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을 무소속 주성영 예비후보 “구암동 고분군 · 팔거산성 역사테마 공원 조성하겠다”

무소속 대구 북구을 주성영 예비후보의 공약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주 예비후보는 최근 북구 교육 발전 공약에 이어 24일 “구암동 고분군과 팔거산성의 창조적 복원을 통해 역사 테마 공원으로 조성하고, 일원에 철쭉. 진달래. 해바라기 군락지도 함께 조성, 금호강과 연결된 함지산 전역을 힐링테마공원화 함으로써 북구를 대표할만한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 고 약속했다.주 예비후보는 “지역 내 역사 문화유산들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지속 가능한 문화관광 인프라로 조성하고, 지역 상권 등과 연계한 음식 , 서비스 산업 기반 확대,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 활성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게 만들 것” 이라며 이를 위해 △ 역사문화거리 조성 △ 전시관 설치 △ 팔거산성 복원 △ 고분박물관 △ 학술대회 개최 △ 야외공원 △ 문화축제 등 다양한 발전책을 제시했다.주 예비후보는 또 “문화유산을 자원으로 활용할 때 지역의 경제발전과 활성화를 도모 할 수 있어며 또한 지역의 정체성을 높이고 존재가치도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보존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좀 더 일반인들에게 다가가고 생활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문화재 활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관광자원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역사의 도시, 문화의 도시,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한편 구암동 고분군은 대구를 대표하는 삼국시대 중요 유적으로 지역 내 함지산 서쪽 능선에 346기의 대규모 고분군으로 영남에서는 보기 힘든 적석 석곽 구조로 2018년 사적 제544호로 지정되었고, 고대역사문화 체험 특구로 지정된바 있다.또 팔거산성은 5~6세기 삼국시대 축조된 성곽이다. 조선시대 팔거현이라 불렸던 지역에 위치해 있던 까닭에 팔거산성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대구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돼 있다.이창재 기자 lcj@idaegu.com

경주 조선시대 관아건물 경북도문화재로 지정

==경주문화원 부지 내 조선시대 경주부 관아 건물인 내아(왼쪽), 부사(가운데), 양무당 등이 경북도문화재 제177호 기념물로 지정됐다.==경주문화원 부지 내 조선시대 지어진 100년 이상된 건축물 3동이 경북도문화재로 지정됐다.경주시는 최근 ‘경주부 관아 건물’이 경북도문화재 제177호 기념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경주부 관아 건물인 내아·부사·양무당 등 3동의 건물은 18세기 말에 제작된 ‘경주읍내전도’와 ‘동경통지’에서 실재(實在) 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적어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건축물이다.부사와 양무당은 옮겨 세워졌지만 원형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내아는 창건된 이래 현재의 위치에서 큰 변모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래 1975년까지 경주박물관 건물로 활용됐다는 근대적 의미까지 더하고 있다.경주부 관아건물은 지방문화원진흥법에 의거 현재 경주문화원이 관리하고 있다. 내아·부사·양무당은 현재 향토사료관, 도서실, 민속품 수장고로 운용되고 있다.경주시 관계자는 “1986년 12월 경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된 경주문화원 내 ‘경주 동부동 은행나무’와 이번에 지정된 경주부 관아 건물은 도지정 문화재로서 가치를 지키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존관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경주읍성터에서 신라시대 팔부중상 발견

