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문화관광공사 부산에서 대구경북방문의 해 홍보

경북문화관광공사(이하 경북관광공사)가 최근 부산 일대에서 2020년 대구·경북 관광의 해를 홍보하기 위해 거리 캠페인을 벌였다.경북관광공사 임직원들은 부산 시민 및 관광객을 대상으로 게릴라성 거리 홍보 이벤트를 통해 2020년 대구경북 관광의 해를 소개하면서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홍보했다.경북관광공사의 거리캠페인은 지난 18일 서울 홍보캠페인에 이어 두 번째 열렸다. 부산에서는 남포동을 시작으로 서면, 해운대 광장 등을 방문해 대구경북 홍보서포터즈 플래시몹, ‘오소대구경북’슬로건과 함께 하이파이브 거리 이벤트 등 다양한 내용으로 홍보활동을 펼쳤다.부산지역 거리홍보 캠페인에는 경북관광공사와 대구시 및 대구관광뷰로 관계자, 대구경북 관광의 해 서포터즈,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김성조 경북관광공사장은 “2020 대구경북 관광의 해 및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홍보를 통해 대구경북 지역의 관광을 활성화하고 지역민들과 상생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원성대왕-②외세의 간섭…호시탐탐 뻗어오는 검은 손, 금은보화로 눈 가리고 ‘만파식적’에 슬금슬금

원성왕은 즉위 이후 왕권 강화를 통한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고, 귀족들의 세력을 평정하기 위해 독서삼품과를 도입하는 등 제도를 정비했다. 당시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서는 춘추를 풀어쓴 춘추좌씨전, 예기, 문선, 곡례, 논어, 효경 등의 책은 반드시 읽어야 했다.왕은 조상의 5묘를 만들어 왕의 권위를 높이는 일들을 다양하게 찾았다. 총관을 도독으로 고치고 재상과 중앙과 지방정부의 조직을 정비했다. 발해에 사신을 보내 외교를 두텁게 하고, 봉은사를 건립했다.원성왕은 아들 인겸을 태자로 책봉했지만 죽어 둘째 의영을 태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 아들까지 차례로 죽어버리자 인겸의 아들이자 손자인 준옹을 태자로 삼아 나중에 39대 소성왕이 되었다.원성왕이 왕위에 오르자 중국을 비롯 일본에서도 사신을 보내 보물 만파식적을 보고 싶어 하는 등으로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연회 국사가 번번이 해결책을 내놓으며 나라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야사가 설득력 있다.◆삼국유사: 신라 보물 노리는 외세왕은 진실로 잘되고 못 되는 변화를 잘 알았으므로 신공사뇌가를 지었다. 왕의 아버지 효양 대각간은 조정의 만파식적을 전하여 왕에게 넘겨주었다. 왕이 이것을 얻었으므로 하늘의 은혜를 두터이 받았고 그 덕이 멀리 빛났다.정원 2년은 병인년(786)인데 10월11일에 일본의 문경왕이 군대를 일으켜 신라를 치고자 했으나 신라에 만파식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물러갔다. 그러면서 사신을 시켜 금 50냥을 내고 그 피리를 보자고 했다. 왕은 사신에게 “짐도 윗대의 진평왕 때 있었다고 들었을 뿐이오.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오”라고 말했다.다음해 7월7일 다시 일본왕은 사신에게 금 1천 냥을 보내며 청하였다. “과인이 신기한 물건을 보고 돌려주려 합니다.” 왕은 저번처럼 사양하면서 은 3천 냥을 그 사신에게 내려주었다. 금은 돌려주고 받지 않았다. 8월에 사신이 돌아가자 피리를 내황전에 보관하게 하였다.왕이 즉위한 지 11년째인 을해년(795)이었다. 당나라 사신이 서울에 왔다가 보름을 머물다 돌아갔다. 그런 다음 하루는 두 여자가 궁 안에 들어와 “저희는 동지와 청지에 있는 두 용의 마누라입니다. 당나라 사신이 하서국 사람 둘을 데려와서 우리 남편 두 용과 분황사 우물 용 등 세 용에게 주문을 걸어 작은 물고기로 바꾼 다음 통에 넣고 돌아갔습니다”고 했다. 이어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두 사람을 붙잡아 주소서. 우리 남편들은 나라를 지키는 용입니다”고 청했다.왕은 쫓아가 하양관에 이르러 손수 잔치를 베풀면서 하서국 두 사람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용 세 마리를 잡아 여기까지 이르렀느냐? 만약 사실대로 이르지 않으면 극형에 처할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다.그러자 물고기 세 마리를 꺼내 바쳤다. 세 곳에 풀어주니 물살을 한길 남짓 튀기면서 기뻐 뛰며 갔다. 당나라 사람들이 왕의 명석함에 탄복하였다.왕이 하루는 황룡사의 승려 지해를 안으로 불러들여 50일 동안 화엄경을 강의하게 하였다. 승려 묘정이 매번 금광정에 바리때를 씻는데 자라 한 마리가 우물 안에서 잠겼다 올랐다 하였다. 묘정이 그때마다 남은 음식을 먹이며 놀았다. 50일간의 화엄경 강의가 끝나자 묘정이 자라에게 “내가 너에게 덕을 베푼 지 여러 날인데 무엇으로 갚아주겠니”라고 말했다.며칠이 지나 자라가 작은 구슬 하나를 마치 주려는 것처럼 뱉어냈다. 묘정이 그 구슬을 가져다가 허리띠 끝에 달고 다녔는데 그런 다음 대왕이 묘정을 보고 매우 아껴 내전에 불러들여 곁에서 떠나지 않게 하였다. 그때 잡간 한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그 또한 묘정을 아껴 함께 가도록 청하자 왕이 허락하였다.같이 당나라에 들어가자 당나라 황제 또한 묘정을 보고 총애하니 주변의 정승들이 우러러 마지 않았다. 점을 치는 신하 한 사람이 “이 승려를 살펴보니 하나도 좋은 관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들로부터 존경과 믿음을 받으니 반드시 특이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했다.사람을 시켜 검사해 보자 띠 끝에 작은 구슬이 보였다. 황제가 “짐이 여의주 네 낱을 가지고 있다가 지난해 하나를 잃어버렸다. 지금 이 구슬을 보니 곧 내가 잃어버린 것이로구나”라고 말했다.묘정은 구슬을 얻은 일을 모두 갖추어 설명드렸다. 황제가 구슬을 잃어버린 날과 묘정이 구슬을 얻은 날을 가만히 맞추어보니 같은 날이었다. 황제는 그 구슬을 두고 가라고 하였다. 다음부터 사람들이 묘정을 믿고 아끼는 일이 없어졌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외세의 간섭원성왕은 즉위식에 이어 왕권 강화를 위해 축하연을 열어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나라의 보물 ‘만파식적’을 선보였다. 원성왕은 주연에서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며 직접 만파식적으로 태평가를 연주했다. 