 주기가 치핵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임산부이다. 임신 중에는 변비에 걸리기 쉽고 혈액 양도 많아져서 치핵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출산 시에도 오랜 시간 힘주기를 하면서 치핵이 악화되는 때가 많다.또 알코올 역시 혈관을 확장하면서 치핵 조직의 울혈을 유발해 과음 후 출혈 등의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를 많이 겪는다.◆증상치핵은 항문 안쪽에 생겨서 밖에서는 확인하기 힘든 내치핵과 항문 바깥쪽에 생겨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외치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종류와 상관없이 먼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선홍색의 항문 출혈이다. 내치핵의 경우에는 통증 없이 항문 출혈만 있다가 점차 크기가 커지면서 항문 밖으로 덩어리가 탈출하는 증상이 대표적이다.외치핵은 간혹 피부밑 혈관이 터지면서 혈전이 생기는 혈전성 치핵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심한 통증을 일으킨다.또 외치핵은 만성화되면 항문 연에 늘어진 피부로 췌피가 남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항문 가려움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진단과 치료방법치핵의 진단은 문진과 항문 수지 검사를 통해 항문 상태를, 항문경 검사를 시행해 실제 항문 질환을 확인할 수 있다.하지만 항문 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대장암, 염증성 장 질환 같은 다른 질환 여부를 검사하고자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한다. 또 농양, 치루 등을 확인하고자 초음파 검사 등이 필요할 수도 있다.실제 치핵 질환 대부분은 내치핵이며 외치핵은 급성기에 혈전에 의한 통증을 제외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로 내치핵을 기준으로 질환의 정도를 분류한다. 내치핵은 정도에 따라 1도에서 4도로 분류할 수 있다.-1도: 출혈로 치핵이 진단됐으나 탈출이 없는 상태.2도: 변 볼 때 탈출하나 곧 다시 들어가는 상태.3도: 변 볼 때 탈출해 배변 후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가는 상태.4도: 변 볼 때 탈출한 것이 들어가지 않거나 금방 다시 나오는 상태.일반적으로 배변이 끝나면 들어가는 수준인 1·2도는 온수 좌욕, 연화제 사용이나 식이요법, 생활 습관 개선 같은 비수술적 요법으로도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하지만 3·4도에서는 전문의와 상담 후 수술적 치료를 권한다.수술적 치료는 치핵 절제술이라 불리고 수술로 만들어진 치핵 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정확한 치핵 빈도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크고 작은 치핵을 지닌 채 살아가며 한 번쯤 항문 출혈을 경험할 수 있다.출혈이 있을 때는 온수를 이용한 좌욕을 자주 하면 도움이 된다.온수 좌욕을 하면 항문괄약근을 이완시켜 통증을 줄여주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상처 치유에도 도움이 되고 깨끗이 세척되는 효과를 본다.좌욕하는 방법은 쪼그려 앉지 말고 편한 자세로 3~5분간 미지근한 물로 엉덩이를 담그는 것.너무 뜨거운 물로 하는 것은 화상의 위험이 있어서 피하는 것이 좋고 따로 소독약이나 소금 등을 첨가해서 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변비로 인해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거나 과도한 힘을 주는 것을 삼가야 하는데 최근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면서 화장실에 가지고 들어가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좋지 않은 습관이다.또 과음을 피하고 과일, 채소 같은 식이섬유를 충분히 먹고, 평소 물을 많이 마셔서 변을 딱딱하게 보지 않도록 하자.차가운 야외에 오래 앉아 있거나 쪼그리고 앉는 것을 피하고 오래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수시로 일어나서 움직여야 도움이 된다.치핵에 걸렸다면 무조건 수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하지만 생활 습관의 개선 및 약물요법으로 치료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고 심지어 3도 이상의 치핵에서도 보존적 요법에 어느 정도 호전되므로 전문의와 상의해 수술 여부와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도움말=대구가톨릭대병원 대장항문외과 양춘석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부동산 유일한 예측 수단은 빅데이터?

빅데이터의 전망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장밋빛이다. 세계 유수의 시장조사 업체는 빅데이터의 연평균 성장률을 30%대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2020년 시장 규모를 약 250조 원으로 예측했다.빅데이터의 또 다른 정체성은 바로 ‘분석’이다.주택 매매 시 관리비, 문화 및 편의시설, 교통 등 빅데이터 항목을 면밀히 분석해 소비자는 어렵지 않게 최상의 주거 입지를 선택할 수 있다.부동산 빅데이터는 주택 관련 단순 정보제공과 현 시세정보를 뛰어넘어 지역별 주택 가격 예측과 각종 금융 계산 등 영역에까지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부동산의 가장 큰 자산은 경험, 곧 데이터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시세 차, 역·학세권 정보부터 인구분포, 유동인구 등 사항을 면밀히 분석해 소비자 니즈에 맞는 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부동산과 빅데이터의 융합은 고무적인 행보를 보인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가 집 주소와 전용면적, 공시가격 등을 입력하며 최저 수준의 법무사 비용을 알려준다. 한 숨 돌린 모양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강화가 일정부분 먹혀 들어가는 형국이다. 아쉬운 대목은 경기지수는 여전히 불황의 늪을 면치 못하고 있다. 버블(거품)이 빠진 대신 경기 불황으로 인한 ‘하향 안정세’가 고착화돼가는 실정.우리나라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냉각화는 전 세계적 추세로 점철된다.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주택시장의 둔화폭이 눈에 띄게 가파르다는 통계가 언론을 통해 이미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전년 대비 1.2%의 하락폭. 이는 2015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택시장의 냉각화에 조소를 날리기라도 하듯 미국의 대출 금리는 최근 8년 새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계부채의 리스크를 담뿍 떠안게 된 모양새다.이 같은 침체 상황에서도 지방의 집값은 견고하다. 수도권의 부동산 침체로 주택자금은 자연스레 지방으로 옮겨갔다. 서울에 비해 규제가 크지 않고 가감폭도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방증인데 여기에 기인, 안전한 시세차익을 지방으로부터 기대한다는 심리가 십분 작용하고 있다.