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맥도날드 햄버거의 아이러니

맥도날드 햄버거의 아이러니이현숙재미수필가엘에이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커다란 노란색 M자 아치가 자주 눈에 띈다. 미국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다. 교통의 요지와 고속도로 주변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사람을 부른다. 이민 초기인 1980년, 처음 먹어본 맥도날드의 빅맥 햄버거는 너무 맛있었다. 진한 향수병에 시달렸을 때도 내 손에 들려 태평양 바닷가에 함께 갔다. 가족들의 이름을 모래사장에 썼다 지우며 눈물을 흘리다가 누런 봉투에서 식어버린 빅맥을 꺼내 먹고는 했다. 삶의 허기를 달랬던 눈물 젖은 빵인 셈이다.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를 잡고 있기에 맥도날드는 눈을 들면 보인다는 표현도 있다. 창립자인 레이 클록은 로케이션이 사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체인점의 부지와 위치결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안목과 관찰력은 대단해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서면 그 주위로 경쟁업체들이 자리를 잡으며 상권이 형성된다. 그래서 맥도날드는 가장 비싼 거리와 교차로에 땅을 갖고 있다고 한다.지나며 쉽게 만나게 되는 맥도날드의 숨겨진 이야기를 영화 ‘파운더’를 보고 알게 되었다. 미국 최대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 창립자는 레이 클록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이 더 나온다. 모리스와 리처드 맥도날드 형제다. 그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의 작은 승차 구매(Drive-Thru) 시스템의 식당을 운영했다. 햄버거 조리를 분업화하여 30초 만에 만들어냈는데 값이 저렴하고 품질과 맛은 최고였다. 맥도날드 형제가 직원들과 테니스코트에서 주방 위치를 분필로 그려가며 몇 개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한 자동 시스템 덕분이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 모델 T형 생산라인을 재구성한 방식으로 당시 획기적이었고, 현재까지 미국 패스트푸드 주방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밀크셰이크 판매원이던 레이는 이런 맥도날드의 효율적인 운영방식에 반했다. 햄버거를 사기 위해서 끝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을 보고 그의 욕망은 끓어올랐다. 교회의 십자가만큼이나 맥도날드의 황금 아치를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게 하겠다며 끈질기게 형제를 설득했다. 1955년 일리노이주 디플레인스에 맥도날드 1호점을 시작으로 레이의 질주는 멈출 줄 모른다. 가족 경영을 내세우며 재료의 신선함, 음식의 품질관리에 신경 쓰는 형제와의 마찰은 점점 커졌다. 결국, 1961년에 270만 달러와 연 이익의 1.9%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상표권을 레이에게 팔았다. 그러나 연 이익금인 로열티는 구두로 한 계약이라 받지 못했다. 오직 하나, 자신들이 시작한 맥도날드 식당만은 남겨달라는 부탁도 거절당했다. 결국 ‘The Big M’이라는 상호로 바꾸었는데 근처에 맥도날드 체인점이 들어오며 망했다. 합법적으로 강탈당하고 난 후 두 형제의 허탈해하는 표정이 화면을 꽉 채우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영화를 보는 내내 고민했다. 현재 세계 119개국에 3만4천여 개의 매장을 소유한 글로벌 기업의 진정한 창업자는 누구일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며 사업 확장을 한 적극적인 레이 클록인가. 그는 자신이 1955년에 설립한 첫 프랜차이즈 식당을 1호점이라 부르고, 후에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햄버거를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삼켜버렸다.’ 한국판 영화 포스터에 한마디로 정리가 됐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창시자는 두 형제지만, '맥도날드 기업'의 설립자는 자신이라는 것이다.아니 진정한 원조는 품질 우선을 앞세운 맥도날드 형제가 아닐까. 창립 정신은 가족이지 돈이 아니라는 순박하고 고지식한 형제가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맥도날드 형제는 자신들이 개발한 아이디어로 그 지역에서 안전하게 장사를 했을 것이다. 레이는 그저 그런 시골 레스토랑으로 남을 수 있다고 형제를 비꼬는 내용이 영화에 나온다. 지역의 맛 집 정도로 알려질 수도 있었다. 레이는 야수처럼 탐나는 먹이를 잽싸게 낚아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 영역을 넓혔다. 야비해 보이지만 그를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은 소비자인 내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바로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그런 사업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역주의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힘들거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가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아직도 그 아이러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민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사업가 기질이 없는 나는 레시피를 만들고 땀 흘려 기초를 다진 형제가 창립자라고 생각한다. 맥도날드는 모든 곳에 있어야 한다며 가능성을 알아보고 키운 레이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가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확실하니까.역시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맞다. 알고 나니 온전하게 빅맥의 맛을 즐길 수가 없으니 말이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광야에서

