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행(57) 가락국가 (상)금관가야

가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거의 없다. 삼국유사에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알이 사람으로 변해 여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김수로왕이 최초로 가야의 시조가 되었다. 금관가야가 초기에는 6가야국의 맹주였다. 신라의 공격을 받아 금관가야가 멸망하면서 후기에는 대가야가 가야의 맹주로 떠올랐다.가야는 520여 년간 지속되면서 상당히 세련된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금관가야 유적지에서 금동관을 비롯한 화려한 목걸이, 팔찌, 청동거울과 철제 제품들, 섬세하게 다듬은 토기류가 고분에서 대량으로 출토되었다.가야가 신라에 정복되었지만 왕족과 백성들이 신라의 귀족으로, 정부 주요 대신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떠오른 신라의 김유신 장군도 가야의 후손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삼국유사는 가야국가에 대해 제법 길게 소개하고 있지만 금관가야와 대가야 두 편으로 나누어 소개한다.◆삼국유사: 가락국가천지가 처음 열린 후로 이 땅에는 아직 나라 이름이란 없었다. 또 임금과 신하의 칭호도 없었다. 있다는 것이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 9간이 있었다. 이들 추장이 백성을 통솔했으니 무릇 1만 호에 7만5천 명이었다. 이들 모두가 산과 들에 살면서 스스로 우물을 파서 마시고 농사를 지었다.마침내 후한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42) 3월 그들이 살고 있는 북쪽의 구지에서 이상한 소리로 부르는 기척이 있어 2~300명의 무리가 여기에 모였더니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그 형체는 감추고 소리만 내어 말하기를 “여기에 누가 없는가”라고 했다.9간들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있습니다” 하니 또 말하기를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고”라고 했다. “구지입니다”라 대답하자 또 말하기를 “하느님이 나에게 이곳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한 까닭으로 여기에 내려온 것이다”고 했다.9간들이 그 말대로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다. 얼마 안 되어 우러러 쳐다보니 보랏빛 줄만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땅에 닿아 있었다. 줄 끝을 찾으니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으로 된 합이 보여, 그것을 열어 보자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여러 사람이 모두 다 놀라고 기뻐하며 함께 수없이 절을 했다. 얼마 있다가 다시 보자기에 싸서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와 탁자 위에 놓아두고 무리는 각자 흩어졌다. 하루가 지나고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여러 사람이 다시 모여 합을 열었더니 여섯 개의 알이 변하여 용모가 매우 뛰어난 어린아이로 되었다.이들이 나날이 자라 10여 주야를 지나니 키가 9자로 은나라 천을과 같은 얼굴이 용 같아 한나라의 고조라 할 수 있었다. 눈썹이 여덟 가지 빛깔인 것은 도당의 요임금과 같고 눈동자가 겹으로 된 것은 우나라의 순임금과 같았다.그달 보름에 왕위에 올랐다. 처음 세상에 나타났다 하여 이름을 수로 또는 수릉(수릉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의 시호이다.) 이라고도 했다. 나라를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고도 하였으니 곧 여섯가야의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돌아가 5가야의 임금이 되었다.가야의 동쪽은 황산강, 서남쪽은 창해, 서북쪽은 지리산, 동북쪽은 가야산이며 남쪽은 나라의 끝이었다. 임시로 대궐을 세우게 하고 거처하면서 질박과 검소를 바랄 뿐으로 집에 이은 이엉도 자르지 않았고 흙으로 된 계단도 3자였다.왕후가 조용히 왕에게 말하기를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성은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이옵니다. 본국에 있을 때인 금년 5월에 부왕과 황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비와 어미가 어젯밤 꿈에서 함께 하늘의 상제를 뵈었다.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락국의 시조 수로는 하늘이 내려보내어 왕위에 앉게 했으니 신령스럽고 성스런 이는 오직 그 분일까 한다. 그런데 그가 나라를 새로 다스리고 있으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다. 경들은 반드시 공주를 보내 그의 배필을 삼게 하라’ 하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꿈을 깬 후에도 상제의 말씀이 오히려 귀에 쟁쟁할 뿐이니 너는 여기서 빨리 우리와 작별하고 그곳으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바다를 건너 멀리 남해에 가서 찾기도 하였고 방향을 바꾸어 멀리 동해로도 가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야 보잘것없는 모양을 가다듬고 감히 용안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라 했다.