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가랑비 하종오자주 님께서는 어디론가 갔다 오시고, 그럴 적마다 봄빛은 누리에 더 들어찹니다. 이상합니다. 님께서 아니 계실 때, 개구리들이 나오고 수로에는 새끼 고기들이 몰려 놉니다. 저는 둔덕에 불 질러 마른 풀 태우면서 해충 알이 죽기를 바라고, 또 지난해 떨어져 있다가 더러 새들에게 쪼아 먹히고 남은 곡식 알갱이가 올해에는 돋아나 제게 걷히기를 바랍니다. 무릇 사람을 위하여 사라지지 않는 미물은 없지만 사람은 함부로 미물을 위하여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 자신을 통해 깨칩니다. 새삼스럽게 깨칠 때, 재 덮인 둔덕에서 가느다란 연기 몇 줄기가 피어올랐다가 공중에서 흩어집니다. 아하, 불현듯 가리사니가 생깁니다. 님께서는 며칠씩 어딘가를 가시면 거기에서 저처럼 행하시고 돌아오시는군요. 그러니 님께서 아무 연락이 없으셔도 먼데서부터 봄빛이 어리다가 하늘까지 차올라 파랗지요. 님께서 아니 계실 때, 나무들은 움틔우고 등성으로 철새들은 날아옵니다. 이 무렵에 오는 비도 산에 들에부터 조심조심 잘게 옵니다. 이것도 그 사연 때문입니까? 이제 님께서는 제 곁에서 영영 떠나셔도 좋습니다.『님 시편』 (민음사, 1994).................................................................................................................... 님은 단순한 접미사에서 명사, 대명사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광범위하게 쓰인다. 님의 역사는 길고도 끈질기다. 고대시가 ‘공무도하가’에서 고려가요 ‘가시리’, 조선조 왕방연의 시조 ‘고운님 여의옵고’, 송강 정철의 가사 ‘사미인곡’,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이르기까지 님은 우리 민족의 문학사를 거의 관통하고 있다. 최근 사이버 공간에선 상대방이나 제삼자를 가리지 않는 범용 대명사로 광범위하게 쓰인다. 하종오 시인은 님을 모시고 시편까지 엮은 터라 ‘님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법하다. 산문시 「가랑비」의 님은 종교적인 신이라기 보단 관념상의 절대자 내지 자연으로 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봄빛이 온 누리에 가득차고, 가느다란 가랑비가 내린다. 개울 어귀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기지개를 켜고 물뱀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겨울동안 얼어붙었던 물길이 풀리고 시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면 갓 눈 뜬 어린 물고기도 세상 구경을 나온다. 님은 볼 일 보러 갔나 보다. 님이 없어도 제각기 제 할 일을 알아서 잘 한다. 시인은 밭두렁에 불을 질러 마른 풀을 태운다. 풀 섶에 깐 해충 알을 소각한다. 해충은 태워 없애지만 참깨씨알이나 콩알 등 남은 곡식 알갱이는 살아남아 소출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해충은 곡식의 포식자인 관계로 식량을 축내는 인간의 경쟁자이다. 자신이 해충이라고 불리는 걸 안다면 벌레가 퍽 억울해 할 것 같다. 벌레도 아마 고통을 느낄 것이다. 알 상태로 죄 없이 미리 화장당하는 해충의 신세가 가엾다. 인간을 기준으로 인간이 판단하여 어떤 생명체는 박멸하고 어떤 생명체는 보존한다. 그 정당성이 의심스럽다. 생명은 모두 존귀하다는 진리를 깨친다. 둔덕 위로 피어오른 한줄기 연기가 하늘가에서 스러진다. 시인은 깨달음을 얻는다. 님은 다른 곳에서 같은 일을 한다. 봄빛이 차올라 하늘까지 닿았다. 하늘이 파랗다.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가지마다 처녀의 젖 망울 마냥 연초록 새순이 살포시 터진다. 소년은 연한 가지를 골라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며 봄날을 맞이한다. 산등성이를 넘어온 철새들이 피리소리에 맞춰 공중곡예를 한다. 가랑비가 산과 들을 살짝 적신다. 님은 안 계시지만 봄은 완연하다. 이젠 님은 영영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다부진 홀로서기 선언이다. 오철환(문인)

