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주세 개편은 개혁이다

주세 개편은 개혁이다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정부에서 술에 부과하는 세금 체계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은 전 주종을 대상으로 종량세로의 전환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행 주세 과세체계는 종가세 방식이다. 원가에 관리비, 이윤을 합한 출고가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건데 이를 술의 용량 또는 알코올 함량에 따라 세금을 물리는 종량세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부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맡긴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대로 이를 바탕으로 최종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7월쯤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하지만 수차례나 4월내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던 주세법 개정안이 다음 달로 연기됨에 따라 주류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세개편 논의는 이미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두 차례 다룬 이후 5개월째 중단되고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국회 기재위 심기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주세 개편은 작지만 확실한 개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다는 말일 테다. 맞는 말이다. 더 이상 주세 과세방법 전환을 늦출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주세개편은 곧 개혁이기 때문이다.먼저 수입맥주와의 형평성 문제다. 현재의 종가세는 국산맥주와 수입맥주 간의 세금 불균형 문제를 불러왔다. 국산 맥주는 출고원가에 유통비, 판매관리비, 이윤 등을 합친 금액을 최종가격으로 산정해 세금을 매긴다. 반면 수입맥주는 신고가+관세가 기준이다. 가격을 낮게 신고하면 주세도 낮아지기 때문에 국산맥주보다 세금이 훨씬 적게 붙고 있다. 4캔 1만원이 가능한 이유다. 더군다나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되는 맥주는 FTA(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무관세이다 보니 수입맥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근본 원인이 됐다. 종량세로의 전환은 국산 맥주의 역차별을 해소해 줄 것으로 보인다. 주세개편이 확실한 개혁일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는 국내 주류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종량세로 전환되면 수입맥주와 국산맥주 간 세 형평성이 이뤄져 상대적으로 국산맥주의 경쟁력이 올라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수입하고 있는 해외맥주와 요즘 인기를 끌고있는 수제맥주의 생산이 국내로 집중되면서 공장가동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맥주업계의 공장가동률은 30%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한국수제맥주협회가 작년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주세가 종량세로 바뀌면 6천500억원에 달하는 생산유발 효과와 일자리 7천500개 정도가 생길 것이라고 추정된다.셋째, 종가세에서 종량세로의 주세 개편은 우리들의 술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다. 종가세는 결국 값싼 제품의 술 생산을 유도했다. 원가를 낮춰야 세금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생산방식에 의한 소주가 아닌 녹색병에 담긴 희석식 소주와 고품질의 맛있는 맥주가 아닌 밋밋하면서 탄산함량이 많은 국산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문화가 성행했다.종량세로의 전환은 이런 한국 술 문화의 변화를 앞당길 것이다. 이미 한국의 술 문화는 폭탄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술 한잔’으로 바뀌고 있다. 종량세는 출고량과 알콜함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재료비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맛있으면서 다양한 술 생산이 이어지면서 ‘한 두잔을 마시더라도 맛있게’ 먹는 문화를 앞당길 것이다. 주세 개편이 개혁일 수밖에 없는 네 번째 이유는 전통주의 세계화도 꿈꿔볼 수 있어서다. 일제시대 때 종가세를 도입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이미 80년대에 종가세를 폐지했고 이후 고급 사케의 출시와 사케문화의 발달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역마다의 전통적 양조기법에 따라 만든 전통주가 활성화되면서 K-POP, K-FOOD에 이은 K-DRINK 문화를 세계적으로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종량세로의 주세개편에 따라 국내맥주와 소규모 양조 수제맥주의 가격은 낮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서민의 술인 소주값은 인상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정부에서 가격 인상 없는 범위 내에서 개편안을 5월 초순 경 발표할 것이라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주세개편이 진정한 개혁이 되기를 기대한다.

