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드론) 이인선 한국당 공천신청

4.15 총선 대구 수성을 자유한국당 예비후보인 이인선 전 대구경북경제자유구청장은 5일 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에 공천을 신청했다.이 후보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탈당과 복당을 거듭하는 정치, 정치적 욕심이 지역과 민심을 앞서는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며 “선당후사, 주민만 바라보는 ‘참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이어 “한국당은 ‘경제를 잘 아는 국회의원’, ‘국가와 안보를 지키는 국회의원’, ‘국민 신뢰를 얻는 국회의원’을 주요 공처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30년 현장경제 경험과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으로서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점에 비춰 ‘이인선이 딱’”이라며 공천을 자신했다.그러면서 “30년 현장경제 경험을 수성을에 녹여 내겠다. 기업은 자유롭고 서민은 행복한 수성구를 만들겠다”며 “수성을 주민들로부터 ‘이인선이 하니까 역시 다르구나’라는 말을 반드시 듣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4·15 총선 드론) 이인선, 출판기념회 통해 총선 본격화

4.15총선 대구 수성을 자유한국당 예비후보인 이인선 전 대구경북자유구역청장은 13일 저서 ‘정치 참…’의 출판기념회를 열고 본격적인 총선 행보에 나섰다.‘정치 참…’은 ‘걸어온 길, 걸어갈 길, 힘들어도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라는 주제로 여자로서, 한 남자의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소회, 독립운동가 손녀, 지역과 정치에 대한 견해를 담담히 밝히고 있다.이 자리에서 이 전 청장은 “여성 최초로 계명대 부총장·대구경북과학기술원장·경북도 경제부지사·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 등을 지냈다”며 “최초, 최고지만 실제는 두 번째였다. 두 번째에서는 최초에서 최고로 일할 수 있었고 그 비결은 겸손과 열정”이라고 말했다.이어 자신을 16년째 ‘수성 맘, 수성 워커홀릭’이라고 소개하며 “4년 전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대구 수성을에서 정치의 첫 발을 내디뎠다.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선당후사의 정신, 주민과의 ‘의리’를 지켰다”며 “정치가 참 어렵지만 그래도 정치를 해야 한다. 개인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지역과 나라를 위한 ‘참 정치’를 더 자신있게, 더 당당하게 하겠다”고 피력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칠곡군, ‘석적읍 장곡지역 3·1만세운동 기념비, 제막식 개최

1919년 칠곡군 석적읍 중리·성곡리에서 펼쳐졌던 3·1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해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유공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섬내공원에 세워졌다.칠곡군은 지난 23일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3·1독립만세운동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석적읍 장곡지역 3·1만세운동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했다.장곡 3·1만세운동 기념비 설치는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광복회 칠곡군지회, 칠곡군 석적사회복지회 , 칠곡 인동장씨 화산서원 문중 후원으로 이뤄졌다.칠곡군은 3·1만세운동 마을기념비 건립사업은 1919년 4월9, 10일 만세운동이 전개된 장곡지역(석적읍)에 이어 오는 27일 평북지역(기산면)에서 기념비 제막식을 할 예정이다.당시 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 운동가는 장곡지역 39명, 평북지역 7명 등 총 46명으로 확인됐다.기념비 앞면에는 ‘3·1독립만세 운동마을’이라는 글귀와 함께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장곡3·1만세운동에 참여한 주요인물 39명의 명단이 기록됐다.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3.1운동 100주년 맞아 경주독립운동 조명하는 행사 열린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경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와 전시회가 열린다.특히 경주에서 전개됐던 국채보상운동 취지와 전개 과정, 일제의 간섭 등의 내용이 담긴 서류가 처음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경주 항일정신과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전시회는 22∼24일 사흘간 경주화랑마을 기파랑관과 전시실에서 열린다. 경주문화원과 향토문화연구소가 주관한다.경주지역 항일 운동 상황과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학술대회에서는 경주지역 주민들의 고증과 자료를 통해 경주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독립운동사에 대해 김희곤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 조철제 경북도문화재위원, 권대웅 전 대경대 교수, 신상구 위덕대 교수 등이 주제발표를 한다.이번 학술대회에서 경주 최 부자 일가의 국채보상운동과 백산상회를 통한 독립운동사, 문파 최준의 생애와 민족운동, 박상진 의사의 삶과 경주지역의 독립운동 분위기 등이 상세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또 경주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는 대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손후익의 암흑시대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혼란기 등 민족사에 있어서 불행한 시대를 살았던 시대상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전시회를 통해 경주지역 항일 독립운동 관련 자료, 독립유공자들의 인물사진, 유품, 경주 최 부자 창고에서 나온 국채보상운동 관련 서류와 일제강점기 시대상을 밝히는 자료를 선보인다.특히 경주에서 전개되었던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와 전개 과정, 일제의 간섭 등이 일목요연하게 서류로 남은 내용들이 일반에 공개되는 첫 행사로 상당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경주향토문화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경주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했다”며 “경주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사진과 유품,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고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 독립운동가

