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박물관, 조선의 내비게이션, 도리표 특별기획전

옛길의 노선과 거리를 알려주는 ‘도리표’를 단일 주제로 한 전시회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문경에서 열린다옛길박물관은 31일 ‘조선의 내비게이션, 도리표’ 특별기획전을 개막한다.이번 전시는 서울과 각 지방 사이의 거리를 정리한 ‘도리표’라는 유물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다.‘도리표’는 조선시대 간선도로망 등 옛길의 노선과 거리를 알려주는 지금의 내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했다. 전시는 도리표의 역할과 역사적 배경과 주막 관련 콘텐츠를 체험할 수 체험공간 등 다섯 개의 섹터로 나뉘어 열린다.특히 도리표와 지도, 내비게이션을 이용한 지도활용 콘텐츠는 이번 전시의 백미다.또 내비게이션 수십 대를 매립해 직접 내비게이션을 찍어 볼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만들어져 있다.옛길박물관 관계자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콘텐츠 업그레이드를 통해 문경새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

국립대구박물관…우리조상들의 역병 극복의지 엿보는 ‘조선, 역병에 맞서다’ 전시

‘두창’, ‘온역’, ‘홍역’.지금은 용어도 생소한 질병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이런 역병을 이겨냈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전시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린다. 코로나19로 전국이 열병을 앓고 있는 가운데 우리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국립대구박물관(이하 박물관)이 다음달 2일까지 ‘기획전시실1’에서 진행하는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는 우리 조상들의 삶과 지혜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전시다.1부 ‘조선을 습격한 역병’에서는 조선시대 유행했던 대표적인 전염병들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소개하고 역병에 희생된 사람들과 역병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천연두나 마마로 불리는 ‘두창’으로 죽은 아이들의 묘지명, 조선 중기의 예학자 정경세(1563~1633)가 두창에 감염돼 죽은 아들을 기리며 쓴 제문 등이 당시 전염병의 참상과 슬픔을 고스란히 전해준다.또 이번에 함께 전시된 1774년(영조 50) 제작된 ‘등준시무과도상첩’에는 김상옥·전광훈·유진하 세 사람의 초상화에서 두창의 흉터(곰보)가 확인된다. 책에 수록된 18명 가운데 3명의 얼굴에 흉터가 남아 있을 만큼 만연했던 두창은 당시 극복하기 힘든 무서운 전염병이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병을 이겨낸 희망의 메시지도 전해준다.2부 ‘역병 극복에 도전하다’에서는 17세기 초 ‘온역’과 18세기 ‘홍역’ 등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에 대응한 조선 조정의 노력을 조명한다.허준박물관 소장자료로 이번에 전시된 ‘신찬벽온방’(보물 1087호)은 1613년 광해군의 명으로 허준이 편찬한 의서로 1612년부터 1623년까지 조선 전역을 휩쓴 온역에 대응한 일종의 응급지침서다. 이 책은 전염병의 종식을 위해서는 통치자의 반성과 함께 공동체가 고통을 분담해 대처하는 인술이 필요함을 역설했다.또 ‘동의보감’, ‘언해두창집요’에서는 허준이 두창의 발병에서부터 완치까지 단계별 임상 증상, 치료 방법, 탕약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를 통해 당시 만연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처하고자 한 허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뿐만 아니라 흉년과 전염병으로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긴급 구호 명령인 ‘자휼전칙’은 전염병의 공포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공동체 의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조상들의 지혜를 보여준다.마지막 3부 ‘신앙으로 치유를 빌다’에서는 전염병의 공포를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살펴본다.여기서는 조선시대 내내 두려운 존재였던 두창이 고귀한 신으로 받들어져 ‘호구마마’, ‘호구별성’ 등 무속의 신이 되는 과정도 보여준다. 괴질이 돌 때 큰 역할을 한다고 여긴 ‘대신마누라도’, 전란과 역병 같은 국가적 재앙에서 백성을 구원해 준다는 ‘석조약사여래좌상 ’ 등도 선보인다.국립대구박물관 함순섭 관장은 “전염병은 끔찍한 공포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큰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며 “지금보다 더 참혹했을 역병 속에서도 삶을 살아 낸 그리고 그 공포를 적극적으로 함께 이겨내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의지를 이번 전시에서 확인하는 기회”라고 소개했다. 문의: 053-768-6054.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조선 정조 때 '독도에 영토비 건립 건의' 사료 발견

