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대구·경북 한 바퀴)<6>역사와 문화를 잇는 소통의 고개, 문경

문경은 경북의 북쪽 울타리이자 관문이다.태백산에서부터 흘러온 대미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같은 1천여 m 안팎의 산들이 줄기를 이루면서 충북과 경북을 갈라놓았다.원체 산이 많은 지역이라 그 산을 넘어가기 위한 고개도 많다.특히 문경새재는 조선시대에는 영남과 그 북쪽을 잇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고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개다.예부터 교통·군사의 중심지, 장원급제를 바라던 수많은 선비들의 애환이 녹아있는 곳, 가을에 찾으면 더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문경을 알아보자.◆숨겨진 단풍 명소, 문경새재청송 주왕산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단풍 명소라면 소백산맥 자락 밑에 위치한 문경새재는 아는 사람만 아는 숨겨진 단풍명소다.문경새재 입구부터 가을을 알려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시작된다. 황금빛 은행나무 길 아래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무르익은 인생 샷을 건지기 위해 분주하다.푸른 가을 하늘과 그 아래에서 은행나무의 황금빛은 더 눈부시게 빛난다.문경새재는 고려시대부터 이용된 것으로 보이나 기록상으로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관도로 개통돼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한 명소다. 조선시대 옛길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1981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문경새재는 크게 제1관문인 ‘주흘관’과 제2관문인 ‘조곡관’, 제3관문인 ‘조령관’으로 구성된다.총 6.5㎞의 황톳길은 ‘장원급제길’ 로도 유명하지만 최근 언택트 힐링 관광 명소로도 떠오르고 있다.부드러운 황톳길은 계곡과도 잘 어울리며 울창한 숲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생각에도 마음에도 색을 입히고 예쁜 꽃단풍을 보며 느릿느릿 걷다 보면 일상의 피로가 어느새 풀려있을 것이다.문경새재는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도 선정될 만큼 옛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힐링 로드다.조용한 쉼의 여유가 필요한 분들에게 무르익은 가을을 걸어볼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다.◆장원급제의 꿈을 안고 넘던 고개문경새재는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 사이에 있는 고개다. 백두대간의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를 넘어간다.문경새재는 수백 년간 민초들의 발길이 이어져 왔다.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도, 물건을 팔러 가던 장돌뱅이들도, 왜적을 막으려고 의연히 일어난 의병들도,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천주교도들도 저마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이곳 문경새재를 넘었다.조선시대에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중요한 교통로였다.‘신증공국여지승람’에는 ‘조령’으로 기록돼 있다. 그 어원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에서 유래됐다고 한다.지금은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추풍령이 가장 큰 고개로 꼽히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백두대간을 넘는 최고의 고개는 문경새재였다.옛날에는 과거시험 한 번 보려면 몇날 며칠을 걸어야 했다. 한양까지 와서 시험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전국적으로 몇몇 유명한 ‘과거길’이 알려져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길이 바로 문경새재 과거길이다.‘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지금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제1관문부터 제3관문까지 완만한 경사로 6.7㎞가 이어진다.◆입시철마다 사람 몰리는 ‘책바위’문경새재에는 장원급제를 바라던 선비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문경새재 ‘책바위’는 조령관에서 조곡관 방향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는 돌무더기다.여느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탑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 바위에는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오래전 어느 부잣집에 자식이 없어 어렵게 아들을 얻었는데 몸이 허약했다. 이에 어머니가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해 이름난 도인을 찾았다.도인은 집터를 둘러싼 돌담이 아들의 기운을 누르고 있으니 아들이 직접 담을 헐게 해 그 돌을 문경새재 책바위에 쌓아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라고 했다.이 말을 따르자 아들은 어느새 몸이 건강해지고 공부도 열심히 해 장원급제했다는 이야기이다.이 같은 이야기가 퍼져 나가며 조선시대 과거 길에 오르던 선비들도 이 책바위 앞에서 장원급제를 빌었다고 전해진다.책바위는 지금도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어 자녀의 건강과 성적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이 찾고 있다.특히 해마다 입시철이면 자녀의 기쁜 소식을 염원하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실제로 책바위 곳곳에서는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긴 소원 리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책바위의 효험이 있는지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그러나 문경새재에 갔다면 책바위에 들러 속는 셈 치고 한 번 빌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제 자신의 부단한 노력과 소망,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이 한데 모이면 그토록 원했던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문경의 새로운 관광명소, 단산관광모노레일최근 문경새재 인근에 위치한 단산(956m)에 산악형 모노레일이 운영을 시작했다.단산관광모노레일은 문경시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문경의 관광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핵심 사업으로 올해 4월부터 운영이 시작됐다.단산관광모노레일은 편도 1.8㎞, 왕복 3.6㎞에 달하는 장거리 산악 모노레일로 평균경사 22&deg;, 최고경사 42&deg;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북쪽 능선을 따라 상부승강장까지 오르다보면 조령산, 주흘산 등 백두대간의 광활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8인승의 아담한 모노레일이지만 최고 42&deg; 구간을 지날 때는 마치 우주왕복선을 탄 기분마저 든다. 소요시간은 상행 35분, 하행 25분이 소요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출입문을 겸한 시원한 창은 백두대간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해 준다.◆1천300℃의 열정, 문경 도자기문경 일대에는 예부터 분청사기와 백자 도요지가 많이 분포돼 있다. 지금도 수많은 도예가 들이 문경전통자기의 맥을 잇고 있다.문경새재 진입로에 위치한 문경도자기박물관에는 문경전통도자기의 역사와 제작 과정을 소개하고 문경지역에서 출토된 자기류와 도예인 들의 작품, 찻사발축제 공모 수상작 등이 전시돼 있다.관람객이 전통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도자기체험관이 있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전문 도예가의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어 체험객들의 반응이 좋다. 체험객이 만든 작품은 야외 전통망댕이가마에서 소나무 장작만을 사용해 구워 완성품을 택배로 보내준다.한편 문경찻사발축제는 대인 접촉을 최소화하고 축제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오는 12월 온라인 축제로 개최한다.전용 플랫폼을 구축해 ‘내 손 안에서 바라보는 문경찻사발전’, ‘찾아가는 별별 요장투어’, ‘온라인 경매’, ‘사기장의 하루 라이브 방송’ 등 다양한 콘텐츠를 구축해 즐길 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 최고의 관광도시 만들 것고윤환 문경시장은 “문경은 ‘기쁘고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 곳’이라는 의미다. 탁 트인 청정자연을 품으며 절경을 감상하고 하늘과 땅에서 즐기는 짜릿한 즐거움이 문경 곳곳에 있다”며 “문경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며, 역동적이면서도 감성 가득 행복이 머무는 곳”이라며 문경을 소개했다.문경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더욱 각광받고 있는 관광지다.최근 관광 트렌드가 사람들이 몰리는 곳과 실내를 기피하는 분위기임을 감안하면 탁 트인 자연 속에 펼쳐진 문화 유산들을 관람 가능한 문경은 언택트 힐링 관광지로 제격인 셈이다.그는 “문경 대표 관광지인 문경새재에 지난해 500만 명이 다녀갔다”며 “태조 왕건과 무인시대 등 과거 대하드라마를 촬영한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도 볼거리다. 전통적으로 도자기가 유명했던 문경의 특징을 살려 기획한 찻사발 축제에는 지난해 22만 명, 사과축제에는 35만 명이 다녀갔다”며 문경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이어 “올해 완공한 모노레일과 세계적으로 희귀한 문경 ‘돌리네습지’는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문경만의 자산이라고 하겠다”며 “앞으로 문경새재와 고요 아리랑 민속마을, 문경새재 미로공원 등 관광지를 연결해 개발하는 등 문경을 최고의 관광도시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건강검진 후 안전검사도 꼭 챙기세요

50대 직장인 김씨는 직장인 건강검진을 받은 후 녹내장이 의심된다며 녹내장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결과를 듣고 녹내장 전문의가 있는 안과 전문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았다.다행히 녹내장이 진행 되지 않은 상태인 녹내장 의증 진단을 받았다.녹내장 시신경 겉모양이 약해 보이는데 뚜렷한 원인이 녹내장이 아닌 경우를 ‘녹내장 의증’이라고 한다.말 그대로 녹내장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연말 직장인 건강검진 후 녹내장뿐만 아니라 드루젠, 당뇨망막병증, 망막박리 등 안질환 의심 소견을 받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방치할 경우 실명에 이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정확한 확인을 위해 건강검진 후 망막, 시신경을 검사할 수 있는 장비가 갖춰진 전문안과에서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건강검진에서 안과검사는 시력검사가 진행되고, 안저검사는 검사항목에서 추가할 수 있다.다만 안저검사가 가능한 병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예약 시 이 부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안저를 촬영하면 시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망막, 시신경 등을 확인해 실명의 주된 원인인 녹내장,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다.다만 건강검진에서는 안저촬영만을 할 수 있어 이상이 있는 경우 정밀검사가 가능한 전문안과를 찾아야 한다. 최근 3년(2017~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녹내장은 12%, 당뇨망막병증은 4%, 황반변성은 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검진에서 주로 발견되는 녹내장은 안압 및 혈류이상 장애 등으로 인해 시신경이 약해지면서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질환이다.증상이 심해지면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중증 안질환이지만 초기 자각증상이 없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다.한국녹내장협회 통계에 따르면 녹내장 진단을 받은 환자 중 91.1%는 본인의 녹내장 질환을 모르고 있으며, 10명 중 7명은 안과에 다른 증상으로 내원해 녹내장을 우연히 발견했다.만약 녹내장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가족력, 고도근시 환자라면 정기적으로 안저검사를 받아야 한다. ‘드루젠’은 황반변성의 대표적인 소견으로 노화로 인해 눈의 기능이 저하되고 혈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망막 색소상피에 쌓이는 노폐물을 말한다.드루젠이 지속적으로 축적되면 주변 조직에 손상을 일으키는데 이것을 건성 황반변성이라고 한다.이 단계에서는 시력저하가 크지 않고 별다른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드루젠에 의해 맥락막 모세혈관의 혈액이 세고, 출혈이 생기면 습성 황반변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이 경우 급격한 시력저하가 발생하며 심하면 실명에 이를 수 있다.한번 손상된 망막은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드루젠 의심소견을 받았다면 안저검사를 통해 황반변성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당뇨망막병증은 망막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망막미세 혈관의 혈액순환 장애로 인해 시력이 떨어지는 중증 안질환으로 당뇨병이 오래 지속해 발생하는 눈 합병증이다.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없다가 시세포가 밀집된 황반에 발생 시에 시력저하가 나타난다.어느 정도 진행된 당뇨망막병증이라도 황반부 침범이 없는 경우에는 시력 저하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어 시력만으로는 증상의 정도를 파악하기 어렵다.따라서 당뇨병을 앓고 있다면 정기적인 안저검사가 필수다. 망막박리는 안구 내벽에 붙어 있어야 하는 망막이 벽지 떨어지듯이 들뜨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이 때 망막에 영양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안구가 위축되거나 실명에 이를 수 있어 조기발견이 중요하다.하지만 초기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방치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망막박리의 대표적인 전조증상인 비문증 및 광시증 증세가 나타난다면 젊은 나이라도 방심하지 말고 안과를 찾아야 한다.망막박리는 초기에 공기·가스를 주입하거나 레이저를 통해 치료하면 성공률이 80~90%에 달한다. 대구누네안과병원 녹내장센터 이종욱 원장은 “안저검사의 주기는 개인의 눈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노화가 시작되는 40세 이상은 1년에 한번 받는 것이 좋다. 특히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가족력, 고혈압, 당뇨병을 앓고 있거나 고도 근시 환자라면 정기검진이 필수다”고 강조했다.도움말= 대구누네안과병원 녹내장센터 이종욱 원장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문화재…경주 양동마을 송첨종택