대구 독립운동가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문석봉 지사, 우재룡 지사, 이종암 지사, 이두산 지사...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대구시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지역 출신 독립지사들이다. 대구가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운동의 성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구한말 의병활동에서부터 대한광복회와 의열단 등으로 이어진 국내외 항일무장투쟁에는 대구 출신 독립지사들이 주축이 됐다. 하지만 목숨을 내걸고 일제에 맹렬히 맞섰던 지역 독립지사들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대구시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구의 독립운동이 국채보상운동을 필두로 소개됐을 뿐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나마 지난 100년을 되새기는 올해, 시민단체와 도서관을 중심으로 잊혀진 영웅들이 서서히 부각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외세의 침략과 불의에 떨쳐 일어나는 대구정신이 다시 세워질 것으로 기대된다.현재 대구시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구의 독립운동은 다음과 같다. ‘1907년 대구의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되어 기울어져 가는 국권을 금연, 금주로 되찾으려는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여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1915년 서상일 등은 영남지역의 독립투사들과 함께 조선국권회복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3·1만세운동에서 대구지역의 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1927년에는 신간회 대구지회가 결성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의열단원 장진홍에 의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1930년대 이후에도 학생들의 비밀결사운동이 계속되었고,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한 지속적인 항일투쟁이 전개된 고장이었습니다.’이처럼 대구시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내용보다 대구 출신 독립지사들과 지역의 독립운동은 훨씬 뿌리가 깊고 치열했다는 사실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구한말 최초의 항일의병장이 대구 출신인데다, 당시 대구에 일본군 조선파견대사령부가 설치돼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1910년대 항일 결사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대한광복회가 달성공원에서 결성돼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 일제와 친일부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어 영화 ‘암살’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대한광복회의 후신인 의열단이 태동하는 과정에 대구 출신 독립지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광복군의 대표적인 군가를 지어 보급한 인물도 우리 지역 출신이었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아직까지 독립운동의 현장이나 독립지사를 기리는 노력이 시민들의 기대는 물론, 다른 지역의 경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부디 하루빨리 대구 독립운동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해 대구사람의 기개와 자긍심을 되살릴 것을 촉구한다.1895년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대구시 달성군 현풍읍 출신인 문석봉 지사는 대전 유성장터에서 구한말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문 지사의 거병은 전국으로 의병활동이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기록돼 있다. 1893년 별시 무과에 급제한 그는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유학자 및 평민과 함께 의병활동에 나섰다. 영천 보현산을 근거로 활약한 의병부대인 ‘산남의진’을 이끈 선봉장 우재룡 지사는 대한제국 군대에 입대해 대구부 진위대에서 근무하다가 군대가 해산되자 1907년 산남의진에 합류했다. 산남의진이 붕괴된 뒤 우 지사는 1915년 8월25일 구미 출신 의병장 허위 선생의 제자인 울산 출신 박상진 총사령과 함께 대구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군자금 모집과 국외 조직을 책임지는 지휘장으로 활약했다. 현재 아드님 우대현 선생이 대구에 거주하고 있으며, 평전인 ‘대한광복회 우재룡’이 지난달 출간됐다. 이와 함께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등 대구의 뜻있는 시민들이 지난해 8월25일 달성공원에서 처음으로 대한광복회 결성 기념행사를 가진데 이어, 올해 104주년 기념행사를 마련했다.대구시 동구 공산동 출신인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 지사는 밀양 출신 김원봉 단장과 함께, 1919년 11월10일 만주 자신의 집에서 단원 10명으로 의열단을 창단했다. 이 지사는 창단 자금을 비롯해 군자금을 마련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의열단 창단을 기념하는 행사가 광복 이후 올해 처음으로 서울 등 세 곳에서 열린 가운데, 대구에서는 지난 10일 대구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의열단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두산 지사는 1940년대 광복군이 즐겨 불렀던 ‘광복군 행진곡’을 작사 및 작곡한 대구 달성군 화원읍 출신 독립운동가다. 이 지사의 장남과 차남도 독립운동에 투신한 3부자 독립운동가다. 광복군 행진곡은 1940년 광복군 창군과 동시에 불린 순수 창작곡이다.