세상읽기…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다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말썽 많던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결국 임명되었다. 거액의 주식투자 사실보다 자기 재판과 관련 있는 주식 거래 의혹이 결정적 흠결이다. 이런 점을 대통령이 좀 더 엄중히 고려했다면 감히 임명을 감행했을지 의문이다. 도덕적인 하자는 차치하더라도 그 임명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점이 가슴 아프다. 헌법재판관 임명 그 자체보다 여론왜곡 내지 여론조작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말이다.한 여론조사기관은 두 차례의 헌법재판관 임용 관련 여론조사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발표했다. 첫 번째 조사에서 ‘부적격’(55%)이 ‘적격’(29%)보다 훨씬 높게 나왔으나 두 번째 조사에서 ‘임명 반대’(44%)와 '임명 찬성'(43%)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후보자 부부의 설득력 있는 해명으로 한 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차였지만 그 여론이 급변했다고 한다.문제는 전후 조사의 설문 내용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첫 번째 조사 설문은 ‘후보자의 헌법재판관 자격’에 대한 적격 여부였고, 두 번째 조사 설문은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에 대한 찬성 여부였다. 여론 추이를 보려 했다면 그냥 똑같은 설문을 제시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 문제가 된 앞뒤 두 설문은 서로 다르게 설계되었다. 첫 번째 설문은 후보자에 대한 자격을 묻는 것이고, 두 번째 설문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묻는 것이다. 설문의 주체마저 후보자와 대통령으로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조사를 며칠 시차로 실시한 결과를 가지고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급변했다고 둘러대는 모습은 여론조작을 의심케 한다. 반대진영의 아전인수식 주장이라든가 견강부회라고 발뺌해도 속아줄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조속히 그 진실을 밝히고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민주정치는 여론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여론을 파악하는 일환으로 소통이 유용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소통에 목을 맨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는 여론을 반영하는 도구 개념이다. 선거가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민주정치를 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경우 무늬만 민주주의다. 북한과 같은 공산국가의 예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지지율이 수시로 조사·발표되고, 그 결과에 따라 당사자들이 일희일비한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떨어지면 기득의 권위도 사상누각처럼 스러지기 때문이다.여론조사 지지율은 흔히 은행잔고로 비유된다. 그런 점에서 여론조작은 은행잔고를 무단히 올려놓는 것만큼이나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은행잔고 조작은 개인적 차원의 경제 범죄이나 여론조작은 체제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범죄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중대 범죄다. 은행잔고 조작보다 여론조작이 훨씬 더 엄중하게 응징해야하는 이유다. 여론을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여론조작에 다름 아니다. 여론을 조작하는 조사기관을 발본색원하고 관련자를 무겁게 처벌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국민주권이 바로 선다. 정서적으로 여론조작이 잔혹한 범죄만큼 국민공분을 유발하진 않지만 이성적으로 엄중히 응징해야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이른바 ‘드루킹 사건’도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의미에서라도 명쾌하게 수사하여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는 어느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체제의 근본을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공정하게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여론을 조작하여 국민의 뜻과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면 그 결과를 바로 잡고 관련자들을 처단하여야 마땅하다. 그 왜곡 규모가 비록 선거 결과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여겨지더라도 여론조작 의도가 입증된다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단호한 처벌 의지를 국민에게 당당히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민주 체제를 유지하는 길이다.각종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 관련 소송이 줄을 잇는다. 갈수록 여론조작 사건이 급증하는 추세다. 여론조작은 각 정당의 후보 경선 단계부터 성행하고 있다. 각 정당의 공천 시스템에 상향식 공천이 도입되고, 여론조사가 그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승부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칫하면 여론조작에 대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남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기 때문에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방법은 여론조작을 하면 반드시 폭 망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여론조작 시도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과 의뢰인을 공히 양벌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아름다운 책/ 공광규