도심에 있다 보면 문뜩 시골 경치가 주는 포근함을 느껴보고 싶어진다.코로나19로 답답한 생활의 연속인 요즘 같은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매년 이맘때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며 한가로이 자연의 향기를 느끼는 시간을 갖지만 올해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해 반쪽짜리 가을이 됐다.그래도 가을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고자 천년수도 경주를 선택했다.경주의 수많은 문화재 중에서도 ‘옛스러움’과 ‘멋스러움’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인 ‘양동마을’을 찾았다.예로부터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강(여주) 이씨’의 자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다.201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양동마을에는 수많은 고택이 즐비하다.그 중에서도 ‘송첨종택’을 방문했다.‘경주 손씨’의 대종가인 송첨종택은 조선시대 전기의 옛 살림집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이곳은 대종가들의 명맥을 잇는 가장 오래된 주택으로 꼽히며, 양동마을을 대표하는 전통 가옥이다.송첨종택은 종가다운 규모와 격식을 갖추고 있어 건물을 지은 수법과 배치 방법들이 독특해 건축 문화재로서의 역사적 가치도 높다.이곳은 양동마을의 입향조(어떤 마을에 맨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 또는 그 조상)인 ‘양민공 손소’가 1459년(세조 5년) 건축한 집으로, ‘월성손씨종택’ 또는 ‘서백당’이라고도 한다.특히 손소의 아들인 손중돈 선생(조선전기 이조판서, 대사헌,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과 외손인 이언적 선생(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신이자 유학자, 그의 주리적 성리설이 퇴계 이황에게 계승돼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설이 됨)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양동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송첨종택은 현재까지 경주 손씨의 후손들이 거주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양동마을의 가장 오래된 곳, 세 현인을 기다리다양동마을에 처음 들어 온 양민공 손소는 마을 내 처가에서 살다가 ‘송첨종택’을 짓고 분가했다.손소는 경북 청송 출신으로 ‘풍덕 류씨’ 류덕하의 사위로 경주 양동에 정착했다.조선시대 전기에는 혼인을 계기로 처가로 이주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었다.양동마을의 역사 해설사들에 따르면 이 당시 재산 상속의 구조가 ‘장남’ 중심이 아닌 형제‧자매에게 모두 배분되는 형식이라 처가에 얹혀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임진왜란 전까지는 균등상속을 원칙으로 하고 임진왜란 후부터는 맏이 중심의 상속제도가 강화되는 사회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것.전쟁이나 질병 등이 창궐하게 되면 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도드라지기 때문이다.양동마을 사람들은 송첨종택 터가 ‘설창산’의 지맥이 응집된 지역 최고의 명당으로 여겨 왔다.송첨종택은 삼현지지(세 명의 현인이 출생한다)라 해서 세 분의 현인이 탄생할 것이라는 속설이 전해지는 곳이다.두 현인(우재 손중돈과 회재 이언적)은 이미 태어났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세 번째 현인이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특히 손소의 딸이 친정에 와서 낳은 아들인 ‘이언적’은 종묘와 문묘에 함께 배향된 조선시대 성리학의 태두라 불린다.동방오현(조선시대 성리학을 이끈 유학자로서 이언적, 이황,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의 한 사람으로서 후대의 추앙을 받고 있다.마을사람들의 속설에 의하면 세 번째 현인을 만들고자 ‘경주 손씨’ 중 시집을 간 후손들이 송첨종택에서 아들을 낳기 위해 그렇게 양동마을을 되찾아왔다고 한다.임신을 하고도 아닌 척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친정에서는 마을 밖 초가를 내어 딸을 재웠다고 한다.◆서백당과 향나무, 송첨삼보서백당은 양민공 손소 종택의 당호(성명 대신에 그 사람이 머무는 거처의 이름으로 인명을 대신해 부르는 호칭)다.송첨종택의 사랑채에 걸린 현판인 ‘서백당’의 의미는 ‘참을 인(忍) 자를 백 번 쓰며 인내를 기른다’는 뜻이다.송첨은 양민공의 호이다.서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전통 건축물 중 하나다.사랑채는 큰 사랑방 대청 건너편에 작은 사랑방을 두는 것이 보통이다.하지만 서백당은 작은 사랑방을 모서리 한 쪽으로 둬 방과 방이 마주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통로가 마루 형식으로 돼 있는 것도 특이하고 사랑채 주변 높은 곳에는 사당이 있다.사당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은 송첨종택이 전체적으로 ‘서남향’이라는 점이다.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살림집에서는 절대 방위보다 상대적인 방향을 중시했다고 한다.이에 정침(거처하는 곳이 아니라 주로 일을 보는 곳으로 쓰는 몸채의 방)의 오른쪽에 사당을 두는 제도를 따랐고 대문간도 문채의 정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공간과 의식 공간을 가르는 경계점에 위치한다.대문간과 서백당, 사당으로 이어지는 외래의 동선이 맞아 떨어져 삼위일체(세 가지의 것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통합되는 일)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과거에는 서백당 주변에 하인들이 거처하던 가림집도 있었다고 한다.서백당은 1992년 영국 찰스 황태자가 다녀간 곳으로 유명하다.이 당시 찰스 황태자를 만났던 마을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저녁 늦게 손님이 온다는 소식을 급하게 들어서인지 황토를 깔고 청소하며 분주했던 기억이 있다”며 “오래 전 일이지만 ‘경주 손씨’ 문중에는 찰스 황태자와 찍었던 사진이 가보(?)처럼 걸려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서백당 앞 마당에는 500년이 넘은 향나무가 있다.양민공 손소가 송첨종택을 짓고 이를 기념해 심었다고 한다.이 나무는 원줄기가 자상 90㎝ 높이에서 세 방향으로 가지를 낸 뒤, 그 뒷부분이 위로 자라 다시 세 가지를 내고 있는 게 특징이다.사람도 작게 보일만큼 그 위세가 대단해 멀리서 보면 마치 분재를 보는 것 같은 형상이다.이 밖에 송첨삼보라는 것이 있다.손씨 종가가 현재까지 소장하고 있는 세 가지 보물로 연적과 장도, 갓끈이다.용 모양의 연적은 옥으로 만들어져 있고 장도의 뚜껑은 상아에 용이 새겨져 있다.갓끈의 재료는 산호로 돼 있어 산호영이라 불리고 있다.이 세 물건 모두 세조가 공신인 손소에게 하사했다고 한다.◆살림집의 역사를 보여주다송첨종택은 집 전체가 경사지에 맞춰 뒤가 높고 앞이 낮은 배산임수의 원칙에 따라 지어졌다.송첨종택은 물(勿)자 모양의 양동마을에서 제일 위쪽 골짜기인 ‘안골’의 깊숙한 곳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송첨종택의 중심은 일자형 대문채 뒤로 ‘ㅁ’자형의 몸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므’자형 모양을 이룬다.경사가 급한 땅에 있어 몸채와 행랑채 사이의 공간이 좁고 몸채의 경우 앞면과 뒷면 사이의 높이 차이가 커 정면에 놓인 사랑채의 하부 기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송첨종택 안에서 바라 본 주변 모습은 선조의 멋을 엿볼 수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정면은 계곡의 맞은 편 봉우리에 가로 막혀 있지만 사랑채 옆면은 양동마을의 안산(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인 성주봉을 마주 대하고 있다.안채와 사랑채과 방향을 달리 한 것은 경사지에서의 지세(땅의 생김새)와 안대(집이나 묘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를 둘 다 만족시키려는 해결책으로 보인다.송첨종택의 몸채(여러 채로 된 살림집에서 주가 되는 집채) 뒷부분 지붕의 처마 높이는 양 날개채 부분의 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높이와 같다.하지만 경사가 심한 곳에 위치한 탓에 몸채에서 뒷부분 몸통을 이루는 지붕과 중간부의 양쪽에 있는 날개채 부분, 앞부분의 지붕이 서로 다른 높이로 이어져 있다.이는 지붕의 높이를 한 단씩 내리는 방법으로 영남지방의 살림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조다.송첨종택은 대칭형 안채로 구성됐고 공간의 구성이 검소하고 간결했다.대칭형 안채는 서울과 경기 지역의 상류층 살림집에서 사용된 형식인데, 이것이 영남의 사대부 살림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또 ‘기(氣)’에 비해 ‘이(理)’를 중시하는 주리론(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를 이(理)로 보는 이황의 학설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철학)의 살림집 계획 방법이라는 속설도 있다.이는 실용성보다는 원칙을 중시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그래서일까.남쪽 지방으로 갈수록 개방적인 구조를 갖는 한옥 구조와 달리 송첨종택 등 양동마을의 집은 모두 원리원칙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반‧상의 공간, 내‧외의 공간, 종손‧지손의 공간이 구별되고 영남학파의 전통을 잇고 있어 집의 구조도 자연스레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500여 년이 넘는 전통의 향기를 품은 채 100여 호가 넘는 고가옥과 초가집들이 들어선 양동마을에서 송첨종택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내가 바라 본 송첨종택은 그 당시 경북지역의 양반 가옥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해 낸 건축물이었다.답답한 도시를 떠나 전통 가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양동마을의 ‘송첨종택’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41>대구 성광중·고

‘모교에는 사랑을! 선배에게 존경을! 후배에게 존중을!’성광중·고 총동창회 회원 정신이다. 회훈으로는 ‘성광인의 긍지와 봉사’, ‘회원 상호간 유대강화’, ‘인화단결’을 정하고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성광중·고 총동창회는 1956년 성광고등학교 제1회 졸업식 거행 이후 4년 만인 1960년 1월 창립돼 1967년 총동창회 발족 준비위원회 설치 후 이듬해 회칙을 제정하는 등 총동창회를 발족됐다.이후 2000년 동창회 홈페이지(www.sungkwang.org)를 개설, 온라인을 통해 동문 및 동창회 행사, 모교 소식을 전하고, 동문간 화합을 다질 수 있는 장으로 활용해 오고 있다.2002년에는 동창회관(대구 수성구 수성동 2가 51-2)을 매입해 매년 1천만 원 상당의 임대 수익금을 확보하는 등 동창회관을 거점으로 회원 조직 확대 및 동창회 발전기금 조성에 역점을 두고 다양한 활동 및 사업을 펼치고 있다.◆연중 다양한 행사로 친목 도모성광중·고 총동창회는 매년 분기별로 정기총회 및 이사회를 비롯해 매월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동문간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올해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행사가 취소되거나 규모가 축소됐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3월 모교 장학금 전달식, 5월 동창회장배 골프대회, 6월 재경동창회장배 골프대회, 7월 하계산행, 9월 동문가족 산행대회, 10월 개교기념선물전달 및 동문가족체육대회 개최 등 매월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매년 모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동문가족체육대회에는 1천 명의 동문과 가족들이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또 졸업식, 입학식, 고등학교 한빛제, 중학교 성맥제, 개교기념식 등 각종 모교 행사에 참석, 재학생들과의 만남을 시간을 마련해 돈독한 정을 나누고 있다.이밖에 진학지도를 목적으로 서울초청 및 대학탐방의 기회를 제공하는가하면 방학 중 우수교사를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진행하는 등 총동창회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총동창회를 중심으로 한 활동 외에도 제1회부터 44회까지 기수별 동창회를 비롯해 재경동창회, 재구미동창회, 재경산동창회, 재포항동창회, 재부산동창회, 재영천동창회 등 6개 지역별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성골회(골프회), 성산회(산악회), 성지회(친목), 성림회(친목), 세광회(세무·회계사모임), 성공회(공무원), 성의회(의사), 성경회(경제인), 재직회(모교 교직원) 등 공통 관심사 및 직업군별 동창회를 창립해 동문간 화합을 다지고 있다.◆장학사업 등 각종 사업 진행성광중·고 총동창회는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1970년 장학회를 설립했으며 2008년 장학재단 법인을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다.