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연구팀, 인간 뇌 본뜬 반도체 칩 개발

포스텍 연구팀이 빛에 의해 신호 세기가 조절되는 뉴로모픽 칩을 구현했다.포스텍은 최근 이장식 교수 연구팀이 강유전체 물질을 이용해 산화물 반도체의 광(光) 반응성을 제어, 신호전달 세기가 조절되는 ‘뉴로모픽’ 칩을 구현했다고 5일 밝혔다.뉴로모픽 칩은 뇌신경 구조를 모방해 사람의 사고 과정과 비슷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도록 고안한 반도체다.전력소비를 기존 반도체 대비 수백 배에서 수십 만 배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뉴로모픽 칩 가운데 빛에 따라 전류의 흐름이 조절되는 광 시냅스 소자는 전자형 시냅스 소자보다 동작속도는 빠르면서 소비전력이 낮아 주목받고 있다.하지만 광반응성 제어에 한계가 있어 두뇌 작동방식, 특히 외부 자극에 대응해 지속적으로 다음 신경세포로의 신호전달 세기를 바꾸는 시냅스 가소성을 모사하기 어려웠다.포스텍 연구팀은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광반응성 산화물 반도체층에 외부 전기자극 없이도 스스로 분극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강유전체 하프늄 산화물을 적층해 빛으로 동작하는 인공 시냅스를 구현했다.광 시냅스 소자는 칼슘이온이 유입된 신경세포에서 다음 신경세포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면서 전기적 신호가 전달되는 것처럼 빛에 의해 생성된 전자가 빛이 사라지면 서로 재결합하는 방식으로 전류의 세기를 바꾸면서 정보를 처리한다.이 과정에서 전류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강유전체를 활용, 산화물 반도체에서의 전자 재결합과 소자의 신호전달 세기를 제어한 것이 이번 연구 성과의 핵심이다.이장식 교수는 “신경세포 간 연결강도, 즉 뇌의 학습과 기억에 관여하는 신호전달능력인 시냅스 가중치 변화가 20배 이상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이번 연구성과는 최근 재료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게재됐다.김웅희 기자 woong@idaegu.com

상주읍성 해자 설치 시기 15세기로 밝혀져

상주박물관은 상주읍성 해자에서 출토된 말목의 연대가 15세기로 밝혀져 고고학적으로 상주읍성의 축조 연대를 밝힐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고 10일 밝혔다.상주박물관에 따르면 2019년 상주읍성지 유적을 학술 발굴해 상주주조주식회사와 관련된 근대 건물지, 조선시대 건물지 그리고 읍성 해자(읍성 주위를 둘러 파서 만든 못)를 조사했다.읍성 해자는 지역에서 처음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조사 구역 남쪽 경계 부근에서 확인됐다. 폭 260~310㎝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조사 마무리 과정에서 해자 북쪽 경계 부분에 말목이 여러 점 확인됐다. 이는 지반약화 방지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상주박물관은 말목이 읍성 해자의 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인 것을 감안, 지난해 12월 수습한 말목 2점을 미국 ‘베타연구소’에 자연과학적 분석을 의뢰했다.가속질량분석기(AMS)를 통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보정연대가 1482~1646년(확률 95.4%)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를 통해 읍성 해자는 15세기 이전부터 축조됐음을 알 수 있고 이는 상주읍성과 관련된 여러 고문헌(상산지 등) 기록과도 일치한다.상주박물관 관계자는 “상주읍성지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지역에서 처음으로 해자의 존재를 밝힌 것도 큰 성과지만 해자 내부에서 말목이 확인돼 해자의 축조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며 “앞으로도 발굴조사와 문헌기록, 여러 가지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객관적인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성주박물관은 읍성 해자 내부 말목 가운데 양호한 9점을 전문기관에 의뢰해 보존처리를 진행 중이다. 처리가 완료되면 전시할 예정이다.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김홍배 회장 21세기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 대상 수상

김홍배 충의공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장이 지난 23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1세기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 시상식에서 ‘사회발전 공로 부문 대상’을 받았다.김홍배 회장은 35년간 육군에서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을 위해 헌신했다. 2011년 12월 예비역 장군(소장)으로 명예롭게 전역 후 경북대학교 초빙교수로 고향 상주에 정착해 호국안보 및 리더의 중요성과 덕목에 대해 공직자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특히 임진왜란 당시 60전60승으로 유명한 충의공 정기룡 장군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충의정신(애국·애민·용맹·의리)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진력하고 있다. 이런 점을 높이 평가받아 이번 ‘21세기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김 회장은 “큰 상을 받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며 “더욱더 지역사회 및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더욱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경산서 6세기 신라인이 쓴 조세 기초문서 목간 발견