아름다운 책/ 공광규어느 해 나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거리에서/ 책상이 아니라 식당에서 등산로에서 영화관에서 노래방에서 찻집에서/ 잡지 같은 사람을/ 소설 같은 사람을/ 시집 같은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겼다/ 아름다운 표지와 내용을 가진 책이었다/ 체온이 묻어나는 책장을/ 눈으로 읽고/ 혀로 넘기고/ 두 발로 밑줄을 그었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이 아닐 것이다// 사람, 참 아름다운 책 한 권- 계간《문학나무》 2012년 봄호...............................................맞는 말이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렇듯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만이 아닌’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겨 읽음으로써 ‘참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 관심과 사랑 없이는 불가하다. 여기서도 알면 보이고, 보이면 느끼게 되고, 느끼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통한다. 사람을 건성으로 쓱 한번 보고 곧장 데면데면 모드로 돌입하면 사람을 알 재간이 없다. 누구든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관심과 흥미의 깜빡이가 깜박거려야 한다. ‘이 사람은 내게 별 볼일 없어’ ‘알아봤자 덕 될 일은 하나도 없을 거야’ 이렇게 속단하고 말면 책의 겉표지가 열리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다.사람만이 아니다. 고영민 시인의 ‘독서’란 시에서는 하늘에서 나무에서도 책을 빌릴 수 있다고 했다. 귀뚜라미에게서도 둥근 애기무덤에게도 책을 빌린다고 했다. 그렇게 사람이나 자연 그 어떤 대상도 경전이 되며 책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그냥 받아 적어 시를 쓴다는 시인들도 여럿 있다.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일찍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다.배우기만 하고 도통 사유하지 않는 것도 멍청한 일이지만, 배움을 통한 새로움의 유입 없이 생각만 한다면 그 역시 공허해지고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새로움의 유입이 없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며, 그 독서는 반드시 책을 통해 얻어지리라 믿는다. 이론적 공부와 경험적 사고가 조화되지 않고는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지 않으며, 진정한 사람과 자연 읽기도 불가능할 것이다. 어제가 ‘세계 책의 날’이었다. 지금의 우리 출판문화는 양적으로만 따진다면 세계 10위권 내의 출판 대국이지만 1인당 독서량은 일본 10권, 미국 8권에 비해 형편없이 뒤지는 2권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더구나 책에 대한 외경심이나 가치 인정성은 출판의 양적 확대와 반비례하는 듯하다. 책이 아무리 우리의 정신세계를 건강하게 하며 삶을 깊고 풍부하게 이끈다 해도 현실에서의 책에 대한 대접은 형편없다. 더구나 문학, 특히 시집의 가련함은 말할 나위 없다. ‘책의 날’을 맞아 모처럼 서점 나들이를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책의 향기를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가까운 도서관을 찾는 것도 괜찮겠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꽃과 함께 책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결혼합니다

▲노호경(포항 동도교회 담임목사)·조미경씨 아들 광진군, 이홍섭(대구일보 편집부국장)·양혜원씨 딸 시온양=27일(토) 오전 11시30분 대구성덕교회(수성구 지산동)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세상읽기…여전한 ‘극단의 시대’

여전한 ‘극단의 시대’홍덕률대구대 사회학과 교수‘극단의 시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그렇게 불렀다. 파시즘, 유대인 대학살, 볼셰비키 혁명과 중국 문화혁명, 제국주의와 민족해방전쟁, 종교전쟁, 1, 2차 세계대전, 냉전과 매카시즘으로 점철된 20세기였으니 그렇게 부를 만하다. 이념, 종교, 인종 등, 온갖 이유를 들어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한 100년이었으니, 그의 주장에 아니다 할 수도 없다. 이 좁은 땅도 예외가 아니었다. 역시 ‘극단의 한 세기’였다. 35년이나 식민지 백성으로 살면서 ‘목숨 걸고’ 항거해야 했고 또 살아남아야 했다. 수많은 민간인들까지 동족간 전쟁으로 목숨과 가족을 잃어야 했다. 산업화도 전쟁하듯이 했다. 수많은 이들이 산업재해로 죽거나 다쳤다. 정치도 군사작전과 흡사했다. 고문과 투옥이 일상이었던 적도 있었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열된 대입 경쟁은 흔히 전쟁으로 불렸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은 대입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군사훈련에 다름 아니었다. 크고 작은 전쟁과 한(恨)들이 온 사회에 넘쳐났다. 문제는 21세기 들어와 19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안부,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 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얼마 전에도 반민특위가 한 정치인에 의해 도마에 올랐다. 이념갈등은 더 하다. 그 뿌리인 남북 관계는 최근까지 일촉즉발의 극한대결을 이어왔다. 지금도 툭하면 좌파, 친북, 빨갱이라며 타도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지난한 시도들도 이적행위로 매도되곤 한다. 정치권만의 얘기가 아니다. 민주시민의 덕목과 사람됨의 도리를 가르쳐야 할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겸손과 자비의 공동체여야 할 종교계도 다르지 않다. 맹신과 광기와 극단이 신성한 강단과 성전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염치도 없고 수치심까지 팽개친 인면수심이 어디서나 넘쳐난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극단의 문화’, ‘극단의 행태’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과도한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한다는 것이다. 매사를 선악으로 나누고 모든 사람을 적과 아군으로 구분한다. 말하자면 ‘전쟁 프레임’이다. 