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문학관에서 문학의 향기를 느껴보세요

문향의 고장 영양군이 여름 휴가기간를 맞아 주실마을 내 지훈문학관을 내달 19일까지 휴관일인 월요일에도 정상 운영한다. 지훈문학관은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 조지훈 선생을 후세에 길이 기리기 위해 2007년 5월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 건립한 문학관이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조지훈의 대표 시 ‘승무’가 흘러나오고, 조지훈 선생의 삶과 그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이번 지훈문학관 연장운영은 여름휴가기간을 맞아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최대의 편의를 제공하고자 확대 실시하게 됐다. 지훈문학관이 위치하고 있는 주실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과 옥천종택, 월록서당, 지훈시공원, 시인의 숲 등 방문객들이 구경할 수 있는 풍성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양 희 지훈문학관 관장은 “여름 휴가기간에 지훈문학관 및 주실마을을 방문해 한국 현대 시의 주류를 완성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선생의 서정적인 시 세계에 흠뻑 취해 풍요로운 여름휴가를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태진 기자 tjhwang@idaegu.com

300년 세월, 삶 속 애환을 띄워 마시던 전통주…그 비법 천 년의 향기로 이어지길

1969년 영국와인주류연합회와 호텔레스토랑연합회가 와인전문가 양성을 위해서 MS(마스터 소믈리에)제도를 도입했다. 매년 시험을 통하여 선발한다. 지난 50년 동안 257명만이 MS의 배지를 달았을 뿐이다. 한국인으로는 2016년에 뉴욕의 미쉐린2스타 레스토랑인 ‘더모던’의 소믈리에 김경문씨가 선정된 것이 유일하다. 한국인 최초의 MS인 김씨가 최근 한국의 전통주을 찾아 귀국했다. “한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 술은 무엇이냐?”는 고객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전통주을 찾아내고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통주란 그 땅에서 자란 곡물과 누룩, 물만을 이용해 만드는 술이다. 가문과 지역마다 특유의 맛과 향을 가진 다양한 전통주가 있었다. 근래에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소주나 맥주 등에 밀려나 일반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견디고 9대에 걸쳐 300년 간 가문의 전통비법을 지키면서 전통주를 만드는 강소농이 있다. 칠곡군 왜관읍에서 찹쌀과 멥쌀, 우리밀로 만든 누룩과 백련꽃을 이용해 전통주를 만드는 ‘석전상온전통주가’의 곽우선(72·전통식품명인) 대표와 남편 이기진(76)씨가 그 주인공이다. 상호인 석전상온전통주가(石田尙醞傳統酒家)의 석전(石田)은 마을 이름이다. 상온(尙醞)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술과 간장 등을 제조하던 기관의 이름이다. 최고의 술을 만들고 전통을 이어간다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이다. ◆9대를 이어 온 300년 전통의 가양주석전상온전통주가에서 만드는 ‘설련’과 ‘홍로’는 9대에 걸쳐 300년 간 전통을 이어온 전통주다. 칠곡의 명문가인 광주이씨 문중에서 접빈(손님을 접대함)과 제사를 모시기 위해 만들고 있는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이다. 청와대와 여수세계박람회 만찬주로도 선정되었다. 곽우선 명인이 술을 처음 빚은 사연은 남다르다. 이조판서를 지낸 ‘문익공 이원정’대감이 숙종 5년(1680년) 당파싸움으로 혼탁해진 나라를 보고 자손들에게 ‘백련처럼 진흙에서 나고 자라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게 세상을 살아라’고 하는 ‘애련설’을 전파하고 마음에 새길 것을 당부했다. 그 후 문익공의 뜻을 기려 문중에서 연못의 백련꽃 으로 전통가양주를 만들어 접빈과 제사, 혼사에 사용했다. ‘설련’은 문익공의 손부인 ‘풍양 조씨’ 때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가정에서 술 제조를 금지하자, 집 뒤편 대나무 숲에 술독을 묻어놓고 숨어서 술을 빚었다. 가문의 전통주 제조비법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지금은 9대째로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된 곽우선 대표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 곽 명인은 1970년 광주이씨 문중으로 시집을 온 후, 시어머니로부터 설련의 제조비법을 전수 받았다. 결혼 전에는 친정인 현풍에서 친정어머니가 현풍곽씨 문중의 가양주를 만드는 것을 어릴 때부터 보고 거들면서 자랐기 때문에 가정에서 술 만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당연한 일로 알고 만들었다. 지금은 곽 명인의 장녀가 전통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통식품 명인곽명인은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 74호로 지정됐다. 문중의 가양주인 설련주의 제조기술과 전승계보, 현재의 활동상황 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전통식품명인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전통식품의 계승·발전과 가공기능인의 명예를 위해 지정하여 보호·육성하는 제도로 2018년 현재 전국에 80명이 지정되어 있다. 대구.경북지역에는 안동소주의 박재서 명인(5호)을 시작으로 8명이 있다. 설련주의 9대 전승자인 곽명인은 일 년에 단 두 번만 수작업으로 전통주를 만든다. 대량생산보다는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하는 소량생산이다. 수작업을 고집하는 것은 손맛이 배어 있는 명주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일 년에 두 번만 술을 담그는 것은 제조공정이 길어 더 많이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번 만드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100일이나 걸려 여러 번 만들 수도 없다. 다른 술과 차이점은 삼양주(三釀酒, 3차 담금에 의한 곡주의 제조방법)라는 것이다. 처음 만드는 밑술은 고두밥이 아니라 쌀가루를 끓는 물로 반죽을 해 범벅을 만들고 여기에 누룩을 섞어 3일간 독에서 누룩균을 배양한다. 그 다음에는 누룩균을 배양한 밑술에 진(무른)고두밥을 섞고 다시 3일간 숙성을 시킨다. 여기에 다시 고슬고슬한 고두밥을 섞어서 100일간 저온 숙성을 시킨다. 이과정이 2차 덧술이다. 이때 연꽃과 연자육, 연근을 넣어 연향이 배이도록 한다. 70일 정도 숙성시키면 맑은 술이 위에 고인다. 이것을 100일까지 저온에서 분히 숙성시키면 백련의 은은한 향이 배어 있는 설련주가 완성된다. 이 설련주를 소주고리에 넣고 증류를 시킨 술이 알콜함량 45%의 홍련주다. 