경산지식산업지구에서 6세기에 신라인이 토지 운영과 조세 제도 양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이 발견됐다.9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화랑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 도로 구간 경산시 와촌면 소월리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수혈(竪穴·구덩이)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에서 삼면에 얼굴 모양을 표현한 토기와 함께 신라시대 토지 관련 목간을 발견했다.목간은 길이가 74.2㎝다. 육 면에 글씨를 적었다. 사람 얼굴 모양 토기는 제작 시기가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목간은 서체나 내용을 근거로 이보다 한 세기 늦은 6세기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신라 수도 경주가 아닌 지방에서는 나온 목간으로 내용에 지방 행정과 재정을 유추할 만한 실마리가 있어 학계에 시선을 끌 것으로 보인다.김상현 화랑문화재연구원 연구원은 “토기와 목간이 거의 같이 나왔다”며 “현재 토기와 목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지름 1.6m인 원형 수혈 유구 성격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일 1차 판독 작업을 진행해 글자 94자를 읽었다. 여섯 면 중 두 면은 같은 글자가 반복해서 나타나 글씨를 연습한 흔적으로 추정하고 있다.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6세기에 경산 인근 토지 현황을 적은 토지관리 문서 목간일 가능성이 크다”며 “글자 양이나 글씨 연습 흔적을 보면 현대 업무수첩과 같은 예비문서나 기초문서로 이후에 정식 문서를 작성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목간 A 면에는 ‘십부감말곡답칠(?)□제상일결 구미곡삼결 제하십부’(負甘末谷畓七(?)□堤上一結 仇彌谷三結 堤下負)라는 글자가 있으며 다른 면에도 숫자와 논 답(畓), 밭 전(田) 자 등이 있다.또 연구소는 그중 답(畓), 골 곡(谷), 방죽 제(堤) 글자와 조세 부과 단위인 결(結), 부(負) 자에 주목했다.전 주무관은 “곡은 일정한 집단 혹은 마을을 지칭하는 글자이며 전체적으로는 둑을 쌓아 논을 조성했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그 주변에 논을 만들고서 이에 대해 세금을 수취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연구소는 또 “답(畓), 결(結), 부(負)자는 언어학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목간 작성 시기를 추측하는 데에도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연구소는 우리나라 고유 한자인 답(畓)은 561년에 건립한 국보 제33호 상운면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 처음 나온다고 알려졌는데, 경산 목간도 6세기 중엽 전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연구소는 학계와 함께 목간 추가 판독과 연구를 거쳐 확인한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유물에 대한 고고학·자연과학 분석과 목간과 유구 사이 관계 연구도 진행할 방침이다.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경산에서 5세기 사람 모양 시루 뚜껑 출토

문화재청이 경산시 와촌면 소월리 유적에서 5세기경에 제작된 사람 얼굴모양 토기(투각인면문옹형토기)가 출토됐다고 3일 밝혔다.문화재청에 따르면 출토된 사람 모양 시루 뚜껑은 진주 금산면 중천리 유적, 함평 대동면 금산리 방대형고분 등에서 사람 얼굴 모양이 장식된 토기가 출토됐으나 삼면에 얼굴 모양이 표현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화랑문화재연구원은 금호강 지류인 청통천 주변 넓은 평야를 조망하는 언덕에 자리한 소월리 유적을 발굴조사한 결과 삼국~통일신라 시대 고상건물지와 구덩이(수혈), 토기 가마, 고려조선 시대 무덤 등 많은 인간활동 흔적을 확인됐다.고상 건물이란 땅에 세운 기둥 위에 바닥을 만든 건물을 말한다.유적 중심을 이루는 고상건물지는 사용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나 구릉의 완만한 경사면에 밀집돼 있다. 주변으로 배수를 위한 도랑과 구덩이들, 울타리(추정) 등을 배치해 일반적인 거주보다는 특수한 목적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사람 얼굴 모양 토기는 지름 1.6m가량 원형인 구덩이에서 수습됐다. 건물터 사이 한쪽 공간에 마련한 이 구덩이에서 문제의 토기는 내부조사가 반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확인됐다.이와 함께 바닥을 의도적으로 제거한 시루 1점이 함께 출토됐다.높이 28㎝가량인 이 토기는 윗부분 중앙에다 원통형으로 낮게 돌출한 구멍을 뚫었다.옆면에는 같은 간격으로 원형 구멍을 뚫어 귀를 표현했으며 각 구멍 사이 세 개의 면에 무표정한 듯, 심각한 듯,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의 얼굴 무늬를 각각 새겼다.두 눈과 입은 기다란 타원형으로 밖에서 오려냈으며 콧구멍에 해당하는 작은 구멍 2개는 안에서 밖으로 찔러 만들었다.또 콧등을 중심으로 양쪽을 살짝 눌러 콧등을 도드라지게 표현됐으며 토기와 함께 출토된 시루 몸통 중간 지점에는 소뿔 모양 손잡이 2개가 부착돼 있으며 토기와 시루는 서로 결합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화랑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토기 제작 기법과 특징 등을 보면 5세기 전반 또는 그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5세기경 베풀어진 의례 행위와 관련해 조사가 진행 중인 구덩이 내부에 목재 등이 추가로 확인 후 분석을 통해 유적의 성격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울진 봉평비-6세기 신라역사의 다양한 면모 새겨…가장 오래되고 가장 귀한 ‘고비’