상대는 타도해야 할 적일뿐이다. 싸우는 것이 일이고 헐뜯어 쓰러뜨리는 것이 삶이 되었다. 이런 전쟁터에서는 누구라도 정신과 육신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쉽지 않다. 둘째 특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리주의’, ‘일등주의’다. ‘전쟁 프레임’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고 믿는다. 공정한 룰과 경쟁, 신사적인 매너 등은 한가한 얘기다. 권모술수와 거짓말도 능력으로 대접받는다. 최근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일도 한다. 셋째는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다. 상대의 주장은 반대부터 하고 본다. 설령 어제까지 내가 주장했던 내용이라도 상관없다. 적이라고 생각하니 당연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 ‘싸움을 위한 싸움’에 사활을 건다. 넷째 특징은 협상과 타협이 없다는 것이다. 자칫 이적 행위로 간주될 뿐이다. 그러니 중간 지대도 균형이란 것도 없다. 모두에게 유익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대화와 토론도 없다. 있더라도 형식일 뿐 대부분 천박한 우격다짐이거나 막말싸움이다. 다섯 번째 특징은 ‘무(無)논리’와 ‘반(反)지성’이다. 논리와 이성은 없고 감정만 나부낀다. 그것도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감정들이다. 예컨대 증오, 분노, 질투, 원한 등이다. 그런 감정들을 마음 한켠에 묻어두고 사는 선량한 이웃들까지 최대한 자극하고 부추긴다. 내 편에서 함께 흥분해 달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동이다. 우리는 지금 반(反)지성과 선동의 전형을 목격하고 있다. 그것의 끝은 극단의 혐오사회와 공멸일 뿐이다. 2500년쯤 전, 플라톤은 철인 정치를 주장했다. 시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정치인에게는 엄격한 훈련과 자기통제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비슷한 시기, 공자는 군자에 의한 덕치를 역설했다. 현대 민주주의와는 어울리기 쉽지 않지만 그들의 문제의식은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역시 비슷한 시기,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중국의 사상가들은 중용의 덕을 강조했다. 이성적일 것, 지나치지 않을 것, 신중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예수와 석가모니도 겸손하라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내려놓고 비우라고 했다. 서로 존중하는 고품격사회, 상생과 평화의 생명사회. 정녕 우리에겐 가질 수 없는 ‘유토피아’란 말인가.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이것이 날개다/ 문인수

이것이 날개다/ 문인수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중략)/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중략)/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 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시집『배꼽』(창작과비평사, 2008).............................................................2013년 한 3급 지적장애인이 부산시의회 본회의를 방청하려다 포기했다. 시의회 방청안내문에 ‘정신에 이상 있는 사람’은 방청을 금지한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흉기 등 위험한 물품을 갖고 있는 사람과 술에 취한 사람 등과 함께 ‘정신이상자’의 방청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의회 방청뿐 아니라 박물관과 도서관, 복지관 등 상당수 공공시설에는 지적장애인의 출입을 조례로 막고 있다. 그들을 ‘정신이상자’로 간주한 탓이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1년이 되었건만 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현장은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이토록 세상의 모서리에서 안간 힘으로 살고 있으니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면 어느 정도 상태일까. 한마디로 혼자 휠체어에서 화장실 양변기로 옮겨갈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비장애인에게는 아주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들에겐 난이도 높은 묘기에 가깝다. 나돌아 다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집에 혼자 있다보면 여러 이유로 사고사의 위험이 매우 높고 해마다 이 같은 죽음은 이어졌다. 보호자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집안에 불이 나더라도 속수무책 꼼짝없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시인이 키보드 상단의 특수기호를 아무렇게나 두드려 ‘번역’한 대목에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어쩌면 그 눈물은 내가 ‘정상’임을 안도하는 감읍의 눈물과 은밀하게 뒤섞인 알량한 액체였는지도 모른다. 저 알지 못하는 기호 음절 사이에는 숱한 주름과 너울, 경련과 울부짖음, 서러움과 노여움, ‘날개’짓도 박혀 있을 것이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가슴이 저릿하고 먹먹해져 오래 하늘만 쳐다보았다. 죽음이,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만든 그 날개가 진짜로 부러울 수 있다니 말이다.지난 주말이 장애인의 날이었다. 이들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지원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장애인을 부러워하는 비장애인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술자리에서 한 지인이 장애인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팁’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저 농담으로 흘려들었지만 다른 ‘멀쩡한’ 지인 하나는 그때 가르쳐준 대로 이비인후과에서 청력장애등급을 받아 LPG차도 뽑고 통행료 주차료 등도 20년 넘게 할인받고 있다. 장애인올림픽의 한 시각장애 메달리스트는 실제 측정 시력이 1.5였다고 한다. 정작 부끄러워해야할 정신이 잘못된 사람들은 바로 얍삽한 그들이 아닌가. 여기도 쌓인 폐단이 무더기다.

