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 만리…시가 피다

시가 피다두마리아귤 한 상자 주문했는데 봄이 실려 왔다살짝 무임승차한 몽우리 진 동백/ 섬 시인 쪽빛 시심을/ 이 아침에 받아적네-『좋은시조』(2019, 여름호)...................................................................................................................두마리아는 서울 출생으로 2017년 『좋은시조』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유심시조 아카데미에서 활동하고 있다.지금 제주는 봄빛이 한창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제주라는 섬이 있어 나라를 나라답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 때가 있다. 더구나 요즘과 같이 외국으로 나가는 길이 끊긴 상황에서 제주는 우리가 기댈 휴양지다.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이 없어서 썰렁하기까지 했지만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여유가 생기면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제주의 자연은 그 자체가 박물관이다. 평화의 섬 제주의 빼어난 절경은 그 어느 미술작품보다 뛰어난 가치를 지닌다. 제주의 미적 현현을 어찌 필설로 다 형용하랴.‘시가 피다’는 소박한 노래다. 생활 속의 작은 이야기가 한 편의 단시조로 빚어진 것이다. 시는 이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귤 한 상자를 주문했는데 봄이 실려 왔다고 한다. 향기로운 귤만 온 것이 아니라 제주의 봄이 복닥거리는 서울로 배달되어 온 것이다. 이따금 제주 사람들은 지인에게 택배를 보낼 때 상자에 귤을 채운 다음 꽃 한 송이를 함께 실어 보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살짝 무임승차한 몽우리 진 동백이 등장한 것이다.활짝 피지 않았으므로 꽃병에 꽂아두면 얼마 있지 않아 만개할 것이다. 시의 화자는 그것을 두고 섬 시인 쪽빛 시심, 이라고 말하면서 아침에 온전히 받아 적고 있노라고 나직이 읊조린다. 참 정갈하다. 시가 어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우리 가까이에 있다. 무심코 지나쳐서 그렇지 삶의 현장 곳곳에 시가 도사리고 앉아 있어 우리가 찾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그는 ‘모델’이라는 단시조에서 웃음이 귀한 시절에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이파리 위로 배추밭에 꼬물 구멍 숭숭 배추 서너 단이 있는데 그것을 내다파는 아주머니가 자신 있게 하는 말이 눈길을 끈다. 입말을 생생하게 살려서 약 한나도 안 쳤슈, 봐 벌레도 있잖여, 라고 목청껏 외치면서 사갈 것을 권한다. 거기다가 무공해 전속 모델유, 야가!, 라고 하니 그 유머 감각이 재치만점이다. 좌판 아줌니 넉살은 백단이니 어찌 사가지 않을 텐가. 난전은 이렇듯 사람 사는 맛을 내는 곳이다. 어렵게 좌판을 펴놓고 있지만 궁색하지가 않다. 환한 햇빛과 바람 속에서 생기가 넘쳐나고 때로 웃음꽃을 피우게 한다.시조에서 재치와 해학의 세계를 추구하는 일군의 시인이 있다. 이제 그도 그 일군에 합류하여 웃음을 제공하는 시편들을 많이 썼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재치와 해학은 아무나 해낼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딱 적격인 시인이 새로 등장한 것이다. 제주를 노래한 시인은 아주 많다. 그 중에서도 이생진 시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설교하는 바다’에서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라면서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라고 노래하기도 하고 ‘만년필’에서는 성산포에서는 관광으로 온 젊은 사원 하나가 만년필에 바닷물을 담고 있다, 라고 노래한다. 제주를 온몸으로 체험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생생한 이미지가 탄생할 수 없을 것이다.‘시가 피다’의 시인도 앞으로 더 많이 제주를 노래하기를 기대한다. 문득 제주의 파도소리와 봄빛, 수선화가 보고 싶은 아침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현실을 인정하는 합리적 보수의 길

현실을 인정하는 합리적 보수의 길주호영 통합당 신임 원내대표가 당선 일성으로 ‘의석수의 현실을 인정’한다고 자복했다. 그러면서 여당에 협조할 것은 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과감히. 야당의 전매특허가 되다시피 한 무조건 반대나 장외투쟁 대신 합리적으로 협상을 통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겠다는 거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의 ‘일하는 국회’ 제안에 찬성한다는 화답을 한 것이다. ‘소수의 목소리를 경청하라’는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주호영 의원이 압도적 표차로 통합당 원내대표에 당선돼 영남의 체면을 세워줬다. 그는 이번에 5선의 고지에 올랐지만 지역구를 수성구갑으로 바꿔 출마하는 곡절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여권의 대선 잠룡으로 불리는 김부겸 후보를 꺾음으로써 스스로 대선후보 반열에 오르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 20대에는 새누리당의 친박 공천에서 탈락하고 보수 텃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새누리당 후보를 쳐냄으로써 웰빙 국회의원이라는 비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지난겨울 대구의 한 열린 행사장에서 수행원을 멀찌감치 두고 혼자 민심 탐방하던 주 의원을 만나 다짜고짜 물어봤다. 4선 의원이면서 그렇게 존재감이 없느냐고. 당시에도 한국당(통합당 전신)의 인기는 하향곡선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역할을 맡지 않아서 그렇게 보일 뿐”이라며 전혀 불쾌해하는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자신이 최고위원이나 원내 대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함부로 나설 계제가 못 된다는 변명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연말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그는 4선의 무게감을 보여줬다. 전 의안 필리버스터를 제안하고는 기저귀를 찬 채 제1주자로 단상에 올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의 폭주를 조목조목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합리적이면서 온건한 이미지에서 강단 있는 정치인의 면모를 각인했다. 특히 영남에서는 주 원내대표의 이런 기운이 보수 정당의 기존 이미지에서 탈각할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가 크다. 그가 이끄는 통합당은 보수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국민의 정치적 갈증을 해소해 주어야 하는 책무를 안고 있다. 아직도 총선 참패의 현실을 당선자나 낙선자는 물론 투표를 한 유권자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선거 부정 주장이 대표적이다.통합당 공천에서 배제돼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현역 의원 중에는 아직도 투표결과를 의심하는 분위기도 있다.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까지 나를 2번으로 알고 있었다”는 착각이 그 중 하나다. 그들은 이번 총선이 코로나19로 유권자 직접 접촉이 줄어들어 후보를 알릴 기회가 줄어든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지역에서는 많은 현역의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수성구을의 홍준표 당선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0% 남짓의 득표율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로 유권자와 대면 선거운동을 할 기회가 줄어들었다면 현역 의원이 지명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했을 터. 그렇다면 ‘2번 착각’은 유권자가 아닌 자기가 착각한 것이다. ‘통합당은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이런 보수 정치권은 회생할 수도 없다’는 여당 정치인의 논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결국 유권자들을 우습게보고 하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통합당 공천이 결정되자 많은 지지자들이 기존 조직 대열에서 이탈해서 당 공천 후보에게 줄을 섰다는 사실을 그들만 몰랐다는 말인가. 주호영 신임 통합당 원내대표는 아직도 투표부정과 개표부정을 이야기하는 당 내 분위기에 대한 엄정한 비판과 명확한 선긋기도 필요해 보인다. 투표 종사자들은 “단 한 번이라도 투표장이나 개표장에서 그 과정에 참여해보면 3중, 4중, 그 이상의 촘촘한 감시망으로 투표나 개표에 부정이 개입할 가능성이 불가능한지 알게 될 것”이라 증언한다. 그런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부터 극복하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출발선이 주 원내대표가 되어서 합리적 보수 정당의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첫걸음이고 보수의 자존심을 세우는 약이고 통합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길이다. 이경우(언론인)

