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 있게 읽는 시…우리 모두의 초능력

우리 모두의 초능력/ 이장욱 오래전에 우리는 순서대로 태어났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볼 수 있고/ 흘러간 시간을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다/ 수많은 사건들을 창조하자 스르르 얼굴이 변하고/ 누구나 문득 살인자의 밤을 맞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먼 곳에서 잠든 채/ 새로운 과거를 생산했다/ 어제보다 나쁜 자화상을 발명한 뒤에는/ 지난해의 잡담을 반복하고/ 희미한 손바닥으로/ 새벽에 내리는 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느낄 때에는/ 아침 뉴스의 화면을 향해 드디어/ 짐승의 욕을 내뱉을 때에도/ 우리는 매일 그림자를 창조할 수 있고/ 조용히 그림자와 손바닥을 마주할 수 있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비명을 지를 수 있고 — 월간 《현대문학》2009년 5월호..........................................................세상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사나운 짐승일 수 있다. 세상에 고약한 사람들이 널려있지만 내가 가장 고약한 사람일 수도 있다. 세상에 이중인격자를 많이 보지만 내가 바로 그 두 얼굴의 야누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떠한 위험한 동물도 사람과 친숙해지고 길들여지면 반려 동물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인간도 스스로를 늘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언제 사나운 짐승처럼 포악해질지 모른다. 어느 순간에 고유정 처럼 ‘초능력’을 발휘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문득 살인자의 밤을 맞을 수 있다’인간이 고약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이기심 때문이다. 세상에 가장 나쁜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지 않은가. 거울에다 얼굴과 마음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보는 사람은 그래도 다행스러운 인간이다. 인간의 이기와 욕심으로 무수한 생명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고 그 죽음조차 생명에 대한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잔인함에 이빨을 떨게 한다. 인간을 향해 저질러지는 잔혹사도 그러하다. ‘어제보다 나쁜 자화상을 발명한 뒤에는 지난해의 잡담을 반복하고’있다.세계 도처에서 태연하게 저질러지는 끔찍한 살인극은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살인이 장난처럼 자행되고 있음을 경악스럽게 목격한다. 맹수인 사자도 자신을 위협하거나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할 때가 아니면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 동물은 제 배가 채워지면 더 이상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데 반하여 인간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장 이성적인 존재임을 자처하면서 때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사납고 위험한 존재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비명을 지를 수 있’는 동물이 인간이다.하느님이 인간의 영혼에 심어 놓으신 선한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곧장 금수보다 못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사납고 무서운 맹수로 전락해 버린다. 인간의 영혼에 양심이 떠나가고 악신이 들면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히틀러나 피노체트, 이디아민이나 폴 포트 같은 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이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기도 한다. 나중엔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성과 감성이 마비상태에 빠져버린다.

‘함께 사는 기적’의 지은이 프랑스 떼제 공동체 수도자, 신한열 수사

프랑스 떼제 공동체 수도자인 신한열 수사가 천주교대구대교구 성(聖)김대건성당에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천주교대구대교구 성(聖)김대건성당에서 독서콘서트가 지난달 25일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함께 사는 기적’의 지은이로 프랑스 떼제 공동체의 수도자인 신한열 수사가 강연자로 나섰다.떼제는 1940년 스위스 개신교 집안 출신의 로제 수사가 시작한 초교파적 그리스도교 수행 공동체다.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성공히 등 구분 없이 세계 30개국에서 온 80여명의 남성 수도자가 함께 산다.신 수사는 프랑스 떼제 공동체의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는 대구 촌놈이 프랑스에 가서 32년째 살고 있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떼제에 젊은 청년들이 모이는 이유와 떼제에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최근 종교계에서는 떼제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종교계에 젊은 청년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들면서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떼제 공동체에는 어린아이부터 장성한 청년까지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인다.그는 “청년들이 떼제에 와서 고향같다는 이야기를 많이한다. 특별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도 매력적이지 않다. 소박하게 기도하고 분위기가 자유롭고 편안하다”고 설명했다.그가 떼제에 발을 디딘 것은 1988년이었다. 대학(서강대)을 졸업하고 2년간 직장생활을 한 뒤였다. 고교시절 우연한 기회에 봤던 떼제에 관한 슬라이드 필름 속의 이미지를 마음 속에 담고 있었던 그는 대학에서 한국에 파견된 떼제 수사를 처음 만났다. 영문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던 안토니 수사(한국명 안선재)였다. 안토니 수사는 고은 시인의 작품을 영어권에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처음에 3개월간 머물 요량이었지만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종신서약을 했고 어느새 30년을 넘어섰다.떼제 생활의 핵심은 ‘단순 소박함’이다. 떼제에는 포크, 젓가락, 테이블도 없다. 단순 소박함이 생활조건이라고.그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들의 생활이 너무 복잡하다. 전례복을 입고 서 있으면 청년들이 와서 말을 한다. 말만 통하면 이야기를 하고들어준다. 불필요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역시 단순 소박함이다”고 했다. 이어 “떼제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많다”며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신자들이 길을 찾는 사람이 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야 한다. 그런 마음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경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어떤 판단을 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그는 “우리 공동체는 집에 돌아온 아들들을 끌어안아 준다.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보여주지 않으면 누가 보여주나. 모든 공동체가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고 강조했다.그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눈길이 손길이 발길이 어디에 있는지 누굴 바라보는 지 누구에게 손을 내미는 지가 우리 삶을 결정한다”며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빛이 되어줄 수 있다”고 했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질문의 방향

질문의 방향우수명 지음/아시아코치센터/256쪽/1만5천 원빠르게 돌아가는 업무 환경에서 대개 상사들은 업무 처리에 집중하다 보면 짜증 담긴 충고와 조언에 익숙해지고, 또한 자주 재촉하게 된다. 충고와 조언은 구성원들에게도 무시당한 감정과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법이다.보다 효과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스스로의 열정과 동기부여를 통해 일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까? 바로 사람에게 집중하는 질문이 답이다. 한마디의 통찰 있는 질문이 변화의 원동력이 되고 적극적인 사고를 이끌어낸다. 즉 존재 가치를 발견하도록 돕는 질문과 긍정적인 관점을 갖게 하는 효과적인 질문은 상대방이 자신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이 책은 저자의 20년간 마스터 코치로서의 노하우를 정리해 질문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존재 가치, 인간관계, 리더십의 세 주제별 질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조직의 성과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한다.이 책은 ‘5R 코칭 대화’라는 질문의 틀과 4가지의 강력한 질문을 담은 질문의 방향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화 능력을 일깨워 준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최준희 “왜 마음대로 퍼가서 가만히 있는 사람들 욕먹게 하는지”… 분노

