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징어’된 오징어 대책은 없나

동해안의 오징어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1마리에 최고 1만3천 원까지 팔리는 ‘금징어’가 됐다는 소식이다.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주부들은 금징어가 된 가격 탓에 오징어를 식탁에 올리기가 어려워졌다.오징어 어획량 급감은 온난화로 인한 수온 변화와 중국과 북한 어선의 ‘싹쓸이 포획’ 이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지난 10월 오징어 어획량은 전년 동월 대비 80% 이상 감소한 반면, 지난달 중순 위판장 가격은 1마리에 1만3천 원 선으로 2012년 보다 무려 10배 가까이 치솟았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오징어 생산량은 1천987t으로 지난해 10월(1만1천309t)보다 9천322t(82%)이나 감소했다. 월별 생산량 통계를 집계한 1990년 이후 10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소다.문제는 수온 변화라는 자연현상에 의한 오징어 자원 감소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중국 어선의 북한 해역에서 내려오는 오징어 남획으로 우리의 오징어잡이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길목에서 아예 싹쓸이하는 탓에 정작 우리 동해안 쪽으로 내려와야 할 오징어가 씨가 마른 것이다.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따르면 동해 북한수역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 수는 2004년 114척에서 지난해에는 2천161척으로 18배나 늘었다고 한다. 북한이 중국에 조업권을 팔아 넘긴 때문이다.조업권 판매는 문제가 많다. 유엔은 지난 2017년,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의 조업권 거래를 금지한다고 명문화했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제재 조치를 외면한 북한 당국과 이를 이용한 중국 어선들이 동해 바다 오징어의 씨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오징어만 줄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동해안의 어족자원이 함께 격감하고 있다. 한때 17만t이나 잡혔던 명태도 자취를 감췄다. 오징어까지 밥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정부가 나서 중국 어선들의 동해안 어족자원 씨 말리기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당장 대북제재위반으로 UN에 고발하는 등 우리 어선의 어업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우리 어선들의 연근해 어획량을 제한하고 산란기 채취 금지와 함께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어선 현대화를 통해 어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스마트 양식 기술 확대 보급 등으로 양식 물량을 크게 늘려야 한다. 수산물 유통구조 합리화도 과제다. 어업인이 제값을 받고 팔 수 있고 소비자는 더 싼값에 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경북도도 동해안 어업 자원과 어민 생존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독해진 황교안…공천 혁신이 ‘승부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는 ‘정치 초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런 그가 최근 독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상물림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정치 입문11개월 만이다.계기는 지난달 20일 지소미아 파기 철회, 패스트트랙 법안 철회 등을 요구하며 시작한 단식이었다. 울림이 없던 지난 9월의 ‘조국 사태’ 당시 삭발과는 결이 달랐다.판세를 읽는 정치감각을 깨우쳤는지, 운이 좋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단식의 타이밍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정부의 지소미아 조건부 종료철회 결정이 이틀 뒤 발표됐다.---단식투쟁 이후 ‘정치초보’ 꼬리표 떼연이어 유재수 전 부산경제부시장 건이 터졌다. 황 대표의 단식은 유재수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미심쩍은 눈초리와 합주되면서 관심을 고조시켰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도 불거졌다.주변에서는 단식 중 “죽기를 각오했다”는 그의 말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자신을 던진다는 데서 진정성이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당무에 복귀한 지난 2일에는 핵심 당직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계파색 옅은 초·재선 의원들을 전진 배치했다. 내년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무총장에는 파격적으로 초선의원을 앉혔다. 총선 공천으로 수렴되는 인적 혁신의 신호탄이 오른 것으로 해석된다.다음 날엔 그간 대여 투쟁에 앞장서 온 나경원 원내대표를 사실상 경질했다. 절차를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나 원내대표가 승복하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황 대표의 최근 행보는 강수의 연속이다.변화와 쇄신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필요하다면 읍참마속하겠다”고 말해 누구라도 쇄신에 걸림돌이 되면 쳐내겠다는 의지도 밝혔다.시각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당은 새로운 사람들을 내세워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혁신은 사람을 바꾸는데서 시작된다’는 말은 정치에 최우선적으로 적용된다.황 대표가 선택한 혁신의 방향은 옳다. 한국당의 인적 쇄신은 탄핵 사태 이후 국민 모두가 원했다. 하지만 지금의 원로·중진 의원들로는 아무리 최고위원을 바꾸고, 당직을 교체해도 ‘그나물에 그밥’이라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한국당이 탄핵 사태 이후 3년 넘게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계파 안배하고, 선수(選數)를 감안해 당직을 맡기고, 또 그들을 중심으로 당을 운영해서는 절대로 지금의 옹색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진보세력과의 투쟁에 원동력이 되는 진정성을 얻을 것인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인가, 대세를 망칠 것인가.’ 지금 한국당의 과제는 계파 청산에 있다. 거기서 모든 것이 판가름난다.지난 날의 계파 정치인들은 파벌을 자신을 보호해주는 ‘우산’으로 삼아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계파 이익과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에만 골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근 ‘친황’ 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황 대표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 친박, 친이 등으로 불린 계파와는 본질이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이 나오는 배경을 돌아봐야 한다.지난날 특정 계파로 불리며 탄핵사태를 초래한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공천 과정에서 반드시 배제돼야 한다. 그래야 황 대표가 당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인적 혁신의 정당성이 생긴다.---정말 국민 마음에 들게 물갈이 해보라한국당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혹독하다. 보수논객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국민은 한국당을 썩은 물이 가득 차 있는 물통으로 보고있다. 썩은 물을 버리지 못하면 통 자체를 버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내년 21대 총선은 이 땅의 보수가 살아나는냐 이대로 사그라드나 하는 기로다. 이 상태로 가면 필패다. 보수의 입장에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경선이든 전략공천이든 형식이 문제가 아니다. ‘공천 학살’이라 할 정도로 엄정하게 룰을 정하고 적용해야 한다. 정말 국민 마음에 들게 한번 물갈이 해보라.황 대표는 단식 때 보인 진정성을 심화시켜 총선 승리만 보고 가야 한다. 그것만이 보수의 살길이다. 나머지는 모두 곁가지다.