축하연에 참석했던 대신은 물론 모든 이들이 태평가의 연주에 맞춰 어깨동무하기도 하며 흥겨운 춤을 추었다.당시 축하연에 참석해 만파식적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술에 취했던 사람도, 근심 걱정이 많았던 사람도, 몸에 병이 들었던 사람도 모두 건강하게 활달해졌다. 축하연에는 당과 일본의 사신도 참여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 만파식적의 신묘한 힘에 대해 보고했다.일본의 왕은 사신에게 50냥의 황금을 보내 만파식적을 한 번만 구경할 수 있도록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원성왕은 일본 왕의 저의를 의심해 사신을 그냥 돌려보내고, 만파식적을 보관하는 창고를 지어 깊이 감추었다. 일본의 왕은 끈질겼다. 다시 사신에게 1천 냥의 금을 주어 만파식적을 보고자 했다. 그러나 원성왕은 끝내 거절하고 오히려 은 3천 냥을 주어 위로하며 돌려보냈다.당나라 사신도 황제의 명을 받아 신라 궁궐을 찾았다. 역시 만파식적을 빌려 가려는 수작이었다. 당나라 사신은 일본 사신들이 실패하고 돌아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원성왕의 측근에 있는 대신들에게 접근해 기회를 노렸다. 당나라에서 온 사신들은 주술사들을 동원해 여차하면 술법으로 만파식적을 가져가려 했다.그러던 중 당나라 사신들은 만파식적에 못지않은 힘을 가진 영물이 신라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꿩 대신 닭이 아닌 봉황을 잡은 셈이었다. 당나라 사신들은 신라 궁성 주변에 웅크리고 있는 영험한 힘을 가진 세 마리의 용을 작은 물고기로 변신시켜 호리병에 넣어 도주했다.용의 아내들이 이러한 사실을 원성왕에게 보고해 신라의 궁궐이 발칵 뒤집혔다. 원성왕은 자신의 길을 안내해주던 도력 높은 연희 스님을 모셔오라고 명했다.신하들이 연희스님을 모시려 파발마를 출발시키려는 때 삿갓을 깊이 눌러 쓴 훤칠하게 키가 큰 스님이 “먼 길 가는 수고를 덜어주려 하오”라며 궁으로 안내하라 전했다.연희 스님은 원성왕의 부탁을 직접 받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가 사흘 만에 호리병 세 개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왕을 대동하고 월지와 황룡사, 분황사를 돌며 호리병에서 물고기를 방사했다. 물고기는 청룡, 황룡으로 모습을 바꾸어 모두 거대한 용오름으로 한차례 춤사위를 보이고는 다시 연못으로 들어갔다.세상에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해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수행하던 연회 스님은 원성왕의 부름에 거절할 수가 없어 국사의 직을 맡았으나 나라에 위기가 발생할 때에서야 해결책을 내놓곤 할 뿐 일체 국사에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수행에만 정진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 포항과 손잡고 상생로드 달린다

경주시가 인접한 포항시와 손잡고 상생 로드를 달리며 상생 발전을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경주시와 포항시는 지난 26일 경주~포항 간 지역 공동 발전을 위한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형산강 상생협력 자전거 한마당’ 행사를 개최했다.경주시와 포항시는 두 도시를 연결하는 형산강의 역사문화, 자연환경, 산업유산 등의 가치를 살려 상생로드를 조성해 두 도시민의 휴식처이자 관광명소로 가꾸어 나가기로 했다.이날 행사에는 주낙영 경주시장, 송경창 포항시 부시장, 경주와 포항지역 자전거 동호인 등 500여 명이 참여해 두 도시를 연결하는 형산강둑 자전거 길을 함께 달리며 무르익은 가을 정취를 만끽했다.특히 경주와 포항을 아우르며 하나 된 상생을 위해 출발장소를 지난해 한곳에서 올해 두 곳으로 확대 시행해 눈길을 끌었다. 황남초등학교에서 출발한 경주시민과 구 효자검문소에서 출발한 포항시민이 국당교에서 만나 함께 발맞춰 양동마을로 도착하는 코스로 진행됐다.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전거 길을 달리며 바라본 형산강의 모습은 한편의 가을동화를 보는 것 같았다”며 “앞으로도 형산강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이날 양동마을에서는 풍물단 공연과 트로트 가수 공연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렸다.주낙영 경주시장과 송경창 포항 부시장은 형산강 물줄기를 따라 경주와 포항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형산강 상류와 하류에서 채수한 물을 합수하는 퍼포먼스를 하며 두 도시의 우정을 다졌다.주낙영 경주시장은 “이번 자전거 한마당 행사가 형산강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상생협력 사업을 위한 통로가 되어 지역발전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한편 장기적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동반자적 관계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시 일자리한마당 열어 기업은 일자리, 청장년은 일자리 구한다

경주시가 오는 31일 경주실내체육관에서 ‘2019 경주시 일자리 한마당’ 행사를 개최한다.이번 일자리 한마당 행사는 경북도와 경주시가 주최하고 경주상공회의소가 주관한다. 행사에는 경주지역 청장년층에게는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중소기업은 채용의 기회를 공유하게 된다.이날 열린채용관, 한수원협력관, 공무원·공공기관 취준생 멘토링관, 취업지원관, 희망체험관, 부대시설관 등 90여 개의 부스가 운영된다. 구직 참여자는 2천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열린채용관에는 경주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성호그룹, 대명리조트 등 40여 개의 지역 기업이 현장채용 및 홍보에 참여한다. 대진하이텍, 디에스티, 호빈글로벌 등 50여 개 기업은 게시판 채용에 참여해 총 200여 명을 채용한다.한수원협력관에는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 한수원 관련 기업이 참여해 홍보 및 현장 면접을 실시한다.공직멘토링관에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에게 직접 합격 수기나 고민상담, 각종 노하우 등을 안내한다.