바위

바위 김동리∼어머니의 사랑은 적수가 없다∼…술이네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술이 그렇게 세 식구다. 술이네 집에 불행이 찾아들었다. 어머니가 나병에 걸린다. 나병을 고치려고 전 재산을 탕진했지만 낫지 않았다. 결국 술이네는 마을에서 쫓겨난다. 장가 밑천마저 날린 술이는 집을 나간다. 아버지는 비상이 든 찰떡을 어머니에게 준다. 그 사실을 알고도 눈물을 흘리며 떡을 먹지만 곧 토해낸다. 마침내 아버지도 집을 나간다. 그녀는 절망감에 휩싸여 아들을 찾아 헤맨다. 기차다리 근처까지 갔다. 그곳엔 병신, 거지, 문둥병자 등이 토막을 짓고 기거하고 있다. 그녀도 토막을 짓고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갈 곳이 없는 데다 가까운 곳에 복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소원을 빌면서 복바위에 돌을 갈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속설이 있다. 그녀는 매일 소원을 빌며 복바위에 돌을 갈았다.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복바위의 영험한 신통력 덕분인지 그녀는 장터에서 아들을 만난다. 허나 아들은 돈을 벌어 오겠다는 말을 남기곤 다시 떠난다. 그녀는 아들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면서 돌을 갈았다. 그래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밤에만 갈아서 그런가 생각하고 낮에 가서 갈았다. 그러다가 마을사람들에게 들켜 죽도록 맞았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장터에서 아들의 옥살이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졌다. 한편, 땅주인은 그녀를 쫓아내려고 토막에 불을 질렀다. 불타는 토막을 참담하게 바라보았다. 그날 밤, 그녀는 복바위를 껴안고 죽었다. 마을사람들은 침을 뱉으며 말했다. “더러운 게 하필 예서 죽었노.” “문둥이가 복바위를 안고 죽었네.” “아까운 바위를…….” 그녀의 얼굴엔 눈물이 번질번질 말라 있었다.…나병에 걸린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나병은 얼굴과 손발이 뭉개지는 증상으로 인해 그 비주얼이 끔찍하다. 그래서 나병은 모든 병중에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이다. 어머니에게 천형을 씌운 것은 어쩌면 시험적 호기심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극단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다. 살이 썩어문드러지는데다 이웃사람들의 지독한 편견과 무자비한 학대로 삶이 온통 해체되는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는 오직 일편단심 자식뿐이다. 아들을 만나고자 하는 일념으로 처절하게 돌을 간다. 어머니의 소원은 나병을 치유하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도 아니다. 아들을 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다. 나병도 어머니를 막을 수 없다.노거수나 바위를 신령시하는 토속신앙은 서민들 삶 속에 녹아있다. 오방색 띠를 두른 고목이 버티고 있고 그 주변에 돌무지와 서낭당이 있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거석신앙도 뿌리 깊은 토속신앙이다. 큰 바위 주변엔 흔히 돌무지가 흩어져 있다. 편평한 바위 턱마다 돌들이 얹혀 있기 일쑤다. 큰 바위 밑 틈새엔 촛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다. ‘복바위 전설’은 도처에 퍼져 있다. 돌을 갈아 바위에 붙이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새롭진 않다. 아무것도 없는 서민들의 의지 대상은 부담 없이 비빌 수 있는 바위나 노거수밖에 없다. 근거 없는 맹랑한 속설이지만 거기에라도 기대어서 버텨보자는 거다. 복바위에 실낱같은 희망을 건다. 그렇지만 아들이 감옥에 있다는 말에 마지막 기대마저 스러진다. 설상가상 토막마저 불탄다.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다. 희망이 사라지면 삶도 없다. 어머니는 바위 위에 엎드려 죽는다. 어머니의 얼굴은 편안하다. 복바위가 아들을 돌봐줄 걸 믿는 까닭이다. 아들을 위해 소원을 빌면서 바위에 얼굴을 부비는 어머니의 모습이 처연하다.오철환(문인)