광야에서/ 문대현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핏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진 뜨거운 흙이여-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1989)....................................................‘광야에서’는 1984년 문대현 작사, 작곡의 민중가요다. 지금은 방송음악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대현은 성균관대 무역학과 82학번으로 당시 22살이었다. ‘여행을 가도 슬프고 연애를 해도 슬펐던’ 시기에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서 30분 만에 만든 노래였다. 이 노래는 곧장 그의 주도로 1984년 결성된 성균관대 노래동아리 ‘소리舍廊’에 의해 초연되었다. 큰 호응을 얻고서 처음엔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만 불리다 1986년부터 구전되어 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이후 ‘노찾사’ 2집과 안치환, 김광석 앨범에 수록되면서 ‘대중가요’로 널리 퍼졌다. 문대현이 음악을 하게 된 동기도 그렇거니와 그의 음악은 형에게서 받은 영향이 크다. 문대현의 형 문승현은 서울대 정치과 78학번으로 국내 최초 민중가요 노래패 ‘새벽’에서 활동했으며 ‘노찾사’를 결성한 주역이었다. 그가 만든 노래 ‘그날이 오면’ ‘사계’ '오월의 노래' 등은 일반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암울했던 80년대 민중가요의 선두주자였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시대의 아픔을 반영한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등 숱한 명곡들을 남겼다. 노래를 통해 독재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꿔왔다. 문승현과 더불어 원년 ‘노찾사’ 멤버인 한동헌은 서울대 경제과 77학번으로 오랫동안 ‘노찾사’를 이끌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요구를 ‘지성적 대중음악’이라고 진단했고 그 방향에서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다. 지성적 대중음악이란 세상과 삶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깊이 있게 담아 표현해내는 품위 있는 음악을 뜻한다. 한동헌은 김민기와 김광석의 노래, 정태춘의 몇몇 노래, 이적의 노래, 외국의 경우 레너드 코헨이나 밥 딜런의 노래 등을 예로 들었다. 문대현은 노랫말의 배경에 대해 “당시는 전두환이 한일문화교류를 한답시고 일본 가서 천황 알현한다고 난리칠 때였어요. 민기 형의 ‘천리길’이나 ‘아침이슬’의 상징적 이미지 등이 뒤섞여 내재했다가 술기운에 그렇게 나온 것 같아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 속에서 무엇도 할 수 없어 자괴하던 나의 독백이었다며 “그 광야는 어느 시인의 것이기도, 술 취해 부르던 노래 ‘아침이슬’의 광야이기도 하다”고 했다. 물론 ‘어느 시인’은 이육사를 말하며, 만주벌판에 말달리던 독립군과 육사의 ‘광야’를 단박에 연상케 하는 가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이 노래가 불리어졌다. 각종 기념식에서 전에는 전혀 불리지 않았던 뜻밖의 노래들이 등장하곤 했다. 국가기념식 중계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중계방송을 지켜보며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이고 보편적인 미추와 품위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제 경기 광주시청에 임시로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남한산성아트홀 앞마당으로 이전 안착시키는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 마지막에 ‘광야에서’를 합창했다. 저 들판 광야에서 뜨거운 흙을 움켜쥐는 날, 그날이 와서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우리의 노래를 뿌리자.