경주읍성 복원정비를 위한 문화재발굴 과정에서 신라시대 석탑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팔부중상이 발견됐다. 신라시대 팔부중상이 성벽의 석재로 재활용된 사례로 당시 시대적 사상에 대한 중요 연구자료로도 눈길을 끈다.경주시는 한국문화재재단과 추진 중인 경주읍성 복원정비 사업 부지에서 유적 발굴조사 중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벽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사용된 팔부중상 면석 3매가 기단석으로 재사용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팔부중은 부처의 설법 청중을 구성하는 다양한 무리 중 하나다. 인간 이외의 다양한 존재를 일컫는 집합적 용어다.팔부중상 면석은 다른 나라 탑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고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창안된 독특한 부조상이다.팔부중상이 부조된 탑재 3매는 경주읍성의 동문(향일문) 및 성벽의 북쪽구간으로 북벽으로 연결되는 5구간의 체성 벽에 덧대어 있는 치성의 가장 아래인 기단석으로 사용되었다.팔부중상이 부조된 면석 3매는 치성 기단의 북쪽과 동쪽 모서리를 연결하며 놓여 있다.기단석에는 팔부중상의 면석 이외에도 탑 부재들과 건물터의 주초석 등이 사용되었다. 팔부중상의 부조 면이 위로 보며 놓여 있기 때문에 치성이 축조되었을 당시에는 그 위로 많은 석재가 올려져 있어 성벽 외부로 상이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팔부중상 면석 3매에는 각 1매에 1쌍의 팔부중상이 부조되어 있다. 이번에 출토된 팔부중상은 서탑의 서쪽(천/가루라)에 사용되는 면을 제외한 북쪽(긴나라/마후라가), 남쪽(아수라/건달바), 동쪽(야차/용)에 사용하는 3면의 면석이다.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팔부중상이 부조된 석탑 및 탑재 중에서 동일한 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경주읍성은 고려시대 축조됐다. 팔부중상이 발견된 구간의 치성은 발굴조사를 통해 체성과는 별도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된다. 문헌기록을 통해 조선시대 세종(1418~1450년)연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박종섭 한국문화재재단 팀장은 “치성이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볼 때 팔부중상 석탑재가 성벽의 석재로 사용됐다는 것은 당시의 사상적 배경과 불교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 ‘새로 쓰는 목민심서’ 출판기념회

대구 수성갑 총선 예비후보인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이 신간 ‘새로 쓰는 목민심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일시 및 장소는 오는 20일 오후 2시 그랜드호텔 다이너스티 홀이다.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은 재임 시절부터 2014년 ‘역동하라 대구경제’, 2017년 ‘실사구시에서 답을 찾다’ 등 도서 출판과 언론 기고, 강연회, ‘대구 쫌 아는 형님 이진훈TV'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현안과 도시경영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다. ‘새로 쓰는 목민심서’는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이 39년의 공직경험 속에 체득한 도시경영자의 업무철학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양서적으로 풀이해낸 책이다.이 전 청장은 이 책에서 도시경영의 원칙과 방법, 문제와 해결 방안, 도시경영자에게 요구되는 소양과 역할 등을 조선시대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과 저서 ‘목민심서’를 해설하면서, 오늘날 실정에 맞게 현실감 있고 꼼꼼하게 제시하고 있다. 출판사 측은 서평을 통해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 자신이 직접 경험한 많은 사례들을 ‘목민심서’와 비교해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일하거나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 특히 도시경영의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실전형 교과서로 권할 만하다고 밝혔다.한편 일찌감치 2020 총선 수성갑 출마가 유력시 되던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은 지난 17일 자유한국당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범어네거리에 사무실을 개소하는 등 본격 선거준비에 돌입했다.이진훈 전 수성구청장은 “재미있는 토크쇼도 하고 아마추어 성악가 공연도 곁들여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며 “심혈을 기울인 ‘새로 쓰는 목민심서’가 “우리나라 정치를 새로 쓰는데 작으나마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재 기자 lcj@idaegu.com