왕이 대답하기를 “짐은 나면서부터 자못 신성하여 공주가 멀리서 올 것을 미리 알아서 신하들이 왕비를 들이라는 청이 있었으나 기어코 듣지 않았소이다. 이제 현숙한 그대가 스스로 오셨으니 이 사람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요”라고 했다. 드디어 혼인하여 두 밤을 지내고 또 하루 낮을 보냈다.이때부터 나라를 다스리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백성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해서 그 교화가 엄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위엄이 있고, 정치가 엄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게 되었다. 더욱이 왕후와 함께 거하는 것은 마치 하늘에 땅이 있고 해에 달이 있으며 양에 음이 있는 것과 같아서 그 공로는 마치 도산이 하나라를 돕고 당원이 교씨를 일으킨 것과 같았다.그해에 왕후는 곰을 얻는 꿈을 꾸고서 태자 거등공을 낳았다.영제 중평 6년은 기사년(189)인데 3월1일에 왕후가 돌아가셨다. 누린 나이는 157세. 나라 사람들이 마치 땅이 꺼진 것처럼 탄식하며, 구지봉 동북쪽 언덕에 장사지냈다.왕은 늘 베개 위에서 홀아비의 슬픔을 노래하며 오랫동안 탄식하였다. 10년이 지난 헌제 건안 4년은 기묘년(199)인데 3월23일에 돌아가셨다. 누린 나이는 158세. 나라 안 사람들이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비통해 했는데 왕후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했다. 곧 대궐 동북쪽 평지에 높이가 한길, 둘레가 300보 되는 빈궁을 세웠다. 여기에 장사지내고 수릉왕묘라 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금관가야김수로왕이 가야국을 건국하고 모두 6개 이웃과 연맹체제를 맺어 철기를 활용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가야는 풍부한 농산물과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세력을 키워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를 공격하거나, 고구려를 치기도 했다. 일본과의 교류도 넓혀 한때는 신라, 백제, 고구려와 함께 4국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어떤 학자들은 사국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가야는 지리적으로 백제와 신라 사이에 위치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어렵게 나라를 유지해야 했다.김수로왕은 서역으로부터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침략해온 석탈해군단을 맞아 전쟁을 치렀다. 석탈해는 거대한 체구에다 큰 환두대도를 수수깡 다루듯 자유롭게 휘두르며 뛰어난 무술 실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수로왕의 실력과 전술전략에 당하지 못하고 물러났다.법흥왕 시대에 신라는 가야를 공격해 상당 부분 토지를 빼앗고, 신라에 복속시켰다. 이때 법흥왕은 가야왕을 그대로 영토를 다스리도록 했다. 당시 가야 후손들이 신라의 중심귀족으로 성장하고, 대신으로 활약하기도 했다.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전하는 구형왕의 후손 김유신 장군은 신라의 장군으로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다. 진흥왕이 금관가야를 비롯 가야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신라에 합병했지만 여전히 그들을 신라의 중신으로 등용해 귀족들의 세력을 견제하는 한편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운영했다.진흥왕의 가야귀족 우대정책은 결국 진흥왕의 적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진흥왕의 후의를 입은 가야의 귀족들이 진지왕을 몰아내고 진흥왕의 장자 동륜의 적자 진평왕을 옹립했다.가야라는 나라 이름은 사라졌지만 가야인들은 신라인으로 이름을 바꾸어 김해김씨, 김해허씨의 시조가 되어 대대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시 코로나19 이기기 위한 적극행정 실행계획 추진

경주시가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위기 속 공직사회의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적극적으로 일하는 문화를 정립하고, 위축된 시민들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2020년 경주시 적극 행정 실행 계획’을 수립, 운영한다.경주시는 실행계획에 적극 행정 문화 확산을 통한 시민행복 실현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적극 행정 추진 기반 강화, 적극 행정 공무원 우대, 적극 행정 행위를 보호하고 지원한다. 또 소극 행정 혁파 4대 추진 방향을 설정하고, 11개 세부 실행과제도 선정했다.이에 따라 경주시는 전담부서 지정 및 적극행정인사위원회 운영으로 추진 체계를 확립하고, 사전컨설팅제도와 적극 행정 면책제도 등을 통해 적극 행정 공무원을 보호하고 지원한다.또 반기별로 우수 공무원을 선발해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공무원의 자발적 동참을 유도할 계획이다.