사진=최준희 SNS 오늘(10일) 온라인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故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17)이 계속해서 상위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지난 9일 자신의 SNS에 남자친구 김 군과 함께 화이트 컬러의 반팔 드레스를 입은 채 면사포를 쓰고 손에는 부케를 들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사랑보다 귀한 것은 없다'라는 글을 게재한 것이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이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 여러가지 기사들이 확산돼 올라오자 최준희는 이날 자신의 SNS에 기자들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최준희는 "진짜 웃겨서 말도 안나오네. 아니 기자들아 쓸데없는거 퍼날라서 돈벌려고 기사 쓰지말고 이런거나 좀 쓰고 찔려서 반성좀해"라며 "아무도 관심없는걸로 기사 써서 사람 관종만들고, 내가 언제 내 사생활들로 기사 써달라고 했니? 아무도 안 궁금해 하는걸 왜 니들이 마음대로 퍼가서 기사쓰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 욕먹게 하고 난리인지 억울해서 살수가 없다 내가"라며 분노했다.또한 이날 오후 OSEN과의 인터뷰에서 "사진 속 남자친구가 입은 옷도 턱시도가 아니다. 바지는 교복 바지고, 셔츠는 개인 소장 옷"이라며 "남자친구와 사귄지 1년이 돼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찍기로 했고 저희가 콘셉트를 잡아 웨딩화보처럼 찍은 것"이라며 결혼설을 일축했다. [다음은 최준희 SNS글 전문]ㅋㅋㅋ 진짜 웃겨서 말도 안나오네 아니 기자들아 쓸때없는거 퍼날라서 돈벌려고 기사 쳐 쓰지말고 이런거나 좀 쓰고 찔려서 반성좀해 니들 저격하는 글은 기사로 제대로 쓴적도 없고 아무도 관심없는걸로 기사 써서 사람 관종만들고ㅋㅋㅋ 내가 언제 내 사생활들로 기사 써달라고 했니 .....? ㅋㅋㅋㅋ 아무도 안궁금해 하는걸 왜 니들이 마음대로 퍼가서 기사쓰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 욕먹게 하고 난리인지 억울해서 살수가 없다 내가 ㅋㅋㅋㅋ 댓글 써대는 니들도 나에대해서 알면 대체 얼마나 잘 안다고 떠들어 대는건지 예전엔 니들이 기사 퍼나르고 욕하는거 하나하나에 스트레스 받아서 진심 다 캡쳐본 띄어놓고 경찰서에서 얼굴 보고 얘기 했을때 진짜 나한테 그딴말들 할수 있을지 괴로워하면서 하루 하루를 울면서 보냈는데 원래 할짓없이 댓글 달고 욕하는 애들은 내주변에서 봐도 다 거기서 거기더라 특별한 이유없이도 자격지심에 찌들어서 질투하고 싫어하더라 그치 ? 스트레스 받아서 루프스도 아주 재발 되겠어 ~ 고마워 ㅎㅎ 근데 내가 니들 무시하고 사과하고 좋게 좋게 나가면 뭐하냐 사람이 선은 넘지 말아야지 ㅋㅋ 나도 사람인데 언제까지 니들이 욕짓거리 하는거 가만히 듣고 있겠냐 이젠 똑같이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니들이 나한테 하는거 그만큼 2배로 해줄려고 진짜 기자나 댓글달아서 미친개마냥 나한테 스트레스 푸는 니들이나 뭐 어쩌라는건지 내가 기사 써달라고 했니 ㅜㅜ 욕할꺼면 기자들이나 욕해 제발 내가 관심 받고 싶어서 사진 올리고 그런것도 아니고 .. 지들이 마음대로 퍼가서 사람 욕먹게 하는걸 나보고 뭐 어쩌라는거야 니들이 나 싫어하던지 말던지 1도 관심 없고 나 좋다는 사람들이랑 너네 약오르게 더 행복하게 살꺼니깐 ~ 그렇게 욕하고 싶고 궁금하면 직접 인스타 디엠으로 물어보고 욕하세요 ~ 똑같이 받아쳐드릴테니깐 아시겠어요 ? 내가 내 인스타 하겠다는데 니들 눈치를 왜 봐야됨 ?-?........online@idaegu.com

미주통신…이제 청년들의 무대는 세계다

이제 청년들의 무대는 세계다성민희재미수필가입사를 6개월 앞 둔 아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나섰다. 동남아 쪽을 둘러보고 한국 여행도 하겠다고 했다. 인생은 긴데. 세계 곳곳을 돌아보며 견문을 넓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며 집 떠나는 아들을 기쁜 마음으로 배웅했다.아들은 어느날은 베트남에서, 또 어느 날은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나라가 바뀔 때마다 이메일을 보내왔다. 전화도 되지 않고 연락처도 없으니 어느 곳에서 밥을 먹는지 잠을 자는지 어떤 사람이랑 어울리는지 답답하지만 그저 믿는 마음으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나자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어느날 토론이 벌어졌다. 아들에게 물었다. 미국과 영국이 싸우면 어느 나라를 편들겠냐고. 당연히 미국이라고 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또 물었다. 만약에 한국과 미국이 싸우면 어쩌겠냐고. 아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싸우는 이슈에 따라서 결정을 하겠다고 한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것인지, 한국 사람인 동시에 미국사람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들은 지난 몇 달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동남아를 여행하면서 유스호스텔을 묵었다.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 청년들이 모여 각자 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제일 먼저 묻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것이다. 그들은 이름보다 국적을 더 궁금해한다. 당연히 아들은 아메리칸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모두 고개를 갸웃하더란다. 너는 동양인이지 않느냐고.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대학까지 마쳤으니 당연히 미국사람이라고, 아무런 느낌 없이 말했더니 너의 부모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었냐고 또 묻더란다. 원래 한국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미국 시민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너는 한국 사람이라고 못을 박아버리더란다. 아들은 한국말보다 영어가 쉽고 한국문화보다 미국문화에 익숙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은 용납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시선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가 또래의 사촌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은 아무리 한국말을 잘 해도 미국인 취급을 하더란다. 아들은 자기와 똑같이 생긴 한국 아이들 속에서 시간이 갈수록 생각과 문화의 차이를 발견했다. 외국인은 아들을 한국 사람으로 인정하는데 오히려 한국 사람은 외국인이라며 더 어려워했다. 미국에서는 전혀 가지지 않았던 정체성의 혼란을 부모의 나라 한국에서 느꼈다. 아들의 말을 들으며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미국에서 사는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과연 미국에 온 것이 잘 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몇 년 전 남편 회사의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캐나다의 벤퍼 스프링스 호텔에서 며칠을 보낸 후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였다. 각 주에서 온 네 쌍의 부부 여덟 명이 테이블에 함께 했다. 우리 옆에는 미조리주의 어느 시골에서 왔다는 노부부가 앉았다. 그들은 동양인을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등장을 신기해했다. 부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엘에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태어난 나라가 어디냐고 다시 물었다. 엘에이라는 말에는 아무 의미도 두지 않았다. 코리아라는 내 말에 또 North? South? 했다. 음식이 나오자 “너희들 음식 괜찮니? 입에 맞니?” 미국 온지 40년이 다 되었다고 누누이 설명 했는데도 여전히 걱정을 했다. 우리가 미국화 되어 불편이 없다고 말해도 이 사람들 눈에는 도무지 미국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 사람일 뿐이었다. 어린아이 보살피듯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이들 걱정이 되었다. 우리 2세가 능력이 있다고 한들 주류 사회에 들어가서 어떻게 이 벽을 뚫고 우뚝 설 수 있을까. 그들의 눈에는 외국인인데 싶었다.미국 스타디움에 태극기를 올린 방탄소년단의 공연을 보며 생각한다. 그들이 던지는 메세지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 세계의 모든 젊은이가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춤과 노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의 모든 젊은이를 하나로 사로잡는 힘은 그들의 화두를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시대가 주는 정서는 국적을 따지며 나라를 들먹일 수준이 아니다. 이제 세계는 물리적 거리나 장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방탄소년 그들의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이듯이 내 아이들의 무대도 미국이 아닌 전 세계다. 방탄소년단에 환호하는 노랑머리 청년들을 보며, 아이들이 내 나라 내 땅에서 주인 노릇하며 살 수 있도록 해줄 걸 하던 좁은 마음을 날려 보낸다.