모든 산업군에서 100%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어떠한 분야의 타고난 전문가라 할지라도 ‘단언’은 자제한다. ‘예측’이라 하고 그에 따른 ‘전망치’를 내놓는다. 특히나 절대적 확률이 없는 부동산 시장에서의 선견지명은 바로 ‘경험의 축적’이다. 이전 정부의 궤적과 그에 따른 버블 견제, 동향 파악, 연도별로 행해지는 주택·인구 조사, 인프라 체크 등 각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제서야 신중에 마지않는 의견을 피력한다.경험은 곧 데이터로 이어진다. 지내온 궤적을 오롯이 담은 하나의 역사인 셈이다. 그 데이터가 4차 산업혁명을 만나 더 크고, 더욱 많은 용량을 담아내는 ‘빅데이터’로 업그레이드 돼 가는 과정, 이번 연재의 방점이다.빅데이터를 활용한 치밀한 시뮬레이션을 전개한다. 경기회전의 폭과 소비자 기대 지수, 기계 건설 수주액, 종합주가지수, 금융기관 유동성, 장단기 금리 차 등 선행지수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 역시도 수많은 경험치가 쌓인 빅데이터의 산출물이다.부동산과 빅데이터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초연결적’ 명분을 이번 연재를 통해 더불어 공감해 볼 필요성이 있다. ◆부동산과 빅데이터, 왜 하나로 보나부동산 플랫폼이 대세다. 4차 산업혁명의 아류라고 하기엔 그 물길이 거세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부동산의 가장 큰 자산은 경험, 곧 데이터다.국내 유수의 매매 플랫폼에서는 부동산과 빅데이터의 초연결을 공고히 해가고 있다. 수년 간 축적된 플랫폼 이용자들을 분석, 그들의 매매패턴과 서치 경로, 이전 실거래가 등을 빅데이터화해 이용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국단위의 시세 차, 주거의 최고 메리트로 일컬어지는 역·학세권 정보부터 인구분포, 유동인구 등의 사항을 면밀히 분석, 소비자 니즈에 맞는 금액설정과 그에 따른 최선 또는 차선의 주거확보에 브릿지 역할을 한다.주거 매매에도 ‘간소화’ 바람이 불고 있다. 더 이상 부동산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발품을 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이 역시 빅데이터의 활용에 기인한다. 이른바 ‘개인 맞춤형’ 서비스인데, 소비자가 원하는 지역과 주거요건 등을 그간 플랫폼서 구축된 알고리즘을 활용, 금액과 주거형태를 빅데이터화된 정보로 추출한 후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형태다.과거 비슷한 조건과 금액을 제시해오던 여타 소비자들의 선택 사양 등을 다양화해 취사선택을 더욱 용이하게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빅데이터를 통해 매일, 매주, 매월 업데이트화된 각 지역별 주택동향과 시세 등을 플랫폼 소비자들에게 오픈함으로써 합리적인 주택 매매의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빅데이터의 또 다른 정체성은 바로 ‘분석’이다. 분석의 명분은 객관적 기준 제시에 있다. 주택 매매 시 관리비, 문화 및 편의시설, 교통 등의 빅데이터 항목을 면밀히 분석, 소비자는 어렵지 않게 주거 선택 간 최상의 입지 항목을 비교·분석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진다.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전국의 아파트 시세 비교에 주력하는 플랫폼 역시 성행 중에 있다. 이 역시 빅데이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아파트의 평형 대, 난방 방식, 주변 상권, 교육 등의 정보를 소비자에게 적극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는 별 다른 인적 소모 없이 자신에게 맞는 주택을 다양한 패턴으로 견지해볼 수 있다.빅데이터의 정보는 ‘양’보다는 ‘질’을 우선시 한다. 많은 양의 정보가 아닌, 섬세한 분석을 통한 소비자 니즈에 맞춘 ‘핀셋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빅데이터와 부동산의 만남은 가히 필연으로 보인다. ◆빅데이터 전망은 장밋빛부동산은 민법상 유체 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서, 이 물건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들 가운데 토지 및 그 정착물을 뜻한다. 시쳇말로 ‘신의 영역’이라고 불릴 만큼 부동산에 관한 예측은 전문가조차도 쉬 정의 내림을 꺼려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이 최고의 재테크 사업으로 인식돼 있다 보니, 전 산업군을 통틀어 정부 규제가 가장 강력한 시장 중 하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의 가치는 정부 정책과 그 궤를 함께한다.일부 호사가들에 의하면 부동산의 정체성을 두고 ‘종이 한 장’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바로 ‘투자’와 ‘투기’의 개념인데 내 집 마련에 대한 다각도의 투자와 ‘그래도 부동산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암묵적 믿음 사이에서 안정성을 담보한 최고의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부류 역시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부동산의 ‘폐쇄성’이 이 같은 외줄 타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빅데이터란 앞선 연재서도 다뤘듯이 기존 데이터베이스의 관리능력을 초과. 정형, 반 정형, 비 정형 데이터 전체를 통칭한다. 3V의 아이덴티티를 지닌 빅데이터는 데이터 크기(Volume), 처리속도(Velocity), 다양성(Variety)의 요소를 아우르고 있다.빅데이터의 전망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장밋빛이다. 2012년 약 50억 달러에 그친 빅데이터 관련 기술·서비스 사업군이 올해 200억 달러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파생될 일자리 역시 500여 만 개에 이를 정도로 빅데이터의 파급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 세계 유수의 시장조사 업체에서도 빅데이터의 연평균 성장률을 30%대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2020년 시장 규모를 약 250조 원으로 예측했다.국내는 또 어떨까. 현재 대한민국의 빅데이터 시장은 연평균 11%에 이를 만큼 높은 성장세를 보인다. 이 같은 추세가 유지된다면 2022년 국내 빅데이터 시장 규모가 2조2천억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 이와 더불어 데이터 전 과정을 아우르는 글로벌 데이터스피어(Datasphere)가 지난해 33제타바이트에서 2025년에 이르러 175제타바이트까지 폭증할 것이라는 견해가 중론이다. ◆빅데이터, 부동산계의 블루오션부동산과 빅데이터는 분명 개별의 성질을 가진 다른 분야지만 향후에는 ‘부동산 빅데이터’라는 고유어가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부동산과 빅데이터는 공생을 넘어 ‘하나’라는 공식이 더욱 옳을 듯하다. 오죽했으면 “가장 예측할 수 없는 부동산 시장의 유일한 예측 수단이 바로 빅데이터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으랴.국내 부동산 빅데이터는 또 다른 서비스 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택 관련 단순 정보제공과 현 시세정보를 뛰어넘어, 지역별 주택가격 예측과 각종 금융 계산 등의 영역에까지 빅데이터의 활용도를 한껏 제고하고 있다.빅데이터는 이미 부동산 업계에서 ‘블루오션’으로 통하고 있다. 