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 림 의원 주최 ‘경북의 독립 운동’ 특별전 개최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경북 안동)이 주최하고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과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관장 김희곤)이 주관하는 ‘경북의 독립운동가들 특별전’이 14일부터 3일간 국회의원회관 제2로비에서 열린다.3.1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 ‘미디어 콘텐츠로 본 경북의 독립운동-독립된 조국에서 See you Again’이란 이름의 이번 전시는 영화, 드라마, 오페라 공연 등 미디어 콘텐츠의 소재가 된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활동과 이들이 남긴 유물 30여점이 소개된다.전시회 개막식은 14일 오후 1시 30분에 시작된다.이창재 기자 lcj@idaegu.com

영양초, 역사와 문화愛 삶을 잇는 남자현 지사의 얼을 찾아서

영양초등학교가 2일 유치원과 1~6학년 전교생 286명을 대상으로 ‘역사와 문화愛 삶을 잇는 남자현 지사의 얼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역사·문화탐방을 실시했다.이번 행사는 영양군 인재육성장학회의 예산을 지원받아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바르게 알고 남자현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역사·문화체험의 기회가 됐다.이날 4~6학년 학생들은 경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해 역사 해설사와 함께 독립관과 의열관을 관람했다. 경북지역에서 활동한 남자현 지사, 김도현 의병장 등 독립운동가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배우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기억할 역사, 이어갈 3·1정신’ 특별기획전을 관람한 6학년 권모 학생은 “3·1운동 이후 경북에서 100여 차례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안동국제탈춤공연장을 찾은 학생들은 말레이시아와 러시아의 탈춤 공연을 관람하면서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점을 느꼈다.탈춤 공연 관람후 안동 유교랜드를 방문해 제1관 대동마을부터 제6관 참선비촌에 이르까지 16세기 조선의 선비들 삶과 유교 문화에 대해 직접보고 느끼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오원우 교장은 “이번 역사·문화탐방이 우리의 전통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며 “마음에 잘 새겨서 당당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황태진 기자 tjhwang@idaegu.com

성주군 심산 김창숙 선생 숭모제

성주청년유도회는 지난 21일 성주군청 대강당에서 기관단체장 및 유림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0회 심산 김창숙 선생 숭모제를 개최했다.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와 함께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로 지조와 절개를 지켰던 조선의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선생의 숭모제는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전국 각지 유림 및 출향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이날 숭모제는 1부 숭모학술대회와 2부 숭모작헌례로 나눠 진행됐으며 숭모학술대회에서는 (전)독립기념관 김상웅 관장의 ‘심산 김창숙과 민족해방운동’, 성균관대 서중석 명예교수의 ‘심산 김창숙의 민주화 운동’ 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심산 김창숙 선생의 사적을 재조명하고 그의 애국애족 정신과 뜻을 현대에 어떻게 이어받을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숭모작헌례는 초헌관에 현승일 제6대 국민대 총장, 아헌관에 이성사 연해주아브로농장 회장, 종헌관에 이창환 제13대 대구청년유도회장이 맡았으며, 집례는 안기수 성주청년유도회 부회장, 집사는 성주청년유도회와 칠곡청년유도회 유림들이 봉무해 거행됐다.백철현 성주청년유도회장은 “숭모제 행사를 통해 심산선생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정신문화를 계승 및 발전시켜 애족정신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이병환 성주군수는 “성주가 낳은 위대한 스승인 심산 김창숙 선생의 숭모제를 통해 심산선생의 올곧은 사상과 뜻이 길이 전수되고 앞으로도 다양한 숭모사업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한편 성주군은 심산 김창숙 선생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대가면 심산생가 일원에 심산문화테마파크 조성사업 총사업비 237억 원을 확보해 2022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중에 있다. 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독립운동가 백산 우재룡 선생을 아시나요