취업지원관에는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등 20개 유관기관이 참여해 취업컨설팅, 일학습병행제, 취업성공패키지, 소상공인창업지원 등의 사업을 홍보한다.희망체험관에는 지문적성검사, 성격유형검사, 이력서 사진 무료촬영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진행한다.기타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청 일자리창출과 또는 경주상공회의소로 문의하면 된다. 문의: 054-760-7962.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삼국유사 기행단 경주 남산에서 신라의 패망을 논하다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찾아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발굴하는 작업을 이어가는 삼국유사 기행단 20여 명이 지난 26일 경주 남산 일대에서 신라 하대 역사를 재구성하는 답사를 했다.삼국유사기행단은 이날 경주 남산 포석정에서 시작해 지마왕릉, 삼릉, 경애왕릉을 거쳐 동남산의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을 돌아보며 신라하대 정치상황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이번 탐방에는 경주문화탐방 회원들과 경주박물관대학팀, 삼국유사강독반, 경주문예대학, 영포문학 등의 문화예술분야 단체팀들이 주를 이룬 가운데 부산, 울산, 포항 등의 인근도시에서도 참여했다.처음 출발한 포석정에서부터 역사의 기록이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토론이 불꽃을 튀겼다. 포석정은 연회하던 장소로 경애왕이 연회를 벌이던 중에 견훤에게 잡혀 죽음에 이르렀다고 전해지는 부분에 대해 반대의견이 제시됐다.기행단은 “견훤의 부대가 영천지역까지 밀고 들어온 사실을 경애왕도 알았을 텐데 적을 코앞에 두고 연회를 벌였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고, 당시는 음력 11월로 상당히 추웠을 때 야외에서 술잔을 기울였다는 것도 맞지않다”며 역사서의 기록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경주문화원 문화탐방반의 최영호 이사는 “경순왕은 나라를 팔아넘긴 왕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백성들이 추대한 것도 아니고 어떠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므로 신라의 왕이라 할 수 없다”며 “신라는 경애왕으로 이미 끝이났다”고 주장했다.이어 동남산의 헌강왕과 정강왕 형제의 왕릉을 돌아봤다. “두 왕의 여동생이었던 진성여왕은 문란한 행위로 신하들의 빈축을 받자 후계자를 찾아 왕위를 선양한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난 최초이자 유일한 신라의 왕이”이라며 “오늘날 정치인들도 자신을 돌아보고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기행단은 또 “삼국유사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에는 특히 남산의 신이 포석정, 망덕사 등의 현장에 다양한 모습으로 현신해 왕과 백성들에게 위기에 대한 주의와 경계할 것을 암시했다”며 “당시 왕과 백성들이 그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경주문화탐방회 장근희 회장은 “경주에 살면서 경주를 잘 모른다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될 때가 많아 역사문화탐방을 3년째 추진하고 있다”면서 “경주의 자랑이자 우리 민족의 자긍심으로 생각되는 신라 천 년의 유구한 문화역사를 공부해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한편 삼국유사 기행은 대구일보 주관으로 매월 한 차례 문화해설사와 함께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찾아가 역사적인 사실들을 살펴보고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스토리텔링하는 시간을 갖는다.삼국유사 기행단은 다음달 23일 경순왕의 발자취를 찾아 연천군 일대 문화유적을 탐방할 계획이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엑스포 스토리가 있는 체험형 야간산책로 인기

경주의 밤이 화려하게 빛난다. 경주엑스포가 신화와 이야기가 있는 체험형 산책로를 조성하고, 레이저조명 홀로그램으로 화려하게 단장해 밤을 밝히고 있다.경주엑스포가 ‘신라를 담은 별’이라는 주제로 이번 엑스포 기간에 새로 개발한 산책로 주변에 화려한 레이저조명을 설치해 밤하늘에서 별이 춤추고, 숲 길 곳곳에 빛을 쏟아지게 장치해 경주의 밤을 낮보다 더 밝게 물들이고 있다. 경주타워와 함께 이번 엑스포의 4대 킬러콘텐츠의 하나다.엑스포가 전국 최초로 선보인 야간 체험형 산책 코스 ‘신라를 담은 별(루미나 나이트 워크)’은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며 관람객의 발걸음을 야간의 경주로 이끌고 있다.산책로는 22년간 경주엑스포공원 내의 유휴부지로 머물러 있던 ‘화랑 숲’을 최초로 개발해 2㎞ 길이의 다양한 체험이 있는 둘레길로 탈바꿈시켰다.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조명으로 길을 밝힌 야간 산책길이 아닌 스토리가 접목된 체험형 코스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1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는 인터랙티브 탐험을 선보인다.‘신라를 담은 별’에 녹아든 스토리는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된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 토기’를 모티브로 경주엑스포가 자체 개발한 3D애니메이션 ‘토우대장 차차’가 이끌어 간다.‘토우대장 차차’는 악마에게 잡혀간 신라의 왕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신라 소녀 ‘유지’와 용감한 군인 ‘차차’(기마인물형 토기의 환생)의 모험이 그려진 이야기이다.이 이야기에 맞게 산책길 입구에서는 집채만 한 기마인물형 토기 동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본격적인 산책로에 들어서면 대형 ‘주령구’가 스크린으로 변해 스토리의 시작을 알린다.특히 이승과 저승의 이동통로를 콘셉트로 꾸며진 ‘시공간의 터널’은 화려한 레이저와 LED조명, 3D홀로그램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환상적인 체험의 장을 만들고 있다.