이어 소극행정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소극행정 행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해 적당 편의, 복지부동, 기타 관중심 행정 등의 소극행정 비위에 대해서는 엄정 조치한다는 방침이다.특히 경주시는 각종 국비 공모사업을 적극 발굴해 자체 예산 부담없이도 지역개발과 시민들의 문화복지 향상 등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경주시는 지금까지 중앙부처에서 시달된 공모사업에 대해 재점검하고 부서별로 사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주낙영 경주시장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공직자의 적극 행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며 “관행과 규정의 틀에 얽매인 수동적 업무행태를 개선하고 시민이 체감하는 적극 행정 추진을 통해 경주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시 “이제는 경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경제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경주시가 코로나19로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온라인을 통해 경주지역 노·사·민·정 협의회를 하나로 묶는 노·사·민·정 공동선언문을 채택, 발표했다.경주지역 노·사·민·정 협의회는 코로나19 조기 종식을 위해 경주시와 경주시의회(의장 윤병길), 한국노총 경주지부(의장 윤석주), 경주상공회의소(회장 최순호),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지청장 김경태), 경북동부경영자협회(협회장 박승대), 경주YMCA(이사장 박동섭)등 구성원들의 마음을 모으기로 했다.협의회는 지난 1일 ‘시민 모두가 힘을 합쳐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노·사·민·정이 각각 실천해야 할 사항에 대해 합의했다.남심숙 경주시 일자리창출과장은 “코로나19가 시민들의 건강에 대한 위협뿐만 아니라 경기 둔화로 인한 기업들의 심각한 경영 피해 등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시민의 건강권 보호와 함께 지역 경제 위기를 노·사·민·정이 모두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했다”고 말했다.노사민정협의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보건당국 지침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노사는 대규모 행사를 자제하고 방역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사회적 거리 두기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또 중소기업과 상공인 지원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협력하기로 했다.노사민정협의회 위원들은 또 온누리 상품권 사용 등 지역 경제 살리기 운동을 적극 실천한 등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각종 실천 행동을 결의했다.주낙영 경주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극복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해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 시행과 관련된 행정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며 “경주지역 노·사·민·정 협의회가 그 중심에서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한다”며 협력을 당부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 봄꽃 곳곳에 저홀로 한창

경주지역 곳곳에 개나리, 유채, 벚꽃 등의 봄꽃이 한창이다. 예년이면 지금쯤 경주벚꽃축제로 봄꽃 주변에 나들이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빌 때다.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축제는 취소되고 줄어든 방문객들조차 차량에서 드라이브 스루로 꽃구경을 하고 지나쳐갈 뿐이다.하지만 이번 주말(4∼5일)이면 봄꽃나들이를 나서는 방문객들은 경주를 제법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김유신장군로: 가장 화려한 경주지역의 벚꽃터널은 아직은 김유신장군로의 벚꽃길이다. 시외버스터미널 네거리에서 흥무공원으로 이어지는 벚꽃길은 약 500여m 거리가 50여 년생 고목들이 가지를 서로 뻗어 손을 맞잡아 터널을 형성해 하늘이 꽃 천정이다.△보문단지: 경주관광 1번지 자존심 다툼을 하는 곳이 경주보문단지다. 숙박, 위락시설, 휴양시설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또 보문 순환도로는 벚꽃, 개나리꽃이 화려하게 군무를 춘다. 특히 동궁원 입구의 벚꽃터널과 고개를 한화콘도 고개를 넘어가는 순환로의 벚꽃길은 고목이 무더기 꽃을 피워 가장 화려하다. 보문단지에서 살짝 벗어나면 경주엑스포공원은 무릉도원이다. 연못과 산책로를 따라 수양버들과 벚꽃이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다.또 고개를 넘어서면 블루원길의 벚꽃도 아기자기하게 좁은 길을 뒤덮어 무지개터널을 꽃으로 장식하고 있어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다.