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도입할 때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외식업자들에게 식품의 유통기한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유통기한 위반은 강력한 행정처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선도에 상관없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바로 폐기한다. 가끔씩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를 직원들과 나눠 마시기도 하지만 그렇게 썩 내켜하지는 않는 눈치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유통기한·소비기한 병행표시에 따른 영향분석’ 보고서(2013)를 보면 이해가 된다. 성인남녀 2038명을 대상으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먹지 않고 폐기해야 한다’는 설문을 진행했다. 결과는 56.4%(1천150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대부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꺼내두고 먹어도 될지, 아니면 버려야할지 고민한다. 아마 대부분은 식품에 표시돼 있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버려야 한다는 인식을 하는 같다. 하지만 이는 유통기한에 대한 오해일 뿐이다.유통기한은 유통업체가 식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다.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된 기한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식품업계는 실제 제품의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의 70~80% 선에서 유통기한을 정한다. 품질유지기한에 안전 계수(0.7~0.8)를 곱해 유통기한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식품의 변질가능성과 소비자분쟁에 대비해서다. 이는 정상적으로 보관했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유통기한을 넘겨 섭취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절반이 넘는 소비자들은 식품의 유통기한을 폐기해야 하는 시점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정상 제품임에도 버려지는 음식이 너무 많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 한해 음식물쓰레기 발생량은 1만3천여t이다. 유통기한 경과로 인한 가공식품의 폐기비용만 해도 한해 1조3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비기한 도입이 필요한 이유다. 소비기한은 표시된 보관조건에서 소비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뜻한다. 그래서 보통 유통기한보다 소비기한이 더 길다. 유통기한이 지났더라도 소비기한까지는 소비자가 먹을 수 있는 기간이다.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불필요한 경제적 손실은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도 소비기한을 도입하는 추세다. 2018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유통기한을 식품 표시규정에서 삭제했다. 소비자에게 오인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소비기한 표시를 권고하고 나섰다. 실제 호주, 캐나다, EU 등 많은 선진국에서도 소비기한을 채택했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섭취기한과 판매기한, 포장일자, 품질유지기한 등으로 복수표기하고 있는 미국도 변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FDA(식품의약국)가 식품 섭취기한과 관련된 표기를 품질유지기한(Best If Used By)으로 표준화해 통일할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일본은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는 기간인 상미기한과 소비기한 두 가지 표기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로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그중 하나가 ‘쿠라다시(KURADASHI)’라는 플랫폼이다. 상미기한이 임박했거나 상미기한을 넘겼지만 소비기한은 남아있는 제품을 소비자가격에서 60~90% 할인해서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이다. 이미 냉동식품 대기업을 포함 약 580여 개 회사가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비기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때마침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일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단 소비기한의 도입 취지는 공감하지만 선결조건이 갖춰져야 가능하다는 우려도 있는 것 같다. 보관여건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 위생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소비기한을 도입할 경우 오히려 소비자들의 불만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문제다. 품질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유통기한 임박 식품은 푸드뱅크에서도 받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유통기한이라는 단일표기로 연간 7천억 원 상당의 식품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소비기한 표시가 늦어지고 있다. 혹시라도 제조와 유통환경을 관리하는 업무편의성 때문에 정부에서 소비기한 도입을 미룬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으면 한다.

