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마음에 옛날을 돌아본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학년이 바뀌면 담임선생님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학생 실태조사’였다. 질문과 손들기가 20번 이상 반복됐다. 편부, 편모, 조부모, 형제자매 등 가족 관계 조사를 먼저 했다. 그 다음에는 부모님의 재산, 교육 정도, 직업 등을 조사했다. 재산은 자가, 전세, 사글세, 월세 조사에 이어 라디오, 카메라, 재봉틀, TV, 오르간, 피아노, 자가용까지 점차 단계가 높아졌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 절반 이상의 집에 라디오가 없었다. 마을마다 유선으로 연결된 스피커만 달아주고 각 방송국의 뉴스와 인기 연속극 등을 듣게 해주는 사업자가 있었다. 우리는 그 집을 방송국이라고 불렀다. 봄에는 보리 한말, 가을에는 나락 한말을 시청료로 냈다. 방송 프로그램을 바꿀 때마다 안내해주는 아가씨도 있었다. 손들기의 압권은 오르간과 피아노였다. 그런 악기가 있다고 손을 드는 아이에게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초등 3학년 정도만 되면 그 친구의 아버지가 육성회 이사가 되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과수원, 방앗간, 술도가 등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지역 유지 노릇을 했다. 주민 대다수의 직업은 농업이었고, 공무원도 드물게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하는 일이 있다. 유난히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가 “아버지는 일이 있을 때는 나가시고 없을 때는 집에 계십니다. 우리 아버지 직업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망설이지 않고 ‘그건 막노동이야’라고 답했다. 순간 일그러지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많은 선생님들이 학급의 크고 작은 일들을 지역 유지 자녀에게 맡겼다. 상식 밖의 특혜를 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나는 부모 학력 조사 때는 늘 마지막에 묻는 ‘무학’에 손을 들어야 했다. 후에 ‘한학’이란 항목이 생겼을 때 엄청 기뻐했다. 아버지가 어느 정도까지 공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우리를 훈계할 때 자주 공자나 맹자, 명심보감 등을 인용했던 것만 기억한다. 가난한 수재들은 부모의 재산과 직업에 따른 차별에 대놓고 불만은 표하지 않았지만, 그런 과정을 지켜보며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뼈에 새겼을 것이다. 헐벗고 굶주렸지만 총명한 아이들은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시험 점수만은 부모의 직업이나 재산이 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에 대한 확신이 우리 사회를 활력에 넘치게 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공정한 경쟁이 사라졌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입시에서도 가진 자의 자녀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학생, 학부모가 많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용잡급직으로 떠돌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 신음하고 있다. 오죽하면 명문대 출신보다는 결혼할 때 양가집으로부터 집을 물려받거나 전셋집을 지원받는 자가 승자라고 말하겠는가. 그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고, 집 없는 자가 월급을 모아 집 사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며 어깨를 늘어뜨린다.민주화가 진전된 이후에는 각종 시민단체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조직을 이끌던 사람 상당수는 시간과 더불어 권력의 핵심부나 그 주변에 편입되어 권력의 시녀로 전략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기득권에 편입되고 완장을 차게 되면 이들의 사고는 급격하게 경직된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생결단이다. 상부상조하며 동병상련하는 동지가 없으면 홀로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무서운 자는 시류에 편승하여 위선으로 출세하고는 오만과 독선, 적반하장과 후안무치의 갑옷을 입고 정도와 상식을 무시하며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좌절감과 박탈감을 안겨주는 사람이다. “가진 것 없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원하는 곳에 취직해 집 사고 처자식 부양하며 부모님도 봉양할 수 있었던 부모님 세대가 한없이 부럽다. 라면과 김밥으로 배는 고프지 않겠지만 흙수저는 영원히 흙에 묻혀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들의 탄식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날은 언제일까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산삼이 돋아났다. 마른 솔 잎 사이를 뚫고 올라온 연초록 잎이 참 신기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 명씩 발생하던 때, 소나무가 우거진 앞마당을 묵혀두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지인이 어디서 산삼 씨를 구해 듬뿍 묻어두고 간 모양이다. 언젠가는 돋아날 것이라며 잔뜩 희망을 주더니 정말 기적이 자라기 시작이다. 날이 가고 해가 지나면 그것도 잘 자라서 언젠가는 5엽을 자랑하는 성숙한 산삼으로 당당히 커갈 것 같아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역에서는 일단 진정세로 들어선 모양새지만 수도권의 하루 확진자 숫자가 날마다 등락을 반복한다.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자가 격리 수칙을 준수하고 생활형 거리 두기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일상의 작은 접촉마저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기에 언제 어디서 다시 바이러스가 활동을 재개할지 모르니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아무리 위기에 닥치더라도 언제까지나 거기에 함몰돼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5월 들어서부터 청첩장이 간간이 오기 시작이더니 6월이 되자 그간 미뤄둔 결혼식이 정말 봇물이 터지는 것 같다. 주말이 되자 이곳저곳 가지 않으면 안 될 자리가 많아진다. 더러는 양해를 구하고 축의금만 보내지만, 우리 아이의 결혼식을 찾아와 축하해주었던 이의 혼사에는 찾아가 보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잠시라도 얼굴을 내밀기로 했다.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로서는 결혼식이라면 대개 일생에 한 번 있는 일일 것이기에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지 않겠는가. 모처럼 붓 펜으로 정성 들여 쓴 축의금 봉투를 들고 결혼식장을 찾았다. 코로나19로 결혼식장은 여느 때 보다 절차가 하나 더 생겼다. 비접촉 체온 측정 후 방명록을 작성하고 손 소독을 하고 들어간다. 식장으로 들어서니 그동안 만남이 없었던 오래된 옛 동료들도 간간이 눈에 뜨인다. 반가워서 얼싸안다가도 ‘거리 두기’를 외치며 화들짝 놀라 멀찍이 떨어진다. 코로나 걱정으로 한산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참석 인원에 의외라는 기분이었다. 참석자들은 마스크를 쓰고서 가능한 대화를 줄이고 테이블에 조용히 그러면서 될 수 있는 한 멀찍이 앉아서 결혼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추세에 따라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이다. 신랑 아버지가 단상에 올랐다.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은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평생 고락을 함께 하는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신랑의 아버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성혼 선언문 낭독이었다.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신랑 아버지가 머뭇대며 이야기를 잇는다. 자식 결혼식을 처음 하다 보니 혼인 서약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받지 않고 성혼 선언문을 먼저 낭독했다는 것이 아닌가. 웃음이 터져 나오며 박수가 이어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신랑과 신부에게 혼인 서약에 대한 맹세를 듣고서 재차 성혼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결혼식에서 작은 실수가 어쩌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남아 그 결혼식을 더 기억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웃음이 난다. 며칠 전 책에서 본 한평생 시계만을 만들어 온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어느 시계공 아버지가 자신의 일생에 마지막 작업으로 온 정성을 기울여 시계 하나를 만들었다. 완성된 시계를 아들에게 주었다. 초침은 금으로, 분침은 은으로, 시침은 구리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 초침보다 시침이 금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대답했다. “초침이 없는 시간이 어디에 있겠느냐? 작은 것이 바로 되어 있어야 큰 것이 바로 가지 않겠느냐? 초침의 길이야말로 황금의 길이란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손목에 시계를 걸어주면서 말했다. “1초 1초를 아껴 살아야 1초가 세상을 변화시킨단다.” 언젠가는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다시 찾은 일상은 코로나 이전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하는 습관도 들여야 할 것 같다. 작은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큰길로 가는 길을 놓치고 말 수도 있을 터이다. 단 1초의 순간, 그 선택이 어쩌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헌시

