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니움 꽃말처럼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활짝 핀 벚꽃이 분홍의 꽃비가 돼 땅으로 흩어진다. 아쉬운 마음에 창밖을 보고 있으려니 그 나무 아래 낯익은 얼굴의 남자들이 우산까지 받쳐 들고 빗속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떨어지는 꽃이 안타까워 빗속의 촬영이라도 해서 이 봄을 기억해두려는 모양이다. 그 열띤 남성들의 감성에 혼자 웃음 짓다가 내 방으로 시선을 돌리니 여린 꽃잎의 하늘거리는 델피니움이 손짓한다. “나도 여기에 당신의 꽃으로 있어요!”라고.봄 기온이 무척이나 올라가던 날 오후, 꽃꽂이 자원봉사를 다니는 이에게서 델피니움 한 송이를 받았다. 소녀 감성을 물씬 불러일으키는 푸른빛의 꽃, 종잇장처럼 여린 꽃잎을 책갈피에 끼워두며 생각을 집중해본다. 바로 그 꽃, 언제였던가. 친구가 보낸 편지의 아래쪽에 붙어있던 빛바랜 꽃, 그것이 너무나 신기해 찾아본 꽃 이름이 델피니움이었다. 하늘하늘한 꽃잎은 또 얼마나 매력 있었던지, 자그마한 글자로 적혀있던 꽃말까지 너무나 멋있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누군가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봄이 이미 한창 무르익어 있다. 우선 이번 봄은 눈으로 즐기기만 하면 좋으리라.작년 이맘때 격리병동에서 방호복을 입다가 문득 내려다본 병원 정원엔 분홍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꽃들이 연출하는 멋진 장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빌었다. 다음에는 마스크 없이 저 꽃 아래서 마음껏 이야기하면서 커피 마시고 떠들어댈 수 있기를. 해가 바뀌고 다시 봄이 됐고 꽃들은 여느 때보다 더 일찍 찾아왔다. 봄은 봄이건만, 아직도 병실에는 격리된 채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환자들이 들어차 입원한 상태이다. 게다가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들의 접촉자들이 혹시 모를 감염의 근원이 될까 봐 잠복기 동안 입원해 있다 보니 일반 환자 입원은 하지 못한 채 코로나 전담 병원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계절은 봄이로되 마음은 여유가 없다. 이렇게 봄바람을 느끼면서 계절을 즐기다 보면 몸이 아파 격리된 이들에게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들곤 한다.그래도 일 년 남짓이라는 시간 동안, 코로나19와 처절하게 싸우며 보내다 보니 이 무서운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의 강도는 조금 덜해진 것 같다. 방역도 철저히 하면서 병원에서 병을 대처하는 체계도 잡아가고 마음으로도 단단히 준비하게 되니 그만큼 사람들 사이에서도 병을 이겨내고자 하는 단결심이 더 생기는 것 같아 다행이다. 가끔 주말에 선별 진료 당직을 서다 보면 아직도 노래방이나 피시방 등 친밀하게 모여서 사교를 하는 곳에서는 감염이 더 쉽게 일어나는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 전 국민이 모두 백신 접종을 마쳐 집단 면역이 생기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주의해야 할 것 같다.오랫동안 나들이는 꿈도 못 꾼 이들이 희망 여행 예약을 하는 모양이다. 적은 예약 비용을 들여 자신이 원하는 여행지를 선택하고서 코로나가 끝났을 때 여행 스케줄을 미리 준비하는 기획, 희망이라도 가지면 그나마 덜 지루하지 않겠는가.봄비가 내리자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분홍의 꽃들이 길가에 굵은 띠를 이루며 바람에 뭉쳐 다닌다. 떨어지는 꽃들이 아쉬워 사람들과 차들이 꽃 아래 모여든다. 꽃을 좋아하는 친구는 떨어지는 꽃이 아쉬워 아침부터 종일 차를 몰고 이 공원 저 공원 다니며 벚꽃을 실컷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면서 꽃 사진을 한가득 보내왔다. 꽃구경을 제때 하지 못하는 이들은 비 온 뒤에 남아 있는 꽃들을 시차를 두고서 조용한 시간을 택해 따로따로 구경이라도 하러 가야 할 것 같다.비 내리는 날이면 자갈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씻어 낸다는 분이 계신다. 어릴 적 수도원 근처에서 자랐다는 그분은 비 내리는 날이면 검은 자갈이 깔려 있던 수도원의 그 기다란 길을 떠올리면 경건한 마음이 들어서 불안이 다 사라진다고 말씀하시곤 했다.언젠가는 코로나도 끝이 있으리라. 이제 백신도 나와서 많은 사람이 맞기 시작했고, 치료제도 개발돼 효과가 증명되기 시작했으니 코로나와 싸우는 우리는 동굴 속에 갇힌 것이 아니라 묵묵히 걸어 나가기만 하면 끝이 보이는 터널에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지금 힘들고 지치더라도 봄이 찾아왔으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긍정의 마음으로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가을 무서리가 내리면 풀잎들이 일시에 숨을 죽이듯 코로나가 어서 빨리 물러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언젠가 그날이 찾아오면 푸른 희망의 꽃다발을 안고 씩씩하게 걸어가 보리라. 델피니움 꽃말처럼. “나의 마음을 알아주세요. 영웅,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혹독한 이 겨울을 나는 법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랜 시간 자영업을 해봤던지라 요즘 이들의 어려움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약속을 잡기가 상대에게서도 눈치가 보여서다.어쩔 수 없는 집콕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라디오로 음악방송을 듣는 게 최고다. 대부분 가볍게 듣고 넘기지만 며칠 전 방송 진행자에게서 들은 한마디가 귀에 박혔다.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 관한 이야기였다.정민(한양대 고전문학) 교수는 ‘정민의 세설신어’에서 구구소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짓날에 매화 한 가지에 흰 꽃송이 81개를 그려두고, 날마다 한 송이씩 색칠한다. 색칠이 끝나 81송이가 피어나면 봄이 이미 깊었다. 이것을 구구소한도라고 한다.’ 가장 추운 동짓날부터 81일간을 구구(9×9)라 하고 색칠하지 않은 매화 81송이 그림을 그려둔 후 하루 한 개씩 채색해나간다. 마침내 그림 속 모든 매화가 붉은 색으로 피어나면 추위는 물러나고 뜰 앞의 매화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그림을 그려나가며 추위를 견디다 보면 드디어 봄이 온 것이다.구구소한도는 매화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선조들은 문자로도 구구소한도를 그렸다. 정전수류진중대춘풍(庭前垂柳珍重待春風). ‘뜰 앞에 드리워진 수양버들이 봄바람 불어오기를 진중하게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글은 한꺼번에 쓰지 않고 동짓날부터 하루 한 획씩 써내려간다. 정(庭)이 열 획, 수(垂)가 여덟 획이지만 나머지 글자는 모두 아홉 획이다. 매일 한 획씩 써내려가다 보면 이 역시 81일이 걸리게 된다.동지로부터 81일째 되는 날은 경칩과 춘분 사이로 올해는 3월 12일이다. 추위를 삭인다는 뜻의 소한(消寒)이란 말처럼 81일간의 추위를 삭인 이날이 되면 버들에 물이 오르고 싹이 트는 봄소식도 따라온다.올해는 특히나 매서운 한파도 겪었다. 혹독한 추위에도 견딜 수 있었던 건 구구소한도처럼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다. 매일 하나씩 매화에 색을 칠하며, 매일 한 획 한 획 글자를 써내려가는 여유와 느긋함이 있어서다. 만일 동짓날부터 구구소한도를 그려왔다면 오늘, 서른일곱 송이의 홍매가 피어났을 테다. 이제 앞으로 윤곽선만 있는 마흔네 송이 매화가 붉게 색칠해지면 드디어 봄이 온 것일 게다.다만 코로나19로 꽁꽁 얼어붙었던 작년 봄처럼 될까 걱정이다. 지난 1년간은 신규 확진자 증감에 따라 일상생활에도 큰 변화가 따랐지 않았던가. 올해는 구구소한도를 완성하고 나면 과연 일상이 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따뜻한 봄바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지속될까. 더욱 가슴 졸일 수밖에 없는 건 부자들의 겨울은 즐겁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은 혹독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코로나19의 고통까지 고스란히 받고 있으니 이번 겨울은 이래저래 더 가혹할 수밖에 없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치마저 한겨울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보자. 지금은 한가하게 매화그림에 색칠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붓을 들고 ‘정치소한도’를 그릴 때다. 얼어붙은 정치의 한겨울을 삭일 때다. 이때까지 어디 추위를 녹일 만한 하루라도 있었던가. 코로나19로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도 정치권은 변함없이, 끊임없이 제 살길만 찾고 있었다.계절의 봄은 제시간에, 어김없이 온다. 하지만 정치의 봄은 만들지 않고는 결코 오지 않는다. 대신 정치의 봄은 잘 만들기만 하면 언제든, 일년내내 찾아 올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치소한도에 하루하루 화합의 색을 칠하고, 대화의 색을 칠하고, 용서의 색을 칠하고, 칭찬의 색을 칠하고, 존중의 색을 칠해나가면 어떨까. 정민 교수는 구구소한도를 두고 ‘봄을 맞는 데는 매일 한 송이씩 81일간 채색하는 정성이 든다. 여든한 번의 추위를 건너야 진짜 봄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정치소한도도 마찬가지다. ‘정전수류진중대춘풍’이란 글자를 두고 하루 한 획씩 채워나가듯 정성을 들인다면 정치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때가 돼야 비로소 봄이 왔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우동기 신임 대가대총장 “어떤 물건도 감싸는 보자기 같은 인재 키워낼 것”