경북 10월의 독립운동가 권준 ․ 민영숙 선생 강연회 열려

상주박물관은 29일 세미나동에서 ‘2019년 경북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상주의 권준 선생과 그의 며느리 민영숙 선생에 대한 강연회를 개최한다.상주시 이안면 여물리 출생인 권준(1895~1959) 선생과 서울 출생인 민영숙( 1920~1989)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시아버지와 며느리이다.이날 한시준 전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권준·민영숙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에 대해 강연한다.이번 강연회는 권준 선생 출생지인 상주의 상주박물관과 경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이 공동 주관하고, 경북도가 후원한다.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구미시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선생 추모 향사 지내

구미시가 21일 왕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경인사에서 왕산 허위선생 111주기 추모제를 진행했다.이날 추모제는 장세용 구미시장이 초헌관을, 김태근 구미시의회 의장이 아헌관, 윤창욱 도의원이 종헌관을 맡아 진행됐다. 왕산 선생의 손자 허경성 부부와 왕산가 후손 허벽 부부, 기관단체장, 기념사업회 임원,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특히 이번 추모제(향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근조 화환을 보내 선생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등 추모의 의미를 더했다.왕산 허위선생(1855년 4월2일~1908년10월21일)은 임은동 출신으로 평리원 재판장(대법원장), 비서원 승(대통령 비서실장), 의정부 참찬 등을 지냈다.일본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자 의병을 모집해 13도 창의군을 창설하고 의병 총대장을 맡은 후 1907년 선발대 300명으로 일본의 심장부인 조선통감부를 공격하는 ‘서울진공작전’을 감행했다.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한 후 1908년 일본헌병에 체포된 그는 그해 음력 9월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에 의해 처형됐다.대한민국 정부는 재산과 높은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를 인정해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민간인으로 대한민국장 수훈자는 왕산 허위 선생과 안중근 의사 등 28명뿐이다.왕산 선생 집안은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 등과 함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손꼽힌다.허훈, 허겸 등 선생의 형제가 모두 의병장을 지냈고 허학·허영·허준·허국 등 아들과 4촌 형제 등 14명도 의병투쟁에 적극 나서 독립운동기지 건설 참여, 군자금 모금, 독립운동세력 후원활동을 벌였다.장세용 구미시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왕산 허위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나아가 나라를 위해 3대가 헌신한 왕산가의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며 “향후 왕산기념관 일대를 확장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선양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영양초, 역사와 문화愛 삶을 잇는 남자현 지사의 얼을 찾아서