헌시 성국희 당신은 궁서체로 새겨진 책입니다/ 밥상머리 하신 말씀 밑줄 붉게 그어놓고/ 아직도 못다 읽은 책, 아버지란 책입니다당신은 뿌리 깊은 한 그루 나무입니다/ 바람 잘 날없었어도 꿋꿋하게 버텨내신/ 당신은 밑동이 굵은 아버지란 나무입니다당신은 어디서든 길이 되는 지도입니다/ 길 잃은 자식들 앞에 이정표가 되어주신/ 당신의 깊은 주름살, 아버지란 지도입니다당신은 지지 않는 저 하늘의 태양입니다/ 사남매 삶 속에서 늘 밝은 빛이 되신/ 당신은 가장 뜨거운, 아버지란 태양입니다글이 되고 그늘이 되고 길이 되고 빛이 되신/ 아버지, 그 이름 앞에 큰절을 올립니다/ 갚아도 못 다 갚을 사랑, 당신께 바칩니다-『미쳐야 꽃이 핀다』(목언예원, 2020).....................................................................................................................성국희는 경북 김천 출생으로 2011년 서울신문과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꽃의 문장』『미쳐야 꽃이 핀다』가 있다. ‘헌시’는 아버지 고희에 부쳐라는 부제가 있는 사부곡이다. 간절한 마음이 전편을 관주하고 있다. 딸에게 아버지는 특별한 분이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딸을 어여삐 여기고 세상의 모든 딸은 아버지를 극진히 생각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딸은 훌륭하게 자라서 훗날 좋은 어머니가 된다. 사실 아버지는 아들이나 딸에게는 큰 나무다. 어머니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넉넉히 받은 자녀는 비뚤게 자랄 수가 없다. 그래서 화자는 당신은 궁서체로 새겨진 책이라고 말한다. 밥상머리에서 하신 말씀을 밑줄 붉게 그어놓고 아직도 못다 읽은 책이 아버지라는 책이라고 힘주어 이야기 한다. 칠순이라면 적잖은 연륜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회갑을 맞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가 많았다. 요즘 70세는 아직도 청년이다. 건강을 잘 유지한 분들은 활기가 넘친다. 화자는 또 당신은 뿌리 깊은 한 그루 나무로서 바람 잘 날 없었어도 꿋꿋하게 버텨내신 밑동이 굵은 아버지라는 나무라고 노래한다. 어디서든 길이 되는 지도여서 길 잃은 자식들 앞에 이정표가 되어주신 깊은 주름살은 아버지라는 지도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당신은 지지 않는 저 하늘의 태양이기에 사남매 삶 속에서 늘 밝은 빛이 되신, 가장 뜨거운 아버지라는 태양이라고 형용한다. 하여 글이 되고 그늘이 되고 길이 되고 빛이 되신 아버지, 그 이름 앞에 큰절을 올리면서 고희를 경하 드린다. 갚아도 못 다 갚을 사랑을 당신께 바친다. ‘헌시’는 다소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정서가 진중하고 절절하여서 아버지께 바치는 헌시로서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흔히 돌아가시고 나서 기리는 마음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건강한 가운데 고희를 맞은 아버지를 위해 시인으로서 이러한 사부곡을 써서 직접 육성으로 읽어드리게 되니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아버지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법하다. 그 어떤 효도보다 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기에 복된 일이다. 그는 젊은 시인으로서 시조라는 시의 한 갈래를 선택하여 창작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고뇌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신작 시조집 곳곳에 자신만의 시조론을 개진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고 궁구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귀해 보인다. 이정환(시조 시인)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 1천번이고 사과할 수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이 23일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천 번이고 사과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노 원장은 지난해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으며,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게 직접 사죄의 말을 전한 바 있다.노 원장은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직접 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뜻을 담아 사죄와 참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노 원장은 "아버지는 역사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 분"이라며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든 간에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이어 "(노 전 대통령은) 5·18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며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풀어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가슴 아파해왔던 세대로서 나 자신의 책무도 있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현충원에 가서 6.25 전사자에 참배하듯이 우리 광주도 국립묘지고 민주 묘역인데 당연히 참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노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병상에 누우신 지 10년이 넘었다. 말씀과 거동을 전혀 못 하신 지도 꽤 오래됐다"며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창재 기자 lcj@idaegu.com

