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수필대전, 서원(書院)과 오백 년 은행나무

입선 김복건 가을이 노란 은행잎으로 유혹한다. 갑자기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든다. 나뭇잎은 지난날들의 사연을 가지에 걸어두고 함께 떠나자며 내려앉는다.은행나무는 자기 보호를 위해 본능적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수나무는 냄새가 없다. 그래서 노란 잎이 되어 떨어진 황금카펫 길을 걸으면 참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잎들은 이곳저곳에서 나비가 되어 춤을 춘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바람과 어울려 춤사위를 하는 나비를 한참 바라보는 나의 눈이 젖어든다. 옛 직장에서 사표를 내고 쉴 때다. 매일 출근하였던 사람이 집에 있자니 갑갑하고 서성이자니 실업자라는 이미지를 줄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들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직장을 잃었으니 맛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줄 수 없었다.무료하게 집에 틀어박혀 있던 어느 날 저녁, 아내는 바람에 날려 떨어진 은행 열매를 주워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빡빡 문질러 겉껍질을 벗겨 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통마늘과 함께 달달 볶아 내가 좋아하는 맥주 안주를 만들었다. “여보! 힘내세요.”하며 차려진 조그마한 상에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려 노릇노릇 구워진 은행 열매가 있었다. 그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은행나무가 소수서원 입구에서 오백 년을 버티고 서 있다. 서원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첫걸음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차원에서 보고 느끼는 ‘생각의 서원’에 들어선다.우리 민족은 위계질서와 단체생활을 중히 여겼다. 크고 많은 것보다 작아도 알찬 생활을 하였으며, 은행잎처럼 따스한 색감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원인 것이다. 풍기지역 사람들이 향촌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곳으로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도 훼손되지 않고 남은 서원 중 한 곳이다.고려 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안향 선생이 돌아와 주자학을 알렸기에 주세봉 선생은 위폐를 봉안하고 체계를 갖춘 것이 백운동 서원의 시초가 되었다 한다. 향교의 성격을 띠었지만 학문을 배우고 전수하는 지방 사립대학 수준이었다. 걸어서 안으로 들어서니 직선으로 일신재, 지락재, 학구재가 배열되어 있다.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각각 별도의 경계 건물도 없고 갑을 관계의 흔적도 없음이 예사롭지 않았다.지금 시절에는 위계질서라는 명목으로 별도의 방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의견충돌이라도 있으면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일쑤다. 그런데 그 시절에 스승과 한공간의 마당을 사용하였으며 함께 거닐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과히 획기적이라 할 수 있겠다.내가 첫 직장생활 할 때만 하여도 대표자와 윗선의 간부 그리고 중간 간부들의 방은 별도였다. 윗선의 간부와 의논하고 업무를 추진한 후에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는 경영주에게 문책을 당하는 것은 윗선의 간부가 아닌 실무를 보는 중간 간부였기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나로서는 가슴 아픈 과거가 되었다. 함께 거닐고 좀 더 진지하게 즉시즉시 문제를 푸는 대화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더 현명한 판단의 결과를 이뤘을 것이다.경험 많은 현인을 뒤따르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헤매지도 않을 것 같은 배움의 공간에 닿았다. 학구재 옆에 스승의 공방인 직방재와 일신재를 우측에 두고 나란히 세우지 않고 약간 뒤로 물려 사제지간의 예의를 엿볼 수 있게 한 건축물. 통상적으로 지체 높은 사람들은 별채 혹은 뒤쪽의 별도 건물을 사용하건만 소수서원은 동학서묘로 배움의 공간은 동쪽에 두고 제향은 서쪽에 세웠다. 스승과 제자가 한 대문을 사용했다는 것은 가시적인 질서 없이 일렬로 배열한 것 같으면서도 통일되고, 단아한 모습 속에 위계질서를 느낄 수 있었다.당시 선비들이 학문을 배우면서 심신이 피로할 때, 잠시 거닐었을 것 같은 마당 한쪽의 소나무 아래 이르러 나도 걸음을 멈추었다. 선비처럼 먼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 저 멀리 흰 구름이 흘러간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은 흐트러진 몸맵시를 바로 하라는 듯 모자를 흔든다. 햇볕을 가리려 비뚤하게 쓴 모자를 고쳐 쓴다.옛 선비의 문화 속에서 미래지향적인 것을 찾고 싶은 나의 마음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일까? 다시 천천히 걷는다. 선조들의 서책과 영정이 모셔진 곳에 이르러 우측에서 좌측으로 옛 사람들의 예의 방식을 지키며 한발 한발 옮겼다. 당시 유생들은 어떠한 마음이었는지 더 많이 느끼기 위함에서이다.오백 년 전 세월에서 한참이나 머물다 입구로 돌아왔다. 그사이 서원으로 들 때 맞아 주었던 나무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서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노란 열매가 달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큰 결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면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음을 나무는 말하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세대를 지켜보았던 나무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을지라도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하고 싶었나 보다.