“이제는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시대입니다. 대학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편적 기준이 아닌 학생 수준별 맞춤형, 밀착형 지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12년 만에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지난 6일 별도의 취임행사 없이 곧바로 임기를 시작했다. 코로나19사태로 어려움에 봉착한 학내 상황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신입생 충원 애로 등 산적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대학총장과 대구시교육감을 지낸 화려한 경륜을 풀어내 수렁에 빠진 지역대학을 건져낼 방안 등을 들어본다.- 별도 취임 행사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코로나 확산 방지 차원도 있지만 신입생 모집이 한창 진행되고 있어 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특히 올해는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충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취임하자마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첫 출근 날 입학처장을 입학특임부총장으로 임명하고 매일 회의를 하면서 대책을 세우고 있다.- 올해 지방대학의 입시 결과가 충격적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지?△입시 결과를 보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선택이 매우 엄격하고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현실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대학은 그만큼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 생각한다. 학과를 신설하고 학생을 교육시켜 사회로 진출시키는 데까지 6~7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7년이 지나면 이미 세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으니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제때 배출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제 단순히 학과의 이름을 바꾸고, 단기적인 관점으로 학과를 신설하는 것은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방대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한 가지 전공,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을 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대학은 ‘보자기’ 같은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축구공이든, 네모 상자든 그 어떤 물건도 감싸서 담을 수 있는 보자기 같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교육, 인성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마침 우리 대학은 프란치스코칼리지와 인성교육원 등 기초교육, 인성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앞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취임사에서 ‘미래 100년 새로운 창학’을 선포했는데 그 의미는?△거시적인 측면에서 저출산·고령화, 학령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 등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일할 수 있도록 3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는 학제 개편을 구상하고 있다. 졸업 후 재교육이 필요할 경우 쉽게 재입학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 체제도 구상중이다. ‘미래 100년 새로운 창학 기획단’을 만들어 구성원들과 지혜를 모아보려 한다. - 지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대구가톨릭대는 올해로 개교 107주년을 맞이했다. 대구가톨릭대를 어느 누군가의 대학이 아닌 ‘우리 대학’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우리 지역사회에 필요한 훌륭하고 올바른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 되기 위해 총장의 모든 역량을 쏟겠다. 지역민들께서도 우리 대학을 관심 있게 지켜봐주시고 많은 도움과 충고를 주시기 바란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잔도(棧道)/ 김덕남

한 발은 이승에서 또 한 발은 저승에서/하루치 목숨 늘여 밑줄 치는 붉은 이름/수천 길 낭떠러지에 선반 하나 매단다//길은 늘 양지보다 음지가 길었었지/흡반처럼 달라붙는 어둔 길 지워보려/허공에 발을 딛는다, 먹구름을 밀어가며//메아리 돌아와도 풍문은 흩어질까/웅웅 우는 산을 돌아 무릎 꿇는 외진 밤/산짐승 울음 보탠다, 돌아갈 날 있을까「거울 속 남자」 (책만드는집, 2020)김덕남 시인은 경남 경주 출생으로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와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가 있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애오라지 시조 창작에만 열정을 쏟고 있어 그 과실이 풍성하다. 얼마나 치열하게 시조와 쟁투를 벌이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잔도’는 특이한 제목인데 시의 소재로 삼을 만하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맨 길로 중국 삼국시대 전쟁 이동 통로로 시작됐고, 잔도를 낼 때는 사형수를 일부 투입해 완공 후 형을 감해 주었다고 한다.한 발은 이승에서 또 한 발은 저승에서 하루치 목숨 늘여 밑줄 치는 붉은 이름으로 수천 길 낭떠러지에 선반을 하나 매단다, 라고 노래하고 있는 데서 보듯 인생길은 그리 순탄치만 않음을 상기시킨다.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닌 듯한 요즘에는 더욱 그러하다. 두 발 중에 언제 한 발이 더 무겁게 저승 쪽으로 디디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실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위태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다잡으며 더욱 삶의 고삐를 옥죄어 잡고 앞을 보고 나아가야만 한다. 시의 화자가 길은 늘 양지보다 음지가 길었음을 기억하며 흡반처럼 달라붙는 어둔 길 지워보려고 허공에 발을 딛기까지 하고, 먹구름을 밀어가며 헤쳐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메아리 돌아와도 풍문은 흩어질까, 라고 반문하다가 웅웅 우는 산을 돌아 무릎 꿇는 외진 밤에 산짐승 울음을 보태면서 돌아갈 날에 대한 희망을 떠올리고 있다. 삶에 대한 이러한 진중한 탐색과 사유는 소중하다. 주어진 나날을 더욱 값지고 유익하게 보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그는 ‘작약 앞에서’라는 시조에서 열정의 불꽃을 한껏 터뜨리고 있다. 코끝을 스치는 듯 양 볼에 스미는 듯 당신의 한숨처럼 가슴에 물이 들어서 한 종지 고명을 얹어 꽃망울이 피는 것을 바라보면서 설렌다. 그 마음은 이슬을 톡톡 튕겨 향낭을 터뜨리다 눈길 한 번 삐끗 놓쳐 사랑까지 놓쳐버려 오월의 손톱 속으로 초승달은 지는데, 까지 이르면서 감정의 고조는 극대화된다. 그런 후 바람에 먹을 갈면 속마음 전해질까, 라면서 지워진 길은 멀고 생이별은 더욱 멀어 한 천년 꽃잎이 이마 위에 뚝 뚝 지는 것을 애절하게 바라본다. 아주 오래 전 최정산 정상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별안간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산정의 널따란 평원 위에 수만 송이의 작약 꽃이 만개해 눈을 부시게 했던 것이다. 천상의 모습이었다. 군락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이를 수 없었다. 일찍이 작약의 아름다움을 그만큼 실감실정으로 가슴에 품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 생생한 장면이 뇌리에 박혀 있다.‘잔도’는 삶에 대한 의지를 다져주는 시편이다. 더 힘차게 살아가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작약 앞에서’는 더욱 멋지게 애틋하게 이름답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눈길 한 번 삐끗 놓쳐 사랑까지 놓쳐버려서는 아니 되리라. 지워진 길은 멀고 생이별은 더욱 멀지라도 끝까지 오롯이 자신을 지켜야 할 터다. 오늘 하루 진실로 그렇게 살 일이다.이정환(시조 시인)