아버지의 말

아버지의 말 백점례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났다/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숙이 파인 채로고인 말 퍼내고 싶어/ 움찔거리는 파장으로거친 껍질 부수고 깬 굴곡의 팔십 평생/ 모 닳다 모지라져 뿌리까지 뽑힌 자리끝내 다 못 전한 말을/ 우물우물 삼킨다-『나뭇잎 물음표』(고요아침, 2018)...................................................................................................................백점례는 충남 부여 출신으로 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버선 한 척』『나뭇잎 물음표』가 있다. 그만의 길, 그만의 시조 쓰기에 전념한 결과물이 유달리 빛나기 때문에 시조문단의 주목 대상이다. 그의 몇몇 작품은 시조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시조의 존재 가치를 잘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아버지의 말’은 무겁다.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이 곡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났다, 라는 첫 구절은 아픔의 요약이다. 틀니가 빠져나온 자리를 두고 우물이라고 규정한 것은 놀라운 의미 부여다. 하늘이 준 영감에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실제로 어떤 이가 신이 내린 구절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신의 한 수라는 말을 하는데 창작자인 시인은 명작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역량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지점에서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만큼 간절할 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눈이 번쩍 뜨이는 섭리가 개입하리라는 생각이 든다.그곳은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숙이 파인 채로 고인 말 퍼내고 싶어 움찔거리는 파장으로 우물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환기하고 있다. 그것은 곧 거친 껍질을 부수고 깬 굴곡의 팔십 평생이어서 모 닳다 모지라져 뿌리까지 뽑힌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끝내 다 못 전한 말을 우물우물 삼킨다. 여기서 다시 우물이 우물우물과 수미상관처럼 유기적 체계로 미묘하게 결합되어서 이 작품의 밀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그는 또 ‘경칩 무렵’이라는 시에서 생명의 환희와 약동으로 충만한 세계를 보여준다. 비 그치고 밟는 흙이 밥처럼 부드럽다, 에서 흙을 밥으로 본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이 포착한 구절이다. 진정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이만이 이러한 사유가 가능할 것이다. 시적 인간이 곧 생태적 인간인 사실이 이 대목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그래서 속이 환히 보이는 가난한 터전으로 햇살이 벌써 밭고랑을 치고 있는 정경이 눈에 밝게 들어온다. 지난날 엉킨 덤불도 풀씨의 울이 되고 바람과 살얼음도 깍지 풀어 넘는 길이기에 떡잎이 기지개를 켜고 발바닥이 간지러워진다. 미세한 시각과 치밀한 시선이 아름다운 시를 빚은 것이다.가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다. 효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세월 탓이다. 진자리 마른자리 다 갈아 뉘시며 자녀를 위해 헌신하신 부모님의 고마움을 무슨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살아계실 때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난 것을 발견한 것도 아버지를 잘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버지 역시 딸에게 모든 것을 다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혹여 힘들어할까봐 당신의 어려움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발견한 그 우물은 웅숭깊어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숙이 파인 곳이어서 인생의 깊이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관조는 시조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말’을 나직이 음미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아침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자전거 도둑