수십 번 강조해도 모자랄 데이터의 중요성을 업계 누구랄 것 없이 공감하기 때문으로. 소비자들 역시 사람의 통계보다는 빅데이터의 체계적 커리큘럼을 응당 더 신뢰하는 이유에서다.부동산 빅데이터는 향후 ‘예측’의 기술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히 나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5만여 아파트 단지의 과거 가격 폭과 변동사항, 유동인구와 그에 따른 사유 등을 빅데이터화해 예상 금액 등을 반추해 내는 것이다. 소비자는 이를 바탕으로 매매의 최적기를 제공받게 된다.공공영역에도 부동산과 빅데이터의 융합은 고무적인 행보를 보인다. 공공데이터를 활용, 소비자가 집 주소와 전용면적, 공시가격 등을 입력하며 최저 수준의 법무사 비용을 알려준다. 또 하루하루 갱신되는 채권매도단가의 수수료를 적용, 채권 가격을 자동으로 계산한다.동심동덕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한 일체된 마음을 뜻하는데 부동산과 빅데이터의 관계야말로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집 마련’이 목표가 아닌 닿을 수 없는 꿈이 돼버린 ‘하우스 푸어’, 인고의 시간을 겪으며 자식들의 안위를 위해 한평생 몸 바쳐 온 소시민들, 이들에게 부동산이란 빅데이터의 명확하고 선한 시스템 아래 ‘기회’이자 ‘희망’이 돼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글·사진 군월드 IT사업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계림의 황금궤짝서 나온 김알지…‘경주 김씨 시조’는 태자로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삼국유사는 초대 박혁거세 왕에 비해 2대와 3대왕,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에 대한 내용은 매우 간략하게 소개했다. 또 내용에 따른 남은 흔적도 많지 않아 남해왕과 노례왕, 김알지에 대한 소개를 한꺼번에 하기로 한다. [{IMG01}] 신라 2대 왕은 박혁거세왕의 아들 남해왕이다. 당시 ‘왕’이라는 칭호 대신 ‘차차웅’이라 불렀다. 차차웅은 우리말로 무당을 의미한다. 무당은 제사를 모시는 사람이다. 당시 시대를 제정일치 시대로 추정하게 한다. 신라 3대 왕은 삼국유사에서는 노례왕, 삼국사기에는 유리왕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리왕으로 전한다. 14대 왕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동일하게 유례왕으로 부르고 있다. 석탈해 왕 때에 김알지가 발견된 황금궤짝이 있었던 것으로 삼국유사 등에 전하고 있는 계림. 김알지는 석탈해 왕 때 계림에서 태어난 신화를 가지고 있다. 석탈해 왕이 태자로 책봉했지만, 왕위에는 오르지 않았다.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는 뛰어난 지략가로 상당한 벼슬에 올랐을 것이며, 그의 자녀들이 왕비 등으로 왕족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결국 13대 왕에 경주 김씨가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남해왕신라 제2대 남해왕, 남해 거서간은 차차웅이라고도 한다. 이는 존장의 칭호로서 오직 이 왕만 이렇게 불렀다. 아버지는 혁거세이고 어머니는 알영부인이며, 왕비는 운제부인이다. 전한 평제 원시 4년 갑자에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인 지황 4년 갑신에 세상을 떠났다. 이 왕을 삼황의 첫째라 한다. 삼국사를 살펴보면 이런 글이 있다. 신라에서는 왕을 ‘거서간’이라고 불렀는데 진한말의 왕이다. 어떤 사람은 귀인을 부르는 칭호라고 했다. 혹은 ‘차차웅’ 또는 ‘자충’이라고도 했다. 김대문이 말하기를 차차웅은 우리말로 무당을 이르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기 때문에 무당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다가 드디어는 높은 어른을 자충이라 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사금’ 이라고도 하는데, 잇금을 말한 것이라 했다. 처음 남해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노례가 탈해에게 왕위를 사양하자, 탈해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치아가 많다고 들었다며 떡을 씹어 시험해 보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옛날부터 전해왔다. 혹은 ‘마립간’이라고도 하는데 김대문이 말하기를 ‘마립’이란 것은 우리말로 말뚝을 이르는 말이다. 말뚝 표는 직위에 따라 설치하니 왕의 말뚝이 주장이 되고, 신하의 말뚝은 그 아래로 벌려 서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했다. 역사평론가들은 신라에서 거서간과 차차웅이라고 불리는 임금이 한 분씩이고, 이사금이라 불리는 임금이 열여섯 분이며, 마립간이라 불리는 임금이 네분이라고 말했다. 신라 말기의 이름난 유학자인 최치원이 저술한 ‘제왕연대력’에서는 모두 아무 왕이라고만 불렀고, 거서간 등으로는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이 비속하고 촌스러워 부르기에는 마땅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지금 신라의 사적을 기록함에 있어서 우리말들을 모두 그대로 두는 것도 역시 옳을 것이라고도 했다. ◆노례왕신라 제3대 노례왕, 박노례 임금은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 누나의 남편인 탈해왕에게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 탈해가 “무릇 덕 있는 자는 이가 많으니 마땅히 이를 가지고 시험해 봅시다”라고 제안했다. 떡을 물어 살펴보았더니, 노례왕의 이가 많아 먼저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이 때문에 이사금이라 이름을 지었다. 이사금이라 부르는 것이 노례왕으로부터 시작됐다. 후한 유성공의 경시 원년 곧 계미년에 즉위했다. 6부의 이름을 고쳐 여섯 성을 내려주었다. 삼국유사는 노례왕 때에 최초의 향가 도솔가를 지었다 기록하며 14수의 향가를 전하고 있다. 도솔가 내용은 전하지 않고 있으나, 계림에 찬기파랑가 향가비가 있어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으로 도솔가를 지었는데 차사를 갖춘 사뇌격이었다. 또 쟁기와 얼음 보관창고를 만들고, 수레로 탈 것을 만들었다. 계림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팽나무 등의 수령 1천 년이 넘은 고목 100여 그루가 지금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김알지 탈해왕 대영평 3년 경신(60) 8월4일에 호공이 밤에 월성 서쪽 마을로 가는데 시림 속에서 매우 환한 밝은 빛이 보였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속에는 황금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그 빛은 궤짝에서 나오고, 또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어서 이것을 왕에게 알리니 왕이 친히 그 숲으로 행차했다. 궤짝을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바로 일어났다. 마치 혁거세의 고사와 같았으므로 그 말에 따라 ‘알지’라고 이름 지었다. 알지는 곧 우리말로 어린아이를 뜻하는 말이다.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면서 기뻐 날뛰며 너풀너풀 춤을 추었다. 