당직변호사

▲16일 임성진 ▲17일 이지은 ▲18

의료칼럼…균형 잡힌 얼굴이 미인

균형 잡힌 얼굴이 미인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젊은 여성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코에 필러주사를 맞겠다고 찾아왔다. 진료실에 앉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코를 높이는 주사를 맞았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높이가 살짝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여름도 지나고 곧 개강하기 전에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하다가, 코를 조금 더 높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을 찾아왔다는 것이다.이야기하는 동안 거울을 보며 자신을 향해 표정을 여러 모습으로 지었다.환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 얼굴사진을 몇 장 찍어서 나와 같이 그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해 봅시다.”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진찰하기 전에 먼저 스튜디오에서 얼굴의 표준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필자의 오래된 습관이다.성형수술은 근본적으로는 자기만족이이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남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 즉 객관적인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환자의 얼굴사진을 컴퓨터에 올려 보니 그 환자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보였다.얼굴의 위쪽 삼분의 이가 얼굴 전체 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아래쪽 삼분의 일, 즉 흔히 말하는 하관의 크기가 너무 작다. 게다가 눈썹, 눈, 광대뼈, 코의 크기가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입의 크기가 폭도 좁고 두께도 너무 얇다. 전반적으로 위쪽 얼굴과 아래쪽 얼굴의 비대칭이 너무 심한 것이다.사진을 함께 보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보시다시피 위쪽 얼굴과 코의 크기가 아래쪽 얼굴, 특히 입술의 크기에 비해 차이가 너무 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생각하는 것처럼 코의 크기가 더 크게 변한다면 그 크기의 비대칭이 너무 커져서 오히려 얼굴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코의 크기를 크게 해 주는 것보다 오히려 입술의 크기와 폭을 크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필자의 설명을 듣던 환자가 무엇인가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야기했다. “이제껏 집에서 거울을 들여다 볼 때나, 여러 병원에서 상담을 하러 다니면서 코에 대한 생각만 해 왔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얼굴 전체를 보니 문제는 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입술과 턱 주변에 있다는 점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코에 필러를 주사했을 때도 처음 코가 높아지는 것을 보고 좋아했었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결국 그 환자는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위쪽 얼굴을 줄이는 주사요법을 시술하고, 아래쪽 얼굴의 볼륨을 늘려주기 위해 입술의 두께와 폭을 늘려주고, 턱 끝의 볼륨을 필러로 늘려주었다. 새롭게 변한 모습에 만족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환자는 돌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고 좋아했다.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눈썹, 눈, 코, 입이 각각 아름다운 사람들은 많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각각이 다 좋은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어색한 모습의 얼굴을 보기도 한다. 그럼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중요한 것은 각각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얼굴이라는 캔버스 위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한 폭의 조화로운 그림처럼 하나의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할 것인가라고 하겠다.그러기 위해서는 눈썹, 눈, 코, 입술의 크기, 위치가 얼굴 전체에서 적당한 크기로, 적절한 위치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비록 이목구비가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얼굴 안에서 있을 자리에 균형이 잡힌 모습으로 있는 경우에는 남들에게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좋은 인상을 주는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분위기가 있는 얼굴이 바로 그것이다.비록 적당하고 균형이 잡힌 위치에 눈, 코, 입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할지라도 작은 입술, 작고 폭이 좁은 눈, 작고 짧은 코, 여성 환자의 얼굴에 남성형의 매부리코가 있는 경우처럼 얼굴 전체의 조화가 깨어진 경우는 얼굴의 밸런스를 맞추어주기 위해서 길이와 폭, 크기에 변화를 주는 수술이 필요하다.거리를 다니면서 보면 단순히 수술한 티가 나는 모습뿐만 아니라, 한 부분만 과도하게 강조된 모습의 밸런스가 망가진 얼굴이 조금씩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각자의 모습에 어울리는 가장 조화로운 얼굴들을 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각각의 이목구비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미인으로 보이듯이, 우리 사회도 얼굴이란 거대한 캔버스처럼 각자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보다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경제칼럼…새로운 100년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새로운 100년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시 ‘불과 얼음’에서 ‘누군가는 세상은 불에 싸여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얼음에 싸여 끝날 것이라고 한다’고 썼다. 이 시구는 종종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과 같이 인간의 헛되고 과도한 욕망과 열정은 두 말할 것 없고, 얼음과 같이 차가운 인간의 증오심과 냉담함 및 잔인함도 세상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로 차용된다.그런데 최근 미중 간 경제전쟁이 확전 일로를 걷는 것을 보니, 프로스트의 경고가 이 두 국가 탓으로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커진다. 이번 달 초 미국의 중국에 대한 4차 추가관세조치로 다시 불붙은 양국 간 경제전쟁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중단과 위안화 평가절하라는 중국의 맞대응을 불러왔고,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무역회담을 연기함으로써 전면전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그 탓에 안전자산으로 잘 알려진 달러화와 엔화의 가치는 급등한 반면 원화를 비롯한 개도국 통화의 가치는 급락을 유발했다. 소위 공포지수라 불리는 VIX 지수(volatility Index)가 급등하면서 투자자들의 심리도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VIX 지수는 S&P 500 지수옵션의 향후 30일 간의 변동성에 대한 시장기대를 나타내는 지표로 낮을수록 시장 안정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10%대 초반 수준에서 유지되던 이 지수가 10%대 후반까지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의 리스크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물론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을 두고 프로스트의 경고가 현실화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후 조치가 지금과 같이 강경 일변도로만 간다면 그럴 가능성은 커진다.우선, 이번 조치로 인해 2017년에 3% 정도에 불과했던 미국의 대중 평균 관세율은 2년도 채 안되어 27%를 상회할 전망이다. 또, 중국이 개도국으로서 WTO 최혜국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면 평균관세율은 무려 38% 정도까지 뛰게 된다. 미국에 연간 약 2조 달러의 부가가치를 수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큰 부담일 수 밖에 없고,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도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안아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GDP의 약 0.5%에 해당하는 부가가치를 중국을 통해 미국으로 간접 수출하는 실정이다.그렇다고 미국이 무조건 유리하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대공황 초기인 1930년에 미국은 약 2만여 개에 달하는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보전함으로써 대공황으로부터 빨리 탈출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반대로 대공황은 더 심각한 수준으로 내달았다. 이번 조치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최악의 경우에는 약 1% 포인트 정도의 GDP 손실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미국 FRB가 금리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는 생각도 든다. IMF가 미국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도 근거가 박약하다는 평가처럼 날로 높아지는 세계적인 비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그야말로 전쟁이라 불릴 만큼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빨리 해소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오래 갈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것은 미국과 중국의 생각이 매우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라는 슬로건에 담겨 있는 패권국으로서의 욕망과 열정의 불꽃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미국과 ‘자력갱생’을 외치며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인 ‘중화(中華)’를 재현하고자 하는 중국의 생각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조정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만약,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면 이는 마치 폭풍우 속을 걸으면서 옷자락 하나 젖지 않길 바라는 것과 같다. 어쩌면 지금의 미국과 중국은 중세말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막 ‘100년 전쟁’을 시작한 지도 모른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가장 사나운 짐승

