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나는 의심한다

나는 의심한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땐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었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이라 즐겨 표현하고, 자신은 ‘촛불혁명’으로 집권했다고 자랑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와 ‘촛불혁명’이란 용어를 그냥 수사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이제야 해본다. 양자를 연계하여 지금까지의 경과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혁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을 총칭한다. 그러나 혁명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정치적 혁명을 뜻하고, ‘시민운동, 봉기 등을 일으켜서 기존 정치체제를 급격하게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혁명은 흔히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며 지배계층 교체와 체제변혁을 추구한다. 혁명 과정에 억울한 희생과 사회혼란이 따르고, 새로운 독재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부작용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면 혁명이 실패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혁명은 어려운 과업이다.적폐청산이란 명분으로 기득권 세력을 처단한 것과 이른바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로 요직을 장악한 것은 지배계층 교체다. 촛불정신을 헌법전문에 삽입하고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 한 것은 체제변혁을 시도한 거다. 토지국유화를 찬성한다는 여당 대표의 발언과 삼성이 20조만 풀면 1,000만원씩 200만 명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말도 섬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 마디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여러 의문점들이 어느 정도 줄줄이 풀려나간다. 친중연북은 자연스럽다. 중국에 약속한 3불정책(사드를 추가배치하지 않겠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에 가입하지 않겠다, 한·미·일동맹에 참여하지 않겠다), 군의 손발을 묶어놓은 9·19 남북군사합의 등이 같은 줄기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전역장성들이 공산화 위험을 우려하면서 그 파기를 주장한 사안이다. 북핵을 심각하게 보지 않고 남의 일처럼 보는 점, 북핵 제재완화 역할을 자임한 점, 북미회담을 통하여 평화협정과 미군철수를 노린 점,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 환수하려 하는 점 등도 역지사지하면 이해가 된다. 경제 영역에서 포용경제와 공정경제라는 이름하에 강행된 소득주도성장과 그 말썽 많은 다양한 정책 도구들도 다른 방향에서 보면 체제변혁을 꾀하는 징후로 읽힌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한 연금사회주의, 친노동반기업 정책 등도 그 방향성은 같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희생과 사회혼란은 사뭇 혁명적이다. 독재자의 출현은 ‘글쎄’다. 부작용이 기승을 부리게 되면 혁명은 실패로 끝난다는 역사적 교훈은 엄혹하다.경제전쟁은 일본의 치졸한 선공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우리가 일본을 자극한 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약을 올려서 싸움을 촉발한 측면이 있다. 미국 비위를 상하게 할 행동을 의도적으로 지속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계획적으로 삐걱거리게 했을 지도 모른다. 미국과 일본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새로운 체제에 부응하는 북·중·러 안보라인으로 갈아타는 고도의 계산된 전략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해양세력보단 대륙세력과 친하긴 했다. 북한의 역할은 투정하고 비난함으로써 한통속 의심을 사지 않는 일이다. 미사일을 쏘는 등 딴전을 피우면서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권핵심들의 경기어린 언행과 무력해 보였던 안보·외교정책도 뒤집어보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체제변혁에 대한 관심사를 따돌리는 기막힌 착상은 압권이다. 국제정세에 떠밀려서 불가피하게 체제가 수동적으로 변혁되는 상황은 국민에게 의식하고 반발할 겨를도 주지 않는다. 최근 난국을 보는 이러한 주관적 추론은 과도한 의심에 기인한 가설로 치부할 수 있다. 부디 어리석은 사람의 기우이길 진정 바란다.그렇지만 촛불시위를 혁명이라 하긴 무리다. 박근혜정권은 헌법절차인 탄핵을 통해 와해되었고, 문재인정권도 현행헌법에 규정한 국민투표를 통해 탄생됐다. 현 정권이 혁명정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현 정권은 체제변혁 권한이 없다. 헌법체제 내에서 권한을 가지며, 그 한도 내에서 제도개혁 권한만 가진다. 체제를 변혁하려면 ‘가고자 하는 체제’가 어떤 것인지 국민 앞에 그 정체를 명확히 밝히고, 그에 맞게 우선 헌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체제변혁은 위헌이다.