꽁치와 시

꽁치와 시/ 박기섭 포장집 낡은 석쇠를 발갛게 달구어 놓고/ 마른 비린내 속에 앙상히 발기는 잔뼈/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낱낱이 발기는 잔뼈// 가령 꽃이 피기 전 짧은 한때의 침묵을/ 혹은 외롭고 춥고 고요한 불의 극점을/ 무수한 압정에 박혀 출렁거리는 비애를// 갓 딴 소주병을 정수리에 들이부어도/ 미망의 유리잔 속에 말갛게 고이는 주정(酒精)/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쓸쓸히 고이는 주정(酒精) - 시조집『비단 헝겊』(태학사, 2001)........................................................밥상에 놓인 잘 구워진 꽁치는 그저 밥의 찬이나 술의 안주일 따름이다. 그러니 다른 생각을 개입할 필요 없이 젓가락으로 후벼 살을 발려 먹기만 하면 된다. ‘포장집 낡은 석쇠’위의 꽁치라고 다를 건 없다. 정서의 반란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꽁치의 살아생전 저 태평양 푸른 바다 깊은 곳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돌아다니던 기억을 애써 발라낸다. ‘낱낱이 발기는 잔뼈’에서 고생대의 적막을 들쑤시기도 하고, 꽁치의 운명을 떠올렸다가 비릿한 비애를 건져내기도 하는 것이다.시는 그런 것이고 시인은 대저 그런 인간들이다. 시인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면 삼라만상 그 모든 것에 촉수를 들이대는 탐구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잔뼈 갈라내듯 단지 시 한 편 건지려고 잔머리 굴리는 사람은 아니다. 매사에 그런 식이면 다른 멀쩡한 사람 눈에는 필경 밥맛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한 편의 시에는 고스란히 시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가 조용히 담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없는 기교로만 조합된 시인의 시를 읽을 때는 잔뜩 조미료를 들어부은 것 마냥 밍밍하고 찝찝하다.금세기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일반인의 글쓰기에서도 그리 주문하는데 시인은 더 말해 무엇 하랴. 진지한 열정, 몸을 내던지는 연소는 시인에게 필요불가결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시인은 때로 시대의 산소량을 재는 계기이며, 밤에도 깨어있는 정신의 불침번이다. 보통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산소의 총량을 시인은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유난히 시인들이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서정시건 서사시이건, 시의 제재가 자연이든 우주이든 그 침묵과 고독과 비애는 결국 인간 문제에 귀결되어 존재의 근원인 삶을 탐색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 과정에서 때로 반성적 사색의 시상을 전개할 때 ‘갓 딴 소주병을 정수리에 들이’붓기도 하는 것이다. 알코르가 아니면 냉수라도 상관없다. 시는 정신의 배설물이면서 동시에 정신을 정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꽉 막혀 변비가 심해질 땐 도리 없이 스스로 흠뻑 적셔보는 것이다.그때 말갛고 쓸쓸히 고이는 주정(酒精)이 비록 지독한 비린내뿐일지언정, 그래도 시인은 끊임없이 회의하며 번민하고 애달아하는 몹쓸 화학자여야 한다. 자신의 시에 대한 치열한 회의를 품지 않는 시인은 그래서 미덥지 않다. 그 회의와 번민과 긴 방랑과 고통 가운데서 자기 세계를, 자기가 속한 세상을, 세계 속의 자신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도정인 것이다. 그리고 ‘미망의 유리잔 속에 말갛게 고이는 주정’ 한 방울을 얻기 위해 시를 쓴다. 뒤집어 말하면 나는 그러지 못해 시를 쓰진 못하고 감상을 빙자하여 남의 시에 사족이나 다는 것이다.