증류과정에 한약재인 지치(자초)를 통과시키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진도지역의 전통주인 ‘홍주’를 만드는 방법이 같다. 제조공정이 복잡하고 기간이 길기 때문에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이 없이는 만들기 어렵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14년 경북도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주·청주 부문 명주로 선정됐다. ◆전통의 맥을 잇는다.현재 설련주를 만드는 곽우선 명인은 9대 전수자다. 9대조 할머니인 풍양조씨로부터 며느리에서 그 며느리로 300년 동안 제조비법이 전해져 내려왔다. 10대를 이어갈 전수자는 며느리가 아닌 장녀인 이선규씨다. 이씨는 경북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다시 대구대학교에서 재활과학을 공부한 재원으로 전통식품명인 전수자 교육을 받고 있다. 전통식품명인 전수자는 식생활의 서구화와 명인의 고령화 등으로 전승 단절 우려가 커지고 있어 우수한 전통식품의 명맥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전수자를 지명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시책이다. ◆전통주 비법 전수곽 명인의 꿈은 두 가지다. 가문에서 300년 동안 이어져 오는 설련주의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첫 번째 꿈이다. 300년을 넘어 천 년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제 그 꿈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녀 셋 중에서 장녀가 전통식품명인 전수자 교육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꿈은 전통주의 대중화다. 이를 위해 제조비법을 공개하고 농업계학교 학생들에게 전통주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와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측과 일주일 과정의 전통주제조과정 강좌를 개설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각종 축제장을 비롯한 행사장에서 무료시음행사를 하고, 전통주 제조 교육을 하는 것 역시 전통주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면 선조들의 삶의 애환과 풍류가 배어 있는 우리의 전통주가 MS들이 인정하는 세계 속의 명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농장명: 석전상온전통주가▲농장주: 곽우선·이기진 (2014 강소농)▲구입문의: 010-2807-7997, 054-976-3552▲블로그: http://aeryeonjae.com/▲소재지: 칠곡군 왜관읍 동산2길 19▲이메일: sjsangon@naver.com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천 년 세월에도 바래지 않은 법향…은은한 비파소리·연꽃향기는 여전히 생생하다네

돌에 새겨진 천인상은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오랜 옛날부터 불교미술의 주제로 사랑을 받아 온 천인상은 흔히 비천이라고 부른다. 신라 석공들의 마음과 손끝에서 새겨진 아름다운 비천은 새롭게 불법으로 장엄되고 면면히 이어져 왔다. 석조 비천상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도 바래지지 않고 오히려 법향에 젖게 한다. 비상하는 자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긴 시간 비바람을 버티어온 석조 부조물 앞에 섰다. 보물 제661호 상주 석조 천인상은 상주시 사벌면에 있는 상주박물관 전시실 유리상자 속에 전시되고 있다. 화강암 판석 2장에 비파를 연주하는 주악 천인상과 연꽃을 올리는 공양 천인상을 새긴 불교미술 문화재이다. 크기는 각각 127cm, 123cm이다. 문화재청은 천인상으로서는 큰 작품이며, 온유한 얼굴모습과 세련된 자태와 균형 잡힌 신체 각 부분의 사실적인 묘사 등으로 해서 1980년 6월11일 보물로 지정했다.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경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는 천인상은 연화대석과 석탑재 등과 함께 상주시 남성동 용화전 안에 있었다. 1982년 10월 상주 남산공원으로 옮긴 후, 2007년 6월부터 상주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당시 함께 발견된 폐 석탑재들은 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다. 상주시가 2000년 착공해 94억여 원을 들여 2007년 준공한 상주박물관은 3만4천800㎡의 부지에 연면적 2천625㎡,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만들어졌다.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수장고실, 전통의례관, 농경문화관 등을 갖추고 있으며, 유물 2천5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세월의 풍화작용도 빼앗지 못한 아름다움을 지닌 상주박물관의 석조 천인상. 어디에서 만들어져 천 년 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됐는지 그 스토리를 지금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닳아버린 시간의 흔적은 알 수 없는 정감을 더욱 안긴다. 은은한 실내조명을 받으며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두 천인상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상상의 미녀천인은 불교에 있어서 상계(上界)에 살면서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상상의 미녀다. 몸에는 날개옷인 우의(羽衣)를 입고 음악을 좋아하며, 하계(下界)의 인간들과도 왕래한다고 한다. 날아다니는 도구인 우의를 인간에게 빼앗겨 그 남자와 결혼해 살다가 나중에 우의를 손에 넣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선녀처 설화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신선사상과 인도의 불교사상이 얽힌 이 같은 천인설화는 동양 각국에 수없이 전해진다. 조형미술에서는 비상하면서 찬탄내지 공양하는 모습으로 인도미술의 초기부터 등장하며, 이후 불교미술의 한 요소가 되었다. 기독교의 천사와는 달리 날개 없이 나는 것이 비천의 특색이며, 신선같이 자유롭고 유려한 비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크로드의 돈황 석굴에도 비천상의 벽화가 많이 보인다.특히 천의(天衣)를 길게 펄럭이면서 비스듬히 날아 내려오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주박물관에 있는 봉덕사 신종의 비천상이 유명하다. 고구려 고분인 안악 2호분이나 장천 1호분 벽화에도 다양한 자세로 하늘을 나는 천인상의 벽화가 있다. 석탑의 가장 하부인 하층 기단에 양각으로 비천상을 새기는 이유는 탑이 하늘세계 혹은 이상적인 불국토 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파 켜는 주악 천인상상주 석조 천인상 중에 왼쪽에 있는 주악 천인상은 비파를 켜고 있다. 머리에는 화관을 썼고, 몸은 조금 틀어 얼굴도 그쪽으로 향했다. 