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동해안 인근도시 해오름동맹 해돋이 역사기행 탄력 받는다

경주시와 포항, 울산시 등 3개 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해오름동맹의 ‘해돋이 역사기행’이 탄력을 받는다. 경주시가 포항, 울산시와 경북문화관광공사, 울산도시공사 5개 기관이 18일 울산에서 업무협약을 맺고 해돋이 역사기행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경주시는 지난 18일 울산광역시에서 포항과 울산시, 경북문화관광공사, 울산도시공사 등 5개 기관이 해돋이 역사기행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으로 5개 기관은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 채택된 ‘해돋이역사기행사업’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상호 공동홍보활동 전개, 연계 관광객 유치활동, 공동 관광상품 개발과 마케팅 활동에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서로 협력해 효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한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해돋이 역사기행 공동홍보영상을 제작하고, 울산도시공사는 찾아가는 관광안내소를 운영하기로 했다. 관광공사는 해돋이역사기행 공동홍보영상을 제작해 온오프라인을 통해 홍보하고, 관광상품 발굴 및 국내외 공동마케팅을 적극 추진해 시너지 효과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울산도시공사는 ‘찾아가는 관광안내소’ 운영으로 트럭에 3개 도시 이미지를 랩핑하고, 관광객이 많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KTX역 광장, 축제장, 인근지역 관광지를 돌면서 관광명소 알리기와 관광객 유치에 나선다. 특히 단순한 관광안내소 기능에서 탈피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해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즐기는 3개 도시의 인지도와 관광매력도를 높인다. 10월에는 새로운 체험형 ‘관광콘텐츠 페스티벌’을 신규로 개최할 계획이다. 10월18일부터 3일간 울산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페스티벌을 개최해 다양한 관광콘텐츠를 가진 기관과 관광사업자, 관광벤처, 관광스타트업, 개인 등이 참여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관광의 주체로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관광시장의 확대를 노린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경주시는 해오름동맹도시 포항, 울산과 함께 해돋이 역사기행 사업을 협업을 통해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3개 도시의 5개 기관이 협력해 새로운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매력이 넘치는 관광도시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한국 축구 새 역사 쓴 정정용의 재발견, 리더십 빛났다

16일(한국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 정정용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대구의 자랑 정정용 감독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 남자 축구대회의 첫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정 감독이 이끈 U-20 태극전사들이 아쉽게 FIFA 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역전패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이번 대회는 한국 축구 미래로 평가받는 이강인의 실력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나 ‘정정용 감독’의 재발견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대구 출신인 정 감독은 선수들과 수직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며 한국 축구 유일무이한 리더십을 발휘했다.정 감독은 유·청소년 선수들에게는 ‘지시가 아닌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지도 철학으로 이번 대회 한국대표팀을 원팀으로 만들었다.이 같은 지도 철학은 학창시절에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후배들에게 권위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는 그의 미담은 이미 재조명 받았다.또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에서 선수들에게 나눠줬던 ‘전술노트’가 단적인 사례다. 이 노트에는 상대 전술과 경기 운영 방식에 따른 포메이션, 세트피스, 콤비네이션 플레이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선수들이 자료를 더 달라고 먼저 요구하기도 하는 등 노트는 대표팀이 새 역사를 쓰는 씨앗이 됐다.대표팀 미드필더 고재현은 “운동장에서 ‘감독님을 위해 뛰어보자’고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강인은 “못 잊을 감독님”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특히 팀 내 상징적인 존재 이강인을 경기 도중 2차례나 교체한 것은 감독의 장악력이 없다면 가능할 수 없었던 전술이라는 평가도 있다.또 정 감독은 대회에서 모든 선수를 고루 기용했다. 이는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불가능한 부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며 정 감독의 리더십을 주목하는 데도 여기에 있다.김택환 경기대 특임교수는 “정 감독이 보여준 리더십은 그동안 우리나라 축구에 없었던 리더십이며 대구·경북의 리더십이라고 불릴 만하다”며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 준 이후가 중요하다. 정 감독은 부족한 세계 축구 공부를 더 하고 축구협회 및 시민들은 무한한 신뢰를 보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10)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영주 광복로에서 관사골 일대의 거리와 6군데의 개별 구조물이 지난해 전국 최초로 마을단위의 역사공간 등록문화재가 됐다. 사진은 광복로 상가 거리. 6월은 잘 익은 보리를 베어내는 계절이다.그때는 낡은 정미소도 탈탈 털털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기를 띠었다. 앞마당에 넘치던 나락 냄새까지 풍요롭던 세월, 정미소는 마을의 중심이었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담겨있는 공간들을 찾아본다. ‘장소’를 단순한 물리적 영역을 넘어서 새로운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쯤 문화재청은 근대문화유산의 효과적인 보존 활용을 위해 선(線)과 면(面) 단위의 문화재 등록 제도를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근대 시기에 형성된 거리, 마을, 경관 등 역사문화자원이 집적된 지역이 그 대상이 됐다. 지금까지는 문화재 등록 대상이 건축물이나 문헌 위주의 점(點) 단위였다. 이로써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고유의 경관을 잃어가는 마을이나 거리 등을 폭넓게 보존·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 지정 공고문과 함께 발표한 지도. 노란색은 일대의 거리 포함구역이고 주황색은 개별 근대건축 구조물을 표시한다. 첫 사례로 경북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와 전북 군산과 전남 목포의 일정 지역을 문화재로 등록한다고 예고한 것이 딱 1년 전의 일이다.