정관에 따르면 장학재단 법인은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라 성광중·고등학교의 입학예정자, 재학생, 졸업생, 동창회원 및 회원자녀와 재직 중인 교직원에 대해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사업과 학교발전을 위한 지원사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장학금 지급과 연구비 등 교육활동비 지원, 학습기자재 및 교육환경 개선사업 지원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동문들은 개별적으로 최소 5만 원부터 최대 1억7천만 원에 이르기까지 십시일반으로 장학금을 기탁, 후배사랑에 동참하고 있다.이달 기준 10억 원 상당의 장학금이 마련돼 있으며 매년 4천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재학생 40명에게 지급하고 있다. 특히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재학생을 위한 노력과 모교발전을 위한 지원을 위해 장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올해 하반기부터 송준기(25기) 지산치과의원 원장이 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았으며, 정덕표(20) 한패밀리병원이사장, 서의수(23) 이노닉스 대표이사, 이희경(25) 세무회계사무사 대표, 장원규(26) 화성밸브 대표이사, 김영학(28) 프리미엄에셋 대표, 박해봉(28) 법무법인 창공 대표 변호사, 최월영(28)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광락(28) 금오모빌리티 대표, 서경덕(28) 국일따로국밥 대표, 황철(30) 코리아코프 대표이사, 김흥수(32) 이명 E&C 대표이사, 홍준영(34)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백기암(35) KMeBiz 대표가 이사로 이름을 올려 활동 중이다.또 엄이웅(9) 전 경북도정무부지사와 구본일(12) 일지테크 회장이 고문을, 이석화(25) 마음과 마음 대표변호사와 배종호(43) 공인회계사가 감사직을 맡고 있다.◆자랑스러운 동문들성광중·고 동문들은 오늘날 총동창회가 있기까지는 학교를 빛낸 자랑스런 동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입을 모은다.구본일(12기) 일지테크 대표이사와 오준세(12) 경희알미늄 대표이사, 정덕표(20) 한페밀리병원 이사장, 서의수(23) 이노닉스 대표이사, 이성구(이&김연합내과의원 원장·24) 대구시의사회장, 송준기(지산치과 대표원장·25) 대한적십자 대구지사 회장, 노희찬(25)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겸 에스원 사장, 장원규(26) 화성밸브 대표이사, 정성한(26) 상신브레이크 대표, 최균(동명교통·27) 대구시버스운송조합 이사장, 성수제(28) 서울고법 재판장, 윤성한(28) 공군방공유도탄 사령관 등이 있다.이들은 총동창회 회장, 부회장 또는 장학재단 이사장, 이사직을 역임하는 등 남다른 관심을 갖고 총동창회 모교 발전의 핵심멤버로 7만 동문들을 이끌고 있다.◆총동창회장 인터뷰“성광중·고 총동창회의 명성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동창회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올해 초 제40대 동창회장으로 취임한 최균 회장의 포부는 남다르다.최 회장은 “그 동안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우리 동창회를 잘 이끌어오신 역대 회장님들과 여러 선배님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동창회의 발전을 위해 그는 선·후배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며 역점 사업으로 후배기수 창립을 꼽았다.최 회장은 “1천200~1천300명 이상의 졸업생이 배출된 20대 이상의 기수와 달리 40대 기수에서는 600명대가량이 졸업했고 급기야 최근 졸업생들은 300명도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1천 명 이상이 졸업한 선배 기수중심의 재정과 시스템으로 동창회가 운영되고 있는 가운데 후배들이 마음놓고 동창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을 위해 지혜를 모으겠다는 것.최 회장은 “인구감소 및 탈대구 현상의 심화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현실이다. 동창회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후배기수 창립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후배기수 창립을 통한 우리 동창회의 저변확대와 연속성을 지속적으로 지향하고자 한다. 재정 및 인적역량 등을 총동원해 이를 해소하고자 한다”고 말했다.특히 연중 1기수 창립이 어려웠던 후배기수 창립에 앞장 서 44~47기 후배기수를 창립시키는 것을 목표로 정해놓고 활동할 방침이다.총동창회의 또다른 활성화 방안으로 YB기수로 활동하는 동문의 연령을 기존 60세에서 65세까지 5년 연장하기도 했다.그는 “코로나19와 정치·경제 여건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성광 7만 동문이 국가발전과 지역사회 발전의 초석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하시는 일에 더욱 매진해 사업발전과 성공을 기원한다”고 끝을 맺었다.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85) 여러 차례 가져온 사리

삼국유사에서 일연스님은 중국에서 여러 차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온 내용이 기록돼 있다.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일은 요즘도 여러 사찰에서 귀중한 행사로 가끔 열리고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인도, 태국, 필리핀 등의 여러 나라의 상당히 많은 사찰에서 모시고 있다. 과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얼마나 많아서 이렇게 많은 사찰에서 모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황룡사와 영묘사 등에서는 장육존상을 모셨던 이유에 대해 실물 크기로 조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부처님의 신체가 그렇게 장대했기 때문에 사리 또한 그만큼 많은 양이 출토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대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사찰에서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적들이 많이 발생한다.부처님의 영험한 힘으로 해석하며 믿음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여러 차례 가져온 사리에 대한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본다. ◆삼국유사: 여러 차례 가져온 사리국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진흥왕 때인 태청 3년은 기사년(549)인데 양나라 사신 심호가 사리 몇 낱을 가져왔다. 선덕왕 때인 정관 17년은 계묘년(643)인데 자장법사가 부처의 두개골, 이빨, 사리 100과와 부처가 입었던 붉은 비단에 금으로 무늬를 낸 가사 한 벌을 가져왔다. 사리는 셋으로 나눠 일부는 황룡사 탑에, 일부는 대화탑에, 또 일부는 가사와 함께 통도사 계단에 뒀다. 계단은 두 층인데 위층 가운데에 가마솥을 덮어놓은 것 같은 돌 뚜껑이 놓여 있었다.’ 반면 세상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옛날 우리 고려조에 들어와 두 사람의 염사가 차례대로 와서 단에 예불을 드리고 돌솥을 들어 보았다. 앞사람은 돌 상자 안에 구렁이가 있는 것을, 뒷사람은 큰 두꺼비가 돌 밑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다음부터는 감히 열어보지 못했다.’ 상장군 김이생과 시랑 유석이 고종 임금 때에 명령을 받아 강동을 지휘했는데 부절을 가지고 절에 이르러 돌을 들어내고 예불하려 했다.절의 스님이 어렵다고 했으나 두 사람은 군사를 시켜 굳이 들어냈다. 안에는 돌로 된 작은 상자가 있었다.함을 열어보니 유리통이 담겨있는데 통 안에는 사리가 다만 네 낱이 있어 돌려보며 경배했다.통에는 조금 갈라진 곳이 있었다.이에 유공이 가지고 있던 수정 상자를 시주하고 함께 보관했다. 옛 기록에서 ‘100과를 세 곳에 나누어 간직했다’고 했으나 이제 겨우 4과뿐이다.드러나고 나타나는 것이 사람에 따라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 했으니 괴상한 일이 아니다. 진신의 네과 사리 외에는 변신 사리여서 모래알처럼 부서졌지만, 솥 밖으로 나오면 특이한 향이 가득 차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 일이 이따금 있었다.이것은 말년의 한 가지 기이한 일이다. 당나라 대중 5년은 신미년(851)인데 중국에 신년인사를 갔던 원홍이 부처의 어금니를 가져왔다.뒷날 당나라 동광 원년은 계미년(923)인데 우리 고려 태조가 즉위한 지 6년, 중국에 신년인사를 간 윤질이 5백 나한상을 가지고 왔다.현재는 북숭산 신광사에 있다. 송나라 선화 원년은 기묘년(1119)인데 중국에 공물을 드리러 간 정극영, 이지미 등이 부처의 어금니를 가져왔다.지금 내전에 두고 모시는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말이 이렇다.옛날 의상법사가 당나라에 들어가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 스님이 계신 곳에 이르렀다.가까운 곳에 선율 스님이 있었는데 늘 하늘에서 공양을 해 주었다.재를 올릴 때면 하늘에 있는 주방에서 음식을 보내주는 것이다.하루는 선율이 의상을 초청해 함께 재를 올렸다.의상이 앉아 오래 지났는데 하늘에서 줄 때가 지나도 이르지 않았다.그래서 의상은 바리때가 빈 채 돌아왔다.그제야 천사가 이르러 선율이 물었다. “오늘은 무슨 까닭으로 늦었습니까?”“온 골짜기에 신병이 서서 막고 있으니 들어 올 수 없었습니다.”이에 선율은 의상에게 신의 호위가 있음을 알았고, 그 도가 뛰어난 것에 감복했다.그래서 바리때를 두고서 다음날 지엄과 의상 두 스님을 불러 그 까닭을 설명했다.의상이 조용히 선율에게 “스님은 이미 하늘님이 경배하는 바를 입었습니다. 제석궁에는 부처님의 마흔 개 치아 가운데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을 위해 세상에 내려 보내 복을 받게 한다면 어떻습니까?”고 말했다. 뒷날 선율은 천사에게 그 뜻을 하느님께 전하도록 했다.하늘님은 7일간만 보내준다 하니, 의상이 경배를 드리고 궁궐로 들여보내 모셨다. 진흥왕 때인 천가 6년은 을유년(565)인데 진나라 사신 유사와 명관 스님이 불교의 온갖 경론 1천700여 권을 실어 보내왔다.정관 17년(643), 자장법사가 삼장 400여 상자를 싣고와서 통도사에 모셨다.흥덕왕 때인 태화 원년은 정미년(827)인데 공부하러 갔던 고구려의 승려 구덕이 불경 약간 상자를 가져오니 왕과 여러 절의 승려들이 흥륜사 앞길에 나가 맞아들였다. 대중 5년(851)에 신년인사를 갔던 사신 원홍이 두루마리 불경을 약간 가져왔다.여기 기록된 의상전을 보면 영휘 초년(650)에 당나라에 들어가 지엄을 찾아뵈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석사의 본비에는 ‘의상은 무덕 8년(625)에 태어나 어려서 출가했다.영휘 원년은 경술년(650)인데 원효와 함께 중국으로 가고자 고구려에 이르렀지만 어려움이 있어 돌아왔다.용삭 원년은 신유년(661)인데 당나라에 들어가 지엄에 배웠다.총장 원년(668)에 지엄이 돌아가시자 함형 2년(671)에 의상은 신라로 돌아왔다.‘장안 2년 임인년(702)에 돌아가시니 나이가 78세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엄과 선율스님이 있는 곳에서 재를 올리고, 천궁에 있던 부처의 어금니를 청한 일은 신유년(661)에서 무진년(668)까지가 아닌가 싶다. 우리 고려조에서 고종이 강화도로 들어간 임진년에 천궁의 기한인 7일에 찼다고 의심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도리천에서의 하루 밤낮은 세상에서 100년이다. 의상이 처음 당나라에 들어간 신유년부터 계산해 고종 임진년까지는 693년이다.경자년(1240)까지 비로소 만 700년이 돼 7일의 기한이 찬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자장율사와 의상법사신라시대 진골 출신으로 관직에 있었던 무림은 아들이 없었다.부처님에게 축원해 아들을 낳았다.그 아들이 화엄경을 창안하고, 신라의 대국통으로 분황사와 황룡사 주지를 역임했던 자장율사다. 자장율사는 어버이가 이승을 하직하자 세상에 뜻을 버리고, 처자식을 떠나 깊은 산으로 들어가 수도에 매진했다.왕이 재상으로 기용하려 했지만 “계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깨뜨리고 백 년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응하지 않았다. 이어 자장은 중국으로 들어가 종남산에서 수도하며 장안까지 높은 덕이 알려졌다.이후 당 태종이 장안의 승광별원에 머물게 할 정도로 두터운 예우를 받는 입장이 됐다. 자장은 장안에 머무르며 당 태종의 정치적 이념을 설정하는 절대적 위치에 있으면서 신라의 안녕을 위한 복안을 마련했다.후일 의상법사가 장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을 예언하며 그로부터 정치의 향방을 묻는다면 태평할 것이라 일러뒀다.당 태종은 자장의 이야기를 기록하게 하고 모두 그의 말에 따르도록 했다. 선덕여왕이 나라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인재가 절실함을 느끼고 자장을 신라로 돌려보내 줄 것을 당 태종에게 청해 드디어 자장이 신라로 돌아오게 했다.자장은 분황사와 황룡사에 머물면서 황룡사구층목탑을 세워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의상은 19세에 황복사에서 출가했다.그의 나이 서른 중반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가 지엄을 만나 화엄사상에 대해 깊이 공부해 훗날 신라에서 자장의 뒤를 이어 화엄종을 더욱 발전시켰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화엄을 공부하고 장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태종은 이미 사망하고, 고종이 뒤를 이었다.태종과 자장의 약속은 고종의 대에는 이미 잊혀지고 파기된 후였다.의상은 고종이 50만 대군을 파견해 신라를 침략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급히 신라로 돌아와 문무왕에게 대비책을 마련하게 했다.의상은 부석사, 낙산사 등을 창건하고 3천여 명의 제자를 나라의 동량으로 키웠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40) 영천여고