세상읽기…담백한 삶/정명희

담백한 삶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봄옷으로 갈아입은 메타세쿼이아 자태가 눈부시다. 바람결에 묻어 드는 꽃들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점점이 박혀있는 연한 녹색 물이든 산야에 눈길을 주며 아침 일찍 남도로 향한다. 광주에서 열리는 춘계학회 참석차 나섰다. 봄이면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열리는 학회이기에 회원들이 한 차례씩 타지를 방문하게 된다. 자연스레 전국을 돌며 그 지방 음식도 먹고 또 그곳 회원들이 준비한 공연도 보면서 학술대회 하기에 봄이 되면 사뭇 기다려지는 행사다. 기온은 쌀쌀하고 일기는 어둑하여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후배들과 함께 버스에 오른다. 출발 전라남도로.환자들을 진료하느라 피곤함에 지친 전공의들은 이내 곯아떨어지고 그중에 몇몇은 아직 못다 한 일들 마무리하느라 차 안에서도 노트북을 꺼내놓고서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차는 널찍하게 변한 88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길 양옆으로는 파릇한 밭이랑이 한가로이 펼쳐있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틔워 이제는 쑥쑥 자라 열매 맺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지리산휴게소에 들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문득 고개를 드니 울긋불긋한 옷으로 차려입은 등산객들이 한가득 몰려있다. 주차장 한쪽에서는 이동식 탁자에 의자까지 등장하여 왁자하게 잔치를 벌이고 있다. 장비가 버스에 완비되어 있나 보다. 등산복장으로 몸만 나서면 물과 음식과 앉을 의자와 음식을 놓을 탁자까지 마련되어 그야말로 이동식당이 된 듯하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자연 속에서 삶을 즐기며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등 뒤로 한줄기 따스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의 핏속으로 행복이라는 단어가 흐르고 있는 듯하다.봄 학회의 주제는 대기 환경과 소아·청소년건강이었다. 실내와 실외 공기오염과 호흡기 건강, 전자파와 신경발달 장애, 내분비 교란물질과 사춘기 발달 이상 등에 대한 연구 발표를 들으며 미세먼지와 전자파 등 우리의 환경을 교란시키는 것들에 대해 다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연자의 발표가 끝나고 시상식이 이어진다. 학회 발전에 공을 세우고 정년을 맞이하신 원로 선생님들께 주어지는 상이다. 그 상을 받으신 고매한 인품의 원로 선생님은 등산애호가시다. 오늘도 한결같이 등산 스틱을 챙겨 가방에 꽂아 물품 보관 캐비닛에 보관해 두셨다. 학회를 마치면 언제나 그 지역의 산을 찾곤 하신다. 학회 때 몇 번 따라가 보았지만, 젊은이들이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걸어 올라가신다. 헉헉대며 겨우 정상에 오르면 선생님은 “이제 모두 다 정상을 밟았으니, 그만 내려가자” 외치면, 막 차로 도착한 이들이 탄성을 질러대곤 하였다. 산을 즐기고 자연을 사랑하며 언제나 씩씩하게 발걸음 옮기시는 원로 선생님들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할 것이다.따스하게 내리쬐는 볕을 받으며 걷는 이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손과 발을 맞추어 앞뒤로 흔들어가며 세월을 걸어가실 분들, 옛 추억을 떠올리면 언제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정년을 맞이하여도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늘 함께 있어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다면, 행복의 호르몬은 언제든 분비되지 않겠는가.현직에서 열심히 일할 때의 즐거움도 있겠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세월을 되새기며 느릿느릿 산에 올라 보는 것도 더없는 행복이지 않으랴. 늘 오르던 산이고 언제고 놓아야 할 일이라 아무것도 생소할 것이 없다고 하시는 원로 선배님의 말씀을 담담하게 들으며 등산 스틱을 꺼내어 드는 그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셨으니 이제 조금 편히 쉴 법도 하지만. 그래도 일에 대한 열정과 후배 양성에 대한 열의, 등산에 대한 계획을 말씀하신다. 원로 선생님들의 걸음걸이가 언제나 한결같기를 기대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던가. 칠순이 머잖은 선생님이지만, “후배야~”라고 하면서 소년처럼 반갑게 불러대는 그분들을 보면 세로토닌이 떠오른다. 온화하고 긍정적이며 의욕적인 마음 상태를 만들어 주는 세로토닌은 허전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는 자기 조절력의 열쇠라고 행복 호르몬이라고 하지 않은가.평생 환자 진료에 매진하고 이제는 정년을 맞아 다시 등산 스틱을 챙겨나서는 원로 선배님의 삶이 참으로 담백하게 느껴진다. 언제나 리드미컬하게 걸으며 친구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리라.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삶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행복한 마음으로 안내해줄 것이니.봄이다. 봄이 날아간다. 행복한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도록 기운차게 봄 길을 걸어보자. 오늘 하루도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보자. 멋진 원로처럼.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부활절에 드리는 기도/ 피천득