자전거 도둑 박완서~돈 욕심에 양심을 팔순 없다~ …수남은 시골에서 올라온 열여섯 살 소년이다. 청계천 세운상가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일한다. 주인은 전기용품으로 잔뼈가 굵은 할아버지뻘 되는 장사꾼이다. 수남은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재미로 더 부지런히 일한다. 세 사람이 할 일을 어린 수남이 몇 푼 받지 않고 혼자 감당하고 있다. 주인 영감은 공부를 시켜준다고 자랑삼아 말하지만 실질적 배려나 도움은 전혀 없다. 입시철이 지났지만 빈말도 없다. 수남은 밤늦도록 공부하며 또 봄을 맞는다. 바람이 세게 불던 어느 봄날, 이웃 가게의 간판이 떨어져 길 가던 아가씨가 다쳤다. 병원까지 갔다 온 가게 주인은 손해가 막심하다고 울상이다. 재수가 없는 날 같다. 그 와중에 단골소매점에서 배달 전화가 왔다. 수남은 인근 단골집에 자전거로 형광램프를 배달한다. 돈을 두고서 외상 하려고 하지만 끈질기게 기다린 끝에 겨우 돈을 받아낸다. 장사꾼의 나쁜 습성에 진저리가 난다.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온 수남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깜짝 놀란다. 세찬 바람으로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옆에 주차해둔 고급 승용차를 긁어놓은 것이다. 차주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었지만 어림도 없다. 차주는 당장 배상하지 않으면 자전거를 담보로 잡아두겠다고 한다. 자전거 바퀴에 자물쇠를 채우곤 사무실로 들어갔다. 수남은 바퀴가 잠긴 자전거를 번쩍 들어 옆구리에 붙이고 부리나케 도망친다. 도망치는 중에 수남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주인 영감은 자기에게 손해가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인 듯 운이 텄다며 수남을 두둔한다. 주인 영감은 자전거의 자물쇠를 절단하며 똥색 양심을 드러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남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수남의 형은 절도죄로 지금 감옥에 있다. 돈 벌러 집을 떠나 올 때, 수남의 아버지는 도둑질만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 수남은 자전거를 훔치듯 들고 도망쳐 온 일을 후회했다. 돈만 밝히는 주인 영감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사건이다. 도덕적으로 자신을 견제해줄 아버지가 그립다. 마침내 수남은 양심을 일깨워 줄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산업화시기에 시골의 잉여인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도시의 공장과 가게로 몰렸다. 세운상가도 무작정 상경한 촌놈들로 넘쳤다. 수남은 전기용품 유통을 익혀 독립하는 꿈을 안고 점원으로 일한다. 주인은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여우다. 자잘한 입발림말로 수남을 현혹한다. 공부를 시켜 줄듯이 말하면서 그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소중한 고생 경험을 그 뒤를 밟고 있는 수남에게 물려주기는커녕 호의를 베푸는 척 교묘히 꼬드기고 착취한다. 돈이 있으면서도 외상을 놓으려는 장사꾼의 습성을 알고 그에 대응하는 방법을 익힌 수남이 안쓰럽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승용차를 자전거로 긁었다면 그 손해를 의당 배상하여야 한다. 배상하는 사람도 조금 억울하겠지만 긁힌 상대방은 더 억울하다. 바람한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자전거 주인이 책임지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어린 소년이라면 그 보호자나 후견인이 책임질 일이다. 자전거를 들고 도망가라고 종용하는 행태는 어른답지 못하다. 주인 영감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그 손해를 배상해주어야 마땅하다. 돈 몇 푼 아까워 양심을 외면한 주인 영감은 어린 수남에게 결코 귀감이 될 수 없다. 소년에게 필요한 건 도덕성을 견제해줄 참된 어른이다. 갈등하던 수남은 결국 그의 양심을 지켜 줄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릴 때까지 소년은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하다. 오철환(문인)

겨울의 환(幻)