그 후 30일간의 기간을 거치고 심의를 통과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공고문을 통해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는 철도역사와 그 배후에 형성된 철도관사, 정미소, 이발관, 근대한옥, 교회 등 지역의 근대생활사 요소를 간직한 건축물이 집적되어 있다며 영주동 관사골에서 광복로 일대의 거리와 6군데의 개별 공간구조물을 등록문화재 제720호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이는 전국 최초로 마을단위의 역사공간이 등록문화재가 된 셈이다.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는 근대시기 영주시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핵심 공간이다. 이곳에는 1920년부터 60년대 사이에 조성된 건물 들이 있다. 옛 영주역 5호 관사와 7호 관사, 영주동 근대한옥, 영광이발관, 풍국정미소, 영주제일교회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역사적 공간이다. 그 동안 개발로 인한 철거 위기도 적지 않았다. 한국전쟁과 개발논리에도 살아남은 이 6곳의 건물이 근대역사문화거리의 주축이다. 광복로와 두서로 일대에 모두 반경 300미터 남짓 안에 자리하고 있다. 걸어서 둘러보기로 했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영주 풍국정미소는 등록문화재 제720-5호로 지정되었다. 거대한 도정기계를 비롯한 공간 자체가 양곡 가공과 곡물 유통의 산업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영주 풍국정미소(등록문화재 제720-5호)붉게 녹슨 철문을 열어주는 주인 우길언(82)씨를 따라 정미소에 들어서니, 높은 천정에 달린 큰 크랭크축과 벨트가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게 수년간 영업을 하지 않은 듯하다. 어두컴컴함 속에서 낡은 기계들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다.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들어온 자연광이 내부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다. 1966년부터 부터 직접 이곳에서 일했고, 정미소와 함께 늙어가는 우 씨는 2010년대 초에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기계를 멈췄다고 한다. 더 이상 ‘윙윙윙~털털털...’하는 요란한 소리는 들리지 않고 고요하기만 하다. … ‘숨 가쁘게 달려왔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 늙은 혁명가’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안도현 시인은 ‘정미소가 있는 풍경’이라는 시에서 정미소를 이렇게 표현했다.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건물을 보고, 비록 실패한 혁명가일지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이 공간에는 요즈음 시간의 흔적을 보러오는 이들이 더 많다.얼마 전 기계를 연구하는 공학도들이 서울서 찾아와 이틀간이나 머물면서 자료를 수집해 갔다. 근대 산업 시기부터 운영된 정미소로 양곡 가공업의 생성과 양곡 유통에 관련한 역사가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다. 건축형식과 목재 설비구조, 도정 기기들 외에도 판수동 저울 등 당시의 정미소와 관련된 기구가 세월의 먼지를 쓰고 숨 쉬고 있다. 장소 자체가 양곡 가공과 곡물 유통의 산업사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보인다. 당국에서는 향후 이곳을 양곡 가공과 곡물 유통을 주제로 한 산업문화관, 쌀 카페, 도정 참관 및 판매장으로 활용하면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광복 이전, 6·25전쟁 전후의 근대건축물이 남아있는 두서길 일대는 관사골로 불린다. 사진 왼쪽 아래 영주역 7호 관사의 낡은 건물과 그 오른쪽으로 영주역 5호 관사의 지붕도 보인다. ◆영주역 5호 관사(등록문화재 제720-1호)와 7호 관사(등록문화재 제720-2호)영광중학교 옆 가로수 그늘을 따라 오르막길을 걸어 관사골을 찾아 갔다. 어린이공원이라 불리는 작은 동산위에 오르자 영주동을 중심으로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영주의 진산(鎭山)이라 일컫는 해발 276m의 철탄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영주는 철도 교통이 발달해 철도 종사자들로 붐볐고, 역무원들의 관사도 늘어나 현재 두서길 일대는 관사골로 불린다. 1942년 중앙선이 개통되고, 영주역이 중간 역으로 역할 한 것이 영주시가 근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등록문화재 제720-1호 영주역 5호 관사는 1935년 지은 건물로 일본식 목조 관사주택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 중 하나다. 이 일대는 고려 말·조선 초 시기 유적을 비롯해 광복, 6·25전쟁 전후의 근대건축물이 다수 존재하는 곳이다. 영주 근대도시 형성과 발전의 산 역사가 된 장소이기도 하다.부근에는 다른 관사도 남아있지만 내부공간구성, 외관형태, 구조 및 재료의 보존상태가 좋으며 원형 보존이 잘 된 '5호 관사'와 '7호 관사'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1935년 지은 건물로 일본식 목조 관사주택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 중 하나다.창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구조이고 지금은 시멘트 기와 지붕을 하고 있다. 대개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러하듯 다소 비장하게 남쪽을 향해 서있다. 영주동 근대한옥은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6칸의 규모이며 옛 한옥의 전형을 보여 준다. 등록문화재 제720-3호이다. ◆ 영주동 근대한옥(등록문화재 제720-3호)관사골로 올라가는 길 왼쪽 조금 낮은 곳에 '영주동 근대한옥'이 있다.작은 공터에는 채소가 가득한 텃밭이 있고 그 앞으로 골기와 집이 한 채 보이므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명나라 황제가 어머니의 병을 고쳐준 의원 이석간에게 보답으로 99칸 본채와 별채 여러 채를 지어주었다고 한다.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별채인데, 그마저도 1920년에 신축한 거라고 한다.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6칸의 규모이며 현재의 상태로 남아있다. 옛 한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격자무늬의 문들이 보인다. 80여년의 역사를 가진 영주 영광이발관. 이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지금도 영업을 계속하며 추억의 비누향기가 나는 공간이다. 등록문화재 제720-4호. ◆영주 영광이발관(등록문화재 제720-4호)풍국정미소를 나와 조금 걸으면 광복로 남쪽도로변에 보인다. 1930년대부터 ‘국제이발관’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시온이발관’으로 바뀌었다가 ‘영광이발관’에 이르는 8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70년경 현재의 이발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인수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영업 하고 있다. 서민들의 일상 생활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곳이다. 1950년대 근대산업시기에 건축된 슬레이트 목조구조의 건축물이다. 영주에서 80년 동안 지속된 장인의 이발관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사례로 업계의 변화와 특성, 기술을 간직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이발관’의 생활사적 가치가 높은 근대유산이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누 거품 솔과 가죽 끈에 면도칼을 갈고, 추억의 비누향기가 나는 곳이다. 