영양초등학교가 2일 유치원과 1~6학년 전교생 286명을 대상으로 ‘역사와 문화愛 삶을 잇는 남자현 지사의 얼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역사·문화탐방을 실시했다.이번 행사는 영양군 인재육성장학회의 예산을 지원받아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바르게 알고 남자현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역사·문화체험의 기회가 됐다.이날 4~6학년 학생들은 경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해 역사 해설사와 함께 독립관과 의열관을 관람했다. 경북지역에서 활동한 남자현 지사, 김도현 의병장 등 독립운동가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배우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기억할 역사, 이어갈 3·1정신’ 특별기획전을 관람한 6학년 권모 학생은 “3·1운동 이후 경북에서 100여 차례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안동국제탈춤공연장을 찾은 학생들은 말레이시아와 러시아의 탈춤 공연을 관람하면서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점을 느꼈다.탈춤 공연 관람후 안동 유교랜드를 방문해 제1관 대동마을부터 제6관 참선비촌에 이르까지 16세기 조선의 선비들 삶과 유교 문화에 대해 직접보고 느끼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오원우 교장은 “이번 역사·문화탐방이 우리의 전통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며 “마음에 잘 새겨서 당당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황태진 기자 tjhwang@idaegu.com

독립운동가 백산 우재룡 선생을 아시나요

대한광복회 우재룡이성우 지음/선인/415쪽/3만8천 원 독립운동가 백산 우재룡의 평전이 나왔다. 대구경북과 평생 깊은 인연을 맺은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두번의 무기징역 선고와 20년 가까운 감옥 생활을 하며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이 책은 우재룡과 그의 동지, 가족들의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사실 우재룡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독립운동가다. 한국근대사,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이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의 독립운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그는 한말 의병전쟁, 1910·20년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산남의진, 광복회, 주비단 활동이 그것이다.우재룡은 구한말 군인으로 입대해 18세 때 대구진위대에 편입됐다. 1907년 한국군 군대 해산 조치가 내려지자 곧장 영천 보현산을 본거지로 하는 산남의진에 참여해 의병으로 활약했으며, 이후 동지들과 함께 ‘광복회’를 조직한다. ‘광복회’는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무장독립 운동단체다.국내와 만주를 오가며 군자금을 모금했으며, 경주에서 일제의 세금 운송 마차를 공격하고 친일파를 처단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일제에 여러 차례 체포돼 사형을 구형받기도 한다. 두번째 투옥에서 그는 무려 17년간 옥고를 치른다. 30대에 체포돼 50대에 풀려난 것이다. 우 지사는 출옥 후 광복회 재건사업과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선양사업 등을 하다 71세를 일기로 운명한다.책은 우재룡의 삶을 시간과 사건별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그는 국권을 침탈하고 있는 일제를 몰아내고, 대한제국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만들고자 의병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이후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친다. 책의 말미엔 우 지사가 옥고를 치를 동안, 또 서거 이후 그 가족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는지도 보여준다.또 1900년대 구한말 의병의 구국 항쟁에서부터 1955년 전쟁 직후까지의 정치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저자는 “우재룡은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묵묵히 자기에게 맡겨진 소임을 실천하는 독립운동가였다”며 “3·1운동 후 조직되는 주비단이나 광복 후 조직되는 재건광복회처럼, 자신이 실질적인 지도자 위치에 있던 경우에도 이러한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탄압에도 빛났던 투사의 ‘당당함’