명품직원 만들기

명품직원 만들기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부서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에 커다랗게 그려진 동그라미 아래에 적힌 글자는 ‘전 직원 브레인스토밍’이었다. 연말이 되어 여기저기 송년 모임으로 들뜨기 쉬운 날들이지만, 올 한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열리는 행사다.반공일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엔 공휴일로 쉬는 일요일보다도 더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는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출근할 때부터 마음이 부풀어 있곤 하였다. 지금은 토요일 진료 대신 응급실과 병실, 당직자만 나와서 근무하고 각자 입원 환자를 회진하는 체계로 바뀌어서 외래 진료는 하지 않아 자유로울 터이지만, 모처럼의 휴일에 병원에서 브레인스토밍하러 출근하는 직원 중에는 이마에 내 천(川)자도 더러 보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잘 되는 방향으로 나가 보자고 하는데 달리 방도가 있으랴.큰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아침을 더욱 더 춥게 느끼게 한다. 손을 불어가면서 하나둘씩 강당으로 모여든다. 한 사람 한 사람 자리에 앉아서 조별로 나뉘어 있는 안내 용지를 받아들고 서 조원들의 얼굴을 살핀다. 칠백여 명의 직원이 여러 부서에 나뉘어 근무하다 보니 그동안 잘 만나지 못하던 이들과 악수를 하며 우의를 다진다.조별로 나누어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주제에 대한 결론을 얻은 직원들, 파워포인트에 각 조의 의견을 종합하여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짧은 동안 얼마나 열띤 토론을 하였을까. 생각지도 못한 말로 발표를 마무리하는 직원들이 대단해 보인다. 한 해 동안 다른 직원보다 30분 일찍 출근하여 먼저 진료 준비를 한번 해보기로 하였다는 직원, 그동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는 신입 직원의 이야기가 가슴 찡하게 들린다. 작은 일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한 가지라도 성공하게 되면 그 성공 경험이 쌓여서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언제나 간호사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일일이 챙기던 팀장은 ‘명품 가방과 짝퉁 가방의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발표를 마무리한다. 비가 오면 명품가방이라면 비에 젖을까 봐서 품에 끌어안지만, 짝퉁이라면 그다지 아깝지 않을 것이니 내 머리가 비에 젖을까 봐서 머리 위에 올려 비라도 피하게 하지 않던가. 그의 결론은 아무리 진료 환경이 어려워도 소중한 명품을 대하듯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을 명품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가슴에 품고 끌어안고 나가리라는 다짐이리라.크레스피 효과가 떠오른다. 공부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는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원의 수행능력을 높이기 위해 총수는 직원의 월급을 어느 정도 올려주기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적이나 일의 성과에 따라서 보상이나 처벌을 한다고 할 때 그것이 효과를 내려면 점점 더 강도가 세져야 한다고 주장한 이가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 ‘레오 크레스피’ 교수다.크레스피 교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하였다. 그는 쥐가 미로 찾기에 성공할 때마다 A 집단의 쥐에게는 먹이 1개씩을, B 집단에게는 먹이 5개씩을 보상으로 주었다. 그 결과 먹이 5개를 받은 B 집단의 쥐들이 더 빨리 미로에서 탈출하였다. 이후 크레스피 교수는 A 집단 쥐들의 보상을 5개로 늘리고, B 집단 쥐들의 보상은 1개로 줄였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보상을 늘린 A 집단의 쥐들이 B 집단의 쥐들보다 훨씬 더 빨리 미로를 탈출하였고, 보상을 줄인 B 집단의 쥐들은 A 집단의 초기 성적보다 훨씬 낮은 수행능력을 보였다.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얼마의 보상을 받느냐가 일의 능률 향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실험이었다. 당근 전략 또한 긍정적 수행능력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적절히 사용할 경우 시행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도출한다. 경제적, 물질적 보상이 당연시되면 계속해서 ‘전보다 더, 전보다 더’를 원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칭찬이 계속되면 그것이 당연해지다 점점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질책이 계속되면 점점 비난, 폭언 등으로 나아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동료 직원의 능력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크레스피 효과를 기억해 두면 좋지 않으랴. 적절한 당근과 채찍으로 모든 직원이 명품이 되어 날마다 즐겁고 신나는 직장의 하루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변해가는 추수감사절

변해가는 추수감사절성민희재미수필가 오븐에서 연기가 솔솔 난다. 해마다 한 번씩 맡는 냄새다. 터키 굽는 냄새가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진하게 냄새가 풍겨 와도 감각이 없더니 이제는 눈을 감고 그 속에 푹 잠기고 싶은 향기가 되었다. 딸이 정성껏 요리한 음식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소금, 후추, 설탕과 버터를 넣어 잘 으깬 매쉬드 포테이토, 샛노랗고 부드러운 미국고구마에 머쉬멜로를 넣어서 구운 야미, 크림콘, 그린빈, 그레이비, 스태핑, 크랜베리 소스, 샐러드, 디너롤 등이 알록달록 식탁을 채운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두 모여 한 해를 감사하는 추수감사절 만찬식탁이다.딸은 모든 음식을 본인이 할 테니까 사촌들은 디저트와 음료수만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김치와 잡채를 배당 받았다. 양식을 실컷 먹고도 뒤늦게 끓여낸 김치찌개와 밥을 반가워하던 어른을 위한 배려인 모양이다. 우리 집에서 할 때는 보이지 않던 와인바도 세련되게 차려졌다. 갖가지 종류의 치즈와 잘 쪄진 브로클리와 당근, 블랙베리, 페퍼로니, 올리브와 땅콩 등 미국사람들 파티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시간이 되자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어른들은 모두 빈손으로 오라고 했는데도 들고 온 과일 박스와 과자 상자가 한쪽 벽 밑에 쌓인다. 보스톤에서 날아온 조카는 공부하느라 힘이 들었는지 얼굴이 더 창백해 졌고, 첫 직장을 잡은 막내 조카는 청바지를 벗어버리고 이제는 얌전한 치마 아래로 스타킹까지 신었다. 올 봄에 결혼한 조카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은 모습이 의젓하다. 딸은 집을 휘젓고 뛰어 다니는 두 꼬마를 붙잡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한다. 제법 엄마 티가 난다. 갈색으로 잘 익은 터키를 오븐에서 꺼낸 사위가 양손에 칼을 쥐고 나선다. 남편과 오빠와 남동생, 나와 올케들과 여동생이 하던 일이 모두 아이들 손으로 넘어갔다.어머니 대신 남편이 감사기도를 한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는 본인도 힘들고 곁에 사람에게도 폐가 된다며 아예 오시지 않았다.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모든 가정을 한 바퀴 돌던 느리고 평온하던 기도가 사라졌다. 아이들이 알아듣든 말든 상관이 없던 경상도 사투리의 투박하던 기도는 짧고 간단한 영어 기도로 바뀌었다.할머니의 긴 감사 기도를 견디지 못하고 킥킥 팔꿈치로 서로 찔러대던 아이. 높은 식탁에 팔이 닿지 않아 까치발을 하고 서서 애를 태우던 아이. 여드름이 퐁퐁 솟은 얼굴에 노랗게 물든 머리를 하고 나타나 우리를 깜짝 놀래키던 아이가 모두 사라졌다. 보이프렌드와 걸프렌드를 수줍게 소개하던 아이도 이제는 아예 배우자를 따라 가버리거나 먼 나라에서 전화 목소리만 들려주는 어른으로 변했다. 커다란 냄비를 든 엄마 뒤를 쫄랑쫄랑 따라 들어오던 꼬마들이 어느새 자기 시간을 마음대로 요리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식탁도 그대로고 그릇도 그대로고 그 때 켰던 그 촛불도 변치 않았는데, 아니, 우리도 모두 그대로인데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미국 온 첫 해의 추수감사절 날에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어떻게 지내는 미국의 명절일까 막연한 설레임으로 나와 남편은 한국 배를 한 상자 사 들고 갔다. 그날 식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은 도무지 낯설었다. 말로만 듣던 터키는 비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어느 요리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커다란 접시에 터키와 햄을 듬뿍 얹고 그 위에 그래이비를 끼얹어 잘도 먹던데 나는 으깬 감자와 달콤한 크랜베리 소스만 먹고 돌아왔다. 추수감사절 만찬이 어떤 건지 비로소 알게 된 늦은 저녁. 우리는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얼큰한 라면을 또 끓여 먹었다.모든 상점이 일체 휴업을 하던 그때와는 달리 요즈음은 문을 여는 상점이 늘어난다. 집에서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던 풍조가 조금씩 사라지고 요즘은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가족도 많아졌다. 집에서 구워야만 하는 줄로 알았던 터키와 햄은 주문만 하면 배달되기도 한다. 현지 언론이 조사한 결과 올해는 한인타운의 상점도 90%정도가 문을 연다고 한다. 타지에서 온 가족들이 아예 한인타운의 식당에서 만나 먹고 샤핑도 즐긴다는 소식이다. 차도 사람도 없던 추수감사절 거리가 이제는 오히려 분주해졌다. 어떤 가게는 오후 4시부터 오픈하여 이른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한다고도 한다.비릿한 냄새가 느껴져 한 입도 못 먹던 터키를 4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은 고향처럼 정다우니 아이들이 변했다고, 세상이 변했다고 쓸쓸해 할 일이 아니다.