한 발은 살짝 앞으로 내밀었지만, 다른 발은 뒤쪽에 두어 무게 중심을 잡고 있다. 살짝 돌린 옆얼굴은 눈매가 초롱하고, 도톰한 입술 가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감돈다. 좌우로 흩날리는 천의 자락은 비파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듯하다. 천인상의 왼쪽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로 보아 석탑 기단부의 면석으로 추측한다. 오른쪽의 공양 천인상을 마주보는 듯 왼쪽을 향하고 있으며, 머리는 앞으로 숙이고 허리를 약간 뒤로 하여 유연한 자세를 취하였다. 미소를 머금은 단아한 표정과 비파를 타는 두 손의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구불거리며 흩날리는 옷자락은 연주하는 자태와 함께 주악상의 율동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손가락의 섬세하고 정교한 묘사에서는 신라 석공의 능숙한 조각술이 잘 드러나 있다. 하의는 주름이 져 있으며 윗도리 속에서부터 늘어지는 끈이 좌우로 바람에 날리듯 율동적으로 표현되었다. 실크로드의 중국 돈황이나 인도의 종교미술에서는 악기 연주나 무용은 부처를 찬탄하거나 공양할 때 사찰을 장엄하게 하는 중요한 장식 소재로 발전했다. 향, 등과 함께 공양의 하나로 조형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 꽃과 함께 여러 음악으로도 공양을 한다고 하니 주악과 무도가 공양의 필수 요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국보 제47호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의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후기의 유명한 승려 진감선사는 중국에서 귀국하여 불교음악인 범패를 한국에 최초로 전파했다. 신라 왕경에서 당나라로 향하는 교통로의 중요 거점인 상주 장백사가 첫 보급지였다고 한다. ◆연꽃 올리는 공양 천인상 오른쪽의 공양 천인상은 연꽃 봉오리를 받쳐 들고 오른쪽을 향해 앞으로 사뿐히 나아가는 순간의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고 동적으로 묘사되었다. 비천의 역할은 천상의 세계를 의미하며 꽃과 음악으로 부처님의 법을 찬양하는 것이다. 팔에 감긴 긴 띠, 즉 천의를 이용해 하늘을 날기 때문에 비천의 형상에서 그 표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양 어깨에 걸쳐진 천의 자락도 양팔과 다리를 휘감으면서 바람에 뒤쪽으로 날리는 듯 매우 생동감 있게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왼팔은 아래로 내리고 안쪽으로 약간 구부린 채 엄지와 중지를 붙이고 있다.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 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으로서의 완벽한 기술을 보여준다.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주는 이 천인상은 8세기 석재 예술의 양식과 성격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두 석조 천인상의 상호를 보면 모두 볼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다. 머리에는 낮은 보관을 썼으며 고운 자태로 반달 같은 눈썹에 오뚝한 콧날, 갸름한 눈매는 소리 없이 눈으로만 웃고 입가는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밝아서 인자함이 묻어나고 있다. ‘상주의 미소’라 불릴 수 있겠다. 불교미술의 황금기를 맞고 있던 당시 통일신라의 석공들이 만든 예술 작품 속에서 신라인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석탑의 기단부 바위에 생동감 있는 주악비천상을 새겨 천상의 음악이 흐르는 불국토로 바꾸었다. 그 주위에서 탑돌이 하는 세인들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놀라운 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비천상을 조각한 석공은 아마도 당시 통일신라에서 가장 이름난 장인 가운데 한 명 이었음이 틀림없다. 어떻게 이렇게 생동감 어린 조각을 돌에다 새겨 넣을 수 있는지. 단순한 기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이 담겨있음을 느끼게 한다. 최근에는 3D프린터로 같은 모양의 석조천인상을 만들었다는 기사도 보인다. 박물관에서는 부피를 작게 하여 탁본 체험도 가능하도록 했다. 상주박물관의 김진형 학예연구사는 “전체적인 구성 및 세부 묘사 등으로 봐서 통일신라 조각의 정점을 찍고 있다”며 “아마도 이 아름다운 천인상이 새겨진 석탑이 그대로 남아있었더라면 신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장식의 문화유산으로 단연 국보급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주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인 이 천인상 면석은 큰 건물의 기단부였을 수도 있다며 오랫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 그래서 비교적 상태가 온전하다고 했다. 그 동안 상주지역은 몽고 침입, 한국전쟁 등 수많은 전란을 겪어 온 지역이다. 이제 두 천인상은 박물관의 주요 유물로 자리 잡고 있다.지금도 조각예술가, 디자인 전문가들의 발길이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두 석조 천인상은 천 년 세월을 변함없이 세상만사를 미소로 관조하며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질란드와 들꽃향기

질란드와 들꽃향기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뉴잉글랜드 지방 매사추세츠주 보스턴과 뉴햄프셔주 인근에 산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날이다. 1시간 남짓 운전으로 가면 바다가 있고 2시간 정도 가면 산을 만난다.매사추세츠주 동쪽으로 대서양과 접하고 북쪽으로 버몬트주와 뉴햄프셔주, 남쪽으로 로드아일랜드주와 코네티컷주, 서쪽으로 뉴욕주와 접한다. 영국 청교도들이 정착했던 탓에 그들의 정신문화가 깊이 박혀 있으며 매사추세츠주는 유서 깊은 교육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욱더 좋은 것은 자연과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우거진 숲과 산과 바다가 많다는 것이 참으로 축복이다.지난주 토요일 ‘보스톤산악회’ 정기산행이 있어 다녀왔다. 산악회에서는 닉네임을 정해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어떤 모임에서처럼 그는 누구(학연, 지연 지위 등)라는 수식어의 필요성을 접고 산(자연)이 좋아 만나고 나누는 그저 자연의 한 사람으로 만나자는 취지에서의 시작이라고 한다.필자의 내 닉네임은 ‘하늘’이다. 그리고 이번 정기산행을 주관했던 분의 닉네임은 ‘들꽃향기’였다. 들꽃향기님은 산을 오른 지 10년이 된 산사람이고, 나는 2011년부터 시작했으니 만 8년차의 산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10년이 가깝도록 함께 산을 오르내리니 나이와는 상관없이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10여 년이 다되도록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뉴햄프셔주 화이트 마운틴 지역을 지나칠 때면 산들이 눈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온다. 