영천을 대표하는 명문여고인 영천여고는 내년이면 개교 60주년을 맞이한다. 영천여고는 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도덕적 인간육성’, 자기 주도적 학습력과 개성을 신장하는 ‘창의적 인간육성’, 지식정보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진학 지도에 경험이 풍부하고 열성적인 교사들이 학생에게 형평성 있는 교육을 제공한다.또 영·수 야간 특강 및 멘토링제, 기숙사 특별 독서실 운영 등 명문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영어 말하기·쓰기 평가 방법 개선, 한국 단편 영어 번역을 통한 전문화된 외국어 교육은 영천여고의 강점 중 하나다.이와 같은 진로 진학 관련 특성화된 맞춤형 교육과정 편성 운영으로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선정됐으며, 특히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명문학교로 진학률이 높아져 명실상부한 명문학교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59년 간 1만3천여 명 배출영천여고는 아름다운 금호강과 신녕천의 이수가 감싸 흐르고 보현산과 운주산 채약산 삼산으로 둘러싸인 영천의 관문인 서부동에 자리 잡고 있다.젊은, 정직, 온유, 정절의 정신적 성장과 내실을 상징하는 ‘향나무’가 교목이다.고난 속에서도 절개를 지키는 고귀한 정신을 뜻하는 ‘매화’를 교화로 정했다.영천여고는 남을 배려하는 사람, 마음과 몸이 건강한 사람, 지혜로우며 예절 바른 사람을 양성하고자 인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1961년 개교한 영천여고는 배움이 즐겁고 나눔이 행복한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목표로 시대를 앞서가는 인재를 양성하며 지난해까지 1만3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영천여고는 공립 고등학교이다.학교특색사업으로 국제교류 활동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사회성 및 지도력을 배양에 도움을 주고자 특색 동아리 활동에도 지원하고 있다.맞춤형 진로 진학 프로그램 시행, 영어, 수학 과목 중점형 교과 교실제 운영, 수학 수준별 이동수업 시행, 블록 타임제 수업 등의 운영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영천여고의 특색 있는 교육으로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기숙형 고교’,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자율형 창의경영학교’, 2014년 경북도교육청 ‘자율과제 연구학교’ 기숙형 고교 시범학교로 각각 지정되는 성과를 거뒀다.2017년에는 언어문화개선 UCC대회 교육부장관상, 2017년 Wee 희망 대상 우수사례 공모전 대상을 차지했다.이 밖에도 지역 수능성적 최우수학교, 성취도 평가 우수학교, 도교육청 맞춤형 진로 진학 시범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총동창회의 지원이 든든2018년 취임한 서덕순(17회) 제9대 회장, 배수연(18회) 수석 부회장, 조숙희(24회) 사무국장, 이상경(25)회 총무부장, 박은숙(24회) 홍보부장 등이 영천여고 총동창회를 이끌고 있다.총동창회 임원단은 해마다 2월 졸업식과 3월 입학식, 7월7일 개교기념일 등에 참석해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총동창회와 영천여고 출신으로 결성된 영천시청동문회(회장 윤치희(17회)·인구정책과장)도 후배 양성을 위해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장학금 1천만 원을 수여하고 있다.앞으로 더 많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려고 한마음 한뜻으로 후배들을 지원하기로 했다.총동창회는 창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졌다.1997년 졸업생 2기부터 출발을 알리면서 현재는 2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총동창회가 화합으로 결속을 다져 나가고 있다.영천여고 졸업생들이 영천시청에 약 1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이들은 시청 각 부서에서 영천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영천여고 졸업생이 영천시청 직원의 10%를 차지할 정도다.공무원 출신 중에 영천여고 출신인 이잠태(14회) 전 영천시의회 국장은 2015년 영천시 최초로 여성 서기관으로 승진해 영천여고 후배 공무원들에게 ‘우리도 국장(서기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영천여고 동문들은 공직사회뿐 아니라 전국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매년 선·후배가 모이는 한마음 체육대회총동창회는 매년 7월7일 개교기념일을 축하하고자 7월 첫째 주 토요일 영천여고에서 총동창회 한마음 체육대회를 개최한다.이날은 서울, 부산, 대구,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선·후배들이 모교에 모여 정다운 이야기꽃을 피우며 학창 시절로 되돌아가며 동심을 만끽한다. 한마음 체육대회에는 200명이 넘는 동문이 참가하고 있다.이날만큼은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서로 친목과 화합을 다진다.기수별 장기자랑도 체육대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사다.특히 재학생의 축하 공연과 졸업생의 재능나눔 공연의 식전행사로 체육대회의 흥이 한껏 달아오른다.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는 귀엽고 자랑스러운 후배 재학생들의 댄스 공연이다.이때는 선배와 후배가 모두 나와 춤을 추며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고 한다. 동창회는 한마음 체육대회를 통해 영천여고 동문들이 더욱 화합하고 단합하는 소통의 장을 만들며 모교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졸업생은 물론 재학생들도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총동창회가 기다려진다고 한다. ◆서덕순 영천여고 총동창회장“영천여자고등학교는 지역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여고입니다. 당연히 동문과 재학생 모두가 영천여고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서덕순 제9대 영천여고 총동창회장은 “끈끈한 응집력이 생기면서 총동창회가 발전해 나가고 있다”며 “헌신적으로 봉사해주는 든든한 선·후배들 덕분에 더욱 탄력을 받아 열정적으로 투철한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서 회장은 선·후배 간의 화합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모교 발전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한복 연구가로써 대구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2017년 이탈리아 총영사관 초청으로 밀라노대학교에서 전시회와 특강을 진행했으며, 이탈리아 복식 디자이너 스테파노 니꼴라오 초청으로 한복깨끼특허바느질 기법과 한국명주 제작과정 천연염색 등에 대한 특강을 하기도 했다.또 그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한국전통복식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세계 최고 패션도시에서 한복의 진정한 가치를 선보이면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알리며 국위선양에서 앞장서고 있다.서 회장은 “내년이면 영천여고가 개교한 지 60주년이 된다. 앞으로 총동창회 활성화로 선·후배 간 소통을 통해 학교 발전을 위한 손과 발이 되겠다”고 다짐했다.또 “매년 학생 수가 줄어드는 현실이 마음이 아프다”며 “학생 수는 줄지만 학교와 함께 후배들이 영천여고라는 수준 높은 교육 환경에서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서 회장은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며 “학교 동문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늘 각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다”고 동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시했다.이어 “앞으로도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동문이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해 소통하는 총동창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도 약속했다.“끈끈한 선·후배 간의 진정한 사랑으로 지역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신뢰받는 동창회가 되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총동창회와 모교 발전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서덕순 회장은 “영천여고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총동창회가 앞으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도록 하겠다”며 “아직은 장학사업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모교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총동창회가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박웅호 기자 park8779@idaegu.com

뚜벅뚜벅 대구·경북 한 바퀴<5>산소카페 청송

청송은 천혜의 자연 속에 원시의 비경이 있는 주왕산과 주산지, 절골 협곡 등 위드 코로나 시대 가족여행에 최적화된 곳이다.특히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면서 지질관광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장엄한 협곡과 암석의 역동적인 등장에 수려한 자연경관까지 드라마틱한 풍광을 자랑하며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주왕산은 일찍이 그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코로나 시대 가장 청정하고 힐링할 수 있는 곳, 군 전체가 ‘산소카페’라고 불릴 정도로 맑고 깨끗한 곳, 여유롭고 안전하게 생활 속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가을에 가기 좋은 청송여행의 계절이 다가 왔다.◆한국의 그랜드캐니언, 주왕산청송하면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높이 720m의 주왕산이다.주왕산은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경북 제일의 명산으로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 해 옛날에는 ‘석병산’으로 불렸다.주왕산 이름의 유래는 신라 말 당나라 주왕이라는 사람이 은거했던 산이라는 데서 유래했다.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켰으나 당나라 군사에 패해 이곳 석병산(주왕산의 옛 이름)까지 쫓겼다.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왕에게 주왕을 잡아 달라 요청해 주왕은 이곳에서 최후를 마쳤다.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 중 하나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천년고찰인 대전사를 비롯한 사찰과 아름다운 계곡, 수많은 폭포와 굴은 주왕산의 자랑거리다.대전사 뒤편에 솟아있는 기암을 비롯해 주방천 좌우로 도열한 병풍바위, 급수대, 시루봉, 학소대 등의 기암괴봉과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가 한데 어우러져 아직도 원시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또한 월외계곡에는 하늘에서 물기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달기폭포가 있으며 주왕산 계곡마다 아름답고 장엄한 경관이 펼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특히 주왕산은 내장산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 단풍 ‘맛집’으로 통한다.형형색색의 단풍들이 주왕산의 기암절벽들과 조화를 이뤄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때가 바로 지금 이 시점이라고 하겠다.◆몽환적인 물안개, 주산지주왕산 한편에는 300여 년의 세월이 전해지는 저수지 ‘주산지’가 있다.주산지는 조선시대 경종(1720년) 때 착공해 이듬해 완공된 농업용저수지였다.길이 200m, 너비 100m, 수심 8m의 조그만 산중 호수다. 이 아름다운 호수는 오랜 역사 동안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주산지는 이전리 마을에서 3㎞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왕산 영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한적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가을, 단풍이 물들면 용이 승천한다는 전설이 떠도는 주왕산 별바위가 왼편에 있으며, 파란 하늘과 울창한 숲의 주산지 경치는 그야말로 신이 청송에 내린 선물과도 같다.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붕어의 퍼드덕거림과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버들나무를 쓸어내리는 소리는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많은 이들이 주산지의 가장 아름다운 배경으로 꼽는 것은 바로 30여 그루의 왕버들 고목이 물에 잠긴 채 자생하고 있는 모습이다.국내 30여 종의 버드나무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왕버들은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치 않고 아예 호숫가를 비롯한 물 많은 곳을 택해 자란다.어릴 때부터 다른 나무의 자생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한 뒤 수백 년간을 자연에 의지하는 유유한 모습으로 살아간다.주산지는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이기도 하다.김기덕 감독의 2003년 작품으로, 국외의 관심까지 집중된 바 있다. 영화 흐름의 배경에는 청송군 주산지의 아름다운 풍경이 계절 별로 이어진다.◆주왕산의 속살, 절골 협곡주왕산 자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는 것은 쉽지 않다.외부인이라면 주왕산 계곡과 주산지 등을 첫 손에 꼽겠지만, 내부인 이라면 절골 협곡을 꼽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하늘아래 별천지라고 불리는 절골 협곡은 원시적인 비경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곳이다.절골 협곡은 주왕산~가메봉~왕거암 능선 남동쪽 절골탐방지원센터에서 대문다리까지 5㎞구간(직선거리 약 3㎞)이다.주왕산의 주등산로가 있는 대전사나 폭포가 있는 쪽보다는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있으며 죽순처럼 우뚝 솟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이 마치 별천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옛날에는 운수암이라는 절이 있어 절골이라고도 불렸다.절골 협곡은 인공시설물을 최소화한 친환경적 탐방로로 관광객들은 여울을 따라 놓인 징검다리를 이용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한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 얼음골주왕산면 내룡리에서 동쪽 2㎞ 지점에 골이 깊고 수목이 울창해 인적이 드문 잣밭골이 있다.잣밭골 입구에 웅덩이처럼 파진 곳이 있는데 한 여름철 기온이 32℃ 이상이 되면 돌에 얼음이 끼고 32℃ 이하가 되면 얼음이 녹아내린다.