부재/배영근

골목 안 기와집/ 잠긴 대문 틈새로// 썰렁한/ 마당 가운데/ 찌그러진 개 밥그릇// 정짓간/ 떨어진 문짝/ 녹슨 저녁 자국들// 우북한 풀들 사이/ 절구통 누워있고// 이끼 낀/ 누마루 아래/ 흙먼지 덮어쓴 가마솥// 무너진/ 장독대 곁의/ 석류꽃만 환하다시조집, 「석류꽃만 환하다」(그루, 2016)배영근 시인은 대구 출신으로 201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석류꽃만 환하다’가 있다. 그는 결 고운 서정으로 부재를 어루만지는 시 세계를 축조하고 있다.우리가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거나 시를 쓰는 일은 어떤 면에서 부재에 대한 조심스런 항거가 아닐까. 유한자인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 이 땅을 떠나게 된다. 그 이전에 삶속에서 우리는 무수한 부재를 겪는다. 이로 말미암아 깊은 상실감이나 박탈감을 느끼면서 견디기 힘들어 한다.‘부재’는 골목 안 기와집 잠긴 대문 틈새로 썰렁한 마당 가운데 찌그러진 개 밥그릇, 이라는 장면 제시를 통해 우리 속의 토포필리아 즉 장소에 대한 사랑과 바이오필리아 즉 생명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개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 찌그러진 개 밥그릇은 여태 놓여 있지만 개도 없고 사람의 그림자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부재 상황이다. 정짓간 떨어진 문짝 녹슨 저녁 자국들이 보다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우북한 풀들 사이로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절구통은 누워 있다. 직립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부재 상황을 보다 팽창시킨다. 이끼 낀 누마루 아래 흙먼지 덮어쓴 가마솥이 보인다. 무너진 장독대도 함께. 이 모든 것은 식솔들과 동고동락을 나누던 것들이다. 체온이 묻어 있는 소도구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꽃이 있다. 바로 석류꽃이다. 시골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겨운 꽃나무다. 다른 모든 것들은 온통 그 존재감을 상실했는데, 오래 뿌리내린 석류꽃은 저 홀로 피어 붉고 환하다. 이 애절한 역설의 현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그는 또한 ‘옛집에서’ 검붉은 아궁이에 타다 남은 재를 보듯 허름한 울타리로 눈길이 따라가는 그곳에 또 다른 꽃이 감나무 장독대 옆에 몇 송이 피어있는 것을 예의 주시한다. 접시꽃이다. 그 순간 마른 꽃잎처럼 떠오른 기억 저편을 더듬어 너를 찾아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너는 거기에 있지 않다. 다만 이끼 낀 툇마루에 산바람이 드나들 때 어디론가 가 버린 꿈같은 그 먼 날들만 아른거릴 뿐이다. 옛집의 지붕에는 지나던 구름 한 자락이 잠시 쉬었다가 간다. 더는 그때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부재’나 ‘옛집에서’는 모두 부재 상황을 노래하면서 결핍된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고 치유하고 있다.아무래도 도시 생활은 쫓기듯 사는 삶이다. 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릴 적 추억에 잠길 때가 많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는 훨씬 어려웠지만, 정이 더 많던 시절이고 삶 자체가 보다 자연친화적이어서 문득문득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부재는 아픔을 안겨주지만,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공허함을 잘 이기고 다스리면서 우리는 이야기 속의 소년처럼 더욱 씩씩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정환(시조 시인)

당직변호사

▲15일 이승익 ▲16일 이승진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밑천 드러낸 日 독도회고 영상