부르지 않아도 익혀진 이름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그 계절마다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추억과 버거웠던 산행의 힘듦 속에서의 추억들이 곰실거리며 가슴을 헤집고 파고드는 것이다. 이렇듯 정해놓고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화이트 마운틴(White Mountains) 안에 4,000 피트 넘는 산이 48개가 된다고 하는데 35개 이상을 올랐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지난해였다. 가을 산을 오르며 닉네임이 들꽃향기는 필자에게 말했다. ‘하늘, 우리 4,000ft 이상의 48개 산행을 마무리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래서 그것 참 기분 좋은 일이겠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지내다 이번 산행지 질란드(Mt. Zealand·4,260ft)는 ‘보스톤산악회’에서 10년 만에 두 번째로 오르는 산이라고 했다.산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거의 7시간이 넘게 걸릴 수 있는 긴 산행지였기에 선뜻 정하지 못했던 산행지였다. 겨울 계절이면 엄두도 못 낼 산행지였지만, 여름 계절이라 가능했던 곳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산을 올랐다.산은 정상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산을 하나둘 오르면 오를수록 깨달아 간다. 산을 오르며 만나는 너무도 광활하고 신비로운 자연에서 크신 창조주를 만나고 너무도 작은 피조물인 나를 만나게 되는 까닭이다.그래서 산을 오르면 더욱더 겸손한 마음이 절로 차오르고 삶에서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닌 나의 탓을 깨닫게 되는 까닭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자연의 한 일부부인 이유일 것이다. 계절마다 만나는 바람은 내 배꼽 밑의 오랜 신음마저 끌어올려 주어 깊은 호흡을 만나게 한다. 새로운 호흡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다.이번 산행지인 질란드를 오르며 4.6 마일 지점에서 Zealand Fall(AMC Hut)을 만났다. 이때부터는 험하고 가파른 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힘겨운 걸음으로 한참을 올라 갈림길 사이 Zeacliff(7.0 miles) 지점에 도착했다.눈 앞에 펼쳐진 진분홍 들꽃(철쭉과)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우리는 또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질란드 정상에 도착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빠른 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오니 7시간 만의 산행이었다.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된 질란드와 들꽃향기 그리고 들꽃향기님이 기억은 오랜세월 간직하고 싶다.

치자꽃 향기 속에

치자꽃 향기 속에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며칠간의 비로 날이 상쾌하게 바뀌었다. 신선한 공기를 코끝으로 들이켜며 새바람을 느껴본다. 차에서 내리자 어디선가 향내가 전해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빗방울을 머금고서 치자꽃이 하얗게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잘 돌보아주지도 않을 길섶에서도 치자는 부지런히 꽃대를 밀어 올려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하였나 보다.꽃 댕강 꽃도 새로운 달 새바람에 살랑대고 있다. 한 해의 딱 절반이 지나갔다. 바야흐로 뜨겁게 무르익어 갈 성하가 우리 곁으로 다시 큰 걸음으로 다가설 것 같다. 요란하게 내리다가 때로는 조용하게 뿌리던 비가 어느새 산봉우리를 아스라이 감싸 안는 안개를 데려왔다. 자작자작 속삭이던 빗소리를 대신한 산안개가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 폭의 수묵화로 몸단장을 한 산세가 일시에 정적 속에 들었다. 가만히 내려앉은 안개 속을 잠시 걸어보다가 길 정중앙에 섰다. 지금, 이 순간 즉시 행복하기로 마음먹자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우리들의 새날을 기쁘게 맞으리라.새 깔깔이로 여름이 활짝 열렸다. 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달이다. 뜨거울 날과 더불어 가슴에 열정이라는 단어를 새기며 새로운 각오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온전한 하루를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출렁이는 파도와 파란 바다를 떠올리며 다가올 휴가와 아직 못다 마무리한 지난 계획을 다시 잘 살피고 맞추어서 충만하고 알찬 하루하루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문득,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한 말이 떠오른다.“나는 힘이 센 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입니다.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꿔보십시오. chance(기회)가 되지 않습니까? 변화 속에 반드시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더운 여름이 다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익어갈 무렵이면 또 새로운 인연과 알차게 엮은 결과들이 우리 곁에 흐뭇한 표정으로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눈만 뜨면 달려 나가던 직장에서도 한 해의 중반이 넘어서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새로운 규칙과 규정을 정해 새 단장을 하였다. 출근 시간을 30분 앞당겨서 진료를 시작하고 모든 기록을 그때그때 마무리하며 보안을 강화하여 하루를 충실히 살게 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바쁜 아침이 더 바빠지게 될 터이지만,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여름날에 모든 직원이 새 마음으로 힘차게 움직인다면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더 편리하게 진찰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어느 지인이 내게 물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왔다 가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아느냐? “고 말이다. 