겨울의 환(幻)김채원~밥상을 차리는 여인~…나는 마흔세 살의 이혼녀다. 연인의 권유로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에 대한 글을 쓴다. 한 번도 여자로 느끼지 못한 주제에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에 대한 글을 쓴다는 일이 어색하지만 조금 흥분된다.산불이 발발하여 헬기로 불을 끄는 장면이 뉴스에 나온다. 집안 아저씨와 내가 오늘 외할머니 묘소에서 낸 산불이다. 한편 뜨거운 불기운이 망자의 응어리를 녹여줄 것 같다. 나는 어머니와 손모양이 닮았다. 어머니는 손이 달아서 반찬이 맛있다고 자랑하곤 한다. 김치는 수긍하지만 된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어머니는 교직생활을 오래 하셨으나 아버지에게 소박당한 후로 화투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작은어머니를 얻어 가족을 버렸다. 객지에서 병사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아버지는 없다. 나는 서른둘에 결혼했다. 신혼여행 중 바닷가 횟집에서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의 샐쭉한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시아버지의 장례 때, 새까맣게 떨어져 내리던 눈의 아우성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결혼 육 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없는 것도 큰 이유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결혼예물 때문이었다. 그 후 쭉 어머니와 살고 있다. 어느 날, 길을 찾는 어떤 남자를 만났다.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던 남자였다. 그 부름에 잠시 멈추는 그 순간, 사랑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어느새 3년이다.외할머니는 북에서 온 피난민이다. 외할아버지가 첩을 얻어 나가는 바람에 외할머니는 홑몸으로 외삼촌과 딸 셋을 키웠다. 기댈 곳 없는 낯선 곳에서 고생을 달고 살았다. 외삼촌은 6·25때 월북했다. 우리는 뒤늦게 피난을 갔지만 외할머니는 집에 남았다. 공산당이라도 늙은이는 해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월북한 아들을 만나보려던 의도도 작용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할머니는 이모 댁으로 옮겨갔다. 그 후, 양치 중에 쓰러져 며칠 동안 의식 없이 자리 보존하다가 운명했다.어머니는 할머니와 다투곤 했다. 내림인지 나도 어머니와 끈질기게 싸웠다. 그래선지 어머니도 마침내 쓰러졌다. 다행히 회생되긴 했지만 다리에 힘이 빠져 병상에 누웠다. 이젠 어머니와 화해할 때가 되었다. 어머니와의 화해는 연인과의 결별이라는 또 다른 선택을 내포할 수 있다. 어머니와 연인은 서로 엇갈리는 운명인지 모른다. 어머니와 화해한다 해도 함께 산다는 것은 속박이다. 소멸해 가는 어머니를 맡은 것은 운명이다. 어머니가 몸이 아파 할머니를 이모 댁에 인계한 일이 아프게 다가온다. 우린 실향민이다. 산불은 아베크족의 실화로 밝혀진다.…환(幻)은 변화하는 둥근 원이고 윤회를 상징한다. 외할머니의 운명이 어머니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팔자가 또 그 딸에게 전해진다. 외할머니,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여성 3대가 모두 다 남편에게 버림받는다. 그 디테일이 조금 변형되기는 하지만 크게 보아 유사한 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작가는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에 대한 본질을 밝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나는 여자의 운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로 자기자리를 찾아간다. 기다리는 사랑이 아닌 적극적으로 베푸는 사랑이 요체다. 밥상을 기다리는 여자에서 따뜻한 밥상을 차리는 여자로 거듭난다. 사랑은 또한 삶의 쓸쓸함을 벗어나는 묘약이다. 따뜻한 밥상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도 사랑이란 마음으로 이어진다. 여성의 일상과 의식의 흐름 속에서 삶의 허망함을 담담하게 풀어낸 수작이다. 오철환(문인)

문향만리…가정

가정 박목월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어./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청담』 (일조각, 1964)....................................................................................................................... 천상이 아닌 지상, 원죄를 진 인간은 지상에서 고된 삶을 꾸린다. 백열등이 켜질 무렵, 고단한 하루 일과를 접고 집으로 돌아간다. 60년대 초반, 시골과 달리 도회지는 전기가 들어와 백열등을 밝혔다. 정원과 현관이 있는 반양옥을 지나면 들깐이 딸린 부엌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판잣집이 나타난다. 서민들의 인생살이가 그 안에서 복닥거린다.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다. 마침내 밖으로 바로 방문이 드러난 단칸 오두막집 앞에 선다. 가난한 시인의 삶은 고달프다.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 신발이 문밖 지상에 나란히 놓여있다. 지상은 땅 위라는 본래적 의미와 더불어 아내가 천상으로 갔음을 암시한다. 아홉 마리 강아지는 자식들이다. 금슬이 좋았다. 아버지는 오십대 홑몸이다. 신발 크기는 ‘십구 문 반’, 신발 크기를 문수로 표기했다. 1문이 24㎜면 ‘십구 문 반’은 468㎜다. 요즘 성인 남자 255㎜, 성인 여자 230㎜ 정도가 보통이다. 제대로 먹지 못한 60년대 초, 성인 남자 248㎜, 성인 여자 220㎜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몫까지 합해서 ‘십구 문 반’이다. ‘지상’과 ‘십구 문 반’은 천상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심정을 녹여낸 상징이다. ‘육 문 삼’은 151㎜. 막내는 겨우 대여섯 살 남짓,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다. 아홉 켤레 고무신이 나란히 놓여있는 모습은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대유다. 크고 작은 아홉 켤레 신발을 보면 피로가 가시고 미소가 절로 인다. 세상살이에 지친 심신의 고달픔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코가 납작한 조그마한 신발이 눈에 들면 마음이 급해진다. 커다란 신발을 나란히 벗어두고 방문을 연다. 아이들이 일어나 아버지를 반긴다. 막내가 다리에 매달리고 아이들의 따스한 눈길이 쏟아진다. 막내는 식은 풀빵 한 봉지를 받아들고 춤을 춘다. 첫째만 온 걸 먹고 나머진 반씩 나눠 먹는다. 아내가 없는 고달픈 세상에 아버지는 혼자 자식들을 돌본다. 냉엄한 지상에 남겨진 원죄를 홀로 감당한다. 그래서 십구 문 반을 신는다. 온갖 굴욕을 참고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며 험한 세상을 헤쳐 간다. 책임져야 할 자식들이 있어 포기하거나 굴복할 수 없다. 아무리 삶이 고되고 힘들더라도 꿋꿋이 버텨내는 원동력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지상에 맡긴 자식들에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이 실망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설퍼 보이지만 아이들 앞에선 듬직하다. 아버지의 미소는 자식들에게 자신감과 편안함을 준다. 사랑과 용기를 충전해주는 자식들이 있기에 아버지는 결코 외롭거나 불행하지 않다. 아버지는 슈퍼맨이다. 오철환(문인)

