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 생활 속 깊숙히 파고들다

2017년 11월23일부터 26일까지 엑스코에서 ‘대구국제미래자동차엑스포’가 열렸고 이곳에서 아이오닉 자율주행 간접 체험을 위한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4D 가상현실(VR) 체험장이 마련됐다. 관람객들은 VR 기반의 자율주행 기능을 체험했다.화력발전소 건립이나 지하철 정비 등 위험요소를 내포한 업무를 하기 이전에 현장 상황을 VR을 통해 작업자에게 미리 알림으로써 사고 위험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디스플레이의 영상은 VR에 장착된 특수렌즈를 통해 시야에 도달한다. 특수렌즈는 상을 밀집시킴으로써 시야의 각도를 넓히고 이를 통해 초점 거리를 좁혀준다.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가 개최될 당시 강릉선수촌에는 올림픽선수촌플라자가 조성됐다. 사진은 헝가리 쇼트트랙 선수들이 삼성 홍보관을 찾아 가상현실(VR ) 체험을 하는 모습.스포츠에 AI 기술을 기반으로 VR과 AR을 접목하면 여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경기 중인 선수들의 경로를 애니메이션으로 송출해 시청자에게 입체적 표현을 보여주거나 선수들의 경기 관련 능력치를 생동감 있게 확인할 수 있다.컷: AI와 함께하는 세상〈6편〉가상현실(VR), 생활 속 깊숙히 파고들다인기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등장하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증강현실과 복합현실(MR)을 마법과 과학, 중세와 현재, 스페인 그라나다와 서울을 게임 소재로 풀어낸 SF적 요소의 드라마다.VR은 인위적 기술을 그 시발점으로 한다. 거기에 곁들인 상상의 요소를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송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와 같은 체험을 구현해내는 기술이다. VR은 더이상 이질적 대상이 아닌 신변잡기를 내제할 만큼 우리 실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VR은 아이러니하다. 분명 가상이긴 하지만 허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각종 해양 연구를 위한 해저탐사, 미지의 리스크를 VR에서 분출하는 정보 제공을 통해 일정 부분 상쇄시킨다. 화력발전소 건립이나 지하철 정비 등 파생 가능한 위험인자를 내포한 업무 이전에 그곳의 현장 상황을 VR을 통해 작업자에게 미리 알림으로써 사고 위험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다음 편에 소개될 빅데이터가 수반돼야 함이 마땅하다. 이는 곧 경험치의 데이터를 VR을 통해 알림으로써 지피지기를 목표로 둔다는 것인데, 가상과 현실의 초연결망이 VR을 통해 발현되는 셈이다.엘론 머스 크테슬라 CEO는 “우리는 시뮬레이션 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 세상이 현실일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를 방증하듯 편의를 기반으로 한 경제논리의 VR 산업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VR 교육, 투어, 스포츠, 의료, 엔터테이먼트 등 이채롭고 다양한 VR 서비스 출시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기업은 AI 기술을 인간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AI 기술을 생활, 생산 현장, 사무 공간에 접목해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면 이로 인해 비축한 새로운 자원의 총합은 엄청나다. 비축한 자원을 새로운 창의성 발현에 이용할 수 있고 때로는 다음 업무를 준비하기 위한 여흥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결국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AI를 도외시하는 것보다 AI 도입으로 기술 진보를 이루고 사회 전반 효용을 높일 수 있다면 AI는 유토피아의 기반이 될 훌륭한 자원이다.지피지기면 승산은 충분하다. 가상과 증강, 그리고 혼합현실에 대한 고찰을 터부시 말아야 할 때다. ◆VR이란 무엇인가가상현실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가상현실이란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 등을 컴퓨터로 제작,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마치 실제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생성해 주는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의미한다.가상현실도 또 다른 현실의 범주다. 생경함이 아닌 생동감을 내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충족하기 위한 VR의 5가지 요소를 우선 알아둘 필요가 있다.그 첫 번째는 상호작용이다. VR이 이질적 대상이 아닌 사교의 아이덴티티가 구축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상과 현실 간 충분한 상호작용이 영위돼야 하며, 이것이 발현될 때야말로 VR은 또 다른 현실과의 다리 역할을 충족시킬 수 있다.VR로 인한 상호 공감을 표현하려면 현실감 있는 환경구축이 요구된다. 실제가 아닌 미디어가 어느 수준의 사건, 인물 등을 발현시키기 위해선 리얼리즘이 수반돼야 한다.리얼리즘의 정점은 실존이다. 서비스 구축 간 가상현실의 괴리를 최대한 상쇄하고 그 어떤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주의적 구현이 필요하다.리얼리즘이 구축되면 몰입도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VR 매체에 의한 가상환경은 신기함을 떠나 신비하되 현실을 충족할 또 다른 세상을 펼쳐낸다.상호작용은 당사자와의 교감뿐 아니라. 매체 속 인물과의 상호 공감마저 놓쳐선 안 된다. VR 공간 속 인물은 또 다른 자아일 수 있고, 가상이지만 현실에 존재할 법한 신변잡기를 내포한다는 데서 교감을 이끌어낼 명분을 찾아야 한다.위 사항이 VR의 하드웨어적 인지사항이라면 VR의 소프트웨어적 기술 원리에도 확실한 이해가 필요하다.VR의 디스플레이는 좌·우 2개로 분할된 영상을 송출한다. 왼쪽은 인간의 좌측 눈으로 바라봤을 때의 영상이, 반대로 오른쪽은 우측 시야에서의 영상이 보여지는 원리다. 여기서 VR과 눈 사이 약 7cm가량의 이격으로 원근감이 발생한다. 이 같은 차이로 인해 3D와 같은 입체감이 느껴지게 된다.디스플레이의 영상은 VR에 장착된 특수렌즈를 통해 시야에 도달한다. 특수렌즈의 역할을 우선 알아 둘 필요가 있는데 이 렌즈는 상을 밀집시킴으로써 시야의 각도를 넓히고, 이를 통해초점 거리를 좁혀준다.머리의 움직임은 위치추적 센서가 감지해 낸다. VR 메인보드 내부에 장착된 위치추적 센서 는 머리의 여러 동작 등을 실시간으로 잡아낸다. 이를 통해 인간이 원하는 장소나 위치 등을 지연감 없이 관찰, 리얼리즘의 극대화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 생활곳곳에 활용되는 VR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기술은 전 방위적 산업군을 아우르는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우선 두드러지는 분야가 VR을 통한 스포츠 중계다. 기존 TV수신영상에서 온라인으로의 패턴 변화를 수용하고 시청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다.미국 NBA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여러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VR, AR 기술을 총망라한 이 기술은 경기 간 선수네임과 통계들이 증강현실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경기 중인 선수들의 경로를 애니메이션으로 송출해 시청자로 하여금 입체적 시청환경을 제공한다. 이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능력치인 리바운드와 슛 성공률 등을 VR 및 AR 기술을 통해 생동감 있게 접할 수 있다.VR의 비약적 발전은 e스포츠의 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시발점이 바로 ‘VR 리그’라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이다.VR 리그란 VR 헤드셋과 장비를 활용, 이를 통해 생성된 게임 등을 모태로 탄생한 e스포츠의 토너먼트다. 기존 컴퓨터 앞에서 영위되는 게임과 달리 프로게이머들은 구축된 VR 장비를 착용한 뒤, 특정 아이템 발굴을 위해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등 새로운 장르의 게임문화를 선도해가고 있다.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선보인 ‘VR 홍보관’은 올림픽 이외 또 다른 주목을 받기도 했다.이 홍보관은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 등 겨울스포츠의 생경함을 느끼는 관객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스키점프대 모형에 올라 직접 스키점프를 하는 것 같은 짜릿함을 맛볼 수 있는 스키점프 시뮬레이션 등의 여러 가상·증강 프로그램을 내놓음으로써 동계스포츠의 대리체험을 갖기에 충분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유통업계에 부는 VR의 바람도 거세다.3D입체화면을 통해 매장 이곳저곳을 발품 팔지 않고 돌아볼 수 있는 ‘VR 스트리트’, VR을 이용한 여러 테마파크를 생성함으로써 모객효과의 극대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수상 오토바이를 체험하고 카트를 이용해 아일랜드 곳곳을 둘러보는 등 체험형 VR 상품이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인간 생명을 다루는 존엄의 분야, 의료계에도 VR은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비만, 이에 따른 만성질환의 증가에 대처하는 전문 인력의 부재를 VR이나 AR 기술로 충족하겠다는 것이다.실제 VR을 활용한 의료 관련 특허 출원은 최근 6년간 연평균 특허 출원 증가율이 49.4%로 급격히 늘었다.의료에 VR을 활용하는 대표 사례로는 수술, 진단, 의료인 훈련, 회복을 돕는 재활치료, 환자 삶의 질을 향상할 건강 체크 분야 등이다. 특히 고소공포증을 앓는 환자에게 실제가 아닌 고층 복도에 서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VR 노출 치료 프로그램’을 사용함으로써 다양한 공포증 치료에 적지 않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이 밖에도 뇌동맥류를 앓고 있는 환자가 가상현실을 통해 수술의 전 과정을 사전에 인지함으로써 수술적 공포를 일정 부분 완화하기도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자폐증, 조울증 같은 심리 치료에 VR 기술이 십분 활용되고 있는 추세다.직접 배를 절개하지 않아도 VR과 AR 기술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다. 의료진은 사전에 수술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감행한다. 실수는 줄어들 것이고 환자의 고통 절감차원에서 수술 시간도 절약될 수 있다. 결코 먼 얘기가 아니다.‘백년지대계’로 일컬어지는 교육 분야에서도 VR은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입체감이 요구되는 원기둥이나 삼각뿔, 함수 등의 영역에서 VR이 접목된다면 학생들의 이해도 제고에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 수업 간에도 책에서 보는 것이 아닌 가상의 유적과 유물 등을 3D 영상을 통해 접할 수 있다면 시·청각 수업의 더할 나위 없는 표본이 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커지는 VR 시장VR 시장은 시나브로 확대되고 있다.한국VR 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VR 시장 규모를 올해 2조8천억 원에서 2020년 5조7천억 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전 세계적으로 눈을 돌리면 성장 폭은 더욱 고무적이다. 해외 유력 시장조사기관에 의하면 VR 시장 규모를 2017년 45억2천만 달러에서 2026년 2120억6천만 달러로 내다봤다. 이는 5G 이동통신 시대의 개막과 궤를 함께 하는데 초연결성과 초지연성을 포인트로 시장의 거대 성장을 예측하는 것이다.미국 역시 2014년 당시 90만 달러 규모였던 세계 시장이 2018년에는 5천2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한 것을 기반으로 VR 산업이 무한대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현재까지의 VR 시장은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 기기의 수익 창출이 주를 이룬다. 구글의 데이드림,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리프트와 같은 VR 기기의 활용이 용이한 특정 계층을 기점으로 소비자층의 다변화가 예상된다.하지만 무조건적 청사진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철저히 분석돼야 함이 요구된다. VR의 지나친 의존으로 인한 중독 현상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구분치 못하는 신종환자들의 발생 개연성이 분명 존재한다. 이를 통해 발생 가능한 각종 범죄 역시도 쉬 간과할 수 없는 맹점이다. 아울러 지나친 AI 기술의 발발로 인한 인간소외 등 윤리적 문제들도 무시해선 안 된다. 콘텐츠 능력으로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것이다. 병원은 그럴듯하게 지어졌지만 의료기기가 부족한 셈이다.예를 들어 원가절감과 원거리 이동이 용이치 않은 소비자를 위해 각 건설사마다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사이버 모델하우스’. 2006년 인터넷 청약과 함께 시작된 사이버 모델하우스는 청약과열을 방지하고 모델하우스 건립비용이 오롯이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단점을 타파하기 위한 이름 그대로 스마트한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해 아파트 평면도 뿐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 심지어 마감재 확인까지도 가능하다.하지만 사이버 모델하우스의 맹점은 분명 존재한다. 3D 공간을 펼쳐냄으로써 입체화를 제고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실물에 비해선 왜곡된 사항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마감재의 질감까지는 확인이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기술적 한계를 방증하듯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이버 모델하우스는 보조수단일 뿐”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또한 사실이다.세상일에는 일장일단(一长一短)이 상존한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희망과 경계를 더불어 고려해야 한다. 그 괴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오늘, 그리고 현 시점이다.글·사진=군월드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그의 삶 그의 꿈(77)신화가 된 제지인(製紙人) 이종대