대한광복회 우재룡이성우 지음/선인/415쪽/3만8천 원 독립운동가 백산 우재룡의 평전이 나왔다. 대구경북과 평생 깊은 인연을 맺은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두번의 무기징역 선고와 20년 가까운 감옥 생활을 하며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이 책은 우재룡과 그의 동지, 가족들의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사실 우재룡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독립운동가다. 한국근대사,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이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의 독립운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그는 한말 의병전쟁, 1910·20년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산남의진, 광복회, 주비단 활동이 그것이다.우재룡은 구한말 군인으로 입대해 18세 때 대구진위대에 편입됐다. 1907년 한국군 군대 해산 조치가 내려지자 곧장 영천 보현산을 본거지로 하는 산남의진에 참여해 의병으로 활약했으며, 이후 동지들과 함께 ‘광복회’를 조직한다. ‘광복회’는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무장독립 운동단체다.국내와 만주를 오가며 군자금을 모금했으며, 경주에서 일제의 세금 운송 마차를 공격하고 친일파를 처단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일제에 여러 차례 체포돼 사형을 구형받기도 한다. 두번째 투옥에서 그는 무려 17년간 옥고를 치른다. 30대에 체포돼 50대에 풀려난 것이다. 우 지사는 출옥 후 광복회 재건사업과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선양사업 등을 하다 71세를 일기로 운명한다.책은 우재룡의 삶을 시간과 사건별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그는 국권을 침탈하고 있는 일제를 몰아내고, 대한제국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만들고자 의병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이후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친다. 책의 말미엔 우 지사가 옥고를 치를 동안, 또 서거 이후 그 가족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는지도 보여준다.또 1900년대 구한말 의병의 구국 항쟁에서부터 1955년 전쟁 직후까지의 정치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저자는 “우재룡은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묵묵히 자기에게 맡겨진 소임을 실천하는 독립운동가였다”며 “3·1운동 후 조직되는 주비단이나 광복 후 조직되는 재건광복회처럼, 자신이 실질적인 지도자 위치에 있던 경우에도 이러한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탄압에도 빛났던 투사의 ‘당당함’

영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는 문경 출신으로 문경에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2019년 5월9일 평생을 조국을 위해 애썼던 박열 의사의 생애를 되돌아보자는 의미로 박열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학생기자단이 기념관을 찾았다.대부분 사람들은 박열 의사의 재판 이야기나 가네코 후미코와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박열 의사의 독립운동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박열 의사의 독립운동은 3.1운동부터 시작됐다. 경성 고보 재학 중 박열은 3·1운동 만세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당했고 이후 일본에서 단체를 만들고 기관지를 작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열단과 폭탄 투하에 대해 도모했다.‘박열 의사는 비록 폭탄 전달 과정에서 실패했지만 이봉창, 윤봉길 의사처럼 거사를 치렀다면 교과서에 실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박열 의사는 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인의 원한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투옥 당했다. 이후 박열 의사는 일왕 암살 시도라는 죄명으로 재판을 받았다.재판장에서 그는 4가지를 요구했지만 재판장 측에서는 2가지 사항만 받아들였다. 그것은 재판장에서 한복을 입는 것과 재판관이 박열 의사를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재판장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재판장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박열 의사는 조선인들의 결백함을 대변하며 끝까지 일본에 굴복하지 않았다.박열 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인물들이 있다.첫 번째는 박열 의사 재판을 변호한 후세 다츠지다. 그는 한국 독립운동과 한국인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 일본의 인권 변호사로 1919년 2·8독립 선언으로 체포된 조선 유학생들의 변론을 시작으로 제1·2차 조선공산당 사건, 한신 교육투쟁 사건 등 광복 전후 재일본 한국인과 관련된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그는 일본인으로 조선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독립운동을 적극 도왔, 그 때문에 감옥에 3번 투옥당했고 변호사 자격마저 박탈당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을 인정한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며 그는 일본인 첫 번째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았다.두 번째는 가네코 후미코다. 대부분은 가네코 후미코를 박열 의사의 부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에게 양육을 거부당하면서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무적자로 사는 등 불행한 가족사를 겪었다.일본의 친척집에서 자라다가 1912년 조선에서 살고 있던 고모 집에 들어가 학대를 받으면서 약 7년간 조선에서 살았다. 1919년 3·1 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에 공감하면서 그녀는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됐다. 가네코 후미코가 숨진 지 92년 만에 그녀의 업적이 인정받게 돼 일본인 중 두 번째로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조선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가네코 후미코의 업적이 이제야 인정받았다는 게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과거 아픔 때문에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반일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츠지와 같이 조선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일본인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기념관을 방문한 대부분 사람들의 흔한 착각은 기념관 옆에 있는 무덤을 박열 의사 무덤이라 생각한다. 이 무덤은 박열 의사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무덤이다.그렇다면 박열 의사의 무덤은 어디 있을까. 기념관 자료에 의하면 박열 의사 시신은 북한에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박열 의사는 오랜 수감생활이 끝나고 조국 땅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전쟁 시기 납북됐기 때문이다.박열 의사 기념관 오지훈 학예사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북한에 있는 박열 의사 시신을 이곳으로 데려와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추모식을 지내고 박열 의사 기념관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박열 의사 일생을 담은 영화인 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2020년 2월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박열 의사뿐 아니라 가네코 후미코를 포함한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경북교육청학생기자단문경여고 1학년김가현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한국아이국악협회 경산지부 ‘국악콘서트 청바지’ 21일 무료 공연

