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황제 베르디의 걸작 오페라 ‘운명의 힘’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오는 12, 13일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의 걸작 오페라 ‘운명의 힘’으로 ‘제17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화려하게 마무리한다.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의 제안으로 작곡된 오페라 ‘운명의 힘’은 1862년 11월1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된 이후, 186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4막으로 개정되어 오늘날까지 주로 공연되고 있다. 베르디 중기의 3대 오페라(운명의 힘, 가면무도회, 돈 카를로) 중 하나로, 한층 성숙해진 베르디의 관현악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오페라의 주요 선율이 집약되어 있어 단독으로 연주될 만큼 유명한 ‘서곡’을 시작으로, ‘천사의 품 안에 있는 그대여’, ‘나의 비극적인 운명’ 등 오페라의 주요 아리아와 이중창이 연주되는 3막, 그리고 집시 ‘프레치오실라’, 수도사 ‘멜리토네’가 합창단, 발레단과 함께 연출하는 4막의 역동적인 군중신은 특별히 명장면으로 꼽힌다.‘운명의 힘’은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비극으로, 우발적인 사고에서 시작돼 복잡하게 얽혀가는 인물들의 잔혹한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광주시립오페라단 정갑균 예술감독은 “‘운명의 힘’은 오직 신만이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유럽의 기독교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베드로상을 거대하게 제작해 무대 중앙에 배치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이번 폐막작인 운명의 힘은 대구오페라하우스와 광주시립오페라단이 힘을 합쳐 제작한 작품이다. 대구와 광주 ‘오페라 달빛동맹’은 2016년 ‘라 보엠’에 이어 두번째다.오페라 ‘운명의 힘’은 오페라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 돋보이는 마에스트로 최승한이 지휘를 맡아 극을 이끌어나간다. 출연진은 소프라노 이화영과 임세경, 테너 이병삼과 신상근, 바리톤 공병우와 김만수 등 이름만으로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정상급 성악가들로 구성돼 있다.연주단체로는 광주시립합창단과 전남대학교합창단, 대구오페라하우스 상주단체인 디오오케스트라, 어린이 합창단 유스오페라콰이어가 호흡을 맞춘다.입장권은 1만~10만 원이다. 문의: 053-666-6170.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훈민정음 해례본의 기구한 운명

홍석봉/논설위원영화 ‘나랏말싸미’의 상영을 계기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의 숨은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세종대왕이 당시 천한 신분의 스님 ‘신미’와 만나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을 위해 나라의 글자를 만든다는 내용이다.한글 창제의 배경과 원리 및 사용법을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것이 유일본이었지만 2008년 경북 상주의 고서적 수집가 배익기씨가 다른 해례본을 공개하면서 해례본은 2개가 됐다. 배씨가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상주본이다. 상주본은 세상에 빛을 본 지 11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여정은 파란만장하다.배씨는 골동품상 조모씨와 소유권 분쟁을 벌였다. 조씨는 자신의 골동품 점에서 배씨가 훔쳐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송 끝에 법원은 원 소유자는 조씨라고 인정했다. 조씨는 얼마 뒤 상주본의 소유권을 문화재청에 이양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졌다.이후 문화재청은 배씨에게 상주본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만 배씨는 되레 국가의 강제 집행을 막아달라고 소송을 냈다.법원은 지난달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고 확정 판결을 내렸다. 문화재청은 배씨에게서 상주본을 강제 회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상주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강제집행은 하지 않고 있다. 압수수색 등 강제집행 시 자칫 훼손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개인 탐욕에 행방감춘 상주본, 회수 불투명상주본의 가치가 1조 원이라는 평가가 나오자 배씨는 상주본을 반환할 생각은 않고 국가에 1천억 원의 보상을 요구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상주본의 회수 여부는 배씨 마음에 달렸다.배씨가 상주본의 소재를 밝히지 않으면서 훼손과 분실 등이 우려되고 있다. 상주본은 지난 2015년3월 배씨의 집에 발생한 불로 일부 훼손되기도 했다. 배씨는 이후 상주본을 자신만이 아는 곳에 보관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7년4월 불에 타 일부 훼손된 상주본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문화재청은 배씨를 달래기도 하고 강제집행 가능성도 열어놓고 회수 노력을 쏟고 있지만 배씨의 거액 보상 요구에 속앓이만 하고 있다. 배씨가 소재를 알려주지 않으면 찾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배씨는 최근 상주본 반환 시 박물관 명예 관장 자리와 예우를 해주겠다는 정부 측 제안에도 콧방귀만 뀌고 있다. 그간 배씨의 언행으로 봐서 상주본을 쉽게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배씨의 입만 쳐다보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문화재청은 반환 독촉을 하고 있다. 여차하면 배씨를 검찰에 문화재 은닉 및 훼손죄로 고발할 계획이다. 하지만 배씨는 여전히 ‘배째라’다. 국보급 보물이 한 고서적 수집가의 손아귀에서 빛을 잃고 있다. 국가의 공권력마저 법집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형편 없이 망가지고 있다.-재산 기울여 해례본 보호한 ‘간송’ 의기 돋보여훈민정음 해례본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경북 안동의 한 서예가 집에서 세상에 첫 모습을 보였다. 간송 전형필은 해례본을 소장자에게 당시 기와집 열채 값인 1만 원의 거액을 주고 구입했다.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면서도 자신의 품에 품고, 잘 때는 베개 속에 넣고 잘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간송은 전 재산을 기울여 일제에 의해 마구 유출되고 있는 문화재 보호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많은 문화재가 살아 남았다. 해례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됐다.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훈민정음 해례본은 이같이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유일본은 문화재 가치를 높이 산 간송에 의해 겨우 보존됐지만 다른 하나는 한 개인의 손에 운명이 간당간당한다.문화재청은 언제까지 배씨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을 건가. 강제집행을 해서라도 해례본을 찾아야 한다. 훼손 등의 경우 걸맞은 처벌을 해야 한다.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배씨는 국민적인 관심과 문화재의 가치를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곤란하다. 터무니없는 보상 고집만 피우다가는 국민적인 비난과 분노만 살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상주본의 원만한 국가 귀속을 보고 싶다.