청년 창업의 새로운 모델 사회적 기업

청년 창업의 새로운 모델, 사회적 기업추현호콰타드림랩 대표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업 활동을 영위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필자는 청년 창업 멘토로 청년들을 상담하며 사회적 기업 창업에 대해 물어오는 청년들의 숫자가 적지 않음을 느낀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현장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2007년 고용노동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사회적 경제섹터는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해 인증된 사회적 기업은 2천201개소로 총 4만6천443명(취약계층 2만7천991명)의 직원들이 종사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섹터의 발전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며 전 세계적으로 단기간에 급격한 발전을 이뤄낸 선진국가에서 주목하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싱가포르는 550만 명의 인구(세계 190위)로 1인당 GDP는 세계 3위를 차지하는 선진 국가이다. 싱가포르의 사회적 경제는 어떤 구조를 갖추고 있을까? 필자는 지난 11월 대구시 사회적 경제 연수단원의 일원으로 선발돼 싱가포르의 사회적 경제섹터와 민간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도심 공유오피스 Wework에서 만난 커먼그라운드의 시후이(Shihui) 프로그램 디렉터는 커먼그라운드의 시작과 성장 과정을 설명해 줬다.커먼그라운드의 시작은 학생들에게 필요한 입시교육을 담당하는 사립학원이었다고 한다. 커먼그라운드는 ‘생각학교’(School of Thought)에서 벌어들인 안정적인 수익으로 청소년들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매거진을 만들었다고 했다.이후 비전트립을 진행해 온 커먼그라운드는 국가로부터 건물을 임대받아 복합 사회적 기업 클러스트를 직접 운영하고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단체로 발전했다. 청소년의 진로 문제, 청년의 사회진입 및 지식교류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학원모델, 출판 모델로 연계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 장기적인 생태계로 확장해 나간 점은 눈 여겨 볼만하다.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되는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버틸 제대로 된 비즈니스모델 또한 세심하게 고민되어야 한다.사회적 기업 창업을 계획하는 예비 청년 창업가가 집중해야하는 첫 번째 부분은 사회적 문제이다.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적 가치실현에 소요되는 시간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익모델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다.

‘카카오 택시’ 갈등 조기에 수습책 찾아야

‘카카오 T블루 택시’ 사업이 발대식도 열지 못하는 등 기존 택시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카카오 T블루는 ‘카카오 T’ 앱에서 택시를 부르면 주변에 있는 택시가 자동으로 배차되는 시스템이다.대구에서는 지난 11월28일부터 서울에 이어 비수도권 최초로 카카오 택시가 시범운행에 들어갔다. 대구지역 전체 법인택시의 절반 가까운 2천853대(40여 개 택시회사)와 운행 협약을 맺었다. 지난 4일에는 발대식을 가진 뒤 1천여 대가 정식 운행할 예정이었다.그러나 택시의 서비스 향상과 운전기사들의 수익 개선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출범 초기부터 택시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 참여하지 못한 다수의 택시기사들이 줄어든 승객 호출과 근로조건 악화 등을 이유로 반발하기 때문이다.전국택시노동조합 대구지역본부는 4일 카카오 택시 발대식이 열릴 예정이던 대구교통연수원 앞에서 카카오 T 불법 행위 근절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택시노조는 “카카오 택시에 참여할 운전기사를 선정하는데 명확한 기준이 없고, 카카오 측이 호출을 T블루에만 몰아줘 일반택시 기사들의 근로 여건을 열악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노조는 또 “종사원들을 일방적으로 선정하고 강제 배차 및 강제 노동, 콜 택시 독점 등 택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더 열악하게 몰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이에 대해 카카오 T블루택시를 운영하는 DGT모빌리티 측은 “노조 측의 주장은 대부분 근거 없다. 운행도 (강제 배차라는 주장과 달리) 본인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쉴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밝혔다.또 “택시업체들에 참여를 제안했고, 업체에서 추천한 기사들을 우선 포함시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택시노조 측은 “카카오T를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며 “DGT가 운전기사 자유 가입, 현행 근로조건과 임단협 존중 등의 구두 합의 내용을 서면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번 사태가 자칫 장기화 되면 어려운 여건 하에서 묵묵히 일하는 많은 택시기사들이 카카오 택시 참여 기사와 비참여 기사로 편이 갈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제도 시행 초기여서 의견 충돌과 혼선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근로자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반발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대구시가 카카오 택시 영업면허를 내준 것은 택시이용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해법도 당연히 시민 편의를 바탕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 대구시 등 관계 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카카오 택시와 노조도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꾸준한 대화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리영희