한국아이국악협회 경산지부(지부장 허재윤)는 오는 21일 오후 4시 경산여성회관 공연장에서 ‘국악콘서드 청바지’를 무료 공연한다.이번 공연은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과 노래를 콘텐츠로 활용해 국악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청년예술가의 국악단원과 협업해 미래의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공연은 20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경산의 독립운동가 허병률과 허동상을 기리기 위한 영남민요 ‘독립군 아리랑’과 하양 출신 작곡가 김성도의 ‘어린 음악대’ 등을 선사한다.또 경산출신 근대음악인 방운아의 대중가요 등 국악과 협연으로 새로운 감각을 재조명해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인다.특히 이번 공연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 박효지, 민요가수 이명진, 한국무용가 우주경, 안지연 등과 여윤아(해금), 주민영(피리), 김은별(가야금), 신디(윤경빈)가 출연하는 등 문화예술공연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이다. 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광복절, 나라사랑 태극기 몹 펼쳐져

‘민족의 혼이여, 민족정신광복으로 깨어나라!’15일 낮 12시 광복절을 맞아 ‘나라 사랑 태극기 몹’ 공연이 펼쳐진 대구 중구 동성로 일대는 태극기 부채와 우산 등 태극기로 물들었다.공연은 대구국학원과 국학원청년단의 난타 북소리로 막을 올렸다. 우렁찬 북소리에 시민들이 하나 둘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국학원 학생들이 우리민요 아리랑 가락에 맞춰 동성로 광장 무대에서 손 태극기를 들고 춤을 추자 시민들은 태극기 부채를 흔들며 환호했다.이날 공연은 태극기 플래시 몹과 함께 독립운동가 어록 낭독 콘테스트 등 다양하게 마련됐다.특히 올해 처음 생긴 독립운동가 어록 낭독 시민콘테스트는 시민들의 이목을 끌었다.시민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유관순, 김구 등 독립 열사들의 어록을 결의와 의지를 꾹꾹 담아 읽어 내려갔다. 낭독은 세대를 불문한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졌다.최언하(15·사대부중 2년)양은 “독립 운동가들의 어록을 소리 내서 읽어보니 광복절이 정말 의미가 깊은 날인 것을 깨닫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광장 한 켠에는 독립 만세 운동가 10명의 사진 전시는 물론 부채 무궁화 그리기 및 태극기 판화 체험부스도 마련됐다.두 딸과 함께 참여한 백호진(42)씨는 “광복절을 맞아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에 딸을 데리고 방문하게 됐다”며 “딸이 무궁화를 그리며 광복절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거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대구국학원에 참여한 봉사자 100여 명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도화지에 직접 쓴 광복절 관련 문구를 흔들어 보이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박재연 대구국학원 사무처장은 “단순한 휴일보다 시민들이 봉사정신과 광복절에 대한 의미를 더욱 뜻깊게 생각하길 바라며 매년 개최하고 있다”며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광복절에 대한 의미를 되새겼다”고 말했다.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구미 시민단체 구미역 소녀상에서 광복절 행사 열어

8·15 광복 74주년을 기념하고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확산하기 위한 행사가 15일 구미에서 열린다. 구미시민의 눈과 민족문제연구소는 15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2시간 동안 구미역 후면 광장에 있는 소녀상앞에서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절 기념행사와 공연을 갖는다. 이날 행사는 영남민요연구회와 시립합창단, 구미말뚝이 풍물패 등이 참여하는 공연과 보이콧 재팬 캠페인, 역사바로 알기 전시회 등 다양하게 열릴 예정이다. 임수용 시민의 눈 접주는 “기관이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최하는 광복절 행사라는데 의미가 있다”며 “광복절 행사와 겸해 최근 전국적 이슈인 보이콧 재팬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확산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임 접주는 “구미에도 왕산 허위선생이나 허형식 장군 같은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업적과 활동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료를 정리해 전시한다”며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하는 공연자들에게 감사드리며 시민들의 동참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대구시, 지역 여성독립운동가 재조명해