왕이 좋은 날을 잡아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후에 파사에게 물려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가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라고 하였다. 알지가 열한을 낳고, 열한이 아도를 낳고, 아도는 수류를 낳았다. 수류는 욱부를 낳고, 욱부는 구도를 낳고, 구도는 미추를 낳았다. 미추가 왕위에 올랐으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에서 시작되었다. 월성의 북쪽 성벽에 가까이 설치된 석빙고 내부.◆흔적△도솔가와 석빙고: 신라 3대 유례왕 당시 향가로 알려진 도솔가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도솔가의 내용은 전하지 않지만, 일연선사가 지은 삼국유사에는 14수의 향가 가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 오늘날 문학의 뿌리가 되고 있다. 월성의 북쪽 성벽에 가까이 설치된 석빙고 정면. 또 이때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 위치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신라시대 것으로 보기 어렵지만, 월성에 석빙고가 고스란히 당시 형태를 갖추고 남아 있어 추정해 볼 뿐이다. 월성의 석빙고 제작에 대한 내력을 싣고 있는 비석. 석빙고 바로 서편에 서 있다. 지금 월성에 있는 석빙고는 조선시대에 서쪽 100여m 지점에서 현재 있는 곳으로 이전해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비석이 있고, 머릿돌에 이전 개축했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조선시대에 석빙고를 이전했다고 짐작하게 한다. 조선시대 석빙고가 현재 위치로 옮겨가기 전에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웅덩이. △쟁기와 수레: 유례왕은 또 쟁기와 탈 것으로 수레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남아 있다. 쟁기를 만들어 농사를 쉽게 하는 경작법으로 생산성이 많이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는 3대 노례왕 때에 수레를 제작해 탈것으로 활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의 신라미술관 내부에 박물관 건립 당시에 드러난 신라시대 수레바퀴 자국. 또 수레를 만들어 탈 것으로 이용했지만 단순한 이동수단뿐 아니라, 농산물 등의 짐을 싣는 용도로도 사용해 농업을 비롯한 산업발전에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시기로 이해된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안에는 신라시대 수레바퀴 자국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당시 운송수단이 이용되었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계림은 2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고목이 울창한 숲을 이뤄 전설과 함께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계림: 계림은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위치해 지금도 울창한 숲으로 도심의 허파 기능을 하고 있다.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시림’으로도 불렸다. 신라 탈해왕 때 월성 옆의 숲 금궤에서 아이가 나와 성을 김(金)이라 하고 이름을 ‘알지’라 불렀다. 이때부터 구림이라 부르던 숲을 ‘계림’이라 부르고, 나라 이름도 ‘계림국’으로 불렀다. 계림 내부에 조선시대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기록한 비석을 세운 비각이 있다. △계림비각: 계림 안에는 조선시대 순조 3년 1803년에 김알지 탄생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고 누각을 지어 보호하고 있다.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존재와 계림의 역사를 확인하게 하는 시원이 되고 있다. △고목 회화나무: 계림에는 왕버들과 느티나무, 회화나무, 팽나무 등의 고목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수령 1천여 년에 이르는 고목도 1백여 그루나 된다. 계림 입구에 본래의 줄기가 고사하고 가지가 자라 겨우 살아 있는 수령 1천300년이 되는 회화나무 고목이 있다. 우레탄 수술로 수간부 10%가 겨우 살아, 여름이면 푸른 잎을 틔운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김알지 장군의 포석유례왕이 즉위해 육부촌을 다독이기 위해 각자 그들에게 신라 고유의 성씨를 내리고 직위와 다스리는 땅의 구역을 설정해 주었다. 월성의 서북 방향으로 북천 아래 지역, 알천 양산촌 경주 이씨의 성을 부여받은 알평 촌장과 이웃해 서로 협력하며 지내는 부족이 있었다. 당시 왕가에서는 경주 이씨들이 전체를 아우르며 잘 다스릴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알천의 또 다른 부족장 호령의 지혜와 힘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호령 촌장의 아들 알지는 무공이 뛰어나고 지략이 남다르며 친화력과 지도력이 탁월해 따르는 무리들이 많았다. 호공은 이러한 내력을 월성에 살면서 속속들이 살피고 있었다. 어느 날 양산촌이 왕권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 염려하여 석탈해왕에게 보고했다. 계림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팽나무 등의 수령 1천 년이 넘은 고목 100여 그루가 지금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사진은 수령 약 1천300년 되는 회화나무로 우레탄 수술을 했다. 10% 정도 남은 수간부로 아직 싹을 틔우고 있다. 석탈해 왕은 호령 촌장에게 늦게 경주 김씨 성을 내리고 호령의 아들 알지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벼슬을 주고, 사위로 삼아 내란을 미리 예방했다.석탈해 왕의 지혜는 석씨 가문만을 위함이 아니라, 신라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다양하게 개발해 과감하게 실행했다. 김알지와 알평촌장은 그 이후에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외세의 침략에 공동으로 맞서 부족을 지키는 한편, 나라의 일을 위해 지속해서 협력하며 우호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나중에는 양산촌의 알평 촌장보다 호령 촌장의 세력의 커지면서 김알지의 후손인 미추가 왕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양산촌은 지리적으로 불리하고, 세력이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하지 못해 왕권을 미추왕 당대에 그치고 70여 년이 지나 17대 내물왕부터 김씨 왕위 세습체제를 굳혔다.김씨 왕위세습의 터전은 김알지가 처가 석씨 집안과 왕족이었던 박씨 집안 세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안으로 세력을 키운 전략의 덕분이다. [{IMG01}]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가야읍 병풍처럼 휘감은 왕의 고분들…백성들 사는 모습 굽어살피시네