영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는 문경 출신으로 문경에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2019년 5월9일 평생을 조국을 위해 애썼던 박열 의사의 생애를 되돌아보자는 의미로 박열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학생기자단이 기념관을 찾았다.대부분 사람들은 박열 의사의 재판 이야기나 가네코 후미코와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박열 의사의 독립운동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박열 의사의 독립운동은 3.1운동부터 시작됐다. 경성 고보 재학 중 박열은 3·1운동 만세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당했고 이후 일본에서 단체를 만들고 기관지를 작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열단과 폭탄 투하에 대해 도모했다.‘박열 의사는 비록 폭탄 전달 과정에서 실패했지만 이봉창, 윤봉길 의사처럼 거사를 치렀다면 교과서에 실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박열 의사는 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인의 원한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투옥 당했다. 이후 박열 의사는 일왕 암살 시도라는 죄명으로 재판을 받았다.재판장에서 그는 4가지를 요구했지만 재판장 측에서는 2가지 사항만 받아들였다. 그것은 재판장에서 한복을 입는 것과 재판관이 박열 의사를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재판장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재판장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박열 의사는 조선인들의 결백함을 대변하며 끝까지 일본에 굴복하지 않았다.박열 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인물들이 있다.첫 번째는 박열 의사 재판을 변호한 후세 다츠지다. 그는 한국 독립운동과 한국인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 일본의 인권 변호사로 1919년 2·8독립 선언으로 체포된 조선 유학생들의 변론을 시작으로 제1·2차 조선공산당 사건, 한신 교육투쟁 사건 등 광복 전후 재일본 한국인과 관련된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그는 일본인으로 조선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독립운동을 적극 도왔, 그 때문에 감옥에 3번 투옥당했고 변호사 자격마저 박탈당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을 인정한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며 그는 일본인 첫 번째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았다.두 번째는 가네코 후미코다. 대부분은 가네코 후미코를 박열 의사의 부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에게 양육을 거부당하면서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무적자로 사는 등 불행한 가족사를 겪었다.일본의 친척집에서 자라다가 1912년 조선에서 살고 있던 고모 집에 들어가 학대를 받으면서 약 7년간 조선에서 살았다. 1919년 3·1 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에 공감하면서 그녀는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됐다. 가네코 후미코가 숨진 지 92년 만에 그녀의 업적이 인정받게 돼 일본인 중 두 번째로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조선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가네코 후미코의 업적이 이제야 인정받았다는 게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과거 아픔 때문에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반일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츠지와 같이 조선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일본인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기념관을 방문한 대부분 사람들의 흔한 착각은 기념관 옆에 있는 무덤을 박열 의사 무덤이라 생각한다. 이 무덤은 박열 의사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무덤이다.그렇다면 박열 의사의 무덤은 어디 있을까. 기념관 자료에 의하면 박열 의사 시신은 북한에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박열 의사는 오랜 수감생활이 끝나고 조국 땅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전쟁 시기 납북됐기 때문이다.박열 의사 기념관 오지훈 학예사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북한에 있는 박열 의사 시신을 이곳으로 데려와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추모식을 지내고 박열 의사 기념관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박열 의사 일생을 담은 영화인 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2020년 2월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박열 의사뿐 아니라 가네코 후미코를 포함한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경북교육청학생기자단문경여고 1학년김가현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한국아이국악협회 경산지부 ‘국악콘서트 청바지’ 21일 무료 공연

한국아이국악협회 경산지부(지부장 허재윤)는 오는 21일 오후 4시 경산여성회관 공연장에서 ‘국악콘서드 청바지’를 무료 공연한다.이번 공연은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과 노래를 콘텐츠로 활용해 국악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청년예술가의 국악단원과 협업해 미래의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공연은 20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경산의 독립운동가 허병률과 허동상을 기리기 위한 영남민요 ‘독립군 아리랑’과 하양 출신 작곡가 김성도의 ‘어린 음악대’ 등을 선사한다.또 경산출신 근대음악인 방운아의 대중가요 등 국악과 협연으로 새로운 감각을 재조명해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인다.특히 이번 공연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 박효지, 민요가수 이명진, 한국무용가 우주경, 안지연 등과 여윤아(해금), 주민영(피리), 김은별(가야금), 신디(윤경빈)가 출연하는 등 문화예술공연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이다. 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광복절, 나라사랑 태극기 몹 펼쳐져