신라 이후 구미 불교의 변화…신라 불교문화 가장 먼저 자리잡은 곳 고구려 승려와 세력가 합심해 전했다네

‘조선의 인재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 반은 선산(구미)에 있다.’구미가 조선시대 성리학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유교문화가 가장 먼저 발달한 지역이다.하지만 이보다 훨씬 앞서 신라에서 불교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새로운 문화, 외래문화에 대한 포용력을 지닌 곳이다.유교문화의 번성으로 불교문화의 흔적은 많이 사라졌지만 구미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종단 불교의 번성지로 한국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미에는 많은 불교 문화재가 남아있다.본보는 지난해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의 불교 전파 과정과 신라시대 창건한 여러 사찰 및 문화재 등을 소개한 바 있다.이번에는 고려, 조선시대 구미지역 불교의 특성과 부침, 사찰 등을 둘러보는 기회를 갖는다.◆불교와 구미, 개략구미, 옛 선산은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연원지다. 이보다 앞서 신라 불교의 초전지로, 고려시대에는 종단 불교의 번성지로 한국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불교가 고구려에서 신라에 처음 전파될 때 모례(毛禮)의 후견으로 처음 전래된 지역이었고, 승려 아도(阿道)에 의해 도리사가 세워졌다.이후 구미지역에는 도리사가 있는 도개면과 선산, 금오산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찰이 생겨나며 신라불교의 성지로 자리했다.고려시대는 대각국사 의천을 따르는 제자들이 입산한 천태종 육산문의 하나인 남숭산문 선봉사와 고려 말 해인사에 있던 실록을 한때 보관한 득익사, 화엄승 혜각이 하산했던 주륵사, 고려 후기 유가종의 미수가 출가하고 후에 미수의 제자들이 따라 머물렀던 원흥사, 고려 말 화엄승의 법손이 입산했던 수다사 등 중요 사찰이 있다.이에 비해 억불숭유 정책이 실시됐던 조선시대의 사찰은 주로 승병과 관련한 기록이 전한다.수다사와 대둔사는 사명대사가 의승을 결집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근대 들어서는 해운사와 봉죽사, 원각사, 금강사 등이 창건됐다.◆고려 이전의 구미 불교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신라에서 가장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곳은 구미시 도개면 도리사 일대이다.고구려 승려 아도가 이 지역 세력가인 모례의 후원을 받아 불교를 전하고 도리사를 창건했다(신증동국여지승람 도리사조)고 전한다.여기에서 아도는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전도승을, 모례는 전도승을 숨겨주고 거처까지 마련해준 후견인의 대명사로 추정된다.아마도 모례는 고구려 문물을 일찍 접하고 신라 왕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당시 불교를 받아들일지를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왕실이었기 때문에 일선(선산)의 모례는 후견 세력으로 볼 수 있다.도리사 인근인 고아읍 봉한리 한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82호)과 금동보살입상(국보 제183·184호), 도리사 세존사리탑에서 발견한 금동육각사리함 등은 도리사 일대가 신라와 통일신라 시대를 거치며 불교 성지로 자리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려시대 구미 불교불교가 현재와 같이 종단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고려시대라고 할 수 있다. 불교 학자들은 5교9산이 신라시대에 형성됐다고 하나 중국에서처럼 뚜렷한 특징을 갖추지 못했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려시대에 와서야 정착됐다는 것이 흥왕사 대각국사묘지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 대각국사묘지에는 계울종과 법상종, 열반종, 법성종, 원융종, 선적종(선종) 등 6종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여기에 대각국사가 개성 영통사에서 천태종을 열면서 사실상 7종이 성립됐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 견해다.이곳에 대각국사비가 있는 데 같은 대각국사비(보물 제251호)가 구미 금오산 남쪽 기슭 선봉사(선봉선원)에도 남아 있다.현재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옛 선봉사는 대각국사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규모가 매우 큰 도량으로 현 대각국사비가 서 있는 곳보다 아래쪽에 있었다고 한다.이곳은 우리나라 천태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성지로 대각국사가 머물렀던 시기에 인근에 수백 개의 사찰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금오산은 중국 5대 산 가운데 하나인 숭산(남숭산)으로 불리기도 했다.최현이 쓴 일선지에는 보봉사와 대혈사, 동양사, 약사전, 전종사, 보제사 등이 있었다고 기록했으며, 한 발굴조사에서 진남사 등 18곳의 제법 규모가 큰 사찰 흔적이 나타나는 등 금오산은 계곡마다 물소리와 목탁소리가 끊어질 날이 없었다.