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시집 ‘인류의 盲點에서’(문학사상사, 1998).......................................................... 세상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사나운 짐승일 수 있다. 세상에 고약한 사람들이 널려있지만 내가 가장 고약한 사람일 수도 있다. 세상에 이중인격자를 많이 보지만 내가 바로 그 두 얼굴의 야누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떠한 위험한 동물도 사람과 친숙해지고 그 동물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면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 인간이 포악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극도의 이기심 때문이다. 세상에 가장 나쁜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지 않은가.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보는 사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인간이다. 실은 호랑이와 악어 따위가 사나워서 철책 안에다 가둬두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못된 탐욕 때문에 그들이 갇혀있는 것이다. 그들 눈에는 철창 밖의 우리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사나운 짐승’이다. 인간의 이기와 탐욕으로 무수한 생명들이 무참히 죽어나가고 그 죽음조차 생명에 대한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잔인함에 치를 떨게 한다. 동물에 대한 학대만이 아니라 같은 인간을 향해 저질러지는 잔혹사도 그러하다. 도처에서 태연하게 저질러지는 끔찍한 살인극은 이어지고 있으며, 어처구니없는 살인이 장난처럼 자행되고 있음을 경악스럽게 목격한다. 하도 끔찍해 고유정의 살인동기가 그의 변명처럼 우발적이라 믿고 싶을 지경이다. 맹수인 사자도 자신을 위협하거나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할 때가 아니면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 동물은 제 배가 채워지면 더는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데 반하여 인간은 그렇지 않다. 가장 이성적인 존재임을 자처하면서 때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사납고 위험한 존재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영혼에 심어 놓으신 선한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곧장 맹수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인간의 영혼에 양심이 떠나가고 악신이 들면 인간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그래서 히틀러나 피노체트, 이디아민이나 폴 포트 같은 인간이 나타날 수 있고, 아우슈비츠와 731부대의 만행도 ‘악의 평범성’아래 태연하게 저질러지는 것이다. 그들은 절대 ‘학살’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최종 해결책’이라고 썼을 뿐.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에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도 모른 채 이성과 감성이 마비상태에 빠져버린다. 지금 일본의 아베에게서 그런 그림자를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이고 기우일까. 나도 7년 전 와이키키 해변 인근의 호놀룰루 동물원에 잠깐 들렀다. 동물이 갇힌 우리들을 지나 맨 마지막 자물통이 채워지지 않은 한 우리 앞에 섰다. 그곳엔 “Come and look. at the most dangerous creature on Earth”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나도 그만 지구상의 ‘가장 사나운 짐승’을 보고야 말았다.