일상 복귀와 선도국이 되려면

오용수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 새해 해돋이를 보러 멀리 못가고 가까운 개울가에서 소망을 빌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일상, 경제, 상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 출산, 기후 변화가 덜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눈앞의 생활과 지친 마음 달래기가 더 다급하다. 대통령도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가고, 선도국가로 도약하자고 했다. 소망을 하나씩 톺아보자.첫째 일상으로 돌아가 편히 살고 싶다. 코로나19로 생겨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만나기가 어려워졌다. 대신 비대면 온라인이 크게 발전해 보지 않고도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래도 마주보고 얘기하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여행도 해야 살맛이 난다. 그런데 아무리 거리두기를 잘 해도 백신과 치료제가 있어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제라도 전문가들의 말을 존중해야 한다. 또 시키는 대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이비들은 물리치자. 돌이켜보면 초기부터 TV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책을 말했지만, 백신 얘기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정부의 TF팀에 백신을 한 분야로 정하고 조기 도입 보고까지 했는데 묵살당해 버렸다. 늦었지만 백신이 오면 바로 접종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자. 그리고 각자 주의를 기울이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자. 그래야 진정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둘째 먹고 살기가 편해졌으면 좋겠다. 급여생활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가 힘들다. 집합금지·영업제한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버팀목지원금이 11일부터 지급된다. 또 여당 일부에서 전 국민에게도 2차 재난지원금을 나눠주자고 한다. 그런데 지난 12월 하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차 재난 지원금의 소비증진효과가 약 30%에 불과했고, 지원이 꼭 필요한 대면서비스, 음식점에 효과가 미미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는 큰 타격을 입은 업종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용안정지원금도 업종 특성에 맞게 관리하자. 종업원들이 일터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또 일시적 지원금보다 사업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기업하는 사람들을 옭아매는 법과 규제는 서둘 필요가 없다. 사업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들어줘라. 그들은 잘 알고 절박하다. 그럼 일자리도 생기고, 먹고 살 수 있다.셋째 억지는 사라지고 상식이 통하면 좋겠다. 자영업자들이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과 형평성도 없이 희생만 강요한다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카페 업주들은 방역에 최대한 협조 할테니 밤 9시까지 실내 영업이 가능한 식당과 같이 해달라고 애원했다. 체육관 주인들은 실내 체육시설만 엄격한 잣대 적용을 없애달라고 거리로 나섰다. 또 노래방 업주들은 5월부터 영업을 못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곧 영업을 하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미 예견된 일이다. 식당은 영업이 가능하고 카페는 안 되는 과학적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했어야 한다. 억지로 밀어부쳤지만 못 견디겠다고 반발한 것이다. 그나마 현장의 소리를 들어 기준을 재조정하겠다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납득할만한 사유와 대비할 시간을 줘야한다. 그래야 다른 업종의 집단행동이 생겨나지 않는다. 상식이 통해야 선도국이 된다.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와 먹고 살만해야 여행을 떠난다. 올해도 가까운 국내, 안전과 휴식, 개인여행이 대세가 될 듯하다. 그러나 사스, 메르스 이후의 빠른 회복과는 달리 이번에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항공업도 빨라야 2022년 4월, 늦으면 2023년 6월로 보고 있다. 관광업은 조금 빠르겠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항공과 관광은 고객이 많이 겹친다. 양대 항공사가 합하듯 두 업종도 같이 살 길을 찾아보자. 정부도 함께 대책을 마련하면 회복도 빨라진다.한편 새해 대구·경북에 희소식이 있다. 서울과 안동 사이에 고속철도가 개통돼 2시간이면 오갈 수 있다. 이어 경주까지 연장되면 경북관광은 큰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또 대구는 메리어트호텔이 개관했고, 관광재단도 설립돼 관광 중흥의 기반이 마련됐다. 나아가 관광이 대구·경북 통합의 주춧돌이 되고 대한민국 관광의 선도지역이 되길 기대한다.