대구시가 대구·경북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현창 사업을 추진한다.13일 대구시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계명대 동산의료원에 조성된 3·1운동 유공자 벽에 대구·경북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 임봉선, 한연순, 이남숙 등 9명이 추가로 등재된다.이들은 이번에 추가로 추서된 남성 독립운동가 12명과 함께 유공자 벽에 등재돼 이곳엔 모두 55명의 독립유공자가 이름을 올리게 됐다.현재 2009년 조성된 3·1운동 유공자 벽은 남성독립운동가 34명만 등재돼 있는 상태다.대구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해외 독립운동에 헌신한 여성독립운동가 13명을 발굴해 ‘대구여성독립운동 인물사’도 발간한다.이 밖에 2016년에 이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대구 남일동 7부인의 이야기를 다룬 ‘7부인을 찾아 떠나는 시간 여행’도 올해 재발간된다.강명숙 대구시 여성가족청소년국장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남성 독립운동가의 그늘에 가려 재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며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고 오류를 바로잡아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한편 지난달까지 등록된 전체 독립유공자 1만5천454명 가운데 여성독립운동가는 2.8%인 431명이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국채보상운동 출발시기 알려진 것보다 더 빨랐다

국채보상운동의 출발 시기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빨랐던 것으로 보여지는 서책과 경주 최부자집이 백산무역주식회사의 독립운동자금 지원에 깊숙히 관련된 각종 문서 등이 대거 발견됐다.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한일갈등과 74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조선시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경주 최부자집 창고에서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문화재급 역사적인 자료 수만 건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이하 최부자선양회)는 1972년 최부자집 사랑채에 불이 나자 긴급히 옮겨 두었던 자료들을 창고에서 발견, 중요 문서로 확인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문학과 교수 등에 의뢰해 번역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부자집 창고에서 나온 서책들은 국채보상운동, 백산무역주식회사 설립, 독립운동 과정 등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추정할 수 있는 다양한 서책들로 보물급이라는 분석이다. 이 문서들은 하나 같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고스란히 증명하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역사를 새로 고쳐쓰게 할 내용들도 있어 충격적이다. 특히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돼 지금까지는 대구의 서상돈 선생이 1907년 1월29일 운동을 발의한 것이 정설로 돼 있었다.하지만 경주의 이 자료에는 1907년 1월22일자 의연금 영수증과 대구본부로 보고한 문서가 있어 국채보상운동의 시작 시기를 조정하게 한다. 자료에는 경주에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5천86명의 이름과 기탁금액까지 기록하고 있어 경주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했던 것을 설명한다. 또 백산무역주식회사 설립 자료와 최부자집의 전 재산을 담보로 35만 원을 일본 식산은행에 차용하는 근저당설정계약서 문서가 깨끗한 활자로 남아있다. 백산무역주식회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자금을 지원했다고 증명하는 편지와 엽서, 일본 정부의 내부 보고서 등의 서류들도 함께 발견됐다. 독립운동가 박상진, 일본 황궁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 김지섭, 조선 최고 문장가 김매순, 실학가 서유구 등의 편지를 통해 최부자집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는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최부자집이 동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덕목 6훈을 이해하게 하는 기록들도 대거 발견됐다.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는 내용의 조선시대 과거 시험지, 과객을 후하게 접대하라는 ‘과객도기’ 기록,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을 없게 하라를 실천한 ‘구휼기’와 ‘기구성책’은 어려운 사람들의 명단과 곡식을 지급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 김동리의 형 김범부, 안동의 권오설 등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장학지원 자료, 만석꾼 집안의 200년에 이르는 추수기를 기록한 250권의 서책, 조선시대 판서, 총리 등의 인물들과 교류한 흔적이 나타나는 1910년 전후의 편지 4천여 통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기록들도 다양하다. 최부자집에서 1911년에 월성초등학교를 설립했다는 문서는 현재 1927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학교 설립역사를 고치게 한다. 경남일보 창간호,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 기록 신문(만세보 1910년 2월16일자), 오세창의 민족신문 대한민보에 실린 최초의 신문삽화 등의 희귀한 자료들도 많다. 사단법인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최창호 이사는 “말로만 듣던 선조들의 행적들이 깨알같이 선명한 인쇄체로 남아있는 자료들을 대하니 가슴이 먹먹하다”면서 “이해할 수 있게 번역작업을 서둘러 후세에 길이 전할 수 있는 교육적 자료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일간신문 지상에는 보도된 적은 없다”면서 “귀중한 자료를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 우선 보관을 의뢰하고, 번역에 따라 차츰 문화재 등록 절차 등을 밟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본지는 최부자집 창고에서 발견된 서책을 국채보상운동, 백산무역주식회사, 최부자집의 6훈, 일제강점기 기록들 등의 특집 4회로 연재하면서 소개할 예정이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독립운동가 후손도 거짓, 명예교수도 거짓… 기자 폭행한 '이영훈' 대체 누구?