관람객이 직접 북을 쳐 악마를 물리치는 ‘야샤와의 전투’ 코스를 지나면 경주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억새밭에 도달한다.지난 코스의 장면을 실루엣으로 다시 보여주는 둥근 모양 입체 스크린과 사방에 흩어져 비추는 조명이 흔들리는 억새와 어우러지며 가을밤의 정취를 절정에 이르게 한다.주낙영 경주시장은 23일 저녁 공무원들과 함께 둘러보며 “신라의 이야기와 유물, 유적을 빛과 첨단영상 기술로 재현한 점이 아주 훌륭하다”며 “경주엑스포 야간 프로그램이 관광객을 경주로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신라를 담은 별’이 펼쳐지는 ‘화랑 숲’은 낮에는 전국 최초 맨발전용 둘레길인 ‘비움 명상길’로 변해 고즈넉한 여유를 제공하며 화려한 밤과는 다른 ‘반전매력’도 선보이고 있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번 엑스포를 통해 경주지역에서는 최초로 야간 관광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며 “경주엑스포가 시도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많은 사람에게 즐거운 체험이 되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구절초음악회

꽃과 문화재가 어우러진 사적공원에서 ‘구절초음악회’가 열린다. 역사문화도시 경주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가을음악회다.신라문화원이 26일 오후 4시부터 서악마을 삼층석탑 일대 구절초 꽃단지에서 ‘구절초음악회’를 개최한다.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꽃밭 음악회의 마지막 찬스다.구절초음악회는 신라문화원이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 테마여행 콘텐츠 공모 사업에 선정된 ‘7080 얄개들의 복고축제’와 함께 병행, 진행해 중장년들이 추억을 소환하는 한바탕 복고축제로 추진한다.음악회에는 흘러간 7080세대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인기가수들이 흥겨운 공연무대를 꾸민다. 갯바위의 통기타가수 양하영, 젊은 미소의 주인공 그룹사운드 건아들 등이 출연, 가을의 정서를 무르익게 하는 분위기를 연출해 참가자들을 동심으로 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26일 열리는 구절초음악회는 구절초가 절정을 이뤄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을 전망이다. 이날 무대는 그대 그리고 나로 유명한 소리새, 가람예술단, 자명 스님, 신바람 고고장구 등의 다양한 장르로 공연이 이어진다.음악회 당일 현장에서 교복과 복고풍 복장을 대여한다. 누구나 추억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또 구절초차를 무료 제공하고, 서악마을 샛골부녀회원들이 부추전과 군고구마 등의 간단한 먹거리도 판매한다.진병길 신라문화원장은 “문화재 주변에 꽃을 심었더니 10여 평의 문화재 관람공간이 2천여 평의 문화자원이 되면서 문화재 가치도 높아지는 것 같다”면서 “구절초 축제와 연계해 문화재 활용을 통한 관광자원화 사업 기반 조성에도 노력할 계획”이라 말했다.한편 신라문화원은 2011년부터 문화재돌봄사업단을 발족해 문화재 주변에 구절초 단지 및 삼국통일 테마로 등을 조성, 문화재 산업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청소년 교육, 기업연수 유치, 공무원 교육, 고택음악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엑스포 자연사박물관과 엑스포기념관도 인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경주타워, 플라잉 등 4대 킬러콘텐츠 외에도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프로그램들이 다양하다.경주엑스포 문화센터를 지나 솔거미술관으로 가는 길목 오른쪽에 기둥처럼 세워진 주상절리와 다양한 동물상을 하고 있는 돌조각들이 발길을 잡는다. 돌조각상 틈에서 어린이들이 가족들과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화강암과 현무암 등의 석질과 지질에 대한 설명서들이 자연스럽게 과학공부를 하게 하는 자연학습장이 된다.자연사박물관에는 4천여 점의 희귀한 암석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암석은 물론 이들이 46억 년에 이르는 지구의 나이를 설명하는 증거로 박물관은 자연학습체험장이 된다.공룡 발자국과 공룡알화석, 용암이 굳어서 생긴 암석기둥 주상절리, 철제 운석, 나무가 통째로 화석이 된 규화목, 전신골격이 완벽하게 보존된 5천만 년 된 거북이 화석 등은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화석이다.또 올해 문을 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념관에도 관람객들이 꾸준히 몰려드는 인기 코너다.기념관은 수려한 건축 외관부터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념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 켄고가 디자인해 주상절리를 형상화한 비탈면과 대릉원을 모티브로 한 돔으로 어우러져 외관이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손꼽힌다.이곳에서는 백남준의 백팔번뇌와 성덕대왕신종의 문구를 25개국의 언어로 번역한 설치 미술에 이어 상상동물원, 디지털로 만나는 민화 호랑이와 까치, 해태 등의 전통민화를 디지털아트로 생동감 있게 감상할 수 있다.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디지털 화면으로 만나보는 체험행사도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자신이 색칠한 동물이 살아서 벽면을 가득 채우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한다.지하 전시실에는 신라와 교류했던 주요 국가들의 랜드마크를 상징하는 ‘문’을 형상화해 경주엑스포가 지금까지 이어온 발자취와 역사를 터치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류희림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은 “경주엑스포는 전시와 학습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번 엑스포와 같은 새롭고 의미 있는 기획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 남산에 탐방객을 따라 고개 돌리는 부처 발견 이적