신순식독도재단 사무총장일본은 일제강점기 독도에서 잠시 강치잡이 한 것을 가지고 향수를 불러 일으키려는 것일까? 일본 외무성 산하 일본국제문제연구소는 독도영유권 근거로 시마네현 오키도 주민의 구술증언을 공개했다. 이 영상은 선량하고 인정많은 이시바시 마츠타로 할아버지를 그리는 손녀가 독도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할아버지를 회고하는 회고담 형식으로 편집돼 있다. 조부와의 독도 추억을 구술하는 그녀는 1933년생으로 현재 87세 시마네현 오키도에 거주하고 있는 사사키 쥰씨다. 그녀는 이시바시 마츠타로의 외손녀로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강치어업과 제주 해녀를 고용했던 당시 어업 상황을 구술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시마네현 죽도자료관과 오키도 행정사무소에서 할아버지를 찾는다는 TV 사진 광고를 보고 할아버지를 다시 기억하게 됐다고 했다.이 영상에서 주목할 점은 첫째, 시마네현 죽도문제연구회와 오키도 행정사무소가 공영방송을 통해 독도 관련자를 찾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독도어업권자의 후손 또는 관련자를 찾아 독도어업이 활발했음을 알리려는 의도였지만 독도어업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만약 일본의 주장처럼 독도어업이 활발했었다면 굳이 공영매체를 통해 독도어업 관련자를 찾을 필요가 없다.둘째, 독도어장을 경영한 오키도 쿠미(久見)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사키 쥰씨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독도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독도 어업을 이야기했으나 무시당했고 그녀가 기억하는 독도어업은 해녀 7명을 고용, 집과 재산을 팔아 임금을 지불했다는 등 단편적인 기억들이었다.오키도 어민들의 독도 진출은 1903년 일본정부가 울릉도로 오징어 어민을 이식하기 위해 먼거리 어선 개량사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오키도 오징어 어민들은 울릉도를 왕래하다가 조난사고가 발생했고 조난자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독도 상륙이 이뤄졌다. 1903년 독도가 강치어장임을 확인하자 오키도 어민들은 독도로 진출했고 이 가운데 나카이 요자부로라는 어민은 어업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선정부에 어업허가원을 제출하고자 관리들을 찾아다녔다. ‘무주지’라는 이유를 붙여 독도를 일본 시마네현에 불법 편입(1905년)하기 직전까지도 일본 어부들은 독도를 조선 땅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마네현 총무부 총무과 행정문서 상에는 일본정부가 강치어민 나카이 요자부로를 사주해 일본정부에 영토편입원을 제출하도록 하는 경위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사사키 쥰씨가 기억하는 독도어업은 죽도어렵합자회사가 해체돼 그녀의 할아버지 이시바시 마츠타로 일족에게 독도어업권이 매각되는 시기이다. 이들은 강치가격이 상승하자 1933~1938년 6년간 독도어업을 했고 해녀를 고용해 전복을 채취한 것은 1935년 한 번 뿐이었다. 사사키 쥰씨가 기억하는 것처럼 독도어장 경영은 매년 적자였고 집과 땅을 팔아 6년간 어업을 지속했으나 1941년 이후에는 독도에 가지 않았다.일본 오키도는 독도까지의 거리가 울릉도보다 약 1.8배 이상 멀어 왕래가 쉽지 않았고 1910년께 강치가 남획됨으로써 어장으로서의 경제적 가치가 없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가깝고 전복, 소라가 많아 울릉도인들은 매년 왕래하면서 독도어장을 이용했다.일본국제문제연구소가 1897년경부터 오키도 어민들이 강치어업을 했다는 영상 자료를 공개했지만 일제강점기, 일본 해군성이 발간한 1920년 일본수로지와 1933년의 조선연안수로지에는 ‘매년 여름 강치잡이를 위해 울릉도에서 독도로 도래하는자 수십명에 이른다’는 공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일본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사사키 쥰씨가 증언하는 독도어업은 강치가격이 상승한 1933~1938년 6년간의 어업으로 오키도의 독도어업권자 직계가족들에게서만 회자되는 어업이었다.