부활절에 드리는 기도/ 피천득이 성스러운 부활절에저희들의 믿음이부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저희들이 당신의 뜻에 순종하는그 마음이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권력과 부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정의와 사랑을 구현하는그 힘을 저희에게 주시옵소서.- 웹진《늘 푸른 나무》2013년 3월...........................................................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며, 이 사실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게 최고의 축복이자 영광이다. 그리고 부활은 죽음을 무력화시킨 사건이다. 영혼과 육체 모두 죽음을 이기고 살아난 사건이 부활이다. 이를 빈 무덤이 말해주고 있다. 시신에게 바를 향유를 들고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천사는 말한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이것은 복음의 첫 말씀이고 예수님이 누우셨던 빈 무덤은 기독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 절망에 대한 희망의 승리, 근심과 염려에 대한 기쁨과 용기의 승리라 할 수 있다.부활의 승리는 이렇듯 우리 모두에게 큰 선물이지만 그것도 받지 못하는 자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고 기독교인 가운데도 다른 것은 다 믿어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만큼은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실 부활의 과학적 증명은 불가능하여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다. 특히 오늘날 매사에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더욱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로지 단 한 번의 일기 일회적 사건이며 두 번 다시 거듭되지 않았기에 더 이상 그 사실의 입증이 불가능해져 부활 사건은 초월적 신비로 밖엔 이해할 수가 없는 사건이다.예수님이 묻힌 무덤은 무거운 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찍어 놓은 봉인, 무덤에 보초까지 세운 삼중의 장치를 뚫고 벌떡 일어나셨다니 수긍하기 쉽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지식과 경험치 가지고는 풀 수 없는 신적 영역에서의 사건이다. 마치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온 것이 불가해한 신의 영역이듯.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신앙을 주신 것이리라. 오히려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없는 일들이 판치는 오늘날의 이 혼탁한 세상에서 ‘당신의 뜻에 순종’하게 하고 ‘그 마음이 살아나게’하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부활의 크고 신비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믿는 것이다.부활절은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어둠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지상최고의 복음이리라. 지금 이 나라는 무능하고 정의롭지 못한 정부의 어두운 굴다리를 지나 밝은 햇빛을 받으며 곧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기대만큼 썩 유능해 뵈지는 않으며 속도가 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어둠의 골짜기를 헤매며 신음할 수는 없다. 비록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일지라도 우리들의 믿음이 부활하기를 기도한다. 오로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권력과 부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정의와 사랑을 구현하는 그 힘을’ 받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바른 선택을 하는 일뿐. 그리고서 그분처럼 우리 또한 부활의 큰 꿈을 꾸리라.