이종대 유한킴벌리 초대 회장은 우리나라에 화장지 문화를 도입하고 대중화시킨 한국제지산업의 선구자다. 이종대 회장의 생전 모습. 지금은 ‘화장실’로 통칭하지만 예전에는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변소, 뒷간, 측간(厠間), 정랑(淨廊), 통시, 절에서는 해우소(解憂所)….지금의 60, 70대 연령층만 해도 어렴풋한 기억 몇 조각쯤 있을 것이다. 뒷간 문 옆 철삿줄에 매달린 헌 잡지나 공책, 네모로 잘린 신문지며 누런 비료 포대 따위…. 특히 시골에선 지푸라기를 손으로 비벼 부들부들하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고, 담장 위 박넝쿨 잎 두어장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심지어 새끼줄을 타고 앉아 해결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도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지만 불과 몇십 년 전 일이다.그런 우리네 생활 풍경을 일거에 바꿔준 사람이 있다. 이 땅에 화장지 문화를 처음 도입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킨 제지산업의 선구자!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이종대(李鍾大) 유한킴벌리 초대 회장이다.◆성실하고 부지런한 학생 이종대1933년 5월 28일, 경북 금릉군 김천면의 농가에서 부 이규하와 모 이수연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마흔넷의 노산 탓인지 어머니는 막둥이가 첫 돌 지난 지 몇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여섯 자녀를 키우며 새벽부터 밤늦도록 쉴 틈이 없었다. 누구랄 것 없이 가난했던 그 시절, 어린 종대는 학교까지 시오릿길을 운동화가 닳을까 봐 벗어들고 맨발로 뛰어가곤 했다.해방 몇 달 전 김천중학교(6년제)에 입학했다. 졸업 후엔 경북대 사범대 물리학과에 들어갔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학생이었다. 대학 4학년 때(1954) 학장 추천으로 대구의 청구제지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가난한 제자가 수업 틈틈이 캠퍼스 내 신축공사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교수들이 눈여겨본 것이다.청구제지는 직원 80명의 꽤 규모 있는 회사였다. 대학생 종대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기술을 익히느라 모두가 퇴근한 후에도 혼자 남아 기계를 붙들고 끙끙거렸다. 행운은 일찍 찾아왔다. 이듬해, 대학 졸업 몇 달 후 스물둘 나이로 일약 공장장이 됐다. 기계에 매달려 열성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장이 입사 1년 된 신입에게 중책을 맡긴 것이다. 청구제지 사장은 자신의 혜안이 훗날 세계적 제지인(製紙人) 이종대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줄 알았을까. 신혼시절의 이종대 부부. 청구제지 공장장으로 일하던 1955년 결혼, 공장옆 사택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해 가을엔 세 살 아래 김경애와 혼인, 공장옆 사택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전기사정이 안 좋던 때라 공장에 문제가 생기면 한밤중에라도 뛰어갔다. 전기선 잇는 작업을 하다 감전돼 죽을뻔한 위기를 겪은 적도 있었다.◆이탈리아 유학과 제지공장 생활 1957년 국비유학생으로 이태리의 제지회사 카르테라 부르고에서 8개월간 선진 제지기술을 배우던 시절의 청년 이종대. 누구에게나 평생 세 번의 기회는 온다더니 1957년 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종이 제조 전문기술을 배우기 위해 국비장학생으로 이탈리아로 가게 된 것. 카르테라 부르고(Cartera Burgo) 라는 회사에서 8개월간 제지기술을 배웠다.2001년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문화적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지푸라기를 사용하며 자란 그에게 화장지 문화는 생소했다. 가난한 조국의 현실에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질 좋은 화장지를 사용할 날이 오리라 믿으며 기술습득에 매진했다.귀국 후 청구제지로 돌아온 그는 또 하나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1958년엔 대구를 떠나 서울의 대한제지 생산부장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몇 달 후부터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 결심했다. 언젠가 자신이 경영자가 되면 월급만큼은 제대로 주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이듬해에는 정부주도로 볏짚 펄프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한국펄프에 스카우트됐지만 볏짚 펄프산업 자체가 백지화되고 말았다.1961년엔 군산의 풍국제지 공장장으로 입사, 1963년에 국내 최초로 ‘주름 잡힌 화장지’를 만들어냈다. 서울업체들이 주름 잡힌 화장지를 전량 가지고 가서 가공․판매했다. 이후 한일제지로 옮겼지만 자금난 탓에 부도를 맞았다. 1960년대 당시만 해도 일부 부유층만 미군부대 등지에서 화장지를 사다 쓰는 정도였다.자신의 회사를 갖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1965년 7월, 화장지 전문회사 ‘일우제지’를 안양에 설립했다. 하지만 자금난으로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안양의 이화제지에 공장장으로 들어갔다.◆화장지 제조기계 직접 만들다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1966년, 그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미국의 대표적 위생제지 기업인 킴벌리 클라크 본사의 관계자가 합작기업 물색과 시장조사차 한국에 왔다. 6년 전 네덜란드의 한 공장에서 만났던 한국인에게서 받은 명함을 갖고 있었다. ‘J.D.Lee', 바로 ‘이종대’였다.그 무렵 그는 여전히 자기 사업의 꿈을 갖고 있었다. 킴벌리 클라크측은 합작대상인 유한양행에 “J.D.Lee가 합작회사의 리더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1967년, 이종대는 유한양행 제지부장으로 입사했다. 합작과정에서 이견이 생겼다. 킴벌리 클라크 측은 한국의 화장지 수요량이 많지 않으므로 화장지 원단 제조기계를 일본에서 수입하자고 했고, 이종대 부장은 반대했다. 나아가 이 부장은 화장지 원단 제조기계를 한국에서 직접 만들겠다고 건의했다. 킴벌리 클라크와 유한양행 모두 반대했다.하지만 그의 진지한 설득에 유한양행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결국 수용해주었다. 미국 측을 설득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해외출장때 눈여겨 봤던 기계 관련 자료를 모으고, 어렵게 설계도면도 입수했다. 철공소들을 돌아다니며 모은 부품을 밤새워 뜯고 맞추기를 계속했다.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그린 도면을 처음으로 미국 본사에 가지고 갔을 때는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다.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류머티스성 열병을 앓기도 했고, 사고로 손가락이 으스러져 6개월이나 깁스를 하기도 했지만 끝내 국산 화장지 원단 제조기계 1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루 5t의 화장지 원단 생산이 가능했다. 직접 부품을 구해 조립한 기계라 설비비가 5만9천 달러 밖에 안 들었다. 저렴하게 만든 기계에서 화장지가 생산되자 미국 기술자들이 놀라워하며 한국의 기술력을 인정했다.◆ 유한 킴벌리 설립과 다양한 제품 생산1970년 3월30일, 3년간의 합작추진 끝에 유한킴벌리 회사가 설립됐다. 12월엔 제1공장이 군포에 들어섰다. 창립을 주도한 이종대 부장은 상무이사 공장장으로 취임했다. 크리넥스 미용티슈(1971), 뽀삐 화장지(1974) 등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위생용품들이 잇따라 출시되기 시작했다. 1980년 유한킴벌리 제2공장으로 설립된 김천공장 전경. 화장지․미용티슈․키친타월․부직포 등을 생산하고 있다. 1980년 3월엔 제2공장이 김천에 세워졌다. 킴벌리 클라크로부터 도입한 기계설치과정에 문제가 생겼는데 미국인 엔지니어들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모두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당시 이종대 부사장이 밤새워 문제를 해결해 놓은 것이다.1990년엔 배송센터를 겸한 제3공장이 성남에 들어섰고, 1994년엔 제4공장이 대전에 세워졌다. 화장지, 아기 기저귀, 생리대, 미용티슈, 물티슈, 키친타월, 부직포 등 유한킴벌리 제품들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작업복 차림의 이종대가 작업현장에서 직원과 작업 공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그는 탁월한 기업가이자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그의 지휘 아래 우리 기술력으로 만든 기계들을 플랜트 수출까지 하게 됐다. 화장지 만드는 회사가 화장지 원단 제조 기계까지 수출한 것이다. 설계부터 제작과 설치, 시운전, 기술지도까지 일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당시엔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했다.1975, 1976년 제지용 건조 기계를 개발, 이란과 태국에 플랜트 수출 뒤 1976, 1977년에는 화장지 가공 기계를 말레이시아에 수출했다. 1977년부터 1993년엔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필리핀, 타이완,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화장지 원단 제조기계를 수출했고, 1987, 1988년에는 호주에 부직포 제조기계를 수출했다.◆제지산업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다유한킴벌리의 매출 규모도 급성장했다. 1971년 2억 원에서 대표이사 사장 때인 1993년엔 2천392억 원을 돌파했다. 수출액도 1975년 25만 달러에서 회장직 퇴임 무렵에는 4억 달러에 이르렀다. 포상과 수훈도 잇따랐다. 대통령 표창(1978), 국무총리 표창(1980), 석탑산업훈장(1984), 철탑산업훈장(1994)….국제적 명성도 더해졌다. 1990년 킴벌리 클라크사는 뛰어난 실적의 경영자에게 주는 ‘기업인성취 대상’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당시 킴벌리 클라크사의 125년 역사에서 수상자는 그를 포함해 6명뿐이었다고 한다. 1997년 동양인 최초로 ‘종이 노벨상’ 으로도 불리는 ‘세계 제지산업 명예의 전당(The Paper industry Hall of Fame)’에 헌정됐다. 왼쪽 두 번째가 이 회장. 다윈 스미스 킴벌리 클라크 회장이 친필 감사편지를 보내온 적도 있었다. “당신은 1억 명 중에 하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종이 노벨상’ 으로도 불리는 ‘세계제지산업 명예의 전당(The Paper industry Hall of Fame)’에 1997년 동양인 최초로 헌정되기도 했다.종이산업이 발달한 미국 위스컨신주의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에 있는 명예의 전당에는 1997년 당시까지 모두 35명이 헌정되었다. 이 회장은 생전에 “47년 제지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치열했던 ‘종이 인생’ 47년청구제지 견습공에서 유한킴벌리 초대 회장에까지 오른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지만 그런 만큼 휴일․휴가를 모르는 워커 홀릭이었다. 남들이 쉬고 놀 때 한 번이라도 더 기계를 살피고 새로운 일을 연구하는 것이 그에겐 즐거움이었다.아이디어맨이기도 했다. 원래 두루마리 화장지의 국제표준 규격은 114mm였지만 좀 줄여도 충분하겠다고 판단했다. 14mm를 줄여 100mm 폭으로 생산했더니 원가절감과 가격 인하, 원자재인 나무를 아끼는 효과까지 나타났다. 여러 국가가 화장지 폭을 줄이기 시작했다. 1984년부터 시작된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도 점차 세계적인 환경보호 슬로건으로 자리 잡았다.입지전적인 그의 삶의 여정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성실함과 부지런함, 부단한 도전정신,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자세, 투철한 주인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노년의 이종대 회장이 맏딸인 이혜정 요리연구가와 함께 미소짓고 있다. 그는 가정적으로도 멋진 가장이었다. 1녀 2남의 자녀들이 ‘살아있는 교과서’로 여겨 닮고 싶어했던 롤 모델이었다. 맏딸은 요리연구가이자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빅마마’ 이혜정 키친스토리 대표다.‘최초’라는 기록들을 만들어 내며 한국 제지산업에 뚜렷한 획을 그었던 이종대 회장은 작년 11월27일 향년 85세로 별세, 경기도 안성의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영면에 들었다. 반세기에 걸친 그의 ‘종이 인생’은 치열했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그 열매를 향유하고 있다.전경옥 언론인연보․1933년 경북 금릉군 김천면 출생․1951년 김천중(6년제) 졸업․1955년 경북대 사범대 물리학과 졸업․1955~1959년 청구제지 공장장․1959~1967년 한국펄프, 풍국제지, 한일제지, 이화제지 공장장․1967~1970년 유한양행 제지기술 부장․1970~1977년 유한킴벌리 상무이사(공장장)․1977~1980년 유한킴벌리 부사장․1978년 대통령 표창․1980~1995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1984년 석탑산업 훈장․1990년 킴벌리 클라크사 ‘기업인 성취대상’ 수상․1994년 철탑산업 훈장․1995~1998년 유한킴벌리 회장․1997년 ‘세계제지산업 명예의 전당’ 헌정자로 선정․1995~2004년 한국제지공업연합회 회장․2018년 11월 27일 85세로 타계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 옥산서원