겨울철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나오고, 여름철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나오는 특이한 기상현상으로 계절이 거꾸로 가는 곳이다.신기한 일은 기온이 올라갈수록 얼음이 두껍게 언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자연의 신비한 조화이다.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데 용암이 분출되어 만들어진 화산암의 구조가 치밀하지 않고 구멍이 뚫려있어 돌무더기 내부의 공기가 밖으로 흘러나오면서 찬바람을 만든다는 설이 있다.또 다른 주장은 일사량이 적고 단열효과가 뛰어난 얼음골의 지형 특성상 겨울철에 형성된 찬 공기가 여름까지 계곡 주위에 머물다가 암반 밑의 지하수가 증발할 때 열을 빼앗아 얼음이 언다고도 한다.이곳 주변은 석빙고 속에 있는 것처럼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도 더운 줄 모르며, 이끼 낀 바위를 감싸고 흘러내리는 물에 손을 담그면 마치 얼음같이 차다.한 여름의 시원함과 기암괴석의 절경이 뛰어나며 주변에 약수터와 인공폭포 빙벽이 있어 해마다 찾는 이가 늘고 있다.빙벽 애호가들과 전문 산악인의 빙벽 훈련장으로 사용되며 매년 전국빙벽대회가 개최되고 있다.최근에는 캠핑과 차박의 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다.◆유명 약수터들의 고장청송엔 유독 물과 관련한 전설이 많다.부남면 중기리에는 재력과 명망을 고루 갖췄던 현부자집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멀리서도 손님이 찾아올 만큼 인망이 높았던 이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가 고된 손님맞이를 피할 심산으로 뒷마당 천연지의 둑을 끊어버렸다.이에 연못의 물이 모두 빠지더니 현부잣집을 찾아오던 손님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뿐만 아니라 농사를 망치고 가세도 기울더니 결국 거지 신세가 돼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안덕면 명당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먼 옛날 이곳에 시집온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남편이 병에 걸린 한 새댁이 남편의 쾌유를 빌며 천지신명께 치성을 드렸는데, 하루는 꿈에 뱀 한 마리가 나타나 뒷산 바위틈에 끼어 고통 받고 있으니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다.이에 뒷산에 올라보니 과연 바위틈에 낀 뱀이 있어 구해주자 뱀은 하늘로 승천하고 그 자리엔 우물이 생겼다고 한다.이처럼 청송 사람들에게 물은 집안의 마을과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소중한 자원이었다.청송엔 여러 물길이 시작되고 교차하며 땅과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했고 풍광을 자아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이처럼 청송에선 물이 귀하게 대접받고 있으니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달기약수다.달기약수의 역사는 조선 철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던 권성하라는 인물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수로 공사를 하던 중 바위틈에서 물이 솟아나오는 곳을 발견했다.샘물을 떠서 맛을 보니 톡 쏘면서도 끝이 개운했다. 한 번 더 마시니 탄산 때문에 트림이 나오면서 더부룩했던 속도 편안해졌다.그는 이 샘물을 약수로 개발해 위장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마시게 했고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봤다.지금도 주왕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꼭 한 번 들러 갈 만큼 유명한 달기약수는 한 겨울에도 샘물이 얼지 않고 사계절 약수의 양이 일정한 신비로운 물이다.철분이 다량 함유돼 신경통과 위장병에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인지 일대엔 약수로 지은 밥과 닭백숙이 별미로 통한다.하루 이용자가 300여 명에 달하는 신촌약수터도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전해지며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이곳에는 약수를 이용한 닭백숙뿐만 아니라 닭불고기, 닭날개 요리 등도 별미다.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건강인-안검하수(잠 오는 눈)

안검하수는 눈꺼풀을 위로 당기는 근육인 눈꺼풀올림근의 장애로 인해 눈을 충분히 뜨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원인은 선천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후천성인 경우는 노년기에 근육의 건막 부분이 약해져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눈꺼풀 올림근은 안구 뒤쪽에 있는 안와골에서 기원하여 눈꺼풀의 안검판에 부착하는 근육이다.길이는 약 4.5㎝ 정도이며 위쪽 2/3는 근육이고 아래쪽 1/3은 얇고 튼튼한 건막으로 구성돼 있다.‘선천성 안검하수’의 원인은 근육자체의 발생장애로 인한 경우가 가장 많다.원인으로는 건막의 손상, 근육을 지배하는 신경에 문제, 암 덩어리에 등에 의해 물리적으로 눈이나 눈꺼풀이 눌리는 경우 등이 있다.‘후천성 안검하수’의 원인은 건막의 약화와 분리로 인한 경우가 가장 많다.주요 원인으로는 근육의 약화, 근육을 지배하는 신경성 문제, 근육-신경 접합부의 이상 등이 있다.안검하수의 진단은 눈꺼풀이 정상에 비해서 어느 정도 처져있는지를 기준으로 결정한다.동공에서 밝게 빛나는 점인 동공반사점에서부터 윗 눈꺼풀까지의 거리(Marginal reflex distance 1, MRD1)가 정상은 3~4.5㎜이다.경한 안검하수는 이 정상치에서 2㎜ 처진 경우, 중간은 3~4㎜, 심한 안검하수는 4㎜ 이상 처진 경우로 구분한다.안검하수가 있는 환자는 눈을 원하는 만큼 크게 뜰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이마 근육을 사용해 모자라는 부분을 보상한다.그렇기 때문에 안검하수가 한 쪽에만 있으면 해당 부위의 이마에 주름이 많이 생긴다.진단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눈꺼풀 올림근의 기능이 얼마인지를 측정하는 것이다.이때 보상 작용을 하는 이마 근육을 계측자가 손가락으로 눌러 그 기능을 차단한 후에 눈꺼풀을 최대한 아래에서 최대한 위까지 뜨게 해 움직이는 거리를 측정한다.이 거리가 10㎜ 이상이면 정상으로 본다.선청성 안검하수의 수술 시기는 정도에 따라 생후 6개월에서 4세로 본다.후천성으로 오는 노년기 안검하수는 노안성형수술과 동시에 시행하면 효과가 좋다.경한 경우에는 안검하수가 있는 것을 간과할 때가 많아 증상이 심해지기도 한다.경한 증상이라도 눈을 뜰 때 유독 이마 근육을 많이 사용하거나, 턱을 치켜들거나, 정면 주시 때 약간 졸리는 듯한 눈으로 보이면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수술은 눈꺼풀 올림근의 건막 부분을 단축해 길이를 짧게 만들어 눈을 더 높이 뜰 수 있도록 하는 수술을 가장 많이 시행한다.하지만 중증의 경우에는 이 수술로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마 근육을 이용한 수술을 선택한다.수술은 대부분 국소마취로 입원 없이 가능하고 소아의 경우에는 전신마취를 한 후 수술한다.회복은 수술 후 1~2주 정도 걸린다.또 쌍꺼풀 수술을 함께 시행할 수 있다.경증의 안검하수에서도 환자는 수술 후 훨씬 생기 있어 보이고 또렷한 눈매를 가지기 때문에 환자의 만족도가 높다.또 중간이나 중증의 경우에도 눈을 뜨기가 편하고 시야가 많이 확보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이나 학업이 한결 수월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도움말=계명대동산병원 성형외과 손대구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혈액투석 환자 조혈호르몬제 저항성 개선 효과 확인

칠곡경북대병원 신장내과 임정훈·조장희 교수 등의 연구팀이 혈액투석 환자의조혈호르몬제 저항성의 개선효과를 확인해 의료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연구팀의 ‘테라노바 혈액투석막의 조혈호르몬제 저항성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는 연구결과가 국제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9월29일)’에 발표됐다. 혈액투석을 받는 말기신부전 환자에게 빈혈은 흔한 증상으로 빈혈 치료를 위해 조혈호르몬제가 주로 사용된다.하지만 많은 환자가 조혈호르몬제에 저항성을 보여 고용량의 조혈호르몬제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빈혈이 지속되고 있다.빈혈은 심혈관계 사망률 증가, 삶의 질 저하와 관계된 중요한 합병증이다.말기신부전 환자에서 빈혈은 요독증, 조혈 호르몬 감소, 만성 염증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알려졌다.혈액투석 환자의 조혈호르몬제 저항성 개선을 위해 새로운 투석막 사용, 혈액투석 여과 등의 방법이 시도됐고, 일부에서 효과를 보였다는 보고도 있으나 아직 확실하게 검증된 치료방법은 없다. 임정훈·조장희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혈액투석을 받는 말기신부전 환자에게 중분자 물질 제거 효율을 높인 테라노바 혈액투석막을 사용했을 때 조혈호르몬제 저항성이 개선되고 중분자 물질 제거 효율이 향상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국내 혈액투석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임상연구를 진행한 결과 테라노바 투석막을 사용한 환자들이 기존 고유량 투석막(High-flux HD)을 사용한 환자들에 비해 12주째 조혈호르몬제 저항성이 의미 있게 개선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에 대해 연구팀은 효과적인 중분자 염증물질의 제거를 통한 철분 대사 지표들의 개선이 조혈호르몬제 저항성을 개선하는 기전이라고 설명했다. 임정훈 교수는 “많은 혈액투석 환자에게 빈혈은 피로감, 무력증을 유발해 삶의 질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다”며 “이번 임상연구 결과를 통해 향후 만성 빈혈을 보이는 혈액투석 환자에서 중분자 요독물질 제거 효율을 높인 투석막을 사용한 확장된 혈액투석(HDx)이 고려 가능한 치료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영천 용계서원

한 여름의 무더위가 사라지고 어느새 가을 풍광이 완연하다. 세상은 온통 코로나19로 답답하고 어수선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가고 또 온다.요즘처럼 햇살이 따사롭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를 속칭 ‘황금가을’이라고 부른다. 일 년 중 가장 살기좋은 시기라는 뜻이다. 올해는 이 황금가을을 등한시 하지않고 가을을 즐겨야겠다.햇볕이 좋은 날 영천 용계서원을 찾아 나섰다.도심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린 후 곧 영천에 닿았다. 영천은 포도의 고장답게 온 천지가 포도밭이다. ◆영천은 서원의 고장영천 시가지로 접어들자 곳곳에 서원 안내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영천에는 고려 말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임고서원을 비롯해 용계서원과 귀천, 금호, 도계, 도참, 송곡, 연계, 창대서원 등 서원이 9곳이나 있다.이중 임고서원이 1500년대에 창건돼 가장 빠르고, 1600년대 7개소, 1700년대에 6개소, 1800년대에 1개소가 건립됐다.서원이 많다는 것은 그 지역의 교육열이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서원은 조선시대 사림 유생들이 만든 사립교육기관이라 당연히 학식이 높은 학자들도 많이 배출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또한 선현을 봉사하는 사묘도 있어 명실 공히 향촌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하지만 조선 후기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로 영천지역의 모든 서원들도 헐렸다. 일부는 서당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대부분 후대에 복원됐다.영천에서 국도를 따라 포항 방면으로 가다보면 영천댐이 나온다. 댐주변에서 한박자 쉬며 여유를 가지노라면 눈앞에 펼쳐진 호수로 인해 가슴이 시원해진다.영천댐 일주도로를 따라 보현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마치 고깔같은 모습을 한 기룡산이 병풍처럼 영천댐을 둘러싸고 있다.보현산과 기룡산 사이의 골짜기가 용산리 골짜기다. 용산마을의 주변을 둘러보니 절경이다. 영천댐의 아름다운 물길과 그 위로 우뚝 솟은 기륭산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영천댐 중상류에 기룡산 원각골의 산골마을이라 마치 동화속의 마을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푯말을 따라 정겨운 시골 마을길로 접어들어 복숭아와 자두 등 과일밭을 지나면 어느새 용산리 원각마을이다. 마을입구에 있는 고목나무 군락지와 정자가 눈길을 끈다. 그 곳을 지나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머금은 용계서원이 있다. 앞은 영천호수를 두고, 뒤는 기룡산이 턱 버티고 있으니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생육신 이맹전 선생의 절개가 스며있는 용계서원 용계서원은 영천시 자영면 용산리 303번지에 위치한다.조선 초기의 문신인 경은 이맹전(1392~1480년)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선생이 죽은 후인 정조 6년(1782년) 왕명으로 지어진 사원이다.원래 토곡동에 건립됐으나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고 노항동으로 옮겨가 한동안 서당으로 사용됐다.그러다 1976년 영천댐 공사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현재의 용산동 산기슭으로 옮겨왔다.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됐다.이맹전 선생은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이다.세종 9년(1427년) 친시문과에 급제, 승문원정자를 거쳐 정언, 거창현감을 역임했다. 관직에 있을 때는 청백리로도 유명했다.때는 계유년,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이 벌어지며 거창현감으로 있던 이맹전은 이러한 정변의 소용돌이에 분노하고 탄식했다.결국 그는 장차 단종에게 화가 미칠 것을 예견해 벼슬을 버렸다. 자신을 숨기고 싶었다. 믿었던 사람들이 배신하는 배반의 시대에 넌덜머리가 났다.고향인 구미 선산으로 내려가 은거했다. 호를 경은이라 한 것은 ‘농사나 지으면서 숨어 지낸다’는 의미다.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인근의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정변 후 체제가 정비되면서 그의 출사를 권하는 조정의 유혹도 끊임 없었다.그의 마음은 언제나 단종에게 머물러 있었다. 자신이 섬기던 임금을 내친 수양의 사람이 될 수는 없었던 터.청백한 목민관의 소문은 널리 알려져 있어서 출사의 유혹이 만만찮았다. 