1988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거주하는 주민이 논에서 객토 작업을 하다가 옛날부터 그의 논에 박혀 있던 애물단지 큰 돌을 굴삭기로 파서 논둑에 버렸다.얼마 뒤 비가 내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석비의 흙이 씻겨 내리자 조경석으로 사용하려고 살펴보니 뜻밖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이 석비가 발견 당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비(古碑)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울진봉평리신라비(蔚珍鳳坪里新羅碑)이다.법흥왕 11년(524)에 새겨진 것으로 알려진 봉평비는 1989년 발견된 냉수리비(503년)와 2009년 발견된 중성리비(501년)에 최고비의 왕좌는 물려주었지만 내용과 크기 및 서체미에 있어서 6세기 신라를 대표하는 석비로 자리 매김되고 있다.현재 봉평비는 2008년 8월 봉평리 521번지에 신축된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전시관은 기존의 비각 바로 앞에 지어졌다. 봉평비를 찾아가려면 국도 7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죽변교차로에서 우회전해 300m를 직진하면 시야에 전시관이 들어오고 동남쪽 지척에는 봉평해수욕장이 있다.◆1500년 묵은 봉평비가 발굴된 사연봉평비는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1월20일 세상에 비신을 드러냈다. 울진군 죽변면 봉평 2리 118번지 주두원씨 소유의 논에 비의 아랫부분 일부만 드러난 채 비면이 거꾸로 박혀 있어서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교적 글자가 잘 판독된다.같은 해 3월20일께 마을 이장 권대선씨가 농로에 방치된 석비의 흙이 봄비에 씻겨 내리면서 글자가 보인다고 면사무소와 군청에 신고했다. 담당 공무원은 경북도청에 보고했다.4월7일 서예가인 윤현수씨가 울진군청 직원과 함께 초탁본을 떠서 서실에서 판독해 보니 임신서기석의 글자와 유사한 서풍으로 씌어진 서체임을 직감했다. 법흥왕을 지칭하는 매금왕과 신라육부라는 글자를 보고 신라고비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고 한다.4월15일 매일신문에 비의 발견상황이 보도됐고 4월16일 한국고대사연구회(한국고대사학회의 옛 명칭)의 교수와 전문가들이 비문을 탁본하고 현장조사를 했다. 5월5일 재조사 때 비를 캐내면서 떨어져 나간 비편이 현장에서 발견돼 완형을 갖추게 됐다.7월22일과 23일 이틀간에 거쳐서 계명대학교에서 한국고대사학회 주최로 봉평비에 대한 학술회의가 개최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4월께 출토된 위치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했으나 비좌(碑座)를 찾지 못해 8월에 비의 모형을 만들어 활용하도록 했다.한편 한국고대사학회 학술대회에서 비의 정식명칭을 울진봉평신라비로 부르기로 했고 학술대회 결과를 이듬해 1989년 ‘한국고대사연구’ 2호에 특집으로 꾸며 간행했다. 이런 성과들이 모여서 마침내 울진의 어느 논에서 잠자든 봉평비는 문화재청에 의해 1988년 11월4일 ‘울진 봉평 신라비(국보 242호)’로 지정됐고, 2010년 12월27일 ‘울진 봉평리 신라비’로 명칭이 변경됐다.◆ 신라사 연구에 소중한 금석문봉평비는 신라 법흥왕 11년(524)에 건립됐다. 비의 석질은 변성화강암으로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며, 비의 제작 당시 이미 몇 군데 금이 나 있었기에 이를 피해 글자를 새겼다.긴 세월을 땅속에 있었던 탓인지 고르지 않은 네 면 중 한 면을 다듬은 뒤 음각으로 글자를 새겨놓았기 때문에 원형의 파손이 그리 심하지 않다.비의 높이는 204㎝, 윗너비 32㎝, 가운데 너비 36㎝, 밑너비 54.5㎝로 밑 부분은 비교적 둥근 편이고 전체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까운 부정형(不整形)의 긴 사각형으로 비문의 글자는 세로로 배치돼 있다. 글자 수는 행마다 다르고 글자 사이의 간격도 차이가 난다. 전체 구성은 10행으로 현재 학계에서 판독한 글자 수는 399자이다.서체는 예서에서 해서로 진행되는 과도기의 것으로 6세기 냉수리비나 중성리비 그리고 임신서기석의 글자와 유사한 글꼴을 보인다.비문의 글자는 대체로 양호하나 이자체(異字體)가 많고 또 일부는 마멸돼 읽기 어려운 글자가 있다. 문체(文體) 또한 전형적인 한문식이 아니라 신라식의 독특한 한문을 사용해 해석하기에 애매한 곳이 적지 않다.비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비문의 요지는 법흥왕 11년(524) 1월15일에 법흥왕을 비롯한 14명의 중앙 고위 귀족들이 모여 명을 내린다.