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승자와 패자

삶의 승자와 패자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며칠 있으면 설이다. 해가 바뀌고 부산하게 지내느라 아직 연하장도 미처 보내지 못한 이도 있다. 숙제를 덜 한 학생처럼 찜찜한 마음이었는데 다시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새해 소망을 다시 천천히 되새겨 적어본다. 올 한해엔 오기(五棄)로 살아가리라. 이를 악물고 힘내자는 오기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한 다섯가지만이라도 버리고 살아보리라 마음을 먹어 본다. 그중에 첫째는 바로 ‘욕심’ 버리기다. 너무 욕심을 내어 내가 갖고 싶은 걸 갖고자 하다 보면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만이 쌓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나는 남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가진 것에 감사하고 살아보리라. 두 번째는 ‘고집’ 버리기,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이 의견도 정답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고집부리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려 노력하다 보면 고집을 버리고 오히려 배움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셋째로는 ‘미루기’를 버리는 일이다. 오늘 할 일, 지금 할 일을 바로 해야 현재를 살아가지 않겠는가. 그러니 해야 할 때 바로 해버리는 것이 어쩌면 삶을 여유 있게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방책이 아닐까. 컨디션이 좋을 때 최대한 시간을 잘 활용하고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일을 완료하지 않겠는가. 네 번째로는 ‘화’ 버리기이다. 분노하고 원망하며 화를 내다보면 결국 그것이 우리의 내면을 잠식할 뿐이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지 명심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다 보면 내게 잘못한 사람들과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화를 줄이려 노력하는 것이 나의 고통을 줄이는 최선책일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를 버리기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나 상대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나면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어 행복에 이르지 않으랴 싶다. 언젠가 여행지에서 받은 기념 책자 속 글귀가 힘든 마음에 늘 큰 희망을 선사한다.‘승자는 당신 같은 사람입니다. 승자는 모험 할 기회를 잡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두려움이 자신을 통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승자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삶이 험난할 때, 그들은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버티며 견딥니다. 승자는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그들은 하나 이상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방법을 시도할 용의가 있지요. 승자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자신의 장점을 더 많이 만들면서 자신의 약점을 존중합니다. 승자는 넘어지지만, 그 자리에 엎드려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입니다. 승자는 모든 면에서 선한 면을 보는 긍정적인 사상가들입니다. 일상적인 것에서, 그들은 특별함을 만들어 냅니다. 승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믿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볼 수 없을 때도 말입니다. 승자는 인내심이 강합니다. 그들은 목표란 것이 그것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노력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줍니다. 승자는 당신 같은 사람들입니다.’ 인생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 구별은 간단할 수도 있다. 승자는 인생의 전체를 보면서 살지만, 패자는 인생의 한 부분만을 보면서 산다던가. 승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공까지 바라보지만 패자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또 승자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서 성공을 꿈꾸지만, 패자는 자신의 배만 불리려 성공을 기다린다고 하지 않은가.디아스 포라 유대 경전에 ‘승자는 땀을 믿고 패자는 요행을 믿는다. 승자는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째 일어서고 패자는 일곱 번을 낱낱이 후회한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러니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에서 한 해를 멋지게 성공의 깃발을 든 승자도 많이 있을 것이리라.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별로 거둔 것이 없는 아쉬운 한 해를 보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난 시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다가오는 음력 새해에는 멋진 성공을 이루어가는 승자가 되고자 꿈꾸기를. 승자는 넘어진 뒤 일어나서 앞을 보고 나아가려고 자세를 취하고, 패자는 넘어진 뒤 일어나서 뒤를 보며 후회한다고 하지 않던가. 다시 맞는 새해엔 여유를 가지고 하루는 25시간 이상이라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일하고 만족한 얼굴로 달콤한 휴식을 취해보면 좋지 않겠는가. 아무리 빨리 날아가는 시간이라도 꼭 붙잡아 함께 달리면서 내가 하는 일의 과정을 즐기다 보면 순간마다 성취의 기쁨을 만끽하지 않으랴. 동녘 하늘을 물들이며 설렘으로 다가드는 새벽빛처럼, 온몸 가득 밝고 희망찬 기운으로 한 해를 모두 다시 힘차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평범한 이들의 인내심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언젠가 읽은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지구반대편에 가족 행사가 있어 떠났다가 귀국하는 길이었다. 새벽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달려야 할 정도로 급한 상황이 일어났다. 보안검색대에서부터 화장실 표지판을 찾았다. 얼른 수속을 마치고 뛰어가니 벌써 여럿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안절부절. 기다려도 좀체 나오는 사람이 없다. 너무 급한 나머지 양해를 구하고 뒷줄에 서 있던 내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혹시라도 빈자리인 줄도 모르고 무작정 열을 맞추어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였다. 안으로 발을 옮겨 하나하나 조심스레 점검해봤다. 평소 하던 대로 문을 당겨보니 열리지는 않지만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이번엔 문을 살짝 밀어 보았다. 그러자 쉽게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안에는 아무도 들어 있지 않은 빈자리였다. 차례차례 문을 열어보니 여러 곳이 텅 빈 상태가 아닌가. 잠시 한국을 떠나있던 이들이 그동안 어느 방향으로 당기고 밀어야 열리는지, 그것을 그만 잊어버렸던 것일까. 철썩 같이 자신이 늦어서 줄을 선 것이라 생각하고 급해도 둘러보지 않고 있었다니. 모두 웃음으로 떠들썩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일을 보기 시작하는 이들을 보며 한 사람의 시를 다시 읊어본다.미국의 극작가이며 시인인 팻 슈나이더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라고 읊었다.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바닥이 신발 바닥을, 혹은 발가락들을 받아들이는 일/ 발바닥이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아는 일/ 나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한다. /…중략…// 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 그리고 창문보다 너그러운 것이 어디 있는가’극작가이기도 한 그 시인은 어렸을 때 홀로 된 어머니가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바람에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고아원에서 지냈다. 