골목책방/ 김연미

당신은 잠에서 깬 아이처럼 작아져요//밑줄 친 어느 날이 골목을 돌아가면/맨 끝에 진열된 여름/아삭아삭 읽어요//부재중인 사랑보다 달콤한 게 있을까요/받침 없는 의자가 반짝이는 간판/내가 쓴 눈물에 앉아 당신을 기다리죠//바람의 활자들이 편지처럼 자라는 책방//초록빛 그늘 자락 꽂혀진 정오쯤에/오래 전 당신이 썼던 나를 두고/갈까 봐요「문학청춘」(2020, 겨울호)김연미 시인은 제주출생으로 2009년 연인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등이 있다.최근에 제주에 갔다가 서귀포 위미리에 있는 골목책방을 가본 일이 있다. 가정집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책방을 꾸며 놨는데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아버렸다. 함께 한 일행들도 모두 시를 쓰는 시인인지라 문향에 젖어들면서 자리를 쉬이 뜨지 못했다.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새삼스레 책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나아가서는 부지런히 책을 써야겠구나 하는 마음과 더불어 내 책이 이 책방에 꽂혀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까지 떠올리게 했으니, 위미책방은 앞으로 명소가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소담하게 꾸며진 덕택에 안락한 예술 공간이라는 인상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골목책방’에서도 그와 같은 분위기를 읽는다. 화자의 화법이 다정다감하다. 당신은 잠에서 깬 아이처럼 작아져요, 라고 시작한 첫줄이 인상적이다. 밑줄 친 어느 날이 골목을 돌아가면 맨 끝에 진열된 여름을 아삭아삭 읽는다는 대목도 시각과 미각의 혼융으로 맛깔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부재중인 사랑보다 달콤한 게 있을까요, 라고 속삭인다. 이 속삭임은 실로 달콤해 마음을 사로잡는다. 받침 없는 의자가 반짝이는 간판 그리고 내가 쓴 눈물에 앉아 당신을 기다린다는 표현도 이 시편이 사랑시임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다른 이가 아닌 내가 쓴 눈물에 앉아 기다리는 당신은 그 얼마나 존귀한 사람일까 상상해 본다. 그리고 바람의 활자들이 편지처럼 자라는 책방, 초록빛 그늘 자락 꽂혀진 정오쯤에는 오래 전 당신이 썼던 나를 두고 가겠노라고 노래하며 끝맺는다. 오래 전 당신이 썼던 나, 라는 대목은 내가 쓴 눈물에 앉아 당신을 기다리죠, 라는 앞의 구절과 미묘하게 대비되면서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러고 보니 ‘골목책방’은 단순한 골목책방이 아니다. 사랑이 싹 트고 사랑이 피어오르고 사랑의 교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꿈의 공간이다.‘홀로 깊어지는 섬’에서 그는 어머니를 노래하고 있다. 수술 자국 선명하던 민머리 무성해지며 반 평의 침상 위에서 섬이 되신 어머니는 눈동자 들여다볼수록 심연의 물속만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신경세포 끊어진 낱개의 언어들이 풀기 없는 밥알처럼 이불 위로 떨어질 때 의성어 숨소리 사이 길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 하고 혼자 생각해본다. 불현듯이 건너온 물기 밴 저 눈빛에 괜찮다 어깨를 쓸다 불현듯 또 바람에 밀려나 안개의 장막 안에서 홀로 깊어지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화자는 애간장이 탄다. 하지만 다른 도리가 없다.우리는 모두 결국 단독자다. 더불어 살더라도 혼자인 것이다.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은 그 누구에게도 나눠줄 수가 없다.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에 새로운 길의 시작이 죽음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터다. 하지만 이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한때 종말론이 세상을 뒤흔들던 때가 있었다. 우리는 안으로 눈을 돌려 개인적인 종말을 늘 생각하며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마음이라면 허락된 하루하루를 더 역동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이정환(시조 시인)

2021, 다시 청년으로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2021해가 떠올랐다. 연속되는 시간이지만, 늘 새로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지혜로 적당하게 마디를 지어 또 다른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다시 새 마음으로.지난해 모두 힘들었지만, 버티어냈다, 그중에서도 무척이나 어려웠을 여행업계에서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한 여행객을 모집한 모양이다. 어둑새벽, 부푼 가슴으로 비행기 트랩에 올라 1월1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한 해맞이 행사를 하늘에서 했다니. 일출 보면서 새해 소원을 기원하고 상공을 맴돌며 각자 소망을 빌었으리라.올 한해 봄볕에 눈이 녹듯이 어려운 일들은 스르르 녹아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새순이 돋아나듯이 다시 희망이 쑥쑥 자라나 커나가기를.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아이는 새해 미성년에서 벗어난다고 좋아하며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다. 10-9-8-7-6-5-4-3-2-1 댕~~~! 제야의 종이 울리자 드디어 19세가 됐다며 주민등록증을 들고 뛰어나간다. 그것을 내보이며 그동안에 구매하지 못했던 금지 품목 구입이 가능한지 시험 삼아 해보겠다며 기대에 찬 얼굴로. 편의점에서 술의 향이 조금 나는 과일 주류를 구매하면서 신분증을 보자고 하면 자랑스레 보일 것이라면서 들고 나가더니, 보자는 이야기가 없다며 왠지 김이 빠지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어릴 때에는 하나씩 들어가는 나이는 무엇인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2021,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올해에는 스물 남짓 청년의 마음으로 다시 건강하고 힘차게 걸어 나가야 하리라.몇 해 전, 21세에 백만장자가 된 소년의 인생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13세 때 스마트폰 앱을 만들었고 페이스북은 17세 소년인 그에게 인턴십을 제안했고 결국 페이스북 정직원으로 입사했다.그는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보태기 위해 스마트폰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오히려 그를 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소년은 아직도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면서 인터뷰했다.그의 인생길은 남들처럼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특별한 커리어 덕분에 오히려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배울 수 있었고 인터넷이라는 기회를 이용해 스스로 성공했다기보다는 그 환경의 특별함 때문에 지금의 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일러준다.하지만 그는 스스로 시작한 것과 조금의 운이 더해져 현재의 자신이 될 수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그는 구글 영상을 보며 스스로 코딩하는 법을 배웠다. 이후 그를 이용해 자신의 앱을 만들기 시작했고 전략적으로 경제적 이익이 창출되도록 판매하기 시작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그에게 인턴십을 제안했을 당시 이미 마이클의 무료게임 어플은 애플 앱스토어 상위권에 랭크해 뒀다고 하지 않은가. 스타벅스나 핏빗 등의 어플보다도 더 높은 순위에 올려 뒀으니 얼마나 대단한가.그는 강조한다. “나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라고. 비록 그는 기술 산업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했다. “제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기대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이 얼마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든 ,나와 관계가 있든 없든 나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 청년은 “21세인 저는 아직도 어린 면이 있죠. 어쩔 땐 친구들이랑 나가 놀면서 거하게 술에 취하고 싶기도 해요. 한 번쯤 무책임한 일도 저질러 보고 싶기도 하구요.”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약속은 늘 지켜지리니. 21세 청년이든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든 모든 이에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지 않던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따스한 봄이 찾아오듯이. 신축년에는 소처럼 느릿느릿하지만 만 리를 가는 걸음으로 봄부터 겨울까지 하루하루 다 다른 날들은 느끼며 걸어가시길. 하루하루 바람이 다르고, 하루하루 잎과 가지가 다르며, 매 계절 피는 꽃들과 하늘의 청명함이, 강물 소리와 잎사귀가 부딪히는 소리가 다 다르니 생을 깊이 있게 느끼며 지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올 한 해에는 예전에 비슷하게 느꼈던 가을과 봄도 확연하게 차이를 실감하며 그 천양지차를 만끽하기를 소망한다.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느낌을 가득 간직하며 하루를 즐기며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하루를 온전히 느껴가며 끊임없이 배우고 앞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며 걸을 수 있기를, 우보만리(牛步萬里)