일순간 머뭇거리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가 이윽고 답을 하였다. 하나는 자식을 낳아서 대대손손 핏줄을 잇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내가 남긴 기록이라며 힘을 주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울고 웃고 사랑하고 살면서 나이 들어 늙어 갔다는 것은 바로 그가 남긴 기록이 말해주지 않으랴. 그러니 하루하루 우리가 한 것에 대한 흔적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할 것 같다. 병원에서는 진료기록부가 정말 중요하지 않던가. 작가가 책을 한 권씩 내는 일은 영혼의 집 한 채씩을 지어 나가는 일이라고들 한다. 더위에 지쳐 까칠해진 얼굴 표정을 지을지라도 애정을 담뿍 담아 한마디 위로의 말을 글로 적어서 내가 만나는 인연에 건네주노라면 삶의 무게로 무덤덤해진 일상에도 활기를 되찾아 신나게 살아갈 힘을 얻지 않겠는가.문득 치자 향내가 묻어나는 시가 입가에 맴돈다.‘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은/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흘리는 것일 테지요/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모든 사람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그가 지는 향기를/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설렐 수 있다면/​/…중략…//우리의 삶 자체가/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뜨거웠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왕성한 생명력으로 펄떡여야 할 본격적인 여름을 재촉하는 달, 7월이다. 맑고 푸른 바다의 향기, 신선하고 향기로운 산의 내음을 가끔 음미하며 늘 행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 큰 실의에 빠진 향기로운 은혜교회 구태극 목사 찾아

대구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박병욱 목사)는 최근 동구 신서동에서 발생한 화재로 가족들이 큰 부상을 입은 향기로운 은혜교회 구태극 목사를 찾아 위로금을 전달하고 빠른 쾌유를 빌었다고 13일 밝혔다.지난 7일 발생한 화재로 구 목사의 아내와 두딸은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푸른병원에 입원 중에 있다. 특히 큰 딸 구하경(17)양은 80% 중화상과 골절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향기로은 은혜교회는 신도가 10명정도인 개척교회다. 이에 치료비는 물론 간호할 사람마저 없어 막막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대구기독교총연합회 조무제 사무총장은 “전신에 하얀 붕대를 감은 꿈 많은 소녀를 보는 순간 한없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며 ‘하경이 살리기’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하경기 돕기 후원계좌: 농협 351-0127-8944-33(예금주 향기로운 은혜교회 구태극 목사).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대구의 향기를 담은 관광기념품 어때요

‘대구의 향기 속으로(김상효 작품)’가 제20회 대구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6일 대구시에 따르면 이번 공모전에서 대상 1점과 금상 1점, 은상 2점, 동상 3점, 장려상 5점, 특선 10점, 입선 15점 등 총 37점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12전시실에 전시한다.대상을 수상한 ‘대구의 향기 속으로’는 약령시 대구를 기억하게 한다. 대구를 찾는 해외 및 국내 관광객들에게 기념이 되면서 실용적이고 건강을 생각나게 하는 한방약재를 담은 방향제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오고무’의 느낌을 살려 해외 관광객에게도 의미 있는 기념품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직접 촬영한 대구시의 여러 관광명소 사진을 넣고 금, 은박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금액도 저렴해 상품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최고의 기념품이라 평가받았다.금상을 받은 ‘대구 12경 돌 도장’은 대구의 명소를 국내외 관광객에게 알리고 본인의 이름을 새겨 간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이름을 담은 도장이라는 특별함과 일상에서도 사용 가능한 실용성이 특징이다.각종 꽂이와 아로마 향초를 입체감 있고 세련되게 디자인한 ‘컬러풀 대구’(심재용 작)와 반야월 연근으로 쿠키, 만주 등을 만든 ‘반야월 연근을 활용한 건강한 먹거리 개발’(김춘련 작)이 각각 은상을 받았다.공모전 입상작은 시상과 전시회 개최, 전시 홍보 행사 참가, 작품집 제작·배부 등 특전이 주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제22회 대한민국관광기념품 공모전’에 출품을 지원한다.대구관광기념품 공모전은 국내외 관광객이 대구가 가진 매력과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관광기념품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대구의 문화적 특색, 주요 관광지 등을 주제로 총 76점이 출품됐다.김호섭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이번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우수한 기념품들을 대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감꽃향기 바람따라~외남면 상주곶감공원에서 성황리에 개최

상주시 외남면은 최근 소은리 소재 상주곶감공원에서 ‘감꽃향기 바람따라’라는 주제로 제3회 감꽃예술제 및 대한민국곶감축제 감풍년기원 일곱 번째 이야기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정재현 상주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시의원, 지역 기관단체장들과 지역민, 유치원생, 어린이집 원생 등 500여 명이 참여했다. 750년 된 감나무 앞에서 학춤 등 한국무용공연과 신명 나는 풍물공연으로 올 한해 감 풍년 농사를 기원했다. 감락원에서는 어린이집 및 유치원생 250여 명이 꼬깜꼬까미 인형극공연 관람, 감꽃을 활용한 목걸이․팔찌·화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하며 즐겁게 지냈다. 또한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곶감마을 한글백일장을 처음 마련해 평소 갈고닦은 글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김동혁 외남면장은 “지난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한 제7회 대한민국곶감축제에 이어 농번기에도 불구하고, 제3회 감꽃예술제 개최를 위해 노력해 주신 대한민국 곶감 축제추진위원회 위원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아카시아 꽃향기가 가득한 봄철 울진 바닷가에서는 채취한 돌미역으로 건조작업이 한창이다.