이러한 힘든 경험은 그녀의 문학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그러기에 가난과 불운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문학 활동을 평생 동안 해 오지 않았을까. 인간은 글을 쓰는 동물이라는 인식으로 고아원, 감옥, 말기 환자 병동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글로 써서 나타내 보이는 것을 그녀는 도왔다.우리는 평범한 것들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지지해주는 것들과, 입어 줄 때까지 옷걸이에 걸려 있기를 마다하지 않는 바지, 더러운 발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양말, 어떤 입술에도 아부하는 숟가락의 매끄러움, 밤새 앉아 울어도 품어주는 의자, 진짜 모습을 감추는 행위를 묵인하는 거울의 너그러움, 그것이 바로 사랑이지 않겠는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우리의 삶을 떠받쳐 주는 평범한 것들의 은총과 같은 도움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하루를 반짝이는 날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우리네 삶은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것에서라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기쁘게 살거나 그 어떤 것에서도 아름다움 대신 그늘을 바라보며 살거나. 대개 이렇게 두 방향으로 나누어질 때 어찌하면 좋을까. 우리가 평범한 이들과 평범한 사물들을 통해 어느 날 문득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 얼마나 세상은 아름다울까. 바로 사물과 사랑에 빠지는 날 말이다. 문득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번쩍 띄는 경우가 더러 있다.“어떻게 이것을 못 볼 수가 있었지?” 느끼는 순간 말이다. 평범한 것들에 대한 특별한 느낌,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주제이지 않을까 싶다.밤하늘에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 날, 주변에 힘들어하는 이웃이 있다면 이렇게 외쳐보자. “돈 워리 비 해피” 뜻은 모두 알다시피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주 만나는 친구는 이 문장을 이야기할 때면 늘 강조한다. 현실에 맞게 직역하자면 ‘돈 걱정하지 마~! 당신은 바로 행복해질 거야~!’라고 말이다. 애니를 좋아하는 이들은 ‘하쿠나 마타타’를 노래할지도 모르겠다. 하쿠나 마타타! 스와힐리어로 걱정거리가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지 않은가. 불행한 생각을 하면 끝없이 우울해지고 그런 우울감에서 좀체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감정에 빠진 이들이 있다면 문득 외쳐보자. 돈 워리 비 해피! 마음부터 기운을 내야 힘이 나지 않겠는가.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늘 하루 힘든 일이 있었더라도 다 털어내고 활짝 웃는 하루가 되기를, 그리하여 웃음으로 시작하고 웃음으로 마감하기를, 2020 올 한해는 날마다 경축일이 되기를 바란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동지섣달 꽃 본 듯이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연하장에 답장을 쓴다. 고마움으로 기억되는 분의 얼굴을 떠올린다. 감사한 마음을 어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마음으로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며 그분의 넓은 사랑을 새긴다. 읊조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만히 안아주던 분. 어떤 이야기를 해도 빙긋이 웃음만 짓던, 무엇이든 말없이 받아 주고 속속들이 알아줄 것 같은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던 이라서 참 좋은 인연을 만났구나 싶었던 분이다.지나온 날들을 가만히 뒤돌아보니 아쉬움보다는 그래도 감사할 일이 더 많은 것 같아 이만하면 만족한 한해라 생각하기로 했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행복일진대, 마음으로 꼽아볼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더없는 축복이지 않은가. 내 생의 울타리로 남아 가만히 떠올리기만 해도 그분의 기도소리가 들릴 듯 든든함을 주는 이들에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연하장으로 마음의 인사를 보낸다. 연말이다. 송년 모임이 촘촘하다. 동창회. 친구들과의 송년회, 아이 학교 엄마들의 송년파티뿐 아니라 직장을 떠난 분들의 저녁모임까지 줄줄 이어진다. 딱~! 한잔만!, 건배사를 위해서는 잔을 채워야지! 이런 저런 권유에 못 이겨 분위기 깨지 않으려고 잔을 받다보니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간다. 며칠 사이 대리운전을 해야 할 일이 연달아 있었다. 하고 많은 기사들 중에서 두 번이나 아는 얼굴과 마주쳤다. 그러자 그가 먼저 웃으며 어색함을 깬다. “집으로 가시면 되죠?” 반가워하는 그를 보며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술은 모임의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니 좀체 빼놓을 수 없을 테고 언제나 따라다니거늘, 거부하지 못할 바에야 BMW로 출퇴근 하리라 마음먹는다. 경제성을 따진다면 BMW 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커다란 버스(Bus)니 작은 자동차보다는 안전할 것이고 지하철(Metro)은 막힘이 없으니 편리할 터이고 역에 내려서 두 발로 씩씩하게 걷다보면 (Walking) 튼튼한 근육은 덤 일터이니, 이만한 건강 테크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연비가 좋다는 차들이 줄지어 출시되어 우리를 유혹해도 시간을 따로 내서 운동할 짬이 없는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굳은 결심으로 도전해 봐도 좋을 BMW가 아닌가. 출퇴근에 몸을 많이 움직이다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모임에 참석해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고 음주 운전의 위험도 줄이니 대리 기사까지 부르는 번거로운 일도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잠깐 마음먹기에 따라 건강을 덩굴째 챙길 수 있을 것이니. 날마다 다짐하며 우리가 사는 생활 터전인 주변도 살피고 환경도 생각하면서 나라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길, 이것이 바로 그 BMW이지 않겠는가. 조금 쌀쌀한 아침, 동지 팥죽을 작은 바구니에 놓은 할머니들이 눈에 띈다. 동지였다. 작은설이라고 하는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음력으로 11월10일 이전에 동지가 들면 ‘애동지’, 11월11일~20일 사이면 ‘중 동지’, 11월 21일~30일 사이엔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를 새해로 여기는 풍속으로 보면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하지만,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아이가 10살까지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삼신할미가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해 팥죽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음력 11월26일인 올해 동지는 ‘노동지’다. 팥죽을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 새알심이 듬뿍 들어있는 동지 팥죽, 팥이 섞인 인절미, 단팥죽들이 자꾸 보인다. 팥은 사포닌이 많이 들어있어 이뇨도 잘하게 하고 모공의 오염물도 없애주기에 아토피 피부염, 기미제거에도 좋다. 팥에 풍부한 비타민B군은 탄수화물 소화흡수를 도와 피로를 회복하게 한다. 곡류에 부족한 영양을 팥으로 보충하며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어 차가운 가슴 속도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팥죽, 정말 좋은 건강식이 아니겠는가. 동지팥죽, 새알심을 나이 숫자대로 헤아려가며 가까운 이들과 함께 먹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동치기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나니 힘이 벌떡 솟는다. 추운 날이 찾아오더라도 가끔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동지섣달 꽃 본 듯이 그를 반갑게 맞이하여 잘 대하여 주리라. 가장 긴 밤, 동지가 지나고 나면 태양의 기운이 서서히 솟아날 것이니, 밝고 희망찬 새해를 맞을 준비를 잘해야 하리라. 남은 날을 위해 나지막이 읊조린다.‘나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나하나 물들어//… 중략…//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결국 온 산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기쁨 가득 새해를 기대하며 마무리 잘 하시기를.