영주 제일교회는 영주시의 근현대사에서 시민이자 신도들인 지역 주민들의 삶과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어 등록문화재 제720-6호로 지정되었다. ◆영주 제일교회(등록문화재 제720-6호)문화재청 등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영주 제일교회는 1907년 정석주 집에서 기도모임으로 시작되었고, 1909년 4월 초가 3칸을 매입하여 교회를 설립하고 경북노회에 가입하였다고 한다. 2007년에 이미 창립 100주년이 됐다. 1938년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목사와 장로‧전도사들이 구금 또는 옥고를 치렀다.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가 신도들의 노역봉사로 1958년 7월 준공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영주지역에서는 유일한 서양의 고딕식 건축양식이 보이는 절충형의 예배당 근대건축물이다. 영주시의 근현대사에서 시민이자 신도들인 지역 주민들의 삶과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어 전승 보전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고 문화재청은 보았다. 이렇게 해서 선과 면 단위로 지정된 등록문화재를 차례로 둘러보았다.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지만, 주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의 잔재를 보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역사적으로 지켜야할 우리의 역사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학계에서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적산가옥을 보존해야 한다고 본다.일제가 남긴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비극이 담긴 장소를 찾아 반성하고, 교훈을 얻는 여행을 뜻하는 ‘다크 투어리즘’도 있다.서울 서대문형무소나 나치독일이 남긴 흔적을 오히려 되살린 사례이다. 근대 유산은 자랑스럽든 아니든 우리 근·현대사의 증거다.그리고 이는 우리의 삶의 일부였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공간의 의미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커지고 우리 시야는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그 오랜 공간에는 만남이나 또는 헤어짐, 수많은 이야기 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픔의 시간을 딛고 지금 우리는 얼마만큼 성장해 있는가. 시간이 멈춘 거리, 이 6월에는 그리움과 함께 걷는다. 글·사진=박순국 언론인(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역사문화도시 경주 주말에 다양한 문화체험행사로 북적

역사문화도시 경주에서 주말을 맞아 곳곳에서 문화행사가 진행돼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첨성대와 월성 동부사적지 일대와 경주보문관광단지, 교촌마을, 황리단길, 불국사 등의 대표적인 관광지 일대에 특히 관광객들이 붐벼 차량정체 현상을 빚었다. 경주시는 지난 8일 봉황대 특설무대에서 제12회 경주시민의 날 행사를 3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양한 문화체험 축제로 진행했다. 경주시 문화상 시상식도 함께 이뤄져 문화예술부문 김형섭, 교육학술부문 강태호, 사회체육 부문은 이규섭씨가 각각 수상했다. 축하공연은 경주 출신 가수와 경주를 테마로 한 노래들로 풍성하게 채워졌다. 향토 시인 박목월, 향토작사가 정귀문의 노래와 ‘신라의 달밤’, ‘무영탑 사랑’처럼 신라이야기를 담은 고전 가요를 선보였고, 박현빈, 유지나 등 유명가수의 공연으로 객석을 뜨겁게 달궜다. 봉황대 잔디밭 일대는 다양한 주제로 꽃을 활용한 포토존으로 변해 여기저기에서 기념촬영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환경캠페인 이벤트, 칭찬메시지 캘리그라피 나눔으로 환경도 사람도 아름다운 경주를 만들자는 캠페인에 시민들이 함께 참가했다. 신라문화원이 7일과 8일 이틀간 경주 일대에서 7080얄개들의 복고축제를 열어 전국에서 참여한 300여 명들의 장년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추억의 가수 공연과 복고댄스, 노래자랑에 참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의 모습. 신라문화원은 7일과 8일 이틀간 ‘7080얄개들의 복고축제’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중장년 3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추억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 축제를 펼쳤다. 서울, 부산, 대구 전국에서 참여한 장년들이 교복으로 갈아입고, 교복 입고 포토타임, 추억의 먹거리체험, DJ가 진행하는 오다가다 노래방, 추억의 가수 공연, 7080 복고댄스와 노래자랑, 커피와 생맥주 타임 등의 프로그램에 이어 디스코 파티로 흥겨운 무대를 마련했다. 경주엑스포 공원에서 8일과 9일 이틀간 특별한 장터 ‘빛-클래시마켓’이 열렸다. ‘빛-클래시마켓’은 직거래장터와 벼룩시장이 결합된 형태로 작가, 예술가 등의 각계 전문가들과 시민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프리마켓’으로 중고물품이나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매월 1회씩 특별한 곳을 지정 운영한다. 마켓은 전국 각지의 셀러(Seller) 60여 팀이 참여해 의류, 인테리어 소품, 장난감, 수공예품, 커피, 과자, 식품류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고 알렸다. 또 슬라임 체험, 키즈클래스, 나만의 에코백만들기, 큐브비누모빌만들기 등 어린이와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돼 참가자들이 이색적인 문화를 즐겼다. 경주엑스포에서 8일과 9일 이틀간 프리마켓이 열려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체험행사와 생필품을 파고사는 행사가 새로운 문화로 선보였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김영현 지음/웨일북/375쪽/1만6천 원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인간이 되어 보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불가해한 사회 현상과 복잡다단한 인류사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모든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먼 과거의 유인원부터 미래 사회의 로봇까지. 상상을 통해 역사 속 개인의 하루를 산다.저자는 과거를 탐구하는 역사가나 사회를 예견하는 미래학자는 아니다. 스스로를 ‘N잡러’이자 ‘다중 인격’으로 표현하며 누구보다 타인에 공감하려 애쓰는 평범한 인간이다. 376페이지, 70개의 삶을 서술하기 위해 수백 권의 책을 탐독하는 성실한 다독가이며, 인간과 세계를 연민하는 눈이 맑은 청년이다.이 책은 270만 년 이상의 방대한 인류사를 다루지만 기존의 역사책과는 성격이 다르다. 인류사를 거시적으로 구획하기보다는, 시대를 대변하는 각각의 직업을 1인칭으로 서술하며 이야기를 풀고 그에 따른 알짜배기 지식을 이어주는 식이다. 때문에 이 책에는 역사에 족적을 남긴 위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름 없는 삶을 살아간 모든 이들이 책의 주인공이자 공동 저자인 셈이다. 이 책은 그 제목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성을 갖는다. 인류의 역사를 압축하는 대표적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 70명을 등장시켜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성동초등학교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상주의 얼을 찾아 떠나요!