자신이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후손이라고 밝힌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해 지난 8일 한 매체가 이 교수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했다.이 교수는 차리석 선생의 직계 후손이 아닌 선생의 큰형인 차원석씨의 외증손자로 차리석 선생은 이 교수가 주장한 '외증조부'가 아니라 '외외증종조부'가 되는 것이다.차리석 선생의 외아들인 차영조 선생은 "이름을 팔 게 따로 있다. 아버지의 명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차리석 선생의 묘지는 효창공원에 있다. 이 교수가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해당 논란 뿐만 아니라 이 교수는 '서울대 명예교수'가 아닌 사실 또한 밝혀졌다.오늘(12일) KBS에 따르면 서울대 명예교수 협의회에 이 전 교수가 회원이 맞는지 확인한 결과 "이영훈이라는 이름은 등록이 안 돼 있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이 전 교수가 퇴임한 건 2017년 2월로 같은해 3월과 9월 공지된 신규 명예교수 추대 명단에 이 전 교수의 이름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19년 7월 기준 회비납부자 명단에도 이름이 없다.이 전교수는 지난 4일 자신을 취재하러 온 '문화방송' MBC 기자를 폭행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online@idaegu.com

동북아 공존과 경제협력 연구모임, 이종천 전 국정원장 초청 강연

국회의원 연구단체 ‘동북아 공존과 경제협력 연구모임’(공동대표 김부겸·김태년 의원)이 20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이종찬 전 국정원장 초청 강연을 연다.강연의 주제는 ‘신(新) 동북아 정세 속의 바람직한 한일관계’다.강의자인 이 전 국정원장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4선 국회의원과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냈다.이후 안기부를 개혁해 국가정보원을 출범시키고 초대 국정원장을 맡았다.이 전 국정원장은 강연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한일관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고 각 시점에서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둘러싼 국제 외교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아본다. 이후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해법을 제시할 예정이다.강연에 앞서 김부겸 의원은 “한일 양국은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한 국제질서를 안정화하고 장기적으로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 남북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며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고견을 통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용학도서관, 이상정 장군의 삶과 투쟁 특강

대구 용학도서관이 오는 10일 ‘대구·경북 독립운동 영웅들과 청산되지 않은 과거’라는 주제로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을 소개하는 특강을 진행한다.이번 강연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2019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공모사업에 선정된 데 따른 것으로 지난 3일 생존 독립운동가로 장병하 독립운동가와 시민들의 만남이 펼쳐졌다.이날 오후 7시 시작되는 두번째 강연은 김성은 대구한의대 교수가 참여해 이상정 장군의 삶과 투쟁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17일에는 이재현 경북대 외래교수의 ‘심산 김창숙의 독립정신과 실천’이 예정돼 있다. 또 25일에는 이재현 경북대 외래교수를 따라 심산기념관 및 생가, 청천서원, 백세각, 이상정 고택 및 묘소 등 대구와 성주 일대를 돌아보는 탐방 행사도 마련된다.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은퇴 후 어떻게 살까' 범어도서관, 100세 시대 맞이 특강

-대구 범어도서관은 5월 한달동안 ‘행복한 100세 경영 아카데미’를 주제로 릴레이 특강을 연다.이번 특강은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 후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해 지역주민들에게 재무와 건강, 여가활동 등 다양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우선 다음달 3일에는 해안사 주지스님인 향적 스님이 ‘시니어의 행복이란’을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10일에는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가 역사이야기를, 17일에는 권택환 대구교육대 통합특수교육과 교수가 ‘자연과 하나 되어 건강 챙기기’에 대해 각각 이야기한다.강연은 각각 지하1층 김만용·박수년홀에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펼쳐진다. -대구 용학도서관은 다음달 3일 ‘2019 길 위의 인문학, 독립운동가를 만나다’의 첫 강연을 펼친다.이날 오후 7시 시청각실에서 열리는 강연은 ‘생존 독립운동가를 만나다’를 주제로 장병하 독립운동가와 김동남 다큐멘터리 감독이 강사로 나선다.이번 기획은 잘 알려지지 않은 대구·경북 독립운동사를 부각시켜 지역 독립운동의 정신과 얼을 계승하기 위해 마련됐다. -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무심히 걷던 길에서 되새긴 애국심