아침논단…고전에서 배워라

고전에서 배워라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물이 들어간 꼬맹이의 귀에서 이명현상이 생겨 피리소리가 났다. 꼬마는 옆의 친구에게 귀를 맞대게 하고는 그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무슨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이번엔 여러 사람이 함께 자는 시골 주막에서 한 사람이 코를 심하게 골았다. 견디다 못한 옆의 사람들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느냐며 불끈 성을 냈다.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스승의 옥편’이란 책에서 읽은 글이다. 정민 교수는 간결한 문장으로 이 내용을 정리했다. “이명은 저만 듣고 남은 못 듣는다. 코골이는 남은 들어도 저는 못 듣는다. 제게 들리는 것을 남이 못 들으니 안타깝다. 남은 들었는데 저만 못 들으니 성을 낸다”그렇다. 이명은 자기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인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준다고 난리다. 이처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내린 결정만이 옳다고 하는 부류가 얼마나 많은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얼마나 많은가.코골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위의 모든 사람은 나의 잘못, 나의 단점을 알고 있는데 나만 그걸 모르고 있다. 남들이 나의 단점을 지적하는 순간 길길이 화를 낸다. 평생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묻은 티끌과 때는 전혀 보지 못한다.지금 대한민국엔 이명과 코골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 천지다.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나만 잘났다고 하는 이명 증상을 가진 사람도 많고,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코골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이 정도 부동산투기와 이쯤 위장전입은 관례였다고 하며 다른 사람들이 눈감아 주기를 원한다. 절세로 위장한 탈세를, 자녀의 특혜채용을, 이중국적 취득을 ‘남들 다하는데…’라며 합리화한다.주구장창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은 지독한 이명에 걸린 사람들이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않는 사람은 심한 코골이환자다. 둘 다 소통의 부재 때문에 생기는 사회병리다. 하나는 제 귀에만 들리고 남은 못 듣고, 다른 하나는 남 귀에는 들리는데 저는 못 듣는다니 불통도 이만저만한 불통이 아니다.정작 이명과 코골이를 가진 사람 자신은 문제점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내가 행한 잘못을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음을….허물이 있어도 이를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잘못이라고 했다. 공자 말씀이다. 출발은 소통이다. 이명처럼 나는 듣지만 남들은 들을 수 없다거나 코골이처럼 남은 듣는데 나는 들을 수 없다면 곤란하다. 나만 옳다는 독불장군, 나의 결정이 진리라는 외골수, 내가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생각이 허물이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층일수록 나의 이명에 현혹되지 않고 나의 코골이를 바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능력을 갖추는 지름길은 고전이다. 왜냐하면 고전에서 이명과 코골이 환자들에 대한 처방 뿐만 아니라 올바른 방향까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논어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남이 나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먼저 걱정하라고 했다. 이명과 코골이에 대한 명확한 처방 아닌가.요즘 나라가 어수선하다. 걱정하는 국민들을 뒤로 하고 여야 정치인들은 말꼬투리잡기에만 혈안이다. 막말 논란으로 국민들은 다들 귀를 틀어막을 지경인데도 그칠 줄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이명증 환자가 아닌지, 코골이 환자가 아닌지, 아니면 둘 다의 증상을 가져서 바로 수술대에 올라야하는 환자는 아닌지...그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국회에서 고전강독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하라고 외치고 싶다. 고전의 바다에 밀어넣어 억지로라도 고전의 지혜를 배우도록 하고 싶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죽은 자를 위한 기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남진우이 밤/ 대지 밑 죽은 자들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내 잠을 깨운다// 지하를 흐르는 검은 물줄기가/ 누워 있는 내 귓속으로 흘러들어와/ 몸 가득히 어두운 말을 풀어놓은 시각/ 죽은 자의 입에 물린 은전의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 몸 곳곳에 번져나간다// (중략)// 나는 이 밤/ 그들의 말이 두근대는 심장을 지그시 누르고/ 어둠 저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의 눈빛을/ 막막히 마주보고 있다- 시집『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학과지성사, 1996)...........................................삶을 어떻게 살든 누구나 마지막 결말은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석가모니가 자식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살려달라는 한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마을 집집마다 찾아가 사람이 죽어나간 적이 없는 집에서 공양을 얻어와 봐라. 그러면 아이를 살려줄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집안은 없으며 석가모니도 예수도 죽음만은 어쩌지 못했다. 장자는 죽음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두려울 것도 싫어할 것도 없다고 했지만 보통사람들에게 죽음은 가장 낯설고 두려운 과정임이 틀림없다.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는 사람이 있긴 해도 누구도 죽어본 경험은 없으며 아무도 그 죽음을 진술해주지 못한다. 또한 죽음은 항상 미지의 공포이면서 때때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호머의 일리아드에는 불사신인줄만 알았던 아킬레스의 영웅적인 인생이 나약한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화살 한 방으로 막을 내린다. 장례식장에서 아킬레스의 시신이 화장을 위해 제단 위에 누워있고, 그의 양 눈에 황금색 주화 두 개가 놓여진다. 눈 위에 동전 두 개를 올려놓는 것은 옛 유대의 풍습이다.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스틱스강이 흐르고, ‘카론’이라는 뱃사공이 죽은 영혼을 배에 태워 저승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이때 뱃삯으로 은화 한 닢을 받았는데, 망자의 입속에 넣는 풍습이 있었다. 그 ‘은전의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 몸 곳곳에 번져나간다’ 옛날에는 누군가 죽으면 ‘별똥별 하나 내 이마에 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고 했다. 이빨이 빠지는 꿈을 꾸면 누군가 죽는다고도 했다. 그 누군가는 매우 가까운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꿈에서가 아니라 3년 전 실제로 이빨 하나가 부러진 다음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나로서는 애통한 죽음이었으나 구순에 가셨으니 다른 사람들에겐 그냥 노환으로 인한 별세였을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자연사’에 해당하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할 죽음이었다. 외부 원인이 아닌 병으로 죽거나 신체 내부 원인으로 인해 죽게 된 경우는 모두 자연사라 일컫는다. 심장마비로 사망할 경우도 자연사에 해당하며, 그런 돌연사도 병원에서는 그저 자연스런 죽임일 뿐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사고나 자살, 살인 등으로 죽은 사람은 ‘외인사’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외인사는 안타깝고 참담하고 원통한 죽음들이다.머나먼 이국의 강물 위에서 한순간에 변을 당한 이들의 죽음이라니. 베트남전쟁 이후로 우리 국민이 한꺼번에 남의 나라에서 외인사를 당한 사례가 또 있었을까. 언제 어디서라도 내게 덮칠 수 있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죽음이 호시탐탐 내 손을 잡으려 들거나 어깨를 툭 치거나 옷깃을 스치며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눈빛을 막막히 마주보면서 다만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올리며 명복을 빌 뿐, 내 두려움은 회피한다.