‘영남 인동초’… 아들이 쓴 야당 정치인 아버지 일대기

야당 불모지 영남에서 독립운동 하듯 험난한 야당 정치인의 길을 고집하며 묵묵히 걸어온 이육만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상임고문의 일생을 조명한 책, ‘영남 인동초(忍冬草)’가 출간됐다.이육만 고문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며 취재를 통해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40여년 가까이 이어가면서 이른바 ‘DJ 정당’으로 자신이 낙선한 3번의 선거를 포함해 야당으로 무려 10번의 선거를 치르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영남 지역 야당 역사의 산 증인이다.책의 저자는 이육만 고문의 장남인 이성훈 대구MBC 전 보도국장이다. 저자는 기자로서 날카로운 시각과 간결한 필체로 아버지의 일생을 재평가하고 시대의 귀감이 될 그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저자는 이 책에서 아버지의 일생을 전쟁 고아들과 함께 한 청소년기, 불의에 맞서 정론직필을 위해 뛰어다니던 언론사 기자 시절, 교사로서 인성교육을 강조하던 교단생활, 질곡의 야당 정치인 시절,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황혼기 등 5개 범주로 나누고 시기별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일대기를 서술했다.에피소드 가운데는 어둡던 야만의 시절, 인혁당 당수로 사형을 당한 도예종과의 인연과 영남 원외지구당 위원장으로 동병상련을 나누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저자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를 둔 탓에 20번 이상 이사를 다녀야 했던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애환과 야당 정치인으로서의 무기력함에 눈물을 흘리며 고뇌하는 아버지의 내면세계 등을 잔잔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이 책의 장르는 독특하다. 저자는 이 책의 장르를 자서전(自敍傳)의 스스로 자(自)를 아들 자(子)로 바꾼 ‘자서전(子敍傳)’이라 이름 짓고 평전 분야 새로운 장르로 선언한다.저자는 “자식이 부모의 일생을 기록하는 ‘자(子)서전’을 가풍으로 이어가려고 그 프로젝트 1탄으로 세상에 책을 냈다”고 설명했다.이성훈 지음, 한국정보인쇄 펴냄, 가격 1만8천 원.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김천에서 12일만에 23번째 코로나 19 확진자 발생

김천에서 12일 만에 ‘코로나19’ 23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김천시는 미국 유학생 A(22·여)씨가 확진자로 판명됐다고 30일 밝혔다.A씨는 이날 오전 3시께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인천검역소에서 검체 후 아버지와 함께 김천 자택에서 대기 중 이날 오후 확진 판정 통보를 받았다. 치료 병상을 배정받은 후 입원예정이다.A씨 아버지는 자가격리 중이다.김천시는 A씨는 입국 후 바로 자택에서 대기 중이어서 접촉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호주국적의 유학생 B(33)씨도 인천공항에서 검체 후 양성으로 판명나 즉시 격리조치됐다.B씨의 부모는 김천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문향만리…수난 이대

수난 이대“…정치 좀 똑바로 하라고…” 하근찬 박만도는 전쟁에서 돌아오는 아들 진수를 마중하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급한 마음에서 평소보다 빨리 읍내에 도착했다. 장터에서 고등어 한 손을 사들고 기차역으로 갔다. 대합실에 앉아 잘려나간 왼팔을 보며 지난 일을 회상한다. 일제 때, 그는 강제 징용되어 남양의 섬으로 갔다. 그 섬에서 산을 깎아 비행장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합군의 공습이 있었다. 격납고를 파던 굴로 피신했으나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왼팔을 잃었다. 불길한 기억이다. 이윽고 기차가 도착하고 아들을 만난다. 진수는 외다리로 목발을 짚고 나타난다. 만도는 극도로 속이 상했다. 주막에서 한잔 걸치고 국수를 사 먹이며 평정심을 되찾아간다. 만도가 소변볼 때, 진수가 고등어를 들어준다. 오른손 밖에 없는 만도에게 양손이 다 있는 진수의 도움이 요긴하다. 외나무다리를 만난다. 외다리 진수가 목발을 짚고 건너기는 무리다. 만도는 진수에게 등에 업히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아들은 아버지의 고등어를 들고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지켜본다….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었고, 아들은 한국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전쟁으로 인해 2대가 소중한 몸을 손상당하는 기구한 운명에 기가 막힌다. 왜 죄 없는 사람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왜 하필 그들 부자에게 연속적으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지, 그 답을 알 수가 없다. 뭔가 잘못되었다. 책임 있는 대상을 찾아내어 복수할 생각을 한들 그걸 탓할 수 없다. 복수까진 아니더라도 배상 정도는 주장할 수 있을 터다. 물러터진 사람이라면 실의에 빠진 채 퍼질러 앉아 팔자 탓만 할 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간혹 본다. 아버지는 징용으로 끌려가 왼팔을 잃었지만 낙담하지 않고 굳세게 살아왔다.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양반을 욕하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일제 탓을 하지도 않았다. 섬을 공습한 미군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왔다. 유사한 비극적 운명을 이어받은 아들을 보면 참담한 기분이 든다. 아무나 잡고 실컷 두들겨 패고 싶다. 하지만 그는 평정심을 되찾고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인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아들을 위로하며 삶의 의지를 일깨워준다. 난관을 극복하려 혼자 몸부림치지 않는다. 각자의 장점을 활용하여 상부상조하면 장애를 거뜬히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서로에게 팔과 다리가 되자고 한다. 팔 없이 꿋꿋이 살아온 아버지를 지켜본 아들이기에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소변을 보면서 느꼈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깨달았다. 아버지는 돌아다니는 일, 아들은 집에서 하는 일을 하면 된다. 서로의 결손을 채워주는 삶이다. 아버지의 분노와 절망감이 애정과 희망으로 바뀌고, 아들의 상실감과 두려움이 자신감과 용기로 전환된다. 역사적 비극도 신뢰와 배려로써 협력하고 화합한다면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휴머니즘이 물씬 풍긴다. 한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만신창이가 된 채 삶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민초들이 단단히 마음먹고 지도층에게 일갈하고 있다. 민초의 거친 삶을 보고서, 양심이 있으면, 제발 정치 좀 똑바로 해서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잔잔하게 꾸짖는다. 죽창 들고 나서는 사람보다 인내하고 삭이는 사람이 실상 더 고수다. 잘못된 것을 긍정과 관용으로 받아치는 작가의 노련함이 행간에 숨어있다. 오철환(문인)