신삼종지도(新三從之道)/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 황금빛 들판은 알곡을 거두고 빈 몸으로 여린 햇살 아래서 숙성하고 있는 것 같다. 나날이 내려가는 수은주이지만 청명한 날씨가 주는 상쾌함에 객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번져 간다. 눈 내리고 얼음이 찾아와도 이 따스한 볕을 기억하며 어둡고 추운 계절을 잘 넘어야 하리라.비대면 시대에는 온라인으로 하는 학술행사가 많아 주말이면 온택트 세상이 열리곤 한다. 살과의 전쟁이라 불리는 비만에 대한 강의가 진행돼 관심 있게 보았다. 흔히 살이 많이 찐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들은 쉽게 살을 빼라고 하든가, 좀 덜 먹으면 되지 않느냐, 운동을 더 세게 하면 살이 잘 빠지지 않겠느냐 조언하기 쉽다. 하지만 비만의 원인도 다양해 유전적인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도 정말 살이 빠지지 않아 고민하는 이들도 많다. 물만 먹어도 살로 간다고 울상인 이들도 많으니 말이다. ‘빼빼 장구’ 소리가 너무 듣기 싫다는 분이 계시는 반면, 살이라는 ‘ㅅ’ 발음만 들어도 ‘쏘~오름’이 쫙 돋는다는 이도 있다.코로나 시대에 가장 흔한 부작용이라면 밖에 나가지 않고 집 안에 머물다보니 자꾸만 먹게 돼 살이 쪘다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확진자 아닌 확찐자가 됐다는 이야기다. 비만은 그야말로 질병이다. 단순히 외적인 면보다 내적인 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만으로 인해 합병증들이 다 생기게 된다. 어릴 때의 비만이 어른이 돼서도 지속하는 경우가 많고 어릴수록 자기 신체에 대한 이미지가 왜곡되게 머리에 새겨지는 경우가 더 흔해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그러니 확찐자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몸을 움직이면서 이상적인 체중을 유지하고 신체활동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리라.코로나로 입원했던 환자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 가끔 예쁘게 사진을 찍어 안부 인사를 보내는 이다. 확진자 아내와 딸을 두어 간호하느라 힘들었고 자신도 확찐자가 됐지만,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딸이 있음으로써 얻는 재미를 새삼 느끼게 됐다는 중년의 가장, 그의 딸 자랑을 듣다 보면 은근히 딸의 존재가 부럽기까지 하다.언젠가 대한민국 여성 축제에서 조선 시대 여성을 억압해왔던 삼종지도(여자가 지켜야 했던 세 가지 도리)와 칠거지악(아내를 내쫓는 일곱 가지 허물)을 유쾌하게 비튼 ‘신삼종지도’와 ‘신칠거지악’이 공개된 적이 있다. 그때 발표한 ‘신삼종지도’는 ‘어려선 아비와 어미의 뜻을 함께 따르고, 시집가면 지아비를 가르쳐서 평등한 가정을 만들며,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에 연연하지 말고 나의 길을 간다’로 바뀌었다.남자가 여자를 버릴 수 있는 칠거지악을 ‘남편을 버릴 수 있는 일곱 가지 경우’로 패러디한 신칠거지악은 △명절 때 시부모는 30만 원, 친정 부모는 10만 원 줄 때 △딸을 낳았는데 남자가 아들 타령할 때 △섹시한 아내의 눈빛을 외면할 때 △아내가 직장동료와 회식하는 걸 알고도 자꾸 전화할 때 △의처증, 아내 구타, 알코올 중독 등에 걸렸을 때 △반찬 투정할 때 △아내 지갑 속 비상금을 집어가고 시치미 뗄 때 등이라고 한다. 이러한 때 아내는 남편을 벌하거나 이혼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며칠 전 미국에선 아들만 14명을 낳은 부부가 30년 만에 꿈에 그리던 첫 딸을 얻어 화제가 됐다. 미시간주에 사는 마흔다섯 살 여인 카테리 슈반트는 열다섯 번째 아기로 3.4㎏의 건강한 딸을 낳았다고 한다. 딸 이름은 매기 제인. 동갑인 남편 제이 슈반트는 “매기는 상상도 못 했던 가장 큰 선물이다. 이번 해는 여러 가지로 정말 기쁜 해”라며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결혼 후 출산해 얻은 14명의 자녀가 모두 아들이었기 때문에 지역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스물여덟 살 장남은 그의 집엔 핑크색 같은 여자아이 옷도 없다고 말했다.요즘엔 아버지 신삼종지도가 회자한다. 어려서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혼인해서는 아내의 말을 잘 따라야 밥을 먹을 수 있고, 늙어서는 딸을 잘 둬야 효도 받는다는 것이다. 남자들만 함께 하는 집일지라도 엄마가 유일한 여자인 집안에서도 꼭 딸처럼 살갑게 행동하는 이가 있으리니 그를 천생연분으로 여기며 손발 짝짝 맞춰 잘 살아야 하지 않으랴.살아내야 할 많은 날, 더욱 소중하게 여기며 하루하루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작약의 이름/이두의

노숙의 피로를 감춘 민낯의 안개들이/담쟁이 오르다만 창가를 기웃댄다/어머니 먼 길 가신 뒤 고요마저 끊긴 빈 집//스멀스멀 흩어지는 안개를 따라가면/뭉개진 손금 위에 두고 가신 꽃 한 송이/봄처럼 부지런해라 그 말씀, 울컥한다//사람이 가고 나면 그림자도 거둬지고/사랑도 흩어져서 꽃잎처럼 지겠지만/작약의 이름 하나로 지키는 봄이 아프다「정글의 역학」(고요아침, 2020) 이두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2011년 ‘시조시학’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정글의 역학」이 있다.갑작스러운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난봄과 여름을 혹독하게 보냈다. 지금도 여전히 바이러스의 위험에 노출된 채로 불안해하면서 일상을 건너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시는 힘이 될 수 있다. 시 읽기와 시 쓰기를 통해 삶의 동력을 얻어 활기찬 하루하루를 영위할 일이다. 이두의 시인도 그러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시조집 「정글의 역학」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이 시조집에는 그의 철학과 잘 가꾸어온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잔잔한 울림을 안긴다.‘작약의 이름’을 가슴 아프게 읽는다. 노숙의 피로를 감춘 민낯의 안개들이 담쟁이 오르다만 창가를 기웃대는 때 어머니 먼 길 가신 뒤 고요마저 끊긴 빈 집에서 스멀스멀 흩어지는 안개를 따라가고 있다. 뭉개진 손금 위에 두고 가신 꽃 한 송이와 더불어 봄처럼 부지런해라, 라고 들려주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울컥한다. 그때 사람이 가고 나면 그림자도 거둬지고야 마는 것을 느끼며 더욱 마음 아파한다. 끝내 사랑도 흩어져서 꽃잎처럼 지고 말겠지만 오랜 나날을 작약의 이름 하나로 지키는 봄이 아파서, 가신 어머니가 더 없이 그리워서 눈물의 봄을 작약과 더불어 보낸다. 진실로 사람이 가고 나면 그의 그림자도 거둬가고 말기에 삶은 그지없이 깊고 아픈 것이다.우리는 이따금 고요마저 끊긴 빈집을 홀로 서성이면서 사색에 잠길 때가 있다. 많은 식솔들로 복닥거리던 그날은 아득히 멀어졌고, 인적 없는 뜨락에는 풀만 무성한데 참새 떼가 찾아왔다가 멀리 날아 가버린다. 함께 하던 어머니, 같이 뛰놀던 현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운 이름들을 나직이 불러보다 곧 돌아선다. ‘작약의 이름’은 그러한 상실의 아픔을 곡진하게 그리고 있다.그는 얼마 전 연해주를 찾았다가 ‘고려인과 아리랑’을 썼다. 햇살 부신 연해주 한민족 문화원에서 고려인 후손들과 시인들이 만났을 때 통역을 사이에 두고 어색해도 환한 웃음을 짓던 그날을 기억한다. 한 뿌리 번져 자란 요모조모 닮은 모습과 선뜻 먼저 일어서서 부르던 노랫가락 끝에 조금씩 목젖 떨리며 넘어가던 아리랑 노래를 애틋하게 떠올린다. 그래서 강제 이주 맺힌 구석 쓰다듬어 열어가니 조금씩 옅어지는 그늘의 문양 따라 모서리 지운 마음이 하늘 높이 닿는 것을 본다.고려인들은 이제는 영영 고향 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다. 이미 그들은 그곳에 정착해 러시아어를 쓰며 살고 있다. 물론 그들의 내면 깊숙이 조선의 피는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이다. 아리랑을 부르면서 근원적인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젠 이국땅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셈이다.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올곧게 지켜나가야 한다. 혼란에 휩쓸리지 않는 내공을 길러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정을 잘 보듬어 안고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시심은 천심이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작약의 이름’을 다시금 음미하면서 늦가을 길을 걷고 싶은 아침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어머니 설법/ 하순희