때로는 협박조로 출사를 종용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벌이는 이런 유혹과 온갖 말을 듣기를 원치 않았다.마침내 그는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면서 돌아앉아 버렸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눈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귀머거리가 된 것이다.그런 가운데서도 매달 초하룻날이면 아침 해를 향해 절을 했다. 단종이 있는 영월 쪽을 향한 절이었다.이후 30년을 하루같이 폐인을 자처하며 손님도 사절하면서 의관을 정제하고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쪽으로 배좌했고, 북쪽인 한양 쪽으로는 향하지도 앉지도 않았다고 한다.그는 그렇게 평생을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사람인 척 살다가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심지어 가족들조차 실제 귀머거리인 줄 알았다고 하니 그의 충절은 참으로 지독한 고독이었다. ◆경은의 절개가 곳곳에용계서원은 아담하고 고풍스럽다. 작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다.서원 입구는 마치 서원을 보호라도 하듯 수백 년은 된 듯한 거대한 은행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고 서원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풀벌레 소리와 진한 나무향이 진동한다.20평(66.2㎡) 남짓 될까. 아담한 마당은 오히려 더 고즈넉하고 정감이 간다. 세속적인 물욕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는 선비의 공간다웠다.경은 선생의 발자취를 느껴 볼새라 발에 채이는 돌부리 하나도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았다.마당 한 가운데 있는 고풍스런 건물은 유생들이 학문을 닦았던 강당이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구조로 건축된 누각식의 팔작집(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아 지은 집)이다.낮은 기단 위해 누마루를 높이 짜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필로티 형식의 구조다.작은 문간채를 앞에 하고 측면에 툇간을 만들고 밖으로는 난간을 두른 형태다.담장을 따라 이동하면 서원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팔각지붕에다 사방으로 난간이 있는데 협소한 편이다.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면 5평(16.5㎡) 남짓한 공간이 나온다. 아마 이곳은 경은을 따르는 유림들이 모여 치열하게 학문을 토론하던 곳이었으리라. 절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유생들의 기숙사, 동재 서재가 없다 서원은 보통 존현과 강학이라는 기능에 따라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사당, 교육을 담당하는 공간인 강당, 유생들이 공부하며 숙식하는 공간인 동재·서재로 나뉜다.하지만 용계서원에는 학생들의 기숙시설인 동재·서재가 없다. 대신 중간에 협문이 하나 있을 뿐이다. 아마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던 중 소실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강당 뒤에는 사당이 있다. 전형적인 서원의 ‘선학후묘’ 구조다.사당에는 경은 선생의 위패를 모셨다가 1975년 생육신 김시습, 원호, 조려, 성담수, 남효온 선생을 추가 배향했다. 생육신 6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사당은 앞쪽 중앙에 계단을 두고, 화강석 다듬돌로 축조한 높다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워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홑처마 맞배집이다.사묘 건축의 경우 전퇴 1칸을 둬 개방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여기에는 전퇴를 두지 않고 평주칸에 바로 문을 냈다.사당 안은 꾸밈없이 담백했던 강당과는 달리 형형색색의 화려한 장식의 향연이 펼쳐졌다.경은과 어울리지 않는 오색찬란한 사당은 평생을 자기 자신을 버리고 귀머거리로 살아야 했던 경은 선생을 향한 작은 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고결한 절개를 떠올리니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서원 뒤편에는 대나무 숲이 일렁이고 은행나무들이 마치 수호신인 양 사당을 지키고 서 있다. 제단 옆에는 가옥이 한 채 있다. 서원을 관리하는 후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용계서원은 웅장한 맛은 없다. 하지만 초라하지 않았다. 선비의 올곧은 정신이 기둥 하나, 주춧돌 하나에도 그대로 전달됐기 때문일 것이다.세상이 바뀌면 가치 판단의 기준도 바뀐다. 주군을 향한 절개, 믿음, 신념 같은 가치는 현실사회와는 동떨어진 가치일지도 모른다.팬덤 정치와 편 가르기, ‘내로남불’이 만연한 현대 정치판에서 경은의 우직함과 절개는 오히려 답답해 보이고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다.하지만 이런 우직함과 미련함이 오늘날 더욱 존경스러워지는 것은 비단 나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84) 남백월산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목적이 민족 자긍심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남백월산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편이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하다고 볼 수 있다. 당나라 황제가 조성한 연못에 아름답고 신비스런 풍경의 사자암이 나타나, 황제가 화공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 그 신성한 땅을 찾게 했다고 한다.이는 신라 땅에 그 대단한 복지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대목이다.또 평범한 청년들이 어느 날 수련하기로 마음먹고 백월산에서 부처가 됐다는 이야기로 신라에는 뛰어난 인재가 넘쳐난다고 은근히 자랑한 것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천30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백월산을 둘러싼 창원은 복된 땅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제법 있다.낙동강 줄기가 여유롭게 흐르고 있고, 동서남북으로 에워싸고 있는 산들은 여인이 하늘을 보고 누운 형상의 길지라는 해석을 들려준다.지금도 백월산에는 그 맥을 이은 절이 향불을 피우고 있고 전설의 현신을 꿈꾸며 수련하는 도사들도 가끔 만날 수 있다. ◆삼국유사: 남백월산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백월산 두 성인의 성도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백월산은 신라 구사군의 북쪽에 있다.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솟아있고, 수백 리 이어지는 참으로 거대한 자태이다.예부터 노인들이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당나라 황제가 연못을 하나 팠지.매달 14일에 달빛이 환하게 밝을 때 사자처럼 생긴 산의 바위 하나가 꽃 그림자 사이에 은은히 비추며 연못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야.황제가 화공더러 그 모습을 그리게 하고, 사신을 시켜 천하를 돌며 찾게 했어.우리나라에 이르러 이 산을 보니 커다란 사자암이 있고, 산 서남쪽 2보쯤에 산이 셋 있는데 이름이 화산이야.그림과 아주 비슷했지. 그러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 신발 한 짝을 사자암의 정상에 걸어놓고 사신들은 돌아가 아뢰었지.신발의 그림자가 연못에 나타나는 것이야. 황제가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백월산이라 했어. 그런 다음에 연못에는 그림자가 사라졌어.” 산에서 동남쪽 3천 보쯤 거리에 선천촌이 있다.그 마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둘 다 풍채가 평범하지 않고 이 세상 밖의 뜻을 품으며 친구사이로 가까이 지냈다.나이가 스무 살쯤 됐을 때 마을의 동북쪽 고개 너머 법적방에 가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다.얼마 지나지 않아 서남쪽 치산촌 법종곡의 승도촌에 오래된 절이 있는데 머무를 만하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대불전과 소불전 두 마을에 각각 살았다. 그들은 모두 아내를 데리고 살면서 생계를 꾸리며 서로 오갔지만 속세를 떠나려는 뜻을 잠시라도 잊지 않았다. 두 친구는 서로 말했다.“부처님을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돼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아야지. 지금 우리들은 이미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으니 세상에 묶인 끈을 벗어버리고 더할 수 없는 도를 이뤄야 하네. 먼지 날리는 세상에 코를 박고서야 어찌 세상의 무리들과 다름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사람 사는 세상을 떠나 깊은 골짜기에 숨기로 했다.밤에 꿈을 꾸는데 백호광이 서쪽에서 오더니 빛 가운데서 금빛 팔이 드리워져 두 사람의 이마를 만졌다.깨어나 꿈 이야기를 하자 두 사람이 똑같았다.오래도록 감탄하다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으로 들어갔다. 박박스님은 북쪽 마루의 사자암에 자리를 잡고, 부득스님은 동쪽 마루의 돌무더기 아래 물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각기 암자에 살면서 부득은 열심히 미륵보살을 찾고, 박박은 한마음으로 미타보살에게 예불을 드렸다. 3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경룡 3년 기유년(709)의 4월8일은 성덕왕이 즉위한 지 8년이었다.저물 무렵 몸매가 아주 빼어나고 그윽한 기운을 풍기는 스무 살쯤 된 여자가 문득 북암에 와서 자고 가기를 청했다. 박박이 “절이란 깨끗이 지키는 것을 일삼는 곳이오. 그대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빨리 떠나시고 이곳에 머물지 마시오”라고 말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낭자는 남암으로 가 앞에서처럼 청했다. 부득이 여자에게 “이곳은 여자가 와서 더럽힐 곳은 아니오. 그러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이지요. 하물며 깊은 산골에 날마저 저물었으니 어떻게 소홀히 대하리요”면서 암자 안으로 맞아들여 머물게 했다. 밤 깊도록 맑은 마음을 지키며 등잔불 아래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웠다.그런데 밤이 이슥해질 무렵 여자가 “제가 하필 아이를 낳으려나 봅니다. 스님께서 거적대기를 좀 준비해 주시지요”라고 부탁했다. 부득은 애처로운 마음에 등불을 가만히 피워놓았다.여자는 아이를 낳더니 목욕물을 부탁했다.노힐부득은 두려운 마음이 엇갈렸으나 어여삐 여기는 마음은 더할 나위 없었다.항아리 욕조를 마련해 여자를 거기 앉히고, 새로 물을 끓여 씻겼다.그러자 욕조 안의 물이 향기를 가득 피우면서 금빛의 즙으로 변하는 것이었다.노힐이 크게 놀라자 여자가 “우리 스님도 여기서 씻으시지요”라고 권했다. 노힐은 사양하다가 이에 따랐다.문득 정신이 상쾌하고 맑아지면서 피부가 금빛이 됐다.그 곁을 보았더니 어느새 연대가 하나 나타났다.여자는 거기 앉으라고 권하며 “나는 본디 관음보살이오. 스님이 대보리를 이루도록 와서 도운 것이라오”라고 말을 마친 후 사라졌다. 박박은 “부득이 오늘밤 분명 계를 더럽혔을 것이야. 가서 비웃어 주어야지”라며 와서 부득을 보니 연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돼 밝은 빛을 내며 몸은 금으로 꾸며져 있었다.저절로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고 연유를 물었다. 노힐부득이 연유를 설명하자 박박은 “내가 눈에 씌인 것이 있어 대성을 만나고도 바로 모시지 못했구먼. 그대는 지극히 인자해 나보다 먼저 이뤘네”라고 탄식했다. “욕조에 즙이 남아 있네. 씻을 수 있을 거야.”박박이 씻자 부득처럼 무량수불상이 돼 두 불상이 우뚝 마주보고 앉았다.마을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며 “희귀한 일이 일어났어. 희귀한 일이”라며 감탄했다.두 성인은 설법을 베풀고는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천보 14년은 을미년(755)인데 신라 경덕왕이 즉위해 이 이야기를 듣고 정유년(757)에 사람을 보내 큰 절을 짓고, 백월산 남사라 불렀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성도기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백월산 기슭의 선천마을에 각자 가정을 이루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들이었다.부득과 박박은 일을 마치고 저녁이면 만나서 농사 계획과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어느 날 두 친구는 비보를 접했다.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함께 마음을 주고 있었던 여인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홀어머니를 혼자 부양하면서 두 청년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러던 중 어머니와 산책을 나갔다가 빗길에 낭떠러지로 떨어져 모녀가 함께 유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부득과 박박은 서로가 아끼던 여인의 장례를 치르고 삶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했다.“우리는 모르고 왔던 것처럼 갈 곳이나 갈 때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삶의 궁극은 무엇인지 깨우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밥벌레와 다를 바 없다”며 “머리를 깎고 공부에 매진해 답을 찾자”고 다짐했다. 깊은 삶의 의미를 찾기로 약속을 한 두 친구는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와 백월산 깊숙한 계곡으로 들어갔다.둘은 북쪽과 동쪽에 각자 거처를 마련하고 잠을 설쳐가며 수련에 몰입했다. 부득과 박박은 먹는 것조차 잊었다.절에서 가져온 관음과 미륵상을 걸어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삶의 끝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구했다.둘은 씻는 것은 물론 먹는 것도 잊고 오로지 도를 닦는 일에 몰두했다.청년 둘이 똑같이 열흘 만에 쓰러졌다.그런데 그들의 머리 위로 빗물이 쏟아져 정신을 차리게 했다.그리고 그들의 옆자리에 신비스런 향이 나는 과일이 놓이기 시작했다.영문을 모른 채 둘은 과일로 공양하며 더욱 정진했다. 그렇게 꼬박 3년이 지난 어느 날 어여쁜 여인으로 분장한 관음보살이 이들의 거처에 나타나 마음을 시험했다.그러나 이미 경지에 이른 그들은 미색에 혹하지 않았다.관음보살은 그들을 부처의 세계로 인도했다.선천마을 전체로 무지개 한 쌍이 7주야 크게 원을 그리며 걸렸다.마을 사람들이 무지개를 찾아가니 두 성인이 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성인이 된 둘은 마을사람들에게 한차례 법어를 남기고 함께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소식을 들은 왕이 그들이 수도하던 곳에 절을 지어 불사를 길게 이어가게 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39) 대구 능인고등학교 총동문회