상주교육지원청 특색사업인 ‘천 년의 역사와 소통하는 상주 얼 찾기’ 프로그램으로 상주 성동초등학교 4학년(80여 명) 학생들이 상주문화유산 탐방을 했다. 상주시 성동초등학교는 최근 상주교육지원청 특색사업인 ‘천년의 역사와 소통하는 상주 얼 찾기’프로그램인 상주문화유산 탐방을 했다. 이날 성동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은 문화해설사 2명과 함께 충의사, 임란북천전적지, 남장사, 존애원을 탐방하며 상주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았다. 학생들은 임진왜란의 명장인 정기룡 장군을 모시는 충의사에서는 장군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알아보고, 충의사의 의미에 대해서 배웠다.임란북천전적지는 임란 때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 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로 900여 명이 순국한 호국 성지다. 또 남장사를 방문,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배웠으며, 상주시 청리면에 위치한 존애원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던 상주 선비들의 박애 정신에서 탄생한 사설의료국이며, 이에 담긴 존심애물의 숭고한 사랑에 대해 알게 공부하는 기회가 됐다. 문화유산 탐방에 참여한 4학년 김하윤(11) 학생은 “책에서만 보던 문화유산들을 직접 보니 신기했고, 문화해설사 선생님이 설명을 잘해주셔서 생생한 역사가 잘 느껴졌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문화유산 탐방에 참여한 이현주 교사는 “사회 교과서에 우리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마침 직접 답사를 하게 돼 학생들이 우리 고장을 더욱 자랑스러워하게 되는 좋은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삼국유사 기행(13)- 진흥왕

[{IMG01}] 신라 24대 진흥왕은 어려서 즉위해 태후가 10여 년을 섭정했다. 진흥왕은 삼국유사에는 15세, 삼국사기는 7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흥왕의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이고, 아버지는 법흥왕의 동생이다. 법흥왕이 아들 없이 죽자, 왕의 조카이자 외손자가 왕위를 이은 이색적인 케이스다. 신라 초기에서 중기까지는 왕위세습을 자녀 또는 형제에게로 이으면서 여자에게도 세습권을 인정했다. 경주시 서악동 선도산 자락에 있는 신라 제24대 진흥왕릉(사적 제177호). 흙으로 덮은 봉토분으로 자연석을 이용해 보호석렬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지만, 보호석은 몇 개만 남아 있다. 학자들은 잘못 지정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진흥왕은 신라 건국 이래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왕이다. 불교 이념을 근간으로 화랑도를 창설해 나라의 동량을 키우는 한편, 정신적 통일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왕권을 크게 강화했다. 황룡사 터와 분황사지 사이에 구황동 당간지주가 우뚝 선 주변으로 보리밭이 조성돼 누렇게 익은 황금 보리밭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으로 요즘 방문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황룡사를 짓고, 최대불상 장육존상을 세운 진흥왕은 아들의 죽음으로 더욱 불교적으로 심취하기도 했다. 진흥왕이 말년에 국사를 편찬하고 병권을 거머쥔 실세 거칠부와 갈등을 빚었다. 43살의 젊은 나이에 죽은 진흥왕의 사인을 두고, 거칠부와의 갈등에 의심을 두는 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번 호에서는 진흥왕의 즉위와 친정, 업적에 대해 지금까지 남은 흔적을 더듬어보면서 개괄적으로 알아본다. 다음 호에서 진흥왕의 전쟁과 거칠부와의 갈등을 살펴보면서 진지왕의 즉위 과정도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로 한다. ◆삼국유사: 진흥왕제24대 진흥왕은 왕위에 오를 때 불과 15세였으므로 태후가 섭정을 했다. 태후는 법흥왕의 딸이며 입종갈문왕의 왕비였다. 태후는 임종할 때, 머리를 깎은 뒤 승려 옷을 입고 세상을 떠났다. 승성 3년(554) 9월에 백제의 군사가 진성에 침략해 와서 남녀 3만9천 명과 말 8천 필을 빼앗아갔다. 이에 앞서 백제는 신라와 군사를 합하여 고구려를 치려고 했으나, 진흥왕이 말하기를 “나라의 흥망은 하늘에 달렸는데 만약에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감히 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라 했다. 바로 이 말이 고구려로 전달되니 고구려가 그 말에 감동하여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었다. 이에 백제가 신라를 원망하여 이렇게 침범한 것이다. 진흥왕이 세운 창녕 신라 순수비.◆흔적△진흥왕 순수비: 진흥왕은 18세가 되면서 섭정에서 친정체제로 전환하고, 연호를 바꾸어 정복 전쟁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전쟁으로 빼앗은 지역에 차례로 기념비를 세웠는데 이를 순수비로 부른다. 진흥왕이 영토를 확장하고 경계를 돌아보면서 세운 마운령 신라 순수비.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남한강 상류를 차지한 것이 그의 영토 확장을 향한 첫발이었다. 특히나 동맹국의 임금이었던 성왕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게 한 것은 백제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계기가 되었다. 진흥왕은 단양에 단양 적성비를 세웠다. 당시 남한강 유역은 고구려 땅이었고, 중원 고구려비가 근처에 있었다. 진흥왕이 영토를 넓히고 국경지역을 돌아보면서 순수비를 세웠던 것은 1천500년 전이다. 순수비는 비교적 글자들이 깨끗하게 보존된 역사의 기록으로 과거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신라 진흥왕이 세운 북한산 신라 순수비. 낙동강 유역에는 창녕비(561)를 세우고, 북쪽으로 올라가 한강 하류에는 북한산비(555)를, 함경도 지역에는 황초령비(568)와 마운령비(568)를 세웠다. 모두 정복 사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IMG07}] 신라가 한강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은 단양 적성비와 북한산비다. 