모두가 바라는 간절한 소망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후두두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요란하여 밖에 나서 보니 노란색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있다. 쇠로 된 울타리 봉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배경으로 장미는 울타리를 신나게 타고 오른다. 봄이 찾아온 줄도 모르는 사이 5월은 끝자락으로 달리고 울타리를 장식하는 장미 송이를 보면서 어느 해 봄, 작은 포트에 담겨왔던 장미 모종을 떠올린다. 얼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느새 자라나서 저리도 탐스러운 꽃을 피우다니. 힘들다고 아우성을 해대는 인간에 비해 작고 여리기만 한 식물들은 얼마나 변함없이 또 알차게 고단한 시간을 엮어서 예쁜 꽃을 피우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신통하기만 하다.거리에 작게나마 활기가 돈다. 지난주 고3 개학으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손길이 분주하다. 학교에서는 열나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하루 세 번도 넘게 열을 체크하고 일회용 개인 식사를 나르느라 바쁘고 집에서는 마스크를 챙기고 손 소독제 주머니에 넣어 보내느라 바쁘다. 병원에서는 학교에서 의심 증상으로 보낸 아이들을 선별하고 입원할 아이를 받느라 분주하였다.이번 주엔 초등 1, 2학년과 유치원생이 드디어 학교에 간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걱정스럽지만, 입학통지서를 받고 아직 입학식도 못 한 어린 친구들은 학교를 무척이나 그리워한다. 학교 가면 얼마나 뛰어다닐 것인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면 반갑다고 얼싸안고 얼굴 맞대지는 않을지, 우르르 몰려다니지는 않을지, 답답하다며 마스크를 벗어 던져버리진 않을지 좀 걱정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은둔의 생활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학교에 가서는 꼭 마스크를 쓰고 있도록 가르치고 친구들 간에도 양팔 간격 이상을 꼭 유지하도록 누누이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린 학생들이 처음부터 잘 지킬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겠지만, 학교에서 처음부터 잘 가르쳐서 방역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하리라.날씨는 점차 더워지니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는 없고 마스크 끼고 공부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잘 참아낼까 우려는 된다. 오랜 시간 마스크를 쓰다 보면 호흡으로 인한 습기가 찬다. 그러면 바이러스 차단 효과도 떨어질 수 있으니 어릴수록 마스크는 더 자주 갈아주는 것이 좋다. 귀한 마스크를 자꾸 갈아줄 수 없다면 2~3개의 마스크를 말려가며 교대로 착용하는 방법도 권한다. 마스크를 꼭 쓰고 거리 유지를 하면서 구석구석 손을 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손 씻기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어린 학생들에 대한 상황도 고려하여 바른 대책을 세워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학교에서 손 씻기 한다고 모두 한꺼번에 수도꼭지 아래 모여드는 것도 문제일 것 같다. 양치질할 때는 더 조심해야 하리라. 마스크 벗고 물을 튀겨가며 칫솔질하다 보면 혹시 모를 감염에 노출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도 된다.아이들에게 가정에서 물 없이 발라 비벼 말리기만 하면 소독되는 손 소독제를 하나씩 챙겨 넣어서 조금이라도 자주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어떤 물체에 손이 닿았다면 바로 꺼내서 수시로 바르고 소독하도록 교육해야 하리라. 손을 씻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손 소독제는 완전히 마를 때까지 비벼주고 마스크는 자주 손으로 만지지 말고 얼굴에 손을 갖다 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손이 제일 더럽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눈, 코, 입이 가려워도 균이 있을 손을 대지 말고 그냥 꾹 참게 하거나 다른 천 같은 것으로 문지르는 것이 좋다 일러주어야 한다.어린 학생의 등교도 중요한 과제이겠지만, 입시를 앞에 둔 고3만이야 하겠는가. 저학년 학생들의 등교를 조금씩 유연하게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순차적인 개학이라고 하지만, 일단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 감염이 확산할 위험은 언제나 상존하니 말이다. 예전 과밀 학급이던 시절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2부제로 수업하던 때도 있지 않았는가. 현재도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또 경북의 한 지역에서도 감염 원인을 알 수 없는 확진자가 자꾸 발생하고 있다. 저학년 학생들의 등교 개학은 일단 시작은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우려되는 상황이 되면 바로 조처해서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플랜 B로 돌아가도록 해주면 어떨까 싶다.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올해 입학하는 아이, 그의 소원은 “지금 당장 학교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표정을 보면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모두 한 마디씩 우려를 표시하는 개학이다. 일단 시작해보고 조정하는 수밖엔 다른 방도가 없지 않으랴. 힘들게 코로나19를 이겨낸 아이의 소원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길.

음주운전은 범죄행위다

정선관문경경찰서 교통관리계장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방법이 기존의 고정식 검문에서 벗어나 선별식 검문 방식으로 변화됐다.이것은 라바콘 등으로 S형 도로를 만들어 서행을 시킨 다음 정상적으로 통과하지 않고 라바콘을 충격하거나 에스 코스를 이탈할 경우 음주의 의심이 있다고 판단하여 선별 검문하는 방식이다.하지만 과거에 비해 음주운전 단속 방법이 변경되자 일부 운전자의 음주운전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월의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4천101건 발생하여 전년 같은 기간 3천296건보다 24.4%가 증가했다. 사망자도 6.8% 증가됐다.이는 운전자와 접촉이 불가피한 일제검문식 음주운전 단속이 코로나 19로 중단된 결과로 풀이돼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방역체계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일상생활과 경제활동 등이 늘어나 중단되었던 각종 모임과 여행 그리고 회식이 늘어남에 따라 음주운전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경북 경찰에서는 코로나19로 변화되었던 음주운전자 검문방식을 비접촉식 음주감지기를 사용하여 일제 검문식으로 바꿀 예정이다.비접촉식 음주감지기는 공기중에 포함된 알코올 분자를 감지하므로 운전자가 후∼ 하고 불어 넣는 날숨을 내쉬지 않아도 된다.운전자는 단속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창문을 열고 마스크를 벗고 그냥 질문에 대답하면서 단순 호흡하면 된다.이때 경찰관은 비접촉식 음주감지기를 운전자의 얼굴 앞에 대고 약 3~5초간 대기하면 감지방식이 완료된다.인사회생활을 하면서 회피할 수 없는 술. 하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는 타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음주운전은 범죄행위이며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단란한 가정마저 파괴할 수 있는 행위로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농번기가 시작된 농촌에서도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음주운전에 모두의 경각심을 갖고 안전운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미와 가시

장미와 가시김승희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미래사, 1991).................................................................................................................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면 꽃의 여왕은 장미꽃이다. 꽃의 여왕 장미꽃이 5월에 피기 때문에 5월이 계절의 여왕에 등극한 건지도 모른다. 그게 뭣이든 이름값 하기가 쉽지 않지만 장미꽃은 역시 장미꽃이다. 담장에 만개한 장미꽃을 보노라면 절로 입이 벌어지고 발길이 머문다. 장미엔 가시가 있다. 신이 준 교훈이다. 허나 시인은 루틴한 은유의 틀을 깬다.빈손으로 세상에 나와서 지금까지 부지런히 살아왔다. 삶이 험하고 힘들더라도 열심히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리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어려움을 참고 극복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남들도 다 그러려니 했다. 인생이 고해라지만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으면 가벼워지기 마련이고, 고통의 바다를 헤엄쳐 가다보면 쉴 수 있는 섬이라도 나올 터이다. 앞만 보고 꿋꿋이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다. 비록 어렵고 괴롭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니. 이 고통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기쁨도 찾아오겠지.세상살이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삶의 본모습을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으니, 인간은 기껏 눈먼 장님이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여기저기 더듬어 본다. 그러다 보면 차차 코끼리의 실체를 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시인은 삶을 장미라 생각한다. 세상살이는 눈먼 손으로 장미를 만지는 일이다. 삶을 모르는 시인은 눈 먼 장님이다. 손끝으로 느끼는 삶은 온통 가시투성이다. 그토록 가시가 많을 걸 보니 아름다운 장미꽃이 많이 필 것을 기대하였다. 그래서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고통과 아픔을 참아내곤 했다. 장미꽃으로 그 보상이 주어진다 해도 가시는 가시다. 그렇지만 장미꽃을 상상하며 가시의 날카로운 아픔을 견뎌냈다. 살만큼 살면서 뾰족한 가시에 질리도록 찔렸다.참고 또 참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즐거운 날이 온다는 푸시킨 시인의 말을 믿고 싶다. 삶에 무릎 꿇고 싶지 않다. 안 참으면 또 어떡할 것인가. 참을 수밖에 없는 외길 인생이다. 절망의 결과가 두렵다. 희망을 믿고 절대자에 의지하는 것이 약한 인간이다. 하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이젠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다. 삶을 정리해도 크게 억울하지 않을 때다. 가시에 무수히 찔리면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니 이젠 인생을 알아도 좋을 때가 아닌가. 삶을 관장하는 절대자에게 묻고 싶다.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장미꽃이 피는 가시 있는 장미인가, 장미꽃이 피지 않는 가시만 있는 장미인가. 아니면 장미꽃만 피는 장미와 장미가시만 무성한 장미로 삶을 숙명처럼 갈라놓은 것인가. 이젠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오철환(문인)