“세상에 사람 따라 고개 돌리는 부처가 있습니다.”경주남산지킴이 이면서 남산문화해설사가 못난이 부처의 촬영 위치별 사진을 제시하며 주장한 내용이다.김향숙(56·여) 경주남산 문화재해설사는 “경주 남산 삼릉골 못난이 부처는 사람이 가는 곳에 따라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춥니다”며 “최근 사진을 찍다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향숙 해설사가 제시한 사진은 돌부처의 얼굴 방향이 촬영 위치에 따라 각도를 달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삼국유사 등에는 경주 남산 용장골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의 부처는 대현 스님이 염불을 외며 불상을 돌면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또 분황사의 원효대사 소상은 그의 아들 설총이 분향하고 탑돌이를 하면 아들의 뒤를 따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김향숙 해설사를 따라 지난 20일 경주 남산 삼릉골의 못난이 부처를 찾았다. 못난이 부처는 선각여래좌상으로 지방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돼 있다. 이 부처는 수려하게 그리거나 조각한 일반적인 우리나라 부처와는 크게 다르게 그려져 있다. 큰 바위에 선각으로 그렸는데 입술은 두툼하고, 눈은 부은 듯 그리다가 만 것 같다. 코도 뭉툭하게 거칠게 표현했고 귀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이 부처의 조성시기에 대해서도 학자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다.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은 “예전에는 고려 초기 부처로 보았지만 지금은 미완성 작품으로 본다”면서 “최초의 부처설법인 전법륜 수인 모습과 간략한 밑그림, 굵게 그리는 육계가 가늘게 표현되었고, 양쪽 눈의 균형이 맞지 않으며 귀는 미완성”이라고 설명했다.또 “부처의 머리카락을 다듬지 않았고, 부처의 조각 형태가 전체적으로 완전하게 그리지 않았다”며 “신라 말기 전쟁 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할 때 부처를 조성하다가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이에 반해 최민희 역사해설가는 “못난이 부처는 목 아래 바위틈을 석회로 마감했는데 지금은 떨어져 나가 균열이 심하고, 조성 당시에는 채색으로 부처의 모습을 단정하게 했을 것”이라며 신라시대 불상이라고 해석한다.학자들의 분분한 해석과 다르게 김향숙 해설사와 함께 현장을 확인한 사람들은 “보는 방향마다 부처님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서 “부처님을 조성할 때 기법이 그러한 것인지 부처님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신비하다”고 입을 모았다.김향숙 해설사는 “이제는 해설할 때 이러한 사실을 탐방객들에게 설명해야겠다”면서 “분명 신비스런 영험한 힘을 가진 부처님일 것”이라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남산연구소 시민 남산 문화탐방

경주남산연구소가 지난 20일 경주 남산 문화유적답사 행사를 개최했다.이날 행사에는 참가 희망한 130여 명의 경주 시민이 참가했다.참석자들은 서남산주차장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답사 등산길에 올랐다.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의 경주남산 유적과 역사, 전설을 더한 해설은 8시간의 긴 산행의 피로도 잊게 했다.경주 남산에는 150여 곳의 절터와 130여 기의 불상, 100여 기의 석탑 흔적이 남아 있다. 김구석 소장은 “남산의 문화유적은 대부분 깨어지고 흩어져 있지만 자연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 조각된 특징을 가진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했다.이날 경주 시민들은 삼릉, 목 없는 불상, 선각육존불, 못난이 불상, 바둑바위, 상선암, 삼릉골마애여래석가좌상, 상사바위, 산신당, 금오봉, 금오정, 늠비봉오층석탑, 포석정, 태진지,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등의 코스로 답사했다.삼릉에서 태평소 연주, 태진지에서 오카리나와 이성애 명인의 대금 연주가 ‘인연’에 이어 ‘자진모리’, ‘한오백년’, ‘강원도 아리랑’ 등으로 이어지면서 답사객들을 깊어가는 가을 문화의 향연으로 깊숙이 안내했다.김구석 소장은 “경주 남산은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산 전체가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문화자산”이라며 “아름다운 남산을 알리기 위해 매년 국내외 답사객들 초청,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엑스포 남녀노소 누구나 OK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체험콘텐츠로 인기다.다음달 24일까지 진행되는 경주엑스포의 첨단기술을 통한 콘텐츠가 다양한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남녀노소 관광객에 인기를 끌고 있다.경주엑스포 문화센터에서 지난 17일까지 진행된 ‘다도전시’는 여성들과 어른들이 다도체험을 하며 힐링의 시간을 보냈고 어린이들은 차분함과 집중력을 배우는 콘텐츠로 주목받았다.다채로운 국내외 팀의 공연일정도 인기다. 지난 19∼20일 이틀간 백결공연장에서 ‘동리·목월·정귀문 선생 그리고 시와 노래’가 열려 경주 출신 문화예술인들의 무대를 감상할 수 있었다.경주국악협회의 신명나는 국악 무대도 다음달 1일까지 이어진다. 오는 25~27일은 이집트 룩소르 공연단이 이집트 고유의 문화를 담은 전통 민속 무용 등을 선보인다.경주엑스포는 다양한 할인혜택 등 관람객을 위한 편의제도를 마련해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다가간다. 36개월에서 만 18세까지는 소인요금(유아, 초·중·고)이 적용된다. 만 65세 이상 어르신은 입장료가 무료다.20명 이상의 국내 단체관람객과 10명 이상의 해외 단체관람객은 단체권이 적용돼 할인받을 수 있다.행사 전 기간 사용이 가능한 통용권은 3만 원에 구입이 가능하다. 경주타워의 ‘신라 천 년, 미래 천 년’과 천마의 궁전에서 열리는 ‘찬란한 빛의 신라’, 전국 최초 맨발 둘레길인 ‘비움 명상길’, 솔거미술관, 공연페스티벌, 자연사박물관, 경주엑스포기념관 등 대부분 콘텐츠를 추가 요금 없이 이용할 수 있다.