내 몸에 상처진 것들 뜨락에 꽃으로 핀다/ 발목 걸고 넘어지던 무수한 일들도/ 생명을 실어 나르는 나뭇가지 물관이 되어// “한 세상 살다 보믄 상처도 꽃인 기라/ 이 앙다물고 견뎌내몬 다 지나가는 기라/ 세상일 어려븐 것이 니 꽃피게 하는 기라// 그라모 니도 므르게 다아 나사서/ 더 께져 아물어진 헌디가 보일기다/ 마당가 매화꽃처럼 웃을 날이 있을 기다”「종가의 불빛」(2019, 고요아침)하순희 시인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1989년 ‘시조문학’지에 추천완료, 199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별 하나를 기다리며」 「종가의 불빛」 동시조집 「잘한다잘한다 정말」과 시조선집 「적멸을 꿈꾸며」(현대시조 100인선 90번, 태학사, 2004) 등이 있다.‘어머니 설법’에서 애틋하고 애절한 어머니의 사랑을 읽는다. 내 몸에 상처진 것들이 뜨락에 꽃으로 피는 것을 보면서 발목 걸어 넘어지던 무수한 일들도 생명을 실어 나르는 나뭇가지의 물관이 되는 것을 느꺼워한다. 이어서 어머니의 말씀이 한 세상 살다 보믄 상처도 꽃이며, 이 앙다물고 견뎌내몬 다 지나가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또한 세상일 어려븐 것조차도 니 꽃피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이른다. 그라모 니도 모르게 다아 나아서 더 께져 아물어진 헌디가 보일 것이라면서 마당가 매화꽃처럼 웃을 날이 다가오리라고 조언한다. 어머니의 육성을 들려주듯 구어체로 생생하게 진술함으로써 정감을 더할 뿐만 아니라 적잖은 위로와 힘이 되고 있다.그의 다른 작품 ‘어머니의 유산’ 역시 어머니를 그리고 있다. 아흔 셋 길 떠나신 초계 정씨 내 어머니는 자 하나 가위 하나 버선 한 켤레로 남으셨지만, 그 가르침 즉 바르게 선하게 살아라 그른 길은 자르거라, 라는 말에서 보듯 단정하면서 단호하신 데가 있는 분이었다. 자나 가위가 그냥 남겨진 것이 아님을 엿본다. 그리고 차운 발을 데우는 버선처럼 살거라, 라는 말씀이 떠올라 꽃다지 피는 봄날 여린 쑥을 캐면서 바람결에 날아서 오는 환청 같은 그리움에 젖어들기도 한다. 하여 떨어지는 꽃그늘로 더디 오는 후회 앞에 나뭇가지 적시며 빗줄기에 스미는 청매화 향기로라도 가닿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긴 여운을 안긴다.또 한 편 어머니에 관한 글 ‘조장’은 더욱 간절하다. 마음 쓸쓸히 헐벗은 날 그 목소리 들린다면서 잘 있제 잘 하제, 라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그래서 푸른 울타리로 살거라, 라는 말씀이 큰 울림을 준다. 내 죽으믄 무덤 만들지 말고 말짱 태워서 곱게 가루 내어 찹쌀밥 고루 버무려 새한테 주거라, 라는 마지막 부탁은 실로 애절하다. 말짱 태우는 일은 자식으로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하고자 한다. 참으로 숭고하다. 이렇듯 숙연한 날 때 없이 헛헛해 오는 저린 손을 비비면 바람소리 물소리 선연한 풍경소리 가운데 깊은 뜻 새소리로 남아 젖은 길을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신석기시대, 북방계 민족이 사용하던 토기로 그릇 표면에 빗살과 같은 무늬를 새겨 넣었고 밑바닥은 대개 둥글거나 뾰족하게 만든 토기를 보며 상상력을 작동한 ‘즐문토기’에서 그 당시 도공이 마디마디 각인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새로이 잎을 내는 맥문동 여린 꽃대에 내리며 녹아버리는 흰 눈발에서 시의 화자는 영혼을 흔드는 무늬를 본다.우리는 하루하루 살면서 여러 문양을 아로새겨간다. 어떤 무늬가 우리 속에 수놓이고 있는지는 모를 테지만, 언제 불러도 늘 부르고 싶은 어머니를 한 번씩 마음 속 깊이 울먹울먹 부르면서…. 이정환(시조 시인)

김병욱, “13세 이상 통신비 지원? 당장 그만둬라”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포항남·울릉)이 10일 정부의 ‘13세 이상 전 국민 통신비 2만 원 지원’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그러면서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손실보상에 집중해달라”고 요구했다.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통신비 2만 원씩 나눠주는데 9천억 원이 든다고 한다. 온 나라에 2만 원씩 흩뿌려 무엇을 얻고 싶은가”라며 “당장 그만둬라. 대한민국 국민들은 양식장의 물고기가 아니다”고 적었다.이어 “그동안은 당신들의 무능이 싫었지만 이제는 당신들의 의도 자체에 절망한다”고 개탄했다.또한 김 의원은 “코로나19로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며 “정부 지원은 정부의 명령에 의해 영업을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집중돼야 한다”고 역설했다.그러면서 “토지를 수용하면 보상금을 지급하듯이 우리 공동체가 코로나 극복을 위해 이들의 수입을 수용했기 때문에 이들은 ‘손실보상'을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때론 느리게 살아보자