고령군은 경북도의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남도와 붙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붙어 있다. 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대가천과 안림천의 물길이 시작돼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대가야읍에서 합쳐지고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주산 능선 위에는 왕들의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서 고령군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며 내려다보고 있다. 수많은 둥근 곡선의 봉분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능선을 따라 천천히 산길을 오른다. 줄지어 늘어선 왕들의 무덤은 고령군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며 내려다보고 있다. 1천500년 전인 5~6세기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의 봉분들. 사적 79호로 지정된 지산동고분군이다. 대가야고분의 특징은 높은 산 능선위에 무덤을 축조한 것이다. 지산동고분군의 대표적 대형고분들이 왼쪽부터 2, 3, 4, 5호분의 순서로 열 지어 늘어서 있다. 대가야고분의 특징 중 하나는 높은 산 위에 무덤을 축조한 것이다. 왜 능선의 정상부에 봉분을 두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산 돌출부에 흙을 높이 쌓아 올려 봉분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면, 무덤이 실제보다 더 크고 웅장하며 신성하게 보인다.살아있는 사람들의 시야에 항상 들어오는 곳, 그것도 높이 올려다보이는 위치에 있게 된다. 무덤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죽은 후에도 자신의 후손인 왕들이 백성들을 통치해 가는 모습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언제나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조상보다 더 위쪽에 묘지를 조성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달랐다. 권세가 강한 후대로 갈수록 무덤을 위쪽에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고분 수백 기가 남아있다. 해방 전부터 대부분 도굴되었으나, 그 후 발굴 조사하는 등 정비작업이 착실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달 지산동고분군에서 국내 최초로 고대 건국신화가 새겨진 유물이 발견됐다고 해서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국내 최초로 고대 건국신화가 새겨진 토제 방울이 나온 지산동고분군의 발굴조사 현장. 5세기 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름 5㎝의 토제 방울이 발굴조사 현장에서 나왔는데, 표면에 거북 등껍질 문양을 비롯해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국내 최초로 고대 건국신화가 새겨진 유물로 보인다며 문화재청이 공개한 지름 5㎝의 토제 방울. 이는 '구지가'로 알려진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수로왕 건국설화’와 같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나 사기 등의 문헌에 기록된 것들이 유물에 투영된 최초의 사례라고 조사팀은 주장했다. 다양한 해석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돼 학계에서는 추가 연구가 진행돼야 그림의 실체가 명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토기와 투구지산동고분에서는 고령양식 또는 대가야 양식으로 독특한 토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신라계 토기와 대가야계 토기는 모양에서 차이가 난다. 지산동고분에서 출토되는 고령양식 또는 대가야 양식의 토기들이 대가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가야토기는 부드럽고 우아해 보인다. 서기 300년대 무렵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토기는 500년대 중반경에는 남해안은 물론 마산, 창원에까지 퍼져 거의 가야지역 전체에 미친다. 이처럼 넓은 지역에서 대가야양식 토기가 발견되는 것은, 그만큼 대가야의 국력이 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철 생산도 대가야가 국력을 키우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가야의 고분에서는 고리칼, 쇠창, 쇠도끼, 화살촉 등 많은 무기가 나온다.이들은 전투에서 직접 사용되기도 했지만, 묻힌 사람이 살았을 때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대가야에서는 야구모자처럼 챙이 있는 투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대가야 철기 투구에는 깃털 모양의 장식을 달아 위용이 빛나게 한다. 대가야박물관 부근에 세워진 가야 철기 기마무사의 조각품. 투구의 정수리 부분에는 술같이 생긴 장식이나 깃털 모양의 장식을 달아 위용을 빛낼 수 있게 했다. 이 가운데 지산동고분에서 발견된 야구모자 모양 투구와 갑옷은 신라보다 가야지역과 일본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이 같은 유물을 통해 대가야와 일본의 문화교류가 활발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령군은 낙동강의 뱃길을 이용해 밖으로 쉽게 교통할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대가야는 각 지방으로 통하는 도로를 가지고 있었고, 강과 바다를 오가는 뱃길을 이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남해안에 도달하는 길은 낙동강을 통하여 지금의 김해 쪽으로 나아가거나, 또 하나는 합천, 진주를 거쳐 사천 앞바다로 나아가는 길 등이 있었다. 대가야는 이와 같은 길로 소나 말이 끄는 수레와 배를 이용하여 철과 곡물, 토기 등을 내보내고 생선과 조개, 소금 등을 들여올 수 있었다. ◆금관과 금동관대가야의 고분에서는 금관과 금동관도 여러 개 출토됐다. 대가야의 왕이 쓰던 관은 다른 나라의 관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신라의 관이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인데 비해 대가야의 관은 풀잎이나 꽃잎 모양이다.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국보 제138호 '전(傳) 고령금관 및 장신구 일괄'과 보물 제2018호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이다. 고령금관은 끝부분을 다듬어 풀꽃 모양 장식을 세우고, 양 옆에 뿔처럼 튀어나오게 만든 돌기를 달아 굽은 옥을 걸 수 있게 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국보 제138호 고령금관은 장식의 양옆에 돌기를 달아 굽은 옥을 걸 수 있게 하였다. 문화재청 제공 보물 제2018호 고령 금동관은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발굴 경위와 출토지가 확실하고 함께 출토된 유물에 의해 5세기 대가야 시대에 제작된 사실이 확인됐다.지난 2월 이 금동관은 보물로 지정됐다. 최근 보물 2018호로 지정된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세련된 문양과 출토 사례가 적어 희소가치가 있다.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가야가 각종 금속 제련 기술은 물론, 금속공예 기법에도 능해 고유한 기술과 예술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얇은 동판을 두드려 판을 만든 뒤 도금했는데, 일반적 금동관 형태인 출(出)자 형식과 다르게, 넓적한 판 위에 X자 문양을 점선으로 교차해 새긴 점이 특징이다. 