1939년 10월 설립된 대구 능인고등학교가 올해로 81주년을 맞이했다.눈부신 모교 발전 뒤에는 능인고 총동문회의 깊은 애정과 관심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걸출한 인재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는 능인고 총동문회의 역사와 다양한 활동에 대해 알아본다. ◆70여 년 이어온 능인동문회능인고 총동문회는 1945년 10월 경북 영천시 은해사에서 1회 졸업생들이 모여 ‘오산불교학교 동문회’를 창립한 것이 시초다.1946년 오산, 능인 합동 동문회를 발족해 회의 명칭을 ‘오산·능인동문회’로 정했다.동문회 초기에는 6·25 전쟁으로 모교에서 보관 중 관련 서류들을 분실해 설립에 어려움이 겪었다.이후 1952년 7월 제4회 정기총회에서 동문회 명칭을 ‘능인동문회’로 변경하고 공식적인 총동문회 활동을 시작했다.1954년 8월 제5회 능인동문회 정기총회를 개최해 이외윤 동문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했다.이 회장은 1954년부터 1957년까지 3대에 걸쳐 회장직을 맡았고 오산불교학교와 능인중·고교 졸업생 모두를 회원으로 가입시켜 동문회 틀을 잡는 데 기여했다.4대 신상민 회장은 1957년부터 1971년까지 14년간 총동문회장직을 수행했는데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던 동문회를 이끌어 현재의 모습을 구성하는 데 기초를 닦았다.현재 회장직은 제45대 김판권 회장(34회)이 이끌고 있다.지역에서는 1974년 9월 처음으로 재경동문회가 발족하는 등 약 6만5천 명에 달하는 동문회원을 확보하고 있다.총동문회는 1999년 1월 최초로 동문회관을 개관하면서 관련 업무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능인고와 총동문회의 발전 속에 걸맞은 회관 건립이 요구됐고 동문들의 기부를 통해 개관했다.이후 2002년 10월 능인고 동문회관은 이전됐고 2015년 다시 한번 수성구 용학로로 옮겨졌다.총동문회는 회관 건물을 매입해 보다 많은 동문이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능인고 총동문회의 재정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임원단의 분담금과 회관 건물의 임대 소득 등을 통해 재정을 늘여가고 있으며 이 금액은 모두 총동문회와 모교 재학생 지원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총동문회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모이고 있는 자금은 모두 총동문회의 각종 행사와 재학생의 학업 지원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모교 발전을 위한 지원은 물론이고 젊은 동문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기 행사 통한 선후배 소통능인고 총동문회는 해마다 정기 행사를 개최해 친목 도모를 꾀하고 있다.연초에 열리는 정기총회 및 신년교례회를 포함해 체육대회, 골프대회, 산악대회, 수련회 등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새해가 되면 1월 정기총회와 신년교례회가 먼저 열린다.총동문회의 가장 큰 행사로 이 자리에서는 전년도 진행했던 총동문회 사업을 결산하고 차기년도에 진행할 사업에 대해 논의한다.올해는 총동문회 소속의 청년회 활성화와 모교 시설 지원계획이 주요 논의 주제였다.젊은 동문의 활동을 높이기 위해 45세 이하만 가입이 가능한 청년회를 활성화시킬 예정이다.모교의 건물 증축을 위해 일부 금액도 지원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총동문회 자체적으로 기부금 모금을 했고 예상 금액이었던 7천5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은 1억5천여만 원이 모였다.이날에는 총동문회의 발전과 동문의 안녕을 기원하고 선·후배 간 새해 인사 및 덕담을 가진다.5월에는 한마음대잔치체육대회가 개최된다.동문과 가족 등 1천500여 명이 참석하는 행사로 매년 둘째 주 일요일 모교 운동장에서 한다.이날 체육대회에서는 재학생에 대한 장학금 전달식과 한 해 동안 총동문회를 위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동문을 대상으로 주는 능인대상 및 공로패 수여식이 진행된다.이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족구, 피구, 달리기, 줄다리기 등 다양한 경기를 한다.여름이 되면 청년회 하계수련회가 열린다. 8월 동문회 산하 조직인 청년회의 독립행사로 동문이나 가족 500여 명이 참석한다.1박2일 일정으로 다른 지역에서 동문 간 친목 도모를 다진다.가을에는 골프대회와 산행대회가 열린다.총동창회장배골프대회는 기수별이나 지역별로 팀을 나눠 4인 50개조로 편성해 진행된다.산행대회는 동문 내 활동 중인 견룡산악회와 보리수 산악회를 중심으로 개최되고 있다.특히 보리수 산악회는 재학시절 모교 산악동아리에 소속돼있어야만 가입할 수 있다는 재미있는 조건이 있으며 젊은 동문의 모임으로 주목받고 있다.이 밖에도 바둑회, 축구회, 야구회 등 취미나 직능에 따라 동문 간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마지막은 기수별 송년회를 통해 한 해를 마무리한다. ◆모교 빛내는 선배들능인고 총동문회는 해마다 모교에 5천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이 금액은 크게 모교 장학금 및 지원금, 씨름부에 전달된다.장학금은 매년 2천만 원으로 성적 우수자를 기준으로 입학생 1학년 10명과 고3 10명에게 50만 원씩 지원한다.명문대에 합격한 학생에도 총 500여만 원의 장학금이 제공된다.지원금 2천500만 원은 학교의 각종 행사, 시설물 정비에 활용된다.능인고의 씨름부에는 매년 500만 원이 지원되는데 선수들의 훈련이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된다.특히 올해는 씨름부 숙소와 학교의 특별교실 증축 공사에 들어가는 예산으로 7천500만 원을 지원했다.이러한 지원은 쟁쟁한 선배들이 뒷받침해주고 있다.동문들은 정치, 경제, 사회, 의료, 교육, 체육 등 각계각층에서 활동 중이다.주호영 국회의원(34회)을 비롯해 배광식 대구 북구청장(34회), 주낙영 경주시장(35회), 김형일 대구 동구부구청장(43회) 등이 현직에서 능인고를 빛내고 있다.또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장(39회) △김한식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42회) △김찬돈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34회) △진성철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38회) △곽병수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42회) △박영식 해군 준장(41회) △배상철 한양대 류머티스 병원장(34회) △권태경 미르치과원장(41회) △신철원 협성교육재단 이사장(42회) △정경진 백두장사(62회) 등이 있다. ◆총동문회장 인터뷰“젊은 능인고 총동문회를 만들고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제45회 능인고 김판권 총동문회장이 2018년 10월 취임 당시부터 강조해왔던 부분은 30~40대 후배들의 적극적인 총동문회 참여다.김 회장은 “총동문회 산하에 젊은 기수로 이뤄진 청년회의 규모를 키워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후배 동문의 활발한 활동을 유도할 예정”이라며 “모교 재학생 후배부터 50~60대 선배까지 모든 연령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총동문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김 회장은 총동문회 발전에 있어 필요한 요소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총동문회 조직의 활성화와 서로 간 질서 및 화합, 투명한 회계처리다.그는 “동문들이 다양한 이유로 점차 활동에 소극적이어서 많은 행사가 축소되고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 선후배 간 잦은 교류를 통해 내부 질서와 화합을 도모하겠다”며 “점차 늘어가는 총동문회 예산은 총회 보고 이후 문자나 밴드, 홈페이지 등에 게시해 누구나 사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투명한 총동문회 운영을 지향하겠다”고 전했다.총동문회 내 200여 명이 넘는 집행부 구성원과 산하 100여 개가 넘는 조직 등을 정비하고 모교와의 상생을 위한 준비들로 나날이 바쁜 김 회장이다.그는 “총동문회가 꾸준히 발전하는 상황에서 모교의 재학생을 위해 실질적이고 맞춤형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효율적인 장학금 지급 시스템과 교원들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환경 조성에 적극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끝으로 김 회장은 “6만5천여 명의 능인 동문 중 정보가 없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이들이 많은데 모두 챙기지 못하는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인적자원 발굴과 인프라 구축을 해 더욱 발전하는 능인고와 총동문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폐에 구멍이? 몸 안에 공기가 새는 기흉

기흉은 흉막강 안에 공기가 차 있는 경우를 이야기한다.◆몸 안에서 공기가 샌다?흉막강은 흉수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여기에 공기가 있다면 가슴 안 어디서인가 공기가 샜다는 것이다.이때 공기가 샐 수 있는 대표적인 장기가 바로 폐이다.물론 식도나 기관지의 손상이 발생해도 기흉이 생길 수 있으며, 흉벽을 통해 외부에서 공기가 들어오는 경우에도 발병 소지가 있다.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는 기흉은 구멍이 생기는 원인에 따라 자발성과 외상성 그리고 의인성으로 나뉜다.자발성이라는 것은 어떠한 외부 요인 없이 저절로 폐에 구멍이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반면 외상성은 교통사고 등으로 폐 내 압력이 상승해 구멍이 생기거나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를 찢는 상태다.의인성은 의료진이 통증 주사나 중심정맥혈관주사 등의 시술 과정에서 바늘이 폐에 구멍을 만드는 경우이다.이중 자발성 기흉은 일차성 기흉과 이차성 기흉으로 나뉜다.일차성 기흉은 질환이 없는 폐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구멍이 생기는 현상으로, 폐측 흉막의 공기주머니인 폐기포의 막이 얇고 약하기 때문에 생긴다.주로 젊은 연령(10~20대)에서 발생하고 남자에게서 잘 나타난다.폐기포가 있다고 하면 환자들은 내 폐가 약해져서 나중에 나쁜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폐기포는 전체 폐에서 극히 일부분에 속하며 나머지 대부분의 폐는 정상적인 폐실질을 가지고 있다.폐에 폐기포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그중 가장 합리적으로 분류되는 가설은 폐 내 압력이 폐의 위치에 따라 다르고 사춘기 성장 과정에서 흉벽의 성장 속도와 폐의 성장 속도 간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폐의 꼭대기 부분이 흉강과 폐 사이 압력차가 가장 크고 이로 인해 폐기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압력 차에 의해서 발생한 폐기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더 생기거나 커지고 그 과정 중 자발적으로 터지게 된다.폐기포가 터짐으로써 폐 내 공기가 흉강으로 새게 돼 기흉이 발생하는 것이다.이차성 기흉은 일차성 기흉과 다르게 폐 자체에 질환이 있는 경우이다.즉 건강한 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예를 들면 만성폐쇄성폐 질환, 폐기종, 결핵, 기관지 확장증, 폐암 등 폐에 이미 질환이 있는데 그 질환으로 인해 폐측 흉막이 약해져서 터지는 경우이다.때문에 이 경우에는 호발 연령이 50~60대이며 흡연력과 관련이 있고 남성에서 많이 발생한다. ◆수술해도 최대 70% 재발, 반드시 금연해야 기흉이 발생하면 환자는 갑작스러운 흉부 통증, 호흡 곤란, 흉부 불편감 및 답답함을 호소하게 된다.숨을 내쉴 때마다 구멍이 난 부위로 공기가 점차 새기 때문에 한정된 가슴 공간 안에서 새어 나온 공기는 폐를 압박해 바람 빠진 풍선같이 폐를 찌그러트린다.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폐는 완전히 압박돼 작아지고 이후 새어 나온 공기가 심장까지 누르게 된다.이러한 현상을 긴장성 기흉이라고 부르고 기흉 환자에게서 아주 위급한 상황이다.또 일차성 기흉과 이차성 기흉의 재발 가능성은 큰 차이가 난다.수술하지 않고 자연히 나은 경우 다시 기흉이 발생할 가능성이 일차성 기흉에서는 30~50%, 이차성 기흉의 경우 60~70%에 이른다.수술을 시행하더라도 5~10% 정도의 재발률이 있다.자연히 아문 경우에는 폐기포가 남아 있기 때문에 다시 터질 가능성이 있다.하지만 수술로 폐기포를 절제해도 재발 우려가 있다.이는 일차성 기흉에서는 폐기포가 새롭게 생성되기 때문이며, 이차성 기흉에서는 가지고 있는 폐질환이 계속 진행하기 때문이다.따라서 폐기포를 악화시키는 요인의 제거가 꼭 필요하다.바로 금연이다.흡연을 하면 담배 연기가 폐포 내의 모세혈관을 수축시키고 세기관지 내에 만성 염증을 유발해 폐기포가 점차 증가하고 커지게 되는 효과가 있다.때문에 흡연자의 경우 꼭 금연을 해야 재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그 외에 흉강 내 압력이 급속히 변화하는 환경을 피해야 하는데, 스카이다이빙이나 물속 깊이 들어가는 스쿠버다이빙 같은 레저 활동은 기압의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므로 폐기포가 터질 가능성이 높다.마찬가지로 공군 비행기는 기체 압력이 크게 변화하므로 기흉 환자는 조종사를 직업으로 가질 수 없으나, 일반 비행기의 경우 압력을 꾸준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탑승객으로는 문제가 없다. 도움말=한양대학교병원 흉부외과 장효준 교수(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83) 미륵선화와 진자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나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불교의 융숭한 발전 덕택이었다.국론통일을 이끌어낸 국민들의 정서적 안정과 화합을 이룬 것은 종교의 힘이었다.더불어 화랑제도를 통한 인재양성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미륵선화와 진자사편은 이러한 신라를 관통하는 국가적인 정서를 그대로 축약 표현하고 있다. 진흥왕이 인재양성을 위해 처음 원화제도를 도입했지만 실패했다.