동정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은 14일 오전 9시30분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열리는 ‘한국초등여교장협의회 전국 연수회’에 참석한다.

세상읽기…나는 의심한다

나는 의심한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땐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었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이라 즐겨 표현하고, 자신은 ‘촛불혁명’으로 집권했다고 자랑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와 ‘촛불혁명’이란 용어를 그냥 수사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이제야 해본다. 양자를 연계하여 지금까지의 경과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혁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을 총칭한다. 그러나 혁명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정치적 혁명을 뜻하고, ‘시민운동, 봉기 등을 일으켜서 기존 정치체제를 급격하게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혁명은 흔히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며 지배계층 교체와 체제변혁을 추구한다. 혁명 과정에 억울한 희생과 사회혼란이 따르고, 새로운 독재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부작용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면 혁명이 실패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혁명은 어려운 과업이다.적폐청산이란 명분으로 기득권 세력을 처단한 것과 이른바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로 요직을 장악한 것은 지배계층 교체다. 촛불정신을 헌법전문에 삽입하고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 한 것은 체제변혁을 시도한 거다. 토지국유화를 찬성한다는 여당 대표의 발언과 삼성이 20조만 풀면 1,000만원씩 200만 명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말도 섬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 마디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여러 의문점들이 어느 정도 줄줄이 풀려나간다. 친중연북은 자연스럽다. 중국에 약속한 3불정책(사드를 추가배치하지 않겠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에 가입하지 않겠다, 한·미·일동맹에 참여하지 않겠다), 군의 손발을 묶어놓은 9·19 남북군사합의 등이 같은 줄기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전역장성들이 공산화 위험을 우려하면서 그 파기를 주장한 사안이다. 북핵을 심각하게 보지 않고 남의 일처럼 보는 점, 북핵 제재완화 역할을 자임한 점, 북미회담을 통하여 평화협정과 미군철수를 노린 점,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 환수하려 하는 점 등도 역지사지하면 이해가 된다. 경제 영역에서 포용경제와 공정경제라는 이름하에 강행된 소득주도성장과 그 말썽 많은 다양한 정책 도구들도 다른 방향에서 보면 체제변혁을 꾀하는 징후로 읽힌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한 연금사회주의, 친노동반기업 정책 등도 그 방향성은 같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희생과 사회혼란은 사뭇 혁명적이다. 독재자의 출현은 ‘글쎄’다. 부작용이 기승을 부리게 되면 혁명은 실패로 끝난다는 역사적 교훈은 엄혹하다.경제전쟁은 일본의 치졸한 선공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우리가 일본을 자극한 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약을 올려서 싸움을 촉발한 측면이 있다. 미국 비위를 상하게 할 행동을 의도적으로 지속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계획적으로 삐걱거리게 했을 지도 모른다. 미국과 일본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새로운 체제에 부응하는 북·중·러 안보라인으로 갈아타는 고도의 계산된 전략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해양세력보단 대륙세력과 친하긴 했다. 북한의 역할은 투정하고 비난함으로써 한통속 의심을 사지 않는 일이다. 미사일을 쏘는 등 딴전을 피우면서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권핵심들의 경기어린 언행과 무력해 보였던 안보·외교정책도 뒤집어보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체제변혁에 대한 관심사를 따돌리는 기막힌 착상은 압권이다. 국제정세에 떠밀려서 불가피하게 체제가 수동적으로 변혁되는 상황은 국민에게 의식하고 반발할 겨를도 주지 않는다. 최근 난국을 보는 이러한 주관적 추론은 과도한 의심에 기인한 가설로 치부할 수 있다. 부디 어리석은 사람의 기우이길 진정 바란다.그렇지만 촛불시위를 혁명이라 하긴 무리다. 박근혜정권은 헌법절차인 탄핵을 통해 와해되었고, 문재인정권도 현행헌법에 규정한 국민투표를 통해 탄생됐다. 현 정권이 혁명정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현 정권은 체제변혁 권한이 없다. 헌법체제 내에서 권한을 가지며, 그 한도 내에서 제도개혁 권한만 가진다. 체제를 변혁하려면 ‘가고자 하는 체제’가 어떤 것인지 국민 앞에 그 정체를 명확히 밝히고, 그에 맞게 우선 헌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체제변혁은 위헌이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거울 앞에 서서