신라때 가장 먼저 불교가 전해졌던 도개면 도리사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불교문화는 선산을 거쳐 구미에서 가장 높고 신성시됐던 금오산으로 성지를 점점 넓혀갔던 것으로 추정된다.대각국사가 입적(1101년)하자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곳곳으로 흩어졌다가 인종 15년(1137년) 순선과 교웅, 유청 등 제자들이 뜻을 모아 남숭산(금오산) 선봉사에 대각국사비를 세우고 다시 산문을 결집했다.이 대각국사비는 선봉사가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에 의해 전소된 후 자취를 감췄다가 1922년 유장렬이라는 사람이 선몽을 꾸고 이곳을 찾아 발견했다고 한다.비문은 당대의 문장가 임존이 짓고 덕린이 글씨를 썼다고 전하는데 높이만도 3m를 훌쩍 넘는 고승 탑기 중 가장 오래된 비이다.비문의 이름은 ‘천태시조대각국사비명’으로 이름 옆으로 봉황과 구름 무늬가 있다.내용은 앞면에는 대각국사의 생애와 송나라 유학을 통한 구법 활동, 천태종 확립 과정을 담았다. 뒷면에는 천태종의 개창과 비를 건립한 과정, 대각국사의 천태종 주요 제자와 문도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앞서 대각국사 의천의 비가 개성 영통사(화엄종)에도 있다고 했는데 이 비에는 제자 명단에 화엄종 승려들만 기록돼 있다고 한다.선봉선원을 지키고 있는 대안 스님은 “개성 영통사와 남숭산 선봉사 대각국사비는 다른 비와는 달리 해석으로 만든 비석이다”며 “해주 어디 바다의 흙이 굳어 만들어진 것으로 남숭산 대각국사비는 바다에서 만든 후 서해를 따라 남해로 온 후 낙동강을 따라 이곳 남숭산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선봉사에 비해 구미시 도개면에 있는 원흥사는 법상종의 또 다른 이름인 유가종과 관련된 사찰이다.고려 후기 유가종단이 배출한 국사 3명 가운데 한 고승인 미수의 비문에 따르면 원흥사는 미수가 출가하고 그의 첫째 제자가 머물렀던 사찰이라고 한다.이 시기 원흥사는 유가종단의 중요 사찰인 중앙 지역의 숭교사, 중부권 지역의 장의사·중흥사·흥덕사·법주사, 남부권 지역의 유가사·동화사·불국사·기림사·남백월사 등을 이어주는 낙동강 수계상의 사찰로 요충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구미시 도개면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원흥사는 이규보의 시에도 등장한다. 그가 남쪽을 유람하고 남긴 51수의 시 가운데 12수가 원흥사와 관련이 깊다.이규보의 시에 나타난 원흥사는 낙동강에 접해 있고 많은 돛배가 모여들던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폐허가 됐다.원흥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주초석과 기와 파편, 탑 받침돌 등이 널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대부분 논이나 밭이 됐다.이 밖에 백마산(지금의 청화산) 아래 주륵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고려시대 학자 안진이 지은 화엄승 혜각의 비문이 있었다고 전한다.비문을 적은 안진이 충선왕 5년인 1313년에 과거에 급제한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비문이 새겨진 것은 그 이후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비문에 혜각이 국사와 왕사에 추증된 것으로 미뤄 주륵사는 국사나 왕사의 제자나 문도들이 장악했던 것으로 짐작된다.따라서 이 주륵사를 중심으로 화엄종이 번성했을 것이다. 이를 짐작게 하는 것이 국내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주륵사 폐 탑이다.번성했던 주륵사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부사 이길배가 남관을 지으면서 각종 부자재를 가져가면서 폐사되고 오늘날 폐 탑만이 그 자리를 쓸쓸히 지키고 있다.◆조선시대 구미 불교앞서 구미가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연원지라고 소개한 바 있다. 물론 조선은 불교의 폐단을 막는다며 억불숭유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그 결과 태종 6년(1406년)에 242곳으로 전국의 사찰 수를 줄이더니 세종대에 이르러서는 36곳만 남기고 모두 폐사했다.영남학파의 연원지인 구미에서의 불교 위상이 어떠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폐 탑의 크기로 미뤄 신라시대 최대 규모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백마산 주륵사는 부사 이길배가 남관을 짓기 위해 가져가고 인근 지방 유력자와 마을 주민들도 기와는 물론 비의 받침돌도 가져갔다.하지만 조정의 억압 속에서도 몇몇 사찰과 불교문화는 민중의 생활 속에 파고들어 훼철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했다.호조판서를 지낸 조선전기 학자 김수온이 쓴 ‘수다사상전기’에 따르면 화엄승통 화옹과 그의 제자들인 해유와 성관, 학의 등이 수다사에 머물렀다. 학의는 수다사에 장년춘추수륙지보를 설치하고 효령대군의 지원도 받았다.수다사는 대둔사와 함께 임진왜란 당시 1만여 승려가 모여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던 곳이다.또 조선 중기 문신으로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인재 최현이 쓴 일선지에 따르면 죽장사, 미봉사, 수다사, 대둔사, 납석사, 접성사, 보봉사, 동양사, 약사전, 도리사, 금당암, 숭암사, 백운암, 문수사, 석수암, 중애사 등이 그가 선산부사로 있을 당시까지 폐사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우리동네 자랑 경주(4)북부