항일운동 생생한 모습 담은 ‘최부잣집 문서’

일제 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의 생생한 정황 등을 담은 문서와 서책 수만 점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에서 한꺼번에 발견됐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항일독립운동 규명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사료적 가치가 엄청난 이들 자료는 지난 1972년 최부잣집 사랑채에 불이 나 창고에 급히 옮겨두었던 것들로 지난해 6월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최부자 민족정신선양회’는 최근 한국학중앙회 등에 의뢰해 한글 번역을 추진 중이다.발견된 자료에는 당시 민족 지도층이나 지식인들의 생각, 사회상, 역사적 상황 등을 짐작케 하는 다양한 문서들이 들어 있다. 편지, 엽서, 명함, 육영사업 관련 자료, 경주지역 국채보상운동 참여 인사 명단 등과 함께 최부잣집의 과객 접대 현황, 은행 거래 문서 등이 우선 눈에 뜨이는 것들이다.1910년대를 전후한 편지 자료는 4천여 통에 이른다.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한 자료들이 적지 않다. 말로만 전해지던 선열들의 생각과 행적이 담겨 있다. 구체적 역사 자료들이다.경주 지역의 국채보상운동과 관련한 자료들도 발견됐다. 참여한 5천86명의 이름과 기탁금액을 적은 기록, 대구본부로 보고한 문서와 함께 지역민의 동참을 호소하는 광고문 등도 나왔다. 잘 분석해 지역별 국채보상운동을 재조명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해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백산무역주식회사의 회계보고서, 대차대조표 등도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경주 최부잣집 등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백산무역은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정 등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또 만석꾼 최부잣집 집안의 200년에 이르는 추수기를 기록한 250권의 서책도 조선 후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크고 작은 항일독립운동은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운 상황이 적지 않다. 조선총독부나 일제 경찰의 항일운동 탄압자료를 근거로 애국지사들의 공적을 입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발견된 자료들은 항일독립운동을 세세하게 재조명할 수 있는 귀한 사료들이다. 고증과 한글 번역작업을 서둘러야 한다.74주년 광복절에 앞서 향토의 경주 최부잣집에서 항일독립운동 자료가 대거 발견됐다는 소식은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높인다. 소강 상태이긴 하지만 일본의 경제보복이 노골화 되는 시점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거울 앞에 서서

거울 앞에 서서/ 허홍구치장하고 모양을 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저기 저 거울 속에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놈/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언제 등 뒤에서 나타나/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도둑놈 얼굴의 나/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꽃밭으로 뛰어드는 저 불한당// 거울을 볼 때마다 문득 문득 나타나서/ 또 나를 놀라게 하는 더럽고 치사한 내가 무섭다// 얼마나 더 늙고 병들어야 저 욕심 놓아 버릴까.- 시집 『사랑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북랜드, 2019)..............................................................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많은 것을 본다. “뭐 아직 괜찮네, 그래도 이만하면 어디 가서 기죽을 정도는 아니지” 혹은 “이제 내 인생 종 쳤어, 이 주름들은 도대체 뭐람” 그럴지도 모른다. 외면의 얼굴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뿐 아니라 때로는 그 세월을 살아온 자신의 내면까지도 바라본다. 그리고 과연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기도 한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화상에서 솔직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며 깜짝 놀란다. 페르시아에 구전되어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여인이 죽어 하늘나라에 올라갔다. 여인은 커다란 거울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거울 속에 매우 흉측한 얼굴 하나가 들어 있었다. 여인은 그 모습이 너무 추악해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흉악한 몰골을 본적이 없었다. 여인이 고함을 질렀다. “더럽고 흉악한 요귀처럼 생긴 여인아, 너는 도대체 누구냐?” 그러자 거울 속의 여인이 말했다. “나는 네가 세상에서 살았던 네 행위다!” 사람의 감추어진 행위는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고, 죽어서도 따라다닌다. 미리미리 자신의 탐욕이 남을 해코지하거나 터무니없는 아집과 망상이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지 따위를 살펴보고 반성의 시간과 함께 자신을 가다듬는 것이 상책이다. 시인의 성찰은 이러한 묵직한 것들도 내포하고 있으나 시는 그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지수화풍의 변화 속에 ‘나이 일흔’을 넘겨서도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꽃밭으로 뛰어드는 저 불한당’의 대책 없는 춘정을 고해한다. 사람은 아무리 늙어도 사랑하는 감정은 결코 녹슬거나 시들지 않는다. 그 사랑의 감각은 마음뿐 아니라 육체에도 새겨져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은교’ 하나쯤 품고 있을 수도 있다. 소설 ‘은교’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 사랑은 시간의 눈금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본래 미친 감정이다. 당신들의 그것들도 미친, 변태적인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관능은 생로병사가 없는 모양이다.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미당은 일흔 중반에 한 고승을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스님, 언제쯤 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스님이 답했다. “나는 여든이 넘었는데 아직도 젊은 여성이 절을 찾아오면 마음이 설렙니다.” 달라이 라마도 일흔이 넘도록 여성을 보면 유혹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그 유혹과 욕정이 자기 안에서 다스려지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로 성자가 되기도 가정부를 건드린 어느 회장처럼 주책바가지 치한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들지 않은 사랑과 낡아버린 능력 사이의 부조화를 겪으며 ‘下心’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제 오랜만에 허홍구 시인과 만나 점심을 함께하며 술도 한 잔 했다. 해학은 여전했고 철학은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생각한 대로 잘 다듬으며 늙어가는 듯 보였다.