가야시대 금동관은 출토 사례가 적어 희소가치가 있고,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단순하고 세련된 문양으로 인해 고유성이 강하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보물 지정에 때맞춰 최근 국립대구박물관은 이 금동관을 상설 전시한다고 발표했다.그동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가야실)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보물지정을 기념해 대구박물관에서 전시하게 됐다. ◆44호분다시 새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중턱쯤 오르자, 다른 고분들보다 더욱 우뚝 솟아 보이는 봉분이 서 있다.지산리 44호분이다. 주산 구릉의 맨 꼭대기에서 열 지어 늘어선 5기의 대형 고분 중에서, 남쪽 아래쪽 경사면에 독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굴된 대형 순장묘인 44호분. 오키나와에서만 생산되는 야광조개로 만든 국자 조각도 나와 대가야의 해외 활동을 말해준다.1977년 발굴 조사된 이 고분은 3기의 대형 석실과 이를 둘러싸듯이 배치돼 축조된 32기의 소형 순장 돌 덧널이 들어 있었다. 유물은 대부분이 도굴되었지만, 남은 것으로 금귀걸이·금동그릇·은장식쇠창·야광조개국자 등이 나왔다. 특히 일본 오키나와(冲繩)에서만 생산되는 야광조개로 만든 국자 조각도 나왔다. 이는 대가야의 활발한 해외 교역 활동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다. 고분의 규모와 구조·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이 고분은 지금까지 발굴된 가야 고분 중 최고의 위계를 가진 왕릉으로 보고 있다. 이 고분의 특징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굴된 대형 순장묘였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고대사에서 단편적으로 보였던 순장 기록에 대한 실체가 밝혀지게 됐다. 순장(殉葬)이란,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위해 생전에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장례 행위를 말한다. 이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삶을 계속한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의 관점에 따라, 이승에서의 생활을 저승에서도 그대로 누리라는 의미에서 행한 것이다. 특히 44호분에서는 30여 명 이상의 순장자가 묻혀 있어 당시 발굴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562년 신라 장군 이사부가 이끄는 군대의 공격이 있었다. 대가야는 이 전투에서 15세 소년 장수 사다함의 5천 명 선봉대의 기습공격을 당하며 멸망했다. 16대 520년간 지속했던 ‘대왕’의 나라 대가야는 500년대 국제정세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신라에 병합되고 말았다. 대가야를 정복한 신라는 대가야의 지배층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흩어져 살게 했다.가야금을 만든 우륵은 신라의 중원경(청주)으로 보내졌고, 신라의 대문장가인 강수(强首)와 명필 김생(金生)도 대가야의 후손들이지만, 고령이 아닌 다른 곳에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대가야 출신의 인물들은 인문과 예술로 신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지난달 21일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심의를 거쳐, 가야 고분군(고령 지산동고분군 외 6개)을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했다. 오는 7월 문화재위원회에서 등재 신청 대상으로 결정될 경우, 문화재청은 2020년 1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한다.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2021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이에 발맞춰 고령군에서는 오는 11일부터 14일까지 ‘고령 대가야체험축제’ 행사를 가진다.대가야 생활촌,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읍 일원에서 4일간 개최된다. 고분 제268호분 아래에서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하늘과 맞닿은 곡선을 바라본다.이제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저 멀리 서쪽을 바라보니 미세먼지가 시야를 흐려 대가야 시조모인 정견모주가 살고 있는 가야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무덤을 뒤 돌아보았다.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를 느끼게 하는 지산동고분군이었다.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박순국 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우리동네 자랑- 영양군

영양군영양군 지도 경북북부지역에 위치한 영양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 이지만, 풍부한 역사·문학 자원, 힐링, 휴양 등 현대인의 관광패턴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인구 1만7천 명에 영양읍과 석보·입암·청기·일월·수비면 등 6개 읍면의 작은 산촌이지만,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이 있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청정의 고장이다.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고추와 사과, 산채 등 고품질 농·특산물 육성으로 6차 산업 활성화 기반을 조성해 향후 발전 가능성이 기대된다. 시인의 고향, 우국지사의 충정, 빛나는 예술혼, 옛 선비의 호연지기 등을 현재 진행형으로 만날 수 있는 영양은 오래 숙성된 와인처럼 서정이 익어가는 곳이다. 황태진 기자----------------------------------------------------------------------------------------------- 1. 봉감모전오층석탑국보 제187호인 영양 입암면 산해리 봉감모전오층석탑은 국보답게 안정감과 위풍당당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 모전 석탑으로 평평한 자연석 기단 위에 2단의 탑신 받침을 쌓고, 수성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탑신을 쌓았다. 탑신 하단부에는 화강암으로 섬세하게 조각한 문주와 미석이 있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다. 2. 서석지조선 광해군 5년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 선생이 조성한 조선시대 민가 정원으로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원과 함께 3대 민가 정원의 하나이다. 요(凹)자형인 서석지는 경정, 주일재, 사우단과 400여년 된 은행나무, 90여 개의 서석군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전통정원의 조경미와 오묘한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3.