경주 북부지역의 문화관광 형태는 다른 지역과 판이하다. 다른 지역은 신라시대 역사적 문화자원이 풍부한 데 비해 북부지역은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을 비롯 대부분이 조선시대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게 특징이다.경주 북부지역은 경주시가지와 형산강을 경계로 구분되는 현곡면과 안강읍, 그리고 포항과 연결되는 강동면, 보문단지와 연접한 천북면 등 4개 읍·면 지역으로 나뉜다.안강읍의 옥산서원, 강동면의 양동마을, 천북면의 운곡서원, 현곡면의 용담정 등이 대표적인 문화관광자원으로 소개되고 있다. 모두 조선시대 문화유적이다. 1.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최근 등록됐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 5년(1572)에 경주 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다. 다음해에 임금이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내려 사액서원이 됐다. 공부하는 장소인 구인당이 앞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체인묘가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전통적인 향교 형식이다. 옥산서원 유물관에는 이언적의 수필고본(보물 제586호)과 김부식의 삼국사기(국보 제322-1호) 50권 9책 완결본 등 많은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옥산서원은 훼철되지 않았다.2. 독락당(보물 제413호)회재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건물이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어졌다.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으로 최근 건축법에도 종종 이용되고 있다. 독락당 동쪽에 자계천에 접해 지은 계정과 함께 자연 속의 하나로 사계절 운치가 그만이다.3.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 제40호)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이다.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 위에 13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이 거대한 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 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구조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4. 양동마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월성손씨와 여강이씨에 의해 형성된 마을로 360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고색창연함을 자랑하고, 조선시대의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됐다. 2010년 7월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역사마을로 등록됐다. 국보, 보물, 중요민속자료, 유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문화재자료, 향토 문화재 등 문화재가 밀집해 있다.5. 관가정청백리로서 조선 성종~중종 때 우재 손중돈 선생이 손소공으로부터 분가해 살던 양동마을 월성손씨 종갓집이다. 격식을 갖추어 간결하게 지은 우수한 주택건축이며 한 눈에 들어오는 형산강과 경주를 품어 안는 경관이 일품이다. 관가정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이다.6. 운곡서원안동권씨 시조인 고려 공신 태사 권행과 조선시대 참판 권산해, 군수 권덕린을 배향하기 위해 1784년(정조 8)에 건립했다. 고종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1976년 신라 밀곡사 터로 추정되는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청수골에 복원했다. 절경을 이루는 600년 된 은행나무 옆에서 매년 가을음악회가 열려 전국에서 전문 작가들이 몰려들어 장관을 이룬다.7. 종오정종오정 일원은 조선시대 영조 때 학자인 최치덕의 유적지이다. 최치덕이 영조 21년(1745)에 돌아가신 부모를 제사지내려고 일성재를 짓고 머무르자 그에게 학문을 배우고자 따라온 제자들이 종오정과 귀산서사를 지었다. 종오정에는 연꽃이 가득하고, 주변에는 향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가 아름답게 우거져 있어 우리나라 정원유적의 표본이 된다.8. 소리지와 왕신예술촌경주시 천북면 성지리 552에 있는 저수지다. 소리못, 성지지(성지저수지)라고도 불린다. 마을이름도 성지리이지만 소오리, 소리라고도 부른다. 못 둑에 카페가 문을 열어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주변에는 화산 불고기단지, 왕신예술촌 등이 자리해 문화예술을 즐기는 사람들과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9. 용담정용담정은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포교활동을 벌이며 인간 절대평등의 가르침을 담은 용담유사를 저술한 곳이다. 최제우는 ‘사람마다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 사상으로 동학을 창시해 가난한 민중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근대사의 사상가이자 동학교주로 추앙받았다. 국립공원지역으로 최제우 생가복원사업을 비롯해 성역화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용담정 일대가 공원으로 사계절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진다.10. 나원리오층석탑탑의 색이 사계절 흰색을 띠고 있어 ‘백탑’으로도 불린다. 이 때문에 신라 8괴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신라석탑으로는 장항리 사지석탑과 함께 유일하게 5층 구조다. 규모 또한 감은사지 삼층석탑, 고선사 삼층석탑 다음으로 크다. 1996년 탑에서 금동사리함이 출토됐다. 사리함에는 정교한 3층 금동탑, 9층 금동탑, 불상 1구와 부식된 나무탑 등이 나왔다. *경주 북부: 안강읍, 현곡면, 강동면, 천북면-안강읍: 안강, 양월, 육통, 노당, 산대, 옥산, 하곡, 강교, 두류, 근계, 감산, 대동, 검단, 사방, 청령리-현곡면: 금장, 상구, 하구, 가정, 남사, 내태, 무과, 소현, 오류, 나원리-강동면: 모서, 호명, 오금, 왕신, 국당, 유금, 인동, 양동, 안계, 다산, 단구리-천북면: 동산, 덕산, 신당, 모아, 오야, 물천, 갈곡, 성지, 화산리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초오' 달여먹은 노인 숨져… 두 번 죽이는 '민간요법' 어떤게 있나