담백한 삶

담백한 삶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봄옷으로 갈아입은 메타세쿼이아 자태가 눈부시다. 바람결에 묻어 드는 꽃들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점점이 박혀있는 연한 녹색 물이든 산야에 눈길을 주며 아침 일찍 남도로 향한다. 광주에서 열리는 춘계학회 참석차 나섰다. 봄이면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열리는 학회이기에 회원들이 한 차례씩 타지를 방문하게 된다. 자연스레 전국을 돌며 그 지방 음식도 먹고 또 그곳 회원들이 준비한 공연도 보면서 학술대회 하기에 봄이 되면 사뭇 기다려지는 행사다. 기온은 쌀쌀하고 일기는 어둑하여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후배들과 함께 버스에 오른다. 출발 전라남도로.환자들을 진료하느라 피곤함에 지친 전공의들은 이내 곯아떨어지고 그중에 몇몇은 아직 못다 한 일들 마무리하느라 차 안에서도 노트북을 꺼내놓고서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차는 널찍하게 변한 88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길 양옆으로는 파릇한 밭이랑이 한가로이 펼쳐있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틔워 이제는 쑥쑥 자라 열매 맺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지리산휴게소에 들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문득 고개를 드니 울긋불긋한 옷으로 차려입은 등산객들이 한가득 몰려있다. 주차장 한쪽에서는 이동식 탁자에 의자까지 등장하여 왁자하게 잔치를 벌이고 있다. 장비가 버스에 완비되어 있나 보다. 등산복장으로 몸만 나서면 물과 음식과 앉을 의자와 음식을 놓을 탁자까지 마련되어 그야말로 이동식당이 된 듯하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자연 속에서 삶을 즐기며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등 뒤로 한줄기 따스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의 핏속으로 행복이라는 단어가 흐르고 있는 듯하다.봄 학회의 주제는 대기 환경과 소아·청소년건강이었다. 실내와 실외 공기오염과 호흡기 건강, 전자파와 신경발달 장애, 내분비 교란물질과 사춘기 발달 이상 등에 대한 연구 발표를 들으며 미세먼지와 전자파 등 우리의 환경을 교란시키는 것들에 대해 다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연자의 발표가 끝나고 시상식이 이어진다. 학회 발전에 공을 세우고 정년을 맞이하신 원로 선생님들께 주어지는 상이다. 그 상을 받으신 고매한 인품의 원로 선생님은 등산애호가시다. 오늘도 한결같이 등산 스틱을 챙겨 가방에 꽂아 물품 보관 캐비닛에 보관해 두셨다. 학회를 마치면 언제나 그 지역의 산을 찾곤 하신다. 학회 때 몇 번 따라가 보았지만, 젊은이들이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걸어 올라가신다. 헉헉대며 겨우 정상에 오르면 선생님은 “이제 모두 다 정상을 밟았으니, 그만 내려가자” 외치면, 막 차로 도착한 이들이 탄성을 질러대곤 하였다. 산을 즐기고 자연을 사랑하며 언제나 씩씩하게 발걸음 옮기시는 원로 선생님들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할 것이다.따스하게 내리쬐는 볕을 받으며 걷는 이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손과 발을 맞추어 앞뒤로 흔들어가며 세월을 걸어가실 분들, 옛 추억을 떠올리면 언제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정년을 맞이하여도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늘 함께 있어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다면, 행복의 호르몬은 언제든 분비되지 않겠는가.현직에서 열심히 일할 때의 즐거움도 있겠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세월을 되새기며 느릿느릿 산에 올라 보는 것도 더없는 행복이지 않으랴. 늘 오르던 산이고 언제고 놓아야 할 일이라 아무것도 생소할 것이 없다고 하시는 원로 선배님의 말씀을 담담하게 들으며 등산 스틱을 꺼내어 드는 그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셨으니 이제 조금 편히 쉴 법도 하지만. 그래도 일에 대한 열정과 후배 양성에 대한 열의, 등산에 대한 계획을 말씀하신다. 원로 선생님들의 걸음걸이가 언제나 한결같기를 기대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던가. 칠순이 머잖은 선생님이지만, “후배야~”라고 하면서 소년처럼 반갑게 불러대는 그분들을 보면 세로토닌이 떠오른다. 온화하고 긍정적이며 의욕적인 마음 상태를 만들어 주는 세로토닌은 허전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는 자기 조절력의 열쇠라고 행복 호르몬이라고 하지 않은가.평생 환자 진료에 매진하고 이제는 정년을 맞아 다시 등산 스틱을 챙겨나서는 원로 선배님의 삶이 참으로 담백하게 느껴진다. 언제나 리드미컬하게 걸으며 친구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리라.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삶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행복한 마음으로 안내해줄 것이니.봄이다. 봄이 날아간다. 행복한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도록 기운차게 봄 길을 걸어보자. 오늘 하루도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보자. 멋진 원로처럼.

