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물어뜯은 사랑제일교회 신자 징역 1년

코로나19 확진 판정에도 치료를 거부한 채 도주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신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2단독(이준영 판사)은 13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A씨는 전광훈 목사의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를 방문해 확진자와 접촉해 지난해 8월17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하지만 당일 병원 이송을 거부하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출동한 경찰관과 의료진을 물어뜯어 다치게 하고 마스크를 벗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재판부는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고통 받고 있는데 출동한 공무원에게 직접 손해를 끼쳤고 방역 업무에 지장을 초래해 사회에 큰 손해를 끼쳤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천영애의 영화산책…'리큐에게 물어라'

“내가 머리를 숙이는 것은 오직 아름다움 앞에서 뿐입니다.”자신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이 영화의 주인공인 리큐가 한 말이다. 리큐는 궁극의 미를 차를 통해 구현해 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이다. 그가 할복을 하던 날, 집 앞에는 3천의 군사가 지키는 가운데 리큐는 자신에게 칼을 꽂는다.휘날리며 떨어지는 붉은 매화처럼 흰옷에 낭자하게 퍼져가던 피는 그가 추구했던 궁극의 아름다움이었을까.그가 도요토미에게 복종을 하지 않은 것은 속임수와 배신을 일삼던 그의 인간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아름다움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주군으로 모시던 오다 노부나가는 결국 도요토미에게 희생되었지만 그는 아름다움을 알고 존중하던 사람이었다.일본에서 흔하디 흔한 차로 궁극의 미를 구현하고자 했던 리큐는 찻잔 위에 휘날리는 매화를 담아 내거나 창으로 비치는 대나무의 그림자를 담아낼 줄 알던 사람이었다.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손에 넣고 싶은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하던 리큐를 통해 소설 ‘금각사’를 떠올렸다. ‘금각사’의 학승은 금각사를 소유하기 위해 절에 불을 지른다. 아름다움은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리큐 역시 나눌 수 없는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 조선 여자를 자살하도록 만들었고, 그녀가 품고 있던 녹유 향합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극단의 미를 추구하는 극단의 인간형이지만 극단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요즘의 우리가 한 번쯤은 돌아보고 싶은 인간이기도 하다.리큐(利休)는 날카로운 날(刀)의 휴식을 의미한다. 쉬고 있는 날이다. 그러나 날이 쉬고 있다고 해서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날카로운 날을 사용함에 있어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니 날카로움은 여전히 유지된다. 다도의 매력은 바로 이 리큐(利休)에 있으며, 차가운 날(刀)의 휴식이 다도의 궁극의 아름다움인 것이다.쉼이 없는 삶은 여백이 없어서 늘 숨이 막힌다. 삶에서 이 여백을 찾는다는 것은 마음의 내려놓음이며 차는 바로 마음 내려놓음에 가장 적당한 사물이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은 찻잔위로 매화 꽃잎이 날아든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내려놓음이겠는가.이 영화는 일본의 다성이라 불리는 센노 리큐(1522∼1591)를 통해 일본의 다도, 특히 다도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궁극의 미에 대해서 보여준다.“소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끝에는 썩고 무궁화 꽃은 하루를 피어도 스스로 영화로 여긴다.” 백거이의 방언이라는 시에 나오는 글로 조선 여인이 죽기 전에 남겼던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잊고 사는 궁극의 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이다.제140회 나오키상 수상작이었던 작가 야마모토 겐이치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제37회 일본아카데미상 우수 미술상, 37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최우수 예술공로상을 수상했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