단양 적성비는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서 단국대학교박물관 조사단에 발견돼 1979년 국보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93cm, 윗너비 107cm, 아랫너비 53cm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물갈이한 뒤, 그 위에 직경 2cm 내외의 글자를 음각하였다. 윗부분은 파손되었으나 좌우 양 측면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비문은 전체 22행에 각 행당 20자씩 새겨져 현재 남아 있는 글자 수는 비면의 288자와 주변의 발굴을 통해 수습된 21자를 합쳐 309자이다. 적성비는 이사부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출정하여, 고구려 지역이었던 적성을 공략하고, 그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와 가족 등 주변 인물을 포상하고, 적성지역의 백성들을 위로할 목적에서 세웠다. 이 비에는 기존의 문헌 자료에 보이지 않는 지방통치조직과 율령, 조세제도 등의 내용이 기록돼 신라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황룡사 터에 장육존상과 십대제자상 등이 세워졌을 것으로 보이는 불상의 기초석과 중금당의 기초석이 남아 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황룡사역사관이다. △황룡사 터: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나 절로 고쳐 지었다. 17년 만에 완성한 역사다. 이어 진흥왕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의 땅에 닿아 진흥왕이 이것을 재료로 삼존불상을 만들었다. 나중에 선덕여왕이 황룡사 금당 남쪽에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다.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했는데, 백제의 아비지가 645년에 완공했다. 진흥왕부터 4명의 왕이 94년에 걸쳐 황룡사 가람을 완공했다. 그러나 몽골족의 침입으로 1238년 모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금당터 초석과 불상의 기단만 덩그렇게 남아있다. 1976년부터 시작된 황룡사지 발굴에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이 큰 치미, 금제합, 명문판, 염주, 청동반함, 안합, 금동불 입상, 금동보살 불두 등의 유물 4만여점이 나왔다.경주시는 황룡사터 서쪽에 황룡사역사문화관을 건설해 황룡사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찬란한 신라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사교육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방문객들의 마음을 모아 황룡사 복원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신라시대 진흥왕이 화랑제도를 창설하고, 임신년에 두 화랑이 나라에 충성하고 열심히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다짐한 내용이 기록된 임신서기석. 보물 제1411호로 지정돼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임신서기석: 진흥왕은 화랑제도를 도입해 청년들을 나라의 기둥으로 길렀다. 임신서기석은 신라시대 화랑도 2명이 나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을 새긴 작은 돌비석이다. 1934년 경주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지 부근에서 발견되어 보물 제1411호로 지정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임신년’이라는 시기를 비롯해 74자가 새겨져 있다. 당시 청소년들의 강한 유교 도덕 실천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경주시 서악동 무열왕릉 뒤쪽으로 4기의 고분이 남북으로 위치해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 기록으로 가장 왼쪽이 법흥왕릉, 그다음 고분이 진흥왕릉으로 추정된다. -진흥왕릉: 경주시 서악동 삼층석탑 서북 방향의 사적 제177호로 지정된 고분은 진흥왕의 업적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진다. 고분의 높이는 5.8m 정도로 낮고, 지름도 20여m 규모로 정면 외에 삼면이 키 낮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으로 고분의 아랫부분에는 자연석들이 몇 개 드러나고 있어 보호석렬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경주시 서악동 무열왕릉 뒤편에 소재한 진흥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 남쪽으로 진흥 왕비의 무덤, 진지왕릉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무열왕릉 북쪽으로 4기의 높은 고분이 있는데 그 중 위에서 두 번째를 진흥왕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뒤편의 고분을 법흥왕릉으로 보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에서 기록하고 있는 ‘애공사 북쪽’ 등의 내용을 참고한 주장으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황룡사역사문화관에 추정 복원된 황룡사 장육존상 도해도.◆진흥왕신라 제24대 진흥왕은 일곱 살에 왕위를 이어받았다. 540년에 즉위한 진흥왕을 대신해 어머니 왕태후의 섭정이 10여년 이어지는 동안 왕업에 대한 공부를 살뜰히 했다. 신라시대 최초의 섭정이다.삼 진흥왕의 이름은 삼맥종, 또는 심맥부라고도 불렀다. 법흥왕의 동생 입종 갈문왕의 아들로 534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인 지소부인이다. 갈문왕이 자신의 조카딸과 결혼했다. 같은 신분끼리 결혼해야 후손이 그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당시에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540년 법흥왕이 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한 채 죽자, 일곱 살의 삼맥종이 왕위에 올랐다. 당시 아버지인 갈문왕도 이미 사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섭정은 지소부인 태후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인 정치를 보필한 신하는 이사부와 거칠부였다. 어린 진흥왕을 왕좌에 오르게 하는데도 이사부와 거칠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사부와 거칠부 모두 법흥왕 대에서 진흥왕 때까지 정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사부는 지증왕 대부터 정계에 진출해 한 세대 앞섰다. 