[{IMG01}] 옥산서원 앞으로 자개천이 흐르는 계곡의 너럭바위에 새겨진 세심대는 퇴계 이황의 글씨다. 세심대는 계곡물로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성리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의 옥산서원,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서원이다. 회재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서원은 사액서원으로 임진왜란에도 병화를 면했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이다.강의와 토론이 열렸던 구인당. 강당 안쪽에 걸려 있는 편액 ‘구인당’은 한석봉이 썼다.〈1〉 옥산서원-아버지의 이름으로-회재 이언적과 잠계 이전인 독락당에서 북쪽으로 400m쯤 올라가면 신라 시대 사찰인 정혜사지와 높이 5.9m의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국보 제40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 위에 13층의 몸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대구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에 넓은 안강들을 가로지르다 북쪽으로 자옥산을 향해 좁은 2차선 시골길을 달려 옥산서원(玉山書院·이하 서원)에 닿는다. 자옥산 계곡을 흐르는 자계천변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옥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다.서원은 조선조 도학자이자 대유학자이자 정치가인 회재(晦齋) 이언적(1491 ~155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과 문인 및 경주 유림들이 세웠다. 서원 앞 개천을 건넌다. 옛날에는 입구에 있던 하마비를 옮겨 놓은 듯 계곡 건너편에서 하릴없이 서원을 지키고 있는 하마비가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준다.한여름이면 제법 물살이 거셌을 것 같은 계류가 넓은 청석판을 깔고 흐른다. 회재가 세심대(마음을 씻는 곳)라 이름 붙였다. 외나무다리를 건너 정문에 이르니 역락문(亦樂門), 공자가 말한 군자의 3가지 즐거움을 이곳에서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조선 중기 문인 소재 노수신이 이름 지었다. 묵직한 돌계단을 딛고 역락문을 들어서면 정면 7칸의 커다란 2층 누각을 마주친다. 무변루(無邊樓)다. 가운데 3칸은 아래 위 모두 틔워 출입문과 대청으로 활용하고 양쪽 1칸씩은 벽체로 막아 아래는 아궁이와 굴뚝을, 위에는 온돌방을 들였다. 양 끝의 방들은 몸체에서 달아내어 누마루를 돌렸다. 벽을 허물어 외부 경관을 볼 수 있도록 한 보통의 누각과 달리 벽을 모두 닫아 대청과 누마루가 모두 막혔으니 무변루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한다. 2층 대청 안쪽에 걸린 편액으로 심오한 뜻을 품은 이름이라 짐작할 뿐이다. 아마 편액의 한 편에 명필 한석봉이 썼다는 “모자람도 남음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도다. 빛이여, 맑음이여, 태허에 노니누나”라는 부기에서 무변루의 의미를 짚어본다. 무변루를 내려 계단을 올라서면 강당 격인 중정 구인당(求仁堂)이다. 정면 5칸 측면2칸인데 가운데 3칸은 마루를 틔웠고 양 옆은 무변루처럼 온돌을 놓았다. 그런데 온돌방 전체에 봉창 하나 없이 꽉 막아 놓았다. 가운데 걸린 커다란 편액 玉山書院(옥산서원)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되기 전인 54세에 쓴 것이다. “만력 갑술년(1574) 사액 후 266년 되는 을해년(1839)에 화재로 불타버려 다시 써서 하사한다”는 내용이 편액에 뚜렷하다. 서원 사액 당시 선조가 아계 이산해에게 명하여 쓰게 했던 것을 추사가 다시 쓴 것이다. 추사의 힘이 한껏 느껴지는 글씨체다. 대청 안쪽 구인당 편액은 한석봉이 썼다. 구인당의 동재와 서재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좁고 긴 맞배지붕 건물로 실용성이 가미된 서생들의 생활공간이었다. 강당 뒤에는 체인묘와 전사청이 있고 출입이 금지돼 있다. 구인당 뒤 왼쪽 체인묘 옆으로 회재의 신도비가 있는 비각이 있다. 비각 안 신도비는 퇴계와 사단칠정 논쟁을 벌였던 고봉 기대승이 짓고 글씨는 이산해가 썼다. 비석 위에는 두 마리 용이 휘감고 비석 아래에는 거북이 앞발은 땅을 굳게 딛고 버티고 있다. 서원 곳곳의 편액 글자 한 자 한 획이 모두 대가들의 솜씨 경연장이다. ◆ 회재 이언적 회재는 옥산에서 10km 떨어진 양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번(蕃)을 따라 양동에서 옥산의 정혜사(지금은 국보 40호인 13층 석탑만 남아 있다.)를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공부했다.벼슬에서 물러나서는 정혜사 옆 아버지가 기거하던 독락당에서 살았고 귀양지 평안북도 강계에서 독락당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생을 마감했다. 회재는 김굉필, 정여창, 이황, 조광조와 함께 동방오현으로 추앙받고 있다. 사후 후손들의 노력으로 문묘에 종사되고 있으니 유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자고 일어나면 목이 붙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할 만큼 사화의 피바람이 몰아치던 조선조 정변기. 말 한마디, 잘못된 만남 한번이 생사를 가르던 살얼음 딛듯 아슬아슬한 시대, 회재는 2번이나 정변에 밀려 낙향한다. 그가 택한 곳은 본가가 있는 양동이 아닌, 10km 떨어진 독락당이었다. 중종 26년 1531년, 41세의 회재는 성균관 사간이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중종의 사돈인 김안로에게 세자의 훈육을 맡기자고 했지만 회재는 그가 소인이라며 반대했다. 이 일로 파직되고 고향 독락당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7년 만에 불려 올라간다. 홍문관 응교로 다시 등용된 회재는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한성부 판윤, 이조판서, 경상도 관찰사 등을 두루 역임했다. 좌찬성으로 있던 명종 1년(1561년) 소윤과 대윤의 싸움이 극에 달한다. 역사에서 을사사화로 부르는 정파싸움에서 회재는 소윤의 편을 들어 공신이 되기도 했지만 파직되고 두 번째 귀향한다. 57세 되던 명종 2년, 양재역 벽서사건(수렴첨정하던 문정왕후를 비방하는 괴문서 대자보 사건)으로, 쫓겨 내려와 독락당에 은거하던 회재도 이번에는 비껴가지 못한다. 을사사화 잔당이 남아 사건을 일으켰다며 연루된 것이다. 그는 “군자는 죽음에 이르러도 놀라거나 원망하지 않는 법이다. 내 머리가 희기 전에 벼슬을 버리고 이 산에 돌아오리라” 하고 국경 근처인 평안도 강계 땅으로 유배된다. 그리고는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옥산서원 건립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의 옥산서원,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서원이다. 회재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서원은 사액서원으로 임진왜란에도 병화를 면했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이다.그 독락당 인근에 서원이 들어선 것이다. 아들 잠계 이전인과 손자 구암 이준과 치암 이순이 건립한다. 회재가 죽은 지 19년 지난 1572년, 회재의 학문을 기리고 뜻을 펴겠다는 뜻에서다.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의 47개 서원 중 하나였고 보물급 문서가 많은 서원으로 알려졌다.창건 당시 향중 사림 13명이 서원 건립을 건의했다고도 한다. 당시 대사성 허엽의 서원 기문에는 “선생의 문인 구봉 권덕린과 손자 구암 이준의 노력에 의해 창건됐다. 경주 본주 읍민들의 협조와 경산군수를 역임한 손자 이준이 서원의 경제적 기반확보에 역할을 했다”고 적고 있다. 1574년 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선조로부터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는다. 처음엔 40여 칸이었으며 사당 강당 동재와 서재 누각 등으로 서원의 기본을 갖췄다. 1835년 판각이 불타서 다시 지었고 1839년 강당이 불나 이듬해 중건했다. ◆ 아버지와 아들 회재는 18세때 16세인 함양 박씨와 결혼했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24살에 급제해 25살에 경주주관학교에 있을 때 감포만호 석귀동의 셋째 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았다. 사촌의 아들 이응인을 양자들이고 그는 양동 무첨당에, 둘째부인 양주 석씨에게서 난 아들 이전인은 독락당 주인이 된다. 면천한 석씨는 회재의 모친 손씨 부인을 노후에 독락당에서 지성껏 모셨다고 전한다. 서자 이전인은 회재의 귀양지인 평안도 강계에서 7년 동안 회재를 극진히 모시고 같이 학문을 논하기도 했다. 당시 회재의 학문적 성과는 아들 잠계 전인과 손자 준의 설득을 거쳐 퇴계가 인정하게 된다. 회재가 유배지 강계에서 대학장구보유, 예학의 선구가 된 봉선잡의와 구인록,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를 정리한 진수팔규를 지은 것도 모두 아들 이전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회재의 학문적 업적을 이루고 또 세상에 알린 것도 모두 이전인의 공이었다. 유배지에서 사망한 아버지 회재의 시신을 고향 옥산까지 운구해 온 것도 전인이다. 회재가 명종 8년(1553년) 11월23일 사망했지만 죄인이라 공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상여는 석 달이나 걸려 이듬해 2월에야 고향에 도착했다. 당시 실세인 문정왕후를 피해 평안도에서 동쪽 강원도 태백을 거쳐 안동 청송 영천으로 운구해 왔다고 ‘회재 주손’ 이해철 (71)씨는 설명한다. 이전인은 문정왕후가 죽은 뒤인 1566년 회재가 중종 인종 명종 3대를 섬긴 충효를 상소해 회재는 죽은 지 13년 만에 사면되고 영의정으로 추증된다. 아들 이전인에게도 종1품 판사 벼슬이 내려진다. 그러나 이전인은 “아버지의 복작 만으로도 감사하다”며 병을 빙자해 사양했다. 이전인의 효성이 성인 회재를 가능하게 했다고 후손들은 입을 모은다. ◆회재 아들 잠계와 퇴계 퇴계는 생전 10살 위인 회재를 직접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잠계 이전인이 1560년 아들 준과 순을 데리고 퇴계를 찾아 회재의 행장을 부탁하고 학문적 성과를 확인받으면서 퇴계는 회재를 인정하게 된다. 이전인의 호 묵계도 이 때 퇴계가 지어준 것이다.퇴계는 “선생의 학문이 이렇게 깊은 줄 몰랐다”며 “경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실토했다고 행장에 적었다. 퇴계는 “일찍이 선생이 그렇게 유도한 분인 줄 알았더라면 만나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하면서 아쉬워했다. 이단을 배척하고 정주학을 수립한 회재의 학문은 퇴계가 급성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비로소 퇴계의 학문이 체계적으로 성립된 셈이라고 이해철 씨는 말한다. 이를 이르러 학계에서는 “무회재면 무퇴계”라 이른다고 이 씨는 강조했다. 세상에서 잠계가 없었다면 회재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에 이어 회재야말로 퇴계의 학문을 성숙하게 한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퇴계가 쓴 회재의 행장은 5년 뒤인 1565년에야 완성된다. 퇴계는 회재의 진수팔규를 명종에게 올려 학문적 깊이를 평가했고 선조대에 회재의 복권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기대승에게 부탁해 회재의 신도비명을 짓게 했다. 무회재면 무퇴계란 말이 유림 사이에 회자된 연유다. ◆옥산서원과 문화재 옥산서원 유물전시관은 보물 제525호인 삼국사기, 동국이상국전집 등 고서 4천여권을 비롯해 고문서 1천156건 등 모두 6천280여점의 문화유산이 소장되어 있다.회재의 서원에는 수많은 보물급 문화재가 있다. 회재의 벼슬살이 과정의 교지 등과 학문의 깊이를 말해 주는 것으로 주로 그가 독락당에 있을 때와 강계에 유배돼 있으면서 저술한 것들이다. 국보인 삼국사기 본질 9책 50권이 서원 경내 유물전시관에 있으나 열람할 수 없다. 또 서책 1천382책과 보물급 문화재들이 독락당 유물관에 보관돼있다. 유물 보전과 관련해 주손 이해철씨는 “1970년대 경찰서 지인을 앞세워 유물 몇 점을 700만 원에 팔라는 제의를 받았다.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돌려보낸 뒤 그날 밤 한 숨도 못잤다. 당시 집을 두세 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궁색한 살림살이에 고민이 되기도 했다.약속일이 되어 찾아 온 사람은 생각해 봤느냐고 했다. 머뭇거리니 포은의 시 한 편을 더 넣어서 900만 원 줄 테니 생각해보라고 했다”며 “조부가 총알을 무릅쓰고 난리 중에도 보관했는데 내가 이걸 팔고 어떻게 선조고 제사를 지내느냐는 생각으로 유혹을 뿌리쳤다”고 회고했다.이경우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5번 공청회, 대구의 희망 봤다