오늘(19일) 광주 서부경찰서는 지난 17일 오후 7시께 서구 한 아파트에서 A(81)씨가 민간요법으로 '독초'인 '초오(草烏)를 달여 먹었다가 구토 등 중독 증상을 보였다고 전했다.A씨는 함께 살던 아들이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치료 도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초오는 뿌리에 강한 독이 있어 아주 소량으로 먹었을 때에는 신경통과 관절염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조선시대에는 사약재료로 사용됐을 정도로 위험하다.허리디스크 수술 후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A씨는 가족들이 독초를 이용한 민간요법을 만류할 것이라는 생각에 몰래 달여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초오 외에도 민간요법으로 발생하는 사고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무분별한 야생버섯 채취로 인한 각종 사고이다.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버섯은 약 1,900여종으로 이 중 식용버섯은 약 400여종에 불과하다. 특히 독버섯인 개나리광대버섯은 식용인 노란달걀버섯과 독버섯인 붉은사슴뿔버섯은 식용인 영지버섯과 모양이 비슷해 큰 주의가 필요하다.online@idaegu.com

봉화군 청량산도립공원 고려시대 전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 확인

봉화군 청량산도립공원에 고려시대 전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확인돼 학계와 문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청량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는 지난 5월부터 청량산 소재 중요 문화유적의 효율적인 보전과 정비를 위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청량산 김생암지(230㎡)에 대한 문화재 정밀발굴조사를 벌였다. 이번 발굴조사 결과, 김생암은 자연암반을 굴착해 만들어진 바위그늘 아래에 인공축대와 기단을 쌓아 조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형태의 암자유적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경우로, 그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조사대상지 내에서는 토기편, 자기편, 막새, 암키와편, 수키와편 등 고려시대 전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확인됐다. 특히 ‘淸凉(청량)’과 ‘山寺(산사)’라고 새겨진 명문기와를 비롯해 ‘金生寺(김생사)’로 추정되는 기와편이 발굴돼 조선시대 주세붕의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이나 신후재의 ‘유청량산기(遊淸凉山記)’등의 문헌 속의 김생사에 대한 역사적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추정되고 있다. 봉화군 청량산도립공원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金生寺’ 명문기와에 대한 정밀한 판독과 함께 유적성격 및 조성 배경에 대한 연구를 심화할 계획”이라며 “청량산 문화유적에 대한 추가 조사도 연차적으로 진행해 청량산이 경북을 대표하는 산림 문화유산으로 대내외에 인식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박완훈 기자 pwh0413@idaegu.com