진흥왕은 18세가 되면서 기개가 넘치는 청년으로 성장해 친정을 시작하면서 연호도 법흥왕 때부터 쓰던 건원에서 개국으로 고쳐 사용했다.진흥왕은 친정을 시작하면서 영토 확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관산성 전투로 한반도의 중부를 차지하며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기 시작했다. 왕태후는 진흥왕 즉위 첫해 죄수들을 사면하고 관리들의 벼슬을 한 등급씩 올려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사부를 병부령, 지금의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국가의 모든 군사적인 일을 맡겼다. 귀족들의 협의체인 화백제도를 통해 정책을 결정해왔던 신라에서 병권을 전담하는 벼슬이 생기고, 왕이 벼슬을 임명할 정도로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사부는 지증왕 대에 우산국을 점령한 바 있는 장군으로 어린 왕과 군사적 식견이 부족한 왕태후를 도와 진흥왕 초기 군사와 정치를 이끌었다. 신라 최고의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자고 건의한 사람도 이사부이다. 왕태후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했다.왕태후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은 최초의 절 흥륜사를 완성하고, 일반 백성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 등 불교를 장려했다.진흥왕은 영토확장에 나서면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는 화랑제도를 만들어 청소년들을 나라의 동량으로 육성했다.진흥왕이 영토를 확장하고 경계 부근에 세운 순수비 분포도. 영토는 진흥왕 최대의 관심사였다. 젊고 패기만만한 진흥왕은 신라가 더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정을 시작하면서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의 변경을 침략해 지금의 충주와 단양 등 남한강 변에 있는 10개 군을 차지했다. 그리고 3년 뒤 관산성 전투를 통해 한반도 중부를 점령 삼국의 패자적 위치에 올랐다. 젊은 왕의 걸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555년에는 가야연맹에 속해 있던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에 하주를 설치했고, 이듬해에는 함경남도까지 영역을 넓혀 안변에 비열홀주를 설치했다. 그리고 6년 뒤에는 고령의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가야의 영토를 완전히 신라에 편입시켰다. 신라의 영토가 한반도 땅의 절반 이상을 장악해 신라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보했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삼국통일의 물적, 인적 토대가 되었다. 진흥왕은 연호를 ‘크게 번창하다’는 의미인 ‘태창’으로 다시 바꾸어 영토 확장과 신라의 번영을 자축했다. 이어 진흥왕은 서울을 거쳐 함경남도 함흥의 황초령, 이원군에까지 자신이 개척한 영토를 직접 돌아보면서 백성을 위로하고 포상했다. 또 이를 기념하고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북한산 순수비, 황초령 순수비, 마운령 순수비 등을 세웠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보훈청, 역사코멘터리 토크쇼 개최

대구지방보훈청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난 1일 대구학생문화센터 소극장에서 대구지역 중·고등학생 200여 명을 초청해 역사코멘터리 토크쇼 ‘We 大韓 보훈’을 개최했다.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대구교육박물관과 함께하는 문화유산답사기

'대구지역 민족운동의 발걸음을 따라' 프로그램 참가생들이 신암선열공원 답사에 앞서 단충사에 들러 묵념하고 있다.지난달 대구교육박물관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019, 우리 가족 문화유산 답사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대구 지역 학생과 학부모들이 보낸 뜻깊은 하루를 취재하기 위해 함께했다.체험 프로그램 첫 순서는 ‘대구지역 민족 운동의 발걸음을 따라’를 주제로 국립신암선열공원 답사하기다.국립신암선열공원은 애국지사 52명이 안장된 곳으로, 우리나라는 국립묘지가 10군데 있는데 그 중에 한 곳이다. 독립유공자 묘소는 이곳이 유일하다.전국적으로 작년 말 기준 1만5천180명의 독립유공자가 포상을 받았고, 대구와 경북에서는 2천160명 14.2%로 타 지역보다 월등히 많은 유공자를 배출했다.그동안은 대구시에서 선열묘지공원으로 관리를 했고 2018년 5월1일자로 국립묘지로 정식 승격하면서 대구 학생들도 참배와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장소가 됐다.신암선열공원을 둘러보기 전 학생과 학부모들은 우연식 소장님의 안내에 따라 단충사에 들러 참배를 하고 헌화를 했다.먼저 제5묘역에 안장된 임용상 지사와 김태련 지사 묘지에서 묵념을 한 후에 업적을 들었다. 임용상 지사는 3등급 독립장으로 안장된 52명 중 제일 품격이 높은 분이며 김태련 지사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시고 만세운동을 벌이셨다.국립신암선열공원은 누구나 언제든지 둘러볼 수 있도록 상시 개방 중이다. 산책로와 전망까지 아름다워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산책하기에도 좋다.두번째 순서는 3.1운동길 및 의료 박물관, 선교 박물관, 역사문화 박물관 중 하나인 블레어주택이라는 역사문화 박물관 관람이다.박은찬 강사님의 해설과 함께 선교사들이 대구의 의료·의술 발전에 기여한 부분과 당시 교육환경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했다.블레어 선교사가 직접 사용한 의료기기와 침상, 서재 등이 보존된 2층은 관람할 수 없었지만, 블레어주택 2층부터 제중원 즉, 동산병원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었다. 1층은 당시 학교 물품과 교과서 등이 전시돼 있다.투어를 안내한 유득순 선생님은 “우리 주변에 역사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만 3군데 이상의 역사적 유적이 있을 것이다. 다만 알려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을 뿐.