거울 앞에 서서/ 허홍구치장하고 모양을 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저기 저 거울 속에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놈/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언제 등 뒤에서 나타나/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도둑놈 얼굴의 나/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꽃밭으로 뛰어드는 저 불한당// 거울을 볼 때마다 문득 문득 나타나서/ 또 나를 놀라게 하는 더럽고 치사한 내가 무섭다// 얼마나 더 늙고 병들어야 저 욕심 놓아 버릴까.- 시집 『사랑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북랜드, 2019)..............................................................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많은 것을 본다. “뭐 아직 괜찮네, 그래도 이만하면 어디 가서 기죽을 정도는 아니지” 혹은 “이제 내 인생 종 쳤어, 이 주름들은 도대체 뭐람” 그럴지도 모른다. 외면의 얼굴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뿐 아니라 때로는 그 세월을 살아온 자신의 내면까지도 바라본다. 그리고 과연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기도 한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화상에서 솔직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며 깜짝 놀란다. 페르시아에 구전되어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여인이 죽어 하늘나라에 올라갔다. 여인은 커다란 거울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거울 속에 매우 흉측한 얼굴 하나가 들어 있었다. 여인은 그 모습이 너무 추악해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흉악한 몰골을 본적이 없었다. 여인이 고함을 질렀다. “더럽고 흉악한 요귀처럼 생긴 여인아, 너는 도대체 누구냐?” 그러자 거울 속의 여인이 말했다. “나는 네가 세상에서 살았던 네 행위다!” 사람의 감추어진 행위는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고, 죽어서도 따라다닌다. 미리미리 자신의 탐욕이 남을 해코지하거나 터무니없는 아집과 망상이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지 따위를 살펴보고 반성의 시간과 함께 자신을 가다듬는 것이 상책이다. 시인의 성찰은 이러한 묵직한 것들도 내포하고 있으나 시는 그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지수화풍의 변화 속에 ‘나이 일흔’을 넘겨서도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꽃밭으로 뛰어드는 저 불한당’의 대책 없는 춘정을 고해한다. 사람은 아무리 늙어도 사랑하는 감정은 결코 녹슬거나 시들지 않는다. 그 사랑의 감각은 마음뿐 아니라 육체에도 새겨져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은교’ 하나쯤 품고 있을 수도 있다. 소설 ‘은교’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 사랑은 시간의 눈금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본래 미친 감정이다. 당신들의 그것들도 미친, 변태적인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관능은 생로병사가 없는 모양이다.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미당은 일흔 중반에 한 고승을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스님, 언제쯤 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스님이 답했다. “나는 여든이 넘었는데 아직도 젊은 여성이 절을 찾아오면 마음이 설렙니다.” 달라이 라마도 일흔이 넘도록 여성을 보면 유혹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그 유혹과 욕정이 자기 안에서 다스려지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로 성자가 되기도 가정부를 건드린 어느 회장처럼 주책바가지 치한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들지 않은 사랑과 낡아버린 능력 사이의 부조화를 겪으며 ‘下心’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제 오랜만에 허홍구 시인과 만나 점심을 함께하며 술도 한 잔 했다. 해학은 여전했고 철학은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생각한 대로 잘 다듬으며 늙어가는 듯 보였다.