조선 정조 때 독도에 영토비 건립을 건의한 사료가 발견됐다.10일 경북도에 따르면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회장 염정섭·한림대 교수)가 올해 과제 수행 중에 정조 연간에 예조 정랑인 이복휴(1792~1800)가 독도에 영토비를 세우자고 건의한 기사를 찾아냈다.이번에 새로 발굴한 사료는 ‘승정원 일기’와 ‘일성록’ 정조 17년(1793년) 10월1일자 기사다.기사에는 우산도를 ‘울릉외도’라 칭하고 우산도에 영토비를 세워 우리 땅임을 증명하자고 건의한 내용이다.이번에 발굴한 자료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정조 17년(1793년) 10월1일 자 기사로 이복휴가 우산도를 ‘울릉외도(蔚陵外島)’라 칭하고 영토비를 건립해 우리 땅임을 증명하자는 내용이다.이복휴는 승정원일기에서 “승정원일기에는 울릉외도는 그 이름이 송도(松島)로 바로 옛날의 우산국입니다.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나무사자로 섬사람들을 겁주어 항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만일 송도에 비를 세워 이사부의 옛 자취를 기술한다면 그 섬이 우리나라 땅임을 증빙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적었다.주로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기인 일성록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연구회 소속 유미림 박사는 이복휴가 말한 울릉외도가 오늘의 독도를 가리키며 우산국은 동국문헌비고(1770)에서 울릉도와 우산도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기록한 것을 근거로 작성한 것으로 보았다.또 송도는 당시 일본인들이 우산도를 부르는 홍칭으로, 울릉외도가 바로 송도라 했으므로 울릉외도=송도=우산도 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했다.그러면서 유 박사는 울릉외도는 이복휴에 와서 처음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우산도보다 울릉도의 속도임을 잘 드러낸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이복휴의 독도 영토비 건립 제안은 수용되지 않았다.유 박사는 “수토(搜討)제가 정착돼 울릉도 및 속도에 대한 영유권이 확립돼 있었다고 인식한 결과”라고 주장했다.유 박사는 이 사료에 대해 △울릉외도라 칭해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도서임을 분명히 드러낸 점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예상하고 대응책을 강구하려 했다는 점 △조선 관료가 영유권 확립을 구상한 것은 정부가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사례라는 점 등을 의의로 꼽았다.한편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는 2010년 발족해 지난해까지 일본사료 21편을 번역·출판했다. 올해부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등 국내 사료 번역을 시작했다.서장환 경북도 독도정책과장은 “이번 사료는 조성의 왕과 관료가 우산 즉 독도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최근 이영훈 교수가 조선왕조는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내용을 전면 반박할 수 있게 됐다”며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연구활동 집중 지원 의지를 보였다.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봉화의 인물 조선대표 여류시인 설죽의 자취를 따라

조선 대표 여류시인 ‘설죽’을 기리는 ‘2019 설죽예술제’가 지난 8일 봉화군 은어송이테마공원에서 열렸다.향토 여류시인 설죽은 여종시인, 기녀시인, 천재시인 등으로 불리며 빼어난 한시 166수를 남겼고 동시대를 살다간 황진이, 매천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뛰어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이번 예술제에서 설죽이 남긴 시 낭송과 더불어 플롯 연주, 가야금 및 해금 연주, 민요 등 다양한 문화공연이 함께 펼쳐졌다.정해수 한국예총 봉화지부 회장은 “설죽은 봉화의 대표적인 시인이다”며 “이를 활용해 예술제를 개최할 수 있는 것은 봉화의 큰 자산이자 보물이다”고 말했다.박완훈 기자 pwh0413@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