72년 대구시의사회 다시 초심으로. 끝-5번 공청회, 대구의료 희망 봤다. 올해는 개원의와 함께(지면 메인 제목으로 부탁해요 ) 대구시의사회는 72년의 전통이 있는 대구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유일무이한 의료단체다.회원 수만 5천500명에 달한다. 장애인·노숙자·외국인 노동자 등을 위해 ‘사랑의 의술’을 지원하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이웃을 위해 연탄을 배달하고 성금도 모금한다.메디시티 대구를 홍보하고 사랑의 의술을 실천하고자 해마다 전 세계 오지를 찾아 해외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다.지난해 11월12일에는 지역의료 발전을 위한 보건의료빅데이터 활용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일주일 후인 19일에는 전국 시·도 의사회 중 최초로 기자협회(대구·경북기자협회(회장 이주형))와 시민 건강 증진을 위해 역량을 결집하고자 MOU를 맺었다.의사회는 의료 서비스 제공과 의료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기자협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로 약속한 것이다.이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공청회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공청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민이 합리적인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돕는 데 있다.공청회를 준비하려고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꼽히는 이들이 초심으로 돌아갔다. 대구의료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겸허한 자세로 근본에 충실하자고 서로 약속했다.대구의료가 수도권과 견줘도 전혀 손색없다는 ‘숨은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것이다.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이미 기득권이 된 서울의 대형병원과 초반 열세를 감수한 치열한 승부를 벌여야 하기에 더욱 전열을 가다듬고 강도 높은 실전훈련도 소화해야 했다. 첫 번째 처방이 공청회였다.의료 관련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공청회를 열고 현실을 냉정히 분석하고 반성도 했다. 이 과정에 나온 여러 대안을 꼼꼼히 분석했다.지난해 9월20일부터 11월22일까지 열린 5번 공청회의 여정을 소개하는 과정에 대구의료의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료전달체계 확립해 환자 유출 막는다대구시와 대구시의사회, 메디시티대구협의회를 비롯한 의료 관련 기관·단체가 대구의 미래를 위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메디시티 대구’다. 의료기술과 서비스에 앞서가는 대한민국 의료특별시의 새로운 이름이다.메디시티 대구를 본궤도로 올리면 대구 미래의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메디시티 대구’ 프로젝트는 지속 가능하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블루오션이다.그 중심에 대구시의사회가 있다.대구의사회는 대구가 의료관광 중심도시로 도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역 의료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 수도권 빅 5 병원과 당당히 겨루고자 지역 의원 및 중소병원과 3차 의료기관과의 전달체계 확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이를 통해 의료기관 간 역할 분담을 양질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 대구시의사회가 공청회를 준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의사회는 시민과 대구시의사회원들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대형병원별로 공청회를 실시해 대형병원에 실정을 고려한 맞춤형 의료서비스 개선에 나섰다.공청회를 거치며 대학병원의 의료진과 직원의 친절도가 향상된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우선 병원별로 신규환자를 위한 교수별 진료시간을 별도로 배정하는 등 빠른 진료예약과 신속한 치료가 가능하도록 했다.지난해 대형병원의 공청회에 이어 올해는 개원의들을 대상으로 공청회 후 변화를 알릴 예정이다.개원의들에게 지역 내 우수한 의료진 및 의료환경을 집중적으로 홍보해 중증환자를 얼마든지 지역 대형병원으로 의뢰해도 된다는 확신을 심어주기로 했다.이와 함께 과별 개원의 모임과 구·군 의사회 총회 및 의사회 학술대회 등에서 지역 의료기관간의 올바른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할 것이다.지역 의료전달체계 확립의 핵심은 1·2차 의료기관은 경증 및 만성질환 환자에 집중하고 3차 의료기관은 급성 및 중증질환을 전담하는 것이다.또 지역 대형병원(3차 의료기관)은 1·2차 의료기관에서 전원 된 환자를 신속히 진료하고 급성 및 중증질환을 치료 후 다시 1·2차 의료기관으로 다시 의뢰하는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시스템화해 균형 있는 의료기관별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이를 통해 수도권 대형병원의 지역 환자유출을 차근차근 줄여나간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웠다.◆초심으로 돌아간 5번의 공청회대구시의사회는 공청회를 준비하는데 1년을 투자했다.지역환자 유출을 막는다는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메디시티 대구’라는 지역의 미래 성장동력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지역의료 발전과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공청회’. 공청회의 목적은 타이틀에서부터 명확히 확인된다.첫 번째 공청회는 지난해 9월20일 경북대병원과 칠곡경북대병원을 대상으로 진행됐다.이후 10월4일 영남대병원, 10월18일 대구파티마병원, 11월1일 계명대 동산병원에 이어 11월22일 대구가톨릭대병원을 끝으로 5번의 공청회를 마쳤다.공청회에서 대구시의사회와 지역의료발전위원회, 메디시티대구협의회는 물론 개원의들의 질문과 공청회 대상인 해당 병원의 원장과 진료 책임자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먼저 첫 공청회를 진행한 경북대병원과 칠곡경북대병원이 다양한 개선방안을 내놨다.초진 환자 슬롯 확대 운영을 통한 대기시간 단축, 친절도 향상을 위해 보건복지부 심층관찰 참여, 환자 우선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 전국 최초로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Smart Mobile 서비스 운영), 진료의뢰-회송 시스템 활성화 등이다.영남대병원에서도 많은 개선사항 지적되고 이에 대한 답변이 나왔다. 같은 의료인끼리라고 ‘제 식구 감싸기 식’의 형식적인 질의응답을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진료예약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특정 교수와 과에 수술이 몰린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인의 불친절과 진료받은 환자를 다시 회송하지 않은 경우 회신서의 무성의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의견이 제시됐다.대구파티마병원은 △빠른 진료예약 시스템(당일 접수 및 진료, 필요 시 진료시간 연장) △신속한 검사와 수술 △의료진의 친절 △환자 재회송 및 회신서 작성 충실 등을 약속했다.계명대 동산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의 공청회에서도 대학병원에서 흔히 발생하는 영남대병원과 유사한 지적이 나왔다.이들 병원은 이미 영남대병원 공청회를 경험한 터라 이미 개선한 내용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기고형식)우리 병원은 대구 동구에 있다. 병원이 있는 곳은 어르신이 많이 사신다.언제인가부터 암과 같이 수술을 해야 할 중증 질환으로 진단받으면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가는 이들이 많아졌다.처음에는 형편이 넉넉한 분들이 주로 서울로 향했는데 점차 소득이 낮은 사람도 서울을 찾기 시작했다.최근에는 어지간한 질환만으로도 서울로 가사 수술받거나 진료받는 것이 일상적인 상황이 됐다.하지만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을 때 여러 문제가 일어나고 그 문제들이 복잡하고 다양한 연관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특히 2015년부터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지난해부터는 대구시의사회장을 맡으며 전국의 의사들을 만나 지역 의료문제를 폭넓게 보게 되면서 무작정 서울 대형병원을 찾을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수도권 빅 5 원정 진료에는 대략 3가지의 문제점이 생긴다.첫째는 환자 자신의 문제다. 한 번 수술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암 환자의 경우 서울을 오가는 불편함을 겪으며 꾸준한 항암 및 방사선 치료, 추적 관찰을 받아야 한다.특히 면역성이 떨어지는 노약자들은 경제적 부담은 물론 감염과 부상 등의 위험에 노출된다.두 번째는 대구 의료계의 문제다.대구는 명실상부한 의료메카로 통한다. 풍부한 의료인프라와 우수한 의료인력을 보유해 수도권 환자유출이 가장 적은 도시다. 그런데도 1년에 13만5천 명이 서울로 가고 진료비도 공단 지급액만 1천300억 원이나 된다. 지역 경제 사정을 고려해본다면 결코 간과할 규모가 아니다.지역 1·2차 의료기관이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환자가 서울로 가니 당연히 병원 재정 악화는 물론 지역 의료기관의 불신도 생기게 된다. 세 번째는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것.동일한 경제·진료 권역인 대구·경북을 합하면 한 해 50만 명이 넘는 환자가 원정 진료를 받는다. 공단 지급액만 6천억 원이 넘고 일반 진료비와 본인 부담금, 교통비, 식비와 숙박비 등을 합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이 수도권으로 새어 나간다.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2017년 지역 의료계 대표자들이 모여 시작한 일이 지역의료 활성화 사업이다.지역의료가 활성화돼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이 중환자 치료에 집중하면 경증 만성병 환자들은 자연스럽게 1·2차 병원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지역 의료계의 숙원인 의료전달 체계도 확립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지역 환자와 의료계는 물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다. 또 지역의료 위상과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공감했다.이러한 확신과 공감으로 지역의료 활성화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대구시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역 대형병원의 참여와 관심으로 사업 첫해임에도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이제 시작이다. 장기적으로 대구의 미래를 위한 사업인 만큼 여러 어려움이 있다더라도 사명감으로 적극적이고 꾸준히 대구의료 활성화에 올인할 것이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 2018년 10월4일 열린 영남대병원의 두 번째 공청회 장면.2018년 10월18일 열린 대구파티마병원의 세 번째 공청회 장면.대구시의사회가 지난해 4월 의료 단체들과 함께 베트남 빈증성 일원에서 나눔 의료봉사를 펼쳤다. 당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유아를 진료한 서연경 회원(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 4시간이 걸리는 유아 환자의 집을 직접 찾아 생활환경을 점검하고 영양제를 챙기며 사랑의 의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대구시의사회가 지역 의료단체들과 홤께 2017년 7월 키르기스스탄을 찾아 의료봉사를 펼쳤다.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구·경북피부과의사회장)이 피부병에 앓는 현지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한국 최대 중등 사학재단 일군 신진욱

신진욱은 국내 최대의 중등 사학재단을 일궜고 또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몸을 사리지 않으면서 지역 교육계와 정치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말년의 신진욱. 신진욱은 5대조(회병 신체인)의 강학 공간이던 금연정사(錦淵精舍)를 의성 봉양에 중건하고 1981년 금산서원(錦山書院)으로 승격시킨다. 금연정사 앞에선 신진욱. 대구시 남구 봉덕동 경일여자고등학교. 진입로 왼쪽에 학교법인 협성교육재단 건물이 있다. 소속된 중학교‧고등학교 등이 12개나 돼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세운 중등학교로 숫자가 가장 많은 교육재단이다.고인이 된 재단 설립자 우봉(友峰) 신진욱(申鎭旭‧1924∼2014)은 중년 이상 대구 시민이면 상당수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대구 교육계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간 길을 돌아보았다.재단 사무실은 교실 한 칸이 족히 될 정도로 널찍했다. 그곳에서 협성교육재단 권오수(58) 관리국장과 박준식(50) 관리실장을 만났다. 사무실이 자리는 많은데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박 실장은 두 사람이 교육재단 직원의 전부라고 했다. 신철원(52) 이사장은 행사 참석차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재단의 내력을 들은 뒤 ‘학원장실’ 이름이 붙은 집무실을 둘러봤다. 신진욱 학원장이 생전 근무할 때 그대로 집기와 자료 등을 보존해 두었다. 한쪽에는 1995년 경북예술고 교사가 만든 우봉의 흉상이 있었다. 집무실 책상에는 굵은 글씨로 인쇄된 ‘성경’이 펼쳐져 있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그가 즐겨 읽었다는 시편 23장이다.◆교육사업에 눈 뜨다우봉은 경북 의성의 유교 집안인 아주 신씨 신종기와 전주 이씨 이소선 여사의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 기독교였다. 그래서 유교의 효(孝)와 십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다를 게 없다며 두 가르침을 모두 따랐다.우봉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에 들어가면서 교육과 인연을 맺는다. 1944년 황해도 신계군 적여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첫발을 디뎠다. 이어 대구와 의성‧경주 등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시기 광복과 6‧25를 거친다.1953년 우봉은 화재로 소실돼 길거리에 나앉은 경주고아원 전쟁고아 120명을 맞닥뜨린다. 교육사업에 눈을 뜨는 ‘사건’이다. 그는 잿더미 위에 천막을 치고 숙소를 마련했지만 해결책이 아니었다.고민을 거듭한 끝에 120명 중 일부는 의성 자혜원으로, 또 일부는 연고를 찾아 돌려보냈다. 그러고도 30여 명이 남았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대구로 나왔다. 처음에는 큰 집을 하나 얻어 함께 사글세를 살았다. 이후 남구 대명동 지금의 경북예고 땅을 인수해 원사를 지어 새로 출발한다.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구호물자로 의식주는 해결됐는데 학교 교육이 과제였다. 그 사이 60여 명으로 불어난 원아들은 유아부터 고등학교 들어갈 나이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는 인근 중학교에 입학을 부탁하러 갔다가 무안을 당한다. 그때 우봉은 ‘좋다. 나도 학교를 해야지’ 다짐한다.◆협성상고 설립…신익희와 인연 신진욱은 1955년 협성상고 야간부 설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교육사업에 뛰어든다. 야간부는 전쟁과 가정 사정으로 진학을 미뤘던 학생과 군인이 주를 이뤘다. 사진은 협성상고 입학식 장면. 신진욱은 1956년 제 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신익희에게 교정을 유세장으로 빌려주면서 인연이 돼 평생 야당의 길을 걷는다. 사진은 선조인 오봉사당 앞에서. 앞줄 중앙이 신익희, 오른 쪽이 신진욱. 학교 설립을 추진한 지 1년여 만인 1955년 2월28일 학교법인 자혜학원이 인가를 받는다. 이어 4월에는 드디어 협성상업고등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한 학급이다. 이어 전쟁 등으로 진학을 미뤄 온 나이 많은 학생과 군인들이 주축이 된 야간부를 설치했다. 학교 이름은 ‘여럿이 힘을 합쳐 이룬다’는 뜻을 담아 ‘협성(協成)’으로 정했다.이렇게 출발한 협성상고는 1956년 2월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신익희 후보에게 유세장으로 교정을 빌려주면서 시련을 맞는다. 우봉은 자서전 ‘교육에도 왕도는 있다’에서 이렇게 당시를 회고했다.‘대통령 후보가 장소를 못 구해 유세를 포기할 처지인 걸 알게 됐다. 나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일이라면 폐교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자진해 교정을 빌려주었다.’ 이 결단으로 우봉은 신익희와 인연이 닿아 40여 년 영욕의 정치 생활이 시작된다.한번은 신익희가 경북 북부지역을 다지느라 의성을 방문해 우봉의 집에 묵으며 꿈을 심는 글을 써 주기도 한다. 야당과 가까워지면서 협성교육재단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그때부터 1971년 대구 남구에서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까지 우봉과 재단은 숱한 불이익을 감수한다. 그는 자서전에 ‘학생이 늘어나 학교는 더 필요한데 인문 학교와 대학은 인가하지 않고 남들이 싫어하는 중학교와 실업고만 설립을 허가했다. 그렇게도 바랐던 대학교 설립의 기회도 잃고 말았다’고 술회했다.◆재단 해체 위기서 기사회생그 시기 관(官)은 재단의 학교 경영 전반을 감사하거나 사찰을 계속했다. 학교 경리는 물론 건축, 학사 행정 심지어는 교실에 들어가 학생 수를 세기까지 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투명한 재단 경영을 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그 무렵 재단에 결정적인 위기가 닥쳤다. 검찰이 재단 설립 과정을 정밀 조사하고 나선 것이다. 거기서 재단의 구성 요건 중 기본재산 미확보가 드러났다. 재단 설립 당시 일가친척의 과수원‧논밭을 끌어들이기로 하고 몇 건은 등기 서류를 내지 않아 차후 보완 각서를 제출한 뒤 설립을 인가받은 게 문제였다. 담당 검사는 재단을 문 닫게 할 작정으로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우봉은 눈앞이 캄캄했다.드디어 검찰에 출두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사이 담당 검사가 바뀌어 있었다. 새 검사는 설명을 들은 뒤 “서류 보완 시기가 늦었을 뿐 사기성은 없으니 돌아가 학생이나 열심히 가르치라”고 격려했다. 우봉은 “그 말이 천사의 음성 같았다”고 회고했다. 기사회생이다.◆중·고교 등 12개의 매머드 사학재단 일궈재단의 모체인 협성상고는 1975년 대명동에서 현재의 봉덕동 교사로 이전한다. 재단 건물 남쪽이다. 협성상고는 1985년 다시 일반계인 협성고로 전환한다. 협성고는 이후 명문의 반열에 오른다. 대명동 일대가 부촌(富村)으로 수성구가 떠오르기 전이다. 한동안 협성고는 서울대 합격생 수에서 대구지역 상위를 다투었다. 1980년엔 재단에 마지막으로 경일여고가 세워졌다. 대구의 유일한 자율형 여자 사립고다. 협성교육재단은 중‧고교 등 12개 학교가 소속돼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세운 중등학교로 숫자가 가장 많은 교육재단이다. 학생들과 함께 교정을 걷고 있는 신진욱. 1955년 재단 설립 이래 지난해 2월까지 유치원 포함 12개 산하 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모두 30만3천900여 명. 또 재학생은 6천680여 명에 전체 교직원은 530명쯤이다. 전성기엔 재학생이 2만까지 이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교육자 우봉에 대한 세인의 평가는 어떨까.지역에서 교장을 지낸 한 인사(81)는 “그를 참교육자로 보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정치에 발을 걸쳤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재단 산하 소선여중을 나온 한 졸업생(55)은 “설립자가 어머니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을 붙이고 어머니 생신날 가족과 함께 학교를 찾아와 전교생이 ‘어머니의 노래’를 부르도록 한 건 어딘가 씁쓸하다”고 회상했다. 시민들의 평가가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정치에도 큰 족적 남겨우봉은 생전에 스스로 “본업은 교육, 정치는 외도”라고 표현했지만 정치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국회 진출 꿈은 집요했다. 그는 5대 총선에 고향 의성에서 36세 나이로 첫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6‧7대는 대구 남구로 출마했다. 다시 연거푸 낙선한다. 3전 4기. 1971년 8대 총선에서 우봉은 마침내 당선증을 거머쥔다. 그것도 이효상 국회의장을 1만3천여 표 차로 이긴 짜릿한 승리였다. 신진욱은 평생을 야당생활을 했다. 1971년 대구 남구에서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까지 신진욱과 재단은 숱한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사진은 민주화 투쟁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한 모습. 신진욱은1973년 9대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국민투표법 및 포고령 위반으로 대구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구속 40일 만에 풀려났다. 출소 후 대구교도소 앞에서 지인들과 함께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되면서 의원직은 1년7개월 만에 끝이 난다. 1973년 그는 다시 9대에 출마하지만 이번에는 국민투표법 및 포고령 위반으로 화원 대구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옥중에서 낙선 소식을 듣는다. 구속 기간은 40일에 불과했지만 그의 정치 활동은 발이 묶였다. 1984년 정치인 해금으로 우봉은 정치를 재개한다. 그리고 14대에 민주당 전국구로 다시 국회의원이 된다. 우봉은 사학을 운영하면서 30년을 이렇게 가시밭길인 야당과 더불어 산 풍운아였다.◆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사치와 낭비 몰라 신진욱 부부의 단란한 한 때. 부인(장경옥)은 경북예고 교장 등을 지내며 재단을 함께 이끈 동반자였다. 그는 어머니의 뜻대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됐다. 한때의 포부였던 목사는 되지 못했지만 대구 남산교회의 장로였고 선교에 열심이었다. 또 1975년에는 동심교회를 세웠다. 그가 3남 3녀 자식들에게 자주 말했다는 세상에 산 표적을 남기려면 “첫째, 학교를 지어라. 둘째, 병원을 지어라. 셋째, 교회를 지어라” 중 두 가지를 실현한 것이다. 부인(장경옥)은 경북예고 교장 등을 지내며 재단을 함께 이끈 동반자였다.그는 교회 설립과 함께 5대조(회병 신체인)의 강학 공간이던 금연정사(錦淵精舍)를 의성 봉양에 중건하고 1981년에는 금산서원(錦山書院)으로 승격시킨다. 회병은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은 이상정의 제자였다. 우봉은 그래서 퇴계 선생을 누구보다 흠모했다. 또 과거에 급제한 뒤 승지를 지낸 11대조(오봉 신지제)를 그의 정신적 지주로 받들었다. 그가 즐겨 쓴 우봉(又峰‧友峰‧愚峰)이란 호(號)의 ‘봉’도 자신이 따르고 싶었던 오봉 선조에서 유래한다. 자신이 경영한 교육재단의 연원(淵源)은 이렇게 금연정사로 이어진다.우봉은 자전 에세이 ‘아직도 할 일이 많다’에 ‘내 돈 씀씀이가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 이유를 자수성가한 데다 사치‧낭비를 모르는 생활 철학으로 본인은 물론 가족이나 남에게 만족하게 쓰지 못했다고 술회했다.직원은 학원장이 그런 가운데도 유머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재단 박 실장은 “한번은 학원장이 이사장(신철원)과 길을 가다가 음식점 아주머니의 인사를 받고는 ‘우리 아들인데 다음에 가면 밥 많이 주이소’ 하자 아주머니가 크게 웃더라”고 했다. 스스로 밝힌 좌우명도 ‘얼굴에는 미소가/머리에는 지혜가/가슴에는 사랑이/손에는 일이 있어라’였다.우봉은 2014년 90세로 삶을 마감했다. 유택(幽宅)은 고향 선영에 마련됐다. 유학자 김창회는 묘비에 “(우봉은) 오직 내 갈 길은 내가 개척하라는 좌우명을 실천하고 협성 가족 모두에게 깊이 심었다”고 적었다.우봉은 수많은 이력만큼 평가도 다양하다. 그래도 열정으로 국내 최대 중등 사학재단을 일구고 또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몸을 사리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 yeeho1219@naver.com신진욱 연보‧1924년 경북 의성군 봉양면 출생‧1931년 의성 봉양초 입학‧1942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 졸업‧1944년 황해도 신계군 적여초등학교 교사‧1950년 경주 문화고등학교 교사‧1952년 사회복지법인 자혜원 설립(경주‧의성)‧1955년 협성상업고등학교 설립‧1968년 한국 YMCA 연맹 이사‧1970년 대구 남산교회 장로‧1971년 제8대 국회의원 당선(신민당, 대구 남구)‧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중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구속‧1977년 대구 동심교회 설립‧1980년 경일여자고등학교 설립‧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당선(민주당, 전국구), 국회 한일의원연맹 부회장‧2000년 재단법인 협성장학재단 설립‧2014년 타계