부고

▲설동문씨 별세, 설수환·보름·한울(신천가온유치원 교사)씨 부친상, 권기현(매일신문 편집부 기자)씨 장인상 = 12일, 영남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02호, 발인 14일 오전 11시. ☎053-620-4242

아침논단…이종 간 융합을 보고 배워라

이종 간 융합을 보고 배워라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조용한 곳에서 휴가를 보내다보니 좋은 점이 많다. 시간이 나면 책이나 좀 읽어보자고 가볍게 생각하고 가지고 온 책을 내리 두 권을 읽었다. 그 중의 하나가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지은 ‘열두 발자국’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저자의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던 12개의 강연을 선별해 이야기하듯 풀어낸 책이다. 대구시가 지난 2016년부터 추진해온 독서 캠페인인 ‘2019 대구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1천600여 명의 시민이 투표에 참여해 선정한 만큼 이미 독자들의 관심을 얻은 책이었다. 이 책은 마치 현장에서 강연을 듣는 듯 일상과 관련된 뇌과학을 쉽게 설명을 해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다룬 부분이었다. 천장이 높아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제목에 이끌려 집중해서 보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미국인 바이러스 학자 조너스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연구자다. 초기에 연구 성과가 없던 그는 답답한 마음에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13세기에 세워진 수도원 성당 안에서 어느 날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그는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백신 제작 과정을 무료로 공개해 지구상에서 소아마비 환자를 사라지게 하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소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소크생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루이스 칸에게 설계를 맡겼다. 소크는 그에게 “내 아이디어는 천장이 높은 수도원 성당에서 얻었다. 천장이 높아 사고공간이 한없이 넓어진 느낌이었다. 연구소의 모든 공간의 높이가 높았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다. 높은 천장 덕인지 이후 이 연구소에서 지난 50년간 1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었고 높은 천장과 창의력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연구자들의 실험도 잇따랐다. 그 결과도 흥미롭다. 집중력이 필요한 단순 문제를 풀 때는 천장높이가 낮은 2.4m였을 때 가장 높은 성과를 얻었다. 반면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천장의 높이가 가장 높았던 3.3m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이 실험이후 과학자들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공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그걸 바탕으로 건축물을 설계했다. 정재승 교수는 책에서 이 연구결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뭔지 반문한다. 그는 신경과학과 건축학, 두 분야의 만남에 주목했다. 언뜻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분야의 만남이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결국 혁신의 실마리는 가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봄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주워 담기 위해서는 도서, 여행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경계를 넘나들면서 타 분야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최고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융합하는 능력은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진화해도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했겠나 싶다. 몇 년 전부터 융합(convergence)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대학에도 융합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학과가 등장하고 정부부처나 각종 연구기관들에서도 융합 연구과제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전 세계가 융합이라는 경주에 뛰어들어 무한경쟁 중이다. 융합은 학문 뿐 아니라 산업분야에서도 활발하다. 특히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소재부품 장비산업 등 원천기술 확보 및 대외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도 융합은 필수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융합이 시급한 분야가 정치일 듯하다. 어차피 신경과학과 건축학의 만남처럼 혁신은 한 영역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융합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융합은 둘이서 함께 뛰는 이인삼각 경주와 같다. 이인삼각 경주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기대면서 호흡을 잘 맞춰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어깨동무를 한 정치권이 서로의 의견을 잘 녹여내고 융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공동칼럼…욕망의 질주와 인성교육