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렇게 개발될 수 있다”며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세번째 방문한 곳은 신명고등학교 내 신명역사관이다. 교문을 들어서자 좌측에 위치한 ‘신명 3.1운동 기념탑’이 빛을 발하며 우뚝 솟아 있다. 당시 ‘신명여학교’였던 이곳은 대구 여성교육의 중심을 차지한 곳으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3.1운동에 동참한 장소라서 의미가 남다르다.2007년 100주년을 맞이한 신명고등학교는 대구교육과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3.1운동에 동참한 것으로 학교의 자랑이자 자부심으로 삼고 있었다.‘과거에 내가 이곳에 있었다면 과연 아무 두려움 없이 나라만을 생각하면서 태극기 하나 들고 3.1운동에 적극 동참할 수 있었을까’ 상상해봤다.네 번째 방문한 곳은 기독교 교육과 근대교육의 주춧돌 역할을 했던 계성학교 아담스관이다. 박은찬 강사님은 대구 3.1운동의 시작으로 이곳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고 했다.아담스관 지하실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일제의 눈을 피해 3.1운동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외관은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역사적 의미로는 값지고 뜻깊은 장소에 서서 당시의 모습을 상상했다.어른 몇 명과 10대, 20대 학생들이 모여 복사를 하거나, 필사를 하는 광경들이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학생들 스스로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고 대구·경북으로 확산시켜나간 3.1운동이 있었다는 게 뭉클하고 자랑스러웠다.‘우리 가족 문화유산 답사기’를 마치면서 박은찬 강사님은 “100여년이라는 시간동안 지역 교육을 담당했던 곳임을 기억하길 바라며 학생들에게 역사적 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가정에서도 가능하다”고 했다.강북중 2학년 정윤서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하고 다짐하는 하루였다.대구교육사랑기자단 8기강북중 2학년정윤서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이임하 지음/철수와영희/220쪽/1만3천 원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혐오, 문명, 정치, 결혼, 전쟁, 호명, 규범, 운동, 노동 등 9가지 주제를 통해 여성들의 역사를 청년소들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담고 있다.저자는 여성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역사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성 차별, 여성 혐오 등 잘못된 여성관과 가부장적 남성관이 그동안 여성의 역사를 외면해온 결과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녀’라는 표현은 여성 일반에 대한 공격으로 퍼지곤 하는데, 이렇게 여성을 허영과 사치의 상징으로 야유하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은 다양한 여성들의 경험과 삶을 배제하는 태도가 짙게 배어 있는 반쪽짜리 역사를 배워온 결과라고 말한다.이 책은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성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반쪽이 아닌 제대로 된 역사를 알게 된다면 ‘차이’가 ‘차별’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녀가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고산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놀이가 역사가 된다' 강좌 마련

-대구 고산도서관은 ‘길위의 인문학’ 시리즈로 ‘놀이가 역사가 된다' 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지역주민 4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24일 정낙림 경북대 철학과 교수의 '인간은 왜 놀이 하는가', 31일 정우락 경북대 국문과 교수의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정신과 놀이문화' 강좌로 꾸며진다.강의는 오후 7시부터 시작된다. - 대구 용학도서관은 오는 25일 특별강연으로 ‘선배들과 함께하는 멘토링’을 준비했다.이날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시청각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번 강연은 지역 중·고등학생과 학부모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다.행사는 대학생 멘토링을 통해 동기부여 제공 및 효율적인 공부방법과 실질적 조언을 제공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구미공단 50년, 반세기 역사와 추억을 찾아요

구미시가 구미공단 50주년을 기념할 추억의 물품과 기업가·근로자를 모집한다. 구미시가 공단 50주년을 맞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물품과 역사를 함께 한 기업가와 근로자를 모집한다. 포스터 사진. 구미공단 역사를 빛낸 인물은 구미공단에서 근무한 근로자, 기업체 창업주, 기업가 등 구미공단과 관계된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선정된 기업가와 근로자는 구미공단 50주년 행사 영상에 인터뷰를 넣고, 구미공단 50주년 기념행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추억의 물품은 구미공단에서 생산된 물품과 월급봉투, 근무복, 사원증 등 구미공단의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물품으로 선정된 물품은 구미공단 50주년 기념행사 때 전시될 예정이다. 기증자에게는 소정의 사례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신청서는 구미코 홈페이지(http://www.gumico.com)에서 내려받을 수 있으며, 6월 30일까지 이메일(ejlee@gumico.com)이나 우편(경북 구미시 산동면 첨단기업1로 49 구미코), 직접 방문해 접수하면 된다.자세한 문의 사항은 구미시청(054-480-6122)이나 구미코(054-477-8101)로 하면 된다. 구미공단은 1969년 9월16일 공업단지 조성 실시계획 인가일을 기준으로 올해 조성 50주년을 맞았다. 구미시는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끈 구미공단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100년 지속성장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구미공단 50주년 기념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9월16일부터 22일까지를 구미공단 50주년 기념주간을 지정하고, 기념주간에는 기념식과 함께 문화·체육·예술행사 등 시민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로 축제 분위기를 만들 계획이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김천경찰, 신임경찰관 환영식 대신 역사 현장 탐방나서 눈길