공존을 위한 호저(豪猪)의 지혜

공존을 위한 호저(豪猪)의 지혜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코로나19 집단감염 쇼크가 또 다시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일상생활과 경제사회적 활동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면서 감염예방활동을 지속하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정부의 방역지침이 전환되자마자 일부 유흥시설에서는 대규모 집단감염현상이 발생했고 헬스장과 같은 집단사용시설에서도 2차감염자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가 서둘러 관할지역내 모든 유흥시설의 영업을 중단시켰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이전으로의 복귀 기대감 대신에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던 수개월 전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를 맞았다. 등교를 앞두고 있던 학생과 학부모, 교육기관 등에서는 집단감염 우려로 등교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일부 대학은 이미 대면수업 연기를 결정했다. 여기에 정상근무 계획을 철회하는 기업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조금씩 온기가 생겨나기 시작한 지역 소상공인 경기도 갑작스러운 새벽 댓바람에 난데없이 찬물을 뒤집어쓴 꼴이 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우리 경제에도 단기적으로는 이 이상의 악재는 없을 것 같다. 국내외 주요 전망기관들의 우리 경제에 관한 낙관적인 기대가 막 나오기 시작한 이 때에 집단감염이 재발생했다는 사실은 거의 재앙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이런 낙관적인 전망이 다른 나라들이 보여주지 못한 한국만의 특수성에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번 일은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공적으로 이끈 높은 시민의식과 이를 기반으로 한 경제사회적 활동의 조기 정상화라는 한국만의 특수성이 한 낮 해변의 포말처럼 사라지게 된 것이다.이처럼 최근 나타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허술함을 보면 위기에 봉착한 개인이나 기업, 사회가 서로 공존하고, 공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데, 마치 지금은 호저(豪猪) 또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로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호저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말로 산미치광이라 불리는 호저는 몸과 꼬리의 윗부분이 가시 털로 덮인 열대 포유류로 생김새가 고슴도치와 많이 닮았는데, 그가 1851년에 쓴 ‘여록과 보유(Parerga and Paralipomena)’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추운 겨울날 호저 여러 마리가 온기를 나누기 위해 서로 엉켜 붙어 있었다. 그러자 가시털이 서로를 찔렀다. 그들은 떨어져 앉아 있어야 했다. 붙었다 떨어졌다 반복하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그들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게 최선책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인간이라는 호저들을 서로 한데 묶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서로의 가시에 쉽사리 화합할 줄 모르는 각자의 천성에 찔려 상처입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적당한 간격 유지야말로 공존의 유일한 조건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정중함과 예절의 표준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물론 이 이야기는 염세주의자이자 여성혐오주의자였던 저자의 자신감 즉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기 싫고 타인에 의지하지 않아도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공존 또는 공생을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근래에 와서는 가족이나 친지, 이웃, 친구 등 친한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기 싫어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딜레마를 표현해 주는 것이기에 너무 비관적이기도 하다.하지만 지금은 호저의 거리두기처럼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택과 노력이 자신의 안위는 물론 타인의 생명을 보호함으로써 공존과 공생의 장을 만들고, 나아가 정상적인 경제 및 사회 운영을 가능케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아야 할 때다.역설적이긴 하나 우리 모두가 하루빨리 가시 털 대신에 공존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공생의 낙원을 즐길 수 있도록 생존을 위한 개인의 이기심 발현을 기대해 본다.

재난지원금 기부 유도까지 해야 했나

카드사를 통한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과정에서 ‘실수 기부’로 인한 취소 요청이 빗발치는 등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카드업계에 시정을 지시했다. 코로나19라는 듣도 보도 못한 사태를 맞아 정부의 각종 대책도 전례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여기저기서 시행착오와 불협화음이 일고 있는 것이다.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또다시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카드사를 통한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지난 11일부터 기부 취소 요청이 쏟아졌다. 민원인들이 카드사 홈페이지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지원금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기부 버튼을 눌렀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발했다. SNS에도 관련 내용이 떠돌았다.긴급재난지원금은 카드나 주민센터에서 지역사랑 상품권으로 받고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수급자 등은 현금으로 받는다.항의가 잇따르자 카드사들은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을 통한 재난지원금 신청 화면에서 직접 기부를 취소하거나 금액을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신한카드 등 일부 카드사는 회원이 직접 콜센터에 요청하면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재난지원금을 신청하려면 본인 인증과 신청을 위한 약관에 동의하는 절차를 거쳐 마지막에 재난지원금 기부 여부를 묻는 항목이 나온다. 이때 무심코 기부에 동의한다고 체크한 사례가 많았다. 본인은 정작 기부 의사도 없는 데 기부한 것으로 처리된 것이다. 논란이 일자 행정안전부는 지난 12일 기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당초 카드업계는 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화면을 분리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가 지원금 신청 절차 내에 기부 신청 항목을 집어넣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신청자들이 무심코 동의해 기부를 늘리도록 하려는 ‘꼼수’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배경이다.정부는 당초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두고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신경전 끝에 고소득층의 기부 유도를 조건으로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카드사에 신청할 때 교묘하게 기부하도록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기부 유도는 ‘관제 기부’ 논란마저 낳고 있다.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만 떨어진다. 고위 공무원 등은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기부토록 하고 있다. 그다지 모양새가 좋지 않다. 공기업 간부 및 기업인들 도 울며 겨자 먹기로 기부 행렬에 참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요나 분위기에 휩쓸린 기부는 본래 취지에도 맞지 않다. 더구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소비 진작이 원래 목적이 아니던가.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만든 한계다. 정부는 조건을 달거나 꼼수는 쓰지 마라.