고산도서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노래 전통 특강

대구 고산도서관은 오는 8일 '길위의 인문학- 놀이가 역사가 된다' 프로그램으로 계명대 박미경 교수 강의를 마련했다.이날 오후 2시 진행되는 이번 강연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노래전통'을 주제로 가곡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꾸며진다.문의 053)668-1930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우리동네 자랑-칠곡군

호국 평화의 도시인 칠곡군은 구미~칠곡~경산을 잇는 첨단산업 벨트의 중심지다. 낙동강 연안에 대규모 산업단지인 왜관 1·2·3 산업단지와 농기계특화농공단지가 들어서 일자리가 풍부한 인구 12만의 도농복합도시다. 이와 더불어 대규모 거점 물류시설인 영남권 내륙화물기지와 현대자동차 복합물류센터 등이 입주해 있어 전국제일의 물류 중심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경부선철도와 경부·중앙 고속도로, 국도 5개 노선이 통과하는 등 도로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자랑거리가 무궁무진하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및 다부동 전투의 현장으로 우리나라를 살린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한 역사적인 곳이다. 최근엔 평생학습 도시이자 인문학의 도시로 정착했다. 2004년 11월 칠곡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됐으며, 2005년 초에는 전국지방자치단체로서는 최초로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학점기관으로 승인받아 칠곡 평생학습 군립대학을 운영해 오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대상’에서 문화교육 선도도시 부문 6년 연속 대상을 받는 등 전국 최고의 인문학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1. 신유장군유적지(약목면)조선 효종 때 무신인 신류(1619~1680)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신유장군은 1658년 청나라의 원병요청으로 만주의 흑룡강까지 출병하는 우수한 전투능력을 기반으로 러시아의 부대를 격파함으로써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1982년 경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됐다. 2. 노석리 마애불상군(기산면)통일신라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거대한 바위 면에 얕게 마애불상들이 새겨져 있다. 중앙에 본존불과 본존불을 향하고 있는 좌우 협시보살이 표현된 삼존불 좌상으로, 오른쪽 협시보살 옆에 작은 불좌상이 하나 더 배치된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3. 호국 평화기념관(석적읍)6·25전쟁 당시 북한군 공격에 대한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55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기념관으로 칠곡의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다. 전시관과 체험관, 4D 상영관을 둘러보며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이 되고 있다. 4. 송정 자연휴양림(석적읍)기반산 아래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다양한 수종이 빼곡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완만한 등산로가 안전하게 잘 갖추어져 있고 숙박을 할 수 있는 숙박 동, 캠핑이 가능한 데크까지 보유하고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다. 5. 가산산성(가산면)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조선시대의 석축 산성이다. 자연지형을 이용해 산성을 쌓았는데 내성, 중성, 외성이 시대별로 다른 시기에 축성돼 조선시대의 건축기법을 시대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1971년 사적 제216호로 지정됐다. 6. 양떼목장(지천면)한우와 면양, 유산양, 타조 등을 함께 사육하고 있으며, 양에게 먹이를 주면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체험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넓고 푸른 대자연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7. 신나무 골 성지(지천면)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모였던 신자 촌이다. 사제관, 명상의 집, 신나무 골 학당 등을 복원해 신자들의 재교육의 장이 되고, 순례객들이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성지로 완공됐다. 연중 천주교 신자들이 순례행사로 순교 정신을 기리고 있다. 8. 송림사(동명면)통일신라 시대의 전탑이 남아 있어 9세기 이전에 창립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대웅전의 내부에는 석가삼존불좌상이 봉안돼 있으며 1959년 전탑 해체복원 발굴 당시 부처님의 진신사리 4과가 청 유리병에 봉안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9. 매원마을(왜관읍)조선시대 당시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3대 반촌으로 전해져 오는 전통마을이다. 최대 번성기에는 400여 채의 가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6·25 전쟁 당시 마을이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는 고택 60여 호가 남아 있다. 10. 호국의 다리(왜관읍)한국의 역사와 함께 변천한 다리로 현재는 인도교로 쓰이고 있지만, 원래는 일본이 대륙침략을 위해 부설한 경부선으로 연장 469m, 폭 4.5m 트러스 철도교량이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폭파와 복원을 거듭하는 등 많은 한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리이다. 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물럿거라, 경상감영 수문장 나가신다