‘옛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의로운 사람들과 사귀었네 죽겠노라 맹세가 하늘과 해를 뚫나니, 오만가지 형벌인들 몸을 사리랴‘1919년 48세의 일기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직전 소몽 채기중선생이 당당하고 흔들림 없이 쓴 마지막 옥중 시다.2019년 4월6일 우리들은 소몽 채기중 선생의 생가를 찾아 나섰다.학교에서 3km 남짓한 곳에 있었다. 늘 무심하게 지나다녔던 길인데 오늘은 너무 안타깝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젊음과 삶을 바치신 독립운동가의 생가가 가까이 있었지만 한번도 찾은 적이 없었다. 솔직히 우리들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함창에서 상주로 가는 국도변에 초라한 생가 안내판을 따라 가면 농로가 나오고 끝자락에 철길을 건너 왼쪽으로 돌아가면 새로 복원 된 채기중 선생의 생가가 나온다.바로 앞 철길에는 오늘도 기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생가는 2005년 인천 채씨 문중과 상주시, 지역민의 도움으로 채기중 선생의 생가터를 매입해 생가를 복원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2005년부터 생가를 지키고 있는 후손 채춘길(80) 어르신은 매일 이곳을 찾아 관리하고 계신다. 손자로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자랑스럽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비록 일년에 50여명이 찾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맙다고 하시며 학생기자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친절하게 안내도 해주셨다.그러면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 망한다는 말처럼 이곳에도 아픔이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차마 그 내용은 기사로 쓰지 말라고 하시어 안타깝게도 쓰지 않았다.채춘길 어르신은 “'선조들이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킨 것처럼 생을 마치는 날까지 생가를 지키고 선조님 곁으로 갈 것”이라고 다짐하시며 “작년에는 방문자가 50명도 채 안됐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또 우리나라가 지금 존재하는 것은 선조들의 피와 땀 덕분인 것을 알고 애국심을 더욱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전했다.남해윤(함창고 3학년)은 “우리 지역에 이렇게 훌륭한 독립운동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도 한번도 찾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찾게 돼 다행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자랑하고 애국심도 우리가 본받아야 겠다”고 다짐했다.채기중 선생은 41세때인 1913년 영주 풍기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무장조직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단’ 을 조직해 무장 독립운동을 펼쳤다. 군자금을 모으고 친일부호를 처단하며 일제에 맞섰다.선생이 살던 지역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이고 어려서부터 남의 억울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할만큼 의협심이 강했다고 한다. 근대식 교육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서당에서 한학을 배워 높은 수준의 한문 실력을 갖줘 무려 76개의 한시를 지을 만큼 한문의 경지가 높았다.선생은 경상도 영주지역으로 이주한 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데 당시 영주는 전국서 이주민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행하던 애국지사들이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기에 좋은 장소였다.초기의 대한광복단 멤버들은 대부분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평범한 사람들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컸던 청년들이였다.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대한광복단의 첫번째 문제는 군자금의 확보였고 이를 위해 선생은 대부호들에게 나라를 위해 의롭게 쓰이는 의연금을 지원하라는 문서를 배부하였는데 당시 식민지 권력에 안주하려는 부호들은 군자금을 내지 않았다.선생은 친일부호를 처단하며 경각심을 고취시켰는데 특히 칠곡의 장승원 처단사건은 친일부호 처단 활동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며 친일파들에게 큰 경각심을 주었다.하지만 그만큼 일본경찰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친일파 박용하를 처단하면서 조직이 발각되어 핵심 멤버들이 체포됐고 선생 또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919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순국하셨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인정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선생의 옥중 시의 구절 ‘오만가지 형벌인들 몸을 사리랴’오늘도 선생의 생가터에는 이름모를 들꽃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피어 있다. 우리도 나라를 지키신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애국심을 잊지않고 꽃피워야겠다.경북교육청학생기자단함창고 2학년윤재현​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