또 축구장 80개 크기인 57만㎡에 이르는 넓은 경주엑스포공원을 걸어서 관람하기 어려운 어르신과 어린이 관람객 등 편의 증진을 위해 전기 순환차 ‘천마차’도 운행한다. 이용금액은 1천 원이다. 주요 전시, 공연장 앞 정류장에서 타고 내릴 수 있어 편리한 관람이 가능하다. 문의: 054-748-3011.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원성대왕-①즉위…한 발 물러나 ‘힘의 구도’ 재편 천재지변에 왕좌를 움켜쥐다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이름은 김경신이다. 그는 내물왕 12대손으로 김양상과 함께 김지정의 난을 진압했다.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36대 혜공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김양상을 선덕왕에 즉위하게 하고 김경신은 스스로 상대등이 되어 실권을 잡고는 본격적인 권력의 구도를 재편하기 시작했다.선덕왕의 뒤를 이어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했다. 삼국유사 등의 역사서 어디에도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혜공왕을 살해하고, 김양상을 또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김경신의 왕권에 대한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결국 원성왕 즉위 이후 신라는 왕좌를 두고 죽이고 죽는 피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천 년 사직이 패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삼국유사: 원성대왕이찬 김주완이 처음 재상이 되었을 때 원성왕은 각간으로 두 번째 자리에 있었다. 왕이 하루는 두건을 벗고 흰 갓을 쓰고 십이현금을 끼고 천관사의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깨어나 사람을 시켜 점을 쳐보았다. “두건을 벗은 것은 직위를 잃는 조짐이고, 십이현금을 낀 것은 형틀을 차는 징조입니다.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히는 징조이고요.”왕은 이를 듣고 매우 두려워하며 문을 닫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때 아찬 여삼이 은밀히 왕을 뵙고자 하였으나 아프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다시 통지가 오기를 “한 번만 뵙고자 합니다” 하니 왕이 응낙하였다.“공께서는 무슨 일로 그다지 꺼리십니까?”왕은 꿈을 점친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찬이 일어나 절을 하고 “이는 곧 매우 좋은 꿈입니다. 만약 공께서 왕위에 오르시고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공께 맞는 해몽을 해 드리지요.”이에 왕은 주변 사람들을 물리고 오지 못하게 한 다음 해몽을 부탁했다.“두건을 벗은 것은 사람 가운데 아무도 그 위에 없음이요, 흰 갓은 면류관을 쓸 징조입니다. 십이현금을 낀 것은 열두 손대까지 이어질 징조이고, 천관사 우물로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상서로움입니다.”“위로 주원이 있는데 어찌 윗자리를 잡을 수 있는가?” 하자 “청컨대 은밀히 북천의 신에게 제사지내면 됩니다.” 왕은 그의 말에 따랐다.얼마 되지 않아 선덕왕이 죽었다. 사람들이 주원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집이 북천 너머에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하고, 왕이 먼저 궁궐로 들어와 즉위하였다. 주원의 부하들이 모두 복종을 하고, 새로 등극한 임금께 축하 인사를 드렸다.바로 원성대왕이다. 이름은 경신이고 김씨인데 대개 좋은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주원은 명주로 물러가 살았다. 왕이 등극했을 때 여산은 이미 죽어 그 자손들을 불러 벼슬을 내려 주었다. 왕의 후손이 다섯인데 혜충태자, 헌평태자, 예영잡간, 대룡부인, 소룡부인 등이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김경신의 조용한 쿠데타김경신은 전략가이면서 행동가이지만 직접 행하는 것보다 심복이나 주변 인물을 시켜서 뜻을 이루어가는 지시형 스타일이다.김지정의 난을 유발하고, 김양상이 왕위에 오르게 하는 과정도 김경신의 전략에 의한 작품이다. 이 또한 김경신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한 철저한 계획에 따른 절차였다.김양상이 선덕왕에 즉위하면서 상대등의 자리를 꿰어찬 김경신은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는 일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경신은 선덕왕과 대신들이 자신보다 위의 상재로 있는 김주원을 차기 왕으로 점찍고 있을 때도 노골적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장기적인 충실한 계획이 있었고 그는 또 그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김경신은 상대등으로써 입지를 굳혀 병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인사와 재정, 공부와 형부, 예부까지 대신들을 모두 자신의 수족으로 채웠다. 그 시간이 5년이나 걸렸지만 김경신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선덕왕 재위 6년에 이른 어느 여름 태풍이 동해안을 휩쓸고 서라벌에 상륙할 때였다. 김경신은 조용하게 병부의 대신을 내실로 불렀다. 그리고는 “태풍이 서라벌을 지나갈 무렵 알천이 범람하는 때가 거사일이요. 만약에 대비해 병사들을 배치하고, 대신들에는 거사가 완전히 이루어지기까지는 함구하시오”라고 조용히 밀지를 내렸다.김경신은 전략가답게 김주원의 집이 알천을 건너 북쪽에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고, 안전하고 평화롭게 정권을 손에 넣는 방법을 선택했다. 알천이 범람하면 북쪽에서 궁궐로 들어오는 길은 차단된다. 토함산 고개를 넘어 명활산성으로 돌아오는 길이 있지만 지세가 험하고, 우기에는 무성하게 자란 잡목 때문에 군사들이 대규모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없게 된다.알천은 매년 여름 적어도 두세 번은 범람했다. 