△동부사적지: 첨성대 동부사적지는 아직은 경주 관광의 1번지다. 동부사적지는 첨성대, 월성, 월지, 계림, 대릉원 등의 화려한 천 년 신라 역사문화유적과 사계절 꽃 대궐을 이룬다. 봄에는 개나리, 유채, 벚꽃이 곳곳에 군락을 이뤄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렌즈 포커스를 정조준한다. 코로나로 감염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는 행락객은 지금도 곳곳에서 셀카전쟁이다.△황룡길과 경주박물관: 분황사에서 황룡사로 꺾어지는 도로변도 벚꽃이 가로수로 드라이브 길을 기분 좋게 반긴다. 경주박물관길로 이어지는 황룡길은 거의 1㎞ 직선으로 이어져 카메라 초점이 사선구도를 형성해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경주박물관에서 월성 성벽을 따라 흐르는 남천으로 이어지는 꽃길은 시민과 관광객들의 새로운 드라이브 코스로 눈길을 끈다.주낙영 경주시장은 “봄꽃은 아름답게 피어 유혹하지만 코로나19의 위험 때문에 관광객을 초대하지 못하는 심정이 답답하다”며 “시민들이 스스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방역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주시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개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북문화관광공사, 한국체대, 경북도체육회 3자 업무협약 체결

경북문화관광공사가 1일 한국체육대학교(총장 안용규), 경북도체육회(회장 김하영)와 상호 상생협력을 통한 경북 스포츠 관광활성화를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업무협약은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언택트(Untact) 마케팅의 일환으로 실무자들이 대면 접촉 없이 순수 온라인만을 통한 협의로 업무협약을 서면으로 했다. 스포츠 및 관광관련 3개 관계기관 협약으로 향후 스포츠를 통한 경북관광활성화의 외연 확대가 기대된다. 업무협약에 따라 한국체대는 국내 전지훈련 등을 경북도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도체육회는 각종 행사 훈련장소 등 편의제공, 관광공사는 스포츠 행사 참가 선수단 등에게 경북을 알릴 수 있는 관광기회를 제공한다. 대부분 국가대표인 한국체대 선수들이 경북의 다양한 체육인프라를 전지훈련지로 활용함에 따라 내년 동경올림픽에 참가하는 세계 각국의 대표선수단들을 경북에 대거 유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조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은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관광시장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번 업무협약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경북관광 활성화의 동력확보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공사는 앞으로도 스포츠와 관광을 연계한 경북만의 특화된 관광상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침체된 지역경기와 관광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 중국 자매우호도시에서 코로나19 성금품 이어져

경주시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방역물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중국 자매 우호도시에서 앞 다투어 온정의 손길을 내밀어 화제다. 경주시는 1일 시안시 등 중국의 자매 우호도시 4곳에서 외과용 마스크 등 10만여 개의 방역물품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시안시는 ‘환난견진정(患難見眞情 참된 우정은 어려움 속에서 드러난다)’이라는 응원메시지와 함께 마스크 2만1천 개, 손세정제 2천 개, 방호복과 고글 각 1천 개를 보내왔다. 이는 지난 2월 중순 경주시장이 보낸 위로와 응원 서한에 대한 화답으로, 리밍위안 시장 명의로 감사와 안부의 뜻을 나타냈다. 우호도시인 양저우시의 장바오위안 시장 역시 “경주의 어려움이 곧 양저우의 어려움”이라는 위로 서한과 함께 마스크 5만 개를 지원했다.지난 2월 초 경주시가 보내준 5천 개의 마스크에 대한 감사와 격려의 의미를 담아 10배 크기로 돌아온 것이다. 자매 우호도시는 아니지만 상호 교류를 추진 중인 후난성 장자제시에서도 마스크 1만 개를 보내왔다.지난해 우호도시 의향서를 체결한 푸젠성 난핑시에서는 마스크 1만4천400개를 기증했다.난핑시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의 고향으로, 유교문화와 관광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경주시와 활발한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이집트 룩소르시, 베트남 후에시, 일본 나라시 등 해외 자매 우호도시에서도 방역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주낙영 시장과 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서한을 보내왔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도는 사람과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 다르지 않다(道不遠人 人無異國)’는 최치원 선생의 말씀처럼, 어려울 때 선뜻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중국 자매‧우호도시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경주시는 중국에서 지원받은 방역물품을 노약자와 장애인 등 취약계층 및 의료기관에 우선적으로 배부해 긴요하게 사용할 예정이다.또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기 어려운 외국 주민들을 위해 외국인지원단체에 마스크 일부를 전달할 방침이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시 일자리 정보 한눈에 볼 수 있는 정보시스템 운영