예수가 올랐다는 로마 ‘성(聖)계단’, 300년 만에 덮개없이 개방

예수가 올랐다는 로마 '성(聖)계단', 300년 만에 덮개없이 개방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던 날, 모욕과 고통 속에 올라갔다는 믿음이 서린 로마의 ‘성(聖)계단’(Scala Sancta·스칼라 상타)이 약 300년 만에 나무 덮개를 벗은 본 모습으로 개방됐다.로마 동남부 성요한 라테라노 대성당 옆에 위치한 ‘성계단 성당’은 28단의 대리석 계단과 천장, 벽의 프레스코화 등에 대한 약 10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최근 마무리 짓고 17일(현지시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일반에 공개했다.예수가 당시 로마제국의 유대 총독이던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 형을 선고받았을 때 올라갔던 계단으로 알려진 이 계단은 해마다 수십 만명의 순례객들이 몰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발이 아닌 무릎과 손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유명한 성지이다.예루살렘에 자리해 있던 이 계단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처음 허용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친인 헬레나 성녀가 기독교로 개종한 뒤 326년 로마로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교황 이노켄티우스 13세는 1723년 이 계단을 마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나무 덮개를 씌웠고, 이후 대리석으로 된 성계단의 맨살은 목재 속에 감춰진 채 밖으로 드러난 적이 없다.성령강림절인 오는 6월 9일 이후에는 다시 나무 덮개로 덧씌워질 예정이다.한편, 전문가들이 복원을 위해 성계단의 나무 덮개를 제거하자 계단 안쪽에서는 수년에 걸쳐 놓인 묵주와 자필 기도문, 사진, 동전 등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유고시집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4·19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발표 직후 쓴 작품이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고 ‘혁명은 고독’한 것으로 자유와 민주를 위한 투쟁의 어려움을 절규하고 있다. 자유는 가만히 앉아 거저 얻어지는 수동적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적극적 실천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노고지리의 비상을 통한 낭만적 자유에 일침을 가하면서, '푸른 하늘'이라는 높고 아름다운 자유를 향한 비상도 실천적인 투쟁과 노력 없이는 온전히 누릴 수 없다고 역설한다. 혁명이란 철저한 자기변혁을 위한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야 하니 외롭지 않을 수 없고, 실패에서 오는 좌절까지도 견뎌야하는 굳건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얼마 전 한 방송에서 4·19를 맞아 지금의 학생들이 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인터뷰하여 내보낸 적이 있다. 가슴에 깃발 같이 펄럭이는 열정으로 다가왔던 지난 역사의 장면들이 기억 속에 사라져버리고 의미마저 퇴색해버린 이때, 그들의 대답은 들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학교에선 국사가 안 배워도 그만인 과목이 된 지 오래다. 더구나 시험에 잘 나오지 않은 근현대사는 이해는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니 4·19혁명이 잊힌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민주와 지성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정신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4·19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먼 과거 속의 신화이며 박제였던 것이다.시위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수많은 국민이 피를 흘리고 죽거나 부상당한 희생 위에서 4·19의 장엄한 민주혁명을 쟁취했음에도, 이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거나 외면한 채 시시콜콜한 연예뉴스 따위에만 반응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물론 그때의 자유에 대한 목마름은 해갈되었지만 지금은 지금의 또 다른 가치가 존재한다. 4·19혁명은 역사상 초유의 성공한 주권행사였고, 민족사적 측면에서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이다. 지배와 피지배로 갈리고 억압과 굴종으로 나뉜 역사에서 피지배와 굴종만을 운명처럼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 처음으로 억압자들을 뒤엎어 버린 가슴 벅찬 감동의 사건이 아니고 무엇이랴.4·19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그들의 정신을 실천하였기 때문에 지난 촛불혁명도 가능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가 꿈꾸는 자유와 정의의 푸른 하늘은 열리지 않았으리라. 그 정신을 가다듬지 않고 부활하지 않고서는 또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기도 하고 혁명의 완성을 위한 과정의 어려움과 긴장에 대한 부담도 이해된다. 그러나 당장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정농단세력 등 적폐 척결의 완성 없이 두루뭉술 선급하게 단 한 차례의 반성도 없었던 ‘박근혜 석방’ 운운은 역사적 미숙이고 퇴행이 될 수도 있다. 4·19정신의 방기이며 세월호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처사의 다름 아니다. 혁명은 고독한 것이고 앞으로도 고독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