날이 좋아서

모처럼 파란 하늘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길을 나섰다. ‘골 건강 심포지엄’이 있어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대전을 지나니 차창으로 비 내리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짜 작 짜 작’ 빗방울이 고속열차에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파릇파릇 물이 오르고 있던 봄의 대지에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겨우 밀고 나오던 봄의 싹들이 화들짝 놀라 다시 거북목처럼 움츠릴 것 같다.서울에 내렸다. 지하철을 타러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다 보니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기온은 바닥으로 떨어져 오스스 한기가 느껴진다. 우산을 찾아 가방에 손을 넣으니 만져지지 않는다. 집에서 나올 때 챙겨서 나오기는 했지만, 기억력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나 보다. 역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두고 온 모양이니 말이다. 지하철 출구 계단 끝에 서서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비를 맞고 그냥 나가볼까? 우산을 씌워주는 좋은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볼까? 망설이고 있는 나의 마음을 읽은 듯이 아주머니 한 분이 우산을 들고 내게 다가온다. “얼른 들어와요, 차 타는 데까지 데려다줄게요.” 감사의 인사를 눈으로 전하며 행선지를 말하니 버스 정류장을 지나 호텔 앞까지 한참을 걸어서 바래다주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이른 아침, 으슬으슬해진 몸으로 세미나장으로 향한다. 세미나가 열리는 대학에 들어서니, 차가운 날씨에도 강당엔 벌써 연자와 등록자들로 가득하다. 골 건강에 대한 대단한 열기를 실감하며 겨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떻게 하면 골다공증이나 약화된 뼈에 대해 별다른 아픈 증상 없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문득 몽골의 씩씩하고 튼튼한 아이들이 생각난다.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며 마음껏 말을 타고 달리던 아이들이 아니던가. 머리에 대한 믿음도 강해 함부로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는다고 하던 이들이지 않던가.한 번은 신생아실에 입원한 아이의 혈관 주사를 놓아야 해서 아무리 찾아도 혈관 주사 놓을 자리를 찾지 못해 간호사가 머리를 조금 깎았다. 이튿날 면회를 온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하며 슬퍼하였다. 수지발부는 함부로 손상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조상님들처럼 몽골에서의 믿음은 더한 모양이었다. 남자아이는 태어나면 고이고이 머리카락을 여자아이처럼 길러서 한 살이나 세 살 또는 다섯 살 일곱 살 등 홀수 해가 되었을 때, 명망 높은 집안의 어른이 좋은 날을 받아서 지인과 친척을 다 불러서 축하해주면서 자치를 벌인다고 하지 않던가. 머리카락을 조금씩 자르면서 축복의 말씀을 해주고 축의금을 내면서 그 아이의 인생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집안의 경사스러운 날인데 그것을 아무런 통고도 없이 잘라버렸으니, 그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몽골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말달리는 아이들의 체질을 타고나는 것 같다. 허벅지는 단단한 근육질로 태어나고 골격이 훤칠하여 정말이지 기마민족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이 자연의 음식을 먹고 맑은 태양 빛을 마음껏 받으며 마음껏 뛰논다면 평생 뼈의 건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으랴 싶다.뼈의 건강, 골 건강은 뭐니 뭐니 해도 유전적인 것을 무시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음식과 환경에 대한 노력도 중요하리라. 어릴 때부터 칼슘과 비타민 디가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마음껏 뛰놀게 하여 뼈를 튼튼하게 해주어야 한다. 언제든지 밖에 나가 놀 수 있는 환경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실내에서 하는 운동으로라도 골의 밀도를 높여서 유지해 놓아야 한다. 어릴 때 마음껏 뛰놀게 하고 운동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를 선택해서 운동하지 않는 날이면 밥을 먹지 않은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 들도록 습관화하여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는 며칠 전 전화에서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시간이 없어요.’ 라며 울먹였다. 초등 신입생이 이런 실정일진데 중. 고등학생은 오죽하랴. 골 건강을 위해 운동하러 나간다고 하면 좋아하실 부모님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건강이 최고의 인생 자산이며 투자일 터이다. 그중에서도 골 건강은 평생을 걸으면서 쌓을 수 있는 핵심자산이지 않으랴 싶다. 그러니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그저 그래서’ 골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해보자. 이번 봄에는 특히!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도록. 힘차게 팔 흔들며, 신나게 걸어보자. 씩씩하게 걸으면, 뇌는 본능적으로 좋아할 것이고 골 건강은 덩달아 더 나아질 터이니.