미주통신…인연, 삶 그리고 사랑에도 때가 있다

인연, 삶 그리고 사랑에도 때가 있다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무슨 일이든 억지로 하려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아 어색하고 어색하기에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처음 만나서 편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유 없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 이런 관계는 사람의 노력으로는 어렵지만 인연도 있다. 사람 간 관계도 이런 데 사랑은 오죽할까. 첫 만남에서 불화산 같이 불이 번쩍 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롯불 안 재에 덮인 불씨처럼 은은하게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인연이 있어야 한다. “만남은 시절 인연이 와야 이루어진다고 선가에서는 말한다. 그 이전에 만날 수 있는 씨앗이나 요인은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시절이 맞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 만날 수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가 시절 인연이 와서 비로서 만나게 된다는것이다. 만남이란 일종의 자기 분신을 만나는 것이다. 종교적인 생각이나 빛깔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접촉될 때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열리면 사람과 세상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산에는 꽃이 피네·법정) 중에서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의 구분이 정확한 필자의 경우 이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단점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에서는 그 일에 몰입해 열정과 끈기로 결과가 확실하도록 일을 추진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는 마음이 동하지 않아 달려들지 않으니 때로는 방관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과의 중간 정도면 딱 좋겠는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쉬이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삶에서도 나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어쩌면 사람 관계에서도 이런 부분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세 아이를 키우며 참 많이 몸과 마음이 분주한 시기를 보냈다. 딸아이가 세 살 되었을 때 유아원에 내려놓고 오는 길에 연년생인 두 녀석이 뒷 자석에서 잠이 들면 세 시간 동안을 집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것도 눈 덮이고 추운 겨울에는 더욱 힘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내게 버거운 시간이었다. 엄마라는 자리가 나와 너무도 맞지 않는 것 같아 아이들을 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그 가슴 속이 달래지지 않아 늦은 밤 남편과 세 아이가 잠든 시간에는 끄적이며 남기는 하루의 일기와 붓글씨 그리고 그림(유화)그리기로 나를 달래곤 했었다. 그렇게 서른에서 마흔이 되는 십 년은 세 아이를 위해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아니 정신을 다른 곳에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마흔이 되었다. 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해 다닐 무렵이었다. 이제는 무엇인가 나도 시작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그 어느 누가 내 이름을 따로 불러줄 이 없었다. 그저 누구의 아내와 어느 집 며느리 그리고 세 아이 엄마의 이름표만이 나를 말해줄 뿐이었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엄마의 역할이 제일 필요하고 중요한 때임을 알지만, 더 늦기 전에 무엇인가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글쓰기와 그림을 그리던 훈련이 나의 삶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배꼽 저 아래의 끝에서부터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예술적인 기운을 누르지 못할 때 쉬지 않고 해오던 매일의 글쓰기가 나를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와 앞으로의 꿈을 설정하게 했으며 정성 들여 써 내려가던 붓글씨의 성경 구절이 기도가 되었다. 그리고 덧바를수록 신비해지는 유화를 통해 내 안의 숨겨진 보물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세 아이를 키우며 버거웠던 시간마저도 내게 필요했든 귀한 시간었음을 세 아이가 훌쩍 커버린 지금에야 더욱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옛 성인들의 말처럼 늘 깨어 있어 준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 자신에게나 또 자신의 삶에서 욕심은 가지되 허욕을 부리지 말자는 얘기다. 자신의 피와 땀과 노력 없이 무엇인가 바라고 기다린다면 그것은 도둑 심보는 아닐까 싶다. 사람의 인연이나 삶 그리고 사랑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나를 스스로 돌아볼 줄 아는 지혜와 오랜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인내할 줄 아는 힘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럴 때 우리는 내게 찾아온 귀한 인연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심안이 열려 비로소 그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스테판 클레르제 지음/위즈덤하우스/268쪽/1만4천800원이 책의 저자는 나의 좋은 기운을 빼앗아가며 자존감을 뚝뚝 떨어뜨리는 존재들만큼은 단호하게 버리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존재들은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만 안겨줄 뿐, 진정한 행복감과 따뜻한 교감은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멘탈 뱀파이어’라고 지칭한다.함께 있을 때 자꾸 힘이 빠지고 우울해지게 만드는 사람, 항상 본인의 하소연을 하며 동정을 얻으려 하는 사람, 매사에 당신을 비판하는 사람,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도움을 청할 땐 쓱 사라져버리는 사람, 이들은 분명 ‘멘탈 뱀파이어’임이 틀림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저자가 만난 ‘멘탈 뱀파이어’에게 당한 여러 사람들의 사례와 그러한 관계를 정리하면서 그들의 삶이 바뀌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객관화해보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파트에 있는 ‘멘탈 뱀파이어를 이기는 18가지 멘탈 법칙’을 통해 나만의 원칙을 지키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가꿔나가기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책으로 치유하는 시간