경주시가 시민 누구나 손쉽게 일자리 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경주시립도서관 1층에 설치, 운영한다.경주시에 따르면 구직자들의 구직서비스 접근성 확대로 지역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일자리 정보시스템인 키오스크를 구축했다.일자리 정보시스템은 경주시립도서관 1층 현관에 설치했다. 공공 및 민간 취업포털의 취업콘텐츠와 연계해 신뢰할 수 있는 맞춤형 일자리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한다.키오스크는 가로 66㎝, 세로 190㎝ 규모다. 49인치 LED 모니터로 종류별 및 직종별 채용, 취업가이드, 취업정보, 창업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다.종류별 채용을 통해 일자리맵, 경주시 기업채용공고, 청년우대, 여성 우대, 장년우대, 대기업, 벤처기업, 공기업 등의 정보를 볼 수 있다.직종별 채용은 경영, 보건, 건설, 교육, 농림어업 등으로 분류된 자료를 볼 수 있다. 취업정보는 자격시험정보, 면접가이드 등을 소개한다.창업정보는 창업절차, 창업자금, 사업계획서, 법률정보, 세무정보, 마케팅, 창업지원제도 등을 한 곳에 모았다.이 밖에 경주시 공지사항과 채용공고도 게시해 경주시의 부서별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남심숙 경주시 일자리창출과장은 “경주시립도서관에 설치된 일자리 키오스크는 접근성과 편의성이 높아 많은 구직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구직콘텐츠를 더 다양하게 채워 나가겠다”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시 코로나19로 나들이 어려울 때 베란다 텃밭 가꾸기 홍보

‘코로나19로 나들이가 어려울 때 베란다에서 텃밭을 가꾸어 보세요.’경주시 농업기술센터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채소 재배법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경주농기센터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재배하기 좋은 작목을 선택하고, 기르는 방법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경주농기센터에 따르면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은 상추·적근대·시금치·열무·레몬 글라스 등을 키우기 좋다. 빛의 양이 보통인 동서향은 쑥갓·청경채·셀러리·잎들께 등이 좋고, 빛이 잘 들지 않는 북향은 엔다이브·치커리·부추·쪽파 등을 추천했다.베란다에서 텃밭을 가꾸는 준비물은 간단하다. 채소를 키울 수 있는 화분이다. 흙으로 된 화분과 목재로 된 화분은 통기성이 좋은 편이다. 단 플라스틱 소재는 통기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너무 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상추와 쑥갓과 같은 잎채소는 화분 깊이가 10~15㎝면 가능하다. 어린 잎채소는 씨앗을 뿌리고 3~4주 안에 수확할 수 있어 2~5㎝면 충분하다. 생강 같은 뿌리채소는 깊이가 20㎝ 이상 되어야 한다.깊이가 10~15㎝ 되는 스티로폼 박스나 2ℓ 페트병을 자른 용기도 물 빠짐 구멍을 뚫어 활용할 수 있다. 한 번 사용했던 재배용기를 재사용하려면 깨끗이 씻어야 한다. 남아 있던 병해충을 없애기 위해서다.중요한 것은 채소가 먹는 양분이 되는 흙이다. 마당이나 밭에 있는 흙을 옮겨 활용하면 잡초종자와 벌레가 함께 옮겨질 수가 있고 물 빠짐이 잘 안될 수도 있다. 유기물이 포함된 원예용 상토를 화원이나 농자재 마트 등에서 구입하면 편리하다.채소를 제때 수확하기 위해서는 물주기가 중요하다. 생육 상태와 상토의 마른 정도를 보면서 적당하게 물을 주어야 한다. 상토의 표면이 살짝 말랐을 때 물 빠짐 구멍에 물방울이 맺힐 정도까지만 주는 것이 적당하다.상추는 모종을 심었을 때는 2주 후부터, 씨앗을 심으면 5주 후부터 수확할 수 있다. 여름에는 2~3일 간격, 온도가 낮은 봄과 가을에는 1주일 간격으로 한 포기에서 한 두 장씩 수확이 가능하다.권연남 경주농기센터 과장은 “코로나19 때문에 야외 나들이, 장보기도 불편할 때에는 베란다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삶의 지혜가 될 것”이라며 “가족들이 함께 가꾸는 재미와 먹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베란다 텃밭 가꾸기를 추천한다”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에 웹툰산업 육성 기반 조성사업 탄력