울진군 근남면 산포2리 바닷가 주민들은 따뜻한 봄 햇살과 아카시아 향기가 물씬 나는 봄철에 직접 채취한 자연산 돌미역을 질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건조를 하고 있다. 올해 돌미역 생산량은 작년과 비슷하고 가격도 1단(20개)에 15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미역건조 작업을 하는 주민인 이좌균(77)씨는 “최근 들어 울진 자연산 돌미역이 맛있다는 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주민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강인철 기자 kic@idaegu.com

노련한 영농기술·청정자연의 ‘컬래버’ ‘아삭아삭’ 신선한 산나물을 키우다

산나물은 고전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시제 중의 하나다. 대표적인 시가 중국의 ‘백이’와 ‘숙제’의 ‘채미지가’다. 중국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 무왕이 등극하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곡식을 먹는 것이 부끄럽다면서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었으나, “그 고사리마저 주나라 것이 아니냐”는 말에 굶어서 죽었다. 산나물은 우리 선조들의 귀중한 구황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청정식품’과 ‘건강식품’으로 그 이미지가 바뀌었다. 경제적 풍요가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예전에는 계절에 따라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을 캐서 먹었지만, 요즘은 밭이나 온실에서 키워 산나물과 들나물의 구별이 없어졌다. 오히려 기르는 산나물이 있어서 더욱 쉽게 맑은 향기를 품은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산간오지 영양군에서 청정농산물인 산나물을 재배해 연간 7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강소농이 있다. ‘온다네 농장’의 김병찬(60) 대표와 부인 오명숙(57)씨가 그 주인공이다. 농장 이름인 ‘온다네’는 ‘풍년이 온다네’와 봄이 되면 산나물이 돋아나듯이 심심산골에도 ‘봄이 찾아온다’는 의미를 담았다. 농부의 꿈인 ‘풍년’과 애타게 기다리는 ‘새봄’의 의미를 함께 담은 정감넘치는 이름이다. ◆모태 농사꾼김 대표는 모태 농사꾼이다. 경북에서 가장 오지라고 일컬어지는 영양에서도 오지로 손꼽히는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다. 해발 1004m의 백암산 기슭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영양을 떠나본 적이 없다. 20대 초반에 철도청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10일간 고향을 떠난 적이 있다. 공무원으로 임용돼 10일간 근무한 후, 사표를 던졌다. 군 제대 후 바로 농사에 뛰어들었고 영농후계자로 선정돼 농사의 기반을 다졌다. 스물네 살에 마을 이장을 맡았다. 최연소 이장으로서 3년간 행정의 최일선에서 마을과 행정기관을 연결하는 심부름꾼으로 봉사를 했다. ◆ 산나물 신기술 도입으로 고소득‘온다네 농장’에서는 곰취를 비롯해 산마늘(명이), 어수리나물, 당귀, 천궁을 주로 재배한다. 재배면적은 5천㎡다.주 작목인 곰취(2천㎡)는 하우스에서 재배하고, 산마늘과 어수리 등은 노지재배를 한다. 곰취는 4월10일 경에 수확을 시작한다. 하지만 올해는 열흘 정도 늦은 지난달 20일부터 시작했다. 취나물 종류는 2월 중순경에 포트 육묘를 한 후, 5월 초에 정식을 하면 이듬해 수확이 가능하다. 4~5년간 수확하면 모두 캐내고 새로운 모종을 이식한다. 산마늘은 8월에 씨앗을 파종하고 싹이 나면 2년간 키운 후에 본 포에 정식한다. 3년이 지나야 수확할 수 있는 등 총 5년 이상이 소요되는 느림보라 끈기가 필요한 작물이다. 최근 김 대표는 산나물 재배에 신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곰취의 억제재배와 산마늘의 수확 방법 개선이다. 2월에 파종하는 곰취를 8월에 파종하고, 10월에 수확하는 억제재배 방식이다. 4월의 홍수 출하기를 피하고 다른 농가의 생산량이 적은 10월에 수확해 고가에 판매하는 블루오션 전략이다. 산마늘은 통상적으로 한 포기당 한 잎을 채취하지만, 김 대표는 한 이랑은 모두베기를 하고, 한 이랑은 1~2매를 한 잎을 채취하는 수확 방식이다. 이렇게 할 경우 수확량이 2배 이상 늘어난다. ◆청정식품 산나물영양 산나물이 고품질인 것은 지리적인 영향이 크다. ‘온다네 농장’이 있는 영양군 영양읍 기산리 일대는 해발 460m로 고지대다.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라 일교차가 커 산나물의 생육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여름철에도 군불을 때야 하고, 새벽엔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다. 특히 백암산 기슭에 있어 내륙에서 불어오는 육풍과 동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마주치는 곳이다. 일교차가 크면서도 일 년에 안개가 끼는 기간이 3~4일 정도로 적어 일조량이 풍부한 것이 장점이다. 여기에 김 대표의 축적된 영농기술도 한몫한다. 김 대표는 매년 가을이면 볏짚을 절단해 밭에다 뿌린다. 두껍게 깔린 볏짚은 잡초 발생을 억제해 제초제를 뿌릴 필요가 없다. 볏짚이 썩으면서 흙이 부드러워지고 유기질 성분이 높아져 친환경 재배가 가능해진다. 이런 노력과 토양환경 덕분에 잎이 부드럽고 두꺼우면서도 아삭한 식감을 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곰취를 비롯한 산나물은 싹이 나고 20일 정도가 되면 수확을 하는 단기재배 작물이다.김 대표는 “수확 시기까지 생육 기간이 짧아 병충해 발생이 적기 때문에 농약을 살포할 필요가 없는 청정식품”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이유에서 판매 걱정은 없다. 대부분 도시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판매한다. 몇 년 전까지는 대량 소비처와 계약재배를 했으나, 이제는 직거래로 판매한다. ◆단골 200명과 함께하는 고추농사영양지역은 전국에서 소문난 고추의 고장이다. 대부분의 농가마다 고추농사를 짓는다. 김 대표도 고추농사를 한다. 6천600㎡의 밭에서 마른고추 3천근 정도를 생산해 고객들에게 직거래로 판매한다. 단골이 200여 명으로 김장철이 되면 먼저 주문이 온다. 10년 이상 꾸준하게 거래하는 진짜 단골 고객이 80여 명이나 된다. 대론 고추농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단골들을 외면할 수 없어 계속 농사를 짓는다. 이들은 “영양고추가 품질이 좋은 데다 특히 온다네 농원의 고추는 믿음이 가기 때문에 다른 고추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개천 옆의 펜션은 고객 쉼터‘온다네 농장’에는 66㎡ 규모의 교육장과 콘도형식의 펜션 3실을 운영한다. 버들치가 헤엄치는 1급수의 실개천을 끼고 있다. 체험을 원하는 고객은 실개천에서 물고기와 가재 잡기를 하고 먹거리 체험도 한다. 