‘민족의 혼이여, 민족정신광복으로 깨어나라!’15일 낮 12시 광복절을 맞아 ‘나라 사랑 태극기 몹’ 공연이 펼쳐진 대구 중구 동성로 일대는 태극기 부채와 우산 등 태극기로 물들었다.공연은 대구국학원과 국학원청년단의 난타 북소리로 막을 올렸다. 우렁찬 북소리에 시민들이 하나 둘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국학원 학생들이 우리민요 아리랑 가락에 맞춰 동성로 광장 무대에서 손 태극기를 들고 춤을 추자 시민들은 태극기 부채를 흔들며 환호했다.이날 공연은 태극기 플래시 몹과 함께 독립운동가 어록 낭독 콘테스트 등 다양하게 마련됐다.특히 올해 처음 생긴 독립운동가 어록 낭독 시민콘테스트는 시민들의 이목을 끌었다.시민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유관순, 김구 등 독립 열사들의 어록을 결의와 의지를 꾹꾹 담아 읽어 내려갔다. 낭독은 세대를 불문한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졌다.최언하(15·사대부중 2년)양은 “독립 운동가들의 어록을 소리 내서 읽어보니 광복절이 정말 의미가 깊은 날인 것을 깨닫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광장 한 켠에는 독립 만세 운동가 10명의 사진 전시는 물론 부채 무궁화 그리기 및 태극기 판화 체험부스도 마련됐다.두 딸과 함께 참여한 백호진(42)씨는 “광복절을 맞아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에 딸을 데리고 방문하게 됐다”며 “딸이 무궁화를 그리며 광복절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거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대구국학원에 참여한 봉사자 100여 명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도화지에 직접 쓴 광복절 관련 문구를 흔들어 보이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박재연 대구국학원 사무처장은 “단순한 휴일보다 시민들이 봉사정신과 광복절에 대한 의미를 더욱 뜻깊게 생각하길 바라며 매년 개최하고 있다”며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광복절에 대한 의미를 되새겼다”고 말했다.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구미 시민단체 구미역 소녀상에서 광복절 행사 열어

8·15 광복 74주년을 기념하고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확산하기 위한 행사가 15일 구미에서 열린다. 구미시민의 눈과 민족문제연구소는 15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2시간 동안 구미역 후면 광장에 있는 소녀상앞에서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절 기념행사와 공연을 갖는다. 이날 행사는 영남민요연구회와 시립합창단, 구미말뚝이 풍물패 등이 참여하는 공연과 보이콧 재팬 캠페인, 역사바로 알기 전시회 등 다양하게 열릴 예정이다. 임수용 시민의 눈 접주는 “기관이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최하는 광복절 행사라는데 의미가 있다”며 “광복절 행사와 겸해 최근 전국적 이슈인 보이콧 재팬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확산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임 접주는 “구미에도 왕산 허위선생이나 허형식 장군 같은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업적과 활동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료를 정리해 전시한다”며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하는 공연자들에게 감사드리며 시민들의 동참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대구시, 지역 여성독립운동가 재조명해

대구시가 대구·경북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현창 사업을 추진한다.13일 대구시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계명대 동산의료원에 조성된 3·1운동 유공자 벽에 대구·경북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 임봉선, 한연순, 이남숙 등 9명이 추가로 등재된다.이들은 이번에 추가로 추서된 남성 독립운동가 12명과 함께 유공자 벽에 등재돼 이곳엔 모두 55명의 독립유공자가 이름을 올리게 됐다.현재 2009년 조성된 3·1운동 유공자 벽은 남성독립운동가 34명만 등재돼 있는 상태다.대구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해외 독립운동에 헌신한 여성독립운동가 13명을 발굴해 ‘대구여성독립운동 인물사’도 발간한다.이 밖에 2016년에 이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대구 남일동 7부인의 이야기를 다룬 ‘7부인을 찾아 떠나는 시간 여행’도 올해 재발간된다.강명숙 대구시 여성가족청소년국장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남성 독립운동가의 그늘에 가려 재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며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고 오류를 바로잡아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한편 지난달까지 등록된 전체 독립유공자 1만5천454명 가운데 여성독립운동가는 2.8%인 431명이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국채보상운동 출발시기 알려진 것보다 더 빨랐다