김은경주부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이 뽑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베스트 10’에는 자판기 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리기, 화장실 들어가기 전에 지퍼 먼저 내리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닫힘 버튼 누르기 등 웃지 못할 사례가 있다. 지극히 사소한 일에도 매사 조급해하고 다그치는 것을 보면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의 생활 속에 굳어버린 습성이 돼버렸다. 우리 모두는 누구에겐가 쫓기듯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무한경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푯대 없이 방황하고 있다. 초고속 성장과 치열한 속도경쟁 사회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불안과 스트레스가 연속된 삶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참된 안식과 평안은 잊은 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속도’만을 추구하는 삶 속에서 잠시만의 여유조차 느낄 틈 없이 살아가고 있다. 현대 사회를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순간적인 감정과 열정으로 일관하며 끝없이 방황하고 있는 군상들의 집합체’라고 정의한다면 무리한 표현일까. 파스칼이 팡세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안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젠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의 정의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생존하며, 무엇을 진정한 가치로 여기는지 잠잠히 숙고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치열하게 추구하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나 지위, 문명의 편리함을 잠시 떠나 자연에 순응하며 느림과 여유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쳇바퀴 돌듯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때론 여행을 통해 천천히 걸으며 느긋하게 사색하고 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재충전과 활력을 찾기 위해 더없이 좋은 방법이리라.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는 1882년 착공해 140여년이 지났지만, 현재도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우리도 이제는 ‘느림의 미학’을 찾아야 한다. ‘빠름’의 대척점에 서 있는 ‘느림’은 빠름이 대세인 이 시대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빠름’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림’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느리게 걷노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너무 작고 흔해 눈길이 가지 않던 이름 없는 꽃과 풀, 언제 거기 있었는지 존재조차 알 수 없던 것들. 흔히 ‘속도는 기계의 시간이며, 느림은 자연의 시간’이라고 하지 않던가.아날로그적 느림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진정 풍요로운 사회가 아닐까. 때론 느리게 살아보자.

전 방위적 도전에 주눅들 필요 없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우리는 전례 없는 전 방위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촛불정권이 들어선지 4년 차, 시대에 뒤떨어진 이데올로기 경쟁과 실험적인 어설픈 정책의 실패로 인해 국민은 두 진영으로 갈라져 사사건건 대립하고 그 와중에 경제는 파탄날 지경이다. 설상가상 코로나가 창궐하는 바람에 서민의 삶은 무너지고 기초적 생활터전마저 위협받고 있다. 포퓰리즘 정책과 임기응변적 지원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자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진 상황이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역대 급 장마가 나라 곳곳을 유린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우울한 나날이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믿고 살길을 찾아본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노라면 심판의 날이 떠오르고 막연한 두려움에 소름이 돋는다. 인간의 원초적 죄과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미리 대비하면 환난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재난을 당하는 것이 또 인간이다. 재난은 취약한 부분을 용케 골라서 공략한다. 물난리에 수해를 당한 부분이 취약한 급소라는 말이다. 수해를 당했다고 넋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자연재해가 적시한 약점을 보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재난이 찾아온다. 노아의 방주를 건조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섬진강이 범람해 그 인근지역에 큰 피해를 준 모양이다.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범람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원시적 재난이다. 따라서 그 원인과 처방도 새롭지 않다. 강을 지속적으로 준설하고 제방을 튼튼하게 쌓는 일이 시급하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으면 금상첨화다. 이는 치산치수의 기본적 내용이다. 각론에 들어가면 방법론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다. 개별적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응용하는 정도다.4대강 사업은 치수의 구체적 사례일 뿐 특별한 게 없다. 이는 정략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치수사업이다. 강에 보를 쌓아 유속을 떨어뜨리고 퇴적물을 특정 지역에 집중시킴으로써 준설을 용이하게 하고 제방을 튼튼하게 보강한 재난대책에 불과하다. 보에 가둔 강물을 레저시설과 저수지 및 수력발전소 등 다용도로 활용하고 강둑은 공원이나 자전거 전용도로로 이용하는 등 부수적 성과도 결코 작지 않다. 폭우피해와 관련해 치수시설인 4대강 보의 영향과 효과성을 다시 조사·평가한다는 뉴스에 정말 어안이 벙벙해진다. 묵묵히 강물을 담고 있는 보도 지난 정권과 함께 적폐로 몰아 철거돼야 한다는 발상은 이념도 정책도 아니고 밴댕이 소갈머리일 뿐이다. 산사태 경보·주의보가 전국적으로 발령됐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속하는 나라에서 전근대적인 자연재해가 천여 건이나 발생했다. 나무가 많으면 나무뿌리가 흙을 잡아주어서 산사태를 막아준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태양광패널을 설치한 것이 산사태의 한 원인으로 의심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론으로 여겨진다. 경제성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태양광패널과 산사태의 연관성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태양광발전을 산사태의 주범으로 덮어씌울 수는 없지만 산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게다가 울창한 산림을 훼손하고 수려한 경관을 해치는 태양광발전이 친환경·재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조부모님 산소 뒤편의 산림을 훼손하고 들어선 태양광패널을 보노라면 울화가 치솟아 욕설이 나온다. 어쨌든 태양광과 탈원전을 재고하게 하는 산사태다. 인류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다양한 도전이 있어왔다. 자연재해와 전쟁, 역병과 폭정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들을 극복하고 꾸준히 번성해왔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를 두고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했다. 홍수와 한발에 치산치수로 맞서서 살아남았고, 역병이 창궐하면 백신을 개발하였다. 부국강병을 통해 힘의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냈으며 가렴주구와 폭정이 행해지면 정권을 뒤집어엎음으로써 정치를 선진화시켰다. 폭정, 역병과 자연재해까지 겹쳐진 작금의 상황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오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듯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마음을 돈독하게 먹고 대응한다면 이겨내지 못할 바 없다.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과 문명은 번성했지만, 그렇지 않은 문명은 사라졌다. 도전이 없는 민족이나 문명도 무사안일에 빠져 사라졌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 방위 도전에 대해 강력한 응전만이 살 길이다. 도전은 살아남은 자의 축복이다.