가족끼리 손을 잡고 다랑논 둑길을 걷고, 숲속에서 나무와 꽃들을 구경하는 등 자연 친화형 환경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경북 최고의 오지마을이라 밤이 되면 별빛만 보이고 고요만이 있어 진정한 쉼이 가능한 곳이다.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의 중간 숙박시설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고수 농사꾼의 실수농사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 3년 전에는 천궁을 재배했으나 수확을 거의 하지 못했다. 연작피해를 많이 입는 천궁의 특성을 무시한 결과였다. 4천여만 원의 소득을 예상했으나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천궁은 한번 재배한 땅에서는 3년 이상이 지나지 않으면 재배가 불가능할 정도로 연작 장애가 많은 작물인 것을 잘 모르고 시도한 무지 때문이었다. 지난해는 여름철 폭염기에 곰취 하우스 한 동의 온도관리를 잘못해 뿌리가 녹아내리는 참변을 겪기도 했다. ◆농사를 알리는 소비자 교육장김 대표는 영농규모를 더 확장할 생각은 없다. 현재 규모를 유지하면서 고품질 농산물 생산에 주력할 계획이다. 규모를 확대하면 소득을 늘릴 수는 있다. 그러나 친환경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고객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농장은 항상 개방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사계절 쉬지 않고 돌아가는 농사 시스템을 보여주고,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농장운영이 꿈이다. 이를 위해 현재 운영하는 교육장을 체험과 소비자교육의 공간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김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 농산물의 좋은 점과 함께 생명 산업으로써의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힌다. 이러한 노력이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질 때 좋은 관광자원이 되고, 자연스럽게 농업의 6차 산업화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농장명: 온다네 농장▲농장주: 김병찬·오명숙 (2016 강소농)▲구입문의: 010-4523-0533, 054-682-0533▲블로그: https://blog.naver.com/kimbc33▲소재지: 영양군 영양읍 낙동정맥로 820-6▲이메일: gimbc@hanmaik.net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처진소나무 향기 가득한 청정도량…원응국사비 등 보물 품은 ‘문화재의 보고<寶庫> ’ 되었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 운문사의 비구니연두색 신록이 눈길을 사로잡는 봄날.구름이 산사의 문에 걸려있다는 운문사 입구에 이르면, 매표소부터 시작되는 고송이 즐비한 소나무 숲길에 매료된다. 수령 100년에서 400년의 소나무 군락지가 절집까지 이어진다. 장자 ‘산목’ 편에서 말했듯이 구부정하게 자라 하늘을 찌를 듯 큰 나무이지만, 재목으로 쓸모없기에 목수들이 베어가지 않고 이렇게 오랫동안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찍 타인의 눈에 띄어 죽임을 당하기보다 늦지만 자기방식으로 오랫동안 수명을 누리는 것도 여유로운 삶의 방식이 된다는 장자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된다. 사바세계의 쓸데없는 집착을 내려놓고 청량한 새소리로 귀를 씻으며 20여분 걷다 보면, 솔숲이 끝날 즈음에 ‘호거산운문사’(虎踞山雲門寺)라는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쓴 편액이 보인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에 이름 모를 한 스님이 창건한 이래로 1450여 년의 역사를 잇고 있는 대가람이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다는 호거산 자락에 터를 잡고 동쪽의 운문산과 가지산이 에워싸고 서쪽의 비슬산이 감싸고 있는 대가람을 마주하면, 누구든 역사의 향기를 느끼게 된다. ◆비구니 청정도량 운문사의 역사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 이곳에 둥지를 튼 스님이 현재의 북대암 근처 금수동에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를 한 뒤 도를 깨달은 도반 10여 명과 함께 동쪽에 가슬갑사(嘉瑟岬寺), 서쪽에 대비갑사(大悲岬寺, 현 대비사), 남쪽에 천문갑사(天門岬寺), 북쪽에 소보갑사(所寶岬寺), 중앙에 대작갑사(大鵲岬寺) 등 다섯 갑사를 세웠다.이 다섯 갑사 중 중앙의 대작갑사가 현재의 운문사이다.신라시대 대작갑사는 밀양, 창녕, 경산, 고령으로 향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시기 신라는 고구려 군사를 몰아내고 대가야를 병합했다. 이런 지리적 성격을 수용하여 호거산(虎踞山)의 흉맥(凶脈)에 사찰을 건립함으로써 지덕을 비보하려는 풍수지리사상(風水地理思想)이 깔려 있다. 창건 뒤 608년(진평왕 30)에 당나라 유학을 마친 원광법사가 이곳에서 신라화랑도의 기본정신이 된 세속오계를 전파하면서 1차 중창을 했다. 그러나 신라 말기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나 대작갑사가 파괴되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오갑사(五岬寺)를 재건하기 위해 제2차 중창했다. 943년 태조 왕건은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고 전지(田地) 500결을 하사했다. 고려시대 운문사의 최전성기는 원응국사가 주지로 있을 때였다.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 뒤 귀국하여 운문사에 들어와 제3차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이 되었다. 인종은 소공답(所供畓) 200결(結)과 노비 500명을 내렸다. 1277년 일연선사는 고려 충열왕에 의해 운문사의 주지로 추대돼 1281년까지 머물렀다고 한다. 일연은 ‘삼국유사’ 의 집필에 착수하였고, 운문사 동쪽에 일연선사의 행적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고려시대의 사세를 유지하다가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소실됐다. 1690년(숙종 16) 설송(雪松)대사가 제4차 중창을 한 뒤 약간의 수보(修補)가 있었다. 1835년 운악(雲岳)대사가 제5차 중창을, 1912년 긍파(肯坡)대사가 제6차 중창을 하였고, 1913년 고전(古典)선사가 제7차 수보하였으며, 비구니 금광(金光)선사가 제8차 수보를 하였다. 1977에서 98년까지 명성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대웅보전과 범종루와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는 등 경내의 면모를 일신했고,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게 됐다. 