매화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도 않고, 고운 향을 풍기지도 않지만 천년을 살아가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였다. 그런 은행나무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힘이 났다. 남편에게 용기를 주려고 구운 열매가 생각나서인지도 모른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열매를 구우면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그루의 나무에서 맺히는 수천수만의 열매를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나무는 오래되고 자랄수록 더 큰 보답으로 되돌려 준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나는 길을 걸으며 오백 년의 역사를 읽었고, 의견 충돌로 어려움에 처했던 지난 시절도 오늘을 바로 세우는 기틀이 되었음을 인지하였다.석양에 물들어가는 귀갓길에 아내의 눈물 같았던 오백 년의 토실한 황금 열매가 톡톡 떨어진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김삿갓 축제와 오백나한(五百羅漢)전시회

김삿갓 축제와 오백나한(五百羅漢)전시회류시호시인 수필가 여러해 전, 삿갓을 쓴다고 김립이라 부르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 선생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혼을 추모하는 강원도 ‘영월 김삿갓 문화제’에 초대받아 간적이 있다.김삿갓 문학관에서 김삿갓 생가터까지 걸으면서, 난고 시인의 풍자와 해학을 생각했다. 그래서 시향(詩香)이 어우러진 산길 숲속에서 시심(詩心)을 살려 시 한편을 쓴 적이 있다.그런데 생가터 가는 길목에 전국의 시인들이 쓴 감성의 시들을 전시하여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이 시들은 김삿갓 시인이 살던 계곡 이름을 붙여 ‘노루목에 부는 바람’이라는 문집을 만들었는데, 필자도 김삿갓 문화제에 어울리는 시 한편을 제출하여 축제의 일원이 되었다.이곳에는 김삿갓 묘와 생가를 비롯해 시비와 문학관이 있고, 문학관 내에는 김삿갓의 친필과 장원급제 시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돼 해학과 풍류를 엿볼 수 있다. 김립시집을 편찬한 이응수씨는 미국의 시인 휘트먼과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와 함께 19세기 ‘세계시단의 3대 혁명가’로 높이 평가 했다. 그래서 문학의 지식인들은 난고 시인을 ‘한국의 셰익스피어’라고 존경한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羅漢)’ 전시를 보았는데, 18년 전 강원도 영월군 야산에서 발굴된 나한상 317점 중 일부였다. 그동안 영월은 김삿갓 문화재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만 생각하다가 오백나한을 알게 되었다.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불·보살에 버금가는 신성함을 지닌 존재라고 한다. 나한상은 대부분 석가모니의 제자들로 성자의 모습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간적인 면도 표현된다. 특히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에는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이 나한상들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며, 따뜻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순박한 표정과 투박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나한, 내면을 일깨우는 명상의 나한, 산과 바위, 동굴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수행하는 나한 등 구도자의 모습으로 구현하였다. 곁에 있던 학예사는 “나한은 수행으로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킨 사람이다.” 라고 하는데, 영월의 나한들은 돌에 새겨진 얼굴들이 하나같이 고요하고 평안했다. 이 나한상은 6백여 년 전의 조각품으로 석공이 정성스럽게 정으로 쪼고 끌로 깎아 표정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오백나한은 석가모니 생존 시 500명의 제자나 석가의 열반 후 결집한 500명의 나한 등을 칭하는데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중국 푸젠성의 서풍암에는 오백나한원(五百羅漢院)이 있고, 저장성 서암사에는 철조(鐵造)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일본 도쿄의 라칸사(羅漢寺)와 교토의 다이도쿠사(大德寺) 및 도호쿠사(東福寺) 등지에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영천 은해사 거조암에 석조(石造) 오백나한을 모신 법당이 있다.필자는 김삿갓 문학축제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그리고 영월의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시회를 통하여 또 다른 역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지성적 인간으로 가장 좋은 사상과 감정, 가치 있는 삶의 기록을 독자들에게 남겨야 한다. 한국의 셰익스피어 난고 시인의 행적과 오백나한들의 얼굴을 보면서 앞으로 문학인으로서 고민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오백나한들의 표정과 김립 시인의 활동을 보면, 문학적인 삶과 나한들의 얼굴에서 잡념과 번뇌가 씻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강원도 영월은 감자, 옥수수, 송어 등과 맑고 푸른 동강의 아름다움이 있다. 가끔씩 역사여행을 통하여 생활의 변화를 주면 새로운 것도 발견하고 자신의 발전에도 좋다. 가슴이 답답할 때 훌훌 털고 강원도 영월에 가서, 역사의 현장과 문화 활동을 통하여 인문학의 즐거움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