경주시 용강동 구 황남초등학교가 웹툰캠퍼스로 변신한다.경주시는 문화체육관광부 국비 공모 사업인 ‘2020 지역 웹툰캠퍼스 조성 및 운영 사업’에 최종 선정돼 구 황남초에서 웹툰산업을 육성하게 됐다고 30일 밝혔다.웹툰캠퍼스는 신산업 분야로 급부상하고 있는 웹툰산업 육성 및 기반 조성을 위해 국비 3억5천만 원을 포함해 총사업비 8억 원을 들여 구 황남초에 조성한다.구 황남초는 경주출신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인공인 엄지와 혜성의 출신 초등학교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웹툰캠퍼스는 경북도가 참여하고 경주시와 경북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게 된다. 구 황남초 급식동을 리모델링한 연면적 801.9㎡의 지상 2층 규모다. 작가 및 기업 입주시설, 교육장, 전시실, 회의실 등이 조성된다.경주시는 경주의 풍부한 역사문화를 중심으로 경북 전역의 우수한 문화자원을 아우르는 스토리를 융합해 세계로 나가는 경북 글로벌 웹툰센터를 목표로 지역 웹툰산업 육성에 힘을 실을 방침이다.주낙영 경주시장은 “K-POP, 영화 등 K콘텐츠의 힘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K웹툰은 디즈니와 마블의 아성에 도전하는 ‘신 한류’로 각광받고 있다”며 “이번 공모 선정으로 콘텐츠 및 문화산업의 지방소외 문제를 해소하고 지방분권 시대에 걸맞은 지역산업 기반을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4·15총선 드론)경주 무소속 정종복 후보 임란의사추모탑에서 “경주 자존심 되찾겠다”

경주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종복 후보는 30일 경주 임란의사추모탑에서 지지자들과 분향을 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경주의 자존심을 살리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지지를 당부했다.정종복 후보는 “정치도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읍·면·동을 방문하며 현지 텐트에서 숙박하며 소통을 통해 숙원사업과 경주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수렴했다”면서 “경주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정 후보는 “이번 미래통합당의 경주 공천을 두고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경주시민들을 철저히 무시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며 “국회의원이 서울에서 공천만을 위해 정치공작을 하면서 시민들을 분열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이어 “공천과정의 잡음으로 난장판이 된 경주의 정치는 어떻게 할 것이며, 분열된 지역민심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양심이 있는 국회의원 후보라면 책임을 시민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후보직을 사퇴하는 것이 도리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정종복 후보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나서 나라를 구했듯이 경주를 걱정하는 열혈 시민들이 불길처럼 일어나 추락하는 경주, 혼돈의 경주를 함께 구하자”고 제안했다.또 정 후보는 “정종복이 앞장서서 경주에 다시는 공작정치, 음해 정치, 밀실정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면서 “공천은 당에서 주었지만 국회의원은 시민들이 뽑는 것”이라 강조하며 경주를 잘살게 할 정종복 지지를 호소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 고 손봉순 여사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자로 선정

경주의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일생동안 선행을 베풀었던 고 손봉순 여사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이 수여된다.경주시는 2019 국민추천포상 국민훈장 동백장에 고 손봉순 여사가 선정됐다고 밝혔다.손 여사는 1936년 경주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고, 결혼과 함께 중앙시장에서 자그마한 포목점을 운영하며 3명의 자녀를 키웠다.그러던 어느 날 시장 한 귀퉁이에 주린 배를 안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어린 아이를 발견한다. 불우하게 자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했다. 그날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그 아이를 본인의 친자녀와 함께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냈다. 그때가 1964년 즈음이다.그 이후로도 손 여사는 모두 12명의 무의탁 고아를 입양해 성인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해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냈다. 모두가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살림살이가 녹록지 않았음에도 가슴으로 낳은 자녀를 친자녀와 다름 없이 양육해 출가시킨 이야기는 아직도 경주시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손 여사의 선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84년부터 17년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뒤늦게 결혼식을 올리는 동거부부 138쌍에게 결혼예복을 선물했다.1987년부터는 양로원, 보육원, 장애인시설 등 경주 소재 사회복지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각종 위문품을 전달했다. 특히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장학금과 문화재 견학 등을 꾸준히 지원했다.