리영희 / 고은70년대 대학생에게는/ 리영희가 아버지였다/ 그래서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그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썼다// 결코 원만하지 않았다/ 원만하지 않으므로 그 결핍이 아름다웠다/ 모진 세월이 아니었다면/ 그 저문 골짜기 찾아들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맹세하건대/ 다만 진실에서 시작하여/ 진실에서 끝나는 일이었다// 그의 역정은/ 냉전시대의 우상을 거부하는 동안/ 그는 감방 이불에다/ 어머니의 빈소를 마련하고/ 구매품 사과와 건빵 차려놓고/ 관식 받아 차려놓고/ 불효자는 웁니다/ 이렇게 세상 떠난 어머니 시신도 만져보지 못한 채/ 감방에서 울었다 소리죽여- 시집『만인보』(창작과비평사, 1986) .............................................. 12월5일은 넬슨 만델라의 6주기이자 현대사의 증인이라 할 리영희 선생이 타계한 지 9년째 되는 날이다. 통일과 민주주의, 인권을 주장하면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시절에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글로써 진실과 정의를 알리려했던 선생이었다. 작가 이병주는 러시아 사상가 베르자예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상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영향 아래 인생을 사는 사람과 그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듯 세상은 리영희에 빚진 사람과 그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로 구분될 수 있다. 나도 ‘사상의 아버지’란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으나 한때 ‘사상의 은사’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양심이 있고 양식을 가진 모든 젊은이들에게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귀감이었다. 좌절과 고난으로 점철된 1970년대, 냉전의 우상을 타파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지성인으로서 리영희 선생은 당시 실의에 빠진 청년학생들에게 영롱한 진주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사상적 은혜를 베풀고 떠난 선생의 글을 책으로 처음 접한 건 ‘전환시대의 논리’지만, 그보다 ‘偶像과 理性’이 더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도전에는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라고 설파한 첫머리는 영원히 간직해야할 말씀으로 몇 번씩 꼭꼭 접어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주머니 밑창이 타개지고 말씀들은 야금야금 새나갔다. 선생께서도 훗날 책의 개정판을 내면서 “우리사회에서 하루속히, 읽힐 필요가 없는 ‘구문’이거나 ‘넋두리’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생의 바람과 내 망각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망각의 소이인 일상의 고단함에 굴복한 무뎌진 감각 탓도 있겠고 우리들 자신의 정신적인 나태도 원인이 되었으리라. 수많은 항쟁과 민주적 혁명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선생의 가르침대로 양심을 가동했건만, 이성은 단단하지 않았고 논증은 철저하지 못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용기마저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진실로 선생이 바라는 대로 ‘우상’이 판치지 못하는 세상을 소망하건만,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낯 두꺼운 권력의 유령들에 의해 국정이 망가져가는 어이없는 세상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정의와 진리가 보편타당해진 세상에서 선생의 저서들이 극복되는 날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잠자고 있는 ‘지방자치’