직전 해인 523년 거벌모라(울진지역 중심지)와 남미지(울진지역촌) 지역이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는 과정에 울진주민들이 길이 좁고 험한 이야개성에 불을 내고 성을 침범하는 등 항쟁을 일으키자 신라에서는 이를 응징하기 위해 대군(大軍·중앙군)으로 반란을 진압한다.신라육부는 사후처리로 칡소(얼룩소)를 죽여 피가 솟는 것을 보고 재판한다. 관련된 자에게 장 육십(杖六十)대와 장 백(杖百)대 등의 형벌을 내리고 만약 이와 같은 일이 있을 때에는 하늘에서 죄를 얻게 될 것임을 주지시킨 내용을 빗돌에 새겨 놓았다.6세기 초에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을 마주할 때 삼척이 최전선이었는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울진은 경주에서 도사(道使)가 파견돼 다스렸으나 신라와 친한 주민과 고구려와 친한 주민들이 공존하고 있었다.신라의 중앙정부도 포상과 징벌을 적절하게 활용했으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불만을 가지고 반발하기도 했다. 봉평비는 이러한 당시의 실상을 그대로 기록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여겨진다.봉평비가 발견됨으로써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에게 부족했던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왜냐하면 다른 신라비보다 글자 수가 많고 내용이 풍부해 문헌자료에 없는 새로운 내용이 들어 있기에 6세기 신라의 역사 연구에 도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예컨대 삼국사기의 율령반포 기록이 사실임이 확인되며, 신라 육부와 관등체계 및 지방통치조직과 촌락구조, 부(部)를 초월하지 못하는 왕권의 실태, 재판에 얼룩소를 잡았던 행위, 신라의 영역, 관료제도 등 법흥왕 때 신라의 정치·경제·사회의 다양한 시대상황을 광범위하게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비는 어떤 신라고비보다 귀한 금석문으로 평가되고 있다.◆봉평비에서 느끼는 무기교의 기교와 무관심성근대 시기 서구미학을 수용한 뒤 이를 기초로 한국미학의 정초를 놓은 한국미론의 선구자 고유섭(1905~1944)은 한국미술의 전통이라 할 만한 성격적 특성을 ‘무기교의 기교’나 ‘무관심성’ 등으로 규정했다.기교나 개성이 강조되지 않았던 6세기 신라인들의 글씨, 구체적으로 봉평비의 글씨를 보고 있으면 고유섭의 미론에 동감하게 된다. 글자의 크기나 결구도 고려하지 않고 척척 써 내려간 치졸한 맛은 기교가 없는 듯 보이지만 살펴볼수록 은근히 기교가 녹아있음이 읽혀진다.1500년 전 봉평비를 휘호한 사람은 인위적인 기교를 추구하거나 치밀한 구성을 위해 고민하지 않았다. 그들의 글씨는 바로 무기교 속에 고도의 기교가 스며든 궁극의 미학이라고 여겨진다.무관심성은 언뜻 보면 세부적이고 세련되지 못해 거칠고 서툴러 보이지만 기계로 찍어낸 듯한 통일감을 추구하지 않고, 세부의 치밀하지 아니한 분위기가 더 크게 전체를 포용하는 구수한 큰 맛을 불러일으킨다. 봉평비는 자연석의 생긴 원형을 살려 글자를 배치하고 글자의 크기도 자유자재로 처리해 천진난만한 무관심성을 보여주니 노자가 말한 ‘대교약졸’의 멋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금석물의 보고인 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국보로 지정된 봉평비를 영구 보존하기 위해 울진군에서는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을 건립해 제1전시실에 봉평비를 전시하고 있다.제2전시실은 삼국시대의 비라는 주제로 신라 고구려 백제 등 삼국의 주요한 비 10기를 실물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제3전시실은 금석문과 한글이라는 주제로 금석학의 계보 및 금석문의 역사,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비석의 양식과 특징 그리고 한자의 서체, 훈민정음의 창제와 보급 기록, 한글의 미래와 비전 등을 소개하고 있다.전시관 뒤편에 조성된 야외비석공원은 우리나라 지도모양으로 조성됐다. 광개토대왕비, 신라 태종무열왕릉비, 원주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보 및 보물급 비석 25기가 실물 형태로 제작돼 전시되고 있다.울진은 백암온천과 금강송에 월송정과 불영사로 널리 알려진 동해안 휴양관광도시이다. 그러나 하늘 맑은 가을날. 7번 국도를 달려 6세기 신라역사의 비밀을 여는 봉평비를 둘러보는 것도 마음을 살찌우는 좋은 역사문화여행이 될 것이다.정태수(대구경북서예가협회 이사장)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4차 산업혁명시대 포용적 인문가치,‘21세기 인문가치포럼’개최