표현능력이 경쟁력인 시대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코로나19 용인 66번 환자의 이태원 클럽 순회 방문 이후 계속 확진자가 나오면서 온 나라가 긴장 속에서 시끄럽다. 일부 언론들은 그 확진자가 다닌 곳이 성소수자들이 즐겨 찾는 장소라고 보도했다. 그 뉴스 끝에는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댓글이 넘쳐흘렀다. 그 결과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닌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감추려고 하여 방역 당국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태원과 관련된 사람들은 신천지 신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 신도는 명단을 확보할 수 있어 모두 검사를 받게 할 수가 있었지만 유흥시설에 입장한 사람들은 개인 정보를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으면 다 찾아내기가 어렵다. 문제의 심각성이 지적되자 언론들은 성소수자 관련 내용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성소수자에 대한 견해는 개인에 따라 다르고,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 대한 편견이나 비난은 감염을 막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쟁점들이 의견 수렴과 토론의 과정에서 논점을 벗어나 옆길로 빠진다. 지난 총선 때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관련 발언은 왜 문제가 되었는가. 세월호 관련 집회 텐트에서 있었다고 주장하는 일은 선거운동에서 전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문제의 핵심은 불행한 참사로 무고한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 가족들은 아직도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총선에 나선 사람이라면 먼저 어린 영혼들의 명복을 빌면서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필요하다면 유족이 만족할 때까지 여야가 힘을 합쳐 진상 규명을 하겠다는 약속도 해야 했다. 여당 후보가 노란 리본을 하나 달면 야당은 두 개를 달고 다니며,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는 여야가 없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는 본질을 벗어난 자극적인 가십성 이야기로 낙선했을 뿐만 아니라 소속 정당의 패배에도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런 막말의 파괴적 영향을 가볍게 여긴 집단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작은 도시국가였던 고대 아테네에서는 정책의 입안과 결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했다. 그들은 의견 제시와 토론, 결론 도출 등 전 과정에 직접 관여하여 직접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이런 환경에서는 어떤 주제를 두고 청중에게 호소하며 지지를 구하는 연설이나 웅변은 중요하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 고려 없이 진실보다는 실용적 지식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소피스트들의 수사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소피스트들이 사실적 증명이 아닌 청중의 감정을 자극하여 동조하게 하는 속임수를 쓴다고 비판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그로 하여금 ‘수사학’을 쓰게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연설가는 자신의 논제와 관련된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연설가들이 자기가 하는 이야기의 사실 여부와 핵심 쟁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람끼리 모여 토론이나 논쟁을 하면 논지를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 결국은 배가 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는 다양한 문체와 화술, 은유와 같은 핵심 표현법을 이해한 후 자신의 생각과 사상, 논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고 적용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적인 중대사뿐만 아니라 개인 상호 간의 문제를 논의할 때도 핵심 논점과는 관계가 없는 부차적인 사안을 본질적인 문제처럼 다루는 우를 자주 범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말하고 글 쓰는 방식과 습관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며 논점을 벗어나는 경우는 없는가. 상대방이 잘 모르는 점을 악용하지 않는지. 자신의 지위, 지식, 세속적 평판 등을 이용해 상대에게 공포감이나 수치심, 무력감을 느끼게 하여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하지는 않는지 등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차근차근 남을 설득하는 대화의 기술과 글쓰기 능력 배양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현대는 표현의 시대다. 우리는 지금 표현 능력이 생존 수단이자 경쟁력인 시대를 살고 있다.

재난지원금 사용처, 현실 맞게 재조정 필요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의 사용처 제한에 불합리한 조항이 많아 반발이 일고 있다. 또 지역 상품권 사용을 두고도 도매시장 등에서 혼선이 빚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지난 11일부터 지급 신청을 받고 있는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카드형)은 시도 단위 거주지역 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 대형 마트, 백화점, 대형 전자판매점, 온라인 쇼핑몰, 유흥업소 등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온누리상품권 등 지역사랑 상품권으로 받을 경우에는 해당 지자체 내에서만 쓸 수 있다.정부 지원금은 ‘거주지역 외 다른 지역 가맹점 사용 불가’ 조항 때문에 일부 프랜차이즈의 경우 전국에 영업망을 두고 있어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제한된다. 전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는 스타벅스는 전국의 모든 매출이 서울 본사로 잡히기 때문에 서울 이외 지역의 사람들은 재난지원금으로 결제를 할 수 없다.프랜차이즈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등록한 가맹점일 경우에는 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직영점과 가맹점을 구분하기 어려워 재난지원금 사용에 불편이 따르게 된다.KTX 티켓도 코레일 본사가 있는 대전시민만 재난지원금으로 구입할 수 있다. “대전시민만 국민이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는 이유다.이러한 제한은 지역에 지원금이 풀리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현실과 맞지 않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재난지원금의 기본 취지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내수를 활성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생계지원 측면에서 보면 사용처가 지나치게 제한돼 불만을 사는 요인이 된다.지난달 말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대구·경북의 경우 응답자의 23%가 ‘재난지원금을 공과금 납부에 사용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각종 세금, 공공요금, 사회보험료 등의 납부는 할 수 없다. 통신료 결제도 불가능하다.정부 재난지원금이 본격 사용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효율성을 높이고, 형평성을 살리기 위해 사용처를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는 것이 옳다.이와 함께 대구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매천시장에서 온누리상품권 사용을 둘러싼 혼선이 빚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 매천시장은 도매시장이어서 원칙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점포에서 코로나 여파로 인한 어려움을 덜기 위해 상품권을 받고 있다고 한다.일부에서는 사용이 되고 일부에서는 안돼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또 긴급재난지원금 선불카드는 사용이 가능해 혼선을 더하고 있다. 현실과 규정을 감안한 관계 당국의 합리적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진짜 약한 고리는 어디인가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쟁의 가장 위대한 그리스 영웅이다. 불사신처럼 활약하던 그는 이 전쟁에서 자신의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게 된다.아킬레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스틱스 강물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발뒤꿈치를 잡고 있다 보니 이 부분만 강물에 적실 수 없었다. 완벽할 수 있었던 아킬레스에게 발뒤꿈치는 딱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것이다.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약점을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이라고 부르는 이유다.특수합금으로 만들어 튼튼한 사슬도 이를 연결하는 고리 하나가 약한 주석으로 되어있다면 이 사슬의 전체 강도는 주석의 강도와 같다. ‘가장 취약한 고리’ 하나가 전체 사슬의 강도를 결정한다.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말한 소위 ‘미니멈의 법칙(law of minimum)’이다.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되더라도 결국에는 가장 부족한 조건 하나에 맞춰 능력이 결정된다는 뜻이다.그는 농작물의 수확량에 미치는 조건도 미니멈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농작물이 잘 자라기 위해 필수적인 영양소가 골고루 잘 갖춰져도 어느 하나의 영양소가 적정수준에 모자라면 이것에 의해 농작물의 수확이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부족한 딱 하나의 원인이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그의 이론은 ‘리비히의 물통’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여러 개의 나무판을 이어 둥글게 만든 물통을 보자. 높은 나무판을 이어 나가다가 딱 하나의 나무판이 모자라는 바람에 높이가 낮은 나무판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 다른 나무판의 높이가 아무리 높아도 낮은 단 하나의 나무판자에 의해 담는 물의 양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가장 부족한 조건에 맞추어 힘이 결정된다는 의미이다.이런 ‘약한 고리’는 종종 인생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성과책임자로 임명했던 ‘낸시 킬리퍼’가 그렇다. 그는 가정부와 관련된 세금 단돈 198달러를 내지 않아 결국 낙마했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사소한 약점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고위직 인사청문회 때마다 드러나는 청렴성 때문에 주저앉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전문성이 뛰어나고 그 분야에 밝더라도 청렴성이 떨어지면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서기 어렵다.개인의 ‘약한 고리’는 곧 조직의 약한 고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탁월한 공격력으로 월드컵 결승까지 올랐어도 수비수 한 명이 약하면 우승하기는 어렵다. 스피드스케이팅의 팀 추월은 각 팀에서 가장 늦게 들어온 선수의 기록을 측정한다. 국회에 아무리 우수한 인재들이 많아도 한 두 명의 수준 미달 국회의원 때문에 전체 정치판의 수준이 낮아진다.현재 우리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도 마찬가지다. 온 국민들이 오랜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오면서 고통을 감내하며 겨우 생활 속 거리두기(생활방역)로 전환한 상태 아닌가. 이제 곧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희망을 키우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모든 국민들이 생활방역을 실천하더라도 몇 명의 ‘나 하나쯤이야’ 하는 방심이 약한 고리로 작용하고 말았다.결국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고교 3학년의 등교 일정이 20일로 연기되었다. 유치원생과 초중등생 및 고교 1, 2학년의 등교 일정 역시 순차적으로 일주일씩 미뤄지게 됐다. 아무리 의료기술과 시스템이 강점이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다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이런 약한 고리를 노린 코로나19의 공격에 가정과 사회는 속수무책으로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참에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이태원클럽과 같은 또 다른 약한 고리는 없는가. 자칫 나 하나쯤이야 라는 ‘가장 낮은 판자’ 때문에 코로나19 완전 종식이라는 물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은 아닌가.나부터 지켜내야 하는 ‘나무물통의 법칙’을 되새기고 마음을 다잡을 때다. 내가 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할 일이다.