부고

▲설동문씨 별세, 설수환·보름·한울(신천가온유치원 교사)씨 부친상, 권기현(매일신문 편집부 기자)씨 장인상 = 12일, 영남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02호, 발인 14일 오전 11시. ☎053-620-4242

아침논단…이종 간 융합을 보고 배워라

이종 간 융합을 보고 배워라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조용한 곳에서 휴가를 보내다보니 좋은 점이 많다. 시간이 나면 책이나 좀 읽어보자고 가볍게 생각하고 가지고 온 책을 내리 두 권을 읽었다. 그 중의 하나가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지은 ‘열두 발자국’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저자의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던 12개의 강연을 선별해 이야기하듯 풀어낸 책이다. 대구시가 지난 2016년부터 추진해온 독서 캠페인인 ‘2019 대구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1천600여 명의 시민이 투표에 참여해 선정한 만큼 이미 독자들의 관심을 얻은 책이었다. 이 책은 마치 현장에서 강연을 듣는 듯 일상과 관련된 뇌과학을 쉽게 설명을 해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다룬 부분이었다. 천장이 높아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제목에 이끌려 집중해서 보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미국인 바이러스 학자 조너스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연구자다. 초기에 연구 성과가 없던 그는 답답한 마음에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13세기에 세워진 수도원 성당 안에서 어느 날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그는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백신 제작 과정을 무료로 공개해 지구상에서 소아마비 환자를 사라지게 하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소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소크생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루이스 칸에게 설계를 맡겼다. 소크는 그에게 “내 아이디어는 천장이 높은 수도원 성당에서 얻었다. 천장이 높아 사고공간이 한없이 넓어진 느낌이었다. 연구소의 모든 공간의 높이가 높았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다. 높은 천장 덕인지 이후 이 연구소에서 지난 50년간 1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었고 높은 천장과 창의력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연구자들의 실험도 잇따랐다. 그 결과도 흥미롭다. 집중력이 필요한 단순 문제를 풀 때는 천장높이가 낮은 2.4m였을 때 가장 높은 성과를 얻었다. 반면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천장의 높이가 가장 높았던 3.3m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이 실험이후 과학자들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공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그걸 바탕으로 건축물을 설계했다. 정재승 교수는 책에서 이 연구결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뭔지 반문한다. 그는 신경과학과 건축학, 두 분야의 만남에 주목했다. 언뜻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분야의 만남이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결국 혁신의 실마리는 가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봄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주워 담기 위해서는 도서, 여행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경계를 넘나들면서 타 분야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최고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융합하는 능력은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진화해도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했겠나 싶다. 몇 년 전부터 융합(convergence)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대학에도 융합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학과가 등장하고 정부부처나 각종 연구기관들에서도 융합 연구과제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전 세계가 융합이라는 경주에 뛰어들어 무한경쟁 중이다. 융합은 학문 뿐 아니라 산업분야에서도 활발하다. 특히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소재부품 장비산업 등 원천기술 확보 및 대외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도 융합은 필수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융합이 시급한 분야가 정치일 듯하다. 어차피 신경과학과 건축학의 만남처럼 혁신은 한 영역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융합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융합은 둘이서 함께 뛰는 이인삼각 경주와 같다. 이인삼각 경주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기대면서 호흡을 잘 맞춰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어깨동무를 한 정치권이 서로의 의견을 잘 녹여내고 융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대구중앙도서관, 지식·정보 요람되길