안동시가 오는 9월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안동시문화예술의전당 일원에서 ‘제6회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을 개최한다.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은 문화체육관광부, 경북도, 안동시가 후원하는 행사로 유교적 인문가치 속에서 일상생활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의 대안 모색을 위해 2014년 1회를 시작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다. 6회를 맞이하는 올해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포용적 인문가치’라는 주제로 포럼을 연다. 기술과 산업의 진보를 뛰어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산업 등 인류의 삶 전반의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인간다움의 의미와 인간다운 삶의 조건 등 다양한 포용적 인문가치를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막식은 9월5일 오후 3시30분께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에서 열린다. 개막식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공동의 미래’에 대해 반기문 제8대 UN사무총장이 기조 강연을 한다. 반기문 총장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촉발되는 초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으로 펼쳐질 4차 산업혁명시대의 포용적 인문가치에 대해 강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총 7개국에서 유학, 철학, 과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이 참여하는 ‘학술세션’, 인문가치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과 사례를 공유하는 ‘실천세션’, 대중들이 참여해 함께 즐기며 인문가치를 공감하는 ‘참여세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안동시 관계자는 “제6회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은 인류의 삶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인간다움의 의미와 인간다운 삶의 조건 등 다양한 인문가치를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며, 시민들 가슴속에 보다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포럼의 세부내용은 21세기 인문가치포럼 홈페이지(http://www.adf.kr)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사전등록은 오는 12일부터 31일까지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정신문화재단☎054-843-3050)으로 문의하면된다. 김진욱 기자 wook9090@idaegu.com

김천 직지사 괘불도(掛佛圖)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김천 직지사 ‘괘불도’가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제2026호)로 지정됐다.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직지사 경내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제작시기는 1803년경으로, 현재 알려진 19세기 괘불 중 가장 이른 예에 해당하고 규모도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단독의 보살형 본존을 중심으로 화면 상단에는 작게 10위의 시방제불과 5위의 보살상을 배치한 간단한 구성이나, 앞 시기 괘불의 중량감 넘치는 형태에서 가늘고 늘씬한 형태미로 변모한 점, 섬세하고 우려한 선의 구사보다는 굵고 대담한 선묘가 돋보여 시대적 전환기에 제작된 불화의 특징이다. 높이 12m 이상되는 대형 불화임에도 불구하고 도상의 배치, 상·하축의 조형성, 색채감과 선묘 등 여러 면에서 19세기 불화를 대표할 만큼 우수하다고 평가돼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 김천시는 국보 1점, 보물 20점 등 국가지정문화재 24점, 도지정문화재 42점을 합쳐 총 66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게 됐다. 김충섭 김천시장은 “앞으로 소중한 문화재 관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재의 활용을 통한 문화도시 기반을 확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