뒷모습

정명희/ 홍매화가 붉게 핀 강변에서 수양버들은 날마다 연둣빛을 더해간다. 봄 햇살에 물결은 금빛으로 찰랑댄다. 차창을 열고 상큼한 봄의 향내를 마음껏 들이켜 본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려는 찰나, “띠~링” 문자판이 울린다. 슬쩍 보니 동창 모친의 부고가 뜬 것이 아닌가.봄이 시작되자 주말마다 결혼 소식에 더하여 부고는 더 많아졌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무슨 연유일까. 환절기에 미세 먼지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일까. 미세먼지 소식이 빠지지 않는 보도 거리다.미세먼지는 입자가 미세할수록 코점막을 통해 걸러지지 않고 허파꽈리까지 직접 침투하기에 천식이나 폐 질환 및 조기 사망률 증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많은 연구에서 보면 단시간 흡입으로 갑자기 신체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어린이·노인·호흡기 질환자 등 민감군은 일반인보다 건강 영향이 클 수 있다. 눈에는 알레르기성 결막염, 각막염, 코에는 알레르기성 비염, 기관지염, 폐기종, 천식 등을 유발하기도 하여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올해 봄에는 미세먼지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미세먼지 탓만 할 수는 없지만 부쩍 늘어난 부고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 뿌연 하늘만 보면 걱정스럽다.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부친을 여섯 달 전에 멀리 떠나보내야 했다. 주말에 내려가 식사할 때까지만 해도 소화가 조금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하셨는데 그날 이후 점차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셨다. 결과는 췌장암이 온몸을 침범해서 더는 손 쓸 수 없게 되었다. 주말 식사를 마지막으로 저세상으로 떠나시는 분께 작별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 이후 몇 달 만에 또 모친을 여읜 것이다. 얼마나 마음 아프고 슬프고 애통할까.무거운 마음으로 얼른 옷을 갈아입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부의함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봉투를 들고 어쩔 줄 모르는 체하는 나에게 그가 말한다. 부의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와 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고맙다고 몇 번이나 악수하며 인사를 전하는 것이 아닌가.일 년도 안 되는 동안 고아가 되어버린 그를 보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를 해 주었다.상가에 가서는 그냥 나오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하던 그가 또 권한다. 식사 꼭 하고 가라고.테이블에 앉아 국에 밥을 말고 있으니 동기생들이 들어왔다. 문상 마치기를 기다려 함께 식사를 하고 음료를 권하며 슬픔을 위로하면서도 우리는 수십 년 지난 학창 시절을 이야기하기까지 하였다. 한참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일어서 나오며 얼른 마음 추스르고 잘 사는 것이 돌아가신 분이 바라는 바일 것이니 건강 잘 챙기라는 당부를 하였다.상가에 조문을 가면 늘 슬픈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는가 보다. 동기생 하나가 자신의 신발을 찾지 못하겠다고 하여 우리는 신발장에 놓인 신발을 하나하나 스캔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자기 신발을 못 찾을 수가 있느냐?” 보다 못한 성질 급한 동기가 질문을 하니 그 친구 하는 답이 가관이다. “뒷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하긴 자기 구두의 뒷모습을 샅샅이 보면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랴.울다 웃으며 집에 와서 막내에게 물어보았다. 얼마 전 시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신발 정리 담당을 하였기에. 장례식장에서 신발을 전방으로 넣어두었느냐? 후방으로 넣어두었느냐? 아들은 구두를 기다란 집게로 집어서 넣게 되면 구두는 당연히 앞을 먼저 넣어서 뒤가 보이게 신발장으로 들어간다고. 그래야 집어넣고 또 빼내기 편하지 않겠느냐고. 그러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문득 어느 시인의 ‘뒷모습’이라는 시가 맴돈다. ‘따라 오너라, 하고 앞서가시는 당신 뒷모습이 낯설다. / 뒤축을 내보인 채 놓인 내 낡은 구두를 찾기 위해 신발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 적이 있다. 버릴 때가 다 되어서야 구두의 뒷모습을 알게 된 그 날처럼 오늘 당신 뒷모습이 낯설다.// (중략) //헌 구두 속에서 피어난 흰곰팡이, 해 질 녘의 옅은 그림자, 당신 뒷모습에 담겨있는 그 모든 것들,/ 당장에라도 내게 안녕, 하고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자기 구두를 못 찾아 서성이는 친구 옆에서 수많은 구두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짐한다. 봄에는 앞만 보면서 살지 말고 가끔은 뒤도 보면서 살아야 하겠다고.