“계속되는 안구건조증, 정확한 진단 통해 개선해야”

매서운 겨울 날씨에 난방기 사용이 급증함에 따라 건조한 환경으로 인해 안구건조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안구건조증은 흔히 겪는 증상이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잘 관리하지 않으면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최근 안과 분야 국제 저널인 ‘Optometry and Vision Science’ 에 따르면 안구건조증을 가진 사람의 경우 정상인보다 장문을 읽는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직장인들에게는 업무 능률 저하로, 학생에게는 학업 능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보다 적극적인 예방 및 치료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의 정확한 진단 필요 누네안과병원 임성아 원장은 “안구건조증을 방치할 경우 눈이 쉽게 충혈되고 피로해지면서 학업이나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며 “장기화되면 일시적인 시력 저하현상은 물론 상에 대한 정확도가 떨어지면서 완벽하게 확인하지 못한 시각정보가 뇌로 들어가 두통이나 인지 기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구건조증의 증상과 원인은 다양하다. 인공눈물을 사용해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는다면 ‘안검염’을 의심해볼 수 있다. 눈꺼풀 여드름으로도 불리는 ‘안검염’은 눈꺼풀 가장자리와 속눈썹 부위의 기름샘이 노폐물과 세균에 막혀 기름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해 주로 발생한다. 중장년층에 비교적 많이 발생하지만 눈 화장을 자주하거나 콘택트렌즈를 많이 사용하는 젊은 여성은 주의하는 것이 좋다. 라식이나 라섹, 백내장 수술 후라면 보다 주의가 필요하다. 보통 안과 수술 후에는 눈에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눈물이나 눈곱을 잘 닦아내지 못해 눈꺼풀에 노폐물이 쉽게 쌓이기 때문이다. 속눈썹 부위에 노란색 노폐물이 볼록하게 올라오거나 눈썹 주변에 비늘 같은 비듬이나 딱지가 생긴다면 안검염을 의심해봐야 한다. 눈의 기름샘에서 분비되는 기름은 눈물이 증발되지 않게 코팅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때 탁한 기름이 나오거나 굳은 기름으로 기름샘 통로가 막히면 눈물이 쉽게 증발해 눈이 건조해진다. 이처럼 눈물이 눈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잘 증발하는 경우를 ‘증발성 안구건조증’ 이라 한다. 누네안과병원 임성아 원장은 “파괴된 기름샘은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안구건조증의 원인이 안검염이라면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안구건조증으로 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라면 우선 본인의 기름샘 상태를 확인한 후 더 파괴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만일 안구건조증을 가진 상태에서 시력교정술이나 백내장 수술 등을 고려한다면 수술 전 안구건조증 치료를 선행하는 것이 빠른 각막재생과 건조 증상 완화에 도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기름샘의 형태나 기능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리피뷰’ 검사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검사를 통해 기름샘이 얼마나 파괴됐는지 체크할 수 있으며 안구건조증에 영향을 주는 원인 중 하나인 불완전 깜빡임도 알아볼 수 있다. ◆눈 완전히 깜빡이고, 눈꺼풀 위생 철저 올바른 눈 깜빡임은 눈물막을 형성하는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모니터 등 한 곳을 집중해서 볼 때는 눈의 깜빡임 횟수가 줄고 불완전하게 눈을 감는 빈도가 늘어난다. 이런 생활습관이 반복될 경우 눈의 피로감은 더 쌓이게 되며 안구건조 증상은 더 악화된다. 따라서 특히 근거리 작업 시에는 의식적으로 눈을 완전히 깜빡여 눈물이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안검염으로 인한 안구건조증이라면 눈꺼풀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좋다. 집에서 꾸준히 온찜질 및 눈꺼풀 세척을 하면 눈물층의 안정화를 도와 눈이 침침한 증상 및 안구건조증이 호전된다. 눈꺼풀 위에 눈 온찜질 팩을 5분간 올려 막힌 기름샘을 녹여주고 면봉이나 거즈 등으로 속눈썹 주변의 노폐물을 닦아내면 좋다. 안구건조증이 심할 경우 병원 치료를 병행하면 보다 빠르게 개선이 가능하다. 기름샘에 굳어있는 기름을 녹여주고 미세혈관 이상으로 인한 염증을 억제하기 위해 ‘IPL 레이저’를 시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FDA 허가를 받은 기름샘 치료 장비인 ‘리피플로우’ 시술을 하기도 한다. 통증 없이 한 번의 시술로 비교적 오랫동안 촉촉한 눈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장점이다. ◆눈 건강에 도움되는 눈 운동법 -눈을 완전히 감고 눈을 감은 상태로 셋을 세다가 넷에 눈을 뜬다. -위 과정을 10번 반복하는 것을 한 세트로 하고 하루 15세트 반복한다. -두 달 이상 꾸준히 반복하면 불완전 눈 깜빡임 횟수가 줄어들고 기름 분비도 늘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도움말=누네안과병원 각막센터 임성아 원장

수도권 대형병원과 진검승부 준비…대구 의료 마스터플랜 완성한다

대구의 의료 인프라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여러 자료와 수치를 보면 금방 확인될 만큼 대구는 의료도시로 꼽힌다. 대구에만 4개 의과대학이 몰려 있고 해마다 7천여 명의 인력을 배출한다. 의사와 약사, 한의사 등의 의료인력만 전국의 20%나 된다. 부러울 만큼 탄탄한 의료 인프라를 바탕으로 대구에는 5개 대형병원과 3천500여 개의 의료기관에서 2만1천여 명 의료인력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구 1천명 당 의사 수는 서울의 제외하면 전국 공동 1위, 간호사 수는 3위. 인구 10만 명당 의료장비 수는 전국 3위. 여기에다 4조6천억 원을 들여 대구 동구에 조성한 대구ㆍ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는 신약 및 첨단의료기기 개발ㆍ실험동물ㆍ임상시험 센터 등을 갖춘 대구의 신성장 동력을 책임지는 컨트롤 타워로 꼽힌다. 대한민국 의료특별시 ‘메디시티 대구’를 지향하는 대구는 단순 수치로만 따져봐도 양적으로 풍부한 의료인력과 장비를 구축한 명실상부한 의료 1번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구시의사회(회장 이성구)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왜 많은 시ㆍ도민이 대구가 아닌 서울(수도권)의 대형병원을 찾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환자에 대한 정성과 감동이 미흡했다. 또 우수한 인프라에 대한 홍보도 부족했다. 게다가 1ㆍ2ㆍ3차 의료기관 간의 유기적인 진료 연계도 원활하지 않아 환자들은 불편은 물론 경제적 손실도 감당해야 했었다. 환자들에게 대구의 3차 의료기관은 오히려 갑으로 통했다. 대구시의사회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2017년부터 의료계와 연관 기관을 총망라한 수장들이 모여 협약을 맺고 꼼꼼한 준비를 했다. 일 년 후. 의사회는 지역 대형병원 5곳과 함께 지역의료 발전과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공청회를 마련해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고 반성하며 개선방안을 모색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공청회는 3개월의 여정을 끝내고 막을 내렸다. 또 시민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벌여 지역 및 수도권 의료기관에 대한 인식도 확인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구시의사회는 공청회와 설문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올해 중점 추진 방향을 정하고 수도권 대형병원과의 진검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대구시의사회가 추진한 공청회 과정과 이를 통해 제시한 대구의료의 마스터 플랜과 ‘메디시티 대구’ 완성을 노력,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망라해 2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1년간 준비한 만큼 관심과 기대 커 공청회는 2018년 9월20일 경북대병원ㆍ칠곡경북대병원을 시작으로 영남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순으로 열렸다. 11월22일 대구가톨릭대병원 공청회를 마지막으로 3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지역 의료발전과 의료전달 체계 확립’을 주제로 대구시의사회와 대구시, 메디시티대구협의회가 공청회에 늘 함께했다. 20일 열린 첫번째 공청회에는 대상 병원인 경북대병원과 칠곡경북대병원은 물론 대구ㆍ경북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및 개원가 관계자, 대구시와 시의회, 경북도의사회 등 200여 명이 모였다. 실제 현장 분위기는 1년간 준비한 공청회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대구시의사회는 물론 메디시티대구협의회와 공청회에 참석한 회원과 의료 관계자가 형식과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고 경북대병원과 칠곡경북대병원이 답변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이들은 수도권 환자 유출 방지 방안, 병원 문화 개선, 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1차ㆍ3차 의료기관의 역할 분담 및 협력 강화에 대해 논의를 했다. 먼저 지역의료발전위원회(위원장 금동윤, 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교수 겸 진료 부원장)가 수도권 상급병원 쏠림현상에 따른 의료전달 체계 왜곡과 지역 중증질환자의 수도권 유출로 인한 환자 불편과 경제적 손실을 예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대구 의료기관의 개선방안에 대한 설문조사와 서울지역 대형병원을 이용한 지역환자의 반응, 지역 1차 의료기관 개원의 및 지역 3차 의료기관 의료진 등의 설문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김용림 경북대병원 진료처장은 지역 의료 문제를 개선하고자 대기시간 단축, 친절도 향상, 환자 우선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 진료의뢰 및 회송 시스템 활성화 등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2020년 다시 한자리에 모여 변화 확인 대구시의사회는 2018년과 같은 대시민 설문조사와 대형병원 공청회를 2020년 다시 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단순히 ‘보여주기’를 위한 일회성 행사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지역에서 올바른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지역의료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대구시의사회와 대형병원 및 1차ㆍ2차 의료기관이 운명 공동체임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해 공청회 결과를 토대로 의사회 회원, 의료기관, 시민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먼저 시민을 대상으로 균형 있는 의료기관 발전을 위한 인식조사 및 홍보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난해 지역 대형병원과 수도권 대형병원에 대한 시민의 인식을 설문 조사한 결과 시민이 수도권 병원을 찾는 이유는 해당 병원이 유명하다는 막연한 기대감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최근 발표에 따른 5대 암 중의 하나인 위암과 대장암은 수도권과 대구의 병원 간 생존율에 차이가 없었고 의료수준도 동일했다. 의사회는 이를 지속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또 올해는 시민을 대상으로 1ㆍ2ㆍ3차 의료기관에 대한 인식과 진료 등에 대한 설문 조사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제점과 해결점을 제시하는 한편 올바른 의료기관 이용을 위한 언론 홍보를 강화할 것이다. 이후 2020년 공청회 때는 업그레이드된 지역 의료기관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우수한 지역의료기술 홍보다양한 정책개발 앞장설 것금동윤 지역의료발전위원회 위원장 수도권 몇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현상은 이제는 대구·경북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가 됐다.대구에도 중증 고난도 질환을 치료하는 우수한 의료 인력과 시설이 충분히 있음에도 많은 환자가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 실정이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대구의 환자가 수도권 의료기관에서 지불한 비용이 한해 1천억 원을 넘는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이동수단 등 기타 경비를 추정할 경우 2배 이상의 경비를 수도권에 지출한 것으로 판단된다.지역 대형병원이 간혹 급성기(아급성기) 치료를 끝낸 후에도 해당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다른 중증 및 응급 질환자의 즉각적인 진단과 치료가 지연되는 의료전달체계 왜곡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이를 방지하고자 2017년 말 대구시의사회와 대구의 6개 대형병원(경북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은 지역 의료발전을 위한 협약식을 체결했고 지역의료발전위원회를 구성했다.지난해 지역의료발전위원회의 주요 사업내용은 지역 의료 우수성에 대한 대시민 홍보와 ‘지역의료발전과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공청회’ 개최였다.홍보 포스터를 제작해 홍보에 나섰고 라디오 광고를 통해 지역 1·2차 및 3차 의료기관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공청회 준비를 위해 위원회는 전문 조사기관에 의뢰해 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이를 통해 시민의 수도권 및 지역의료기관에 대한 인식을 파악한 것이다.또 1·2차 의료기관 의사들로부터 지역 3차 의료기관의 문제점과 요청사항도 꼼꼼히 들었다. 3차 의료기관 의사들과는 지역환자 유치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공청회는 대구의 대형병원이 주관하고 대구시의사회가 주최, 대구시와 메디시티협의회의 후원해 모두 5차례 열렸다.일부 대형병원이 중심이 돼 병원 홍보를 위해 협력 병·의원장 간담회를 마련한 적은 있었지만 대구시의사회가 직접 나선 공청회 형식의 대형 모임은 이번이 처음이며 전국적으로 최초의 일이다.공청회를 시작하기 전 각종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공유했으며 대형병원의 병원장 이하 실무책임자들은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공청회에서는 수도권으로 환자유출 방지를 위해 빠른 진료예약 및 검사시스템 구축, 지역의료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 의료진의 친절 향상을 위한 대책 등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또 1·2차 의료기관으로 환자회송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모색했다.공청회를 통해 대형병원은 신속한 진료와 치료를 원하는 지역 환자의 요구를 명확히 인식하게 됐다. 이같은 결과를 대구시와 의사회, 의료기관은 정책적으로 반영해 지속해서 개선하기로 했다. 자화자찬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참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이 든다. 특히 공청회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열기가 더해져 지역 의료인이 합심해 지역의료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해법을 찾는 하나 된 모습을 보여줬다.올해도 지역의료발전위원회는 우수한 지역의료기술 홍보와 다양한 정책 개발을 통해 지역의료발전과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현대사 최전선에서 한국적 ‘자주인 사상’ 자율공동체 꿈꾸다