축제 취소가 능사냐

오용수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코로나19로 인해 대다수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관광산업이 가장 심각하다. 항공, 전시·컨벤션 등 연관 산업도 기진맥진한 상태다. 정부에서 맨 먼저 여행업과 공연업에 고용지원금을 제공했지만 역부족이다. 지난 5월의 해외여행은 98%나 감소했지만, 제주, 강원을 위시한 국내여행은 점차 회복되고 있다. 그렇지만 전국 각지의 축제는 연기, 취소를 거듭하고 있다.축제는 원래 종교적 의식과 추수 감사의 의미에서 시작됐으나 점차 주민 단합과 지역경제에 기여하게 됐다.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폐허 위에서 음악을 통해 희망을 주고, 다시 일어나자는 취지에서 1947년부터 매년 8월에 열린다. 3천 회를 넘는 공연과 3만 명 이상의 음악인과 관객들이 몰리므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4월 초에 취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미국의 아스펜 음악축제는 2주를 연기해 진행하고 있고, 올해 100주년이 되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제는 축소돼 열린다.일본의 하카타 기온 마쓰리는 800년 전 전염병이 돌자 곳곳에 물을 뿌려 병을 막았고, 이를 기념해 매년 7월15일 후쿠오카 시내를 남자들이 샅바차림으로 초대형 인형을 메고 달리는 축제다. 올해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7월부터 하카타역 광장 등에 인형을 전시하며 축제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우리도 1995년부터 정부 주도의 문화관광축제를 통해 지역 특산품과 고유문화를 활용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축제가 전국에 100개도 되지 않았으나, 그해 지방자치제 시행과 함께 늘어나 지금은 1천개 가까이 된다. 그런데 코로나가 확산되자 방역을 위해 봄축제들이 연기를 거듭하다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통영 한산대첩축제, 전남 명량대첩축제 등 대부분의 여름축제와 평창 효석문화제 등 가을축제도 취소됐고, 부산영화제, 진주 유등축제는 아직 개최가 불투명한 상태다.한편 일부 축제·이벤트는 조심스럽게 열리고 있다. 대구 관악축제는 7월11일 콘서트하우스에서 열렸고, 한차례 연기했던 교향악축제를 7월말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진주, 밀양에서는 공연·예술축제가 7, 8월에 예정대로 열리게 된다. 또 대구와 서울에서 건축박람회가, 실내에서 열렸다. 이밖에 경북 봉화은어축제는 일주일 연기해 8월 초에 개최되고, 청송 사과축제, 포항 별빛축제도 10월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축제 개최 여부는 각기 숙고와 회의를 거쳐 결정된 것이라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같은 음악축제도 어떤 곳은 실내인데도 열고, 다른 곳은 야외라도 취소한다면 얼른 납득이 되질 않는다. 좀 더 고민하면 개최할 수도 있다. 야외 축제는 1~2m 원, 선을 그어 밀접을 피하고, QR코드로 신분을 확인하고, 열 체크 등 방역에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실내 공연은 예약자 위주로 한 자리씩 띄어 앉으면 된다. 농산물 축제는 온라인으로 바꾸어 저렴하게 팔고, 요리 방법, 과실주 담그기 등 다양한 시도를 하면 된다. 보령 머드축제도 온라인으로 머드를 집에서 바르고 햇볕에 쬐는 차선책도 강구하고 있다.대구의 대표적 축제인 치맥축제 취소는 아쉽다. 접촉을 줄이기 위해 일부 음식점에서 하듯이 테이블을 띄우면 된다. 공연은 TV, 유튜브 등으로 전국에 방영되고, 전국 체인점에서 치맥축제를 벌여 집에서 즐기도록 하자. 오히려 치맥축제의 전국화, 세계화도 가능해지는 셈이다. 올해 못 온 이들은 영상을 보며 내년을 기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구에서 치맥축제가 열리지 않는다면 8, 9월 서울, 부산의 맥주축제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국경일 경축일 기념행사는 물론 시·도의 정기 회의도 반드시 열린다. 모여서 하기 힘들면 온라인이라도 한다. 시·도 행사는 꼭 하고, 축제는 안 해도 된다는 걸까.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축제라면 연기, 축소를 하더라도 거르지 말고 방역에 주의를 기울이며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쉬/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하시겄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쉬」 (문학동네, 2006)효는 근본적인 인과관계다. 원초적이긴 하나 소홀히 하기 쉽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본능이기 때문에 굳이 강령이나 교리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 내리사랑이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자식사랑은 오히려 제어해야할 정도로 넘치기 십상이다. 반면 그 반대 방향인 효는 실천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효를 윤리의 기본개념으로 삼고 그 실천을 강조한다. 효를 아무리 강조해도 잘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현실은 역설적으로 효를 강조해야 되는 이유다. 갓난애는 기초대사에서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전부 부모의 손에 달려 있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분가해 홀로서기 할 때까지도 부모가 죄다 뒷바라지 한다. 독립했다고 영 떠나가는 건 아니다. 부모는 자식이 장성해도 세 살 난 아이 물가에 놓은 것 같은 마음으로 지켜본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획득형질이 아니라 타고난 특성이다. 자식이 필요할 때 부모는 기댈 언덕이지만 부모가 필요할 때 자식은 돌아앉는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 모든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유아상태로 떨어진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가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자식이 그 은혜를 되갚아야 할 기회다. 부모는 되갚음을 기대하지도 않고 헌신한다. 하지만 자식은 먼저 받은 시혜마저 잊어버리고 귀찮아한다. 효는 인위적이다. 해난사고로 사망한 남의 집 자식들이나 교통사고로 죽은 생면부지의 애들에 대한 애도는 지극 정성인데 제 부모상은 호상이라며 웃음을 흘리며 성가신 일을 처리한 듯 홀가분해한다. 부모는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신세다. 애완동물을 반려라 하면서 먹이고 씻기고 뉘이고 닦인다. 병들면 기백만 원의 거금을 들여 병원에 데려간다. 그 반면에 부모에게 드는 돈은 기십만 원을 두고 벌벌 떨면서 자식 간 신경전을 벌인다. 사후 유산 다툼으로 머리 터지게 싸우는 모습은 논외다. 부모를 개나 고양이 정도만 취급해줘도 다행이랄까. 우울하고 비참한 세태다. 노래자 일화가 떠오른다. 노래자는 고희에도 부모 스스로 늙었다는 사실을 잊게 해주려고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었다. 때로는 일부러 엎어져 마루에 뒹굴면서 애처럼 울기도 했다.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애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모를 즐겁게 해 준 것이다. 그렇게까지 바랄 수야 없겠지만 그 효심의 반만이라도 가져준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환갑지난 아들이 아흔 넘은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면서 어리광부리듯 애정을 보이는 모습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사랑으로 키워낸 아들이 이제 늙은 아버지를 안고 쉬를 뉜다. 아들은 더 오래 붙들어 두고 싶고, 어버지는 안쓰러워 그만 명줄을 놓아버리고 싶다. 우주도 감동한 듯 숨을 죽인다. 오철환(문인)

당직변호사

▲14일 이성관 ▲15일 이승익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효성여고 총동창회, 지역 소외 계층 등 위해 마스크 1만3천 장 전달