대구중앙도서관이 문을 연지 100년이 됐다. 대구중앙도서관은 독서와 각종 문화 활동의 중심 공간으로서 대구를 대표하는 도서관이다. 100년 역사는 세월의 무게를 더하고 그 가치를 높여준다. 하지만 대형도서관 신축에 따라 기능 축소와 함께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을 위기에 놓이는 등 대표도서관의 위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대구중앙도서관은 지난 10일 강은희 대구시교육감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중앙도서관은 100주년을 맞아 중앙도서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 전시와 역사 속의 베스트셀러 도서전 등 다채로운 전시와 행사를 갖는다.중앙도서관은 하루 평균 5천여 명, 연간 166만 명이 이용하며 장서 52만4천여 권, 논문 3만5천여 편, 전자자료 10만8천여 점 등의 자료를 소장해 명실상부한 지역 대표도서관이다.대구중앙도서관은 100년 전인 1919년8월10일 현재 경상감영공원자리에 있던 경상북도청 뇌경관에서 대구부립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당시 부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설립된 공공 도서관이다. 대구중앙도서관은 1924년 현재의 대구시청 주차장터에 건물을 신축해 이전하는 등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1985년 대구 중구 동인동에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렀다.중앙도서관은 학생과 시민을 위한 독서 공간 및 지식·정보 제공, 다양한 독서문화·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그러나 100년 역사의 중앙도서관이 위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오는 2021년 대구 남구 대명동 캠프워커 헬기장 이전 터에 대구 도서관이 새로 개관한다. 이곳에 중앙도서관이 소장한 장서와 대표도서관 기능을 넘겨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중앙도서관은 역할과 모습이 바뀔 수밖에 없다.대구시는 189억 원을 들여 중앙도서관을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을 통합한 형태로 조성하고 체험과 교육, 전시, 문화공연 등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중앙도서관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보관·전시할 아카이브를 조성키로 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일단락됐다.중앙도서관은 책이 귀했던 시절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소중한 독서 공간이었다. 시민들의 애환이 스며있는 역사적인 공간인 것이다. 중앙도서관은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드라마 촬영을 하는 지역 명소이기도 하다.대구중앙도서관은 그간의 논란과 우려를 씻고 100년 역사에 걸맞게 새로운 콘텐츠로 채워 대구 시민이 사랑하는 도서관으로 길이 남아야 한다. 대구 시민들의 더욱 깊은 관심과 사랑을 기대한다.