감염병 전문병원, ‘TK패싱’ 말 나오지 않아야

질병관리본부가 추진하는 영남권 감염병 전문병원 구축 사업에 대구, 경남, 부산 등 3개 광역지자체 7개 병원이 뛰어들었다. 지역 간 경쟁은 치열한 3파전 양상이다.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은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이 확산될 때 지역 내 발생 환자의 격리 및 치료를 위한 전문기관이다. 재난수준의 감염병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지역 중심병원 역할을 하게 된다. 신종 감염병 발생에 대응하는 국가차원의 인프라다.대구지역에서는 칠곡경북대병원·영남대병원·계명대 대구동산병원·대구가톨릭대병원 등 4곳의 병원이 신청했다. 경남에서는 양산부산대병원·창원경상대병원 등 2곳이, 부산에서는 삼육부산병원이 공모에 참여했다. 최종 선정결과는 서면 및 발표 평가, 현장 확인 등을 거쳐 다음달 24일 발표된다.감염병 전문병원에는 국비 409억 원이 지원돼 음압격리병실 36개(중환자실 6개), 음압수술실 2개 등이 포함된 감염병 전담병동이 설립된다. 근무 인력은 전문의 4명 이상(감염병 전문의 2명 이상), 전담 간호사 8명 이상이어야 한다. 평시에는 결핵 등 호흡기 환자 입원·치료 뿐 아니라 감염병 대응능력 제고를 위한 교육 및 연구기능도 병행한다.대구에 영남권 감염병 전문병원이 설치돼야 하는 당위는 하나둘이 아니다. 대구는 이번 코로나 사태 과정에서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동시에 전 시민이 한마음으로 뭉쳐 빠른 시간 내 사태를 수습한 감염병 대응 모범지역이다. 누가 봐도 권역별 전문병원 유치의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또 전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중증 환자를 진료했고, 비상 대응체계 학습효과가 풍부하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는 평가 지표다.대구시도 적극 지원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사태 초기 병상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대구시는 지역의 병원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면 음압병실 추가 비용 및 지역 병원 간 대응협력 네트위크 운영경비로 시비 12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와 민간의료협업체제인 메디시티협의회 등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도 유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영남지역 한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이점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다.영남권 감염병 전문병원 선정에서만큼은 TK패싱이란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대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의 최적지다. 특별재난지역에 대한 지원의 일환으로라도 감염병 전문병원은 대구로 와야 한다.

내안의 ‘성역’은 없어져야

홍석봉 논설위원# 1. 1980년대 중반 한 종교단체 관계자 20여 명이 신문사 편집국에 항의차 방문했다. 그 전 날 보도된 종교단체의 건물 건립을 둘러싸고 주민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쥐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주택가의 종교시설 건립은 기피 대상이었다. 주민들이 구청에 항의하는 등 상당한 소동을 벌였다. 이와 관련한 보도에서 한 종교단체 시설이 거론됐다. 그중 ‘정신지체장애자 수용시설’이라는 단어가 문제됐다. 당시 그 종교단체 관계자들은 ‘정신장애자’라면 자신들을 ‘광인’ 으로 치부하는 것 아니냐며 기자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기자는 표현 문제를 정정보도해 주겠다고 사과했다. 결국 그들 단체 행사를 보도해 주는 것으로 상황을 일단락 지었다. 이후 기자는 종교 관련 사건 보도는 극도로 조심했다. 당시의 곤혹스러웠던 기억과 사과했던 아픔까지 고스란히 트라우마로 남았다.# 2. 1980년대 후반 보훈처장이 대구지방보훈청 초도순시에 나섰다. 당시 대구 남구 대명동 보훈청에는 보훈처장 방문 사실을 전해 들은 상이군인 등 보훈대상자 한 무리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시위 중 보훈처장의 업무보고 자리에 밀고 들어갔다. 보훈처장 면담을 요구하며 고함을 지르고 의수(당시는 요즘 같은 세련된 모양이 아닌 쇠갈고리 형태였다)를 휘두르며 항의하자 놀란 보훈처장이 인근으로 피신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들은 이튿날 언론사에 찾아가 의수로 편집국 테이블을 찍으며 쇠갈고리 표현에 항의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내겐 이게 손이다. 왜 손을 쇠갈고리라고 하느냐”며 분개했던 것이다. 언론사 간부들이 고개 숙여 사죄하고서야 간신히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이후 상당 기간 상이군경은 기피 대상이었다.-종교 및 시민단체 등 위세 보이던 ‘성역’# 3. 2000년대 중반 경북도내 한 도시의 기관장 오찬 모임. 남자 직원 2명이 전용 의자에 앉은 장애인 한 명을 끙끙대며 양쪽에서 부축해 오찬 자리에 앉혔다. 시장을 비롯한 참석 기관장들이 모두 일어나 뒤늦게 자리에 참석한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는 장애인 단체 대표였다. 뒤에 알고 보니 그는 그 지역에서 시장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인사였다. 그 지역에서 그의 눈 밖에 나면 여러 가지로 곤란한 일을 겪는다는 말이 돌았다. 그와 일이 얽혀 봉변을 당한 경찰 간부의 얘기가 전설처럼 회자됐다. 그는 그 지역에서 모두가 어려워하는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장애가 오히려 자산이었다. 그 힘을 맘껏 활용했다.위안부피해자를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윤미향 사태가 기자의 옛 기억을 소환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은연중에 형성된 성역이 있다. 이 성역은 때로는 약자라는 이름을 앞세워, 때로는 단체와 종교의 이름으로 쉬이 접근이 어려운 영역을 형성해왔다. 이들은 시민의 선의에 기대어 스스로 설정한 영역 내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이들 중에는 사회 상규에서 벗어난 독특한 조직 운영과 관리로 주목받기도 했다. 대개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폐쇄적 운영으로 물의를 빚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의연대 처럼 어떤 일을 계기로 파행 관리와 운영이 드러나기도 한다.-권력에 기대 영향력 발휘, 성역 부정해야사회 발전과 시민 의식의 성숙에 따라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이 허울을 벗듯 성역은 하나 둘 무너졌다. 이제 성역이라고 할만한 조직과 단체는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권력에 기대 비상식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들이 없진 않다. 경찰과 검찰까지 우습게 여기는 이들이다.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이 버려야 할 4대 우상(偶像)으로 종족, 동굴, 시장, 극장의 우상을 꼽았다. 그는 편견과 선입견이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베이컨의 정의 처럼 극장의 우상과 동굴의 우상이 만든 것들이 우리 사회의 성역이었다.윤미향 사태로 절대선으로 여겨지던 한 시민 단체 운영자의 허상이 무참하게 깨뜨려졌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신천지 교회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우상을 만든 것도 인간이고 깨뜨리는 것도 인간이다. 편견이 만든 허상은 당연히 적폐 대상이다.