국채보상운동의 출발 시기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빨랐던 것으로 보여지는 서책과 경주 최부자집이 백산무역주식회사의 독립운동자금 지원에 깊숙히 관련된 각종 문서 등이 대거 발견됐다.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한일갈등과 74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조선시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경주 최부자집 창고에서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문화재급 역사적인 자료 수만 건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이하 최부자선양회)는 1972년 최부자집 사랑채에 불이 나자 긴급히 옮겨 두었던 자료들을 창고에서 발견, 중요 문서로 확인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문학과 교수 등에 의뢰해 번역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부자집 창고에서 나온 서책들은 국채보상운동, 백산무역주식회사 설립, 독립운동 과정 등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추정할 수 있는 다양한 서책들로 보물급이라는 분석이다. 이 문서들은 하나 같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고스란히 증명하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역사를 새로 고쳐쓰게 할 내용들도 있어 충격적이다. 특히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돼 지금까지는 대구의 서상돈 선생이 1907년 1월29일 운동을 발의한 것이 정설로 돼 있었다.하지만 경주의 이 자료에는 1907년 1월22일자 의연금 영수증과 대구본부로 보고한 문서가 있어 국채보상운동의 시작 시기를 조정하게 한다. 자료에는 경주에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5천86명의 이름과 기탁금액까지 기록하고 있어 경주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했던 것을 설명한다. 또 백산무역주식회사 설립 자료와 최부자집의 전 재산을 담보로 35만 원을 일본 식산은행에 차용하는 근저당설정계약서 문서가 깨끗한 활자로 남아있다. 백산무역주식회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자금을 지원했다고 증명하는 편지와 엽서, 일본 정부의 내부 보고서 등의 서류들도 함께 발견됐다. 독립운동가 박상진, 일본 황궁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 김지섭, 조선 최고 문장가 김매순, 실학가 서유구 등의 편지를 통해 최부자집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는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최부자집이 동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덕목 6훈을 이해하게 하는 기록들도 대거 발견됐다.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는 내용의 조선시대 과거 시험지, 과객을 후하게 접대하라는 ‘과객도기’ 기록,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을 없게 하라를 실천한 ‘구휼기’와 ‘기구성책’은 어려운 사람들의 명단과 곡식을 지급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 김동리의 형 김범부, 안동의 권오설 등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장학지원 자료, 만석꾼 집안의 200년에 이르는 추수기를 기록한 250권의 서책, 조선시대 판서, 총리 등의 인물들과 교류한 흔적이 나타나는 1910년 전후의 편지 4천여 통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기록들도 다양하다. 최부자집에서 1911년에 월성초등학교를 설립했다는 문서는 현재 1927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학교 설립역사를 고치게 한다. 경남일보 창간호,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 기록 신문(만세보 1910년 2월16일자), 오세창의 민족신문 대한민보에 실린 최초의 신문삽화 등의 희귀한 자료들도 많다. 사단법인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최창호 이사는 “말로만 듣던 선조들의 행적들이 깨알같이 선명한 인쇄체로 남아있는 자료들을 대하니 가슴이 먹먹하다”면서 “이해할 수 있게 번역작업을 서둘러 후세에 길이 전할 수 있는 교육적 자료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일간신문 지상에는 보도된 적은 없다”면서 “귀중한 자료를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 우선 보관을 의뢰하고, 번역에 따라 차츰 문화재 등록 절차 등을 밟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본지는 최부자집 창고에서 발견된 서책을 국채보상운동, 백산무역주식회사, 최부자집의 6훈, 일제강점기 기록들 등의 특집 4회로 연재하면서 소개할 예정이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