열두 폭 치마로

정명희/ 봄이 포근하게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강변에 늘어선 회색빛 나뭇가지에도 풀빛이 스민다. 먼 산은 아지랑이 하늘하늘 날아오를 듯 다정스레 다가든다. 남도에선 홍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머잖아 꽃놀이 갈 날이 기다려지는 봄이다. 희망에 부풀어 한껏 꿈을 꿀 수 있고,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스프링(spring), 용수철같이 튀어 오르고 싶은 봄이다.해가 많이 길어졌다. 햇살이 남아 있을 때 길을 나서다 보면 아들의 말처럼 정말이지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좋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차오르지 않던가. 아이들의 표정도 따스한 봄날처럼 포근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아 가슴 설레며 출근하였다. 이런저런 계획을 머리에 챙기며 장래와 순식간에 지나 가버린 세월을 새기며 아이들에게 눈을 돌린다.날로 풀리는 대기의 온도처럼 따스하고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밀린 환자를 보고 나서 시장을 반찬 삼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나른해진 몸과 정신을 달래려고 커피를 한잔 뽑아 드는데 오래 함께 근무한 동료가 서류를 들고 나타났다. 직장새마을금고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기에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면 날마다 직원들의 대출과 저축에 대한 결재를 해야 한다. 얼른 서류를 검토하고 도장을 찍으려는 찰나, 그가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를 한다. “○○○원장님 상가에서 다른 새마을금고 직원을 만났는데 금리가….” 내 귀는 ‘○○○원장님 상가’라는 단어에 꽂혀버렸다.“뭐라고 하셨어요? 그분이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의사회에서도 부고 소식은 없었는데요?” 그러자 그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설이 지나고 나서 병원에 들러보니 의료원 초대 원장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고 하였다. 늦게 알았지만 늦은 밤 바로 지인과 함께 문상을 다녀왔다고 하였다. 가족이 모두 경황이 없어 연락을 못 했던가 보다고 전하였다. 의료원 초창기부터 원장으로 십수 년을 한 곳에서 수많은 의사들을 들고 나게 하였었는데 낯익은 의사들의 얼굴이 별로 보이지 않아 그 직원도 내심 의아했으리라.어찌 그리도 소식을 전하지 못하셨을까.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던 큰 어른이었다. 구척장신에 건강은 자신하셨는데…. 언젠가 허리통증으로 고생하시다가 폐렴이 겹쳐 본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때엔 손자들의 주치의라고 추켜세우곤 하시지 않았던가. 흔히 그렇듯이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은 사라진다. 그다음엔 정신도 가물가물 해져 최근의 기억은 입력이 되지 않는다. 몸져누워계신 병실을 몇 차례 찾아뵈었을 때마다 그분은 생생하게 기억해내시고는“소아과 정 과장 아니가. 알지! 내가 왜 모르겠어!” 하시며 초롱 같은 기억력에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그래도 오랜 기억은 잘 보존되어서 “원장님!” 하고 불러드리면 “응, 출근했나. 이 사람아 환자 열심히 봐야 해!” 말씀하시곤 하더니. 그러다가 입원 기간이 오래되고 또 바쁜 일이 끼어들어 지난 연말 이후 찾아뵙지 못하였다. 설날이 되자 폐렴 증세가 심해져 인지 기능이 심하게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가족들이 다 모였다 좀 나아지면 돌아가기를 반복하였을 게다.수십 년 전에 미리 준비해 두셨다던 안동포 수의를 입고 가실 날을 기다리셨을까. 원장님은 구순을 훨씬 넘겨 백수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수를 다하지 못하고 봄이 다가오는 이때 서둘러 먼 길 떠나셨다. 간절하다. 늘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셔서 진료실을 다니며 과장들을 격려하고 환자가 밀려들어 밥도 못 먹고 진료하는 날에는 잊지 않고 들어오셔서 지폐 한 장씩 가운 포켓에 넣어주시며 “아이스케끼 사 먹어!” 라고 하셨던 원장님이다. 직원의 경조사는 하나 빠짐없이 참석하셔서 위로와 축하를 아끼지 않으시던 원장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못 뵈어 서운하기 짝이 없다. 사모님께 전화를 드리니 서운해 하셨다. 어쩌랴. 정신 좀 차리고 나시면 문상하는 수밖에. 까맣게 몰랐으니 말이다. 오해를 풀어야 하리라. 사모님은 늘 말씀하셨다. 한 조직의 장이라면 열두 폭 치마를 두르고 살아야 한다고. 허물이나 장점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모두를 감싸 안아야한다고.몰라서 못 찾아뵌 것이지만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열두 폭 치마를 두르신 원장님과 사모님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리라. 어쨌든 봄이다. 봄옷처럼 날렵하고 상큼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새봄을 맞이해보자. 새로운 각오로 마음의 이사를 준비해보자.

폰딧불이

정명희 먼 곳으로부터 보일 듯 말 듯 봄이 다가오는 듯하다. 찬 기운이 남은 바람이지만, 발밑 땅속에서 새싹의 움직임이 느껴질 것 같은 날이다. 어디선가 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버들강아지가 보송보송 눈을 뜰 것 같은 2월, 봄소식을 전하는 행사가 한창이다. 여기저기서 연주회 포스터가 붙어있고 신작 영화들이 우리를 손짓한다.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영화감상을 하며 문화생활을 해보기로 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음료수를 들고 여유 있게 자리에 앉았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휴대폰을 끄지 않은 것이 생각나 얼른 비행기 모드로 바꾸었다. 혹시나 급한 연락이 올까 봐 마음 졸여지지만, 그래야만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단호하게 비행기표시가 뜨도록 화면을 바꾸었다. 암흑 속에 영화가 시작되고 스토리가 진지해지는 찰나, 저 멀리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린다. 얼른 휴대폰의 주인이 전화기를 조정해서 사태를 해결했으면 좋으련만, 벨 소리는 계속이다. 왠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쪽으로 시선이 가서 스크린에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 영화의 감동이 사라질 것 같아 숨을 천천히 들이켜고 내뱉기를 반복하며 마음을 달랜다. 요즘엔 모두 바쁜 사람들뿐인 것 같다. 길을 걸으면서도 차에 오르면서도 진료실에 들어와서 아이 진찰하는 순간에도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들이 많다. 늘 누군가와 무엇으로든 소통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같다.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라는 ‘스몸비’가 많은 세상이라며 걱정하는 글이 신문 기사를 장식한다.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건너는 사람, 신호등이 바뀌어 차를 운전해 나가면서도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운전자들, 그보다 더 위험천만인 이들이 있을까. 스마트폰에 눈길을 흘깃흘깃하면서 운전하는 것은 졸음운전보다 어쩌면 더 아슬아슬하지 않으랴 싶다.스몸비에 대한 글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영화관에 오니 스마트폰 불빛이 성가시다.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불빛들로 어느 해 뉴질랜드 갔을 때 보았던 반딧불이 동굴에 들어있는 착각이 든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인증 사진을 하는 이. 영화관에서도 셀카를 찍고 안방처럼 예사롭게 전화를 받으니 반짝이는 불빛들이 이어진다. ‘폰딧불이(스마트폰+반딧불이)’ 공해다. 언젠가 배우 박해미 씨가 뮤지컬 공연에서 노래하려는 그 순간에도 휴대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대자 객석을 향해 “선생님, 전화 받으셔~!”라며 즉흥 대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공연이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휴대전화 전원을 반드시 꺼달란 안내방송이 나오는데도 많은 이가 지키지 않고 시시때때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곤 한다. 모 신문사 기자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멘델스존 서거 170주년 기념 음악회’를 보는 2시간 동안 스마트폰 진동 소리가 3차례, 카메라 셔터 소리가 19차례 들렸고 스마트폰 불빛은 21차례 보였다고 기사를 쓰지 않았던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 관객들은 스마트폰 사용이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생각해 공공예절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은 우리는 정말 스마트폰의 공공 예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다짐하였다. 우리만은 그러지 않기로. 스마트워치의 불빛도 영화 관람하는데, 참 방해가 많이 되는 물건인 것 같다. 화면이 작고 몸에 착용하는 것이다 보니 잘 느끼지 못하지만, 남들에겐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외국은 공연장 내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한다지 않던가. 미국은 벨 소리가 울리면 벌금을 매기고 뉴욕 외 22개 도시에서는 문자, 인터넷 검색, 통화 등 어떤 경우라도 공연 중 핸드폰 불빛이 보이면 관객을 쫓아내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레이저를 쏘고 일본에선 아예 전파차단기를 설치해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단다. 국내에서도 전파차단기를 설치해 시범 운영했지만, 전파법 관계 법규에 어긋난다고 해서 철거했다.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자유가 먼저라고 말하기 전에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 급히 연락받을 일 때문에 휴대전화를 끌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무엇보다 남을 위해 조금 양보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소리 없이 봄이 다가오듯 공공예절도 날로 익어갈 수 있다면 초록의 봄날이 더 즐겁지 않으랴.