2002년 6월 고향 안의면 안의공원에서 동료ㆍ후학 130명이 참가한 가운데 학덕비 제막식이 열렸다. 학덕비에는 “한 손에 실존적 자유의 깃발을, 다른 손에 인간적 해방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라는 제자 김주완 교수(경산대)가 스승 하기락을 기리는 시가 새겨져 있다. 사진은 하 교수의 4남 하영선(전 대구대 식품공학과 교수) 부부. 하기락은 영어ㆍ일어ㆍ독일어ㆍ한문에 능통했다. 그는 1980년대 경북대 대학원 과정에 개설된 동양철학 강좌에서 한문 원문으로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근사록’ 등을 강의했다.그는 1980년대 후반 독일 철학자 하르트만 읽기 모임을 만들어 정확한 번역과 해설로 후학들의 이해를 도왔다.그는 80세 때인 1992년 ‘조선철학사’를 발간했다. 서양철학자인 그가 한국역사를 1만 년까지 끌어올려 상고시대부터 근세까지 철학을 기(氣)의 관점에서 풀어쓴 것이다.1997년 2월3일 그는 대구 만촌동 집을 나서다 쓰러졌다. 국제평화협회지 ‘평협’을 돌리려 집을 나서던 순간이었다. 그는 경북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그는 언제나 약자 편이었다. 누구에게나 겸손했고, 평생을 청빈했다. 광복 후 한국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그가 있었다. 그는 한국 현대철학 1세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으나 학술원 회원도 되지 못했고 훈장이나 상조차 받은 적이 없다. 늘 권력의 반대편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후학들은 그를 전설처럼 말하고 있다. 이송하 전 연합뉴스 기자• 1912년 1월26일 경남 함양군 안의면 출생• 1922년 안의공립보통학교 입학• 1927년 경성 제2고보(현 경복고) 입학• 1929년 광주학생운동 시위 주동으로 퇴학• 1934년 최재전과 결혼• 1935년 일본 밀항/일본 동경 상지대 예과 입학• 1937년 와세다대 철학과 입학• 1939년 12월 창씨개명 비판, 3개월 구류처분• 1941년 대학 졸업/황해도 재령상고 교사• 1946년 부산 ‘자유민보’ 주필• 1946년 4월 안의 전국아나키스트대회 개최• 1947~52년 옛 대구대 교수• 1951년 안의고교 설립• 1952~68년 2월 경북대 철학과 교수• 1963년 한국칸트학회 설립 주도• 1973년 민주통일당 정책위의장제9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1987년 제3회 전국아나키스트대회 대회장• 1988년 서울서 세계 아나키스트 대표자 대회• 1992년 12월 조선철학사 발간• 1997년 2월3일 별세연보

풍수, 미신 아닌 과학?…IT기술과 동양철학 하나의 길로 잇다

해외에서 유명한 명당으로 알려진 지역으로는 그리스의 산토리니, 인도의 자이푸르, 중국의 만리장성 등이 있다. 사진은 그리스의 산토리니 전경. 풍수를 미신이 아니라 과학으로 푸는 시대가 왔다. 풍수는 과학과 인문학의 교집합이다. 풍수에서 화학과 생물학, 천문학 등과 같은 명제성립의 조건은 충족되지 않는다. 다만 자연에 관한 겸허한 연구, 그에 따른 소중한 경험치다. 풍수의 철학적 의미를 단순하게 살펴보면 풍수란 길흉화복을 구별해주는 철학이다. 이를 통해 물아일체와 과학적 생활공간을 디자인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패철 하나에 의존해 명당을 점지하던 지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고해상도의 드론을 띄워 지형해독의 질을 한층 더 제고시킨다. 애플 창업자 스티븐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이야말로 최고의 수익처’임을 자신했다. 태블릿PC에 돼지머리 이미지 띄워 고사를 지내고 이메일로 받은 부적을 스마트폰에 저장해 미신이라고 치부돼왔던 일들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추세다. 평범한 장삼이사들 역시 이메일로 받은 부적을 스마트폰에 저장하며, 태블릿PC 속 돼지머리 이미지로 고사를 지내기도 하는 등 미신이라고 치부돼왔던 것들을 일상에서 친하게 만나는 추세다. 인문학 상위 카테고리인 동양철학과 인공지능(AI)의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걸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게 실생활에 스며든 풍수인 셈이다. ◆풍수와 상대성 이론 세계적 물리학자들의 최종 난제는 ‘우주의 기원’이다. 우주의 시발점과 소멸, 주기에 관한 모든 것이다. 미신으로 치부되던 풍수는 아이러니하게 상대성 이론과 궤를 함께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운동의 절대적 기준을 부정한다.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다는 데 대한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원리인데 30㎞/s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지구의 움직임을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어느 좌표계에서든 물리 법칙이 동일하다는 이치다. 뮤온 입자를 시간 지연에 의해 지상에서 관찰 가능한 것, 목성 주변의 빛이 휘어지는 것 등도 상대성 원리의 동력이다. 풍수의 기운 역시도 사람마다 상대적이다. 풍수학자들은 인간에게도 생체 에너지가 흐른다고 한다. 생체 에너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기, 인도 프라나(prana), 그리스 프네우마(pneuma) 등으로 불린다는 것. 그들에 따르면 우리는 일상에서 기의 작용을 ‘기가 막히다’, ‘기가 차다’ 등의 관용어로 표현한다. 기 역시 절대적 기준 없이 남녀노소에 따라 가변하는 동력이다. 어떤 풍수일지라도 청년에게는 행복한 기운이, 어르신에게는 강골의 기가 흐르는 상대성을 내포한다. 풍수는 개인에게 맞는 균형을 이뤄내는 일련의 과정이다. 자연과 인간의 생체 에너지가 조화를 이룰 때 건강을 영위할 수 있다는 암묵적 믿음이다. 이렇듯 물리학과 풍수학은 우주와 자연에 대한 고찰이라는 공통점을 내포한다. 물질과 반물질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기와의 연계성을 터득한다. 우주와 자연의 공간에 흐르는 자기장의 원리가 우주 활동의 동력이라는 논리다. 자기장의 원리를 공간학문에 적용한 것이 바로 풍수학이란 게 관련 학자들의 설명이다. 공명을 찍는 사진기는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러시아 전기기사 세미온 키를리안이 개발한 이 사진기는 피사체와 절연체 간 전극에 2만 볼트 내외의 고압전기를 흘려보낸 후 방전된 부분을 필름에 기록한다. 그 예가 바로 오라(aura) 촬영하는 장치로 알려진 키를리안(kirlian) 사진기라는 것. 공명을 찍는 사진기로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러시아 전기기사 세미온 키를리안으로부터 탄생한 이 사진기는 피사체와 절연체 간 전극에 2만 볼트 내외의 고압전기를 흘려보낸 후 방전된 부분을 필름에 기록하는 원리다. 물론 정확한 툴에 따른 자료 수집이 선행돼야겠지만, 공명현상에 의해 상이 찍히면서 사람의 건강ㆍ기분 등 기운의 상태가 카메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굳이 풍수를 맹신할 필요는 없다. 그저 최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선한 디딤돌 정도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풍수와 IT IT산업의 집약체로 일컬어지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풍수가 각광받고 있다. 풍수에 맞는 사무실 인테리어 변경 뒤 매출이 신장했다는 웃지 못할 사례도 빈번하다. 심지어 그들은 “풍수에 맞는 인테리어 변경으로 회사가 더욱 굳건해졌다”며 ‘풍수예찬론’을 공공연히 펼치고 다닌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 삼성물산 최고경영자(CEO)의 집무실은 최고층인 32층이 아니라 19층에 위치한다. ‘19’라는 풍수적 의미를 두는 것이다. 풍수상 19층은 땅의 기운이 충만한 위치라고 본다. 19가 풍수학적으로 ‘퍼펙트’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전자ㆍIT기업들이 풍수지리를 고찰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SK 기업의 서울 종로구 사옥 정문 계단에는 거북이 머리를 상징하는 검은 돌에 흰 점이 박혀있다. 명당 지역이지만 불의 기운이 강해 건물 설계 당시 물의 기운을 가진 조형물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의 서울 종로구 서린동 사옥 정문 계단에는 ‘거북이 머리’를 상징하는 흰 점이 박힌 검은 돌이 있는가 하면, 삼성동 코엑스 맞은편 현대산업개발 사옥은 흉조의 기운 차단하고자 바닥면에 동판을 깔았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강원도 강릉 오죽한옥마을에는 스마트 빌리지가 조성됐다. 전통마을에 IT기술을 접목해 관광객의 시설 안내, 예약 등 모든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전통과 AI 기술이 융합한 ‘스마트 빌리지’가 강릉시에 조성됐다. 시는 전통역사문화지구에 들어서는 한옥마을에 IT기술을 접목,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조성해 나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옥마을은 마을 공동 숲을 조성, 마을 경관을 연출하고, 풍수상 북서풍을 막기 위한 비보림(裨補林)이 조성된다. 아이러니하게 전통요소가 물씬 가미된 이곳에는 네트워크 통신망 인프라를 기본으로 관광ㆍ체류자들을 위한 시설안내, 예약, 멀티 시스템 등 모든 서비스가 IT기술과 접목돼 제공된다. 이처럼 각계각층을 막론하고 전 방위적 영향을 미치는 풍수에 드론이 등장했다. 드론을 이용한 촬영은 입체감을 입혔다. 기존 항공촬영에 사용되던 유인헬기에는 인력과 촬영장비 등 투입으로 복잡한 시스템인데 반해, 간소하고 편리한 드론의 등장은 ‘항공풍수’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현상을 왜곡 없이 드라이하게 촬영하다 보니 정확도는 더할 나위 없다. 특히 드론 촬영은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다각도 촬영이 가능하다. 풍수상 길하다고 여겨지는 배산임수, 좌청룡ㆍ우백호 등의 지형을 자유롭게 살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 밖에도 빅데이터를 활용한 최첨단의 정보를 취사 선택해야 할 증권업계에서 음양오행, 역학의 이치를 주제로 한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IT기술과 동양철학은 더 이상 이질적 대립관계가 아닌 융합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추세다. ◆외국에서 바라본 풍수 2000년 초반 준공된 미국 트럼프월드타워는 사각 형태로 올곧게 올라간 길한 풍수의 요건을 차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사업가 시절 자신의 회사에 풍수 전문가를 채용했다. 뉴욕 개발 당시 풍수가의 도움을 받았고 2000년 초반 준공된 트럼프월드타워는 사각 형태로 올곧게 올라간 길한 풍수의 요건을 차용했다는 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건물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홍콩의 상하이은행 본사(HSBC)는 영국인 건축가의 설계 지휘 아래 자국 풍수전문가의 자문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은행은 주출입구를 2층에 배치해 눈길을 끈다. 배산임수에 입지해 있는 건물이 산에서 내려오는 기운을 제한시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전해진다. 아시아를 넘어 서양에서도 풍수이라는 이름의 풍수학이 각광받고 있다. 서양의 수도 여러 곳이 실제 풍수지리학적 명당에 들어서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 런던에서는 ‘풍수전문가’라는 직종이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들은 상담료로 하루 기준 300파운드 이상 벌어들이고, 건축 간 건물 형태 및 지형 감별에는 5만 파운드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고 알려졌다. 리츠호텔과 같은 영국 내 유수의 기업들은 객실 배치 등에 풍수지리를 적극 활용하며, 호텔 내 카펫 색깔은 풍수적으로 길한 기운을 불러들인다는 블랙과 레드를 이용한다. 그렇다면 유럽 국가 중 유독 영국이 풍수와 밀접한 접점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서양 풍수의 근간은 중국으로부터 건너왔고, 홍콩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영국이 자연스레 풍수사상에 감화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동양 풍수와 서양의 풍수는 긍정의 기운을 찾는 기본은 일치하지만, 절대 방위를 기준으로 잡는 동양풍수에 비해 서양 풍수는 입구의 방위를 시발점으로 한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풍수지리 전문가로 알려진 송대선 영남대 가족주거학과 겸임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범람과 궤를 함께하는 것이 현대 풍수의 아이덴티티라 할지라도 풍수의 기본은 내가 사는 주거로서의 풍수”라며 “풍수는 인간의 의식주와 맞닿아있는 요소들에 대한 세심한 고찰이기에 풍수의 사상성이 인문학적 스탠스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군월드 IT 사업팀