특히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됐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했다. 오늘날 한국 최대의 비구니 도량으로 17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日不食]”는 백장청규(白丈淸規)를 실천하고 있다. 백장청규는 중국 당나라 선승인 백장회해(白丈懷海) 선사가 선가의 온갖 직책에서부터 식사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여러 규율을 담은 지침서이다. 우리가 운문사를 주목하는 것은 국가지정문화재로 보물 제193호 석등, 제208호 동호, 제316호 원응국사비, 제317호 석조여래좌상, 제381호 사천왕 석주, 제678호 동·서 삼층탑, 제835호 대웅보전, 제1613호 비로자나삼신불회도, 제1817호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와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소나무 등 10점이 있고, 도지정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제424호 만세루, 제503호 소조비로자나불좌상, 문화재자료 제342호 내원암 석조아미타불 좌상 3점 등 13점의 문화재를 지닌 ‘문화재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 원응국사비운문사 경내로 들어서면 남쪽에 3개의 비각이 보이는데 가운데 비각의 우뚝한 비가 원응 국사비이다. 이 비의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고려 인종 때인 1145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응 국사비는 1963년 보물 제316호로 지정됐다. 비각이 무너져 1877년 비각을 새로 건립하였고, 1963년 고쳐 지었다. 이 비는 원래 귀부(龜趺,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와 이수(螭首, 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수호의 의미를 갖도록 한 비신(碑身)의 머릿돌)를 갖추었던 것 같지만, 현재 귀부와 이수는 없어졌고, 받침돌 위에 비신만 얹혀있고, 사각형의 화강암제 비 받침돌 위에 철 구조물로 보강된 편마암제 비신이 고정되어 있다. 비석은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세 조각으로 파손한 뒤 방치한 것을 수리·복원한 것으로 보강이 시급해 보인다. 비의 규모는 높이 2.3m, 너비 0.9m이다. 비 몸체의 윗부분에 직사각형의 양각 공간에 특이하게 전서가 아닌 해서체 양각으로 위아래 1자씩 세로로 ‘원응 국사비명(圓應國師碑銘)’이라 제액(題額)하였다. 비문은 행서체로 제액 아래 세로로 음각하였다. 비석의 주인인 원응 국사(1051∼1144)는 고려 숙종 대에 활동한 고승으로 속성은 이씨이고, 속명은 학일(學一)이다. 11세에 진장 법사(眞藏法師)를 따라 출가하였고, 희함 선사(喜含禪師)에게서 공부했다. 1106년에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1122년(예종 17) 7월 22일 왕사로 책봉됐다. 1144년(인종 22) 12월 9일 93세로 입적했다. 인종은 대사의 업적을 찬양하여 국사로 책봉하였으며, 원응이란 시호를 내리고 많은 전답과 노비를 하사하고 비를 세우게 명하였다. 비의 건립연대는 고려 인종의 명으로 원응국사의 사후 1년 뒤인 1145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증된다. 비문은 아호가 금강 거사이고 문하시중을 지낸 윤관(尹瓘)의 아들인 윤언이(1090∼1149)가 지었고 글씨는 신품사현 중의□ 한 사람인 대감 국사(大鑑國師) 탄연(坦然, 1069∼1158)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비문의 내용은 원응 국사가 운문사를 중창한 사실을 기록하고, 그의 유덕을 받들기 위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여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인도에서 27 조사를 거치고, 초조 달마에 의해 중국에 전해지고 혜능의 법이 우리나라에 전해졌으며, 그 법을 이은 이가 원응 국사라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 두 번째는 본문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원응 국사의 출가와 공부, 승과에 응시하고 활동하는 과정 등의 행적과 운문사에 들어가게 된 과정, 입적, 장례, 시호를 받고 왕명으로 비를 건립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는 비문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시로 이루어진 명(銘)으로 구성되어 있다. 뒷면에는 국사의 문도들 성명이 해서로 새겨져 있다. 이 비의 가치는 고려 전기 불교의 종파 관계, 승과 제도, 승계, 승관 조직, 국사·왕사 제도, 사승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담고 있다. 서예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려 전기 구양순의 해서체가 유행하는 데 반해, 안진경 풍의 비액과 왕희지 풍의 행서로 된 비문 글씨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처진소나무와 사리암 문화재를 찬찬히 살펴본 뒤 운문사의 볼거리인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소나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6m 높이, 팔방으로 땅을 향해 뻗은 가지에 수령이 400년이 넘는다고 한다. 봄과 가을에 스님들이 막걸리 10여 말을 주는 보시 행사를 통해 공을 들여 돌보고 있기에 이렇게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사리암과 북대암 등 암자로 향하는 나그네는 주변의 숲과 냇물을 보면서 세속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기도처로 각광을 받는 사리암에는 사계절 내내 불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운문사의 성보문화재는 비로전, 명부전 등의 전각에 717점이 있고, 주변의 내원암, 북대암, 사리암 등의 암자에 있는 433점을 합쳐 1257점의 성보문화재가 있다. 햇살 좋은 봄날 운문사를 찾아 문화재와 청정한 도량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정태수(대구경북서예가협회 이사장)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봄 향기 가득한 청도 한재 미나리 맛 보세요

-봄 향기 가득한 청도 한재 미나리 맛 보세요- 롯데백화점 대구점 지하 2층 식품관에서는 14일까지 봄 향기를 가득 느낄 수 있는 ‘청도 한재 미나리’를 산지 직송가로 만나 볼 수 있다.‘청도 한재 미나리’는 청도 화악산 자락의 충분한 일조량과 지하 청정수로 재배해 질이 연하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 또 미나리는 해독작용에 탁월해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데 효과적이다.-롯데백화점 대구점 제공-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