문향만리…하늘역

하늘역 박해수촛불을 들고 / 하늘역을 어리둥절 / 찾아 갔습니다 / 남루한 아버지와 형과 아우가 / 먼저 도착해 있다고 / 우선 나를 찾았습니다 / 하늘역에는 / 부모와 동기간도 없고 / 만남과 이별도 없고 / 영원히 사는 것뿐이라고 / 하늘역에는 고통스런 시를 쓰지 않아도 / 좋은 시들이 많은 것이라고 / 내 마음을 몸을 하늘역처럼 살라고 / 하늘역을 놓았다고 / 촛불을 들고 나와 / 어리둥절 찾지 않아도 되니 / 몸과 마음속에 하늘역을 / 만들어 놓아라고 / 자꾸만 네 마음에 / 하늘역을 만들어 놓아라고 / 네 시가 가는 곳이 바로 / 하늘역이라고『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 (북랜드, 2008).................................................................................................................... 바닷가에 서서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본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이 눈부시다. 근심과 걱정이 포말로 산산이 흩어진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너머의 세계를 바라본다. ‘바다에 누워’ 생각마저 잊는다. 해 저문 노을이 손짓한다. 일곱 색깔 무지개가 하늘까지 펼쳐진다. 하늘길이다. 별들도 쉬어간다는 멀고먼 아득한 그 길은 시를 껴안고 울면서라도, 시를 품고 무릎을 꿇어가면서라도, 기어코 가야만 하는 길이다. 시인은 ‘맨발로’ ‘걸어서 하늘까지’ 갈 생각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 그래서 가끔 무작정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건지 모른다.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데 가야할 곳을 알 리 없다. 그냥 떠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기차역을 보면 역마살이 돋는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시인은 간이역을 주목한다. 간이역에서 인간의 원초적 갈망을 찾아낸다. 간이역마다 시라는 부적으로 오아시스를 놓았다. 목마른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 줄 시인의 몸부림이자 기도였다. 간이역은 간이역으로 이어져 하늘역에 닿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정체성과 그리움을 찾아 촛불을 들고 하늘역을 찾아간다. 어리둥절 뭐가 뭔지 모르는 하늘역에서 우선 자신의 참모습을 본다. 아버지와 형과 아우가 먼저 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은 부모와 동기, 만남과 이별도 없다. 영생만 있다. 살아생전 남루한 모습 따위의 가난과 고통은 인간사의 헛된 기억일 뿐 하늘역엔 의미 없는 무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고통 없는 하늘역엔 고통을 승화시킨 시를 쓰지 않아도 좋다. 시인은 오직 밝고 환한 시만 쓴다. 시인도 독자도 모두 행복하다. 고통을 나눌 일은 없고 기쁨을 함께 할 일만 남아있다. 하늘역에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현실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속에 하늘역을 놓는 일이다. 마음속에 하늘역을 놓고 보면 촛불을 들고 나와 어리둥절 찾지 않아도 된다. 마음속에 하늘역을 만들어 놓으라고 시인은 제안한다. 마음속에 하늘역을 놓은 시인이 쓴 시는 하늘역으로 향한다. 하늘역을 놓은 시인의 시는 구원의 복음이자 천국행 티켓이다. 간이역마다 마련해 놓은 시비는 하늘역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표지석이다. 시인의 인생역정은 하늘역을 찾아가는 행군이었고 시인이 남긴 시는 그 행로를 알리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우리는 이제 간이역으로 갈 일만 남았다. 간이역 시비에서 시를 읽고 기차를 타면 하늘역으로 간다. ‘죽도록 그리우면 / 외로우면 기차를 타라’고 노래하던 박해수 시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천상의 하늘역에서 시를 품고 있을 박해수 시인이 그립다. 지금 우리는 위로해줄 시인이 필요하다. 오철환(문인)