효성여자고등학교 총동창회가 최근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모교와 지역 내 소외된 계층 등에 마스크를 전달했다.마스크는 50여 년 전 효성여고를 졸업하고 현재는 외국에서 살고있는 동문 A씨가 마스크 1만3천 장을 기부하면서 마련됐다.효성여고로 직접 보내온 마스크 9천 장은 후배 재학생들과 인근 대건중, 효성중에 전달됐으며, 동창회로 기탁된 4천 장은 대구 중구청과 달서구청 등을 통해 다문화가정 등 지역 소외 계층에 전달됐다.곽인희 동창회장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하고 싶어하는 독지가인 선배의 뜻을 존중해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몇 해 전에도 모교 후배들의 복지를 위해 큰 희사를 했던 분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더위와 장마까지 겹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칭찬만 하세요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가 좀체 종식되지 않고 있다. 지역 발생이 좀 뜸하다 싶으면 다른 곳에서 불쑥 나타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니, 정말 이 코로나19가 끝은 있을 것인가. 음압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보러 들어갈 때면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 맴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람은 서로 만나서 교류해가며 살아야 하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다. 다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름으로 적응하려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그런대로 버텨내고 있다. 이 바이러스와의 대전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활의 활력소, 웃음이 그리워진다.상상도 못했던 세상을 맞이했지만, 그 나름으로 적응해가며 급변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낙천적으로 생활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지인, 그가 보내준 긴 문자가 힘겨운 날에 작은 위안이 된다.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40년간 결혼생활을 한 부부가 있었는데 부인은 40년이 지난 지금 남편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묘사해 보라고 졸랐다. 남편은 그런 부인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ABCDEFGH & IJK”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부인이 물었다. 남편은 Adorable(사랑스럽고) Beautiful(아름다우며) Charming(매력적이고) Delightful(애교 있으며) Elegant(우아하고) Fashionable(멋있으며) Gorgeous(대단하고) Happy(함께 있으면 행복하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부인은 남편의 사랑을 새롭게 확인한 것 같아서 무척 기뻤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있는 IJK 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는 것을 알고 그건 또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슬쩍 웃음을 띠더니 “I'm Just Kidding!”(나 정말은 농담한 거야!) 라고 말했다. 그러자 부인의 눈꼬리가 올라가는가 싶더니 입에서 느닷없는 한국말이 튀어나왔다.“가, 나, 다, 라, 마, 바” 남편이 뜻을 묻자 "(가)엾은 (남)편 (돌)았네. (라)면이라도 얻어먹으려면 (말)조심해요. (바)보 같으니라고!”우리가 어떻게든 이 시기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나름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잘 대비해야 하는데, 아직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찌하면 잘 대응할지에 대해 판단이 서지 않고 자료도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를 병행해서 수업을 듣고, 직장인들도 아프면 집에서 쉬고 또 더러는 재택근무를 해야 하기도 한다. 물건을 사는 것도 온라인을 통한 쇼핑을 즐기는 것이 늘어나는 요즈음,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스스로 잘해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자주 대면하지 않는 세상이 돼가다 보니 요즘 부쩍 SNS를 통한 소통이 늘어간다. 그중에는 하루의 피로를 날려주는 상큼한 웃음을 주는 것도 있다. 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이는 더없이 반갑다. 며칠 전 타계한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일게 한다. 지난 5일 향년 92세로 그가 세상을 떠났다. 최근 낙상 사고로 골절상을 입고 로마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오다 숨을 거둔 그는 192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500여 편이 넘은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 ‘황야의 무법자’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의 주제곡을 만든 모리꼬네, 그는 영화 음악의 거장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7년 제79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야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그의 부고였다. ‘나, 엔니오 모리꼬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의 부고를 늘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과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모든 이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내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중략…// 마지막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소중한 아내 마리아에게,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으나 이제는 포기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랑을 다시 전합니다. 당신에 대한 작별 인사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 아무리 명예와 장수를 누렸다고 해도 죽음은 언제나 슬프고 힘들 터이다. 모리꼬네는 음악을 “삶이란 감옥에 갇혀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건네는 위로 주 한잔 같은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날마다 나름의 위로 주를 찾아 마시며 담담하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지 않으랴. 주변 사람을 늘 칭찬해 가면서.