이달부터 대구 경상감영에서 400년 전 풍속재연행사가 열린다.8일 대구시에 따르면 오는 20일부터 10월(7~8월 제외)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중구 경상감영 공원에서 풍속 재연행사를 진행한다.행사는 조선시대 영남지역의 정치·경제·군사·교통의 중심지인 경상감영에서 전통문화의식 재연과 다채로운 체험이 마련된다.본 행사는 오후 2시 타종군 행차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종 또는 북을 이용해 시간을 알려주던 경점시보의식(타종행사), 수문장 교대의식, 취타대 공연, 전통무예 시범 등으로 진행된다.시민과 관광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약식 경정시보(타종행사), 전통복식 착용 및 기념사진 촬영, 민속놀이 및 형벌도구 체험장 등도 마련된다.올해는 시민의 관심을 유도하고 청년들의 참여를 위해 경상감영 공원을 벗어나 전통병영의식을 하는 군사들이 동성로까지 행차한다.앞서 지난 6일에는 사전홍보행사로 경상감영공원 선화당에서 지금의 성년식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관혼상제의 첫 번째 의식행사인 성년례를 약식으로 개최했다.대구시관광협회는 홈페이지(www.daegutravel.or.kr)를 통해 경상감영 풍속 재연행사의 안내와 타종체험 신청자를 접수한다.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경상도를 관할하던 감영으로 지금의 도청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김호섭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올해는 2020 대구·경북 관광의 해를 맞아 전통문화를 알리는 대구 관광 상설프로그램으로 구성돼 1천만 관광객유치 목표에 발돋움하고 관광 트렌드에 맞게 전 연령대의 다채로운 전통체험을 늘려 진행한다”고 설명했다.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영주선비전통음식연구원, ‘식치원’ 개원-새로운 전통음식을 선보인다.

영주시 영주동에 위치한 전통‧향토 음식체험교육관 요선재가 ‘식치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새로운 전통음식을 선보인다. 4일 영주시에 따르면 ‘식치원’은 선비의 고장 영주의 의·식·주의 문화를 포괄하고 선비 사상과 음식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지난 한 달간 시험운영을 마치고 영주선비전통음식연구원이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식치원’은 밥이나 죽의 형태를 살려 우리 선조들의 식생활과 전통의학을 연관 지어 경험에서 나온 ‘이석간경험방’과 조선시대 최초의 국립 의약소의 제민루를 하나로 콘텐츠화해 경북 선비 음식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영주 식문화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식치’는 조선시대 왕실을 중심으로 한 궁중음식의 ‘식료찬요’에서 찾을 수 있으며, 조선 왕실의 식치가 백성의 식치로 보급된 계기가 바로 제민루에서 제민사상을 펼쳤던 유의 이석간의 경험방에서 그 근간을 찾을 수 있다. 최근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음식의 재현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 ‘이석간경험방’을 중심으로 한 영주의 ‘식치’는 단순히 음식을 재현하는 음식복원의 차원을 넘어, 사람의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음식의 식치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식치원은 영주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연령별, 성별, 체질별로 54가지의 죽과 밥의 메뉴로, 식재료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관계로 예약제(054-630-5636)로 운영하고 있다. 영주시 관계자는 “향후 대한한의학연구소, 경인교대 등과 교류협력을 통해 식치콘텐츠 기반을 조성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식치아카데미를 열어 음식문화해설사 양성과 경험방연구회를 통한 인력양성 등 한발 앞서가는 음식 행정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주은 기자 juwuer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