문향 만리…왼손도 손이다

왼손도 손이다 문순자 의사는 다짜고짜 내 구력을 물어온다/ 운동?/ 운동이라면 노동이 고작인데/ 병명도 분수가 있지/ ‘테니스 앤 골프 앨보’라니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뭘 쳤다는 걸까/ 오른손잡이,/ 이 손으로 네 등 떠민 적 없었다/ 무심결 왼쪽 손으로 찻잔을 든 이 아침 세상에, 세상에나/ 업은 애기 삼년 찾듯/ 여태껏 안 떠나고 여기 남아 있었구나/ 반세기 흘리고 나서/ 심봤다!/ 너 왼손아-시조집『왼손도 손이다』(고요아침, 2016)....................................................................................................................문순자는 제주 출생으로 199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아슬아슬』『파랑주의보』『어쩌다 맑음』등과 시조선집『왼손도 손이다』가 있다. 제주 토박이로서 제주 특유의 정서와 향토색을 형상화하는 일에 힘쓰며, 제주 시조문단의 질적 향상과 저변 확대를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시인이다.우리는 손과 발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비단 손과 발뿐이겠는가. 평상시엔 귀중함을 모르다가 어떤 상황이 생겨서 마음대로 쓸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존재를 자각하고 불편해 하면서 아쉬워한다. 특히 발과 손은 움직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동하기 위해서는 발이, 무언가를 잡기 위해서는 손이 필요하다. 한 손만 제대로 못쓰게 되면 아침에 일어나 머리 감는 일조차 힘들게 된다.화자는 어느 날 갑자기 오른손이 아파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사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이 ‘왼손도 손이다’이다. 오른손잡이에게 왼손도 손임에 틀림없다. 아무 생각 없이 늘 사용하기에 손의 구실을 제대로 하는지 별 자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오른손이 아파서 왼손을 쓰게 되면서부터 왼손의 존재감을 절감하고 있다. 의사는 다짜고짜 구력을 물어오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운동은 아니다. 테니스나 골프를 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운동이라면 노동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명은 테니스 앤 골프 앨보 라는 것이다.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뭘 쳤다는 걸까라면서 오른손잡이 손으로 남의 등을 떠민 적이 없었음을 상기한다. 무심결에 왼쪽 손으로 찻잔을 든 아침의 일이다. 당연히 붙어 있어야 하는 소중한 지체인데도 화자는 세상에, 세상에나 업은 애기 삼년 찾듯 여태껏 안 떠나고 여기 남아 있었구나라고 감탄한다. 그리고 반세기를 흘리고 나서 심봤다!, 너 왼손아, 라고 그저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한다.‘왼손도 손이다’를 곰곰이 읽으면서 가족 중 한 사람이 오랫동안 집을 비웠을 때 무언가 허전하고 텅 빈 것만 같은 경험을 떠올려본다. 또한 대중가요 ‘있을 때 잘해’가 생각난다. 오른손이 온전할 때 오른손을 잘 받들어야 하겠다. 쓸 때마다 오른손을 칭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애쓴다고 토닥거려주어야 하겠다. 그러면 오른손도 말귀를 잘 알아듣고 다치지 않도록 늘 조심하지 않을까. 가까울수록 더 세심히 돌보고 아끼고 위해 주어야 할 것이다. 더욱 예의를 지키고 마음을 다하면서 깍듯이 대한다면 어려운 일을 겪지 않게 될 것이다. 부드러운 눈빛과 상냥한 말씨로 대하면 돌아오는 것이 많을 것이다. 손은 가장 가까이 있는 귀한 지체다. 그러므로 평소에 늘 마음을 써야한다.이렇듯 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향해 감각의 촉수를 뻗어 삶의 의미를 포착한다. 창조적 형상화는 비단 시인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오늘과는 조금은 다른 내일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리라. 이정환(시조 시인)