운수대통

/정명희 설레는 날이라는 설날이 지났다. 한 살 더 먹었으니 왠지 달라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찬바람이 뺨에 닿아도 머지않아 봄이 찾아오리라 생각하니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타이어의 신선함을 마음으로 가늠하며 출근길에 오른다.설날 당직 근무를 서던 때가 떠오른다. 고향 앞으로 마음부터 달려가는 명절이지만, 누군가는 아파서 급하게 병원을 찾게 되지 않던가.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시민의 병원’인 공공병원인지라 명절 연휴에 문을 열기로 했다. 명절이면 환자들이 많이 찾게 되는 내과와 소아청소년과가 설날 당일 오후와 설 이튿날 오전 진료하기로 했다. 배탈과 열나는 환자들의 치료를 도와주기로 하다 보니 누가 근무할 것인가를 두고 상의해야 했다. 그 순간 문득 올해는 가장 오래 근무한 내가 자원해서 근무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일찍 차례를 올리고 식구들과 세배하고 나서 얼른 정리하고 나오면 되지 않으랴. 거의 평생 한 직장에서 근무하였던 선배였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인 듯 생각되기도 하였고 또 나를 찾아와 명절에도 집에 못 가고 누워있는 환자들에 대한 예의인 것도 같아 혼자 그리 마음먹었다. 그러자 후배 동료들은 왜 그리 사서 고생을 하려 하느냐. 반나절씩 나누어서 근무하면 좋지 않으냐. 여러 가지 안이 오갔지만, 이번만은 무조건 ‘근무하는 사람은 근무!, 쉬는 사람은 눈감고 푹~! 쉬기’로 하자고 우겼다. 설날 새벽, 비행기가 연착되었다며 명절 쇠러 오는 아이들의 도착이 지연되었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린 것이 새벽 4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 눈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얼른 잠자리에 들도록 이것저것 챙겨주고는 잠깐 눈을 붙였다. 그런 후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근무를 위해 얼른 나섰다. 차를 몰고 병원으로 오는 길이 왠지 자꾸만 울퉁불퉁해 보이는 것이 몸에 피곤이 쌓인 듯해 창문을 내리고 찬바람을 들이켰다. 초록으로 바뀌는 신호를 보며 차를 몰아 코너링하는 찰나, 쿵~! 바퀴가 도로의 턱에 닿는 것이 아닌가. 매일 같이 다니는 길을 급한 마음에 너무 붙여서 돌았던 모양이었다. 핸들을 빠르게 풀어 바로 하며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환자들이 몰려올 것 같은 마음에 살필 겨를도 없이 내려 가운을 입고 진료를 시작했다. 배 아픈 환자, 머리 아픈 아이, 구토 설사에 눈이 빠끔해진 이들을 진료하며 오후 시간이 어찌 갔는지 모르게 흘렀다. 마지막 환자를 보고 나서니 벌써 사위는 깜깜해져 있고 싸늘한 기운이 뺨을 때렸다. 집에 기다릴 나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차의 속도는 나지 않고 덜커덩덜커덩! 무언가 둔탁한 것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차를 세워서 살펴야만 하는데 도로에는 명절이라 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세울 수가 없다. 한참을 그런 모양새로 달려 한적한 곳에 세우고 내려서 보니 조수석 뒷바퀴 옆면이 찢어져 속이 보이고 완전히 짜부라져 있는 것이었다. 아뿔싸. 주차장에서 낌새를 알아차리고 확인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쩌랴. 긴급출동서비스를 호출하여 상황을 설명하니 타이어 펑크가 심하게 난 상태라서 견인해야 하고 그것도 그냥 끌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차체를 통째로 차에 실어서 옮겨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날은 춥고 바람은 차고 인적은 드문 한적한 길가에서 커다란 트럭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좋게 생각해야지. 액땜이지 않으랴. 정월 초하루, 올해 모든 안 좋은 일은 이 한 가지로 모두 다 땜 하지 않겠는가. 설날, 남편은 근무하는 아내를 대신해 식구들을 데리고 성묘하러 갔다가 밀리는 길 위에서 집으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달려와 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시시때때로 전화하여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운! 수! 대! 통! 할 것이라고.커다란 트럭을 몰고 오신 견인차 기사분은 아침 차례만 지내고 나와서 종일 근무 중이라면서도 웃는 얼굴을 하고 계신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냐! 시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다가 하늘에서 부르면 가는 거죠! 라고 하신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 명절 휴일에 펑크를 때우는 곳이 있기나 할까? 싶었지만, 하루 24시간 365일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언제나 웃음으로 일하기에 ‘스마일’이라는 상호를 붙인 타이어 집. 부자(父子)가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한다는 그곳에서 도로의 턱에 걸려 찢어진 뒷바퀴뿐 아니라 이참에 네 바퀴를 완전 새것으로 다 교체해버렸다. 이때 아니면 언제 그분들께 웃음 짓게 할 수 있으랴 싶어서. 68만 원을 송금하며 그도 스마일, 나도 스마일, 우리 모두 스마일!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본다.