서울공화국이니, 지방소멸이니 하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그럴 때면 지역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과연 균형발전과 지방분권만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실질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완전한 지방자치를 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우리나라의 본격 지방자치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가 동시에 있었던 1995년 7월1일을 대개 그 출밤점으로 본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20년이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지방정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란 물음은 여전히 계속된다.사정은 현 정부 들어서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초기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렇다. 얼마 전에는 지방분권전국회의가 지방분권을 국정 혁신의 중심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성명까지 냈다. 애초 약속과 달리 정부가 지방분권 실현 의지와 구체적 실천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었다.이에 대해서는 정부도 불만이 있을 것 같다. 계획한 지방분권 관련 법안이 몇 개월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지방이양총괄법, 자치경찰제 관련 법안, 주민조례 발안법, 주민투표법, 주민소환법 등이 그것인데, 특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는 주민참여 확대와 자치조직권 확대 등 지방정부의 제도, 인사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지방자치는 지방분권과 재정분권을 두 축이라고들 한다. 지자체가 살림살이를 스스로 꾸려 갈 수 있게 하는 재정분권은 지방자치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본질적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분권 실천을 촉구하는 지방정부의 호소는 여전히 메아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다.자치단체 대다수는 곳간이 비어 있다. 그래서 정부의 지원으로 겨우겨우 살림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는 형편이다. 재정자립도(2018년 기준)를 보면 대구 54.2%, 경북 33.3%이고, 전국 평균도 53.4%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재 8대2 수준에서 최대 6대4까지 높이겠다고 제시했지만 그 목표 달성은 요원해 보인다.현재와 같은 지자체의 재정 구조는 정부와 지자체를 종속적 관계로 만들어 놓아 결국 그 피해는 국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예산편성 때면 모든 지자체는 단체장과 간부 공무원들이 총동원돼 중앙정부를 찾아야 한다. 또 국회의 예산심의 철엔 여의도를 찾아다니느라 열심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정부 고위인사 중에 지역 출신이 누가 있는지를 찾느라고 시쳇말로 사돈의 팔촌까지 모든 연줄을 동원하고, 또 지역 국회의원들한테는 예산확보에 도움을 받기 위해 온갖 비위를 맞춰가며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된다.다시 말해 불완전한 지방자치로 인해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의 사이에 갑을 구조와 줄서기 행태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는 결국 지역에서 건강한 견제와 균형을 사라지게 해 그 피해가 지역민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이를 두고 “자치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그나마 어렵게 받아 낸 예산이지만 또 현장에서는 허투루 사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황이 딱 맞지 않을 순 있겠지만 구조는 대개 유사하다. 연말이면 지역마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고 새로 까는 공사를 흔히 보게 된다. 구청이나 시, 군으로서는 남은 예산을 반납하게 되면 다음번 예산편성 과정에서 혹시라도 삭감당하는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에 일단 쓰게 된다는 것이다.자기 돈이라면 절약해서 더 긴요한 데 쓰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고 행동일 텐데, 지금과 같이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는 받는 돈으로 한해 한해 쓰는 살림이다 보니 장기 계획보다는 치적 쌓기나 보여주기식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지방소멸을 막으려면 국가의 균형발전이 돼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려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한다. 그렇다면 완전한 지방자치의 핵심축인 지방분권과 재정분권은 미뤄 둘 수 없는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얼마 전 자동차 업계에서 환영할만한 일이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미래자동차 중 하나인 수소전기차 판매에서 올 10월까지 누적기준으로 3,600대 이상을 팔아 세계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본의 도요타를 제치고 말이다.아직은 판매 규모가 작고 내수시장 비중이 전체 판매량의 90% 이상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완성차 메이커들도 거의 비슷한 환경 아래서 경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특히 BMW나 벤츠, 아우디 등 독일 기업은 물론이고 상해자동차와 우통버스 등 중국 기업들조차도 경쟁에 뛰어드는 등 앞날이 험난해 보이는 가운데 성장기반을 다질 기회를 선점했다는 측면에서는 더 반길 일이다. 또 하이브리드나 전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같이 수소전기차 이외에는 후발주자였던 우리 자동차 업계가 선발주자로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우리 자동차 업계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불안감이 사그라지지 않는다.우선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이미 꺾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 시장의 부진으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중국을 대신할만한 거대시장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사실이어서 우리 자동차 업체들의 실적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다음으로는 자동차의 개념이 CASE(Connected, Autonomous, Sharing & Service, Electric)로 알려진 신기술 및 서비스를 기반으로 확대되고 변화되면서 가져올 불확실성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공유차, 전기차 등이다. 이 가운데 우리 자동차 업계가 과연 얼마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특히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자동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몸부림을 보면 걱정은 더 커져만 간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의 아우디는 전기차 기술 등 미래자동차 관련 부문 투자에 집중하기 위해 2025년까지 독일 내 직원의 16%에 해당하는 9,500명을 감원할 계획이고, 일본의 닛산도 2022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만 2천명 이상을 감축하여 자율주행차 개발 자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뿐이 아니다. 독일의 다임러와 BMW, 미국의 포드와 같은 완성차 업계는 물론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콘티넨탈도 구조조정에 뛰어들었다.향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자동차 업계에 몸담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동참할지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자동차 업계도 절대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래자동차 시장이 수년 내에 급격히 확대되어 디젤이나 가솔린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 자동차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머지않은 미래에 기존 자동차 시장이 미래자동차 시장으로 대체되는 날은 분명히 온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가장 큰 불안감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자동차 산업은 생산 및 부가가치는 물론 고용에 이르기까지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을 뿐 아니라 반도체에 이어 수출 2위 상품으로 우리나라의 핵심 주력산업이다. 이는 조선업의 3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어느 순간 한꺼번에 구조조정이라는 큰 파도가 밀려오면, 그 피해는 조선업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하듯 우리 자동차 업계도 선제적인 구조조정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가 지금이라도 당장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사관계를 비롯해 각종 규제 등 업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는 소위 주력산업이라 불리는 국내 제조업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조선업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대구시 신청사 입지 결정 순리 따라야

대구시 신청사 입지가 오는 22일 결정된다. 딱 17일 남았다. 유치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후유증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지역 갈등과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권영진 대구시장이 시민들에게 시청사 입지 결정에 승복해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권 시장이 논란에 쐐기를 박고 나선 것이다. 잡음과 뒤이을 후유증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도다.권 시장은 지난 3일 직원 정례조회에서 대구시 신청사 입지 결정과 관련, “결과에 대해선 반드시 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청사 결정은 시 조례에 따라 진행되며 시민평가단의 숙의형 민주주의 평가 방식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론과 반대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이같이 강조했다.대구시가 신청사 유치신청을 받은 결과 중구와 북구, 달서구, 달성군 등 8개 지자체 중 4개 지자체가 신청했다. 경쟁이 가열되면서 일부 지자체는 홍보 비용으로 3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책정해 대대적인 홍보전을 벌인 곳도 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4개 구·군에서 홍보전 및 여론전에 사활을 걸고 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다급했다는 방증이다.대규모 인력을 동원한 유치전 집회를 갖는 등 세 과시는 물론 신문과 TV 광고 등 유치 열기가 뜨거웠다. 그 과정에서 달서구 등은 선정 기준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중구청의 경우 현 시청이 있는 곳이 아닌 타 지역으로 입지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시민참여단 구성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이제 입지 결정을 눈앞에 뒀다. 입지는 시민참여단의 결정에 달려 있다. 시민참여단은 대구 8개 구·군별 29명씩 시민 232명과 시민단체 관계자 10명, 전문가 10명 등 총 252명으로 구성된다. 시민참여단은 오는 20일부터 2박 3일간 합숙하며 숙의 과정을 거쳐 입지를 결정한다.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장은 22일 참여단의 평가 집계 결과를 토대로 신청사 입지를 현장 발표한다. 탈락한 지역은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그동안의 인적·물적인 투자와 지역민의 노력이 무산됐다는 점에서 오는 허탈감이 클 것이다. 하지만 시민참여단 결정은 시민 모두가 한 것과 다름없다. 대구의 미래를 열 초석이 될 수 있는 신청사 입지 결정에 대구시민이면 절대적으로 승복하고 협조해야 하는 이유다.대구시도 탈락지역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다가올 100년에 대비, 상징적인 대구시 청사가 될 수 있도록 신청사 건립에 온 힘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속임수가 판치는 세상