나의 이력서/ 김원중

서울대학교를 안 나왔습니다/ 미국 유학도 못 갔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살았으니까요/ 기독교 장로도 못 되었습니다/ 일요일도 하루 종일 일했으니까요/ 시골 초등학교만 빼고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12년 꼬박 야간에만 다녔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두고 박사, 교수, 시인이라고 불러줍니다/ 여학교의 단발머리 여학생 제자 천 명/ 영남이공대학의 국어수업 받은 제자 이천 명/ 대구 한의대에서 배운 제자 육백 명/ 포항공대 제자 사천 명이나 되지만/ 지금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청구 푸른마을 4층 아파트/ 우리 집 방구들 위에 혼자 누워서/ 허무한 이력서를 다시 써 봅니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대구문협, 2013) ‘나의 이력서’는 시인이 살아온 역정이자 개인사이다. 누구나 살아오는 동안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기 마련이다. 자랑스러운 일, 아름다운 일도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부끄러운 일, 후회스러운 일도 가슴에 맺혀있다.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남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자괴감에 빠져 자기 신세가 고달파진다. 그러나 자신의 역정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일은 단순히 특정 과거사를 회상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 때때로 덧없는 상념에 젖곤 한다. 운명에 대한 야속함 또는 막연한 원망이나 허전함이랄까. 시기나 질투에서 째여 나오는 감정이 섞여들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던 최선의 길로 가지 못했던 데 대한 자책과 원망도 담겨있다.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나 변명이 겹친다. 과거의 불확실한 상상이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에서 기생하는 과거 사실의 가정이다. 딱 꼬집어 말하긴 곤란하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도 세계역사가 달라졌듯이 자신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인생이 백팔십도 확 달라졌을 것이다. 일류대학교를 졸업하고 세계 명문대학교로 유학도 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더 좋은 직장을 얻어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떨쳤을 텐데. 더 예쁜 여자와 살면서. 지금 당하는 생활고도 없을 것이고 자신의 인생은 화려한 꽃길일 것이다. 이런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면 사주팔자가 원망스럽다. 억울하기도 하지만 자신도 한심스럽다. 한편 다른 생각도 든다.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죽도록 노력한다면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 만사 마음먹기 나름이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간다. 개천에서 용 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렵고 혼란한 시대였기에 반칙을 써서 새치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력으로 묵묵히 노력해 엘리트코스를 밟아 성공한 사람들이 그래도 대다수다. 결국 모두 자신 탓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이마빡에 꿀밤이라도 한 대 주고 싶다. 실없이 웃고 만다.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디냐. 그런 와중에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나.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난삽하게 살다가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박사, 교수, 시인으로 불리는 것만 해도 가문의 영광이다. 제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대강 짚어본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을 터이다. 가끔 제자들이 찾아온다. 오늘도 지팡이 짚고 산책길에 나선다. 고희가 되어서야 겨우 인생의 참 뜻을 깨닫는다. 힘든 환경 속에서 역경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주저앉지 않고 주경야독한 끝에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서온 역정이다. 아들 딸 낳고 밥 굶지 않으면서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살아온 삶이다. 시인의 담담한 목소리가 따스하고 묵직한 울림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오철환(문인)