책으로 치유하는 시간김세라 지음/보아스/328쪽/1만5천 원 많은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독서를 선택한다. 책에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있다. 결핍, 집착, 열등감, 성장통, 실연의 고통, 상실감, 성공 뒤에 오는 허무함, 고독, 대중의 폭력, 이념의 덫, 애증, 욕망, 후회, 자존감 상실, 편견, 희망 없음 등으로 상처받은 수많은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이 책은 28편의 외국 소설과 12편의 국내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는 순수한 사랑을 하지만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어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임형빈은 지독하게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좌절감으로 사랑하는 윤주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은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청소년으로 그의 눈에는 속물로 비치는 기성세대와 세상에 섞일 수 없어 방황한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 P는 학력은 높으나 일자리는 적고 배운 사람은 많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잉여인간이 되어 궁핍하게 살아간다.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유일한 친구의 자살로 평생을 상실감으로 고통받고, 그 친구의 연인인 나오코는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몇 년 후 꽃다운 나이에 자살한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싱어는 주위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을 들어주는 구원자이자 안식처이지만 자신이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병으로 죽자 외로움에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등대로’의 램지 부인은 남편과 지인들을 위해 헌신을 다하고 이타적인 삶을 살지만 그런 삶으로 인해 정작 자신의 소망은 이루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산다.이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의 상처는 나 또는 내 주변 사람들의 상처와 상당히 닮아 있다. 그러나 소설은 한편으로 그 상처들을 어떻게 보듬으며 살아가는지 보여주며,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결국 그것을 치유하게 하는 것도 사람임을 알려준다. ‘도둑일기’의 삼형제 한수, 중수, 성수는 서로 매우 다르지만 서로의 다름을 거울삼고 협심해 가난을 극복하고 세상에 우뚝 선다. ‘사막을 건너는 법’의 주인공 그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현실에 복귀해 전쟁의 후유증을 겪지만 전쟁의 경험을 통해 베트남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노인의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아픔을 공감한다.‘자기 앞의 생’의 비송거리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처지에 분노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으며 서로 나누고 배려함으로써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간다. ‘인간의 대지’의 주인공 그는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 가족, 동료들,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걷고 또 걸어서 죽음의 사선에서 살아 나온다.우리가 받는 상처의 대부분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존재 이유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비록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지만 그것을 치유하게 하는 것도 바로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다.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을 따라가며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상처를 마주하고, 어떻게 치유해갈 수 있을지 그 방법들을 읽게 된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봉준호·송강호 뒤로 지나가는 이 사람은? '크리스틴 스튜어트' 언제 왔어?

사진=뉴스엔미디어 지난 27일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이날 찍힌 두 사람의 귀국 사진에서 의외의 인물이 포착돼 화제가 되고 있다.바로 헐리우드 배우인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같은 시각에 도착한 것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오늘(28일) 서울 성수동 S팩토리에서 열린 샤넬 파리-뉴욕 공방 컬렉션 쇼 개최 기념 포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내한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날 행사에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외에도 캐롤라인 드 매그레, 김고은, 김성령, 주지훈, 고아성, 수영, 이솜, 장윤주, 모델 아이린, 박지혜, 대만 뮤지선 9M88 등이 참석했다.한편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입국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언제왔어", "서운한건 아니겠지", "하필 이 타이밍에" 등 어이없음과 동시에 웃기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online@idaegu.com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진란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구름도, 바람도, 햇살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꽃도, 나무도, 별도 달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미움도, 원망도, 회한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사랑도, 미련도, 눈물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첫봄처럼 개나리봇짐을 메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타오르는 꽃불을 들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사람을 사랑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문을 통하여/ 손에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네, 사람 사는 세상이네- 시집『혼자 노는 숲』(나무아래서, 2011)..................................................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승을 떠난 지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 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충격적인 죽음에 국민들은 펑펑 눈물을 쏟았지만 시간은 어떤 비통도 완화시키기 마련이다. 그 뜨거웠던 추모열기에 비하면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많이 차분해졌다. 그를 기리는 마음도 엷어질 수밖에 없겠으나 노무현의 가치가 절하되거나 그 정신이 퇴색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보이지 않기에 우리들에게 영원한 존재로 남아있으며, 보이지 않기에 눈에서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살아 지워지지 않는다.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언젠가 한 추모 광고에서 본 카피 문구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노무현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새겨진 너럭바위 비석 앞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쓰여진 강판이 덮여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 가운데서도 가장 강렬한 어조로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새긴 것이다. 평생 반칙과 특권에 맞서 싸운 이력을 잘 함축한 말이다. 이 깨어있는 시민의식은 뒤이어 세상을 떠난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과도 일맥상통한다. 두 대통령의 이 유지는 한때 민주당이 내건 슬로건이었으며 강령과도 같다. 그런데 지금 민주진영 안에서 노무현정신이 얼마나 살아 숨 쉬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이름만을 팔거나 뒤에서 후광효과 정도나 누리려는 자들은 없는지 모르겠다. 지금이야말로 노무현 정신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다시 회복할 때이다. 아울러 노무현을 열렬히 흠모하고 받드는 사람들 역시 품위를 지켜가면서 원칙이 승리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일이다. 능동적 참여 못지않게 도덕적 성숙이 중요하다. 성찰하고 또 성찰하면서 연대를 풀지 않아야 하리라. 천박한 욕설이 카타르시스는 될지언정 결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으며 노무현의 유지는 더욱 아니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는 부엉이바위 벼랑 끝에서 남긴, 그의 이타가 엿보이는 마지막 말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유시민 이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인정 많고, 남 위에 서려는 욕망도 없는 분이었다. 자기 일도 아니지만 누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걸 보면 못 참아서 함께 화를 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주 핏대를 내는 사람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너그럽고 품이 넓은 사람이었다. ‘투쟁 없는 역사도 없지만 관용과 배려가 없는 역사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절제와 유연성을 강조한 그의 어록 하나를 추가한다. 이 역시 새겨들어야할 바보 노무현의 귀한 말씀이다. ‘손에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네, 사람 사는 세상이네’ 시인의 성숙한 시선은 그분이 시민을 향해 주문한 ‘관용의 정신과 타협을 아는 사람들의 연대’를 고스란히 반영하였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부부