뿐만 아니라 매년 100여 명의 무의탁노인과 50개소 양로시설, 경주경찰서 전경들을 위해 해마다 김장을 담가주는 등 지역 사회 곳곳에 그녀가 남긴 나눔과 봉사의 흔적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하루도 쉬지 않고 가족을 위해, 외로운 영혼들을 위해, 지역사회의 화합을 위해 분주했던 손 여사의 삶은 2018년 82세의 일기로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생의 마지막에도 그녀는 “남은 포목은 경주시를 위해 써 달라”고 유지를 남겼다. 이에 경주시는 도매가 1천만 원 상당의 포목을 경주의 대표 축제인 신라문화제에 사용토록 축제조직위원회에 전달했다.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지치고 힘든 요즘 고 손봉순 여사의 국민훈장 수상 소식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숨은 봉사자들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경주시민들에게는 뿌듯한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56) 후백제 견훤 (하) 후백제 멸망

후백제 견훤이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들들에게 고려에 투항하자고 권했다. 그러나 아들들은 오히려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고, 맏아들 신검이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견훤은 금산사에서 지키는 병사들에게 술을 먹이고, 병사들이 잠든 틈을 이용해 고려로 도망하여 왕건에게 의탁했다.견훤의 사위가 왕건에게 내부에서 협조할 것을 공모하며 후백제를 공격할 것을 제의했다. 이에 힘입어 왕건은 쉽게 후백제를 점령하고 이어 후삼국을 통일했다.견훤은 아들들을 죽이고자 했지만 왕건이 그들을 용서하는 바람에 화가 치밀어 결국 등창으로 70세 일기로 죽음을 맞았다. 후백제는 견훤이 전주에서 나라를 일으킨 지 47년 만에 파국을 맞았다.◆삼국유사: 후백제 견훤병신년(936) 정월에 견훤이 그의 아들에게 “이 늙은 아비가 신라 말기에 후백제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워 여러 해가 되었다. 군사는 북쪽 군보다 두 배가 되나 오히려 불리할 뿐이었으니 아마도 하늘이 고려를 위하여 힘을 빌려주는 것 같다. 고려왕에게 귀순해서 목숨을 보전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그의 아들 신검, 용검, 양검 등 셋은 모두 듣지 않았다.견훤은 처첩이 많아서 아들을 10여 명이나 두었다. 넷째 아들 금강은 키가 크고 지혜가 많아서 견훤이 특별히 그를 사랑하여 왕위를 넘겨주려 하였다. 그의 형 신검, 양검, 용검이 이를 알고 몹시 근심했다.이때 양검이 강주도독이 되고 용검이 무주도독이 되어 신검만 견훤의 옆에 있었다. 이찬 능환이 강주와 무주의 두 주에 사람을 보내 모의하여 청태 2년 을미(935) 봄 3월에 영순 등과 함께 신검에게 권하여 견훤을 금산사 불당에 유폐시키고, 사람을 보내 금강을 살해했다. 신검은 스스로 대왕이라 칭하고 나라 안의 죄수들을 풀어 주었다.견훤이 잠자리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멀리 대궐 뜰에서 함성이 들렸다. 이것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왕께서 연로하시어 나라의 군사업무와 정치에 어두워 맏아들인 신검이 아버지의 왕위를 대신하였다 하여 여러 장수가 축하하는 환호성입니다”고 했다. 얼마 후 아버지를 금산사 불당으로 옮기고 파달 등 장사 30명으로 지키게 했다.견훤은 후궁과 나이 어린 남녀 두 사람과 시비 및 나인 능우남 등과 갇혀 있었다. 4월에 술을 빚어 지키는 군사 30명에게 취하도록 먹였다. 그리고 도망해 고려에 도착하자 견훤이 태조보다 10년이나 연상이라 하여 존칭으로 상부라 하고 남궁에 편안히 살도록 했다.견훤의 사위인 장군 영규는 그의 처에게 “대왕이 40여 년간 노력한 끝에 대업의 성과가 이루어졌는데 하루아침에 가족 간의 불화로 나라를 잃고 고려로 가셨소이다. 고려의 왕공은 인자하고 후덕하며 겸손하고 검소해서 민심을 얻었소. 고려 왕공에게 공손하게 처신하여 뒷날 돌아올 복을 도모합시다” 하니 그의 처가 “당신의 말씀은 바로 저의 뜻입니다”고 했다.이에 936년 2월에 사람을 보내 태조에게 “왕께서 정의의 깃발을 드신다면 청컨데 안에서 호응하여 왕의 군대를 맞이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태조가 기뻐하며 그의 사자에게 후하게 선물을 주어 보내면서 영규에게 “만약 은혜를 입게 되어 하나로 합세해서 길이 막히지 않게 되면 바로 장군을 먼저 뵌 후에 대청에 올라가 부인에게 절하고, 형님으로 섬기고 받들어 반드시 끝까지 후하게 보답하겠소”라고 했다.6월 견훤이 태조에게 “늙은 이 몸이 전하에게 의탁한 까닭은 전하의 신령스런 위엄을 빌려 반역한 자식을 처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신병을 빌려주시어 적자난신을 섬멸하게 하시면 비록 죽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이외다”고 했다.이에 태조가 말하기를 “그들을 토벌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하며 먼저 태자 무와 장군 박술희를 시켜 보병과 기병 10만을 거느리고 천안부로 서둘러 가도록 했다.가을 9월 태조는 3군을 거느리고 천안으로 가서 군사들을 합하여 일선으로 진군하니 신검이 군사들로 대항했다. 갑오일에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는데 태조의 군대는 동북방을 등지고 서남방을 향해 진을 쳤다. 태조는 견훤과 함께 병영을 바라보니 홀연히 검과 창 모양의 흰 구름이 일어나 우리 군대 쪽에서 적진 쪽으로 향하여 갔다. 