당직변호사

▲13일 이서준 ▲14일 이성관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인사)대구시

◆대구시〈개방형 직위 임용〉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 최삼룡〈신규 임용〉 △대외협력특보 전재문〈2급 승진〉 △시민안전실장 김영애〈3급 전보〉 △시민건강국장 김재동〈3급 승진〉 △혁신성장국장 백동현 △교통국장 윤정희 △문화체육관광국장 박희준〈3급 직무대리〉 △일자리투자국장 직무대리 김태운 △미래공간개발본부장 직무대리 김충한 △복지국장 직무대리 조동두〈3급 파견복귀〉 △자치행정국장 심재균〈3급 파견〉 △인사혁신과(계명대학교) 한만수 △정책기획관실(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안중곤 〈3급 전출〉 △서구 정의관〈4급 전보〉 △예산담당관 이유실 △자치행정과장 이은아 △인사혁신과장 조경선 △교육협력정책관 황용하 △문화예술정책과장 이상민 △의회사무처 홍보담당관 김희석 △공무원교육원장 조동구 △상수도사업본부 경영부장 소부영 △차량등록사업소장 김해수 △버스운영과장 이재홍〈4급 승진〉 △평가담당관 윤재섭 △투자유치과장 김진혁 △미래형자동차과장 김종찬 △인사혁신과(행정안전부) 진수일 △어르신복지과장 천문필 △자원순환과장 이상규 △택시물류과장 허종정 △의회사무처 전문위원 신록휴 △건설본부 관리부장 문점철 △서울본부장 이신희 △환경정책과장 김동겸 △공원조성과장 이길원 △청소년과장 이승상 △희망복지과장 정교식〈4급 직위승진〉 △보건환경연구원 질병연구부장 고복실 △보건환경연구원 대기환경연구부장 이순진〈4급 직무대리〉 △사회재난과장 직무대리 정동호 △민생경제과장 직무대리 정승원 △스마트시티과장 직무대리 황윤근 △회계과장 직무대리 박원식 △ 신기술심사과장 직무대리 정희대 △문화콘텐츠과장 직무대리 정미정 △농수산물도매시장관리사무소장 직무대리 김주헌 △위생정책과장 직무대리 김흥준 △건강증진과장 직무대리 강연숙 △의회사무처 전문위원 직무대리 박진성 △건설본부 건축기전부장 직무대리 이창목 △자연재난과장 직무대리 김영철 △철도시설과장 직무대리 하기봉 △신청사건립과장 직무대리 허만근 △ 수변공간개발과장 직무대리 송창섭 △ 서대구역세권개발과장 직무대리 손강현〈4급 파견〉 △정책기획관실(대구경북연구원) 김태석 △혁신성장정책과(국립대구과학관) 윤금동 △경제정책과(대구신용보증재단) 황계자 △경제정책과(대구테크노파크) 백왕흠 △투자유치과(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김영욱〈4급 전입〉 △민생사법경찰과장 권민성〈4급 전출〉 △북구 홍승용 △달성군 석주홍 조석재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아직도 군사정권시대 스포츠특혜냐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최숙현 선수는 관행과 타성에 반발했다. 대가로 꿈과 미래를 포기하고 스스로의 생명을 걸었다. 어려서부터 수영에 재질이 있었고 트라이애슬론이라는 종목에 자질과 체력을 갖춘 데다 자신의 꿈과 미래를 걸어야겠다는 의지까지 강철 같았던 최 선수였다. 스물셋 청춘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 것은 시대착오적인 스포츠계의 폐습이었다. 최 선수가 남긴 유서가 된 일기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최 선수에게 폭력을 행사한 감독과 팀닥터, 상급자와 동료 선수들은 물론 최 선수가 그들의 폭력과 비위를 고발하고 조사를 요청한 경주시청과 체육회, 경찰 등도 모두 가해자다.‘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맞았다’ 이건 조폭들의 세계에서나 쓰는 말이다. 군사정권시대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폭력이 디지털 시대에, 그것도 경주시청이라는 실업팀 내에서 버젓이 행해졌다. 그 폭력사태를 지켜 본 동료 선수들도, 폭력을 참고 견딘 선배 선수들도 가해자들이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체육인이 되려면 그 정도 폭력은 참아내야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폭력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두 번도 아니고, 해외전지훈련을 가서까지, 해를 거듭하면서도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이런 일이 있었다. 중학교 야구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부모들이 지켜보았다. 감독이 그 중 한 아이를 불러내 야구배트로 때렸다.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의 가슴은 찢어졌다. 아이가 잘 못하기 때문에 맞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엔 돈봉투를 건네야 했다. 우리 아들을 때리지 말라고, 주전 선수로 끼워 달라고, 잘 가르쳐 달라고... 상납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다른 어머니를 통해서 들었던 것이다. 최숙현 선수의 어머니도 그런 꼴을 당했다. 감독은 최 선수의 어머니에게 직접 딸의 뺨을 때리라고 지시했다는 거였다. 그런 해괴하고 당돌한 주문을 할 수 있는 체육계가 우리 국민들에게 금메달의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런 메달이라면 당장 집어쳐라. 이제 체육도 소질과 능력에 따라 하고 그것이 스스로의 즐거움과 보람을 동반하는 자발적 선택이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교육의 목적이고 체육도 그런 교육의 한 과정이어야 당연하다. 폭력과 비리와 금품으로 획득한 메달이라면 당장 팽개쳐야 한다. 우리는 체육계에 지나친 기대를 걸고 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고 무엇보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과정이 스포츠라고 가르치고 배웠다. 그런데 승부에 목숨을 걸고 승리를 위해 심판 매수와 부정선수 만들기, 경기의 승부조작조차 행해지고 있는 것이 스포츠계다. 스포츠에 지나친 포상이 주어지는 것도 재고해 봐야 한다. 체력이 국력인 것은 맞다. 그렇다고 개인의 영예와 팀의 승리가 국력의 상징은 아니다. 정말 씻어야 할 군사시대의 유산이다. 세계타이틀이 걸린 복싱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흑백텔레비전 앞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하던 시대가 있었다. 일제에서 해방되고 전쟁을 겪으면서 절대 기아선상에서 해외원조로 배고픔을 해결하던 시대에는 헝그리정신으로 운동을 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아직도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연금을 주고 협회나 지자체 등에서 따로 포상금을 준다. 여기에다 군복무를 앞둔 남자들에게는 조건에 따라 현역 입대도 면제해준다. 엄청난 혜택은 온갖 비리를 부른다. 모두가 스포츠를 국력의 한 바로미터로 받아들이는 국민 정서가 뒷배가 됐기 때문이다. 스포츠계의 폭력은 메달 뒤에 이런 특혜가 달려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폐습을 만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이제는 과감히 이런 혜택을 하나씩 정리해 나갈 때다. 그래서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금전비리 등 온갖 잡음들을 몰아내고 스포츠를 스포츠로 즐기게 해야 한다.이와 함께 최 선수의 죽음을 최 선수가 죽음으로 항거한 스포츠계의 폭력을 몰아내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최 선수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길이다.