구미 떠나는 LG전자와 ‘리쇼어링’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등 세계 각국이 기업 유턴(리쇼어링)에 공을 들이고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하면서 리쇼어링이 정책 우선순위가 됐다. 이런 가운데 LG전자가 구미의 TV 생산라인 일부를 인도네시아로 이전키로 해 대구·경북이 충격에 빠졌다. LG전자는 글로벌 TV시장에서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하지만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북도와 구미시로 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 아닐 수 없다. 이전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더라도 대통령까지 나서 리쇼어링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한국 기업의 유턴, 해외의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LG전자의 TV 생산 라인 해외 이전 조치는 글로벌 TV 수요가 정체된 가운데 가격 경쟁이 갈수록 심화돼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임금은 한국의 15%~20% 수준이다.하지만 세계 각국이 리쇼어링에 목을 매고 있고 대통령까지 나서 리쇼어링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LG전자의 결정은 정부 방침에 정면 배치됨은 물론 정부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LG전자가 구미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LG전자는 2006년 디스플레이 공장을 파주로 이전 신설, 구미 시민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 주었었다.LG그룹 계열사인 LG화학은 지난해 구미에 5천억 원을 투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속칭 구미형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정부 시책에 따른 것이다. 이것이 LG전자의 해외 공장 확장 투자에 따른 부담을 덜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LG전자의 TV 사업 부문 캄보디아 이전은 구미 시민의 뼈아픈 기억을 소환했다. 삼성과 LG 양대 기업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를 잃은 구미의 전자 산업 생태계가 일거에 붕괴되지 않을지 우려된다.LG전자의 이번 사례는 기업은 경쟁력 강화 즉, 기업 생존이 가장 우선 가치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정부 리쇼어링 정책의 한계를 잘 보여준 셈이다.한편에선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이 수도권 규제완화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리쇼어링의 핵심이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인데 이 경우 리쇼어링 기업 대부분이 여건과 환경이 좋은 수도권에 몰릴 것이라는 점이다.결국 리쇼어링 기업의 지방 유치는 확실한 당근책이 없이는 어렵다. 국내 유턴 기업이 지역으로 올 경우 교육과 의료, 주거 등 파격적인 혜택이 있어야 한다. 지자체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박준우 시시비비…거짓말과 숨기

코로나 사태가 5월 초 황금연휴 직후 터져 나온 이태원클럽발 집단감염 소식으로 다시 경계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클럽을 찾았던 잘못 때문인지 클럽 방문자 중 일부는 진단검사에도, 방역당국의 연락에도 응하지 않고 있어 국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게다가 확진된 일부 방문자의 경우 역학조사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이동경로를 숨겨 감염병 차단에 차질을 빚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빨리 진단검사를 받는 게 최선의 선택임에도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이 수천 명에 달한다니 그저 걱정스럽고 다만 운이 따라 큰 탈 없이 시간이 흘러가길 바랄 따름이다.이태원클럽 집단감염 과정에서 드러난 기막힌 일 중 하나가 확진판정을 받은 20대 학원강사의 ‘거짓말’이었다. 수학 강사인 그는 5월2일 새벽 서울 이태원 일대 클럽을 찾았다가, 6일 출근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강의했다고 한다. 6일은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공개된 날이었다.9일 확진판정을 받은 그는 또 역학조사에서는 직업을 속이고 전염병 차단에 가장 중요한 이동경로를 거짓으로 진술했다. 그것도 나중에 경찰조사를 통해서 들통난 것이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사이 그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과 그 학부모, 동료 강사 등 수십 명이 감염됐고, 게다가 그중 학생 두 명이 감염 사실을 모른 채 교회 예배에 참석한 것이 확인됐다. 한 사람의 거짓말이 교회 신도를 비롯해 1천700여 명이 진단검사를 받아야 할 정도로 사태를 부풀린 것이다.해당 지자체는 유사 사례 발생을 막기 위해 관련법에 따라 그 학원강사를 고발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이 이미 다 크게 벌어진 다음의 조치였다. 이 사건은 파장이 컸던 만큼 SNS나 온라인에서는 그의 개인 신상과 거짓말 이유 등을 두고 온갖 뒷얘기들이 떠돌기도 했다.거짓말과 관련한 재미있는 글을 본 게 있어 소개한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세 부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거짓말을 만드는 부류로, 이들은 힘센 사람들이라서 원하는 목적을 얻으려는 방편으로 종종 거짓말을 이용한다. 둘째 부류는 거짓말을 퍼뜨리는 사람들로, 이편저편을 기웃거리는 기회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거짓말을 용납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참, 거짓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지가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이태원클럽 집단감염에서는 또 성 소수자들의 ‘숨기’ 행동이 논란거리가 됐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태원 클럽 중 몇몇 업소가 성 소수자들이 출입하는 곳으로 알려지고, 또 진단검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자 중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보도가 나오자, SNS와 온라인에서는 그 업소와 성 소수자들을 비하하고 욕하는 이들과 다름을 비난해선 안 된다는 이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이를 의식한 듯 방역당국은 정례브리핑에서 “차별과 배제는 공동체 정신을 훼손할 뿐 아니라 코로나19 감염을 드러낼 수 없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결국 방역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또 익명 검사제를 도입해 이들의 진단검사를 유도했다.근래 사회, 경제 현상을 설명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이론 중에 ‘미니멈의 법칙’이란 게 있다. 아무리 단단하게 만든 쇠사슬이라도 결국 그 전체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가 결정한다는 설명으로 더 알려진 이론이다.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공동체의 약한 고리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 생생하게 보고 있다. 한 사람의 일탈로, 공동체 모두가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됐고, 또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이 모두에게, 결국 자신에게도 위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하고 있다.그뿐인가. 위기에 맞닥뜨린 경제 약자들의 삶을 그냥 내버려 두면, 그게 결국 공동체 전체의 위기로 이어져 그 피해는 모두가 함께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닫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국가라는 공동체의 약한 고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시련과 고통에서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향만리…연필