[유산균 바로알기] 내 몸의 면역 담당…장내 ‘세균 균형’ 건강한 식습관 먼저

유산균은 포도당이나 유당과 같은 탄수화물을 분해해 유산으로 만든다.최근에는 유산균뿐만 아니라 대장 내에 생존하면서 인체에 유익한 작용을 하는 기능성 세균을 통칭해 ‘프로바이오틱스’라고 부른다.프로바이오틱스가 활동하는 장은 거대한 면역기관이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 중 70%는 장 안에 살고 있다.◆유익한 균인 유산균, 침입자 막아유산균은 소장 점막이 외부 항원에 의해 손상됐을 때 항체 생산을 도와 장내 침입자들을 막는 역할을 한다.유산균 덕분에 면역세포가 건강하면 나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몸 안에 침투했을 때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고 쓸데없는 과민반응으로 각종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지 않는다.장 안에 사는 균은 수천여 종에 이른다.이 가운데 정체와 역할이 제대로 밝혀진 세균은 20~30%에 불과하다.장내에 있는 유익균은 락토바실러스와 비피더박테리움이 대표적이다. 유해균으로는 장염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디움과 이질의 원인인 살모넬라, O157을 일으키는 대장균 등이 있다.장내에 사는 유익균과 유해균은 끊임없이 세력 다툼을 벌이며 건강을 좌지우지한다.건강한 사람은 장내에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은 대략 8대 2 정도로 유익균의 힘이 세다. 하지만 유해균이 세력을 확장하면 각종 면역 관련 질환과 장염 등 소화기질환 등에 시달리게 된다.엄마의 배 속에 있던 아기의 장은 무균 상태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다양한 균을 받아들이면서 수많은 미생물이 장의 구석구석까지 자리를 잡고 정착한다.출생 후 6개월 이내에 면역의 70%가 결정되고 모유나 먹는 음식에 따라 장내 세균의 구성이 완성되는 데는 거의 3년이 걸린다.이후에는 평생 거의 비슷한 구성의 장내 세균을 갖고 산다.모유를 먹는 아기의 장에는 분유를 먹는 아기보다 훨씬 다양한 세균과 그로 인해 자극을 받은 면역 세포들이 자리 잡는다.모유에는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올리고당이 분유에 비해 많이 함유돼 유산균의 증식을 도와준다.따라서 모유를 먹는 아기가 분유를 먹는 아기와 비교하면 면역력이 높고 각종 감염성 질환에 덜 걸리는 것이다.하지만 분유를 먹인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첫돌이 지나고 모유나 분유 대신 밥을 먹으면 그 차이가 대부분 사라진다.◆아군과 적군장내 세균의 균형을 해치는 치명타는 항생제다.항생제는 유해균뿐만 아니라 장내에 자리 잡은 유익균까지 사멸시켜버린다. 장내에 나쁜 균의 비율이 높아지면 설사와 변비가 잦고 염증으로 인해 복통을 자주 느낀다.나이가 들거나 식습관과 스트레스 등에 의해서도 세균의 균형이 깨지기도 한다. 유익균이 줄어들면 장 기능이 악화되고 면역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각종 질환에 쉽게 걸린다.에너지 생산이 줄어 만성 피로에 시달리거나 각종 위장장애, 설사, 변비, 대사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장내에 나쁜 균들이 창궐하는 가장 큰 원인은 주로 음식 때문이다.나쁜 균은 동물성 지방이 풍부한 육류나 설탕을 즐겨 먹고 자란다. 인스턴트 식품과 탄산음료, 식품첨가물이 많이 든 음식, 기름진 음식, 술, 담배 등은 유산균의 적이다.반대로 좋은 균들은 야채에 많이 있는 섬유질이나 올리고당 등 양질의 당을 먹으면서 세력을 키운다. 따라서 과일과 채소, 통곡물 등 유산균 증식에 도움이 되는 식품을 꾸준히 먹는 것이 중요하다. 김치나 된장, 간장, 청국장, 젓갈류 등 발효식품도 장에 서식하는 유산균을 돕는다.식습관을 바꾸지 않으면서 유산균 제품을 먹는다면 장기간 꾸준하게 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포장된 유산균은 쉽게 정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일 먹어야 하고 먹지 않으면 장에서 밀려나게 된다.무작정 유산균을 먹기보다는 장 기능이 약할 경우 3~4개월 복용하는 것이 좋다. 만약 유산균을 꾸준히 먹어도 증상 개선이 없다면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아토피피부염이나 이유 없는 잦은 복통에도 효과가 있고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 등 난치성 질환의 경우 고농도 유산균이 도움이 된다. 단일균 제품보다는 혼합유산균 제제가 더 좋고 유산균의 수가 높을수록 효과가 있다. 하지만 유산균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다.유산균은 의약품과 달리 정확한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고 증상이 다양해 표준화된 실험도 부족하다.유산균이 잘 살 수 있도록 장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유산균 제품은 보조식품으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도움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영진 과장

[나에게 맞는 휴식법 찾기] 몸도 마음도 피곤한 일상, 온전히 쉬어볼까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진 일과에 몸도 마음도 피로한 시간.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최상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휴대폰과 TV에서 벗어나 조용한 환경에서 취하는 휴식은 그 효과를 두 배로 올려준다. ◆명상 명상은 손쉽지만 가장 효과적인 휴식 방법이다. 편안히 누워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베개를 조정해 목을 편안하게 한다. 코로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호흡의 흐름에 집중한다. 체내 산소량이 증가하면서 피로 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킬 수 있다.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하기보다 가능한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어깨나 허리, 목 등 근육 뭉침이나 경직이 느껴진다면 명상 후 그 부위를 스트레칭을 통해 풀어주는 것도 피로 회복에 효과적이다. ◆운동 몸이 피로할 때는 물론 수면이 필요하다. 에너지를 보충하고 피로 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이나 짜증 등 정신적 피로에는 30분 정도의 수영 등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이 좋다. 흥분된 대뇌피질을 쉬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3대 의학연구지 중 하나인 ‘란셋’의 내용을 살펴보면 만성피로를 느끼는 640명을 대상으로 운동을 하게 한 결과 운동이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틈날 때마다 하는 스트레칭도 컨디션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정적 휴식할 때는 SNS의 알람은 잠시 꺼두자. 빛과 소리, 자극, 정보 등이 가득한 휴대전화를 보면서 온전히 쉬기는 힘들다. TV와 라디오 등도 마찬가지. 완벽한 정적 속에서 뇌는 비로소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용한 곳에서의 휴식은 집중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데도 효율적이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도움말=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건강검진센터

전문자원봉사자 배출 요람 “소외된 이들에 따뜻함을”

대구 중구자원봉사센터는 2012년 중구 자원봉사대학을 개설해 지난해 기준 400명이 넘는 전문자원봉사자를 배출했다. 지난해 자원봉사대학을 수료한 자원봉사자들. 대구 중구는 전체인구가 7만8천~7만9천 명 정도로 소규모 구(區)지만 등록 자원봉사자는 무려 4만2천 명이다. 이는 중구 전체 인구의 50%가 넘는 수준으로 자원봉사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원봉사 중심지 역할 톡톡 중구자원봉사센터는 2001년 개소한 이래 지금까지 대구의 자원봉사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고 있다. 대구의 중심지에 위치한 중구자원봉사센터 인근에는 독거노인 세대가 많아 고독사 예방을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중구자원봉사센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어르신 사계절 건강지킴이봉사단’ 활동을 장려해 절기별 프로그램(동지, 초복, 명절, 김장 등)과 계절별 프로그램(봄맞이 대청소, 겨울 방한 물품 지원 등)을 운영 중이다. 독거노인 세대를 방문해 일상생활에 밀착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소외되기 쉬운 독거노인들에게 지역의 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은퇴 노인들이 자원봉사 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동화구연전문봉사단인 이야기보따리 봉사단과 문화해설과 환경정화를 위한 문화재 지킴이 활동 등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원봉사를 처음 시작하는 봉사자들이 현장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신입 자원봉사자와 노련한 자원봉사자를 멘토-멘티로 연결하는 ‘자원봉사 프로와 아마추어’, ‘내 생애 첫 자원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복지시설과 자원봉사단체를 1대1로 매칭해 재능기부와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 ‘중구자원봉사한day’사업도 매년 펼치고 있다. ◆자원봉사대학, 전문성 높여 중구자원봉사센터 소속 자원봉사자들은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무료급식, 지역 환경정화 활동 등도 펼치고 있지만 교육을 통한 활동 확대에도 적극적이다. 단순한 자원봉사 활동뿐만 아니라 봉사원 스스로 가진 재능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봉사활동을 진행하면서 더 큰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다. 중구자원봉사센터는 2012년 자원봉사대학을 개설해 지난해 기준 400명 이상의 전문자원봉사자를 배출했다. 중구 자원봉사대학은 자원봉사활동 영역의 다양화와 전문적인 자원봉사 활동이 대두되면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자원봉사 활동에 대한 의식함양과 지역 내 소외계층과의 공동체적 나눔실천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해 나가기 위한 것이다. 지역의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 관련 분야 기관장 등 분야별 전문가 집단이 교수진으로 참여한다. 이들은 자원봉사의 기본적인 가치와 소양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건강, 의료, 의사소통, 응급구호 기술 등 자원봉사 활동 현장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구 자원봉사 단체들 간의 연합체인 중구자원봉사단체협의회는 2003년 창립한 이래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현재 70개 자원봉사단체는 자원봉사 관련 기관 및 단체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자원봉사 활동을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조정ㆍ지원하는 등 활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또 회원단체간의 정보교류와 체계적인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연합사업을 통해 대규모 자원봉사 활동을 병행해 나가고 있다. 특히 폭염대비 생수 지원 및 동고동락 보금자리 지원 사업 등 시민들이 대구 특유의 무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는데 보탬이 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노후 주택 개ㆍ보수 사업에는 봉사자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사업비도 절감하고 있다. 중구자원봉사단체협의회는 2013년을 시작으로 해외자원봉사 활동을 2년마다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3년과 2015년에는 캄보디아, 지난해에는 미얀마 양곤지역에서 해외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 자원봉사자들이 그동안 축적한 봉사 노하우와 우수성을 해외에 전파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자원봉사 활동, 우리사회 변화시킬 밑거름”윤보경 중구자원봉사센터 소장 “오늘날 현대사회는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라 다양한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으며 복지혜택의 욕구 또한 높아지고 있습니다.”윤보경 대구 중구자원봉사센터 소장은 오늘날의 복지 역할과 필요성을 강조하며 자원봉사의 필요성을 피력했다.윤 소장은 “한정된 복지 관련 자원으로 복합적인 문제를 지닌 대상자와 함께 점차 요구가 다양해지는 지역사회의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함이 따른다”며 “이런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원봉사 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원봉사를 통해 부족한 제도를 보조하고 대상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등 지역사회의 문제를 누구보다 빨리 찾아내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자원봉사는 지금보다 더욱 장려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윤 소장은 “자원봉사자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물질적인 보상은 비록 받을 수는 없지만 지역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며 “자원봉사 활동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윤 소장은 “‘자원봉사의 물결이 넘쳐나는 중구’라는 비전 아래 중구만의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4만2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보다 쉽게 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김우정 기자 kwj@idaegu.com