고용보험 확대,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어야

오철환객원논설위원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하고, 나아가 특수고용근로자, 플랫폼 근로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가면서 소득 파악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고용보험 적용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 한다. 고용보험은 실직한 경우 구직활동 및 재교육을 지원하는 사회보험이다. 그 혜택을 받기 위해선 고용보험 가입과 보험료 납부가 선행조건이다. 고용주와 근로자는 과세표준의 0.8%씩 보험료를 매달 납부한다. 사업규모에 따라 고용안정과 직업능력 개발사업을 위해 추가로 보험료를 더 낸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분은 고용보험 전국민 확대가 마냥 꽃소식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고용주와 근로자의 보험료 납부 부담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는 생색만 낼 뿐 예산을 보태주는 일은 없다. 말하자면 제 팔, 제 흔들기다. 게다가 발표문이 엉성하고 부실하다. 엄밀히 따지면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것과 전국민 고용보험은 서로 다르다. 이런 오류는 현 정권의 정책이 주먹구구 아마추어리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국정이 즉흥적이고 감정적이어선 곤란하다. 분위기에 취해 기분 내키는 대로 지엽적인 부문을 콕 집어 발표하게 되면 다른 부문과의 정합성이 깨어지고 실무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정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란 선의만 보고 인천공항의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던 일. 영화 ‘판도라’를 보고 감격해서 원전폐기를 선언했던 일, 조국 자녀 입시비리가 부상하자 느닷없이 정시확대란 입시정책을 발표했던 일. 그때의 일시적인 분위기와 국민정서에 휩쓸려 정밀한 검토나 여론 수렴 절차도 없이 국가정책을 즉흥적으로 발표한 사례는 현 정권 들어 유독 많은 것 같다. 고용보험은 정밀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복지정책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신중히 수립되어져야 한다. 경제에 무리한 부담이 가지 않도록 경제상황과 소득수준에 맞게 설계되어야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시행 중인 4대 보험 간 균형 유지도 기본이다. 국민건강 증진과 의료보험, 산업재해 예방과 그 부보, 노후생활 기금의 적립, 그리고 구직활동 지원 및 재교육 등은 어느 하나도 포기할 게 없다. 모두 함께 달성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지만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의 경제 부담을 그 전제로 한다. 복지정책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무조건 확충할 순 없다. 고용안정과 실업급여, 재취업 교육 등 고용보험의 기능과 역할만 보고 덜렁 확대하겠다는 것은 정말 무모하다. 동전의 한쪽면만 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전임자들이 복지가 싫어서 확충하지 않은 건 아니다. 관계당사자의 금전적 부담이 전제되기 때문에 경제상황과 소득수준을 저울질하면서 균형점을 잘 찾아야 한다.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감안해야 한다. 과중한 짐을 지우면 경제가 주저앉는다. 고용주의 부담을 고려하고 근로자의 주머니사정을 감안해서 점진적으로 확대할 일이다. 정책의 보완과 확충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경제가 좋을 때 타이밍을 잘 잡아야 저항이 적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이다. 실업자 급증이란 한 쪽면만 보고 고용보험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겠다는 섣부른 결정은 정말 외눈박이 정책이다. 지금 상황에서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고용주와 근로자는 양쪽 모두 공히 보험료 부담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부담의 한계로 모든 복지를 한꺼번에 확충할 수 없다면 그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 사정으로 봐선 고용보험 확대보다 오히려 국민연금 현실화가 더 급하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노령층의 생활보장이 현안이다. 국가가 노후를 전적으로 보장하지 못할 양이면 소득이 있을 때 돈을 거둬서 은퇴 후 돌려주는 시스템이 바람직하다. 고용보험은 실업위험이 낮은 사람에게 무용하고,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은 ‘역선택’이나 ‘도덕적 해이’ 같은 부작용이 있다. 국민연금은 기금을 적립한 다음 퇴직 후에 돌려받는 구조이므로 설득력이 큰 콘텐츠다. 국민연금의 현실화 잠재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역병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다. 도와주지 못할망정 기업과 근로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줘선 안 된다. 경제회생과 경기진작에 집중해야 한다.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어야 한다.

코로나 행정명령, 속도 못잖게 유연해야

코로나19로 인한 지자체의 행정명령이 잇따라 발령되고 있다. 행정명령은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한 것으로 신속성이 생명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행정명령을 반기는 국민도 있지만 불편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행정명령은 감염병 예방·관리법에 근거한 것이다.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위반시 벌금 및 징역형 등 지나친 강제는 국민 반발을 살 수도 있다. 주민들의 이해와 동의가 필요한 이유다.코로나19로 인한 행정명령은 변호사 출신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 도지사는 대구에서 신천지 발 확진자가 폭발하던 지난 2월24일 긴급 행정명령을 내렸다. 신천지 관련 집회를 전면 금지하고 신천지 시설을 강제 폐쇄했다. 지난 3월18일에는 다중이용시설 사용 제한 행정명령을 내렸다.이태원 클럽 출입자의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지난 10일 감염 검사와 대인 접촉 금지를 명했다. 모든 유흥시설과 감성주점·콜라텍에 대해 집합금지를 명했다. 서울시와 인천시도 클럽 등 유흥시설에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대구시는 지난 3월7~9일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한 신천지 신도 대상 진단검사 및 기 확진자(자가 대기)의 시설 입소 및 입원을 촉구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지난 8일엔 감염병 예방·관리법에 근거한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명령을 내렸다. 대중교통 종사자와 이용자가 대상이다. 당초 위반자에게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키로 했으나 논란이 일자 계도와 권고 위주의 행정명령을 내렸다.경북도도 지난달 17일 경북 예천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안동과 예천, 도청 신도시 지역에 긴급 행정명령을 발동했다.감염 전파력이 높은 코로나19의 확산 차단을 위한 행정명령은 불가피하다. 지자체와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코로나19의 급속 전파를 막았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관리에 성공, ‘K 방역’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방역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다.하지만 대구시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명령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시민단체는 행정명령권 철회를 요구했다. 온라인에서는 과도한 처사라며 대구시를 비난했다.전국이 생활방역으로 전환하는 데 대구만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자 불만이 쏟아졌다. 마스크 의무화 행정명령 발동도 대구가 국내 처음이다. 위반 시 벌금도 300만 원이나 된다.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결국 대구시는 한발 후퇴했다.코로나19 행정명령 발동은 시민과 지역사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문제는 사전에 대구 시민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구시가 미숙했다. 유연한 행정 처리가 아쉽다.