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음식디미방은 여성군자 장계향이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로 이곳 교육원에서는 음식디미방 체험프로그램 중 전통음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이다.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여러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시식해 볼 수 있는 곳으로 40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정성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4. 만지송수령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12m, 둘레 3.8m로 나무의 가지가 많아 만지송(萬枝松)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 어떤 장수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 나무를 심으면서 자기의 생사를 점쳤다고 해 ‘장수나무’라고도 불린다.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이 정성스럽게 소원을 빌어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5. 침벽공원감천마을에 살았던 침벽 오현병 선생이 무와 문예, 풍류의 수련도장으로 조성한 숲이며 강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14호로 지정된 측백 수림은 공원 앞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착상해 병풍처럼 늘어서 집단으로 자생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6. 영양풍력발전단지동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한 국내 최대의 풍력단지가 현재 석보면 맹동산 일대에 41기, 영양읍 무창리 일대에 18기가 가동 중이다.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풍력단지는 장엄한 일출, 아름다운 일몰과 함께 사계절 변화하는 자연을 볼 수 있어 영양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7. 지훈문학관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인 조지훈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07년 시인의 고향인 일월면 주실 마을에 건립한 문학관이다. 170여 평 규모에 ‘ㅁ’자 모양으로 지어진 단층 목조기와 집이다. 전시실과 시청각실이 갖춰져 있고, 지훈선생의 유품과 육성녹음테이프, 시낭송테이프 등이 전시돼 그의 사상과 철학, 문학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8. 일월산 자생화공원영양군이 2001년 폐광지역 오염방지사업을 실시해 오염원을 완전히 밀봉한 후 공원 부지를 조성하고, 각종 편의시설과 야생화를 심어 만든 전국 최대규모의 야생화공원이다. 5천475평의 부지 위에는 금낭화 등 야생화 64종 11만2천 그루와 희귀야생화, 화살나무 등 향토수종 1만1천 그루, 인공연못에는 수련 등 습지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9. 영양반딧불이천문대반딧불이생태체험마을 특구 내에 위치한 영양반딧불이천문대는 여름철 밤하늘의 별과 함께 자연에 서식하고 있는 반딧불이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천체관측 장소다. 주간에는 태양망원경을 이용해 흑점과 홍염을 관측할 수 있고, 야간에는 행성, 성운, 성단, 은하, 달 관측이 가능하다. 10. 반딧불이 생태공원청정영양을 대표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반딧불이 서식처로서 다채로운 볼거리와 체험을 통해 천연자연경관의 아름다움과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공간이다. 반딧불이, 나비, 잠자리, 야생화초류 관찰지와 양서류, 파충류, 수생식물, 잠자리 유충 관찰지, 양서류, 파충류, 애반딧불이 유충, 농생태체험지 (유기농법, 메뚜기 체험장), 갑충류 생태관찰장 등이 있다. 11. 청계정1630년경 지어진 청계정은 문화제자료 제170호로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문월당 오극성의 둘째아들인 우재 오익이 1630년경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는 자연 암반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좌측칸을 온돌방으로 꾸민 후 우측 2칸에는 마루방을 둔 편방형으로 구성했고 정면과 양측면에는 계자난간을 둘렀다. 12. 검산성경북도 기념물 제65호로 한말의 의병장이었던 김도현이 1894년 2월부터 1895년 8월까지 항일운동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고향마을 뒷산에다 개인 재산을 들여 축조한 산성이다. 성벽은 검산의 정상부에서 서쪽과 남쪽을 석축했고 나머지는 단애를 이루고 있어서 처음부터 성벽을 쌓지 않은 듯하다. 성벽 높이는 1.2m∼2m쯤이며 자연석을 이용해 쌓았다.황태진 기자 tjhwang@idaegu.com

우리동네 자랑- 영양군

우리동네 자랑영양군 (사진)1.봉감모전오층석탑 2. 서석지 3.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4. 만지송 5. 측백수림 6. 영양풍력발전단지 7. 지훈문학관 8. 일월산자생화공원 9. 영양반딧불이천문대 10. 반딧불이생태공원 11. 청계정 12. 검산성 영양군 관광안내도 황태진 기자 tjhwang@idaegu.com

/이슈추적/ 포항지진은 인재… 특별법 제정 힘 받나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이 국가가 시행한 지열발전 실험이 원인이라는 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라 특별법 제정, 피해 배상 등 포항지진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포항시민들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정부가 책임지고 특별법 제정과 피해 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 3만여 명은 2일 도심 한복판에서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규모 결의대회를 열고 국가 차원의 배상과 지역 재건을 요구했다.자유한국당은 의원 113명 전원이 참여한 ‘포항지진 특별법’을 지난 1일 발의하고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고, 민주당은 진상조사와 피해지원 안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과 특별위원회 구성 등 국회 차원의 조치를 조속히 추진한다는 방침이다.정부는 포항지진 지원 대책 예산을 추가경정예산(추경)에 포함시키고 지열발전 기술개발 사업 중단과 현장복구 방안을 이달 중에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항시민 3만명 결의대회포항지역 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포항 11·15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2일 포항 시내에서 시민 3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시민들은 지진피해 배상과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요구했고, 이강덕 포항시장과 서재원 포항시의회 의장은 삭발식을 하고 시민들의 결의를 대변했다. 