속임수가 판치는 세상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요즘 대한민국은 요지경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속임수가 판을 치고 있어서 내가 직접 하지 않은 것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믿음의 끈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배달 음식에 대한 믿음 역시 예전 같지 않다. 다양한 음식들이 책자에 나와 있어서 이것저것 고르는 재미도 있었지만 얼마 전 보도된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한 책자에 나와 있는 모든 식당이 한 곳이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쓴 웃음을 지은 기억이 난다.‘매일 시장에서 사오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맛’, ‘천연조미료로 숙성시킨 깔끔한 맛’,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든 음식’ 같은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길 법한 이야기들이 모두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는 것은 차라리 애교라고 해야겠다. 주문이 있을 때마다 얼려 놓은, 언제 사 온 것인지도 모르는 재료에 조미료 범벅인 양념들과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라면 감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음식을 만들고는 마치 제대로 만든 좋은 음식인 양 포장해서 배달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도 이런 음식들이 맛있고 좋다는 여럿 인터넷 매체들의 선전에 현혹되어 이것이 건강에 나쁠 수 있다는 말은 온대간대 없이 오히려 문전성시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이런 일들이 식당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여러 곳이 요지경이 되었지만 병원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몇몇 분야는 거의 점입가경이다.얼마 전 유튜브에서 ‘주입된 필러가 녹지 않고 뼈를 손상시킨다.’는 자극적인 내용의 방송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병원가에도 영향을 미친 적이 있다. 자못 전문적인 내용과 여러 가지 자료를 인용해 필러가 우리 몸속에서 나쁜 성분으로 바뀌어 흘러 다니고, 심지어 뼈 주위에서 뼈를 녹일 수도 있다는 듣기에는 걱정스러운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작은 논문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짜깁기해 실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사실이 아닌 왜곡된 내용으로 둔갑시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일로 보톡스와 필러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들이 적잖이 타격을 입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검증되지 않는 정보가 사회에 얼마나 잘못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 여러 부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정보들을 ‘팩트 체크’를 거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불신사회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그래서 평소에 정상적으로 환자에게 잘 보고 있던 병원들은 일단 환자가 줄어서 피해를 보기도 하고, 여태 수술이나 시술해 오던 것도 환자들에게 의심을 받는 일이 생기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원인은 내원하는 환자를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상품이나 물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돈을 벌고 나면 그 다음은 환자에게 어떤 피해가 생겨도 외면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사람의 환자를 인격체로 보고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중요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문직이 비즈니스로 전락한 예라고 해야겠다.한번씩 싼 가격이나 요란스러운 광고에 호기심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조가 들여다보인다. 아무래도 품질에 문제가 생기는 점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떻게 하더라도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제품을 판매하는 일도 그런데, 사람의 몸을 상대로 하는 의료행위가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다른 분야보다 더 싼 것이 비지떡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일정한 수준을 보장해야 하는 의료행위는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고는 가격을 낮출 수 없기 때문이다.이제 우리나라의 의료 소비자들은 커다란 갈림길 앞에 섰다. 야바위같이 가격은 싸지만 품질은 신뢰하기 어려운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가격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품질은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 말이다.