이에 북을 치며 행군하여 진격하니 백제 장군 효봉, 덕술, 애술, 명길 등이 고려군의 위세가 크고 정연한 것을 바라보고 갑옷을 버리고 진지 앞에 와서 항복했다. 태조가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장수가 있는 곳을 물으니 효봉 등이 “총대장인 신검은 중군에 있습니다”고 했다.태조가 장군 공훤 등에게 명하여 삼군이 일시에 협공하여 진격하게 하니 백제 군사가 궤멸하여 패주했다. 황산 탄현에 오니 신검이 두 아우와 장군 부달, 능환 등 40여 명과 함께 와서 항복했다. 태조는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나머지도 모두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처자들과 함께 상경할 것을 허락했다.태조가 능환을 문책하여 “처음에 양검 등과 은밀히 모의하여 대왕을 가두고 그의 아들을 왕위에 세운 것은 너의 꾀였으니 신하가 된 의리로 보아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하니 능환이 머리를 숙이고 말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명령하여 그의 목을 베었다. 신검이 참람되게 왕위에 오른 것은 다른 사람의 위협이었지 그의 본심이 아니었고 게다가 항복하여 죄를 빌었으니 특별히 그의 죽음을 면하게 해 주었다. 견훤이 이를 분하게 여겨 등에 종기가 생겨 수일 만에 황산 불사에서 죽었다. 9월8일이며 나이는 70세였다.태조의 군령이 엄격하고 분명하여 군사들이 조금도 범하지 않으니 고을 사람들이 안도하며 늙은이나 젊은이가 모두 만세를 불렀다.견훤은 당나라 경복 원년(892)에 나라를 세워 진나라 천복 원년(936)까지 도합 45년 만인 병신년에 멸망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후백제의 몰락견훤은 신라 사람이다. 그는 타고난 체질이 강건하고 굳세어 전쟁터를 누비는 무장으로 성장했다. 신라 비장으로 승진해 전쟁터를 누볐지만 자신의 꿈에는 미치지 못했다. 전장에서는 성난 호랑이와 같이 지칠 줄 모르고 적을 몰아붙이는 견훤의 용맹스런 기세에 군사들도 저절로 힘을 얻어 연전연승하며 부하들이 그를 따랐다.견훤이 신라에 반기를 든 것은 자신의 상사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는 그의 무공과 용맹스런 기질에 반해 따르는 군사가 많아지자 이를 시샘한 장군이 논공행상에서 견훤을 의도적으로 배척했다. 견훤은 어느 날 전쟁에서 승리하고 회포를 푸는 축제장에서 노골적으로 인신공격하는 장군의 목을 베어 버리고 따르는 군사들과 함께 신라를 등졌다.더욱이 이날 전쟁터에서 자신을 도와 날랜 모습을 보이던 병사가 남장한 여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여인은 견훤이 장군의 목을 베어 넘긴 자리에서 평생 자신의 뜻을 따르겠다고 맹세하자 부인으로 삼았다. 여인이 신라에 한을 품은 백제 장군의 딸, 무념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견훤은 고려를 견제하면서 기필코 신라를 멸망시키리라 다짐하고 신라 공략에 치밀한 전략을 세워 기어이 경애왕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견훤이 신라를 치는 과정에서 유독 횡포를 심하게 부렸던 까닭도 그가 아끼는 무념의 복수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그러나 견훤도 오랜 전쟁에 지쳤다. 또 전쟁터에서 만난 그의 다섯째 부인에 대한 사랑에 빠져 궁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군사력도 자연스럽게 느슨해졌다. 아들들의 후계 구도에 대한 경쟁이 심해지면서 군의 기강도 해이해지기 시작했다.또 넷째 아들인 금강을 가장 신임하며 후계자로 삼을 뜻이 있었는데 은연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후계구도를 두고 아들들의 경쟁으로 후백제의 운명이 엇갈리는 결과를 빚었다.935년에 견훤의 세 아들이 반역함에 따라 견훤은 태조에게 투항하고, 그의 아들 신검이 왕위에 올랐다. 936년 견훤이 왕건과 함께 손잡고 일선 군에서 싸워 후백제가 멸망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 음악창작소 조성 사업 추진

경주시가 음악창작소를 조성해 순수 음악예술인들의 창작사업을 지원한다.경주시는 한국 대중음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지역기반형 음악창작소 조성 지원 공모 사업’에 최종 선정돼 국비 10억 원을 확보했다.음악창작소는 경주시 금성로 서라벌문화회관에 들어선다. 음악창작 및 교육을 위한 레코딩 스튜디오와 교육실, 개인 창작실 등을 갖춘 대중음악 콘텐츠 전문 창작공간을 조성한다.음악창작소는 오는 12월 개소 예정이다. 운영은 경북도콘텐츠진흥원 동남권센터가 맡는다.사업은 교육 및 창작지원을 통한 지역 뮤지션 발굴, 음악에 기반한 융복합 콘텐츠 개발, 창작콘텐츠 산업화를 위한 유통지원 및 페스티벌 개최, 네트워킹 활성화를 위한 아카이브 구축 및 팟캐스트 운영, 포럼 개최 등 음악산업 전반에 대한 육성과 창작생태계 조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또 음악 학원, 개인레슨, 소규모 라이브 클럽 등 기존 민간산업 간 동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차별화된 프로그램과 지원도 함께 추진한다.주낙영 경주시장은 “경주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음악창작 및 음악교육 관청인 음성서가 설치돼 음악의 발전을 이뤄내던 곳”이라며 “음악창작소 운영을 계기로 음악 인프라에 대한 시민들의 갈증을 해소하고 경주시가 대중음악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