지역사회 안전지킴이, 의용소방대

우병재대구강서소방서 예방안전과맹추위라는 수식어보다 코로나19라는 단어로 온 세상을 뒤덮었던 겨울이 지나고, 있는 듯 없는 듯한 봄이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5월이다.겨울이 지나듯 코로나19라는 전염병도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지난 2월18일 이후 코로나19 양성 확진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마스크 부족현상이 발생했고 마스크 구입을 위해 예전에 없었던 줄서기 대란이 발생하여 정부에서는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또한 지역사회 감염 차단을 위해 정부의 권고수칙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와 모임 및 외출 자제, 재택근무 확대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3월22일부터 시작돼 한 차례 연장되었고, 4월20일부터 5월5일까지 다소 완화된 형태로 16일간 연장된 바 있다.지난 6일부터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되어 사회·경제활동을 보장하되 국민 개개인과 우리 사회 모두가 스스로 방역에 책임을 지는 방역 주체가 되어 일상과 방역이 조화를 이뤄나가고 있다.이러한 정부 대책에 부응해 대구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각종 방역활동 참여로 코로나19 확산방지에 많은 역할을 했다.마스크 수급 부족에 따라 관내 마스크 생산 공장에 3월2일부터 12일간 매일 10명씩 의용소방대원들이 지원해 원활한 공급에 기여했으며 또 ‘공적마스크 판매 5부제’ 시행때는 10일간 매일 9명씩 지정된 약국 9개소에 배치되어 마스크 포장,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줄 세우기, 구입방법 안내 등 판매를 지원했다.이와 함께 아파트 단지 방역과 소독, 전국 구급차 동원령 발령 시 배식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실시해 코로나19 안정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이제 ‘생활 속 거리두기’ 로 전환됨에 따라 각급 학교의 등교도 앞두고 있고 점차 일상생활을 찾아감에 따라 자칫 코로나19 종식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음에 의용소방대원들이 지난달 27일부터 헬스장 등 다중이용시설 이용객에 대한 손소독과 발열체크, 강정보 등 다중운집시설에서 마스크 착용 캠페인 등 한발 앞선 방역지원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이렇듯 의용소방대는 재난현장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생활 속에서 각종 안전사고 예방에 동참해 왔고,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역 안전지킴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안전문화 확산에 이바지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대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 기대한다.

문향만리…저녁 숲길

저녁 숲길이태수날 저물고 새들도 둥지에 든다./ 서늘한 바람의 옷자락,/ 그 감촉에 몸 맡기며 숲길 돌아들면/ 땅거미 안으면서 어깨 추스르는 나무들/ 가지와 가지들 사이로 별이 뜬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지난날들이,/ 불현듯 그의 마지막 말들이 뜬다./ 차마 잊지 못하고 있는 말들은 저토록/ 별이 되어 빛을 뿌린다. 하나 둘, 그리고 여럿/ 그 별들이 숲에 내린다. 가슴에 스며든다./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음을,/ 다른 세상에서 더러는 그리워할 뿐임을/ 말해주는 건지.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이내 다시 멀어진다. 여태 애태우던/ 말들도, 이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제각각/ 허공에 빈 메아리로 떠돌고 있는지……/ 마음마저 더 어두워지고, 집도 점점/ 멀어지는, 낯선 저녁 숲길.『회화나무 그늘』 (문학과지성사, 2008)....................................................................................................................저녁은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숲은 많은 것을 품고 감춰준다. 그래서 숲은 푸근하다. 저녁 숲길은 고요하다 못해 멍 때리는 소리마저 들린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사위에서 물들어오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새들마저 둥지에 든다. 바람이 불어와 무료함을 달래듯 등을 두드린다. 바람의 옷자락을 잡고 숲길로 접어들면 땅거미가 나무들 어깨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어둠을 살며시 품은 나뭇가지 사이로 별들이 반짝인다. 가슴에 담아두고 외면해 왔던 기억들이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별들은 잊었던 지난 추억을 토해낸다. 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진다. 별빛을 듬뿍 받은 숲이 숨겨둔 추억을 일깨운다. 그의 마지막 말들이 별빛을 받아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숲은 모른 척 돌아앉아 마음 없는 바람을 슬며시 막아선다.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다른 길로 가버렸다. 그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망설이다가 산새가 지저귀는 작은 오솔길로 걸어갔다. 사람이 많이 다닌 곧게 난 길로 가면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지만 시인은 갈림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각자 다른 길 위에 있으며 돌아갈 수 없다. 어둠이 깊어지고 하늘엔 이름 모를 별들이 얼굴을 내밀고 미소 짓는다. 별빛이 가슴으로 스민다. 함께 가자던 말이 생생하다. 그가 간 길이 떠오른다. 시인이 아쉬워한 만큼 그도 시인이 선택한 길을 그리워할 터다. 가지 않은 길이 숲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애태우던 기억들이 아스라이 멀어진다. 여태까지 애태우며 추억했던 말들과 안타깝게 반추했던 그리움이 메아리 되어 허공을 맴돈다. 마음의 별은 점차 빛을 잃어가고 시인이 사는 집은 점점 멀어진다. 새삼스레 저녁의 숲길이 낯설다.저녁 늦게 숲길을 걸으면 지나온 길들이 별빛 아래 하얗게 드러난다. 이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접는다. 별빛 담은 숲은 오랫동안 지나는 사람들을 보듬고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한껏 지혜를 쌓아왔다. 시인은 숲이 터득한 지혜를 빌리고자 저녁 즈음 숲길로 들어간다. 앞으로 가야할 남은 여정이 길밖에 뒹굴고 있다. 눈 밝은 시절엔 여기가 어디쯤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히 보였다. 무엇 때문에 가는지, 어떻게 가야할지, 숲에게 묻지 않았다. 이젠 눈이 침침하다. 사위가 어둡다. 있는 곳도 잘 분간되지 않고 가야 할 곳도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뭐라고 채근하지만 귀가 어두워 알아들을 수 없다. 여태 먼 길을 걸어왔으나 제대로 온 것인지도 의문이다. 어떤 곳을 향해 어디로 얼마만큼 더 가야 하는지, 저녁 숲길을 걸으며 별빛 담긴 숲에게 묻는다. 오철환(문인)