아버지의 유산

아버지의 유산 / 최언진길에서 길을 묻는 그런 일 다반사지/ 나에겐 어렵잖은 이정표 하나 있어/ 길이냐 길이 아니냐 어렵지가 않았다// 부표를 떠올려서 근심 뛴 모습인가/ 안심한 모습인가 그림을 그리란다.아버지 그 말씀 따라 길을 찾곤 하였지// 내게도 지혜 있어 평생을 써먹고도/ 녹슬어 썩지 않는 그런 말씀 있다면야/ 대대로 물려줄수록 빛을 발할 그 유산.- 시조집 『아버지의 유산』 (시조문학사, 2019)................................................. 유산이라 하면 물질적인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정신적인 유산이다. 이를테면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지혜가 담긴 탈무드처럼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훌륭한 유산인 것이다. 낯선 길을 나설 때 우리는 흔히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다. 그곳 지리에 빠삭한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어설프게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생고생하기 십상이다. 이때 바로 된 이정표만 있다면 아무리 낯선 길이라도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시인에겐 그 이정표 같은 존재가 바로 아버지이다. 갈림길 앞에서 어디로 갈까 망설일 때마다 아버지의 말씀과 표정으로 길을 선택한다. 이렇듯 인생에서 좋은 길 안내자를 만나는 것보다 귀한 행운은 없다. 더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께서 매번 그 향도 역할을 해주신다면야 그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으랴. 훌륭한 부모님이 계셔서 미혹의 길로 빠지지 않게 하고 참다운 길로 이끌어주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유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집안의 전통적인 지혜가 답습되어 가풍이 되고 아버지들의 엄중한 가르침은 가훈이 되어 대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요즘 풍토에서 가훈 운운은 참으로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가훈은 경주 최 부잣집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 집안 누대에 걸친 삶의 지침이고 지혜였다. 한 인간의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자양분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가훈은 양심에 충실할 것,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충실할 것, 믿음 속에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 나갈 것, 부자도 가난한 자도 되지 말 것 네 가지였고, 노무현 대통령의 가훈은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가훈대로 살다 가셨다. 그랬던 가훈을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대가족이 해체되고 ‘밥상머리교육’이란 말도 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없는 시대’라는 말을 들은 지 모래다. 예전에는 ‘나를 세상에 있게 한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지녔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돈이 있든 없든, 신분이 높은 벼슬아치든 쭉정이 천민이든 상관없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런데 다들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니까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옅어져만 갔다. 자식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다. 아버지가 길을 내면 자식은 그 길을 걸어간다. 아버지가 걸어간 삶의 궤적을 쫓아가며 자기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시인은 아버지께서 남기신 삶의 지혜와 가르침대로 베풀면서 오늘을 산다. 경기광주 지역에서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귀감인 분이다. 부박한 목적이 이끄는 정신없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아버지의 유지대로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면서 뜨거운 열정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문화체험 한 편의 수필로 승화시킬 수 있어 유독 마음이 가

수많은 공모전 가운데서도 유독 마음이 갑니다. 경북에 산재한 문화재의 잘 알지 못했던 면모를 발견할 수 있고, 또 그러한 문화체험을 한 편의 수필로 승화시킬 수 있어서입니다. 작은 상이나마 해마다 수상을 하다 보니 대구일보 주최측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얼마 전 치매 판정을 받으신 아버지께 작은 기쁨이나마 전할 수 있어 흐뭇한 마음입니다.시나 소설에 비해 변방의 문학으로 취급받는 수필입니다. 수필만으로는 유일한 공모전인 만큼 앞으로 더욱 많은 글들이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6회 시흥문학상 우수상△제1회 여자의 행복 수기공모전 대상 △제7회 독도문예대전 최우수상△2019년 흑구문학상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아들 이름 나오자…아버지는 말문이 막혔다

“저는 독도 헬기 추락사고 배혁…구조대원 아빠입니다.” 독도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을 기다리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순간 말을 잇지 못했고 실종자 대기실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됐다. 지난 16일 대구 강서소방서를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통화한 독도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배혁(31) 구조대원의 아버지는 한시라도 빨리 아들이 가족과 동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날 배 구조대원 아버지는 “제가 독도에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아직 아들이 아직 저 차가운 바다에 있는데 아비가 돼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에 독도에 남아 있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배 대원의 아버지는 이번 사고가 소방관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이 부모의 반대로 그 꿈을 접게 되는 불행한 선례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이 총리에게 부탁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서 이번 사고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서 사고 원인부터 낱낱이 조사해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소방대원 모두가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열악한 장비를 개선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총리도 “소방관의 지원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겠다. 또 정부 차원에서 독도 헬기 추락사고의 원인과 초동 대처, 진실 규명까지 빠지지 않고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실종자 가족들이 KBS 측에 요구한 대국민 사과에 대해서는 “KBS의 사과는 KBS의 도리이기도 하고 국민의 도리이기도 하다. KBS 측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