욕망의 질주와 인성교육한병선교육평론가·문학박사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했다. 이 같은 단순성은 생활의 단순성으로 이어졌다. 오직 필요만이 생산을 이끌어내는 주요 동인이 되었다.하지만 사회는 산업화와 함께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뀌었다. 곳곳의 공장들은 무서운 속도로 상품들을 쏟아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들은 그럴듯한 포장을 거쳐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대량소비의 시대가 된 것이다.이런 환경변화는 단순히 우리 삶의 외형만을 바꾼 것은 아니다. 가치관은 물론 사물을 보는 눈까지 변화시켰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면의 정신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었다.자본주의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된다. 이런 특성 상, 욕망하는 대상은 곧바로 소비로 연결되는 특징을 갖는다. 소비력에 따라 철저히 사람들의 위계까지 결정되기도 한다.페미니스트 리타 펠스키에 의하면, 오늘날 소비주의 문화는 도덕적, 종교적 권위를 무시한 채 소비자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도록 조장한다. 남녀 간의 내밀한 관계, 혹은 가정 내의 가부장적 가족구조까지도 파괴시킨다고 말한다. 사실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교육에서 교육은 소비재가 된지 이미 오래다.교육소비, 수요자 교육, 교육소비자. 교육소비 비율, 교육소비 욕구 등의 용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를 용어를 키워드로 하는 논문들도 나온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교육과 소비의 문제는 교육내용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혹은 수단적인 교육에 무게를 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런 경향성이 현실적으로 교육의 본질과 완전히 유리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여가생활도 소비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흔히 '3S산업'으로 일컫는 관광산업은 대표적인 경우다. '태양(sun)', '바다(sea)'와 함께 '성(sex)'까지도 상품으로 소비한다. 성을 매개로 인간의 몸조차도 화폐경제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육의 상품화, 몸의 상품화, 전통과 역사의 상품화 등 수없이 많다. 이런 변화는 일상의 삶에서 물질의 풍요로움을 삶의 풍요로움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풍요로운 사회(abundant society)'에서 인간관계는 과거와 달리 타자와의 관계가 아닌, 사물과의 관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은 더 새로운 상품에 의해 자극을 받으며 유행으로 번져간다. 사람들은 다시 유행을 따라 더욱 사물 의존적인 존재가 된다. 이는 상품의 유용성이 아닌, 유행 혹은 이미지에 의해 구매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는 현상이다.오늘날의 소비 형태는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소비는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유도된 소비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 수단적, 소비적인 교육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소비지향적인 방향으로 갈수록, 비인간적, 비인성적으로 갈수록 인성교육은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는 의미다.이런 점에서 갈수록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성보다는 수단적 요소들을 강조함에 따라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다. 꽃의 향기가 백리를 간다면 사람의 향기는 천리를 가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인성교육의 당위성이 아닌 교육목표와 방향성이다. 현재 이루어지는 인성교육의 내용이 사회 전반의 변화와는 유리된 과거 회귀의 모습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여기서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나 삼강오륜식의 질서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