부부 / 함민복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시집,『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 시인이 마지못하고 피치 못해 수락한 후배의 결혼식 주례에서 신랑신부에게 해주었던 말을 한편의 시로 다듬었다. 노총각 시인에게 주례를 부탁할 땐 뭔가 특별한 시적 수사를 은근히 기대했을 터인데, 그 기대에 부응키 위해 며칠 골똘히 짜낸 것이 이 ‘긴 밥상’ 이야기다. 당시엔 강화도 바닷가 사글세방을 빌려 혼자 사는 처지였기에 큰상이 있을 리 없고, 있다한들 그걸 펼 일은 도무지 없을 터이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살 때의 제삿날이라도 문득 떠올렸다면 이야기가 된다. 긴 밥상의 한쪽을 들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겠다. 흔들리지 않게 높이와 속도를 조절해가며 걸음걸이를 서로 맞춰가야 상 위의 음식이 엎질러지지 않음을. 문턱을 넘고 좁은 문을 통과할 땐 바로보고 가는 사람이 등 뒤로 걷는 사람에게 건네는 ‘조심’이란 짧은 한 마디, 그리고 앞 사람의 눈빛만 보고 방향을 가늠하면서 상이 놓일 자리까지 탈 없이 옮겨와 상을 안착시킨다. 그런 상을 많이 들어본 부부는 척하면 삼천리고 안 봐도 비디오다, 자연히 서로 빠삭하고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긴장은 흐트러지고 감각은 무디어져 그 조화가 깨어지기도 한다. 욕하면서 가끔 보는 종편채널이 있다. 부부들과 패널들이 떼거리로 나와서 서로의 허물을 이야기하며 깔깔대는 “얼마예요”란 이상한 예능프로그램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야유를 보내는가 하면 더러는 감정이입도 되고 시청자들에게 동의와 위로를 구하기도 하는 형식이다. 내 눈에는 멋지고 이상적인 여성은 하나도 안 보이고, 남편 또한 아내의 관점에서는 하나같이 철부지고 여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속 좁은 이기주의자들이다. 서로 제 잘났다 자기 말이 옳다고 한다. 그걸 우두커니 바라보는 내가 한심스러울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은근히 부러워지면서 ‘복도 많아’ 그런다. 이집 저집 부딪치며 다투고 참는 이유도 비슷하다보니 다행히 출연자들 가운데는 험악한 지경까지 가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 속 부부들은 유쾌하고 솔직한 부부설전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갈라서는 커플이 수두룩하다. 젊은이들은 주변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잘 사는 부부’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둘레에는 부러움을 살만큼 잘 사는 부부보다 그냥 사는 부부가 압도적인 탓으로 결혼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부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자녀들조차 부모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여학생들에게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5% 정도, 엄마와 같은 결혼생활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3% 남짓만 ‘그렇다’고 답할 만큼 부모의 결혼 생활을 바람직한 모델로 꼽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문 환경 탓도 있겠으나 예전과는 많이 다른 현상이다. 아무쪼록 세상의 부부들이여,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는’ 일 없이 ‘한 발 또 한 발’ 사랑의 이름으로 두렵지 않기를.

삼국유사 기행 11 -사금갑

사금갑(射琴匣)은 ‘거문고집을 쏘라’고 풀이되는 서출지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삼국유사의 냄새가 가장 짙은 신화 같은 이야기다. 서출지는 경주 남산의 동쪽 가운데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지금도 사적지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경관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유적이다. 서출지 북쪽에는 나무 그늘에 여러 개의 벤치를 설치해 쉼터를 조성해 두고 있다. 삼국유사 기행단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서출지를 탐방하고 있다. ‘사금갑’은 쥐와 까치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돼지가 서로 싸우고, 연못에서 신선이 나오는 등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당시 시대 상황을 여러 각도로 추측하게 하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글이다. 학자들의 분석이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는 글이기도 하다. 서출지 남쪽에는 신라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아미타불을 염불하던 스님이 있었다는 염불사터에 동서 쌍탑으로 삼층석탑이 복원돼 있다. 임금을 구한 편지가 출토되었던 연못과 신비스런 스님이 있었다던 염불사지로 가본다. 그리고 소지왕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력을 추측해 새로 삼국유사를 써본다. 삼국유사 사금갑조에 소지왕을 위기에서 구한 편지가 출토된 연못 서출지 전경. 조선시대때 건립된 정자 이요당이 멋진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삼국유사 사금갑-거문고집을 쏘라-제21대 비처왕(소지왕이라고도 한다)이 즉위한 지 10년 되는 무진(488)에 천천정에 행차했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야기하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소서”라 했다.(혹은 말하기를 신덕왕이 흥륜사에 예불하러 가려는데 길에서 여러 마리의 쥐들이 꼬리를 서로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괴상히 여겨 돌아와 점을 쳐보니 ‘내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아보라’ 등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다.) 왕이 말을 탄 무사에게 명령하여 뒤따르게 했다. 남쪽으로 피촌(지금의 양피사촌으로 남산 동쪽 기슭에 있다.)에 도착했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주저주저하며 그것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가 간 곳을 놓쳐버리고 길가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이때 노인이 못에서 나와 편지를 주었다. 겉봉에 ‘떼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쓰여 있었다. 무사가 와서 그것을 바치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차라리 떼지 않고 단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겠다”라 했다. 서출지에는 연꽃이 어우러져 정자와 함께 신비스런 풍경을 연출한다. 둘레길에는 백일홍과 고목들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일관(길일을 가리는 일을 맡아보는 벼슬아치)이 말씀드리기를 “두 사람이란 것은 일반 백성이요, 한 사람이란 것은 왕입니다”라 하자 왕도 그렇게 여겨 편지를 떼어 보았다. 그 편지 속에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집을 쏘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 거문고집을 보고 활을 쏘았다. 그 속에는 내전에서 분향 수도하는 중과 궁주(왕비)가 은밀하게 사귀면서 간통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을 처형했다. 이로부터 나라의 풍속에 매년 정월 첫 돼지 날과 첫 쥐 날과 첫 말의 날에는 모든 일에 조심하고 삼가서 함부로 움직이지 아니했다. 정월 보름을 ‘까마귀의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를 지냈으니,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세속의 말로 ‘달도’라고 하니, 슬퍼하고 근심하여 모든 일을 금하고 꺼린다는 뜻이다. 편지가 나온 못을 서출지로 이름을 붙였다. 서출지 동쪽 제방에는 수령 200년 이상 된 소나무가 산책로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 ◆흔적: 서출지△이요당: 이요당은 서출지 서편에 한쪽은 저수지 안쪽으로 쑥 들어와 있고, 한쪽은 저수지 둑과 연결된 도로에 접해 있는 조선시대 건축된 정자다. 동남향으로 ‘ㄱ’ 모양의 순수 한옥형 정자로 지어져 자못 풍류가 느껴진다.조선시대 전통한옥으로 지어진 이요당. 요산요수에서 두 개의 요자를 겸한다고 하여 정자 이름이 이요당으로 지어졌다.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과 함께 이요당은 지혜로움과 덕이 넘치는 인품을 두루 갖춘 선비의 풍모를 닮아 반은 물 위에 떠 있고, 반은 땅에 연접해 지어 선비들이 여름에도 시원하게 글을 읽었던 곳이다. 건물 이름 이요당도 요산요수에서 취했다. 조선시대 현종 5년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지었다. 