하지만 이어전 화랑제도를 통해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또 법흥왕의 뜻에 따라 불교를 장려해 황룡사, 흥륜사 등의 국가적 사찰을 건립해 국론통일의 기반을 조성했다. 삼국유사는 진자 스님이 흥륜사에서 공주 수원사를 거쳐 다시 서라벌 영묘사까지 구도에 이르는 길과 화랑으로 활동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진자 스님이 부처를 직접 만나기 위한 염원은 꿈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서라벌에서 웅천까지 삼보일배로 정진하는 모습과 불교의 궁극적인 이치를 깨우쳐가는 과정을 소개하며, 애국심은 화랑의 활동을 통해 보여준다. ◆삼국유사: 미륵선화와 미시랑 그리고 진자사제24대 진흥왕은 성이 김씨고 이름은 삼맥종이다.심맥종이라고 불리기도 했다.양나라 대동 6년 경신년(540)에 즉위하였다. 큰아버지 법흥왕의 뜻을 좇아 한마음으로 부처를 받들고 널리 절을 만들었으며 사람들을 인도해 승려가 되게 했다. 또 타고난 성품이 풍류를 즐기고 신선을 높여 여자아이 가운데 아름다운 이를 골라 원화로 세웠다.인물을 뽑아 효제와 충신으로 가르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였다.이에 남모낭과 교정낭을 세워 무리 300~400명을 모았다. 교정낭은 남모낭을 질투했다.술을 많이 가져다 놓고 남모낭에게 마시게 하고, 남모낭이 취하자 슬그머니 북천으로 데리고 가서 죽인 후 돌을 들어 그곳에 묻었다.남모낭의 무리들이 간 곳을 알지 못해 슬피 울며 흩어졌다.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알았다.노래로 지어 동네 어린아이들을 꾀어 거리에서 부르게 했다.남모낭의 무리들이 듣고 시신을 북천에서 찾아낸 다음 교정낭을 죽였다. 이에 왕이 원화를 폐지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몇 년이 지났다.왕은 나라를 일으키려면 모름지기 풍월도를 앞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좋은 집안의 남자 가운데 행실이 바른 자를 뽑아 화랑이라 했다.처음으로 설원랑을 추대해 국선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화랑 국선의 시작이며 명주에 비를 세웠다. 그로부터 사람들에게 악한 짓은 반성해 착하게 하고, 윗사람을 존경하며 아랫사람을 바로 이끌도록 했다. 이때에 오상, 육예, 삼사, 육정이 널리 행해졌다. 진지왕 때에 흥륜사에 진자라는 스님이 있었다.매번 절에서 모시는 미륵불상 앞에서 “바라옵건대 우리 부처님께서 화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십시오. 제가 늘 가까이 모시고 받들어 두루 시중을 들겠나이다”며 소원을 빌며 맹서했다. 그 정성이 매우 간절했다.하루 저녁에는 꿈을 꾸는데 어떤 스님이 나타나 말했다. “너는 웅천의 수원사로 가라. 미륵선화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진자가 깨어나서 기쁘고도 놀라 그 절을 찾아가는데 열흘을 가면서 발걸음마다 예불을 드렸다.그 절 문밖에 이르자 맑고 깨끗한 청년이 맞이하며, 작은 문으로 안내해 손님이 묵는 방에 모셨다. 진자가 올라가 머리를 숙이며 “그대와 평소 알고 지내지 않았는데 어찌 접대가 이처럼 정중합니까?”라고 말하자 “저 또한 서울 사람입니다.스님께서 머나먼 길을 오신 것을 보고 와서 챙겨드린 것뿐입니다” 했다. 조금 후 문 밖으로 나갔는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진자는 우연이라 생각하고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다만 절의 스님에게 지난날의 꿈과 일어나서 오게 된 뜻만 말했다.그러면서 “잠시 저 아래 자리에 머물며 미륵선화를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절의 스님은 “여기서 남쪽 마을로 가면 천산이 있소. 예로부터 현철하신 분이 살고 있어 깊은 느낌이 많다오. 그 거처로 가보시지 않겠소?”라고 답했다. 진자가 이 말을 따라 산 아래에 이르자 산신령이 노인으로 변해 나와 맞으며 “여기에 무엇하러 왔는가? 저번에 수원사 문 밖에서 이미 보지 않았는가? 다시 와서 무얼 찾아?”라며 오히려 물었다. 진자가 듣고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본사로 돌아와 한 달 남짓 지냈다.진지왕이 이를 듣고 불러들여 그 까닭을 묻고는 “청년이 서울사람이라 했다면서? 성인이 빈말을 하겠느냐, 성안을 찾아보면 되지 않겠는가?”고 말했다. 진자가 왕의 가르침을 받들어 무리들을 모아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샅샅이 찾았다.그런데 곱게 차려입은 수려한 소년이 영묘사의 동북쪽 길가 나무 아래서 팔짝거리며 놀고 있었다.진자가 그를 보고 놀라며 “이 이가 미륵선화이다”라며 나아가 ”그대는 집이 어디인가? 성씨도 좀 알고 싶은데?“라고 물었다.소년은 “내 이름은 미시입니다. 어린아이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성은 뭔지는 모릅니다”고 답했다. 이에 가마에 태우고 들어가 왕에게 뵈었다.왕은 공경하며 추대해 국선으로 삼았다. 여러 무리들과 화목하며 예의가 바르고 의리를 지키는 모습이 여느 사람들과는 달랐다.세상에서 7년쯤 활약하더니 문득 간 곳을 알지 못했다. 진자의 슬픔은 너무나도 컸다.그러나 자애로운 은택을 실컷 누리고 맑은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스스로 고치고 부지런히 수도하여 도를 이뤘다.아쉽게도 말년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미륵불을 만난 진자 스님신라 24대 진흥왕은 정복군주로 불릴 정도로 나약했던 신라를 백제와 고구려를 압박하는 삼국 중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성장시켰다.진흥왕은 강한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 청년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화랑제도를 크게 강조했다. 또 전국에서 뛰어난 청년들을 신분에 관계없이 선발해 학문과 무예는 물론 예술까지 교육해 강한 군대 조직으로 육성했다. 진흥왕 말기에 흥륜사의 이름 높은 진자 스님이 추천하는 미륵선화를 국선으로 삼았다.미륵선화는 외모가 준수하고 학문이 뛰어날 뿐 아니라 무예도 출중하며 훌륭한 통솔력을 갖춰 화랑도들이 그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다. 미륵선화는 낭도들과 밤낮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그러나 낭도들이 모두 흥겹게 시간을 노는 듯 흘려보냈지만 곰곰이 되돌아보면 노는 일들이 모두 전략전술을 익히는 것이자, 예법을 몸으로 익히는 공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낭도들이 체력을 단련하고 쉬는 시간에 함께 마시는 곡주는 가끔 취할 만큼 많이 마시기도 했지만 국선 선화랑이 흘려보내는 신비스런 향이 낭도들을 정신적으로는 취하지 않게 했다. 진흥왕이 죽고 진지왕이 왕위를 이으면서 국정은 문란하게 퇴락하기 시작했다. 이 틈을 노려 백제와 고구려 군사들이 산발적으로 침략해와 신라가 점령했던 땅들을 야금야금 빼앗아 갔다. 이때 진지왕을 앞세워 권력다툼을 벌이던 미실과 거칠부는 선화랑이 이끄는 화랑도의 세력에 위기의식을 느꼈다. 상대등의 지위에 있던 거칠부가 선화랑을 불러 백제 땅을 치는데 앞장서도록 명했다. 미륵선화는 낭도들을 이끌고 백제군사들이 집결해 있던 웅천 관산성으로 진군했다. 미시랑은 낭도들에게 진군하면서 노랫소리에 맞춰 빗자루를 들고 흔들도록 했다. 이 모습이 백제군들의 눈에는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면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십만 대군이 말을 타고 내닫는 것과 같이 보여 모두 성을 버리고 삼십 리 밖으로 퇴각했다. 승전보가 서라벌 궁성에 도달하자, 거칠부는 선화랑에게 다시 고구려를 칠 것을 명했다. 하지만 미륵선화는 이미 자취를 감췄다. 미륵선화는 수원사에서 도를 닦는 승려들을 돌보는 불목하니가 돼 있었다. 미륵선화를 찾던 진자 스님도 낭도의 무리에서 벗어나 수원사에서 도를 닦아 성불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38) 울진고

70년 전통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울진고등학교는 울진군 울진읍에 위치한 자율형 공립고다.울진고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6학급(농업, 축산과)의 울진농업고등학교로 개교했다. 이후 1973년 울진종합고로 개칭했다. 1999년 울진여고와 통합해 울진고로 학칙을 변경하면서 현재(남녀공학 18학급)에 이르고 있다.울진고는 2008년 교육부의 기숙형 공립고 지정에 이어 2011년 경북도교육청 자율형 공립고 정책연구학교로 지정받아 더 큰 도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특히 2010년에는 열람실과 정보자료실, 모둠학습실, 휴게실, 체력단련실, 기숙사 등을 갖춘 경북 최대의 학사(연건평 3천750여㎡)인 초현대식 연호학사(蓮湖學舍)를 완공해 학생들에게 학습 편의를 제공하는 등 명문학교로 발돋움하고 있다.울진고 교훈은 ‘성실하고 꿈을 지닌 사람이 되자’다. 지난 2월 제68회 졸업생까지 배출된 동문은 총 1만6천600여 명에 달한다. 전국 각지에서 성실하게 또 각자의 꿈을 펼치며 모교와 지역의 명예를 걸고 활동하고 있다.◆동문 결속 다지는 가족 체육대회울진고 총동창회는 동문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가족 동반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30여 년을 이어온 전통행사 중 하나로 매년 8월15일에 열린다. 체육대회 하루 전날인 14일은 모교 운동장에서 전야제를 개최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취소됐다.전국에 흩어져 있는 동문가족 1천여 명이 모교 운동에 모이는 체육대회는 동문들의 친목과 우의를 다지는 장이다. 동문들은 고향의 동해와 시원한 계곡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기며 몸과 마음을 힐링한다.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특히 모교 운동장에서 매년 열리는 동문가족 체육대회 행사에는 후배 동문들이 칠순과 팔순을 맞이한 선배들을 위해 합동 고희연(古稀宴)과 산수연(傘壽宴)을 베풀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모교 동문가족 체육대회에 앞서 매년 5월에는 재경 울진고 체육대회가 국회의사당 대운동장에서 열려 동문 화합을 통해 모교사랑의 근간이 되고 있다. 재경 울진고 동문가족 체육대회는 총동창회가 창립되기 이전부터 자발적으로 개최되는 등 지난 반세기 동안 타향에서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며 동문화합의 밑거름이 됐다.이처럼 선배를 존경하고 후배를 사랑하며 동기간에 우정을 돈독히 하자는 슬로건으로 창립된 울진고 총동창회는 33년 동안 그 맥을 이어오면서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때로는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교복차림으로 참가해 옛 추억을 되살리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은 어느 학교의 동창회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글로벌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사업울진고 총동창회는 글로벌 후진양성을 위한 장학사업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매년 지원하는 장학금은 3천만 원 이상이다. 이 장학금은 지난 20여 년 동안 재경 울진고 동문들이 2천만 원을, 울진지역 동문들이 1천만 원을 마련해 매년 3월 모교 입학식 때 전달한다.장학회의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2018년에는 재단법인 울진고 총동창회 장학회를 설립했다. 장학기금 목표액 50억 원 이상 조성을 위해 동문들 모두가 힘을 보태고 있다.특히 지역 고교생 중 서울대를 비롯해 고려대와 연세대 등 명문대학 진학생에게는 학기당 500만 원의 장학금과 4년간 수업료도 지원한다. 또 수능성적이 전국 20%이내인 학생들에게는 300만~500만 원의 장학금과 2~4년간 등록금을 지급한다. 지역출신 수능성적 20%이내 학생은 연간 15명 정도다.◆자치단체장에서 장군까지 배출울진고가 배출한 동문들은 1만6천672명이다.전찬걸 현 울진군수가 28회 졸업생이다. 전광순(10회) 초대 민선 군수도 울진고 출신으로 2명의 자치단체장을 배출했다.또 울진고는 5명의 경북도의원과 7명의 군의원도 배출했다. 현 남용대(22회) 도의원을 비롯해 주기돈(3회)·정일영(7회)·임원식(22회)·장용훈(29회) 전 도의원이 그들이다.장시원 군의회 의장과 장유덕 부의장은 울진고 39회 동기생이다. 장선용(30회) 총동창회장도 군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현 군의원 3명이 울진고 출신이다. 전 군의회 의장을 역임한 장덕중(17회)·주광진(19회)·임승필(37회) 동문 3명을 비롯해 양승철(33회) 전 의원도 이 학교 출신이다.신속대응사단 창설 준비단장인 장광선 육군 소장은 울진고 36회 졸업생으로 매년 모교를 찾아 후배들에게 장래 진로에 대한 상담과 함께 강의를 하며 소통을 이어가는 선배 중의 한사람이다.이 밖에 공직자로는 김영중(30회) 울진군 자치행정국장, 이완식(30회) 경제건설국장을 비롯한 100여 명의 울진고 동문이 근무하고 있다. 한울원자력본부에도 김성국(23회) 관리부장과 장상호(34회) 홍보팀장 등이 동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동문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장선용 총동창회장 인터뷰울진고 총동창회 장선용(30회) 회장은 “전국 어느 농어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모교도 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후배 동문들의 수도 자연스레 줄고, 동창회 참여도 저조한 실정이다”며 “이에 총동창회도 고령화되면서 매년 동문가족 체육대회도 열기가 식어가고 있어 걱정이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또 “현재 총동창회 사무실이 없어 많이 불편하다”며 현재 2억여 원의 총동창회 회관 건립 기금을 모금한 상태이지만 아직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임기 중에 회관 건립을 위한 부지라도 확보했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고 말했다.-울진고는 어떤 곳인가△우리 모교는 1951년 개교 이래 70년 동안 지역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성장 발전해 왔다. 농업이 산업의 중심일 때 모교는 지역사회와 국가의 농업전문 인재 양성에 주력해 온 학교다.이후 현대사회가 다양한 인재를 요구하는 산업사회로의 변화에 발맞춰 글로벌 인재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명실공이 동해안의 명문고다.-총동창회의 역사와 자랑거리는△모교 총동창회는 1987년 1월 창립해 초대와 2대 회장을 역임한 주재욱(1회) 선배님이 초석을 다지고 그동안 34대를 이어오기까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모교 발전과 동문화합에 주력해 왔다.재경 동문들의 체육대회는 물론 재구 동문회도 매년 10월 가족체육대회를 열고 있다. 재부 동문회와 재울산 동문회는 정기적인 동문가족 산행대회로 건강과 우의를 다지고 있다.특히 울진고 동문골프단은 2012년 10월 상주 블루원 골프장에서 열린 SBS골프 키움증권배 고교동창회 최강전에서 8강에 오르며 모교와 지역의 명예를 드높이기도 했다.강인철 기자 kic@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