연필김소해붉은 입술 그보다 붉어 조용한 검은 입술/ 함부로는 아니지만 입을 열면 소나긴 듯/ 백지를/ 적시는 고백/ 백년이든 읽겠습니다-단시조집, 『대장장이 딸』(작가, 2020)김소해는 경남 남해 출생으로 1983년 현대시조 추천완료 후 198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투승점을 찍다』『만 권인 줄 몰랐다』와 시조선집 『하늘빗장』, 단시조집 『대장장이 딸』등이 있다. 그의 시조는 단아한 서정과 더불어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발화를 보인다. 시 자체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삶의 방향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웅숭깊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비유와 주제의식의 발현으로 공감대를 넓히기도 한다.근간에 시조공동체가 더불어 힘쓰고 있는 많은 일들은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되고 있다. 다만 시조문단에서만 그것을 알 뿐 외부사회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선조가 물려준 정신적 문화유산 가운데 시조만한 것이 얼마나 더 있을까? 또 그 일을 위해서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김소해 시인, 그가 그 일익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문청 시절에 유독 잘 찢어지는 갱지에 향나무 연필로 시를 즐겨 썼던 기억이 있다. 흑연 냄새와 나무 향기가 나는 연필이 시를 더 잘 쓰게 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연필로 시 쓰기를 즐겼던 것이다. 이처럼 연필은 글 쓰는 이에게는 설렘의 대상이다. 잘 깎아놓은 향기로운 연필을 보면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백지에 새로운 시 한 편을 펼쳐보고자 하는 창작 욕망이다. 시의 화자는 붉은 입술 그보다 붉어 조용한 검은 입술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검은 입술이라니! 무언가 도전적이지 않는가. 참신한 비유가 시의 품격을 높인다. 함부로는 아니지만 입을 열면 소나긴 듯, 에서 보듯 소나기가 등장한 것은 시인의 작업에 불이 붙었다 것을 의미한다. 연필 끝으로 내리꽂히는 시의 빗줄기를 맞을 준비가 된 것이다. 마침내 백지를 적시는 고백이기에 백년이든 읽겠습니다, 라고 작정하듯이 말한다. 어찌 천년인들 못 읽겠는가.그는 또 다른 단시조‘대장장이 딸’에서 사랑을 훔치려다 불을 훔치고 말았다, 라고 말하고 있다. 정작 얻으려고 한 것은 사랑인데 불을 훔친 것이다. 무쇠 시우쇠, 조선낫을 얻기까지 숯덩이 사르는 불꽃 명치 아래 풀무질은 종생토록 다함이 없을 것이다. 시인은 대장장이이자 대장장이의 딸이기도 하다. 조선낫을 얻기까지, 한 편의 시를 얻기까지 풀무질을 결코 한시도 쉴 수가 없다. 그러한 강렬한 창작의지의 발현이 곧 ‘대장장이 딸’이다. ‘연필’과 연계해서 읽으면 그 뜻이 더 깊어질 것이다.앞에서 보다시피 그의 시조는 참신하다. 낡지 않다. 예측 불허의 결구를 통해 반전의 묘미를 드러내기도 하고, 따뜻한 인간애를 탐구한다. 그의 단시조는 하나의 전범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언어미학적 성취와 함께 도저한 깊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시조를 신앙처럼 받들며 살고 있기에 이만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조를 통해 백년만의 고백, 백년의 고백을 거듭한다. 자신과 당대의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시조로 부단히 표출한다. 진정으로 미쁘게 여기고 있는 세상을 향한 답신이자 시조 자체에 대한 사랑이다.그의 빛나는 시조 인생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이정환(시조 시인)