김주원이 홍수로 알천이 범람하면 궁궐로 들어가는 길이 차단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 북쪽의 집을 고집했던 데는 뚜렷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선조들의 터전을 버릴 수 없다는 것과 복잡한 업무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김경신은 그 두 가지를 아주 적절하고도 교묘하게 이용했다. 상재의 위치에 있는 김주원에게 잡다한 민원성 업무는 모조리 넘겼다. 골치 아프게 내전에서 일하도록 주원을 묶어두고, 대내외적인 행사는 상대등인 김경신 자신이 처리하면서 실권을 휘둘렀다. “백성의 아픔을 헤아리는 중요한 일은 상재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원을 인정해주는 척하며 철저하게 내전에 고립시켜 각 부서의 실권자들과 친화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게 했다.내성적인 김주원의 성격을 파악한 김경신의 약삭빠른 처세술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고 주도면밀해 김주원도 무어라 항변할 길도 없었다.선덕왕 6년 785년 음력 칠월 그믐께 긴 장마가 기승을 부리며 폭우를 동반한 태풍으로 돌변해 알천이 크게 범람한 깊은 밤. 비수를 품은 김경신이 왕을 치료하는 의사를 대동하고 왕의 침소를 찾았다. 내실 주변에는 살수의 눈을 번뜩이는 김경신의 병사들이 곳곳에 몸을 숨기고 그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불편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체만 겨우 일으켜 앉은 선덕왕은 주치의가 들고 온 약사발을 청하여 받아들었다. 왕은 김경신을 지긋이 바라보며 “내가 진작 대업을 경에게 넘겨야 하는데 눈 어두운 대신들의 중언부언에 밀려 늦었소. 백성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시기 바라오”라며 부탁하고는 천천히 약사발을 기울였다. 선덕왕도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과 김경신이 추진하는 전략을 인지하고, 그의 뜻을 암묵적으로 따르기로 벌써 작정하고 있었다. 선덕왕은 이제나저제나 하던 날이 닥쳐왔다는 것을 짐작하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한 마디를 남기고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났다.왕표를 받아든 김경신은 “걱정 마시고 편히 가시오. 아무도 피 흘리지 않고, 백성이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보겠소”라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선왕을 반듯하게 누이고는 천천히 돌아서 성큼성큼 왕좌에 올랐다. 그가 신라 제38대 원성왕으로 52대 효공왕까지 모두 그의 후손으로 왕위를 이었지만 본격적인 신라 멸망으로 가는 피의 시대 개막이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엑스포에서 오색찬란한 한복 패션쇼에 관람객들 갈채

경주엑스포에서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한류 사극 드라마 속 한복들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경산 대경대학교 실크로드공연단이 20일 경주엑스포 백결공연장에서 오색찬란한 한복과 보자기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체험형 패션쇼 ‘방탄선비단의 풍류’를 선보였다.패션쇼는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사극 ‘선덕여왕’과 ‘뿌리 깊은 나무’, ‘대장금’, ‘왕의 여자’ 등에서 나온 등장인물의 복장을 그대로 재현해 주목을 받았다.모델들은 선비 복장과 기생, 호위무사, 왕과 왕비의 복장 등을 ‘방탄선비단의 풍류’라는 주제와 함께 다양한 콘셉트로 의상에 맞는 무용과 연극으로 무대를 꾸몄다.또 현대의상과 결합된 퓨전 한복과 함께 다양한 디자인과 재질로 만들어진 보자기를 패션 소품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특히 드라마 ‘왕의 여자’ 의상 디자인에 참여한 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아티스트로 유명한 이효재 선생이 직접 패션쇼가 열리는 경주엑스포 공원을 찾아 패션쇼를 관람하고 무대를 펼친 학생 모델들을 격려했다.이효재 디자이너는 “지구 환경문제가 심각한 지금, 종이 쇼핑백 하나를 덜 사용하면 지구를 더 건강하게 할 수 있다”며 “오늘 열린 쇼가 아름다운 한복과 보자기의 활용이 더욱 많아질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경주엑스포 자문위원이기도 한 이효재 디자이너는 “첨성대, 석굴암 등 우리는 경주를 교과서적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경주엑스포를 둘러보니 감동으로 가득하다”면서 경주엑스포 방문을 권고했다.또 “낮에는 억새 숲에서 힐링하고 밤에는 환상적인 홀로그램을 따라 신라를 만날 수 있는 로맨틱한 가을여행으로 경주엑스포를 추천한다”며 “경주엑스포가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관람객들도 아름다운 한복과 보자기의 자태에 찬사를 보냈다. 가족과 함께 패션쇼를 관람한 박영선(37·여·울산)씨는 “밖에서 볼 때는 잘 몰랐던 한복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며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보자기가 패션 소품이 될 수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고 감탄했다.류희림 경주엑스포 사무총장은 “우리 역사문화의 일부분인 전통의상을 많은 분에게 선보이는 좋은 기회가 됐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 보문관광단지 상가 매각 담합 의혹 무럭무럭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최근 매각한 보문관광단지 상가의 입찰 과정에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온비드 입찰을 통해 지난 18일 A업체를 보문단지 상가 낙찰자로 선정했다. 공사는 이 업체와 28일까지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업체는 계약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잔액을 납부하면 소유권을 확보하게 된다. 