대구일보 손님

◆본사▲홍의락 대구시 경제부시장 ▲구자근 국회의원(구미시갑) ▲고정석 대구지방기상청 청장 ▲박성균 〃기획운영과장 ▲주대영 대구지방환경청 청장 ▲임종업 〃 기획재정과장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국민 감정법이 우선인 국가, 과연 바람직한가?

김시욱에녹원장일상이 지치기 일쑤다. 계속되는 코로나 확산과 인천국제 공항 정규직화 문제,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그 어느 하나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언론에서는 연일 부동산 문제와 청와대 참모 및 정치권 인사들의 다주택 소유를 조명하고 있다. 30℃를 웃도는 무더위 속, 숨 막히는 마스크를 쓴 국민들의 모습이 지쳐가는 현실의 대한민국이 아닐까 싶다. 그 어느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게 없는 듯하다.‘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의문이 일어난다. 대학시절 정치학 개론서의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의 정치로 구분하는 화석화된 지식이 아니다.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목표로 한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활동이라는 말도 너무 추상적이다. 국가라는 공동체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은 필연적 산물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의 말에서 나타나듯 인간은 ‘자연 상태’ 속에서 생존하려는 ‘자기보존욕구’만 남게 된다. 전쟁을 자연 상태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으로 본 홉스의 관점에서 인간은 현실이라는 밀림 속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명제 속에서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절대적인 주권을 갖는 리바이어던(국가)이 성립한 것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세계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평등을 기초로 한 이해관계를 도모하고자 국가에게 주권을 위임한 것이다. 그것은 곧 정치라는 행위를 통해 실현돼야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힘센 강자를 위한 것이 아닌 약자의 보호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보호막이 국가이어야 함은 마땅하다.최근 일련의 시사적 문제에 접할 때면 국가라는 의미가 어느새 사라진 듯하다. 정치는 오직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여야와 당리당략적 접근만이 난무하다. ‘국민의 뜻’임을 내세우지만 실상 그 국민은 가상의 국민이자 팬덤화 된 극단적 지지층일 뿐이다. 국가의 존재와 의미를 부정하는 소수 지지계층의 계급화 된 정치체제로의 전환처럼 보인다. 각자의 생각이 우선되며 기존의 법제도나 정치제도를 부정하는 ‘국민 감정법’이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현실이다. 총 인구 5천만 명을 넘어선 현재, 수 천 명에도 이르지 못하는 설문 대상자를 기준으로 매주 발표되는 여론조사는 국가 중요정책 및 당대표,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마저 쥐락펴락하는 것 같다. 청와대 국민 청원게시판의 현주소 역시 다르지 않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라는 슬로건아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미국식 청원 시스템 도입으로 시작된 처음의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는 취지도 좋았다. 하지만 최근 국민과의 소통 전략은 오히려 제왕적 대통령제 혹은 행정부의 우위적 권력 집중을 도모하는 고도의 전략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사소한 개인적 사건으로부터 사법부의 재판결과 그리고 독립적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처벌까지도 청원에 올라오고 있다. 한 달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있을 경우 정부관계장의 답변이 있다는 조건을 두고 있지만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의 장’이란 거창한 명분은 어느새 진영논리와 삼권분립의 기본적 틀을 깬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치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 청와대와 행정부에게 모든 판단을 요구하는 현상으로 나아가고 있다.분명 무엇이 잘못인가 돌이켜 보아야 할 시점임이 분명하다. 국가란 단순히 행정부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국가에 대한 명령이자 국민을 위한 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제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입법부인 국회 무용론이 대세처럼 흘러가고 있다. 개별 사건마다 판사의 개인 정보가 노출되고 비난의 여론몰이가 반복된다.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들고 있는 검찰 개혁과 사법부 개혁이 오히려 법치주의 자체의 존립과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이 ‘국민 감정법’으로 왜곡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홉스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혼란과 혁명으로 얼룩져 있었다고 한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강자의 위선과 조작이 판치는 정글과 같은 곳이었고 도덕 윤리는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살아남으려는 욕구가 그에게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한 것이리라. 현실의 불확실성 속에서 분노와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는 우리에게 더더욱 필요한 것은 국가의 중요성과 준법정신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