첫눈

첫눈/ 이진엽문득 깨어나 창문을 열어보니새벽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수만 장의 흰 전단을 뿌리며온 세상으로 번져 가는 조용한 외침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좌파도 우파도 아닌어둠도 밤의 아들도 아닌오직 피가 맑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일으킨새벽이 하얀 반란//나는 마음속으로 손뼉을 짝짝 쳤다- 시집『겨울 카프카』(시학, 2013) ........................................................................ 강원과 남쪽지역을 제외한 중부지방에 모처럼 첫눈다운 눈이 내렸다. 충분한 감성이 장전될 만큼의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애매모호하지 않았고 흩날리는 눈의 풍경도 좋았다. 12월 들자 머뭇거리지 않고 마침맞게 왔다. 약간 과장하자면 나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아직도 이런 고전적인 낭만이 물씬 풍기는 약속을 실제로 가동하는 이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사귀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와 이 소식을 공유하느라 바빴으리라. 그만큼 아직은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순수와 동심이 살아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첫눈은 연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린 시절 눈은 순결과 신비, 설렘과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도시생활의 이기와 약삭빠름에 젖다보면 감흥은 차츰 떨어지고 때로 눈은 내 교통을 방해하는 성가신 강하물에 불과했다. 나이 먹는다고 서정의 노쇠화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첫눈조차 무덤덤해진다면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사실과 첫눈 오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마음속으로 손뼉을 짝짝 쳤다’함은 여전히 세상엔 목마르게 그리워할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첫눈 오면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의 마음은 붐비고 눈송이처럼 불어난다. 사랑을 알고 평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혁명 같은 그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첫눈은 가장 때 묻지 않은 곳부터 ‘조용한 외침’으로 내린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어둠도 밤의 아들도 아닌’ ‘오직 피가 맑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일으킨’ ‘하얀 반란’이다. 작은아이 세살 무렵, 사물을 감식하는 눈이 막 뜨일 때 밤새 첫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도포된 풍경을 보고선 “아빠, 외계인이 왔나봐!” 생애 처음으로 눈의 ‘하얀 반란’을 목격한 아이의 눈엔 달라진 세상이 외계인의 침공으로 보였던 것이다. 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잠시 세상을 달리 보이게 끔 한다. 어린 시절 장독대 위에 함지박 만하게 내려앉은 눈이며, 팔작지붕 기와 위에 우아한 곡선을 또렷이 드러내는 설경의 아름다움은 요즘 보기 힘들어졌지만 눈으로 채색된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검은 눈만 내리지 않는다면 정말 세상이 확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첫눈은 무언가 판을 갈아엎고 싶은 마음 위에도 내린다. 좌든 우든 국민들에게 도움 안 되는 쭉정이는 채에 걸러 싹 날려 보내고 정치도 좀 산뜻해졌으면 좋겠다. 세상을 갱신하고 조율하기 위한 시그널로서의 첫눈이라면 손바닥이 시뻘게지도록 ‘손뼉을 짝짝’ 치겠다.

과욕은 파국을 부른다

과욕은 파국을 부른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미·북 정상회담 일정을 내년 총선일 직전으로 잡지 말 것을 미국 측에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북 회담 자제 요청의 적절성이 근본적으로 의문이라는 완곡한 비판이 자유한국당내에서 나왔다. 여당의 거센 반격과 여론의 역풍을 우려한 방어막으로 읽힌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허나 그렇게 점잖게 넘어갈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 취지는 명백하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을 반대하지도 않고 또 반대할 수도 없지만 남의 나라 중대 선거를 왜곡시키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뜻이라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2018년 싱가포르 회담 전에 요청했어야 했다.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사적인 미·북 회담을 선거일 바로 전날 갖는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선택이다. 전국동시지방선거의 날짜나 그 중요성을 몰랐을 것이라고 변명한다면 미국의 정보력과 역량을 무시하는 처사다. 회담 날짜를 선거일 이후로 조금 미룬다고 달라질 일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선거일 전일을 회담일로 미리 못 박은 이유는 회담을 선거에 활용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누구의 의도였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가장 이득을 많이 보는 측의 전략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정이다. 자국의 선거에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매국적인 외세의존에 다름 아니다. 차후에 터무니없는 청구서가 날아든다는 점에서 더욱 금기다. 공짜 점심은 없다. 주한미군 분담금 논란도 그 연장선이다. 한번 약점을 잡으면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장사치의 본능이다. 다른 나라의 선거에 개입하는 일은 불법이고 심각한 내정간섭이다. 그 선거가 어떤 종류의 선거이든 가리지 않는다. 미국도 이런 유형의 스캔들로 시끄럽다. 러시아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특검이 실시되었고 차기 대통령 경쟁자를 흠집 내고자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인 스캔들로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다. 입증만 된다면 하야나 탄핵도 가능한 위중한 사안이다. 선거에 개입하는 나라가 초강대국이거나 위험한 이웃나라일수록 문제는 더 심각하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지는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 지난 6·13 지방선거는 자유한국당의 참패였다. 탄핵의 후유증이 한 요인이었겠지만 그 전날 열린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결정적이었다. 휴전 후 최초로 만난 전쟁당사자의 역사적 이벤트에 세계가 열광했다. 회담 다음날인 선거일엔 신문마다 대문짝만 한 사진과 함께 회담 내용이 대서특필되었고 온 종일 관련 뉴스가 미주알 고주알 계속 보도되었다. 선거 이슈를 평화로 매몰시킨 공작은 기대 이상 주효했다. 싱가포르 발 핵 폭풍으로 야당 선거판은 초토화되었다. 여당은 선거사상 유례없는 압승을 거두었다. 지방선거의 성격과 전혀 관련 없는 이벤트로 여론을 유린한 결과다. 선거에서 구도와 바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야당은 사전에 그 결과를 예측하고 결사적으로 막았어야 했다. 이 기막힌 이벤트를 두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불가사의다. 그 무능과 부작위에 대한 대가를 야당은 톡톡히 치르고 있다. 미·북 회담 일정을 내년 총선 직전으로 잡지 말아달라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요청은 학습효과에 의한 당연한 귀결이다. 회담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 선거에 편파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는 당당한 요청이다. 이에 청와대 대변인은 “오로지 선거만 있고 국민과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했고, 여당 대변인은 “당리당략이 한반도 평화보다 우선할 수 있느냐”고 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 진의가 보인다. 요청받은 미국 측은 상황을 수긍하는 분위기 같은데 청와대와 여당이 필요이상 발끈해서 과잉 반응하는 모양새는 반칙을 쓰려다가 발각된 부정선수 같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번 재미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꼬리가 길면 덜미가 잡힌다. 총선이 코앞이다.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을 무리하게 바꾸려는 독선은 비정상이다. 스물여덟 석 정도를 비례로 돌리고 정당득표율에 의석을 연동시키는 룰은 민생사안도 아니고 사생결단할 일도 아니다. 기존대로 한다고 해서 결딴날 이유는 없다. 연동형비례제를 고집하는 통에 나라가 결딴나는 건 왜 모르는가. 선거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과욕은 파국을 부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