처음에는 3칸 규모였으나, 다섯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은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고풍을 연출하고 있다. 임적은 가뭄이 심할 때는 물줄기를 찾아 이웃 마을까지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도왔고,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 덕망이 높았다. 남쪽 양피못 언덕에는 임적의 아우 임극이 지은 산수당이 있다. 한때 양피못을 진짜 서출지라고 주장하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현재 서출지가 진짜 서출지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요당의 동쪽은 서출지에 들어와 있어 기둥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초석을 돌기둥으로 세웠다. △서출지는 동남산 통일전 남쪽에 연접해 있는 부지면적 7천㎡ 규모의 아담한 연못이다. 신라시대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깃든 연못으로 지금도 이요당 정자와 함께 향나무와 소나무, 백일홍이 어우러지고, 못 가운데는 연꽃이 가득해 연인들의 산책코스로 인기다. 경주시는 서출지 제방 둘레에 조명등을 설치해 밤에 오히려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해 찾는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서출지 둘레길은 제방 둑으로 꽃길로 조성되어 있다. 야간에도 조명등을 밝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신라 소지왕 때에 연못에서 신선이 편지를 들고 나타나 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역사문화 탐방객들의 필수코스로 손꼽힌다. 또 서출지에서 비롯된 정월 대보름 제사와 찰밥 풍습은 지금까지도 민족 고유의 풍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출지는 국가에서 사적 138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서출지 남쪽 1㎞ 거리에 염불사지로 전해지는 사찰 터에 동서 삼층석탑이 복원되어 있다.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서출지에서 약 1㎞ 거리에 염불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에 동서 쌍탑으로 복원돼 있다. 삼국유사에는 ‘피리사’라는 절에 신비스런 승려가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스님이 입적한 이후에 피리사를 ‘염불사’로 고쳐 부르고 있다.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03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하고, 2009년 1월 동서 쌍탑으로 삼층석탑을 복원했다. 이때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복원공사내역과 함께 매립했다. 염불사지에는 이거사 터에서 옮겨온 석탑 부재들이 쌓여 있다. 서출지와 이요당의 둘레길 야경. 조명을 받은 이요당이 신비스러운 모습이다. ◆다시 쓰는 삼국유사: 소지왕의 위기소지왕은 479년에 아버지 자비왕의 뒤를 이어 신라 21대 왕위에 올랐다. 당시에는 17대 내물왕부터 실성왕, 눌지, 자비왕까지 김씨들이 왕위를 대물림하고 있었지만, 박씨와 석씨들의 권력을 향한 힘겨루기는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어 연대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박, 석, 김 3성의 왕권 차지를 위한 견제와 타협은 미묘한 권력 구도를 형성하면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첨예한 대립의 각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김씨 왕위세습체제는 완벽하게 갖추어지지 않은 불완전한 힘으로 박씨, 석씨 등의 세력과 연합하는 전략을 동원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와 함께 육부촌장들의 힘겨루기와 백제, 고구려의 침략은 정권을 유지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면서 소지왕의 의지를 지치게 했다. 소지왕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불교에 상당히 심취했다. 이름도 아버지는 자비왕, 자신은 스스로 부처를 뜻하는 ‘비처’라고 부르기도 했다. 신라의 불교는 왕실을 비롯해 귀족층에서부터 시작해 백성들에게로 전파되는 형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요당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는 풍경. 소지왕은 초창기에 백성들을 많이 사랑했던 왕으로 칭송을 들었다. 가뭄에 백성들을 위해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주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직접 보살피기도 했다. 사방에 우편 역을 설치하고, 도로를 고치고, 시장을 열어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려 했다. 계속되는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해 월성 주변에 해자를 설치하는 한편, 백제와 결혼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견제했다. 외세 침략에 대비하면서 소지왕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적들의 반란에 제대로 견제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소지왕은 고구려 등의 침략에 대비해 월성의 성벽을 튼튼하게 하고, 해자를 보강하는 공사를 단행했다.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공사 기간 동안 소지왕은 명활산성을 궁으로 사용했다. 다시 월성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정적들의 공격을 받았다. 왕권을 노리는 정적들의 공격을 여러 번 받으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번이 가장 강력했다. 이때가 왕위에 오른 지 10년 되었을 때다. 서출지와 염불사지 사이에 이요당을 지었던 임적의 동생 임극이 양피못 옆에 산수당을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후궁으로 들어온 선혜부인이 신궁의 승려 묘심과 내통하고, 궁궐과 외부를 잇는 세력을 키워 소지왕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할 계획을 꾸몄다. 소지왕은 반란세력의 기미를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가까스로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반란세력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숨죽이며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소지왕은 내부적인 정적들의 도전에 직면해 김씨 일족과 박, 석씨 세력의 도움으로 겨우 왕권을 유지하면서 정치싸움에 환멸을 느껴 점점 환락에 빠져들었다. 소지왕은 집권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막연한 종교적인 힘에 의존하는 한편, 여성 편력으로 내부적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권해 죽임을 당했다. 서출지 동북쪽에 수령 300년은 넘은 것 같은 두 그루의 향나무 가지가 맞붙어 연리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 기념 촬영을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해설사의 이야기가 있다. 소지왕의 여성 편력을 이용해 반란세력들은 미모가 뛰어난 벽화를 왕에게 소개했다. 처음에는 거부하며 정치에 몰입하려 애를 썼지만, 벽화의 조직적이고 개략적인 유혹에 소지왕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결국 소지왕은 반란세력의 힘에 밀려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고, 죽음으로 모든 권력을 놓아야 했다. 소지왕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신라 22대 왕좌에 오른 사람이 지증왕이다. 힘으로 왕좌를 빼앗은 지증왕은 3년여 동안 갈문왕으로 있으면서 왕위에 올라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하며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64세에 왕의 권좌에 오른 지증왕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책과 울릉도 영토회복 등의 활약을 하면서 15년 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신라’라는 국호도 지증왕이 처음 사용했다. 지증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계속 이어간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특집)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8)-쾌재정(快哉亭)