아침논단…공공도서관의 ‘생활 속 거리두기’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문을 닫은 지 80일을 갓 넘긴 대구지역 공공도서관마다 재개관 일정을 묻는 전화가 적지 않게 걸려온다고 한다. 특히 방역당국이 지난 6일 코로나19 대응수준을 ‘생활 속 거리두기’로 표현되는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한 뒤 언제 도서관 문을 여는지 더욱 궁금한 모양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국립세종도서관이 대출서비스로 제한해 문을 열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의 재개관 시점이 언제인지 궁금해할 법도 하다.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국립도서관이 위치한 서울 또는 세종과 대구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도서관 재개관 일정을 똑같이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대구는 지난 2월18일 신천지 교인인 31번 확진자가 슈퍼전파자 역할을 하는 바람에 긴급재난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10일 0시 현재 대구의 확진자 수는 6천861명으로 전국 확진자 1만874명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생활권이 중복되는 경북에서는 전국 확진자의 13%에 해당하는 1천36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런 실정이기에 불특정 다수가 즐겨 찾는 대구지역 공공도서관의 코로나19 대응전략은 폐쇄에 선제적, 개방에 보수적인 입장을 지켜야 한다.시민들의 문의전화를 통해 살펴본 공공도서관 재개관과 관련된 주요 궁금증은 ‘언제 재개관을 하느냐’ ‘지금 도서관을 운영하느냐’ ‘지금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냐’ 등이다. 용학도서관 입장에서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질문에는 ‘재개관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가 답변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추이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 전환 3일 만에 터진 서울 이태원 클럽발(發) 집단감염처럼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공공도서관 이용자는 생활 속 거리두기 방역수칙에서도 가급적 공공시설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은퇴세대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특히 오는 13일 고3부터 시작되는 초·중·고의 등교개학을 계기로 우려되는 무증상 확진자 중심의 ‘조용한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이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 은퇴세대를 보호하기 위해 공공도서관의 재개관 시점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등교개학 이후의 감염 확산 추이를 살펴보면서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사망자의 연령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10일 기준 국내 코로나19 사망자 256명의 86%는 65세 이상이다. 또한 치명률은 고령일수록 가파르게 상승한다. 80세 이상은 25%로 확진자 4명 중 1명꼴로 사망한다. 70대도 10.83%로 높은 편이며, 60대는 2.73%다.두 번째 질문의 답은 ‘도서관은 운영 중’이다. 단지 시민들이 도서관에 들어올 수 없을 뿐이다. 현재 운영 중인 서비스는 ‘북 워크 스루(Book Walk Thru)’로 불리는 비대면 대출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 방식을 도서관 용어로 표현하면 ‘폐가제(閉架制)’ 대출방식이다. 40대 이상이면 학창시절 대부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서관 목록함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은 뒤 대출신청서에 서명, 저자명, 청구기호 등을 적어 대출창구에 제출하고 기다렸다가 책을 빌리는 방식이다. 아날로그 방식이던 그때와 현재 대출방식이 다른 점은 도서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책을 검색한 뒤 신청하는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코로나19로 도서관 문을 닫기 전까지 시민들이 이용하던 대출방식은 폐가제의 반대인 ‘개가제(開架制)’다. 이용자 누구에게나 개방된 자료실의 서가에서 편리하게 책을 고를 수 있는 방식이기에 거의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채택하고 있다. 도서관 직원 입장에서도 현재 진행 중인 폐가제 방식이 훨씬 불편하다. 온라인으로 신청된 책이 제대로 표기됐는지, 대출되지 않았는지, 서가에 제대로 꽂혀 있는지 일일이 확인한 다음에 이용자들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대출날짜와 시간까지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신청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야 한다. 노동 강도로 따지자면 개가제보다 2~3배의 힘이 드는 셈이다.세 번째 질문에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온라인으로 운영한다’가 답변이다. 온라인을 뜻하는 신조어 ‘랜선’을 활용하자면 ‘랜선 강의’와 ‘랜선 전시’가 진행되는 것이다. 랜선 강의로는 이번 주부터 매주 목요일 양서 한 권씩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전진문 교수와 만나는 책세상’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 올려진다. 이를 위해 지난주에 영상 촬영과 편집과정을 거쳤다. 코로나19로 인한 임시휴관 이전까지 단 한 차례의 결강도 없이 매주 목요일 용학도서관에서 진행된 이 강의는 시작한 지 6년 6개월만인 지난해 9월26일 300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랜선 전시로는 ‘향토자료 온라인 사진전’ 등이 열리고 있다. 2018년부터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집한 수성못과 지산·범물지구의 옛 모습이 담긴 향토자료가 한 주에 두 차례씩 모두 10회 분량으로 SNS에 업로드 되고 있다.

각급학교 등교수업이 방역 최대 고비다

우려하던 일이 안타깝게 현실로 나타났다. 서울 이태원의 클럽을 다녀간 사람들 사이에 확진자가 집단 발생하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코로나19 사태가 재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는 10일 낮 12시 현재 54명에 이른다. 하루 확진자가 30명 이상으로 늘어난 것도 지난 4월12일 이후 28일 만이다.이태원 집단 감염의 경우 정확한 감염루트를 아직 모른다는 점이 문제다. 첫 환자로 추정되는 용인 66번 환자가 유일한 감염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방역당국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 30대를 중심으로 증상이 없는 ‘조용한 전염’이 현실화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5월 초 황금연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집밖 나들이와 여행을 다녀왔다. 이들의 이동 결과도 방역의 큰 변수다. 코로나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2주간의 잠복기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오는 13일부터는 고3을 시작으로 대구·경북을 포함한 전국 각급학교의 순차적 등교수업이 예정돼 있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곳곳에 우리가 모르는 감염원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확진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대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했다. 당연히 현재도 위험요인이 많을 수밖에 없다.대구시교육청은 지난 8일 지역 각급학교의 등교 방식을 확정 발표했다. 고3과 중3만 매일 등교하고, 나머지 학년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격주, 격일, 오전·오후반, 부제 수업 등 다양한 형태의 등교 방식을 채택한다는 것이다.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여러가지 조치도 제시됐다. 과밀 학급은 ‘생활 속 거리’를 최대한 확보해 책상을 배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일반교실보다 넓은 특별교실을 활용하고 마스크 뿐만 아니라 페이스실드 등 개인 방역물품도 허용한다. 또 학생용 책상 칸막이 등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밝혔다.이에 앞서 대구시도 지난 5일 행정명령으로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대중교통과 공공시설을 이용할 경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전국 최초의 조치다. 대구시의 이번 조치는 1주일 간의 홍보와 계도 기간을 거친 뒤 고3 등교수업이 시작되는 13일부터 본격 시행된다.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코로나 차단을 최우선 정책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 교육당국과 방역당국은 각급학교 등교수업 전에 집단시설 방역에 허점이 없는지 다시 한번 철저한 점검을 하기 바란다. 이번 등교수업에 코로나 차단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