폭염, 더 크게 대비해야

김종석기상청장올해 여름이 심상치 않다. 지난 5월 1일, 강원동해안과 대구‧경북지역에는 일최고기온이 30℃도를 넘는 곳이 많았다. 강원 삼척 원덕 33.6℃, 울진 32.8℃, 대구 31.3℃를 기록하였다. 이 기온들이 정말 올여름 폭염을 알리는 예고편 일까?기후학적으로 10년 단위의 여름 시작일은 일평균기온이 20℃ 이상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는 첫날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따라 여름의 시작 일자가 빨라지고 지속 일수가 증가하면서 올해 여름은 얼마나 기록적인 폭염이 나타날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기상청에서는 이처럼 빨라지고 변화하는 폭염에 대한 대비로 폭염 관련 정보를 5월부터 개선하여 운영을 시작했다. 기상청에서는 그동안 폭염 대비를 위해 2008년부터 폭염특보를 운영하였다. 2008년에는 최고기온에 기온과 습도를 함수로 표현한 열적스트레스를 나타내는 열지수를 함께 고려한 기준으로 운영을 하였다. 하지만 기준을 단순화하여 국민의 이해가 쉽도록, 2012년 최고기온만으로 폭염특보 기준을 변경하였다.또한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최근 기록적인 폭염이 많이 발생하였는데 특히 2018년의 폭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8월 1일 홍천에서 41℃를 기록하면서 관측 이래 일 최고기온 극값이 경신된 바 있다. 2018년 당시 전국의 폭염 일수는 31.4일, 열대야 일수는 17.7일을 기록하며 1973년 이후 1위를 기록하였다. 대구의 경우 2018년 일 최고기온이 33℃를 넘는 날이 연속적으로 26일간 이어지면서 약 한 달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불볕더위의 여름을 이겨내야 했다.이와 같은 살인적인 폭염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자도 급증하였는데, 질병관리본부에서 발간한 ‘2018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신고현황 연보’에 따르면 2018년 온열질환자가 4,526명, 사망자가 48명으로 집계되었다. 호우나 대설 같은 자연피해와 달리 그 피해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누적되어 잠재되어 있다가 급작스레 피해가 증가하면서 2018년에는 국가 자연재난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기상청은 그간 폭염에 대비하기 위해 폭염특보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더위체감지수, 2018년에는 폭염영향예보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폭염특보, 폭염영향예보, 더위체감지수가 각각 다른 기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장기간 폭염이 이어지는 일이 늘어나고 5월에도 최고기온 기준에 부합해야지만 폭염특보가 발표가 되어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폭염 관련 정보 기준의 통합 필요성에 따라 기온과 습도를 고려하는 체감온도를 도입하여 올해부터 폭염특보, 폭염영향예보, 더위체감지수 모두 체감온도를 기반으로 제공한다.5월 15일부터 폭염특보의 경우 기존 일 최고기온 대신 일 최고 체감온도가 33℃(35℃)이상인 상태가 2일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 주의보(경보)가 발표된다. 더불어 폭염의 위험 발생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정성적 기준(급격한 체감온도 상승 또는 폭염 장기화 등으로 중대한 피해발생이 예상 될 때)을 추가 도입하였다.‘체감온도 기반의 폭염특보’는 낮은 습도에서는 현재 온도보다 덜 덥게 느끼고, 높은 습도에서는 더 덥게 느끼는 것과 일치하여 직관적으로 일반 국민의 이해가 쉽고 전반적으로 기온만 사용하는 것보다 위험감지율이 높은 장점이 있다. 따라서 새로워진 폭염특보 운영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폭염을 고려한 위험성 정보 제공 및 더위에 관한 일원화된 정보 제공으로 국민 혼란을 감소하고 정보 활용도가 증가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 불릴 만큼 무서운 자연 재해이다. 하지만 폭염에 대한 정보를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면 예방할 수 있는 자연재해다. 올여름 기상청은 폭염 관련 정보를 개선‧제공을 통해 방재기관과 국민이 선제적으로 폭염에 대비하여 폭염 피해 최소화에 기여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식문화부터 바꿔야

이현도농협창녕교육원 교수 지난 5월 6일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지 얼마되지 않아 수그러들었던 코로나19가 이태원 클럽발 지역감염으로 확산되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3,4차 감염자로 인한 확진자까지 발생하는 요즈음, 부득이하게 급한 일이 생겨 며칠 전 지인과 오랜만에 즐겨찾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에서 부득이 마스크를 벗고 식사하는 것도 께름직한데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사테이블 위의 양념통, 수저통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주문한 된장찌개에 덜어먹을 수 있는 접시와 국자까지 제공되지 않았다.코로나19는 공기 중 비말뿐만 아니라 식사 중에도 전염으로 인해 확진자 발생이 빈발해 사실 국, 찌게로 대표되는 우리의 여럿이 덜어 먹는 음식문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수저통 문화는 이 같은 우리 일상의 식문화를 차츰 바꿔야한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열한 우리의 국과 찌개 같은 음식은 가열했다하더라도 완전히 안전한 것이 아니다. 통상 바이러스는 60도 이상 열에 닿으면 사멸하지만 식었을 때 여러 숟가락이 섞이면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선진국 식당을 여행 중에 이용해보면 음식주문을 하고서야 직원이 물 컵, 수저 등을 제공해 주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식당테이블 위 수저통에 수많은 사람들의 손이 거쳐 갔을 것이고, 그들의 숟가락이 소금과 양념통을 특히나 수저통 밑바닥을 세척하는 식당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하는 의문도 가져 본다.프랑스식품환경위생노동청(ANSES)은 코로나19가 감염자의 오염된 손으로 음식 등을 만지거나 기침,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침으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 당국 또한 음식을 각자 접시에 덜어 먹도록 권고하고 있다. 감염병 확산을 막으려면 생활 속 위생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선 그 무엇보다도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포스트 코로나에 당분간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등의 위생수칙을 지속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오랫동안 우리의 일상화된 식문화 관행 또한 하나씩 바꿔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것은 곧 상대를 배려하는 습관뿐만 아니라 각자의 위생에도 도움이 된다. 이제는 공용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한 ‘각자 따로 덜어 먹는’ 방식, 음식 주문 후 숟가락, 양념을 제공하는 방식을 통해 점진적으로 우리의 식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시대다. 장기적으로 코로나19를 완전 극복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작은 우리의 일상도 고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다.