왕빼언니

왕빼언니/ 정명희 추위가 한풀 꺾였다. 따스해질 봄날을 기다린다. 홍역 환자가 치료받는 병원이라는 소식 때문인지 외래 진료실이 한산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추운 날 보던 색깔은 오간 데 없고 온통 희뿌옇다. 먼 산은 회색빛 먼지로 가려져 있다. 우리 전통적 겨울 날씨를 뜻하는 ‘삼한사온’은 이제 멀리 사라져버렸는가. 사흘은 춥고 나흘은 온통 미세먼지뿐 아니라 초미세먼지로 희뿌연 공기를 들이켜며 콜록대고 있다. 올겨울 유난히 차가운 북풍이 부는 가운데서도 미세먼지는 기승을 부리며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려 들었다. 뿌연 하늘로 마음까지 가라앉는 날. 봄의 전령이 벌써 달려왔던가. 기쁜 선물이 당도했다. 홍릉 숲의 복수초(福壽草)가 노란 꽃잎을 피웠다는 소식이다. 복수초라면 그냥 복수혈전이 떠오른다. 하지만 한자로는 福(복 복)壽(수명 수)草(풀 초)를 쓰니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봄꽃이 아니겠는가. 혹독한 추위를 뚫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그, 먼지 자욱한 겨울 한복판에서 눈과 얼음을 뚫고 연약한 고개를 내밀었나 보다. 복수초는 향광성이라 아침에는 꽃잎을 닫았다가 볕이 날 때에 활짝 피어난다고 한다. 노란 꽃잎 표면에 햇빛이 반사되면 열이 약간 발생하면서 꽃 윗부분의 눈을 녹인다니 눈과 얼음조각이 남은 모자 쓴 복수초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온다. 복수초는 꽃이 황금색 잔처럼 생겼다고 측금잔화(側金盞花)라고도 부른다. 눈 속에서 꽃이 핀다고 하여 설연화(雪蓮花), 얼음 사이에서 꽃이 핀다고 하여 빙리화(氷里花), 얼음꽃, 설날에 꽃이 핀다고 하여 원일초(元日草)라고도 부른다. 복과 장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꽃말은 ‘영원한 행복’, ‘슬픈 추억’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고 장수하라’는 의미로 복수 초를 선물하기도 한다니. 마음까지 얼어붙는 겨울에 그리운 이의 선물로는 따스함을 가져다주는 복수초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으랴. 마음을 추스르며 진료를 하는데, 늘 호흡기가 약해 늘 골골대며 쌕쌕거리는 어린아이가 문 앞에서 빠끔히 눈을 들이민다. 외래 진료실에 올 때면 누구보다 먼저 큰소리로 인사하는 똑똑하게 행동하던 아이였기에 가만있는 그 아이가 신기하여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되레 묻는다. “선생님은 왕언니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왕! 빼!” 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아이는 “왕 빼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옆에 있던 아이의 엄마가 간호사와 함께 박장대소하는 게 아닌가. 그래 나는 ‘왕 빼 언니’ 맞아. 호칭을 떠올릴 때면 인터넷에 있던 우스개가 생각난다. 어느 할머니 셋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며늘아기가 그러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그러자 다른 친구 할머니가 “왜 어떻게 돌아가셨다고 해?”라고 물었다. “못 박혀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 같어.” 이때 아무 말이 없던 할머니가 “예수님이 누구야?”하고 되물었다. “우리 며느리가 아버지 아버지하면서 사는 것 보니 ‘사돈 양반인가 봐”했다던가. 우스갯소리지만 대가족에 대한 호칭은 복잡하기만 하다. 진짜 며느리의 아버지라면 사돈양반일까? 사돈어른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사돈(査頓)이란 서로 혼인한 남자와 여자 측의 인척 관계를 일컫는다. 사돈은 같은 세대인 동성 간의 호칭이다. 그러기에 아버지끼리 어머니끼리는 그냥 ‘사돈’이다. 하지만 같은 세대라도 이성의 사돈이나, 동성이라도 자기보다 10년 이상 연상이면 조금 높여 ‘사돈어른’으로 예우해 부른다. 이성의 사돈은 나이와 무관하게 ‘사돈어른’으로 예우해 부른다. 특히 여성 사돈을 ‘사부인’이라고 한다. 사돈은 피와 살이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 남이지만, 아들과 딸을 주고받은 특수한 관계로 항렬과 같이 세대의 위계가 정해진다. 그 위계를 ‘사행(査行)’이라 한다. 시집보낸 딸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딸의 시부모는 사행이다. 딸의 시조부모는 한 단계 윗 사행이고. 아랫 사행의 사돈이라면 사돈양반(사돈총각·기혼 남성), 사돈총각(사돈도령·미혼 남자) 또는 사돈처녀(사돈아가씨·미혼 여성)·사돈아기씨(사돈아기·어린 사돈에 대한 칭호) 로 부른다. 사돈양반은 윗세대가 아닌 사돈총각이 혼인하면 예우해 부를 때 쓴다. 사돈의 ‘사(査)’는 ‘살필 사’이며, ‘돈(頓)’은 ‘머리 꾸벅거릴 돈’이라고 한다. ‘삼가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머리를 꾸벅거릴 사람’이 사돈 사이인가 보다. 왕언니라고 부르려다가 ‘왕’자를 빼라고 하니 ‘왕 빼 언니’라 부르는 아이처럼 호칭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사돈 관계처럼 조심스럽고 참 어려운 일일 것 같다. 그래도 서로를 부를 때는 정겹게 예의를 갖추어서 부르면 더 품위 있고 좋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