공동칼럼…욕망의 질주와 인성교육

욕망의 질주와 인성교육한병선교육평론가·문학박사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했다. 이 같은 단순성은 생활의 단순성으로 이어졌다. 오직 필요만이 생산을 이끌어내는 주요 동인이 되었다.하지만 사회는 산업화와 함께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뀌었다. 곳곳의 공장들은 무서운 속도로 상품들을 쏟아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들은 그럴듯한 포장을 거쳐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대량소비의 시대가 된 것이다.이런 환경변화는 단순히 우리 삶의 외형만을 바꾼 것은 아니다. 가치관은 물론 사물을 보는 눈까지 변화시켰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면의 정신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었다.자본주의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된다. 이런 특성 상, 욕망하는 대상은 곧바로 소비로 연결되는 특징을 갖는다. 소비력에 따라 철저히 사람들의 위계까지 결정되기도 한다.페미니스트 리타 펠스키에 의하면, 오늘날 소비주의 문화는 도덕적, 종교적 권위를 무시한 채 소비자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도록 조장한다. 남녀 간의 내밀한 관계, 혹은 가정 내의 가부장적 가족구조까지도 파괴시킨다고 말한다. 사실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교육에서 교육은 소비재가 된지 이미 오래다.교육소비, 수요자 교육, 교육소비자. 교육소비 비율, 교육소비 욕구 등의 용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를 용어를 키워드로 하는 논문들도 나온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교육과 소비의 문제는 교육내용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혹은 수단적인 교육에 무게를 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런 경향성이 현실적으로 교육의 본질과 완전히 유리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여가생활도 소비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흔히 '3S산업'으로 일컫는 관광산업은 대표적인 경우다. '태양(sun)', '바다(sea)'와 함께 '성(sex)'까지도 상품으로 소비한다. 성을 매개로 인간의 몸조차도 화폐경제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육의 상품화, 몸의 상품화, 전통과 역사의 상품화 등 수없이 많다. 이런 변화는 일상의 삶에서 물질의 풍요로움을 삶의 풍요로움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풍요로운 사회(abundant society)'에서 인간관계는 과거와 달리 타자와의 관계가 아닌, 사물과의 관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은 더 새로운 상품에 의해 자극을 받으며 유행으로 번져간다. 사람들은 다시 유행을 따라 더욱 사물 의존적인 존재가 된다. 이는 상품의 유용성이 아닌, 유행 혹은 이미지에 의해 구매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는 현상이다.오늘날의 소비 형태는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소비는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유도된 소비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 수단적, 소비적인 교육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소비지향적인 방향으로 갈수록, 비인간적, 비인성적으로 갈수록 인성교육은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는 의미다.이런 점에서 갈수록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성보다는 수단적 요소들을 강조함에 따라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다. 꽃의 향기가 백리를 간다면 사람의 향기는 천리를 가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인성교육의 당위성이 아닌 교육목표와 방향성이다. 현재 이루어지는 인성교육의 내용이 사회 전반의 변화와는 유리된 과거 회귀의 모습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여기서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나 삼강오륜식의 질서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7)............................................................이 시는 황지우의 첫 시집 표제 작품으로 이렇게 요약된다. 영화관에서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새떼들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까지이고 ‘주저앉는다’를 끝으로 마무리 된다. 애국가 영상의 새처럼 자유로이 날고자하는 꿈은 있었겠으나 현실과의 괴리로 그만 체념하고 주저앉는데, 우리 슬픈 젊은 날 7~80년대 내내 그러했다. 유신정권이 몰락한 뒤 광주민주항쟁 등 그토록 처절한 저항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은 들어섰고 우리는 꼼짝 마라 부동자세를 강요받았다.영화 시작 전 애국가를 상영한 것은 1971년 3월1일부터였다. “애국가의 올바른 보급과 존엄성, 애국심 고취를 위한 조치”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삼천리 화려 강산’을 담은 1분40초짜리 애국가 영상은 이후 20년간 국민의 일상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극장에서는 내키지 않아도 일어서야했고, 태극기와 더불어 애국가는 좋든 싫든 국민 의식에 침투되어 또렷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젊음과 자유도 함께 발목이 잡혔다가 1989년에야 폐지되었다.애국가가 나오면 국기를 향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작 그만’ 바로 부동자세를 취하는 일은 극장 밖의 일상생활로도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땅따먹기나 줄넘기를 하다가도 애국가가 나오면 배터리 나간 자동인형처럼 동작을 멈췄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듯이 싸움질 하다가도 국기 하강식을 알리는 애국가가 들리면 차렷 자세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했다. 대한민국 전역은 오후 6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전 국민이 1분 동안 일체의 동작을 멈춰야 했다. 조국에 충성을 다짐하는 일치된 국민의 모습을 보며 국가지상주의자들은 쾌재를 불렀다.그러나 그 사상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공식 행사나 정치 행사에서 애국가를 틀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리기 십상이다. 지난 7월19일 몽양선생 72주기 추모식에서는 애국가가 생략되었다. 이부영 이사장은 그 이유를 밝히며 순국선열의 추모식에 친일행적이 드러난 인사가 작곡한 애국가를 틀지 못하고 유보해야하는 입장이 편치는 않다고 했다. 그리고 8월8일 국회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공청회 개최가 예정되어있음을 알렸다.그러니까 지난 8일의 공청회는 아베 경제보복 조치와 반일 감정의 확산과는 상관없이 진작 계획된 행사였다. 언론과 일부 정치평론가들의 “반일에 미친 민주당이 이제 갑자기 애국가까지 들고 나와 부르지 말자고 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이참에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기회로 삼자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신중론도 제기됐다. 통일 한국의 국가를 새로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그 전이라도 검토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읽기…그것은 보수가 아니다