상산고 자사고 탈락 속 대구 계성고 운명은? 기준넘 넘겨 재지정 관측

정부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정책 속 전주 상산고가 재지정에 첫 탈락되면서 대구 자사고의 운명에 관심이 쏠린다.대구 학교 중 올해 재지정 평가를 받은 곳은 계성고등학교 한 곳이다.계성고는 지난 4월부터 서면 및 현장 평가, 학생·학부모 설문조사 등으로 이뤄진 자사고 평가를 받았고, 오는 27일 대구시교육청의 자율학교 등 지정·운영위원회 심의만 남겨두고 있다.이번 평가에서 계성고는 대구교육청의 재지정 여부 기준점수인 70점을 넘겨 재지정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결과는 27일 지정·운영위원회에서 확정된다.계성고는 학교 및 교육과정운영, 교원 전문성, 재정 및 시설여건, 학교만족도, 교육청 재량평가까지 6개 영역 31개 지표로 이뤄진 평가에서 교육과정 다양화와 여건, 운영 의지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계성고가 재지정을 받게 되면 대구는 경일여고의 일반고 전환으로 대건고와 함께 2개 자사고를 운영하게 된다.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5년 마다 이뤄지는데, 올해는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기조 속에 시행된데다 평가 요소와 커트라인 점수 또한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대구교육청은 재지정 평가 기준점을 과거 60점에서 올해 평가부터 10점 높인 70점으로 상향했다.평가 요소도 전·편입학 업무 처리 공정성과 교실수업개선 노력 정도 등의 항목을 신설해 계성고 평가에 새롭게 반영했다. 지표 별 배점역시 가장 높은 S부터 A,B,C,D까지 5단계의 배점 간격을 넓혀 과거보다 까다롭게 설계했다.20일 발표된 상산고는 평가에서 79.61점을 받았지만 전북교육청이 기준점수를 20점 높인 80점으로 정하면서 재지정 취소가 결정됐다.한편 대구교육청은 27일 지정·운영위원회에서 경일여고 재지정 취소와 자율형공립고인 강동고와 경북여고에 대한 재지정 여부도 함께 결정할 예정이다.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운명(殞命) / 전봉준

운명(殞命)/ 전봉준 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謨愛民正義我無失 愛國丹心谁有知때를 만나서는 천지가 모두 힘을 합하더니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백성 사랑 정의 위한 길에 허물이 없었건만나라를 위하는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최현식 편저 『갑오농민혁명사』 (신아출판사, 1994)............................................정읍의 향토 사학자 최현식씨는 1974년 5월 정읍군지에 수록할 자료를 모으다가 천안 전씨 족보에서 전봉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한시를 발견한다. 이 시는 ‘전봉준 장군’ 난의 여백에 ‘殞命 유시’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를 1974년 5월11일자 경향신문이 곧바로 보도하였고, 소설가 김동리의 번역을 함께 실었다. 시골 훈장의 아들로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했다는 정도의 기록만 알려졌을 뿐 전봉준이 남긴 자료는 별로 없는 상태에서 소중한 절명시(絶命詩) 한 편을 건진 것이다. 세 마지기 전답을 경작하는 소농이면서 한때 마을 훈장을 했던 그의 학식을 가늠할 수 있으며 아울러 고부 동학접주로 임명된 배경으로도 작용 했음직하다.작성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전봉준의 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농민 봉기 때 돌렸던 ‘사발통문’이나 ‘격문’, ‘포고문’ 등을 직접 지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전봉준이 동학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스스로 밝혔듯이, 동학은 경천수심(敬天守心)의 도(道)로, 충효를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보국안민을 위함이었다. 1894년 3월 인근 각지의 동학접주에게 통문을 보내 보국안민을 위하여 봉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르니 그 본의는 백성들을 도탄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기 위함인데, 안으로는 탐관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몰아내고자 한다....”이렇게 해서 백산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의 수는 1만 명이 넘었다. 1894년 4월 그가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부안을 점령하고, 전주로 진격 1894년 5월11일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호남일대를 장악한다. 그 전승일이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삼은 배경이다. 다급해진 조정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한다. 일본군도 톈진조약을 빙자하여 제물포에 들어왔다. 연이어 청일전쟁의 발발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마침내 9월 동학농민군은 항일구국의 기치를 내걸고 다시 봉기하였다. 전봉준은 자신의 주력부대 1만여 명을 이끌고 11월 우금치 싸움을 치렀으나 일본군과 관군 연합군에게 대패하고 만다.이 전투의 패배는 화기의 열세가 주원인이었다. 조선의 관군과 함께 농민군 공격에 나선 일본군이 미국에서 수입한 개틀링 기관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력에서 게임이 되지 않았다. 그 개틀링 건으로 난사를 해댔으니 이는 대량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농민대중의 밑으로부터의 힘을 결집하여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조선을 침탈하려는 일본의 야욕을 저지함으로써 국가의 근대화를 이루려 했던 전봉준의 개혁 의지는 일본의 군사력 앞에서 무참하게 꺾이고 만다. 그러나 그가 영도한 갑오농민혁명은 조선의 봉건제도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실증했고, 민중을 반침략 반봉건의 방향으로 각성시킴으로써 이후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진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세상은 변했지만 받들어 마땅한 정신으로 41세 나이에 절명한 의로운 영웅 전봉준의 ‘나라 위하는 일편단심’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