또 이에 앞서 3월23일부터 시작된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청원’에는 10만명(2일 기준)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포항 시내 전역에는 ‘정부 규탄 및 배상 촉구’ 현수막이 내걸려 지역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정치권도 가세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일 의원 113명 전원이 참여해 ‘포항지진 특별법’을 발의했다. 김정재(포항 북)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올해 정기국회 내에 통과시키겠다는 게 자유한국당의 계획이다.발의된 법안은 ‘포항지진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과 ‘포항지진 진상조사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등 2개 법안이다. 앞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3월26일 이강덕 포항시장 등과 함께 국회의장과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에 협력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 지사는 또 이날 국무조정실장을 만나 총리실 산하에 ‘포항 대지진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배상금 지급 대상 심의와 손실 보상을 신속하게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 피해배상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나포항시민들은 특별법 제정과 함께 재산피해 배상을 위한 소송도 현재 진행 중이다. 범대위는 이미 2018년 11월 정부와 발전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 2차 소송을 진행했고, 3차 소송을 위해 현재 참여시민을 모집 중이다.이와 함께 정치권이 추진 중인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그동안 정부의 지진피해 복구 지원을 받지 못한 이재민과 상가 공장 교회 사찰 등도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손해배상 소송은 최대 2~3년까지 걸릴 수 있지만 특별법은 내년 국회의원 선거 등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1년 내 개정도 가능하다는 게 범대위의 판단이다.피해 구제 특별법에는 배상 및 보상금, 위로지원금의 지급 대상과 금액을 결정할 ‘배상·보상 심의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으며, 이 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배상·보상금 및 위로 지원금 신청 대상은 지진발생 당시 포항시 거주자 및 체류자, 사업장 운영자, 근로 및 학업 수행자, 포항에 동산 및 부동산 소유자 등이 포함됐다. 또 포항시의 침체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가가 특별지원 방안을 강구해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돼 있다.11·15포항지진 지열발전공동연구단 내 법률분과에서는 포항시변호사협회와 함께 별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범대위는 3월29일 포항 지열발전소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는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지진 원인 발표 이후 정부 대응정부, 청와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협의회를 갖고 포항지진 진상 규명과 지역발전소 처리, 피해 대응, 지역경제 지원 등에 대해 논의했다.당·정·청은 포항지진 지원대책을 이달 추경에 포함시키고 지열발전 기술개발 사업 중단, 현장복구 방안 등을 이달 중에 마련하기로 했다. 지진 진앙에 가까운 포항 흥해의 경우 특별재생사업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진 원인 발표 직후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사업 관련 절차를 영구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또 해당 부지는 전문가와 협의해 안전성 확보 방식으로 원상 복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정부는 또 2019년부터 향후 5년 동안 2천257억 원을 투입해 포항 흥해에서 특별재생사업을 진행해 주택 및 기반시설 정비, 공동시설 설치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포항시민들은 현재 영일만 앞바다 등지에 건설 중인 이산화탄소 저장시설 폐기도 요구하고 있다.◆지열발전 실험이 지진 촉발지난 3월20일 대한지질학회는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단은 “2017년 11월15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은 지열발전에 의해 촉발된 지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정부조사단 소속으로 독립적 조사를 진행한 해외조사위원회 위원장인 미국 콜로라도대학 쉐민케 교수는 “포항지진은 지열 발전 물주입정 자극에 의해 유발됐다. 물 주입이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단층을 활성화시켜 본진을 유발했다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정부조사단은 해외조사위와 국내전문가 연구결과를 종합해 결론을 발표했다. 지열발전은 지하 4km 이상 깊이에 구멍을 뚫어 고압의 물을 주입, 지열로 데워진 물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로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방식이다.포항지진은 발생 이후 그 원인을 두고 자연지진이냐, 인근 지열발전소에 의한 유발지진이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2018년 3월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포항지진 조사연구단’을 만들어 1년 동안 포항지진과 지열발전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왔다.◆포항지진 피해는규모 5.4 포항지진은 공식측정 이후 역대 두 번째(첫 번째는 규모 5.8 경주지진, 2016년 9월 발생) 규모의 강진이다. 1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90세대, 200여 명이 여전히 포항 흥해체육관에서 텐트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지진으로 2017년 11월16일 대입 수능이 11월23일로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부상 등 인명피해가 135명이나 발생했고, 공식 재산피해는 5만여 건, 850억 원에 달했다. 이재민도 1천800명이나 됐다.직접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집값 하락, 정신적 피해 등 간접피해 규모는 집계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재 포항시민단체가 추산하는 피해 금액은 5~9조 원 정도에 이른다. 정부는 지진발생 직후 복구비용으로 1천800억 원을 책정했고 현재까지 피해복구가 작업이 진행 중이다.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pjw@idaegu.com박준우 기자 pj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