이른바 패스트트랙 문제로 당파싸움이 한창인 날 쾌재정을 찾았다. 여의도의 풍경은 쇠뭉치를 휘두르는 난장판이었지만, 한적한 농촌은 딴 세상처럼 평화로웠다. 모내기 철 가까운 봄날이어서 들녘은 생명의 온기로 부풀었고, 산새들은 짝을 지어 보금자리를 찾고 있었다. 자연의 여여(如如) 함에 비추어 보건대, 세속의 민낯은 참혹한 것이었다. 참혹을 넘어 민망한 것이었다. 오만과 독선과 탐욕 때문일 것이다. 권력의지의 주된 에너지원이 오만과 독선과 탐욕일 때 나쁜 정치판이 성시를 이루는 법, 작금의 여의도 살풍경이 그 대표적인 본보기일 터이다. 논밭을 일구는 농부에게, 노래하는 새들에게, 이 맑은 봄날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지... 마음속에 되뇌며 차를 달렸다. 내 차의 내비게이션은 이곳이 내가 찾는 그곳이라며 상주시 이안면 가장리 농로(農路)에 내리라 한다. 텅 빈 들녘 경운기 곁에 내리라 하니 황당한 일이었다. 주변에 ‘쾌재정’은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유적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밭갈이하는 농부도 그런 곳은 모른다 했고, 안내 표지판도 찾을 수 없었다. 차를 되돌려 수소문을 나섰다. 문 잠긴 경찰 지구대를 지나, 주민잔치 한마당이 열리고 있는 이안면 사무소를 거쳐, 철길 밑 굴다리를 지나, 다시 내비게이션이 데려다준 곳 또한 그곳, 그 자리였다. 교통경찰이 귀띔해준 야트막한 동산이 시치미를 떼고 나를 맞았다.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까운 저 숲속에 쾌재정이 있을 것이었지만, 쾌재정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농가의 텃밭이 앞길을 가로막고, 발길 끊긴 지 오래인 듯 우거진 잡초가 뒷길을 지우고 있었다. 이끼 낀 너럭바위를 지나 흐린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 마침내 ‘쾌재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581호)에 이르렀다. 위리안치된 선비처럼 남루한 모습이었다. 냇물이 동쪽으로 흘러 무지개를 드리운 것 같고, 산이 냇물에 임하여 마치 누에의 머리같이 된 곳에 정자가 있어 나는 듯하다. 이름하여 ‘쾌재정’이라. ‘동쪽으로 학가산, 서쪽으로 속리산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갑장산을, 북쪽으로 대승산을 바라본다. 강산이 아름다워 비단결 같도다. 그 주인은 누구인고, 채기지(蔡耆之)로다’와 같이 쾌재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기문(記文)은 옛 시인의 허사였다. 쾌재정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문장가, 중종반정공신으로 인천군에 봉군되었던 난재 채수(1449-1515) 선생이 낙향하여 지은 정자이다. 그는 이곳에서 최초의 국문소설로 알려진 (설공천전)을 쓴다. 저승을 다녀온 설공찬(薛公璨)이 당시의 정치인들에 대한 염라대왕의 평을 이야기로 만든 (설공천전)은 허균의 (홍길동전) 보다 100년 앞서 쓰인 패관소설이다. 훈구대신과 신진사림의 갈등, 요즘 말로 하자면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의 세력다툼으로 영일이 없었던 조선 중종 조의 정치적 상황이 그 배경이다. 주인공 설공찬이 들려주는 저승 이야기는 이렇다. 저승에는 남녀차별이 없어 여성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다는 것. 이승에서 아무리 큰 권력이 있었어도 저승에서는 그 사람의 행적에 따라 벌을 받는데, 그 예로 당 태종은 사람을 많아 죽여서 지옥에 있다는 것. 아무리 임금이라도 반역을 저질렀으면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의 풍속에 비추어보면 가히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특히 반역에 대한 부분은 중종(中宗)이 반정(反正)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안 되는 민감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중종과 권신(權臣)들의 눈에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조정은 (설공천전) 필화사건으로 들끓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아옹다옹으로 날밤을 새우나보다. 중종 3년(1508) 9월의 일이었다. “채수(蔡壽)가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었는데, 내용이 모두 화복(禍福)이 윤회(輪廻)한다는 논설로, 매우 요망(妖妄)한 것이며, 중외(中外)가 현혹되어 믿고서 문자(文字)로 옮기거나 언어(諺語)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킵니다. 부(府)에서 마땅히 행이(行移) 하여 거두어 드리겠으나, 혹 거두어들이지 않거나 뒤에 발견되면, 죄로 다스려야 합니다” 라고 사헌부가 임금에게 아뢰자, 임금은 “(설공찬전)은 내용이 요망하고 허황하니 금지함이 옳으나, 법을 따로 세울 필요는 없다.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는다” 고 하였다. 그럼에도 채수를 교수(絞首)해야 한다는 탄핵 상소가 계속되자, 그가 지은 (설공찬전)이 괴이하고 허탄한 말을 꾸며서 문자로 나타낸 것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어 혹하게 하므로 ‘부정한 도로 정도를 어지럽히고 인민을 선동하여 미혹케 한 율(律)’에 의해 사헌부가 교수(絞首)로써 조율했는데, 파직만을 명한다. 이와 같이 임금은 거듭 극형이 아닌 파직을 명한다. 그러나 요망한 사설로 민심을 어지럽힌 채수를 교수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조정의 여론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자 9월20일 조강(朝講)에서 영사(領事) 김수동(金壽童)이 “채수(蔡壽)가 만약 스스로 요망한 말을 만들어 인심을 선동시켰다면 사형으로 단죄함이 가하지만, 다만 기양(技癢)의 시킨 바가 되어 보고 들은 대로 망령되이 지었으니, 채수를 교수로 단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형벌(刑罰)과 상(賞)은 중(中)을 얻도록 힘써야 합니다. 만약 이 사람이 죽어야 한다면, (태평광기), (전등신화) 같은 유(類)를 지은 자도 모조리 베어야 하겠습니까?” 라고 채수를 두둔한다. 임금은 “(설공찬전)은 윤회화복의 설(說)을 만들어 어리석은 백성을 미혹케 하였으니, 채수에게 죄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수함은 과하므로 참작해서 파직한 것이다”라는 설명으로 필화사건을 매듭짓는다. 배타적 이념과 진영의 치킨게임으로 ‘궤멸’, ‘청산’과 등과 같은 섬뜩한 말들이 흉흉한 작금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어느 한 쪽에 휘둘리지 않는 임금의 자세는 돋보이는 바 있다. 중종실록에 실려 있는 선생의 (졸기·卒記)는 선생의 사람됨을 이렇게 적고 있다. 채수는 사람됨이 영리하며 글을 널리 보고 기억을 잘하여 젊어서부터 문예(文藝)로 이름을 드러냈고, 성종조에서는 폐비의 과실을 극진히 간하여 간쟁하는 신하의 기풍이 있었다. 그러나 성품이 조급하며 허망하여서 하는 일이 거칠고 경솔하였으며, 늘 시주(詩酒)와 음률(音律)을 가지고 스스로 즐겼다. 일찍이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었는데, 떳떳하지 않은 말이 많기 때문에 사림(士林)이 부족하게 여겼다. 사림의 평가가 어떠하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선생은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선비였다는 사실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가담한 공로로 인천군(仁川君)에 봉군되는 과정과 경위가 그것을 말해준다. 따르지 않을 때는 목을 베어 오라는 엄명과 함께 거사 주도한 박원종은 수하를 시켜 선생을 반정에 동참시키게 한다. 저간 사정을 알게 된 선생의 사위 김감(金勘)은 ‘장인이 올 리가 없다’는 생각에 선생을 취하도록 술을 권한다. 만취한 상태로 부축을 받아 궐기 장소에 인도된 선생은 영문도 모르는 채 반정에 참여한 공신이 되고,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3등의 녹훈을 받게 된다. 술기운에 떠밀려 얻게 된 공신 책봉이 선생에게는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이었다. 염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부끄러움이 선생의 낙향을 부추긴다. 여의도 사람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정쟁 없는 시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쟁의 앞뒤 맥락에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염치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나뉘는 서로 다른 클래스가 있다. 채수 선생에게서 보듯, 부끄러움을 아는 자의 부끄러움은 후세를 경계(警戒)하는 (설공찬전)을 낳고,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보듯,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의 저 잘난 민낯은 민생파탄의 난장판을 낳는다. 염치 있는 세상이 보고 싶은 이유이다. 강현국(시인, 사단법인 녹색문화컨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