전쟁고아·소외이웃 돌보며 지역 문화예술의 초석 다져

포항 수도산 덕수공원 이명석 선생 문화공덕비. 비 전면에 새겨진 옛 포항시민의 노래는 1971년 포항문화원장을 지낸 이명석 선생이 작사하고 아들인 이진우 전 국회 의원이 작곡했다. 재생의 거룩하고 뜻깊은 애린정신은 지난 1998년 2월28일 포항지역 문인들이 중심이 돼 생전에 자주 거닐던 수도산 덕수공원에 세운 재생 이명석 선생 문화공덕비 비문에서 잘 드러난다. 문화공덕비 앞 잔디밭에서는 해마다 재생의 공덕을 기리는 추모식이 후학과 시민들에 의해 열린다.이에 때맞춰 그의 아호를 본뜬 재생백일장이 함께 열려 지역 문인과 문학을 지망하는 청소년들의 참여가 줄 잇고 있다. 이러한 행사는 어렵고 힘든 시절 지역사회에 홀로 일궈놓은 재생의 삶과 발자취에 대해 깊이 되새겨보는 뜻깊은 시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도 재생이 포항지역에 끼친 위대한 공로를 인정, ‘인간 상록수 훈장’을 수여했다. 곁에서 내조한 부인 도우술 여사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재생은 지난 1979년 9월 향년 76세를 일기로 미국 시카고 인근 록퍼드에 있는 차남 집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그동안 유해가 이국땅 미국에 안치됐다가 31년 만인 지난 2010년 10월2일 경북 포항 덕수공원에 재안장됐다. 재생은 슬하에 진우(작고), 매리(82), 태우(79), 대공(76) 등 3남 1녀를 두었다.◆막내아들이 문화·예술 열정과 이웃사랑 이어그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문화사업에 일절 손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청렴결백했다고 한다. 그러나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처럼 아들 대공씨는 부친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이웃사랑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대공씨는 사재로 1998년 6월 보건복지부 인가를 받아 애린문화복지재단을 설립, 지금까지 가난한 이웃은 물론 불우한 청소년 장학금 전달 등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특히 포항지역 문화발전에 공이 큰 인물을 선발해 ‘애린문화상’을 수여하고 해마다 재생백일장에는 많은 성금을 내놓는 등 결코 쉽지 않은 봉사를 해오고 있다. ‘애린’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뜻으로 재생이 지었는데 그대로 복지재단의 이름이 됐다. 대공씨는 포스코 홍보실장, 포항공대 건설본부장,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1년 11월부터 3년간 제7대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오늘날 포항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후학들과 시민들은 재생이 남기고 간 고귀한 뜻을 기억하며 따르려고 노력한다. 재생이 남긴 고귀한 뜻은 지금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도시, 전통정신이 살아 있는 도시”로 포항 시민헌장에 오롯이 담겨 있다.박이득 전 포항예총 회장은 젊은 시절 재생을 따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예술과 문학을 논했다.박 전 회장은 재생의 삶을 “남에게 봉사하는 생활 타자에게 나눔의 생활 문화를 애호하는 정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 투명한 이성을 실천하는 행동,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함을 온 정신 온몸으로 보여주고 가신 어른”이라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김상조 언론인연보• 1904년 영덕 강구면 삼사리 출생• 1924년 대구 교남학원(현 대륜고) 중•고등과 수료• 1925~1927년 일본 관서미술원• 1928년 도우술과 결혼• 1933년 영덕에서 포항으로 이주• 1939년 포항 기독교 신사참배 행사 무산시킴• 1946년 포항문화협회 조직• 1953년 선린복지재단 정식 인가 등록• 1958년 선린애육원 제4대 법인 이사장• 1961년 포항문인협회 창립• 1963년 한국예총 포항지부장• 1965년 포항문화원 원장• 1966년 ‘포항개항제’ 개최• 1979년 미국에서 76세를 일기로 소천• 1988년 이명석 선생 문화공덕비 건립

군사용으로 시작해 다양한 분야서 존재감…드론 떠오르자 세상이 변화했다

대구 동구청 드론방제단은 지난해 12월19일 동구 금호강 안심습지 철새도래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 접근이 어려운 곳을 드론으로 방역작업했다. 드론은 무선전파를 이용해 사용자가 조종할 수 있는 무인 항공기를 의미한다. ‘벌이 윙윙거린다’는 영문식 표현의 드론(drone)은 군사용 목적으로 처음 도입됐다. 이후 정찰용과 군사용까지 그 용도가 확대됐다. 현재는 취미 및 상업용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한발 더 나아가 드론은 엔터테인먼트와 교육, 촬영, 배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드론이 각광받는 이유, 과연 무엇일까. 드론은 센서와 인공지능 등 미래발전 가능성의 결정체로 일컬어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결을 같이 한다는 방증이다. 군사용은 미국, 민간에서의 드론 시장은 현재 중국이 주도한다. 국내 진입한 중국의 드론 관련 기업가치만 100억 달러에 이른다. 유수의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전체 드론 시장은 24조6천6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민간 드론의 규모 역시 1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을 내놓고 있다. 드론은 탈지구화를 향해 시나브로 뻗어가고 있다. 최근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개발한 드론 로봇 ‘인트볼’(Int-Ball)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드론로봇이 우주정거장 내부를 떠돌며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우주 공간까지 드론의 역할이 가시화된 셈이다. ◆드론, 어디서부터 왔을까 무인 비행체의 역사는 170여 년으로 추정한다. 지난 1903년 라이트형제가 개발한 비행기와 헤르츠의 무선통신 기술을 접목한 시도를 드론의 시초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최초의 드론은 1917년 미국에서 개발한 ‘스페이 에어리얼 토페도(Sperry Aerial Torpedo)’로 알려져 있다. 이 기체는 100㎏이 넘는 폭탄을 운반하는 역할을 했으며 세계 1, 2차대전 당시 군사용 무기로 각광을 받았다. 이후 1930년대 영국에서 개발된 DH-82라는 포격용 기체와 드론의 대량생산을 꾀했던 미국의 라디오 플레인이 드론 상용화의 시발점으로 제 몫을 했다. 1950년대까지 전투용으로 활용되던 무인항공기는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정찰 등의 목적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미국은 1960년 감시 무인기의 시초인 ‘파이어 비’라는 제트부진 무인기를 개발, 베트남 적진 곳곳을 정찰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무인항공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급격히 이뤄진 시기는 1970년대부터다. 당시 이스라엘 공군은 마르와(Marwa)라는 이름의 무인항공기를 개발, 현재 드론기술의 토대를 구축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항공기 부품은 점차 경량화를 시도했다. 1990년대 미국은 이스라엘과 공동 개발한 무인 전투기 파이오니어(Pioneer) 도입에 이르렀고, 이는 걸프전에 투입, 전투기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현재의 드론은 4차 산업혁명의 범람과 그 맥을 함께한다. 산업현장과 의료용, 영화촬영의 목적 등에 전 방위적 영역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드론은 도로상황, 교통순찰, 개인의 취미활동까지 신변잡기적 부분마저 함께 한다. 드론은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유령도시로 전락한 우크라이나 프리티야티를 30여 년 만에 촬영한 것도, 지난해 4월 강진에 의해 피해를 입은 네팔의 오지 곳곳을 수색했던 것도 바로 드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무인기체를 활용,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지형을 3D 좌표로 정밀하게 측정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드론, 어떻게 하늘을 날까 드론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헬리콥터의 개념이 도입된 멀티콥터 개념으로 접근해보자. 드론은 4가지 힘의 영향을 받는다. 드론의 모터와 펠러의 양력박용으로 공중에 떠있게 하는 양력과 기체가 기울어짐으로써 해당 방향으로 추진력을 주는 추력, 공기와 기체의 마찰로 인해 추력을 방해하는 항력, 외부의 영향에 인한 항력의 원인이 되는 외력, 마지막으로 지구의 중심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중력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드론은 프로펠러의 개수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는데 프로펠러의 개수가 4개인 기체를 쿼드콥터, 6개는 헥사콥터, 8개는 옥타콥터로 각 불린다. 여기서 잠깐, 프로펠러의 개수가 짝수인 이유는 뉴턴 역학 제3법칙 때문이다. 물체1이 물체2에 힘을 작용하면, 동시에 물체 2도 물체 1의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의 힘을 가한다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이해하면 된다. 드론의 프로펠러는 회전방향이 일정하다. 전방좌측과 후방우측의 프로펠러는 시계방향으로 돌고 반대로 전방우측과 후방좌측의 프로펠러는 반시계방향으로 돌게 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프로펠러가 공기를 밀어낼 때 공기도 함께 프로펠러를 밀게 됨으로써 드론이 떠오르게 되는 원리다. 다시 압축해보자면 드론은 로터라는 회전축에 달린 프로펠러의 힘으로 날아가는데 인접한 프로펠러가 서로 역방향으로 회전, 이를 통한 추진력으로 운행이 가능해진다. ◆드론, 어디까지 쓰일까 드론 기술이 발전하면서 드론의 활용 범위도 늘어나고 있다. 틸트 기능을 갖춘 드론이 해안 감시, 군사용 정찰 등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분야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도심형 일반 드론을 응용한 분야 역시도 늘고 있다. △촬영용 드론 드론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곳을 용이하게 이동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오지 등 촬영을 가능케 한다. 우리 시각 이면의 세상을 바라보는 드론의 대표적인 예로는 드론이 카메라를 장착한 바로 ‘헬리캠’ 이다. 인간의 시야에서 벗어난 각도에서 보기 힘든 화면을 만들어 주는 촬영용 드론. 이는 영상 산업에 혁신을 가져다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실제 방송 업계와 영화제작사에서는 고공촬영용으로 드론을 적극 활용하는 중이다. ‘드론 저널리즘’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언론사 등은 스포츠 중계를 비롯해 재해 현장 촬영 등 탐사보도에 드론을 활용한다. 지리적 한계나 안전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던 현장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찍어 보도할 수 있다. 항공촬영에 비해 비용 측면으로도 매우 저렴하다. 촬영용 드론은 기본적으로 위성위치측정시스템(GNSS)와 비전센서라는 것을 이용해 호버링을 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도 GNSS의 한 범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드론의 위치는 GNSS를 이용해 잡아낸다. 별다른 조작 없이 드론의 위치가 풍향 및 자연현상 등에 의해 변형되면 드론은 본래의 좌표로 재설정 되도록 한다. 미세한 움직임은 비전센서가 인식한다. 이미지 센서를 이용, 지형의 모형을 스캔해내는 비전센서 역시 지형의 굴곡 등을 감지해낸다. △전투용 드론 대한민국 육군은 지난해 9월 드론봇 전투단을 창설하고 적진에 침투해 폭탄을 떨어뜨리는 무장 드론과 100여m 상공까지 올라가 군무선 통신망을 연결해주는 드론 등을 선보였다. 여러 형태로 적지를 정찰하고 빠른 공격을 영위할 수 있는 드론. 영화 속 모습이 아니다. 드론의 전투장면은 빠르게 현실화 돼가고 있는 시점이다. 미국에선 이미 프레데터, 글로벌호크 등의 드론을 테러와의 전쟁 시 능동적으로 활용해 왔다. 중국, 러시아, 유럽 등지에서도 앞다퉈 드론 연구가 진행돼가고 있다. 향후 드론은 우리나라의 군부대에도 배치될 예정이다. 육군은 최근 드론과 로봇 등으로 구성된 ‘드론봇 전투단’을 창설했다. 이 자리에서 적진 깊숙이 침투해 폭탄을 떨어뜨리는 무장 드론과 100여m 상공까지 올라가 군무선 통신망을 연결해주는 드론 등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드론의 무게는 100g에 불과하다. 육군에 따르면 여러 시범운영과 안전성 테스트를 거친 후 2021년부터 건물 내부 정책 및 수색 임무를 드론이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통수단으로의 드론 최근 두바이에서는 하늘을 나르는 드론 택시(PAV)의 시범운영이 펼쳐졌다. 승객이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운행하는 무인 택시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란 더이상 공상 과학의 허황된 편린이 아니다. 최근 두바이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드론 택시(PAV)가 시범운영을 가졌다고 한다. 비행고도는 900m로 설계된 PAV는 두바이의 상징 버즈칼리파 위로 항공운행을 실시했다. 최대 적재 중량이 100㎏에 이르는 PAV는 무인으로 조정된다. 운행방법은 승객이 기내 태블릿에 목적지를 입력, 입력된 데이터에 기인해 자동으로 운항한다. PAV는 타원형 몸체로 전 방위적으로 뻗은 4개 다리에 전동 프로펠러가 2개씩 총 8개가 달려있다. 평균 시속은 100㎞고 최고 시속은 160㎞에 이른다. PAV는 에어 택시를 포함해 미래형 개인 운송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각 개인이 출발 지점부터 도착지까지 지상과 공중의 연계된 교통망을 활용, 이동할 수 있는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년도 PAV 관련 정부사업비가 약 410억 원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소재ㆍ전자ㆍ자동차ㆍ항공 산업이 융합한 초연결 기술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드론, 동전의 양면일까 미국 공군의 무인정찰기 또한 드론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미군은 전투용 드론으로 1천여 회의 암살 작전을 수행했다. 작전으로 3천여 명에 가까운 살해가 이뤄졌다. 최근 베네수엘라 군 관련 행사에서 폭발물이 부착된 드론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한 일간지는 범행에 사용한 드론은 전투용이 아닌 사진 촬영 전문 드론이라고 밝혔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 역시 드론을 활한 테러를 자행한 바 있다. 이슬람 무장단체가 드론을 이용한 테러를 자행한 사건은 빈번하다. 폭약을 탑재한 드론으로 자신들을 위협하는 이라크 치안 부대 같은 시설에 투하, 자폭시키는 방법을 차용해왔다. 이에 이라크 치안 부대는 이 같은 살상 드론에 대처할 수 있는 드론디펜더(전파방해총)를 배치 중이라고 한다. 드론디펜더를 통해 살상 드론 수십 대를 격파했다. 이밖에도 2015년 일본 정부의 시책을 반대하는 한 남성이 방사능 지역의 모래를 총리 공간에 투하한 사건이 발생했다. 드론은 재래식 무기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저렴하다. 살상 능력은 떨어지지만 단번에 수천 대를 띄울 수 있는 전술적 측면을 지님과 동시 활용방법에 따라 치명적 살인무기로 전락할 수 있다. ‘드론은 가난한 자들의 첨단무기’라는 무시무시한 슬로건이 공염불이 아니라는 현실적 사례다. ◆전문가가 본 드론의 미래는 지역 정보통신기술(ICT) 솔루션 개발 업체인 이호동 iGIS 대표는 “드론을 지리정보시스템 기반으로 하는 ICT 솔루션 개발과 연계하고 이를 통한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면 고객가치 확대와 공간정보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표는 모든 산업을 막론하고 (드론)비행에서 얻어진 자료(동영상, 사진)를 통합관제센터로 송출하면, 업무시스템을 이용해 빅데이터 수집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드론을 수집된 각종 자료를 구글이나, 다음 맵 등과 연계, 이를 활용한 앱이 개발될 수 있다면 정확한 모바일 지리정보시스템과 도시가스 관제 시스템 도입이 상용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IT전문가들은 2025년을 기점으로 약 17만 명의 드론전문가가 탄생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실제 국가자격증으로 분류되는 ‘드론자격증’은 미래 산업 육성의 또 다른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현실이다. 글·사진=군월드 IT 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