그것은 보수가 아니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문재인 정권은 일본 정부에게 사과하라!’ 일본의 극우 사이트에서 따온 말이 아니다. 서울의 엄마부대 대표 말이다. 그것도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옆에서 시위하면서였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아베 수상님,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과연 한국인의 말인지 귀를 의심하게 된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서 일본과 함께 전쟁의 전범이다.’ 일본 관변 역사학자의 주장이 아니다. 한국의 한 목사가 설교 중에 한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갈등을 아베가 만들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다.’ 전광훈 목사의 말이다. 일부 보수 언론과 지식인과 기업인도 가세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일본 내에서도 아베정권의 국제규범 위반과 무례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는 마당에 정작 한국에서는 아베를 두둔하는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들의 논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일본은 강하다.’ ‘한국은 일본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일본은 한국에게 은인이다.’ ‘최근 한일 갈등의 책임은 현 한국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일본에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거기서 한발 더 나간 이들은 ‘일본에 잘못 대응하고 있는 현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문제는 보수 정당들의 주장과 논리도 다르지 않다는데 있다. 앞에서 인용한 엄마부대 대표도 자유한국당의 디지털위원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보수가 아니다. 그들에게서는 보수의 중요한 가치와 논리와 품격이 보이지 않는다. 두 가지만 짚어본다. 첫째는 ‘애국’의 실종이다. ‘애국’은 보수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특히 외침 앞에 위태로워진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마저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 보수다. 그런데 위의 인사들은 한국의 주권과 자존심보다 아베의 심기를 더 중하게 떠받든다. 사실상 전쟁 상태임에도 역사 인식과 주장이 일본의 아베정권과 거의 같다. 그것은 보수의 자세일 수 없다. 가짜 보수일 뿐이다. 돌아보면 그런 주장과 행동은 과거 일제 때도 있었고 나치에 짓밟혔던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그런 이들을 보수주의자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냥 친일이고 나치 부역이며 매국일 뿐인 것이다.다른 하나는 자유무역 원리에 대한 입장이다. 오늘날 보수주의라면 자유시장주의를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추구한다. 국내에서 자유시장 정책을 지지하는 것처럼 국제 사회에서는 자유무역주의를 신봉한다. 그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정치적 이유로 자유무역 원리를 차버린 아베를 비판하고 있는 세계 주요국의 정치인과 언론과 지식인들은 대개 보수주의자들이다. 일본 내에서 아베가 잘못했다고 시위하는 이들이야말로 양심적인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 정치인과 언론인, 지식인들은 그렇지 않다. 당혹스러운 일이다. 자유한국당이 진정한 보수정당인가 질문받게 되는 이유, 보수 성향의 시민들까지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보수 정치인들과 보수 인사들이 과거 두 보수 정권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데 있다. 보수가 지켜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한국의 보수는 왜 실패했는지, 어떻게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뼈를 깎는 성찰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지지해 준 보수 유권자들을 포함해 국민 앞에 진정으로 참회해야 했으나 그것도 없었다. 역사 앞에 책임지는 이가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교훈을 얻는 대신 증오심과 권력욕만 키워 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사건건 정부를 비판하는 데만 올인한다. 심지어 가짜뉴스와도 손잡는다. 권력을 잡는데 도움된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애국과 논리와 품격은 잃어버린 채 권력투쟁에만 빠져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정치라고 착각한다. 일본의 극우세력과 같은 주장을 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은 그 결과일 뿐이다. 오는 15일은 74주년 광복절이다. 어느 해보다 뜻깊은 광복절이 될 것이다. 바람이 하나 있다면 한국의 보수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지금 무엇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잠시 멈춰 서서 성찰해야 한다. 그래서 주권국가의 자존심과 자유무역질서를 수호하는 참 보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보수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아낼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