공사는 매각 공고에서 보문상가 16개동의 건물과 2만6천여 그루의 나무, 2만5천361m² 대지를 모두 포함해 예정가격을 137억7천만 원으로 고시했다. 건축물과 나무를 제외하고 순수 부지만 계산해도 3.3m²당 179만5천여 원으로 180만 원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A업체는 공사가 제시한 예정가액 137억7천만 원을 그대로 써넣어 낙찰자로 지정됐다. 입찰에는 A업체 외에 2개의 업체가 더 참가해 같이 137억7천만 원의 금액을 써넣었지만 보증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단독으로 남은 A업체가 보증금 6억8천850만 원을 납부해 자연스럽게 낙찰자로 선정됐다. A업체는 이번에 낙찰받은 상가부지와 바로 연접한 지역에 이미 1만5천여m²의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이 부지와 함께 대규모 상가로 조성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매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공사와 모종의 밀약이 오갔을 것이라는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경주시내 부동산업자 B씨는 “길 건너 부지는 최근 1천만 원 이상에 거래됐고, 곧 2천만 원을 상회할 것”이라며 “건너편 산자락 부지도 400만~500만 원씩 거래되고 있는데 입지조건이 좋은 상가부지가 2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 가격에 매각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 지적했다. 또 다른 부동산업자 C씨는 “입찰 참가자들이 입찰 보증금을 납부하지 않고 입찰을 포기한 것과 예정가격 그대로 낙찰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누가 봐도 담합에 의한 입찰이라는 것을 짐작할 것이 뻔하다. 사법당국이 진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일 보문단지 상가부지의 공연장에서 1천여 명의 경주지역 기업인들이 모여 보문둘레길 걷기 행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상가부지 매각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말도 안되는 매각”이라며 하나같이 공사의 행정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를 높였다. 곳곳에서 “공사의 매각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있어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경북도의회 박차양 도의원은 “공사가 중요재산을 매각하면서 널리 홍보하지 않고 온비드 입찰을 통해 비밀리에 일을 추진하듯 재빠르게 팔아치웠다”면서 “낙찰된 매각단가도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했을 뿐 아니라 예정가액에서 1원도 올리지 않고 그대로 매각한다는 것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며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해 세부적으로 조사해볼 계획이라 말했다. 경북문화관광공사 관계자는 “적정 가격을 받는 것이 좋다. 너무 많은 금액을 받아도 초기투자 비용이 높으면 개발업체의 부담이 가중돼 상가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해명했다. 이어 “예정가격은 감정업체의 감정가격을 토대로 적정하게 책정한 값”이라며 “건실한 기업이 민간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보문단지 상가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 금장대 홍도공원에서 홍도야 울어라

“누구의 피 울음인가// 꽃비경 덧널처럼 쌓이는 대숲/ 땅속 금강이 일제히 솟구치니 내 귀 천년의 서루에 올랐다 내린다// 소름돋는 저잣거리 원성을 말아쥔 북악산 솔이끼며/ 귀신새 소리마저 이곳에선 하얗게 날이선다/ 만파식적 듣고자란 서라벌 백률송순 (중략) 이별은 아픈 사랑이다/ 물천 뒷산 단석 앞산 할것 없이 귀촉도 구슬픈 서라벌의 밤/ 숨어서 울음우는 촉소리 아슴프레한 밤/ 첩첩만산 심사에 이우는 사랑아!// 아! 꽃이라면 좋겠다/ 지상에서 구속되고 천상에서 자유로운 혼인가/ 하늘에서 웃고자 했으나/ 나 땅에서 우네// 어쩌면 순간의 이별이 영원한 사랑 이었네” 경주문협 이령 시인이 지난 19일 형산강변 홍도공원에서 열린 동도명기 홍도 최계옥 추모예술제에서 낭송한 자작시 ‘홍도야 울어라’의 일부이다. (사)한국무용협회경주시주부가 동도명기기념사업회와 함께 2016년 4월부터 금장대 소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고 매년 추모예술제를 거행하고 있다. 홍도는 일제강점기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는 대중가요의 그 홍도가 아니다. 정조 2년 1778년에 아버지 최명동과 경주의 세습기생 사이에서 태어나 10세에 시와 서에 통달하고 음률을 깨우쳐 20세에는 경주부윤의 추천으로 상의원에 선발돼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서울에서 박상공의 첩으로 살다 그가 죽자 경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정성을 쏟았다. 홍도가 죽음에 이르러 많은 재산을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라는 유서를 남기고 4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후학들은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묘비 ‘동도명기홍도지묘’라는 묘비를 세우고 관리하며 표상으로 삼기도 했다. 장병수 경주무용협회장은 “역사 속에 묻혀 잊혀지고 사라지는 예인들의 발길이 안타깝고 애틋하다”면서 “홍도추모예술제를 매년 예인들의 정성으로 추진하며, 선인들의 뜻을 기려 스스로 갈고 닦으며 후학 양성에 열정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주낙영 경주시장과 김윤근 경주문화원장은 “역사적으로 면면히 이어져내려오는 정신은 예술이요, 그 표현은 문화가 된다”면서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하고 계승발전시켜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라며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 입을 모았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