경찰관으로 첫 발을 내디딘 신임 경찰관들의 이색 환영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신임 경찰관들은 자신이 근무하는 지역의 역사도 배우고 호국정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이들의 환영식과 지역 탐방은 8일 오전 김천경찰서 현관 앞에서 시작됐다. 임경우 김천경찰서장은 직원들과 함께 신임 경찰관들에게 꽃다발을 증정하며 환영했다. 환영식 후 임 서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신임경찰관들과 함께 김천 경찰의 희생과 호국정신이 깃든 역사 현장 탐방에 나섰다.화려한 환영식 대신 신임경찰관들의 민주·인권·민생 경찰 정신을 함양시켜 민생치안의 초병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임 서장의 생각에서다.김천경찰서 신임경찰관 10명은 증산면 ‘경찰충혼비’와 ‘부항 지서 망루’를 돌아보며 호국 경찰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가슴에 품었다. 1950년 10월24일 자정 무렵 북한군 불꽃 사단이 증산 지서를 습격해 이기섭 경위를 비롯한 경찰관 6명을 사살하고, 같은 해 11월18일 또다시 증산 지서를 기습 공격해 경찰관 2명을 사살하고 도주했다. 증산면 경찰충혼비는 1950년 무장공비 소탕을 위해 전투 중 전사한 경찰관 13명과 청년단원 8명, 귀순자 1명의 넋을 위로하고 뜻을 기리기 위해, 전사자 순경 김수암의 동생 김영길씨 등 22명이 기금(450만 원)을 갹출해 1995년 5월27일 증산파출소에 건립했다. 부항 지서 망루는 1948년 12월부터 부항면 일대에 공비들이 출몰, 지서를 습격하고 마을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자 부항면민들이 부항 지서를 빨치산에 대항하는 지휘소로 1949년 5월 건립됐다. 이곳은 2008년 10월1일 6·25전쟁 관련 문화재로 지정됐다. 임경우 서장은 “신임 직원들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고, 경찰관으로서 사명감을 깊이 간직하기 위해 역사현장 탐방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임경우 김천경찰서장(앞줄 왼쪽)과 신임경찰관들이 부항 지서 망루를 돌아본 후 엄지를 치켜세우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석가탄신일 맞아 자비로운 부처님 뵈러 영천으로 오세요

12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전국의 사찰들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경북 도내에서는 영천지역에 역사와 문화가 깃든 천년고찰이라는 역사를 품은 전통사찰이 많아 전국에서 신도들이 찾아오고 있다. 영천의 전통사찰에서 부처님의 자비를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천년고찰 은해사은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 영천시의 대표적 사찰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천년고찰이라는 역사와 명예에 걸맞게 괘불탱(보물 제1270호), 대웅전 아미타 삼존불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사찰에서는 성보박물관을 건립해 귀중한 문화재들을 체계적으로 분류, 보존하고 있다. 대웅전과 보화루, 백흥암 등의 현판 글씨가 모두 조선시대 명필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라 더욱 가치가 있다. 은해사 초입부터 이어지는 소나무 숲은 방문객들에게 청량감을 전해준다. ◆국보 문화재를 보유한 거조사거조사는 은해사의 말사로서 신라 효성왕 2년(서기 738) 원참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본사 은해사보다 오히려 창건 연대가 앞선다. 그 뒤 고려 우왕 13년 혜림법사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국보 제14호인 영산전은 고려말·조선 초 주심포 양식의 형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받는다. 또한 영산전 안에 모셔진 526기의 석조 나한상은 하나하나 다른 표정과 영험을 지녀 3일간 치성을 드리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 많은 신도가 찾고 있다. ◆영천댐의 풍경을 담을 수 있는 묘각사묘각사는 영천시 자양면 기룡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영천댐을 굽이굽이 지나 기룡산 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묘각사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설화에 따르면, 창건 당시에 동해 용왕이 의상에 설법을 듣고자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 산 이름을 기룡산이라 칭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나 후에 여러 차례 중창돼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극락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기룡산 맑은 공기와 영천댐의 수려한 경관이 어우러진 묘각사의 매력에 빠져보길 추천한다. 영천시에는 이들 3곳의 유명한 사찰을 포함해 전통사찰로 분류된 역사적 가치가 높은 13개의 사찰이 있다. 지역별로는 팔공산 자락에 있는 영천시 신녕면의 부귀사, 신녕 포교당, 진불암, 수도사, 한광사가 있다. 금호읍에는 죽림사와 신흥사가 있으며, 화북면 봉림사, 대창면 영지사, 자양면 거동사, 교촌동에는 영천 포교당이 있다. 이번 석가탄신일에는 각기 다른 세월의 이야기를 품은 전통사찰이 있는 영천시를 방문해 속세에 지친 마음을 달래며 평온함을 느껴보자. 영천시에는 역사와 문화가 깃든 전통사찰이 곳곳에 많아 어느 지역을 들러도 고찰에 담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지난해 석가탄신일에 금호읍 죽림사에서 펼쳐진 탑돌이 모습. 박웅호 기자 park8779@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