파이어(FIRE) 족/정명희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삼복더위다. 장맛비가 무섭게 내렸다. 이번 여름은 더위보다도 비가 더 걱정일 것 같다. 멀리 나가 있는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잘 지내고 있겠지. 무조건 믿어 본다. 벌써 7월 마지막 월요일이 밝았다. 코로나가 온통 삼켜버린 봄을 지나 여름에도 그에 대한 걱정과 장마로 인한 피해로 밝은 소식은 드물다. 이런저런 일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려고 며칠 전부터는 출·퇴근 길 걷기 시작했다. 종일 병동을 오르내려도 오천 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새로운 결심을 했다. 하루 만 보 걷기에 도전! 자동차를 세워두고 일찍 집을 나서서 버스로 출근하기!, 지하철 환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병원 가까이 가는 지하철을 타고 걸어서 병원 가기. 때로는 운 좋게 병원 순환 버스를 만나면 그것을 이용해 직원들과 등원하기. 어찌됐든 만보기에 찍혀 올라가는 숫자를 보면서 하루하루가 즐겁고 신나게 생활하기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병원 주차장을 비우다 보면 환자가 주차하지 못해 허둥대는 것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며칠 걸어오는 나를 지인이 봤던가. 혹시 ‘파이어 족’인가요? 묻는다. 나이를 평생 27세라고 우기고 다니지만, 어찌 2030이 추구한다는 파이어족을 꿈꿀 수 있으랴. 메일을 정리하고 있는데 반가운 소식이 눈에 띄었다. 해외에서 근무하던 조카가 귀국을 결정했다는 것이 아닌가. 40℃를 오르내리는 더운 나라,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던 녀석이었다. 이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을까. 어느덧 8년, 꿈을 이루었을까. 몇 해 전, 비행기 환승하는 김에 잠시 들렀을 땐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고급 호텔을 잡아주었다. 새벽 공항에 내렸을 때 안과 밖의 열기로 인해 안경이 갑자기 흐려지고 물방울마저 잡혀 흘러내리는 더운 열기에 놀라던 곳에서 좋은 숙소를 잡아주고 묵게 해주었으니 얼마나 대견했겠는가. 타국에서 고생하면서 낭비하지 말고 아껴 살아야 한다고 잔소리했더니 씩~ 웃음으로 긍정했다. 그러면서 그가 나지막이 뱉었다. 자기는 ‘파이어 족’이 꿈이라고. 그땐 해고(FIRE)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인가? 했는데 오늘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를 보고는 무릎을 ‘탁’ 쳤다. 몇 해 전에 그가 했던 말, 파이어 족이 바로 이 뜻이었다는 말인가 싶어서다.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는 삶의 방식, ‘파이어(Fire)족’은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을 토대로 자발적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추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런 움직임을 일컫는 말이다. 네 단어의 머리글자를 딴 합성어로 요즘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옛날처럼 일할 수 있는 날까지 가늘고 길게 끝까지 일하는 것과는 달리 앞날과 은퇴 후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저축과 투자를 늘리는 요즘 2030 세대의 신조어다. 이들은 이르면 20대, 늦어도 40대 초반에 퇴직해 은행 빚이나 소비생활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자 하고 그러기에 사십 대에 조기 퇴직하는 것이 지상 목표라고도 한다. 취업 정보 포털 조사에서 30대 직장인 3명 중 1명이 자신을 파이어 족이라고 했다고 발표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가 추구하는 ‘현재를 즐기자’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는 대신 주식, 부동산, 창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돈 벌기에 열심히’라고 한다. 파이어 족은 199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퍼지게 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이후 이어진 경기 침체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가 이에 주목했다. 파이어 족의 기본 개념은 ‘짧게 바짝 벌어서 적게 쓰고 모으기’다. 파이어 족은 아껴 쓰는 생활을 퇴직 후에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한국의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파이어 족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짠테크를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짠테크란 ‘짜다’+‘재테크’의 합성어로 구두쇠처럼 알뜰하게 돈을 아끼는 것이다. 짠테크 방법으로는 ‘절약하는 습관 만들기’가 가장 선호도가 높다. 웬만하면 돈을 쓰지 않기, 술자리를 갖지 않기, 잔돈을 따로 모으기, 약속을 잡지 않기, 매일 또는 매주 저축하기, 취미생활에 돈 쓰지 않기 등을 많이 한다.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을 중심으로 구두쇠 생활이 주목받게 된 것은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직장에 대한 불만과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불황 속에서도 좀 더 안정된 삶에 대한 열망이 아니겠는가. 무엇이 됐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택해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나날이 되기를.

재미있는 세상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비가 내린 텃밭에는 감자가 파랗게 드러나 뒹굴고 있다. 적당한 때에 흙을 끌어 올려 뿌리를 묻어줘야 했지만, 그에게 눈길 줄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저 나름의 열매를 튼실하게 맺고는 보란 듯이 드러내 자랑하고 있다. 하지 감자가 맛나다는 이야기를 들어 거둬들여야지 생각만 하다가 그만 그 시기도 지나버렸다. 감자 줄기를 들고 지긋이 힘을 주니 줄줄이 달려 나온다. 소리도 없이 순순히 엮인 채 달려 나오는 감자를 보면서 가슴이 왠지 뭉클해 온다. 둘러보니 곳곳에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이 많다. 지인이 선물로 가져다 준 복 분자는 그동안 잡초인 줄 알고 해마다 줄기를 꺾어 정리해 버리곤 했다. 올해는 그런 방해를 할 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재빨리 검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탐스럽게 열린 복 분자 송이를 보면서 왠지 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저리도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달고 자랑을 해댈 복 분자를 잡초인 줄 알고 꺾어 내동댕이치는 텃밭 주인을 만났으니 그동안 얼마나 서운했을까.허둥지둥 마음을 잡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 벌써 한해의 반이 훌쩍 지났다. 처음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들은 것이 1월19일이었다. 그동안 하나둘씩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에 대한 동선이 공개될 때마다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실제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었다. 행여 불똥이라도 튈까 봐 주변을 살펴보는 정도였었다. 하지만 2월18일 지역에서 환자가 발생하고 나서부터는 그야말로 집채만 한 홍수에 마구 떠밀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허겁지겁 하루를 살았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밀려드는 환자를 보느라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다 이젠 조금 뜸하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시간은 흘러 하반기로 접어들고 삼복더위가 지나가고 있다.해마다 이맘때면 휴가를 어디로 갈까 한창 머리 맞댈 시기인데 지금은 그런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사치인 듯한 마음이다. 휴가를 포기하고 그냥 하루하루 버티겠다는 휴포자(휴가 포기자)가 생겨난다고 한다. 해외로 가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국내에 있는 친척한테라도 잠시나마 들러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싶어도 행여나 그중에서 확진자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망설이게 된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식사 자리였지만 확진자로 동선이 공개되고 또 역학조사에서 그곳에 들렀다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아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뉴스를 보면 더더욱 움츠러들게 된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히면 좋지 않겠는가.담장 너머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내다보니 이웃집 마당 잔디 위에 커다란 수영장이 만들어져있다. 고무 튜브로 된 간이 수영장에 바람을 잔뜩 넣으니 그야말로 멋진 옥외수영장이 돼 있었다. 아이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이리저리 헤엄치고 장난을 쳐대며 깔깔거린다. 그들의 웃음이 햇살 가득한 하늘, 소나무 숲 사이로 멀리 퍼져가고 있다. 해외로 갈 것도 없이 또 바다를 찾아 밀리는 도로를 달리는 대신 집에서 식구들끼리 저렇게 마음 편히 안전하게 쉬는 것도 참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주말 뉴스에는 ‘가잼비 갑’이라는 브랜드들이 눈길을 끈다. 가격보다는 재미(가잼비)를 중시해 출시한 것들이다. 간 기능 개선제 약물인 ‘우루사’와 남성복 전문 브랜드인 ‘지이크’가 뭉쳐서 우루사 곰이 그려진 슬리퍼, 양말, 티셔츠 등을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제품을 구매하면 ‘실내복’이라 적힌 커다란 약봉지에 상품을 담아 준다고 하니 그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가. 예전 같았으면 우루사 곰이 그려진 옷을 입고 나가면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으리라. 심지어는 관종(관심 종자)란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 않았으랴 싶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흥미를 많이 끄는가 보다. SNS에서는 ‘이것 입고서 나의 피로가 확 날아갔으면 좋겠다. 올해 받은 선물 중에서 최고’라는 인증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코로나와 더불어 세상은 끝없이 변해갈 것 같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신세계를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에서 협업을 잘해야 신선하다고 주목받고 있는 달라져도 많이 달라진 세상이다. 젊은이들은 세상에 없던 이런 것들을 재미있는 놀이처럼 받아들인다고 하니 코로나가 가져온 뉴노멀에서 잘 적응해가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서도 어떻게든 재미있는 세상이 되도록 늘 새로운 눈으로 즐겨볼 거리를 잘 찾아봐야 하리라.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