등교 수업 재개…빈틈 없는 현장대응 긴요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 등교 수업 첫날인 20일 포항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우려하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났다.포항에서는 일부 학교에서 발열 증세를 보인 학생이 잇따라 발견돼 18명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경북 전역에서는 32개교 59명, 대구에서는 14개교 21명이 고열, 설사 등의 증세로 귀가조치됐다.인천에서는 고3 학생 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5개 구 66개 고교의 학생들에게 등교중지 조치가 내려졌다. 경기 안성에서도 전날 발생한 확진자의 동선이 확인되지 않아 9개 고교의 등교가 하루 연기됐다.일부 지역의 등교중단과 발열환자 발생 사태는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안타깝다. 고3 등교 수업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한 생활방역 체계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지역사회가 일상과 방역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하게 된다.학부모는 물론이고 전 국민의 관심이 각급학교 개학 후 1~2주간 확진자 발생 여부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일단 등교 수업을 시작한 이상 그 다음은 철저한 관리다. 만에 하나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면서도 빈틈없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방역당국은 전날 “등교 수업이 코로나 관리와 관련한 또 하나의 큰 도전”이라며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므로 일부 혼선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각오하고 있다”고 밝혔다. 완벽한 대응으로 혼선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대구시교육청은 등교 수업에 앞서 확진자 발생 등 유사시 방역업무 전반에 대한 지원과 자문을 담당하는 ‘학교 현장 의료자문단’을 발족시켰다. 경북소방본부는 의심증상 학생, 교직원 이송 전담 구급대 운영에 나섰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첫날 상황을 철저히 분석해 허술한 곳은 없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학교는 대표적 밀집 공간이다. 지역사회 내에 있는 만큼 독립된 공간도 아니다. 취약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지역사회 내 감염이 최소화 되면 당연히 학교 내 감염 우려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국내 전 지역이 코로나 위험에서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20일 기준 1일 확진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32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국내 발생이 24명이어서 우려를 더한다. 다행히 우리지역에서는 대구의 1명 뿐이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등교하는 학생은 물론이고 모든 시민이 생활 속 거리두기가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번거롭고 귀찮지만 마스크 착용, 손씻기 등 개인방역 수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모두가 인내심을 갖고 대응하지 않으면 물리치기 어렵다.

문향만리…학

학황순원∼전쟁의 비극은 이제 그만∼… 6·25전쟁이 발발한 해 늦가을이다. 국군의 진격으로 수복된 3·8선 접경 북쪽 마을이 그 배경이다. 성삼은 전쟁 이태 전에 3·8선 접경 남쪽마을로 이사하였다. 전쟁 발발 후 남쪽으로 피난 갔다가 치안대원으로 고향마을에 돌아왔다. 고향마을에 들어서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지만 지금의 고향은 옛날의 고향이 아니다. 전쟁이 한차례 휩쓸고 간 마을은 삭막하다. 죽마고우 덕재가 농민동맹 부위원장을 맡은 죄로 잡혀왔다. 성삼은 덕재를 호송하는 일을 자청한다. 두 사람은 담 모퉁이에서 호박잎 담배를 나눠 피고 밤 서리를 같이 하던 단짝동무다. 그 동안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서로에게 물어본다. 상대의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사람을 죽인 일이 없다는 반응에 성삼의 마음이 열린다. 빈농에 근농이라 농민동맹 부위원장직을 맡았다고 한다. 함께 놀려먹었던 꼬맹이와 결혼했단다. 피난을 안 간 이유가 농토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덕재의 말에 성삼은 같은 경험을 해본 농민의 자식으로서 공감한다. 덕재가 이념과 무관한 농민이라는 사실에 성삼은 단짝동무로서의 신뢰를 회복한다. 고개를 내려온 곳에서 성삼은 주춤 발걸음을 멈춘다. 전쟁 통에도 전처럼 평화롭게 살고 있는 학 떼를 본다. 열 두어 살 때 성삼은 덕재와 같이 학을 잡아 애완동물처럼 갖고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서 누가 학을 쏘러 왔다는 말을 듣고 학을 풀어 주었다. 그 옛날 일을 생각하던 성삼이 학 사냥을 하고 가지며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준다. 어리둥절해 하던 덕재는 성삼의 의도를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어 도망한다. 높푸른 하늘엔 단정학이 유유히 날고 있었다.…순박한 이웃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하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보통사람을 살인자로 만든다. 군복을 입거나 완장을 차고 죄의식 없이 저지른 살인이라고 괜찮은 건 아니다. 전쟁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파멸을 낳는 악마적 이벤트다. 신봉하는 이념을 실현시켜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야욕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전쟁을 없애야 무모한 집단 살인을 막는다. 다시는 참혹한 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은 작가의 영역이기도 하다. 「학」에서 추구하는 테마다. 한편의 감동적인 문학작품이 총칼이나 사자후보다 더 효과적이다.동족상잔의 비극이 적으로 만난 단짝친구의 얄궂은 운명으로 구체화된다.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한 두 사람이 본인의 의사와 달리 적이 되어 고향마을에서 조우한다. 사는 곳이 남북으로 조금 떨어져 있었던 이유로 적이 되었다. 다른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적의 없는 친구를 포로로 잡았다. 전쟁이 지나간 고향마을은 옛날 고향마을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살벌한 분위기다. 동네어른들도 치안대원인 성삼을 만나면 엉거주춤 뒷짐을 진 채 성삼의 눈치부터 살핀다. 고향의 산천과 들판은 비록 변함이 없지만 이웃 간의 정과 믿음이 무너졌다. 고향의 푸근함과 고향사람의 정감이 사라졌다. 도망가도록 풀어주었지만 총을 쏠까 봐 눈치를 보았다. 죽마고우마저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 아이러니컬하다. 성삼도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풀려난 덕재가 도리어 성삼을 해코지하는 상황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전쟁터에선 상대방을 죽여야만 내가 산다. 한창 전쟁 중에 적군을 믿기엔 세상이 너무 뒤숭숭하다. 포승줄을 풀어주고 또 숨어서 도망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학을 살리려고 하늘로 날려 보내던 해맑은 휴머니즘을 본다. 사랑과 믿음을 간직하는 한 희망은 있다. 오철환(문인)

가정의 달에 생각해 보는 엄마의 마음

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퇴근 길에 병원 전화가 울렸다. 5일 전에 다쳐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봉합했는데 실밥을 뽑아줄 수 있겠느냐는 문의였다.큰일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잊어버렸다. 며칠 뒤 실밥을 뽑겠다면서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딸이 함께 병원을 찾아왔다.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찾아온 모습을 보고 진료실에서 환자를 맞았지만,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나서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었다.코에서부터 턱에 이르기까지 얼굴 절반을 반창고로 붙이고 있었다. 처치실에서 반창고를 다 떼어내고 보니 콧등, 코끝, 인중, 입술, 턱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깊은 상처와 함께 봉합한 실밥이 보였다.마치 얼굴 전체를 그대로 도로에 들이받거나, 남에게 얻어맞지 않고서는 생길 수 없는 상처였다. 혹시 누구에게 구타당한 것이 아닌가 물어보았다. 함께 방문한 할머니,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정어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딸과 함께 나들이 갔다가 넘어지는 딸을 보호하려고 감싸다가 자신을 미처 돌보지 못해 얼굴을 그대로 도로에 부딪쳤다는 것이다.얼굴을 다친 것 이외에도 이빨도 함께 다쳤다고 한다. 자식을 보호하려고 몸을 던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형 사고가 된 것이다.자초지종을 들은 후 상처를 자세히 보았다. 콧등과 코끝, 턱 부분의 상처는 이제 실밥을 뽑아도 될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인중과 입술은 직접 땅 바닥에 부딪친 자리였던 모양인지 꿰맨 실밥 주위로 타박상을 입은 조직과 함께 누렇게 죽은 살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다.이 정도 상처라면, 봉합수술을 한 다음 날부터 상처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수술 후 그대로 붙여둔 상태로 반창고 때문에 치과 치료도 못하고 닷새를 방치한 셈이 된 것이다.흔히 도로나 길에서 넘어져 다치게 되면, 찢어지는 상처와 함께 타박상이 복합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처를 치료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우선 도로나 길에 남아 있는 작은 돌이나 흙이 마치 파편처럼 상처에 박히는 일이다. 마취를 한 다음, 상처를 충분히 세척하고 부드러운 솔로 살살 닦아내면서 파편들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확실히 제거하지 않으면, 마치 문신처럼 검은 반점들로 남게 된다.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찢어진 상처 주변의 손상된 조직들이다. 손상을 입은 정도에 따라 피부가 죽어 들어가는 현상이 계속 진행하기 때문에 초기에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부분은 제거한 다음 봉합을 해 주는 것이 덧나지 않는 길이다.상처에 문제가 없는 부위의 실밥을 모두 제거했다. 그 후 늦었지만 누렇게 죽은 살들을 모두 제거하고 다시 꼼꼼하게 봉합해 주었다. 다음 날 상처가 깨끗해진 것을 확인하고, 며칠 뒤 재수술한 실밥을 제거해 주었다. 깨끗해진 입술과 코 밑의 상처를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상처가 얼굴 한가운데 그것도 직선이 아닌 여러 갈래로 불규칙하게 만들어져서 흉터가 많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흉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된 셈이다.흉터가 심하게 남을 텐데,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할머니와 어머니에게는 손녀이자 딸이 무사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하면서 안도하는 눈빛이었다.그렇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보기 싫은 흉터가 모두에게 마음의 부담과 후회로 남지 않을까? 조금 더 조심했으면 이렇게 심하게 다칠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후회할 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미뤄 두었던 치과 치료도 열심히 하면서 흉터가 좋아지도록 오랫동안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해 주었다.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직접 희생한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하루였다.

누가 최종 리스크테이커(risktaker)가 될 것인가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코로나19로 전대미문의 경제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언은 이미 확정적인 미래가 된 지 오래다. 경기 회복 형태도 과거처럼 침체 후 급반등하는 V자 형태가 아니라 스우시(swoosh,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 옆모습을 형상화한 스포츠 용품업체 나이키의 상표)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백신개발 지연과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코로나19 재확산 현상 등을 고려해보면 대체적으로 수긍할 수밖에 없는 귀결임에는 틀림없어 보이고, 이 또한 확정적인 미래가 되어 간다.이 지경이 되다 보니 시장에서는 비관론자들이 말하는 확정적인 미래를 회피 또는 방지하기 위한 정책 당국의 노력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IMF사태를 경험한 바 있는 국내에서는 미국이나 일본, EU 등 주요 선진국처럼 우리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나 금융기관 중심의 시중 유동성 조정과 같은 전통적인 통화정책에서 벗어나, 좀 더 공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앙은행이 가진 강력한 무기인 금리와 통화 발권력을 충분히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신용도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청산가치보다 잔존가치가 높은 기업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렇게 구제된 다수의 기업들과 연관된 많은 일자리들도 지켜낼 수 있게 된다. 즉 기업과 노동자는 당장의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을 가지게 될 것이고, 중앙은행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원자가 되는 것으로 손보다는 득이 많은 게임이라는 것이다.3차 추경 준비 당사자인 정부 입장에서도 혜택이 있긴 마찬가지다. 경기 침체로 세수는 줄어들 것이 확실한데 세출은 늘려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부족분을 국채발행으로 메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때 기준금리가 제로에 한없이 가깝거나 제로 수준이라면 국채발행에 따르는 이자부담은 크게 낮아진다. 일본이나 EU처럼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하고, 단기실질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빚이 빚을 낳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한다는 비난과 도덕적 심리적 압박감에서도 다소나마 해방될 수 있다.그런데 실상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강력한 벽에 막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은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기축 통화국이거나 일본과 EU처럼 그에 준하는 국가신용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 국가들의 중앙은행과 같은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다. 일부 남미 국가들처럼 통화를 남발해서는 해당 통화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려 환율 급등(통화가치 급락)과 인플레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으로 대내외 리스크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우리 금융시장만 보더라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우리 중앙은행이 좀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누군가가 이 논리부터 깨야 할 것이다.또 다른 강력한 현실의 벽은 누구도 최종 책임자가 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저신용등급 회사채와 기업어음 매입을 위한 특수목적기구(SPV) 운영 주체를 둘러싼 한국은행과 정부와의 줄다리기는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는 미국의 FRB(연방준비은행)도 특수목적기구에 직접 대출하고 있으니, 한국은행이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재정여건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은행이 해 주는 것이 정부에 유리하다. 반면에, 기업여신에 전문성이 없는 한국은행은 직접 대출에 나섰다가 막상 손실이 나도 문제고, 통화정책도 정부 정책방향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빠른 시일 내에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이 재정립되지 않는 한 양쪽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확정적인 미래가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부터 아찔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하물며 위기의 최전선에서 최종 리스크 감수자만 기다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은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지금은 정부든 중앙은행이든 누군가는 최종 리스크테이커(risktaker)가 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